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고수 괴수 덕후는 많다. 그 중엔 이 종원 씨라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국내 최고의 버스 전문가가 있다. 본인보다 띠동갑 이상으로 어린.. 아직 나이 30도 안 된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여러 번 매스컴도 타고 명성이 자자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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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덕이라 하면 흔히 버스 노선이나 여행에 관심이 많아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내버스들만 갈아타면서 24시간 안에 가기 인증" 같은 걸 즐기는 집단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본인도 처음엔 그런 걸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별개의 다른 덕질 분야이며, 저 사람은 순수하게 차량 분야 전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무슨 기계· 전자를 전공한 공돌이 내지 자동차 정비 명장인 것도 아니다. 그의 주 관심사는 그냥 버스의 역사와 차량 계보 그 자체이다. '버스 백과사전'을 출간하고 '한국 버스 박물관'을 설립하고 싶어한댄다. 컴퓨터 박물관이 아니라 비디오 게임 박물관이 필요하듯, 자동차 박물관만으로는 여전히 너무 범위가 넓으니 버스만의 고유한 박물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버스들이 내구연한이 경과했다고 칼같이 퇴역하고 얄짤없이 폐차되는 게 너무 안타깝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런데 일반 소형 승용차와는 달리 버스는 자가용이 아니라 거의 다 영업용으로 쓰인다. 그러니 특정 개인이 애착을 가질 만한 요소가 별로 없다.

게다가 버스는 승용차보다 훨씬 더 크고 비싸고 보존하기도 어려운데, 어째 그런 버스를 이렇게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버스에서 Looking for you 같은 음악을 들었을 리는 없을 텐데..
인터넷에 굴러다니는 최근 인터뷰 자료에 따르면, 그는 어릴적부터 비범했다.

  • 4살 때 부모님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다니며 버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 한글도 제대로 떼기 전에 버스 노선을 외우고 차종을 구분짓기 시작했다.
  • 즐겨 그리는 그림은 버스였고 모형도 버스만 만들었다.
  • 초등학교 2학년 때 인터넷 버스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버스를 깊게 파고 들었다.

초딩 1~2학년 무렵엔 나도 좀 차덕이긴 했다. (☞ 관련 링크) 남자 꼬마애들이 그 나이 때 공룡이나 로봇을 좋아하듯이 큼직한 버스를 좋아하는 것 자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저 코흘리개 나이 때부터 버스 동호회를 가입하고 저렇게까지 몰두하다니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 보인다.;;

그는 2015년에는 TV에 출연해서 특색 있는 전동차 구동음도 아니고 그냥 털털거리는 내연기관일 뿐인 디젤 엔진 소리만 듣고서 해당되는 버스 차종을 모두 알아맞혔다. 심지어는 자기가 버스 엔진 소리 성대 모사까지 해서 주변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우와 +_+
하긴, 똑같은 디젤 엔진이어도 옛날이랑, EGR에 CRDi에 SCR 등 온갖 배기가스 정화 기술이 갖춰진 요즘 차는 엔진 소리가 서로 뭐가 달라도 다른 구석이 있을 것이다.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하고 러시아, 미얀마, 라오스 같은 외국도 다녀왔다. 다른 관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에서 퇴역 후 외국으로 수출된 옛날 버스들을 구경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실제로 몇몇 희귀 아이템은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과 함께 돈을 모아서 구매해서 역수입을 해 오기도 했다!

tvN에서 내 블로그를 보고 보고 연락했다. 1994년 배경 드라마를 만든다고 했다. 94년식 버스는 멸종해서 비슷한 느낌의 버스를 수소문했다. 알고보니 그 드라마가 ‘응답하라 1994’였다. 이후 요청이 종종 들어왔다. 영화 ‘더킹’, ‘마약왕’, 드라마 ‘라이프온마스’에 나온 버스도 섭외했다.
몇 년도에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만 알면 떠오른다. 직접 정리한 자료도 있다.


그러니 이분은 최고의 버스 고증 전문가가 되었다. <말죽거리 잔혹사>에 대해서도 저 인터뷰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아마 할 말이 왕창 많을 것 같다.
<말죽거리...>의 경우, 중문이 달려 있는 1970년대 버스를 구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후대의 앞문· 뒷문 중고 버스를 구한 뒤, 앞문은 틀어막고 뒷문을 뜯어고쳐서 중문처럼 보이게 했다고 한다.

옛날 버스에 대해서 본인이 아는 것은 엔진이 전방에 달린 대형 버스, 그리고 뒷문도 앞문 같은 폴딩 도어이던 시내버스 정도이다. 1990년대 초, 초등학교 전반부 정도까지는 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철도님의 영향으로 자동차와 비행기에 대해서도 부전공 차원에서 추가적으로 주워 들은 것도 있다. 한반도 역사상 시내버스가 최초로 운행된 곳은 서울· 부산이 아니라 대구라는 것 등..

현대에서 에어로시티 계열 버스를 내놓기 전에 생산했던 RB는 모든 게 동글동글 유선형이었다. 각이라고는 없었다. 그 시절에 바다 건너 일본 버스들이 디자인 트렌드가 그러했는지는 모르겠다.
이 버스를 봤던 게 엊그제 같은데 길거리에서 다시는 찾아볼 수 없게 된 지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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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면, 대우의 BS계열 버스들은 헤드라이트 모양이 정사각형 셀이었다. 이거 정도는 기억하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 헤드라이트도 정말 순식간에 사라지고 멸종했다. 길거리에서 현역으로 멀쩡히 많이 잘 뛰던 물건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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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첨부는 생략하지만 아시아 자동차 버스들도 있었는데, 얘들 외형은 대우보다는 현대차에 더 가까웠다.
훗날 아시아는 기아에 흡수됐고, 기아는 현대로 흡수됐으니 지금은 결국 다들 한 지붕 아래에서 생산되는 차량이 됐다.

그랬는데.. 이 종원 씨는 저런 것들조차도 당대에 직접 탔을 리도 전무할 텐데.. ㅠ.ㅠ
심지어 그는 지금으로부터 딱 1년 남짓 전엔 현대 자동차 남양 연구소로 초청을 받아 가서 현대차 "직원"들에게 선배들이 수십 년 전에 만들었던 버스들의 계보에 대해서 강연도 했다고 한다..;;

이분이 운영하시는 블로그의 최근 글을 봤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현대 FB485와 새한-대우 BF101 실차를 미얀마에서 구입해서 역수입해 왔다.;;
난 그 시절엔 경쟁사의 새한-대우 BF101만이 짱인 줄 알았는데, 글을 보니 경쟁사인 현대의 제품도 디자인과 편의 시설에서는 메리트가 컸었다. 그리고 사실 두 차량은 엔진은 동일했다.

지금은 현대 버스들이 바퀴 펜더가 동그란 반원이고 대우 버스가 좀 각진 편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 반대.. 현대에서 펜더를 각진 사다리꼴 모양으로 만들고, 새한-대우 버스가 둥글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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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글을 계속 보니, 옛날에는 에어 브레이크가 초대형 트럭이나 고속버스에는 적용되었지만 시내버스는 그렇게 무겁거나 고속 주행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열외되어 있었던 듯하다. 현대 FB485에서 도입한 게 최초라고 한다.

또한, 벽면에 리벳이 박혀 있지 않은 깔끔한 형태로 버스 차체를 만드는 것도 그 당시로서는 고급 기술이었나 보다. 의류로 치면 말 그대로 솔기 없는(seamless) 매끄러운 옷에 해당한다.
글을 보면 볼수록 흥미롭기 그지없다.

우리나라에서 역사적 사연이 있어서 따로 보존된 특수한 버스는 두 대 정도가 있다. 하나는 박 정희 대통령 장례용으로 급히 개조· 제작되었던 영구차이다.
18년에 가까운 독재 권력을 휘두른 대통령이 그렇게 허무하게 비명에 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최 규하 권한대행이 급히 영구차 제작 입찰을 했는데, 여기서는 현대 대신 새한-대우가 선정되어서 BF101을 급조한 영구차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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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 차가 저 때의 저 차였다는 얘기다. 물론 꽃으로 온통 뒤덮혔으니 사전 정보 없이 외형만 봐서는 저게 BF101의 파생형이라는 걸 알 길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멀리서도 고인의 관을 볼 수 있도록 측면 창문을 아주 크게 만들었다.
이 영구차는 지금도 서울 현충원 안에 보존되어 있으며, 본인 역시 직접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에 사마란치 IOC 위원장을 비롯해 각종 스포츠 연맹 총재 같은 높으신 귀빈들을 태웠던 전용 버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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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종은 아시아 자동차의 '콤비'이며.. 25인승 마이크로버스 차급이지만 내부가 6인승용 응접실 형태로 개조되었다.
대회가 끝난 뒤에 민수용 개조 부활(?) 같은 거 없이 영구 보존되긴 했지만 그 뒤로 그리 좋지 못한 관리 상태로 방치되어서 버덕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본인도 버스 하면 이 정도는 글 읽으면서 떠올리고 있었는데.. 저분 역시 곧장 언급을 하니 반가웠다. 실미도 사건 때 북파공작원들이 뺏어서 몰았던 그 버스까지는 나도 미처 생각을 못 했는데..
저런 분이야말로 나중엔 아예 버스에서 살림을 꾸리고 살지 않을까 싶다!!

류 준열과 혜리가 만원버스에 탄 장면을 보면 에어컨이 달려 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냉방 시설이 있는 버스는 없었다.


하긴, 버스와 열차에서 에어컨이 나오기 시작한 건 1990년대 후반부터이다. 에어컨 설비의 가격도 가격이지만, 옛날에는 버스의 엔진 출력 자체가 그 넓은 공간에 냉방을 빵빵하게 돌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지 못했다.

이렇게 이 종원 씨의 블로그를 읽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버스에 대한 그의 열정은 철덕을 자처하는 본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본인은 남자라면 무조건 대형 면허 따서 왕창 크거나 왕창 빠른 차를 몰아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저런 버스 전문가를 부러워하고 존경한다. 나도 한 분야에 저 정도의 외길 전문가가 되고 싶다.

그리고 이런 괴수에 비해 나의 철덕질은..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인 거 같다.. ㅜㅜ 나는 아직 철도를 저 정도로 열정적으로 사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후회되고 자괴감이 든다. 더 분발해야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8/11/11 08:27 2018/11/1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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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의 크기별 분류

우리나라 기준으로 버스는 12인승 승합차부터 시작해서 25인승 중형 버스, 35인승 중대형 버스, 그리고 45인승 버스급으로 크기가 얼추 나뉘며, 본인은 이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이에 비해 트럭은 덩치의 종류가 더 세분화돼 있는 것 같다. 오늘은 버스 다음으로 트럭 얘기를 좀 늘어놓도록 하겠다.

옛날에는 짐을 많이 나르기 위해 오토바이에다가 사이드카나 손수레를 연결하기도 했다. 하긴, 경운기에다가도 짐받이를 연결하면 화물을 잔뜩 실을 수 있는데 이건 크기만 작을 뿐이지 구조적으로는 트레일러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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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1970년대에는 지붕 달린 삼륜차가 등장하여 1톤보다 더 가벼운 4~500kg급의 소화물을 담당했다. 1980년대부터는 포니 픽업이 등장했고, 1990년대 이후부터는 이게 경차 다마스와 라보의 전담 영역이 됐다. 이에 대해서 사진이 곁들어진 더 자세한 설명은 역시 옛날 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이 경상용차들은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만들고 팔아 봐야 이윤 남는 게 별로 없는 애물단지이다.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안전 조건과 환경 오염 규제 조건을 제대로 충족하는지도 미심쩍다. 그래도 경차 혜택을 받는 서민 생계 밑천이라는 점으로 인해, 일반적인 시장 경제 이념에는 좀 역행하는 차량이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생존하고 생산되고 있다.

그리고 1980년대에는 제미니 맥스라는 차량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앞부분은 승용차처럼 생겼지만 디젤 엔진 기반에 전반적인 덩치가 포니 픽업보다 더 크고, 뒤에 짐받이는 트럭에 더깝게 생긴 7~800kg짜리 픽업 트럭도 있었다.
그리고 '엑셀 밴'처럼 승용차 기반으로 천장은 있지만 좌석은 없는 화물 수송 최적화 차량도 있었는데, 오늘날은 이런 건 그냥 SUV의 영역으로 넘어간 듯하다.

1톤 트럭부터는 이제 앞에 엔진룸이 돌출되지 않고 승용차와는 다른 차량이라는 느낌이 확연히 난다. 앞바퀴와 뒷바퀴의 크기가 차이가 나고 뒷바퀴가 복륜 형태이다. 현대 자동차에서는 이 체급의 트럭에 '포터'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있으며, 기아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봉고'이다. 봉고를 승합차로 기억하는 사람은 옛날 아재이고, 트럭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신세대라고 한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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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톤 트럭은 화물 운송 자체뿐만 아니라 배추 장사 과일 장사, 포장마차 푸드 트럭 형태로도 많이 보기 때문에 경차만큼이나 서민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 차급에는 보통 2500cc급 디젤 엔진이 얹히는데.. 어지간한 중형차보다도 더 큰 배기량으로 최대 출력은 150마력이 채 되지 않고 120~130대라고 하니 개인적으로 무척 의아했다.
디젤 기반의 승용차 및 SUV와 달리 터보차저가 달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토크가 큰 대신에 빠르게 달리지 못한다.

이 체급에는 바리에이션이 몇 가지 있다. (a) 먼저 1.25나 1.4톤 같은 약간 더 큰 놈이 있으나, 이것들은 오리지날 1톤만치 흔하지는 않다. 그냥 1톤에다가 그만치 과적을 하고 말지..

다음으로 (b) 뒷바퀴가 복륜이 아니라 앞바퀴와 동일한 크기의 단륜이고 사륜구동이 되는 '세레스' 같은 트럭이 있었으며, (c) 운전석 아래 대신 앞에 엔진룸이 달린 '리베로'라는 변종도 있었다. 전자 같은 부류는 요즘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듯하며, 후자도 일찌감치 단종돼서 이제는 견인차 형태로만 쓰인다.

그런데 1톤 트럭은 여느 트럭과 마찬가지로 엔진이 운전석의 아래에 있는데, 그렇다고 더 큰 트럭들처럼 탑승 공간(cabin)을 앞으로 굴려서 엔진룸을 끄집어낼 수 있지도 않다(틸팅 캡). 그 대신, 엔진을 정비하려면 운전석· 조수석 시트를 들어내야 했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리베로처럼 엔진룸이 앞에 나와 있는 소형 트럭이 정비성 면에서는 장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아울러, 트럭이지만 짐받이가 좀 짧고 그 대신 뒷좌석이 달려 있어서 일가족이 다 탈 수 있는 일명 더블캡 차량도 내가 알기로 1톤급 트럭에만 존재한다. 얘는 동일하게 5인 탑승에 짐받이가 딸린 미국식 픽업 트럭과 정체성이 좀 겹치는 면모가 있어 보인다.

뭐, 이런 건 시골에서밖에 쓸 일이 없으며, 이것보다 더 큰 트럭들은 아무래도 운전사가 생계를 위해 혼자만 몰고 다니는 게 태반일 테니 더블캡 같은 게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쭉한 더블캡을 틸팅 캡 형태로 만드는 것도 꽤 난감한 일일 것이다.

1톤 다음의 체급은 2.5톤이다. 현대 트럭은 '마이티'이고, 기아는 요즘도 그러나 모르겠는데 '타이탄'이라는 이름을 썼지 싶다. 엔진 소리가 승용차나 1톤 트럭보다는 톤이 낮아져서 남성다운(?) 느낌이 난다. 이제 좀 뒷바퀴와 앞바퀴의 크기가 서로 대등해지고, 틸팅 캡이 장착되기 시작한다.

그 다음으로 차가 더 커지면 4.5톤이 나온다. 글쎄, 중간급인 3.5톤도 있다고는 하는데 그건 고유한 특징 없이 2.5톤의 바리에이션에 속하는 것 같다. 참고로 버스 중에서는 25인승 소형 버스가 2.5내지 3.5톤 트럭과 비슷하다.

옛날에 기아 자동차에서 생산했던 복서(Boxer)가 4.5톤 트럭의 대명사였다. 앞바퀴 휠에 저렇게 동그렇게 돌출된 부분이 있는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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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정도 체급부터 유압 대신 에어 브레이크가 쓰이며, 속도 제한 장치(90km/h?)도 설치가 의무가 된다고 한다.
그리고 고속도로의 하이패스 전용 나들목들은 바로 4.5톤 미만 트럭까지만 진입을 허용한다. (4.5톤부터는 불가..) 왜 이렇게 차별하는가 하면 중형급 이상 트럭들에 대해서는 축중량 측정과 과적 단속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반드시 한번 섰다가 가야 한다.

5톤 트럭도 있는데 역시 4.5톤과 도찐개찐인 것 같다. 이 정도면 전면부가 버스처럼 직각에 가까워지는 데다, 차체도 상당히 크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버스를 운전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게다가 트럭은 비슷한 덩치의 후방 엔진 버스보다 운전석이 훨씬 더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크기가 더 크게 느껴진다.
이 정도 트럭은 운전석의 뒤에 간이 침대가 있어서 밤에 차 세우고 거기서 잘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자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다.

옛날에는 대형 버스에 준하는 덩치인 8톤 트럭도 많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거의 전멸했다. 8톤을 굴리느니 5톤 트럭에다가 가변축(=바퀴)을 하나 더 달아서 그걸로 퉁치는 게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요즘 트럭은 옛날 트럭보다 엔진 성능도 더 좋으니.. 요게 앞바퀴와 뒷바퀴만 있는(= 축 2개) 트럭 중에서는 제일 크다.

그렇게 축을 늘려서 짐을 수 톤 더 실으면, 비록 차량의 스펙상으로는 과적이지만 법적으로는 축당 하중을 분산시켜서 과적 단속을 피할 수 있다.
물론 걸리지만 않을 뿐이지 차량은 설계 하중보다 훨씬 더 무거운 상태로 혹사당하느라 처음 출발할 때 배기가스가 더 많이 나오고, 차체의 금속 피로도가 증가하며 제동 거리도 더 길어지게 된다. 도로의 파손을 덜 수 있을지는 몰라도 차량의 수명 단축은 피할 수 없다.

8톤보다 더 큰 9.5톤이나 11.5톤 트럭은 드디어 뒷바퀴에 축이 하나 더 추가된다. 11.5톤은 우리나라의 1종 보통 면허로 몰 수 있는 가장 큰 자동차이기도 하다. 승합차는 겨우 15인승까지만 몰 수 있는 반면, 사람이 많이 타지 않는 트럭은 저 정도로 거대한 것까지도 몰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차의 덩치가 동일한 경우, 트럭 운전은 버스 운전보다 격이 낮은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고가 났을 때의 여파와 책임이 사람의 경우가 화물의 경우보다 훨씬 더 크며, 통행 우선순위도 버스(여객)가 트럭(화물)보다 훨씬 더 높으니 말이다. 트럭에 전용 차선 같은 게 있지는 않다.

물론 화물도 아무 화물이 아니라 위험물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유조차는 그냥 3톤(적재 중량) 이상부터 대형 면허가 필요해지며, 위험물 수송을 위한 추가적인 자격증도 취득해야 한다.

적재중량 10톤을 넘어가는 너무 큰 트럭이나 위험물을 실은 트럭은 이제 내부순환로 같은 도시 고속화도로를 다니지도 못한다. 아니면 다니더라도 새벽 심야에만 몰래 다닐 수 있다. 이게 같은 자동차 전용 도로여도 도시 고속화도로와 아예 고속도로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고속도로는 도로교통법에 규정된 대로 축당 하중 10톤 이내, 총 40톤 이내의 차량까지는 모두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트럭 중에는 덤프 트럭이라는 게 있다. 말 그대로 짐받이를 번쩍 들어올려서 내용물을 밖으로 쏟아부을 수 있는 물건인데, 덩치가 작은 것도 있지만 공사장에서 돌과 흙을 잔뜩 싣는 용도로 쓰는 물건은 보통 15톤급이다. 10톤 이하인가 작은 건 차량 또는 건설 기계 중 원하는 형태로 등록이 가능하지만, 그 이상 큰 것은 건설 기계로만 등록 가능하다고 한다.

덤프 트럭은 포장하지 않고 쏟아붓는 짐을 싣는 걸 염두에 뒀기 때문에 여느 트럭과는 달리 짐받이가 굉장히 높으며, 딱히 화물을 결박하는 줄을 걸어 두는 부위가 없다. 그리고 여느 화물보다 밀도가 높은 걸 염두에 둬서 그런지 덩치 대비 길이는 일반 트럭보다 꽤 짧다. 버스가 저런 커다란 타이어에다 3개 이상의 축을 가졌다면 얼마나 길거나(굴절) 큰(2층..) 물건을 만들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명백해진다. 덤프 트럭뿐만 아니라 레미콘도 비슷한 사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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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보다 더 큰.. 트럭으로는 앞바퀴 바로 뒤에 축 하나, 뒷바퀴 쪽에 고정축 둘+가변축 하나.. 짐받이에만 축이 무려 4개나 있는 25톤 트럭이 있으며, 이게 트럭으로서는 마지막이다. 이것보다 더 크고 무거운 짐을 실으려면 단순 트럭을 넘어 트레일러의 영역으로 가야 한다. 즉, 엔진+운전석과 짐칸이 분리되어 있어서 서로 다른 각도로 꺾이는 게 가능한 차량이다. 버스로 치면 굴절 아코디언 버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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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러를 몰려면 대형을 넘어 특수 면허가 필요하다. 짐작하시겠지만 이런 차는 후진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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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갓 생산된 승용차를 여러 대 탁송한다거나, 엄청 크고 무거운 강철 코일을 몇 개씩 한꺼번에 수송한다거나, 큰 컨테이너를 운반하는 건.. 대형 트럭의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일단은 본인으로서는 트레일러가 먼저 떠오른다.
(업계 용어로는 '츄레라'라고 하는 것 같은데, 트레이닝복을 츄리닝이라고 부르는 것과 완전히 동일한 맥락의 구개음화의 결과이다.)

트레일러에서 엔진과 운전석이 있는 앞부분을 '트랙터'라고 부른다. 철도 차량으로 치면 그냥 기관차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트랙터가 짐받이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자기 중량 대비 엔진의 힘이 그야말로 넘쳐날 텐데, 이 상태로는 제로백이 얼마나 나오고 차가 얼마나 잘 나아갈지 궁금해진다.

이 정도로 큰 차량은 기사의 거주성도 어지간한 고급 승용차 이상으로 아주 뛰어나다. 특히 북미 대륙에서 보급을 책임지는 트레일러들은 운전석의 뒤나 위(!)에 그야말로 운전사의 개인 안방이 마련돼 있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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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러 하나로도 부족해지면 호주에서나 볼 수 있는 road train이 등장하며, 이게 그야말로 육상 교통수단에서 트럭의 최종 테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 mile train이 있다면 저기에는 road train이 있다. 나도 이런 크고 아름다운 트럭을 몰아 보고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8/07/15 08:31 2018/07/15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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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철현 2018/07/17 16:42 # M/D Reply Permalink

    블로그 글 재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최근에 유튜브에서 정규재 TV 쪽에서
    환경 이야기에서 박석순 교수님의 4대강 연관해서
    많은 동영상을 보고 있습니다.
    물류 쪽으로 수운에 대한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된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자동차에 대한 기사를 보다 보니,
    배에 대한 운송에 대한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

    1. 사무엘 2018/07/17 22:27 # M/D Permalink

      선생님, 이 블로그에서는 오랜만에 뵙네요.
      꾸준히 방문하고 글을 재미있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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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는 길이 한데 만나는 지점을 우리는 교차로라고 부른다. 이런 곳에서 차들이 부딪치지 않고 아무 곳으로나 통과하려면 신호등을 설치해서 한 번에 한 방향으로 가는 차들에게만 통행을 허용해야 한다.
혹은, 신호등을 설치하는 대신 교차로를 입체화해 버리면 신호 대기 없이 차들이 제각기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입체 교차로는 건설 비용이 많이 들며 진출입로(ramp)가 주변 공간을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자동차 전용 도로의 진출입로 내지 분기점 정도에서만 사용되는 편이다.

그런데 신호등을 설치하지 않고, 굳이 애써 고저 차이를 만들지 않고도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온 차들을 제법 유도리도 있고 안전하게 통과시키는 방법이 있다. 바로, 교차로를 십자형이 아니라 원형으로 만드는 것이다. (뭔가 x-y 직교좌표 대신, 각도와 길이 위주의 극좌표가 떠오른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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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90도 우회전을 하든, 직진을 하든, 좌회전을 하든, 이 교차로에 진입하는 모든 차들은 방향을 불문하고 일단 저 둥근 궤도에 진입해야 한다. 모두 동일 방향이라는 게 포인트이다. 우측통행 체계에서는 반시계 방향으로 돌고, 좌측통행 체계에서는 시계 방향으로 돌게 된다. 그렇게 궤도를 돌다가 자기가 가야 하는 진출로가 나타나면 그리로 나가면 된다.

여기서는 비록 내가 원하는 방향을 최단 경로 지름길로 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진행 방향이 완전히 다른 차량끼리 정면· 측면 충돌 사고가 날 일은 없다. 차들이 무조건 속도를 낮춰야 하는 게 보장되며, 사고가 나 봤자 원 안으로 끼어들다가 접촉사고가 나는 것 정도로 국한된다. 리스크가 적은 우회전만으로 원하는 모든 방향으로 갈 수 있으며, 신호등이 필요하지 않고 차량이 드물 때 뻘짓 삽질스러운 신호 대기가 없다는 것도 아주 좋은 점이다.

이렇게 살펴보면 원형 교차로는 나름 굉장히 참신한 아이디어인 것 같다. 하지만 얘도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동그란 원을 만들고 중심부는 교통섬으로 비워 둬야 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직교 신호등 교차로보다야 공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 원의 반경이 너무 작으면 초보 운전자가 교차로를 만만하게 보고 역주행을 할 우려가 있으며, 버스· 트레일러 같은 대형차들은 통과에 애로사항이 꽃필 수도 있다.

그리고 감속과 우회를 강요하고 신호등 없이 자발적인 양보에 의존해서 돌아간다는 특성상, 이런 교차로는 차량 통행량이 너무 많아지면 서로 우물쭈물 하다가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어진다. 차라리 신호등이 있어서 각 방향별로 일정 주기로 통행 허용 시간이 강제로 보장되는 일반 평면 교차로만도 못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원형 교차로는 직교 신호등 교차로를 완전히 흡수하고 대체할 수는 없다. 단지, 황색 점멸 신호 상태인 교차로보다야 더 안전한 대안이 될 수 있어 보인다. 통행량이 적고 한산한데 오거리 육거리 형태로 길이 많이 분기돼 있는 곳일수록 원형 교차로의 가성비가 더 올라간다.
그런데 현대에는 도시를 이런 모양으로 건설하지 않으니 원형 교차로는 교차로의 주류에서 밀려나 있다. 유럽처럼 역사가 긴 도시, 아니면 신호등이 무의미할 정도로 차량 통행이 적은 지방에서나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회전 교차로는 회전문과도 구조적으로 비슷한 구석이 있어 보인다.
회전 로터리가 독특한 장점이 있는 것처럼 회전문은 외부와 내부를 그럭저럭 단절시킨 상태에서 사람을 출입시킬 수 있다는 독특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회전문 역시 단위 시간 동안 처리 가능한 교통량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 출입문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건축법상으로는 출입구에 오로지 회전문만 있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며, 옆에 비상용 일반 출입문도 반드시 갖춰 놔야 한다.)

다시 교차로 얘기로 돌아오면...
길이 동그란 모양이라고 해서 다 같은 원형 교차로가 아니다. 그 원의 크기(지름), 궤도 내부의 차로 수, 그리고 원과 접하는 도로의 진출입 형태에 따라 운영 방식이 차이가 있다.
우리가 평소에 원형 교차로를 자주 볼 일이 없어서 선뜻 떠올리지 못할 뿐이지, 얘는 아주 아담한 것부터 왕창 크고 아름다운 것까지 규모의 편차가 꽤 크다. 궤도의 차로 수가 2 이상인 것만으로도 일단 작다는 소리는 안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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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궤도를 드나드는 도로도 형태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곧이곧대로 원과 수직으로 ―○― 이런 식으로 접하는 형태가 있는가 하면(수직형), 원의 접선 수준으로 더 완만하게 접하는 것도 있다(평행형).

원형 교차로를 나타내는 용어로는 traffic circle, roundabout, rotray 등 여러 종류가 있으며, 한국어로도 회전 교차로와 로터리의 구분이 있다. 현실에서는 본인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별 구분 없이 섞어서 사용하며 그냥 로터리의 순화 용어가 회전 교차로인 줄 안다. 일반 어학 사전 수준에서도 이런 용어들은 그냥 interchangeable한 유의어라고 나온다. 하지만 교통 공학을 공부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들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회전 교차로(roundabout)는 원으로 진입하는 지점에 정지선이 있으며, 이미 원을 돌고 있는 차량이 여기로 들어오려는 차보다 통행 우선순위가 더 높다.
하지만 로터리(rotary)는 원 내부에 정지선이 있으며, 들어오려는 차에 우선권이 있다. 이런 곳에서 마냥 회전 차량에게만 우선권을 주면 새로운 차들이 원 내부로 도저히 진입을 할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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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는 통상적인 회전 교차로보다 더 크고 차량 통행량이 많은 대규모 버전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뭔가 아담한 원형 교차로는 다 회전 교차로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서울에 있는 영등포 로터리와 혜화동 로터리는 회전 교차로가 아니라 진짜로 로터리이다. 거기는 원 내부에 아예 신호등까지 있어서 반쯤은 일반적인 오거리 육거리 교차로처럼 바뀌었다.

물론 앞서 보았다시피 회전 교차로 중에서도 왕창 크고 아름다운 게 있다. 하지만 회전 교차로는 반드시 크지는 않아도 되는 반면, 원 안에 정지선(+ 경우에 따라서는 신호등까지)이 있는 로터리는 규모가 반드시 일정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검색을 해 보니 외국에서는 roundabout과 rotary를 이렇게도 구분해 놓았는가 보다. 우리나라처럼 정지선의 위치와 우선순위 기준이 아니라, 궤도 합류 방식의 차이를 두고 둘을 구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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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ary는 90도 우회전만 하는 경우 궤도에 영향을 주지 않고 진출입로만 따라가면 된다. 그리고 고속도로에서 IC를 드나들듯이 궤도에 합류하거나 밖으로 나가면 된다. roundabout은 이와 달리, 진출입로와 궤도가 겹치는 지점이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에 양보가 필요하다.
우리와 관점은 좀 다르지만 그래도 여기서도 rotary는 최소한 roundabout 같은 일시정지(빨강)까지는 하지 않고도, 서행으로 조심만 하면(노랑) 궤도 합류가 가능하니 진입 차량에게 더 유리한 형태라는 걸 알 수 있다.

어떤 형태건 원형 교차로는 덩치가 커지면.. 수용 가능한 차량은 많아지겠지만 그만큼 우회해야 하는 거리도 길어지고,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해지고, 어차피 신호등 같은 통제 수단도 필요해지니 고유한 장점이 감소하겠다. 그 원 안의 공간을 놀리기가 아까워서 다른 건물이나 광장 같은 게 들어설 수도 있는데, 그럼 원 안에 정지선 정도가 아니라 횡단보도까지 필요해지며 로터리의 교통 사정은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7/01 08:31 2018/07/0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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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도로교통법을 종합해 보면, 크기, 무게, 폭, 속도를 감안했을 때 차와 보행자가 법적으로 다음과 같은 4등급으로 나뉘는 듯하다.

1. 보행자

말 그대로 뚜벅이부터 시작해서 유모차, 리어카, 휠체어(전동도 포함), 체인과 브레이크가 없는 느린 세발자전거는 보행자에 속한다. 인도로 다닌다.
요구르트 아줌마가 타고 다니는 전동 리어카도 약간 크긴 하지만 전동 휠체어에 준하는 보행자로 볼 수 있겠다.

2. 차

고속 주행 가능한 무동력 자전거, 전동 킥보드, 페달 보조 기능만 하는 일정 출력 이하의 전동 자전거 정도가 해당된다.
이런 것들은 자동차는 아니지만 법적으로 '차'이다. 사람이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속도가 슬슬 빨라지며 부딪치면 다칠 위험도 커지는 관계로.. 원래는 도로에서 차도로만 다녀야 한다. 하지만 얘들은 자동차보다는 여전히 훨씬 느리기 때문에 차도에만 다니기에는 좀 애로사항이 있다.

그 대신 이 등급에 속하는 교통수단들은 한강 공원의 자전거 전용 도로에서 주행 가능하다.
평범한 스케이트보드나 킥보도는 잘 모르겠지만, 인라인 스케이트는 잘 타는 사람은 평지에서 정말 자전거에 준할 정도로 빨리 나아가기도 한다. 그러니 2에 들어가도 손색이 없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차도를 통행하기에는 무리일 것 같다.
인력거는 속도를 생각하면 1에 속하겠지만 크기와 무게를 생각하면 2에 속할 듯하다.

이륜차가 인도로 주행하거나 운전자가 탑승한 채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은 일단은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인도나 횡단보도에 별도의 이륜차 주행선이 그어진 경우는 예외) 하지만 이와 반대로 차도를 다녀서는 안 되는 느린 보행자가 차도로 다니는 경우도 있다.

  • 눈이 많이 왔을 때: 길 상태가 차도가 인도보다 더 좋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도는 눈이 쌓였거나 빙판이 됐지만 차도는 그렇지 않음)
  • 전동 휠체어: 안 그래도 바퀴도 작은데 평평한 차도가 인도보다 당장 다니기 더 쉬워 보이기 때문이다.
  • 짐을 잔뜩 실은 리어카: 혼잡한 인도를 다니기에는 리어카가 차지하는 폭이 너무 커서 행인들에게 끼치는 민폐도 크기 때문이다. 주로 폐품 수집하는 노인분들이 이러시는 것 같다.

3. 준자동차

페달질을 하지 않아도 가속 가능한 전동· 엔진 자전거, 오토바이, 사륜 오토바이(일명 ATV), 소형 전기차, 고속 주행을 할 수 없는 중장비(굴삭기· 지게차), 농기계(경운기, 트랙터..)
여기서부터는 운전자는 면허가, 차량은 등록과 보험이 필요해진다. 인도 주행은 진짜로 절대 금지이며, 자전거 전용 도로에 진입할 수도 없다. 오토바이는 같은 이륜차인 자전거와 달리, 맨 구석 차선에서 차들의 틈새로 다니는 것 역시 허용되지 않는다.

옛날에 있었던 삼륜차는 엔진 성능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3일 것이고,
말의 경우는 단독으로 말 타고 달리는 건 속도 때문에, 마차를 끄는 건 크기 때문에 역시 3에 속할 것이다.

4. 자동차

이제 최종 단계이다. 고속도로 같은 자동차 전용 도로에도 진입하여 고속 주행이 가능한 사륜 이상의 차량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렇게 분류를 해 보니 교통수단은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하며 1과 2, 2와 3, 그리고 3과 4 사이에 어중간하게 낀 처지인 물건들도 많음을 알 수 있다. 무동력으로 인간의 이동을 보조해 주는 자전거, 인라인 스케이트 같은 건 무기로 치면 냉병기이고, 항공기에다 비유하면 기구· 비행선이나 글라이더 정도 된다.

자전거는 (1) 둥근 fender에 매끄러운 바퀴가 달렸고 여성분들이 탈 만한 제일 평범한 모델이 있는가 하면 (2) 바퀴 표면이 울퉁불퉁하여 산악용 자전거 비스무리하게 생긴 일명 '유사 MTB'도 있다. 그리고 (3) 바퀴가 아주 가늘고 핸들이 뭔가 산양의 뿔처럼 생긴 경주용 자전거도 있는데, 이것들은 용도와 역할이 제각기 다르다. 똑같이 성인용 자전거라 해서 다 같은 자전거가 아니라는 뜻이다.

유아· 어린이용 자전거는 세벌뿐만 아니라 이륜이지만 보조 바퀴 달렸고 여전히 느린 것도 있다.

21세기 이래로는 못 봤지만, 본인 어렸을 때만 해도 검고 커다란 일명 '쌀집 자전거'에다 초소형 가솔린 엔진을 얹어서 반쯤 스쿠터 내지 오토바이로 개조한 자전거가 가끔 보였다. 글쎄,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자그마한 엔진 출력으로 쇠로 된 무거운 자전거의 큰 바퀴를 굴리려면 변속기도 신경 써야 할 텐데 싶다. 옛날에는 영운기 트럭도 뚝딱 개조했는데 자전거를 저 정도 개조쯤이야 못 할 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오토바이 중에는 '스쿠터'라는 물건도 있다. 얘는 여느 오토바이와는 달리 바퀴가 작고 엔진 소리가 유난히 앵앵거리는 편이며, 이륜차이지만 아래에 운전자의 두 발을 한데 모을 공간이 있다는 외형상의 큰 차이가 존재한다.
오토바이나 말의 뒷자리를 일컫는 영어 단어가 pillion이라고 따로 있는 게 흥미롭다. 전투기 후방석도 그렇게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여담 1: 간단한 자동차의 역사

(1) 옛날에는 나름 2000~3000cc급의 준대형 승용차로 여겨진 그랜저조차 초기 모델은 타이어의 휠너트가 4개였다. 그러다가 1992년에 나온 뉴 그랜저부터 곧장 5개로 올라갔다.
그랜저보다 더 작은 차종인 쏘나타는 한동안 4개이다가 2004년의 NF 쏘나타부터 5개가 됐다.
그보다 더 작은 준중형급 아반떼는 2006년에 나온 HD 모델부터 5개가 됐다. 그래서 이제 현대차 중에는 액센트 같은 소형차만이 4개가 유지되고 있다.

자동차의 휠너트가 4개에서 5개로 는 동안.. 대형 버스도 나는 타이어의 휠너트가 당연히 8톤 트럭에 준하는 8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10개짜리도 있는 게 케바케인 것 같다.

(2) 옛날, 1980년대 초까지는 겨우 2000cc짜리 차도 6기통으로 만들기도 했다(그라나다). 비록 휘발유 엔진이 실린더 당 최대 배기량이 한계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겨우 그 배기량에 그런 엔진 설계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기통수가 많아서 부드러운 것보다 저출력으로 인한 저연비와 환경 오염 문제가 더 컸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은 차를 그런 식으로 만들지 않게 됐다.

(3) 또 무슨 예가 더 있을까? 어지간한 승용차에는 앞바퀴와 뒷바퀴에 모두 디스크 브레이크를 장착하는 게 유행이 되면서, 옛날처럼 자동차 타이어 휠이 가장자리에만 구멍이 숭숭 난 은색 쟁반 같은 모양을 하지 않게 됐다. 그 대신 최소한(보통 휠너트 개수만큼)의 굵직한 스포크(spoke)만 있으며, 안쪽의 반들반들한 디스크 원반이 드러나 보이는 형태가 됐다. 이런 것들이 다 알게 모르게 변한 점이다.

(4) 옛날 자동차들은 자동차의 방향 지시등이 정말 곧이곧대로 주황색(amber; 호박색)이었다. 하지만 요즘 자동차들은 켜져 있지 않은 동안은 깜빡이도 전조등과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의 흰색인 것이 유행이다. 황색은 잘 드러나 있지 않다.
또한 미국 자동차의 경우, 후방은 깜빡이도 브레이크등과 동일하게 빨간색이고 그 대신 방향 애니메이션 같은 걸로 방향 지시를 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5) 옛날 자동차는 바깥 백미러가 지금처럼 운전석 앞 A 필러 근처가 아니라, 아예 엔진룸 앞의 최전방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늦어도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이런 디자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운전을 오래 한 어르신들 중에는 백미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시야 확보 측면에서 좋다고 말하는 분도 있다. 그리고 현대와 미쓰비시가 제휴해서 만들었던 그랜저/데보네어 같은 차종도 일본판은 백미러가 그렇게 배치되어 출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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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러가 어디에 있건, 운전석 자리에서 곧장 각도 조절을 할 수 없다면 참 불편할 것 같다. 특히 조수석 것까지 말이다. 우회전 내지 오른쪽으로 차로를 변경할 때 우측 바깥 백미러의 중요성은 더 말이 필요하지 않으니 말이다.

제일 불편한 건 무식하게 창문이나 문을 열고 유리를 손바닥으로 직접 만져야 하는 타입이고, 조금 발전하면 차 안에서 별도의 레버로 각도 조작이 가능하다.
제일 편리해진 건 운전석의 버튼만으로 조수석의 백미러까지 각도 조절이 가능한 전동형이다. ABS야 경차에도 다 달려 나오는 필수가 됐지만, 전동 백미러는 단순 편의 기능이다 보니 여전히 쏘나타급 중형차 이상에서나 볼 수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렌트를 해서 몰아 봤던 아반떼에도 그런 기능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담 2: 크고 아름다운 자동차

대형 버스는 여느 승용차와는 특성이 다른 게 생각보다 많다.

  • 자동문 기반인 문 여는 방법부터가 다르다. 승객은 운전사가 열어 놓은 문을 통과하기만 하면 되지만 차에 제일 먼저 타는 운전사는 그렇지 않다.
  • 조향륜인 앞바퀴가 운전석의 앞이 아니라 뒤쪽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차(수직, 평행)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 엔진 위치의 특성상 핸들이 뉘인 각도가 승용차의 그것보다 훨씬 더 낮다. 그리고 같은 각도로 회전하려면 소형 승용차보다 핸들을 두 배쯤 더 많이 돌려야 한다.

변속

  • 이 바닥은 여전히 수동 변속기가 주류이다. 평지에서는 1단이 아니라 그냥 2단에서 출발한다.
  • 소수의 자동 변속기 모델도 P가 따로 없다. 변속기의 구동축 고정 기능만으로는 그 무거운 차 바퀴를 붙잡아 둘 수 없고 오히려 자기가 파손되기 쉽기 때문이다.
  • 대형 디젤 차량의 일상적인 엔진 회전수는 승용차의 그것보다 훨씬 더 낮다.

제동

  • 브레이크액이 아니라 압축 공기로 제동력을 전한다. 일단 제동력 하나는 정말 강한 덕분에 대형차 용도로 적합하다. 매개체가 처음부터 기체이니, 브레이크액이 열받아서 기화하는 vapor lock 현상 걱정도 전무하다.
  • 주차 브레이크도 압축 공기를 사용해서 건다. 얘는 제동을 걸고 있는 동안 공기가 소모되지는 않지만, 제동을 걸었다가 풀 때는 공기가 빠져나가는 푹~ 취익 소리가 난다. 역시 압축 공기로 평소에 문이 열리지 않게 꽉 붙잡고 있는 버스나 지하철의 자동문을 생각하면 된다.
  • 또한, 이런 차들은 엔진 브레이크에 대한 개념도 승용차와는 좀 다르다. 디젤 엔진은 워낙 고토크+저회전이기 때문에 승용차처럼 무작정 저단으로만 바꾼다고 엔진 브레이크가 강하게 걸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엔진 rpm도 바퀴를 따라 같이 높아져서 탈이 나기 쉽다. 이런 차들은 배기구를 틀어막는다거나 리타더/제이크 같은 다른 형태의 엔진 브레이크가 쓰인다.

예전에 브레이크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에어 브레이크는 브레이크를 사용할 때마다 공기가 조금씩 소모되고 압력이 감소한다. 이 때문에 엔진 힘으로 상시 압축기를 가동해서 무슨 에어컨 냉매도 아닌 공기를 압축해서 탱크에다 비축해 둬야 한다. 압축 공기의 비축량은 냉각수 온도나 배터리 전하량만큼이나 매우 중요하다. 아주 긴 내리막이 계속돼서 엔진 rpm은 올라갈 일이 없는데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일만 계속해서 생기면 차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물론, 브레이크액 기반인 승용차도 제동력의 '증대'를 위해 엔진 힘을 일부 사용하긴 한다. 자동차의 브레이크가 무슨 자전거 브레이크 같은 단순한 물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얘들은 '공기압 배력'이 아니라 반대로 '진공 배력' 방식이며, 별도의 게이지나 공기 탱크 같은 물건까지 필요한 구조는 아니다.

버스의 특성은 대형 트럭과 동일한 것도 일부 있다. 그리고 1종 보통 면허로도 사람이 아니라 짐을 많이 싣는 트럭은 대형 버스만치 긴 무려 11.5톤까지 몰 수 있으며, 그 정도면 트럭은 차축이 하나 더 달려 있다. (국내에 버스가 차축이 2개보다 더 많은 건 2층, 굴절, 에버랜드 셔틀 같은 것밖에 없다.)

뭐, 트럭은 자동문이나 자동 변속기 같은 건 없을 것이고 운전대가 버스보다 훨씬 더 높을 것이다. 대형 트럭의 운전석에 올라타는 건 반쯤 등산 수준이지 않던가.
대형 버스는 와이퍼가 좌우+수직 형태로 2개인 반면, 대형 트럭은 와이퍼가 승용차와 동일한 수평 형태이지만 2개가 아니라 3개가 달려 있다.
버스는 운전대가 더 낮고 앞유리가 세로로 더 넓기 때문에 와이퍼가 저렇게 비치된 것 같다.

만약에 내가 뭘 잘못해서(...) 운전 면허가 취소돼 버리고 다시 따야 되는 상황이 생긴다면, 난 그때는 꼭 대형으로 딸 것이다.
6000, 8000cc짜리 초호화 승용차나 스포츠카를 몰면서 시속 200으로 밟는 거.. 참 좋긴 한데,
8000, 10000cc짜리 엔진이 달린 대형 버스도 만만찮게 몰아 보고 싶다.
그리고 대형 트럭이나 트레일러 몰다가 밤에 운전석 뒷좌석에서 자는 건 생각만 해도 꿀잼이어 보인다.

크고 아름다운 기계를 굴리는 건 남자의 로망이다.
그런데 이렇게 버스, 트럭, 비행기, 열차, 선박까지 교통수단들을 조금씩 다 몰아 보려면.. 특전사나 공작원 같은 군인이 되는 것밖에 방법이 없으려나..?

Posted by 사무엘

2018/06/01 08:31 2018/06/0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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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엔진 브레이크

엔진 브레이크라는 건 감속· 제동을 위해 자동차에 따로 장착되는 기계 장치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이미 있는 엔진의 특성을 이용해서 차의 속력을 슬금슬금 줄이는 일종의 운전 테크닉에 가깝다.
자동차에서 엔진이 돌아가는 것과 바퀴가 돌아가는 것 사이의 관계는 뭐랄까 참 미묘하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엔진이 돌아가는 것에 비례해서 바퀴가 돌아가지만, 반대로 바퀴가 관성을 따라 계속 굴러가는 것이 엔진을 덩달아 회전시켜 주기도 한다.

엔진 브레이크의 본질은 강제로 기어를 저단으로 바꿔서 바퀴가 굴러갈 때 엔진을 덩달아 회전시키는 것을 굉장히 어렵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리 내리막이라 해도 차가 호락호락 미끄러져 내려가지 않게 된다. 1단으로 고정이라도 시키면 차가 조금만 가속되어도 엔진 회전수가 팍 치솟으면서 굉장히 큰 저항 같은 게 걸린다. 물론 엔진 브레이크를 오· 남용하면 변속기를 포함한 파워트레인 계통이 퍼질 위험이 있지만, 그건 무슨 시속 100에서 1~2단 고정을 시켜서 엔진 회전수가 레드존 이상으로 치솟았을 때에나 걱정할 사항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변속기를 D로 놓고 주행하던 중에 가속 페달에서 발을 잠시 뗀 상황은 정말 순수하게 자전거 페달에서 발을 떼고 관성만으로 달리는 것과 같은 상황이 아니다. 정말 순수하게 관성 주행을 하려면 변속기를 N으로 옮기든가, 수동 변속기라면 클러치를 밟고 있어야 한다. 엔진이 바퀴와 연결되어 있는 한 고단 상태라도 아주 약하게나마 엔진 브레이크가 걸려 있는 셈이다.

관성만으로 자동차 바퀴를 굴리고 바퀴와 연결된 엔진까지 돌리는 상태는 오래 가지 못한다. 자동차는 지금 설정된 단의 기준으로 아이들링 rpm에 해당하는 최저 속도까지 서서히 감속될 것이고 엔진 rpm도 비례해서 줄어들 것이다. 액셀을 안 밟고 계속 방치하면 힘이 부족해서 현재의 '단'도 공기 저항 등 여러 이유로 인해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자동 변속기는 알아서 더 저단으로 변속을 할 것이고, 궁극적으로 자동차는 최저단인 1단에서 그냥 슬슬 기어가는 상태로 되돌아가게 된다. 단순히 공기 저항 같은 요인 때문에 감속되는 게 아니라 엔진 브레이크가 걸려서 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엔진 브레이크는 브레이크 페달의 부담을 일부 분담해 줄 뿐, 얘 단독으로 차를 완전히 세우지는 못한다. 토크가 작고 회전수 편차가 큰 휘발유 엔진이 엔진 브레이크의 성능이 더 좋은데, 정작 드럼 방식 브레이크 기반이고 엔진 브레이크가 더욱 절실히 필요한 차량들은 디젤 엔진 대형 차량이라는 게 역설적이다.

6. 접지력

브레이크라는 건 동작하기 위해서 충족되어야 하는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바퀴가 제대로 된 접지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바퀴가 접지력을 상실하면 굳이 급발진처럼 엔진에 의해 속도가 더 붙지는 않을지 몰라도, 핸들과 브레이크가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차가 미끄러지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상황에 빠진다.

밥을 먹고 있는데, 식탁 표면에 물이 흘려져 있으면 그 위의 밥그릇이나 반찬 그릇이 가끔 케바케로 미끄러지고 저절로 움직이기도 한다. 그 얇은 수면 위로 설마 부력이 작용했을 리는 없지만 지면 정지 마찰력이 극도로 작아지긴 한 것 같다. 그걸 보고서는 "아! 빗길에서 그 무거운 자동차가 미끄러지는 것도 바로 이런 원리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딱히 난폭운전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빗길에서는 차가 물의 저항 때문에 더 잘 안 나아가면 안 나아가지, 딱히 미끄러지거나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 뭔가 도구 차원에서 접지력을 향상시켜서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스노우 타이어와 체인(자동차), 아이젠(등산) 같은 게 쓰인다. 그러고 보니 유리병 뚜껑 같은 게 너무 조여져 있어서 안 따지고 손으로 돌려도 손만 미끄러질 때도, 옷이나 헝겊류를 씌우고 그걸 돌리면 뚜껑이 돌아가서 열리는 경우가 생긴다. 이건 병따개나 손톱깎이처럼 지레의 원리로 토크를 키운 게 아니라, 순전히 접지력을 올리는 좋은 예이다. 회전력만 세다고 해서 장땡이 아니다.

자동차는 밥그릇과 비교했을 때 다소 길쭉한(?) 외형이고, 스스로 굉장한 고속으로 움직이기도 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진행 방향 기준으로 앞뒤의 무게 분배의 균형도 꽤 중요하다.
핸들을 꺾었는데 미끄러져서 차체가 운전자의 기대보다 더 큰 반경으로 돌게 됐다. 그래도 차가 앞뒤 방향이 유지라도 되면 그건 '언더스티어' 성향이다. 그 반면, 조향 과정에서 차의 뒷부분이 원심력을 감당 못 해 드리프트 하듯이 홱 도는 것은 '오버스티어' 성향이다.

묘기· 곡예 운전을 하려면 이런 차의 특성을 잘 알아야 한다. 갑자기 튀어나온 차량을 피하러 핸들을 갑자기 꺾다가 차의 뒷부분이 덜렁덜렁 요동치는 걸 피시테일(fish tail) 현상이라고 하는데.. 이건 일종의 언더스티어 성향으로 봐야 하나 모르겠다. 흔한 통념과는 달리, 딱히 전륜구동이냐 후륜구동이냐를 가리지는 않는다. 엔진이 실린 앞부분이 더 무거운 자동차라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피시테일 현상에서 벗어나려면 마치 급발진에 대처할 때와 마찬가지로 당장의 직감과는 어긋나는 방식으로 자동차를 조작해야 한다. 브레이크를 밟을 게 아니라 오히려 가속을 해야 한다. 그래야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면서 차량의 뒷부분이 무게를 얻고 불안정한 진동을 멈추기 때문이다. 커브를 돌 때 감속이 아니라 오히려 가속을 하듯이 말이다.

이런 식으로, 자동차의 주행에는 연료를 연소시켜서 그 폭발력으로 바퀴를 굴리기까지 전반적인 과정이 비선형적이고 정량적으로 기술하기 어려운 요소가 많다. 무슨 우주 공간처럼 마찰이고 공기 저항이고 다 없고, 그저 연료를 뒤로 분사해서 곧이곧대로 작용· 반작용대로만 나아가는 거라면 기술하기 참 쉽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이다. 타이어의 접지력이라든가, 공기 저항 같은 건 최하 대학에서 기계공학 학부나 대학원 수준이 돼야 다뤄질 것이다.

단적인 예로, 자전거만 해도 차체가 너무 무거우면 처음에 출발할 때 페달을 밟는 게 아니라 그냥 발로 땅을 뒤로 차고 나아가는 게 덜 힘들지 않은가? 그런 게 무슨 원리로 왜 발생하는 차이인지가 단순 경험적인 직감이 아니라 수식으로 아직 좀 알쏭달쏭하다. 완전히 이해를 못 했다.

타이어가 평소에 그렇게도 좋은 승차감을 선사하지만, 바람이 빠지면 완전히 다른 물질로 바뀐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차체를 안 나아가게 만든다. 공기의 있고 없고 차이가 무슨 역학적인 차이를 만들어 내는 걸까?
더 나아가 차체의 무게와 엔진 종류, 배기량, 기어비가 주어졌을 때 그 차의 경제 속도나 최적 연비,  등판능력 한계를 구하는 근거도 내가 이해 가능한 한도까지 알아 가고 싶다.

7. ABS

자동차가 바퀴가 굴러가는 속도(A)와 차체가 움직이는 속도(B)가 일치하지 않게 돼서 좋을 건 전혀 없다. A>B인 건 바퀴가 헛도는 것이고, A<B인 건(심지어 A=0일 수도..) 미끄러지는 것이다. 미끄러지는 현상을 차량 전체의 관점에서는 skid라고 표현하고, 타이어의 관점에서는 잠김(lock)이라고 표현하는가 보다.

ABS란 제동력 자체가 아니라 접지력 향상을 위해서 고안된 안전 장치이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고급차에만 존재하던 값비싼 선택사양이었으나, 2010년대 이후부터는 경차에도 의무적으로 달리는 모든 차들의 필수품이 된 지 오래이다.

얘는 브레이크를 기계의 힘으로 넣었다 끊기를 반복함으로써 접지력의 향상을 도모한다. 즉, 시속 100km 상태에서 150m를 더 나아가야 멈춰설 것을 120m 만에 멈추게 해 주는 게 아니다. 미끄러운 빗길· 빙판길 커브에서 브레이크를 꾸욱 깊게 밟았을 때 차가 전방을 향해 쫘악 미끄러져서 길을 이탈하는 게 아니라, 제동 거리가 얼마가 나오건 커브 틀면서 원래 성능대로 곱게 멈춰서는 것 자체를 도와준다는 뜻이다. 먼저 바퀴가 땅에 제대로 붙어 있어야 그 다음에 핸들이고 브레이크고가 말을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사진은 ABS가 하는 일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정말 센스 대박이다~!! ㅋㅋㅋㅋㅋ 한눈에 바로 이해된다.
노면이 미끄러워서 바퀴가 잠기는 현상이 감지되면, ABS는 운전자의 브레이크 동작을 기계적으로 수 차례의 브레이크 밟기+떼기 트레몰로로 구현해 준다. ABS는 anti-lock brake system의 약자이다만, 각종 프로그래밍 언어에서는 절대값을 구하는 함수의 명칭으로 훨씬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굳이 빗길이나 빙판이 아니어도, 고속 주행 중에 그야말로 강한 관성이 느껴지고 타이어의 스키드 자국이 생길 정도로 브레이크를 강하고 깊게 밟으면 ABS가 발동된다. 스키드 자국이라는 게 타이어가 멈춘 채로 차체가 움직여서 타이어가 길바닥에 질질 긁혔다는 뜻이니 말이다.

이때 브레이크를 밟는 발에서 부르르르~ 떨림이 느껴질 것이다. 트레몰로가 연주되었다는 흔적이다. 브레이크를 사뿐히 즈려밟고 부드럽게 정지하는 평상시에는 ABS의 존재를 체험할 일이 없다.
사실, 오늘날은 ABS는 차체 자세 제어 장치(현대 자동차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VDC)라는 최첨단 주행 안전 시스템의 일원, 구성원이 되어 있다. 자동차가 운전자가 의도했던 대로 움직이고 있는지, 아니면 미끄러지는 중인지, 어느 방향으로 무슨 가속도가 작용하고 있는지를 몽땅 파악해서 타이어별로 서로 다르게 구동력/제동력을 공급해 주는 경지에까지 도달해 있다.

본인도 옛날에 눈이 내리고 얼어서 빙판이 된 '오르막' 비탈길을 차를 몰고 오른 적이 있었는데... 뭔가 미끄러지겠다 싶은 상황에서 차가 미끄러지지는 않고 그 대신 부르르르~ 떨면서 계기판에는 생전에 본 적이 없는 경고등이 잠깐 켜졌다가 꺼지는 걸 봤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VDC가 동작한 것이었고, 떨림은 VDC의 명령을 따라 ABS가 발동된 흔적이었다.

8. 맺음말: 타 교통수단의 제동 장치

(1) 지금까지 자동차 내지 자전거 위주로 브레이크 얘기를 늘어놓았다만.. 비행기의 랜딩기어 바퀴에도 브레이크가 달려 있다. 애초에 저 ABS도 맨 처음에는 젖은 활주로에 착륙할 때 미끄러지지 말라고 비행기용으로 개발되었다가 나중에 자동차와 철도 차량에도 전해진 것이다.
(여담이지만 안전벨트도 맨 처음엔 비행기를 위해서 개발된 거다. 이건 철도에는 필요 없어서 도입되지 않고 자동차에만 추가로 전해졌지만.. 처음부터 자동차를 위해서 발명된 대표적인 안전 장치로는, 금만 가지 와장창 박살나지 않는 '안전유리'가 있다.)

다만, 비행기는 지상 주행의 비중이 자동차보다 훨씬 작으며, 몇백 명이 타는 대형 여객기라 할지라도 접지 형태는 고작 '삼륜차'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브레이크도 뒷쪽 바퀴들에만 달려 있다. 착륙 직후에는 플랩, 스포일러, 엔진 역추진처럼 공기를 직접 맞닥뜨리는 방법으로 속도를 줄이고 또 줄인 뒤에, 바퀴 제동은 기체를 완전히 세우는 결정타로만 사용된다.

비행기 조종석의 페달은 자동차의 액셀/브레이크와는 달리 양발로 조작하며 앞쪽과 뒤쪽의 부위 구분까지 있다. 발꿈치(뒤) 쪽은 비행기가 떠 있을 때 사용하는 방향타이고, 발가락(앞) 쪽은 비행기가 지상 주행 중일 때 사용하는 브레이크이다. 즉, 이륜차처럼 브레이크가 앞뒤 구분이 있는 게 아니라 좌우 구분이 있는 셈인데, 양쪽 바퀴의 제동 정도를 달리함으로써 '조향'을 할 수 있다. 무한궤도 탱크가 방향을 전환하는 것처럼 조향하긴 하지만 추력· 동력 조절이 아니라 제동력 조절이라는 차이가 있다.

(2) 전기로 달리는 차량은 차축을 발전기에다 연결해서 "기왕 제동을 걸 거면 이미 가진 운동량으로 에너지 생산이나 덤으로 하면서 서자"라는 발상을 실현한다. 이것도 방법이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어서 '발전 제동'과 '회생 제동'이라는 메커니즘이 있다.

역에 정차할 때 전동기 인버터에서 나는 소리가 가속 구동음의 역순으로 주파수가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하는 것들이 있다. 이건 개념적으로 자동차의 단을 단계적으로 낮추는 거나 다름없는데, 일종의 엔진 브레이크이기라도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나저나 1세대 KTX(떼제베)는 내부적으로 제동을 어떻게 하는지, 역에 정차할 때 여느 절도 차량에서도 들을 수 없는 시끄러운 굉음이 나는 걸로 악명 높다. 좀 개선이 필요한 점으로 보인다.

(3) 엘리베이터 중에도 한 30층 정도 되는 고층 건물에서 운행되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는 브레이크가 있다. 도착층의 3~4층 전부터 이미 감속하는 게 느껴질 정도인 엘리베이터는 우리가 흔히 탈 수 있지는 않아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8/04/04 19:32 2018/04/04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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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썼던 글을 내용을 보충하여 리메이크 한 것이다.

1. 들어가는 말: 자전거의 브레이크부터

육해공의 모든 교통수단들은 가속 장치만 있는 게 아니라 제동 장치도 어떤 형태로든 갖추고 있다. 어찌 보면 잘 가는 것보다도 제때에 잘 서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제일 간단한 교통수단인 자전거의 경우, 19세기쯤에 자전거가 단순히 앞뒤로 배치된 바퀴 둘에다 안장 달린 수레에 불과했던 시절에는 페달이나 체인뿐만 아니라 브레이크도 없었다. 땅을 발로 차서 가속하고, 제동도 발바닥으로 땅을 끌어서 했다. 굉장히 원시적이었고 신발에 무리를 많이 줬을-_-;; 것 같은데, 페달이 발명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브레이크도 응당 도입되었다.

이륜차의 브레이크는 잘 알다시피 양손 핸들에 두 개가 달려 있어서 각각 앞바퀴와 뒷바퀴에 대응한다. 자전거 정도야 림(rim) 방식이라고 타이어의 금속 테 부분에다가 브레이크 패드를 압박해서 제동을 거는 간단한 방식이 많이 쓰인다. 그러나 접촉 부위가 물이나 흙먼지 등으로 오염되면 제동력이 쉽게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다.

림 브레이크는 앞바퀴에서 주로 쓰이는 듯하다. 뒷바퀴는 다른 부분이 꽉 조여지면서 제동이 걸리는데 이건 무슨 방식이라 불리는지 잘 모르겠다.
고속 주행용 고급 자전거에는 크기만 더 작을 뿐 자동차의 것과 별 차이 없는 정교한 디스크 브레이크가 달려 있기도 하나, 너무 고퀄인 브레이크는 비싸고 무엇보다도 차체를 무겁게 한다는 단점도 있다는 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 (자전거는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만큼, 최대한 가벼워야 한다.)

평소에 서서히 멈춰설 때에야 취향대로 쥐기 편한 쪽의 브레이크만 편파적으로 써도 된다. 하지만 급제동을 걸 때는 편파적인 제동이 위험하다. 특히 자전거 같은 가벼운 이륜차는 뒷바퀴보다도 앞바퀴 급제동이 더 위험하다. 뒤쪽이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확 들려 올라가면서 운전자를 앞으로 패대기(...)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자전거는 오른손 브레이크가 앞바퀴이고 왼손이 뒷바퀴이던 것이, 2010년경부터는 방향이 바뀌어 오른손이 뒷바퀴와 연결되게 되었다. 사람들이 위급한 상황에서는 왼손보다 오른손 브레이크를 반사적으로 꽉 잡는 편인데, 그걸로 앞바퀴를 붙잡으니 더 위험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인 2009년쯤에 보행자의 통행 방향이 오랜 좌측통행 관행을 깨고 우측으로 바뀐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륜차에도 단절적인 변화가 추가된 셈이다.

2. 자동차의 브레이크 -- 제동력 전달: 브레이크액(소형차) 방식과 공기압(대형차)

다음으로 자동차의 브레이크는 사람의 누르거나 밟는 힘으로 감당하기란 택도 안 되게 무거우면서 또 넘사벽급으로 빠르게 운동하는 기계를 신속하게 세워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가 더 복잡하다.

자동차에 가속 구동축은 일반적으로 앞바퀴나 뒷바퀴 중 한 곳에만 있다. 모든 바퀴가 구동축인 차량은 오르막과 험지 주행 성능을 매우 중요시한 군용차나 일부 SUV 정도밖에 없다. 그러나 브레이크는 어떤 자동차라도 반드시 모든 바퀴에 달려 있다. 급제동을 편파적으로만 했다간 사륜 자동차도 옆으로 홱 돌아가는 등 이륜차만큼이나 큰 위험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동차는 한 페달만 밟아도 이 모든 바퀴가 동등(일단은..)하게 제동이 걸리는 게 일면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이건 브레이크액(소형차의 유압-배력 방식)이나 압축 공기(대형 트럭· 버스의 에어 방식) 같은 유체의 유압을 이용해 (1) 페달 밟는 힘을 각 바퀴의 모든 브레이크에 동시에 분산해서 전하기 때문이다. 엔진의 동력을 두 바퀴에 분산 전달하는 용도로는 차동 기어 같은 톱니바퀴가 쓰이는 반면, 브레이크에서는 저런 메커니즘이 쓰인다.

그리고 차량용 브레이크에는 어떤 형태로든 '엔진의 출력'을 동원하여 (2) 사람이 페달을 밟은 힘을 증폭시켜서 더 큰 제동력이 전해지게 하는 장치가 있다. 핸들의 파워스티어링에만 증폭 장치가 있는 게 아니며, 사실은 브레이크의 증폭 장치가 더 중요하다. 유압-배력 브레이크에는 엔진 압축 행정 과정에서 생기는 진공을 이용한 브레이크 부스터가 있고, 에어 브레이크는 아예 엔진 출력을 바탕으로 동작하는 압축 공기 챔버가 따로 있다.

그러니 자동차의 브레이크는 시동이 꺼지고 나면 마치 오르간 악기처럼 진공압 또는 공기압이 남아 있는 동안만 동작한다. 그게 다 빠진 뒤에는 브레이크 페달이 아예 밟히지 않는다. 급발진 폭주가 시작됐다고 해서 무작정 시동을 꺼 버렸다면 그 뒤부터는 핸들 잠기지, 브레이크도 동작 원천이 더 보충되지 않아서 일회용 시한부 인생이 되었음을 알고 유의해야 한다. 언제든지 잡을 수 있는 자전거 브레이크 같은 걸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엔진 동력에 의존하는 브레이크 말고, 차 시동이 꺼진 뒤에 멈춰 선 차를 미끄러지지 않게 고정하는 브레이크는 주차 브레이크라고 따로 있다. 요건 보통 뒷바퀴에만 달려 있는 편인데, 주행 중에 얘를 급하게 당겨서 차를 감속하거나 세우면 역시나 편파적인 제동으로 인해 차가 돌아가 버릴 위험이 있다. 그래도 차라리 뒷바퀴를 붙잡지 앞바퀴를 붙잡는 건 더 위험한 듯하다.

3. 베이퍼 락과 페이드

자동차의 엔진은 연료의 연소와 폭발로 인해 지속적으로 열을 받으며, 이거 조절을 위해서는 라디에이터와 냉각수 같은 냉각 계통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편으로 브레이크는 제동 과정에서 자기 패드와 로터 사이의 마찰로 인해 열을 받는다. (타이어와 지면 사이의 마찰열은 또 별개의 문제) 두 손바닥만 살살 비벼도 열이 나는데, 그 무겁고 빠른 자동차를 세우는 과정에서 열이 안 날 수가 없다.

그런데 더운 날씨에 급커브 내리막에서 짧은 시간 동안 브레이크를 수십 회 이상 너무 자주 깊게 오래 밟으면 브레이크 패드가 달아오르고 과열된다. 그래서 접촉면의 마찰이 작아지고 미끌미끌해져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왜 서지를 못하니" 상태가 돼 버린다. 이것을 페이드(fade) 현상이라고 한다.

이보다 상태가 더 나빠지면 유압-배력식 브레이크의 경우, 브레이크액 자체가 섭씨 300도를 넘나드는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부글부글 거품이 일고 기화해 버린다. 그래서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아도 기화된 브레이크액이 스스로 압축되어 운동량을 흡수하고, 지시가 브레이크로 가지 않는다.
브레이크 페달은 밟는 대로 쑤욱 밟혀 들어가는데, 제동은 전혀 걸리지 않게 된다! 이것을 베이퍼 락(vapor lock) 현상이라고 한다.

베이퍼 락과 페이드는 원인은 비슷하지만 성격이 다르다. 페이드는 브레이크가 정상 작동했는데도 제동력이 떨어지는 것이고, 베이퍼 락은 애초에 밟아도 제동 명령 자체가 인식되지 않는 것이다.

브레이크액은 꼭 저렇게 혹사당하지 않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변질되고, 수분이 섞이면서 끓는점이 점점 낮아진다(= 베이퍼 락이 더 쉽게 발생하게 됨). 그렇기 때문에 엔진 오일만치 자주는 아니어도 일정 주기로 교환이 필요하다.
냉각수는 혹한기에도 얼지 않아야 하며 브레이크액은 끓지 않아야 하니, 자동차에 들어가는 액체는 어떤 온도에서도 액체 상태가 유지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어 브레이크 기반인 대형 차량들은 베이퍼 락 현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디젤 엔진에 점화 플러그가 없듯, 에어 브레이크에는 브레이크액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에어 브레이크는 베이퍼 락 없고 제동력을 전하는 성능도 탁월하지만, 더 비싸고 큰 부품이 필요하고 압축 공기의 비축을 위해서도 엔진 출력이 상시 소모되기 때문에 천상 대형 차량용이다. (에어컨도 냉매 컴프레셔에서 전기든 엔진 출력이든 에너지 소모가 제일 많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버스를 타 보면, 신호대기로 인해 정지했을 때 기사 아저씨가 무슨 스위치를 조작하고 차에서는 "축~ / 취익!" 이렇게 공기 빠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는 걸 볼 수 있다. (문을 여닫을 때도 비슷한 공기 빠지는 소리가 나지만, 아직 문도 열리기 전이고 멈춘 직후에)
그건 그 잠깐 서 있는 동안에도 주차 브레이크를 채우는 소리이다. 버스는 주차 브레이크도 공기압 방식이기 때문이다.

에어 브레이크를 사용하는 대형 버스· 트럭의 계기판을 보면 승용차에는 없는 '공기압' 계기가 있다. 이건 타이어의 공기압이 아니라 에어 브레이크에 비축된 공기압을 나타낸다. 주행을 하다 보면 압력이 올라가고, 엔진 회전수가 높을수록 더 빠르게 올라간다. 그 반면, 빡세게 브레이크를 자주 밟다 보면 압력이 감소하여 바늘이 왼쪽으로 돌아간다.

쉽게 말해 이건 이 차량의 제동력의 비축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속도계· 연료계· 냉각수 온도계에 준하는 매우 크리티컬한 계기이다. 타코미터가 오른쪽 끝(지나친 고회전)에 레드존이 있다면, 공기압계는 마치 연료계처럼 왼쪽(고갈..)이 레드존이다. 굉장히 흥미로운 특성으로 보인다.

4. 자동차의 브레이크 -- 제동 방식: 디스크와 드럼

브레이크는 제동력 전달과 증폭 방식에서는 저렇게 유압-배력 방식과 에어 방식으로 나뉘고, 실제로 바퀴를 붙들어 물리적인 제동을 거는 방식에서는 디스크 방식과 드럼 방식이 나뉜다. 차축 주변에 크고 반들반들 윤기 나는 금속 원판이 보이고 타이어 휠의 비주얼도 그걸 다 노출하는 형태이면 디스크 브레이크이고, 그냥 꽹과리 내지 솥뚜껑 같은 작고 납작한 금속판만 보이면 드럼 브레이크이다. 그래서 옛날 차들과 요즘 차들은 휠의 디자인 트렌드도 차이가 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옛날에는 대부분의 자동차들이 앞바퀴는 디스크, 뒷바퀴는 드럼 방식 브레이크를 썼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지간한 승용차들은 100% 디스크이고, 경차 또는 반대로 트럭· 버스 같은 대형차들은 뒷바퀴 드럼을 고수하는 중이다. 드럼 방식은 디스크보다 가격 대 제동성능이 더 좋지만, 폐쇄적인 구조로 인해 과열 위험(= 페이드 현상)이 더 높다는 단점이 있다.

유독 대형차들이 언덕길에서 갑자기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 사고를 내는 빈도가 더 잦은 건 (1) 근본적으로 차가 워낙 크고 무거워서, (2) 워낙 저렴하게 혹사당하는 상용차이다 보니 주행 거리가 매우 길고 과적· 차량 노후· 정비 불량 등의 위험이 있어서 외에도 (3) 드럼 브레이크라는 점도 적지 않게 작용한다. 그러니 한여름에 긴 내리막을 조심스럽게 주행할 때에는 자꾸 페달만 밟지 말고 엔진 브레이크 같은 다른 보조 제동 방법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8/04/02 08:32 2018/04/0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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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2 경인 고속도로의 동쪽 연장

우리나라의 서울과 인천 사이에 처음에는 경인선 철도가 건설되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 뒤엔 철길의 북쪽에 경인 고속도로가 생겼고, 또 한참 뒤에 1990년대에는 철길의 남쪽으로 제2 경인 고속도로가 개통했다. 제2 경인은 동쪽이 삼성산을 앞두고 끝나면서 행정구역상 서울을 경유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선의 상징성 때문에 '경인'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제2경인은 오리지널 경인이나 외곽순환처럼... 장거리 간선 고속도로가 아니라 그냥 수도권의 단거리 도시 고속화도로와 비슷한 위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 도로의 서쪽 끝과 동쪽 끝이 연장되면서 그 위상에 큰 변화가 생겼다.

먼저, 서쪽은 인천대교와 연결되면서 사실상 공항 고속도로의 역할을 겸하게 되었다. 오리지널 경인 고속도로의 북쪽으로 공항 고속도로가 따로 지나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그리고 동쪽은 삼성산과 청계산 아래를 몽땅 터널을 뚫어서 근성으로 돌파한 뒤, 안양과 의왕을 지나 성남의 여수대로까지 연장되었다! 이 민자 구간은 따로 '안양-성남 고속도로'라고 부른다. 2017년 9월에 개통했다.

의왕과 성남 사이에는 이 고속도로가 기존의 외곽순환 고속도로와 매우 가까이 나란히 달리지만 새 길은 대부분 터널이기 때문에 서로 지상에서 마주볼 수는 없다. 지도를 보면 판교 운종동에서 아주 잠깐 지상으로 나올 뿐이다.
나중에 판교 분기점을 지나지만 지하로 통과하며, 기존 경부 내지 외곽순환 고속도로로 갈아탈 수는 없다.
용인-서울 고속도로(171)와도 갈아타는 거 없다. 단지, 종점을 앞두고 분당-내곡 고속화도로와는 갈아타는 연결로가 생기는 듯하다.

이 고속도로는 성남 시청 바로 근처에서 국도 3호선으로 바뀌면서 끝난다. 여기서 한참을 동남쪽으로 진행하면 광주시 초월읍에 도달하는데, 여기서는 중부 고속도로(35)와 만남과 동시에 광주-원주 고속도로(52)를 타고 계속 동쪽으로 갈 수 있다.

여기 사이 거리가 20km에 달하니 짧지는 않지만.. 수틀리면 고속도로 110과 52가 한데 만나서 이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어 보인다. 흥미로운 일이다.
철도 분당선이 겨우 분당-서울 전철이 아니라 이제 경기도를 두루 아우르는 거대한 순환형 광역전철이 됐듯, 110번 고속도로는 겨우 서울-인천이 아니라 경기도를 두루 아우르는 장거리 간선 고속도로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

6. 하이패스 차단기, 코레일 개집표기

오늘날 전국의 고속도로 IC들의 하이패스 진입로에 딱히 차단봉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악용하여 통행료를 상습적으로 안 내고 튀는 악질 운전자 때문에 도로 공사가 골머리를 썩는 중이라고 한다.
과거에 하이패스라는 게 처음 도입됐던 시절에는 진입로에 여느 건물 주차장 입구처럼 차단봉이 있었다. 평소에는 내려가 있다가 차량의 하이패스 단말기가 본부와 통신이 정상 처리됐을 때에만 올라가곤 했다.

그런데 건물 주차장 출입구야 차들이 워낙 느리게 움직이니 그런 식으로 차량 진입을 통제하면 되지만, 고속도로는 그렇게 하기에는 차량이 너무 빠르게 달리는 중이라는 게 문제였다. 정말 악의 없이 기계 오류 때문에 인식이 안 된 건데도 차단봉이 안 올라가면 차가 차단봉과 부딪치는 사고가 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차단봉만 부수고 차량 앞부분만 좀 긁히면 차라리 다행인데, 운전자가 당황해서 차단봉을 피하느라 핸들을 옆으로 꺾으면 주변 시설물까지 다 부수는 더 큰 사고로 도지기 쉬웠다.

그렇기 때문에 도로 공사에서 1차로 취한 조치는 부딪치더라도 차량에 상처를 주지 않고, 휠지언정 부서지지 않는 부드러운 훼이크 재질로 차단봉을 교체하는 것이었다. 이것도 마치 도로에 색만 칠해진 훼이크 과속방지턱만큼이나 초행 운전자에게 심리적인 압박은 여전히 준다. 오동작+회피 사고의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결국, 관계 당국의 오랜 고민 끝에 하이패스 진출입로에서 차단봉은 모두 철거되고 사라지게 됐다. 설치하는 데도 돈 들고, 철거하는 데도 돈 들고.. 결국 예산 낭비라고 언론에서 까였다. 전국에 고속도로 나들목이 한두 개 있는 것도 아닌데..
얌체 운전자를 어떻게 잡아낼지는 따로 생각할 일이고, 일단은 안전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현장 보존, 증거 확보, 과실 비율보다도 당장 차를 갓길로 옮기고 2차 사고를 예방하는 게 절대적으로 더 중요하듯이 말이다.

하이패스 차단봉 같은 지위와 운명을 지녔던 물건이 과거에 철도계에도 있었다. 바로 고속철 개통과 함께 주요역에 도입했던 지하철 스타일의 자동 개집표기이다.
이것도 나름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도입한 것이었지만, 알고 보니 그다지 유용하지 않았다. 집어넣은 승차권이 제대로 튀어나오지 않는 걸림 현상이 잦았고, 또 승차권 자체도 항공권 같은 영수증 모양 내지 SMS· 홈티켓 등으로 형태가 다양화되면서 저런 자동 개집표기가 무의미한 형태로 바뀌었다.

결국 자동 개집표기는 개집표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봉인되거나 아예 철거되기에 이르렀다. 이것도 언론에 보도되어 많아 까였었다.
고속도로의 하이패스 차단봉과 정말 비슷한 처지로 보이지 않는가?

7. 버스 전용 차선 등~

경부 고속도로는 극심한 정체로 인해 1990년대 중반에 국내 최초로 버스 전용 차선이 시행된 것으로 유명하다. 난 신탄진 IC 이북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팩트의 전부는 아니다. 평일에는 오산 IC부터이고, 주말과 공휴일에만 신탄진 IC부터이다. 그래서 신탄진과 오산 사이에는 파란색 버스 전용 차선이 실선이 아닌 점선으로 그어져 있다. 2017년 7월 말부터는 영동 고속도로도 신갈-여주 사이에 버스 전용 차선이 주말 한정으로 시행되었다. 시행 시간대는 여러 차례 변경을 거친 끝에 현재는 아침 7시부터 저녁 9시까지로, 남산 터널들의 혼잡 통행료 징수 시간대와 동일하다.

비슷한 시기인 1996년 초에는 서울 시내의 천호대로에도 중앙 버스 전용 차선이 첫 시행되었다. 하지만 고속도로의 버스 전용 차선과 시내의 버스 전용 차선은 중앙 1차로를 버스 전용으로 떼어 줬다는 점 외에 취지와 이념은 서로 차이가 있다.
고속도로의 버스 전용 차선은 보다시피 심야에는 시행되지 않으며, 9인승 이상 소형 승합차라도 6명 이상이 타면 통행이 허용될 정도로 유도리가 있고 관대하다. 그러나 시내의 버스 전용 차선은 노선 버스들만 통행 가능하며, 심지어 그런 버스들이 끊긴 심야까지 포함해서 365일 24시간 시행이다. 긴급자동차 정도가 아닌 한, 일반 차량 운전자들은 저 차선을 꿈에도 넘볼 생각 하지 말라는 뜻이다.

마이크로버스라도 정규 노선 버스라면 버스 전용 차선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작은 마을버스들이 버스 전용 차선이 있을 정도의 큰 도로를 다니는 일은 없기 때문에 이 차선은 사실상 대형 버스들의 독무대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도로교통법을 보면 이 전용 차선을 다닐 수 있는 버스는 그냥 버스가 아니라 '노선버스'이다. 그러니 단순 학원· 교회 버스나 관광· 전세 버스, 사기업의 통근 버스는 들어가서는 안 될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는 소· 중형이 아닌 대형 버스라면 다 들어가는 것 같다.

경부 고속도로의 경우, 경기도 구간부터는 차들이 워낙 많고 혼잡하니 평소에는 갓길까지도 차량 통행용으로 개방해 주고 그 대신 대피소를 일정 간격으로 추가로 설치하곤 한다. 지금이 갓길 주행이 가능한지 여부는 마치 상하행 가변 차선 도로의 O X 표시 램프처럼 전광판이 별도로 해 준다.

옛날에는 고속도로의 일부 지점에도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고속· 시외버스가 정차하곤 했다. 지금은 휴게소 환승이 있지 그런 관행은 없어진 지 오래다. 고속도로 일부 구간을 비상용 활주로로 사용하던 관행이 없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옛날에 쓰이던 버스 정류장이 개조되어 졸음 쉼터 내지 비상 대피소로 탈바꿈하곤 한다. 고속도로의 내부 구조가 이런 식으로 바뀌기도 한다.

8. 그 밖에 고속도로 주행하면서 들었던 생각들

(1) 하이패스는 버스· 전철에서 환승 할인 교통 카드만큼이나 정말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필수가 됐다. 고속도로는 폐쇄식과 개방식, 도로공사 구간과 민자 구간이 뒤섞이면서 요금 체계가 하루가 다르게 복잡해지고 있으니 하이패스 같은 거 없이는 이제 버틸 수가 없다. 이제는 하이패스 전용 IC도 등장하고 있으며, 현금 통행료 무인 징수기는 통과 시간이 정말 길고 불편하다.

돈 거래에 관한 한 현금은 동전이든 지폐든 절대로 기계 친화적인 매체가 아니다. 이건 동물의 다리는 바퀴와 달리 기계로 구현하기 아주 어려운 파트인 것과 같으며, 페이지를 넘기도록 제본된 책이 사람에게는 읽기 편한 형태이지만 스캔 뜨는 데는 아주 안 좋은 형태인 것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현금 수납이 기계로 대체되고 나면 사람은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리고 불편해진다. 패스트푸드점에서든, 고속도로 톨게이트든, 지하철역 1회용 승차권 구입이든.. 예외가 없다.

(2) 난 옛날에는 차선을 이리저리 바꾸면서 칼치기 추월을 하는 스피드광 폭주족들만 미친놈 나쁜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1차로를 떡 버티고 정속· 저속 주행하면서 우측 추월을 강요하는 애들이 그보다 더 무개념 나쁜놈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체 상황이 아닌 이상, 추월 차로는 필요할 때 잠시만 이용하도록 하자~!
추월 차선을 딱 비워 놓고 언제나 좌측으로 예측 가능하게만 추월하면 독일 아우토반처럼 시속 200을 넘게 달려도 사고 잘 안 난다. 요즘 차들은 성능도 좋은데, 괜히 비현실적인 과속 단속 감시나 하지 말고 차로 분리를 더 적극적으로 계도· 계몽했으면 좋겠다.

(3) 휴게소의 주유소가 기름값이 생각보다 저렴한 게 놀랍고 인상적이었다. 미리 환전을 안 하고 공항에 가서야 환전하면 바가지를 잔뜩 쓰며, 열차 안이나 산 같은 현장에서 구매한 도시락은 비싸고 가성비가 안 맞게 마련이다. 군 입대를 앞두고도 준비물을 미리 챙겨야지 거기 가서 잡상인을 이용하면 역시 바가지 쓴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기름도 시내에서 미리 넣어 가야 저렴할 텐데, 고속도로 휴게소의 기름은 그렇지 않았다. 도로공사가 ex-oil이라고 자체적으로 거품 없는 석유 유통망을 갖추고 있는 덕분에 그렇다고 한다.

(4) 고속도로는 그러고 보니 유조차· 특대형 트레일러 같은 크고 아름다운 차, 위험물을 실은 차가 주행 가능하구나!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같은 시내의 여느 자동차 전용 도로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점인데 이를 지금까지 별로 의식 안 하고 있었다. 하긴, 고속도로는 그렇게 나라 먹여 살리는 자동차들을 당연히 통행시켜 줘야 할 것이다.

그런데 4.5톤을 초과하는 대형 트럭들은 201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하이패스 단말기 장착이 허용되지 않았다는 걸 본인은 지금까지 몰랐다. 고속버스가 하이패스 달고 잘만 달리고 있는데 의외다. 그러니 이런 트럭 운전자는 하이패스 카드를 제시해서 현금 취급 없는 통행료 결제까지만 가능하지, 톨게이트 무정차 통과는 할 수 없었다.
지금도 하이패스를 달더라도 톨게이트는 거의 기다시피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이유는 다른 기술적인 제약 때문은 아니고, 과적 단속을 위해서라고 함..

(5) 그나저나 영천-경주 구간 확장은 언제쯤 끝나려나.. 공사 때문에 갓길도 없고 하도 위험하고 사고가 나서 그런지 최고 속도 한계가 100에서 80으로 낮춰졌으며, 아예 예전에 없던 구간 속도 단속이 시행되고 "시속 80으로 달리는 당신이 아름답습니다" 이런 오글거리는 표어까지 붙었다. "이렇게 빌 테니 제발 과속하지 말고 천천히 가세요" 거의 이런 급이다..;;
고속도로의 상태가 주변의 국도(20, 4)보다도 못해진 상태이니 공사가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려야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27 19:37 2018/01/2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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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속도로 개통 관련 에피소드

중부내륙 고속도로(45)가 주요 구간이 개통해서 서울-경주 갈 때 대전을 경유할 필요가 없어진 게 10몇 년 전 일인데..
2017년 6월 말엔 상주-영천 고속도로(301)가 추가로 개통한 덕분에 이제는 서울-경주 갈 때 대구· 구미를 들를 필요마저도 없어졌다.
사실, 거의 같은 시기에 저 301뿐만 아니라 제2경부 고속도로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세종-포천 고속도로(29)도 포천-구리 구간이 개통했다! 이 좁은 땅에 알게 모르게 고속도로가 계속해서 생기고 있다.

하지만 저때 언론의 관심은 오로지 서울-양양 고속도로(60)의 전구간 개통에만 몰려 있었다. 그래서 29와 301은 존재감 없이 진짜 깔끔하게 묻힌 것 같다. 뭐, 저건 우리나라 최북단 고속도로인 데다 서울· 수도권 주민들의 휴가철 교통편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니 임팩트가 더 클 수밖에 없긴 하다.

나 같은 자동차· 지리· 교통덕에게는 새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것이 무슨 새로 생긴 맛집을 찾아가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다.
어느 지방에 무슨 맛집이나 카페가 생겼다고 하면 여자분들은 초점은 그 목적지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본인은 목적지를 찾아가는 중간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으음.. 뜬금없는 사실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인 경인 고속도로(120)가 서울-인천간의 주요 구간이 개통한 건 1968년 12월 21일이다. 하지만 서쪽 끝의 가좌동에서 인천항까지 6km 남짓한 구간이 마저 100% 완공된 건 이듬해(69년) 7월 21일이었는데..
이건 일개 고속도로 개통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구급 경축 이벤트와 날짜가 정확하게 겹쳤다는 걸 지금까지 전혀 생각 못 했다.
바로 아폴로 11호, 인간 최초의 달 착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날을 아예 임시공휴일로 지정해서 학교와 관공서가 놀았다.

한국은 인제 군사정권 하에서 산업화 찔끔 하고 짤막한 고속도로 '하나' 만들어서 좋아라 하고 있었지만 천조국은 이미 그로부터 거의 3, 40년 전부터 전국에 하이웨이가 거미줄처럼 깔렸으며 진작부터 마이카 시대가 시작돼 있었다. 그리고 1960년대엔 비행기를 넘어 아예 우주선을 만들고 인간을 달에 보내는 데 성공했다. 공산주의 진영과 싸우는 스케일이 가히 넘사벽이었던 셈이다.
이때 국내 신문들은 호외를 발행했으며, 이튿날 1면은 큼지막한 제목이 전부 '인간 달 착륙, 우주 시대 개막' 이랬었다. 그러니 경인 고속도로 전구간 완공 소식 따위는 그냥 싹 묻혔고 찾을 수 없었다.

2. 용인-서울 고속도로

2009년에 개통한 용인-서울 고속도로(171)는 위상이 꽤 독특한 물건이다.
얘는 2017년 현재, 전국의 고속도로들 중 유일하게 전구간이 다른 어떤 고속도로와도 직통하지 않고 고립돼 있다. 양 말단이 연결된 것이 없고, 중간에 타 고속도로로 갈아탈 수 있지도 않다. 얘는 무슨 바다를 건넌다거나 경북의 BYC처럼 지금까지 고속도로가 전무하던 오지를 개척한 게 아니며, 나름 수도권에 다른 고속도로들과 교차하거나 근처를 지나는 게 있는데도 말이다. (뭐 수도권에서도 상대적으로 오지에 속하는 그린벨트 지대 위주로 지나기는 하지만..)

얘는 안 그래도 민자이기까지 하니 뭔가 고속도로계의 유아독존 같은 느낌이 들며, 바다처럼 매우 넓긴 하지만 세계 다른 대양들과 통하지 않는 '카스피 해' 같은 호수를 보는 느낌이다. 하긴, '민자 고속도로'라는 개념도 영종도 다리를 경유하는 공항 고속도로 이후로 2000년대 중반에 대구-부산, 그리고 논산-천안 고속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슬금슬금 도입된 개념이다.

용인-서울 고속도로가 혼자만 뻗어 있는 게 좋지 않았는지(창 2:18), 현재는 경부 고속도로와 교차하지만 분기점 없이 그냥 지나치던 곳에 '성남 JC'라고 일종의 '환승 통로'(?)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판교 JC와 대왕판교 IC보다 약간 더 북쪽 지점이다. 이곳을 이용하면 번거롭게 헌릉까지 안 가고 경부 고속도로 라인에서 용인-서울 고속도로에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단, 얘는 사통팔달이 아니라 반쪽짜리로만 만들어진다. 용인(171)에서 서울(1) 방면으로(북쪽), 아니면 서울(1)에서 용인(171) 방면으로(남쪽) 동일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는 것만 가능하지, 용인에서 다시 대전으로 가거나 대전에서 방향을 꺾어서 다시 용인으로 가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아울러, 얘는 북쪽 서울 방면은 그렇다 쳐도 남쪽은 왜 기존 고속도로와의 연결을 못 시킨 걸까? 동탄이나 오산 정도에서 경부 고속도로와의 분기점을 만들면 연계 효과가 더 커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거기까지는 아마 시간과 비용 문제 때문에 신경을 못 쓴 것이지 싶다. 저기는 안 그래도 휴게소도 전무한데 거대한 입체 교차로를 만드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그 대신, 하이패스도 있겠다, 앞으로는 이거 뭐 고속도로도 간접· 소프트 환승이란 게 도입될 것 같다.

3. 남해 고속도로, 고속도로의 지선

지난 추석 때 본인은 가족 여행 때문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해 고속도로 일대를 운전할 일이 있었다. 서울· 수도권이 전혀 아닌 곳에 종축도 아닌 횡축으로 8~10차선급의 넓은 고속도로가 있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뭐 부산을 포함해 그 일대의 창원· 마산도 수도권에 준하는 대도시이니 수긍이 갔다.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함안-마산 구간은 길이 정말 많이 막히고 정체가 심했다. 알고 보니 여기는 원래 아주 악명 높은 구간이라고 한다. 교통 수요에 비해 길이 마땅찮아서 차들이 전부 여기로만 몰리기 때문이다.
그 안습한 철도라는 경전선도 동부 한정으로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며, KTX가 지나고 그것도 승객 수요가 아주 많아서 장사가 잘 된다니 말이다. 슬금슬금 복선 전철화 공사도 진행 중이다.

요즘 고속도로도 전국 곳곳에 내가 모르는 새로운 번호들이 많이 등장하고, 특히 지선을 나타내는 세 자리 번호가 많이 눈에 띈다. 서해안 고속도로의 지선인 151처럼 말이다.
철도가 경전철이 트렌드가 되었듯, 이 좁은 땅에 고속도로도 굵직한 간선은 다 건설되고 이제는 촘촘한 지선을 만드는 게 트렌드가 된 듯하다. 그리고 남해 고속도로는 그 짧은 구간에 그런 지선이 많은 게 인상적이었다.

철도에 동일 구간을 서로 다른 길로 진행하는 태백선과 함백선이 있듯, 고속도로 중에는 중부 고속도로의 경기도 구간(35)과 제2중부 고속도로(37) 쌍이 있다.
그런데 남해 고속도로에도 마산 시내를 경유하는 제1지선(102)과, 마산 외곽을 더 짧은 거리로 지나는 본선(10)이 이렇게 잠시 분기했다가 다시 만난다. 원래는 지금의 지선이(시내 경유) 먼저 남해 고속도로 구간으로 건설돼 있었지만, 그게 지선으로 바뀌고 나중에 건설된 외곽 지름길이 본선으로 편입된 것이다.

남해 고속도로의 제2지선(104)은 부산 서쪽 외곽의 김해 공항으로 빠진다. 그리고 제3지선(105)은 항구로 빠지기 때문에 일반 민간인이 여행 목적으로 이용할 일은 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2중부 고속도로도 지금 같은 37이 아닌 351이라는 지선 번호가 붙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맥락으로, 서해안 고속도로(15) 주변도 어느 건 둘째 자리수만 변화시킨 17이고 어느 건 아예 지선 번호를 붙인 153인지 좀 헷갈릴 지경이다.

4. 고속도로의 통행료 부과 방식

경부 고속도로의 경우, 가장 북쪽의 서울 시내 구간에 속하는 한남-반포-서초-양재 IC 사이는 엄밀히 말하면 경부 고속도로가 아니다. 입체 교차로와 방음벽이 쳐져 있고 도로 표지판에도 고속도로를 뜻하는 붉은 왕관 모양과 함께 고속국도 1호선이라고 안내는 돼 있지만, 거기는 그냥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 같은 서울의 여러 시내 자동차 전용 도로 중 하나일 뿐이다. 정식 명칭은 '경부 간선 도로'이다. 고속도로가 아니므로 여기만 통행하는 것은 아무 제약 없이 무료이다.

진짜로 경부 고속도로가 시작되는 곳은 양재 IC 이남부터이다. 달래내고개 일대의 그린벨트를 지나고 외곽순환 고속도로와 교차하게 되는데, 여기는 일명 '개방식' 구간이다. 특정 구간이나 IC를 통과할 때만 고정된 액수의 통행료가 부과된다. 주변의 경인 고속도로, 외곽순환 고속도로는 IC가 조밀한 간격으로 굉장히 많이 있기 때문에 일정 간격의 구간별로 톨게이트가 있다(전자).

그러나 경부 고속도로는 폐쇄식 거리 비례제로 요금제가 바뀌는 서울 톨게이트가 따로 있기 때문에 위와 갈은 형태의 톨게이트는 없다. 다만, 서울 톨게이트의 이북이고 그렇다고 무료 서울 시내 구간에도 속하지 않은 대왕판교 IC와 판교 IC는 서울 방면으로부터 진출할 때에 한해서 소액의 고정 통행료를 징수한다.

부산 방면으로부터 와서 판교로 나가는 거라면, 이미 서울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낸 상태이기 때문에 판교 IC에서 또 통행료를 징수하지 않는다. 또한 판교 IC를 통해 부산 방면으로 진입하는 거라면 역시 서울 톨게이트를 곧 통과하게 될 것이므로 통행료가 부과되지 않는다. 판교 IC의 통행료 징수는 전적으로 서울-판교 단거리 왕래를 대상으로만 적용되는 셈이다.

판교 IC 말고 판교 JC는 외곽순환 고속도로와 경부 고속도로가 만나는 분기점이다. 얘를 통해서 외곽순환 고속도로에서도 판교 IC로 나갈 수가 있는데, 이때는 비록 부산이 아닌 서울 방면으로부터의 진출이지만 청계나 성남 톨게이트처럼 인근의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냈다는 영수증을 제시하면 판교 IC에서 돈을 또 내지 않고 나갈 수 있다.
이건 대중교통으로 치면 일종의 환승 할인이나 마찬가지인 개념이다. 복잡한 규칙이지만 이것도 하이패스만 달고 있으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나가든 다 알아서 자동 처리된다.

판교 JC 역시 사통팔달 뚫린 길이 아니다. 외곽순환 고속도로에서는 경부 고속도로의 부산 방면으로만 나갈 수 있지, 서울 방면(양재, 한남)으로 나갈 수는 없다. 그리고 경부 고속도로도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한 서울 방면 차량만 외곽순환으로 나갈 수 있지, 서울에서 부산 방면으로 향하던 차량이 외곽순환으로 갈아탈 수는 없다. 이런 구조 때문에 판교 IC도 외곽순환으로부터 유입되는 것만 가능할 뿐, 판교 IC에서 외곽순환 고속도로로 갈 수는 없다. 서울(여기서 통행료 내고) 또는 부산으로 경부 고속도로만 탈 수 있을 뿐.
저기 일대는 굳이 사통팔달 안 뚫어도 차들로 넘쳐나는 곳이니, 서울 일대에서 외곽순환이나 잠깐 타는 차들은 경부 말고 다른 대체 도로를 이용하라고 저렇게 막아 놓은 것 같다.

요렇게 개방식 요금제 구간에서 반쪽짜리 톨게이트를 굴리는 고속도로 나들목이 경부 고속도로의 판교 IC(서울 톨게이트 이전) 말고도 중부 고속도로의 하남 IC(동서울 톨게이트), 그리고 서울-양양 고속도로의 덕소삼패 IC(남양주 톨게이트)가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에는 그런 특이한 IC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서울 톨게이트를 지나고 나면 하이패스가 없는 차량은 통행권을 받으며, 진출하는 IC에서 통행권을 반납함과 동시에 이용 거리에 비례한 통행료를 낸다. 모든 차량이 하이패스가 장착되고 전국의 모든 고속도로 진출입로가 실시간으로 차량의 흐름을 파악하고 거리 비례 통행료를 부과할 수 있다면 골치 아픈 개방식· 폐쇄식 같은 구분이 사라지고 통행권 발급과 현금 취급 같은 번거로운 일도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넓은 톨게이트 부지도 필요 없어지니 거기는 공원이나 휴게소 같은 다른 용도로 활용이 가능해질 것이다.

(下에서 계속됨)

Posted by 사무엘

2018/01/25 08:29 2018/01/25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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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론에서 제일 큰 주목을 받는 교통사고의 유형은 (1) 음주운전, (2) 졸음운전 대형차(버스, 트럭) 사고, 그리고 (3) 고령 운전자 사고인 것 같다. 일명 김여사 사고는 2010년대 초에 인천외고 운동장 사고와 인천대교 마티즈 사고 때 크게 논란이 일었다가 요즘은 잠잠해진 듯. 하지만 지난 2017년 여름에 발생했던 일산 백병원 차량 돌진 + 건물내 추락 사고는 오랜만에 또 발생한 김여사의 전형적인 운전 미숙 사고이다..;;

1. 음주운전

뺑소니와 더불어 죄질이 제일 나쁜 축에 들며 사람을 제일 빡치게 하는 사고이다. 이런 사고가 꼭 피해자는 차량 화재+몰살인데 가해자는 그냥 경상인 경향이 있다. 좀체 근절되지 않고 있어서 가해자 처벌을 더 강화하라는 여론이 기세등등하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우리나라는 범죄자 인권에 너무 관대한 곳이어서 별 희망이 없을 것 같다. 이 글에서 음주운전 사고 사례는 생략하고, 더 소개하지 않겠다.

굳이 단속 기준을 지금보다 더 강화하는 것까지 바라지는 않지만, 일단 대인사고가 났다 하면 가해자를 완전 작살을 내 줘야 할 것이다. 최소한 피해자 유족 측 변호사가 "저래 봤자 가해자는 고작 몇 개월~1년이나 살다 나올 텐데 그냥 합의해서 푼돈이라도 챙기시죠?" 이딴 식으로 유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제기랄, 이게 나라냐? 오래된 생각이다.

2. 대형차 졸음운전

이건 2016년 7월의 봉평 터널 사고에 이어 작년에도 지난 7월에 경부 고속도로 상행선 양재IC 인근에서 거한 사고가 한 건 터지는 덕분에 또 이슈가 됐다.
버스와 승용차가 1차로에 엉겨 있길래 이것만 봐서는 "또 어떤 승용차가 자기 길이 막히니까 버스 전용 차선 침범하는 병신짓 하다가 뒤에서 달려오는 버스에 추돌 당했나" 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추돌 사고 자체는 2차로에서 발생했다. 오히려 버스가 웬일로 버스 전용 차선에 있지 않고 앞의 정체 구간을 못 본 채 앞의 승용차를 그대로 쾅 들이받고 타고 올라갔다. 승용차 과실 100%에서 버스 과실 100%로 원인이 완전히 반전되었다.

뒷차가 무게와 속도를 이기지 못해 앞차를 짓뭉개고 타고 올라가는 건 태생적으로 여러 객차들이 줄줄이 연결된 철도 차량의 중대한 충돌· 탈선 사고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렇게 될 정도이면 승객이 많이 죽거나 다친다.
"흰색 K5"가 졸음 운전 대형 버스에게 추돌 당해서 탑승자 전원 중상· 사망의 피해가 났다는 점은 봉평 터널 사고와 동일하다.

하루 10몇 시간씩 쉬지도 못하고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분들의 처우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방법이 없는지? 근본적으로는 물류비 교통비의 인상으로 불가피하게 귀결돼야 할지도 모른다. 가해자인 운전사도 딸을 셋이나 둔 가장이고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무리하게 근무를 했다던데 말이다.

몇 시간 운전했으면 얼마 동안은 반드시 쉬라고 법으로 강제로 규정해도 현실에서는 빡빡한 운전 스케줄이 더 중요하고 제대로 지켜질 수가 없는가 보다. 운전 기사들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처럼 버그와 싸우는 건 없지만 그래도 일정에 쫓기는 건 동일한가 보다.
물론, 아예 대형차의 최대 속도를 강제로 낮춰 버리는 건 미친 짓이며 개인적으로 적극 반대다. 자꾸 새 법을 만들고 규제만 더 넣는 게 아니라, 이미 있는 '쉬는 걸 보장하는 법'부터 제대로 시행되게 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영업용 차량을 쉴 새 없이 운전하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미친 짓을 할 리는 없으니, 음주운전은 주로 자가용 승용차가 저지르는 편이다. 그 반면, 졸음운전 사망 사고는 운전이 생업인 대형차 운전자가 내는 편이니, 가해자의 성격과 양상이 서로 다르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버스 전용 차선 침범은.. 자기 차가 제로백을 5초 만에 달성 가능한 제네시스 프라다 같은 급의 차라든가, 무슨 1분 1초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응급 환자를 수송하는 거라도 아니라면 꿈에도 시도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이건 단순히 단속에 걸리고 과태료 벌금 무는 차원이 아니라 자기 생명을 거는 도박이기 때문이다.)

3. 고령 운전자

다음으로 이건.. 자가용과 영업용 차량을 딱히 가리지 않고 고령 운전자가 순간적으로 손발 움직임 내지 판단 착오를 일으켜서 사고를 내는 빈도가 높아지는 편이다. 김여사처럼 '일부 예외적이고 운 나쁜 사례'만으로 치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2010년경이던가.. 면허를 4년 반 동안 필기 시험에서만 거의 무려 1000번 가까이 떨어진 할머니가 결국 턱걸이로 필기와 실기까지 간신히 합격했다. 이분은 전국적으로 매스컴을 탔고, 현기차에서는 축하한다고 이 어르신에게 경차를 한 대 기증도 해 줬으나..
저분은 그로부터 1년이 채 못 가 차가 반파되는 교통사고를 냈다고 한다. 그 뒤로 근황은 전해지는 게 없어서 알지 못한다.

또 다른 사례로는 2015년의 일인데.. 어느 70대 모범택시 운전기사가 서울 소공동 소재의 롯데 호텔에 차를 몰고 들어가던 중, 이거 뭐 졸음운전도 아니고 갑자기 몸이 말을 안 들었는지 화단을 들이받고 근처에 세워져 있던 고급 승용차들 4대를 연달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 보도 자료 링크)

인명 피해 없는 접촉사고 수준에 불과했지만, 문제는 피해 차량 4대 중에서 제일 저렴한 싸구려 차가 그랜저였다는 거. 나머지는 포르쉐 두 대와 에쿠스였다..;;
수리 견적이 거의 5억 가까이 나왔으나.. 기사분은 대물 한도 1억까지만 보장되는 보험에 들어 있었고, 나머지 보상비는 고스란히 개인 부담이 됐다.

내가 알기로 택시나 노선 버스 같은 영업용 차량은 대 "인"은 I, II 보상 모두 무한대인 보험에 의무적으로 들게 돼 있다. 하지만 대물은 아니었나 보다.
저분은 처음에는 급발진 핑계를 대며 발을 빼려 했으나, 블랙박스 영상을 판독한 결과 그렇지 않고 순수 자기 과실 100%인 게 빼박 입증됐다.

그야말로 집안 뿌리를 뽑아도 갚지 못할 액수 때문에 택시 기사는 식음을 전폐하고 그대로 주저앉았고, 거의 자살을 생각하는 지경까지 됐다. 이건 뭐 거의 빚보증 잘못 서서 인생 조진 것과 별 차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롯데 호텔 측에서 이 사정을 듣고는 보험 보상 범위를 초과하는 나머지 액수는 자기가 부담하겠다고 회장님이 초 대인배 조치를 취해 준 덕분에 구제를 받았다. (☞ 보도 자료 링크)

나름 모범 택시라는 것도 최하 5년 이상 무사고를 달성한 '모범 운전자'만 몰 수 있는 것일 텐데, 평생 쌓아 왔던 무사고 커리어를 저분은 저 사고 하나로 다 말아먹었다..;;
그러니 고령 운전자를 상대로는 적성검사를 더 자주 시키고, 일본처럼 면허 자진 반납을 유도하는 쪽으로 인센티브 주고 장려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너무 젊은 애들은 철없고 객기 부리느라 사고율이 높아서 자동차 보험료가 비싸다지만, 반대편 극단의 노인은 다른 이유로 인해 사고율이 높은 게 현실이다. 다만 교통이 너무 불편해서 정말로 차가 없으면 안 되는 곳에서는 문제를 어찌 해결하면 좋을지 궁금해진다.

아울러, 고령자는 운전자로서 내는 교통사고뿐만 아니라 보행자로서 신호 무시 무단횡단 교통사고도 좀 문제이다. 노인분들은 지금처럼 차들이 넘쳐나고 교통법규 준수가 절실하던 시절에 어린 시절 젊은 시절을 보내지 않았으며, 오랜 연륜에 따른 고집도 있어서 교통법규를 꼬박꼬박 잘 지키는 편이 아니다.

무단횡단을 할 거면 측면주시 잘 해서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남들과 다르게 잽싸게 건너기라도 해야 하는데, 이들은 몸이 민첩한 것도 아니니 문제다. 애초에 무단횡단도 빨간불 기다리는 게 귀찮다기보다는 횡단보도까지 쭉 우회하는 게 귀찮고 거동이 불편해서 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 기타: 긴급 자동차 관련

출동 중인 구급차나 소방차 같은 긴급자동차는 재량껏 눈치껏 신호 무시와 과속, 중앙선 침범과 버스 전용 차선 주행이 허용되며, 막히는 길에서 양보받을 권리도 인정받는 등 여러 특례가 보장된다.
하지만 긴급자동차도 운이 나쁘면 사고를 낼 수 있고, 과실 비율에서 언제나 면책되는 건 아니다. 옛날에 모닝와이드 블랙박스로 본 세상에서 이런 사고 사례가 방영된 게 있었다.

(1) 사이렌 울리며 출동 중인 구급차가 있었는데, 교차로에서 좌우로 당장 차가 없는 걸 보고는 신호 무시하고 슬금슬금 직진했다. 하지만 그 왼쪽에서는 파란불 신호만 보고 계속 달려오던 시내버스가 있어서 결국 둘이 충돌했다.

→ 구급차는 정말 합법적인 긴급자동차였던 관계로, 드물게 우열 없는 쌍방과실 50:50이 나왔다. 자기 차량 보험사가 각각 상대방 차의 손해를 물어주면 된다. 사설 견인차가 사고를 냈으면 이런 판정은 당연히 못 받는다.

(2) 화재 신고를 받고 여러 소방차들이 대열을 지어 사이렌 울리면서 출동 중이었다. 그 행렬이 지나가는 걸 못 참고 어떤 승용차가 소방차 중 대형 물탱크차를 추월해서 그 앞에 바싹 끼어들었다.
그런데.. 교차로에서 소방차들이 좌회전을 시작했는데 하필 그 승용차 앞에서 노랑-빨강으로 신호가 끊겨 버렸다. 단속 카메라가 있었는지 승용차는 우물쭈물 하다가 정지를 선택했으나, 무거운 물탱크차는 곧장 정차할 수 없어서 승용차를 추돌했다. 승용차가 없었으면 물탱크차는 선두 소방차들을 따라 꼬리물기쯤 해도 아무 문제 없을 상황이었을 텐데.

→ 승용차의 입장에서는 하필 노란불 딜레마 때문에 참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더구나 결과적으로는 소방차가 앞차를 추돌한 것이고, 크고 무거운 소방차보다 승용차가 훨씬 더 많이 부서지기도 했다. 그러나~~ 인과관계로 볼 때 승용차가 공익을 수행하는 긴급자동차를 상대로 거의 민족 반역자 급의 너무 큰 민폐를 끼치고 말았다.
당연히 100:0 나왔다. 이거 방영된 동영상의 밑으로는 악플도(승용차 운전자 욕) 작살나게 많이 달렸다.

* 기타: 운전 면허 시험장에서 발생한 어이없는 사망 사고

지난 2016년 11월엔 도봉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참 어이없는 인명 사고가 났다. 시험을 치기 위해 배정받은 차량으로 가던 어떤 20대 여성이 다른 20대 남성 응시자가 탄 트럭의 앞을 슬금슬금 지나갔는데.. 이때 트럭은 출발 신호를 받고는 곧이곧대로 출발을 해 버렸다. 그래서 여성을 쳤다.

면허 시험장에서 차들이 무슨 쌩쌩 고속으로 달릴 리는 전혀 만무하다. 갓 출발하려던 상태였으니 곧장 사고를 감지하고 정지만 했으면 피해자는 기껏해야 좀 넘어지고 다치고 까지는 걸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피해자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숨지고 말았다. 가해자는 너무 놀라고 당황했거나 아니면 반대로 상황 파악을 못 했는지, 넘어진 피해자를 바퀴로 깔고 간 것 같다.

세상에 차량 급발진도 아니고, 어느 미친 음주운전자와 정면충돌을 한 것도 아니고, 대형 사고가 도무지 날 것 같지 않은 저런 곳에서도 사람이 사고로 죽다니 참 허탈하다.
아니,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자동차는 총기와 맞먹는 위험한 물건이기 때문에 저런 곳도 군부대 사격장에 준하는 군기와 안전수칙이 철저히 지켜졌어야 했다.
모든 총기는 장전된 것처럼 다루고 절대로 사람을 향해 총구를 겨누지 말아야 하듯, 그와 동일하게 누구든지 차 앞을 얼쩡거리지 말았어야 했고 그러는 사람이 있으면 감독관이나 주변 직원이 철저히 제지했어야 했다.

내 발이 인도에 있다가 차도로 옮겨지는 순간이라면 반사적으로 측면을 응시해야 하며, 주차된 차들 주변을 얼쩡거릴 때는 보행자일 때든 운전자일 때든 왕창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이어폰 끼고 스마트폰 들여다보면서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심지어 무단횡단까지 하는 사람들은 안전불감증이 너무 심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멀쩡한 운전자를 인생 꼬이게 하지 말고 조심해야지. 사실 요즘은 블랙박스도 있고 해서 도를 넘는 막장 보행자는 마냥 약자라고 편드는 게 아니라 과실이 더 높게 나오기도 한다. 그래야 마땅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04 08:35 2018/01/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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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렁크에 싣는 물건들

차의 접지력을 위해서 일부러 무겁게 만드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지간해서는 트렁크에 쓸데없는 짐을 싣지 말고 차를 가볍게 유지하는 게 연비 운전의 정석이다. 하지만 평소에 차의 트렁크에 늘 실어 놓을 만한 물건도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생각해 보니 다음과 같이 인간 편의용과 차량 비상용으로 범주가 나뉜다.

  • 어디 여행 간 뒤, 현장에서의 인간 편의용: 돗자리, 담요(비행기 담요 같은..), 우산, 슬리퍼, 손전등, 식수, 나무젓가락, 종이컵, 상비약, 휴지/티슈
  • 차량 비상용: 소화기, 비상 삼각대, 경광봉과 건전지, (간단한 공구류와 스페어 타이어는 당연히..)

평소에는 워낙 조용하게 달리니 잘 모르겠지만, 자동차는 엔진 내부가 매우 뜨거우며 화재의 위험이 상존하는 물건이다. 굳이 냉각수 부족과 엔진 과열 때문이 아니어도, 운 나쁘게 엔진룸 속에 끼어들어간 종이· 나뭇잎 같은 이물질이 발화점 이상의 열을 받아서 불이 붙고, 그게 차량의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식당도 굳이 누전이나 가스 누출 같은 일이 없이, 환풍기에 낀 사소한 기름때나 먼지만으로 불이 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큰 교통사고가 난 뒤에는 연료가 새서 케바케로 불이 나기도 한다. 승용차의 경우 엔진이 있는 앞쪽과 연료 탱크가 있는 뒤쪽 모두 안심할 수 없다.
이럴 때 소화기를 신속하게 꺼내서 연기와 불꽃이 최초로 모락모락 피어나는 곳을 적절하게 초기 진화해 주지 못하면.. 엔진 부분만 교체하고 끝날 것을 발만 동동 구르다가 차량 전체를 홀랑 태워먹고 전체 폐차라는 비극을 야기할 수 있다.

자동차는 뼈대만 쇳덩이일 뿐, 시트나 도색 등은 온통 가연성 화학물질이며, 불타면서 유독가스를 내뿜는 공해덩어리 그 자체다. 불 나서 좋을 것 하나도 없다.
말이 길어졌는데, 어쨌든 PC에 보안 업데이트가 필요한 것만큼이나 차량에는 소화기를 비치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사고가 난 뒤에 2차 사고를 예방하는.. (나 여기 있소) 도구들은 두 말할 나위도 없고 말이다. 자동차 학원에서도 이런 물건들의 필요성을 더 진지하게 가르쳐야 하지 않나 싶다.

돗자리나 우산, 슬리퍼 같은 수준을 넘어서 아예 낚싯대· 골프채, 커다란 악기, 자전거 같은 걸 차에다 상시 실어 놓는 건...;; 글쎄, 정말 차를 오로지 레저와 여가용으로만 활용하는 게 아니라면 "화물은 차를 무겁게 할 뿐이야!"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자전거를 차에다 싣는 게 가능하면 차와 자전거의 활용성이 더욱 커져서 상호 win-win이 되긴 하더라. 차 트렁크도 충분히 커야 하고, 자전거도 접을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2. 자동차의 냉각수와 워셔액

자동차의 내부에 집어넣어서 비축하는 액체 중에 연료나 윤활유 같은 기름 계열 말고 '물' 계열 혼합물에 속하는 것은 엔진 냉각수와 와이퍼 워셔액 정도인 것 같다. 전자는 물의 높은 비열이 활용되고 후자는 물의 세척력이 쓰인다.
물론 두 액체의 용도와 성격은 서로 매우 다르다. 워셔액은 유리창이 깨끗하기만 하면 별로 쓸 일이 없는 선택사양이지만, 냉각수는 엔진의 가동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필수품이다. 워셔액은 세척용으로 조금씩 소모되고 보충이 필요한 소모품인 반면, 냉각수는 누수 같은 이상 현상이 없는 한, 한번 주입해 준 게 반영구적으로 쓰인다는 차이가 있다.

순수한 물은 그리 낮지 않은 온도에서도 금세 얼어 버리며 금속류의 부식(녹)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두 액체 모두 부동액과 부식 방지 성분이 첨가된다. 동일하지는 않지만 공교롭게도 알코올 계열 화합물이 첨가되는데, 둘 다 인체에 아주 해로운 독극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부동액의 첨가 성분인 '에틸렌 글리콜'은 물과 혼합될 경우 어는점을 영하 40도 아래로 크게 낮춰 준다. 성능 하나는 뛰어나지만 그렇다고 이것만 잔뜩 집어넣으면 반대로 물 고유의 냉각 성능이 저하되기 때문에 부동액을 아무리 많이 넣어도 물보다 많이 넣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에틸렌 글리콜은 독약임에도 불구하고 투명한 외형에 꽤 달콤한 맛과 냄새가 나서 사람이나 동물이 실수로 마시고 훅 가는 사고가 세계적으로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이거 무슨 농약도 아니고.. 그 맛과 냄새가 어떤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부동액이란 게 자동차에만 쓰이는 게 아니고 혹한의 건축· 건설 현장에서도 물이 들어가는 곳에 쓰이기 때문이다.
도로의 제설용으로 사용되는 염화칼슘도 물과 섞이면 수용액의 어는점을 역시 거의 영하 52도쯤으로 크게 낮춰 준다. 이 효과로 눈을 녹여 버려서 제설 효과를 낸다. 그러니 나름 제설에다 제습 효과까지 있는 물건인데.. 얘는 이미 짐작한 분도 계시겠지만 부식 문제가 있어서 부동액 용도로는 쓰이지 않는다. 뭐 부동액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와이퍼 워셔액은 비록 사람이 마시는 술 같은 액체는 아니지만 소독(?), 빠른 증발, 부동 효과를 위해 역시 알코올이 들어간다. 그런데 단가가 저렴하고 가성비가 뛰어나다는 이유로 메탄올이 들어가기도 한단다.
메탄올은 보다시피 극소량만 인체에 들어가도 신경을 마비시키고 눈을 멀게 하고 궁극적으로 생명까지 잃게 만드는 맹독이다. 선박이나 실험실 같은 데서 술 취한 기분 내고 싶어서 메탄올을 에탄올인 줄 알고 물에 섞어서 들이켰다가 골로 간 사람들.. 역시 없지 않다. 정상적으로 팔리는 술을 구할 수 없거나, 세금 안 붙은 저렴한 알코올을 섭취하고 싶어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2012년에는 워셔액을 술인 줄 알고 마시는 바람에 메탄올 중독으로 숨진 사람이 다윈 상 수상자 중 하나로 뽑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고의로 멍청한 짓을 한 게 아닌 단순 실수가 아니냐는 이견과 논란도 있다.

메탄올은 이렇게 입으로 들이키지만 않는다고 해서 장땡이 아니라고 한다. 앞유리에다 워셔액을 분사하는 경우, 메탄올이 소량이나마 기화한 형태로 차내에 유입되기도 한다. 워셔액 제조사들이야 그건 극소량이기 때문에 별로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제 대한 정밀한 임상 실험이 진행된 사례는 아직 없는 것 같다. 정 불안하면 좀 더 비싸더라도 에탄올 성분의 워셔액을 쓰는 수밖에 없다.

3. 차량의 외형과 내부 구조의 차이

트렁크와 객실(cabin)의 구분이 없는 해치백형 차량(SUV 포함)이 공간 활용성이 더 좋은 건 사실이다. 뒷좌석을 완전히 접거나 옮겨서 자전거를 접지 않고 그대로 실을 수 있고, 아니면 사람이 발 뻗고 눕는 공간을 만들 수도 있다.
무척 부러운 면모이긴 하지만, 이런 실용성과는 별개로 본인의 취향은 그래도 트렁크와 객실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세단이 뭔가 안정적인 느낌이 들고 좋다.

하루는 회사 업무 때문에 짐을(컴퓨터 본체 여러 대 등..) 승용차의 트렁크와 뒷좌석에 이르기까지 잔뜩 실을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 차는 회사의 이사· 사장급인 높으신(...) 분의 소유였고.. 그래서 대형 후륜구동이었다.
후륜구동은 잘 알다시피 뒷좌석 중앙 바닥이 구동축 때문에 위로 봉긋 솟아 있다. 요것 때문에 짐 싣는 데 의외의 어려움을 겪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일을 겪고 나니 뒷좌석 바닥이 그냥 평평한 내 차, 아니 요즘 대부분의 승용차들이 더욱 신기하게 느껴졌다.

하긴, 나 완전 어렸을 때 탔던 포니 택시도 뒷좌석 중앙이 봉긋 솟아 있긴 했는데, 저런 차를 참 오랜만에 다시 구경했다. 포니야 소형차 덩치밖에 안 되지만 아직 기술과 노하우가 부족해서 후륜구동으로 나온 것이다.

포니 1은 해치백처럼 생겼지만 실제로는 객실과 트렁크가 분리되어 있었으며, 트렁크를 열 때도 뒷유리는 고정된 채 아래의 몸체만 들려 올라갔다(4도어 일반 모델 기준). 즉, 사실상 세단이나 마찬가지였다. 해치백은 3도어 쿠페 모델에서 처음 적용되었으며, 그리고 후속작인 포니 2에서 완전히 해치백 형태로 바뀌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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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부 구조 말고 해치백은 세단과 달리 뒷유리에도 와이퍼가 달려 있는 게 특징이다. 뒷면의 유체역학적 구조상 트렁크가 튀어나와 있는 세단보다 뒷유리에 흙먼지가 더 잘 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4. 자동차의 동력원

(1) 내연기관이 발명되자 처음에는 자동차, 열차, 비행기가 모두 휘발유건 디젤이건 피스톤 왕복 엔진을 동력원으로 사용했다. 그러다가 20세기 중반부터 비행기는 제트 엔진이 대세가 되었으며, 철도 차량은 주 동력원이 전기 모터로 바뀌었다.
덕분에 털털털 붕붕붕~ 이러던 엔진음이 다 바뀌었다. 제트기는 그 특유의 공기 뿜는 소리 덕분에 한때 '쌕쌕이'라고 불렸을 정도이며, 전철은.. 뭐 VVVF 인버터가 도입되면서 완전 전자악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결국 오늘날은 자동차만이 왕복 엔진을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
왕복 엔진이 배기가스를 내뿜는 건 그냥 연소가 끝난 잔여 찌꺼기를 내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엔진 출력과는 무관한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제트 엔진은 배기가스를 엄청난 고압으로 뒤로 내뿜어서 추진력을 낸다. 자동차와는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이렇게 동일한 재료나 부품이 한 기술에서는 그저 그런 존재감인 것이, 다른 기술에서는 동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요소인 경우가 있다.
배터리가 기름 자동차에게는 그냥 객실 전원 공급과 시동 모터+점화 플러그 동작용이지만, 하이브리드나 순수 전기차에게는 차를 가게 하는 동력원 그 자체인 것,
그리고 변속기 오일이 수동 변속기에서는 정말 단순 윤활 기능만 하지만, 자동 변속기에서는 엔진과 바퀴 동력을 중재하는 완전 핵심 매체인 것처럼 말이다. 예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 싶다.

(2) 그리고 자동차가 처음 발명됐을 때 차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전방 엔진, 후륜 구동인 일명 FR 방식이었다. 그러다가 승용차는 준대형급(대략 3000cc) 이하부터는 FF로 바뀌었고, 버스는 준대형급(35인승) 이상부터는 RR로 바뀌었다. FR은 이제 대형 승용차와 소형 승합차, 또는 크기 불문하고 트럭에서만 유지되고 있다.

(3) 전동차에 가변 전압 가변 주파수(VVVF) 인버터 기술이 있다면, 내연기관 자동차 엔진에도 공기를 흡입· 배출하는 밸브에 가변화 기술이 있다. 엔진 회전수에 따라 밸브의 여닫는 깊이를 지능적으로 조절하는 VVL (lift), 그리고 그 개폐 동작의 시점 자체를 조절하는 VVT (time). 흡기측과 배기측에 shaft를 구분한 DOHC 방식에 이어서 밸브 계통에 또 다른 발전이 이뤄졌다.

그리고 어느 분야건 양과 질, 주기와 강도를 조절하는 변수가 있다. 라디오에는 AM(세기)과 FM(주파수)이 있고, VVVF도 V는 전압(세기)이요 F는 주파수이다. 자동차에도 VVL은 강도이고 VVT는 타이밍이니까 동일한 개념이지 않은가?

5. 차량별 변속기 성향

자동차의 동력 변환 계통으로서 물리적으로 큰 바퀴와 작은 톱니바퀴를 맞물리게 돌아가게 하는 '기어'라는 건 꽤 간단하고 직관적이고 효율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200~300마력짜리 자동차를 넘어서 열차나 거대 건설기계 수준이 되면 미세한 출력 조절을 위해서는 가히 어마어마한 크기의 기어비와 다양한 단계가 필요해지는데, 이건 톱니바퀴만으로 감당할 수 없다. 바퀴가 너무 커지거나 개수가 늘고 무겁고 복잡해진다.

(1) 그래서 철도 기관차는 동력을 일단 변압이 자유로운 교류 전기로 바꿔서 전동기를 돌려서 움직이는 디젤 전기 기관차가 대세이며, 드물게 자동 변속기 같은 유체 토크 컨버터로 동력을 변환하는 차종도 있다. 과거에 다녔던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가 이 범주에 속한다.
물론 이것들은 광원에다 비유하자면 직접조명에서 간접조명으로 바뀐 것과 같기 때문에 연비는 톱니바퀴 기어만치 좋지 못하다.

(2) 대형 버스와 트럭은 저 정도로 불가피한 상황도 아니고, 또 연비와 옵션 가격 같은 경제성 문제도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여전히 수동 변속기 차량이 대세이다.

(3) 그런데, 이 와중에도 예외적으로 자동 변속기가 기본인 대형 상용차도 있으니 바로 “저상버스”이다.
바닥이 워낙 낮아서 버스 엔진 출력 정도의 동력비를 감당할 기어박스 내지 굵고 긴 샤프트조차(운전석에서 뒤쪽의 엔진까지)도 장착할 수가 없는 관계로 불가피하게 자동 변속기를 쓴다. 변속 명령은 기계 조작이 아닌 전기 신호로 전하고, 실제 변속 역시 톱니바퀴가 아닌 토크 컨버터로 행한다.

사실, 옛날에 버스가 트럭과 별 차이 없는 전방 엔진 방식으로 만들어지던 시절에는 바닥이 왕창 높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구동축이 차체의 아래 중앙을 관통했다. 그래서 고속버스의 경우 바닥 아래의 화물칸까지도 좌우로 서로 단절돼 있을 정도였다.
그때에 비하면 버스가 바닥이 정말 낮아지고 사람이 타고 내리기 좋아진 셈이다. 철도로 치면 고상홈이 도입된 것과 비슷한 변화이다. 이런 차들에 비해 대형 트럭을 타는 건 지금도 거의 등산 수준으로 힘들다..;;

(4) 끝으로, 저런 대형차와는 상극의 체격인 오토바이는 또 반대로 수동이 대세이다.
글쎄, 리터급의 고성능 대형 오토바이라면 모를까 100~300cc대의 그저 그런 모델의 경우.. 그런 엔진 출력과 차체 크기에다가 크고 무거운 토크 컨버터를 장착하는 것부터가 삽질이고, 전통적인 기어박스를 장착하는 게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아주 쬐그만 스쿠터는 차라리 CVT가 달리면 달렸지, 어떤 경우든 통상적인 자동차용 자동 변속기 같은 물건이 달리는 일은 없다.

똑같이 공간이 없는데 그 양상이 저상버스와는 다르다는 것이 무척 흥미롭다. 대류권에서는 고도가 오를수록 기온이 내려갔다가 성층권에서는 다시 기온이 올라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6. 동력의 취합과 분산

자동차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엔진이 죽어라고 피스톤 왕복운동만 한다고 장땡이 아니라..
여러 개의 피스톤이 균등하지 않은 주기로 만들어내는 불연속적인 힘을 한데 부드럽게 합쳐 주는 플라이휠 같은 부품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힘을 실제로 회전하는 바퀴에 부드럽게 분산해서 전달하는 주는 차동 기어도 변속기와는 별개의 계층으로서 필요하다. 커브를 틀 때는 커브 안쪽의 바퀴와 바깥쪽의 바퀴가 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컴퓨터에다 비유하면 CPU와 램뿐만 아니라 파워 서플라이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자전거 중에는 크랭크가 둘 달려서 앞뒤 사람이 모두 페달을 밟을 수 있는 물건이 있다. 이런 자전거는 개인이 구입해서 굴리기보다는 관광지 같은 데에서 대여하는 형태로 사용되는 편이다.
거기에서도 두 사람의 힘이 어떤 형태로 취합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사실 자전거는 페달을 뒤로 밟았을 때 후진하지 않는 것도 신기하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12/02 08:28 2017/12/02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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