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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력량, 전기료

전기라는 건 눈에 보이지 않고 광속으로 흘러가 버리고, 축적된 양을 무게나 비주얼 같은 직관적인 방법으로 확인하기가 난감하다.
그래도 아주 대충 간략하게라도 전기 저장 매체들의 용량과 비용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 1.5볼트 AA 건전지 하나: 약 3~4와트시
  • 3.7볼트, 20Ah(2만 밀리Ah)짜리 보조배터리: 약 70와트시
  • 내연기관 승용차용 12볼트, 70Ah 납 배터리: 700~800와트시 (단, 납 배터리의 특성상, 현실에서는 저 용량의 거의 절반 정도까지만 소모하고 어서 다시 충전해 주는 게 안전함)
  • 비슷한 배터리 전기 승용차의 리튬 이온 배터리: 대략 70~80킬로와트시

이와 관련하여 생각할 만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일반적인 스마트폰 한 대를 하루 종일 켜 놓기만 했을 때 사용하는 전력량은 10~40와트시 남짓이다.
그러니 스마트폰을 리튬이온 배터리가 아니라 건전지로 가동하려면 디지털 도어락에 들어가는 정도의 건전지(AA 사이즈 4개? 8개?)를 거의 매일 몽땅 갈아 줘야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ㅎㄷㄷㄷㄷ 도어락은 거의 1년에 1번꼴로만 건전지를 갈면 된다는 걸 생각하면.. 전력 소모량의 차이를 짐작할 수 있다.

(2) 전기차는 배터리가 통상적인 내연기관차 납배터리의 90~100배 용량을 자랑한다.;; 물론 그 대신 차 무게는 500kg, 30~40% 정도 더 나간다.
승용차라는 게 원래 사람이 최대 5명이 탈 수 있는 차다. 그런데 동일 차급의 전기차는 배터리 무게만으로 사람 5명 이상의 무게를 더 먹고 시작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이 때문에 전기차는 단순히 엔진음 작고 조용하기만 한 게 아니다. 묵직하고 운전 특성이 내연기관차와 많이 다르다. 타이어나 서스펜션, 브레이크도 동급의 내연기관차보다 더 튼튼하고 더 비싼 걸 써야 한다. 디젤 차량이 동급의 휘발유 차량보다 더 무겁고 튼튼한 것보다 그 정도가 더 심하다.

(3) 우리나라의 가정용 전기 요금은 1000와트시(= 1 킬로와트시) 당 120~200원대이다.
뭐, 이 나라의 전기 요금 체계는 아주 복잡 다양하기 때문에 이렇게 단편적으로만 표현하기가 난감하다. 하지만 월 300킬로와트시 이내만 써서 누진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일 저렴한 기본 단가만 산출하면 이렇다.

참고로 요즘 전기차 충전 요금도 1kWh 당 3~400원 돈이니 건물 전기와 크게 차이 나지 않거나 약간만 비싼 수준이다.
여기에다 저 전기차 배터리의 최대 용량을 곱해 보시라. 전기차는 움직이는 데 드는 비용이 기름값 대비 매우 저렴하다는 걸 숫자를 통해 알 수 있다.
물론 충전료가 갈수록 오르고 있으며, 전기차의 배터리 100% 충전 연비가 동급 기름차의 만땅 연비에 비할 바는 못 된다는 것 역시 고려할 사항이지만 말이다.

2. 자동차의 배터리

내연기관이라는 건 처음에 시동을 걸 때 외력을 전해 줘야 한다. 이 때문에 자동차에는 배터리 기반의 starter가 쓰이는데, 시동을 걸 때 생각보다 전기가 많이 든다.
키를 start로 돌리는 0.x초? 1.x초 남짓한 시간 동안 승용차 급이라도 1000W~3000W에 달하는 전기가 소모될 수 있다. 이걸 전력량으로 환산하면 0.3에서 1와트시에 달한다.

시동이 잘 안 걸려서 수 초 이상 끼릭끼릭 거리고 있으면 그 시간 동안 저만 한 전기가 계속 빠져나간다.
이건 온갖 무거운 쇳덩어리 부하가 걸려 있는 차 엔진 크랭크를.. 시동 유지 가능한 최소 회전수 이상으로 돌려주는 만만찮은 작업이기 때문에 그렇다.

자동차용 납 배터리는 용량 대비 저렴하지만 매우 무겁고 충전 속도도 매우 느리다. (별로 커 보이지도 않는 저 상자가 15~20kg이나 한다니..)
게다가 방전 상태에서 오래 방치하면 그대로 변질돼서 더 충전 못 하고 완전히 못쓰게 돼 버리는 등 까탈스러운 특성도 적지 않다.

쟤는 천상 시동 걸 때 짧고 굵게 소모한 뒤에.. 오래 주행하면서 가늘고 길게 서서히 충전하는 것에만 특화돼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전자기기용 배터리처럼 써먹을 수가 없다.
그러니 이 배터리만 덩치를 키워서 실용적인 전기차를 만드는 건 곤란하다. 20세기 초에는 이런 배터리를 밑천으로 전기차를 만들었으니 곧 내연기관차에게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과연 배터리 전기차가 고속버스와 대형 트레일러, 대통령 방탄차, 군용차(!!!), 건설기계, 모터스포츠(F1 머신!!)의 영역까지 진출 가능할까?
그게 안 되면 전기차는 그냥 내연기관차가 차지하던 파이의 일부만 분담하는 것에 머무르지 싶다.
배터리라는 게 사람이 들고 다니는 기기의 동력원으로는 적당하지만, 사람이 들어가고 타고 다니는 대형 기기의 동력원이 되기에는 크기와 무게, 충전 속도, 안전 문제 등이 걸리는 것 같다. 쉽게 말해 대형화가 어렵다.

몇몇 자동차나 소형 드론, 모터보트는 전기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대형 여객기나 심지어 전투기, 초대형 화물선, 유조선은 배터리 전기는커녕 천연가스나 수소 연료전지로도 요원하다. 에너지 저장 효율에 관한 한 액체 석유를 능가하는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3. 배터리의 충전 가능성, 재활용 가능성

(1) 오늘날 같은 리튬 이온 배터리가 보급되기 전에는 전기 자동차라든가, 심지어 잠수함에도 그 거대한 납-황산 배터리가 어쩔 수 없이 쓰였다고 한다. 물에 잠긴 채로 내연기관을 가동할 수는 없으니까.;;

이러니 옛날 2차 대전 시절의 잠수함은 평소에는 떠 다니다가 잠깐 잠수할 때만 마치 고스트나 레이쓰가 클로킹 쓰듯이 잠수를 해야 했을 것이고.. 잠수 중에는 기동성이 그야말로 극악으로 떨어졌을 것 같다. 어뢰를 몇 번 피하느라 급기동이라도 하고 나면 배터리가 다 방전됐을 것 같은데..

(2) 옛날에 아폴로 계획 때 15, 16, 17호에서는 잘 알다시피 월면차가 투입됐었다. 얘들도 공기가 없는 달 표면을 주행하니 동력원은 응당 전기였으며.. 구체적으로는 은-아연 전지가 쓰였다고 한다.
재충전 가능하지 않은 그냥 일차전지이다. 달에서 한 1주일 머물면서 월면차의 배터리를 충전해 가며 장거리 주행을 하는 건 계획에 없었으니 말이다.

전지의 성능은 전압 36V에 전류량 242Ah이었다고 한다. 이걸 곱하면 전력량이 9KWh에 약간 못 미친다. 공교롭게도 "지구 기름차 - 월면차 - 지구 전기차" 배터리 용량이 얼추 등비수열을 형성한다.
그래도 달은 중력이 지구의 1/6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저 정도면 나쁘지 않고 충분한 용량이었던 것 같다.

(3) 배터리는 그 어떤 재료를 써서 만들든 공통적으로..
날씨가 너무 추우면 성능이 크게 떨어진다. 그리고 계속 쓰다 보면 성능이 서서히 열화되고 충전 가능 용량이 줄어든다는 특성이 있다. 날씨로 인한 열화는 일시적이고 가역적이기라도 하지만, 노후화(?)로 인한 열화는 비가역적이다.

마치 한겨울에 수도꼭지를 약간이라도 틀어서 수도관을 얼지 않게 하는 것처럼.. (일부러 물 틀어서 드는 수도료 << 동파된 수도관의 복구 비용이어서;; )
배터리는 자기 전력을 소모해서라도 주변 온도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시키고 나서 사용하는 게 역설적으로 더 효율적일 수 있는 듯하다.

(4) 글쎄, 애초에 충전이 안 되는 전지를 다 써 버린 거나, 충전 용량이 현저히 떨어진 오래된 배터리나..
다들 간단한 방법으로 직접 충전은 못 하더라도 재료를 재활용할 수는 있다.
그 금속 재질을 화학적으로 녹이고 재가공해서 새 배터리/전지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건 단순 충전보다는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겠지만 말이다.

애초에 금속이란 게 견고한 물질이다 보니 재활용 효율이 타 재질의 쓰레기 대비 월등히 높다. 배터리 중에서는 자동차용 납 배터리가 그 효율이 99%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관련 산업이 자동차 산업의 역사와 함께하며 완전히 정착돼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오늘날 많이 쓰이고 있는 리튬 이온 배터리는 세계적으로 재활용 효율이 겨우 5%대에 불과하다고 한다. 납보다 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인지..? 문제의 해결이 절실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6/08/22 08:35 2026/08/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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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지금으로부터 한 달쯤 전, 지난 제헌절 무렵에 본인은 아내와 함께 매일 진행하는 성경 통독이 '에스라'에 진입해 있었다. 즉, 바빌론 포로기 종료와 예루살렘 귀환 시기이다.

에스라기 3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려 70년 만에 고향으로 귀환했다. 그래서 제단부터 만들어서 의식율법을 다시 시행하고, 뒤이어 성전도 재건하기 시작했다.
성전 기초가 놓이자 사람들이 너무 감격해서 환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참회의 통곡도 했다. 아주 어린 시절에 솔로몬의 성전을 어렴풋이 본 적 있었던 노인들이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그런데..
그 무렵에 방영됐던 SBS 꼬꼬무 232화는 참 공교롭게도 재건과 정반대인 철거를 다뤘다. 바로 1995~96년에 진행됐던 조선총독부 청사의 철거 말이다. 이것도 지금으로부터 무려 30여 년 전의 일이 됐다.

조선총독부 청사는 10년 가까이 건축한 끝에 1926년에 완공됐다. 그게 광복 50주년, 그리고 완공 얼추 70년 만에 드디어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철거된 것이다.
"역사 바로 세우기" 명목으로, 1995년 광복절에 지붕 맨 꼭대기의 첨탑 하나만 먼저 크레인으로 들어서 뜯어냈다. 이게 철거의 첫단추를 끼운 퍼포먼스였다.

에스라서에서는 성전 재건의 기초가 놓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렇게 감격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식민 지배의 원흉 본부 건물의 철거가 시작됐을 때 사람들이 감격하고 환호하고 난리였었다.
두 사건이 서로 굉장한 대척점? 안티테제를 형성하는 것 같다.

꼬꼬무를 보니 그 당시에 첨탑을 끌어내리기 위해 대형 크레인을 현장 부근에 미리 설치한 것, 건물의 내부에서 보관 중이던 수많은 문화재들을 미리 대피시킨 것(그 당시엔 조선총독부 청사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어서..) 등 숨겨진 비화가 많이 있었다.

조선총독부 청사는 경복궁과 너무 가까이 있는 관계로, 섣불리 폭파 같은 과격한 방법으로 해체하기는 어려웠다. 중장비를 동원하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한뼘 한뼘 조심해서 뜯어내다가.. 1년쯤 뒤, 마지막 남은 자그마한 벽면만 역시 상징적인 차원에서 폭파해서 무너뜨렸다고 한다.
제일 먼저 뜯어냈던 첨탑은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의 야외 전시장으로 옮겨져서 처참하게 낡아 가는 중이라고 꼬꼬무에서 언질을 줄 법도 한데.. 이에 대한 언급은 더 없었다.

난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는 찬성이고 잘했다는 소신이다. 웬만하면 보존해서 다른 건물로 사용할 법도 하지만, 쟤는 용도뿐만이 아니라 위치도 광화문과 경복궁 사이에 너무 안 좋은 구도로 있었다. 옛 서울 역 건물 같은 건물이 아니다.
그나저나 조선총독부가 무슨 종로 경찰서 같은 시설도 아닌데, 지하에 웬 유치장이나 고문실 같은 방이 있었는지는 좀 의문이다. 총독부 청사의 지하엔 위급 상황에서 VIP의 피신용 패닉룸 벙커 같은 거나 있는 게 자연스럽지 않겠나?

2. 친일파(?) 금수저 가문 출신 여배우

난 누군지도 몰랐는데 최근에 참교육 드라마 때문에 얼굴 알게 된 어느 예쁘장한 여배우가 말이다. 광복절을 앞두고 굉장한 논란을 일으켰다. 이 사람은 정말 엄청난 가문 출신이었구나.;;;
별 생각 없이, 정말로 모르고 내뱉은 말 때문에 당사자도 엄청 골치 썩었고, 소속사라든가 그녀와 계약 맺었던 기업들도 "아이고 두야" 하며 뒷목 잡았지 싶다.

저 정도면 집안 조상님이 그냥 먹고 살려고 어쩔 수 없이 일제에 소극적으로 순응하고 부역한 수준을 넘어서기는 하는 것 같다.

  • 고종 황제도 치료했었다고? 그 신분과 능력으로 아예 고종의 암살에나 관여하지 않았으면 다행이고, 그리고 칼빵 맞고 실려왔던 이 완용 대감님한테도 당대 최고의 의술을 베풀면서 치료했었네?
  • 소록도에서 근무했었다고? 그때 거기서 일했던 의사들은 여수 애양원에서 나병 환자 섬겼던 손 양원 목사와는 영 딴판인 일을 했던 거 같은데?
  • 내선일체 모범 가정이라고 신문에 소개된 게 무슨 1940년대였으면 나도 이해한다. 근데 이거 뭐 민족말살이니 문화통치니 아무것도 없고 3· 1 운동도 일어나기 전 1916년에 벌써 대문짝만 하게 소개된 거면..

나도 반일정신병 극혐하는 소신이고, 이딴 일 갖고 미개한 연좌제는 절대 반대한다. 하지만 조상의 저 행적 자체를 "그 시절에 친일 안 한 사람 어딨냐" 그러면서 다 물타기 하기는 어렵다고 보여진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소설 "꺼삐딴 리" 이 인국 박사의 판박이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의사는 환자가 누구건 의술을 베풀어야지, 매국노라고 치료도 하지 말아야 하냐" 이렇게 반문하는 혹자가 있는데.. 이건 좀 논점일탈이다. 이때 이 완용은 평범하게 다치거나 아픈 것도 아니었고, 의거에 의한 저격을 당한 상태였다.
의료인으로서 매국노도 치료한 것 자체를 반인륜 반민족 행위로 간주해서 후세가 단죄하는 것까지는 에바라고 쳐도, 그건 자랑스럽게 떠벌릴 이력도 절대 못 되지 않겠는가?

문 재인이 변호사 시절에 페스카마 호 흉악범들 옹호했던 것도 직업적으로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었다. 하지만 정치 성향에 따라서는 그의 그런 과거 행적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그들은 그런 견해를 가질 권리가 있다.
하물며 이 완용을 치료했다는 의사에 대해 일단 부정적인 편견을 갖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 이걸 반일정신병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
무슨 빨간 대게 그림을 갖고 욱일기라고 트집 잡는 짓거리야 진짜 반일정신병이겠지만.. 이건 그와 다른 상황인 것이다.

아 물론 당연히.. 후손인 저 여배우 당사자가 뭘 직접적으로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다.
성형 의혹도 아니고 사생활 스캔들도 아니고, 마약 도박 음주운전 아니고, 과거 학폭 가해자 내력이 폭로된 것도 아니고 그런 부류는 전혀 아니긴 한데..

다만, 이미지로 먹고 사는 직업, 인기로 먹고 사는 직업을 선택했는데 괜히 할 필요 없는 말을 스스로 늘어놓는 바람에 커리어에 약간 태클 걸리고 흑역사 논란거리 스크래치가 추가된 건 누구라도 실드 치기 어려워 보인다. 국민정서법의 여파를 한동안 좀 감내를 해야 할 것 같다. -_-;;;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가지고 자랑했으면, 마찬가지로 자신이 하지 않은 일로 비난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이게 이번 사태의 핵심이라 하겠다.

당장 대놓고 몰락했다기보다는, 더 몸값 올라가고 더 출세할 기회가 꺾인 거지.
그래도 아까도 말했듯이 이게 무슨 활동 중단에 자숙까지 할 심각한 허물은 절대 아니니,
이 참에 어디 좋은 일 하는 단체에 기부 많이 하거나, 역사 관련 영화· 드라마에 선역으로든 악역으로든 쿨하게 출연료 안 받고 출연하거나.. 이런 걸로 얼마든지 퉁치고 넘어갈 수도 있다고 본다. 저 사람이 부디 이 상황을 지혜롭게 잘 극복했으면 좋겠다.

난 예전에도 글로 몇 차례 썼지만, 한국이 해방된 건 100% 전적으로 미국 덕분이지 국내의 독립운동가들은 하나도 기여한 게 없다는 식의 극단적인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일본을 패퇴시키고 몰아낸 건 미국의 군사력, 특히 그놈의 원자폭탄이다. 그러나 우리 쪽에서도 그렇게 죽을 힘 다해서 독립 의지를 표출하고 호소하지 않았다면.. 일본이 패전한 뒤에도 그게 한국의 해방· 독립으로 이어지지 못했을 수 있었다. 아니 최악의 경우는.. 아예 같은 추축국 진영으로 취급 받고 더 큰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었다.

반일정신병 싫어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할배를 좋아하는 우파일 텐데.. 저런 식의 '독립운동 뻘짓론'을 리 승만 할배가 들었다면.. 아마 땅을 치고 통곡하거나, 격분해서 무덤에서 벌떡 일어났지 싶다.
할배는 미국을 상대로 그놈의 알량한 광복군 병력을 거짓말로 뻥튀기까지 하면서 "우리도 일본을 상대로 싸울 수 있다~ 우리도 연합국의 승전에 밥숟가락 얹었다" 필사적으로 호소했던 사람이었다!

3. 성경이 말하는 독립과 자유

이번 광복절의 다음날엔 본인이 다니는 교회에서 설교 제목부터가 “그리스도인의 독립과 자유”였다.
성경 본문은 그 유명한 갈 5:1 “다시는 속박(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 구절이 제일 좁은 의미에서 말하는 건.. 구원에 관한 한 다시는 할례니 안식일이니 하는 율법주의로 돌아가지 말라는 경고이다.
하지만 이건 비유대인에게는 막 심각하게 와 닿지는 않는 주제이다. 적용 범위를 신약의 범위에서 조금 넓히면.. 기껏 구원받았더니 도로 육신의 죄악된 생활로 돌아가지 말라~~ 까지도 포함된다.

더 나아가, 옛날에 할배 대통령은 “우리는 일제로부터 너무나 어렵게 힘들게 해방됐고, 공산당으로부터도 자유를 끝내 지켜냈다. 우리는 이제 문화, 경제, 군사 등 어느 분야에서든 절대로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한다. 내가 우리 민족에게 남기는 유언은 갈 5:1”이다.”라는 요지로 말하기도 했었다. 물론 이건 기독교 교리와는 약간 거리가 있는.. 제일 넓은 영적 적용일 것이다.

아무튼.. 이런 배경이 있으니 본인도 오후에 준비 찬송을 인도할 때는 자유가 들어간 곡들을 쭉 검토하고 골라 봤다.
0순위로 곧바로 무조건 바로 떠오르는 건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되시겠다.
“속죄하신 구세주를 내가 찬송하리라”도 좋은 예시이다. “내게 자유 주시려고 주가 고난 당했네”가 있다.

“놀라운 주의 은혜” Wonderful grace of Jesus에는 setting my spirit free와 giving me liberty가 나란히 나온다. 우리말에는 “참 자유 주신 주” 정도로 들어갔다.
그리고 “놀라운 주의 은혜”와 “주 보혈로 날 구해 준” And can it be that I should gain의 가사에는 둘 다 쇠사슬이 끊어졌다는 묘사가 있다.

  • Chains have been torn asunder, giving me liberty
  • My chains fell off, my heart was free (사도행전 12장, 감옥에 갇혔던 베드로가 풀려나는 장면을 대놓고 오마주..)

하지만 우리말 번역 가사에는 이런 것들이 빠졌다.
우리말 찬송 중에 뭔가 쇠사슬이 끊기고 풀렸다는 묘사가 있는 곡은.. 찬송가라기보다는 캐주얼 복음성가 후크송(?)에 더 가까운 “나 자유 얻었네 너 자유 얻었네 우리 자유 얻었네”가 전부인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6/08/17 19:35 2026/08/1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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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여러 물질 중에서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같은 유기화합물이 아니라 금속류는.. 생명체의 구성 성분과는 접점이 없어 보인다. 뭐, 생명체는 기계가 아니며 뼈가 쇳덩어리로 돼 있지는 않으니 말이다.
마그네슘, 아연, 망간 같은 일부 금속만이 극미량이나마 인체에서 생체 화학 반응의 촉매 명목으로 쓰인다. 아, 철은 화합물 형태로(헤모글로빈) 아예 혈액에 들어있는 성분이다. 그래서 이런 금속 성분은 너무 없으면 비타민이 부족한 것과 비슷한 결핍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허나, 저런 금속들과 반대로 인체에 매우 해로운 금속도 있다. 납, 수은, 카드뮴은 그야말로 위험한 중금속 3관왕으로 여겨진다.
영양분 합성이나 흡수, 항상성 유지에 기여하는 건 없으면서 괜히 유익한 금속이 들어가야 할 자리만 차지하고, 신경계를 교란하고, 그러면서 몸에 배출은 잘 안 되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이런 해로운 금속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전기의 저장과 관계가 있다.
황산-납은 예나 지금이나 자동차 배터리의 절대지존이고, 수은은 한때 동전 모양의 수은 건전지가 많이 쓰였기 때문이다. 니켈-카드뮴은 중· 소형 전자기기의 배터리로 많이 쓰였다.
수은과 카드뮴은 대체제 덕분에 이 바닥에서 퇴출되긴 했다. 그래도 건전지나 배터리는 무엇으로 만들건 몸에 좋지 않고 화재· 폭발 위험까지 있는 화학 물질이 쓰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1. 카드뮴

사람이 이런 중금속을 대놓고 우적우적 씹어 삼켜서 섭취하지는 않는다;;
산업 현장에서 납이나 카드뮴 같은 중금속이 포함된 쇠붙이를 용접할 때나 녹일 때.. (1) 그것들의 증기 내지 미세입자를 호흡기를 통해 체내 흡입하는 편이다. 전문용어로는 fume이라고 한다.

아니면 수질 오염이나 토양 오염으로 인해 그런 중금속 성분이 인체에 들어올 수 있다.
(2) 오염된 물을 마시거나, 오염된 물에서 성장한 수산물을 먹을 때.. 혹은 (3) 오염된 토양에서 자란 농산물을 먹을 때 말이다.

그리고 중금속 성분은 해당 금속 순물질일 수도 있고, 다른 화합물 형태일 수도 있다.
화합물의 특성은 그 화합물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 순물질의 특성과 같지 않다. 하지만 순물질부터가 인체에 해로우면.. 화합물도 다른 성질은 바뀔지언정 인체에 해롭다는 특성은 대체로 변하지 않는 편이다.

20세기 중반에 일본에서 유행했던 공해병 중 하나인 '이타이이타이 병'은 수질 오염으로 인한 카드뮴 중독이 원인이었다. 카드뮴은 체내에서 정상적인 칼슘의 흡수를 방해해서 뼈를 극도로 약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시작으로 몸에 오만 가지 탈을 일으키고 심하면 사망까지 야기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개인적으론 초딩 꼬마 시절에 이 병 이름을 들었다. 그 뒤 '토스트 소녀' 게임에서 여캐 주인공이 장애물과 부딪히는 미스가 났을 때 "이타이~이타이 ㅠㅠㅠ" 이러는 걸 들으니 느낌이 참 묘했다. ㄲㄲㄲㄲㄲ)

심지어 담배 연기에도 카드뮴이 극미량 포함돼 있다고 한다. 이건 무슨 니코틴처럼 담배라는 작물 자체에 카드뮴이 들어있다거나, 담배의 제조 과정에서 일부러 그게 첨가된다는 뜻은 아니다.
농사 지을 때 투입되는 인산염 계열 비료에 카드뮴이 화합물 형태로 포함돼 있고, 그게 담배 식물 몸체에도 농축되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다면 이건 근본적으로는 토양 오염의 후유증이지, 담배만의 문제가 아니겠지만..
담배나 인삼은 지력 소모가 유난히 심한 빡센 식물이니 비료가 특별히 많이 쓰여서 문제의 여파가 더 큰 듯하다.
담배 연기에 방사성 원소인 폴로늄의 동위원소까지 들어있는 것도 카드뮴과 같은 원리 때문이라고 한다.

2. 납

납은 적당히 물렁물렁하고 녹는점이 낮고, 가공하기 쉽고.. 그러면서 꽤 무겁다는 특성으로 인해 유용한 구석이 매우 많은 금속이다. 그래서 자동차 배터리의 전극뿐만 아니라 퓨즈에도 쓰이고 총알 탄두에도 쓰이고.. 방사선 차폐 용도로도 쓰인다.

하지만 납이라는 물질의 '대외 이미지'는 철이나 구리에 비해 썩 좋지 않다. 인체 안에 들어가면 뇌세포 죽이고 뼈와 신경을 망가뜨리고 인체에 온갖 해악을 끼치는 독극물이어서 그렇지 싶다.
납 역시 굳이 납땜할 때 증기 흡입 형태로만 들어오는 게 아니다. 토양 오염이나 물 오염으로 인해 생물 농축 형태로 들어올 수 있다.

그리고 납은 에틸기가 여럿 결합한 유기금속 화합물 에디션이 있다. 이름하여 테트라(4)에틸납.. 화학식은 (CH3CH2)4Pb이다.
이건 상온에서 무색 액체로, 오리지널 납과는 형태가 완전히 다른 물질이다. 납이 다른 유기물과 뒤죽박죽 섞인 혼합물인 정도가 아니고 화합물이기 때문이다.

얘는 잘 알다시피 자동차용 휘발유 엔진에서 연료의 옥탄가를 올리고 노킹 현상을 없애 주는 아주 유용한 첨가제였다. '유연 휘발유'가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발명됐다.
이 물질의 제조사는 '테트라에틸납'에서 부정적인 어감을 주는 납이라는 단어를 뗐다. 뭔가 알코올스러운 느낌이 드는 '에틸'만 선택했다. 그리고는 '에틸 휘발유, 에틸 가솔린'이라는 상표명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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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뭐, 킬로그램/킬로미터에서 뒤의 단위를 떼고 '키로'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작명 같은데..
하지만 이름에서 납을 뗀다고 해서 이 물질에 납 성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 첨가제가 들어간 휘발유가 엔진에서 연소되자.. 배기가스에도 납이 환원된 형태로 씀풍씀풍 섞이기 시작했다.
아.. 아니, 그 전에 테트라에틸납을 제조하던 근로자들부터가 공장에서 납을 마시면서 시름시름 앓고 죽어가기 시작했다.

제조사에서는 그건 일부 근로자들이 과로로 골병 든 것이라고 치부하면서 납과의 인과관계를 필사적으로 부인했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지는 않았다.
게다가 방사성 원소의 반감기를 이용해서 지구의 나이를 측정하는데.. 대기 중에 비정상적으로 증가한 납 성분 때문에 실험이 안 될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일본처럼 카드뮴(이타이..)이나 수은(미나마타)이 아니라 납으로 인한 공해병을 그것도 1920년대에 자동차 굴리면서 경험할 수 있었던 나라는 전세계를 통틀어 미국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백금 촉매 기반의 삼원 촉매 정화 장치라는 게 발명됐는데, 이 납 성분은 자기도 해로운 데다 삼원 촉매 정화 장치를 망가뜨려서 다른 배기가스들까지도 제대로 정화를 못 하게 만든다.

이 정도면 유연 휘발유는 노킹 방지 성능이 제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환경 문제 때문에 절대로 쓰일 수 없는 물질로 확인사살 당하게 됐다.
대체제인 무연 휘발유는 일단 원유를 과거보다 더 빡세게 정제해서 옥탄가를 올리고, 거기에 납이 아닌 다른 유기물을 첨가해서 제조된다고 한다.

납 이야기가 꽤 길어졌네..
하긴, 무겁다는 점 때문에 납뿐만 아니라 열화우라늄도 총탄이나 포탄의 탄두를 만드는 데 쓰인다. 이 설정이 스타크래프트 마린의 사정거리 업그레이드에도 들어가 있다.
그래도 자연 원소 중에서 상온에서 밀도가 가장 높은, 가장 무거운 금속은 오스뮴(Os)이라고 한다. 원자 번호가 가장 큰 자연 원소는 우라늄이고 말이다.
텅스텐은 무게도 무게지만 녹는점· 끓는점이 매우 높은 걸로 유명하다. 금이나 납은 매우 무겁긴 하지만 녹는점은 낮다.

3. 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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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은 상온에서 액체이지만 납보다도 밀도가 더 높은(무거운!!) 매우 특이한 물질이다.
반짝반짝 은색 광택이 나는 금속 같은데 물처럼 주르륵 흐르고, 무겁고, 동글동글 알아서 잘 뭉치고..
수백 년 전 옛날 사람들은 이런 신비로운 수은을 화장품처럼 써서 피부에 쳐발쳐발도 했었다. 수은을 그런 용도로 써서는 안 된다는 걸 인간이 깨우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 텐데..;;

수은은 앞서 얘기했던 건전지뿐만 아니라 형광등과 온도계에도 쓰였다. 이 때문에 '수은주'가 온도계를 의미하는 관용어로 아직까지도 쓰인다.
하지만 수은은 상온에서 액체이며, 증기가 몸에 들어가기 쉽다. 우리나라에서는 먼 옛날, 1988년에 온도계 제조 공장에서 일하던 '문 송면'이라는 이름의 겨우 15살짜리 소년이 급성 수은 중독에 걸려 목숨을 잃은 비극적인 사고가 있었다. 온도계에다 수은을 주입하는 일을 밀폐된 공간에서 안전 장비도 없이 하면서 치사량의 수은 증기를 흡입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수은은 생물 농축을 통해서도 들어올 수 있다. 자연 오만 데서 조금씩 쌓인 수은이 바다로 들어가고, 그게 그 일대에 사는 어패류의 내부에 쌓이고, 그 어패류를 사람이 먹으면서 말이다. 수은뿐만 아니라 살충제 DDT, 미세 플라스틱 같은 다른 해로운 성분들도 이런 식으로 농축된다.

인간 사회에서 어떤 일을 추진할 때 하청 단계가 늘어나면 작업자가 받는 비용이 전 단계의 절반 이하로 팍팍 깎이곤 한다. 생물 농축은 이와 정반대다. 먹이 사슬 단계가 늘수록 그 농도가 몇 배로, 폭발적으로 올라간다.
그렇기 때문에 생선 중에서도 참치, 상어처럼 덩치 크고 딴 어류들을 많이 잡아먹는 아이일수록 수은이 들어있을 가능성도 크게 높아진다. 생선에 기생충이야 가열만 하면 없어지겠지만 중금속은 그렇지 않다.

수은은 이런 생물 농축 과정에서 메틸기가 붙어서 유기금속으로 바뀐다. 메틸기가 하나만 붙은 CH3Hg 메틸수은은 가장 단순한 형태이다.
아까 유연 휘발유는 '에틸기'가 4개 붙은 납 화합물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자. 이번엔 에틸이 아니라 메틸이다.;;

같은 독극물이어도 암모니아나 테트라에틸납 같은 건 산업적으로 다른 유용한 구석이라도 있다. 그러나 메틸수은은? 잠시 농약이나 방부제 같은 데에 쓰이기는 했지만, 인체에 너무 위험하고 다른 대체제도 많기 때문에 퇴출됐다.
산업적인 쓸모가 있는 게 아니어서 인간이 일부러 제조하지는 않는다. 즉, 이건 그냥 해양 미생물이 수은을 가공한 결과물일 뿐이다.

오염된 물 속의 메틸수은이 쌓이고 쌓여서 발생했던 대표적인 공해병이 바로 미나마타 병이었다.
이타이이타이는 카드뮴이고 물 또는 토양과 식물이 출처였던 반면, 미나마타는 수은이고 출처가 물과 동물 계열인가 보다.

그런데 수은에 메틸기가 하나가 아니라 2개 붙으면 '디메틸수은' (CH3)2Hg이 된다. 이건 수은이나 메틸수은을 아득히 능가하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맹독 극독으로 위력이 업그레이드;;;된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전설을 넘어 레전드 급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고 사례가 있다. 1996년 8월,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 화학과의 대학원생도 아니고 엄연히 교수이던 캐런 웨터한(Karen Wetterhahn)이라는 과학자가 맨손도 아니고 라텍스 장갑까지 낀 채로 실험을 하다가 디메틸수은 몇 방울을 손에 잠시 흘렸다. 곧바로 닦아냈다.

그랬는데, 겨우 그 찰나의 순간만으로도 디메틸수은은 장갑을 통과하고 사람의 피부로 흡수돼 들어갔다.
그로부터 무려 5개월쯤 뒤인 1997년 초부터 그녀는 뇌가 상하고 신경이 파괴되고 시청각 장애가 생기면서 폐인이 돼 갔고.. 10개월 뒤인 1997년 6월에 사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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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이 정도면 거의 청산가리나 방사능 피폭이나 독사 맹독에 맞먹는 독이 아닌지..???
수은이 아무리 유독하기로서니, 증기가 아니라 액체 수은을 손으로 좀 만졌다고 해서 바로 체내로 흡수되고 몸에서 탈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디메틸수은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먹은 것도 아니고, 증기를 흡입한 것도 아니고, 피부에 그렇게 아주 소량이 잠깐 접촉한 것만으로! (이 정도면 뭐 사람 암살이나 ㅈㅅ 도구로 악용될 수도 있겠다;;)

일반인이 이런 미친 물질을 접할 일은 사실상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자연에서 합성되는 건 그냥 '메틸수은'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디메틸수은은 자연적으로 생성되지 않으며, 인간에게 딱히 다른 쓸모도 없다. (일부러 제조할 일 없음)

이상이다. 글을 이렇게까지 길게 쓸 작정은 아니었는데 엄청 길어져 버렸네;;
오늘은 해로운 중금속 3관왕 위주로만 썰을 풀었지만, 나중에 언젠가 금속이나 합금, 원소 쪽으로도 더 범용적인 글을 쓸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6/08/13 08:35 2026/08/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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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역시, 특례시, 특별자치도 등등~

우리나라의 서울은 조선 시대에 한양/한성, 일제 시대에 경성부라고 불렸다. 해방 후엔 잠깐 서울시였다가 정말 초창기인 1946년에 서울특별시라고 정착했다.
그 뒤.. 나중에 부산이 1963년엔가 부산직할시로 바뀌면서 경상남도로부터 독립했다.

이렇게 직할시 승격 테크는 1981년에 인천과 대구가 나란히 승격된 걸 시작으로, 1986년에 광주, 1989년에 대전, 1997년에 울산의 순으로 이어졌다. 5공 시절에 이런 직할시가 제일 많이 생긴 셈이다(인천, 대구, 광주).

인천은 처음에는 직할시 동기였던 대구와 대등한 체급이었던 반면, 40년 후 지금은 부산을 추월할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마치 인도의 인구가 중국의 인구를 추월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랬는데 오늘날은 이런 통상적인 행정구역 체제가 소리소문 없이, 야금야금 바뀌는 중이다. 이름에 자꾸 '특'자가 들어가고 있다.
그 첫 시작은 '특별자치도'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도입한 제주도(2006)이다. 제주도(제주시, 서귀포시)가 전라남도로부터 독립했다. 그 뒤, 강원도(2023)와 전라북도(2024)가 특별자치도로 바뀌었다.

도가 아닌 시 레벨에서는 2012년에 출범한 세종시가 전국에서 유일한 특별자치시이다.
그 다음으로는 경기도의 화성, 고양, 수원, 용인 4개 도시는 '특례시'라고 칭호가 바뀌었다. 거기에다 경남 창원까지 추가돼서 특례시는 총 5개 있다. 광역시는 울산을 마지막으로 더 만들지 않고 있다.

특례시는 광역시와 달리 도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기 때문에 정치· 행정적인 부담은 덜하다고 한다. 태양계에서 행성 다음으로 왜행성 같은 느낌도 드네..;;
이렇게 바꿔 놓으면 무슨 떡고물이 날아오기라도 하는지 왜 자꾸 특을 붙이려는지 잘 모르겠다.

가장 뜬금없는 참신한 변화는 요 근래에 이뤄졌다. 전라남도와 광주가 합쳐져서 광주전남특별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건 대구와 군위군이 합쳐진 것도 아니고 완전히 차원이 다른 변화이다.

앞으로는 '광주'를 경기도 광주와 구분할 필요가 있을 때, 예전 같은 '광주광역시' 대신 도로 '전라도 광주', '7시 광주'라고 불러야 할지..? 난감하다.
그래서 \ 모양으로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는 예전 명칭이 그대로 남아 있는 반면, / 모양으로 전라도와 강원도는 공식 명칭이 '특'자가 붙고 뭔가 바뀌었다.

2. 광역시들의 특징

울산은 직할시였던 적이 없이 바로 광역시로 승격된 처음이자 마지막 사례이며.. 전국에서 지하철이 없는 유일한 광역시이다.
대전은 전국에서 공항이 없는 유일한 광역시이다. 대타로 청주 공항이 있을 뿐.. 서울 시청에서 인천 공항까지의 직선 거리랑, 대전 시청에서 청주 공항까지의 직선 거리는 둘 다 40여 km가량으로 비슷하다.

인천은 전국에서 KTX가 없는 유일한 광역시이다. (아직까지는)
광주는.. 광역시급 도시치고는 각종 상업시설이 없는 게 많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인 예시는 생략하겠다.

대전은 중형 중전철 형태의 지하철이 마지막으로 등장한 광역시이다. 대전 지하철 이후에 등장한 지하철들은 모두 경전철(인천 2, 용인, 의정부) 아니면 대형 중전철(서울 9, 신분당)이기 때문이다.
대구는 평범한 경전철을 넘어 아예 모노레일을 도시철도로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광역시이다. (대구 3)

대구와 인천은 하위 행정구역으로 '군'을 둘 보유하고 있다. (달성, 군위 / 강화, 옹진)
부산은 기장군, 울산은 울주군을 하나씩 보유.
대전과 광주는 군이 없다. 대전의 경우, 옛날에 대덕인지 유성인지가 충청남도 소속의 군이었지만 나중에 대전 소속의 구로 바뀌었다.

대전과 광주는 아직까지는 광역전철도 없다. 그래도 대전은 지하철 1호선을 잘 만들었고 대전-충청 광역전철도 개통이 임박한 반면, 광주는 상황이 좋지 않다.
시내의 선로를 너무 많이 걷어내고 광주 역까지 저렇게 망한 걸 보면 가까운 미래에 광역전철의 수혜를 받기 매우 어려울 것 같다. 지하철 2호선이나 어서 만들어져서 1호선을 보조해 줘야 할 듯..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대전과 대구 모두 기존 경부선 선로를 이용해서 광역전철을 구축했는데, 부산은 경부선을 활용한 건 없다는 게 특이하다. 동해남부선을 개량해서 울산과 부산 사이를 이었을 뿐. 오히려 부산 지하철 2호선의 북부 구간이 경부선과 비슷한 선형이다.

다음으로, 부산과 인천은 과학기술원이 없다. 과학기술원이야 대전이 원조이고 서울에도 경영대학원과 작게나마 도곡캠이 있는 반면.. 부산과 인천은 진짜로 아무 접점이 없다. (대구, 울산, 광주에만)
아, 생각해 보니 그래도 고등학교 레벨인 과학 영재학교는 원조 1호가 부산에 있긴 하다.
부산 울산은 원자력 발전소와 가까운 편. 대전은 원전이 아니라 원자력 연구원이 있다.

이상이다.
부산뿐만 아니라 대구도 인프라가 의외로 빵빵한 것 같다. 지금까지 나열했던 뭐가 '없는 곳'의 예시에 대구는 단 하나도 걸려들지 않았다.;;
인천 송도와 부산 송도가 의외로 헷갈리네.. 둘 다 바닷가이지만 전자는 갯벌을 간척해서 만든 신도시 이름이고, 후자는 해수욕장 이름이 됐다는 차이가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6/08/09 19:35 2026/08/0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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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서 뭔가 움직이는 모든 기계 장치들은 물리 법칙을 절대로 거스르지 못한다.
쉽게 말해 어떤 형태로든 대가를 치르며 공짜가 없다. 작용-반작용이라든가, 열역학 제1, 제2 법칙 같은 것을 죽었다 깨어나도 거스를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이 만든 기계는 대체로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주변 환경을 더 크게 교란한다"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에어컨은.. 실내의 쬐끄마한 공간을 시원하기 위해서 바깥으로는 그 시원하게 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열을 내보내야 한다. 에어컨은 지구 전체의 관점에서는 냉각기가 아니라 열 발생기나 다름없다.

비행기는 혼자 하늘을 우아하게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변 공기를 엔진의 힘으로 몽땅 다 빨아들이고 내뿜고 밀어내고 흐트리고 뒤엎는 기동을 하고 있다. 주변에 끼치는 난류, 소음, 열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비행기는 그 어떤 종류라도 비행 중에 미치도록 시끄러운 것이다. 엔진을 아무리 조용하게 만들어도 팬이고 로터고 걔네들이 돌아가는 소리, 공기를 찢는 소리를 이보다 더 줄이는 건 불가능하다. 날으는 양탄자 같은 건 현실에서 존재 불가능하다.

자동차는 비행기보다야 조용히 굴러가는 것 같지만 이 역시 배기가스에 타이어 마모, 소음, 잔열 등, 온갖 사이드이펙트를 남긴다.
우주 전체 관점에서는 거의 모든 기계는 고품질 에너지(전기, 화학에너지)를 저품질 에너지(열)로 바꾸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하다못해 컴퓨터에서 나오는 열도 이 범주에 아주 정확하게, 완벽하게 해당된다.

그러니 딱 하나 유일하게 전열기만이 열역학적으로 가장 단순하고 정직한 기계이다. 전기장판, 전기난로..
다른 기계들에서는 열은 원하지 않는 사이드이펙트인 반면, 전열기만은 열이 처음부터 인간이 원하는 결과물이니까 말이다!

자, 학교에서 이렇게 과학 법칙을 배움으로써 학생은 영구기관 같은 사기 거짓부렁에 속지 않을 지성과 분별력을 얻게 된다.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방법론으로 사회 법칙을 배워서 "모두가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하는 이상적인 사회" 그딴 것도 영구기관과 100% 동급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숙지해야 할 텐데.. 뭐 그건 딴 영역 얘기이고..

난 여기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예수님이 승천하기 직전의 장면이 설마 이랬을까? "자 자, 난 승천할 겁니다. 내가 양력을 얻기 위해서 공기 가르는 엄청난 소음과 제트 후폭풍이 뿜어져 나올 테니.. 여러분들, 안전을 위해서 좀 멀리 물러서세요?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내가 없더라도 주변 모든 피조물들에게 복음 전하는 거 잊지 마시고??"

성경에서 안전을 위해서 주변 사람들더러 물러서라고 지시하는 게 나오는 건.. 소돔과 고모라 심판 때, 아니면 민수기에서 고라가 서 있던 땅이 꺼지기 직전.. 이 정도가 전부다.
성경에 나오는 초자연적인 기적들은 인간의 문명의 이기 같은 사이드이펙트가 없다. 깔끔하다. 완벽하다.

병 치료도 현대 의학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아예 죽은 사람을 살리고, 불치병 전신마비를 아무렇지도 않게 살리는데 이건 뭐 그냥 넘사벽이 아닌가?
아 물론 인간이 과학적 방법론을 동원해서 온갖 사기꾼 돌팔이들을 퇴치하고 지금 같은 찬란한 보건 의료 인프라와 현대의술을 이룩한 거 정말 대단하기는 하다. 허나, 그게 인간의 죄와 노화와 죽음을 근본적으로 다 극복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말이다.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관련 분야 얘기를 하자면..
교회는 성장이나 자기 방어를 위해서 세상 정치인이나 기업가 같은 방법론을 쓰지 말아야 한다.

교회는 아예 물리적인 폭력이나 해코지, 예배 방해 행위에 대해서는 세상 공권력에 도움을 호소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신자들 중에 이단 교리 신봉자라든가, 외형적인 죄를 반복해서 지으면서 회개하지 않는 사람, 남을 이간질하고 공동체의 물을 흐리는 사람이 있으면 징계하여 쫓아낼 수 있다. 그 정도 필터링과 분리쯤이야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당연한 권리이고 재량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대를 위해서 소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식으로 일을 추진하거나, 목적을 위해서 수단은 무엇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거나, 뻥카 허세 여론몰이 여론조작, 불신자와 무슨 로비 거래, 무슨 코스프레.. 이러지는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런 짓거리를 싫어하기 때문에 사도행전 5장 극초창기 때 아나니야와 삽비라를 바로 죽여 버리신 거다.

이 주제에 대해서 할 말이라든가 예시를 들 게 매우 많지만, 일단 시간과 분량 관계상 생략하겠다. 허나,
그렇게 하지 않고 교리적인 순수성을 잃고 세상과 타협하고 돈 잔뜩 벌고 덩치만 잔뜩 키운 교회는.. 그냥 기형적인 나무가 돼 버린 겨자씨와 같고, 부풀어 버린 누룩과 같다.

자기 교인 1명이 새로 생기는 과정에서 교회 밖에서 실족한 사람이 5명 생기고 개독안티가 10명 추가된다. 이런 식이면 앞서 말했던 대로 주변에다 열을 훨씬 더 뿜어내면서 자기 내부만 조금 시원하게 하는 기계와 개념적으로 뭐가 다르겠는가?

교회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성장하고 확장되는 게 무슨 폰지 사기의 피해 규모가 커지는 것 같은 현상이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희생해 버렸는데 교회가 무슨 존재 가치가 있겠나? 당장 회개하고 참회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흔적도 없이 파괴돼 버렸던 옛 성전 꼴밖에 나지 않을 것이다.

겨우 1, 200년 남짓 전에 알량한 과학기술 몇 건이 개발된 걸 갖고 성경 계명이 전근대적이고 시대에 맞지 않고 어쩌구저쩌구 깝치는 사례가 많다.
뭐, 인간이 발명한 게 다 나쁘고 해롭고 무익하다는 건 아니다. 어떤 건 선하고 인간에게 도움이 된다. 가령, 인간이 솔로몬의 재판을 직접 재현할 수는 없으니 CCTV와 DNA 감식 기술을 개발한 것이야 매우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인간의 과학기술과 문명의 이기는 그걸 운용하는 비용, 그게 장기적으로 끼치는 부작용, 그것 때문에 인간들이 딴 데서 보이지 않게 알음알음 치르는 다른 댓가를 일절 함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것까지 다 총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 과학기술이니 문명의 이기니.. "생각만큼" 그 정도로 대단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세상엔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그 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안 해서 인간이 삽질하고 고생하는 예야 많~~다. 사형 집행 안 하는 것도 대표적인 예이고.
그러니 인간이 쪼금 대가리 굵어지고 대단한 거 찾아내고 만들어 냈다고 성경의 권위가 실추되면 어쩌나 걱정은 절대 할 필요 없다.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성경의 권위와 위상에 흠집이 갈 일은 없다.

그 대신 세상을 상대로 그렇게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는 교회 역시 성경이 일하는 것처럼 일해야 한다.
성경에 초자연적인 기적이 기록돼 있다면, 그걸 믿는 사람들 역시 초월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초월적인 믿음을 행해야 한다. 그래야 불신자들도 "쟤들은 진짜 뭔가 믿는 구석이 있나 보구나" 그런 걸 느낄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교묘한 부작용 같은 게 없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6/08/06 08:35 2026/08/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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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단순히 성경 어휘 이슈나 기본 교리 말고.. 경건, 영성 쪽으로 글을 쓰는 건 엄청 오랜만이고 이례적이지 싶다. ㄲㄲㄲㄲㄲㄲㄲ

1. 선교사 짐 엘리엇

1940년대 후반~1950년대 그 무렵에 우리나라에는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손 양원 목사가 있었다. 자기 아들들을 죽인 좌익 폭도들을 용서했는데 나중엔 자기도 공산당에게 순교한 분이다.

한국에 선교를 하고 복음 전하기 전에 먼저 6· 25 참전부터 선택했던 윌리엄 해밀턴 쇼(1922-1950)라는 엄청난 분이 있었다. "위급할 때 도와주는 친구, 자기 목숨까지 바치는 친구가 참 친구이다"를 몸으로 실천한 분이었는데 그 꿈을 다 펴지 못하고 전사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는 짐 엘리엇(1927-1956)이라는 선교사도 있었다.
이 사람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중남미 에콰도르라는 나라의 내부에 있는 '아우카'라는 미접촉부족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자기 인생을 다 바쳤다. 쟤들은 외부인은 닥치고 죽이고 보는 아주 폐쇄적인 집단이었다고 한다.

짐 엘리엇은 본인 포함 5명으로 선교팀을 꾸렸다. 그리고 경비행기를 타고 쟤네 마을 상공을 날면서 선물 바구니부터 마구 떨구면서 저쪽 마음을 열어 나갔다.
그리하여 1956년 1월, 접선을 성사시켜서 부족 대표를 한번 만났다. 그러나 부족 내부에서 악의적인 오해와 이간질 같은 불상사로 인해 그들은 겨우 며칠 뒤, 원주민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그만.. 전원 살해당하고 말았다.

선교사들은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고, 호신용으로 공중에 위협 사격도 했다. 그러나 원주민들을 향해 쏘지는 않고 자기들이 죽음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화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는 죽으면 바로 천당으로 가니 걱정 없다. 그러나 아직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향하고 있는 저 사람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라는 신념을 실천했기 때문이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국과 유럽 사회는 크게 술렁거렸다고 한다.
옛날 대항해시대 스페인이라든가 19세기 제국주의 시절 같았으면 "저 미개한 야만인들을 당장 토벌하고 놈들을 기독교로 강제로 개종시켜야 한다" 이랬겠지만.. 때가 20세기 중반이니 이번엔 조금 다른 관점의 반응이 나왔다. (실용주의?)

"거 봐, 쟤들은 수백 년 동안 외부와 접촉을 일절 거부하고 침입자를 죽여 온 부족이잖아.. 왜 쓸데없이 저런 데에 선교하러 가서 자기 명을 재촉했을까? 그 친구.. 공부도 잘하고 장래가 촉망되던 인재였는데??? 완전 재능낭비이구만!"

그랬으나.. 이야기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정말 믿어지지 않지만.. 짐 엘리엇 등 몇몇 선교사들의 아내(= 미망인)가 몇 년 뒤에 그 부족을 다시 찾아가자 원주민들은 정말 큰 충격을 받고 사랑과 용서에 감화됐다고 한다.
원주민들 대다수가 예수님을 받아들였으며, 부족의 외부인 살해 문화가 사라졌다. 심지어 짐 엘리엇 일행을 직접 창으로 찔러 죽였던 부족의 전사는 목사가 됐다고 전해진다.

짐 엘리엇은 20대 초반 때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사람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라고 다짐을 일기에 쓴 것으로 유명하다. 애초에 "주여, 저를 주를 위해 써 주십시오, 저를 주의 일에 정말 새하얗게 탈탈 불태워 주십시오." 이런 기도를 입버릇처럼 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엘리엇도 마찬가지다. 아까 저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낭비라니요? 제 남편은 어린 시절부터 오로지 이 순간만을 위해 인생을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이제야 그 꿈을 계획대로 이룬 건데 뭐가 낭비입니까? 다시는 말을 그런 식으로 하지 마세요."라고 단호히 일축했었다. (저분은 복음서에 나오는 향유 옥합 여인 이야기의 의미를 아주 잘 알고 있었지 싶다.)

그리고 그분은 No Graven Image이라고.. 표면적으로 선한 의도이기만 하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내 뜻을 들어주고 당장 형통케 해 줘야만 한다"라는 생각의 위험성을 저격한 소설도 썼다(1966년). 자기 남편을 모티브로 한 주인공을 넣어서 말이다. 하나님이 아까 그 해밀턴 쇼나 짐 엘리엇 같은 사람을 역설적으로 왜 일찍 데려가셨는지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뭔가 19세기 말 제국주의 시대가 아니라.. 2차 세계대전이 끝난 20세기 중반 현대에도 저런 선교사가 있었다는 게 개인적으로 정말 놀랍게 느껴진다.
이 정도면 짐 엘리엇은 친아들의 살해범을 용서한 손 양원 목사보다 더하고, 와이프는 주 기철 목사를 내조했던 오 정모 사모보다 더 강직했던 분 같다.

* 저런 일이 있고 반세기 가까이 뒤, 2018년에는 '존 앨런 차우'라는 이름의 선교사가 인도 부근의 미접촉부족인 '센티널 족'이 사는 노스센티널 섬에 무단 접근하다가.. 원주민으로부터 화살세례를 받고 죽었다. 이 사람은 그 해에 다윈 상을 받고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됐다. ㄲㄲㄲㄲ
저 사람은 과연 짐 엘리엇 정도로 기도 잔뜩 하고 준비하고 원주민들을 진짜 사랑하는 마음으로 접근했었는지..
아니면 그냥 중2병 관심병자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설마 저 사람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센티널 족을 상대로 뭔가 일을 하셨는지?? 나로서는 판단을 못 하겠다.

2. 주님은 나의 최고봉

오스왈드 체임버스는 우리나라에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My Utmost for His Highest라는 경건 묵상집으로 유명한 목사이다. 그야말로 “나의 최고존엄에 대해서 내 뼛속까지 진심을 다해서 생각한다, 깊이 묵상한다, 그분께 바친다, 헌신한다” 이런 뜻이다.

책이 대체로,

  • “당신은 양심을 통해 속삭이는 성령님의 권고를 놓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영이 건강한 상태입니까?”
  • “거리끼는 게 있다면, 꺼림칙하다면, 좀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해야 한다면 이미 글러먹은 것입니다. 하지 마십시오”
  • “당신의 종교 행위가 신앙 생활의 본질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아무리 좋은 취지로 시작한 것이라도 죽은 껍데기로 전락하고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요지의 내용이다.
제대로 예수쟁이로 살아 보지 않은 사람은 자기랑 너무 안 맞고 뜬구름 잡고 재미없는 얘기밖에 없어서 오래 못 읽는다.

가령, 갓 구원받은 영적 뉴비 아기들을 위한 초급 입문서에서는 “기도를 생활화하십시오”라고 말하고,
중급에서는 “자기 간구만 할 게 아니라 남을 위한 중보기도가 더 수준 높은 기도입니다” 이러는데..
최고봉에서는 그건 너무 당연한 거고 “중보기도라는 명분으로 자기 의가 교묘히 드러나지 않도록 유의하십시오” 이러는 식이다. 그러니 고급이다.
애초에 중보기도 자체를 할 줄 모르거나 해 본 적 없는 사람은 저 책이 무슨 상황을 다루는지 이해를 당연히 못 한다.

저 사람은 1874년생으로, 김 구, 이승만, 윈스턴 처칠, 앨버트 슈바이처 같은 인물과 동시대 동갑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서양은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한편으로 제국주의, 황금 만능주의, 극심한 빈부격차, 시궁창이던 노동자 인권, 기존 윤리관의 타락 등 온갖 잡음도 많았다.

그래도 한편으로 서양에서 저 정도의 영성을 자랑하는 목사도 있었으니 그 문화권이 진짜 회복 불가 막장까지 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이 썩지 않게 하는 소금 역할을 한 셈이다.
저 사람은 1차 세계대전 때 종군목사 명목으로 사역하다가 1917년에 겨우 43세의 나이로 맹장염이던가 오늘날 관점에서는 별로 치명적이지 않았을 병 때문에 소천했다. 불의 전차 ‘에릭 리들’(1902-1945)과 같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최고봉이라는 단어는 옛날에 현대자동차 각그랜저의 광고카피이던 “고급 승용차의 최고봉” 이후로 이 책 제목에서 처음 듣는다.

그리고 믿거나 말거나,
난 바로 이 책을 선물로 받으면서 지금 내 와이프가 된 자매와 교제를 시작했다...!!
“책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답례를 드리고 싶은데 우리 밥 같이 좀 먹을 수 있을까요?”로 시작해서.. 뭐 그렇게 됐다.

3. 위로와 평안 찬송

모든 기독교 찬송가에는 찬양과 경배, 예수 그리스도, 사랑, 기쁨 등등등과 더불어 중후반부에 '위로와 평안'이라는 카테고리가 있다. 여기에 속한 곡이 적지 않고 꽤 된다.

개인적으로는 몇 년에 한 번꼴로 컨디션 조절 실패 때문에 외출 중 급ㄸ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질 때가 있었다.
그때 신속히 화장실로 들어가서 문을 걸어잠그고 산출물을 원없이 흘러보낼 때...
농담이 아니라 정말 진지하게 하늘 문이 열리고 세상이 다시 보이는 것 같았다. 땅에서는 새장 문이 열리고 하얀 비둘기들이 푸드득 파란 창공을 향해 날아가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머릿속에서 "펴어어어엉~~ 화아아아아아~~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가 자동 재생된다!! =_=;;;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는 거 실사판을 경험하게 되더라.

약간 다른 상황을 또 말하자면,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 받을 때 말이다.
기계가 드르르륵 키이이잉 쇳소리와 함께 내 잇몸 구석을 쑤시고 신경을 건드릴 때..
그땐 난 의도적으로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평안해"를 떠올린다.

이때는 자동 재생은 아니고 강제 재생을 한다.;;; ㅠㅠㅠㅠ
그래도 이렇게라도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낫더라.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_-;;
찬송가라는 게, 굳이 가사 내용이 다 공감되지 않더라도, "제발 공감되게 나를 바꿔 다오"를 다짐하면서 부르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햐~ 저건 세월호 같은 사고로 가족을 다 잃은 슬픔을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면서 지어진 찬송가인데.. 100년 이상 뒤에 태어난 어느 후대 사람은 그걸 치과 치료를 극복하는 용도로 써먹고 있구나~! ㅋㅋㅋㅋㅋ

내가 1번과 2번에서 너무 위대한 신앙의 선배 이야기를 하다가 3번에서 갑자기 병맛으로 컨셉을 바꾼 이유는..
예수쟁이의 신앙 생활은 홀리한 주일 따로, 세속적인 평일 따로가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먹든지 마시든지, 심지어 화장실에서 X을 쌀 때라도(성경에 이런 직접적인 예시는 없지만 ㄲㄲㄲㄲㄲ) 무엇을 하건 하나님 영광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고, 정말 어느 상황에서든 예수님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3번부터, 작은 것부터 생활화하고 그게 더 발전해야 나중에는 2번 같은 묵상과 1번 같은 행적도 나올 수 있다.

밥먹기 전, 자기 전, 점잖게 격식 차려서 기도할 때도 있지만 여호사밧 왕은 전쟁터에서 위험에 빠졌을 때 "으악!!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부르짖은 것조차도 일종의 긴급기도였다(대하 18:31). 그리고 그 기도는 응답됐다.

그게 살전 5:17에서 말하는 "끊김 없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의 의미일 것이다.
공부고 생업이고 다 때려치우고 CPU 사용량을 100% 기도 process에만 몰빵하라는 말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든 세상적인 일을 마치고 idle time이 됐을 때마다 언제든지 끊김 없이 예수님 생각하라는 뜻이다.

그러니.. 하다못해 감탄사도 말이다.
깜짝 놀랐을 때, 혹은 갑자기 안 좋은 상황이 닥쳤을 때.. "썅~ 젠장, X발"을 내뱉을 바에야 차라리 진지하게 "오 주여~"가 나와야 할 것이다.
주여 주여 장난으로 헛되이, 망령되이 입에 담지는 말아야겠지만, 필요할 때 진심으로 언급하는 건 오히려 바람직하고 권장된다고 하겠다.

이러면 보통은 감사와 찬송이 더 나오지, 무슨 한국인의 정서라는 서러움, 한맺힘 이런 감정은 어지간해서는 맺히지 않을 것이다. 아리랑 대신에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 나올 것이다.

성령 충만한 바람직한 신앙생활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광신적인'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광신은 흔히 불신자나 개독안티들이 세상 매체에서 프레임 씌우는 그런 이상한 결과물이 나오는 광신이 절대 아닐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요즘 참교육을 너무 많이 봤나.
'여기에 모인 우리' 찬양을 부르다 보니 이 처자가 생각나더이다. 이 믿음 더욱....!!!! =_=;;;;;

Posted by 사무엘

2026/08/01 08:35 2026/08/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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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91년, '오쓰 사건'이라고..
일본을 방문 중이었던 러시아 제국의 황태자를 대상으로 어느 정신이상 망상장애 일본인이 칼을 휘둘러 외국 국빈 암살 미수라는 엄청난 사고를 친 적이 있었다.

이때는 러일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참 전이었고 일본은 대국 러시아 앞에 넙죽 엎드리고 쩔쩔매던 시절이었다. 조선에서도 일본을 견제하려고 괜히 러시아에게 붙으려 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나중에 을미사변이 1895년에..)

그랬는데.. 저 사건은 수틀리면 러시아와 일본 간에 전쟁이 날 수도 있는 심각한 사항이었다.
일본에서는 사태를 수습하려고 그야말로 천황부터 신민들까지 몽땅 국가적으로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메이지 천황이 직접 나서서 황태자를 문병 갔고, 전국 각지에서 "황태자님,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쾌유를 빕니다" 전보가 빗발쳤다.

가해자는 당연히 붙잡혔다.
그런데 그때 일본의 법은 "황족을 고의로 죽거나 다치게 한 자는 대역죄를 적용하여 무조건 사형에 처한다"였다. 이때 황족이란 자국의 황족을 의미했다.
러시아의 황태자는 저 법에서 가리키는 황족이 아니었다. 더구나 저 사람도 다치기만 했지 죽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이 일본의 법으로는 가해자를 무기징역까지는 처해도 사형에 처할 수는 없었다.

이때 일본 정부에서는 담당 판사에게 외압을 넣어서 "우린 지금 러시아에게 무조건 잘 보여야 한다. 그러니 러시아 황태자도 황족으로 간주하고 어떻게든 저놈을 사형시켜라" 이렇게 명령했다.
그러나 그 당시 판사는 "우리 일본은 그렇잖아도 서구 열강에게 밀리고 무시당하는 중이다. 그런데 상황이 급하다고 사법이 그렇게 일관성 없게 누구 기분 따라 들쭉날쭉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앞으로도 영원히 국제 사회에서 미개한 호구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라고 반박했다. 그리고 원칙대로 무기징역까지만 때렸다.

우와 이거 영국을 상대로 법을 논하면서 항변했던 청나라 임칙서를 보는 것 같다.
일본에서는 저런 소신판결이 통했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 국가적인 사죄 운동과 가해자의 무기징역 처분으로 만족하고 사과를 받아들였다. 일본에게 더 딴지 걸거나 보복하지는 않았다.

2.
1898년엔 이웃 조선에서 자국 국왕을 상대로 암살 미수 사건이 벌어졌다.
고종은 그 옛날에 커피를 굉장히 좋아했던 사람인데, 거기에 누군가가 치사량을 넘는 아편 마약을 탄 것이다.
고종은 커피잘알이어서 그런지 몇 모금 맛만 보더니 맛이 이상하다고 바로 뱉어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아들 순종은 그걸 마셔 버리는 바람에 오랫동안 끙끙 앓고 평생 후유증 장애까지 얻게 됐다.

이 사건의 용의자로 최근에 국왕과 사이가 안 좋아진 신하 김 홍륙이 지목됐고, 공범도 몇 명 잡혔다.
그리고 이 사건을 담당했던 판사는 함 태영이라고.. 그야말로 구한말, 일제 시대, 대한민국을 두루 아우르며 법조인, 목사, 교사, 부통령까지 역임했던 젊은 똘똘이 천재 지식인이었다.

그는 자기가 공부했던 법리로 이 사건을 조사해 보니, 김 홍륙이 진짜로 암살에 개입했는지 증거조차 아직 불확실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역모는커녕 무죄 선고를 하려 했다.
고종은 노발대발하여 당장 저놈을 역적으로 몰아서 사형에 처하라고 외압을 넣었으나.. 함 태영은 자기 소신을 고집했다. 그러자 고종은 그 사람을 짜르고 다른 판사를 동원해서 기어이 김 홍륙 일당을 사형에 처해 버렸다.

뭐, 왕족을 암살하려 한 놈이니 당사자를 사형에 처하는 건 그 어디라도 그럴 수 있다고 친다. 아까 그 일본법 기준에도 완벽히 부합한다.
근데 이번에는 그냥 죽인 게 아니라 시체를 공개 전시해서 백성들이 다 뜯고 찢게 했으며, 마누라를 포함한 가족까지 몽땅 감옥에 가둬 옥사시키거나 유배형에 처했다.

자, 1898년이면 오쓰 사건보다 나중이고 조선에서 갑오개혁도 일어난 뒤였다. 반역죄인이라도 연좌제 내지 죽은 시체한테 소급 처벌은 한참 전의 '영조' 때부터 이미 폐지· 금지 상태였다. 그랬는데 고종은 그야말로 감정적인 괘씸죄에 의거한 잔인한 형벌과 초법적인 보복을 마구 남발했었다. 서 재필, 김 옥균 때도 그랬고, 김 홍집 때도 그랬고..

이 사건은 당연히 국제적으로 지탄받았다. 일본이 남의 나라 궁궐에 무단으로 쳐들어가서 왕후를 살해한 만행이 세계에 알려져서 규탄받고 이미지가 깎이긴 했지만, 그 피해 당사자 국가의 내부에서 미개한 짓이 벌어진 것도 마찬가지다. 세계 각국 외교관들이 이 소식을 자국으로 타전했다.

뭐, 변명이나 참작의 여지는 있다. 고종은 참 좋지 않은 시국에 힘겹게 왕 노릇 하느라 정신 건강이 좋을래야 좋을 수 없던 상태였다.
안에서는 반역 쿠데타에 암살/독살 음모, 밖에서는 외세 침략..;; 오죽했으면 남의 나라 대사관으로 도망가서 목숨을 구걸할 정도였으니.. 자국의 사법과 치안이 개판이기 때문에 군주가 오히려 자국의 치외법권이고 외국 법이 통용되는 곳으로 도피한 것이다.

이러니 고종은 노이로제 수준으로 극도로 예민해졌으며.. 망상에 빠져 아무나 막 의심하고 죽이고, 누구를 사형에 처할 때 곱게 죽이지 않고.. 뭔가 궁예나 히틀러나 스탈린의 말년 같은 모습으로 얼마든지 빠질 법했다.

게다가 민씨 집안으로부터의 부추김도 있었다. 뭐, 고종은 실제로는 히틀러나 스탈린 정도로 깽판을 칠 권력 자체가 없으니 그런 스케일로 깽판 치지는 않(못)았지만 말이다.
고종에 대해서 예로부터 저런 독살 시도가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1919년에 고종이 진짜 죽었을 때는.. 일제에 의한 독살 의혹 루머가 쫙 퍼질 만도 했다. (진실은 저 너머에..)

그리고 원인이야 어쨌든, 그의 이런 행태는 "일본 정도면 조선을 지배해도 되겠다"라는 국제적인 통념에 기여를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해방 후에 "우리는 군주제는 절대 다시 하지 말고 민주공화정으로 가야 한다" 이런 생각을 식자층들이 하게 됐다.

참고로, 훗날 대한민국에서는 1980년대 대머리 땅끄 대통령도 사법부에 외압을 넣고 개입한 적이 있었다. 뭐 이런 것들..

  • "대통령 각하께서 대국민담화를 해 버렸으니 국민 앞에서 약속을 지켜야 된다. 이 윤상 군의 유괴살인범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사형에 처해라"
  • "여성들한테 독약 먹이고는 죽어가는 걸 스너프 사진을 찍었다고? 아이고 88 서울 올림픽이 코앞인데 세계가 지켜보는 와중에 동네 창피하다. 더 조사할 것도 없고 그놈은 바로 사형 때려~ 이건 명령이다"

하지만 이건 정치범이 아니라, 증거 확실하고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뒈져야 마땅한 흉악범을 처단한 것이어서 구한말 고종과는 상황이 다르다. 시체를 공개적으로 잔인하게 능멸한 것도 아니니.. 지금과 비교하면 오히려 정의를 구현한 사이다 같은 구석도 있었다. ㄲㄲㄲㄲㄲ

3.
자, 원래는 글을 여기까지만 쓰고 말려고 했는데, 고종과 관련하여 또 하나 흥미로운 사건이 비슷한 시기에 있었다. 바로 1896년의 치하포 사건..!!

이건 따지고 보면 조선 땅에서 무고한 일본인이 아무 면식도 없는 조선인에게 살해당한 테러이자 강력 범죄였다.
하지만 이건 을미사변 때문에 그렇잖아도 반일 감정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비록 애매한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표면적인 명분은 민비 암살에 대한 보복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일본도 이때는 이걸 명분으로 대놓고 무력 보복을 하지는 않고 몸을 사렸다. 총칼 대신 외교부가 개입해서 "범인을 꼭 체포하고 사형에 처하도록 해라~ 사건 조사를 우리가 하겠다" 이렇게 점잖게만(?) 압박을 넣었다.

이때 고종은.. 일본의 요구에 호락호락 따르지 않고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난 김 구가 일본인을 죽이고 나서 거의 직후에 현행범으로 체포된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조선 정부는 범인을 색출하고 체포하라는 일본 측의 요구에도 일부러 영혼 없이 세월아 네월아 늑장 대응하다가.. 사건 발생 무려 3개월 후에야 그를 체포했다.

일본 측:, "너네 법을 보니 살인범은 참수를 하게 돼 있네? 저놈을 반드시 참수해 주시오"
조선 왈: "ㄴㄴ 우리도 근대화 돼서 갑오개혁 이후로 사형은 교수형으로 집행한다. 작년에 동학의 수괴 전 봉준도 교수형이었으니 김 창수(김 구의 옛 이름) 역시 교수형에 처하겠음."

이래 놓고는 김 구를 감금한 채로 또 딜레이를 시전했으며.. 고의에 가깝게 죄수들을 아주 허술하게 관리했다. 결국은 탈옥이라는 명목으로 김 구를 사실상 석방 방면해 버렸다.
글쎄, 이때 서울-인천 간에 전화가 갓 개통돼서 국왕이 직접 전화를 걸어서 사형을 무기징역으로 감형 명령을 전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들 아시다시피 백범일지에는 워낙 이빨 주작도 많아서 말이다..;;

하지만 이 정도면 고종은 김 구의 처분에 관해서는 절대로 일본 말을 호락호락 듣지 않음으로써 을미사변에 대해 아주 쪼잔 소심하게 저항하고 뒤끝을 부리긴 한 것으로 보인다. "니들이 민비 암살범(미우라 고로)을 대놓고 감싸고 풀어 줬어? 그럼 우리도 일본인을 죽인 조선 신민을 감싸 줄 거다"랄까?
이것도 위의 1, 2번과 더불어 생각할 점인 것 같다. 오쓰 사건, 독다 사건에 이어 치하포 사건이라니..!!

이렇듯, 김 구는 2년 가까이 해주와 인천 감옥에서 빵살이를 하다가 탈옥을 했다.
참고로 이 승만은 조금 나중인 1899년에 고종 폐위 음모에 휘말려서 5년 반이 넘게 옥살이를 하다가 사면을 받고 풀려났었다. 이 승만은 서대문 형무소의 전신인 한성감옥에서 지냈기 때문에 김 구와는 장소가 달랐다.
뭐, 고종은 그로부터 10년이 채 지나기 전에.. 헤이그 밀사 파견 내역이 발각되는 바람에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강제 폐위됐지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6/07/27 08:35 2026/07/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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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교회에서 에스겔서 16장을 읽다가.. 모노노케 히메에 나오는 대사가 생각나서 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
6절, 명령어 Live를 “너는 살라”가 아니라 곧이곧대로 “살아라~~”라고 번역한 역본을 읽으니 ‘어 이거 무슨 애니 대사랑 비슷한데.. 뭐더라?’ 싶다가.. 출처를 곧 떠올린 것이다. 성경과 지브리 애니의 만남~!!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표현만 약간 비슷할 뿐, 저 말이 나온 상황과 맥락은 서로 완전히 다르고 접점이 거의 없다.
성경에서 “살아라”라고 말하는 상황은 애니에서처럼 니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고 남주 ‘아시타카’가 간지나게 일깨워 주는 게 아니다.
오히려 부모로부터 버려진 여주 ‘산’을 갓난아기 때 거둬들이고 키워 준 들개의 신 ‘모로’가 했을 법한 말이다.

그 뒤로도.. 성경이 말하는 건 그렇게 불우한 처지였던 네년을 먹이고 어르고 달래면서 키워 줬더니 음행이나 저지르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 상태가 딱 그 여자와 같다는 식의 얘기 일색이다.
모노노케 히메하고는 1도 관계 없는 흐름으로 간다. 지브리 애니는 자연 파괴가 어떻고 재앙신, 사슴신이 어떻고 하는 세계관일 뿐, 우상숭배니 음행이니 따위는 전~~~~혀 관심사가 아니니까.

버려진 여아를 제3자가 거둬들여 키웠다는 맨 앞의 초창기 설정, 그리고 그놈의 “살아라” 대사 때문에 의식이 잠시 이쪽으로 흘렀다~!

이렇게 하나님과 애증(?)의 관계로 묘사되는 이스라엘 백성, 일명 유대인 말이다.
저 사람들은 저래 뵈어도 성경이 역사적으로 문자적으로 사실이고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걸 물증에 가까운 수준으로 입증하고 있는 민족이다. 예수를 배척하고 안 믿었으면서 정작 하나님과는 저런 관계인 게 참 특이하다.

쟤들은 하나님과 특별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타 민족들 대비 특혜와 보호 버프를 더 받았고, 그 대신에 죄 짓고 타락할 때 위약금 명목의 징벌도 더 빡세게 받았던 민족이다. 딱 그런 관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하나 더.. 쟤들은 비록 혹독한 징벌을 받더라도, 어떤 경우에도 민족 정체성을 잃고 완전히 멸망해 버리지는 않는다는 거.. 이거 하나는 보장됐다. 그건 하나님 차원에서 용납되지 않는 일이다.

성경에 언뜻 보기에 신약 크리스천의 교리 행실과 별 관련 없어 보이는 뜬구름 잡는 구약 예언의 비중이 왜 이리 큰지?
그 예언들이 다들 심판 일색에 부정적이고 절망적이고 암울해 보이지만, 최종 결말은 왜 한결같이 "회복"인지를 생각해 보시라!
일반적인 크리스천은 저 나라, 민족에 대해서 이렇게 인식하고 처신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겠다.

1. 현 세속 국가 이스라엘은 성경의 예언을 다 이룬 게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대인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이 1948년에 건국됐으니, 이 세대가 다 가기 전에 예수님 다시 오실 거임" 이러는 '반쯤' 시한부 종말론스러운 이야기를 들어 보신 분이 있을 것이다.
난 그 사건에다가 성경을 그렇게 직접적으로 적용을 해도 되는지.. 성경 본문에서 그 세대라는 단어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세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지.. 그건 좀 조심스럽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편 극단으로 가서 저 세속 국가 이스라엘은 성경의 유대인과 전혀 무관하다고 말하는 것도 명백히 오류일 것이다.
그럼 거슬러 올라가서 나치와 히틀러는 유대인을 미워하고 죽인 게 아니었나? 진짜 유대인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혼자 뻘짓 한 거냐? 이스라엘의 사관학교 생도들은 유대인도 아니면서 맨날 맛사다 요새를 잊지 말자고 생쑈 하냐..?? 그건 그것대로 여러 모순과 문제점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2. "저것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인 저주받을 종자들이다~"

....;; 이건 진짜 최악의 멍청한 발상이니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말지어다! 심지어 옛날의 걸출한 개신교 종교개혁자 중에도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그건 미안하지만 명백한 오류이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지 않았으면 비유대인들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리지 못했다. 어디 너님의 죄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기여한 게 없는 줄 아냐??? 이 주제에 관한 한은 '양비론'이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성립한다고 봐야 한다.

3. 막연한 반유대주의 선동에는 가담하지 않는 게 옳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간 과정은 마치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처럼 혼란한 와중에 현실적인 이유나 강대국들의 농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혈이 발생한 것도 적지 않다.
언론에서는 이스라엘군이 민간인 학살하는 것만 보도하지만 실제로는 적들도 민간인 위장 총질 같은 비열한 짓을 많이 했다. 이런 건 한쪽 편 말만 듣고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또한, 쟤들이 쏘는 로켓 대비 그걸 요격하는 이스라엘 측의 방어 시스템은 유지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든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생존을 위해서 "공격은 최선의 방어다" 중동의 왈가닥 미친개처럼 처신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생각할 점이다.

비록 쟤들은 신약 성경이나 예수 이런 것에 호의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슬림 광신도처럼 히잡이나 "알라후 아크바르!" 같은 짓거리를 벌이지도 않는다.
이스라엘은 나름 친서방 자유 진영에 속하면서 6 25 때 저 멀리 대한민국을 도와줬었고, 연평도 포격 때 북괴 규탄도 제일 강력하게 했었다.

4. 그렇다고 쟤들이 정말 선 넘고 범죄 저지르고 깽판 치는 것까지.. 무작정 다 옹호할 필요는 없다

두 말하면 잔소리다.
가령, 예수상 훼손과 조롱 인증샷.. 이거는 진짜 정신나간 짓이던데?? (개인적으로 물론 예수상 별로 안 좋아하는 소신이지만 이와 별개로) 괜히 총리까지 나서서 사과하고 수습한 게 아니더라.

5.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심판의 도구를 그리스도인이 "자처"하지는 말아야 한다

너 말고도 이스라엘 싫어하고 가혹하게 대해 줄 사람은 주변에 넘쳐나니까 너는 그런 일에 가담하지 마라.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살아남았냐, 걔네들을 심판자 명목으로 침략하고 학살했던 주변 민족이 살아남았냐?
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다른 정상적인 소명 부르심에나 응답하고 따르시길 바란다. 육신이 아니라 성령의 음성을 들어라.

6. 교회는 이스라엘이 아니다

매우 중요한 사항이니 밑줄 치시라. 교회는 교회이고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다. 서로 신분과 처지가 다른 집단이다.
로마서 9~11장을 읽어보아라.
막~ "유대인들이 예수를 거부하는 바람에 하나님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쟤들과는 완전히 손절이다" 뉘앙스가 절대 아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못 알아보고 그 일시적으로 눈먼 것까지도 하나님이 다른 기회로 활용해서 이방인 교회 시대 경륜을 열었다"로 딱 요약되지 않는가?

오히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하면서 생긴 기회가 이 정도인데, 하물며 걔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였으면 세상이 얼마나 더 살기 좋아졌겠냐" 이런다. 유대인을 세상을 향한 축복의 통로 정도로 본다.
이게 어딜 봐서 유대인이 교회로 대체됐다는 의미이겠는가? 유대인이 구원받고 개종하면 그냥 유대인 크리스천 교회 성도가 될 뿐이다. 우리는 돼지고기도 못 먹는 유대인이 아니라,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에 감사하면 된다.

아 물론 본인도.. 이 2000년대가 다 돼서 유대인들 혈통과 지파는 어떻게 다시 따질 것이며, 저 완강한 인간들이 도대체 언제 짠~ 예수님을 다시 알아보고 설마 민족적으로 회개하고 회복되겠는지,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디테일"을 생각하면 잘 이해가 안 되고 믿어지지 않는 건 있다.
그러나 유대인과 교회를 구분하면 뭐 세대주의가 어떻고 시한부 종말론이 어떻고 프레임 씌우는 건 논점 일탈이어 보인다. 뭐든 성경이 말하는 대로 최대한 그대로 믿어야 하지 않느냐 말이다.

이상이다.
우리나라 국군이 북괴의 무력 도발에 대해 처음부터 이스라엘처럼 대처했다면.. 아마 진작에 북한으로 전투기고 공작원이고 잔뜩 보내서 핵 시설 같은 건 바로 폭격했을 것이고, 연평해전?? 천안함?? 그냥 몇 배로 보복했지 싶다.
물론 그만큼 젊은이들 군생활은 더 빡세졌겠지만, 이렇게 처음에 짧고 굵게 기선제압을 확실하게 해 놓는 게 나라의 미래 관점에서는 차라리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 여담: 아시리아와 바빌론

그러고 보니 유대인들의 옛날 역사와 관련하여 인상적인 게 하나 있다.
옛날, 기원전 600~500년 무렵에 있었던 신바빌론, 일명 칼데아 왕국은 남유다 왕국을 멸망시키는 용도로 정말 잠깐 왕성했다가 신기루처럼 싹 사라져 버린 정말 특이한 나라이다.
100년도 채 유지되지 못하고 망했다는 점에서 원나라와 비슷한 것 같다. 그 전의 아시리아, 그 후의 페르시아에 비해 존재감이 없으며, 세계사에서는 별로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사실, 바빌론 자체가 처음에는 아시리아의 관할에 있는 나와바리 중 하나에 불과했는데 갑자기 세력이 커져서 주종 관계가 바뀐 거라고 한다.
심지어 아시아라는 대륙 이름이 바로 아시리아 - 앗수르에서 유래된 거라고 하네.. 참고로 아시리아는 시리아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이니 혼동하지 말자.;;; 굉장히 헷갈리기 쉬운 사항이다.

아시리아는 이스라엘 북왕국을 멸망시켰으며, 바빌론이 등장하기 전까지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접수했었다. 그러나 딱 하나 남왕국 예루살렘만은 정복하지 못했었다. (히스기야 왕 시절을 생각해 볼 것) 그리고 아시리아 이후의 바빌론이 남왕국을 접수한 것이다.

그 뒤,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 포로로 끌려가 있던 그 기원전 5xx년 기간 동안 인도에서 불교, 중국에서 유교가 태동하고 제자백가 사상가들이 활동했었다. 동양에도 나름 그리스 철학자들 뺨치는 인문학 르네상스 같은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신바빌론은 여러 모로 신기한 나라였다.

Posted by 사무엘

2026/06/22 08:35 2026/06/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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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 관순: 나는 공산당.. 아니, 왜놈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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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관순 열사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 중에는..
"유 관순은 일제 강점기 당대에는 인지도가 전혀 없는 듣보잡이었다가 해방 이후에야 뒤늦게 발굴되고 부각됐다. 3· 1 시위에서 천안 나와바리의 행동대장이었을 뿐이지, 딴 지역에도 유 관순 정도의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친일 변절 지식인들에 의해 불순한 의도로 쟤만 혼자 '너무' 신격화된 경향이 있다" 이런 부류의 평가절하가 있다.

저게 유 관순 말고도 타 지역의 여러 열사들을 같이 골고루 기억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한 말이라면 얼마든지 고려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고 유 관순이 진짜로 타 지역 시위 주동자 대비 단 1도, 추호도 다를 바 없다는 말은.. 이 역시 필터링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때 시위 가담자로서 체포되고 투옥돼서 몇 달, 또는 길어야 1~2년 옥살이를 하고 나온 사람이야 많다. 물론 그 행적만으로도 훗날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포상을 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하지만 겨우 여고생 신분으로 그렇게 고분고분 옥살이를 하지 않고, 서슬 퍼런 법정에서 "너희 왜놈들은 우리를 재판할 자격이 없다!"고 당당히 외쳤고, 심지어 재판정에서 의자를 던져서 가중 처벌을 받고, 형무소 안에서도 만세 시위를 추진하고.. 자기 신념에 따라 일본의 입장에서는 진짜 악바리 같이 개기다가 기어이 구타로 장살당한 사람은 정말 드문 케이스이지 않은가? 저 증언 자체가 몽땅 조작 구라가 아니라면 말이다.

당연히 그때 투옥됐던 사람들이 전부 다 유 관순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으며 그럴 수도 없다. 그때 잠깐 수모를 꾹 참고 옥살이 하고 나와서는.. 공부 더 하고 교육자, 사업가 등으로 크게 성장해서 일본을 실력으로 이기는 게 민족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더 이익"일 수도 있다. 하다못해 유 관순도 옥사하지 않고 살아 나왔으면 커서 무엇이 됐겠느냐 말이다.

그러나 저렇게.. 뭔가 이 승복 어린이나 신라의 관창 같은 기개를 보이면서 짧고 굵게 간 예외적인 사람도 의미가 있으며, 후세가 특별히 기억하고 기릴 가치는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지 않은가? 이것만 생각해도 유 관순은 여러 3·1 운동 참가자 추진자 중의 하나 수준은 넘어서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2. 박 열 + 가네코 후미코: 독특한 아나키스트 계열 국제결혼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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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택시 2 마지막 금사회 에피소드를 보고 나서 영화 '박 열'을 봤더니..
무지개 운수가 의뢰를 받아서 타임머신 타고 100년 전의 일본으로 잠입하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다. (주연 배우가 동일인물.. ㄲㄲㄲㄲㄲ)

아~ 저 시절이니까 도기가 택시가 아니라 인력거를 몰고 있는 거고,
이름이 doggy이니까 "나는 개XX로소이다"라는 시도 썼고..
가네코 후미코는 좀 똘끼어린 여성인 게 고은이하고 인상이 아주 비슷한 거 같고..;;

그렇잖아도 모범택시 2의 금사회 에피소드는 도기가 일부러 교도소로 들어가는 내용인데,
박 열도 대부분의 장면은 주인공이 감방에 갇힌 상태로 진행된다. 감방에서도 미친척 하고 똘끼 부리는 거 캐릭터가 비슷하다.
재판 1심 때 조선 예복 코스프레 한 거는.. 진짜 영락없이 부캐 분장이라도 한 것처럼 보이더라. ㅋㅋㅋ

일제 시대를 다룬 한국 영화가 과연 관동대지진을 다룰 일이 얼마나 되겠나? 이건 애초에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일이 아닌데. 더구나 일본 판 십볼렛 색출전(삿 12:6)을 영화로 보다니.. 나름 흥미진진한 소재를 고른 것 같다.
박 열은 1920년대부터 해방될 때까지.. 20대부터 40대까지 인생 황금기를 일본 감옥에서 무기수로 보냈지만 그래도 어째 살아서 나오기는 한 게 참 특이한 것 같다. (참고로, 조선총독부 본진에다 폭탄을 던졌던 김 익상 의사는 박 열과 비슷한 나이와 비슷한 시기대에 투옥됐지만, 일제 말기 때 결국 의문사했었다)

박 열 저 사람한테 가네코 후미코는.. 진짜 김 학준 선생에게 최 용신 같은 존재로 기억에 각인됐지 싶다(소설 상록수의 모티브를 제공한 실제 인물).
지진만 없었으면 저 두 사람 인생이 실제 역사와는 완전히 달라졌을 텐데.. 어찌 됐을지 참 궁금하다. 공교롭게도 박 열과 김 학준 모두 몰년은 1974년이었다.

* 가네코 후미코는 변호사 후세 다쓰지와 더불어, 대한민국 건국 훈장이 추서돼 있는 단 둘뿐인 일본인이다.;;;
사실, '소다 가이치'라고 조선에 정말 엄청난 온정을 베푼 일본인이 더 있긴 한데.. 이 사람은 법이나 정치, 군사 쪽으로 항일을 한 게 없어서 그런지 훈장까지는 못 받았다. 그 대신 이분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묻혀 있는 유일한 일본인이다.

3. 김 마리아 외: 엘리트 신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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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택시 시리즈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다들 기억 하시려나 모르겠다. 시즌 1의 첫 에피소드에서 제일 먼저 등장한 피해자는 바로 '강 마리아'라는 이름의 여성이었다.

'마리아'는 마치 '에스더'처럼 성경의 인물을 그대로 딴 옛날 스타일 여자 이름이다. 가톨릭에서는 이런 이름을 세례명으로만 쓰겠지만, 개신교 쪽은 그런 개념이 없으니 본명을 그대로 저렇게 짓는 경우가 있었던 모양이다.
특히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으로 전파됐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엔 지식인 신여성 중에 '마리아' 동명이인이 여럿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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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 마리아(1891-1944)는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인지도가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기까지 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 시절에 일본과 미국에서 대학원 급 공부를 한 고학력자였던 데다, 항일 운동 쪽으로도 도쿄 2· 8 독립 선언에다 3· 1 운동까지 할 거 다 했기 때문이다.
그때 붙잡혀 끌려가서 옥고를 치르고, 심문 과정에서 왜경으로부터 잔인한 고문을 당해서 몸이 비가역적으로 상했으며, 이 때문에 지병· 후유증을 평생 달고 살았다. 독신으로 살다가 1944년에 병으로 순국한 것도.. 그 지병이 악화됐기 때문이었다.

저분은 행적과 공로가 워낙 탁월하니 1962년에 진작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유 관순 열사도 요절하지 않았으면 아마 김 마리아와 가장 비슷한 유형의 인물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단.. 저분은 전공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신학은 주전공과 별개로 따로 공부한 것 같은데 말이다. 설마 이공계는 아니고 문과 무언가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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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다음으로, 참 공교롭게도.. 저분과 띠동갑 후배인 동명이인 김 마리아(1903-1970)도 있다.
사진을 검색해 보면 1891년생 원조 김 마리아는 직모 단발머리의 젊은 얼굴인 반면, 1903년생 김 마리아는 더 나이든 파마머리 중년 모습이 주로 나온다.

이분은 이 범석 장군의 부인이었고 광복군 여군+공작원 커리어를 거쳤다. 사격의 귀재였다고 하니 한국의 애니 오클리 같은 느낌도 드는데..ㄷㄷㄷ 여러 모로 원조 김 마리아와는 활동 분야가 많이 달랐다. 업적의 발굴과 조명이 원조 김 마리아보다 훨씬 늦었기 때문에 1990년에야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3) 참고로, 더 늦게 태어난 박 마리아(1906-1960)도 미국 대학원 출신의 엘리트 신여성이었다. 이 사람은 세월이 흐른 덕분인지, 유 관순 같은 이화학당도 아니고 이화 전문학교를 나온지라, '이대 나온 여자'의 원조급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일제 말기 때 황국신민 내선일체 이딴 짓을 해서 친일 부역자라는 오점이 찍혔고, 해방 후에는 부통령 후보 이 기붕의 아내로서 권력욕을 뿜뿜하며 제대로 흑화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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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가 어땠는지는 다들 아시는 바와 같다. (이 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일가족 동반 ㅈㅅ).. 그러니 박 마리아는 김 마리아와 달리 전혀 영예롭지 못한 악녀로 역사에 남았다. 이름값을 제대로 못 했다.

이 '마리아'들과 비슷한 연배와 비슷한 커리어인 임 영신(1899-1977), 김 활란(1899-1970) 같은 인물에 대해서도 알아보면 재미있지만..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니 생략하겠다.

4. 윤 형숙: 일제와 공산당 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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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아니라 호남 지방에서는 ‘윤 형숙’(1900-1950)이라는 여성 열사가 있었다. 이분은 3· 1 운동 당시에 광주에서 만세를 외치다가 일본 헌병의 칼을 맞아 왼팔이 잘리는 중상을 입었다.
이분은 체포된 뒤에도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열악한 곳에서 구금· 투옥돼 있다가 병으로 오른쪽 눈의 시력도 잃고 말았다.

아니, 군인이 전투 중에 부상을 당해서 팔과 눈을 하나씩 잃은 건 영국의 넬슨 제독이나, 독일의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처럼 사례가 있는데.. 윤 열사의 사례는 정말 믿기 힘들다. 사진에 찍힌 모습 중에는 대놓고 저런 신체 장애가 묘사된 게 딱히 없는 것 같다만..
허나, 당대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 행적이 가히 전설적이었는지, 저분은 '윤 혈녀'라는 별명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저분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항일뿐만 아니라 반공에도 진심이었다. 해방 후, 6· 25 사변 중엔 손 양원 목사와 동일한 날짜에 동일한 장소에서 북괴 공산군에 의해 나란히 순교하여 주님 곁으로 가게 됐다.
1950년 9월 28일,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고 대한민국이 서울을 수복했던 날, 적들은 반동 민간인들을 모두 처형하고서 퇴각했기 때문이다. 호남 지방은 영남보다 위도가 더 낮았는데도, 영남과 달리 지역이 몽땅 다 북괴에게 점령 당했었다.;;;

윤 열사는 아까 3번의 마리아 정도의 고학력 유학파는 아니었지만, 살아 생전에 지방에서 지역 교회를 묵묵히 섬기면서 전도사와 교사로 헌신했었다. 세상에 이런 '여수의 유 관순' 같은 분도 있었다. ㅠㅠㅠ

Posted by 사무엘

2026/06/18 08:35 2026/06/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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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5월쯤에 일제 시대 독립운동에 대해서 글을 하나 썼었는데 공교롭게도 올해도 비슷한 시기에 글감이 떠올랐다.
예전에 한번씩 했던 말도 있지만 다른 형태로 다시 정리해 보고자 한다. ㄲㄲㄲ

1919년에 벌어졌던 3· 1 운동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그리고 이를 기리는 삼일절은 오늘날까지도 매우 중요한 기념일이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3· 1 운동은 결과만 냉정하게 따져 보면 당일이 그렇게까지 “기쁜 날”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나라 밖 소식을 접하기가 어렵던 시절에, 선조들은 민족 자결주의라고 어디서 막연히 주워 들었다. 그래서 우리도 당당히 독립을 선언하면 세계에서 다 알아주고 독립을 지지하고 승인하고, 일본이 아닌 한국 편을 들어 줄 거라고 희망회로를 돌리게 됐다.
물론 민족 자결주의 하나뿐만은 아니고.. 거기에다가 고종(암군이긴 해도 미우나 고우나 일단 자국의 군주 얼굴마담이니)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대한 독살 의혹, 1910년대 폭압적인 무단통치에 대한 반감, 스페인 독감과 기타 등등 생활고도 시위에 대한 기폭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완전히 시궁창이었다. 일본은 1차 세계대전에서 말석 끄트머리로나마 승전국이었다.
승전국의 식민지는 저 희망회로의 적용 대상이 전혀 아니었다.
가령, 민족 자결주의는 그 시절에 무슨 인도를 영국으로부터 독립시켜 주라고 만들어진 이론이 아니었다. 일본으로부터 조선도 마찬가지.

그러면 3· 1 운동은 아무 소득 없이 총칼 앞에서 무참히 진압당했고, 한국인들은 헛다리 짚고 뻘짓만 하다가 괜히 일제로부터 무수한 인명과 재산 피해만 당하고 아무 소득 없이 끝났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지금 같은 교통 통신 수단도 없던 시절에 식민지 피지배민들이 지배자를 상대로 전국적으로 이 정도로 대규모 비폭력 항쟁을 조직적으로 일으킨 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웠다.
일본 입장에서는 저걸 총칼로 마구 찍어눌러서 당장 진압은 했지만.. 국제적 위신의 손상에다 내부적인 멘탈 대미지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꽤 크게 입었다.

니들은 식민지를 도대체 얼마나 거지같이 관리했길래 10년도 채 안 돼서 식민지에서 저 정도로 처절한 만세 시위가 벌어졌냐?”
일본은 이웃 열강들로부터 이런 갈굼을 당했고, 그 갈굼이 조선총독부로 전해졌다.
다시 말해, 서구 열강들은 일본을 향해 "당장 조선을 해방시켜 줘라" 이러지는 않았다. 하지만 "너네 식민 통치 방식에 문제가 좀 있나 보다? 이번엔 좀 선 넘었네?" 정도의 눈치는 줬다.

이때부터 쟤들은 과장 좀 보태면 만세의 만 짜만 나와도 발작을 일으킬 지경이 됐다.
조선 땅에서 조금 무리수인 정책을 추진할 때면 “야, 조센징 만세 폭동을 벌써 잊었냐? 시즌 2가 벌어지는 수가 있다?” 이러면서 몸 사리는 시늉 정도는 하게 됐다.

이 때문에 조선 식민지를 관리하는 치안 비용이 크게 증가했고, 이는 일제의 입장에서 식민지의 가성비 하락으로도 이어졌다.
고종 다음으로 나중에 순종이 죽었을 때만 해도 쟤들은 또 만세 시위가 벌어지지는 않으려나 진심으로 긴장했었다. (실제로 그런 일은 없이 넘어갔음)

솔직히 1919년 3월 1일이 지금 대한민국이 세워진 날이라고 하면 그건 좀 정신승리 보정이 개입된 생각일 것이다. 무슨 시오니즘 대회나 밸푸어 선언이 발표됐던 날이 이스라엘 건국일이기라도 하냐?
그리고 1940년대 태평양 전쟁 때 조선인들이 남의 전쟁에 강제로 징용되고 끌려간 건 그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자기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이라도 져야 할 사항이냐? 누구는 약간 나중에 6 25 전쟁 중에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못 지켜 줬던 건 그렇게도 욕하고 비판하던데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만세 시위 하나 했다고 일제가 조선을 니에니에 독립시켜 줬을 리는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시도가 쌓이고 쌓인 게 시너지 효과를 낸 것도 사실이다.

일본을 물리적으로 힘으로 패퇴시킨 것이야 한국의 능력이 아니라 연합국, 특히 미국의 원자폭탄이었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저런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시도가 없었다면 일제의 패망이 곧바로 한반도의 해방으로 이어지지는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카이로 선언에 코리아의 독립이 따로 명시된 게 괜히 이뤄진 줄 아냐?
이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이건 전형적인 “A가 틀렸다고 해서 자동으로 B가 정답이 되는 건 아니다” 논리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정부 수립, 건국 초기부터 관습적으로 삼일절을 아주 성대하게 기념해 왔다. 그리고 그 초창기, 리 승만 할배 시절엔 대한민국이 1919년부터 시작된 나라라고 대놓고 홍보하곤 했다.
특히 저 때는 북괴야말로 1947년인지 48년에 갑툭튀한 듣보잡 사생아 집단일 뿐이고, 남한은 훨씬 전부터 정통이라는 걸 강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념이 오늘날 우리나라 헌법의 전문에도 명시된 것이다.

이거 마치 Watcom C라는 신생 컴파일러가 볼랜드/마소 제품 대비 자기 내력을 뻥튀기하려고 첫 버전을 1.0이 아니라 무려 6.0부터 매겼던 것과 비슷한 행동 같은데.. 뭐 그랬다. 이런 내력이 있다.
본인은 삼일절과 주일이 겹쳤던 날에 교회에서 준비 찬송으로 특별히 만세, 함성, 승리 이런 단어가 들어있는 곡을 골라서 부르곤 했다.

* 흥미로운 사실

(1) 조선은 특이한 지리빨 덕분에 그 시절에 대영제국의 손아귀로 들어간 적이 없는 꽤 예외적인 나라였다. 어디 대영제국 뿐이랴? 병자호란, 신미양요, 병인양요 등에서 다 지고도 멸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건 조선이 자기 힘으로 자신을 스스로 지켜낸 게 아니었다. 인간들의 과학기술과 군사력이 발달해서 지리빨이 약발이 다했을 때 조선은 그 누구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했다.

열강들은 조선을 먹지 않았지만, 그 대신 19세기 말에 조선이 중립을 선언한 것도 전혀 존중해 주지 않았다.
조선은 서양 식민지가 되지 않은 대신, 이웃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그러니 나중에 독립될 때도 여느 대영제국 식민지와는 좀 다른 격으로 취급받게 됐다.

(2) 1920년대에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세계가 조선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일본 편을 드는 것에 절망하고 분노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특히 전간기) 일본은 세계가 일본을 영국 미국과 대등한 열강으로 인정하지 않고 함대 제작 쿼터를 많이 주지 않는 것에 절망하고 분노했었다. ㄲㄲㄲㄲㄲ
이게 지금은 군대를 안 가면 안 되는 나라 vs 군대를 가지면 안 되는 나라의 차이로 이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인물 관련해서도 할 얘기가 있는데.. 분량이 길어지니 이건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6/06/15 08:35 2026/06/1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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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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