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데레우스 + 태양계 행성들

2026/09/15 08:35

1. 뮤지컬 관람

본인은 지난 6월, 일본 출장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됐던 시기에 아내 인맥으로 대학로에서 뮤지컬 '시데레우스'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이건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17세기 초에 망원경이라는 도구의 도움으로 목성의 위성들을 발견하고, 요하네스 케플러와 학술 교류를 하면서 지동설을 정립하던 과정을 극화한 작품이다. 과학사를 소재로 한 이례적인 국산 창작 뮤지컬로, 2019년에 초연을 해서 올해는(2026년) 벌써 5연째였다.

아시다시피 갈릴레이 갈릴레오는.. 공기 저항이 없는 한 모든 물체는 언제나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걸 규명한 걸로 명성을 떨쳤다. 그리고 진자의 등시성 운동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했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요하네스 케플러를 만나면서 연구의 범위가 우주로 확장됐다.

그도 처음에는 지동설이 정말 맞을까 긴가민가 했다. 하지만 목성의 위성 등, 천동설로 설명이 안 되는 더 복잡한 천체 현상들을 발견하면서 지동설에 확신을 갖게 됐다.
이들이 관측만으로 정립한 사실들을 수십 년 뒤 뉴턴이 미적분학과 고전역학을 정립하면서 수학 이론 차원에서 쐐기를 박았다.

우리가 지금 너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천체의 운동 패러다임이 저 1600년대에는 정말 사고방식의 대격변이었겠구나 싶었다. 갈릴레이나 케플러 같은 17세기 우주덕들이 지금처럼 우주 망원경에다 현대 우주론의 연구 성과들을 본다면 놀라서 까무러치지 싶다.

여담으로는..

  • 갈릴레오의 딸은 세례명이 '마리아 첼레스테'였다고 한다. (본명은 따로 있음) 19세기 말에 악명을 떨쳤던 전설적인 유령선도 이름이 '메리 셀러스트'이다! 일단 같은 이름이란 게 공교롭게 느껴진다. 뭐, 얘도 처음엔 이름이 아마존 호였다가 나중에 저렇게 개명됐다.
  • '토리첼리'가 갈릴레이의 제자였다. 그 옛날에 수은 76cm, 물 10.3m.. 이렇게 대기압이라는 개념을 발견하고 규명한 사람이다.
  • 천체의 운동이 수학적인 질서가 있으면서도, 그게 역설적으로 너무 카오틱하기도 해서 해석적인 일반해를 정확하게 구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훗세에 의해 추가로 증명되었다(삼체 문제..).

  • 천동설 vs 지동설 다음으로 천문학이 비교적 현대에(20세기 중후반) 논쟁을 벌였다가 결판이 난 분야는.. 우주의 기원과 관련하여 정상우주 vs 대폭발이었다. 이때는 갈릴레이나 뉴턴 연배의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을 "우주가 팽창한다"라는 개념까지 정립된 상태였다.

  • 17세기 저 때의 물리학은 “현상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다”에 진심이었다. 하지만 사과가 떨어지는 운동에 대해 정확하게 기술하고 계산과 예측하는 데 성공했다 해도.. 그 중력이란 게 본질적으로 왜 생기는지늘 규명하는 건 또 별개의 영역이다. 그걸 캐기 위해 현대 물리학은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등을 개척했지만.. 여전히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건 아니다.

  • 그러고 보니 망원경은 거시세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작고 안 보이는 목표물(건물, 지형, 천체..!)을 확대해 보여주는 기기이고, 현미경은 그냥 크기가 절대적으로 너무 작아서 안 보이는 목표물을 확대해 보여주는 기기이다. 흠, 그럼 안경은 스케일이 둘의 중간인 건지..
    역사적으로는 망원경과 현미경 모두 1600년대 초에 비슷한 시기에 첫 등장했다. 그 뒤 둘은 자기 역할에 맞게 특화되고 따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2. 우주에 대한 성경의 서술

내가 아는 한, 성경은 천체를 분류하는 게 해와 달과 별들.. 이걸로 끝이다. 별은 집단으로 다뤄지며, 욥기 38장 같은 데서 특정 별자리 이름이나 좀 나오는 정도이다.

그런데 성경엔 영킹 기준으로 딱~~ 한 번 planet 행성이라는 단어가 나온다(왕하 23:5). 해와 달 다음으로 별들, 하늘의 군대/군상 같은 통상적인 용어가 아니라 행성이라니! 이게 뭘 의미할까? 비킹에서는 그냥 별자리, 성단 등이라고 바뀌어 번역됐다.

성경에는 참교육이나 분노의 질주 같은 개념은 있다.
그러나 성경에 이 땅(지구), 해와 달과 별 말고 '태양계'라든가, 수성 금성 화성 목성 같은 특정 '행성'을 암시하는 용어나 개념은 내가 알기로 전혀 없다. 그런 건 인간들이 훗날 망원경을 발명하고 로켓과 인공위성을 발명하면서 관측과 탐사를 해서 알아낸 것들이다.

물론 그 전 까마득한 옛날에도 인간은 육안으로도 목성을 넘어 무려 토성까지 어렴풋이 관측을 해냈다.
허나, 그때는 지금 우리가 아는 것 같은 항성과 행성이라는 엄밀한 구분이 없었다. 수성이니 화성이니 목성이니도 1~6등성 범주에 드는 독특한 별 중의 하나로 여겨졌을 것이다.
왕하 23:5의 planet은 "어둡지만 가까운" 수성 화성 목성 같은 천체건, "까마득히 멀면서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이건.. 뭔가 움직임이 독특하고 인간 눈에 띌 만한 천체 픽셀을 통틀어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었을까 싶다.

비슷한 예로 베드로후서 3장에 나오는 elements 원소도 있다.
현대의 과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야 이 단어를 읽으면서 화학 원소를 떠올리겠지만.. 성경의 저 본문은 돌턴의 원자설과 원소 체계 같은 게 없던 시절에 기록되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같은 단어가 어떤 분야의 101급, '개론, 초등 원리' 비슷한 뜻으로도 쓰였다. 뭐, 화학 원소 내지는 그에 맞먹을 정도로 어떤 system의 구성원, 구성요소 같은 걸 떠올려도 될 것 같다.

3. 과학과 종교의 경계

뮤지컬에서 케플러의 대사 중에는.. "나는 신을 안 믿는 게 아니고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우주는 그저 신이 창조한 미지의 안알랴줌 공간인 것이고 그걸 관찰해서 정체를 밝히는 건 자연과학 하는 사람의 별개의 영역일 뿐이다"란 요지의 말이 있었다.

과학은 자연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실험했을 때 누구에게나 똑같은 결과가 재현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따지는 학문이다. 과연 그러한가, 가설이 맞는가 끊임없이 의심하고 입증하는 학문이다. 이런 정상적인 방법론만 동원했다면 부정이니 사기니 틈탈 여지가 전혀 없다. 증거 없이 일단 믿는 신앙이나 신학하고는 완전히 다른 분야이다.

교황청은 지동설이라는 결과가 나오는 게 마음에 안 들었으면 갈릴레이를 잡아 족칠 게 아니라, 선량한 과학자들의 눈을 현혹하는 결과를 내는 망원경부터 때려부수고 망원경 제조업자부터 화형 시켰어지??? 개인적으로는 뮤지컬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건 뭐 아침이 오는 게 싫다고 수탉을 죽이는 것과 같은 뻘짓이지 않은가? 그런 것처럼 괜히 갈릴레이를 종교 프레임 씌워서 괴롭힌 것도 죄다 뻘짓이었다.

혹시 설마 '안알랴줌'이 불편하거나 불경스럽게 들리시는가? 하나님은 당장 우리 삶 속에서도 갑자기 이유 없는 고난을 주실 때가 있고, 예수님 재림 날짜도 안 알려주시고, 나 언제쯤 죽는지도 안 알려주신다. 우리 일상 속에서 안알랴줌이 엄청 많다. 하물며 자연과학 영역에서 안알랴줌 정도는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하여 문제될 게 하나도 없다.

그리고 하나 더..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 교황청이라는 데가 오로지 성경의 문자적인 묘사에만 집착하면서 천체의 움직임을 직접 관찰할 생각이라고는 1도 안 한 고지식한 반지성주의 꼰대 집단이기만 한 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쟤들도 이 바닥에 굉장한 조예가 있었다. 이스터가 언제, 성모승천일이 언제, 날짜와 절기를 따지는 일에 진심이었다. 달력 역법의 이름에 괜히 교황 이름이 붙은 게 아닌 걸 생각해 보자.

1582년에 제정되어 오늘날 전세계 공통으로 통용되고 있는 그레고리력 말이다.
"윤년을 4의 배수 연도마다 한 번씩 무조건 넣으니까 갈수록 오차가 생기더라~ 그래서 400의 배수가 아닌 100의 배수 연도에는 열외를 넣자"
거기 교황과 추기경들은 예나 지금이나 머리 하나는 최고로 날고 기는 똘똘이들이다. 전세계 종교 수장이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니.. 지금으로부터 400년도 더 전에 저 정도 관찰을 하고 대안까지 생각해 낸 집단이란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

세계 각국에서는 자기네 무슨 왕 재위 n년.. 이렇게 연호를 쓰다가 19세기 말이 돼서야 서구화 근대화 명목으로 서기 연도와 그레고리력을 도입한 편이었다.
그런데 저 동네에서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도 전에 저런 달력을 제정해서 쓰고 애초에 기준 연도도 '서력'이었다니, 이것도 굉장히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천동설 지동설 관련해서는 옛날에 이상한 ㄸ고집을 부렸던 것 같다.

4. 태양계 행성들의 주요 제원(?)

  • 자전축: 0도 부근(수성, 토성, 해왕성), 23도 부근(지구, 화성, 목성), 90도 전도(천왕), 180도 전복(금성)
  • 중력가속도: 3.7 (수성, 화성), 8~12 (금성, 천왕성, 지구, 토성, 해왕성), 25 (목성)
  • 자전 주기: 10시간(목성, 토성), 16~17시간(천왕성, 해왕성), 1일(지구, 화성), 58일(수성), 243일(금성) + 27~30일 부근(달, 태양)
  • 표면 대기압: 0 부근(수성, 화성), 1~1.x(지구), 95(금성)

수성은 태양과 워낙 가깝다 보니 공전 주기가 엄청 짧으며(각속도), 실제 공전 속도(선속도)도 혼자 초속 47km에 달할 정도로 겁나게 빠르다. 공전 궤도의 이심률도 독보적으로 가장 크다(타원에 가까움).
화성은 지구와 자전 주기가 비슷하고 자전축 기울기도 비슷하다.

지구야 뭐 표면에 물(바다)이 있고, 달이라는 이례적으로 큰 위성이 있는 게 특이하다.
금성은 지구와 크기가 비슷하고 거리도 가장 가깝지만.. 고체 땅이 있는 지구형 행성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엄청난 고온 고압 불지옥이다. 자전 속도가 끔찍히 느리고 심지어 역행 자전인 것도 특이점이다. 금성만 왜 저렇게 됐을까.;;

그리고, 화성과 목성 사이에는 행성이 있을 법도 한데 왜 텅 비었고 소행성대만 있는 걸까?
수성이 공전이 빠르다면 목성과 토성은 그 큰 덩치로 자전이 왕창 빠른 게 특징이다. 특히 토성은 자전 원심력 때문에 적도 쪽이 대놓고 부푼 게 티가 날 정도이다. 그렇잖아도 가스형 행성이기도 하니..

끝으로, 하나 더 생각할 만한 건.. '태양일'(또는 회합일)이다.
지구가 스스로 한 바퀴 도는 자전 주기는 23시간 56분 남짓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지구가 1/365.25만치 공전을 하니, 지구가 태양을 바라보는 각도도 미세하게 더 나아가 있다. 그래서 지구도 4분만치 더 돌아야 하늘에서의 태양 위치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이를 더함으로써 지구의 태양일은 24시간이 된다.

이건 1/(자전 시간)이라는 각속도가 1/(공전 시간)이라는 각속도만큼 느려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 앞의 값에다가 뒤의 값을 빼면 태양일에 해당하는 각속도가 나온다. 그리고 이 각속도의 역수가 곧 태양일이 된다.
지구와 화성은 이렇게 이해하는 게 별로 어렵지 않은데.. 자전이 매우 느린 수성과 금성은 일이 굉장히 재미있어진다.

수성은 자전(약 58.x일)을 3번 하는 동안 공전(약 88일)을 2번 하는 형태로 조석 고정이 돼 있다.
달처럼 1:1이 아니라 3:2라니.. 수성이 공전 궤도가 이심률이 크기 때문에 이런 형태가 된 듯하다.
1/x - 1/(x+1) 의 값은 1/(x*(x+1))이니, 1/2 - 1/3은 1/6이다. (6 = 2*3 = 3*2)
실제로 수성의 태양일은 자전 주기의 3배 겸 공전 주기의 2배인 약 175일이다. 수성의 태양일은 지구나 화성과는 달리, 자기 자전 주기와는 차이가 엄청나게 많이 난다.

그리고 수성의 하늘에서 해가 떴다가 지는 건 단순히 지구 일출 일몰의 slow motion 겸 확대(태양이 훨씬 더 가까이 있으니) 버전이 아닐 것이다.
해가 중천까지 좀 올라가더니만 도로 내려간다. 그런데 이대로 완전히 지는 것도 아니고 다시 뜬다. 게다가 수성의 공전 궤도의 특성상, 태양의 크기 자체도 멀어지면서 작아졌다가 다시 커지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아주 천천히 진행되니 굉장히 기괴한 모양이 될 것이다. 수성은 이 점에서 아주 특이한 행성이다.

다음으로 금성은.. 자전 방향이 역행이어서 해가 서쪽에서 뜬다. 자전 각속도에서 공전 각속도를 빼는 게 아니라 더해 주면 된다. 1/(1/243.02+1/224.70)의 역수는 약 116~117일.. 즉, 금성의 태양일은 각속도 버프를 받는 덕분에 자기 자전 주기의 절반으로 줄어들며, 수성의 태양일보다도 짧다.

금성의 하늘에서 태양의 움직임은 수성 같은 기괴한 변화 없이 지구 일출 일몰의 역주행 slow motion에 가까울 것이다.
다만, 너무 짙은 안개 때문에 실제 금성의 지표면에서는 태양 따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수성이나 금성의 공전 주기는 저 갈릴레이 시대에도 망원경 관측을 통해 일찌감치 알려져 있었다. 이 행성들의 복잡한 위상 변화가(커졌다 작아졌다, 초승달-보름달 등등) 천동설로는 설명하기 어려우니 지동설의 근거로도 제시될 정도였다. 그러나 자전 주기는 행성의 표면을 정밀히 관측해야 하기 때문에 알아내기 몹시 어려웠다.
무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수성은 1:1로 조석 고정되어 자전 주기도 공전 주기와 동일한 88일일 거라고 잘못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금성은 구름 때문에 완전 불명 오리무중 미스터리였고.. (하긴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금성은 마이애미 해변 같은 곳일 거라고 예상됐었다ㄲㄲㄲㄲ)

그래서 수성과 금성의 정확한 자전 주기는 1960년대에 전파 레이더가 발명된 뒤에야 알려졌다고 한다. 공전 주기와 자전 주기는 마치 지구 임의의 지점에서 위도와 경도를 측정하는 것과 비슷하달까? 그렇게 엄청난 난이도의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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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 과학, 과학사, 망원경, 뮤지컬, 성경, 시데레우스, 역사, 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