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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규 노선 버스가 드나드는 대학교

국내의 대학교들은 캠퍼스가 왕창 넓다거나, 기숙사가 없는데 교통이 좀 불편한 곳에 있다거나 하면 통학 버스, 셔틀버스, 내부 순환 버스 같은 것을 자체적으로 굴리곤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학교에서 굴리는 버스 말고 해당 지역의 정규 노선 버스가 마을버스건 지선버스건 캠퍼스 내부까지 들쑤시고 다니는 학교로는 어떤 예가 있을까?

정규 노선 버스가 상시 다니려면 학교 안팎으로 골고루 거리가 일정 규모 이상이고 여객 수요도 받춰 줘야 할 것이다. 쉽게 말해 대도시에 소재한 종합대학 급의 매우 큰 학교라는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서울에서는 서울대가 독보적이고 '거의' 유일하다. 55xx 지선과 관악02 마을버스가 다닌다. 얘는 지하철역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도 꽤 멀고, 캠퍼스 자체도 워낙 크기 때문에 셔틀버스와 내부순환의 역할을 겸하는 정규 노선 버스가 당당히 존재한다. 게다가 여기는 학생뿐만 아니라 주말에 관악산 등산객의 수요도 있기 때문에 명분이 더욱 크다.

서울대 말고는 서울 과학기술대가 있다. 얘도 인서울 대학치고는 캠퍼스가 꽤 크며, 노원13 마을버스가 학교 안과 석계 역 사이를 오간다. 원래 저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셔틀버스를 운영하다가 접고 마을버스를 교내로 유치한 거라고 한다.

연세대는 캠퍼스 심시티를 어찌 하느냐에 따라 이런 버스를 유치하지 못할 법은 없어 보이지만.. 오히려 백양로 차도를 주차장과 같이 지하로 집어넣어 버렸다. 사실, 지상을 정원과 인도 위주로 단장하는 건 요즘 대학교들의 디자인 추세이기도 하다.

서울 밖에서 노선 버스가 존재하는 대학으로 내가 아는 건 역시 지거국인 충남대(대전)와 부산대(부산), 거기 말고는 조선대(광주) 정도이다. 대구의 지거국인 경북대는 안 그런 듯하다.
충남대 옆의 카이스트는 캠퍼스는 꽤 크지만 종합대는 아니고 기숙사가 발달해 있으니 내부 관통 노선 버스 같은 건 없다. 그 대신 학부 기숙사와 기계공학동 사이에 택시들이 잔뜩 들어와서 대기해 있긴 했다. 비싼 택시를 안 탈 거면 그냥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해야 했다.

뭔가 마을버스 하나라도 캠퍼스 안까지 들어가는 대학을 다니면.. 사람들로 바글바글 북적거리고 내가 뭔가 고등학교가 아닌 대학에 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들 것 같다.

2. 성남시 수정구

서울의 수서 이남으로 지방도 23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쭉 가면, 동쪽으로(진행 방향 기준 왼쪽) 서울 공항과 15비행단 공군 부대 부지를 길게 지난다(심곡동, 고등동). 거기서 더 남쪽으로 시흥동 구간에 진입하면.. 금토동과 판교동으로 진입하기 직전에 이번엔 서쪽으로(진행 방향 기준 오른쪽) 뭔가 범상찮은 기관들 근처를 지나게 된다.

  • 세종 연구소: 연구 분야가 외교 쪽인지 대북 안보 쪽인지, 주체 기관이 무엇이며 국영인지 민영인지, 어떤 사람이 취업해서 들어가는지 정체를 영 모를 연구소이다. KDI(한국 개발 연구원) 같은 느낌도 들지만 거기보다는 공신력이나 인지도가 훨씬 낮아 보인다. 설립 배후에 5공 전땅크의 입김이 많이 개입해 있는 듯하며, 아웅산 폭탄 테러 피해자 유족을 지원하는 일도 해 왔댄다.
  • 국가 기록원 나라 기록관 서울 분원: 기록원의 본부는 정부 대전 청사에 있지만 서울· 수도권에도 이렇게 적절하게 으슥한 곳에 보관소가 있다. 프로토스 템플러 아카이브 생각이 나네..
  • 한국 국제 협력단(KOICA): 한때는 여기에 파견 나가는 것으로 병역 특례까지 있었지만, 그 제도는 이미 10여 년 가까이 전에 폐지됐다. 이거 활동이 요즘 취준생들의 스펙 쌓기에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세종 연구소와 이웃집처럼 바로 붙어 있는데, 둘이 어째 교류· 협력 관계이기도 하댄다.

인상적이지 않은가?
과거엔 여기 부근에 원래 한국 도로 공사의 본사가 있기도 했다. 마침 경부 고속도로와도 아주 가까워서 '대왕판교'라고 서울 방면으로만 통하는 도로 공사 전용 나들목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랬는데 걔는 수 년 전에 김천으로 이사를 갔고, 옛 부지는 업무 지구로 전면 재개발되는 중이다.

서울 공항을 포함해 지방도 23호선 주변, 그리고 탄천의 건너편 동쪽으로 서울 지하철 8호선이 지나는 구 시가지가 모두 성남시 '수정구'에 속한다. 하지만 양쪽은 생활권과 분위기가 서로 매우 다르다. 마치 성남시 분당구가 경부 고속도로 동쪽과 서쪽별로 분위기가 매우 다르듯이 말이다.

3. 서울의 중앙 버스 전용 차로

서울에서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큰 길을 꼽자면 아예 자동차 전용 도로인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내부순환로 등이 있다.
그런 길은 대중교통과 보행자의 접근성은 떨어지며, 시내 도로로서 큰 길과는 영역이 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본인이 갑자기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서울에 현재 중앙 버스 전용 차로가 개설되어 있는 대로가 얼마나 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이건 자동차 전용 도로 말고 당연히 시내 도로에 해당되는 사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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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을 해 봐도 의외로 최신 자료가 나오는 게 별로 없다. 하지만 대체로 도심을 향해 방사형으로 길이 생겨 있는 게 보인다.
경인국도(국도 46), 지하철 3호선과 비슷한 선형의 통일로, 종로와 천호대로, 구리 방면 망우로(국도 6), 강남의 횡축 강남대로 쪽은 본인이 직접 본 적도 있다.

종로는 동쪽 방면에 버스 전용 차로가 끊기는 구간이 좀 있었는데 그게 아마 1~2년 전인가 공사를 해서 연결을 시켰다.
천호대교는 한강 교량들 중에 중앙 버스 전용 차로가 있는 유일한 물건이지 싶은데.. 개인적으로 이건 좀 삽질인 것 같다. 안 그래도 6차로밖에 안 되던 교량이 너무 좁아졌기 때문이다.

강남은 횡축으로도 차로가 굉장히 많은 대로가 여럿 있어서 중앙 버스 전용 차로를 만들 법도 하지만 아직 딱히 없는 것 같다. 만들게 된다면 지금 같은 화단· 가로수 중앙분리대가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종축 중에 동쪽 끝에 있는 영동대로는 중앙이 아니라 구석에 버스 전용 차로가 있다.

4. 서울에서 놀고 있는 땅

서울에 딱히 외곽 그린벨트 지역이 아니면서 출입금지 장벽이나 가림막만 쳐진 채 아직까지 놀고 있는 공터라고 본인이 들은 건 다음과 같다.

  • 동대문구 배봉산 기슭의 전동 초등학교와 래미안 아파트 사이에 자그마한 공터가 있다. 국유지인지 사유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딱히 업무용 건물이 들어설 만한 곳은 아니니 개발된다면 그냥 공원이 들어설 것 같다.
  • 금천구청 역 바로 옆에 있던 군부대 부지는 앞으로 어찌 활용되려나 모르겠다. 인천 공항의 개항으로 인해 김포 공항의 청사 하나가 리모델링되던 무렵에 거기서 영화 <튜브>의 공항 총격전이 촬영됐는데.. 저기 군부대 시설의 해체에 맞춰서 역시 군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미운 오리 새끼>가 촬영되기도 했다.
  • 과거에 거대한 철도차량 공작창이 있던 용산 역 인근의 넓은 부지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인가 보다. 거기에다 용산 미군 기지가 대거 평택으로 이전하고 나면 용산구는 완전히 환골탈태할 것 같다.
  • 정동에 덕수 초등학교와 구세군 역사 박물관이 있는 곳 일대에도 문화재 보존과 복원을 위해서인지 딱히 개발하지 않고 오랫동안 묶어 놓은 넓은 공터가 있다.
  • 이 분야의 끝판왕은 송현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복궁 동쪽 덕성여중 근처의 넓은 공터이지 싶다. 오랫동안 국유지였다가 1990년대가 돼서야 민간으로 넘어갔으며, 삼성을 거쳐서 현재는 한진 그룹 소유이다. 위치는 엄청 좋지만 고도와 용도 등 규제가 붙은 게 한둘이 아니어서 뭔가 진지하게 크고 아름다운 업무용 건물을 올리는 건 불가능한 계륵 같은 땅이라고 한다.

5. 지리 관련 노래

(1) 우리나라 유행가 중에 뭔가 지리(+역사) 교육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의 독보적인 원탑은 "독도는 우리땅"이지 싶다. 그 다음은 개인적으로 "화개장터"를 꼽는다. 저게 아니었으면 영남과 호남 사이에 무슨 강이 있고 뭐가 달려 있는지 일반인들이 알 일이 없었을 테니까..
어째 철도 경전선과 88올림픽 고속도로가 대대적으로 리모델링 된 게 모두 2015~16년 비슷한 시기인 것이 의미심장하다.

(2) 그 밖에 "서울 대전 대구 부산"과 "남행열차"는 주제가 지리 쪽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목만 봐도 철덕의 감성을 마구 자극해서 좋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에만 정차하던 옛 4시간 10분짜리 경부선 새마을호 #1~#4 열차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데 요즘 자동차들은 지름길 고속도로가 많이 뚫린 덕분에 굳이 대전을 경유할 필요가 없어졌다. 여객기야.. 원래부터 지름길 경로도 아닐 뿐더러 각종 보안 연구 시설들이 있는 곳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대전 쪽은 전혀 안중에 없었다.
이제 열차만이 서울-부산을 오가면서 대전을 꼬박꼬박 찍어 주고 있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그리고 공식 용어는 '남행'이라기보다는 '하행'이지..
"남행열차"를 듣거나 부르면 내 머릿속에는 예전에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희 철도를 이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열차는 목포 행 무궁화호 열차입니다 ..." 이러던 200x년 철도청 시절의 안내방송이 자동 재생된다.
호남고속철까지 개통된 지금의 시점에서는 참 격세지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01/21 08:35 2021/01/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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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이미 언급했던 아이템들도 좀 있지만 도로 철도 항공 몽땅 한데 통틀어서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단선 터널

육상 교통수단에서 단선이란 건 선로를 따라 매우 정교한 신호와 통제가 가능한 철도에서나 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그리고 요즘은 철도도 교통량이 아주 적은 곳이 아니라면 최소한 복선으로 만드는 게 기본이다. 철도가 넘사벽의 접근성을 자랑하는 자동차와 경쟁해서 이기려면 자동차로 도저히 불가능한 고속 대량 수송에 올인해야 하는데, 그건 단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상황이 달랐다. 자동차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고, 도로를 닦는 기술과 자본도 부족하다 보니 도로에 지금 같은 엄격한 상· 하행 구분이나 차량과 보행자의 구분 자체가 별로 돼 있지 않았다. 일제 시대만 해도 경성 시내 도로에 깔끔하게 중앙선과 차선이 그어져 있고 신호등이 설치된 것을 내가 본 기억이 없다. 노면전차 때문에 공중에 전차선들만 어지럽게 늘어서 있었을 뿐..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정말 믿기 어렵지만, 자동차 도로 터널이 겨우 1차로로 만들어진 게 있다. 짤막한 굴다리 수준이 아니라 나름 600m가 넘는 길이이며, 일방통행도 아니고 상· 하행 공용인 게 말이다.
2020년 현재 국내에는 딱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여수의 '마래 터널'(현재는 정확히는 마래 제2 터널로 개칭)이고, 다른 하나는 울릉도의 '통구미 터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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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터널의 입구는 교차로나 횡단보도 따위가 없어서 그냥 직진만 하면 됨에도 불구하고 신호등이 있다. 한쪽에 차량이 진입했으면 맞은편에서는 차량의 진입을 막아야 한다.
자동차 도로가 이렇게 되는 건 보통은 왕복 2차로 도로에서 차로 하나가 사고나 공사 때문에 막혔을 때일 것이다. 이때는 현장의 인부가 일정 주기로 상행과 하행의 통행을 허용하면서 교통을 정리하는 편이다.

그런데 터널이 통째로 1차로인 건.. 무려 1920년대의 여건 하에서 산의 암반을 힘겹게 뚫어서 차로 하나만 개통시킨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래 터널은 단면이 철도 터널처럼 생겼으며 마침 전라선 구선로(여수 엑스포에 맞춘 복선전철화 이전)도 근처를 지난다. 그러니 마래 터널이 전라선 철도의 진짜 오리지널 구간이 아니었나 하는 의문도 든다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자동차용 터널 중에 이런 비좁은 물건이 있는 게 흥미롭지 않은가..?
참, 여담이지만 인터넷으로 찾아 본 바에 따르면, 울릉도는 모든 도로가 시멘트로만 포장돼 있고 아스팔트 포장은 없다고 한다. 도로가 처음으로 포장되던 시절에 아스팔트 포장을 위한 중장비를 거기까지 동원하는 건 여러 모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2. 2차로 고속도로

우리나라에서 고속도로라는 건 통행료를 내야 이용 가능한 대신, 평면교차가 없고 보행자도 없고 길이 가장 곧고 상태가 좋아서 차가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최고급 도로이다.

요즘은 지방에 국도도 중앙분리대를 갖추고 고속도로 못지않은 고속 주행이 가능한 고퀄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것들도 시내로 들어가면 다시 신호를 받기 시작하며 지속적으로 빠르게 달릴 수 없다.
그리고 상하 구배나 커브가 레알 고속도로보다는 아무래도 더 급격하다. 운동 에너지라는 게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는 만큼, 시속 80 기준 설계와 100/110 기준 설계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그런데 이렇게 도로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고속도로가 겨우 왕복 2차로라면..?? 그 도로는 제대로 추월을 할 수 없으며 사실상 고속도로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엔 역사적으로 왕복 2차로의 열악한 반쪽짜리 고속도로가 존재했으며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 영동 고속도로의 강원도 구간은 20세기까지 아예 국도/고속도로 공용을 표방하는 막장 2차로 산길 형태였다. 그러다가 2001년이 돼서야 지금과 같은 깔끔한 새 길이 완공됐다.
  • 우리나라 최후의 왕복 2차로 고속도로는 잘 알다시피 88 올림픽 고속도로였다. 하지만 2015년에 전구간이 4차로인 대구광주 고속도로로 리모델링 됐다.
  • 중앙 고속도로는 나름 장거리 횡축 간선인 주제에 2차로 형태로 건설되고 있다가 뒤늦게 4차로로 다시 만들어졌다.

그래서 2020년 현재, 우리나라는 수십 km 이상 간선 고속도로 중에 2차로짜리는 완전히 전멸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건 제2경인 고속도로에서 인천대교로 이어지는 학익-옥련 사이의 아주 짤막한 구간, 그리고 151번 고속도로의 말단인 동서천 IC-동서천 JC 구간이다. 간선이 아니라 고속도로 연결선에 가까운 자동차 전용 도로일 뿐인데.. 법적인 이점을 얻기 위해서 명목상 고속도로라고 등재해 놓은 듯하다.

어떤 도로가 고속도로라면 한국 도로 공사 관할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해당 지자체의 관할이 된다. (경부 고속도로 vs 양재IC 이북의 경부 간선 도로의 차이처럼..)
그리고 고속도로의 주변 부지는 다른 도로의 주변에 비해 개발 제약이 더 심하기 때문에 지금 미리 고속도로라고 찜해 놓는 게 나중에 이 도로를 확장하는 데 더 유리하게 된다.

3. 철도

(1) 신호(재래식 통표 폐색): 정선선의 끄트머리인 정선-아우라지가 최후의 보루이다. 정선선은 20여 년 전에 비둘기호의 최후의 보루였는데 이제는 통표 폐색 방식을 마지막까지 간수하고 있나 보다.
여기 말고 전라선 모 구간에서 2000년대까지 아직 통표가 쓰이는 곳이 있었다고 하지만.. 복선 전철화가 모두 완료되면서 옛날 이야기가 됐다. 호남선은 주요역 위주로 호남고속선이 새로 깔렸지만 전라선은 본선 자체가 준고속선으로 개량됐다는 차이가 있다.

(2) 오르막 급경사(인클라인/스위치백): 영동선 통리-심포리 구간이 전국 유일의 스위치백 구간으로 잘 알려져 있었으나, 이미 2012년에 루프식 터널(솔안 터널)로 바뀌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전국에 루프식 터널은 내가 알기로 중앙선에 두 곳(치악), 함백선, 그리고 저기 저렇게 총 네 곳 있다.

(3) 기관차 방향 전환: 증기 기관차 시절의 엄청 옛날 이야기이다만, 그때는 서울에서 출발한 열차들이 대전에서의 정차 시간이 꽤 긴 편이었다. 호남선이 서울 방면과 곧장 연결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호남선과 전라선 열차는 대전에서 기관차를 열차의 뒤쪽으로 바꿔 달아야 했다. 그리고 경부선 열차라 해도 어차피 150km 정도 달린 뒤에는 물 보급이라든가 기관차 상태 관리 때문에 10분이고 20분이고 쉬어 줘야 했다.
대전 역이 우동(가락국수)으로 유명해진 이유가 이 때문인 것은 이미 다들 아실 것이다. 호남선에서 서울 방면으로 곧장 진입 가능해진 것은 1978년에 호남선 북쪽 구간이 복선화된 뒤부터이다.

(4) 나무 침목, 자갈밭과 레일 이음매: 우리가 철도 선로에 대해서 흔히 생각하는 이 모습조차도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갈수록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요즘은 그냥 다 하얀 시멘트인지 콘크리트인지 노반이 침목과 자갈 역할을 다 하고 있다. 교량이고 평지고 터널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도로는 시멘트 포장과 아스팔트 포장이 장단점이 있어서 현재까지 모두 쓰이고 있지만, 철도는 뭔가 획일화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4. 비행기

(1) 엔진 수: 기술의 발전 덕분에 요즘 여객기는 어지간해서는 쌍발 엔진만으로 다 커버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3발기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보기 힘든 퇴물이 됐으며, 4발기도 2010년대부터 대형 비행기(A380, 747..)들이 몰락하면서 갈수록 보기 힘들어질 전망이다.

(2) 앵커리지 중간 기착: 과거에는 비행기의 항속거리가 지금만치 길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미국까지(서부· 동부 불문) 직통으로 갈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미국 본토까지 미묘하게 덜 간 알래스카 앵커리지가 중간 기착 허브로 굉장히 각광을 받았다. 과거의 한국 철도에다 비유하자면 저기가 마치 대전 역의 비행기 버전 같은 지위에 오르기라도 한 것 같은데..
한국-미국 직통 비행이 가능한 보잉 747-400이 1990년대에 등장하면서 앵커리지의 명성은 퇴색하기 시작했다.

(3) 항로 안내: 지금이야 GPS라는 게 자동차와 개인 스마트폰에도 다 들어있어서 지도와 현재 위치 표시 서비스(내비게이션)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제공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여객기에 기장· 부기장에다가 항공기관사와 항법사까지 조종실에 탑승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훗날 항법사가 항공기관사에 흡수되고, 더 나중엔 후자까지 없어짐) 게다가 항로 측정에 착오가 생겨서 적성 국가 영공에 잘못 들어갔다가 여객기가 격추 당한다니... 이것도 지금이야 소설 같은 일이지만 1980년대에는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였다.

Posted by 사무엘

2021/01/12 19:35 2021/01/1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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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 전쟁

밀덕 역덕에게 2차 세계 대전(태평양 전선 또는 서부 전선, 독소 전쟁 따위)은 아주 친숙할 것이고 한국 한정으로 6· 25도 친숙할 것이다. 그에 비해 러일 전쟁은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하지만 일본이 1905년에 한반도에 경부선 철도를 완공하고, 을사조약까지 체결해서 조선을 완전히 병탄하던 당시에... 대외적으로는 무슨 짓을 하고 있었고 내부의 사정이 어땠을까? 이를 알아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이때의 일본은 훗날 1940년대의 일본과는 여러 모로 다른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1) “203고지” 같은 그 시절 영화를 보니, 러일 전쟁 당시에는 일본군이 군복이 검정이었다. 완전 생소하게 느껴지며 적응이 안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제 시대 황록색 군복은 공교롭게도 딱 1910년대 초반부터 도입됐다.
뭐, 19세기 말에는 심지어 대한제국군의 군복조차도 검정이었으니 그 당시에 블랙이 세계적인 유행이었나 보다. 이때가 총기의 발달로 인해, 군대에서 때깔 고운 예복과 위장 친화적인 전투복의 구분이 이제 막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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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전을 앞두고 일본군에서는 보급로 개척과 동계 전투력 테스트 명목으로 한 육군 중대를 동원해 장거리 산악 행군을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산중턱에서 전례가 없던 기록적인 혹한과 눈보라를 만나 완전히 길을 잃고 조난을 당해 버렸다. 이 때문에 210여 명의 병력이 거의 다 얼어 죽고 겨우 11명만 생환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전시도 아닌데 병력을 이렇게 많이 잃다니.. 이 사고는 1902년 ‘핫코다 산 참사’라고 불린다.

러일 전쟁은 명목상 일본의 승전으로 기록됐지만 속내는 잘 알다시피.. 마침 러시아도 상황이 안 좋고 일본도 전쟁을 더 끌었다가는 쫄딱 망하기 직전이었는데, 여러 뽀록이 잘 터지고 주변 국가들이 중재도 해 준 덕분에 간신히 '피로스의 승리'를 거둔 것에 더 가까웠다. 이 때문에 일본은 전쟁 피해 배상금도 못 받았다.

러일 전쟁에서 빠질 수 없는 일본군 지휘관으로는 해군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과 더불어 육군의 노기 마레스케 장군이 있다. 이 사람은 10여 년 전 청일 전쟁에서는 대승을 거뒀지만, 그 다음으로 맞붙은 러시아는 중국과는 급이 다른 상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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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좋은 동네 할아버지처럼 생겼다..;; 조선의 고종 황제도 그렇고, 20세기 초엔 장군이나 군주 같은 높으신 분이 훈장이 주렁주렁 달린 저런 스타일의 제복을 입는 게 유행이었나 보다.)

러시아의 함대가 대양을 횡단하여 도착하기 전에 뤼순 고지를 점령하려고 대규모 육군 병력을 “반자이 어택” 시켰으나.. 이전 같은 무식한 전술이 여기서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조선 동학 농민군만 일본군의 기관총에 갈려나간 줄 알았는데, 일본군도 러시아의 맥심 기관총에 엄청나게 갈려나갔다. 1차 대전 서부 전선에서 유럽 병사들이 기관총 참호를 뚫지 못해 갈려나갔던 일이 이때도 비슷하게 미리 벌어진 것이다.

저것들이 다 전술 교리가 신무기의 발달을 따라가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이제 막 발명되었던 탄피와 후장식 총기만으로도 혁명 그 자체였고 전쟁의 양상이 획기적으로 바뀌었는데, 하물며 기관총은.. 오늘날로 치면 핵무기와도 비슷한 압도적인 포스를 자랑했다. 기관총이 그 시절에 괜히 세상의 모든 전쟁을 종결시킬 최종 병기라고 불렸던 게 아니다.

아무튼, 이 때문에 전사자 유가족들이 단체로 노기 장군에게 쌍욕 편지를 보냈으며, 집 앞에 모여서 돌 던지고 “내 아들 살려내라, 이 살인자야!”라고 항의 시위를 할 정도였다. 이런 반발과 저항도 일본이 아직 태평양 전쟁 같은 막장 시절보다야 훨씬 민주적인 분위기이니까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노기 장군 또한 인품이 아주 고매하고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는 유가족들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사죄하고 부상병들을 일일이 문병했다. 부상자의 치료와 재활을 위해 사재 기부도 많이 했다. 결정적으로는.. 자기도 친아들 두 명을 이 전쟁에서 잃었다!
그는 그러고도 죄책감을 견디다 못해 할복 자살을 하려 했다. 그러나 그를 매우 신임하고 아끼던 메이지 천황이 명령을 내려 할복을 금지했다.

일본은 내부적으로 이런 삽질과 큰 희생을 치른 뒤에야 어쨌든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에서 이기긴 했다. 일본은 이 결과만으로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선진국 열강 인증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로 인해 조선은 러시아와 일제 중 어디 식민지가 되느냐의 답이 한쪽으로 확 기울게 됐다. 그리고 노기 장군은 실책은 가려지고 최종적인 공이 부각되면서 전쟁 영웅으로 등극했다.

지금으로서는 믿어지지 않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조선에는 세상 정세를 잘 몰라서 같은 아시아 국가인 일본을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미 조선인지 대한제국인지 하는 나라는 일본과 맺은 각종 불평등 조약으로 인해, 하나 둘 빗장 풀리고 해체되고 망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일본군 역시 이때는 서양 스타일을 표방한답시고 포로 학대나 민간인 약탈을 금지하며 일말의 신사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아직은 타락하기 전이었으니 낭만도 좀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20세기 초에 세계 여론은 일본에게 아주 호의적이었다.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나라 따윈 거의 없었다. 훗날 미국에서 “관동 대지진 때문에 어려움에 빠진 일본을 도와줍시다” 성금 모금까지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끝으로, 러일 전쟁 때 명암을 남겼던 노기 마레스케 장군은 1912년에 메이지 천황이 사망하자 뒤따라 자결했다..;; 자결하지 말라고 자기를 말리던 상관이 죽고 없어지자 곧바로 상관의 뒤를 따른 것이다. 이것도 참..
이 정도로 솔선수범하고 책임을 졌다면, 노기 장군에게 러일 전쟁 초기의 판단 미스와 패전에 대한 개인적인 비판을 더 늘어놓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1/01/10 08:36 2021/01/1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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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운전자들

1. 최초의 여성 운전자

조선에서 갑오개혁이 일어나기도 한참 전이던 1886년, 독일의 공돌이 발명가 칼 벤츠는 인류 최초로 상용화된 내연기관 자동차를 개발해서 세상에 내놓았다. 증기 기관차만치 거대하지 않고, 그렇다고 말이 끌지도 않는 아주 기괴한 디자인의 수레?를 선보인 것이다.

'벤츠 페이턴트 모터바겐'이라는 이름의 삼륜차는 954cc짜리 단기통 휘발유 엔진으로 최대 출력은 겨우 0.75(초기형)내지 2마력(후기형??), 변속기는 2단에 최대 속도 16km/h 남짓밖에 안 됐다.

20여 년 뒤에 조선 땅에 들어온 순종 어차도 거의 5000cc급 배기량으로 최대 출력은 3~40마력대밖에 안 됐던 걸로 기억한다. 요즘 승용차가 저런 배기량이면 마력수 뒤에 0이 하나 더 붙을 텐데..;;
그리고 요즘 954cc면 그냥 경차 배기량이고, 그걸로도 70마력 정도는 나올 것이다. 이게 바로 100년이라는 세월이 만들어 낸 기술력의 차이이다.

그 시절의 자동차 발명가들은 기술적인 난관뿐만 아니라 교통사고의 증가로 인한 규제, 기존 마차 업자들과의 마찰, 사람들의 회의적인 반응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그런데 그때 칼 벤츠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조력자는 그의 아내인 '베르타 벤츠'였다.

약혼 시절부터 결혼 자금까지 동원해서 남친의 창업 자금을 대 주고, 결혼해서 애도 다섯이나 낳아서 키우고..
남편의 발명을 격려하기 위해 1888년 8월 5일엔.. 애들 둘만 태우고 남편 몰래, 성인 남자 없이 혼자 직접 '모터바겐'을 몰고 약 106km 떨어진 친정집까지 다녀오는 근성의 대장정을 감행했다! 이 기괴한 자동차만 있으면 나 같은 아녀자도 간편하게 장거리 이동을 할 수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중간에 차가 퍼지면 "어머 오또케 오또케.. ㅠㅠㅠ" 퍼질러앉은 게 아니라, 직접 뚜껑 열어서 차를 수리하고 땜질하고.. 연료가 떨어지면 주변 약국에서 휘발유인지 벤젠인지를 사 와서 해결했다. 덕분에 이분은 세계 최초의 여성 운전사.. 그리고 그 약국은 세계 최초의 자동차 주유소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획득했다.

베르타는 남편에게 "자기야, 나 자기 차 혼자 몰고 친정집에 잘 갔어!"라고 전보를 보냈고, 사흘 뒤에 자가운전으로 귀환도 무사히 했다.
칼은 너무 감격해서 일기에 "She drove more than a car, she drove an industry" 라고 썼다고 한다.
거의 "One small step for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같은 대사가 아닐 수 없다.

그 뒤로 벤츠는 성능이 더욱 개량된 자동차를 개발하고 갖가지 특허를 따면서 승승장구 했다. 세상을 바꿔 놓은 자동차 산업의 태동기를 주도했던 여걸의 이야기가 어찌나 멋있게 들리는지!
그나저나 요즘 벤츠 승용차에 4MATIC은 승용차 주제에 찦차처럼 사륜구동도 된다는 뜻이었군. 처음 알게 됐다.;;

  • 차량 제작사에서는 진작에 이 일화를 짤막한 광고 영화 두 편으로 각색한 바 있다. The First DriverThe Journey That Changed Everything을 참고하자. 그 당시 상황에 대한 실감나는 현장감을 경험할 수 있다.
  • 메르데세스-벤츠에서 '메르데세스'도 여자 이름에서 유래됐다. 다만 이 여인은 차량의 개발에 직접적으로 영감을 주거나 기여한 인물이 아니다. 자세한 것은 타 사이트의 글을 참고하라.
  • 벤츠는 저런 훌륭한 부인의 내조를 받으면서 자동차를 개발했지만, 그로부터 10~15년쯤 뒤에 미국의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와 부인을 둘 다 신경 쓸 시간은 없다"...;;는 지론과 함께 평생 독신으로 살며 비행기를 발명했다. 단지, 교사이던 여동생의 내조를 받긴 했다. 공돌이들의 인생은 그냥 케바케인 것 같다.
  • 독일에는 어째 유명한 약국이 몇 군데 있다. 세계 최초의 주유소 역할을 한 약국뿐만 아니라, '티거 전차'에서 모티브를 딴 '호랑이 약국'을 운영했던 독일군 탱크 운전수 오토 카리우스도 있기 때문이다. ㅎㅎ (전후에 약사가 됨)

벤츠가 최초로 만들었던 페이턴트 모터바겐 원품이야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기계의 설계도가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에 원품과 100% 동일한 레플리카, 그것도 시동 걸리고 주행 가능한 레플리카가 여러 대 만들어져 있으며, 그게 굴러가는 유튜브 동영상도 있다. 이런 팔팔한 레플리카가 있는 게 후세들에겐 차라리 더 나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자필 원본 따위야 진작에 다 소멸되고 없지만, 원본과 동등한 권위를 갖고 지금도 동일하게 살아 역사하는 필사본과 번역본이 고스란히 보존되어서 전해지고 있다. 다 낡아빠진 죽은 골동품의 형태가 아니다.

2. 최초의 한국인 폭주족

한국인 중에 자동차 과속 폭주족의 원조는 바로 초대 대통령인 이 승만 할배다. 오토바이 말고 사륜 자동차 말이다. 다음 글을 보자.

"... 84세의 프란체스카 여사는 낙엽 뒹구는 이화장 뜨락에서 10월 8일의 ‘결혼 50주년’을 앞두고 대통령과의 카라이프를 회고한다." (☞ 링크)

그이는 난폭에다 지독한 과속운전을 했죠. 그러나 나를 보고는 ‘당신은 실키 드라이버야’라고 칭찬을 했어요.
독립운동을 하느라 밤낮없이 넓은 미국 땅을 돌아다닐 때였어요. 그이는 여기 저기 약속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운전대만 잡았다 하면 과속에다 난폭 드라이버로 돌변했어요. 시속 140km 이상은 예사였지요.

“제발, 오 제발... (please)”
“여보, 뒤를 보지 말아요. 나를 믿으시오.”

이때 순간적이지만 ‘이분과는 헤어져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차를 탈 때마다 간이 콩알만 해지니 살 수가 있어야죠.


참고로 프란체스카는 할배 이전의 독일인 남편도 '카레이서'였다. (헬무트 뵈룅.. 이혼)

경찰은 연설을 마치고 나오는 우남은 쳐다보지도 않고 나를 향해 말했어요.
“기동경찰 20년에 내가 따라잡지 못한 최초의 교통법규 위반자는 당신 남편이오. 일찍 천당 안 가려거든 부인이 조심시키시오.”


인터넷에 굴러다니는 이 일화의 출처는 월간 자동차생활 1984년 10월호이다.
자동차생활은 바로 전인 1984년 9월에 창간됐다! 창간되자마자 거의 곧장 할배의 폭주족 일화를 소개했다는 게 매우 흥미롭다.
표지를 보면 "특별 취재 -- 대통령의 첫 번째 운전사는 나, 프란체스카였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제로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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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시절 미국의 자동차들은 성능과 제원이 어느 정도였을까?
미국 GM에서 1936년에 제작했던 수동 변속기의 원리 고퀄 강의 동영상을 보면.. 서민용 승용차에 변속기는 꼴랑 3단까지 있고, 속도계 눈금은 시속 100마일, 160km/h까지 적혀 있었다. (9분 18초 지점)

진정한 선각자는 1800년대 말에 이미 민주주의를 생각하고 감옥에서 영한사전을 만들고 독립정신 책을 썼다. 그리고 1930년대 자동차로도 시속 140~160을 밟았다. 그러면서도 교통사고는 당연히 전혀 내지 않았다.

할배 대통령을 존경하는 후예라면 무슨 나라를 세우거나 구하는 일은 못 하더라도.. 할배가 남겨 준 자유를 누리면서 훨씬 더 성능 좋은 자동차와 훨씬 더 잘 닦인 고속도로에서 못해도 시속 200은 밟아 줘야 하지 않겠는가?

3. 최초의 경부 고속도로 폭주족

세월이 흘러 대한민국도 산업화 근대화의 길을 갔으며, 원조가카의 영도력 하에 경부 고속도로라는 게 개통했다. 이 도로에서 악셀을 사정없이 밟은 최초의 폭주족은 바로.. 20세기 중반을 풍미한 톱스타 배우인 신 성일 씨였다. 이 사람도 한 스피드 했었다.
그는 겨우 34세의 나이로 얼마나 성공해서 억만장자가 됐는지.. 1960년대 말에 이미 집값보다 더 비싸던 빨간 외제차 포드 머스탱(무스탕)을 자가용으로 뽑았다.

그 옛날에 남한에서 8기통에 7300cc가 넘는 배기량의 차량이라니.. 그 시절에 새나라 내지 도요타 코로나 같은 일반적인(?) 승용차가 20~30만 원대였고 이것만으로도 서민들이 범접할 수 없는 사치품이었는데, 신 성일의 애마의 가격은 그런 차량의 2~30배에 달하는 무려 640만원이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람보르기니 포르셰를 넘어 롤스로이스니 부가티 급이나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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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 고속도로가 전구간 개통됐던 1970년 7월 7일에 원조가카 일행은 부산에서 서울로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왔다.
그런데 신 성일은 그 날 반대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도로를 시속 200으로 밟으면서 딱 중간 지점인 영동-추풍령 일대에서 대통령 일행을 쌩~~~~~ 하고 지나쳐 가 버렸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1970년에 한국 땅에서 말이다. 대통령의 스케줄과 동선을 알기도 쉽지 않던 시절에 시간 계산을 꽤 절묘하게 해서 일부러 대통령 일행을 마주보며 초고속으로 쓱 스쳐 지나가는 똘끼를 부린 것이다. (☞ 관련 기사)
버스나 트럭이 아니라 웬 외제 승용차가 고속도로 개통 당일에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이 따위로 과속 폭주를 하다니.. 원조가카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뭐야 저건..? 저 차 운전자를 잡아 왓!" 호통을 쳤다.

그렇잖아도 무려 1970년에 대한민국 땅에서 저런 짓을 할 수 있는 갑부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차량 번호를 몰라도 대략의 차종과 색깔만으로도 곧장 추적해 낼 수 있었다.
운전자가 배우 신 성일 씨라는 얘기를 듣자, 원조가카는 고개를 저으며 "젊은 친구가 ㅉㅉㅉ.. 오래 살고 싶으면 운전 좀 살살 하라고 그래" 하면서 넘겼다고 한다.

자기 말고는 자동차가 없다시피하고 과속 단속 카메라 따위도 하나도 없었을 그 긴 도로를 혼자 200을 밟으며 달렸다니.. 정말 부럽지 않은가? 1970년이면 안 그래도 콩코드 초음속기에 아폴로 우주선이니 하던 시절이었는데..
나도 야밤이나 새벽에 그렇게 풀 악셀 밟으면서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싶다. 과속과 과식은 매우 훌륭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기 때문이다.

단, 얼마 못 가 석유 파동이 벌어지자 국가에서는 고배기량 차량을 사치품으로 간주하여 온갖 방법으로 규제했으며, 극도의 기름 절약과 내핍을 강조했다. 꼴랑 2000cc 배기량을 6기통으로 구현하기도 하던 시절에 장관들의 관용차를 4기통 엔진 차량으로 제약했을 정도이니 말 다 했다.
그때는 신 성일 씨도 어쩔 수 없이 머스탱을 처분하고 자가용을 작은 국산차로 바꿔야 했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1/01/02 08:36 2021/01/0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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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보나치 수열의 일반항 구하기

피보나치 수열이란 첫 두 항 F(1)와 F(2)의 값이 1이고, 그 다음부터는 n>=3인 자연수에 대해 F(n) = F(n-1)+F(n-2)이라고 재귀적으로 정의되는 수열이다.
1, 1, 2, 3, 5, 8, 13, 21, 34 …와 같은 순으로 숫자가 나열되며, 수가 커질수록 인접한 두 항의 비율은 황금비 (1+sqrt(5))/2로 수렴한다. 즉, 얘는 1 2 4 8 같은 등비수열과 동일한 형태는 아니지만, 수가 증가하는 정도가 등비수열과 동급이다.

그런데 다른 F 값에 의존하지 않고 F(n)의 값을 곧바로 구할 수는 없을까? 다시 말해 F(n)의 일반항을 구할 수는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0이 아닌 아무 a,b,c와 초기값 F(1), F(2)에 대해서 a*F(n+2) + b*F(n+1) + c*F(n) = 0꼴의 점화식 자체의 일반항을 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저런 점화식의 일반항은 X^n ± Y^n 의 형태로 귀착된다(X, Y는 임의의 상수). 피보나치 수열은 저기서 a=1이고 b=c=-1, F(1)=F(2)=1인 경우일 뿐이다.

이 점화식을 푸는 것의 핵심은 점화식을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기존 a, b, c 계수를 각각 1, -(p+q), p*q라는 형태로 바꾸는 것이다. a는 a, b, c를 똑같이 a로 나눠 주면 1로 바꿀 수 있고, b와 c는 합이 -b이고 곱이 c인 p, q라는 또 다른 숫자쌍을 구해서 바꾸면 된다. 이런 식으로 일반성을 유지하면서 계수의 형태를 치환하는 건 3차나 4차 같은 대수방정식을 풀 때도 볼 수 있는 테크닉이다.

계수의 형태를 저렇게 바꿈으로써 우리는 동일한 점화식을 F(n+2) - p*F(n+1) = q*( F(n+1) - p*F(n) )이라고.. 우리가 처리하기 더 유리한 단순한 형태로 변형할 수 있다. 어떤 점에서 더 유리한지는 곧 알게 될 것이다.
p와 q 둘 중 하나가 0이면 F(n)은 그냥 평범한 등비수열이 되겠지만, 단서가 더 추가됨으로써 변형이 가해진 좀 더 복잡한 수열을 만들 수 있다.

가령, F(1)=F(2)=1이면서 p=2, q=-1이면 이 수열은 1 1 3 5 11 21 43 ... 즉, 앞의 수의 2배에다가 1을 더하거나 뺀 형태가 되며,
p=3, q=-2이면 1 1 7 13 55 133 463 1261 ... 앞의 수의 3배에다가 각각 4, -8, 16, -32를 더한.. 기묘한 수열이 만들어진다.

이런 유형의 수열을 저 점화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피보나치 수열은 p+q=1, pq=-1인 경우이다.
(그러고 보니 다른 수학 교재에서는 이때 p, q 대신 알파와 베타를 쓰는 편이더라만.. 그건 그냥 기분과 취향 문제이니 이 글에서는 계속해서 p, q를 쓰도록 하겠다.)

F(n+2) - p*F(n+1) = q*( F(n+1) - p*F(n) ) 이라는 식을 잘 살펴보면.. 그 정의상 초기항인 F(2) - p*F(1)에다가 q를 곱해 주는 것만으로 F의 등급을 쭉쭉 올릴 수 있다. 무슨 얘기냐 하면, n>=1에 대해서 F(n+2) - p*F(n+1) = q^n * (F(2) - p*F(1))이라는 것이다. 이런 놀라운 특성 때문에 점화식을 이런 형태로 바꾼 것이다.

저렇게 하면 식의 우변이 p, q, F(1), F(2)라는 상수 형태로 완전히 바뀐다. 아, 우변이 F(n)에 대한 의존도만 없어졌지 n에 대한 지수함수이기 때문에 완전한 상수는 아니다. 완전한 상수라면 이 형태만으로 문제가 다 풀렸을 것이다.
이 상태에서 식을 더 단순화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활용하는 특성은 바로.. p, q의 값이 서로 뒤바뀌어도 생성되는 순열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덧셈과 곱셈은 교환 법칙이 성립하는 연산이다. 그러니 p, q의 등장 순서를 뒤바꿔도 합 -b와 곱 c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위의 점화식을 F(n+2) - q*F(n+1) = p*( F(n+1) - q*F(n) ) 이라고 바꿔 줘도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다.

기하학적으로 생각하자면 저건 쌍곡선(곱이 같음 = 반비례)과 직선(합이 같음 = 정비례)의 교점을 구하는 것과 같다. 그 직선이 쌍곡선의 점근선 중 하나와 수직-평행 관계가 아닌 한, 교점은 “둘” 존재하게 될 것이다.

대수적으로 생각한다면야 저건 평범한 이차방정식을 푸는 것과 같다. -(p+q)와 p*q는 이차방정식 (x-p)(x-q)와 정확하게 대응한다. (x-p)(x-q)를 하든 (x-q)(x-p)를 하든 식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 너무 당연한 얘기이다.

F(n+2) - p*F(n+1) = q^n *( F(2) - p*F(1) )
F(n+2) - q*F(n+1) = p^n *( F(2) - q*F(1) )

그래서 위의 등식에서 아래의 등식을 그대로 빼 버리면.. F(n-2)가 없어지고 등식 전체에서 F(n+1) 하나만 남게 된다.
F(n+1)의 앞에 붙은 q-p라는 계수로 양변을 나누고, n을 n-1로 치환하면 일반항 유도가 완료된다. 대략

F(n) = ( (q*F(1) - F(2))*p^(n-1) - (p*F(1) - F(2))*q^(n-1) ) / (q-p)

라는 비교적 깔끔한 식이 나온다. 이 정도는 심하게 복잡하지는 않으니 이미지 대신 그냥 문자 형태로 때웠다. ㄲㄲ
양변을 덧셈이 아니라 뺄셈을 했기 때문에 F(1)과 F(2)의 부호가 반대로 바뀌었다.

피보나치 수열의 일반항은 저기에서 F(1)=F(2)=1, 그리고 p와 q에다가는 x^2 - x - 1 = 0의 근인 (1+sqrt(5))/2와 (1-sqrt(5))/2를 각각 대입하기만 하면 구할 수 있다.
번거로운 계산이 많긴 하지만 F(n) = (p^n - q^n)/(p-q)의 형태가 된다. 형태가 꽤 복잡해 보이는데, 그래도 n에다가 자연수를 대입해 보면 근호(루트)는 거짓말처럼 없어져서 최종 결과값이 자연수로만 딱딱 떨어진다.
분자의 거듭제곱은 그렇다 쳐도 분모는 p-q는 sqrt(5)로 깔끔하게 나오기 때문에 표기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이상이다. 글을 쭉 쓰면서 본인도 이 분야에 대한 공부를 확실하게 다시 할 수 있었다.
메이플이나 매스매티카 같은 수학 패키지에는 점화식을 푸는 명령이 물론 존재한다.
F(x+2) - (p+q)*F(x+1) + p*q*F(x) = 0의 일반항은 단순무식 F(x+2) + b*F(x+1) + c*F(x) = 0 보다 훨씬 더 간단하게 나오는 걸 알 수 있다. 후자는 내부적으로 sqrt(b^2-4*c) 같은 근의 공식이 잔뜩 섞여서 매우 복잡하다.

그리고 끝으로 생각할 점은..
피보나치 수열 정도는 이전 항의 이전 항.. 즉 2단계까지 역참조하는 점화식인데, 그 단계가 3단계 정도로만 올라가도 식의 복잡도는 상상 이상으로 치솟을 거라는 점이다. 특성 방정식은 2차가 아니라 3차가 될 것이고, 변수들을 연립해 주는 식도 2차가 아닌 3차가 될 것이고.. 실용적인 방법으로 일반항을 구하는 게 도저히 가능하지 않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0/12/30 19:33 2020/12/30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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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비행기 수준은 아니지만 지면이나 수면을 약간 떠서 다니는 교통수단이 있다.

1. 지면에서는 자기 부상 열차가 대표적인 예이다. 얘는 분명 육상의 궤도 교통수단이고 차량을 열차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철도의 범주에 드는 물건이 아니다. 당장 차량의 밑에 바퀴가 달려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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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전자기력의 힘으로 아주 미세하게나마(수 cm 남짓) 위로 떠서 달리니 구름 마찰력 따위의 적용을 받지 않으며, 조용하고 진동 없고 주행 속도도 더 끌어올릴 수 있다. 198, 90년대의 공상 과학 매체에서 진작부터 미래의 교통수단이라고 주목 받아 왔다.

하지만 기존 철도와 전혀 호환되지 않는 새로운 선로, 그것도 첨단 기술의 집약체여서 건설비도 엄청 많이 깨지는 시설을 수백 km씩 새로 건설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때문에 2020년 현재까지도 자기 부상 열차는 장거리 고속 간선이 아니라 단거리 중저속 도시철도 경전철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국내의 경우 대전 엑스포 공원과 인천 공항의 자기 부상 열차가 대표적인 예이다. 중국에는 상하이 시내와 푸동 국제 공항을 잇는 공항 철도가 어째 자기 부상 고속철 형태이다.

다음으로 일본의 츄오 신칸센이 2020년 현재 세계 최초의 유일한 장거리 간선 + 초전도 기반의 자기 부상 열차를 표방하며 건설 중이다. 시속 200km짜리 고속철에 이어 시속 600짜리 자기 부상까지 세계 최초 타이틀을 거머쥐는 것은 놀라운 일이겠지만, 요즘 세계의 경제 시국을 감안하면 저건 경제 대국 일본의 입장에서도 꽤 버거운 과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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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부상 열차의 동력원은 linear motor라고 부르는 선형 전동기이다. 하지만 얘 자체는 부상식이 아닌 철차륜 접지식 철도에도 적용 가능하다. 용인 경전철이 ‘선형 전동기’라는 말을 국내에 거의 처음으로 선보인 사례이다.

요즘 자동차가 휘발유에서 전기 같은 대체 에너지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면, 철도는 전철은 진작부터 따 놓은 당상이니, 다음으로 기존 열차의 틀을 깨고 공기 저항이나 구름 마찰력을 차원이 다른 방법으로 극복해서 초고속을 실현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철도가 아음속기의 속도를 따라잡을 때쯤이면 비행기는 초음속기가 다시 실용화되지 않을지?

2. 다음으로 수면에서는.. 위그선과 수중익선, 공기부양정(호버크래프트)이 있다.

(1) 먼저 위그선은 생긴 것부터가 날개가 달린 게 경비행기 내지 헬리콥터.. 어쨌든 비행기를 짬뽕한 것처럼 생겼으며, 수면 위를 수~수십 m 정도 뜰 수 있다. 덕분에 속도도 시속 수백 km에 달하고 매우 빠르다. 배멀미가 없는 것은 덤.. 그 대신 얘는 평범한 배를 운전하는 감과 노하우만으로는 제대로 조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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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좀 더 발전시켜서 아예 비행정이나 수상기를 만들면 되지 이런 어중간한 물건은 왜 만들까? 위그선은 비행기와의 차이가 무엇일까?
위그선은 아무래도 완전한 비행기보다는 연비가 훨씬 더 좋으며, 조종 난이도도 비행기만치 높지는 않다. 그러면서 비행기의 장점을 바다 위에서 저렴하게 얻을 수 있다. 참고로 위그선은 초저공 비행 중에 날개가 공기를 아래로 누르면서 발생하는 '지면 효과'로부터 생성된 양력을 활용해서 뜬다.

다만, 위그선은 굉장히 빠르게 날아가는 도중에 아래의 파도에 부딪히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양력 비행이란 건 어떤 형태로든 밀도가 낮은 공기 중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것에 특화돼 있기 때문에 공기보다 훨씬 무거운 물이 기체에 부딪혀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금세 자세가 흐트러지고 속력을 잃고 양력도 잃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나쁜 상황이 발생한다.

위그선은 선박의 경제성과 비행기의 속도를 적당히 절충한 교통수단으로서 나쁘지 않지만.. 전문적인 선박이나 비행기의 틈새를 뚫고 독자적인 시장을 확보할 만치 획기적으로 뛰어난 물건은 아니어서 그냥 마이너한 특수 목적 교통수단의 영역에 머물고 있다. 이걸 타고 굳이 태평양이나 대서양을 건널 필요는 없으니까.. 단지 포항이나 울진에서 울릉도 정도를 갈 때, 인천이나 안산에서 백령도 연평도 정도를 빨리 가고 싶을 때 비싼 헬기를 띄우느니 이런 물건이 가성비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위그선은 비행기와 선박 사이의 정체성이 무척 모호한 물건인데,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물론 선박이다. 법적으로 수면 위에서 고도 150m 이하로만 떠 다니는 것들은 다 선박이고 그 이상부터가 비행기라고 한다. 비행기가 이륙을 성공한 것으로 간주되는 최소 높이가 35피트(약 10.7m), 국내에서 사전 신고 없이 경량 드론을 띄울 수 있는 최대 고도가 150m이다가 최근에 최대 300m로 완화됐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기체 반경 600m 이내에 있는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 높이에서 추가적으로 이 높이까지)

(2) 다음으로 수중익선은 선체 아래에 U자 모양의 둥그런 '날개'가 달렸다. 주행을 시작하면 이게 물 속에서 양력을 받아서 선체를 위로 수 m 남짓 띄운다. 양력을 공기 중에서 얻는 게 아님을 유의할 것. 날개(수중익) 부위는 여전히 물에 잠겨 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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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배도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물은 공기보다 밀도가 워낙 압도적으로 더 높기 때문에 비행기처럼 크게 돌출되지도 않은 저 작은 날개만으로도 그 무거운 선체를 띄울 수 있다고 한다.
수중익선은 모든 부위가 공중에 뜨는 위그선보다야 느리다. 하지만 위그선보다 더 대형화가 가능하고, 같은 출력으로 일반 선박보다 더 빠르고 편안한(= 배멀미 없는) 운항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수중익선은 저렇게 떴을 때는 물이 양력의 매체 역할만 하지 스크루를 돌려서 동력을 전하는 매체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워터제트 엔진을 따로 장착해서 물을 뒤로 뿜어서 나아간다.

(3) 끝으로, 공기부양정은 마치 호치키스처럼 본명보다도 호버크래프트라는 제조사의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는데..
얘는 날개가 없고 딱히 항공역학적인 디자인이 아니다. 하체가 공기 쿠션으로 둘러져 있고, 그 공간에다 압축 공기를 불어넣어서 그 공기의 압력으로 뜬다. (양력이 아니라 추력...) 딱 자기 부상 열차가 뜨는 만치만(cm 단위..) 간신히 뜨기 때문에 공중부양(?)을 한다는 느낌이 별로 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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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신 얘는 위그선보다야 훨씬 더 크게 만들어서 많은 사람과 짐을 실을 수 있으며, 물 없는 바닥 위에서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다. 일반 선박들은 바닥이 지면과 닿으면 곧바로 긁히고 좌초하는 반면, 얘는 그런 제약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중부양정은 험한 지형의 바닷가에 상륙 작전을 펼치는 군사 용도로 매우 적합하다. 물의 저항을 덜 받는 덕분에 일반 선박보다 훨씬 더 빠를 뿐만 아니라, 훨씬 더 내륙 깊숙히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속도는 비행기만치 빠르지는 못해도 승용차 정도는 나온다.

공기부양정은 일반 선박처럼 물에 잠긴 형태의 스크루가 달려 있지 않으며, 옛날 증기선 같은 외륜도 없다. 뒤에 달린 프로펠러가 선체 상부의 공기를 뒤로 내뿜어서 나아간다는 게 특징이다. 물이 아니라 공기를 뒤로 밀어낸다.
사실, 비행기도 프로펠러를 뒤에다 장착해서 추진하고 뜨는 게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단지, 이륙하면서 기수가 위로 들릴 때 뒤의 프로펠러가 땅에 닿을 위험이 크기 때문에 안 할 뿐...

모든 교통수단은 이것저것 겸용으로 만들면 효율이 매우 떨어지고 생산 비용도 비싸진다. 공기부양정 역시 예외가 아닌지라 일반 선박보다 수송량 대비 매우 비싸고 연비도 낮고 엔진 소리가 시끄럽다. 그렇기 때문에 잠수함처럼 민간이 아닌 군용으로 주로 쓰이고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0/12/28 08:35 2020/12/28 08:35

1. 새 고속도로 개통

지난 11월경엔 서울 서쪽에 서울-문산 고속도로(17)가 개통했다. 17이라는 번호 자체는 평택-화성, 수원-광명이라는 여러 고속도로들에 의해 쪼개진 형태로 부여되어 있었는데 그 번호를 쟤가 최북단에서 또 계승한 것이다.
이로써 동쪽의 구리-포천(29)에 이어 서울 한강 이북의 동서 양 끝에 종축 고속도로가 나란히 생겼다. 얘를 이용하면.. 강을 따라 빙 우회가 심한 편인 자유로보다 더 짧고 곧은 경로로 서울에서 파주까지 갈 수 있다.

이 고속도로는 타 고속도로와 연결이 안 돼 있고 거리도 아주 짧은 주제에 통행료 징수 방식이 전구간 폐쇄식이다. (각 IC별로 톨게이트) 그런데 중간에 개방식 고속도로인 수도권 1순환 고속도로(100)와 모든 방면으로 교차한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분기점의 남북으로 요금 정산을 하는 고양JC남, 고양JC북이라는 톨게이트가 둘이나 불가피하게 놓였다.
여기는 임진강 임진각이 얼마 안 남았고 북쪽으로는 더 가지도 못하는데, 그냥 개방식 톨게이트나 하나 놓고 말지 하는 아쉬움이 있다.

동쪽의 29는 100과 만나지만 분기점 없이 지나치기 때문에 이런 고민이 없다. 갈매동구릉 톨게이트 이북부터는 몽땅 폐쇄식이며, 그 이남은 당장 북부 간선과 연계하기 위해 개방식 내지 무료 구간으로 바뀐다. 물론 한강 건너고 남한산성을 지하로 통과하는 구간까지 개통하고 나면 남쪽부터는 다시 폐쇄식으로 바뀔 것이다.

버스 안내양이 없어졌고 여객기 항공기관사가 없어졌으며, 지하철역 단순 개표/매표 요원이 없어진 것처럼 톨게이트 매표 요원은 10~20년 안으로는 없어지지 싶다.
더 장기적으로는 개방식도 사실상 폐쇄식으로 바뀌어서 구분이 없어지고, 민자/국영이 스마트하게 통합된 통행료 과금 시스템이 적용될 것이다. 과거에 볼록 튀어나와 있던 톨게이트 부근의 넓은 부지는 공원이나 휴게소 따위로 바뀌고 말이다.
시스템이 하도 복잡하니 이제는 하이패스 없이는 진짜로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2001년부터 시행된 고속도로 번호도 처음 제정됐던 20년 전에는 10 20 30, 15 25 35.. 일관성 있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지선 고속도로들이 미로처럼 거미줄처럼 하도 많이 만들어지다 보니.. 숫자들 역시 점점 더 알아보기 힘들고 복잡해지는 중이다.;;

비슷한 시기에 횡축인 울산-함양 고속도로도 1단계 구간이 개통했다는 것도 참고로 알아 두자. 얘는 완전히 새로운 구간과 선형이다 보니 14라는 새 번호를 받았다.

2. 박물관 전시

(1) 저 고속도로들 개통과 비슷한 시기에 인천 시립 박물관엔(송도 역에서 약 1km 거리) 수인선 협궤 객차 1량이 전시됐다.
이건 서울 부암동에 있는 목인(전통 목각인형) 박물관을 운영하던 관장 어르신이.. 수인선이 폐선되던 당시에 철도청으로부터 사비로 구매해서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물건이었다. 그런데 수인선 전철 개통을 계기로 이분이 생각이 바뀌었는지 이 차량을 인천시에 기증을 했다고 한다.

뭐, 수인선 협궤 객차는 의왕의 철도 박물관에도 하나 있긴 하다만.. 차량을 볼 수 있는 곳이 더 생겼다니 일면 반가운 일이다.
인천 시립 박물관 근처엔 인천 상륙 작전 기념관도 있다. 재작년의 인천 여행 때 못 들렀던 곳인데 나중에 둘 다 들러 봐야겠다.

(2) 우리나라에 이 종원 씨라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국 최고의 버스 덕후 전문가가 있다. 이 블로그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다.
아직 나이 30도 안 된 1996년생이.. 직접 타 본 적도 없었을 80년대 전방엔진 버스들의 계보, 안내양이 있던 시절, 천장에 에어컨이 아닌 선풍기가 달렸던 버스 분위기 등등을 다 꿰뚫고 있는 건 정말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분은 우리나라에서 진작에 폐차되고 미얀마로 수출됐던 1981년식 새한-대우 BF101 초기형 버스를 국내로 도로 역수입해서 1980년대 모습으로 복원하는 정말 놀라운 기행을 사비와 펀딩만으로 벌이기도 했다.
포니나 브리사 같은 작은 승용차도 아니고.. 그 큰 버스를 어떻게 저렇게 가져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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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버스는 내년에 개관 예정이라는 안산 산업 역사 박물관(고잔 역에서 약 800m 거리)에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특이한 취미와 취향으로 한 가지에 빠져서 미친 사람들이 이렇게 세상을 윤택하고 다채롭게 바꾼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새마을호 Looking for you 현장 영상을 유튜브가 아직 완전 까마득한 불모지이던 2008년에 올려 놓은 덕분에.. 저걸 직접 들어 본 적도 없었을 꿈나무 후세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ㅎㅎ

3. 다마스와 라보의 단종

우리나라의 유일한 경상용차인(= 경차 혜택을 받는 승합차/트럭) 다마스와 라보가 2021년, 드디어 단종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첫 생산된 지 거의 30년 만의 일이다. 사실은 제조사에서 진작부터 단종시키지 못해서 안달이던 상태였는데 이제야 완전히 숨통이 끊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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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스와 라보의 중간에 속하는 물건은 다마스 밴이지 싶다. 출입문과 천장이 달린 외형은 기존 다마스와 동일하지만, 운전석 뒤엔 좌석이 아니라 화물 적재 공간만 있으니까.. 뭔가 탑차와 비슷한 위상이 된다.)

얘들은 길이와 폭뿐만 아니라 폭도 겨우 1400mm로, 철도 궤간 사이에 양 바퀴를 쏙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로 작다.
자동차 전용 도로까지 달릴 수 있는 네 발 달린 자동차 중에 제일 저렴한 차로, 2020년 물가로도 신차 가격이 아직 1000만원을 넘지 않는 유일한 물건이다.

얘들은 워낙 저렴한 가격과 유지비, 압도적인 경제성 덕분에 서민 소상공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대신 얘들은 서민형 생계형이라는 실드와 원가 절감이라는 명목 하에, 일반적인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 입각한 자동차 기술 발전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다. 성능, 안전성, 편의성이 잔혹에 가까운 수준으로 희생됐다.

(1) 편의성이야 뭐 자동 변속기, 파워 스티어링, 파워 윈도, ABS, 에어백 전부 없음. 이 2020년대에 아직도 창문 개폐용 닭다리 크랭크를 볼 수 있는 극소수의 차다.
여름에 에어컨조차 옵션이다. 에어컨을 틀면 안 그래도 배기량과 성능 부족한 차가 성능이 얼마나 더 떨어질까? 천장 뚜껑 달린 오토바이가 따로 없다.

(2) 우리나라의 경차 배기량 한계가 2008년부터 1000cc로 상향됐음에도 불구하고 얘들은 여전히 옛날 기준인 800cc에 맞춰져 있다.
어차피 디젤도 아닌데 큰 의미는 없겠지만, 배기가스 환경 기준 열외.
차 엔진을 뭔가 개량을 하려면 저걸 통과해야 하는데 다마스/라보는 그 정도 기술 개발을 해 봤자 투자 비용을 회수하고 이익을 낼 수 없었다. 그러니 그냥 산소 호흡기 꽂은 채로 옛날 기술 원형대로만 계속 찍어내서 생산하는 거다.

(3) 그리고 안전성 검증을 위한 충돌 테스트도 열외..
소형 트럭은 그렇잖아도 앞에 엔진룸이 없어서 충돌 사고 때 승용차보다 더 위험한데.. 더욱 얇은 철판 두께로 원가 절감과 실내 공간 최대화를 실현한 얘들은 충돌 테스트가 무의미한지라 열외돼 왔다.
마치 시내버스는 안전벨트 장착이 열외되고, 예체능 계열이나 신학 대학들은 일반적인 졸업생 취업률에 입각한 대학 경쟁력 평가에서 열외됐듯이 말이다.

한국GM 입장에서는 다마스와 라보는 처음부터 자기들이 만들지도 않았고 너무 저렴해서 딱히 이윤도 안 남는데, 국민 정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혼을 담지 않고 좀비처럼, 대중교통 적자 노선 지원하듯이, Windows XP와 IE6 지원하듯이 생산하는 사생아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쟤들은 경차라는 장르 하에서 독자적인 경쟁력이나 메리트를 확보할 기회조차 단 1도 얻지 못했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과는 완전 극단적인 반대편에 선 물건이라 하겠다.

트럭인 라보는 승용차 기반의 소형 상용차이던 포니 픽업, 엑셀 밴의 역할을 대체했다고 볼 수 있다.
승합차인 다마스의 경쟁 차종으로는 '타우너'가 있었지만 얘는 이미 2000년대 초에 단종되고 사라졌다.
이 바닥의 맥이 완전히 끊어지는 건 더 먼 옛날의 생계형 경상용차이던 '삼륜차'의 단종과 비슷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처럼 시장이 갈라파고스화될 정도로 자국 경차만 너무 많이 만들어지는 것까지는 안 바라지만.. 그래도 다마스와 라보 같은 장르의 차들도.. 비록 차값이 좀 더 오를지언정, 이렇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연명하다가 단종되는 것보다는 더 나은 미래가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Posted by 사무엘

2020/12/21 08:35 2020/12/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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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6호선 역촌 역의 4번 출구로 나가면 ‘은평 평화 공원’이라는 자그마한 공원이 있다. 지하철역 출구에 곧바로 자그마한 도시공원이 꾸며져 있는 건 대전 서대전네거리역과 비슷한 느낌이다.
저기는 2010년부터 공원으로 개장했고 그 전엔 그냥 평범한 건물 부지였던 것 같다만.. 은평구에서 무슨 생각으로 공원을 만들었나 모르겠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데 말이다.

아무튼, 은평 평화 공원의 한쪽 구석에는 윌리엄 해밀턴 쇼(1922-1950).. 라는 6 25 참전용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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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단한 집안에 너무 존경스럽고 대단한 분이었다.
일단 부모가 한국에 온 감리교 선교사였고, 저 사람을 평양에서 낳았다.
그는 한국에서 자라서 대학교까지 들어갔는데 2차 세계대전 땐 해군 장교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다. 그 뒤에 한국에서 또 6· 25 사변이 터지자 대학원 박사 학업까지 미루면서 해병대 장교로 참전했다.

1950년 9월 22일,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고 서울 수복 전투가 벌어졌을 때.. 이분은 녹번동.. 바로 이 일대에서 전투를 수행하다가 적으로부터 저격을 당해 전사했다고 한다. 김 재현 기관사(1923 ~ 1950. 7. 20. 대전)와 비슷한 연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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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그리고 저 사람(아들)까지 모두 현재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혀 있다. 호머 헐버트처럼 말이다.

“내 친구 나라 한국이 위기에 처했는데 같이 도와주지 않고 나중에 전쟁이 끝났을 때 슬그머니 선교사로 들어가는 것은 제 양심상 도저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성경도 ‘사람이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라고 말하지 않습니까(요 15:13)? 공부는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같이 적힌 약력과 소개글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런 사람이 소개돼 있다는 것만으로도 은평 평화 공원은 찾아가 볼 가치가 충분하다. 우연인지 뭣 때문인지, 은평은 이름을 구성하는 한자부터가 grace & peace 굉장히 성경적인 심상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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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은 천수를 누렸으면 하버드에서 한국학 전문 연구자의 커리어를 쌓았을 것이고, 아마 그 당시 하버드에서 한국학을 개척하고 있었던 서 두수 교수(서 남표 카이스트 전 총장의 부친!) 같은 분과도 인연이 분명 생겼지 싶다. 이를 생각하면 더욱 아쉽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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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 완용..????)

위의 저 말은 두고두고 기억되고 영원히 감사와 존경과 칭송을 받았으면 좋겠지만...

“적이 핵이나 미사일 얘기를 할수록 우리는 더욱 강하게 평화를 외쳐야 한다.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 한복판에서도 평화를 외치는 사람만이 더 정의롭고 정당할 수 있다”


잠깐 욕 좀 퍼부어야겠으니 독자 여러분의 너그러운 양해를 구한다.
이런 하드코어 빨갱이 씨발새끼의 저주받을 암 유발 망언은 두고두고 박제되어서 영원무궁토록 규탄과 개쌍욕을 쳐먹었으면 좋겠다. 저런 새끼는 애국시민과 자유를 되찾은 동족 북한 주민들의 분노의 돌탕질에 맞아 대가리가 깨져 뒈지기를 개인적으로 간절히 바랄 뿐이다.

만약 이 땅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못해서 저런 놈이 천수를 누리고 편하게 죽고 무덤까지 만들어진다면.. 묘비에다가는 저 말이라도 꼭 새겨 넣어 줬으면 좋겠다.

나는 다시 말하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빨갱이가 아닌 다른 사유로는 결코 욕설을 노출하지 않는다. 뭐 독도는 일본땅? 저런 진짜 개씹창 망언부터 참교육 시켜 주고 난 다음에 대응해도 전혀 문제될 것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0/12/14 08:35 2020/12/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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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현장 몰카 사진

카메라라는 물건이 발명된 이래로 세상에 많고 많은 몰카가 촬영됐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진귀하고 중요한 몰카 축에 드는 사진은 바로 1944년 8월,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 근처에서 정말 목숨 걸고 몰래 촬영된 이 사진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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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나치 독일에 의해 고용되어 학살된 동족들 시체를 치우는 등의 뒷정리를 하던 소극적 부역자.. 일명 존더코만도(Sonderkommando)에 속하는 유대인들의 협조로 도촬됐다.
존더코만도는 식사와 보급은 일반 수용자보다 약간 더 좋게 받았지만, 동족을 적극적으로 괴롭히거나 밀고· 통제하지 않았으며, 용도가 다하면 역시 가스실로 가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카포 같은 급의 악질 끄나풀은 아니었다.

글쎄, 나치 수용소 내부에서 수감자들의 처참한 몰골이라든가 시체더미를 치우는 실제 사진(연출이 아닌)이나 동영상이야 물론 있다. 하지만 그건 연합국이 전쟁에서 이겨서 해당 지역의 수용소가 해방된 뒤에 연합군의 주도로 촬영된 것들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나치 독일에 의해 현업으로 돌아가고 있는 동안에.. 선전용으로 만들어진 관제 어용 기록 말고, 현장 내부의 라이브 사진이 몰래 찍힌 것은 놀랍게도 저게 유일하다고 한다.

삼청교육대에서 웃통 벗고 목봉 체조 열심히 하면서 "저희는 여기서 참교육 받으면서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대본만 읊는 입소자 인터뷰 영상이랑, 거기 내부 음지에서 온갖 끔찍한 가혹행위가 저질러지는 게 몰래 카메라에 찍힌 것은.. 퀄리티가 하늘과 땅만큼이나 서로 다르지 않겠는가?

이 사진들은 주변 배경을 자르고 사람이 나온 부분만 확대하고 보정을 많이 한 것이다. 더구나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촬영자와 카메라의 근처에도 나치 간부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멀리서 줌 당겨서 정말 몰래 급하게 허겁지겁 찍느라 각도와 구도는 엉망이고 초점도 흐리고.. 퀄리티는 열악함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사진이 찍히는 곳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현장감과 섬뜩함이 더 느껴진다. 한 트럭 가득한 시체들을 불태우는 장면, 여성 수용자가 야외에서 나체로 가스실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

마지막 장은 도저히 피치 못할 상황에서 각도를 너무 높게 든 걸 확인도 못 하고 셔터를 누른 바람에, 사람과 건물을 찍지 못하고 하늘과 나무만 찍었다.
찍고 나서 필름은 치약 튜브 안에다 넣어진 채로 폴란드의 레지스탕스에게 무사히 전달됐다고 한다.

2. 승리의 날에 기습 키스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일본이 원자폭탄을 두 방 맞고 무조건 항복했을 때..
저 괴물 같던 일제가 "드디어, 드디어" 항복했고 지긋지긋하던 전쟁이 완전히 끝났다고 미국 시민들은 기뻐서 난리가 났다.

길거리에 뛰쳐나와서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얼싸안고 춤추고 날뛰었다.
우리나라의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 결승 진출..?? 그 분위기쯤은 저리 가라였다.
그 당시 영상 기록을 보면 무슨 미국이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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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J day in Times Square이라는 제목으로 남겨진 이 사진은..
1945년 8월 14일, 길거리에 나와 있던 한 간호사가 근처의 어느 생면부지의 해군 수병에게서 기습 키스(!!)를 당하는 순간이 절묘하게 기자의 카메라에 담긴 것이다. (누군지는 검색해 보면 다 나옴ㅋㅋ)
저 VJ는 비디오자키 따위의 뜻이 당연히 아니고 victory over Japan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지만 저 두 사람은 커플이 아니다.
그러니 평소 같으면.. 특히 요즘 같으면 저런 짓은 영락없이 성추행 성희롱이고, 여자 쪽으로부터 귀싸대기가 날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저 당사자 아가씨는 "오늘은 정말 기쁜 날인데, 그리고 여느 괴한도 아니고 지금까지 조국을 위해 정말 고생했던 군인 아저씨인데" 하는 생각으로 눈 딱 감고 키스를 받아 줬다고 한다. 눈을 감은 채, 저 남자가 누군지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 간호사는 저 사건을 마음속에만 묻어 놓은 채로 훗날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다. 저 간호사가 자신이었다고는 한 1970년대가 돼서야 언론에다 털어놓았다.
하지만 기습 키스를 날린 수병이 누군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그 수병은 어차피 저 아가씨에게만 키스를 날린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_=;;;

Posted by 사무엘

2020/11/30 19:35 2020/11/3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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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로 굴러가는 자동차나 철도 차량이 밟은 대로 나아가지 않고 핸들을 꺾은 대로 정확하게 방향 전환이 되지 않는 상황은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1. 바퀴가 헛돎

전근대 시절에 인간이 만들어 낸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가 바퀴라고 한다. 육상 교통수단들은 바퀴가 지면을 구를 때 두 물체 사이에 발생하는 마찰력을 이용해서 움직인다. 굴러가는 바퀴에 밟힌 작은 돌멩이 같은 게 확 튀어오르는 걸 생각하면, 평소에 바퀴가 구르면서 지면에다 전하는 힘이 결코 만만찮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지면과 바퀴의 마찰이 너무 작으면 바퀴만 혼자 헛돌면서 차체는 가속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반대로 제동을 걸어도 바퀴는 멈춰섰지만 차체는 계속 미끄러져 움직일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는 바퀴가 모래나 진창에 파묻혔을 때, 또는 빙판길에서 미끄러질 때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철도는 구름 마찰력이 작아서 동력 효율이 우수한데 그 장점이 이런 데서는 악재가 된다. 기관차가 출력만 높고 충분히 무겁지 않으면 바퀴가 미끄러지거나 헛돌기 쉽다. 철차륜이 고무 타이어처럼 끼이익~ 거리면서 레일에다 스키드마크를 남기지는 않겠지만 저런 현상이 발생하는 건 철도 시설에 절대로 좋지 않다.

8200호대 전기 기관차라든가 과거의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는 엔진 출력은 좋은데 험준한 지형에서 저런 공전 현상이 발생하는 게 심각한 문제였다. 그래서 화물용 전기 기관차는 더 무거운 물건으로 따로 만들어졌고, 새마을호 PP는 산악 철도인 중앙· 영동· 태백선에는 투입되지 못하고 퇴역했다.

바퀴로 움직이는 차량은 비행기나 선박과 달리, 닥치고 가볍고 엔진 출력만 높을수록 장땡이 아닌 셈이다.
공항 계류장에서 대형 여객기를 견인하는 토우카 역시 이런 이유로 인해 자체적으로 왕창 무겁게 만들어진다.

2. 조향 중에 미끄러짐

고속 주행 중에 핸들을 급하게 틀면 차가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전복되기 쉽다. 그런데 길이 아주 미끄러운 상태이거나 코너를 도는 동안에도 확 밟아서 가속을 한다면... 차는 전복되기보다는 그렇게 곧이곧대로 돌지를 않고 확 미끄러질 수 있다.

  • 차가 의도한 회전 반경보다 더 크게 돌면서 커브의 바깥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언더스티어라고 한다. (= 핸들을 덜 꺾은 것과 같음)
  • 반대로, 차가 앞부분이 홱 과격하게 돌면서 의도한 회전 반경보다 더 작게 급격하게 도는 것을 오버스티어라고 한다. (= 핸들을 더 꺾은 것과 같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륜구동은 언더스티어 성향이 더 강하며, 후륜구동은 오버스티어 성향이 더 강하다. 마치 추우면 옷을 더 입으면 되지만 더운 건 답이 없듯이.. 오버스티어는 사람이 테크닉으로 제어가 가능한 반면, 언더스티어는 감속 자체 말고는 제어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자동차 매니아 중에서는 후륜구동을 선호하는 사람이 좀 있다. 물론 일반인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굳이 전륜/후륜구동의 스티어링 성향의 차이를 인지할 정도로 과격하게 운전할 일은 없는 게 정상이겠지만 말이다.

전륜구동(FF)은 무거운 전방 엔진이 실린 바퀴가 구동하기 때문에 초반 가속이 미끄러짐 없이 안정적이다. 눈이 쌓인 빙판길에서 전륜이 후륜보다 미끄러짐이 덜하며 훨씬 더 잘 나아간다.
그러나 급가속 때는 관성 때문에 차의 뒷쪽에 무게가 쏠리기 때문에 후륜구동이 더 유리해져서 상황이 좀 바뀐다.

이륜차가 아니라 양쪽 바퀴로 굴러가는 차들은 아무래도 액체(선박)· 기체(비행기) 같은 유체가 아니라 딱딱한 고체 표면 위를 굴러가니 기본적인 안정성은 보장된다. 곧은 길에서 직진 주행만 한다면 딱히 좌우 무게 균형을 맞춰야 한다거나 전복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급커브에서 과속을 하면 사고가 나고, 열차의 경우 탈선할 수 있다.

3. 좌우 요동이 갈수록 심해짐

일명 fish tail(피시테일) 내지 sway(스웨이)라고 불리는 위험한 현상을 말한다. 고속 주행 중에 차체의 뒤쪽(= 후륜)이 옆으로 힘이 가해지는 바람에 차가 접지력을 잃고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한다. 그럼 운전자는 당황해서 핸들을 쏠리는 쪽의 반대로 틀고 브레이크도 밟는데, 차는 이번엔 반대쪽으로 더 크게 쏠리기 시작한다. 런닝머신 위에서 장난감 차량을 굴린 예시를 보면 무슨 현상인지 정확하게 이해를 할 수 있다. (☞ 동영상 링크)

요동은 갈수록 커지고 결국 차는 스스로 전복되거나 도로 한쪽(중앙분리대 내지 가드레일)을 들이받게 된다. 주변의 멀쩡히 가던 차와 높은 확률로 충돌도 한다. (☞ 2013년경의 유명한 피시테일 단독 사고 영상) 비행기로 치면 실속에 빠진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건 무슨 급발진도 아니면서 발생 원인이 의외로 딱 정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고 한다. 어떤 자료에서는 오버스티어 성향이 있는 FR 차량에서 주로 나타난다고 하고, 어떤 자료에서는 반대로 FF 차량에서 더 잘 나타난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구동륜의 구분 없이 다 나타날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면 급브레이크를 밟지는 말고 핸들을 침착하게 쏠리는 방향의 반대로 틀면서 오히려 가속을 해 줘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가속이란 관성 때문에 차체가 뒤로 쏠리는 걸 의미하며, 그렇게 해 줘야 뒤에 무게가 실리고 접지력이 그나마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후륜구동 차에서는 더욱 절실히 저렇게 해 줘야겠다.

차가 혼자가 아니라 뒤에 캠핑카 같은 걸 끌고 있으면 고속 주행 중에 이런 요동 현상에 더욱 취약해진다. 후진만 어려운 게 아니라 전진에도 애로사항이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속 및 급핸들 조작을 더욱 삼가고 운전을 조심해야 한다. 일정 무게 이상의 트레일러 차량을 운전하기 위해 특수 면허가 괜히 필요한 게 아니다. (☞ 외국에서 캠핑카를 끌던 차량이 요동치다가 사고 나는 장면)

철도는 조향이란 게 없으니 자동차 같은 수준의 피시테일 현상은 없겠지만.. 그래도 완전히 안심할 수 없다. 레일과 바퀴가 꽉 조여진 게 아니기 때문에, 고속 주행 중에는 어쩌다 생긴 좌우 진동이 커지면서 차량이 요동칠 수 있다. 이것을 그 업계 용어로는 사행동(snake motion)이라고 한다. 승차감을 저해하고 레일과 바퀴를 손상시키고 최악의 경우 탈선 사고까지 야기할 수 있는 위험한 현상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행동이 발생한 채로 굴러가는 철도 차량 대차을 각각 앞에서 본 모습,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Posted by 사무엘

2020/11/28 08:32 2020/11/2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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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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