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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나라의 인천 국제공항은 경부 고속철도 내지 서해안 고속도로와 비슷하게 1992년쯤부터 공사를 시작해서 2001년 3월 29일에 개항했다. 외국 여행이 전면 자유화되고 나니, 기존의 김포 공항만으로는 폭증하는 항공 수요를 도저히 다 감당할 수 없겠다는 게 예측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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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안에서는 서울-부산 간 육상 트래픽의 폭주를 해소하려 고속철을 만들었다. 그것처럼 나라 사이에는 항공 트래픽 폭주를 해소하려 공항을.. 둘 다 비슷한 시기에 구상하고 만들기 시작했다는 게 흥미롭다.

고속철이 대전-천안 시험선의 건설부터 시작됐다면, 공항은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를 간척하는 어마어마한 토목공사부터 시작됐다. 건물을 올리기 전에 건물을 지을 땅부터 확보해야 하니 말이다.
여객터미널과 부속 시설들의 공사는 1996년쯤부터 시작됐다. 참고로 고속철의 경우, 1998년에야 KTX 제 1호차가 처음으로 수입돼 들어왔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개발 과정에서 베타테스트라는 걸 하고.. 철도 노선이 새로 개통하기 전에는 몇 달에 걸쳐 시운전을 한다.
그것처럼 인천 공항도 개항을 앞두고 모든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지, 세계 각국에서 날아오는 비행기들을 잘 처리해 내는지 테스트를 꼼꼼히 했다.

2.
그리고 인천 공항의 정식 개항 하루 전이던 2001년 3월 28일, 이때 국내의 메이저 항공사이던 대한 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은 본진을 옮기는 대공사를 벌였다.
김포에서 마지막 비행기를 띄운 뒤, 미리 싸 둔 어마어마한 양의 이삿짐들을 인천 공항으로 날랐다. 김포에 주기돼 있던 비행기들 수십 대도 인천까지 초단거리 비행을 시켜서 밤 늦게까지 차곡차곡 자가비행 탁송(?)했다.

그 비행기는 김포에서 겨우 인천을 가더라도 최단거리 직선으로 날아가는 게 아니라, 규정된 항로를 따라서 안양 부근을 찍고 훨씬 더 길게 우회해서 빙빙 돌면서 갔다.
이건 지하철 개통을 앞두고 거대한 전동차들 수십 량을 반입하는 것과 비슷한 절차인데.. 이때 저기 주변을 살았던 사람들은 참 진귀한 구경을 했지 싶다. 끊임없는 비행기 소음 때문에 고생했을지도..??

이들은 트럭 1000대가 넘는 분량의 이삿짐을 나르느라 공항 고속도로 톨비만 총 7천만 원 가까이 들었고, 각 회사당 이사 비용이 수십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어지간한 정부 기관의 지방 이전 비용에 맞먹었다.
지상조업에 쓰이는 토잉카, 소방차, 발전차, 탑승교 차량 등 온갖 특수한 중장비들도 몽땅 그렇게 탁송했다. 이런 기계류들 중에는 일반적인 공도를 주행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거운 것들도 있었다. 개통한 지 얼마 안 됐던 영종대교를 살금살금 조심해서 통과해야 했다.

어제까지 김포이다가 바로 다음날부터 인천..
항공사들은 업무가 단절 없이 진행돼야 했기 때문에 모든 짐을 어차피 하루아침에 몽땅 다 옮기지도 못했다. 이사는 단계적으로 진행됐으며, 이 운송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해서 일부 물자를 날릴 것에 대비한 보험도 단단히 들었었다고 한다.

옛날에 오키나와에서는 시내 도로들을 미군정 시절의 우측통행에서 일본 본토 방식인 좌측통행으로 바꾸는 7 30 조치가 취해졌었다. 1978년 7월 29일 밤 10시부터 긴급한 소방차 경찰차 구급차를 제외한 모든 차량들의 통행이 금지됐고, 이때부터 이튿날 아침 6시까지 공무원들이 모든 공도에서 우측통행 기준의 기존 표식과 신호등을 가리고, 미리 설치해 놨던 좌측통행 표식과 신호등을 꺼내 놓은 것이다.
이것도 참 역사적인 일회성 사건인데, 김포 공항에서 인천 공항으로의 이전 역시 그에 맞먹는 엄청난 사건이었던 것 같다.

3.
인천 공항은 그렇게 여객터미널 하나로 개항한 뒤, 지난 20여 년 동안 차근차근 확장도 해 왔다.
2008년 7월에는 확장 탑승동이 하나 완공됐고, 여객터미널과 탑승동 사이를 오가는 지하 경전철이 생겼다.
원래는 이렇게 확장 탑승동을 여러 개, 최대 무려 3개까지 만드는 식으로 확장한다는 것이 계획이었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인해 그 계획이 엎어지고, 2018년 1월에는 아예 여객터미널이 하나 더 생겼다.
지금은 일반항공(= 자가용 비행기)의 취급에 특화된 제3 여객터미널을 더 만들 계획이 있다고 한다.

공항이라는 게 여객터미널과 활주로, 관제 시설만 덩그러니 만든다고 다가 아니고 안에서 돌아가는 시스템도 상상을 초월하게 복잡 정교하다.
특히 수하물을 비행기에서 출입국장까지 착오 없이 신속 정확하게 보내는 지하 컨베이어 네트워크의 길이는 이미 100수십 km에 달한다고 한다. 제2터미널이 생긴 지금은 더 길어졌지 싶다. 어지간한 택배 물류허브의 복잡도를 능가한다.

우리나라 인천 공항은 터미널 화장실이 깨끗하고 무선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프런트 엔드뿐만 아니라 이런 백 엔드까지도 우수하다고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4.
(1) 지금이야 다 지나간 일, 상관 없는 이야기가 돼 버렸지만.. 인천 공항이 완공이 임박했던 1999~2000년 즈음에는 한글 운동 단체들에서 새 공항의 이름을 '세종'이라고 지어 달라고 청원 민원을 넣고 난리를 쳤었다.
이 진영에서는 공문서 한자 혼용 반대, 영어 공용화 반대, 한글날의 국경일+공휴일 지정뿐만 아니라 세종대왕이나 조선어 학회 사건 투옥자들을 기리는 일에도 앞장서는 편이었다.
허나, 인천이라는 지명을 홍보하고 싶어하는 정치 논리 앞에서 세종은 설득력이 부족했다. 그 대신, '세종'이라는 이름은 잘 알다시피 새로 만들어지는 행정수도의 이름에 쓰이게 되었다.

(2) 1996년인가 마이클 잭슨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공연 장비들을 무려 An-225에다 싣고 방한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파괴된 비운의 비행기, 세계에서 가장 거대했던 6발 화물기)
이때는 이 비행기를 김포 공항이 차마 감당할 수 없어서 오산 공군 기지에 착륙했었다고 한다. 물론 저 사람 당사자야 여객기 일등석이건 전용기건 뭐든 타고 김포 공항에 내렸고, 화물기만 저리로 보냈다는 뜻이다.
지금이라면 둘 다 인천 공항에 얼마든지 착륙 가능했을 것이다.

(3)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북한의 VIP 내지 손님들은 다 인천 공항으로만 드나들어 왔다. 북한 사람들한테는 감히 성남 서울 공항을 보여주지 않는 게 우리나라의 방침이라고 한다. 보안· 안보 문제 때문에.

(4) 우리나라의 모든 공항들은 '한국 공항 공사' 관할이다. 그러나 인천 공항은 '인천 공항 공사'라는 별도의 운영사가 있다. 마치 서울이 다른 시· 도들과는 다른 취급을 받는 것, 강원랜드만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자국민이 출입 가능한 카지노인 것과 비슷한 모양새이다.
그래도 국내선 면세점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제주 공항에만 있다.

(5) 인천 공항이 생긴 덕분에 김포 공항의 청사 하나가 텅 비어서 놀면서 리모델링 대상이 됐다. 바로 그 낡고 빈 건물을 배경으로 영화 <튜브>(2003, 백 운학 감독) 초반부의 공항 총격전 씬이 촬영될 수 있었다.
원래 감독의 의도는 강남 테헤란로에서의 총격적이었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무리. 그 대신 공항이 선택된 것이다.
그 당시, 김포 공항 주변에서는 "여기 안에서 영화 촬영 중이니 총소리가 들리더라도 놀라지 마세요" 안내를 하는 차량과 현수막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4/07/25 08:35 2024/07/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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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1) 현대 왕회장은 경부 고속도로 건설하던 시절에, (현대건설)
하늘이 두 쪽 나는 한이 있어도 완공 기한을 무조건 맞춰야 하는데 하필 재수없게 제일 어려운 대전-대구 옥천 터널 구간을 맡았다.
육중한 돌산에다가 터널 하나를 못 뚫어서(옥천 당재터널) 인부들이 사고로 죽어 나가고, 나중엔 무섭다면서 작업을 거부하고 포기하고 나가는 지경이 됐다.

그는 결국은 기업 이윤을 포기하고 훨씬 더 비싸지만 더 빨리 굳는 시멘트를 전격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그걸로 시간 더 벌어서 공사 기간을 간신히 맞추고 제때 완공했다.
경부 고속도로는 개통식 3시간을 앞두고 전구간 차선 도색을 간신히 끝냈다고 한다.

(2) 왕회장은 1977년쯤.. 고유모델 포니 개발하는 걸 포기하라는 미국 대사의 회유를 거절했다.
나중에 1980년대엔 자체 엔진 개발 따위 때려치우라는 일본 미쓰비시 측의 회유를 거절하고 이 현순 박사의 편을 끝까지 들어 줬다.

물론 돈 버는 기업의 입장에서 모든 걸 고지식하게 다 자체개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저 두 과감한 결정은 원천기술이라는 걸 만들고 오늘날의 현대 자동차를 있게 한 선견지명이 됐다.

(3) 그리고 현대 왕회장은 1981년경엔 정말 뜬금없이 스포츠 외교대사가 돼서 서울 올림픽 유치를 이끌어냈다. 세계 각국이 일본 나고야가 이기는 건 너무 당연하고 "몇 표 차로 이길까?"를 갖고 내기를 했던 시절에 말이다.

나고야가 막 돈지랄 선물 공세를 하면서 방심할 때 이 사람은 감성 마케팅을 했다. 꽃바구니를 손수 돌리고, 호텔 입구와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울나라를 홍보하고, "이 시국에 코리아 같은 개발도상국에게 기회를 부디 한번 주세요" 그렇게 정말 겸허하고 공손하게 처신하면서 IOC 위원들 마음을 움직였다.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자기 회사 물건을 팔려고 "불가능이란 없다" 이렇게 뛰는 영업맨의 자세가 아니었을지..?? 그게 52:27 "쎄울~~" 바덴바덴의 기적을 만들었다.

어디 그뿐이랴, 현대와 스포츠의 인연을 말하면서 양궁을 빼놓을 수는 없다.
우리나라 엘리트 체육이 수영은 박 태환, 피겨는 김 연아, 마라톤은 옛날에 이 봉주.. 이렇게 극소수 1인 천재 독주 위주인 반면, 양궁은 그렇지 않다.

저기는 양궁의 박 태환, 양궁의 김 연아 같은 괴물들이 그냥 우글거린다. 지금의 올림픽 국대가 다음 올림픽 국대에 다시 선발된다고 절대 장담을 못 한다.
양궁에다 후원을 잔뜩 하면서 이런 인재풀을 만들어 놓은 일등공신도 바로 현대 정 주영 가문이었다.

이거 뭐 온갖 분야에서 신화를 만들었구나.
내가 아는 일화만 이 정도이고.. 그 밖에 조선소 건립이나 해외 중동 건설과 관련해서 생겨난 일화나 기적은 알지도 못한다.
그랬던 사람이 1992년 대선에 한번 출마했었고.. 쌍팔년도 시절에 유행했던 개그인 최불암 씨리즈에도 개그 캐릭터로 등장한다. (최불암과 절친이었다고 함)

1998년에는.. 뭔 바람이 들었는지 북한으로 울트라리스크... 아니, 진짜 소몰이를 했다.
이러니 우리나라에 대기업 총수, 재벌은 여럿 있지만 저 사람이 왕회장이라고 불리는가 보다. 저 사람이라면 그럴 자격이 있는 것 같다. "이봐, 해 보기는 했어?"라고 말할 자격이 되는 것 같다. =_=;;

※ 삼성

삼성, 특히 예전 이 건희 회장 시절의 삼성은 이것저것 여러(모든) 분야에서 원천기술을 보유하려고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 무리수를 감행해서라도, 그게 언제나 실용적인 결과를 내지는 않았더라도 말이다.

“현대에서는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가전, 반도체, 컴퓨터를 만들면서(그 당시 현대전자) 또 자동차도 만드는데 우리는 왜 자동차를 못 만드냐?”
이러면서 한때 자동차 제조에 손을 댔었다. 저 사람이 개인적으로 엄청난 기계덕 차덕이기도 했으니..

그리고 컴퓨터 쪽이야 메모리 반도체에 정말 과감하게 투자했던 건 말할 것도 없고,
어째 소프트웨어 개발팀을 잘 꾸려서 1990년대에 훈민정음이라는 워드 프로세서를 자체 개발하기도 했다. 하긴 삼성 소프트웨어 멤버십도 꽤 옛날부터 있었지?

도스 시절부터 워드를 꾸준히 개발해 왔던 한컴조차도 Windows로 갈아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초창기 아래아한글 3.0 시절엔 삽질이 많았다.
하물며 워드를 처음부터 만들지 않았던 기업에서 무려 1992년에 도스가 아닌 처음부터 Windows용으로 그 정도 규모의 소프트웨어를 밑바닥부터 뚝딱 만든 건 엄청난 기술력의 산물이었다.

특히 훈민정음 95는 동시대의 아래아한글 2.5 확장팩처럼 엄청난 글꼴과 클립아트 데이터에다가.. HTML 문서 지원 어쩌구 하면서 당대에 뜨는 기술 트렌드도 엄청 많이 참고해서 개발됐었다.

그런데 개발팀이 Windows 표준 GUI 가이드라인은 참고하지 않았는지 ‘도움말’ 메뉴라는 게 없고, 메뉴 설명이 프로그램 제목 표시줄에 표시된다거나.. 삽입/겹침, 한/영 상태를 빨간색 caret으로 표시하는 식으로 좀 특이한 UI 피드백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프로그램 전반적인 디자인이 워드 프로세서보다는 DTP에 가까운 컨셉으로 설계된 느낌이었다.

훈민정음은 아래아한글과 MS Word에 밀려서 오래 전부터 시장 경쟁력을 잃었지만, 이 건희 회장이 오랫동안 애착을 갖고 개발팀을 유지시켰다…고 난 들었다. 자체 워드 프로세서 엔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야 된다고 말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무려 2014년이 돼서야 훈민정음을 사내에서도 완전히 퇴출시키고 사용을 중단했다.

으음.. 지금 훈민정음 같은 존재가 된 건 타이젠 OS이려나? 이것도 협력사들이 다 빠져나가고 삼성 스마트 가전에만 탑재되는 전용 물건처럼 됐다. 그래도 운영체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설계하고 만든 노하우가 어딘가에 쓰이기는 할 것 같은데 말이다.
 
내가 딱히 삼성맨은 아니지만 삼성에 대해서 불현듯 이런 기억이 떠오른다.
쟤들이 지금처럼 갤럭시 시리즈로 세계를 석권하기 전엔 아담한 Windows용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고, 애니콜과 옴니아를 만들기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옛날에 한컴 vs 마소 이러던 것이 지금은 네이버 vs 구글, 삼성 vs 애플.. 이런 구도로 바뀐 느낌이다.
더 옛날 금성 패미콤 vs 삼성 SPC-100은 브리사 vs 포니 같은 골동품인 건지?

(1) 천지인 한글 입력 방식은 잘 알다시피 삼성전자 직원의 사내 발명에서 유래됐다. 무려 1994년작으로, 일본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QR 코드라는 게 발명됐었다~!
1988년엔 한국의 의사가 V3을 만들었고 일본 의사가 LHA를 만들었던 것과 비슷한 짝을 이룬다.

(2) 물론 요즘 산업계는 돈 안 되고 승산 없는 분야는 빨랑빨랑 접고 손 떼고, 자기 전문이 아닌 기술은 그냥 사서 쓰는 게 대세이다. 기업들 트렌드가 옛날 같은 독점보다는 개방으로 바뀌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마소에서는 모바일 OS를 완전히 접었고, LG전자는 스마트폰을 완전히 포기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4/07/17 08:35 2024/07/1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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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년쯤 전이던 2023년 4~5월 사이에 국내외에서는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았던 크리스천 세 분 정도가 소천하여 주님 품으로 갔다.
공교롭게도 표준역 킹 제임스 성경 2판이 출간되어서 막 시끌시끌하던 시기와 비슷하다.
다들 이 블로그에서 이전 글에 언급한 적이 있었던 분들이긴 하다만.. 그때 이후로 새로 추가된 정보도 있으니 한데 모아서 다시 소개하도록 하겠다.

1. 론 해밀턴 (1950 ~ 2023. 4. 19.)

O Rejoice in the Lord (God never moves without purpose or plan ...)라는 훌륭한 찬송가의 작사 작곡자이다. “전능하신 우리 주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후렴 끝부분이 “나 주 안에 연단 받은 후 정금같이 되리”인 그 곡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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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은 질병 때문에 왼쪽 눈을 잃고 인생 대부분을 궁예처럼 살았다. 그런데 그렇게 눈을 하나 잃은 때도 1978년.. 저 찬송가는 작곡자가 눈을 잃은 뒤에 인생 간증을 담아서 만든 거라고 한다.

본인은 저 찬송가 가사의 안티테제(?) 격으로 An American Crime이라는 2007년도 영화가 떠오른다. 1965년에 미국 인디애나 주 깡촌에서 벌어졌던 실비아 라이컨스 양 학대치사 사건을 다룬 끔찍한 범죄 영화 말이다. 이것도 이미 이 블로그에서 옛날에 언급했던 바 있다.
영화에서는 피해자인 10대 소녀가 누적된 질병과 상처, 영양실조로 인해 결국 죽고 나서 쓸쓸히.. 이렇게 독백하는 걸로 끝난다.

Reverend Bill used to say: "In every situation, God always has a plan". (살아 생전에 다녔던 동네 교회 목사의 말)
I guess I'm still trying to figure out what that plan was. (그 계획이 뭔지 난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개인적으로 저 찬송을 부를 때면 저렇게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다 포함해서 하나님의 plan이 무엇이고 허락하시는 뜻이 어디까지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곤 한다. 찬송가 영어 가사에 따르면 하나님은 결코 실수를 하지 않으시고 내 인생 행로를 다 아신다고 했으니까.

아무튼 세월이 흘러서 그 가사를 쓴 찬송가의 작곡자도 소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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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실비아 라이컨스를 연기한 배우 엘렌 페이지.
현재는 남자로 성전환을 해서 ‘엘리엇 페이지’가 됐다 ㄷㄷㄷㄷㄷ)

2. 오야마 레이지 목사 (1927 ~ 2023. 5. 16.)

이 사람은 자기 나라가 이웃 민족에게 저지른 참혹한 죄악에 대해 알게 되고는 너무 멘붕해서 반세기 이상 평생을 사죄하는 일에 앞장섰던 엄청난 일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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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19년 4월, 제암리 학살 사건에 꽂혔다. 한국과 일본이 이제 막 수교를 맺었던 1965년~67년엔가 한국을 찾아와서 사죄하고.. 십시일반 모금을 해서 제암리 예배당 재건 비용을 대려 했다.
이때는 정작 제암리 학살 유족 후손들조차 더러운 왜놈의 돈 따위 받기 싫다고 차갑게 거절했는데도 말이다.

“바로 옆의 니 형제와도 화해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일본 교회의 예배를 받아 주실 리가 없다~ 일본은 대대적으로 사죄해야 한다 //
일본의 과거 침략 만행을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그만 됐다고 하실 때까지 계속 무릎 꿇고 고개 숙이고 있겠습니다” 이랬고..

제일 최근엔 2019년까지도 노구를 이끌고 한국 와서 도게자를 했다. 당연히 삼일 운동 100주년을 기념해서다.
저분은 소천했지만 그의 아들이 계속해서 사죄와 화해 운동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2020년대에 와서는 새에덴교회 소 강석 목사와 접촉 중인가 보다.

무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죄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신앙의 양심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성 특유의 끈질긴 집념과 근성의 산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JR 서일본에서 2005년도 전철 탈선 사고 사과문을 홈페이지에다 현재까지 박제해 놓고 있고, JAL(일본항공)에서 신입사원들한테 1985년도 여객기 추락 사고를 세뇌 주입시키고, 일각에서 20년 전의 의사자 이 수현 씨를 계속 기억하고 추모하기도 하니 말이다.

저 정도로 진심을 다했으니 승무원들이 훈련이 워낙 투철하게 돼서 지난 1월 2일의 여객기 화재 사고 때 수백 명의 승객들이 단 1명도 사망하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정 광진 변호사 (1937 ~ 2023. 5. 19.)

딸을 4명 두고 있었는데 3명을 1995년 백화점 붕괴 때문에 한꺼번에 잃은 그야말로 욥의 현실판인 분이었다. 그것도 다들 20대 꽃다운 나이였는데!!
이분은 종로학원의 설립자 정 경진의 동생이고.. 서울대 법대 나와서 사법시험 합격하고 판사로만 10여 년 재직하며 엘리트 코스를 갔다. 그런데 장녀가 초등학교 시절에 질병으로 인해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론 해밀턴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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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치료를 시도하느라 의료비도 많이 들었는데, 완전히 맹인이 된 뒤에는 특수학교로 통학을 시켜야 하니 자가용이 없으면 도저히 안 되는 지경이 됐다. 자녀 4명이나 키우는데 이런 일까지 생기니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는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음..;;;

그래도 장녀를 미국 유학까지 보내고 정말 잘 키웠는데.. 그 아이들을 한꺼번에 잃었고 시신조차 못 찾았다고 한다. 그나마 하나 남은 딸도 사고의 충격 때문인지 몇 년 뒤 병으로 죽었다.
이 정도면 이분도 아까 저 American Crime의 결말부 만만찮게 “신이란 게 있다면 도대체 지금 머릿속에 뭔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따질 만도 해 보인다.

저분은 사고 보상금에다가 사재를 보태서 '삼윤 장학재단'이라는 걸 만들어서 자기보다 형편이 더 어렵지만 '살아는 있는' 장애인들의 교육과 지원에 애썼다. 그러고 작년 5월에 세상을 떠났다.
하긴, 이렇게 자녀를 잃은 사람이 죽은 자녀 몸값으로 억만금을 받는다 한들.. 그걸로 서울 한강뷰 아파트를 사겠는가, 세계일주 오성급 호텔 원정을 가겠는가? 자녀 이름을 딴 장학 재단 만들거나 복지와 관련된 일에 보상금을 쓰게 된다.

딸들은 살아 생전에 서울에 소재한 영화교회라는 곳을 다녔으며, 이분도 신앙이 있었고 교회 장로였다고 전해진다. 소천했을 때 빈소가 분당 서울대 병원이었고, 새에덴교회에서 무료 법률 상담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니 노후는 분당에서 보냈던 것 같다.
어째 새에덴교회가 오야마 레이지 목사와 정 광진 변호사하고 모두 접점이 있는 것이 흥미롭다.

Posted by 사무엘

2024/05/14 19:35 2024/05/1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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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가지 이유로 죽은 사람들

1. 의료

- 장 바티스트 륄리(1687, 50 중반): 바로크 시대에 프랑스의 왕실 전속 음악가 겸 무용가로 명성이 자자한 아재였다.
이때는 지금 같은 지휘봉이 없어서 그는 끝이 뾰족한 지팡이로 땅을 쿵쿵 치면서 박자 지시를 했는데..
하루는 오페라를 열성적으로 지휘하던 중, 그 지팡이로 자기 발등을 콱 찍어서 피가 철철 날 정도로 크게 다쳤다.ㅠㅠㅠㅠㅠㅠㅠㅠ 아이고 지팡이 끝에 무슨 칼날이라도 달려 있었나.
상처가 세균에 감염돼서 독소가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는데.. 그는 발을 절단해야 한다는 의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버티다가 그대로 50일쯤 뒤에 목숨을 잃었다. 기본적인 소독이나 항생제 하나 없던 열악한 시절이었으니 사람이 이렇게 황당하게 훅 갈 수 있었다.

- 티코 브라헤(1601, 50 중반): 덴마크의 위대한 천문학자였다. 당대에 갈릴레이나 케플러 같은 다른 괴수들 때문에 존재감이 좀 묻혔지만..
이 사람은 어디 귀족들 행사에 초대받아 갔는데, 거기서 체면치레 하느라 오줌을 수 시간 이상 너무 오랫동안 참았다. 그러다 방광염에 걸려 버렸고, 그게 악화돼서 발병 11일 만에 목숨을 잃었다. ㅠㅠㅠㅠㅠㅠㅠ

- 앙리 2세(1559, 40세): 프랑스의 국왕이었는데 말 타고 갑옷 입고 창으로 기예를 겨루는 시합을 친히 벌이다가 다쳤다. 눈알 바로 위에 상대방('몽고메리'.. 스코틀랜드 귀족)의 창 파편이 박혀서 얼굴이 피칠갑이 됐고.. 상처가 감염돼서 거의 40일쯤 뒤에 목숨을 잃었다.

- 주 시경(1914, 37세): 젊은 나이에 급사· 돌연사해 버렸다. 정황상 급체나 심근경색이 의심된다. 천수를 누렸으면 국어학 발전에 훨씬 더 이바지할 수 있었을 텐데. 한국의 소쉬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동시대 사람).

- 이 상(1937, 27세), 김 유정(1937, 29세), 닐스 헨리크 아벨(1829, 27세): 다들 우리나라의 천재 문학가, 외국의 천재 수학자였는데..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영양실조와 결핵 때문에 요절했다.. >_<

- 최 용신(1935, 26세): 역시 스트레스로 영양실조로 인해 건강을 망쳐서 요절했다. 비타민 결핍증인 각기병을 앓았고, 결정적으로 장중첩증에 걸려 꽤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 방 정환(1931, 32세): 과로와 스트레스, 골수 흡연, 비만, 고혈압, 당뇨.. 정말 그 시절로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현대 성인병 돌연사의 선구자였다. 위의 다른 사람들처럼 단순히 항생제가 없어서, 소독을 못 받아서, 백신이 없어서, 잘 먹지를 못해서.. 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먼 옛날, 세종대왕도 이 사람과 비슷하게(비만 당뇨 고혈압 과로..) 승하했을 것이라고 추측은 되지만.. 저 두 사람은 신분과 처지가 서로 완전히 달랐다. ㅡ,.ㅡ;;

- 스티븐 포스터(1864, 37세): 초등 음악 감상 시간에 나오는 "스와니 강"과 "오 수재너(수잔나)"의 작곡자를 기억하시는가? 옛날 일본 만화영화 "금발의 제니"가 이 사람의 생애를 다룬 거다.
"오 수재너"는 "엘리제를 위하여"와 더불어 초인종 BGM으로 많이 쓰이기도 했다. ㄲㄲㄲㄲㄲ 다들 제목에 여자 이름이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군.
아무튼.. 이 사람은 30대 후반의 나이로 호텔 방에서 침대에서 떨어졌는지 어찌 됐는지 세면대에 머리를 너무 세게 부딪혀서 죽었다. ㅠㅠㅠㅠ 세면대 파편이 머리에 박히고 과다출혈로.. 지금 의술로는 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안타까운 일이다.

2. 교통사고

- 피에르 퀴리(1906, 47세): 퀴리 부인의 남편인 물리학자 겸 대학 교수. 비 내리는 날 아침에 연구실로 출근하던 중, 음주 마부가 몰던 마차에 치이고 차량 아래에 깔려서 현장에서 즉사했다. 단, 위험한 방사선 피폭 때문에, 그리 빠르지 않게 달려오는 마차를 피하지 못할 정도로 당사자의 체력도 노인 수준으로 약해진 상태였다고는 한다.

-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1935, 47세): "아라비아의 로렌스" 저자인데 오토바이를 맨몸으로 몰고 달리다가 사고로 사망했다. 이 유명인사의 죽음을 계기로 단순히 두건을 넘어 두툼한 오토바이 전용 헬멧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개발됐다고 한다.

- 이사도라 덩컨(1927):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에 제일 근접하는 말을 유언처럼 남긴 사람이다. 저 시절에 스카프가 자동차 뒷바퀴에 말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해서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었을까..?? =_=;

- 조지 패튼(1945), 월튼 워커(1950): 미군 육군 장성이었던 이 두 사람 모두, 교통사고로 차 밖으로 튕겨나가고 목이 부러져서 목숨을 잃었다. 뚜껑 온전히 달린 일반 승용차는 아니고, 뚜껑 없는 군용 찦차 타다가 말이다.
이 사고를 계기로 차량용 안전벨트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개발되었다.

- 조 문정(1994), 석 광렬(1994): 20대 중반의 국내 배우였는데.. 둘 다 자기 차를 몰다가 단독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내가 보기엔 둘 다 운전자가 사망할 정도의 사고까지는 절대 아니어 보여서 안타깝다. 차가 ABS가 없어서 더 잘 미끄러졌고, 다들 안전벨트를 안 맸던 것 같다.

- 지난 2018년 12월에는 화천에 있는 군부대로 아들의 면회를 마치고 돌아가던 일행 차량이 꼬불꼬불 산길(지방도 460)에서 옆길로 구르는 단독 사고가 났었다. 이때 운전자인 부친을 제외하고 동승자는 모친, 누나 둘, 그리고 당사자의 여친까지 모두 여성이었는데.. 이 4명이 단 한 명도 생존하지 못하고 모조리 차 밖으로 튕겨 나가서 사망해 버렸다.

일가족 몰살이나 다름없는 이 참극에 그 당시 국방부 장관과 육군 참모총장이 직접 조문을 왔고, 군 복무 당사자는 그야말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0순위 초특급 관심병사로 등극했다. 장례를 치르라고 12일 위로 휴가를 받았다가 복귀 후에는 얼마 못 가 결국 의가사 제대 처리됐다(2019년 2월경).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겠냐마는, 이 안타까운 사고 당시에도 탑승자들이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던 것 같다.

3. 투철한 실험 정신

- 게오르크 빌헬름 리히만(1753): 천둥 번개의 물리적 특성을 연구하려고 밖에 나갔다가 벼락을 정통으로 맞고 목숨을 잃었다. 욕이나 저주가 아니라 문자적으로 벼락 맞아 죽는 바람에 시신은 핏자국과 화상 자국으로 가득해서 온전한 형체를 유지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남극 탐험에다 비유하자면 프랭클린은 아문센이고 이 사람은 스콧..??? ㅠㅠㅠ 이 사람은 과학계의 순교자라고 대대적으로 언급되는 인물이다. 한낱 물방울 덩어리인 구름에서 천둥 번개가 어떻게 가능한지는 21세기 현대 과학으로도 완전히 규명돼 있지 못하다.

- 프란시스 베이컨(1626): "아는 것이 힘이다"와 귀납법으로 유명한 그 사람 맞다. 한겨울 눈 속에서 새파랗게 자라 있는 식물을 보고는 "눈을 사용해서 식품을 싱싱하게 보존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한겨울에 추운 데서 너무 오랫동안 벌벌 떨면서 실험 장치를 세팅했는데.. 이 때문에 면역력이 확 떨어졌는지, 폐렴을 동반한 감기에 걸려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_=;;

- 칼 패터슨 슈미트(1957): 독일의 파충류학자였는데.. '붐슬랭'이라고 신경독이 아닌 희소한 출혈독을 가진 독사에 물리자 일부러 해독 치료를 거부하고 버텼다. 이런 뱀에 물렸을 때 인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마루타를 자처하며 기록으로 남기다가... 결국은 골든타임을 놓치고 목숨을 잃었다.

일본의 노구치 히데요(1928)도 황열병을 연구하다가 자기가 그 병에 걸려서 죽기는 했지만.. 뭔가 숭고하고 안타깝다는 임팩트가 좀 떨어지는 편이다.
기자 중에서 종군기자가 가장 위험하게 알하는 사람이라면, 과학자 중에서 자기 목숨을 걸고 연구한다는 임패트가 강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저렇게 질병 내지.. 화산(!!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1994년엔 이례적으로 옛날 역사 인물에 대해서 다윈 상이 추서(!)된 적이 있었는데, 장 바티스트 륄리, 티코 브라헤, 그리고 프란시스 베이컨 세 명이 나란히 수상자의 명단에 올랐다. =_=;;

4. 불사신의 어처구니없는 최후

- 그리고리 라스푸틴 (1916): 고려 ‘신 돈’의 러시아 버전뻘 되는 제정 러시아 말기의 그 유명한, 전설적인 괴승이다. 청산가리가 들어간 음식을 먹고 총을 여러 발 맞았는데도 안 죽고.. 끝내는 강물에 던져져서 익사했다고 전해진다. 이를 두고 혹자는 과연 일산화이수소는 불사신 라스푸틴도 쳐잡은 독극물이라고 드립을 쳤었다. ㄲㄲㄲㄲㄲ

- 미린다요 (1948): 네덜란드에서 활동했던 엄청난 영매? 차력사였다. 깨진 유리조각이나 면도날, 바늘을 잔뜩 먹어도 내장이 상하지 않고, 칼이나 창으로 자기 몸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찔러 관통시켰는데도 시뻘건 피가 나지 않고 죽지도 않았다.
그는 여느 사기꾼과는 달리, 웃통 까고 세계 각지의 의사들 앞에서 X선 촬영을 받고 검증에도 흔쾌히 임했다. 하지만 그 당시 의학 지식을 다 동원해도 신체에서 어떤 트릭도 발견되지 못해서 정말 불사신으로 인증받았다!!
그런데 하루는 먹었던 쇠붙이를 제거하는 수술을 마취 없이 받아야 하는데 담당 의사가 임의로 마취를 해 버렸고, 미린다요는 “너는 명령을 어긴 벌로 곧 죽게 될 것임” 이러는 내면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그 뒤 그는 겨우 30대 중반의 나이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 사람은 굉장히 대단하긴 했지만, 최소한 마가복음 16장이 말하는 사도의 표적을 구사한 사람은 아니고.. 오히려 뭔가 라엘리안 끼가 풀풀 난다. 주변에서는 이 사람이 차력쑈로 돈을 버는 것만 허용하고, 자기 메시지가 담긴 연설이나 강연을 하는 건 허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4/02/15 08:35 2024/02/1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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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음악 교과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초딩 시절부터 '음악 감상' 명목으로 여러 클래식이 소개되는 게 있다.
뭔가.. 악보를 보면서 실제로 부르는 동요 부류의 곡은 인게임 3D 영상이고, 음악 감상은 컷씬처럼 미리 렌더링된 더 고화질 동영상 같다는 생각을 본인은 오래 전부터 해 왔다. ㄲㄲㄲ
물론, 요즘은 컴터가 성능이 워낙 좋아져서 컷씬까지도 게임 엔진의 실시간 동영상으로 구현하는 경우가 늘었다지만 말이다.

30여 년 전, 본인이 초딩이었던 시절엔.. 이런 것들이 초등 레벨의 감상곡이었다.

  • 크시코스의 우편마차(1895년경): 아주 경쾌하고 무난하고 인지도도 높은 그 곡이다. 게임 BGM으로도 좋고, 작곡 취지를 감안하여 각종 열차의 출발 BGM으로도 적당해 보인다.
  • 라데츠키 행진곡(1848): 역시 너무 유명해져서 식상해졌다는 단점 하나만 빼면 승전 개선용 행진곡으로서 굉장한 고퀄이다.
  • 스케이터 왈츠(1882): 8비트 고전 게임 '남극 탐험'의 BGM으로 흘러나온 그 곡이다.
  • 헝가리 무곡 제5번(1870년대): 무곡인지 춤곡인지 우리말 번역이 좀 헷갈린다. 춤곡이라지만 3박자는 아니고 4박자 계열이다. ('젓가락 행진곡'도 제목과는 달리 왈츠풍의 3박자..)
  • 왕벌의 비행(1900): 벌들의 붕붕 소리를 현악기로 굉장히 재치 있게 묘사한 곡이다.
  • 페르시아의 시장에서(1920): 작곡자가 무슨 동기와 영감으로 이런 곡을 만들었나 의문이 드는 흥미로운 곡이다.

그 중 일부는 피아노 학원에서 소곡집 악보로 접하기도 했다.

이런 곡들도 처음엔 관현악 오케스트라용이다가 나중에 양손 피아노 연주 편곡 버전이 따로 나오는 편인데.. 이건 컴퓨터 프로그램에다 비유하자면 영락없이 포팅에 해당하는 셈이다. PC용이다가 모바일용, Windows용에 이어 mac용처럼 말이다. ㅡ,.ㅡ;;

그런데, 이런 곡들은 무슨 200년 이상 전(1800년대 초)의 옛날 곡은 아니고, 대체로 19세기 후반 ~ 20세기 초의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클래식 중에서는 끝물에 해당하는 시기인데..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들도 대부분 이 시기 곡이다. 이 벨 에포크 시절이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예술도 엄청나게 발전한 시기였던 것 같다. 서양은 어째 과학 기술뿐만 아니라 예술까지 어째 이렇게 앞서가서 세계를 석권했던 걸까..?

그러다가 20세기 초중반, 특히 세계대전 전간기엔 뭔가 다다이즘 의식의 흐름, 정줄놓, 격식 파괴 형식 파괴 같은 트렌드가 문학, 음악, 미술 등에 골고루 팽배했던 것 같다. 그 전까지 주류이던 뭔가 고전주의? 이런 건 확실하게 끝났다.
문학계엔 그 이름도 유명한 이 상 같은 사람이 있었고, 음악에서 4분 33초로 유명한 존 케이지, 그리고 미술에서 아무렇게나 휘갈긴 추상화를 개척한 잭슨 폴록..

이 두 사람이 1912년생 동갑인 건 참 의미심장한 것 같다. (이 상도 1910년생으로 비슷한 연배이고)
이런 사람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처음 접한 때는 초딩을 넘긴 중딩 시절이었다.
참혹한 1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성의 상실에 대해 너무 충격을 받아서 예술 트렌드가 바뀌어 버린 것일 수 있다. 거기에다 녹음기와 카메라의 등장도 영향을 줬지 싶다.

2차 대전까지 끝난 뒤의 예술 트렌드는 확실하게 '현대'라고 불린다. 그러니 음대에서도 클래식과 실용 음악의 구분이 따로 생기게 됐다.
단순히 음반 많이 팔고 빌보드 차트 진입을 노리는 상업적인 세속 음악이 아니고 클래식도 아닌 순수 예술(?)로서 현대 음악은.. 뭐랄까 음계도 기존 체계를 벗어나서 미분음을 넣고, 공연 중에 피아노 뚜껑을 닫거나 심지어 피아노를 때려 부수기도(!!) 하면서 더 추상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가 보다.

아, 1970~80년대부터는 전자 악기라는 게 등장하면서 인간이 원하는 음색은 무엇이건 실물 없이 마음대로 합성해서 음악에다 집어넣는 게 가능해졌다. 이것도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음악 트렌드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참고로 CG는 더 나중인 1990년대부터..)
이제는 미디 규격조차도 악기 구성이 너무 식상하고 낡아서 노래방 반주기 같은 데서나 볼 수 있는 레거시가 됐다고 하는데...

이상이다.
이렇게 시대가 바뀌고 문명의 이기 수준이 달라져도.. 인간의 보편적인 심성과 정서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세월 흐름을 타지 않고 살아남은 고전 명작이라는 게 문학에도 존재하고 음악· 미술에도 존재하는가 보다. 글쎄, 지금은 아직 너무 파격적이고 세월의 검증을 통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문제작들 중에도 몇백 년 뒤에는 고전으로 기억되는 것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고전 음악 중에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제일 먼저 접하는 건 클래식의 끝물 정도 장르라는 것이 흥미롭다.
그때 접했던 클래식곡을 몇 개 더 소개하며 글을 맺도록 하겠다.

(1) the whistler and his dog (1913)
개 짖는 소리와 휘파람 소리가 나오는 곡. 오랫동안 곡명을 몰랐는데 끈질긴 검색을 통해서 출처를 알아냈다.
1990년대 초에 나우정밀 무선 전화기(휴대전화가 아니라ㅋㅋㅋㅋㅋ) '바텔'의 CF에서 콜리 강아지와 함께 BGM으로 흘러나와서 유명세를 탔었다.

(2) the syncopated clock (1945)
똑딱똑딱 시계 소리 나오는 유~~명한 곡이다. 다들 들어 보신 적이 있을 것이다.
악기 편성은 클래식 같은데 음악이 아닌 사운드 이펙트가 들어가기 시작한 게 20세기쯤인 것 같다.

(3) the waltzing cat (1950)
개 다음으로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오는 3박자 왈츠풍의 곡이다. 처음엔 G장조이고 중간에 C장조 조옮김도 했다가 G로 돌아온다. 저 (1)과는 작곡자와 작곡 시기가 생각보다 많이 차이가 나는 별개의 곡이구나.
피아노 소곡집에 실려 있는 ‘고양이 춤’과도 무관하니 헷갈리지 마시라. 사실 그 곡은 애초에 작곡자나 정확한 제목이 몽땅 정체불명이다. ㄲㄲㄲㄲㄲ

(4) the three little pigs: who's afraid of the big bad wolf (1933)
얘는 월트 디즈니에서 1933년에 내놓은 ‘아기돼지 삼형제’ 애니메이션의 OST이며, 심지어 가사도 있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건 저 정도까지 옛날은 아니고 약간 현대적인 오케스트라 풍으로 편곡된 곡인데, 그건 유튜브를 아무리 뒤져도 음원을 못 찾겠다.

여기까지 글을 쓰고 말려고 했는데 말이다.
검색을 해 보니.. 난 “재미있게 놀자 vol 1: 0세에서 즐기는 명곡”이라는 1980년대 정체불명 컬렉션 음반을 들었던 기억을 지금까지 늘어놓고 있었다!! 곡들의 수록 순서를 보니 저게 틀림없다. (☞ 링크 1, 링크 2)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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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정사각형 모양인 걸 보니 CD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LP 레코드이다. ㄷㄷㄷㄷㄷ 물론 카세트 테이프 에디션도 있긴 하다.
저게 “상쾌한 아침, 재미있게 놀자, 고요한 꿈나라로” 이렇게 나름 컬렉션이 있다. 다들 1900년대 곡인 걸 생각하면.. 막 옛날 클래식이 컨셉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아무리 1980년대 상품이라지만 와, 글자 폰트를 보면 영락없이 북한 물건 같다.ㅠㅠ

Posted by 사무엘

2024/01/16 08:35 2024/01/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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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타에서 저그의 특성을 보고 꽤 특이하다고 느끼는 건 다음과 같다. 뜬금없이 옛날 게임 얘기를 늘어놓게 되네..
밥집이 건물이 아니라 유닛(오버로드!!)인 건 너무 기본적인 차이점이니까 제끼고..

1.
히드라 덴은 기본 건물 중에서 가스를 먹는 유일한 건물(B)이다.
반대로 나이더스 캐널은 무려 하이브 테크 급의 최고급 건물(V)이면서 가스를 먹지 않는 유일한 건물이다.
타 종족은 가스 먹는 기본 건물이나 가스 안 먹는 고급 건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이더스 캐널은 자기가 직접 공격을 하지는 않지만 자기 종족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기지의 방어'에 기여하는 자그마한 건물이다. 플토의 실드 배터리나 테란의 벙커하고 비슷한 부류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스를 먹지 않는다.
하지만 벙커나 실드 배터리는 기본 건물인 반면, 나이더스는 고급 건물이라는 차이가 있다.

2.
저글링의 아드레날린 업그레이드는 그야말로 극초반의 기본 건물(스포닝 풀)에서 최후반 최고급 테크(하이브)를 가야만 누를 수 있는 극단적인 업그레이드이다. 타 종족에는 이 정도로 극단적인 기술 업글이 존재하지 않는다.

참고로, 히드라의 럴커 업그레이드는 스포닝 풀 다음에 올리는 건물인 히드라 덴에서 하는 데다, 하이브 이전의 레어 테크에서 시전할 수 있다. 그러니 아드레날린보다 기술 격차가 훨~~씬 더 작다.

그래서 내가 성경의 간극에 대해 설명할 때도 이런 스타 비유를 든다. -_- "처음에 저글링이 나오니라. 그 저글링은 발업이 되고 아드레날린업이 되었더라."
우린 이 문장을 통해 게임이 굉장한 장기전으로 갔음을 알 수 있고, 발업과 아드레날린업 사이의 '간극'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 1:1-2 사이의 and 간극도 이와 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맥락이다.

* 그나저나 spawning pool.. 이러니까 창 1:20도 떠오르긴 한다. ^^
"물들은 생명을 지닌 동물들을 풍성이 생성해 낼지어다~~~" Let the waters bring forth abundantly the moving creature that hath life!!!
요 5:2-4의 베데스다 연못 같기도 하고..

3.
저그는 자유도가 너무 높아서 컴퓨터 AI가 전혀 활용하지 못하는 기술이 타 종족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다. 이게 무슨 말이냐..

(1) 컴퓨터는 나이더스 캐널은 전혀 쓰지 않는다. 자원 모으고 유닛 뽑아서 공격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지 이런 걸 어떻게 구사하겠나? (캠페인에서 나이더스 캐널이 나오는 건 그냥 인위적인 트리거 스크립트일 뿐이다. 범용적인 게임 AI가 아님)

(2) 컴퓨터 AI는 고스트 락다운, 메딕 옵틱, 퀸 브루들링 등.. 평소에 온갖 마법 유닛들을 인간 게이머보다 훨씬 더 많이 구사하는 걸로 악명 높다. 그러나 AI는 퀸으로 테란 커맨드센터를 감염시킨다거나, 인페스티드 테란 유닛을 뽑지는 않는다. 사실 인페스티드.. 계열은 그냥 잉여 장난 관광 능욕 기능에 가깝긴 하다;;;
퀸의 감염 기술은 이동, 공격 같은 정규 동작이 아니면서 마나도 사용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기능이다.

(3) 컴퓨터는 디파일러의 마법을 쓰기는 하지만, 컨슘은 구사할 줄 모른다;;; 자기 저글링 몇 마리를 도시락으로 싸 와서 전장에서 수시로 먹으면서 다크 스웜/플레이그를 찍찍 뿌리지는 않는다. 하긴, 마나를 회복한다는 개념 자체도 전 종족을 통틀어 디파일러에게만 존재한다.;;

테란이야 컴퓨터 AI가 활용 못 하는 기술이 없는 것 같다. 베슬은 말할 것도 없고 핵이고 배틀크루저고 다 잘 쓴다.
프로토스도 템플러와 다크 아콘이 모든 마법을 잘 쓰고 있는데, 딱 하나 아비터가 걸린다.
AI가 아비터의 리콜을 쓰는 경우가 있는지 궁금하다. ^^

4.
프로토스 하이템플러는 자기 머리 위로 스톰을 뿌려서 자살이 가능한 아주 드문 유닛이다.
그 반면, 저그의 인페스티드 테란은 마법이 아니라 특정 타겟 지정 없는 어택 땅만으로 자폭이 가능한 유일한 유닛이다.
스커지도 자폭 공격 유닛이긴 하지만 얘는 어택 땅까지는 아니다. 그리고 스커지는 오리지널 시절에는 대공만 가능한 유일한 유닛이기도 했다.;;;

이상이다.
옛날 2000년경 PC 통신 시절에 "환상의 테란 소설"에서는 "서기 2020년, 블리자드는 스타라는 걸작 게임만을 남긴 채 망해 버리고, 소스는 공개되지 않았으며 회사 사장은 어느 열받은 테란 유저에게 살해당했다"...;;; 라고 초반부에 쓰여 있었다.
그 시절에는 저건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설정이라고 치부됐었다.

그런데 실제로 20여 년이 지나니, 물론 블리자드가 진짜로 간판 내린다거나 사장이 살해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장이 교체되고 회사가 정말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삽질을 반복하다가 몰락하고 망조 들기는 했다.
2010년대 와우니 오버와치니 하던 시절에만 해도 망할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게임 업계는 영원한 강자란 없는가 보다.

옛날에 컴퓨터가 비싸고 성능이 딸리던 시절에는 몇몇 최적화 괴수 천재들 소수정예로 엄청난 게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요즘은 기계값이 하도 싸지고 기술이 상향평준화되다 보니, 게임이 그런 식으로 뿅 튀어나오지는 않는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똘똘한 컴터 공돌이들은 여전히 다들 게임 회사로 가는 것 같다.

작년 코로나 시국에 연봉을 제일 많이 올려줬던 곳도 저 바닥이다. 당연히 영세 중소 업계 말고 중견 이상 대기업들 한정으로.
난 실력은 둘째치고라도 게임 쪽은 관심이 없고 적성이 안 맞아서 그런 데에 안 갔다. -_-

Posted by 사무엘

2023/12/20 08:35 2023/12/2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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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 말의 왜구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에 조선이 하도 흉하고 추한 과정을 거쳐 멸망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격한 반감과 심지어 트라우마까지 지닌 사람이 있다.
19세기 말에야 왕비가 외국 자객에게 암살 당하고, 왕이 쫄아서 외국 대사관으로 피신을 가고, 자국 군대가 봉기를 일으켜서 대궐을 점령하고, 왕이 외국 군대를 동원해서 자국 민란을 진압하는 등... 뭐 상상할 수 있는 개막장 인외마경이 다 벌어졌다.

하지만 사실은 조선 이전의 고려도 말기엔 만만찮게 시궁창 막장을 넘어 '헬게이트'였으며, 언제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던 상태였다.
일자무식 무신들 쿠데타에 휘둘리면서 나라 내부가 결딴이 났고(물론 그 전에 문신들이 나라 지키는 군인들을 개차반 대접했던 것도 잘못),
대륙으로부터는 몽골인지 원나라인지 걔들한테 작살 나면서 오랫동안 휘둘렸으며,

바다로부터는 이놈의 왜구가.. 소말리아 해적 수준이 아니라 어지간한 적국 해군 수준으로 한반도의 해안을 몽땅 접수하면서 끊임없이 민가를 털어 갔던 것이다. 망망대해 위에서 배만 턴 게 아니라 아예 상륙까지 해서 남의 영토에서 노략질을 했으니 원..
이 왜구는 일본 자국의 입장에서도 통제가 안 되는 골칫거리이긴 했다.

하지만 고려는 멸망 직전의 말기에 중앙 정부의 통치력이라고는 도읍 주변으로 확 쪼그라든 상태였다. 오죽했으면 이 성계가 처음에는 온갖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장수로 시작했다가 나라를 갈아엎어 버렸다.
마침 이 시기에 최 무선이 고성능 화포를 개발한 덕분에 특별히 왜구들을 화력으로 제압할 수 있었다. 알고 보면 이때 저 사람은 이 순신 만만찮게 나라를 구하고 조선의 국방의 기틀을 닦은 것이었다.

그렇게 왜구들이 무력으로 제압되고, 일본도 1600년대쯤 중앙집권 막부가 등장하고부터는 왜구라는 것이 자취를 감췄다. 조선이 임진왜란 전과 후가 상황이 많이 달라졌듯, 일본도 그 전과 후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왜구가 자꾸 찝적대고 대미지를 누적시키고 국력을 소모시킨 것은 고려의 멸망에 간접적으로 기여를 했다. 그러나 이때는 그래도 이 성계라는 자국민의 쿠데타를 통해 왕조가 바뀐 것이었다.
그러나 훗날 조선은 왜구가 아니라 근대화된 일본 제국의 군대가 총칼을 들이대며 위협하니 알아서 슬슬 기면서 외교권 사법권 내어주고 군대 해산하다가 끝내 멸망하게 됐다. 둘은 멸망 방식에 이런 차이가 있다.

차라리 왜구들이나 찝적대는 게 강화도 조약, 을미사변, 청일 전쟁 이런 것보다는 더 나았던 건지는 모르겠다.
나도 오랫동안 근현대사만 생각하다 보니, 일본군만 떠올리지 옛날 왜구...의 존재감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놈의 토착왜구 타령은 참.. -_-;;
그 미개한 왜구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근대화해서 아시아 최강대국이 된 건 생각을 안 하고 언젯적 얘기만 계속 읊어 대는지 모르겠다.

2. 삼별초

옛날에 박 정희 군사 정권은 '군사 정권'에 대한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고려의 무신 정변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후하게 평가하도록 역사학계에다가 로비를 넣었던 것 같다.
특히 삼별초라는 친위대 말이다. 투철한 애국애족 정신으로 뭉쳐서 마지막까지 몽골에게 항거하던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많이 미화를 했는데.. 현재는 그렇지는 않은 걸로 평가가 바뀌고 있다.

단, 지방에서 '노비'들이 삼별초에 많이 가담했다고 한다. 더 잃을 게 없는 처지에서 잘 되면 신분 해방이고 못 돼도 본전이니까 가담했던 게 아닐까? 몽골의 침략 때문에 시국이 뒤숭숭한 데다, 불과 60여 년 전에 '만적의 난'이 미수에 그쳤던 것도 영향을 끼쳤지 싶다.

3. 지조를 지킨 의인

조선 시대엔 사육신과 생육신이란 게 충절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숙부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내쫓고 왕이 되자, 저 충신들이 다시 단종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실패로 돌아가고, 반대로 그들이 정치범 역적으로 몰려 집안이 통째로 숙청 당하고 삭제 당했다.

저 사람들은 어떤 고문에도 끝까지 굽히지 않고 "당신은 대감님 나으리이지, 왕이 아니올시다!"를 고집했다고 한다.
옛날에 석총이 궁예에게 "당신은 국왕 폐하이지, 미륵이 아니올시다!"를 고집했던 것과 좋은 대조=_=를 이루는 것 같다.

조선보다 더 과거에는 우리나라 관료가 아예 외국으로 전향을 권유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목숨을 잃은 사례가 좀 있었다. 물론 아무 뜬금없이 그렇게 된 건 아니고, 외국을 상대로 기만 내지 적대 행위를 하다가 걸렸기 때문이다.

(1) 신라 박 제상은 정말 독보적으로 유명한 사례이다. 왕의 동생을 적국에서 구출해 준 뒤, 자신은 일본으로 전향을 거부하고 화형을 당해 죽었다. 요즘으로 치면 국정원 블랙요원이 임무 수행 과정에서 발각되고 순직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2) 고려 때는 강 조라는 굉장히 특이한 관료도 있었다. 왕을 시해하고 뭔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 같았지만 거란의 침입에는 맞서 싸웠다. 포로로 잡힌 뒤엔 거란의 신하로 전향을 단호히 거부하고 처형 당했다.

외국으로의 전향을 거부한 사람으로 한국사에 등장하는 사람은 내가 알기로 이 둘이 전부인 것 같다.

4. 조선 시대의 형벌

(1) 로마 제국의 십자가형은 본게임 전에 죄수를 반 죽여 놓는 채찍질이 있었고, 조선의 유형(귀양)형은 본게임 전에 죄수를 반 죽여 놓는 장형이 있었다.
그리고 본게임에서는 둘 다 죄수를 뭔가 방치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뭐, 유형의 경우 장형은.. 돈으로 때우는 걸로 대체할 수는 있었다고 함)

(2) 간과하기 쉬운 의외의 사실인데, 조선 시대의 감옥은 전적으로 미결수가 갇히는 곳이었다. 그 시절에는 감옥에 갇히는 것 자체가 형벌인 '금고 1년, 징역 3년, 무기징역' 같은 자유형이 없었다~! 그 대신 장형, 태형, 사형 같은 신체형이 있었을 뿐.
거기에다 도형(노역)이나 유형이 있는데.. 얘들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장형을 받고 나서 집행되는 형태였다.

"여봐라, 저놈을 당장 하옥시켜라" 이게 그 자체가 형벌을 주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죄를 묻고 나서 진짜 형벌을 주기 위해 신체를 구속하는 조치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의 경우, 갑오개혁 때에야 장형과 도형이 폐지되고, 징역형이란 게 처음으로 도입됐다. 그리고 사형 집행 방식도 좀 근대화(?)됐다. 덕분에 갑오개혁 거의 직후에 처형된 전 봉준은 참수 대신 교수형을 당했다.

(3) 조선에서는 사형을 집행할 때 사형수는 꿇어앉아 있고, 칼 든 망나니가 '칼춤'을  무슨 탈춤처럼 덩실덩실 추면서 입으로 술인지 물인지를 후~ 뿜다가 내리친다거나 하는 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건 이제 다들 많이 알려져 있다.
곤장 칠 때처럼 사형수를 엎어 놓고 목을 쳤다.

5. 사도세자

사도세자는 왕자 주제에 근처의 사람을 지 기분 꼴리는 대로 고문하고 막 죽이기까지 했다니(!!).. 예상 이상의 개막장 정신병자 싸이코패스 망나니였다.
근데 그렇게 된 게 애비 영조가 애를 어린 시절부터 훈육을 빙자해서 아동학대 수준으로 너무 심하게 잡았기 때문이었다. 애가 미쳐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는 그 스트레스를 사치 향락으로 풀고, 주변의 궁인· 궁녀들이나 학대하며 푼 것이다.

사도세자는 원래 머리가 비상하고 아주 똑똑했다고 한다. 잘 컸으면 나라를 잘 다스리는 유능한 군주가 됐을 것 같은데 이런 과정을 거쳐 인성이 완전히 망가지고 폐인이 됐다.
영조는 너무 큰 사고를 치고 자신과도 갈등이 극에 달한 세자에게 벌을 주긴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서류 기록이 남는 법적인 형벌을 줄 수는 없었다. 당연히 사약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니 처음엔 칼 던져주고 자결하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뒤주에 쳐넣어서 서서히 아사· 갈사시키는 희대의 엽기적인 방법으로 친아들을 죽여 버렸다. 이름하여 임오화변.
우리나라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는 부모로부터 평생 애정을 못 받고 학대만 당했던 어느 청년이 참다못해 부모를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내기까지 했는데.. 이건 사도세자의 정반대 케이스인 것 같다.;;

6. 울나라의 명칭

서양에서 이 대한민국과 그 전신 나라들의 명칭은 Korea라고 오래 전부터 알려지고 정착했다.
조선 정부에서는 자기 나라가 '고려'에서 유래된 코리아라고 국제적으로 일컬어지는 걸 영 싫어했다. 하지만 이 명칭이 진작부터 다 퍼져 버렸기 때문에 그걸 뒤늦게 Chosun이니 Joseon이니 하는 다른 단어로 바꿀 수는 없었다.

결국, 조선의 페이스리프트 후기형인 대한제국은 Empire of Korea라고 대외적으로 선포되었다. 이건 자국 여권에도 적힌 공식 표기이다. 19세기 중후반이 각종 국제 기구라는 게 처음으로 생겼던 시기이니까..

대한제국은 얼마 못 가고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기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일제는 이번엔 대한제국 대신 '조선'이라는 명칭을 다시 가져와서 한반도 지역을 조센이라고 읽었다. 알파벳 표기는 Chosen.. choose의 과거분사 '선택된'과는 아무 관계 없다.. -_-;;

이 명칭을 국제적으로 홍보했지만.. 역시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조선 정부가 홍보한 '조선'이건, 나중에 일제가 홍보한 '조선'이건.. 별 호응이 없었다.
결국 오늘날 '조선'은 북한에서나 쓰고 있는 명칭이 됐고, 걔들도 DPRK라는 영어 이니셜에는 어쩔 수 없이 Korea가 들어간다.

자국 명칭이 '한'짜가 들어가건 '조선'이 들어가건, 영어는 고려 시대 이래로 요지부동 Korea라는 게 신기한 현상이다. 모탈 컴뱃과 더불어 K로 시작하는 얼마 안 되는 고유명사이다.
일본에 대한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쩔었던 쌍팔년도 시절엔.. 일본이 국제적으로 로비를 벌여서 Corea의 알파벳 순서를 자기네 Japan 뒤로 밀었다는 정말 황당한 낭설도 나돌았었다. 허나 이건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23/11/28 08:36 2023/11/2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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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유럽 3국

  • 영국: 섬나라, 영어~! 인도를 포함한 엄청난 규모의 식민지를 보유했으며, 미국의 모체. 뉴턴, 돌턴, 다윈. 해밀턴, 네이피어. 증기 기관과 산업 혁명. 정치적 이유 때문에 일찌감치 교황과 결별, 가장 일찍부터 자국어 성경 번역 시작.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 롤스로이스. 안개 낀 우중충한 날씨.

  • 프랑스: 나폴레옹, 대혁명, 단두대(..), 나치 부역자 여성 강제 삭발. 언어가 삼국 중에서는 내가 느끼기에 제일 특이함. 자유분방, 패션(?), 샹들리제, 미녀와 야수스러운 느낌적인 느낌. 스페인 못지않은 친가톨릭 성향. 라부아지에, 푸리에, 푸아송, 데카르트, 파스칼, 라그랑주..;; 떼제베 고속철, 부가티

  • 독일: 종교개혁(루터), 음악(베토벤, 바흐!)과 철학 강국. 디젤 기관과 자동차의 명가(BMW와 벤츠, 포르셰, 폭스바겐). 전기 철도의 원조(지멘스). 뢴트겐, 가우스, 힐베르트, 리만. 삼국 중에 인구 가장 많음. 의무 교육과 거위걸음의 원조. 세계대전에서 유일하게 추축국 전범국 진영. 히틀러와 나치 흑역사..;;

뭔가 프로토스 테란 저그 같은 느낌이 든다..
참고로 영국과 독일은 애국가(national anthem)의 멜로디가 우리나라 찬송가에도 기재돼 있는 반면(피난처 있으니 / 시온 성과 같은 교회), 프랑스는 유일하게 그렇지 않다.

2. 초소형 국가(마이크로네이션)

우리나라에서는 남이섬이 ‘나미나라 공화국’이라는 나라에 입국하는 것처럼 장난스럽게 꾸며져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 안에는 바티칸이라는 아주 자그마한 도시국가가 있는데 이건 남이섬과 달리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레알 국가이다.

이것 말고 세계적으로 기존 국가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초소형 국가가 몇 개 있었다. 장난이 아니라 레알이라면 이건 기존 국가의 입장에서는 국토 참절 내란이라는 엄청난 중죄이며, 전근대 시절이라면 말 그대로 역모이다.

(1) 로즈(Rose) 아일랜드 공화국: 미국의 로드(Rhode) 아일랜드 주와 이름이 비슷한데.. 이탈리아의 영해 한가운데에 있는 겨우 400제곱미터짜리 인공섬 국가였다. 1968년에 건국을 선언했지만, 그 이듬해에 이탈리아 해군에 의해 토벌되어서 멸망했다.
남이섬 같은 관광업 놀이를 넘어서 소득에 대한 납세까지 거부하는 것은 선 넘는 짓이라고 이탈리아 정부에서 판단했던 것이다.

(2) 씨랜드 공국: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 참사 할 때와 동일한 명칭인 Sealand이다. 영토는 잉글랜드 남동부의 바다 위에 만들어진 인공 구조물이 전부이다. 국제적으로 국가로 정식 승인이야 못 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영국 정부로부터 토벌되지도 않고 지금까지 근근이 유지는 되고 있는 것 같다. 위의 로즈와 비슷한 시기인 1967년에 건립됐다고 한다.

(3) 헛리버(Hutt River) 공국: 섬이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의 서쪽 끝에 자리잡았던 초소형 국가이다. 어느 변호사가 법으로 요리조리 싸운 끝에 1972년에 호주 정부로부터 독립을 인정받고, 그 대신 영국 여왕에게는 여전히 충성을 다하는 영연방의 일원이 되었다. 하지만 경제난과 코로나19로 인한 관광객 감소 때문에 2020년 1월에 전격 해체하고 다시 호주 연방으로 복귀했다고 한다.

3. 이스라엘의 리즈 시절 행적들

  • 유대인 학살을 주도했던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까지 찾아가서 추적 끝에 생포· 납치하는 데 성공(1960)
  • 시리아의 고위직에 스파이를 교묘하게 잘 심은 덕분에 정보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3차 중동 전쟁에서 승리(1964-1965)
  •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서 여객기 테러리스트들을 성공적으로 제압하고, 무려 100여 명에 달하는 인질을 아주 소수만 빼고 거의 다 구출 성공(1976)

4. 러시아의 전투 방식

러샤의 뿌띤은 20여 년 전 체첸 반군 쪽에서 테러를 벌였을 때에도,
10여 년 전 소말리아 해적이 귀찮게 굴었을 때도..
어느 때건 그냥 눈이 뵈는 게 없이 이판사판이었다. 너 죽고 나 죽는 치킨 레이스였고, 무자비하기 그지없었다. 이스라엘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유명하다. ㄲㄲㄲ

아 그래.. 소말리아 해적들을 망망대해 위에서 달랑 고무보트에다 태우고는 훈방 조치..
정말 이런 짓을 한 나라는 세계에서 러시아밖에 없긴 했다.;;
흑돌고래 교도소의 보유국이 아니랄까 봐. 소련이 망했어도 공산당 시절 특유의 반민주 인명 경시 풍조는 어딜 가지 않았다.
교수대 사형 집행이 없으면 사형보다 더 천천히 괴롭게 사람을 말려 죽일 뿐이다.

2004년 9월, 베슬란 학교 인질극 참사 얘기는 뒤늦게 들었다.
근데 이건 테러범들도 극악의 미친 싸이코들이어서.. 이건 세계관 최강자끼리의 불운한 충돌이라고 봐야겠다.
이때 러시아 군인들은 위· 영관급 장교들이 몸으로 총알 막고 수류탄 덮어서 전사하면서 인질들을 구출했다. 그러니 강경 진압을 명령한 수뇌부 말고, 밑에서 임무 수행한 사람들은 도저히 욕할 수 없었다.

“러시아 국민들과 테러리스트들이 분명히 알게 된 것은 러시아를 대상으로 테러를 하면 테러리스트나 인질, 진압부대 모두 다 죽는 ‘이판사판’의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었다.
이 베슬란 학교 사건 이후 체첸 반군은 다시는 러시아를 상대로 이러한 대형 테러를 벌이지 못했다.”

러시아고 체첸이고 벨라루스고 나발이고 역학관계를 잘은 모르겠다만..
문제는, 바로 이런 미친 근성의 나라가 이제는 전쟁을 벌여 놓고 어영부영 끝낼 생각 따윈 전혀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_-;;
구소련기 걸고 다니는 탱크를 보니, 남부기 걸고 다니는 미군 탱크 생각이 나더라.

5. 러시아의 존재감

내가 보기에 아폴로 계획(달 착륙) 음모론자, 그리고 중증 반일정신병자의 공통점은 다~~
러시아-소련의 존재감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이 쥐도 새도 모르게 몰래 달에 딱 한 번 다녀오고 말았고, 다른 경쟁자는 없었던 줄로 안다.
1800년대 말에 조선을 노리던 나라가 오로지 일본밖에 없었던 줄 안다.

그러니 망상이 초기 경증일 때는 "우리나라가 광복군이 참전해서 전승국만 됐어도.."로 시작했다가, 더 심해지면 "일본놈들이 조선을 침략하지만 않았어도~~"로 악화된다.
고종이 자국민을 우금치에서 기관총 갈기며 학살한 것은 안중에도 없고, 한때 청나라를 조선에서 완전히 몰아낸 거 하나만으로 독립문 세우면서 좋다고 난리를 쳤던 건 싹 잊어버린다.

저 존재감 없는 나라는 6 25 전쟁 때 탱크를 원조하면서 북괴를 도왔던 나라이며,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에 전투기로 우리 여객기를 두 번이나 격추시켰던 나라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으니 역사를 제발 편파적이지 않게 균형 있게 기억하시길 바란다.

6. 토종 동식물

중국은 용(?)과 팬더곰(판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는 캥거루와 코알라, 인도는 코끼리..
이렇게 특정 나라에서만 서식한다거나, 특정 나라의 상징처럼 등극한 동식물이 있다. 용은 실존하는 동물이 아니니 논외로 한다지만..

우리나라는 어떤 예가 있을까? 별로 떠오르는 게 없다. 반달곰이나 호랑이 같은 건 야생에서는 진작에 자취를 감췄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만 지내는 놈이 아니다. 아, 진돗개 삽살개 같은 토종견이 있군.
동물이 아니라 식물 중에 그 정도로 유니크한 물건들이 좀 있는 것 같다. 금강초롱, 미선나무, 끈끈이주걱, 동강할미꽃 따위 말이다.

7. 인구

지금은 바야흐로 2020년대인데 세계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나라는 중국일까, 인도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공식적인 통계상으로는 아직 중국이 인도를 근소하게(불과 5, 6천만 명 남짓 차이) 앞서 있지만.. 압도적인 출산율의 차이로 인해 2020년대 안으로 인도가 중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게 다수설이다.

심지어 비공식적으로는 2010년대 중후반에 이미 역전이 됐을 거라는 추측도 나도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런데 두 나라 다 공권력이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는, 서류상으로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지경이다. 그러니 이 역시 그냥 추측의 영역에 머무르게 될 것 같다.

땅이 제일 넓은 나라는 러시아이지만 인구가 제일 많은 나라는 러시아보다 더 남쪽에 있다. 그런데 캐나다는 그 방대한 영토에 비해 인구는 참 안습하다. 미국하고도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 숫자 감각이 더 분명해진 뒤에야 실감하게 됐다.

8. 미국의 방송, 항공사, 자동차 회사

미국은 워낙 크고 넓고 통치 형태도 완전 단일 정부가 아니라 연방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 우리나라는 전국구 공영 지상파 TV 방송국이 KBS/MBC 정도가 전부이지만 저기는 CBS, ABC, NBC, FOX 등 더 다양하다.
  • 메이저(저비용이 아닌) 항공사도 땅 좁은 우리나라는 대한/아시아나가 전부이다. 그러나 저기는 메이저를 넘어 플래그십 항공사 자체가 단일 유일이 아니다. 델타, 아메리칸, 유나이티드 등으로 관할이 나뉘어 있다.
  • 독립된 자동차 회사는 GM과 포드 말고 또 있는지 모르겠다. 미국은 자동차 제조사끼리의 인수 합병으로 인해 브랜드명을 통한 분화가 굉장히 많이 돼 있다. 캐딜락, 링컨.. 이런 건 브랜드 이름일 뿐, 뿌리는 다 동일해졌다(GM).

우리나라의 경우, 현대와 기아는 언뜻 보기에 서로 다른 회사이지만, 그래도 큰 뿌리는 둘 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멤버가 되었다. 그리고 제네시스는 현대 소속이지만 현대를 노출하지 않는 별도의 브랜드명처럼 돼 있다.

한편, CBS라는 명칭은 우리나라의 기독교 방송과 이니셜이 완벽하게 겹친다. 하지만 이건 아예 보통명사인 CCTV와 겹치는 중국의 방송 명칭보다는 상황이 나은 것지도 모르겠다.;;

9. 남아메리카 베네수엘라

  •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폭포.. 높이 979m짜리 엔젤/앙헬 폭포가 있는 나라라고 맨 처음 들었다.
  • 석유가 그렇게도 많이 난댄다. 엥, 미국도 아니고 중동도 아닌 곳에서?
  • 그런데도 나라 복리후생이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처지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 급으로 경제 막장이고, 멕시코· 필리핀 급으로 치안 막장이라고 한다. 도대체 뭐가 꼬였길래?
  •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나라 차원에서 다른 스포츠나 기능 경기도 아니고 미인 대회를 그렇게도 육성하고 공략한다고 함. 그래서 여기 출신 입상자가 많다

10. 화폐 단위

끝으로 베트남 ‘동’.
대한민국 원보다 가치가 더 낮은 화폐단위가 있긴 하구나..! (미화 1$에 22839동)
태어나서 처음 들었다. ㅎㅎ 매우 인상적이다.
쟤들도 인플레 때문에 10, 100단위는 실용성이 거의 없고, 기본이 1000단위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아울러, 몽골 '투그릭'도 한국 원보다 미묘하게 가치가 더 낮은 화폐라고 함..

Posted by 사무엘

2023/11/25 08:35 2023/11/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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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간 군상들

1. 다자녀

난 대한민국의 1950년대 이후생 기준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다 자녀 가정은 김 석태-엄 계숙 부부인 걸로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 자녀가 5남 8녀 총 13명~!!

  • 남편은 목사. 사는 곳은 경북 칠곡, 구미 일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 이미 10여 년 전부터 매스컴 탔다. 이 명박과 현직 윤 석열 대통령의 취임식 때 초청받았고, 대통령 부부와 대면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대통령 부부는 무자녀.. =_=)
  • 자녀 중에 넷째와 다섯째는 1995년의 연초와 연말에 태어나서 쌍둥이가 아니면서 연도 나이가 같기도 하다.
  • 모든 자녀들의 이름을 한자 없이 순우리말로 지은 걸로도 유명하다~!!

근데, 여기 말고도.. 연예계에서 배우 남 보라가 14자녀 집안(8남 6녀)의 장녀(오빠 다음의 둘째)로 잘 알려져 있다. ㄷㄷㄷㄷ 그리고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이런 사례도 있다. ㄷㄷㄷㄷㄷ

다만, 면목동 14남매 김 중식-노 정화 부부 집안은 마냥 좋은 평만 있지는 않은 듯하다. 후원받은 돈과 물자를 애들 밥 먹이고 학교 보내고 제대로 키우는 데 쓰지 않고, 세들어 사는 집을 개판으로 만들어 놓고 발뺌하는 등의 정황이 의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2020년대 이후로 딱히 매스컴을 더 타지는 않고 있다.

이것보다 더 나쁜 사례로는 애들을 잔뜩 낳아 놓고는 출생 신고조차 안 하고 10여 년을 그냥 막 키운 집안이 요 몇 년 전에 제주도와 광주에서 각각 보도됐었다.
다만, 애를 굶기고 때리고 물리적으로 학대를 한 건 아니어서 형사 처벌까지는 없이 넘어갔다. 출생 신고를 안 한 것에 대해 머리 하나당 5만 원 과태료만 매기는 걸로 끝..

이런 것들이 출산율 0.7명대 우리나라의 예외적인 반대편 극단 모습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출산율 올리려면 출산 관련 정책이 '일반'이 아니라 '특수'로 가야 하지 싶다.
이민만 왕창 받아들이는 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당연히 아닐 거고.

"애를 꼭 대학 안 보내도, 꼭 수도권에 몰리지 않아도 애 낳고 살 만한 나라" 이건 너무 이상적인 유토피아이니 더 바라지도 않는다.
이미 낳은 애들이라도 범죄나 사고로 어처구니없게 죽지 않게 지켜 주고, 불임· 난임 부부들 왕창 지원하게.. 이런 것부터 해야 하지 않겠나?
가족계획은 박통 때는 이해한다 치지만 이미 1980년대 5공 때 전면 폐지를 했어야지 그걸 왜 방치했나 모르겠다. =_=

2. 망나니/범죄자 여성

매스컴에서 잠시 스쳐 지나갔던 한 지선, 한 서희라는 사람. 동인 인물인 줄 알았는데 아니군.. 서로 다른 처자들이었다.
둘 다 이름 비슷하고 나이 비슷하고(94, 95년생) 얼굴 반들반들 예쁘장하고..
자기가 얼마나 노력하고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서 연예/방송계에서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여건에 있었는데.. 빌어먹을 개망나니 성깔 때문에 모든 복을 제 발로 차 버리고 몰락했다.

한 지선은 지난 2018년 9월경, 술에 만취해서는 다짜고짜 주변 택시에 올라타서 운전사 따귀를 때리고 행패 부리고, 심지어 출동한 경찰한테까지 따귀 때리고 깨물고 발길질 하고 쌩 난리를 쳤다. 도대체 정신줄을 얼마나 놨길래 저랬을까? 결과는 벌금형이었다.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지상파 방송에서는 출연정지 처분을 받았고, 그녀의 배우 커리어는 2019년 이후로 완전히 쫑났다.

다음, 한 서희는 그냥 연예인 지망생 중도포기자였기 때문에 한지선만 한 필모그래피도 없다. 하지만 다른 유명 남자 연예인들과 스캔들을 일으키면서 반쯤 공인이나 다름없는 유명세와 인지도를 누렸다.
뭐, 성깔 더럽고 까칠한 관종 트롤 프로불편러 기질이 좀 있었던 것 같은데.. 2010년대 중반부터 마약을 하다가 몇 차례 적발됐다.

급기야 2021년에는 재판 받다가 판사한테까지 “저기요. 전 도망 안 칠 건데요? 판사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제가 왜 구속돼야 하는 거예요? 무슨 증거로 제가 유죄라는 거예요? 아이 C8 진짜..!!
이런 불멸의 단말마를 내뱉고는 장렬히 교도소로 끌려갔다.

집행유예 도중에 또 약 빨다가 걸린 주제에, 뻔뻔함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ㅡ,.ㅡ;; 이번엔 당연히 실형.. (다만, 나중에 뒤늦게 저 말투에 대해서는 꼬리 내리고 사과하기는 했다)
교도소에서 줄곧 갇혀 있다가 요 근래에야 출소했다.

이런 거도 휴먼버그대학교에서 다뤄도 될 거 같은데 말이다. ㅡ,.ㅡ;;
“인간이 버그를 일으킨 순간”이라는 정의에 완벽하게 부합하니까. “내 이름은 한 XX. 한 순간의 실수로 미래를 날린 연예인 지망생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ㄲㄲㄲㄲ

김 새론은 어디서 돼먹지 못한 조언을 받았는지, 음주운전 사고 친 후에 정말 최악에 최악의 대처만 해서 연기 인생 말아먹은 걸 두고두고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될 것 같다.
재벌 3세이던가 황 하나도 얼굴은 예쁘장하던데 마약 때문에 인생 참 많이도 말아먹었다. 작년에 출소하고 나서 제주도에서 캠핑카 차려서 조용히 살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지난 4월엔 웬 로스쿨 나온 처자가 술 쳐먹고 경찰한테 폭언과 개망나니 짓을 하다가 검사 임용 물 건너가고, 로스쿨 커리어까지 말아먹을 처지가 됐다. 10여 년 전의 연세대 로스쿨 캐비닛과는 다른 방식으로 어리석은 짓을 했다.

헐~ 거론된 사람들이 전부 여자네.. ㅡ,.ㅡ;;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얘기하자면,
신 정아, 윤 G.O., 전 청조. 이 세 사람은 21세기 우리나라 역사에 길이 남을 거짓말쟁이 사기꾼 허언증녀가 아닐까 싶다. =_=;;
마약이나 살인, 도박, 방화와 마찬가지로 망상에 의한 거짓말도 중독이나 정신병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남자는 싸패, 여자는 허영심인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여자 중에도 미친 싸패가 있긴 하네. 엄 여인이나 정 유정처럼. ㄲㄲㄲㄲㄲㄲ

3. 사형수

현재 우리나라의 생존 사형수 중에,

(1) 교도소 짬밥을 제일 많이 먹은 최장기 복역 사형수는 1992년, 다른 곳도 아니고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을 휘발유 붓고 불질러서 신자 15명을 죽게 한 사람이다. 아내와의 극심한 종교 갈등이 이런 참극을 불렀다.
허나, 방화살인이라는 수법에다 킬수가 너무 많아서 사형이 내려졌을 뿐, 범행 동기 자체는 너무 흉악 극악무도까지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30년째 사형이 집행되지는 않았다.

이 사람은 교도소에서 정통(?) 개신교 교단으로 귀의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교단 교파에서 “이 사람은 흉악범이 아니고 아내를 빼앗긴 것에 격분해서 이단들을 징벌한 것일 뿐이다. 그러니 좀 선처 감형해 주셈~” 이런 요지의 실드를 치고 탄원을 해서.. 대외적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2) 최고령 생존 사형수는 2007년쯤엔가 정말 큰 사고를 쳤던 그 어부 오 종근이다(보성 어부 살인 사건). 뱃놀이 하러 배 탔던 대학생 커플을 두 쌍이나 남자는 물에 빠뜨려 죽이고 여자는 성폭행 후 죽인 미친놈. 지금은 이미 80 중반의 나이이다.
2010년에 사형이 확정됐다. 오죽했으면 맏아들이 자기 애비가 저지른 짓에 너무 충격 받고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해진다. 부인이나 다른 자녀들 역시 저놈과는 완전히 연 끊었다.

(3) 제일 최근이면서 최연소 민간인 사형수는 1990년생 장 재진이다. 대구에서 여친 집에 쳐들어가서 여친 부모를 다 죽여 버리고, 여친을 어머니 시체를 보여주며 위협해서 태연히 성폭행한 미친놈이다. 2014년에 있었던 일인데 기억하시는지?
여친은 집에 갇혀 있다가 4층 집 베란다에서 뛰어내려서 간신히 탈출해서 경찰에 신고했다. 중상에 트라우마는 평생 갈 거고.. 그때 군대 가혹행위와 총기 난사뿐만 아니라 민간에서 저런 일도 있었다.

저 X끼는 해병대 복무 시절에도 후임 가혹행위 때문에 영창 수준이 아니라 징역 집행유예를 받았을 정도였다. 여친과 사귈 때는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수시로 따귀를 때리고 손찌검을 일삼았다. 저런 놈이 어떻게 여친을 사귀기는 했을까?
이 포악한 성격 때문에 여친의 부모까지 나서서 항의를 할 정도였다. 그래도 남자놈의 부모는 개념이 있어서 즉각 사죄를 하고 아들을 크게 나무라고 대학교를 강제로 휴학시켰는데.. 이에 앙심을 품고 저 새끼가 보복을 한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법무부에서 무기징역이 아니라 오 종근 다음으로 2010년대에 딱 한 번 이놈한테 사형을 때렸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내려진 민간인 대상 사형 선고이다.
김 길태도 무기징역, 울산 2자매 살인 이 악귀도 무기징역인데 쟤는 해도 해도 너무 답이 없는 인성파탄자였기 때문에 사형이 때려진 것이다. 뭐, 집행은 안 하니 별 의미 없지만..

(4) 참고로 나이로만 최연소 사형수는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1992년생 ‘군인’ 2명이다. 민간인이 아님.
그리고 군인 사형수의 최고참은 2005년 530GP 사건의 주범인 김 동민이다.
영어 단어 life는 생물학적인 생명이라는 뜻도 있고, 좀 인문학적인 인생 삶이라는 뜻도 있다.
무기징역 내지 종신형은 인생을 몽땅 앗아가는 형벌이고, 사형은 생명을 앗아가는 형벌이라는 차이가 있다. 둘 다 life를 앗아가는구만.

내 지론은 간단하다.

  • 사형 제도를 없앨 게 아니라 흉악 범죄를 없애야 한다.
  • 강간· 간음을 은폐하려고 아예 살인을 저지르는 일이 없어야 한다.
  • 음주운전 사고를 은폐하려고 아예 뺑소니를 저지르는 일이 절대 없어야 한다!!!

그리고.. 출연 금지(= 지상파 TV 출연권 박탈)라든가 SNS 계정 삭제는 뭔가 간접적인 명예형이다. 남에게 영향을 끼치는 공인으로 살고 그걸로 수익을 얻는 걸 금지하는 건데.. 내 개인적으로는 성 범죄· 흉악 범죄자뿐만 아니라 악질 종북주의 빨갱이들한테도 적용해야 하지 않나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23/11/11 08:35 2023/11/1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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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드웨이 다음으로 "남자들의 야마토"(2005) 영화를 보니 뭔가 참 짠하다.
야마토 급 전함은 태평양 전쟁 당시에 일본군이 운용했던 초대형 군함으로, 항공모함이 아니라 함포만 쏘는 전함 중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배였다. 거의 타이타닉의 군함 버전과 비슷하달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3년 전, 미드웨이 시절엔 일본군도 항공모함들을 운용하면서 비행기 날리고 미군을 굉장히 악랄하게 괴롭혔었다. 그러나 미드웨이, 과달카날, 레이테 만 등의 전투에서 연달아 패하면서 그들은 그 병력을 다 날려먹었다.

1945년 4월, 야마토는 아군을 지원하러 오키나와로 가던 중, 아군 비행기 한 대 없이 기관총과 함포나 찍찍 갈기면서 100여 기나 되는 미군 날파리 비행기들을 힘겹게 상대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다가 어뢰와 폭탄을 잔뜩 맞고 장렬하게 박살나 버림으로써 인류의 전쟁사 전체를 통틀어 불멸의 안습한 이름을 남겼다.

미드웨이 시절에는 미국 어뢰가 불발 불량이 많았었던 반면.. 야마토 때는 그렇지 않고 펑펑 잘도 터졌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어떤 문제가 있으면 바로 시정하고 수학· 과학을 동원해서 시스템을 개선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저력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은 물자 생산량이 늘고 공장 근로자와 병력의 숙련도가 올라갔다. 그 반면, 일본은 국가 인프라가 망가지고 사람과 물건의 질이 떨어지고, 전쟁을 더 지속할 수 없는 막장 상황으로 치달았다.

2.
사실, 야마토의 마지막 임무는 애초에 아무 승산 없고 꿈도 희망도 없는 개죽음 임무였다.
하지만 천황 폐하께서 "그럼 이제 군함은 더 없는 건가?"라고 물으시니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는 개뿔, 야마토도 남김없이 옥쇄시켜야 해군 수뇌부들의 가오가 선다. 그래서 "오키나와에 가서 뼈를 묻으라" 명목으로 출격한 것이었다.

미군의 정찰기와 잠수함들은 야마토가 움직이는 걸 곧장 다 파악해 버렸다. 야마토 운전실에서조차 "이제 뭐 경로를 훼이크 칠 필요도 없겠군. 오키나와로 직선 거리로 가도록 한다. 변침 실시~" (정찰기한테 발포한 뒤) 이렇게 대응했다.

그 뒤 전투 과정에서 기적 같은 건 없었다. 야마토는 목적지에는 당연히 못 가고 격침됐다.
야마토에서 3천여 명(전체 승조원의 90% 이상), 호위하던 아군 구축함과 경순양함의 승조원까지 포함해서 4200명에 달하는 자국 군인들이 전사했다.
그 동안 야마토가 총포 쏴서 필사적으로 떨군 미군 비행기는 딱 13대요, 미군의 전사· 실종도 딱 13명이었대나 어쨌대나.. 우금치 전투를 조선 동학뿐만 아니라 일본 해군도 치른 거나 마찬가지였다.

3.
이 야마토는 타이타닉보다 더 큰 덩치에(약간만 더 큼) 당시 일본 국가 예산의 무려 2%를 소모해서 만든 미친 물건이었다.
(참고로 1960년대에 미국이 인간을 어떻게든 쏘비에트보다 먼저 달에 보내려고 NASA에다가 매년 꼬라박았던 돈지랄이 자기네 정부 예산의 1~3% 그랬었음)

야마토는 자국의 최고 과학 기술에, 돈지랄에, 자존심이 몽땅 동원된 최고의 기함이었다. 일반 촌뜨기들이 보기엔 가히 SF 급의 기계가 아니었을지? 승조원은 무려 3천 명을 넘었으며, 때문에 이 승조원들에 대한 복리후생도 단연 최고였다.
1940년대엔 자국 국민들이 배급이 부족해서 쪼들리고, 동남아로 간 육군 땅개들이 쫄쫄 굶으면서 개고생 하고 괴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야마토에서는 그 와중에도 마지막 순간까지도 쌀밥에 고기 통조림과 과일이 배급됐다.

얘는 배 크기에 걸맞게 함포도 거대했다. 1.5톤짜리 포탄을 쏜 주포의 사정거리가 무려 40km에 달했다. 포의 구경이랑 장갑의 두께가 다 비슷하게 400mm대였다는 게 흥미롭다. 참고로 나치 독일의 구스타프 열차포는 구경이 800mm..;; 비슷하게 정신나간 괴물이었다.

허나, 야마토는 배를 너무 크게 만든 게 계륵이 돼 버렸다.;; 한창 싸워야 할 때는 전투력 보존 차원에서 야마토 호텔짓을 너무 오래 하다가.. 나중에 지원 유닛을 다 잃은 뒤에야 너무 늦게 투입되었다.
그리고 승조원들 복지는 최고였지만, 급탄이나 조준 등 전함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설비는 미국 군함 대비 많이 낙후하고 기술이 딸렸던 듯하다.

야마토는 건조되던 당시부터 전함으로 만들지 항공모함으로 만들지가 해군 수뇌부의 고민거리였다고 한다. 이때도 실용적인 이유보다는 높으신 분들의 간지 체면 명분이 개입해서 전함이 선택됐던 듯하다. 그 시절에 전함이냐 항모냐 하는 고민은 IT 업계에서 웹이냐 모바일이냐, 무슨 플랫폼이 뜨냐 하는 고민의 20세기 초중반 군대 버전이었지 싶다.

4.
타이타닉 호가 동형함/자매함으로 브리타닉과 올림픽이 있었듯, 야마토도 1호인 야마토 이후로 '시나노'와 '무사시'라는 이름의 자매함이 있었다.

나중에 건조된 '무사시'는 1944년 가을의 레이테 만 해전에서 직싸게 얻어터지고 원조 '야마토'보다 먼저 격침 당해 없어졌다. 그래도 이 배는 물이 새면서 곱게(?) 침몰했으며, 승무원들도 전투 후에 모두 갑판 위에 모인 채로 곱게(?) 퇴함하고 구조될 수 있었다. 비록 전투 중에는 주변이 생지옥이었더라도 말이다.

그 반면, 야마토는 끝까지 남겨져 있다가 더 외롭고 더 처참하게 부서졌다. 침수 때문에 곱게 침몰한 게 아니라 배가 옆으로 완전히 자빠졌으며, 이때의 충격 때문인지 탄약고까지 유폭해 버렸다.
그야말로 천지가 다 울리는 굉음과 불기둥이 발생하면서 야마토는 무슨 타이타닉처럼 둘로 쪼개져서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상당수의 승조원들은 자기 위치에서 퇴함 명령조차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채 몰살 당했다. 오죽했으면 그 대폭발 후폭풍에 휘말려서 삐끗거리고 추락한 미군 함재기도 있었을 정도이니.. 마지막 순간까지 적과 동귀어진을 하긴 했다. -_-;;

참고로, 야마토 급 전함 중에서 딱 하나 '시나노'는 전함으로 만들던 중에 유일하게 항공모함으로 설계가 변경되었다. 하지만 1944년 11월, 취역한 지 겨우 9일 뒤에 구레 기지로 이동하던 중에 미군 잠수함 겨우 한 척으로부터 어뢰 4발을 맞고 격침당해 버렸다. 수많은 함재기들로부터 다구리 당한 것도 아닌데, 제대로 비행기 하나 못 띄워 보고 생을 마감했다.

얼마나 돈 많이 쓰고 고생해서 그 큰 배를 만들었을 텐데, 최후가 다들 이랬다. 그나마 '무사시'가 제일 평범한 최후인 것 같고 '시나노'는 너무 황당하고 허무하다. 제일 마지막에 제일 처절하게 죽은 '야마토'가 제일 주목받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어 보인다.
(여담이지만, 타이타닉과 야마토는 해저 탐사를 통해 잔해가 발견된 시기도 1985년 7~9월대로 비슷하다. ㄲㄲㄲㄲㄲㄲ)

5.
이런 사연이 있으니, 일본에서는 영원한 자기들 국뽕인 러일 전쟁 쓰시마 해전 영화뿐만 아니라 반대로 자기들이 일방적으로 얻어터진 해전 영화도 만들었구나 싶다. 그것도 2005년, 종전 60주년 기념 명목으로 말이다. 오늘날은 그런 큰 전함을 만들 일 자체가 없어졌으니 더욱 추억 돋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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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현 구레 시에 있는 해사 역사 과학관에는 야마토 전함의 1/10 크기 모형이 전시돼 있다.)

야마토~! 왕년에 자기들이 만들었던 왕창 큰 전함을 잊을 수가 없다.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만도 하다.
그래서 쟤들은 창작물에 은하철도 999만 있는 게 아니라 우주전함 야마토도 있다. 전쟁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였던 우리 민족으로서는 정서적으로 도저히 상상이 안 될 것이다.

쉽게 말해 일본인에게 야마토는 한국인에게 거북선과도 같은 존재이다. ㅡ,.ㅡ;; 옛날에 우리나라에서도 "우주전함 야마토"를 따라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1979)이라는 애니를 만들다는 걸 생각해 보자. 서로 자기 나라의 자존심이 걸린 군함인 것이다.;;

또한, 일본 해군은 육군과 달리, 조선인 강제 징용이라든가 현지 민간인 학살 같은 전쟁 범죄와 접점이 (거의) 없다. 바다에서 미군 함재기들을 상대한 일본 해군 수병 중에 조선인이 있었다거나 한 적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울나라의 손 원일이니 심지어 신 성모니.. 하는 사람들도 다 그냥 상선사관 출신이지, 일본 해군 출신.. 이딴 커리어 전혀 없다. 아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야마토를 그리워하는 것 자체를 뭐 군국주의 전쟁 범죄 미화 급으로 불편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래 봤자, 나라 등골을 짜내서 만든 배가 저렇게 하루아침에 허무하게 사라졌구만.. 그거 만들고 운영할 돈으로 차라리 다른 경제 발전이나 도로· 철도 건설, 자국민들 복지를 하는 게 결과적으로 더 나았을 것이다.. -_-;;;
쓸데없이 남의 나라 침략하고, 그걸 저지하는 강대국들한테 개기느라 더 손해 보고 쪽박 찼다.

영화는 나름 고증 훌륭하고 그 시절 재현을 객관적으로 잘한 것 같다. 심지어 정신주입봉으로 후임들 줘 패는 씬도 들어가 있다. 적인 미군 쪽은 그저 비행기로 야마토를 때리기만 할 뿐, 딱히 사람 출연이나 대사가 없는 것 같다.

※ 관련 무기 발전사 여담

(1) 해군
전근대 시절엔 해군· 수군이라는 건 아주 위험한 보직으로 여겨지고 엄청난 기피 대상이었다. 군인과 뱃사람의 믹스인데 일이 얼마나 고달프겠는가? 땅도 아니고 바다에서 죽어서 가라앉으면 시체도 못 찾는다. 그러니 험악하고 질 낮은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해군만 그 정도로 독보적으로 열악한 건 아니다. 열악하고 시체 못 찾는다는 독보적인 특징은 일반 배가 아니라 잠수함 정도로 넘어간 듯하다.
어느 나라건 해군은 육군과 다른 흰색 아니면 남색(네이비색)의 뽀대 나는 전투복을 입고, 문화와 관습이 뭔가 다른 게 있다. 일단 육지 야전에 맞춰진 위장을 전혀 할 필요 없으니, 전투복 색깔이 완전히 다르긴 하겠다. ㄲㄲㄲㄲ

단, 요즘은 해군이 배 타고 있는 중에는 저녁에 쉴 때도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다는 점이 육· 공군 대비 큰 단점이 돼서 병 복무를 기피할 지경이 됐다고 한다. 우와 이건 정말 꿈에도 생각을 못 했네..;;

(2) 거함거포주의
야마토 전함은 '거함거포주의'에 종지부를 찍은 예시라고 역덕 밀덕들한테 잘 알려져 있다.
20세기 초까지는 해전이란 게 배끼리 총포 주고받는 게 전부였다(러일 전쟁이나 1차 대전). 그러니 배를 크게 만들어서 멀리 항해하고, 포도 강하고 사정거리 길게 하는 게 장땡이었다.

그러나 포를 아득히 능가하는 병기인 비행기와 미사일이 발명되면서 배는 민간 상선과 군함을 불문하고 예전보다 작아지게 됐다. 타이타닉 같은 대형 장거리 여객선이 없어졌고, 군사에서도 대형 전함이 퇴출된 것이다. 이건 마치 PC통신이 인터넷에 밀려 없어진 것만큼이나, 재래식 갑옷이 총 앞에서 퇴출된 것만큼이나, 재래식 공성전이 퇴출된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배가 비행기를 직접 품든지. 떠 다니는 공항인 항공모함만이 왕창 거대하다. 그리고 얘는 잠수함이나 상륙함처럼 군 전용이다.
일본은 항공모함이고 레이더고간에.. 처음엔 자기들이 먼저 도입해 놓고는 그걸 제대로 끝까지 활용을 못 했다.

(3) 공작함
옛날 2차 세계 대전 시절에는 공작함이라는 게 있어서 전투 중 손상을 입은 군함을 현지에서 즉석 수리를 했다. 의무병의 선박 버전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일본이 태평양 전쟁 당시에 딱 한 대 운용했던 아카시 공작함은 배에다가 간이 제철소 조선소를 얹은 수준이었다. 얘는 멀리 나가 있던 자기네 군함들을 현지에서 수리함으로써 전투력 유지에 큰 도움을 줬다.

그러나 오늘날은 미사일 한 방 제대로 맞기만 하면 그대로 수리 불가 격침이다. 그렇잖아도 배가 예전처럼 크지도 않으니..
이 때문에 공작함이라는 것도 유행이 지나고 퇴출됐다. 기존 군수지원함에다가 아주 경미한 파손이나 수선하고 부품을 교체하는 정도이지, 제철소 조선소 마이너 버전 급의 전용 공작함을 운용하는 건 의미가 없어졌다.

전근대 시절엔 무기가 화력이 약했기 때문에 바다에서도 사람끼리만 총질 칼질이지, 배는 그냥 나포했었는데 말이다. 참 격세지감이다. 배에 불이 나면 아군뿐만 아니라 적군까지도 나서서 불 끄는 걸 거들었다. 나포해야 할 적선이 통째로 사라지면 자기들도 손해니까..

아까 얘기했던 저 아카시 공작함은 미군의 입장에서도 골치 아픈 제거 대상이었다. 1944년 3월에 진작에 격침 당했으며, 얘가 없어진 뒤부터 일본 해군의 전투력은 실제로 유의미하게 하락했다.

(4) 항공모함
핵무기와 미사일, 제트기가 2차 세계 대전 말미에 첫 등장했다면, 항공모함이라는 건 1차 대전 말미에 첫 등장해서 전간기 때 본격적으로 개발됐다. 복엽기가 배 위에서 뜨고 내리는 광경이 극히 드물게나마 있긴 했다는 뜻이다.
그때는 이 분야가 최초로 개척되고 있었으니 반은 전함 포탑이고 반은 활주로인 '항공전함'이라는 것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할이 어중간한 짬뽕이니 그런 건 폐기되고 역할이 세분화 전문화됐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잠수함에다가 항공모함의 기능을 얹을 생각을 했었다. 허나, 인류의 과학 기술로는 그런 건 영 무리.. 이제 잠수함은 비행기가 아니라 미사일이나 쏘면 된다.
그리고 앞으로 작은 드론, 무인기 정도 날리는 항공모함은 잠수함 버전이 있을 수도 있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3/10/25 08:35 2023/10/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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