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 : 1 : 2 : 3 : 4 : 5 : ... 6 : Next »

수인선 등 옛날 철도 역사

1. 수인선 옛 협궤와 관련된 역사 맥락

수인선은 일제 강점기의 중후반기인 1937년 7월 11일에 협궤 형태로 개통했다가 지난 1995년 12월 31일에 완전히 폐선됐다. 최후까지 운행하던 구간은 수원-한대앞이었다.

수인선이 사라진 때는 대한뉴스가 폐지되고 방위병 제도가 폐지된 때로부터 정확히 1년 뒤이다(1994. 12. 31.). 그리고 에쿠스가 단종되고 마이크로소프트웨어 잡지의 월간 발행이 중단된 때로부터 정확히 20년 전이다(2015. 12. 31.)

상록수 최 용신 선생이 아이들을 가르쳤던 샘골이 수인선의 역세권에 있었다. 하지만 이분은 수인선 개통보다 훨씬 일찍 요절했다. (1935)
그래서 신 상옥 감독의 1961년작 옛날 영화 "상록수"를 봐도.. 이분이 버스에서 내리는 걸로 영화가 시작된다! 수인선 철도가 한 10년쯤 더 일찍 개통했다면 열차에서 내리는 걸로 씬이 바뀌었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 영균 씨가 주연으로 나오는 1977년작 주 기철 목사 전기 영화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보면, 주 목사 가족이 열차 타고 평양으로 이사 가는 장면에서 수인선 '혀기' 증기 기관차가 달리는 씬이 잠깐 나온다. 딱 봐도 폭이 정말 좁아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평양으로 가는 경의선은 표준궤였을 텐데 자그마한 협궤 열차가 나오는 건 영락없는 고증 오류다. 하지만 그 당시에 국내에서 증기 기관차 운행을 저렴하게 컬러로 촬영할 수 있는 곳이 거기였으니 수인선이 대신 쓰였던 것이지 싶다. 증기 기관차는 달리는 모습을 컬러로 보기가 생각보다 어려운 물건이다.

1937-1995는 뭔가 사람 인생 연대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비록 자연사라고 보기에는 좀 짧은 감이 있지만..
내가 아는 유명인사 중에서 수인선 협궤와 lifespan이 가장 비슷한 사람은.. 이단 연구가 탁 명환 씨이다! (1937. 7. 8. ~1994. 2. 18.) 단, 이 사람은.. 병이나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살해당했다.;;
그리고 천문학자 겸 저술가인 칼 세이건(1934-1996)도 얼추 수인선 세대라고 볼 수 있다.

1995~96년은 철도청의 입장에서도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둥근 터널을 형상화한 Q 모양의 철도청 CI (보신 기억 있으신 분??)가 거의 30년 만에 폐지되고, 레일을 역삼각형 모양으로 형상화한 새 CI가 이때 도입됐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Q자를 형상화한 듯이 생긴 로고를 본 건.. 게임 퀘이크 로고랑 철도청 옛날 CI였다. ㄲㄲㄲㄲㄲ
그리고 노랑-초록의 철도청 도색이 등장한 것도 이때이다. 새마을호 열차가 새 도색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아서 바뀌었다.

수인선이 폐지되고 나서 얼마 안 된 96년 1월에 서울 지하철 3호선의 북쪽 연장선 격인 일산선 구파발-대화 구간이 개통했으며, 96년 3월엔 철도 기술 연구원이 창립됐다.
그리고 전철 개통식 때 대통령이 친히 참석하는 관행도 김영삼 시절 이때가 거의 끝물 마지막이었다.
아이고, 수인선 하나만 갖고 연대기 얘기가 얼마나 미주알고주알 쏟아져 나오는지~! ^^

2. 1940년 열차 시각표

어떤 철덕 용자께서 무려 1940년, 지금으로부터 딱 80년 전의 한반도(조선) 열차 시각표를 구해서 엑셀로 알아보기 쉽게 전부 입력해 놓았다. 우와~! (☞ 링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수려선과 수인선도 있다. 수려선은 하루에 편도 5회, 수인선은 하루 6회 열차가 운행되었다.
말로만 듣던 금강산선은 하루 7회.. 경인선은 그나마 많이 다녀서 하루 15회였다. 참고로 경인선이 선로가 꼴랑 하나밖에 없는 단선이었다는 걸 감안하도록 하자.;;
지금보다야 시설이 열악하고 열차의 속도도 엄청나게 느렸겠지만.. 어쨌든 한반도 역사상 철도 노선이 제일 다양하게 뻗어 있던 시절은 일제 시대였다는 걸 부인할 수 없겠다.;

더구나 1940년은 일제 시대 중에서도 철도가 최고로 번창했던 시기이다. 건설될 노선들은 사실상 다 건설된 말기인 데다, 40년 이후부터는 전쟁 때문에 여객 열차 운행이 줄어들고 일부 비수익 노선은 레일마저 전쟁 물자로 공출돼서 없어진 악화일로이기 때문이다. 저 때는 금강산선이 종점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던 시절이니 다행이다.

이런 귀한 자료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럼 맨 앞 페이지 경부선을 살펴보도록 하자.
지금이야 경부선이 수도 서울과 제2의 수도 부산만을 잇는 정도이지만.. 일제 시대에 경부선은 북쪽이 경의선과 이어져서 평양과 중국으로 가고, 남쪽은 연락선과 이어져서 일본으로도 연결됐다. 그 중요도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뻘밭 천지였다던 대전은 경부선 덕분에 얼마나 발전할 수 있었을지를 짐작케 된다. 경부선 주요 정차역으로도 모자라서 호남선 분기 지점까지 됐으니 말이다~!
그 외에도 시각표를 보면 우리는 여러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 아무래도 일본의 관점에서 작성된 것이다 보니, 시모노세키-부산 연락선의 스케줄도 같이 기재돼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산에서 서울(경성) 방면으로 가는 게 하행이다. 상행이 아님.
  • 그래도 일제 시절의 로망은.. 열차 타고 중국까지 직통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저기서 안동, 봉천, 신경, 북경은 한반도의 지명이 아니다.
  •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이 적은 열차 운행 횟수.. 그 시절에 열차라는 건 지금 우리가 여객기를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위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 그래 봤자 저 때 다녔던 열차는 전부 '증기' 기관차였다. 디젤이나 전기 따위 없었다.
  • 경성-부산이 영업거리표 상 거리가 거의 450km에 달한다. 부산 역이 지금보다 바다에 더 가까이 있어서 1.7km 정도 더 길어졌고, 또 지금보다 선형개량이 덜 되어 길고 구불구불한 구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열차로 매일 부산 7시 5분 출발, 경성 13:45 도착.. 증기 기관차로 중간에 대전과 대구에만 정차해서 서울-부산을 6시간 40분 만에 찍었던 '아카츠키' 호는 그 시절 정말 최강의 갑부 금수저만 타는 최고급 최고속 호화 사치 열차였다.
또한 이건 일본의 입장에서도 증기 기관차를 최강의 기술과 운영 노하우로 굴려서 산출한 속도였다.

한국은 해방 후에 1960년이 돼서야 증기가 아닌 '디젤 기관차'로 서울-부산 6시간 40분을 겨우 따라잡을 수 있었다(무궁화호 우등 열차). 물론 일본은 그때 이미 시속 200km짜리 신칸센을 세계 최초로 자체 기술로 개발하고 있었으니 격차는 또 벌어졌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에이트맨이 1963년, 신칸센 0계 열차가 정식 개통하기 1년 전에 출시됐는데.. 이때 벌써 신칸센처럼 생긴 열차가 나온다. 신칸센은 그만큼 개통하기도 전부터 국민적인 관심을 끌고 있었던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나라는 철도가 아닌 고속도로에서는 바다 때문에 더 연장의 여지가 없는 부산 방면을 상행으로 일률적으로 정해서 시행하고 있어서 일본 방면과 얼추 비슷해졌다. 서울 방면을 상행으로 정하고 있는 철도와는 다른 관행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02/27 08:35 2021/02/27 08:35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859

서울 지하철의 건설과 개통 내력

서울 지하철의 건설 형태는
"1 / 2 / 3,4 / 5,6,7,8 / 9 (,10,11,12)"호선.. 이렇게 나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1.
1960년대 말, 서울시의 높으신 분들은 이렇게 서울시가 팽창하고 인구가 증가하다가는 시내의 교통은 체증 때문에 완전히 끝장이 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래서 선택한 돌파구는 지하철.. 우리도 외국의 대도시들처럼 땅 아래로 길을 파서 지하철을 건설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까지 서울 시내에는 노면전차라는 게 있었다. 하지만 경영 수지가 안 좋아 적자가 쌓여 가고, 차량과 시설의 노후화도 심한 노답 상태였다. 얘는 지하철 건설을 위한 시범타로 완전히 폐선· 퇴출되었다.
전차가 없어진 종로 도로를 파헤쳐서 몇 년 동안 극심한 버스 혼잡과 교통 체증을 감내한 끝에, 서울 최초의 지하철 1호선은 철도청 광역전철 경인(인천)/경부(수원)/경원선(성북)과 직결된 독특한 형태로 건설되고 개통됐다. 차량 운행을 철도청(현 코레일)과 서울 지하철 공사(서울 교통 공사)라는 두 주체가 공동으로 하기 시작했다.

차량은 그 당시 유행이던 중문 달린 식빵 모양 '초저항'(초기 저항 제어 방식 전동차) 차량을 일본으로부터 수입해 와서 굴렸다. 철도청은 차량에 파란 도색을, 서지공은 빨간 도색을 사용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얘는 일본의 신칸센 0계 전동차만큼이나 우리나라 철도 역사의 상징인 매우 귀중한 차량이다. 그렇기 때문에 코레일과 서교공 모두 자기네 초저항 차량을 내구연한 경과로 인해 퇴역한 뒤에도 한 량씩 자기 방식으로 도색해서 정태보존 중이다. (각각 철도 박물관, 신정 차량기지 내부)

저런 식빵 모양의 디자인은 비슷한 시기에 일본 현지에서 다닌 도쿄 지하철 5000계 전동차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단지, 차폭은 일본 내수인 1067 협궤가 아니라 1435 표준궤로 커진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 초저항 전동차는 일본의 철덕들에게도 관심을 받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초저항 전동차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전방 중앙에 출입문이 있다는 것이다. 필요한 경우, 전동차를 그대로 중련 편성해서 기관사가 아니라 승객이 객차 사이를 지나다닐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다!

지하철 1호선이 첫 개통한 날엔 대통령까지 참석하는 성대한 개통식을 치를 예정이었지만.. 하필 개통식 당일의 이전 행사에서 영부인 육 영수 여사가 괴한에게 피격 당하는 바람에 지하철 개통식은 대통령 없이 아주 우울하고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치러지게 됐다. 그리고 서울 시장도 경질되고(양 택식 → 구 자춘) 향후의 지하철 건설 계획까지 확 바뀌게 됐다.

2.
서울 지하철 2호선은 1980년부터 84년까지 점진적으로 개통하면서 거대한 순환선으로 만들어졌다. 이때 굉장히 큰 변화가 생겼다.

  • 고유 노선색 패턴 (2호선은 초록색)
  • 저항 제어보다 조금 더 발전한 초퍼 제어 방식 전동차 (MELCO). 국영 공작창이 아닌 민간 기업 중심으로 차량 생산 시작
  • 매큔-라이샤워 로마자 표기법
  • 노인 무임승차(!!!)
  • 지금과 같은 지하철체
  • 최초의 우측통행 (조금 뻘짓 같지만), 최초의 지하철간 환승역 (신설동)
  • 8량 증결 (처음엔 6량 1편성이었음.. 역들의 건설만 10량 기준으로 해 놓고)

이 정도면 서울 지하철의 실질적인 기틀은 2호선 때 완전히 잡혔다고 봐도 되겠다.
용답 역 근처에 있는 군자 차량기지는 서울에서 중심부에 가장 가까이 있는 지하철 차량기지이다. 그러면서도 창동이나 구로 기지와 달리 이전 계획도 없고, 오히려 여기 주변에 서울 교통 공사 본사와 종합 관제센터까지 들어서 있다.

아, 그리고 1호선이 지상 광역전철과 직통 운행하는 지하철을 선보였다면, 2호선은 유의미한 구간을 계속해서 지상 고가로 달리는 지하철? 도시철도?를 최초로 선보였다. 타 노선들은 한강을 건널 때 내지 외곽 종점 차량기지에 다 왔을 때에만 잠시 지상에 나온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강변-뚝섬이라든가 신대방-대림 지상 구간은 서울 시내에서 보기 드문 형태이다.

3-4.
3호선과 4호선은..

  • 최초로 Y자형 분기(1호선)나 O자형 순환(2호선)이 아닌, 단순한 I자 선형..;;
  • 서울 올림픽에 대비하여 자금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두 노선이 동시에 건설· 개통되어 서울 중심부를 X자로 관통했다. 충무로 역은 최초로 2개 노선이 동시에 건설된 환승역이다.
  • 일본물이 아닌 유럽물을 먹은 광폭형 GEC 초퍼 전동차가 이때 도입돼 들어왔다.
  • 올림픽을 염두에 둬서 그런지 인테리어를 1· 2호선보다 더 신경쓴 역들이 제법 등장했다. 경복궁, 교대, 동대문운동장처럼..
  • 신호 시스템이 ATS보다 더 정교하고 발전된 ATC로 바뀌었다.
  • 얘들이 등장한 시기부터 전동차들이 드디어 10량으로 증결됐다.
  • 얘들은 일산, 분당, 과천 이렇게 새로 건설된 광역전철들과 직통 운행을 시작했다.

참고로 80년대 중반 올림픽 준비의 산물들로 다른 분야로는: 올림픽대로, 현대 그랜저, 유선형 새마을호 열차가 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 되지만 과거에는 2호선에도 1호선의 초저항 전동차, 또는 3-4호선의 GEC 초퍼 전동차가 잠시 다닌 적이 있다. 그 반면, 2호선의 MELCO 초퍼는 2호선 외의 타 노선을 다닌 적이 없다.

5-8.
이제 1990년대에 서울 2기 지하철 노선 4개가 한꺼번에 계획되고 건설됐다. 세부적으로는 이것도 95~96년 사이(5호선 전체, 7호선 강북 구간, 8호선 남쪽 구간)와 99~01년 사이(6호선 전체, 7· 8호선 나머지 구간)의 두 타이밍으로 나뉜다만..
얘는 지난 15년간의 지하철 건설 노하우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변화가 생겼다.

  • 1기 시절보다는 환승거리를 최대한 줄이는 쪽으로 역들이 만들어졌으며, 심지어 더 미래에 건설할 3기 지하철까지 염두에 두고 환승 통로와 노반을 미리 만들어 놓았다! (5-9 여의도역처럼)
  • 전동차 외형의 표준화
  • 자갈 대신 콘크리트 노반
  • 재래식 삼발이 대신 깔끔한 개집표기, 무려 하저터널,
  • 롤지 대신 LED 전광판
  • 저항/초퍼보다 더 발전된 VVVF 제어: 자동차 내연기관으로 치면 가변 밸브 개폐량/개방 시간(VVL/VVT) 같은 기술을 떠올리면 되겠다.
  • ATS/ATC보다 더 발전된 ATO 신호 시스템. 차장을 생략한 1인 승무

이렇게 1기 지하철에 비해 정말 정말 많은 부분이 발전했다.
이때는 차량 외형은 다들 비슷해졌지만, 내부의 VVVF 인버터는 제대로 국산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조사별로 ABB, 미쓰비시, GEC 등 갖가지 개성 넘치는 전자악기 소리를 가속 구동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이게 1990년대의 로망이다. 2기는 1기와 달리, 시각 대신 청각적으로 즐길 것이 다양해진 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하철 건설이란 게 워낙 재정 등골 브레이커이다 보니 2기 지하철을 만들 때는 어떻게든 원가를 줄이려는 노력을 높으신 분들이 했는데, 그 아이디어 중 하나가 2기 지하철부터는 아예 무인 운전을 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테스트를 해 보니 자동 운전 시스템이 승강장 제 위치에 정차를 정확히 못 했다. 또한 이때는 아직 스크린도어도 없어서 완전 무인 운전을 하기엔 여러 애로사항들이 즐비했다. 이 때문에 현실에서는 2인 승무에서 차장만 뺀 1인 승무로 줄이는 수준에서 머물렀다.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최초 개통 구간이 왕십리-상일동이었으며, 천호대로 구간이 이때 파헤쳐졌다가 복구되면서 국내 최초의 시내 중앙 버스 전용 차로로 탈바꿈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응답하라 1997에서 나름 고증을 반영한답시고 지하철 노선도에서 5~8호선은 하얗게 지워 놨던데 그건 오류이다.
그 시절엔 5~8호선도 점선으로 그려 놓고 "건설 중, 개통 예정"이라고 표시해 놓는 게 올바른 고증이다. -_-;;

처음에는 5~8호선만 운영하는 '서울 도시철도 공사'라는 회사가 따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한 도시의 지하철에 사철도 아니고 공기업이 둘이나 있는 건 꽤 이례적인 경우였기 때문에 2017년부터는 두 회사가 하나로 합쳐져서 서울 교통 공사로 바뀌었다.
회사가 둘이서 따로 놀던 시절엔 한 회사 구간에서 파업이 벌어져도 다른 회사 노선은 영향이 없었는데.. 지금은 파업 발생 시에 지하철 1~8호선이 몽땅 멈춰 버릴 가능성이 생겨 있다.

9.
다음으로 서울 3기 지하철은 계획대로라면 9~12호선이 추가로 건설됐어야 했다. 하지만 외환 위기와 IMF, 이로 인한 긴축 재정 처방 때문에 지하철 건설 계획은 대부분 칼질 당했으며, 이 때문에 5~8호선 건설 때 미리 준비를 해 놨던 환승역 건설 공간과 노반도 상당수 잉여로 전락하게 됐다.;;
3호선과 7호선의 연장(오금 2010 / 부평구청 2012), 그리고 강남의 횡축 노선인 9호선만이 살아남았다. 나머지는 2010년대 이후에 서울 외곽 구간만이 광역전철(10은 신안산선, 11은 신분당선) 아니면 경전철(12는 우이신설선)로 실현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9호선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 광역전철이 아닌 단순 도시철도 지하철로서는 이례적인 전구간 급행열차 운행
  • 처음 건설 때부터 모든 역에 스크린도어 시공
  • 마분지 승차권의 완전 퇴출
  • 오 세훈 시장 서울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적용된 덕분에 혼자 굉장히 이질적인 인테리어
  • 한국형 표준 전동차 규격. VVVF 인버터도 통합됐기 때문에 구동음은 대전 같은 최신 지방 지하철하고 pitch(음높이)만 다르지 음색은 같다.

그러므로 서울 지하철의 건설 계획이 대판 틀어진 계기는

  • 1기 지하철: 육 영수 여사 피격으로 인한 서울 시장 경질 (신설동 역 유령 승강장이 생긴 이유도 이 때문!)
  • 3기 지하철: IMF ...;;

라고 정리된다. 그리고 차량 운용 계획이 실현되지 않은 것은..

  • 1호선: 유동적인 열차 중련 편성 (그런 것 필요없고 지금은 언제나 10량 꽉꽉 채움..)
  • 2기 지하철: 무인 운전 (현실은 시궁창. 1인 승무만으로 감지덕지)

이렇게 정리된다.
유동적인 열차 중련 편성은 무인 운전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운용 계획이라는 게 흥미롭다. 철도 운영 이념이 세월에 따라 이렇게 바뀌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1/02/06 08:35 2021/02/06 08:35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851

요즘 철도의 변화 추이

1. 수인분당선

지난 9월 12일에는 우리나라 철도 역사에 길이 기록될 이벤트가 하나 발생했다. 바로 수인선이 전구간 복선 전철(시설)로 완공되었으며, 곧장 분당선과 연결되어 수인분당선이라는 이름의 수도권 광역전철(운행 계통) 형태로 부활했기 때문이다.

이는 경의중앙선의 사례와 비슷하다.
원래 용산-성북 국철이라고 불리던 1호선 짜끄레기 지선(?)이 중앙선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색깔이 옥색으로 바뀌고 덕소, 팔당, 국수.. 지금은 양평을 넘어 용문까지 정말 엄청나게 길어졌는데.. 그게 2009년부터 DMC/서울 역까지만 개통해 있던 경의선과도 연결됐기 때문이다. 2014년에 용산선 구간이 모두 지하로 재개통한 덕분이다.
그래서 경의중앙선은 문산(임진강)-용문(지평)이라는 어마어마한 길이를 자랑하는 옥색 광역전철이 되었다.

그러면 수인분당선은 어땠는가?
1994년 9월, 철도 불모지이던 서울 동남부에 수서-오리 분당선이 개통했다. 얘는 색깔도 확 튀는 노란색인 데다, 철도청이 건설하는 철도 중에는 그 당시에 기존 철도와 만나는 게 전혀 없이 단절돼 있던 유일한 철도였다. 2009년 용인-서울 고속도로(171)가 건설 당시에 기존 고속도로와 만나는 분기점이 전혀 없이 단절된 고속도로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랬는데 분당선은 남북으로 쭉쭉 길어져서 왕십리와 수원을 잇는 거대한 전철 노선이 됐고.. 급기야는 이제 수인선과 연결돼 버렸다. 그래서 역 수가 60개가 넘는 왕십리-(수원 경유)-인천이라는 초월적인 노선으로 거듭났다. (참고로 1호선의 무려 소요산-천안이 역 수가 얼추 60개;; )

다만, 수인-분당선은 구간별로 성격과 수요의 편차가 크기 때문에 상당수의 열차는 여전히 과거의 분당선 아니면 오이도 이북의(시흥-인천) 수인선 구간만 다닐 예정이다. 여느 방사형 노선들은 서울로부터 멀어지는 말단 외곽이 수요가 적지만.. 수인선은 반대로 양 말단인 인천과 분당· 서울 쪽이 수요가 많고 중간의 화성· 안산 쪽은 수요가 적기 때문이다.
기존 안산선 구간인 오이도-한대앞을 포함해서 이번에 새로 개통한 사리-야목-고색 등의 구간을 다니는 열차는 왕십리부터 인천까지 전구간 풀코스를 다니는 열차만으로 국한된다. 이런 열차는 1시간에 2~3대꼴로만 운행된다.

그러므로 오이도 역은 동쪽에서는 4호선의 종착역이기도 하면서, 서쪽에서는 수인선의 중간 종착역 역할을 계속해서 수행하게 된다.
사실은 한대앞-오이도는 애초에 안산선이 기존 수인선의 선형을 따라 건설된 것이었다. 그걸 수인선 복선전철이 나중에 되찾았을 뿐.. 여기는 2복선 같은 것 없이 한 선로에서 안산선과 수인선 열차가 모두 오가게 된다. 같은 선형이지만 선로는 복층으로 다른 경의선 & 공항 철도의 서울 시내 용산선 구간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 수인선이 개통하면서, 과거에 분당선 수원 행에 대응하던 운행 계통은 종점이 수원이 아니라 서쪽으로 한 정거장 더 진행한 고색으로 바뀌었다.
과거에 1호선 수원 행 계통이 2003년부터 병점으로 바뀐 것과 비슷한 현상 같다. 어쩐지 그래서 고색 역은 시종착역 역할을 하기 위해 지하에서 이례적으로 쌍섬식으로 건설돼 있었다.

그래서 수원 역은 1호선도, 수인분당선도 모두 중간 종착역 역할을 하지 않게 됐는데, 이것은 두 노선의 중간 종착역 역할을 꾸역꾸역 수행하고 있는 오이도 역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본인은 9월 12일이 낀 주말에 답사 여행도 다녀왔다. 여행기는 글과 사진을 정리하는 대로 이 블로그에다 공개할 예정이다.

아울러, 이렇게 철도에 거대한 수도권 순환선이 추가된 2020년 9월부터.. 고속도로에서는 서울 외곽순환 고속도로(100)의 명칭이 수도권 제1순환 고속도로라고 개명되었다. 뭔가 의미심장한 변화인 것 같다.
저 동네가 서울 외곽 변두리 짜끄레기라는 부정적인 어감을 걷어내고, 또 더 큰 제2순환선(400)이 생기기도 한다는 것을 반영한 개명이다.

2. 급행 전동차의 변화

지난 2019년 말~2020년 초 사이에 수도권 전철 1호선의 경부선 급행열차 체계가 꽤 파격적으로 바뀌었다.
용산-구로 사이의 급행 선로는 동인천 급행만이 사용하는 경인선 전용 선로로 바뀌었고, 천안 급행은 내선(급행 및 일반열차 선로)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군포와 의왕 같은 몇몇 역에다가 대피선 추가)

이 때문에 경부선 급행은 안양-수원 구간에서 내선을 주행하던 과거에 비해 속도빨이 조금 감소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경부선 급행을 더 많이 투입할 수 있게 되었으며, 용산에서 끊어지는 게 아니라 서울 지하철 1호선 청량리까지 더 길게 운행 가능해졌다. 환승역인 금정 역에 정차할 수 있게 된 건 덤이다.

어째 운영 시스템을 이렇게 개편할 생각을 했는지?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나 모르겠다.
이런 조치 덕분에 이제는 서울 지하철 9호선뿐만 아니라 1호선의 지하철 구간에서도 이따금씩 ‘천안 급행’이라는 어색한 열차 행선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코레일에서는 요런 완행 기반의 경부선 급행을 늘린 대신에, 하루 세 번 있는 기존의 서울-천안 급행을 슬쩍 폐지했는데.. 그건 승객들의 반발에 부딪혀 곧 무산됐다.
이제 하루 세 번 있는 이 열차만이 안양-수원에서 일반열차 선로를 주행하는 유일한 전동차이다. 누리로도, 급행 체계 대개편도 1981년 경부선 서울-수원 복복선 개통과 함께 등장한 이 40년 짬밥의 전동차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했다.

3. 고속버스(고속도로) 대비 철도의 변화

우리나라에 좌석에 종아리 받침대가 있는 고급 육상 교통수단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초이다.
1991년인가 92년 사이에 등장한 우등 고속버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에 등장한 새마을호 장대형 객차.
열차와 버스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의 영향을 받은 건 분명한데.. 어느 게 어느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는 본인도 정확하게 모르겠다고 예전에 언급한 적이 있다.

좌석 자체가 더 두툼 큼직하고 푹신한 것은 우등 고속버스이다. 특히 팔걸이의 폭 말이다. 하지만 앞뒤 간격이 훨씬 더 넉넉하고 전반적인 승차감이 더 좋은 것은 열차이다.

그리고 저 때 이후 2010년대부터 고속버스와 열차는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고속버스는 기존 우등보다도 더 비싸고 좌석이 더 안락한 프리미엄 우등이란 게 나와서 일부 노선에서 운행 중이다.
그러나 열차의 경우, 저 새마을호가 한국 철도 120년 역사상 전무후무한 가장 크고 안락한 좌석을 보유한 차량이었고 그것으로 끝났다. 지금은 KTX 특실 좌석에도 종아리 받침대 따윈 없다.

그렇게 된 이유는?
열차는 인테리어만 한없이 더 고급화하는 게 아니라, 속도가 더 빨라지는 쪽으로 일면 바람직하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요즘 제트 여객기가 과거의 비행선이나 대륙 횡단 여객선처럼 내장재를 신경쓰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나라도 KTX가 없고 열차의 증속에 한계가 있던 시절엔, 내장재와 정차역만으로 상위 등급 열차를 운용해야 했다. 새마을호의 크고 안락한 좌석은 그 시절이 만들어 냈던 유물인 것이다.

물론 기존 인프라만 갖고 노오력을 쥐어 짜내서 서울-부산을 4시간 10분까지 단축시켰으며(1985년), 더 장기적으로 3시간 반 정도까지 단축시키려는 계획은 있었다. 하지만 그거 갖고 철도가 갈수록 늘어나는 고속도로와 자가용, 고속버스의 경쟁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고속철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나라에 훨씬 더 절실히 필요했던 사업이었다. 김포 공항을 대체하는 인천 공항만큼이나 말이다.

같은 논리를 적용해 보면 고속버스가.. 우등이라고 해서 카레이서 출신의 엘리트 기사가 대형 버스로 고속도로를 시속 150~200으로 밟으면서 '초고속버스' 같은 운전을 할 수는 없다;; 그러니 내장재만 고급화한 버스를 운용하는 것이다.

서울-부산을 1시간 만에 가는 여객기, 2시간 반 만에 가는 열차가 있는 와중에.. 도로 교통수단이 시간 메리트가 없다면, 고속 와이파이는 물론, 최소한 좌석마다 개별 영상 서비스와 콘센트가 달린 버스 정도는 요즘 세상에 정말로 나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4. 서빙 카트

오늘날 승무원이 먹을것을 실은 카트를 끌고 복도를 왕래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교통수단은 열차와 여객기 정도인 듯하다.

참고로 고속버스에도 안내양이 있던 1960~80년대 먼 옛날에는 안내양이 버스 안에서 스튜어디스와 비슷한 일을 했다. 탑승 전 검표, 안전벨트 착용 안내뿐만 아니라 무슨 관광버스처럼 지금 차량이 지나고 있는 지역의 특산물 소개 같은 방송도 하고 주기적으로 음료 서빙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이런 것들은 모두 사라졌다. 시대의 변화 때문이겠지만 인건비의 급격한 상승도 안내양이 없어지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여객기나 과거의 고속버스 같은 건 승차권 가격에 포함된 정식 서비스를 모든 승객에게 동등하게 제공하기 위해서 승무원이 카트를 끌고 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열차는 별도로 판매되는 간식류들이 실려 있다는 점에서 카트의 성격이 좀 다르다. 다른 교통수단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오~

철도청 시절에는 이런 일을 홍익회라는 유착(?) 법인에서 전담했지만 공사화 이후에는 이런 풍경을 거의 볼 수 없어졌다. 그나마 KTX 같은 고급 고속열차에서는 코레일네트웍스 같은 자회사 소속 직원이 카트를 끌고 다닐 뿐.. 수익이 적은 새마을/무궁화호 열차를 시발역에서 타면 "우리 열차는 차내 영업사원이 탑승하지 않습니다. 식사는 탑승 전에 해결하시거나 차내 카페객차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가 자주 나왔었다.

5. 토목 기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장소는 서울 지하철 9호선 고속터미널(일명 고텀) 역의 환승 통로이며, 9호선 승강장의 위층에 있는 거대한 공터이다. 직접 본 적이 있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높은 천장을 뚫고 딱 15cm만 위로 올라가면 지하철 3호선 선로가 나온다.
9호선 고텀 역은 그 무거운 전동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는 3호선과 7호선의 바로 위와 옆으로 아슬아슬 아찔하게 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만들어졌다. 이들 역이 동시에 건설된 것도 아님을 주목하라. 신기하지 않은가?

불과 30년 남짓 전에 2호선이 처음 건설됐던 시절엔.. 복잡한 영등포 역 아래를 그렇게 뚫고 내려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선로 밑으로 땅 잘못 파면 선로가 내려앉아서 1993년의 구포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같은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그때는 한적한 곳까지 비껴 가서 신도림역을 환승용으로 따로 만들어야 했다.

이를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고텀 역의 경우, 옛날 3호선은 그냥 개착식, 7호선은 NATM(발파..), 9호선은 CAM(cellular arch) 공법으로.. 적용 알고리즘이 모두 다르다.

우리나라의 '삼부토건'이라는 건설사는 자기 회사를 소개할 때 서울 지하철 5호선 마포-여의나루 한강 하저 터널을 건설했던 이력을 반드시 자랑으로 내세운다. 그건 1990년대 초에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했던 장거리 하저 터널이기 때문이다.
광나루-천호도 하저 터널이지만, 그건 댐을 쌓아서 강물을 다 걷어내고 개착식으로 만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크게 새롭지는 않다.

서울 지하철 7호선 남성-숭실대입구역 구간의 경우, 시공사는 기억이 안 난다만 아무튼 중간에 길을 벗어나서 관악 현대 아파트의 아래를 대놓고 관통한다.
물론 공사는 20여 년 전에 그 위에서 살았던 아파트 입주민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스텔스로 잘 끝났다.

이런 게 21세기 토목 기술의 힘이다. 이미 부산 시내를 몽땅 지하로 관통하는 경부고속선이 완공됐고, 이제는 서울에서 평택까지 전부 지하로 가는 SRT, 그리고 고심도 광역 급행 전철까지 만들어지는 중이다.

참고로 지하 시설이라는 건 공간만 냈다고 장땡이 아니다. 내부에 계속해서 환기를 해 줘야 하며, 지형에 따라서는 지하수를 빼내는 펌프를 24시간 내내 가동해야 한다. 안 그러면 햇볕도 안 들어오는 탁한 지하 공간에서 사람이 지낼 수가 없어진다.
이런 최소한의 토목 디테일을 알면 북괴의 초장거리(?) 남침 땅굴 굴착설 같은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괴담임을 간파할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0/09/17 08:34 2020/09/17 08:34
,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797

1. 경부선의 전철화

우리나라 최대의 간선 철도인 경부선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전철화가 됐다.

(1) 1974년 8월 15일, 서울 지하철 1호선과 직통으로 수도권 전철 운행을 하기 위해 서울-수원 구간이 가장 먼저 전철화됐다. 하지만 이때 이후로 거의 30년 동안 추가적인 전철화는 전무했다. 뭐, 여기 대신 경부고속선을 따로 만들긴 했지만..

(2) 2003년 4월 30일, 수원에서 딱 두 정거장 더 남하한 수원-병점 구간이 전철화된 동시에 선형 개량과 2복선화도 같이 진행됐다. 원래 있던 선로 방향에는 병점 차량기지가 만들어졌으며, 회차를 위한 입체교차 선로도 같이 만들어졌다.

(3) 2004년 4월 1일, KTX의 운행을 위해 대전-옥천, 대구-부산 구간이 전철화됐다. 전용 고속선이 없기 때문에 기존선의 전철화부터 먼저 한 것이다.
옛날에 중앙선이 전구간 복선화를 할 여력이 도저히 안 되니 신호장이라도 늘리고 단선 전철화부터 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하겠다. 거기는 힘이 더 좋은 전기 기관차를 투입하는 것만으로도 화물의 수송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4) 2005년 1월 20일, 병점-천안 구간이 전철화 및 2복선화됐다. 이제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수원과 오산, 평택을 넘어 천안까지 가게 되었다. 병점은 수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데다 차량기지와 입체교차 시설 때문에 중요도가 높아서 2년 먼저 미리 개통했던 것이다.

(5) 2005년 3월 30일, 전철화된 근처의 충북선과 서울 방면의 연계 강화를 위해 천안-조치원 구간이 전철화됐다.

(6) 2005년 7월 1일, 충북선과 대전 방면의 연계 강화를 위해 조치원-대전 구간도 전철화됐다. 대전-제천 무궁화호에 전기 기관차를 투입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렇게 2005년에 천안 이남에서 전철화 과업은 앞의 광역전철이나 고속철처럼 여객의 관점에서 변화를 야기한 것이 없다 보니.. 존재감이 매우 미미하다. 잘 알려지거나 보도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인터넷에서 관련 언론 보도를 거의 찾을 수 없다.

(7) 그리고 2006년 12월 7일, 대구-옥천이 산악 구간의 선형 개량과 함께 전철화됨으로써 경부선 441km 전구간이 전철화가 완료되었다. 선형 개량을 하면서 길이도 좀 짧아졌을 텐데 얼마나 개선됐는지는 딱히 자료를 못 찾겠다.
경부선의 전구간 전철화는 상징성이 크니 언론에서도 대대적으로 알리고 보도했었다. 이제야 중앙선뿐만 아니라 경부선 일반열차에서도 전기 기관차를 볼 수 있게 되었고, 오늘날 새마을호의 후신인 ITX-새마을 전동차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경부선의 전구간 전철화 완료 이후 1주일 남짓 뒤인 12월 15일에 수도권 전철 1호선의 북쪽이 의정부북부에서 소요산까지 연장됐다는 것도 추가로 알아두면 좋다. 그리고 그로부터 또 2년 뒤인 2008년 12월 15일엔 남쪽 끝이 천안에서 또 연장되어 장항선의 신창까지 가게 됐다. 2009년 여름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누리로 전동차가 등장한다.

그 사이의 2008년 1월에 장항선과 군산선이 새 선로로 연결되었다. 거기 일대에 있는 세풍제지선이 한때 철덕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없어졌다. 그게 그 시절 그 지역의 주요 철도 역사이다.

2. 고속선의 개통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기에는 좀 짧으니, 기존선 말고 고속선도 살펴보면 이렇다.

  • 2004년 4월 1일, 서울-대전-대구 (1차)
  • 2010년 11월 1일, 대구-부산 (2차)
  • 2015년 8월 1일, 대전과 대구 도심 구간까지

경부선 쪽은 이런 순서대로 완공됐다.
호남 고속철은 2015년 4월 2일에야 오송-광주송정 구간이 완공되어 1차 개통했으며, 광주송정에서 목포까지는 여전히 호남선 기존선 기반이다. 경부고속선이 대구까지만 개통했던 과거 시절과 상황이 비슷하다. 잔여 구간은 현재까지도 고속화 공사가 진행 중이며 앞으로 몇 년은 더 있어야 완료될 것 같다.

이제는 시속 300까지 밟지는 못해도 그래도 200 정도는 밟을 수 있는 준고속선이라는 개념도 생겨 있다. 경강선 내지, 개량된 전라선처럼 말이다.
참, 포항 쪽도 준고속선이 완공되어 호남선 개통과 같은 날에 KTX가 개통했다. 그쪽은 기존 동해남부선이 완전히 걷히고 기존 경주 역이 신경주 역으로 완전히 대체될 날만 남았다. 아울러 대구선과 중앙선 복선 전철화가 진행 중이다.

3. 2020년 상반기의 철도계 동향

(1) 경의선 수도권 전철화 구간이 문산을 넘어 드디어 임진강까지 연장됐다(3월 28일). 그 사이에 있던 임시승강장인 운천 역은 폐쇄되고 정식 역사가 지어지고 있으며, 문산-도라산 사이는 하루 4번 셔틀 열차만 왕래하고 있다.
이는 중앙선 끝의 지평 역에도 하루 단 4회만 열차가 운행되는 것과 처지가 같지는 않지만 비슷해 보인다. 경의중앙선의 양 끝에는 열차가 하루에 4회만 다니는 셈이다.

내년에는 도라산 역까지도 전철화가 되고 경원선도 소요산 이북의 연천까지 수도권 전철이 연장될 예정이니 더욱 기대된다. 그런데 단선 전철이라니..
경남 양산에서 건설 중인 경전철이 전국 최초의 단선 도시철도가 될 예정인데.. 경원선은 전국 최초의 단선 '중전철' 광역전철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하게 되겠다.

(2) 지난 4월 1일부터 서울 지하철들의 새벽 1시 운행이 중단되고 막차 시간대가 자정으로 당겨졌다.
기억하는 분이 계신지 모르겠지만 이건 2002년, 이 명박 서울 시장 시절부터 행해진 것이다. 그 1시간 연장 운행 관행이 거의 18년 만에 무기한 중단되고 원래대로 돌아간 셈이다.

자동차에다가 비유하자면.. 일반인이 시속 200까지 밟을 일이라고는 현실에서 거의 없다. 그래도 시속 200까지 내는 고성능 차를 몰면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120쯤은 아주 가볍고 여유롭고 가뿐하게 달릴 수 있다.
그것처럼 열차가 막차가 1시이면 그 전의 자정 시간대엔 중간 주박역에서 끊어지지 않고 종점까지 쭉 가는 열차를 탈 수 있다. 열차의 막차 시각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4. 참고: 철도역과 고속도로 나들목의 위상

어떤 지역에서 그 지역명을 그대로 딴 대표 철도역은 대체로 그 지역의 대표 행정기관(시청· 군청)과도 별 차이 없을 정도로 완전 시내 도심 중심부에 있는 편이다. 바다를 접하고 있는 부산과 인천이야 항구와 더 가까이 있지만, 그래도 수도 서울이나 대구 정도만 해도 시청과 철도역이 꽤 가까이 있다.

그 이유는 뭐.. 다방면으로 생각할 수 있다. 가장 단순하게는.. 철도가 개통하던 시절에는 전국 어디건 시가지의 크기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기준으로는 철도가 좀 변두리 외곽에 만들어진 것인데도 나중에는 그 철길 주변도 역세권 버프를 받고 온통 개발되어, 결과적으로 도시의 중심부처럼 바뀌었을 수 있다. 서울 남산이 지금은 남쪽 끝의 산이 전혀 아니라 그냥 서울 중심부의 산으로 바뀌었듯이 말이다.

더구나 옛날에는 자동차가 지금처럼 보급돼 있지 않았으며, 승객을 철도역까지 연계하는 보조 대중교통이 충분치 못했다. 그러니 철도의 혜택을 입으려면 닥치고 최대한 역에 가까이 붙어서 살아야만 했다. 철도역이 도시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철도역과 달리, 고속도로 나들목은 이용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넘사벽 급의 수송력을 자랑하는 자동차이다. 여기는 애초에 일반 도로와 자동차 전용 도로를 구분하는 경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고속도로 나들목은 태생적으로 도시의 외곽 변두리 끄트머리에 있는 게 자연스럽다. 고속도로 나들목 주변까지 온통 개발되고 건물로 뒤덮힌 경우는 수원 IC처럼 매우 드물다. 경인이나 외곽순환 고속도로 나들목 주변은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경부 고속도로가 처음 만들어지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이런 개념조차 생소했다. 그래서 도시의 시장이라는 사람이 XXX 나들목을 자기 관할인 XXX 시의 도심 안으로 유치하겠다고 떼를 쓰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그리고 요즘은 새로 만들어지거나 이설되는 철도역들도 마치 고속도로 나들목처럼 온통 외곽 변두리에 자리잡는 추세이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선로의 선형을 최대한 직선으로 만들려다 보니 기존 도심지를 경유할 수 없는 것, 그리고 굳이 간선 철도가 시가지를 대놓고 통과하지 않더라도 시가지와 철도를 연계해 주는 다른 교통수단이 충분하다는 것.

결국은 철도는 당장 역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도 고속화와 직선화로 대량 간선 수송에 충실하고, 단거리 연계는 다른 교통수단이나 도시철도가 담당하는 것이 시스템 전체의 교통 효율에 좋다는 것이다. 그러니 요즘 철도역들이 20세기의 철도역처럼 시내 깊숙히 들어와 있지 않고 외곽으로 멀어지는 것을 마냥 나쁘게만 보지 말고, 그 트렌드에 대해 어느 정도 적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0/04/22 08:35 2020/04/22 08:35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743

우리나라의 경춘선 철도는 일제 강점기의 말기에 근접한 1939년에 개통했다. 1939년부터 1941년에 걸쳐 찔끔찔끔 개통한 중앙선과 시기가 비슷하다.
경춘선은 그 당시 사철 형태로 건설됐으며, 다른 철도와 달리 설립 배경에 왜색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나름 춘천 지역 조선인 유지들의 자본이 많이 투입된 것으로 유명하다.

해방 이후 경춘선은 국영 철도로 편입됐다. 경춘선은 원래 지금의 제기동 역 근처의 '성동' 역에서 시작했지만 1971년에 해당 선로가 폐선되었다. 그 대신 청량리에서 출발해서 성북(지금의 광운대)에서 경춘선 선로가 분기하는 형태로 선형이 바뀌었다.

경춘선에는 한동안 무궁화호와 통일호라는 두 종류의 일반열차가 다녔지만 2004년 3월, KTX의 개통과 함께 구닥다리 통일호는 퇴역했다. 그 뒤 2010년 12월, 복선전철화가 완료되면서 선형이 대대적으로 바뀌었고 차량은 광역전철 전동차로 대체되었다.
급행 전동차도 잠깐 다녔지만 없어지고 이내 ITX-청춘으로 바뀌었다. 내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급행 전동차는 현대 YF 쏘나타의 2400cc 고급형 모델이 자취를 감춘 것과 시기적으로 비슷하게 없어진 것 같다.

경춘선의 복선전철화는 차량뿐만 아니라 선로에도 굉장히 큰 변화를 야기했다.
광운대 역 부근은 경원선 복선 선로이다. 경춘선 열차가 거기서 경춘선으로 나가려면 경원선의 맞은편 열차 선로를 타넘으며 잠시 평면교차를 해야 했다. 열차가 몇 분 간격으로 다니는 철도에서 평면교차는 단선 교행만큼이나 절대로 좋은 여건이 아니었다. 선로 용량이 줄어들고, 사고의 위험도 커지고..

그랬는데 새로운 복선전철 선로는 경원선이 아니라 중앙선의 상봉· 망우 역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얘들은 중앙선으로 합류 자체를 안 하고 중앙선보다 북쪽의 선로에서 따로 노니 평면교차를 하지 않게 됐다.
(물론 더 멀리 용산까지 가는 ITX-청춘은 여전히 평면교차를 한다. 그리고 지금 분당선 전동차 중에서도 가끔 왕십리를 넘어 청량리까지 가는 열차도 선로를 건너갈 때는 불가피하게 잠시 평면교차를 한다.)

이로써 성동-성북 선로가 없어진 지 거의 40년 만에 성북-갈매의 꼬불꼬불한 시내 선로도 폐지됐다. 그리고 거기에 있던 신공덕, 화랑대 같은 역도 없어졌다.
이 두 역은 초라해 보여도 나름 1939년 경춘선의 개통 당시부터 있었던 역사 깊은 역이었다. 물론 이름이야 일제 시대에 거기 근처에 대한민국 육사가 있었을 리가 없으니, 처음엔 화랑대가 아니라 태릉이고.. 그런 식이었다.

경춘선의 시내 관통 구선로가 있던 곳에는 숲길 산책로가 꾸며졌다. 이 점에서는 역시  공원 산책로가 조성된 용산선 구선로 구간과도 상황이 비슷해 보인다. 수도권 전철 경의선이 개통한 때도 2009년이니 서로 더욱 비슷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용산선은 경의선 신촌-가좌 구간에 밀려서 현역 시절에도 존재감이 너무 없었고 2000년대부터 사실상 화물 전용에 폐선 신세였지만.. 경춘선은 그런 지경이 아니었다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일까? 경춘선 구선로는 ‘경춘선 숲길’이라는 별칭이 붙은 한편으로.. 상당수의 구간에 기존 레일이 고스란히 남겨지고 보존되었다. 소리소문 없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용산선 선로와는 다른 처분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서울여대 정문과 육사 정문 사이의 공간, 즉 구 화랑대 역은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었으며, 주변에 ‘화랑대 철도 공원’이라는 것도 만들어졌다! 본인은 이를 답사하기 위해 현장을 찾아가 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동차 도로와 육사 정문의 갈림길 사이에 '경춘선 숲길'이 나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장 먼저 본인을 반긴 것은 협궤 선로용 소형 증기 기관차인 '혀기'였다.
삼성 교통 박물관에서도 동명의 기관차를 본 적이 있는데, 그것과 저건 규격이 달랐다.
교통 박물관 것은 더 옛날 1937년에 제조되어서 1952년까지 운행되었으며, 탄수차가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텐더식). 그러나 여기에 있는 것은 1951년에 제작되어 1973년 초까지 운행된 신형인 한편으로 탄수차가 별도로 있지 않는 탱크식이다.

우리나라 철도에서 협궤는 수려선과 수인선뿐이었고 이들 기관차도 딱 저기만 다녔다. 그리고 1973이라는 연도에서 미뤄 볼 때, 얘는 수려선이 폐선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같이 퇴역한 것으로 보인다. 1967년 8월 말에 증기 기관차가 현업에서 공식적으로 퇴역한 뒤에도 협궤 전용인 혀기 기관차는 거의 1970년대 중후반까지 더 굴러다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객차의 안에도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웬 외국산 전동차..는 아니고 노면전차이다. 저게 전동차라면 출입문이 저렇게 낮게까지 만들어지고 더구나 폴딩 형태이기까지 할 리가 없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나름 화랑대 역 승강장 레플리카와.. 무려 무궁화호 객차 세트가 등장했다.
세상에, 인서울에서 이 정도 퀄리티의 철도 기념물을 구경하게 될 줄이야~!
본인은 작년 이맘때쯤엔 문정 근린 공원에서 철길 흔적을 발견했다고 좋아서 난리를 쳤었는데.. 그것보다 훨씬 더한 거물을 발견하게 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화랑대 구역사는 마치 옛날 신촌 역처럼 봉인되고 보존된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로 옆에 있는 육사 정문의 모습이다.
생도들은 좋겠다. 학교 주변에 이런 철도 기념 공원이 있으니 말이다. 서울여대 애들도 마찬가지이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궁화호 객차의 앞에 놓여 있는 건 미카 증기 기관차였다. 맨 처음 봤던 혀기보다 훨씬 더 크다.
증기 기관차들은 어린이 대공원에 있던 것을 여기로 옮겨 놓은 거라고 한다. 어린이 대공원은 50여 년 전에 처음 만들어지던 시절에는 꼭 필요했던 시설이지만 지금은 다른 유원지나 공원, 놀이 시설에 밀려서 너무 낡은 감이 있다. 뭐, 그래도 주말이면 지금도 차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건 변함없으니, 완전히 파리 날리고 망한 지경은 아니다.

근처에는 마지막으로 다른 1량짜리 일본 전동차가 하나 있었는데 이건 사진 첨부를 생략하겠다.
증기 기관차들은 다 유래에 대해 설명이 나와 있던데 정작 이런 외국 차량들은 그냥 병풍으로 갖다놓은 건지 아무 설명이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서 동쪽으로 더 가면 이제 철도 공원은 끝나고 철길과 함께 산책로만 이어진다. 이런 식이다. 생각보다 길어서 1~2km는 된 것 같다.
육사를 완전히 지나고 태릉 선수촌과 태릉 골프장까지 거친 뒤에야 끝나더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전에 철길부터 먼저 끝난다. 이제 여기 이후부터는 그냥 철길 노반 자갈밭만 몇백 m 이어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이렇게 경춘선 숲길이 통째로 끝난다. 저기부터는 행정구역도 서울을 벗어나서 구리시이다.
참고로 철길 산책로는 철도 공원의 동쪽뿐만 아니라 서쪽으로도 제법 길게 이어져 있다. 거기는 주변이 여기처럼 한적한 차도나 육사 캠퍼스가 아니라 본격적인 주택가이기 때문에 분위기가 사뭇 달라 보인다. 이 글은 동쪽으로만 끝까지 가 본 답사기임을 밝힌다.

여기서 경춘선 전철 갈매 역까지는 10분 정도 더 걸어서 도달할 수 있었다. 본인은 거기서 전철을 타고 귀가했다.
작년 말에 개통한 지하철 6호선 신내 역도 이번 기회에 드디어 구경할 수 있었다. 여기 근처에 있으니까... 서울 지하철에서 차량기지 내부에 있는 단선 종착역은 지금까지 7호선 장암밖에 없었는데 이제 6호선 신내도 추가됐다. 7호선은 전역인 도봉산이 환승역인 반면, 6호선은 종착역 자체가 환승역이 됐다는 차이가 있다.

9호선 개화도 차량기지 내부에 있는 종착역인 것까지는 일치한다. 그러나 거기는 단선이 아니며 모든 일반열차들이 도달하는 정규 종착역이다. 장암이나 신내처럼 전체 열차의 절반 이하만 찔끔찔끔 드나드는 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2/13 08:36 2020/02/13 08:36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716

요즘 철도계 근황과 미래 전망

1. 신안산선 착공

한국 철도 역사상 최장, 최대의 기약 없는 베이퍼웨어로 악명을 떨쳤던 신안산선이 2019년 가을부로 드디어 '착공'에 들어갔다. 서울 3기 지하철 계획 중 10호선에 속했던 노선이 저런 대체 노선으로 바뀐 지가 어언 20년 가까이 전인데.. 노선과 운영 방식 등 갖가지 계획들이 원만히 확정되지 못하고 2010년대에 이르도록 질질 끌다가 이제야 건설이 시작된 것이다. 계획상의 완공 예정 시기는 2024년이라지만, 현실적으로는 거기에 최하 1, 2년은 더 추가해야 할 듯하다.

소사-원시 서해선에 이어 또 서울 서남부에 광역전철이 하나 더 생길 예정이라니 기대된다. 일단 여의도에서 광명 역이 직통으로 쭉 연결될 예정인데.. 여의도 정도 위치에서 KTX 타려면 그냥, 서울이나 용산으로 가면 되지 광명이 딱히 거리 메리트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2. 객차형 열차의 종말

버스업계에서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의 구분이 없어지는 것만큼이나 21세기의 국내 철도계에서 두드러지는 변화는 새마을-무궁화-통일-(비둘기)이라는 기존 차급 체계가 사실상 없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다양한 전동차들이다. 고속철 KTX부터 시작해 누리로, ITX-청춘, ITX-새마을이 전부 전동차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EEC 아니면 통근형 차량만 있던 전동차가 어느샌가 주류로 급부상했다.

우리나라에 디젤 동차가 마지막으로 도입된 것은 1997~99년의 CDC 통근열차이다. 차급으로나 동력원으로나 시대에 맞지 않으니 오죽했으면 걔를 2008년경에 RDC라는 무궁화호로 승격해서 과거 NDC처럼 비전철 구간에서 써먹게 됐다.

그것처럼 우리나라에 기관차 피견인 객차가 도입된 것은 2002~04년이 마지막이다.
그리고 다른 차급들이 몽땅 없어졌으니 무궁화호는 다른 전동차에 속하지 않는 기관차-객차형 일반열차의 총칭처럼 됐다. 이 와중에 기관차-객차형 ITX-새마을이라는 아주 이례적이고 예외적인 열차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건 논외로 하자.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기관차-객차형 열차는 비중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수익성 없는 단선 비전철에서는 차라리 1량짜리 디젤 동차가 다닐 것이고, 대형 기관차는 디젤이건 전기건 화물 위주로 운행될 것이다.

이 때문에 2000년대에 한창, 특히 경부선의 전철화 완료와 맞물려서 여객용으로 잔뜩 도입됐던 8200호대 전기 기관차가 가까운 미래 2020~2030년대에는 꽤 애매한 계륵 위치로 전락할 것 같다. 내구연한은 아직 한창 남았는데 객차형 일반열차 자체가 도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뭐, 잉여분은 중고차 명목으로 외국으로 수출될 듯..

3. 월미도 모노레일

한편, 오랫동안 인천의 애물단지로 전락해 있던 월미도 모노레일도 재정비해서 지난해 10월에 드디어 재개통했다.
우리나라는 용인과 의정부 경전철의 과거 선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경전철 궤도 교통수단들은 정치 논리를 따라 이상한 동기로 이상하게 만들어지고, 노선 선정과 운영을 구리게 하는 바람에 적자투성이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경전철에 대한 보편적인 이미지를 나쁘게 깎아먹어 왔다.

월미도 모노레일은 도시 대중교통은 아니지만 이 역시 저런 안 좋은 사례에 속했다. 이미 만들어져 버린 것은 철거하지 않을 거면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운영을 똑바로 하고, 앞으로는 경전철들이 그렇게 대충 만들어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건 영화계로 치면 왕창 구리게 만들어서 흥행 쫄딱 망하고 투자자들의 돈을 다 날리는 무능한 영화 감독과 같다.

그나저나 영종도의 자기 부상 열차도 법적으로 저런 도시 대중교통이 아니지 싶은데.. 요즘도 그냥 무료로 운행되고 있는가 모르겠다.

4. 서울 지하철들의 연장 구간

서울 지하철 6호선이 연장되어 봉화산 이후의 신내 역이 개통했다. 차량기지 안의 단선 승강장이니 뭔가 7호선 장암 역의 시즌 2를 찍은 셈이다. 얘는 경춘선과의 환승역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5호선의 하남 방면 상일동 연장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2020년 말에나 개통 예정이고..
4호선과 8호선이 모두 남양주 방면으로 연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4호선은 긴 터널을 파서 산을 뚫어야 하고, 8호선은 하저터널을 파야 한다. 오옷~

5호선(2개)과 분당선에 이어 제4의 하저 터널이 생기는 셈이니 기대된다. 2019년 말에 착공에 들어갔으니 앞으로 3~4년 정도 걸릴 것 같다. 29번 고속도로 구간용으로 고덕-구리 한강 공원 사이에 이미 만들고 있는 그 교량과도 아주 가까이 있다.
8호선 연장 구간이 개통할 때쯤에 복정-산성 사이의 신설역도 개통하지 않을까 싶다.

5. 서대구 역

먼 옛날 구한말에 경부선 철도가 개통했을 때 대구에는 말 그대로 대구 역 하나가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1969년엔 동쪽 외곽에 오리지널 대구보다 더 큰 규모로 동대구 역이 추가로 만들어졌는데, 얘가 원래 있던 대구 역을 제치고 대구 전체를 대표하는 역으로 등극했다. 대구와 동대구 역은 마치 김포와 인천 공항 같은 관계가 됐다.

마치 SI단위들 중 킬로그램만 유일하게 접두사가 붙어 있듯, 대구는 이례적으로 대표역의 이름에 '동'이라는 접두사가 붙어 있다. 그렇다고 동대구를 대구라고 개명하고 기존 대구를 서대구 정도로 바꾸기에는 옛 대구 역의 이름값도 만만찮다. 이게 아예 고속선 vs 기존선의 관계라면 경주와 울산의 사례처럼 역명 개명이 발생할 수 있지만 대구와 동대구는 그런 관계도 아니다. (경주야 옛 경주 역은 선로까지 완전히 없어질 예정이고, 울산은 기존역이 '태화강'이라고 개명됨)

대구 역 이후로 동대구 역이 만들어지기까지 60년이 넘는 간격이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동대구 역 이후로 거의 50년이 넘게 지난 2021년경에는.. 대구의 서쪽 외곽에 진짜로 서대구라는 역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참고로 대구-동대구 거리보다 서쪽으로 더 멀리 떨어져 있다. 경주에도 신경주 말고 기존 나원과 서경주를 대체하는 이름 없는 역이 더 만들어지고 있는데 마치 그걸 보는 느낌이다.

거기는 수도권으로 치면 오봉 역처럼 물류 허브와 화물 취급 전용역을 만들려고 오래 전부터 부지를 확보해 놓았던 곳이었다. 그랬는데 화물 기지는 다른 곳에 따로 만들어지고 계획이 틀어진 채, 부지는 오랫동안 공터로 놀게 됐다. 이건 마치 옛날에 만들려다 말았던 서울 동남부의 화물 철도와도 비슷한 느낌인데.. 대구에서는 그 자리에 여객을 취급하는 역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서울에 영등포, 부산에 구포, 대전에 신탄진처럼 대구에도 역이 더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접사 파생어 형태의 역명이 더 만들어지는 건 이색적이다. 일반열차가 서-X-동이라는 3개역에 모두 정차하는 건 아니며, 장기적으로는 대구에도 경부선 선로를 기반으로 광역전철이 운행될 계획이 있다고 한다. 아무렴, 장거리 여객은 고속철 위주로 바뀌고, 기존선은 화물이나 단거리 광역전철 위주로 바뀌는 것이 추세이긴 하다.

6. 서경주 역

경북 경주에는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세 종류의 역이 ‘서경주’라는 간판을 걸고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되풀이해 왔다.

  • 시즌 1 (과거): 1985년부터 1992년 사이에 송화산 기슭에 존재했다가 폐지된 서경주 신호장이다.
  • 시즌 2 (2020년 현재!): 1992년부터 현곡면에 새로 생긴 금장 역이 2009년 1월 1일부터 서경주라고 개명되었다. 하지만 얘는 경주 역과 마찬가지로 시한부 인생이다.
  • 시즌 3 (미래): 앞으로 몇 년 뒤엔 현곡 초등학교 근처의 동해선 KTX 선로상에 기존의 금장과 나원 역을 통합한 ‘새로운’ 서경주 역이 생길 것이다. 아직 역이 완공되지 않았지만 주변의 도로 표지판들은 역명을 ‘서경주’라고 기재하고 있다.

시즌이 올라갈수록 역이 계속해서 북쪽으로 이동한다는 게 흥미롭다. 시즌 1~2, 2~3의 두 역들은 직선 거리가 2.3~2.5km 정도에 불과하니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다.
재래식 경주 역이 영업을 중단하고 없어지고 나면(건물은 보존) 신경주 역은 앞의 ‘신’자를 떼어내고 얘가 경주 역으로 간판을 바꿔 달지 않을까 싶다. 현재 신경주와 동대구는 전국에서 매우 드물게 지명 앞에 접두사가 붙어 있는 KTX 정차역이다.

한편, 서쪽의 광주도 상황이 비슷해서 광주 역은 그야말로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최악의 경우 옛 광주 역은 폐역돼 버리고 광주송정이 광주 역으로 개명될 수도 있다. 지금은 광주-광주송정 사이는 그나마 통근열차를 투입해서 연계시키고 있다고 한다.

7. 절연 구간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경의중앙선 전철이 용산-이촌 사이를 지날 때 전등이 잠시 꺼지지 않고 있다. 경강선 KTX의 개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절연 구간을 없앴다고 한다. 생각보다 오래 전 일이다.
절연 구간은 안 그래도 열차의 동력이 끊어져서 차가 힘이 약한데 상· 하 구배 내지 꽈배기굴, 급커브처럼 선형도 덩달아 불량한 경우가 많아서 더욱 아슬아슬하다.

평면교차가 없어지고 절연 구간이 없어지는 것처럼 뭔가 시설이 열악하고 취약하던 것이 개선된 것은 무엇이건 좋은 일임이 틀림없다.

8. 굴림체의 압박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이쿠, 서울 지하철 2호선 승강장에 전광판 화면의 타이포그래피가 언제 저렇게 시각 테러에 가까운 퀄리티로 바뀌었나? 컴퓨터에 악성 코드가 걸려서 글꼴 파일이 삭제되기라도 했는지?
코레일 광역전철역의 전광판 화면에 굴림체가 쓰인 건 옛날에 본 적이 있다만, 서울 지하철까지 저러는 건 처음이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니라 2호선이 저러니, 마치 옛날에 2호선에만 최후까지 남아 있던(한 2009~10년까지) 구형 플랩식 전광판의 시즌 2를 보는 느낌이다.

9. 서울 메트로와 도철

비록 서울이 세계구급 대도시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도시에 지하철 회사가 사기업도 아닌 공기업이 둘씩 있는 건 보기 드문 형태였다. 그런데 두 회사가 따로 있는 것과 하나로 합병한 것의 차이를 일반 승객이 실감할 수 있는 타이밍은 바로.. 지하철 회사 근로자들이 파업을 할 때이다.
예전에는 서울 메트로에서만 파업을 하면 그래도 5~8호선은 멀쩡한 편이고, 반대로 도철에서 파업을 한 것은 1~4호선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서울 지하철 파업은 곧장 9호선을 제외한 서울 지하철 전체의 막장화로 직결되게 되었다.

사실, 서울시에서도 그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비효율을 감수하고라도 1990년대에 2기 지하철 관할용으로 도철이라는 회사를 따로 설립한 것이었다. 지금 인천의 경우 '인천 교통 공사'가 인천의 지하철로도 모자라서 시내버스까지 몽땅 관할하는 기관이 된 것과 굉장히 대조적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2/05 19:37 2020/02/05 19:37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714

한국의 노면전차

먼 옛날에 한반도에는 장거리 여행용 일반열차 명목으로 증기 기관차가 1899년 이래로 1967년 8월 말까지 다녔다. 그리고 도시철도 정도에 대응하는 궤도 교통수단으로서 노면전차(트램)라는 것도 아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서 역사에 한 자취를 남겼다.

한반도에 노면전차가 존재했던 도시는 서울, 부산, 평양 딱 세 곳이었다. 서울(경성) 전차의 경우 제일 일찍, 경인선 철도와 같은 해(1899)에 개통했으며 심지어 경인선의 개통보다도 몇 달 더 일렀다. 그 뒤 일제 시대가 돼서야 부산(1915)과 평양(1923)도 뒤를 이었다.
참고로, 한반도 역사상 시내버스가 최초로 운행된 곳은 서울도 부산도 아닌 대구이다(1912).

지금이야 노면전차가 없어진 지 무려 반세기가 넘었지만, 그래도 있었던 기간도 거의 6, 70년에 달한다. 그래서 차량들의 외형이 시종일관 동일한 건 아니었다.
구한말에 맨 처음 등장했을 때는 아래와 같이 표면에 태극 무늬(?)가 있고 옆이 개방된 형태의 차량이 다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다가 20세기 중반쯤부터 거주성이 더 강화된 형태로 바뀌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차는 증기 기관차보다야 훨씬 작고 가벼우며,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칙칙폭폭' 소리를 내는 포스도 없다. 하지만 그런 게 없이 보이지 않는 에너지을 받아서 스르르륵 앞으로 우아하고 조용하게 나아가는 게 조선 시대 사람들에게는 왕창 신기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다못해 고종 황제와 신하들이 "기차와 전차 중에 뭐가 더 빠를까?" / "전차이지 않겠습니까? 번개가 수증기보다 더 빠를 테니까요"처럼.. 논리 전개가 좀 이상해 보이는 대화도 나눴다고 그런다.

이 노면전차는 궤도 위만 달리지만 그렇다고 열차처럼 여러 차량을 주렁주렁 꿴 형태는 아니었다. 그냥 버스처럼 1량 1편성으로 다녔다.
기술 규격은 직류 600V 전기에다 1067mm 협궤였다. 오늘날은 경전철도 철차륜은 1435mm 표준궤이고 직류 750V이니, 저 때의 노면전차는 지금의 경전철보다 더 소규모였던 셈이다.
심지어 부산 전차는 처음에는 아예 762mm 협궤로 시작했다가(수인선!) 일제 시대 중반쯤에 1067로 개궤됐다고 한다. 그래 봤자 여전히 협궤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옛날에는 장거리 철도들이야 다 단선이었다. 하지만 노면전차는 개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야금야금 복선화가 진행됐다. 차량이 일반열차보다 훨씬 더 자주 다니는데 시내 한복판에서 교행하고 대피하는 건 굉장히 피곤한 일일 테니까..
경성의 노면전차를 복선화하는 과정에서 서대문(돈의문)이 헐리기도 했다.

또한 오늘날의 경전철들은 다 제3궤조 집전식인 반면, 옛날 노면전차는 덩치는 더 작은 주제에 전차선이 공중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서 도시 미관에 안 좋았다.
집전 장치도 오늘날 같은 팬터그래프가 아니라 뷔겔 같은 더 원시적인 방식이었다.

특별히 서울에 있었던 전차는..

  • 영등포가 서울로 편입되면서 노면전차 역시 한강을 건너 노량진과 영등포까지 갔다. 별도의 철교가 따로 부설된 건 아니고, 한강 인도교에 전차 선로가 같이 지나갔던 모양이다.
  • 일제 시대엔 경성전기 vs 경성궤도로 운영 주체가 이원화돼 있었다. 마치 서울 메트로 vs 도철처럼 말이다. 경성궤도는 통상적인 서울 구시가지를 벗어나 동대문에서 화양, 뚝섬, 광장동 쪽을 운행했다.

다음은 서울 전차의 노선도이다. '경성궤도' 노선은 동대문에서 출발해서 왕십리를 거쳐 뚝섬유원지 내지 광장동(지선) 쪽으로 가는데, 얘들 노선은 노선도에서 빠져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옛날엔 이런 일도 있었다.
6· 25 사변이 터져서 사람들이 한창 피난 갔다가 나중에 서울을 수복하고 돌아와 보니.. 전차들이 다니는 선로 위의 전깃줄이 죄다 사라져 있었다고 한다.
이건 폭격을 맞아 파괴된 게 아니고, 북괴 공산군이 건드린 것도 아니고, 알고 보니 자국민의 소행이었다. 심지어 이 시설을 관리하는 공무원이 앞장서서 이 짓거리를 했다고 한다. 요즘으로 치면 맨홀 뚜껑을 고철로 팔아먹으려고 슬쩍한 것과 비슷하다.

노면전차는 시설 노후화와 쌓여 가는 적자, 그리고 갈수록 늘어나는 자동차로 인해 천덕꾸러기로 전락했으며, 결국 1968년에 완전히 폐지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공교롭게도 서울과 부산 모두 날짜는 달라도 연도는 동일하다.
또한, 그 전 1967년 8월엔 증기 기관차도 공식적으로 완전히 퇴역했다. 1899년에서 1967년에 이르기까지 노면전차와 증기 기관차는 어째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서 비슷한 시기에 최후를 맞이했다.

참고로 서울 말고 부산 전차는 지금 부산 지하철 1호선의 동북쪽 온천장-서대신 역까지의 구간과 거의 일치하는 선형이었다. 지형 특성상 저기가 서울로 치면 종로 같은 중요한 구간이었는가 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끝으로, 평양에서 과거에 운행되었던 전차에 대해서는 정보가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
남한에서는 서울과 부산의 전차를 복구해서 60년대까지 운행하기라도 했지만 북한의 경우, 전쟁 이후에 기존 전차는 운행이 그대로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북한에서는 1991년부터 '궤도전차'라는 이름으로 전차를 다시 만들어서 평양에서 운행 중이며, 이건 옛날 전차와는 연결고리가 없다.

사진을 보니 오늘날 운행되는 평양 전차는 한 편성에 2량 정도 연결되어서 굴절버스처럼 생긴 것도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9/05/07 19:32 2019/05/07 19:32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616

1.
지난 1월 중순의 어느 날, 본인은 인터넷 SNS를 통해 알게 된 어느 지인을 오프라인에서 만나러 그 지인이 다니는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른바 '제네바 개혁 교회'라고 장로교 계열인데, 기성 주류 교단보다 더 근본주의랄까, 옛날 스타일을 추구하고 교리에 따른 분리를 더 엄격하게 시행하는 곳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본인은 요즘 같은 세상에 근본주의라고 하면 일부 침례교 교파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저런 곳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니 신기했다.
본인이 다니는 교회도 비성경적인 은사주의를 거부하고 종교 일치 운동 거부하고 동성애 합법화 반대하는 등.. 대세를 따르지 않고 근본주의를 따르는 면모가 있다. 하지만 그걸 '남자는 무조건 정장, 여자는 무조건 긴 치마' 식으로 율법적으로 강요하지는 않는다.

특히 신기한 건 '칼빈주의'였다.
본인은 루터, 칼빈이라든가 예정론이라는 학설을 태어나서 처음 들은 곳이 교회가 아니었다. 그 대신, 아동용 세계사 만화와 중학교(세계사, 윤리)에서 최초로 접했다. 본인은 어린 시절에 장로교가 아니라 감리교 계열에 속하는 성결교를 다녀서 그런 사람을 교회에서 못 들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루터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작사뿐만 아니라 작곡까지 했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칼빈은 이에 질세라 시편 찬송가라는 걸 만들었나 보다. 전 악보를 통틀어서 4분음표와 2분음표밖에 없고 뭔가 종잡을 수 없는 조와 음계로 시편을 1편부터 150편까지 몽땅 노래 형태로 만들었다고 한다. (글쎄, 시편에는 저주도 쓰여 있는데 그런 가사까지 곡으로 옮겼는지는 모르겠다.)

또한, 장로교 내지 개혁 교회 쪽에서는 일명 TULIP이라고 요약되는 5대 강령을 가히 신앙의 핵심· 진수로 떠받들고 있었다. 성결교에 성결 중생 신유 재림(무순)이라는 4대 강령이 있는 것과 비교된다.
종교 개혁자들이 그 서슬 퍼런 교황과 맞장 뜨고 양심의 자유와 성경적 진리를 추구한 것, 엄격 진지 근엄하고 청빈 검소 고결하게 산 것은 분명 훌륭한 일이다. 성경을 독일어로 직접 번역한 루터야 말할 것도 없고, 칼빈도 제네바에서 올바른 성경이 안심하고 번역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놓은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다만, 인간이 자기 스스로 죄를 인지하고 예수님을 영접할 능력마저 상실했을 정도로 타락했다거나, 하나님이 답정너 선택하고 '예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거나, 선물을 받으려고 단순히 손을 뻗는 동작조차도 선물에 대한 값을 치르는 행위이고 자기 의라고 우기는 주장들은 좀 말장난 궤변처럼 들린다. 난 동의하지 않는다.

아무리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이 킹왕짱 절대적이라 해도.. 그 끔찍한 죄악이 인간의 자유 의지 책임으로 귀착되지 않는 한낱 역할극에 불과한 건 절대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씁 어쩔 수 없지" 그냥 허락하시는 뜻을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
칼빈 신학이 실제로 무어라 가르치는지를 내가 직접 배운 게 아니니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주위로부터 들리는 말에 따르면 칼빈주의 내지 예정론이 그런 걸 가르치는 것으로 보인다.

칼빈· 루터와 달리,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요한) 웨슬리는 세계사· 윤리 시간에 다뤄질 정도로 유명하지는 않다. 이쪽은 반대로 인간의 자유 의지를 강조하면서 칼빈주의 교리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존 웨슬리의 동생인 찰스 웨슬리는 O Horrible Decree라는 제목으로 TULIP 강령을 신랄하게 디스하고 극딜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

뭐 그것까지는 좋은데.. 거기는 반대로 반쯤 행위로 구원 유지, 구원의 상실을 가르치는 것으로 본인은 들었다.
비교하는 게 무의미할지 모르지만, 본인은 그게 어찌 보면 칼빈주의보다 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기본 중의 기본인 구원관이 정확하게 정립돼 있지 못하니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식으로 아주 이상한 낭설도 교회에 잔뜩 퍼진 게 아닐까?

이런 식으로.. 본인은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에 모두 진리도 있고 오류도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 개혁자들도 다 교리적으로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이고, 신학 얘기가 너무 길어졌다만.. 뭔가 다른 교파에 속한 교회, 그것도 주류 대형 교회가 아니라 마이너한 성향의 교회에 가 보는 건 꽤 신기한 경험이었다.

2.
그나저나 이 교회는 송파구 문정동에 소재해 있고, 교회 근처에는 길 옆으로 문정 근린 공원이라는 도심 속 녹지가 쭉 들어서 있었다.
이 정도로 작지 않은 폭의 공간에 건물 대신 풀밭과 벤치, 주차장이 1km가 넘게 이어지는 건.. 평범한 계획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지형이 아니다.
풍납동의 풍납토성 구간이야 유적 발굴 명목으로 개발이 봉인되고 풀밭과 언덕이 길게 이어져 있긴 하지만, 문정 공원은 그런 케이스도 아닌 것 같다.

이건 90% 이상의 확률로 폐선 철도 부지일 거라고 감이 어렴풋이 왔다. 내 안에서 살아서 역사하는 철령께서 내게 계시를 주셨다.
실제로 홍대 일대에는 당인리선 폐선 부지를 따라 어중간한 주차 공간과 건물, 골목이 길게 나 있다. 신촌에도 골목길이 과거 경성 순환 철도의 선형대로 형성된 것을 볼 수 있다. 철길이 없어지더라도 철길을 따라 형성된 건물들의 선형이 쉽게 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의 구시가지가 아니라 동남부 외곽에 웬 철도가 있었다가 폐선된 적은 없다. 저 공간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저건 근처의 외곽순환 고속도로와 비슷한 선형으로 수도권 남부 순환 철도를 미래에 '만들려고' 국가에서 1980년대에 확보해 놨던 부지였다. 단선 전철로 여객보다는 화물 수송을 염두에 뒀으며, 의왕에 있는 컨테이너 화물 기지에 이르기까지 선로를 이을 계획이었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목적지는 경부선 의왕(위의 그림에서는 '부곡')에서 분기하는 오봉 화물 기지에서 시작해서 무려 중앙선 도농까지였다.
북쪽의 교외선(능곡-의정부)과 연결하면 진짜로 그럴싸한 순환선 철도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계획은 여러 난항에 부딪혔다. 서울 외곽에 자리잡은 군부대 등 보안 시설들과 마찰이 있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여기 일대에 분당선과 서울 지하철 8호선 같은 여객 철도가 지하로 건설하려는 대체 계획이 잡히면서.. 지상 화물 철도의 건설 계획은 1993년에 완전히 나가리 났다.
그 뒤로 이 부지는 미개발 상태로 오랫동안 놀면서 주차장 정도로나 쓰였다. 그러다가 2000년대 이후에 여기가 문정 근린 공원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렇게만 알면 끝인데.. 본인은 그 공원의 일부 구간에 만들다가 말았던 철길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정보를 뒤늦게 입수했다. 그래서 즉시 차를 끌고 달려가서 공원을 또 답사했다. 그리고 거기가 바로 공교롭게도 딱 제네바 개혁 교회 근처였다. 2km에 달하는 전체 공원 구간을 다 돌아다녀 봤는데, 레일이 있는 곳은 유일하게 저기밖에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옷~~!!!
남부 순환 철도라는 게 이게 무슨 구 수인선 같은 역사 유물도 아닌데, 철길을 공원에다 일부러 깔았을 리는 없을 테고.. 저건 그 시절에 만들다가 말았던 폐선 흔적이 틀림없을 것이다.
간격은 표준궤가 맞는데 궤조가 유난히도 작고 가녀린 것 같다. 공원의 그 어느 표지판이나 구조물에도 여기가 철도 노반이었음을 암시하는 문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상에, 철도 불모지인 서울의 동남부에서 고가나 지하가 아닌 평지에 깔린 레일을 이렇게 보게 되다니.. 완전 좋다. ^_^ 뭐, 철길의 길이는 100미터가 채 될까 말까이니 너무 많은 걸 바라지는 않는 게 좋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도 있는 게 어디냐.
계획 당시에 땅이 얼마나 놀고 있었으면 평지에다가 대놓고 철길을 놓을 생각을 했을까? 외곽순환 고속도로와는 대조적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특이하게도 중간에 요렇게 교차로를 만들어 놓은 곳이 있었다.

서울 서부 외곽의 오류동에는.. 경인선에서 분기하는 경기화학선의 폐선 잔해가 건물 뒤로 지나가는 게 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동부 외곽에는 지금까지 어렴풋이 말로만 들었던 남부 순환 철도의 흔적이 철덕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심지어 강동구에 있는 한영 중· 고등학교와 인근의 큰길인 동남로 사이에 있는 큰 공간도.. 그 시절에 확보해 뒀던 철길 노반의 흔적이다. (☞ 관련 링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상이다. 모처럼 철도와 기독교· 성경을 융합한 글이 하나 완성됐다. ^__^
보라매 공원은 원래 공군 사관학교의 부지였고, 여의도 공원은 원래 여의도 공항 활주로 내지 여의도 광장의 부지였다.
또한, 강북 구도심에는 용산선 철길이 있어서 거의 폐선 상태였는데, 2010년대에 싹 걷히고 지하의 경의선· 공항 철도로 형태가 바뀌었다. 그리고 거기도 지상 구간은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이런 식으로 대도시의 도심에 놓여 있는 공원은 제각기 사연과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제네바 개혁 교회는 이렇게 만들려다가 만 철도 폐선 부지를 활용한 공원의 근처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성도들이 쉬는 시간에 밖에서 교제하기 좋겠다.
본인이 다니는 교회의 근처에는 큰 도로의 중앙에 무슨 계기로 조성된 '거리 공원'이란 게 있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19/01/25 08:32 2019/01/25 08:32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579

옛날 철도 관련 사진 몇 장

1. 로마자 표기

지금이야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 개정된 지 어언 20년이 돼 가기 때문에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은 과거의 유물로 전락해 있다.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은 소리 표기는 정확할지 모르지만 ㅓ, ㅜ를 표기할 때 컴퓨터 키보드에 없는 반달점 붙은 글자를 써야 하고, ㅋㅌㅍㅎ에 ' 를 덧붙이는 등 실용적으로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런데 국내에서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은 1980, 90년대에만 도입되어 쓰였기 때문에 생각보다 역사가 길지 않다.
1970년대 같은 더 옛날로 가면 오히려 그때는 지금처럼 ㅓ를 EO를 써서 표기하고 있었다. 현재의 로마자 표기법은 어찌 보면 더 먼 과거로 복귀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 증거로.. 서울 지하철 1호선 공식 기록 영상에 등재돼 있는 '수원' 역명의 로마자는 SU WEON이라고 적혀 있다. '서울역앞'도 SEOUL YEOG-AP이고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서울 지하철 2호선도 전구간 개통하기 전, 신설동부터 강남 구간의 부분 개통만 했을 때는 로마자 표기법이 보다시피 매큔-라이샤워가 아니었다.
'서초'도 화면상으로는 짤렸지만 Se...로 시작하는 걸 볼 수 있다(Seocho).

1983~84년 사이에 로마자 표기법이 개정되면서 1984년, 2호선이 전구간 개통할 때쯤부터 매큔-라이샤워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기존 안내판들은 다 새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1980년대에 2호선에서 구 로마자 표기법이 잠깐 쓰였던 시절은 우주왕복선으로 치면.. 액체 연료 탱크에도 하얀 도색이 칠해져 있던 초창기 시절을 보는 것 같다.

또한, 저 "교대 - Gyodae"라는 압박스러운 표기에서 유추할 수 있듯, 2호선은 개통 당시에 '이대'역도 Idae...라고 표기했던 적이 있다. 그러다 얼마 못 가, 로마자 표기는 각각 'SNU of education', 'Ewha womans univ..'처럼 긴 정식 명칭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지하철 역명판에 지금처럼 한자까지 병기된 것은 훗날, 2000년의 현행 로마자 표기법 개정과 비슷하다.

이 글을 쓰면서 뒤늦게 알게 된 건데.. 전국의 다른 모든 **여대들은 ** women's university라고 표기하고 있고 그게 직관적인 반면, 역사가 가장 오래된 이화여대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공식 영문 표기가 womans university이다. 믿어지지 않으면 직접 확인해 보시길.. 어퍼스트로피도 생략하고 없는 단어를 새로 만들어 냈다.

다음은 교대와 아주 가까이 있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역삼 역의 개통 당시 승강장 모습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역시 로마자 표기법은 매큔-라이샤워 이전의 초창기이고 지금과 동일하다. 그래도 한자 표기는 없다.
인상적인 것은 에스컬레이터 픽토그램이 큼직하게 그려져 있는 모습이다. 국내에서 지하철 역사상 최초로 내부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 역이 저기라고 한다.
스크린도어가 최초로 설치된 역은 기준과 조건에 따라 인천, 김포공항, 신길 등으로 나뉜다만... 에스컬레이터 1호는 저기이다.

옛날에는 자동차에 자동 변속기가 고가 사치품이었던 관계로 이 옵션이 장착된 자동차는 겉면에 automatic이라고 써 붙여서 큼직하게 광고를 했었다.
그것처럼 옛날에는 에스컬레이터도 있다는 것도 자랑하고 광고하고 유세를 떨 만한 사유였던 듯하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은 노선의 구분을 위해 지금과 같은 노선색 체계를 정립했으며(2호선은 초록색!), 그리고 일명 '지하철체'라고 불리는 역명판 전용 서체도 정립했다. 1호선만 있던 박통 시절에는 그런 게 아직 없었다.

그러다가 1984년, 2호선이 순환선 형태로 완전히 개통할 즈음에는 매큔-라이샤워 로마자 표기법이 도입되었으며, 65세 이상 노인의 무임승차도 딱 이때부터 시행되었다. 2호선의 완전 개통을 알리는 다음 대한뉴스 동영상을 보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호선의 성수 지선에 위치한 용답 역이 원래 이름은 기지였다는 사실 자체는 본인도 알고 있었지만 사진으로나마 당시 흔적을 접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Kiji (vs Idae...) 대신에 Car Depot (vs Ewha WU..) 인 것, 역번호가 본선이 아닌 지선 형태로 매겨진 것을 감안하면, 저건 개통 초창기가 아니며 2호선 전체 완공 후 좀 시간이 흐른 뒤의 모습이다. 실제로 저 역은 1980년대까지는 계속해서 이름이 '기지'이다가 90년대에 와서야 용답이라고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도 저기는 서울에서 제일 먼저 생긴 지하철 차량 기지이다 보니 지금으로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서울 시내· 중심부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잡긴 했다.

2. 철교의 정체

지난 여름에 용산 역을 가 보니, 내부 광장에는 "필름 속에 담긴 한국 철도 -- 철도를 통해서 본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희망" (주최 주관 코레일, 후원 국토교통부)라는 제목으로 자그마한 옛날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는 모르겠다.

경인선을 비롯해 일제 시대 옛날 철도의 모습, 해방자호 이런 건 유명한 흑백 사진이다.
나중에는 김 대중 시절에 경의선을 연결해서 도라산 역을 개통하던 것, 그리고 2007년 노 무현 때의 동해선 연결 남북 시범 운행 사진도 걸려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6· 25 때의 모습이라면서 바로 문제의 저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3번은 "대동강 철교"라고 소개돼 있지만 글자가 패치된 흔적이 보인다.
안 봐도 비디오다. 저건 "한강 철교"라고 자료를 잘못 만들었다가 오류를 지적받고는 허겁지겁 수정한 것이다.

저 사진은 1950년 12월 초, 평양에서 북한 공산 괴뢰군의 대동강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서 유엔군이 다리를 폭격해서 저렇게 부숴 놓은 것이다. 그때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해 우리가 눈물을 머금고 후퇴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머지않아 다리를 망가뜨려 놓을 테니까 피난 가려면 빨리 가라고 사전에 시민들에게 경고를 하긴 했다.
하지만 그때 교통 통신이 지금처럼 좋지가 못했으니, 다리가 파괴되고 열차 운행이 중단된 뒤에야 소식을 뒤늦게 접한 사람들은 저거라도 붙잡아서 어떻게든 강 건너 피난 가려고 북적거렸다.
한강 인도교 내지 철교를 배경으로 피난민들의 영상 기록이 남겨진 건 내가 알기로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8/11/19 19:34 2018/11/19 19:34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556

재래식 새마을호 객차의 퇴역 외

1. 새마을호 객차의 완전 퇴역

지난 2018년 4월 30일을 끝으로, 재래식 새마을호 열차가 최후의 유일한 운행 노선이던 장항선에서도 운행을 마치고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사실, 5년 전 2013년 1월 4일엔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동차가 완전히 퇴역했으며, 그때 이후로 새마을호는 경부선 같은 간선에서 야금야금 퇴출되고 ITX-청춘으로 대체되어 왔다. 그러니 이번 객차형 새마을호의 은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장항선은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어중간한 길이에다 비전철 단선이라는 특성 덕분에, 경부선 같은 1루에서 밀려난 새마을호의 한직 역할을 해 왔다. 모든 객차가 특실 좌석인 구특전 동차형 새마을호도 장항선에서 최후까지 남아 있었다.

그럼 장항선에 앞으로 무궁화호밖에 안 남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ITX-새마을 도색을 한 새마을호가 뒤를 잇는다. 그런데 장항선은 전철화가 돼 있지 않으니, 우리가 아는 ITX-새마을 전동차가 다니지는 않는다.
전동차가 아니라 디젤 기관차가 견인하고, 과거에 무궁화호였던 일명 '디자인리미트 신형 객차'가 새마을호 객차로 승격되고 ITX-새마을 스타일로 도색되어 다니게 된다.

즉, 일반열차 중에 무궁화호보다 상위인 새마을호라는 차급 자체는 유지된다.
그러나 과거처럼 동그란 창문에다가 64석 간격에 종아리 받침대까지 있던 그 새마을호 열차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ITX-새마을은 여전히 무궁화호와 동일한 72석 간격이다.

옛날에는 같은 객차가 새마을호에서 무궁화호로 강등되면 강등됐지 격상되는 일은 없다시피했는데.. 10여 년 전에 통일호 동차가 RDC 무궁화호로 승격됐던 것처럼 이번에는 무궁화호 객차가 ITX-새마을로 승격되었다. ITX-새마을은 이제 전동차 이름이 아니라 더 추상적인 차급의 명칭으로 등극하는 셈이다.

2. 기존의 열차 등급 체계가 모호해짐

먼 옛날에 열차가 매우 희귀하던 시절에는 마치 선박처럼 각각의 열차에다가 서로 다른 이름이 지어지고 끝에 '호'라는 접미사까지 추가되곤 했다. 1950년대에는 여객기에도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창랑호, 만송호, 우남호 같은 이름이 붙었다는 걸 생각해 보시라.

그 뒤 열차의 운행 횟수가 증가하면서 각각의 열차에다가 서로 다른 이름을 짓는 관행은 없어졌으며, 그건 그냥 차량의 번호로 대체됐다. 그래도 증기 기관차 시절에는 각각의 기관차 종류별로 모가, 미카, 파시, 혀기, 마터 등의 고유한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그건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다. 디젤 이후부터는 종류(천· 백)와 개별 차량(십· 일)을 모두 4자리 번호만으로 식별하게 됐기 때문이다.

한때는 대등한 등급의 열차도 경부선을 다니는 놈과 호남선을 다니는 놈이 다를 정도로 온갖 명칭들이 난립하고 있었지만, 이것들을 모두 정리하여 새마을-무궁화-통일-비둘기 4종류의 명칭이 노선과 차량 종류를 불문하고 오로지 차급만을 나타내는 깔끔한 체계가 1984년 1월부터 정착했다.

그게 20년 가까이 잘 유지되고 있었는데 2000년 11월엔 정선선에서 비둘기호가 마지막 운행을 마치고 사라졌다.
2004년 4월부터는 KTX라는 더 높은 등급이 등장하고, 객차형 통일호가 경춘선· 중앙선 등을 마지막으로 운행하다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2010년경부터는 누리로, ITX-청춘, ITX-새마을 같은 새로운 전동차들이 자꾸 등장했다.

  • 누리로는 기존 무궁화호를 전혀 건드리지 않으면서 무궁화호와 대등한 차급을 표방하는 반면,
  • 경춘선에만 2층 열차 형태로 다니는 ITX-청춘은 새마을호보다 높고 KTX보다 낮은 새로운 차급이다.
  • 한편, ITX-새마을은 기존 새마을호를 대등하게 대체· 계승하는 차급이다.

즉, 이들의 위상은 모두 제각각 다르다.

그리고 2018년에는 재래식 새마을호가 최후의 노선이던 장항선에서 종말을 고하게 되었으며, 그 다음으로는 머지않아 경원선 통근열차도 전철에 밀려 사라질 예정이다.
그러니 재래식 차급의 관점에서 보면 새마을-무궁화-통일-비둘기 중에서 남는 차급은 무궁화호밖에 없다. 무궁화호는 고속철이나 여타 새로운 차급으로 재편성되지 않은 나머지 기관차-객차형 일반열차들을 싸잡아 일컫는 명칭이 됐다. 기존 차급 체계가 굉장히 많이 문란해진 셈인데 교통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3. 전철 노선도의 배색 체계가 모호해짐

1990년대까지만 해도 수도권 전철 노선도에는 서울 지하철 1호선이 서울 역-청량리 구간만 빨강이고 나머지 철도청 광역전철들은 '국철'이라는 이름으로 몽땅 회색이었다.

그러다가 2000년부터 노선도의 디자인이 확 바뀌었다. 서울 지하철과 직통 운행하는 국철들은 애초부터 그 지하철의 일부 구간인 듯이 동일한 색깔과 노선명으로 구분 없이 표기되게 됐다. 그리고 1호선은 회색도 빨강도 아닌 군청색/남색이라는 새로운 색으로 전구간이(종로선, 경부선, 경인선, 경원선) 싹 통일되었다.

이건 열차의 운행 계통을 승객에게 직관적으로 이해시킨다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바람직한 조치였다. 하지만 그 당시 서울 지하철과 직결하는 구간이 없이 전적으로 혼자 노는 국철이던 '분당선'만은 번호 없이 노선명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리고 용산-성북 계열은 여전히 '국철'이라는 이름으로 뭔가 1호선의 어정쩡한 지선처럼 여겨지게 됐다.

그 뒤 지금은.. 코레일이 공사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공항 철도와 신분당선처럼 운영 주체가 도시의 지하철이 아니면서도 다소 이질적인 철도가 등장했다. 그리고 서울 지하철과 직결하지 않는 광역전철도 경춘선, 경의선, 경강선, 그리고 앞으로는 소사-원시(일명 서해선)에 이르기까지 등 더욱 많이 생기게 됐다. 이젠 광역전철들도 노선도에서 색깔 분배를 어찌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게 됐다.

그 와중에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경전철이다. 경전철은 노선도에서 선(edge)은 모두 회색으로 그리고, 역명(vertex)을 고유한 노선색으로 그리는 것으로 디자인 기준이 정해졌다고 한다. 우이 경전철은 종점이 북한산이어서 그런지 초록색 계열이다. 다만, 이 방식대로라면 환승역은 무슨 색으로 칠할지 좀 애매해질 것 같다.
과거에 국철을 표시하던 색깔이 이제는 경전철을 나타나는 대표색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꽤 흥미롭다.

4. 철도 차량의 특징

철도 차량은 자동차와 비교했을 때, 고무 타이어 대신 쇠바퀴가 달렸고 레일 위를 달린다는 원초적인 차이점 말고도 다음과 같은 큰 차이가 있다.

(1) 좌석에 안전벨트가 없다. 자동차는 입석형 시내버스 정도나 안전벨트가 없지만, 열차는 KTX조차도 안전벨트가 없고 자리 주변이 제일 깨끗하다. 철도는 자동차와 같은 급의 정면충돌 교통사고와 급정거, 전복 상황을 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2) 위와 비슷한 이유로 인해, 객실의 유리창이 자동차와 동급의 안전유리 재질이 아니다. 그래서 돌 같은 거 맞았을 때 생각보다 잘 깨져서 파편 때문에 인명 사고가 종종 난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비상 상황에서 유리창을 깨고 차량을 탈출해야 할 때, 자동차 창문처럼 너무 안 깨져서 "창문 어디부터 두들겨야 잘 깨지고.." 이런 걸 고민할 필요도 없다.

(3) 그리고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인데, 철도 차량은 차축에 차동 기어가 일단 일반적으로는 없다. 철도는 자동차와 같은 급의 급커브 주행을 염두에 두지 않으며, 안 그래도 바퀴와 레일의 마찰이 작은데 접지력을 약화시킬 여지가 있는 장치와도 구조상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도 차량 차축을 보면 양 바퀴 사이에 아령처럼 길다란 작대기만 끼워져 있지, 자동차 차축처럼 중앙에 동그란 공처럼 불룩 튀어나온 부위가 없다.
그 대신, 얘는 바퀴 단면이 약간 경사져 있다. 레일에 닿는 바퀴의 지름이 커브의 안쪽과 바깥쪽이 서로 차이가 나게 하는 방식으로 커브를 극복한다. 종이컵을 옆으로 눕혀서 데구르르 굴려 보면 위쪽과 아래쪽의 지름의 차이로 인해 커브를 틀며 돌지 않던가? 그걸 생각하면 된다.

물론 철도 차량에서 이를 구현하려면 레일과 바퀴 모두 커브의 곡률까지 고려해서 굉장히 정교하게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퀴가 종이컵처럼 두께가 무한한 게 아닌데, 이 방식만으로는 지하철처럼 반지름 100~200m대밖에 안 되는 급커브를 부드럽게 도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때는 주행 중에 커브 안쪽 바퀴가 헛돌면서 끼릭끼릭 쇳소리가 나는 걸 피할 수 없다.

5. 철도의 날 날짜가 바뀌었나?

딱 위의 4번까지만 글을 쓰고 끝내려 했는데 본인은 최근에 철도와 관련하여 웬 생뚱맞고 해괴망측한 소식을 들었다.
건국 이래로 70년 가까이 시종일관 9월 18일이던 우리나라의 철도의 날 기념일이... 올해(2018)부터 별안간 6월 28일로 바뀌었다고 한다.

현행 철도의 날은 1899년 9월 18일에 한반도에서 최초로 개통한 철도인 경인선의 개통일을 기준으로 제정돼 있다.
일본이나 미국 같은 여러 나라들도 철도의 날은 그 나라의 최초의 일반열차 철도 내지(한국으로 치면 경인선), 아주 중요한 장거리 간선 철도(한국으로 치면 경부선)가 개통한 날 당일, 또는 그 날짜 근처로 제정돼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의 철도의 날은 아주 합리적인 날짜이다. 경인선은 오늘날까지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동차만으로 2복선 완급 분리 운행을 하는 트래픽 킹왕짱인 철도이다. 경인선이 당장 없어져 버리면 그쪽 사람들 출퇴근길이 어떻게 바뀔까?

그런데 그 날짜가 문헌상 잘못됐다거나, 경인선이 완전히 폐선되어서 사람들 기억에서 싹 잊혀졌다거나, 사실은 경인선보다 훨씬 더 중요한 철도가 더 옛날에 개통된 게 있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일제 잔재 청산한다는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구한말에 도대체 무슨 일을 했고 무슨 존재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듣도 보도 못한 대한제국 철도국이 1894년 6월 28일에 창설됐대서 저 날로 전격 변경한댄다. 야 이..

내가 옛날에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까지는 개인적으로 찬성하는 소신이었고 그건 지금도 변함 없지만.. 저건 정말 너무 어거지다. 조선총독부 청사도 건물 자체보다는 그게 북악산 정면을 딱 가리는 위치가 미관에 너무 좋지 않아서 철거하는 걸 말리지 않겠다 정도이다. 무슨 일제 쇠말뚝 마냥 민족 정기, 일제 잔재 청산..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말이다.

젠장, 별 게 다 일제 잔재래. 경인선 철길을 걷어내든가, 아니면 서울역 구 역사나 철도 좌측통행도 다 일제 잔재 적폐니까 다 때려부숴 보라고, 이 미친놈들..

일자리 날아가고 경제 운지하고 있는 동안 맹 쓸데없는 것만 자꾸 바꾼다니까.. 괜히 여권 디자인이나 바꾸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근처에 있는 국군의 날은 일제하고는 정말 1도 관계 없는 날이다. 하지만 그건 저놈들이 골수 종북좌빨 성향이니까 38선을 넘은 날이 고깝고 불편해서 못 바꿔 안달인 것이다. 그러니 임팩트가 훨~씬 덜한 독립군이니 광복군이니 뭐라도 갖다붙이려고 수작이지.

쟤들은 진짜로 일제 잔재 청산이 목적이 아니라 그냥 대한민국 정체성의 부정과 말소, 역사 왜곡이 목적인 아주 사악하고 나쁜놈들이다. 아유 또 괜히 성질 나네..

Posted by 사무엘

2018/05/20 08:39 2018/05/20 08:39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491

« Previous : 1 : 2 : 3 : 4 : 5 : ... 6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21/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ite Stats

Total hits:
1652266
Today:
105
Yesterday:
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