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집중 - 새마을호

1. 외형

2. 인테리어

3. 특실

4. 레일로드의 추억

5. 영상 서비스의 추억

6. 새마을호의 몰락


1. 외형

관광호라고 불리던 우리나라 최우등급 열차가 새마을호라는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

그러다가 대우중공업에서 최초로 유압변속 전후동력형(PP) 디젤동차를 생산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동차형 새마을호라고 부르는 새마을호 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했습니다. (1987년 7월 6일부터) 물론 순수 국산은 아니고 엔진 주요 부품은 독일제라고 합니다. 디젤이든 전기든 기관차가 끄는 새마을호도 있지만, 동차형 새마을호만치 상징적인 의미는 갖지 못합니다.

스포츠카 같은 날렵한 외형에 디젤 기관차보다 가볍고 조용하고, 가속력 좋고 발전 시설까지 자체적으로 갖춘 이 차량은 당대로서는 혁명과도 같았습니다. 물론 가볍다는 점은 철도에서 오르막을 오를 때 도리어 큰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해서 선형 상태가 좋지 않은 곳에서는 동차가 운행할 수 없었지만, 반대로 선형 상태가 좋은 곳에서는 이 열차가 물 만난 듯 달렸습니다.

고성능 특대형 기관차의 도입과 경부선 일부 구간의 선형개량 공사 완료에 힘입어 새마을호는 획기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1983년 7월 1일에 서울-부산간 운행 시간 4시간 40분을 달성한 후 84년 8월 31일에는 경부선 서정리-천안 구간에서 150km/h 시운전에 성공하고, 85년 11월 16일부터는 대전, 동대구에만 정차하고 서울-부산을 표정속도 107km/h로 4시간 10분만에 주파한 것입니다.

대전-서울은 무정차 1시간 32분! 물론 전후동력형 동차도 그 전통을 이어 나갔습니다. 고속철도 개통 직전에 이 열차를 타 봤을 때의 느낌을 저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객실 인테리어는 완전히 움직이는 호텔이었죠. 그때 새마을호의 위상은 한 마디로 귀족 열차였으며 지금의 KTX 이상이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새마을호 도색의 변천사입니다. 96년을 계기로 노랑-초록 도색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2006년 현재, 도색이 점진적으로 또 바뀌고 있습니다.

2. 인테리어

이제 객실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무궁화호와 비교해 보면 좌석이 훨씬 더 두툼하고, 그 덕분에 상대적으로 복도의 폭이 대단히 좁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눈썰미 있는 분이라면, 좌석 윗부분에 입석 승객을 위한 손잡이가 없다는 것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새마을호는 입석 승객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무궁화호 객실에도 도입되긴 했지만 간접 조명에 독서등이 갖춰져 있고, 객실 앞뒤 끝엔 콘센트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좌석이 자주색 계통이었다가 2004~2005년 사이에 회색 계통으로 모두 교체되었습니다. 중간의 팔걸이는 우등고속보다는 작아서 두 사람이 같이 얹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앞뒤 간격은 새마을호가 더 큽니다.

좌석 아래엔 종아리받침대와 발걸이도 있습니다. 우등고속이 90년대 초에 등장했으므로, 이런 고급스런 좌석은 새마을호가 한 발 더 일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닥 장판도 무척 고급스러우며, 특히 복도의 장판이 색깔이 달라 고급스러움을 더합니다. 유선형인 창문도 인상적이죠.

3. 특실

일반실이 저 정도인데 특실은 더욱 호화롭습니다. 일반실보다 좌석이 더 두툼하고 큽니다. 붉은색은 환경에 따라서 상당한 고급스러움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일반실 좌석은 자세히 보면 아시겠지만 특실처럼 팔걸이 영역에까지 좌석이 돌출된 게 없습니다.

특히 어마어마한 간격의 압박을 아래 사진이 잘 보여줄 것입니다.

일반실과 특실의 차이를 단적으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특실 좌석은 붉은색 계통이고, 바닥 장판도 나뭇결무늬라 더욱 아늑한 느낌이 납니다. 한 객차당 64석인(16줄) 일반실에서는 제가 다리를 일직선으로 쭉 뻗을 수가 없고 아래 방열판에  발이 먼저 닿습니다. 하지만 객차당 60석인(15줄) 특실에서는 끝까지 발을 뻗을 수 있습니다. 새마을호 특실에서 좌석을 뒤로 젖히고 종아리 받침대를 위로 올려서 일직선이 되게 하면, 반쯤 누운 자세로 여행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이는 철도매니아의 이상향이기도 합니다.

4. 레일로드의 추억

새마을호 기내지인 월간 레일로드는 새마을호 승객의 동반자로, 또 새마을호 승객을 문화인으로 품위를 한층 높여 주는 종합 교양지였습니다.

우리나라 주요 관광지 소개, 소년 소녀 가장 이야기, 또 기업인· 예술인 등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소개가 나와서 공익성 면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습니다. 술· 담배 광고도 정책적으로 싣지 않았습니다. 본인 역시 나중에 여기에 세벌식 자판을 위해 힘쓰는 사람으로, 또 새마을호 매니아로 소개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졌는데.... 수지가 안 맞았는지 2006년 8월부터 전격 폐간됨으로써 1988년부터 이어져 온 레일로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한때는 무궁화호 특실에서도 볼 수 있는 잡지였지만 고속철 개통을 계기로 무궁화호는 특실이 없는 열차가 되었죠.

5. 영상 서비스의 추억

객실에 액정 모니터로 TV 방송이 나오는 열차는 우리나라 새마을호가 거의 세계 최초라고 합니다. 2000년 6월 1일부터 코모넷과 계약하여 이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2006년부터는 방송 편성 회사가 연합뉴스로 바뀌었습니다. 과거엔 전파견문록도 했고, 2006년 기준으로 스펀지, 상상플러스, 잉글리시 카페를 본 적이 있습니다. 지하철 3호선이나 KTX처럼 자막이 따로 나오는 게 아니라, 이어폰을 꽂아서 소리도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집에서 TV로도 볼 수 있는 세속적인(?) 방송보다는, 새마을호에서만 볼 수 있는 영상과 새마을호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에 더욱 관심을 가집니다. 특히 시발역에서 타고 종착역에서 내릴 때만 접할 수 있는 각종 안내방송과 음악은 저를 일종의 황홀경으로 몰아넣었습니다. Dreamers, Looking for you를 듣지 않고, 시종착 로고 방송을 보지 않고서 어떻게 새마을호를 탔다고 얘기할 수 있을지? 비행기조차도 이렇게 화려하게 승객을 맞이하고 배웅해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음은 제가 새마을호 뮤직비디오라고 부르는 영상의 한 장면입니다. 크게 (1) 출발 전, (2) 출발 직후, (3) 행선지 안내, (4) 도착 후로 나뉩니다. 1과 함께 곁들어져 나오는 은은한 음악이 Dreamers이고, 4와 함께 곁들어져 나오는 경쾌한 음악이 Looking for you (1) (2) (3)입니다. 새마을호의 감동을 차마 여기에 다 담지 못합니다. 직접 타 보고 체험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액정 화면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건 아니었고, 2004~2005년 사이에 와이드 화면으로 교체되었습니다.

6. 새마을호의 몰락

이 페이지는 새마을호를 소개하는 동시에 새마을호를 추억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대단히 유감스럽고 슬픈 현실이지만, 저를 비롯한 많은 철도매니아들의 존재의 의미가 된, 새마을호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철도 인프라가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 뚫으면 뚫을수록 막히는 자동차 도로만을 집중적으로 건설했지, 철도 시설은 일제시대 이래로 도로에 비해 그다지 변한 게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땅 좁고 기름 한 방울 안 나고 철도가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시되어야 할 우리나라에서 철도의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졌습니다. 노선이 충분치 않고 배차간격도 길어 타기도 힘든데, 새마을호가 우등 고속보다도 요금이 더 비싸면서 버스보다 더 느린 기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제는 단순히 정차 덜 하고 인테리어를 고급화하는 것만으로는 새마을호의 품위와 체통이 도무지 유지될 수 없게 되었지요.

세월이 흐르면서 새마을호의 몰락은 어찌 보면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다 KTX까지 등장하면서 위상이 너무 어중간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새마을호 PMC의 초기 도입분부터 슬슬 내구연한 경과로 인한 폐차가 임박했으며, 경부선 같은 주요 간선 철도들의 전철화가 끝나면 디젤 동차는 더욱 설 곳을 잃을 것으로 보입니다.

새마을호를 너무나 사랑하고 새마을호 때문에 철도에 미쳐 버린 사람으로서 이는 대단히 받아들이기 힘들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새마을호라는 이런 열차가 있었다는 사실은, 세상이 갈수록 각박해지고 여유가 사라지더라도 나의 가슴 한 구석에 언제까지라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새마을호는 단순히 호화로운 열차가 아니라 한국적인 멋과 품위, 문화가 있습니다. 새마을호를 타고 나면 탄 사람조차도 품위와 교양을 갖춘 문화인 같습니다. 새마을호의 운명을 어렴풋이 알기에 그 운명이 실제로 임하기 전에 새마을호를 더욱 타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