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 한번씩 했던 말들이긴 하지만 그걸 이런 식으로 나열하고 한데 대조· 비교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주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니 이렇게 한번 더 개념을 정리하도록 하겠다.

1. 비킹: 예정 vs 자유의지

난 기회가 된다면 킹 제임스 진영의 밖에 있는 제도권/일반 교회 신자와 다음 주제들에 대해 언제든지 진지하게 토론해 보고 싶다.

  • 님 다니는 교회· 교파에서는 예정과 자유의지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
  •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
  • 선과 악을 분간 못 하는 어린 아기는 병이나 사고로 죽으면 어찌 될까? 이런 의문에 대한 댁들의 생각은 어떤가..?

난 이 주제에 대해 극도로 단순화시켜서 비약해서 말하자면..
"십자가 이전에는 알미니안(자유의지), 그 이후부터는 칼빈(섭리, 예정, 영원한 구원)"설을 개인적으로 지지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뜻을 분간한다.

성경에는 당연히 절대자 하나님의 주권과 재량, 예정이라는 게 있다.
그래서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마다 환경 처지가 제각각이고 신체· 지능 리소스도 제각각이다. 하루 종일 일한 품꾼이건 마감 1시간 전에 온 품꾼이건 동일한 일당을 받았다는 포도원 비유도 있다. 모태신앙 구원도 있고, 십자가 강도 같은 끝물 구원도 있다.

(1) 그러나 이건 개개인의 구원 여부가 엿장수 마음대.. 아니, 하나님 마음대로라는 얘기가 아니다.
미리 아심도 있고 구원받은 사람의 신분 변화가 '예정'된 건 있지만, 그게 로보트 마냥 개개인의 구원 여부를 말하는 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예정을 수학 집합에다 비유하자면 원소나열법이 아니라 '조건제시법'이다. 울나라 법에다 비유하자면 특별사면이 아니라 일반사면을 말하는 거다.

"파라오의 마음을 더 강퍅하게 만들겠다" 이건 스스로 삐딱서니 타기 시작한 악인의 벡터의 크기 정도나 하나님이 더 키워 버리시겠다는 얘기이다, 아예 벡터의 방향을 마인드 컨트롤 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시험이나 함정수사는 기회제공일 뿐, 아예 대놓고 죄 지으라고 꼬드기는 범의유발이 아니다.

어떤 경우건 "신이 누구누구는 처음부터 죄인 역할극을 하게 만들려고, 지옥불로 떨굴려고 창조했다", "하나님이 악도 필요해서 같이 창조했다" 같은 식의 결론은 난 절대절대 지지하지 않는다.

아 그래서 하나님이 악도 필요해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독가스실도 냅두고, 북괴 정치범 수용소도 저렇게 냅두고 731 부대와 캄보디아 킬링필드도 다 묵인한 건가?
그러면 죄의 책임이 인간이 아니라 신에게 있는 꼴이 된다. 그런 하나님 믿으라고 불신자한테 복음을 참 잘도 전할 수 있겠다.

저걸 믿을 바에야 차라리 진화론이 낫다!! 진화론은 "서로 죽고 죽이고 속고 속이고 중독시키고 말려 죽이는 자연의 적자생존 약육강식을 신이 만든 게 아니라면 오랫동안 스스로 진화해서 저리 된 거다"라고 이렇게 변명하는 거라도 있다! 알겠는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죄악까지 전부 하나님이 의도한 빅픽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건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착각하는 거다.

(2) 이와 같은 맥락으로.. 아기· 영유아가 병이나 사고로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가 도대체 신학적으로 왜 논란이고 논쟁거리인지 난 이해되지 않는다.
예수님 탄생 당시에 헤롯 왕에게 학살당했던 2살 이하 아기들이 다 원죄 때문에 지옥 갔다면.. 나는 정말 기독교 안 믿었을 거다. 나부터가 부끄러워서라도 그런 신 믿으라고 주변에 못 전한다.

성경에 따르면 그 어떤 흉악범죄자라도 회개하고 예수 믿으면 죽어서 천당 갈 수 있다. 반대로 예수 안 믿고 자기 죄 가운데 죽었다면 그 범죄자를 체포한 경찰이나 사형 판결을 내린 판사 검사, 심지어 그 범죄자에게 희생당한 피해자라 해도 지옥 간다.
이건 불신자 입장에서는 선뜻 동의나 납득이 안 될 수 있지만, 이게 기독교 교리이다. 허나, 이런 기독교조차도 예수님을 선택하거나 거절할 능력조차 아직 없는 아기까지 몽땅 지옥으로 보내는 미친 짓거리는 하지 않는다!

(3) 내가 간극 재창조를 적극 지지하는 이유도 겨우 젊은 지구 오래된 우주 같은 과학 연대기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6천 년 전 6일 창조가 전부라면 사탄 마귀는 도대체 언제 창조됐고 언제 타락했는데? 인간은 죄를 짓는 바람에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후손들이 대대로 고생하게 됐구만, 그럼 저놈은 언제 어디서 반역해서 무슨 처분을 받았는데? 최소한 인간보다는 훨씬 더 큰 스케일의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는가?
이게 이전 세상의 멸망과 간극 없이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러니 성경에는 하나님의 주권 예정도 있고, 인간 쪽의 자유의지도 있다. 가중치가 반반이고 상호 보완적이다. 마치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 세 분과 한 분.. 빛의 입자성과 파동성.. 거의 그런 급이다. 서로 자기만 옳다고 피터지게 싸울 주제는 아니어 보인다.

이것 말고도 킹 진영과 비킹 진영 간에는 교회와 이스라엘(유대인)의 관계, 전천년주의 vs 무천년주의 같은 관점도 차이가 있다. 더 깊게 들어가면 세대주의도 나온다만, 이 이슈는 이 글에서는 일단 논외로 하련다. 벌써 글이 너무 길어졌으니 말이다.

2. 킹: 영어 vs 원어

자, 킹 제임스 진영은 한킹이고 흠정역이고 표킹이고 어느 역본 진영을 가건, 위에서 논했던 저런 교리 문제는 그럭저럭 다 일치한다. 이견이 없고 교통정리가 돼 있다. (적어도 난 그런 걸로 알고 있음) 나는 저 관점이 매우 합리적이고 건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좁디좁은 진영을 지지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킹 제임스 진영들이 시급하게 필요한 게 뭐냐 하면.. 원문과 원어, 원어와 영어 사이의 개념정리 교통정리이지 싶다.
이게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자체적으로 승패가 가려지질 않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작은 킹 진영들이 더 쪼개지고 분열되는 거다. 그러면서 자기 역본이 제일 짱이네 하면서 도토리 키 재기 대립이 끊이질 않는다. 이거 심각한 지경이다.

일단, 원문 레벨은.. 정말 더 말이 필요하지 않다.
루터고 칼빈이고 옛날 종교개혁자 대선배들은 마 5:22가 "누구든지 자기 형제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화내는 자"라고 적혀 있는 바른 본문 계열의 성경을 봤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오늘날의 비킹들은 그렇지 않다. 그냥 무조건 화내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다.

요일 5:7 요한의 콤마 삼위일체 구절도 마찬가지. 비킹이 삭제한 게 아니라 오히려 킹이 후대에 첨가한 거라고 반박하는 분도 있다. 근데.. 이때는 킹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아예 가톨릭 예수회의 두에 랭스 성서조차도 이 구절이 들어가 있었다. 빼면 뺐지 도대체 누가 언제 왜 뇌피셜을 펼쳐서 첨가를 했다는 말인지..??

킹 유일주의를 반대하고 반박하는 그 어떤 목사, 신학자도 벧전 2:2가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영적으로 자라려면"이 틀렸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려면"이 사본학적으로(?) 맞다고 자신의 학자적 양심과 손모가지를 걸고 맹세하는 사람..? 난 못 봤다.

이런 것들 말이다. 이건 번역 오역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원문 내용이 변개되고 달라진 사항이다. 다시 말하지만 옛날 칼빈이나 루터나 에라스무스 이런 사람이 번역했거나 봤던 성경이랑, 지금 현대인들 대다수가 보는 성경이 이런 건 서로 같지 않다.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나는 킹 쪽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말씀 보존 학회가 다른 행실이나 언변에서 제아무리 깽판을 쳤어도 걔네들이 이 주제에 관해서 말하는 건 절대적으로 맞다. 나는 저쪽을 지지한다.

자 여기까지는 한킹 흠정 표킹 어느 진영들도 일치한다. 그러나 그 뒤에 번역을 함에 있어서 영어와 원어의 비중을 서로 어떻게 둘 것인가 하는 것에서 또 예송 논쟁 노론 소론, 탕수육 부먹 찍먹 같은 당파싸움이 벌어져 있다.

내가 예전에도 말했지만, 이 바닥 대안 성경 1호라 할 수 있는 말보회 한킹은 영어 킹을 그대로 곧이곧대로 중역한 성경이 아니라, 영킹과 동일한 원어 대본을 번역하고 영킹을 일부 참고만 한 성경이다. 그래서 여기에 만족하지 못해서 원어 누룩(?)을 좀 뺀 게 흠정역이고, 흠정역보다도 더 과격하게 영어 직역을 추구한 역본이 표준역.. (심지어 도량형까지 마일, 파운드 그대로 썼을 정도로. =_=)

예를 들자면 "영어로 같은 단어이면 우리말로도 (가능한 한 어지간해서는 몽땅) 다 같은 단어로 번역돼야 한다", "it came to pass도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 "God forbid는 하나님이 금하신다라는 뜻을 넣어서 번역해야 한다" 이런 거 말이다. 영어 KJV는 영어권 화자에게만 최종 권위인가, 아니면 원어 원문과 대등한 전세계의 최종 권위인가???

사실 성경 원어 원문은 우리 생각 이상으로 꽤 함축적이고 모호성이 많다. 뜬금없이 나오는 it he 대명사가 뭘 가리키는지 애매한 게 많고, 시제가 과거 미래 중 뭔지, 대화 인용이 어디까지이며 어디부터가 내레이터인지.. 알쏭달쏭한 게 많다.
이런 부분에서 한킹은 영킹과 자잘하게 미묘하게 일치하지 않는 게 있다. 그러니까 오역 변개는 분명 아닌데 어쨌든 영킹과는 미묘하게 다른 이게 오로지 영킹 최종 권위 순수주의(!!!) 성향인 분들한테는 성이 안 차는 거다. =_=;;

그럼 원어가 헷갈릴 때는 무조건 영킹대로 번역만 하면 되느냐? 그런데 영어는 또 영어만의 중의성이 있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자면 전치사. for을 '위하여'라고 할지, '인하여'라고 할지?? of나 in은 또 얼마나 뜻이 다양한가?
제아무리 교리적인 편견 없이 기계적으로 곧이곧대로 번역만 했다고 한들, 교리와 해석을 전혀 가미하지 않고 번역을 옳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킹 제임스 영어는 현대 영어와는 뜻이 달라진 것도 여럿 있고, 이럴 때도 번역자의 해석과 취사선택이 필요하다.
제아무리 영킹이 단어 뜻을 스스로 정의하는 내장사전이 있다고 하더라도, 반대로 엄밀한 뜻 구분 없이 단순히 운율이나 패러프레이징 차원에서 비슷한 단어를 일부러 다르게 늘어놓은 것도 있다. slay와 kill, create / form / make 같은 거.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고 이 블로그는 킹이나 비킹, 심지어 불신자까지 다 보는 공간이니 내가 내막을 자세하게 다 늘어놓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거 상황이 생각보다 복잡하다. 앗싸리 오로지 영킹 그대로 번역만 할 수 있다면 모든 문제가 진작에 해결됐을 텐데 그것도 아니니 참 문제다.;;

그러니 이 동네에서는 아까처럼 예정이냐 자유의지냐 이런 거 논쟁은 할 필요 없고, 그 대신 비킹 입장에서는 정말 상상도 못 할 희한한 주제를 갖고 논쟁을 벌이는 지경이다.

아 끝으로.. 영킹에 하나님 영감이 또 짠~~ 임했건, 자필원문에 임했던 영감이 번역과 필사 과정에서도 쭉 내려오고 '보존'되어 왔건.. 결과물은 어쨌든 지금 우리말 성경도 영감으로 주어져 있다는 얘기 아니냐?
이거 갖고도 너무 쓸데없이 머리 쥐어뜯고 싸우지는 말자구우~~ 아멘!

Posted by 사무엘

2024/10/30 08:35 2024/10/3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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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편

성경의 시편은..

  • 하나님 쪽은 내가 죄 때문에 너무 더러워서 차마 나아가기가 민망하고
  • 인간 쪽은 당장 악인 원수들로부터의 해코지가 두렵고..

이렇게 양측으로부터 샌드위치 신세가 된 사람의 처절한 고뇌가 많이 담겨 있다.

물론 시온이 어떻고 땅 상속이 어떻고 하는 건 구약 관점의 보상 얘기이다.
원수에 대한 저주나 보복이 종종 언급되는 건 하나님 관점 내지 재림 관점에서이다. 신약 크리스천의 행실 교리로 참고할 사항은 아니다.

허나, 신약 크리스천도 정규분포 안에 드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적 전쟁을 치른다면.. 저렇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낀 시편 기자의 심정을 거의 똑같이 경험하게 되는 게 정상이다. 시편 얘기가 지금이라고 해서 별개가 절대 아니다.

죄에 대해서 "그래서 뭐 어쨌다고? 어차피 남들도 다 똑같이 하는데?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잖아? 니 혼자 도도하게 굴어 봤자 밥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이렇게 치부하는 게 아니라~~~
"이런 죄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구나~! 이런 죄를 지은 대가가 누군가의 피흘림과 죽음이구나! 이런 더러운 마음 상태로 어찌 주 앞에 나아갈 수 있으리요?"

이렇게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같이 싫어하는 거.
"세상에서 부귀영화 누리면서 1천 일보다, 주와 함께 초막에서 단 하루가 더 낫다~~ 금은보화보다 더 낫다"
이러는 그 심정, 그 영성을 시편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이건 정말 평범한 상태로 기록할 수 있는 시가 아니다.

복음서 이후 신약 성경의 상당수를 바울이 기록했다면, 시편 대부분은 다윗이 기록했다.
왜 하나님이 다윗을 사용하셨는지(한때 간음 살인이라는 흉악한 죄를 지었는데도), 반대로 사울이 인간적인 평가 대비 하나님이 왜 학을 떼 버리셨는지?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다.
이래서 성경은 겨우 인간의 생각대로 막연하게 “그냥 우리끼리 차카게 살자” 스타일로 써 갈긴 책일 수가 없는 것이다.

2. 찬송가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들 중에는 작사자가 주변 가족, 친지, 연인을 질병이나 사고로 잃고 나서 극심한 슬픔과 고난 가운데 가사를 지은 것이 여럿 있다.

(1)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 내 영혼 평안해 (호레이쇼 스패포드)
작사자의 4살짜리 아들이 병으로 죽고, 나머지 네 딸들을 여객선 충돌 사고로 모조리 익사.. (19세기 말. 인제 증기기관 여객선이란 게 처음으로 등장했던 시절임)

(2)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조세프 스크리븐)
작사자의 약혼녀가 결혼식 바로 전날에 강물에 빠져 익사함. 그 뒤 모친이 중병에 걸려서 위독하다는 소식까지..

(3) Near to the Heart of God (Cleland B. McAfee)
작사자의 어린 조카딸 2명이 디프테리아에 걸려서 죽음 (19세기 말, 이런 후진국형 전염병이 아직 현역이던 시절)

(4) 그 날 다가오네 - 얼마나 영광스러운 날일까 (제임스 힐)
작사자의 장모가 갑자기 근육마비에 걸리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남

이것 말고도 다른 예들이 또 있겠지.
본인은 교회에서 집회 전 준비찬송을 인도할 때 가사 내용이 서로 비슷한 거, 조나 박자가 비슷한 것, 단조로만 이뤄진 것, 혹은 뒤에 이어질 설교 및 강의 주제와 관련 있는 것, 후렴에 ‘주여’가 나오는 거, 같은 작사-작곡자 쌍인 것 이런 것들을 묶어서 편성해 봤다.

그랬는데 한번은 "작사자가 가족· 친지를 잃고서 지은 곡들"만 골라 보니 저렇게 아주 그럴싸한 조합이 나왔다. 심지어 카테고리도 기도와 간구, 위로와 평안, 천국과 재림 이렇게 다양하다.
물론, 그 특성상 즐겁고 경쾌한 곡은 별로 없고 장송곡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저런 찬송가를 굳이 장례식장에서만 불러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3. 여담

- 성경에 주석 성경이 있다면 찬송가에는 해설 찬송가가 있다. 원래 영어가사라든가 이 곡이 만들어진 계기와 배경과 사연, 작사자와 작곡자에 대한 신상 정보 같은 것들을 알면 그 곡에 대한 애착이 더 생길 수 있다.
물론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 검색으로 저런 것들을 대번에 다 찾아볼 수도 있지만 말이다.

- 요즘 사람들은 아예 19~20세기 클래식 찬송가가 아니면 마커스니 어쩌구 하는 2010년대 이후 CCM이다.
그 사이에 낑겨 있는 1980~90년대 초창기 CCM/복음성가는 차차 잊혀지고 못 들어 본 세대가 늘어나는 것 같다. =_=;;

- 성경에 따르면 철저하게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먼저 구하라", "하나님 사랑" 그 다음에 "이웃 사랑"이다. 비싼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 자선을 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 발에다가 향유를 끼얹어 버린 것은 허비 낭비가 절대로 아니었다. 정반대.. 주님이 귀하게 받으시는 경배로 인정됐다~!!

- 사도행전에 기록된 베스도와 아그립바(행 26:24,28)의 반응은.. 오늘날에도 복음을 거부하는 불신자들의 전형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정말 동일한 패턴이다.

- 성경에 기록된 기도들 예시만 갖고도 설교나 강해를 하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다니엘서 9장이나 사도행전 4장은 고난이 깃든 가운데 정말 기도를 예쁘게 잘한 것이다. 왕상 8 솔로몬의 기도도 이런 범주에 들까?
그에 비해 삼손이 죽기 전에 남긴 마지막 기도는.. 그냥 안습하고 처절한 기도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9/13 08:35 2024/09/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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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관련 개드립들

1. 세상 학문과의 관계 #1

- 성경 수비학의 관점에서는 3이나.. 특히 7이 완전한 수라고 간주된다.
그러나 수학에서 말하는 perfect number 완전수는 6, 28 같은 수이다. (자신을 제외한 약수들의 합이 자신과 같은 수)

- 성경에서 말하는 tree of life는 에덴 동산에 있었던 생명나무.. 그야말로 환상의 아이템이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에서 말하는 tree of life는 생물들의 진화 계통을 나타낸 트리 네트워크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세상 역사에서 말하는 그리스 아테네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수학· 기하학이 발달하고 헬라 문화가 태동하고 민주주의가 발생했던 곳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그리스(헬라)나 알렉산드리아의 평판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급이다.

2. 세상 학문과의 관계 #2

계 7:1 땅의 네 모퉁이를 보고는 “성경에 따르면 지구는 평평하다”라고 어거지 부리는 건..
대하 4:2 같은 구절을 근거로 “성경에 따르면 원주율은 3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과 아주 비슷해 보인다. =_=
(거대한 원형 놋쇠 대야--솔로몬의 바다--가 지름은 10큐빗인데 둘레가 30큐빗이라고 나와 있음)

나는 성경에 수학· 과학적으로 고증오류가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전혀 아니다.
성경은 수학· 과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책이 아니며, 과학 저널 논문 문체가 아니라는 거.
오히려 수학· 과학의 영역 밖의 초월적인 주제를.. 문과 이꽈 불문하고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용어와 문체로 다뤘다는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과학과 접점이 있는 주제를 언급한다면 그건 절대로 오류가 없이 맞다는 거. (예: 흐르는 물에다 손 씻으라는 권면 하나만으로도 엄청 시대를 앞서갔었음)

이렇게만 알면 된다.

3. 난폭운전

오~~ 성경에도 난폭운전이란 게 있구나!! 완전 마음에 든다. ^^

"저 사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병거를 모는 폼이 님시의 아들 예후 같습니다. 그 친구는 평소에 병거를 미친 듯이 격렬 난폭하게 몰잖아요." -- 왕하 9:20

심지어 영어로는 furiously이다...!!!
분노의 질주 fast and furious 할 때의 그 단어이다. 내 차에다 인쇄해서 붙여 놓을까 보다.
주변 옆 차로는 씽씽 잘 가는데 내 차로만 못 가고 멈춰 있는 걸 차마 눈 뜨고 못 봐 주는 것.
바로 이것이 모든 과속 난폭운전의 기본 발상이다.

4. 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왓~~ 문구가 대박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도대체 어디서 만들었냐??
이제 전도서 3장을 읽다 보면 이태리타올이 생각날 것 같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5. 색깔

사용자 삽입 이미지

blue, purple, scarlet.
어쩌다 보니 집에 진열돼 있는 수건들의 색깔 순서가 출애굽기 성막을 떠올리게 한다..!!
성경 덕후는 별의 별 현상이나 패턴을 보고도 성경과 연관시킬 수 있다. ㅋ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24/09/05 08:35 2024/09/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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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남녀 질서

* 이런 고리타분하고 기초적인 주제에 대해서 지난 10여 년 동안 내가 이 블로그에 글을 쓴 적이 없었던가 보다. 지금 생각날 때 써서 올린다~!! ^^

...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 (고전 14:34)
나는 여자가 가르치는 것이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 (딤전 2:12)

이거는 다른 가장들(기혼 남자)까지 한데 모여 있는 교회 내부 집회에서 그 회중을 대표하고 인도하는 활동이 여성에게 일단 불허라는 뜻이다. 설교는 말할 것도 없고 대표기도 같은 것도 말이다. (딤전 2:8)

그러나 여자는 성인 남자가 아니라 어린애들을 가르치는 건 당연히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주일학교 교사..!!
애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이가 찬 미혼 자매들에게 훈수 놓는 것도 할 수 있다. 여자는 일체의 권위를 절대 행세하지 못하고 닥치고 입 다물라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글쎄, 음대 나온 자매가 성가대에서 성인 남자들까지 가르치는 거는? 조금 수위가 높아지지만 그것까지는 괜찮다고 본다.
성가대 연습은 공개적으로 행해지는 게 아니고, 찬양 중에도 지휘자가 혼자 드러나고 주목받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예 불신자 남성을 초청해서 지휘할 바에야 믿는 자매가 훨씬 낫다.

그리고 이것도 내 뇌피셜이다만.. 남자고 여자고 성인 청년이지만 다들 미혼인 파라처치/선교단체의 예배라면 찬양인도나 대표기도 정도는 자매도 못 하란 법 없다고 본다.
어차피 다들 미혼이고 인원부터가 성경이 상정하는 일반적인 정규분포 구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 애매한 상태이다. 뭐 그런 식이면 요즘처럼 이렇게 결혼을 안 하거나 너무 늦게 하는 풍조도 총체적으로 다 비정상이긴 하지만..;;

성경에서 인간의 위계질서를 논하면서 남자를 여자보다 더 우선시하는 건 기혼이 전제됐을 때의 얘기이다.
남자여서 예우받는 게 아니라 가장이어서 예우받는 거다. 그 가장 역할을 남자가 맡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남자가 예우받는 듯이 보인다. 내가 알기로 논리가 그렇다.

끝으로..
교회 안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자기를 드러내고 복음 전하는 것에는 당연히 남녀노소 구분이니 위계질서니 없다! 누구나 해야 한다.

나는 세상 법에서 이거랑 비슷한 법리가 적용되는 게 요거라고 생각한다.
"현행범인은 누구든지 영장없이 체포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212조)
우리나라의 법은 사적제재를 절대 금지하고 정의 실현은 오로지 경찰과 사법에다가만 위임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당장 음주운전 차량을 세우고 차키 뺏고 운전자를 팔 꺾어서 제압하는 것 정도는 사법 수사권이 없는 그 누구에게라도 허용해 준다.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허용해 준다. 당연히 진짜 경찰이 올 때까지 일시적으로만 말이다.

  • 당장 사람을 해치려 하는 중범죄 현행범은 그 누구라도 제압이 허용되듯이, (그 뒤 신속히 경찰에게 인계)
  • 의사나 정식 구급대원이 환자를 완전히 인계하기 전까지는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이라도 CPR을 잠시라도 중단하지 말아야 하듯이,

여자라도 교회 강단에서 설교를 안 할 뿐이지, 세상을 향한 복음 선포는 저것과 동급으로 시급하게 해야 한다.
이거는 "여자는 잠잠하라"가 적용되는 상황이 전혀 아니다. 애초에 교회 안이 전혀 아닌걸..

개인적으로 여자 목사는 바람직하지 않고 교리적으로 잘못됐다는 소신이다. 물론 그 여성도 신학 공부 많이 했고 성경 많이 알고 어지간한 남성들보다 훨씬 더 똑똑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녀는 강단에 서는 목회 말고 다른 방식으로 주의 일을 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허나, 이와 별개로.. 자기는 남자로서 그리스도인의 본분을 다하지도 않는 주제에 다른 바람직한 자매를 보고 "어디 여자 주제에 나댄다" 이런 미친 소리를 함부로 하는 것 역시 본인은 완전 극혐한다.

※ 여담

(1)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와 더불어 성경이 남녀 차별적이라고 비판(?)받게 만드는 양대 구절은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이다. 이거는 교회 잠잠보다도 버전보다도 더 쉽게 논파할 수 있다.
성경에는 그 구절 바로 다음엔 "남편은 자기 아내를 목숨 바쳐 사랑해 줘라~ 모질게 대하지 마라"도 있는데?
남자 쪽 조건은 싹 무시하면서 여자 쪽 조건만 들이대는 건 그 사람의 논리가 잘못된 거다. 성경은 결코 편파적이지 않다. 가정에서 역할의 차이는 우열 차이 내지 계급 차이가 아니다.

(2) 로마서 16장에 나오는 뵈베를 신약 교회 최초의 '여자 집사'로 만들고 싶어서 저 사람이 deacon이었다고, 헬라어 원어로는 집사라는 뜻도 된다는 얘기가 종종 나돈다. 심지어 요즘 성경들은 번역 자체가 그렇게 되는 편이다.
남자 집사는 스테판이고 여자 집사는 뵈베인 거냐? 뭐, 성경 번역에 대한 최종 권위가 있는 사람에게는 이건 그다지 영양가 있는 낭설이 아니다. 뵈베는 지역 교회를 섬기는 주님의 종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3) 바울 서신서에 나오는 "형제들아"가 요즘 성경에서는 "형제 자매 여러분"으로 바뀌는 추세이다. 우리말 성경은 무려 30여 년 전의 표준새번역에서 이런 양성평등 시도가 행해졌다.
저 brethren 형제는 마치 '청년'이나 영어 man처럼 기본적으로 남자사람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여자까지 포함하는 그런 사람 집단을 말한다. 말을 꼭 그렇게 바꿀 필요가 있는지?

성경도 필요할 때는 일부러 남자와 여자를 콕콕 찝어서 저격하기도 했다. 약 4:4 "너희 간음남과 간음녀들아" 말이다. 시쳇말 좀 쓰자면 "이 간음하는 연놈들아" 같은 뉘앙스다.
그런데 여기서는 킹 외의 변개된 역본들은 남자를 빼고 간음녀만 들어있다! 아니면 성중립 차원에서 "간음하는 사람들아"가 고작이다. 마치 요한복음 8장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 이야기에서 남자는 없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8/28 19:35 2024/08/2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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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은 참 공교롭게도 국내의 여러 킹 제임스 진영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찬송가를 제각각 편찬해 냈던 해였다.

(1) 영광을 주께 2판 (초판은 2002년쯤에) -- 말씀 보존 학회
(2) 마제스티 찬송가 -- 사랑 침례교회
(3) 복음 찬송가 2판 (초판은 2009년쯤에) -- 타 독립 침례교회 진영에서. 2022년인가 23년쯤엔 3판도 나왔음.

이렇게 찬송가를 따로 만드는 이유는.. 기존 통일찬송가/새찬송가 가사가 교리적으로 만족스럽지 않거나 심지어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려고, 주요 신학 용어 구분을 더 엄밀히 하려고, (영 vs 혼, 천국 vs 하나님 왕국 등등) 성경 구절 인용 가사를 자기네 역본에 더 맞추려고~~ 등의 명분 때문이다.

'교리적으로 만족스럽지 않거나 심지어 잘못된 부분'이 뭔지를 물으신다면..
구원의 상실 암시라든가 단순 신세 한탄(...), 직통계시 은사주의라든가 후천년주의 종말론 뉘앙스가 느껴지는 것 말이다.
당연히 "돈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라든가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이런 가사는 교리적으로 문제될 게 단 1도 없다. 하지만 찬송가에 그렇게 명확한 가사만 있는 건 아니어서 문제다.

그리고 이런 독립 침례교 쪽 찬송가는 성탄절을 안 지킨다는 특성상, '탄생' 카테고리의 곡이 아주 적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교리적으로 별 영양가가 없으니 저 찬송가들엔 어디에도 실려 있지 않고..
기껏해야 '천사들의 노래가', '하늘에 찬송이 울리던 그 날' 정도만 살아남았다. 그나마도 예배 때 불릴 일은 없다시피하다.

마제스티는 기억이 안 난다만, (1)은 '침례교 찬송가'가 베이스이고, (3)은 기존 통일찬송가(후대에 개정된 새찬송가가 아님)를 베이스로 삼았다. 무엇을 베이스로 삼느냐에 따라 '참 즐거운 노래를'의 조가 Eb 장조 또는 F장조로 달라지고, '그 참혹한 십자가에'가 G장초 또는 Ab 장조로 달라진다.

개인적으로는 퀄리티는 (3) 복음찬송가가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클래식 찬송가뿐만 아니라 20세기 중후반의 복음성가 내지 올드 스타일 CCM까지 다 수록해서 곡이 제일 많다. 나머지 두 찬송가는 4~500곡 수준인 반면, 얘만 1200곡에 달한다. 그리고 그리고 거의 모든 악보에 반주 코드가 꼼꼼히 적혀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공식 홈페이지가 있어서 악보 조회와 가사 검색이 가능하고, 주요 교회들로부터 수집한 음원까지 제공된다.

왜, 기존 통일찬송가 / 새찬송가만 해도 생존해 있는 편찬위원의 창작곡이 몇 곡 수록돼서 호불호가 갈리곤 한다.
그것처럼 킹 진영 찬송가들도 각 진영별로 자기 진영 목사가 작사· 작곡한 창작곡이 수록된 경우가 있는데..
이런 쪽의 저변도 (3)이 가장 넓다. 유 진선, 구 정민, 임 동선, 박 노찬(대체로 번역)..

(1)은 초판에서는 김 기준, 2판에서는 조 동화(작사만)를 볼 수 있다. 조 동화는 '나 하나 꽃 피어'라는 시로 세상에서도 유명한 그 시인· 교사 겸 목사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현재는 저 두 분이 모두 말보회를 떠나 있다는 거. 미래에 영광을 주께 3판이 나온다면 거기서는 조 동화 작사 찬송가까지도 아마 없어져 있을 것이다. 저 동네는 일을 처리하는 게 대체로 저런 식이어서.. -_-;;

(2) 마제스티 찬송가는 자기 진영 창작곡이 수록된 건 딱히 없는 걸로 나는 알고 있다. 그 교회 덩치와 인재풀이면 가까운 미래의 2판, 3판에서는 자체 창작곡이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단, (2)에는.. '킹 제임스 바이블 쏭'이라는 노래가 끝에 번역 수록돼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내게 읽어 주신 책~~" 이렇게 시작하는 가사 말이다.

참고로, 본인의 여친의 동성 절친..이 저 마제스티 찬송가의 교열에 참여했었다. 음악 계열 전공자인 관계로.. 그래서 머리말/감사의 글에 이름이 실려 있다. ㅎㅎ

만약 우리나라 킹 제임스 진영이 서로 에큐메니컬 운동(!!!!)을 한다면.. 이렇게 창작곡 찬송가 교류부터 하는 게 제일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한킹 쓰는 교회에서 상대방 구 정민, 유 진선 곡을 부른다거나, 흠정역 쓰던 교회에서 김 기준· 조 동화 곡을 부른다거나. 교리나 번역 때문에 싸울 일 없고 그것도 음악을 매체로 교류하니까 제일 거부감 없지 않겠는가.

아 물론 이마저도 당장 실현 가능성은 없다.. ^^
시간과 여건, 재정이 된다면 아마 표준역 쓰는 진영에서도 자체 찬송가를 만들 판이고, 말보회에서 기록말살된 목사님들도 자체적으로 찬송가를 만들려 한다. 아주 그냥 춘추전국시대가 따로 없다. ㅠㅠㅠ

* 여담: 찬송가 오마주를 넣은 CCM

한때 우리나라 CCM계에 송 명희와 최 덕신 콤비가 있었고,
19세기 말 미국에 패니 크로스비와 윌리엄 도언 콤비가 있었던 것처럼..
비교적 최근인 20세기 말에는 미국에 Nancy Price와 Don Besig이라는 CCM 작사 작곡자 남녀 콤비가 있었다.

이쪽은 작곡 스타일이 뭔가 진취적이고 웅장하고 감동적이다. 마지막 절에서는 조가 반음 올라가기도 한다.
이분들의 아주 대표적인 작품이 뭐냐 하면 “여기에 모인 우리 -- 이 믿음 더욱 굳세라”이다. 더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따끈한 1990년도 곡이지만 워낙 고퀄이니 개신교 새찬송가에 수록도 됐다. (620장)

저 콤비의 작품 중에 “주님께 감사 기도 드릴 때 / We are yours, Lord”가 있다.
국내에 많이 알려진 것 같지는 않지만.. 이것도 곡과 가사가 아주 훌륭하다.
언제적 작품인지는 인터넷을 도저히 뒤져도 안 나오는데.. 최소한 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형제
When we pray, we will pray with thankful hearts.
When we sing, we will sing with joyful voices.
When we serve, we will serve with willing hands.
For we are Yours, Lord. For we are Yours, Lord.

자매
When we speak, we will speak with loving care.
When we act, we will act with firm conviction
When we give, we will give with boundless joy
For we are Yours, Lord. For we are Yours, Lord. (☞ 음원 링크)


형제 파트는 경배의 태도이고 자매 파트는 행실의 태도인 걸 주목해 보라.
그런데 이렇게 한 파트가 끝나고 나서는 갑자기 분위기가 싹 조용하게 바뀌고 심지어 반주도 잠시 꺼지면서 아카펠라가 나온다. 저 영상에서 1분 45초 이후 지점부터이다.
Within this calm and peaceful place, near to Your heart, O Lord...

근데 얘는.. 알고 보니 Near to the heart of God이라는 1901년인지 1903년도 클래식 찬송가의 오마주이더라~! (☞ 음원 링크)
There is a place of comfort sweet, near to the heart of God
우리나라 개신교 찬송가에는 딱히 소개되지 않은 것 같다. 작사 작곡자는 Cleland B. McAfee라는 사람인데.. 나로서는 일단은 듣보잡(ㅠㅠㅠ)이다.;;

이게 참 신기한 게..
내가 이전에 다녔던 교회의 찬송가(복음찬송가 2판)에서는 We are yours, Lord만 수록돼 있고, 지금 다니는 교회의 찬송가(영광을 주께 1판)에는 Near to the heart of God만 있다.

처음 보는 찬송가 책의 악보를 읽고 있었는데.. 어 이거 낯설지 않고 어디서 봤던 멜로디이다.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전자가 중간에 후자를 오마주해서 넣었다는 걸 알게 됐다. 참 신기하다~! 예전에는 그게 그런 관계인 줄 알지 못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4/08/26 08:35 2024/08/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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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보회 한킹

말씀 보존 학회는 우리나라에서 바른 본문에서 번역된 성경이라는 걸 최초로, 가장 먼저 개척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킹이라는 성경도 면류관, 천국, 예수님 대신 예수, 길 대신 도(사도행전) 등 옛날 성경 용어가 남아 있어 좀 정겨운(?) 느낌이 든다.

얘들은 한킹을 다른 교회· 교단들에다가 전파하는 것보다는 독자적인 교회· 교단을 개척하려는 성향이 더 강했다.
모바일 생태계에다 비유하자면 애플의 맥이나 아이폰이 완전히 자기네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일체형인 걸 생각해 보시라. 이 송오 목사는..

  • 성경침례교라는 아이폰을 만들었고,
  • 그 하드웨어에서 돌릴 한킹이라는 iOS의 개발을 주도했다.
  • 그 뒤 그는 말씀 보존 학회라는 앱스토어를 만들었고,
  • 이를 토대로 세대적 진리, 럭크만 주석서 같은 다양한 앱을 출시했다.
  • 이런 조직과 교회, 성경, 서적을 통해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라는 여러 앱등이들을 양성했다.

이런 식이다.
스티브 잡스는 사업가로서는 혁신적이었지만 사석에서나 직장 상사로서는 X나 X랄맞은 인성과 싸가지를 자랑했다고 한다. 이 송오 목사도 이런 쪽으로 아주 악명높았었다.

쟤들은 자기 조직, 자기 교리 노선, 성경, 교회를 완전히 통합 일체형으로 본다. 사고방식이랄까 포교 전략이 저렇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저렇게도 독단적으로 구는 거다.

그래서 심지어 30여 년 전엔 자기들(만)이 대한민국 최초의 진정한 성경적인 신약 교회라는 드립을 쳤던 건 유명한 일화이고, 반대급부로 자기 교회에 있다가 나간 사람을 배교자라고 그렇게도 욕을 해댔다.
진짜로 순수하게 진리를 전하다가 부당한 박해와 배척 받는 거랑 그냥 혈기 깽판 부리다가 간증 잃고 욕 쳐먹는 걸 구분을 못 하고.. 심지어 탈퇴자한테는 자기네 성경을 쓰지 말라는 어이 안드로메다 급의 미친 소리까지 했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게 진짜 중요한 사항인데..
한킹은 킹 제임스라는 영어 성경을 중역했기 때문에 '킹'이라는 명칭이 붙은 게 아니다.

400년 전 잉글랜드 사람들이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할 때 쓰였던 그 바른 원어 원문(TR 공인 본문, 정통 맛소라)을 갖고,
마치 영킹을 만들듯이 우리말 성경을 만들었다..!! 도착어만 다르지 출발 원문이 영킹의 그것과 같다는 뜻에서 '한킹'인 것이다. ㄲㄲㄲㄲㄲㄲ

어, 써 놓고 보니 약간 진화론 얘기 같네..??
현대 진화론에서는 인간(한킹)이 원숭이(영킹)로부터 진화(번역)한 게 아니라..
인간과 원숭이가 같은 공통조상(히브리 헬라 원어)으로부터 진화했다고 말하니까 말이다! 딱 그 모양새이다!!!

한킹은 신약은 TR 원어 원문 기반(시민권)에다가 영킹 용어(이스터, 순교자 등)를 참고해서 만들어졌고,
오히려 구약이 영킹 중역(로뎀나무가 아니라 향나무)에다가 맛소라 히브리어 본문 용어(음부, 아세라)를 참고해서 만들어졌다.
후대의 그 어떤 성경도 채택하지 않은 특이한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_=;;

일각에서 모함하는 것처럼 "한킹은 킹 제임스 성경이 아예 아니다"는 당연히 아니다. 단지, 성서 초등학교 애들을 도롱뇽 소년이 아니라 개구리 소년이라고 불러도 문제 없는 거, 구치소 얘기이지만 교도소 일기라고 웹툰 제목을 붙인 거,
그리고 복음 전할 때 예수 안 믿으면 불못이 아니라 지옥 간다고 말하는 거(정작 영원히 있게 되는 곳은 불못인데)..

이런 관계일 뿐이다. 별개가 아니고 어차피 그게 그것인 관계이기 때문에 좀 더 인지도 높고 대중적인 명칭을 썼을 뿐이다. 차이라고 해 봐야 영킹이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을 묘사했다면, 한킹은 그게 결국 이런 뜻이라는 식으로 표현한 정도가 대부분이다. (자유-생활방식 → 시민권, 긴장하다 → 거르다, 작은숲 → 아세라)

1980년대에 이 송오 목사가 TR을 기반으로 코리언 성경 번역을 시작했다는 건 그 당시 미국의 KJV 옹호 진영에서도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피터 럭크만 같은 강성 영킹 유일주의자도 그에 대해서 "당신 왜 영킹에서 성경을 번역하지 않아?" 같은 문제 제기는 하지 않았다.
말보회 교회를 직접 다니는 사람들조차도 자기 교회 조직이나 성경책에 대해서 이렇게 애플에, 진화론에, 개구리 소년 비유까지 동원하면서 진지하게 깊이 고찰해 본 적은 아마 없을 것이다. -_-;;;;;

2. 표준역

표준역은 2020년대에 정말 젊은(나보다도 어린..!) 신학도가 과감한 영킹 중역을 표방하면서 편찬한 성경 역본이다.
우선 칭찬부터 하고 시작하자. 몇몇 일부 단어나 표현은 참신한 시도이거나 잘 번역한 것 있다.

- (가령, seek와 find를 찾다/발견하다 라고 구분해 준 것, win을 쟁취라고 시도한 것,
행 5:30을 단순히 "나무에 매달아 죽인"이 아니라 "죽여서 나무에 매단"이라고 옮긴 것.. 이런 건 잘한 거다.)
기존 타킹 쓰는 진영에서는 표킹의 이런 면모까지 다 무시하면서 밟아버리려는 듯이 감정적으로 비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 영킹 직역이라지만 일부 표현은 말보회 한킹의 번역을 따른 게 있다. grave, walk 등.. 단지 원어를 참조한 게 아니라 영어에도 그런 뜻 있다고 웹스터 사전을 들이댈 뿐.

- 그러나 몇몇 접속사나 관사 복수형을 일일이 다 살려서 넣은 건 무리수이다. 영어의 모든 관사가 정확하게 수효를 한정짓는 용도로 쓰이는 게 아니다. 그냥 다음에 오는 단어가 형용사나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라는 것만 명시하는 용도로 습관적으로 붙는 것도 있으며, 그런 건 한국어로 옮길 때 굳이 번역하지 않는 게 정상적인 번역이다!
저런 번역 스타일만으로도 논란이 되는데 하물며 그렇게 하지 않은 타 역본을 변개 삭제라고 까는 거는.. 무리수를 넘어 누워서 침 뱉는 자충수이다.

- 같은 뜻인데 단순히 영문학상 패러프레이징 하느라 유의어를 동원한 것을 굳이 우리말로 무리해서 다 다르게 쓸 필요는 없어 보인다. (가령 행10의 kill '잡아먹다'과 11의 slay '도살하여 먹다')

- '비둘기 그녀, 지혜 그녀'는 좀 다시 생각했으면..? 영킹은 솔로몬의 재판에 나오는 아기도 it이라고 가리키는 부분이 있다. 표킹도 아기를 '그것'이라고 옮기지는 않았더구만? 영어 대명사랑 우리말 직역이 어차피 대응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 마케팅 방식이 적절치 못했다. 그렇게도 영킹 직역 성경을 내고 싶었으면 차이점만 나열하고 자기 것이 뭐가 좋은지만 얘기를 하면 됐는데 무슨 타킹들이 변개하고 삭제했다는 소리는 그 뒤로 욕을 십자포화로 얻어먹어도 실드를 칠 수 없다.
누가 정말 순수한 의도로 정당하게 성경 번역 새로 해도 기득권들로부터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욕 먹고 비방 당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저거는 부당한 욕이 아니라 욕먹어도 싼 짓을 해서 욕먹는 거다.

- 영어 본문을 갖고 검증되지 않은 이상한 썰을 풀면서 어그로 끌었던 것도 이 바닥의 금도의 도를 어긴 거다. 일부 목사님들로부터 미운털 단단히 박힌 꼴이 됐다.

그러니 표킹에 대한 내 생각을 세 줄로 요약하면

  • 일부 영킹대로 잘 캐치하고 잘 번역한 표현
  • 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번역 스타일
  • 적절하지 못했던 마케팅

정도다.
참조용으로 고려할 만은 하다. 나도 처음엔 '다시 채우라'와 '하나님이 자신을 어린양으로', '예언'이 모두 살아 있고 it came to pass를 다 번역했다고 해서 아주 긍정적으로 봤으나.. 밝은 면뿐만 아니라 어두운 면도 아직은 무시 못 할 지경인 것 같다. 일부 장점이 아니라 성경의 전반적인 번역 퀄리티나 저 진영의 인성의 퀄리티가 아직 검증이 덜 된 것 같다. 더 지켜봐야지.

"이제야 우리 민족에게 참다운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다 앗싸!" 이렇게 샴페인을 터뜨릴 수 있을지는.. 글쎄? 표킹 쓰고 싶거들랑, 한참 더 교열 보고 다듬는 일에 동참할 의향이 있는 사람만 그 진영으로 가는 게 좋을 거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성경으로 예배드리고 싶거들랑 혼자 조용히 교회 옮기면 된다. 기존 교회 목사를 비방하고 딴 초신자들 꼬드겨서 우르르 나가고 분탕질 치지는 마시라. 그건 무식하고 덕이 되지 않는 짓일 것이다.

3. 흠정역 (+ 근본역)

그리고 그 이름도 유명한 '흠정역'은 한킹의 뒤를 이은 2인자로 시작했지만.. 말보회의 삽질 뻘짓으로 인한 반사 이익을 받으면서 지난 20년 동안 점유율을 꾸준히 올려 왔다. 안티오크 권위역의 용어와 번역 이념을 많이 계승한 한편으로, 영킹의 표현을 말보회 한킹보다 더 많이 반영했다.

말보회가 애플이면 흠정역은 기기의 제조사가 다양한 안드로이드 진영이기라도 한 걸까? 흠정역 진영은 성향도 더 개방적이었다. 교리 노선이 번역자와 다른 기성 개신교회나 독립 교회들에게 자기 성경을 널리 보급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그 대신 흠정역 쓰는 교회들은 영어와 원어 사이의 관념부터 시작해서 세부 교리의 파편화가 말보회 계열보다 더 큰 편이다.

그래서 흠정역 진영이 한킹 진영을 완전히 대체했느냐 하면.. 안타깝게도 그리 되지 못했다. 이쪽도 단점과 한계가 있고, 공과 과가 모두 생겼다.
세월이 흐르고 세력이 커지면서 성경 번역자 개인이 분별력이 흐려지고 흑화하는 건 이쪽이나 저쪽이나 방식만 다를 뿐 절대값은 별 차이 없었다. 허나, 말보회 쪽은 교리 노선이 확고하고 탄탄해서 성경과 성경 번역자를 완벽하게 분리해서 판단할 수 있는 반면, 흠정역 쪽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흠정역은 번역자의 독특 내지 이상한 신념이 들어가서 성경에 예언이라는 단어가 전혀 없다. 그리고 창조과학회 영향을 받아서 세대적 진리에서 간극 재창조는 별 이상한 근거를 들면서 거부하는 등 교리 노선이 예전부터 많이 삐그덕거렸다.
10년 전에는 "원어로 너스레 떠는 목사 격퇴하기" 하면서 영킹을 강조하다가 지금은 원어 의존도가 훨씬 늘었다.
10년 전에는 "바른 성경을 믿어서 이단 소리 들으니 얼마나 영광입니까?" 하다가 지금은 "우리는 이단 아니다. 성경 선택권을 보장하라"...;;;

차라리 한 교리 노선에 일관되게 단호박이면서 탈퇴자 뒷담화만 거하게 하던 원래 동네가 더 나아 보일 지경이다.
이 와중에 최신 마제스티판은 딤전 6:5 '이익이 경건'을 이상하게 고쳐서 이전 판보다 개악되었고, 이것 때문에 학을 떼는 사람과 이것도 별 상관없다고 실드 치는 사람이 갈라져서 싸우는 촌극이 벌어졌다.

말보회에서는 지금도 흠정역이 짝퉁 가짜 성서라면서 비방 험담하느라 여념이 없다. 근데 쟤들은 상대방의 동태에 대해 공부를 하긴 할까? 욕할 거면 진짜로 물어뜯기 좋은 이런 아이템을 갖고 물고 늘어져야지, 책 제목 같은 별 쓰잘데기없는 걸 갖고 참 수준 낮게 트집 잡고 제 얼굴에 침 뱉더라.

그 와중에.. 2020년대에 근본역이라는 게 성서 침례교회 진영에서 만들어져 나왔다. 이건 예언 같은 몇몇 단어만 빼면 흠정역과 아주 비슷하다.
다만 판이 올라갈 때마다 정오표를 만들어서 수정 내역을 정직하게 공개해 주고(!!!!), 개인이 아니라 위원회 명목으로 판권 없이 오픈소스 정신을 반영해서 출간하고.. 딱 3판까지만 만들고 영원히 관두겠다는 선언까지 했다. 번역보다는 번역 방식 면에서 참신한 시도를 한 것 같다.

이상이다.
이 2020년대 대한민국 땅의 킹 제임스 성경 진영은.. 왕짜가 들어간 성경을 쓴다면서 정작 왕이 없는 판관기(사사기) 말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어느 한 진영이 다른 진영을 완전히 압도하고 대체· 흡수하지 못하고 전부 찢어져서 각자도생 중이다. 다양한 번역본들이 서로 장점을 합쳐서 하나로 수렴을 못 하고 혼란만 더 커지고 있다.

생각 같아서는 각 진영의 번역자들을 골방에다 몇 달 가둬 놓고 한킹의 교리 체계에다가 흠정역 정도의 문장 구성, 거기에다 표준역의 일부 잘 캐치한 표현들을 집어넣어서 단일 역본을 좀 만들었으면 좋겠다만.. 그런 기적적인 통합이 성사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없다. -_-;; 애초에 정교분리 세속 국가에 제임스 왕 같은 중재자도 있을 리 없으니까.

어느 거 하나도 선뜻 못 고르겠으니 "역시 영킹을 직접 보는 수밖에 없군.." 이것도 정답이 될 수 없다. 아주 짧고 단순한 구절이야 영어가 임팩트 있을 수 있겠지만, 당신은 엄청 길고 복잡하고 꼬인 영킹 구절도 술술 읽고 암기할 수 있겠는가? =_=;;

이 와중에 "이거는 이 번역이 맞고, 저거는 저 번역이 맞는 거 같다" 식으로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입맛대로 판단하는 교만이나 지적사기는 정말 위험한 짓이다. 내가 저런 짓을 하기 싫어서 킹 진영으로 왔는데, 한국어 한정으로는 그 진영 안에서도 똑같은 짓을 하게 됐구나. -_-;;

본인은 오랫동안 흠정역을 쓰는 교회를 다니다가 모종의 이유로 인해 교회를 옮길 일이 생겼다. 이 참에 예언이 있고 "하나님 자신을 어린양으로"(창 22:8)가 있는 성경을 쓰고 싶어서 진영을 옮겨 봤다. 유의미한 단점이란 게 "영어가 아닌 TR 번역이다"밖에 없다면.. 그게 뭐 어때서? 영어와 TR의 차이점에 대해서 판단을 보류하고 공부 중이다.
이래저래 우리나라는 대한 성서공회만이 성경 번역을 독점하는 동네가 결코 아니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20년, 30년 뒤엔 3rd-party 성경의 점유율이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참 궁금해진다.

Posted by 사무엘

2024/07/30 08:35 2024/07/30 08:35

바람직한 신앙관, 세계관

1. 희망과 절망

마귀가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 너는 충분히 선하고 의롭기 때문에 굳이 예수 믿을 필요 없고 구원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근자감을 불어넣거나 (희망)
  • 반대로 너는 너무 악한 인간쓰레기이기 때문에 그 어떤 방법으로도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까스라이팅을 한다. (절망)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바는 이와 다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비참한 죄인이란 것까지만 절망이고, 그 뒤에 예수님 보혈 의지해서 그 어떤 죄인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복음이 희망이다!

예수님이 선한 도덕 선생이라느니 훌륭한 사상가, 언행의 모범 본보기 등등등.. 이런 건 구원받은 사람에게나 필요한 면모이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예수님이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구원자부터 돼야 한다. 무조건 반드시~

2. 정당한 불가지론과 나쁜 불가지론

(1) 예수 믿는 신앙생활의 관점에서 이런 건 정말 알 수 없는 불가지론이고 불확실한 게 맞다.

  • 예수님은 언제 다시 재림할까? 휴거는 언제쯤 일어날까?
  • 난 과연 살아서 주님 다시 볼까? 난 언제 죽게 될까?
  •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까?
  • 지금 갑자기 무슨 병에 걸렸거나 사고를 당했거나, 앞날 창창한 사랑하는 가족 친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거.. 여기에 도대체 무슨 주님 뜻이 있을까?

애초에 증명돼 있지 않는 걸 지지하는 것이니 그걸 '믿음'이라고 하는 거다.
기독교가 뻘짓 동원해서 미래 앞날 일을 예측하려 하는 수작을 왜 그렇게도 금지하고 부정적으로 보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시라. (점, 운세.. 단순히 수학 과학 방법론으로 예측하고 대비하는 거 말고)

(2) 그러나 이런 건 불가지론의 영역이 전혀 절대 결단코 아니다.

  • 신이란 게 존재하기는 하는가?
  • 나 구원받은 거 맞나? 지금 죽어도 당장 하늘나라 가는 거 확실하나?
  • 이 정도면 대환란 겪지 않고 바로 휴거될 수 있을까?
  • 지금 우리에게 자필원본과 동급으로 온전히 보존된 성경 말씀이 존재하는가? 신의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가?
이걸 확신하고 굳게 믿는 건 무슨 교만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안 믿는 게 잘못된 불신이다!

(2)에서 말하는 성경, 구원이 확실하게 보장돼 있기 때문에 (1)에 대해서도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거다. (2)의 확실함이 (1)의 불확실함에 대한 원동력이다!! 그래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라고 노래를 부를 수가 있다.
구원 하나 제대로 못 받아서 "글쎄, 죽어 봐야 알겠지"인 주제에 (1)을 버티라고? 내가 보기엔 그건 그냥 종교적인 기만이고 야바위질이다. 열정페이처럼 신앙페이 착취이다.

내가 비록 지식 면에서 신학교 졸업생 급으로 히브리어 헬라어를 통달했거나 성경 지리, 고고학 등을 다 줄줄 꿰는 게 아니고, 영성 면에서 맨날 길거리에서 복음 전하고 말 끝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찬송시를 쓰는 것도 아닌 일개 쪼랩 예수쟁이긴 하다.
그러나.. 그래도 성경 전반에 담긴 법리, 집필 관점이라든가 신앙생활 원리 쪽은 오랫동안 고민하고 연구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쪽 변증은 나름 강하다고 자신한다.

3. YOLO

YOLO라고.. You Only Live Once.. 한 번뿐인 인생인데 후회 없이 니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즐기며 짧고 굵게 자유롭게 살아~!! 이런 말이 있다.
이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긍정적인 메시지가 될 수도 있고, 무슨 히피 같은 허랑방탕을 조장하는 불건전한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

글쎄, 성경은 히 9:27을 보아하니 live once보다는 die once를 더 강조하는 것 같다. YODO인 건가. ㄲㄲㄲㄲㄲ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환생이나 윤회(∞), 소멸(0)하지는 않는다는 맥락에서 die once인 거다(1). 자유롭게 사는 건 좋지만 죄 문제는 꼭 해결해야 한다.

수 년 전엔 구내염약 알보칠에서 You only Pain once라는 약 빤 CF를 내보낸 적이 있었다. YOPO ㄷㄷㄷㄷ
요들쏭 부르듯이 요뽀요뽀 이러면서 진짜 강렬하고 병맛 넘쳤다.
알보칠 바를 때 겁나게 아프다는 거는 부인하지 않는다. ㅋㅋㅋㅋ "그래도 아픈 건 잠깐일 뿐이야~~~ 고통을 짧고 굵게 끝내고 구내염이 빨랑 낫는 게 중요하지?"

그런 논리로 롬 8:18이나 베드로전서 내용을 담으면 You only Suffer once 요쏘~~~도 가능할 것 같다. ㄲㄲㄲㄲㄲ
그리고 머신러닝 업계에서는 이미지에서 각종 사람이나 사물을 인식해서 추출하는 인공신경망 중에 YOLO...;;;라는 이름이 붙은 물건이 출시되기도 했다. 여기서는 You only Look once이다.

4. 세계관

예수 믿고 교회 댕기기는 하는데 신앙 수준이 너무 단편적인 사람이나 교회 말이다.
그들은 예수 믿는 기독교 국가들이 잘 살고 부강하고 세계를 석권했다는 식으로 얘기를 한다.

이런 사람들이 꼭~~ 어디 자연재해 참사가 터진 곳은 우상숭배 해서 심판 받고 벌받은 거라고 경솔하게 발언해서 어그로를 끌곤 한다.
그리고 일본은 어떻고? 기독교 배경 전혀 없지만 그냥 자기들이 노력하고 근대화 잘해서 잘 살고 노벨 상 수상자도 저렇게 많이 배출했을 뿐이다.

이렇게 수준 낮고 허점투성이에 털릴 게 많은 발언은 좀 그만 해라.
예수쟁이라면 기독교 배경· 성경적 세계관이 있는 나라들이 뭐가 진짜로 더 선진적이고 더 좋은지를 제대로 고찰해야 한다.

  • 사농공상 ㅆ선비 꼰대질 짓거리가 없이(최소한 동양 유교 문화권보다는 덜한..) 노동 근로가 존중받는 거,
  • 위선 체면 떨고는 뒤에서 추잡한 짓 하는 게 아니라, 돈이나 성에 대해서 차라리 면전에서 처음부터 더 솔직한 거,
  • 거짓말, 위증, 기본적인 비윤리 부정행위를 훨씬 더 금기시하고 엄하게 처벌하는 거
  • 사심 없이 인심이 후하고 기부, 기증, 입양이 많은 거
  • 잘못을 인정하면 개 호구 바보 되는 게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걸 믿고 인정하는 거 (이거..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개의 기본 근간 전제조건이다)
  • 반대로 쓸데없이 가오 내세우면서 "죽어서 속죄"를 남발하지 않고, 차라리 살아 돌아와서 사죄하고 평생 책임지는 걸 더 높게 치는 거,
개인 구원과 관계없이, 나라의 단순 군사력 경제력과 무관하게 이런 의식 수준의 차이를 더 진지하게 고찰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러면 교통사고가 하나 나더라도 그때 가해자 피해자의 처신이 달라지고 사회의 치안 비용, 복지 비용에서 차이가 날 거다. 이건 단순히 문화적 상대성 차원이 아니다.

난 일본이 물질과 과학기술 면에서는 서양을 따라했지만 바로 저런 면모에서 진짜 서양보다 크게 뒤쳐졌기 때문에 국민들이 죽어나가고 개고생했으며, 태평양 전쟁 때 저렇게까지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서양 유럽이 언제부터 학문과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동양을 앞질렀는지를 묻는다면 예수쟁이들은 종교개혁을 떠올리지만, 일반 세상에서는 그냥 계몽주의나 르네상스 같은 걸 떠올린다. 이것도 생각할 점이다.

5. 참가만으로도 대단하긴 하지만, 일부러 참가에만 안주하지는 말아야 함

“올림픽은 승리가 아니라 참가에 의미가 있다” 이런 말이 있다.
아 물론 무슨 취지로 하는 말인지는 이해가 된다.
뭔가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시하고, 무언가에 일관되고 꾸준한 것을 좋게 보고, 학교에서 개근상을 다른 어지간한 성적 우수 만만찮게 좋게 보던 사고방식 말이다. 이건 절대로 잘못된 생각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저 말에만 안주해서는 안 된다. 특히 저 말이 불성실과 나태를 합리화하는 말로 악용되지 말아야 한다.
기왕 싸움을 시작했으면 이길 생각을 해야 하고, 기왕 경쟁 내지 경기를 시작했으면 우승할 생각을 해야 한다.

물론 지금 울나라가 쌍팔년도 시절처럼 엘리트 체육에 목숨 걸면서 선수 한두 명이 메달 딴 거 갖고 국위를 선양하네 열등감을 극복하네 마네 연연하는 지경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사비도 아니고 세금으로 육성된 국대 선수라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물도 나오기는 해야 한다.
오죽했으면.. 올림픽이 아니라 월드컵이긴 하다만, “월드컵은 뭘 배우는 게 아니라 이미 배운 걸 입증해 보이는 자리입니다.” 이런 말도 있었다. (이 영표 해설자가 2014년 월드컵의 졸전 때 빡쳐서.. -_-)

신앙 생활에서도 같은 적용을 할 수 있다. 당연히.. 예수 믿은 사람은 지옥 형벌에서 구원받고 천당이 보장됐으니 신분이 넘사벽으로 달라졌다. 영적 전투 아레나에 참가 선수로 등록된 것만으로도 올림픽 국대 선발 이상으로 얼마나 감지덕지인가?

하지만 0에서 무려 1을 만들었으면 1을 10, 100으로 불릴 생각도 해야 된다. 구원을 받았으면 그 다음에는 자기의 구원자 예수님으로부터 이쁨 받고 상 받을 생각을 해야지.
“저는 그런 상 같은 것엔 연연하지 않아요. 그냥 예수님만 있으면 돼요”는... 미안하지만 무소유 겸손이 절대로 아니다! 그건 매우 높은 확률로 또 다른 무지와 불신이다. 어쩌면 교만까지 추가돼 있고.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 해라. 세상 셀럽들이 누리는 부귀영화라든가(서울 강남 아파트나 고급 외제차나 명품빽, 최신 스마트폰=_=), 노벨 상, 필즈 상, 무궁화 대훈장, 금은동탑 산업훈장, 태극 무공훈장, 연예계의 무슨 아카데미 상에 비해..
성경에 약속된 여러 왕관(면류관)들은 실감이 안 가거나 믿기지 않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거다. 최악의 경우는 아예 그런 게 있다는 것도 모르거나.

그리고 예수님께 이쁨 받고 나중에 상 받는 방법은 세상의 각종 분야별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하고는 접근 방식이 좀 다르다. 애초에 자기 육신의 능력을 보이는 게 아니니까.. 저 바닥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과정 지향 사고방식과 결과 지향 사고방식이 모순되지 않는다. 이런 보상은 아무리 욕심 내도 당신의 영적 건강에 전혀 해롭지 않다!

세상에서 기계를 만들 때 전력 소모 줄이고 공기 저항 줄이려고 최적화에 목숨 건다. 운동 선수들도 체중이나 복장을 얼마나 미치도록 튜닝을 하는데?
본질적인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하지 않은 쓸데없는 dead weight 낭비 요소들을 털어내는 것이 신앙생활에도 필요하다. 이것이 히 12:1이 말하는 바이다.

다시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당연히 주님 주시는 보상을 "바라고," 어쩌면 적극적으로 추구도 해야 한다. 그래야 부당한 손해나 핍박도 감수하고 세상 추세를 역행하는 삶을 살 원동력이 생기고 '동기부여'가 된다.
신앙생활에서 신자와 하나님이 서로 주고 받는 딜이 뭔지, 신자의 십자가가 뭔지를 잘 모르니까 보상도 바랄 필요 없다느니, 대환란을 자기가 겪으면서 연단되겠다느니 하는 당치도 않은 헛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아니면 하나님을 무슨 신앙페이 열정페이 착취하는 엄한 금욕주의 갑질 업주로만 알거나 말이다(게으르고 악한 종).

Posted by 사무엘

2024/05/31 08:35 2024/05/3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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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고 교회 다니고 성경 읽는다는 사람들은 걸어다니는 성경 구절 검색엔진뿐만 아니라 찬송가 가사 검색엔진이 될 필요도 있다.
상황별로, 혹은 비슷한 가사, 비슷한 조나 박자.. 이어서 같이 부르기 좋은 곡. 이런 게 줄줄이 생각나도록 말이다. 그게 인생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1.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난 개인적으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찬송가는 예수쟁이 크리스천의 아리랑 같은.. 거의 민요 급의 노래라고 생각한다. 진취적인 행진곡 군가풍이 아니고, 3박자이지만 그렇다고 막 왈츠 춤곡 아니고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 급의 얼쑤 지화자 좋다~~=_=도 아니고 적당히 샤방샤방한 느낌이 든다는 점에서 말이다.

한편, 수십 년 전엔 미국의 어느 군소 장로교 교파에서 저 경기도 아리랑 멜로디에다 영어 가사를 얹어서 Christ, You are the fullness of God이라는 창작 찬송가를 수록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게 무슨 TV 방송에서 "미국인들이 아리랑 멜로디 듣고 엄청 감동하더라" 이렇게 국뽕(!!!) 주입하는 쪽으로 소개됐었다. 하지만 지금은 딱히 출처 검색이 안 되는 걸 보니, 다 지나간 일인 듯하다.

근데 아리랑이 멜로디가 좋으면 뭐 하냐? 가사는 그놈의 한이 맺혀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걸어가다 1시간도 채 못 되어 발병 나서 자빠질 거다"로 끝이다.
그 반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은... 완전 차원이 다르지 않느냐 말이다.

이 비참한 죄인이던 내가 구원받았고 그 은혜가 너무 고맙고~~ 난 죽더라도 하늘나라 본향으로 돌아갈 거고.
이제는 사람 골병 들게 만드는 원한이란 걸 품을 이유가 없고, 한 맺혀서 남을 저주해야 할 필요가 추호도 없다. 내가 한을 품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가 한없는 거지.

사람이 이렇게 삶의 이유와 목적, 명분,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관념이 달라지면 그게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로 나타난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인 사회가 건강· 건전한 정도로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고 저런 찬송가가 만들어졌던 18~19세기 서양의 문화가 다 건전하고 좋기만 했다는 것도 당연히 절대 아니다. 허나,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정도면 그야말로 불멸의 명작 찬송가이고 세계 각국의 크리스천들이 이 정도면 가사 다 외우고 조선 시대 사람들이 아리랑 불렀듯이 필요할 때 어디서나 암송해야 하지 않겠나 싶다.

2. 미국의 맹인 여성 두 분

(1) 헬렌 켈러 (1880-1968)
나는 죽기 직전에 딱 사흘만이라도 눈을 뜨고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을 좀 해 보고 싶다. 그게 내 소원이다.
눈을 뜨게 된다면 제일 먼저 내 인생의 은사인 설리반 선생을 보러 갈 것이다. 지금까지 감촉으로만 느꼈던 선생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볼 것이다. 그리고 바람에 나풀거리는 잎사귀들, 아름다운 석양과 노을을 보고, (… 무슨 휴가 나온 군인처럼 구경할 거, 돌아다닐 곳 계획 다 짜 놓고…) 마지막 날엔 도시에서 출근하는 사람들 얼굴을 보고 오페라하우스와 영화관 구경도 할 것이다.
그렇게 세상을 보고 나서 눈을 감기 직전에 사흘 동안이나마 시력을 허락해 주신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영면에 들어갈 것이다.

(2) 패니 크로스비 (1820-1915)
나는 영아 시절에 내 눈을 망가뜨렸다는 돌팔이 의사양반에게 아무런 악감정이 없다. 하나님께서 나를 평생 맹인인 채로 사용하시려고 그 일을 허락하신 것이다. 나는 이대로도 너무너무 행복하다.
굳이 지금 눈 뜨지 않아도 좋다. 죽어서 하늘나라에서 눈을 떴을 때 사랑하는 예수님 얼굴부터 맨 먼저 보게 될 테니까!
세상에서 OME로 더럽혀지지 않은 눈, 포장 안 뜯고 “아무것도 안 본 눈 삽니다”를 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인생을 다시 산다고 해도 이렇게 맹인으로 살 의향 있다.

영성의 레벨이 다르구만. ㅠㅠㅠ
헬렌 켈러는 좌파적인 사회 활동 때문에 쌍팔년도 우리나라 위인전에서는 오로지 어린 시절만 다뤄지곤 했다. 저 사람이 장애를 극복하고 대학까지 나와서 뭐가 됐고 무슨 활동을 했는지 얘기는 함구하곤 했다. ㅡ,.ㅡ;;; 뭔가 마크 트웨인과 비슷한 인상이다.

패니 크로스비야 뭐.. 인류 역사상 찬송시를 제일 많이 남긴 단일 인물이다.
현대인들이 페북이나 트위터 인스타에다가 자기 먹방이나 여행 자랑글 올리는 것과 대등한 빈도로.. 그딴 글 대신 예수님 생각하고 자랑하고 찬송하는 시만 썼던 사람이다. ㄷㄷㄷ
그리고 패니 크로스비는 간호사 겸 의료 행정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과 동갑이었고 비슷한 시기에 죽은 사람이기도 했다. ㄲㄲㄲㄲ

3.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의 작사자

찬송가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은 울나라 기독교계에서 두루 사랑받는 명작 찬송가이다. 가사 내용의 특성상 연말이나 교회 창립 기념일 때 부르기 좋다.
얘는 특이하게도 멜로디가 두 버전이 존재한다. 한국인 박 재훈 작곡의 흥겨운 민요풍 버전이 있고, 그것보다는 차분하게 "복의 근원 강림하사" 멜로디 기반인 외국곡 버전이 있다.

우리나라 찬송가들엔 둘이 쌍둥이처럼 같이 수록돼 있는 편이다. (이렇게 같은 가사에 두 멜로디가 모두 유명한 다른 예로는 성탄 찬송인지 캐롤인지 애매한 Away in a manger도 있음)
그런데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의 작사자는.. 한국인이나 서양인이 아니라 '사사오 데스사부로'라는 일본인 목사이다. 일본 교회들이야 박 재훈 멜로디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 "복의 근원 강림하사" 멜로디로만 부른다. 신기하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아마 반일 감정 때문에 작사자가 오랫동안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던 것 같다. 미들 네임이 아닌데도 이름을 T. Sasao 이렇게 때우거나 아니면 아예 미상이라고 처리하기도 했다. 일본 법학 서적에서는 어떤 법리를 지지하는 학자들 실명이 일일이 언급돼 있는데, 그게 울나라로 번역되면서 싹 다 짤리고 쪽수만 남아서 다수설 소수설 이렇게 바뀌었듯이 말이다.;;;

그나저나 사사오 데스사부로는 "우리들이 싸울 것은 혈기 아니요"도 작사했다.
일본어 가사답게 처음에는 후렴이 "일심(一心)으로써 힘써 싸우세"였다. 그러다가 21세기 새찬송가에서는 "한마음으로"라고 더 순화됐다.
마치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시 103:1)"가 "온 마음 정성 다하여 다 찬양하라"로 바뀐 것처럼 말이다.

4. "주 다시 세상에 오시리 -- 오늘 오신다면?"

끝으로.. Jesus is coming to Earth again -- what if it were today? 라는.. 꽤 드라마틱한 종말· 재림 카테고리의 찬송가가 있다.
참고로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캐롤 "울면 안 돼"가 제목이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이다. ㄲㄲㄲㄲㄲㄲ
그것처럼 "예수님이 다시 오신대.. 혹시 그게 오늘 지금 당장이면 어떡하지? 얼마나 신날까?" 라는 뉘앙스가 저 찬송가에 담겨 있다.

통상적인 클래식 찬송가들은 앞절은 구원이나 순례자의 길, 평안 등을 노래하다가 '마지막' 절이 재림이나 천국 등을 거론하는 편이다. 자기가 죽든지 아니면 세상이 끝나든지. 허나, 이 곡은 마지막 절뿐만 아니라 가사 전체가 몽땅 재림 얘기이다.

나머지 가사들은 다 성경을 근거로 유추 가능하고 그대로 부르면 되는데.. 3절 "주 오실 징조가 넘치고 새 날의 먼 동이 터 온다"가 오래 전부터 내 눈길을 끌었다.
"주 오실 징조", 재림의 징조가 넘친댄다. Signs of His coming multiply..

그런데 이 곡은 1912년에 발표됐다.
아직 1차 세계대전도 시작되지 않았고 UN이고 WCC고 이스라엘 국가고 뭐고 없던 시절이었는데? 핵무기, 미사일, 컴퓨터, 인터넷도 없었는데? 이 곡의 작사자는 그 시절에 뭘 근거로 재림 징조가 넘치고 "말세다 말세"라고 추측을 했던 걸까?

먼저, 과학기술을 생각해 보자. 20세기의 포스에 밀려서 그렇지 19세기도 중후반은 과학기술이 과거 대비 정말 폭발적으로, 상상을 초월하게 발전했던 시기이다.
증기기관, 내연기관, 자동차, 철도, 흑백이나마 사진과 영화, 타자기, 교류 전기, 전화, 전신기, 축음기, 증기선 철갑선, 기관총, 길거리 공중 화장실.. 이런 게 다 이때 등장했다.

끈질긴 비과학 낭설이던 생물 자연발생설이 요 시기에야 완전히 논파되고 부정되고 폐기됐다. 세균이라는 게 이제야 알려져서 "길거리에서 침 뱉지 마시오" 캠페인이 미국에서 1900년대 초에 막 벌어졌을 지경이었다.
작고 허접하긴 해도 무려 비행기(!!)가 발명됐으며, 이제 막 타이타닉 호도 건조됐다. 선박으로 위험한 모험이 아니라 안락한 장거리 대륙 횡단 여행이 가능해졌다.

초보적인 수준의 국제기구들도 등장했다. 이때는 그런 기관의 명칭이 '국제 ***, 세계 ***'가 아니라 '만국 ***'이라고 번역되는 편이었다.
세계 언어들을 통합적으로 분석하려고 IPA 음성부호가 제정됐고, 심지어 에스페란토라고 국제 공용어를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다.

서유럽에서 예전에 비해 꽤 오랫동안 전쟁이 없으면서 과학기술 물질문명이 저렇게 발전했고, 쟤들이 가히 세계를 정복했다. 그래서 세계사에서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 재임기를 포함하는 이 19세기~20세기 초를 '벨 에포크'라고 부른다.
이렇게 서양 백인들이 찬란한 물질 문명을 이룩하고 세계를 석권하고 선교사까지 곳곳에 보냈으니, 인간 세계는 볼짱 다 봤고 예수님만 다시 오시면 되는 걸까 설마???

하지만 이 시기에 밝은 면모만 있는 건 당연히 절대 아니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뼈빠지게 일하고도 복지 사각지대에서 빈곤에 시달렸다. 아예 자국민도 아닌 피식민지 원주민들은 논밭이나 광산에서 지옥 같은 착취를 당했다. 흑인은 인간과 짐승 사이에 진화가 덜 된 생물이라고 여겨졌고, 장애인도 인간 취급을 못 받았다.

저 브루주아들을 쓸어버리고 혁명을 이뤄야겠다고 공산주의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그때 상류층이 다니던 기독교회들은 무력과 권력으로 빨갱이들 때려잡고 노동자 운동을 진압하자는 선동만 했지, 이웃 사랑 실천은 너무 안 했던 것 같다. 이에 대한 자정 노력의 일환인지, 영국에서 자선냄비 구세군이라는 교파가 만들어졌을 정도였다.

거기에다.. 내 뇌피셜로는 1908년 퉁구스카 대폭발,
1910년 핼리 혜성의 꼬리 괴담...에 대한 경험도
저 작사자의 뇌리에 "주 오실 징조가 넘치고"라고 녹아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ㅎㅎ 저것들도 당대 사람들을 크게 동요시키고 큰 충격을 줬던 사건이다. 종말 신드롬이 굳이 1990년대 세기말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는 거다.

암튼.. 인류가 앞으로 또 무슨 세상 징후를 겪은 뒤에야 예수님이 오실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1910년대에나 2020년대에나 맹 똑같이 주님 다시 오실 징조는 늘어나고 있고, 예수님은 동일한 확률로 언제든지 오실 수 있는 거다.

언제나 종말 정신에 입각해서 살면 되지, 굳이 이 찬송가가 만들어지던 당대의 배경 맥락을 이렇게 미주알고주알 따질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 다만 이렇게 너무 막연하고 보편 일반적이고 원론적인 얘기에만 빠져들다가 "예수님이 문자적으로 재림 자체를 안 하신다, 그냥 마음 속에 오신다, 이미 와 계신다".. 그 따위로 교리가 변질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저런 정황을 생각하면.. 19세기 말에 근대화된 서구 열강과 일본은 천국이었고 오로지 구한말 조선 땅만 시궁창 헬이었다고 너무 "지나치게" 열등감 갖고 자조 자괴할 필요까지는 없는지도 모르겠다. (세계 평균 이하의 미개한 시궁창이었다는 건 사실이지만, '지나치게'까진.. 정도의 문제다. =_=).

5. 여담: 자매 감성

찬송가와 관련하여 100% 다 그렇다는 건 아니겠지만, 교회 다니는 젊은 자매님들은 대체로 이런 경향이 있더라.

(1) 나는 favorite 찬송가가 "주 하나님 큰일을 행하셨네", "놀라운 주의 은혜", "주 보혈로 날 구해 준", "그 참혹한 십자가에" 등 구원· 복음과 관련된 쪽에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교회에서 만났던 여러 자매들은 전반적으로 공통적으로.. 뭐 인도하시느니, 힐링하시느니, 어루만져 주신다느니.. 그런 인도와 보호 장르의 곡을 확실히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다. 킹 진영, 비킹 진영을 불문하고. ^^

(2) "주 품에 품으소서"(Still; Reuben Morgan)와 "참 좋으신 주님"(김 기영).. 두 곡을 약속이나 한 듯이 완전 너무 좋아하곤 했다. 물론 다들 훌륭한 곡이긴 하지만 나는 그 정도로 감흥을 느낀 건 아니다.

(3) 앞서 소개했던 찬송가 "주 다시 세상에 오시리"라든가 "샤론의 꽃 예수", "나 어느 날 꿈속을 헤매며"는 뭔가 자매 감성이 느껴지곤 했는데 역시나 작사 작곡자가 여성이다. 후자는 1절 가사가 너무 몽환적인 판타지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일부 교파에서는 가사를 살짝 수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형제보다는 자매가 확실히 더.. 단순히 성경적인 설교, 은혜로운 설교 정도가 아니라 "오늘 설교 완전 나 저격이었어~!! 어제 이런 일이 있었는데 마침 주일 예배 설교가 딱 이런 내용이었어" 식으로 주관적인 감탄사를 훨씬 더 자주 말하더라. 이런 사례가 여러 사람들에게서 계속 나오는 게 흥미로웠다. 겨우 한두 케이스였으면 내가 이렇게 글을 안 남긴다.

(4) 이건 신앙의 영역은 아니겠지만.. 한창 우한 폐렴 때문에 백신 좀 맞으라고 국가적으로 난리였던 시절에 말이다. 현직 의사들 중에서 백신의 효능에 대해 의구심을 적극적으로 표시한 사람도 남자보다는 여자 의사 중에서 훨씬 더 많았다.
뭐 유사과학 음모론 괴담에 홀렸건, 진짜로 통계적으로 의심스러웠건 의학적인 근거는 내가 판단하지 못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성향이 그랬다. 이런 거 감수성도 남자와 여자의 종특 차이인지 모르겠다.

(5) 여친을 비롯해 나보다는 최신 CCM 동향에 더 밝은 사람들과 교제를 해 보면.. 아예 19세기 클래식 찬송가 아니면 2010년대 이후의 복잡현란한 CCM을 잘 알지(마커스워십??), 198~90년대 초창기 국내 CCM은(최 덕신, 옹기장이) 대체로 잘 모르더라. 음~ 나이대나 신앙 생활 짬이 나하고 별로 차이가 안 나는데 이런 차이가 있구나~~ ^^

난 반대로 2000년대 이후 CCM은 유입이 끊겨서 최신 동향을 잘 모르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최신 게임도 몽땅 고전 게임으로 바뀌는 와중에, CCM도 초창기 버전은 이제 C~ 컨템퍼러리(동시대, 현시대)하지 않게 된 듯하다. ㄲㄲㄲ
이제 엑셀이라고 하면 자동차가 아니라 컴터 소프트웨어가 떠오르고, 봉고라고 하면 승합차가 아니라 트럭을 떠올리는 시대이다. 이러니 신 상우 '하나님의 은혜'는 2020년 손 경민 '은혜'에 밀려 잊혀지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4/05/25 08:35 2024/05/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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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년쯤 전이던 2023년 4~5월 사이에 국내외에서는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았던 크리스천 세 분 정도가 소천하여 주님 품으로 갔다.
공교롭게도 표준역 킹 제임스 성경 2판이 출간되어서 막 시끌시끌하던 시기와 비슷하다.
다들 이 블로그에서 이전 글에 언급한 적이 있었던 분들이긴 하다만.. 그때 이후로 새로 추가된 정보도 있으니 한데 모아서 다시 소개하도록 하겠다.

1. 론 해밀턴 (1950 ~ 2023. 4. 19.)

O Rejoice in the Lord (God never moves without purpose or plan ...)라는 훌륭한 찬송가의 작사 작곡자이다. “전능하신 우리 주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후렴 끝부분이 “나 주 안에 연단 받은 후 정금같이 되리”인 그 곡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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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은 질병 때문에 왼쪽 눈을 잃고 인생 대부분을 궁예처럼 살았다. 그런데 그렇게 눈을 하나 잃은 때도 1978년.. 저 찬송가는 작곡자가 눈을 잃은 뒤에 인생 간증을 담아서 만든 거라고 한다.

본인은 저 찬송가 가사의 안티테제(?) 격으로 An American Crime이라는 2007년도 영화가 떠오른다. 1965년에 미국 인디애나 주 깡촌에서 벌어졌던 실비아 라이컨스 양 학대치사 사건을 다룬 끔찍한 범죄 영화 말이다. 이것도 이미 이 블로그에서 옛날에 언급했던 바 있다.
영화에서는 피해자인 10대 소녀가 누적된 질병과 상처, 영양실조로 인해 결국 죽고 나서 쓸쓸히.. 이렇게 독백하는 걸로 끝난다.

Reverend Bill used to say: "In every situation, God always has a plan". (살아 생전에 다녔던 동네 교회 목사의 말)
I guess I'm still trying to figure out what that plan was. (그 계획이 뭔지 난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개인적으로 저 찬송을 부를 때면 저렇게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다 포함해서 하나님의 plan이 무엇이고 허락하시는 뜻이 어디까지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곤 한다. 찬송가 영어 가사에 따르면 하나님은 결코 실수를 하지 않으시고 내 인생 행로를 다 아신다고 했으니까.

아무튼 세월이 흘러서 그 가사를 쓴 찬송가의 작곡자도 소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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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실비아 라이컨스를 연기한 배우 엘렌 페이지.
현재는 남자로 성전환을 해서 ‘엘리엇 페이지’가 됐다 ㄷㄷㄷㄷㄷ)

2. 오야마 레이지 목사 (1927 ~ 2023. 5. 16.)

이 사람은 자기 나라가 이웃 민족에게 저지른 참혹한 죄악에 대해 알게 되고는 너무 멘붕해서 반세기 이상 평생을 사죄하는 일에 앞장섰던 엄청난 일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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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19년 4월, 제암리 학살 사건에 꽂혔다. 한국과 일본이 이제 막 수교를 맺었던 1965년~67년엔가 한국을 찾아와서 사죄하고.. 십시일반 모금을 해서 제암리 예배당 재건 비용을 대려 했다.
이때는 정작 제암리 학살 유족 후손들조차 더러운 왜놈의 돈 따위 받기 싫다고 차갑게 거절했는데도 말이다.

“바로 옆의 니 형제와도 화해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일본 교회의 예배를 받아 주실 리가 없다~ 일본은 대대적으로 사죄해야 한다 //
일본의 과거 침략 만행을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그만 됐다고 하실 때까지 계속 무릎 꿇고 고개 숙이고 있겠습니다” 이랬고..

제일 최근엔 2019년까지도 노구를 이끌고 한국 와서 도게자를 했다. 당연히 삼일 운동 100주년을 기념해서다.
저분은 소천했지만 그의 아들이 계속해서 사죄와 화해 운동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2020년대에 와서는 새에덴교회 소 강석 목사와 접촉 중인가 보다.

무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죄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신앙의 양심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성 특유의 끈질긴 집념과 근성의 산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JR 서일본에서 2005년도 전철 탈선 사고 사과문을 홈페이지에다 현재까지 박제해 놓고 있고, JAL(일본항공)에서 신입사원들한테 1985년도 여객기 추락 사고를 세뇌 주입시키고, 일각에서 20년 전의 의사자 이 수현 씨를 계속 기억하고 추모하기도 하니 말이다.

저 정도로 진심을 다했으니 승무원들이 훈련이 워낙 투철하게 돼서 지난 1월 2일의 여객기 화재 사고 때 수백 명의 승객들이 단 1명도 사망하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정 광진 변호사 (1937 ~ 2023. 5. 19.)

딸을 4명 두고 있었는데 3명을 1995년 백화점 붕괴 때문에 한꺼번에 잃은 그야말로 욥의 현실판인 분이었다. 그것도 다들 20대 꽃다운 나이였는데!!
이분은 종로학원의 설립자 정 경진의 동생이고.. 서울대 법대 나와서 사법시험 합격하고 판사로만 10여 년 재직하며 엘리트 코스를 갔다. 그런데 장녀가 초등학교 시절에 질병으로 인해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론 해밀턴보다 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처음엔 치료를 시도하느라 의료비도 많이 들었는데, 완전히 맹인이 된 뒤에는 특수학교로 통학을 시켜야 하니 자가용이 없으면 도저히 안 되는 지경이 됐다. 자녀 4명이나 키우는데 이런 일까지 생기니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는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음..;;;

그래도 장녀를 미국 유학까지 보내고 정말 잘 키웠는데.. 그 아이들을 한꺼번에 잃었고 시신조차 못 찾았다고 한다. 그나마 하나 남은 딸도 사고의 충격 때문인지 몇 년 뒤 병으로 죽었다.
이 정도면 이분도 아까 저 American Crime의 결말부 만만찮게 “신이란 게 있다면 도대체 지금 머릿속에 뭔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따질 만도 해 보인다.

저분은 사고 보상금에다가 사재를 보태서 '삼윤 장학재단'이라는 걸 만들어서 자기보다 형편이 더 어렵지만 '살아는 있는' 장애인들의 교육과 지원에 애썼다. 그러고 작년 5월에 세상을 떠났다.
하긴, 이렇게 자녀를 잃은 사람이 죽은 자녀 몸값으로 억만금을 받는다 한들.. 그걸로 서울 한강뷰 아파트를 사겠는가, 세계일주 오성급 호텔 원정을 가겠는가? 자녀 이름을 딴 장학 재단 만들거나 복지와 관련된 일에 보상금을 쓰게 된다.

딸들은 살아 생전에 서울에 소재한 영화교회라는 곳을 다녔으며, 이분도 신앙이 있었고 교회 장로였다고 전해진다. 소천했을 때 빈소가 분당 서울대 병원이었고, 새에덴교회에서 무료 법률 상담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니 노후는 분당에서 보냈던 것 같다.
어째 새에덴교회가 오야마 레이지 목사와 정 광진 변호사하고 모두 접점이 있는 것이 흥미롭다.

Posted by 사무엘

2024/05/14 19:35 2024/05/1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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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 구독자라면 이미 다 아시겠지만.. 본인은 어린 시절부터 예수 믿고 구원의 확신을 얻고 교회 생활을 오래 해 온 크리스천, 예수쟁이이다. 그래서 블로그에다가도 성경 관련, 기독교 교리 관련 글을 지금까지 엄청 많이 써 왔다.
장기적으로는(한 10년 안?).. 그 글 내용들 일부를 정제하고 분야별로 나눠서--구원 복음, 성경 난제, 신앙 생활, 성경 번역 등등등-- 유튜브를 한다든지, 아니면 종이책을 출간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뭐, 이것도 마치 컴퓨터 분야에서 github 계정 파는 것처럼 그냥 구상만 하는 거고 적극적으로 실행까지는 아닌 상태이다. 현실적으로는 직장이나 한글 입력기 개발이 더 급해서 말이다.;;

본인은 20여 년 전 대학 시절에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진영에 입문함으로써 신앙 노선이 크게 바뀌었다. 대외 이미지가 좋지만은 않고 이단 편견도 많은 곳을 굳이 선택한 것엔 다 이유가 있었다.
다들 예전에 한번씩 했던 말 같지만, 지금은 바야흐로 말씀 보존 학회 한글 킹 제임스 성경이 초판 발간된 지도 벌써 30주년=_=이 임박했다. 그거 기념으로 한번 더 개념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사실, 본인은 신앙 노선이 바뀌었다거나 달라졌다는 말도 좀 어폐가 있다고 생각한다. KJV 진영으로 오면서.. 원래 막연하게 믿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강화된 것에 더 가깝다. 다시 말해 둘은 대립 관계가 아니다!

  • 행위가 아닌 믿음만으로 구원이라고 말은 하는데, 그 구원이 영원히 보장되는 건지.. 죄 짓고 회개 안 하면 도로 취소되는 건지는 긴가민가했다. ==>> 당연히 영원히 보장되는 것이고, 죄 짓고 회개가 없으면 보상 등 딴 걸 잔뜩 잃는다고 알게 됐다.
  • 성경 말씀은 완전하고 무오류하다고 배웠지만.. 최초의 자필원본만 그렇다고 들었다.. ==>> 그렇지 않고 번역과 보존도 완벽하게 무오류하며, 그 실체가 지금 이 시간에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건 맞는데 창세기 1장의 6일이나 계시록의 1천 년은 많이 애매했다. ==>> 문자적 해석과 영적 적용의 관계를 명확하게 깨우쳤다.
  • 신약 시대 은혜의 복음에 대해 배웠다. ==>> 응 그건 당연한 건데, 대환란 때는 왕국복음이 등장하고 영원한 복음이라는 것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 아기는 병이나 사고로 죽으면 무조건 다 구원받는다. 유아세례 안 받아도 된다. 그 대신 살아 있는 동안은 부모가 꼭 의로 양육해야 된다. 체벌은 악을 훈계하고 바로잡는 용도로는 필요하다.

이런 식이다.

한편으로는 믿음만으로 구원이라고 배웠지만 "자살하면 구원 상실인가?", "끝까지 신실하지 않으면 대환란 때 남겨지나? 666 안 받으려고 버텨야 되나?" 갖고 고민하던 거.
성경 역시 여느 고문서와 다름없으니 현대의 학자들이 옛날 텍스트와 의미를 새로 복원해 줘야 하냐고 생각했던 거.
어린아기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뭐는 자유의지이고 뭐는 예정인지 이런 간단한 문제들에 대한 답도 모르고 있다가 속 시원하게 논리적으로 해결됐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해 준 진영을 선택한 것이다.

킹진영이건 기성 교회건 같은 하나님, 같은 예수를 믿는 게 아닌가? 원래는 성경도 같은 성경을 보지 않는가?
그런데 세부 방법론이 다르다고 서로 이 정도로 적대하고 이단시하고 대립해야 한다는 게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된다.

예수 말고 다른 구원의 길이 절대 없다고 말하는 배타적인 종교(?)가 있다면 그렇게 "예수 말고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고 쓰여 있는 경전, 말씀도 당연히 하나만 맞지 이와 일치하지 않는 건 다 잘못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너무 당연한 소리이지 않은가?

"예수..?? 응 훌륭한 사대성인 도덕 선생이지. 근데 예수만 믿어야 구원이라고? 그건 사이비 광신이지~"와
"킹 제임스 성경..?? 응 훌륭한 영문학 고전이지. 근데 성경 번역이 그것만 맞다고? (통상적인 이역 수준은 논외) 그 본문 계보만 맞다고? 그건 이단이지~"가
내가 보기엔 둘 다 거의 같은 영, 같은 분별에서 유래됐다.

"기존 개역성경(개역개정)은 사탄 마귀에 의해 변개되고 부패된 성경이다"
이 말은 매우 극단적이고 사람 감정을 상하게 하기 좋다. 개역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구원받고 신앙생활 하고 있는 사람도 많은데 누가 감히 저런 무엄한 말을 입 밖에 낼 수 있겠는가?

저 말은 "제아무리 구원받은 크리스천이라도 육신 모드가 극에 당해서 마귀 들린 듯이 깽판칠 수 있고, 마귀에게 실컷 쓰임받을 수 있다"와 같은 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개역성경에도 변개되지 않은 말씀이 많이 있고 그거 읽고 구원받은 사람이 있는 것과 별개로..
소량의 변개 삭제된 부분은 누가 뭐래도 마귀 영향을 받은 게 맞다. 그게 불편한 진실이다.

사람이 무인도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야 벌레나 풀뿌리라도 먹어야겠지만.. 멀쩡히 좋은 음식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일부러 그런 저질 단백질 공급원을 찾아 먹을 필요는 추호도 없다.
마트에서 물건 하나를 사도 하자나 결함이 전혀 없고, 남이 만진 흔적이 없는 깔끔한 걸 고르려 애쓴다.

맛집 찾아가서 밥 먹는데 음식에 머리카락이 한 가닥이라도 나왔다? 어디 곰팡이 슬고 상한 부위가 있다? 그러면 찝찝해서 그 음식은 통째로 교환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무시하고 그냥 먹어도 어지간해서는 탈 날 일 없더라도 말이다.
당신에게 성경이 정말 귀중하고 사랑스러운 책이라면 성경 역본을 고를 때도 이런 잣대가 자연스럽게 적용될 것이다! 아멘~

KJV 유일주의를 반박하고 빠져나가는 논리는 대부분이 "그건 후대에 첨가된 거고 원본에 없던 구절이다", "여기에는 빠졌어도 다른 책에는 있어서 괜찮다(마태-마가, 에베소서-골로새서 따위)", "오히려 KJV의 오역이다" 이런 식이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반대자도.. 말이 완전히 다른 벧전 2:2 구절이 KJV가 틀렸고 다른 현대 역본들이 맞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걸 지난 20년 동안 본 적 없다. 약 5:16의 '잘못/허물'이 틀렸고 변개됐고 '죄'가 맞다고 양심을 걸고 당당하게 얘기하는 사람도 본 적 없다.

그 발달된 성서고고학 사본학과 헬라어 원어 지식으로 나온 결과물이 고작 그거라면.. 미안한데 나는 그게 맞는 하나님 말씀이라고는 동의 못 하겠다. KJV 유일주의 소신을 버릴 생각이 없다. 내가 수학이나 과학 등 다른 학문에서는 인간의 지성을 동원한 논리와 합리주의, 과학적 방법론을 다 존중하지만, 이 바닥만은 쪼금 다른 잣대를 적용한다. 애초에 종교나 신학은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와 진영논리"가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원본 원문이 없지만 온전히 번역되고 보존된 필사본이 original과 동급이다. 행정에서 말하는 '원본대조필' 도장이 찍힌 거나 마찬가지다.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안 그럴 거면 진짜로 하나님이 지옥을 전하기 위해서 지옥 구경을 진짜로 하고 온 사람을 살려 보내셔야 할 것이고, 성경 시대의 헬라어 히브리어를 구사하던 사람을 살려 보내서 뜻풀이를 시켜 주셔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하시지 않고 후세를 모두 기록된 말씀을 통한 간접 체험만으로 충분하다고 처분하셨다. 오히려 "예수님의 변화산 변모 목격보다도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 "보지 않고 믿은 자들은 복되다"라고 인증까지 해 주셨다. 그 약속은 성경의 온전한 보장을 당연히 전제로 깔아야만 성립 가능하다. 이런 원리를 알면 특정 성경 번역본만 우상화.. 이런 무식하고 민망하고 저열한 소리는 할래야 할 수 없을 것이다~!

아 물론 KJV와 타 성경들은 거시적으로는 일치하지 않는 구절보다 일치하는 구절이 훨씬 더 많다. KJV 진영 교회라고 해서 24시간 365일 내내 '변개된 구절 차이점'만 파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일상적인 교리 쪽에서 KJV 계열 교회가 기존 개신교회와 큰 차이를 보이는 건 앞서 말했던 것처럼 성경 해석 방식이라든가 교회사· 경륜에 관한 인식이다.

(1) 개신교 쪽에서는 기독교가 로마 제국으로부터 공인받은 게 기독교가 세상을 상대로 큰 승리를 쟁취한 거라고 생각한다. 교인들이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세상 요직에 진출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킹 진영의 관점은 다르다. 세상적인 성공은 자기가 재능과 노력을 다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성공하면 하는 거고, 그 자체가 교회의 세력이나 개인의 영적 성장과는 별개라고 여긴다. 박해보다도 왜곡과 변질, 배도, 순수성 상실이 기독교계에 훨씬 더 해로운 현상이라고 분명하게 인지한다.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은 당장은 기독교 박해를 멈추게 했지만 의도가 순수하지 않았으며, 그 뒤로 훨씬 더 큰 비극을 불렀다고 본다. 그냥 일제 시대 문화 통치의 로마 제국 버전이나 마찬가지이다.

(2) 종교 개혁자들을 좋아하는 개신교 쪽에서는 에라스무스, 칼빈 같은 그 선조들이 성경 본문의 편찬과 성경 번역에도 신경 썼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가 보다. 그렇게도 제네바, 제네바 그러는데 KJV의 전신인 제네바 성경은 모름..;;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 점을 특별히 공략해서 개신교들을 대상으로 킹 제임스 성경을 전하기도 한다.

(3) 이 킹 제임스 진영은 대체로 '온건한 세대주의' 성향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이나 침례나 구원이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서 다 똑같지는 않다고 본다. 계시록 예언은 대부분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고, 예수님 재림 때 이뤄진다면 철저하게 문자적으로 그대로 이뤄진다고 본다. 함부로 비유나 묵시 따위로 치부하지 않는다. 과거에 이미 이뤄진 예언들 사례를 보니 아주 문자적으로 이뤄졌었기 때문에 그렇다.
이게 건전한 관점 아닌가..?? 도대체 왜 세대주의가 막연하게 이단 프레임을 뒤집어쓰고 있는지..? 종말 자체는 있지만 당연히 특정 날짜 정해 놓고 깽판 치는 시한부 종말론이 절대 아니다.

아무쪼록 나는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내 양심에 따라 정확하게 전하기는 하고서 거절 거부 당하거나 이단 소리 듣는 것에는 아무 두려움이 없다.
시한부 종말론, 구약 무용론을 주장하기 때문에 이단이 아니라 문자적인 예수님 재림과 천년왕국 통치를 믿기 때문에 이단.
자기네 성경 안 보면 구원 못 받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13구절이 삭제됐고 6만여 단어가 변개됐다고 팩트폭격을 하기 때문에 이단.

이러면 진짜로 예수님이나 바울이 이단 소리 들었던 것과 똑같은 취급이고, 하늘나라 보험에서 보상 사유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것보다 더 합리적이고 건전하게 성경 교리를 풀어 주는 신학 노선이 있다면 나도 들어는 보고 싶다.

※ 여담: 이단 중의 이단 안식교

아니 무슨,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도 안식교에서 유래됐고.

"벤자민 G. 윌킨슨(1872-1968)은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선교사이자 제7일안식일워싱턴재림대학교 신학부 학장이었다. 킹제임스성경의 유일주의는 윌킨슨이 1930년에 출간한 『입증된 우리의 흠정역 성경』이란 제목의 책으로부터 비롯되었다. … 그는 시편 12:6~7을 잘못 적용하여, 그 말씀이 마치 킹제임스성경 보존에 대한 약속인 것처럼 주장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작 윌킨슨이 KJV를 지키려 했던 이유는 1881년 개정된 성경RV이 KJV보다 자신이 믿고 지지하고 있는 안식교 교리에 불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 권 동우,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의 망상』(CLC, 2016), pp. 41-42


젊은 지구 창조론/창조과학도 안식교에서 유래됐다니..

1938년 제7일 안식교인인 조지 맥크리디 프라이스(1870-1963)가 홍수 지질학을 주장하며 홍수 지질학회(Deluge Geology Society)를 설립한 것이 근대 창조설의 시초가 되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사이비 과학적인 설명을 더해 만들어진 것이 현재의 젊은 지구 창조설, 혹은 창조과학이다.
-- 로널드 L. 넘버스, 『창조론자들』(2016). 새물결플러스, pp. 295


만만하면 다 호구 안식교 탓이냐..?? 1930년대에 안식교라는 곳은 아주 대단한 곳이었구나. -_-;; ㄲㄲㄲㄲㄲㄲㄲ
내가 확실하게 아는 건 '론 와이어트'(1933-1999)라는 아마추어 성서고고학자인지 아니면 사기꾼인지.. 논란 많은 이 아저씨가 안식교인이었다는 것이다.

노아의 방주 흔적은 말할 것도 없고, 홍해 밑바닥을 탐사해서 모세 시절의 병거 바퀴를 발견하고 심지어 골고다 언덕에서 부계 염색체가 없이 모계 염색체만 있는 예수의 진짜 혈흔을 발견했다고 주장한 사람 말이다. =_=;; 물론 이건 안식교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

사실, 내가 알기로 정작 안식교는 크리스천도 안식일 지켜야 된다는 요지의 이상한 소리 하는 것 말고 다른 건 별로 이단기가 없다. 교리 측면에서만 이단일 뿐,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는 것도 없다고 들었다.
하물며 성경 말씀이 번역 과정에서도 온전히 보존되었고 그 실체가 지금까지 있다고 믿는 것, 문자적인 6일 창조를 믿는 것 그 자체는 아주 건전한 기독교 신앙이다. 문제될 게 전혀 없다. =_=;;

아무쪼록 누구든지 "이단들이 성경을 엄청 파고든댄다, 요한계시록 공부 열심히 한댄다. 6일과 1천 년을 문자적으로 믿는댄다. 이단들이 재림을 사모한다고 하니 우리는 성경 공부하지 말자, 재림 사모하지 말자." 이런 무식한 짓은 제발 안 했으면 좋겠다.
다음은 진짜 마지막 여담.

  • the Holy Bible '성경'이라고 해도 충분할 텐데 '성경전서'라는 말이 왜 붙었을까? 신구약 66권이 모두 들어있다는 걸 굳이 강조하고 싶었는가 보다.
  • 한킹이 출간된 1994년 4월 12일은 KBS 박 지원 아나운서의 생년월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15일은 서울 2기 지하철을 관할했던 서울 도시철도 공사가 창립된 날이다. ㄲㄲ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24/04/11 08:35 2024/04/1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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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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