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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e -- 포도주 또는 포도즙

웰치스 포도주스는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우리가 쉽게 접하는 음료수이다. 진짜 과즙 에디션과 환타 비슷한 청량음료 에디션(스파클링)이 모두 존재하는데, 아무래도 전자보다는 후자를 더 자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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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표는 '토머스 브램웰 웰치'라는 감리교 목사 겸 치과의사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그는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서 주의 만찬 때 사용할 '알코올이 안 들어간 포도즙'을 어떻게 잘 만들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포도즙에 대한 고유한 저온살균법(pasteurization)을 개발했다.

어 그런데 영어 단어가..? 세균학의 아버지인 그 루이 파스퇴르에서 유래되었다. 웰치는 파스퇴르와 거의 동시대인 19세기 사람이었다.
우유나 주스에 대한 저온 살균법은 굉장히 획기적인 기술이었기 때문에 아예 "포도주스를 파스퇴르화한다"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이다. 과즙을 살균한답시고 무슨 고기 국물마냥 펄펄 끓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다간 맛 변하고, 비타민 다 파괴되고..

성경에서 wine은 포도주와 포도즙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포도즙을 짜 놓으면 얼마 못 가 발효되어 포도주가 되곤 했기 때문에 언어 차원에서 둘의 구분이 불분명했을 정도였다. 확 깨는 방식으로 비유하자면 지옥과 불못의 관계만큼이나 그게 그 말 같다는 것이다.

더구나 성경에서 wine이 최초로 등장하는 곳은 9장, 노아가 술 취해서 벌거벗고 드러눕는 장면이다. 킹 제임스 진영에서 주장하는 "최초 언급의 법칙"을 감안한다면, 성경의 wine은 문맥상 분명한 근거가 있지 않은 한 '포도주'를 먼저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가령, 욥 1:18의 경우 욥의 자녀들이 포도'주'를 마시고 놀던 중에 재앙을 당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 11:19 같은 내로남불 음해 문맥에서까지 '포도주'를 기피하고 '포도즙'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식탐에 술주정뱅이..)

옛날에는 냉장이고 살균이고 아무것도 없었고, 그렇다고 깨끗한 물은 세균에 오염되기 쉽고 오래 보존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맥주나 포도주를 음료수처럼 일상적으로 마시게 됐던 곳도 있었다. 물을 김치나 된장처럼 처리한 셈이다.
물을 끓여서 마시면 된다고... 그것도 오늘날이니까 쉽게 가능하지 주전자고 가스레인지고 커피포트고 정수기고 아무것도 없고, 나무를 베어 와서 땔감으로 쓰던 시절엔 어땠을까?

그러니 아무리 술이 나쁜 물질이라고 해도, 그 시절을 몽땅 지금의 잣대로 판단하기는 어려운 면모가 있다.
오죽했으면 교회에서 알코올 안 들어간 포도즙 잔을 마시려고 저렇게 웰치라는 사람이 안전한 주스 제조법을 개발한 게 무려 1800년대 후반의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요즘 시대에 그 시절 핑계를 대면서 술을 합리화하는 것도 궤변이고 잘못됐다.
비타민 결핍증이라는 것도 몰라서 선원들이 픽픽 죽어가던 시절,
"수인성 전염병(장티푸스, 콜레라 등..)이랑 알코올 중독 둘 중에 뭐 고를래?" 하던 암울한 시절하고 지금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이 글에서 굳이 "예수님도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거하게 술로 제조해 주셨잖아! / 성경에도 위장병을 위해 와인 처방을 좀 하라는 말 있잖아?" 이런 말에 대해 코멘트를 하지는 않겠다.
솔직히 혼인 잔치는 세상적으로 즐거운 자리이니 알코올을 떠올릴 여지가 0.1이나 1만치라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리는 잔을 나누면서 포도주..? 성경이 썩음, 누룩 같은 개념에 대해서 어떤 심상을 갖고 무어라고 일관되게 말하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저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발상이다.

크리스천으로서 희생과 헌신을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어야 합니다 / 우리 다같이 누룩이 됩시다"..;;; 는 내가 전에도 비유를 든 적이 있지만 "버그 소프트웨어", "BSOD 시스템즈"라는 IT 기업과 비슷한 발상이다. 예수님이 죽음이야 경험하셨지만 설마 시체가 썩었을까..?? (시 16:10, 행 13:34-37 등)

한국 교회는 율법주의라는 비판이 있을 정도로 주일성수 금주 금연 같은 외형적인 경건을 강조하는 편인데 왜 포도주 포도즙 문제에서는 대체로 헛점을 보이는 걸까?
술판을 즐기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아까 저 누룩이나 썩음처럼 성경 교리에 대한 기본 개념이 덜 정립되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니 이건 세례· 침례 문제, 성탄절· 부활절 문제하고도 일면 비슷한 구석이 있다.

킹제임스 흠정역이라는 성경은 지금까지 출간된 한국어 성경 중에서 wine을 '주'가 아닌 '즙' 쪽으로 가장 편향되게 번역한 역본이다(나쁘다는 뜻은 아님). 심지어 말보회의 한킹도 그렇지는 않다.
아무튼, 성경의 wine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웰치 아재의 행적에 대해 한번쯤 생각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창조 진화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종간 합성이란 걸 해낸 위대한 한국인 과학자인 우장춘 박사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듯이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9/22 08:35 2020/09/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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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철거

건물은 잘 짓는 것뿐만 아니라 잘 부숴서 없애는 것도(철거~!) 고도의 기술과 비용이 필요한 일이다.
지하철 건설에서 제일 저렴하고 무난한 방법이 땅 파헤치고 위에다 철판으로 덮어서 공사하는 개착식이듯, 철거 방식 중에 제일 저렴하고 무난한 방법은 중장비를 동원해 건물을 직접 들쑤시거나 때려 부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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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일이 때려부수기에는 너무 큰 건물이라면 발파 해체를 생각하게 된다. 화약/폭약은 강력한 대신 매우 위험하므로 잘 통제된 환경에서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터널 건설 내지 건물 철거 현장에서 폭약을 터뜨리는 걸 들어 보면.. 영화에서 수류탄 터뜨리거나 게임에서 로켓 런처 쏘는 것 같은 경쾌한(?) 쾅~ 쿵~ 소리가 나는 게 아니다. 그냥 총 쏘는 것 같은 따다닥~ 빡~ 소리만 연달아 들린다. 사실은 총도 화약을 터뜨리는 것이긴 마찬가지이지만..

이들 폭약은 전쟁에서 쓰이는 폭탄· 포탄 같은 물건이 아니다. 파편을 날려서 건물을 송두리째 산산조각 내는 게 목적이 아니다.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 몇 곳만 뎅겅 날려서, 건물이 자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연쇄적으로 폭삭 주저앉게 하는 것이 발파 해체의 핵심이다.
건물의 급소를 찾아서 최소한의 폭약만 설치하고 터뜨림으로써 건물 전체를 무너뜨리는 건 뭔가 예술의 경지에 가까운 작업이다. 이를 위해 폭약 기술자들이 적지 않은 고민을 한다.

건물뿐만 아니라 배도 마찬가지다. 하부에 어뢰를 제대로 맞으면 거대한 선박도 피격 부위에 구멍이 뚫리고 용골이 휘어지는데, 대미지가 이게 전부가 아니다. 폭압 때문에 위로 붕~ 떴다가 다시 수면으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선체가 더욱 찌그러지고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
이는 건물이 철거되는 원리와 같다. 어뢰의 위력은 수백~수만 톤에 달하는 배를 수면에서 잠시 뜨게 만들 정도로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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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1994년 김 영삼 시절에 남산 외인 아파트의 발파 해체가 유명한 철거 사례로 사람들 기억에 남아 있다.
다만, 조선총독부 청사는 근처 경복궁이 받을 여파를 우려해서 폭파 대신 그냥 전통적인 방법으로 부수고 철거했다.
그리고 삼풍 백화점은 발파 해체를 하지도 않았는데도, 건물이 워낙 상상을 초월하게 부실하게 지어진 바람에 꼭대기 층부터 시작해 차곡차곡 주저앉아서 마치 발파 해체처럼 붕괴됐다. -_-;;;

9 11 테러 때 여객기가 날아와서 충돌했던 세계 무역 센터(WTC) 건물 두 채는 각각 한두 시간 남짓 버티다가 그대로 폭삭 주저앉고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스타에서 테란 건물은 2/3 이상 파괴된 빨피 상태가 되면 스스로 체력이 떨어지다가 펑~ 부서지는데, 쟤도 그런 상태였다고 보면 된다. 단지, 현실에서는 그런 높은 건물의 대미지를 수리할 만능 SCV가 없었던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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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서 여러 음모론이 나돈다. 하지만 항공유가 잔뜩 들어있는 중형 여객기가 불타면서 장시간의 엄청난 고열 때문에 건물을 지탱하던 철근이 물러지고 약해졌다는 것으로 일단 공학적인 설명이 된다. 저게 폭약 발파 해체와 동급의 역할을 한 셈이다.

그리고 어느 건물이든 한번 무게 균형이 깨져서 주저앉기 시작하면.. 그 뒤부터는 차곡차곡 도미노이며, 다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이다.
세계 무역 센터 건물의 붕괴는 최소한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범에 맞먹을 정도로 괴이하고 설명이 안 되는 미스터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건물이 붕괴되면 먼지가 어쩜 저렇게 많이 나는지..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심에서는 그런 부작용 없이 아주 조용하고 가늘고 길게 티 안 나게 건물을 철거하는 방법도 쓰이고 있다. Tecorep이라고 불리는 공법이 있다.

대표적인 예는 일본의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이다.
우리나라 영친왕(일제 시대의 구 조선 황실 사람..)과 관련된 역사적 사연이 많은 곳이었는데, 신관 건물은 노후화로 인해 2011년에 영업을 중단하고 2012년 가을부터 이듬해 상반기까지 무려 7개월에 걸쳐 천천히 건물 높이가 조금씩 낮아지는 식으로 해체되고 철거되었다. 이건 당시에 언론으로부터 주목도 많이 받았는데, 발파 해체와는 반대편 극단에 선 공법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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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20/09/20 08:35 2020/09/2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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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님 역

1959년작 명작 영화 '벤허'에서 벤허 역을 맡은 주연 배우는 찰턴 헤스턴(2008년 작고)이라고 아주 잘 알려져 있다. 이 사람이 '십계'에서 모세 역을 맡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벤허에서 뒷모습만 나오는 예수님 모습은 누가 연기했을까..??

벤허에서 특히 압권인 건 죄수 노예들을 호송하던 로마 군인이 "어이, 거기 민간인! 누가 저 죄수(벤허)에게 물 주랬어?" 호통과 함께 예수님을 째려봤는데.. 거의 20초 가까이 벙찌고 있다가 예수님과의 기싸움에 압도 당하고, 급 시무룩해져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자, 휴식 끝. 출발한다. 가자!" 이러는 장면이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정말 인상적인 연출이었다. 요한복음 8장의 "죄 없는 자부터 먼저 돌을 던져라 → 급 시무룩"에서 모티브를 따기라도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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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나 어느 날 꿈속을 헤매며>의 "그 동정의 눈빛과 음성을 나는 잊을 수 없겠네.. 내가 영원히 사모할 주님 부드러운 그 모습을" 가사가 자동 재생되는 것 같다.
예수쟁이라면 성경 구절뿐만 아니라 찬송가도 많이 알아 두면 살면서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도움이 된다.

예수님을 연기한 배우는 당시 영화의 credit에는 등재되지 않고 비밀로 부쳐졌다.
하지만 나중에 어떤 계기를 통해 클로드 히터(1927~)라는 배우라는 것이 알려졌다.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을 안 해 봤는데 신기한 노릇이고.. 또 에어컨과 히터 할 때 그 히터 Heater가 사람의 성씨인 게 특이하다.
하긴, 에어컨의 발명자는 성씨가 캐리어였지.. 프로토스 캐리어와 같은 단어다..;;

2. 하나님의 음성

한편, 1998년에 개봉했던 '이집트의 왕자'는 애니메이션인 관계로 출연진이 배우가 아니라 성우인데.. 이때도 하나님 목소리 역은 credit에 공개되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은.. 모세 역 성우가 음성변조로 하나님까지 1인 2역을 했었다.

"너는 이제 파라오에게 돌아가서 도탄에 빠진 네 동족을 구해낼지어다." / "헉, 저는 말이 둔해서 그럴 수 없사옵니다" 대사를 동일 성우가 다 말했다는 뜻이다.

이런 예가 그 업계에서는 드물지 않다.
월트 디즈니 포카혼타스에서도 랫클리프 총독과 위긴스 비서는 서로 음색이 완전히 다르며, 상대방 말을 끊으면서 대화하는 장면까지 있는데도 성우가 동일 인물이다.
스타크에서도 마린, 고스트, 배틀크루저 등 상상하기 어려운 유닛들 목소리가 다 동일 인물(크리스 멧젠..)이다.

3. All Dogs Go To Heaven

본인은 수십 년 전 먼 옛날에 영어 회화 학원에서 All Dogs Go To Heaven (1989)이라는 만화영화를 비디오로 본 적이 있다.
너무 어린 시절의 너무 오래된 경험인 관계로, 지금은 거의 모든 장면과 스토리를 까먹어 버렸고 "oh Charlie, you can never come back~" (찰리 씨, 그랬다간 여기에 다시는 못 돌아와요~~ ㅠㅠㅠ)라고 천사 암캐(?)가 경고하는 말밖에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얘는 사후 세계를 다뤘다는 점에서 "신과함께"와 살짝 비슷한 장르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제목부터가 심상이 전 3:21이나 계 22:15와는 완전 상극이다. 반성경 반기독교(anti-)까지는 아니어도 "비"(non-)성경적인 설정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뭐, 계 22:15의 경우, 진짜 동물 개를 가리키는 건 아니지만...)

왜냐하면 성경에 따르면 오직 인간만이 하늘(천당) 아니면 지옥이라는 사후 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 안 믿고도 특례로 구원받고 천당 갈 수 있는 존재는.. 스스로 선과 악을 분별할 능력이 없고 예수 믿거나 거부할 능력 자체가 없는 영· 유아, 정신지체 장애아뿐이다. all dogs go to heaven이 아니라 all babies go to heaven인 것이다.

동물은? 평생 우리에 갇혀 살다가 도축되어 멍멍탕으로 잡아먹힌 개든, 인간을 대신해서 지뢰를 밟고 산화한 군견이든.. 죽으면 그대로 완전히 소멸되고 사라진다. 무지개 다리를 건너간다거나 하는 건 없다.
사후 세계에도 다른 동식물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동물은 현 세상에서의 경험과 기억을 갖고 인간과 교감했던 그 동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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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나름 성경으로 치면 개에 대한 "book of life"(계 20:12)를 묘사해 놓은 모습이다. 물론 저 장면은 성경의 실제 백보좌 심판하고는 백만 광년 억만 광년 떨어진 묘사이다.;;;

허나, 게임을 현실 고증에만 너무 충실하게 만들면 재미가 나질 않고 이말년 씨리즈의 두덕리 온라인 꼴 나며.. 성경 고증에만 너무 충실하면 우주 SF물은 전혀 만들어질 수 없고 동물의 의인화도 전혀 할 수 없으니.. 영화는 그런 사항을 배제하고 만들어진다.
(사실 성경까지 갈 것도 없이 항공 우주역학과 기초 기계공학 고증에만 충실해도 이족보행 합체 로보트라든가 우주 SF물은 성립이 전혀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작품 얘기로 돌아오면.. 주인공 찰리는 멀쩡히 천당· 낙원에 들어가서 편히 쉴 수 있는데도 자기는 억울하게 살해당했기 때문에 이대로 죽을 수 없댄다. 복수를 해야 된다며 자기 수명 시계의 태엽을 무단으로 거꾸로 돌려 놓고는 다시 현 세상으로 도망친다. 헐~~ ㅠㅠ 쿵 퓨리에서는 해킹으로 시간을 워프 시키고 죽은 사람도 살려 내고 총상을 치료하더라만...

저기서도 온도 단위 드립이 나오는 게 흥미롭다. "이곳 천당은 온도가 73도로 유지되는 아주 안락 쾌적한 곳이랍니다. 화씨로요."
하긴, 섭씨로 73도인 곳이 천당일 수는 없을 거다. 다만, 그 정도 온도만으로 아예 반대편 지옥이라고 불리기는 좀 부족하고, 거긴 그냥 사우나 정도일 것이다.

결말부에서는 찰리의 수명 시계가 완전히 멈춰 버리고.. 찰리 역시 "난 깽판을 너무 많이 쳤으니 이제 지옥으로 가는 거죠?"라고 자포자기 하지만.. 저 천사 암캐가 "아니요, 당신은 목숨을 바쳐 의로운 선행을 했기 때문에 여전히 돌아올 수 있어요" 그러면서 해피엔딩이 나오긴 한다.

신과함께도 그렇고, 성경 교리 없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매체들은 그냥 평범한 권선징악 코드로 귀착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런 매체에서 십자가에서 구원받은 강도(눅 23:42-43) 얘기 같은 게 등장할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9/15 08:34 2020/09/1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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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쪽의 여러 생각들

1. '필요만큼 분배'의 허구성

예전에 한번 얘기했던 것이지 싶은데..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만큼 분배한다" 이건 보면 볼수록 절대 실현 불가능하고 잘못됐고 섬뜩한 거짓 선동 구호라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의 완벽한 예시 중 하나이다.

저런 문맥에서 '필요'라는 단어는 "하나님은 님에게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님에게 필요한 걸 응답해 주신다" (빌 4:19)이럴 때에나 쓰인다. 마치 '복수/보복'이라는 게 일반적으로 신의 전담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것처럼 말이다. (법과 공권력에 의한 형벌 집행은 제외)
인간이 무슨 하나님인가? 인간이 인간의 필요를 하나님만치 정확하게 알고 하나님만치 공정하게 분배할 수 있나??

하나님이 지금까지 너에게 필요한 것만치 먹을 것과 입을 것 공급해 주신 것(딤전 6:8..;; )에도 지금까지 만족해 본 적이 전혀에 가깝게 없었을 인간들이 어디 필요에 따른 아름다운 분배 운운하고 있는가?

인간이 자기 소유에 대한 책임감이 없이 남의 소유를 지 꼴리는 필요에 따라 분배했다간 무슨 꼴 나는지는.. 대학교 조별과제 해 보거나 각종 공공물품을 자율 비치해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목욕탕 여탕의 수건과 비누, 비행기 기내의 담요, 양심 자전거..) 필패가 입증된 실험을 굳이 또 해 볼 필요가 없다.
마치 인류 최고의 부자 겸 천재였던 솔로몬이 "헛되고 헛되다"라고 결론을 내린 그 실험을 또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성경 신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지 않은가?

저건 "사람이 먼저"만큼이나 불순한 무리들의 유명한 기출 문제이다. 그러니 우리는 두고두고 잊지 말고 곱씹으면서 다음에는 쟤들이 또 무슨 문제를 낼지를 생각하고 대비해야 한다.

2. 감언이설

  •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세금 도둑이 많은 거다:
    그런데 보통은 그런 말을 하는 놈이야말로 진짜 세금 도둑, 아니 좀도둑을 넘어 세금 대도에 나라 등골 브레이커이다.
  • 성적보다 인성이 더 중요하다:
    부분적으로는 일리가 있는 구석도 있긴 하지만, 이걸 무슨 자랑인양 대놓고 떠벌리는 놈들은 대체로 성적과 인성 둘 다 엉망이고, 특히 인성은 더 쓰레기인 경우가 허다하다.

수천 년 유구한 짬밥을 자랑하는 인간의 죄성이란 걸.. 같은 죄인인 일개 인간이 그렇게 호락호락 순식간에 쉽게 척결 가능할 거라고는 절대 기대하지 마시길. 기대했다간 반드시 실망하고 좌절하게 된다.
개천에서 용 나는 것만 더 어려워진 게 아니라, 방망이 깎던 노인 타입의 외곬수 장인도 앞으로는 더욱 자취를 감추고 찾아볼 수 없어질 것이다.

3. 파벌? 중립?

"나는 정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고 오로지 예수파다" 이러는 사람치고 진짜 중도인 사람을 나는 평생 거의, 전혀 본 적 없다.
저건 "능력만치 벌어서 필요한 만치 분배한다"처럼 그냥 아무한테나 적당히 듣기 좋으면서 현실성 없고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궤변으로 오· 남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덕길에서 자기 혼자만 N으로 해 놓고 브레이크 하나 안 밟고 있으면서 "난 어디로도 치우치거나 끌려가지 않는 중립" 이러는 것과 같다.
고전 1:12 같은 일갈은 어중이떠중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4. 그들의 진짜 관심사

"사회/공산주의자들은 사실 가난한 사람에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냥 부자와 잘난 사람들을 증오할 뿐이다."

우와 정말 최고의 팩트폭격 명언인 것 같다.
환경 단체는 사실 환경에 관심이 있는 게 전혀 아니고..
여성 단체는 사실 진짜 여성 인권에 관심 있는 게 절~대 아닌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똑같이 환경을 파괴하거나 똑같이 여성을 유린해도 그 주체가 누구 편이냐에 따라서 반응이 극과 극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중국/북한 vs 일본/미국? 여당 야당?

단적으로 말해 그 어떤 골수 페미나 여성 인권 단체도, 위안부 할머니 타령 늘어놓는 그 어떤 박애주의자도, 민주당 정치인이 저지른 성추행이나 중국 국경에서 처참하게 착취당하는 북한 불쌍한 여성들에 대해 목소리를 낸 적이 있던가..?? 전혀 절대 없다.

맨날 분배니 평등이니 외치는 공산주의자들은 실제로는 부의 독식을 추구하는 계급주의자일 뿐이다.
그냥 평범하게(?) 혼자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기만 한 자본가 기업가보다 훨씬 더 교활하고 나쁜놈이다.
내가 대외 이미지 깎이는 것까지 감수하고서 가장 좋은 빨갱이는 죽은 빨갱이라는 극언까지 괜히 공개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5. 남한과 북한

북한은 자유와 개방과 사유재산과 올바른 통치 체제가 훨씬 더 먼저 절실히 필요하지, 그에 비하면 통일은 0이 몇 개쯤 더 붙을 정도로 덜 중요한 후순위의 문제이다.

마치 옛날에 남한이 북괴의 침략을 막아내고 가난을 떨쳐내는 게 억만 배 이상 더 중요했지, 그에 비하면 대통령 직선제나 민간인 출신 대통령 같은 건 훨~~~~씬 덜 중요한 후순위였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저것만 이뤄지면 민주화 따위는 꼭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되면 좋지만 굳이 안 돼도 상관없는 옵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건국 초창기의 할배 시절이건, 군사정권 시절이건 북한에게 아직도 존재하지 않는 사유재산, 신앙의 자유 같은 기본적인 건 애초에 진작부터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점을 분명하게 절대적으로 명심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관과 이념 논쟁에서 쓸데없는 소리에 '어 그런가 보다' 하고 끌려가지 않을 수 있다.
애초에 통일이라는 것은 당연히 북한을 저렇게 개선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수 없다면 통일 따위 전혀 할 필요 없으며, 꼭 남북 통일을 해야만 북한을 저렇게 개선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6. 전제조건

좌빨들의 선동은 대체로

  • 북한은 아주 평범하고 정상적인 체계이며, 지도자가 백성들을 먹여 살리려고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데도 불가항적으로 불가피하게 못살고 있다
  • 자본가가 근로자들을 강제 감금하고, 때려치우고 나가려는 사람까지 해코지 하면서 부려먹고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 (진짜 그러고 있는 곳은 따로 있는데??)

이 두 전제조건이 성립해야 말이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저건 전혀 성립하지 않으므로 그 선동들도 그냥 bullshit이다.

종북 무리들이 "북한이 그렇게 좋으면 그냥 거기 가서 살아라"라는 말을 절대 듣지 않는 것처럼,
악성노조들은 "악덕업주가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그 직장이 그렇게 싫으면 당장 사표 쓰고 때려치우고 나와라"라는 말도 절대로 듣지 않는다. 삼성은 싫지만 삼성이 주는 월급은 좋기 때문이다.

7. 정상적인 외국부터 돼야..

5번의 연장선인 얘기인데.. 남한이 북한과 통일을 하고 싶거들랑 북한을 정상적인 외국으로 만들 생각부터 해야 한다. 정상적인 외국조차 아닌 나라/집단하고 제대로 통일해서 정상적인 한 나라 한 체제를 만든다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
이 생각을 어떤 논객은 "통일의 지름길은 영구분단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일본이나 중국에 갈 때와 동일하게 북한도 외국으로서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해야 한다. 인터넷도 되고 서신 왕래와 전화 통화도 돼야 한다. 다시 말해 북한은 켕기는 게 없이 개방돼야 한다.
"민간에서는 북한하고 이미 할 거 다 하고 있고 불편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굳이 수뇌부를 합쳐서 정치적으로 통일할 필요가 있나?" 정도가 되면 그때야말로 그놈의 우리 민족끼리 명분으로 슬슬 통일을 논의해도 괜찮다.

개방은 하나도 된 것 없이 북괴 체제는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면서 그냥 북에다 퍼주자, 무조건 오냐오냐..
이건 순도 99.99%의 간첩 역적 매국노 빨갱이이니 저러는 놈들은 몽땅 다 쳐죽여야 된다.

8. 같은 잣대

지금 사회 공산주의 친종북 정치인 패거리들이..

(1) 북한에게 무한 관용과 아량을 베풀듯이 어디 한번 "같은 민족"인 탈북자라든가 이명밝근혜 및 그 지지자들도 동일하게 대해 봤으면 좋겠다. 안 그럴 거면 민족드립 좀 집어치우든가..

(2) 맨날 재벌들 삥뜯어서 분배하자고 떠드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지들도 자기 사재 한번 1%라도 기증· 기부 하는 꼴 좀 봤으면 좋겠다.
니들도 왕창 부자인 거 다 알고 있다. 남의 돈을 갖고는 무슨 생색을 못 내겠냐?
자기 돈으로 분배하는 건 선거법 위반이고, 세금으로 분배하는 건 합법인 식인 거...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인다.

9. 대북 전단

대북 전단이 아직도 굉장히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며, 북괴 수뇌부에서 아주 무서워하고 골치아파 하고 있다는 걸 남쪽 빨갱이 정치인들의 저 히스테리한 반응을 보니 간접적으로나마 확신할 수 있다.
연체동물에다가 소금 뿌렸을 때 같은 본능적인 거부 반응 말이다.

그 전에는 솔직히 나조차도 “아이고 저래 가지고 북한으로 제대로 날아가긴 하냐? 보는 사람이 있긴 하냐?”
회의적이었는데.. 정신이 번쩍 든다. 진짜로 가고, 보는 사람이 있고 마음이 움직이는 경우가 있구나.
거리설교 때 나눠주는 전도지 이상으로 효과가 있다.

물론 정치인 말고 접경지역 주민들은.. 조금만 더 애국심이 있었다면 “우리 걱정은 말고 마음껏 뿌려라. 어차피 저놈들도 재래식 병력은 와해된 지경이고 우리 위협 못 한다. 지금 좀 불편 불안을 감내하더라도 저 북괴 정권을 빨리 끝장내야지.”

그랬겠지만.. 호의를 권리로 요구할 수는 없는 법이고, 현실에서는 안 중근 아들 같은 변절자를 마냥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건 넘어가자.

일제 시대 때도 권총이나 폭탄 의거 한 건 터지면 그거 보복으로 인근 주민들이 엄청난 불편을 겪었고.. 심지어 독립투사를 숨기고 있다는 누명을 쓰고 마을이 통째로 순삭 몰살당하기도 했다. 그 시절엔 독립투사들도 인근 주민에게 민폐 많이 끼쳤다, 그지?

10. 5 18

생일은 부모님께 감사하는 날이고
5 18은 나라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분들을 추모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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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일관된 판단

본인은 다음 pair들이 논리적으로 완벽하고 정확하게 동치라고 생각한다.

(1) 교리 일치 없는 종교 통합 에큐메니컬 운동
vs 이념 일치 없는 불순한 남북 화해(?) 협력 짓거리, 퍼주기

(2) 킹 제임스 성경이 소위 original보다 더 낫고 더 우수한 이유 (전자는 실물이 존재, 후자는 현재 실물 없음)
vs 친중종북이 친일보다 더 나쁜 이유 (전자는 실물 존재, 후자는 현재 실물이 사실상 없음)

(3) 사탄 마귀 같은 건 없다. 지옥은 없다.
vs 종북 간첩 같은 건 없다.

(4)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 3:18)
vs 아가리와 주둥이로만 자기도 김 xx 싫어하고 북한 체제 싫어한다고 말하지 말라. 정말 싫다면 저놈들이 원하는 행동을 하지 말고 반일반미 친중종북 거짓 선동에 끌려가지도 마라.


아이템이 또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일단 여기까지.
예수밖에 구원의 길이 없다고 말하는 종교를 믿는데.. 그 교리를 텍스트로 명시하는 성경도 단 한 종류만 맞고 나머지는 틀렸다고 믿는 게 이치에 맞다. 그리고...

  • 예수님께 그냥 무릎을 꿇느냐 아니면 "경배"를 하느냐, (마 8:2 등 복음서에서 여러 곳)
  • 예수님이 하나님의 종이냐 "아이"이냐, (행 4:27)
  • 사탄의 왕좌냐, 아니면 그냥 "자리"이냐 (계 2:13)

이것처럼,

  • "자유 민주주의"냐 그냥 민주주의냐(혹시 인민 민주주의??),
  • "건국"이냐 정부 수립이냐,
  • "북한 공산 괴뢰"냐 조선 민주주의 공화국이냐

본인은 성경의 변개를 관찰했던 양심과 판단력을 완전히 일관되게 동일하게 적용했을 때, 오늘날 역사 교과서의 변개도 동급의 매우 불순하고 악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저 문맥에서 기어이 '자유'를 뺐다고라..
골 1:14에서 '그분의 피를 통하여'를 삭제한 것과 같은 급의 변개가 아닌가?
6· 25 사변 때 수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뭘 지키려고 그렇게 많은 피를 흘렸는데?

난 늘 강조하지만, 이 바닥은 동일한 방법론을 재귀적으로 일관되게 적용하여 판단한다. 참고로 성경과 역사를 합친 '교회사'도 진영과 관점에 따라 왜곡이 아주 심한 분야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9/12 08:35 2020/09/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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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 관순 열사의 모습

유 관순은 겨우 100여 년 남짓 전의 근현대 사람이고 초등학교 위인전에서도 언급되는 톱 네임드급 위인인 것치고는.. 검증되지 않은 myth와 알 수 없는 mystery가 의외로 많은 인물이다.
그래서 비교적 최근까지도 추가적인 사료 발굴을 통해 정정된 사항들이 적지 않다. 오랫동안 1904년생으로 알려졌다가 1902년생으로 정정되고, 징역 7년형이던 게 5년으로 바뀌고, 형무소에서의 정확한 사인도 2013년에야 기록을 통해 밝혀졌지 않던가?

그 뿐만이 아니다. 이분은 멀쩡히 서울에서 순국했음에도 불구하고 유해가 남아 있지 않고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도 극히 드물다.
의열단 내지 한인애국단 소속의 독립투사들이 거사를 벌이기 전에 근사하게 혹은 비장하게 포즈를 취한 사진을 남기곤 했지만(안 중근, 윤 봉길, 이 봉창..) 유 관순은 그렇지 않다.

물론 그녀는 학생이었고, 만세 운동 자체를 "난 오늘만 산다" 급으로 무조건 죽을 각오를 하고 벌인 건 아니었다. 애초에 "난 오늘만 산다" 같은 항일 투쟁 패러다임 자체가 3· 1 운동이 실패하고 이런 만세 시위만으로는 독립을 쟁취할 수 없겠다 싶으니까 등장한 것이다. 또한 그때는 경제력 없는 어린 학생이 사진을 쉽게 남길 수 있는 시절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 1 운동 전날 밤에 유 관순이 자기가 직접 그린 태극기 하나 들고 동지나 친구들하고 포즈를 취한 인증샷 하나 없는 것은 일면 아쉬운(?) 점이다.
오죽했으면, 얼마나 사진이 없었으면 유 관순의 공신력 있는 독사진--단체로 같이 찍힌 것 말고--이랍시고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은 일제가 찍은 죄수 머그샷밖에 없다! 이게 유일하다. 신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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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맹목적인 국뽕 반일 종족주의를 배격하고 조선 시대를 극혐하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는 모 진영에서는 이 사진에 대해서 이렇게 의혹을 제기했다.
그 시절에는 미혼 소녀는 댕기머리이고 기혼 여성은 비녀+쪽머리가 보편적이었는데, 미혼인 유 관순이 왜 유부녀 헤어스타일이냐는 것이다.

유 관순은 안 그래도 저렇게 온통 의혹투성이인 인물인데 저 사진은 애초에 이화학당 학생 유 관순이 아니라 아예 다른 유부녀 동명이인 아줌마가 아니냐는 극단적인 의문까지 제기한다..;; 헐..
황당해 보이지만 완전 터무니없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는 아닌 것 같다.

다음은 유 관순의 형무소 동기이던 임 명애 열사의 머그샷이다. 이분은 1886년생으로 유 관순보다 띠동갑 이상으로 나이가 더 많았고 진짜 유부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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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명애와 비슷한 연배의 유부녀인 어 윤희 열사도 머그샷이 이와 비슷한 풍이다.
그 반면, 1919년 말과 이듬해에 만세 시위 시즌 2를 일으켰다가 경찰서 정모를 했던 비슷한 연배의 여학생들 사진을 보자. 박 양순, 박 신삼은 명백하게 댕기머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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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화라는 학생은 댕기를 머리 위로 감아올린 것을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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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10대 학생들은 얼굴이 명백하게 앳되어 보이는 반면, 오늘날 전해지는 유 관순의 얼굴은 꽤 노안이다. 내가 보기엔 인상으로나 헤어스타일로나 학생보다는 아줌마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_=;; 물론 우리는 그 이유가 고문과 구타를 너무 많이 당해서 얼굴이 부어 터졌기 때문이라고 배워 왔다.

그럼 학생과 아줌마의 중간에 속하는 이 사람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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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순경 열사는 1902년생으로 유 관순과 동갑이다. 다만, 투옥되었던 당시에 학생은 아니었고, 학교를 졸업해서 세브란스 병원의 간호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딱 1920년 당시에 이분이 벌써 결혼까지 한 상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아니었던 것 같다. 유명한 사람이 아니어서 구체적인 개인사가 전해지지는 않으나, 이분의 장녀라는 사람이 1920년대 중후반생으로 추정된다. 그 시절의 결혼 생활이 아이 없이 신혼만 5~6년씩 지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순경의 헤어스타일은 유 관순과 비슷한 쪽머리이다. 이 정도라면 저 시절 머그샷 사진의 헤어스타일과 당사자의 결혼 여부에 딱 유의미한 상관관계는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겨우 그 정도 의심스러운 정황만으로 유 관순 사진 자체가 가짜라는 결론을 내리는 건 좀 무리일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는 윤 봉길의 체포 장면 사진을 갖고도 저건 진짜 윤 봉길 사진이 아니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가 재반박되고.. 그 정도 합리적인 의심과 의혹 제기 및 검증은 건전한 학문 발전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특히 유 관순은 10대 소녀라는 특이한 프로필로 인해 지금까지 잘못 알려진 게 너무 많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최근에 추가로 발견되었다는 유 관순의 이화학당 입학 초기 사진을 첨부하며 이 주제의 이야기를 마치겠다. 이 얼굴이랑 불과 몇 년 뒤의 형무소 머그샷이 동일 인물이라 간주할 수 있겠는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이거 무슨 광수 얼굴 찾기 게임 같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2. 주 기철 목사의 일화

예전부터 여러 번 언급한 적 있는 사항들을 다시 정리하자면..
본인은 예수쟁이 신자로서 주 기철 목사를 매우 존경한다. “다섯 가지 나의 소원”이라는 그의 설교문은 오래 전부터 내 타자연습 프로그램의 연습글로도 들어가 있었을 정도이다. 다만,

(1) 저 사람이 대단한 거지, 그 당시에 가족을 동반한 집요한 협박에 못 이겨서 신사참배에 타협한 다른 사람들을 ‘도를 넘게’ 욕하거나 매도하지는 않는다.
그 시절에 총독부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서 윤 봉길 의사를 비난하는 보도를 냈던 국내 언론사들을 친일매국(?) 어용언론이라고 욕하는 게 아무 쓰잘데기없는 어리석은 짓인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2) 전설처럼 따라다니는 ‘맨발로 못 위를 걸은 일화’는 도대체 언제 어느 형무소(의성? 평양?)에서 벌어진 일이고 출처가 누구의 증언이며, 신빙성이 있는 사건인지 내 노력으로는 분별과 검증을 더 못 하겠다.
일본으로부터 저 정도로 비슷한 레벨의 끔찍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어떤 분야의 지조를 지킨 건 신라 박 제상 이래로 처음이 아닌가 싶은데..?

(3) 한국의 기독교 수난사 순교사가 오로지 일제 말기밖에 없었던 것처럼 분위기가 흘러가는 것을 매우 불편하고 불쾌하게 생각한다.
1950년 가을~겨울에 전국 각지에서 온갖 냉병기로 두들겨맞고 머리에 총알 박혀 순교한 더 많은 순교자들을 언급하는 건 무슨 정치 발언으로 매도돼 가니.. 정말 어이가 없다. 정상적이고 건전한 분별력을 지닌 상태가 아니다. 3· 1 운동 당시에 유 관순 말고 다른 여성 독립 운동가들도 재조명되어야 하듯, 이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3. 신념형 친일파 박 중양

세상에 유 관순이나 주 기철 같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구한말부터 일제 말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인 중에는 아무 사심 없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과 가깝게 지내기를 원했던 친일파도 있었고, 돈과 벼슬까지 받으면서 나라를 팔아먹은 나쁜놈, 마냥 생계형 부역이라고 실드 치기에는 도를 넘은 부역자 등 여러 종류의 친일파가 존재했다.

특히 세월이 흐르면서 1930년대쯤부터는 일본은 절대 망할 일이 없고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주권을 회복하는 건 아예 불가능하겠다는 인식이 짙어졌다. 그건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니 인정하고, 일본 내에서 2등 신민인 조선인의 인권과 권익을 향상시키는 운동을 하는 게 순리이겠다고 노선이 바뀌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와중에 박 중양(1872-1959)이라는 인물은.. 부귀영화와 개인 영달 기회주의형이 아니라 그냥 조선을 자기 신념상 너무 혐오해서 충성의 대상을 일본 정부로 바꾼 좀 이례적인 사람이었다. 김 옥균 같은 친일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개화파들이 잔혹하기 그지없게 가족까지 몽땅 숙청되는 걸 보고는 이놈의 X같은 야만적인 나라는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나라를 팔아먹는 일에 앞장서지는 않았고, 독립운동가들을 밀고하고 괴롭힌 것도 아니고.. 일제 시대 때 일본으로부터 월급 받는 관료로서는 아주 강직 청렴하게 처신했다고 한다. 다른 일본인들을 부하로 부릴 정도로 높은 등급의 관료가 됐으니 원... 윤 치호와 비슷한 위치 같은데.. 그 사람보다는 한 타이밍 더 일찍 신념이 저렇게 바뀐 셈이다.

해방 후에 반민특위에 회부됐을 때도 이 사람은 "일제가 그렇게 폭삭 망할지 몰랐어~! 그래도 처자식 먹여 살려야 했잖아!" 같은 구차한 변명 따위 없었다. "조선인들은 더 고매한 일본인의 통치를 받는 게 객관적으로 더 이익이다"라는 자기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저 팩트가 마음에 안 들어서 굳이 날 죽여야겠다면 죽여라. 난 아무 미련 없다. 하지만 나 말고 일제 시대 유능한 인재들을 친일파로 몰아서 해코지하지 말고 오히려 잘 이용해 먹을 생각을 해라. 그리고 애국자의 탈을 쓴 다른 위선자들에게 속지 마라."라고 당당하게 덧붙였다..;;

그러니 이 양반은 돈과 권력을 좇는 여느 기회주의형 악랄 친일파는 아니라는 것에 조사관들의 견해가 일치했다. 그리고 그들이 내린 결론은 "저 양반은 투옥과 처벌이 아니라 정신 감정이 필요하다"였다.

뭐, 조선 정부에서(고종과 민 씨 일가..) 개화파를 완전히 박살을 내는 현실을 똑같이 보고서 박 중양은 신념형 친일로 돌아섰다. 윤 치호도 자국민의 국민성에 절망한 나머지 변절해 버렸다. 하지만 구한말 때 직접 죽을 위기를 겪었던 이 승만은 그리하지 않았다. 우리는 솔직히 할배에 대해서는 그의 독선을 욕할 게 아니라 무슨 뚝심과 근자감으로 조선이 망한 후에도 외국에서 무국적자로 살면서 줄곧 독립 운동을 했는지.. 그걸 더 대단하게 여겨야 하지 싶다.

4. 이 승만 정권 때 처형 당한 최 능진, 조 봉암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첫 헌정 체제이던 이 승만 1공화국은 군사정권은 아니었다. 하지만 분단과 6· 25 전쟁을 직접 겪었던 만큼 반공 성향이 매우 강했으며, 나라 분위기가 그쪽으로는 극도로 민감하고 경직돼 있었다. 통일이라는 건 당연히 북진 멸공 통일을 해야지, 감히 화해와 평화 통일 운운하는 것만으로도 빨갱이로 몰리고 잡혀갈 수 있었다.

난 개인적인 신념으로는 그게 이해가 되며 일면 옳다고도 생각한다. 김 일성 같은 사악한 저질 집단은 애초에 대화고 화해 따위가 가능한 상대가 아니다. 놈들의 개수작에 속지 말고, 힘으로 완전히 없애 버릴 수 없다면 단호하게 분리와 격리라도 하는 게 백 번 옳다. 통째로 적화통일이 될 뻔했던 것을 온갖 개지랄 발광 발악을 한 끝에 겨우 반반으로 퉁친 것이다.

다만, 모든 애국자나 독립운동가들이 국제 정세를 보는 안목이 할배와 같지 않았으며, 공산주의와 공산주의자에 대한 정확한 분별력을 지니지는 못했다. 저것들은 지금 나라의 여건상 친일 부역자 출신 군경을 동원해서라도 몽땅 제거해야 한다는 것까지 생각이 일치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최 능진의 경우 경찰 고위 간부로서는 아주 이례적으로 친일 부역자 청산을 부르짖었고, 이 때문에 이 승만뿐만 아니라 조 병옥과도 크게 대립하여 갈등을 빚었다. 최 능진은 과거의 일제 시절부터도 안 창호 라인이었고 독불장군인 이 승만을 싫어했다.

결국 이 사람은 이 승만 정권의 눈밖에 나고 종종 체포되고 투옥되다가.. 결국 6· 25 전쟁 중에 '혁명의용군 사건'에 연루되어 빨갱이 부역 혐의로 처형당했다.
훗날 비슷한 연배의 조 봉암(1898-1959)이 진보당 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된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들은 통일도 대화와 평화 노선을 주장했다.

자, 지금 할배를 정치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승만의 국제연맹 위임 통치 청원을 보고도 나라를 팔아먹네 뭐네 매국노네 하면서 날뛴다. 그렇지 않은가?
1950년에 조 봉암이 제안했던 "UN 감시 하의 총선거를 통한 평화 통일"은 그들이 국제연맹 위임 청원을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빨갱이로 몰리기 딱 좋은 혐오 발언이었다. 두 케이스 다 발언 당사자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오해가 있었다.

솔직히 이 승만이 외교 노선을 아무리 펴봤자 국제 연맹 시절의 강대국들이 일본의 합법적인 식민지이던 조선의 독립에 관심이 없었다. 그와 완전 동급이다. 저런 민족주의자 애국자들도, 개인으로서는 훌륭한 인물이었지만 그 사람들이 그렇게 노력한다고 해서 북괴가 공산 적화 흉계를 내려놓을 리는 만무했으며 남북 평화 통일 따위는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다.

우리 끼리 친일 청산도 다 하고 공산화도 되지 않은 깨끗한 나라..? 도대체 무슨 수로 가능하다는 건가? 이렇게 국민성 더럽고 국력은 쥐뿔도 없던 헬조선 반도 땅에서? 이 승만 없이 김 구나 여 운형만 대통령 됐으면? 광복군이 제대로 참전만 했으면? 그러면 김 일성도 이렇게 흑화하지 않고 개과천선했을까? 허 참.. 난 내 사고실험의 결과를 봐서는 전혀 상상이나 동의가 되지 않는다.

세상에는 이렇게 다양한 관점에서 인생을 산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앞으로는 7, 80년 전 같은 무지와 야만의 시대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반쯤 불가피, 반쯤 지나친 오바). 그리고 빨갱이 자체가 없어진다면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려서 고생하는 사람도 없어질 테니 이 나라의 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0/09/09 08:33 2020/09/0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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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부터 세계는 제국주의와 왕정이 몰락했으며, UN을 비롯한 온갖 국제기구들이 생기고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이 지금과 얼추 비슷해졌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대략 반세기쯤 전이던 1800년대 말~1900년대 초 사이는 상황이 어땠을까?

우리나라야 아직 한양 시내 길바닥에 똥덩어리가 굴러다녔고 어설픈 친일 성향 개화파들은 고종과 민씨 일가에게 작살이 났던 때이다.
그러자 일본은 각성하여 민비를 살해하고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서 경쟁자들을 쳐발랐으며, 조선을 군대 해산, 외교권 박탈 등의 순으로 차근차근 차 떼고 포 떼서 식민지로 만들어 나갔다.

김 구가 암살 당하는 바람에 남북 사이의 온건 중재자가 없어져서 북한이 더욱 폭주하고 6 25 개전이 앞당겨졌다고 보는 주장이 있는데.. 난 그에 대한 진위 여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런 논리라면 조선이 김 옥균에게 행한 야만적인 짓거리가 일제를 자극하고 조선을 더욱 강경하고 폭압적으로 대하게 만들었다는 견해도 동등하게 성립할 것이다.

그렇게 조선이 망해 가던 동안 바깥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꽤 의미심장한 일들이 있었다. 특히 철도와, 자동차와 증기선, 전화의 발명 덕분에 나라와 나라들이 서로 손잡고 가까워지려는 시도가 있었다.

(1) 제네바 협약이 2차까지(1864, 1906) 맺어지면서 "전쟁을 해도 최소한의 룰은 지키면서 하자. 전투력을 상실한 포로나 부상병에게는 최소한의 인도주의적인 대우를 하자" 이런 규칙이 제정됐다. 만국 우편 연합(1874)이라는 국제 기관도 생겼다.

(2) 더 나아가 만국 평화 회의라는 게 1899년과 1907년에 두 번 개최되었다. 장소는 모두 네덜란드 헤이그.. 그렇다. 2차의 경우 우리나라도 참석하려 했지만 일제의 방해 때문에 그러지 못한 바로 그 회의이다.
이 시절의 명칭에는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 '만국'이라는 단어가 유독 자주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 세계(world)가 저렇게 번역된 건데, 이것도 일본에서 만든 용어인 것 같다.

(3) IPA라고 불리는 국제 음성 기호(1888)가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인공어 에스페란토(1887)도 공표되었다. 즉, 언어에 대한 통합적인 연구가 있었다.

(4) 근대 올림픽 경기가 이때부터 시작됐다! (1896, 그리스 아테네)

(5) 유대인들 사이에서 이제 우리 땅에 돌아가서 모여 살아야겠다는 '시온주의'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국제 시오니스트 총회는 1897년부터 1901년까지 총 5회 개최되었다. 그 전에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반유대주의 드레퓌스 누명 사건이 상당한 기폭제로 작용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다.

(6) 한편, 인류 역사상 최초로 빨갱이라는 것이 이때쯤 생겼다. 공산당 선언(1848, 1870~)과 인터내셔널가(1870~1880)의 유래를 생각해 보자.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1859), 그리고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성경 개정..을 가장한 변개(1881)도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친 변화이다.

(7) 암울했던 조선 구한말과 달리, 이 시기는 유럽에서는 '벨 에포크'라고 불리는 과학 기술 황금기였다. 물론 거기 자국민도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이 고생하는 건 식민지와 별 차이 없었겠지만, 나라 자체는 부강해지는 중이었다. 유럽 내부에서는 별다른 전쟁도 없이 평온하고, 각종 낭만주의 낙관주의가 싹트고 있었다.

"15소년 표류기, 우주 전쟁, 80일간의 세계 일주"처럼 미지의 신세계를 갈망하는 소설이 나왔으며, 거대한 대포를 쏴서 우주로 나가는 상상도 하기 시작했다.
일본 역시 유럽 스타일로 근대화를 잘한 덕분에 저 때가 나름 잘나가던 리즈 시절이었다. "나디아"가 괜히 저 시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리고 20세기 초엔 아직 제국주의와 우생학이 있었다. 최첨단 과학 기술을 이룩한 백인은 우월한 반면, 유색 인종들은(일본은 제외..;;) 진화가 덜 됐고 미개하다. 그 때문에 백인들이 가서 적당히 부려먹고 산업화시키고, 기독교로 개종도 덤으로 시켜 주는 게 걔네들한테도 좋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었다.

아직 핵무기는 없었지만 기관총만으로도 충분히 인류 최강의 병기로 여겨졌으며 미개인들을 제압하는 데 충분했다.
(기관총 발명 이전 시절의 식민지 개척이나 노예 반출은 적극적인 침략과 납치보다는.. 원주민들 내부에서 이미 노예였던 사람들을 사 온 게 더 많았음)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나중에 나치즘도 20세기 초 사람들의 관심사와 트렌드가 축적된 것들이 약간만 변조되고 응용되어 만들어졌지, 아무 뜬금없이 툭 튀어나온 건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관총이 처음에는 유럽인이 미개인들을 제압할 때 쓰였지만 나중에 1차 대전 때는 결국 같은 유럽인들을 참호에 처박아 넣고 죽일 때도 쓰이게 됐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본인은 한때는 초보 역덕들의 성지인 2차 대전 시절 역사만 흥미진진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반세기쯤 더 전의 20세기 초 역사에도 관심이 간다. 러일 전쟁처럼..
내가 철도에 입문했을 때도 처음에는 오로지 지하철, 새마을호 일색이다가 증기 기관차에까지 관심이 확장된 건 나중의 일이었다. 그것처럼 이쪽 덕력이 느니까 더 옛날까지 관심이 확장된 것 같다. -_-;;

자고로 역사라는 건 (1) 지금과 별 관계도 없는 너무 먼 고대사보다는 근현대사를 더 비중 있게 봐야 하고, (2) 국사와 세계사를 같이 연계해서 봐야 한다는 게 본인 생각이다. 유럽 역사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역사도 말이다.
그래야 어떤 형태로든 역사왜곡 국뽕을 차단할 수 있고, 약간의 따끔한 동심파괴 팩트폭격 대신 역사로부터 배울 수가 있다. 지금이 무슨 유치하고 오글거리는 국뽕이나 투여하면서 정신승리 대리만족을 해야 하는 암울한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독일이 과거의 반인륜 전쟁 범죄를 반성해야 하는 것만큼이나 이 나라 역시 조선 말기가 얼마나 개막장으로 형편없고 병신같았는지를 두고두고 곱씹으면서 130여 년 전의 삽질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그걸 알고 나면 반대급부로 한민족 역사상 현재 맨 마지막으로 세워진 국가 대한민국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저절로 체득할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0/09/07 08:31 2020/09/0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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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와 우주발사체의 관계

1. 비행기와 우주선의 하이브리드 가능성

본인은 예전에 자동차 겸 열차, 자동차 겸 비행기, 비행기 겸 선박처럼 하이브리드 교통수단에 대해 열거해 본 적이 있다. 심지어 같은 열차라도 가변 궤간이 가능한 놈, 같은 비행기라도 고정익과 회전익이 같이 가능한 놈이 있으니 이 분야도 창의적인 활용 가능성이 생각보다 넓다.
그런데 그때 본인이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조합이 있다. 바로 비행기와 우주선의 하이브리드이다.

잠시 이런 상상을 해 보자.
인천 공항에서 대한 항공 비행기(+ 겸 우주선)를 타고, 발사대가 아닌 활주로에서 사뿐히 이륙한다. 며칠 동안의 비행(??) 끝에 비행기는 아폴로 11호의 착륙을 기념하는 달 "고요의 바다 공항"에 우아하게 착륙한다. 비행하는 동안 객실에는 바깥 온도나 현지 시각뿐만 아니라 주변의 G값도 표시된다.

귀환할 때는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잠시 후 지구 대기권에 재진입하게 됩니다. 약 5분간 지구와의 통신이 두절되며 진동이 발생할 수 있으니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셈.." 방송도 응당 나온다.
안개가 너무 짙으면 비행기가 결항되는 것처럼, 지구 밖에 태양풍 같은 게 너무 강해져 있으면 위험하기 때문에 우주 행 비행기는 결항된다.

이건 참 낭만적으로 들리는 이야기이지만 이렇게 간편하게 우주에 다녀오는 건 현실 내지 가까운 미래에는 요원한 일이다.
우주 발사체 내지 비행체를 단 분리 없이 일반 비행기의 역할까지 겸할 수 있게 만드는 건 현재의 인간의 기술로는 가능하지 않다. 둘은 엔진 구조가 엄청나게 다르고 비행 원리도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우주선을 비행기처럼 운용했다간 연료를 감당할 수가 없다. 핵 미사일을 쏠 때 무슨 활주로 이륙을 시켜서 띄우던가? 우주선의 기술은 대륙간 탄도 미사일 기술과 본질적으로 완전히 동일하다. 미사일 기술과 동일하기 때문에 냉전 시절에 우주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우주선은 미사일을 쏘는 기술에다가 발사체와 엔진 크기를 더 키우고 연료를 출력 조절이 용이한 액체 기반으로 바꾸고, 안에 사람이 타는 공간과 각종 안전 장치를 넣었을 뿐이다.

그에 비해 항공역학적인 기체 설계는 어차피 공기가 없는 우주 공간에서는 전혀 유용하지 않다. 한쪽에 특화된 기술이 다른 한쪽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다.
사실은 지구처럼 양력을 이용한 대기권 비행이 가능한 행성 자체도 태양계에서 지구 말고는 없다.

전쟁이 스타크래프트 인게임이 아닌 것만큼이나 우주 비행 역시 스타크래프트 시네마틱 같은 게 아니다.
터보 팬/제트부터 램 제트, 로켓까지 다양한 엔진의 종류와 구분이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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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서는 종이비행기 레이쓰조차 대기권과 우주를 모두 잘만 드나들지만, 현실은.. -_-)

그렇게 SF물을 너무 많이 본 사람들은 실제 아폴로 우주선 사령선과 달 착륙선이 통상적인 비행기와 너무 동떨어지게 생긴 것을 보고 이질감을 느기께 된다. 날개 따위 없는 그냥 지상 구조물 캡슐처럼 생겼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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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역대 우주선 중에 비행기와 가장 비슷하게 생겼고, 지구 귀환 후에 바다가 아닌 육지 활주로 착륙이 가능했던 유일한 물건은 우주왕복선인데.. 얘도 지구 대기권만 벗어난 우주에 가는 용도이지, 지구 중력을 벗어난 우주까지 간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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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비행기나 심지어 비행선처럼 우아하게 우주로 나가는 건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1980년대에 나돌던 공상 과학 아이디어 중에서 정보 통신 분야는 오늘날 예상을 초월하여 달성되었지만 항공 우주 분야는 대부분 빗나갔다. 달과 화성에 기지는커녕, 이미 있던 우주왕복선과 초음속 여객기마저 대가 끊겼지 않은가?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 달 착륙은 가히 충격 그 자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으며, 공교롭게도 이 날에 맞춰 개통했던 경인 고속도로 연장 구간은 '아폴로 고속도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람들도 개나 소나 아폴로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미래의 과학 꿈나무 똑똑한 우리 아이는 아폴로 학원에 보내세요" 그랬다.

그랬는데 지금은 아폴로는 눈병 이름으로나 기억되고 있고.. 2010~20년대에 사람들에게 그만 한 충격을 주며 각인된 이름은 아폴로가 아니라 인공지능 '알파고'인 게 참 흥미롭다.
사실은 저 눈병(급성 출혈성 결막염)의 별명조차도 발견된 시기가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타이밍과 일치하여 붙은 것이었다.

2. 철도 차량과 비행기의 국내 생산 업체

테란의 레이쓰, 발키리, 배틀크루저를 생산하는 미래의 업체는 기술력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만.. 다음으로 현실 얘기를 잠깐 해 보겠다.

1999년 7월 1일, 현대· 대우· 한진 중공업의 철도 차량 생산 부문을 통합해서 '한국 철도차량'이라는 합작업체가 출범하고 그게 훗날 '현대로템'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런데 철도 차량뿐만 아니라 비행기를 만드는 업계도 비슷한 사정을 겪었나 보다. 1999년 10월 1일 국군의 날을 기해 현대 우주항공, 대우 중공업, 삼성 항공우주산업(업종 분리 이후 현재의 삼성/한화 테크윈)을 합병하여 '한국 항공우주산업'이라는 합작업체가 출범했다.

물론 보잉 같은 급의 대형 민항기까지 만드는 건 아니지만 경비행기, 훈련기, 헬리콥터, 무인기 정도는 뚝딱 만들고, 메이커급 전투기도 조립 면허생산 정도는 한다.

로템의 경우 본사는 철도 허브 도시인 의왕에 있고 공장 중 하나가 경남 창원에 있다.
항우산? KAI?는 본사와 공장 모두 경남 사천에 있다. 사천 공항이며, 인근의 공군 기지며, KAI 모두 비슷한 동네인 것 같다. 민간 지도에는 다 가려져서 나오지 않는다.
저기가 나름 우리나라의 항공 허브라고 봐도 될 듯하다. 철도 박물관이 의왕에 있다면, 우리나라 항공우주 박물관은 사천에 있다.

3. 지구 외의 행성에서의 비행 가능성

행성과 행성을 오가는 우주 비행이라는 건 로켓을 이용해 지구 대기권을 탈출하여 공전 궤도에 진입한 뒤, 그 다음에는 다른 천체의 중력에 끌려가거나 튕겨 나가는 고전역학을 예술적으로 조절하는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잠깐씩 몇 분 동안 또 연료를 분사해서 가속하는 것도 있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연료 없이 그냥 관성 비행이다.
이것 말고 그냥 한 천체 안에서 비행기를 띄우고 날아다니는 건 사정이 어떨까? 엔진 가동을 위해 필요한 산소 문제는 일단 빼고 생각하기로 한다.

  • 일단 진행 속도가 왕창 빨라야 양력이 생긴다. 그런데 한편으로 고속 주행과는 상극인 공기의 저항도 날개로(받음각) 잘 받아야 된다.
  • 날개의 받음각이 커지면 양력이 커진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걸 무작정 키워 버리면 항력도 도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기체는 실속에 빠져서 추락의 위험에 빠진다.

비행기 조종이란 건 이렇듯 서로 모순되는 듯한 여러 변수들을 적당히 조절해서 최적의 값이 나오는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니 날개에 달린 플랩이라는 물건도 비행기를 빨리 뜨게 할 때 쓰이지만(양력 증가), 착륙 후에 비행기를 빨리 감속시켜서 세울 때도 쓰이는 것이다(항력 증가). 그런데 플랩을 잘못 쓰면 착륙 직후에 비행기를 못 세우고 도로 띄워 버려서(양력 증가..) 기체에 대한 제동· 제어력을 상실하기도 한다. 이런 양날의 검 같은 면모는 열차나 선박 같은 타 교통수단의 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흔히 지구가 여러 복잡한 조건을 기적적으로 만족하여 생명이 탄생 가능했던 유일한 행성이라고 여겨지는데.. 이와 비슷한 급으로 지구만이 유체· 항공역학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비행기를 띄우고 날리는 게 가능한 유일한 행성으로 여겨진다. 적어도 태양계에서는 말이다.

달이나 수성은 대기가 없으니 날개고 양력이고 활강이고가 아무 의미가 없다. 굳이 공중으로 이동하려면 언제나 달 착륙선 같은 로켓을 띄워야 하며, 착륙할 때는 역시나 연료 역분사로 낙하 속도를 줄여서 내려앉아야 한다. 그리고 로켓은 연료 소모가 너무 극심해서 경제성이 떨어진다.

그 다음으로 금성과 지구와 화성은 공교롭게도 뒤의 행성이 앞의 행성보다 공기압이 거의 95~100배 더 옅다.
화성은 대기가 너무 옅기 때문에, 계산에 따르면 지상에서 초음속 자동차 급으로 달리며 공기를 받아야 양력이 생길까 말까라고 한다. 물론 고속 주행 자체에 공기 저항으로 인한 어려움은 지구보다 덜하겠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하게 긴 직선 활주로가 필요하고 그만큼 사고 위험도 클 것이다.

반대로 금성은 공기가 워낙 뻑뻑한 덕분에 그냥 자전거 속도 정도로 달리면서 날개로 바람을 받으면 곧장 하늘로 뜰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양력이 아주 잘 생긴다. 다만, 어지간한 잠수함도 못 버틸 엄청난 압력인 95기압(거의 해저 수심 800m가량) 하에서 자전거 속도만치라도 달리는 게 선뜻 가능하겠는지는 별도로 생각할 문제다.;;
거기에다 고열 문제는 덤이다. 금성의 그 온도에서는 비행기 엔진이 전부 과열돼서 타 버릴 것이다.

참고로 금성은 중력가속도는 지구(9.8m/s^2)의 90% 정도이니(8.87m/s^2)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
그리고 화성은 대기의 '비율'만 따지자면 거의 96%가 이산화탄소이며, 이는 의외로 금성과 동일하다. 농도만 훨씬 옅을 뿐..

목성 이후의 행성들은 그냥 설명을 생략하겠다.
목성은 중력가속도가 지구의 2배를 넘기 때문에(거의 22m/s^2) 거기서는 사람들이 자기 몸 가누기도 힘들 것이고 비행기가 뜨기도 그만치 더 힘들다. 물론, 거기는 아예 땅이 없고 거기 근접만 해도 그냥 초고압 유독가스와 방사선에 다 끔살 당할 것이다. (Quake 3의 fog of death 실사판)

나머지 행성들은 중력가속도가 그렇게 강하지는 않지만 극도의 저온과 악천후 때문에 여전히 지구 같은 낭만적인 비행이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공기가 적절한 배합과 양으로 구성돼 있고 순항 고도에 '제트 기류'라는 것까지 존재하는 지구가 그야말로 인류에게 축복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0/08/08 08:35 2020/08/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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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버스 이야기 외

1. 좌석버스

버스라는 대중교통을 더 세부적으로 분류해 보면 좌석버스라는 등급이 있다. 이게 생각보다 흥미로운 물건이다.
얘는 입석형 도시형 시내버스에 비해 말 그대로 좌석이 많고 더 장거리를 달리며 요금도 약간 더 비싸다. 일부 구간은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 도로에서 오랫동안 씽씽 달리기도 한다. 완행 입석 시내버스와 달리 전기나 CNG 차량, 저상 버스가 눈에 띄지 않고 그냥 고상+디젤 일색이다.

하지만 얘는 전용 터미널에서만 타는 장거리 시외/고속버스 같은 급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느 버스 정류장에서 쉽게 탑승 가능하며 다음과 같은 점도 시외/고속버스와 차이가 있다.

  • 앞문이 간지나는(?) 스윙 방식이 아니라 여전히 시내버스 같은 폴딩 방식이다.
  • 여전히 하차 전용 중문을 갖추고 있다. 다만, 좀 더 급행/광역에 특화된 좌석버스 중에는 중문이 없는 것도 있다.
  • 큼직한 우등형은 있을 리가 만무하고.. 좌석에 안전벨트가 있긴 하지만 거의 유명무실 상태이다.
  • 타이어에 휠캡이 달려 있지 않다. 옛날에는 이 휠캡이 뭔가 왕관과도 같은 고속버스의 상징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2000년대 이후부터는 고속버스도 휠캡을 잘 장착하지 않는 것 같다.
  • 객실 아래의 짐칸 같은 게 쓰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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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고속버스 휠캡. 출처는 한국 버스 연구회)

그러니 좌석버스는 위상이 여러 모로 시내와 시외의 중간인 셈이다. 좌석이 많다는 관점에서 좌석버스라고 불리는 게 보통이지만, 급행· 직행이나 광역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여기서 직행이라는 건 시외버스에서의 '직행'과는 약간 다른 개념이다.
얘들은 관할 범위가 완벽하게 특정 지역구 내부에 한정된 게 아니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전국구도 아니다 보니, 종류가 다양하고 버스들의 도색도 다양한 편이다. 서울/수도권 기준으로 이런 버스들이 존재한다.

  • 서울시 관할의 직행 좌석: GRYB 중에서 R에 해당하는 그 물건이다. 번호는 9로 시작하는 네 자리이다. 허나, 지금은 Y와 마찬가지로 많이 몰락해서 4권역(9403, 9401, 9408 등)과 7권역(9703 등..)에 소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 경기도 관할의 직행 좌석: 하남 9301, 구리 1650 같은 게 떠오른다. 차량의 외형은 지역마다 케바케이지만 대체로 서울과 비슷하게 빨강인 편이다. 단, 서울 버스는 온통 빨강 단일색인 반면, 경기도 버스는 위쪽만 붉고 아래쪽은 희다.
  • 광역급행: 중앙 정부인 국토교통부에서 노선을 고시한 좌석버스로, 번호는 M으로 시작하는 네 자리수이다. 기존 좌석버스들보다 더 직선화 고속화를 추구해서 더 빨리 간다. 차량은 파란 도색이며 중문이 없다.
  • 경기도 급행: 경기도에서 자체적으로 신설한 노선으로, 광역급행의 경기도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번호는 G로 시작하는 네 자리수이다. 파랑-초록-노랑의 꽤 알록달록한 도색이며, 2층 버스가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G라는 이니셜을 이용해서 '굿모닝 버스'라고도 부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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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서울시는 환경 보호를 위해 이미 들어오려는 외부 차량들을 억제시키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니 경기도나 중앙 정부 말고 서울시에서 관할하는 광역 좌석버스가 근본적으로 많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버스 업계와 달리, 철도에는 롱시트 통근형 입석형 전동차를 쓰는 도시철도· 광역전철이 아니면 그냥 일반열차 운임 체계 기반인 무궁화호 이상의 장거리 열차이다. 운영 방식이 좀 경직돼 있다.
그 중간 단계를 표방하는 누리로 전동차라는 게 도입되긴 했지만 현실에서는 그냥 무궁화호와 별 차이 없어 보인다.

신분당선은 코레일 계열이 아닌 광역전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그 뒤 앞으로는 고심도 급행 전철인 GTX가 저 광역급행 버스의 고속철 역할을 감당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롱시트가 아닌 좌석형이면서 고상홈에서 타고 내리고, 정차역이 적고 빠르고, 운임은 기존 시내버스· 지하철과 환승 할인이 되는.. 그런 광역전철이 좀 필요해 보인다.

2. 버스와 트럭의 주행 관련 규제

자그마한 5인승 자가용 승용차만 운전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감할 일이 없겠지만, 이보다 덩치가 약간만 더 큰 차들에는 (1) 속도 제한 장치가 의무적으로 달려 있다.
먼저 사람이 많이 타는 승합차 계열부터 살펴보면, 지난 2013년 여름부터 11인승 이상 승합차에 110km/h 이상으로는 아무리 밟아도 가속이 되지 않는 리미터가 강제 장착되기 시작했다. 이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승합차는 자동차세가 월등히 저렴해서 좋다. 승용차와는 달리 자가용도 영업용과 동일하게 배기량과 무관한 낮은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합차는 고속도로에서 추월 하나 제대로 못 할 정도로 차가 고자가 되니 단점이 장점을 묻어 버렸다. 리미터가 달리지 않은 기존 중고차의 가격이 더 오른다거나, 그냥 9인승 SUV/밴에 수요가 몰리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트럭은 3.5톤 이상부터는 아예 90km/h 리미터가 강제 장착된다. 이건 승합차보다 더 전부터 있었던 규제인 것 같다.
하지만 한 탕이라도 더 뛰어야 먹고 살 수 있고 바빠 죽겠는데, 엔진 속 컴퓨터를 해킹해서 속도 제한 장치를 불법으로 무력화시키고 질주하는 승합차나 트럭이 심심찮게 보인다. 아이폰 탈옥과 개념적으로 비슷해 보인다만..

하긴, 대형 트럭은 디젤 엔진 기반이다 보니 속도 규제뿐만 아니라 (2) 환경 규제도 꽤 까다롭게 걸려 있다.
유로4 이상의 규제를 만족시키기 위해 DPF라고 미세먼지 저감 장치의 장착과 가동이 의무화돼 있는데, 이것도 검사받고 혜택을 받을 때만 장착 인증을 하고서는, 실제 운행할 때는 불법으로 끄거나 떼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얘는 작동 과정에서 엔진 성능과 연비를 일부 깎아먹으며, 괜히 차량의 유지 비용만 증가시키는 잉여 계륵 같은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DPF에 SCR 등 온갖 배기가스 정화 장치를 돌려 놨다 해도 도를 넘는 막장 과적 앞에서는 답이 없다.
디젤 엔진이 제일 더티해지는 때는 바로 저회전 상태에서 큰 토크가 필요한 첫 출발 가속 시점이다. 이때 연료가 제대로 연소하지 못해서 시커먼 매연이 제대로 뿜어져 나오는데, 차가 설계 한도 이상으로 너무 무거운 상태이면 이런 상태의 지속 시간이 길어진다.
연료를 왕창 집어넣었는데 엔진이 빠릿빠릿 못 돌고 있으면 정화 장치들도 감당을 못 하고 매연이 더욱 심해진다.

과적은 도로 파손, 차량에 과부하, 제동과 조향 안정성 저해 같은 여러 악영향을 끼치는데, 환경 측면에서도 덤으로 악영향을 끼치는 셈이다. 이 와중에 속도 리미터와 DPF를 다 떼어 버리고 과적· 과속을 일삼다가 적발되면 도로교통법보다는 자동차관리법을 왕창 어겨서 과태료를 많이 물게 될 것이다.

그래서 4.5톤 이상의 트럭은 고속도로에 진입할 때도 (3) 과적 여부 검사를 병행할 수 있는 화물차 전용 진입로로
들어가야 한다. 하이패스를 달았다고 해서 승용차처럼 싹 무정차 통과를 할 수 없다.

버스건 트럭이건 대형차들은 생각보다 많은 규제가 걸린 채로 운행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아, 그러고 보니 이런 차들을 생계 수단으로 삼고 운전하려면 통상적인 운전 면허를 딴 이후에도 각각 화물 운송 자격증, 버스 운전 자격증 같은 자격증을 추가로 따야 하기도 한다. 자가용이라면 해당 사항이 없겠지만, 거대한 트럭과 버스를 자가용으로 굴리는 경우는 사실상 없을 테니 말이다.

이걸로도 모자라서 졸음 운전 대형 사고가 몇 건 터진 뒤에는 운전사의 휴식 시간 보장을 위해 4시간 주기로 강제 휴식이니, 운행 기록 장치 장착 의무화 같은 제도가 생겼는데 제대로 시행되고 효과를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요 근래에는 드디어 노후 경유차의 서울 시내 주행 금지라는 더 강력한 규제가 시행되었다. 이건 뭐 굳이 대형 상용차만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지만 저격 대상이 사실상 그런 부류들밖에 없는 지경이다.

다른 규제라면 몰라도 이 글에서 맨 먼저 언급했던 속도 규제는 개인적으로 좀 회의적인 소신이다.
운동 에너지라는 게 물체의 속도의 ‘제곱’에 비례해서 급격히 커진다는 걸 본인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본인은 그냥 적기 조례마냥 규제 만능 찍어 누르기 식의 조치를 매우 싫어한다.

고속버스 졸음 운전 사고가 몇 건 났다고 해서 전국의 고속버스들 주행 속도를 90km/h로 몽땅 낮출 생각인가? 안 그래도 시내에서 개나 소나 속도 제한이 60도 아니고 50km/h로 더 낮아지고, 단속 카메라도 요즘 너무 많이 생겨서 싫은데..

이런 건 운전자의 재량을 존중하여 좀 상향 조정하고, 고속도로에서 130~140 정도는 완전히 합법화를 했으면 좋겠다. 터널이나 교량에서 차로 변경도 정식으로 허용하고 말이다.
그 대신 꼬리물기나 1차로 저속 주행이나 단속해서 칼치기를 할 일이 없게 만들면 도로가 훨씬 더 안전해질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0/07/26 08:36 2020/07/2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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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텔레비전의 변천사, 라디오와의 차이

요즘 전화기가 유선, 무선, 위성, 인터넷이라는 네 방식이 있는 것처럼 텔레비전 방송에도 개념적으로 유선, 무선, 위성, 인터넷 방식이 모두 존재한다.
단, 전화는 처음에 유선(전화선)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무선 휴대전화(기지국..)가 개발된 반면, 텔레비전은 처음에 무선(지상파)부터 시작했다가 난시청 지역의 방송 접근성 개선을 위해 유선(케이블) 방송이 나중에 개발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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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수신을 위한 텔레비전 안테나. 뭔가 기하학적인 직선 모양이다. 텔레비전 본체에 달린 더듬이 모양의 작대기 두 개만이 전부가 아니고, 이런 실외 안테나도 필요했던가 보다.)

텔레비전의 무선 신호는 처음에는 NTSC 내지 PAL이라는 아날로그 방식이었다. 동시대의 비디오 테이프에 VHS와 베타멕스라는 두 방식이 있었던 것처럼 텔레비전용 아날로그 신호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미국을 따라 NTSC 방식을 사용했었다.

처음에는 흑백만 지원하다가 1980년대부터 국내에도 컬러 방송이 시작됐는데, NTSC는 신호 구조에 하위 호환이 잘 지켜졌던 모양이다. 흑백 수상기는 여전히 흑백 영상이 나오면서 컬러 수상기에서는 컬러를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21세기에 와서는 신호가 통째로 디지털 방식으로 바뀌었다. 화질이 놀라울 정도로 크게 향상됨과 동시에, 화면의 종횡비도 바뀌어서 가로로 더 납작해졌다(4:3에서 16:9로).
이렇게 신호의 내부 구조가 달라진 한편으로 TV의 디스플레이 소자도 너무 크고 무겁던 브라운관이 퇴출되고, LCD 같은 얇은 물건이 등장했다. 2000년대 말~2010년대 초에 싹 물갈이가 된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아날로그 방송 송출이 중단된 것은 2012년 말부터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지상파 방송이 평일에도 상시 24시간 방송을 하기 시작한 것도 2012년 하반기쯤으로 비슷하다.
물론 평일 낮 시간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업에 바쁘니, TV를 보는 일이 잘 없다. 그래서 24시간 방송을 하더라도 저 때는 새 컨텐츠보다는 그냥 기존 방송의 재방송 위주로 편성되는 편이다.

그래도 24시간 방송 덕분에 텔레비전에서 화면조정 컬러바를 볼 일이 옛날에 비해 훨씬 더 없어진 것은 신통한 노릇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은 순환선인 관계로 타 노선에 비해 종점에서 멈추는 열차를 찾기가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참고로, 이런 텔레비전에 비해 라디오는.. 디지털이건 아날로그건 음질이 크게 달라질 게 없으며, 전쟁· 천재지변 같은 상황에서도 아주 가볍고 저렴하고 단순한 장비만으로 수신이 가능한 게 좋다는 특성상 오늘날까지도 재래식 아날로그 방식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라디오는 TV와 달리 딴 일을 하면서도 청취가 가능하다는 매우 중요한 특징이 있다. 특히 하루 종일 귀가 심심한 수많은 영업용 자동차(버스, 트럭, 택시) 운전사들의 고정 수요도 있기 때문에 망할 일이 절대 없다.
그러니 새벽 심야는 몰라도 평일 낮 시간에 라디오 방송이 끊겼던 적은 전무했다. 그리고 라디오 방송은 TV 방송보다 생방송의 비중이 더 크기도 한 것 같다. 이 바닥은 텔레비전과는 분위기 내지 물이 근본적으로 많이 다른 셈이다.

2. 위성 방송

무선 신호 얘기를 하다가 라디오 얘기도 나오면서 얘기가 옆길로 많이 샜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겠다.
유선, 무선 다음으로 위성은 기존 무선의 스케일을 확 키운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통상적인 텔레비전 송신탑이나 휴대전화 기지국은 제아무리 높아 봤자 지상에 존재하며, 감당 가능 영역이 국내의 일정 지역까지로 한정된다. 그러나 정지 궤도 위성은 그야말로 지구 반대편으로 전파를 보낼 수 있다.

그래서 텔레비전의 위성 방송은 위성으로 쏘는 외국의 방송을 시청 가능하게 했으며, 위성 전화는 선박이나 남극 기지처럼 지상의 통신 인프라와 고립된 오지 외지에서 통신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물론 위성 서비스는 통상적인 지상 기반 무선 서비스보다 단가가 훨씬 더 비싼 것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1995년에 무궁화 인공위성이 발사된 뒤부터 자체적인 위성 방송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전에도 외국의 통신 위성으로부터 서비스를 받는 외국 위성 방송 자체는 있었다.
내 기억으로 1990년대 중반, 그 시절에 국내에 수신된 대표적인 외국 위성 방송은 홍콩 StarTV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금빛 별 모양이 그려진 방송국 엠블럼이 나오고.. 정체 모를 팝송의 뮤직비디오와 운동 경기 중계가 많이 나오는 예능 채널 같았다.

본인은 스타TV 장면을 그 시절에 다니던 학원의 텔레비전에서 보고, 그리고 노래방 기계 화면의 배경 동영상으로도 많이 봤다! 그래, 그땐 그랬다. 이 TV에서는 어째 우리집에서는 볼 수 없는 외국 텔레비전 방송이 나오는지 의문을 가질 법도 했는데 그때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것 같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어디 친구 집에서 웬 일본 NHK 방송이 나오는 것도 본 적이 있다. 무슨 브랜드명이기라도 한지 화면에서 BS라는 이니셜이 자꾸 눈에 띄었던 것 같은데.. 알고 보니 그 이니셜 자체가 위성(S) 방송(B)이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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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 방송 수신용 안테나. 접시 모양이다.)

위성 방송은 워낙 능력이 출중하니 통상적인 지상파 방송의 시청이 안 되는 문제를 해소하는 용도로 쓰이지만, 앞서 얘기한 것처럼 외국 방송 내지 위성 방송 사업자가 제공하는 고유한 컨텐츠를 시청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위성 방송 사업자가 2000년대에 개척한 영역은 바로 교통수단 내부에서의 이동 방송이다.

그래서 그 무렵에 고속버스에서는 ‘스카이라이프’ 위성 방송이 개시되었으며.. 새마을호 열차에서는 ‘코모넷’이라는 업체로부터 납품받은 위성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교통수단에다가도 전기 공급해 주고 안테나만 잘 꽂으면 그냥 지상파 TV를 수신하지 못하란 법이 없다. 그 시절에 버스가 아닌 승용차용 자그마한 흑백 TV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교통수단용 별도의 이동 방송이 존재했던 건 신호 수신 때문이 아니라 고유한 방송 컨텐츠 때문이었다.

위성 방송은 다 좋지만 날씨의 영향을 받는 편이며, 특히 차량이 하늘이 보이지 않는 곳(터널..)에 진입하면 신호가 끊어지고 방송이 중단되는 단점이 있었다. 고속버스 말고 새마을호의 영상 서비스는 위성 방송이지만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난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새마을호 열차에 위성 방송 기반의 영상 서비스를 제공했던 업체가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코모넷’이다. 새마을호의 시종착 때 Looking for you라는 마의 음악을 선곡해서 집어넣은 장본인도 코모넷인데.. 그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 본인으로서는 너무나 궁금할 따름이다. 그 코모넷은 2000년대 후반에 소리소문 없이 망하고 폐업해 버렸으며, 이후에 창업주의 근황이 보도된 것도 전무하다. 그에 따라 새마을호의 영상 서비스는 2006년경에 연합뉴스로 바뀌었다가.. 얼마 못 가 완전히 폐지됐다.

3. 인터넷 TV (IPTV)

여기서 인터넷이란 유선 무선 같은 물리적인 기술 계층이 아니라, 그런 기술을 활용하고 해석하는 프로토콜 계층에서의 차이를 가리킨다. 인터넷의 물리적인 통신 방식이야 동축 케이블이나 유리 섬유 케이블 같은 유선으로 구현될 수도 있고, 수 GHz대의 와이파이 무선 통신으로 구현될 수도 있다.
단지, 영상과 음성 정보를 IP라는 인터넷 프로토콜에 근거한 패킷 형태로 주고받으며, 인터넷 자체가 양방향 소통 체계이다 보니 재방송, VOD 서비스 같은 인터랙티브한 서비스 제공도 덤으로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다.

즉, 인터넷 TV에서 인터넷이란 컴퓨터 웹브라우저를 통해 사용자에게 친숙한 WWW(월드 와이드 웹)는 아니고, 그보다 저수준에서 인터넷의 범주에 드는 기술인 것이다. 개인이 마음대로 진행하는 유튜브나 아프리카 기반의 인터넷 방송하고도 당연히 다른 얘기이다.
인터넷 TV를 시청하려면 해당 서비스에 가입하고 거기서 받은 셋톱박스와 전용 안테나를 설치해야 한다. 아니, 지상파 외에 위성이나 유선 같은 다른 기술 계층의 TV를 시청하려면 저런 추가적인 장비가 필요하다.

인터넷 TV로는 지상파뿐만 아니라 기존 케이블 TV까지도 시청 가능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케이블 TV와 사업 영역이 겹친다. 그래서 두 업종 간에 티격태격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서로 완전히 동치는 아니기 때문에 IPTV 전용 채널이라든가 케이블 방송 전용 채널도 있다.

4. 유선(케이블) 방송

텔레비전은 원래 전파를 수신해서 동영상을 보여주는 물건인데 유선이라니..?? 그렇다고 CCTV도 아니고? 일면 의아한 생각이 드는데.. 헷갈릴 필요가 없다.
그 '케이블'이라는 건 방송국에서 유선 방송 사업자 사이가 연결돼 있다는 뜻이다. 방송사와 소비자 사이에 계층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졌으니 소비자는 이 정도 양질의 신호는 셋톱박스 하나만 장착함으로써 수신할 수 있다. 물론 이 전파는 암호화도 돼 있어서 지상파 방송처럼 간단하게 시청할 수는 없다.

무선이 아니라 유선인 덕분에 이 방송은 기존 지상파 방송의 난시청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지상파보다 훨씬 더 많은 채널도 제공할 수 있다. KBS, MBC, EBS, SBS가 뭔가 1군 지상파라면.. 그 다음으로 YTN, 아리랑 TV라든가 국회방송, 법률방송, 기독교 방송, 온게임넷 같은 건 유선· IPTV· 위성 형태로만 시청 가능한 2군 정도 되겠다. 물론 위성 방송처럼 외국 방송을 쏴 주는 건 아니고, 국내 한정이다.

이런 2군 방송들은 특정 장르와 분야의 방송으로만 한정되곤 했는데 얘들도 지상파 방송처럼 일반적이고 범용적인 분야로 방송 영역을 확장시킨 것이 그 이름도 유명한 종편, 종합 편성 채널이다. 채널A, JTBC, TV조선 같은 것 말이다.

유선, 무선, 위성, 인터넷 이런 것들이 자동차로 치면 수소 연료전지, 순수 전기, 하이브리드, CNG 개조, LPG 개조 같은 온갖 연료 바리에이션을 보는 느낌이다. 또는 택시, 렌트, 카셰어링, 타다 등의 서비스 바리에이션 같기도 하고..
지금까지 얘기가 나왔던 것을 한데 정리하면 이렇게 요약된다.

  • 태초에 제일 단순한 KBS MBC 같은 지상파 방송이란 게 있었으며, TV는 지상파 방송을 시청하라고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 그런데 지상파의 난시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선 방송이란 게 개발되었고 유선 방송 전용 채널도 많이 생겨났다. 즉, 얘는 지상파의 상위 호환이다.
  • 위성 방송은 유선 방송의 상위 호환이다. 덤으로 외국 위성 방송의 수신이 가능하고 교통수단 내부에서 쓰인 바 있다. 지상파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긴 했지만 얘만의 고유한 약점(날씨와 지형 제약)도 있다.
  • 인터넷 TV도 유선 방송의 상위 호환이며 오늘날의 대세이다. 뭔가 파일 기반인 게 DB 기반으로 바뀐 듯한 느낌인데(전문적인 계층 추가).. 인터넷 전화와 마찬가지로 인터넷 서비스가 불통되면 얘 역시 몽땅 먹통이 돼 버린다. (와이파이 전파 상태 내지 해저 케이블..)

그리고..

(1) 지상파 방송이 접근성이 제일 좋긴 하지만.. 지상파 방송이 곧 전국구 방송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령, SBS는 엄연한 지상파 방송이지만 20세기까지는 서울· 수도권에서만 시청 가능했다. 지금도 경기방송, OBS경인TV 같은 건 지상파이지만 지방 방송이다.

(2) YTN의 경우 뉴스 보도 전문이니 종편은 아니다. 그런데 연합뉴스 TV는 YTN과 어떤 관계인지 난 잘 모르겠다.

(3) DMB는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에서 TV를 시청하기 위한 기술 규격인데, 기존 TV 신호 기술과 비교했을 때 무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것인지 개인적으로 잘 모르겠다. 뭔가 더 좋은 구석이 있겠지..

(4) 엄청 옛날에는 전화기가 동그란 다이얼이 달려 있었듯이, 텔레비전도 옛날에는 채널을 변경하는 인터페이스가 - + 버튼이 아니라 다이얼 두 개였다. 한 다이얼은 2부터 13 정도까지 VHF라 하여 좁은 영역을 건드리고, 다른 다이얼은 UHF라고 두 자리수의 훨씬 더 넓은 영역을 촘촘하게 다뤘다.
대부분의 채널은 그냥 비어 있어서 지정해 봤자 치지직 잡음밖에 안 들렸는데.. 여기에다가 유선 방송 셋톱박스를 설치해야 그 채널들이 방송으로 채워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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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옛날에는 매일 아침 지상파 방송에 CNN, NHK 등의 세계 외신의 주요 보도를 짤막하게 보여주는 '세계 뉴스'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요즘이야 그것 말고도 외신 보도를 접하는 방법이 차고 널렸기 때문에 남사스럽게 그런 걸 하지 않는다. 정보를 접하는 게 이렇게 쉽고 간편해진 건 정말 전율에 가까운 모습이다.

(6) 덕분에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동요도 의미가 참 무색해져 있다. 이제는 참신한 컨텐츠와 끼만 있으면 누구라도 개인 방송을 개설해서 언제든지 전세계에 자기 얼굴을 얼마든지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메이저 지상파 방송'에 어떤 형태로든 출연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니며 아무나 할 수 있지 않다. 본인조차도 지상파 방송 출연 경력은 현재까지도 지난 2005년 초의 스펀지 타자 실험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7) 컴퓨터에 TV 수신 카드라는 것도 있었는데.. 이 역시 격세지감이다. 국내에서는 두인 전자라는 기업에서 만들곤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0/07/20 08:35 2020/07/2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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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청): 삼전도비와 독립문

영국에서 높으신 분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6· 25 설마리 전투에 참전했던 영국군 글로스터 대대를 기념하는 전적비를 반드시 찾아간다고 한다(파주 적성면 소재). 영국은 나름 미국 다음으로 대규모로 참전했던 나라이다. 본인은 지난 2013년에 거기를 답사한 바 있으며, 답사기가 이 블로그에도 올라와 있다.

다음으로 영국 같은 훈훈한 예는 아니겠지만, 옛날에 일본인 관광객이 서울을 들렀다가 반드시 찾아가는 관광 코스 중 하나는 광화문과 경복궁 사이에 놓여 있던 조선총독부 청사였다고 한다. 뭐, 그 건물은 잘 알다시피 김 영삼 정권 때 헐렸다.

허나, 저것보다 더 안 좋은 예가 있다. 조선 시대에 병자호란 이후로 청나라에서 사신이 오면.. 얘들은 반드시 삼전도비부터 찾아가서 저게 잘 보존돼 있나 확인했다고 한다. -_-;; 그 이유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부득이하게 현장에 직접 못 가면 비석 표면의 탁본 인증이라도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사에 이런 시절이 있었다는 게 실감이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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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옛날에는 일체의 사대주의가 몽땅 다 지금 우리가 굉장히 부정적인 색안경을 끼고 보는.. 그저 목숨 부지하기 위해서 밸도 자존심도 다 저버리는 비굴한 굴종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옛날에는 사람과 국가 사이에 지금보다 뭔가 수직적인 위계 관계 질서가 훨씬 더 중요시되었다. 그리고 약자가 자기 팔자대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인근의 강자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조공 이상의 가성비로 다른 강자들로부터 보호를 받는... 뭐 그런 공생 관계가 필요한 것도 있었다. 이는 일제 시대에 일제의 통치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따랐던 사람들을 몽땅 친일파 매국노라고 욕하는 게 위험 편협한 사고방식인 것과도 비슷한 이치이다.

조선의 경우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어영부영 하다가 병자호란이 벌어졌는데 전쟁에서 그만 져 버렸다. 그래도 여러 나라 안팎 정세 덕분에 어째 나라가 통째로 멸망당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왕이 누구 보는 앞에서 이마를 몸소 땅바닥에 짓찧기까지 하면서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 유례를 찾기 힘든 모욕을 당하게 됐다(삼전도의 굴욕).

고려 시절에는 도읍을 강화도로 옮기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몽골· 원나라의 간섭을 받으면서 왕도 계속해서 충짜 시리즈로 나오던 적이 있었다. 훗날 구한말 때는 아관파천 같은 민망한 흑역사도 발생하긴 했다만.. 저건 그 시절에 통용되던 사대주의의 범주도 넘는 수준이었다.
삼전도비는 지금으로 치면 독립기념관의 야외에 내팽개쳐진 채 방치돼 있는 조선총독부 청사 지붕 첨탑을 능가하는 극도의 치욕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서대문 형무소 근처에 놓여 있는 독립문은 바로.. 우리 조선이 드디어 황제-_-를 보유한 대한제국이 됐고 삼전도비를 애지중지 관리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걸 기념하려고 세운 것이었다! 그 시절엔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이벤트였다. 청일 전쟁 이후로 청나라는 한반도에서 완전히 아웃 당했으니까..
뭐,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간판을 바꿔 봤자 나라가 돌아가는 방식이 실질적으로 바뀐 건 별로 없었다. 애초에 자기 힘으로 청나라를 몰아낸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독립문이 세워지기 전에는 동일 장소에 '영은문'이란 게 있었다. 이름부터가 "은혜로운 대국의 사신을 영접한다"라는 뜻이며, 명나라와 청나라의 사신이 이 문을 통과하여 개선장군처럼 들어왔었다.
그랬는데 독립협회가 주축이 되어 영은문은 헐어서 주춧돌 기둥만 남겼으며, 그 대신 독립문이란 걸 1896~97년에 걸쳐서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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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시절에 서 재필은 독립문, 독립협회에다가 독립 신문까지.. '독립'이라는 단어를 유난히도 좋아했다. 당시에 조선의 미래를 걱정하던 개화파 지식인들이 보기에는 청나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게 당장 최대의 과제이고 염원이었던가 보다.

이런 맥락을 모르고서 '독립문'이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는 조형물인 줄로 아는 사람은 아마 성경에 나오는 '사자'가 lion인지 messenger인지 분간 못 하는 것과 비슷한 지적 능력의 소유자이지 싶다. (마침 위치도 서대문 형무소 근처이다 보니 일본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더욱 오해하기 쉽긴 함.ㄲㄲㄲㄲㄲㄲㄲ)

물론 옛날 개화파 사람들 중에는 중국의 대안이 오로지 일본이라고.. 일본을 과신하는 착오를 범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친일 성향은 훗날 등장하는 매국노 반민족행위자의 친일 성향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일제는 훗날 조선의 주권을 침탈한 뒤에도, 과거에 조선이 영은문을 허물었던 것처럼 '독립문'을 또 철거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경성 시내의 재개발을 위해 서대문(돈의문)을 헐었을 뿐이지..

일제는 오히려 그 시절에 내팽개쳐지고 방치됐던 삼전도비를 재정비했으며, 이것도 그래도 역사 유물이라며 문화재로 등재하고 관리· 보존했다. 참으로 역설적인 노릇이다. 과장 좀 보태면, 다 부서진 채 방치돼 있던 경주 석굴암을 조사하고 어설프게나마 복원 공사를 한 것과 과정이 비슷했다.

한편, 그렇게 몰락했던 청나라는 조선이 멸망한 것과 비슷한 시기에(1912) 같이 멸망했으며, 그 뒤 중화민국을 거쳤다가 나중에 공산당 중화인민공화국 & 대만로 갈라져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국은 땅덩이가 워낙 넓어서 몽땅 정복하기가 곤란했던 덕분에, 아편 전쟁이라든가 청일이고 중일이고 각종 전쟁에서 참패하고도 대놓고 멸망하고 외세 식민지가 되지는 않았다. 단지 홍콩 같은 몇몇 지역을 잃었으며, 덕분에 문화가 이질화돼 버려서 수복 후에도 반쯤 특별구역처럼 됐을 뿐이다.

2. 일본: 1980년대 초반, 1990년대 중반의 반일

우리나라야 해방 이래로 지금까지 원초적인 반일 감정이 없던 적이 없었지만.. 1980년대 5공 시절에는 유난히 더했던 것 같다.
다음은 1982~84년에 발간된 무려 30권짜리 '동아 원색 세계 대백과사전'의 화보에서 '일본'을 찾아보면 나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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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로부터 일본에게 선진 문물을 전해 주고 일본을 근대화(?)시켜 줬건만, 걔들은 은혜를 원수로 갚고 우리에게 상처와 피해만 끼쳤다는 뿌리깊은 배신감과 피해의식, 투철한 반일의식을 엿볼 수 있다.
"일본은 이러한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우리의 진정한 우방이 되어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코멘트 훈수까지.. ㅋㅋㅋ 관찰자가 아니라 전지적 작가 시점의 극치다.
얘는 지금의 두산 세계 대백과사전, 두피디아의 전신으로, 집필진을 보면 온통 스카이 대학 교수들이 즐비하다. 나름 당대 최고의 석학들이 모여서 편찬한 백과사전이다.

그런데 일면 이해가 된다. 동아 원색 세계 대백과사전이 출간되었던 저 때는 일본의 역사 왜곡 발언으로 인해 반일 감정이 전국적으로 극에 달했었다.

정 광태의 그 유명한 "독도는 우리땅" 노래가 발표된 게 1982년.
박 영희 할머니가 자신이 조선어 학회 사건의 발단이 된 그 일기장의 주인이었다고 늘그막의 나이로 언론에 커밍아웃을 하며 일본을 공개적으로 규탄한 때도 1982년 여름이었다.

어디 그 뿐이랴? 국민 성금을 모아서 독립기념관을 건립하기 시작한 때도 1982년이다! (87년에 완공, 개관)
그러니 이 정도면 저 시기에 편찬된 민간 백과사전에 "일본은 각성하길 바란다" 같은 말이 본문은 아니어도 화보에 들어가고도 남지 않았겠는가?

1970년대에 북괴의 연이은 도발 때문에 전국민이 북괴를 규탄했었고,
1983년에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때문에 반소 감정이 폭발했었고..
2002년에 오노 금메달 사건과 여중생 장갑차 사건 때문에 반미 감정이 치솟았던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누가 저질렀건 같은 수준의 잘못에 대해 같은 강도로만 규탄하면 된다. 그럼 문제될 것 없다. 그렇지 않고 진영을 가려가며 편파적으로 선동질 하는 놈들이 매우 불순하고 나쁜놈일 뿐이다.
저 책은 북한 쪽을 찾아봐도 역시 5공 시절답게 '북괴' 운운하면서 노골적인 경계심과 적개심을 표현한다. 일본이고 북괴고 다 공평하게 모두 깐다. 그러면 편파적이지 않고 차라리 낫다.

한편, 저 때로부터 10~15년쯤 뒤인 김 영삼 때도 유독 일본의 정치인들이 위안부나 독도와 관련해서 망언을 자주 했고, 반일 감정이 상승했던 것 같다. 그러니 대통령이 "쟤들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겠다" 발언까지 하면서 조선총독부 청사를 헐어 버렸다.
정확한 근거나 출처를 찾기는 어렵지만 아마 저 때 새마을호 열차(= 국영 철도청 관할)의 안내방송에서 일본어를 잠시 빼 버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어지간히도 소심한 방법으로 저항했었다.;;

일본 문화가 정식으로 개방되지도 않았고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과 컴플렉스가 훨씬 쩔어 있었던 옛날이야 그럴 수도 있었다고 치지만 지금은 무려 2020년이다. 1982년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 북괴로부터 6· 25 시절 같은 군사력 위협을 느끼는 건 전혀 아니듯이, 일본에 대해서도 쟤들이 지금 같은 상황에서 무슨 태평양 전쟁 시즌 2 같은 짓거리를 하면 어쩌나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지적 수준이 일제 쇠말뚝이니 아베 노부유키의 저주(?) 나부랭이에 머물러 있는 반일은 좀 망상 정신병을 의심해야 하지 않나 싶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악성 친일파보다 더 나쁜놈들도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3. 한국: 꼬인 근현대사 비극의 근원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한국 현대사의 비극들 중 상당수는
과거에 자국민의 힘으로 조선 왕조를 직접 끝장내지 못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면 된다.
무슨 광복군이 제대로 참전하지 못한 것? 그건 별 의미 없으며 신경 쓸 필요 없다.

19세기에 조선은 말이 좋아 고요한 아침의 나라이지, 지금으로 치면 아프리카의 어느 못 사는 나라와 비슷하게 가난하고 굶주리고 비위생적이고 다른 나라와 제대로 교류하지도 않으면서 최악의 막장 고인물 썩은물이 되어 있었다.
오죽했으면 차라리 이전의 고려가 조선보다는 더 개방적이고 국제 인지도가 더 높았기 때문에 한국의 영어 명칭조차도 ‘코리아’로 굳어지지 않았던가? 조선의 입김이 닿았다면 choose의 과거분사와 비슷한 단어가 됐을 텐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조선은 시작과 끝이 은근히 잔혹하고 악랄했다. 건국 초기부터(1400년 초) 특별히 반역이나 역모 혐의가 없었는데도 고려 왕씨들을 집요하게 색출해서 참수하거나 바다에 던져넣는 식으로 학살했다. 나중에 홍 경래의 난이 진압됐을 때는(1812) 수괴와 간부는 그렇다 치더라도 단순 가담자까지.. 10살 이상 남자는 전원 무려 1917명을 한 치의 자비심 없이 몽땅 처형했다.

하물며 말기에 개화파는..?? 그야말로 삼족이 멸해지는 참화를 당했다. 김 옥균은 외국 망명 중에도 왕이 직접 보낸 자객에게 암살 당한 게 마치 북한 김 정남이 암살 당한 것과 비슷해 보인다. 저 사람뿐만 아니라 서 재필도 가족은 조부모, 부모, 자녀, 손주 세대까지 깔끔히 순삭 당했다.
고종과 민씨 일가는 외교와 경제· 군사는 등신 같았지만, 자기 밥그릇 지키는 데는 귀신이었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 같은 건 외국 군대까지 끌어들여 자근자근 밟아 줬다. 그리고 그 외세는 조선의 무덤을 파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그때가 되니 조선 정부도 일본에게 내정간섭 좀 그만 하라며 뒤늦게 손사래를 치기도 했지만.. 이미 일본군이 경복궁 주위에까지 쫙 깔렸고 때는 너무 늦었다.
이걸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당시 쟤들은 거의 싸이코패스가 아닌가 생각이 들 법도 한데 국뽕 국사 교과서는 이 과오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다. 특히 민비가 워낙 적절한 타이밍 때 잘 암살 당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청산리니 봉오동이니 하는 1920년대 독립군의 전과가 많이 부풀려지고 왜곡된 것으로 밝혀졌듯이, 20여 년 뒤의 광복군도 비록 취지는 훌륭하지만 그 규모와 전투력은 정말 보잘것없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군대는 오로지 소비밖에 안 하는 집단이다. 지금 북한이 중국 없이 못 지내는 것 이상으로 그때 임시정부니 광복군이니 다 장 제스의 지원이 없었으면 뭘 더 할 수 있었을까? 겨우 그거 갖고 당당히 일본을 무찌른 전승국 대접을 받고 미국· 소련의 입김에서도 벗어난다? 남북 분단도 안 되었을 거라고? 꿈도 참 야무지다.

내가 예전에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일본이 핵폭탄 맞고 일찍 항복하고 허겁지겁 도망간 것은 걔네들한테나 우리한테나.. 특히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득이 훨씬 더 많았다.
일제가 한반도에서 뭔가를 수탈하고 망쳐 놓은 것을 논하기 전에, 구한말 때 이 헬조선 땅에 더 수탈하고 망가뜨릴 게 그렇게 많이 있기나 했는지를 이성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0/07/11 19:35 2020/07/1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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