나의 거리설교 노하우

또 너희가 나로 인하여 총독들과 왕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언하리라.
그러나 그들이 너희를 넘겨줄 때에 너희가 어떻게 혹은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가 말할 것을 바로 그 시각에 너희에게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니라. (마 10:18-20)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서와 모든 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선포하는 것을 그치지 아니하니라. (행 5:42)

말씀을 선포하라. 때에 맞든지 맞지 아니하든지 긴급히 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책망하고 꾸짖고 권면하라. (딤후 4:2)

들어가는 말

본인은 하나님의 경륜을 모르고 세부적인 교리에 대해 무지해서 갈등과 방황은 겪었어도, 죄와 심판, 복음에 대해서는 중학교 시절부터 100% 정확하게 받아들였고 그때 이후로 20년 넘게 구원의 확신을 전혀 의심한 적 없는 모태신앙 출신이다. 그리고 20대 초중반의 나이이던 2006년 1월부터 거리설교를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떨렸고 입이 열리지 않았으며, 도대체 어떻게 해야 복음을 나 혼자뿐만 아니라 남까지 믿게 만들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성경 지식이 늘고 복음에 대한 논리 변증이 가능해졌으며(가령, 어린아기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 이 순신· 세종대왕 같은 조선시대 사람의 구원은?) 이 방법으로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다른 수단으로도 복음 전하고 회개시킬 수 없다는 확신이 선 뒤부터 거리설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한번 입을 연 뒤에 복음이 술술 흘러나오는 것은 마치 한번 점화가 시작되면 연료가 모두 연소할 때까지 출력 제어가 되지 않는 고체 연료 로켓이 발사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를 가장 사랑하셔서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같은 말이 나올 때의 기쁨과 후련함을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었다.

복음 자체야 고전 15에 매우 간결하게 요약되어 있다. 하지만 “예수 믿어야 한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그 전에 불신자가 이해 내지 동의하지 못하는 전제조건과 배경 설정을 말해야 하는 게 생각보다 많다. 그러니 이것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야 함을 느꼈다. 신의 존재, 내세의 존재, 그 근거인 성경의 신뢰성, 정확하게 믿어야 하는 대상 등을 소개하다 보면 내용은 자연스럽게 길어진다.

이는 마치 교육과정과도 비슷하다. 거리설교에 시간은 한정돼 있고 청자의 집중도도 매우 제한돼 있다. 마냥 자기 성경 지식이나 인생 간증만 장황하게 늘어놓는 게 아니라 불신자의 입장에서 교육학적으로 꼭 필요한 아이템들을 논리적으로 개연성을 갖춘 순서대로 조리 있게 편성할 필요를 차츰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본인의 거리설교 레퍼토리를 빠짐없이 한데 요약해서 거리설교에 관심이 있는 분들과 공유하게 되었다. 이 방법만이 유일하거나 최선은 아닐 것이고 각 개인마다 자신이 복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들이 있을 것이다. 서로 더 효율적인 복음 전파 방법을 논하는 유익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 설교의 공략 대상

범죄 경력 없이 그냥 하루하루 돈 벌고 남 하는 대로 적당히 유흥 즐기고,

정도로 생각하는 통계상으로 가장 평범한 전형적인 불신자를 설정했다.

말씀 선포 원칙

(1) 21세기는 인류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한편으로 전통적인 윤리관, 국가· 사회관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는 암흑기이다. 황금만능주의, 상대주의가 팽배한 시대이다. 이를 감안하여 현대인들에게 편견을 깨뜨리고 일단 설교를 듣게는 하게 만드는 데 집중한다.

(2) 일부러 유흥가· 홍등가· 게이 바 같은 곳을 공략하는 게 아니라 평범한 길거리에서 설교를 하는 거라면, 필요 이상으로 세상의 악한 풍조 책망은 하지 않는다. 그건 악한 원인에 의한 결과일 뿐이므로 거리설교에서는 원인을 먼저 공략해야 한다. 음란방탕이나 동성애 같은 거창한 사회 이슈를 책망하기에 앞서 각 개인 단위로 “절대적인 선과 악은 없다, 죽으면 다 끝이다” 이런 것부터나 반박하고 회개를 촉구해야 한다.

(3) 비슷한 맥락으로, 단순히 “구원이 없다” 이상으로 타 종교 비판이나 욕은 하지 않는다. 이미 지옥 얘기만 해도 충분히 offensive이며, 틀린 답이 아니라 맞는 답만 얘기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4) 어려운 신학 용어 얘기는 안 한다. 삼위일체 같은 개념도 포함. 예수님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셨고, 인간임과 동시에 하나님이라는 것 정도로 소개함. 성령에 대해서도 일단 생략.

(5) 마귀 얘기도 오랜 경험상 제외한다. 그냥 인간이 스스로 죄를 지었다는 말까지만 한다. 죄의 기원 얘기는 잘못 꺼내면 자칫 내가 죄를 짓는 것도 조상 탓이라는 식으로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굉장한 오해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구원받은 신자들 중에도 아담의 죄와 사탄의 죄를 분간 못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하물며 불신자들을 헷갈리게 할 필요는 없다.

거리설교 요약

0. 서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나왔다. 상업광고나 정치구호가 아니다. 여러분의 기원과 영원이 여기에 달려 있고 인생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의 해결책이 여기에 있다.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다. 부디 편견 없이 들어 달라.

1. 이 세상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님

아무리 과학 만능주의 황금 만능주의라 해도 세상에 결국은 과학으로 재연하고 확인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인간이 개발한 그 어떤 과학 기술이나 지식, 철학으로 결코 본질적으로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얻고 돈 많이 벌고 풍족한 노후 보내고 그 뒤엔 어떡할래? 사람은 생존욕구만 충족되면 되는 동물이 아님.

돈 권력 쾌락이 전혀 쓸데없는 것은 아니지만 영원하지도 않으며 사람을 결코 궁극적으로 완전히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한다. 그거 다 얻은 사람도 우울증에 자살 잘만 하고 죽을 때 두려워하며 죽는다.

무신론, 범신론, 불가지론은 답이 아니다. 그럼 우리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지해야 할 것인가?

2. 하나님의 창조 행적

신은 존재하고 내세도 존재함. 죽음 이후가 끝이 아니다. 그 신이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밖에 없다.

거시적으로 이 엄청난 우주와 자연을 창조하고 미시적으로 정교한 생명체들, 특히 당신을 포함한 각 인간들 인격체를 창조하셨다.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도처에 널려 있다.

자동차, 비행기, 스마트폰만 해도 설계자 발명자가 있는데 자연과 우주와 생명, 언어가 우연히 스스로 진화해서 생겼다고 믿는 게 신에 의해 창조됐다고 믿는 것보다 훨씬 더 믿기 어렵고 더 큰 믿음이 필요하다.

3. 성경

하나님의 존재는 창조 세계를 통해서, 또 성경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창조 세계는 심증이고, 성경 말씀은 물증이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품과 뜻을 인간의 언어로 계시해 주셨다.

성경은 결코 호락호락 기록된 책이 아니며 인간이 감히 상상할 수 없고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복음 메시지도 근거가 성경이다. 역사상 가장 많이 보급되고 가장 미움받고 피를 불렀지만 없어지지 않고 전수된 책이다. 거기에는 매우 심각하고 진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믿거나 믿지 않을 수는 있지만 무시할 수는 없다.

(성경 얘기를 하기 전에는 자연을 보고 그냥 심증상으로 신을 찾을 만한 것 위주로 얘기를 하고, 본격적으로 말씀 인용과 죄· 구원 같은 추상적인 얘기는 성경 얘기를 한 뒤부터 진행함)

4. 하나님의 성품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가 충만하다. 남녀간의 사랑, 부모 자식간의 사랑이 있기 전에 이미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라는 성품을 갖고 계셨다.

한편으로 너무나 깨끗하고 거룩하고 공의롭기 때문에 죄를 단 하나라도 용납하지 않는다. 불량품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데...

5. 인간은 죄인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자유의지를 받았지만 죄를 짓고 타락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정치인 재벌이나 못사는 사람만 죄인이 아니라 다 평범하게 죄인이다. 대부분의 사람도 아니고 모든 사람.

세상 법과 하나님의 법은 다르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한 것, 절대적인 선과 악이 없다고 생각한 것, 당장 행동으로 표출되지 않았을 뿐, 여건만 갖춰졌으면 바로 행동으로 튀어나왔을 악한 마음가짐까지.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까지 모두.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도덕 관념과는 다른 개념임.

“이빨에 뭐 꼈다”처럼 불쾌하게 들리지만 스스로 인지할 수 없고 남으로부터 지적받아야 하는 것. 우리는 죄인이다.

6. 죄의 결과는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

죄의 결과는 매우 비참하며 가혹한 책임이 뒤따름. 죄를 미화하는 영화나 게임들.

죽는다고 끝이 아님! 당신은 당신 인생의 종착역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하나님 심판은 공소시효 없음.

논문 심사를 앞둔 대학원생, 기업인에게 세무조사, 일반인에게 갑작스러운 경찰· 법정 출두 같은 사건.

악에는 악에 대처하는 것밖에 방법에 없는 줄 알고 죄는 일파만파 퍼짐. 그렇게 이 세상에서 속고 속이고 싸우고 비참하게 살다가 죽어서는 영원한 지옥. 심지어 착하고 불쌍하게 살다가도 지옥.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언제든 죽을 수 있고 미래를 알 수 없다. 여러분은 오늘 죽으면 하나님을 만나서 인생의 모든 것을 정산할 대비가 돼 있는가?

공장에서도 불량품은 쓰레기통으로, 한번 더러워진 음식은 재사용 없이 버려짐.

지옥은 영원하고 실존한다. 세상에서 체벌 없애고 사형 제도 없애도 지옥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7.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음

인간은 절대로 자기 선행이나 능력, 배경, 교육으로 죄성을 벗고 의로워질 수 없다. 죄성에는 금수저 흙수저 따위 없고 다 똑같다. 쇳덩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뜰 수 없다.

황금률만으로 결코 의로워질 수 없음. 그냥 착하고 순진무구한 것만으로도 안 됨.

일부 도덕과 명예, 규율, 인격수련, 종교활동(?)은 흙탕물의 흙을 잠시 가라앉히는 미봉책일 뿐.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누더기와 같다.”

8. 예수님의 탄생, 죽으심

이런 인간의 비참한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은 2천여 년 전에 자신의 아들을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보내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

처녀에게서 태어났고 인성과 신성을 모두 갖춘 분. 4대성인 같은 급이 절대 아님.

이 세상에서 두루 선한 일과 기적을 행하시고 죄라고는 전혀 짓지 않았지만 온 인류의 죄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하기 위해서 인간의 권모술수 음모에 일부러 걸려들어서 십자가형 죽음을 선택하셨다.

9. 부활

그런데 확인사살 당하고 무덤에 묻힌 지 사흘 만에 부활하고 살아나심. 군사들이 지키고 있던 무덤에서 돌문을 옮기고 나오심.

죄와 죽음의 권능을 이김.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구원의 이름은 없음.

예수님의 부활은 그 어떤 외압과 회유로도 은폐하지 못한 절대적인 역사 팩트이다. 그런데 세속 백과사전이나 역사 교과서에서 절대 언급하지 않는다. 믿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가장 큰 사랑을 베풀어 주셨고, 그래서 사회 경제 정치 교육 식량 주거 문제가 아니라 죄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10. 믿음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만이 참 신이고, 내가 지금까지 잘못 살아 왔으며 구원받아야 하는 죄인임을 시인하라.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사실이고 그게 나 때문이었음을 진지하게 믿고, 예수님을 나의 개인적인 구주로 받아들이면 즉시 구원받는다.

정말 이게 전부이고 끝이다. 내 능력으로 뭘 하는 게 아니라 제일 나약하고 바보같은 ‘믿음’을 행사하는 대상이 인간의 구원 여부를 결정한다. 예수님의 여러 면모 중에서 부활은 반드시 믿어야 함.

인간에게 절대로 공평해야 하는 건 철저하게 공평함. 인간의 능력 따위 전혀 필요하지 않음. 반드시 공평해야 할 필요가 없는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환경 여건들이 사람마다 제각각이고 불공평한 듯이 보이는 거다.

11. 초청

이 타이밍에서 히 11:6, 요 3:16, 행 16:31 등 인용. “보라, 지금이 받아 주시는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

강조: 착한일을 나쁜일보다 더 많이 하면 구원받는 거 절대 절대 죽어도 아니다. 교회 다닌다고 구원받는 것도 아니다! 황금율만으로 의로워질 수도 없다.

절대적인 선과 악 없다고 생각한 것, 죽으면 다 끝이라고 생각한 것, 세상에 돈과 권력이 전부라고 생각한 것.. 모든 생각들로부터 회개하고 돌이켜라. U턴, 완전히 반대편으로 갈아타야 한다.

부산행 열차에서 혼자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서울로 갈 수는 없다. 가까운 역에서 내려서 반대편 열차로 갈아타야 한다.

성경에 있는 법규와 가르침들은, 몇 개 주워듣고는 교양 있는 척 거룩한 체 허세 부리라고 있는 게 절대 아니다. 우리 힘으로 이걸 다 지키기란 도저히 절대 불가능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법 앞에서 죄인임을 시인하고, 회개하고, 어서 그분 앞에 항복하고 그분이 제시하는 구원의 길로 오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12. 회개 독려, 다독거림

이 세상이 불공평하고 불의가 가득해 보이는가? 그래서 예수님도 충분히 불공평 불의한 일을 몸소 당하고 우리를 위해 그 모든 수치와 아픔을 짊어지셨다!

각종 매스컴에서 주입하는 잘못된 편견을 버려라. 세상에 그 어떤 무신론자도 여러분을 사랑해서 신이 없음을 입증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쳤다거나 하물며 스스로 살아나지 않았다. 그들은 의사나 군인 경찰 소방관만치도 당신 생명을 위해 기여한 거 없다.

앞서 말했듯이 세상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영적 배후가 있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영역에 관한 한, TV 뉴스 매스컴을 믿을 게 아니라 고리타분한 길, 좁은 길, 피로 물든 옛 길을 찾아서 믿어야 한다. 거기에 진리가 있다. 잘못된 이단 종교 장사꾼이 많은 건 역설적으로 그 바닥이 진짜로 생명이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생화 주변에만 벌레가 들끓듯이.

13. 마지막 경고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시고 언제까지나 말구유에 누운 아기가 아님. 십자가에 무기력하게 매달린 죄수도 아님.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러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임.

세상이 썩어빠진 것 불평할 게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영적 상태나 돌아봐야 함. 예수님의 친구냐 원수냐는 여러분의 믿음과 선택에 달림.

기회는 지금, 길어야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 내일은 늦을지 모름. 그리고 후회했을 때는 너무 늦음. 불신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죄이고 가장 엄청난 죄이고 뼈저린 실수임.

나도 여러분보다 전혀 나을 것 없는 죄인이었고 여러분보다 먼저 믿었다는 차이밖에 없다. 전도지 읽어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원을 대비하라. 지금 즐기는 것보다 훨씬 더 수준 높은 삶이 시작된다.

우리는 어차피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하나님 역시 죄인이라는 이유 자체만으로 사람을 지옥에 보내지는 않는다. 살인하고 간음해서 지옥 가는 게 아니라 예수 안 믿어서 지옥 가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세상에 눈에 보이고 몸으로 느껴지는 모든 좋은 것들은 무한 영원하지 않으며 본질 근원적이지 않음. 영원에 비하면 세상의 부귀영화 최신 유행은 그렇게 막 대단하지 않으며 세상이 그렇게 불공평한 것이 아님. 하나님의 구원의 초청을 거절하지 말라.

추후 생각할 점

시간 관계상 위의 모든 내용을 일일이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일 때, 위의 메모를 더 요약하고 압축한다면 어떻게 개편하는 것이 좋을까?

마치며: 거리 설교에 임하는 자세

(1) “혼자만 조용히 믿지, 티 내고 남에게 퍼뜨리지는 마라”는 종교· 신앙의 자유가 절대로 아님을 명심하자. 참고로 다니엘은 무슨 거리설교를 하다가 잡힌 게 아니고, 이단 재판 청문회에서 신앙 고백을 하다 걸려든 것도 아니고, 딱 30일 동안만 그냥 혼자 골방에서 문 잠그고 몰래 기도해도 됐는데 굉장히 바보같이(?) 걸려서 사자굴에 다녀왔다. 그것도 오늘 내일 하는 엄청난 고령 노년에 말이다. 마 6:5-6과는 180도 정반대 상황이다.

(2) 당연한 말이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고 해서 언제나 좋은 여건 속에서 술술 잘 풀리지는 않는다. 냉담한 주변 반응에 너무 낙담하지 말고, 한편으로 그렇다고 “아무나 들어라, 될 대로 돼라, 에라이 지옥에나 가라” 식으로 육신적으로 생각하지도 말라.

(3) “우리가 외쳐 봤자 누가 듣기나 하겠나?” 냉정하게 말하자면, 들으니까 민원이 들어오고 신고도 들어오는 거다. 이 무식한 방법으로 사람들이 복음을 듣지 않으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복음을 전할 길이 없다.

(4) 이게 어지간한 정치 구호나 사회 운동보다 더 애국애족 행위이기도 하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자. 의료만큼이나 우리가 사람 혼을 쥐락펴락하는 굉장히 심각하고 중요하고 진지한 일을 하는 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5) 우리가 이 일을 위해 소모하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길거리에서 선포하는 복음 메시지에 대해 주님이 친히 보증하시고 보상하신다고 믿어야 한다. 그 보장이 없으면 우리는 완전 쓸데없는 바보짓을 하는 것이다.

(6)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우리의 모든 마음과 말과 행동이 평가받게 됐을 때, 솔직히 쪽팔리고 부끄러운 장면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교회 지체들과 함께 길거리에서 복음을 전한 행적은 우리가 자신 있게 주님께 드러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추억이 될 것이다.

(7) 집회 결사의 자유와 신앙· 예배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는 한, 법을 지키고 공권력에 저항하지 말고 불신자에게 욱하지 말고 최대한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대하자. 담대함과 무례함은 사랑의 체벌과 아동 학대만큼이나 다르다. 굳이 종교적인 내용이어서 제지당하는 게 아니라 원래 그 어떤 연설이나 집회도 허용되지 않고 정숙해야 하는 공공장소라면 거리설교를 굳이 거기서 할 필요는 없다.

(8)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한 현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고 복음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더 삐딱하고 악한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므로, 부정적인 피드백에 대해서 마냥 우리 행실만 탓하거나 세상 눈치만 보고 있을 필요는 없다. 저돌적인 자세도 여전히 필요하다. 전국의 수천, 수만 개의 교회에서 매주 거리설교를 ‘제대로’ 한다면 아무리 정중하게 ‘합법적’으로 한다 해도 불신자들이 과연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자~!

2017년 5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