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가름 - 한글만 쓰기의 주장의 까닭

나는, 한글만 쓰기에 대한 세인의 의혹을 풀어밝히기에 앞서어, 먼저 한글만 쓰기 주장의 까닭 또는 필요성을 간단히 말해 두어야 하겠다. 나는 가위 평생으로 한글만 쓰기를 외쳐 댔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적마다, 한글 창제의 거룩한 뜻, 한글이 띠고난 사명, 한글의 과학성, 한글과 겨레의식, 한자의 해독, 한글의 세계 글자에서의 지위, ...들을 다루었다(논하였다). 그러므로, 가는 풀이는 나의 여러 지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아주 간단히 그 요지만을 들어 베풀기로 하겠다.

외솔 선생님의 저서:

1. 교육의 진정한 효과를 겨누기 위하여

1) 우리 나라에서의 한자 교육의 폐해

한글만 쓰기는 교육의 본질적 효과를 거두고자 함이다. 교육의 참된 목적은 사람의 감정을 순화하고, 지식과 도덕을 닦아, 써 참된 사람을 만듦에 있고, 글자나 말씨는 그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교육의 수단인 글자는 지식을 담아 전달하는 그릇으로서의 구실을 잘 하면 고만이다. 수단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에 시중하는 구실이 있을 뿐이다. 만약, 교육이 그 수단을 장만하기에 정력과 시간을 허비하고, 그 목적을 수행하는 여력이 없다면, 이는 본말을 전도한 과오가 아닐 수 없다. 사실로, 이조 오백 년간의 서당 교육은 한문 학습에 온힘을 다 쏟고 말았기 때문에, 교육의 실질적 효과는 거의 공(빈탕)에 가까왔었다. 그 결과로, 인재는 고갈하고, 국사는 침체하여, 드디어 나라가 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오늘 우리 나라의 교육은 국한문 혼용이기 때문에, 한자의 해독이 그다지 심하지는 않다고 할 만 하다. 그러나, 수천 자의 한자도 그 해독의 큼은 실로 상상 이상이다.

2) 일본에서의 한자 교육의 폐해

나는 이를 중시하기 위하여, 일본의 국어학자 호시나(保科孝一)가 일본 문부성 주최로, 1919년 봄에 도오꾜오에 열린 “때의 전람회”에 출품한 일본 국어 교육과 독일의 국어 교육과의 비교통계를 들어 보이겠다.

또 사상과 지식의 내용에 대하여 보면, 일본의 소학 6년 동안에 배우는 독본의 재료는, 독일의 소학교에서 같은 연한에 배우는 것의 6분의 1에 지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당시 일본에서는 이 어려운 한자를 소학교에서 얼마나 쓰고 있었는가 하면, 당시에 한자 인구가인 고또오(後藤朝太郞)의 조사한 바에 기대건대, 독본 한자수가 1360자, 독본밖의 것을 합산하여 2600자이었다 한다. 이 2600자의 한자를 배우기 때문에, 일본의 국어교육이 저만큼 서양의 국어교육보다 떨어졌다는 것은 놀랄만한 사실이라 하겠다. 일본이 독일에 비어, 시간은 거의 1/2나 더 많이 쓰고서 그 효과는 그 1/6밖에 거두지 못한 손실의 원인이 뜻글자 한자 2600자를 가르치기에 있었다. 이 손실은 다만 교육상 손실로만 볼 것이 아니다. 자세히 생각하면, 그것은 시간의 손실, 노력의 손실, 또 경제의 손실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사람의 생명 재산의 손실인 동시에, 국가 발전의 원동력의 손실인 것이다. 아아, 지긋지긋하다, 한자 2600자의 값의 호되게 비쌈이여!

3) 한글만 쓰기의 교육상 이익

1. 한글만 쓰기(사용)는 한자를 가르치고 배우기에 정력· 시간· 경제· 생명의 낭비· 소모를 막는다.

한글은 옛날부터 하루 아침에 배울 수 있는 글이란 말이 있음과 같이, 오늘날 어린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도 가기 전에, 벌써 쉬운 글을 읽는다는 것은 아마도 집집마다의 어머니들이 잘 아는 바이다. 오늘의 맞춤법을 어렵다는 사람이 간혹 없쟎아 있기도 하지마는, 이는 자기의 낡은 버릇에만 갇혀 있어, 새것을 알고자 조금의 힘도 쓰지 않는 사람일 따름이다.

2. 교육의 참된 본질적 효과를 거두게 된다.

어려운 한자를 배우기에 세월을 허송하지 않게 되므로, 한글만 쓰기는, 완전히 겁풀 교육의 폐해를 버리고 알속 교육을 베풀어, 교육의 본질적 목적에만 바탕스런 지식· 기술의 내용을 얻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3. 기억하는 교육에서 생각하는 교육에로.

일생 70일생에서, 가장 지력 발달이 왕성한 시기는 여섯 살에서 열두 살에 이르는 동안이라 한다. 이때에 한자같은 어렵기 짝이 없는 기억 거리만을 공급하여, 아이들의 기억을 강요하는 것은, 교육상 심히 그릇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시절의 아이가 물론 기억도 잘하는 터이므로, 그 기억 교재도 잘 배워서 잘 기억한다. 그러나, 이렇게 주어진 것을 기억하기만 하고, 그 머리를 “사물을 생각하기”에 길들이지 않고 보면, 그 아이가 장래 어른이 되어서도 앞에 닥친 사물의 발생· 성장· 발전, 들에 관한 자발적 관찰과 진리 탐구와 처리하기에 대한 능력이 부족하여, 인생의 앞길을 타개하여 전진하지 못하고, 드디어 인생 경쟁장속의 낙오자가 되고 말게 된다.

어떤이는 개탄한다: 오늘날 소학생의 지식이 가장 많은 것은 아마도 한국· 일본의 소학 졸업생일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이나 일본의 초등 학교에서는 주로 기억 교재를 주입하여 이를 암기시키기에 교육 작용이 있는 것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반면, 대학생의 학문하는 능력이 가장 낮은 나라는 아마도 한국과 일본일 것이다고. 나는 항상 말하였다: 한국 학생들의 공부는 소학에서 대학에 이르는 동안 피라믿 식임에 대하여, 서양 학생의 그것은 바로 그 반대로, 피라믿을 꺼구로 세운 것과 같다.

우리 나라의 학생들은 소학 시절에 닥치는 대로 먹어 삼키는 공부를 지독히 다 해 놓았기 때문에, 대학에 가서는 사물에 관한 자발적 흥미와 진리 탐구의 여력이 없어져서, 다만 선생의 강의 노오트나 고대로 기억하여 겨우 시험에 낙제나 안하면 될 걸로 생각한다고. 교육의 올바른 방법은 가장 지력 발달이 왕성한 소학 시절에 모든 학과에서 자발적인 흥미와 사고를 유치 단련하여서, 그 아이가 나이가 많아 가고, 학교가 높아 질수록, 더욱더 생각하는 능력을 배양발휘하여, 진리를 천명하고 학문을 대성하는 지경에 이르게 하는 일이다. 소학 시절에 이천 자의 한자 기억을 강요함으로써, 그 “생각하기의 능력”의 발달을 막는 것은 “사람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소 만드는 순육(馴育)”이라 하겠다. 옛사람도 그릇된 교육을 “사람의 자식을 도적하는=해치는 것”이라(賊人之子) 하였다. “한글만 쓰기”만이 참된 교육을 가능하게 한다.

나는 여기서 교육적 효과로써, 한글만 쓰기의 첫째 근거를 삼았다. 왜냐하면, 교육은 인간에서의 가장 근본스럽고 귀중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지식이 참된 사람이 되며, 사람의 고귀한 정신을 발양하여 착한 인생,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며, 또 모든 기계를 개발하고, 기술을 발달시켜, 사람살이를 더욱 편리하며, 각종 산업을 일으켜 풍성한 생활을 일삼게 하는 일들이 다 교육의 터전우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육은 사람을 사람되게 하며,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며, 학문과 도덕과 예술과 경제의 이상(가치)을 창조하게 한다. 곧 교육은 문화와 창조와 문명의 전승으로써, 가치 실현의 역사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요, 말과 글은 이렇듯 고귀하고 중대한 교육의 기초 수단인즉, 교육적 효과의 여하가 그 글자의 선택 기준이 됨은 당연한 사리임이 틀림없다. 내가 교육의 참된 효과로써 한글 올쓰기(專用) 주장의 “첫째 원리”로 삼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2. 기계화의 효과

글자 사용을 기계삼기(기계화하기)에는, 그 글자 수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서양에서도, 그들이 사용하는 26낱의 로오마자로써 기계삼기를 자유로 하고 있다. 글자의 수를 불우더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기계삼기가 전연 불가능하지는 않다. 일본에서도 200자의 한자를 일문에 섞어서 모노타입을 만들어 쓰고 있다. 그렇지마는, 많은 수의 글자로써 기계에 올리는 설비는, 간단함· 경제성· 편리성이 없을 뿐 아니라, 돈과 노력은 많이 들면서 그 효용의 분수는 매우 적기 때문에, 기계삼기의 본목적에 들어맞지 못한 것이 되고 만다. 보통의 타자기, 텔레타입, 라이노타입 같은 것은 30자 이내의 자수만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한자 1300자 같은 것은 도저히 기계삼기에 감당하지 못한다. 우리의 한글은 24자로서, 로오마자보다도 더 편리하다. 그러므로, 기계삼기의 효과를 거두려면, 한자 섞어쓰는 일은 그만두고, 한글만으로써 국민의 글자 생활의 전면 덮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 “한글만 쓰기”의 큰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곧,

  1. 한자는 기계삼기에 부적당하다.
  2. 한글 타자기, 한글 텔레타입, 한글 라이노타입, 한글 콤퓨터를 개발, 제조, 사용함으로써 우리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생활을 고도로 발달시킬 수 있다.
  3. 한글 기계삼기의 공효는 실로 크다. 아직 우리 생활이 이러한 기계를 쓰지 않고 있기 때문에, 도리어 그 공효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서양 선진 사회에서의 실제 생활을 몸소 가서 체험하고 보면, 이런 기계의 사용 여부가 곧 그 나라의 흥망을 좌우하는 것임을 깨칠 수 있을 것이다.

3. 겨레 문화의 창조적 발전을 위하여

우리 겨레 문화는 역사적으로 완전히 한당(漢唐) 문화의 영향 아래에 있고, 또 근년에는 일본 문화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고래로 우리에게 독특한 문화의 창조됨이 없지 않았건마는, 바깥 문화의 세력 때문에, 제 스스로의 발전을 이루지 못하였었다. 이제 겨레 중흥을 기약하는 오늘에 있어서, 한글만 쓰기로 함으로써 겨레 문화의 창조적 발전을 기할 수 있다.

  1. 한글은 배달 겨레의 독창력으로 말미암아 지어진, 겨레 문화의 최상의 공탑이다. 동시에 이것은 모든 새문화 창조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글은 우리 겨레의 창조력의 결과이자, 또 창조의 원동력인 것이다.
  2. 겨레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우리가, 조상들의 창조력을 계승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충분히 발전시킴으로써 세계 독특의 겨레 문화를 창조· 선양할 수 있다. 우리 문화 전통은 빛나고, 우리의 재능은 세계적으로 빼어난다. 한글만 쓰기는 능히 빛난 전통을 잇고 타고난 자질을 충분히 발휘시킬 수 있으나, 세계에 독특한 “배달문화권”을 형성할 수 있어, “빛은 동방으로부터”란 옛사람의 기대를 실현시킬 수 있겠다.
  3. 배달말의 순당한 발달을 기대할 수 있다.

배달 겨레의 나라 생활, 사회 생활은 온전히 제말 곧 배달말로 하여 왔었다. 나라이름, 따이름, 벼슬이름, 사람이름, 가정 생활의 친족 이름, 사회 생활에서의 온갖 사물의 이름, 들들이 다 배달말로 되어 오던 것이, 신라 중엽에서부터 당나라의 한문화 영향을 입어, 나라이름, 벼슬이름, 따이름, 들들이 차차 한자말로 뒤쳐지게 되어, 바깥 문화에 대한 추종 심리는 내것에 대한 천시냉대로 되어, 신라인의 고안인 “이두”글자가 제 구실을 감당함에 이르지 못하고, 이조의 세종 대왕이 훌륭한 글자 한글을 지어내었건마는, 한글 역시 온전히 제 구실을 하게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비록 긴 세월은 아니지마는, 일본의 침략은 우리 문화, 우리말에 몹쓸 속박과 강압을 주어, 거의 우리 말글의 사멸을 불러일으킬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역사적 사정에서, 배달말은 쭈그러들고, 여려 지어, 사회적으로 유력한 말씨는 모두 한자말로 되고, 순수한 배달말은 거의 자취를 감추게쯤 되었다. 해방후 겨레의 독립자유의 사상이 크게 떨쳐 왔지마는, 한자를 수위에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새말에는 여전히 한자말이 횡행할 뿐이요, 배달말은 행정· 학문, 들들의 들판에는 쓰히지 못하고 있다. 다시 한자는 진서이요, 한자말은 상등말이란 관념이 여전히 지도층 사람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다.

이는 참 가탄할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한글만 쓰기를 적극 추진· 실천함으로, 낡은 권위를 허물벗듯이 완전히 벗어버리고, 새로운 자존심과 독창 정신으로써, 모든 생활 영역에 배달말을 등장시켜야 한다. 그리함으로써, 세계의 식자가 입을 모아 칭찬하는 한글과 최근 일본의 언어학자까지 배달말의 말본의 우수성을 인정고조하는 배달말을 함께 높이고 다듬고 키우고 불움으로써 그 고유의 성능을 완전히 발휘시켜서, 그 순리스럽고 당연스런 발달을 가져오지 않으면 안 된다.

4. 글자 발달의 원리에 순응하기 위하여

세계 글자 발달 계단으로 보아, 한글은 그 최고 계단에 딸린 것으로, 가장 좋은 글자임이 틀림없다.

1) 글자 발달의 다섯 계단

사람의 글자의 지음은, 그 의사 표시를 시간 공간의 제한을 넘어, 길이 또 널리 전하고자 함에 그 동기가 있었다. 그것은 (1) 매듭글자(結繩文字), (2) 그림글자, (3) 뜻글자 또는 낱말글자, (4) 소리글자로 발달되어 왔다. 소리글자에도 두 계단이 있으니: 첫째는 낱내 글자(일본의 “가나” 같은 것)이니, 이는 아직 닿소리와 홀소리의 분화가 이뤄지지 않고, 다만 닿소리와 홀소리와 합하여 이룬 낱내(음절)를 한 글자로 나타낸 것이요; 두째는 낱소리 글자 또는 소리뭇 글자(音韻文字)이니, 이는 닿소리와 홀소리가 분화되어, 닿소리의 하나하나를, 또 홀소리의 하나하나를 하나의 글자로 나타낸 것이다.

그러한즉, 낱소리글자(alphabetic letter)는 인류가 지어낸 가장 발달한 글자로서, 최상의 글자인데, 오늘 세계에서 널리 쓰히고 있는 로오마자와 우리의 한글이 이의 대표스런 글자이다. 그런데, 로오마자는 멀리 오천년 전의 이집뜨의 본뜨기글자(象形文字)에서 출발하여 수천 년 동안 여러겨레로 말미암아 점차로 낱소리글자로 발달한 것임에 대하여, 우리 한글은 배달 겨레의 빼어난 슬기로 말미암아 세종 대왕 한분이 당대에 연구· 완성· 반포한 것으로서, 그 조직과 활용이 과학성을 완전히 구현하여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20세기 과학시대에서도 그 이상의 고안을 볼 수 없는 인류 최선의 독창적 과학적 글자로서, “한 소리 한 글자”, 또 ”한 글자 한 소리”의, 다른 글자의 추종을 허락하잖는 영광의 글자이다. 이는 절로 우리 한국사람의 자화자찬의 망언이 아니요, 세계 지식인의 공인하는 바이다.

2) 한글은 세계 글자 가운데 가장 발달한 훌륭한 글자이다

인류 역사 있는 지 오천년에, 각 겨레의 우수 분자들이 지어낸 글자 수가 2백여 가지가 있지마는, 이러한 글자로서의 과학적 조건을 구비한 글자는 오직 한글 하나뿐이라 함이 조금의 에누리도 없는 사실이라면, 오늘의 배달 겨레가 제가 물려받아 지니고 있는 한글의 참값에 대하여, 깊은 깨침과 높은 자랑을 품고서, 한글을 높여쓰자는 “한글만 쓰기” 운동에 적극 호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3) 한글만 쓰기는 전 인류 5천년 경험을 살려쓰는 것이 된다

한글만 쓰기는 다만 우리 조상의 문화 유산을 살리는 것일 뿐 아니라, 실로 전 인류의 오천 년 경험을 가장 합리적으로 살려쓰는 것이 되나니: 이에 대하여 또 무슨 다른 소견이 있을 수 없다.

5. 시대 정신의 요청에 응하기 위하여

사람은 공간적 존재인 동시에 또 시대의 아들이다. 따라, 사람은 그 시대 정신의 요청에 순응하여야 그 개인적 또 국가적 살음이 성공할 수 있다. 그러면, 오늘날의 시대 정신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

1) 현대는 민주주의의 시대이다

한 나라가 민주주의적으로 발전하려면, 그 사회 구성분자인 국민대중의 지식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80~90%의 글소경을 가진 나라는 도저히 민주주의스런 나라가 될 수 없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명목상의 민주 나라일 뿐이요, 그 실질에서는 민주주의가 행할 수 없다. 국민 대다수가 글자를 몰라서 작대기 선거를 하고는 민주주의는 이름뿐이요 실지가 아니다. 대중의 지식수준을 높히자면 무엇보다도 배우기 쉽고 쓰기도 쉬운 글자로서 교육을 받고 생활을 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글은 참으로 모든 과학스런 원리를 갖추어 있을 뿐 아니라, 또 가장 쉬운 글이다. 영어의 A자가 9가지로 소리나고, E자가 11가지로 발음되는 것하고 비교한다면, “한 자 한 소리”, “한 소리 한 자”로 된 한글은 참으로 쉬운 글, 좋은 글이다. 이렇듯 쉽고 훌륭한 글자를 가졌으니, 우리는 마땅히 시대의 요구인 대중의 지식 수준의 향상을 위하여, 이를 백 퍼어센뜨로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곧 한글만 쓰기는 민주주의 시대정신의 절대적 요구이다.

그뿐 아니라 한글은 그 탄생에서부터 대중 교화의 사명을 띠고 난 글지이니, 이도 또한 전 세계 글자 가운데 오직 하나인 특징이다. 인류의 글자는, 그 초기에 있어, 그 사회의 소수의 치자계급이, 그 속에 사람들을 손아귀에 넣어 다스리는 방책을 담아 놓고, 제집 자손들의 교육에 이용하는 연모이었다. 그래서, 글자는 소수인의 전유물로서, 일반 민중의 참여를 허락하지 않던 것이었다. 이것이 대중의 갈라가짐이 된 것은 장구한 세월에, 일반 대중의 항쟁· 분투의 결과로 획득한 것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 한글은, 아예 일반 민중의 지적 개발과 생활의 편익을 위하여 창제된 것이니, 이는 확실히 인류 문화사상 특기할 만한 큰 사건이라 하겠다. 세종 대왕은 훈민 정음 첫머리에서 한글 창제의 본의가 이러한 것임을 밝게 보이었음은, 오늘의 우리가 볼 수 있다. 참 갸륵하다. 세종 대왕은 500년 뒤의 과학 시대를 미리보고서, 이 겨레에게 한글이란 생활의 무기를 지어 주셨다! 우리는 이 고마운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배은망덕은 사람으로서의 최대의 허물이니라.

2) 현대는 과학의 시대이다

미국의 우주선 아폴로 8호가 작년(1968) 말에 달을 열 바퀴 돌고 예정대로 태평양으로 돌아왔고, 금년 7월에는 아폴로 11호가 달세계에 상륙하여, 세 우주인이  3분간 달나라를 산보하면서 여러 시험물을 주워서 돌아올 예정이라 하며; 소련은 금년 정초에 비너스 6호를 발사하였는데, 5월에는 금성에 도달하리라 한다. 오늘의 과학은 모든 신비를 헤치고 또 우주를 정복하려 하고 있다. 산 사람의 염통을 옮겨심으며, 생명 창조의 신비에까지 접근하려 한다. 이러한 과학 시대에 살면서 태곳적 생각 그대로 지니고서 그대로 살려는 것은 너무도 무감각한 인생이 아닐 수 없다. 이 과학의 시대에 인류 문명의 기초가 되는 글자--글자의 사용방법들을 옛 모양 그대로 하겠다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마땅히 쉬운 한글만을 씀으로써 과학의 발달을 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과학의 대학 세종 대왕은 우리 후손들에게 과학 시대에 살아 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과학의 글자 한글을 지어서 길러 준 것이다.

6. 겨레의 독립 자존의 정신을 기르기 위하여

현대는 겨레의 독립 자존의 시대이다.

검둥이 종이 해방된 것은 옛날 이야기이요, 또 세 개의 독립국밖에 없다는 것은 1945년까지의 일이요, 20세기 후반기 오늘날은 검은 대륙이 완전히 해방되어, 거기에 42개의 독립 나라가 생기었다. 세계에서 가장 뒤떨어졌다던 검은 대륙의 사람들이 이렇듯 완전한 해방을 얻었으니, 다른 곳의 약소 겨레이야 더 말할 나위없이 다 떨치고 일어서지 않을 리가 있나? 근세의 제국주의의 희생이 되어, 자유 없는 종의 신세에 허덕이던 세계 도처의 약소한 겨레가 각각 독립을 쟁취하였다. 그래서, 국제 연합(N.U.)의 회원국은 125를 세게 되었다. 국제 연합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까지 친다면, 아마도 140나라가 될 것 같다.

우리 배달 겨레도 금번 세계 대전의 끝남과 함께 해방되고 독립하였다. 인제 우리가 크게 깨닫고 깊이 반성하여, 겨레의 독립자존의 정신을 진작하고, 주체성을 확립하여, 나라를 영구부동의 반석 우에 굳건히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한글만 쓰기는 이 독립자존의 정신을 고취하는 가장 근본스럽고 또 가장 좋은 방도이다. 이를 교육에 실시하여 어린 마음과 젊은 가슴에 제겨레의 문화를 존중하는 정신, 나아가서는 독창력을 발휘하여 제 문화를 개선진보시키려는 의욕을 기르는 것은 최대 최긴요의 사업이다.

또 한글만 쓰기를 국민 생활의 각분야에 실시함으로써 국민에게 자존심, 독립심을 기르며, 이러한 무형 문화에 대한 자존 자중의 마음은 물질 생활에도 미치어, 제 강산을 사랑하고, 제나라의 소산물을 사랑하며, 제겨레의 제품을 존중하게 되나니, 이리 하여야만 가히 겨레 자존의 시대에 처할 만한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내 글을, 내 정신 문화를, 내 물질 문화를 사랑하른 데에만 겨레의 의의와 겨레의 생존권이 있으며, 겨레의 자랑, 겨레의 영광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옛말에 “사람은 반드시 제스스로를 업신여긴 연후에 남이 저를 업신여긴다” (人必自侮而後人侮之)고 하였다.

나는 부르짖고자 한다: -- 우리가 남에게 존경을 얻고자 하거든 반드시 먼저 제스스로를 존경하여야 한다. 고.

이는 개인 생활에서나 겨레 생활에서나 나라 생활에서나 변ㅎ지 않은 진리임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 우리 사회의 식자가운데는, 제나라 과학스런 글자 한글을 천시하고 한자명함을 가지고 미국에 갔다가 외국 지식인들로부터 제글 멸시하는 태도에 대하여 울린 경종을 듣고서야, 처음으로 종래 “자기 멸시”의 제스스로의 태도에 대하여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고백을 하는 이를 여럿 보았다. 남에게 멸시당함이 물론 수치이다. 그러나, 제가 제스스로에게 멸시당함은 그보다 더한 수치임을 깨쳐야 한다. 한글만 쓰기는 종래 한글은 언문으로 천시하고 한자는 진서로 존상하던 사대자비의 정신을 개혁광정하기에 가장 근본수단이 되는 것임을 깨쳐야 한다.

우리는 세계 인류를 사랑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제 겨레, 제 동포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인류 문화를 존중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제 겨레 문화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글은 배달 겨레의 장구한 역사 생활에서 창조된 최선의 문화, 최대의 보배인 동시에, 또 최량의 생활의 무기, 문화의 무기로서, 배달 겨레의 영구한 장래에 밝은 광명을 던져 주는 것임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7. 겨레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다하기 위함이다

이제 우리는 겨레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이 나라에 살음을 누리고 있다. 정신적 및 육체적 힘을 다하여 이 고귀한 사명을 이뤄내는 것만이 겨레된 사람의 최고의 포부이다. 이 훌륭한 포부를 실현하려면, 우리의 할일은 다음과 같다:

1) 근대화를 해야 한다

서양 사회의 근대화는, 죽은말인 라띤말의 절대적인 오랜 낡은 권위를 타파하고, 유럽의 각 겨레가 제각기 날마다 입으로 사용하는 제 겨레 말씨를 높혀쓰고, 널리 써서 학문· 종교· 정치· 문학, 들에서 라띤말을 쓰지 않고, 제 말씨를 어엿이 쓰기 비롯한 데에서 출발하였다. 이는 세계 문화사를 읽은 이는 누구나 한가지로 다 아는 바이다.

동양인도 근대화를 하려면 또한 죽은말인 한자· 한문의 낡은 권위를 벗어버리고, 현재 제 겨레의 입으로 날마다 쓰고 있는 말과 제 말을 적기에 가장 편리한 글자를 숭상해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일은 중국인에게나 일본인에게나 월남인에게나 내지 한국인에게나 무릇 오랜 세월에 한자 문화의 세력 아래에 있어 온 겨레에게는 다 마찬가지로 두루 들어맞는 진리이다. 제 겨레의 쉬운 말, 쉬운 글로써 학문과 종교와 정치와 예술과 모든 사회 생활을 평이하게 쉽게 원활하게 하는 것이 서양 근대화의 첫걸음이었다.

2) 겨레의 주체성을 확립하여야 한다

한글은 근 오백 년 동안이나 북방 외족들에게 몹시 시달린 끝에 고려가 없어지고, 새로 세운 한양 조선에 이르러, 겨레의식의 통일과 함께 지어진 글자이다. 그러므로, 겨레의식을 높이들어, 겨레의 주체성을 확립하려면, 먼저 겨레의 자립 생활의 편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겨레의 창조적 슬기로 말미암아 순수히 독창적으로 지어진 한글을 전용함(올씀)이 그 최소의 방도이다.

3) 한글은 겨레 힘의 샘터이다

개인의 힘은 정신의 힘과 신체의 힘으로 가를 수 있는데, 육체의 힘은 정신의 힘의 명령 아래에서만 그 정당한 발동을 할 수 있다. 정신 곧 얼은 말과 글로 나타나나니; 말과 글은 곧얼의 감각화인 것이다. 말은 얼을 나타내고, 글은 말을 나타낸다. 그러한즉, 얼· 말· 글은 셋이면서 하나이다. 배달 겨레의 얼이 가는 곳에 말과 글이 가고, 말과 글이 가는 곳에 또한 얼이 간다.

한글은 배달 겨레의 창조적 능력으로 말미암아, 겨레를 위하여, 겨레의 소용이 되고자 지어진 것이다. 거기에는 겨레얼이 들어 있으며, 겨레의 힘이 들어 있다. 말과 글은 겨레 문화를 애짓는(創造하는) 근본 수단이다. 다시 말하면, 한글은 모든 문화 활동의 근본이니, 겨레의 힘은 다 여기서 솟아나는 샘터인 것이다.

나라는 힘(Macht)이다. 힘을 기르지 않고는 나라의 발전, 백성의 행복을 누릴 수 없다. 힘을 기르지 않고는 남북 통일이며 겨레 중흥은 다만 한 입으로 하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한글이 본래 배달 겨레의 얼스런(정신적) 힘에서 생겨난 것인 동시에, 또 그것은 겨레얼의 힘을 기르는 본질을 가지고 있다. 한글만 쓰기를 실시하는 것은 곧 겨레의 힘의 샘터를 마련하는 것이다. 지식의 발달도, 기술의 향상도, 예술의 진흥도, 산업의 발전도, 군사력의 강성함도 다 한글이란 샘터 없이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한글은 진실로 나라 힘의 샘터이다. 쓰고 써도 다함이 없는 영구불식의 샘터이다.

한글만 쓰기는 겨레의 주체성을 확립시키며, 겨레 문화의 창조의욕을 북돋우며 겨레 문화의 독특한 따갈피(地區)를 이룩하여 그 찬란한 번영을 겨누며, 시대의 정신을 구현하게 하여, 민주주의의 진정한 발전, 과학과 기술의 진흥, 조국 근대화를 영구부동의 궤도우에 놓는 것이 되어, 겨레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이룩할 수 있게 한다. 한글은 겨레의 생명이요 자랑이며, 나라의 힘이요 소망이다. 한글만 쓰기로써 이 땅에 희망과 번영을 가져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