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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일러 상수: 감마

초등학교 시절에 반비례 함수라고 배웠던 1/x는 조화급수를 나타내며, 궤적은 쌍곡선이고 부정적분은 ln x (+C)가 되는 꽤 독특한 함수이다.
그런데 1/x의 값을 1 간격으로 n까지 구한 조화수열의 합과(즉, 1 간격의 구분구적법), 아예 해당 함수의 정적분(실제 면적)은.. 일단 명목상으로 값이 비슷할 것 같은데 정확하게 얼마나 차이가 날까? n이 무한대로 근접할수록 값이 어떻게 될까?

먼저, 이런 발상이 왜 나왔겠는지부터 생각을 해 보자.
1/x라는 문제의 함수는 x가 무한대로 갈 때 함수값 자체는 0으로 수렴하여 한없이 줄어들지만, 급수의 무한합 내지 정적분은 무한대로 발산한다는 아주 기괴한 특징이 있다. 보통은 다 발산하거나 다 수렴하지, 저렇게 되는 건 몹시 드물다.

1/x 말고 그냥 x라든가 1/x^2 같은 주변의 다른 함수에 대해서  급수의 무한합과 정적분의 차이를 구해 보면 구하는 게 무의미한 trivial한 결론이 나와 버린다. 그냥 무한대로 빠지거나, 아니면 한쪽이 그냥 0이 돼 버려서 차를 구할 필요가 없어지는 식이다.

하지만 1/x는 그렇게 trivial하게 빠지지 않는다. 더구나 무한급수와 정적분의 차이가 “무한대 - 무한대” 꼴의 극한이 되는지라, 극한값이 유한하게 나온다는 게 직관적으로 보장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 극한값은 수학적으로 파고들 명분과 의미가 있으며, 옛날 천재 수학자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일단 1/x에 대해서 무한합과 정적분의 차이가 특정값으로 수렴한다는 것 자체가 증명되었으며, 그 값은 대략 0.577215… 형태로 빠진다. 이 수는 관례적으로 오일러-마스케로니 상수라고 불린다.

자연상수 e야 미적분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중등교육 수준에서도 이과의 최종 테크 한정으로 배운다. 하지만 저 상수는 쓰이는 곳이 너무 난해한지라, 수학과에서 해석학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정도가 아니라면 딱히 접할 일이 없다.

더구나 쟤는 특성이 밝혀진 것도 별로 없다. 사칙, 삼각함수, 지수, 로그만으로는 저 수를 나타낼 수 없다. 그러니 정황상 초월수 무리수인 것이 99.999% 확실해 보이긴 하지만.. 수학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완벽 엄밀한 논리 전개만 동원해서는 초월수는커녕 무리수인지도 정확하게 증명이 못 돼 있다고 한다. 의외의 일이다.

다만, 이 수는 e^(-x) * ln(x)라는.. 비교적 친근한(?) 초등함수 조합을 0부터 무한대까지 이상적분을 해서 얻을 수 있다(음수 버전이 나옴). 친근해 봤자 쟤는 이미 부정적분은 초등함수 형태로 나타낼 수 없는 수준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수는 팩토리얼의 대수적 확장 버전인 감마 함수와도 관계가 있다. GAMMA(x)-1/x라는 함수에서 x=0의 극한값이 이 수의 음수 부호 형태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래서 이 오일러 상수는 그리스 문자 ‘감마’(γ)를 써서 표기하곤 한다. 상수는 소문자 감마이고 함수는 대문자 감마이다.
이 글의 전체 내용을 수식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오메가 상수와 람베르트 함수

고등학교 수학에서는 지수와 로그를 다루고, 이과 및 자연계에서는 이에 대한 미· 적분까지도 다룬다.
그럼 다음으로 지수함수 e^x에다가 x를 또 곱한 x*e^x라는 함수를 생각해 보자. 취급하기가 약간 더 복잡해졌지만.. 그래도 얘는 부분적분을 통해 부정적분을 온전한 형태로 구할 수는 있다.

그런데 x*e^x = 1 이라는 방정식의 근을 구할 수 있을까? (뭔가 오일러의 항등식과 살짝 비슷하게 생겼는데.. 그냥 기분 탓임..)
양변에 로그를 씌워서 식을 정리하면 x= -ln x까지는 나온다. 하지만 이 이상 식을 정리하는 건 무리이고, 이 시점에서 발상을 전환하여 뭔가 새로운 개념이나 용어를 창조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걸 1700년대에 이미 실제로 한 사람이 있다.

일단 저 식을 실수 범위에서 만족하는 근 x는 대략 0.567143…으로 전개되는 값이다. 앞서 다뤘던 오일러 상수와 얼추 비슷한 크기라는 게 흥미롭다. 물론 특성과 의미는 전혀 다르지만 말이다. 더 나아가 x에 대해 t*e^t = x를 만족하는 t를 되돌리는 함수가 바로 고안자의 이름을 딴 “람베르트 W” 함수이다.

고안자인 요한 하인리히 람베르트는 수학, 물리, 천문학, 철학 등 다방면에서 가히 레오나르도 다 빈치 급으로 불세출의 천재였다고 전해진다. 오일러와도 같은 국적의 동시대 사람이었으나.. 좁은 세상에 태양이 둘일 수는 없어서 그런지 람베르트는 오일러보다야 인지도가 낮다.

오일러 상수에 그리스 문자 ‘감마’가 부여되어 있다면, 앞서 언급한 W(1)에는 관례적으로 그리스 문자 ‘오메가’가 부여되어 있다. 오메가가 w와 비슷하게 생겨서 두 문자가 저렇게 섞여 쓰이는 것 같다.
W(1)은 오일러 상수보다는 분석하기가 아무래도 더 용이한지, 초월수라는 것은 간편하게 증명되어 있다.

하지만 W라는 함수도 기존 초등함수의 형태로 나타낼 수 없으며 절대로 만만한 물건이 아니다. 그럼 정체를 알기 위해 만년 수치해석 근사값에만 의지해야 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해석학적인 의미를 지닌 형태로 나타낼 수는 있는데, 그게 감마 함수가 들어간 무한급수이다. 이 역시 공대 수준의 숫자 공부만 한 사람이라면 그냥 포기하는 게 속 편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물건이 왜 존재하느냐 하면.. 그게 존재함으로써 더 복잡한 문제를 풀 수 있고 다른 복잡한 개념을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x*a^x뿐만 아니라 아예 x^x=b 같은 방정식의 근도 Lambert 함수 형태로 표현 가능하다.

단적인 예로 x^x = e의 근은.. 저 오메가 상수의 역수.. 1/W(1), 대략 1.763222…이다. e에다가 단순 가공을 한 게 아닌, 뭔가 차원이 다른 수가 튀어나온 셈이다. x^x 정도면 적분도, 방정식 근도 모두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못 구하는 난감한 물건이니 말이다.
어쩐지 뭔가 메이플 같은 수학 패키지로 지수함수가 섞인 복잡한 방정식 풀이를 시켜 보면.. LambertW 이러는 식으로 답이 나오곤 하던데 그게 저런 뜻이었다.

Lambert 함수는 양의 실수에서는 ln x보다도 더욱 느리게 증가하는 별볼일 없는 함수이다. 하지만 수학 전공자들은 이런 함수를 실수도 모자라서 복소수 영역에서 갖고 논다. 도함수나 부정적분을 구하면 이 함수 자체가 포함된 더 복잡한 형태가 나오는 게 지수/로그함수 계열과 비슷해 보인다.

얘는 음수 -1/e부터 0 사이에서는 마치 제곱근처럼 값이 2개가 나온다는 특징이 있다.
비록 중등 교육과정에서 가르치지는 않지만.. 해석적으로 분석을 못 하는 것도 아닌데, 관점에 따라서는 얘도 초등함수의 범주에 넣을 수 있어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참고로 람베르트 함수 말고 삼각함수 중에도..
우리가 0 극한값을 배울 때 써먹었던 sin(x)/x처럼.. 하필 sin(x), cos(x), sinh(x), cosh(x)를 x로 나눈 물건의 정적분 함수를 따로 Si(x), Ci(x), Shi(x), Chi(x) 요렇게 표기한다. 기존 초등함수들의 조합으로 나타낼 수 없는 새로운 특성을 갖지만 그래도 수학적으로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저렇게 써 놓으니 무슨 한어병음 표기처럼 보인다만=_=;; 어쨌든 저런 건 초월함수들 중에서 적분함수라고 따로 불린다.

Posted by 사무엘

2020/07/09 08:35 2020/07/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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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색 정리, 정사각형 분할 문제

일명 “4색 정리, 4색 문제”는 개념 자체는 마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처럼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단순하다. 하지만 엄밀한 증명은 20세기의 현대 수학자조차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난해했던지라, 1976년이 돼서야 컴퓨터의 brute-force 계산 능력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증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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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으로 치면 무슨 머신 러닝을 돌리듯이 당대의 슈퍼컴 두 대를 장정 50일을 돌리면서 가능한 모든 지도 모델에서 증명이 성립함을 확인했다고 한다.
물론 저건 오늘날의 머신 러닝에 비할 바는 못 된다. 내 기억이 맞다면, 1970년대 중반의 크레이 슈퍼컴퓨터는 20여 년 뒤에 등장하여 클럭 속도가 GHz급에 도달한 펜티엄 3~4급 PC와 얼추 비슷한 성능이었다. 요즘 PC라면 GPU 세팅만 잘 하면 하루는커녕 길어야 수십 분~몇 시간이면 시뮬레이션이 끝나지 싶다. 그만치 세상이 많이 변했다.

하지만 1976년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45년 가까이 전의 과거이다. 증명할 지도 모델을 설계하고 계산량을 그 시절 컴퓨터로 감당 가능하게 최소화한 것만으로도 독창적인 학술 공로이며, 대학교 수학과 교수 급의 전문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극도로 비싸고 귀하신 몸이던 슈퍼컴을 당장 실용적으로 필요하던 일기예보나 모의 핵실험, 탄도 예측(?)이 아닌 학술 연구용으로 끌어들여 온 것 역시 해당 연구자의 행정력과 근성과 로비 덕분이었던 셈이다.

한편, 정사각형을 크기가 서로 다른 작은 정사각형들로 분할하는 문제(lowest-order perfect squared squares)도 굉장히 난해하지만 답이 존재는 하는 굉장히 기묘한 문제인데.. 4색 정리와 비슷하다면 비슷한 시기인 1978년에 길이 112짜리 사각형을 21개로 분할하는 해법이 발견됐다. 이 역시 컴퓨터를 동원하여 찾아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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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저 정사각형들도 최대 4개의 색만으로 서로 경계를 구분하여 칠할 수 있을 테니, 이것도 4색 문제하고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_=;;
1982년에는 동일 연구자의 후속 연구를 통해 저게 이론적으로 존재 가능한 optimal 내지 lower bound라는 것도 증명됐다. 즉, 20개 이하의 서로 다른 정사각형으로 큰 정사각형을 꽉 채우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가장 작은 정사각형 분할의 하한은 112가 아니라 110이라고 한다. 분할 개수는 21개보다 딱 1개 더 많은 22개이다.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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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컴퓨터의 도움 없이 사람이 찾아낸 가장 단순한 정사각형 분할은 175를 24개로 분할하는 것이었다. (81, 55, 39, …) 1946년에 데오필루스 윌콕스(1912-2014)라는 영국 사람이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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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각형을 서로 다른 정사각형으로 분할하는 방법 자체는 다양한 크기별로 무한히 존재하기라도 하는지? 이게 증명돼 있기라도 한지는 모르겠다. (자명한 닮은꼴은 물론 제외. 작은 정사각형의 크기값들이 모두 서로 소인 것으로 한정)

단지 2차원이 아니라 3차원에서 정육면체를 서로 크기가 다른 정육면체로 꽉 맞게 채운다거나 그 이상의 차원에서 같은 방법으로 hypercube를 채우는 방법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직관적으로 생각해도 명확한 것이... 3차원만 생각해 봐도 그런 정육면체가 있다면 여섯 면이 다 제각기 크기가 서로 다른 정사각형으로 거대한 정사각형을 이룬 모습을 기본적으로 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육면체만으로 그렇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벡터의 외적이 딱 3차원 벡터에 맞게 존재하는 이항연산이듯이, a^n+b^n=c^n의 정수해가 존재하는 n의 상한이 딱 2인 것처럼.. 정사각형 분할은 딱 2차원 평면에서 존재 가능한 절묘한 문제인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0/06/25 19:38 2020/06/25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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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속도로 톨비

우리가 고속도로를 주행할 때 늘 지불하는 통행료, 일명 톨비라는 건 생각보다 다양한 변수를 감안해서 복잡한 방식으로 산출된다.
가장 간단하게는 “기본 요금 + 주행 거리 * 임률”이며, 임률이 경차 포함 6종의 차종별로 차이가 있는 것까지는 다들 아실 것이다. 민자 고속도로는 여기에 부가세가 추가되어서 살짝 더 비싸진다.

그런데 이 표준 임률은 4차로(편도 2차로)짜리 고속도로 기준이다. 2차로 고속도로에서는 임률이 절반(50%)으로 할인되고, 반대로 6차로 이상의 넓은 고속도로에서는 20% 할증이 붙는다. 이런 제도도 있었다니.. 과거에 열악하던 88 올림픽 고속도로가 통행료를 반값만 받았던 건 단순 예외적인 특례가 아니라 매뉴얼 상의 규정이었다.

물론 오늘날은 2차로 고속도로는 모두들 확장되고 개량되어 사실상 전멸했으며, 1992년 이래로 국내에 새로 건설하는 고속도로는 무조건 4차로 이상의 규모로 만들고 있다.
그러니 2차로 고속도로의 50% 할인 규정은 마치 삼륜차 운전 면허처럼 비현실적인 사문이 됐다. 오늘날 실질적으로 50% 할인을 받고 있는 건 경차이다. 6종 경차의 임률은 1종 소형차의 절반이기 때문이다.

톨비는 여기에다가..

  1. 1~3종 차량(초대형 차량만 아니면 다~)에 한해서 출퇴근 시간대 할인,
  2. 사업용 화물차는 반대로 심야 시간대 할인이 적용된다. 대형 트럭 기사들이 톨비를 할인받으려고 무리해서 밤 시간대를 골라서 다니는 게 이 때문이다.
  3. 소형차는 주말과 공휴일에는 또 반대로 소폭이나마 할증되기도 한다.
  4. 끝으로, 차량이 아니라 사람을 근거로 할인해 주는 장애인 및 국가유공자 할인도 있다. 이 분야로 등급이 높으면 톨비가 아예 완전히 면제되기도 한다.

지난 2014년인가 15년부터는 설과 추석 연휴 3일 동안은 아예 전국의 모든 고속도로에서 모든 운전자를 대상으로 톨비가 면제되기 시작했다. 그 전에 무슨 임시 공휴일 때도 잠깐 면제된 적이 있었지만 그건 일회성 이벤트였고, 명절 면제는 관행이 됐다.

생각보다 변수가 굉장히 많지 않은가?
아 참, 폐쇄식 말고 개방식 구간도 있다는 걸 깜빡했다. 개방식은 차들의 실제 주행 구간을 알 수가 없는데 그럼 전국의 모든 개방식 고속도로 톨게이트는 차종별로 고정된 액수의 통행료를 징수하는지?
자동차 내비에서 경로 계산과 동시에 예상 톨비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건 매우 까다로우며, 도로 공사로부터 공인 API/SDK 같은 거라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하철의 운임이 비현실적으로 환승을 자주 하더라도 이론적으로 가능한 최단 거리를 가정하고 산정되듯, 고속도로 톨비도 출발 IC와 도착 IC 사이에 여러 경로가 존재 가능하다면 이론적으로 가능한 가장 저렴한 구간을 가정하고 톨비가 산정될 것이다.

2. 수도권 대중교통 통합 요금제

오늘날 서울과 수도권에서 시외버스 아래 등급의 버스들, 그리고 일반열차 아래 등급의 광역전철과 지하철들은 통합 환승 할인 요금제를 적용받고 있다. 승객은 이용한 교통수단들 중 가장 비싼 것의 기본요금(마을버스 < 시내버스 < 지하철 < 좌석버스 < 광역버스..)부터 시작해서 나머지 추가 요금을 내게 되는데, 추가 요금은 이용한 거리에 비례한다.

대부분의 경우 10km 거리까지가 기본 요금이고, 그 뒤 5km당 100원씩 올라가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전철에는 버스에 없는 다음과 같은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 총 이용거리가 50km (기본 10km + 40km, 800원 추가)를 초과하면 이후 거리부터는 8km당 100원으로 임률이 저렴해진다.
  • 단, 서울· 인천· 경기도 구간과 그 바깥 구간을 연속해서 이용하는 경우, 전자의 구간에 대해서만 위의 임률이 적용된다. 충청도(경부선 천안..)나 강원도(경춘선 춘천..) 구간은 무조건 4km당 100원으로 비싸게 계산된다.
  • 공항 철도는 역시 영종대교를 건너는 구간이 제일 비싸다. 10km까지는 900원 고정이지만 그 뒤부터는 1km당 130원으로 폭증한다.
  • 용인과 의정부에 있는 경전철들은 기본요금이 2, 300원 남짓 추가되는 것 말고 임률이 바뀌는 건 없다. 추가 요금이 발생하는 방식이 기존 기본요금 + alpha인지, 아니면 max(기존 기본요금, 경전철 기본요금)인지는 잘 모르겠다.
  • 신분당선은 1차 개통 구간인 강남-정자, 2차 개통 구간인 정자-광교로 구분해서 둘중 한 구간만 이용하면 기본요금 1000원 추가, 모두 이용하면 1300원 추가이다. 물론 거리비례 요금은 별도로.. 2차 구간이 개통했던 직후에는 요금 계산 방식이 더 복잡했고 서울-경기도 경계 구분을 했었지 싶은데.. 저건 그나마 간소화된 형태이다.
  • 경춘선 ITX 청춘, 공항철도 직통열차는 동일 승강장에서 운임 체계가 다른 별도의 좌석형 일반열차를 굴리는 예이다. 누리로는 동일 승강장까지는 아니기 때문에 좀 애매하고..

고속도로와 철도 모두 민자 구간이 등장하면서 요금을 따로 정산할 필요가 생겨서 시스템이 이렇게 복잡해져 있다.

  • 버스/전철 공통 적용: 조조할인
  • 버스: 아무리 장거리여도 추가요금이 기본요금보다 더 많이 발생하지는 않게 보정, 1회 비환승은 기본요금으로만(서울 한정), 다인승
  • 전철: 최단거리 이용 추정 원칙, 운영구간별 요금 정산, 노인 무임

3. 제한 시간

고속도로는 통행료만 지불한다고 다가 아니고.. 회당 체류 시간이 제한돼 있다.
서울 지하철이 5시간 제한이 있듯이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제한 시간은 24시간이다. 즉, 진입한 지 하루 안으로는 출구 IC로 나가 줘야 한다. 시간이 경과되면 고속도로에서 도대체 뭘 했는지를 의심받을 수 있고 추가 요금을 내게 된다.

솔직히 이 좁은 땅에서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이동한다 해도 자동차로 24시간이 넘게 걸릴 일은 없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건 차로 여러 사람들이 휴게소에서 모인 뒤, 자기 차를 거기에 두고 한두 차량에만 다 모여서 타고 놀러 가서는 며칠 있다가 돌아오는 상황이다. 그러면 그 차들은 고속도로 내부에서 24시간이 넘게 세워져 있게 된다.

글쎄, 이렇게 세워진 차들이 많다면 휴게소에 장기 주차된 차들 때문에 다른 차들이 못 들어와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장기 주차가 가능하다고 정식으로 지정된 휴게소에서 추가 요금이라도 내는 조건으로 이런 걸 허용한다면 운전자와 도로 공사들이 모두 윈윈 하는 전략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화장실과 편의점 정도만 달랑 있는 '주차장' 휴게소도 있으니 말이다. (졸음 쉼터보다 크고 정규 휴게소보다는 작은..)

쉽게 말해 이런 식으로 장기 주차를 양성화 합법화하는 것이다. 주차 요금이 그 차들이 모두 움직일 때 드는 기름값과 톨비와 타지의 주차 비용보다 더 비쌀 리는 절대 없을 테니..
안 그래도 요즘은 하이패스 기술이 발전하고 휴게소도 중간 회차를 굳이 금지하지 않는 형태로 만들어지는 추세이지 않은가? 휴게소에다가 차를 장기 주차했다가 중간 회차하는 것은 마치 휴게소를 고속버스 중간 환승지로 이용하는 것만큼이나 새로운 활용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0/06/23 08:36 2020/06/2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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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UV

자가용 자동차 중에서 SUV는 실용성을 강조한 외형이어서 그런지 덩치가 커도 사치스럽다는 느낌이 덜 들며, 반대로 작아도 싸구려 느낌이 덜 드는 것 같다. 비슷한 배기량이나 가격의 세단 승용차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SUV는 차량이 차주의 부와 지위라는 편견과 연결된 정도가 덜하다. 그래서 굉장히 무난한 느낌을 준다.

SUV는 동급의 세단 승용차보다 길이가 짧고 높이는 높고 바퀴가 더 크다. 객실과 트렁크의 구분이 없고, 뒷좌석을 접어서 공간을 더 낼 수도 있다. 자전거를 접지 않고 그대로 실을 수도 있어서 좋다.

2. 친환경 모델

친환경 동력원을 주류로 미는 SUV가 조금씩 출시되고 있는 게 흥미롭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휘발유 내지 디젤 모델이 주류로 먼저 나온 뒤에 같은 차체를 기반으로 하이브리드나 전기차 모델이 덤으로 나온 형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 ‘코나’는 전기 내지 하이브리드가 덤으로 출시된 경우이다. 그러나 기아 ‘니로’(Niro)는 처음부터 휘발유 하이브리드 또는 전기 모델로만 나와서 친환경 차량임을 처음부터 굉장히 강조했다.

그 뒤 현대에서는 자기 주특기를 살려서 수소 연료전지 기반 전기 SUV인 ‘넥쏘’를 내놓았다. 수소 엔진으로 일렉시티 버스밖에 안 만드는 줄 알았더니 드디어 더 작은 차량까지 만들기 시작한 게 흥미롭다.
얼마 전에 넥쏘가 달리는 모습을 우연히 볼 수 있었다. 자동차가 VVVF 전동차 구동음과 이렇게 비슷한 소리를 내는 모습은 난생 처음이었다. 매우 신기했다.

순수 전기차는 배터리에 의존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보니, 제조를 위해 자동차 회사의 고유 기술보다는 화학 회사의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더 올라간다. 이는 기존 자동차 회사의 입장에서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니 이것 때문에 현대가 미래의 밥줄을 유지하기 위해 수소차를 일찍부터 연구 개발한 게 아닌가 싶다.

다만, 천연가스만 해도 액화하는 게 장난이 아니게 까다롭고 어렵거늘 그것보다 통제가 더 안 되고 온도늘 더 낮춰야 하는 수소는 뭐.. 아직 갈 길이 멀다.
액체 수소는 우주 로켓의 2단 이상의 엔진에서 연료로 쓰이는 편인데, 수소 연료 전지는 그렇게 수소를 고온 고압(?)에서 태우고 폭발시키는 엔진과는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물건이다. 연료 전지는 물리 반응이 아니라 화학 반응만으로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

로켓이 아닌 자동차 수준에서는 수소를 직접 태우는 방식보다는 연료 전지 방식이 더 실용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3. 버튼

2000년대부터 자동차에는 전통적인 열쇠 대신 버튼식 시동 장치가 등장했다. 열쇠가 굳이 스위치에 꽂힐 필요 없이, 열쇠가 차내에 있기만 하면 된다. 그 상태로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ON/OFF 버튼을 누르면 시동이 걸린다. (브레이크를 안 밟으면 단순 ON/OFF만 전환)

그 뒤 2010년대 후반부터는 신기하게도 변속기도 버튼식으로 서서히 바뀌어 간다. 자동 변속기 차량의 특성 중 하나가 P와 D를 오갈 때 불가피· 불필요하게 후진등 램프가 잠시 깜빡이는 것이었는데.. 이런 아마추어 같은 특성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래도 재래식 열쇠와 시동 스위치, 그리고 심지어 수동 변속기도 완전 깡그리 멸종한 건 아니며 최하위 모델의 깡통 사양에서는 남아 있는 듯하다.

4. 자동 변속기 차량이 시동이 꺼질 수 있는가?

올해 초에는 나름 비싼 고급 준대형 SUV인 팰리세이드가 산길에서 전복 사고가 난 것이 자동차 커뮤니티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처음에 운전자의 주장은 급발진을 수습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차량을 전복시켰다는 것이지만 블랙박스 영상을 보니 그게 아니고 그냥 개인의 운전 미숙 때문이었다.

당사자가 정말로 그런 말을 했는지 의구심이 드는 무개념 김여사 발언(거기 직원 3명을 짜르고, 사고를 겪은 나에게 위자료와 함께 제네시스 G80을 보상으로 달라??? ㄲㄲ)은 무척 병맛이지만, 문제의 핵심은 차가 전진 중일 때 실수로 후진 기어를 넣었을 때 차가 어떻게 동작하는 게 바람직하냐 하는 것으로 귀착되었다.

수동 변속기 차량이 기어를 잘못 넣어서 엔진에 과부하가 걸려 시동이 꺼지는 건 흔한 현상이다. 자동 변속기는 그런 현상이 없어서 좋다. 그런데 같은 방향의 고단 저단이 아니라 아예 엔진과 변속기의 진행 방향이 엇갈려 버리면 어떻게 될까?

예전에 영화 타이타닉을 보니 빙산과의 충돌 위기 때문에 배를 필사적으로 감속할 때는 엔진을 역추진 시키고 피스톤이 아예 반대 방향으로 돌기도 했더라만.. 걔는 증기 기관 외연 기관이다. 요즘 자동차 엔진은 피스톤의 회전 방향이 반대가 됐다가는 큰일 난다.

자동 변속기는 고/저단 변속을 잘못 했다고 시동이 꺼질 일이 없는 게 장점인데 그게 아예 전진과 후진조차 잘못 지정된 것까지도 감안해서 동작할 필요가 있는가?
개인적으로는 그것까지 감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외국의 다른 차들이 다 그걸 감안해서 동작한다면, 국산차도 제품 경쟁력과 운전자의 안전을 위해 그런 솔루션을 도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요즘 차들은 신호 대기 정차 중일 때 N 상태를 자동으로 흉내 내고, 심지어 시동까지 잠시 꺼 주는(ISG) 기능까지 도입돼 있다. 그런데 신호 대기가 아니라 내리막에서 변속 잘못으로 인해 시동이 꺼지는 건 차의 변속기는 보호해 주겠지만 탑승자까지 보호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차 시동이 꺼지면서 브레이크의 제동력도 공급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바퀴로 동력 공급을 끊은 중립으로라도 유지돼야지..

그리고 그런 안전 장치가 있건 없건, 운전할 때 전· 후진 변속은 차가 완전히 선 상태에서 해야 안전하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철칙이다.

5. 통신 장치

(1) 그러고 보니 1990년대 승용차들은 라디오를 틀 때면 차 뒤쪽에서 길쭉한 안테나가 무슨 삼단봉처럼 쓰윽 올라가고, 라디오를 끄면 안테나가 다시 내려갔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즘 자동차는 기술이 좋아졌는지.. 그런 길쭉한 작대기가 아니라 뒤에 상어 지느러미 같은 짤막한 안테나로 끝이다. 자동차용이다 보니 안테나도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는 형태로 디자인됐다.

(2) 터널 안에는 라디오의 음질이 AM/FM별로 어찌 됐더라..?? 아무래도 음질은 FM이 더 좋았다. 인공위성으로 송출되는 텔레비전은 화면이 나오지 않았고 말이다.

(3) 옛날에는 버스에서 텔레비전이 비치되어서 비디오 테이프가 아닌 전파 수신 영상을 시청하는 게 굉장히 신기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아시다시피 넘쳐나는 게 디지털 영상이고 전혀 신기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정작 아날로그 라디오를 청취할 수는 없고.. 굳이 라디오를 들으려면 인터넷 데이터를 써서 강제로 디지털로 바뀐 신호를 들어야 한다.

(4) 블랙박스도 스마트폰 같은 타 기기와 연계해서 날짜 시각 동기화 기능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다. 사고가 발생한 시각을 기록해야 하는데 이건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블랙박스는 근본적으로 순정품이 쓰이지 않고 통신 기능도 없는 폐쇄적인 기기이다 보니 21세기답지 않게 사람이 불편하게 수동으로 날짜 시각을 맞춰 줘야 한다.

6. 자동차의 공기 필터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요즘 사람들은 외출할 때 마스크를 끼는 게 무조건적인 필수가 됐다. 오토바이를 탈 때 헬멧을 쓰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공공장소에 들어갈 때 체온 측정을 하는 건 음주 측정을 하는 것과 비슷하게 됐다.

그 전에는 마스크라는 건 가끔씩 중공 발 중금속 미세먼지가 너무 짙어졌을 때 호흡기를 미세먼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착용하는 물건이었다(입력 차단). 즉, 그 마스크는 나를 위해 필요한 것이었으며, 끼지 않으면 자기가 손해였다. 그리고 공기가 상대적으로 맑은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벗어도 됐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착용하는 마스크는 미세먼지 마스크와는 용도가 완전히 정반대이다. 이건 이미 감염돼 있을지 모르는 사람의 날숨과 타액 비말(미세한 물방울)이 퍼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한 마디로 출력 차단용이다.

그러니 이제는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자기가 남에게 민폐를 끼치게 된다. 그리고 원칙대로라면 실내에서도 써야 하며, 주변에 사람이 없거나 충분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만 벗을 수 있다.

한편, 자동차는 기계이니 사람처럼 바이러스에 감염되지는 않지만.. 공기가 미세먼지 불순물 때문에 탁한 것은 사람뿐만 아니라 자동차에게도 절대로 좋지 않다.
에어컨이나 히터를 틀었을 때 퀴퀴한 냄새가 나면 사람들은 공기 필터를 교환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자동차에 공기 필터라는 건 두 종류가 있다. 흔히 생각하는 객실(cabin)용 공기 필터뿐만 아니라 엔진으로 들어가는 공기를 거르는 필터도 있기 때문이다.

엔진용 공기 필터는 우리 생각보다 자동차의 수명에 기여하는 것이 많으며 매우 중요한 부품이다. 사람이 끼는 ‘미세먼지 마스크’의 자동차 버전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흙먼지 등의 불순물이 많이 낀 공기가 실린더 안으로 들어가면 전부 불순물 찌꺼기가 돼서 배출되지 않고 남는다. 그래서 엔진을 더럽히고 출력과 연비를 깎아먹고 온갖 탈을 일으킨다. 사람으로 치면 호흡기와 순환기에 질병이 생기는 것과 같다.

환경이 위생적이지 못했던 옛날에는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매우 짧았다. 자동차도 안전 벨트나 안전 유리가 없던 시절에는 비포장 도로에서 정말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저속 주행 중에 사고가 났는데도 탑승자의 사망· 중상이 속출했다.

그리고 그것처럼.. 초창기에 공기 필터가 없던 시절에는 엔진의 고장이 지금보다 훨씬 더 잦았다. 한 2~3000km 정도만 구르고 나면 엔진 내부가 끔찍하게 더러워져서 진지한 정비 없이는 더 운행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게 공기 필터가 도입되면서 엔진 수명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이런 식으로 자동차 기술이 발달해 왔다. 그렇잖아도 자동차의 동력원이 외연 기관(증기)에서 내연 기관(휘발유/디젤)으로 바뀌면서 효율과 성능이 크게 향상됐지만, 엔진의 내부 구조가 훨씬 더 복잡해지고 연료와 공기에 대해 요구하는 민감도도 크게 올라갔다. 아무거나 대충 집어넣어서 불 때서 물만 끓이면 되던 시절을 생각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이런 경향은 자동차에 더 정교하고 복잡한 연료 분사 기술과 배기가스 정화 기술이 도입될수록 더 커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자동차에는 공기 필터뿐만 아니라 연료 필터라는 것도 진작부터 존재한다. 그리고 모든 필터들은 마치 엔진오일처럼 소모품이다.

7. 자동차의 이상 징후

자동차가 오랫동안 정비를 받지 않으면 주행 중에 여러 형태로 외형적인 이상 징후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방향지시등 램프가 일부 고장 나면 내부의 전기 저항이 줄면서 깜빡거리는 주기가 몹시 짧아진다. 일부 버스나 트럭이 그런 상태가 된 것을 본인은 몇 번 본 적이 있다.

  • 배터리에 이상이 없는데도 가끔씩 시동이 잘 안 걸리거나 건 뒤에도 자동차가 부르르 떨리고 회전수가 불안정하다면.. 점화 플러그가 수명이 다 된 것이다.
  • 급브레이크가 아닌데 제동 중에 하이톤의 ‘끼익~’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건 브레이크 패드가 오늘 내일 하는 상태라는 뜻이다. 저런 소리가 안 나야 정상이다.
  • 공회전 중에 ‘두두두두.. 드드드드~’ 소리가 깊고 강렬하게 들리는 것은 노킹 현상이며 이건 심각한 문제이다. 조속히 엔진 정비를 받아야 한다.

그것 말고도 엔진 작동 중에 주기적으로 하이톤의 ‘휙휙휙.. 끌끌끌..’ 소리가 들리는 것은 팬 벨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뜻이다.

자동차 엔진의 회전력은 바퀴 구동축에만 걸려 있는 게 아니라 배터리 발전기, 냉각수 순환 펌프, 에어컨 압축기, 브레이크와 파워 스티어링 등과도 몽땅 연결돼 있다. 그래서 엔진을 돌리는 건 생각보다 몹시 빡센(?) 일이며, 시동을 끄면 엔진은 관성이고 뭐고 없이 회전이 순식간에 멈춰 버린다.

이런 부하가 걸려 있는 회전축을 1m 길이 기준 수십 kg의 토크로 분당 수천 회 회전시키는 것이 자동차 엔진의 위력이다. 그리고 엔진 브레이크는 바로 이런 부하를 이용해서 차의 속력을 줄이는 테크닉이다.

팬 벨트는 차를 직접 굴러가게 하는 구동축을 제외하고 엔진의 힘이 필요한 다른 모든 기계에다 동력을 전해 주는 매체이다. 여기에는 차내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기도 포함된다.
그런데 이게 끊어지면 에어컨이 안 나오거나 브레이크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거나 잠시 후 배터리가 방전되거나 엔진이 과열되거나.. 아무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재앙이 발생하면서 차는 더 주행할 수 없게 된다. 엔진 오일만치 자주는 아니지만 점화 플러그나 브레이크액, 배터리, 타이어와 얼추 비슷한 주기로 점검하고 교환할 필요가 있다.

변속기 중에서는 CVT가 팬 벨트와 같은 재질은 물론 아니지만 푸시벨트라는 벨트 비슷하게 생긴 부품이 핵심 매체이다. 수동 변속기는 톱니바퀴이고 자동 변속기는 토크 컨버터와 오일인 것처럼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6/03 08:35 2020/06/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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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랜만에 원초적인 성경 계보와 종교 비교 얘기를 좀 하겠다. ㄲㄲㄲ
종교 개혁 개신교 진영에 킹 제임스라는 고전 영어 성경이 있다면, 가톨릭(천주교) 진영에는 듀에이-림즈(Douay-Rheims)라는 고전 영어 성경이 있다.

개신교 쪽 성경 중에 제네바 성경처럼 인명이 아니라 지명을 딴 역본이 있듯, 듀에이와 림즈는 프랑스의 지명이다. 원어인 프랑스어 스타일로 읽으면 “두에 렝스”라고 한다.
프랑스는 영국이나 독일과 달리 개신교 쪽의 종교 개혁이나 성경 번역과 관련해서는 언급되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 대신 천주교 성경이 저 동네에서 번역되었던가 보다.

공교롭게도 킹 제임스와 듀에이-림즈는 나온 시기가 굉장히 비슷하다. 전자는 어명에 의해 1604년에 번역 위원회가 조직되고 번역이 시작됐으며, 1611년에 전서가 한꺼번에 출간됐다.
한편 후자는 전자보다 약간 더 전부터 더 오랫동안 번역되어서 1582년에 신약, 1609년에 구약의 순으로 나눠서 출간됐다. 그래도 시기가 상당히 비슷한 건 사실이다.

1582년은 율리우스력을 개정하여(100의 배수해의 윤년 여부) 현재까지 세계 공통으로 쓰이는 달력인 그레고리력이 시행된 해이기도 하다. 저 때가 교황청에서 나름 성경도 만들고 달력도 고치는 등 여러 일을 했던 때였다. 왜냐하면 그 당시 쟤들은 독일에서 시작된 종교 개혁을 저지하고, 교황의 권위를 다시 강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먼 옛날 헨리 8세 때부터 이미 교황으로부터 결별하고 자체 교회를 운용하였으며, 자국어로 성경 번역도 진작부터 하고 있었다. 킹 제임스 성경의 출간 목적 중 하나는 성경 역본을 통합하여(비숍, 제네바) 그런 영국 교회(성공회, 청교도)를 하나로 단결시키는 것이었다.

그에 비해 천주교에서, 특히 휘하 조직인 예수회에서 뜬금없이 영어 성경을 내놓은 목적은 개신교 진영에서 시작된 자국어 성경 번역 트렌드에 맞불을 놓고(counter-) 자기네 교리를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이것 때문에 지금까지 안 하던 짓을 어쩔 수 없이 한 셈이다.
그래서 거기에는 오늘날 천주교 성경에서도 수용하지 않는 오글거리는 왜곡 번역이 좀 있다. 본인이 아는 건 딱 두 가지이다.

  • 창 3:15에서 여자의 씨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거라는 예언을 “여자”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거라고 바꿨다.
  • 눅 1:28에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하는 말은 원래 “큰 은총을 입은 자여”(피동)라는 요지인데.. 그걸 “은혜가 가득한 자여”(능동)라고 바꿨다.

마리아를 신격화하기 위해서 번역을 저렇게 한 것이다. 저 시절에 저렇게 뜯어고치는 건 우리로 치면 일제 시대에 손 기정 선수 사진에서 복부의 일장기를 뽀샵질로 일부러 지우는 것과 비슷한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본인은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자로서 천주교는 성경을 금지하고 없애고 신자들을 죽이고 성경 변개에 일조한 집단 정도로나 알고 있었다. 자기 교리를 위해서 말을 버젓이 뜯어고친 듀에이-림즈 역본이야 더 볼 것도 없는 부패한 성서이고 말이다.

지금도 그 신념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다만, 총론을 넘어 세부적인 각론으로 들어가면 이런 성경에도 의외의 면모가 있다는 것을 근래에야 발견했기에 몇 가지 예를 완전성 차원에서 이 글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듀에이-림즈(DRB)는 만들어진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킹 제임스와 마찬가지로 고어체이며 thou, thee, -eth 같은 대명사와 접사를 볼 수 있다. 그건 그렇다 치는데.. 가장 먼저 골 1:14를 펴 보자.
변개된 역본에서는 “그분의 피로 through his blood”가 삭제되었다고 킹 제임스 유일주의자들이 으시대는 구절이기도 하다. 그런데...

In whom we have redemption through his blood, the remission of sins:

본인은 눈을 의심했다. 존재할 거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through his blood가 DRB에서도 살아 있었다. 아니 이거, 마리아 숭배를 조장하던 그 역본이 맞나?
오히려 개신교 계열이며 천주교에서 과거에 시신을 부관참시했고 오늘날까지도 싫어하고 이단시하고 있는 위클리프.. 그 사람이 만들었던 옛날 성경(WYC)에는 through his blood가 없다.

in whom we have again-buying and remission of sins.

그건 이해가 된다. 위클리프 성경은 DRB보다 200년 가까이 전, 이 성계가 살아 있고 조선이 건국되었던 1390년대에 그 시절 여건의 한계상 ‘변개된 본문 계열’인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에서 번역됐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요 1:18도 찾아봤다. 무려 초대 교회 시절 오리겐 때 ‘독생하신 아들(son)’이 ‘독생하신 하나님(God)’으로 바뀌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 the only begotten Son who is in the bosom of the Father, he hath declared him. (DRB)
… but the one begotten Son, that is in the bosom of the Father, he hath told out. (WYC)

어라? 위클리프와 듀에이 모두 ‘아들’이라고 돼 있고 결과적으로는 KJV와도 일치한다. 오히려 개역, NIV, NASV 같은 20세기 역본들이 ‘하나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뭔가 혼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For three be, that give witnessing in heaven,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be one. (WYC)
And there are Three who give testimony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 (DRB)

혼란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요일 5:7이었다. “하늘에서 증거하는 세 분이 계시니…”라고 KJV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구절, 원래는 없었다가 후대에 첨가된 거라고 잔뜩 공격받는 그 구절이 위클리프와 듀에이에 모두 버젓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서로 죽고 죽이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양 진영에서 각각 내놓은 성경이 진술이 이 정도로 일치한다면 이건 완벽한 교차검증 성공이지 않은가? KJV를 만들 때 성공회 팀과 청교도 팀이 눈에 불을 켜고 상호 검증하던 것을 뺨치는 수준이다.

따로 소개하지는 않지만 DRB는 사 14:12에 루시퍼도 남아 있고 계 2:13에서 사탄의 왕좌 대신 자리라고 KJV 스타일로 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DRB만 욕하기가 민망하고 미안해질 정도였다. 이래서 뭐든지 양쪽의 말을 다 들어 보고 팩트 확인을 꼼꼼히 해야 되는구나..

뭐 그래도 벧전 2:2에서는 서로 제 갈 길 가는지 DRB는 변개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이고, WYC는 어째 KJV에 더 가까운 스타일로 번역되었다.

As newborn babes, desire the rational milk without guile, that thereby you may grow unto salvation. (DRB)
as now born young children, reasonable, without guile, covet ye milk [of full teaching], that in it ye wax into health; (WYC)

다시 말해 골 1:14와 벧전 2:2를 비교해 보면 KJV는 OO, 개역 NIV 따위는 XX인데.. DRB는 OX요, 위클리프는 XO인 셈이다.
본인은 세상의 모든 성경은 OO 타입 아니면 XX 타입이지, OX나 XO 타입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옛날에는 그런 중간형이 존재했던 모양이다.

어찌된 일일까? 이런 사실은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5분만 관심을 갖고 검색해 보면 알 수 있는데 나도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 뭐, 킹 제임스 지지자건 반대자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회색지대 영역이어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위의 사실은 가톨릭 쪽이든 개신교 쪽이든, 성경이 필사되고 전수된 과정이 모 아니면 도 하나로 언제나 딱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줄 뿐이다.
그게 그나마 긍정적인 쪽으로(OO) 크게 교통 정리가 된 건 에라스무스의 공인 본문 정립이다. 그리고 이를 대적하기 위해서 부정적인 쪽으로(XX) 크게 교통 정리가 된 것은 19세기 말의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본문과 RV 역본이다.

16세기에는 요일 5:7에 실제로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세 분”이 기록돼 있었나, 마가복음의 마지막 열두 구절이 진짜로 기록돼 있었나 하는 것은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건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이래로 본문비평이라고.. 성경 변개를 학술적으로 합리화하려는 수작 하에서 근현대에 와서야 제기된 낭설이다.

종교 개혁으로 인해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 반목과 대립이 심하던 16세기에 진짜 중요했던 것은 “성경에 외경--가톨릭에서 제2경전이라고 부르는--을 넣을 것인가? 넣는다면 구약의 일부로서 embed시킬 것인가 아니면 부록으로 별도로 넣을 것인가?”였다. 천주교 식이라면 토비트, 유딧, 에스드라, 마카베오 같은 책도 구약에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을 것이고, 에스더기는 10장 3절 이후로도 계속되어 무려 16장까지 있게 된다.

킹 제임스조차도 당대의 관행과 종교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외경이 포함되어 나왔다. 그러나 성경 본문은 절대 아니고 구약으로부터 분리된 부록 형태로 수록되었다. 그 시절엔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신의 한 수 파격이었고 교황 추종자들로부터 밉보일 짓이었으며, 최악의 경우 번역자들이 신변의 위협을 겪고 암살 당할 수도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사진은(☞ 출처) 1611년도 KJV 원판에서 외경의 한 페이지이다. 보다시피.. 에스더기만 해도 10장 4절부터 시작되는 외경 영역은 완전히 분리해서 수록하지 않았는가? The rest of the chapters of the book of Esther, which are found neither in the Hebrew, nor in the Calde라고 말이다. 세상에 그 어떤 천주교 성경도 에스더기 뒷부분을 이딴 식으로 편집해서 수록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가톨릭 정신이 너무 투철한 일부 사람들은 KJV도 외경이 들어갔기 때문에 친가톨릭 성경이라고 비판하고 1611년판이 아니라 1655년인가 뭔가 외경이 완전히 제외된 KJV가 진짜 KJV라는 식으로 주장한다. 그건 역사에 대한 무지의 소치이며, 별 영양가 없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얘기가 길어졌으니 슬슬 정리를 하겠다.
본인은 KJV 유일주의자로서 가톨릭이 성경과 관련하여 부정적인 기여를 한 것을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독립된 분야로 요약하겠다.

1. (과거) 가장 먼저 옛날에야 일반인들에게 성경의 소지를 금하고 번역도 금하고.. 자기들 말고는 성경에 접근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실물을 불태웠다.
차라리 이단도 생기고 온갖 교단 교파들로 찢어지는 한이 있어도 수많은 지역 교회들이 잡초처럼 생겨나는 것이 성경적이지, 저기 같은 피라미드 중앙 집권 체계는 성경적인 교회 모델이 아니다. 뭐 지금이야 시대가 바뀌어서 쟤들도 물리적인 박해는 못 한다.

2. 오리겐 같은 옛날 사람들이 조금씩 독소를 넣고 변개해 놓은 일명 알렉산드리아 원문을 토대로 변개된 라틴어 본문을 만들었다.
하지만 옛날에는 사람들에게 성경에 대한 물리적 접근성 자체가 너무 낮았기 때문에 그 당시엔 본문 변개의 여파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렇기에 DRB에도 올바른 다수 사본의 영향을 받은 맞는 표현도 여럿 등장했던 것이다.

3. 구약 성경에다 외경을 추가해 넣고, 십계명을 고쳤다. 이건 오늘날 개신교 쪽의 변개된 성경에서도 따르지 않는 사항이니 골 1:14, 벧전 2:2 같은 변개하고는 성격이 좀 다르다.

4. (과거) 한때 DRB 같은 마리아 숭배용 엽기적인 역본도 만들었다. 물론 오늘날은 천주교 성경에서도 그런 식으로 번역을 하지는 않으니 저건 흑역사가 되었다.

5. 그리고.. 옛날 성경에서 O를 확실하게 X로 몽땅 바꾼 개정판을 만들고, 20세기 이래로 모든 성경들의 번역 트렌드가 이걸 따라가게 만들었다. 2에다가 학문적인 근거(?)를 추가해서 그 영향력을 소위 기독교계 전체에 파급시킨 것이다.

본인은 이번 리서치를 통해서 2와 5를 더 명확하게 구분하게 되었다.
요일 5:7이 원래는 없다가 후대에 추가됐네 이딴 소리들은 2가 아니라 5의 산물인 것이다. 그놈의 후대라는 건 도대체 정확하게 언제쯤 후대를 가리키는 걸까?

사실, 논리를 더 명확하게 세우려면 천주교에서는 DRB 이후로 어떤 영어 성경을 사용해 왔는지를 알아야 할 것 같다. 개신교계가 KJV를 300년 가까이 사용하다가 갑자기 19세기 말부터 RV, ASV의 순으로 부패가 시작됐는데 저쪽도 DRB를 천주교계의 KJV마냥 수백 년 사용하다가 성경이 바뀌었는지?

1970년대에 나온 천주교용 NAB (New American Bible)은 이미 변개된 XX 스타일로 다 바뀌었다. 개신교가 이미 변개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는데 가톨릭에도 그런 변화가 없었을 리가 없다.
사실 본인은 공동번역 성서가 나오기 전에 한국 천주교에서는 무슨 성경을 사용했는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설마 개신교 쪽 성경을 봤을 리는 없을 테고, 아니면 아예 성경 없이 교리문답서만 보고 살았는가?

적장은 적장을 알아본다고 가톨릭은 오늘날도 위클리프나 루터나 틴데일이나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서는 당연히 절대로 호의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지금이 옛날 같은 종교 재판, 이단 심문 같은 게 존재하지는 않으며 다들 평화니 화합이니 하고 있지만.. 결국 교리와 믿음이 다른 것은 다른 것이다. 그 차이점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이 십계명을 두 버전으로 주셨을 리는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둘 다 옳을 수는 없다.

가톨릭의 듀에이-림즈는 현재 가톨릭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골동품이지만, 기독교의 킹 제임스 성경은 오류가 없는 최종 권위 말씀이며 하나님께서 말씀 보존 약속을 이행해 주신 바로 그 실물이다. 아멘.

  • 종교 개혁의 불모지이고 예수회의 본산지이던 스페인에도 그래도 ‘레이나-발레라’라고 바른 계보의 성경 역본이 있다. 요일 5:7을 찾기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얘는 누가 언제 어떤 계기로 번역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한국은 1990년대가 돼서야 바른 계보 번역 성경이 나왔는걸..;;
  • 우리 진영 교회사에서는 맨날 사악한 가해자, 거의 공산주의자 급의 종교 공작원이라고 묘사되는 예수회가 일본에서는 박해받은 ‘기리시탄’이라고 불렸다는 게 굉장히 아이러니하다. 중세 일본에서 사용했던 예수쟁이 식별법 중엔.. 나 같은 사람이라면 굳이 걸려들지 않았을 방법도 있다. 형상에 대한 인식의 차이 때문에 그렇다.

Posted by 사무엘

2020/05/05 08:35 2020/05/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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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전자용 호신술은 흔히 "방어 운전"이라고 일컬어지는 편이다.

1.
무단횡단을 하다가 달려오는 차와 마주치게 됐다면, 무리해서 길을 마저 건너려고 뛰어가거나 차를 피해 도망치지 마라. 차도 당신이 달려가는 쪽으로 회피 기동을 하다가 충돌 사고가 나기 십상이다.
0.5초 만에 완전히 도로 바깥으로 벗어날 수 있지 않고, 오는 차가 그리 크지도 않은 소형 승용차라면.. 차라리 그냥 가만히 서 있어라. 그러면 차가 당신을 알아서 피해 갈 것이다. 무단횡단자를 쳐도 이 나라는 과실 비율이 무단횡단자에게 엄청나게 유리하고, 운전자에게 엄청나게 불리하다. 차는 절대로 당신을 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게 마련이다.

2.
무단횡단이라는 건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있고 차선이나 중앙선도 그어졌을 정도로 최소한의 규모가 있는 도로에서 성립한다. 횡단보도가 있는 경우, 신호등이 있어서 빨간불일 때 건너면 무단횡단이 되지만 신호등이 없다면.. 그냥 보행자가 걸어다니는 빨간불이나 마찬가지이다.
차와 보행자가 어설프게 서로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됐다면.. 어영부영 있지 말고 보행자가 그냥 손 들고 과감하게 먼저 건너 가 버리는 게 운전자의 입장에서도 훨씬 더 낫다.

3.
2차로 도로 같은 데서 중앙선 침범 차량과 정면충돌 위기에 처했다면 각 차량이 자신의 진행 방향 기준 "오른쪽"으로 피하도록 하자. 이것도 상대방을 생각한답시고 서로 엇갈리는 방향(= 결과적으로 동일한 방향)으로 대피해 버리면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하다못해 비행기도 마주오다가 관제 실수로 인해 동일 방향으로 회피해서 충돌 사고가 난 적이 있다. 자동차는 그런 관제를 받는 것도 없으니 운전자들이 자체적으로 일관된 매뉴얼을 갖춰야만 한다.

4.
무작정 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때도 많다. 너무 놀라고 오버해서 급 핸들 조작을 하는 게 그냥 곧이곧대로 가면서 감속만 하다가 적당히 앞의 장애물을 들이받거나 측면 접촉사고를 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고를 낼 수도 있다는 걸 유의하자. 좌우로 휘청거리다가 멀쩡한 옆차와 팀킬, 혹은 최악의 경우 중앙선 침범, 정면충돌, 보행자 치기 등... 비접촉 뺑소니 때문에 자기만 혼자 독박 쓰면 정신 건강에 굉장히 안 좋다.

5.
보행자건 운전자건 무단횡단이나 갑툭튀 칼치기로 인해 멀쩡히 잘 가던 남의 차를 급브레이크를 밟게 만들었으면 좀 미안한 줄 알고 최소한의 쏘리, 사과 비상등 같은 의사 표현을 해라.
차대 차의 경우 이것만으로도 분노 조절 장애로 인한 막장 보복운전 범죄를 상당수 예방할 수 있다. 이게 무슨 교통사고 과실 따지는 것도 아닌데.. 평생 다시 볼 일 없다시피할 사람에게 자기 실수 좀 인정하고 넘어간다고 해서 님하의 인생에 불이익이 돌아올 거 하나도 없다.

6.
어디서나 저속 차량은 제발 제일 구석의 n차로로 달리고, 추월은 "왼쪽"으로만 하게 왼쪽 차로를 비워 놓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과속, 칼치기 차량보다 더 나쁜 차량은 자기보다 더 급한 차들의 정당한 추월을 방해하면서 남의 시간을 뺏고 우측 추월 칼치기를 강요하고 사고의 위험을 높이는 차들이다.

(* 우리가 차선이라는 말을 쓰는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실제로 차선이 아니라 차로가 더 정확한 표현인 경우가 많다. 시간과 시각, 음정과 음고처럼 잘 혼동하는 용어이다.
"점선이냐 실선이냐, 색깔이 무엇이냐, 비 오는 날 밤엔 잘 안 보인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차선이고, 자동차가 진입하는 공간을 얘기할 때는 차로가 맞다.)

7.
보너스. 내가 급발진을 겪을 일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1. 기어 중립 후 브레이크 꾸욱~~으로 통상적인 동력 차단과 제동 시도.
  2. 그게 안 통하고, 조향 걱정이 없는 공간이 있다면 시동을 강제로 끄고 어떻게든 세운다. 비파괴적인 방법은 여기까지다.
  3. 다음으로는 측면으로.. 길가 담벼락이나 가드레일을 긁으면서 차를 세우는 게 최선이다.
  4. 그마저도 할 수 없다면 앞이 완벽하게 막힌 벽면이나 비슷한 체급의 차를 추돌해서 세운다. 측면 긁기보다 더 위험해지며, 에어백에 얼굴 파묻을 각오도 해야 한다.

단, 대형 트럭· 버스처럼 높은 차 또는 나무· 기둥 같은 단면이 좁은 물체를 들이받는 건 매우 위험하다.
최악의 경우는 어설프게 요리조리 피하면서 시간 끌고 차 속도를 실컷 키운 뒤에야 무엇이건 들이받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는 절대로 도달하지 않게 해야 한다.

8. 똑똑한 신호의 필요성

이제는 단순히 운전 습관을 넘어 신호와 교통 정책 쪽으로.. 뭐랄까 전술보다는 전략에 가까운 얘기를 좀 하겠다.

도로와 도로가 만나는 교차로에서 모든 방향이 차들로 터져 나간다면.. 각 방향별로 통행 신호를 일정 시간 동안 교대로 부여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 하지만 차량 통행이 아주 적어진다면 저런 고전적인 신호 체계는 지나가는 차도 없는데 쓸데없는 신호 대기를 유발하고 효율이 매우 안 좋아진다.
이럴 때는 무작정 운전자에게 비합리적인 준법 정신을 무작정 열정페이마냥 강요할 게 아니라 다음과 같은 더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 나서야 한다.

  • 점멸 신호: 서로 서행(황색) 내지 일시정지(적색) 의무를 지키면서 조심스럽게 통과하면 되지만, 사고의 위험이 아무래도 높다.
  • 회전 교차로: 점멸 신호보다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처리 가능한 교통량에 큰 한계가 있다. 그리고 큰 도로에서는 적용하기 어렵다.
  • 감응식 신호: 인적이 드문 횡단보도는 보행자가 버튼을 눌렀을 때에만 파란불 신호가 오게 돼 있다. 그것처럼 자동차 도로에도 차가 특정 자리에 진입해서 대기하고 있을 때만 잠시 후에 좌회전 신호가 오는 '감응식' 신호 교차로가 국내에 드물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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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 신호는 차량 통행량이 적지만 그만큼 과속· 신호위반으로 인한 안전 사고가 우려되는 시골의 교차로에서 차차 도입되고 있으며, 서울 시내에서는 노량진 수산시장 방면으로 좌회전하는 교차로에서 딱 하나 본인이 본 적이 있다.

카메라라는 걸 맨날 차를 마음대로 못 움직이게 감시만 하는 데 쓰지 말고 이렇게 합리적인 용도로 활용하면 얼마나 좋나?
도로들이 궁극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스마트하게 바뀌어야 효율과 안전이라는 토끼 두 마리를 모두 잡을 수 있으며 운전자에게 불만과 신호 위반의 충동을 억제시킬 수 있다.. 이런 알고리즘은 긴급 자동차의 주행 우선순위 조정 내지 자율주행 자동차의 동작과도 연계 가능할 것이다.

9. 좌회전 유도로에 대한 추억

과거의 도로 교통 정책은 제한된 공간에 차들을 최대한 많이 집어넣고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성향이 강했다. 고가 차도라든가 상· 하행 가변 차로..
그리고 신호 방식이 '직진 후 좌회전'인 +자형 교차로의 경우, |쪽이 직진일 때 좌회전 차들도 -쪽을 살짝 침범할 정도로 앞으로 미리 전진해서 신호를 기다리는 일명 '좌회전 유도 차로'라는 게 있기도 했다. (☞ 더 자세한 개념 설명)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 것들이 21세기에 와서는 몽땅 없어지고 단순화됐다. 고가 차도나 육교는 점점 철거되고 없어지는 추세이며, 상· 하행 가변 차로도 내가 알기로 이제 거의 전멸이다.

좌회전 유도 차로라는 것도 잘 활용하면 좌회전 신호 대기 차량이 직진 차량의 앞을 막는 현상을 완화하고 교차로의 통과 용량을 증가시키는 매우 좋은 효과가 있는데.. 활용하는 방법을 모르는 운전자가 많아서 부작용이 종종 발생하곤 했다.
직진 신호가 됐는데 좌회전 차들이 유도 차로로 진입하지 않는다거나, 심지어 자기 신호가 끝나자 유도 차로에서 멍청하게 서 버려서 -쪽 방향을 길막 하고 그쪽 운전자들로부터 경적과 욕 먹고.. ㅡ,.ㅡ;; 이 광경을 본인도 몇 차례 본 적이 있다.

어휴, 그러면 홍보를 더 해서 좌회전 유도 차로가 정착하게 했어야지.. 무식하게 없애 버리니 아쉽다. 과거 로드뷰를 보면.. 얘는 생각보다 늦은 2010년대 초에 등장했다가 16~17년 사이에 도로 없어진 것 같다.

10. 신호등은 교차로 건너편에 있는 게 보행자에게도 더 나음

그리고 끝으로.. 본인은 차들이 정지선 좀 침범해서 정지해도 괜찮으니, 교차로 신호등이 예전처럼 교차로 건너편에 있었으면 좋겠다. 오래된 생각이다.

그래야 (1) 보행자도 주변 차도들의 방향별 신호등 상태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언제쯤 내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파란불이 될지, 이제 얼마나 더 기다리면 되는지를 얼추 예측하고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주변의 움직이는 차들이나 횡단보다 상태를 봐도 짐작 가능하지만, 신호등을 보는 게 더 편함. 특히 신호등엔 노란불이라는 중간 상태가 있으므로..)

왜 별 쓸데없는 걸 자꾸 바꾸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신호등이 건너편에 있는 게.. 정지선 조금 몇 cm좀 초과한 것보다 훨씬 더 악질적인.. (2) '꼬리물기'를 잡아내는 용도로도 훨씬 더 좋다. 다 지나서 건너편에 도달할 때까지는 교차로를 완전히 통과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난 21세기 들어서 자꾸 보행자 위주니, 대중교통 우대니 하면서 자꾸 자동차에 규제를 거는 식으로 정책이 바뀌는 게 전반적으로 마음에 안 든다. 특히 빌어먹을 속도 규제 말이다.
이놈들은 대중교통을 더 빠르고 편하게 만드는 것보다, 자가용 자동차를 찍어누르는 식으로 일을 추진하는 것의 비중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들이 평등을 다같이 부자를 만드는 식으로 실현하는 게 절대 아닌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그리 크지 않은 길에 한해서 모든 방향의 차도를 틀어막고 대각선 방향 횡단보도까지 파란불 신호를 주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요즘 시내 속도를 너무 지나치게 낮추고 있으며, 시내와 고속도로를 불문하고 과속 단속 카메라가 너무 많다.
천호대교는 교량에까지 중앙 버스 전용 차로가 있는 유일한 예인 것 같은데.. 안 그래도 6차로밖에 안 되는 교량에다 왜 그런 짓을 했나 모르겠다.

거기에다가 희대의 악법인 민식이법은 막장의 정점을 찍었고.. 악질 음주운전 사망사고 가해자한테도, 졸다가 고속버스로 승용차를 짓밟아 뭉개서 앞날이 창창한 20대 탑승자 4명을 몽땅 몰살시킨 가해자한테도 선고된 적이 없는 형량이 구형되는 걸 보고 난 어이없음에 할 말을 잃었다. 애초에 시속 30km 초과 과속을 한 것도 전혀 아닌데..
이 정도면 진짜 적기 조례 시즌 2를 실현할 것으로 보인다. 애 부모라는 놈이.. 자기가 욕 먹으니까 이제는 국회 탓이나 하는 꼴이 정말 혐오스럽기 그지없어 보였다.

Posted by 사무엘

2020/04/30 08:35 2020/04/3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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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해서

1. 관련 용어

빨강이라는 색이 있을 때 같이 나란히 쓰일 만한 보색으로는 노랑(경고의 수위), 검정, 파랑, 초록 등 여러가지가 있다.
그것처럼 성경 용어 내지 개념으로서 faith(믿음)와 대비될 만한 관련 용어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은혜(grace): 믿음에 의한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 근간이다. 받을 자격이 없는 을에게 갑이 먼저 무료로 베풀어 주는 뭔가 좋은 것을 말한다. 엡 2:8은 saved by faith through grace라고 믿음과 은혜의 관계를 설명한다.
  • 회개(repentance): 믿기 위해서 을에게 먼저 동반되어야 하는 심경의 변화, 유턴, 반전이다. 이전 글에서 논했듯이, 꼭 물리적인 나쁜짓을 그만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믿지 않는 것도 죄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리고 문제의 본질을 진단하고 치료하지, 증상만 없애려 하지 않는다.
  • 일, 행위(work): 정말 믿었다면 그 결과 겉으로 바뀌어 드러나는 행적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고 믿음 분량의 차이가 있는 이상, 믿었다고 무조건 기계적으로 행위가 당장 나타나는 건 아니다. 또한 행위가 구원의 조건인 것은 더욱 아니다.
  • 시인, 고백(confession): 자기가 믿는 것을 말로 표현하는 동작이다. 성경에는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라",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같은 말씀이 있는데, 한편으로 문맥과 관점에 따라서는 입으로 시인하는 것만으로도 믿음의 열매인 행위나 마찬가지일 수 있다(롬 10:9-10).

2. 유사 용어

  • faith는 뭔가 을이 갑에게 의지하는 종교적인 염원이 담긴 믿음을 말한다. "P와 NP는 아마도 같지 않을 것이다, 홀수 완전수나 65537 이후의 페르마 소수는 아마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 수학자들의 믿음이다." 이렇게 단순 추측에 가까운 믿음은 belief라고 하지 faith라고 지칭하지는 않는다.
  • believing과 belief의 차이는 그리기와 그림의 차이와 비슷한 그냥 언어적인 차이일 뿐이고.. 성경에서 요한복음은 believe만 나오지 faith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3. 다양한 종류와 강도의 믿음

  •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와 믿음이 존재하고, 그 뒤에도 지속적인 회개와 믿음이 필요하다.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전혀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유지하고 바람직한 크리스천으로 살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이 내 죄 사하려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건 굳건히 믿지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다, 먹은 것과 입을 것이 있는 것으로 만족하라"를 안/못 믿는 "구원받은 불신자"도 세상에 셀 수 없이 많다. (물론 그건 대외적으로나 자기 자신에게나 건전한 상태는 아님)
  • 꼴랑 구원받는 회개와 믿음 하나만 갖고 평생 사는 것은 결혼한 부부가 연애와 신혼 시절의 콩깍지만 갖고 평생 사는 것과도 같은 무모하고 불가능한 짓이다. 구원받은 사람을 하나님이 왜 즉시 하늘나라로 데려 가시지 않는지를 잘 생각해 봐라.
  • 그리고 믿음이 아직 작은 것하고, 믿음이 아예 없는 것, 죽은 믿음은 셋 다 다른 상태를 가리킨다. 세상에 그 어떤 고성능 자동차라도 정지 상태에서 3단, 4단 기어에서 곧장 출발할 수는 없다. 이걸 갖고 "그딴 식으로 할 거면 아예 때려쳐라" 식으로 남을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지는 않아야 한다.

4. 성경에 나오는 정말 위대한 신앙고백들

성경에는 여러 인상적인 구절들이 있는데 그 중 신앙 고백과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굉장히 대단하고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몇 개 뽑으면 다음과 같다. 이걸 소개하면서 글을 맺는다.

(1) 욥: 알몸으로 태어났다가 죽어서도 알몸으로 돌아가는 게 인간 아닙니까? 모든 것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고 도로 가져가신 분도 하나님입니다. 주의 이름이 찬송 받으옵소서.
(욥 1:21. 빌 게이츠 급의 플래티넘 수저 갑부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천재지변으로 전재산 다 풍비박산 나고 자녀 10명이 몽땅 몰살당한 뒤에..)

(2) 다니엘의 세 친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를 풀무불에서 능히 건져낼 능력이 있습니다. 설령 그분께서 “그리하지 않고” 우리에게 죽음을 허락하신다 할지라도 우리는 한 치의 고민 없이 폐하의 신을 섬기지 않을 것이며, 황금 형상에도 절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단 3:17-18. 노발대발한 느부갓네살 왕과 불타는 용광로 앞에서..)

(3) 백부장: 님하 같은 엄청난 분께서 굳이 누추한 저희 집에 오시겠다니요? ㅠㅠ 그럴 필요 없이 말씀만 한 마디 하시면 종의 병이 원격으로 치료될 겁니다. 저 같은 일개 중대장도 명령을 내리면 100여 명의 부하 군사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데 하물며 님하이시겠습니까?
(마 8:8-9. 다시 생각해 봐도 예수님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의 정말 대단한 논리와 믿음에 입각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바리에이션으로 딸의 병을 원격으로 치료받은 어느 가나안 여인의 명대사도 있다. 마 15:27-28)

(4) 베드로: 님하는 그리스도이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마 16:16. 특별히 역경 속에서 나온 말은 아니지만 그냥 내용 자체가 고퀄이어서)

Posted by 사무엘

2020/04/20 08:35 2020/04/2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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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의병이 토벌된 이후로 일제 시대에 무력을 사용한 항일 독립운동 분야의 최초 원조는 (1)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 중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한일합방보다도 전이니 독보적인 원조이다.
그 뒤 한 10년 정도 일제의 무단 통치를 경험하고 3· 1 운동까지 진압된 걸 보니, 일제를 상대로 테러와 게릴라전을 동원해서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타났고.. 1919년 말에는 김 원봉의 주도로 의열단이라는 게 생겼다.

아, 의열단보다 근소하게 전인 1919년 9월엔.. (2)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향해 폭탄을 던진 강 우규가 등장했다. 하지만 이건 실패했다. 그는 현장을 탈출하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나중에 같은 조선인의 밀고로 체포되어서 조선인 형사에게 취조를 받는 안타까운 일을 당했다. 이후 사형 선고를 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그래도 사이토 총독의 입장에서는 3· 1 운동이라는 대형 사고가 터졌었지, 게다가 부임 당일에 자기 목을 노린 폭탄 의거까지 벌어졌지.. 당장은 이빨과 발톱을 감추고 민심을 달래야만 했다. 괜히 문화 정책을 편 게 아니었다. 통치 양상이 더 교묘해질 수밖에 없었다.

의열단이 벌인 최초의 거사는 (3) 부산 경찰서를 노린 박 재혁이었다. 1920년 9월, 폭탄을 터뜨려서 경찰서장을 살해하는 데 성공했지만 자신도 다친 채로 체포됐고 옥중에서 단식 자결했다. 당시 경찰서장이 중국 고전 덕후라는 정보가 있어서 그는 중국인 고서 상인으로 위장해서 들어갔었다.

그 뒤 1920년대 초중반엔 본토 밖에서는 독립군이 활동했고, 본토 안 서울에서 권총과 폭탄을 쥔 의열단의 리즈 시절이 잠깐 벌어졌다.

(4) 김 익상은 일본인 전기 기사로 변장해서 1921년에 무려 조선총독부 청사 안으로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폭탄을 몇 군데 투척해서 터뜨리긴 했지만 불발탄도 있었고 유의미한 인명 살상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자신도 변장 잘하고 일본어를 유창히 구사한 덕분에 안 잡히고 무사히 탈출했다.

의열단에서는 거기까지 들어갔다가 살아서 돌아온 게 참으로 용한데, 이제 그만 은퇴하고 니 인생 즐기라고 그에게 권유했다. 그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이듬해에 일본의 육군 대장(다나카 기이치)을 암살하러 동지 2명과 함께 상하이에 갔으나.. 여기서도 권총 사격과 폭탄 모두 지독하게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이들은 임무에 실패한 채 모두 붙잡히고 말았다.

김 익상은 뭔가 유의미한 1차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무장 항일 독립운동 역사상 조선총독부 내부에 대놓고 침투해서 저만치라도 타격했던 전무후무한 인물이다. 2차 의거 때도 사형은 면했지만 1943년까지 일제 시대 기간 대부분과 자기 2, 30대 나이를 몽땅 감방에서 보내게 됐다. 명목상 석방된 뒤에도 일제로부터 감시를 받다가 또 다시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서 최후를 맞이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모로 좀 특이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다음으로 (5) 김 상옥이 1923년 1월, 종로 경찰서 내부에서 폭탄을 터뜨려서 주변 일본인들 여러 명을 다치게 했다. 당일에는 도주에 성공했지만 며칠 뒤 은신처가 탄로나고 서울 시내에서 포위되었는데, 이때 자신을 체포하려는 수많은 일본 경찰들을 상대로 혼자서 권총 두 자루만 쥐고 수 시간 동안 시가지 총격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서장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중견 간부급을 사살하고 부하들에게 중상도 입했다고 한다.
그는 총알이 다 떨어지자 마지막 총알로는 자결했다.

(6) 나 석주는 1926년 말, 의열단의 거의 끝물을 장식한 사람이다. 그는 중국인으로 위장해서는 동양 척식 주식회사와 조선 식산 은행에 폭탄을 던져서 내부 시설을 부쉈다. 다음으로는 사장이나 행장 같은 특정 타겟 없이 그냥 주변의 VIP 같아 보이는 일본인들을 권총으로 마구 사살하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과도 대치하게 됐다.

결말은 3년 전의 선배 김 상옥과 비슷해졌다. 그 역시 마지막에는 자결을 시도했지만.. 단번에 절명하지 못하고 체포된 채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래도 충분한 치명상을 입은 덕분에 다행히 일제에 의해 고문과 처형 당하지는 않고 병원에서 순국한 것으로 보인다.

의열단은 이 글에서 언급되지 않은 실패한 거사도 몇 건 더 추진한 바 있다.
몇 년간 그렇게 해 봤는데 우리 역랑이 부족한 게 느껴지고, 딱히 대세가 바뀌는 건 없는데 귀중한 대원들의 희생만 더 커지고, 임시정부와도 손발이 썩 맞지 않고..

의열단은 일제 내지 내부 배신자에 의해 비극적으로 일망타진 와해된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악재들이 겹치면서 해체되었다. 김 원봉은 무장 투쟁을 할 거면 이런 게릴라 공작원 테러리스트 급이 아니라 정규군 급의 병력을 양성할 필요를 느끼고 중국으로 떠났다.

그래서 1930년대 초에는 김 구가 의열단을 대신하여 임시정부 명의로 한인애국단이라는 비밀 단체를 만들었다. 이 봉창과 윤 봉길은 의열단이 아니라 바로 저기 소속으로 활동했던 사람이다.

(7) 이 봉창은 잘 알다시피.. 일본어를 너무 유창하게 잘하고 일본인 지인도 많고 심지어 일본 경찰과도 인맥이 있어서 김 구가 처음에 이놈은 밀정이 아닌지 진지하게 의심했을 정도였다. 한참을 얘기를 나눠 본 뒤에야 끄나풀이 아니고 레알 동지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조선 총독도 아니고 무려 히로히토 일본 천황을 암살하러 1932년 1월에 본토에 갔으며, 현장까지 잘 도달해서 폭탄을 던졌다. 폭탄은 불발 없이 잘 터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일본인들에게 신이나 마찬가지인 천황이 사람들에게 호락호락 얼굴을 비춰 줄 리 없었다. 천황은 면상은커녕 항복 방송 옥음(!)을 들려준 것만으로도 신민들이 벌벌 떨었던 존재인걸..;; 그는 똑같이 생긴 여러 대의 마차 중에 어느 게 천황이 탄 마차인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에 목표물을 맞히지 못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히로히토의 생일에 훙커우 공원에서 벌어진 (8) 윤 봉길 의사의 의거는 무장 항일 독립운동 역사상 역대급의 대박을 터뜨렸다. 물리적인 인명 살상 실적으로나, 상징성으로나..

게다가 이런 스타일의 유의미한 거사는 훗날 해방될 때까지 저게 사실상 마지막 대단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윤 봉길 이후로는 일제의 감시와 탄압이 더욱 강화되고 김 구의 신변도 위험해졌기 때문에 한인애국단은 활동이 지속되지 못하고 1933년에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봉창과 윤 봉길은 모두 외국에서 거사를 벌이고 외국에서 순국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의열단 시절과 달리, 이렇게 가입 선서식 사진까지 존재하는데.. 그런데 사진들의 태극기 배경은 다 합성인 것 같다.)

그러니 사람들이 안 중근과 윤 봉길만 기억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게 이 분야의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서로 사용한 무기(전자는 권총, 후자는 폭탄)나 처형된 방식을 헷갈리기도 한다(전자는 교수형, 후자는 총살). 이들 이후로는 김 구도 개인· 소수 단위의 테러 의거가 아니라 광복군이라는 정규군을 양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된다.

이상이다.
누가 만들어 낸 구분인지는 모르겠으나.. 똑같이 항거하고 투쟁했더라도 무기를 들고 싸운 사람은 의사라고 부르고, 맨몸으로 싸운 사람은 열사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 준(헤이그 밀사), 유 관순, 전 태일 같은 사람은 열사이고, 안 중근, 윤 봉길 같은 사람은 의사이다. 국어사전에는 명시돼 있지 않지만 통상적으로는 진짜로 저 기준으로 나뉘는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일제 강점기는 컴퓨터라든가 각종 전자 출입 카드, X선 금속 탐지기 따위가 아직 없었기 때문에 저런 방식의 무장 항일 투쟁도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게 있었으면 외국에서 만들어진 폭탄과 권총을 어떻게 한반도로 반입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안 중근(하얼빈 역)과 윤 봉길(훙커우 공원)의 경우, 초대장 내지 입장권이 없었기 때문에 원래 해당 행사 장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걸 유창한 일본어로 "아이 씨, 티켓을 깜빡 잊고 안 가져왔네.. 이런 경사스러운 행사에 자국민도 못 들어가요?"라고 유창한 거짓말을 구사하며 둘러댄 덕분에 들어간 것이었다. 참으로 대단한 멘탈과 배짱이 아닐 수 없다.

본인은 무장 투쟁이건 외교건 국민 계몽이건.. 독립 운동을 위해 다 필요한 것이었다고 인정하는 주의이다.
현실성만 따지면 어느 것도 다 비슷하게 계란으로 바위 치기이고 비효율적인 삽질 같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런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도 안 했으면 일본이 원폭 맞고 깨갱 하고 물러갔다 해도 한반도가 자유 독립국이 된다는 보장은 결코 없었다.

그리고 이 주제와 관련하여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으로는.. 그 시절에도 난창 폭동이라든가 자유시 참변 등, 공산주의 진영에서는 조선의 독립과 관련하여 선한 게 나온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조선인 독립운동가 중에서는 적의 적은 친구일 거라는 논리로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외국의 공산당원들이 그들의 기대에 부합하게 도움을 준 적은 결코 없다. 중국에서는 국공합작이라도 있었지만 한반도에서는 역시 그런 거 없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그렇게도 임시정부가 좋으면.. 친중을 하지 말고 지금까지도 일관되게 친대만을 해야 할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라. 장 제스가 임시정부와 대한 독립을 도와 줬지 마오 쩌둥이 도와준 적이 있었냐? 후자는 오히려 대한민국의 자유 통일을 저지한 원흉일 뿐이다.
오늘날 친중종북분자들의 유체이탈 궤변 논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Posted by 사무엘

2020/04/12 19:35 2020/04/1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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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네임드급 자동차 제조사 중에서 완전히 자국 국적의 기업은 현대, 기아, 쌍용 정도인 것 같다. 다만, 기아는 현대 그룹에 편입해 들어갔기 때문에 완전히 자체 독립적인 형태가 아니다. 르노삼성이나 한국GM이야 더 볼 것도 없고..

그리고 소형 승용차 말고 버스를 만드는 회사를 나열해 보면 상황이 좀 달라진다. 대우라는 브랜드가 추가되고 그 대신 쌍용은 빠진다. 그래서 현대, 대우, 기아가 남는데.. 거기에다 생소한 제조사가 둘 더해진다. 바로 ‘에디슨모터스’와 ‘우진산전’이다.

얘들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각각 신소재와 철도 차량 같은 다른 분야에 기술과 제품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 중에서는 버스만, 그것도 현재로서는 시내버스만 만든다. (시내버스 없이 고속버스만 만드는 기아하고는 대조적)
평범한 버스는 메이저 제조사들 대비 경쟁력이 부족해서인지, 천연가스· 전기 같은 대체 에너지 기반 차량 위주이다.

전자기기만 해도 삼성 LG 말고 다른 중소기업 제품이 있듯이 자동차 역시 그런 구도가 존재하는 셈이다. 자가용 승용차 말고 상용차에 한해서 말이다.
그리고 뭐.. 메이저 제조사들도 대체 에너지 차량을 연구를 안 하는 건 아니다. 다만, 현대는 평범한 배터리 기반 전기차 말고 수소 연료전지 기반 전기차의 연구에 특화돼 있다.

본인은 올해 초에 출근길에 난생 처음으로 전기 버스를 타 봤다. 지금은 안 그러는 것 같다만, 그 당시엔 버스 도착 안내 화면에 '저상'뿐만 아니라 '전기'라는 말이 당당히 떠 있길래 놀랐다. 그 많은 버스들 중에 하필 내가 출퇴근용으로 이용하는 노선에 전기차가 작년 말부터 시범적으로 도입됐던 것이다.
디젤 엔진이 천연가스에 이어 아예 전기 모터로 바뀌었구나! 하지만 번호판이 파란색 배경이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영업용이라는 노란색의 우선순위가 여전히 더 높은지?)

운전석을 보니 계기판에 타코미터가 없고 통상적인 변속기 레버가 없었다. 서울 시내버스들에 의무적으로 장착돼 있는 에코드라이브 제어 장치도 없다(정확한 이름이 갑자기 기억 안 나네..). 기존 버스들보다 운전 시설이 더 단순해졌다.

자동차에서 돌아가는 기계가 엔진만 있는 건 아니고 주행할 때도 엔진 소리만 나는 건 아니다. 그러니 전기 버스라고 해서 무슨 지하철 전동차 같은 소리가 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정차 중일 때 엔진 공회전 소리와 진동이 없고, 출발 시의 가속과 변속 역시 훨씬 더 부드럽고 정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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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량의 제조사는 우진산전이었다. (전면부 중앙의 W자 CI)
과거에 남산에서 다니던 전기 버스는 제조사가 에디슨모터스의 전신인 한국화이바였는데.. 걔는 고장이 잦아서 퇴출됐었다. 그 문제를 극복했는지 에디슨모터스 전기 버스 자체는 지금도 굴러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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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일렉시티는 배터리나 수소 탱크 공간 때문인지 맨 뒷좌석이 5칸이 아니라 3칸으로 줄어들어 있더라. 그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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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기로 전기차는 배터리 문제 때문에 일단은 소형차에 머물고 있다. CVT(무단 변속기)가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소형차에 머물고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어째 저 거대한 버스를 배터리만으로 굴릴까? 이래 가지고 여름에 에어컨까지 틀면 감당 가능하나? 게다가 대형차는 엔진 동력으로 브레이크의 공기 펌프도 충전해야 되는데.. 아 제동은 전기 모터의 회생 제동으로 감당 가능하겠다.

이런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긴, 천연가스 엔진만 해도 디젤보다는 휘발유 엔진에 더 가까운 구조일 텐데 배기량과 기통수는 어떻게 되며 동력비 변환은 어떻게 하는지, 규모를 기름 엔진과 동일한 잣대로 측정 자체가 가능한지 개인적으로 잘 모르겠고 궁금하다.

천연가스 버스는 충전소 문제 때문에, 그리고 전기 버스도 충전 시간 및 항속거리 문제 때문에 현재로서는 시내버스 수준에만 머물러 있다. 마치 방위산업체들은 국방부와 납품 계약을 맺듯, 국산 워드 프로세서나 고유 운영체제 개발사들이 학교· 공공기관· 군부대와 납품 계약을 맺듯, 친환경 시내버스를 만들면 시내버스를 굴리는 지방자치 단체들과 계약을 맺고 납품하게 되겠다. 버스는 end-user용 제품이 아니니 말이다.

참고로 우진산전은 철도 전동차의 생산에도 관심이 많아서 전동차 현대 로템과 경쟁하는 구도이다.
에디슨모터스는 단거리 입석형 시내버스에만 그치지 않고 장거리 고속버스도, 심지어 기존 디젤 엔진 모델도 생산해서 메이저 자동차 전문 제조사들과 경쟁할 의향이 있다고 한다.

전기차가 한때는 기름차에 밀려서 도태했지만 21세기에는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전기 전자 공학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그리고 석유의 고갈과 환경 오염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아직 기존 기름차에 비해 부족한 게 많고 대량생산 덕도 제대로 못 보지만.. 미래를 내다보고 연구 개발하고 제품 구매도 좀 하라고 나라에서 지원을 많이 해 준다.

다만,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서 전기차 개발사들이 자기 제품의 성능을 실제보다 부풀리면서 사기를 치는 경우도 없지는 않은 것 같다.
미국의 유명한 전기차 제조사인 테슬라는 요즘도 살아는 있나 모르겠고..

과거에는 우리나라의 ‘레오모터스’라는 회사에서 자기들이 세계 최초로 고속형 전기 버스를 개발했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하고 홍보한 적이 있었다. 언론 보도 날짜가 다들 2009년 12월이니 지금으로부터 무려 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하지만 그 뒤로는 소식이 전혀 없고 회사가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걸 어떻게 아느냐 하면, 남한산 기슭의 광주 엄미리 마을 어귀에 레오모터스에서 개발한 중형 전기 버스가 버려진 채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2017년 가을에 처음으로 우연히 목격했고, 작년에 다시 찾아가 보니 여전히 있었다. 2년 동안 방치됐음에도 불구하고 운전석 쪽 유리창이 없어진 것 말고는 외형이 크게 부서지거나 망가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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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말고 마치 ‘LNG/LPG 개조’처럼.. 소형 트럭을 대상으로 ‘전기차 개조’를 해 주는 업체도 있다. 내가 들어 본 곳 중 하나는 ‘파워프라자’.. 개조도 하고, 아주 작은 경승용차는 자체 제작도 하는가 보다.

소형 트럭을 전기차로 개조해서 장기적으로 기름값 아끼라는 취지로 영업을 하는 듯하다. 고속도로 주행도 가능하고 스마트 포투 ev와 동급 정도 되는 차량인지, 아니면 자동차 전용 도로에도 못 들어가는 저속 전기차인지는 잘 모르겠다.
뭐, 어떤 경우든 10톤 이상, 그것도 전국을 돌아다니기까지 하는 트레일러를 배터리 전기차 형태로 만드는 건 현재 인류의 기술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 전기 고속버스도 없는걸..

이상이다.
여객기 제조사가 보잉이나 에어버스만 있는 게 아니듯, 국내 자동차 제조사도 현대 기아만 있는 게 아니다. 마이너 제조사들은 시장에 뛰어드는 김에 전기차 같은 미래 기술을 같이 공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다.

아 그러고 보니 반세기쯤 전 과거에도 길거리에서 전기로 달리는 교통수단이 있긴 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노면전차 내지 트롤리버스. 배터리 대신 팬터그래프가 달린 버스라니.. 참 흥미롭다.

얘들은 기술적인 구현 난이도가 매우 낮지만 공중에 전차선을 주렁주렁 달고 다녀서 미관에 굉장히 안 좋았으며, 차량 역시 전차선 주변을 전혀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여러 도시들에서 도태되고 사라지기도 했다. 건물 주변의 전봇대와 전깃줄들도 다 지중화해서 없애는 게 요즘 추세인데 전깃줄에 의존하는 대중교통은 시대에 안 맞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요즘은 노면전차는 전깃줄을 땅에다 놔서, 그리고 버스는 배터리 형태로 바꾸고 굴절까지 시켜서 구식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변신했다. 이름도 트롤리버스 대신 무궤도 전차 내지 트램 등으로 바꿨다. 저 에디슨모터스, 우진산전 같은 기업들도 이런 차량의 생산에 응당 관심을 두고 있지 싶다.

자동차용 전기는 규격이 어떤 형태로 제정될까? 철도야 교류 25000V 60Hz(일반열차), 직류 1500V(도시철도 중전철), 직류 750V(경전철) 이렇게 딱 나뉘어 있는데 자동차는? 이것도 생각할 점이다. 검색을 해 보니 220V, 380V에다 완속· 급속 두 종류가 존재하고 단자 종류도 완전히 단일 표준화가 아직 안 된 듯..
석유와 LPG는 송유관이나 유조차를 통해 공급받겠지만 LNG/CNG는 도시가스 인프라를 통해 공급받을 것이고, 전기야 건물에 이미 갖춰진 전기 시설을 통해 공급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4/10 08:35 2020/04/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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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와 현대의 전쟁 방식 차이 복습

옛날 전쟁에서는 겨우 성을 하나 정복하는 것만 해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사다리를 타고 오르거나 같은 높이의 언덕을 쌓는 등 별짓을 다 해야 했다.
그리고 해전에서는 배와 배끼리 접근하여 부딪치고, 발판을 놓아서 상대편 배로 건너가서 칼싸움을 벌였다. 적선은 완전히 부수고 침몰시키기보다는 나포해 오는 게 더 현실적이었다. 뭐, 목선이었으니까 아예 불질러 없앨 수는 있겠지만 그랬다가 잘못하면 아군도 위험해질 수 있었다.

적의 군함을 노획(!)해 오는 병사는 그야말로 평생 놀고 먹어도 될 정도의 포상을 받았다. 군량미 한 섬을 적군 것을 노획해도 그건 아군이 일일이 수송해 온 군량미의 10배가 넘는 전술 가치가 있다고 여겨졌는데 하물며 배는 뭐.. 그 정도로 보상해 줘도 국가의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였다. 지금 우리나라도 단순 간첩 신고 포상금보다 "간첩선"의 신고 포상금이 훨씬 더 높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뭐, 그렇게 눈에 보이는 전과를 세우는 병사 말고 공성전에서 사다리를 제일 먼저 오르기, 전열보병(!!) 시절에 제일 앞줄에서 머스킷 주고받기.. 이렇게 제 발로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이지만 누군가가 반드시 맡아야만 하는 임무에도 동기 부여를 위해 엄청난 포상과(생사 여부 무관), 반대로 도주 시 엄청난 처벌이 뒤따르곤 했다.
무기의 화력이 부족하고 부족하고 시설이 열악하던 옛날에는 어느 분야의 조직에나 닥치고 근성 의지드립 똥군기가 지금보다 얼마나 더 횡행해야만 했을지가 짐작된다.

그런데 화포의 성능이 크게 향상되면서 이런 싸움의 양상이 바뀌었다. 갑옷이 없어지고 방탄복으로 바뀌었다. 공성전이라는 것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성을 쌓는 게 아니라 참호를 잔뜩 파서 방어하는 전술이 잠시 등장했다가 그걸 뚫기 위해 탱크라는 게 발명되었다.

현대의 해전은 교전 거리가 이미 수~수십 km에 달하며, 포탄은 보이지도 않는 까마득히 먼 곳에서 날아온다. 눈에 보이는 거리에서 총탄을 교환하는 건 그냥 백병전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그러니 제2 연평해전 때 배 옆구리를 들이대서 막던 기동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하고 불리한 짓이었는지도 다시 생각을..)

이렇게 먼 거리에 포를 정확하게 쏘려면 직사가 아니라 중력과 공기 저항을 감안한 곡사 궤적은 물론이요, 심지어 지구가 둥근 것까지도 감안해야 한다. 해수면이 무한한 평면이라고만 단순하게 가정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다 쏘는 방향에 따라서는 심지어 지구의 자전으로 인해 발생하는 전향력도 고려 대상이 된다. 포 하나 쏘는데 오만 물리 지식이 동원된다. 그게 바로 오늘날의 전장의 현실이다.

그래서 20세기 초· 중까지는 군함이 크기가 왕창 커졌다. 돛 달린 목선이 엔진 달린 철갑선으로 바뀐 데다, 배가 커지면 더 많은 사람이 타고 더 멀리 더 오랫동안 항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함포도 그에 비례해서 더 커질 수 있으며, 더 강한 화력과 더 긴 사정거리를 보장하게 된다. 큰 배 한 척이 작은 배 여러 척보다 훨씬 더 나았다.

배의 지하에 수십 명의 노꾼들이 타고, 위에서 수병들이 화살을 쏘다가 상대편 적선으로 건너가서 칼싸움을 벌이던 시절에 비하면 상황이 얼마나 극과 극으로 달라졌는가? 멀리 갈 것도 없이 임진왜란 거북선만 해도 노꾼이 필요한 배였다.

하지만 제국주의와 세계 대전 시절이 끝나고, 군함을 폭격기와 미사일로 잡는 시대가 되면서 군함이 한없이 더 커지는 유행도 끝났다.
태평양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자그마한 비행기들이 추락에 가까운 고각 급강하를 하면서 적국 군함에다 포탄 내지 어뢰를 떨군 뒤 튀는 장면이 나온다. 이렇게 해야 자유 낙하만 시키는 것보다 탄의 명중률이 올라가기 때문이지만, 이건 비행기의 입장에서는 항공역학적으로나(실속..) 군사적으로나(대공포 피격 가능성..) 매우 위험한 기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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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폭탄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뢰도 군함이나 잠수함이 아닌 비행기가 투하하고 가는 게 이례적인데.. 아무래도 비행기가 군함의 머리 위로 위험하게 접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그리고 배의 아래에서 더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비행기에서 발사하는 항공 어뢰는 더 높은 고도에서 더 고속으로 바닷물에 떨어져도 내부 부품이 손상되지 않고 곧장 추진과 격발이 가능하도록 성능과 신뢰도가 계속해서 개선되었다.

이렇듯, 군용기야 같은 비행기끼리 공중전을 벌이는 전투기가 있고, 지상이나 수면의 목표물을 타격하는 폭격기도 있다.
그럼 전함은..?? 망망대해에서 같은 배끼리만 싸우는 것 같지만.. 적당히 큰 배는 현대전에서 의외의 역할도 한다. 바로 육지에 근접해서 내륙에다 신나게 엄호 포격을 퍼부어서 아군의 상륙 작전을 지원하는 것 말이다. 얘들이 어지간한 포병 부대를 능가하는 화력을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천 내지 장사리 상륙 작전 같은 영화를 보면 이런 포격 장면을 응당 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곳은 몰라도 인천의 경우, 해안이 매우 얕고 조수 간만의 차이도 심하기 때문에 군함이 한없이 안쪽으로 들어와 줄 수 없다. 해병대가 차량 지원도 없이 뻘밭을 달려서 상륙해야 되니 더욱 어렵고 위험한 작전이라고 일컬어진 것이다. 현대전에서는 옛날처럼 사다리 타고 성벽을 오른다거나 적진 참호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갈려 나가는 일은 없지만(대응 전술이 개발되었으니), 이런 해병대라든가 낙하산 메고 적진에 뛰어내리는 공수부대가 성벽을 오르는 거나 다름없어 보인다.

2. 태평양 전쟁

1940년대의 태평양 전쟁 때 활약했던 일본군 장성 중에는 야마모토 이소로쿠, 그리고 나중에 쿠리바야시 타다미치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들은 일본이 저지른 침략 전쟁과 반인륜 범죄 같은 이슈들을 배제하고 생각할 때, 군인으로서는 나름 유능한 인물이었다.

이들은 개인적으로는 미국과의 전쟁을 반대하는 소신이었다. 그저 친미나 평화주의 이념 때문이 아니라, 이 국력으로 미국 같은 나라와 싸워서는 승산이 없다는 논리적인 판단에 근거해서 반대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틀어지고 무역로도 봉쇄되는 등 국제 정세가 계속 불리하게 흘러가자..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기왕 미국과 싸워야 한다면 지금 같은 여건에서 상상 밖의 통수를 치는 것밖에 할 게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치 서울대를 가기 위해 수능을 무조건 만점 맞는 게 아니라 남들보다만 잘하면 되고, 위조지폐도 무조건 완벽하게가 아니라 그저 액면가보다만 비싸지 않은 퀄리티를 투자하면 되듯.. 적당히 미국을 타격하면 쟤들로 하여금 "쟤랑 싸우면 우리가 이기기야 하겠지만 우리도 출혈이 클 테니 그건 귀찮.. 차라리 적당히 협상" 쪽으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있을 거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는 40여 년 전에 러시아를 꺾었듯이 이번에도 미국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신이 지켜 주는 나라이고 우리 민족은 야마토 정신이 깃든 대단한 민족이니까" 같은 근자감도 들어갔을 것이고..
그 결과 그는 1941년 12월에 그 이름도 유명한 진주만 공습을 실행해서 처음엔 실제로 굉장한 피해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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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본은 그 뒤로도 반 년 정도, 대략 1942년 5월 정도까지는 승승장구했다. 연합국 연합군이 우왕좌왕 하던 사이에 동남아시아 지역을 순식간에 정복하면서 리즈 시절을 찍었다. 맥아더 장군조차 그 기세에 밀려 필리핀에서 철수하면서 "I shall return."이라는 말을 남긴 게 그 해 3월 11일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리즈 시절은 거기까지였다.
미국은 통수에는 통수로.. 먼저 둘리틀 특공대를 보내서 일본 본토를 타격하는 깜짝쇼를 선보였다. 그 뒤 전열을 가다듬고 자기 국력을 총동원해 가히 show me the money급의 물량으로 비행기고 배고 무기고 식량이고 팍팍 찍어냈다.

일본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불굴의 정신력도 사실은 미국이 압도했다. 대공황을 버틴 깡다구에다가 일본에 대한 극도의 적개심으로 눈이 시뻘개진 젊은이들이 "꼭 입대해서 쪽발이들을 내 손으로 때려잡고 싶습니다!"라고 줄을 서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윌리엄 홀시 제독이 외쳤던 "Kill Japs, kill Japs, kill more Japs"는 요즘으로 치면 "개미를 죽입시다 개미는 나의 원쑤" 내지, 둠가이의 "Rip and tear"이나 다름없는 구호였다. 그땐 물론 임프, 카코데몬 따위가 아니라 쪽발이를 성경의 왕하 2:24처럼 찢고 죽인다는 얘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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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 뿐이랴, 미국은 정보전마저도 일본을 앞섰다. 쟤들은 일본군의 통신 암호를 쭉 해독해서 사실상 맵핵까지 확보해 놓은 상태였다. 연합군은 서부 유럽 독일군의 에니그마만 해독한 게 아니었다.
심지어는 "놈들이(일본) AF라는 곳을 공격할 거라는데 거기가 구체적으로 어딜까? 혹시 여기가 맞는지 우리가 낚시 무전을 평문으로 보내서 쟤들이 반응하는지 확인해 볼까?"라고 떠봤는데, 쟤들이 정확하게 거기에 낚여 준 덕분에 작전을 사전에 다 파악한 적도 있었다.

저기서 AF란 그 이름도 유명한 미드웨이였다. 일본이 미국의 통신을 도청했다고 자국으로 송신하는 메시지까지도 미국이 통째로 도청해 낸 것이다.
일본은 하와이와 가까이 있는 미드웨이 일대를 점령해서 영토를 넓히고 전세를 더 유리하게 이끌고 싶었지만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1942년 6월에 벌어진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은 항공모함 4척을 모두 잃는 참패를 당했지만, 미국은 전쟁에 대비가 단단히 돼 있었고, 전사자 수는 일본의 1/10에 지나지 않았다. 어차피 다른 전투에서 많이 손상을 입었던 요크타운 항공모함 한 척이 격침된 것 정도가 전부였다.

미드웨이 해전은 우리 식으로 풀이하자면 미국판 명량해전이나 마찬가지인 승전보였다. 얘는 인류의 전쟁 역사상 최초로, 해전이지만 전함의 함포가 아니라 항공모함의 함재기들이 서로 먼저 마주쳐서 싸우고 적선까지 격침시킨 전투였다.
그 뒤 1942년 11월에 벌어진 과달카날 해전은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의 보급로를 완전히 끊어 놓았으며, 이때부터 전세는 슬슬 미국과 연합국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듬해 4월에는 미국에서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동선과 스케줄을 '맵핵'으로 파악했다. 그래서 우연을 가장한 특별 작전을 펼쳐서 그 적장을 제거해 버렸다! 소수의 전투기를 출격시킨 뒤, 전선 시찰 중이던 저 사람이 탄 수송기를 벌집으로 만들어서 추락시키고 튄 것이다.
미국은 자신이 일본의 무전을 도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이번 사건도 철저하게 우연한 전과로 치부했으며, 그 뒤에 일본이 의심스러워서 낚시 역정보를 퍼뜨리는 것에는 반대로 절대 응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일본을 아주 그냥 갖고 논 거나 다름없었다.

1944년의 필리핀 해 해전과 레이테 만 해전을 거치면서 일본은 더는 회생 불가능한 치명타를 입었고..
맥아더 장군은 필리핀을 떠난 지 2년 반쯤 뒤인 1944년 10월에야 귀환해서 I have returned라고 자평할 수 있었다.

1945년 2월에는 여느 전선보다는 일본에서 굉장히 가까운 곳인 이오지마 섬에 미군이 상륙하게 되었다. 이때 최선임 지휘관이었던 일본군 장성이 바로 구리바야시 다다미치이다.
그는 어차피 대세를 뒤집을 수 없다면 우리가 최대한 오래 살아서 미군의 진격을 최대한 지연시키고 놈들을 최대한 귀찮게 하고 최대한 피해라도 끼치자고.. 지는 걸 전제로 하고 예전과 좀 색다른 전술을 폈다. 3년 전쯤의 야마모토 이소로쿠와 통하는 면이 있어 보인다.

놈들은 화력이 워낙 넘사벽이기 때문에, 엄폐물 없는 해변에서 상륙 자체를 저지하는 것은 무의미 불가능하다. 그러니 일단 상륙은 허용한 뒤, 적이 깊숙이 들어왔을 때 게릴라전을 펼치며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괴롭히면서 정신을 빼 놓았다. 그는 반자이 어택 따위 하면서 절대로 허무하게 개죽음 당하지 말고, 가늘고 길게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적을 괴롭히라고 부하들에게 훈시했다. 해변에 방어를 구축하는 게 아니라 섬 내륙 곳곳에 지하 땅굴과 동굴을 이용한 아지트 네트워크를 꾸며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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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래 봤자 섬은 끝내 함락되었고 일본군은 궤멸을 맞이했다. 그래도 구리바야시 다다미치의 전략이 적중한 덕분에 미군은 1주일이면 끝날 거라고 쉽게 생각했던 땅따먹기에 1개월이나 소모해야 했다. 그리고 상상 이상의 인명 피해도 당하게 되었다. 워낙 고생해서 그런지 이모지마 섬 전투와 관련해서는 미 해병대원들이 산꼭대기에다 성조기를 꽂는 모습의 저 사진이 유명해졌다.

바로 다음 달 3월 9일과 10일에는 이제 도쿄 대공습이 펼쳐져서 일본의 수도가 불바다 잿더미로 바뀌었다. 옥쇄 항전 운운하는 정신나간 일본을 보면서 미국은 진주만 공습을 당했을 때와는 다른 관점에서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으며, 한편으로는 저런 또라이들의 본거지에 직접 쳐들어가는 것에도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직접 쳐들어가지 않는 대신 원자폭탄을 떨구게 됐다. 이제야 일본 천황이 직접 무조건 항복을 하고 드디어 전쟁 종결..

굽시니스트 님의 ‘본격 2차 세계 대전 만화’ 시리즈를 본 게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다. 태평양 전쟁의 서막인 진주만, 그리고 피날레인 원자폭탄 사이에도 연대기별로 다양한 사건과 전투가 있었다. 2차 대전은 전역이 워낙 넓었고 전개가 드라마틱했기 때문에 영화로도 제일 많이 만들어져 나왔다. 올해 초엔 마침 영화 ‘미드웨이’가 개봉해서 본인은 아주 재미있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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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대전이 전투기와 탱크가 첫 등장한 전쟁이라면 2차 대전은 로켓, 미사일, 핵무기, 컴퓨터 같은 것을 개발시킨 전쟁이다. 그래도 2차 대전을 끝으로 식민지니 제국주의니 하던 구도가 완전히 종결되었으며, 세계가 고전적인 형태의 전쟁은 없이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

다시 생각해 봐도 그 시절에 일본은 정말 또라이 같은 나라였다. 쟤들이 어쩌다가 영국· 미국 하고도 사이가 순식간에 틀어졌는지 참 신통한 노릇이다.
물론 일본은 그 옛날에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항공모함과 전투기, 잠수함을 독일로부터 기술 원조를 받아서든 어떻게든 자체 제작까지 했던 대단한 선진국인 건 사실이었다. 조선 따위 범접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안 그래도 국력이 미국에 비하면 택도 안 되는데 육군과 해군이 대립하면서 따로 놀고, 레이더는 개발해 놓은 것을 적국이 먼저 활용하고 있는데도 정작 자기는 활용을 못 하고, 거기에다 무식한 똥군기와 의지드립으로 인한 폭주, 점령한 식민지에서 차라리 예전의 백인의 지배가 훨씬 더 나았다고 원주민들이 학을 뗄 정도의 폭압 학정 병크 등..
전반적인 행정 시스템과 정신 세계랄까.. 그런 소프트웨어들이 도저히 미국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결국 일본 제국은 총체적 난국을 겪으면서 비참하게 몰락하고 전쟁에서 졌다.

Posted by 사무엘

2020/04/07 08:34 2020/04/0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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