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 넘치는 생성력

ㄱ. 살아 있는 글자

한글의 밑 글자 여덟이 아흔 여덟으로 곧 열 두 곱 넘게 불어 나는 것을 앞에서 보았다. 그러나 여기 들어 보인 낱 글자들은 창제 당시의 문헌에 나타난 것일 따름이다. 이 뒤로부터 근세에 이르도록 한국말 뿐만 아니라 불경의 범어나 중국말, 만주말, 몽고말, 일본말, 그 밖의 서양말 등의 외국말을 한글로 옮겨 적은 여러 문헌에 나타난 겹글자들을 모두 찾아 포함시킨다면, 그 증식률은 훨씬 더 높아 질 것이 분명하다. 도판 21의 몇 가지 보기를 보라.

그림 21. 해동 제국기와 첩해신어. 한글로 외국말을 적기 위해서 다양하게 조합하며 변통한 보기.

한글은 이와 같이 필요한 대로 새로운 홑글자 또는 겹글자를 조직적으로 무제한에 가깝게 생성해 내는 힘을 가진 만큼,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글자들과 견주어 볼 때 '살아 있는 글자'라고 불러도 틀림이 없다.

ㄴ. 한글을 죽이는 정보화 사회

1933년 이래로 한글 맞춤법은 옛글에서 오히려 무한히 자유로왔던 한글의 조합을 일만 일천 일백 일흔 두 가지로 제한했고, 1987년 3월에 정부에서 전산기를 위해 제정한 정보 교환용 한글의 표준 부호 체계는 이것을 다시 이천 삼백 쉰 가지로 제한함으로써 한글의 조합 능력을 완전히 죽이다싶이 하고 말았다. 다음을 본보기로, 현행 맞춤법의 틀 안에서 ㄱ을 초성으로 가지는 음절 가운데 이 표준 부호 ㅊ계로 살아 남은 음절만 보이는 표이다. 빈 자리(△)는 모두 한글의 무덤이다. 이와 비슷하게 생긴 표가 초성 ㄲ ㄴ ㄷ ㄸ ㄹ ㅁ ㅂ ㅃ ㅅ ㅆ ㅇ ㅈ ㅉ ㅊ ㅋ ㅌ ㅍ ㅎ들로 열 여덟 개가 더 만들어 진다.

그림 22. 한글의 무덤들. 한글을 음절 단위로 고정시켜 다루는 전산 부호의 정부 표준은 현행 맞춤법의 테두리 안에서나마 조합할 수 있는 음절의 8할을 아예 쓸 수 없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남겨 놓은 2할도 초성, 중성, 종성의 낱 글자로 풀어 낼 수 없는 전신불수의 상태로 굳히고 말았다.

이렇게 된 결과로 우리는 일상적인 글자 생활에서

(1) 늧(ㄴㅡㅊ): 먼저 보이는 빌미, 닁(ㄴㅢㅇ)큼, 맟(ㅁㅏㅊ)다: 마치다, 볌(ㅂㅕㅁ): 헐거운 틈을 메우는 물건, 뺜(ㅃㅑㄴ)죽거리다, 뉘웇(ㅇㅜㅊ)다: 뉘우치다, 쫒(ㅉㅗㅈ)다: 상투 따위를 죄어 매다, 문칮(ㅊㅣㅈ)거리다 등의 적지 않은 낱말을 쓸 수 없게 되었고,

(2) 긓(ㄱㅡㅎ)지: 그렇지, 붴(ㅂㅝㅋ): 부엌, 아뢔(ㄹㅙ): 아뢰어, 궨(ㄱㅞㄴ): 궤는, 뼌(ㅃㅕㄴ): 뼈는, 궬(ㄱㅞㄹ): 궤를, 걥(ㄱㅒㅂ)니다: 걔입니다, 징훕(ㅎㅜㅂ)니다: 징후입니다, 괐(ㄱㅘㅆ)다: 고았다, 왰(ㅇㅙㅆ)다: 외었다 등의 많은 준말을 쓸 수 없게 되었고,

(3) 둥긂(ㄱㅡㄻ): 둥글다, 서툶(ㅌㅜㄻ): 서툴다, 폠(ㅍㅖㅁ): 폐다 등 어형을 쓸 수 없게 되었고,

(4) 장아찟(ㅉㅣㅅ)감, 쾟(ㅋㅙㅅ)돈 등 사이시옷이 있는 많은 낱말을 쓸 수 없게 되었고,

(5) "어서 내놧(ㄴㅘㅅ)! 우로 봣(ㅂㅘㅅ)! 엎드려 쐇(ㅆㅘㅅ)!" 등의 외치는 소리, 구령 등에 나타나는 강조의 ㅅ 받침을 자유로이 쓸 수 없게 되었고,

(6) '솰솰'보다 센 '쏼쏼(ㅆㅘㄹ)', '뿅' 보다 거센 '푱(ㅍㅛㅇ)' 등의 시늉말을 자유로이 쓸 수 없게 되었고,

(7) '펲(ㅍㅔㅍ)시 콜라, 킾(ㅋㅣㅍ)스' 등의 새로 생겨나게 마련인 외국말식 홀이름씨들을 자유로이 적을 수 없게 되었다.

또 말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분야에서,

(8) 겱(ㄱㅕㄺ)에: 겨울에, 갱깄(ㄱㅣㅆ)다: 감겼다, 껚(ㄲㅔㄲ)인다: 꺾인다, 뚧(ㄸㅜㄼ)어라: 뚫어라, 웂(ㅇㅜㅄ)어요: 없어요, 쬧(ㅉㅚㅊ)긴다: 쫓긴다 같은 무수한 사투리나 개개인의 예측할 수 없는 언어 습관 등을 글로 적을 수 없게 되었고,

(9) 식용유[시굥(ㄱㅛㅇ)뉴], 옷[옫(ㅇㅗㅅ)], 물엿[물렫(ㄹㅕㄷ)] 등으로 발음 실태를 글로 적어 보이고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3. 다. 이상과 현실의 조화

앞서 밝힌 것처럼 세종 당대에 양립했던 두 가지 종류의 맞춤법은 오늘날까지도 계속적으로 대립하여 싸우면서 우리에게 이를 조화롭게 병행시키는 노력과 슬기를 요구하고 있다. 세종 임금이 발견하고 시범한 맞춤법은 '곶, 갗'처럼 형태소 원형을 밝혀 적음으로써 쓰기는 좀 어렵더라도 읽기에 유리하게 하는 것인데 반해서 세종 임금이 신하들에게 허용한 맞춤법은 '곳, 갓'처럼 소리나는 대로 적음으로써 읽기에는 좀 불리해 지더라도 쓰기에 쉽게 하는 것이다. 앞것을 편의상 '읽기 (좋은) 맞춤법'이라 하고, 뒷것을 '쓰기 (쉬운) 맞춤법'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읽기 맞춤법은 세종 당대에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 두 글에 밖에는 적용되지 못했으니, 바꾸어 말하면 실험실을 벗어나 보지 못한 맞춤법이었다. 그 때로부터 1933년 <한글 마춤법 통일안>이 나올 때까지 오백 년 동안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지키고 따른 언어 규범이 있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이 쓰기 맞춤법 뿐이다. 이 편의주의적인 쓰기 맞춤법은 근본적으로 한글의 표음 기능을 무법하게 이용할 따름이기 때문에 실상은 '법'이 아니었다. 우리 조상들의 한글 쓰기가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혼란과 무질서의 외길로만 치달아 온 사실을 볼 때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녀자나 쓰는 글에 무슨 이치를 따지며 법을 세우려 했겠는가? 필경 한글 자체에 대한 선비 사회의 무관심과 천대도 한글 맞춤법이 가없이 타락하게 한 주요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한글 쓰기의 이러한 형편을 정확히 알아차리고 종래의 쓰기 맞춤법을 읽기 맞춤법으로 돌이키기 위한 연구와 운동에 헌신한 분이 한힌샘이다. 그는 한국말을 자기 나름으로 정밀하게 분석한 바탕 위에서 일찍이 세종 임금이 발견했던 것과 똑 같은 읽기 맞춤법의 원리를 다시 발견해서 이를 널리 가르치고, 저술을 통해 시범하며 계몽했다. 이 원리의 핵심은 <훈민 정음> 해례로 비롯해서 오백 년 동안 종성으로 여덟 가지만 써 오던 관습을 벗어나 모든 초성을 제한 없이 종성에 쓸 수 있고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힌샘의 이러한 주장은 유능한 제자들에게 전수되고 사회의 전폭적인 호응을 받음으로써 1933년의 <한글 마춤법 통일안>으로 실현되어 그대로 오늘날 우리들의 한글 맞춤법이 되었다.

이 맞춤법은 본질적으로 배우고 쓰기가 어려운 반면에 눈으로 읽기에는 아주 유리한 맞춤법이다. 그래서 실은 제대로 배우기 전에는 따르기가 어려운 언어 규범이다. 대학 교육까지 받고 나서도 한글 맞춤법에 자신 있는 사람이 적은 까닭이 여기 있다. 맞춤법을 모르고 스스로 발음하는 대로 적어도 얼마든지 정밀하게 뜻을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한글인데, 무엇 때문에 그처럼 어려운 맞춤법을 배우고 지켜야 하는가? 저명한 국어학자들 가운데서도 이러한 의혹과 갈등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1933년에 <한글 마춤법 통일안>이 나왔을 때 국어학자 박 승빈(1880~1943)이 이 통일안에 대해서 조직적으로 벌인 반대 운동은 여간 맹렬한 것이 아니었다. 1950년대에 이 승만 대통령도 한글 맞춤법이 너무 어려우니 쉬운 맞춤법으로 바꾸라는 지시를 내렸다가 학계 등의 반발이 심해서 여러 해 동안 이른바 '한글 간소화 파동'만 일으키고 도로 거두어 들인 일이 있었다.

이것은 다 읽기 위주의 어려운 맞춤법을 쓰기 위주의 쉬운 맞춤법으로 바꾸어 보려 하는 움직임인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1987년에 국어 연구소(글쓴이 주: 지금의 국립 국어 연구원)에서 낸 '한글 맞춤법 개정 시안'을 통해서 또 다시 적극적인 모습으로 표면화했다. 이것은 '종래의 맞춤법이 어딘가 불합리하니 합리적으로 개선하자' 하는 개혁안이라기보다는 '너무 고답적이고 어려우니 무슨 이유를 붙여서든 쉽게만 바꾸면 좋겠다' 하는 퇴행안이었다. 한글 맞춤법의 간소화 운동이 서른 해 만에 되살아 난 셈이다. 이 시안은 여론과 토론의 여과 과정을 거쳐 보수적인 방향으로 다소 수정되기는 했지만, 마침내 그 간소화 목표만은 꺾임이 없이 문교부 고시의 '한글 맞춤법'(1988)으로 정착되었다.

한글 맞춤법의 역사는 이처럼 읽기 맞춤법의 이상주의와 쓰기 맞춤법의 현실주의라는 두 극단을 끊임없이 오가는 흔들이의 움직임이다. 단순히 쓰기 쉬운 맞춤법이라면 있을 필요가 없다. 소리나는 대로 쓰면 가장 쉬울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구태여 사회의 약속인 규범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글은 한 번 쓰면 혼자서라도 두고 두고 수도 없이 읽게 되는 것이오, 한 사람이 써서 많은 사람이 읽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쓰기보다 읽기가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뜻에서 쓰기에 쉬운 맞춤법보다 읽기에 쉬운 맞춤법이 더 가치 있는 맞춤법이다.

"소리나는 대로 정는 마춤뻐븐"
"읽기에 좋은 맞춤법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이 두 가지 맞춤법은 상극이다. 아무래도 어느 한 쪽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치우치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사람들의 의견이 갈려서 그 끊임없는 다툼이 일어난다.

세종 임금의 때나 한힌샘의 때나 오늘날이나 변함 없는 것은, 아주 많은 사람들이 우선 먹기는 고욤이 달다는 셈으로, 글을 읽을 일보다 당장 쓸 일을 더 크게 생각하고 쓰기 쉬운 맞춤법을 원한다는 점이다. 읽기가 더 중요하다, 읽기에 좋은 맞춤법이 더 가치 있다 하면서 쓰기에 어려운 맞춤법을 구상하고 내세우는 고답적인 사람은 언제나 적고 세력이 약하다. 이런 점에서 한글 맞춤법의 역사는 그레샴 법칙의 실증이기도 하다. 무릇 규범은 단지 많은 사람들이 원한다는 이유로 변경되어 갈 때 허물어 지고 타락하기 마련이다.

이 책의 머리에 들어 둔 바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일 뿐만 아니라 말을 닦는 기계 곧 틀이라'는 한힌샘의 말은 여기서 깊이 새길 만 한 잠언이다. 글에 공일 들이면 들인 만큼 그 글은 말을 가다듬게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의 정신까지 가다듬고 계발되게 한다. 쉽게 쓴 글보다는 이치를 밝혀 까다롭게 쓴 글에서 은연중에 얻는 것이 많은 법이다. 말 또한 정신 곧 얼을 담는 그릇일 뿐만 아니라 얼을 닦는 틀이기에, 우리는 얼을 위해서 말을 가다듬어야 하고, 말을 위해서 글을 가다듬어야 하는 것이다. 그저 쉽게 심고 좋은 열매를 거두기는 어렵다.

한글 맞춤법이 이와 같이 두 극단을 오가게 되는 깊은 요인은 한글이 음소글자이면서 또한 소리마디 글자인 데 있다. 우리들이 오래도록 소리마디를 따라 형태소의 경계가 나누이게 쓰고 읽도록 길을 들여 왔기 때문에 읽기에 좋은 맞춤법은 바로 형태소의 경계가 소리마디의 경계와 일치하도록 적는 맞춤법이다. 또 한국말에서는 하나의 형태소가 음운적인 조건에 따라 워낙 다양하게 변동하기 때문에 소리나는 대로 적어 놓으면 같은 형태소가 이렇게 저렇게 다른 모습으로 적히게 되어 읽기가 어려워 진다. 그래서 같은 형태소는 소리가 다르게 나더라도 같은 모습을 띠도록 적는 맞춤법이 읽기에 좋은 맞춤법이 된다.

이런 맞춤법을 가르치고 배워 지킨다는 것은 실로 힘 안들이고 되는 일이 아님에 틀림이 없다. 이런 맞춤법은 상당한 수준의 언어 의식과 분석 능력을 요구하는 맞춤법이다. 그러나 이런 맞춤법에 일단 익숙해 진 다음에는 무의식 중에 언어 의식을 한층 세련되게 하고 분석 능력을 강화해 주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맞춤법은 무조건 기억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말의 이치를 따라 이해하기만 하면 저절로 따라갈 수 있도록 된 것인 만큼 어떤 점에서는 쉬운 것이기도 하다. 아무러면 수백 해 전의 철자를 소리내기와는 상관 없이 지켜야 하는 영어, 프랑스말 등의 맞춤법보다 어렵겠는가? 아무러면 말의 이치는커녕 물건의 모양 따위를 본뜨기 시작해서 한 낱말에 한 자씩 만들어 낸 수천 수만의 한자를 규칙도 없이 낱낱으로 배우고 그 복잡다단한 획을 기억해야 하는 일보다 어렵겠는가? 그러므로 한글 맞춤법의 이러한 특성과 장점에 대해서 일반 언중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수준에 따라 맞춤법의 중심은 읽기에 좋은 이상적인 쪽으로 올라가거나 쓰기에 쉬운 현실적인 쪽으로 미끄러지기를 되풀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