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안산선 착공
한국 철도 역사상 최장, 최대의 기약 없는 베이퍼웨어로 악명을 떨쳤던 신안산선이 2019년 가을부로 드디어 '착공'에 들어갔다. 서울 3기 지하철 계획 중 10호선에 속했던 노선이 저런 대체 노선으로 바뀐 지가 어언 20년 가까이 전인데.. 노선과 운영 방식 등 갖가지 계획들이 원만히 확정되지 못하고 2010년대에 이르도록 질질 끌다가 이제야 건설이 시작된 것이다. 계획상의 완공 예정 시기는 2024년이라지만, 현실적으로는 거기에 최하 1, 2년은 더 추가해야 할 듯하다.
소사-원시 서해선에 이어 또 서울 서남부에 광역전철이 하나 더 생길 예정이라니 기대된다. 일단 여의도에서 광명 역이 직통으로 쭉 연결될 예정인데.. 여의도 정도 위치에서 KTX 타려면 그냥, 서울이나 용산으로 가면 되지 광명이 딱히 거리 메리트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2. 객차형 열차의 종말
버스업계에서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의 구분이 없어지는 것만큼이나 21세기의 국내 철도계에서 두드러지는 변화는 새마을-무궁화-통일-(비둘기)이라는 기존 차급 체계가 사실상 없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다양한 전동차들이다. 고속철 KTX부터 시작해 누리로, ITX-청춘, ITX-새마을이 전부 전동차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EEC 아니면 통근형 차량만 있던 전동차가 어느샌가 주류로 급부상했다.
우리나라에 디젤 동차가 마지막으로 도입된 것은 1997~99년의 CDC 통근열차이다. 차급으로나 동력원으로나 시대에 맞지 않으니 오죽했으면 걔를 2008년경에 RDC라는 무궁화호로 승격해서 과거 NDC처럼 비전철 구간에서 써먹게 됐다.
그것처럼 우리나라에 기관차 피견인 객차가 도입된 것은 2002~04년이 마지막이다.
그리고 다른 차급들이 몽땅 없어졌으니 무궁화호는 다른 전동차에 속하지 않는 기관차-객차형 일반열차의 총칭처럼 됐다. 이 와중에 기관차-객차형 ITX-새마을이라는 아주 이례적이고 예외적인 열차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건 논외로 하자.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기관차-객차형 열차는 비중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수익성 없는 단선 비전철에서는 차라리 1량짜리 디젤 동차가 다닐 것이고, 대형 기관차는 디젤이건 전기건 화물 위주로 운행될 것이다.
이 때문에 2000년대에 한창, 특히 경부선의 전철화 완료와 맞물려서 여객용으로 잔뜩 도입됐던 8200호대 전기 기관차가 가까운 미래 2020~2030년대에는 꽤 애매한 계륵 위치로 전락할 것 같다. 내구연한은 아직 한창 남았는데 객차형 일반열차 자체가 도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뭐, 잉여분은 중고차 명목으로 외국으로 수출될 듯..
3. 월미도 모노레일
한편, 오랫동안 인천의 애물단지로 전락해 있던 월미도 모노레일도 재정비해서 지난해 10월에 드디어 재개통했다.
우리나라는 용인과 의정부 경전철의 과거 선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경전철 궤도 교통수단들은 정치 논리를 따라 이상한 동기로 이상하게 만들어지고, 노선 선정과 운영을 구리게 하는 바람에 적자투성이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경전철에 대한 보편적인 이미지를 나쁘게 깎아먹어 왔다.
월미도 모노레일은 도시 대중교통은 아니지만 이 역시 저런 안 좋은 사례에 속했다. 이미 만들어져 버린 것은 철거하지 않을 거면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운영을 똑바로 하고, 앞으로는 경전철들이 그렇게 대충 만들어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건 영화계로 치면 왕창 구리게 만들어서 흥행 쫄딱 망하고 투자자들의 돈을 다 날리는 무능한 영화 감독과 같다.
그나저나 영종도의 자기 부상 열차도 법적으로 저런 도시 대중교통이 아니지 싶은데.. 요즘도 그냥 무료로 운행되고 있는가 모르겠다.
4. 서울 지하철들의 연장 구간
서울 지하철 6호선이 연장되어 봉화산 이후의 신내 역이 개통했다. 차량기지 안의 단선 승강장이니 뭔가 7호선 장암 역의 시즌 2를 찍은 셈이다. 얘는 경춘선과의 환승역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5호선의 하남 방면 상일동 연장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2020년 말에나 개통 예정이고..
4호선과 8호선이 모두 남양주 방면으로 연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4호선은 긴 터널을 파서 산을 뚫어야 하고, 8호선은 하저터널을 파야 한다. 오옷~
5호선(2개)과 분당선에 이어 제4의 하저 터널이 생기는 셈이니 기대된다. 2019년 말에 착공에 들어갔으니 앞으로 3~4년 정도 걸릴 것 같다. 29번 고속도로 구간용으로 고덕-구리 한강 공원 사이에 이미 만들고 있는 그 교량과도 아주 가까이 있다.
8호선 연장 구간이 개통할 때쯤에 복정-산성 사이의 신설역도 개통하지 않을까 싶다.
5. 서대구 역
먼 옛날 구한말에 경부선 철도가 개통했을 때 대구에는 말 그대로 대구 역 하나가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1969년엔 동쪽 외곽에 오리지널 대구보다 더 큰 규모로 동대구 역이 추가로 만들어졌는데, 얘가 원래 있던 대구 역을 제치고 대구 전체를 대표하는 역으로 등극했다. 대구와 동대구 역은 마치 김포와 인천 공항 같은 관계가 됐다.
마치 SI단위들 중 킬로그램만 유일하게 접두사가 붙어 있듯, 대구는 이례적으로 대표역의 이름에 '동'이라는 접두사가 붙어 있다. 그렇다고 동대구를 대구라고 개명하고 기존 대구를 서대구 정도로 바꾸기에는 옛 대구 역의 이름값도 만만찮다. 이게 아예 고속선 vs 기존선의 관계라면 경주와 울산의 사례처럼 역명 개명이 발생할 수 있지만 대구와 동대구는 그런 관계도 아니다. (경주야 옛 경주 역은 선로까지 완전히 없어질 예정이고, 울산은 기존역이 '태화강'이라고 개명됨)
대구 역 이후로 동대구 역이 만들어지기까지 60년이 넘는 간격이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동대구 역 이후로 거의 50년이 넘게 지난 2021년경에는.. 대구의 서쪽 외곽에 진짜로 서대구라는 역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참고로 대구-동대구 거리보다 서쪽으로 더 멀리 떨어져 있다. 경주에도 신경주 말고 기존 나원과 서경주를 대체하는 이름 없는 역이 더 만들어지고 있는데 마치 그걸 보는 느낌이다.
거기는 수도권으로 치면 오봉 역처럼 물류 허브와 화물 취급 전용역을 만들려고 오래 전부터 부지를 확보해 놓았던 곳이었다. 그랬는데 화물 기지는 다른 곳에 따로 만들어지고 계획이 틀어진 채, 부지는 오랫동안 공터로 놀게 됐다. 이건 마치 옛날에 만들려다 말았던 서울 동남부의 화물 철도와도 비슷한 느낌인데.. 대구에서는 그 자리에 여객을 취급하는 역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서울에 영등포, 부산에 구포, 대전에 신탄진처럼 대구에도 역이 더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접사 파생어 형태의 역명이 더 만들어지는 건 이색적이다. 일반열차가 서-X-동이라는 3개역에 모두 정차하는 건 아니며, 장기적으로는 대구에도 경부선 선로를 기반으로 광역전철이 운행될 계획이 있다고 한다. 아무렴, 장거리 여객은 고속철 위주로 바뀌고, 기존선은 화물이나 단거리 광역전철 위주로 바뀌는 것이 추세이긴 하다.
6. 서경주 역
경북 경주에는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세 종류의 역이 ‘서경주’라는 간판을 걸고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되풀이해 왔다.
- 시즌 1 (과거): 1985년부터 1992년 사이에 송화산 기슭에 존재했다가 폐지된 서경주 신호장이다.
- 시즌 2 (2020년 현재!): 1992년부터 현곡면에 새로 생긴 금장 역이 2009년 1월 1일부터 서경주라고 개명되었다. 하지만 얘는 경주 역과 마찬가지로 시한부 인생이다.
- 시즌 3 (미래): 앞으로 몇 년 뒤엔 현곡 초등학교 근처의 동해선 KTX 선로상에 기존의 금장과 나원 역을 통합한 ‘새로운’ 서경주 역이 생길 것이다. 아직 역이 완공되지 않았지만 주변의 도로 표지판들은 역명을 ‘서경주’라고 기재하고 있다.
시즌이 올라갈수록 역이 계속해서 북쪽으로 이동한다는 게 흥미롭다. 시즌 1~2, 2~3의 두 역들은 직선 거리가 2.3~2.5km 정도에 불과하니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다.
재래식 경주 역이 영업을 중단하고 없어지고 나면(건물은 보존) 신경주 역은 앞의 ‘신’자를 떼어내고 얘가 경주 역으로 간판을 바꿔 달지 않을까 싶다. 현재 신경주와 동대구는 전국에서 매우 드물게 지명 앞에 접두사가 붙어 있는 KTX 정차역이다.
한편, 서쪽의 광주도 상황이 비슷해서 광주 역은 그야말로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최악의 경우 옛 광주 역은 폐역돼 버리고 광주송정이 광주 역으로 개명될 수도 있다. 지금은 광주-광주송정 사이는 그나마 통근열차를 투입해서 연계시키고 있다고 한다.
7. 절연 구간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경의중앙선 전철이 용산-이촌 사이를 지날 때 전등이 잠시 꺼지지 않고 있다. 경강선 KTX의 개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절연 구간을 없앴다고 한다. 생각보다 오래 전 일이다.
절연 구간은 안 그래도 열차의 동력이 끊어져서 차가 힘이 약한데 상· 하 구배 내지 꽈배기굴, 급커브처럼 선형도 덩달아 불량한 경우가 많아서 더욱 아슬아슬하다.
평면교차가 없어지고 절연 구간이 없어지는 것처럼 뭔가 시설이 열악하고 취약하던 것이 개선된 것은 무엇이건 좋은 일임이 틀림없다.
8. 굴림체의 압박
어이쿠, 서울 지하철 2호선 승강장에 전광판 화면의 타이포그래피가 언제 저렇게 시각 테러에 가까운 퀄리티로 바뀌었나? 컴퓨터에 악성 코드가 걸려서 글꼴 파일이 삭제되기라도 했는지?
코레일 광역전철역의 전광판 화면에 굴림체가 쓰인 건 옛날에 본 적이 있다만, 서울 지하철까지 저러는 건 처음이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니라 2호선이 저러니, 마치 옛날에 2호선에만 최후까지 남아 있던(한 2009~10년까지) 구형 플랩식 전광판의 시즌 2를 보는 느낌이다.
9. 서울 메트로와 도철
비록 서울이 세계구급 대도시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도시에 지하철 회사가 사기업도 아닌 공기업이 둘씩 있는 건 보기 드문 형태였다. 그런데 두 회사가 따로 있는 것과 하나로 합병한 것의 차이를 일반 승객이 실감할 수 있는 타이밍은 바로.. 지하철 회사 근로자들이 파업을 할 때이다.
예전에는 서울 메트로에서만 파업을 하면 그래도 5~8호선은 멀쩡한 편이고, 반대로 도철에서 파업을 한 것은 1~4호선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서울 지하철 파업은 곧장 9호선을 제외한 서울 지하철 전체의 막장화로 직결되게 되었다.
사실, 서울시에서도 그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비효율을 감수하고라도 1990년대에 2기 지하철 관할용으로 도철이라는 회사를 따로 설립한 것이었다. 지금 인천의 경우 '인천 교통 공사'가 인천의 지하철로도 모자라서 시내버스까지 몽땅 관할하는 기관이 된 것과 굉장히 대조적이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