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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출판사의 추억

옛날에 '동아 출판사'는 다방면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면서 국내의 출판 문화를 이끌었다.

1. 전과

초딩용 월간 학습지 '이달 학습'
교학사 '표준 전과'와 더불어 '동아 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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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라는 단어는 대학 시절에는 '전공을 바꿈'이라는 뜻으로 통용되고, 사회인이 된 뒤엔 중범죄 형사 처벌 내력이라는 뜻으로 통용되는데..
초딩 시절에는 이게 전과목 학교 공부 내용을 보충하는 참고서 내지 백과사전이라는 뜻이었다.

교과서에 대해서 교사한테 '교과과정 지침서'라는 매뉴얼이 존재한다면, 학생한테는 전과가 있는 셈이다.;;
초등이기 때문에 두꺼운 책 한 권으로 전과목 커버가 가능한 듯하다. 초등에서는 교사 한 명이 전과목을 가르치는 것처럼 말이다.

중등 정도만 돼도 공부할 거리가 너무 많고 어려워지고 세분화되고, 애들의 진로도 서서히 갈리기 때문에 교육 과정 전체에 대한 1인 1책 몰빵이 곤란하다.
사실은 그 전에 초딩 고학년부터도 내 기억이 맞다면 전과가 두세 권으로 나뉘곤 했다. '국산사자 / 예체능' 이런 식으로 말이다.

물론 지금이야 정보의 바다 인터넷 검색에다 숙제까지 해 주는 네이버 지식인까지 있으니 '전과'라는 게 쌍팔년도 시절에 비해서는 훨~~씬 덜 필요해져 있다. 그래도 요즘도 초딩용 동아 전과가 출간되고는 있는가 보다.

2. 사전

동아 출판사의 설립자(故 김 상문)는 전과뿐만 아니라 사전 덕후였다~! 도서 출판에 뼈를 묻은 경영자로서 책 중의 책, 책들의 왕은 사전이라고 생각했는가 보다. 그래서 애들 학습지에만 만족하지 않고 한국의 브리태니커 같은 걸 만들고 싶어했다.

1980년대 초-중반에 '동아 원색 세계 대백과 사전'은 정말 위대한 업적이었다. 무려 30권에 달하는 전집이었는데, 나중에 보유편도 두 차례나 만들어서 기존 구매자들에게 개별 전달했다. 1990년대 초까지 '애프터서비스'를 해 준 셈이다.
마지막 2차 보유편에는 그 당시 계획 중이던 '서울 지하철 5호선'이 수록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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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된 지 30년이 훌쩍 지나니.. 본인의 집에 있는 이 책도 겉표지가 다 탈색되고 해지고 종이가 누렇게 바래고 딱 저 꼴이 나고 있다.. ㄲㄲㄲㄲㄲ)

하지만 종이 사전은 서서히 돈 안 되는 사양산업이 돼 갔고.. 동아는 경영난을 좀 겪었는가 보다.
내가 중학생이던 96~97년 사이에 사명이 '두산동아'로 바뀌었고, 이때쯤 설립자가 여전히 '파스칼 대백과 사전'이라는 걸 또 만들려고 투자를 호소하고 애를 많이 썼던 것 같다.

동아는 백과사전뿐만 아니라 어학사전의 편찬에도 관여했다. 기억하시는가? 프라임~!!
1990년대까지만 해도 동아 프라임 영한사전은 명성과 인지도가 아주 높았고, 컨텐츠가 아래아한글 한컴 사전에 수록되기도 했다. 아래아한글 2.5부터 97까지는 영한사전이 프라임 제3판이다가 워디안/20xx 이후부터 엣센스로 바뀌었다.

ㄲㄲㄲ

(본인이 프라임 영한 사전 종이책을 직접 뒤적였던 3판 시절에는 PRIME이라는 글자가 마치 DOOM 게임 로고타입과 비슷한 서체였는데.. 나중에 4판에서는 좀 더 튀는 꼬부랑 서체로 바뀌었다.)

그리고 1999년엔가 국립 국어원에서 편찬한 표준 국어 대사전의 초판도 동아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그 당시 명칭으로는 국립 국어원이 아니라 '국립 국어 연구원'이고, 동아 출판사가 아니라 '두산동아')
허나, 국어사전은 수지가 맞지 않아 손해를 많이 봤다.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초판의 이후로 표준 국어 대사전은 종이책의 출간이 완전히 중단됐으며, 현재까지 웹을 통해 수시로 업데이트 되는 형태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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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꼴

옛날에 동아 출판사 진영은 의외로 서체 개발에 관심이 있었다. 쌍팔년도까지만 해도 동아 출판사만의 본문용 서체가 있었다. 명조(바탕)이지만 ㅈ의 ㅅ획이 ㅡ의 우측이 아니라 고딕(돋움)체처럼 중앙에서 시작하는 그 엄근진한 서체.. 동아 출판사 본문체가 훗날 'SM 세명조'와 '문화바탕체'로 나뉘어 계승됐다.

내 기억이 맞다면 쟤들은 1990년대 초에 가서는 휴먼편지, 휴먼모음, 휴먼새내기처럼 당대엔 꽤 참신하던 휴먼 컴퓨터 서체를 즐겨 도입해 썼던 것 같다. 지금은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영문-숫자에도 2의 좌측 하단 획을 동그랗게 말았던 특유의 필기체가 있어서 문제집과 학습지에다 사용했었다.

4. 멀티미디어 타이틀

그럼 쟤들이 오로지 종이책밖에 고집하지 않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사업 영역을 확장하려고 시도도 했었다.
오 성식 생활 영어 SOS가 종이책은 1993년에 '고려원'에서 먼저 출간됐지만, 멀티미디어 CD 타이틀은 바로 동아 출판사의 이름을 걸고 만들어졌다.

그리고 1990년대 말에는 2번에서 언급했던 세계 대백과사전을 CD 타이틀로 제작하기도 했다.
본인은 Windows 3.x에서 돌아가던 저 CD 타이틀을 써 본 적 있다. 종이책에는 없는 동영상 화보가 있기도 한 건 신기했지만, 용량의 한계 때문인지 전반적인 컨텐츠는 종이책보다 간소화되고 부족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상이다.
계몽사, 국민서관, 교학사, 지학사는 지금도 살아 있기는 하다. 앞의 둘은 아동용 도서 전집, 뒤의 둘은 뭔가 초-중등용 학습지 문제집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민중서림은 사전 출판으로 유명했는데 지금 살아 있나? 종이책의 지위와 위상이 근본적으로 달라져 버렸으니, 이런 업체들도 사업 방식이 아무래도 쌍팔년도 시절과 같지는 못할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금성 출판사도 있구나. 본인의 기억에 얘는 학습지로서는 존재감이 거의 없지만, 교과서와 사전을 만든 적이 있었다. (뉴에이스!!!) 사전은 마소 Office 한글판에서 맞춤법 검사기인지 뭔지 사전 DB로 쓰였다고 About 대화상자에 꼬박꼬박 언급되어 있었다.
금성은 전자 제품에서는 삼성과 경쟁하더니(지금의 LG), 서적에서는 동아와 경쟁했던가 보다.

이 와중에 동아 출판사는 아동용 도서, 초-중딩 학습서, 그리고 사전까지 모든 영역을 넘봤었다. 생각해 보니 대단하다.
아 그리고.. 하이탑!!! 영어에 성문, 수학에 정석이 있지만 과학은 뭔가 압도적인 개인 브랜드가 없는 듯한데.. 거기는 동아 출판사가 다시 '동아 출판'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접수하고 있었다.

옛날 오리지널 동아 출판사라고 하면 뭔가 옛날 대우 자동차 같은 생각이 든다. ^^ 참고로 동아일보 신문이나 과학동아 잡지는.. 동아 출판사와 무관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3/03/10 19:35 2023/03/1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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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 원일 전 천안함 함장은 손 원일 제독 같은 사람이 되라고 해군 병 출신인 부친으로부터 참 부담스러운 이름을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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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원일은 독립운동가 겸 대한민국 초대 해군 참모총장.. 그야말로 해군의 창설자 내지 아버지다. ㄲㄲㄲㄲㄲ 관심 있는 분이라면 저분은 투스타 신분으로 미국 가서 극한의 심리전 흥정 딜을 벌여서 가격을 후려친 끝에 각종 군함과 무장을 똥값 헐값에 도입해 온 에피소드를 아실 것이다.

이런 준비 덕분에 6 25 사변 초기에 울나라가 본토에서 참패와 후퇴가 이어지던 동안, 바다에서는 대한해협 해전에서 대승해서 북괴의 내륙 침투를 저지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전쟁 내내 재해권은 우리 아군이 차지할 수 있었다.


이분은 해군 사관학교를 나와서 저 손 제독처럼 해군 장교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우수한 성적과 근무 실적으로 진급도 금방 금방 하면서 아주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2010년의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인해 인생이 싹 바뀌게 되었다.

이거 무슨 인디애나폴리스 호 피격의 조선판도 아니고.. 패잔병, 패장, 임무 소홀/실패..?? 함장으로서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제일 나중에 정당하게 구조됐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세월호 선장마냥 혼자 빠져나왔다는 식의 망발.. 정말 말도 안 되는 개 헛소리들을 일일이 상대해야 했다.

그는 이 정신병자 미친놈들을 몽땅 다 소송으로 대응해서 참교육 시켰다. 전우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이 인생 최대의 과제가 돼 버린 것이다.
특히 지난 2021년 6월에 휘문고의 어느 또라이 교사를 데꿀멍 시킨 일화가 유명하다. 저분은 2021년 2월에 대령 진급과 함께 예편했으니, 저건 민간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어졌던 일이다.

2.
지난 2002년엔 아폴로 계획 자작극 음모론자이던 어떤 스토커가 무려 11호 승무원 출신인 버즈 올드린(닐 암스트롱 다음으로 달에 발을 디딘..)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면서 어그로를 끌었다. “당신이 달에 진짜로 간 거면 어디 성경책에다 손 얹고 맹세해 봐라~ 용용~ 이 거짓말쟁이 사기꾼놈아!” 이랬다.

허.. 올드린은 11호 착륙 당시에 “저희는 달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지구의 각지에서 이 방송을 듣고 계신 여러분은 하시던 일을 잠시만 멈추고, 지금 이 순간을 심사숙고하면서 각자의 방법으로 ‘감사’를 같이 표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말을 했던 사람이었다.

1948년 울나라 제헌국회 때 리 승만 의장이 애드립으로 감사 기도 요청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다만, 반 년 전 아폴로 8호 때는 창세기 1장 애드립 낭독이 논란이 돼서 이번엔 종교색을 빼고 ‘각자의 방법으로’라고 표현만 바꿨을 뿐이다. 그는 정말 독실한 신자였기 때문에 달에서 개인적으로 몰래 주의 만찬까지 진행했었다..!! (대외적으로는 성찬식..)

근데 성경에 대고 맹세, 사기꾼? 처음엔 이 사람도 그냥 정신병자 취급하면서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지만 이 새X가 계속 길을 막고 선을 넘으며 모욕적인 도발을 일삼으니 참다못해 70대 나이로도 죽빵을 날리게 됐다.
한국 같으면 폭행죄로 기소됐겠지만, 정당방위를 높게 평가하는 천조국에서는 “이 정도면 아예 폭행을 대놓고 유도한 거나 마찬가지”라면서 기소조차 하지 않고 무혐의 방면됐다.

자, 저 버즈 올드린의 심정과(달 착륙), 손 원일 함장(천안함 폭침)의 심정이 비슷했을 것이다..!! 내가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솔직히 이건 타이슨 핵이빨이나 박 찬호 가위차기 같은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이 참고 더 점잖게 대응한 것이었다.
참고로 버즈 올드린은 아폴로 11호 승무원 3명 중에서 2023년 현재까지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사람이다. 생존했을 뿐만 아니라 90대의 나이로.. 한 달쯤 전(2023년 1월)엔 리 승만-프란체스카를 능가하는 연하의 여자와 네 번째 결혼까지 했다~!! ㄷㄷㄷㄷㄷ
그 반면, 가장 유명한 암스트롱은 2012년에, 사령선 조종사인 콜린스는 2021년에 세상을 떠났다.

3.
다음으로, 국내엔 손 원일의 이름을 딴 인물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월북 독립 운동가인 박 헌영의 이름을 딴 인물도 있다. 임 헌영..;; 이 사람은 본명이 따로 있다가 훗날 스스로 개명한 것이다.

이 사람은 교사 출신으로 문학 평론 쪽으로 일하다가 나중엔 민족 문제 연구소, 친일 인명 사전.. 이름만 들어도 성향이 짐작이 되는 진영에서 뼈를 묻으며 지냈다.
군사 정권 시절엔 감방을 들락거리기도 했고 정부로부터 사찰 감시도 받았다고..

행적이 입체적이고 진짜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 시대를 잘못 만난 풍운아, 선친일 후항일이 낫냐 선항일 후친일이 낫냐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인물..
그 많고 많은 일제 시대 인물 중에 하필이면 남한과 북한으로부터 모두 버림받았고 재평가 가능성도 없는 최악의 인물의 이름을 땄을까? 취향이 참 이상한 것 같다.

하다못해 손 원일의 부친인 손 정도 목사는 남한의 입장에서도 독립 운동가였을 뿐만 아니라 북한으로부터도.. 김 일성 수령의 옛 스승이었다고 예우받고 인정받는 사람이다. 이건 당연히 현재 북괴의 정치나 이념과도 전혀 무관한 옛날 일이다.

마치 중국에서 ‘쑨 원’이 중공과 대만 모두에게서 인정받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도 민족이니 통일이니가 좋으면 차라리 저런 사람이나 재조명할 것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고 보니 친일파니 어쩌니 하는 저 바닥에는 독립 기념관 관장을 역임한 김 삼웅이라는 사람도 있고, 광복회 회장을 역임한 김 원웅이라는 사람도 있다. 인상이 좀 비슷하게 느껴지는데 물론 그닥 긍정적인 인상은 아니다. -_-;; 도 넘는 반일 정신병은 이제 좀 그만..

Posted by 사무엘

2023/02/20 08:34 2023/02/2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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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500년대 전반기에 잉글랜드에서는 그 이름도 유명한 헨리 8세라는 군주가 재위했다. 그는 '수장령'이라는 걸 선포하며 자기 나라를 종교적으로 로마 교황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떼어 놓았다.
뭐, 루터처럼 무슨 "오직 성경으로, 오직 믿음으로" 이런 거창한 신념 때문은 아니고, 교황이 자신의 이혼을 승인해 주지 않고 어영부영한 것에 대한 불만과 반발이 크게 작용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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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은 거쳐 간 마누라가 한두 명이 아니었고(6명), 심지어 그 중 두 명은 자기 손으로 사형에 처하기까지 했다.;; 궁예만 자기 마누라를 죽인 줄 알았더니..=_=;;
여러 모로 가정사가 비범하고, 도라이 정신병자 같은 기질도 있었지만.. 저 사람을 통해 종교 쪽은 결과적으로 좀 선한 결과가 나왔다.

이 사람의 재위 때(1530년대) 윌리엄 틴데일이 순교했다. 그가 유언으로 남긴 "주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 기도가 응답되어 커버데일, 매튜, 그레이트 같은 영어 번역 성경이 출간되어 나왔다.

이때는 훗날 킹 제임스처럼 왕이 자기 이름을 걸고 국비로 번역자들을 50여 명이나 소환해서 성경 번역을 추진한 단계까지는 아직 아니었다. 그저 "개인이 성경을 번역하고 출간할 자유 정도는 국가에서 보장한다. 이제 성경 번역자가 순교자가 되지는 않아도 된다" 정도만 이뤄진 것이었다.

헨리 8세는 1536년에 낙마 사고를 크게 당한 적이 있었다. 이때 2시간 동안이나 의식을 잃었으며, 한쪽 다리를 크게 다치는 바람에 그 뒤로 평생 제대로 못 쓰게 됐다. 이를 계기로 이 사람은 더욱 심신이 피폐해지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싸이코처럼 흑화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1547년에 세상을 떠났다.

2.
어 그런데 1547년엔.. 프랑스에서도 '헨리'라는 이름의 새 왕이 즉위했다. 현지 발음으로는 '앙리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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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잉글랜드 저 동네의 추세와는 정반대로 골수 가톨릭이었다. 유럽을 휩쓸던 종교 개혁을 온몸으로 반대하는 소신이었다.
그는 개신교를 이단으로 규정해서 대놓고 금지했으며, 종교개혁자고 개신교 신자들이고 눈에 띄면 잡아서 화형에 처했다. 심지어 죽는 동안 비명을 제대로 못 지르게 하려고 혀까지 미리 자르고 죽였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앙리 2세(1519-1547-1559)(출생;즉위;사망)와 아주 비슷한 시기에 잉글랜드에서는 메리 1세(1516-1553-1558) 여왕이 재위 중이었다. 저 아줌마도 'bloody Mary'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개신교 박해에는 한 끗발 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째 저 시기엔 프랑스와 잉글랜드에서 군주의 종교 성향이 똑같이 저렇게 갔는지가 흥미롭다. 어떻게든 종교 개혁을 짓밟고 없애 버리고 싶긴 했는가 보다.

다만, 메리 1세는 재위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고 공식적으로 죽인 것으로 확인된 사람도 일단은 몇백 명 단위가 전부(!)이다. 무슨 스페인 종교재판소에 비할 바는 아니었고, 또 저 사람은 종교 박해만 빼면 세상적인 통치는 그리 나쁘지 않게 했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쪽에서는 아무래도 자기를 박해한 군주를 아주 나쁘게 기록할 수밖에 없고.. 폭스의 순교사 책에서도 재위 기간 대비 그녀의 악행(?)이 굉장히 길고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폭스 자신의 자국 얘기이기도 하니 기록이 많이 남아 있고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뭐 그건 그렇고..

앙리 2세는 여자인 메리 1세와 달리, 아주 마초스럽고 스포츠 승부를 즐기는 기사 스타일이었다. 허나 이 기질 때문에 사고를 당해 요절했다.
1559년, 그는 자기 장녀와 자기 여동생이 나란히 결혼--어떻게 이런 일이 동시에 가능??--하는 이벤트가 있어서 국내외 여러 왕족· 귀족들과 먹고 마시며 놀았다. 분위기가 좋아지자 그는 자기 부하인 가브리엘 몽고메리 백작과 나란히 말 타고 창술 시합을 벌였는데..

격렬히 싸우던 중에 몽고메리 백작의 창이 빠직 부서졌다. 그런데 창 자루가 부러진 날카로운 파편이 앙리 2세의 투구 틈새로 튀어서 그만 국왕의 눈 바로 옆을 찌르고 관자놀이 근처까지 박혀 버렸다.
앙리 2세는 얼굴이 피칠갑이 됐다. 당대 최고의 명의들이 동원돼서 파편을 빼내고 치료에 수술에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상처가 세균에 감염되고 곪고 그 독소가 바로 근처의 뇌까지 퍼지는 걸 막지는 못했다.

앙리 2세는 끙끙 앓다가 사고 후 11일 만에 만 40세의 나이로 결국 세상을 떠났다. 현대의 위생과 의술이 있었다면 겨우 이 정도로 죽지는 않았을 텐데..
그는 고통 속에 죽어 가면서도 몽고메리를 사면하고, 사고의 책임을 저 사람에게 묻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앙리 2세는 말에서 떨어진 헨리 8세보다 더 큰 사고를 당해서 결국 목숨까지 잃은 셈인데..
당시 노스트라다무스가 4년쯤 전에 이 사람의 죽음을 아주 막연하게나마 예언을 했다고 여겨진다.
"젊은 사자가 늙은 사자를 이길 것이다. 단 한 번의 전투를 치르는 전장에서 그는 황금빛 새장 너머 그의 눈을 찌를 것이다. 그는 두 상처가 하나 되어, 참혹한 죽음을 맞으리.."라고 썼다고 한다.

몽고메리는 이 사고에서는 무사했지만, 훗날 앙리 2세가 싫어했던 '위그노'--당시 프랑스에서 칼빈파 개신교도를 일컫던 멸칭--로 전향하고 잉글랜드 쪽으로 정치 입장까지 바꿨는가 보다. 그는 프랑스의 종교 내전이었던 위그노 전쟁에 참여했다가 잡혀서 처형 당했다.

프랑스는 종교 개혁이나 개신교 따위와는 영 접점이 없어 보이는 동네인데 웬 칼빈인가 싶지만.. 애초에 칼빈부터가 처음에 프랑스 출신이었다. 그러니 대외적으로 '쟝 깔뱅'이라는 표기도 통용되는 것이다.
프랑스나 스페인 같은 나라도 종교 개혁의 영향을 받기는 했다. 그러나 거기는 이런 투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여전히 가톨릭 국가로 남게 됐다.

Posted by 사무엘

2023/02/18 08:35 2023/02/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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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펀 Orphan 시리즈

영화 "올펀(Orphan)".. 우와 장난 아니구나.

(* 영화 스포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열람 주의!!! *)
(* 대외적으로나 외래어 표기법으로나 '오펀'이 맞긴 한데.. 난 개인적으로는 R 발음을 한글 표기에 반영하고 싶다. 저그 Lurker도 럴커라고 쓰고 말이다. 그런데 dark는 그냥 다크가 익숙하고.. 쩝~~ ㄲㄲㄲㄲㄲ *)

1.
이 영화는 왜소증 때문에 초딩 꼬마 덩치에서 멈춰 버린 어느 30대 여성이.. 무려 9살 소녀 행세를 하며 남의 집에 입양돼 들어가서 각종 사고를 친다는 얘기이다. 2009년작.;;
스토리가 참신해서 저렴한 제작비 대비 흥행 성적이 아주 좋았다고 한다.

주인공인 아이의 이름은 에스더이다.
얘는 덩치는 작지만 성깔은 완전 싸이코패스 살인마로, 정신병원 입원 경험까지 있다. "사탄의 인형"에서 처키 인형이 실제 사람으로 바뀐 거나 마찬가지이다.
혹은, 국내 현실에다 비유하자면 악명높은 싸이코패스였던 엄 인숙(엄 여인) 같은 느낌도 든다. 이 여자 주변에만 있으면 꼭 집에 불이 나고 누가 죽거나 다쳤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녀는 동안 얼굴에다가 짙은 화장빨로 주름을 가려서 실제 나이를 속였다. 생물학적 나이가 탄로날 수 있는 치과(치열..)에는 절대 안 가고, 집에서도 목욕은 무조건 혼자 했다. 문 잠그고 혼자 목욕하는 대신, 그 동안 욕실 안에서 노래를 부르겠다고 양부모에게 제안까지 했다.

영화에서는 그 애는 자기 심기를 건드리는 연놈, 자기 정체를 의심하고 드러내려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였다. 그리고 양부를 제외한 다른 모든 가족들과 척져 버렸다.
아이고 얘는 전문적인 간첩 공작원도 아니고, 무슨 부귀영화를 바라고서 멀쩡한 가정집에 왜 침투해 들어간 걸까..?? 조마조마 불안해서 어떻게 사나 모르겠다.. -_-;;;

처키는 다시 인간의 몸을 얻기 위해서, 엄 여인은 보험금 타서 팔짜 고치려고.. 이렇게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저 에스더는?? 다른 가족들을 격리시킨 뒤엔 야하게 차려입고 양부를 유혹하려 들었다. >_<
양부는 그 전까지는 너무 답답할 정도로 상황 파악 못 하고 애 편만 들었지만.. 이건 정말 선 넘었다는 걸 느끼고 뒤늦게 아내의 말이 맞았다는 걸 인지한다.

그 당시 양부는 상심해서 술까지 잔뜩 마시고 정신줄 놓기 직전 상태였다. 하지만 이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너 미쳤냐? 난 너를 아이로서 사랑해 온 거지 너를 여자로서 사랑하는 건 아니야!!"라고 애를 크게 나무랐다.
이 말에 그 독한 살인귀 에스더도 크게 상처 받은 듯 혼자 펑펑 울더니.. 결국 위장을 지워 버리고 정체를 드러낸다. 이건 옛날 영화 "크러쉬"와 비슷한 듯..

양부는 분노한 에스더에게 칼빵을 맞아 죽고.. 나중엔 양모하고도 한밤중에 처절한 개싸움을 벌이다가 같이 연못에 빠진다. 여기서는 양모가 주인공 보정을 받아서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최종 승자가 된다.
에스더는 자기가 불리해지자 또 딸 행세를 하며 목숨을 구걸하는데, 그 어떤 바보라도 속지 않을 가증스러운 이 연기에 양모는 "I am NOT your f***ing mother!!" 일갈과 함께 걔의 얼굴에다 킥을 날려서 애를 목을 꺾어 죽인다.

2.
올펀 원작은 저렇게 완결되고 끝났다.
그런데 바로 작년, 2022년에 이 올펀의 프리퀄을 표방하는 후속편이 나왔다. 옛날에 영화 부산행 다음으로 프리퀄 애니 '서울역'이 나왔던 것처럼 말이다.

무려 13년 뒤에, 원작으로부터 2년 전 배경을 다루는 영화가 나온 셈인데.. 관객이 악녀 에스더의 정체를 이미 다 안다는 걸 전제하면서도 후속편 역시 작품성이 꽤 훌륭했다.
물론 그 어떤 위기가 닥치더라도 어차피 에스더가 무조건 이긴다는 건 보장돼 있으니 몰입감이 좀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건 유명한 실제 역사를 다루는 영화나 프리퀄 작품이 지니는 태생적인 한계이다.

이 프리퀄 속편에서는 그 애가 정신병원을 탈출해서는 입양이 아니라 실종됐다가 4년 만에 돌아온 아동 흉내를 내면서 남의 집에 들어간다. 물론 자신과 외모가 최대한 비슷한 애 말이다.
이건 기존 아이의 흉내를 내야 하는데 더 어렵고 더 들통나기 쉽지 않은가? =_=;; 기존 아이가 모를 수 없는 가정사를 틀려서 실수하고 당연히 의심을 받았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집 엄마와 오빠도 네년이 가짜라는 걸 이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흑막 반전이 나온다.
실제로는 양아치 날라리 오빠가 진짜 여동생을 어째어째 거칠게 대하다가 죽이고 말았는데, 그걸 덮어주기 위해서 엄마와 짜고 시체를 숨기고 애를 실종으로 처리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 애가 외국에서 발견됐다는 연락이 왔으니 거 참..;;

그 집의 남편, 애아빠는 막내딸을 잃은 슬픔에 완전 패닉에 빠지고 폐인 상태였다. 그랬는데 에스더가 살아서 돌아왔다니 활기를 되찾았다. 그러니 엄마와 오빠는 잔머리를 굴려서 악녀가 딸 행세하는 걸 묵인하기로 한다. 그 대신 걔더러 다른 허튼수작 부릴 생각은 말라고 경고하면서 서로 이용하고 의심하고 견제하는 구도가 형성된다. ㄲㄲㄲㄲㄲ

허나, 그 평형은 얼마 못 가고 깨진다. 결국 엄마· 오빠 vs 악녀는 아빠가 나가고 없는 사이에 집에서 대판 싸우게 되고 그러다 집에 불도 난다. 뒤늦게 아빠까지 도착하지만 여차여차 하다가 다 몰살..
이 현장에서 에스더만 혼자 무사히 구조된다. 그녀는 기껏 실종됐다가 돌아왔지만, 이젠 집과 가족을 송두리째 잃은 불쌍한 고아(!!) 신세이니 외국으로 입양되는 걸로 1편 스토리가 이어진다.. =_=;;

프리퀄인 2편에서는 아빠가 저렇게 딸을 잃어서 크게 상심한 걸로 나오고, 원작에서는 엄마가 셋째를 가졌다가 유산하는 바람에 크게 상심한 걸로 나온다.
프리퀄인 2편에서는 악녀가 그림을 잘 그리는 걸로 나오고, 원작에서는 악녀가 피아노를 잘 치는 걸로 나온다. 싸이코패스 주제에 예체능의 귀재인 건가..;;

그리고 에스더가 남의 자동차에 몰래 타서 남의 집에 너무 귀신같이 감쪽같이 잠입한 것, 정신병원의 보안이 비현실적으로 너무 허술하고 경비원이 겨우 환자 한 명의 난동에 허무하게 제압당한 것.. 이런 것들은 어쩔 수 없이 영화적 허용이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ㄲㄲㄲㄲㄲ
1편은 저 에스더 악녀만이 만악의 근원이지만, 프리퀄인 2편은 엄마의 꼼수 잔머리가 집안을 말아먹는 데 큰 기여를 하긴 했다. 딸을 실종으로 위장한 것, 에스더를 계속 받아들인 것 말이다.

3.
저 영화들 자체는 원작 소설이 있는지 순수 감독의 창작인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100% 허구라고 한다.
그런데 미국의 어느 가정집에서 2010년쯤에 8살짜리 우크라이나 소녀를 하나 입양했는데 걔도 실제로는 20대 성인 정신이상 인성파탄자였다고 한다. 이런 엽기 일화가 2019년이 다 돼서야 외국 매스컴을 타다가 국내에도 소개됐었다.

저 영화 정도의 막장 살인 방화극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애가 정상이 아니기는 했으며, 영화와 섬뜩할 정도로 비슷한 사건이 실제로 벌어진 적이 있었던 셈이다.
다만, 사건이 처음으로 때(2010)와 그게 매스컴을 탄 때(2019)의 텀이 너무 길기도 하고.. 찌라시 언론의 주작이 아닌지, 사건이 진짜 있긴 있었는지 공신력이 좀 미심쩍게 느껴지기도 한다. 레알이라면 이건 영화와는 무관하게 전적으로 우연인 걸까?

얼굴은 4, 50대 성인이고 팔다리 자체는 멀쩡하고 지능도 정상인데 키가 일반 성인 절반인 사람이 있긴 하다. 본인도 수 년에 한 번꼴로 길거리에서 마주쳐던 것 같다. 그건 무슨 유전병이나 장애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덩치가 작다고 해도 얼굴과 피부가 삭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어린애 연기는 호락호락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태생적인 동안 얼굴까지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2/02 08:35 2023/02/0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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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

1.
19세기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외륜선 달린 증기선이 떠 다니는 미시시피 강을 배경으로 “톰 소여의 모험”이라는 동화? 소설을 집필한 작가로 유명하다.
‘허클베리 핀’은 거기 나오는 톰 소여의 친구의 이름인데, 원작 동화가 큰 히트를 치자 친구 캐릭터만 갖고 소설을 또 쓰면서 이름이 제목에 등장하게 됐다.

이 사람은 얼마 전에 이 블로그에서 소개했던 패니 크로스비 여사와 동시대 인물이다. 검색을 하면 무슨 아인슈타인처럼 백발에 수염도 북실북실한 노신사의 모습이 주로 걸려 나온다. 그리고..

2.
그는 시대를 정말 엄청나게 앞서간 좌파 진보(?) 성향이었다.
무슨 공산당 빨갱이 성향이었다는 말이 아니라, 그 시절에 인종 차별 반대하고 제국주의 반대하고 저딴 일들이 신과 기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걸 극혐 거부했다. 심지어 자국에서 과거에 인디언들 땅 빼앗고 죽인 것까지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놀랍지 않은가?

사회 상류층들의 위선을 싫어하고, 불의와 거짓이 알량한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고 퉁쳐지는 걸 반대했다. 자기가 싫어하는 걸 비판할 때는 온갖 신랄한 독설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프랑스에서 드레퓌스 누명 조작 사건이 벌어졌을 때, 드레퓌스 진영을 온몸으로 옹호했다. 드레퓌스를 실드 쳤던 프랑스의 소설가 ‘에밀 졸라’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극찬했었다. 그 유명한 n명 출생 드립을 동원해서 말이다.

“세상에 위선자 사기꾼 돌팔이 겁쟁이 기회주의자 따위는 1년에도 수백 명씩 태어난다. 그러나 에밀 졸라 같은 양심적이고 용감하고 정의로운 지식인은 몇백 년에 한 명 태어날까말까다.”
글쎄, 영국은 저런 사람이 정치판에 부족해서 결국 19세기 중반에 아편 전쟁을 벌이게 됐는가 보다.

3.
마크 트웨인은 성향이 성향이다 보니 사회 풍자 소설도 많이 썼다.
이건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인 영국 조나단 스위프트와 비슷한 면모인 것 같다.

걸리버 여행기야말로 걸리버가 무슨 ‘하멜 표류기’마냥 난쟁이들과 부대낀다는 내용의 초딩용 가벼운 판타지 동화라고 생각하면 그건 정말 경기도 오산이다.
거인국 등 나머지 에피소드 3개를 다 봐야 된다. 제일 유명한 첫 에피소드 소인국 편은 전체 소프트웨어의 기능 중에서 셰어웨어 비등록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건 영국 사회에 대한 블랙코미디 풍자를 넘어 거의 인간 본성에 대한 혐오와 회의 자괴가 담긴 참신하고도 심오한 소설이다.
이런 소설이 1800년대도 아니고 1720년대에 출간됐으니 얘도 시대를 엄청 많이 앞선 것이었고, 작가는 굉장한 천재였다.

여담이지만 작가의 이름 Swift는 오늘날 애플의 iOS/macOS 프로그래밍 언어의 이름으로 등극했으며,
걸리버 여행기 소설 중에 등장하는 미개 종족 이름 Yahoo는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검색 엔진의 이름으로 쓰이기도 했다.;;;
CPU 아키텍처별 비트 배열 순서의 차이를 나타내는 big/little endian이라는 것도 저 소설에서 등장하는 '계란 깨는 방향'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어이쿠~ ㄲㄲㄲㄲㄲㄲ

4.
이렇게 마크 트웨인과 웬 걸리버 여행기가 오버랩 됐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마크 트웨인은 참 신기하게도 핼리 혜성이 지구를 찾아온 때에 거의 맞춰 태어나고(1835년 11월), 그 다음 핼리 혜성이 지구를 찾아온 때에 거의 맞춰서 죽었다(1910년 4월)!!

저 사람 본인도 이에 대해 진작부터 신기하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자기는 다음 혜성 방문 타이밍 때 죽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농반진반으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 씨가 돼 버렸는지, 70대 중반의 나이로 진짜로 그 시기에 죽었다..;;

그는 이런 출생 배경 때문인지 문돌이 소설가인 것치고는 자연과학 쪽으로도 일반인들 이상의 관심과 조예가 있었다. 그리고 저런 골수 진보 성향(!!) 때문인지, 자기 살아 생전에 발표되어서 교계를 뒤흔들었던 따끈한 학설인 진화론에 대해서도 응당 호의적인 입장이었다.

그렇다고 저 사람은 무슨 볼테르 급의 완전 개독안티 무신론자 반종교.. 까지는 아니고, 명목상 신자이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형적인 “예수는 믿지만 (인간한테 실망해서) 교회는 안 다닌다”, “예수님이 지금 인간들 교회를 보신다면 빡쳐서 또 다 뒤집어엎고 불호령을 내리실 것이다” 성향이었다.
개인적으로 저런 사고방식에 대해서는 그냥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정도의 생각으로 간주한다. 이해는 하지만 완전 동의는 안 한다.

(당신들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그 예수님이 자기 피까지 비용으로 치러서(!!) 교회라는 조직을 만들었는걸? 그 사람들로 뽁짝거리고 시끄럽고 정신 없는 교회에 주일마다 발품 팔아 출석하는 신자들이.. 바보 멍청이어서 그러는 건 아닌데..?? ㄲㄲㄲㄲ)

뭐, 저 정도 말은 크리스천이 전혀 아니었던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도 했던 걸로 잘 알려져 있다. 저런 성향이 좋게 발전하면 히틀러한테도 당당히 항거했던 행동하는 양심 본회퍼 목사처럼 될 수 있을 것이고, 나쁘게 발전하면 그냥 자유주의 해방 신학처럼 될 것 같다.

5.
끝으로, 1910년엔 5월 중순엔 실제로 핼리 혜성이 지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이때는 “다가오는 핼리 혜성의 꼬리 부분을 관찰해 보니 이건 분명 독가스 성분이다. 이때는 지구 전역에도 독가스가 잔뜩 퍼질 예정이다. 지구의 인류는 꼼짝없이 멸망할 것이다~~” 이런 황당한 종말론 설레발이 많이 나돌았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긴 얘기지만 그 당시엔 1908년 퉁구스카 대폭발의 충격 때문에 저런 선동도 통했던 것 같다.

현실에서는 그런 종말은 당연히 없었다. 단지, 그로부터 100일쯤 뒤에 조선 왕조 하나만 종말을 맞이했을 뿐이었다..!! =_=;;

Posted by 사무엘

2023/01/28 08:35 2023/01/2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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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XXX파 조폭이 있고 일본에 야쿠자가 있다면, 유럽과 미국에는 마피아라고 불리는 범죄 조직이 있었다.
미국 마피아는 1920~30년대.. 세계사에서 '전간기'라고 부르고 미국에 금주법이라는 게 있던 시절에 '알 카포네'(1899-1947)라는 두목의 휘하에서 활동하던 시카고 마피아가 유명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와바리를 접수해서 보호비 자리값을 뜯고, 자기 조직으로부터 술을 사지 않는 업소한테는 처절하게 보복하고.. 자기 나와바리를 노리는 적대적인 조직은 칼뿐만 아니라 총과 폭탄까지 동원해서 작살을 내 버리고.. 그런데 법조인까지 매수해서 잘 구슬렸는지, 두목이 어지간한 사고를 쳐도 혐의가 제대로 입증되지 않아서 감옥에는 절대 안 가고.. 정말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얘네들이 지금 2020년대에도 잘나가고 있는지, 아니면 이제 공권력에 의해 다 토벌되어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며 찌그러져 있는지는 난 잘 모르겠다. 내 개인적으로는 영화 '대부'와 그 패러디작에서 묘사된 마피아 정도밖에 아는 게 없다.
저 시절, 미국 마피아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지는 게 있다.

1. 술과 우유

저 시절에 미국 마피아들은 밀주를 몰래 불법 유통시키며 악명을 떨쳤다. 하지만 얘들은 한편으로, 금주법은 무리수가 많은 조치이기 때문에 몇 년 못 가 폐지될 것이라는 점도 예상했다. (1933년, 루스벨트 때 폐지) 이렇게 술 특수를 누리는 나날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고, 이는 자기네 조직의 미래와도 직결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술 말고 다른 물 장사를 개척했는데 그건... 우유였다. 이건 술과 달리 전국민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마시는 음료이다. 낙농업을 접수해서 독점해 버리면.. 마피아들이 보기에도 이게 더 안정적이고 더 돈이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술보다야 더 건전하기도 하고. ㄲㄲㄲㄲ

이때 미국에서는 우유가 품질 관리가 안 되고 유통망이 개판이었다. 상온에서 오래 방치되어 시큼하게 상하고 앙금까지 생긴 우유가 버젓이 공급되기도 했으며, 어제 팔고 남은 우유를 새 우유에다 섞는 건 예사.. 그걸 밀가루나 심지어 분필 가루까지 넣어서 도로 하얗게 보이게 만들기도 했다.

당연히 이딴 우유 마시고 배탈 나는 사람이 속출했으며, 심지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사람도 소수나마 있었다. 허나, 이게 우유 때문이라는 걸 입증하는 건 요즘으로 치면 자동차 급발진을 소비자가 입증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았나 보다. 돈 먹은 의사들은 적당히 삭아서 시큼한 우유가 몸에 더 좋다고 비양심적인 궤변 언플까지 늘어놨다고 한다.
상한 우유가 무슨 늙은 호박처럼 허연 가루가 앉으면서 영양분이 더 많아지기라도 하냐 젠장..

그랬는데 마피아가 개입하자 오히려 이런 관행이 개선되었다. 천조국 마피아들은 자릿세 뜯는 건 악랄했어도, 사람 입에 들어가는 음식물에 대해서는 나름 신념이 있었는지 선 넘지 않고 양심적으로 일을 처리했다.
원유를 채취하는 농장에서부터 조직적인 품질 관리를 시행했으며, 심지어 제조되는 우유 병에다가 유통기한을 찍는 관행이 이때 처음으로 생겼다나 어쨌다나.. 마피아 지들이 돈 되는 일을 하려다 보니 우유의 품질이 개선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나치 독일이 1933년에 현대적인 동물보호법을 세계 최초로 제정하고 뜬금없이 동물 복지에 기여를 했다면, 미국 마피아는 뜬금없이 우유의 품질과 유통망을 개선했다.
큰 악이 초기에 작은 악을 좀 척결하는 건 그리 이상하게 볼 일이 아닌 것 같다. ㄲㄲㄲㄲㄲ

사실, 미국은 20세기 초에는 정말 자유 시장 경쟁 방임의 극치 상태였다. 그래서 이 글에서 다 열거하지는 않지만 기업-기업(경쟁사에 대한 흑색선전 거짓 비방), 기업-근로자(가혹한 노동 조건), 기업-소비자(저런 불량품), 기업-정치/법조인(매수, 뇌물) 간에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 추악하고 부도덕한 일이 많이 벌어졌었다.
걔네들이 조폭 같은 기업이라면, 저런 마피아는 기업화된 조폭이나 마찬가지였다.

* 여담

  • 우리나라에서 '장군의 아들 김 두한' 패거리가 행색이나 인상, 이미지가 이런 미국 마피아 두목의 한국 버전과 좀 비슷하게 느껴진다.;;; 뭐, 처한 여건이나 행적이나 신분이 둘이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 일본 야쿠자야.. 100여 년 전, 관동 대지진 때문에 미친 학살극이 벌어졌을 때 조직원 중에 조선인이 있으면 쟤들이 그 조선인을 보호해 줬을 정도였다. 이런 뒷동네 조직에 최소한의 의리는 있었던 셈이다.

2. 법무팀 변호사

알 카포네는 무력을 담당하는 칼잡이 총잡이 건달뿐만 아니라, 변호사 브레인도 부하로 고용해서 법률을 자문하고 법망을 요리조리 피하는 일에 써먹고 있었다.
그의 법률 참모는 에드워드 조셉 오헤어(Edward Joseph O'Hare 1893-1939)라는 아일랜드 출신의 변호사였다. 그는 해박한 법률 지식을 동원해서 알 카포네를 변호하고, 그가 감옥에 가는 일을 막아 줬다. 반대로 알 카포네 역시 그에게 엄청난 연봉을 지급하고 으리으리한 집과 차도 장만해 주고.. 물질 하나는 정말 끝내주게 보상했다.

그 에드워드 변호사에게는 어린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가 이렇게 돈을 악착같이 많이 번 건 아들을 물질적인 부족함 없이 최고로 잘 키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작 아들이 머리가 굵어지고 "아버지 뭐 하시노?"에 대한 관념이 형성될 때가 되자 그는 고민에 빠졌다. 돈을 많이 벌긴 하는데.. 그닥 떳떳한 거래를 통해서 버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애비가 스스로 그렇게 생각을 한 건지, 아니면 아들이 "저는 아버지가 부끄럽습니다~" 이런 말을 해서 현타에 빠져서 자괴감이 든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어쨌든 에드워드는 양심의 가책을 심각하게 느끼게 됐다. 아들은 자기처럼 범죄자와 거래하는 더러운 돈의 노예로 만들지 말고, 깨끗한 양심으로 정의롭게 살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아들을 사관학교에 보내서 군인으로 키우고.. 급기야는 자기에게 후한 월급을 주던 조직을 정면으로 배신해 버렸다. 이놈의 알 카포네 일당이 저지른 짓, 그리고 자기가 은폐한 악행을 경찰에 조막조목 고발하고 자백해 버리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그의 증언과 증거 자료 덕분에 사법 당국은 오랜 기간 잡지 못했던 알 카포네를 1931년에 체포해서 다른 혐의는 모르겠다만 '탈세'라는 중범죄 혐의를 적용해서 투옥시킬 수 있었다.

에드워드는 양심의 자유를 얻은 대신, 자기 목숨을 대가로 치르게 되었다.
1939년, 알 카포네가 만기 출소가 임박했을 즈음에.. 에드워드는 자동차 운전 중에 주변 괴한들로부터 샷건을 난사당했다. 그는 40대 중반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그의 아들 에드워드 '헨리' 오헤어(1914-1943)는 애비의 바람대로 군인이 되어서 의인에 애국자에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잘 자랐기 때문이다.

최대한 간단히 요약하자면.. 그는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비행 소식에 꽂혀서 비행기 덕후가 되었고, 해군 항공대 소속의 장교 신분으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탁월한 상황 판단력에다 우수한 비행기 조종술과 사격술을 동원해서 위급한 상황에서 혼자 일본 적기를 6기나 떨구고, 수천 명이 탑승 중이던 아군 항공모함이 빈집털이 당하는 걸 막았다.

패닉에 빠질 법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적기의 엔진과 연료 탱크만 저격하듯이 쏘며 공중전을 벌인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고 무사히 살아서 돌아왔다.
이런 엄청난 무공 덕분에 그는 명예 훈장을 받았고 중위에서 2계급을 건너뛰어 바로 소령으로 진급하고, 그야말로 전국적인 영웅으로 등극했다.

이게 1942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로부터 1년 뒤인 1943년 11월 어느 밤에 짧고 굵었던 삶을 마쳤다.
길버트 제도 부근에서 야간 경계 임무 수행 중에 적기와 마주쳤는데.. 이때 갑자기 적기로부터 피격을 당했는지 어두운 바다 수평선으로 사라지면서 아군 기지와 연락이 끊어졌다. 그 뒤 시체도, 기체 잔해도 못 찾은 채 영원히 실종되어 버렸다.

시카고 시민들은 2차 세계 대전 영웅이었던 아들 에드워드 오헤어, 그리고 의로움을 몸으로 실천했던 아버지 에드워드 오헤어를 기억하기 위해.. 시카고에 있던 '오차드 디포'라는 국제공항을 1949년 9월부로 '오헤어' 국제공항이라고 개명했다.
이스라엘에서 우주왕복선 사고로 순직한 아버지와, 전투기 훈련 중에 순직한 아들을 기리기 위해 '일란 & 아사프 라몬' 국제공항을 만든 것과 아주 비슷한 사례인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2/12/09 08:35 2022/12/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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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북아시아 국가들

서유럽에서 영-프-독이 참 독특한 강대국인 것처럼 동북아시아의 한중일도 참 만만찮게 서로 극과 극이다. 먼저 올림픽 개최 내역을 비교하면..

  • 일본은 수도 도쿄에서 하계 올림픽을 두 번 치렀다(1964, 2020). 동계는 삿포로(1972)와 나가노(1998)에서 총 두 번 치렀다.
  • 중국은 수도 베이징에서 하계와 동계 올림픽을 모두 한 번씩(2008, 2022) 치렀다.
  • 한국은 수도 서울에서 하계(1988), 평창에서 동계(2018) 이렇게 한 번씩 치렀다.

정치-외교 구도

  • 대한민국만이 직접 선거를 통해 유의미한 정권(= 집권 여당) 교체까지 이뤄지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북한, 중국, 러시아야 뭐.. 일본은 저런 동네 정도의 비민주 독재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좀 므흣하고 특이한 면이 있다(자민당)..
  • 한때 러시아는 소련이라고, 중국은 중공이라고, 몽골은 몽고라고 표기하던 시절이 있었다. 다들 1990년대 초에 우리나라와 정식 수교하면서 표기가 바뀌었다. 이때 북한과 나란히 UN 가입도 했고.. ‘북괴’라는 표기가 공식 용어에서 사라졌다.
  • 러시아-우크라이나하고 중국-대만이 뭔가 비슷한 사이인 것 같다.

2. 기념일

  • 일본은 참 신기하게도 1년 중에 낮과 밤 길이가 같아지는 두 날인 춘분이랑 추분을 일부러 공휴일로 만들어 놨다. 오~ 참신한데? 뭔가 이꽈 감성이 느껴진다.
  • 그리고 히로히토 천황의 탄신일인 4월 29일도 '쇼와의 날'이라고 해서 논다. 나름 20세기가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그리운 리즈 시절이라고 이때의 천황의 생일을 공휴일로 정해 놓고 노는 듯하다.
  • 그 반면, 우리나라는 한글날, 즉 자국 문자를 창제한 날을 공휴일로 기린다. 무척 독특하다.
  • 그리고 성탄절이 공휴일. 동북아시아에서 성탄절이 빨간날인 나라도 대한민국 남한밖에 없다.

  • 어린이날이 5월 5일로 우리나라와 같지만, 일본에서는 더 정확하게는 '남자 어린이날'이다. 여자 어린이날은 3월 3일인데, 그래도 공휴일은 남자 버전뿐이다. 신기한 노릇.. 하긴, 외국에서는 어린이날이 아니라 어버이날이 아버지의 날과 어머니의 날로 나뉜 경우도 드물지 않다.
  • 그 반면, 우리나라는 어린이날이나 어버이날이 세분화된 게 아니라 종교 공휴일이 성탄절과 석가탄신일 모두 존재하는.. 특이한 나라이다.

4월 29일은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윤 봉길 의사가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터뜨렸던 날이다.
윤 봉길은 천황의 생일에 맞춰 치러진 일제의 전쟁 승리 기념 행사 때 의거를 일으켰다. 그 반면, 그 천황 자체를 암살하려 했던 사람은 이 봉창 의사이다.

전에도 한번 얘기한 적이 있었지만 일본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잊지 않는 근성이 개인적으로 정말 대단하고 부럽게 느껴진다. 꼭 달력에 표시하는 날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의사자 이 수현 씨를 20년째 계속 추모하고 있고.. 2005년 후쿠치야마 선 탈선 사고 사죄한다는 말이 JR서일본 홈페이지에 아직까지도 박제돼 있고..

이것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일본 항공도 신입사원들한테 JAL123 추락 사고 현장을 방문시키고 사고 잔해를 보여주고 희생자 위령비 참배를 시킨댄다. 1985년에 태어나지도 않았고 이 사고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젊은 세대들한테도 자기 회사의 과거 흑역사 치부를 숨김 없이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저렇게 사고를 친 회사에서 직접 사죄하는 모습을 좀 볼 수 없을까..?? 글쎄, 세월호나 삼풍의 경우, 그 회사가 통째로 망해서 없어져 버리긴 했다만.. 씨랜드 화재 참사는 다시 생각해도 정말 답이 없는 막장 사례인 것 같다.
그리고 일본은 해상 사고를 한번 겪고 나서 전국의 초-중등학교들에 수영장을 설치했다고 그러는데.. 최소한 세월호 난동이나 민식이법보다는 훨씬 더 모범적인 대처인 것 같다.

물론, 걔들도 다 완벽한 건 아니다. 이 수현 씨 사고를 겪었다고 해서 그 많은 역에다 스크린도어를 다 도배하는 건 일본의 입장에서도 무리인 듯.. 그리고 후쿠치야마 선 사고 이후로 일본 특유의 그 가혹한 똥군기 이지메 문화가 좀 개선되기는 했나 모르겠다.

글쎄, 저렇게 과거를 잊지 않고 반성하는 것처럼 태평양 전쟁도 좀 반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허나, 그렇게도 목이 뻣뻣한 일본 정치인들이 그 정도로 애매한 표현으로나마 유감 표명하고 보상해 줬으면.. 반성을 전혀 안 한 것 역시 아니다. 최소한 북괴보다는 훨씬 더 사죄와 보상을 많이 했다.

또한, 정치가 아닌 민간에서는 "침략 전쟁을 사죄합니다. 제암리 학살을 사죄합니다. 우리 일본이 저지른 죄악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그만 됐다고 말씀하실 때까지 저희가 머리 박고 있겠습니다" 이러는 양심적인 일본인도 실제로 있다.

독일은 일본과 달리 나치의 죄악을 그렇게도 반성(?)하고 청산했다지만, 걔들도 이스라엘 같은 빽 있는 나라 말고 다른 듣보잡 민족에게 저지른 학살이나 전쟁 범죄는 나몰라라 하고 보상을 제대로 안 하고 있다. 결국 이런 건 여전히 힘의 논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영역인 셈이다.

이웃 미국은 "스푸트니크를 잊지 말자, 진주만을 잊지 말자" 그러면서 당했던 것 이상의 설욕을 했었다.
우리나라는? 물론 기술이 발달하고 안전 의식이 발달하면서 사회 시스템이 나아진 건 있지만.. 일제 식민지 이후로, 그리고 "잊지 말자 6 25, 때려잡자 공산당" 이후로 그렇게까지 절대로 잊지 말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이를 악물었던 계기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미국은 군인과 소방관을 극진히 존중하고 예우하는 그 특유의 문화도 정말 부럽기 그지없다. 선진국은 뭐가 달라도 다르고 분위기가 선진적이다.

3. 일본의 매체

일본은 1980~90년대에 어째 그리도 창의적이고 천재적이고 장인 정신 근성이 담긴(비록 성경적인 배경의 소재는 아니지만=_=) 만화와 영상물, 게임들을 많이 쏟아내면서 문화 산업에서 세계를 석권했는지 경이롭기 그지없다. 내가 일본 토박이었어도 이런 건 좀 국뽕을 해도 될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우리나라도 역량이 굉장히 많이 향상돼서 일본의 위상이 옛날 정도로 절대 지존이지는 않다. 허나, 저런 걸 옛날에 최초로 만들어냈다는 건 보통일이 아니다.

(1) 모 일본 AV의 BGM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TOKYO-HOT (☞ 듣기), =_= 그리고 모탈 컴뱃 OST BGM은 뭔가 비슷한 성격의 음악 같다. =_=;; 병맛스럽지만 그래도 완성도 높고 잘 만들어진 경쾌한 테크노-_- 음악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일본이 성에 대한 묘사가 그렇게도 개방적이고 야동 AV가 엄청 발달(...)했다지만.. 정작 일본 내부는 가정이나 결혼, 성 관련 관념이 아주 보수적이다. 듣기로는 일본 여자가 한국 여자보다 훨씬 더 다소곳하고 예의 바르고 착하고 신부감으로 더 좋다고 그럴 정도랜다.;;

(2) 한동안 에네르기파와 파동권..;;이 헷갈렸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전자는 드래곤볼의 장풍이고 후자는 스트리트 파이터의 장풍이었다. 다들 1980~90년대를 풍미했던 명작 일본 만화와 일본 게임이었다. ㅋㅋㅋㅋㅋ

(3) 도카이도 신칸센 개통 기록 영화. (☞ 보기)
작년에도 한번 소개한 적이 있었지만 보면 볼수록 대단하고 감격스럽고 부러우니 복습 차원에서 또 소개한다. 누군가가 우리말 자막을 넣어 주셨다.
도쿄는 1963년에 이미 저런 대도시가 돼 있었구나..;; 우리나라 서울은 아무리 일러도 1970~80년대는 돼야 저런 모양이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같았으면 '6 25 사변의 참화를 극복하고'라고 말했을 텐데.. 일본이니까 '2차 세계 대전의 참화를 극복하고'라고 말한다. 역시 이런 게 문화 역사 배경의 차이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차량 개발과 선로 건설을 전부 100% 자체 기술로 해냈다니.. 그것도 그 까마득한 옛날에? 그리고 개발 과정을 이런 고화질 컬러 영상으로 남겼다니.. 저때 이미 열차 집중 제어 장치(CTC)와 장대 레일을 취급했다니..

컴퓨터나 화면 장비, 각종 글자와 계기판을 봐야만 완전 옛날 아날로그 감성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아울러, 1960년대이니 비록 고속철도이지만 저 때는 아직 전부 콘크리트 노반은 아니고 재래식 목재 침목과 자갈 노반이 쓰였다.

(4) 도쿄 올림픽 픽토그램 (☞ 보기)
일본은 2020 올림픽 예고편? 티저 영상에서부터 약 빤 티를 철철 내더니, 올림픽이 개막한 뒤에는 50여 개에 달하는 운동 종목들의 픽토그램을 실사 재현한 근성 영상을 선보여서 또 세계를 놀라게 했다.

컴퓨터 아이콘이라는 게 없던 1964년 올림픽 때 저렇게 특징만 간소화된 그림으로 어떤 운동 경기나 장소를 나타낼 생각을 했다니, 쟤들은 디자인 내지 UX 쪽으로도 그때부터 굉장히 신경을 썼던 모양이다.
저 영상도 보면 애니메이션, CG, 실사가 마구 뒤섞이면서 정말 현란하고 정교하기 그지없다.;;.

4. 20세기 초중반의 항일물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국뽕 항일물이라고 하면 으레 1920년대 초중.. 그나마 독립군이 있고 의열단 투사들이 활동하던 시절이 제일 때깔 나고 간지 나고 영화를 만들 소재가 제일 많다. 그래서 2010년대 중후반에 쏟아져 나왔던 암살, 밀정, 봉오동 전투, 심지어 엄복동도 다 이 시기를 다룬다.

그 반면, 중국에서 만들어지는 국뽕 항일물은 상하이 사변에 중일 전쟁 어쩌구가 배경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빨라도 1930년대이고 넉넉하게는 1940년대 초까지 가야 된다.

이때는 정작 우리나라는 윤봉길 이후로 국내에서의 항일 독립 운동이 거의 전멸했기 때문에 영화를 만들 거리가 별로 없는 시기이다. 말모이(1940년대의 조선어 학회)처럼 성격이 많이 다른 영화가 하나 나왔을 뿐이며, 얘는 역사왜곡 각색이 엄청 많다. 실제 역사 다큐가 순수 쏘고기라면, 얘는 스팸도 아니고 거의 혼합 소시지 정도의 위치밖에 못 된다.

그리고.. 중국 국뽕 항일물에는 쿵푸 무협지가 꼭 들어간다. 일본군이 쳐들어왔다가 무림의 고수 한 명에게 쳐발리는 오글거리는 판타지 말이다. 이런 식으로 문화 배경의 차이가 있구나..!!

요즘 들어 유튜브 자동 완성에 왜 자꾸 이런 영상들이 뜨는지 모르겠다. ㄲㄲㄲㄲ 일본이 스시를 세계에 퍼뜨렸듯, 중국은 소림사니 어쩌니 하면서 자기가 모든 동양 무술의 원조라는 식의 이미지메이킹을 꾸준히 한 모양이다.

한국과 중국이 저렇게 유치하게 열폭하는 동안, 정작 원쑤 나라 일본은 자기들의 1920년~1930년대를 매체에서 어떻게 묘사할까?
2 26 쿠데타를 영화로 만들기는 했다고 들었는데, 그것 말고 뭐 영화화할 만한 소재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물론 일본 내부에서도 "대동아 공영권에 덴노 헤이카 반자이" 이러는 극우 국뽕물이 당연히 있겠지만,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주류는 절대 아니라고 들었다.

5. 차이점

(1) 일본은 국력이 너무 강해서 사고를 단단히 쳐서 군대를 가질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자위대)
그러나 한국은 국력이 약한 주제에 자기들끼리도 갈라졌고, 군대를 안 가면 안 되는 나라가 되었다. (징병제)

(2) 그리고 미국에서는 개인의 총기 소지와 관련된 헌법을 고치겠다고 난리인 반면,
일본은 국가의 군대 소유와 관련된 헌법을 고치겠다고 난리이구나~!

(3) 일본의 철도는 기존선이 협궤이고 고속철(신칸센)은 표준궤이다.
그러나 스페인의 철도는 기존선이 광궤이고 고속철(AVE)은 표준궤이다.

과거에는 군사 안보상의 이유로 인해 철도 궤간을 이웃 나라와 일부러 호환되지 않게 만들 정도였지만.. 오늘날은 이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담배에 대한 인식이 극과 극으로 바뀐 것과 비슷하다.
증기 기관이 발명되고 산업 혁명 근대화가 막 진행되던 시절의 철도와, 20세기 중후반의 철도는 위상과 역할과 기술 수준이 서로 완전히 다르다.

(4) 일본은 궤간의 차이 때문에 신칸센과 일반열차가 완전히 분리됐다. 고속선이 대도시의 도심 구간까지 고가 형태로 놓였다. 기존선은 화물이나 단거리 완행 연계로 싹 개편되었다.
그러나 한국과 프랑스는 모든 철도가 표준궤이기 때문에 고속철이 기존선과 직통 운행을 많이 한다. 그리고 기존선 일반열차도 서울-부산 장거리를 뛰는 게 여전히 남아 있고, 장거리 고속버스도 장사 잘 되고 있다.

역할 분담이 엄밀하게 되지 않은 것은 서울 시내버스들이 파랑-초록-노랑 역할 구분이 개편 당시에 의도했던 것만치 갈리지 않은 것과도 비슷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2/11/20 08:36 2022/11/2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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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고

(1) 2009년에는 어째 김 대중과 노 무현.. 일단 '그쪽' 계열의 전직 대통령 두 명이 별세했는데..
어째 2021년에는 전 두환과 노 태우.. 역시 반대편 계열의 전직 대통령 두 명이 나란히 별세했다.
전 두환부터 노 무현까지는 참 공교롭게도 재임한 순서의 역순으로 별세했다는 게 굉장히 흥미롭다.
그나저나 전 두환은 장지를 정하기는 했나? 그 뒤로 소식이 없으니 모르겠다. 별세한 전직 대통령 중에 유일하게 묘소를 비공개 비밀로 간직하려는지?? 궁금하다.

(2) 우한 폐렴 때문에 시끌벅적했던 2020년에는 박 원순 서울 시장, 백 선엽 장군, 이 건희 회장을 잊을 수 없다.

(3) 올해는 연초에 송 현 선생, 이 송오 목사가 세상을 떠났고, 문학계에서는 김 지하 시인과 이 외수 소설가가 봄쯤에 별세했다.
여름엔 일본의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암살 당했고,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세상을 떠났다.
이 외에도 1920년대생 유명인사인 송 해 옹과 김 동길 박사가 나란히 고인이 됐다.

이 정도면 올해는 유명인사의 부고가 여느 해보다는 많은 것 같다.
내 개인적으로는 워낙 고령인 촘스키의 부고가 언제쯤 전해질지? 그리고 이 사람의 사후에는 언어학계의 판도가 어찌 달라질지 무척 궁금하다.

2. 사건· 사고들의 유사점

(1) 사고
지금으로부터 2년쯤 전인 2020년 7월 23일엔 부산에서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면서, 경부선 철길을 아래로 입체교차하던 초량 제1지하차도가 완전히 침수돼 버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여기를 주행 중이던 차량들이 날벼락을 맞았는데, 이때 한 20대 딸과 그 어머니 모녀 중에서 어머니만 구조되고 딸은 목숨을 잃었다. "너라도 여기를 헤엄 쳐서 빠져나가서 살아라"라고 딸의 손을 놔 준 것이 정반대의 결과로 돌아온 것이다.

지난 9월 초엔 태풍 '힌남노' 때문에 포항에 물폭탄을 맞아서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몽땅 침수됐다. 이번에는 차를 빼내려고 내려갔던 사람들이 참변을 당했는데.. 그 중에는 10대 중학생 아들을 포함한 '모자'가 있었다.
이때도 2년 전의 부산과 같은 패턴으로 모친은 천장 근처에서 버티고 있다가 가까스로 구조된 반면.. 모친이 자신과 일부러 떨어지게 한 아들은 숨지고 말았다.

(2) 강력 범죄
지난 7월에(15일)는 인하대 재학생 강간치사 내지 살인 사건이 벌어졌으며, 그로부터 딱 두 달 뒤에는(9월 14일) 신당 역 역무원 스토킹+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물리적인 범행 방식은 서로 차이가 있다. 그러나 같은 조직에 소속돼 있는 동기 남자가 동기 여자를 죽게 한 안타깝고 악질적인 범죄라는 점에서는 성격이 좀 비슷해 보인다.

(3) 실종
그리고 지난 여름엔 하필 가양 역과 가양대교 일대에서 20~30대 남녀가 세 명이나 나란히 실종된 것을 기억하는가? 굉장히 괴이하게 느껴진다. 어느 20대 여성(김 가을)이 6월 말에, 그리고 20대 남성(이 정우)과 30대 여성(박 수민)이 8월 초에 그 뒤를 따랐다.
그 뒤로 이 사람들은 생사를 알 수 없는 감감무소식 상태이다~! 단, 제일 먼저 실종됐던 20대 여성은 유서가 발견됐기 때문에 어디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으며, 20대 남성은 9월경에 강화도 쪽 갯벌에서 아예 하반신만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30대 여성 역시 안타깝지만 이 시점에서 생존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4) '암살'이 비슷한 패턴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2콤보 이상으로 이어진 경우가 인류 역사상 다음 사례 말고 더 있는지 궁금하다. 다들 왕이나 대통령을 죽인 내란/반역급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 성경 북왕국 이스라엘: 엘라 - 시므리 - 오므리 (열왕기상16, 부하)
  • 중국 당나라: 안록산 - 안경서 - 사사명 - 사조의 (아들과 부하)
  • 1960년대 미국: 케네디 - 오스왈드 - 잭 루비 (생면부지)

3. 괴이한 미스터리

(1) 작년에 반포 한강 공원에서 발생했던 한강 의대생 사망 사건은 한때 전국을 굉장히 떠들썩하게 하긴 했지만, 아무도 법적 책임을 지는 사람 없이 흐지부지되는 분위기이다. 옆의 친구가 따로 음흉한 짓을 했다는 증거는 전무하고, 안타깝지만 고인이 술 마시고 혼자 입수· 실족사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건 2016년 말에 "망원" 한강 공원에서 발생했던 한강 "여대생" 사망 사건과도 굉장히 비슷한 패턴이다.

사람이 술이 잘못 들어가서 정신줄을 놓으면 남을 해칠 뿐만 아니라(특히 음주운전) 자기도 그냥 차도로 뛰어든다거나 물로 뛰어들고 상상을 초월하는 민망한 짓을 할 수 있나 보다. 물론 그 정도면 아주 극단적인 사례이겠지만 그런 극단적인 상황으로 인한 사망 사건? 사고?가 지금까지 여러 건 있었다.
딱히 범죄 정황이나 엽기적인 아이템이 없고, 전말을 자세히 보도하면 고인의 명예에만 누가 될 것 같으니 그냥 괴이한 미스터리 미제 사건처럼만 보이게 사건을 덮고 넘어가는 게 아닌가 싶다.

(2) 허나 2019년, 부산에서 벌어졌던 어느 20대 여성의 '알몸 소화기 난동 사건'은.. 글쎄다. 아무리 유족의 요청이 있었다지만, 사건의 괴이함에 비해서 너무 빨리 비공개되고 묻혀 버리고 언론 보도가 싹 없어졌다. 부산에서 그런 엽기적인 짓을 한 사람이 불과 5~6시간쯤 뒤에 창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게 말이 되는가..? 아무런 범죄 용의점 없이, 정말 미친 정신병자가 사고 한번 치고 나서 평범하게 자살했다고 보기에는 미심쩍은 점이 많다.

전에 한번 글로 썼었지만, 2002년에 전라선 상행 새마을호 3연속 건널목 충돌 사고, 2011년 문경 십자가 시신 사건, 그리고 2019년 저 사건이.. 모두 8~9년 간격으로 5월 1일에 벌어졌다는 것도 굉장히 기묘 기괴한 우연이다.

(3) 끝으로 2012년 5월 4일 아침에 안양 모 오피스텔 내부에서 어떤 여성 모양의 미확인 물체가 추락했다는 사건 영상은..
이거 뭐 로스웰 외계인 시신 해부 동영상에 필적하는 괴담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그 물체는 외계인 시신이고, 무슨 오징어 게임 진행요원처럼 시체를 아무렇지도 않게 치우는 관리소 직원들은 외과 의사(?)에 대응한다.
2012년 당대도 아니고 2020년대가 다 돼서야 갑자기 주목받는 것도 그렇고.. 마침 같은 날 비슷한 지역에서 어떤 여성 영어 강사도 실종됐다는데 그것도 갑자기 부각되고 있으니 이상한 점이 너무 많다.

마네킹이나 리얼돌에서 돼지 피가 튀었다는 변명은 말도 안 된다. 저 영상에 찍힌 관계자들이 사체유기 급의 구린 점이 실제로 있거나.. 아니면 로스웰 동영상이 그랬던 것처럼 사건 자체가 주작 낚시이거나.. 나로서는 그런 극단적인 쪽으로 추측을 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2/11/12 19:36 2022/11/12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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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루터교 목사 겸 신학자인 디트리히 본회퍼 (1906-1945).
피끓는 정의감에다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했던 대단한 사람으로, 강경한 나치 반대 운동가로 활동했다. 요즘으로 치면 뭔가 폴 워셔 목사 같은 인상이 느껴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칭의론이 독일어로 저렇나??? 레흐트페르티궁...;; 우와 읽지도 못하겠다 ㄲㄲㄲㄲㄲㄲㄲㄲ)

일제 시대를 산 한국인이라면 주 기철 목사 이상으로 신사 참배를 맹렬히 반대했을 것이고, 오늘날 같으면 "북한 동포들을 김씨 부자의 학정으로부터 해방시키자~! 김돼지를 때려잡자! 대북전단 날리자~! 북한으로 성경책 잔뜩 보내자~" 이런 걸 열심히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지론은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다"였다. 그야말로 침묵하는 다수, 악의 평범성, "버스 44" 영화에 나오는 무덤덤한 승객 같은 정신 상태를 아주 극혐했다. 물질적인 도움으로 현실적인 조치가 필요한 사람한테 아가리로 덕담만 해 주는 것도 아주 싫어했다. (약 2:16)

그래서.. "어떤 미치광이 음주운전자가 차를 몰면서 사람들을 치고 있다면.. 목사는 그저 희생자를 애도하면서 한가하게 장례 예배나 인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당장 목숨 걸고라도 그 차에 올라타서 미치광이를 운전석에서 끌어내고 차를 세워야 한다" 이랬다. 그리고 이 말은 당연히 히틀러를 정면으로 겨냥한 비유였다.

이러니 그는 결국 나치에 의해 진작부터 요주의 인물로 찍혔다. 처음에는 그냥 감시만 당했지만, 1944년에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는 것까지 밝혀진 뒤엔 곧바로 체포되고 투옥되었다.
그리고 그는 나치의 패망을 겨우 한 달 남짓 앞두고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한 게 아니라 법대로 사형을 당했다. 그의 유언은 "이것은 마지막처럼 보이지만 나에게는 삶의 시작입니다"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는 좌파 냄새 나는 사회 운동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고, 신학자로서 이론과 내공도 탁월했다. 그는 외국(=미국)으로 망명 가서 신학교 교수만 하면서 안전하고 편하게 살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시에 내 동족과 함께 동고동락하지 않은 먹사는 전후에 조국의 기독교계를 재건하는 데 동참할 자격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간지나는 말을 남기고 고난을 자처하며 호랑이굴로 들어갔다.

바울이 동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뜬금없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것처럼,
그리고 6· 25 때 전사한 미군 장교 '윌리엄 해밀턴 쇼'(1922-1950)가 "내 친구 나라 한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도와주지 않고 전쟁이 끝난 뒤에야 슬그머니 선교사로 들어가는 건 내 양심상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의 저서인 '제자도의 댓가(Cost of Discipleship)'가 주 목사로 치면 '일사각오' 정도에 대응하는 것 같다.

이 밖에 디트리히 본회퍼는..

(1) 이름이 '본 회퍼'가 아니고 한 단어 '본회퍼'이다. 내가 아주 오랫동안 잘못 알고 있었네~ 아이고.. -_-;; 폰 von 때문에 편견이 생겼던 것 같다. ^^

(2) 부활절을 치른 거의 직후에 처형 당했구나. 1945년의 부활절은 가톨릭은 4월 1일, 정교회는 4월 8일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저 사람이 처형된 날은 4월 9일.
(그 달 말인 28일에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처형 당했고, 이틀 뒤인 30일엔 히틀러도 그 뒤를 따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애초에 저 사형 집행도 히틀러가 패전을 염두에 두고 죄수들의 뒷정리 차원에서 일괄 지시한 것이었다.)

(3) 그래도 나치 독일의 패망 직전 말기에 처형 당해서 그런지, 참수는 아니고 교수형으로 죽었다.
몇 년 전(1943)만 해도, 나치 반대 운동을 하다가 잡힌 백장미단 멤버들은(조피 숄 등) 다 이동식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독일은 민족 저력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종교 개혁을 주도하고 위대한 수학자와 과학자, 예술가들을 배출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20세기에 세계 대전을 두 번이나 일으키는 사고를 쳤고 나치 독일과 히틀러라는 흑역사를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회퍼 정도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목사가 자국민 중에 배출되기도 했다는 건 그나마 진지하게 실드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 참, 나는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라는 유명한 시를 이 사람이 썼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는데.. 그건 아니더라.
'마르틴 니묄러'라고 본회퍼와 성향이 비슷했던 다른 독일인 목사의 작품이라고 한다.
"나치가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 노조 등등 이후...) 나치가 나를 덮쳤을 때는 나를 방어해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

Posted by 사무엘

2022/10/25 08:36 2022/10/2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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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가간 역학관계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독일의 히틀러는 세계사에 길이 남을 전쟁광 독재자 쌍두마차로서 역덕 밀덕들의 아주 좋은 비교 분석 대상이다.
끼리끼리 논다더니 히틀러는 살아 생전에 나폴레옹을 굉장히 존경하고 동경했다고 한다.
당대에 히틀러의 직접적인 라이벌은 처칠이나 스탈린이었지만, 이 사람들은 나폴레옹 같은 전쟁광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나폴레옹과 히틀러 모두 러시아/소련으로 쳐들어갔다가 엄청난 영토와 추위 때문에 감당을 못 하고 패배한 이력이 있다.
프랑스와 독일 모두 자국민/자국어 순수주의와 국뽕 국수주의 군국주의 맛을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두 나라 모두 전쟁에서 졌을 때 배후중상설.. "원래는 이길 수 있었는데 간첩 배신자 때문에 뒤통수를 맞아서 진 거다~~~ 특히 이거 유대인 때문이다" 망상에도 빠진 적이 있었다. (보불 전쟁, 1차 세계 대전)

프랑스와 독일 모두 외국 식민지가 그렇게 많은 나라는 아니었다. 독일은 그나마 있던 식민지조차 1차 대전에서 지면서 다 빼앗겼고, 그때 특히 해군이 봉쇄당했다. 잠수함이 아닌 전함으로 해전을 치른 게 1차 대전 이후로는 없다.
나치 철십자가가 그려진 항공모함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2. 비슷한 역사

(1) 1936년엔 영국의 군주(조지 5세)가 붕어하고, 일본의 전직 총리가 암살 당했다(사이토 마코토, 2· 26 쿠데타). 그리고 나치 독일이 재무장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3년쯤 뒤에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다.

(2) 그 뒤 2022년엔 영국 군주(엘리자베스 2세)가 붕어하고, 일본의 전직 총리가 암살 당했다(아베 신조). 그리고 독일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빌미로 재무장을 시작했다. 이로부터 3년쯤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참 그럴싸하게 끼워맞춘 것 같다. -_-;;

3. 동물만 보호

나치 독일은 정신나간 군국주의나 유대인 학살만 저지른 게 아니라 굉장히 뜬금없는 면모가 있었다.
바로 근현대적인 동물보호법을 세계에서 거의 최초로 제정해서 동물 복지에 힘썼다는 것이다. 그것도 1933년, 나치 집권 초창기부터 말이다.

"동물을 유흥용으로 잔인하게 신체 훼손하거나 죽이는 것 금지, 불법 수렵 금지, 자연보호.." 이게.. 1930년대 나치 독일 치하에서 나온 프로파간다였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법은 히 총통이 개인적으로, 친히, 각별히 관심을 갖고 제정한 것이었다. 그는 개를 완전 좋아해서 개인적인 애완견도 키우던 사람이었다.

일반적으로는 동물을 저렇게 학대할 정도의 흉포한 사람이라면 사람에게도 잔인한 짓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동물 학대를 처벌한다. 그러나 나치는 그냥 무식하게 흉포한 게 아니라 뭔가 신념을 갖고 냉철하게 조직적으로 인종을 청소했다.

멀쩡한 개· 돼지를 가스실에다 집어넣고 죽이는 건 범죄이지만, 유대인을 가스실에다 집어넣어 죽이고 장애인을 죽인 건 인류의 우수한 혈통 보존을 위해 필요한 행위로 정당화된다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쟤들의 행적은 여느 흉악 범죄나 전쟁 범죄와는 성격이 달랐다고 봐야겠다.

4. 개인과 직책

히틀러는 나치 독일의 초대이자 유일한 '총통', '퓌어러'였다. 하지만 그는 후임부터는 직함을 총리와 대통령이라고 둘로 나눠서 두 명을 지목했다. 총리는 파울 괴벨스이고 대통령은 카를 되니츠가 임명되었다.

히틀러의 후계자가 될 만한 인물로는 이들 말고 하인리히 힘러라든가 마르틴 보어만 같은 다른 유력 후보도 있었다. 그러나 얘들은 권력욕 티를 너무 대놓고 내는 바람에 하극상 반역· 배신으로 간주되어서 히틀러에게 찍히고, 후계자 라인에서 짤렸다.
뭐, 히틀러의 사후에 나치 독일은 곧장 패망하고 연합군에게 항복했다. 그러니 대통령이건 총리이건 저 감투들은 현실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었다. 전범 재판에 불려 다니면서 히틀러가 싼 똥을 치우는 일밖에 할 게 없었다.

현대의 행정 체계에서는 인물과 계급? 직책이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다.
나라를 대표하는 제일 높은 권력자라 할지라도 그 사람은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n년 동안 맡았다가 물러나는 제 n대 대통령이요, 여러 역대 대통령들 중의 한 명일 뿐이다.

무궁화 대훈장을 받고, 퇴임 후에도 최고 수준의 경호에다 재임 당시 연봉의 90% 가까이를 계속 꼬박꼬박 받으면서 떵떵거리고, 죽으면 (큰 사고를 치지 않는 한) 국립 현충원에 묻히는 것까지도 보장되긴 한다만..
그건 그 사람이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예우를 받는 거지, 그 사람 자체를 예우하는 건 아니다.

조선 시대 왕릉은 각 사람별로 뿔뿔이 흩어져 있는 반면.. 지금 현충원에는 그냥 전직 대통령 묘소라고 한 군집...만이 존재하는 것도 그 예시라 하겠다. 그래서 어느 유명 전쟁 영화에 "경례는 계급에다가 하는 거지, 사람에게 하는 게 아니다"라는 대사도 있는 것이다.
뭐, 전직 대통령들이 기껏 만들어 놓은 저 장소에 들어가지를 않아서, 아직까지도 제일 존재감 없었던 최 규하밖에 묻혀 있지 않은 건 좀 이상하지만 말이다.;; 현충원에서 묘지가 특별 취급을 받는 대통령은 이 승만, 박 정희, 김 영삼과 김 대중 네 명 이후로는 더 나오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전재 독재 치하에서는 “하일 히틀러~!!” 이런 경례 구호에서 볼 수 있듯, 아무래도 개인이 숭배 받는다. 그래서 나치 독일 말고 북괴만 해도 개인과 직책이 다 따로 놀아서 김 일성 '주석', 김 정일 '국방위원장', 김 정은 '장군??' 제각각이다. 저 동네에 이런 관행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잘 모르겠다.

5. 영화

<다운폴>(2004)과 <일본 패망 하루 전>(2016)은 2차 세계 대전의 양대 추축국· 전범국들이 패망하고 항복하기 직전에 내부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나름 객관적으로 잘 조명한 영화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하게 <조피 숄의 마지막 날>(2006)과 <아이히만 쇼>(2015)도 나란히 대조해서 볼 만한 작품인 것 같다.

전자는 나치를 반대하는 선전물을 뿌리던 백장미단이 나치 치하에서 잡혀서 재판 받고 처형 당한 과정을 자세히 조명한 반면,
후자는 나치의 패망 이후에 나치 잔당 전범이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모사드 요원에 의해 잡혀서 재판 받고 처형 당한 과정을 자세히 잘 조명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서는 1960년대에 벌어졌던 이 전범 재판을 전세계에 무슨 TV 쇼처럼 꾸며서 중계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 제목도 무슨 '트루먼 쇼'처럼 '아이히만 쇼'라고 적절하게 붙였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꼼꼼히 다 보지는 못했지만, 이 재판을 계기로 인간이 무심하게 벌이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세계적으로 이뤄지게 됐다고 한다. 무슨 <파리대왕>처럼 꿈도 희망도 없는 성악설까지는 아니지만, 악에 무덤덤해져 버리는 <버스 44>와 비슷한 심리 말이다.

6. 반면교사와 대조

(1) 2차 세계 대전의 태평양 전쟁이 끝날 무렵에.. 미 해병대가 이오지마 섬을 간신히 점령해서 미국 깃발을 꽂는 장면이 사진으로 전해진다.
그것처럼, 2차 대전의 독소 전쟁이 끝날 무렵엔.. 소련군이 베를린 시내를 점령해서 제국의사당에다가 붉은 깃발을 꽂는 장면이 사진으로 전해진다(베를린 공방전). 각각 시기가 1945년 3월 말과 4월 말로, 한 달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일본이야.. 폭격기로부터 소이탄과 원자폭탄만 먹었지, 상륙 작전이 행해진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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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45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처형되고 시체가 거꾸로 매달려 조리돌림 당한 것은, 같은 추축국 진영이던 독일의 히틀러와 일본의 도조 히데키에게도 굉장히 큰 충격을 줬다. “이제 나도 저 꼴 나겠구나. 저런 치욕을 당하느니 자결해야겠다”라고 당연히 결심을 하게 됐을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1989년 말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공개 처형 당하자 북괴의 김 일성 부자는 심장이 완전 쫄깃해졌다고 전해진다.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자기들도 저 꼴을 당할 것이니 내부의 사상 단속을 더욱 강화하고, 인민들 간 가스라이팅을 더욱 강화해서 나라를 더욱 가난하고 폐쇄적인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3) 히틀러는 자살에는 성공했지만, “적이 자기를 절대 알아보지 못하도록 시체를 확실하게 훼손해서 없애라”라는 지시는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그 반면, 도조 히데키는 자살에 실패해서 전범 재판에까지 회부되고, 교수형을 당해서 생을 마감했다.

7. 때깔

끝으로..
우리나라는 반일 감정이 강하고 욱일기를 정서적으로 싫어할 뿐이지.. 나치 독일이나 히틀러 쪽은 반감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거리가 너무 멀고 직접적으로 침략이나 착취, 학살을 당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10~20여 년 전에는 나치 독일 코스프레를 잔뜩 한 클럽인지 카페인지가 있었다가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으로부터 강한 항의를 받고 시정됐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리고.. 서울 모처에는 독일차 부품을 파는 듯한 가게가 있는데.. 이름이 무려 ‘히틀러 상사’이다. 와~ 이런 곳도 있구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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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끔찍한 홀로코스트나 유대인 학살 같은 짓을 빼고 독일이 2차 대전도 1차 대전처럼 평범하게만(?) 진 것이었으면.. 히틀러에 대한 평가가 지금처럼 최악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런 죄악들을 빼고 히틀러의 소싯적 연설만 생각한다면 진짜 피끓는 듯하고 대단하고 멋있어 보인다.;;
SS 친위대의 검은 군복 봐라.. 일본군 군복보다야 독일군 군복이 훨씬 더 멋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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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22/10/22 08:36 2022/10/2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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