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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식 새마을호 객차의 퇴역 외

1. 새마을호 객차의 완전 퇴역

지난 2018년 4월 30일을 끝으로, 재래식 새마을호 열차가 최후의 유일한 운행 노선이던 장항선에서도 운행을 마치고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사실, 5년 전 2013년 1월 4일엔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동차가 완전히 퇴역했으며, 그때 이후로 새마을호는 경부선 같은 간선에서 야금야금 퇴출되고 ITX-청춘으로 대체되어 왔다. 그러니 이번 객차형 새마을호의 은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장항선은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어중간한 길이에다 비전철 단선이라는 특성 덕분에, 경부선 같은 1루에서 밀려난 새마을호의 한직 역할을 해 왔다. 모든 객차가 특실 좌석인 구특전 동차형 새마을호도 장항선에서 최후까지 남아 있었다.

그럼 장항선에 앞으로 무궁화호밖에 안 남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ITX-새마을 도색을 한 새마을호가 뒤를 잇는다. 그런데 장항선은 전철화가 돼 있지 않으니, 우리가 아는 ITX-새마을 전동차가 다니지는 않는다.
전동차가 아니라 디젤 기관차가 견인하고, 과거에 무궁화호였던 일명 '디자인리미트 신형 객차'가 새마을호 객차로 승격되고 ITX-새마을 스타일로 도색되어 다니게 된다.

즉, 일반열차 중에 무궁화호보다 상위인 새마을호라는 차급 자체는 유지된다.
그러나 과거처럼 동그란 창문에다가 64석 간격에 종아리 받침대까지 있던 그 새마을호 열차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ITX-새마을은 여전히 무궁화호와 동일한 72석 간격이다.

옛날에는 같은 객차가 새마을호에서 무궁화호로 강등되면 강등됐지 격상되는 일은 없다시피했는데.. 10여 년 전에 통일호 동차가 RDC 무궁화호로 승격됐던 것처럼 이번에는 무궁화호 객차가 ITX-새마을로 승격되었다. ITX-새마을은 이제 전동차 이름이 아니라 더 추상적인 차급의 명칭으로 등극하는 셈이다.

2. 기존의 열차 등급 체계가 모호해짐

먼 옛날에 열차가 매우 희귀하던 시절에는 마치 선박처럼 각각의 열차에다가 서로 다른 이름이 지어지고 끝에 '호'라는 접미사까지 추가되곤 했다. 1950년대에는 여객기에도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창랑호, 만송호, 우남호 같은 이름이 붙었다는 걸 생각해 보시라.

그 뒤 열차의 운행 횟수가 증가하면서 각각의 열차에다가 서로 다른 이름을 짓는 관행은 없어졌으며, 그건 그냥 차량의 번호로 대체됐다. 그래도 증기 기관차 시절에는 각각의 기관차 종류별로 모가, 미카, 파시, 혀기, 마터 등의 고유한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그건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다. 디젤 이후부터는 종류(천· 백)와 개별 차량(십· 일)을 모두 4자리 번호만으로 식별하게 됐기 때문이다.

한때는 대등한 등급의 열차도 경부선을 다니는 놈과 호남선을 다니는 놈이 다를 정도로 온갖 명칭들이 난립하고 있었지만, 이것들을 모두 정리하여 새마을-무궁화-통일-비둘기 4종류의 명칭이 노선과 차량 종류를 불문하고 오로지 차급만을 나타내는 깔끔한 체계가 1984년 1월부터 정착했다.

그게 20년 가까이 잘 유지되고 있었는데 2000년 11월엔 정선선에서 비둘기호가 마지막 운행을 마치고 사라졌다.
2004년 4월부터는 KTX라는 더 높은 등급이 등장하고, 객차형 통일호가 경춘선· 중앙선 등을 마지막으로 운행하다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2010년경부터는 누리로, ITX-청춘, ITX-새마을 같은 새로운 전동차들이 자꾸 등장했다.

  • 누리로는 기존 무궁화호를 전혀 건드리지 않으면서 무궁화호와 대등한 차급을 표방하는 반면,
  • 경춘선에만 2층 열차 형태로 다니는 ITX-청춘은 새마을호보다 높고 KTX보다 낮은 새로운 차급이다.
  • 한편, ITX-새마을은 기존 새마을호를 대등하게 대체· 계승하는 차급이다.

즉, 이들의 위상은 모두 제각각 다르다.

그리고 2018년에는 재래식 새마을호가 최후의 노선이던 장항선에서 종말을 고하게 되었으며, 그 다음으로는 머지않아 경원선 통근열차도 전철에 밀려 사라질 예정이다.
그러니 재래식 차급의 관점에서 보면 새마을-무궁화-통일-비둘기 중에서 남는 차급은 무궁화호밖에 없다. 무궁화호는 고속철이나 여타 새로운 차급으로 재편성되지 않은 나머지 기관차-객차형 일반열차들을 싸잡아 일컫는 명칭이 됐다. 기존 차급 체계가 굉장히 많이 문란해진 셈인데 교통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3. 전철 노선도의 배색 체계가 모호해짐

1990년대까지만 해도 수도권 전철 노선도에는 서울 지하철 1호선이 서울 역-청량리 구간만 빨강이고 나머지 철도청 광역전철들은 '국철'이라는 이름으로 몽땅 회색이었다.

그러다가 2000년부터 노선도의 디자인이 확 바뀌었다. 서울 지하철과 직통 운행하는 국철들은 애초부터 그 지하철의 일부 구간인 듯이 동일한 색깔과 노선명으로 구분 없이 표기되게 됐다. 그리고 1호선은 회색도 빨강도 아닌 군청색/남색이라는 새로운 색으로 전구간이(종로선, 경부선, 경인선, 경원선) 싹 통일되었다.

이건 열차의 운행 계통을 승객에게 직관적으로 이해시킨다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바람직한 조치였다. 하지만 그 당시 서울 지하철과 직결하는 구간이 없이 전적으로 혼자 노는 국철이던 '분당선'만은 번호 없이 노선명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리고 용산-성북 계열은 여전히 '국철'이라는 이름으로 뭔가 1호선의 어정쩡한 지선처럼 여겨지게 됐다.

그 뒤 지금은.. 코레일이 공사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공항 철도와 신분당선처럼 운영 주체가 도시의 지하철이 아니면서도 다소 이질적인 철도가 등장했다. 그리고 서울 지하철과 직결하지 않는 광역전철도 경춘선, 경의선, 경강선, 그리고 앞으로는 소사-원시(일명 서해선)에 이르기까지 등 더욱 많이 생기게 됐다. 이젠 광역전철들도 노선도에서 색깔 분배를 어찌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게 됐다.

그 와중에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경전철이다. 경전철은 노선도에서 선(edge)은 모두 회색으로 그리고, 역명(vertex)을 고유한 노선색으로 그리는 것으로 디자인 기준이 정해졌다고 한다. 우이 경전철은 종점이 북한산이어서 그런지 초록색 계열이다. 다만, 이 방식대로라면 환승역은 무슨 색으로 칠할지 좀 애매해질 것 같다.
과거에 국철을 표시하던 색깔이 이제는 경전철을 나타나는 대표색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꽤 흥미롭다.

4. 철도 차량의 특징

철도 차량은 자동차와 비교했을 때, 고무 타이어 대신 쇠바퀴가 달렸고 레일 위를 달린다는 원초적인 차이점 말고도 다음과 같은 큰 차이가 있다.

(1) 좌석에 안전벨트가 없다. 자동차는 입석형 시내버스 정도나 안전벨트가 없지만, 열차는 KTX조차도 안전벨트가 없고 자리 주변이 제일 깨끗하다. 철도는 자동차와 같은 급의 정면충돌 교통사고와 급정거, 전복 상황을 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2) 위와 비슷한 이유로 인해, 객실의 유리창이 자동차와 동급의 안전유리 재질이 아니다. 그래서 돌 같은 거 맞았을 때 생각보다 잘 깨져서 파편 때문에 인명 사고가 종종 난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비상 상황에서 유리창을 깨고 차량을 탈출해야 할 때, 자동차 창문처럼 너무 안 깨져서 "창문 어디부터 두들겨야 잘 깨지고.." 이런 걸 고민할 필요도 없다.

(3) 그리고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인데, 철도 차량은 차축에 차동 기어가 일단 일반적으로는 없다. 철도는 자동차와 같은 급의 급커브 주행을 염두에 두지 않으며, 안 그래도 바퀴와 레일의 마찰이 작은데 접지력을 약화시킬 여지가 있는 장치와도 구조상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도 차량 차축을 보면 양 바퀴 사이에 아령처럼 길다란 작대기만 끼워져 있지, 자동차 차축처럼 중앙에 동그란 공처럼 불룩 튀어나온 부위가 없다.
그 대신, 얘는 바퀴 단면이 약간 경사져 있다. 레일에 닿는 바퀴의 지름이 커브의 안쪽과 바깥쪽이 서로 차이가 나게 하는 방식으로 커브를 극복한다. 종이컵을 옆으로 눕혀서 데구르르 굴려 보면 위쪽과 아래쪽의 지름의 차이로 인해 커브를 틀며 돌지 않던가? 그걸 생각하면 된다.

물론 철도 차량에서 이를 구현하려면 레일과 바퀴 모두 커브의 곡률까지 고려해서 굉장히 정교하게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퀴가 종이컵처럼 두께가 무한한 게 아닌데, 이 방식만으로는 지하철처럼 반지름 100~200m대밖에 안 되는 급커브를 부드럽게 도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때는 주행 중에 커브 안쪽 바퀴가 헛돌면서 끼릭끼릭 쇳소리가 나는 걸 피할 수 없다.

5. 철도의 날 날짜가 바뀌었나?

딱 위의 4번까지만 글을 쓰고 끝내려 했는데 본인은 최근에 철도와 관련하여 웬 생뚱맞고 해괴망측한 소식을 들었다.
건국 이래로 70년 가까이 시종일관 9월 18일이던 우리나라의 철도의 날 기념일이... 올해(2018)부터 별안간 6월 28일로 바뀌었다고 한다.

현행 철도의 날은 1899년 9월 18일에 한반도에서 최초로 개통한 철도인 경인선의 개통일을 기준으로 제정돼 있다.
일본이나 미국 같은 여러 나라들도 철도의 날은 그 나라의 최초의 일반열차 철도 내지(한국으로 치면 경인선), 아주 중요한 장거리 간선 철도(한국으로 치면 경부선)가 개통한 날 당일, 또는 그 날짜 근처로 제정돼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의 철도의 날은 아주 합리적인 날짜이다. 경인선은 오늘날까지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동차만으로 2복선 완급 분리 운행을 하는 트래픽 킹왕짱인 철도이다. 경인선이 당장 없어져 버리면 그쪽 사람들 출퇴근길이 어떻게 바뀔까?

그런데 그 날짜가 문헌상 잘못됐다거나, 경인선이 완전히 폐선되어서 사람들 기억에서 싹 잊혀졌다거나, 사실은 경인선보다 훨씬 더 중요한 철도가 더 옛날에 개통된 게 있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일제 잔재 청산한다는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구한말에 도대체 무슨 일을 했고 무슨 존재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듣도 보도 못한 대한제국 철도국이 1894년 6월 28일에 창설됐대서 저 날로 전격 변경한댄다. 야 이..

내가 옛날에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까지는 개인적으로 찬성하는 소신이었고 그건 지금도 변함 없지만.. 저건 정말 너무 어거지다. 조선총독부 청사도 건물 자체보다는 그게 북악산 정면을 딱 가리는 위치가 미관에 너무 좋지 않아서 철거하는 걸 말리지 않겠다 정도이다. 무슨 일제 쇠말뚝 마냥 민족 정기, 일제 잔재 청산..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말이다.

젠장, 별 게 다 일제 잔재래. 경인선 철길을 걷어내든가, 아니면 서울역 구 역사나 철도 좌측통행도 다 일제 잔재 적폐니까 다 때려부숴 보라고, 이 미친놈들..

일자리 날아가고 경제 운지하고 있는 동안 맹 쓸데없는 것만 자꾸 바꾼다니까.. 괜히 여권 디자인이나 바꾸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근처에 있는 국군의 날은 일제하고는 정말 1도 관계 없는 날이다. 하지만 그건 저놈들이 골수 종북좌빨 성향이니까 38선을 넘은 날이 고깝고 불편해서 못 바꿔 안달인 것이다. 그러니 임팩트가 훨~씬 덜한 독립군이니 광복군이니 뭐라도 갖다붙이려고 수작이지.

쟤들은 진짜로 일제 잔재 청산이 목적이 아니라 그냥 대한민국 정체성의 부정과 말소, 역사 왜곡이 목적인 아주 사악하고 나쁜놈들이다. 아유 또 괜히 성질 나네..

Posted by 사무엘

2018/05/20 08:39 2018/05/2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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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의 모든 것

* 예전에 썼던 글 두 편을 종합하고 내용을 보충하여 재정리했다.

경의선 철도는... 경원선과 더불어 서울과 경기도 북부를 잇는 로컬 철도의 양대 산맥이다. 1905년 초에 완공된 경부선에 이어, 그 해 11월 5일에 개통됐다.
그리고 1908년에는 잘 알다시피 고종 황제의 호를 딴 '융희호'라고 신의주, 평양, 서울... 부산을 한데 있는 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일제 강점기부터는 압록강 철교도 완공됐다. 그래서 한반도의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차 타고 대륙으로 뻗어 가는 게 가능해졌다. 지금으로서는 정말 실감이 안 가고 믿어지지 않는다.

1. 용산선과의 관계

경의선은 원래 용산-효창-가좌로 가는 구간이 오리지널 경의선이었다. 그러나 1920년대에 서울-신촌-가좌 선로가 완공되면서 거기가 경의선 본선이 되었으며, 원래 구간은 지선인 용산선으로 따로 분류되게 되었다.
오늘날은 그 용산선이 없어졌다. 아니, 정확히는 지상으로 보기로만 없어졌고 지하로 싹 내려갔다. 공항 철도와 나란히 달리는 복층 복선 전철로 바뀌어서 여기가 다시 경의선 본선에 편입했으며(경의선이 위, 공항 철도가 아래), 반대로 서울-신촌-가좌 지상 구간이 지선으로 바뀌었다. 내력이 참 특이하다.

이로써 과거의 용산-성북 국철 전동차가 동쪽으로는 덕소, 팔당을 거쳐서 양평, 용문까지 길어졌고 서쪽으로는 경의선과 직결하여 문산까지 가는 상전벽해를 이루게 됐다.;; 앞으로 분당선이 수인선과 만나면 비슷한 마술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참고로 안산에 있는 한대앞-오이도 구간은 안산선과 수인선이 공용하게 되는데, 이건 복층이나 복복선이 아니고 완전히 동일한 복선 선로 공유이다. 역에 설치된 대피선 내지 승강장만으로 열차를 구분하니 경의선· 공항선과는 사정이 다르다. 어차피 사당 이남부터는 선로 용량이 많이 남기도 하니 말이다.

정리하자면, 용산에서 지하 경의선 본선이 출발하고 서울에서는 공항선과 경의선 지선이 출발한다.
공항선은 공덕에서 경의선 본선과 만나서 홍대입구를 거쳐 DMC로 같이 가며, 경의선 지선은 신촌을 거쳐서 가좌-DMC 일대에서 본선과 합류한다. 경의선과 공항선은 DMC 이북부터는 헤어져서 제 갈길을 가며, 역들도 승객의 환승만 되지 선로 차원에서의 교차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색 역에서 경의선과 공항철도를 연결하는 지선이 뚫렸다. 주 목적은 서울 역 KTX를 인천 공항까지 보내기 위해서.
공항철도 서울 역은 아주 깊은 지하에 있기 때문에 경부선과 연결되지 않는다. 지금 수인선의 지하 인천 역이 지상의 경인선과 연결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경부선을 달려온 KTX는 지하가 아니라 경의선 지선과 저 연결선을 거쳐서 공항선으로 진입하며, 서울 역을 출발한 공항철도 열차는 처음부터 지하의 공항선을 통해서 공항까지 가게 된다. 이런 구조가 아주 흥미로우며 철덕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2. 차량 기지와 병목 구간

경의선상에는 성격이 다른 차량 기지가 세 군데나 있다. 서울에서 가까운 순으로 나열하자면 먼저 (1) 새마을· 무궁화호와 기관차들.. 그러니 사실상 모든 일반열차들이 드나드는 수색 기지가 있다. 그 다음 (2) KTX가 입출고하는 고양(행신) 기지, 마지막으로 (3) 경의선 전동차가 드나드는 문산 기지가 이어진다.

그 짧은 거리에 차량 기지가 이렇게 다양하게 존재하는 철도는 경의선밖에 없다. 그 많은 일반열차들이 죄다 경의선을 회송 구간으로 사용하니, 경의선 중에서도 회송 구간을 직통으로 지나는 서울-신촌-가좌 지상에는 경의선 전동차를 1시간에 1대꼴밖에 못 넣는다. 그리고 그 선로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일반열차들의 운행이 순식간에 개판이 돼 버린다.

그런데 전국에서 열차 통과 트래픽이 제일 많은 구간에 '서소문 건널목'이라고 자동차 도로와 평면교차를 하는 건널목이 버젓이 있다는 게 참 골때리는 점이다.;; 물론 여기는 심야 시간을 제외하면 시도 때도 없이 열차가 지나느라 가히 '열리지 않는 건널목'이다. 거기는 위로 고가 도로가 지나고 아래로는 지하철 2호선이 지나는 관계로 입체화도 도저히 할 수 없다.

먼 옛날에는 용산 역 근처에도 거대한 철도 차량 정비창이 있어서 거기서 일반열차 내지 전동차의 주박과 정비를 취급했었다. 허나 지금은 그게 싹 없어져서 전동차는 구로로, 일반열차들은 수색으로 모두 이전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은 구로 기지마저도 광명으로 이전하려는 계획이 논의 중이다. 흠, 구로는 차량 기지뿐만 아니라 철도 관제 센터까지 있는 곳인데 이전이 쉽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한편, 누리로 전동차는 예외적으로 서울과 신창의 중간에 있는 병점 기지 소속이다. 마치 KTX로 치면 서울이나 부산이 아닌 오송 기지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수서 고속철 역시 서울 시계에서 기존 경부선으로 합류할 길이 도저히 없기 때문에 그 기지로는 못 들어가고 광주와 부산에만 기지가 있다.

3. 복선이었다가 단선으로 쪼그라든 유일한 철도

요즘은 철도를 만든다 하면 당연히 복선 전철이 필수이며, 당장은 단선만 놓는다 하더라도 추후 확장을 위한 복선 노반은 반드시 미리 확보해 둔다.
그런데 애초부터 만년 단선이면 단선이지, 복선으로 깔렸다가 도로 단선으로 쪼그라든 철도가 우리나라의 역사상 있긴 했을까? 경의선은 바로 그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940년대에는 일제가 전쟁에 미쳐서 온갖 물자를 수탈하던 때였다. 수익성 없는 지역에서는 이미 있던 철도 선로도 뜯어 가던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경부선과 경의선은 대륙 진출을 위해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오히려 복선화 공사를 완료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에 복선 철도라고는 경부+경의선이 유일했다. 경인선조차도 해방 후 1965년에야 복선화가 됐으니 말이다.

그 밖에 경주-청량리 중앙선이 1942년에 완공됐으며, 더 장기적으로는 경원선도 러시아 진출을 염두에 두고 복선화가 계획돼 있었다. 산악 관광 철도인 금강산선과 직결 가능한 철원까지는 심지어 전철화도 말이다. 어디 그뿐이랴? 지금의 7번 국도와 비슷한 동해선도 한창 건설 중이었다.

일제가 패망하면서 이 계획 내지 공사 과업은 모두 파토가 났다. 그런데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고 전쟁까지 대판 치르면서 경의선은 짧아졌을 뿐만 아니라 기껏 복선이었던 선로마저 남과 북에서 모두 단선으로 반토막 나고 말았다. 분단으로 인해 해당 구간의 수익성이 곤두박질 치면서 굳이 복선을 복구하고 유지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철도가 복선화와는 반대로 단선화(singling)되는 건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건이다. 그것도 복선이 된 지 10년도 채 못 가서 말이다.

남한 구간만이 먼 훗날 2009년에야 수도권 전철이 개통하면서 새로, 2차로 복선화되긴 했다. 물론 고가 위로 직선화도 많이 되었기 때문에 마냥 옛날 노선대로만 복원된 건 아니다.

믿어지지 않지만 경의선의 과거 복선 시절을 말해 주는 빼박 증거가 있다. 무엇이냐 하면 바로 철교의 교각이다.
도라산역으로 가는 임진강 철교는 6· 25 사변 중에 폭격을 받아 파괴됐다가 복구되지 못한 하행선 교각이 남아 있다. 상행 교각만 복구해서 단선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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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흔적이 북한에도 있다! 예성강(례성강)을 건너는 철교가 역시 상선만 복구되어 단선으로 쓰이고 있다. 하선은 교각만 우두커니 남아 있다. 그것도 두 군데나 말이다. 한포 역, 금천 역 근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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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말고 력포나 대동강 같은 평양 근처 구간까지 가도 경의선은 여전히 단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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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평양 인근의 대동강 양각도를 관통하는 경의선 단선 철교의 모습이며, 오른쪽은 무려 3복선인 우리나라 서울 한강 철교의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에서는 경의선이 평양 이북 신의주 방면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복선화도 그쪽만 돼 있다. 그 반면, 남쪽 구간은 남한의 경의선 구간보다 더 긺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아오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단선이다.
애초에 북한에서는 경부선· 경의선이라는 말도 안 쓰며, 첫 음절의 ㄱ을 ㅍ으로 바꿔서 부른다. 개성-평양 사이 구간은 우리 입장에서는 경의선이지만 걔들 입장에서는 평부선인 것이다.

여담이지만, 경의선 하니까 임진각에 있는 꼬마 협궤 증기 기관차가 생각나는데, 걔는 궤간이 어떤지 궁금해진다.
남이섬에 있는 유니세프 나눔열차는 610mm인 게 알려져 있는데 동일한가 모르겠다. 나중에 다시 갈 일 있으면 확인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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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8/05/11 08:38 2018/05/1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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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썼던 글에 내용을 보충하고, 본인의 실제 답사기를 추가했다.)

오늘날 중앙선과 동해선(구 동해남부선)의 환승역인 경주 역은 무려 3· 1 운동 직전인 1918년 가을에 생겼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과는 약 20년의 격차가 있지만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역사가 굉장히 길다고 할 수 있다. 철도 덕후라면, 모름지기 1920년대, 30년대, 40년대 이렇게 연도만 입력하면 그 당시에 개통해 있던 철도 노선도가 머리에 쫙 떠올라야 한다.

그때 경주 역은 동해남부선 경주-포항 구간과 함께 개통한 역이었다. 중앙선은 1939년 전구간 개통이니까 그로부터 또 20년 뒤의 일이다. 다만, 동해남부선과 비슷한 시기에 경주-영천 구간도 중앙선이 아니라 경동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주로 가는 다른 철도가 있긴 했다. 지금 대구선의 전신뻘 된다.

중앙선이 완전 개통하기 얼마 전이던 1935년 12월, 동해남부선은 남쪽 구간이 마저 개통하여 포항-경주-울산-부산이 한데 연결되었다. 일제는 포항 이북으로도 쭉 철도를 놓으려고 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해 이 계획은 무산되었고, 그 상태 그대로 패망하게 되었다. 동해선이 그냥 동해 '남부'선으로 남게 된 게 이 때문이며, 이 철도가 일제가 한반도에 부설하던 마지막 철도였다.

본인이 전에도 글로 썼지만, 일제 강점기가 장기화됐다면 한반도의 교통 인프라도 일본의 그것과 굉장히 비슷해졌을 것이다. 자동차 도로는 좌측통행을 할 것이고 일제 강점기 때 그랬던 것처럼 한반도에도 지역별로 개성 넘치는 여러 사철이 등장했을 것이다. 동해남부선도, 경춘선도 시작은 다 사철이었다.

대륙 진출(진출이라고 적고 침략이라고 읽는다)을 염두에 두고 애초부터 표준궤로 건설되었던 경부선과는 달리, 동해남부선은 무려 762mm 협궤였다. 바로 과거의 수인선과 동일한 협궤였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 총독부가 이를 인수한 후 이내 표준궤로 개궤했다.
이렇게 완성된 경주 역 주변의 동해남부선과 중앙선의 선형은 아래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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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쪽의 충효동 방면을 호남선 목포 방면이라고 보고,
경주 역이 있는 동남쪽 울산 방면을 경부선 대구 방면이라고 보고,
나원 역이 있는 북쪽의 포항 방면을 경부선 서울 방면이라고 보면
이는 대전 역의 위상과 정확히 같다.

이들 철도가 처음 생긴 시절에는 초록색 선이 없었다.
그리고 경부선과 호남선이 만나는 지점도 사정이 정확하게 이와 같았다. 호남선에서 경부선 상행 방면으로 바로 가는 선로가 없었다. (곡물을 일본으로 반출하려면 부산으로만 가면 됐으니..)

그래서 목포에서 부산이 아닌 서울로 가려면 대전 역에서 기관차의 방향을 바꿔야 했으며,
영천에서 울산이 아닌 포항으로 가려면 경주 역에서 기관차의 방향을 바꿔야 했다.

이 때문에 서울을 오가는 호남· 전라선 열차들이 대전에서는 기관차의 방향을 전환하느라 정차 시간이 길었으며 대전 역이 대기 시간 동안 짬을 내어 사먹는 우동으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이런 불편을 덜기 위해 호남선은 1978년 복선화 과정에서 서울 방면으로 직통하는 삼각선이 추가되었다.

한편, 다시 중앙선 얘기로 돌아오면, 중앙선의 건설로 인해 경주에는 시내를 정면 관통하여 경주 역을 잇는 분홍색 선로가 생겼다.
그렇잖아도 중앙선 역시 남쪽에서 올라오는데, 기왕이면 금관총· 대릉원이 있는 좀더 남쪽으로 선로를 만들지 왜 저렇게 부자연스러운 급커브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원래 경주 역은 중앙선이 아니라 동해남부선의 선형에 맞춰진 형태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저것도 나름 서울-신촌 사이와 비슷한 급커브라는 생각이 든다.

본인은 초딩 시절에 흥무 초등학교를 다닌 적이 있는데,
빨강-파랑 초기 도색을 한 새마을호가 수시로 드나들던 걸 본 기억이 선하다. 벌써 20년 가까이 전의 이야기이다.
철도는 확실히 지역을 분단시키는 효과가 있긴 했다.

이 선로는 경주 시내를 정면으로, 그것도 여러 건널목을 만들면서(평면 교차) 관통한지라 문제가 많았다. 딱 큰길만 따라간 것도 아니고, 이쪽 일대의 위성 사진 지도를 보면 정확하게 수평· 수직선이 아니라 분홍색 비스듬한 선을 따라 건물들의 배치가 왜곡돼 있는 걸 알 수 있다. 그게 옛 철길의 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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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경주 인근에서 (1) 동해선 상행으로 분기의 어려움과 (2) 경주 시내 관통으로 인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1980~90년대에 일련의 조치가 취해졌다.
먼저, (1) 1985년엔 중앙선과 동해선 상행을 연결하는 초록색 선이 새로 생겼다. 그리고 초록색 선과 분홍색 선이 분기되는 충효 제2터널 지점에 '서경주'라는 이름의 작은 신호소가 생겼다.

그 뒤.. (2) 기존의 분홍색 선로를 철거해 버리고 영천에서 경주 시내에서는 초록색과 보라색 선만으로, 즉 황성동 쪽까지 엄청난 우회를 해서 다니게 선로를 바꿨다. 분홍색 선 대신, 북쪽의 '금장터널'이 있는 곳에 아주 작은 삼각선을 만들어서 중앙선 영천 방면과 동해선 울산 방면을 왕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아래 그림에서 before과 after의 차이를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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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워낙 문화 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도시이다. 그러니 이런 시내 관통 선로 철거의 배후에는 유네스코의 권고가 있기도 했다고 한다. 철도와는 다른 분야로 최근엔 태릉 선수촌이 지방으로 완전히 이전했는데, 이 역시 인근에 있는 태릉과 강릉을 보존하고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정식 등재하기 위해서 취해진 조치였다. (뭐, 선수촌의 부지 크기와 확장 문제도 작용했지만 말이다.)
시대가 바뀌니 일제가 졸속으로 동해남부선 철길을 막 놓으면서 경주 시내를 땅따먹기 하던 시절과는 정반대 조치가 취해지고 있는 셈이다.

선로가 이렇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경주 쪽의 수요가 많기 때문에 포항-대구를 왕래하는 열차들은 어차피 경주는 들렀다 가는 관행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 때문에 이 노선에는 전진과 후진이 비교적 자유로운 전후 대칭 동차형 열차가 다니곤 했다.

그래서 1992년 11월 1일, 북쪽에 새로 생긴 선로 분기 지점의 근처에 '금장'이라는 이름의 역이 생겼다. 개업 당시에는 일개 듣보잡 신호장에 불과하였으나, 메이저인 경주 역이 위치가 저렇게 어정쩡하던 것에 대한 반사 이익을 제대로 받아서 급성장했다.

인근에 아파트촌과 동국대 경주 캠퍼스가 있어서 위치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새마을호가 정차하는 역으로까지 발전했다. 2005년부터는 코레일이 포항 승객의 편의와 열차 속도 향상을 위해 경주 역을 무정차 통과시키고 대신 이 역에 열차를 꾸준히 늘렸다.
참고로 2005년에는 대구선이 외곽으로 이설되면서 금장과 이름도 비슷한 금강 역이 생겼으나, 이 역은 이렇다 할 인기를 얻지 못하고 이내 여객 취급 중지 처분을 받았다. 이와도 아주 대조적이지 않은지?

또한, 금장 역의 개통으로 인해 기존의 서경주 신호소는 존재의 목적을 완전히 상실하고 폐쇄됐다. 건물 자체는 철거되지 않고 경주시 부엉길 9-34라고 도로명 주소까지 할당받아 있지만, 전혀 쓰이지 않고 방치되어 있다.
이에 본인은 이번 설에 고향을 방문한 기념으로 옛 중앙선 선로의 분기 지점 주변을 답사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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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의 경주 시내 관통 구선로 중에는 형산강을 건너는 교량이 있었다. 선로가 철거된 뒤에는 교각만 10년 가까이 덩그러니 방치돼 있다가 2002년경에 '장군교'라는 이름의 인도교로 리모델링 됐다. 김 유신 장군 묘가 근처에 있다고 다리 이름도 저렇게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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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중앙선의 흔적은 교량뿐만 아니라 송화산 언덕 아래를 지나는 터널로도 남아 있다. 한때 열차가 다니던 이 터널은 이제 끝이 막힌 채 누군가의 창고로 쓰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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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면, 오늘날 새로 만들어서 쓰이고 있는 철길과 터널의 모습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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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굴다리는 아주 짧고 작지만, 굴다리를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다리 아래에서는 목소리가 마치 마이크를 튼 것처럼 굉장히 잘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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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있는 송화산 등산로를 약간 올랐다. 그래서 현재 쓰이는 금장 방면 중앙선 우회 선로(왼쪽)와 장군교(오른쪽)를 모두 볼 수 있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마 본인이 지금 서 있는 곳의 아래에 아까 그 폐터널이 지나지 싶다.

송화산은 동국대 경주 캠퍼스를 감싸는 그냥 듣보잡 동네 뒷산처럼 생겼지만, 나름 국립공원이더라. 그래서 서울 북한산에서나 보던 방문객 집계 게이트도 있었다. 이 산은 경치나 문화재 같은 무슨 메리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교량과 폐터널을 둘러보고 언덕도 올라 봤는데, 그럼 서경주 신호장은 어디에 있을까?
폐터널도, 언덕도 아닌 다른 민가의 뒤쪽으로 가서 철길 근처에 접근해야 했다.
주변은 시골 마을이다 보니 개를 키우는 집이 많았는데, 이 개들이 온통 시끄럽게 짖어 대면서 외부인인 본인을 반겼다.

무슨 강력 미제 사건을 보면 "범행이 벌어지던 당시에 현장에 있던 사나운 개가 웬일로 짖지 않았다. 개를 미리 어떻게 처리했거나, 아니면 범인은 면식범이다." 이런 식으로 설명된 게 있다. (예: 2008년 대구 초등생 납치 살해 사건)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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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잡초로 뒤덮힌 이 폐건물을 보라. 이것이 민가나 다른 건물이 아니라 구 서경주 신호장이다. 창문이나 출입문 같은 건 일부러 다 틀어막은 듯하다. 문자로 된 그 어떤 간판이나 표지판도 존재하지 않는다.

수풀 덤불을 헤치고 현장에 도달하니, 마치 서부 전선 DMZ 안에 내팽겨쳐져 있다는 파주 장단면 사무소 폐건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비슷하게 DMZ 근처에 나뒹굴고 있던 녹슨 증기 기관차 정도야 인양해서 복원 후 임진각에다 전시도 해 놨다. 하지만 건물은.. 철원 노동당사처럼 해당 지역 자체를 수복하지 않은 이상, 딴 데로 옮기기가 곤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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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건물은 애초에 이 구간을 지나는 열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도 잠깐이나마 어렵지 않게 구경할 수 있다.
하지만 금장 역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시설을 자가용을 몰고 찾아가서 이런 시간이 정지한 듯한 오지에서 대면하게 되니 참 뿌듯함이 느껴졌다. 옛 서경주 신호소를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나라 철도 역사에 대한 내공이 꽤 갖춰진 철덕이라고 불리기에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 추가 설명

1. 신호소와 신호장

신호소와 신호장은 모두 뭔가 철도 정거장처럼 생겼고 철도라는 그래프에서 vertex 역할을 한다. 하지만 승강장이 없고 여객 취급을 하지는 않는다.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신호장은 단선에서 열차의 교행을 대비한다는 용도가 더 강하고, 신호소는 선로의 분기와 합류를 취급한다는 성격이 더 강하다.

철도 시설의 기술 발달과(특히 CTC화) 자동화로 인해 신호소는 더 만들지 않는 게 추세이지만, 전국에 신호소는 다섯 군데 정도 더 있다고 한다(미전, 북송정, 북영주, 용강, 신대).

2. 경주 역과 인근 역들의 미래 운명

한때는 경주 역에서 합체· 분리를 하는 포항· 울산 행 새마을호 복합 열차가 다녔고 서울-부전 새마을호까지 경주 역을 경유하였으나, 2010년에 KTX 신경주 역이 개통한 뒤엔 다 이제 옛날 추억이 됐다. 지금은 경주에서 서울로 바로 가는 열차는 레어템인 중앙선 열차(밤차 또는 낮의 완행)뿐이다. 그러니 서울로 가려면 동대구 역에서 열차를 갈아타든가 아니면 신경주 역으로 가야 된다.
신경주 역에서 서울로 가는 KTX가 평균 4~50분 간격으로 신경주 역에 정차해 주고 있으니, 이 구닥다리 역에 장거리 열차를 남겨 둘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포항은 한때는 KTX 비수혜 지역으로 여겨져서 서울-포항 새마을호가 하루 2차례 다니긴 했다(경주 대신 서경주에 정차). 그러나 이 역시 2015년에 동해선 KTX가 개통하면서 폐지됐다.
앞으로 몇 년 안 가 지금 경주 시내의 재래선 철길들은 다 없어질 예정이다. 기존 중앙선과 동해남부선조차도 신경주 중심으로 복선 전철화· 선형 개량을 거듭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 신경주 뿐만 아니라 현곡 초등학교 근처에도 지금의 서경주와 나원 역을 대체하는 역이 생길 예정이니 이는 반가운 일이다. 다만, 난립하고 있는 여러 역명들의 교통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경주 역은 역사적 상징성을 인정받아, 철길이 없어지는 것과는 별개로 건물 자체는 영구 보존하기로 지난 2013년경에 결정되었다. 그럼 이웃의 다른 지역은 상황이 어떨까?

  • 영천: 역시 경주와 비슷한 시기에 생겼고 중앙선과 대구선의 환승역이지만, 고속철의 영향을 받은 것이 전혀 없고 주변의 지역이 바뀌는 것도 없다 보니.. 지금의 위상이 계속 유지된다. 그냥 근처의 동대구 역에 빌붙는 게 더 편하니까.
  • 포항: 원래 있던 역은 보다시피 싹 없어지고 사라졌다.
  • 울산: 고속선과 기존 동해남부선이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덕분에 고속철 울산 역과 기존 태화강 역이 공존하게 된 경우라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8/03/16 08:30 2018/03/1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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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의 국내 철도 동향

1. 경부선 ITX 청춘

한동안 열차 시각표를 안 보고 지냈는데 오랜만에 최신판을 받아 보니 흥미로운 변화들이 많이 눈에 띈다.
잘 알다시피 2010년대부터는 생소한 동력분산식 전동차들이 잔뜩 도입되어 과거의 기관차-객차 패러다임을 뒤흔들어 왔다. 경부선에는 서울-수원/천안 급행 전동차의 상위 호환인 듯한 '누리로'가 무궁화호를 조금씩 대체하고 있다. 서울-부산 풀코스는 아니고 서울-신창처럼 반쯤 광역전철 같은 고유한 노선 위주로 달리는 중이지만, 명절 때는 누리로도 대전 정도까지는 간 적이 있으며, 호남· 전라선으로는 이미 풀코스를 뛰고 있다.

누리로가 경부선 전구간을 '누빌/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는 경부선 본선 말고 다른 노선이나 관광 열차로 뛰는 차량이 많은지라, 누리로의 서울-신창 편도 운행 횟수는 하루 2회꼴로 크게 감소해 있다. 이것도 완전히 폐지될 뻔한 것을 지역 주민들이 민원을 넣어서 2회라도 건진 거라고 한다.

한편, 누리로와는 달리 ITX-새마을은 이미 기존 새마을호를 완전히 대체했다. 2017년 현재, 과거의 새마을호는 장항선에서나 어제 오늘 하면서 연명하는 중이다. ITX-새마을은 도입 컨셉부터가 광역전철과는 딱히 연결 고리가 없다.

그런데 이 와중에 경부선의 용산-대전 구간에 한해서 ITX-청춘이 소수 편성되었다니, 굉장히 참신하게 다가온다. 경춘선의 전유물이던 2층 객차 열차가 경부선에도 납셨다니~! 게다가 얘는 영등포에 정차하지 않는 주제에 서울의 노량진과 신도림 역에도 정차한다. 노량진이라고 해서 지금 버려진 일반열차 플랫폼을 이용하는 건 아니고, 거기서는 애초에 그냥 전철 선로와 승강장을 사용하는가 보다. 그래야 신도림에 정차가 가능할 테니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경부선은 온갖 철도 차량들의 각축장이 됐다.
재래선이 이렇게 된 동안, 고속선은 잘 알다시피 기존 KTX와 수서 고속철 SRT가 섞이면서 한 선로에 둘 이상의 회사에 소속된 열차가 다니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런 운행 패턴은 서울 지하철과 코레일의 직통 구간에서만 볼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고속선이라든가 공항선 등 다양한 철도에서 흔히 보게 될 것이다. 일례로 공항선은 코레일 공항철도(기존 공철)뿐만 아니라 KTX가 다니고 있으며, 앞으로는 서울 지하철 9호선조차 직통 운행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지 않던가?

그런데 SRT는 율현 터널 구간에 진동이 그렇게도 심한가 보다. 본인은 아직 거길 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타 본 지인들의 증언이 일치하는 편이다. 승차감이 KTX 고속선과 비교했을 때 어떤지 어서 체험해 보고 싶다.

2. 중앙선 지평 역

수도권 전철에서 차가 극도로 안 다니는 최하위권 역 내지 노선을 꼽자면 경부선 천안 급행이나 경의선 신촌, 광명 셔틀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능가하는 역이 올해에(2017년 1월) 하나 더 생겼으니, 바로 중앙선 지평 역이다. 광역전철 역세권에서 아슬아슬하게 제외된 지역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서 종점인 용문의 바로 다음 역에도 일부 전철을 운행시키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수도권 전철 중앙선은 궁극적으로 무려 원주(...!)까지 연장 계획이 있으므로 미리 이렇게 역을 만들어 놓는 것이 어차피 나쁠 것도 없다.

다만, 현재 지평 역은 열차가 하루에 편도 4회밖에 운행하지 않으니.. 서울-천안 급행과 비슷한 급의 레어템이다. 장암이나 옛 보정(분당선), 서동탄처럼 차량 기지 안에 임시로 만든 역도 아니고 위상이 조금 독특하다.

3. 기존 서울 지하철의 연장

경전철 말고 기존 서울 지하철(+수도권 전철)들도 생각보다 많은 노선들이 연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 1호선: 지하철이나 도시철도가 아닌 광역전철의 영역이긴 하지만, 북쪽 경원선 구간이 소요산보다도 더 길어져서 연천까지 연장 예정이다. 단, 복선은 아니고 2~30분 간격으로 단선전철 형태로. 통근열차의 최후 구간까지 전동차가 쓱싹 해 버리고, 그보다 더 북쪽까지 가는 건 안보 관광 패키지 열차가 역할을 대신할 것이다.
  • 4호선: 당고개 이북으로 산을 뚫고 남양주 진접면까지 연장 예정이다. 이 기회에 창동 차량기지도 거기로 이전하게 된다.
  • 5호선: 상일동 지선의 종점이 동쪽으로 더 연장되어 하남시 미사 신도시와 검단산 기슭까지 간다.
  • 7호선: 부평구청보다 더 서쪽으로 인천 지하철 2호선 석남 역까지 연장 공사 중임.
  • 8호선: 암사 이북으로 남양주 별내까지 연장된다. 8호선도 드디어 강을, 그것도 하저터널로 건너는 지하철이 된다.
  • 9호선: 종합운동장보다 동쪽으로 더 나가서 보훈병원, 일자산 기슭까지 연장될 예정이다. 8호선과는 1990년대의 계획이던 몽촌토성이 아니라 석촌역에서 만나게 된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유일하게 여전히 '인서울' 연장이다.

이들과 달리 3호선은 2010년의 오금 연장 이후로 딱히 더 연장 공사 중인 게 없다. 그리고 6호선도 봉화산에서 조금만 더 가서 그냥 자기 차량기지 안에다가 신내 역을 만들어서 경춘선과 환승시키자는 떡밥이 있지만, 주민들의 적극적인 요구가 있지는 않고 진행이 지지부진하다.

말단이 광역전철과 연결되어 연장된 것을 제끼고, 서울 지하철이 지하철 명목으로 처음 계획되었던 구간보다 더 연장된 것은 현재 3호선(양재 이남으로 수서, 오금)과 7호선(온수 이남으로 부평구청)이 존재한다. 9호선은 신논현-종합운동장은 처음부터 계획된 게 완공된 것이고 이보다 더 동쪽이 추가 연장 구간이다. 앞으로 그런 연장 구간이 4, 5, 8, 9호선에도 생길 것이고, 7호선은 연장 구간이 더 길어질 것이다.

이건 3기 지하철이라고 보기에는 타이밍이 한 박자 좀 늦은 것 같고, 서울 경전철과 더불어 3.5나 제4기에 가까운 트렌드로 봐야 할 듯하다.
서울의 동쪽으로 철도 불모지이던 하남에도 드디어 저렇게 지하철이 들어오게 됐는데, 서쪽의 철도 불모지인 김포는 사정이 어떤가 모르겠다. 거기는 9호선과 연계되는 별도의 경전철이 건설 중이라고 들었다.

4. 서울 서쪽의 신규 종축 철도

1988년에 개통한 안산선은 금정에서 한대앞 역까지는 고유한 구간이지만, 한대앞에서 오이도까지는 기존 수인선과 선형이 동일한 구간이다. 다만, 처음에 개통은 금정에서 안산까지 하고, 안산에서 오이도는 추후 2000년에 개통했다.
이 안산선이 2010년대에는 드디어 수인선과 앞뒤로 수평 연결되었으며, 미래에는 수직으로 환승역이 하나도 아닌 둘이나 생길 예정이다.

하나는 한국 철도에서 코레일 타임 티스푼 공사의 전설이 아닌 레전드인 '신안산선'이다. 얘는 안산선 '중앙' 역과 환승되며, 목감· 광명 일대를 지나서 영등포와 여의도까지 갈 예정이다. 즉, 서울 방면이다. 과거에 계획되었던 서울 지하철 10호선의 대체 노선이며, 얘의 착공과 개통이 너무 늦어졌기 때문에 광명 역의 대중교통 연계가 안습해진 면이 있다.

다른 하나는 신안산선보다 더 서쪽으로 지나는 소사-원시선이다. 얘는 단순 광역철도 수준을 넘어서 장거리 간선 철도이며, 초지(구 공단) 역과 환승된다. 위로는 경인선 소사 역과 만나서 대곡까지 갈 예정이며, 밑으로는 안산시 단원구 저 끝의 원시동까지 간다. 얘 덕분에 시흥시의 교통도 더욱 편리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동해 방면으로는 경강선과 동서 고속화 철도, 동해선이 계획 중이라면, 서해 방면으로는 이런 철도가 계획되고 있다.

5. 한국 철도 차량의 등급과 유형별 도입과 퇴역 내력

끝으로, 이걸 정리해 보았다.
아래 표를 달달 외워서 머리에 다 집어넣고 의미를 이해한 분이라면 철덕의 기본적인 자질은 갖췄다고 볼 수 있겠다.

  동차형 기관차+객차형
새마을호 먼 과거 DEC: 1980년 도입되었다가 유선형 객차 도입과 함께 무궁화호로 격하, 2001년 퇴역.

가까운 과거 DHC: 1987. 7. 6. 대우중공업 제조 전후동력형 동차와 함께 도입. 동력집중+유압 변속
그 뒤 94년까지 현대· 한진중공업 차량이 추가 도입. 2013. 1. 5. 전량 퇴역함

현재 ITX-새마을 전동차
1974. 8. 15. 관광호의 후신으로 새마을호 차급 도입.
1985. 11. 16. 서울-부산 4시간 10분 증속.
1986. 7. 12. 현대정공 제조 7000호대 새마을호 견인 전용 봉고 기관차 + 유선형 객차 도입. 일부 객차는 훗날 무궁화호 특실로 격하됨.
2012. 11. 28. 봉고 기관차 천량 퇴역
2015. 4. 2. 경부선 정규 노선 퇴역. 모두 ITX-새마을 전동차로 대체되고, 재래식 객차형 새마을호는 이제 장항선에만 남아 있음.
무궁화호 먼 과거 EEC: 1980년 DEC와 함께 도입되었다가 1998. 12.부터 통일호로 격하. 2001년 퇴역.

가까운 과거 NDC: 1984년 도입되어서 시종일관 무궁화호 등급으로 운행함. 최후에는 경부선 경전선 영남 구간에서만 운행되다가 2010년 전량 퇴역. (차급 변경 없이 시종일관 무궁화호 유지)

현재 TEC 누리로: 단, 위상만 무궁화와 동급이지 기존 무궁화호를 대체하는 운행을 하지는 않고 있음
명칭 자체는 1960. 2. 21. 등장.
현재까지 비전철 구간을 다니고 있는 가장 만만하고 무난한 일반열차의 대명사.
통일호 CDC: 타 차급에서 옮겨온 것 말고 처음부터 통일호로 만들어진 동차는 이게 유일함. 1996~1999년 도입. 2008년부터 이들 차량은 RDC 무궁화호, 관광열차 등으로 개조됨.
현재 정규 노선은 '통근열차'라는 이름으로 경원선 소요산 이북 구간에만 남아 있고,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연천까지 연장되면 폐지 예정.
통일호만 유일하게 동차형이 객차형보다 더 오래 존속 중임.
명칭 자체는 1954. 8. 15. 등장.
차급 인플레로 인해 서서히 격이 낮아지다가 2004. 3. 31. 고속철 개통 바로 직전에 전량 퇴역.
최후에는 중앙선 근성열차와 경춘선에서 운행 중이었음.
비둘기호 제조사의 이름을 따 니가타/가와사키 디젤동차 등으로 불림. 경의선, 교외선 등을 다녔고, 수인선 협궤 동차도 등급상 비둘기호임.
1960년대 중후반에 두루 도입되었다가 8~90년대에 통일호 격상 등을 거친 뒤 폐차됨. 정확한 시기 불명.
여러 최하위 등급 완행열차들이 최초로 이 명칭으로 통합 정립된 것은 1984. 1. 1.
리즈 시절엔 전국을 누비기도 했으나 1998. 11. 30. 정선선만 남기고 모두 폐지.
정선선도 기관차+객차형이 다니다가 2000. 11. 14. 마지막 운행 후 폐지.

Posted by 사무엘

2017/10/19 19:36 2017/10/19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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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7/10/22 19:22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 사무엘 2017/10/22 23:14 # M/D Permalink

      그렇다? 후훗~ 거의 2010년대 초에 잠깐 있었다가 폐지됐던 특별급행..;; 그게 다시 부활하기도 했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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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회사 사이의 알력 다툼 사례

서울 지하철 중에 1, 3, 4호선은 지하철에다가 일명 국철이라고 불리는 코레일 광역전철이 한데 붙어서 직통 운행한다는 것을 다들 아실 것이다. 사실, 1호선은 지하철 구간은 매우 미미하고 압도 다수가 지상 광역전철이다. 비록 그 미미한 구간이 서울의 최고 중심부 도심이긴 하지만 말이다.

1호선은 직· 교류 절연구간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지하철과 광역전철이 동시에 건설되고 개통되기라도 했다. 애초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 내지 건국일(1948년)을 일부러 광복절과 동일한 8월 15일로 맞췄는데, 서울 지하철 첫 개통일(1974년)까지 거기에다 맞췄다. 그 날은 사실 서울 지하철 1호선(빨간 전동차)에다가 수도권 광역전철(파란 전동차)이 동시에 개통한 날이기도 했다. 이건 overloading이라는 단어의 적절한 예시인 것 같다.

그러나 훗날 개통한 4호선의 경우는 직결 계획이 전혀 없던 과천선을 서울 지하철과 뒤늦게 한데 연결하다 보니, 절연구간뿐만 아니라 좌측통행과 우측통행도 입체교차로 뒤바뀌는 꽈배기굴이 등장하게 됐다(남태령-선바위).
사실, 넓게 보면 1호선 지상의 노량진-대방 사이에도 꽈배기굴이 있긴 하다. 일반열차와 전동차의 선로 좌우 배치가 어느 샌가 쓱~ 바뀐다. 하지만 이건 선로를 뒤늦게 3복선화화려다 보니 주변 공간이 여의치 않아서 나중에 추가된 선로가 선형이 배배 꼬인 형태가 된 것이기 때문에 실드의 여지가 있다. 유니코드에 문자가 뒤늦게 추가되어서 코드값이 사전 순서대로 깔끔하게 배당 못 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3호선도 구파발· 지축 이북으로 일산선이 건설되기로 결정됐을 때, 철도청 구간과 지하철 구간 사이에는 꽈배기굴 시즌 2가 만들어질 뻔했다. 그러다가 감사원이 개입하여 철도청 구간도 지하철처럼 우측통행 직류로 만들라고 시정 조치를 내림으로써 이런 삽질 만행은 벌어지지 않았다. 1호선 때는 지하철이 철도를 따라 좌측통행으로 통일됐지만 이때는 광역전철이 이미 만들어진 지하철을 따라 우측통행+직류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일산선의 건설이 시작됐는데, 공교롭게도 이와 비슷한 시기에 서울 지하철 3호선은 6량에서 10량으로 증결 운행도 시작되었다. 그 당시 3호선의 사실상의 북쪽 종점은 구파발이었고, 그 다음 차량 기지 근처에 있던 지축은 10량 대비도 안 해 놓은 완전 초라한 단선 두단식 종착역이었다.

그런데 지축 이북으로 3호선이 일산선과 직결· 연장되니 지축 역도 10량 복선 승강장 형태로 확장하고 리모델링을 해야 하게 됐다. 그리고 이 일을 한 것은 지하철 공사가 아니라 철도청이었다..;;
이 때문에 지축 역은 지상 고가 형태이면서 섬식 승강장인 매우 드문 형태일 뿐만 아니라, 수도권 전철 전체를 통틀어서 환승역도 아닌 주제에 단일 역사와 승강장에 두 회사가 입주해서 알력싸움을 하는.. 이거 무슨 판문점 같은 역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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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로를 3:2로 갈라서 남쪽은 지하철 구간, 북쪽은 철도청 구간..;; 양 구간에는 역명판의 글씨체도 다르고(HY울릉도 vs 초롱지하철체) 벤치의 모양도 다르다. 어느 출구로 나가느냐에 따라 승하차자 집계도 양 회사가 따로 하다가 요 몇 년 전부터 그건 그냥 코레일이 지하철에다 양보를 했다. 정말 웃긴다.

3호선은 관할 회사가 바뀌는 구간에 4호선 같은 꽈배기굴은 없지만, 이렇게 또 다른 형태의 명물이 존재하는 셈이다.
4호선의 남쪽으로 과천선은 전구간 지하이고 금정 이남의 안산선은 전구간 지상인 반면, 3호선 구파발 이북의 일산선은 단독 노선에서 지상과 지하가 꽤 섞여서 다이나믹하게 등장한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2010년쯤이던가? 3호선의 남쪽 이남 수서-오금 구간이 개통했을 때는 서울 메트로와 도철 사이의 환승역이 둘 생겼다. 바로 가락시장(8)과 오금(5)인데, 이때는 한 역에서 두 회사가 입주해서 아웅다웅 할 것 없이 한 역은 서울 메트로에게 통째로 주고, 다른 역은 도철이 통째로 맡는 식으로 운영권을 분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게 서메이고 어느 게 도철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남. 옛날에는 까치산 역이 2호선 지선 구간도 서메가 아닌 도철이 모두 관할하기도 했는데 말이다.
물론 이것들은 서메와 도철이 합쳐져서 '서울 교통 공사'가 출범한 지금에 와서는 별 의미 없는 얘기가 됐다.

예전부터 도철은 모르겠고 서메는 아무래도 철도청과 한 선로에서 자주 부대끼기도 하다 보니 철도청을 상대로 갑질을 하면서 잘 요리하긴 했었다.
철도청이 운영 효율화를 위해서 1990년대 초에 1호선 지하철 서울역-청량리 구간을 철도청 일산선, 과천선, 안산선(3~4호선 전체)과 서로 교환하는 거 어떻냐고 제안했을 때도 서메에서는 "분당선도 덤으로 주면 생각해 보겠음~ ㅋ" 이딴 대답으로 협상을 사실상 결렬시켰었다. 이는 또한 서울 지하철 1호선 종로 구간이 그만치 알짜 황금노선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2002년 2월에는 철도청의 신입사원이 선로 보수 차량을 몰다가 수원역 근처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서울 메트로 1호선 전동차를 추돌하는 사고를 냈다. 철도청은 남아도는 중고 저항 전동차 몇 량이나 적당히 보상으로 주는 걸로 퉁치려 했다. 허나, 서메에서는 피해 차량 중엔 뽑은 지 몇 년 안 된 새끈한 신차도 있구만 그에 상응하는 신형 차량으로 안 주면 보상 동의 안 하겠다고 뻗튕겨서 결국 받을 건 다 받아내기도 했다..;;

옛날에도 그랬는데 하물며 지금은 서메와 도철이 합병하여 덩치가 더 커졌으니, 서울 지하철이 코레일을 상대로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낼 수 있을 듯하다.

  • 지축: 앞서 언급했듯이 지상 '고가'로서는 드물게 섬식 승강장
  • 오리: 9호선처럼 완급 결합을 하는 것도 아닌데 지하에 매우 드물게 쌍섬식 승강장
  • 이매: 지하에 최초로 건설된 중간 추가역
  • 석계: 지상의 섬식 승강장이 따로 확장· 분리된 사례 (1호선 신도림 완행선과 유사)

참고로, 지축 역은 이런 식으로 특이할 뿐만 아니라 한글 명칭이 통상적인 한자음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도 독특하다. 한자의 표준 한자음은 '지뉴'라는 굉장히 어색한 표기이니까..
동해북부선의 제진 역도 원래는 '저(猪)진'이다. 철도역들 중에 이렇게 한글 표기가 표준 한자음과 따로 노는 사례가 더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7/09/20 08:32 2017/09/2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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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 기관차 이야기

1. EMD

컴퓨터 CPU의 제조사로는 인텔과 AMD가 유명하고, 민항기의 제조사로는 보잉과 에어버스가 유명하다. 자동차야 미국, 일본, 독일 등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가들이 즐비하다.
미국은 내수만으로 먹고 사는 데 지장 없고 땅과 도로도 넓은 풍족한 나라이다 보니, 만드는 자동차들의 스타일이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사정과 잘 안 맞는 경향이 있다. 그에 반해 전범 국가인 독일과 일본이 보편적인 가성비가 뛰어난 자동차를 잘 만드는 편이다(서민들이 범접할 수 없는 슈퍼카 말고). 하긴, 국가 차원에서 그런 기술과 노하우가 있으니 옛날에 침략 전쟁도 벌이고 사고를 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 이쯤에서 의문이 든다. 배는 반쯤 건물을 짓는 것과 비슷하고 양산형 기성품이 존재하지 않으니 그렇다 치고, 자동차나 컴퓨터나 비행기는 제끼고 철도 차량 중에 명가가 없는지 말이다.
일단 우리나라에 굴러다니는 디젤 기관차들은 다들 미국의 EMD (Electro-Motive Diesel)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기관차를 수입하거나 국내에서 면허 생산한 것들이다. 얘가 기관차계의 보잉 내지 인텔/AMD 같은 제조사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6· 25 전쟁 중에 겨우 800마력짜리 기관차를 몇 대 원조받은 것으로 증기가 아닌 차세대 디젤 기관차 시대가 시작되었다(2000호대). 그러다가 지금은 모델명 GT26CW인 7100~7500대의 그 특대형 기관차가 기관차-객차형 열차의 얼굴마담이 됐다. 대형 점보 여객기의 상징이 보잉 747이듯이 말이다. 그나마 화물용으로 추가 도입된 7600호대 기관차는 GE(제너럴 일렉트릭) 사가 원조이다.
디젤 기관차인데 회사명에 E자가 들어있는 이유는 대형 고출력 기관차들은 엔진을 바퀴에다 직통으로 연결하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엔진을 돌려서 전기를 생산한 뒤 전동기의 힘으로 달린다. 입환기 수준의 작은 기관차 또는 디젤 동차들이나 순수 디젤(+ 특히 기어 변속)이지 일정 규모 이상부터는 동력 전환은 전기 아니면 유압 변속기로 가야 한다.

이거 무슨 순수 디젤과 디젤-전기의 관계를 컴퓨터 프로그래밍에다 비유하면 C와 C++의 관계와도 비슷해 보인다. C만으로는 단순 알고리즘 절차의 코딩 이상으로 거대한 프로그램의 짜임새를 조직적으로 기술하는 데 한계가 있듯, 대형 기관차를 만들 때는 순수 디젤보다는 디젤-전기가 더 효율적이니 말이다.
요즘은 자그마한 오토바이도 다 4행정으로 가는 추세인데 디젤 기관차는 의외로 2행정 엔진을 쓴다고 한다. 다만, 휘발유 엔진의 2행정 에디션과 디젤 엔진의 2행정 에디션은 서로 같은 성격이 아니라고 어디선가 봤었다.

디젤 기관차를 제조하는 GE는 명백히 미국 기업이다. 일본은 적당히 긴 국토에 신칸센을 중심으로 고속 여객 전동차가 왕창 발달해 있지만 기존선은 협궤라는 고질적인 한계가 있어서 화물 운송은 안습한 지경이다.
미국은 반대로 엄청 큰 땅에 자동차와 비행기가 워낙 발달하다 보니 여객 철도는 망했지만, 화물이 그야말로 본좌 천국이다. 디젤 기관차를 중련 편성해서 수 km에 달하는 엄청난 길이의 화물 열차를 굴리는 기술과 노하우가 있으니 디젤 기관차로 먹고 사는 듯하다. 전기 기관차 쪽은 독일 지멘스가 본좌이다.

GE를 전동차 제조사인 GEC(특히 쵸퍼 제어 방식)와 혼동하지는 않기 바란다. GEC(제너럴 일렉트릭 컴퍼니)는 영국 소재의 회사이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옛날에 현대 자동차에서 면허 생산했던 그라나다도 제조사가 '포드'인데, 미국 법인이 아니라 유럽 법인 것이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2. 7000호대 봉고 기관차

국내에 도입된 EMD 기관차들은 덩치와 개발 시기는 다를지언정 모양이 다 그 나물에 그 밥이고 큰 차이가 안 나는 편인데.. 유독 튀는 모양의 기관차가 하나 존재한 적이 있었다.
바로 GT26CW의 7100~7500대의 바로 앞 번호인 7000호대 디젤 기관차이다. 제조사의 모델명은 FT36CW-2.
얘는 1986년,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유선형 새마을호를 견인하기 위한 여객 전용 기관차로 도입되었다. 새마을호 유압식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 일명 DHC보다 시기적으로 1년 이르다.

이 기관차는 앞부분이 봉고차처럼 생겼다고 해서 일명 봉고 기관차라고 불렸다. 신세대 차덕들은 봉고라고 하면 승합차보다 트럭이 더 먼저 떠오를 것 같긴 하다만.
단, 후방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않아서 후진이 매우 난감하며 장폐단 운전을 할 수 없는 건 요즘 기관차의 디자인 추세와 맞지 않은 설계 미스로 보인다.

얘는 EMD로부터 엔진만 수입해서 나머지는 우리나라가 생산한 건지, 아니면 EMD에다 발주를 해서 역시 국내 면허 생산인 건지 관계가 어떻게 되나 잘 모르겠다. 그 당시 국내에서 이 기관차를 생산한 업체는 '현대 정공'(중공업)이었다.
1년 뒤에 등장한 새마을호 DHC 동차를 최초로 제조· 납품한 업체는 경쟁사인 대우 중공업이니 이 역시 아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우등형 디젤 동차 DEC (1980)도 처음에는 새마을호로 시작했는데 그 뒤로 1986년에는 창문이 동그란 테두리로 바뀐 새마을호 객차와 더불어 7000호대 봉고 기관차가 도입되었고, 1987년에는 DHC도 도입되었다는 게 흥미롭다. 그렇게 새마을호라는 차급이 조금씩 완성되어 갔다.
이 기관차는 처음에는 고급 열차의 견인을 염두에 두고 처음엔 성능이 좋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승차감이 좋다는 호평을 받았다. 여객용답게 시속 150km 고속 주행이 가능했고, 얼마 전 1985년 11월에 기존 타 기관차를 기준으로 개정된 새마을호의 서울-부산 4시간 10분 스케줄을 맞추는 데도 지장이 없었다. 심지어 봉고 기관차는 HEP(객차 전원 공급 장치)도 자체 내장하여 발전차를 따로 편성할 필요조차도 없게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허나, 평범한 미국 원조 스타일이 아니라 우리식으로 로컬라이즈한 기관차여서 그런지, 얘는 시간이 흐를수록 기관사와 승무원을 골탕먹이는 하자· 문제를 굉장히 많이 일으켰다고 한다. HEP도 가성비가 안 맞아서 이내 사용하지 않게 됐다(전기 생산을 위해 정차 중에도 발생하는 엔진 소음이 너무 커서..). 거기에다 GT26CW 기관차와 DHC 동차가 계속 도입되면서 봉고 기관차만의 위상과 존재 가치와 의의도 갈수록 하락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이 기관차는 새마을호보다 등급이 낮은 열차의 운행에도 투입되었고 내구연한 25년이 경과한 2011~2012년에 15량 전량이 칼같이 퇴역하여 이제 현업에서 볼 수 없어졌다.
철도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봉고 기관차의 퇴역은, 곧이어 도입된 새마을호 DHC의 퇴역의 신호탄이기도 하다는 것을 금세 눈치 챌 것이다. DHC는 2013년 1월 초에 전량 현업에서 은퇴했다. 이로써 새마을호를 위해 도입되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관차와 동차들이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이야 기관차나 전동차나 다 무슨 네덜란드 국기처럼 위에서 아래로 빨강-하양-파랑 순의 자석 도색이지만 옛날에는 기관차가 파랑-하양 도색 내지 호랑이 도색도 하고 있었다.
봉고 기관차의 경우 처음 운행을 시작했을 때는 파랑 도색이었으며, 한때는 새마을호의 대표색이 blue이기까지 하던 시절이 있었다. DHC는 초기 도색에 빨강도 있었지만 저 기관차는 빨강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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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호랑이 도색은 7x00은 아니고 5~6000호대 기관차에서 쓰였던 것 같다.
7000호대 기관차는 1986년에 첫 도입된 반면, 7100~7500호대 기관차는 그보다 훨씬 전 1975년부터 도입돼 왔다. 그런데 번호가 왜 지금 같은 순서로 부여되었는지는 개인적으로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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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경우, 초창기의 2000호대부터 모든 디젤 기관차는 디젤-전기 방식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2017년 현재 현업에서 운용 중인 기관차는 7100~7500, 7600호대, 그리고 입환용 4400호대만이 남아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7/04/02 08:32 2017/04/0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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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선 철도의 선로 이설 내력

인터넷에서 우연히 이런 글을 발견했다. 경부선 철도가 1905년 첫 개통한 이래로 선로가 이설되고 선형이 바뀌어 온 대략의 내력이다.
우와! 이렇게 사진과 함께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는 거 완전 좋다. 딱 내 스타일이다. 저기 사진을 같이 펴 놓고 이 글을 보시기 바란다.

1.
지난 2010년엔 경부선 병점 역 이남으로 분기하는 지선 서동탄 역이 개통했다. 그런데 2000년 초까지만 해도 경부선은 원래 서동탄 방면의 병점기지선이 본선 구간이었다는 거 아시는가?

1990년대 중후반부터 수원-천안 2복선 확장+선형개량+전철화 공사 과정에서 병점-오산대 구간 선로는 지금과 같은 형태로 이설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커브도 약간 줄어서 열차가 더 고속으로 달릴 수 있게 됐다. 기존 선로는 차량 기지 입출고용으로 자연스럽게 용도가 변경되었다. 적절하다. 저렇게 재활용을 할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그나저나 구 선로는 지금의 서동탄 역 이남 구간에서 상· 하행 선로가 실제로 저렇게 쩍~ 벌어져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

2.
무슨 강이 지나는 것도 아닌데 두정-천안 사이 서쪽에 천안 축구 센터를 감싸는 둥그런 커브가 생긴 건.. 역시나 지금은 이설· 폐선되고 없는 철도의 흔적이었구나. 부산 방면 경부선 하행 선로가 저 궤적을 타고 장항선으로 갈아탔었다.
저 선로 대신 지금은 더 북쪽+동쪽에 공간을 덜 차지하는 입체교차 선로가 새로 생겼다. 이 역시 수원-천안 2복선 공사와 함께 이설되어 새로 생겼지 싶다..

3.
대전 부근은 지형이 험하기도 하고 경부고속선과의 연결 문제도 있고 해서 추가적인 선형 개량이 종종 있었다. 예전에는 고속선이 옥천에서 너무 일찍 끊어지는 바람에 KTX가 연결선을 타고 재래식 경부선으로 허겁지겁 내려와야 했으나, 2015년 8월에 대전과 대구의 도심 구간이 다 개통한 뒤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대전남연결선은 이제 더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그냥 철거해 버려도 할 말이 없으며, 해당 지역에서는 그걸 원하는 여론도 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안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한번 힘들게 만들어 놓은 건축 구조물을 굳이 일부러 부숴 버릴 이유가 없다. 아까 경부선 구선로를 병점 차량 기지 입출고선으로 활용하듯이 이것도 뭔가 다른 활용 방법이 있을 것이다. 지천-신동 사이에 있는 대구북연결선도 현재 비슷한 처지이다.

4.
그 다음으로 경부선에서 주목할 만한 이설은 엄청 옛날인 일제 강점기, 그것도 초기에 있었던 일이다.
대구 역과 김천 역은 1905년 1월, 경부선 개통과 동시에 개업했다. 하지만 그 사이의 구미 역은 개업일이 1916년 11월 1일이다. 그 이유는 경부선이 첫 개통 당시엔 지금의 구미 시내 구간을 경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지금의 경부고속선 내지 국도 4호선과 비슷한 선형으로 금오산을 관통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선로를 만들었더니 그 시절의 증기 기관차가 그 정도 오르막도 제대로 못 오르고 헉헉거렸다. 중간에 보조 기관차를 연결해 줘야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경부선 개통 후 10년 남짓 뒤엔, 영업거리가 더 길어지는 걸 감수하고라도 구미 시내 우회 경로로 선로를 대거 이설하게 됐다. 구미 역이 바로 이때 생겼으며, 곧 있으면 개통 100주년을 맞이한다. 반대로 옛 선로에는 '금오산 역'이라고 기관차의 관리를 위한 간이역이 있었으나, 그건 선로 이설과 함께 폐역됐다.

잘 알다시피 박 정희가 1917년 구미 출생인데, 마침 그 즈음에 거기로 경부선 철길이 지나게 된 것은 뭔가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상록수 최 용신 선생이 활동하던 당시에 수인선 철도가 건설된 것처럼 말이다.
이건, 훗날 1930년대에 행해진 복선화 공사 때문에 왜관철교 일대가 이설된 것과도 별개의 이야기이다.

5.
다시 우리나라 얘기로 돌아온다. 대구선 이설과 경부고속선 대구 이남 구간의 건설의 영향을 받아서 그쪽에 경부선 본선이 살짝 이설된 건 제끼고..

청도군 소재의 남성현 역 일대는 이미 유명하다. 험준한 산악으로 인한 경사+커브 때문에 건설하기도 힘들고 열차가 다니기도 힘든 구간이다. 성현 터널이 완공되기 전에는 무려 8단계 스위치백 선로를 임시 부설해서 건설 자재를 나르면서 경부선 철길을 깔았으며, 터널이 완공된 뒤엔 임시 선로는 철거됐다.
그런데 기껏 뚫은 성현 터널도 약 30여 년 뒤인 1937년에는 경부선 복선화 공사 과정에서 선로가 또 통째로 딴 데로 이설되면서 폐쇄됐다. 지금 성현 터널은 '청도 와인터널'이라는 관광지로 재활용 중이다.

6.
밀양으로 내려가면, 상동 역 이북으로 산을 직통으로 뚫고 가는 직선 터널들은 역시나 경부선 개통 처음부터 그랬던 건 절대 아니었다. 원래는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꼬불꼬불 굽이치던 선형이었다.
단선도 아닌 복선 공용 터널이 일제 강점기 때 있었을 리가 절대 없지. 단순히 일제 강점기 시절의 복선화가 아니라, 경부선 KTX 1차 개통을 앞두고 대구-부산 기존선의 전철화 과정에서 선형 개량을 한 거지 싶다.

또한, 지금 선로는 추화산을 서쪽 끝 밀양 시내 근처에서 터널로 직선으로 쌩 통과하는 반면, 옛날에는 동쪽 능선으로 빙 둘러 갔다.
우회 구간에는 짤막한 단선 터널이 있다. 바로 이것. 단면은 아래쪽이 다시 좁아지는 말발굽 모양이다. 이것은 빼도 박도 못하고 자동차용이 아닌 철도 터널이었다는 증거다. 옛날에는 경부선이 여기를 지났음을 말해 준다.

7.
이제 부산으로 간다.
부산 북부 구간도 1990년대 말, 화명 신도시의 개발로 인해 선로가 내륙이 아닌 강쪽으로, 그 대신 더 곧게 이설되었다. 구포 바로 이북의 화명 역이 1999년에 이 과정에서 새로 생겼으며, 1993년에 구포 무궁화호 전복 참사가 난 곳도 지금은 이설되고 없는 구간상의 지점이었다. 그리고 지리적으로는 구포보다는 화명 역에 더 가까이 있었다.

예전에는 경부선 선로가 지금의 부산 지하철 2호선과 비슷한 선형으로 시가지를 꽤 깊게 지났다. 어쩐지 지금 경부선 부산 북부 구간은 선로가 평지에 있지 않고 다들 높은 고가이던데, 다 나중에 그렇게 바뀐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제 강점기 때 처음부터 그랬던 게 아님.

옛날에는 경부선이 지금의 서울 역(남대문)보다 더 북쪽까지 이어졌었고(서대문), 지금의 부산 역(초량)보다 더 남쪽까지 더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간 구간에도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다.
1908년의 경의선 직결+부산 개통, 1916년의 구미 시내 구간 개통은 일제 강점기의 일이고, 1930년대 이후 경부선 복선화도 큰 이벤트이다.
해방 후에는 주로 경부고속철 내지 수원-천안 2복선화로 인한 이설이 많았던 걸으로 요약된다.
다들 나의 정신을 살찌우는 소중한 철도 역사 지식이다. 머리에 몽땅 집어넣고 절대 잊어버리지 않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6/09/25 19:35 2016/09/2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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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철도/도로 뒷북 이야기

1.
국내 고속도로계에서 독보적으로 낙후한 이단아이던 88 올림픽 고속도로는 지난 2015년 말에 드디어, 드디어 전구간이 4차선으로 확장되었으며 이름도 '광주대구 고속도로'라고 바뀌었다. 솔직히 이 도로는 착공· 건설 시기가(개통 시기가 아님.)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시기와 비슷할지 몰라도, 지리적으로는 올림픽과 정말 아무 상관도 없었으니까..

중앙분리대조차 없이 2차선이던 이 고속도로는 설계 최대 속도도 100이 아닌 80km/h이었으며, 중앙선을 침범하여 앞차를 추월하다가 마주 오던 차와 정면 충돌하는 사고가 잦아서 교통사고 발생 빈도 내지 사고 사망률이 여타 고속도로들보다 몇 배로 더 높았다. 백괴사전에서는 "44(死死) 내림픽 저속도로"라고 개드립을 치면서 깠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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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 여건이 다른 고속도로들은 물론이고 어지간히 리모델링된 국도보다도 열악했던 관계로, 한국 도로 공사는 여기 구간의 통행료는 여타 고속도로의 반값 정도로만 징수했다. 서울 지하철이 '최소 거리 이용 추정의 원칙'에 의거하여 요금을 측정하듯, 고속도로 톨비 역시 비록 진입과 최종 진출 나들목 자체가 88 내부의 나들목이 아니더라도 경로상으로 88을 이용했을 만한 위치라면 그걸 감안하여 산정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다가 이 도로도 찔끔찔끔 선형 개선과 확장, 이설 공사를 되풀이했으며, 그게 드디어 작년 말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오랫동안 존속해 온 통행료 특별 할인도 폐지됐다.

전국의 고속도로 나들목들 중 유일하게 평면교차+비보호 좌회전(고속도로에서!)이라는 엽기적인 형태로 남아 있던 '남장수 IC'는 해당 구간이 대거 이설되면서 없어졌다. 이를 대체하는 동남원 IC가 생기긴 했지만 저기서 서쪽으로 수 km 떨어진 곳이다. 남장수 IC가 없어진 건 철도로 치면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던 스위치백이라든가 통표 폐색 구간이 없어진 것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옛날에는 이 88 말고 다른 고속도로도 이름만 고속도로이지 2차선에 평면교차 같은 막장 시설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호남 고속도로, 영동 고속도로 따위도 처음엔 그랬다.
심지어 1990년대에 대구와 원주를 잇는 중앙 고속도로조차도 처음엔 2차선으로 건설되고 있었는데 감사원에서 이를 잡아 냈다. "이렇게 만들었다간 99.9% 나중에 또 확장하느라 더 고생하고 돈과 시간을 더 낭비하게 된다. 지금이라도 설계를 갈아엎고 다시 만들어라. 그리고 이를 선례로 삼아 앞으로 새로 만드는 모든 고속도로들은 처음부터 반드시 4차선 이상 크기로 건설해라."라는 현명한 지시를 내려서 개선이 됐다.

저렇게 1990년대에도 2차선으로 건설될 뻔한 고속도로가 있었는데 1960년대 말 그 옛날에 처음부터 전구간 4차선으로 시작을 했던 경부 고속도로의 건설 과정이 문득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진다. 출처는 정확히 알 수 없다만 그 시절에 박통이 이미 "내가 야당이 하도 반대해 대서 일단은 4차선으로만 건설하지만 경부 고속도로는 얼마 못 가 분명히 비좁아질 거다. 확장을 하게 될 테니 도로 주변에 건물 건설 허가를 내지 말고 준비를 해 둬라" 이런 예고까지 했다고 한다.

경부 고속도로가 유지 보수 비용이 결국 건설 비용만큼이나 더 들었다고 회자되긴 한다만, 그건 다른 고속도로들도 훗날 꾸준히 개선되어 온 건 대동소이했다. 허나 88은 박통도 아니고 나름 5공 시절인 1980년대에 건설된 주제에 오랫동안 개선되질 못해서 까임거리가 된 것이다. 영호남 화합? 실질적인 수요보다는 정치 논리에 따라 건설됐다 보니 리모델링의 우선순위도 뒷전으로 밀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것도 이제 다 지나간 일이 됐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88 올림픽 고속도로에 이어, 철도 경전선도 올해는 대대적인 선형 개량 공사가 끝나서 여러 구간이 이설되고 여러 간이역들이 없어질 예정이다.
자, 다음부터는 철도 얘기를 주로 늘어놓도록 하겠다.

2.
과거에 20세기 말에 우리나라의 최하등급 열차는 비둘기호였다. 정선선에서 운행하다가 2000년 11월 14일을 끝으로 퇴역했다.
객차형 비둘기호는 너무 싸서 수지맞지 않은 운임 체계, 너무 낡고 노후화한 객차 같은 여러 이유로 인해(비산식 화장실, 수동 출입문, 별도의 발전차 없이 객차가 차축 연결해서 소규모 자가발전-_-, 에어컨도 없음..) 21세기에까지 존속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하긴 했다.

그 다음으로 통일호도 객차형은 차량이 비둘기호 만만찮게 열악했던지라 2004년 3월 31일, KTX 개통을 앞두고는 모두 퇴역했다. 근성열차라고 불리던 청량리-부전 통일호가 이때 사라졌고 경춘선도 통일호가 모두 무궁화호로 바뀌면서 사실상 운임이 강제로 일괄 인상된 효과도 났다.

나머지 디젤 동차형 통일호는 '통근열차'라고 이름이 바뀌었는데, 얘들은 진해선, 동해남부선, 군산선 등에서 명맥을 유지하다가 차근차근 무궁화호로 교체되면서 명줄이 위태로워졌다. 기관차-객차형처럼 차량이 완전히 다른 무궁화호 말고, CDC 객차 자체가 일명 RDC 무궁화호로 개조되기도 했다.

현재 통근열차의 최후의 보루는 서울에서 북쪽으로 가는 경의선과 경원선밖에 안 남았다. 허나 경의선에서는 이미 진작에 전철에 밀려 퇴출되었으며, 현재 전국에서 오리지널 CDC가 다니는 곳은 이제 소요산 이북의 경원선이 유일하다! 과거에 정선선 비둘기호와 비슷한 꼴이 된 셈이다. 비둘기호:정선선 = 통근열차:경원선 정도의 비례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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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20년쯤에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약 빨고 더 연장되어 연천까지 가 버리면 이제 CDC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더 북쪽의 잔여 구간은 지금 경의선이 그런 것처럼 안보 관광 열차가 대신 맡을 것이고.

물론 경원선 연장 구간은 전철이 들어간다고 해도 일단은 복선 노반만 확보해 놓은 '단선 전철' 형태로 운행될 예정이다. 그런데 복선 구간 운행이 너무 당연시되는 지하철 통근형 전동차가 갑자기 단선 구간에서 상하행 교행을 한다니 그것도 참 흥미진진한 구경거리가 될 것 같다. 하긴, 천하의 KTX도 과거에 광주 역을 드나들 때는 꼬불꼬불 단선 구간을 다니긴 했다.

3.
21세기 이래로 경기화학선, 세풍제지선, 화순선 등 여러 산업· 화물 철도들이 소리소문 없이 열차 운행과 관리가 중단되고 사실상 폐선 테크를 타 왔다.
하지만 화물 분야에서 철도가 마냥 몰락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라, 지난 2010년 말에는 부산신항선이라는 걸출한 화물 철도가 개통했다. 그것도 복선으로. 여객이 아니고 항구 화물 전용 철도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쯤 뒤, 작년에는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평택에서 평택항으로 향하는 화물 철도가 또 신규 개통했다. 이름하여 평택선. 경부선과 연결하는 삼각선도 상하행으로 모두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무 방향으로나 통한다.

경부선 전철에서 성환-평택은 충청도와 경기도의 경계이기도 하고 역간거리가 무려 9km가 넘는다. 공항 철도를 제외하면 수도권 전철에서 역간거리가 가장 긴 구간임에도 불구하고, 사이엔 온통 들판에 소규모 마을밖에 없기 때문에 역이 만들어질 여지가 별로 없다.

평택 다음 성환 역에도 사이에 웬 지선 철도가 서쪽이 아닌 동쪽으로 뻗어 나간다. 이건 하행 방향으로만 있고 서울 상행 방향은 없는데, 다름아닌 성환읍 학정리의 야산 하나를 몽땅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군부대로 향하는 비밀 철도이다. 서빙고 역에서 미군 기지로 들어가는 그 철도, 그리고 호남선에서 논산 육군 훈련소 방면으로 가는 강경선 같은 걸 떠올리면 되겠다.

관련 신문 기사들을 검색해 보면 그 군부대는 탄약창인가 보다. 탄약은 굳이 사방으로 파편이 날리는 수류탄 같은 부류가 아니더라도, 내부에 다 화약이 들어있는 위험물이다. 한 탄약고가 공격을 받아 폭발하면 인근의 다른 탄약고까지 연달아 재귀적으로-_- 폭발하면서 Doom 2의 레벨 23 Barrels o' fun이 실사판으로 재연되는 참극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런 스플래시 대미지를 예방하기 위해 탄약창은 최대한 넓게 띄엄띄엄 지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탄약창의 부지가 굉장히 크다. 다만 여기에 땅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국가로부터 눈꼽만 한 보상밖에 못 받고 오랫동안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서 꽤 고달프게 지냈다고 한다.

4.
그 밖에 작년에 있었던 의미 있는 사건으로 또 떠오르는 건.. 서울 역과 노량진 역에 정식 환승 통로가 개통했다는 것이다.
버스와는 달리 지하철은 내렸다가(=집표 구역 밖으로 나감) 다시 탔을 때 환승 할인이 없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서울 지하철 9호선이 개통한 뒤에도 노량진 역에는 물리적인 환승 통로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공항 철도와 경의선도 기존 지하철 1· 4호선 서울 역과는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거기는 수도권 전철 전체를 통틀어 예외적으로 철도끼리 내렸다가 30분 이내에 다시 타도 환승 할인이 인정되게 되었다. 일명 소프트 환승이다.

사실, 지금은 찍고 나간 동일 게이트에 5분 이내에 다시 들어가도 1회에 한해 기본 운임 재징수 면제라는 예외까지도 추가돼 있다. 이런 것들도 다 소프트웨어로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다 구현 가능한 건데 굳이 일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없으니 막아 놓았던 것이다.

지금이야 5년도 더 전에 환승 통로가 개통했지만, 2010년 이전엔 '국철/중앙선' 청량리 역과 서울 지하철 청량리(1호선) 역도 마치 경의선 신촌과 지하철 신촌(2호선)만큼이나 환승이되지 않았고 별개의 역으로 취급되곤 했다. 또한 서울 지하철 6호선이 갓 개통했을 때에도 신당 역은 2호선과의 환승 통로가 아직 완공되지 않아서 몇 달간을 환승이 안 되는 역으로 영업을 했었다. 이때엔 소프트 환승 같은 건 없었다.

서울 역의 경우 지하철과 공항 철도가 정말 도를 지나칠 정도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던 관계로, 수직 이동 삽질을 줄이고 수평 이동도 무빙워크로 도와 줄 환승 토로가 정말 절실했다.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환승 통로 만들어 주세요" 급이었다. 그래서 작년 3월에 먼저 개통했다.
한편, 노량진은 민자역사의 건설과 맞물려서 환승 통로의 개통이 한없이 늦어졌다. 이건 마치 분당선 야탑 역과 인근 버스 터미널과의 통로 개통과도 비슷한 문제였던 것 같다. 둘 다 어른들의 사정 때문에 일이 늦어졌고 그 동안 승객들만 불편을 겪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래도 작년 10월 말에 환승 통로가 생기긴 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물리적인 환승 통로가 뚫린 덕분에,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두 역에만 존재하던 소프트 환승 예외 로직은 폐지되었다. 마치 88 올림픽 고속도로가 리모델링이 완료되면서 반값 통행료 제도가 없어진 것과 같은 이치다.

단, 서울 역에 있는 4개 전철 노선 중 경의선은 여전히 여타 노선들과 단절되어 있으며, 여기는 수도권 전철에서 유일하게 소프트 환승 예외가 계속 유지된다. 1시간에 1대밖에 안 다니는 마이너 지선에까지 굳이 환승 통로를 뚫을 필요를 느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신촌은 아주 유니크한 구간으로 그렇게 명맥이 유지될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6/04/20 08:38 2016/04/2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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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근성인 2016/04/20 21:00 # M/D Reply Permalink

    고속도로 이름을 달빛으로 하자는 의견이 있었다고 기사 봤던거 같은데 저렇게 됐네..

    1. 사무엘 2016/04/20 22:06 # M/D Permalink

      반갑다?
      그랬는데, 이름이 너무 유치찬란하다고 당연히 반발에 부딪혔지.. 그냥 저렇게 중립적인 이름으로 고고씽~~ 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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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1호선의 역사

* 꽤 오래 전인 블로그 개설 초창기에 썼던 글을 리메이크 한 것이다.

1. 개통식

우리나라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인 8월 15일에 맞춰서 정부 수립을 했다. 그런데 이 8월 15일은 우리나라의 철도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날이다. 1974년 8월 15일은 서울 지하철 1호선 "겸" 수도권 광역전철이 같이 개통한 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의 최고급 열차이던 관광호가 새마을호로 이름을 바꿔 첫 운행을 시작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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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사진을 보자. 이 둘은 같은 날 비슷한 시각에 서로 다른 장소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겉으로는 흑백 사진이지만, 철덕이라면 전동차의 색깔이 저절로 컬러로 복원돼서 뇌에 비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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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의 동선과 스케줄을 보면, '서울 지하철 1호선'(종로선)의 개통식이 먼저 청량리 역 승강장에서 열렸다. 마침 친절하게도 당시 시각까지 사진에 담겨 있다. 아침 11시 15분경.
지하철 개통식 때는 서울 지하철 공사(현 서울 메트로) 소속의 흰 배경에 창틀 부분만 빨강 도색인 전동차가 사진에 담겼다.

이 사람들은 저 열차를 마치 자가용처럼 시승하고 다녔다. 그 당시 종합 사령실이 종로5가 역에 있었던 관계로 그 역에서 내려서 사령실도 잠시 들른 뒤, 서울 역도 지나 남쪽으로 쭈욱 내려갔다.

그렇게 지하철 개통식 팀이 도착한 뒤에야 수원, 인천, 성북 방면의 지상 '수도권 전철'의 개통식이 바로 구로 역 승강장에서 아침 11시 50분쯤에 열렸다. 이번에는 철도청 소속의 파란 배경에 창틀 부분만 흰 도색 전동차가 얼굴마담 역할을 했다. 물론 '초저항'이라고 불리는 저 식빵 모양의 일제 전동차 자체는 철도청 것이든 서지공 것이든 완전히 동일하다.

서울에서 수원이나 인천을 가려면 예전에는 털털거리는 디젤 동차를 타야 했는데 그게 모두 깔끔한 전철로 바뀌었고, 그 전철이 서울 종로에 있는 지하철 구간과 직통 운행까지 한다는 것이 이 지하철· 전철 개통의 의의였다.

가끔 코레일이나 서울 메트로 전동차를 타고서 안에서 철도의 역사 관련 동영상이 나오는 걸 살펴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자기 회사에 해당하는 얘기만 한다. 서울 메트로에서는 지하철 개통 얘기만 하고, 코레일에서는 수도권 광역전철 개통 얘기만 한다. 우리는 두 사건이 모두 순차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알면 되겠다.

지하철· 전철 직통 시스템의 개통식은 원래는 대통령도 참석하고 아주 웅장· 성대하게 치러졌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알다시피... 아침 10시부터 장충동 국립 극장에서 대통령 내외가 참석한 광복절 기념식이 있었는데 거기서 영부인인 육 영수 여사가 괴한에게 총격을 당했기 때문이다(10시 23분).

지하철 개통식 사진에 찍힌 11시 15분은 그 대형 사고가 터진 지 50분 남짓밖에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그러니 저 사진에 나온 사람들은 마냥 기쁜 표정만 지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은 그 당시 양 택식 서울 시장이 아주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과업이었으며, 원래대로라면 개통식은 그의 인생 최고의 날이 돼야만 했다. 하지만 하필 그 날 대통령의 영부인이 세상을 떠나는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그는 사건의 책임을 지고 시장 자리에서 경질되고 말았다.

그의 후임인 구 자춘 시장은 양 택식의 지하철 건설 계획을 거의 다 갈아엎었다. 하지만 저 사람도 선임 뺨치는 불도저였으며, 다음 노선인 2호선이 거대한 순환선으로 만들어진 건 그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2. 발전 내력

서울 지하철 1호선 겸 수도권 전철은 처음에는 한 편성당 6량으로 개통했지만 이미 1980년 12월에 8량으로 증설되었고, 1984년에는 10량으로 증설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 당시 열차를 타고 있는 동안은 "객실에서는 금연입니다. 출입문은 30초 동안 열려 있습니다(일반열차보다 훨씬 더 빨리 닫히고 금방 출발하므로). 지하철 전동차 안에는 화장실이 없습니다."라고, 난생 처음으로 일반열차가 아닌 지하철을 타는 사람을 대상으로 초보적인 안내 방송도 일일이 육성으로 흘러나왔다고 한다. 경부 고속도로가 처음 개통했을 때 "이 도로에는 사람이나 손수레, 자전거 따위는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라고 한참 홍보를 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1974년 첫 개통 당시의 운행 계통과 운행 시격은 다음과 같았다.

  • 청량리-성북(지금의 광운대 역): 40분
  • 서울역-청량리: 10분 (R/H 땐 5분)
  • 서울-구로: 10분
  • 구로-인천: 20분
  • 구로-수원: 40분

즉 남쪽으로는 10분 간격으로 구로, 인천, 수원, 인천 행이 번갈아가며 왔다고 생각하면 되고 북쪽으로는 4대 중 1대 꼴로 성북 행이고 나머지는 청량리까지만 간 셈이다.
인천까지 가는 전철이 급행도 없고 배차간격이 지금의 중앙선과 비슷한 수준이요, 수원 가는 전철은 지금의 소요산 행 열차보다 배차간격이 더 길었다는 얘기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경부, 경인선 모두 그냥 복선이었고 특히 경부선 전동차는 지금 급행 전동차가 그런 것처럼 일반열차의 틈새를 이용해서 운행되었으니, 열차를 많이 투입할 수 없었음이 자명하다.
1981년 12월 23일에는 경부선 수원-영등포 구간이 2복선으로 확장되면서 경부선 전동차를 더욱 증차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일반열차 눈치 볼 필요 없이 전동차만의 선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때 상대식 승강장을 하고 있던 역은 자연스레 쌍섬식 승강장이 됐다.

2복선화 공사는 그때 이미 구로 이남은 방향별 복복선으로, 서울 시내 구간은 공사가 쉽지 않아 선로별 복복선으로 정착한 것 같다. 방향별 복복선은 기존 복선 선로의 양 끝에 선로를 하나씩 추가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예전부터 있던 내선은 일반열차가 계속 쓰고 신설된 외선으로 전동차가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수원 이남으로도 계속 달리는 일반열차와는 달리, 수원에서 북쪽으로 회차해야 하는 전동차는 선로를 바꾸는 회차 과정에서 일반열차 내선을 침범하게 되는 문제가 있었다.

회차할 때만은 여전히 일반열차 눈치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2복선의 선로 용량에 걸맞게 전동차를 증차하기가 어려웠다.
이 고질적인 문제는 먼 훗날인 2003년, 병점 역이 개통하고 나서야 해결되었다. 차량기지와 함께 회차 전용 입체 교차로가 신설된 것이다. 병점뿐만 아니라 천안에도 전동차 회차 및 장항선 분기가 모두 입체 교차로로 잘 구비돼 있다.

90년대에 들어서서는 경인선도 2복선화가 추진됐다. 거기는 일반열차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성, 타당성 조사는 진작에 다 통과했기 때문에 일이 성사됐다. 그리고 경부선과 경인선이 합류하는 구로-영등포 간은 아예 3복선화도 진행되었다. 1991년 11월 23일은 경인선 2복선화 기공식과 경부선 해당 구간 3복선화의 개통식이 거행된 역사적인 날이었다. 경인선 2복선화는 부평-주안-동인천의 순으로 진행되었으며, 구일 같은 역은 이를 계기로 형태가 크게 바뀌기도 했다.

사실 그 해 5월 25일에는 공사 때문에 1박 2일 남짓한 시간 동안 전동차가 잠시 단축 운행을 하기도 했었다. 지금 경부 고속철 2차 공사 구간에서 경부 고속도로 위를 타넘는 언양 고가 공사와 비슷한 맥락이라 보면 되겠다. 첨단 공법을 동원한 덕분에 공사의 대부분은 차량 통행을 막지 않고 그대로 진행할 수 있지만 아치의 기초를 놓는 한나절 남짓한 시간은 고속도로를 잠시 막아야 했다고 한다.

경인선과 더불어 경부선 수도권 전철도 수원이 아닌 무려 천안까지 남하하는 공사가 1996년부터 추진되었다. 그 시절에 경부선 일반열차를 타면서 아직 완공되지 않은 전철역 승강장이 휙휙 지나가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경부선은 이제 천안 이북은 2복선 전철이 되었지만 일반열차 때문에 경인선처럼 충분하게 급행 전동차를 운행하지는 못한다.

서울 서남쪽이 그렇게 변화를 겪고 있는 동안, 북쪽 종점인 성북 일대에서는 1호선 전동차의 병목을 야기하고 선로 용량을 깎아먹던 '평면교차' 문제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진행됐다.
1978년 12월에는 경원선 용산-성북 구간에도 전동차가 투입되어 종전의 디젤 동차를 대체하고 1호선의 지선 노릇을 하게 되었는데, 이놈은 선로 합류와 회차 과정에서 유감스럽게도 1호선 전동차와의 평면교차를 야기하고 있었다.

얘는 2005년에 광역전철 중앙선으로 분리해 나감으로써 문제가 해결됐다. 용산-성북이 아니라 용산-덕소가 됐다. 마치 안산선 열차가 처음엔 1호선 경부선의 지선으로 운행되다가 훗날 4호선으로 완전히 독립해 나간 것과 같은 방식이다.
또한 경춘선 무궁화호가 야기하던 평면교차도 경춘선 복선 전철이 다른 선로로 이설되면서 사라졌다. 다만 이런 조치로 인해 반대로 말하면 성북(지금의 광운대) 역이 그 덩치에 비해서 경춘선도 못 타고 중앙선도 못 타고 오로지 1호선 전동차밖에 못 타는 역으로 역할이 줄기도 했다.

다만, 처음에는 이 수도권 전철의 북쪽 종점은 계속해서 올라가서 한동안 의정부북부에 머물러 있다가 이제는 동두천과 양주를 거쳐 소요산까지 올라갔고, 장기적으로는 무려 연천까지 갈 거라고 한다. 경원선 자체는 아예 민통선 안의 월정리와 철원까지 복원할 계획이 잡혀 있고.. 정말 40년 동안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룬 셈이다.

그나저나 먼 옛날에는 서울 지하철 1호선의 내부 인테리어가 온통 빨강이었다는 것이 본인은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로마자 표기법이 바뀐 게 반영되고 국철과 지하철 구분 없이 색깔을 남색으로 획일화한 모습만 직접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옛날 사진을 보면.. 오히려 "내가 착각을 하고 있나, 색맹이 됐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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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6/03/20 08:31 2016/03/20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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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개통과 운행 내력 외

한반도에 KTX라는 이름의 고속철이 개통하여 상업 운행을 시작한 지 어언 10년이 넘었다.
개통한 지 무려 반세기가 넘은 일본의 신칸센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그래도 KTX도 개통 내력이 은근히 복잡해지고 있으니 한번쯤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2004. 4. 1. [경부 1차 개통]
- 경부선: 서울-부산 (고속선은 대전-광명, 대구-옥천만)
- 호남선: 기존선의 복선전철화. 용산-목포 (대전 이남엔 고유한 고속선 구간 없음)
- KTX 개통과 함께 (1) 서울교외선에 정규 열차 운행이 중단됨. (2) 통일호 폐지, (3) 경춘선 무궁화호 폐지.

* 이 일대 시기의 서울/철도 소사를 참고 차원에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청계고가의 철거와 청계천 복원 사업이 시행됨.
- KTX 개통 약간 전에 서울역 민자역사가 개관함.
- KTX 개통 후 얼마 안 있어 경부선은 서울 역, 호남/전라/장항선은 용산 역으로 역의 역할이 완전히 이원화됨.
- 2004년 7월, 서울 수도권의 버스· 지하철 통합 환승 제도가 시행됨.
- 2005년부터 철도청 폐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출범.

2007.
- 경부선: 대전-대구 사이만 기존선으로 달리면서 김천과 구미에 정차하는 KTX 일부 운행

2010. 11. 1. [경부 2차 개통]
- 경부선: 대구-신경주-울산-부산 사이의 고속신선 신규 개통. 기개통 구간엔 오송과 김천구미 역이 추가 영업 시작함
김천· 구미 KTX는 폐지. 그 대신 수원· 영등포 정차 KTX 생김

2010. 12. 15.
- 경전선: 기존선의 복선전철화. 대구 이남으로 창원, 마산으로 가는 노선. 수요 폭발이었다고 함.

2011. 10. 5.
- 전라선: 기존선의 복선전철화. 익산 이남으로 여수엑스포 행

2012.
- 드디어 KTX-산천 차량 투입

2014. 6. 30.
- 일부 열차가 인천 공항까지 직결 운행 시작

2015. 4. 2. [호남 1차 개통]
- 호남선: 고속신선 신규 개통. 익산· 정읍· 광주송정을 경유하며 공주 역 추가 영업 시작. 저 역들을 제외한 호남선 기존선 역들은 KTX 취급이 폐지됨(광주, 김제 등).
- 동해남부선(앞으로 동해중부선과 연결되어 동해선이 될 예정): 포항 직결 운행 시작

2015. 8. 1.
- 대전과 (동)대구는 기존선과 인접하는 도심 구간까지도 기존선 연결선이 아니라 고속선이 깔림으로써.. 운행 계통이 일반열차와는 완전히 분리되는 복을 누리게 됐다.

요약하면:
고속신선은 오송에서 분기하는 경부선과 호남선 축으로 깔려 있고, KTX 운행 노선은 거기에다 호남 분기(전라선), 경부 분기(경전선, 동해남부선), 그리고 서울 이북으로 공항선이 추가적인 겉저리로 붙은 형태이다.
차량은 아무래도 1세대 떼제베 차량과 2010년대 이후의 2세대 산천 차량 정도로 나뉜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KTX-산천은 HSR-350의 기술로부터 만들어진 열차이긴 하지만 산천 자체가 HSR-350을 그대로 양산한 건 아니다.

더 먼 미래엔:
(1) 호남 고속철이 광주 이남으로 2차 구간이 마저 개통할 것이며, (2) 수서 발 수도권 고속철과 (3) 강릉 방면 동서 고속철이 남아 있다.
“희망을 싣고 번영을 싣고 뻗어가는 철도 따라 커 가는 나라”대로 될지어다. 아멘. (철도의 노래 가사 중)

* 고속철의 이름: 차량이냐 선로냐

고속철 보유국으로서 프랑스와 일본을 비교해 보면 좋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 떼제베(TGV)는 '매우 빠른 열차'라는 뜻이며 차량 중심으로 작명됐다. 한국의 KTX도 이니셜을 보면 알 수 있듯, 차량 중심이다. 프랑스는 차량 기술에 자부심이 많은지 그 뒤에도 증속 경쟁을 제일 열성적으로 진행해 왔다. 2007년엔 자기 부상 열차가 아닌 재래식 바퀴식 열차로 무려 시속 574km라는 사기적인 시운전을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신칸센은 '새로운 간선 철도'라는 뜻으로 의외로 차량이 아닌 선로 중심으로 작명됐다. 본인은 철덕으로서 이 차이가 매우 신기하게 와 닿는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차량보다도, 기존 협궤가 아닌 표준궤로 고속철 신선을 깔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게 와 닿았던 것이다. 1964년에 첫 운행을 한 신칸센 0계 전동차는 떼제베 같은 독자적인 디자인도 아니고 걍 자기네 옛날 전투기와 비슷한 투박한 외형이었다.

새로운 교통수단을 만들 때는 성능뿐만이 아니라 안전도 굉장히 높은 가중치로 고려 대상이 되며, 고속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속 200km를 넘게 증속을 하는 기술보다도, 그렇게 고속 주행 중에 장애물이 나타나고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제동 거리를 얼마를 넘지 않고 비상 정지를 도대체 어떻게 할지가 더 심각한 고민거리로 대두되었다. 엔지니어들이 별별 아이디어를 다 짜내 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싸움이 가장 좋은 싸움이다"라는 결론을 도출하게 됐다.
"가장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다." (They're only good when dead 포카혼타스 Savages 대사;; )처럼.
애초에 비상 정지를 할 일이 없게 만들자는 것이다.
건널목 따위는 전혀 안 만들고 모든 구간을 무조건 입체교차로 만들고, 선로에는 아무도 접근을 못 하게 겹겹이 벽을 두르면서 일본의 경부선뻘 되는 도카이도선을 표준궤 고속선으로 새로 만들었다. 1960년대에 벌써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이름이 선로를 내세운 '신칸센'이 됐고 이것이 일본 고속철의 선로, 열차, 시스템의 명칭이 됐다.

일본의 도쿄 지하철은 1호선뻘인 긴자 선이 1927년에 개통했는데 다음 마루노우치 선은 1954년에 개통했다. 전쟁 뻘짓만 안 했으면 지하철, 고속철, 올림픽 등 모든 것들이 195,60년대보다 10년 이상 일찍 개통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일본과 프랑스의 고속철 역사를 살펴보면, 철도라는 걸 처음 만들 때는 당연한 말이지만 차량보다 선로가 먼저라는 원칙을 확인할 수있다.
우리나라도 1992년에 대전-천안간의 경부고속선 본선 겸 시험선 구간을 먼저 착공한 뒤, 차량의 선정 계약은 더 나중인 1994년에 맺었다.

시속 200km를 넘는 장거리 간선 철도의 건설 자체는 1964년의 일본 신칸센이 세계 최초이다. 하지만 그 뒤의 추가적인 속도 경쟁은 후발 주자인 프랑스 떼제베가 앞섰다. 가령, 시속 260km대의 상업 운전은 1981년에 떼제베가 세계 최초로 달성했고 신칸센은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뒤인 1992년에야 300계 전동차가 도입되면서 그 속도를 따라잡았다. (300계는 TGV-R, ICE와 더불어 우리나라 고속철의 차량 입찰 후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잘 알다시피 1984년 8월에 경부선 천안-서정리 구간에서 겨우 시속 150km 시운전 성공.. 이러던 지경이었다. 그러니 국제적인 안목이 있는 철도 공학자와 경영자들이 통탄할 법도 했다. 1980년대, 전국 곳곳에 포장 도로가 깔리고 마이카 시대가 코앞인데 이래 가지고는 "한국 철도엔 답이 없다"라는 게 뻔히 보였다. 철도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은 선택과 집중, 그리고 증속을 통해 많이 빠르게 실어 나르는 "회전율 향상"뿐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1985년 11월에 서울-부산 4시간 10분이 달성된 후, 지속적인 레일 장대화와 선형 개량, 기관차 출력 증대로 서울-부산을 1980년대 말까지 3시간 반까지 단축시키려는 계획은 잡혀 있었다. 그러나 그런 미봉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1992년에 드디어 인천 공항의 건설과 더불어 경부 고속철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 뒤의 역사는 여러분이 다 아시는 그대로이다.

우리나라에서 떼제베 대신 신칸센이 낙찰됐다면, 철덕의 입장에서 전망해 보자면 다른 건 몰라도 떼제베보다 폭이 더 넉넉하고 애초부터 역방향 좌석이 없는 열차가 도입됐을 가능성이 높다. 신칸센은 2-3배열 가축수송 열차가(한 줄에 좌석이 5개!) 있을 정도로 같은 표준궤에서도 뚱뚱한 덩치이기 때문이다. 자기네 자위대 전차의 부품도 제대로 수송을 못 할 정도로 빼짝 마른 협궤에 이골이 난지라, 신칸센은 이왕 표준궤로 까는 김에 열차의 폭까지 최대한 더 키운 듯. 하지만 지나친 고자세 때문에 입찰 후보들 중에서는 신칸센이 가장 먼저 탈락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5/09/11 08:32 2015/09/1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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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흐음 2015/09/11 11:05 # M/D Reply Permalink

    글 잘봤습니다. 그런데 포항행 KTX가 다니는 구간은 동해남부선이 아니라 동해선이 공식명칭입니다. 추후 동해남부선의 나머지 구간과 동해중부선 구간도 공사가 끝나면 동해선에 편입될 예정입니다.

    1. 사무엘 2015/09/11 12:36 # M/D Permalink

      예, 맞습니다. 다만 동해선이 전부 개통한다고 해도 KTX가 현재의 동해남부선 구간인 포항보다 더 북쪽으로 운행을 시작할 가능성은 없어 보이니 습관적으로 그냥 '동해남부선'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네요.
      나중에 동해선으로 합쳐질 예정이라는 점을 본문에다가도 명시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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