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초· 중· 종성을 모아서 하나의 글자를 만듭니다. 이것은 한글의 특징 중 하나인 모아쓰기입니다. 그런데 세벌식은 그 원리를 살려서 초· 중· 종성이 제각기 다른 글쇠에 배당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을 매우 빠르게 한꺼번에 누르더라도 한 글자를 바로 만들 수 있습니다. 각 낱자들이 실질적으로 컴퓨터에 입력된 순서가 일부 뒤바뀌더라도 글자가 제대로 만들어지며, 이는 오타를 바로잡아 주는 기능까지 합니다.
모아치기는 두벌식에서는 할 수 없지만, 세벌식은 한글 입력기의 오토마타를 조금만 손보면 구현 가능합니다. 한글은 모아쓰는 문자이기 때문에 세벌식으로는 모아치기가 가능한 반면, 두벌식으로는 초· 중· 종성을 순서대로만 입력하는 종래의 이어치기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면 정확합니다.
운영체제가 제공하는 기본 입력기(IME)는 세벌식 글자판을 지원은 하지만, 모아치기를 지원하지는 않습니다. 날개셋 타자연습 이외의 프로그램에서 이 기능을 사용하려면 날개셋 한글 입력기 같은 다른 한글 IME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아울러, 동시에 누르는 글쇠들을 잘 인식하는 키보드를 같이 사용하면 모아치기에 더욱 도움이 될 것입니다.
1995년에 나온 속기용 타자기 '감퓨타'는 초· 중· 종성 모아치기에다, 자주 쓰는 말을 줄임말만 치면 나오도록 하는 상용구 기능을 보태어 글을 빨리 칠 수 있도록 만든 글자판입니다. 감퓨타는 세벌식처럼 소프트웨어적으로 지원만 하면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글자판과 전용 소프트웨어를 구입해야 하는 제품입니다.
속기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여러 글쇠를 한꺼번에 누르는 모아치기라는 개념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속기 키보드는 어떤 점에서 세벌식과 비슷한 면모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공병우 세벌식 글자판이 특수한 속기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글자판은 아니며, 속기 키보드가 공병우 세벌식 이념이 완전히 담긴 것도 아닙니다. 이 점에서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역시 전적으로 공병우 세벌식 자판과 한글의 특성만을 고려하여 타자 능률을 올려 주는 기능을 넣는 것에 초점을 둔 프로그램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어의 언어적 특성을 이용한 약어 입력 같은 기능은 구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안마태 신부의 글자판은 속기 자판에 더 가까운 용도로 설계되었으며, 세벌식이기는 하지만 공병우 박사의 이념이 담긴 세벌식은 아닙니다. 공병우 세벌식보다 글쇠 수가 적고, 초· 중· 종 글자가 실제 한글의 위치대로 글쇠에 배열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과거엔 저명한 한글학자이고 선각자인 주시경, 최현배 선생도 한글을 가볍게 만들고 한글 기계화를 쉽게 하기 위해 풀어쓰기를 제안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풀어쓰기는 정서적 거부감 때문에 보편적으로 실현되지 못했고, 한글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두벌식 풀어쓰기" 진영과 "세벌식 모아쓰기" 진영은 서로 대립하는 편이었습니다.
개발자는 풀어쓰기가 한글이 궁극적으로 나아갈 길이라는 식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풀어쓰기의 가장 큰 약점은, 풀어 쓴 한글 낱자가 로마자에 비해 변별도가 크게 떨어진다는 점이라 여겨집니다. 마치 일본어의 가나 문자가 한자를 보조하라고 만들어진 불완전한 문자이듯이 한글 낱자도 모아 써야만 제 기능을 담당하는 형태인 것입니다. 그 단점을 풀어쓰기 안에서만 해결하려면 결국 글자를 더 만들어야 하고, 획을 변형해야 하고, 맞춤법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이 정도까지 가면 한글이 한글이라 불리기 곤란한 수준이 될 것입니다.
공병우 박사가 한글 세벌식 타자기라는 위대한 발명을 하고 컴퓨터 기술도 발전하면서, "기계화를 위해서"라는 풀어쓰기 명분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한국어는 받침이 존재하는 언어이며, 한글의 우수한 특징도 초· 중· 종성이 모여서 한 글자가 되는 모아쓰기입니다. 모아쓰기 한글 입력 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날개셋 한글 입력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풀어쓰기는 모아쓰기가 제 구실을 못 하는 곳, 특히 대단히 작은 글씨가 들어가야 하는 곳에서 제한적으로나 쓰임새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