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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은 누구는 애초부터 지옥 가라고 창조하셨고 누구는 천당 가라고 창조하셨다.
  • 빛이 없으면 자동으로 어둠이고 어둠이 먼저 있어야 빛이 필요하듯이, 선과 악도 서로 양 날개와 같은 존재이고 상대방을 드러내기 위해서 필요하다.

이런 부류의 모든 거짓 교리들은 성경에 대한 무지의 소치이다(저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면 당신은 복 받은 사람이다).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충족하는 성경의 하나님을 완전 잔인무도하고 무지막지한 신으로 왜곡함으로써 불신자에게는 회개하고 구원으로 이를 통로를 원천 차단하고, 안티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더욱 모함하고 조롱할 빌미를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천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런 교리들이 잘못되었음을 널리 알려야 한다.

내가 예정론에 대해서 무엇보다 분노를 느끼는 건, 죄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왜곡한다는 점 때문이다.

생각을 해 보라. 왜 하나님이 죄인을 지옥으로 보낼 수밖에 없나?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게 할 수밖에 없었나? 주위를 둘러보면 어지간히 평균적인 '교인'들보다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훌륭한 불신자들도 얼마든지 있는데도 우리가 어째서 감히 길거리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가?

죄라는 것이 얼마나 참혹하고 예수님의 보혈을 대가로 요구한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존재인데, 지옥에 가야 마땅한 죄인을 무슨 죄인 역할극 악역 배우쯤으로 미화하는 이 무시무시한 교리는.. 마귀로부터 유래된 게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파라오와 헤롯의 유아 학살,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 일본군 731 부대 생체 실험, 지존파, 북한 정치범 수용소가 전부 연기였다는 말인가?

파라오는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곱게 내보내 줘도 어차피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으며 그게 피차 더 나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열 가지 재앙에 나라 경제를 완전히 말아먹고 험한 꼴을 다 당한 뒤에야 풀어 주게 됐다. 하나님은 파라오의 완악한 마음을 이용해서 그의 마음을 더욱 완악하게 '보호 장치'를 해제해 버리셨으며 재앙을 통해 영광을 받긴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영광 좀 받아야겠으니 너는 좀 이스라엘 백성 풀어 주지 말고 완강하게 버티고 있어 봐라. 나는 그 짓을 시키려고 너를 창조했다”는 절대 아니다!

하나님은 역사적으로 악역을 활용하였으며, 좀 대놓고 말하자면 그들을 조롱하며 갖고 노신 적은 있다. 허나 당사자는 악역을 자처할 필요가 전혀 없었으며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사실 어떤 경우에도 악역을 맡아서는 안 된다. (그 중 제일 해서는 안 되는 악역은 유대인을 심판하는 도구이다.) 악역은 죄이며 죄에는 심판과 형벌이 따를 뿐이기 때문이다. 악역을 자처해 봤자 삽질 잔뜩 하고, 시간· 돈 날리고 손해 보는 건 우리뿐이다.

하나님은 그 파라오인들 구원하고 싶지 않으셨겠는가? 그가 나중에라도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었다면, 유대인들을 악하게 다룬 것과는 별개로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개인의 구원에 관한 한은, 이는 히틀러, 도조 히데키, 스탈린, 심지어 오늘날의 이북의 인간 악마 인간 백정 김씨 같은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이다.

성경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부정하는 운명 예정론을 결코 지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하다고 해서 자기가 무슨 아무 감정도 없는 로봇 컴퓨터이거나, 세상을 그런 기계처럼 만들어 놓은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죄악으로 인해 인간을 지은 것을 슬퍼(repent)했다는 구절마저 성경에 들어있는 것이다. 로봇, 컴퓨터는 '정지 문제' 하나도 풀 수 없는 튜링 기계일 뿐이다. 0과 1만 분간할 수 있을 뿐, 선과 악을 분간할 수는 없으며 죄에 대한 책임도 질 수 없는 물건이다.

인간은 불가항적으로 죄인으로 태어난다. 하지만 하나님 역시 불가항적인 이유만으로 사람을 결코 지옥에 보내지도 않는다. 지옥은 언제까지나 사람이 선악을 스스로 분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로 지은 자기 죄로 인해서 가는 것이며, 인간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자발적으로 거부하여 제 발로 간다. 즉 전적으로 100% 후천적인 요인만 작용한다.

요컨대..하나님에게 미리 아심은 있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에게 이런 운명의 데스티니가 보장되었다는 예정 정도는 성경적으로 물론 있다. 허나, 인간 개개인의 구원 여부를 미리 정해 놓은 예정 따위는 없다. 미리 아심은 read-only operation일 뿐이다. 혼동하지 말자.

기독교의 구원 교리는 딱 체계가 잡혀 있고 논리가 있다. 인간의 이성으로 다 이해할 수 없는 교리를 믿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도 안 되는 황당무계한 낭설을 맹목적으로 떠받드는 게 아님을 알아야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3/05/12 08:36 2013/05/1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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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카마 호 선상 반란 사건

1980년대생이라면 페스카마 호 선상 반란 사건을 기억하시는가?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의 딱 한 달쯤 전인 1996년 8월경에 벌어진 참극이다.

페스카마 호는 원양어선이었다. 어업, 아니 선원 생활이라는 건 정말 고되고 힘든 일이다. 그리고 저기서 하는 일은 대규모 육체 노동이 그렇듯이 정교한 팀웍이 요구되며, 누구 한 명이 실수하면 큰 영업 손해와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원들 조직 내부엔 군대만큼이나 엄한 군기와 규율이 존재해 왔다.

그랬는데, 업무에 미숙하여 폭언과 인격모독--당한 사람의 입장에서 쓴 표현--을 자주 당하던 조선족 선원들과, 한국인 선장 및 선원 사이에 마찰이 생겼다. 그들은 나중에는, 옛날에 공산주의자들에게 현혹되어 기업 무너뜨리려 위장 취업한 붉은 노동자들처럼, 업주가 정황상 도저히 들어 줄 수 없는 임금과 복지를 요구하면서 태업과 꾀병을 일삼고, 정상적인 조업을 지속적으로 방해했다.

아무리 구슬리고 타일러도 말이 안 통하니, 선장은 참다못해 조업을 중단하는 손해까지 감수하면서 인근의 항구에다 그들을 하선시켜 버리기로 결정했다. 그들이 그렇게도 원하던 대로 말이다. 단,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손해들을 걔네들에게 청구하고, 그들을 앞으로 다시는 배를 못 타게 만드는 블랙리스트 낙인까지 업계 전체에다 찍으면서 말이다.

예상 외의 강경한 조치로 인해 돈이고 일자리고 다 잃고 인생이 송두리째 꼬이게 된 그들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7명의 한국인 선원을 한 명씩 꾀어내어 흉기로 잔인하게 살해하여 바다에 던지고, 자기네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조선족 1명, 그리고 범행을 우연히 목격한 인도네시아 선원 3명까지 추가로 살해했다. 총 11명. 그러나 항해에 필요해서 살려 둔 1등 항해사 한국인 선원이 목숨을 건 기지와 노력을 다한 덕분에 범행은 꼬리가 잡혔다.

선원들을 11명이나 살해하고 배를 탈취한 건, 오늘날의 소말리아 해적들도 차마 못 저지른 매우 극악한 범죄이기에 저 조선족 선원 6명은 전원 사형이 선고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지존파가 모조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그들을 선량하고 불쌍한 동포라고 적극 변호하여 조직적이고 잔인한 살인극을 우발 범행으로 둔갑시키고,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시키고, 그나마 수괴 1명만 최종적으로 사형 선고된 것조차 그 미만으로 크게 감형시킨 일등공신은 바로..

'독재자의 딸'(?)을 대신하여 지난 18대 대선에서 대통령이 될 뻔했던 유력 대선 후보였다.
덕분에 이때도 피해자는 싹 묻히고, 오히려 살인범 조선족들에게 국민 성금이 가고, 중국 내부에서까지 “한국에서는 중국인이 한국인을 죽여도 무거운 처벌 안 받는구나” 하는 인식이 퍼졌을 정도였다. 훗날 어민을 빙자한 중국 해적들이 한국 공권력을 아주 우습게 여기게 되는 데에도 이 사건이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해석하는 건 좀 비약일까?

세상에 조선족 포함 외노자들이 사회적 약자이니 인권 보호하자고 외치는 배부른 사람들치고, 자기 바로 옆집에 외노자가 사는 걸 좋아할 사람이 과연 있을지 양심을 걸고 솔직하게 묻고 싶다. (오 원춘이 어디 출신이더라? ㄲㄲㄲ) 세상에 약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약자를 가장한 악인을 분간할 방법이 없으니 생기는 것이다. 주한 미군이 여성을 성폭행· 살해한 것하고 외노자가 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 언론에서는 절대로 동등한 비중으로 다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 피해자 인권은 없고 오로지 불쌍한 척 하는 놈, 가해자 인권만 챙기는 세상을 만드는 데만 열심인 사람이 정권을 잡아서 국정을 계속 그런 식으로 운영했다면 이 나라는 얼마나 더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얼마나 사회 기강이 무너지고 막장으로 치달았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몸서리가 쳐진다. 현 대통령이 발언한 취임사에서 언급되었던 상당수의 건전한 문장을 들을 수 없거나 정반대의 논조로 바뀐 채 듣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

내 블로그의 옛날 글들을 보면 아시겠지만, 본인은 정작 대선 기간 도중에는 정치 발언을 극도로 자제하고 삼가 왔다. 오히려 그땐 <날개셋> 한글 입력기 6.71 작업하느라 바빴다.
겨우 신변잡기· 흠집내기 식의 신문 기사 한두 개를 근거로 특정 후보의 호불호 같은 내 정치관을 표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 지난 일이고 흥분도 좀 가라앉았을 테니, 빼도 박도 못할 검증된 심성, 팩트를 기반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내 의견을 표출해 보련다. 이번 대선 결과는 정말로 축복이고 다행이며, 우리나라가 국운이 최소한 몇 년은 더 남아 있다는 증거이다. 여당이 예쁜 구석이 있어서가 결코 아니라, 야당이 해도 해도 너무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4/27 08:43 2013/04/27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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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무신론자 중에서
“세상에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내세도 심판도 없다. 내 마음대로 얼마든지 상대적인 잣대로 살아도 된다. 그걸 모르고 하나님이나 찾는 무능하고 어리석은 인생들이 너무 불쌍하다. 나는 그들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무신론이 진리임을 알리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하고 내 생명이라도 내어 놓겠다
이렇게 말하고 행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킹 제임스 성경을 알고도 받아들이지 않는 구원받은 크리스천 중에서
“내게는 개역성경/NIV가 최종 권위인 하나님 말씀이다. KJV야말로 6만 구절의 단어를 변개하고 13구절을 후대에 ‘추가’하여 하나님 말씀을 뜯어고친 무시무시한 죄를 저질렀다. 나는 이 엄청난 사실을 정반대로 알고 있는 KJV 지지자들을 계몽하고, 진짜 절대무오한 다른 성경을 대안으로 내놓겠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시겠죠?
두 진영은 서로 계산 결과만 다른 게 아니라 계산 과정과 초기의 변수, 생각하는 전제 조건부터가 완전히 다릅니다.

* 평소의 내 블로그 스타일답지 않게 무지하게 짧은 글이 돼 버렸는데..
그래도 내 생각의 핵심은 다 담겨 있으니..ㅎㅎ

Posted by 사무엘

2013/04/20 08:27 2013/04/20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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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진실
지 만원 지은 <제주 4·3 반란 사건>을 읽고

난 어린 시절부터 근대로 갈수록 우리나라 역사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임진왜란 이후로 우리 민족이 뭔가를 발명하고 정복하고 성공하고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누렸다는 식의 좋은 기록을 거의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백성들은 탐관오리의 학정에 줄곧 고통받았으며 개혁은 한계에 부딪혀 실패하기만 했다. 나중에는 좋든 나쁘든 한 나라의 왕비라는 사람이 외국 침입자에게 살해당하는 희대의 치욕을 당하기까지 하고, 궁극적으로 주권이 외세에 완전히 빼앗기는 것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끝난다. 빼앗긴 주권을 훗날 극적으로 되찾기는 하지만 이것도 우리 힘으로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니며, 덕분에 이념 대립과 국토 분단, 동족상잔 같은 또 다른 비극이 이어진다.

그래도 알고 보니 우리나라 역사에는 비극만 있는 게 아니었고 지도자 복이 없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정말 하늘이 내려 준 은인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지도자가 그 가난하고 열악하고 위험하던 여건 속에서 한반도의 공산화를 반쪽만이라도 필사적으로 막고 올바른 이념으로 국가를 세웠으며, 미국을 든든한 우방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기반 위에서 우리 민족은 기적적인 경제 성장까지 이뤘다. 이 정도면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국가관과 역사관을 지닌 사람이라면 자기네 나라의 내력에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지 않은가?

하지만 있는 그대로 가르쳐지고 대대로 전수되어야 할 대한민국의 역사는 불행히도 심한 공격을 당하고 있다. 공이 과를 객관적으로 월등히 압도하는 지도자가,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후세에 의해 저열한 중상모략과 부관참시를 당하는 꼴을 본인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피아식별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벌어진 민간인 오폭이 조직적인 민간인 학살로 와전되고, 반역자가 소위 민주화 투사로 둔갑하는 것을 보니, 이건 정치색을 떠나서 정말 뭔가 한참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과거 일제의 만행에 그렇게도 분노하던 사람들이 북한이 더 최근에 저지른 잔학한 테러, 무력 도발, 민간인 학살을 왜 그토록 쉽게 잊어버리는가? 사람의 자유를 빼앗고 도덕과 정신을 무참히 파괴하는 사악한 북한의 사회 시스템을 왜 그리도 만만하게 생각하는가?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인터넷을 하면서 북한 김 정은 정권을 비웃을 수 있는 게 누구 덕분이고 무엇 덕분인지 혹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정녕 없는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우리 국민들이 사상이 글러먹어서 북한 정권을 직접 지지하기 때문이 결코 아닐 것이다. 단지, 가슴으로만 애국을 할 뿐 머리와 시스템적인 안목으로 애국을 못 해서 극소수 불순분자가 벌이는 역사 왜곡과 선전 선동, 시체 장사에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다.

북한은 남한을 예전처럼 무력으로는 도무지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에 남한의 정신 기강부터 먼저 무너뜨리고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발달된 인터넷 인프라를 이용하여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우리 사회의 치부만을 편파적으로 들추고, 정부과 국민 사이에 극심한 불신풍조를 조장한다. 국가에 몸바쳐 충성한 애국자를 수구꼴통으로, 반역자를 민주투사로 바꾸는 역사 왜곡은 덤이다. 이것은 남을 교묘하게 쓰러뜨리려는 모든 '악의 무리'들이 분야를 불문하고 공통적으로 취해 온 전략이다.

제주 4·3 사건도 그런 예에 속한다.
책의 저자는 이 사건을 조명하기 위해, 해방 직후에 한반도가 분단된 과정은 두 말할 나위도 없고 아예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에 공산주의 사상이 처음으로 들어온 배경부터 면밀히 파헤쳤다. 그 내역을 보노라면 한반도가 공산화되느니 차라리 일제 치하에 있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왕 먹힐 거면 소련이 아니라 일본에게 먹힌 게 오히려 축복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미국· 일본 등 그 당시에 나름 선진국 축에 들던 나라들은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던 소련 발 공산주의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었다. 그들이 내세우는 프로파간다는 마치 이단 종교 교리처럼 무지한 사람들을 현혹하고 선동하기 매우 좋은 형태였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적인 배경을 모른 채 오늘날의 북한은 공산주의하고는 무관하다는 식으로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임을 이 책은 알려 준다.

한반도 본토에서 떨어져 있던 제주도를 공산주의 체제로 뒤엎으려는 계획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진행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본인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또한 박 헌영은 6·25를 사주한 것 이상으로 4·3 사건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에 씻을 수 없는 반역죄를 저질렀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사건이 좌익과 우익이 모두 연루된 처절한 피의 비극으로 끝난 데는 일차적으로는 '빨갱이'들의 교묘한 위장 전술과 잔학성, 피아식별의 어려움, 그리고 다음으로 상대편 진영에 대한 극심한 불신과 증오, 보복 심리라는 요인이 작용했다.

이 사건은 친북 세력이 일으킨 반란임이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그 어떤 좌편향 인사라도 감히 북한 쪽을 일방적으로 두둔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 성향의 정권 때 반란의 주동자가 명예가 회복되고 훈장이 추서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사건의 피해자인 당시의 제주도민들조차도 이것은 불순분자가 일으킨 무장 반란일 뿐 남북 북단을 반대하는 항쟁(?)이라고는 여기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사건이 그렇게 왜곡되어 재해석되고 있는 것은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책을 덮으면서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하나는 이것이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는 책을 왜 현업에 종사하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응용수학을 공부한 시스템공학 박사가 썼을까? 이 책을 쓰기 위해 막대한 기회비용을 감수하면서 얼마나 많은 문헌들을 읽고 공부해야 했을까?

희극인지 비극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다른 분야에도 이런 예가 종종 있어 왔다. 세벌식 한글 타자기를 발명한 천재인 공 병우 박사는 안과 의사였고, 오늘날 흠정역이라고 성서 공회 성경보다 더 나은 우리말 성경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는 분은 기계공학을 전공한 공대 교수이다. 머리가 시대를 앞서 가는 선각자들이 맑은 영혼과 양심의 자유를 추구하면서 좁은 길을 먼저 간 덕분에, 다른 국민들도 더 똑똑해지고 삶이 더 윤택해져 왔다. 어느 분야든 그 맥이 부디 끊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비정상적인 국가인 북한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이 더욱 궁금해졌다.
숙주가 완전히 죽어 버리면 바이러스 자신도 죽는데, 북한은 왜 하필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조차 가지 않은 최악의 길만 골라서 가 있을까? 북한도 처음에는 그래도 여러 당이 존재하고 주민들을 먹여 살릴 최소한의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주민은커녕 군인들마저 못 먹여 살릴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졌을까? 북한 수뇌부들은 지금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들은 아직까지도 그렇게도 남한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고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많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저자는 정치색이 굉장히 강한 논객으로 세상에 알려져 있고, 사람마다 사상적인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분이다. 그러나 저자의 일부 극단적인 평론이나 주장에 공감하지 못하여 선뜻 받아들이지는 않을 수 있어도, 친일하고는 아무 관계 없는 프로필을 가진 멀쩡한 군사 평론가를 친일파로 몰고 가는 것은 여론 조작과 선동의 결과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또한 북한의 비열하고 집요한 대남 도발사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만큼이나 객관적으로 입증되어 있다. 이것이 정면으로 뒤집히고 반박될 일이란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없을 터이며 4·3 사건에 대한 기록도 그러할 것이다. 팩트가 정치색으로 매도되지 않으면 좋겠고, 저자에 대한 편견 하나 때문에 진실까지 가려지는 일도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말 만에 하나 이 책이 정치색을 띠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정치색은 무슨 불확실한 음모나 들추고 국가에 대한 피해의식과 불신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 대한 감사와 애국심을 북돋우는 건전한 정치색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아직 지 만원 박사 같은 분이 있는 것은 과거에 조선이 러시아 대신 일제에게 먹힌 것보다는 훨씬 더 큰 축복임이 틀림없다. 대한민국의 역사만 제대로 알아도 자부심은 충분히 생기며, 환단고기 같은 위서로 대리 만족을 얻어야 할 필요조차 없다. 이런 책이 널리 읽혀서 전쟁을 겪은 적이 없는 세대에게 공산주의의 해악이 알려지고 자유와 안보의 소중함이 전파되고, 북한의 대남 도발사가 있는 그대로 폭로되며 내 조국은 이런 위태로운 와중에도 오뚝이처럼 굳게 일어선 나라라는 사실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3/02/13 19:26 2013/02/1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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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uewave 2013/02/15 15:05 # M/D Reply Permalink

    씨스템클럽에서 왔습니다. 잘 쓰셨군요. 너무 자세하게 쓰셔 꼼꼼히 읽어야 했습니다.
    앞으로 실천하는 애국시민이 되시길 바랍니다.

    1. 사무엘 2013/02/15 18:42 # M/D Permalink

      아, 거기에도 글이 게재됐군요. 쑥스러워라~ 반갑습니다.
      진짜 꼼꼼하게 읽어야 할 글은 이 독후감이 아니라 책 원문이겠죠..
      저는 '애국'이라는 단어를 논하기엔 많이 미천하고 부족합니다. ^^
      인사 남겨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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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철도를 광적으로 좋아하며, 이것의 영향을 받아서 교통수단의 전반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그래서 비록 기계 공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교통수단의 내부 원리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편이다. 오히려, 내가 겉으로는 전산을 전공한 프로그래머 및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먹고 살고 있지만,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로 가자면, 컴퓨터 쪽의 논리 회로 같은 내부 구조보다는 교통수단들의 내부 구조에서 '신기함과 호기심'은 더 느낀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자동차 엔진의 원리에 대해서 몇 차례 블로그에다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자동차의 제원을 나타내는 각종 숫자들의 의미를 좀 더 몸에 와 닿게 느끼는 방법은 없을까?
더 구체적으로는... 자동차 엔진의 힘과, 자전거 페달을 밟는 내 발의 힘을 서로 비교해 보면 어떨까?

물론 이건 중· 고등학교 시절의 물리 지식만 적용해서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을 구할 수 있다.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물리는 고전 역학만 생각해 봐도 정말 고도의 사고의 추상화를 요구하는 고차원적이고 어려운 학문이다. 특히 미적분이 없이는 이 학문이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이 세상에 겉으로 드러나는 힘을 결정하는 수많은 요소들을 다 계층별로 분류하고 나눠서 각 계층만을 따로 생각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힘, 일, 에너지 등의 개념과, 단위의 차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만 감을 잡아도 물리는 반은 먹고 들어간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정작 학창 시절에는 그런 고민을 할 기회가 없이 그저 입시를 위한 계산 테크닉 암기만 했야 했던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본론으로 들어간다.
요즘 4기통 2000cc급 가솔린 엔진 중형차의 최대 토크가 20kg·m/4600rpm 정도 된다고 한다. 이때 /는 per이라는 뜻이 아니라 at이라는 뜻이다. 'rpm 당 얼마'가 아니라, '이 rpm에서 얼마'라는 뜻. (그리고 kg는 정확히는 kgf 즉, 질량이 아닌 중력의 단위이다)
어지간한 가솔린 엔진의 출력 그래프를 보면 최소 회전수에 가까운 1000~2000rpm대라도 최대 토크의 60%정도는 보통 나오니, 12kg쯤 된다고 쳐 보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품은 의문은, 저 숫자의 의미가 정확히 무얼까 하는 것이었다.
토크는 말 그대로 비트는 힘, 회전력이며 팔씨름에서 이기기 위해 커야 하는 값이다. 그 자체는 하나도 어려울 것 없는 개념이다.

그런데 저게 너무 작은 값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로 오르막을 오를 때만 해도 힘들어서, 일어나 한쪽 페달에다가 내 체중을 다 힘주어 싣는다. 그것만 해도 100kg에 가까운 힘은 족히 걸릴 텐데? 이 힘이 만만찮기 때문에, 요즘 한창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제발 걷거나 뛰지 말라고 캠페인을 하고 있지 않은가.

1톤이 넘는 무게를 끌면서 백수십 마력짜리 출력을 자랑하는 자동차의 최대 토크가 겨우 10~20kg대라고? 쌀 한 가마니 무게가 채 안 될 텐데?
여러분은 그런 생각이 안 드시는가?
하지만 이것이 단견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단위에서 명시된 회전력에서 회전축의 길이이다. 사람이 발로 돌리는 성인용 자전거의 크랭크암은 길이가 겨우 17cm이고 넉넉잡아도 20cm가 채 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자동차의 토크는 이것의 무려 5배가 넘는 1m짜리 회전 반경을 가정하고 명시된 수치이다. kg·m에서 m이 바로 그런 의미인 것이다. 회전력은 회전 반경의 길이에 정비례한다는 건 시소를 타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테고.

똑같이 자전거의 페달에다 체중을 실어도 17cm짜리 크랭크암에다 싣는 것과 1m짜리 크랭크암에다 싣는 것의 차이는 어떨까? 다시 말해 자동차는 공회전 수준에서도 10kg·m 이상급의 토크가 나오니, 이는 자전거의 크랭크암 길이 기준으로는 5배 이상의 50~60kg급의 힘이 기본으로 나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둘째, 사람과 기계가 넘사벽급의 차이를 보이는 변수는 역시 회전수이다.
사람이 크랭크를 돌리는 회전수는 죽을 힘을 다 해 전속력으로 최고 빨리 달릴 때라 해도 100수십rpm이 될까말까이고, 전속력 질주가 아니라면 평소에는 겨우 수십 rpm에 불과하다. 체중을 다 싣는 페달링은 몇 번만 하고 나면 지쳐서 더 못 한다.

그에 반해 자동차 엔진의 회전수는 기본 단위가 1000이다! 시동 유지를 위한 최소 회전수가 이미 수백에서 시작하며, 사람이 체중을 다 실어서 끙끙거리며 공급하는 힘을 자동차는 단위 시간당 적게는 수십 배, 많게는 수백 배나 더 많이 끊임없이 뿜어낸다. 그 힘이 쌓이고 축적되어서(=적분) 차를 굴리는 일을 한다.

즉, 사람이 페달을 체중으로 내리치는 순간적인 충격량이 몇 번 좀 커 봤자, 그건 전기로 치면 순간적인 전압이 좀 높은 정전기에 불과하다. 그것만으로는 사람을 잠깐 찌릿하게는 해도 감전시킨다거나 다른 일은 못 한다. 진짜 승부는 그게 지속적으로 흐르는 척도인 전류에서 결정된다.

이것이 바로, 500ml 우유팩 1개짜리 부피의 엔진 실린더 4개에서 휘발유를 분사하고 폭발시켜서 나오는 힘의 실체이다. 하긴, 가스나 석유가 적은 양이라도 좋지 않은 곳에서 한꺼번에 폭발하는 사고라도 났다간 주변이 어떻게 되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 괴력이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1톤짜리 쇳덩이에다 자전거 체인을 연결해서 사람이 페달을 밟아서 가는 것하고, 1톤짜리 자동차에다 시동 걸어서 액셀러레이터 밟아서 가는 것의 차이가 여기서 유래된다.

끝으로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변속기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자동차 엔진도, 1톤이 넘는 쇳덩어리를 지탱하고 있는 바퀴에다 곧바로 엔진의 크랭크축을 연결하고서 동일한 회전수를 유지하게 할 수는 없다.
엔진 자체의 힘은 본질적으로 비록 사람보다야 강하다 해도 생각만치 강하지는 않다. 앞의 계산에서 보았듯, 5배 좀 해 봤자 토크가 수백 kg 이상으로 뻥튀기된 건 아니다. 그 대신 속도가 훨씬 더 빠르다(높은 회전수).

그래서 높은 회전수로부터 토크를 더욱 뻥튀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변속기이다.
요즘 승용차는 최저단인 1단의 기어비가 3.7에서 4.0 사이이고, 고속인 4단 정도는 돼야 크랭크축의 회전수와 바퀴의 회전수가 1.0x대로 비슷한 직결이다. 5단 이상이 초고속 주행에 속하는 오버드라이브.
정지 상태에서 4단에서 바로 출발이 가능한 자동차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정도로 동력을 제어해 준 뒤에야 자동차는 비로소 나아가기 시작한다.

물론, 자전거에도 고급 차종에는 변속기가 있다. 그러나 자동차의 변속기와 자전거의 변속기는 성격이 무척 다르다.
외형적으로는 자동차의 변속기는 수동 기준으로 기어와 기어가 곧바로 맞물리는 반면, 자전거의 변속기는 체인을 거치는 형태이니 그렇지 않다.
하는 역할도 다르다. 자동차는 높은 회전수로부터 더 큰 힘을 얻는 게 주목적이기 때문에 최고단의 한두 단계만이 오버드라이브이다.

그 반면, 사람이 페달로 자전거의 크랭크축을 회전시키는 속도는 근본적으로 몹시 느리다. 그래서 자전거의 변속기에는 자동차보다 더 다양한 단수가 존재하며, 언덕을 오를 때나 쓰는 몇몇 저단 기어를 제외하면 나머지 단계는 모두 크랭크축보다 바퀴를 더 많이, 최고 2~3배까지도 돌릴 수 있는 오버드라이브이다. 정말 가볍게 잘 밟아지지만 답답할 정도로 안 나아가는 자전거의 최저단이 자동차의 변속기로 치면 3~4단 정도 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런 차이로 인해 자동차에는 변속기가 닥치고 없으면 안 되는 필수품인데 비해, 자전거에는 변속기가 언덕 오르는 걸 편하게 해 주거나 좀 더 고속 주행을 위해 쓰이는 고급 사양쯤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즉, 자동차의 변속기는 힘을 뻥튀기시키지만, 자전거의 변속기는 힘 버프보다는 속도 버프의 목적이 더 크다. 그리고 속도 버프는 전문적인 자전거 라이더 외의 계층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물론, 좋은 변속기를 적절히 잘 활용하면 자전거 운전이 정말 편리해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자전거의 변속기는 비싸고 정교한 부품이며(자동차의 부품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조심스럽게 안 다루면 고장도 잘 나는 편이다.

이렇게 물리적인 디테일을 생각해 보니 자동차가 얼마나 위대한 발명품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또한, 연소나 폭발 없이도 결코 작지 않은 크기의 힘을 순간적으로나마 낼 수 있는 포유류의 근육에 대해서도 생물학적으로 경이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자전거용 자동 변속기가 있다면, 언덕을 오를 때도 비록 속도가 느려질지언정 평지일 때와 동일한 부담이 페달에 걸릴 것이고, 그러면서 평지에서는 알아서 고속 주행도 알아서 되니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아무래도 무게, 가격 등의 수지가 안 맞을 것이다.. ^^;;

끝으로, 자동차가 사용하는 내연 기관이야 저렇게 회전수별로 경제 운전이 가능한 대역과 최대 토크가 나오는 대역이 따로 존재하고 기복이 있는 반면, 전기 모터는 회전수에 관계없이 비교적 균일한 토크가 나온다고 한다. 내가 그쪽 디테일은 잘 모르지만 말이다.
수백~수천 톤에 달하는 KTX가 정지 상태에서 출발할 때는 얼마나 큰 회전력이 필요할 것이며, 그걸로 시속 300까지 내려면 또 얼마나 높은 회전수가 필요할까? 당연히 톱니바퀴로는 이 정도 스케일의 동력비 변환은 절대 불가능이다.

물론 일반 도로 위를 고무 타이어로 달리는 게 아니라 레일 위를 쇠바퀴로 달리는 것이기 때문에, 정지 마찰력이 작은 것이 고속화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게다가 철도는 전차선을 설치하여 동력비 변환이 유리한 전기로 달리는 게 가능하니 철도는 여러 모로 효율이 좋은 육상 교통수단이라 할 수 있다. 자전거와 자동차 얘기만 하려고 했는데 또 글을 철도로 맺게 되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ㅋㅋㅋ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3/01/29 08:30 2013/01/2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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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철현 2013/01/29 09:56 # M/D Reply Permalink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오늘 폰트(=서체) 느낌이 새로워서 ...
    혹시 무슨 변화를 주셨는지요?...
    (아니면 제 시력에서 스스로 무슨 변화가 생겼는지(?)...)

    1. 사무엘 2013/01/29 10:37 # M/D Permalink

      빠른 댓글에 감사합니다.
      홈페이지의 글꼴이나 디자인이 바뀐 건 없으며 예전 그대로입니다. ^^

  2. 정 용태 2013/01/31 10:29 # M/D Reply Permalink

    건강히 지내시는지요 ^^ 밤샘과 일정에 쫒기는 생활을 하다보니 그동안 인사를 거의 못드렸네요...
    주일도 일요일 간신히 지키고 있고요 ㅠ 그래도 올려주시는 글들은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이번글도 읽으면서 기관차의 동력부분의 원리나 힘 견인력들이 마구마구 떠오르는군요 ^^

    1. 사무엘 2013/01/31 23:22 # M/D Permalink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
      용태 님도 직장과 개인일 때문에 엄청 바쁘신가 보군요.
      그래도 종종 근황과 소식이 있으면 좀 알려 주세요. ^^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저는 전동차의 내부 구조에 대해서 더 집중적으로 자세히 글을 쓸 생각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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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 고속도로에는 서울-부산 전구간을 통틀어서 수 km 이상 곧은 직선이 그것도 지리적으로 정확하게 남북 수직으로 뻗은 곳이 딱 두 군데 있다.
바로 죽전 휴게소에서 신갈 IC까지의 용인 시내 구간과, 좀 더 아래의 천안 북부 일대의 성환 활주로 구간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이들 구간은 유사시에 고속도로가 아니라 전투기의 활주로로도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는 아주 중요한 특징이 있다.
활주로 공용 구간은 여기 말고도 김천 아포 역-대신 역 사이의 경부선-경부 고속도로 평행 구간과, 울산-부산 사이에 더 있기도 한 것 같은데, 저 성환 활주로와 용인 구간은 100% 확실하고 아주 유명한 구간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들 구간은 무엇보다도 고정된 형태의 중앙분리대가 없었으며(있더라도 쉽게 걷어낼 수 있는 임시 가공물 형태),
아스팔트 대신 시멘트 포장이 유지됐고 도로 주변에 가로수나 가로등도 없이 황량한 벌판이었으며, 인근에는 군 초소와 보급소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예전에야 유사시를 대비해 경부 고속도로의 활주로 공용 구간을 틀어막고 진짜로 비행기를 띄우고 내리는 훈련을 하기도 했다지만, 지금은 그러기에는 고속도로에서의 자동차 통행량이 너무 늘었고 대체 활주로 시설도 마련된 관계로, 그런 용도는 최소한 20세기 말부터 진작에 폐기되었다. 지금은 그 구간도 모두 고정된 중앙분리대가 생기고 아스팔트 포장으로 바뀌어서 다른 구간과의 차이가 없어졌다.

게다가 용인-서울 구간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로 주변에 다른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버렸고, 천안 쪽도 북천안 IC가 추가되면서 육교 형태의 장애물이 중간에 하나 생겼다. 활주로 공용의 흔적은 이렇게 점점 사라지는 중이다.
하긴, 활주로 공용 구간 인근의 부지는 개발을 제대로 할 수 없으며, 차량이 중앙선을 침범하는 교통사고가 나기도 더 쉽기 때문에 민간인의 입장에서는 좋을 게 별로 없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독일의 아우토반은 활주로 겸용을 염두에 두고 고속도로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덕분에 포장도 필요 이상으로 아주 두껍고 튼튼하게 돼 있다고 한다. 그때는 사람들이 집집마다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시대가 아니었으니, 남는 도로 용량도 활용하고 그게 일석이조의 좋은 방법이었음이 틀림없다. 게다가 아우토반을 처음으로 이걸 계획하고 만든 주체가 전쟁광 나치 독일이기도 했고.

미국 같은 땅 넓은 나라는 굳이 도로를 빌리지 않더라도 공항 짓고 활주로로 쓸 땅은 넘쳐난다. 그리고 미국의 자동차 전용 도로는 중앙분리대 정도가 아니라 상· 하행이 아예 가로수로 가로막힌 채 도로가 따로 건설된 경우도 많다.
하지만, 광활한 사막을 넘나드는 interstate highway 중에는 진짜 허허벌판에 끝없는 직선만 펼쳐진 도로도 있는데 이런 곳에 비행기가 뜨고 내리지 못하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하물며 북한의 고속도로는 역시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김 일성의 집권 말기인 1992년에 완공된 평양-개성 고속도로는 북한의 고속도로 중에서도 이례적으로 선형이 매우 곧다. 지나가는 차 없지, 도로폭 넓지(6차선), 선군정치이지, 당연히 활주로 활용을 염두에 두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끝으로, 고속도로와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남아메리카에는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이스터 섬이 있다. 이 코딱지만 한 섬에 있을 건 다 있어서 공항도 있다. 가장 가까운 대륙 영토인 칠레까지가 직선으로 3000km에 달하기 때문에 배만으로는 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공항은 활주로가 이용객에 비해 대단히 크고 길다. 그 이유는 이 공항이 우주 왕복선의 비상 착륙 활주로로도 공용할 수 있게 NASA의 지원을 받아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자동차+비행기가 아니라 비행기+우주 왕복선 구도가 된 셈.

Posted by 사무엘

2013/01/26 08:33 2013/01/26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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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지원 2013/01/26 09:55 # M/D Reply Permalink

    오, 정말 흥미로운 사실들이네요. 어디선가 고속도로가 전부 직선이 아닌 이유는 졸음운전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들어서 지도에서 저 구간을 보면 밤에 졸음운전 사고가 많이 나지 않으려나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그런 목적이 있었군요..

    1. 사무엘 2013/01/26 16:11 # M/D Permalink

      네, 맞습니다. 자동차 도로에는 과속과 졸음 운전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커브가 들어가기도 합니다. 물론 그래도 도로의 설계 속도인 80~100km/h대로 충분히 안전하게 통과 가능한 반경이지, 급격한 드리프트가 들어가는 건 아닙니다.
      이에 반해 활주로 공용 구간은 커브도 없고 경사도 거의 없는 진짜 평탄한 도로가 수km남짓 이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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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 대로 거둔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가 일관되게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분명한 원칙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성경의 하나님은 철저하게, 너무 재미없고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할 정도로 세상에 공짜란 없다. 심은 대로 거둔다. (사람에게) 자유 의지는 철저히 존중하고 보장하나, 모든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f(x) → y식의 인과응보 사고방식의 신봉자라는 것이다. 오로지 복음과 구원만이 공짜이다.

물론 인간이 만든 세상 제도는 합리적이지 못하며 부정부패와 비리가 있을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이 이를 일시적으로 허락도 하시기 때문에, 심은 대로 거둔다는 법칙이 언뜻 보기에 잠시 통용되지 않는 것 같은 면모가 보이기도 한다(전 9:11). 그러나 하나님의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결국 인과응보가 성립하게 된다.

(1) 속지 말라. 하나님은 조롱당하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또한 그것을 거두리라. (갈 6:7)

하나님께서 결코 조롱 당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이냐 하면,
“아, 성경을 보니 A를 하지 말라고? 그럼 B에 대한 언급은 없으니 A 대신 B처럼 하면 되겠네?”라든가,
“지금까지 나쁜짓을 좀 했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던 걸 보니,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이렇게 해 먹어도 되겠군? ㅋㅋ”

같은 패턴으로 요리조리 잔머리를 굴리는 게 하나님 앞에서 안 통할 거라는 말이다. 성경을 어떻게든 삐딱하게 해석하고 자기 식대로 갖다 붙이려 하는 불순분자의 심리와 의도를 하나님이 모르실 리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문장 뒷부분의 의미는 말 그대로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단순하면서도 굉장히 성경적이고 합리적인 속담이다.

(2)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도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여 누구든지 일하려 하지 아니하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였노라. (살후 3:10)

성경은 단호하다. 일을 해서 스스로 돈을 벌지 않을려거들랑 밥도 먹지 말라고 그런다. 성경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유야 어쨌든 다 큰 성인이 백수나 니트족으로 있다거나, 정상적인 근로 의욕마저 상실시킬 정도로 이상하게 돌아가는 퍼 주기식 '무상' 복지 포퓰리즘 같은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모습이다. 이삭 줍기를 생각하면 알 수 있듯, 성경이 말하는 복지는 복지 수혜자라 해도 최대한 일은 하고서 먹을 것을 얻는 구도이다.

그리고 성경은 그런 건전한 근로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사람마다 사유 재산과 빈부 격차를 명백히 인정하는 논조이며, 통념과는 달리 심지어 돈으로 돈을 버는 것조차도 전면 금기시하지는 않는다. 탐욕을 그렇게도 정죄하고 싫어하는 성경이 한편으로 그런 자유주의 경제관도 지지한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성경적인 사고방식과 공산주의가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자'들더러 읽으라고 쓰여진 성경에 '불신자만도 못한 자'라는 표현이 있을까, 없을까? 성경에서 쓰이기에는 다소 강하고 자극적인 비하 표현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성경에 나온다. 출처는 바로 딤전 5:8. 성경이 규정한 책망 대상이란 바로 '자기 힘으로 일해서 돈 벌어서 가정을 부양하지 않는 자'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단,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성경의 모든 법칙에는 예외도 있다. 저건 다치거나 아파서 정말 타당한 이유 때문에 일을 못 하는 사람들까지 쫄쫄 굶으라는 소리는 물론 아니다.
또한, 잘못된 사회 제도 때문에 뼈 빠지게 일하고도 가난을 면치 못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다. 성경은 공산주의가 생길 빌미를 제공한 악덕 자본가나 기업주, 지주, 탐관오리들을 야고보서 5장에서 신랄하게 디스해 주고 있다. 그러니 성경의 논조가 특정 이념 편향적이라는 오해는 없기 바란다.

(3)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출 21:24; 레 24:20; 신 19:21)

갈수록 점점 더 중요하고 진지한 주제가 나온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원조는 함무라비 법전이 아니라 성경(모세 율법)이다!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 구약에 무려 세 번이나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리고 이 표현에 대해서 안타깝지만 오해가 엄청 많다.

하나님이 세우신 준엄한 원칙은, 뭔가 사고가 발생하고 안 좋은 결과가 야기되었다면 그 일을 저지른 사람이 상황을 모조리 수습하고 원래대로 복구해야 한다. (그런데, 이건 당연한 거 아닌가?) 가끔은 위자료까지 추가해서 말이다. 도둑질을 하다가 붙잡힌 사람이 배상을 n배로 해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형법은 현대의 법보다 처벌이 전반적으로 훨씬 더 엄하다.

그리고, 뭔가 영구적인 손해를 입혀서 복구가 불가능하다면? 그러면 그 피해를 가해자도 똑같이 당해야 한다. 사형 제도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성경적으로 지지를 받는 대표적인 법규이다! 고의성이 있었는지 같은 변수가 참작되긴 하지만, 대원칙은 이러하다. 이런 법에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수준의 높은 공의만이 담겨 있을 뿐, 오늘날 같이 죄인의 무슨 교화 가능성이 어떻고, 가해자의 불우한 성장 배경 운운하는 배부른 변수 따윈 없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노릇인지 오늘날은 이게 완전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법칙으로 인식되어 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이슬람권 국가에는 여자 얼굴에다 염산을 끼얹은 남자에게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되갚으라는 판결이 이따금씩 나는가 보다. 이슬람 국가들이 다른 데서는 좀 꼴통 같은 짓을 하지만, 저런 일부 윤리 규범은 성경의 사고방식을 이어받아서 아주 바람직하게 잘하고 있다.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여자의 인생을 이것 말고 무슨 방법으로 아쉽게나마 보상하냐 말이다.

그리고 사실은 인간에게 내재된 보복 심리에 비해서 성경의 원칙이 오히려 훨씬 더 자비롭다고 볼 수 있다. 정확히 당한 만큼만 갚으라고 명령하니까 말이다.

원래 인간이란 나쁜 일을 되로 받으면 말로 돌려주기를 좋아하는 종족이다. 북한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깽판 칠 때 공갈을 어떻게 하던가? “도발 시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겠다”고 절대로 안 그런다. “천 배, 만 배로 보복하겠다”고 그런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행했다가는 지구는 헬게이트로 변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국민을 대표해 보복이라는 걸 딱 당한 만큼만 집행해 주는 공권력을 제정하신 것이다.

아, 물론 성경에는 마 5:38-39처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듯이(?) 보이는 명령도 있다. 원수를 사랑하고,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을 돌려대라는 구절도 있다. 그런데 그건 구원받은 예수쟁이라 해도 정말 성령 충만한 상태가 아니면 지킬 엄두를 못 내는 엄청난 명령이다.

진짜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친아들을 흉악범에게 잃고 나서는 그 흉악범을 용서하고 양자로 삼을 자신 있겠는가?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이 세상에서 왼뺨 맞고 나서는 오른뺨 돌려대고, 강도가 웃옷을 요구하면 속옷까지 내어 줄 참인가? 그건 그저 적당한 연기, 가식, 위선 떠는 구실로 인용하라고 있는 말씀이 절대로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세상의 법이라는 건 그런 성령 충만한 크리스천을 기준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worst를 기준으로 삼고 만들어야 한다.

구약 율법이 뉴턴 고전 역학이라면, 천년왕국 헌법 내지 신약 계명은 상대성 이론 정도의 위치에 대응한다 하겠다. 시간이 가는 속도가 차이가 생기고 질량이 그대로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고 말하는 상대성 이론은, 고전 역학보다 더 고차원적인 자연 법칙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 역시 고전 역학을 바탕으로 아주 극단적인 문맥에서 물리학의 영역을 확장한 것일 뿐, 기존 고전 역학의 영역을 정면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또한 어지간한 현실 세계를 재현하는 게임 물리 엔진 정도를 만드는 데 상대성 이론이 동원되지는 않는단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는가?

(4) 그런즉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완료되면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5)

우리 속담 중에서는 “꼬리가 길면 밟힌다”가 성경 말씀과 정확히 같은 문맥은 아니지만, 그래도 비슷한 심상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이 준엄한 말씀이 정확히 적용되어 패가망신한 사람이 인류 역사상 얼마나 많았을까?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는데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고 죄의 결실은 사망이니, 연역법에 따라 사람은 누구나 죽고 더 나아가 지옥에서 멸망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5) 오직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들이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그것에 대하여 회계 보고를 하리라. (마 12:36)

(6)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심판을 집행하사 그들 가운데 경건치 아니한 모든 자들이 경건치 아니하게 범한 모든 경건치 아니한 행위와 또 경건치 아니한 죄인들이 그분을 대적하여 말한 모든 거친 발언에 대하여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유 15)

위의 두 구절은 우리의 말과 관련하여 단 하나도 빠짐없이 “심은 대로 거둔다”를 설파하는 무서운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이 세상의 저명한 개독안티들이 남긴 신성모독 발언과 독설들.. 다 자기가 했던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날이 온다는 뜻이다.

구원받은 신자라도 마찬가지이다. 육신적인 동기로 남긴 실언이나 폭언, 남에게 덕이 되지 않는 말이나 심지어 음담패설 같은 것은 결국 자기에게 올무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혀를 상대로 심하게 디스를 거는 야고보서 3장을 묵상할 필요가 있다.

만약 걸리는 게 있다면 지금 당장 기도로 '온라인'으로 회개하여 하나님과 미리 정산하는 게 좋다. 마치 경찰서 정모를 당하듯 훗날 하나님을 오프라인으로 대면하여 정산을 하게 되면 굉장히 민망하고 부끄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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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까지 신구약 성경에서 동일하게 발견되는 “심은 대로 거둔다” 원칙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것은 자녀에게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가르쳐야 하는 원칙이라 생각된다.

사람들은 죄를 죄라고 생각하지 않고 죄를 짓는 것은 좋아하지만, 참혹한 죄의 결과물을 거두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심상에 대한 대리 만족을 시켜 주는 폭력적인 영화나 게임에 자연스럽게 끌리게 되고, 형벌도 가능하면 곧이곧대로 엄하게 집행하지 않고 어지간한 결과 수습은 그냥 세금으로 다 때우려 한다.

이렇게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안일한 사고방식의 후유증은 결국은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세금으로 도저히 감당을 못 할 정도로 교도소 운영 비용이 증가하고 있으며(지금 미국처럼), 흉악 범죄는 갈수록 증가한다. 법을 무서워하지 않고, 교도소나 가고 싶어서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까지 생긴다. 그 반면, 흉악 범죄 피해자의 인권은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

난 구체적인 물증이 없기 때문에 논쟁까지 할 생각은 없지만, 사형 집행이 흉악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거나, 폭력적인 영화나 게임이 범죄율 증가와 무관하다는 식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나는 이런 식으로 “성경적으로 단순한 원론적인 인과응보” 사고방식을 좋아한다. 몇 가지 예를 열거하자면,

  • 무단횡단을 하다가 누가 차에 치였다면, 지금 현행법보다 보행자의 과실을 훨씬 더 높게 잡아야 한다.
  • 정당방위도 지금보다 훨씬 더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
  • 젊은 여자가 만취 상태로 심야에 혼자 택시를 타고 가다가 기사로부터 성추행/성폭행을 당했다면, 물론 기사는 크게 처벌 받아야 마땅하지만 여자도 잘한 게 없으며 어느 정도 지탄받아야 한다.

이런 식.
물론,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저런 원칙을 곧이곧대로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법학자나 그쪽 계층에서 변명을 할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인간이 능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성경대로 행하지 못한다는 자각은 있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한 주제만 더 다루고 글을 맺겠다.
여러분은 노예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성경이 노예 제도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가?

노예의 정의와 범위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대동소이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보통은 어떤 사람이나 국가 백성이 평생 벌어도 갚지 못할 빚을 지게 됐을 때, 죽지 않는 대신 신분을 박탈당하여 노동으로 빚을 갚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제도가 생겼다. 개인적으로는 집안이 쫄딱 망했거나, 아니면 국가적으로는 국가가 전쟁에서 져서 패전국의 백성들이 천문학적인 액수의 전쟁 배상금을 나눠 갚아야 할 때 말이다.

노예를 상대로 발생하는 가혹한 인권 유린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게 몸으로라도 안 때우면 그 빚은 누가 상환하며, 전쟁 때문에 국가가 쑥대밭이 된 건 누가 복구하고 수습하는가? 노예 제도가 있기에 앞서 죄가 있었고 그로부터 파생된 전쟁 같은 참혹한 행위가 있었다는 뜻이다. 이 역시 “심은 대로 거둔다”로 귀착될 뿐이다. 또한 모든 인간은 구원받기 전까지는 어차피 영적으로 죄의 노예이기도 하고. 성경이 과거의 그런 현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구시대적이고 반인권적이라고 딴지를 거는 건 일고의 가치도 없는 개드립이다.

또한 구약의 이스라엘 율법은 노예를 영원무궁토록 부려먹지 말고(정확히는 노예도 아니고 그냥 종 servant이지만), 주기적으로 풀어 주라고 명시한다. 게다가 거의 반세기 간격으로 국가 경제와 국민 신분을 아예 전부 reset시키는 아주 파격적인 제도를 통해, 부의 세습과 지나친 양극화를 막고 있다는 점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3/01/12 08:39 2013/01/12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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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말 하기가 왜 이리 힘든지!

1. 선을 악이라, 악을 선이라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세상을 30년 가까이 살면서 가끔은 내 모습에 내 스스로 좀 놀랄 때가 있다. 그 면모 중 하나는, 내가 어쩌다가 사상이 6· 25를 겪은 중장년 어르신 급으로 친체제 우성향이 강해졌나 하는 것이다. 부모님하고도 정치 얘기로 다툴 일 없고, 심지어 교회 내 몇몇 어르신들하고도 아주 친하고.. ㅎㅎ

난 사회 구조 적응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적성이나 진로만 보면 절대로 친체제 쪽으로 갈 수가 없는 성향이다. 의사, 변호사 같은 기득권층 직업도 아니고(그리고 사실 요즘은 그런 직업 종사자 중에도 오히려 좌성향 많다) 상위 0.1% 이내에 드는 부자도 아닌데 도대체 내가 누구 좋으라고,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인터넷 네티즌들의 대부분이 좋아하지 않는 사회관· 정치관을 피력하는 것일까?

이미 몇 차례 수위 센 글을 통해 밝혔듯이, 본인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거의 모든 문제는 전적으로 (이 쳐죽일 놈의) 북한 때문이다”에 아주 강력한 뿌리를 두고 사회관, 국가관, 역사관, 정치관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본인은 교회사를 보는 것과 완전히 똑같은 맥락으로 우리나라 현대사를 본다.

옛날에는 악의 세력들이 성경을 찢고 빼앗고 불태웠지만, 이제 성경을 물리적으로 없앨 수 없어졌으니 성경 자체를 변개하고 물먹이고 있다. 오늘날은 기독교를 무력과 박해로 없앨 수 없으니, 이제 기독교 자체를 교리적으로 변질시키고 정체성을 흐려 놓고 있다.

그것과 동일하다. 이북의 저 사악한 무리들은 이제 우리나라를 무력 침략으로 무너뜨릴 수 없으니 동일한 책략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네 사정이 워낙 막장이 되어서 positive를 할 수 없으니, 반대로 남한의 좌파 지식인들을 동원해서 우리나라를 정신적으로 까내린다.

그래서 북한에 비해서는 새발의 피도 안 될 몇몇 극소수 인권 침해나 부조리, 그리고 피아 식별도 제대로 안 되던 정말 어지러운 상황에서 어떻게든 공산화를 막느라 어쩔 수 없이 과거에 벌어졌던 비극만 자꾸 들춘다. 그 과정에서 앞뒤 문맥 떼어내고 닥치고 남한의 공권력만 나쁜놈으로 만든다. 무슨 되도 않은 친일 공화국 이러면서 우리나라가 아주 더럽고 나쁘게 시작했고 생기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식으로 몰고 간다.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그렇게 안 했으면, 결국 우리나라는 북한 치하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는데도!

그러나 잘 들어라. 한반도가 통일이 안 되고 있는 이유는 100% 절대적으로 김씨 부자가 자기 체제를 유지하려고 주민들에게 자유를 안 주고 국가를 개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은커녕 북한과 외국으로서의 왕래도 자유롭게 안 되고 있는 이유는 전적으로 북한 수뇌부 때문이지 무슨 일본이나 미국 같은 외세 때문이 아니다. 내 홈페이지의 방문자라면 이 당연한 사실을 절대로 헷갈리지 말기 바란다.

분단이나 6·25의 책임도 절대적으로 소련에게 빌붙은 기회주의자 김 일성 이래로 북한 수뇌부 때문이지 다른 누구 때문이 아니다.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분단은 기독교로 치면 교리로 인한 분리와 완전히 똑같은 맥락이다. 이게 무슨 남북 공동의 책임이거나 남한 이 승만 정부의 잘못이란 말인가!

난 저런 식의 개념 없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기분이 상하고 불쾌하고 싫다. 나도 이 나라에서 '높으신 분'들이 하는 게 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저런 인간들의 붉은 선동으로부터는 내 나라의 체제를 꼭 지켜야겠다는 굳은 결의를 하게 된다.
외국에 나가 보면 애국자가 된다고 그러던가? 난 정말 애국자가 되고 싶지 않았는데 인터넷 SNS에서 나도는 좌경화 얘기들을 보면 기분이 급 우울해지고, 애국자가 되지 않을 수가 없어지는 것 같다..

북한은 어디 무슨 친일 청산 제대로 한 줄 아나? 한 번만 더 말하겠다. 걔들이 건국 초기에 자꾸 무력으로 시비를 거니까 일제에 협력했던 경찰과 군 간부가 자꾸 다시 필요해지면서 친일 청산을 다 무마시켰다. 일본군 장교 출신 박 정희도, 김 구의 암살범 안 두희도 다 그것 덕분에 6·25 전쟁 때 사면· 복권된 거 모르나?

난 북한 때문에 우리나라에 국가보안법이라든가 일부 자유의 제약이 존재하는 것도 적극 이해하며 국가의 정책에 호응한다. 독일에서 철십자가나 나치식 경례가 절대 금지되어 있는 것과 완전히 똑같은 경우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라. 국민을 온통 억압하는 선군정치 병영 독재 국가와, 국가 체제가 개방된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서로 적대 관계로 이웃해 있는데, 둘이 인구와 국력이 비슷하다면 같은 조건에서 어느 쪽이 전쟁을 일으키기 더 쉬울 것이며, 상대방에게 간첩 보내고 유언비어, 거짓 선동을 퍼뜨리기가 어느 쪽이 더 유리하겠는가!

나의 이런 일관된 사고방식은 누가 험담하듯이 정교 일치 사고방식 때문이 절대 아니며, '수꼴' 기질의 어르신들의 영향을 받은 것도 절대 아니다. 가정이나 교회의 주변의 어느 누구도 내 정치관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나도 대학 다닐 때까지만 해도 호주제, 국가보안법이 뭔지도 모르고 정치의 '정'짜도 모르던 평범한 정치 무관심형 청년이었다. 그런데 좀 적당하게 속여야 속아 주지, 정말 성경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한눈에 봐도 치우침이 심하고, 자기보다 뛰어난 위인에 대한 능멸과 국가 정체성 부정이 가히 도를 넘어서는 수준이니, 정이 확 달아나고 나는 나만의 색깔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논리의 완전성(completeness)을 위해, 현실성을 제끼고 만에 하나 극한, 극단적인 경우를 생각해 보자.이 세상이 완전히 '좌빨'이 말하는 나쁜 시나리오대로 됐다고 치자. 그래 봤자 배부르는 건 재벌? 친일파? 일본? 미국? 이런 데밖에 없다. 나는 최악의 경우 거지가 될 수는 있어도, 그들이 나를 강제로 정치범 수용소에 집어넣거나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날 고문하고 때리고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꼴'이 말하는 나쁜 시나리오대로 되면..? ㅉㅉㅉ
이 세상엔 더 잃을 게 없어서 세상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회 구조 비관하고 통치자 욕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나, 나는 우리나라가 망하면 잃을 게 많은 사람임을 밝힌다. 예수 믿을 자유, <날개셋> 한글 입력기 만들 자유, 철도 오덕질 할 자유 등!

정말, 진심으로 말한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가 하나라도 없어졌거나 핵무기 시설이 폐쇄됐거나, 대남 적화 기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거나, 북한에 사상과 종교의 자유가 찾아왔거나, 평양 이외의 지역 출신인 탈북자의 증언이 바뀌었다거나 하면 난 이런 강경한 정치관을 언제라도 철회하겠다. 김 대중, 노 무현 욕하던 것도 다 취소하고 고인에 대해 막말한 게 있다면 사과하겠다. 햇볕정책이 성공적인 구석이 있다고 인정하겠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돈이 한두 푼이 들어간 게 아닌 일을 밀어붙여서 지금까지 북이 바뀐 게 무엇이며, 이뤄진 게 도대체 뭔가? '선한 열매'가 도대체 뭐가 있는지 내게 설명할 수 있으신 분?

이걸 비판하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을 비판해야 하겠나? 박 정희의 경제 개발을 정말 집요하게 파헤치고 폄하· 비하하는 그 근성의 10%만 여기에 좀 균형 있게 기울여 주면 어디 덧나나?
그런 팩트에는 귀를 꽉 닫고 오로지 자기가 싫어하는 정치인 욕밖에 할 줄 모르면, 그건 나랑은 인연 끊고 의사소통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지 내가 무슨 해석을 더 할 수 있겠는가?

나도 한때는 남북이 계속 사이가 나빠야 자기 배가 부를 '안보 장사꾼' 집단에 대한 생각도 다 해 봤다. 북한도 남한을 사실은 호의적으로 보고 있었고 잘못을 뉘우치고 서로 평화와 공존을 모색하고 있었는데, 그 진심이 외세 같은 다른 악의 배후에 의해 왜곡되어 감정 대립을 고조시켰다는 식의 주장.

그런데 최대한 선하게 봐주고 싶었는데 이제는 정황상 도저히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게 되었다. 북한 헌법을 보나, 하는 짓거리를 보나, 탈북자의 증언을 보나, 역대 대남 적화 지령들을 보나!

이제는 정말 일본군 장교 출신이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보다는, 탈북자보고 변절자라고 부르는 종북 매국노가 버젓이 정계에 올라 있는 사실에 훨씬 더 분개하고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주적을 주적이라 하지 않고 남침을 남침이라 하지 않고, 학살자를 학살자라 하지 않으며, 우리가 계속 갖다 바치기만 하면 북한은 언젠가 변할 거라고 거짓 평화를 외치는 정치인이 버젓이 활보하는데 왜 경각심을 갖는 사람이 없을까?

도대체 이 승만· 박 정희가 아무리 재임 중에 부패하고 잘못을 저지른 게 있기로서니, 그들이 그런 종북 인사들을 능가할 정도로 죄를 지은, 김 일성· 히틀러· 스탈린 급의 반역자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오로지 독재자의 딸(별로 나쁜 독재자도 아니었더구만)만 이유를 불문하고 낙선시키면 되지, 학살자를 학살자라 하지 않고 적을 적이라 하지 않으며 남침을 남침이라 하지 않는 인간이 대통령이 되는 건 아무 상관 없는가? 부정부패 병크, 도덕성 막장은 어디 반대편 진영엔 없는 줄 아는가?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는 않다)

저게 무슨 상식이 통하는 사회이며 사람 먼저인 사회인가? 저기서 사람이란 김씨 왕조를 뜻하는가 보다? 그 후보가 말하는 안보/대북 정책은 내가 보아하니 북한이 남한에 아무 군사 위협이 되지 않으면서 그냥 무슨 아프리카 국가처럼 평범하게 빈곤한 국가일 때나 말이 되고 성립하는 것들이다.

난 나와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이 당선되는 걸 원치 않는 게 아니다.
단지 우리나라 체제를 증오하는 반역자가 정권을 잡는 걸 원치 않을 뿐이다.
밑 빠진 독에다 물 붓듯이 또다시 북에다 일방적으로 퍼 주던 시절, 미군 철수와 국가 보안법 폐지, 연방제 통일이 논의되던 시절로는 정말 돌아가고 싶지 않다. 정말로..

북한에서 '리명박 역적패당' 이러면서 쥐새끼 얼굴을 과녁으로 그려 놓고 사격 훈련을 하는 걸 보니,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이 명박 대통령이 막장이기만 한 줄 알았는데 최소한의 국가관을 갖추었고 대북 정책은 지금까지 정말 훌륭하게 잘했다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대통령도 제발 이렇게 해 줬으면 좋겠다.

2. 북한사의 불편한 진실, 황해 제철소 노동자 학살 사건

지금으로부터 15년쯤 전인 1998년에 황해도 송림시에서 벌어진 황해 제철소 노동자 학살 사건은 북한에서 우리나라 같은 무슨 노동자의 인권을 위한 시위· 봉기가 일어났다간 어떻게 되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거나 인터넷을 직접 검색해 보시기 바란다.
http://news.donga.com/3/all/20110121/34273324/1

참고로 송림시는 황해도의 북쪽(북한 행정구역으로는 황해북도의 북서쪽), 그리고 평양의 서남부에 있는 작은 위성도시이다. 제철소 하나가 여기 주민들 대부분을 먹여 살린다고 한다.
사건을 요약하자면,

(1) 제철소가 거의 유일한 밥줄인 이곳에서 1990년대 후반의 식량난과 경제난 때문에 전기가 끊기고 기계 가동이 중단되고 식량 배급도 중단되었다. 노동자와 그들 가족은 다 굶어 죽게 생겼다. “장비를 정지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 이 때문에 참다 못한 일부 근로자는 고철이 된 제철소의 장비와 철 자재들을 중국에 몰래 팔아서 목숨을 부지하려 했으며, 아예 몇몇 “착한”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이 일을 주선하여 철자재를 중국에다 팔아서 강냉이로 바꿔 와서 자기네 노동자들을 먹여 살리려 했다.

(3) 그래서 이건 위에다가는 절대 비밀로 하고 중국과 비밀 거래에까지 성공했는데, 강냉이를 실은 배가 고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간부들은 내부 밀고자로부터 신고를 받은 비밀 경찰에 의해 체포되고, 그들은 극심한 고문을 당한 끝에 국가 재산 유출+반역 혐의로 현장에서 공개 총살을 당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냐 하면 그렇지 않다.
자기 배 속을 챙기는 것도 아니고 노동자들을 먹여 살리려고 노력하다가 간부들이 저 지경이 된 건데, 노동자들이 그 공개 처형에 호응을 해 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제철소에 전기 공급을 못 해 주고 노동자들을 굶긴 건 전적으로 국가 책임이지 않은가.

심지어는 노동자가 아니라 김 일성 측근 기득권 계층이던 어느 중년의 간호사조차도 양심적으로 이건 너무 가혹한 처사라고 공개적으로 항변을 하다가 곧바로 구타와 총살을 당했다. 김 정일 정권은 기근 속에서 국가 기강이 흔들리고 민심이 흉흉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오로지 폭력과 공포, 위협만을 선택한 것이다.

이 때문에 송림시의 수백여 명의 노동자들은 근무를 거부하고(어차피 기계가 안 돌아가니 할 일도 없지 않나?) 북한에서 보기 드물게 파업과 농성을 결의했다. 이제 더 잃을 게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것은 끔찍한 피의 비극을 부르고 말았다. 북한 정부는 아예 탱크까지 동반된 군대를 파견하여 작은 송림시 마을 전체를 군인들로 에워싸고, 부동자세로 앉아서 농성 중이던 노동자들을 말 그대로 탱크의 무한궤도로 밀어 버렸다. 수십 톤짜리 탱크에 깔려서 짓이겨진 피범벅 시신과, 잘려 나간 팔다리들.. 까지만 말하겠다. 시위에 가담했던 노동자의 가족들은 연좌제에 걸려 무슨 신세가 됐을지 역시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고.

1998년 여름이면 김 대중 정권이 들어서고 이제 막 북으로 소와 쌀이 가던 시절이다. 그때 평양 근처에서는 저런 학살극이 벌어진 것이다. 문득 <작은 하마 이야기>가 떠오른다. “씨X 누구든 당에 개겼다가는 X되는 거예요. 아주 X되는 거야.”

생각을 해 보아라! 어떤 장면을 묘사하는데 생생한 사진도, 현란한 CG도, 화가가 그린 그럴싸한 상상도도 없이 오로지 연필 스케치 그림만으로 뉴스에 묘사되는 장면치고 뭐 좋은 장면이 있던가? 파륜궁 수련자에 대한 고문 장면, 어린애가 회상하는 성폭행범의 모습, 그리고 탈북자가 회상하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나 저런 학살극 모습처럼, 하나같이 사진을 남길 수조차 없고 CG로 재연하기는 너무 민망한 인권 유린 장면이다.

그림의 예 보기(혐짤 주의!)


이 엄청난 사건이 포털 사이트에는 알맹이는 쏙 다 빠진 채 완전히 왜곡되어 너무 평화롭게 소개되어 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cid=83&docId=74337&mobile&categoryId=83

북한에 왜 시위, 봉기, 혁명이 없는지 이유를 아시겠는가?
일단 일어나도 언론 매체에 보도도 제대로 되지 않을뿐더러 목격자나 당사자는 대부분 수용소로 끌려가서 살아 나오질 못하니 소식이 전해지지 못하는 것도 크다.

그리고 “굶주림, 폭력, 팀웍 해체를 위한 이간질(밀고, 배신)”이라는 3박자 시스템에는 당할 장사가 도저히 없기 때문이다. 저 글에만 해도 읽고 보면 아시겠지만 3박자가 골고루 들어가 있다.

강냉이 한 그릇에 남자는 동료를 밀고하고 여자는 간부에게 몸을 줄 정도로 사람을 육체와 멘탈까지 철저히 붕괴시키는 곳이 바로 생지옥 북한이다. 저런 곳의 실상을 알게 되면, 멘붕이란 말을 우리나라에서 장난으로는 선뜻 못 쓸 것이다. 과거 6· 25는 북녘 땅으로도 모자라 남한까지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으려는 김씨 정권의 마귀적인 야욕을 막으려 한 처절한 전쟁이었던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2/12/14 09:35 2012/12/1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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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크몬드 2012/12/17 23:54 # M/D Reply Permalink

    아직도 역사를 잘 모르는 부분이 많네요.. 우리 모두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바른 역사관을 가지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습니다.

    1. 사무엘 2012/12/18 09:44 # M/D Permalink

      민감하고 심각한 내용의 글을 오해 없이 글쓴이의 진의를 파악하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단언하는데 종북을 논하지 않고 친일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편파적으로 이 나라의 역사를 폄하하고 왜곡하고 체제를 부정하고, 그 편파적인 역사관을 자기 혼자만 알고 지내는 게 아니라 순진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퍼뜨리고 선동하는 사람들은 정말 나쁜 사람입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반론과 반박을 읽어 보았고, 최대한 열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논리를 펴는 반면
      정치가 낀 얘기는 제 경험상 정말 그냥, 닥치고 말이 안 통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자기가 관심이 없는 쪽으로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귀가 열리질 않습니다. 뭐, 그렇게만 해도 최소한 자기가 지지는 않을 테니.
      논리도, 감정도 안 통하면.. 서로 말을 안 꺼내는 것밖에 답이 없지요.

  2. 흠. 2012/12/22 00:15 # M/D Reply Permalink

    ㅎㅎ

    아까 민감한 글이라고 써주셔서... 이글을 찾아보고 자세히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당파이고, 진보도 좋아하고 보수도 좋아하는?? 이상한 사람인데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애국" 둘다 애국자라고 생각하거든요.

    목숨걸고.... 새누리를 비판하는..나꼼수... 이번에 박근혜 당선자를 엄청나게 비판한 표창원 교수.

    이명박 정권을 비난하는 여러 기자들. 언론인.. 일명 진보 좌파 세력들... 뭐 당연히 문제도 많은 사람들이지만.

    전 그들을 사랑합니다.... 그 이유는 " 애국자" 라고 생각하거든요.

    보수분들 중에... 빨갱이 왜치시는 분들 .. 좋아합니다.. 애국자분들이거든요..

    ..

    저는 통합의 길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통 분모가 있거든요... "애국"입니다...


    애국하시는 분들은 다 좋습니다... ㅎㅎ

  3. 흠. 2012/12/22 00:44 # M/D Reply Permalink

    전 이번에는.. 기호2번에 투표했습니다. 저는 무당파라서.... 투표할때다마 성향이 바뀌는데요.

    친일이 싫다기 보다.... 그동안 이명박 정권을 비판했던... 언론인, 예술인, 지식인들을 보호하고 싶었거든요.

    목숨걸고, 애국하시는 분들이라 생각되어서.... 과거는, 전진하기 위한 동력이 되어야지 걸림돌이 되어선 안되지 않을까 합니다...

    과거에 집착하기 보다... 미래를 위해 과거를 참고하면 어떨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원론적인 견해지만

    이런말 할때마다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는 것은.... 과거에 큰 희생을 한분들에게 너무 뻔뻔한 말이라.....

    너무 죄송한 것도 사실입니다... 또 판단을 하기에도 제 지식은 너무나 부족하구요.

  4. 흠. 2012/12/22 03:23 # M/D Reply Permalink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66566.html

    댓글 도배죄송하구요... 댓글 지워주셔도 좋습니다. 한겨레 글이긴 하지만....

    꼭 한번 보셨으면 합니다... 저는 분명한 중도, 무당파입니다. 요즘은 약간 좌편향이긴 한데,
    아마 또 바뀔 사람입니다... 한번 보시고 좌향하라고 드리는 말씀은 절대 아니고, 그냥 한번
    시간나실때 편하게 그냥 아무 편견 없이 한번 보셨으면 합니다.

    1. 사무엘 2012/12/22 14:06 # M/D Permalink

      의견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과거에 먼저 집착한 진영은 반대편 진영이지 제가 아닙니다.
      저는 똑같이 일본이나 북한이나 과거에 우리에게 해를 끼친 나쁜 놈이고, 실력으로 그들을 이기면 된다는 정도의 생각만 했습니다.
      그랬지만 그들이 먼저 훨씬 더 심하게 과거사에 집착하면서 우리나라 역사를 날조하고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더군요. 그래서 저 역시 반격을 하는 차원에서 북한의 진실을 폭로하는 글을 올렸을 뿐입니다. 그것만 아니면 저도 얼마든지 '미래지향'입니다.. ^^

      표 창원 교수의 행보는 꽤 의외이더군요. 좀 더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선한 열매가 있는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믿을 만한 '백'이 있으니 교수 자리도 선뜻 내놓을 수 있었던 거겠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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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늘날 박 정희 전대통령을 둘러싸고 가장 핵심적인 까임거리에 속하는 아이템에 대한 나의 단상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겠다. 먼저 아래 링크 클릭.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03696

박 정희가 20대 중· 후반 시절에 일본군 장교 입대를 선택한 배경에 대해서 사료와 증언까지 동원하며 비교적 객관적으로 잘 소개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박 정희를 안 좋아하는 성향의 사이트의 자료를 소개했음을 밝힌다.

저기서 보면 알 수 있듯, 박 정희는 공부를 잘한 덕분에 일본군에 입대하기 전부터 이미 학교 교사였다. 교사는 학생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하는 직업이며, 이것만으로도 예나 지금이나 고생 안 하고도(농사나 공사장 노동에 비하면!) 돈 잘 벌고 유복한 가정 꾸리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일등 신랑감 직업이었다.

그러나 강제로 결혼한 가정 생활이 마음에 안 들고, 동료 교사들과(특히 일본인) 사이도 별로 안 좋고, 머리는 좋은데 세상은 마음에 안 들고.. 결국 현실에 대한 탈출구로 그는 일본군 장교 입대를 선택하게 된다. 왜냐고? 그때는 조선군 장교 모집하는 자리가 없었으니까..

그는 그 뒤 이를 악물고 노력한 끝에 긴 칼 차고 돌아오게 되어, “예전에 자신과 감정이 안 좋던 일본인들까지 물 먹이고 복수에도 성공한다.”
그의 입대의 목적은 독립군 때려잡고 동족을 괴롭히는 천황의 개가 되는 게 아니라, 전적으로 그냥 개인적인 야망과 출세욕의 충족에 더 가까웠다. 뭐, 일본이라는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갔다는 식의 낯 간지러운 미화도 할 필요 없고, 그냥 딱 저 목적 때문이다.

그는 육사급 학교를 2개씩이나 이를 악물고 그렇게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것치고는, 조선에서 멀리 떨어진 만주 변방의 보잘것없고 힘들고, 동족과 최대한 안 마주치는 보직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박 정희가 김 창룡, 노 덕술 같은 급의 악질 친일 군인이라면 그 우수한 성적으로 당장 조선 헌병대의 간부가 되어서, 진짜 악랄하게 동족들을 괴롭히고 독립 운동가들을 때려잡으면서 출세가도를 달릴 수도 있었다. 그 정도였으면 내가 이런 글 쓰지도 않는다.

이런 정황을 감안하지 않은 박정희의 과거사 비방은 무지나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다카끼 마사오라.. 그 시절에 창씨개명 한 사람이 박 정희밖에 없는 줄 아나..? -_-;;

아 물론, 그래도 어쨌거나 일본군 장교의 길을 간 것은 민족 정서상으로는 어그로를 끌 만한 행동인 건 맞다. 인정한다.
그럼 그게 어느 정도 위상에 속하는지를 내가 더 현실적인 비유를 동원해서 설명해 보이겠다. 잘 보아라.

완전 똑똑하고 장래가 촉망받던 이공계 인재가 있었다. 그래서 국내 일류대 공대에(K대라든가..) 거뜬히 들어갔고, 국비 장학금까지 받으면서 공부했다.
그랬는데 이 친구, 졸업 후 기업체에 들어가면 이거 뭐 열악한 보수에 완전 공밀레이며, 진로고 결혼이고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암울한 지경이었다. 기업체 말고 학교에는 더 박봉의 포닥이나 연구교수 같은 비정규직 자리밖에 없고..;;

참다못한 그는 돈 많이 벌어서 예쁜 여친 사귀고 잘 먹고 잘 살려고, 그리고 자기를 홀대했던 사람들의 콧대를 눌러 주려고, 의대 내지 로스쿨로 진로를 다시 바꿔 버렸다.


난 이게 박 정희가 그 당시 한 행동과 거의 똑같은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공돌이가 저런 선택을 하게 된 게 그가 기회주의자 속물이어서 그런가?

그래도 저 공돌이가 그것도 국비로 공부하여 공대를 졸업해 놓고는 도로 의대로 가 버렸으니 먹튀· 매국노라고 욕하려거들랑, 그 정도 의협심이라면 박 정희 욕하는 것 안 말리겠다. 정말로.나라에서 이공계를 위해 해 주는 게 없어서 출세하려고 의대로 진로를 바꿨듯이, 그땐 나라가 아예 없었으니 출세하려고 그냥 지배국의 군대 간부를 지원한 것이다. 악질적인 민족 반역자짓까지 하지는 않았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게다가 자기 혼자 의대로 갈아타는 건, 아예 외국의 경쟁사에 덥석 들어가서 전 직장의 기술이나 영업 기밀을 팔아넘겨 떼돈 챙기는 짓보다야 100배 이상 더 착한(?) 짓이다. 안 그래? 이 점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 글은 훗날 박 정희가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 한 행적에 대한 호불호 평가가 아니라, 전적으로 인간으로서 그의 과거 행적을 논한 것임을 밝힌다.
다음은 이 글과 같이 생각해 볼 만한 팩트들..

1. 진보 성향 진영에서 박 정희보다 100배, 1000배 이상 존경을 받고 있으리라 여겨지는 김 수환 추기경조차도 일본군 장교 복무 경력이 있다. 아 물론, 개인적인 출세를 위해 '멸사봉공 진충보국' 쇼(?)까지 하며 자발적으로 입대했다고 전해지는 박 정희하고는 상황이 다를지도 모르나(저 쇼도 사실이 아니며 음해 세력들의 중상모략일 뿐이라는 반박도 있음), 김 수환의 경우도 '병'으로 강제 징집이 아니라 어쨌든 엄연히 '장교'인데? 내가 보기엔 둘 다 그냥 시대 정황상 별로 문제되지 않는 수준이다.

2. 박 정희는 그나마 나라가 없던 시절에 한국군이 없으니 일본군을 선택한 거라는 궁색한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 김 대중은 뻔히 나라가 있을 때 히로히토 일왕의 영정 앞에서 고개 숙여 조문을 해서 굉장한 어그로를 일으킨 바 있다. 다른 일왕도 아니고 히로히토는 2차 세계 대전 전범이며, 이 봉창 의사가 죽이지 못하고 실패해서 거의 반세기를 덤으로 산 사람이다. 이건 김 대중의 당시 행동을 문제 삼고 정죄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박 정희의 창씨 개명과 일본군 입대만을 굳이 그렇게도 집요하게 파헤쳐서 까야겠거들랑, 저것도 같이 따라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라는 뜻이다. 잣대를 일관성 있게 공정하게 적용하라.

3. 일본군 장교 출신이 대통령까지 했다고 비관하고 거기에만 피해의식을 갖기에는, 지금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막장인 정치인이 종북 분야에 많~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태극기와 애국가를 수치스러워하는 놈, 탈북자를 변절자라고 부르는 놈, 6· 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가 헷갈리니 나중에 말해 주겠다고 하는 놈, 적을 적이라 하지 않는 놈 등. 친일파 문제에 그 정도로 목숨을 걸 정도면 저건 그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이지 않은가?

이런 인간들에 비하면 차라리 나라 주권이 없던 시절에 일본군 장교를 지낸 사람이 아주 애국자로 보일 지경이다. 난 상대적인 비교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굳이 비교를 해야겠다면 그렇게 생각한다.

4. 그리고 내가 늘 강조하는 지론이지만, 우리나라의 친일 청산을 제일 방해한 원흉은 북한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그들이 일으킨 6· 25 전쟁이다. 이들의 무력 도발 때문에 경찰· 군 간부 수요가 폭증하게 되고, 결국은 쓸 사람이 없으니 친일파 출신 무인들에게 적용되는 면죄부가 커질 수밖에 없어졌다. 박 정희도, 심지어 김 구의 암살범인 안 두희조차 이때 복직크리!

컴퓨터 식으로 비유하자면, 과거에 윈도우 95가 당대의 가정용 PC의 여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NT와는 달리, 도스와 16비트 코드를 답습하고 불안정한 운영체제가 된 것과 완전히 똑같은 맥락이다. MS가 기술이 없어서 OS를 그렇게 만든 게 결코 아닌 것이다.

원인은 쏙 감추고 자꾸 결과만 얘기하면서 친일 공화국 드립과 역사 왜곡 선동을 일삼는 자들에게 현혹되지 말라. 결국 그들은 그때 굳이 저항하지 말고 북한 김 일성에게 나라 갖다 바쳤어야 했다는 말을, 표현만 바꿔서 하는 것이다. “나라 내놔 새X야! / 드.. 드리겠습니다. / 필요 없어!”

Posted by 사무엘

2012/12/06 08:26 2012/12/06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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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의 악과 부조리를 보고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는 사람의 믿음을 세우는 데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최초의 인간 아담이 죄를 짓고 타락한 이래로, 이 세상에는 인간이 같은 인간을 무참히 망가뜨리고 죽이는 흉악 범죄가 양지나 음지에서 무수히 저질러져 왔다. 그 중에도 죄질이 특히 나쁜 축에 드는 것은,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연약한 미성년자 내지 자신을 스스로 방어하지 못하는 지적 장애인을 납치· 감금하여 여럿이서 학대하고 괴롭히고 심지어 고문까지 하다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짓이다. 영어로는 torture murder이라는 비공식 용어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25년쯤 전엔 일본에서는 일명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 사건'이라 하여, 제목부터가 섬뜩한데 정말 인류 역사상 이 정도로 흉악하고 인간의 마귀적인 본성이 그대로 표출된 사건이 있었을까 싶은 torture murder가 벌어진 적이 있다. 이 글에서 구체적인 사건 내역을 자세히 소개하지는 않겠다.

사실 일본뿐만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가까이 전인 1965년엔 미국에서도 실비아 라이컨스(Sylvia Likens)라는 소녀가 부모 사정으로 인해 타지에서 맡겨져 키워지던 중에, 집주인 아주머니와 주변 아이들로부터 입에 담을 수 없는 수준의 학대와 왕따, 고문을 당한 끝에 겨우 10대 중반의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채 경찰에 발견되는 일이 있었다.

그러므로 내가 돌이켜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모든 학대를 깊이 살펴보았노니, 보라, 학대받는 자들의 눈물이라.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었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편에는 권세가 있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었도다. (전 4:1)

후자의 경우 미국 인디애나 주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범죄 사건으로 기록되었고, 법정 증언을 바탕으로 2007년엔 엘렌 페이지가 주연으로 나오는 An American Crime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물론, 일본의 콘크리트 살인 사건도 자국 내부에서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건 그냥 AV 배우를 동원해서 선정적인 고어물 성인물 영화로 돈이나 벌려는 의도에 가까웠다. 그 반면, 미국의 영화는 다른 나라도 아니고 꿈과 희망이 있는 자유와 기회의 땅이라 불리며 소위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졌다고 하는 아메리카라는 나라에서까지, 옛날에 이런 끔찍한 범죄가 저질러졌었다는 분노와 자성의 뉘앙스가 제목에 담긴 것 같다. 감독이 제목을 하필 왜 저렇게 뽑았겠는지를 생각해 보시라.

난 An American Crime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보다가 열받아서 차마 끝까지 못 본다고.. 모니터를 때려부수고 악역 배우를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고 그런다. 아무 죄책감 없이 군중 심리로 피해자를 심심풀이 하듯 때리고 괴롭히고 굶기고 배에다가 불에 달군 바늘로 글씨를 새기고는... 나중에 법정에 가서는 “몰라요. 기억 안 나요. / 남들이 다 하니까. 그게 그렇게까지 심한 잘못인 줄은 미처 몰랐네요.” 이렇게 발뺌을 하는 뻔뻔한 인간 종자를 보노라면, 누구라도 짜증과 살인 충동이 하늘로 피어오르지 않겠는가.

게다가 저 영화는 일본 영화와는 달리 그렇게 선정적이지도 않다. 실제로 실비아가 당한 가혹행위에 비해 영화의 묘사는 정말 정말 많이 희석되고 절제되고 수위가 완화된 것이다.

처참했던 실제 사건의 결말에 비해, 영화는 감독의 희망 사항 내지 관객의 해석이 필요한 여지를 결말에다 두리뭉실하게 남겼다. 실비아가 죽지 않고 거투르드 아줌마의 집을 탈출하여, 부모의 품에 안기는 설정이 들어간다. 그런데 다시 거투르드의 집으로 돌아가니 자기의 몸은 죽어 있고, 그와 함께 탈출한 줄 알았던 실비아도 싹 사라지고 다시 고향의 회전목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실제로 실비아는 극도의 영양실조에다 구타로 인해 발생한 뇌와 내장의 출혈이 도지면서, 목욕 도중에 사망했다.)

우울한 실화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답게,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도 단조풍의 굉장히 구슬픈 여성 아카펠라 노래이다.

이 영화는 세상에서의 고통과 아픔, 슬픔으로부터 벗어난(상징적으로나마) 실비아가 혼자 회전목마에 탄 채, 다음과 같은 독백 대사를 읊는 것으로 쓸쓸하게 끝난다.

And me? I returned to the carnival. The only place I always felt save.
Reverend Bill used to say, “For every situation God always has a plan.
I guess I'm still trying to figure out what that plan was.

(모든 사건이 일단락된 뒤) 그리고 난.. 놀이동산으로 돌아왔어요. 내 마음의 유일한 고향으로요.
빌 목사님은 전에 이렇게 얘기하셨죠.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은 뜻하신 계획이 있으시다고..
난 아직도 그 계획이 무엇이었는지 찾아 헤매는 중인 것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러분은 이 대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내가 보기에 이것은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면 실비아 같은 불쌍한 아이가 왜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했나? 이 땅에 정의가 살아 있긴 하나?”와 같은 식으로,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원망 메시지를 아주 완곡하게 돌려서 표현한 것이다.

이런 거야 세상의 불신자들이 역사상 한두 번 제기해 온 의문이 아니니 이상할 것 없다. 그리고, 영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세상에서 흥행하는 영화들치고 성경에 대한 믿음을 세워 주는 친기독교 성향의 결론으로 끝나는 게 어디 하나 있긴 하던가? 예수 믿는 사람은 십중팔구 무개념 광신자로 묘사되거나, 개나 소나 사랑이니 용서니 하는 것밖에 모르는 위선자, 아니면 위급한 상황에서 쩔쩔매고 '기도밖에 할 줄 모르는' 찌질이 루저로 나온다. 이 셋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내가 용서를 못 하는 살인범을 어떻게 신이 먼저 용서하냐?”(영화 <밀양>) 같은 식으로 기독교 교리를 완전히 거짓으로 왜곡하거나, 민감한 부분만 이상하게 배배 틀어 적용해서 오해를 사게 만들고, 뭔가 말이 안 되고 모순되고 몰상식한 것으로 전달한다.
또,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이런 왜곡에 불구하고 천주교 신부· 수녀에 대한 묘사는 교회 예배당이나 목사 쪽에 비해 월등히 더 낫다는 점도 특이한 점.

자, 대놓고 종교를 소재로 한 영화를 제외하고, 여러분이 보았던 일반적인 세속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들 중에서 본인이 지금까지 열거한 특성에서 벗어나는 작품이 단 하나라도 있으면 꼭 알려 주시기 바란다. 본인도 적극 고려하도록 하겠다.

얘기가 잠시 옆길로 샜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본인이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An American Crime에서 실비아의 마지막 대사를 보아하니, 그 심상과는 완전히 정반대인 다음 찬양이 생각 나서였다. 바로, Ron Hamilton--이름으로 검색해 보면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중년 남자 모습이 많이 뜨는데, 그분이다--Rejoice in the Lord 되겠다. 가사 첫 줄에 곧바로 “하나님은 섭리나 계획 없이는 결코 역사하지 않으신다”란 말이 나오니까.. 게다가 하나님은 실수도 결코 하지 않으신댄다!

God never moves without purpose or plan
When trying His servant and molding a man.
Give thanks to the Lord though your testing seems long;
In darkness He giveth a song.

O rejoice in the Lord. He makes no mistake.
He knoweth the end of each path that I take.
For when I am tried and purified,
I shall come forth as gold.


이 곡은 클래식한 리듬과 멜로디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는 최근인 1978년에 발표되었다.
세상에는 성경의 욥이나 요셉이나 다윗처럼, 정말 억울하고 미래가 안 보이는 멘붕 상태에서도 우리 같은 현대인들이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긴 인고의 시간을 잘 견딘 끝에 정말로 '황금처럼' 연단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 물론 있다. (가령, 요셉은 누명이 벗겨지고 감옥에서 곧 풀려날 거라는 희망고문만 2년을 견뎌야 했다. 감옥에서 썩은 전체 기간이 2년이 아니다!)

그러나 긴 시간을 참고 견딘다고 해서 다 그 사람들처럼 언젠가 이 세상에서 인생을 반드시 펴는 건 아니다.
또한 실비아 라이컨스처럼 연단이 아니라 아예 폭력과 학대의 희생양이 된 채, 피지도 못하고 져 버린 인생도 역사적으로 한둘이 아닐 것이다.
찬양 가사는 세상의 참혹한 현실과 비교해 보면 그저 비현실적인 망상에 불과한 것이며, 작사자는 그저 책임지지 못할 말을 쓴 것일까?

하나님의 뜻 중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있고, 당장 보기 안 좋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유 의지 명목으로 잠시 '허락하시는 뜻'도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후자에 속하는지에 대해서야 나라고 해서 뾰족한 해답을 알고 있을 리 없다.
더구나 세상적으로 잘못되고 비극을 맞이한 사람들을 죄다 “지은 죄가 있으니까”(욥의 친구들처럼), “예수 안 믿어서” 이런 식으로 몰아붙이는 몰상식한 짓은 난 극도로 싫어하며, 그런 식의 논리 전개는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어차피 사실도 아니다.

다만, 직접적으로 논증을 못 하면 마치 귀류법처럼 간접적으로, 역으로 접근할 수는 있다.
이 세상의 불의와 죄악을 신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은 어차피 그 문제가 해결됐다고 해서 신에게 감사와 찬양을 돌릴 사람도 아니다. 예수님더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하던 죄인들이, 예수님이 갑자기 힘이 불끈 솟아서 십자가에서 못을 으랏차차 뽑아 내고 초자연적으로 내려와 버렸다고 해서 그들이 그분을 믿었겠는가? (예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해 믿길 진짜로 원하시는 그 성품과 면모를 믿고 따르겠는가!?) 난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공개 석상에서 어떤 유명한 무신론자가 “자 신아, 네가 존재한다면 지금 3분을 줄 테니 이 공개 석상에서 날 죽여서 너의 영광을 드러내 보아라”라고 고래고래 독설을 날렸다. 성경에 기록된 그런 성품을 가진 신이 진짜 존재한다면 그런다고 해서 진짜 그 무신론자를 죽여 버릴 리가 있겠냐 말이다.

솔로몬이 명판관으로 두고두고 칭송받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그가 과학 기술을 육성해서 최첨단 유전자 감식 기술로 진짜 애엄마를 논리적으로 가려내고, 집집마다 CCTV를 설치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앞으로 아이 바꿔치기 범죄 따위는 저지를 엄두를 못 내게 하는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 절대로 아니다. 그렇게 하면 세상적으로는 아주 훌륭한 통치자로 칭송받을지 모르나, 그건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는 방법이 아니다.

이 세상의 죄로 인해서 인간에게 온갖 비극이 찾아온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 역시 그걸 방관만 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인간으로 직접 세상에 내려오시고, 비록 불신자들이 당장 이해나 수긍을 못 할 방법을 쓰셨지만 죄 문제도 해결하고 구원의 길도 마련해 놓으셨다. 단지 그 방법에 믿음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문제일 뿐이지.. 이 세상의 그 어떤 종교도 창조주가 자기 피조물에게 학대를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서 피 흘려 죽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기독교라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 반박당하거나 없어질 교리를 가진 체계가 아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이라 불리는 이 세상의 참 신은 사람들에게 많은 걸 안 바라고 '믿음'이라는 것 하나만 원하신다. 히 11:6을 읽어 볼 것. 피조물이 있다면 창조자가 있는 게 당연한 이치인데, 이건 전지전능하다는 신이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에게 바라는 것치고는 너무 소박하지 않은지? (그러나 그게 소박한 요구가 아니라는 걸, 살아 보면 곧 알게 된다.. ^^) 어떤 사람은 미국이나 대한민국에서 태어나는 반면 어떤 사람은 북한이나 소말리아 같은 곳에서 태어나는 등, 모든 물리적인 여건이 불공평함에도 불구하고 구원 조건 같은 인간에게 정말로 필요한 요소는 정말로 공평하다.

설령 이 세상에서는 정말 비참하고 불행하게 살다 요절하더라도, 현세와 내세를 모두 합하면 정말로 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고, 현세에서 못 받은 것은 죽어서 다 정산받게 된다. 선과 악을 스스로 분간도 못 할 정도로 어린 나이에 죽거나 정신 지체 장애인 사람에게는 아예 특별전형까지 있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하나님의 경륜이 아직 여전히 100% 이해는 안 가더라도, 그렇게까지 비난할 정도로 비합리적이고 나쁘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 체계 하에서는 원칙과 질서가 있다.

신의 존재 여부는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하지도 않고, 반증 가능하지도 않다. 오히려 인간의 알량한 과학으로 정체가 덥석 파악 가능한 신이야말로 허접한 신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창조론자들이 즐겨 주장하듯이 이 세상이 과학적으로 절대로 우연히 만들어질 수는 없다는 식의 증거들.. 아주 좋다. 그러나 반대의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부조리와 비합리도 세상엔 응당 존재하며, 그 사실을 크리스천이 굳이 부인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가령, 이 세상엔 아름다운 생명체도 있지만 파리· 모기나 바이러스나 기생충 같은 생명체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는 이런 '아리까리'한 면모가 존재한다. 하나님을 향해 굴러가려는 영적 바퀴의 정지 마찰력을 극복하려 할 때 초기에는 정말로 사람의 '믿음'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 다음에 이어질 내 말을 주의 깊게 읽어 보아라. 그걸 극복하는 데 인간의 지식이나 능력, 논리 같은 다른 잘난 스펙이 필요한 게 아니라 '믿음'이 필요하게 돼 있는 것이 너무 다행스럽고 고맙게 느껴지지 않는가??

뭔가 그럴싸한 기독교 변증을 기대하고 있던 불신자라면 이런 무데뽀 정신승리법(?) 같은 본인의 결론에 실망할지 모르겠지만.. 이게 엄연한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놓으신 걸 난들 어떡하겠는가. 그리고 하나님은 선뜻 '믿음'을 선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증거도 먼저 남겨 주셨다. 이 갈림길로 인한 유신론 무신론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나, 그 믿음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특정 사건에 따라 좌지우지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갖고 있던 모든 편견을 버리고, 진지하게 양심적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은 전적으로 개인 각자의 자유 의지에 달려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2/12/03 19:27 2012/12/03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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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각형 2012/12/05 12:08 # M/D Reply Permalink

    성경에 역시 세상의 불의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 대언자 하박국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답변은 합 2:3, 하나님의 심판이 더딜지라도 올 거니까 기다려라. 입니다.
    더욱이 부연하여서 '오직 의인은 자기 믿음으로 살리라.' (합 2:4) 라고 하셨습니다. 믿고 기다리란 말이죠. -_-
    그 대답을 듣고는 하박국은 합 3:17~18, '그렇지 아니 하시리라도 감사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저 역시 예전에는 이런 '정신 승리법' 같은 전개에 경악을 금지 못하고 이럴 거면 당최 왜 그런 질문을 한건가 싶었지만 시간이 갈 수록 도저히 이렇게 뿐이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겠구나 싶습니다. 그걸 알려주시려 하신 걸 겁니다.

    1. 사무엘 2012/12/05 11:22 # M/D Permalink

      성경에서 그런 세상에서의 불공평에 대해 논의를 한 게 크게 욥기, 시편 73편, 하박국서입니다. 이 글 본문에다가도 합 1:3 정도는 인용해도 될 뻔했네요.
      그런데 성경을 보면 아시겠지만, 그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답변을 안 하시는 건 아닌데, 내용이 다들 심한 동문서답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아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됐다고 그럽니다. 지금 당장 그 면모를 다 이해할 수는 없죠. 하지만 그 원리는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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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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