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세계 표준 글쇠배열은 '쿼티'라고 부릅니다. 3단의 왼쪽 글쇠가 QWERTY로 시작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한편, 드보락은 미국의 어거스트 드보락 교수가 1932년에 고안한 글자판입니다. 드보락은 영어의 실정에 맞게 글쇠배열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손가락 연타나 한손 집중률이 쿼티보다 훨씬 적고 타자 능률이 매우 우수하다고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가장 우수한 한글 자판과 가장 우수한 영문 자판을 대조해서 쓰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한글 자판을 세벌식으로 바꾼 사람은 드보락 자판에도 도전하는 경우가 있답니다.
자판 배열을 보면, 왼손 기본 자리에 영어의 다섯 모음(A, O, E, U, I)이 배당돼 있고, 오른손 기본 자리에 S, N, T와 같이 매우 자주 나오는 자음이 있습니다. 즉, 오른손은 자음을 담당하고, 왼손은 문장 부호, 모음, 그리고 자주 쓰이지 않는 자음을 담당하지요.
드보락은 마침표와 쉼표가 쿼티를 비롯한 한글 글자판과는 판이하게 다른 위치에 있고, 일부 기호 위치가 쿼티 자판과 또 다릅니다. 그리고 세벌식 자판이 숫자판을 사용하듯, 드보락은 표준 자판이 쓰지 않는 , . / 자리에 글쇠가 배열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에 대한 연습이 특히 필요합니다.
이 자판의 가장 큰 장점은 글쇠 배열이 매우 합리적이어서 전체 타자의 70% 이상이 기본자리에서 행해진다는 것입니다. (한글 두벌식은 60% 정도, 세벌식은 55% 정도, 쿼티는 30%대)
또한 엉성하게나마(한글과는 달리 영어 단어는 자음과 모음 위치가 뒤죽박죽이지요.) 오른손부터 시작해서 왼손으로 끝나는 리듬감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맨윗자리를 쓸 일이 없으니 세벌식보다 배우기 쉽고, 기본 글쇠를 중심으로 손가락을 조금씩 놀리기만 하면 마치 단어가 자기도 모르게 술술 나오는 것 같은 배열을 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water, link, read, gate 같이 한 손만으로 치는 단어가 드물고(물론 poke 같은 단어는 드보락의 예외.) 쿼티보다 훨씬 치기 편합니다. 물론 세벌식만한 리듬감이 없으니 from과 form처럼, 앞뒤 글자를 바꿔 치는 오타는 좀 나는 편입니다.
알고 보면 쿼티 자판이야말로 타자기 시절의 구시대 유물이고, 드보락 자판으로 대체돼야 할 존재입니다. 쿼티 자판은 타자수가 글쇠를 너무 빨리 쳤을 때 글쇠가 엉키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자주 쓰이는 글쇠를 서로 뚝뚝 떨어지게 배치하고 "일부러 빨리 치기 힘들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이는 배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쿼티는 이미 로마자를 쓰는 모든 나라에서 세계적인 표준이 되어 버려서, 컴퓨터에서도 지금처럼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컴퓨터에서 키보드의 스캔 코드 값 자체가 쿼티 글쇠배열을 기준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드보락 사용자는 전문 타자수가 아니면 한국에서의 세벌식 사용자의 비율만큼이나 희귀합니다. 하지만 합리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드보락은 한국에서 세벌식 자판과는 달리 1983년부터 쿼티와 더불어 미국 복수 표준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국가가 드보락 자판의 존재를 인정한 셈입니다.
드보락은 세벌식보다 배우기는 쉽지만, 한글 Windows 환경에서 쓰기가 좀 힘듭니다. 드보락은 키보드 언어가 한글인 데서는 쓸 수 없습니다. 제어판에서 키보드 설정에 들어가 키보드 언어로 '미국'을 추가하고 미국 글자판을 드보락으로 지정하시면 됩니다.
그 다음에는 키보드 언어(입력 로케일)를 전환하는 글쇠를 Ctrl+Shift 나 Alt+Shift중에서 설정한 뒤 '확인'을 누릅니다. 그 뒤부터는 한영 전환을 한영 키 대신 이 언어 전환 키로 하시면 한글 자판과 드보락을 번갈아 가며 쓸 수 있습니다.
로마자 자판을 바꾸고 나면 단축키까지 드보락 자판에 맞추어 바뀝니다. 이 점 유의하십시오. 참고로, 날개셋 한글 입력기로 드보락을 쓰는 것은 한글 모드에서 영문 글쇠배열을 흉내 내 주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단축키까지 바꾸지는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