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맞이하여 (1949)

정 태진

오늘은 우리 민족의 영원의 보배인 우리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오백 세 번째 돌아오는 돐날입니다.

돌아보건대 지금으로부터 오백세 해 전에 우리 민족 문화에 가장 위대한 공로자가 되시는 세종대왕*께서 당시의 여러 어진 학자들와 함께 무한하신 노력을 쌓으시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으로 된 우리 한글을 만드시고 이 날에 이것을 온 나라 안에 반포하시었으니 그 때 그 어린들의 고심은 과연 어떠하였으며, 그 때 그 어른들의 기쁨은 또한 어떠하였겠습니까?

사대주의에 중독이 된 최 만리* 무리들은 민족 만년의 위대한 이 사업의 위대한 가치를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철없이 비웃고 짓궂게 방해하였으나 거룩하신 세종대왕*께서는 정 인지*, 성 삼문*, 신 숙주*, 최 항*과 같은 여러 어진 학자들과 함께 천신만고를 거듭하신 결과 드디어 우리 민족의 최상의 보배인 훈민정음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어 이것을 온 나라 안에 반포하신 것이니, 오백세 해가 지난 오늘날에 대왕께서 친히 만드신 이 글을 쓰고, 이 글을 읽고, 또한 이 날을 맞이하는 우리 삼천만 동포들의 감상이 또한 어떠하겠습니까?

민족주의와 사대주의의 격렬한 싸움터에서 다행히 세종대왕*과 같은 위대하신 지도자를 만나 우리의 민족주의는 드디어 사대주의의 완고한 철벽을 무찌르고 승리의 개선가를 힘차게 불렀던 것입니다. 과연 그 날이야말로 우리 배달* 민족이 길고 긴 어두움에서 새로운 빛을 보던 날이었고, 그 날이야말로 과연 우리 민족이 오래오래 죽음의 길을 걷던 발길을 돌려서 영원의 삶의 길로 나아오던 바로 그 날이었던 것입니다.

한글을 지으시던 그 날 그 아침 임께서 세우신 공 귀신과 같으셔라! 이 나라 천만 년 길고 긴 어둠에서 첫 새벽 밝은 빛이 환하게 비치었네! (一朝制作侔神功 大東千古開朦朧)

라고 훈민정음의 해례를 지은 이들은 기쁘게 노래를 불렀던 것입니다. 과연 동방의 빛은 밝게 비치게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이 빛이 한번 온누리에 비칠 때 이 세계에서 모든 어두움은 자취 없이 물러가고 새로운 기쁨의 세계 새로운 문화의 세계는 이 땅 위에 거룩하게 실현될 것을 굳게굳게 맹세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두움의 구름은 밝은 햇빛을 다시 가리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육십 년도 채 되지 못하여 불행하게도 연산군*의 포악한 한글 말살 정책이 시작된 뒤로 사대주의의 어리석은 무리들은 다시금 머리를 들고 일어나 우리 한글을 무참히도 짓밟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 민족을 제가 천대하고, 제 문화를 제가 말살하며, 제 글자를 제가 업신여기고, 제 말을 제가 학대하기 무릇 사백 년! 아! 쓸쓸한 한자 사막에서 우리 한글의 무궁화꽃은 한 번도 향기롭게 피어 볼 도리가 도저히 없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지금으로부터 56년 전에 갑오경장의 역사적 기운을 만나 유 길준, 주 시경 선생과 같은 위대한 선각자가 일어나 우리의 말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고, 우리의 글을 어둠에서 우리 민족의 새로운 문화를 삼천리 강토 위에 다시금 세워 보려고 노력한 지 겨우 17년에 저 얄미운 왜적의 야만적인 침략으로 말미암마, 피려던 꽃은 다시 아물고 한글의 동산에는 쌀쌀한 겨울 바람이 혹독하게 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대한 말을 쓰는 대한* 사람은 학교에서 쫓아내고, 관청에서 쫓아내고, 공장에서 쫓아내었으며, 한글을 쓰는 대한* 사람은 경찰서로 잡아 가고, 형무소에 가둬 두고, 살을 꺾고, 피를 뽑았으니. 아! 왜정 36년의 사막 생활에 우리 한글의 아름다운 꽃이 또한 어찌 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길고 긴 겨울 밤은 지나가고 따뜻한 새봄은 다시 이 강산에 돌아왔습니다. 우리말 우리글을 천대하고 학대하던 얄미운 왜적이 이 땅에서 물러가고, 해방의 종소리 높이 울린 지 어느덧 다섯 해! 그 동안 한글 동산에 새로운 꽃을 피우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아니하시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많습니까? 혹은 교단에서, 혹은 문단에서, 혹은 신문으로, 혹은 잡지로, 혹은 농촌에서, 혹은 어촌에서, 우리말 우리글을 다시 살리기 위하여 각계 각층에서 꾸준하게 노력하시는 여러분을 대할 때 이제야 참으로 사는 것답게 살고 있다는 느낌을 확실히 가지게 됩니다. 아! 오백세 해 전에 반포된 우리 한글이 오백세 해가 지난 오늘에 와서 처음으로 그 위대한 빛을 나타내기 시작하게 되었으니 배달* 민족의 피를 받은 자 무량한 감개를 자아내는 것이 또한 당연하지 아니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주위를 다시 한 번 돌아볼 때에 지금은 다만 기뻐서 노래만 부르고 있을 때가 아니며, 좋아서 춤만 추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을 느끼게 됩니다.

보십시오! 우리 삼천만 동포 하나하나가 마땅히 한 사람도 빼놓지 말고 다 알아야 할 우리 한글이건만 오늘날 이 글을 아는 이가 과연 얼마나 있으며, 이 글을 바로 쓰는 이가 또한 얼마나 있습니까?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우리 글자를 가지고도 국민 투표를 할 때에 국민 대다수가 글자를 쓰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부끄러운 사실을 우리는 무엇으로 변명할 것이며, 아름답고 깨끗한 우리말을 두고 왜말로 써버리는 정신 없는 무리들이 이 거리에서 우쭐거리고 다니는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입니까?

지금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사대주의자가 있습니다. 한문을 가르쳐야 공부지 그까짓 언문을 가르치는 것이 무슨 공부냐고 잠꼬대를 하고 있는 구식 사대주의자는 얼마나 많으며, 국어와 국문은 몰라도 괜찮다! 영어와 독일어를 가르쳐 달라고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찾아 다니는 신식 사대주의자들은 또한 얼마나 많습니까?

한문이나 영어나 독일말을 배우는 것이 공부가 아니라는 말은 결코 아니며, 우리 나라 삼천만 동포가 모두 국어학자가 되어야 되겠다는 말도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한 문화 국가의 완전한 국민이 되려면 최소 한도로 그 나라의 표준 맞춤법을 알아야 하며, 그 나라의 표준말도 어느 정도로 잘 알아야 될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학생들 가운데에는 우리의 맞춤법이나 표준말을 알기 위하여 노력하려는 것보다도 외국 글의 맞춤법이나 표준말을 열심으로 공부하는 이가 혹은 더 많이 있지 아니한가 하고 의심하는 이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청년 소년들의 머리 속에 이러한 사대주의적 노예 근성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우리의 참된 자주적 문화는 이 강산 위에 굳세게 세울 수가 도저히 없을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청년들에게는 우리의 옛날 할아버지들의 흉을 보기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 할아버지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무엇을 잘못하여 지금 우리가 남보다 뒤떨어진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그러나 우리는 옛날 할아버지들만 책망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옛날 할아버지들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 잘못한 것을 고쳐서 잘하도록 노력하여야 될 것입니다.

옛날의 우리 할아버지들이 우리말 우리글을 너무나 천대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옛날 할아버지들의 잘못한 것을 깨닫고 우리 스스로가 우리말 우리글을 존중하면 될 것이 아닙니까? 우리에게 만일, 우리 민족의 말과 글을 사랑하는 정신과 힘이 우리의 할아버지들보다 더 낫지 못하다면 우리는 어찌 우리의 아름다운 이상이 이 강산 위에 이루어지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이 기쁘고 의미 있는 한글날을 당하여 특별히 청년 학생 여러분에게 권고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을 굳게 지키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연히 지나치게 우리 민족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저 일본*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우리가 신의 자손이니 무엇이니 하여 우리 민족이 특수한 민족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저 중국* 사람들처럼 다른 민족을 전부 오랑캐라고 볼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우수한 점은 또한 우수한 점으로 인정하여 우리의 자존심과 자신력을 굳세게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 한글이 세계에서 제일가는 글자인 것은 세계의 학자들이 전반적으로 인정하는 것이지만 우리 자신은 이와 같이 훌륭한 글자를 오백 년 전부터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자존심과 자신력이 부족하여서 이 훌륭한 글자의 참된 가치를 아직까지 크게 발현시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세계에는 우연한 것이 없습니다. 세종대왕*께서 오백 년 전에 이와 같이 훌륭한 글자를 만드시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 세종대왕*에게 위대한 창조력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세종대왕* 한 개인으로 보면 한 개인의 창조력이지만 우리 민족 전체로 볼 때에는 우리 민족 전체 창조력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위대한 창조력을 가진 민족이지만 고만 완고한 사대주의의 철저한 희생자가 되어서 이와 같이 훌륭한 글자를 가지고도 지나간 오백 년 동안 위대한 문학이나 예술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문화적 노예, 또는 문화적 걸인의 생활을 계속하여 온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는 결코 노예나 걸인의 생활을 계속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의 문화를 무조건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주적 정신을 가지고 우리의 문화를 북돋우는 동시에 다른 민족의 문화를 우리의 말과 우리의 글로 완전히 소화시켜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민족에게 이러한 소화력이 없다면  우리는 도저히 우리 문화의 완전한 발달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화력을 기르려면 결국 우리의 말과 우리의 글을 힘있게 살리고 굳세게 길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말 우리글을 힘있게 살리고 굳세게 북돋울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하여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변변하지 못한 생각 몇 가지를 감히 여러분 앞에 드려서 여러분의 위대하신 사업에 조금이라도 참고로 이바지할까 하는 바입니다.

1. 우리끼리는 외국 말과 외국 글자를 절대로 쓰지 말자.

우리가 외국 말이나 외국 글을 배우는 것은 그 목적이 외국 사람에게 말하고 외국의 책을 읽기 위함입니다. 말과 글의 근본 목적은 의사를 교환하는 데 있는 것이니 외국 사람의 생각을 알기 위해서는 외국의 말을 배울 필요가 있지마는, 우리끼리야 외국의 말 외국 글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옛날 할아버지들은 우리의 훌륭한 글자를 두고 중국* 글자를 구차하게 빌어다가 글을 짓고 편지를 하였으며, 일제 시대에는 우리말, 우리글을 두고 일본*말, 일본*글을 우리끼리의 사이에 쓴 사람이 있었으며, 요사이에는 우리끼리의 사이에 영어나 독일말로 편지하는 이가 혹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외국 말, 외국 글을 쓰는 것을 큰 자랑으로 아는 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외국 말, 외국 글을 아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남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필요한 것이지 만일 그것을 우리끼리의 사이에 정신 없이 쓴다면 그것은 우리말, 우리글을 스스로 천대하는 행동인 동시에, 우리 민족과 우리 문화를 모욕하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보아야 될 것입니다.

칼은 갈수록 빛나고 글은 쓸수록 빛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우리글이 쓰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글이 부족하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마치 좋은 칼에 녹이 슨 것과 같이 우리글에도 어느 정도의 녹이 슬어 있는 까닭입니다. 우리는 쉬지 말고 이 한글이라는 훌륭한 칼을 갈고 닦아서 그 빛이 한번 크게 빛나게 하여야 되겠습니다.

2. 철저한 문맹 타파 운동을 일으키자!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만드신 위대한 동기는 사람마다 이것을 배워서 날마다 쓰기에 편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종대왕*의 이 위대하신 이상은 사대주의의 완고한 압박으로 말미암아 한 번도 실현되지 못한 채 오백 년의 긴 세월은 꿈과 같이 흘렀습니다.

세상에 만일 광 속에 쌀을 쌓아 두고 굶어죽는 사람이 있고, 장 속에 옷을 쌓아 두고 얼어죽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어리석은 것을 비웃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는 훌륭한 한글이 있으면서도 국민의 대부분이 무식하다는 것은 결국 쌀을 두고 굶는 것과 같으며 옷을 두고 벌벌 떨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외국 글자는 우리에게는 돌과 같으니 돌로써 밥을 짓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글은 좋은 쌀과 같은 글이니 이 쌀로 문화의 밥을 지을 때에 우리 삼천만 동포가 전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는 이는 가르치고, 모르거든 배웁시다. 아는 것은 힘이요, 모르는 것은 죄악이라고 어떤 이는 말하였습니다. 우리 삼천만이 전부 우리 한글을 알아서 이 글을 함께 쓰게 될 때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스러운 나라, 힘있는 나라가 될 것이요, 세계에서 가장 문명한 나라, 가장 과학적인 나라가 될 것이니, 우리말과 우리글을 힘있게 살리는 것은 곧 우리 나라 우리 민족을 힘있게 살리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3. 한문으로 된 우리 나라의 고전을 순 한글로 번역하자!

한 나라 한 민족의 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나간 여러 백 년, 여러 천 년 동안의 우리의 조상들이 과연 어떠한 길을 밟아 왔던가? 그들의 잘한 점은 무엇이며, 잘못한 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것을 알아서 지나간 날의 우리의 귀한 문화를 이어받는 동시에 새로운 문화를 아름답게 세워야 될 것입니다. 곧 우리는 우리의 앞길을 개척하기 위하여 우리의 과거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나간 날의 우리의 역사는 전부 한문 글자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민족이 우리 역사를 상고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조실록*, 율곡전서*, 여유당 전집* 그 밖의 수많은 고전이 탁자 위에 있더라도 그 책을 읽지 못하면 우리의 정신적 양식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이것을 한글로 번역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의 한문학자는 과연 우리 나라의 보배가 되는 이들입니다. 지나간 수천 수백 년 동안 한문을 배운 모든 노력의 최후의 결실이 곧 현재에 우리 한문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귀한 자식입니다. 이러한 귀한 지식을 귀한 학자들이 헛되이 버릴 것이 아니라, 이것을 가지고 우리의 귀한 고전을 한글로 번역하여 우리의 자손들에게 우리 민족의 길고 긴 역사를 가르치는 위대한 정신적 양식이 되게 할 때에 그이들의 공로는 과연 영원히 사라지지 아니하고 이 땅 위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위는 한글을 존중하는 동시에 한문 학자의 국보적인 가치를 또한 인정하고 그이들에게 고전 번역의 위대한 사업을 겸손하게 의뢰하여야 될 것입니다.

이것이 곧 우리 민족이 다시 살고 우리의 고전이 다시 살고, 우리 한글이 다시 사는 바른 길이 될 것입니다.

4. 구미 각국의 모든 권위 있는 서적을 체계 있게 순 한글로 번역하자!

해방 이후에 우리 나라에는 여러 가지의 책이 간행되었습니다. 어느 다른 방면보다도 우리 나라의 출판계가 해방 이후에 가장 발전이 되고, 가장 분주한 것 같이 보이는 것은 참으로 우리 민족 문화를 위하여 경사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여 볼 때에 지금 우리 나라 서점에 있는 우리 한글로 된 서적이 과연 어느 정도로 우리 청년 학생들의 지식적 요구를 만족시키는가가 의문입니다. 대학생들은 고사하고 우리 중학생들이 볼 만한 책들도 실제로는 얼마 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나간 사오 년 동안에는 모든 방면에 질서가 아직 정돈이 되지 못하고 출판계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질서가 차차 정돈되어 가는 데 따라서 우리 학생들도 모든 학문을 질서 있게 공부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서적으로는 그 수효가 너무 적어서 이 요구를 도저히 만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우리 학생 가운데에는 아직 영어나 독일어의 원서를 볼 만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 적고 일본말로 쓴 책을 읽는 실력도 점차로 줄어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 아무리 외국말에 대한 실력이 어느 정도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만으로 만족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외국 책은 우리글로 번역이 된 다음에야 완전히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구미 각국에서 오랫동안 공부하고 돌아온 귀한 학자들이 많지 못합니다. 이 많지 못한 학자들의 총역량을 기울여서 현대의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모든 서적을 순 한글로 번역하여 놓게 된다면 그 때에야 우리 학생들도 새로이 북받혀 오르는 그들의 지적 요구를 어느 정도로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을 거름으로 하여 우리의 민족 문화가 힘있고 굳세게 발전되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5. 간판과 문패와 광고 따위에 한글만 쓰자!

간판과 문패와 광고 따위는 특수한 전문 방면의 서적들과 달라서 무엇보다도 일반 동포가 다 볼 수 있도록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현상으로는 그 대부분이 한문 글자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의 수효가 매우 적은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말은 들으라고 하는 것이요, 글은 보라고 쓰는 것인데 듣지 못할 말을 하고 보지 못할 글을 쓴다는 것은 과연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현재 우리 자신으로 이러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왕이면 간판을 쓰되 삼천만 동포가 다 볼 수 있게 쓴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게는 아직까지도 한문 글자라야 글자이지 한글은 간판이나 문패를 쓸 만한 가지가 있는 글자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우리 글자를 스스로 천대하는 동안까지는 우리의 말과 글은 그의 위대한 빛을 힘있게 나타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의 말을 힘있게 살리고 우리의 글을 크게 밝히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간판과 문패와 광고를 순 한글로 써야 될 것입니다.

한글날은 우리 민족에게 참으로 기쁘고 의미 있는 날입니다. 이 날은 곧 우리 민족이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독립을 선언한 날입니다.

우리는 이 날을 뜻있게 지켜서, 우리 민족 문화 사상에 위대한 공로자가 되시는 세종대왕*과 여러 어진 학자들의 끼친 공로를 기념하는 동시에 그 어른들의 위대하신 이상이 하루라도 빨리 이 땅 위에 실현되도록 우리 삼천만 동포가 다 함께 힘쓰기를 약속하는 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