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위대한 일을 했지만 곧 사자에게 물려 죽은 어느 일회용 선지자

열왕기상 13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하고 교훈거리가 많다. 그건 예전에 "자의와 타의의 경계 문제" 글에서 이미 다뤘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엘리야 이야기부터 시작하도록 하겠다.

1. 갈멜 산에서의 불 대결

(1) 열왕기상 18장에 기록된 엘리야의 갈멜 산 대결 말이다.
안 그래도 극심한 가뭄 때문에 물이 귀한 상태였는데.. 엘리야는 기도를 하기 전에 제단에다가 물을 수십 리터 이상 끼얹어서 아예 도랑을 만들었다. 왜 그랬을까...??

아 물론 화력 조절을 위해서다. 더 구체적으로는 화재, 산불 예방을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내 뇌피셜이다. "{주}의 불이 내려와서 태우는 희생물과 나무와 돌들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으므로" (왕상 18:38)
모든 게 바짝 말라 있던 산에서 저런 화염이 떨어져서 불똥이 잘못 튀면.. 그야말로 대재앙이 벌어지지 않았겠느냐 말이다. =_=;;

저 때 도랑의 물은 불길의 열기 때문에 순식간에 증발하면서 허연 수증기를 왕창 뿜어냈지 싶다.
로켓 발사대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발사대의 아래에는 로켓 엔진이 뿜어대는 어마어마한 화염 열기를 받아내고 주변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서 물이 잔뜩 담겨 있다. 로켓 발사 직후에 천지를 뒤덮는 허연 연기들은 대부분이 수증기이지, 단순 배기가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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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륙 정도나 횡단하는 가벼운 미사일은 순식간에 쌩 날아가서 발사대를 벗어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사람이나 인공위성을 싣고, 정지 궤도 진입까지 목표로 연료까지 왕창 많이 실은 거대한 우주 발사체는..??
너무 무겁다. 발사 직후에는 몹시 굼뜨면서 완전히 상승할 때까지 발사대에 오랫동안 대미지를 준다. 마치 무거운 디젤 트럭이 갓 출발할 때는 시꺼먼 매연이 왕창 많이 나오는 것처럼..
그러니 이런 대형 우주 발사체의 발사대는 하단에 냉각 설비를 특별히 빵빵하게 갖춰야 한다.

아이고 엘리야 얘기하다가 우주 발사체 얘기로..
뭐 엘리야는 신의 도움으로 하늘에서 불을 내린 적이 있었고, 심지어 자기도 승천해서 하늘로 올라갔다. 저런 무거운 로켓 엔진의 도움이 없이도!
그러니 엘리야 이야기와 우주 발사체 얘기는 연결고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으잉? ㄲㄲㄲㄲㄲ

(3) 저 때 엘리야를 대적했던 사람이 무려 950명이나 됐다. 18량에 길이가 388m이나 되는 KTX 열차 한 편성에 간신히 다 탈 수 있는 인원이다.;;
바알 선지자 450은 이해되는데 나머지 400명은.. 아세라(한킹)? 작은 숲(흠정역)? 도대체 뭘 숭배한 걸까?

예전에 한번 얘기한 적 있듯이, 둘은 음역이냐 번역이냐의 차이이다. 나무를 깎아서 무슨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같은 장승 목상이라도 만들어서 숭배한 건 아니고.. 저거는 살아 있는 나무가 심긴 숲을 말한다.
근데 숲이라고 하면 무슨 대자연 mother nature 숲의 정령이라도 숭배하나.. 이런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저쪽 진영에서는 그냥 평범한 숲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아세라' 음역을 선택한 것이다.

요약하자면,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자체를 지지하지 않는 진영에서는 장승 같은 '목상'을 떠올리고, 킹 진영에서는 살아 있는 나무가 심긴 숲을 떠올린다. 근데 한킹 진영에서는 숲과 우상을 모두 반영하려고 아세라 음역을 했고, 딴 킹 진영에서는 '작은 숲'을 골랐다는 것이다.
참고로 흠정역은 탬버린도 '작은북'이라고 옮겼기 때문에 '작은'이라는 말을 자주(?) 볼 수 있다.

(4)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알인지 뭐시긴지, 그 배후에 있는 사탄 마귀도 원래 하늘에서 불을 내릴 능력 자체는 있는 놈이다. 욥 1:16을 보면 생존자가 이건 하나님의 불이라고 착각까지 했다.
하지만 이 갈멜 산의 대결 중에는 하나님이 사탄에게 불 내리는 걸 막고,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다니엘서에서 사자들의 입을 막은 것처럼 말이다.

(5) 비가 진짜로 내릴 거라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비 안 오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성을 간다, 내 전재산 다 건다" 이런 극단적인 약속은 못 하더라도 최소한 밖에 나갈 때 우산이라도 챙겨 가야 하는 법이다. 그게 그 사람이 믿음이 있다는 최소한의 증거이다.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을 내린 다음에는 당장 불보다도 더 필요한 비도 실제로 끌어 오는 데 성공했다. 그 반면, 출애굽기 이집트의 마술사들은 개구리들을 생성하는 훼이크까지는 쳤지만 개구리를 없애는 일은 흉내 내지 못했다.

2. 기근

열왕기상 3장에는 그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이 기록돼 있다.
한 집에 같이 사는 여인 2명이 각각 자기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그 중 한 여인이 자기 아이를 실수로 압사? 질식사 시키고는 남의 아이를 몰래 바꿔치기해 버렸다. 이 때문에 그 아이의 진짜 엄마가 누군지를 갖고 분쟁.

이런 사건은 CCTV나 하다못해 유전자 감식 기술만 있었으면 실제 엄마를 찾아내는 게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저 때는 무려 기원전 900년대였다는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 왕은 칼 한 자루만으로 사건을 간단히 해결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0여 년 남짓 뒤, 열왕기하 6장을 보면..
여기서도 여인 2명이 애 때문에 다투고 있고 국왕에게 중재를 호소한다. 여기까지는 솔로몬의 재판과 아주 비슷한데 이 본문에서 여인들이 다투는 이유는 정말 경악스럽기 그지없다.

이때도 인류 멸망 급의 기근이 있었다. 그 흉년 기근을 견디다 못해 두 집이 아이를 서로 맞바꿔서 잡아먹을 지경이 됐다. 자기 친자식을 차마 먹을 수는 없어서 말이다. 이거 무슨 더러워진 양말이나 속옷을 갈아입긴 하는데 새것이 아니라 상대방 속옷을 교환한다거나 심지어 겉과 속을 뒤집어서 입는 것 같다.. =_=;;;

그런데 그 와중에 A가 B 집 애를 먹어 놓고는 자기네 애를 B에게 넘겨주지 않고 먹튀를 시전했다는 것이다. ㄷㄷㄷㄷㄷㄷ 이건 왕이 뭐 어찌 중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 >_<

참고로 성경 전체에서 뭔가 물가 예시를 들면서(= 물가 폭등) 극심한 기근을 묘사하는 게 저 열왕기(왕하 6:25), 그리고 계시록 대환란(계 6:6) 이 둘뿐이다.
그 뒤 예레미야애가에도 소말리아나 북한 애들 같은 끔찍한 묘사가 여럿 나온다. 어린애가 밥을 너무 못 먹어서 졸도한다거나(애 2:12), 애엄마가 자녀를 잡아먹거나(애 2:21).. 심지어 제일 인정 많고 여리고 소녀감성 유리멘탈 물멘탈이던 여인일지라도 인륜이고 천륜이고 다 저버리고 오로지 밥에 목숨 거는 짐승처럼 돌변한다는 묘사가 있다(애 4:10)!

요즘은 농업과 상업이 발달한 덕분에 저런 원초적인 기근은 아니어도.. 빚이나 생활고에 시달리다 부모가 자녀와 같이 동반 ㅈㅅ 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1940년대 태평양 전쟁에서는 천하의 미군도.. 기근은 아니지만 인간의 한계까지 너무 고생하고 쪽발이들의 광기에 학을 떼다 보니 일부가 맛이 가 버리기도 했다. 죽은 일본군 시체를 분해해서 두개골을 전리품으로 갖고 다니고, 찦차나 땅크에다 악세사리처럼 장착하고, 그걸 심지어 여친한테 선물로 주기도 하고.. -_-;;

사람은 조금만 생존에 위협을 느끼면 정신줄 놓고 금세 야만인으로 바뀔 수 있는 것 같다. 그게 새삼스러운 일이 절대 아니다.

3. 바빌론 포로기

그 뒤 이스라엘은 갈 데까지 가서 북왕국은 아시리아에게, 남왕국은 바빌론에게 모두 멸망해 버렸다.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에 등장하는 바빌론 포로기 70년은..
이스라엘 민족의 오랜 죄악을 정산한 기간이면서 한편으로 이들 민족을 골수 유일신 민족으로 개조시킨 기간이다. 그리고 안식년을 한 번도 맞이하지 못한 채 혹사당하던 땅을 강제로 휴경시키고 지력을 회복시킨 기간이기도 하다. (대하 36:21)

이때 “쳐맞고 바빌론 갈래, 그냥 바빌론 갈래?”밖에 선택지가 없다고 진실을 선포했던 선지자는 졸지에 매국노 민족반역자 비국민으로 몰려서 고초를 겪었다. 대표적으로 예레미야.
그러나 70년이 지나자 아무 기적이나 이변이 없는데 정말 뜬금없이 귀환령이 딱 떨어진 것도 과거의 출애굽 사건 이상으로 기적적인 사건이었다.

70년은 인간의 자연 수명에 필적하는 기간이다. 우리나라 일제강점기나 이스라엘 출애굽 세대의 광야 뺑뺑이 기간의 2배에 가까운 기간이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역사도 인제 얼추 70년을 넘었다.
이 70년은 단기간이 아니니 당장 집 짓고 농사 짓고 정착은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대대로 수백 년 영원무궁토록 눌러앉아 있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기간이다.

이는 이 세상에서 순례자의 삶을 사는 크리스천들의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 당장 이 세상에서 자기 생업을 갖고 돈 벌고 저축도 하면서 열심히 살 필요는 있지만, 그게 인생의 전부인 듯이 미련을 갖고 매몰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것들을 언제든지 몽땅 놔두고 버려두고 떠나게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건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특히 구원 받은)이 죽었을 때, 당장은 당연히 슬퍼하고 애도하고 유족을 위로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 땅이 꺼질 듯이 멘탈 붕괴되고 실신한다거나, 너무 상심해서 그 뒤로 매일 술에 파묻혀 산다거나 심지어 자기도 같이 따라 죽는다거나.. 그 정도로 극단적으로 행동할 필요는 없는 것과도 비슷한 자세인 것 같다. 크리스천들에게는 그것보다 더 큰 그림과 보험 보장이 있고 진짜 본향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바빌론 포로기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 보니 꽤 다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대이동을 했던 기원전 500년대부터 400년대 사이.. 하필 이 시기에 아시아에서 불교와 유교가 생기고, 중국 대륙에 온갖 제자백가 사상가 철학자들이 나타나 활동했던 것은 개인적으로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4/07/14 08:35 2024/07/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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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사기(판관기)의 전반적인 특징

- 본격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주적 '바알'신이 등장한다. 블레셋도 본격적인 악역 몹 몬스터로 등장한다.
- 다들 지 꼴리는 대로 각자도생하던 영적 암흑 무법천지의 극치를 묘사한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눈에 옳은 것을 행하였더라."

- 폭력· 살인을 묘사하는 수위가 모세오경 시절보다 더 올라가고 잔혹해진다.
옆구리 칼빵, 대량 학살, 문자적으로 사람 뚝배기를 깨거나(아비멜렉) 못을 박아 넣어서(시스라) 죽이기,
자기 친딸을 문자적으로 번제 헌물로 만들어 버리기, 자기 첩 시체를 토막 내서 전시하기...
인간들이 성경에 무지하고 영적으로 막장으로 치달으면 저런 일들, 아니 저것보다 더한 일도 얼마든지 벌어진다는 걸 성경은 보여준다.

여친과 함께 읽으면서 주찬양 10집 회복 "왕이 없었더니" 트랙을 들려 줬다. 반응은.. 뮤지컬 남바 같다는 평.. ^^
이 음반은 예배 찬송가를 지향하는 게 아니고 그냥 성경 스토리를 노래로 표현한 것이니 뮤지컬 남바라는 비유가 적절해 보인다.

- 한편으로 사사기엔 심은 대로 거두는 인과응보 참교육, 보복 살인이 자주 나온다.
엄지손가락과 발가락을 짜르기(1:6-7), 찔레와 가시로 참교육(8:16), 삼손의 깽판 등. 뭐, 넓게 보면 사무엘상에서 아말렉의 왕 아각이 토막(..) 살해 당하는 것도 좀 인과응보 같은 묘사이다.

- 영화 300은 아무래도 기드온의 300 용사를 오마주한 것 같다.;;
- 판관 시대는 세습 왕조가 아니었는데 판관들이 그때 그때 어떻게 선출되었고, 어쩌다가 여성 판관이 등장하기도 했는지 매우 궁금하다.

2. 기드온

기드온은 기본적으로 선한 인물이면서 정말 현실적이고 입체적이고.. 뭔가 오늘날의 크리스천과도 싱크로가 잘 되는 인물인 것 같다.
6:13.. "하나님이 계신다면 지금 우리가 왜 요 모양 요 꼴입니까? 옛 선조들에게 보여주셨다는 그 기적, 리즈 시절은 지금 도대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지금 우리가 얼마든지 던질 수도 있는 의문이지 않느냐 말이다.

최대한 의심하면서 하나님에게 증거 표적을 구했지만, 그래도 표적이 충족되자 군소리 없이 믿고 받아들였다. 삐딱하게 하나님을 떠보는 악한 의심을 한 건 아니다. 그래서 그는 민족을 구하는 큰일을 하는 데 쓰임받을 수 있었다. 난 이 자세를 높게 평가하고 싶다.

그는 그렇게 영웅이 되고 부귀영화를 얻자, 인간적으로 호색한 기질도 마음껏 발휘했다. =_=;;; 아내와 첩을 여럿 거느리고 자식이 70이 아니라 아들만 무려 70명을 두는..;;; 업적도 남겼다. 대단하다.
(성경에 아들 70명이었다는 사람은 기드온과 아합밖에 없다. 그런데 아합은 악인이잖아..)

그리고 기드온도 아들 70명을 두면 뭐 하나.. 개차판 아들 한 명(아비멜렉)한테 나머지 아들들이 몽땅 몰살 당하는 콩가루 집안 참극도 벌어졌다. 하긴, 아합의 아들들 70명도 나중에 한꺼번에 처형 당해서 멸문지화를 당하고 말이다.

기드온은 처음에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못을 박았었고 주님의 명령만을 신실하게 이행했었다.
그러나 유명해지고 부귀영화를 얻으면서 저렇게 색(...)도 밝히고 이상한 금 모으기 운동을 벌이고 황금 에봇을 만들어 입기도 하면서 교만해지고 흑화했다. 막 대놓고 우상 숭배를 하고 악행을 벌인 건 아니었지만 정신 상태가 초심을 잃은 것이다. 그것 때문에 저런 비극적인 가정사를 맞이한 건지도 모르겠다.

다만, 기드온 자신은 개인적으로 가문의 심판을 당했을지 모르지만, 아비멜렉 같은 또라이가 기드온 집안을 대적한 것도 큰 죄악이었다. 성경은 기드온의 은혜를 잊어버린 배은망덕한 인간들이 아비멜렉 편을 들고 반역했었다고 분명히 언급한다.

3. 나무나라 비유

우리나라엔 “뽕나무가 뽕 하고 방귀를 뀌니 / 대나무가 댓끼놈 야단을 치네 / 이때 참나무가 점잖게 하는 말~ 참아라”
라는 참 유치찬란한 우화 동화인지 동요인지가 있다. =_=;;;;
그런데 성경에도 이와 아주 비슷한 느낌이 드는 나무 우화가 있다. 사사기 9장에서 무슨 동물의 왕도 아니고 나무들의 왕 뽑는 비유가 등장한다. ㅋㅋㅋㅋㅋㅋ

사사기 9:8-15에 나오는 나무나라 비유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어쩜 이렇게 딱 정확하게 저격하고 풍자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근래 모습과도 싱크로율이 아주 높다.
똑똑하면서 선량하고 인성 인품 좋은 사람, 자기 관심분야에서 바쁘고 할 일 많은 사람들은 굳이 권력에 연연하지 않는다. 정치판에 들어오라는 손짓에 어지간해서는 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능력은 쥐뿔 없으면서 찌질하고 열등감 쩔었고 남 앞에 나서길 좋아하고 명예욕 권력욕 많은 저질 인간은..
그런 기회가 오면 넙죽넙죽 나서는 편이다. 심지어 자기보다 더 큰 사람, 더 훌륭한 사람을 모함하고 음해하면서까지 나선다.
그래서 큰 권력을 쥐게 되면 피바람을 일으키고 나라를 다 말아먹는다.

이게 인간 사회 정치의 역설 비극인 듯하다. 진짜 정치를 해야 하는 사람이 정치판에서 버티지를 못하는...
이 비유에서 올리브, 무화과, 포도나무가 나오고, 가시나무는 그런 귀한 열매를 맺는 게 없는 폐급으로 취급된다. 나무가 아니라 박꽈 덩굴로 치면.. 호박도 수박도 참외도 아닌 가시박이나 환삼덩굴 같은 잉여 잡초일 것이다. ㄲㄲㄲ

이 비유가 임팩트가 컸는지 "니 주제, 분수를 파악하라"라는 의미로 "가시나무가 백향목에게 깝치다가 참교육 당했다"는 비유가 훗날 또 등장하기도 한다. (왕하 14:9) 또, 예수님도 이런 나무의 퀄리티 차이를 비유에다 동원해서 눅 6:44 같은 말씀을 하신 바 있다. bramble, thorn, thistle 등 세부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이 문맥에서 그리 중요한 차이점은 아니므로 패스..;;

4. 전반부와 후반부

성경에서 창세기 1장은 시간 순서에 따른 6일 창조 얘기이고.. 그 다음 2장은 그 중에서 여섯째 날(아무래도 아담에 대한 언급이 있으니)에 있었던 일의 세부 묘사가 있다.

그런 것처럼 사사기(판관기)는 1~16장은 옷니엘부터 삼손까지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에 대한 시간 순 연대기이다.
그 다음 17~21장은.. 그 재판관 시대의 특정 시기에 어떤 사건이 있었고 이 백성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악을 행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열거된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주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였더니.. 주께서 이들을 징벌 차원에서 XXX 민족의 손에 YY년 동안 넘겨주었다" 패턴의 세부 내역이 이랬다는 뜻이다.
사사기의 주된 코멘트인 "그때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는 바로 후반부에서 반복해서 등장한다. 후반부의 사건으로는 17~18장 종교 타락이랑, 19~21장 흉악 범죄 내전이 언급된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 비느하스가 언급될 정도이니 여호수아 이후로 그렇게 먼 미래도 아니다. 가나안 땅 들어가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재판관 시대의 초창기에 벌써 이런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5. 블랙코미디

리암 니슨이 나오는 2019년도 블랙코미디 영화 "콜드 체이싱"이란 게 있다.
거기 보면.. 그냥 심심하면 그냥 사람이 죽는다. 자기 아들이 죽은 댓가로 적대 세력의 누구를 또 죽이고, 소식 전하러 온 전령을 죽이고, 누굴 오인해서 죽이고 또 죽이고..
사사기의 저 후반부도 그런 느낌이었다. 이건 타 민족과의 전쟁· 항쟁 얘기가 전혀 아닌데도 뻑하면 그냥 마을을 통째로 지도에서 지워 버리는 학살이 끊이질 않는다.

앞의 신명기에서 율법을 묵상하고 골수에 새기라는 신신당부가 그렇게도 많이 나오는데 사사기의 저 장면에서는 그런 거 없다. 그냥 뒷일 생각 안 하고 임기응변 병맛 광기로 우르르.. 뻑하면 보복으로 사람 죽이고 악을 다른 악으로 찍어누르고, 부작용 생기면 또 다른 사고를 치고..

아브라함과 롯만 해도 외부 나그네 대접을 얼마나 융숭 극진하게 했는데 사사기 19장에서는 그런 거 없다. "여기 처음 오신 분 같은데.. 노숙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하지 마세요. 봉변 당하십니다"..;;
"저 남자를 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알리라(관계하리라)"
이게 수백 년 이상 전의 소돔 고모라가 아니라, 나름 율법을 받았다는 이스라엘 내부의 상황이었다.
그냥 다들 단체로 미치고 맛이 갔던 거 같다. 사사기 20~21장을 직접 읽어 보면 안다. =_=

애꿎은 여인을 싸패들이 집단 윤간해서 죽게 만든 거.. 정말 끔찍한 죄다. 그 범죄자들을 잡아 넘기지 않은 것도 명백히 그 지파 차원의 죄다. (베냐민)
그런데 그 여인도 이미 불륜 간음을 저지른 상태였다. 차라리 율법대로 돌에 맞아서 처형 당하는 게 나았을지, 아니면 저렇게 윤간 당해서 죽는 게 더 나았을지.. 그건 판단을 못 하겠다;;

하지만 그 여인의 남편 레위 인도 마냥 선의의 피해자이기만 한 건 아니었다. 범죄 사실을 주변에 신고할 때 자기가 떳떳하지 못한 것은 일체 함구하고 그냥 감성팔이 선동만 했다.
애초에 그 여인은 정식 부인이 아닌 첩이었다. 그 첩의 불륜을 관대하게 용납한 덕분에 장인에게서 정말 굽신굽신 융숭한 대접을 받을 정도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불량배들과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고 여인을 몸소 지킬 정도로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한 것도 아니었다.

진짜 사랑하던 아내가 죽었으면 저렇게 시체를 토막 내서 "이 범죄자 놈들 때려잡자" 시체장사를 절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레위 인이었으니 직업적으로 동물들을 잡고 각 뜨던 그 솜씨로 자기 첩의 시체도 처리했지 싶다.;;

이 본문을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 10여 년 전에 읽었을 때보다 느낌, 감흥이 훨씬 더 강하게 와 닿는 것 같다.
원래는 이래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맥락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7/11 08:35 2024/07/1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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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야에서 백성들의 고기 불평

민수기 11장 말이다.
고기 투정 자체야 인간적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이해가 된다. 제아무리 영양학적으로 완벽한 전투식량이 배급되었다 해도, 군대에서 1년 내내 C 레이숀만 마르고 닳도록 먹으면 그 누구라도 질리지 않겠는가? 하나님 역시 정상적인 정당한 간구에는 응당 응답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저 장면에서는 백성들이 말하는 싸가지가 심각하게 문제였다. 차라리 이집트 노예 시절이 더 나았다느니, 지금이라도 도로 이집트로 빠꾸하자느니 등등.
이건 철없는 애새끼가 부모한테 “나 왜 낳았어? 날 왜 이런 집구석에서 태어나게 한 거야?” 거의 이렇게 대든 거나 마찬가지이다.
(나 같으면 친자식이어도 저러면 귀싸대기를 날렸을 텐데.. 저런 상황에서 오 은영 같은 사람은 어떤 대처 매뉴얼을 갖고 있을지 궁금하다. -_-)

저 때 하나님의 대응은..
“오냐, 그렇다면 그놈의 고기는 니가 신물이 나도록 쳐먹여 주마. (나중에는) 어이구 준다고 또 진짜로 넙죽 쳐먹냐? (역병크리)”
정도 됐다. 범죄도시 2에서 “하이고 얄밉게도 쳐먹네” 부분을 떠올리면 되겠다. ㄲㄲㄲㄲㄲㄲ

쟤들이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거의 8, 90cm 높이로(2큐빗) 잔뜩 쌓인 메추리들을 보고는 기겁을 해서 “헉 설마 이렇게 될 줄이야.. 우리가 감히 이걸 먹어도 되겠습니까? 우리가 주께 죄를 지었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이런 립서비스라도 한 마디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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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문득 “아 불고기!!”가 떠오른다. ㄲㄲㄲㄲㄲㄲ

2. 호통판사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중에 하나님이 “이놈의 자슥들 다 홀로코스트 해 버리고 모세 너한테서 민족을 리셋하겠다” 이 정도로 빡쳐서 모세가 “오 노노 그러시면 안 됩니다. 이전 약속을 기억해 주십쇼 ㅠㅠㅠ” 데꿀멍 했던 때는 두 번이었다.
출애굽기 32장 금송아지 사건이랑 민수기 14장 가나안 정탐 사건.

금송아지는 “이집트로 돌아가자” 이런 드립은 없었고, 뭔가 영역이 다른 별개의 반역이었다.
그 반면, 가나안 정탐 사건은 그야말로 출애굽의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해 버린 반역이었다.
이건 그 벌로 사람만 좀 죽은 정도가 아니라, 광야의 뺑이 생활 자체가 40년으로 연장돼 버렸다. 당대의 성인들은 광야에서 몽땅 늙어 죽어 버리고 다음 세대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됐다.

백성들이 혼쭐이 난 뒤에야 뒤늦게 정신 차리고 “이제라도 가나안 땅으로 전쟁하러 들어가겠습니다!” 으쌰으쌰 거렸지만 이미 결정된 사항은 번복되지 않았다.
“안 돼. 안 바꿔 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 이게 성경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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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거절할 수 없는 제안

민수기 22~25장 발람과 발락 얘기는..
뭔가 대놓고 불평 반역은 아닌데 하나님이 정말 싫어하고 최고 혐오하시는 방향으로 잔머리가 잘 굴러갔던 양다리, 간보기 잔머리의 달인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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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할 수 없는 제안".. 이게 무슨 미국 마피아 영화에 나오는 대사인데
저건 성경 판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에피소드이다. 돈 돈 돈 돈~~ 사람도 기쁘게 하고 싶고 하나님으로부터 벌도 안 받고 싶고..
내가 이 본문을 배경으로 설교를 한다면 제목을 저렇게 정했을 것이다.
발람이 왜 신약에서 발람의 오류, 발람의 교리, 발람의 길이라고 두고두고 까이고 하나님이 이를 갈며 싫어하셨는지를 묵상할 수 있다.

한킹과 표킹만이 발람을 '발라암'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모음이 aa 장모음이어서 그런 듯.
근데 발람을 발라암이라고 표기할 거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이사악'이라고 표기해야 일관성이 있을 것 같다.
그건 희한하게도 우리말 성경 중에서는 천주교 공동번역만이 유일하게 '이사악'이라고 표기했다.

4. 신명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표현

  •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마라.
  • ... 이렇게 이렇게 해서(주로 해당 죄인을 돌로 쳐 죽여서) 이스라엘 땅에서 악을 제거할지니라.
  • 주야로 이 율법을 묵상하고 골수에 새겨라
  •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명기는 그야말로 거짓 선지자나 살인자, 심지어 부모 말 안 듣는 불효 패륜 망나니까지도 무자비하게 돌로 쳐 죽이라는 명령과 동시에..
응가 한 걸 땅에 고이 잘 파묻어라, 새신랑은 군대에 징집하지 마라, 이삭을 일부 떨어뜨려서 과부나 외국인이 주워갈 수 있게 해라.. 이런 배려 명령이 동시에 나오는.. 극과 극의 책이다.

5. 여호수아기는..

- 성경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무자비한 폭력을 허용하고--부녀자고 애들이고 싹 다 학살 몰살 멸절-- 이 땅에서 어딘가 진출하고 정복하는 걸 긍정적으로 묘사한 책이다.
- 지도 없이는 보기가 매우 어렵다. 특히 후반부.. 하긴, 민수기도 출애굽 경로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별도의 지도가 필요하긴 하다.
-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성공하리라. 우리로 말하건대 우리는 주를 섬기리라" 같은 여호수아기 특유의 문구를 볼 수 있다.

개독안티들이 성경에 대해서 단골로, 정말 마르고 닳도록 트집 잡고 욕하는 사항 중 하나가 뭐냐 하면, 저 가나안 민족 학살이 잔인하다느니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천부당만부당한 단견이다.
이건 하나님의 경륜 내지 척결 대상 민족의 끔찍한 노답 죄악이 동시에 맞물렸던 덕분에, 그 당시에만 예외적으로 내려졌던 조치이다.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걸 다 제대로 이행하지도 않아서 일부 이방 민족들과 조공이나 받으며 공존하게 됐고, 그게 그들에게 결국 화근이 됐다.
마치 우리나라가 6· 25 때 북괴를 완전히 몰아내지 못한 덕분에 결국 통일이 물 건너가고 영구 분단이 고착화된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그리고 "큰 능력에는 큰 책임이 따릅니다".. 이거는 정복 당사자인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똑같이 적용됐다. 쟤들도 하나님 잊어버리고 타락하고 죄 지었을 때는 가나안 백성들에게 적용됐던 그 심판의 잣대가 진짜 똑같이 적용됐다.
쟤들도 말기에 가서는 서로 자식을 잡아먹기, 임산부의 배 가르기 등 입에 담기조차 끔찍한 꼴을 당하면서 나라가 타 민족에게 멸망 당했다. 오히려 처음부터 하나님의 특별 관리를 받지 않았던 타 민족이라면 같은 죄를 지어도 이 정도까지 벌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쉽게 말해 하나님이 잔인한 게 아니라 죄의 결과가 이 정도로 끔찍 처참 참혹한 것이다.
다음 사사기는 얘기가 좀 길어진 관계로, 다음 글에서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ㄲㄲㄲㄲㄲ

※ 나머지

- 창세기 8장에서 노아가 방주 주변을 정찰하러 까마귀아 비둘기를 날려보낸 걸 보니.. 요즘으로 치면 드론이 떠오른다. 노아가 리모콘으로 카메라 달린 드론을 띄워 보낸다면.. 흐음~~ ㄲㄲㄲㄲㄲㄲㄲ

- 이집트 재앙 중 일부는 저그 디파일러와 정말 비슷한 느낌이 든다. 다크 스웜(파리 떼)이라든가 플레이그 역병, 물이 피로 변하기. =_=;;;
-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기적은 아무래도 원래는 살아 있던 사람이 병이 걸린 것을 고치거나, 죽어 버린 환자를 살리는 것 위주이다.
그 반면, 출애굽기의 기적은 생물과 아예 처음부터 무생물 사이의 경계를 오가는 것 위주이다. 지팡이가 뱀으로 바뀌었다거나, 티끌이 머릿니로 바뀌는 식.

- 구약의 '아간'과, 신약의 아나니야· 삽비라가 참 비슷해 보인다.
- 엘리야는 모세와도 비슷하고 침례인 요한과도 비슷한 심상이 있다. 승천했다는 점에서 에녹과 비슷하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 성경에는 밥/빵(민 14:9)도 나오고, 똥/배설물(빌 3:8)도 나온다.
- "그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신약에도 나오고(고후 12:9; 병 고침 간구 거절) 구약에도 나온다. (신 3:26; 가나안 땅 들어가려는 요청 거절)
- "신발을 벗으라"는 모세 버전도 있고(출 3:5) 여호수아 버전도 있다(수 5:15).

- 사무엘상 초반부를 보노라면, 그때 다곤 신전에 CCTV라도 좀 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곤 상이 자빠지고 박살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녹화되게 말이다.

- 교회가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는 교회의 정당성을 초자연적으로 입증하는 사도들의 표적이 있었다. 그것처럼 이스라엘에 처음으로 왕정이 시작됐을 때는.. 사울 왕의 정당성을 하나님 차원에서 입증하는 표적이 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울이 무슨 방언(?)이라도 터진 듯이 막 예언을 한다. 이런 장면들도 생각보다 사도행전을 닮아 있다.

- 성경에는 '아사헬'이라고 달리기를 잘해서 전쟁터에서 적을 추격은 엄청 잘했지만, 기습을 당해서 푹찍악 당한 군인이 있다. 뭔가 길 잃은 바이킹 게임에서 날쌘돌이 캐릭터가 생각난다.
삼하 2:14에서 무술인지 전투인지 모를 이 대련 장면은 고려 시대 수박 대회가 연상되기도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4/07/08 08:36 2024/07/0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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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와 타의의 경계 문제

고의가 아니라 몰라서 잘못한 것, 속아서 잘못한 것은 전적으로 무죄일까? 이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은 무엇일까?

1.
롬 4:15에 따르면 성경은 죄형법정주의를 지지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법을 어겼어도 정~~~~말 악의가 전혀 없이 순도 100%의 순진무구 무지 때문이었다면? 그 법이나 규칙에 대해 숙지할 기회가 단 1도 없었거나 법을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하나님이라도 그건 그 사람의 여건을 감안하신다. 무죄 또는 책임 면제로 인정해 주신다.

창세기 20장에서 이 여자가 유부녀인 줄 진짜 몰랐다고 항변했던 아비멜렉이 좋은 예이다. 이건 간음이 죄인 것 자체는 알되, 적용 대상을 몰랐던 경우이긴 하다만..
그리고 아예 선악 분별력 자체가 없는 아기도 이 범주에 들기 때문에 죄에 대한 책임이 부과되지 않는다.

허나.. 현실에서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이 정말 전적으로 무과실인 경우는..?? 안타깝지만 별로 없을 가능성이 높다.
자기도 진리에 관심이 없고 하나님의 진짜 성품에 관심이 없고..
반대로 이단들을 보니 뽀대 나고 내 육신적인 욕망을 채워 줄 수 있어 보이고.. 이런저런 이상하고 불순한 동기가 '결합'해서 자발적으로 더 이상한 데에 빠지는 것도 기여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무지가 100% 전적으로 무죄이고 오로지 선량한 피해자밖에 없는 거라면..
성경에 하나님이 강한 미혹을 보내신다, 파라오의 마음을 더욱 강퍅하게 만드신다~~ 거짓을 믿게 만든다.. 이런 말이 쓰여 있어서는 안 된다. 아니, 에덴 동산 시절에서부터 하나님이 뱀 따위 이브에게 얼씬도 못 하게 봉쇄를 했어야 했다.

모든 마약 중독자가 100% 오로지 강제로 납치 당해서 주사기를 강제로 꽂혀서 생겨난 거라면 그 사람들은 그냥 치료만 받으면 되는 피해자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약 사범은 환자이면서 한편으로 범죄자이지, 마냥 심신미약 우대를 받는 게 절대 아니다.
이런 불편하고 안타까운 진실은 "언뜻 보기에 착하고 불쌍해 보이기까지는 하는 사람이 왜 지옥에 가느냐~~?" "성경에 왜 미혹을 보낸다는 구절이 있느냐?"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현실에서 이단에 빠져서 돈· 시간을 잔뜩 날린 사람들을 우리가 마치 욥의 친구마냥 판단하고 정죄하고 2차 가해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죄가 아니라는 말은 우리 인간이 아니라 종합적인 판단자인 하나님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니 말이다.

2.
성경의 열왕기상 13장에는 "속은 건 변명이 되지 않는다"라는 교훈이 담긴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실려 있다.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 북왕국은 왕이 대놓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우면서 우상 숭배와 타락으로 폭주하고 있었다. 이때 남쪽 유다 왕국에서 무명의 젊은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가 일어나서 북왕국 왕을 용감하게 책망하고, 이적과 표적을 행했다.
그는 임무 수행 과정에서 누구로부터 그 어떤 향응이나 접대를 받지 말고, 먹지도 마시지도 말며, 임무 완수 후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딴 길로 신속히 귀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런데 이 소문을 들은 북왕국의 어느 늙은 선지자는 이 사람이 너무 반갑고 부럽기도 해서 꼭 만나보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임무를 마치고 귀환 중이던 저 선지자를 찾아가서는 선의의 거짓말까지 해서 접대와 교제를 베풀었다. "아~ 나도 선지자입니다. 같은 업계 종사자~ 내가 꿈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니까요? 당신 만나서 접대하라고?"

처음에는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단호하게 FM대로만 행동하던 그 사람은 "나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니까요?" 이 한 마디에 최소한의 확인 기도도 없이 낚여 버렸다. (어 하나님, 왜 완전히 상반된 지시를 다른 사람에게 또 내리셨습니까? 저 사람 말은 사실입니까?)
사실, 일체의 사람과 마주치지 말고 현장에서 최대한 빨리 이탈하고 무슨 저격수마냥 바람처럼 사라졌어야 했는데.. 완전히 귀환하고 나서 실컷 먹고 마셔도 됐는데 현장 근처에서 퍼질러 앉아 쉰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그는 얼마 못 가 하나님이 보낸 사자(lion! messenger 아님)의 공격을 받아서 죽었다. 사자는 그 사람을 목을 물어서 딱 죽이기만 했지, 그 이상 시체에는 전혀 손대지 않았으며 잡아먹지도 않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심지어 고인이 타고 가던 자동차.. 아니-_- 나귀도 건드리지 않았다. 이건 평범한 배고픈 야생 사자의 사냥이 아니었다.

하나님 말씀을 사칭하여 속인 늙은 선지자가 죽은 게 아니라, 속은 사람이 죽었다.
그렇다고 해서 늙은 선지자도 잘못이 없는 건 절대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예레미야서 28장에서는 버젓이 주, 여호와의 이름을 팔아서 거짓 예언을 주작해서 선포하던 '하나냐'라는 사람이 두 달 만에 벌 받아서 밥숟가락 놓았으니 말이다.

뭐, 열왕기상에는.. "나 좀 때려 봐" 이 부탁을 안 들었다고, 그 벌로 사자에게 물려 죽은 사람도 나온다(왕상 20:36). 다만, 이건 평범한 사적인 부탁이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행해진 명령을 거절한 것이고, 하나님 말씀을 거역한 것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엘리사를 조롱하던 초글링들 수십 명이 곰의 공격을 받아서 학살당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3.
성경 다음으로 세상 얘기..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97년에 화성시의 어느 해안 초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파릇파릇한 소위 소초장이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이상한 사람한테 감쪽같이 속았다. 그 사람이 자기 부대의 상관인 줄 알고 K2 소총을 실탄 수십 발과 함께 넘겨줘 버렸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보이스피싱 범죄를 능가하는 막장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사람은 국군 군복 차림에다, 그 당시 디자인이 바뀐 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새 계급장을 달고 있었고(소령!!), 이 부대의 행보관이 누군지도 알았다.
그 사람은 그렇게 총을 들고 나가서는 지금까지 영원히 증발 상태이다. 현재로서는 그놈은 아마 북괴 간첩이었을 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상급 부대에서 누구를 불쑥 보내서 부대를 시찰시킬 거면 언제쯤이라고 언질을 미리 준다. 불시에 들이닥쳐서 부대 기강을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히 밤에는.. 보안뿐만 아니라 아군 팀킬을 막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정보는 줘야 한다.
더구나 저런 신분의 지휘관이 운전병이나 부관 하나 없이 단독으로 총 들고, 군용차도 아닌 민간 승용차를 타고 돌아다닌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상급 부대에서 이 사람을 보낸 게 진짜 맞는지 좀 의심해서 확인 전화 한 통이라도 넣어 봤으면.. 병이나 부사관 중에 누구라도 소초장한테 그렇게 건의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결국 뒤늦게야 부대가 다 뒤집혔고 난리가 났지만 저 사람과 총은 못 찾았다. 겨우 탄피 하나 잃어버린 정도가 아니라, 총과 실탄 탄창이 통째로 사라졌으니..

소초장은 너무 큰 사고를 친 관계로 구속되고 군사재판에 회부됐다. 그래도 대법원까지 간 형사 재판에서는 최종 무죄가 나왔다. 피고가 고의나 과실이 아니라 정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항적으로 속을 수밖에 없는 것에 속아서 총을 넘겨 준 거라는 정황이 참작됐기 때문이다. (과연?)
하지만 그 사람은 장기 복무는 물 건너갔지 싶다. 임관을 어느 코스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이다.
아무쪼록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세상에서 있었던 사건이 나란히 오버랩된다.
세상 법은 갈수록 피의자에게 유리해지고 옛날처럼 엄하게 집행하지 않고, 결과가 아니라 의도와 과정을 많이 참작하고 잔혹한 형벌도 안 내리는 추세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받을 판정과 책임이 없어지는 건 아닐 것이다.

* 여담

(1) 예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난 위조· 가짜 신분증에 속아서 미성년자한테 술을 판매한 가게를 처벌하려거든 그 미성년자부터 더 강하게 처벌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음주운전 교통사고가 나면 그 운전자의 동승자 내지 마지막으로 술을 판매한 식당· 가게도 반드시 책임을 물었으면 좋겠다. 귀가할 때 누가 운전하는지를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은 죄 말이다.

(2) 30여 년 전, 지존파에게 붙잡혔던 어떤 여성 피해자는 걔네들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소기업 사장 부부의 살해에 가담 당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걸로 살인 공범 기소는 당연히 되지 않았다.
허나, 포로 학대나 민간인 학살 같은 끔찍한 전쟁 범죄를 저질렀던 군인들이 기소돼서는 "난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이렇게 변명하는 건 무조건 타의 100%라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정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어쩔 수 없이 까라면 깠던 것인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6/16 19:35 2024/06/1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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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법자와 범죄자

“우리는 무법자(outlaw)이지 범죄자(criminal)가 아니다.”라고 자기는 아예 법 따위에 매이지 않는다는 걸 ㅂㅅ 같지만 멋있게(?) 표현한 말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일반적으로 법이란 게 없이는 통제가 안 되고 사회를 유지할 수 없는 존재이다. 로마서 13장에 나오는 “위의 권위에 복종하라”는 단순히 악법도 법이니 닥치고 '까라면 까'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성경적으로 대놓고 잘못된 법은 어기더라도 그 법을 집행하는 권위를 일단 인정하고 처벌이라도 감내하라는 얘기이다.

그 어떤 악한, 심지어 북괴 같은 막장 국가라고 해도 법이 대놓고 "이 세상은 어차피 약육강식이다. 마음껏 도둑질하고 약탈해도 좋다, 길거리에서 아무 여자나 마음껏 강간해라" 이렇게 돼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윗대가리 통치자 내지 그 주변 가족, 친지가 빽 믿고 내로남불로 저런 짓을 교묘하게 저지를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건 우리가 신경 쓸 필요 없는 사항이다.

법이라는 게 상당수가 (1) 정당한 위법(사형 집행, 전쟁터에서 적군 죽이기, 정당방위), (2) 정당하지 않지만 고의성도 없는 위법(과실치사), (3) 고의적인 악행(살인), 거기에다 추가로 (4) 스스로 옳다고 믿고 고의로 악행(신념형..).. 이런 걸 변별하는 시스템인 것 같다.

2. 연계 범죄

한번 죄를 짓고 나면 그걸 은폐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혹은 그걸로 궁극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서 다른 죄도 덩달아 왕창 짓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위조지폐를 만드는 애들은 그걸로 물건을 직접 사서 이득을 보는 게 아니다. 즉, 5만 원짜리 위폐로 5만 원짜리 물건을 사지 않는다!!
보통은 500원짜리 껌을 5만 원짜리 위폐로 결제하고, 거스름돈 49500원을 챙겨서 이득을 본다. 아니면 택시를 불러서 기본요금 거리만 가고는 비슷한 수법을 구사하거나.

이 짓은 통화위조죄에다가 사기죄까지 추가시킨다. 위폐를 받은 사람이 당하는 손해는 비슷하거나 동일하지만, 피의자의 죄질은 후자가 더 나쁘게 평가된다.
그것처럼.. 사람을 죽이면 살인죄인데, 살인은 보통 그걸로 그대로 끝나지 않는다. 증거를 인멸하려고 시체를 어디 숨긴다거나 심지어 토막낸다거나 훼손하면.. 이것도 전부 다 별개의 죄로 추가된다.
사람 죽이고 나서 그 상태 그대로 자수하거나 체포돼야만 살인죄 하나에만 걸린다. 법이 그렇게 돼 있다.;;

3. 화폐 위조와 화폐 훼손

위조지폐의 경우, 저렇게 통화위조나 사기죄뿐만 아니라 저작권법 위반으로도 형량을 늘릴 수 있다. 한국 은행이 지폐 도안 디자인에다가 칼같은 저작권을 걸어 놨기 때문이다. 으음~~ 영화· 음반이나 폰트뿐만 아니라 현금 비주얼도 문화 컨텐츠인 건가 싶다.

그런데 고액권 지폐 말고 동전은 원가 비용 대비 액면가가 워낙 낮아졌기 때문에 처지가 반대가 됐다. 10원짜리는 아예 녹여 버려서 금속값을 챙기는 게 남는 장사가 됐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저런 짓을 하다가 최초로 적발된 사람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동전을 녹여서 파는 행위를 죄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법이란 게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는 그걸 그냥 '폐기물관리법 위반' 명목으로 아주 가벼운 꿀밤 수준의 처벌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화폐 훼손을 금지하는 법은 내 기억으로 2011년쯤에야 새로 제정됐다.

4. 지능 범죄

법이라는 걸 잘 살펴보면 어떤 죄는 가족끼리 저질렀다거나, 합의가 잘 됐다거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형벌을 감경한다(반의사불벌죄).
그러나 어떤 죄는 가족끼리 저질러졌으면 오히려 가중 처벌한다. 그리고 단순히 형벌만 센 게 아니라 색출 자체를 다른 죄보다 더 악랄하게 하는 게 있다.

가령, 예비 음모 미수까지 몽땅 처벌한다거나, 정황· 의도를 거의 고려하지 않고 그냥 걸리면 그 결과만으로 무조건 처벌한다거나, 수사기관 측에서 함정 미끼까지 던지는 것 말이다. 마약이나 대규모 위조지폐, 산업스파이 같은 지능범죄에 대한 수사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편이다. 냉정하게 보자면 "무죄 추정의 원칙"이 좀 무시된다.
옛날에는 이와 관련하여 중한 죄에 대해서는 불고지죄(알고도 신고하지 않은 죄)나 연좌제(죄인의 가족· 친지까지) 같은 것까지 있었다. 고문은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그건 너무 미개하고 잔혹하다고 여겨져서 없어지는 추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기회 제공'까지는 지능범죄를 적발하기 위한 정당한 수사 기법으로 쓰인다. 그러나 대놓고 범죄 저지르라고 꼬드기는 '범의 유발'은 인정하지 않는다.
성경적으로는 볼 때 하나님이 인간을 시험하는 범위도 딱 거기까지이다. 이미 마음을 악하게 먹은 사람에게 더 기회를 주고 결과적으로 더 강퍅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아예 대놓고 무조건 죄 지으라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씹으면서 로봇 조종하듯이 조작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시피 우리나라 사법은 경찰이 형사 피의자를 잡은 뒤에 검찰이 넘겨받아서 기소하는 형태이다. 그런데 경찰만으로 물리력이 부족한 지경이 되면 군대가 투입되게 되고, 경찰만으로 수사력 정보력이 부족해지면 그 건은 국정원 같은 첩보기관..;;까지 나서서 공조하게 된다. 그런 관계이다.

5. 생명 윤리

우리나라는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인 안락사까지만 인정하며, 그 이상으로 더 선 넘는 적극적인 안락사는 인정하지 않는다. 이건 어지간한 노인들로 하여금 "나 같은 건 어서 나가 죽어 줘야 자식들이 편안해하겠지" 이런 무언의 압박 분위기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민감한 문제이다.

그런데.. 이런 극심한 저출산 시국에 앞으로 젊은 세대들이 그 많은 노인들을 도저히 부양할 수 없고, 자식 없는 홀애비 홀애미가 넘쳐나고, 복지 비용을 감당 못 해서 나라 살림이 파탄나는 지경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들이 옛날처럼 고려장을 대놓고 벌일 수는 없으니 방법은 하나.. "존엄하고 품위 있게 죽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 운운하면서 소극적인 안락사는 적극 장려하고 권장하게 되지 싶다. 지금 노인들에게 운전 면허 반납을 장려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뜻이다.

그 밖에 우리나라는 산모의 생명이 위험해진다거나, 강간으로 인한 임신, 태아에게 극악한 유전병· 장애가 있는 경우 등 아주 소수의 극단적인 상황에 한해서만 낙태를 허용한다. (모자보건법) 그런데 내가 알기로 지금은 낙태죄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에 저 조항 자체가 별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혼이나 파양도 각종 사기 결혼· 입양으로부터 선의의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수준으로만 규정돼 있다. 세상법이 성경 율법보다는 세부 디테일이 더 규정돼 있어야 하니까.. 가령, 중범죄 전과를 사전에 알리지 않은 것도 이혼 사유이다.

6. 나머지

(1) 공문서 위조, 통화 위조 같은 죄는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나라 자국 것만으로 한정이다. 딴 외국의 공문서는 한국 법의 관점에서는 다 사문서일 뿐이다. 이건 마치 다변수 함수에서 x로 편미분을 하면 y z 다른 변수들은 다 그냥 상수 취급일 뿐인 것과 비슷한 패턴인 것 같다. ㄲㄲㄲㄲㄲ

(2) 예전에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은 집합에서 조건제시법과 원소나열법의 차이와 같다고 얘기했던 바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정'도 개념적으로는 일반사면과 비슷하다. 조건제시이지, 원소나열이 아니다. 구원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로 예정됐다는 차원일 뿐, "특정 누구누구는 구원받기로 예정됐다, 지옥 자식 마귀 자식으로 처음부터 예정됐다"라고 생각해서는 심히 곤란하다. 하나님의 예정은 read-only operation이다.

(3) 우리나라는 사형 제도가 사문화돼 버렸고, 휴전도 사문화됐다. 통일 지향...?? 이건 헌법 차원에서 규정하는 이념이다만 이것도 이제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사문이 된 것 같다.
하다못해 이북 북괴조차 "남조선 괴뢰"라는 멸칭을 안 쓰고 우리나라를 무려 "대한민국"이라고 불러 주는 게.. 단순히 울나라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그냥 남남으로 생까려는 의도가 더 크니까 말이다. 욕쟁이 할머니가 정감(?) 있게 "이거나 쳐먹어 이 썩을놈아!" 이러다가 갑자기 정색을 하고 "고객님, 왜 이러십니까" 하는 걸 생각해 보시라. ㄲㄲㄲㄲㄲ

※ 행정부와 사법부의 관계

  • 법무부(法務部)는 사법부(司法府)가 아닌 행정부(行政府) 관할이다. 부의 한자도 다른 것에서 알 수 있듯, 府는 部보다 더 큰 집합이다.
  • 어느 범죄자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판결을 내리는 건 사법부의 판사이지만, 그걸 실제로 집행하라고 법무부장관에게 명령을 내리는 건..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다.
  • 비슷한 맥락에서, 범죄자들에게 징역을 때리는 건 사법부의 판사이다. 그러나 도중에 가석방이나 사면을 내리는 곳은 행정부 계층이다.

성경을 보면, 율법 같은 성문법이나 말씀 계시가 완성되지 않았던 옛날에는 하나님의 직접 개입이 잦았다. 이방인의 꿈에 나타나서 불륜· 간음을 저지하기도 하셨고(창세기의 아비멜렉), 민수기 같은 책을 보면 "이럴 땐 어떡할까요?" / "그럴 땐 이렇게 해라. 이걸 관례로 정착시켜라" 이런 패턴이 종종 나온다.

그것처럼.. 오늘날도 어떤 규칙이나 절차가 법으로 정식 제정되기 전엔 행정부 차원에서 긴급조치나 긴급명령이 먼저 발동된다. 그게 국회를 통해 정식 입법되고 나면 기존 명령은 폐지된다.
예를 들어 그 유명한 금융실명제만 해도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1993)"이던 것이 훗날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1997)"이라고 바뀌었다.

말이 나왔으니 사회 제도 중에서 '긴급'이 들어가는 것들을 더 살펴보면 이렇다.

  • 긴급자동차: 출동 중인 구급차나 소방차, 용의자를 쫓고 있는 경찰차가 대표적이다. 각종 교통법규 위반이 어느 선까지는 허용되며, 딴 차들로부터 양보도 보장받는다.
  • 긴급통화: 112 119 신고는 공중전화에서 돈 안 넣고도 할 수 있고, 개통되지 않은 휴대폰으로도 할 수 있다.
    119 신고는 우리 쪽에서 전화를 끊어도 통화가 끊기지 않는다;; 112 신고는 문자로도 넣을 수 있고, 급박한 상황에서 "짜장면 좀 배달해 주세요"라고 암호· 은어를 써도 신고로 접수될 정도로 민감하다. 그 말인즉슨, 긴급통화로 인정되는 이런 번호로는 장난전화를 더욱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 긴급피난: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에서 도저히 어쩔 수 없어서 남을 해친 것.. 아 이건 정당방위에 더 가깝고, 긴급피난은 남이 자기를 해치지 않았는데도 내가 먼저 사고를 친 것에 해당된다. 차량 급발진 때문에 남의 집 답벼락을 부쉈거나, 슈퍼 급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거나.. 어쨌든 둘 다 위법행위의 조각사유로 인정된다.
  • 긴급체포: 이건 경찰이 아닌 일반인이 구사할 일은 없는 용어이다만.. 암튼 중대한 범죄 현행범이나 용의자를 발견해서 무조건 당장 잡아야 할 때 '선체포 후영장' 차원에서 허용되고 시전된다.

※ 군대 식으로 법 적용하기

휴버대 같은 야쿠자 미화물을 보니 야쿠자(+ 그에 준하는 조폭들도 마찬가지)들은 체면에 살고 체면에 죽는 집단이라고 그런다.
현실의 군대는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집단이다. 그래서..

(1) 병사들이 밥 먹는 것은 단순히 공짜인 정도를 넘어, 전투력 유지를 위한 급양 명령의 수행이다. 즉, 이건 의무이니 정당한 사유 없는 무단결식은 징계감이다.
군대는 병사에게 그 어떤 벌이나 불이익을 주더라도 밥을 굶기는 건 절대 없다. 휴가를 짜를지언정 영내에서 식사를 짜르지는 않는다! 밥 굶기는 건 아동학대 같은 데서나 존재한다.

(2) 사관학교에는 자퇴가 없다. 다니다가 못 견뎌서 때려치우고 나오는 것도 먼저 요청을 한 뒤에 '퇴교 명령'을 받아서 나갈 뿐이다. 퇴교가 군대에서 그 생도에게 내리는 마지막 명령인 셈이다.
이렇게 나간 사람은 앞으로 장교는 그 어떤 임관 코스로도 영원히 다시 될 수 없다. 미필 퇴교자는 병이나 부사관으로 군생활을 다시 시작한다.

(3) 1년 6개월 이상의 금고· 징역 실형을 선고받은 심각한 범죄자는 군대에서도 안 받아 주고 전시근로역으로 처분시킨다.
그러나 그 죄목 자체가 병역기피(병역법 제86조) 쪽이라면 저런 열외에 해당되지 않는다! 빵 살고 나와서는 여전히 신검 다시 받아야 한다. 울나라 법이 그 정도로 허술한 바보는 아니다.

전과자가 돼서라도 군대를 안 가고 싶거들랑 병역기피가 아니라 다른 흉악범죄(?)를 확실하게 저지르거나 배째라 병역거부를(86조가 아닌 제88조) 시전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이야 3년짜리 대체복무 제도가 생겼으니 이것 때문에 전과자 될 일은 많이 없어졌다.

(4) 일단 입영은 했지만 그 뒤에 실종된 탈영병들한테는 말이다. 다들 잘 알다시피 나라에서 3년인가 간격으로 3군 참모총장 명의로 어서 자수하고 복귀하라는 명령을 꾸준히 내린다. 그래서 탈영죄의 공소시효(10년)가 끝나더라도 다음엔 명령 불복종죄를 물을 수 있다. 그걸 빌미로 장기 탈영병을 40대 후반의 아재가 될 때까지 군법 위반 범죄자로 만들고, 합법적으로 계~~~속 뒤끝 부리며 압박할 수 있다.;;;

법조인들 중에는 공소시효를 꼼수로 회피하면서 사람을 저렇게 들볶는 게 법리상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 허나,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병사들의 낮은 임금도 현행 근로기준법과 맞지 않고(지금은 굉장히 많이 오르긴 했지만), 군인은 민간인과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징병제 국가에서 특례가 적용돼야 한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아~ 그래서 결혼 선호 우선순위 2등이 군인이라는 개드립도 있는 거구나. 1등은 당연히 민간인 ㄲㄲㄲㄲㄲ
이륜차에 대한 취급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애매한 면모가 많은 것처럼, 군인이 받는 법적 취급도 그런 구석이 있는 것 같다.

(5) 전에 한번 했던 말일 텐데.. 나는 마 11:11 "하늘의 왕국에서 가장 작은 자라도 그 위대하다는 침례자 요한보다도 더 큰 자다"라는 구절을.. 이렇게 풀이한다.
율법 대신에 군법을 대입해서 말이다. 전자의 요한은 그야말로 광나는 전투화에 A급 전투복 입은 S급 울트라 모범병사요, 모든 간부들이 탐내면서 제발 군대에서 말뚝 박기만을 바라는 인재이다. 허나, 후자의 쬐끄레기는 그냥 전역한 민간인.. 즉, 이건 신분의 차이를 나타낸다.

민간인이라도 군인처럼 일찍 일어나고 규칙적으로 각 잡고 살고 치약으로 깔끔하게 살면 좋다.
그러나 민간인한테 저렇게 살지 않으면 잡혀가서 '군사재판'에 회부된다고 야바위를 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24/06/06 08:35 2024/06/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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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신앙관, 세계관

1. 희망과 절망

마귀가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 너는 충분히 선하고 의롭기 때문에 굳이 예수 믿을 필요 없고 구원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근자감을 불어넣거나 (희망)
  • 반대로 너는 너무 악한 인간쓰레기이기 때문에 그 어떤 방법으로도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까스라이팅을 한다. (절망)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바는 이와 다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비참한 죄인이란 것까지만 절망이고, 그 뒤에 예수님 보혈 의지해서 그 어떤 죄인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복음이 희망이다!

예수님이 선한 도덕 선생이라느니 훌륭한 사상가, 언행의 모범 본보기 등등등.. 이런 건 구원받은 사람에게나 필요한 면모이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예수님이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구원자부터 돼야 한다. 무조건 반드시~

2. 정당한 불가지론과 나쁜 불가지론

(1) 예수 믿는 신앙생활의 관점에서 이런 건 정말 알 수 없는 불가지론이고 불확실한 게 맞다.

  • 예수님은 언제 다시 재림할까? 휴거는 언제쯤 일어날까?
  • 난 과연 살아서 주님 다시 볼까? 난 언제 죽게 될까?
  •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까?
  • 지금 갑자기 무슨 병에 걸렸거나 사고를 당했거나, 앞날 창창한 사랑하는 가족 친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거.. 여기에 도대체 무슨 주님 뜻이 있을까?

애초에 증명돼 있지 않는 걸 지지하는 것이니 그걸 '믿음'이라고 하는 거다.
기독교가 뻘짓 동원해서 미래 앞날 일을 예측하려 하는 수작을 왜 그렇게도 금지하고 부정적으로 보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시라. (점, 운세.. 단순히 수학 과학 방법론으로 예측하고 대비하는 거 말고)

(2) 그러나 이런 건 불가지론의 영역이 전혀 절대 결단코 아니다.

  • 신이란 게 존재하기는 하는가?
  • 나 구원받은 거 맞나? 지금 죽어도 당장 하늘나라 가는 거 확실하나?
  • 이 정도면 대환란 겪지 않고 바로 휴거될 수 있을까?
  • 지금 우리에게 자필원본과 동급으로 온전히 보존된 성경 말씀이 존재하는가? 신의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가?
이걸 확신하고 굳게 믿는 건 무슨 교만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안 믿는 게 잘못된 불신이다!

(2)에서 말하는 성경, 구원이 확실하게 보장돼 있기 때문에 (1)에 대해서도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거다. (2)의 확실함이 (1)의 불확실함에 대한 원동력이다!! 그래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라고 노래를 부를 수가 있다.
구원 하나 제대로 못 받아서 "글쎄, 죽어 봐야 알겠지"인 주제에 (1)을 버티라고? 내가 보기엔 그건 그냥 종교적인 기만이고 야바위질이다. 열정페이처럼 신앙페이 착취이다.

내가 비록 지식 면에서 신학교 졸업생 급으로 히브리어 헬라어를 통달했거나 성경 지리, 고고학 등을 다 줄줄 꿰는 게 아니고, 영성 면에서 맨날 길거리에서 복음 전하고 말 끝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찬송시를 쓰는 것도 아닌 일개 쪼랩 예수쟁이긴 하다.
그러나.. 그래도 성경 전반에 담긴 법리, 집필 관점이라든가 신앙생활 원리 쪽은 오랫동안 고민하고 연구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쪽 변증은 나름 강하다고 자신한다.

3. YOLO

YOLO라고.. You Only Live Once.. 한 번뿐인 인생인데 후회 없이 니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즐기며 짧고 굵게 자유롭게 살아~!! 이런 말이 있다.
이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긍정적인 메시지가 될 수도 있고, 무슨 히피 같은 허랑방탕을 조장하는 불건전한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

글쎄, 성경은 히 9:27을 보아하니 live once보다는 die once를 더 강조하는 것 같다. YODO인 건가. ㄲㄲㄲㄲㄲ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환생이나 윤회(∞), 소멸(0)하지는 않는다는 맥락에서 die once인 거다(1). 자유롭게 사는 건 좋지만 죄 문제는 꼭 해결해야 한다.

수 년 전엔 구내염약 알보칠에서 You only Pain once라는 약 빤 CF를 내보낸 적이 있었다. YOPO ㄷㄷㄷㄷ
요들쏭 부르듯이 요뽀요뽀 이러면서 진짜 강렬하고 병맛 넘쳤다.
알보칠 바를 때 겁나게 아프다는 거는 부인하지 않는다. ㅋㅋㅋㅋ "그래도 아픈 건 잠깐일 뿐이야~~~ 고통을 짧고 굵게 끝내고 구내염이 빨랑 낫는 게 중요하지?"

그런 논리로 롬 8:18이나 베드로전서 내용을 담으면 You only Suffer once 요쏘~~~도 가능할 것 같다. ㄲㄲㄲㄲㄲ
그리고 머신러닝 업계에서는 이미지에서 각종 사람이나 사물을 인식해서 추출하는 인공신경망 중에 YOLO...;;;라는 이름이 붙은 물건이 출시되기도 했다. 여기서는 You only Look once이다.

4. 세계관

예수 믿고 교회 댕기기는 하는데 신앙 수준이 너무 단편적인 사람이나 교회 말이다.
그들은 예수 믿는 기독교 국가들이 잘 살고 부강하고 세계를 석권했다는 식으로 얘기를 한다.

이런 사람들이 꼭~~ 어디 자연재해 참사가 터진 곳은 우상숭배 해서 심판 받고 벌받은 거라고 경솔하게 발언해서 어그로를 끌곤 한다.
그리고 일본은 어떻고? 기독교 배경 전혀 없지만 그냥 자기들이 노력하고 근대화 잘해서 잘 살고 노벨 상 수상자도 저렇게 많이 배출했을 뿐이다.

이렇게 수준 낮고 허점투성이에 털릴 게 많은 발언은 좀 그만 해라.
예수쟁이라면 기독교 배경· 성경적 세계관이 있는 나라들이 뭐가 진짜로 더 선진적이고 더 좋은지를 제대로 고찰해야 한다.

  • 사농공상 ㅆ선비 꼰대질 짓거리가 없이(최소한 동양 유교 문화권보다는 덜한..) 노동 근로가 존중받는 거,
  • 위선 체면 떨고는 뒤에서 추잡한 짓 하는 게 아니라, 돈이나 성에 대해서 차라리 면전에서 처음부터 더 솔직한 거,
  • 거짓말, 위증, 기본적인 비윤리 부정행위를 훨씬 더 금기시하고 엄하게 처벌하는 거
  • 사심 없이 인심이 후하고 기부, 기증, 입양이 많은 거
  • 잘못을 인정하면 개 호구 바보 되는 게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걸 믿고 인정하는 거 (이거..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개의 기본 근간 전제조건이다)
  • 반대로 쓸데없이 가오 내세우면서 "죽어서 속죄"를 남발하지 않고, 차라리 살아 돌아와서 사죄하고 평생 책임지는 걸 더 높게 치는 거,
개인 구원과 관계없이, 나라의 단순 군사력 경제력과 무관하게 이런 의식 수준의 차이를 더 진지하게 고찰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러면 교통사고가 하나 나더라도 그때 가해자 피해자의 처신이 달라지고 사회의 치안 비용, 복지 비용에서 차이가 날 거다. 이건 단순히 문화적 상대성 차원이 아니다.

난 일본이 물질과 과학기술 면에서는 서양을 따라했지만 바로 저런 면모에서 진짜 서양보다 크게 뒤쳐졌기 때문에 국민들이 죽어나가고 개고생했으며, 태평양 전쟁 때 저렇게까지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서양 유럽이 언제부터 학문과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동양을 앞질렀는지를 묻는다면 예수쟁이들은 종교개혁을 떠올리지만, 일반 세상에서는 그냥 계몽주의나 르네상스 같은 걸 떠올린다. 이것도 생각할 점이다.

5. 참가만으로도 대단하긴 하지만, 일부러 참가에만 안주하지는 말아야 함

“올림픽은 승리가 아니라 참가에 의미가 있다” 이런 말이 있다.
아 물론 무슨 취지로 하는 말인지는 이해가 된다.
뭔가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시하고, 무언가에 일관되고 꾸준한 것을 좋게 보고, 학교에서 개근상을 다른 어지간한 성적 우수 만만찮게 좋게 보던 사고방식 말이다. 이건 절대로 잘못된 생각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저 말에만 안주해서는 안 된다. 특히 저 말이 불성실과 나태를 합리화하는 말로 악용되지 말아야 한다.
기왕 싸움을 시작했으면 이길 생각을 해야 하고, 기왕 경쟁 내지 경기를 시작했으면 우승할 생각을 해야 한다.

물론 지금 울나라가 쌍팔년도 시절처럼 엘리트 체육에 목숨 걸면서 선수 한두 명이 메달 딴 거 갖고 국위를 선양하네 열등감을 극복하네 마네 연연하는 지경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사비도 아니고 세금으로 육성된 국대 선수라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물도 나오기는 해야 한다.
오죽했으면.. 올림픽이 아니라 월드컵이긴 하다만, “월드컵은 뭘 배우는 게 아니라 이미 배운 걸 입증해 보이는 자리입니다.” 이런 말도 있었다. (이 영표 해설자가 2014년 월드컵의 졸전 때 빡쳐서.. -_-)

신앙 생활에서도 같은 적용을 할 수 있다. 당연히.. 예수 믿은 사람은 지옥 형벌에서 구원받고 천당이 보장됐으니 신분이 넘사벽으로 달라졌다. 영적 전투 아레나에 참가 선수로 등록된 것만으로도 올림픽 국대 선발 이상으로 얼마나 감지덕지인가?

하지만 0에서 무려 1을 만들었으면 1을 10, 100으로 불릴 생각도 해야 된다. 구원을 받았으면 그 다음에는 자기의 구원자 예수님으로부터 이쁨 받고 상 받을 생각을 해야지.
“저는 그런 상 같은 것엔 연연하지 않아요. 그냥 예수님만 있으면 돼요”는... 미안하지만 무소유 겸손이 절대로 아니다! 그건 매우 높은 확률로 또 다른 무지와 불신이다. 어쩌면 교만까지 추가돼 있고.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 해라. 세상 셀럽들이 누리는 부귀영화라든가(서울 강남 아파트나 고급 외제차나 명품빽, 최신 스마트폰=_=), 노벨 상, 필즈 상, 무궁화 대훈장, 금은동탑 산업훈장, 태극 무공훈장, 연예계의 무슨 아카데미 상에 비해..
성경에 약속된 여러 왕관(면류관)들은 실감이 안 가거나 믿기지 않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거다. 최악의 경우는 아예 그런 게 있다는 것도 모르거나.

그리고 예수님께 이쁨 받고 나중에 상 받는 방법은 세상의 각종 분야별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하고는 접근 방식이 좀 다르다. 애초에 자기 육신의 능력을 보이는 게 아니니까.. 저 바닥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과정 지향 사고방식과 결과 지향 사고방식이 모순되지 않는다. 이런 보상은 아무리 욕심 내도 당신의 영적 건강에 전혀 해롭지 않다!

세상에서 기계를 만들 때 전력 소모 줄이고 공기 저항 줄이려고 최적화에 목숨 건다. 운동 선수들도 체중이나 복장을 얼마나 미치도록 튜닝을 하는데?
본질적인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하지 않은 쓸데없는 dead weight 낭비 요소들을 털어내는 것이 신앙생활에도 필요하다. 이것이 히 12:1이 말하는 바이다.

다시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당연히 주님 주시는 보상을 "바라고," 어쩌면 적극적으로 추구도 해야 한다. 그래야 부당한 손해나 핍박도 감수하고 세상 추세를 역행하는 삶을 살 원동력이 생기고 '동기부여'가 된다.
신앙생활에서 신자와 하나님이 서로 주고 받는 딜이 뭔지, 신자의 십자가가 뭔지를 잘 모르니까 보상도 바랄 필요 없다느니, 대환란을 자기가 겪으면서 연단되겠다느니 하는 당치도 않은 헛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아니면 하나님을 무슨 신앙페이 열정페이 착취하는 엄한 금욕주의 갑질 업주로만 알거나 말이다(게으르고 악한 종).

Posted by 사무엘

2024/05/31 08:35 2024/05/3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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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이야기

1. 평가

국왕이건 대통령이건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군주? 국가원수는 재임 중에 그야말로 엄청난 부귀영화에다 최고의 복리후생 서비스를 공짜로 받으면서 최고 권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그 사람도 죽거나 퇴임한 뒤에는 엄연히 당대 사람들로부터 평가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칭호라든가 '묫자리'의 등급이 그 평가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 교외에 초라하게 쳐박혀 있는 연산군묘와.. 정말 으리으리한 규모로 조성돼 있는 세종대왕릉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
이런 사례는 성경의 역사서에도 기록되어 있다.

  • "... 그들이 그를 다윗의 도시에 묻었으나 왕들의 돌무덤에 두지는 아니하였더라" (대하 21:20, 안 좋은 왕 여호람)
  • "... 히스기야가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드니 그들이 그를 다윗의 아들들의 돌무덤 중에서 가장 좋은 곳에 묻어" (대하 32:33)

역사 속의 왕 중에서 특별히 매우 탁월 훌륭했던 명군 성군은 '대왕'이라고 높여 부르곤 한다.
고구려 광개토, 조선 세종, 프로이센 제국의 프리드리히 대왕 정도가 떠오른다. the great / der Große

2. 묘호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까지는 군주의 이름이 다 '무슨무슨 왕'이었다. 그러다가 고려부터는 묘호라는 게 도입돼서 '-종' 이렇게 표기가 바뀌었다. 내가 알기로 아마 중국 시스템을 가져온 거지 싶다.

자기 임기를 못 마치고 폐위된 왕은 '-군'이라고 불리며, 묘지조차 '릉'이라고 불리지 못하게 된다는 건 잘 알려진 상식이다. 연산군· 광해군이 그 예이다.
그럼 정상적인 왕에게 부여되는 '-종'과 '-조'의 차이는 뭘까? 이건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의외로 드문 것 같다.

" '조'가 '종'보다 격이 더 높다.", "쿠데타를 일으켜서 왕위를 뺏은 왕이 '조'(세조, 태조..)다" 이런 말은 들어 본 것 같다.
글쎄, 검색을 해 보니 "공이 많은 왕은 '조', 은덕(?)이 많은 왕은 '종'"이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구분 기준이 매우 불명확하다. 공으로 치면 세종대왕이야말로 '조'가 돼야 하지 않는가? 여전히 좀 헷갈린다.

고려가 원 간섭기에 들어가서 개판오분전이 됐을 때는 왕의 이름에 '-종' 그딴 거 없고 몽땅 다 '충?왕' 내지 '공?왕'으로 물갈이됐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이름을 붙여야 했으니 말이다. ㄲㄲㄲㄲㄲㄲ
그리고 조선도 나중에 제국이니 황제를 표방했지만.. 일제에게 휘둘렸을 때는 그냥 '이왕가'라고 격하됐다. 천황 폐하의 휘하에 있는 왕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 왕들의 묘호는 그대로 고종 순종이 이어진 듯하다.

3. 현대의 대통령

현대 사회 시스템이 전근대 시절의 그것과 크게 다른 특성 중 하나는 고도의 세분화· 전문화, 계층 분리, 법과 규정· 매뉴얼 운용이다.
한 사람 독점이란 게 없으며, 한 사람의 실수나 폭주, 유고가 조직 전체를 순식간에 말아먹지 못한다. 서열 1위 VIP가 급사하면 이미 있던 매뉴얼에 따라 다음 서열이 그 자리를 승계할 뿐이다.

소유와 경영이 구분되고(국가뿐만 아니라 땅이나 기업, 선박, 군대 같은 것도..), 통치자의 권한도 사법 입법 행정 분야별로 분리된다. "짐이 곧 국가이니라, 짐이 곧 법이니라" 이런 게 없다.
뭐, 미국은 세계 최초로 임기제 대통령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한 나라이고, 오늘날 대한민국은 그 정치 모델을 따랐다. 두 나라 모두 초대 대통령은 자기를 3인칭화하면서 반쯤 왕 행세를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그 당시에는 충분히 파격적이었다.

대통령은 조선 시대 국왕 같은 존재가 아니다. 대통령이 죽었다고 해서 무슨 묘호를 따로 붙이거나 무덤을 왕릉 급으로 성대하게 꾸미지는 않는다. 그냥 국립 현충원의 국가원수 묘역에 모셔 주는 게 예우의 전부이다.
거기에 안장되는 자격은 단순히 무능해서 나라 말아먹은 정도로는 박탈되지 않는다. 악의적인 사고를 훨씬 더 크게 쳐서 형사 범죄 유죄가 확정됐을 때에나 박탈된다.

그런데 국립 대전 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이 생긴 이래로 40년이 다 돼 가는 와중에, 저기에 묻혀 있는 사람은 울나라 역사상 제일 존재감 없었던 대통령인 최 규하 내외밖에 없다는 게 함정이다..;; 덕분에 저 묘역 자체의 존재감도 최 대통령의 존재감처럼 돼 간다. -_-;;

(리 승만과 박 정희 대통령 묘소는 서울 현충원 안에서 어지간한 왕릉처럼 따로 조성돼 있긴 하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특례 예외가 더 나올 일은 없을 것이다.)

4. 왕에 준하는 영어 어휘

(1) prince는 꼭 왕의 친아들뿐만 아니라 왕의 사위(부마) 내지 왕에 준하는 고위 통치자.. governor 총독과 얼추 비슷한 뜻이 되는 경우가 있다. 성경의 사 9:6 Prince of Peace가 '평화의 왕자'라고 번역되지 않음을 생각해 보자.
그러고 보니 Prince of Persia도 있구나. ㅋㅋㅋㅋㅋ 여기서도 주인공이 혈통상으로 무슨 왕의 친아들 같지는 않다. ^^

(2) 그러고 보니 여자 계열인 queen은 왕비도 되고 여왕도 된다. 영어에서 로얄 패밀리 관련 용어들이 전반적으로 중의적인 구석이 있는 것 같다.

(3) 다니엘서 6장에서는 이례적으로 총리 president라는 단어가 등장하며, prince와 대등하게 같이 나열된다. 서로 비슷한 신분이지만 선출 방식, 영역이나 직무, 지위가 다른 듯하다.

5. 왕보다 높은 칭호

다음으로 반대로 왕보다도 높은 사람은 뭐라고 부를까?
성경에서 쓰이는 타이틀은 king of kings '왕들의 왕'이다. 우리식으로 좀 짤막하게 의역하면 '왕중왕' 정도. 사실상 예수님의 칭호로만 쓰인다는 건 성경깨나 공부한 사람이라면 아실 것이다.

그 반면, 세상에서 특히 동양 한중일 문화권에서는 '황제'가 친숙하다.
오늘날은 옛날 같은 왕정이 세계적으로 전멸하다시피했기 때문에 "테란의 황제 임 요환. 소프트웨어의 황제 빌 게이츠"처럼 그 분야의 지존 왕고, 1인자 같은 비유적인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오늘날 자기 국가원수에 대한 영문 공식 명칭으로 emperor를 쓰는 나라는 일본이 세계 유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야 반일 감정 때문에 '皇'자를 붙이고 싶지 않아서 '천황' 따위 생까고 '일왕'이라고 부르는 곳이 많다.
허나, 김 대중 때 저쪽에 대한 울나라의 공식 표기를 '천황'이라고 굳히기는 했었다. 노 태우 때 '중공' 대신 '중국'이라고 공식 표기를 굳힌 것과 완전히 동급으로 말이다. 왜냐하면 그때 한중 수교 내지 일본 대중문화 개방 같은 큰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6. 나머지 얘기들

(1) 예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성경엔 이스라엘 백성 "우리도 왕을 갖고 싶습니다" vs 사무엘 "그 왕의 간지를 유지하는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나 하냐? 니들은 왕을 뒀다간 세금폭탄 맞고 개고생할 것이다. 그때 가서 후회해도 왕을 없앨 수도 없고 소용없을 거다" 이런 말이 나온다.
이거.. 요즘으로 치면 "우리도 빚 내서라도 차를 장만하고 싶습니다." vs "차는 안 몰고 세워 놓기만 해도 유지비가 얼마나 드는지 알기나 하냐? 나중에 빚더미에 올라서 고생해도 차를 무를 수 없을 거다" ...;; 카푸어와 싱크로율이 아주 높아 보인다.

(2) 동양에서는 역대 왕들에게 서로 다른 한자 글자를 할당해서 이름을 붙이는 반면.. 서양은 기존 선조의 이름을 계속 재활용하면서 n세 n+1세.. 이러는 관행이 있다!! 한중일에서 n세 n+1세 이런 이름이 붙은 군주는 내가 아는 한 없다. 신기한 노릇이다. =_=;;

(3) 신라에서는 우리나라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서로 다른 김, 박 왕조가 번갈아가며 왕좌에 올랐으며.. 잠깐이지만 여왕도 있었다. 왕릉이 바다에 조성된 왕도 있었고, 또 죽어서 왕으로 추존된 장군(김 유신)도 있었다.
처음에는 이사금인지 뭔지 이렇게 불리다가 진흥왕인가 그때 처음으로 중국식 표기가 도입됐다. 여러 모로 특이하다.

(4) 왕 내지 절대권력을 의미하는 색깔도 문화권마다 다른지.. 성경 시대엔 보라색?자주색? 계열이 고귀하게 여겨진다.
예수님이 왕드립 패드립을 당하실 때도 이 색깔의 겉옷이 걸쳐졌다(요 19:2).
한때 서울 지하철 5호선에서는.. "5호선 보라색의 상징은 황제입니다. 5호선을 이용하시는 승객 여러분도 황제입니다" 이런 아부성 광고가 붙기도 했는데.. 그 색의 의미가 저기서 유래된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중국 청나라에서는 노랑이 황제를 의미하는 최고급 색깔이었다.

(5) 세종대왕에 대해서.. 종모법을 시행해서 노비 신분을 무슨 유전병 우성 인자마냥 퍼뜨리고 전 백성을 노비로 만든 원흉인 것처럼 얘기하는 낭설이 떠돈다.
글쎄.. 오히려 세종 이후 나중에.. "부모 중 누구라도 노비이기만 하면 자식은 모두 노비" 즉, X나 Y 둘 중 하나가 아니라 X|Y를 만들어 버린 게 진짜 노비를 폭증시킨 것 같은데 말이다. 저건 마치 "요셉에 대해서 백성의 땅을 몽땅 뺏어 버린 원흉"이라는 말처럼 들릴 수 있어 보인다.

(6) 왕은 저렇게 고귀한 신분이거늘,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에서 우리를 씻으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 우리를 왕(경복궁!!)과 제사장(종묘!!)으로 삼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계 1:5-6) 찬양과 영광을 돌리고 싶어진다.
진짜 왕 신분은 자주색 노선인 지하철 탄타고 부여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피를 믿어야 영적 신분으로나마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4/22 08:35 2024/04/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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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 구독자라면 이미 다 아시겠지만.. 본인은 어린 시절부터 예수 믿고 구원의 확신을 얻고 교회 생활을 오래 해 온 크리스천, 예수쟁이이다. 그래서 블로그에다가도 성경 관련, 기독교 교리 관련 글을 지금까지 엄청 많이 써 왔다.
장기적으로는(한 10년 안?).. 그 글 내용들 일부를 정제하고 분야별로 나눠서--구원 복음, 성경 난제, 신앙 생활, 성경 번역 등등등-- 유튜브를 한다든지, 아니면 종이책을 출간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뭐, 이것도 마치 컴퓨터 분야에서 github 계정 파는 것처럼 그냥 구상만 하는 거고 적극적으로 실행까지는 아닌 상태이다. 현실적으로는 직장이나 한글 입력기 개발이 더 급해서 말이다.;;

본인은 20여 년 전 대학 시절에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진영에 입문함으로써 신앙 노선이 크게 바뀌었다. 대외 이미지가 좋지만은 않고 이단 편견도 많은 곳을 굳이 선택한 것엔 다 이유가 있었다.
다들 예전에 한번씩 했던 말 같지만, 지금은 바야흐로 말씀 보존 학회 한글 킹 제임스 성경이 초판 발간된 지도 벌써 30주년=_=이 임박했다. 그거 기념으로 한번 더 개념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사실, 본인은 신앙 노선이 바뀌었다거나 달라졌다는 말도 좀 어폐가 있다고 생각한다. KJV 진영으로 오면서.. 원래 막연하게 믿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강화된 것에 더 가깝다. 다시 말해 둘은 대립 관계가 아니다!

  • 행위가 아닌 믿음만으로 구원이라고 말은 하는데, 그 구원이 영원히 보장되는 건지.. 죄 짓고 회개 안 하면 도로 취소되는 건지는 긴가민가했다. ==>> 당연히 영원히 보장되는 것이고, 죄 짓고 회개가 없으면 보상 등 딴 걸 잔뜩 잃는다고 알게 됐다.
  • 성경 말씀은 완전하고 무오류하다고 배웠지만.. 최초의 자필원본만 그렇다고 들었다.. ==>> 그렇지 않고 번역과 보존도 완벽하게 무오류하며, 그 실체가 지금 이 시간에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건 맞는데 창세기 1장의 6일이나 계시록의 1천 년은 많이 애매했다. ==>> 문자적 해석과 영적 적용의 관계를 명확하게 깨우쳤다.
  • 신약 시대 은혜의 복음에 대해 배웠다. ==>> 응 그건 당연한 건데, 대환란 때는 왕국복음이 등장하고 영원한 복음이라는 것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 아기는 병이나 사고로 죽으면 무조건 다 구원받는다. 유아세례 안 받아도 된다. 그 대신 살아 있는 동안은 부모가 꼭 의로 양육해야 된다. 체벌은 악을 훈계하고 바로잡는 용도로는 필요하다.

이런 식이다.

한편으로는 믿음만으로 구원이라고 배웠지만 "자살하면 구원 상실인가?", "끝까지 신실하지 않으면 대환란 때 남겨지나? 666 안 받으려고 버텨야 되나?" 갖고 고민하던 거.
성경 역시 여느 고문서와 다름없으니 현대의 학자들이 옛날 텍스트와 의미를 새로 복원해 줘야 하냐고 생각했던 거.
어린아기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뭐는 자유의지이고 뭐는 예정인지 이런 간단한 문제들에 대한 답도 모르고 있다가 속 시원하게 논리적으로 해결됐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해 준 진영을 선택한 것이다.

킹진영이건 기성 교회건 같은 하나님, 같은 예수를 믿는 게 아닌가? 원래는 성경도 같은 성경을 보지 않는가?
그런데 세부 방법론이 다르다고 서로 이 정도로 적대하고 이단시하고 대립해야 한다는 게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된다.

예수 말고 다른 구원의 길이 절대 없다고 말하는 배타적인 종교(?)가 있다면 그렇게 "예수 말고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고 쓰여 있는 경전, 말씀도 당연히 하나만 맞지 이와 일치하지 않는 건 다 잘못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너무 당연한 소리이지 않은가?

"예수..?? 응 훌륭한 사대성인 도덕 선생이지. 근데 예수만 믿어야 구원이라고? 그건 사이비 광신이지~"와
"킹 제임스 성경..?? 응 훌륭한 영문학 고전이지. 근데 성경 번역이 그것만 맞다고? (통상적인 이역 수준은 논외) 그 본문 계보만 맞다고? 그건 이단이지~"가
내가 보기엔 둘 다 거의 같은 영, 같은 분별에서 유래됐다.

"기존 개역성경(개역개정)은 사탄 마귀에 의해 변개되고 부패된 성경이다"
이 말은 매우 극단적이고 사람 감정을 상하게 하기 좋다. 개역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구원받고 신앙생활 하고 있는 사람도 많은데 누가 감히 저런 무엄한 말을 입 밖에 낼 수 있겠는가?

저 말은 "제아무리 구원받은 크리스천이라도 육신 모드가 극에 당해서 마귀 들린 듯이 깽판칠 수 있고, 마귀에게 실컷 쓰임받을 수 있다"와 같은 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개역성경에도 변개되지 않은 말씀이 많이 있고 그거 읽고 구원받은 사람이 있는 것과 별개로..
소량의 변개 삭제된 부분은 누가 뭐래도 마귀 영향을 받은 게 맞다. 그게 불편한 진실이다.

사람이 무인도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야 벌레나 풀뿌리라도 먹어야겠지만.. 멀쩡히 좋은 음식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일부러 그런 저질 단백질 공급원을 찾아 먹을 필요는 추호도 없다.
마트에서 물건 하나를 사도 하자나 결함이 전혀 없고, 남이 만진 흔적이 없는 깔끔한 걸 고르려 애쓴다.

맛집 찾아가서 밥 먹는데 음식에 머리카락이 한 가닥이라도 나왔다? 어디 곰팡이 슬고 상한 부위가 있다? 그러면 찝찝해서 그 음식은 통째로 교환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무시하고 그냥 먹어도 어지간해서는 탈 날 일 없더라도 말이다.
당신에게 성경이 정말 귀중하고 사랑스러운 책이라면 성경 역본을 고를 때도 이런 잣대가 자연스럽게 적용될 것이다! 아멘~

KJV 유일주의를 반박하고 빠져나가는 논리는 대부분이 "그건 후대에 첨가된 거고 원본에 없던 구절이다", "여기에는 빠졌어도 다른 책에는 있어서 괜찮다(마태-마가, 에베소서-골로새서 따위)", "오히려 KJV의 오역이다" 이런 식이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반대자도.. 말이 완전히 다른 벧전 2:2 구절이 KJV가 틀렸고 다른 현대 역본들이 맞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걸 지난 20년 동안 본 적 없다. 약 5:16의 '잘못/허물'이 틀렸고 변개됐고 '죄'가 맞다고 양심을 걸고 당당하게 얘기하는 사람도 본 적 없다.

그 발달된 성서고고학 사본학과 헬라어 원어 지식으로 나온 결과물이 고작 그거라면.. 미안한데 나는 그게 맞는 하나님 말씀이라고는 동의 못 하겠다. KJV 유일주의 소신을 버릴 생각이 없다. 내가 수학이나 과학 등 다른 학문에서는 인간의 지성을 동원한 논리와 합리주의, 과학적 방법론을 다 존중하지만, 이 바닥만은 쪼금 다른 잣대를 적용한다. 애초에 종교나 신학은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와 진영논리"가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원본 원문이 없지만 온전히 번역되고 보존된 필사본이 original과 동급이다. 행정에서 말하는 '원본대조필' 도장이 찍힌 거나 마찬가지다.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안 그럴 거면 진짜로 하나님이 지옥을 전하기 위해서 지옥 구경을 진짜로 하고 온 사람을 살려 보내셔야 할 것이고, 성경 시대의 헬라어 히브리어를 구사하던 사람을 살려 보내서 뜻풀이를 시켜 주셔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하시지 않고 후세를 모두 기록된 말씀을 통한 간접 체험만으로 충분하다고 처분하셨다. 오히려 "예수님의 변화산 변모 목격보다도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 "보지 않고 믿은 자들은 복되다"라고 인증까지 해 주셨다. 그 약속은 성경의 온전한 보장을 당연히 전제로 깔아야만 성립 가능하다. 이런 원리를 알면 특정 성경 번역본만 우상화.. 이런 무식하고 민망하고 저열한 소리는 할래야 할 수 없을 것이다~!

아 물론 KJV와 타 성경들은 거시적으로는 일치하지 않는 구절보다 일치하는 구절이 훨씬 더 많다. KJV 진영 교회라고 해서 24시간 365일 내내 '변개된 구절 차이점'만 파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일상적인 교리 쪽에서 KJV 계열 교회가 기존 개신교회와 큰 차이를 보이는 건 앞서 말했던 것처럼 성경 해석 방식이라든가 교회사· 경륜에 관한 인식이다.

(1) 개신교 쪽에서는 기독교가 로마 제국으로부터 공인받은 게 기독교가 세상을 상대로 큰 승리를 쟁취한 거라고 생각한다. 교인들이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세상 요직에 진출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킹 진영의 관점은 다르다. 세상적인 성공은 자기가 재능과 노력을 다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성공하면 하는 거고, 그 자체가 교회의 세력이나 개인의 영적 성장과는 별개라고 여긴다. 박해보다도 왜곡과 변질, 배도, 순수성 상실이 기독교계에 훨씬 더 해로운 현상이라고 분명하게 인지한다.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은 당장은 기독교 박해를 멈추게 했지만 의도가 순수하지 않았으며, 그 뒤로 훨씬 더 큰 비극을 불렀다고 본다. 그냥 일제 시대 문화 통치의 로마 제국 버전이나 마찬가지이다.

(2) 종교 개혁자들을 좋아하는 개신교 쪽에서는 에라스무스, 칼빈 같은 그 선조들이 성경 본문의 편찬과 성경 번역에도 신경 썼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가 보다. 그렇게도 제네바, 제네바 그러는데 KJV의 전신인 제네바 성경은 모름..;;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 점을 특별히 공략해서 개신교들을 대상으로 킹 제임스 성경을 전하기도 한다.

(3) 이 킹 제임스 진영은 대체로 '온건한 세대주의' 성향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이나 침례나 구원이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서 다 똑같지는 않다고 본다. 계시록 예언은 대부분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고, 예수님 재림 때 이뤄진다면 철저하게 문자적으로 그대로 이뤄진다고 본다. 함부로 비유나 묵시 따위로 치부하지 않는다. 과거에 이미 이뤄진 예언들 사례를 보니 아주 문자적으로 이뤄졌었기 때문에 그렇다.
이게 건전한 관점 아닌가..?? 도대체 왜 세대주의가 막연하게 이단 프레임을 뒤집어쓰고 있는지..? 종말 자체는 있지만 당연히 특정 날짜 정해 놓고 깽판 치는 시한부 종말론이 절대 아니다.

아무쪼록 나는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내 양심에 따라 정확하게 전하기는 하고서 거절 거부 당하거나 이단 소리 듣는 것에는 아무 두려움이 없다.
시한부 종말론, 구약 무용론을 주장하기 때문에 이단이 아니라 문자적인 예수님 재림과 천년왕국 통치를 믿기 때문에 이단.
자기네 성경 안 보면 구원 못 받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13구절이 삭제됐고 6만여 단어가 변개됐다고 팩트폭격을 하기 때문에 이단.

이러면 진짜로 예수님이나 바울이 이단 소리 들었던 것과 똑같은 취급이고, 하늘나라 보험에서 보상 사유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것보다 더 합리적이고 건전하게 성경 교리를 풀어 주는 신학 노선이 있다면 나도 들어는 보고 싶다.

※ 여담: 이단 중의 이단 안식교

아니 무슨,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도 안식교에서 유래됐고.

"벤자민 G. 윌킨슨(1872-1968)은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선교사이자 제7일안식일워싱턴재림대학교 신학부 학장이었다. 킹제임스성경의 유일주의는 윌킨슨이 1930년에 출간한 『입증된 우리의 흠정역 성경』이란 제목의 책으로부터 비롯되었다. … 그는 시편 12:6~7을 잘못 적용하여, 그 말씀이 마치 킹제임스성경 보존에 대한 약속인 것처럼 주장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작 윌킨슨이 KJV를 지키려 했던 이유는 1881년 개정된 성경RV이 KJV보다 자신이 믿고 지지하고 있는 안식교 교리에 불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 권 동우,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의 망상』(CLC, 2016), pp. 41-42


젊은 지구 창조론/창조과학도 안식교에서 유래됐다니..

1938년 제7일 안식교인인 조지 맥크리디 프라이스(1870-1963)가 홍수 지질학을 주장하며 홍수 지질학회(Deluge Geology Society)를 설립한 것이 근대 창조설의 시초가 되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사이비 과학적인 설명을 더해 만들어진 것이 현재의 젊은 지구 창조설, 혹은 창조과학이다.
-- 로널드 L. 넘버스, 『창조론자들』(2016). 새물결플러스, pp. 295


만만하면 다 호구 안식교 탓이냐..?? 1930년대에 안식교라는 곳은 아주 대단한 곳이었구나. -_-;; ㄲㄲㄲㄲㄲㄲㄲ
내가 확실하게 아는 건 '론 와이어트'(1933-1999)라는 아마추어 성서고고학자인지 아니면 사기꾼인지.. 논란 많은 이 아저씨가 안식교인이었다는 것이다.

노아의 방주 흔적은 말할 것도 없고, 홍해 밑바닥을 탐사해서 모세 시절의 병거 바퀴를 발견하고 심지어 골고다 언덕에서 부계 염색체가 없이 모계 염색체만 있는 예수의 진짜 혈흔을 발견했다고 주장한 사람 말이다. =_=;; 물론 이건 안식교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

사실, 내가 알기로 정작 안식교는 크리스천도 안식일 지켜야 된다는 요지의 이상한 소리 하는 것 말고 다른 건 별로 이단기가 없다. 교리 측면에서만 이단일 뿐,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는 것도 없다고 들었다.
하물며 성경 말씀이 번역 과정에서도 온전히 보존되었고 그 실체가 지금까지 있다고 믿는 것, 문자적인 6일 창조를 믿는 것 그 자체는 아주 건전한 기독교 신앙이다. 문제될 게 전혀 없다. =_=;;

아무쪼록 누구든지 "이단들이 성경을 엄청 파고든댄다, 요한계시록 공부 열심히 한댄다. 6일과 1천 년을 문자적으로 믿는댄다. 이단들이 재림을 사모한다고 하니 우리는 성경 공부하지 말자, 재림 사모하지 말자." 이런 무식한 짓은 제발 안 했으면 좋겠다.
다음은 진짜 마지막 여담.

  • the Holy Bible '성경'이라고 해도 충분할 텐데 '성경전서'라는 말이 왜 붙었을까? 신구약 66권이 모두 들어있다는 걸 굳이 강조하고 싶었는가 보다.
  • 한킹이 출간된 1994년 4월 12일은 KBS 박 지원 아나운서의 생년월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15일은 서울 2기 지하철을 관할했던 서울 도시철도 공사가 창립된 날이다. ㄲㄲ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24/04/11 08:35 2024/04/1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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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숙명론

(1) 하나님이 태초에 천당 갈 사람과 지옥 갈 사람을 다 예정해 놓았고 다 로보트 조종하듯이 움직인다는 말은 완전히 잘못됐고 거짓이고 오류이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그런 거라면 죄에 대한 책임도 인간이 아니라 신에게 있어야 마땅하다. 나는 그런 나쁜 신은 믿고 싶지 않으며, 내 블로그에 당당하게 소개하지도 않는다.

(2) 하긴, 그러고 보니 구원 여부뿐만 아니라 성경의 영감에 대해서도 그런 식의 오해가 많은가 보다. 하나님이 사람을 갑자기 무아지경에 빠지게 하고 정신줄을 놓게 만든 뒤 신들린 듯이 조종해서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글을 의식의 흐름대로 휘갈겨 쓰게 해서 성경을 완성시켰다...??? 무슨 울날랄랄따따따 방언의 손글씨 버전처럼? 절대 그렇지 않다.
제정신으로 자기 의지대로 쓴 글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숨결이 자연스럽게 깃들고 권위가 선 것이다. 자필 원본뿐만 아니라 킹 제임스 성경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3) 하나님 쪽에서 인간이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죄값을 미리 다 치렀고 구원의 길을 모든 인간 누구에게나 공짜로 마련해 놓으셨다. 그러나 인간 쪽에서도 그 사실을 "자기 의지로 동의하고" 그 선물을 자발적으로 믿고 받아들여야 그게 그 개인에게 실제로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인간이 자기 믿음을 행사해야 하지, 그것조차 무슨 믿음을 따로 받아야만 구원받는 게 절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받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고 그걸로 구원받을 뿐이다.

2. 양 극단 오류

성경은 "행위 없이 믿음으로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 영원히 보장되는 구원"을 말한다. 이걸 배배 꼬아서 행위 구원 내지 "죄 지으면서 계속 회개하지 않으면 다시 구원 상실" 이러는 것은 아주 비성경적인 오류이다.
대한민국 땅에 들어온 북한 주민은 그 어떤 흉악범죄를 저질러도 북한으로 도로 송환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신체의 자유와 각종 권리, 재산을 빼앗기고 교도소나 사형장에서 인생을 마치게 될 수 있다. 그것처럼 크리스천은 죄를 계속 지을 경우, 구원이 영원히 보장된다 해도 다른 잃을 게 아주 많다. 간증, 예수님과의 관계, 보상, 최악의 경우 건강과 생명 등등..

다시 말하지만 구원의 영원한 보장은 마음대로 죄 지어도 된다는 프리패스가 절대 절대 아니다.
선행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라고 하니까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았으니까 무슨 죄 짓고 회개를 할 필요가 없다느니, 요일 2:27을 단단히 오남용해서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느니 이상한 해괴망칙한 도덕성 해이와 양심마비를 조장하는 헛소리가 일각에서 나도는가 보다. 구원과 관련된 양 극단 오류에 현혹되지 말라.

3. 인과관계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 주 원인은 창세기에서 묘사되어 있듯이 동성애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에스겔서에서는 의외로 뱃대지 부름과 게으름(16장)이 지목되며, 동성애를 옹호하는 좌독들은 이걸 거론하는 걸 더 좋아한다. 둘은 상호 모순인 걸까..??
그렇지 않다. 뱃대지 부르고 게을러지고 군기가 빠지고 사치 향락에 빠지고 타락하면서 결과적으로 최악 막장인 동성애까지 탐닉하게 된 것이다. 둘을 배타적인 상호 별개 대립 관계로 볼 게 아니라, 총체적으로 종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경에는 이런 관계인 개념 쌍이 가끔 나온다. 믿음과 행위, 구원과 침례도 전자의 결과가 후자로 이어지는 걸로, 이들은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어쩌면 상관을 넘어 인과관계라고 볼 수도 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있는 건 구원이라는 자동차 엔진이 내 안에서 시동 걸려서 돌아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외부에서는 차가 실제로 굴러가는지, 물리적으로 일을 하는지 여부만을 볼 것이다. 그걸 입증해 보이려면 변속기를 D를 눌러서 엔진을 바퀴와 연결하고 차를 실제로 굴려야 한다.

옛날에 "가장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다"라는 인종차별적인 말이 있었다. 그 사람은 인디언이 맞긴 하지만 죽었기 때문에 더는 백인들을 귀찮게 하지 못하고 원래 자기 종족들의 전통을 지키지 못한다.
같은 맥락으로 사탄 마귀의 입장에서는 "가장 좋은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이지 않겠는가? (약 2:17,20) 아무리 200마력, 1000마력짜리 엔진 자체는 레알이어도 변속기가 P, N에만 머물러 있으면? 예수 믿는 우리의 믿음이 역사하는 힘을 잃고 밖으로 입증하지 못하는 '죽은 믿음'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 침례는 구원의 수단 내지 조건인가?

4. 행 2:38

행 2:38과 막 16:16은 "침례라는 행위가 구원의 선행 조건이란 말인가~~~"를 갖고 많은 논란을 일으키는 난해 구절인 것 같다.
이것 때문에 말보회 한킹은 "죄사함 받기 위해 침례"가 아니라 "죄사함 받았으니까 이로 인한 침례"라고 for을 특이하게 번역하기까지 했다.

이 전통적인 문제를 회피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1) 먼저, 그게 별개가 아니라고 반박하는 관점이 있다. 저기서 침례라는 건.. 믿었으니까 자연스럽게 뒤따르고 이어진 반응일 뿐이다. 쉽게 말해 '영접기도'나 마찬가지라는 것.
"저요 저요, 선물 좀 주세요"라고 의사 표현을 하는 것조차 무슨 선물에 대한 값을 치르는 짓이라고 매도하는 바보는 없다. 저 상황에서 영접기도 하는 걸 행위라고 트집잡는 건 그냥 생트집일 것이다. 회개(믿음) 따로 침례 따로도 비슷한 방식의 어거지이다.

약간 원천봉쇄 오류 같은 냄새가 안 나는 건 아니지만 일면 수긍은 간다.
막 16:16 명제를 봐도 p는 "믿고 침례받는 자"이지만, ~p는 그냥 "믿지 않는 자"이다. "침례 안 받는 자"에 대한 언급은 없다.

(2) 다음으로, 저 구절들은 현재의 신약 크리스천에게 100% 직접 적용되는 구절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관점이 있다.
막 16:16의 바로 다음 구절을 보면.. 믿는 자가 마귀 내쫓고 방언(?) 터지고, 뱀들 집어올리고 독약 마셔도 안 죽고, 아무 환자한테나 손만 얹으면 병이 바로 낫고.. 등등등 '사도들의 표적'이 나온다.
헐~ 그게 지금도 존재한다고 사람들을 홀리는 "은사주의자"가 있긴 하지만 그건 일단 논외로 한다. (저 표적들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한 치의 예외 없이 내 눈 앞에서 즉시 행해 보시라)

17~18절의 표적이 지금 끝나서 존재하지 않는 것과 동급으로 16절은 지금 우리에게 문자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행 2:38도 마찬가지. 앞의 본문을 읽으면서 문맥을 살펴보시라.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데 동참했던 그 당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서 조금은 추가적인 회개 정산 절차가 필요했다. 이거 자연스러운 논리이지 않은가?

리 승만 할배가 아들에게 유언 남길 때도 "울나라는 세계 모든 나라들과 통상하며 사이 좋게 지내야 한다. 하지만 일본하고는 워낙 특이한 과거사가 있기 때문에 우리만의 고유한 정책이 있어야 할 거다" 이랬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예수님-유대인이 무슨 한일 같은 대등한 관계인 건 아니고, 저 말이 울나라는 일본과는 영원무궁토록 생까고 원수지간으로 지내라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고유한 화해 절차나 과거사 청산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차원에서 그 당시 유대인들은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서 성부 성자 성령도 아닌 '예수'만의 이름으로 특별한 회개의 침례가 먼저 필요했다고 받아들이는 거.. 이 역시 충분히 자연스럽고 수긍이 간다. (복음서에 나오는 성령 모독죄만 해도 성육신한 예수님의 동시대 사람들만 지을 수 있는 죄이지 않던가?)

결국 저런 구절들은 1번과 2번을 감안해서 이해하면 된다고 목사나 교사가 보충 설명해 주면 될 것 같다.
침례는 교회에서 직분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서는 충분히 내걸 만하다. 그러나 교회 회원으로 가입하기 위한 조건은 조금 아리까리하니 생각을 해야 할 것 같고, 하물며 개인 구원 조건이 돼서는 교리적으로 절대 안 될 것이다.

이게 무슨 니 목숨 바쳐 순교를 하라는 소리도 아니고, 구원 조건도 아니고.. 평생에 물놀이나 목욕 한 번 못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는가? 침례가 너무 힘들고 번거로워서 시행하지 못한다는 말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5. 벧전 3:21

그리고 다음으로 벧전 3:21이 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왕년에 행 2:38에서 침례와 관련하여 오해하기 쉬운 논란의(?) 발언을 남겼는데.. 나중에 베드로전서에서도 고난에 대한 권면· 격려를 하던 중에 좀 어려운 말을 툭 던졌다.

앞의 19~20절부터 살펴보자면.. 예수님이 그 옛날 노아의 홍수 시절의 악인 내지 악령들과 접점이 있었다는(그들에게 말씀 선포) 생소한 얘기가 나온다. 노아의 홍수 때 생존한 사람이 딱 8명밖에 안 됐다는 얘기와 함께 말이다.
21절은 "그 옛날 사건이 바로 여러분을 구원하는 침례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어쨌든 baptism saves us/you 이런 것처럼 번역이 많이 돼 있다.

비록 그 내부 메커니즘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란 게 있다는 단서가 명시돼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이 말만 읽어보면 우리 입장에서는 침례가 구원의 조건인 것처럼 읽힌다. 킹/비킹 막론하고 말이다. 어찌 된 일일까?
오죽했으면 개역성경이나 말보회 한킹은 "물은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이고 이게 곧 침례이다".. 침례 구원론을 피하려고 말을 임의로 좀 바꾼 듯하다. 좋게 말하면 교리적으로 오해 여지가 없지만, 삐딱하게 보면 출발어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번역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21절의 난해함은 20절의 표현과 연계해서 생각하면 그럭저럭 풀 수 있을 것 같다.
baptism doth also now save us가 어색하기에 앞서 앞의 eight souls were saved by water도 동급으로 어색하다. 아니 saved by grace도 아니고 왜 by water이지?
20절에서 물은 구원이 일어나는 밑밥 배경일 뿐, 구원을 실질적으로 이루는 수단· 방법이 아니다. by에 전자의 의미도 있는 것 같다.

모형이라고 했으니까 진짜 말 그대로 "노아의 가족의 생존: 물: 방주"랑.. "우리 신약 성도의 구원: 침례: 예수 부활" 이렇게 비례식을 세워서 생각하면 될 듯하다.
빵과 잔이 진짜 주님의 살과 피가 아니라 상징일 뿐이듯, 침례도 구원과 관련된 상징일 뿐이다. "침례는 구원의 모형이고, 노아의 홍수 사건은 침례의 모형이다. 물과 노아 가족 구원의 연관성만큼이나 침례와 성도 구원이 관련돼 있다?" 베드로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 정도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걸 '모세에게 침례를 받은 것'에다가 비유했다. 거 참 심오하고 난해하다. 그러니 노아의 홍수도 얼마든지 침례에다 비유할 수 있겠다.
그리고 성경의 심상은 어떤 경우든 물에 온몸이 잠기고 젖는 것이지, 물방울 조금 뿌리고 마는 수준은 아니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4/04/08 08:35 2024/04/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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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핵심 원리, 법리들

1. 선택과 책임 (1)

지난 2010년 10월 경에 미국 테네시 주 사우스풀턴 시에서는 가정집에서 화재가 났는데 그 지역 의용소방대에서는 뻔히 보고도 불을 꺼 주지 않은 일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 집은 연 75$인 회비를 내지 않았고, 그 소방조합에 자발적으로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 주인이 자기 집은 화재 따위 날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가 보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자 집 주인은 태도가 완전히 바뀌어서 화재 진압 비용을 몇 배라도 낼 테니 제발 불을 꺼 달라고 읍소했다. 그러나 소방관은 그 읍소도 단호히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 유도리 부탁을 들어 주면 앞으로 아무도 평소에 소방조합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고 불이 났을 때만 일회용으로 돈을 내려 할 것이다. 그러면 소방조합이 운영될 수 없게 된다."
소방관들은 화재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가 소방조합에 가입된 옆집에 불이 옮겨 붙으려 하는 것만 차단하고 돌아갔다.

이런 소방관의 처신은 매우 정당하며 잘못된 게 단 1도 없다!! 자기 선택에는 자기가 그대로 책임지고 심은 대로 거둬야지?
나는 이런 자유주의 원칙을 쌍수 들고 지지하며, 이것이 성경의 법리 원칙이기까지 하다고 생각한다. 잠 1:25-26도 떠오르고 말이다. 살아 있을 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죄 가운데 죽었다가 지옥 가는 혼들이 늘어놓지만 퇴짜 맞는 변명도 딱 이런 패턴인 경우가 매우 매우 많을 것이다.

저렇게 소방조합 가입 안 해서 쪽박 쓴 사람의 반대편 극단에 있는 사람은..
생명보험 가입하자마자 피보험자가 죽었지만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서 결국 보험금을 전액 수령한 "10억을 받았습니다" 당사자, 아니 그 유족일 것이다. ㄲㄲㄲㄲㄲㄲㄲ
뭐.. 이런 식으로 평생 죄 짓고 살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 믿어서 구원받는 것도 이론적으로 당연히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보편적으로 미래 예측 능력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2. 선택과 책임 (2)

이것도 위의 얘기의 연장선인데.. 아마 예전에도 내가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옛날 전근대 시절과 현대(특히 197,80년대쯤 이후)의 관념· 사고방식의 차이가 뭐냐 하면..

- 옛날: 싸움에서는 무조건, 닥치고 승리하든가 아니면 죽든가 둘 중 하나였다. 의지드립, 약육강식, "인생은 실전이야 존만아" 관념이 훨씬 더 강했다. 초인적인 위인, 영웅이 생길 여지가 지금보다 더 많았다.
- 지금: 도저히 승산이 없으면 일단 살아서 돌아오기라도 해서 후일을 도모하려 한다. 무모한 희생을 피하고, 안전이나 인권을 더 챙긴다. 위인, 영웅이 등장할 여건 자체를 안 만들려 든다.

- 옛날: 빚을 졌으면 니 자신이나 자식새끼를 노예로 팔아서라도 갚아야 했다. 사람을 고의로 죽였으면 닥치고 사형이었다.
- 지금: 변제 능력 보지도 않고 돈 덥석 빌려준 채권자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 빚이 아무리 많아도 상속포기 파산을 하면 약간 불이익이 따르긴 하지만 어쨌든 빚 안 갚아도 된다. // 흉악 범죄를 저질렀어도 사람을 저 지경으로 만든 사회의 책임도 있고 심신미약 상태여서 뭔 정상 참작을 하고 궁시렁궁시렁...

- 옛날: 게임만 해도 뭐 삐끗하면 즉사하는 형태인 게 훨씬 더 많았다. 모르면 죽어야 하고 레벨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 지금: 훨씬 더 친절해졌다. 어지간한 게임들은 다 HP가 있고 저장 불러오기 기능이 있고 undo에 더 관대해졌다. 일부러 현실감을 추구하는 일부 장르를 제외하면 아군이든 몬스터든 즉사가 잘 없고, TTK (여러 발 맞아야 사망)가 더 길어졌다.

- 옛날: 부모님이 주신 이름값을 해야지?? 무슨 대놓고 '김개똥, 강간녀' 같은 미친 이름일 때에나 개명이 허용됐다.
- 지금: 개인의 자유를 얼마든지 존중해 준다. 범죄 내력을 세탁 은폐하려는 불순한 의도만 아니면 얼마든지 개명 허용이다.

성경이 말하는 전반적인 맥, 법리, 구원관은 '지금'이 아니라 '옛날' 관점에서 봐야 더 절실히 공감하고 믿을 수 있다.
하긴, 옛날엔 저렇게 사회가 살벌했기 때문에 애들이 요즘 애들보다 훨씬 더 일찍 철 들었던 것 같다. 철 들지 않으면 당장 쳐맞거나 밥을 굶거나 심지어 목숨이 위태로워졌을 테니까. =_=;;

"어쨌든 그건 니 사정이고 지금 사고 친 걸 어떻게 책임지고 수습할래?
아무리 니 혼자 스스로 열심히 진심으로 노력했어도 규정대로 규칙을 지키면서 게임을 한 게 아니라면 실격이다. 과정이나 동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 관점에서 봐야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이라는 개념도 이해가 된다. 선악을 분별 못 할 정도로 너무 어리거나 지능이 딸려서 법적으로 면제되는 게 아니라면 책임이라는 게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단지, 인간의 깜냥으로 무모한 희생까지 불사하는 게 아니라, 신이 이뤄 주신 위대한 희생을 받들이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저 인생은 실전이니까 너도 온갖 치사 비열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정글을 헤쳐 나가는 게 아니고, 그에 상응하여 신이 너에게 베풀어 준 은혜와 사랑을 받으라는 쪽으로 해결책이 있을 뿐이다!
그게 바이블 게임의 보스를 깨는 공략법이다.

3. 달란트 비유, 양극화

신약 성경 복음서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인 달란트/므나 비유 말이다.
얘의 핵심 주제가 그저 단순히 "재능 낭비하지 마라, 니가 받은 걸 썩혀 놓고 놀리지 마라"였다면..
2달란트와 1달란트 받은 종이 칭찬을 받고, 정작 5달란트 받은 사람은 돈을 파묻어 놓고 탱자탱자 노는 걸로 스토리를 짜는 게 더 이치에 맞았을 것이다. 과부의 헌금 2렙돈이 더 가치 있었다는 비유처럼 말이다. 그렇잖은가? 그게 더 극적인 효과가 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예수님은 양극화.. "받은 자는 더 부유해지고, 없는 자는 그나마 있던 것마저 뺏긴다~~"
부익부 빈익빈 복리 이자 선순환 악순환이라는 냉정한 원리까지 가르치고 싶어서 1달란트를 게으르고 악한 종으로 설정하신 것이 틀림없다. 이 점을 잘 생각해 보자.

그렇잖아도 이 비유는 성경에서 꽤 이례적으로 "돈을 환전상한테 맡겨서 이자라도 받아 왔어야지?"라는 경제 관념까지 등장한다. 단순히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 수준이 아니다. 단순히 돈이 아니라 사람의 상태야말로 궁극적으로 천당 아니면 지옥이라는 양극화로 치닫기는 할 것이다.

4. 이방인· 불신자에 대해서

성경은 "어리석은 자는 자기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도다"부터 시작해서 '믿지 않음'을 죄로 규정하고 당연히 부정적으로 매우 깐다. 잠언에 나오는 어리석음은 생물학적인 지능이 낮은 게 아니라 그런 부류의 영적 악함이 가미된 불신, 죄악을 가리킨다.

(1) 그러나 한편으로 이방인이건 이교도건 원시 미개 부족이건.. 율법을 직접 받지만 않았을 뿐, 누구든지 민족 불문하고 양심을 통해 보편적인 선과 악 관념이 있다는 것도 부각시킨다. 살인이나 간음은 나쁘다(창 20:4-5, 행 28:4), 죄 지으면 천벌 받는다(욘 1:14) 따위..
민족이나 시기에 따라 경륜은 차이가 날 수 있지만, 각 개인의 선악 관념과 구원의 길에 대해서는 하나님 역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평하게, 환경과 무관하게 배려하고 있다.

(2) 성경은 구원자로서의 예수 얘기만 양보 없이 배타적이지, 나머지는 심지어 "나쁜놈이라 할지라도 자기네 기준으로 잘하는 거, 맞는 말 하는 게 있으면 너도 인정하고 배워라" 이런 실용적인(?) 논조이다.
"뱀처럼 지혜로워라"라든가, 눅16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횡령이라는 짓거리를 본받으라는 게 아니라 그 준비 정신을..), "바리새인들이 하는 말은 듣고 행동은 본받지 마라" 이런 여러 예들을 보면 유추할 수 있다.

(3) 성경엔 이스라엘 민족의 입장에서 가나안 땅에 쳐들어가라, 이방 민족들을 멸절시켜라~~ 이런 얘기가 역사서에 많이 기록돼 있다. 물론 그건 그 이방 민족들의 죄악에 대한 심판이었으며, 반대로 이스라엘 역시 죄악 심판을 엄청 많이 처절하게 당했다. 오히려 선민이기 때문에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받은 것도 있다. 그러니 이건 하나님이 불공평 편파적인 게 아니다.

5. 황금률, 이타주의

세상엔 "자기가 대접받고 싶으면 너도 그만큼 남에게 대접해 줘라"라고 이타주의..라기보다는 쎄임 쎄임 상호주의를 말하는 격언이 있다. 공자 논어에도 비슷한 요지의 문구가 있지 싶다. "니가 싫어하는 것이라면 남에게도 떠넘기지 마라"라고 말이다.

이건 "자유(혹은 권한,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 "주장에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비판에는 대안이 있어야 한다"처럼 특정 종교나 이념을 떠나서 수학· 논리 차원에서 매우 합리적이고 정당한 법칙이다. 그래서 그런지 세상에서는 이걸 '황금률'이라는 뽀대나는 타이틀을 붙여서 부른다.

심지어 성경에서 예수님도 마 7:12 (+ 눅 6:31)에서 이 개념을 언급하셨다.
(1) 하나님 사랑과 (2) 이웃 사랑이 율법을 다 요약한 핵심이라고 공관(=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명시돼 있는데, 황금률도 나름 그 정도로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사상이라는 것이다. 마 22:40과 마 7:12를 비교해 보시라.

물론, 황금률은 좋은 도덕 계명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질 수는 없다. 이건 적당히 합리적인 것, 의로운 걸 추구하는 일반 불신자 이방인이라도 얼마든지 똑같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뭔가 마 5:46과 비슷한 구도가 된다.

다만, 마 7:12 주변은 "남 눈치 보면서 먼저 받을 생각만 하지 말고, 니들이 먼저 과감하게 베풀어라... 얼마나 과감하게? 니가 남으로부터 받고 싶은 만큼!! 쎄임쎄임 선순환을 너희가 먼저 시작하라~ 베풀고 나서 못 돌려받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를 하지 마라~" 라는 뉘앙스가 들어있긴 하다. 그래서 단순한 상호주의보다는 이타주의 뉘앙스가 더 느껴진다.

6. 하나님 사랑 vs 이웃 사랑

성경에서 하나님 사랑은 '니 온 마음과 힘을 다하여'라고 구체적인 방식을 명시하고 있는 반면.. 이웃 사랑은 '니 자신을 사랑하듯이'..라고 단순하게 수식하고 있는 걸 주목해 보자. 굉장히 세심하게 차이를 둔 워딩인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건 직관적으로 잘 되지 않는다. 그러니 뭔가 믿음 행사가 필요하고 니 육신적인 본성을 거슬러서 뭔가를 하는 쪽으로 유도했다.

그러나 나와 똑같은 레벨인 이웃 사랑은..?? 니 자신을 꾸미고 치장하고 맛난 거 먹이고 좋은 체험 시키는 것과 똑같이 하면 된다고.. 이기주의를 그대로 직관적으로 투영시켜서 이타주의를 설명한 것이다. 하나님 사랑을 그런 식으로 실행할 수는 없지만, 이웃 사랑은 그런 식으로 하면 되니까. ㅋㅋㅋ 흥미롭다.
그리고 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같은 책에서 동시에 등장하지 않았다. 전자는 신명기에서 거듭 거론되는 반면, 후자는 의외로 레위기 19장이 최초이다(18, 34절).

여담으로.. 성경에서 the law와 the prophets가 나란히 등장했다면 이건 모세오경과 선지서.. 라고 구약 성경 전체를 관용적으로 일컫는 문구라고 보는 게 좋을 것이다. 즉, law가 비인칭인 것처럼 prophets도 비인칭인 것이다.
마 5:17과 마 7:12는 동일한 개념을 가리키는 셈이다(율법을 포함해 성경을 폐하러 온 게 아니라 성취하러 왔다). 우리말 성경 중에는 한킹이 나름 이 관점을 반영해서 번역했다.

7. 기타

(1) 지금까지 나왔던 여러 얘기들을 한데 정리하면..
성경은 죄, 심판, 구원에 관해서는 결과 지향적이다. 그러나 그 뒤의 상급은 동기· 과정 지향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부자의 거액 헌금보다도 과부의 2렙돈 헌금이 더 값지다고 평가하신 것이다. 이런 거 평가는 어떤 형태로든 절대 공정하다. 환경 탓, 가정 환경 탓을 할 여지가 절대 없다.

(2) 성경은 "십자가 다음에 왕관, 영광" 주의이고, "작은 것에 먼저 충실해야 나중에 더 큰 것이 맡겨진다"의 신봉자이다. 이 원칙이 그야말로 철칙이다.

(3) 오· 남용되는 일이 없어야겠지만 "보이지 않는 믿음은 보이는 행실로 드러난다" 주의를 지지한다.
성경이 말하는 신의 존재나 사후 세계 같은 것은 일단 과학으로 증명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에 일단 증거 없이 믿어야 한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지는 각종 교리들은 일말의 논리와 일관성과 형평성이 있다. 믿어야 하는 공리들이 인간의 보편적인 양심마저 저버릴 정도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황당무계한 반지성주의 맹신 광신 급이 절대 아니다.

물리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 어느 정도 인과? 상관관계가 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불신자들도 니들이 그리스도의 제자인 줄 알게 될 것이다." / "영적인 것을 먹이는 사역자가 물질적인 보상 받는 것은 합당하다." / "사형수도 용서받고 구원은 받지만 그 대신 교수대에서 꽤꼬닥은 하고 가는 게 합리적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 정도 보장은 돼 있기 때문에 충분히 믿을 만하며, 이래도 믿지 않은 것은 안타깝지만 완악한 죄라고 간주할 수 있다. 그게 아니었으면 난 이렇게 기독교 관련 글을 남들 보라고 못 올린다~!

Posted by 사무엘

2024/04/05 08:35 2024/04/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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