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한글 기계화에 모두 관심이 지대한 사람으로서,
6· 25 휴전(정전?) 협정 문서라는 엄청난 역사적인 문서가 '공 병우 세벌식 타자기'로 작성되었다는 사실에 입이 떡 벌어지며 그야말로 엄청난 전율과 감격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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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한글이 역사상 거의 최초로 기계화가 된 결과물이다. 이 사진을 내 블로그에다가도 소개해 놓을 생각을 왜 지금까지 안 하고 있었나 모르겠다.
후대에 등장한 병신 같은 받침 키 두벌식 타자기가 아니라, 지금의 컴퓨터와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입력 가능한 타자기가 그것도 6· 25 전쟁도 터지기 전의 그 혼란스러운 시기에 핵심 아이디어가 완성되고 제품이 나왔다는 건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게 다 넘사벽급의 천재 선각자 공 병우 박사 덕분이다.

저 타자기 자형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인쇄 글씨체만큼이나, 또 8*4*4 도깨비 조합형 비트맵 글꼴만큼이나 한글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획을 그은 자형이다. 다시 말하지만 저건 197, 80년대도 아니고 1953년에 작성된 문서이다.

비슷한 시기이던 전쟁 중에 살포된 삐라들을 살펴보면 본인은 진작부터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삐라 중에는 단순히 적군 디스 흑색선전이나 프로파간다를 담고 있는 찌라시 말고, 뭔가 유엔군 사령관의 싸인이 있고 언어도 한중영 3개로 기재된 '안전 보장 증명서' 같은 것도 있었다. "이 증서를 들고 귀순하면 귀관들은 영예로운 전쟁 포로로서 안전을 절대적으로 보장받을 것이다"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래 삐라는 그 중 한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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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증서를 보면, 한국어와 중국어는 날림 손글씨 붓글씨이지만 영어만은 꼬부랑 필기체가 아니라 또박또박 타자기 글씨였다. 삐라 하나를 봐도 그 시절에 문자의 기계화 수준은 동서양이 격차가 벌어져 있었다는 게 느껴졌다.
전에도 얘기한 적이 있지만, 서양에서 나치를 반대하던 백장미단은 그래도 삐라를 타자기를 쳐서 만들었지만, 반도에서 항일 전단지를 만들던 독립 운동가들은 여전히 붓글씨를 쓰지 않았던가?

그랬는데 동북아의 어느 좁아 터진 듣보잡 전쟁 폐허 국가에서.. 영어나 알파벳을 공식적으로 쓰지도 않는 주제에 자국 문자를 빠르게 찍어 내는 기계식 타자기가 짠 나타났으니 이건 깜짝 놀라 까무러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군대는 타자기의 편리함을 인지하고서 이미 1950년대부터 "유능한 장교라면 영어, 운전, 타자에 능숙해야 한다" 같은 지침이 나돌았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 전반에는 문자의 기계화와 속도 향상, 시간 절약의 필요성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던 미개한 분위기가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모바일은 아무래도 두벌이니 세벌이니 하는 이념과는 거리가 멀며, 애초에 크기도 너무 작다 보니 타자기의 직계 후손이라 할 수 있는 컴퓨터 글자판만치 빠르게 글자를 입력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다룰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모바일에서는 대개 채팅이나 자기 자아 표현 같은 가벼운 글만 주로 입력한다는 점 때문에 컴퓨터 글자판과는 용도가 양분되어 있다. 헬리콥터가 수직 이착륙과 공중 체류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고정익기와는 별도의 영역이 있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팥알 님의 블로그에는 이미 진작부터 한글 타자기를 세대별로 전문적으로 연구해 놓은 자료가 한가득이므로 관심 있는 분은 참조하시기 바란다. 저 자료에 비하면 내 블로그의 이 글은 한참 늦은 뒷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 휴전 협정 자체에 대한 사항만 몇 가지 언급하며 글을 맺겠다.

  • 1953년 7월 27일이 6· 25 전쟁이 끝나고 한반도의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총성이 완전히 멎은 날인데, 정확하게는 저 문서에 나와 있듯이 아침 10시경에 공식 문서가 작성되어 그로부터 12시간 뒤, 일과가 다 끝난 밤 10시부터 효력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 휴전 협정이 벌어지고 저 문서가 작성된 장소는 오늘날의 그 판문점이 아니다. 옛날 오리지널 판문점은 지금 판문점보다 서쪽으로 1km쯤 더 떨어진 곳에 있었고 지금은 완전히 북한 땅이다. 그 건물 자체는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 저 문서에 서명을 한 사람은 북한, 중국, 미국 대표밖에 없다. 그 당시 남한 측 대표는 알다시피 강경한 북진멸공덕후였던 관계로 휴전 따위에 결코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휴전 협정은 전쟁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전쟁의 준비 행위이고 더 많은 고난과 파괴를 의미하며, 전쟁과 내란에 의한 공산당의 더 많은 침략 행위의 서막이 된다는 나의 확신 때문에 나는 휴전 협정 서명에 반대하였습니다. 이제 휴전이 서명된 이 마당에 나는 그 결과에 대한 나의 판단이 틀렸던 것으로 나타나기만 기원할 뿐입니다.
그러나 북녘의 동포 여러분,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여러분을 결코 잊거나 외면하지 않을 것이고 반드시 여러분을 구출할 것입니다." (1953년 7월 29일자 민주신보, 그 당시 이 승만 대통령의 담화문 윤문 각색)


이 와중에 이 승만 대통령이 무슨 전쟁광 싸이코패스여서 휴전을 반대한 거라고 생각하는 바보 멍청이는 없을 것이다. 그는 “아.. 지금 이렇게 어정쩡하게 휴전을 해 버려서는 안 되는데.. 지금 악을 완전히 뿌리뽑지 않고 미뤘다가는 우린 북괴 빨갱이들의 도발 때문에 앞으로 계속 고생하게 될 것이고 더 큰 희생을 대가로 치르게 될 텐데.. 그래도 우리나라가 힘이 없어서 휴전이 되돌릴 수 없는 대세가 되어 버렸다면 차라리 내 예상이 틀리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담화를 발표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불행히도 정확하게 적중함)

그는 북괴는 악의 무리이며, 북괴 치하에 있는 동포들은 오늘로 치면 ISIL 같은 곳에 납치· 억류 당해 있는 불쌍한 구출 대상이고 자유와 해방을 선사해야 할 대상이라고 지극히 건전하고 바른 인식을 하고 있었다. 테이큰의 브라이언, 아저씨의 차 태식처럼 말이다. 지금 같이 악의 무리들과 무슨 교류와 협력, 불의한 평화 따위 구걸하는 태도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7/08/20 08:30 2017/08/2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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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DA와 SONY의 로고타입

'혼다'랑 '쏘니'.
1946년에 설립된 일본의 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전문 분야는 다르다. 혼다는 자동차· 오토바이 등 엔진 달린 탈것 전문이고 쏘니는 전자 쪽 전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마치 현대 자동차와 삼성 전자처럼. 종전 후에 설립되었기 때문에 미쓰비시 같은 기업과는 달리 전범 논란이 없다.

혼다와 쏘니는 둘 다 납작한 로만체 계열의 서체로 로고타입을 표현한다.
그래서 혹시 "완전히 동일한 서체인가?"란 의문을 품고 로고타입을 자세히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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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동일하지는 않다. N자 모양을 보면 차이가 명백하다. 단순한 폭이나 진하기 같은 산술적인 차이가 아니다.
혼다가 글자 모양에 변화를 더 줬다고 볼 수 있다. 보통은 N에서 대각선 획이 오른쪽 수직선에 완전히 붙지 혼다의 것처럼 아래에 독자적으로 닿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서체는 운영체제에서 흔히 보는 서체들 중에서는 Bookman Old Style과 비슷하다. Bookman도 Times 같은 다른 서체들에 비해서는 꽤 납작한 편이지만, 로고타입은 그것보다 더욱 납작하다.
이것 말고 또 서체가 유사한 기업 로고타입의 쌍이 무엇이 있는가 궁금해진다. 아주 오랜만에 글꼴 관련 짤막한 기록을 하나 남겼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06 08:30 2016/10/0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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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포 2016/10/06 09:27 # M/D Reply Permalink

    https://namu.wiki/w/%ED%97%AC%EB%B2%A0%ED%8B%B0%EC%B9%B4

    Helvetica 계열 폰트를 로고에 쓰는 기업은 상당히 많더군요 ㅋㅋ...

    1. 사무엘 2016/10/06 10:40 # M/D Permalink

      그건 대놓고 제목과 간판용으로 쓰라고 만들어진 너무나 무난한 산세리프 계열 서체이니까요. ㅎㅎ
      그래서 산세리프에 비해 혼다나 쏘니처럼 세리프 계열 로고타입이 더 두드러져 보입니다.
      그나저나 요즘 여기 엄청 조용한데 오랜만에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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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탤릭체 이야기

라틴 알파벳에는 다른 문자와는 달리 이탤릭이라고 약간 기울이고 흘려서 쓴 변형 서체 유형이 있다. 획을 진하게 하는 '볼드'와 더불어, 산술적인 변형뿐만 아니라 아예 별도의 폰트를 만들어서 제공 가능한 글자 속성 중 하나이다.

옛날에 비트맵 글꼴 시절에는 윗첨자· 아래첨자와 더불어 이탤릭은 아예 별도의 글꼴(폰트 패밀리)로 제공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출력 장치의 해상도가 올라가고 결정적으로 윤곽선 글꼴 기술 덕분에 글자의 크기 제약이 없어지면서 이탤릭과 윗첨자· 아래첨자는 모두 아무 글꼴에나 추가로 적용 가능한 '변형 속성'으로 바뀐 지 오래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탤릭을 아마 수학식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보고 써 왔을 것이다. 수학에서 일종의 '예약어'라 할 수 있는 sin, lim, log 같은 단어은 반드시 regular 정자체로 쓰고, 나머지 임의의 변수명은 이탤릭으로 썼으니 말이다. 단, 소문자 이탤릭을 너무 흘려서 쓰면 그리스 문자와 구분이 어려워지기도 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a와 알파, n과 η, x와 χ 같은 것.

개인적으로 20여 년 전, 아래아한글 2.1이던가 2.5에서 처음 도입된 수식체를 아주 좋아했다. regular 모양은 신명조와 별 다를 바 없지만 이탤릭이 굉장히 미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각종 수학 교재나 상업용 출판물에서 쓰인 서체이기도 했다.
지금 아래아한글은 수식의 서체가 뭔가 LaTex스러운 서체로 바뀌었고 마소 제품의 경우 한때는 그냥 타임즈이다가 지금은 다른 걸로 바뀌었는데... 난 아래아한글의 원조 수식체가 지금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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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킹 제임스 성경 신자라면 원문에 없는 단어를 뜻하는 이탤릭체 표기가 아주 친숙할 것이다. (사실은 옛날 한글 개역 성경에도 본문보다 "약간 작게 쓴 글자"가 있어서 개념적으로 동일한 역할을 하긴 했다.)

이탤릭 서체는 세로 중심선이 사선 모양으로 기울어질 뿐만 아니라, 세리프 계열의 경우 세로획의 위· 아래 끝 부분이 살짝 둥글게 삐친 형태로 바뀐다.
이탤릭 전용 서체가 없는 글꼴은 응용 프로그램이 글자 모양을 그냥 수학적인 일차 변환으로 기울여서 찍어 준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1) Oblique라고 불리는 다른 모양일 뿐 이탤릭이 아니다.

산세리프 계열에 속하는 서체들은 딱히 이탤릭이나 오블리크나 모양 차이가 별로 없어서 굳이 이탤릭 전용 서체가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뭐, 두 글자의 모양을 한데 포개서 차이를 비교해 봐도 되겠지만. 또한 알파벳 말고 숫자 역시 Times 같은 세리프 계열 서체를 봐도 그냥 그대로 기울인 오블리크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숫자는 딱히 italic-ready 문자는 아닌 듯하다.

이탤릭은 정자체보다야 날려 쓴 듯한 느낌을 주지만, 모든 글자들이 한 획으로 완전히 이어진 (2) 필기체를 표방하는 것도 아니다. 가령, 소문자 i나 l의 이탤릭은 세로선이 기울어지고 위와 아래에 동그란 삐침까지만 있지, 필기체처럼 두 선이 한 점에서 만나는 획이 생긴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Brush Script 같은 필기체 계열의 서체들은 정자체 모양이 태생적으로 이미 좀 기울어진 형태이기 때문에 또 이탤릭을 적용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끝으로, 세로 중심선은 90도 수직선인데 이탤릭체에 적용되는 삐침만 적용한 (3) upright italic이라는 것도 타이포그래피 용어로는 있는 모양이다. 실용적인 의미나 가치가 무엇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그냥 이런 게 있다는 것 정도이다.

이탤릭체는 글자의 수직 높이는 변함없는데 중심선이 약간 기울어짐으로써 실질적으로 글자의 크기가 약간 더 커지는 효과를 낸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게 있다. 이탤릭체는 중심선을 정확하게 몇 도 기울이는 것이 정석일까? 여기에 통일된 규격이 있긴 할까?

MS Word의 경우, 이탤릭체가 적용된 글자로 마우스 포인터를 가져가면 신기하게도 포인터의 I자 모양도 이탤릭체 모양으로 기울어진 모양으로 바뀐다. 그리고 cursor(캐럿) 역시 단순 수직선이 아니라 기울어진 사각형 모양으로 바뀐다. 사선 모양이 굉장히 엉성하고 못생기긴 했지만 말이다.

화면 캡처를 해서 들여다보면, Arial, Verdana처럼 이탤릭 전용 서체가 있는 글꼴들은 세로선의 기울기가 5인 듯하다. 즉, 오른쪽으로 1픽셀 움직이는 동안 세로로는 대략 5픽셀이 움직인다. 이것은 각도로 환산하면 약 78.7도(수직선이 90도)이며, 따라서 11~12도 정도 기울이는 셈이 된다. 기울어진 cursor의 기울기도 이것과 얼추 일치한다.

한편, 이탤릭체 모양의 마우스 포인터는 화면을 확대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울기가 4이다(약 76도).
흥미로운 것은 전용 서체가 없이 프로그램이 기본으로 구현하는 이탤릭이다. 얘는 기울기가 거의 3(약 71.5도)에 가까워서 누운 정도가 위의 글자들보다 더 과격하다. 따로 새로 만들어진 획이 없이 전적으로 산술적인 변형만으로 기울어짐을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기울여 준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내부적으로 이런 차이가 있다는 것도 알면 흥미로울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모든 개념들의 예를 그림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rial은 bold에 대해서도 전용 이탤릭 서체가 있는 반면, Arial Black은 전용 서체 없이 산술 연산으로 오블리크가 이탤릭의 역할까지 하고 있으며 기울기가 더 과격하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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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5/07/16 08:44 2015/07/16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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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yn 2015/07/16 21:16 # M/D Reply Permalink

    이탤릭이라면 OS마다 다른 재미있는 프로그래밍 이슈도 있지요.

    Windows,리눅스 는 어떤 프로그램 어떤 폰트든 이탤릭을 사용 할 수 있습니다. OS 차원(정확히는 UI 툴킷)에서 Bold나 Italic 이 없을 경우 알아서 겹치거나 기울여 주기 때문이죠. 하지만 Mac OS X는 OS차원에서 Bold 나 Italic 을 지원 하지 않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한글폰트가 따로 Bold 나 Italic 을 가지고 있지 않아 두가지 효과를 쓸 수 없습니다. 하지만 Safari 브라우저는 두 효과를 Application 레벨에서 구현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잘 나옵니다 ㄷㄷ

    1. 사무엘 2015/07/17 06:40 # M/D Permalink

      켁, 맥북을 3년 넘게 사용했지만 그건 제가 지금까지 까맣게 모르던 사실이었습니다..!
      TextEdit을 실행해 보니 진짜로 볼드/이탤릭 서체가 없는 폰트를 사용할 때는 B, I 버튼이 아예 사용 불능이 나오는군요. ㅜ.ㅜ
      말씀하신 대로 사파리 기본 브라우저는 한글에 대해서도 볼드/이탤릭을 처리하고 있길래 당연히 그것도 OS가 지원해 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Windows와 이런 차이가 있었을 줄이야..!!
      보충 설명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 역시 다방면에 전문가이십니다..!

    2. Lyn 2015/07/18 01:34 # M/D Permalink

      자기 밥벌이도 못하고 있는 잡부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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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글꼴 생각

1.
요즘 대세가 복고풍 타이포그래피인지? 옛날목욕탕체, 배달한나체가 정말 인기 많다. 영화 국제시장도 그 성격상 복고풍 서체로 포스터가 만들어졌다.
옛날에는 복고풍 서체라 하면 정말로 궁서체와 휴먼옛체 정도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데 이런 분야에도 다양한 서체가 존재한다는 건 그만큼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풍족해졌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라틴 알파벳과는 달리, 한글 서체는 주 사용 인구가 1억도 채 안 되는 내수 시장에서밖에 수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한글에 대해서 옛날 스타일 서체를 꾸준히 고집하고 있는 곳이 최소한 두 곳 떠오르는데
하나는 철없는 전직 부사장이 저지른 땅콩 회항 사건 때문에 이미지를 제대로 구겼던 대한항공이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육사 부대 마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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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동체의 윗부분에 큼직하게 KOREAN AIR라고 써 놓은 거 말고, 앞부분 아래에 자그맣게 '대한항공'이라고 쓴 부분이 내게는 오래 전부터 인상깊게 와 닿았다. 저 한글 로고그래피는 대한항공이 지금과 같은 치약 하늘색 도색과 영문 CI를 도입하기 전부터 계속 써 오던 물건이다.

육사 부대 마크는 무려 1947년부터 써 오던 것이니 보수적인 군대에서 앞으로도 당연히 계속 쓸 테고.
대한항공이든 육사든, 한번 정한 서체는 자기 정체성을 걸고 안 바꾸고 계속 썼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서울 지하철 초롱테크 지하철체.. 시각적으로 아무 문제 없는데 무단으로 뜯어고치고 바꾸는 거 마음에 안 든다.
그나저나 옛날 철도 간이역 역명판 서체들도 디지털로 복원하고 싶다. 자료를 많이 모아야 할 텐데.

2.
요건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본 광고판이다.
이 정도면 복고풍 서체가 아니라 혹시 북한 서체이지 않나 싶어서 원전을 찾아보니..
ㅇ의 모양, 그리고 '교'의 모양이 북한 서체를 아슬아슬하게 비껴 가긴 한다.
하지만 첫인상이 여전히 서로 굉장히 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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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베트남은 언어는 중국어와 비슷하게 성조도 있고 1음절 1형태소 1글자 고립어 형태인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는 프랑스 선교사의 주도로 개혁을 해서 한자를 완전히 없애 버리고 라틴 알파벳을 쓴다. 그래서 분위기가 이색적이었다.
단, 성조를 표기하려고 알파벳의 위· 아래에 이상한 부호들이 많이 달려 있다.

그리고 베트남이 자체적으로 서체를 만들 만한 나라는 아니니, 간판들을 보면 다들 MS Word 95나 아래아한글 96처럼 10년, 20여 년 전부터 기본으로 내장돼 있던 듯한 1990년대 기성 서체들 위주이다.
Cooper Black을 정말 많이 봤고, 그 외에 Copperplate Gothic, Impact, Matura MT Script도 있었다.
그 글꼴이 처음 만들어지던 시절에는 굉장히 참신한 디자인이긴 했지만, 이것도 익숙해지니까 식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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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이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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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자 A의 외곽 획이 활처럼 둥글게 휜 윗줄의 서체도 많이 쓰이는 편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좀 낯설다. 그 반면 아랫줄 서체는 우리에게도 비교적 친숙할 것이다.
바로 한미디어에서 개발하고 MBC가 2000년대 초까지 자사 CI에다 썼던 문화방송체이기 때문이다.
저 사람들이 설마 한국산 서체를 썼을 리는 없으니 저것도 영문 원도가 따로 있는가 보다. 알고 보니 원조는 Banco라는 별도의 서체라고 한다.

4.
본인은 직접 써 본 경험은 전무하지만, 클래식 맥 OS에 대해 어느 정도 동경을 하고 있다. 특히 쟤네들의 기본 서체가 참 개성 있다고 생각해 왔다. 아래 그림에서 File, Edit 같은 메뉴, 그리고 System Tools/Folder를 표현하는 서체 말이다. 맥 OS의 Windows System 같은 서체나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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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맥 OS의 서체 이름은 Chicago이다. Windows 95의 코드명인 그 시카고. 나중에는 비트맵뿐만이 아니라 윤곽선 글꼴로도 만들어졌다. 특히 V와 w 같은 글자의 모양을 보노라면 비트맵과 윤곽선 글꼴이 싱크가 잘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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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타이포그래피와 디자인을 좋아하고 컴퓨터를 하드/소프트 독점 일체형으로 만들었던 애플에서는 OS가 이름이 없이 그냥 System이고 애플 전속 서체는 이름이 있었던 반면, 처음부터 소프트웨어에 초점을 뒀던 마소의 Windows는 프로그램이 이름이 있고 서체는 딱히 이름이 없이 그냥 System이다. 아주 재미있는 차이가 아닐 수 없다.

Windows쪽 얘기를 좀 하자면, 1과 2 시절에는 시스템 기본 글꼴이 고정폭이었다. 그러다가 3.0때부터 오늘날과 같은 가변폭 System이 도입되고 예전의 글꼴은 그 유명한 Fixedsys라는 이름으로 개명당했다. 모노크롬 시절에는 byte align이 힘들어서 성능 오버헤드가 더 크기도 했을 텐데 맥은 처음부터 과감하게 1.0때부터 가변폭 글꼴을 채용했다.

Fixedsys는 Windows 1.0 시절에 비트스트림이라는 유명한 서체 회사에 외주를 줘서 개발한 것인 반면, 오늘날의 가변폭 시스템은 마소에서 자기네 정체성을 담아 자체 개발한 글꼴이다. 그러니 System을 그 모양 그대로 윤곽선화해서 이름을 붙일 법도 했을 텐데 마치 현대 자동차에서 포니, 엑셀, 스텔라 같은 이름에 애착이 없는 것만큼이나 마소에서는 그 옛날 글꼴에는 더 애착을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이미 구닥다리의 상징에, 시스템 리소스가 다 떨어졌을 때에나 나오는 fallback 이미지가 너무 굳어져서인 듯. 게다가 NT 계열 부터는 리소스 제약도 없어져서 더 볼 일이 없어졌다. -_-;; 동아시아 Windows에서 이상하게 MS Sans Serif 대신 System을 쓰던 구닥다리 Visual C++ 6.0 IDE가 마지막이다.

System, Fixedsys 같은 건 트루타입 글꼴이 개발되기 전부터 도입됐기 때문에 당연히 TTF 형태가 아니다. 그래도 운영체제에 완전히 하드코딩으로 박힌 물건은 아니고, 오늘날도 Windows\Fonts 디렉터리에서 vgasys.fon, vgafix.fon이라고 실물 파일을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까지는 '장치 독립적인 글꼴'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신기하게도 글꼴 이름이 저런 형태이다. 맥은 그 시절에 어떠했나 모르겠다.

뭐 그런 것과는 별개로, 본인은 한글 전산화의 역사와 추억이 깃든 과거의 16*16 비트맵 조합형 글꼴들도 윤곽선 글꼴로 리메이크가 많이 됐으면 좋겠다. 이야기체나 둥근모 같은 것들. 가장자리를 동그랗게 혹은 적절한 곡선으로 복원해 주면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복고풍 서체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지 않겠나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5/05/10 08:27 2015/05/10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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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 용태 2015/05/20 21:46 # M/D Reply Permalink

    16*16 글꼴의 리메이크 버전 저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ㅋㅋ 그러고보니 예전에 자주 볼 수 있었던 "Seoul"체 (한글매킨토시 OS 번들글꼴) 이 많이 보이지 않네요.

    1. 사무엘 2015/05/21 01:50 # M/D Permalink

      지금은 '서울'이라는 이름이 붙은 다른 서체들에 가려서 제대로 검색이 안 되지만, 클래식 맥 OS의 그 투박한 한글 글꼴을 말하는 거라면 저도 뭘 말씀하는지 알겠습니다.
      요즘은 전광판도 다 고해상도 LCD가 등장하면서 16*16 글꼴은 정말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지요. 얼마 못 가 <날개셋> 편집기 같은 왜곬스러운 프로그램에서나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얘도 언젠가는 복고풍 서체로 복원되는 날이 분명 올 거라 생각됩니다. ^^

  2. pastopia 2016/03/02 20:24 # M/D Reply Permalink

    안녕하세요. Copperplate Gothic 서체의 상업적 이용이 가능한지 찾고 있습니다.
    혹시 알고계시면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1. 사무엘 2016/03/02 23:00 # M/D Permalink

      그 글꼴은 원도가 만들어진 지 100년도 더 됐고, Office 같은 프로그램에서 이미 번들로 제공하거나 인터넷에 굴러다니고 있지 않나요? 저도 정확한 정보는 알지 못하지만 상업적 이용에 다른 문제는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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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글씨

내 손글씨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문은 기본적으로 Times Roman을 표방하며 특히 숫자는 이를 더욱 엄격히 따른다. 소문자 a와 g도 언제나 Times 스타일의 정자체로 쓴다.
하지만 세부적인 획은 기분에 따라 Courier 또는 Century Gothic 스타일로 쓰기도 한다.

소문자 i, t, l 같은 글자를 보면 차이가 가장 크게 드러나는데..

  • Times 스타일은 세로획의 위쪽에 자그마한 / 모양의 삐침이 있고 글자가 대체로 홀쭉하다.
  • Courier 스타일은 세로획의 위쪽에 비교적 길게 - 모양의 삐침이 있고, 글자들의 폭이 대체로 균일하고 뚱뚱하다.
  • Century Gothic 스타일은 삐침이 전혀 없어서 t조차도 가로획과 세로획만 있다.

이 세 계열 중 어느 스타일을 따를지는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듯. 딱 하나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한편, 한글은 바탕체를 표방하며 네모꼴 스타일과 샘물/세벌/빨랫줄 스타일 두 개가 존재한다.
내 손글씨를 정형화해서 디지털 서체로 만들고 싶은 소박한 바람이 있다.

한글은 라틴 알파벳보다 획이 (1) 더 많고 복잡하다. (따라서 한 글자를 표현하는 데 알파벳보다 일반적으로 더 많은 픽셀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복잡하긴 한데 (2) 개개의 획은 기하학적으로 더 단순하다. (로마자 같은 꼬부랑한 느낌이 별로 없다)

이런 이유로 인해, 글꼴에 라틴 같은 수준의 오동통한 개성이 들어갈 여지가 좀 덜하다.
한글 글꼴에 맞춰 만들어진 영문 글꼴은 순수 영문 글꼴보다 그런 기교가 neutralize된 경향이 있는 게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4/05/23 08:27 2014/05/2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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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ristin 2016/03/11 10:15 # M/D Reply Permalink

    혹시 Century Gothic 폰트도 상업적으로 이용해도 문제 되는 부분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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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엔 <응답하라 199x>라는 레트로 장르의 TV 드라마가 인기가 많았다.
요즘은 사극 드라마라도 하나 방영되면 전국의 역덕후들이 벌떼처럼 일어나서 별 희한한 곳에서 고증 오류들을 찾아 올리는 게 관행이다. 이 드라마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2013년 10월 18일 방영분에는 아래와 같은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울 지하철 1호선의 노선색이 빨간색이고 역명판이 둥글게 만들어져 있던 옛날 시절을 재현한 것까지는 좋다. 솔직히 말하면 본인조차도 그 실물을 본 적은 없다. 본인은 서울 태생이 아니며 서울 지하철을 이용하기 시작한 건 21세기부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장면에는 여러 크고 작은 고증 오류가 존재한다.
벽면의 인테리어가 실제 지하철 서울 역과 다르며 섬식 승강장 역을 상대식 승강장으로 만들어 놓은 건 애교라 친다만...
역명판의 글꼴을 2003년에 만들어진 걸로 쓰면 어떡하냐. 무려 코레일체!

20세기 설정에 너무 깔끔한 21세기 서체가 혼자 확 튀어 보인다.
게다가 저건 철도청/코레일의 전속 서체이지 서울 지하철에서 쓰던 서체도 아니다.
완전 어처구니없는 고증 오류가 아닐 수 없다.ㅋㅋㅋㅋㅋ

또한, 글꼴만치 부각되는 건 아니지만 '서울驛'이라는 한자 병기가 들어간 것도 오류다.
서울 지하철이 처음 개통했을 때는 역명판에 한자 병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1999~2000년대가 돼서야 추가되었다. 딱 그 시기에 로마자 표기법 개정분 반영, 한자 병기와 더불어 국철(= 광역전철) + 지하철 노선색 통합까지 몽땅 진행되었으니 수도권 전철의 외형이 크게 바뀌는 시기였다.

그건 그렇고 아무튼...
그럼 1994년 기준으로 코레일체 대신 저기에 무슨 글꼴이 들어가야 맞는지 궁금하다면, 아래의 '진짜' 옛날 사진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엔하위키엔 관련 자료가 이미 다 올라와 있다. ㅎㅎ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대를 풍미해 온 지금의 지하철 전속 서체와 같거나 최소한 비슷한 투의 납작한 헤드라인이 그때에도 쓰였다.
초롱테크에서 1990년대 중반에 정식으로 내놓은 그 디지털 서체는 그걸 좀 더 세련되게 다듬은 게 아닐까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본인은 개인적으로 이 서체를 굉장히 좋아한다. 마치 런던 지하철의 전속 서체가 그야말로 런던 지하철 전체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명물이 되어 있듯, 저 서체는 수도권 전철까지는 아니어도 서울 지하철을 대표하는 서체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왜 그걸 함부로 바꾸고, 이미 만들어 놓은 멀쩡한 시설까지 돈 들여서 뜯어고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서울 도시철도 공사 관할역들의 경우, 지상에 있는 검은 배경의 세로형 역 폴사인의 서체가 어느 샌가 야금야금 서울 남산체로 바뀌고 있다.

오히려 지하철이 아니라 광역전철 소속이어서 우측도 아닌 좌측통행으로 건설된 신분당선이 클래식 지하철체를 살려 쓰고 있으니.. 혼란스럽다.

음, 그나저나 응답하라 1994의 오류가 또 생각 났다.
내가 언뜻 본 기억으로는 그 드라마 내부에서 등장하는 TV 뉴스 화면의 자막이...
굴림은 양반이고 아예 나눔고딕인 장면이 있었다!

서 태지가 은퇴하는 소식이 나오는 20세기 복고 드라마에, 2008년 한글날에 무료 배포된 서체가 등장한다는 게 말이 되냐.. ㅋㅋㅋㅋ

요즘은 유튜브만 검색하면 1990년대 옛날 영상 매체의 주요 장면을 아주 쉽게 구할 수 있다.
자막에다가는 엑스포체나 그래픽체만 넣었어도 지금으로부터 2, 30년 전의 영상 매체의 구리구리한(?) 분위기를 아주 손쉽게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무슨 서체를 쓰든 CG 처리는 똑같이 필요했을 텐데, 이게 무슨 돈이 더 드는 일도 아니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결론

1. 이렇듯 글꼴 유행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2. 철도와 성경의 융합에 이어 철도와 글꼴의 융합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4/01/06 08:13 2014/01/06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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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 용태 2014/01/08 00:13 # M/D Reply Permalink

    글꼴은 누구나 쉽게 만들고 쓸수 없는 물건이기에 시대를 관통하는거 같습니다..
    특정 시기에 한글 소프트웨어에 번들된 글꼴이 많이 쓰이는 시절도 있었고요.. 예를 들면 한글에 있는 특유의 필기체 같은.. 요즘은 그 특유의 필기체를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드네요 ^^

  2. 정 용태 2014/01/08 00:25 # M/D Reply Permalink

    그리고 살짝 궁금해져서 필기체에 대해 서핑해봤는데 이런 재미있는 링크도 있어서 붙여봅니다.
    http://puwazaza.com/319
    http://www.youtube.com/watch?v=qefD5YHPeEM

    1. 사무엘 2014/01/08 10:43 # M/D Permalink

      새해 첫 댓글 당첨이십니다. ^^
      한글의 경우 잘 알다시피 복잡한 조합 룰 때문에 완성도 높은 글꼴을 만들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그나마 이미 정해진 조합 룰 템플릿을 기반으로 싸제 글꼴을 찍어내는 건 옛날에 비트맵 시절에는 그나마 유행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졌지요.
      그리고 그 조합 룰 자체를 새로 짜는 기술은 글꼴 제조 회사들이 제각각 보유하고 있지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안타깝지만 그 이유는 물론 저는 매우 수긍합니다)

      아래아한글 필기체의 경우, 만들어진 사연이 있는 것도 아시죠? 지금은 아래아한글이 아니면 <날개셋> 편집기에서나 볼 수 있는 추억의 글꼴이 됐습니다. ㅎㅎ

      Comic Sans가 원래는 BOB에 들어갈 글꼴이었는데 그렇게 퍼져 나가고 또 그런 금지 처분을 먹었다니.. 정말 흥미로운 걸요? 처음 알았습니다.
      정 용태 님, 복 많이 받으세요.

  3. 파츠쿠 2014/01/08 17:40 # M/D Reply Permalink

    그게 바로 김치들의 철도에 대한 의식수준이죠. 세금으로 철도 깔아줬더니 시끄럽다고 이설하고 옮기는 새끼들이 김치들이죠.

    1. 사무엘 2014/01/09 06:37 # M/D Permalink

      저도 철도에 대한 지역 이기주의 및 왜곡된 인식이 참 안타깝답니다.
      하지만 그런 인식을 깨어 있는 철덕들이 차근차근 개선해 나가야겠죠. 굳이 다른 사람들을 비하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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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글꼴 처리 기술의 변천사

※ 0세대

0이라는 숫자는 뒤에 나올 1~3세대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인' 관점에서 붙여졌다. 1~3에 비해 0은 기계/아날로그적인 성격이 짙다.
한글을 모아쓰기+네모꼴 형태로 표현할 여건이 도저히 안 되는 환경을 말한다. 한 낱자를 상황에 따라 여러 벌로 분간해서 처리할 수가 없고, 최소 수천 자에 달하는 한글을 글자 단위로 부호화할 수도 없다.

옛날에 전보가 한글을 풀어쓰기 형태로 찍었다고 그러고, 김 정수 교수가 고안한 한글 두벌식 기울여 풀어쓰기도 0세대 기술이다. 굳이 풀어쓰기가 아니라도, 쓰이는 한글 몇 글자만 그림처럼 다루는 것도 딱히 기술이란 게 쓰인 게 아니므로 넓게는 0세대 기술로 간주한다.

그나마 0세대 기술 중에서 한글의 원리를 가장 잘 반영한 바람직한 기술은 공 병우 한글 세벌식 타자기, 그리고 그 이념을 물려받은 직결식 글꼴이다.

※ 1세대

제한된 벌수의 자모를 조합하여 한글 글자를 정사각형에다 모아쓰기 형태로 찍을 수 있다. 16*16 크기의 화면용 조합형 한글 글꼴이 바로 1세대의 상징이다.

옛날에 자체 한글을 지원하던 국내 도스용 프로그램들은 전부 이 수준의 기술을 사용하였으며, 도스용 아래아한글 1.x는 더 나아가서 간단한 수준의 옛한글과 자체 조합 로직까지 구현했다. 1세대 기술은 작고 간결하면서도 한글의 조합 원리와 무척 잘 부합한다는 큰 장점이 있기 때문에, <날개셋> 편집기 역시 최소주의를 추구하는 차원에서 딱 이 수준의 기술만을 의도적으로 고수하고 있다.

철도역 승강장의 전광판이 0세대인 롤지나 플랩에서 LED로 바뀌면서 1세대 기술로 한글을 표현한 것들이 많다.

※ 2세대

1세대보다 많이 발전했다. 8*16, 16*16의 한계를 벗어나 글자 크기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고 심지어 윤곽선 글꼴을 지원한다. 영문의 경우 W와 I의 폭이 다른 가변폭 글꼴을 지원한다. Windows의 경우 트루타입 글꼴이 도입되면서 글꼴의 기술 수준이 1.x세대에서 2세대 수준으로 껑충 뛰었으며, 아래아한글도 2.x 버전으로 넘어가면서 이 수준에 도달했다.

디스플레이 소자의 기술이 발달하면서 요즘은 전광판이 청색이나 흰색을 포함한 원색도 잘 표현하고 해상도도 더욱 높아졌다. 그래서 종전의 16*16만으로는 글자의 크기가 너무 작기 때문에 2세대로의 전환은 필수이다.
그러나 2세대 기술은 구현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1세대에 비해 한글 자체만의 조합 가능성이나 옛한글 표현 능력은 오히려 퇴보한 경우가 많다. 1코드 포인트당 반드시 한 글자가 대응한다는 한계에 여전히 매여 있기 때문이다.

※ 3세대

글꼴 처리 기술의 만렙으로, PC에는 21세기 무렵부터 도입되었다. 한글까지 가변폭 글꼴의 처리가 완벽하게 지원되며, 가변폭으로도 모자라서 커닝까지 처리된다. OpenType 기술을 이용하여 아랍· 태국어 문자까지도 꼼수 없이 잘 처리할 수 있을 정도인데 하물며 옛한글쯤이야 모아쓰기 형태로 표시를 못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유니코드라는 건 이런 글꼴 처리 기술과 결부되지 않을 수가 없는 규격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자의 서식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텍스트 에디터를 만든다 해도, 이제는 유니코드를 완벽하게 지원하려면 워드 프로세서를 만들 때나 필요할 것 같은 이런 기술을 어느 정도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3세대에서는 글꼴의 화면 렌더링도 단순한 grayscale 수준을 넘어서서 LCD 화면의 픽셀 구조에 특화된 subpixl 방식을 지원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3/08/31 19:47 2013/08/3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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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랑나랑 2013/09/02 22:58 # M/D Reply Permalink

    subpixel 방식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1. 사무엘 2013/09/02 23:51 # M/D Permalink

      별 거 아니에요. 액정 화면의 경우, 한 픽셀이 순색으로 표시되는 게 아니라 빨녹파 빨녹파 빨녹파... 이런 3색이 아주 작은 간격으로 나열되어서 색을 표현합니다.
      그 빨녹파가 가로로 배열된 경우, 1픽셀은 가로가 빨녹파라는 3개의 가상의 픽셀로 구성되었다고 보고 그런 가상의 픽셀을 기준으로 글자의 모서리를 부드럽게 보정하는 기술이 서브픽셀 방식입니다. 가로 해상도가 이론적으로 세 배로 버프되는 것이지요. 마이크로소프트가 사용하는 브랜드명은 잘 알다시피 ClearType입니다.

      그래서 이런 서브픽셀 렌더링을 쓰면 검은색 글자를 찍는데도 확대를 하면 모서리에 종종 빨강이나 파랑이 옅게 가미된 점이 보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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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한글 서체

북한에서 만든 한글 서체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
ㅌ을 E 모양이 아니라 ㅡ+ㄷ 모양으로 쓰는 걸 선호한다! 즉, 위의 가로줄을 아래의 몸통과 분리해서 따로 적는다는 뜻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북한 서체 중에도 E자 모양인 물건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일단 북한의 굴림-바탕-돋움-궁서에 해당하는 4대 기본 글꼴인 천리마-청봉-광명-붓글이 모두 ㅌ이 ㅡ+ㄷ모양이니, 북한에서는 이걸 ㅌ의 공식적인 기본형으로 간주하는 듯하다.

남한에서 쓰는 글꼴 중에는 ㅌ이 그렇게 돼 있는 물건은 진짜 궁서체밖에 없지 싶다.
북한이야 원래 문화가 196, 70년대-_-의 복고풍을 추구하고 서체도 순명조 내지 붓글씨 계열을 쓰는 걸 좋아하는 동네이긴 하지만, 명조 계열 서체까지 ㅌ을 그렇게 적는 관행은 남한에서는 좀체 찾아볼 수 없다.

북한과 한글 서체라는 두 분야에 모두 평균 이상으로 관심이 많은 나조차 이걸 눈치채는 데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 이유는, 역시 ㅌ이 자주 쓰이는 자음이 아니기 때문이어서인 것 같다.

두음법칙만큼이나 한글의 자형의 미세한 차이도 남북의 문화 차이를 나타낼 수 있는 잣대가 된 듯하다.
원래 ㅌ의 모양은 ㅡ+ㄷ이 맞다는 설명도 옛날에 본 것 같으나, 그 근거를 모르겠다. 당장 훈민정음해례 같은 엄청 옛날 문헌을 봐도 ㅌ은 E 모양으로 그려져 있는데?

Posted by 사무엘

2013/07/23 08:36 2013/07/2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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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재주 2013/07/27 14:34 # M/D Reply Permalink

    ㄷ에다가 가획을 해서 만들었다는 걸 보다 확실히 보여주고 싶은가봅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도 ㅌ은 지금 우리가 쓰는 ㅌ이 원래 모양에 가까운데...

    1. 사무엘 2013/07/27 18:40 # M/D Permalink

      네,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그럼 ㅋ은 ㅡ+ㄱ 아닌가 하는 일관성 문제도 생기죠. (북한 서체도 ㅋ의 자형은 우리 것과 동일합니다.)
      ㅡ+ㄷ 설을 옹호하는 문헌 중 하나가 제 기억이 맞다면 원 광호 지은 <이것이 한글이다>랍니다.. 이 책을 문득 다시 찾아보고 싶네요.

  2. 십삼각 2013/11/15 21:19 # M/D Reply Permalink

    북한에선 아예 ㅌ을 "ㅣ+ㄷ" 식으로 쓰는 경우마저 있더군요. 한자 亡자처럼요.

    1. 사무엘 2013/11/16 00:38 # M/D Permalink

      오, 그렇게까지 과격한 모양을 한 서체도 있던가요? 눈여겨봐야겠습니다. (처음 뵙는 분이군요.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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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틴 알파벳의 위엄

오늘날 세계 문자들 중에 라틴 알파벳은 인지도와 실용성 면에서 단연 절대적인 '갑'임을 부정할 수 없다. 라틴 알파벳은 다음과 같은 여러 장점과 유리한 점이 있다.

  • 어느 한 국가나 민족만의 문자가 아니다. 물론 나라의 정서법마다 알파벳을 읽는 방식에 대동소이한 차이가 있어서 혼동스러운 면모도 있지만, 어쨌든 가장 국제적이다.
  • 음소문자여서 나름 다양한 언어의 말소리에 대응하기 유리하다. 또한 풀어쓰기를 하는 구조여서 언어의 다양한 음절 구조에 대응하기에도 유리하다.
  • 글자 수가 적어서 간편하며 활용하기도 쉬운 구조이다. 가령, 세계의 문자들 중에 기계식 타자기로도 만들고 또 겨우 8*8 크기의 비트맵에 각 글자의 모양을 다 담을 수 있는 문자는 얼마 되지 않을 게다.
  • 각각의 글자들이 들쭉날쭉하고 개성이 뚜렷해서 한데 뭉쳤을 때 시각성이 뛰어나며, 기호로서의 역할도 하기 좋다.
  • 타이포그래피 관점에서는 문자 차원에서 대소문자 구분이 존재하고, 또 이탤릭체 같은 같은 방식으로도 호소력을 높일 수 있다.

물론 라틴 알파벳은 표음· 음소문자라는 취지와는 달리 현실은 시궁창으로 언문일치가 개떡이며, 구조적으로 모음 글자가 너무 부족하다는 한계도 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틴 알파벳은 신경 써야 하는 글자 수가 겨우 수십 개에 불과하기 때문에, 개개의 글자가 그야말로 왕이며, 서체 디자이너는 각 글자에 대해 완전 올인 몰빵 최적화가 가능하다. 이게 개인적으로 가장 부럽게 느끼는 점이다.
가령, A~Z까지 아주 정교하게 테스트된 수제 힌팅 프로그램을 집어넣는 여유를 부리는 건 이미 20여 년 전에 트루타입 글꼴이 처음으로 도입됐을 때부터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요즘 글꼴이라는 건, 그저 코드값별로 고정된 글자의 폭과 벡터 이미지만을 기술하는 static한 데이터의 집합이 아니다. OpenType 기술 규격 덕분에 자기 옆에 무슨 글자가 오느냐에 따라서 다른 모양을 제공할 수 있고(GSUB), 폭을 미세하게 달리할 수도 있다(커닝.. 이게 개념적으로 더 확장되어 GPOS).

알파벳 정도야 문자 개수를 제곱해 봐야 몇백~몇천 정도까지의 조합밖에 안 나오니, 그 정도는 감당 가능하다. 한글이 '가' 할 때 ㄱ과 '고'나 '강' 할 때 ㄱ의 모양이 서로 달라지는 게, 알파벳으로 치면 W 다음에 A가 올 때와 W 다음에 P가 올 때의 간격을 미세하게 달리 설정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는가?

이런 기술은 이런 게 반드시 있어야만 정서법 차원에서 제대로 표시가 가능한, 복잡한 외국어 문자(complex script. 태국어나 아랍어 문자 같은)를 위해서 개발된 것이다. 그런데 라틴 알파벳은 원래 그런 기술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복잡한 문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더 정교하고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를 위해 서체 디자이너가 그런 최신 기술까지 적용하여 시쳇말로 가히 잉여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라틴 알파벳도 아주 정교하고 미려한 필기체 중에는 그렇게 다이나믹한 표시 조건이 필요한 것도 있으니 말이다.

2. 반대편 극단에 있는 한자와 가나

이렇게 소수의 유한한 글자들이 왕인 라틴 알파벳 문화권에 비해, 글자 수가 엄청 많은 CJK는 상황이 굉장히 다르다.
한자는 전세계의 문자들 중 유일하게 '열린-_- 집합'인 무지막지한 문자 시스템이다. 덕분에 가변폭-_-이라든가 글자간의 다이나믹한 상호작용 같은 개념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각각의 글자 자체가 워낙 그림처럼 생겼기 때문에 그 특성을 살린 타이포그래피가 존재한다.

거기에다 일본어 정서법은 한자에다가 자기네만의 간단한 표음문자가 더해져서 상황이 또 달라진다.
일본어는 입력하기가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축에 든다. 그리고 '가나'라고 불리는 고유 문자는 구조적으로 불완전하며 한글에 비해 스케일이 작고 표음 능력에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일본어 정서법은 가나 전용이 현실적으로 무리이다. 한자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며, 한글하고는 분명 상황이 다르다.

그러나 이런 형태가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굵직한 의미를 강조하는 한자와, 비교적 단순한 모양인 가나가 어우러지면 그것도 또 개성이 있으며 시각성이 살아나서 읽기도 꽤 좋다. 유식한 용어를 동원하자면 function word와 content word가 딱 잘 구분돼 보인다.
또한 입력이 어려운 대신, 한번 입력된 일본어 문장은 문자 차원에서 한자, 히라가나, 가타카나 같은 적지 않은 양의 NLP 정보가 담기기 때문에, 형태소 분석이나 번역을 의외로 유리하게 만들기도 한다. 히라가나-가타카나 구분이 라틴 알파벳으로 치면 대소문자에 얼추 비슷하게 대응한다고 볼 수도 있다(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3. 한글은 멀티 패러다임

자, 이렇게 라틴 알파벳 쪽의 정황과 한자 및 일본어 정서법의 정황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세종대왕이 창제한 그 우수하고 독창적인 문자라는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는 상황이 어떨까?

한글과 관련해서 우리가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은, 한글은 단일 패러다임만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문자라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 단일 패러다임으로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한글이 총 몇 자냐는 질문에 24자부터 시작해 67자, 11172자, 심지어 160여만 자 같은 사람마다 뒤죽박죽인 대답이 나오는 것이다. 각각의 숫자가 한글의 규모를 어떤 관점에서 측정한 것이겠는지는 독자 여러분이 알아서 생각해 보시라.

차라리 한자는 총 몇 자냐는 질문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라는 대답이라도 곧바로 나오지, 한글은 대단히 특이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유니코드에는 고육지책으로 한글이 자모와 글자마디가 모두 등록되어 있으며 이것은 내가 보기에 나쁜 선택이 아니다. 그러나 한글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대립은 심지어 컴퓨터 전문가 사이에서도 거의 종교적인 신념의 대립에 가깝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으면, 본인에게 개별적으로 물으면 대답해 주겠다.

한글이 이런 유별난 위치에 있는 이유는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초-중-종성을 모아서 한 글자를 이루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한글이 IPA의 지위를 노리는 범용 음성 부호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면, 굳이 모아쓰기를 할 필요가 없다. 로마자의 예에서 볼 수 있듯, 풀어 쓰는 게 자음이나 모음의 중첩 같은 각종 외국어들의 변화무쌍한 음운 구조의 대처에 더 유리하다. 지금의 모아쓰기 체계는 모음의 발음이 분명하고 받침이 자주 등장하는 한국어의 음운 구조에 좀 더 최적화/로컬라이즈 전략을 선택한 귀결이다.

그래서 한글은 한국어의 음절 구분이 분명하며 시각성과 개성이 더 뛰어난 문자가 되었으며, 구조적으로는 알파벳 같은 계열보다 한자 계열과 좀 더 비슷한 형태가 되었다. 이 선택은 매우 큰 장점과 개성과 자부심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가 기술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많이 만들었다. 로마자처럼 소수의 글자를 최적화하고 품질을 다듬는 데 투자될 수 있는 기술과 노력이, 한글 조합 그 자체의 문제만을 푸는 데 다 소비되어 버리게 되었다. 입력이든 출력이든 모두에서 말이다.

다시 말해, 1만 개, 1백만 개, 심지어 1억 개의 글자를 조합해서 생성할 수 있다고 하는 한글의 그런 잠재성은, 알파벳처럼 개개의 글자마다 완전 정교한 힌팅, 커닝, 이탤릭, 필기체 따위로 최적화가 가능한 면모와 기술적으로 공존할 수가 없거나, 최소한 상호 조화시키기가 대단히 매우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모아쓰기라는 걸 현실에서 반드시 절대적으로 일방적인 장점이라고만 간주해도 되는 것일까?

그래서 옛날 한글 선각자 중에는 로마자의 직관적인 기계화 기술과 먼치킨 급의 타이포그래피 최적화에 너무 한이 맺힌 나머지, “우린 안 될 거야 아마”라는 비관적인 결론으로 빠져서 아예 <글자의 혁명> 급으로 한글을 풀어쓰기 형태로 마개조할 생각을 한 분까지 있었다. 다중 패러다임이 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그 의도는 이해하지만 그건 너무 과격하고 비현실적인 주장이다. 개개의 한글 낱자는 마치 일본어 가나만큼이나 완성도가 부족하다. 가나가 한자와 섞어 쓰라고 만들어진 문자라면, 한글 낱자는 모아 쓰라고 만들어진 문자인 것이다. 한글 낱자만으로 풀어 쓰려면 진짜로 모음 ㅡ라면 U처럼 바꾸는 식으로, 글자 자형을 좀 더 변별성 있게 고쳐야 하고 맞춤법까지 대대적으로 손을 봐야 한다. 위험 비용이 너무 클 뿐만 아니라, 풀어쓰기를 실제로 오랫동안 시행해 본 분의 증언에 따르면, 한글 풀어쓰기의 시각적 능률은 모아 쓴 한글 음절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고 한다.

4. 이제는 한글 자체의 고유한 특성을 살려서 입출력 기술을 발전시켜야

결국 이 모아쓰기에 따른 다중 패러다임은 우리가 한글을 고유 문자로 사용하는 한, 우리가 언제까지나 지고 가야 하는 숙제이다. 예전에 컴퓨터의 성능이 열악하던 시절에는 한글 같은 복잡한 문자를 심을 길이 안 보여서 풀어쓰기라도 생각해야 할 것처럼 상황이 암울했다. 그보다 상황이 약간 나아졌을 때에도 겨우 일본의 자국 문자 로컬라이즈 방식을 모방한 2바이트 한글 코드에다 전/반각 문자 따위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기술적인 제약이 없다. 유니코드에, 화려한 OpenType 기술까지 완비되어 있는데 뭘 더 바라겠는가? 한글은 기계화가 유리한 문자인 건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딱 그거 하나만 믿고, 기계화 수준이라는 게 과거의 타자기 내지 2바이트 한글 코드 시절의 기술적 수준에서 멈춘 채 발전이 정지해 있다. 그런 낙후된 기술 수준은 한글에서 제한된 일부 패러다임밖에 수용을 할 수 없다.

일례로 입력부터 먼저 살펴보면, 15년도 더 전의 윈도우 95의 마소 한글 IME의 설정 대화상자와, 지금 윈도우 8의 한글 IME의 설정 대화상자는 제공하는 기능이 차이가 거의 없다. 이거 좀 문제가 있다.
어차피 조합이 필요하고 IME 같은 계층이 필요하다면 그걸 살려서 IME 계층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을 추가로 많이 지원해 줘야 한다.. 이것은 내가 <날개셋> 한글 입력기를 통해 어느 정도 기술적으로 실현시켰으며, 이 분야의 발전에 대한 필요성은 내 석사 논문에다가도 충분히 언급해 놨다.

출력 쪽도 마찬가지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라틴 알파벳은 적당히 꼬불꼬불하고 스스로 들쭉날쭉해서 보기가 좋으며, 일본어는 한자와 가나가 어우러져서 보기 좋다. 그렇다면 한글은 단일 종류의 문자가 빽빽하게 모였을 때 어떤 미를 추구해야만 할까?
이제는 한글도 한자 중심의 획일적인 정사각형 타이포그래피를 벗어나서 커닝도 생각하고, OpenType 기술을 적극 활용한 다이나믹 글꼴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한글은 굳이 한자가 섞일 필요가 없는 stand-alone, self-contained 문자이기 때문이다.

한글은 각 낱자는 직선 아니면 원밖에 없어서 기하학적으로 의외로 무척 추상적이고 단순하다. 그러면서 초중종성의 개성이 아주 분명하니, 한자나 로마자와는 달리 각종 로고타입이나 픽토그래픽으로 형상화하기가 좀 까다로운 면모가 있다(여전히 그림이나 아이콘 같아 보이지 않고, 글자처럼 보임). 그러나 그런 식으로 모아 쓰는 한글의 특성 때문에 오로지 한글에만 적용할 수 있는 글꼴이 나올 수도 있다. 모아쓰기를 그저 거추장스럽게 한글 자모를 정사각형에다가 예쁘게 끼워 넣는 overhead, burden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좀 더 창조적으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이것이 내가 현재 고민하고 있는 분야이다.

요컨대,

  • 한글을 굳이 여타 문자와 더 비슷하게 만들어서 단점을 상쇄하려 하기보다는, 한글의 개성과 장점을 더 살린다. “넌 그걸 할 수 있냐? 난 그걸 못 하는 대신이 완전히 새로운 이걸 할 수 있다. 놀랍지?”를 지향한다는 뜻이다.
  • 한국어의 특성은 배제하고 오로지 한글의 형태 자체만을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전통적으로 생각해 온 연구 방향이다. 입력기도 그렇고 글꼴도 그렇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연구 결과물이 다 나온 뒤에 빵! 터뜨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비밀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심하게 거창한 건 아니고.. <날개셋> 한글 입력기도 겨우 1.x~2.x 시절에는 아이디어만 새로웠지, 기술적으로는 그다지 거창하지 않았으며 허접함 그 자체였었다.

이런 식으로 입력과 출력 모두에서 한글의 기술적 가능성을 한 걸음 확장하는 시도를 골고루 달성하고 나면, 그것이 대중적으로 성공하든, 아니면 너무 과격하거나 시장성이 없어서 실패하든 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난 보람을 느낄 것이고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3/03/27 19:38 2013/03/27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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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재주 2013/03/27 21:02 # M/D Reply Permalink

    SOM이나 Multilayer perceptron을 이용해서 각 글자의 이상적인 낱자 간격을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해서 조절하게끔 한다거나, 아니면 각 글자들 사이의 힌팅 정보를 자동으로 생성할 수 있게끔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1. 사무엘 2013/03/28 09:24 # M/D Permalink

      한글은 조형이 상당히 기하학적이고 기본획 분해가 용이하기 때문에, 예술적 접근뿐만 아니라 엔지니어링 관점에서의 접근도 상당히 흥미진진한 문자인 게 느껴집니다.
      물론, 그렇다고 공돌이 마인드만 있어서는 편하게 잘 읽히는 글꼴을 만들 수 없구요. (요즘 느끼는 점. ㅜㅜ) 정말 학문간 협업이 필요합니다. 저는 아무 글자에나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이론이나 테크닉보다는 진짜 한글에만 적용 가능한 원리를 좀 더 찾고 싶더군요.

  2. Lyn 2013/03/28 17:48 # M/D Reply Permalink

    맥 얘기 한번 해주시면 재밋을거같아요.

    걔들은 파일명을 저장할때 왜 멀쩡한 한글을 뼈와살을 분리해서 풀어쓰기로 저장하는지ㅡㅡ;

    1. 사무엘 2013/03/28 19:39 # M/D Permalink

      유니코드에서는 같은 문자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있는데, 맥OS는 내부적으로 문자열들을 가장 길게 풀어서 표현하는 NFD 정규화를 사용합니다. 가령, U+C1 같은 문자도 한 글자가 아니라 A+'같은 식으로 풀어서 일관되게 표현하고, 한글도 그런 식으로 처리하지요.

      MS와는 달리 애플은 도스, 텍스트 모드, 2바이트 한글 코드 같은 문화를 경험한 적이 없는 동네여서 쿨하게 그런 정책을 쓰는 것 같습니다. ^^
      풀어지는 이유는 해당 운영체제나 글꼴이 NFD 정규화로 표현된 한글 자모를 모아서 보여주는 걸 지원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구요.

    2. 사샤나즈 2013/04/03 02:21 # M/D Permalink

      MS는 윈도7까지 맑은고딕 글꼴에서 NFD도 잘 지원하다가 윈도8에서 '맑은고딕 글꼴 한정으로' 깨먹었더군요; 덕분에 윈도 API로 NFD 정규화하면 글자가 다 나뉘어 버리는 웃지못할 현상이 발생합니다 =_=

  3. Azurespace 2013/03/28 18:02 # M/D Reply Permalink

    물론 뭐 라틴 알파벳 같은 문자에도 적용할 수는 있지만 얘네는 걍 힌팅 일일히 손으로 하고 말죠.. 한글이나 한자 정도 글자수가 아니고서야 별 의미없는 방법이에요.


    Lyn // 아마 첫가끝코드로 저장하는 게 아닐지? 원래 유니코드 스펙에 있는 방법입니다.

  4. 사무엘 2013/03/28 21:02 # M/D Reply Permalink

    본문에 언급돼 있듯, 저는 유니코드에 지금과 같은 형태로 11172 음절과 조합용 자모가 같이 등록된 것이, 현실과 이상을 절충하여 적절하게 잘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 중에서도 한글이 유니코드 BMP 영역의 1/6 가까이를 쳐묵쳐묵하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분이 있긴 해요. (본문에서도 종교적인 신념 대립 수준이라고.. -_-) 한글을 글자 단위로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이득이었는지 그걸 실감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Azurespace: ㅎㅎ 그새 닉이 바뀌었네요.

  5. 김재주 2013/03/28 22:22 # M/D Reply Permalink

    아 원래 쓰던 닉인데 여기서는 주로 이름을 쓰고있었죠

  6. Lyn 2013/03/29 07:54 # M/D Reply Permalink

    네 첫가끝 코드로 저장하죠...

    문제는 왜 궂이 그런식으로 저장하는지...(용량만 더먹는데) 그리고 지들이 그렇게 쓰는건 상관 없는데 왜 거기서 딴데로 파일을 전송하거나 할때도 그걸 유지하는지 ㅠ

  7. 暖沙 2013/12/05 23:17 # M/D Reply Permalink

    한글의 개성을 살린 특이한 한글 서체 수백 가지를 개발(제작)하여 스샷을 올리고 있는 카페가 있습니다.

    http://cafe.naver.com/aifon

    1. 사무엘 2013/12/06 09:53 # M/D Permalink

      오, 멋지군요..! 전부 개인 작품인가요?
      아무리 완성형이 아니라 세벌 조합 형태라지만 영문도 아니고 비트맵도 아닌 윤곽선 한글 글꼴을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참 대단합니다.
      소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8. 조원웅 2015/05/29 08:29 # M/D Reply Permalink

    한글 타이포에 대한 관심이 부쩍 생겨 들어오게된 스물여섯 대학생입니다. 깊이있는 칼럼 덕분에 공부 많이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1. 사무엘 2015/05/29 15:32 # M/D Permalink

      오래 된 글을 찾아 주셔서 반갑고 고맙습니다. ^^
      이제는 한국어와 별개로 한글 자체에 대한 연구 개발이 필요하지요. 특히 서체 쪽은 언어학, 디자인, 컴퓨터 기술이 한데 손을 잡아야 하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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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곽선 글꼴과 아이콘 이야기

1. 윤곽선 글꼴의 기술 디테일

옛날에 인쇄가 물리적인 활자로 행해졌고 컴퓨터에서도 비트맵 글꼴이 대세이던 시절에는, '폰트 한 벌'이라 하면 여기에는 서체뿐만 아니라 고정된 크기라는 개념까지 포함되어 범위가 더욱 제한적이었다.
진짜 말 그대로 활자 한 벌이다. 그 폰트가 제공하는 서너 종류의 크기로만 글자를 쓸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컴퓨터용 서체의 경우 화면용과 인쇄용이 따로 있기도 했고 말이다. 한 서체를 나타내는 그런 각 크기별 폰트들을 모두 통틀어서 자족(font family)이라고 불렀다.

오늘날처럼 트루타입, 오픈타입 같은 베지어 곡선 기반의 윤곽선 폰트 기술이 보편화된 관점에서 보면, 다양한 크기를 얻는 건 너무 당연하고 하나도 특별할 게 없는 특성이지 않은가. 과거의 관행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것 같다.
허나 과거에는 오히려 한 폰트가 혼자서 다양한 크기의 font family의 역할을 다하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글꼴 대화상자를 보면 트루타입 글꼴을 선택했을 경우 “이 글꼴은 트루타입 글꼴로, 화면과 프린터에서 동일한 글꼴이 사용됩니다”가 떴었다.

윤곽선 기술을 통해 크기 문제가 해결되고서야 영문 서체의 경우, font family는 다양한 크기의 집합이 아니라 bold나 italic 같은 변형의 총칭을 일컫는 개념으로 변모했다. 트루타입 글꼴이 도입되기 전엔 bold/italic은 그냥 원글꼴을 산술 연산으로 변형해서 구현했을 뿐, 별도의 글꼴로 만든다는 걸 생각하기 어려웠다. 조합 가짓수가 감당을 못 할 정도로 너무 많아지니 말이다.

인간이 쓰는 글자는 글자 하나하나가 생각보다 꽤 정교한 벡터 드로잉이다. 수많은 윤곽선 글꼴 자형을 화면에다 래스터라이즈 하려면 비트맵 글꼴만 상대하면 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계산량과 메모리가 필요하다. 쉽게 말해 게임에서 2D 스프라이트가 3D 폴리곤으로 바뀌는 것과 비슷하다.

(지금이 아무리 컴퓨터의 성능이 좋아져도 3D 폴리곤으로 옛날의 스타크래프트 같은 수십· 수백 마리의 저글링 개떼 블러드를 구현하는 건 좀 찰진 맛이 안 난다. ㄲㄲㄲㄲㄲㄲ 또한 둠 2에서 둠 3으로 넘어가면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게, 예전 같은 광활한 개방된 맵에서 쏟아져 나오던 몬스터 개떼들이지 않던가. 뭐 어쨌든..)

그래서 자동차에 변속기가 필수인 것처럼 윤곽선 글꼴을 찍는 시스템은 운영체제든 무슨 프로그램이든간에 글꼴 캐시(font cache)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해 자주 쓰이는 윤곽선 글꼴은 래스터라이즈된 비트맵 결과를 미리 저장해 놓고 재사용하라는 소리다.

제아무리 강한 엔진이라도 3~4단 기어에서 바로 출발 가능한 자동차는 없듯, 제아무리 날고 기는 고성능 폰트 엔진이라도 글꼴 캐시 없이 윤곽선 글꼴을 비트맵과 별 차이 없는 속도로 찍을 수는 없다.
폰트 캐시는 각종 운영체제나 소프트웨어가 잡아먹는 메모리에서 생각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PC의 성능이 시원찮던 1990년대 중반에는 운영체제의 한글판과 영문판의 요구 시스템 사양의 차이를 만들 정도였다.

2. 힌팅

윤곽선 글꼴을 찍는 시스템은 이것만으로도 굉장히 복잡해지는데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저해상도에서 심각하게 보기 안 좋아지는 품질 문제였다.
수백~수천 픽셀의 EM 크기에서 만들어진 매끄러운 윤곽선 패스를 수~수십 픽셀대로 축소하여 래스터라이즈하다 보면 획이 빠지거나 뭉개지거나 굵기가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다. 컴퓨터의 래스터 디스플레이는 연속적인 실수가 아니라 유한한 정수 개의 픽셀로 구성되어 있으니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서브픽셀(ClearType)이라든가 그레이스케일은 한 픽셀에 담을 수 있는 정보량 자체를 흑백보다 더 늘려서 글자를 좀 더 부드럽게 보이게 하는 anti-aliasing 방법이다. 그러나 그 전에는 monochrome 디스플레이에서도 최대한 글자가 예쁘게 래스터라이즈 되게 하려면...

일단, 싱거운 결론이지만 이것은 원론적으로 100% 완전한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이다.
래스터라이저를 아무리 귀신같이 잘 만든다 해도 이 획과 저 획이 어느 크기로 scale했을 때 간격이 같고 굵기가 같아야 할 기준을 스스로 찾을 수는 없다. 그 기준 자체가 아주 모호하고 인위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서양에서 만들어 낸 것은 '힌팅'이라고 불리는 기술이다.
트루타입 폰트의 경우 이 힌팅이 특허로 등록되어 있었을 정도로 고급 핵심 기술이었다.
폰트 래스터라이저의 동작 알고리즘을 다 안다고 가정하고, 특정 크기에서 특정 글자는 윤곽점을 빼거나 추가하거나 위치를 옮겨서 인위적으로 이런 식으로 래스터라이즈되게끔(= 사람 눈에 보기 좋게) 윤곽선을 변조한다.

쉽게 말해 부가 정보를 덧붙인다는 뜻이다. 그래서 명칭도 힌트, 힌팅이다. 이건 100% 자동화를 할 수 없으며 장인의 정교한 수작업이 동원해야만 넣을 수 있다.
Times New Roman 같은 서체를 6~11포인트 크기로 anti-aliasing이 없이 보면 정말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비트맵을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양이 예쁜 걸 볼 수 있는데, 그건 내장 비트맵이 아니라 힌팅만으로 주어진 윤곽선을 변형하여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래스터라이저의 범용적인 알고리즘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결과물이 결코 아니다!

오늘날은 픽셀 자체를 anti-alias하는 기술이 발달하여 예전보다는 힌팅의 필요성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힌팅을 해 주면 윤곽선의 제어점이 래스터라이즈 기준 지점에 더 가까이 옮겨지기 때문에 뿌옇게 찍힐 것이 더 깔끔하고 배경과 글자 사이가 더 높은 채도로 찍히는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다만, 화면의 해상도까지 예전의 도트 프린터 수준으로까지 올라간다면 힌팅은 정말로 할 필요가 없고 그냥 anti-aliasing만으로 충분한 지경이 될 수 있다. 힌팅은 마치 옛날의 256색 팔레트 제어 기술만큼이나 legacy로 전락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글이나 한자처럼 문자 집합의 크기가 커서 일일이 수제 힌팅을 도저히 줄 수 없는 문자는.. 애시당초 크기별로 내장 비트맵을 일일이 만들어 넣는 게 속 편하다. 뭐 요즘은 그 관행도 '맑은 고딕'을 시작으로 서서히 변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3. 아이콘과 아이콘 패밀리

글꼴이 비트맵에서 윤곽선으로 넘어가면서 겪은 변화와 비슷한 맥락의 변화를 겪고 있는 곳이 또 있으니, 그건 바로 아이콘이 아닌가 싶다.

원래 응용 프로그램의 아이콘은 32*32 16컬러 크기만 있었다. 그러던 것이 Windows 95 이래로 16*16이 활발히 쓰이기 시작해서 메뉴나 작업 표시줄 같은 데서 좋은 인상을 주려면 오히려 16*16을 심혈을 기울여 잘 만들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아이콘 하나 때문에 Windows API에는 윈도우 클래스 등록용으로 WNDCLASSEX라는 구조체가 새로 만들어졌고 RegisterClassEx 함수가 도입되었다.

그러다 아이콘의 색깔은 256색 이상으로 늘고, 윈도우 XP에서부터는 트루컬러 정도가 아니라 알파 채널이 들어간 32비트 색상 아이콘이 등장했다. 덕분에 아이콘 하나도 크기가 수만 바이트로 늘고 프로그래머가 대충 발로 만들 수 없는 물건이 되어 버렸다. Visual Studio IDE는 최신 2012버전까지도 32비트 아이콘은 내용을 볼 수만 있지 고칠 수는 없다. 전용 그래픽 에디터가 필요해졌다.

그리고 윈도우 비스타부터는 32*32보다도 더 큰 48*48이 표준 크기로 또 추가되고, 아예 크기가 세 자리 수로 진입한 png 이미지가 아이콘 안에 들어가는 경지가 되었다. 이젠 아이콘 이미지도 예전 관행처럼 압축 없이 저장했다간 크기가 너무 커지기 때문이다.
XP까지만 해도 수만 바이트에 불과하던 간단한 메모장 프로그램이(notepad.exe) 별로 기능이 추가된 것도 없는데 비스타 이후부터 크기가 세 배로 뻥튀기 된 건 전적으로 아이콘 이미지 때문이다.

이렇게 아이콘의 크기가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콘은 역시나 본문 글자만큼이나 16*16의 작은 크기에서도 자신의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 이 점에서 아이콘은 글꼴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단지, 크기뿐만 아니라 색상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요즘은 굳이 16색까지 갖출 필요는 거의 없어졌지만, 프로그램의 한 아이콘은 똑같은 컨셉이더라도 자고로 최소한 256색과 32비트 트루컬러, 그리고 16, 32, 48과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24나 40 같은 그 중간 크기까지 따로따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옛날에 크기별로 비트맵 글꼴을 따로 만들던 거랑 정확히 같은 맥락이니, 그야말로 font family에 착안하여 icon family라는 말을 만들어야 할 판이다.

그리고 작은 크기일 때는 수제 도트 노가다 말고는 정말 답이 없다. 큰 이미지를 무식하게 축소시켰다가는 품질이 그야말로 개판이 되기 때문. 아이콘에 무슨 힌팅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오늘날 아이콘은 점점 벡터 이미지처럼 되고 있는 면모가 있지만, 그렇다고 도트 노가다가 필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니 참 오묘한 존재가 되어 간다는 생각이 든다.

language bar에 표시되는 각종 IME 아이콘들의 경우, 담겨 있는 정보는 단색이더라도 무조건 32비트 알파 채널 이미지로 만들지 않으면 운영체제가 아이콘을 화면에 제대로 표시해 주지를 않는다(Vista 이상 기준). 아이콘 출력을 재래식 GDI가 아니라 GDI+ 같은 다른 계층으로 하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3/03/16 19:31 2013/03/16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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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철현 2013/03/18 18:58 # M/D Reply Permalink

    스위시 프로그램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 ...
    서체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습니다. ^^

    1. 사무엘 2013/03/22 15:33 # M/D Permalink

      음, 스위시가 뭔지 몰라서...;; 검색해 보니, 플래시 파일을 만드는 저작도구인가 보군요.

  2. 박철현 2013/03/23 00:37 # M/D Reply Permalink

    스위시 프로그램은 글자 애니메이션 전문 프로그램으로 활용이 될 수 있습니다.
    한글, 영어 ,,, 영어 단어 또는 영어 문장을 집어 넣고
    이미 들어 있는 효과만 적용해 주면
    글자 또는 문장의 애니메이션이 자동으로 될 수 있도록 해줍니다.
    플래시 프로그램의 효과를 아주 간단히 만들 수 있습니다.
    ^^ swf 파일을 만들어 낼 수 있습녀다.
    또한 음성 또는 사운드도 같이 넣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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