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칼로 책을 사 주신 어머니

김 진홍 (목사)

내 나이 서른에 나는 청계천 빈민촌으로 들어갔다. 1971년이었다. 그때에 넝마주이일을 하면서 나는 '넝마주이 정신'을 몸으로 익혔다.

넝마주이란 쓰레기통을 뒤져 땅속에 묻히거나 불태워져 버릴 물건을 도로 골라내어 재생산할 수 있는 자원으로 바꾸는 사람이다. 넝마주이에게는 종이 한 장, 깡통 한 개, 소뼈다귀 하나도 전부 훌륭한 자원으로 보인다. 이 정신을 몸으로 배운 내게는 그 정신이 딱 배어 버렸기 때문에 종이 한 장이라도 헛되이 버리는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입에서 나무라는 소리가 나간다.

종이를 통해 숲을 보게 하는 교육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경기도 화성군 남양만 두레 마을은 빈민촌에서 함께 살던 식구들이 모여서 만든 마을이다. 우리 공동체에는 지금 백아홉 명의 상주 식구가 있는데 이 많은 사람들이 한솥 밥을 먹고 산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각자가 살아온 방식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생활용품의 씀씀이만 해도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달라 행동하는 방식도 다른데, 그럴 때마다 나는 이 문제에만큼은 내 고집을 부린다.

언젠가 우리 공동체 식구 하나가 종이뭉치를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려 하는 게 내 눈에 띄었다.

“왜 그런 걸 그냥 버리냐?”

“목사님, 앞 면, 뒷 면 모조리 다 쓴 종인데요?”

“다 쓴 종이가 어디 있냐, 다시 종이 공장에 보내서 새 종이가 돼 나오게까지 해야지 다 쓴 거지.”

“아이고 목사님, 폐지값이 싸서요, 종이 공장에 보내 봐야 거기까지 실어가는데 드는 기름값이 채 안 나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안타깝다. 기름값이 안 나오니까 폐지 공장까지 운반하지 않겠다는 것은 너무나 근시안적인 사고 방식이다. 기름값이 안 나오더라도 폐지 재생산 공장에 들어가서 쓰이면 외국에서 그만큼 폐지를 수입해 오지 않아도 되고, 또 그만큼 나무를 덜 베게 된다는 말이 된다. 십 년 자란 소나무 한 그루는 다섯 식구의 산소를 공급하는데, 부지런히 폐지를 갖다주어 소나무 한 그루를 안 베게 한다면 그것은 다섯 식구를 살리는 일이 아닌가? 지금 지구 공동체의 일원이라면 이 정도의 사고를 해야 한다고 나는 늘 가르친다.

“목사님, 목사님 설교는 너무 거창해서 따라가기가 힘이 듭니다.”

우리 식구들의 입에서는 늘 그런 소리가 떨어지질 않지만 나는 이들도 곧 '거창한 사고'를 하는 세계인이 되리라고 기대한다.

거창하게 말해주는 건 우리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한쪽 면만 쓰고 버린 종이가 내 눈에 띄면 야단을 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저 야단만 치면 되는 것이 아니다. 효과적으로 야단을 치는 일이 중요하다. 종이를 만들어내려면 나무를 무수히 베어야 하는데 나무가 줄어들면 산소 생산이 줄고 지구 환경이 나빠져 결국은 우리 인간 공동체가 무너지게 된다는 점을 차근차근 설명해주면 아이들은 모두 다 알아듣는다. 종이 아끼는 일이 돈 아끼는 일만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면서 종이를 통해 나무를 보고 숲을 보게 하는 교육, 그것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권위주의적인 꾸지람보다 합리적인 설명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밥상에서 배운 퇴비 사상

그런 점에서 보자면 우리 옛 어른들은 참으로 합리적인 분이셨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 경북 청송은 산 높고 골 깊고 농토는 적은 땅이었다. 그 박토에서 많은 자녀를 거느리고 살아 온 우리 부모들에게는 절약이 필수적이었다. 밥알 한 톨이라도 상밑으로 떨어뜨리면 이렇게 장구한 말씀이 이어졌다.

“땅 열 길을 파봐라, 쌀 한 톨이 나오는가. 왜 너는 인간이 돼먹질 않아서 쌀을 소홀이 생각하느냐, 그 쌀이 생산되려면 거름이 있어야 하고 거름이 있으려면 대변을 보아야 한다. 그러려면 네가 또 먹고 나서 대변을 생산해야 되질 않겠느냐?”

물질의 순환 논리를 그렇게 밥상에서 가르치신 것이다. 밥과 똥을 하나로 생각할 줄 아는 사고, 나는 그것을 밥상에서 배웠다.

우리 어른들은 퇴비에 대한 생각이 투철하셨던 듯하다. 밖에 가서 놀다 올 때도 빈손으로 오지 말고 나무 열매 하나, 길가에 떨어진 썩은 호박 하나라도 주워와서 거름 더미에 던져 놓으라고 하셨다. 또 이웃집 가서 놀다가 대변이 보고 싶으면 멀더라도 꼭 우리집 뒷간에 와서 대변을 보라고 하여 낑낑 참으며 오다가 길거리에서 그냥 싸버린 적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배워온 이 퇴비 사상이 근간이 되어 나는 두레 마을에서도 획기적인 퇴비 생산 방법을 개발하게 되었다. 오 년 전에 작은 기계 공장을 하시는 분이 와서 “두레 마을에 와서 농민을 돕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하셔서 그러면 퇴비 만드는 기계를 발명해 보자고 제안했다. 부산 사람인 그는 그로부터 오 년간 일본에도 수차례 오가면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더니 드디어 퇴비 기계를 완성시켰다. 농가 폐기물, 소뼈다귀, 음식 찌꺼기, 썩은 호박, 썩은 감자 따위를 다 모아서 집어넣고 네 시간 동안 기계를 돌리고 효소 처리를 하면 밭에 뿌릴 수 있는 퇴비가 되어 나오고 동물들 먹일 수 있는 사료가 되어 나온다. 그래서 돼지, 닭에게 그 사료를 먹이고 나머지는 밭에다 뿌린다.

이렇게 하니까 또 좋은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겼다. 곧, 쓰레기가 엄청나게 줄어들게 되어 오물 수거료를 적게 내니 좋고, 사료비가 따로 안 들어 좋고, 사람이 먹던 음식을 발효시키니까 고기맛이 좋아져 좋다. 남들 들이는 사료비 절반에 더 맛좋은 고기를 생산하게 되니까 두레 마을 고기에 경쟁력이 붙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경쟁력있는 고기로 햄을 만들 계획도 세워 놓았다. 두레 마을에서 나오는 찌꺼기 뿐 아니라 갈비집의 소뼈다귀, 생선 가게의 생선 내장 따위까지 모두 수거해서 사료로 만들어 돼지 오천 마리를 먹여서 그 고기로 맛있는 햄을 만들어 해외에 수출하려는 것이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신이 나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두레 마을 초기에, 바다를 메워 일군 땅이라 너무 소금기가 많아 아무리 땀흘려도 싹이 나지 않는데도 나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물자 절약, 물자 절약'을 외치고 다녔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아무리 절약을 강조해도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게 크게 다가오는 것이 없었으니 거의 우이독경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인간이 도덕 군자가 아닌 이상, 도덕적으로 마땅히 아껴야 된다고 아무리 소리친들 그 소리가 설득력을 갖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인간의 경제적 동기인 이익 추구 본성을 이해하는 데에서 출발하여 이제 퇴비 기계로 햄공장을 짓게 되니 사람들의 태도가 변하여 시키지 않아도 근검 절약을 생활에 실천하지 않는가?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절약은 이렇듯 인간 본성을 이해한 뒤에나 가능한 일이다.

두레 마을에서 희망을 본다

농촌에서는 물자 절약도 중요하지만 더 큰 절약은 공동체 형성에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요즘 우루과이 라운드다 뭐다 해서 농촌의 미래는 이제 절망뿐인 것처럼 말들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 년, 십 년 뒤에는 우리 농촌의 모범상으로 보여지게 되리라 확신하는 이 두레 마을에 살면서 나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마을에는 열한 명의 노약자, 스물일곱 명의 어린이들, 장애자, 자폐증 환자, 마약 중독자, 그리고 청년들이 살아간다. 노약자의 힘을 2분의 1이라고 한다면 청년의 힘은 1과 2분의 1, 또는 2정도 된다. 개인이 가지고 있었으면 나와 내 가족만이 쓸 수 있었을 힘을 나누어 쓰니까 노약자와 환자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우리 마을에서는 무엇이든 공동으로 소유한다. 그래서 나 역시 책의 인세나 강의 사례비 따위를 모두 내놓는다.

두레 마을에서는 농사짓는 사람뿐 아니라 용접하는 이, 페인트공, 건축 일꾼, 운전수 등 여러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곧 생산자, 가공자, 판매자가 모두 골고루 섞여 있는 것이다. 또 젊은 사람들이 낮에 일을 나가면 자기 노후를 이곳에 의탁하고 있는 노인들이 아이들을 돌보아 준다. 아이들이 자라나면 두레 마을 가정 교사가 아이들에게 피아노도 가르치고 컴퓨터도 가르친다. 이렇듯이, 마을 사람들 모두가 마치 다섯 손가락처럼 누구가 최고도 아니고 누구도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다.

다른 농촌에서도 농기계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집단 가공을 해서 판매한다면 지금까지보다는 농촌의 형편이 훨씬 나아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아가서는 기업 공동체, 민족 공동체가 형성되어 사장은 부자 되고 종업원은 늘 가난한 것이 아니라 사장으로부터 말단 수위에 이르기까지 함께 부를 소유하며, 한 개인이 부유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부유해진다면, 가장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절약이 가능케 된다.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 때 두레 마을에서는 <말씀과 노동 학교>를 개최한다. 오십여 명이 와서 두 주일 동안 노동 훈련과 생활 훈련을 하게 된다. 노동 훈련은 닭똥, 소똥 치고 나무 베고 땅 일구고 하는 것들인데, 그 훈련을 하고 나면 청년들은 개학 뒤에 모두 성적이 쑥쑥 오른다고 한다. '공부하는 게 가장 쉬운 일이구나'하는 깨우침과 함께, 늦어서는 할 수 없는 공부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청춘의 시간을 절약해서 써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어서 그렇다고 한다. 또 어떤 물자 하나도 사람의 손이 안 가고 되는 건 없다는 생각에 물자 절약 정신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간다.

큰 교회가 짓는 죄

내가 어릴 때는 걸어가고자 하는 길이 그리 험하지 않은 길이면 고무신을 벗어서 손에 들고 맨발로 걸어갔다. 고무신이 닳는 걸 겁내서라기보다는 “뭣하러 쓸데없이 좋은 길에 신을 신고 가느냐”하는 이야기를 어른들이 누누이 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즈음 자녀를 한둘만 낳게 되면서부터는 자녀 귀한 줄만 알았지 물자 귀한 줄을 몰라 자녀들 또한 흥청망청 쓰는 법만을 배우는 듯하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이 어불성설의 명제는 군사 정권 30년이 배설해놓은 환상이다. 물건 아끼는 것은 좀스러워 보이고, 돈 잘 쓰면 멋있어 보인다는 건 그야말로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모르는 소리이다. 국민 소득 육, 칠천 달러의 국민들이 이만 달러 수준으로 돈을 쓰면 남는 건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30년 전의 빈곤했던 시절로 돌아가는 일뿐일 것이다. 바로 지금, 우리가 절약하고 저축하는 운동을 일으키지 않으면 우리 공동체에는 심각한 위기가 올 것이라는 위기감을 나는 느낀다.

특히 우리 공동체의 위기를 실감나게 해주는 것이 몇몇 잘못된 교회다. 종교가 물질에 대해서 가지는 생각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기독교나 유교처럼 청부 사상을 말하는 종교가 있고 불교나 카톨릭처럼 청빈 사상을 주장하는 종교가 있다. 깨끗하지만 부유하게 사는 것이 청부 사상이라 한다면, 깨끗하고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청빈 사상이다. 카톨릭에 견주어 볼 때, 개신교는 성서적으로 보아서 청부 사상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해서 영적으로나 물질로나 부유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평신도와 달리 기독교의 지도자는 청빈해야 한다고 보는 편이다.

이 시대의 과소비는 정신적인 황폐와 공허에서 오는 것이다. 국민의 정신세계가 공허해질수록 외제품을 선호하고 사치품을 사들인다. 이런 정신적인 무방향성은 일종의 정신 질환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때에 마땅히 도와야 할 자는 팽개치고 교회 시설의 확충, 교회의 대형화에만 열중하는 교회들이 많은 듯하다.

성도의 수효를 자랑하고 막대한 돈을 교회 건물에 바른다는 것부터가 그 교회 지도자들의 정신 연령을 말해주는 것이다. 교회 지도자들이 이 나라 정치 지도자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지적당하고 처벌을 받는 이 현실이 나는 안타깝다.

삼십 분 일하고 이십 분 책 읽고

과거 넝마주이 생활을 했던 사람으로서 내가 아끼려고 드는 것은 물질에 국한되지 않는다. 내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쓸데없이 내 시간을 빼앗아가는 사람들은 내겐 적이다.

내 젊을 때의 소원 하나는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큰 창을 내고 사방에 책을 쌓아놓고 마냥 책 읽는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그 소원은 거의 다 이루어졌다. 간척지인 이곳 남양만 두레 공동체의 건물 이층에 있는 내 서재에서는 바다가 보이고 목장이 보인다. 방내 벽을 메운 책장에는 책이 빼곡이 꽂혀 있다. 이곳에 들어앉으면 내 마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된 듯하다. 그런데 시간이 없다. 강의다 설교다 해서 이리저리 불려다니다 보면 강의 주제에 맞는 책 읽기에만도 헉헉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투리 시간 쓰는 일에 도통하게 되었다. 밭에 나가 일을 해도 삼십 분 일하고 이십 분 동안 밭둑에 앉아 책을 읽는다. 다시 일을 하면서는 이십 분 동안 읽었던 책 내용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되새긴다. 그렇게 하니까 내가 읽은 책이 내 세포 속에, 내 유전 인자 속에 자리잡고 앉아 내가 정독해서 읽은 책은 십 년 뒤에도 설교를 하면서 즉석에서 인용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머리가 좋아서 그렇다고 하지만 실은 이런 훈련으로 가능해진 일이다.

차를 타고 갈 때도 덜컹거리지 않을 때는 책을 읽는다. 손에 책이 없으면 허전하고 몸에 균형이 잡히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이렇게 독서광이 된 것은 우리 어머니 덕분인데, 우리 어머니는 머리칼로 신을 삼아 주신 분이 아니라 머리칼로 책을 사주신 분이시다.

산골에서 소학교를 나오시고도 젊었을 때 일본에서 사시면서 일본인들이 늘 책 읽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으신 나의 어머니. 내 나이 여섯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뜨셨으니 그 뒤로 아들 셋과 딸 하나 키우기에 갖은 생고생을 하셨을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형편에서도 어머니는 늘 우리에게 “정직해라, 책을 읽어라, 남에게 폐 끼치지 말아라“하는 세 가지 당부를 하셨다.

어느 날 대학 입시 공부를 하다가 기하책이 필요하게 된 나는 어머니께 책 좀 사달라고 말씀을 드렸다. 잠시 뒤에 읍에 나갔다가 오신 어머니는 내 책에 기하책을 밀어 넣어 주셨는데 잘 때가 되어 어머니 곁으로 간 나는 수건을 쓰고 주무시는 어머니가 이상하여 수건을 벗겨 보았다. 어머니의 머리는 깡퉁하게 짧아져 있었다. 어머니의 그런 머리를 보고 내가 어떻게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있었겠는가. 귀하게 얻은 것은 함부로 쓸 수 없는 법이다.

다른 일에 시간을 아껴서 독서하는 일에 쏟는 것은 내게 여러 가지로 이득이 된다. 비록 내가 시골에서 목회를 하고 있지만 목사라는 직책은 그 시대의 정신적 지도자인 셈이니까 이 시대의 모든 정치, 경제, 문화적인 흐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모든 분야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못 미치는 부분은 책을 통해 보충한다. 어쩌다 내 설교를 듣거나 멀리서 설교 테이프를 들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한다.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 성경 말씀뿐만 아니라 국제 정세를 알게 되어 좋습니다. 아홉시 뉴스보다 더 유익해요.”

세상 뜰 적에 내가 듣고 싶은 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많이 읽는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좋은 책, 꼭 읽어야 할 책만 골라서 본다. 책을 골라서 보는 것도 한번에 되는 일은 아니다. 많은 독서와 꾸준한 훈련을 통해서 스스로 그런 안목을 기르게 되는 것이다.

절약이란 결국 자기 관리 능력이다. 아무리 바쁜 사람이라도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해서 시간을 절약하고 몸을 절약하고 정신을 절약하면 한 사람이 세 사람, 네 사람 몫의 일을 할 수 있다. 나는 이 나이까지도 잠을 여섯 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 하루를 성실하고 바쁘게 보내면 저절로 숙면이 되어 짧은 시간 자고도 피로가 회복된다. 잠을 많이 자면 해야 할일을 서두르며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실수를 하게 되어 곱절이 넘는 시간을 바쳐야 한다.

또 음식 먹는 일에도 절제가 필요하다. 대학 시절 나는 하나님 일을 한답시고 건강에는 신경 쓰지 않고 바쁘게 돌아다녀 심각한 위장 장애를 일으켰다. 병석에 누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하나님이 내가 몇 년 일하다 돌아가는 걸 원하실 것인가, 아니면 내 능력대로 오랫 동안 일할 만큼 일하다가 돌아가는 것을 원하실 것인가?'

하나님의 대답은 후자일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 건강을 돌보기 위해 철저한 위장 관리를 했다. 냉수 마찰 같은 방법으로 체련도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서식, 곧 천천히 먹는 일이었다.

나는 식사하는 속도가 그 나라 문화 수준과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면서 남과 대화하고 그러다 보면 적당히 먹게 되어 식사 끝무렵에는 배가 불러온다. 그러면 과식을 피할 수 있고 위장에 무리가 없는 것이다. 천천히 먹는 서식, 적게 먹는 소식, 채소를 주로 먹는 채식, 이 세 가지 원칙을 잘 지켜 나는 내 건강을 회복했다.

내가 성경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사무엘이다. 그는 노년에 자녀들과 백성들 앞에서 “내가 평생에 누구에게 뇌물을 받았느냐? 경우 없는 돈을 썼느냐, 권력을 남용했느냐?” 하고 당당하게 물어 보았다. 모든 사람은 사무엘의 도덕성을 인정했다.

나는 “당신은 일생을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하는 소리를 들으며 이 세상을 떠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근검과 절약이 바탕이 된 청빈함을 일생 동안 갈고 닦아야 할 것임을 때마다 시마다 나는 묵상하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