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북아시아의 반도 자리에 위치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비록 분단과 전쟁 폐허라는 최악의 조건에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1) 북괴의 물리적인 군사 위협과 (2) X꾸녕 찢어지던 가난 이 두 가지는 넘치도록 극복하고 승리했다. 하지만 그 원초적인 목표를 달성한 뒤의 후속 모델을 제대로 개발하지 못했다.

건전한 국가관과 정체성을 후세에 전해 주지 못하고 말 같지도 않은, 진짜 지랄맞은, X같은 민주화만 빨아대다가 사상, 이념, 정체성 전쟁에서 적에게 완벽하게 패배해 버렸다. 자국 기업이나 군대보다도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노리는 적이 더 좋다고 칭송할 정도로 정신 세계가 가히.. 통일뽕 망국 마약에 집단으로 중독되기라도 했는지 송두리째 타락했다.

입만 열었다 하면 맨날 빈부격차 헬조선 헬조선 그러던 녀석들이 "이야 북한 주민들도 자가용 굴리고 스마트폰 쓰고 할 거 다 하네? 많이 변했네" 이 따위 말을 뚫린 입이라고 씨부리는 걸 보면, 정말 지능과 양심이 개 돼지 수준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북한 주민이 자가용과 스마트폰을 갖고 있을 정도이면 그럼 남조선 주민들은 전부 포르쉐 람보르기니 벤츠S 굴리고, 서울 강남에 80평짜리 아파트 갖고 있겠다.

일본 싫어하는 건 자유이지만, 일본 욕하는 잣대와 북괴 욕하는 잣대가 동일하지 않은 새X는 완전 밥맛이다. 내 앞에서 얼씬도 안 했으면 좋겠다.
삼성이고 최 순실이고 이명밝근혜고 뭐고 싫어하는 건 자유이지만,
걔네들의 대안이 북괴이고 통일(무슨 통일?)이고 김 정은이다? 이런 개새X는 내가 인간 취급을 하고 싶지 않다.

진짜 이러다가 TV에서 "인간 김 정은 -- 자애롭고 매너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 땡전뉴스 시즌 2가 벌어질 것 같다.
전대갈 할배, 당신은 언론을 어설프게 장악했었지, 할려면 이렇게 제대로 하지 못한 게 치명적인 실수와 과오로 남을 것이다.

난 좌향좌는 근본적으로 삐딱한 잣대와 반골기질, 남 탓 불평 불만 피해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극도로 혐오스럽다. 저건 특히 예수쟁이 기독인들이 절대로 가져서는 안 될 태도라고 생각한다. 작은 악, 필요악에는 완전 바락바락 대들고 달려들면서 더 큰 악, 절대악에는 무한 관대한 것이 그들의 습성이다.

고런 돼먹지 못한, 마귀적인, 저주받은 심보를 공산주의자 빨갱이들은 아주 교묘하게 잘 이용한다. 특별히 한반도 남부에 서식하는 놈들을 '종북'이라고 부르지.. 주둥이로만, 아가리는 자기도 김돼지 싫어한다지만, 실제로는 김돼지가 정확하게 원하는 대로 여론을 형성하고 행동해 주는 입진보 좀비들이 이렇게 한 트럭씩 양산된다.
오늘날은 공산주의 사상이 문제가 아니라 공산주의자들의 수법이 사악하고 비열하고 위험한 것이다.

반도가 지금 같은 속도로 좌경화와 적화가 계속되고 딱히 기적적인 이변--북폭 내지 쿠데타, 현 청와대 수장에 대한 탄핵/급사/암살 같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정말 극단적인 기적이나 기도 응답, 전국민의 회심이 없는 한 최악의 상황은 어느 정도 예고된 수순이다.

맨날 적화통일 적화통일 그러는데.. 그럼 이 나라가 좌좀 좌빨들이 원하는 대로 몽땅 이뤄지면 한반도에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오늘은 이 점에 대해서, 가능한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미국이 남조선 수장의 못 말리는 북괴 사랑에 질린 나머지, 결국은 남한을 포기해 버린다. 미군이 몽땅 철수한다. 그럼 북남 고려 연방제 통일 선언과 동시에 옳다구나 하면서.. 남한도 곳곳마다 1946년 당시의 북한 내부처럼 인민 위원회가 설치될까?
북괴 공산군이 전국을 통제하고 장악할까? 몰래 몰래 뚫려 있던 땅굴을 통해 북한군이 옳다구나 우르르 쏟아져 나올까? 6· 25 전쟁 중에 북괴에 점령당했던 동네처럼 인민재판 숙청과 공산화 사상 교육이 시행될까? 베트남 보트피플과 캄보디아 킬링필드 시즌 2가 벌어질까?

나라 걱정하는 애국 보수들 중에서 북괴의 물리적인 대남 공작 능력을 굉장히 무서워하는 분들이 있다. 뭐, 북괴가 워낙 폐쇄적인 나라이고 안에서 정확하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본인은 그럴 가능성이 아예 0이라고 단언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본인 생각에 그건 확률이 낮으며, 적화통일이 되자마자 예측 가능한 단기간에 일어날 일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무슨 1950년대와 "같은" 급의 유혈 사태가 당장 벌어질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첫째로, 새끼돼지가 설마 그 정도로 자기 정체를 금방 드러내고서 장렬하게 자폭할 정도로 머리가 나쁘지는 않으리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북괴는 다른 건 몰라도 자기 체제 명줄을 가늘고 길게 유지하는 노하우와 잔머리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갖췄다.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왕조가 무너지고 구소련이 붕괴하는 등,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나라들이 몰락하는 걸 보면서 자기는 절~~대로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고 결의를 했다. 그러니 9·11 테러가 터져서 미국이 최고조로 빡쳤던 시절에는 천하의 반미 집단인 북괴조차도 미국을 편들면서 테러리스트들을 비판했었다.

쟤들은 과거의 일제나 나치 독일, 지금의 ISIL처럼 세계를 정복하겠답시고 강대국 연합국 앞에서 개기다가 장렬하게 자폭하는 짓 따위는 안 한다. 제일 만만한 바로 아래의 남조선 하나만 적화시키고 자기 체제를 영원무궁토록 보장받는 것 하나만으로 족하다. 다른 욕심은 '결코' 부리지 않는다.

더구나 핵 같은 걸 실제로 터뜨릴 가능성 역시 0에 한없이 수렴한다. 그걸 터뜨리는 건 미국으로 하여금 북폭 명분을 제공하는 짓이고, 돼지 도살 문서에 싸인을 하는 짓인데 북괴도 그 정도 분별력은 있다. 핵은 전적으로 남조선의 종북 세력들을 위시한 협박용일 뿐이다.

둘째, 옛날 같은 고전적인 혁명과 유혈 사태는 우리나라의 군사력 경제력이 훨씬 낙후하고 열악해서 북괴의 입장에서 별로 뽕 뽑을 게 없고, 국민 대다수가 그냥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다 반공 정신 투철하고 북괴에 항거하려는(= 자유를 지키려는) 의지가 있을 때...
한 마디로 말해 엄청 옛날에나 필요했고 통하는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더구나 자기 나라보다 2배 가까이 더 많은 남조선 사람을, 넘사벽 급의 경제적 풍요와 민주 인권, 자유라는 걸 이미 경험해 버린 사람들을 놈들이 그딴 식으로 무식하게 통제할 수는 없다. 북괴는 통상적인 잣대로 남한보다 강하고 잘 사는 나라도 애초에 절대 아니다. 그럼 북괴는 남한에 대해서 장기적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3.
북괴는 정말 남한을 집어먹고 싶다면 자기부터 정상적인 경제력, 군사력을 키우고 국민 내지 주민을 잘 먹이고 건전하게 강하게 키우고 일본 같은 강대국 강소국이 되면 됐다. 정상적인 강국에 합병되는 것은 애초에 적화통일처럼 걱정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북괴는 처음엔 공산주의의 비효율성과 통치자 우상화 뻘짓 때문에 자연스럽게 국력을 말아먹고 몰락했으며, 1970년대 이후부터는 남한에 추월 당했다(그 밑의 인민들은 그 동안 자유가 없고 개인의 개성이 일체 허용되지 않는 생지옥 속에서 얼마나 피똥 싸는 고생을 해야 했을까!). 그나마 좀 정상적인 공산주의 지도자가 북한을 다스리고 있었다면 걔네들 역시 1990년대에 개방하든지 무너지든지 해서 이웃의 중국이나 소련과 비슷한 처지로 탈바꿈이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북괴는 이제 와서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체제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가 없었다. 그건 지구의 자전이 하루아침에 끼익 멈추거나, 거대한 강철 코일을 싣고 폭주하던 트레일러가 급정거하는 것에 맞먹는 짓이다.
그러니 그들은 그 지경에서도 김돼지 체제만을 유지하고 주민은 더욱 옥죄고 바보 병신 노예를 만드는 외곬만을 고집했다. 시퍼렇게 자기보다 훨씬 잘 사는 남한의 존재가 북괴 수뇌부의 입장에서는 정말 눈엣가시 그 자체였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대남적화를 절대로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남한의 하드웨어를 이길 수 없으면 소프트웨어부터 병신으로 만드는 공작을 시작했다.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다들 보는 바와 같다. 우리민족끼리 통일뽕 거짓 평화 공세와 함께 온갖 역사왜곡과 정체성 부정, 자국 비하들.. 그리고 이제 승산이 없는 재래식 군대 대신에 핵과 미사일과 잠수함에 목숨을 걸기 시작했다. 뭐, 어차피 남한이 먼저 쳐들어올 일은 절~대 없으니 재래식 병력은 사실 신경 꺼도 된다.

이런 전략이 대성공을 거둔 덕분에 미개한 남조선 인민들은 자국의 존재를 전혀 감사하지 않고, 반대로 북괴를 적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게 됐다. 북괴의 과거 도발을 언급하고 북괴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행동은 그냥 닥치고 안보 장사꾼, 반민족 반통일  수구꼴통 적폐 세력, 일베충, 홍갱이 정신병자들의 발악 정도로 치부되게 됐다.
5~6년 전에 북 내부에서 얼굴 표적지 그려 놓고 총 갈기는 대상이던 남측 주요 인사들은.. 이제 남측에서 이미 알아서 전부 잡아들여서 구속시켜 놨다. 전직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김 관진 전 국방부 장관까지도. 이 얼마나 기특하냐?

북괴의 입장에서 자기 체제의 존속에 매우 위협이 되던 남조선이 자발적으로 자기 밑으로 기어들어왔다. 남조선 인민들 대다수가 오로지 통일 한 마디에 뿅 반해서 돼지새끼가 좋아서 미칠 지경이다. 그럼 북의 입장에서 봐도 남조선 애들을 예전 같은 정도로 살인적인 폭압과 통제로 기선제압을 할 필요 없으며, 우상화 선군정치를 할 필요가 없다. 최소한 지금 당장은 말이다.

제아무리 남북 교류 협력을 한다고 해서 깡촌에서 노예로 사는 북한 흙수저 주민들에게 바깥 소식이나 물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일은 없다. 애초에 지금 남과 북이 왕래하지 못하는 이유가 남한은 간첩 이적질을 막기 위해서이고 북측은 바깥 소식과 진실이 주민들 귀에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인데 그런 일이 성사될 리가 없다.

그 대신 북괴는 아주 가늘고 길게 지속적으로 남한의 부와 경제력을 세금이니, 통일 대비니 하는 명목으로 계속해서 삥뜯을 것이고 그 강도는 갈수록 더해질 것이다. 생업 현장에서 연구과 개발, 설계란 걸 안 해 보고 시위 데모질과 파괴밖에 안 해 본 빨갱이들이 머리는 좋은 덕분에 사회 각지의 요직을 차지하면서 사회 시스템을 다 말아먹고, 그 과정에서 남한의 품격과 국가 경쟁력은 곤두박질치고, 갈수록 물가 오르고 일자리 없어지고 서민들이 살기 어려워지고, 옛날만치 수입 외제 물품을 펑펑 못 쓰고..

쉽게 말해 지금은 그냥 남한만 차근차근 "경제" 무장 해제당하는 단계다. 제일 먼저 "사상" 무장은 이미 진작에 다 해제돼서 흔적도 안 남았고.
핵 만들었던 비용, 이미 다 만든 뒤에 시설 해체하는 비용, 핵 포기하는 대신에 받는 보상과 지원.. 전~부 다 우리 국고에서 나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을 제일 큰 두려움에 빠뜨리고 걔들이 지금 같은 구제불능 우상화 독재 폐쇄 꼴통으로 전락한 주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미국을 등에 업고 넘사벽급으로 잘살게 된 남한의 존재 그 자체였다.
그러니 남한을 일단 그리스 베네수엘라처럼 만들어 놓고, 미국까지 손 떼게 만든 뒤에야 북괴의 입장에서는 더 다루기 쉬울 것이고, 그 뒤에야 더 강한 다음 적화 플랜이 나올 것이다.

북괴의 핵무기나 땅굴이나 무슨 선전용 차력쑈에 나오는 인간 흉기(?) 공작원 따위가 아니라, 바로 저렇게 야금야금 나라 말아먹는 일련의 삥뜯기 짓거리야말로 우리가 지금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적화 징조이다. 성경의 창세기 끝부분에 나오는 파라오의 꿈을 생각해 보시라. 이것이 북괴와의 불의한 연합이 야기할 미래의 우리 모습이 될 것이다.

"... 빈약하고 심히 못생기고 야윈 다른 암소(북괴) 일곱 마리가 올라왔는데 그같이 나쁜 것들은 이집트 온 땅에서 내가 결코 보지 못하였노라.
그 야위고 못생긴 암소들이 처음의 살진 암소(남한) 일곱 마리를 먹었으며 그것들이 그것들을 먹었으나 그것들을 먹었는지 알 수 없었고 그것들이 여전히 처음과 같이 못생겼더라." (창 41:19-21)


통일은 짧고 굵게 잠시 희생을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쳐들어가서 북진멸공 통일을 할 게 아니라면, 그냥 완전히 가만히 있고 북괴에 어떤 지원도 하지 않고, 도발과 헛짓도 절대 못 하게 꽉 조여매서 견디다 못해 스스로 개방하거나 붕괴하게만 만드는 게 우리에게 최소 비용 최대 효과인 방법이다. 그것 말고 다른 수작들은 전부 불순 사악한 바보짓 삽질 뻘짓이다.

제정신 박힌 북진 멸공 통일을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북한 지역 회복 뒷수습 통일 비용 때문에 경제가 왕창 휘청거리고 전국민이 부담 떠안고 대대로 허리띠 졸라맬 각오를 해야 된다.
그런데 하물며 북괴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는 통일을 하면 국부 등골 브레이킹이 이거 뭐.. 추정 불가다.

4.
빨갱이들이 접수한 남한은 이제..

(1) 미국· 일본과의 동맹은 완전히 안드로메다로 갈 것이다.

(2) 대기업들의 부정부패 비리 갑질이 없는 대신, 공무원 관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부정부패 비리 갑질이 시작될 것이며, 기업이 제공하던 국제 경쟁력과 국부도 함께 영원히 빠이빠이.
삼성이고 현대고 다 못 버티고 망하거나 외국으로 뜨고, 경제가 몰락하여 베트남처럼 될 것이고 심하면 그리스나 베네수엘라처럼 파산할 수 있다.

(3) 정치는 중국 같은 정도의 사회주의 1당 독재 체제로 바뀔 것이다. 지금까지 나라를 뒤흔들 정도로 악성 유언비어들을 실어나르면서 오남용과 악용의 막장 극치를 달리던 포털 댓글 같은 표현의 자유는.. 이제 적화 완료와 함께 토사구팽 용도폐기된다.

(4) 교회도 신자들을 몽땅 수용소로 쳐넣을 필요조차 없이 생명력을 잃은 상태이니.. 단기적으로는 그냥 혼자 조용히만 다니지 거리설교는 금지를 먹이는 선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어떤 형태로든 예전 같은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어지는 건 변함없다.

부동산 같은 건 누구 말마따나 전면 국유화될 것이며, 이때의 독재와 사상 통제에 비하면 197, 80년대의 군사정권 독재는.. 정말 애들 장난도 아니어 보일 것이다. 사실, 지금의 중국만 해도 우리나라의 군사 독재 시절보다 억압과 통제가 더 심한 건데 여기에 대해서는 군사 정권 욕해대는 친중 종북 패거리들이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사에서 태극기라든가 대한민국의 역사는 부정적인 면만 존나 부각되면서 철저히 부정되고 지워지고 잊혀질 것이다. 1948년에 잠깐 임시정부의 후예를 사칭하면서 세워지긴 했지만 부패한 친일파와 미 제국주의자의 결탁으로 말미암아 뿌리부터 글러 쳐먹은 괴뢰 정권일 뿐이었다.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통일 전쟁이 벌어졌지만, 쳐죽일 미 제국주의자 학살자들 때문에 통일 시도가 안타깝게 좌절됐다고 가르쳐질 것이다.

경제력 덕분에 좀 더 오래 존속하긴 했지만 끝내는 민중 촛불 혁명의 힘으로 수뇌부가 끌어내려졌으며, 만들어진 지 70여 년 만에 결국은 위대한 우리민족 백두혈통 조선에 흡수 합병되어 사라졌다고 반면교사로 가르쳐질 것이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냐고? 지금도 이미 이렇게 가르치는 미친놈들이 쌔고 넘치는걸? 이런 놈들을 아무도 강단에서 끌어내리지도, 잡아 가두지도 못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정황을 종합했을 때, 적화통일 이후에 당장 심각한 유혈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미래는 최대한 잘 돼 봤자 중국, 베트남, 필리핀, 그리스, 베네수엘라로 귀착된다. 20세기 후반에 반짝 빛났던 남한의 리즈 시절 같은 건 아련한 추억이 될 것이다.

그러다가 자기를 보호하던 모든 것들을 잃고, 머리털 밀리고 눈알 뽑힌 삼손 신세처럼 되고, 쫄쫄 굶으면서 그저 오늘 내일 생존을 위해 급급하는 노예가 된 뒤에야 일부 시민들이 뒤늦게 현실을 깨달을 무렵에는.. 그때에야 본격적으로 일제 말기 때처럼 신사 참배, 아니 돼지 참배 강요와 강제 수용소 로동교화 등등이 시작될 것이다.
김 정은에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성경의 교리와 예언의 관점에서 봤을 때 적그리스도를 맞이하고 환호하는 대환란기 유대인의 모습과 판에 박은 듯이 비슷하다. 내가 보기엔 말이다.

이제 평양으로 수학여행 떠나고 시베리아까지 열차 타고 갈 날만 남았네요 ^_^
지금 서민들 살기 어려운 건 그냥 이명밝근혜가 싸질러 놓은 똥 때문인 거고.


논리 회로가 이렇게 형성된 저능아 빠가들이 한둘이 아니니, 뭐.. 이제 브레이크 고장난 열차가 열나게 폭주하다가 절벽 아래로 운지하는 일만 남았다. 난 정말 통일의 통 짜만 나와도 이제 진절머리가 나고 울화가 치민다.

국군이 평양 시내에 진출하여 태극기 꽂고 김돼지 부자를 생포하거나 혹은 자살한 시신을 수습하는 통일은.. 정말 0.01% 이내의 기적이 없는 한 실현 가능성이 없어졌다.
2차 세계대전 연합군이 직접 나치 수용소를 점령해서 수용자들을 구출하듯이, 국군과 북한 내부 저항 세력이 같이 정치범 수용소의 문을 따고 들어가 수감자들을 구출하는 시나리오도 현재로서는 가망이 0에 한없이 수렴하게 됐다.

쪽박 신세로 일회용 정치쑈 명목으로 평양 수학여행이나 쳐 떠나는 게 평화인지,
가끔 사고 터지고 무력 도발도 벌어지지만 남쪽에서라도 기업이 잘 돌아가고 고용이 안정되고 넘사벽급의 의료 위생, 외국 문물들 누리면서 살던 게 평화인지는 앞으로 그리 멀지 않아 뼈저리게 알게 될 것이다.

북괴의 대남적화 음모를 안 믿는 사람이 무슨 놈의 프리메이슨, 예수회, NASA, 백신 회사 음모 따위를 믿는지.. 나로서는 그저 코웃음을 칠 뿐이다.
부디 민족적인 회개와 함께 6·25 낙동강 전투와 인천 상륙 작전 시절과 같은 제2의 기적이 있기만을 바래 본다.

Posted by 사무엘

2018/07/24 08:35 2018/07/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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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 중근 의사의 아들의 변절

일제 시대 얘기부터 먼저 꺼내도록 하겠다.
안 중근 의사는 주변의 일본인들까지 감화시킨 영웅이요 위인으로 칭송받는 반면, 그의 아들 (중 하나) 안 준생은 일제로부터 불령선인 차별 대우와 감시, 극심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훗날 '변절'했다. 그래서 1939년엔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을 찾아가서 자기 부친의 죄(?)를 '사죄'까지 해서 한 자리 얻었다.
그 정도로 오글거리는 변절까지는 아니었다는 반론도 있지만, 아직은 기록을 통해 정식으로 입증되지 못한 소수설이다.

옛날엔 마라토너 손 기정조차도 금메달 따고 나서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저 건너편의 일장기를 보면서 힘을 냈습니다" 이런 말을 외압에 의해 억지로 해야 했다. 그리고 청취자들은 당연히 "저런 개소리는 일제의 프로파간다일 뿐, 당사자가 진심으로 한 말이 절대 아니지"라고 그러려니 하고 보정을 하며 들었다.

또한, 윤 봉길 의사가 폭탄 의거를 벌였을 때, 동아일보 등 당시의 국내 언론들은 이를 비판하는 보도를 보냈다는 걸 기억하기 바란다. 그건 그 신문사들이 악질 친일매국 언론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땐 형식적으로라도 그렇게 해야만 조선 총독부의 검열을 통과하고 신문이 출간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손 기정 일장기 삭제 같은 사건이야말로 아주 예외적이고 특이한 돌발 이벤트일 뿐이었다. 그런 반항이 매일같이 벌어지고 걸렸다간 아무리 문화 통치 시기라고 해도 조선인이 경영하는 언론 같은 건 남아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외압에 의해 어쩔 수 없는 면모까지 "감안"하더라도 안 준생의 변절은 명백히 도를 넘었고 자발적인 면모가 있었다.

이 사실을 접하고 빡친 백범 김 구는.. 배운 것, 할 줄 아는 게 테러· 암살밖에 없다 보니 역시나 저 호부견자를 암살하라고 사주를 했다. 심지어 중국 정부를 상대로도 요청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옛날에(1922) 자기에게 밉보이고 공금 횡령 의혹이 있던 독립 운동가 김 립을 자객을 보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렸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의혹은 입증된 게 없으며, 이건 그냥 치하포 사건 같은 김 구의 흑역사로 쉬쉬되는 중)

제아무리 안 중근이 위인이면 뭐하나? 그 사람은 1910년에 죽었지만 안 준생은 1907년생. 철 들고 보니 조선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고 이미 일제 식민지가 돼 있었으며, 얼굴을 직접 본 기억도 없는 죽은 친부 때문에 당장 얼마나 고생하면서 지내는데?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 심정이 이해가 된다.

윤 봉길 의사는 자기 아들이 저렇게 되지 말라고.. 폭탄 던지러 가기 전에 유언장을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라는 제목으로 써 놓은 것이지 싶다. 물론 훙커우 공원 폭탄 의거는 안 준생의 공개적인 변절보다 훨씬 전에 일어난 일이긴 하다만 말이다.

2. 임시정부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 이런 문구를 읽어보면 정말 비장함이 느껴진다.
의열단, 임시정부.. 이런 곳에 소속된 항일 무장 투쟁 독립투사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난 오늘만 산다" 같은 심정으로 평소에 옷을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잘 놀면서(?) 지냈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건 영화에서나 비쳐지는 멋있는 모습일 뿐, 사람 사는 곳에는 어디든 보급과 돈줄이 필요하며, 이를 담당할 행정과 정치가 필요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시 절대로 마냥 깨끗하고 깔끔하게만 돌아가지 않았다. 정치질과 파벌 싸움, 삽질과 병크가 만만찮았다. 임시정부 시절에는 독립 운동가들의 사상조차 제대로 통합이 안 돼 있었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팀웍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임시정부 요원들이 무능한 사람, 백해무익 나쁜놈이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냥 인간적인 한계에다가 평균 이상의 민족주의 애국심만 가미된 사람들이었다는 뜻이다. 너무 완전무결 거룩하고 성스러워서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할 빌미가 될 정도로 환상의 영역에 있을 정도는 절대 아니라는 뜻이다.

오죽했으면, 신흥 무관 학교 세우고 가산을 몽땅 탕진하면서 독립운동 한 이 회영 육형제 같은 엄청난 사람이 행적에 비해 별 주목을 못 받은 이유도.. 임시정부와 협력하지 않고 아나키즘 성향의(그렇다고 사회 공산주의 빨갱이 성향도 아니고) 노선을 갔기 때문이다. 당연히 지저분한 추태에 학을 뗐기 때문에 저렇게 된 것이다.

3. 진짜 임시정부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 듯

그리고.. 어떤 사람들 논리대로 그렇게도 김 구가 좋고, 임시정부 광복군만 죽어라고 빨아대고 싶으면 하다못해 임시정부를 직접적으로 도와줬던 장 제스를 치켜세워야지? 대륙이 아니라 대만이랑 친하게 지내자고 굽신거려야 하지 않는가?

마오 쩌둥은 6· 25 때 자유 통일을 저지한 원흉일 뿐이다. 걔가 일제 시대 때 임시정부를 도와 주고 우리나라 독립에 기여한 게 도대체 뭐가 있냐?
뭐 굳이 잘한 거, 우리 입장에서 일말의 고마운 게 있다면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 등으로 뻘짓 열심히 한 덕분에 어부지리로 한국이 경제 개발하고 세계에 물건 수출할 기회를 줬다는 것 정도?

걔네들의 역사관 잣대로 보더라도 좌좀은 일관성이 맞는 게 없다.
특히 희대의 병신짓으로 인민을 그렇게도 많이 굶겨 죽인 지도자를 아랑곳하지 않고 치켜세우고 있는 주제에, 뭐 보도연맹이니 국민방위군 씨부리는 거 정말 가증스럽다.

올림픽을 계기로 남과 북이 진짜 화해를 하고 싶다고?
평창까지 온 김에 북한 관계자들이 이 승복 기념관부터나 찾아갔어야지.

통일을 하고 싶다고?
그 전에 개방부터나 조금씩 하고 검열 없는 편지 왕래, 전화, 여행부터나 허용해야지.

이 개돼지들이 일제 위안부나 강제 징용 문제에 바득바득 매달리는 것의 절반이나 1/10만치라도 북한과 중국에다가도 요구하고 과거사 청산하자고 화해하자고 사람들이 일관성을 보였다면,
지금 우리나라가 이념적으로 이렇게 위험해지고 반목 갈등할 일이 없을 것이고
성장과 분배라든가 순수하게 진짜로 좌우 균형이 필요한 분야만 여당 야당이 견제 주고받으며 정치를 하고, 평범한 부정부패 비리 척결만 하면 됐을 것이다.

4. 일제의 전격 항복은 우리 입장에서도 다행이었음

1945년 8월, 일제가 원폭을 맞고 덴노가 부랴부랴 나서서 무조건 항복했다. 이로써 태평양 전쟁과 제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됐다.
전쟁이 일찍 끝난 덕분에 일단 가장 먼저 미군· 연합군의 희생을 줄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일제가 계획하고 있었던 정신나간 전국민 옥쇄 결사항전, 그리고 "죽어도 같이 죽자" 식으로 재일 동포 내지 투옥돼 있던 조선 애국지사 독립운동가들 몽땅 학살 같은 끔찍한 발악 계획도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여러 번 언급했었지만 외솔 최 현배 박사만 해도 자기가 1945년 8월 18일에 총살 예정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또한, 조선어 학회 사건 당시에 압수 당해서 서울 역 창고에 처박혀 있던 '큰사전' 원고도 정말 기적적으로 되찾을 수 있었다.
일제가 더 오래 버텼고 자기가 저지른 악행의 증거를 은폐 말살할 시간이 충분했다면 저 원고도 과연 무사할 수 있었을까?

허겁지겁 도망가기에 바빴으니까 일제에 의한 최후의 조선인 민간인 학살 사건도 우키시마 호 폭침 의혹 정도로 그쳤지.. 전쟁이 더 오래 갔으면 한반도 본토까지 무슨 꼴 났을지 알 수 없다.

이 와중에 "우리 대한 광복군이 선전포고도 하고 태평양 전쟁에 참전해서 일본군 몽땅 몰아내고 독립을 되찾을 수 있었는데 미국놈들이 원폭을 터뜨려서 조선이 전승국이 될 기회를 뺏어 버렸다는!!" 이건.;;
그냥 "한국어가 너무 복잡미묘 오묘해서 영어로 번역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노벨 문학상을 못 받는다"와 동급이라고 생각하자. =_=;;;; 완전 망상일 뿐이다.

그 시절에 우리 민족이 객관적으로 도대체 뭐가 잘났고 무슨 능력이 있었던가? 1910년대에 러시아 식민지가 되지 않고 일제 식민지가 된 거, 그리고 1940년대에 몽땅 소련 공산주의 위성국이 되지 않고 반반이라도 나뉜 것을 일말의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북괴도 자기 체제의 존속이 위협받는 날이 온다면, 북한 주민이건 남한 국민이건 누구든지 인질로 잡고서, 과거의 일제와 정확하게 동일한 방식으로 최후의 발악을 할 거라는 점을 우리는 분명히 염두에 둬야 한다. 평양이 폭격을 받기 전에 일단 수용소에 있는 죄수들부터 몽땅 학살당할 것이다. 그리고 인질이 많아질수록 북괴 체제의 존속에 더 유리해질 것이다.

5. 오로지 통일만 외치지만, 무슨 통일인지는 절대 얘기 안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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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8~9월 사이..
우리나라가 저기(+울릉도, 제주도 정도?) 빼고 몽땅 북괴에게 점령당했던 적이 있었다.
북괴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 500km를 잡고, 매일 10km씩 진군하면 거의 50일 뒤인 8월 15일이라는 뜻깊은(?) 날짜에 맞춰서 적화통일 혁명 과업을 완수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래서 전쟁을 벌이기에는 너무 덥고 장마철까지 낀 시기에 무리하게 전쟁을 벌였다.

놈의 흉계는 비록 다행히 이뤄지지 않았지만, 1950년 8월 15일은 6· 25 사변 전체를 통틀어 남한이 영토를 제일 많이 빼앗겼고(낙동강 마지노 선!!) 제일 위험에 빠졌던 때였다. 상황 돌파를 위해 인천 상륙 작전 같은 특단의 조치가 괜히 필요했던 게 아니었다.

허나, 이 그림을 보고 "저때 통일이 됐어야 하는데 미군이 훼방 놓는 바람에..." 라고 생각하거나 돌려 말하는 놈들이 있다.
아니면, 분위기상 차마 저렇게 대놓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개새끼들이 그 대신 맨날 씨부리는 말이 국군이 못한 거, 이 승만 정부가 시행착오 저지르고 허둥대다 대처 잘못한 거, 미군이 민간인을 오인해서 죽인 것들이다.

이 승만 욕을 억만 번쯤 하면 김 일성이 착한 군자로 바뀔까? 병신 빠가사리 같으니라고. 그냥, 원숭이가 억만 년쯤 새끼를 계속 치다 보면 후손들의 유전자가 바뀌어서 사람으로 스스로 진화할 거라고 믿어라.
북괴가 죽인 민간인은 국군· 미군이 죽인 민간인 수에서 0이 한두 개쯤 더 붙을 텐데..

일단 일이 터져 버렸을 때 정부가 너무 허둥대고 대처를 잘못한 게 있긴 했다. 하지만 이 승만은 예방에 일가견이 있었다. 처음부터 강경책을 견지하면서 "북괴는 반드시 전쟁을 벌일 것이기 때문에 미국도 안일하게 군대 철수하지 말고 우리 군에게 지원 더 해 줘야 된다" 이런 고집스러운 말을 미국이 듣고 이행했으면 전쟁이 애초에 안 나거나 피해를 더욱 최소화할 수도 있었다. 이건 왜 계산에 넣지 않는가?

그리고 결정타가 하나 더 있다.
임시정부를 그렇게도 좋아하는 좌빨들의 논리대로라면 대한민국 건국은 1919년이라면서?
(글쎄, 이스라엘에서도 1948년이 건국이 아니라 밸포어 선언이 발표된 1917년이라든가, 시온주의자들이 처음으로 나라 세우자고 결의했을 때를 건국일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다만..)

1940년대에는 정부가 국민을 못 지켜 준 정도를 넘어서 자국민이 일본놈들한테 왕창 착취당하고 남의 전쟁에 강제 징집되고 성노예로 끌려갔었다. 그럼 그에 대해서는 무려 '건국'까지 해 놓으신 우리 정부는 책임이 없냐? 한강다리나 보도연맹보다는 훨씬 더 많이 욕해야 할 사항 같은걸?

6. 통일 반대 외세 배후설?

그리고 통일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와 관련하여 먼 옛날에 본인도 순진하던 시절에는 진지하게 믿었다가 이제 다시 생각해 보니 굉장히 말이 안 되고 황당하게 들리는 괴담이 하나 있다.
바로, 일본이 한국의 남북 통일을 바라지 않고 훼방 놓고 이간질 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통일이란, 완전 개방이나 흡수, 멸공 같은 올바른 방식의 통일을 말한다. 연방제나 적화 따위가 아니므로 오해 말 것)

응? 도대체.. 왜?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라면 그건 말이 된다.
친미 성향의 자유 진영 국가가 압록강 두만강 코앞까지 세력을 확장하는 건 중국의 입장에서는 고까운 일이다.
그래서 걔들은 북괴 자체는 하나도 예쁠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알음알음 지원해 주고 탈북자를 잡아서 북송도 시켜 주고 북괴 체제 존속을 지금 이 순간에도 도와주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지리적으로 위험해질 것 없다.
남북이 합쳐져서 자신을 위협하는 강국이 될까봐 통일을 싫어한다는 논리인데.. 꿈 깨라. 그럴 일은 단언하건대 없다.

최대한 바람직한 방식으로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통일을 하더라도 통일 한국은 전후 피해 복구와 비슷한 상황이 된다. 무슨 경쟁력 있는 기업간의 합병 같은 게 절대 아니다.
이상한 데 세뇌되고 자본주의 경제관 없고 영양실조에 마약 중독까지 돼 있는 다수의 북한 주민들의 생산성이 도대체 얼마가 될 거라고 보는가? 북괴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싸질러 놓은 똥을 만만하게 봤다간 큰코다친다.

통일은 동족 동포인 거기 주민들에게 자유와 인간다운 삶을 선사하기 위해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하는 거지, 경제 논리 관점에서는 예측 가능한 가까운 미래엔 득 될 것 없다. 상당한 수준의 세금 폭등과 경제력 하락을 감수해야 된다.
일본이 남의 나라의 통일에 배 놔라 감 놔라 할 처지는 아닐 뿐만 아니라 통일은 일본의 국가 경쟁력에 하등 위협이 되지 않는다.

하물며 연방제나 적화 통일은 경쟁국 남한이 완전히 쫄딱 망하고 거지 되는 통일인데..
그놈의 "철천지원수 일본"의 입장에서 마다할 이유가 천지에 무엇이 있겠나? 뇌와 양심이 있으면 생각을 해 봐라!

우리나라가 친일 청산을 못 해서 이 꼴이라는 개소리만큼이나, "통일 반대 외세 배후설"도 알고 보면 정말 지능이 의심되는 수준의 아무말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제2 연평해전이나 천안함 폭침 배후에 일본 미국이 있겠다 그럼? 그 나라들은 사람 마인드 컨트롤이 가능한 신이구만.

사실, 이런 거 저런 거 따지면 통일은 반도에 영어 공용화가 불가능한 것만큼이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다고 공산주의자들이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속이는 대상이 보통은 지상락원 "능력껏 벌어서 필요껏 쓰는 세상" 같은 경제 분야인데, 이 미개한 반도 땅에서는 적화통일도 그런 지상락원 통일로 위장되어서 프로파간다가 추가돼 있다.

하이튼 좌좀 종북좌빨은 말이 필요없고 산업화가 안 되면 내전 불사하고라도 쓸어버려야 된다. 그놈들과 이 나라가 같이 사이 좋게 공존 발전할 수가 없다. 배의 노를 젓는 사람과 배에 몰래 구멍을 뚫는 놈, 배의 벽면을 몰래 뜯어서 자기 보트를 만드는 놈들이 한 배를 같이 탈 수는 없다.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반역을 정당화해 주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꾸고, 절대악을 놔두고 필요악만 정죄하고, 사람 취급을 해서는 안 되는 놈들을 너무 관대하게 취급한 바람에 이제 나라가 근간이 위태로운 지경이 됐다.
그 어떤 민주 인권 정부라도 마약사범과 빨갱이는 함정 수사, 유죄 추정 등 더욱 악랄한 필요악 방법을 동원해서 잡아낸다. 그렇게 안 하면 사회 체제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옛날 역사 용어들은 북괴를 어떻게든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 한편으로 놈들의 본질과 정체를 드러내기 위해서 용어를 아주 세심하게 잘 만든 편이다. '북한 공산 괴뢰 집단'처럼 말이다.
4· 3과 광주는 '사태'이며, 4· 19는 의거이다. 5· 16은 혁명이고 6· 25는 사변이다. 본인은 옛날 용어를 지지한다. 왜 고리타분한 옛날이냐고? 북괴가 참 고리타분하게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본질이 바뀐 게 전무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7/09 08:31 2018/07/0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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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의 모든 것

* 예전에 썼던 글 두 편을 종합하고 내용을 보충하여 재정리했다.

경의선 철도는... 경원선과 더불어 서울과 경기도 북부를 잇는 로컬 철도의 양대 산맥이다. 1905년 초에 완공된 경부선에 이어, 그 해 11월 5일에 개통됐다.
그리고 1908년에는 잘 알다시피 고종 황제의 호를 딴 '융희호'라고 신의주, 평양, 서울... 부산을 한데 있는 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일제 강점기부터는 압록강 철교도 완공됐다. 그래서 한반도의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차 타고 대륙으로 뻗어 가는 게 가능해졌다. 지금으로서는 정말 실감이 안 가고 믿어지지 않는다.

1. 용산선과의 관계

경의선은 원래 용산-효창-가좌로 가는 구간이 오리지널 경의선이었다. 그러나 1920년대에 서울-신촌-가좌 선로가 완공되면서 거기가 경의선 본선이 되었으며, 원래 구간은 지선인 용산선으로 따로 분류되게 되었다.
오늘날은 그 용산선이 없어졌다. 아니, 정확히는 지상으로 보기로만 없어졌고 지하로 싹 내려갔다. 공항 철도와 나란히 달리는 복층 복선 전철로 바뀌어서 여기가 다시 경의선 본선에 편입했으며(경의선이 위, 공항 철도가 아래), 반대로 서울-신촌-가좌 지상 구간이 지선으로 바뀌었다. 내력이 참 특이하다.

이로써 과거의 용산-성북 국철 전동차가 동쪽으로는 덕소, 팔당을 거쳐서 양평, 용문까지 길어졌고 서쪽으로는 경의선과 직결하여 문산까지 가는 상전벽해를 이루게 됐다.;; 앞으로 분당선이 수인선과 만나면 비슷한 마술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참고로 안산에 있는 한대앞-오이도 구간은 안산선과 수인선이 공용하게 되는데, 이건 복층이나 복복선이 아니고 완전히 동일한 복선 선로 공유이다. 역에 설치된 대피선 내지 승강장만으로 열차를 구분하니 경의선· 공항선과는 사정이 다르다. 어차피 사당 이남부터는 선로 용량이 많이 남기도 하니 말이다.

정리하자면, 용산에서 지하 경의선 본선이 출발하고 서울에서는 공항선과 경의선 지선이 출발한다.
공항선은 공덕에서 경의선 본선과 만나서 홍대입구를 거쳐 DMC로 같이 가며, 경의선 지선은 신촌을 거쳐서 가좌-DMC 일대에서 본선과 합류한다. 경의선과 공항선은 DMC 이북부터는 헤어져서 제 갈길을 가며, 역들도 승객의 환승만 되지 선로 차원에서의 교차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색 역에서 경의선과 공항철도를 연결하는 지선이 뚫렸다. 주 목적은 서울 역 KTX를 인천 공항까지 보내기 위해서.
공항철도 서울 역은 아주 깊은 지하에 있기 때문에 경부선과 연결되지 않는다. 지금 수인선의 지하 인천 역이 지상의 경인선과 연결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경부선을 달려온 KTX는 지하가 아니라 경의선 지선과 저 연결선을 거쳐서 공항선으로 진입하며, 서울 역을 출발한 공항철도 열차는 처음부터 지하의 공항선을 통해서 공항까지 가게 된다. 이런 구조가 아주 흥미로우며 철덕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2. 차량 기지와 병목 구간

경의선상에는 성격이 다른 차량 기지가 세 군데나 있다. 서울에서 가까운 순으로 나열하자면 먼저 (1) 새마을· 무궁화호와 기관차들.. 그러니 사실상 모든 일반열차들이 드나드는 수색 기지가 있다. 그 다음 (2) KTX가 입출고하는 고양(행신) 기지, 마지막으로 (3) 경의선 전동차가 드나드는 문산 기지가 이어진다.

그 짧은 거리에 차량 기지가 이렇게 다양하게 존재하는 철도는 경의선밖에 없다. 그 많은 일반열차들이 죄다 경의선을 회송 구간으로 사용하니, 경의선 중에서도 회송 구간을 직통으로 지나는 서울-신촌-가좌 지상에는 경의선 전동차를 1시간에 1대꼴밖에 못 넣는다. 그리고 그 선로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일반열차들의 운행이 순식간에 개판이 돼 버린다.

그런데 전국에서 열차 통과 트래픽이 제일 많은 구간에 '서소문 건널목'이라고 자동차 도로와 평면교차를 하는 건널목이 버젓이 있다는 게 참 골때리는 점이다.;; 물론 여기는 심야 시간을 제외하면 시도 때도 없이 열차가 지나느라 가히 '열리지 않는 건널목'이다. 거기는 위로 고가 도로가 지나고 아래로는 지하철 2호선이 지나는 관계로 입체화도 도저히 할 수 없다.

먼 옛날에는 용산 역 근처에도 거대한 철도 차량 정비창이 있어서 거기서 일반열차 내지 전동차의 주박과 정비를 취급했었다. 허나 지금은 그게 싹 없어져서 전동차는 구로로, 일반열차들은 수색으로 모두 이전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은 구로 기지마저도 광명으로 이전하려는 계획이 논의 중이다. 흠, 구로는 차량 기지뿐만 아니라 철도 관제 센터까지 있는 곳인데 이전이 쉽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한편, 누리로 전동차는 예외적으로 서울과 신창의 중간에 있는 병점 기지 소속이다. 마치 KTX로 치면 서울이나 부산이 아닌 오송 기지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수서 고속철 역시 서울 시계에서 기존 경부선으로 합류할 길이 도저히 없기 때문에 그 기지로는 못 들어가고 광주와 부산에만 기지가 있다.

3. 복선이었다가 단선으로 쪼그라든 유일한 철도

요즘은 철도를 만든다 하면 당연히 복선 전철이 필수이며, 당장은 단선만 놓는다 하더라도 추후 확장을 위한 복선 노반은 반드시 미리 확보해 둔다.
그런데 애초부터 만년 단선이면 단선이지, 복선으로 깔렸다가 도로 단선으로 쪼그라든 철도가 우리나라의 역사상 있긴 했을까? 경의선은 바로 그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940년대에는 일제가 전쟁에 미쳐서 온갖 물자를 수탈하던 때였다. 수익성 없는 지역에서는 이미 있던 철도 선로도 뜯어 가던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경부선과 경의선은 대륙 진출을 위해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오히려 복선화 공사를 완료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에 복선 철도라고는 경부+경의선이 유일했다. 경인선조차도 해방 후 1965년에야 복선화가 됐으니 말이다.

그 밖에 경주-청량리 중앙선이 1942년에 완공됐으며, 더 장기적으로는 경원선도 러시아 진출을 염두에 두고 복선화가 계획돼 있었다. 산악 관광 철도인 금강산선과 직결 가능한 철원까지는 심지어 전철화도 말이다. 어디 그뿐이랴? 지금의 7번 국도와 비슷한 동해선도 한창 건설 중이었다.

일제가 패망하면서 이 계획 내지 공사 과업은 모두 파토가 났다. 그런데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고 전쟁까지 대판 치르면서 경의선은 짧아졌을 뿐만 아니라 기껏 복선이었던 선로마저 남과 북에서 모두 단선으로 반토막 나고 말았다. 분단으로 인해 해당 구간의 수익성이 곤두박질 치면서 굳이 복선을 복구하고 유지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철도가 복선화와는 반대로 단선화(singling)되는 건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건이다. 그것도 복선이 된 지 10년도 채 못 가서 말이다.

남한 구간만이 먼 훗날 2009년에야 수도권 전철이 개통하면서 새로, 2차로 복선화되긴 했다. 물론 고가 위로 직선화도 많이 되었기 때문에 마냥 옛날 노선대로만 복원된 건 아니다.

믿어지지 않지만 경의선의 과거 복선 시절을 말해 주는 빼박 증거가 있다. 무엇이냐 하면 바로 철교의 교각이다.
도라산역으로 가는 임진강 철교는 6· 25 사변 중에 폭격을 받아 파괴됐다가 복구되지 못한 하행선 교각이 남아 있다. 상행 교각만 복구해서 단선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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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흔적이 북한에도 있다! 예성강(례성강)을 건너는 철교가 역시 상선만 복구되어 단선으로 쓰이고 있다. 하선은 교각만 우두커니 남아 있다. 그것도 두 군데나 말이다. 한포 역, 금천 역 근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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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말고 력포나 대동강 같은 평양 근처 구간까지 가도 경의선은 여전히 단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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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평양 인근의 대동강 양각도를 관통하는 경의선 단선 철교의 모습이며, 오른쪽은 무려 3복선인 우리나라 서울 한강 철교의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에서는 경의선이 평양 이북 신의주 방면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복선화도 그쪽만 돼 있다. 그 반면, 남쪽 구간은 남한의 경의선 구간보다 더 긺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아오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단선이다.
애초에 북한에서는 경부선· 경의선이라는 말도 안 쓰며, 첫 음절의 ㄱ을 ㅍ으로 바꿔서 부른다. 개성-평양 사이 구간은 우리 입장에서는 경의선이지만 걔들 입장에서는 평부선인 것이다.

여담이지만, 경의선 하니까 임진각에 있는 꼬마 협궤 증기 기관차가 생각나는데, 걔는 궤간이 어떤지 궁금해진다.
남이섬에 있는 유니세프 나눔열차는 610mm인 게 알려져 있는데 동일한가 모르겠다. 나중에 다시 갈 일 있으면 확인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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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8/05/11 08:38 2018/05/1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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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전하는 군부대들

2010년대 이후부터 추세를 지켜보니, 서울에 있던 군부대들이 수방사 자체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면 다들 이전했거나 이전 예정이구나!

  • 용산 미군 기지는 일부 사령부만 남기고 나머지는 몽땅 평택으로,
  • 남동부 끝자락 마천동에 있던 특전사 부대는 이천 마장면으로,
  • 서초동 한복판에 있던 정보사령부는 안양의 군사 허브인 박달산 일대로.

이거 뭐, 롸임이 "간은 충청도로, 눈은 경상도로, 심장은 서울로.."같은 느낌이다. 사실, 지금의 서울 지하철들의 선형도 이런 군부대의 영향을 받은 채로 형성되었다.

용산 미군 기지: 여기는 막 높고 험한 산까지는 아니어도 '둔지산'이라고 불리는 약간의 언덕 고지대이다. 조선 시대에는 용산이 아니라 남산 기슭부터가 이미 한양의 끝이었고 군사 훈련장이 있었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군 병영이 들어왔으며 지금은 미군 기지가 들어섰을 뿐.
이 넓은 땅이 반환되면 앞으로 업무 지구로든, 공원으로든 어찌 활용될지 앞으로 기대된다. 얘를 피하느라 서울 지하철 4호선도 한강을 건넌 직후엔 어중간한 드리프트에다 1호선과 많이 겹치는 형태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천 특전사 부대: 지하철 5호선 종점인 마천 역이 지상 도로를 쭉 따라 큰길인 오금로에 못 생기고 커브까지 틀고서 생뚱맞은 마천 초등학교 골목길에 만들어진 주 이유가 근처의 이 군부대 때문으로 추정된다.
개인적으로는 아침 일찍 여기를 지나면서 기상 나팔 BGM 들으며 청량산을 올라서 남한산성까지 간 적이 있었는데, 그로부터 몇 달 못 가 위례 신도시 개발을 위해 군부대가 이전하고 없어졌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정보사령부: 법원과 서리풀 공원 일대는 지금까지 내가 갈 일이 없어서 딱히 관련 데이터가 없다. 거기도 직선으로 쭉쭉 뻗어야 할 길이 지금까지 군부대+언덕에 가로막혀 몇십 년째 봉인돼 있었다. 지하철들도(2, 7호선) 이곳을 피해서 커브를 틀고 있고.. 그래도 그 언덕을 뚫고 서울 강남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서리풀 터널'이 이제야 건설 중이다.

이 글에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았지만 금천구청 역 바로 근처에도 군부대가 있었으며 군부대 진입 전용선 철길까지 있었다. 거기 있던 부대는 이전해서 나간 게 이미 2000년대 말~2010년대 초로 꽤 오래됐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부대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울러, 군부대뿐만 아니라 인서울에 있던 지하철 차량 기지 중에서도 구로와 창동은 이전 예정이다.
지하철 차량 기지는 지축, 수서, 고덕, 방화, 신내 등 전반적으로 굉장히 외곽에 있는 편이다. 서울 최초의 지하철 차량 기지인 군자는 나름 시내 깊숙한 곳에 있는 편인데, 얘는 그래도 딱히 이전 얘기가 없다.

2. 울릉도와 제주도 신공항

울릉도와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적당히 크며, 다리를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본토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다. 그래서 독자적인 행정구역 명칭이 있다. 울릉도는 그냥 경북 울릉 '군'이지만, 제주도는 잘 알다시피 그보다 더 큰 도 단위로 분리돼 있다.

울릉도는 공항이 없는 관계로 고정익기가 뜨고 내릴 수 없다. 옛날에 헬리콥터 기반의 여객기가 정기 취항한 적이 있었지만 아마 수지가 안 맞고 인명 사고까지 나는 바람에 나가리 났었지 싶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중형 버스 크기의 소형 프로펠러기라도 드나들 수 있는 공항을 만들려고 터 닦고 준비 중인가 보다.

한편, 제주도는 공항이 있긴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게 전세계에서 최상위권을 다툴 정도로 바쁘고 정신 없으며 더 확장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남쪽 서귀포시에 작은 트래픽을 감당 가능한 공항을 하나 더 만들자는 얘기가 진작부터 있었다. 뜬금없는 해저 터널보다야 차라리 공항 하나 더 만드는 게 더 현실적일 것 같은데 이건 어찌 진행 중인가 모르겠다.

이렇듯, 울릉도와 제주도는 이렇게 위치 차이(경북· 강원권 vs 전남권), 독립 행정구역 단위의 차이(시/군 단위 vs 도 단위)와 공항 현황 차이(0 vs 1)가 있다. 6· 25 전쟁 때 울릉도는 전쟁의 여파를 전혀 겪지 않았다. 제주도는 비록 빨치산의 침투와 토벌 과정에서 4· 3 같은 사건은 있었지만 그때 따로 북괴 공산군이 상륙해서 섬을 또 점령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UN에서 최악의 경우에 제주도에 대만 같은 남한 망명 정부를 세울 생각도 했던 것이다.

3. 서울· 수도권 오지 내지 조밀도 생각

서울 강북은 북악산과 북한산 기슭에 있는 삼청동, 청운동, 평창동, 구기동, 부암동 같은 곳이 청와대와 가깝다는 이유로 개발이 영구봉인된 오지이다. 중구라면 모를까, 종로구는 시내 도심만 포함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은 아무래도 구룡산· 대모산 이남의 세곡동· 내곡동, 청계산 근처의 신원동, 원지동, 염곡동 같은 곳이 오지이지만.. 이미 아파트가 지어지고 야금야금 재개발되고 있기 때문에 지금 같은 모습을 더 보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성남은 대장동, 석운동, 동원동 같은 곳이 오지이다. 아직까지는..
하남은 검단산의 동쪽으로 상수도 보호원으로 얽힌 일부, 그리고 서울과 하남 경계가 그린벨트이긴 한데.. 여기도 곳곳이 재개발 중이다.

서울의 서쪽으로 광명, 부천은.. 그냥 지역 경계 구분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빽빽해졌다.
군포와 구리는 인구는 많을지 모르지만 도시 크기가 너무 작은 것 같다.
과천은 지도 상의 면적은 그럭저럭 존재감 있지만 청계산과 관악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그 사이의 좁은 시가지는 면적이 아주 작다. 과천선 철도 양 옆 구간 말고는 정말 별 거 없다.

4. 자잘한 섬으로 이뤄진 지역

우리나라의 해안· 항구 도시들을 보면, 아주 크고 두드러지는 섬(본토와 다리로 연결된 것도 포함)이 본진이고 그 주변의 작은 섬들까지 행정구역상 포함된 것(제주도, 울릉군, 진도군, 고흥군, 거제시..), 본진은 본토에 있고 주변의 작은 섬들이 거기에 덤으로 딸린 것(보령시, 영광군, 여수시)이 있다.

그런데 섬으로만 구성되었는데 딱히 두드러지는 본진이 없이 그것도 거리도 꽤 멀리 떨어진 섬들이 싸잡아서 한 행정구역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바로 (1) 전남 신안군, 그리고 (2) 인천 옹진군이 여기에 속한다.

목포 바로 옆의 압해도가 신안군으로서는 본토와 가깝고 군청도 있어서 나름 본진이다. 하지만 압해도는 신안군을 구성하는 다른 섬들보다 압도적으로 크지 않으며, 저 멀리 흑산도와 가거도(최서남단 오지!)까지도 행정구역상 신안군이다. 태양계로 치면 한 행성이 단독 궤도를 구성하지 못하는 소행성대나 왜행성 같은 처지이다.

옹진군은.. 오이도 남쪽의 화성시와도 붙어 있는 영흥도도 옹진이지만, 서쪽 최전방의 연평도와 백령도까지도 옹진군 소속이다. 이건 뭐 우리가 황해도 본토를 수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거기 근처의 섬만 수복하다 보니, 행정구역이 좀 기형적으로 편성된 경우라 하겠다.

국가 차원에서 영토가 단독 주도적이지 않은 다수의 자잘한 섬들로 구성된 대표적인 예는 인도네시아이지 싶다.
인구도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나라인데 국제적으로는 저기가 별 존재감이 없다. 그리고 오세아니아 대륙과 가까워 보일 정도로 굉장히 남쪽에 있기도 해서 유라시아 대륙 문화권이라는 생각도 별로 안 들 정도이다.

5. 서울의 옛 영화 촬영소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답십리 사거리' 교차로의 동쪽을 보면, 배봉산의 남쪽 기슭 구간을 차지하는 거대한 고개가 있고, 그 고개를 '답십리로'라는 길이 횡축으로 지나간다. 그리고 그 길의 곁에는 딱히 업무· 주거 건물이 없이 언덕뿐이며, '답십리 공원'이 조성돼 있다. 동쪽으로 더 가야 야구 연습장이나 체육관 정도만 있다.

그런데 먼 옛날.. 1964년부터 1970년까지는 여기 일대에 영화 촬영소가 있었다고 한다. 정확히는 동대문구 체육관과 근처의 동답 초등학교의 부지에 말이다. 나라에서 만든 게 아니라 어느 대인배가 사재를 털어서 만들었다.
그래서 답십리 사거리의 동쪽에 나오는 교차로의 이름은 '촬영소 사거리'이다. 촬영소라는 명칭이 붙어 있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됐다.

지금으로 치면 남양주 종합 촬영소 같은 곳이 서울에 있었다는 게 무척 흥미롭다. 뭐, 1960년대에 국산 영화에서 많은 걸 바랄 수는 없겠지만, 6년 남짓한 시간 동안 이곳에서 무려 90편에 달하는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동대문구에서는 2010년대에 와서야 여기에 영화 테마 공원을 뒤늦게 조성하려고 계획 중이라 한다. 마치 중랑구에서 망우리 공동 묘지를 근현대사 체험 테마 공원으로 꾸미려 하듯이 말이다.

지명을 보면 그 지역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마장(말을 키우던 곳), 잠실(누에밭) 같은 농촌스러운 지명은 조선 시대 같은 너무 옛날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으니 오늘날 실감이 잘 안 간다. 뭐더라, 과수원에서 유래된 명칭도 있었는데.. 아무튼 그 시절엔 거기는 인서울 도시가 아니라 그냥 한양도성 안으로 보급할 물자를 생산하는 기지였을 뿐이다.

그에 반해 촬영소, 해방촌, 기자촌 같은 명칭은 그래도 일제 강점기 이후 대한민국 시절의 사연과 유래가 담겨 있으니 이질감이 덜하다. 이런 예가 더 있는지 앞으로 더 눈여겨봐야겠다.
참고로 동대문 운동장은 조선은 아니지만 일제 시대에 생긴 시설이다. 그리고 '충무로'는 영화 촬영소라기보다는 영화 제작사들이 많이 입주했던 곳인데, 지금은 영화보다는 인쇄소로 더 유명한 듯하다.

6. 영화에 등장한 가상의 지명

본인은 먼 옛날 대학 시절에 <그녀를 믿지 마세요>(2004) 영화를 친구 컴을 통해 우연히 봤다.
그때는 본인이 한창 철덕이 되어 가던 시절이었는데, 마침 무궁화호 열차 씬과 함께 '용강'이라는 가상의 역이 나왔다.
경북선에 '용궁'이라는 역이 있긴 하지만 '용강'은 허구이다. 사실 충북선 소이 역(무배치간이)에서 역 바깥 장면을 찍었으며, 역 승강장 씬은 바로 옆의 음성 역에서 찍었다.

그 뒤 비교적 최근에 나온 <부산행>(2016)의 경우, 맨 처음에 '진양'이라는 고속도로 톨게이트가 가상의 지명이다. 뭔가 우리나라 어딘가에 저런 이름의 고속도로 진출입로가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나 보다. 기존 지명과 안 겹치게 이름을 그럴싸하게 잘 지었다.

이 장면이 촬영된 곳은 아주 한적하고 차량 통행이 드물어서 영화 찍기에도 유리한 영동 고속도로 속사 IC라고 한다. 하이패스가 없으면 무인 정산기에다 느리게 지폐 한 장씩 넣으면서 통행료를 결제해야 한다.
본인은 이 승복 기념관을 찾아갈 때 여기를 지난 적이 있지만 그 당시에는 이곳과 부산행 영화의 관련성을 아직 모르던 상태였다.

끝으로 철도와 관계는 없지만 <아저씨>(2010)에서 잠시 등장하는 차 태식의 집 주소 "서울 용산구 동자동 산 21"도 생각난다. 이 역시 당연히 실존하지 않는 주소이다. 최대한 현실적으로 끼워맞추면 서울 역과 남산 사이의 으슥한 허름한 주택가이다.
영화를 실제로 찍은 곳은 부산 매축지 마을이라는 '도심 속 오지'이다. 서울로 치면 무슨 금화 아파트, 시범 아파트 같은 그런 곳인데, 거기도 몇 년 뒤로 다 헐리고 재개발될 공산이 크다.

Posted by 사무엘

2018/05/08 08:36 2018/05/0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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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공 시절

우리나라 헌정 체제의 변천사에 대해서는 본인이 이 블로그에서 몇 차례 글로 다룬 적이 있었다.
초대 대통령인 할배가 집권했던 최초의 1공화국 시절은.. 지금으로서는 뭐랄까 같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이질감이 심하다. 대체역사물 소설에서나 나올 것 같은 그런 나라이다. 태극기, 한국어, 한글만 없다면 말이다.

이때 대통령은 생전에 군대의 근처에도 안 가 본 문돌이였고 군사 정권도 분명 아니었지만, 가난한 여건에다 극렬 반공 트렌드 때문에 나라가 막 자유롭다고는 보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그리고..

  • 지금과 같은 화폐 단위가 도입되고 마지막으로 화폐 개혁을 한 게 1962년,
  • 군대에 상병과 병장 계급이 추가된 게 1962년,
  • 공문서에서 서기 연호만 쓰기 시작한 게 1962년(더 옛날의 이 승만 시절 관보나 대한뉴스, 각종 법조문에서는 4천 몇백 년 하면서 단기 연호가 나온다~!)
  • 마지막으로 탈영병을 사면해 준 게 1963년
  • 부산이 전국 최초의 직할시로 승격된 게 1963년
  • 국가 차원에서 독립 유공자를 본격적으로 발굴해서 훈장을 추서한 게 1962년...

당장 떠오른 예만 나열해도 이 정도이니 지금의 우리나라 기틀이 상당수 다져진 건 확실히 박통 때부터라는 건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나저나, 대통령 관저의 이름이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바뀐 건 박통보다 미묘하게 전인 윤 보선 때 1961년..)

해방 이후 1962년 이전에 우리나라는 6· 25 전쟁을 전후한 1950년 8월과 1953년 2월에 화폐 개혁을 시행했다. 1950년이야.. 개전 직후 서울이 털리고 한국 은행에 보관돼 있던 현찰 뭉치들이 괴뢰군에게 통째로 노획돼 버렸기 때문에 그 돈은 당연히 국가 차원에서 무효화하고 유통을 금지시켜야 했다. 수능 문제지가 시험 전날에 외부로 유출된 것과 얼추 비슷한 상황이다. 새로 만든 돈은 부득이 일본에서 인쇄해서 수입해 와야 했다.

그 뒤 1953년의 화폐 개혁은 단위도 '환'으로 바뀌어서 인플레이션을 수습하는 용도로 쓰이다가, 훗날 1962년에 단위가 또 바뀌어 지금의 '원'이 정착했다. 개드립을 좀 치자면, 환에서 원으로 '환원'됐다.

할배 각하는 기본적으로야 크리스천이었지만, 자기 치적에 대한 자랑질도 했다. 남산과 탑골공원에 크고 아름다운 자기 동상을 세우고, 남한산성 근처 도로를 닦고는 자기 호를 따서 '우남로'라는 이름을 붙였다(지금은 헌릉로와 합쳐져서 없어짐). 1957년부터 하야 직전의 60년까지는 황금연휴 부근도 아닌 대통령 탄신일(3월 26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기도 했다.
이 승만은 양력 기준 1875년 5월 1일생인데, 이 날짜가 그 당시 음력으로는 3월 26일이었던 것이다. 임시 공휴일은 그냥 일관되게 매년 양력 3월 26일에 시행되었다.

그리고 할배는 생일을 기리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환' 지폐에다 한복 차림의 자기 초상화를 집어넣었다(100, 500환). 처음엔 정중앙에다 집어넣었는데 지갑에 돈을 넣을 때 자기 얼굴이 접힌다는 걸 발견하고는 한쪽 끝으로 위치도 옮겼다. (그런데 소리만 '환'이지, 이때도 한자 표기는 여전히 '원'이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즘 우리나라 지폐가 온통 조선 시대 '이씨' 인물만 너무 많이 집어넣었다는 비판이 있는데, 사실 우리나라는 먼 옛날에 대한민국 인물, 그것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인물을 집어넣은 적이 딱 한 번 있었던 셈이다. 전무후무 1공 시절에 말이다. 지폐에다 자기 얼굴을 떡 집어넣는 건, 나중에 군인 출신 대통령도 하지 않은 짓인걸.. 반쯤은 자기 자발적인 지시이고, 반은 부하들이 알아서 아부질 하는 걸 본인도 듣기 싫지는 않고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거지 싶다. 대통령과 왕의 차이점에 대한 관념도 아직 드물던 시절이기도 했으니..

제1공화국 시절엔 남한 땅에서 미국처럼 서머타임(일광 시간 절약)이 시행되기도 했다. 미국이 단위 체계와 전압처럼 세계 규격과 달리 혼자 따로 노는 관행 중 하나인데.. 1960년대 박통 때부터는 폐지됐다. 그 서머 타임은 훗날 서울 올림픽을 하던 시절에 또 잠깐 부활했다가, 올림픽이 끝난 뒤부터는 다시 영구 봉인됐다.

2. 부산 잔혹사

우리나라 광역시들 중 대전은 공항이 없고(대전 대신 청주에..), 울산은 지하철이 없다. 꽤 흥미로운 사실이다.
대전은 포항· 울산 같은 네임드급 공장이 없는 대신(산업단지 자체가 없는 건 아님. 대덕구 대화동에..), 정부 청사와 각종 과학 연구소들이 있어서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는데.. 1공화국 얘기가 나왔으니 그 시절에 특정 지역과 관련해서 기억나는 아이템을 하나 더 늘어놓아 보겠다.

부산은 앞서 언급했듯이 1960년대에 전국에서 제일 먼저 직할시로 승격됐으며, 서울· 평양과 더불어 한반도에 노면전차가 다닌 세 도시 중 하나이다.
6· 25 때 북괴에 점령당하거나 대판 전투가 치러진 이력이 없고, 오히려 안전한 최후방인 덕분에 임시 수도 본진 역할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부산은 전쟁과 지진이 없는 대신, 피난민 목조 판잣집들이 밀집해 있던 와중에 화재 참화를 여러 번 겪었다.

1953년 1월 30일엔 영화로도 나왔던 국제시장에서 대화재가 나서 수천 채에 달하는 상가와 판짓집들이 다 타 버렸다. 하지만 이건 나중에 또 벌어졌던 화재들에 비하면 피해 규모가 약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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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1월 27일, 전쟁이 끝난 지 정확히 3개월 뒤엔 또 판자촌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 시내 중심부로까지 번져서 부산 역, 방송국, 신문사까지 몽땅 불에 탔다. 이 때문에 부산 역이 철거되고, 오리지널 부산 역보다 1km 남짓 북쪽에 있던 초량 역이 지금의 부산 역 역할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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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12월 10일과 26일에는 또 두 차례 대형 화재가 용두산 언덕 일대를 덮쳤다. 판잣집들 피해야 말할 것도 없고, 이번엔 휴전 뒤에도 귀차니즘에 입각하여 서울로 아직 안 옮기고 부산의 모 창고에 보관해 놓고 있던 조선시대 어진과 유물, 문화재들 수천 점이 소실돼 버렸다.
국제시장, 부산역, 용두산 등등.. 다 비슷비슷한 지역이다. 열악한 닭장 같은 곳에서 살다 불 한번 나면 이렇게 작살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다가 5년 뒤에 1959년에는 땅, 불 다음으로 바람과 물 차례였다(이젠 '마음'만 남았나?-_-). 14호 태풍 사라 때문에 일대가 또 박살이 났으니, 1950년대에 부산은 제2의 서울임에도 불구하고 살기가 참 잔혹한 곳이었지 싶다.
그때 태풍 이름에다가 왜 뜬금없이 '호'를 붙여서 배 이름처럼 '사라호', '사라 호'라고 불렀는지는 개인적으로 잘 모르겠다.

3. 1960년, 1980년의 올림픽

미국에서는 케네디 대통령과 링컨 대통령의 공통점 뭐 이런 괴담이 나돌았고, 또 1840년부터 1960년까지 20의 배수 년도에 당선됐던 대통령은 제 명에 못 살고 병사· 암살로 최후를 맞이했다는 일명 '테쿰세의 저주' 괴담이 나돌곤 했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대한민국으로서의 역사는 아주 짧으며 정치가 아닌 스포츠 분야이긴 하다만, 20의 배수 년도에 참가했던 올림픽이 좀 뭔가 특이했다.

우리나라는 그 가난하고 열악했던 1948년 런던 올림픽 첫 참가 때, 그리고 전쟁으로 혼란스럽던 1952년도 올림픽에서도 복싱과 역도에서 메달을 따 오곤 했다. 그런데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는 어찌 된 일인지 현재까지 전무후무하게 메달을 단 하나도 못 따는 부진을 보였다. 이 때문에 올림픽 선수단 대표이던 손 기정 단장은 삭발을 하고 귀국했다.

1960년대에는 국제 대회에 선수를 선발하고 육성하는 스포츠 행정 체계가 굉장히 미개하고 막장이었던 듯하다. 밥그릇 싸움과 부정부패는 말할 것도 없고.. 이 때문에 뉴스 기사를 찾아보면 손 기정은 1966년 방콕 아시안 게임 때도 선수단 단장이었는데, 이때는 나름 성적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뭔가 심하게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서 삭발 귀국을 단행했던 듯하다.

게다가 로마 다음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도.. 나름 가까운 이웃 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수들을 파견한 것에 비해서 우리나라의 성적은 꽤 부진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하에 박 정희 정권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수습하고 스포츠 단체들을 통합하고 태릉 선수촌도 만들면서 엘리트 체육의 육성에 힘썼다.

지금 괴수들이 우글거리고 한국인 코치가 세계 곳곳에 활동하는 지경이 된 양궁조차도 처음부터 지금 같은 인프라가 갖춰진 게 절대 아니라는 점이 아주 흥미롭다. 우리나라가 건국 이후 최초로 메달을 딴 분야는 역도와 복싱이지 양궁이 아니지 않던가??

뭐, 1960년대는 그렇다 치고 그로부터 20년 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짐작하다시피 우리나라가 애초에 보이콧을 해 버리고 참가를 안 했기 때문에 메달도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일본은 그렇다 치더라도 공산권 국가인 중국조차도 참가를 안 했다는 게 흥미롭다. 공산주의 사회주의라고 해서 반드시 친소 성향은 아니니까..
세월의 변화를 느낀다만, 이것 때문에 우리나라 여자 양궁의 초창기 멤버이던 김 진호 선수가 커리어에서 큰 손해를 봐야 했다.
2000년대부터는 1960, 1980 같은 굴곡이나 이변이 아마 더는 없을 것이다.

4. 국민투표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라 하면 대통령, 국회의원 같은 어떤 대표자를 뽑는 선거만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국가적으로 어떤 중대한 결정을 내릴 일이 있을 때 투표를 통해 yes/no를 묻는 제도도 있다(우리나라 헌법 제72조). 이를 '국민투표'라고 한다. 마치 논문이라고 해서 학위 청구용 졸업 논문만 있는 게 아니라 학술지 논문도 있고 발표 논문도 있듯이, 투표란 것도 그렇게 성격에 따른 구분이 있는 것 같다.

보통은 이런 의사 결정을 국민이 아닌 의회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하게 돼 있으나,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의 의견을 직접 묻는 예외적인 제도도 대통령이 자기 재량껏 시행할 수 있다. 투표 결과가 대통령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나왔다면 이건 강력한 설득력을 얻게 되니 의회도 어찌하기가 난감할 것이다.

국민투표는 보통은 헌법을 고쳐야 할 때 시행되곤 했으며, 투표일은 임시공휴일로 지정되곤 했다. 이 승만 때는 시행된 적이 없고 1960년대의 군사 정권 시절이 원조이다. 우리나라는 1987년 10월, 제6공화국 수립을 위한 개헌을 앞두고 시행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북괴의 붕괴와 흡수 통일과 같은 급의 이변이 없는 한, 현 헌정 체제에서는 앞으로도 할 일이 없는 게 좋을 것이다.

5. 대통령의 초법적 권한: 계엄과 긴급명령

자고로 대통령은 왕이 아닌 관계로, 자기 멋대로 기분대로 "짐이 곧 법이다" 식으로 통치할 수 없다. 특히 무엇보다도 혼자 평생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으며, 자기 자식에게 권좌를 슬쩍 넘겨줄 수도 없다. 현대의 대통령은 국가 원수라는 지위와 예우는 동일하지만, 권한의 행사 범위는 법의 통제를 받으며, 전근대 시절의 왕에 비해 큰 제약이 걸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전쟁을 포함한 굉장히 긴박하고 불가피한 상황일 때 예외적으로 일시적으로 법과 권한, 의회의 동의 같은 절차를 씹어먹고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그 정도는 이미 법에 보장돼 있다.
대표적인 예는 계엄이다. 계엄은 나라 사정을 준전시 상태로 만들어서 바싹 긴장시키고, 국민의 기본 자유와 권리를 일부 제한하는 조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건국 이래로 1948년 여순 반란(여수· 순천 일대)과 4· 3 사건(제주도)을 시작으로 제일 최근에는 1979년의 부마 항쟁(부산· 경남)과 10· 26 사건 때 계엄이 내려졌으며, 전땅크의 쿠데타의 정점인 1980년 5월 17일 내란 때 또 계엄이 내려진 것이 "마지막"이다. 마지막 두 계엄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내려졌었다.
뭐, 4· 19 혁명(의거), 5. 16 쿠데타(군사 혁명), 10월 유신 같은 크리티컬한 이벤트 때는 제주도까지 포함한 전국에 계엄크리가 떨어지기도 했었다.

계엄 다음으로 현행 헌법 제76조에 의거한 '긴급명령'이란 게 있다. 이건 건국 이래로 지금까지 총 16번이 내려졌는데, 그 중 13회가 6· 25 전쟁 기간 중에 내려졌다. 전시의 마지막 명령인 제13호는 1953년 2월, 100원을 1환으로 바꾸는 화폐 개혁 지시였다.
대부분의 역대 긴급명령들은 관련법이 따로 제정됨으로써 폐지되었다. 우리나라에 현재까지 마지막으로 내려진 긴급명령은 1993년 8월, 금융실명제를 빵 터뜨려 실시한 김 영삼 대통령의 명령이었다.

박 정희는 긴급명령을 제3공의 말기에 단 한 번밖에 내리지 않았으며(제15호, 1972. 8. 2.), 이것도 계엄과는 달리 정치 분야는 아니었다. 그 대신 이 양반이 특별히 고안해서 1974년부터 75년, 4공 유신 시절에 1년 반 남짓 동안 무려 아홉 번이나 남발했던 더 강한 특별 명령은 바로 '긴급조치'였다.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로 시작하는 게 제1호였고, 제9호가 가장 길었다. 이전의 긴급조치를 해제한다는 명령도 별도의 긴급조치 호수로 올라가곤 했다.

대부분의 긴급조치들은 사실상 빨갱이들, 데모질 하는 애들을 잡아서 벌 준다는 협박이었지만, 딱 하나 제3호만은 민생과 관련된 다소 생뚱맞은 긴급조치였다. 긴급조치는 박통이 암살당하고 헌법이 업데이트 되면서 즉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국민투표 내력, 개헌 내력처럼 계엄과 긴급명령(/조치) 내력도 살펴보는 게 재미있다. 이런 게 사회 공부의 묘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12/23 08:36 2017/12/2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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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이기는 법

* 예전에 썼던 일본에 대한 생각 글 및 기업 관련 일화 글과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1. 학문· 기술 업적과 제품 시장 점유율로 이긴다. (100점)

2차 대전 이후의 국제화 세계화 자본주의 개방 경쟁 시대에 이거야말로 남의 나라를 합법적으로 제일 수준 높게 이기는 방법이다. 예전 글에서 소개한 적이 있듯이,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를 쳐바르고 기술 종속 관계를 역전시킨 현대 자동차라든가, 반도체 분야에서 이름은 모르겠다만 일본 기업들을 쳐바른 삼성전자, LG전자 등등..
이것만 알아도 되도 않은 이상한 반기업 구호들 반 이상은 필터링된다. 이공계가 세상을 바꾼다.

2. 문화 예술로 이긴다. (50점)

겨우 한류 스타 욘사마가 어떻고 하는 것만 얘기하는 게 아님. 그야말로 사람들 정신 세계 전반을 점령하는 것을 말한다. 위의 100점짜리와는 분야가 굉장히 다르고 별 것 아니어 보이지만 그래도 중요하다. 이것에 대한 우려 때문에 우리나라가 일본과 경제 협력을 위한 재수교는 무려 1965년에 했어도, 대중문화 개방은 90년대 말이 다 돼서야 성사됐다.
내 한글 입력기는 비록 기술 쪽으로 최첨단 극치를 추구하지는 않지만, 나름 이 바닥을 기여하고 공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예술은 아니지만 문화에는 해당한다.

3. 운동 경기에서 이긴다. (30점)

열심히 노오오력해서 한일전에서 일본 이겨 주는 것도 아주 합법적이고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스포츠는 경기 당시에 짜릿함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 외에 우리 일상생활에 딱히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다.
또한, 축구 한일전이 벌어질 때에만 열혈 민족주의 애국자이고 다른 상황에서는 자기 나라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 이상한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나 태극기는 도대체 무슨 의미를 지닌 존재인 걸까?

4. 목소리와 키보드 배틀에서 이긴다. (5점)

국가관 역사관이 이상한 사람을 키배로 제압하고 산업화해 주고, 어디에 일본해가 어떻고 독도가 어떻고 하는 곳에 득달같이 달라붙고, 일본 정치인들 망언을 규탄하는 시위 벌이는 건..;; 들이는 시간에 비해서 그렇게 생산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5. 국민성, 공중도덕 등으로..

이건 이기는 법이라기보다는 지지 않는 법의 범주에 드는 것 같다.

6. 전쟁에서 이긴다? (??)

가능하지도 않고 그래야만 할 필요도 의미도 없음.
한· 일은 정치 이념 프레임이 동일한 나라이며, 예측 가능한 미래에 서로 전쟁 벌일 확률은 남북한이 전쟁 벌일 확률보다는 넘사벽급으로 낮다.

한일전 하니까 옛날 일화가 하나 떠오른다.
뭐, 예전에 비해 반일 감정이 많이 옅어진 편인 지금도 한일전이라 하면 일단 나라의 자존심이 걸려 있고 그야말로 절대로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진짜 한일전의 원조는 먼 옛날 1954년, 우리나라가 FIFA 월드컵에 최초로 참가하던 시절에 벌어졌다(그 당시 스위스 개최).
우리로서는 6· 25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됐고, 스포츠 분야에서 해방 후 최초로 앙숙 일본과 맞장을 뜨게 됐다. 1953년에 치러진 아시아 지역 예선전이다.

해방된 지 아직 10년이 채 안 되었으니 분위기가 얼마나 비장했을까?
씅만 리 할배 대통령은 승부에 대한 극심한 중압감과 부담감 때문에 처음엔 이 경기 자체를 원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냥 월드컵 출전을 포기하고 말지, 일본놈들과는 상종을 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 경기는 우리 홈그라운드에서 한 판, 일본으로 원정 가서 한 판씩 하는데 “쪽발이 왜놈들을 한국 땅에 들어오게 할 수 없다”라는 똥고집, 그리고 그 와중에 일본이 우리를 이겨 버리기까지 했을 때 뒷감당을 할 수 없다는 걱정이 반반씩 할배의 머리를 압박했다.
(하긴,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정부와 협력해서 반인륜 범죄를 저지르는 데 가담하고 부역한 외국인은 우리나라에 입국할 수 없다고 지금까지도 출입국 관리법에 명시돼 있긴 하다. 뭐 이젠 그런 사람들은 거의 다 죽고 없겠지만..)

뭐 어쨌든, 일본 선수들이 한국으로 올 수 없으니 우리 선수들이 두 판 모두 일본에 가서 경기를 치르게 됐다. 출정식 때 할배 각하는 친히 선수들에게 “이기지 못하면 살아서 돌아오지 마라 / 졌다가는 국민 세금으로 배 탈 생각일랑 말고 대한해협을 헤엄 쳐서 귀국해라” 이런 급의 공포스러운 막말 훈화를 했다는 카더라가 전해진다. 아니면 축구 협회 대표와 선수팀 감독이 각하를 끈질기게 설득하는 과정에서 저런 맹세를 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저런 처절한 배수진 하에서 스포츠계의 합법 도핑인 반일로이드가 약발이 제대로 적중했다..;; 우리나라는 1차전에서 5:1로 일본을 압도적으로 꺾었으며, 2차전에서도 2:2 무승부를 달성해서 무난히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이때야 스포츠 분야의 극일 가중치가 지금 같은 30점이 아니라 당연히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독립 주권 국가로서 한국이 일본을 당당히 이겼으니까.

뭐, 본선 가서는 헝가리에게 9:0, 터키에게 7:0으로 지고 광탈하긴 했지만, 그건 너무나 열악한 여건 하에서 첫 출전을 하고도 정말 혼신을 다해서 얻은 결과였다. 10몇 대, 20대 0으로 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했던 값진 투혼이요 성공적인 실패, 위대한 패배였다. (그리고 일본만 이겼으면 됐고 그것만으로 목표 달성이지, 나머지 결과는 어차피 아오안이었을 것이다..;; )

이 승만은 정말 쥐뿔도 힘 없는 가난한 나라 처지에서도 그래도 미국을 최대한 이용해서 일본을 상대로 갑질을 하고 반일 노선을 고집했다. 평화선에, “대마도 내놔”에, 재일 교포 북송에 결사 반대하여 일본 적십자사 테러 시도에, 그것도 모자라서 왜관 발언은 최고의 압권이었다.
“지금 우리가 아무리 전쟁 중이고 위급하다지만, 감히 일본놈들이 우리 집안 내부 싸움에 개입하려 든다면(심지어 남한을 돕는 것도 포함) 우린 일본놈들부터 죽이고 나서 괴뢰군을 쏘겠다.

하긴, 이 할배의 입장에서는 일본이 유엔군 병참기지가 돼서 경제적으로 어부지리 덕을 보고 있는 것조차도 차마 눈꼴 시려 못 볼 지경이었을 게다.

저 때야 해방된 지 얼마 안 됐으니 그렇다 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난 2002년 월드컵은 개최 장소도 이례적으로 한일 공동 개최로 귀착됐었다. 20여 년 전에 이거 개최지 결정하던 과정도 내 기억으로 분위기가 장난 아니게 험악했다. 둘 중 한 나라 단독 개최로 결정 났다면 무슨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그래, 한국과 일본은 뭐 그런 사이이다.

하지만 감정은 감정이고, 이성적으로 분별할 건 따로 분별해야지..
까놓고 말해서 일본이 평화 헌법을 건드리거나 심지어 자위대를 군대로 승격하는 것보다, 당장 코앞에 있는 미친 또라이 국가의 핵탄두가 실험을 거듭하면서 위력이 더 강력해지고, 미사일의 사거리가 갈수록 더 길어지는 게 훨씬 더 위험한 일이다!

지금은 20세기 초 같은 제국주의 군국주의 이념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다. 일본의 작은 또라이짓에 대해서는 난리를 치고 발광을 하면서, 바로 옆에 현존하는 훨씬 더 직접적인 위협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고 방어 체계를 구축하지 말라고 X랄인 것은 정말 머리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쟤들은 종북들을 이용해서 남조선을 살살 삥뜯거나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완전히 떼어 놓기 위해서 핵을 만들 뿐이다. 터뜨려서 자폭하거나 심지어 미국을 공격하기 위해서 핵을 만드는 게 절대로 아니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건 걔네들도 잘 알 것이다.

본인 역시 지금 당장 더 절박하고 시급한 문제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종북 쪽을 더 비판하고 까며 지낸다. 하지만 우파가 반일· 극일 분야도 좌향좌들보다 훨씬 더 건전하게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본인은 행동으로 입증하고 싶다. 사상과 행적 모든 면이 우월하다는 것을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12/05 08:33 2017/12/0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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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세기 초에 일본은 여느 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일찍 산업화 근대화를 이뤘고, 러일 전쟁에서 승리까지 함으로써 일단은 서구 열강과 대등한 급의 강대국이라는 인증까지 해냈다.
얘들은 제국 덩치를 키우기 위해서는 (1) 대륙으로 진출하는 위치가 좋고 (2) 덩치가 적당히 작아서 만만하고, 또 (3) 정치 경제 군사가 모두 개막장을 달리고 있어서 무력으로 제압하기도 편해 보이는 조선을 먹어서 일본으로 편입시켜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옛날에 더 멀리 떨어져 있던 섬나라인 류쿠를 일본이 먹었듯이 말이다. 일명 '정한론'이다.

얘들은 단순히 군사력만 키운 게 아니라 조선의 식민지화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타 강대국들과도 외교 로비를 벌이면서 정말 치밀하게 노력했다. 전자뿐만 아니라 후자를 볼 줄 알아야 한다. 한반도 안에서 한일협약(내정간섭), 을사조약(외교권), 정미7조약(군대 해산) 등등이 벌어지는 동안 밖에서는 일본이 뭘 했는지를 말이다.

* 제2차 영일 동맹 (1905) 일부
영국은 일본이 한국에서 가지는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이익을 보장하며, 일본은 영국의 인도 지배 및 국경지역에서의 이익을 옹호하는 조치를 취할 것.

* 가쓰라-태프트 밀약 (1905) 일부 ... 을사조약의 전신
일본이 군대를 동원해서 대한제국이 일본의 동의 없이는 외국과 조약을 맺지말 것을 요구하는 정도로 대한제국에 대한 종주권(suzerainty), 즉 외교권을 확보하는 것은 러일전쟁의 타당한 결과이며 동아시아의 영원한 평화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그래서 영국은 인도, 미국은 필리핀, 그리고 일본은 조선... 이렇게 각각 식민지를 나눠 갖고 서로 터치 안 하는 구도가 형성됐었다. 이렇게 입을 다 맞춰 놨는데 헤이그 밀사가 뒤늦게 나서 봤자 짜고 치는 고스톱 하에서 호소가 씨알이나 먹혔겠는가?
미국도 그때는 일본과 이미 먼저 맺은 약속이 있어서 조선의 일제 식민지화를 방조 묵인했다. 이런 식민지 분배 중재를 잘한 공로로 어떤 미국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그런데.. (... and 간극)

* 카이로 선언(1943) 요지
연합국의 목적은 일본으로 하여금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이래로 폭력으로 약탈한 일체의 지역에서(만주, 태평양 섬들 등등) 철수하고 해당 지역을 원래 국가에 반환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앞의 3대국은 한국민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여 '적절한 절차'를 거쳐 한국을 자주 독립시킬 결의를 한다.

이렇게 역사가 바뀌고 세상이 달라지기까지 무려 40년에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헤이그 밀사가 허무하게 실패한 이후로 일본은 1차 세계 대전 때는 연합국 승전국으로서 대접 받았고, 반대로 한반도의 독립 운동이라는 건 무력 노선이든 외교 노선이든 그야말로 꿈도 희망도 없고 아무도 안 알아 주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노답으로 흘러갔다.
이런 시류 속에서 세워진 국제 연맹이라는 조직은 조선의 독립에는 단 1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대로 세대가 교체돼 버리면 단군의 후손이라는 민족 정체성이 송두리째 사라질지도 몰랐다.

그러니 카이로 선언이라는 게 우리 입장에서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는 크게 두 가지 면모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아이러니하게도 영일 동맹의 당사자이던 영국, 그리고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당사자이던 미국이 이 선언문에서는 3대국의 구성원으로 언급되었다. (나머지 마지막 하나는 중국;;) 조선의 독립에 대해 전혀 아오안이던 그 강대국들이 드디어 일제의 국제적인 악행을 인지하고 반대급부로 대한 독립을 승인하는 주역으로 바뀐 것이다.

둘째, 더구나 카이로 선언의 일차적인 관심사는 일본이 1차 세계 대전 이후에 벌인 침략 행위에 대한 저지와 원상복귀, 단죄였다. 다시 말하지만 1차 대전 시절까지만 해도 일본은 전범국은커녕 연합국 전승국이었기 때문이다.
한일 합방은 1차 대전보다 미묘하게 전에 일어난 일이었으며 조선은 계속해서 일제의 합법적인 식민지 멀티 기지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열강은 한반도를 예외적으로 추가로 일제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는 점에 합의를 보고 이를 명문화까지 하게 된 것이다. 아아..

이런 역사가 있기까지 이 승만 같은 <Japan Inside Out> + 외교 노선과, 의열단 임시정부 같은 무장항쟁 노선이 모두 기여했을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Japan Inside Out은 10만 부가 넘게 팔리면서 한국인이 쓴 책 중에 북미권에서 제일 많이 팔린 책 1위이고, 아직까지도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다..!

물론, 인쇄된 책 말고도 지식과 정보, 소식을 얻을 통로가 왕창 많이 존재하는 오늘날의 베스트셀러 책 판매 부수를 그 시절의 책 판매와 수평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태평양 건너려면 여객선 타고 몇 주를 기다려야 했던 그 시절에 저 정도의 책을 영어로 직통으로 저술하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겠는가?

일본의 내막을 폭로한다고 해서 무슨 찌라시성 음모론 제기라든가, 일부 사회 음지에서 벌어지는 조선인 학살 인권 유린 이런 수준이 아니다. 아예 국제 정세를 분석하고 결국 일본은 미국도 침략할 거라고 예측해서 적중까지 했다. 게다가 공산주의의 실체도 잘 알고 있는 사상 건전한 사람이니, 미국에서 고집쟁이 정치병 영감쟁이가 아닌 외교 정치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었고 한국 독립도 덤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자기 정치 성향에 따라 외교나 무력 노선 중 자기가 지지하지 않는 노선을 지나치게 폄하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현실성만 따지자면 둘 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고 우열을 가리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무모한 삽질이긴 마찬가지였다.

이 승만조차도 그 교통 통신 불편하던 시절에 국제 정세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을 때는 국제 연맹에다가 젠틀하게 조선 독립을 호소했으며, 일제로부터 통치를 받느니 차라리 니들 통치를 받겠다고까지 요청했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냉담한 무시뿐이었다. (참고로, 이 승만의 저 탄원에 대해서도 좋게 말하면 오해이고, 삐딱하게 말하면 아주 쌩 헛소리 중상모략이 엄청 많이 나도는 중임..)
무장 투쟁 쪽도 뭐.. 언제까지 이렇게 젊은 투사들 희생시켜서 일제 요인들 암살하는 짓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그러나 그런 발버둥과 발악이 쌓이고 쌓인 덕분에 조선은 일본과는 민족성이 다르고 일본과 싸잡아 전범국 취급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과, 일제가 정말 나쁘고 쟤들이 정말로 독립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국제 여론과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이런 방향 제시 없이 미국이 핵만 터뜨려 준다고 조선이 독립 가능한 거 아니었다!

일본은 무슨 마약 먹었는지 미국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였지만,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결과는 처참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다 거덜나게 생겼지만 걔네들은 더욱 광기로 치달아서 전국민 옥쇄에 정신력 운운하며 난리를 쳤다. "귀축영미에게 항복하고 포로로 잡혀서 온갖 능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마지막 한 사람까지 저항하다가 같이 죽자!"
주요 추축국인 이탈리아와 독일이 다 항복한 와중에도 일본은 끝까지 gg를 치지 않고 버텼다.

미국도 처음에는 치사하게 진주만 폭격을 벌인 일본을 상대로 그저 적개심과 증오심만 표출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쟤들은 도대체 뇌 구조가 어떻게 돼 있고 무슨 약을 빨고 저렇게 날뛰는지 황당해하고 신기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포츠담 선언에서는 지난번 카이로 선언 내용을 재확인하면서 "곱게 항복하고 식민지들 반환하고 전쟁만 끝내라. 우리는 너희가 항복하더라도 너희가 원래 갖고 있던 영토 주권 같은 건 결코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친절하게 다시 friendly warning을 해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군부는 말귀를 못 알아듣고 선언 내용을 '묵살'로 대응했으며, 그 결과 1945년 8월에 핵폭탄을 맞고 말았다. 그것도 두 방이나 맞은 뒤에야 덴노가 번쩍 정신을 차렸으며, 전쟁에 미쳐 폭주하는 군부를 그대로 놔 뒀다가는 나라가 정말로 멸망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덴노로서는 이례적으로 자기 육성을 방송하여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것도 자기 잘못은 절대로 직접 시인하지 않고 일본의 높으신 분들 특유의 돌려 말하기 스타일로 아주 간접적으로 항복을 표현했다. "적들이 무시무시한 폭탄을 터뜨린 와중에 전쟁에 휘말려 고생하는 백성들이 너무 불쌍해서 전쟁을 이쯤에서 끝낼까 하노라"..;;; 아이고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겠다.

그런데 얼마나 세뇌를 당했으면 자국 덴노의 항복에도 동의할 수 없어서 '궁성사건'이나 '마츠에 소요' 같은 병맛스러운 항복 반대 쿠데타 및 항전 시도가 있었으며, 저 동남아 밀림에서는 자국의 항복을 믿지 않고 몇십 년째 혼자 군인 행세를 하고 다닌 소수의 미친놈도 있었다.

일본은 전쟁에서 항복함으로써 혹시 덴노의 신변에 위험이 생기거나(전범 재판에 회부), 덴노 제도 자체가 강제로 폐지당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 그러나 승전국인 미국 역시 이를 의식하고 쇼와 덴노 자체를 전범으로 기소하지는 않았다. 단지 맥아더 장군의 주도 하에 인간 선언을 시키고 덴노의 신적 권위를 불식시켰을 뿐이다. 만악의 근원이었던 신선놀음 하나만 중단시켰다. (미국도 감히 건드리지 않은 덴노 제도를 훗날 옴진리교가 무너뜨리려 했다는 것은 참 황당하기 그지없다.)

일본이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개겼으면 올림픽 작전, 몰락 작전 이런 게 몽땅 실행되었을 것이고 미국으로도 모자라서 소련까지 합세해서 일본 본토를 조졌을 것이다. 일본은 석기 시대로 돌아가거나 최악의 경우 지도에서 지워졌을 것이고, 한반도가 아니라 쟤들이 분단되고 여러 점령국들에 의해 조각조각 찢어졌을 것이다. 다만, 한반도는 전체가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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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나온 사진 두 장을 이렇게 대조해 보는 건 굉장히 흥미롭다.
인간이 아니라 신인 덴노가 감히 자기 목소리로 방송을 한 것만으로도(옥음방송, 무조건 항복) 일본 황국신민들은 깜짝 놀라서 벌벌 떨었는데, 하물며 맥아더가 1945년 9월, "천황이라는 작자도 한낱 인간일 뿐이고 내 갑빠와 포스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냐!" 요런 사진을 의도적으로 찍은 뒤 이걸 일본 언론를 통해 일부러 내보냈다.

저 모습을 본 일부 일본인들은 멘붕에 자살을 하고, 또 더러는 이제 맥아더를 신성시하면서 집에 신사를 만들고 경배(?)하기도 했다. 딱 행 14:11-15와 비슷한 유형이었다. 일본이 근대화 산업화는 동양에서 일찍 해냈어도 각 개인의 정신 세계는 딱 그러했다.

지금이야 일본은 국민성이 전반적으로 한국보다 훨씬 더 성숙하고 선진적이라는 게 중론이다. 특히 공중도덕 매너 쪽으로 굉장히 철두철미해서 남에게 민폐· 피해를 끼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사람들이 불과 몇십 년 전엔 무슨 약을 잘못 먹어서 침략 전쟁을 일으키면서 이웃 나라에 온갖 민폐와 피해를 끼쳤다는 것이 나로서는 정말 아이러니하게 들린다.

일본 사정은 그렇고..
그로부터 5년 남짓 뒤인 1950년 6월 말, 일본에 있다가 북괴의 남침 소식을 듣고 황급히 김포 비행장으로 달려온 맥아더는 씅만 리 할배하고는 저렇게 같이 얼싸안고 좋아서 난리가 났다. 히로히토하고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참고로 남조선은 일본 정도가 아니라 일본의 지배를 35년이나 받았으며, 미국 덕분에 해방된 지 그 당시 5년 남짓밖에 안 됐던.. 그야말로 한 주먹 쨉도 안 되는 듣보잡 약소국이었다. 그리고 맥아더는 성깔이 장난 아닌 완벽주의자였고 미국 안에서 같은 백인들끼리도 대인 관계가 그렇게 좋은 사람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포즈가 나올 수 있었을까?
맥아더와 할배 모두 천재에 과격파.. 하지만 사상은 지극히 건전하고 올바름.. 딱 내 취향 내 스타일이다. 존경스럽다.

물론 반대편에 있었던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들 중에서도 정말 최악의 막장만 골라서 가면서 썩고 곪은 사례이다. 북괴가 그렇게 극단으로 치달은 것에는 그 아래의 남조선의 존재(그리고 동맹인 미국)로 인한 두려움과 부담도 분명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남북 대결이 없었고 아예 남조선이 6· 25 전쟁에서 져서 처음부터 전체 적화가 돼 버렸다면 오히려 북한이 지금의 북한 같은 흉악한 괴물이 되지는 않았고 1990년대에 무너지고 개방하고 변화가 생겼을 수는 있다. 그 가능성은 본인도 인정한다.

그러나 저것도 언제까지나 가정일 뿐이고, 설령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존재를 부정하는 결론을 도출하는 미친놈은 없을 것이다. 여자가 야하게 입고 다녀서 누가 강간죄를 저질렀다면 그럼 여자 잘못인가? 은행에 돈이 많이 보관돼 있어서 은행 강도가 침입했다가 붙잡혔으면 그럼 돈을 많이 넣고 다닌 은행 잘못인가? 그거랑 완전 똑같은 논리이지 않은가? 예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북괴는 8월 종파 사건과 고난의 행군 이전부터 막나가는 미친 나라였고, 6· 25 이전부터 월남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본이 전국민 옥쇄 운운하며 발악을 했던 것이 지금으로서는 북괴의 말로에 대한 좋은 예표이지 싶다. 쟤들 역시 절~대로 곱게 멸망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핵을 터뜨리고 반인륜 범죄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수용소 죄수들을 다 죽이고, 주민들을 인질 삼아서 별 미친 짓을 다 할 것이다. 북한 주민들에게서 김씨 부자의 세뇌를 지우는 일은 어쩌면 일본 국민에게서 덴노에 대한 신격화를 제거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일본 대신 '북괴 정권', 한국민 대신 '북한 주민'이라고 바꿔서 카이로 선언의 북괴 타겟 버전이 국제적으로 발효되고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강제 이행됐으면 좋겠다. 언제까지나 주민들이 저렇게 도탄에 빠져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쟁도 어떤 전쟁이냐, 평화도 어떤 평화인지를 따지면서 옳고 그름을 논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10/28 08:35 2017/10/2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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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모다테 2017/10/28 18:51 # M/D Reply Permalink

    철덕 입장에서 봐도 그당시 일본이 미친놈들이라는 생각이 드는게 당시 일본이 증기기관차로 시속 200km급 고속철도를 계획했다는 겁니다.

    1. 사무엘 2017/10/28 19:38 # M/D Permalink

      영국과 미국에서는 시속 200km급 증기 기관차를 개발해서 여객용으로 운용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일본에서는 어림도 없었겠지요. 궤간도 겨우 협궤인 주제에..
      또한, 고속 증기 기관차라면 양반이지, 일본은 1940년대에 독일과 마찬가지로 미국보다 먼저 핵무기를 만들 생각도 했었습니다. 물론 그것도 자기네 여건에서는 엄두를 못 낼 일이었습니다. 정신세계에 똘끼가 참 넘쳤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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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기철, 손 양원 목사는 우리나라 교회사에서 손꼽히는 의인· 위인이요 순교자이다. 단순히 자기가 믿는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 바쳐 항거했을 뿐만 아니라, 평소의 행실도 정말 훌륭했고(남을 위해 헌신, 봉사..) 크리스천으로서 남에게 큰 귀감이 됐던 분이다.
이분들의 생전 "주요" 행적이야 이미 잘 알려져 있으니 됐고(각각 평양 경찰서 구속, 사랑의 원자탄 등등..), 이 글에서는 이분들의 순교 당시 배경에 대해서만 추가적으로 생각을 좀 해 보았다.

1. 손 양원

6· 25 사변 발발 당시에 우리나라의 영남과 호남은 똑같이 남부 지방이지만 서로 다른 운명을 맞이했다.
영남은 나라 사정이 제일 위급했던 1950년 9월 무렵에도 낙동강 전선에서 대구, 칠곡, 영천 정도가 마지노 선이었고 거기보다 더 동남쪽은 그나마 북괴에게 함락· 점령당한 적이 없다. 6월 26일 새벽 대한해협 해전에서 대승도 거둔 덕분에 거기는 더욱 빨갱이 없는 청정지역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호남은 전지역이 북괴에게 점령당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반도의 동남쪽으로는 일본이 있지만 서남쪽에는 중국이 있으니 이는 지리적으로, 군사 전략적으로 어쩔 수 없는 귀결이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손 양원 목사는 부산보다도 위도가 더 낮은 최남단 후방인 여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빨갱이들에 의해 순교하게 됐다.

우리나라는 기독교인들의 순교가 일제 말기의 신사 참배 때보다도 6· 25 전쟁 중에 더 많았다.
신사 참배는 오히려 교단 차원에서 받아들이고 굴복했기 때문에 더 적었던 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 교회들이 빨갱이들 앞에서는 호락호락 타협하고 굴복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역사 교육이 필요하다. 이게 되면 적어도 크리스천 한정으로 반공 교육은 저절로 덤으로 이뤄지게 된다.

손 양원 목사가 여수에서 순교한 때는 1950년 9월 28일이었다.
겨우 사흘 뒤 10월 1일이 국군의 날인데 이게 뭘 기념해서 정해진 날짜인지 아는가? 38선 돌파 북진을 기념한 거다.
그때는 인천 상륙 작전이 이제 막 성공해서 북괴 공산군이 급 후퇴를 시작했으며 9월 28일은 1차 서울 수복일이기도 했다!

UN군 사령관이던 맥아더 장군은 전세를 뒤집을 획기적인 방법을 찾고 있었고, 결국 낙동강 전선의 전면돌파가 아니라 적군의 중간 보급로를 차단하는 특공대의 투입을 떠올리게 됐다.
인천은 극심한 조수 간만의 차이가 악재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갯벌 뻘밭은 배로도, 차량으로도 다닐 수 없고 알보병들이 아무 엄폐물도 없이 적의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최악의 전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평택, 군산, 심지어 남포나 동해상의 항구 도시도 같이 고려 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남포는 평양과 매우 가까운 만큼 위험성이 너무 커서 배제되었으며, 나머지 지역도 비록 당장 상륙 난이도는 더 낮을지 몰라도 내륙에서 곧장 북괴의 보급로를 끊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에 제외되었다. 그 당시에 보급로란 곧 경부선 철도를 의미했다.

그러니 최종적으로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천이 당첨됐다. 일단 상륙에만 성공하면 인천 시내 시가전 정도만 거친 뒤 곧장 서울에 도달할 수 있고, 서울을 먹으면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경부선 철도의 장악도 금방이기 때문이다. 인천은 평택과 더불어 한반도 전체에서 서쪽 해안선이 내륙 쪽으로 가장 깊게 파인 지역이기도 하다.

이런 상륙 작전의 추진과 성공 덕분에 전세가 역전되었고 우리나라는 기사회생했다. 이 와중에 손 목사도 며칠만 더 버텼으면 살았을 텐데 인간적인 면에서는 아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국어학자인 최 현배 박사는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투옥 중에 1945년 8월 18일 처형 예정이었는데.. 사흘 일찍 아주 갑작스럽게 광복이 되는 바람에 극적으로 살아났었다.
하지만 손 목사에게는 그런 행운이 찾아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분은 안 그래도 그 전의 여순 반란 사건 때 아들을 잃었는데 전쟁 때는 당사자가 희생되어 정말 고난과 순교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2. 주 기철 + 주 영진

1944년 주 목사의 죽음에 대해, 당시 주 목사와 가까이에서 수감되었던 안 이숙 여사는 일제가 주 목사를 약물을 주입해서 살해한 거라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마치 윤 동주 시인의 죽음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건 해당 주장 외에 다른 교차검증 가능 요소가 없고, 또 그렇잖아도 고문 때문에 몸이 극도로 망가져 있던 사람을 일제가 일부러 교묘하게 죽이기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점에서는 의구심이 든다. 더구나 그 당시 일제는 주 목사를 다 죽여 놓고는 면피를 위해서 오히려 보석 명목으로 풀어 주려 했는데, 오 정모 사모가 이 꼼수를 눈치채고 보석을 거부했었다.

윤 동주야 옥중에서 고문 당한 것 없고 건강한 상태로 멀쩡히 수감돼 있었는데, 이상한 주사를 여러 차례 맞으면서 점점 쇠약해지고 이내 죽고 말았다. 이건 동료 수감자들 사이에 여러 증언이 일치하며, 그 주사 맞다가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게다가 윤 동주는 반도도 아닌 일본 본토의 형무소에서 수감됐었다. 그러니 윤 동주는 생체실험 약물 주사로 인한 사망이 사실상 확실시되는 반면, 주 기철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고 여겨진다.

주 목사를 다룬 이전 글에서 본인이 이미 지적했듯, 주 목사는 재판 받고 형을 정식으로 선고받은 기결수가 아니었다. 윤 동주는 말할 것도 없고 유 관순, 최 현배 같은 분들과도 사정이 다르다. 그냥 경찰이 제멋대로 "너 이 셰끼 왜 신사참배 안 해?" 식으로 주 목사를 불법 구금하고 괴롭힌 것에 가깝다. 즉, 오늘날의 관점에서 그가 있을 곳은 교도소는 절대 아니고 기껏 유치장 내지 구치소(정식으로 기소라도 했을 경우) 레벨밖에 안 됐다.

그리고 그 상태로 형이 확정되지도 않은 사람을 몇 년 씩이나(마지막 4차던가 5차 검속 기준) 가둬 놓는 건 말도 안 된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구속 기간은 법적으로 180일로 정해져 있고, 그때까지 기소할 껀덕지를 발견하지 못했으면 피의자를 풀어 줘야 한다.

한 마디로 주 목사는 기독교 관점이 아니라 일제의 관점에서도 꽤 불법 막장 절차에 의해 구속당했던 것이다. 지금 박 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언제는 태블릿이고 뭐고 증거가 넘쳐난다더니, 그 긴 기간 동안에 혐의 하나 입증을 못 하고 구속 기간만 억지로 질질 연장해서 가둬 놓고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 시절에 일본의 법 체계에서는 '무죄 추정의 원칙' 같은 게 잘 적용되었을 것 같지는 않으며, 유치장· 구치소· 교도소가 엄밀한 구분 없이 그냥 '형무소'라는 시설 하나로 뒤죽박죽 통합 운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주 목사가 법적으로 기결수였는지 미결수였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었다. (☞ 평양 형무소 관련 자료)

끝으로 주 목사의 장남인 주 영진 장로 얘기를 하고 글을 맺겠다. 아버지에 이어 아들도 목회자의 길, 그것도 평범한 목회자의 길이 아니라 정말 엄청난 고난의 길을 가다가 끝내 순교했다.

일제의 박해가 끝나나 싶었는데 평양은 잘 알다시피 북괴 공산당의 소굴이 되었다. 이분은 뜻을 품고서 아예 월남하지도 않고 고난을 자처했으며, 거기서 종교인 반동분자로 단단히 찍혀 있다가 6· 25 전쟁이 발발할 무렵에 이미 잡혀가서 순교한 것으로 추정된다. (☞ 관련 자료) 본인은 저분도 순교했다는 것까지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예 월남하지도 않았다는 건 미처 몰랐다.

Posted by 사무엘

2017/10/25 19:34 2017/10/25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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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원자력 발전소가 처음으로 지어지고 가동된 건 고리 원자력 발전소로, 박통 말기인 1970년대 말이다. 그게 법적 설계 수명이 다 된지라 이제 가동 중단과 해체 단계에 진입해 있다.

원자력 발전의 건설과 운영은 당연한 말이지만 엄청난 과업이며, 하루아침에 이뤄진 일이 결코 아니다. 박통 이전에 할배 대통령부터가 원자력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저게 이렇게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반도에서 나라를 먹여 살릴 기적의 에너지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 자기 조국의 숙적 원수요 전쟁 미치광이였던 일본을 단번에 거꾸러뜨리고 항복시킨(결과적으로 대한민국 해방과 독립을 가져다 준!!) 무시무시한 폭탄이 바로 원자폭탄이지 않던가? 그러니 원자력을 보는 할배의 눈빛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할배 대통령은 그 열악한 전쟁 폐허 여건에서도 서울대에 원자력 공학과를 신설할 것을 지시하고, 미국을 설득해서 시험용 원자로를 도입했으며 원자력 연구원의 전신인 원자력 연구소(1959)를 만들었다. 박통이 70년대에 KIST와 국방 과학 연구소(ADD)를 만들었으나, 할배는 그보다도 전에 원자력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 점을 밑줄 치고 외우시길 바란다.

그리고 국비 장학 유학 제도를 통해 원자력 공학 공돌이 전문가들을 양성했다. 외화 한 푼이 아까울 정도로 가난하던 시절에도 교육을 위해서는 저렇게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사전 준비가 있었기 때문에 훗날 박통 때 이 땅에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될 수 있었다. 핵무기나 만들어서 북괴처럼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깽판 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먹고 살기 위해서, 풍요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원자력 기술을 도입했다.

본인은 원자력 발전의 적극 찬성론자이다. 화석 연료는 산림 황폐화를 예방해 주고, 원자력 에너지는 화석 연료의 부담을 덜어 준다는 원리를 왜 다들 모르는 걸까? 우리나라는 그저 품종 개량하고 나무를 무작정 심기만 해서 산림 녹화에 성공한 게 아니다. 땔감용으로 나무를 벨 일을 없게 만드는 과업이 성공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녹화를 성공할 수 있었다. 바로, 런던 스모그의 주범이기도 한 그 더티한 석탄의 대규모 보급이 전국적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이뤄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인해 우리나라의 산림 녹화 성공 사례가 아무 못사는 민둥산 나라에나 선뜻 도입 가능하지가 않은 것이다.

이런 큰 효과에 비해 대기오염이나 방사능 위험은 각각 따로 대책을 수립해서 해결해야 할 작은 부작용일 뿐이다. 다른 대안도 없는 주제에, 석기 시대로 돌아갈 생각도 없으면서 원자력 발전을 굳이 핵 발전이라고 부르면서 정작 북핵과 미사일엔 절대 침묵하는 애들을 난 개인적으로 굉장히 싫어한다. 그 대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도 저 트루먼 대통령처럼 껄껄 웃어 보고 싶다~!! ㅋㅋㅋㅋㅋㅋ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말은 아주 젠틀하고 부드럽게, 공손하고 댄디하게 하되, 허리춤에는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있으면 된다.
요즘은 저 리스트에다가 "둠가이와 존나 크고 아름다운 총" 컷도 하나 더 들어가야 할 것 같긴 하다.

(뭐, 트루먼 대통령은 실제로는 잘 알다시피 마냥 저런 대마왕이 아니었다. 미국의 너무 호전적인 장성들이 6· 25 전쟁 중에 한반도에다 핵을 또 터뜨리려는 걸 오히려 저지하기도 했다.. ㅎㅎ)

아무튼.. 원자력은 이 승만 때 이래저래 뿌려졌던 씨가 박 정희 때 결실을 거뒀다. 그런데 그 다음으로 컴퓨터는... 박통 때 뿌려졌던 씨가 그 다음 전대갈 때 결실을 거뒀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다.
물론 컴퓨터 자체야 박통 때 국내에 첫 도입됐으며, 70년대부터 각종 행정 서비스의 전산화가 찔끔찔끔 진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의 컴퓨터는 관공서와 연구소에서나 볼 수 있는 크고 아름다운 기계였지, 개인이 쓸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천공 카드, 자기 테이프.. 아직 뭐 이러던 시절이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와서야 일반 서민들도 정보화 시대라는 걸 체험할 수 있을 정도의 변화가 터져나왔다. 1983년에는 삼성 전자에서 반 년간 공돌이들을 갈아넣은 끝에 64K디램 메모리 반도체를 개발했고 그와 별개로 SPC-1000이라는 8비트 컴퓨터를 만들어 냈다. 경쟁사인 금성사에서도 곧 금성 패미콤을 만들었다.

1984년에는 철도청에서 최고급 열차인 새마을호부터 승차권 전산 발매를 시행했다. 지하철 승차권 같은 딱지(에드몬슨..) 말고 일명 전산 승차권이라는 게 이때부터 최초로 발급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전산화 이전에는 열차의 좌석 배당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모르겠다. 행정 착오로 인해 한 좌석에 두 사람이 중복 배당되기도 했을 테고, 아니 옛날에는 애초에 지정석보다는 자유석 위주로 승차권이 발매됐지 싶다.

또한 이 해엔 한국 정보 올림피아드의 전신인 전국 단위의 PC 경진대회가 최초로 개최되기도 했다. 이건 대통령이 직접 관심을 갖고서 거절할 수 없는 규모의 상을 걸고 정말 성대한 규모로 치러졌었다. 이 당시에는 심지어 일반부(대학부를 초월하여!)까지 있었는데, 1990년대 중반부터 정보 올림피아드로 바뀌면서 대회의 범위가 국제 규격에 맞게 대학 미취학 연령으로 조절되었다.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뭐, 컴퓨터뿐만 아니라 자동차도.. 박 정희 때 이제 막 고속도로가 닦이고 자동차도 일정 수준 이상의 국산화율을 달성한 생산이 시작됐다. 하지만 서민이 체감할 정도의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는 잘 알다시피 1980년대에 가서나 이뤄졌다.

그렇게 우리나라는 분야별로 차근차근 산업화하고 발전해 왔다. 지금이야 어디 깡촌에 고속도로가 개통하면 "또 어디 개통하나 보네~ 내비 업데이트나 해야겠네" 짤막하게 뉴스로 나오고 말지만.. 옛날에 경부 고속도로가 처음 개통했을 때는 임팩트와 포스가 지금과는 가히 넘사벽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경부 고속도로 같은 길이의 거대한 고속도로를 한번에 만들 일 자체가 없어졌기도 하고 말이다.

또한, 옛날에는 탈북자의 귀순은 대대적인 뉴스감 및 선전거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탈북자가 1년에 몇만 명씩 내려오고 체제 선전이나 경쟁 따위도 전혀 할 필요가 없으니, 이제는 아주 유명한 사람이 아닌 이상 그냥 "병사 1명 군사분계선 넘어서 귀순, 서해상으로 탈북" 한 줄 보도로 끝이다. 이름 같은 신상은 밝히지도 않는다. 63 빌딩과 서울 타워를 구경시키면서 남조선의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관행 역시 없어진 지 오래이며, 그냥 국정원 소속의 탈북자 신문 센터와 하나원으로 직행이다.
초딩 시절에 김 만철 씨 가족의 해상 귀순과 <광호의 일기> 책을 봤던 세대로서 이것도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Posted by 사무엘

2017/10/17 08:34 2017/10/1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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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검증

*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도저히 어려운 주제이다 보니, 팩트폭격과 더불어 조금 거친 표현이 있음을 미리 양해 구한다.

1. 반미 반전 이런 구호나 운동 극혐

1950년 6월 25일 당일이 일요일이었는데 올해도 6월 25일이 일요일이구나.
2000년 이래로 우리나라에서 불순불온한 진영이 없애라고 외쳐 온 공략 대상을 쭉 살펴보면 (1) 주한미군, (2) 국가보안법, (3) 국정원, 그 다음은 (4) 싸드로 정리된다.
(1)에 대해서 적을 이롭게 하는 사악한 선동질 한 동일한 놈들이 (2), (3)을 거쳐서 (4)에 대해 외치는 구호도 우리나라를 위해서 외치는 구호일 리는 당연히 전혀 절대 만무하다.

저건 두 말할 나위도 없이 북괴의 입장을 100% 정확하게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다. 놈들이 원하는 것의 정반대로 하는 것만이 우리나라가 살 길이다. 북괴가 이런 쪽으로는 의외로 단순무식하게 일관성이 있다. 허나, 지구상에서 제일 반미 할 자격 없는 애들이 자기 주제를 모르고 저 짓거리 하는 걸 보면 울화가 치미는 걸 억제할 수 없다.

배은망덕한 놈들, 광우뻥 때부터 지금까지 역사로부터 배운 게 없는 미개한 놈들, 군복 차림에 가스통 들고 흥분해서 날뛰는 틀딱충 꼰대보다 더 사악한 놈들. 병역특례 부실복무나 하고서 안보 장사(?) 만화 그리고 있는 모 웹툰 작가보다도 더 위선적인 놈들.

이런 날 내 머리에 곧장 떠오른 성경 본문은 에스겔서 16장이었다.
남조선 인민들의 기구한 내력과 분에 넘치는 은혜, 그리고 병들고 썩어빠진 정신 상태가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와 절묘하게 씽크되는 걸 볼 수 있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저 본문을 꼭 보고 두 번 보시길..
그리고 열왕기상 20장도 같이 보면 좋다. 자기의 적을 보고도 "그는 내 형제니라"(왕상 20:32) 이러는 멍청한 왕을 두면 그 밑의 백성이 얼마나 고생하게 되는지를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전쟁의 반대가 평화인 건 자기가 힘이 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전쟁의 반대는 그냥 항복과 노예이다!
꼭 자기들이 전쟁을 하거나 평화를 유지할 선택권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에 본인은 굉장한 어이없음을 느낀다. 남조선이 무슨 스위스 같은 영구중립국이기라도 했냐? 일제 강점기에 6· 25를 겪은 게 100년도 채 안 지났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저런 식으로 하냐? 하다못해 중· 고등학교에서 일진 양아치들한테 안 당하기 위해서라도 힘이 있어야 하는 건(혹은 최소한 힘이 센 것처럼 보이는 것) 너무 당연한 이치 아닌가?

다른 나라도 아니고 한반도에서 Imagine 가사나 읊어 대면서 반전 (반미) 평화, 서로 싸우지 맙시다, 남북이 서로 협력하고 화해합시다 이딴 소리 하는 놈들은 그냥 99%는 빨갱이 내지 걔네들에게 놀아나는 저능아들이다. 내 말이 기분 나쁘면 북괴 수뇌부 앞에서나 그런 평화타령 한번 늘어놓아 보든가.

그리고 내가 이런 얘기까지는 안 하려 했는데.. 경험상 아동문학이 어떻고 사교육 주입식 입시교육 없는 세상, 대안학교.. 애들 참교육이 어떻고 이러는 부류 중에 사상 이상한 사람들 정말 많이 봤다.
옛날에 TV로도 방영됐던 몽실 언니 작가도 보니까 참.. 죄송한 말이지만 불순한 분 같지는 않고 정말 순진한 건지...;;;
유언장 중에 한 대목이 이거다.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주세요"

그게 당신이 원한다고 굶주리는 애들한테 가 지나? 어유..
누군 뭐 바보여서 자금줄 압박, 고립, 대북제재 하는 줄 아나?
우리나라도 못살던 시절엔 몽실언니 같은 불쌍한 애들 많았지. 사회 분위기도 반쯤 살벌한 병영 분위기에 약자 인권 훨씬 더 열악했던 것도 사실이지.

근데 애들이 그렇게 불쌍하면.. <태양 아래> 같은 영화는 본 적 있나? 거기 나오는 주인공 진미는 오늘 내일 굶어죽는 꽃제비도 아니고 평양 금수저 최상류층이다. 그런 애들조차 완전히 로봇으로 세뇌당하고 개조돼서 지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 보라는 부탁에도 바싹 긴장하고는 당령 읊어대고 앉았는데 걔들은 불쌍하다는 생각 안 드냐?

하이튼 절대악과 필요악 뒤섞어서 사람 속이는 건 도사들이야.. 썩을놈들이.
작정하고 사리분별 못하는 애들 오염시키고, 그리고 법조인들 차근차근 적화시키고. 통상적인 경제력과 병력만 빼고 체제 전복시키는 방법도 정말 치밀하다니까. 한 10대, 20대 나이 때까지는 사회 한쪽에서의 부조리 때문에 필요악만 나쁜 줄 알고 의분에 차서 무작정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딴 생각을 어떻게 30대 40대가 가도록 평생 무덤까지 가져갈 수가 있냐?

"나라가 이제 온통 용공사상에 오염되었다. 좋을 리 없어! 왜 우리는 국가 체제를 보호하기 위해 종북 빨갱이들을 적절히 처리하지 않는거지? 내가 개인적으로 페북과 블로그에 맨날 이런 글이나 싸질러댄다 해도, 남조선은 아이들에게 어떤 곳이 돼 버리겠나? 그리고 아이들의 아이들, 그리고... 아, 나라의 앞날은 어둡다!"
-- 뭐 패러디인지는 알아서 검색을..;; -_-;

2. 바퀴벌레가 극소수 한두 마리 좀 있어 봤자..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냐 종북 같은 게 어디 있냐?
남한과 북한은 군사력과 경제력 차이가 서로 쨉이 안 되는데 극소수 '김 일성 만세' 이러는 또라이가 설령 있다 한들, 일부 병신 미친놈들일 뿐이지 나라에 무슨 위협이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사실, 교회식으로 비유하자면
콘스탄틴 로마 황제의 기독교 공인이 진짜로 기독교가 세상을 이기고 영적 승리를 쟁취한 줄로 안다거나,
요즘 세상에 사탄 마귀가 어디 있냐, 지옥 같은 거 없다 이렇게 생각한다거나 혹은
성경 변개라는 게 "너는 루시퍼를 숭배할지니라" 이렇게 고치는 게 전부인 줄로 아는 참 순진하고 한심한 분별력으로는 이념 쪽으로도 저렇게 naive하게 생각할 수도 있긴 할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게 만만하고 낭만적이지 않다. 이 문제는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집 싱크대에 바퀴벌레 한두 마리가 주기적으로 대놓고 보일 정도이면 보이지 않는 곳에는 바퀴벌레가 얼마나 우글거리고 있을까?
법정에서까지 극소수 "김 일성 만세" 외치는 미친놈이 있을 정도이면 보이지 않는 곳에 서식하는 빨갱이들은 도대체 몇 마리나 될까?
몇백 명이 먹는 급식 중 극소수에서 머리카락 몇 올이나 바퀴벌레가 한 마리쯤 나와 봤자 식당 위생은 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걸까?
이렇게 말이다.

굳이 핵이나 미사일 같은 비대칭무기 얘기를 하지는 않겠다.
군사력과 경제력 차이가 제아무리 쨉이 안 돼도 이념 적화로 인해서 순식간에 나라 망하는 건, 아주 쬐그만 구멍 하나 때문에 댐이 무너지고 풍선이 순식간에 터지는 것만큼이나,
몇 년을 재부팅 없이 돌아가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메모리 leak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뻗는 것만큼이나 아주 쉽게 가능한 일이다.

조잡한 폭탄으로 자그마한 구멍만 뚫어도 커다란 여객기가 공중분해될 수 있고(대한항공 858처럼), 비슷한 자그마한 결함으로 인해 컬럼비아 우주왕복선도 그냥 확 공중분해돼 버렸었다.
왜냐하면 댐에는 엄청난 양의 물이 담겨 있었고, 비행기와 우주선 역시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이 지상에서 좀체 구경하거나 상상하기 어려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 시국에 대해서도 바로 저런 그림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비유를 들어 볼까?
루시퍼의 죄와 아담의 죄(그리고 이전 세상과 현 세상)를 분간 못 하는 정도의 통찰력이라면, 그냥 나라 윗대가리들의 평범한 부정부패 비리랑 아예 적에다가 퍼주는 반역죄의 차이도 분간 못 할 수는 있겠다.
성경과 현 시국... 물론 분야는 다르지만 일관된 논리로 해석 가능하다는 것이다.

3. 국정원의 여론몰이? 댓글 알바?

우리나라 같은 곳은 지나친 방종과 무질서, 안전불감증이 문제이지, 뭐 누가 검열을 하네, 민주주의가 죽었네 공안 통치네 뭐네 하는 건 정말 1도 고려할 가치가 없는 헛소리이다. 그런 건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아직도 카톡 대신에 라인이나 ISIL이나 쓴다는 듣보잡 메신저들 잘 쓰고 계시나? 루머 괴담 하고는.. ㅉㅉ

요즘 같은 세상에 국정원 요원이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얼굴 안 보이는 사이버 공간에서 얼마든지 공작 활동을 한다. 그곳으로부터 지령이 대놓고 내려오고 유언비어 거짓 선동이 하도 많이 나돌고 불길처럼 퍼져 나가니, 저건 국가 안보 차원에서 국정원에서도 자기 정체를 숨기고 맞불 놓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쉽게 말해 악에 대해 같은 악으로 맞서서 대응한 것뿐이다.

왜? 국정원은 세상 정부 소속의 방첩기관일 뿐, 무슨 신약 기독교회 같은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군대가 살인이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집단인 것만큼이나 거기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게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집단이니까 말이다.

흉악범들이 교수대에서 사형 당하는 걸 보고 동정하기에 앞서 흉악범에게 살해당한 피해자를 훨씬 더 동정해야 하듯.. 국정원의 존재가 불편한 것보다 국정원 같은 기관을 필요하게 만드는 놈들의 존재가 훨씬 더 불편하고 거북해야 하는 게 정상이다.
"진짜" 검열과 공안 통치 같은 건 그나마 지금 국정원을 무너뜨리고 해체하자고 외치는 애들의 바람이 이뤄졌을 때에나 진짜로 찾아올 것이다.

물론 국정원 요원들이 무능해서 임무 수행이 실패하고, 정체가 들켜서 언론 타고 존재를 노출해 버린 것은 실드 칠 수 없는 흑역사이다. 옛날에 스파르타 애들이 훈련 중에 민가에서 음식을 훔쳐 먹다가 잡히면, 도둑질 때문에 벌받은 게 아니라 병신같이 들키고 잡힌 것 자체 때문에 벌받았듯이 말이다.
저기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걸 봐 주는 곳인 만큼, 평가 내지 비판할 때도 의도나 과정 같은 거 따질 필요 없이 오로지 결과만으로 냉정하게 하면 된다. 단순히 본연의 임무에 실패한 것에 대해서도 없는 간첩을 조작해서 무고한 사람을 조진 것만큼이나 욕해도 된다.

4. (잘못된)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자

우리나라는 헌법에서 '말로는' 평화 통일을 지향한다. 그러나 통일이라는 게 마치 결혼처럼 나만 잘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현실에서는 남과 북 체제 중 하나가 물리적으로 없어지지 않는 한 통일 그딴 거 저언혀, 네버 가능하지 않다.
이는 우리나라가 사상과 양심의 자유, 인권 같은 걸 기본적으로 보장함에도 불구하고 신념에 따른 병역(집총) 거부자를 계속해서 실형으로 처벌해야만 하는 이유와도 정확하게 일맥상통한다. 유엔까지는 모르겠다만, 엠네스티나 EU 따위가 남의 나라 안보와 체제까지 책임지고 지켜 주지는 않는다!

내가 여호와의 증인 신자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서 이런 말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것을 최신식 국립호텔에서 1년 반만 살다 나오는 걸로 끝나게 해 주는 국가에서 사는 것을 매우 고맙게 여겨야 할 것이다. (뭐, 그 뒤로도 몇 년간 사회적으로 따가운 시선에다 취업· 여권 발급 같은 데서 불이익이 뒤끝으로 더 따르긴 하겠지만)

우리나라 법조계도 장사를 하루 이틀 하는 게 아니니, 여증들 상대하는 건 이골이 나 있다. 판결문은 보통 "님들에게 대체복무 같은 시스템이 있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구제책이 없고 사법부가 월권을 해서 그런 걸 마련해 줄 수는 없다. 그러니 실형 땅땅땅" 이런 식으로 나오는 편이다.

사실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실용주의(pragmatism) 관점으로만 접근하자면야 지뢰 제거 내지, 군복무보다 훨씬 긴 기간 동안 왕창 힘든 사회봉사로 퉁치는 것을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들의 교리와 사상이 성경 교리로나 사회 통념으로나 근본적으로 옳지 못하고 해롭고 잘못됐다는 것을 일깨우는 차원에서는 계속 실형 때려서 전과자 만드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전국민이 동성애자이면 사회가 유지가 되겠으며,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전국민이 여증 신자가 된다면 남조선이라는 나라가 제대로 유지가 되겠는가?

개인적으로 수혈 안 받는 거야 자유이지만, 자기 애한테도 수혈 안 시키고 심지어 자기가 의료인이 돼서 다른 환자한테까지 수혈 안 시키는 건 갈수록 죄질이 더 나빠지는 범죄이듯이 말이다. (이것도 성경하고 아무 상관 없음)
여증들은 수혈과 집총 거부하는 그 집념으로 술 같은 거나 거부했으면 어지간한 기독교인들 이상으로 더 좋은 평판을 얻었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국군은 침략 전쟁을 전혀 지향하지 않으며 근본 이념이 철저하게 방어적이다. 방어를 위한 전쟁 대비조차 하지 말자는 애들은 진짜 온갖 악독한 욕을 들어도 싼 나쁜놈들이다.

5. 5· 18과 6· 25의 차이

뭐, 전대갈이 법이 규정하는 절차대로 곱게 권좌에 오른 건 아니었으니 5· 18은 일단은 누구 말마따나 의로운(?) 항쟁으로 시작했다고 치자. 그러나 나중에 누구의 거짓 선동이 있었건 뭐가 있었건 어찌 됐든 폭동으로 변질된 것도 사실이다. 루터의 종교 개혁이 나중엔 결국 정치 항쟁으로 변질되었듯이.
그리고 투입된 군인들 역시 과잉방어건, 스트레스와 패닉 속에서 맛이 가서 그랬든, 잘못된 정보에 입각했든 어쨌든 민간인을 죽인 게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광주 5· 18은 제주 4· 3 사태만큼이나 일종의 쌍방과실이다. 앞으로는 그렇게 자국의 민· 관· 군 간에 비극적인 오해와 오사가 없게 진상을 규명하고 화해할 필요가 있다. 민간인 피해 보상은 해야겠지만, 어쨌든 국가의 명령을 수행하느라 목숨 바친 군경에 대해서도 명예를 절대적으로 존중하고 예우해야 한다. 그리고 정황상 둘을 이간질한 진짜 배후의 악한 제3자 세력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니, 이것도 꼼꼼히 연구 조사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이에 반해 6· 25는 빼도 박도 못하고 북괴의 고의성과 과실이 100%로 오래 전부터 입증된 침략 전쟁이다. 이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만큼이나 입증된 사실이다.
그런데 역사를 왜곡하는 사악하고 나쁜놈이 하는 짓이 뭐냐 하면.. 정말로 쌍방과실인 사건에 대해서는 오로지 국가 공권력만 일방적으로 나쁜놈으로 몰아가고, 100:0인 전쟁에 대해서는 '남북 공동 책임 반반씩' 이 짓거리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빨갱이라도 6· 25를 무슨 남조선이 먼저 벌인 북침 이럴 수는 없으니, 그 대신 오로지 국군이나 미군 시행착오 저지르고 뭘 민간인 학살을 하고 잘못한 것만 부각시킨다.
그리고 미국놈들만 없었으면 이 모든 부작용(?) 없이 우리끼리 통일 이뤄서 행복하게 잘 살았을 거라 말한다. 물론, 무슨 통일인지는 절대로 얘기 안 한다.
이런 쳐죽일 놈들이 같은 하늘 아래에 있어서 김 정호 옥사설보다 더 해롭고 악질적인 역사 왜곡을 책과 교육을 통해서 퍼뜨리고 있는 한, 나는 일제의 역사 왜곡 같은 훨씬 덜 중요한 왜곡엔 제대로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

전 두환 회고록이 무슨 히틀러의 <나의 투쟁> 같은 취급을 받고 어디서는 아예 출판 금지 신청까지 했다는데..
뭐 동의한다. 단, 이 승만에 대해서 거짓말 헛소리 잔뜩 늘어놓고 애들 정신건강 해치는 기존 불쏘시개들도 다같이 싹 회수· 폐기 처분해 준다면 말이다. 나도 역사 인식에 대해서 마음에 안 드는 걸 지적하라면 그들 만만찮게 많이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5· 18은 설령 폭동 없이 정말 의로운(?) 항쟁만 있었다고 하더라도 4· 19보다는 격이 낮고, 4· 19는 6· 25 참전 용사 유공자보다 더 낮은 격으로 취급돼야 마땅하다. 겨우 이 승만· 전 두환 끌어내리는 데 실패했고 1공 4공 5공이 좀 더 오래 갔다 해도 남조선이 근본적으로 북한 꼴 날 일은 절대,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민주화? 직선제?는 되면 더 좋고 안 돼도 상관없거나 어쩔 수 없고, 북괴 같은 안보 위협만 없으면 굳이 난리 안 쳐도 더 쉽게 실현됐을 일이었다.
이것이 팩트다.

6. 가난한 서민을 위한 정치인 같은 건 없음 -- 위선이나 떨지 말길

요즘 맨날 나오는 말이 수저 계급론에 경제 민주화, 갑질 이런 것들이다. 물론 요즘 사회에 문제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제아무리 사회가 빈부격차와 개인의 사리사욕을 인정하면서 발전한다 해도 그 격차라는 것도 한계가 있고, 그게 저열한 시민의식과 결합하면서 계층간의 불만과 위화감이 커지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썩어빠진 부자들 기득권들에 대한 증오 부추기면서 세상을 바꾸자느니 적폐청산 하자고 떠드는 애들은 그들이야말로 이미 부자 기득권이며, 눈먼 나랏돈 말고 자기 재산을 남에게 기꺼이 기부하고 베풀어서 자기까지 그 평등의 대상에 포함시킬 생각이라고는 단 1도 없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입시 제도를 평준화시키더라도 자기 자식은 이미 외국 명문 사립학교 다 보낸 뒤에나 한다. 적폐청산? 정말 개뿔 헛소리다. 그냥 당장 입에 발린 거짓말로 우매한 민중을 선동질하는 라이온 킹의 스카 같은 나쁜놈일 뿐이다.

기업을 적대시하고 사업가가 부자가 될 수 없는 세상이면 거기는 그냥 군경· 관료· 법조 공무원 같은 철밥통이 아닌 평범한 기술 스킬로는 부자가 절대로 될 수 없는 세상이고 다같이 거지 되어 평등해지는 세상일 뿐이다. 기업만 부패하지 정부는 그럼 부패하지 않을 것 같냐? 내가 제일 답답해하는 점이 바로 이거다. 사람이 먼저 < "지 아들이 먼저, 북괴가 먼저" 이런 것 보고도 모르겠냐?

가난한 서민을 위한 정치인이 없는 건 가난한 서민을 위한 의적(?) 흉악범이 없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사실이다.
제아무리 주둥이로는 썩어빠진 부자들 기득권들 증오한다는 사회불만형 연쇄살인범 흉악범죄자들이 정작 현실에서 정말 죽여 줬으면 하는 놈들 죽이는 경우란 전혀에 가깝게 없다. 99.9%는 어차피 같은 서민이나 자기보다 더 약한 사람밖에 해치지 못한다! 옛날에 지존파도 그렇고 연쇄살인마 지 춘길도 그렇고 선례는 수두룩하다.

지가 국회의원이고 재벌이고 유명인사 죽이고 싶다고 해서 우주최강 철통보안 속에서 사는 그 사람들이 니 손에 선뜻 죽어 주겠냐?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냐? ㅉㅉㅉ 무슨 윤 봉길· 안 중근의 후예 나셨네. 근데 어쩌나, 그때는 그래도 CCTV 금속 탐지기라도 없던 시절인데.

흉악범죄자의 욕망이 절대 실현 불가능인 것만큼이나 "능력껏 벌어서 필요껏 나눠 쓰는 세상", "사람이 먼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 이딴 구호들도 서로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동일한 차원에서 절대 실현 불가능이다. 저것들 전~부 기출문제들이니 앞으로 또 어떤 선전선동 구호가 문제로 출제될지 예상해 보시라.
그러니 헬조선을 조금이라도 헬이 덜 되게 하고 싶고 타락 속도를 늦추고 싶으면 그딴 망상보다 당장 북괴에다 안 퍼 주는 세상부터 만들려 힘쓰는 게 훨씬 더 현실성 있고 도덕적으로도 올바른 선택이다.

부정부패 없는 세상, 군대가 필요 없는 세상 같은 거야 그 어떤 인간의 힘으로도 이룩할 수 없다. 그건 예수님의 재림 말고는 답 없는 거 맞다. 허나, 북괴에게 안 퍼 주는 세상, '돈으로 평화를 사려는 수작' 하에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적과 내통하지 않는 세상 정도는 인간의 힘으로도 이룩할 수 있고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우리에겐 이것부터가 먼저다.

옛날에 잉카 황제가 스페인 군대에게서 황금을 댓다리 많이 퍼줘서 평화를 사는 게 성공했던가? 개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 그런데 또 같은 사기를 치는 인간 악마가 결국 대통령까지 돼서 주한 미군 철수에 싸드 철회까지 밀어붙이니, 지금이 무슨 재벌 욕할 때이고 겨우 친일파 같은 걸 욕할 때이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지금 정치판은 청렴하냐 부패했냐, 친부자냐 친서민이냐 같은 구도로 양 진영이 나뉜 게 전혀, 절대 아니다.
둘 다 부자 기득권들이고 둘 다 기회주의적이며 비슷하게 부패했다! 단지 한쪽은 그래도 국가관과 안보관이 최소한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정도까지는 아니고(병역비리 방산비리까지 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쪽은 아예 대놓고 북괴가 대화 상대라고 사기를 치는 양의 탈을 쓴 이리요, 마음의 조국은 따로 있는 놈들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최악과 차악 중에서는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걸 그 숱한 시행착오로도 깨닫지 못하는 바보 병신이라면 손발이 직접 고생해 보고서 몸으로 깨닫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긴 한데.. 그렇게 하기에는 나 포함 억울하게 피해 보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차마 그렇게 될 대로 되라고 무책임하게는 말 못 하겠다.
간첩의 정체를 폭로하는 일은 정치 성향 취향도 아니고 좌우 균형이 필요한 분야가 아니다. 옳고 그름의 영역이기 때문에 본인은 그 어떤 강경한 표현도 불사하면서 팩트 폭격을 종종 가할 것이며, 욕 먹거나 명성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6/28 01:44 2017/06/28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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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7/06/28 17:26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 사무엘 2017/06/28 17:58 # M/D Permalink

      반갑다?
      1) 뭐 그 정도는 진화론을 논하면서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나", "인간과 원숭이의 공통조상으로부터 진화했나" 그런 차이일 뿐으로 보인다? ㅎㅎ
      2) 경제 독립을 못 하니 굳이 여증이 아닌 청년들도 결혼 과정에서 자기 마음대로 못 하고 부모에게 많이 휘둘리지..
      3) 여증들은 같은 행동을 과거 일제 강점기 때 일제를 상대로 했을 때는(뭐 실제로 일관되게 신사 참배와 징집을 거부하다가 열나게 박해 받긴 했음) 주 기철 목사 만큼이나 의도치 않은 항일 독립운동으로 인정받았겠지만, 자국 정부가 있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범죄자 되는 거 감수해야지..
      부모와 갈등 빚는 여증 집안 자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런 경우도 있구나.. 잘 알았음~ ^^

  2. 사포 2017/07/11 12:00 # M/D Reply Permalink

    정말 저랑 같은 생각이십니다...ㅠ 앞날이 너무 걱정되어요..

    1. 사무엘 2017/07/11 15:48 # M/D Permalink

      심각한 내용의 글에 공감해 주시고, 더구나 동감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표현까지 해 주시니 더욱 감사드립니다~!
      무엇이 절대악이고 무엇이 필요악인지를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이 분야에서 옳고 그름 답이란 곧장 튀어나올 텐데 어쩌다가 소신 발언을 하는 게 분위기 깨는 일, 용기를 잔뜩 내야 하는 일이 돼 버렸나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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