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포엠 간이역

영상과 함께 감상하는 시라는 뜻을 지닌 <영상포엠 간이역>(연출: 유 동종 PD)은 국토와 어우러진 한국 철도의 아름다움과, 고즈넉한 간이역의 추억을 영상에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철도매니아에게 그야말로 황홀경에 가까운 풍경(그것도 탁월한 화질로), 성우의 잔잔하고 나지막한 목소리, 철학적인 면모까지 느껴지는 나레이션을 제공한 이 프로는 KBS 텔레비전에서 2005년 9월 18일 오후 8~9시 방영하고 2006년 1월 29일 아침에 재방송되었다. 프로 제작팀은 2005년 9월 23일, 한국 철도공사 이 철 사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 30분. KTX 고속열차의 등장은 속도 지향의 결정적인 승리다. 한 마리의 누에처럼 단단하게 웅크린 모양을 하고 고속열차는, 공기를 찢으며 달려간다. 오직 서울과 부산이라는 두 목표물만을 향해 돌진하는 이 속도 안에서는 바깥이 보이지 않는다. 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그저 달려가는 속도의 이미지뿐. 길은 직선으로만 향하고 그 직선 위에는 풍경이 머물지 않는다. 속도를 얻어 풍경을 잃어버린 시대.
그 시대에 다시 길의 의미를 묻는다.

가은, 미륵, 산양, 상색, 야음, 소래, 미양... 사라진 간이역들의 아름다운 이름들이다. 지난 2-30년 사이에 사라진 간이역이 100여개. 그와 함께 수많은 지선으로 이어지던 가은선, 김포선, 수려선, 수인선, 안성선 등이 폐선됐다. 그리고 더 많은 지선과 간이역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져가고 있다. 세상의 모든 길은 자로 잰 듯 곧게 바르게 직선으로 펴지려고만 하고, 그 직선 아래 박힌 삶들은 하나둘씩 직선 밖으로 묻혀간다. 세상의 모든 간이역들이 사라지면 세상은 더 빨라지게 될까. 그 빠름 속에서 세상은 점점 더 스쳐 가는 바깥이 되어간다. 바깥은 바깥일 뿐, 영원히 내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게 모든 이가 타인으로 고립되는 자본의 시대가 완성된다. 고립된 자아만이 존재하는 세상, 그곳에서 밖으로 나가는 길을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