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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김 용묵의 절대공간 - 블로그: 교리적-오류에-대한-반박에 달린 최근 댓글/트랙백 목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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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 type="html">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subtitle>
  <updated>2025-03-14T07:05:10+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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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신세카이님의 댓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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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신세카이)</name>
    </author>
    <id>http://moogi.new21.org/tc/2170#comment93548</id>
    <published>2023-06-18T15:39:45+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야고보서는 행위  , 로마서는 믿음을 강조하는데
서로 모순되는 거처럼 보이고 
문제는 사람들이 자기 관점에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건데
제가 보기에는 믿음과 행위를 분리할 수 없는데
사람들이 그 둘을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거에요

또 어떤 구절에는 구원이 영원히 보장되는 것처럼 또는 예정인 것처럼 나오고
또 어떤 구절에는 구원이 상실될 수 있는 거처럼 나오는데
이게 제가 보기에는 관점의 차이인 거 같아요
시공간을 초월하는 절대자의 관점에서 말한 것인가
아니면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의 관점에서 말한 것인가 

자신을 부정하고 진리를 갈망하는 자를 붙잡아주시겠죠
삼손이 이방 여자에게 속아서 결국 적국에게 잡혀서 두 눈이 뽑히고 무거운 맷돌을 돌리는 처지가 되었지만
삼손의 그런 삶 또한 자신을 부정하고 절대자에게 다가가는 과정이었고
그는 분명히 믿음의 선배로 기록되어 있기에
절대자께서 삼손을 붙잡아주신 거겠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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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사무엘님의 댓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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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사무엘)</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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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moogi.new21.org/tc/2170#comment93541</id>
    <published>2023-06-18T10:30:15+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세상 학문이나 정치, 경제에 대해서야 님께서 이 댓글을 포함 지금까지 하신 말씀들이 맞고 저도 토 달 것이 거의 없습니다. ^^

그리고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의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서 이성과 합리를 동원한 의심을 하고 의문을 품어야 하는 것도 맞습니다. 저도 종교의 탈을 쓴 반지성주의는 매우 싫어하고 경계합니다.

그런데 그걸 과연 무슨 마음으로 하는 걸까요? 진짜 궁금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알고 싶어서? 결과가 제대로 나온다면 어느 쪽으로든 깔끔하게 승복하기로 약속은 했는지?
아니면 마음 한구석엔 이미 결론을 내 놓고 작정을 하고는 &amp;quot;어디 한번 떠보자, 어디 한번 날 설득해 봐라&amp;quot; 심정으로 의심하는 건지?

-- 신앙 쪽은 그런 세상 학문 방법론이 100% 통용되는 분야가 아닙니다.
&amp;quot;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는 결코 이를 수 없느니라.&amp;quot; (딤후 3:7)도 정상적인 결론에 도출된 상태는 아닙니다.

-- 세상 경제는 변수가 너무 많고 뭔가를 도저히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성경이 말하는 인간 구원은 너무 분명하게 성경에 &#039;단순하게&#039; 계시되어 있고 얼렁뚱땅이 절대 아닙니다.

-- 하나님 사랑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이웃 사랑입니다. 구원부터 받고 나서 선한 열매를 맺는 게 순서입니다.
이건 킹 유일주의자들만 주장하는 게 아니고 정상적인 기성 기독교계에서도 다 똑같이 가르치는 교리이니 저한테만 반박하고 불만을 제기하실 필요 없습니다.

-- 기독교는 당연히 증명 없이 믿어야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말씀조차 얼렁뚱땅 무오하게 보존되어 있지 않으면 기독교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 없으면 그냥 행위 구원이지 기독교 따위 존재할 가치도 필요도 없습니다.

* 이 주제에 대해서 제 입장을 다시 말씀드렸습니다.</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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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신세카이님의 댓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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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신세카이)</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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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3-06-18T15:55:40+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제가 무슨 마음으로
어떤 의도로 그러는지 궁금하시다면

그냥 제 입장에서는 님이 더 넓은 인지 범위와 다른 관점에서도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겁니다
이 세상에는 수 많은 종교가 있고 또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기록된 그 진리의 말씀이 
진짜 진리의 길을 제시해주는 게 맞다고 해도
문제는 그것에 대해 해석도 너무나 많다는 거에요
그러면 사람이 진리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의심하는 수 밖에 없어요

예전에 kjv구절들을 개역이나 niv와 비교하여
어떤 점이 우수하다 그래서 kjv유일주의가 맞다고 주장하시길래
제가 그랬잖아요 그런 식으로 비교해서 주장할려면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
(전수조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더 많은 역본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
그랬더니 님은 그런 필요없다 
모든 역본의 대립 구도가 kjv vs non kjv라고 했었지만
제가 다른 역본을 카톨릭에서 쓰는 영어 성경 두에랭스나 카톨릭 라틴어 표준성경의 사례를 제시하여 

대립 구도가 kjv vs non kjv 가 아님을 증명했었잖아요?

그리고 말씀 보존에 관해서
님은 하나로 집대성된 완벽한 역본만이 그 말씀 보존의 방법  형태라고 생각했었지만 저는 다른 관점에서 말씀 보존의 형태가 파편화되어 이루어진 것일 수 있다고 했잖아요

다양한 관점에서 더 넓은 인지범위에서 생각해 보시길 바라는 겁니다

그런데 머 미국의 총기 소지가 논리 문제가 아니듯이
성경 해석에 대한 것도 논리 문제가 아니기에
결국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선택하여 믿는 거겠죠</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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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html">신세카이님의 댓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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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신세카이)</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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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moogi.new21.org/tc/2170#comment93532</id>
    <published>2023-06-17T21:00:18+09:00</published>
    <summary type="html">예전에 제가 미국의 총기 소지는 
논리 문제가 아니라 
그 환경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사람들의 생활 양식 문화와 역사 문제라고 말했었잖아요
논리적으로 따지는 것도 분명히 필요하긴 하고
또 벤 샤피로 같은 말빨 좋은 사람이 방송 언론에 나와서 자기 주장을 펼치고 그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그 말을 배우고 그런 게 분명히 필요하긴 하지만

의식은 무의식의 빙산의 일각이고
이성에 기반한 논리는 감정을 합리화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이게 정치 성향만이 아니라 종교도
신앙에 있어서도 무언가를 믿는 것도 결국은 
그 사람의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경험과 유전자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인데 

자기 확신이라는 게 
그 확신이 이병철이 반도체 투자할 때의 그 확신이라면
스티브잡스가 아이폰은 만들 때 확신이라면
이순신의 확신이라면 다행인데
원균의 확신이라면....

제가 느끼기에는 대부분 사람들의 확신이 
깊은 통찰에서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을 뛰어넘는 안목에서 나온 게 아니라 
자기의 편견과 좁은 인지 범위에서 현상을 왜곡되어 받아들이는 것으로 잘못된 확신을 갖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경제 관련된 전망도 
진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무언가를 너무 확정적으로 말하지 않죠
왜냐하면 세상 일이 변수가 너무 많아서 그 많은 변수를을 다 고려하기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에요 

무언가 확신해서 확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바보거나 사기꾼이거나 무언가 비리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amp;quot;원금 보장해 드립니다&amp;quot; 원금이 보장되는 건 은행 예금인데?
&amp;quot;수익률이 한달에 10프로입니다&amp;quot; 워렌버핏이 1년에 20프로 밖에 안 된는데?

 

인간이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수 밖에는 없는 거 같아요
예전에 저는 나름 진리에 대한 갈망이 있어서 이것저것 공부를 많이 했지만
그런 지식을 쌓는 건 이제 별 의미가 없다고 봐요
중요한 것은 머리에 지식을 쌓는 게 아니라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선한 열매를 맞는 거겠죠 

행위에 대해서
믿음과 행위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봐요
믿음이 있으니까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이고
그런 행위를 하니까 믿음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거겠죠
아브라함이 제단에 이삭을 바치는 행위를 할려고 했으니까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거고
믿음이 있으니까 그런 행위를 할 수 있는 거고

구원관에 있어서
kjv유일주의자들이 너무 극단적인쪽으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요
그런데 그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면 
KJV유일주의하고 그 구원관하고 다른 거 실제 본질은 비슷해요
지식적으로 하나로 집대성된 완벽한 성경이 존재할거라는 믿음,
지식적으로 머리고 이해하고 납득하고 아는 걸로 자신이 구원을 받고 그 구원이 영원히 보장될 거라고 믿음.

자기 편한대로 생각한다는 느낌?
믿음의 선배들도 그렇게 쉽게 구원을 받을 사람은 기록에 없는데...

머 성경 구절을 가지고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고요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고 믿어야 하는 게 맞지만
아무 생각 없이 믿으면 그건 맹종이 되어버리죠
그런데 또 다른 관점에서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라는 게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것이기에 
모든지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어야 믿겠다는 것도 
이것도 진리의 길이 아니라고 봐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순종이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머리로 이해가 되어서 했던 게 아니었듯이...</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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