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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일

(1) 외세 때문에 못 하고 있는 게 절대 아님
내가 정말 양심에 손을 얹고 진지하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야..
이 지구상에서 정말 중공만치 한국의 남북 통일을 온몸으로 반대하고 북괴 체제의 존속을 지지하는 악한 나라가 또 있냐..??
6 25 사변이 벌어졌던 시절이나, 그로부터 70여 년 뒤의 지금이나 한결같이 말이다.

유엔군이 38선 넘어서 북진을 하니까 칼같이 개입해서 저지한 게 저놈들 아니었냐?
그걸 놔두고 도대체 무슨 염치로, 무슨 양심으로, 무슨 유체이탈 정신승리 화법으로.. 통일이 웬 얼어죽을 일본 미국의 반대와 방해 때문에 안/못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2) 이제는 남북 통일 한다고 해서 국력이 더 강해질 수 있지 않음
그리고 이 인간들은.. 남한 북한이 합쳐지면 한국이 순식간에 일본 미국을 능가하는 강대국 부자 나라가 될 거라고 진짜 진지하게 생각하는 걸까? 허 참..

남한과 베트남이나 필리핀이 합쳐지면 일본을 능가하는 강대국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엔 남한과 독일 정도가 합쳐져야 이제 일본과 맞장뜰 만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데 하물며 북괴가 베트남· 필리핀보다 더 잘사는 나라이기라도 하나?? 어이구..

본인의 정치 성향이 마음에 안 드는 애들, 싫은 애들.. 그 누구든지 입이 있으면 말해 봐라. 변명이든 반박이든 해 보셔~ 도전장 날린다.
이래서 반일정신병은 정상적인 지능과 양심으로는 절대 걸릴 수 없는 병인 거다.

(3) 이제는 통일이 아니라 그냥 북한의 개방과 민주화를 바라야 함
사실, 우리나라가 남북통일을 할 거면 쌍팔년도 이전의 할배나 원조가카 시절에 무력· 흡수통일 형태로 했어야 했다.
그러나 남북 분단은 이제 사람들 세대가 바뀌어 버릴 정도로 장기화돼 버렸고, 북한 체제가 저절로 무너질 수 있던 기회까지도 다 놓쳐 버려서 이젠 때가 너무 늦었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이제는 무리하게 통일을 바랄 게 아니라 북한의 개방과 민주화부터 먼저 바라야 한다. 사실, 통일을 하려는 이유도 북한 주민들에게 저걸 주는 것 말고 다른 의도가 없다.
북한을 평범하게 왕래할 수 있는 중국· 일본 같은 정상적인 외국으로라도 먼저 만드는 게 절대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4) 북괴의 흉계
남조선이 멸공통일, 반공통일, 승공통일, 평화통일의 순으로 기조가 바뀌는 동안,
북괴는 전면 남침, 무장공비, 납치 폭파 테러이다가 그 다음으로 잠수함, 핵과 미사일로 기조가 바뀌었을 뿐이다!

일본은 패전 후에 GHQ한테서 교육받고 군국주의 쫙 빼내고 나라 체제가 싹 개조되기라도 했다. 그 뒤 일부 소수 또라이들이나 되도 않은 독도 갖고 트집잡고 지랄하는 정도이다.
하지만 북괴는 진짜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림 반푼어치도 바뀐 게 없는뎁쇼..?? 과거의 망령이랑 현재의 적을 구분할 줄도 모르냐?

우리나라한테 저지른 짓에 대해 일본이 한 것만치라도, 영혼 없는 립서비스 사죄 보상이라도 한 것조차 단 1도 없고..
그렇게 퍼주고 평화 지랄해서 지금 북한 주민이랑 검열 없는 편지 왕래, 전화 통화, 북한 내부로 개방된 인터넷..
도대체 뭐 어느 거 하나 이뤄진 게 있나..??

민주당 간첩과 북괴 체제야말로 진짜 시대착오적인 애들일 뿐..
그나마도 아주 좋게 점잖게 신사적으로 말했을 때 시대착오적인 거고, 감정대로 현실대로 말하면.. 바로 가스실로 보내고 대가리에 총알 구멍 내야 될 애들이다.
굳이 목숨은 부지하고 싶거들랑 삼청이 아니라 오청 백청교육대라도 보내서 두뇌 구조를 개조시켜야 된다.

'공산주의' 와 '공산주의자'는 같지 않으며 '좌파'와 '종북'도 전부 다른 개념이긴 하다. 하지만 어쨌든 다들 나쁜놈이거나 아니면 나쁜놈의 사상적 근간으로 오· 남용되고 있는 건 다 동일하다.

2. 사악하고 불순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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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저런 상황에서

"자유라는 게 왜 중요할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왜 피흘려 가며 이를 지켜내야 했을까요?"


이렇게 묻는 게 정상적이고 도덕적이고 인륜에 부합하고 올바른 질문이란다, 이 머저리 바보천치 등신아.
저기서 한 발짝만 더 나가면.. 곧바로 민족 해방 항쟁이 미제 원쑤들에 의해 좌절됐다는 말 튀어나오겠지.

의병이고 독립군이고 싹 다 토벌되고 없어진 일제 식민지도 전쟁 없는 평화 상태였고,
학교에서 죄없고 약한 애가 양아치한테 고분고분 삥뜯기는 것도 싸움질 없는 평화 상태라구.. 안 그래, 이 사악한 위선자야?

3. 자살 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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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한두 번만 있었으면 그냥 우연일 수 있겠지만.. 줄줄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건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정권에 반대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서 코렁탕 먹는다거나.. 심지어 장 준하, 최 형욱처럼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하는 사건이 민주화 이전 군사 독재 시절에나 있는 줄 알았지?

반세기 전 버전은 그나마 반공과 경제 개발을 위한 선한 독재이기라도 했다.
하지만 이건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독재이다. 진짜 지들만 해쳐먹고 나머지는 다 거지 되는 진짜 악한 독재란 말이다.

차이점을 모르겠으면..?? 니들만 책임지고 고생하면 내가 이런 글 올리지도 않는다. 정상인들까지 싸잡아서 고생하게 만들지는 말라고..!!
반대편 야당 진영에서 허구헌날 이런 자살 릴레이가 터졌어 봐라.. 무슨 난리를 쳤을까..?? 이걸 생각하면 소름이 쫙 돋는다.

지난 5년? 10년? 남짓한 시간 동안 내가 지켜본 바로는..
선의 편, 정의의 편에 섰던 사람들은 딱 인상을 보면 양심에 거리낌이 없고 떳떳하고 당당하다는 게 느껴졌다.

“그저 정권이 바뀌는 바람에 애국이 하루아침에 매국으로 뒤집힌 거라면 차라리 내가 죄인이 되고 말겠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내 명령에 따르기만 한 부하들은 아무 잘못 없으니 건드리지 마라. 나는 또 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동일하게 행동하고 처신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딱~ 이러니 가슴이 다 뭉클해지는 것 같았다.

다른 어떤 사람은 그 어떤 변명도 없이 너무 순진할 정도로 고매하고 도도하게 “나는 애초에 죄가 없다. 세월이 흐르면 결국 역사가 공정하게 평가해 줄 것이다. 어차피 살 만치 다 산 인생인데, 구차하게 항소니 탄원이니 하는 것 자체가 적들이 짜 놓은 유죄 프레임에 말려드는 추한 짓이다” 이랬다.

그러나 그러나..
악의 편에 선 놈들은 정말 오로지 남 탓, 뭐시기 때문, 누구 때문.. 왜 나만 갖고 그래... 이었다. 그저 주둥아리로 말이 많고 변명이 많았다.

아니면 자살이나 싹 해서 책임 회피하고 수사를 흐지부지 시키고 혼자 도망가곤 했다. 아니면 자살 '당하거나' 말이다.
이건 정황상 결백 호소, 억울함 호소나 자기 명예 설욕을 위한 자결이라고도 절~~대로 간주할 수 없는 죽음이었다.

각 사람들이 누군지는 차마 대놓고 얘기하지 않겠다.
올해 봄엔 대통령이 바뀔 예정이긴 한데.. 이번엔 제발 악의 무리가 아니라 정의와 선의 편에 선 사람이 지도자로 선출되었으면 좋겠다.
'멸공'이니 '우리의 주적은 북한' 같은 너무 상식적이고 당연한 소리가 논란거리 조롱거리가 되지 않는 세상이 좀 왔으면 좋겠다.

군대도 안 갔다 온 사람이 멸공을 외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잖아!
-- 그럼 군대 갔다 온 대통령이 북괴를 옹호하는 건 말이 되고?
-- 그럼 일제 시대를 직접 겪지도 않은 사람이 반일 거리는 건 말이 되고?


멸공은 당연한 절대선이다.
멸공 갖고 전쟁 선동 지랄하는 건 절대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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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22/01/17 08:35 2022/01/1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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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빡친 말투가 들어있음을 미리 양해 구한다. ㄲㄲㄲㄲㄲ

1. 기본적인 경제 원리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본인이 초딩 꼬꼬마이던 시절, 고향에서 다니던 교회에는 집이 꽤 부자이신 어느 중년 어르신이 계셨다. 짭짤한 임대 수입이 있는 건물주였다.
자녀는 일찌감치 외국 학교로 보냈으며, 자가용도 그 시절에 기아 콩코드를 굴리다가 현대 각그랜저로 바꾸기도 했다. 게다가 휴대전화라는 게 없던 시절에 굉장히 비싼 액세서리였던 카폰까지 차에 장착해 있었다. (내가 태어나서 모토롤라라는 기업명을 최초로 접한 게 그 카폰을 통해서..)

그분도 자동차에 관심이 많던 날 귀여워해 주시고 차를 태우고 여기저기 구경도 시켜 주셨다.
콩코드는 계기판이 디지털인 것, 그리고 그랜저는 굉장히 정숙하고 편안해서 우리집 차라면 시속 60km 정도로 달리는 수준의 소음과 진동인데 저기서는 이미 시속 100을 훌쩍 넘은 상태였다는 게 기억이 남아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뒷좌석에도 파워윈도우와 3점식 안전벨트가 있는 것, 특히 뒷좌석 중앙의 팔걸이,
핸들에 오디오 조작 스위치가 있는 것, 시속 20km 정도 넘어서면 모든 문이 자동으로 잠기는 것, ABS 브레이크..
이런 건 그 시절 본인 집의 차에는 없던 문물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나 2010년대쯤 되니.. 저것들은 당연히 모두 다 이뤄졌다.
지금은 내가 굴리는 평범한 국산 양산차, 길거리의 택시로 굴러다니는 차들이 20~30년 전의 그랜저보다 모든 면에서 더 좋은 차다. 엔진 출력도 더 뛰어나다.
단지, 이제는 1990년대의 그랜저 차주처럼 소수만 그 기술의 혜택을 입는 게 아니다. 그리고 지금의 그랜저야 성능과 스펙이 당연히 더 올라가서 격차가 벌어져 있을 뿐이다.

자.. 이게 바로 인간 사회와 문물· 문명이 발전해 온 방식이다.
모든 인간에게 사리사욕이 있음을 인정하고, 능력의 격차와 생산성의 격차, 빈부 격차를 인정해서 돈이 돈을 벌고 부자가 왕창 더 부자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 동기 부여가 계속 주어져야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혁신적인 제품이 나오고 식량과 생필품의 생산이 늘어서 단가가 내려간다. 그리 돼야만 극빈자도 가난을 탈출하고 기본적인 생존이 가능해지고 최소한 중산층이라도 될 수 있게 된다.
정부의 개입은 치안 유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최소한의 생존과 복지 보장, 책임감이 분산되어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하지만 사회 질서를 위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치킨 레이스가 되고 공멸할 여지가 있는 경쟁에 대한 중재 같은 곳에만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한다.

인간의 그런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욕망을 더 고차원적으로 다스리는 건 종교를 통해 개인적으로 담당하게 해야 한다.
"탐욕은 우상 숭배",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는 것으로 만족하라", "세상 재물 다 얻어도 니 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성경을 믿고 예수 믿고 구원받아서 성령 안에 걸으면서 개인이 자기 마음 안에서 이뤄야 하는 것들이다.

정말 FM대로 이상적인 경우라면.. 그 부자들이 역으로 당신을 보고는 "너는 별로 풍족해 보이지도 않는데 뭐가 그리 만족스럽고 고맙고 표정이 밝냐? 도대체 돈을 초월해서 무슨 믿는 구석이 있는지 궁금하다"라고 물을 지경이 돼야 한다! 그게 신앙의 힘이다.

이런 건 인간의 본성으로, 세상 정부 세속 시스템으로는 절대로 이룰 수 있지 않다.
세상 정치인이 저딴 걸 갖고 훈계질 선비질 하고 자기가 그걸 다 통제하고 이루겠다고 지랄하는 건 극악한 거짓 위선이요, 하나님보다 더 자비로운 짓거리이며 선의로 포장된 지옥일 뿐이다.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위선의 극치를 경험하면서 분노하곤 했다.

"꼭 강남에서 살 필요 없다, 개천에서 굳이 바득바득 용 나지 않아도 된다, 월세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기억하시는가?
그놈들이 이딴 소리를 "지 자식새끼"한테도 똑같이 진지하게 하겠는가? X발, 국민을 얼마나 미개한 개 돼지로 얕잡아 봤으면 저런 지랄을 하는 걸까?
이런 게 옛날에는 유교탈레반 조선의 관행이었고, 현대엔 빨갱이들의 체제전복 거짓 선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예수 믿어서 건전한 세계관이 갖춰지면 이런 것 정도는 좀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강남 아파트에서 포르셰 굴리는 이웃 부자를 시기 질투하고 욕해서 걔네들을 다 세금폭탄 때리고 빼앗아서 강제 분배하겠다는 정치인(사회· 공산주의자)한테 표를 준다면..
다음 세대 니 아이들은 이팝에 고깃국 먹는 이웃 부자를 시기 질투하고 욕하게 될 것이다."


아멘. 이게 현실이며 정말 뼈때리는 팩트폭격 금언이다.
십계명의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는 무슨 기업주 고용주 건물주한테만 적용되는 계명이 아닌 셈이다.

2. 아직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마음

이건 내가 쓴 게 아니고 인터넷 돌아댕기다가 본 글인데..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소개한다.

"불로소득으로 번 돈을 환수해서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게 무슨 잘못이냐. 환수한 돈이 나에게 돌아오지 않아도 상관 없다"
"니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부동산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너무 심하게 부를 가져간 건 사실이잖아?"
이런 사람들 마음 이해합니다. 무식한 마음을요.

첫째, 불로소득 아닙니다. 당신의 양심이 이제는 말해 줄 겁니다.
당신이 한 일이라곤 고민고만한 무식한 사람끼리 술먹고 정치인들 욕한 것 빼고 별로 없습니다.
당신이 아껴쓰기 싫고 대출 갚기 싫고 위험부담 지기 싫고 깨끗하고 넓은 집 살고 싶어서 그런겁니다.

둘째, 환수할수록 가격은 오릅니다. 공급이 줄어드니까요.
이미 노 무현 문 재인 10년간 충분히 증명해 낸 우리나라 사정에 딱 맞는 진실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10년간 해 보았습니다. 부동산은 안정되었고 희망도 있었습니다.

셋째, 공정한 나라는 저 반대로 해야 이루어집니다.
일한 만큼 불로소득을 만들 수 있고, 아낀 만큼 불로소득을 만들 수 있어야 은퇴 후에 자식에게 버림받지 않고 스스로 살 수 있습니다.
앞으로 돈 없는 부모 모시고 살아줄 자녀들 거의 없습니다. 자식들이 힘들게 살아가야 하거든요. 부모 세대가 망쳐 놓은 나라에서.
다 걷어서 배급받자는 거지들이 설치는 나라가 공정한 나라가 아닙니다.

넷째, 걔들이 너무 많이 가져간 게 아니라, 국가에서 물가랑 세금을 너무 많이 올려놓은 겁니다. 물가와 같이 오른 부동산만 당신 눈에 보일 뿐.
물가를 올린 민주당 정권한테 욕을 해야죠.

다섯째, 환수한 건 거의 다 민주당 정치인과 하수인들이 먹습니다. 바랄 걸 바라십시오.
어차피 당신에게 올 부스러기는 지원금 몇십만원이 다입니다.


부가 낙수 효과가 있는 것처럼 물가와 세금도 당연히 낙수 효과가 있다.
건물이든 땅이든 부동산 소유자가 세금 폭탄을 맞으면 월세· 전세를 올려 받아서 그걸 만회하게 된다. 그 부담은 세입자 또는 그 가게의 상품을 이용하는 고객에게도 고스란히 돌아간다. "상위 몇 %만 내는 세금이니 괜찮다?" 이건 정말 유치한 궤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참고로, 난 무슨 아담 스미스 정도의 무조건적인 절대무오 시장 만능 방임주의자까지는 아니다.
공산주의는 몽땅 처절하게 실패한 실험이었으며 공산주의자는 상종을 말아야 할 흉악한 저질 부류라는 걸 늘 잊지 말아야 한다. 허나, 어느 문화권이건 산업화 초기의 방임주의 시절에 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처참했는지도 동일하게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때 오죽했으면 더 나쁜 길로 빠지는 공산주의가 나오고 공산당 혁명이 성공했겠는지도 이해해야 완전한 반공주의자가 될 수 있고 과거의 시행착오를 원천봉쇄할 수 있다.

그래서 본인은 윗글에서 첫째 둘째 셋째는 한 80% 정도까지 동의한다. 하지만 넷째와 다섯째는 100%, 500% 핵공감한다.

3. 입학 취소

온갖 스펙 서류 조작으로 의전을 들어가서 온갖 봐주기 버프를 받고도 1.x대의 평점으로 간신히 졸업한 어느 금수저 여자애 말이다.
이제 와서 의대 입학을 통째로 취소하는 조치는 너무 가혹하다고 모교의 총장이 무슨 변호사라도 되는양 애를 옹호하고 나섰다.

거 참 어이가 없어서..
그년 때문에 자기 실력 갖추고도 의전에 입학을 못 한 학생이 발생한 건 너무 가혹한 거 아니고?
유급되었어야 할 저질 의사가 배출된 건 국가적으로 가혹한 일이 아니냐?

그리고 의대처럼 남 생명을 다루는 것도 아니고, 서민 신분 상승 코스하고도 전혀 무관하기 때문에 서민들이 박탈감 느낄 필요도 거의 없고, 원래부터 학사관리 빡세지 않고 부자들 기여입학 비중이 훨씬 더 큰 과(말 유지 비용이 과연...???)에 들어갔던 정 유라..
걔를 단칼에 출교시켜서 싹 중졸로 리셋 운지시킨 건 별로 가혹하지 않았나 보네? X발.. 인간이 어떻게 이 정도까지 비열한 철면피 내로남불로 타락할 수 있을까?

의사 국가고시에 이미 합격했으니 공인 의사가 아니냐는 반론이 있다. 허 참, 그게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잖아..
정 유라는 뭐 아시안게임 승마 금메달리스트던데..?? 남자였으면 군대도 빠질 수 있는 업적을 채웠는데.. 승마 실력이 부족해서 학교에서 짤린 거냐?

학사장교 복무 다~~ 마쳤다가 나중에 수능 부정행위나 대졸 학력위조가 들통나서 대졸 무효에 임관도 싹 무효화되고 이등병 강등됐던 애들이 있었다. 걔들도 무슨 소대장 시절의 지휘 실적이 부족해서 짤린 게 아니었다.
아니면 처분이 충분히 가혹하지 않았거나, 돈 없고 빽 없는 호구 바보여서 그렇게 된 건가 보다. 이 미개한 후조선 땅에서는 말이다.

어디 반박할 테면 반박해 봐라. 정말 제정신 박힌 좌파라면.. 저년 집안 사태는 나라도 도저히 실드 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는 게 정상이다.

4. 역사 인식

"해방 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것은 공산주의자들이 무장폭동들을 일으켰기 때문이고, 박 정희와 전 두환 시절에 민주주의가 덜 성숙된 것은 맑시즘에 빠져든 운동권들이 툭하면 사회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아멘 아멘 할렐루야 빙고 따봉 absolutely definitely yes siree! 맞습니다 맞고요 그렇고말고요!
너무 당연한 얘기 아닌가?

시뻘건 북괴 무리들만 없었으면 우리나라도 무리해서 병력을 짜내는 징병제를 안 해도 됐을 것이고(실제로 건국 직후에는 그냥 모병이었음..) 사회 분위기가 그 정도로 경직된 군대 병영 문화로 갈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무슨 광복군이 제대로 참전만 했어도.. 이딴 걸 아쉬워할 게 아니라 "그때 대한민국 건국을 사사건건 비열하게 방해하던 악의 무리들만 없었어도~!!"를 생각하며 아쉬워해야 한다.

심지어 박 정희 전 두환도 미국 눈치를 보느라.. 머릿속에 똥만 잔뜩 들어있던 사회악 암세포 불순불온분자들을 단호하게 척결하지 못하고 너무 부드럽고 관대하게 살살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X신 같은 친일파를 청산 못 한 게 아니라 저런 것들을 다 청산 못 한 게 지금 우리나라 요 지경 개막장을 만든 화근이 됐다. 그냥 친일파인지 친일파 후손인지가 지배하는 세상이 좋으니까, 저것들 제발 헛짓 좀 안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이 나라엔 악질 친일파라는 게 "단언코 전혀" 존재하질 않는다.
지금 무슨 독도 일본땅이나 일본군 재무장을 위해서 로비하는 조선인. 일본 기업한테 삼성 현대 기밀 누설하는 산업스파이 따위 말이다.
중공· 북괴 간첩이 우리나라를 해치는 것과 동급의 짓을 일본을 위해서 하는 놈들을 말한다. 그런 게 지금 있을 리가 없잖아.. 반일 좌빨 정신병자들의 뇌내망상 말고 현실에서는 말이다.

"대통령의 공과 과를 무시하고 전 두환에게서 5.18만 존재한다면, 김 영삼은 IMF, 김 대중은 북핵, 노 무현에겐 일가족의 뇌물 혐의로 자살한 것밖에 남지 않는다."


이것도 그냥 두 말하면 잔소리..
전땅크에 대해서 명백하게 잘한 거 긍정적인 것 얘기만 하면 바로 사람을 매장시키는 이 엿같은 전체주의 파쑈 독재 분위기는 중공이나 나치 독일, 북괴 같은 데서나 존재했던 것 아닌가..?
예전부터 학살자 김돼지나 마오에 대해서 "인품 있고 훌륭한 지도자" 이랬던 빨갱이들부터 족족 매장시키고 다 잡아 쳐넣기라도 했다면 모를까, 난 정말 이런 분위기가 너무 혐오스럽고 역겹고 싫다.

난 내 입으로 좌파도 우파도 아닌 중도파니 예수파니 그딴 입에 발린 헛소리 안 한다. 그저 일본· 미국을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것과 동일한 잣대로 중공· 북괴도 같이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걸 추구한다.
늘 하는 말이지만 "광화문에서 김 일성 만세 외칠 자유"는 "금남로에서 전땅크 만세 외칠 자유"와 동급으로 다같이 보장하거나 금지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형평성만 있으면 된다.

이런 사고방식이 극우라면 나는 얼마든지 극우가 될 것이고, 극우라고 찍히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겨우 이런 주장도 떳떳하게 못 하고 쉬쉬하면서까지 그저 한글 입력기 개발자로만 니예니예 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Posted by 사무엘

2021/12/22 08:35 2021/12/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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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에 일본은 한반도에서 토지 조사 같은 것만 한 게 아니다. 자기가 다스리는 조센징들이 옛날에 무슨 찬란한 문화재 유물들을 만들었는지도 아주 면밀히 조사했다.
그래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跡圖譜)라는 총 15권짜리 방대한 도감을 1915년부터 1935년까지 무려 20년에 걸쳐 편찬해 냈다.

왜, 1910년대에 돌덩이가 다 무너진 폐가 흉가 수준의 불국사와 석굴암의 모습 사진을 보신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거 출처가 이 도감이다. 일본인들이 촬영해서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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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은 제5권, 불국사는 제4권에 수록돼 있다.)

그리고 각종 역사 만화나 교과서를 보면, 북한 지역에 있는 문화재들은 마치 시간이 정지하기라도 한 듯 흑백 사진인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역시 일제 시대에 일본이 촬영한 저 도감의 옛날 사진을 인용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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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1990년대부터야 냉전이 끝나고 남북 민간 교류가 잦아지고 정보 통신 기술도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예전에 비해서는 북한의 현지 정보도 훨씬 더 풍부하게 얻을 수 있게 됐다(현대에 컬러로 찍은 사진도 포함..). 하지만 그 전에는 개성의 선죽교 사진조차도 일제 시대에 찍힌 흑백 사진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한민국은 말할 것도 없고 구한말 조선/대한제국의 공권력으로 이런 것들을 파악하고 기록을 남긴 게 아니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우리나라 네임드급 독립운동가들이 대대적으로 발굴되어 각종 훈장이 추서된 게 1962~63년, 원조가카의 집권 초기라면,
우리나라 네임드급 문화재들이 대대적으로 조사되고 사진이 처음으로 찍힌 건 1910년대 일제 시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저건 “식민지에 원래 이런 문화재들이 있었는데 이제 이것들도 다 우리 일본 것이 됐다. 그러니 우리가 철저히 관리해야지” 그런 정치 행정적인 차원에서 조사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걔들도 최소한 이상한 감정--심지어 조선에 대한 열등감까지!!!--을 갖고 “다 때려부숴 버려야지, 없애서 조센징들 민족 정기를 말살해 버려야지” 이러지는 않았다.

일제 시대의 초대 조선 총독인 데라우치 뭐시기 하는 그 아저씨는.. 정치 쪽은 가혹한 헌병 무단 통치 때문에 우리 쪽에서 썩 좋게 볼 수 없는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정말 의외로 불상 덕후에 문화재 덕후 기질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반도의 문화재들을 보존하고, 그게 일본 본토로 무단 반출되지 않게 하는 일에 나름 애쓰기도 했다.

일례로, 그 당시의 석굴암 복원 작업은 졸속 날림으로 진행된 게 비판의 여지가 있을지언정, 최소한 악의적인 고의 훼손은 절대 아니었다. 폭탄 맞은 듯한 폐허 상태에 비하면 그 기술과 자금 하에서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든 거지, 악화시킨 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석굴암이 저런 막장 상태가 되도록 수백 년째 방치한 건 숭유억불의 조선 왕조였으니 말이다.

석굴암이 옛 신라인들의 넘사벽 lost technology를 동원해서 만들어졌는데 왜놈들이 어설프게 콘크리트를 쳐발라서 망가뜨리는 바람에 습도 조절이 안 되고 내부 상태가 꼬였네 뭐네 하는 소리는 2020년대에는 좀 안 나와야 할 것이다. 걔들은 문화재를 진짜로 다 때려부순 중공 문화대혁명 홍위병이나 요즘 탈레반 집단보다는 정신 세계나 행정 시스템이 더 나은 애들이었다.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었다.
조선 임금들의 초상화인 '어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 6· 25 사변 중에 소실된 것, 그리고 결정타로 부산 용두산 대화재 때 전부나 일부가 소실된 것이 대부분이다. 현재까지 원본이 제대로 보존된 게 별로 없는 지경이다.
그런데 순종을 비롯해 일부 왕의 어진은 2010년대에 그림을 다시 그려서 복원이 완료되기도 했다. 이때는 소실된 부분을 무엇을 토대로 유추해 냈을까?

바로 일제 시대에 조선총독부에서 어진을 흑백으로나마 사진을 찍어 놓은 자료가 있어서 이를 참조해서 복원했다.
일부 소실인 경우, 색깔이야 불타지 않고 남은 부분으로부터 유추가 가능하니까 흑백 사진만 있으면 전체 복원이 가능해진다.
심지어 순종의 경우, 김 은호 화백이 어진을 그리는 모습까지 촬영되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사진은 저 “조선고적도보”에 수록된 자료인지, 아니면 다른 별개의 촬영 기록인지 본인은 잘 모르겠다.

※ 여담: 문화재 관련 박물관

문화재 관리 얘기가 나왔으니, 이것들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 얘기도 같이 안 할 수가 없겠다.
박물관이야 워낙 분야가 다양하긴 하지만 무슨 국립 박물관이라 하면 일단은 상술했던 옛날 전근대 시절의 국보/보물 문화재를 전시해 놓은 곳을 말한다. 역사 박물관이라든가 아예 미술관하고는 영역이 약간 겹칠 수 있겠지만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일제 시대에도 한반도엔 총독부 박물관이니, 이왕가 박물관이니 하는 전시 시설이 있었다. 그러나 해방 후에는 ‘대한민국 국립 중앙 박물관’이 그 역할을 대체하게 되었다. 서울뿐만 아니라 경주, 제주, 전주 등 10여 곳에 국립 박물관 에디션이 있긴 하지만.. ‘중앙’이라는 타이틀까지 붙은 박물관은 서울 에디션이다.

엄청 옛날에는 국립 중앙 박물관이 경복궁이나 덕수궁 같은 고궁 안에 있었다. 1980년대에는 조선총독부 청사에 입주하기도 했었으나, 훗날 그게 헐리면서 지금과 같은 용산 부지에 새로 자리를 잡게 됐다. 전에는 거기가 미군 골프장이었다고 한다.

※ 여담: 과학관

다른 관련 주제를 하나만 더 열거하자면..
이런 옛날 문화재 박물관 말고 나라에서 직접 운영하면서 여러 지역에 ‘파생 에디션’까지 존재하는 또 다른 관람 시설은.. 바로 ‘과학 박물관’, 일명 과학관이다.

얘 역시 나름 일제 시대부터 전신이 존재했었다. 조선총독부가 광화문 청사로 이전하자 남산 기슭에 자리잡은 기존 건물이 ‘은사 기념 과학관’으로 바뀌었는데, 이게 해방 후에도 이름만 ‘국립 과학 박물관’으로 바뀌어서 운영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는 와룡동, 혜화 역 근처 지금의 위치에 ‘국립 서울 과학관’이 건립되었다. 하지만 부지가 너무 좁기도 하고 나중에 대전 엑스포가 개최되기도 했으니 대전에 엄청 큰 과학관이 새로 건립되면서 얘가 ‘중앙’ 타이틀을 대체하게 됐다. 즉, 국립 중앙 박물관과 달리, 국립 중앙 과학관은 대전에 있다.

지금은 수도권의 과천을 포함해 대구, 부산 같은 몇몇 대도시에 국립 과학관이 몇 곳 더 있다. 기존의 서울 과학관은 ‘어린이’ 과학관으로 리모델링 됐으며, 이와 별개로 강북에 서울 시립 과학관이 추가로 더 개관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1/12/19 19:35 2021/12/1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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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노 태우

이 사람은 민주화가 이뤄지고 지금 같은 6공 체제(5년 직선 단임제)가 출범한 뒤에 최초로 선출된 5년 단임제 대통령이다.
이때 야당 후보들이 단일화가 제대로 못 돼서 여전히 군인 출신 대통령이 선출됐다는 게 특이한데.. 이 시기는,

  • 무연 휘발유와 유연 휘발유의 과도기 (1987년 7월 ~ 1992년 말. 대통령 집권 기간과 거의 일치)
  • 범죄와의 전쟁
  • 분당과 일산 신도시 개발
  • 각종 교통 인프라들 건설 시작: 판교-구리 고속도로 건설(현 수도권 1순환 고속도로의 먼 전신), 서해안 고속도로, 인천 공항, 경부 고속철...!!
  • 지방자치제 시행 (개구리 소년 사건이 벌어진 때가 이거 선거일..)
  • 북괴가 의외로 인명 사상자가 발생할 정도의 유의미한 도발을 한 적이 없음

요런 게 인상적이라고 느껴진다. 제4 땅굴이 1990년 봄에 발견되긴 했지만, 이때는 군견만 죽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때는 냉전이 끝나고 소련이고 동독이고 차우세스쿠고 다 운지하던 시절이었으니.. 북괴도 몸 사렸던 건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땐 남한과 북한이 나란히 UN에 가입했다(1991).

아울러, 이 시기에 미국-이라크 걸프 전쟁이 벌어졌던 것, 그리고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독립 국가 연합'이라는 선수단이 출전했던 것이 본인의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 있다.

7. 김 영삼: 많은 변화들

김 영삼은 우리나라 역사상 초대 할배나 마이너(윤 보선, 최 규하..)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선거를 통해 군 출신이 아닌 민간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첫 사례이다. 별명을 괜히 문민정부라고 지은 게 아니었다.

지금은 매우 믿어지지 않지만, 이때는 현직 대통령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대통령을 희화화하면서 "YS는 못 말려" 같은 유머 책까지 출간될 정도였다.
그리고 이 사람 때 나라 분위기가 실제로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 금융실명제 시행
  • 대전 엑스포
  • 고속도로 통행료 후불제
  • 쓰레기 종량제
  • 행정구역 개편 (직할시가 광역시로..)
  • OECD, WTO 기구 가입. 슬슬 선진국 인증?

역사· 정치와 관련해서는 이런 것도..

  • 군 내부 사조직이던 하나회를 전격 해체
  • 조선총독부 구 청사 철거
  • 전 두환과 노 태우 비자금 재판...;;;

이 사람 재임 때 있었던 북괴 관련 사건은 다음과 같다.

  • 김 일성 사망 1994. 7. 정말 최대 압권
  • 국군 포로 조 창호 중위의 귀환 1994. 10.
  • 이 철수 대위 귀순 1996. 5. 현재까지 최후의 전투기 비행 귀순자
  • 강릉 무장공비 침투 1996. 9. 현재까지 잠수함 공작원 기반의 최후 대남 도발 (알려진 것)

이것들도 벌써 30년 전에 가까운 과거가 돼 간다.
이제 흑백뿐만이 아니라 컬러도 4:3 종횡비의 VHS급 저화질 사진/영상은 희뿌연 과거의 역사 기록이 돼 간다는 게 신기하기 그지없다.;;

8. 김 영삼: 대형 참사와 흉악 범죄들

그런데 1990년대 김 영삼 시절은 다른 면으로도 정말 판타스틱하긴 했다.

  • 구포 무궁화호 열차 전복 1993. 3.
  • 아시아나 항공 733편 추락 1993. 7.
  • 서해훼리호 침몰 1993. 10. (1993년 한 해에만 육해공이 나란히..)
  • 성수대교 붕괴 1994. 10.
    (당시 대한뉴스에서는 조 중위 얘기만 다뤘고, 성수대교는 보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차피 그 해 12월 말을 끝으로 폐지를 앞두고 있기도 했고, 사건 사고 보도는 이미 싸제 방송사들이 훨씬 더 신속하게 자세히 해 주고 있었으니까.)
  •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1995. 3.
  • 삼풍 백화점 붕괴 1995. 6.
  • 대한 항공 801편 괌 추락 1997. 8. (현재까지도 대한 항공 최후의 여객기 인명 사고!!)
  • 기업들 줄도산, **외환 위기 IMF** 1997. 12.

보다시피, 한 대통령의 재임 기간 동안 아시아나와 대한 항공에서 나란히 여객기 추락 사고가 났었다.
이것들이 당연히 당대 대통령의 잘못은 아니겠지만.. 사고가 겹치는 빈도가 이때 유난히 너무 높았다. 무슨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겉으로 보기에만 경제가 성장하고 우리도 이제 선진국이네 마네 하지만, 사회 시스템은 원칙이 없고 미개하고 부정부패 편법이 만연하다고.. 이래서는 안 된다고, 우리 제발 좀 늙어 죽어 보자고 난리가 났었다. 우리나라는 저런 사건 사고들로부터 배우고 시스템을 개선해서 옛날에 비해 그나마 많이 나아지고 청렴해지고 안전해졌다.

그리고 이땐 대형 사고 참사뿐만 아니라, 흉악 범죄도 장난이 아니었다.

  • 부친 방화 살해 금수저 패륜아 박 한상 1994. 5. (사형 미집행)
  • 택시 강간 연쇄살인범 온 보현 1994. 9. (사형 집행)
  • 지존파 1994. 10. (사형 집행)
  • 부친 살해 패륜 대학 교수 1995. 3. (무기징역)

그나마 김 영삼은 1997년 12월 30일, 자기 집권 이전부터 확정돼 있던 사형수들을 몽땅 사형 집행을 하고 물러났다. 이게 현재까지 우리나라 최후의 사형 집행이 돼 버렸다.
단지, 온 보현과 지존파는 당대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흉악해서 예외적으로 1995년 11월에 바로 집행을 해 버렸다.

9. 김 대중: 행적에 대한 괴담

이 사람은 IMF 시기를 경험한 것, 북괴의 수괴를 직접 만나고 어쨌든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
시기도 새 밀레니엄 전환기이고 고속 인터넷에다 휴대전화가 막 보급되던 때였던 것으로 인해, 역시 중요도와 존재감이 크다.

지금은 너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의약 분업이 2000년 이 사람 집권 때 이뤄졌다.
그리고 서울 2기 지하철 전구간 개통, 인천 국제공항 개항, 서해안 고속도로 전면 개통도 덤..

그런데.. 이 사람은 유난히 노래와 관련된 괴담이 많이 나도는 경향이 있다.
'독도는 우리땅' 노래를 금지시키고 6· 25의 노래조차 악의적으로 개사해서 원곡을 금지시켰다는데..
일단 내가 알기로 이것들은 사실이 아니다.

그때가 무슨 국가 공권력 차원에서 특정 노래를 못 부르게 하는 게 가능한 시절은 아니었다. 물타기 된 불순한 6· 25 노래가 우연히도 그때 민간 차원에서 발표된 것은 맞지만, 나라에서 그걸 채택해서 강제로 밀어붙이지는 않았었다.
단지, 남북 정상 회담뿐만 아니라 신 한일 어업협정도 그 당시엔 엄청난 논란이 많았다는 것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 제2 연평해전 당시의 불리한 교전 수칙이 이 사람 집권 때 일부러 개정된 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그 전부터 그랬다.

  • 1999년 제1 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함장이 종북세력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정치 보복을 당했다는 썰 역시 내가 아는 바로는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박 정성 제독, 송 영무 제독. 내가 무슨 군 출신인 건 아니니 내가 잘못 아는 게 있다면 재반박 환영)

  • "북한은 핵을 개발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만약 그런 짓을 한다면 내가 책임 진다"라는 두고 두고 까이는 엄청난 발언도.. 2001년경의 발언이라고 하는데.. 내가 아는 한은 의외로 정확한 최초 출처가 잘 나오지 않는다. 마치 6 25 개전 초기에 할배 대통령의 행적처럼 말이다.

  • 국정원의 대북 휴민트들을 적에게 몽땅 누설하고 와해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고도 하는데 이 역시 구체적인 증거는 잘 모르겠다.

주된 팩트와, 그 팩트 속에 교묘히 섞여 들어간 자잘한 과장 왜곡 주작은 잘 분별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저 세부 팩트가 그렇다고 해서 저 사람이 저런 오해가 불거지고도 남을 정도의 이상한 행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적에게 퍼 준 거 하며, 제2 연평해전이 벌어진 날 태연히 축구 보러 일본으로 뜬 건 뭐.. 욕 먹어도 할 말 없다. 특히 그 세월호 7시간 갖고 지랄하던 그 잣대를 적용한다면 더욱 말이다.
더구나 백 보 양보해서 저 사람의 의도가 악의적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물은 결코 좋게 나오지 않았다. 뭐 그건 그렇고..

* 총평과 여담

(1)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제일 많이 배출한 대학은 육사...;;;이다.
그런데 2021년 현재까지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한 서울대 출신 대통령, 그리고 유일한 노벨 상 수상자라고 하면 의외로 사람이 금방 떠오르지 않는 것 같다.
유일한 박사학위 소지자라고 하면 할배, 아니면 반대로 고졸 출신이라고 하면 김 대중· 노 무현이라고 금방 떠오르는데, 저건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진다.

(2) 우리나라의 대통령들은 어째 재임 순서와 사망 순서가 완전 역순이다.. 무슨 스택도 아니고..
노 무현 09. 5.
김 대중 09. 8.
김 영삼 15. 11.
노 태우 21. 10.
그 다음 전 두환 21. 11. (후배를 따라 나란히 갔구나. 그래도 전직 대통령들 중 퇴임 후에 제일 오래 길게 살았음!!)

(3) 대전 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은 만들어진 지 30년이 훌쩍 넘은 현재까지도 최 규하 한 명밖에 없다.;; 그것도 역대 최단기, 제대로 재직하지도 못했던 대통령만..

Posted by 사무엘

2021/11/27 08:35 2021/11/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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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승만: 한강 인도교 폭파 관련 오해

할배의 집권 시기였던 제1공화국은 미국과 비슷한 4년 중임 간접 선거(나중에 헌법이 개정되어 다 바뀌긴 했지만)와 부통령, 청와대 대신 경무대, 단기 연호, 써머 타임, 화폐 단위가 원이 아니라 ‘환’, 아직 서울 특별시 외에 직할시 광역시 따위 없음.. 이렇게 시스템이 지금과는 다른 게 너무 많았다. 한국어와 한글, 태극기 같은 것만 같았다.

병역조차도 건국 직후 맨 처음엔 모병제였는데 6 25 사변의 트라우마가 생긴 뒤부터 징병제로 바뀌었다. 심지어 기간도 역대 최장인 3년이어서 박 정희 때 1 21 사태로 인해 연장됐던 최장 기간과 동일했다. 뭐 그건 그렇고..

할배의 집권 시절의 흑역사 중 하나로 6· 25 사변 초기의 한강 인도교 폭파가 즐겨 회자되고 있다. 이건 시간을 벌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긴 했지만, 너무 일찍 터뜨리는 바람에 진짜로 후퇴해야 할 병력과 피난 가야 할 시민들도 서울을 빠져나가지 못해서 곤혹을 치르게 됐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다만, 피난민들이 멀쩡히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뜬금없이 그 다리를 폭파해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성수대교 붕괴 사고 때처럼 추락하고 꼬르륵.. 그건 사실이 아니라는 쪽으로 역사 인식이 바뀌고 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누가 고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무를 포함해 각종 위키에서도 한강 인도교 폭파 때의 자국민 인명 피해가 ‘군경 77명 사망’으로 고쳐졌다.

“그 큰 대교를 폭파하려면 비용은 둘째치고 폭파를 준비하는 데만 최소 몇 시간이 걸린다. 민간인 진입을 통제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인이 인도교 위에 있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엔 민간인의 피해는 없고, 군경 77명의 피해가 있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 나무위키. 얘는 일방적인 보수 우편향 사이트가 절대 아니다.


윤 서인 인라이트 역사 만화에서나 봤던 설이 위키에도 반영되어 들어가다니 놀랍다. 그런데 폭파 당시에 민간인 피해가 없었다고 해도 문제가 다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그럼 그 군경은 도대체 그 시간에 무슨 일로 거기에 있다가 폭발과 함께 강물로 떨어져 순직한 걸까..?? 민간인을 다 통제시켜 놓고 위험한 곳에 있다가 죽은 거면 직무상 순직으로밖에 볼 수 없을 텐데?
그리고 77명이라니. 이거 무슨 경부 고속도로 건설 순직자 수도 아니고, 숫자가 좀 인위적이어 보인다.;;

이 사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팩트를 더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 한강 인도교 폭파는 관련 사진이 전해지는 게 전혀 없다. 1· 4 후퇴 때 평양에서 대동강 철교가 폭파되고 피난민들이 거기를 건너는 모습이 잘못 전해지는 경우가 있으니, 거기에 오도되지 마시기 바란다.

  • 폭파 당시 말고 폭파 “후”에.. 다리에 대한 출입 통제가 제대로 안 돼서 피난민 행렬이나 차량이 추락한 경우는 좀 있었다. 이때는 가로등도 없는 칠흑같은 한밤중이었기 때문이다. 다리가 끊어진 것을 뒤늦게 발견했어도 뒤따라 오는 행렬에 떠밀려서 다리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정말 보면 볼수록.. 별로 크지도 않은 이 쬐끄만 나라는 그리 멀지도 않은 과거인 근현대사에 과장과 왜곡과 날조가 너무 많은 거 같다.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만 보면 사람마다 정반대의 사관을 갖게 되기에 딱 좋다.
김 구의 행적이나 독립군의 전과도 그렇고.. 저 한강 인도교 폭파도 그런 카테고리에 들겠구나.

2. 박 정희: 인상의 변화

대한민국 역사상 최장기 집권을 한 양반이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집권 중에 얼굴이 연식 때문에 삭아(?) 가는 모습도 종류별로 제일 다양하게 존재한다.
솔직히 할배만 해도 1948년에 취임 선서하는 모습이나, 12년 뒤에 4· 19 시위 부상자들을 문병하는 모습이나 내가 보기엔 인상이 거의 차이가 없이 똑같은 할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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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 성명을 내는 모습 사진은 없는지..?? 이걸 못 구해서 딴 걸로 대신했다. 그래도 할배는 12년의 격차가 그닥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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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원조가카는.. 대외적으로 왼쪽 같은 인상이 널리 알려져 있긴 하지만, 70년대 중후반으로 갈수록 오른쪽처럼 인상이 많이 삭기도 했다.;;;
그러니 원조가카를 존경하는 진정한 매니아라면.. 사진에서 이 아저씨 머리가 하얗게 샌 정도, 옆에 영부인이 있느냐 장녀가 있느냐 등등의 단서를 토대로 이게 60년대 중후반 모습인지, 70년대 중후반 모습인지 정도는 바로 알아챌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 업적에 대한 시간 관념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가령, 월남전, 파독 광부와 간호사, 중동 건설 근로자,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새마을 운동, 국민 교육 헌장 선포, 경부 고속도로 개통, 10월 유신 정도는 시간 순 나열이 가능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이런 거나 시험 문제로 좀 낼 것이지..
개인적으로는 새마을 운동이 1960년이 아닌 1970년대로 내 생각보다 나중이라는 것에 약간 놀랐다.

3. 박 정희: 일화들

아울러, 박 정희 대통령은 남과 대화를 하다가 대답을 센스와 재치 있게 잘 한 일화가 여럿 전해지는 사람이다.

(1) 미국의 어느 무기상과 거래를 하면서 비자금도 받았는데.. 박통은 이걸 받아서 그냥 쓰윽 하지도 않고 단칼에 거절하지도 않고.. “이 돈은 이제 내 껍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이 돈을 너한테 도로 줄 테니 그 액수만치 M16 소총을 더 갖다 주시오”라고 대답해서 상대방을 벙 쩔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건 정확한 출처와 일시가 검증 가능한 일화인지 모르겠다.

(2) 1970년대 초쯤엔가 지방 시찰을 갔다가 전주의 유명한 콩나물 국밥 식당 ‘삼백집’에서 전투력 최강의 욕쟁이 할머니를 대면했다. 그 할머니는 이 손님이 대통령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어 이눔 봐라? 네놈은 박 정희 대통령이랑 되게 닮았네? 옜다, 계란이나 더 쳐먹어라” 라고 서빙을 해 줬는데, 박통은 “내가 대통령을 닮은 게 아니고 대통령이 나를 닮은 게요~ ㅎㅎ”라고 점잖게 넘겼다고 한다.

(3) 1965년, 미국 웨스트포인트를 방문해서는(☞ 당시 대한뉴스 영상).. 나름 타국 원수 귀빈이 납셨는데 원하는 거 있으면 들어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생도들 퍼레이드, 생도들에게 연설, 진귀한 선물 등.. 그런데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지금 징계· 벌받고 있는 생도들이 있으면 다 사면해 주시겠습니까?”라는.. 정말 뜻밖의 요청을 했다. 요청이 받아들여져서 사면령이 떨어지자 박통은 식사 중에 생도들로부터 열렬한 기립박수를 받았고, 이 생도들은 졸업과 임관 후에 한국 파견 근무를 선호하는 친한파가 되었다.

아.. 박통은 생각이 깊고 정말 위대한 지도자였다.
학칙 위반 생도 사면은.. 이 사람이 좌빨들이 그렇게도 욕하는 일본 육사를 나오는 바람에 자신부터 군잘알, 사관학교 생도 생활 잘알이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었지 싶다. 군알못으로 출세한 사람이라면 어디 저런 답변을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성경에서 솔로몬이 하나님에게 부귀영화나 절대권력, 적장의 모가지 따위가 아니라 "백성들을 바르게 통치할 지혜"를 달라고 간구해서 이쁨받았던 것과 비슷한 일화가 아닐 수 없다.
그 이듬해의 린든 존슨 대통령 방한 환영 행사도 그렇고.. 1960년대에 원조가카가 미국으로부터 점수 따서 지원 많이 받으려고 이런 식으로 노력을 굉장히 많이 했음을 알 수 있다.

4. 전 두환: 일반적인 행적, 치안 안정

1980년대 전땅크는..

  • 통금 해제
  • 컬러 텔레비전
  • 자동차 산업 합리화 조치
  • 서울 올림픽 유치와 준비
  • 한강 종합 개발 사업과 올림픽대로
  • 정보화 시대: 삼성 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개발, 8비트 컴퓨터 개발, 1984년의 제1회 전국 퍼스널 컴퓨터 경진대회

이런 것들이 기억에 남아 있다. 다음으로 전땅크는 범죄 예방과 사회 치안 쪽으로도 다음과 같은 독자적인 선정을 베풀었다.

  • "아이가 죽으면 너도 살고, 아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 이 윤상(1980), 원 혜준(1988) 유괴 살인 사건. 가해자는 대통령의 약속대로 바로 사형에 처해졌다. 각각 아직 4공이던 초창기와 6공 출범 직전 시기의 일이다.
  • 삼청교육대: 1980년, 4공 시절에 잠깐 있다가 말았던 엽기적인 군대식 교화 시설이다. 비록 강제 징집 때문에 오점이 남긴 했지만 우리나라는 그 시절에 이런 거라도 있어야 했을 정도로 사회 기강이 개판이었다. 지방 조폭, 술 쳐먹고 행패 부리는 양아치들... 본인은 심지어 지금이라도 삼청교육대가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엔 7~80% 정도 동의한다.
  • 가정파괴범: 대한민국 역사상, 살인 없이 강도 강간 누범만으로 사형이 선고되고 집행됐던 때는 할배도, 원조가카도 아닌 전땅크 시절이 유일했다~!! (1985년 11월)

이런 건 서 정주 시인이 지은 오글거리는 송시에도 언급돼 있지 않은 것 같다.;;
전땅크는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무려 30년이 넘게.. 역대 대통령들 중 독보적으로 제일 오래 생존한 사람이기도 하다. 역시 사람은 건강하고 볼 일이다.

5. 전 두환: 악을 선으로 갚기

지난 1984년에 우리나라는 극심한 수해를 입었다. 그런데 이때 북한에서 구호물자를 보내 줬다.
이건 사실, 북한에서도 남한이 그걸 받을 거라고 기대도 안 하고 농담/조롱 반 진담 반으로 “안됐네.. ㅉㅉㅉ 우리가 도와줄까? 구호물자 좀 보내줘?”라고 떠본 것이었다.

그런데 전땅크가 그걸 덥석 물고.. “응~! 좀 도와주면 고맙겠..! 우리가 남이가”이라고 손을 내밀어 버렸다. 그러자 북한도 없는 살림에 구호물자를 갑작스레 챙기느라 혼쭐이 나야 했다.
북에서 급조해서 보내 준 쌀, 시멘트와 옷감 따위의 품질이야.. 이 글에서 더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허나, 남한에서는 답례로 그 받은 쌀과 시멘트와 옷감 가격의 수십 배에 달하는 전자제품 공산품들을 북한 근로자들에게 선물로 뿌려줘서 북측의 자존심을 콱콱 구겼다고 한다.
이 정도면 전땅크가 대북 심리? 외교전에서 압승을 거둔 셈이다.

참고로 이건 전땅크의 목을 노렸던 아웅산 폭탄 테러가 벌어진 지 겨우 1년 남짓밖에 안 됐던 시점의 일이었다. 훗날 “나한테 당해 보지도 안 해 놓고 말이야” 이러는 것만 봐도.. 전땅크 역시 멘탈이 보통 멘탈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편, 북괴는 이런 무식하고 야만적인 짓거리로 인해 세계 각국으로부터 규탄과 손가락질 받고 단교 당하면서 외교전에서 장렬히 자폭했다. 실드의 여지가 없는 몰수패를 당했다.
그랬는데 남한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까지 유치하면서 승승장구 중이니, 남한을 어떻게든 방해하고 저지하면서 자기들도 뭔가를 보여줘야 했다.

그러니 초대형 릉라도 경기장을 건설하고 류경 호텔도 착공하고, 올림픽 대신 "세계 청년 학생 축전"을 유치하면서 별별 짓을 다했지만.. 대부분 돈만 날리는 뻘짓으로 끝나고 경제는 나락으로 빠져들게 됐다.

Posted by 사무엘

2021/11/24 08:36 2021/11/2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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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나치 경례 거부

  • "주변에서 모두가 '예, 예' 할 때 혼자만 양심껏 소신껏 '아니요'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
  •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사관 생도 신조 중)

이런 것의 예시로 요런 짤방이 종종 인용되곤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수많은 군중들이 오른팔을 뻗치면서 '하일 히틀러'를 외치고 있을 때 혼자 생까고 가만히 있었던 이 사람은 정체가 무엇일까?
그는 아우구스트 란트메서(1910-1944)라는 독일인이며, 사진은 의외로 전시가 아니고 히틀러의 집권 초기이던 1936년, 나치 독일의 모 군함의 진수식 때 촬영된 거라고 한다.

구체적인 사연은 검색해 보면 다 나오니 여기서 일일이 소개하지 않겠다.
핵심은 이 사람은 유대인 여자와 결혼해서 딸까지 생겼는데 하필 거의 같은 타이밍 때 나치가 집권하면서 유대인에게 축객령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그는 저 군함을 제조한 조선소의 직원이었다. 그러니 진수식 행사엔 사실상 강제 동원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나치 당에도 가입하긴 했지만, 유대인이니 정치니 이념 그딴 건 별 관심 없고 그냥 취업 때문에 가입한 것에 가까웠다.

그랬는데 나치 당에서 유대인들을 못 살게 굴기 시작했으며, 자기에게도 멀쩡한 아내를 버리라고 이혼을 종용한 것이다. 그러니 당이 좋게 보일 리가 없고 경례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전부였다. 이 사람은 단순히 사랑하는 자기 아내를 버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훗날 등장한 백장미단 조피 숄 같은 급으로 전시에 거창한 신념이나 소신을 갖고 나치 경례를 거부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저런 포즈로 대외 공개용 사진이 찍혀 버리자 나치 당에는 저 괘씸한 놈이 누군지 곧장 추적을 시작했고, 당사자 역시 신변의 위협을 진지하게 느끼게 됐다.
그는 가족을 데리고 스웨덴으로 도피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발각됐다. 인종오염법으로 기소되어서 수용소 행..;;

아내는 전쟁 중에 여러 수용소에 끌려 다니다가 1942년쯤에 결국 살해당했다(아마 가스실에서). 저 사람은 살아서 풀려나긴 했지만 이미 비국민 불령선인으로 낙인 찍혀 있었다. 어느 죄수 부대에 징집되었다가 1944년쯤에 전쟁터에서 실종 내지 전사로 최후를 맞이했다.
그래도 어린 딸 둘은 고아원 내지 친인척 집을 거치면서 다행히 살아남아서 자기 부모의 사연을 후세에 전해 줄 수 있었다. 저 사진도 오랫동안 숨겨져 있다가 1991년에 딸에 의해 공개된 거라고 한다.

2. 미국의 태평양 전쟁 참전 거부 (입법)

미국은 1941년 말에 일본으로부터 선전포고도 없이 진주만 공습을 당한 것으로 인해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그래서 새끼 빼앗긴 암곰을 능가하는 복수귀로 각성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엄청난 빡침이 담긴 대국민 담화인지 연설을 한 뒤, 의회로부터 대일 선전포고와 참전 승인을 받았는데.. 상원에서는 전쟁 개시 관련 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그러나 하원에서는 388:1로 반대가 딱 하나 있었다.

전미가 왜놈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으로 눈이 시뻘개졌던 험악한 시국에서 홀로 반대표를 던진 용자는 바로.. 미국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이자 여호와의 증인 급의 반전주의 소신이던 '지넷 랭킨(1880-1973)'이라는 사람이었다.
이 아줌마는 1차 대전부터 시작해서 2차 대전, 6 25 사변, 월남전까지 일체의 전쟁에 대해 자국이 참전하는 것을 일관되게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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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위기에서 이런 아웃사이더가 당장 테러· 협박을 당하지 않고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 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미국이 다양성이 존중받으며 사회적으로 얼마나 성숙한 나라였는지를 알 수 있다. 일제나 나치 독일에서 누군가가 저런 반전 운동을 공개적으로 했다간 그 사람은 어찌 됐겠는가? (군중 속에서 팔 뻗어서 같이 경례 안 한 것만으로도 아까처럼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뒤끝이 뒤따랐거늘..)

하지만 천조국이라도 선 넘을 정도로 이상한 소신을 포용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그 아줌마는 이를 계기로 소속됐던 공화당에서 퇴출되고, 정치판에서의 커리어가 통째로 끝장 났다고 한다.
결국 2차 대전 이후의 반전 운동은 정치인이 아니라 사회 운동가로서 개인 단위로 진행됐다. 분야는 다르지만 개고기 반대하면서 이상한 똥고집 부리던 프랑스의 그 아줌마 생각이 문득 난다.;;

3. 곁가지: 미군의 일본군 시체 훼손

이건 참 경이롭고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사진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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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1944년 5월, 미국의 어떤 아가씨가 남자친구로부터 웬 해골바가지를 선물로 받고는.. 잘 받았다며 감사 답장을 보내는 모습이 보도된 것이다.
남친은 해군에 입대해서 태평양 전쟁터에서 한창 고생 중이었는데.. 전사한 어느 적군 병사의 유해에서 두개골을 추출해서 여친에게 선물로 보낸 것이다.
전시이니 저 여친도 군수공장에서 근무 중이었으며.. 저 때 나이는 겨우 20살이었다.

그 당시에 일본에 대한 미국의 증오심은 일선의 병사들이 일본군 시체에서 해골바가지를 뜯어내서 장신구로 쓰고 연인에게 선물로 보낼 정도로 극심했다.
최악의 증오스러운 적을 상대로 싸우는 데다, 억만 리 떨어진 망망대해의 섬에 상륙해서 밀림 속에서 전투를 벌이던 태평양 전쟁터는 환경도 최악의 생지옥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본놈들도 상대방에 대해 "저놈들은 귀축영미, 항복했다간 무조건 죽음" 이딴 소리에 골수까지 세뇌된 괴물들이었다. (얼마나 세뇌됐으면, 훗날 전쟁이 끝났으니 귀환하라는 말조차도 안 믿고 섬에 틀어박혀서 거지꼴로 몇 년을 버틴 사람들조차 있었을 정도..)
같은 백인 코쟁이에 기독교 배경이 있고, 말과 문화가 일말의 통하는 구석이라도 있는 서부 전선의 나치 독일 같은 부류가 아니었다.

그러니 이 전쟁터에서는 최악의 조건이 서로 맞아떨어지면서 그야말로 인외마경이 펼쳐졌다. 그 살벌함은 포카혼타스 Savages를 아득히 능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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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해 보시라. 천조국 군인들이 차라리 평시에 군기가 빠져서 민간인을 상대로 외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있지만..
전시에 적군의 시체를 훼손해서 저렇게 갖고 놀고 그게 저 정도로 대대적으로 매스컴까지 탔던 건 남북 전쟁, 미영 전쟁, 1차 대전, 월남전, 이라크전 등등등을 통틀어서 저 태평양 전쟁이 전무후무할 것이다. 물론 군 수뇌부에서 이런 짓을 금지하고 단속하긴 했지만, 악이 받칠 대로 받친 군인 개개인의 감정을 다 통제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천하의 미군이니까 이 정도로 정신줄을 놓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해골바가지만 득템해서 장식품으로 써먹는 정도의 짓밖에 안 한 것이다.
일본군은 뭐.. 연합군 포로들을 훨씬 더 잔혹하게 고문하고 학대해서 다 죽이고, 100인 참수 경쟁을 벌이고, 어떤 곳에서는 심지어 대놓고 식인까지 했다.

이런 악랄한 경험으로 인해, 미국은 쟤들은 안 되겠다고 원자 폭탄까지 터뜨릴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훗날 전범 재판에서도 일제 전범들을 반드시 사형에 처하고, 총살도 아닌 그냥 교수형을 집행할 것을 건의하게 됐다. 교수형은 군인으로서의 예우를 박탈한다는 걸 뜻한다.
반대로 나치 독일 전범에 대해서는 독소 전쟁의 트라우마가 있는 소련이 더 강하게 교수형 사형 집행을 요구했다.

4. 일본 전범의 사형 거부 (사법)

태평양 전쟁이 일본의 패배와 무조건 항복으로 끝난 뒤엔, 다들 잘 알다시피 일본의 군인 지휘관과 정치인 중에 전쟁 범죄자를 가려내어 단죄하는 재판이(극동 국제 군사 재판) 열렸다. 침략 전쟁을 벌이고, 전투 중에 적군을 죽이는 게 아니라 민간인이나 포로를 고문하고 학살한 짓거리들 말이다.

그런데 이때 재판을 진행했던 연합국--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소련-- 판사들 중에 '라다비노드 팔'이라는 인도인은 유일하게 아싸 행세를 했다.
다른 판사들은 전범들을 처형하는 것에 다 동의했고 총살이냐 교수대냐를 갖고 논쟁하는 정도였던 반면, 저 인도인 판사는 혼자 강경하게 처형을 반대하면서 노골적으로 일본을 실드 쳤다.

그는 단순히 인본주의 박애주의자로서 사형 제도를 반대한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민족 감정상으로 엄청난 친일 성향이었다. "이미 벌어진 일에다가 법을 뒤늦게 끼워 맞춰서 적용하는 건 부당하다, 왜 일본에 대해서만 일관성 없이 가혹한 잣대를 적용하느냐, 연합국은 가혹한 전쟁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 줄 아느냐, 너는 왜 그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고 인제 와서 일본 탓을 하느냐" 등..
법리까지 거의 무시하면서 말 같지도 않은 궤변을 늘어놓으며 일본을 적극 옹호했다.

그러니 일본에서는 저 사람이.. 우리 한국으로 치면 후세 다쓰지--조선의 독립을 지지했던 일본 변호사-- 같은 취급을 받으면서 극진한 예우와 존경의 대상이 됐다.;;; 야스쿠니 신사에 추모비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도 진작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본이 자국 인도를 식민지로 부려먹은 영국과 맞서 싸웠기 때문에 저 사람도 '적의 적은 친구' 논리로 일본을 옹호했던 걸까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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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인도는 나치 독일이나 히틀러에 대한 국민 정서도 오늘날까지 굉장히 우호적이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지만 애 이름까지 ‘아돌프 히틀러’라고 지어서 Adolf Lu Hitler Marak라는 이름의 1958년생 정치인도 있을 정도이다~!
하긴 인도인들은 영국인으로부터 탄압을 받았지 나치 독일에 의해 수용소 가스실로 끌려갔던 적은 없으니까.. 일면 수긍이 간다.

Posted by 사무엘

2021/11/01 08:35 2021/11/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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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성의 독립운동가

(1) 최 재형(1860-1920)
요즘 이 이름은 ‘이 회창’처럼 감사원장을 역임한 대선 후보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활동한 유명 독립운동가 동명이인도 있었다.
그는 겨우 10대의 나이로 생활고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탈북하듯이 무작정 러시아에 들어갔다. 거기서도 꽃제비처럼 쓰러져 굶어 죽을 뻔했는데.. 어느 선한 러시아인 선장 부부가 그를 구해 주고 양자처럼 공부도 시키고, 자기 상선(무역선)에 태워서 선원일도 가르치면서 잘 키워 줬다.

그는 러시아어에 능통해서 한국어와 통역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조선인 노동자와 러시아 업주 사이에 중재를 잘 하고 일감 조율을 잘 한 공로로 러시아 황제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다. 그는 이걸로도 모자라서 양부모로부터 한 밑천 물려받았는지 군수업을 시작해서 엄청난 부자까지 됐다. 알거지 빈털터리 상태에서 러시아에서 이 정도로 성공했으니 정말 역전의 용사 개룡남이 따로 없는데..

그는 러시아에서 자신 같은 불우한 처지에 놓인 동포들을 돕고 가르치는 일에 애썼으며, 조국 조선이 일제에 망할 위기에 처하자 항일 독립 운동에 자기 자산을 대부분 탕진했다. 그리고 안 중근 의사에게 권총을 사 주고 사격 훈련을 시켰다. 안 의사의 의거의 배후에 이 사람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안 중근이 아저씨 차 태식이라면, 저 사람은 문 달서 정도 되는 셈..

그는 훗날 1919년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했고 정말 뼛속까지 애국자로 살았지만.. 이 때문에 일제로부터 추적을 받기 시작했고 러시아 정부로부터도 밉보이게 되었다. 결국 1920년에는 일본군에게 잡혀서 그대로 총살 당해 순국했다.

(2) 함 태영(1872-1964)
생몰년도를 보면 알 수 있듯 이 승만 할배와 거의 동연배이며 비슷하게 엄청나게 오래 살았다.
이 사람은 공부 잘하고 똑똑했는지, 20대 초반의 나이로 법관양성소를 수석 졸업하여 판사가 됐다. 갑오개혁으로 인해 등장한 근대식 법조인의 1호 원로 원조인 셈이다.

그래서 고종 황제 시절에 김 홍륙이 저지른 고종· 순종 독살 미수 사건(1898)을 재판했는데.. 먼 훗날, 대한민국에서 심계원(감사원)장과 제3대 부통령도 역임했다.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에서 모두 고위 공무원을 한 사람이라니, 정말 엄청나지 않은가?? 일제 시대에도 전관예우를 받아서 계속 법조인으로 있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를 거절하고 그 동안은 목사와 교육자로 살았다.

서 재필과 이 승만은 대한제국 시절에는 그냥 반역자로 몰렸고, 일제 시대 동안엔 미국에 가 있었다. 함 태영은 저런 사람과는 굉장히 대조적이다.

(3) 서 재필(1864-1951)
이 사람도 최 재형 이상으로 근성의 개룡남이었으며, 함 태영 이상으로 머리 좋고 공부를 겁나게 잘했던 것 같다.
18세의 어린 나이로 사서삼경을 줄줄 외우면서 과거에 급제했다. 하지만 개화물 먹은 뒤 갑신정변으로 인해 역적으로 몰려서 완전히 멸문지화를 당했다. 부모와 친형제, 아내까지 몽땅 사약, 자결, 피살 등의 방법으로 죽었다~!! 이때 심지어 어린 자식까지 죽고 말았다.

요즘 같았으면 이런 상황에 당사자도 멘붕 자살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이제 조선의 조 짜만 나와도 학을 떼는 골수 혐한 친일파로 돌아서지 않았을까?
그런데 서 재필은 일본을 거쳐서 미국으로 망명 가서는 빈털터리 상태에서 먹고 살려고 직싸게 고생하며 주경야독을 거듭했다. 물론 도와 주는 선교사 후견인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미국은 아직 인종 차별도 있던 살벌한 상태였다.

그는 그 여건에서도 학교에서 1등을 도맡아 하면서 고등학교 졸업식 때 대표 고별 연설을 하는 우등생 모범생이 됐고--(물론, 미국 토박이 동년배 고등학생들보다야 나이가 훨씬 더 많았음..)--, 자국도 아닌 미국에서 의사가 됐다. 친인척을 모두 잃은 알거지 역적 신세로 미국으로 망명 간 지 딱 10년 만에 미국 의사가 된 것이다.

다행히 고국에서도 갑오개혁을 계기로 갑신정변 주동자에 대해서는 사면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구한말 때 잠시 귀국해서 독립 덕후 활동을 하던 당시엔.. 그는 머리로 동포의 자주 독립은 지지하지만 가슴에 조선 자체에 대한 애정은 싹 사라진 상태였다.
조선 땅에서는 완전 코쟁이 미국인 행세를 하면서 "오우 노!! You Koreans들은 이래서 안 돼.. ㅉㅉㅉ" 삿대질을 하고.. 조선 백성들도 그냥 가르치고 계도해야 할 미개인 정도로 생각하면서 자기와 거리를 뒀다고 한다. 뭐, 인간적으로 이해는 된다.

서 재필은 한국이 배출했지만 한국이 제대로 키워 주지 못한.. 참 여러 모로 아까운 인재였다.
그의 유해는 1994년 3월경에 한국으로 돌아왔다(전 명운 의사의 유해와 함께). 공 병우 박사가 다른 관혼상제나 행사에는 좀체 참석을 안 했는데, 이 사람의 유해 봉환식에는 일부러 찾아가 참석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2. 일본인

(1) 소다 가이치(1867-1962)
일본인으로서 기독교 선교사 겸 고아원 원장으로 평생을 헌신한 분이다. 조선의 독립을 지지하면서 105인 사건이나 3· 1 운동 때는 조선인들을 편들고 실드 쳤으며, 전후에는 자국을 상대로 전쟁 범죄에 대한 회개와 사죄를 촉구했다.

그는 젊은 시절에 정신을 잃고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조선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살아났으며, 월남 이 상재 선생으로부터 기독교 전도를 받기도 했다. 그런 경험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호의가 자연스럽게 생긴 것 같다.
그는 일본인으로서 유일하게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묻혔다. ‘후세 다쓰지’ 만만찮은 대한 독립 유공자 일본인으로서 손색이 없으나, 정식으로 인정은 아직 못 받았다.

(2) 아사카와 다쿠미(1891-1931)
조선총독부 산림과에서 근무한 관료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의도가 없이 진짜 순수하게 학자 내지 덕후로서 조선의 문화에 관심과 애정을 보였던 일본인이었다. <조선의 소반(밥상)>(1929)과 <조선도자명고(도자기 도예 관련)>(1931)를 저술하기도 했다.

그는 망우리 묘지에 묻힌 유일한 일본인..은 아니고 두 명 중 하나이다.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는데, 죽을 때의 유언도 “조선 식 장례로 조선 땅에 묻어 달라”였다고 한다.

3. 역관 출신

(1) 김 홍륙 (러시아어)
이 사람은 천민 출신이었지만, 함경도 출신에 블라디보스토크를 왕래하면서 어부 생활을 한 덕분에 러시아어 회화가 가능했다.
마침 1880년대의 조선 정치판에서는 “친러가 살 길이다” 라인이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잘하는 인재를 찾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이런 시대를 잘 탄 덕분에 벼락출세길이 열렸으며 고종의 측근으로서 부귀영화를 엄청난 누리게 됐다.

그러나 그는 나라를 쥐락펴락 하는 고위 공직자에 걸맞은 인품, 교양, 학식을 갖추지 못한 채 친인척까지 동원해서 부정축재와 학정을 일삼았다. 무능한 암군 소리를 듣는 고종이 보기에도 도가 지나쳤기 때문에 그는 결국 짤렸다(파직).

그런데 김 홍륙은 이에 앙심을 품고 고종과 순종 부자를 통째로 암살, 독살하려는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 이들이 마시는 커피에다가 몰래 치사량의 아편을 탔는데.. 고종은 커피 맛이 이상한 걸 알고 곧바로 뱉었지만, 순종은 그걸 그대로 마셔 버려서 한동안 앓아누우며 고생했다.

이 어설픈 사건은 곧장 배후가 드러났는지, 김 홍륙은 곧바로 교수형을 당했다. 왕을 통째로 암살하려 했으니 이거야말로 10여 년 전 갑신정변 주동자를 능가하는 역적이었으며, 동시대의 중국이었다면 능지형을 당해도 쌌다. 그래도 갑오개혁을 계기로 연좌제가 폐지되고 잔인한 형벌도 금지된 덕분인지, 그는 김 옥균이나 서 재필 같은 급의 멸문지화를 당하지는 않은 것 같다.

훗날 1919년, 고종은 식혜를 마시고 나서는 심한 복통과 각혈을 호소하다가 죽어 버렸기 때문에 이거야말로 일제에 의한 독살설의 강력한 근거가 되었다. 고종의 붕어가 3· 1 운동의 강력한 기폭제로 작용했다는 것도 명백한 팩트이고..

(2) 이 하영 (영어)
이 사람은 몰락한 양반 가문 출신이어서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가난과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랬는데 미국인 의료 선교사 알렌과 만나게 되고, 어설픈 일본어와 영어 실력만으로 고종 황제의 개인 통역관의 자리에 올랐다. 이런 사례를 보면 인생은 정말 타이밍인 듯..

그는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출세하고 성공하면서, 이 험난한 세상에서 줄 잘 서고 기회 잘 잡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결국은 을사조약에 찬성하고 일제로부터 자작 지위도 받고, 조선 귀족으로서 떵떵거리며 천수를 누리다가 죽었다.

더 옛날에 김 대건 신부도 똑똑해서 외국어를 몇 개씩이나 구사했다고 한다. 조선의 관료들도 그 실력이 아까우니 가톨릭 신앙만 버리면 당장 살려 주고 벼슬도 주겠다고 회유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남에게 없는 외국어 실력을 갖고도 이렇게 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과연 저렇게 산 사람도 있었다.;;
참고로 이 하영의 손자 중 하나가 참 군인이라 일컬어지던 이 종찬 장군이다.

4. 이완용보다 더 부자 매국노

구한말에 나라를 팔아넘겨서 그 댓가로 호의호식했던 매국노는.. 그 뒤에 활동했던 생계형 친일파나 부역자하고는 성격이 좀 다르다. 전자가 후자보다 수가 더 적으며, 훨씬 더 부유하게 살았고 죄질도 더 나쁘다고 봐야 한다.

매국노의 대명사야 뭐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의 교집합 그랜드슬램을 모두 찍은 이 완용이다. 하지만 재산으로만 따지자면 이 완용보다 더 악착같이 돈을 모으면서 더 갑부, 더 억만장자가 된 반역자도 있었다.

  • 민 영휘: 남이섬이 바로 이 사람의 손자인 민 병도의 사유지라 해서 논란이 많았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그 시절에 그 정도 가격이면 한국 은행의 총재까지 역임했던 능력자 민 병도가 개인 연봉과 퇴직금만으로 마련할 수 있는 부동산이고, 딱히 친일의 댓가· 피 묻은 돈이라고까지 볼 수는 없다는 판결이 내려진 상태이다. (참고로 국사학자는 이 병도이구나)

  • 윤 덕영: 지금의 수성동 계곡까지 포함해서 서울 옥인동, 인왕산 자락까지 그야말로 초대형 저택을 꾸렸던 미친놈이었다. 재산이 이 완용보다도 몇 배는 더 많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단순히 일본으로부터 받은 은사금을 밑천으로 해서 각종 부동산이나 사업으로 재산을 더 불린 것도 생각해야 한다. (참고로 축구 선수 골키퍼는 홍 덕영..;;)

Posted by 사무엘

2021/10/29 08:35 2021/10/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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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치 독일, 일본 제국, 차우세스쿠의 몰락

1945년 4월 말, 히틀러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처형 당하고 처참하게 시신 능욕을 당하는 걸 보고는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자기는 절대로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으며, 자살한 자기 시신을 철저히 화장해 없애서 적에게 신원 확인이 안 되게 하라고 부하들에게 당부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 못했으며, 치열 대조를 통해 히틀러의 시신이 확인됨)
무솔리니가 죽은 지 겨우 이틀 뒤에 히틀러도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 뒤 1989년 12월 말, 루마니아의 공산 독재자 니콜라 차우세스쿠가 시민 혁명에 의해 축출되고 처형 당했다. 20세기의 독재자 중에서는 그야말로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멍청한 짓을 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번엔, 이 사건을 접하고는 평소에 켕기던 게 많아서 “우리도 까딱 잘못했다간 이렇게 되는 거 아냐?”라고 와들와들 떨고 당황했던 인간들 중 하나는 북괴 김씨 일가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니 당연히 주민들이고 군인이고 서로 더욱 감시하고 밀고하게 만들고, 그런 비생산적인 짓거리에 세금과 공권력을 더욱 투입하고..
북한은 그야말로 역대급으로 폐쇄적이고 내부에서 항쟁, 혁명, 쿠데타 같은 게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형태로 사회 구조가 더욱 썩고 곪아 버렸다.

영화 “Downfall/몰락”(2004)은 히틀러가 전쟁에서의 패색이 짙어지자 부하들을 탓하며 광분하다가 결국 자살을 선택하는 행적이 잘 묘사되어 있다.
다음으로 “일본 패망 하루 전”(2016)은 역시 항복 열흘쯤 전부터 원자폭탄 두 방 맞은 것 하며, 히로히토 천황은 어린 신민들을 위하야 어엿비 너겨 항복을 결단하는데 밑에서 또라이 같은 장교들이 항명하여 쿠데타를 벌이는 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일본에서 스스로 ‘일본 패망’ 이딴 식으로 영화 제목을 붙인 건 당연히 절대 아니다.. ㅋㅋ 저건 우리나라 개봉 때 붙은 로컬라이즈된 제목이다.
이 둘은 동양과 서양에서 제각기 2차 세계 대전의 추축국 전범국이었던 두 나라가 말기에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영화들이라 하겠다.
독일의 히틀러는 총통으로서 국가 원수와 군 사령관 역할을 겸한 반면, 일본 천황은 신민들에게 얼굴조차 안 비치는 신이고 밑에 육군과 해군이 제멋대로 놀면서 폭주했다는 차이가 있다.;;

독일이 패망하는 영화가 제목이 Downfall인데.. 일본이 원폭 두 방을 맞고도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을 때 일본을 상대로 시행되려 했던 특급 전면전 작전의 이름도 Downfall이었다.
북괴 정권이 일제나 나치 독일처럼 멸망하지 못하고 김씨 일가가 차우세스쿠 같은 최후를 맞이하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2. 중요한 개념 정리

(1) 남한과 북한이 이산가족들의 눈물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서로 왕래를 금지하는 이유는..

  • : 간첩, 공작원들이 지령 받고 와서 불순한 짓을 할까 봐 두려워서
  • : 자기 주민들이 바깥 사정을 알게 되고 자기 체제의 치부도 알게 될까 봐 두려워서

그렇기 때문에 북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고 이념 앞에서 가족도 없고, 남한 체제에 동화되지 않을 정도로 멘탈이 강제 개조된 인간흉기만을 남한에 공작원으로 보낸다.
그리고 반대로 남한에서는 그 어떤 종북분자들도 아예 북으로 가서 눌러앉아 살라는 말은 절~~~대로 안 듣는다. OK???

이게 반박불가인 팩트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어디 반박할 테면 반박해 보셔~)
그러니 이 본질적인 방해 요인을 해소하지 않고서 남북 교류니 협력이니 개방이니 헛짓 하는 건 전부 그냥 돈지랄 정치 쑈 사기극일 뿐이다. 정권이 바뀌거나 국제 정세가 바뀌면 언제라도 파토 날 수 있다.
자유로운 서신 왕래나 전화 통화 하나 없이 무슨 개방이여 미친..

(2) 종북과 좌빨은 엄밀히 말하면 서로 다른 속성이다.

  • 좌빨: 북괴에 대한 호감도나 충성도와는 무관하게 그냥 우리나라 경제 구조를 증세, 공유 위주로 사회주의 공산주의처럼 바꾸고 싶어함. 부자들 증오하면서 자기는 부자가 되고 싶어함.
  • 종북: 우리나라 정치 경제 구도와는 무관하게 그냥 우리나라 정체성을 부정하고 북괴 수뇌에게 충성하고 저쪽에 못 퍼 줘서 안달. 미국/일본 잣대와 중국/북괴 잣대가 심각하게 일관성 없음.

그러니 서로 다르긴 하다. 종북은 아니고 좌빨만 강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둘이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하나만 해당하고 다른 하나가 완전 강경하게 정반대인 사람은 거의 없다. 미사일 아니면 발사체, 간첩 아니면 활동가(!!)라는 차이밖에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3) 오늘날의 북괴는 무슨 스탈린, 레닌이 어떻고 하는 공산주의 집단은 아님.
공산주의 이념보다는 '공산주의자의 수법'만 그대로 계승해서 자기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집단이다. 이게 핵심..

3. 현실 직시

(1) 고래잡이를 근절시켜 준 것은 그린피스의 무식 과격한 시위가 아니라 고래기름 대체재의 개발이었다.

(2) 고문과 강압수사를 이만치라도 없앤 건 DNA감식, CCTV 등의 과학수사이지, 민주팔이 데모꾼들의 깽판 시위가 절대 아님.
민주화를 골백 번 한다 해도 고문과 강압수사를 동원해서라도 용의자를 잡아내야 할 강력 범죄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3) 산의 나무를 베지 않아도 되게 하고 벌거숭이 민둥산을 푸르게 지키는 데 절대적으로 기여한 것은.. 무슨 자연 보호 운동 따위가 아니라 화석연료이다(땔감의 역할 대체). 그리고 그 더티한 화석연료조차 쓰지 않아도 되게 해 준 것은 정말 역설적이게도 원자력이다!!

(4) 1940년대의 일제를 굴복시킨 것은 사랑의 원자탄 fat man과 little boy이지, 무슨 아가리 파이팅이나 맨주먹 항쟁 따위가 아니었다.
(아 물론, 일제를 굴복 항복시켰다고 해서 한반도가 100% 자동으로 해방되지는 않을 수 있었고, 일제만 물러난다고 해서 거기가 자동으로 한국인 소유로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었다. 거기부터는 한국인의 독립 운동이 기여한 것도 약간 있음)

(5) 우리나라가 민주주의가 잘 정착한 건 그나마 독재 흉내나 좀 냈다는 대통령들부터가 사실은 민주주의를 적극 추구했으며, 호구에 가깝게 너무 착하고 선량하고 순진해 빠졌던 덕분이다. 세상에 어느 정신나간 바보 등신 독재자가.. 자기더러 물러나라고 시위를 하던 학생들이 다치자 문병을 갔으며, 너희들이 장하다고 칭찬을 했느냐 말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선량하지 않았다면, 제아무리 데모질 좀 해 봤자 옛날의 북한, 중공, 헝가리, 캄보디아처럼, 요즘 미얀마처럼 총칼과 탱크에 진작에 싹 다 진압되고 갈려 나갔을 것이다.

아이고 이런 예가 얼마나 더 있을까? 현실을 좀 똑바로 직시하도록 하자.
현실을 직시할 줄 모르니까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오로지 "일제와 독재에 항쟁"밖에 없는 줄 안다.
그리고 북한 주민들은 민주 의식 저항 의식이 부족해서 김씨 왕조를 무너뜨리지 못했다느니, 열심히 일하지 않고 게을러서 남한보다 못살게 됐다느니(혹은 미국놈들이 경제 봉쇄를 해서-_-) 같은 개 헛소리가 찍찍 나오는 것이다. 이건 사상과 분별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뜻한다.

4. 사상 단속

본인의 지인 중에는 현역 군 장교도 있고 국· 공립대의 교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보아하니 이분들은 소속의 특성상 개인 SNS에서 정치· 종교 분야의 자기 사상과 견해를 표현하는 것에도 좀 제약을 받는 것 같다. 상부에서 자기들의 SNS 계정까지 모니터링이라도 하는지, 몸을 사리시는 게 느껴진다.

내가 알기로 공무원은 타 영리 활동 겸직(사교육 교사, 대리운전, 알바 등..)이나 노조 설립, 정당 활동 정도가 금지이다. 비영리로는 시인 등단까지도 가능한 걸로 아는데.. 왜 업무 외의 영역인 사생활에 저런 제약이 가해지는지 난 잘 모르겠다.

그리고, 저런 지엽적인 사상 단속은 그리도 꼼꼼히 하면서..
지금 공립 학교에서 어린애들한테 철저하게 정치 이념을, 그것도 매우 해롭고 악하고 불순하고 잘못된 쪽으로 주입해 넣고 있는 전교조 교사들 단속은 교육계에서 제대로 하고 있는가? 난 이에 대해 깊은 회의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요즘은 교사를 뽑을 때 인성 면접에서 다같이 “김XX 개XX”를 소리내어 복창하고 동의시키든가, 그게 민망하고 남사스러우면 임용 시험에서 필적 확인 문구로라도 저걸 필사시켜야 하지 않나 싶다.
민망하고 남사스럽다고 최소한의 인증을 안 하다 보니 지금은 교육계가 정말 심각한 수준으로 적화됐기 때문이다.

사상이 저쪽으로 불량한 놈들은 사형, 추방, 삼청 교육대, 정신병원 중 하나가 마땅하겠지만, 사정상 그럴 수 없다면 최소한 법조인, 성직자, 정치인, 교육자 같은 직업은 절대로 가질 수 없게 해야 한다. 그냥 사기업 월급쟁이나 자영업 장사로 자기 전공 기술만 이용해서 밥벌이를 할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권위와 영향을 행사하는 직업은 절대로 넘볼 수 없게 해야 한다.

5. 죄책감??

또한 본인은 군인(특히 일개 병사가 아니라 사관생도나 장교)이나 사형 집행관이라는 사람이 자기 직무를 수행하는 와중에 쓸데없이 죄책감 운운하는 게 굉장히 싫고 마음에 안 든다.
그건 의대생이나 현업 의사가 무섭거나 비위 상한다고 해부 실습 내지 수술을 못 하는 것과 비슷한 꼴이다. 그럼 애초에 그 업계로 가질 말았어야지..

사형수한테 밧줄 씌우고 교수대 버튼 누르는 교정직 공무원은 자기 감정이 아니라 불쌍한 피해자 유족을 대변하는 심정으로 일을 해야 한다. 어디 뱃대지가 불러서 갑자기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고 자빠졌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남북 통일이니 협력이니 하기 전에, 먼저 북한에 올바른 통치 체제를 이식하고 개방을 시키고 서신과 통신 왕래라도 시켜야 된다. 그게 억만 배는 더 중요한 일이다.
인과관계와 우선순위를 이렇게 따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나?? 이런 게 정치 성향이나 종교관에 따라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사항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비정상인가..?? ㅡ,.ㅡ;;;

내 경험상 필요악을 없애자고 선동하는 놈들은 그놈들이야말로 진짜 절대악이 아닌 적이 없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1/08/18 08:35 2021/08/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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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탄 십용사

본인은 작년 말쯤에 본인과 같은 진영에 속한 이웃 교회 형제들과 교제할 일이 있어서 화성 동탄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반원 모양의 방사형으로 만들어진 시가지가 인상적이었는데.. 외곽의 도로에는 웬 '십용사로'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흠, 육탄 십용사 멤버 중 일부가 이 지역 출신이기라도 했나 보다.

3년쯤 전에 도로명을 통해서 우연히 이 윤탁 한글 영비를 알게 된 것처럼.. 도로명을 잘 지은 게 나름 지역 역사를 아는 데 도움이 된다.
저기는 아예 육탄 10용사 기념 공원까지 길목에 있는 걸 봤다. 다만, 시간과 동선 관계상 개인적으로 들러 보지는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군사 정훈 차원에서 기리는 여러 인물과 사건들 중, 육탄 10용사는 극히 드물게, 거의 유일하게 6 25 사변 "이전"의 굉장한 옛날이 배경이어서 이질적이다. 1년 남짓 전이던 1949년 5월, 지금 같은 휴전선이 아니라 38선이 아직 유효했고 개성 시내가 남한 땅이었던 시절이다.

문제는.. 38선에 따르면 개성 시내는 남한이지만, 바로 북쪽의 고지대인 송악산 중턱과 정상이 북한 땅이어서 남한이 방어하기가 매우 불리했다는 것이다. 북괴는 6· 25를 벌이기 전부터 여기에서 수시로 툭탁거리고 국지전 시비를 걸면서 남한을 귀찮게 했다. 그래서 그걸 견제하려면 북괴가 송악산의 남쪽 기슭에 만들어 놓은 벙커라도 파괴해야 했다.
(뭐, 그 시절 용어로는 벙커 대신 러시아어 '토치카'가 더 즐겨 쓰인다. 휴전선의 길이도 킬로미터가 아니라 꼭 155 '마일'이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때 특공대에 자원해서 혈혈단신으로 괴뢰의 토치카를 수류탄으로 까 버리고 전세를 뒤집고 송악산 고지의 탈환에 큰 공을 세운 용사들이 열 명이었고 '육탄 10용사'라고 전해진다. 이들은 적진에서 장렬히 산화했다고 한다.
그러니 나라에서는 이 사람들을 진정한 군인 애국자라고 아주 성대하게 기념했다. 동상 만들고 노래 만들고 학교에서 가르치고 이름을 딴 군부대와 상 등도 제정하고 별 짓을 다 했다.

전쟁터라는 게 한 사람의 뻘짓 때문에 수십 명이 몰살당할 수 있고, 반대로 한 사람의 희생 덕분에 수십 명이 목숨 건질 수도 있는 동네이다. 그리고 옛날에는 지금보다 인명 경시 풍조가 더 심했으며, "이기든지 죽든지", 멸사봉공 진충보국 같은 관념이 더 강했다는 것도 감안할 점이다.

하지만, 저 사람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송악산 기슭과 개성 시내는 6 25 전쟁 때 결국 지못미가 돼서 완전히 북한으로 넘어갔다.
게다가 저 사람들도 죽은 게 아니라 작전에 실패했으며, 전부나 일부가 포로가 되어 북으로 끌려갔다는 증언이 훗날 나오기도 했다. 심지어 북한의 대남 방송에서도 육탄 10용사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어느 병사가 출연해서 자기 고향과 가족 인증을 했댄다..;;

너무 옛날 일인지라 이제 와서 정확한 진실을 알기는 난감하다.
다만, 북한에서 존재를 인정하고 언급한다고 해서 걔네들 말이 언제나 다 맞는 건 아니다.
북한에서 뜬금없이 효순이 미선이 자리를 만들고 추모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걔들이 무슨 대공 안보 관련 사건에 휘말렸거나 미군의 '악질 범죄'에 희생된 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무슨 광주에 투입됐던 대남 공작원의 묘지인지 위령비인지를 만들었다면서 5 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걔들은 자기와 아무 관계 없는 4 19 의거나 6 29 민주항쟁 등도 자기들이 이용할 가치가 있으면 제멋대로 기념하고 선동 자료로 써먹는다.
그리고는 정작 진짜로 침투했던 대남 공작원이나 6 25 공산군 병사들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하면서 존재를 부정하고 유해를 가져가지 않는다.

즉, 이런 쪽으로는 북괴의 대처가 일관성 없이 제멋대로인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쟤들의 반응만을 직접적인 근거로 받아들이기는 곤란하다. 육탄 10용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정황상 그 시절에 10명의 특공대가 조직돼서 폭탄을 들고 송악산 고지를 향해 달려갔다는 사실 자체는 팩트이지만.. 그 이상 정확한 사건의 결말을 알기는 어려워 보인다. 거기가 무슨 철원 백마고지마냥 6 25 때 피로써 수복해 내서 지금 전해지는 영토인 것도 아니고, 또 지금이 옛날처럼 카미카제 같은 전술이 마냥 미화되는 시기인 것도 아니니..

그러니 육탄 십용사는 문자적 적용보다는 '영적 교훈'이 더 의미를 갖는 영역인 것 같다. 북괴 몰아내고 개성 시내를 대한민국 국민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는 날이 오면 해당 장소에 대한 고증과 재조사 발굴이 대대적으로 필요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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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현충원에 있는 육탄 10용사 현충비. 굉장히 옛날(2007년!)에 찍은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또 달라졌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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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21/07/05 08:35 2021/07/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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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권 선언

지난 1948년에는 이스라엘이 건국됐고(5월) 대한민국도 미군정을 졸업하고 정식으로 정부를 수립하여 건국됐으며(8월), 이어서 연말인 12월 10일엔 UN 총회를 통해 '세계 인권 선언'이란 게 선포됐다. (☞ 한국어 번역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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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어떤 아지매가 4절지? 2절지 정도 되는 큼직한 종이에 뭔가가 빼곡히 인쇄된 걸 펼쳐들고 있는 모습 패러디 짤방을 본 적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그 아지매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영부인이었고, 원전이 바로 세계 인권 선언이라는 것을 본인은 비교적 최근에야 알게 됐다. =_=

  • 어린이 헌장도 아니고(어린이를 학대하지 말고 기본적인 건 보장해 주며 특별히 보호해 주자),
  • 제네바 협약도 아니고(전쟁을 하더라도 지킬 건 지키고 싸우자, 포로의 인권을 최소한은 보장하자),
  • 국민 교육 헌장 같은 것도 아니고(교육 잘 하고 잘 받아서 민족을 중흥시키고 새 역사를 창조하자)..

모든 인간은 누구나 인종 피부색 국적 종교 무관하게 존엄하고 평등하다, 저것 갖고 부당한 차별 박해를 하지 말자,
인간에게는 결혼하고 먹고 자고 국적 선택할 권리가 있고, 거주지 옮기고 직업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전근대적인 세습 노예 제도나 피의자 고문은 잘못됐다, 자국민을 무국적자로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등등~~

지금 우리로서는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그야말로 제국주의 식민지와 우생학, 2차 세계 대전 같은 비극적인 짓거리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30개에 달하는 조항에 담겨 있다.

이 선언은 비록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저기에 담긴 이념이 세계 자유 진영 국가들의 헌법에 그대로 녹아들어가 사실상 국제 관습법이 됐다. 그리고 성경 같은 여느 유명 문헌 만만찮게 수백 가지의 언어로 번역됐다.
이 시기에 세계 각국의 나라들이 왕정을 버리고 공화정으로 체계가 바뀌었다. 오죽했으면 조선 만만찮은 꼴통 카스트 신분제 국가이던 인도조차도 최소한 법으로는 이제 신분제를 부정하고 만민이 평등한 민주 국가를 표방하게 됐을 정도이다.

물론 지금은 인권 운동이라는 것들이 너무 오바하고 선 넘어서 사형 제도 폐지와 동성애 합법화, 범죄자 인권만 챙기기, 죄 지을 권리만 챙기기, 죄를 죄라고 말하는 것을 반인권 프레임 씌워서 금지시키기.. 이딴 식으로 변질된 면모도 많다. 하지만 저 시절에 저런 인권 선언이 세계적으로 선포된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었다.

저런 인권 선언이 없던 옛날을 생각해 보자. 서양은 타 인종· 타 민족을 노예로 부렸고, 조선은 자국민의 과반을 노비로 부려먹었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국력이 강해지고 나니 아예 인종 전시회, 인간 동물원을 열었다.
흑인 노예는 짐승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도기 생물 정도로 여겨졌다. 죽은 시체를 해부해 보니 장기 구조가 백인과 아무 차이가 없는 걸 보고는 "어 그럴 리가 없는데..?" 이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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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원주민 여성인 사키(세라) 바트만(1789-1815). 유럽인들의 침략으로 영국에 혼자 끌려와서 알몸으로 구경거리 취급을 당하다가 타지에서 한 많은 삶을 일찍 마감했다.)

그리고 상피병이나 이상한 비늘증 유전병에 걸려 외모가 흉측해진 사람은 구약 시절의 문둥병 환자 취급이었다. 천벌 받은 죄인이니까 왕따 시키거나, 아니면 서커스에 보내서 놀림감으로 만들었다. (요 9:2 같은..).
세계 인권 선언은 바로 저런 짓을 앞으로 되풀이하지 말자고 다같이 결의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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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메릭(1862-1890). 흑인이 아니라 엄연히 유럽 백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전병으로 인해 심각한 피부 기형이 발생하여 인간 취급을 못 받았다. 평생을 놀림과 학대를 받으며 기구하게 살았다. 이 사람의 일대기를 배경으로 the elephant man (1980)이라는 영화도 이미 나와 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론 포로 70년을 겪고 나니 종족 특성이 싹 바뀌었다. 비록 그 뒤에도 주 하나님을 마음과 뜻을 다해 100점짜리로 섬긴 것은 여전히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옛날처럼 바알 같은 우상을 대놓고 따르지는 않고 외형적으로 골수 유일신 민족으로 탈바꿈했다.
그것처럼 이 인류도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참극까지 겪은 뒤에야 옛날 같은 식민지 쟁탈전, 인종과 종교로 인한 전쟁이 '1세계의 외형'으로 한정이긴 하지만 어쨌든 멎었다. 아쉬운 대로 평화가 찾아온 셈이다.

다음으로 국제 기구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보자.
기독교계 중에서도 꼴통에 가까운 보수 우파, 그리고 정치 종교 통합과 세계 단일 정부 음모론 이런 걸 진지하게 고려하는 진영에서는 UN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는 편이다. 심지어 UN이 창립된 뒤부터 세상은 전쟁이 오히려 더 늘어나고 더 혼란스러워졌다고 까며, 미국 한정으로는 "The UN wants your gun! 총을 빼앗긴 다음에는 성경을 빼앗길 겁니다" 이런 괴담까지 나도는가 보다.

물론 UN이 딱히 기독교 성경적인 이념을 실천하는 기관은 아니다. 하지만.. 당장 우리나라부터가 UN이 없었으면 어떻게 버텼겠는가?
글쎄, 미래엔 성경의 예언대로 세계가 연합해서 이스라엘을 대적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6 25 사변 때는 세계가 연합해서 대한민국을 도와줬다. 우리나라는 그게 너무 고마워서 향후 수십 년간 UN 창립일을 공휴일로 기념하고 놀 정도였다.

그리고 20세기 중후반에 전쟁이 늘어난 것은.. 오히려 식민지 지배를 하던 강대국들이 물러나고 나서 그 지역 조무래기들이 정치가 불안정해서 툭탁거리고 싸우는 것의 비중이 더 크다. UN이 능력이 부족한 건 있어도 UN이 잘못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뭐, 내가 보기에도 21세기의 UN은 20세기 중반의 창립 당시 초심을 갖고 있던 UN과 같은 성격의 조직이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쟤들의 존재 자체를 근본부터 백안시하고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죽했으면 국제 연맹을 계승해서 UN이란 게 생겼을까? 그것도 세계 대전 연합국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따 와서 말이다.
창조 진화 논쟁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우 장춘 박사와 종간 잡종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고, 연대기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우주 배경 복사와 방사성 원소 연대 측정법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 (어떤 입장에 대해 찬성하건 반대하건, 그 대상이 뭔지는 정확하게 알아야 하므로!)

그런 것처럼 세계사, 기독교적 세계관에 관심 있는 사람, 프란시스 셰퍼의 "그러면 우리는 어찌 살 것인가" 의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UN과 세계 인권 선언의 등장 배경과 맥락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제국주의 시절에 진짜 불쌍한 사람과 희소병 환자의 인권을 당대의 기독교회가 챙겨주지 못했다면, 훗날 그냥 무신론적 인본주의에 입각한 인권 선언이 태동하는 것을.. 신자들이 마냥 부정적· 회의적으로 보고 목소리를 내기란 곤란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반대로 세계 인권 선언의 등장 배후에 성경적인 동기가 들어간 걸까..?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1/06/21 08:36 2021/06/2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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