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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메랑은 어떤 원리로 원 궤도를 그리며 날다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까?
물수제비는 어떤 원리로 가능한 걸까? (우주 탐사선의 대기권 재진입과도 관계 있음)
선풍기나 프로펠러에 날개는 몇 개가 들어가는 게 성능 면에서 적합할까?
이런 것은 마치 영구 자석이 존재 가능한 이유만큼이나 과학적으로 규명하기가 의외로 까다롭다. 어떤 건 비행기나 연처럼 항공역학적인 이론을 동원해야 하기도 한다.

2.
공기 중에 널린 게 질소이지만 식물은 뿌리혹박테리아와 공생하는 콩류를 제외하면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질소 비료를 따로 줘야 된다.
주변에 온통 널린 게 풀이지만 사람은 진짜 초식동물들처럼 셀룰로오스 섬유질을 소화하지 못한다. 초식동물의 장 안에서 섬유질의 소화를 도와주는 세균이 식물로 치면 뿌리혹박테리아인가 보다.

그 외에 바다엔 온통 널린 게 물이지만 잘 알다시피..;; 사람은 그걸 그대로 마실 수 없다.
우주에 널린 그 많은 수소의 폭발력을 십분 활용하여, 성능 좋고 배기가스도 더티한 탄소 화합물이 아닌 물밖에 안 나오는 꿈의 엔진도.. 아직까지는 다른 여러 실용적인 문제로 인해 여전히 꿈일 뿐이다.
자연엔 이런 식의 장벽이 여럿 존재하는가 보다.

3.
어라..? 햇빛을 맨눈으로 보고 있으면 재채기가 나는 건.. 난 하품 할 때 눈물 나는 것만큼이나 누구에게나 똑같이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가 보다. 전체 인구의 2~30%가량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이라니! 게다가 유전 형질 때문인지 무엇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인지 아직 의학적으로 제대로 규명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긴, 먼 옛날 초딩 시절에 본인은 난 밝은 낮 하늘에 뭔가 알갱이, 입자 같은 게 비쳐 보이는 게 공기의 분자-_-;;;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비문증'이라는 현상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4.
발화점과 인화점의 관계는.. 최대 정지 마찰력과 운동 마찰력의 관계와 아주 비슷해 보인다.
물질이 열받아서 뜨거워지고 고체· 액체· 기체 상태만 바뀌는 것과.. 아예 불꽃을 내며 활활 타고 재가 되는 것은 양상이 많이 다르다. 난 어렸을 땐 이게 무기물과 유기물의 차이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발화점과 인화점 사이에 연소점이라는 온도도 있긴 한데, 이건 뭐 학교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는 것 같다.

5.
사실, 시사· 역사 상식뿐만 아니라 과학 상식도 정정되고 바뀐다.
물론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든가 "지구는 둥글다", "H2O는 물이다" 같은 게 바뀔 일은 없겠지만, 세상엔 인류의 과학 기술이 완전히 규명하고 밝혀내지 못한 수수께끼도 많기 때문이다. 건강· 의학 분야야 그런 예가 워낙 많긴 하지만 굳이 그 분야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 힘을 많이 썼을 때 근육이 저리고 힘든 이유가 젖산이 분비됐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옛날에 마르고 닳도록 배워 왔다. 하지만 21세기에는 추가적인 연구 결과들을 통해 젖산이 아니라 이로 인해 축적된 칼륨 이온 때문에 근육통이 유발된다고 이론이 수정됐다.
  • 한때는 피뢰침은 반드시 뾰족해야 된다고 알려졌는데 21세기에는 꼭 그럴 필요가 없다는 실험 결과도 나온 모양이다.
  • 하품은 통념과 달리, 꼭 산소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이벤트는 아니라고 한다.
  • 뜨거운 물이 더 빨리 언다는 현상은 반론도 나와 있다. 물은 전자레인지로 데웠다가는 갑자기 끓어올라서 위험하다고 그러고 열역학적으로 특이한 점이 많은 물질 같다.
  • 30년 이상 전의 옛날 아동용 과학 서적에서는 버섯과 곰팡이(균류)가 식물의 좀 특이한 부류라고 분류돼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 샌가 균류는 동물이나 식물이 아닌 고유한 카테고리라고 분류가 바뀌었다.

6.
아, 깜빡 잊은 채로 당일을 지나쳐 버렸구나..
질량 단위인 킬로그램의 정의가 130여 년 만에 개정되었다. 절대성이 결여되는 "그냥 이 원기의 질량이 곧 1kg"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실험실에서 동일하게 재현 가능한 객관적인 정의가 도입됐다.

오랫동안 전세계에서 통용되어 온 유명 단위의 정의를 개정해서 과학사에 한 획을 긋는 일은 대단히 신중하게 논의되고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2010년대 이후로 국제 도량형 총회에서는 여러 번 연기· 보류를 거듭하다가 지난 2018년 11월 16일이에야 새로운 정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리고 반 년가량의 유예 기간을 거친 뒤에 2019년 5월 20일부터 이를 전면 시행하기 시작했다. 국제 미터 협약을 체결한 날(1875년 5월 20일)을 기념하는 세계 측정의 날에 맞춰 시행한 거라고 한다. 그랬는데 정작 5월 20일 당일은 본인도 딱히 관련 언론 보도를 접하지 못하고 조용히 지나가 버린 것 같다.

1미터나 1초 같은 단위들의 정의를 보면 빛이 진공에서 1/!!!@!#!@#초 동안 진행한 거리, 세슘 원자에서 방출하는 빛이 !@#!!#@!회 진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처럼..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는 괴상한 형태이다. 일반인이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물질이나 조건을 제시하는 건 무조건 절대불변이 보장되는 조건을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며, 숫자까지 저렇게 복잡하고 야리꾸리한 이유는 옛날의 정의와 호환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옛날에 지구 자오선 길이의 1/!@#!@가 1m, 지구 1년의 1/!@##!#가 1초, 섭씨 4도의 물 1리터의 질량.. 이러던 시절보다 엄밀해진 대신 더 복잡해진 셈이다(초기). 그러다가 원기를 갖고 정의하다가(2기.. 심지어 미터도!) 나중에는 이런 식으로 더 고차원적인 정의가 등장해서 쓰이게 됐다.

그런데 킬로그램의 새로운 정의는 저런 것보다 훨씬 더 빡세고 이해하기 어렵다. 플랑크 상수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정도의 양자역학 지식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난해한 측정값의 영역이던 플랑크 상수를 측정 기술의 발달 덕분에 아예 6.62607015×10^-34 kg·m^2/s라는 정의로 바꿔 버리고, 이 값이 나오게 하는 단위 질량을 1kg으로 정의한 것이다. 1미터와 1초는 이미 질량에 의존하지 않는 형태로 정의돼 있으니까 킬로그램을 이런 식으로 정의 가능한 것이다.

무슨 원자 @##$@#$@#의 물리량 이런 식의 정의를 예상했던 본인으로서는 난감함과 시시함이 좀 느껴진다. ㅡ,.ㅡ;;

7.
세상은 넓고 과학 기술 강국 선진국은 여럿 있는데..

  • 과학 분야 노벨 상 수상자를 배출한 적 있는 나라
  • 우주 발사체 기술을 보유한 나라
  • 유인 우주선 개발 기술을 보유한 나라 (!!)
  • 잠수함, 공중급유기, 항공모함을 보유한 나라
  •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

우리나라는 불행히도 해당되는 게 별로 없다.;; (글쎄, 쌀로 핵을 만든 것은 과학적 방법론으로 검증 가능하지 않아서..)
물론, 노벨 상 빼고 나머지는 군사· 안보와도 관계가 있어서 타 강대국들의 견제 때문에 보유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가령, 핵무기와 우주 발사체는 바늘과 실 같은 관계의 기술이며, 일본이 기술이 없어서 핵을 못 만드는 건 절대 아니니 말이다.

특히 핵무기는 몇몇 예외 국가를 제외하면 일단 UN 상임이사국(미영프 중러 5개국)들만이 꽉 잡고서 보유국이 더 늘어나지 못하도록 매의 눈으로 감시하고 있다. 일본과 독일이 없고 오히려 과거의 공산권 진영이던 중국와 러시아가 있는 걸 보면 상임이사국은 철저하게 2차 세계 대전 승전국 위주로 편성돼 있는 게 느껴진다.

물론 일본은 지금까지 '비'상임이사국은 정말 압도적으로 자주 역임했었으며, 상임이사국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일본이 과거에 친 사고가 워낙 방대하고, 기존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반일 감정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이는 쉽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7/03 19:34 2019/07/0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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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한 주제들

1. 개고기

인간이 동물에게 행하는 수많은 비인간적인(?) 짓을 생각해 보자. 고기· 알· 가죽을 최대한 저렴하게 얻기 위한 착취, 도축, 임상실험 등등.. 그걸 놔 두고 오로지 개를 잡아먹는 것만 잔인하네 야만적이네 뭐네 호들갑을 떨 필요는 전혀 없다.

하긴, 유대인이라면 개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잔인하고 야만적이어서는 전혀 절대 아니고.. 그냥 율법에서 부정한 동물이라고 금지했기 때문이다. 쟤들은 같은 논리로 개뿐만 아니라 그 맛있는 돼지고기도 먹을 수 없었다.
또한 식용이면 차라리 양반이지, 쟤들은 속죄 헌물이라는 명목으로도 수많은 동물들을 잡아야 했다. 유대교 제사장은 평소에 율법의 권위자로서 먹물 꼰대질(?)뿐만 아니라 푸줏간 백정 같은 궂은일도 잔뜩 해야 했다.

물론 성경에도 동물에 대한 배려와 보호를 명령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동물을 불가피하게 잡는 것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죄의식 가질 필요는 없다. 그 동물을 보고 불쌍한 생각이 든다면 인간의 죄가 얼마나 끔찍 잔혹한 것인지를 먼저 알고 반성해야 한다. 이는 마치 예수님이 지옥에 가지 않으셨다면 내가 거기를 가야 한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본인은 필요악의 필요성을 성경적으로 인정하는 사람이다. 고기 먹는 걸 좋아하면서 도축업자는 천시하고, 흉악 범죄를 미워하면서 사형 집행관을 천시하는 식의 위선을 매우 싫어한다.

2. 자살

인간이 저지르는 수많은 끔찍 흉악한 죄들을 제쳐놓고 오로지 자살만 아주 특별하고 예외적인 것처럼 취급할 필요는 네버, 전혀 절대 없다.
생각을 해 봐라. 세상 비관해서 이판사판 지하철에다 불지르고 길거리에서 아무에게나 칼부림을 벌인 미친놈 싸이코들도 즐비한데, 그에 반해 혼자만 곱게 목 매달거나 옥상에서 뛰어내린 건 얼마나 양반(?)인가?

선행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듯이 악행으로 구원을 잃지도 않는 게 기독교이다.
무슨 강 재구 소령처럼 산화하고 전 태일 열사처럼 죽는다 해도 그걸로는 구원 못 받는다.
그럼 그 반대편으로.. 세상 비관해서든, 내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든, 고문 당할까봐 겁나서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해도 그 개인의 구원 여부에는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게 인간의 직관과 좀 다른 성경의 원칙이다.

"에이 그래도 자기 생명을 스스로 끊은 건데.." 아직도 그런 생각이 든다면.. 거듭난 크리스천도 그것 말고도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간증 상실할 짓을 많이 하는지 생각을 좀 해 보아라. 구원받았다는 게.. 영적 신분은 큰 변화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겉으로 자기 성품은 하나도 바뀌는 것 없고 별 거 아니다.
자살로 구원 상실이 가능하다면, 예수쟁이들이 평소에 성경 읽는 걸 게을리하고 기도 안 하는 것으로도 구원 상실이 같은 논리로 가능해야 할 것이다.

"자살하면 지옥 가네"는 교리적으로 잘못됐고, "애초에 구원받은 게 아니었네.." 이런 소리는 그냥 궤변 말장난일 뿐이다.
그 어떤 방식으로 죽더라도 "죽음이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한다"가 정답이다.
그래서 나도 처음에는 요 3:16이었다가 나중에는 요일 4:19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심), 지금은 롬 8:38에서 가슴이 탁 트여 있다.

3. 피임

기독교가 결혼한 부부 외의 모든 성관계를 교리적으로 음행이라고 규정하고 정죄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그건 반대로 말하면, 결혼한 부부끼리는 그 어떤 가족 계획 자녀 계획을 갖든, 밤에 무슨 짓을 하든 서로 좋아서 한 거라면 아~~무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건 전적으로 부부 재량이고 개인 사생활이며 신이라도 전혀 터치하지 않고 존중해 준다.
다시 말해 피임을 하는 것 자체가 죄는 절대 아니다. 어떤 처지의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하느냐가 죄의 성립 여부를 결정할 뿐이다. 그걸 무조건 금기시하는 건 좀 종교적인 오지랖으로 보인다.

4. 낙태

사형 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꼭 문제의 본질과 관계 없는 극단적인 예외 상황만 끄집어내면서(오판, 오· 남용) 논점을 흐리는 경향이 있다. 그것처럼 낙태에 대해서도 강간으로 인한 임신, 괴물 급의 유전병, 산모도 목숨이 위험한 경우 같은 극단적인 상황은 일단 논외로 하자.

어차피 대부분의, 내가 알기로 90%가 넘는 낙태의 사유는 그냥 (1) 철딱서니 없는 애들의 불장난이거나, 아니면 기혼 부부의 경우 (2) 단순 피임 실패 내지 (3) 딸이어서이다. 산모와 아이의 건강엔 아무 문제 없다.
이것들에 대해서 낙태는 살인과 동급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낙태를 예방하기 위해서 원칙대로라면 애들에게 피임법을 가르칠 게 아니라 혼전 성관계 자체가 음행이라고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이건 종교 교육과 병행하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_-;;

5. 안락사

마치 체벌이 사랑의 매와 아동 학대 사이에 간당간당 하고 살인이 흉악 범죄와 숭고한 호국 애국 사이에서 간당간당 할 수 있듯.. 안락사는 "어디까지가 살인이고 어디부터가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 가게 그냥 놔 주는 것이냐"라는 알쏭달쏭한 문제로 귀착된다.

내가 알기로 성경엔 사람을 완전히 죽이면 죽였지, 식물인간이나 뇌사 같은 게 나오지는 않는다. 내 생각은 연명 행위만 중단하는 소극적인 안락사는 윤리· 종교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애초에 전근대 시절에는 기술 부족으로 인해 그런 연명 행위 자체가 가능하지 않았었다.

살인만 해도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이 있다. 그러니 살인에 맞먹는, 그와 준하는 죄가 될 수 있는 낙태나 안락사 같은 다른 행위에 대해서도 참작 사유는 물론 존재한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기독교 교리에는 이런 식으로 논리와 체계가 있다.
무조건 인간의 욕구를 억압하고, 인간에게 불가능한 인내나 위선을 짜내고 강요하는 게 아니다.
이걸 해서는 안 되는 대신 저건 허용되는 게 있으며, 이 교리가 성립하기 위해서 논리적으로 저게 성립해야 되는 것이 있다.

본인도 성경에 모르는 게 많고, 또 지능이나 행실이 다른 신앙의 거장들에 비해 보잘것없는 쪼렙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최소한 성경이 온전히 보전돼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교리에서 일말의 합리적인 체계와 맥을 발견했기 때문에 거리 설교도 할 수 있게 되고, 내 신앙 체계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글을 쓰고 변증도 할 수 있게 됐다.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간극,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사이의 균형, 어린아이의 구원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민감하고 센세이셔널한 주제에 대해서 누가 단정적으로 얘기를 하고 나면.. 당사자가 말하지도 않은 확대해석과 오해와 낭설까지 쫙 날조되어 퍼져나가는 게 인간의 습성이다. 요21:23처럼 말이다.

구약 십일조가 신약 크리스천에게 적용되는 게 아니라고 얘기하면 꼭 헌금 자체를 안 해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생기고.. 자살에 대해서 성경적인 교리를 얘기하고 나면 "어, 쟤는 자살해도 괜찮다고 얘기하네?" 라고 알아듣는 사람이 생기는 것 말이다. 그건 그 사람의 독해력과 마음 상태 문제인 거고.. 성경의 사고방식은 저렇다.

Posted by 사무엘

2019/07/01 08:37 2019/07/0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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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이 그럴싸한 비선형 함수들

1. 증가 양상 변화

코딩을 하다 보면... 0부터 1 사이에 있는 속도, 압력, 밝기 등 자연계의 다양한 아날로그 신호를 입력으로 받았는데 그걸 있는 그대로 곧이곧대로 처리하는 게 아니라, 특정 구간(특히 중앙)이 더 부각되어 인지되도록 비선형적으로 보정해야 할 때가 있다. 그 구간을 if문으로 따로 분리하는 건 좀 무식해 보이니, 가능하면 함수 형태로 스무쓰하게 처리되게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이런 처리의 대표적인 예로는 화면의 '감마 보정'(gamma correction)이 있다.
일반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이건 막연히 화면의 밝기를 조절하는 기능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모든 색들의 RGB 값을 일괄적으로 올리는 게 아니다. 양 극단의 제일 어둡거나 밝은 색은 그냥 놔 두고, 어중간하게 어두운 색들의 명도를 올려서 화면이 전반적으로 선명하게 보이게 해 준다.

모니터가 브라운관이든 LCD든 오래되면 그렇잖아도 어중간한 색깔을 표현하는 능력이 떨어지니, 감마 보정이 화질의 개선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애초에 사람의 눈도 밝기를 그렇게 선형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고 한다. 흑백 그러데이션을 그냥 선형적인 색 변화로만 늘어놓으면 색깔띠가 밝은 부분보다는 어두운 부분이 더 부각돼 보인다. 이때 적절히 감마 보정을 하면 흑백과 회색 구간이 그럭저럭 균형 잡혀 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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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감마 보정은 어떻게 하는 걸까?
정의역 0~1, 치역 0~1, f(0)=0, f(1)=1이고 증가량의 차이만 있을 뿐 단조증가 자체는 보장되는(전구간에서 도함수의 값이 0 이상이 보장) 어떤 함수 f가 필요하다.
이런 조건을 만족하여 감마 보정에 쓰이는 함수는 의외로 단순하다. 그냥 지수함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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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보다 크고 1보다 작은 지수를 설정하면 구간 0~1에 대해서 f(x)는 x보다 값이 커진다. 그래서 원본보다 화면을 더 밝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 x=1에 근접할수록 그 증가폭이 작아질 것이다.

한편, 단순히 f(x) = x^t 말고.. f(x) = (1 - (1-x)^(1/t) )^t 는 어떨까 싶다.
얘는 t가 1/2일 때는 사분원의 궤적을 만들며, 2일 때는 2차 베지어 곡선을 만드니 참 흥미롭다. 그 외의 값일 때도 0 부근에서의 증가치와 1 부근에서의 감소치가 일치하는 나름 대칭형 곡선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단순 지수함수와는 차이가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빨강-자주...-초록-파랑 순으로 t=0.5, 0.7, 1, 1,5 ,2이다. 이 선들은 자기 자신은 좌우로 대칭이지만 빨간 선과 파란 선이 y=x를 기준으로 마주보며 대칭인 건 아니다.)

얘는 한눈에 봐도 적분하기 어렵게 생겼다. t가 치환적분이 가능한 1/2, 2 등의 알려진 값이 아니라 1/3 정도만 돼도 0부터 1까지의 면적, 다시 말해 정적분의 값은 초등함수의 형태로 표현되지 못한다.

2. 좌우대칭 종 모양

함수 중에는.. 값 자체는 전부 양수이지만 거의 전구간에서 0에 가깝고, f(-x)=f(x)인 우함수이고, 원점 x=0 주변에서만 최대값이 언덕처럼 봉긋 솟아 있는 물건이 있다.
이런 함수의 대표적인 예는 바로.. 확률· 통계의 영원한 친구인 정규 분포 확률 밀도 함수이다.

얘의 본질은 상수의 -x^2승이다. 그냥 지수가 아니라 음의 제곱 지수이다.
이런 함수도 부정적분이 깔끔한 형태로 나오지 않으며, 일부 구간의 정적분을 구하려면 수치해석을 동원해야 한다.
그 대신 얘는 음의 무한대에서 양의 무한대까지 함수 전체를 적분한 면적을 구할 수 있다. 가령, e^(-x^2)의 전체 정적분은 sqrt(Pi), 즉 원주율의 제곱근이다. (약 1.7724..)

전구간의 적분 면적은 옛날에 독일의 그 가우스라는 수학자가 이 종 모양을 입체 공간에서 뺑 돌려서 회전체의 부피를 구하는 식으로 발상을 전환하여 구했다. 일종의 이상 적분 기법인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고등학교 수준에서는 이 함수의 해석학적 특성을 도저히 따져볼 수 없다.

평균 0, 표준편차 1의 표준 정규 분포의 확률 밀도 함수는 저 함수에서 지수를 -x^2 / 2로 절반으로 나누고, 함수값에다가 1/sqrt(2*Pi)도 곱해서 전구간의 면적이 1이 되게 한 형태이다.

그럼 정규분포 함수보다 해석학적으로 분석하기 더 쉬운(?) 함수 중에는 좌우대칭 종 모양이 없을까?
바로 삼각학수 '탄젠트'의 '변종'에 속하는 놈들의 '도함수'가 이 범주에 든다.

탄젠트의 역함수인 arctan(x)는 도함수가 1/(x^2+1)이라는 꽤 단순한 형태인데, 그래프는 종 모양이다. x=0에서 최대값이 1이고, 전체 면적은 pi이다.
그리고 하이퍼볼릭 탄젠트 tanh(x)는 도함수가 1-tanh(x)^2로 기묘하게 구해지는데, 얘 역시 x=0에서 최대값이 1이면서 전체 면적은 2이다.
숫자 공부를 손 놓은지 10수 년이 지나서 그런지 이런 기본 기초 하나도 갑자기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일 안의 초록색 선은 exp(-x^2), 빨간 선은 tanh(x)의 도함수, 파란 선은 arctan(x)의 도함수이다.

얘들은 그 정의상 자신의 부정적분이 깔끔하게 존재한다.
부정적분에 속하는 arctan이나 tanh이라는 오리지널 함수를 살펴보면.. 단조증가이면서 f(x)=-f(-x)인 기함수이며, 무한대로 갈수록 특정값에 수렴하고 반대로 무한소로 갈수록 음의 특정값에 수렴하는 걸 알 수 있다. 함수의 기울기는 x=0일 때 가장 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런 모양의 함수만을 일컫는 용어가 "sigmoid"라고 있다. 선형이 얼추 기울어진 S자 모양이라는 점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특히 tanh의 경우 sigmoid 함수의 대표격으로 여겨지며, Logistic function이라는 이름으로 배율 변경과 평행이동만 된 바리에이션이 쓰이기도 한다.

맨 먼저 다뤘던 확률 밀도 함수를 0부터 x까지 정적분한 함수는 수학에서 따로 '오차 함수'라고 불리며 중요하게 다뤄진다. 5차가 아니라 error라는 뜻이다. 얘도 물론 sigmoid에 속한다.

그렇잖아도 5차 이상의 방정식은 유한 번의 사칙과 거듭제곱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근을 가질 수 있는데, 적분은 마치 그런 것처럼 x^x, sin(x)/x, 1/ln(x)처럼 단순한 식조차도 초등함수의 형태로 표현되지 않는 결과가 나올 수 있고 미분보다 어려운 연산으로 간주되는 걸까? 하긴, 1/x의 부정적분이 갑자기 ln(x)가 나오는 것에서부터 적분의 난해함이 발현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직선을 굽게 하는 1번 모양, 종처럼 생긴 2번 모양, 그리고 2번을 적분한 S자 모양까지..
요런 함수가 있다는 걸 알아 두면 코딩 하다가 언젠가 써먹을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6/22 08:35 2019/06/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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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빨간 마후라

6· 25 때 육군이야 북괴를 상대로 힘싸움 땅따먹기를 직접적으로 하던 주역이었으니 각종 전투에서 대승하거나 참패한 기록들이 즐비하다. 이런 육군과 달리 해군과 공군은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애초에 북괴 공산군도 육군과 달리 해· 공군은 남한에 비해 그다지 우세하지 않았다. 해군의 경우 개전 초기에 '대한해협 해전'을 시작으로, 동· 서해를 막론하고 바닷길로 침투하는 공산군을 여럿 저지하는 전과를 올렸다. 섬들은 38선 이북 지역도 휴전 당시에 몽땅 국군과 UN군이 점령해 있기까지 했다.

다음으로 공군은? 대놓고 북괴 전투기 패거리와 공중전이 벌어진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보다는 땅에서 힘겨운 고지전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동안, 지상을 폭격하는 것으로 아군을 지원하는 임무를 여럿 수행했다.
그 전과 중에는 1952년 1월 대동강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이 있다. 적진의 영공을 용맹하게 뚫고 들어가서 적의 보급로를 끊은 쾌거이며, 옛날 영화인 "빨간 마후라"가 저 작전을 모티브로 따서 만들어졌다. 무려 1964년작인데 컬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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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마후라.. 참 오랜만에 들어 본다. 요즘 외래어 표기법이라면 그냥 머플러겠지.. 비후까스가 아니라 비프 커틀릿인 것처럼 말이다.
사람에게 다는 머플러는 목도리이고, 기계 엔진에다 장착하는 머플러는 소음기이다. 그리고 '빨간 마후라'는 영화 제목인 한편으로 동명의 영화 주제가가 그대로 공군 군가가 되기도 했다. 이 영화는 그만치 파급력이 컸으며, 또 55년 전의 국산 영화치고는 꽤 잘 만들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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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에 "빨간 마후라"라는 관행을 최초로 만든 원조는 공군의 창군 멤버인 김 영환 준장(1921-1954)이었다고 한다. 어떤 일화가 계기가 됐는지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이미 여러 썰들이 나도니 검색해서 참고하시기 바란다.

2. 팔만대장경을 지킨 파일럿

그런데 이 사람은 도그파이트를 벌여서 적기를 수십 기 격추시킨 에이스라든가, 적진을 불바다 쑥밭으로 만든 전과가 아니라 다른 방면의 행적 때문에 훌륭한 군인으로 추앙받는다. 바로 1951년 8월 무렵, 빨치산 토벌 명령을 받고 출격했지만, 팔만대장경이 소장돼 있는 가야산의 해인사만은 목숨 걸고 항명하여 폭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관총으로 폭탄 대신 총알만 주변에다 퍼붓고 왔다.

이건 전술적으로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정규군끼리의 교전은 이미 38선 근처에서 엎치락뒷치락 고지전 형태로 귀착됐지만, 한 본토에 깊숙이 침투한 게랄라 빨치산들은 지리산 같은 험지에 숨어 들어가 짱박힌 바람에 쉽게 토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 속의 절간들은 놈들이 지내기 좋은 만만한 공간이었다.

산처럼 진군하기 힘들고 엄폐물이 많은 요새에 저격수가 숨어 있다고 치자. 그래서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총알 때문에 아군이 하나 둘 헤드샷 맞고 죽어 나가고 병사들의 사기도 곤두박질 친다. 이 와중에 저격수만 곱게 잡을 방법이 도저히 없다면 별 수 없다. 시간과 여건만 허락한다면 저격수가 있을 만한 곳을 몽땅 폭격해서 불바다로 만들고 모조리 무식하게 깡그리 밀어 버리는 brute force가 제일 확실하다.

현실에서는 지뢰나 시간폭탄만 해도 일일이 어렵고 위험하게 해체하지 않는다. 그냥 안전한 곳에 한데 옮겨 놓고 터뜨려 버리지 않던가? 이와 비슷한 이치이다. 저런 건 그 장치를 설치한 놈을 데리고 와서 족쳐도 해체를 못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산 속의 문화재는.. 뭐랄까 무고한 민간인만큼이나 군의 입장에서는 피아 식별과 작전 수행을 어렵게 하는 존재였다. 국군이 살인마 싸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적군이 자꾸 민간인으로 위장하거나 혹은 민간인을 방패로 내세우며 비열하게 싸우니까 빡쳐서 민간인 학살을 저지르는 것이다.

뭐, 문화재는 최소한 사람은 아니다만, 빨치산 토벌이라는 명목으로 산 속의 여러 문화재들이 안타깝지만 폭격을 맞고 소실되었다. 그러나 김 영환(당시 대령)은 팔만대장경마저 그렇게 돼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
그는 항명죄로 인해 징계 위원회에 회부됐지만 문화재 보호라는 명분이 참작되어 다행히 실제로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는 오히려 먼 훗날인 2010년, 금관 문화 훈장이 추서되었다.

3. 화엄사를 지킨 경찰

이런 식으로 6· 25 때 군· 경이 항명까지 불사하면서 문화재를 보호한 사례가 최소한 한 건 더 있다.
그 주인공은 군인이 아닌 경찰 간부인 차 일혁 경무관(1920-1958)이다. 공교롭게도 앞의 김 영환 장군과 거의 같은 연배이고 30대 나이 때 사고사한 것도 동일하다.

이분은 1951년 5월경,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지리산 내의 모든 사찰과 암자들을 불지르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고작 소수의 빨치산 몇 놈 때문에 수백 년 묵은 거대한 문화재들을 몽땅 잿더미로 만드는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래서 화엄사(전남 구례군 소재)와 그 일대 사찰에 대해서는 같이 작전 중이던 군부대와 협의하여 건물을 다 부수는 게 아니라 문짝만 떼어서 불태웠다. 뭐, 문이 없으면 건물 안이 다 보이니 어차피 빨치산들이 은폐하기 어려울 것이다.

해인사 폭격에 대한 항명과는 다른 별개의 사건이라는 것을 본인은 검색을 추가로 한 뒤에야 확실하게 알게 됐다. 이분에 대해서도 사후에 조계종과 문화재청으로부터 감사장이 추서되었으며, 계급 역시 경무관으로 특진했다.

다만, 이분의 업적이 재조명된 것은 2000년대가 다 돼서였다. 종로 경찰서의 최 규식 경무관이야 북괴 무장공비를 검문하다가 전사했으니 그야말로 당대의 대통령이 직접 추모했으며 동상이 세워지고 태극 무공 훈장에다 경무관 특진까지 광속으로 추서됐지만, 저분은 분야가 다른 관계로 아무래도 그런 대접을 받지는 못했다. 뭐 그래도 박 정희 정권은 문화재의 복원과 보존에 굉장히 신경 썼던 정권이긴 하지만 관심이 이런 데에까지 미치지 못했을 뿐이다.

4. 파리와 교토

적군을 쳐부수는 것도 좋지만 역사 유물인 문화재는 적군의 것이라도 보존해야 한다는 관념이 서양에도 응당 있었다. 대표적인 예는 2차 세계 대전 때 프랑스를 점령했던 나치 독일이다.

처음에는 히틀러도 과거의 네로처럼 '예술을 사랑하는 독재자' 기믹이 있었는지 프랑스 파리의 문화 유물들을 좋아했다. 그러나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고 궁지에 몰리자.. 그는 너 죽고 나 죽자는 심정으로 점령지를 몽땅 불지르고 부숴 버리라는 광기어린 명령을 부하 사령관에게 내렸다.

이때 프랑스를 점령해 있던 디트리히 폰 콜티츠 장군(1894-1966)은 차마 그런 짓은 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총통의 명령을 씹었으며, 연합군에게 항복했다.
그는 항복하던 당시에는 프랑스 시민들로부터 갖은 욕을 먹고 야유를 당했다. 그러나 그의 항명 사실이 알려지면서 얼마 안 가 프랑스로부터도 감사와 칭송을 받는 영웅 대접을 받게 됐다. 그의 장례식 때는 프랑스 군인 장성과 레지스탕스 지도자들도 찾아왔다.

훗날 이 일화를 배경으로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히틀러가 콜티츠에게 거듭해서 전화를 걸어서 자기 명령이 이행되었는지 확인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콜티츠는 상관이 건 전화를 받긴 했지만 차마 응답은 못 한 채 침묵하고 말이다.
이건 1966년작으로, 역시 "빨간 마후라" 내지 "소령 강 재구"와 비슷한 고만고만한 시기이다. 단, 영상을 검색해 보니 얘는 흑백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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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전선 말고 태평양 전선에서는 미국이 태평양을 넘어 일본의 수도까지 폭격하면서 도시들을 쑥밭을 넘어 석기 시대로 되돌려 놓고 있었다. 그래도 천조국 미국도 일본의 경주 급인 교토는 건드리지 않았다. 인도적인 차원보다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였다. 문화재는 남겨 둔다고 해서 연합군을 죽이는 일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앞서 언급했던 파일럿 김 영환도 항명으로 인한 징계를 받게 됐을 때, 콜티츠 장군과 미군의 폭격을 예로 들면서 자신을 변호했다고 한다.

5. 옛날 영화

영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나라 영화계는 5공 전땅크 시절~민주화 초창기인 1980~90년대 초까지가 좀 침체· 암흑기였지, 더 옛날인 저 60년대는 오히려 여러 명작들이 쏟아져 나오던 중흥기였다. <상록수>(1961),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맨발의 청춘>(1964), <빨간 마후라>(1964), <하녀>(1960)처럼 말이다.

암흑기일 때는 <서편제>(1993)가 고작 100만을 넘었다고 자랑을 칠 정도였지만 <쉬리>(1999)를 계기로 영화계의 판도가 바뀌었다. 그리고 2000년대 초· 중반이 돼서야 국산 영화가 모처럼 명작들이 쏟아져 나오며 잘 나가기 시작한 것 같다. 이때부터 영화 티켓 발매도 완전히 전산화되어 관람객 수가 정확하게 집계되기 시작했다.

사소한 외형으로는 한 90년대를 전후해서 자막이 세로쓰기가 아닌 가로쓰기로 바뀌었으며, 극장 간판에 벽화 형태로 그려지는 영화 광고도 화가가 정성스레 그린 그림이 아니라 그냥 디지털 인쇄물로 바뀐 듯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9/06/19 08:33 2019/06/1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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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

  • 1920년대: 1차 세계 대전 후, 비행기라는 게 군용뿐만 아니라 민간용으로도 극소량 단거리 위주로 쓰이기 시작함.
  • 1930년대: 비행기의 덩치와 성능이 더욱 향상되고 금속 재질+단엽기 형태로 정착함(보잉 247). "비행선이 밀려나고 도태함" (비행기의 성능 향상 + 비행선 힌덴부르크 호 화재 사고 크리)

  • 194~50년대: "제트 엔진"이 발명되고 여객기에도 적용됨. 대양 횡단이 가능해짐.
  • 1960년대: 여객기의 덩치가 점점 커지기 시작. 삼발기 등장.
  • 1970년대: "보잉 747 초대형 점보 광동체 여객기" 등장. 초음속 여객기까지 등장했으나 가성비 안 맞는 계륵으로 전락함.

  • 1980년대: 쌍발기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삼발기가 도태함. (버스로 치면 전방 엔진 버스가 도태한 것과 비슷한 시기) 보잉 747-400 덕분에 "한국-미국이 앵커리지 경유 없는 직항"이 가능해짐.
  • 1990년대: 여객기들의 덩치와 성능이 오늘날과 별 차이 없는 형태로 정착. "항공기관사 퇴출". (버스 안내양이 퇴출된 것과 비슷한 시기)
  • 2010년대: 보잉 747, A380 같은 초대형 여객기가 단종되고 도태하는 중. 기술의 발달 덕분에 쌍발 엔진이 과거의 4발 엔진에 맞먹는 출력과 항속거리를 달성함

아주 흥미진진하다!

2. 뜨는 원리

물체가 공중에 뜨는 힘의 원천으로는 부력(비행선), 양력(비행기), 또는 추력(로켓)이 있다. 닥치고 높게 떠서 지구를 떠나 우주로 나가려면 추력이 필요하겠지만, 지구 안에서 잠시 떴다가 수평 이동을 멀리 하는 용도로는 양력을 이용하는 게 경제적이다.
고정익 비행기에서 추력을 발생시키는 엔진은 기체를 들어올리는 게 아니라 그냥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쓰인다. 후자는 전자보다는 훨씬 덜 힘든 일이다.

비행기가 양력을 얻기 위해서는 날개가 달려 있어야 한다. 자동차는 고속 주행 중에 살짝 떠 버려서 제동· 조향 능력을 상실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스포일러'가 뒤에 장착되곤 한다. 이건 비행기의 날개와 정반대로 양력을 상실시키는 역할을 한다.

비행기가 양력을 받아 뜨는 원리에 대해서 베르누이의 원리, 벤추리 관, 긴 경로(날개 윗쪽이 윤곽이 더 완만하고 길다) 등 잘못된 이론이 오랫동안 항공 전공 서적에 별다른 검증 없이 소개돼 왔다. 그런데 난 잘못된 이론과 맞는 이론 모두 잘은 모르겠고 완벽하게 내 것으로 소화를 못 했다. 양력은 부력보다는 훨씬 더 이해하기 어려운 힘이니까.. 그 뿐만 아니라 이 자연에는 전자기력처럼 이해하기 더 어려운 현상도 많다.

비행기에는 공기를 사정없이 휘젓고 내뿜기 위해 뭔가 커다랗게 뱅글뱅글 돌아가는 물체가 어떤 형태로든 달려 있다. 그 물체의 종류로는 프로펠러가 제일 대중적인데.. 비행기의 (1) 프로펠러는 선박의 스크루와 개념적으로 동일한 역할을 한다. 프로펠러를 돌리는 엔진은 피스톤 왕복 또는 터보프롭 방식 중 하나인데, 비행기에서 자동차 같은 왕복 엔진은 완전 초소형 경비행기 급에서나 쓰인다.

이론적으로 비행기도 배처럼 프로펠러가 뒤에 달린 형태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공기의 밀도와 바닷물의 밀도는 서로 엄청나게 다르기 때문에 생긴 모양이 동일하지는 않다. 선박의 프로펠러는 꽈배기처럼 배배 꼬인 형태이기 때문에 screw라고 불린다.

헬리콥터는 프로펠러로 추력이 아니라 양력을 직접 발생시켜서 뜨는 비행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프로펠러 자체가 회전익, 즉 날개 역할을 하며 이를 (2) 로터라고 부른다. 로터라고 해서 프로펠러와 크게 다른 물건은 아니기 때문에 틸트로터 같은 특이한 수직 이착륙기도 존재할 수 있다. 같은 바람개비를 각도만 조절해서 이륙할 때는 헬리콥터의 로터처럼 쓰고, 순항할 때는 일반 프로펠러처럼 운용하니까 말이다.

오늘날 비행기에서 주력으로 쓰이는 제트 엔진이 왕복 엔진과 다른 점은.. 연료를 태운 배기 가스까지도 그냥 곱게 배출하는 게 아니라 세차게 내뿜어서 추력을 내는 데 쓴다는 점이다. 즉, 제트 엔진은 노즐이 달려 있다. 단지, 산화제를 자체 탑재한 게 아니라 주변 공기를 빨아들인다는 것만이 로켓과 다른 점이다.

터보 제트, 터보 팬 같은 제트 엔진에도 (3) 팬 블레이드라는 바람개비가 달려 있다. 하지만 이건 공기를 빨아들이고 압축하는 용도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프로펠러와는 성격이 다르다.
비행기 엔진을 넘어 로켓 엔진이 되면 노즐 꽁무니에서 불꽃과 연기가 피어오르며, 오로지 추력에만 의존해서 날아가기 때문에 딱히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건 없다.

육해공을 막론하고 교통수단에 피스톤 왕복 엔진이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나 철도 차량에서는 가능한 한 전철이 쓰이고 있으며 비행기도 덩치가 조금만 커지면 제트 엔진이 쓰인다. 자동차와 선박만이 왕복 엔진이 대세인 듯하다. 프로펠러는 비행기와 선박이, 고무 바퀴는 자동차와 비행기가 공유하고 말이다.

3. 조종법

(1) 페달
자동차는 두 페달(가속, 브레이크)을 동시에 밟을 일이 없고, 또 클러치 페달이 추가로 있는 수동 변속기 차량과의 호환 문제도 있기 때문에 오른발 하나만으로 두 페달을 모두 밟는다. 자동 변속기 차량에서는 왼발은 그냥 하는 일 없이 논다.

하지만 비행기는 두 페달을 동시에 밟을 일이 있기 때문에 양발을 모두 쓴다. 게다가 페달의 위쪽을 밟는 것과 아래쪽을 밟는 것의 구분도 있다. 비행 중일 때는 페달이 방향타 역할을 하고, 지상에서는 랜딩기어의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핸들을 돌리는 게 아니라 양 부위별로 브레이크를 다르게 걸어서 택싱 중인 기체의 방향을 조절한다.

(2) 엔진 가동
자동차는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동안만이(가속, 오르막 오르기 등) 실질적인 힘을 쓰는 상태이다. 나머지 시간은 그냥 시동 유지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연료 분사만 하거나(아이들링), 아니면 평지· 내리막에서 바퀴를 따라 엔진이 관성으로 저절로 돌아가는 퓨얼컷+엔진 브레이크 타력 주행 상태이다.

하지만 비행기가 엔진이 그렇게 아이들링인 상태인 건 글라이더처럼 활강하면서 서서히 추락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비행기는 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언제나 힘차게 돌아가면서 기체를 움직이고 양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페달을 밟는 깊이로 출력을 조절하는 게 아니라, 마치 선풍기/에어컨의 출력처럼 손으로 조작하는 스로틀 레버의 위치로 출력을 조절한다.

비행기 엔진은 공기를 상대로만 돌아갈 뿐, 자동차 엔진처럼 무거운 차체와 지면 사이의 마찰력을 극복해야 할 일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와 같은 변속기가 달려 있지는 않다.

(3) 조향
자동차의 핸들은 한 축(비행기로 치면 yaw)만 조절하지만, 비행기의 조종간은 조이스틱 같은 형태로 두 축(대략 roll, pitch)을 조절한다.

비행 중에 방향을 전환할 때는 조종간뿐만 아니라 얼추 yaw를 담당하는 페달까지 적절히 밟으면서 전환한다.
그리고 상승· 하강할 때는 조종간뿐만 아니라 엔진 출력도 적절히 조절하면서 고도를 바꾼다.
이륙할 때 앞부분이 먼저 뜨고, 착륙할 때는 뒷부분이 먼저 착지한다.

활주로에서 충분히 속도가 붙어서 이제 이륙을 중단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을 V1 속도 도달이라고 하며, 조종간 당기고 자세 잡아서 뜨기만 하면 되는 직전 속도를 rotate 속도라고 한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무슨 제1~3 우주 속도(탈출 속도) 같은 용어를 듣는 느낌이다. 그리고 자동차에도.. 이제 노란불이 되더라도 급정거를 할 수 없고 교차로를 무조건 빨리 통과해야 되는.. 교차로에서의 V1 속도, 지점 같은 개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비행기를 조종하려면 이런 기본 중의 기본 스킬 말고도 무수한 항공 관제 규약, 비행기 기기 조작 매뉴얼을 숙지해야 한다. 조종 면허는 자가용-사업용-운송용의 순으로 등급이 존재하는데, 여객기 기장이 되려면 당연히 제일 어려운 운송용을 따야 한다.

옛날에는 비행기도 자동차와 별 차이 없는 피스톤 회전 엔진을 사용해서 시동 걸면 털털털털 부우웅~ 소리가 났지만.. 앞서 역사에서 언급했듯이 1940~1950년대부터 제트 엔진이 보급된 뒤부터는 엔진 소리가 지금과 비슷한 형태로 바뀌었다. 6· 25 전쟁 당시에 미군 전투기에 '쌕쌕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로켓 엔진은 그냥 자기 연료와 산화제만 연소시켜서 뿜지만 비행기 엔진은 주변 공기도 왕창 빨아들여서 내뿜는다.

비행기가 타 교통수단과 크게 다른 점은.. 엔진이 꺼지면 곱게 정지나 표류가 가능한 게 아니라 그대로 추락과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는 것, 그리고 한번 자세가 어긋나서 양력을 잃고 실속에 빠지면, 엔진 출력 올리고 밟기만 한다고 해서 곧장 자동으로 회복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종이 어렵다. 물론 자동차도 타이어가 접지력을 상실하고 미끄러지면 매우 큰 위험에 빠지지만, 그 위험이 비행기에 비할 바는 아니다. 헬리콥터는 고정익기보다 이런 게 더 취약하고 불안하다.

4. 기내 화재로 인해 발생한 항공 사고

지금 이 시각에도 전세계에 얼마나 많은 비행기들이 평온하게 날아다니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비행기는 매우 안전한 교통수단이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가 전혀 없는 건 아니며, 그 드문 사고는 이· 착륙 중에 많이 발생하는 편이다.
이륙은 연료가 제일 많이 들어있어서 비행기가 제일 무겁고 엔진 출력도 제일 세게 땡기는 때이다. 활주로의 길이는 제한돼 있는데 이미 충분히 가속하여 활주해 버린 뒤에 무슨 이유로 인해 공중으로 뜨지 못하면 사고로 이어진다.

반대로 착륙하려면 엔진 출력과 기체 주행 속도를 줄이고 또 줄여야 하는데.. 이렇게 느려지면 기체의 자세 제어와 조종도 제대로 안 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위치를 잡기가 더욱 어려우며, 돌발상황에 취약해진다. 착륙하려다가 실패/포기하고 재이륙하는 건 조종사에게 굉장한 부담을 주는 기동이다.

이런 외부적인 요인 말고 내부 요인 때문에 발생한 사고도 있다. 옛날에는 기체의 구조적인 결함으로 인한 사고도 있었지만, 그건 수십 년간의 사고 데이터 분석과 비행기 제조사들의 기술 발달 덕분에 없어지는 추세이다. 1970년대 이후에는 차라리 정비 불량의 비중이 더 높으며, 다소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화물칸의 화재'로 인한 사고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항공 163편(1980년 8월 19일, 록히드 트라이스타)은 이륙 7분 만에 화물칸에서 화재가 발생해서 기껏 회항하고 비상 착륙까지 아주 극적으로 성공적으로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뒤로 비행기가 곧장 서지 않고 엔진도 꺼지지 않고, 문도 제대로 안 열렸다.

300명이 넘는 승객과 승무원들은 착륙 후에 지상의 기내에서 옴짝달싹 못 하다가 화마에 희생되어 전원 사망했다. 대놓고 추락이나 공중 분해도 아니고 이렇게 멀쩡히 착륙 후에 탑승자가 전원 사망한 사고는 무척 이례적이다. 착륙 후에 기내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탈출이 지체되었는지, 그리고 무슨 수하물에서 왜 화재가 발생했는지는 밝혀지지 못하고 미스터리로 남았다.

남아프리카 항공 295편(1987년 11월 28일, 보잉747-200 계열)은 이륙 후 9시간째 잘 날고 있던 중에 역시 화물칸에서 불이 났다. 화재는 맨 앞 조종실에까지 연기가 들어올 정도로 심각해졌으며, 비행기는 조종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채 결국 아프리카 마우리티우스 섬 근처의 인도양 바닷속으로 추락했다. 역시 전원 사망.

이 사고도 어느 화물에서 화재가 왜 발생했는지는 밝혀지지 못했다.
날짜를 보고 눈치 챈 분도 계시겠지만 이건 대한항공 858편 폭파 테러의 "바로 전날"에 발생한 사고이다. 858도 추락 내지 실종 지점이 나름 인도양 권역인 것이 비슷하다. 비록 후자는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지만 말이다.

요것들은 1980년대 이야기이니 지금과는 상황이 동떨어진 것 같지만.. 지난 2011년 7월 말, 아시아나항공 991편 화물기의 추락 사고도 원인이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발생한 화재였다. 얘는 범인은 밝혀졌지만 역시 왜 뜬금없이 불이 붙었는지는(범행 동기??) 불명으로 남았다.
화물칸 화재로 인한 비행기 추락 사고들은 여느 인재들과 달리 정확한 원인이 규명된 게 별로 없는 것이 더욱 괴이하다.

자동차도 나름 내연기관이 달려 있으며, 비행기만치는 아니어도 사고 시에 화재 위험이 존재하는 물건이다. 그래도 리튬이온과 달리, 자동차의 무거운 재래식 납-황산 배터리는 불이 붙거나 폭발하지는 않는 게 다행이다.
대형 냉동 창고에서 쓰이는 암모니아 냉매는 폭발하지만, 가정용 냉장고의 CFC 내지 그 대체제 냉매는 폭발하지 않고 안전한 것처럼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6/13 08:35 2019/06/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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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 보훈의 달 6월이 됐고 현충일도 지났는데 문득 다시 생각해 본다.
세계의 많고 많은 나라들 중에 이 코리아라는 나라는 왜 이런 기구한 근현대사를 보유하게 된 걸까? 중· 근세에 걸출한 수학자· 과학자 하나 배출한 거 없고, 하도 자랑할 인물이 없었는지 지폐에는 오로지 조선 시대 유학자 먹물들밖에 없는 걸까?

그걸로도 모자라서 왜 하필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추악하고 비열하고 더러운 생물인 북한 공산 괴뢰 집단과 대면하게 되었으며, 그 졸개 똘마니 하수인인 종북좌빨들과 이 2020년대를 앞두고도 지겹도록 싸우는 지경이 됐을까?

이웃 일본은 국력이 너무 강해서 한번 거하게 사고를 쳤다가 군대를 가질 수 없는 나라가 됐는데, 이놈의 나라는 왜 반대로 군대에 강제로 안 가면 안 되는 나라가 됐을까?
이건 자기 나라를 비하하고 역사 왜곡하는 좌좀 이념을 퇴치하기 위해서 한 번쯤 근본적으로 본질적으로 생각해 봐야 하는 의문이다. 계산 결과인 "때려잡자 김 정은! 뒤죄앙 문져라!"만 마구 외치기 전에 계산 배경과 과정도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제일 간단히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지정학적으로 좀 독특한 반도 위치에, 규모는 작고 인구 수 별로 없고, 석유가 펑펑 난다거나 지하자원 많지 않고, 그렇다고 과학 기술 군사 경제가 막 뛰어나게 부강한 것도 아닌데..
어째 언어와 문화는 아주 독특해서 진작에 이웃 중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로 흡수되지 않았고, 특히 20세기 중반에 앗싸리 공산화되지도 않았고... =_=;;

이것도 저것도 아닌 답이 없는 유별난 상태로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게 고유한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고, 이 정도의 자유와 풍요까지 덤으로 누리며 살고 있는 대가가 지금 같은 지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민족이 진작에 중국 소수 민족으로 편입해 들어갔거나, 선진국 일본이나 미국 밑으로 귀순해 들어갔으면 처음에 좀 자존심 접고 설설 기는 게 힘들 뿐, 개돼지마냥 빌어먹고 생존하는 건 더 편할지도 모른다.

또한, 반대편 극단으로 남한이 6· 25 전쟁에서 져서 한반도가 진작에 김 일성의 손아귀에 들어가 버렸다면.. 수십 년에 달하는 극심한 체제 경쟁, 긴장과 갈등이 없었을 테니 북한 정권도 지금 같은 급의 상또라이(주체사상, 8월 종파 사건, 핵무기 등등..)로 흑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1990년대에 중국· 소련처럼 경제 하나만은 개방으로 갔을 수도 있다. 가능성이 0은 아니다.

허나, 그래 봤자 수십 년 동안 한반도 전역의 한국인들이 겪게 됐을 자유 없는 지옥 같은 참상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이미 194, 50년대에부터 북괴의 학정에 학을 떼고 남한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니 예나 지금이나 허튼소리 지껄이는 빨갱이는 다 죽여버려야 한다는 건 변함없다.

아무튼 이 나라 이 민족은 삐끗 잘못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못될 수도 있었고 민족 정체성을 잃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고 꿋꿋이 버텨 왔다.
국제어인 영어와는 너무 딴판인 괴팍한 언어를 쓰고 있는데, 그에 맞춰 외국 석학들이 감탄해 마지않는 우수한 고유 문자를 창제하고 기계식 타자기를 만들었다.

한중일 중에서 유일하게 성탄절이 공휴일일 정도로 나름 기독교 복음도 많이 들어왔다.
군사정권 독재를 경험했으나, 정말 유례를 찾기 힘든 선한 독재 덕분에 나라가 부강해졌다.
6· 25 때는 세계의 전쟁 역사상 전무할 정도로 수많은 나라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때 이후로 이런 규모의 UN군은 현재까지 결코 다시 조직되지 않았다.

이런 여러 역사 정황을 살펴보면.. 내 조국이라는 나라는 충분히 유니크하며, 일말의 애착을 갖고 감사할 만한 여지가 있다.
내가 이것 때문에 어쩌다 보니 전공과 연구 개발도 한글· 한국어 정보 처리 쪽으로 가게 됐다. 왕의 명령으로 성경을 번역한 나라는 아니지만 그래도 왕의 명령으로 고유 문자를 창제한 나라이지 않은가..?

그래서 더욱 바라기는.. 이 반도에서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만한 선하고 유니크한 발명· 문물이 나왔으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서 나라를 좀먹는 빨갱이들은 제발 get off my country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걔네들한테서 이상한 물 먹은 사람들은 하루빨리 산업화 되고 정신 차렸으면 좋겠다. 내가 험악한 말투의 글 좀 안 써도 되게 말이다. 이런 내력을 지닌 나라가 인제 와서 겨우 이렇게 허망하게 폭삭 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건국과 달 착륙

지난 1969년 7월에 아폴로 11호 우주선을 통해 인류가 최초로 달에 착륙했을 때, 닐 암스트롱이야 "one small step for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라고 말한 건 너무 유명하다. 그런데 그거 말고, 밖으로 나가기 직전에 달 착륙선 선장이던 올드린은 감격에 벅차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 기회를 빌려, 나는 이 방송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든, 지금 어디 있든, 잠시 멈춰 지금 몇 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면서 각자의 방식대로 감사를 드려 주시기(give thanks)를 요청합니다."


세계가 지켜보고 있으니 종교색을 배제하려고 '신에게 감사'라고 안 하고 '각자의 방식대로'(in his or her own way)라고 표현을 했다만..
저 대사를 보면 난 1948년 5월, 제헌 국회 본회의 때 감사 기도를 제안했던 할배의 애드립이 곧장 오버랩 된다. 상황과 표현이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 같은 날이 사람의 힘으로만 오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중요한 순간에 이렇게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인다.

※ 할배 생각

  • 일본이 핵폭탄 맞고 전쟁에서 지기만 했다고 조선이 저절로 해방된 게 아니다. (적극적인 독립 의지 표명 필요)
  • 그저 일제만 몰아낸다고 다가 아니며, 그 뒤에 제대로 된 나라를 세워야 한다.
  • 통일만 한다고 장땡이 아니며, 무슨 통일인지를 따지고 자유와 개방이 있는 바른 체제로 통일을 해야 한다.

예수쟁이들이 그저 예수 믿고 구원만 받는다고 끝이 아닌 것만큼이나, 저것들은 너무 당연한 사실이 아닌가?
그런데 까마득한 1940년대에 위의 세 아이템들을 완벽하게 간파한 사람은.. 제아무리 민족주의자니 애국자니 독립 운동가니 뭐니 하는 집단 내부를 뒤져 봐도 정말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극소수였다.

특히 공산주의 사상과 공산주의자 빨갱이들의 수법까지 다 꿰뚫고 있던 국제정세 전문가는 전무..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남한, 대한민국의 건국의 아버지는 위의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인물이었다.

* 할배가 모세와 아주 비슷한 점

  • 타지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가 7, 80대.. 다 늙어서야 지도자가 됨
  • 거의 초월적인 계기로 민족의 해방을 경험함 (원자탄 / 이집트 재앙+홍해 경부 고속도로)
  • 당사자는 말년의 실수 때문에 민족이 부흥하는 걸 제대로 못 보고 타지에서 죽음
  • 외국인 여자와 결혼(정확히는 재혼)함

* 할배가 다윗과 꽤 비슷한 점

  • 왕위에 오르고 나라를 안정시키는 과정에서 부하의 월권· 과잉충성 등으로 본의가 아니게 인명 희생을 좀 겪음
  • 내전 겪고 피난 다녀온 적 있음(6·25 / 압살롬 반역)
  • 난리가 나서 위급한 와중에 중상모략 같은 걸 제대로 분별 못 하고 행정 착오를 저지른 것은 어디서나 불가피한 인지상정임 (삼하 19:27-30)

할배는 대한민국의 국부, 건국 대통령 초대 대통령이자 과거에 임시정부 대통령이었고, 일제로부터 현상금이 걸린 항일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할배는 잘한 것하고 잘못한 것을 수치화해 보면 둘이 거의 0의 개수부터가 차이가 날 것이다.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과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만큼이나 다르다. (창 3:15)

잘못한 건 바로 눈에 띄고 티가 나지만.. 잘한 것은 일반인이 범접조차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스케일이다.
뮬란 대사처럼 말이다.

I've heard a great deal about you, Fa Mulan. You stole your father's armor, ran away from home, impersonated a soldier, deceived your commanding officer, dishonored the Chinese Army, destroyed my palace! AND YOU HAVE SAVED US ALL.


라이온 킹에서 스카가 선왕 무파사의 '무'짜만 꺼내는 것도 싫어한 것처럼.. 할배의 공로는 잘도 누리고 있으면서 할배를 언급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극우 수꼴로 몰고 가는 이 분위기는 오늘날 남한이 이념과 정체성 전쟁에서 북괴의 공작에 완전히 넘어가서 져 버렸음을 보여준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고 성경에도 대언자· 선각자가 꼭 자기 친족과 고향에서는 존경을 못 받는다는 말이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돼 있을 정도이긴 하지만(마 13:57, 막 6:4, 눅 4:24, 요 4:44).. 그래도 후조선 땅에서 할배에 대한 병적이고 악의적인 왜곡은 동서고금 평균을 넘어서 심각한 문제가 있는 수준이다.

※ 통일보다 더 중요한 건 북한 지역의 체제 정상화

통일보다 더 중요한 건 북한 지역도 뭔가 제대로 된 정상인 정권이 들어서고 자유와 개방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걸 이루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멸공 북진 흡수 통일이겠지만, 이젠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고 시간이 너무 지체되면서 그런 통일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됐다.
그렇다면 꼭 통일이 아니어도 좋다. 북한을 남한과는 서로 다른 나라로 완전히 인정한 뒤, 이웃 중국이나 일본 가듯이 비자 받아서 여행 다녀오고 통신 정도나 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허나, 현재 그 정도 개방마저도 할 수 없는 건 전적으로 북괴가 비정상적이고 잘못된 체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놈들은 남한까지도 자기처럼 생지옥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 민족 사칭하고 남한의 역사를 왜곡하고 정체성을 부정하는 더욱 흉악한 체제이다.

이런 집단/체제과 뭐, 통일..?? 그리고 통일 준비 차원에서 퍼주자?
이런 놈들은 말이 필요하지 않은 사기꾼 빨갱이이고 모조리 다 죽여야 된다.
이런 암세포를 떼어내기 위해서는 국민의 1%, 10%, 최악의 경우 절반이라도 학살되는 피바람이 불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희대의 사기극에 비하면 4대강이니 조무래기 방산비리니, 고위층 병역기피니 하는 건 어설픈 풋 사과에 불과하다.
이런 반역자 빨갱이들이 이미 법조계 교육계 정치계를 장악한 와중에 조무래기 친일파 후손이니 지랄은 그냥 애들 장난일 뿐이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북괴가 정상적으로 자기 나라의 경제력 군사력을 키워서 우리나라를 침략하려 한다면 차라리 낫다. "적이지만 훌륭하다, 우리가 한 수 배울 게 있다"라고 인정할 수라도 있다. 옛날에 일제가 그랬었다.

그런데 지금 북괴는.. 진짜 선한 것이라고는 없고, 라이온 킹 스카가 심바에게 "우린 가족이잖니~~ ^_^" 하듯이, 처키가 앤디에게 "우린 친구잖니~~ ^_^" 하듯이 온갖 지저분한 거짓 평화 공세를 늘어놓고 남한을 삥뜯는 게 너무 싫다.
거기에 끌려가서 '우리 민족끼리' 이 짓 하는 놈들, 우리나라 역사를 부정하고 정체성을 비하하는 놈들, 맨날 천날 친일파 드립만 치는 놈들은 더 싫고 한 하늘 아래에서 상종을 하고 싶지 않다. 남들한테는 반미 반미 거리면서 자기 자식 새끼는 미국 유학 보내는 놈들보다야 차라리 평범한 안보 장사꾼 위선자가 더 낫다.

정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할배 때 6·25 전쟁 중에 벌어졌던 온갖 광기와 보복과 학살은.. 90%는 실드가 쳐진다. 빨갱이는 그런 극약 처방으로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개지랄과 발악을 해서라도 척결했어야 했다.
이것들은 10년 이상 본인의 아주 오래된 생각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6/07 08:33 2019/06/0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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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관련 이야기들

1. 6단의 존재감

1990년대까지만 해도 승용차들의 변속기는 수동 5단, 자동 4단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경차가 아닌 이상 6단 정도가 기본이 됐다. 자동 변속기가 다단화에 유리한지라, 단수가 옛날과는 반대로 수동보다 오히려 더 늘어나 있다.
요즘 자동차들이 디젤도 아닌 휘발유 엔진으로 시속 120대의 고속 주행 중에도 어지간해서는 2000 초중반대의 엔진 회전수가 유지되는 것에는 엔진 출력 향상뿐만 아니라 그에 걸맞은 변속기의 다단화도 기여했다.

본인 차의 경우, 시속 110~120 정도를 넘어가면 평소에 켜져 있던 초록색 eco 램프가 꺼진다. 엔진 출력의 한계와 공기 저항 때문에 이제 경제 속도 영역을 벗어났다는 뜻이다. 그래도 약간만 밟고 있으면 2000대 후반인 엔진 회전수에서 130~140까지는 아무 무리 없이 나온다.
다만, 150km/h를 넘어가지는 않으며, 이때부터는 차가 힘이 딸리는지 눈에 띄게 잘 안 나아간다. 더 세게 꽉 밟아야 된다. 그러면 엔진 rpm이 확 치솟으면서 속도도 슬금슬금 올라간다.

이런 동작으로부터 유추하건대 내 차는 변속기는 분명 6단이지만, 극한의 최대 출력/최대 속도는 다시 그 아래의 5단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 그렇지~ 레드존에 근접하는 6500rpm에서 6단의 기어비가 유지된다면 차의 주행 속도는 거의 300km/h를 넘겨야 할 텐데 그게 이 엔진의 배기량과 토크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이 체급의 엔진에서 최고단인 6단은 단순히 고속도로 주행 중의 고연비 경제 운전을 위해서 존재하는 듯하다.

다른 물리적인 제약이 없다면 변속기의 단수는 많을수록 좋다. 그러면 최저 내지 실용 rpm으로 엔진 힘이 견디는 최고 속도를 효율적으로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단수가 너무 늘어나면 변속기가 그에 비례해서 복잡해지고 무거워지며, 차값도 그에 걸맞게 비싸진다. 그래서 6단 변속기는 "어차피 일상생활에서 이 정도로 고속 주행할 일이 얼마나 되냐? 최고 속도를 커버하지도 못하는데"라는 이유로 가성비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D를 놓고 있다가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지금 변속기가 몇 단 상태인지를 계기판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본인 차의 경우, 초기에 6단을 표시하지는 않는다. 6단이었더라도 5단으로 낮춘 뒤에 5단을 표시한다. 물론 그 상태로 +를 눌러서 다시 6단으로 되돌릴 수는 있지만, 그걸 기본 상태로 표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6단이 존재감이 더욱 없어 보인다.

2. 유리 썬팅

본인은 길거리에서 아주 가끔 대우(!) 프린스나 에스페로, 현대 각그랜저, 쏘나타 3처럼 연식이 20년이 넘은 엄청난 옛날 자동차와 마주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런 옛날 자동차와 최소한 2000년대 이후의 자동차의 외관상 큰 차이 중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유리 코팅/썬팅/틴팅(tinting)인 것 같다.

옛날 차들은 밖에서도 차 내부의 동승자가 훤히 보이는 편이다. 그러나 요즘 차들은 옆에서 아주 가까이 접근해서 들여다봐야 차 내부가 보일까 말까이고 어지간해서는 내부를 볼 수 없다.

차량용 유리에 검고 어두운 X팅이 되어 있으면 눈부신 햇볕과 자외선을 걸러낼 수 있고 탑승자의 프라이버시도 보장할 수 있어서 좋다. '와장창' 산산조각 나며 깨지지 않게 특수 처리되는 것만큼이나 썬팅도 특수 처리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너무 짙어서 내부가 하나도 안 보이다시피할 정도의 X팅은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 싸제 튜닝으로 간주된다. 그러면 밖에서 안이 안 보일 뿐만 아니라 안에서도 밖이 제대로 안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바깥 백미러가 잘 안 보이고, 그리고 한낮이 아닌 밤에는 시야가 더 쥐약이 된다. 이는 매우 높은 확률로 교통사고로 이어진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2000년대 언제부턴가 국내에 출시되는 차들에 기본으로 썬팅이 들어가기 시작했거나 그 농도가 올라가긴 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된 내력이나 법적 근거 같은 게 있는지 궁금하다.

여담이지만 본인은 지금 굴리고 있는 차가 내 생애의 첫 차이며, 얘는 도중에 중고로 팔지 않고 폐차할 때까지(사고 내지 지나친 노후화) 계속 탈 생각이다.
나 같은 평범한 흙수저 직장인이 굴리는 차가 30여 년 전에 꿈의 자동차로 불렸던 각그랜저보다 성능 더 좋고, 안전· 편의 시설이 더 많이 갖춰져 있다는 것이 선뜻 믿어지지 않는다.

3. 시내버스의 에코 드라이브 시스템

요즘 서울 시내버스를 타 보면 내비게이션처럼 생긴 검은 화면에 연료계인지 타코미터인지 모를 곡선이 그려져 있고, 옆에는 변속 단수가 표시된 게 보인다. 시내버스의 운전석에 앞뒤 차량(동일 노선을 달리는 다른 버스)의 위치, 거리, 도달 시간을 알려주는 단말기가 탑재돼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만, 저건 정체가 뭔지 오랫동안 궁금했다.

알고 보니 저건 고연비 경제 운전을 독려하기 위한 운전 통제 장치였다. 기계가 생각하는 것보다 속도 대비 기어 단수가 낮고 엔진 회전수가 높으면 경고음이 나오고 점수(?)가 깎인다. 승용차의 액티브에코 같은 기능보다 강제성이 더 높다.

어쩐지 요즘 버스들은 좋게 말하면 난폭운전 없이 참 부드럽게 나아가고, 나쁘게 말하면 박력 없이 너무 약하게 밟는 게 느껴졌다. 전방이 아무 장애물도 단속 카메라도 없는 버스 전용 차로이고, 심지어 1km가 넘게 중간 정류장이 없는 한강 교량 구간이더라도 주행 속도가 60km/h는 절대로 안 넘는다는 것을 본인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거 덕분에 연료 아끼고 배기가스 덜 나오는 긍정적인 효과가 분명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버스가 승객조차 답답하게 느낄 정도로 너무 굼떠서 불편해졌다는 반응도 있다. 적당히 좀 밟아서 빨리 가도 되는 첫차나 막차 같은 시간대에도 완전 FM대로만, 1500rpm을 안 넘다시피하는 정속 주행을 하니.. 새벽에 남들보다 아주 일찍 출근해야 하는 업종--환경 미화원, 일용직 근로자..-- 종사자들에게는 악재가 된 것이다.

또한, 노선에 오르막이 많아서 원래부터 연비가 좋게 나올 수 없고 좀 세게 밟아야 하는 버스들도 통제 장치의 개입으로 인해 더 느려지고 둔해졌다고 한다. 이건 통제 장치가 갓 도입된 초창기에 나타났던 시행착오이며, 현실의 지형을 감안해서 엔진 출력을 지나치게 후려치지 않게 동작 방식이 차츰 개선되었다.

예전에 말한 적이 있지 싶은데.. 본인은 과속 폭주를 직접 하는 것도 좋아하고, 그렇게 달리는 차에 동승하는 것도 좋아한다. 앞뒤좌우로 강렬한 G(가속도)를 느끼면서 쏠리는 그 느낌이 좋다. 난폭운전 총알택시 같은 건 꼭 직접 타 보고 싶다.

4. 시내버스와 고속버스의 엔진음

이 시점에서 문득 의문이 드는 게 있다. 시내버스의 엔진 소리와 고속버스의 엔진 소리는 서로 완전히 동일할까?
시내버스도 충분히 낮고 칼칼한 소리가 나니 언뜻 보기에 그게 그거 같고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좌석· 광역· 고속버스를 타 보면 시내버스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유의 굵직하고 털털거리는 이펙트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시내버스는 걸핏하면 신호에 걸려서 멈추고, 몇백 m 간격의 정류장마다 또 서야 하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고rpm의 엔진음이 나올 일이 없다. 비록 폭과 타이어 크기는 8톤 트럭과 대등해 보이고 똑같은 45인승 대형 버스 차급인 것 같지만 두 버스는 제원에 차이가 있다.

길이부터가 시내는 11m대이지만 고속은 12미터가 넘는다. 트럭으로 치면 같은 덩치여도 초장축/장축의 차이와 비슷해 보인다.
높이도 시내는 상대적으로 더 낮아서 납작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인 반면, 관광· 전세를 포함한 고속버스는 3m를 훌쩍 넘어서 3.3~3.5m에 달한다. 밑에 짐칸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엔진 역시 차이가 난다. 시내버스는 막 고속 주행을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에 10리터대의 배기량에 그냥 300~330마력대이지만, 고속은 큰 덩치와 고속 주행에 걸맞게 12리터대의 엔진에 400마력이 넘는 출력을 낸다.
이런 덩치의 차이 때문에 시내버스와 고속버스는 공회전 내지 갓 출발할 때의 초기 엔진 소리조차도 pitch와 음색이 약간 다른 건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은 현대 자동차 기준으로 시내버스(에어로시티)와 고속버스(유니버스)의 중간에 속하는 차급(유니시티)도 있다. 광역 급행 좌석버스용으로 쓰라고 말이다. 얘 정도만 돼도 단순 시내버스보다는 약간 더 높고 엔진 소리와 승차감이 고속버스에 더 가까워 보인다. 대형 버스의 세계도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것 말고 학교 셔틀버스나 통학· 통근 버스는 장거리 고속 주행을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에 그냥 에어로 시티 같은 시내버스급 차량에다가 필요에 따라 좌석만 잔뜩 배치해서 굴린다. 에어로 시티라는 이름의 버스 자체는 RB 이후로 1990년대에 굉장히 옛날에 등장했기 때문에 요즘 차종은 이름 앞에다가 '뉴 슈퍼'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붙여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9/06/04 19:33 2019/06/04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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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린이날 특집

올해 5월은 참 공교롭게도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이 모두 주일과 겹쳤다. 어린이날은 대체 공휴일이라도 있었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으니 "부처님, 실망이에요"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했다. ㅡ,.ㅡ;;

그래서 본인은 지난 5월 5일엔 이에 맞춰서 회중 찬송곡을 골랐다.
가사에 "어린아이 같은/처럼" 비유가 들어있는 것, 명랑한 분위기에 화자의 관점이 동심인 것들을 주로 골랐다.

오전에는 "예수께로 가면"(If I come to Jesus), "주와 같이 길 가는 것"(2절 어린아이 같은 우리 미련하고 약하나)이 우선 선택됐다.
그 밖에 "나 주의 믿음 갖고"도 평소라면 오후에나 불렀을 곡이지만 이번에는 오전에 선택했다.

오후에는 "어린아이처럼 오라 하시네"(다시 살리라)를 골랐으며,
회중 찬송보다는 특송용에 더 가깝다만 실험적으로 "나는 비록 미약하나"(I may not be all that you are)를 불러 봤다.

한국어 가사는 "주는 나의 목자이시니" 이러면서 굉장히 점잖게 번역됐지만, 원래의 영어 가사는 "내가 겉으로는 보잘것없어도 난 주님의 자녀이다. 날 놀리거나 무시하거나 뒷담화 하지 마셈~"(Don't tease me or mistreat me. Don't abuse me. You can even talk about me but I'm still His child)..
보기보다 굉장히 애같은 관점에서 쓰여졌기 때문이다.

어린이 찬송 "나는 진군하는 보병이나 ... 나는 주님의 군병"와 비슷한 구성이긴 한데, 레알 어린이 찬송을 고르는 것과는 양상이 약간 다르다. 진짜 어린이용 동화냐 성인용 동화냐의 차이와 비슷하다.
성경에서 어린아이 심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한 건 복음서의 묘사가 아주 유명하고, (마 18:3-5 등)
부정적으로 말한 것은 사랑장이 잘 알려져 있다. (고전 13:11) 심지어 사탄의 인형 3 영화에서도 군사학교에 입학한 앤디한테 교장이 저 구절을 인용했을 정도이다.

그 밖에도..

  • 새해에 "아침 해가 돋을 때 만물 신선하여라"
  • 석가탄신일과 겹쳤던 주일엔 "나는 인생의 산과 들 방황하며"
  • 야유회? 수련회?를 가서는 좀 더 자연을 묘사하고 있는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 교회 대청소를 앞두고는 가사에 "힘써 일하세"가 있는 열심과 헌신 카테고리의 곡
  • 간증 집회 전에는 "지금까지 지내 온 것", "날 구원하신 것 감사"..
  • 세월호 참사 때는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작사자도 가족을 선박 사고로 잃고서 이 가사를 지었음)
  • 현충일, 광복절, 6·25 같은 이벤트와 가까울 때는 "어느 민족 누구게나"

요런 매뉴얼이 구축되어 있다.
본인은 전문적인 연주자나 작곡자가 아니지만, 이미 있는 곡을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골라 내는 것만으로도 맡은 직분에 대한 자긍심을 느낀다. 이런 고정된 이벤트 말고도 그 날 주보에 기재된 성경 암송 구절이나 읽어보세요 묵상 내용과 관계가 있는 곡을 발굴해 낸 적도 있었다.

2. 특송

교회 예배 때 온 회중이 즉석에서 제창으로 찬송가를 부르는 게 게임의 초당 수십 프레임 급 실시간 렌더링이라면,
한 곡을 집중적으로 연습해서 부르는 찬양대 '특송/합창'은 1프레임 당 긴 시간이 걸리는 영화 CG의 오프라인 렌더링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다. 서로 영역이 다르다.

특송을 부를 때는 회중 찬송 수준에서 실현되지 못하는 화음 성부, 돌림노래 같은 것을 모두 반영해서 더 공을 들여서 찬송을 부를 수 있다.
교회에 비치된 찬송가에는 없는 곡을 준비해서 부를 수도 있으며, 책에 있더라도 단선악보뿐이라면 중창/합창용 악보를 따로 구해서 부를 수도 있다.

즉, 특송은 '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음과 같이 특별한 실험을 시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특송곡은 다음 중 한 출처를 통해 결정된다.

  • 책에 없는 신곡 도입
  • 책에 있지만 불린 적 없는 신곡 개척
  • 책에 있는 친숙한 곡이지만 부르는 방식을 강화· 개량

전주· 간주까지 다 갖추고 있고 그냥 악보에 있는 대로만 부르면 되는 합창곡이 아니라 단순한 곡이라면 다음과 같은 강화· 개량을 한다.

  • 가사나 박자· 멜로디가 비슷한 관련곡들 메들리 편성
  • 간주 중에 가사와 관련된 성경 구절 낭송 삽입
  • 여건이 되면 피아노 외의 다른 보조 악기 동원 (플루트, 바이올린, 색소폰, 기타..)
  • 단선악보라면 악보를 읽어보고 자체적으로 화음 넣기

그리고 1년에 한 번 정도는 이런 것도 시도한다.

  • 전원 무악보 암송: 그 대신 이때는 다른 음악적인 난이도는 최대한 낮춘다.
  • 반주자도 같이: 반주자에게도 강단에 설 기회를 준다. 다른 임시 반주자를 섭외하거나 아예 무반주 아카펠라를 해서.

청년부 특송 지휘를 몇 년 해 보니 운영 원칙이랄까 매뉴얼이 얼추 이렇게 정리된다.
난 교회 찬양대라고 해서 틀이 박힌 듯이 몽환적인 반주에다 변성기 안 지난 미소년들이 하얀 까운 걸치고 노래 부르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냥 평범한 방법론으로 어떤 찬송가 곡의 가사와 멜로디를 최대한 뽕을 뽑는 특송을 편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한편으로, 듣는 성도들에게는 관련 성경 말씀과 교리를 기억에 각인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면 훌륭한 특송이라고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돈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처럼 노래를 지어서 교리를 가르치는 건 아주 좋은 방법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6/02 08:32 2019/06/0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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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자료 준비하느라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에 만들었던 그림인데.. 신기하게도 내 개인 블로그에다가는 아직까지 공개한 적이 없었구나!

성경은 안 그래도 삼위일체처럼 인간이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개념을 다루는 데다, 잠 26:4-5처럼 표현이 대놓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듯이 보이는 대목이 종종 나온다.
당장 몇 가지 예만 들어 봐도 "은혜와 사랑 VS 율법과 공의", "자유의지 VS 예정과 섭리" 같은 것 말이다. 편의상 "파랑 VS 빨강"이라고 하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럴 때 성경의 전체 숲 그림을 모르는 사람들이 자주 선택하는 방법은

  • 자기가 믿고 싶은 부분만 돌쇠같이 닥돌 해서 물의를 빚는다. (파랑 아니면 빨강. 다른 쪽은 무시)
  • 아니면 성경에서 일체의 색깔을 제거하고 비성경적인 중도로 빠진다. (회색)
  • 아예 보라, 분홍... 초록색을 내세우는 이상한 부류도 있다.

이 셋 중 하나를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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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때 가장 합리적인 솔루션은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하는 것이다. 충돌이 일어나는 경로는 평면이 아닌 입체교차로를 만들어 충돌을 해소시킨다.
빨강은 이 문맥과 대상에서 직접 적용되는 것이고, 파랑은 다른 문맥과 대상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타 문맥에서는 영적인 '적용'과 교훈, 유익 정도까지는 가능하지만 문자적인 해석은 아니다.

  • 크리스천도 살면서 많은 어려움과 환란을 겪지만(행 14:22), 그건 미래에 예고된 유대인의 대환란과는 전혀 다른 얘기이다.
  •  6천여 년 전의 6일 창조야 의심의 여지가 없는 창조 교리이지만, 세상의 창조가 그것만 있는 건 아니고 더 크게 현 세상 이전에는 다른 창조와 파멸, 다른 홍수도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식.

내가 만들었던 그림 중에서 성경 노선도는 교리 논란이 없는 평범한 부류이니 기독교계 커뮤니티들에 굉장히 많이 퍼져 나갔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그렇게도 귀하고 소중한 책이라는 성경을 어떻게 읽고 있고 난해한 구절, 교리적으로 모순되는 듯한 구절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 걸까?

성경보다 똑똑해서 자기가 성경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이상한 똑똑이가 아니라, 성경 안에서 똑똑한 진짜 똑똑이가 교회에 절실히 필요한 시대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4/29 19:32 2019/04/2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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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원 관련 개념 복습

예전에도 신앙 관련 글을 쓰면서 여러 번 언급한 바 있지만, 성경적으로 인간이 구원받는 길 내지 방법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는 알량한 믿음이라는 제일 바보같고 나약한 자유의지가 전부이다. 그것 말고 다른 어떤 외모나 스펙이나 능력도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예수 믿을 정도의 지적 능력조차도 없고 스스로 선과 악을 분간 자체를 할 수 없는 너무 어린 애들, 정신지체 박약아는.. 그냥 무조건 구원 받는다. 걔들도 따지고 보면 죄가 있지만 죄에 대한 책임이 부과되지 않기 때문이고.. 예수님을 믿을 능력이 없지만 그분을 거부할 능력도 없어서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에 없는 용어이지만 본인은 이 개념을 편의상 '특례 구원'이라고 일컬어 왔다. 이런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경우는 이 블로그를 찾아와서 이 글을 직접 읽을 정도의 분들에게는 해당사항 없으니 신경 쓸 필요 없다. 수학에다 비유하면 방정식의 근 중에서 그냥 너무 자명한 trivial solution과 비슷한 개념이다. 생물학으로 치면 무성 호흡/생식 같은..??

이런 논리를 따라, 본인은 어린아기들이 병이나 사고로 죽으면 원죄 때문에, 혹은 유아세례를 안 받았기 때문에 지옥 간다는 말도 안 되는 교리를 일단 전혀 믿지 않고 부정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너무 강조하는 나머지, 인간의 일체의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선물 받으실 분?" / "저요, 저도 좀 주세요!"라고 응답하고 손 내미는 것도 자기의 의이고 선물에 대한 대가(!)인 것처럼 이상하게 몰아가는 설명도 배격한다.

'무조건적인 선택'과 '거부할 수 없는 은혜'는 앞서 언급했던 '특례 구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성립한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그 상태를 '전적 타락'이라고까지 부르는 건 '글쎄요~' 싶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밖의 문맥에서는 인간이 얼마든지 제 발로 구원의 길을 거부하고 지옥 갈 수 있다. 그리고 그건 하나님의 전지전능이나 사랑이나 공의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현상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허락하시는 뜻을 분간하지 못하면 정말 온갖 골때리는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6· 25 대한해협 해전 때의 동해상의 북괴군 600명하고, 광주 5· 18 북괴군 600명을 헷갈리듯이 말이다.

직접적으로 동일한 문맥을 다루는 구절은 아니지만 눅 14:16-21 같은 비유 얘기를 봤을 때... 그리고 인류 역사와 지금 세상 현실을 고려했을 때..
추측하건대 미래에 하늘나라에 가 보면 믿어서 구원받은 사람보다는 특례 구원을 받은 사람이 훨씬 더 많긴 할 것 같다.

마치 증기 기관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수단의 동력원으로서는 완전히 도태했지만 발전소에서 전력 생산용으로는 압도 다수인 주류이듯이(화력, 원자력이 모두 증기 터빈을 돌리므로!)...
선박이 장거리 여객에서는 비행기에 밀려 완전히 도태했지만, 일반인들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 물류에서는 여전히 본좌이듯이..

그때가 되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지 못했던 큰 그림을 보게 되지 싶다. 민망하고 불편한 진실이지만, 언론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을 가치가 없어서 외면하고 있는 죽음이 이 세상의 음지에서 얼마나 많이 자행되고 있겠는가?

참 오랜만에 구원 기본 개념에 대해 복습해 보았다.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대해서도 얘기할 것이 많은데.. 시간과 지면 관계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구원만 받고 어리고 육신적인 신자에 대한 개념이 잘 이해되지 않으니 사람들이 자꾸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의심하며, 심지어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식으로 잘못 생각하는 편이다.
자살은 인간이 저지르는 다른 끔찍하고 흉악한 죄들보다 특별히 다르게 취급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의롭게 자결했다고 구원을 얻지는 못하듯, 세상 비관해서 혹은 고문 당하는 게 두려워서 자살했다고 해서 구원을 잃지도 않는다.

2. 성경과 세속 과학, 학문과의 관계

정말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실험만 하는 과학이라면, 그 알량한 방법론을 동원해서 신의 존재를 대놓고 증명하거나 반증할 수는 없다. 사실은 교계에서 그렇게도 정죄하는 진화론을 절대무오한 진리라고 입증하지도 못한다. 그쪽 세계에서는 실험 결과에 따른 귀납적인 학설과 확률과 통계만이 있을 뿐이다.

원래 과학과 종교?신앙?은 서로 별개의 영역인 게 맞다. 그럼 창조니 진화니 하면서 싸울 필요가 없는 건가? 마냥 안심하면 되냐? 그렇지는 않다.
과학 그 자체는 자연 계시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이기 때문에 가치 중립적이다. 잘 연구해서 나쁠 것 없다. 그러나 거짓되이 과학이라고 불리는 학설이 대놓고 신을 부정할 수는 없더라도, 그 사고방식이나 연구 방법론· 패러다임을 잘못 적용하여 성경에 대한 믿음을 파괴할 수는 있다. 이게 파괴된 신자는 진짜 볼장 다 본다.

"성경에 어차피 요런 부분에는 오류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나 성경의 존재 가치가 싹 부정되는 건 물론 아닐 거다. 하지만 성경의 다른 부분에 기록돼 있는 엄청나고 극단적인 예언들도 그렇게 정밀하게 문자 그대로 믿을 게 못 된다는 거다. 비유와 교훈 등 우리에게 좋은 쪽만 재해석해서 받아들이면 된다. 히브리어를 보면 어떻게 그리스어를 보면 어떻고.."

요게 아주 위험하고 돼먹지 못한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성경을 바르게 나누지 않고 특정 부분만 분별 없이 무식하게 문자적으로 밀어붙이면서 물의를 빚는 교파 종파에 대해서도 본인이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런 오류에 대한 대안이 저런 지적 사기가 돼서는 안 된다. 본인은 성경은 세상의 여느 학문과 같은 방식으로 취급하고 접근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라고 믿는다.

3. 성경에서 가장 자주 인용된 구절

성경에는 "곡식 밟는 소의 입에다 마개를 씌우지 마라"(신 25:4, 가축이 적당히 자유롭게 먹으면서 일하게 해 줘라)가 의외로 신약에서 두 번이나 더 언급된다. (고전 9:9, 딤전 5:18) 주의 일을 하는 사역자들의 보상과 관련된 문맥에서이다.

그리고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가 합 2:4에서 '자기'(his)가 빠진 바리에이션으로서 세 번 더 나온다. (롬 1:17, 갈 3:11, 히 10:37) 이에 덧붙여 "네 부모를 공경하라"도 십계명인 출 20:12뿐만 아니라 신 5:16, 엡 6:2에서 반복되며, 복음서에서도 인용 형태로 마태· 마가· 누가에 거듭 등장한다.

그런데 이것뿐만 아니라 뭔가 좀 생뚱맞아 보이는 구절도 성경에서 톱급으로 자주 거듭 반복해서 인용된 게 있다. 바로 시 110:1이다.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받침으로 삼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
요한복음을 제외한 다른 세 복음서에서 연이어 copy & paste 수준이고(마 22:44, 막 12:36, 눅 20:43), 행 2:35와 히 1:13에서 추가로 나온다. 거기에다가 히 10:13도 재차 언급이라고 볼 수 있으니.. 횟수가 가히 압도적이다.

"소의 입마개"만치 인간의 실생활과 관련이 있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라"만치 보편적인 인륜을 다루지 않고,
그렇다고 "믿음으로 살리라"만치 인간의 구원과 관련이 있지도 않은 저 말은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언제 왜 한 말이고 문맥이 뭘까?

시간과 지면 관계상 저 구절의 모든 문맥과 의미를 강론할 수는 없지만, 간단히만 말하자면 저건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 하나님에게 한 말이다.
성경은 도덕 경전이나 역사 기록이나 복음과 구원 안내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그건 부가적인 2순위 이하의 목표일 뿐이다. 그 전에 하나님의 주 관심사와 성경의 핵심 주제는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통치임을 알 수 있다. 세상 용어를 동원해서 표현하자면 다분히 정치적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사람들은 온갖 시사· 종교 난제들을 가져와서 그분에게 질문을 했다. (부활의 때에 누구 아내? 율법에서 가장 큰 명령? 카이사르에게 납세? 등등등~) 떠보고 트집 잡으려는 불순한 의도로든, 아니면 정말 몰라서든지..

예수님은 그런 것쯤은 막힘없이 전부 즉답을 하셨고 사람들을 데꿀멍 시켰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우리 인간에게 물으신 건 단 하나였다.

"그럼 이제 내가 니들에게 하나 좀 물어 보마. 너희는 내 정체가 정확하게 무엇인 것 같냐? 시 110:1을 봐. 다윗이 자기 비속 후손을 보고 '주'라고 존대해서 부르는데 이건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그 뒤로 사람들은 버로우 타 버리고 더는 예수님에게 딴지를 걸지 못했다고 성경은 말한다. 시 110:1은 그 문맥에서 인용되었으며, 그게 복음서에 3회 반복해서 기록되었다.

또한, 나중에 배반당하고 체포된 뒤의 행적도 생각할 만하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다른 온갖 쓰잘데기없는 거짓 고소들에는 하나도 대꾸하지 않았지만, "너 정체가 뭐냐? 넌 정말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라는 물음에는 정말 솔직 담백하게 대답하셨기 때문이다. (마 26:62-65, 막 14:60-63, 눅 22:66-71)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믿기만을 바라셨다. 예수의 부활조차도 곧이곧대로 믿기 싫고, 그래도 역사 팩트와 후폭풍 증거까지 송두리째 외면할 수는 없으니 제자들의 자칭 예수 부활 "체험" 사건 이 따위로 둘러대는 짓 하지 말라고 말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무슨 "P와 NP는 과연 동일할까?", "리만-제타 함수의 자명하지 않은 근은 실수부가 정말 몽땅 1/2일까?", 아니면 "광주에 과연 북괴 공작원들이 잔뜩 침투되었을까?" 같은 걸 묻지 않으신다.
그런 건 관심 있는 사람들이 연구해서 답을 구하든가 말든가 하면 되고, 그 전에 정말 똑바로 알아야 하는 건 그리 높은 지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 "너에게 예수는 어떤 분인가?" 하나이다.

요한복음은 시 110:1의 직접 인용은 없지만 기록 목적이 독자들 예수 믿게 하는 것(요 20:31)이라고 다른 어떤 복음서보다도 분명하게 대놓고 적어 놓았다.

4. 신앙 생활이 인간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는 것

예수 믿고 구원받은 뒤의 신앙 생활은 인간에게 철저하게 유리하게 짜인 것도 있고 불리한 구조로 된 것도 있다.
유리한 것은.. 뭔가 좋은 것을 사람이 "먼저" 받아서 동기 부여를 받은 뒤에, 그 다음에 사람 쪽에서 베풀고 헌신하고 인내하고 희생하는 구도라는 것이다.

먼저 구원부터 받고 나서 침례를 받든지 믿음의 선한 행위를 하든지 성장을 하든지가 그 다음에 이어진다.
일단 쉬고 나서, 달콤한 은혜의 말씀부터 먹고 나서, 즐기는 것부터 하고 나서 "그 다음에" 일을 하고 헌신한다. 일이 먼저가 아니다. 인간이 만든 세상 기업 중에 입사 후에 월급이건 일당이건 보수를 받고 나서 다음부터 일하는 곳이 있던가? 세상에서야 소득 주도 성장은 마치 "일단 서울대부터 보내 주면 나도 공부 열심히 할게요" 같은 미친 개소리이지만.. 성경적인 신앙 원리에서는 실제로 존재하는 개념이다!

다른 대부분의 종교에서 최종 목적지, 만렙, 해탈의 경지라고 말하는 '구원' 내지 성인 성자(saint) 칭호가 이 바닥에서는 그냥 기본으로 따 놓은 당상이다. 근성 충전을 위해 일단 한 대 맞고 시작... 이 아니라 일단 구원부터 받고 시작이다.
창세기 1~2장의 천지 창조만 생각해 봐도 하나님은 6일간 일하고 나서 일곱째 날이 쉬는 날이었지만, 아담과 이브는 만들어지고 결혼하고 honeymoon부터 즐긴 뒤부터 동산 관리 일과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마리아와 마르다 얘기도 있다(눅 10:38-42).

그 반면, 인간에게 불리하게 짜여 있는 것, 혹은 이것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는 사항도 있다.
신앙 생활이란 건 본질적으로 당장 보이고 들리는 대로, 편한 대로 직관적인 대로, 남들 다 하는 대로 사는 게 아니다. '바보 같아 보이고 손해 보는 듯이 보이는 좁은 길 역행'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결단과 행동은 각 개인이 자발적으로 직접 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둬서 물리적인 여건이 요 모양 요 꼴이 된 것을 하나님이 굳이 수습해 주고 undo 해 주시는 경우 역시 일반적으로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신앙 생활이 무슨 공밀레 같은 신밀레 열정페이 착취는 절대 아니다.
인간이 인간의 본성· 성품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 단단하고 입에 쓴 말씀, 실행하기 힘든 것에 대해서는 최소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먼저 다 당하고 겪어 놓았다. 그때는 이런 믿는 구석으로 요렇게 하면 된다고 선례, 모범, 샘플이 마련돼 있다.

어려운 시험 문제나 과제에 대해 원리, 예제, 유사한 기출문제, 힌트를 듬뿍 주긴 한다. 그러나 대놓고 정답을 가르쳐 주는 일은 결코 없으며, 하물며 시험 문제를 미리 유출해 줄 리는 절대 만무하다. 모든 과제는 자신의 문장을 써서 직접 해야 한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인간에게 절대로 '안알랴줌'인 것의 대표적인 예는.. 세대 경륜 급의 큰 그림 이상으로 각 개인의 구체적인 미래 예언,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 시기이다. 나에게 내일 어떤 일이 닥칠지는 완전 랜덤 케바케이다.
그것만 좀 알면 딱 죽기 직전에만 예수 믿고 구원을 먹튀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인간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꼼수 부리면서 편하게 살 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겨우 그런 걸로 농락당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지는 않으셨다.

자, 유리한 것과 불리한 것을 비교해 보면.. 신앙 생활 할 만하겠다는 생각이 드시는가, 어떤가?

5.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것

  • 군대는 일반적으로 최악의 범죄라 여겨지는 살인이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집단이다. 하지만 자기 집 지키느라 불가피한 정당방위도 허용되는 마당에, 하물며 나라를 지키느라 지휘관의 명령대로 전쟁터에서 무장한 적군을 죽이는 것은 형법상의 살인이 전혀 아니며, 오히려 정반대로 숭고하고 영예로운 일이다.
  • 국정원 같은 첩보 기관은 "악에는 악으로 맞선다, 이이제이, 목표는 수단을 정당화한다"가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집단이다. 절대악을 퇴치하기 위해 필요악 역할을 맡고, 작은 악을 동원해서 더 큰 악을 예방하는 궂은일을 한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이건 나쁜짓이며, 공산주의자 빨갱이들이나 사용하는 수법(거짓말, 위장 침투..)으로 여겨진다.
  • 끝으로 종교는 겉으로 언뜻 보이는 결과만 보자면 정신승리, 진영논리,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가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분야이다. "생명은 생명으로부터만 나올 수 있다"라는 과학 팩트는 "그럼 최초의 생명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를 설명하지 못한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무한순환을 끊으려면 결국 처음에 한 번은 비논리적인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예수 믿으면 물질적인 복 받고 부자 되지 않는다. 뭐, 그렇다고 북한이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극단적인 박해 지역이 아닌 한, 무조건 쫄딱 망하고 거지 되고 감옥에 갇히고 죽지도 않는다. 구원받아서 신분이 바뀌는 것과 개인이 물질적으로 잘 되거나 못 되는 건 별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다.
또한, 국가 차원에서 사회가 전반적으로 성경적인 건전한 경제관과 시스템이 갖춰져서 잘살게 되고 중산층이 늘고 부강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게으른 개인을 일일이 다 먹여 살려 주는 게 아니다.

예수 믿어서 확실하게 보장되는 것은 영적 복을 받고, 설령 가난하더라도 그 처지만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는 것, 주님께서 내게 지금 당장 허락하신 처지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알게 되는 것이다. 나를 강하게 하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가 할 수 있게 되는 건 별 게 아니라 바로 이런 것들이다.

"남들보다 가난하지만 난 영적으로는 부자.." 영이건 정신이건 이것도 정신승리라면 정신승리이다. 하지만 이건 아Q의 정신승리와 달리, 성경적인 근거와 보장이 돼 있는 건전한 정신승리인 것이다.
상대적 빈곤에 연연하는 사고방식부터가 달라져 있지 않으면 어차피 하나님이 물질을 아무리 많이 공급해 주셔도 인간은 절대로 만족하지 않고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에만 연연하면서 불만족 불평 악순환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테니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4/21 08:33 2019/04/2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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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세카이 2019/05/12 22:44 # M/D Reply Permalink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대해서

    예전에 사울 얘기가 잠깐 나왔었는데
    님께서 사울이 구원을 받았다고 믿는 것도 결국은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믿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그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사울이 천국에 갔다는 것은 근거가 부족합니다
    무당을 통해 불러들인 사무엘의 영이 너도 나와 같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 전부인데
    그때 사무엘의 영은 진짜 사무엘이 아니라 거짓의 영이 분명합니다
    무당이 부른 영이 진짜 영일 수 없고 여호와의 영이 떠난 자에게 절대자가 사무엘의 영을 보낼 이유가 없고
    단지 사울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예언했고 그게 맞았다고 해도 그때는 사울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것을 예언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죠
    그는 불순종했었고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모든 걸 해결할려고만 했었기에 지옥에 간 게 확실합니다

    끝까지 견뎌야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의 예정이나 영원한 보장은 주님께서 시공간을 초월하시기 때문에 미리 아심이기에
    주님의 입장에서는 창세 전에 택한 것이 맞지만 사람의 입장에서는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 개념의 틀에서 억지로 해석할려고 하기에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는 것이죠
    제가 보기에는 칼뱅의 예정론이나 영원한 보장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자기가 믿는다고 머리로 생각만 하면 되는 것인지

    사람들이 행위와 믿음을 나눠서 생각하는데 믿음이 있어야만 행위를 할 수 있고
    믿음이 있어야한 끝까지 견딜 수 있는 것이죠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믿지 않기 때문에 행위를 할 수 없는 거죠
    예수님께서 직접 말하시지 않았나요
    마태복음 5장 20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마태복음7장21절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13장에 씨뿌는 자의 비유

    구약시대 믿음의 선배들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다른 믿음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최대한 믿어서 구원을 받았다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다른 믿음으로도 어차피 구원을 받는 게 가능하다고 한다면
    귀류법으로 일단 맞다고 가정을 해보면
    도대체 예수님은 이 땅에 내려오셔서 그 고생을 왜 하신 걸까요?
    구원을 편하게 받게 해줄려고 그러셨을까요?

    이것은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믿는 것과 본질은 똑같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사무엘님은 구원을 편하게 받는 것으로 믿는 거 같습니다만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처럼 사람도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이게 쉬울까요?

    갈라디아서2장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후략)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게
    누구에게는 돈일 수도 있고 권력일 수도 있고 지식일 수도 있고 자기우월감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등불을 준비한 지혜로운 처녀들처럼 또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종들처럼
    한평생을 성실하게 또 주님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1. 사무엘 2019/05/12 07:44 # M/D Permalink

      1. 예언이 "적중"했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너무 너무 긍정적인" 심상인데요? (신 18:21-22)
      아합 왕을 미혹한 거짓 영들의 예언이 적중했습니까? (왕상 22:12)
      마귀가 욥의 행동에 대해서 예측했던 게 어디 적중했습니까? (욥 1:11, 2:5)
      그거도 인간적인 감정과 정황상으로는 아주 쉽게 예상 가능한 것이고 무슨 예수님 초림/재림 급의 아주 멀고 어려운 예언도 아닌데?

      성경이 인간이 도저히 기록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인 주된 이유 중 하나도 예언 성취 아닙니까?
      "했다는 것이 전부인데" --> 그 언급이 '전부인데' 급으로 매도할 만한 사소한 증거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 전에 무당이 화들짝 놀라고 사울 왕의 정체까지 알아챈 것은 자신이 평소에 소환하던 거짓 영과는 생판 다른 결과물이 튀어나왔기 때문입니다. (삼상 28:12)
      그러고도 이게 진짜 사무엘이 아니라면.. 세상에 믿을 게 없습니다. 연대기 논쟁에서 무슨 "6천 년 전에 창조된 우주를 하나님이 일부러 페이크 쳐서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급의 말장난밖에 나오지 않으니, 소모적인 논쟁은 하지 않겠습니다.

      "칼뱅의 예정론이나 영원한 보장" --> 별 차이 없어 보이는 게 맞습니다. 칼빈주의 5대 튤립 강령 중의 P가 나름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계산 과정은 틀렸지만 결과가 일부 맞는 것이 저 교리입니다.
      계산 과정이 틀렸고 결과만 아쉬운 대로 맞는 대표적인 다른 예로는 "자살하면 지옥 가니까 자살하면 안 된다"가 있습니다.

      2. 사람도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거 맞습니다.
      단지 그 이유와 목적이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 성령의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보상을 받고, 구원의 목적에 합당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서이지..
      자기 노력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구출받기 위해서가 아닐 뿐입니다.

      "도로 지옥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도 당연히 포함이구요.
      구원의 영원한 보장은 "남한에 온 탈북자는 그 어떤 죄를 지어도 남한의 교도소나 사형장에는 끌려갈지언정, 어떤 경우에도 재북송되지는 않는다"와 같은 급의 명제입니다.

      이 기독교계라는 바닥이 얼마나 지저분한 곳인가 하면, 십일조가 신약 교회에 적용되는 교리가 아니라고 얘기하면 꼭.. 헌금을 할 필요가 없다고 궤변 늘어놓는 사람이 생기고,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얘기하면 꼭..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생기더군요.
      신사카이 님은 똑똑하시니 저 개념도 구분 못 하지는 않으시리라 기대해 봅니다.

    2. 사무엘 2019/05/12 07:44 # M/D Permalink

      하나 더.. "끝까지 견디는 자 곧 그는 구원을 받으리라." (마 10:22, 마 24:13, 막 13:13)
      주변 문맥을 보세요. 온통 대환란 때의 생존, 구출, 구조에 가까운 얘기입니다. 혼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하는 통상적인 복음 얘기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be saved라고 해서 전부 행 16:31 같은 지옥으로부터의 구원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식이면 잠 28:18만 하나 뚝 떼어 와서 "성실하게 살면 구원받네?"도 가능하답니다.

  2. 신세카이 2019/05/12 09:55 # M/D Reply Permalink

    그 문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환란이 무엇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진리를 추구하는 제3자의 입장에서 구약과 신약을 나누고 또 대환란으로 시간대를 나누는 것은
    이것은 어떤 믿음이든 어떤 종교든 간에 진리의 속성에 그 자체로 위배된다고 판단됩니다
    진정 진리라면 영원불변해야 합니다 시간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라면
    철학적인 판단으로 그것은 진리라고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1. 사무엘 2019/05/12 13:24 # M/D Permalink

      성경의 총체적인 그림과 체계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할 생각은 없으면서 한두 예외적인 구절, 그것도 자기가 직접 찾아서 읽고 생각해 보지도 않고 안티 사이트에서 펀 알쏭달쏭한 구절만 문맥 무시하고 뚝 떼어 와서 뭐 성경이 모순이니, 성경이 장애인을 비하하네, 잔인하네 어쩌네 이상한 소리 한다든가..

      엡 2:8-9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 행위 아님) 같은 더 자주 더 분명하게 제시돼 있는 신약 교리는 무시하고, 자기 마음에 드는 답변이 없으면 끝까지 트집 잡고 늘어지는 건 진리를 찾는 사람의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님이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저는 저런 부류의 사람을 많이 봐 왔어요.)

      성경에 구원뿐만 아니라 다른 주제에 대해서도 이랬다 저랬다 "모순처럼 보이는" 구절이 굉장히 많습니다. 당장 잠 26:4-5 "안돼 / 돼!" 같은 이랬다 저랬다 극단적인 쌍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당연히 시기와 문맥을 따라 바르게 분간해서 적용해야 합니다. http://moogi.new21.org/tc/1613 의 그림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마치, 민족 자결주의는 1차 대전 승전국 식민지에나 적용될 뿐, 일제 식민지 조선에다가는 영적으로 교훈만 되지 당장 국제법적으로 문자적으로 적용되는 거 아님.. 이런 식으로 분간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대를 나누지 않으면 더 큰 무질서와 혼란이 야기되고, 옳다구나 개독안티들의 성경 공격도 더 심해집니다.

      글쎄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교회 시대와 환란기 등.. 그런 시대 구분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성품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처한 상황과 계시의 분량은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인 구원 방식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아무 문제가 될 게 없는 하나님의 고유 재량 영역인데.. 무엇이 그렇게 불만이신지 개인적으로 궁금합니다.

      진리라는 게 무슨 강박관념 수준의 수학적인 동등이어야만 한다면, 그 사고방식으로는 마 20에 나오는 포도원 비유(일한 시간과 상관없이 모두 동일한 임금)이라든가 눅 16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 같은 것도 도저히 납득이 안 될 겁니다.
      (정말 진지하게 답을 구하고 싶으면.. 제가 제시하는 성경 구절들은 전부 직접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3. 신세카이 2019/05/12 17:45 # M/D Reply Permalink

    저는 오직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믿었는데
    다른 믿음으로도 구원이 가능하다는 해석이 충격적입니다

    게임이나 만화에서 성스러운 것을 찾기 위해 주인공이 여행을 하죠
    이게 무한한 힘을 주는 성검 랑그릿사일 수도 있고 소원을 들어주는 드래곤볼일 수도 있죠

    생명이란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피조물의 유한한 사랑이 반응하면 육체를 가진 유한한 생명이 탄생하고
    오직 절대자의 무한한 사랑에 반응한 자에게만이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며
    이 사랑이 주님께서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 피와 물을 바친 제사입니다
    사람의 삶의 목적이란 절대자의 무한한 사랑에 반응하는 여행이라고 봅니다

    포도원 일꾼은 일을 시키는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일당을 일꾼에게 주는 게 목적이고
    불의한 청지기도 절대자에게 부여받은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
    둘 다 본질은 이웃사랑이며 이것 또한 절대자의 무한한 사랑에 반응하는 것이겠죠

    구원을 쉽게 받는다는 해석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게 아닌 것은 맞지만
    믿음이 있는 자만이 행위로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행위와 믿음이 전혀 모순되지 않고 동일하다는 게 저의 판단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자기의 부족함을 깨닫고 절대자 앞에 겸손하고
    성실히 자기 달란트를 잘 활용해 선한 열매를 맺어야겠죠

    1. 사무엘 2019/05/12 21:45 # M/D Permalink

      1.
      그렇게도 오로지 예수님에 대한 믿음만으로 구원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구원을 너무 쉽게 받는다는 걸(?) 동의하시지 않는 게 저로서는 좀 이해가 안 됩니다. 평생 신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하나님 욕하고 저주하던 사람이 갑자기 신념이 확 바뀌어서 회개하고 예수를 내 구주로 믿은 거..
      저런 믿음 행사가 당장 선행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말 만만하고 쉬운 싸구려 구원을 얻은 거 같습니까? 저는 이 점을 제일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럼 그냥 천주교 행위 구원, 행위로 구원 유지가 더 합리적이어 보인다는 얘기인가요? 그건 좀 모순인데요?

      2.
      그리고 약 1900여 년 전 이래로 지금이야 신약 성경까지 다 완성됐고 계시도 나올 게 다 나왔으니 당연히 오직 예수로 구원받지요.
      그러나 문제는 그 전, 또는 그 후라도 극동 아시아처럼 복음의 발상지로부터 극단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던 곳입니다. 그때/거기서는 예수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나마 간접적인 예언이라도 있지만 이방인들에게는 양심 말고는 말씀 계시 자체가 없었는데 어떻게 그 예수를 알고서 믿을 수 있습니까?

      그게 초월적인 방법으로 가능하기만 하다면 살기가 참 편하기는 하겠네요. "세종대왕, 이 순신, 조선시대 구원" 갖고 시비 거는 사람들 대처하기는 훨씬 더 편리하겠네요.

      최소한 자연 계시라도 따르면서 양심을 따라 절대자를 찾았고, 구약 성도의 경우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예수 계시가 직접 주어지기만 했다면 그분을 곧장 믿었을 사람.. 그 마음 상태가 구원 여부를 결정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스스로 빛을 찾아가서 구원받았을 사람은 매우 극소수.. 선교사 파송 필요함) 저로서는 그게 하나님의 입장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조치입니다.

      이걸 무슨 '딴 믿음, 별개의 믿음'이라고 계속해서 오해하신다면 이 평행선은 더 좁힐 방법이 도저히 없습니다. 저는 이 문제 갖고 님과 더 논쟁이나 토론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4. 신세카이 2019/05/14 19:11 # M/D Reply Permalink

    인간은 유한하기에 모든 걸을 다 알 수는 없겠죠
    중요한 것은 아기와 같은 마음과 태도일 것입니다
    절대자는 진리를 지혜로운 자에게는 숨기고 아기들에게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영이 함께 한다면 필요에 따라 알려주실 것이고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이웃을 사랑하는 게 중요하겠죠

    마지막으로 얘기하겠습니다

    얘기하고 있던 주제가 구원관에 대해서였고 사울과 무당이 부른 사무엘의 영에 대한 얘기는 곁가지라고 생각해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서 그냥 답변을 안 했었는데

    신명기 18장22절 만일 대언자가 주의 이름으로 말하는데 그 일이 뒤따라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성취되지도 아니하면 그것은 주께서 말씀하지 아니하신 것이요, 오직 그 대언자가 자기 뜻대로 그것을 말하였나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이것은 "틀린 예언을 하면 거짓의 영"이라는 겁니다
    (틀린 예언 -> 거짓의 영)

    명제가 참일 때는 "대우"도 항상 참이 성립하죠
    그러므로 진리의 영은 항상 맞는 예언만 하죠
    (진리의 영 -> 맞는 예언)

    명제가 참일 때 "이"는 항상 참이 성립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맞는 예언을 하면 항상 진리의 영인가?
    (맞는 예언 -> 진리의 영)?

    명제가 참일 때 "역"도 항상 참이 성립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거짓의 영은 항상 틀린 예언을 하는가?
    (거짓의 영 -> 틀린 예언)?

    거짓의 영은 맞는 예언과 틀린 예언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습니다
    틀린 예언의 경우 거짓의 영이라고 단정할 수 있지만
    맞는 예언의 경우는 거짓의 영인지 진리의 영인지 알 수 없습니다

    무당이 부른 영이 맞는 예언을 했다고 그것으로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거짓의 영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실을 말할 수 있겠죠
    사울을 더욱 절망에 빠지게 만드는 악한 목적을 위해서
    또 그때는 사울이 주님의 도우심도 받지 못하고 패배하고 죽을 게 명백한 상황이었기에

    님이 그걸 예언에 관한 것이라고 제시했지만
    신명기의 그 구절은 틀린 예언의 경우이죠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은 쉽고 사소한 것에 실수를 한 이유는
    자신이 진리를 안다고 확신하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편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기꾼이 항상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참말을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거짓말을 하죠
    언제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니까 위험하죠
    만약에 누가
    참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명제에 대하여
    항상 거짓말만 해 준다면 정말 고마운 일이겠죠
    그것을 역으로 이용해서 참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구약 시대에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라도 믿을 만한 사람에게 절대자가 직접 예수님에 대해 알려줬다고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풀리는데
    저는 그렇게 믿는데 왜 그렇게 믿지 못하는지를 모르겠네요 꼭 텍스트로 기록이 되어야 믿을 수 있는 것인지

    그런데 중요한 것은 누가 맞냐 틀리냐에 있지 않습니다!
    마음과 태도가 중요하죠!

    저는 카스텔리오가 칼뱅에게 보낸 편지가 생각이 납니다

    당신의 학설과 다른 학설을 가진 사람들이 항상 잘못을 범한다고 믿지 말고,
    언제나 그들을 즉시 이단으로 몰아붙이지 말라.
    내가 당신과 다르게 성서를 해석하여도
    나는 내 모든 힘을 다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한다.
    우리 둘 중 한 쪽이 잘못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서로 사랑해야 한다!
    주님께서 언젠가는 잘못 생각하는 사람에게 진리를 보여주실 것이다.
    우리가 확실하게 아는 것은, 기독교도에게는 사랑의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실천하자.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우리 적들의 입을 다물게 하자.
    당신은 당신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사람들도 자기의 의견을 그렇게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교만한 자를 꺽으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
    큰 사랑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나는 당신에게 이 말을 한다.
    당신에게 사랑과 그리스도의 평화를 제안하는 바이다.
    나는 당신에게 사랑을 촉구하며, 나 자신이 온 영혼을 다하여 그것을 행할 것임을
    하나님과 살아 있는 성령 앞에서 맹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미움으로 나와 싸우기를 계속하겠다면,
    당신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촉구하는 일을 허용하지 않겠다면, 나는 오직 침묵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판자가 되셔서
    우리가 그분께 충성한 정도에 따라서 결정을 내려주시기를 기도한다

    자기만이 옳다는 교만으로 남을 평가하고 정죄했던 칼뱅과
    성서를 다르게 해석하여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얘기한 카스텔리오를 떠올리며
    어떤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태도인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또 겸손하고 온유하니 나를 따르라 했던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그럼 이만

    1. 사무엘 2019/05/14 20:53 # M/D Permalink

      저는 최선을 다해서 성의 있게 답변을 드려 왔는데 또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예전 댓글을 고치기까지 하면서 제 말투와 태도를 문제삼는 듯한 얘기를 하시는지요? 이번엔 중학교 명제 강의까지.. 설마 제가 모르거나 실수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러셨나요..ㅠㅠ

      1.
      음란한 성경은 가라 글에 대해서도 답변을 드린 바와 같이, 저는 자명하고 문제의 대세가 바뀔 일이 없는 문맥에서 일일이 그 정도까지 엄밀함을 챙기면서 글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성경부터가 그런 식으로 쓰이지 않았습니다. 무슨 과학 논문이나 lemma, definition, proof 형태로 기록된 책이 아닙니다.

      성경에도 요일 2:23처럼 "아들을 인정 -> 아버지를 소유"에 대해 본명제와 '이' 정도까지는 대구법으로 같이 적힌 구절이 있습니다.
      신 18:21-22는 그와 달리 "틀린 예언 -> 거짓의 영"이라는 명제 하나만이 적혀 있지요. 허나, 성경의 다른 용례들과 하나님의 성품을 감안했을 때, 성경 내부에서는 저 명제가 역과 이도 다 성립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저 문제에 관한 한 하나님이 "너는 머리가 나빠서 저 명제가 논리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까지 싸잡아 잘못 믿었구나" 그러실 일은 없습니다.

      왜냐고요? 아합 왕을 미혹한 거짓 영이라든가, 욥이 하나님을 저주할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사탄 마귀, 예레미야와 맞장 떴던 거짓 대언자 하나냐 등... 성경 어디에도 나쁜놈이 부정적인 팩트 폭격과 정확하게 적중한 바른 예언을 한 경우는 전혀 절대 없습니다.

      현실에서는 '나쁜놈'의 예언이 아주 일부 맞는 경우는 있겠죠. 적중하는 경우도 있어야 사람이 미혹될 테니까.. 하지만 그게 저런 사무엘의 예언과 같은 급일 수도 없을 뿐더러,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할 때는 그런 건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사무엘의 말은 하나도 남김없이 적중했다는 삼상 3:19 같은 말씀을 훨씬 더 감안해야 합니다. 저 구절도 꼭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2.
      >> 그리고 구약 시대에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라도 믿을 만한 사람에게 절대자가 직접 예수님에 대해 알려줬다고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풀리는데
      >> 저는 그렇게 믿는데 왜 그렇게 믿지 못하는지를 모르겠네요 꼭 텍스트로 기록이 되어야 믿을 수 있는 것인지

      그런 식으로 예수에 대해 알게 되어서 구원받고 교회까지 세워졌다는 역사 기록이 없습니다. 이건 사소하고 간접적인 정황 근거이고..

      결정적으로, 예수님에 대해서는 성골, 본진인 구약 성경에서조차도 '여자의 씨'(창세기), '처녀가 수태하여 아들을'(이사야)처럼 수백 년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말 간접적으로 찔끔찔끔 예언되고 계시돼 왔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뭐가 아쉬워서 자신의 계획에 대해 사전유출을 했어야 하겠습니까? 그런 편리한 뒷구멍이 있으면 애초에 성경은 왜 기록됐겠습니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성경 자체도 인류의 구원을 1순위 목적으로 두고 기록된 책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논리대로라면.. 절대자가 지옥에 대해서도 직접 알려주기만 하면 만사해결일 텐데 굳이 지긋지긋한 옛날 텍스트를 참고하라는 눅 16:29-31 같은 비효율적인 구절은 왜 기록돼 있겠습니까? 이건 좀 비약하면 하나님이 왜 하필 선악과 만들었냐 같은 급의 소리로 들릴 수 있습니다.

      이런 식의 충돌이 생기는 이유는 신세카이 님은 하나님의 역사 방식, 성경의 중요성, 기록 방식, 절대무오성, 예언 성취의 의미 등에 대해서 정확한 관념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님과 저의 이런 계산 방법의 차이를 인지하지 않으면.. 계산 결과의 차이만 갖고 앞으로도 계속 소모적인 논쟁과 감정 손상밖에 오가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 문제에 대해서 계속해서 저를 믿고 문의해 주신 것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똑같이 고집이 센 걸 상대방만 고집 세다고 욕한다거나.. 더 할 말이 없으니 말을 바꿔서 상대방의 말투나 태도를 문제삼고 교만하다는 식으로 유치하게 도발하는 건 신세카이 님 정도의 지성과 교양으로는 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저의 관심사는 오로지 성경으로 성경을 풀이하는 것입니다.

  5. 신세카이 2019/05/15 11:42 # M/D Reply Permalink

    내용을 바꾼 게 아니라 촛불을 등불로 바꾸고
    답변이 없는 댓글에 미확인일 가능성 또는 방명록에 차단으로
    마지막으로 얘기하겠습니다부터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태도는 방명록 차단때문입니다

    더이상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1. 사무엘 2019/05/15 11:46 # M/D Permalink

      네? 저는 님을 차단한 적 없습니다.
      무슨 내용으로 어디에 글을 쓰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몇몇 단어 때문에 스팸 광고글로 오인된 듯합니다.
      관리자 페이지의 휴지통에는 차단된 글이 나타나긴 하지만, 하루에 수백, 수천 건씩 쏟아지는 쓰레기 스팸글들에 가려져서 제가 제대로 못 보고 그냥 비워 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신앙관이 특이하고 과격할 수는 있어도 남에게 그런 식으로 교묘하게 비열한 짓을 하지는 않습니다.
      길게 하실 말씀이 있으면 차라리 메일을 이용해 주십시오.
      불편을 끼친 것은 유감스럽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촛불 등불은 뭐 그리 중요한 이슈가 아닙니다. 흠정역은 그 시절에 고체 파라핀 양초라는 물건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candlestick도 다 등잔대라고 번역하긴 했는데.. 그건 그냥 우리말 번역 문제이고 성경 외부의 고고학 고증 문제이죠.)

  6. 신세카이 2019/05/15 23:17 # M/D Reply Permalink

    전산오류가 있어서 오해가 있었다고 치고
    촛불을 등불로 바꾼 거 말고는 내용을 바꾼 게 없는데
    조언을 해주는 것도 유치한 도발이라 받아들이니;;;

    그러면 시작을 했으니 마무리를 해야겠죠

    처음부터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구원관에 대해서 그 곁가지로 삼손과 사울에 대해서 말했었는데
    사무엘의 영이 진짜냐 가짜냐는 곁가지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그냥 넘어갔었는데
    님은 완전히 이거에 포커스가 맞춰진 거 같네요;;
    욥이나 아합왕이나 그 정도는 저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이미 말했다시피 신명기의 구절도 님의 주장에 대한 근거가 되지 못하는데
    모르지 않으면서 기록된 대로 믿지 않고 자기 생각에 끼워맞추니까 문제가 되는 거에요ㅜㅜ
    제가 느끼기에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겠다는 의지 같네요
    근거를 대고 싶으면 최소한 악한 영과 접하는 이가 천국에 있는 다른 사람의 영을 불러온 사례를 제시한다든지 해야죠

    KJV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했어도 전수조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는데
    사실 저는 이미 KJV보다 더 잘 번역된 정확히 말하면 완전한 진리의 말씀을 알고 있고
    선악과가 왜 있었는지 이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이고 그 이유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만
    말해주고 싶지는 않네요
    님에게 진리의 영이 함께한다면 가르쳐주실 거에요
    저는 저의 삶 속에서 진리의 영이 함께함을 느낍니다

    삼손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도 제대로 답변을 못할 걸 예상하고 있었고
    그런식으로 생각하고 믿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왜냐하면 님의 해석은 님이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해석을 공부한 것일 뿐이고 그런 공부는 자료를 찾으면 누구나 알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님은 KJV를 믿는 것도 아니라 그것에 대한 해석을 믿는 거 뿐이에요

    시간대별로 구원의 방식이 다르고 그것이 절대자의 재량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절대자의 속성과 진리를 푸는 열쇠를 모르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구원을 받는데 절대자 본인의 피가 필요한 이유는
    절대자는 거룩하고 거룩하고 거룩하여 그 자체로 절대선이데 만약에 악을 행했던 죄인인 인간을
    품어버리면 마치 간음한 사람과 결혼하면 그도 간음한 게 되는 거처럼
    절대자의 피흘림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을 절대자가 품으면 절대선이 깨지게 되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이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예수님의 피흘림이 필요하죠 그 피만이 사람의 죄를 씻을 수 있는 겁니다
    절대자가 악을 행할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의 피흘림을 믿지 않는 자를 품을 수는 없어요
    이것에 대한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또 사람의 시간개념의 틀에서 억지로 이해할려고 하기 때문에 오류를 범하는 거에요
    그리고 주님과 구원받은 사람들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에 비유하죠
    사람이 사랑하고 존경하면 닮게 되는 것처럼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자는 주님을 닮게 됩니다
    그 방향으로 본인이 가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7. 신세카이 2019/05/15 23:19 # M/D Reply Permalink

    욥은 텍스트를 보지도 않았는데 유대인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절대자와 소통하고 구원을 받았을까요?
    저의 답은 간단합니다 욥은 온전한 마음으로 절대자를 갈망하고 사랑했기에 절대자가 직접 알려주었으니까요

    태도에 대해서 얘기한 것은 평소 쓰는 글에서 지식을 통해 남보다 위에 서고자하는 자기우월감 pride 자존심 또는 교만이 보이기 때문이에요 이런 마음은 주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니고 위로부터 난 지혜가 아니죠

    시간대별로 나눠서 구원받는 방법이 다르다는 해석은 거짓말입니다
    You don't know truth
    그리고 님은 예수님의 말씀이 본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거짓된 해석을 믿고 있다는 것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님이 이대로 계속 살다가 죽으면 구원을 못 받습니다
    정말로 구원을 받고 싶으면 그 잘못된 교리를 버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처럼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사도 바울이 자기의 지식을 배설물로 여겼던 것처럼 님도 그렇게 자기 지식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 지식으로 자신을 남보다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고 지극히 낮은 자들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에게 하는 게 주님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했던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길 바랍니다

    앞으로 이런 얘기는 하지 않을 겁니다 더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님의 해석은 이미 다 알고 있었고 그 전에 몇가지 얘기를 했던 것도
    이 말을 해주고 싶어서였으니까요

    주님께서 님에게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계세요

    1. 사무엘 2019/05/16 05:40 # M/D Permalink

      허허 역시나.. 전산 오류가 전부가 아니었군요.
      저는 명백한 오해와 실수는 인정하고 사과를 드렸는데.. 그랬더니 저에 대한 진짜 불만은 인제 나오는군요.
      저를 아예 구원도 못 받은 사람 급으로 정죄하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ㅎㅎ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
      >>님이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해석을 공부한 것

      뭐, 저도 그런 오류를 답습할 가능성이 0이라고는 감히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한때 불경 열심히 공부하셨고 카스텔리오와 칼뱅도 아는 신세카이 님에게도 95% 이상 거의 똑같이 적용될 것 같은데요.

      님도 성경으로 성경을 풀이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긴 마찬가지잖아요. 제가 님의 논리나 근거보다 저걸 우선적으로 판단하는 정당한 이유에 대해 설명을 드렸는데도 그건 귓등으로도 안 듣고서, 자기가 잘 모르는 부분은 긍정이나 부정 없이 어물쩡 그냥 넘어가고.. 제가 님의 말을 안 받아들이는 걸 갖고 이젠 교만이니 태도드립으로 나오고 계시니 말이죠.
      저는 님께 성경에 대한 믿음부터 가지라고 권면드렸는데 님은 저보고 웬 뜬금없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자기를 낮추라느니 그런 말씀만 하시고.. 에휴.. ㅎㅎ

      >> 욥이나 아합왕이나 그 정도는 저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스토리야 님도 모르실 리가 없지요. 단지 그걸 진지하게 믿고 성경의 다른 유사 사례들과 종합해서 문제를 푸는 데 활용을 안 할 뿐인 거죠.

      >>욥은 텍스트를 보지도 않았는데 유대인도 아니었는데

      욥기 자체가 아예 최초의 구약성경이라 여겨지는 책이고, 이때는 당연히 유대인이고 율법이고도 없었습니다.
      그 정도로 극단적인 초창기 상황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알려주셔야 했겠죠. 네 그건 저도 쿨하게 인정! 꿈에서 말씀해 주시는 경우도 있고, 성경에 기록된 사례만이 전부는 아닐 겁니다.
      에녹 정도도 아예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다가 하늘로 들려 올라겠겠죠.

      그러나 그게 님이 말씀하시는 것만치 흔한 사례가 아니고요, 어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도착한 뒤에도 만나가 계속 내렸습니까? 그럴 리가 없죠.

      설령 직접 들었다 해도 그 당시에 계시의 수준은 "그 하나님이 언젠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정도입니다. 욥이 그 시절에 무슨 갈보리 십자가를 알 길이란 전무했습니다. 하나님도 그 시절에 벌써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았고요. 이 점은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니 귀가 있으면 들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본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거짓된 해석

      어디서 세대주의 이단이라는 소리 많이 들으셨나 보네요. ㅎㅎ 남의 것을 보고 들은 게 있어야 그 정도로 강한 발언을 할 수 있습니다.
      님은 무슨 책을 보시고 어디서 신학을 하셨는지가 어렴풋이 그려집니다만, 정체를 숨기고 계시면 제 입장에서는 심증만 있지 물증을 입증할 방법이 없으니 추측은 여기까지만 하죠.

      저는 성경 말씀을 시대와 적용 대상별로 바르게 나눠 분간하고, 문자적 해석과 영적 적용을 하는 패러다임이야말로 성경에서 서로 모순처럼 보이는 구절들을 잘 풀이하고, 믿음의 영역과 논리· 이성 영역을 모두 충족시키며, 가장 건전하다는 생각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습니다. 그걸 능가하는 대안을 지금까지 접한 적이 없습니다.

      성경이 스스로 규정하는 성경 공부 방법을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님이 '잘못된 교리'라고 말씀하시는 그 교리 노선을 버릴 생각이 1도 없습니다.

      신세카이 님은 한편으로는 그렇게도 시대와 장소를 불문한 예수님의 피를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구원을 너무 쉽게 받는 걸 수긍하지 않고 구원의 영원한 보장도 안 믿는 입장이니 그거야말로 성경을 총체적으로 제대로 이해는 한 건지 저로서는 굉장히 미심쩍고 이상합니다. 이쯤이면 각자 서로 믿고 싶은 대로 갈 길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신학 노선은 신념일 뿐이지 행실이니 태도니 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도 말씀드립니다.
      그럼 이만.

  8. 신세카이 2019/07/14 02:10 # M/D Reply Permalink

    마무리가 덜 된 거 같아서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사무엘의 영에 대해서만 덧붙입니다

    -맞는 예언을 했다고 진리의 영이라고 할 수 없다

    신 18:21-22는 그와 달리 "틀린 예언 -> 거짓의 영"이라는 명제 하나만이 적혀 있지요. 허나, 성경의 다른 용례들과 하나님의 성품을 감안했을 때, 성경 내부에서는 저 명제가 역과 이도 다 성립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
    명제가 바뀔 때 (거짓의 영) -> (틀린 예언) 이렇게 되잖아요
    거짓의 영이 어떻게 하는가? 틀린 예언만 하냐 맞는 예언만 하냐 둘 다 하냐
    그러면 하나님의 성품이 아니라 루시퍼의 성품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죠

    에스겔28:12 사람의 아들아, 두로의 왕에게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는 지혜가 충만하며 아름다움이 완전하여 모든 것을 봉인하는 자로다.

    그 상황에서 사울이 패배할 것이 명백한데 절대적인 열세였고 주님의 도우심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거짓의 영이 그정도를 못 맞출 정도로 어리석을까요?
    또 루시퍼의 성품으로 진실을 말하고 맞는 예언을 했다고 해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악한 목적이라 충분히 보여지죠
    사울을 절망에 빠지게 할려고요

    또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신명기 13장
    1 너희 가운데 대언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 표적이나 이적을 네게 보이고
    2 그가 네게 말한 그 표적이나 이적이 이루어질 때에 이르기를, 네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자, 할지라도
    3 너는 그 대언자나 그 꿈꾸는 자의 말들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가 너희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알기 위해 너희를 시험하시느니라.

    말한 대로 이루어져도 귀를 기울이지 말라
    (맞는 예언)->(진리의 영) (거짓)

    - 틀린 예언일 수도 있다

    왜냐고요? 아합 왕을 미혹한 거짓 영이라든가, 욥이 하나님을 저주할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사탄 마귀, 예레미야와 맞장 떴던 거짓 대언자 하나냐 등... 성경 어디에도 나쁜놈이 부정적인 팩트 폭격과 정확하게 적중한 바른 예언을 한 경우는 전혀 절대 없습니다.
    //

    사무엘상 28:19 또한 {주}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주}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시리라, 하매

    1.
    여기서 "내일"이라고 나오는데
    시간 순서가 사무엘상28장에서 31장으로 바로 넘어간다고 해도
    그때 최고 지휘관인 사울이 부대를 이탈했는데 그것은 바로 전투가 일어날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고
    무당에게 예언을 듣고 돌아와서 바로 다음 날 전투가 일어났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는 거죠
    제가 내일이 아니라고 증명할 수는 없지만 또 님이 내일이라고 증명할 수도 없지 않나요?

    2.
    이건 좀 색다른 관점인데 사무엘의 영이 사울이 죽는다고 예언한 게 아니죠
    분명히 "내일 나와 함께 있다"고 예언했죠

    내일이라고 증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일 죽었다고 해도
    어떻게 되냐면

    진리의 영인 경우
    사울과 사무엘은 천국 (함께 있음)
    무조건 맞는 예언이 성립

    거짓의 영인 경우
    사울은 천국, 거짓의 영은 이 땅에 (함께 있지 않음)
    사울은 지옥, 거짓의 영은 이 땅에 (함께 있지 않음)
    두 가지 다 결국엔 틀린 예언이 성립

    거짓의 영은 천국도 지옥도 가지 않고 이 땅에 계속 있으므로
    틀린 예언으로도 모든 경우가 성립하게 되기에
    님은 예언을 가지고 진짜라고 강력히 주장하셨는데
    실제는 예언으로 판단이 불가능하고
    결국에는 다른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데

    이미 알고 있겠지만
    강신술은 금지됐다, 무당은 다 죽이라고 했다, 그 영이 사울에게 절을 받았다, 이미 주님은 사울에게 아무 답을 안 주기로 작정하셨다
    모든 요소가 가짜 쪽인 듯합니다

    1. 사무엘 2019/07/15 06:43 # M/D Permalink

      이 논리도 맞는 것 같고 저 논리도 맞는 것 같고 싸움만 나고 알쏭달쏭할 때는
      성경을 해석할 때 쓸데없는 논쟁의 루프를 끊으려면 성경의 용례를 따라야 합니다.
      성경에는 마귀가 예언을 한 것이 맞다고 나온 예가 전무합니다. 현실에서는 부분적으로 맞는 예언을 해서 사람을 현혹할 수도 있죠, 그 가능성은 0이 아니겠지만.. 적어도 성경에서는 욥의 경우,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경우 등.. 한 번도 나오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사무엘의 팩트폭격이 사울을 절망에 빠지게 한다...?? 그 말이 도대체 왜 악담이죠? 그럼 죄에 대한 책망도 못 하겠네요?
      더구나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님도 잘 추론했듯이, 죽어서 최소한 지옥 안 가고 구원은 받는다는 얘기이며 정말 꿈도 희망도 없는 악담도 아닌데?
      사흘 뒤(18일)에 사무엘 얘기 글이 다시 올라올 것입니다. 성경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으면 혼자 계속 그렇게 궁금해하시기 바랍니다. 합리적인 의심까지는 좋지만, 밑도 끝도 없고 답 없는 주제에 대해 너무 회의적인 것도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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