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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과 음수에 대한 생각

수학에서 다루는 수 중에는 음수라는 게 있다. 얼마를 빼는 것은 음수를 더하는 것과 동급으로 치자고 발상의 전환을 한 것이다. 그래서 0의 양 옆으로 양수와 음수가 존재하게 됐다.

음수는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이라는 기본 사칙연산 범주에서는 별로 어려울 게 없다. 곱셈과 나눗셈에서는 부호가 마치 xor 연산과 비슷하게 바뀐다는 것만 염두에 두면 된다. (둘 다 동일하면 양수, 다르면 음수) 뭐, 음수라는 개념뿐만 아니라 -1 곱하기 -1이 어째서 +1이 되는지도 마냥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 가능한 개념은 아닐 수 있는데..

더 나아가 실수 나눗셈 말고 '나머지'를 같이 구하는 정수 나눗셈에서는 피연산자에 음수가 섞여 있으면 연산의 정의부터가 깔끔하게 딱 떨어지지 않고 굉장히 골치 아파진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나머지의 부호는 나누는 수의 부호와 동일한 것이 원칙일 텐데, 당장 컴퓨터의 정수 나머지 연산은 그렇지 않다. 걔들은 부호 불문하고 몫은 그냥 소숫점을 짤라낸 것이고, 나머지는 그 몫으로부터 파생된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bit shift 연산에서도 음수만치 shift한 결과는 그냥 undefined가 된다. a<<(-b)가 자동으로 a>>b로 되는 게 아닌 게 의외이다.

그럼 음수는 나머지나 비트 shift 같은 정수 컴퓨터 연산에서만 복병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일반적인 대수학에서 거듭제곱의 영역으로 가 봐도 음수는 난감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가장 먼저, 제곱해서 음수가 되는 수 자체가 통상적인 실수 중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수는 도대체 특성이 어떤 놈일까? 이런 개념을 처음으로 떠올리고 고안한 사람은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바라고 무슨 약을 빨고 이걸 생각해 낸 걸까?

지수함수의 정의역을 실수 전체로, 대수적으로 확장할 때도 음수는 애로사항이 꽃핀다. 당연히.. a^b에서 b 말고 a가 음수인 것 말이다. 음수의 거듭제곱은 횟수에 따라서 부호가 음수와 양수 사이를 널뛰기 하듯 바뀌는데, 그 횟수 자체가 자연수를 넘어 다른 이상한 수가 된다면 결과가 도대체 어떻게 되겠는가?

지수함수를 대수적으로 확장한 결과에 따르면, 음수에 대해 정수가 아닌 거듭제곱을 한 결과는 허수가 섞인 복잡한 복소수가 된다. (-1)^(1/2)는 당연히 그 정의상 i가 되고 말이다.
0과 1은 그 어떤 수로 거듭제곱을 시켜도 다른 정상적인 형태의 수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수는 로그 함수의 base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복소수 범위에서는 0과 1만 빼고 나머지 아무 복소수라도, 음수와 심지어 -1조차도 log의 밑이 될 수 있다. -1을 삐리리 승 하면 100이 될 수 있고 1000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단지 그 수가 실수가 아닌 복소수 중에 있을 뿐이다. -1의 거듭제곱은 그냥 -1과 1 사이만 진동할 거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다만 정의역을 실수로만 한정하면 x에 대해서 Re((-1)^x)의 그래프.. 쉽게 말해 -1의 x승의 실수부는 cos(Pi*x)의 그래프와 같으며, 허수부를 나타내는 Im((-1)^x)의 그래프는 sin(Pi*x)의 그래프와 완전히 같다! 애초에 x^n=1의 근이 복소평면에서 정다각형의 꼭지점 형태로 나타나니, 거듭제곱과 삼각함수는 피할 수 없는 귀결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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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그렇게 되는지는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그 유명한 오일러의 등식 정도만 따져 봐도 된다. 우리는 고등학교 수준에서는 로그를 그냥 실수 범위까지만 배웠겠지만, 그것이 그림의 전부가 아니다.
또한, 정의역을 실수로만 한정했을 때 이렇다는 것이고, 다른 임의의 복소수를 주면 (-1)^x는 절대값이 1보다 더 큰 다른 수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a^x를 넘어 아예 x^x의 그래프를 복소수 범위까지 생각해서 그려 보면 더 환상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얘는 양의 실수 범위에서는 x=1/e일 때 최소값을 갖는다. x=0일 때는.. 0의 0승이기 때문에 값을 구하기가 좀 아햏햏하긴 하지만 극한값이 양쪽 모두 1이기도 하고, 많은 경우에 0^0은 여느 수의 0승과 마찬가지로 1이라고 편의상 통용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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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x가 본격적으로 음수가 되면.. 이제 그래프는 실수 영역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 뭐, 어차피 실수부와 허수부 모두 0으로 급격하게 쪼그라들기 때문에 생각만치 볼 건 없긴 하다만... 그래프의 모양이 꽤 예술적이어 보이지 않는가? =_=;;

수학에는 수에서 특정 부분의 정보를 떼어내고 남은 부분만 되돌리는 연산자 내지 함수가 세 가지 남짓 있다.

(1) 가장 먼저, 수에서 부호를 제거하는 ‘절대값’이 있다. 여닫는 세로줄 기호는 다들 친숙할 것이다. y=|x|는 오르내리는 사선을 만들어 낸다.
얘는 복소수를 대상으로는 복소평면에서 원점으로부터의 거리를 의미하기도 하며, 행렬에서는 행렬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2) 그리고 수에서 소수점을 떼어내고 근처의 정수를 되돌리는 floor 내지 ceiling 연산이 있다. 얘는 그래프에서 계단을 만들어 낸다.
(3) 끝으로, 복소수에서 실수부 내지 허수부만을 되돌리는 Re() 및 Im()이 있다.

이런 연산들은 다 특정 분야에서 인간에게 필요하고 특정 관점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에 고안된 것이겠지만.. 미적분 같은 해석학의 관점에서 자연스럽고 직관적인 연산은 결코 아니다. 절대값 연산은 부호가 바뀌는 지점에서 미분 가능하지 않은 지점을 만들며, 소수점 자르기는 더 나아가 아예 연속이지도 않은 지점을 만든다.

멀쩡한 복소수에서 실수부나 허수부만 떼어내는 것도 저 그래프의 예쁘고 매끄러운 모양과는 달리, 만만찮게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보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x^x에서 x가 음수일 때 실수부와 허수부의 그래프 식을 따로 구해서 각각 최대값과 최소값까지 구하는 건 양수일 때와 같은 방법으로 할 수 없다. 복소함수를 취급하는 더 복잡하고 난해한 방법론을 동원해야 한다.

복소수라는 개념을 떠올리고 나니까 어째 리만 가설이라는 것도 나올 수 있고 20세기엔 수렴· 발산 여부로 만델브로트니, 줄리아니 하는 프랙탈 집합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걸 도대체 어떻게 찾아냈을지 오묘하기 그지없다. 다들 계산량이 엄청나고 빡세다는 공통점도 있다. 하긴, 프랙탈이 '차원'이라는 개념도 대수적으로 확장했다. 행렬 계산의 최적 시간 복잡도에서 거듭제곱 계수가 2도, 3도 아닌 로그함수 값이 된 것처럼 말이다.

이상이다.
리만-제타 함수라든가 감마 함수 같은 난해한 함수들이 양수 구간과 음수 구간이 모양이 심하게 차이가 나고, 특히 음수 구간에서는 상하로 심하게 널뛰기를 하는 근본 이유가.. 지수 함수와 관련된 음수의 기괴한 특성 때문이라고 감을 잡으면 될 듯하다.
x^x 말고 0의 x승의 경우.. 양수에 대해서는 그냥 0이 될 것이고 0^0은 사실상 1이 통용되고 있고, 음수 승은 0으로 나누는 것과 동급인 부정으로 귀착된다.

Posted by 사무엘

2020/01/22 19:34 2020/01/22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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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죄의 성립

기독교의 핵심 기본 교리 중 하나는 바로 인간이 세상 법보다 훨씬 더 원론적이고 고차원적인 의미에서 '죄인'이라는 것, 그리고 인간의 알량한 노력으로는 그 무슨 수를 써서도 죄의 고리를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걸 일깨우기 위해서 복음 설교에서는 "형제를 마음 속으로 미워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살인,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것만으로도 간음" 등 여러가지 말씀 인용과 비유가 제시되는데.. 뭐 좋다. 세상 법과는 달리 마음의 동기와 근원 차원에서 죄가 성립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논리를 펴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개연성과 합리성은 있어야 한다. 최소한 자기끼리 모순을 일으키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얘기는 좀 조심해서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1) 인간은 당장은 티가 안 나지만 환경이 나빠지고 여건만 갖춰지면 누구라도 지금까지 착 가라앉아 있던 추악한 본성이 다시 튀어나올 거라고 한다. 이는 물론 큰 그림 차원에서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쁜 환경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할까? 정당방위나 긴급피난까지 죄일까? 당장 남을 안 죽이면 내가 죽게 되는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이, 혹은 패닉에 빠져서 남을 죽인 것까지 살인죄일까?

이건 세상 법리로나 성경의 법리로나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다못해 출애굽기조차도 깜깜한 데서 자기 집에 침입한 도둑을 정당방위 차원에서 때려죽인 건 무죄라고 실드 치니 말이다. (출 22:2-3)
하나님은 인간의 동기와 마음을 일일이 다 따져보시니 이런 문제를 오히려 더욱 정확하게 판결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사랑의 체벌이고 어디부터가 아동학대 폭력인지, 안락사가 어디까지가 살인이고 어디부터가 하나님이 데려가시도록 놔 주는 건지.. 이런 모호한 상황 문제에 대해서는 신앙을 가졌다는 사람들끼리도 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남에게 복음 전할 때 자기가 책임질 수 없는 말을 동원하면서 꼬드겨서는 안 된다.

(2) "당신이 어디어디에 낸 돈은 이런이런 나쁜 일을 하는 기업이나 다른 조직의 배를 불리게 됩니다. 그러니 여기 제품을 불매합시다" 이런 부류의 보이콧 권유 문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 기독교계에는 어느 기업이 무슨 이단 종교 계열이라는 식이기 때문에 당신이 그 기업의 제품을 구입한다면 그 기업의 악행에 동조하게 된다는 식으로 반쯤 팩트 내지 반쯤 루머 괴담이 나도는 게 많다.

그런데 몇 년 전에는 기업 제품 구매를 넘어서, 세금을 내는 것만으로도 모든 사람들은 이미 죄에 관여하고 있다는 식의 논리 전개를 어느 설교에서 들어서 본인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의아함을 느꼈었다. 이유인즉, 내가 낸 세금이 어차피 반성경적인 나쁜일을 조장하는 데 쓰이기도 하기 때문이랜다.

허나, 기업 제품 구매는 생필품 독과점이 아닌 한 전적으로 자기 자유 의지인 반면, 납세는 마치 군 입대만큼이나 내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의무이다.
더구나 예수님조차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발언과 함께 로마 제국 식민지 휘하에서 납세를 사실상 몇 차례 실천해 보였다. 그럼 예수님도 죄에 관여한 것인가? 저건 비유에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켄트 호빈드 같은 사람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신념에 의한 병역..이 아닌 납세 거부 혐의로 오랫동안 감방 생활함. 꽤 극렬 강경한 젊은 우주 창조론자이기도 함)

(3) 인간은 불법 중에 수태되었고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를 짓긴 하지만(성악설),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지옥 가는 건 결코 아니다. 이것은 어린아기가 죽었다고 지옥 가지는 않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스스로 선과 악을 분별할 능력이 없고 하나님 역시 걔들에게는 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애는 체벌도 불사하는 양육과 훈육이 필요한 거지, 아예 죽어 버렸을 때의 구원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갓 소환돼서 잠시 동안 무적 상태인 게임 캐릭터와도 같다.

내가 늘 강조하지만 인간이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가는 건 전적으로 자신의 자유의지와 행위로 인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옥 가기로 찜해 놓고 예정했기 때문에 가는 게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점에 대해서는 칼빈주의가 전적으로 틀렸으며 알미니안주의의 통찰이 정확하다.

난 당연히 그런 걸로 알고 있고,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듣기 싫은 얘기를 하는 것도 인간의 그 자유 의지를 돌려 놓고 바꾸기 위해서인 것으로 알아 왔는데.. 그걸 이상하게 배배 틀어서 가르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고서 놀랐었다.
다시 말하지만.. 세종대왕과 이 순신이라 해도 자기 의지에 따라서 죄 가운데 죽어서 엄한 곳에 갔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럴 능력조차 없는 어린애들까지 죽어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2. 회개

이건 몇 년 전에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에 대해 논하면서 다뤘던 주제이지만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복습하고자 한다.

주변에 복음을 전할 때 앞서 다뤘던 저런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 공의로움, 심판과 지옥 같은 불편한 진실을 전하지 않고..
무슨 종교 영업사원마냥 “하나님은 사랑이에요, 우리 교회 나오기만 하세요, 님 인생에 나쁠 거 없어요. 이 영접 기도문 따라 읊기만 하세요” 이러기만 하는 건 복음 전파가 전혀 아니다. 그건 시간과 노력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전혀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게 거짓으로 구원의 확신까지 심어 줄 수 있는 대단히 잘못되고 위험한 짓이다.

그런데 그런 관행을 까고 비판하는 건 좋은데, 거짓 evangelism을 비판하는 진영은 대단히 높은 확률로 반대편의 잘못된 극단으로 또 빠지더라. 드러난 행실의 변화가 없는 사람은 구원도 못 받은 거라고 말이다. 폴 워셔 목사라든가..

그 진영의 최대 문제점이 뭐냐 하면..
“저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이제 술 담배 끊고 모든 세상적인 생활방식을 그만두고 예수님처럼 홀리하게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러니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가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니 힘만으로 그렇게 잘도 살아지는가 한번 테스트 해 봐라)

술 담배, 음란방탕, 살인 간음만 회개의 대상인 줄 알지,
지금까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한 것, 죽으면 다 끝이라고 생각한 것, 착한 일을 나쁜 짓보다 더 많이 하면 구원받는 걸로 생각한 것, 예수가 그냥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대성인 출신 죄수인줄로만 안 것..

이런 건 회개의 대상이 아니거나 ‘선행’(?)에 비해 굉장히 사소하고 하찮은 것으로 안다. 전자가 아니라 후자야말로 성경이 규정하는, 구원을 가져다 주는 진짜 회개인데도 말이다! 이 황금 만능주의 인본주의 안티개독이 횡행하는 시대에 후자처럼 믿는 또라이 별종이야말로, 당장 인간적으로 바보 같고 거칠고 서툰 구석이 많아도 하나님 눈엔 얼마나 기특하고 예쁘게 보이겠는가? 이런 믿음 체계가 아니면 성경의 기독교가 도대체 타 종교와 무슨 차이가 생기겠는가!

구원은 그냥 구원받은 죄인이라는 영적 출생이고 0차원 점이다. 그 뒤 신앙생활을 통해 영적으로 자라서 차차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고 제자의 삶을 살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용 보상을 쌓는 건 1차원 선이고 축적, 적분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라고 믿어서 갓 구원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가 선뜻 믿어지고 행할 수 있게 되는 거 아니다. 구원받았다는 게 영적으로 내부적으로는 정말 대단하고 새로워진 것이지만, 한편으로 외형적으로는 정말 별것 아니고 달라진 거 없이 그대로이다.

세상에는 교회 댕긴다는 사실상의 논크리스천들도 굉장히 많다. 그 사람들은 만약 구원을 못 받았다면, 선행 안 하고 거룩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저런 믿음 체계도 세워지지 않은 경우가 90% 이상일 거라고 본인은 단언한다.

구원의 결과, 열매(fruit)를 구원의 조건, 근간(root)과 헷갈리지 말라. 킹 제임스 이외의 성서에서 요 3:36 (아들을 믿는 자 vs 순종하는 자)과 벧전 2:2 (말씀의 젖으로 자라라 vs 신령한 젖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가 괜히 변개된 게 아니다.
그리고 행 2:38은 비록 변개 이슈는 없지만 이게 잘못 적용되면 괜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 게 아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바라바를 선택한 “당대의 유대인들”에게 특별히 처방되었던 회개 조치가 행위 구원 조건으로 둔갑해 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생각만으로는.. 하나님이 구원받을 사람, 지옥 갈 놈을 다 미리 갈라 놨다고 생각하는 게 더 편할지 모르고(예정론), 그렇게 컴파일 타임이 아니면 런타임으로 사람이 구원을 상실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게 자기가 싫어하는 교회 내부 사람을 정죄하는 용도로 더 적합하다! 그에 비해 "구원은 확실하게 받았는데 존나 육신적이고 이기적인 영적 아기"라는 개념은 솔~직하게 말해서 별 재미가 없고 이해하기 쉽지 않다. 내 말 틀렸나?

영이랑 혼 구분 없이 싸잡아서 생각하는 게 더 편할 수 있으며, 구원받은 죄인이랑 레알 크리스천을 한데 싸잡아서 생각하고 멋대로 판단하는 게 더 편할지 모른다. 마치 생명 자연 발생설과 지구 평면설이 당장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더 직관적인 것처럼 말이다. 자살하면 지옥 간다고 생각하는 것도 일단 그렇게 믿어서 해로울 건 없다.

하지만 답이 맞다고 해서 계산 과정이 틀려도 되는 건 아니다. 성경이 그렇게 귀걸이 코걸이 엿가락 같은 책이 아니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그 정도로 원칙 없고 제멋대로 성품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보다 굉장히 더 고차원적이시기 때문이다.
선행을 보태서 구원받고 악행으로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들 중에 평범한 행실 말고.. 기도를 안 하면, 성경을 안 읽으면 구원을 잃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 그건 성경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자기 편한 대로, 자기 직관대로만 내린 결론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교리 공부를 통해 인간이 예수님의 어떤 면모를 믿어서(죽으심, 부활), 정확하게 무엇이 거듭나고(내 영)이 무엇이(내 혼) 무엇으로부터(죄의 형벌, 권능, 임재..) 무엇을 통해(은혜와 믿음) 어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3. 믿음

믿음과 순종· 행위는 일체인 걸까 별개인 걸까? 이건 거의 모든 논쟁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의문이다.
이거 갖고 서로 용어의 정의와 범위도 모른 채 쓸데없는 논쟁이 왕창 많이 오가고, 보다시피 부분적인 면모만 왕창 강조하는 이단 파당이 왕창 많이 생겨 왔다. 여러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지고서 코끼리는 뱀 같은 길쭉한 동물이다, 무슨 건물 기둥 같은 동물이다, 말 같은 안장이 달린 동물이다 등등으로 싸우는 거나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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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믿음이라는 건, 당장 가시적이고 물리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어떤 정보· 이념을 받아들여서 그에 따라 반응하는 것을 말한다.
성경이 그냥 그리스 로마 신화, 단군 설화 같은 책인 줄 알았다가 전능한 하나님의 영감으로부터 유래된 무오류한 계시라고 보기 시작한 것,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스스로 부활한 게 맞다고.. 그게 나를 위한 것이었다고 인정한 것이 '믿음'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건 과학으로는 증명도, 반증도 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이 정도로 생각을 고쳐먹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회개· 회심이며 일종의 순종이고 행위이다. 기독교가 요구하는 구원 조건은 대외적인 선행이 아니라 이런 머릿속 소프트웨어 개조가 전부이다.

구원이라는 선물을 내 돈 지불하지 않고 받기 때문에 '행위 없이 오직 믿음'이라고 말한다. 선물을 받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것, 팔에 힘을 주고 손을 내밀어서 그 선물을 받는 것조차 무슨 '자기 의'가 들어간 행위라거나, 선물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 거라고는 사회 통념상으로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칼빈주의에서는 전적 타락이라든가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얘기를 하면서 이와 관련된 말장난을 좀 하는 모양이다.

그럼 행위란 무엇인가? 간단하다.
형이상학적인 것을 믿고 구원을 받았으니 이를 토대로 당장 나한테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손해가 오는 상황에서도 성경의 다른 가르침을 믿고서 절제하고 헌신을 실천하고, 예수 믿는 삶을 나타내 보이는 것을 말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증거를 보이는 행동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땡볕에 기우제를 지내러 나가기 전에 우산을 미리 들고 가는 것과 같다.

믿음만 있고 행위가 없는 것은 기껏 내 자신과 집, 처자식을 지키려고 성능 좋은 총을 샀는데, 아니 자기 돈으로 산 것도 아니고 선물 받았는데.. 그 총으로 무장 강도에게 맨날 공포탄만 쏘다가 집이 털리는 것과 같다.
성능 좋은 차를 장만했는데 시동 걸어서 맨날 중립 기어에서만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것과 같다.

웅웅거리는 엔진음이 들리고 엔진이 돌아가기는 하는 것 같은데 차가 차주의 일상생활에 실제로 쓰이지는 않는다. 그럼 그 차나 총을 선물해 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물리학적으로 '일'이란 힘에다가 '거리/길이'를 적분한 것으로 정의됨!)
다만, 어이없고 좀 말이 안 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총이나 자동차 자체가 거짓 가짜는 아닌 셈이다. 자동차 등록증이 있고 총기 사용 허가증은 있다. 물건 자체의 존재와 진품 여부는 소유자의 저 이상한 행동과는 전적으로 별개로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그리고 믿음에도 분량이 있으며, 믿으려 하지만 잘 안 믿어지는 경우가 있다. 마치 열심히 찾으려(seek) 하지만 안 찾아지는(find) 것처럼 말이다.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올 거라고 믿고 우산을 챙겨 가는 것 정도는 별 부담 없이 할 수 있다. 우산 하나 챙긴 것쯤이야 설마 비가 안 오더라도 내 신상에 큰 타격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가 오는지 여부에 따라서 집 문서를 걸거나 내 손모가지를 건다면 선뜻 하겠는가? 갓 구원받은 초짜가 당장 순교가 가능할까?? 그리고 그걸 못 한다고 해서 "에라이 믿음이 부족한 놈"이라고 욕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초짜가 겁먹어서 순교를 못 하면 구원이 도로 취소될까?

그런 식이다. 믿음도 여러 종류와 강도가 있다. 구원으로 이르는 믿음 이후에는 또 다른 종류의 믿음이 필요하며 그 크기도 차츰 업그레이드 해 나가야 한다. 신혼 부부에게 데이트 때 씌였던 콩깍지가 길어야 얼마나 지속되겠는가? 바로 그것처럼 갓 영접하고 구원받았을 때의 내 감격과 감정과 믿음은 절대로 무한하지 않으니 지속적인 믿음 공급과 성장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을 잘 분간하면 요 3:36 "아들을 믿지 않는 자" vs "아들을 순종하지 않는 자"의 차이를 분별할 수 있으며, '믿음 따로 행위 따로' 같은 말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옳은 내용과 전체적으로 틀린 논리 전개를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구원받은 뒤에 믿음의 행위가 나오는 거지,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벧전 2:2)는 변개된 텍스트이다. 그리고 "구원을 일하여 이루라"(빌 2:12)는 변개는 아니지만 work out을 좀 오해의 소지가 있게 번역한 대목인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1/17 08:33 2020/01/1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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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도 복습

인류가 개발한 교통수단들 중에 외형상 가장 철저하게 시스템에 의한 통제를 받으며 돌아가는 교통수단은 철도이다.
철도는 비행기 같은 3차원이 아니고, 선박이나 자동차 같은 2차원도 아니라 오로지 앞 아니면 뒤밖에 진행하지 못하는 1차원 교통수단이기 때문에 그렇다. 스스로 방향 전환조차 할 수 없고 외부에서 선로를 전환해 줘야 한다.

(덧: 잠수함도 잠항과 부상이 있으니 넓은 의미에서는 3차원이라고 볼 수 있지만.. 공중이 아닌 물 속의 3차원일 뿐인 데다 사실상 군 전용이고, 대중교통의 형태로 운용되는 것은 전무하므로 논외로 하자. 물 속에서는 공기가 없어서 내연기관을 가동할 수 없다!)

철도 차량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 파악되고 통제 가능한 '독 안에 든 쥐' 상태로 움직인다. 그리고 조향이라는 차원 하나를 희생한 대신, 일반 자동차를 훨씬 능가하는 수송 능력과 효율, 속도와 승차감과 안전을 얻었다.
"아스팔트 길에서 고무 바퀴 vs 철길에서 철 바퀴"는 동력 효율이 얼마나 차이가 날까? 그리고 도로와 철도에서 무인 자율 주행을 구현하는 기술적 난이도가 서로 얼마나 차이가 날지도 한번 생각해 보자.;;

철도에서는 앞 차와 거리가 너무 가까워지거나 일정 속도를 벗어나거나, 기관사가 생존을 인증하는 신호에 응답하지 않는 등... 별별 이상 징후가 감지되면 열차는 즉시 제동이 걸리고 멈춰서게 된다.
비행기는 테러리스트에 의해 장악되어 폭주하기 시작하면 전투기가 출격해서 격추시키는 것밖에 달리 통제할 방법이 없는 반면, 철도는 비행기는 물론이고 자동차와도 차원이 다른 안전 시스템을 갖춘 셈이다.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 보면 열차가 걸핏하면 "앞 차와의 거리 유지" 명목으로 답답할 정도로 서행하거나 심지어 급제동이 걸리는 걸 경험할 수 있는데..
이건 기관사가 자동차 몰듯이 자의로 브레이크를 밟아서 그렇게 된 게 아니다. 차량이 자기가 달리는 선로의 신호 상태를 감지해서 알아서 그렇게 동작한 것이다. 철도는 육안으로 앞 차를 발견한 뒤에야 제동을 걸었다가는 십중팔구 충돌 사고가 나며, 그런 무식하고 원시적인 방식은 현업에서 애초에 쓰이지도 않는다.

철도 차량을 그나마 자동차 운전과 비슷하게 기관사의 자의만으로 조종 가능한 곳은 자동차의 주차장뻘 되는 차량 기지 내부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는 일반인이 절대 출입 금지일 뿐만 아니라, 거기서는 어차피 사람 걷는 속도로밖에 못 밟는다.

이건 증기 기관차가 단선 선로에서 달리던 시절 이래로 열차의 안전이 인간의 오감과 판단력이 아닌 시스템 차원에서 자동으로 보장되는 방법을 연구해 온 엔지니어들의 노력의 산물이다. 어떤 경우에도 한 폐색 구간에 두 열차가 동시에 진입하지 않고, 열차끼리 정면 충돌이나 후미 추돌 사고가 나지 않게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고속철의 경우, 지금의 시속 300에서 400~500으로 증속을 하는 것은 차량만 최신 고성능으로 새로 뽑아서 죽어라고 밟는다고 해서 실현 가능하지 않다. 신호· 관제 시스템이라는 소프트웨어 요소까지 싹 다 업데이트를 해야 하는데, 이것이 내가 알기로는 국내 기술만으로 그냥 가능하지 않다. 과거에 재래선에서 열차의 주행 속도를 100에서 150으로 야금야금 올리던 시절과는 상황이 다르다. 철도라는 게 그만치 상상을 초월하게 정교한 시스템인 것이다.

2. 여객기의 항로

육지에 도로와 철도, 바다에 선박의 항로만 있는 게 아니라 하늘에도 지정된 항로라는 게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본인이 3년쯤 전에도 글을 쓴 적이 있다.
여객기들은 목적지 공항을 향해서 무작정 구면기하학에 근거한 직선 지름길 경로로만 가는 게 아니다. 비록 육상 교통수단처럼 산과 강이라는 지형의 영향을 받지는 않겠지만, 다음과 같은 변수들의 영향을 받는다.

  • 제트 기류: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여객기가 갈 때와 올 때 항로가 서로 다른 이유는 이 때문이다.
  • 언제든지 비상 착륙이 가능한 공항까지 일정 거리 이내 유지: 그러니 아무리 지름길 최단거리여도 태평양 정중앙으로 날아가는 여객기는 없다.
  • 비행 금지 구역 회피: 우리나라의 경우 청와대, 원자력 발전소와 원자력 연구원, 군사분계선 부근이다.

지금이 무슨 린드버그가 살던 때처럼 누가 비행기를 인류 최초로 발명해서 아무런 통제도 없는 하늘을 마음대로 누비고 대서양을 횡단하던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너 말고도 하늘을 날 수 있는 기계류는 너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서라도 비행 신고를 하고 허가를 받고, 남의 나라라면 영공 통과료 내고 관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정해진 길로만 가야 하며, 비행 금지 구역 같은 곳에 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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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의 항로는 다음과 네이버의 민간 인터넷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친숙하지만 비행 항로 지도는 정말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거나 직업으로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면 접할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항로들은 나름 알파벳과 숫자를 조합하여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명칭까지 부여돼 있다. 마치 고속도로나 국도의 번호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서울-부산을 잇는 경부선뻘 되는 항로는 A582이다(중간에 대구 경유). 그리고 동해를 따라 국도 7호선과 비슷한 종축 항로는 V11이며, 미국으로 가기 위해 국토를 횡단하는 항로는 G597이다.

위의 항로를 보니 대도시 중에서 서울 강북, 그리고 대전은 공중에서 여객기를 볼 일이 전혀 없는 지역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구로-금천 일대는 경부선(+경인선) 때문에 열차가 많이 지나갈 뿐만 아니라 비행기도 굉장히 많이 지나가는 곳이다. 안양 부근에서 미국· 일본행과 국내선 여객기들이 분기한다.

3. 항로의 개선, 복선화

(1) 경상남도 끝자락에 있는 사천 공항의 경우, 서울 김포를 최단거리로 잇는 항로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대구와 광주 사이,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 상공이 공군의 군사 훈련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민항기가 비행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김포에서 사천을 가려면 과거에는 아예 제주도로 갈 때처럼 광주를 먼저 찍고 나서 동쪽으로 우회해서 사천으로 가는 삽질을 해야 했다. 시간 낭비 돈 낭비는 당연지사였다. 자동차도 아니고 비행기가 이게 뭔 뻘짓인가..;;

이것 때문에 해당 지역에서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민원이 빗발쳤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이후에는 규제가 완화되고 대구-사천 항로가 개통된 덕분에 광주가 아닌 대구를 경유하는 것으로 동선이 개선되었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의 지상에서는 88 올림픽 고속도로가 오랫동안 악명을 떨치다가 결국은 전구간 4차로로 다시 만들어졌는데.. 하늘길에도 오랫동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우여곡절이 있었던 셈이다.

다만, 개선된 항로가 개통된 때는 이미 통영-대전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항공 수요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뒤이니 시기가 다소 늦은 감이 있다.

(2) 지난 2012년에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힐 정도로 많은 트래픽을 자랑하던 서울-제주 항로가 무려 '복선화'했다. 철도에서 서울-부산이 1군이라면, 국내선 항공은 서울-제주가 1군인 셈이다. 그리고 저기가 국내 최초 유일의 복선 항로가 됐다.

물론 비행기들은 단일 항로에서도 고도 차이로 상행과 하행(그리고 국내선과 국제선도)을 구분하기 때문에 단선이 곧 철도의 단선 같은 열악한 환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서울-제주는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비행기가 제때 이· 착륙을 못 하고 공항 주변을 돌거나(착륙 허가) 활주로에서 대기하며(이륙 허가) 시간을 왕창 날려야 했다.

결국 여기는 방향별로 항로가 분리됐다. 원래 서울-광주-제주 항로는 B576이었는데, 하행용으로 Y711, 상행용으로 Y722라는 항로가 새로 생겼다.
상선과 하선은 서로 무려 14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제주 방면이 서쪽이므로 개념적으로 우측통행이다.
기존 B576은 다른 용도로 여전히 쓰인다. 상행인 Y722가 B576에 더 가까이 있다.

항로의 복선화는 철도의 복선화처럼 거창한 시설 따위 만들 필요 없이 지도에서 선만 새로 그으면 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거 하나 고치는 데도 관련 법을 고치고 관제 시스템을 업데이트 하고 중국 같은 이웃 나라들로부터 동의도 얻는 등 절차가 굉장히 복잡했다고 한다.

(3) 오늘날의 관점에서야 단선 철도는 느리고 불편하고, 자동차가 발달하지 못해서 어차피 철도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던 옛날에나 존재하던 유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19세기에 영국에서 철도가 완전 처음으로 등장했던 극초창기에는 철도도 단선이 아닌 복선을 기본으로 깔고 달렸다.

왜냐하면 진짜 옛날에는 전신기라는 것도 없어서 역간의 통신조차 아직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선 교행을 구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술적 기반이 마련돼 있지 않으니 열차 운행은 최소한의 안전이 자명하게 보장되는 복선 위주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폐색 구간 같은 정교한 안전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더 저렴한 단선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마치 자동차도 19세기 말~20세기 초 극초반에는 전기차가 잠시 활발하게 연구됐고 시속 100도 넘었지만.. 한순간에 도태되고 없어진 것과 비슷한 얘기처럼 들린다.

4. 나머지

(1) 비행기가 기수를 위로 향한 채 땅에 거의 근접해 있는 정지 사진 하나만 보고 이게 이륙 중인지 착륙 중인지 분간이 가능할까?
나 같으면 기체의 pitch 각도(일반적으로 이륙 중일 때가 더 가파름), 랜딩기어 주변의 연기(착륙할 때만 마찰열 때문에..), 주익에 펼쳐진 플랩(착지까지 한 뒤에) 같은 변별 요인이 있으면 가능하겠지만, 그런 차이가 없으면 알 수 없을 것 같다.

전후대칭형 열차의 정지 사진을 보고 진행 방향이 어딜지 판별하는 것은 백색 및 적색 램프가 켜진 방향, 그리고 전철의 경우 팬터그래프가 펼쳐진 쪽(뒤)을 토대로 가능하다. 이거 마치 노을 사진을 보고 아침인지 저녁인지 판별하는 것과도 비슷해 보인다. (그림자의 방향 말고 하늘 색깔만 보고 판별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불가능)

(2) 끝으로, 제트 엔진이 달린 비행기는 자동차처럼 한 엔진이 몇 행정 몇 기통이라는 식의 구분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그냥 엔진 자체가 2개냐 4개냐 같은 구분이 있을 뿐이다.
비행기가 순항 중일 때는 공기가 빨려 들어가고 뿜어져 나오는 소리까지 가미되어 육상 교통수단에 존재하지 않는 고유한 날카로운 소리가 난다. 하지만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이제 막 가속과 이륙을 시도할 때는 '웨에엥~' 하면서.. 뭔가 전동차의 VVVF 구동음과 일말의 유사점이 있는 소리가 잠깐이나마 난다.

전동차와 비행기의 구동음이 서로 더 비슷해질 수는 없을까? 그러면 철덕과 항덕이 모두 좋아할 텐데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1/14 08:35 2020/01/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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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산업화 시절 무용담들을 살펴보면.. 경부 고속도로와 포니와 제철소 3관왕을 달성한 왕회장부터 시작해서 과감하게 반도체를 시작한 삼성 이 병철 회장, 일본으로부터 용케 스프 제조 노하우를 전수받아서 삼양 라면을 최초로 개발한 전 중윤 회장 등 여러 일화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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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건국 초창기, 할배가 집권해 있을 때야 김 두한의 사딸라를 능가하는 손 원일 제독의 근성의 가격 후려치기 협상(군함 도입), 그리고 홍 덕영 골키퍼의 눈물의 투혼 같은 이야기가 캐감동이다. 그건 각각 군사와 스포츠 분야이고, 경제와 기업 이야기는 아무래도 훗날 박통 때부터야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이런 분야에 더 관심이 있다면 유튜브로 '기업비사'라든가 '신화 창조의 비밀' 시리즈를 쭉 찾아보시기 바란다. 이 반기업 정서가 횡행하는 시대에 사상 무장용으로 유익하다. 뭐 굳이 옛날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극한직업' 시리즈도 좋고 말이다. (당연히 영화 말고 다큐멘터리..)
학교에서 애들한테 주식 투자나 부동산까지 가르칠 필요는 없겠지만.. 최소한 알량한 사회주의 공산주의 공유 환상의 허구에 속지 않을 정도의 방어적인 경제관념 교육은 어릴적부터 정말 필요해 보인다.

친환경 친인간(?)에 더불어 공유하고 국유화하자고 선동하는 넘들치고 자기 사재 기부는 1원도 한 놈이 없으며, 자기들은 누구보다도 재테크에 빠삭해서 시장 경제 자본주의의 혜택을 다 입고 있다. 이건 공공연한 비밀이며 과학이다. 남의 돈 세금 갖고는 천하에 무슨 생색인들 못 내겠는가?
반공, 안보 외치는 높으신 분들치고 자기 자식새끼 군대 보낸 놈이 없는 것을 비판해 왔다면(실제로는 그 정도까지 막장인 것도 아님), 저 분야에 대해서도 똑같이 일관된 비판이 나와야 마땅하다.

뭐 그건 그렇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이끈 위대한 거장 중 하나로, 포항제철을 건설하고 초대 회장을 역임한 한국의 철강왕 박 태준(1927-2011)을 빼놓을 수 없다. 질 좋은 강철이 있어야 그걸로 자동차도 만들고 선박도 만들고 레일도 만들 테니 제철소는 반드시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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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소는.. 뭐 이런 분위기의 장소이다. 여느 제조 공장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당연한 말이지만 저 붉은 쇳물은 화산 용암이나 마그마보다 훨씬 더 뜨겁다.)

그런데 그런 거대한 시설을 맨땅에서 짓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UN 세계은행(IBRD), 국제 제철 차관단 등의 통상적인 국제 금융권으로부터 돈을 빌려서 그걸 밑천 삼아 지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거기서는 한국 같은 못사는 듣보잡 나라가 뜬금없이 제철소를 짓는 게 가능할 거라고 전혀 믿지 않았으며,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이때 박 정희 대통령의 심복이었던 박 태준은 기지를 발휘해서 “아 그럼 대일 청구권 자금을 대신 투입하면 어떻겠습니까?”라는 제안을 했고, 대통령은 “오, 기막힌 생각이군. OK!” 했다.

그래서 결과만 따지고 보면 포항제철은 원래 농수산업 지원에나 사용할 돈, 그리고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에게 보상금으로 주라고 일본으로부터 받은 돈을 쓰윽 전용해서 만들어졌다. 훗날 포항제철은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뒤에도 저런 사람들을 딱히 만나 주지도 챙겨 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논란거리가 되었으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포항제철은 왜 그런 태도를 보였을까? 블랙기업 악덕기업이어서? 설립자 박 태준이 친일적폐 싸이코패스 악마여서?
아니었다. 박 태준은 그런 인륜이나 도덕이 없는 사람이 아니며, 오히려 위인전에 실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우 훌륭하고 청렴한 기업인이었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야 된다면서 회사 주식을 한 주도 갖지 않고 물러났을 정도로.

더구나 그는 그 유명한 우향우 정신의 창안자였다. “이 제철소는 우리 선조들의 피값인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만드는 거다. 이 돈은 절대로 부정하게나 헛되이 쓰여서는 안 된다. 실패하면 우리 다같이 우향우 해서 영일만 바다에 뛰어내려서 죽어서 속죄하자” 이랬던 분이다.

포항제철은 그런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졌다. 1973년 6월 9일은 포항제철 제1고로에서 최초의 쇳물이 쏟아져나온 날이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6월 9일을 ‘철의 날’이라고 기리고 있다. 당일부터 바로 기린 건 아니고 생각보다 늦은 2000년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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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얼마나 엄청난 업적을 남겼는지를 짐작케 하는 일화가 있다.

  • 1978년, 중국의 덩 샤오핑이 일본에 가서 우리도 제철소를 만들고 싶다고 자문을 구하자 일본의 신일본 제철 회장(이나야마 요시히로)은 “님 나라에는 박 태준 같은 인물이 없으니 여느 공장 정도는 지어도 제철소까지는 무리일 겁니다” 이렇게 뼈 있는 말을 남겼다.
  • 그리고 박 태준은.. 한국에 제철소는 택도 없다는 부정적인 보고서를 작성해서 세계은행으로부터 자금 대출을 무산시켰던 영국의 존 자페(Jon Jaffe) 박사를 1986년에 런던에서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존 자페는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17년 전의 판단에 대해 후회가 없으며, 지금 보고서를 다시 쓰라고 해도 똑같이 쓸 것이다. 겨우 그런 나라에서 대형 제철소는 얼토당토않은 소리인 게 맞다. 다만, 한국에서는 박 태준이라는 상식을 한참 벗어나는 인물 때문에 나의 예상이 예외적으로 빗나가게 됐을 뿐이다” ㅡ,.ㅡ;;

백 선엽(미국에서 더 예우와 존경을 받는 만렙 원로 장성)이나 차 범근(축구 선수 시절..)처럼 국내보다도 외국에서 더 전설을 넘어 레전드 평판을 받는 거인이 일부 있는데, 박 태준 역시 이에 해당했던 셈이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사람이 정작 훗날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나 위안부 할머니 같은 사람을 상대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일면 이해가 된다.

그는 우향우 운운하면서 피 같은 돈으로 혼신을 다해서 노력해서 제철소를 만들었다. 만약 실패하고 돈만 날려먹었다면 진짜로 이 한몸 바다에 빠져 죽어서라도 속죄할 의향이 있었지만, 이렇게 성공한 이상 그 자체만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한 것이고 선조들 앞에서도 이제 지극히 떳떳하다.
그 이후로 포항제철이 더 성공한 것은 “기업 경영을 잘한 덕분”이지, 더는 무슨 부당한 돈이나 착취 덕분에 부정하게 성장한 게 아니라고 여긴 것이다.

이렇게 된 와중에 포항제철이 또 누구 후손에게 사죄를 한다거나 무슨 보상을 해 준다거나 하면.. 포항제철을 처음 만들 때 들였던 피눈물 나는 노력의 의미에 흠집이 가고 그게 떳떳하지 못한 행적이 되는 것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그는 추후 불거진 보상 드립은 가당치 않은 요구라고 여기고 무시했음이 틀림없다. 사회 환원은 학교도 세웠고 이 정도 사내복지 수준이면 이미 충분히 하지 않았느냐 말이다.

성경에서 약간 비슷한 예가 떠오른다.
모세는 광야 생활을 하면서 반석에서 물을 내는 기적을 두 번 행했는데, 처음엔 반석을 쳤으며, 한참 나중에 두 번째엔 반석에게 말만 해야 했다. 그러나 모세는 끊임없이 불신하고 반역하는 미개한 백성들에게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두 번째에서도 별 생각 없이 예전처럼 반석을 쳤다. (민 20:10-11)

그래도 물이 콸콸 나오긴 했기 때문에 모세는 백성들 앞에서 체면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모세의 이런 행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다시 두 번 못 박는 것과 같은 영적으로 굉장한 중범죄로 간주되었다. (반석은 예수님의 예표) 이 자그마한 실수 때문에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처럼.. 한번 죽을힘을 다해서 선조들 내지 일제 시대 피해자에게 justify를 받았다면 두 번 또 받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반석의 영적 의미가 중요한 것만큼이나, 포철의 창업주 입장에서는 저런 관계와 의미가 왕창 중요하기 때문이다.

포항제철의 이런 사례를 다른 과거사 청산 문제에다가도 넓게 응용하면,
(1) 항일 독립운동가 출신인 대통령(할배)과 법무부 장관(이 인)이 왜 건국 당시에 반민특위를 해체해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

(2) 그리고 친일파 반민족주의자라고 해도 매국의 대가로 일제로부터 직접 받았던 재산 이상으로, 걔네들이 정당하게 노력해서 재산을 불린 것까지도 다 몰수하는 게 법적으로 타당하나 하는 문제에다가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좌빨들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애국자들을 앞뒤 경황 안 따지고 몽땅 다 친일적폐로 몰고 갈 것이다.

우리나라는 너무나 절망적이고 급박하던 상황에서 결국 일제 부역 군경이라도 동원해서 왜놈보다 더 나쁜 빨갱이들을 잡아야 했으며, 나라를 망조로 몰아넣을 지경이던 사채를 몽땅 정리하기 위해서 유신 헌법을 포함한 다른 극단적이고 비민주적인 조치를 취해야 했다. (애초에 군대라는 조직 자체가 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굉장히 비민주적인 조직..)
그리고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다른 돈줄이 도저히 없으니 피묻은 돈도 좀 끌어다가 산업의 근간인 제철소를 만들게 됐다.

사람이 하는 일이 완벽할 수가 없고 당연히 헛점과 부작용이 있고 그에 따른 피해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임기응변식 조치의 가성비와 효용성에 대해서 다각도로 입체적으로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는 있다. 무작정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부른 투정과 그 시절에 누구도 가능하지 않았던 선비질 잣대 역시 금물이다. 그건 옳지 않다.

프로그래머로서 본인이 드는 비유이지만, 마소만 해도 초창기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 시절에 그렇게 온갖 독점과 지저분한 짓까지 감내하면서 경쟁자들을 제압하고 마르지 않는 탄탄한 밥줄--운영체제, 오피스--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지금의 후임 사티야 나델라 때는 옛날과는 반대로 온갖 오픈소스 진영을 여유롭게 무료 지원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나라에는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 같은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은 명백히 칭송받아야 마땅한 애국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29 08:35 2019/12/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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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운전 면허의 종류

자동차를 포함해 모든 교통수단들은 잘 알다시피 관련 면허를 취득한 사람만이 운전하고 운행할 수 있는 물건이다.
특수한 유형의 자동차를 몰기 위해 추가로 따야 하는 자격증이 있긴 하다. (버스 운전 자격, 위험물 차량 취급 자격..) 하지만 아무 특성 없고 제일 몰기 쉬운 자그마한 경차라도, 아니 오토바이라도 몰기 위해서는 면허를 따야 한다.
자격증은 보유자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긍정 관점이지만, 면허는 반대로 이를 보유하지 않은 사람은 관련 행위를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부정 관점이 더 강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면허가 다 같은 면허는 아니다. 몰 수 있는 차체의 크기 내지 승차 인원수에 따라 종류가 갈리며, 다음으로 운전의 성격에 따라서 종류가 갈린다. 자동차 운전 면허의 경우, 보통/대형은 차체의 종류를 구분하며, 1종/2종은 운전 성격을 구분한다. 2종 면허에 같이 붙는 편인 '자동'은 면허 조건을 명시하는 부가적인 옵션 중 하나이다.

운전 성격은 무엇이냐 하면 비영리 자가용 운전이냐, 아니면 금전적인 이득이 걸린 영업용 운전이냐 하는 것이다. 영어에서 명사가 셀 수 있는 개념인지 여부를 매우 중요하게 따진다면(가산· 불가산), 교통수단의 면허에서 매우 중요하게 보는 것은 자가용/영업용 종류이다.

자동차 면허에서 1종은 원래 비행기로 치면 사업용 내지 운송용에 대응하는 전용 면허였다. 그랬는데 자동차가 워낙 흔해지면서 그런 구분이 많이 옅어졌기 때문에 1종은 그냥 대형+수동 연계 면허인 것처럼 굳어졌다. 그러니 요즘은 대형 면허 없이 보통만으로 긴급자동차 승합차를 몰 수 있고, 2종 면허만으로도 '바사아자' 번호판의 택시 기사가 될 수 있게 조건이 완화되고 있다.

잘 알다시피 1종 보통으로도 트럭은 대형 버스 뺨치는 크기인 무려 11톤급까지 몰 수 있다. 2종은 4.5톤이지만 이것만으로도 이미 중형 버스를 능가하는 크기이다. 그런 트럭은 차가 아무리 커 봤자 사람이 3명밖에 안 타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1종 보통으로 승합차는 아담한 15인승 봉고차급까지만 몰 수 있고, 중형 버스를 운전하려면 1종 대형 먼허가 필요하다. 차량 크기와 승차 인원에 이런 관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독자 여러분은 영업용 자동차 중에 제일 몰고 싶은 차가 무엇인가? 택시는 제일 잽싸고 날렵한 난폭운전 총알 기동이 가능=_=하고.. 대형 버스는 왕창 크고 사람을 많이 태운 상태에서 '버스 전용 차로'라는 메리트를 이용해서 꽤 빠르게 달릴 수 있다.
대형 트럭은 차종에 따라서는 버스보다도 더 거대하며, 운전대가 압도적으로 제일 높고 뒷좌석 내지 천장의 아늑한 개인 공간(침대 또는 다락방)을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속도와 통행 우선순위는 제일 낮고 둔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무슨 차량을 몰든 운전은 재미있다. 하지만 쉬고 싶을 때 못 쉬고 운행 스케줄을 맞춰서 불철주야 강제로 운전해야 한다면 그것만 한 고문도 별로 없지 싶다.

2. 차들의 크기와 폭

난 대형 시내버스와 고속· 시외· 관광버스는 동일한 반경의 타이어를 사용하는 대형 버스이고 크기가 거의 같지 않은가 생각해 왔다.
하지만 제원표를 보니 시내버스는 대형이라 해도 길이가 11m급인 반면, 고속버스 중에는 12m가 넘는 놈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높기도 후자가 좀 더 높다.

"도로의 구조ㆍ시설 기준에 관한 규칙 제5조, 도로법 시행령 제79조, 자동차 안전기준에 관한 규칙 제4조"에 따르면, 국내에서 도로를 달릴 수 있는 자동차의 최대 크기 한계는 길이 13m, 폭 2.5m, 높이 4m이다. 굴절 버스나 트레일러처럼 중간에 꺾임이 있는 놈은 좀 더 길어도 되지만, 꺾임이 없는 단일 차체의 한계는 저렇다.
그리고 무게는 축당 10톤, 전체 40톤이 한계인데, 이건 사람을 태우는 버스는 무게 따위 걱정할 필요 없고 트럭이 조심해야 할 사항이다.

현대 유니버스, 기아 그랜버드 같은 버스의 최고 사양을 보면 길이는 거의 12.1 ~ 12.5m에 달하고 폭은 2.49m, 높이는 3.3 ~ 3.5m여서 법적 한계에 거의 근접해 있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제일 큰 버스이다. 엔진은 1미터당 1000cc씩 잡기라도 했는지 역시 12000cc를 넘는 배기량에 400마력 이상이다.
화물차 역시 트레일러 말고 25톤 트럭(현대 엑시언트), 또는 그보다 작은 트럭이라도 초장축 모델을 보면 이 한계에 근접해 있다.

이 크기와 무게를 초월하는 차량은 일반 차량들처럼 등록해서 평범한 번호판을 받고 일반 도로를 주행할 수 없다. 공항 활주로, 탄광 내부, 놀이공원 내부 같은 자기 영역에서만 주행 가능하며, 이에 대해서는 이전 글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
또한 군용차 중에서도 승용차나 트럭을 넘어 아예 탱크나 자주포처럼 무기에 더 가까운 건 도로교통법의 적용을 받는 물건이 아니다. 그거 조종 특기는 군에서든 사회에서든 자동차 운전 면허와 동급으로 인정되지도 않으며 별개로 취급된다.

남자라면 왕창 빠른 차 아니면, 이렇게 엄청나게 큰 차를 몰아야 간지가 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운동 에너지 1/2 mv^2 중에서 m과 v 둘 중 적어도 하나는 왕창 큰 거 말이다.
참고로 국내 기준으로 경차는 길이 3.6m, 폭 1.6m, 높이 2m, 엔진 배기량 1000cc 이내이니 얼마나 작은지가 비교된다..;;

한편, 자동차가 폭의 한계가 저렇게 2m대에 머물러 있는 반면, 철도 차량은 표준궤 기준으로 3m대에서 논다.
"철도차량 안전기준에 관한 규칙"과 관련 별첨 자료를 보면 집전 장치를 제외한 높이의 한계는 4.5m이고, 폭은 3.4m가 한계이다. 다만, 차량의 상부와 하부는 폭의 한계가 3.2m대로 약간 줄어든다.
그 좁은 궤도 위에 자동차보다 훨씬 더 뚱뚱한 차량이 올라가서 달린다는 걸 생각하면, 철도가 공간을 굉장히 효율적으로 쓴다는 걸 알 수 있다.

3. 10% 유도리

우리나라에 자동차 주행의 ‘규제’와 관련된 거의 모든 법규에는 10% 초과까지는 봐 주는 유도리라는 게 존재한다.
최대 속도 100km/h 단속이면 이론적으로 110까지는 봐 준다.
과적 단속이 차량 총중량 40톤까지이나, 실제로는 44톤까지는 봐 준다.

승차 정원 초과는 과속· 과적만치 적극적으로 단속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 상태로 사고가 나서 주행 실태가 까발려지면 그때부터 골치 아파진다.
일단 법적으로는 이 역시 10명당 한 명꼴로 초과는 봐 준다. 단, 고속도로 주행이 아닐 때에 한해서다.

12인승 승합차 정도의 덩치라면 13명이 구겨서 타는 것쯤을 묵인한다는 뜻이다. 다만, 택시는 얄짤없다. 기사의 입장에서 승차거부가 불법인 것만큼이나, 승객의 입장에서도 돈 아끼려고 한 차에 기사 포함 6명 이상씩 한 차에 구겨 타는 것은 동일하게 불법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물론, 아침에 입석 시내버스 한 대에 6~70명씩 콩나물 시루처럼 타는 것은 이런 법으로부터 열외된 영역이다. 거기는 좌석의 안전벨트 설치 규정조차도 적용되지 않을 정도이니 말이다. 또한, 경차도 시장의 특수성-_- 때문에 각종 까다로운 안전 테스트에서 열외되어 오고 있는데..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참고로, 승차 인원을 계산할 때 13세 미만 영 유아 어린이는 3인을 성인 2인과 동급으로 친다는 세부 규정도 있다(!!). 어린이는 차량의 승차정원의 관점에서 2/3인으로 간주된다는 뜻이다. ㅎ

사람 머릿수야 사람이 직접 세는 이산적인 값이니 오차가 있을 리 없겠지만, 과속과 과적 단속은 사정이 다르다. 10% 유도리는 운전자 쪽이나 단속자 쪽에서 혹시나 눈금이나 계기에 오차가 생기는 바람에, 법을 아슬아슬하게 지켰는데도 초과 위반이라고 판정되는 논란과 분쟁을 막기 위해 존재한다. 그 여유 buffer는 마치 도로의 갓길이나 안전지대와도 같은 개념인 셈이다.

평소에 갓길이나 안전지대에 주· 정차를 하거나 거기를 주행하지 말아야 하듯, 애초부터 유도리를 전제하고서 “80이라고 쓰고 88이라고 읽는다, 100이라고 쓰고 110이라고 읽는다”에 충실하게 운전을 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다가는 단속에 걸려도 할 말 없다.

여담: 개인적인 생각

(1) 운전 중에 앞에 차가 없이 공간이 아주 많고, 그렇다고 과속 단속 카메라가 있는 것도 아닌데..
단순히 커브나 내리막이라는 이유만으로 브레이크 좀 남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브레이크 경고등은 뒷차를 굉장히 신경 쓰이게 만들며, 이런 것들이 쌓여서 유령 정체까지 유발하게 된다.

매우 비경제적 비효율적인 짓인 건 덤이고 말이다. 재가속 한번 할 때마다 몇십 원 이상의 비용이 공중으로 날아간다는 관념이 좀 있어야 할 텐데..
버스, 지하철, 택시를 탈 때는 100원 하나 올라가는 것조차 신경 쓰이고 아깝지 않더냐?

(2) 또한 본인은 개인적으로 과속 단속 카메라를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다. 최저임금제뿐만 아니라 저거도 좀 없앴으면 좋겠다. 저것 때문에 쓸데없이 드는 제동+재가속 기름 손실도 전국적으로 장난이 아닐 거다. 대한민국은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라면서? ㄲㄲㄲ
과속 단속 카메라는 커브+신호대기 교차로 같은 걸 앞두고 있을 때에나 극히 제한적으로 뒀으면 좋겠다. 그런데 현실은... 시내 주행 속도 제한이 60이던 걸 50으로 더 낮췄더라. 젠장..

도대체 속도가 무슨 죄냐?
"어 빈부격차 문제가 심하다고? 그럼 부자들을 강제로 세금 걷어서 같이 거지로 만들어 주면 되겠네?" (당연히 자기 패거리들은 더 부자 되고) 식으로..
안내 표지판의 시안성 개선, 1차로 저속 차량 단속, 음주운전의 처벌 강화 같은 더 합리적인 개선을 할 생각은 안 하고, 뭐든지 적기조례 식으로 쥐어짜기 규제부터 하고 보는 인간들 목을 비틀어 주고 싶다.

빼도 박도 못하고 어느 블랙기업의 막장 운영 때문에 발생한 선박 교통사고를 갖고 대통령의 7시간 개X랄 하던 시절이나,
멀쩡히 속도 지키면서 잘 가다가 그냥 자살 급으로 차 사이에서 튀어나온 애를 친 걸 과속이라고 프레임 씌우는 거나..
이 반도가 감성팔이 선동이라는 악성코드에 취약한 건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사람 뇌는 보안 패치 업데이트 좀 할 수 없나? 소프트웨어만으로 안 되면 물리 치료 하드웨어 장착이라도 동반해서..

아아, 그리고 구간 단속은 진짜 최악의 병신짓이고 악랄함의 극치이다.
경제를 시장 자유방임에 맡기는 것만큼이나 자동차 속도도 좀 자유방임에 맡겼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아니면 고속도로에서 속도 제한을 150~160 정도로 좀 현실화하든가 말이다.
이렇게 운전자들이 쌩쌩 잘 달려 줘야.. 시속 120에서도 휘발유 엔진으로 3000rpm을 안 넘어가는 6단 변속기까지 개발해 낸 자동차 회사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대신에 저속 차량은 알아서 우측으로 갖다대고, 추월은 반드시 좌측으로만 하게 해야 한다. 한 차로에 좌우로부터 차량이 동시에 진입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다.

“앞지르기 규정 위반” 이게 알고 보면 무려 중앙선 침범, 음주· 무면허, 신호위반과 동급의 12대 중과실이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교통 범죄이다. 그런데 그 범죄를 저지르도록 강요하는 것들이 바로 1차로에서 저속으로 가고 있는 무개념 차들이다. 이것들이 단순 과속 차량보다 훨씬 더 도로를 무질서하게 만드는 애들이기 때문에 그런 관행부터 근절해야 된다.

아~ 이 정도면 난 운전 습관도 우파인 건가. ㅡ,.ㅡ;;
사람이 먼저 그딴 게 아니라 빠른 차와 느린 차의 편차를 인정하고 장려하고, 규제 대신 운전자의 자율과 책임, 시스템 전체의 효율을 더 중요시하는 성향이니까. 프로그래밍 언어로 치면 C/C++과 비슷한 이념이다.

(3) 이런 맥락에서.. 본인은 에스컬레이터에서도 "왼쪽 줄은 걸어 올라가는 바쁜 사람을 위해 반드시 비워 두자" 주의이다.
안 그래도 에스컬레이터의 주행 속도부터가 세계 최하위권으로 끔찍하게 느린 주제에 걷거나 뛰지도 말라고? 안일한 규제 만능주의 행정 편의주의 미친 짓일 뿐이다.
다만, 오르막이나 평지(무빙워크)가 아닌 내리막에서 쿵쾅거리며 뛰어 내려가는 것은 기계에 무리를 줄 수 있으니 반대다. 걸어 내려갈 거면 발에다 힘을 줘서 사뿐사뿐 내려가야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20 08:32 2019/12/2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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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계의 파편화

본인은 지금까지 많은 글들을 통해 밝혔던 바와 같이, 조금 마이너하고 특수한 교회를 다니고 있다.

  •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를 믿고 주장한다. 이게 단순히 가장 우수한 번역본인 정도를 넘어서 무오한 최종 권위라고 생각한다. 영어라는 언어에 특별한 섭리가 있었다고 믿는다.
  • 재침례: 세례를 부정하고(특히 유아 세례는 더욱) 침례교를 표방하지만, 교단을 형성하고 있는 여느 침례교는 아니다. 그렇다고 KAC인지 뭔지, 속세를 떠나 사는 듯한 아나뱁티스트 같은 교단/단체하고도 아무 관계 없다.
  • 분리· 근본주의: 여느 기성 교회들보다는 옛날 스타일을 표방하지만 그렇다고 여자는 무조건 긴 치마, 강단에 설 때는 무조건 정장, "형제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무조건 목사님이라고".. 그 정도까지는 절대 아니다.

그리고 하나 더.. 본인의 반공 우파 성향은 본인이 다니는 교회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으며, 신앙 노선과는 별개이고 무관함을 밝힌다. 구국 애국 운동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개인이 각자 따로 할 일이지, 지역 교회가 교회 간판을 걸고서 할 일이 아니다.
이건 심지어 일제 시대에 크리스천이 3· 1 운동에 참가할지의 여부를 판단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잣대이다.

본인은 좌독은 국가관 역사관 말고 다른 분야의 교리나 행실이 그나마 건전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일말의 일관성과 논리와 신념이 있기라도 하면.. 동의는 안 해도 인정은 해 주는 등급이다. 나와 간극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만큼이나 한 분야에 대한 생각이 다른 사람 정도로 간주한다. 그게 아니면 단순 반골기질 쩌는 여느 철없고 분별력 부족한 육신적인 신자, 구원받고도 술· 담배 못 끊고 있는 신자 급일 뿐이다.

그리고.. 교회에서 만날 때나 형제라고 대하고 존중해 주지, 전쟁터 내지 빨갱이들 폭동을 진압하는 내전 현장에서 마주치게 된다면 내가 살기 위해 그에게 부득이하게 총질을 할 수밖에 없다. 마치, "나는 인간으로서 개인적으로는 피고를 동정하지만 나의 직분인 판사로서는 법에 따라 피고에게 합당한 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처럼 말이다. 그런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무튼 정치 얘기는 그렇다 치고 종교 분야만으로 관점을 좁히더라도,
본인의 신앙 노선은 참 안타깝게도 대외적으로 긍정적인 게 별로 없다. 본인도 이에 대해 아주 잘 인지하고 있다.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가 이단시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세대주의, 영혼몸 삼분법, 구원의 영원한 보장, 재창조 간극까지 어쩜 이렇게 인지도가 좋지 않은지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 보면 놀랄 놀 짜였다. 내가 지금까지 우물 안 개구리였다.

기독교계는 왜 이렇게 교리 교파가 찢어져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왜 지금과 같은 노선을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
성경이라는 책은 어디까지가 그냥 묻지 말고 일단 믿어야 하는 공리, 즉, 합법적으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에 속하고 어디부터가 그로부터 파생되는 논리와 일관성인지..
하나님에 대해 서로 모순되는 두 속성이나 진술을 어떤 원칙과 체계에 따라 종합하고 조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따지면서 봐야 한다. 본인의 신앙관은 이 원칙을 토대로 형성되었다.

개나 소나 하나님에 대해서 한 면모를 적당히 좋게만 포장해서 말하면 전부 "와 그런가 보다" 하고 한쪽에 자기 꿀리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큰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예정과 섭리를 더 좋아하는 파벌, 선행을 더 좋아하는 파벌, 거룩과 공의를 좋아하는 파벌, 힐링힐링을 더 좋아하는 파벌 등등으로 말이다.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가 벌어진다. 기독교계가 온통 파편화돼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를 하자면.. 기독교계는 절대로 깔끔 깨끗한 동네가 아니다.
일반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두 말할 나위도 없고, 성경과 교리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신학계까지도 말이다.

수학· 과학 같은 곳은 진짜 닥치고 머리 좋은 사람이 이기는 곳이고, 승부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스포츠로 치면 양궁 같은 곳이다. 화살이 과녁 중심에서 시각적으로 얼마나 가까이 꽂혔는지만을 판정하는 일에 개인 주관이나 믿음이나 신념이나 양심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선수 간의 몸싸움· 반칙이나 판정 조작도 있을 수 없다.

가~끔 뭐 자기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했네, 4색 정리를 더 간단하게 증명했네, 리만 가설이나 P/NP 문제를 증명· 반증했네, 영구기관을 발명했네, 지구가 평면이네 등의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 나타나긴 하지만 다 걸러진다. 거기는 철저한 관찰과 상호 검증이 가능하기 때문에 주류 다수의 주장이 대체로 옳다고 생각하면 안전하다.

누군가가 실적과 돈 때문에 실험 결과를 조작하고 논문을 표절하고 연구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고 다 적발된다. 사람이 아무리 악하고 마음 속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한다고 해도, 수학적인 엄밀함까지 판별할 능력이 없을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수학 말고 관찰이 수반되는 과학 쪽도.. 지금이 옛날처럼 과학과 철학의 경계가 없고 플로지스톤이나 자연발생설이 지지받던 시절은 아니니, 지금까지의 물리 법칙이나 과학 발견이 예측 가능한 미래에 뿌리째 싹 뒤집힐 일은.. 0은 아니어도 거~의 없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악의적인 원인 때문은 아니다.

허나, 신학 쪽은 사정이 저렇지 않다.
신앙은 주관적이고 증명 불가능한 믿음을 수반하며, 성경 역시 무슨 수학· 과학 논문처럼 접근 가능한 책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추잡한 본성이 똥고집까지 가미되어서 자기가 꼴리는 대로 믿으면서 그야말로 별 희한한 이단 교리, 궤변, 온갖 지적 사기들이 마음껏 횡행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기는 역설적으로 다수 주류만 따른다고 해서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바르게 믿고 행하던 교회나 신학교조차도 다수 주류가 되고 시간이 흐르고 나면 또 순수성을 잃고 배도하고 변질되고 타락한다. 그러니 뜻있는 사람들 일부가 분리되어 나와서 자기 조직을 또 세우고 그러다 거기마저도 타락하여 분리가 발생한다. 창세기 26장에서 이삭이 우물을 파고 또 파듯이 말이다.

이게 이 바닥이 흘러가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이 큰 그림, 패턴을 모르니까 성경도 그냥 여느 고전 텍스트처럼 학자들이 알아서 더 나은 번역을 만들어 주고 잘 개정해 주는 줄로만 알고.. 사람들이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에 대해서 이상한 오해를 하고 이단시하는 것이다.

이 바닥이 정말 X나게 더럽고 지저분하고 파편화된 바닥인 건 사실이다. 창조 연대기에 대해서도, 사형 제도에 대해서도.. 뭐 하나 일치하는 걸 찾기가 몹시 어렵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여기가 조화가 아닌 생화가 있고 정말 거물급 보물이 있기 때문에 벌레들이 들끓는 것이다. 골치아프고 진입로가 더럽다고 해서 진리를 찾는 걸 포기해 버리고 때려치우면, 그것도 게임에서 지는 거다.

뭐, 다수 주류만 따라가면 최소한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는 진짜 정신나간 막장 사이비 정도는 걸러낼 수 있다. 하지만 수준이 딱 거기서 끝이다. 그냥 철도교 믿는 수준의 종교 생활까지만 가능하지, 최상의 금덩어리(?)까지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대한 성경으로 성경을 풀이하고, 교리 간에 논리적으로 연결 고리가 생기는지, 나한테 당장 육신적인 탐욕 대신 영적 만족을 채워 주는지, 모든 사람이 나처럼 믿고 행했을 때 교회나 사회가 제대로 유지되겠는지 이런 것들을 따지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경을 공부하면.. 정말 어지간해서는 이상한 결론으로 빠질 일이 없다. 어린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우면서도, 한편으로 박사에 교수라도 삼천포로 훅 갈 수 있는 게 이 바닥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그러니 기독교 교리 논쟁을 할 때만큼은 "니만 맞고 나머지 많은 신자들은 다 틀렸다는 거냐?" 이런 소리는 좀 안 나왔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듣기 싫은 소리이다. 그럼 애초에 예수는 왜 믿기 시작했는지 난 그것부터가 너무 궁금하다. 불신자들도 완전히 똑같은 질문과 불평을 하는데 말이다.
난 이런 상황을 정말 많이 겪어 봤다. 이 논리가 기독교 vs 비기독교뿐만 아니라 기독교계 내부에서도 동일하게 "재귀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이 홈페이지의 주인장인 내가 종교관이 완강하고 고집 세다고 느껴진다면.. 99%는 그렇게 느끼는 그 당사자도 완전히 동급으로 완강하고 고집이 센 사람이다. 이는 마치 작용-반작용 법칙과도 같다.
그 사람도 남이 말하는 근거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얘기만 밀어붙이고 싶은 상태이다. 그리고 성경 구절이나 논리로 반박을 못 하면 그 다음엔 말투가 어떻네 교만하네 고집이 세네 사랑이 없네 하면서 주변의 태도나 인성 운운하며 다른 트집을 잡기 시작하는 게 사람의 심성이다. 그런 자세로는 남과 논쟁을 하고 남을 설득할 수 없다.

학교에서 애들에게 진화론을 가르쳐서 무신론 우생학을 주입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대안이라는 그 좋은 창조 연대기에 대한 견해가 자기들끼리도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룡 발자국 화석이나 노아의 방주 흔적, 그랜드 캐니언을 찾아 다니기 전에 성경이 말하는 이전 세상 개념부터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성경에 대해 더 잘 알고 성경을 성경으로 바르게 풀이하는 안목을 기르고,
성경의 난해 구절들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라고 신학을 하는 건데..
성경 따로 신학 따로는 마치 믿음 따로 행위 따로만큼이나 서로 굉장히 안 어울리는 모습이다.

* 추신: 내부 분열

이렇게 양심과 신념상의 이유로 인해 대세를 따르지 않는 좁은 길 마이너한 진영이 생기는 것 자체는 어쩔 수 없다 치는데, 그럼 마이너한 걸 믿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잘 뭉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안 그래도 작고 좁은 진영 내부에서도 별 희한한 걸 갖고 반목이 발생해서 더 갈라지고 찢어지곤 한다.

이건 굳이 기독교계의 킹 제임스 진영만 그런 게 아니다. 안 그래도 1%도 채 안 되는 세벌식 글자판 진영이라든가, 정치 이념 쪽의 우파 애국 보수 진영이라든가.. 내가 관심을 가져 본 마이너한 진영들에서 한 치의 예외 없이 발견되더라.

교회 내에서 성경 해석의 차이 때문에 갈라지는 것이면 그건 어쩔 수 없다 치는데.. 이거 뭐 영어나 히브리어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한국어 호칭 사용이 자기 스타일이 아니고 마음에 안 든다고.. 안 그래도 좁은 진영에서 이 정도 퀄리티를 갖춘 교회를 애써 찾아왔다가 저게 그렇게 휙 돌아서고 떠날 정도의 사유인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물며 완전히 세상적인 이념 진영인 유명 우파 논객들 간의 팀킬 싸움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본인은 의사는 환자를 강압적이고 거칠게 대하더라도 돌팔이가 아니라 환자 치료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방망이 깎던 노인" 스타일을 존경하고 인정한다. 기본적인 말투가 싸가지 없고 행실이 거칠더라도, 그 껄렁껄렁한 전투력과 팩트폭력이 좌빨들을 까고 공격할 때 일관되게 발휘만 된다면 그 실력을 존중해 준다. 박 근혜, 황 교안 같은 인물에 대한 생각이나 땅굴· 5 18에 대한 생각이 나와 살짝 다르더라도 그건 아무 문제될 게 없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본인처럼 판단하지는 않던가 보다.

난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같은 편인데 우리 좀 싸우지 맙시다"만 붙들고 있을 생각도 없다. 내부 분열은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면모도 있다.
얘들은 개돼지 좀비 레밍 들쥐가 아니고, 교활한 기회주의 웰빙 타입도 아니다. 근본적으로 자기 개성과 고집이 아주 분명하고 뚜렷한 사람들인데 어찌 좌빨 홍위병 같은 급의 무식한 개떼 단결과 결집이 가능하겠는가? 한 단점이 없는 대신 다른 쪽에 한계와 단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반목과 갈등이 생겨서 평소에는 각자 찢어져서 제 갈 길 가더라도, 그래도 더 큰 공통의 적을 맞닥뜨리게 됐을 때만은 잠시 동안이라도 같이 손을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람에게 너무 많이 바라다가 실망하지도 말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12 08:35 2019/12/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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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지금과 같은 고속도로 번호 체계는 2001년에 전면 개편되어 그 해 8월 24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체계는 무식하게 개통된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는 게 아니라, 숫자의 번호만 보고도 이 도로가 횡축인지(0부터 시작하는 짝수) 종축(5부터 시작하는 홀수)인지, 대략 어느 위치를 지나는지(대소 비교), 간선인지 지선인지(2~3자리), 지역 순환선인지 같은 것을 얼추 알 수 있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체계는 첫 도입됐던 당시에는 굉장히 참신하고 합리적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마치 2004년 버스 노선 개편처럼 말이다. 홀짝으로 종축· 횡축을 구분하는 것은 기존 국도의 번호 체계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이제 고속도로의 번호도 그런 관행을 더 깔끔하게 따르게 되었다. 고속도로도 앞으로 국도처럼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많이 깔릴 것을 미리 염두에 둔 것이다.

이 체계의 큰 특징은 개통 시기나 사업 주체가 다르더라도 같은 선형이면 동일한 도로라고 보고 동일한 번호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논산-천안 고속도로는 혼자 따로 노는 민자이지만 기존 호남 고속도로와 동일하게 25번이며, 부산-대구 민자 고속도로도 기존 중앙 고속도로와 동일하게 55번이다.

이때 서울-안산 고속도로가 서해안 고속도로(15)로 편입됐으며, 반대로 처음에 서해안 고속도로 소속이던 안산-신갈 구간은 깔끔하게 영동 고속도로(50)의 서쪽 구간으로 넘겨서 각각 종축과 횡축으로 선형을 일치시켰다.

이는 마치 서울 지하철 4호선에다가 코레일 과천선과 안산선을 몽땅 하늘색으로 엮어서 '수도권 전철 4호선'이라고 표기한 것과 비슷한 통합이다. 어차피 열차들이 직통 운행을 하니까 말이다. 지하철과 국철의 구분을 없애고, 서울 지하철 1호선에서 지하철 고유색인 빨강이 사라진 게 2000년 4월부터이다.

그리고 철도계 역시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미래에 동일선상의 직결 운행이 예정된 전철들은 같은 색깔로 표기하고 있다. 경의선과 중앙선이 대표적인 예이고, 지금 수인선도 분당선과 동일하게 노란색으로 표기하고 있다.
김포 경전철의 경우, 비록 시스템적으로 서울 지하철 9호선과 직결 운행을 할 수는 없지만 개념적으로 9호선의 연장선상이라고 보고 9호선과 동일한 금색/커피색을 내세우는 중이다.

시스템이 그런 식으로 바뀌었는데..
고속도로의 경우 요즘 하도 많이 생기고 있어서 정신이 없다. 옛날의 경부라든가 서해안, 중앙, 중부내륙처럼 장거리 간선들을 작정하고 바둑판 형태로 만들던 시절은 이제 지났다. 그 대신 여기저기 찔끔찔끔, 복잡한 선형으로 개통하는 게 많은지라, 번호를 어떻게 부여하면 좋을지 직관적으로 예상이 안 되는 게 늘었다. 가령, 15 서해안으로도 모자라서 151(서천-공주)에다 17(평택-파주), 171(용인-서울) 등등..
전라선 철도의 고속도로 버전인 순천-완주는 27이고, 구리-포천은 29..

사실, 제2중부 고속도로도 지금 같은 컨벤션이라면 37보다는 351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결코 짧지 않은 영천-상주조차 301이 됐는데 말이다. 그리고 두 자리 수 번호 중에 x1, x3은 앞으로 쓰일 일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기왕 이 번호 체계가 깔끔하게 유지되려면 미래에 건설될 고속도로들의 전체 큰 그림에 대한 굉장한 선견지명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프로그래밍에다 비유하면, 미래에 구현될 기능까지 다 염두에 두고 부모 클래스와 가상 함수들을 미리 세밀하게 설계하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그리고 끝으로, 고속도로의 이름은 기점과 종점 도시를 연결하는 형태로 지어지곤 하는데, 어디가 기점이고 어디가 종점일까? 철도만 해도 역의 번호를 부여하는 순서가(상· 하행) 노선별로 굉장히 케바케 뒤죽박죽인데, 비슷한 문제가 고속도로의 작명 방식에도 존재한다.
가나다 순서인지, 서울에서 가까운 순서인지, 바다에서 가까운 순서인지.. 301은 공식 명칭이 영천-상주가 아니라 상주-영천인 걸 보면.. 도대체 원칙이 무엇인지 난 잘 모르겠다.

옛날에 경부 고속도로가 처음 생겼던 시절에는 '간'이라는 단어까지 있어서 '서울-부산간 고속도로'였는데, 그게 '경부 고속도로'라고 축약되었고, 이후의 고속도로들은 다시 도시 이름을 full로 붙이는 게 유행이 됐다.
가령, 60번 고속도로는 잠시 '경춘 고속도로'라고 불린 적이 있었지만 더 연장된 뒤부터는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됐다.

사실, 한국 도로 공사에서는 궁극적으로는 고속도로에도 이름을 없애고 국도처럼 번호만으로 모든 것을 식별하려 하고 있다. 물론 예전의 오랜 관습이라든가 사업 구간의 차이에 따른 구분 때문에 이름이 가까운 미래에 완전히 없어질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름뿐만 아니라 재래식 톨게이트도 없애는 게 궁극적인 장기 계획이니.. 우리나라의 교통 시스템은 이것저것 바뀌어야 할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개인적인 생각은 이름 다음에는 '고속도로'라는 칭호를 붙이고, 번호 다음에는 '고속국도'를 붙이는 게 어떨까 싶다. 예를 들어 "호남 고속도로와 논산천안 고속도로는 모두 고속국도 25호선(또는 25번 고속국도)에 속한 구간이다" 같은 식이다.

한편, 도로 말고 서울의 한강 교량들은 처음에는 개통 순서대로 "제n 한강교"라고 이름을 붙여 왔다. 그러다가 다리의 수가 늘어나고 번호가 뒤죽박죽 꼬여 가자, 번호만 상류에서 하류 순으로 오름차순 리넘버링하는 식으로 개편하지 않았다. 번호 자체를 없애고 마포, 반포, 한남처럼 교량마다 고유한 이름을 붙이게 됐다. 1980년대에 한강 종합 개발 사업을 시작하면서 취한 조치이다.

교량이야 도로처럼 선이 아니라 강의 특정 지점이라는 점에 가까운 개념이니, 고유한 이름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고속도로도 나들목들까지 이름을 싹 없애고 번호만 붙이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다만, 나들목도 외국인이 알아보기 쉽게 번호를 병기하자는 의견도 소수나마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07 08:33 2019/12/0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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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활절, 이스터, 유월절 / 주일, 안식일

이전에도 몇 차례 언급한 적이 있지만..
킹 제임스 성경은 지구상의 성경 역본들 중, 행 12:4에서 유월절 대신 '이스터'라는 단어를 사용한 유일한 역본이다.

이건 성경 역본 문제에서 자주 다뤄지는 원문· 본문 계열이 아니라, 번역 단계에서의 문제이다. 말이 통째로 변개되거나 삭제된 건 아니고 똑같이 그리스어 '파스카'인데, 그냥 평범하게 유월절이냐, 아니면 이스터이냐로 번역이 갈린 것이기 때문이다.

KJV의 '이스터'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과 타 이교도들이 지키던 이스터가.. 어쩌다 보니 날짜만 좀 가까울 뿐 본질은 서로 무관한 별개의 사건임을 알려주는 "신의 한수"가 가미된 탁월한 번역이다! 내가 이런 성경을 알게 된 건 감사와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봄의 여신이니, 니므롯-세미라미스 패밀리니 뭐니 하면서 놀던 pagan 이스터가 주님의 부활하고 어찌 같을 수가 있겠는가?

내가 수인선의 복선전철 부활을 기념하는 철도교 신자이고, 아직 구원받은 크리스천은 아니라고 치자. 그런데 나중에 예수를 믿게 됐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예수님의 부활이랑, 폐선됐던 수인선 협궤 열차의 복선전철 부활이 개념적으로 비슷해 보인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수인선이 개통한 날짜 근처의 주일을 부활주일로 설정하고 부활 찬송 부르면서 예배 드리고.. 이스터 에그 대신 열차 장난감을 나눠 준다고 생각해 보자.

예수님의 부활을 기리는 거니 막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뭔가 짬뽕이 되고 앞뒤가 안 맞고 이상하다는 느낌이 팍팍 들 것이다. 약간 어거지 같은 비유를 동원했지만 부활절이란 게 위상과 의미가 딱 저렇다는 것이다.

사실 신약 크리스천들은 굳이 이스터니 부활절 따위가 없어도 예수님의 부활 기념은 암묵적으로 늘 해 오고 있다. 매주 첫째 날 일요일에 교회에 모이는 것 자체가 주님의 부활한 요일을 기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주일/일요일이 유대인의 안식일과도 개념적으로 다른 날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안식일이 끝나고 주의 첫날이 밝아오기 시작할 때에..." (마 28:1; 막 16:2, 눅 24:1, 요 20:1도 참고) 주일은 안식일이 아니다.

KJV에 적대적인 사람들은 나와는 당연히 반대로 주장한다. KJV에만 들어있는 단어들은 원문에 없다가 후대에 추가된 것이고, '이스터'는 오역이라는 식으로 반박한다. 마음대로 생각하시길..
성경에 따르면 베드로는 무교절 기간에 체포됐는데(행 12:3), 무교절은 유월절이 끝난 뒤의 이벤트이다. 그런데 유월절이 끝난 뒤에 베드로를 끌어내는 건.. 그럼 그건 설마 내년 유월절인 걸까? 이것도 생각할 점이다.

종교 개혁자의 신앙을 계승한다면서 정작 종교 개혁자가 전해 준 계열의 성경을 이단시하고, 차이가 나는 내용은 후대에 첨가된 것일 뿐이라고 우기는 건.. 뭐랄까 할배와 원조가카의 공은 다 누리고 편하게 살면서 그 사람들이 못한 것만 욕하는 것과 비슷하고, 고기는 좋아하면서 도축업자들은 천시하는 것과 비슷한 앞뒤가 안 맞는 모습이다.

2. 미스터리와 씨크릿 (신비 vs 비밀)

미스터리란.. 인간의 이성이나 논리로 이해가 안 되는 엄청나게 대단한 불가사의, 미제 사건 같은 걸 가리킨다. 해결되고 풀리는 건 대체로 좋은 현상이다.
그 반면, 씨크릿은.. 그냥 아무나 알 수 없고 특정 계층만이 접근 가능한 정보를 가리킨다. (1) 몰랐을 때는 답답해서 환장하겠지만 알고 나면 별것 아님, (2) 잘못 누설되고 발설되면 누군가가 곤란해질 수 있다는 뉘앙스가 좀 담겨 있다.

물론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둘이 별 구분 없이 섞여 쓰이기도 한다.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라든가 "생명 영원한 신비"라는 TV 프로가 있었고,
한편으로 대전 엑스포 주제가 "그 날은"의 2절 가사에는 "우주 안에 감추어진 비밀을 차근차근 벗겨 가 보면"이라는 문구도 있다.

"달 뒷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달 뒷면의 XX" 안에는 비밀도 들어가고 신비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비밀은 인간의 입장에서 무진장 궁금하다는 관점에서, 그리고 신비는 달이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경이로운 장소라는 관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성서 초등학교 개구리 소년 5명이 정확하게 어떻게 죽은 걸까, 영등포 노들길 살인 사건의 범인은 누굴까?",
이런 건 미스터리라고 하지 비밀 사건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내 컴퓨터의 로그인 패스워드를 갖고 신비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성경에는 '경건의 신비'(예수님의 성육신, 딤전 3:16), '불법의 신비'(살후 2:7), 이스라엘의 신비(롬 11:25), 큰 음녀 바빌론의 신비(계 17:5-6) 등의 여러 미스터리들이 언급돼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경들은 이 단어가 신비 대신 비밀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저런 것들을 미스터리라고 읽는 사람과 씨크릿이라고 읽는 사람은 이런 어감의 차이가 쌓이면서 성경관이나 신학 노선이 달라지게 될 것 같다. 몇 가지 예를 더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은 명백하게 hell이지, 스올, 하데스, 무덤 등등의 이상한 곳이 아니다.
  • 성경이 말하는 악한 마귀는 demon이 아니라 devil이다. 흥미롭게도 월트 디즈니 포카혼타스에서는 Savage 노래에 두 단어가 모두 나오더라. 원주민들은 dirty stinking devil, 백인은 pale-faced demon이라고..;;
  • 성경을 호러물처럼 읽는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성경에는 귀신이나 유령 같은 건 없고(마 14:26, 욥 4:15), 그냥 영이 있을 뿐이다. 한편으로 영과 혼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이걸 모르면 영적인 영역과, 단순히 정신적인 영역을 구분하기도 어려워진다!
  • 성경에서 단순히 피고용자(employee), 부하, 하인을 가리킬 때 사용한 용어는 노예가 아니라 그냥 종(servant)이다. 엡 6:5, 골 3:22, 딛 2:9 같은 구절 말이다.
  • 끝으로, 성경이 말하는 사색 방법론은 묵상이지, 명상이 아니다. 뉴에이지 같은 데에 너무 심취해 있으면, 창 24:63에서 이삭이 저녁에 무슨 요가나 파룬궁 수행이라도 하러 들판에 나간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_-;;

3. 나열과 인과 관계

  • "고통을 늘리고 수태를 늘리고"이다. (창 3:16) multiply thy sorrow and thy conception
  • "물에서 나고 성령에서 나서 총 두 번 태어나고"이다. (요 3:5) be born of water and of the Spirit
  • 예수 믿으면 네가 구원받고, 그 뒤에 복음화가 진행되면 네 집안 사람들도 뒤이어 예수 믿어서 구원받는다. (행 16:31) thou shalt be saved, and thy house

수태의 고통을 늘린다는 얘기가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건 '합집합'이지, 이런 교집합이 아님)
물과 성령을 동시에 동원해서 태어난다는 얘기가 아니고,
네가 구원받는 덕분에 네 집도 덩달아 자동으로 싸잡아 구원받는다는 얘기도 아니다.
둘을 따로따로 구분해서 봐야 한다.

4. 휴거 몸 부활 관련 찬송

찬송가 책을 아무거나 펴서 분류별 차례를 보면, 끄트머리에는 가사가 미래 시제인 것들.. 즉, 재림, 천국, 내세를 다룬 곡들이 꼭 있다.
사실, 다른 카테고리에 속하는 찬송가 중에서도 '마지막 절'은 그런 미래를 다루는 가사가 써져 있기도 하다.

가령,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는.. 전반적으로야 명백하게 지금 현재의 '위로와 평안' 카테고리에 속하지만, 마지막 4절은 "공중 나팔 소리" 운운하면서 예수님 재림을 다룬다. 그러면서 그때도 나는 평안할 거라고 노래한다.
이런 식으로 가사가 총 n절 있는 찬송가라면, 1~n-1절은 평범한 내용이다가 마지막 n절은 그렇게 미래 시제이거나, 혹은 불신자에게 구원을 초청하는 패턴인 것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런 찬송가 가사들이 다루는 미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내가 죽어서 곧장 셋째 하늘로 가서 주님을 뵙는 것 (키워드: 새 예루살렘, 진주 문, 황금 길 등등~)
(2) 아니면 나는 관심 대상이 아니고 예수님이 그냥 공중이든 지상이든 뭉뚱그려 재림하시는 것 (키워드: 천년왕국, 다스림, 심판)

(1)은 그 특성상 기독교식 장례식 때도 즐겨 불린다. 다만, 가사가 묘사하는 장면은 계시록 21장 이후 천년왕국이 다 끝난 영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마디로 먼 미래다. 그 장면이 비주얼이 뽀대가 나기 때문이며, 안식과 소망을 노래하는데 그 전 단계인 그리스도의 심판석 같은 걸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2)에 속한 곡은 비교적 가까운 미래를 다루지만 가사가 교리적으로 맞는지 잘 분간할 필요가 있다. 가령, "오랫동안 고대하던 천년왕국 이를 때"는 시간 순서가 거꾸로 배열돼 있다. (교회는 천년왕국보다 훨씬 전에 먼저 들려 올라가는데??)

이런 것에 비해.. 살전 4와 고전 15를 근거로 (3) 성도의 몸의 부활(예수님의 부활 말고), 휴거, 예수님의 공중 재림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곡은 드문 편이다. (키워드: 부활, 깨어남, 몸의 변화, 일어남, 나팔 소리, 공중..)

하긴, 잘못된 종말론 미혹이 야기한 각종 병크 때문에 요즘은 종말 자체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기독교계에서 매우 무뎌져 있다. 그리고 교회 시대 전체를 통틀어서 살아서 몸의 변화와 휴거를 직접 경험할 사람의 비율은 마치 예수님 동시대의 사람만큼이나 매우 미미하기도 할 것이고 말이다.

그래서 본인은 지난 여름에 청년부 특송 때 특별히 (3)에 속하는 곡을 엮어서 불러 보기도 했다. "하나님의 나팔 소리 천지 진동할 때에" + "부활 아침 돌아오면" + "금빛 찬란한 아침에"의 순으로.
혼이 구원받아서 하늘로 간다는 것에 비해, 미래에 "몸도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고 변화된다" + "특히 죽음을 아예 맛보지 않고 들려 올라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까지 늘 염두에 두는 신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04 08:35 2019/12/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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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부 고속도로 금토 JC

용인-서울 고속도로(171)가 개통한 지도 어언 10년이 넘었다. 2009년 7월이니 서울 지하철 9호선의 1차 개통일과 아주 비슷하다.

근처의 경부 고속도로는 수원 이북으로 서울 TG를 넘어 판교 부근까지 10km가 넘게 곧은 직선이다. (다만, 오르내리막 기복은 이따금씩 있음) 한때 비상 활주로를 표방했을 정도로 직선이며, 게다가 지리적으로도 경도의 변화가 거의 없이 위도만 변하는 그 직선이다.
그에 비해 서쪽의 용인-서울 고속도로는 서수지-서분당 등의 구간도 적당히 구불구불한 곡선인 것이 인상적이다.

또한, 얘는 길이가 어중간하게 짧아서 휴게소가 전무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고속도로와 연결되는 분기점이 전혀 없는 것도 이례적이었다. 허나 바로 작년 말에 경부 고속도로와 연결되는 금토 분기점이 개통되면서 이 역시 옛말이 됐다.

두 고속도로는 X자 모양으로 교차한다. 경부 하행에서 용인 하행으로 갈아탈 수 있고, 반대로 용인 상행에서 경부 상행으로 갈아탈 수 있다. 다시 말해, 헌릉 IC를 거치지 않고도 용인 고속도로를 드나들 수 있게 해 준다.
금토 JC는 이 두 길목만 존재하는 아주 자그마한 분기점이다. 하행이 더 만들기 쉬워서 작년 여름에 먼저 개통하고, 상행은 산을 깎고서 270도 꼬부랑 턴을 해야 하는 관계로 어려워서 반 년 남짓 늦게 개통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머지 방향이야.. 뭐 상행과 하행을 전환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용인 하행에서 경부 하행으로 간다거나, 경부 상행에서 용인 상행의 헌릉IC 방면으로 가는 길목도.. 딱히 가성비가 맞지 않다고 여겨져서 만들지 않았다. 정말 최소한의 조치만 취한 셈이다.

금토 JC는 외곽순환 고속도로와 교차하는 판교 JC를 제치고, 경부 고속도로의 최북단에 있는 분기점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뭐, 판교 JC는 X가 아닌 +형이며, 경부에서는 상행만이 저쪽으로 갈아탈 수 있고, 외곽순환에서는 경부의 하행으로만 갈아탈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2. 톨게이트가 이원화된 IC

폐쇄식 고속도로에는 고속도로와 일반 도로를 연결하는 IC(나들목)가 있고, 그 길목에는 톨게이트(요금소)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1IC 1TG가 원칙(?)이며, 고속도로에 진입한 차량은 톨게이트를 통과한 뒤에 상· 하행 방향을 선택하여 분기하게 된다.

그런데 드물게 톨게이트가 둘 달린 IC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한 지역에서 동서남북 접두사가 붙은 IC가 여럿 흩어져 있는 것 말고, 한 IC에 대한 톨게이트가 복수인 것 말이다.
경부 고속도로 수원신갈 IC의 경우.. 교통량의 증가를 감당치 못해서 원래 있던 비스듬한 IC는 고속도로 진입 전용으로 바꾸고, 더 남쪽에 시내 진출 전용 IC를 추가로 만들게 됐다. 즉, 수원신갈 TG 쌍은 각 방향별 일방통행 형태로 바뀌었다. 2010년대의 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중앙 고속도로 제천 IC도 톨게이트가 둘인데, 여기에는 좀 더 기괴한 사연이 있다.
지금으로서는 믿기 어렵지만, 처음에 중앙 고속도로의 그쪽 구간은 왕복 2차로에다가 '개방식' 요금제 형태로 건설되고 있었다. 장거리 간선 고속도로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만들기 시작했나 모르겠다. 중앙 고속도로가 최초로 만들어지던 모습을 보는 건 마치 스타크래프트나 Doom의 먼 개발 초기 알파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과 비슷하지 싶다.

그러다가 한창 건설을 하던 중에 감사원의 지적으로 인해 법이 바뀌었다. 1992년 4월엔 앞으로 모든 고속도로는 처음부터 최소한 4차로 이상의 형태로 만들 것이고 지금 당장 건설 중이거나 건설 예정인 고속도로에도 이 원칙을 소급 적용한다는 건설부의 방침이 내려왔다. 그래서 중앙 역시 지금처럼 폐쇄식 4차로라는 정상적인 형태로 뒤늦게 뜯어고치게 됐다.

원래 중앙 고속도로(수직)의 제천 IC 밑으로는 국도 5호선(수평)이 지났으며, 이들은 별다른 톨게이트 없이 평범하게(?) 입체 교차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뒤늦게 확장하고 폐쇄식으로 고치면서, 고속도로와 교차하던 국도의 양 옆에 톨게이트가 설치됐다.

이미 입체교차로 자체는 건재하고 있으니 방향별로 단일 톨게이트로 안내하는 길을 따로 또 만드는 수고를 하지는 않은 것이다. 국도의 일부 구간이 톨게이트로 가로막혀 버렸기 때문에 국도 5호선의 기존 구간은 장평천 이남으로 살짝 이설되었다.

뭐, 당연한 말이지만 서쪽과 동쪽의 어느 톨게이트로 진입하더라도 중앙 고속도로의 상· 하행 아무 방향으로 갈 수 있다. 고속도로에서 진출 역시 상· 하행 어느 쪽에서도 동쪽과 서쪽 아무 톨게이트 방면으로 진출할 수 있다.
지도를 보면 인터체인지가 사통팔달 통하는 전형적인 클로버형인데, 서남쪽만(3사분면..;; ) 장평천 때문에 공간이 부족해서인지.. 고속도로 하행에서 국도 동쪽으로 진출하는 연결선의 선형이 좀 다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듯, 교통량 증가 때문이든, 출생의 비밀 때문이든 톨게이트가 2개 이상이 된 고속도로 나들목이 또 있는지 궁금하다.

  • 중부(35): 꽤 옛날에 만들어졌지만 서울· 수도권과 가까운 위치 덕분에 2차로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애초부터 4차로로 만들어졌다. 다만, 이것마저도 너무 비좁아져서 제2중부(37)를 또 만들게 됐을 뿐이다.
  • 중부내륙(45)/통영대전(35)/서해안(15): 역시 처음부터 4차로로 만들어졌거나, 타이밍의 특성상 도중 설계 변경의 타격을 별로 입지 않은 듯하다.
  • 옛 88 올림픽(12): 전구간 2차로로 당당히 만들어졌으며, 알다시피 도로의 저퀄리티와 높은 사고율 때문에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큰 악명을 떨쳤다. 영동 고속도로도 마찬가지였지만 얘는 88보다는 훨씬 일찍 새 도로로 대체됐다.
  • 중앙(55): 얘만 타이밍이 영 좋지 않았는지 거의 혼자 독박 쓰고 낭패를 본 듯하다. 1990년대 초까지 2차로로 길을 한창 닦고 있던 중에 대판 뜯어고쳐야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 처음부터 6, 8차로급으로 지어진 고속도로는 생각보다 드문 것 같다.
경부 고속도로 서울-수원 구간은 4차로이다가 6을 거치지 않고 곧장 8차로로 확장되고 그 뒤에 서울 구간은 10차로로까지 확장되긴 했지만, 오리지널은 4였다.

외곽순환 고속도로도 지금이야 전구간이 8차로이고 동남쪽의 중부 고속도로와 만나는 일부 구간은 10차로이기까지 하다만.. 먼 옛날에 판교-구리 고속도로 형태로 처음 만들어질 때는 당시 대한뉴스 화면을 보면 역시나 4차로(...)였다. 그나마 용인-서울은 비교적 최근에 그것도 수도권에 건설된 덕분에 처음부터 6차로였다.
철도를 처음부터 복복선으로 부설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만큼이나.. 기존 도로를 연장· 확장하는 게 아닌 이상 처음부터 왕창 거대하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도, 흔한 일도 아닌 듯하다.

다만, 요즘 세상에 어지간한 오지가 아닌 이상이야 고속도로를 겨우 2차로로 만드는 건, 요즘 세상에 철도를 꼴랑 단선으로 만드는 것과도 같은 소탐대실 단견일 것이다.
가령, 고속도로는 아니지만 '대교'라는 이름이 붙었으면서 왕복 2차로인 교량으로 내가 아는 건, 민통선 안의 교동도를 연결하는 교동대교가 유일하다. 그 정도라면 교통 수요 대비 원가 절감을 위해 2차로로 만든 걸 납득하겠다.;;

3. 천안에 있는 휴게소와 나들목

천안은 철도에서는 장항선이 분기하는 곳이며, 고속도로에서는 호남 방면의 논산천안 고속도로가 분기하는 곳이다.
그리고 북부의 북천안 IC 인근은 수원-신갈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비상 활주로 공용 구간이었기 때문에 도로가 곧은 직선이기도 하다.

경부 고속도로의 행정구역상 천안 구간에는 북쪽에서 남쪽 순으로 나열했을 때 입장, 망향, 천안삼거리, 천안이라는 4개의 휴게소가 있다.
그런데 얘들은 그 순서대로 각각 상행, 하행, 상행, 하행에만 있다. 양방향에 모두 존재하는 휴게소는 없다.
또한, 각 휴게소들 사이에 입장-(북천안)-망향-(천안)-천안삼거리-(목천)-천안의 순으로 IC(나들목)가 등장한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입장 휴게소는 자가용보다는 대형 화물차의 운전자들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져서 주차 공간이 넉넉하며, 주변의 다른 휴게소들보다 인지도가 낮은 덕분에 상대적으로 덜 혼잡하다는 장점이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건물과 주차장이 도로와 일렬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곤 한데, 얘는 휴게소 부지가 도로와는 수직으로 확보되어 있다. 휴게 시설들이 고속도로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망향 휴게소는 인근에 '망향의 동산'이라는 일종의 국립묘지가 있어서 이름이 저렇게 붙었다. 저기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묘지일 뿐, 현충원은 아니기 때문에 꼭 국가유공자나 군· 경만 묻혀 있는 건 아니다. 그 대신 타지에서 죽은 재외 동포가 묻히는데, 이런 이유로 인해 1983년 대한 항공 007편 격추 사고 희생자 위령비도 저기 안에 세워져 있다고 한다. (양재 시민의 숲에 있는 건 1987년의 858편 폭발 사고 희생자 위령비)

천안삼거리 휴게소는 이름은 많이 들어 봤지만 다른 특이점은 딱히 없는 것 같다. 저기가 무슨 계기로 언제부터 호두과자로 유명해졌나 모르겠다.

경부 고속도로 천안 북부 구간은 마치 수원-신갈-죽전 일대처럼 도로가 북쪽으로 곧게 쫙 뻗어 있어서 과거에 비상 활주로로도 쓰이던 구간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고속도로를 활주로로 공용하던 관행이 없어졌으며, 거기에는 북천안 IC까지 생겼기 때문에 비행기가 뜨고 내릴 가능성은 더 확실하게 없어졌다.

끝으로.. 영동 고속도로의 마성 IC가 에버랜드를 위한 IC라면, 남쪽에 있는 목천 IC는 독립 기념관을 위한 IC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마성은 1976년에, 그리고 목천은 1986년에 해당 시설들이 생긴 뒤에 추가로 만들어졌다.

4. 중앙 고속도로 단양 휴게소

지난 추석에 고향을 다녀올 때는 정체 구간을 우회하느라 모처럼 중앙 고속도로를 실제로 달려 보게 됐다.
그 와중에 화장실(급똥...;;ㄲㄲㄲ) 때문에 단양 휴게소를 우연히 들렀는데, 마침 얘도 공교롭게도 평범한 휴게소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본선상에서 휴게소 건물이 전혀 보이지 않으며, 휴게소 진입로가 무슨 어지간한 나들목/톨게이트의 진입로 같았다. 거의 ? 모양으로 한참을 꼬불꼬불 올라간 뒤에야 휴게소 건물이 나타났다.
휴게소를 언덕을 깎아서 옆에 가까이 만든 게 아니라, 그냥 언덕 위에다 만들었다. 그래서 본선과의 높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진출입로가 불가피하게 길어진 것이다. 이런 휴게소는 태어나서 처음 봤다.

휴게소를 굳이 그런 형태로 힘들게 만든 이유는? 여기 일대는 주변이 온통 산이어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상행과 하행이 서로 7km에 가깝게 떨어져 있으며, 둘 다 형태가 저렇다.;; (특히 경부 고속도로 입장 휴게소처럼 휴게소 건물이 고속도로와는 수직으로 배치) 이럴 거면 얘도 상· 하행 통합으로 큼직한 놈 하나만 만들지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단양 휴게소는 접근하기가 조금 힘든 대신, 다른 여느 휴게소에는 없는 유니크템을 보유하고 있다.
하행 방면의 경우, 건물 뒤에 넓은 풀밭과 '힐링 테마 공원'이라는 게 있다. 자그마한 야외 민속 박물관 컨셉으로 물레방아, 절구, 장승, 각종 뚝배기 같은 게 꾸며져 있어서 쉬어 가기 좋다.

그리고 상행은.. 아예 인근의 언덕 꼭대기에 있는 국보 제198호 "단양 신라 적성비"에 다녀올 수 있다. 휴게소 내부에 저렇게 언덕을 오르는 길과 안내판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한때 신라가 여기까지 영토를 확장했었다는 땅밟기 인증 표식이다.
경부 고속도로의 휴게소에서 고속도로 개통 관련 기념비와 위령비를 답사할 수 있다면, 이 휴게소에서는 저런 걸 잠시 보고 올 수 있다는 게 매우 흥미롭다. 공교롭게도 이 휴게소에는 중앙 고속도로 개통 기념비도 있다!
본인은 동선과 스케줄 때문에 깜깜한 밤에야 여기를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러니 주변 풍경은 다른 블로그의 링크로 대체하도록 하겠다.

이렇듯.. 중앙 고속도로는 단순 아우토반 이상으로 재미있는 사연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험준한 산악 지형이라 하면 영동 고속도로가 떠오르는 편이지만, 영동 고속도로에서 진짜 영동 산악 지형은 동쪽 끝에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 나머지 경기도 구간에서는 넓은 평지가 더 많다.
하지만 중앙 고속도로야말로 온통 산이다. 오르막엔 저속 차량용 전용 차로가, 내리막엔 구간 단속 카메라가 도대체 몇 개가 나오나 모른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01 08:38 2019/12/0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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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터빈

터빈이란 직선 운동을 하는 유체로부터 에너지를 받아서 회전력으로 전환하는 기계 장치로, 프로펠러와는 개념적으로 정반대이다. (프로펠러는 회전력으로부터 직선 추진력을 생성)
이 정의에 따르면 물레방아는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로부터 회전력을 내니 터빈의 범주에 든다. 바람개비나 풍차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생각하면 터빈은 생각만치 별것 아니다.

터빈 기반 엔진은 내연기관과 외연기관 형태로 모두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외연인 증기 터빈도 존재하고 내연인 가스 터빈도 존재한다.

2. 가스 터빈 엔진 vs 기존 왕복 엔진

터빈은 유체의 연속적인 직선 운동을 받아들이지만, 왕복 엔진은 말 그대로 피스톤의 직선 '왕복' 운동을 받아서 회전 운동으로 변환한다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터빈은 크랭크 같은 동력 변환 부품이 필요하지 않아서 구조가 더 간단하며, 진동도 더 작다. 엔진음은 털털털~ 대신 웨에엥~ 같은 소리이다.

왕복 엔진은 각 실린더마다 흡입-압축-폭발-배기라는 행정이 시간 간격을 두고 순차적으로 발생한다. 폭발이 일어나서 피스톤을 누르는 방향.. 다시 말해 생성된 동력을 전하는 방향과, 배기가스가 나가는 방향이 서로 별개이고 무관하다.

그 반면, 터빈 엔진은 연료가 섞인 압축 공기가 쭉 분사되고 폭발하고, 팽창한 배기가스가 분출되면서 터빈을 돌리는 게 행정 구분 없이 선형적으로 늘어서 있다. 한 엔진 내부에서 부위별로 각 행정들이 동시에 연속적으로 발생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터빈 엔진은 왕복 엔진처럼 실린더를 여러 개 만들어서 각 실린더가 서로 다른 행정 상태를 나타내게 할 필요가 없다.

가스 터빈 엔진은 단순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고회전 고출력에 매우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장시간 고온 고압의 배기가스를 맞으면서 초고속 회전력을 줄곧 전할 수 있는 터빈을 만드는 것이 왕복 엔진의 실린더를 잘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다. 이런 이유로 인해, 가스 터빈은 증기 터빈이나 왕복 엔진보다 훨씬 늦은 20세기 중반에야 등장하고 실용화됐다.

가스 터빈은 꾸준히 시종일관 비슷한 출력으로 돌아가는 곳에서 유리하다. 현실의 자동차처럼 가다 서기를 반복하면서 출력 강도가 널뛰기 하듯이 바뀌고 엔진에 걸리는 부하가 수시로 달라지는 것에 대한 대처는 왕복 엔진보다 불리하다. 연비도 2회전당 1회 폭발인 4행정 왕복 엔진보다 좋지 못하며, 연료 소모가 훨씬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육상 교통수단에서는 왕복 엔진이 여전히 주류이다. 가스 터빈 엔진은 탱크나 철도 차량처럼 덩치가 더 크고 출력 변화의 기복이 상대적으로 작은 물건에서만 제한적으로 쓰인다. 다만, 비행기와 선박 레벨에서는 터빈이 활발하게 쓰이고 있으며, 덩치 걱정 없이 혼자 24시간 꾸준히 돌기만 하면 되는 발전기에서는 아예 외연기관인 증기 터빈이 세상을 완전히 평정해 있다. 오늘날 우리가 집에서 사용하는 전기의 과반· 대부분은 화력이건 원자력이건 증기 터빈이 돌려 준 발전기로부터 생산된 전기이다.

가스 터빈 엔진은 왕복 엔진 같은 실린더가 있지는 않을 텐데 배기량 같은 엔진 덩치를 무엇을 기준으로 나타내는 걸까? 궁금해진다.

3. 자동차의 과급기

자동차의 엔진에서 배출된 배기가스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압력과 온도 그대로 외부에 배출하는 것 자체부터가 위험하다(소음, 화상, 화재 유발..). 즉, 화학적인 성분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상태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머플러에 통과시켜서 압력과 온도와 배출음을 크게 줄인 뒤에 배출한다.

그럼 요즘 일부 자동차에 달려 있는 터보차저(과급기)는 무엇이냐..?? 피스톤을 누르고도 아직 열과 힘이 좀 남아 있지만 그냥 버려지는 그 배기가스의 분출력을 활용해서 터빈을 돌린다. 그리고 그걸로 공기 압축기를 가동해서 엔진에다가 단위 부피당 더 고농도의 공기를 꾹꾹 눌러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얘는 순수 가스 터빈 엔진처럼 터빈 자체가 엔진에 연결되어 동력에 기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공기를 더 많이 눌러 넣음으로써 왕복 엔진의 연소 효율을 올리고 엔진 출력을 크게 향상시켜 준다. 엔진의 물리적인 크기를 키우지 않고도 배기량을 키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출력이 올라갈 수밖에.. 관계가 그렇게 된다. 터빈까지 통과하고 난 배기가스는 열과 힘을 더 활용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버려진다.

앞으로는 터빈이라 하면 공기 압축기가 계속해서 따라다닐 것이다. 이것이 내연기관 가스 터빈이 물레방아 내지 증기 터빈하고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기 때문이다. 압축기 터빈은 바람개비의 깃이 프로펠러보다 훨씬 더 많고 조밀하다. 얘는 엔진 터빈의 동력을 받아서 공기의 흐름만 바꿔 놓지, 자기가 공기의 흐름으로부터 역으로 동력을 얻는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어느 내연기관이건 처음에 시동을 걸 때는 외력이 필요하지만, 터빈이 한번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걸로 앞쪽의 압축기도 돌려서 자기 자신이 공급받는 공기의 농도가 덩달아 높아지게 된다. 애초에 자동차의 과급기도 비행기용 가스 터빈 엔진에서 쓰이는 원리를 차용한 것이다.

4. 프로펠러 비행기: 터보 샤프트와 터보 프롭

자동차는 구동축과 연결된 바퀴를 굴려서 타이어와 지면의 마찰력으로 주행하는 반면, 비행기는 뒤로 뭔가를 밀어내거나 내뿜어서 얻은 반작용으로 주행한다. 그리고 비행기는 그 역할을 뱅글뱅글 돌아가는 프로펠러가 수행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선박도 과거에 외륜 달린 증기선 시절에는 자동차와 비슷한 방식으로 물을 박차고 나아갔다. 그 반면, 요즘 선박들의 뒤에 달린 스크루는 개념적으로 비행기 프로펠러와 동일하다. 회전면이 동체의 진행 방향과 동일하냐(바퀴), 수직이냐(프로펠러)의 차이가 있다.

초창기의 비행기, 또는 지금도 경비행기 수준에서는 프로펠러를 돌리기 위해 그냥 왕복 엔진이 쓰였고, 현재까지도 쓰이고 있다. 비행기에는 실린더가 자동차 같은 선형이나 V형도 아니라, 불가사리의 팔처럼 주렁주렁 분산된 형태로 달린 성형 엔진이라는 것도 있다. 이런 비행기는 엔진 소리도 자동차 엔진 소리와 비슷하다. (붕붕이)

그러나 같은 프로펠러기여도 왕복 엔진이 아닌 가스 터빈으로 프로펠러를 돌리는 물건이 등장했다. 터빈은 재래식 왕복 엔진보다 출력과 성능이 뛰어난 덕분에 일정 덩치와 속도 이상의 체급에서는 왕복 엔진을 순식간에 대체하게 되었다. 터빈은 워낙 빠르게 돌아가기 때문에 자동차의 타이어가 아닌 프로펠러를 돌릴 때도 감속 기어를 한번 거쳐야 할 정도이다.

고정익 비행기에서는 터보 프롭이 쓰이고, 얘들만치 빠르게 움직이지는 않는 헬리콥터나 탱크 같은 다른 가스 터빈 엔진에서는 터보 샤프트 방식이 쓰인다. 후자는 동력을 전하는 터빈과 공기 압축기 터빈이 따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다. 고속에서의 효율이 터보 프롭보다 더 떨어지지만, 그래도 이렇게 해야 동력비의 변환이 그나마 더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어떤 방식으로 프로펠러를 돌리건, 프로펠러기는 시속 400~600km대의 중속에서 효율적이지, 아음속 정도에만 근접해도 자동차로 치면 '레드존'에 도달하여 출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는 엄청나게 시끄럽다. 여기서 프로펠러라는 것은 헬리콥터의 로터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헬기 조종사들이 괜히 폼으로 헤드셋과 마이크를 끼고 있는 게 아니다.

프로펠러기는 총 격발 반동만큼이나, 혹은 자동 변속기 차량의 creeping 현상만큼이나.. 조종간을 놓고 있으면 프로펠러의 회전 때문에 동체의 roll이 프로펠러 회전 반대 방향으로 서서히 기울어지는 현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시뮬레이터를 한번 만져 보면서 경험했던 기억이 있다. 제트기에서는 볼 일이 없는 현상일 것이다.

5. 제트 엔진 (터보 제트)

가스 터빈과 비슷한 20세기 중반 타이밍 때는 내연기관의 배기가스로 터빈을 돌리고 프로펠러를 돌리는 게 아니라, 배기가스 자체를 그대로 세차게 내뿜어서 추진력을 내는 엔진이 연구되고 개발되었다. 이것이 이름하여 제트 엔진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생각해 보면 이건 무척 흥미로운 면모이다.
프로펠러나 압축기를 열나게 돌리는 것만이 목표라면 전기 모터가 내연기관을 대체할 수도 있다. 육상 교통수단인 자동차나 열차처럼 말이다.
하지만 연소 배기가스를 생성해서 내뿜는 것은 전기로 구현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터는 가벼운 드론 멀티콥터의 로터를 돌리는 용도로나 쓰이고 있다.

제트 엔진부터는 엔진 꽁무니에 '노즐'이라는 게 필요하다. 호스로 물을 뿌릴 때도 호스 끝을 쥐어짜서 부피를 줄이면 물이 세게 솟구치게 되는데, 노즐이 그와 비슷한 일을 한다. 앞의 터보 프롭/샤프트 엔진도 터빈을 돌리고 난 배기가스를 분출하는 게 있긴 하지만 얘는 추진력에 기여하는 것이 아주 미미하다.

'터보 제트' 엔진에서는 압축기를 통과한 짙은 공기가 연료와 섞인 채 폭발하여 배기가스로 바뀌고, 그게 앞의 압축기를 돌리는 터빈까지 돌린 뒤 노즐을 통해 세차게 뿜어져 나온다. 즉, 이 엔진에서는 터빈이 압축기를 돌리는 용도로만 쓰인다.

사실 로켓 엔진도 본질적인 원리는 동일하다. 로켓을 연구하는 칼텍/NASA 산학 협력 연구소의 이름이 괜히 '제트 추진 연구소'인 게 아니다. 이게 만들어지던 시절에는 '로켓'이야말로 천박하게(?) 들리는 신조어이기도 했고 말이다.
다만, 로켓은 산화제를 자체 내장하고 있어서 주변 공기를 흡입하는 부분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러니 터빈이나 압축기 따위가 없다.

또한 우주 발사체용 로켓은 추력을 먼저 아래로 발생시켜서 수직 상승했다가 나중에 지구 궤도를 돌기 위해 수평 이동을 하지만, 고정익 비행기는 추력을 뒤로 발생시켜서 일단 기체를 고속으로 수평 전진시키고, 그 와중에 날개를 이용해서 양력을 덤으로 발생시켜서 상승한다는 차이가 있다. 요컨대 수직 이동과 수평 이동이 발생하는 순서가 서로 반대라는 것이다.

이 정도면 자동차와 비행기와 로켓에서 외부 공기라는 게 어떤 역할을 하는 존재인지 관계가 감이 올 것이다.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 연료를 태우기 위한 산소 공급 뒤로 내뿜어서 동체를 전진시키는 매체 양력을 일으키는 매체
왕복 엔진 자동차 O. 그래서 배기가스 기반 과급기가 달려 있으면 출력이 더 향상될 수 있음 X. 자동차는 지면에 타이어를 굴려서 나아감. 배기가스는 과급기 정도에나 쓰고, 대체로 그냥 버려짐 X. 양력이 발생하면 고속 주행 중에 차가 떠서 접지력을 잃음. 스포일러 있음.
고정익 비행기 O. 주행풍 기반 과급기가 선택이 아닌 필수 O. 비행기 엔진이 터빈 친화적인 주 이유임. 엔진 종류에 따라 단순 통과 공기 vs 연소시킨 배기가스의 비율이 케바케이나, 일반적으로 전자가 더 큼 O. 비행기는 뜨기 위해서 날개에 맞바람을 받아야 하며, 굳이 산소가 아니어도 공기 자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주 로켓 X. 산화제를 자체 내장하고 있음 X. 자체 산화제와 연료를 태운 배기가스만을 내뿜음. 공기가 없는 곳에서도 비행 가능 X. 양력이 아닌 추력만으로 비행함. 공기는 그저 저항과 마찰열을 일으키는 존재일 뿐. 날개 없음.
초음속 자동차, 비행선 (비교용) O O X
글라이더 (비교용) X X O
헬리콥터 (비교용) O X O

자전거에게는 변속기가 없어도 상관없고 있으면 오르막과 고속 주행을 더 수월하게 해 주는 부품이지만, 자동차에게는 변속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처럼 자동차에게는 터보차저(과급기, 압축기..)가 없어도 상관없고 있으면 출력을 더 올려 주는 부품이지만.. 비행기에게는 무슨 램 제트 급이 아닌 이상 반드시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헬리콥터는 비행기계의 오토바이 같은 물건이 아닌가 싶다. 일반 사륜 자동차보다 더 작고, 자동차로 불가능한 기동이 가능한 반면, 더 불안정하고 위험하다는 점에서 말이다. 뭐, 그렇다고 에어쇼 곡예 비행을 헬리콥터로 하는 건 아니니 회전익-고정익의 관계가 이륜-사륜 자동차의 관계와 완전히 동일한 건 아니다.

이런 기술 디테일을 생각해 보면..
온갖 SF물에서 우주를 날아다니는 전투기가 비행기와 너무 흡사하게 날개까지 달린 채로 묘사되었다거나..;;
심지어 팔· 다리 달린 보행 로봇이 공중에서 합체하는 장면이 현실과 얼마나 극과 극으로 동떨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6. 터보 팬

제트 엔진 중에는 오리지널인 '터보 제트' 말고도 바리에이션인 '터보 팬'이라는 게 있다.
얘는 터보 제트와 비슷하지만, 압축기보다도 앞인 제일 앞면에 엔진 자체의 직경보다 훨씬 더 큰.. '팬 블레이드'라고 불리는 바람개비가 있다는 게 차이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언뜻 보면 자동차 타이어의 휠 같다..;; 참고로 저 바람개비 하나하나가 평범한 직선이나 프로펠러 같은 선형이 아니며, 유체역학적으로 아주 신경 써서 예술의 경지에 가깝게 디자인된 것이다.)

그래서 엔진의 뒤쪽에서는 (1) 연소까지는 되지 않고 팬 블레이드에 의해 빨려들어가서 밀쳐진 공기가, (2) 중앙에서 엔진에 들어갔다가 연료와 함께 연소되고 뿜어진 배기가스를 감싼 형태로 같이 분출된다. (1)의 양이 (2)의 양보다 훨씬 더 많으며, 그 비율을 일명 '바이패스 비율'이라고 부른다.

물론 같은 크기의 엔진에서 같은 양의 연료를 주입했을 때.. 터보 팬은 더 큰 블레이드를 돌리고 엔진 주변의 공기까지 건드려야 하니 엔진 내부에서 분출하는 배기가스의 속도는 어쩔 수 없이 감소한다. 그러나 분출되는 공기의 총량은 속도가 감소한 것을 보상할 정도로 더 많아진다. 운동 에너지 1/2 mv^2에서 v 말고 m 말이다.

그럼.. 터보 프롭의 프로펠러도 회전 운동을 통해 주변 공기를 뒤로 밀쳐 주는 건 마찬가지인데, 팬 블레이드가 프로펠러와 차이점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팬 블레이드는 공기를 더 집중해서 끌어모으기 위해서인지, 프로펠러와 달리 주변에 동그란 테두리(덕트)가 감싸져 있다. 그리고 날개깃이 프로펠러보다 훨씬 더 많으며, 회전 속도도 프로펠러보다 더 높다.

뭐, 얘도 프로펠러와 비슷하다면 비슷한 물건이지만, 프로펠러와 동일한 방식으로 공기를 밀쳐내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팬 블레이드는 본진에 속하는 제트 엔진의 배기가스와 조화를 이루고 엔진 효율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주변 공기의 흐름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엔진의 바이패스비를 올리려면 팬 블레이드가 엄청나게 커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크기를 무한히 키울 수는 없다.
터보 팬은 터보 제트와 같은 출력을 가정했을 때, 분출되는 엔진 배기가스의 역할의 일부를 바이패스되는 일반 공기에다가도 분담시킨 형태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속도의 역할을 질량에다가도 일부 분담시켰다.

이런 이유로 인해 터보 팬 엔진은 출력에 비해서, 특히 프로펠러 엔진과 비교했을 때 소음이 적으며 상대적으로 정숙하다. 터보 제트보다 연비도 더 좋다. 저소음 고연비라니, 이건 민간 여객기로서 매우 큰 장점이다. 그래서 오늘날 여객기들은 모두 터보 팬으로 물갈이됐다.

그에 반해 터보 팬의 단점으로는 터보 제트보다 엔진 구조가 더 복잡하고 비싸다는 것, 그리고 질량 지향에다 바이패스 공기에 의존적인 특성상, 오리지널 터보 제트만치 고속 지향적이지는 못하다는 것이다. 터보 제트는 프로펠러로는 가능하지 않던 마하 2~3급의 전투기에도 쓰이고 콩코드 초음속 여객기에도 쓰이지만, 터보 팬은 아음속~마하 1대의 속도에서 가장 효율적이다. 터보 프롭보다는 고속이지만 터보 제트보다는 저속 영역을 접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행기가 본격적으로 음속을 돌파하려면 어차피 엔진의 특성이나 성능 말고 다른 영역들에서도 극복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 여객기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속 900~1000km대의 아음속을 유지하고 있으며, 뒷바람을 제대로 타거나 하강할 때에나 살짝 잠깐 초음속이 나오는 정도이다.

7. 램 제트

끝으로, 제트 엔진 중에는 로켓 엔진에 가장 근접하고 마하 3~5에 달하는 극초음속 최고속 비행에 최적화된 최종 단계의 물건이 있다. 이름하여 램 제트이다.
얘는 로켓 같은 자체 산화제 없이 외부 공기에 의존하지만(= 우주 비행은 불가).. 터빈과 압축기도 없다. 동체의 주행 속도가 워낙 상상을 초월하게 빠르기 때문에 그 압도적인 주행풍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공기가 유입되고, 초음속 충격파 발생 구간으로 압축도 자동으로 된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터빈 없는 제트 엔진은 기계 구조가 더 단순하고 산화제 없는 로켓 엔진이라 볼 수도 있는데.. 그 대신 얘는 저속에서는 공기가 부족해서 연소가 제대로 되지 않는 무용지물이 된다.
그리고 램 제트조차도 마하 5 정도를 넘어서면 비실대기 때문에.. 연소실 내부의 공기의 흐름까지 초음속으로 증속시켜서 그 한계를 극복한 '스크램 제트'라는 파생형도 있다. 물론 그 상태로 엔진 점화 상태를 유지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

램 제트급의 엔진이 사람이 여럿 타는 비행기에 적용된 예는 있을 리가... 아직까지는 가벼운 무인기나 미사일 같은 발사체용이다. 그래도 산화제를 안 실어서 더 가볍고 저렴한 상태로 외부 공기를 잘 활용해서 극초음속으로 날아가는 비행체이니.. 이쪽도 수요가 끊길 일이 절대로 없는 연구 분야이다.
아울러, 비행체가 처음부터 초음속 비행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속도대별로 한 엔진이 터보 제트와 램 제트로 모드를 전환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자동차 엔진을 만드는 것도 어마어마한 개발비와 다양한 실험실, 주행 시험장이 필요한데 이런 비행기 엔진의 연구 개발과 실험· 테스트는 어떻게 진행될지 참 신기하기 그지없다.

  • 자동차: 주행하는 동안 언제나 시동이 켜져 있지만(수 시간), 시동 유지를 위한 최소 출력만 내거나 퓨얼컷까지 된 상태로 타력 주행인 시간도 많음. 운전하는 동안 내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게 아니므로.
  • 비행기: 주행하는 동안 엔진 상시 가동이며, 예외적인 활강 상태가 아니면 언제나 일정 수준 이상의 출력을 내고 있음. 고도를 현상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자동차로 치면 계속해서 오르막을 주행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비행기는 비행선이 아님)
  • 로켓: 지구 궤도에 도달할 때까지, 혹은 궤도 수정이나 이탈 등을 위해 단 몇 분 동안만 가동됨. 그 짧은 시간 동안 그 많은 연료를 다 써 버림. 나머지 시간은 모두 그냥 천체의 중력에 이끌리는 관성 운동.

Posted by 사무엘

2019/11/28 08:33 2019/11/2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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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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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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