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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자료 준비하느라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에 만들었던 그림인데.. 신기하게도 내 개인 블로그에다가는 아직까지 공개한 적이 없었구나!

성경은 안 그래도 삼위일체처럼 인간이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개념을 다루는 데다, 잠 26:4-5처럼 표현이 대놓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듯이 보이는 대목이 종종 나온다.
당장 몇 가지 예만 들어 봐도 "은혜와 사랑 VS 율법과 공의", "자유의지 VS 예정과 섭리" 같은 것 말이다. 편의상 "파랑 VS 빨강"이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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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성경의 전체 숲 그림을 모르는 사람들이 자주 선택하는 방법은

  • 자기가 믿고 싶은 부분만 돌쇠같이 닥돌 해서 물의를 빚는다. (파랑 아니면 빨강. 다른 쪽은 무시)
  • 아니면 성경에서 일체의 색깔을 제거하고 비성경적인 중도로 빠진다. (회색)
  • 아예 보라, 분홍... 초록색을 내세우는 이상한 부류도 있다.

이 셋 중 하나를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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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때 가장 합리적인 솔루션은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하는 것이다. 충돌이 일어나는 경로는 평면이 아닌 입체교차로를 만들어 충돌을 해소시킨다.
빨강은 이 문맥과 대상에서 직접 적용되는 것이고, 파랑은 다른 문맥과 대상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타 문맥에서는 영적인 '적용'과 교훈, 유익 정도까지는 가능하지만 문자적인 해석은 아니다.

  • 크리스천도 살면서 많은 어려움과 환란을 겪지만(행 14:22), 그건 미래에 예고된 유대인의 대환란과는 전혀 다른 얘기이다.
  •  6천여 년 전의 6일 창조야 의심의 여지가 없는 창조 교리이지만, 세상의 창조가 그것만 있는 건 아니고 더 크게 현 세상 이전에는 다른 창조와 파멸, 다른 홍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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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

내가 만들었던 그림 중에서 성경 노선도는 교리 논란이 없는 평범한 부류이니 기독교계 커뮤니티들에 굉장히 많이 퍼져 나갔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그렇게도 귀하고 소중한 책이라는 성경을 어떻게 읽고 있고 난해한 구절, 교리적으로 모순되는 듯한 구절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 걸까?

성경보다 똑똑해서 자기가 성경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이상한 똑똑이가 아니라, 성경 안에서 똑똑한 진짜 똑똑이가 교회에 절실히 필요한 시대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4/29 19:32 2019/04/2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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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원 관련 개념 복습

예전에도 신앙 관련 글을 쓰면서 여러 번 언급한 바 있지만, 성경적으로 인간이 구원받는 길 내지 방법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는 알량한 믿음이라는 제일 바보같고 나약한 자유의지가 전부이다. 그것 말고 다른 어떤 외모나 스펙이나 능력도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예수 믿을 정도의 지적 능력조차도 없고 스스로 선과 악을 분간 자체를 할 수 없는 너무 어린 애들, 정신지체 박약아는.. 그냥 무조건 구원 받는다. 걔들도 따지고 보면 죄가 있지만 죄에 대한 책임이 부과되지 않기 때문이고.. 예수님을 믿을 능력이 없지만 그분을 거부할 능력도 없어서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에 없는 용어이지만 본인은 이 개념을 편의상 '특례 구원'이라고 일컬어 왔다. 이런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경우는 이 블로그를 찾아와서 이 글을 직접 읽을 정도의 분들에게는 해당사항 없으니 신경 쓸 필요 없다. 수학에다 비유하면 방정식의 근 중에서 그냥 너무 자명한 trivial solution과 비슷한 개념이다. 생물학으로 치면 무성 호흡/생식 같은..??

이런 논리를 따라, 본인은 어린아기들이 병이나 사고로 죽으면 원죄 때문에, 혹은 유아세례를 안 받았기 때문에 지옥 간다는 말도 안 되는 교리를 일단 전혀 믿지 않고 부정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너무 강조하는 나머지, 인간의 일체의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선물 받으실 분?" / "저요, 저도 좀 주세요!"라고 응답하고 손 내미는 것도 자기의 의이고 선물에 대한 대가(!)인 것처럼 이상하게 몰아가는 설명도 배격한다.

'무조건적인 선택'과 '거부할 수 없는 은혜'는 앞서 언급했던 '특례 구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성립한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그 상태를 '전적 타락'이라고까지 부르는 건 '글쎄요~' 싶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밖의 문맥에서는 인간이 얼마든지 제 발로 구원의 길을 거부하고 지옥 갈 수 있다. 그리고 그건 하나님의 전지전능이나 사랑이나 공의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현상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허락하시는 뜻을 분간하지 못하면 정말 온갖 골때리는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6· 25 대한해협 해전 때의 동해상의 북괴군 600명하고, 광주 5· 18 북괴군 600명을 헷갈리듯이 말이다.

직접적으로 동일한 문맥을 다루는 구절은 아니지만 눅 14:16-21 같은 비유 얘기를 봤을 때... 그리고 인류 역사와 지금 세상 현실을 고려했을 때..
추측하건대 미래에 하늘나라에 가 보면 믿어서 구원받은 사람보다는 특례 구원을 받은 사람이 훨씬 더 많긴 할 것 같다.

마치 증기 기관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수단의 동력원으로서는 완전히 도태했지만 발전소에서 전력 생산용으로는 압도 다수인 주류이듯이(화력, 원자력이 모두 증기 터빈을 돌리므로!)...
선박이 장거리 여객에서는 비행기에 밀려 완전히 도태했지만, 일반인들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 물류에서는 여전히 본좌이듯이..

그때가 되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지 못했던 큰 그림을 보게 되지 싶다. 민망하고 불편한 진실이지만, 언론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을 가치가 없어서 외면하고 있는 죽음이 이 세상의 음지에서 얼마나 많이 자행되고 있겠는가?

참 오랜만에 구원 기본 개념에 대해 복습해 보았다.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대해서도 얘기할 것이 많은데.. 시간과 지면 관계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구원만 받고 어리고 육신적인 신자에 대한 개념이 잘 이해되지 않으니 사람들이 자꾸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의심하며, 심지어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식으로 잘못 생각하는 편이다.
자살은 인간이 저지르는 다른 끔찍하고 흉악한 죄들보다 특별히 다르게 취급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의롭게 자결했다고 구원을 얻지는 못하듯, 세상 비관해서 혹은 고문 당하는 게 두려워서 자살했다고 해서 구원을 잃지도 않는다.

2. 성경과 세속 과학, 학문과의 관계

정말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실험만 하는 과학이라면, 그 알량한 방법론을 동원해서 신의 존재를 대놓고 증명하거나 반증할 수는 없다. 사실은 교계에서 그렇게도 정죄하는 진화론을 절대무오한 진리라고 입증하지도 못한다. 그쪽 세계에서는 실험 결과에 따른 귀납적인 학설과 확률과 통계만이 있을 뿐이다.

원래 과학과 종교?신앙?은 서로 별개의 영역인 게 맞다. 그럼 창조니 진화니 하면서 싸울 필요가 없는 건가? 마냥 안심하면 되냐? 그렇지는 않다.
과학 그 자체는 자연 계시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이기 때문에 가치 중립적이다. 잘 연구해서 나쁠 것 없다. 그러나 거짓되이 과학이라고 불리는 학설이 대놓고 신을 부정할 수는 없더라도, 그 사고방식이나 연구 방법론· 패러다임을 잘못 적용하여 성경에 대한 믿음을 파괴할 수는 있다. 이게 파괴된 신자는 진짜 볼장 다 본다.

"성경에 어차피 요런 부분에는 오류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나 성경의 존재 가치가 싹 부정되는 건 물론 아닐 거다. 하지만 성경의 다른 부분에 기록돼 있는 엄청나고 극단적인 예언들도 그렇게 정밀하게 문자 그대로 믿을 게 못 된다는 거다. 비유와 교훈 등 우리에게 좋은 쪽만 재해석해서 받아들이면 된다. 히브리어를 보면 어떻게 그리스어를 보면 어떻고.."

요게 아주 위험하고 돼먹지 못한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성경을 바르게 나누지 않고 특정 부분만 분별 없이 무식하게 문자적으로 밀어붙이면서 물의를 빚는 교파 종파에 대해서도 본인이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런 오류에 대한 대안이 저런 지적 사기가 돼서는 안 된다. 본인은 성경은 세상의 여느 학문과 같은 방식으로 취급하고 접근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라고 믿는다.

3. 성경에서 가장 자주 인용된 구절

성경에는 "곡식 밟는 소의 입에다 마개를 씌우지 마라"(신 25:4, 가축이 적당히 자유롭게 먹으면서 일하게 해 줘라)가 의외로 신약에서 두 번이나 더 언급된다. (고전 9:9, 딤전 5:18) 주의 일을 하는 사역자들의 보상과 관련된 문맥에서이다.

그리고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가 합 2:4에서 '자기'(his)가 빠진 바리에이션으로서 세 번 더 나온다. (롬 1:17, 갈 3:11, 히 10:37) 이에 덧붙여 "네 부모를 공경하라"도 십계명인 출 20:12뿐만 아니라 신 5:16, 엡 6:2에서 반복되며, 복음서에서도 인용 형태로 마태· 마가· 누가에 거듭 등장한다.

그런데 이것뿐만 아니라 뭔가 좀 생뚱맞아 보이는 구절도 성경에서 톱급으로 자주 거듭 반복해서 인용된 게 있다. 바로 시 110:1이다.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받침으로 삼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
요한복음을 제외한 다른 세 복음서에서 연이어 copy & paste 수준이고(마 22:44, 막 12:36, 눅 20:43), 행 2:35와 히 1:13에서 추가로 나온다. 거기에다가 히 10:13도 재차 언급이라고 볼 수 있으니.. 횟수가 가히 압도적이다.

"소의 입마개"만치 인간의 실생활과 관련이 있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라"만치 보편적인 인륜을 다루지 않고,
그렇다고 "믿음으로 살리라"만치 인간의 구원과 관련이 있지도 않은 저 말은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언제 왜 한 말이고 문맥이 뭘까?

시간과 지면 관계상 저 구절의 모든 문맥과 의미를 강론할 수는 없지만, 간단히만 말하자면 저건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 하나님에게 한 말이다.
성경은 도덕 경전이나 역사 기록이나 복음과 구원 안내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그건 부가적인 2순위 이하의 목표일 뿐이다. 그 전에 하나님의 주 관심사와 성경의 핵심 주제는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통치임을 알 수 있다. 세상 용어를 동원해서 표현하자면 다분히 정치적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사람들은 온갖 시사· 종교 난제들을 가져와서 그분에게 질문을 했다. (부활의 때에 누구 아내? 율법에서 가장 큰 명령? 카이사르에게 납세? 등등등~) 떠보고 트집 잡으려는 불순한 의도로든, 아니면 정말 몰라서든지..

예수님은 그런 것쯤은 막힘없이 전부 즉답을 하셨고 사람들을 데꿀멍 시켰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우리 인간에게 물으신 건 단 하나였다.

"그럼 이제 내가 니들에게 하나 좀 물어 보마. 너희는 내 정체가 정확하게 무엇인 것 같냐? 시 110:1을 봐. 다윗이 자기 비속 후손을 보고 '주'라고 존대해서 부르는데 이건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그 뒤로 사람들은 버로우 타 버리고 더는 예수님에게 딴지를 걸지 못했다고 성경은 말한다. 시 110:1은 그 문맥에서 인용되었으며, 그게 복음서에 3회 반복해서 기록되었다.

또한, 나중에 배반당하고 체포된 뒤의 행적도 생각할 만하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다른 온갖 쓰잘데기없는 거짓 고소들에는 하나도 대꾸하지 않았지만, "너 정체가 뭐냐? 넌 정말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라는 물음에는 정말 솔직 담백하게 대답하셨기 때문이다. (마 26:62-65, 막 14:60-63, 눅 22:66-71)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믿기만을 바라셨다. 예수의 부활조차도 곧이곧대로 믿기 싫고, 그래도 역사 팩트와 후폭풍 증거까지 송두리째 외면할 수는 없으니 제자들의 자칭 예수 부활 "체험" 사건 이 따위로 둘러대는 짓 하지 말라고 말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무슨 "P와 NP는 과연 동일할까?", "리만-제타 함수의 자명하지 않은 근은 실수부가 정말 몽땅 1/2일까?", 아니면 "광주에 과연 북괴 공작원들이 잔뜩 침투되었을까?" 같은 걸 묻지 않으신다.
그런 건 관심 있는 사람들이 연구해서 답을 구하든가 말든가 하면 되고, 그 전에 정말 똑바로 알아야 하는 건 그리 높은 지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 "너에게 예수는 어떤 분인가?" 하나이다.

요한복음은 시 110:1의 직접 인용은 없지만 기록 목적이 독자들 예수 믿게 하는 것(요 20:31)이라고 다른 어떤 복음서보다도 분명하게 대놓고 적어 놓았다.

4. 신앙 생활이 인간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는 것

예수 믿고 구원받은 뒤의 신앙 생활은 인간에게 철저하게 유리하게 짜인 것도 있고 불리한 구조로 된 것도 있다.
유리한 것은.. 뭔가 좋은 것을 사람이 "먼저" 받아서 동기 부여를 받은 뒤에, 그 다음에 사람 쪽에서 베풀고 헌신하고 인내하고 희생하는 구도라는 것이다.

먼저 구원부터 받고 나서 침례를 받든지 믿음의 선한 행위를 하든지 성장을 하든지가 그 다음에 이어진다.
일단 쉬고 나서, 달콤한 은혜의 말씀부터 먹고 나서, 즐기는 것부터 하고 나서 "그 다음에" 일을 하고 헌신한다. 일이 먼저가 아니다. 인간이 만든 세상 기업 중에 입사 후에 월급이건 일당이건 보수를 받고 나서 다음부터 일하는 곳이 있던가? 세상에서야 소득 주도 성장은 마치 "일단 서울대부터 보내 주면 나도 공부 열심히 할게요" 같은 미친 개소리이지만.. 성경적인 신앙 원리에서는 실제로 존재하는 개념이다!

다른 대부분의 종교에서 최종 목적지, 만렙, 해탈의 경지라고 말하는 '구원' 내지 성인 성자(saint) 칭호가 이 바닥에서는 그냥 기본으로 따 놓은 당상이다. 근성 충전을 위해 일단 한 대 맞고 시작... 이 아니라 일단 구원부터 받고 시작이다.
창세기 1~2장의 천지 창조만 생각해 봐도 하나님은 6일간 일하고 나서 일곱째 날이 쉬는 날이었지만, 아담과 이브는 만들어지고 결혼하고 honeymoon부터 즐긴 뒤부터 동산 관리 일과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마리아와 마르다 얘기도 있다(눅 10:38-42).

그 반면, 인간에게 불리하게 짜여 있는 것, 혹은 이것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는 사항도 있다.
신앙 생활이란 건 본질적으로 당장 보이고 들리는 대로, 편한 대로 직관적인 대로, 남들 다 하는 대로 사는 게 아니다. '바보 같아 보이고 손해 보는 듯이 보이는 좁은 길 역행'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결단과 행동은 각 개인이 자발적으로 직접 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둬서 물리적인 여건이 요 모양 요 꼴이 된 것을 하나님이 굳이 수습해 주고 undo 해 주시는 경우 역시 일반적으로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신앙 생활이 무슨 공밀레 같은 신밀레 열정페이 착취는 절대 아니다.
인간이 인간의 본성· 성품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 단단하고 입에 쓴 말씀, 실행하기 힘든 것에 대해서는 최소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먼저 다 당하고 겪어 놓았다. 그때는 이런 믿는 구석으로 요렇게 하면 된다고 선례, 모범, 샘플이 마련돼 있다.

어려운 시험 문제나 과제에 대해 원리, 예제, 유사한 기출문제, 힌트를 듬뿍 주긴 한다. 그러나 대놓고 정답을 가르쳐 주는 일은 결코 없으며, 하물며 시험 문제를 미리 유출해 줄 리는 절대 만무하다. 모든 과제는 자신의 문장을 써서 직접 해야 한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인간에게 절대로 '안알랴줌'인 것의 대표적인 예는.. 세대 경륜 급의 큰 그림 이상으로 각 개인의 구체적인 미래 예언,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 시기이다. 나에게 내일 어떤 일이 닥칠지는 완전 랜덤 케바케이다.
그것만 좀 알면 딱 죽기 직전에만 예수 믿고 구원을 먹튀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인간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꼼수 부리면서 편하게 살 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겨우 그런 걸로 농락당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지는 않으셨다.

자, 유리한 것과 불리한 것을 비교해 보면.. 신앙 생활 할 만하겠다는 생각이 드시는가, 어떤가?

5.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것

  • 군대는 일반적으로 최악의 범죄라 여겨지는 살인이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집단이다. 하지만 자기 집 지키느라 불가피한 정당방위도 허용되는 마당에, 하물며 나라를 지키느라 지휘관의 명령대로 전쟁터에서 무장한 적군을 죽이는 것은 형법상의 살인이 전혀 아니며, 오히려 정반대로 숭고하고 영예로운 일이다.
  • 국정원 같은 첩보 기관은 "악에는 악으로 맞선다, 이이제이, 목표는 수단을 정당화한다"가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집단이다. 절대악을 퇴치하기 위해 필요악 역할을 맡고, 작은 악을 동원해서 더 큰 악을 예방하는 궂은일을 한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이건 나쁜짓이며, 공산주의자 빨갱이들이나 사용하는 수법(거짓말, 위장 침투..)으로 여겨진다.
  • 끝으로 종교는 겉으로 언뜻 보이는 결과만 보자면 정신승리, 진영논리,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가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분야이다. "생명은 생명으로부터만 나올 수 있다"라는 과학 팩트는 "그럼 최초의 생명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를 설명하지 못한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무한순환을 끊으려면 결국 처음에 한 번은 비논리적인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예수 믿으면 물질적인 복 받고 부자 되지 않는다. 뭐, 그렇다고 북한이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극단적인 박해 지역이 아닌 한, 무조건 쫄딱 망하고 거지 되고 감옥에 갇히고 죽지도 않는다. 구원받아서 신분이 바뀌는 것과 개인이 물질적으로 잘 되거나 못 되는 건 별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다.
또한, 국가 차원에서 사회가 전반적으로 성경적인 건전한 경제관과 시스템이 갖춰져서 잘살게 되고 중산층이 늘고 부강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게으른 개인을 일일이 다 먹여 살려 주는 게 아니다.

예수 믿어서 확실하게 보장되는 것은 영적 복을 받고, 설령 가난하더라도 그 처지만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는 것, 주님께서 내게 지금 당장 허락하신 처지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알게 되는 것이다. 나를 강하게 하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가 할 수 있게 되는 건 별 게 아니라 바로 이런 것들이다.

"남들보다 가난하지만 난 영적으로는 부자.." 영이건 정신이건 이것도 정신승리라면 정신승리이다. 하지만 이건 아Q의 정신승리와 달리, 성경적인 근거와 보장이 돼 있는 건전한 정신승리인 것이다.
상대적 빈곤에 연연하는 사고방식부터가 달라져 있지 않으면 어차피 하나님이 물질을 아무리 많이 공급해 주셔도 인간은 절대로 만족하지 않고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에만 연연하면서 불만족 불평 악순환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테니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4/21 08:33 2019/04/2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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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세카이 2019/05/12 22:44 # M/D Reply Permalink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대해서

    예전에 사울 얘기가 잠깐 나왔었는데
    님께서 사울이 구원을 받았다고 믿는 것도 결국은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믿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그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사울이 천국에 갔다는 것은 근거가 부족합니다
    무당을 통해 불러들인 사무엘의 영이 너도 나와 같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 전부인데
    그때 사무엘의 영은 진짜 사무엘이 아니라 거짓의 영이 분명합니다
    무당이 부른 영이 진짜 영일 수 없고 여호와의 영이 떠난 자에게 절대자가 사무엘의 영을 보낼 이유가 없고
    단지 사울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예언했고 그게 맞았다고 해도 그때는 사울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것을 예언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죠
    그는 불순종했었고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모든 걸 해결할려고만 했었기에 지옥에 간 게 확실합니다

    끝까지 견뎌야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의 예정이나 영원한 보장은 주님께서 시공간을 초월하시기 때문에 미리 아심이기에
    주님의 입장에서는 창세 전에 택한 것이 맞지만 사람의 입장에서는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 개념의 틀에서 억지로 해석할려고 하기에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는 것이죠
    제가 보기에는 칼뱅의 예정론이나 영원한 보장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자기가 믿는다고 머리로 생각만 하면 되는 것인지

    사람들이 행위와 믿음을 나눠서 생각하는데 믿음이 있어야만 행위를 할 수 있고
    믿음이 있어야한 끝까지 견딜 수 있는 것이죠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믿지 않기 때문에 행위를 할 수 없는 거죠
    예수님께서 직접 말하시지 않았나요
    마태복음 5장 20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마태복음7장21절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13장에 씨뿌는 자의 비유

    구약시대 믿음의 선배들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다른 믿음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최대한 믿어서 구원을 받았다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다른 믿음으로도 어차피 구원을 받는 게 가능하다고 한다면
    귀류법으로 일단 맞다고 가정을 해보면
    도대체 예수님은 이 땅에 내려오셔서 그 고생을 왜 하신 걸까요?
    구원을 편하게 받게 해줄려고 그러셨을까요?

    이것은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믿는 것과 본질은 똑같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사무엘님은 구원을 편하게 받는 것으로 믿는 거 같습니다만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처럼 사람도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이게 쉬울까요?

    갈라디아서2장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후략)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게
    누구에게는 돈일 수도 있고 권력일 수도 있고 지식일 수도 있고 자기우월감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등불을 준비한 지혜로운 처녀들처럼 또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종들처럼
    한평생을 성실하게 또 주님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1. 사무엘 2019/05/12 07:44 # M/D Permalink

      1. 예언이 "적중"했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너무 너무 긍정적인" 심상인데요? (신 18:21-22)
      아합 왕을 미혹한 거짓 영들의 예언이 적중했습니까? (왕상 22:12)
      마귀가 욥의 행동에 대해서 예측했던 게 어디 적중했습니까? (욥 1:11, 2:5)
      그거도 인간적인 감정과 정황상으로는 아주 쉽게 예상 가능한 것이고 무슨 예수님 초림/재림 급의 아주 멀고 어려운 예언도 아닌데?

      성경이 인간이 도저히 기록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인 주된 이유 중 하나도 예언 성취 아닙니까?
      "했다는 것이 전부인데" --> 그 언급이 '전부인데' 급으로 매도할 만한 사소한 증거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 전에 무당이 화들짝 놀라고 사울 왕의 정체까지 알아챈 것은 자신이 평소에 소환하던 거짓 영과는 생판 다른 결과물이 튀어나왔기 때문입니다. (삼상 28:12)
      그러고도 이게 진짜 사무엘이 아니라면.. 세상에 믿을 게 없습니다. 연대기 논쟁에서 무슨 "6천 년 전에 창조된 우주를 하나님이 일부러 페이크 쳐서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급의 말장난밖에 나오지 않으니, 소모적인 논쟁은 하지 않겠습니다.

      "칼뱅의 예정론이나 영원한 보장" --> 별 차이 없어 보이는 게 맞습니다. 칼빈주의 5대 튤립 강령 중의 P가 나름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계산 과정은 틀렸지만 결과가 일부 맞는 것이 저 교리입니다.
      계산 과정이 틀렸고 결과만 아쉬운 대로 맞는 대표적인 다른 예로는 "자살하면 지옥 가니까 자살하면 안 된다"가 있습니다.

      2. 사람도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거 맞습니다.
      단지 그 이유와 목적이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 성령의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보상을 받고, 구원의 목적에 합당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서이지..
      자기 노력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구출받기 위해서가 아닐 뿐입니다.

      "도로 지옥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도 당연히 포함이구요.
      구원의 영원한 보장은 "남한에 온 탈북자는 그 어떤 죄를 지어도 남한의 교도소나 사형장에는 끌려갈지언정, 어떤 경우에도 재북송되지는 않는다"와 같은 급의 명제입니다.

      이 기독교계라는 바닥이 얼마나 지저분한 곳인가 하면, 십일조가 신약 교회에 적용되는 교리가 아니라고 얘기하면 꼭.. 헌금을 할 필요가 없다고 궤변 늘어놓는 사람이 생기고,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얘기하면 꼭..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생기더군요.
      신사카이 님은 똑똑하시니 저 개념도 구분 못 하지는 않으시리라 기대해 봅니다.

    2. 사무엘 2019/05/12 07:44 # M/D Permalink

      하나 더.. "끝까지 견디는 자 곧 그는 구원을 받으리라." (마 10:22, 마 24:13, 막 13:13)
      주변 문맥을 보세요. 온통 대환란 때의 생존, 구출, 구조에 가까운 얘기입니다. 혼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하는 통상적인 복음 얘기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be saved라고 해서 전부 행 16:31 같은 지옥으로부터의 구원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식이면 잠 28:18만 하나 뚝 떼어 와서 "성실하게 살면 구원받네?"도 가능하답니다.

  2. 신세카이 2019/05/12 09:55 # M/D Reply Permalink

    그 문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환란이 무엇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진리를 추구하는 제3자의 입장에서 구약과 신약을 나누고 또 대환란으로 시간대를 나누는 것은
    이것은 어떤 믿음이든 어떤 종교든 간에 진리의 속성에 그 자체로 위배된다고 판단됩니다
    진정 진리라면 영원불변해야 합니다 시간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라면
    철학적인 판단으로 그것은 진리라고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1. 사무엘 2019/05/12 13:24 # M/D Permalink

      성경의 총체적인 그림과 체계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할 생각은 없으면서 한두 예외적인 구절, 그것도 자기가 직접 찾아서 읽고 생각해 보지도 않고 안티 사이트에서 펀 알쏭달쏭한 구절만 문맥 무시하고 뚝 떼어 와서 뭐 성경이 모순이니, 성경이 장애인을 비하하네, 잔인하네 어쩌네 이상한 소리 한다든가..

      엡 2:8-9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 행위 아님) 같은 더 자주 더 분명하게 제시돼 있는 신약 교리는 무시하고, 자기 마음에 드는 답변이 없으면 끝까지 트집 잡고 늘어지는 건 진리를 찾는 사람의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님이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저는 저런 부류의 사람을 많이 봐 왔어요.)

      성경에 구원뿐만 아니라 다른 주제에 대해서도 이랬다 저랬다 "모순처럼 보이는" 구절이 굉장히 많습니다. 당장 잠 26:4-5 "안돼 / 돼!" 같은 이랬다 저랬다 극단적인 쌍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당연히 시기와 문맥을 따라 바르게 분간해서 적용해야 합니다. http://moogi.new21.org/tc/1613 의 그림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마치, 민족 자결주의는 1차 대전 승전국 식민지에나 적용될 뿐, 일제 식민지 조선에다가는 영적으로 교훈만 되지 당장 국제법적으로 문자적으로 적용되는 거 아님.. 이런 식으로 분간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대를 나누지 않으면 더 큰 무질서와 혼란이 야기되고, 옳다구나 개독안티들의 성경 공격도 더 심해집니다.

      글쎄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교회 시대와 환란기 등.. 그런 시대 구분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성품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처한 상황과 계시의 분량은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인 구원 방식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아무 문제가 될 게 없는 하나님의 고유 재량 영역인데.. 무엇이 그렇게 불만이신지 개인적으로 궁금합니다.

      진리라는 게 무슨 강박관념 수준의 수학적인 동등이어야만 한다면, 그 사고방식으로는 마 20에 나오는 포도원 비유(일한 시간과 상관없이 모두 동일한 임금)이라든가 눅 16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 같은 것도 도저히 납득이 안 될 겁니다.
      (정말 진지하게 답을 구하고 싶으면.. 제가 제시하는 성경 구절들은 전부 직접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3. 신세카이 2019/05/12 17:45 # M/D Reply Permalink

    저는 오직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믿었는데
    다른 믿음으로도 구원이 가능하다는 해석이 충격적입니다

    게임이나 만화에서 성스러운 것을 찾기 위해 주인공이 여행을 하죠
    이게 무한한 힘을 주는 성검 랑그릿사일 수도 있고 소원을 들어주는 드래곤볼일 수도 있죠

    생명이란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피조물의 유한한 사랑이 반응하면 육체를 가진 유한한 생명이 탄생하고
    오직 절대자의 무한한 사랑에 반응한 자에게만이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며
    이 사랑이 주님께서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 피와 물을 바친 제사입니다
    사람의 삶의 목적이란 절대자의 무한한 사랑에 반응하는 여행이라고 봅니다

    포도원 일꾼은 일을 시키는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일당을 일꾼에게 주는 게 목적이고
    불의한 청지기도 절대자에게 부여받은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
    둘 다 본질은 이웃사랑이며 이것 또한 절대자의 무한한 사랑에 반응하는 것이겠죠

    구원을 쉽게 받는다는 해석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게 아닌 것은 맞지만
    믿음이 있는 자만이 행위로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행위와 믿음이 전혀 모순되지 않고 동일하다는 게 저의 판단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자기의 부족함을 깨닫고 절대자 앞에 겸손하고
    성실히 자기 달란트를 잘 활용해 선한 열매를 맺어야겠죠

    1. 사무엘 2019/05/12 21:45 # M/D Permalink

      1.
      그렇게도 오로지 예수님에 대한 믿음만으로 구원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구원을 너무 쉽게 받는다는 걸(?) 동의하시지 않는 게 저로서는 좀 이해가 안 됩니다. 평생 신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하나님 욕하고 저주하던 사람이 갑자기 신념이 확 바뀌어서 회개하고 예수를 내 구주로 믿은 거..
      저런 믿음 행사가 당장 선행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말 만만하고 쉬운 싸구려 구원을 얻은 거 같습니까? 저는 이 점을 제일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럼 그냥 천주교 행위 구원, 행위로 구원 유지가 더 합리적이어 보인다는 얘기인가요? 그건 좀 모순인데요?

      2.
      그리고 약 1900여 년 전 이래로 지금이야 신약 성경까지 다 완성됐고 계시도 나올 게 다 나왔으니 당연히 오직 예수로 구원받지요.
      그러나 문제는 그 전, 또는 그 후라도 극동 아시아처럼 복음의 발상지로부터 극단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던 곳입니다. 그때/거기서는 예수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나마 간접적인 예언이라도 있지만 이방인들에게는 양심 말고는 말씀 계시 자체가 없었는데 어떻게 그 예수를 알고서 믿을 수 있습니까?

      그게 초월적인 방법으로 가능하기만 하다면 살기가 참 편하기는 하겠네요. "세종대왕, 이 순신, 조선시대 구원" 갖고 시비 거는 사람들 대처하기는 훨씬 더 편리하겠네요.

      최소한 자연 계시라도 따르면서 양심을 따라 절대자를 찾았고, 구약 성도의 경우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예수 계시가 직접 주어지기만 했다면 그분을 곧장 믿었을 사람.. 그 마음 상태가 구원 여부를 결정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스스로 빛을 찾아가서 구원받았을 사람은 매우 극소수.. 선교사 파송 필요함) 저로서는 그게 하나님의 입장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조치입니다.

      이걸 무슨 '딴 믿음, 별개의 믿음'이라고 계속해서 오해하신다면 이 평행선은 더 좁힐 방법이 도저히 없습니다. 저는 이 문제 갖고 님과 더 논쟁이나 토론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4. 신세카이 2019/05/14 19:11 # M/D Reply Permalink

    인간은 유한하기에 모든 걸을 다 알 수는 없겠죠
    중요한 것은 아기와 같은 마음과 태도일 것입니다
    절대자는 진리를 지혜로운 자에게는 숨기고 아기들에게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영이 함께 한다면 필요에 따라 알려주실 것이고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이웃을 사랑하는 게 중요하겠죠

    마지막으로 얘기하겠습니다

    얘기하고 있던 주제가 구원관에 대해서였고 사울과 무당이 부른 사무엘의 영에 대한 얘기는 곁가지라고 생각해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서 그냥 답변을 안 했었는데

    신명기 18장22절 만일 대언자가 주의 이름으로 말하는데 그 일이 뒤따라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성취되지도 아니하면 그것은 주께서 말씀하지 아니하신 것이요, 오직 그 대언자가 자기 뜻대로 그것을 말하였나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이것은 "틀린 예언을 하면 거짓의 영"이라는 겁니다
    (틀린 예언 -> 거짓의 영)

    명제가 참일 때는 "대우"도 항상 참이 성립하죠
    그러므로 진리의 영은 항상 맞는 예언만 하죠
    (진리의 영 -> 맞는 예언)

    명제가 참일 때 "이"는 항상 참이 성립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맞는 예언을 하면 항상 진리의 영인가?
    (맞는 예언 -> 진리의 영)?

    명제가 참일 때 "역"도 항상 참이 성립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거짓의 영은 항상 틀린 예언을 하는가?
    (거짓의 영 -> 틀린 예언)?

    거짓의 영은 맞는 예언과 틀린 예언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습니다
    틀린 예언의 경우 거짓의 영이라고 단정할 수 있지만
    맞는 예언의 경우는 거짓의 영인지 진리의 영인지 알 수 없습니다

    무당이 부른 영이 맞는 예언을 했다고 그것으로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거짓의 영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실을 말할 수 있겠죠
    사울을 더욱 절망에 빠지게 만드는 악한 목적을 위해서
    또 그때는 사울이 주님의 도우심도 받지 못하고 패배하고 죽을 게 명백한 상황이었기에

    님이 그걸 예언에 관한 것이라고 제시했지만
    신명기의 그 구절은 틀린 예언의 경우이죠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은 쉽고 사소한 것에 실수를 한 이유는
    자신이 진리를 안다고 확신하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편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기꾼이 항상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참말을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거짓말을 하죠
    언제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니까 위험하죠
    만약에 누가
    참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명제에 대하여
    항상 거짓말만 해 준다면 정말 고마운 일이겠죠
    그것을 역으로 이용해서 참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구약 시대에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라도 믿을 만한 사람에게 절대자가 직접 예수님에 대해 알려줬다고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풀리는데
    저는 그렇게 믿는데 왜 그렇게 믿지 못하는지를 모르겠네요 꼭 텍스트로 기록이 되어야 믿을 수 있는 것인지

    그런데 중요한 것은 누가 맞냐 틀리냐에 있지 않습니다!
    마음과 태도가 중요하죠!

    저는 카스텔리오가 칼뱅에게 보낸 편지가 생각이 납니다

    당신의 학설과 다른 학설을 가진 사람들이 항상 잘못을 범한다고 믿지 말고,
    언제나 그들을 즉시 이단으로 몰아붙이지 말라.
    내가 당신과 다르게 성서를 해석하여도
    나는 내 모든 힘을 다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한다.
    우리 둘 중 한 쪽이 잘못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서로 사랑해야 한다!
    주님께서 언젠가는 잘못 생각하는 사람에게 진리를 보여주실 것이다.
    우리가 확실하게 아는 것은, 기독교도에게는 사랑의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실천하자.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우리 적들의 입을 다물게 하자.
    당신은 당신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사람들도 자기의 의견을 그렇게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교만한 자를 꺽으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
    큰 사랑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나는 당신에게 이 말을 한다.
    당신에게 사랑과 그리스도의 평화를 제안하는 바이다.
    나는 당신에게 사랑을 촉구하며, 나 자신이 온 영혼을 다하여 그것을 행할 것임을
    하나님과 살아 있는 성령 앞에서 맹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미움으로 나와 싸우기를 계속하겠다면,
    당신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촉구하는 일을 허용하지 않겠다면, 나는 오직 침묵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판자가 되셔서
    우리가 그분께 충성한 정도에 따라서 결정을 내려주시기를 기도한다

    자기만이 옳다는 교만으로 남을 평가하고 정죄했던 칼뱅과
    성서를 다르게 해석하여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얘기한 카스텔리오를 떠올리며
    어떤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태도인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또 겸손하고 온유하니 나를 따르라 했던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그럼 이만

    1. 사무엘 2019/05/14 20:53 # M/D Permalink

      저는 최선을 다해서 성의 있게 답변을 드려 왔는데 또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예전 댓글을 고치기까지 하면서 제 말투와 태도를 문제삼는 듯한 얘기를 하시는지요? 이번엔 중학교 명제 강의까지.. 설마 제가 모르거나 실수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러셨나요..ㅠㅠ

      1.
      음란한 성경은 가라 글에 대해서도 답변을 드린 바와 같이, 저는 자명하고 문제의 대세가 바뀔 일이 없는 문맥에서 일일이 그 정도까지 엄밀함을 챙기면서 글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성경부터가 그런 식으로 쓰이지 않았습니다. 무슨 과학 논문이나 lemma, definition, proof 형태로 기록된 책이 아닙니다.

      성경에도 요일 2:23처럼 "아들을 인정 -> 아버지를 소유"에 대해 본명제와 '이' 정도까지는 대구법으로 같이 적힌 구절이 있습니다.
      신 18:21-22는 그와 달리 "틀린 예언 -> 거짓의 영"이라는 명제 하나만이 적혀 있지요. 허나, 성경의 다른 용례들과 하나님의 성품을 감안했을 때, 성경 내부에서는 저 명제가 역과 이도 다 성립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저 문제에 관한 한 하나님이 "너는 머리가 나빠서 저 명제가 논리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까지 싸잡아 잘못 믿었구나" 그러실 일은 없습니다.

      왜냐고요? 아합 왕을 미혹한 거짓 영이라든가, 욥이 하나님을 저주할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사탄 마귀, 예레미야와 맞장 떴던 거짓 대언자 하나냐 등... 성경 어디에도 나쁜놈이 부정적인 팩트 폭격과 정확하게 적중한 바른 예언을 한 경우는 전혀 절대 없습니다.

      현실에서는 '나쁜놈'의 예언이 아주 일부 맞는 경우는 있겠죠. 적중하는 경우도 있어야 사람이 미혹될 테니까.. 하지만 그게 저런 사무엘의 예언과 같은 급일 수도 없을 뿐더러,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할 때는 그런 건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사무엘의 말은 하나도 남김없이 적중했다는 삼상 3:19 같은 말씀을 훨씬 더 감안해야 합니다. 저 구절도 꼭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2.
      >> 그리고 구약 시대에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라도 믿을 만한 사람에게 절대자가 직접 예수님에 대해 알려줬다고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풀리는데
      >> 저는 그렇게 믿는데 왜 그렇게 믿지 못하는지를 모르겠네요 꼭 텍스트로 기록이 되어야 믿을 수 있는 것인지

      그런 식으로 예수에 대해 알게 되어서 구원받고 교회까지 세워졌다는 역사 기록이 없습니다. 이건 사소하고 간접적인 정황 근거이고..

      결정적으로, 예수님에 대해서는 성골, 본진인 구약 성경에서조차도 '여자의 씨'(창세기), '처녀가 수태하여 아들을'(이사야)처럼 수백 년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말 간접적으로 찔끔찔끔 예언되고 계시돼 왔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뭐가 아쉬워서 자신의 계획에 대해 사전유출을 했어야 하겠습니까? 그런 편리한 뒷구멍이 있으면 애초에 성경은 왜 기록됐겠습니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성경 자체도 인류의 구원을 1순위 목적으로 두고 기록된 책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논리대로라면.. 절대자가 지옥에 대해서도 직접 알려주기만 하면 만사해결일 텐데 굳이 지긋지긋한 옛날 텍스트를 참고하라는 눅 16:29-31 같은 비효율적인 구절은 왜 기록돼 있겠습니까? 이건 좀 비약하면 하나님이 왜 하필 선악과 만들었냐 같은 급의 소리로 들릴 수 있습니다.

      이런 식의 충돌이 생기는 이유는 신세카이 님은 하나님의 역사 방식, 성경의 중요성, 기록 방식, 절대무오성, 예언 성취의 의미 등에 대해서 정확한 관념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님과 저의 이런 계산 방법의 차이를 인지하지 않으면.. 계산 결과의 차이만 갖고 앞으로도 계속 소모적인 논쟁과 감정 손상밖에 오가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 문제에 대해서 계속해서 저를 믿고 문의해 주신 것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똑같이 고집이 센 걸 상대방만 고집 세다고 욕한다거나.. 더 할 말이 없으니 말을 바꿔서 상대방의 말투나 태도를 문제삼고 교만하다는 식으로 유치하게 도발하는 건 신세카이 님 정도의 지성과 교양으로는 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저의 관심사는 오로지 성경으로 성경을 풀이하는 것입니다.

  5. 신세카이 2019/05/15 11:42 # M/D Reply Permalink

    내용을 바꾼 게 아니라 촛불을 등불로 바꾸고
    답변이 없는 댓글에 미확인일 가능성 또는 방명록에 차단으로
    마지막으로 얘기하겠습니다부터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태도는 방명록 차단때문입니다

    더이상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1. 사무엘 2019/05/15 11:46 # M/D Permalink

      네? 저는 님을 차단한 적 없습니다.
      무슨 내용으로 어디에 글을 쓰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몇몇 단어 때문에 스팸 광고글로 오인된 듯합니다.
      관리자 페이지의 휴지통에는 차단된 글이 나타나긴 하지만, 하루에 수백, 수천 건씩 쏟아지는 쓰레기 스팸글들에 가려져서 제가 제대로 못 보고 그냥 비워 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신앙관이 특이하고 과격할 수는 있어도 남에게 그런 식으로 교묘하게 비열한 짓을 하지는 않습니다.
      길게 하실 말씀이 있으면 차라리 메일을 이용해 주십시오.
      불편을 끼친 것은 유감스럽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촛불 등불은 뭐 그리 중요한 이슈가 아닙니다. 흠정역은 그 시절에 고체 파라핀 양초라는 물건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candlestick도 다 등잔대라고 번역하긴 했는데.. 그건 그냥 우리말 번역 문제이고 성경 외부의 고고학 고증 문제이죠.)

  6. 신세카이 2019/05/15 23:17 # M/D Reply Permalink

    전산오류가 있어서 오해가 있었다고 치고
    촛불을 등불로 바꾼 거 말고는 내용을 바꾼 게 없는데
    조언을 해주는 것도 유치한 도발이라 받아들이니;;;

    그러면 시작을 했으니 마무리를 해야겠죠

    처음부터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구원관에 대해서 그 곁가지로 삼손과 사울에 대해서 말했었는데
    사무엘의 영이 진짜냐 가짜냐는 곁가지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그냥 넘어갔었는데
    님은 완전히 이거에 포커스가 맞춰진 거 같네요;;
    욥이나 아합왕이나 그 정도는 저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이미 말했다시피 신명기의 구절도 님의 주장에 대한 근거가 되지 못하는데
    모르지 않으면서 기록된 대로 믿지 않고 자기 생각에 끼워맞추니까 문제가 되는 거에요ㅜㅜ
    제가 느끼기에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겠다는 의지 같네요
    근거를 대고 싶으면 최소한 악한 영과 접하는 이가 천국에 있는 다른 사람의 영을 불러온 사례를 제시한다든지 해야죠

    KJV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했어도 전수조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는데
    사실 저는 이미 KJV보다 더 잘 번역된 정확히 말하면 완전한 진리의 말씀을 알고 있고
    선악과가 왜 있었는지 이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이고 그 이유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만
    말해주고 싶지는 않네요
    님에게 진리의 영이 함께한다면 가르쳐주실 거에요
    저는 저의 삶 속에서 진리의 영이 함께함을 느낍니다

    삼손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도 제대로 답변을 못할 걸 예상하고 있었고
    그런식으로 생각하고 믿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왜냐하면 님의 해석은 님이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해석을 공부한 것일 뿐이고 그런 공부는 자료를 찾으면 누구나 알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님은 KJV를 믿는 것도 아니라 그것에 대한 해석을 믿는 거 뿐이에요

    시간대별로 구원의 방식이 다르고 그것이 절대자의 재량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절대자의 속성과 진리를 푸는 열쇠를 모르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구원을 받는데 절대자 본인의 피가 필요한 이유는
    절대자는 거룩하고 거룩하고 거룩하여 그 자체로 절대선이데 만약에 악을 행했던 죄인인 인간을
    품어버리면 마치 간음한 사람과 결혼하면 그도 간음한 게 되는 거처럼
    절대자의 피흘림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을 절대자가 품으면 절대선이 깨지게 되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이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예수님의 피흘림이 필요하죠 그 피만이 사람의 죄를 씻을 수 있는 겁니다
    절대자가 악을 행할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의 피흘림을 믿지 않는 자를 품을 수는 없어요
    이것에 대한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또 사람의 시간개념의 틀에서 억지로 이해할려고 하기 때문에 오류를 범하는 거에요
    그리고 주님과 구원받은 사람들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에 비유하죠
    사람이 사랑하고 존경하면 닮게 되는 것처럼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자는 주님을 닮게 됩니다
    그 방향으로 본인이 가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7. 신세카이 2019/05/15 23:19 # M/D Reply Permalink

    욥은 텍스트를 보지도 않았는데 유대인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절대자와 소통하고 구원을 받았을까요?
    저의 답은 간단합니다 욥은 온전한 마음으로 절대자를 갈망하고 사랑했기에 절대자가 직접 알려주었으니까요

    태도에 대해서 얘기한 것은 평소 쓰는 글에서 지식을 통해 남보다 위에 서고자하는 자기우월감 pride 자존심 또는 교만이 보이기 때문이에요 이런 마음은 주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니고 위로부터 난 지혜가 아니죠

    시간대별로 나눠서 구원받는 방법이 다르다는 해석은 거짓말입니다
    You don't know truth
    그리고 님은 예수님의 말씀이 본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거짓된 해석을 믿고 있다는 것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님이 이대로 계속 살다가 죽으면 구원을 못 받습니다
    정말로 구원을 받고 싶으면 그 잘못된 교리를 버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처럼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사도 바울이 자기의 지식을 배설물로 여겼던 것처럼 님도 그렇게 자기 지식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 지식으로 자신을 남보다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고 지극히 낮은 자들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에게 하는 게 주님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했던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길 바랍니다

    앞으로 이런 얘기는 하지 않을 겁니다 더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님의 해석은 이미 다 알고 있었고 그 전에 몇가지 얘기를 했던 것도
    이 말을 해주고 싶어서였으니까요

    주님께서 님에게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계세요

    1. 사무엘 2019/05/16 05:40 # M/D Permalink

      허허 역시나.. 전산 오류가 전부가 아니었군요.
      저는 명백한 오해와 실수는 인정하고 사과를 드렸는데.. 그랬더니 저에 대한 진짜 불만은 인제 나오는군요.
      저를 아예 구원도 못 받은 사람 급으로 정죄하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ㅎㅎ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
      >>님이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해석을 공부한 것

      뭐, 저도 그런 오류를 답습할 가능성이 0이라고는 감히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한때 불경 열심히 공부하셨고 카스텔리오와 칼뱅도 아는 신세카이 님에게도 95% 이상 거의 똑같이 적용될 것 같은데요.

      님도 성경으로 성경을 풀이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긴 마찬가지잖아요. 제가 님의 논리나 근거보다 저걸 우선적으로 판단하는 정당한 이유에 대해 설명을 드렸는데도 그건 귓등으로도 안 듣고서, 자기가 잘 모르는 부분은 긍정이나 부정 없이 어물쩡 그냥 넘어가고.. 제가 님의 말을 안 받아들이는 걸 갖고 이젠 교만이니 태도드립으로 나오고 계시니 말이죠.
      저는 님께 성경에 대한 믿음부터 가지라고 권면드렸는데 님은 저보고 웬 뜬금없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자기를 낮추라느니 그런 말씀만 하시고.. 에휴.. ㅎㅎ

      >> 욥이나 아합왕이나 그 정도는 저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스토리야 님도 모르실 리가 없지요. 단지 그걸 진지하게 믿고 성경의 다른 유사 사례들과 종합해서 문제를 푸는 데 활용을 안 할 뿐인 거죠.

      >>욥은 텍스트를 보지도 않았는데 유대인도 아니었는데

      욥기 자체가 아예 최초의 구약성경이라 여겨지는 책이고, 이때는 당연히 유대인이고 율법이고도 없었습니다.
      그 정도로 극단적인 초창기 상황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알려주셔야 했겠죠. 네 그건 저도 쿨하게 인정! 꿈에서 말씀해 주시는 경우도 있고, 성경에 기록된 사례만이 전부는 아닐 겁니다.
      에녹 정도도 아예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다가 하늘로 들려 올라겠겠죠.

      그러나 그게 님이 말씀하시는 것만치 흔한 사례가 아니고요, 어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도착한 뒤에도 만나가 계속 내렸습니까? 그럴 리가 없죠.

      설령 직접 들었다 해도 그 당시에 계시의 수준은 "그 하나님이 언젠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정도입니다. 욥이 그 시절에 무슨 갈보리 십자가를 알 길이란 전무했습니다. 하나님도 그 시절에 벌써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았고요. 이 점은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니 귀가 있으면 들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본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거짓된 해석

      어디서 세대주의 이단이라는 소리 많이 들으셨나 보네요. ㅎㅎ 남의 것을 보고 들은 게 있어야 그 정도로 강한 발언을 할 수 있습니다.
      님은 무슨 책을 보시고 어디서 신학을 하셨는지가 어렴풋이 그려집니다만, 정체를 숨기고 계시면 제 입장에서는 심증만 있지 물증을 입증할 방법이 없으니 추측은 여기까지만 하죠.

      저는 성경 말씀을 시대와 적용 대상별로 바르게 나눠 분간하고, 문자적 해석과 영적 적용을 하는 패러다임이야말로 성경에서 서로 모순처럼 보이는 구절들을 잘 풀이하고, 믿음의 영역과 논리· 이성 영역을 모두 충족시키며, 가장 건전하다는 생각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습니다. 그걸 능가하는 대안을 지금까지 접한 적이 없습니다.

      성경이 스스로 규정하는 성경 공부 방법을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님이 '잘못된 교리'라고 말씀하시는 그 교리 노선을 버릴 생각이 1도 없습니다.

      신세카이 님은 한편으로는 그렇게도 시대와 장소를 불문한 예수님의 피를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구원을 너무 쉽게 받는 걸 수긍하지 않고 구원의 영원한 보장도 안 믿는 입장이니 그거야말로 성경을 총체적으로 제대로 이해는 한 건지 저로서는 굉장히 미심쩍고 이상합니다. 이쯤이면 각자 서로 믿고 싶은 대로 갈 길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신학 노선은 신념일 뿐이지 행실이니 태도니 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도 말씀드립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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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주 통신망

인류는 19세기에 전깃줄을 이용한 전화라는 유선 통신 기술을 발명해 냈으며, 20세기 초에는 아예 전자기파를 이용한 장거리 무선 통신 기술까지 개발했다.
그리고 1960년대에는 통신 위성 덕분에 아예 둥근 지구의 반대편으로 전화와 TV의 전파를 실시간으로 주고 받는 게 가능해졌다. 위성 생중계가 최초로 시작된 올림픽이 1964년의 도쿄 올림픽이었다고 그런다.

그러니 유선 전화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 무선 전화도 오래 전부터 있긴 했다. 단지 기계값과 시간 당 통화료가 아주 비싸기 때문에 자동차나 선박에 장착되는 사치품 내지 아주 특수한 물건으로 취급되었을 뿐이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말부터는 그냥 전국민 1인 1휴대전화 시대가 시작됐다. 이를 위해서 전국 곳곳에 휴대전화 기지국이 건설되었으며, 각종 건물과 지하철 내부에도 중계기가 설치되었다.

전깃줄 중에 진짜로 전기를 보내는 용도로만 사용되는 굵은 송전선은 지상의 산들과 철탑 위로 아주 높고 길게 뻗어 있다. 요즘 만드는 도시들 내부에서는 지중화되어서 지하로 지난다.
다음으로, 동축 케이블이니 광섬유 케이블이니 하는 이름으로 데이터 통신을 담당하는 전깃줄들은 대륙과 대륙을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바다 밑으로 쫙 깔려 있다. 해저 지진이 나서 이런 케이블이 파손되면 주변 국가들의 인터넷 속도가 느려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인간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지구 곳곳에 깔아 놓은 통신 인프라를 생각하면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민간보다는 군용에 더 가까운 레이더(radar) 관련 기술도 말이다. 따지고 보면 레이더의 발명은 비행기의 발명 그 자체만큼이나 비행기의 운용· 관제 방식과 공중전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일본에서는 자국인 과학자/공학자가 아주 훌륭한 레이더용 안테나(야기-우다 안테나)를 발명했는데, 그걸 군부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병크를 저질렀다. 그래서 정작 적국인 연합국(영국)이 그 기술을 활용해서 전쟁에서 일본을 관광 태웠다는 안습한 일화까지 전해진다.
레이더도 원래 레이저(laser)처럼 복잡한 단어들 이니셜로 만들어진 단어이지만, 지금은 그 자체가 새로운 형태소처럼 쓰인다.

그런데 경이로운 통신 기술은 지구 대 지구 스케일만 있는 게 아니다. 지구 대 우주 분야도 있다.
까놓고 말해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 승무원들의 활동 동영상은 어떻게 해서 지구로 실시간 중계될 수 있었을까?
뉴 호라이즌스 호가 보낸 명왕성 사진은 어떻게 해서 지구로 잘 전달될 수 있었을까?
신호가 가는 데 편도로만 17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보이저 탐사선은 어떻게 지금도 지구와 교신이 되고 있을까?

우주로 나가려면 적도 근처에다 우주 센터와 발사대를 만들고 로켓만 죽어라고 쏴 올릴 게 아니라, 로켓에 실린 탐사선이 보내 주는 정보를 넙죽넙죽 잘 받기 위한 통신 시설도 반드시 개발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 NASA에서는 진작부터 Deep Space Network(심우주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전파 수신용 거대한 접시형 안테나 기지를 만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세기 초· 중반까지만 해도 우주는커녕 지구 표면의 남극이나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탐험하는 사람들과도 실시간 무선 통신이 가능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생사를 곧장 확인할 수 없었다. 주변 풍경 인증샷은 탐험가들이 카메라로 찍은 뒤에 무사 귀환할 때까지 필름을 반드시 잘 간수해야만 전해질 수 있었다!

아폴로 우주선의 달 탐사가 그런 식으로 답답하게 진행되지 않고 전세계 텔레비전으로 전파를 타고 생중계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안테나 기지는 로켓이 실제로 발사되고 수많은 관중들이 몰리는 우주 센터보다는 존재감이 훨씬 덜하다. 하지만 이런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우주 탐사의 숨은 일등공신이라 불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NASA 내부에서 이 안테나 기지를 관리하는 부서는 '제트 추진 연구소'이다. 이름만 봐서는 만년 발사체 연구만 할 것 같은 곳에서 통신망까지 연구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겠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인프라의 대부인 전 길남 박사/교수도 젊은 시절에 저기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저기는 비행기용 제트 엔진(터보 팬 같은..?)을 연구하는 곳이 전혀 아니다. 엄연히 산화제까지 같이 들어있는 우주 발사체용 로켓 엔진의 연구가 본업이다. 하지만 저 연구소가 처음 생겼던 당시에는 '로켓'이라는 단어가 그리 대중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름이 저렇게 붙은 것이다.

비슷한 다른 예로는 IBM이 있다. 이름에 '컴퓨터, 정보' 같은 단어가 들어가기에는 역사가 너무 긴 기업인 관계로, 오늘날까지도 고작 '국제 사무용품 기기'라는.. 마치 국제시장 같은 매우 낡은 명칭으로 통용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워낙 넘사벽급의 기술과 인지도를 자랑하는 세계구급 기업이니 이름 따위는 바꿀 필요가 없다.

제트 추진 연구소 때문에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샜는데, 다시 안테나 얘기로 돌아오기로 한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들 기지에 만들어진 안테나는 지름이 30m대 내지 70m대까지 있을 정도로 매우 거대하다.
그리고 한 곳에만 있는 게 아니라 다음과 같이 대략 120도대의 경도 간격으로 세 군데가 존재한다. 그래야 임의의 지표면에 도달한 전파가 지구의 자전에 구애받지 않고 셋 중 적어도 한 곳 이상에서 언제나 수신 가능하기 때문이다.

  • 미국 서부의 캘리포니아 바스토우 모하비 사막 (UTC-08:00)
  • 스페인 마드리드 (UTC+01:00)
  •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 (UTC+10:0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그림은 지구를 북극점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에서 세 기지가 감지 가능한 신호 영역을 나타낸 것이다.
가령,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신호를 최초로 잡아서 전세계에 타전한 곳은 미국이 아닌 오스트레일리아 기지였다. 미국에서도 잡히긴 했지만 저쪽이 신호가 더 또렷했다고 한다.

보행자와 차들로 북적대는 육지의 도로와 달리, 비행기가 순항하는 공중이나 배가 항해하는 공해는 장애물이 없다시피하다.
하물며 우주의 스케일은 지구를 훨씬 능가한다. 우주는 정말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방대 광대하게 텅 빈 공간이다. 태양계 행성들의 크기는 행성들 간의 거리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우주 탐사선은 한번 가속을 한 뒤엔 관성으로 한없이 등속 운동만 하면 되며, 전파도 그냥 조준만 잘 해서 쏴 주면 지구나 탐사선에 도착하는 건 그냥 시간 문제일 뿐이다. 다른 장애물에 부딪칠 걱정은 사실상 할 필요가 없다.

우주 공간에서 지구와 탐사선의 사이에 물리적인 장애물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건 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외행성 탐사선의 경우, 지구와 워낙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전파도 진행하는 동안 점점 넓게 퍼지고 신호가 약해진다. 게다가 지표면에서는 주변에 숱하게 돌아다니는 지구 발 노이즈들을 걸러내고 그 약한 우주 발 신호만 증폭해서 받아야 한다.

신호를 보낼 때야 지구에서 최신 설비로 최고 출력 고주파로 그나마 최대한 빵빵하게 쏘겠지만, 가녀린 탐사선에서 지구로 보낸 신호를 받는 것은 정말 보통일이 아닐 것 같다.
안테나가 괜히 저렇게 거대한 게 아니다. 그나마 지금은 기술의 발달 덕분에 옛날 같은 지름 70m짜리는 필요하지 않고 30m대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런다.

그나마 보이저보다 나중에 더 최신 기술로 발사됐고 지구에 훨씬 더 가까이 있는 뉴 호라이즌 호도 거기서 지구까지 전파가 도달하는 데 4~5시간을 잡아야 한다. 그런 propagation delay와는 별개로, 데이터의 전송 속도도 초당 수백 바이트, 1980년대의 2400~9600bps 모뎀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거리가 너무 멀고, 탐사선의 전파 출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건 뭐 어쩔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탐사선은 자기 메모리에 저장해 놓은 수십 GB에 달하는 사진들을 지구로 찔끔찔금 보내느라 그야말로 세월아 네월아 애써야 했다.
propagation delay인 4~5시간만 지나고 나면 지구에서 인터넷 하듯이 고화질 명왕성 사진이 짠~ 뜨는 건 인류의 기술로는 아직 가능하지 않다.

지구가 둥글다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빛의 속도조차도 느리다는 걸 실감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평소에 자기 전공과 생업에 대해서 무슨 생각이 들지 궁금해진다.
더 나아가 달 같은 데서 지구의 인터넷을 연계해서 쓰는 게 가능해질까? 흥미로운 상상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9/04/18 08:31 2019/04/1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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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자동차 기반의 장거리 대중 교통수단으로 고속버스와 시외버스라는 이원화된 시스템이 존재한다.
사실, 법적으로는 이들은 일반형 시외버스, 직행형 시외버스, 고속형 시외버스라는 세 부류로 나뉘는데, 고속형 시외버스가 고속버스라고 여러 모로 특별 취급을 받는 구도이다. 그리고 나머지 시외버스들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갈수록 직행화하고 고속버스와 형태가 비슷해지고 있다.

본인은 옛날 대학 시절에 경주에서 울진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이용한 적이 있었다. 고속도로가 없이 국도만 타느라 울진까지 가는 데 4시간이 넘게 걸렸던 걸로 본인은 기억한다. 더구나 이런 지방 왕래 수요가 많을 리가 없으니, 버스도 무슨 완행 열차가 정차하듯이 온갖 시골 정류장들을 들쑤시고 다녔다. 그래야 수지가 맞을 것이다.

지방에서 시외버스는 원래 이런 식으로 운행되고 있다. 울진 같은 경북의 오지뿐만 아니라 당장 강원도의 전방에서 차가 없는 사람들의 이동을 책임지는 것도 시외버스가 유일하다. 화천· 양구 같은 곳에 철도가 있나, 공항이 있나? 동서울 터미널에 괜히 군인들이 우글거리는 게 아니다.

다만, 요즘은 집집마다 승용차를 굴리는 세상이며, 중소 규모 이상의 도시에는 철도 같은 대체제도 있다. 전국에 고속도로도 워낙 촘촘하게 많이 건설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버스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촘촘한 단거리 이동보다는 장거리를 어설픈 중간 경유 없이 승용차보다 더 빠르고 편하게 가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일반형 완행 시외버스는 저런 시골 지방 말고는 없어지는 추세이다. 철도로 치면 간이역들이 갈수록 없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고속버스는 시외버스의 고급 특화 케이스이기 때문에 시외버스보다 노선이 훨씬 적다. 그 덕분인지 승차권 발매· 예매를 위한 단일 통합 전산망도 2000년대 초부터 시외버스보다 훨씬 더 잘 갖춰져 있었다. 과거 1980년대에 철도 승차권 전산 발매도 새마을호에 제일 먼저 적용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길이가 100km 이상이고, 전체 구간의 60% 이상을 고속도로로 달리는 노선에만 고속버스가 투입될 수 있다. 고속도로는 그 정의상 최대 속도가 100km/h 이상으로 정해진 곳이니 고속버스의 정의에는 속도와 거리에 모두 100이라는 숫자가 존재하는 셈이다.

경주-대구 사이에는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노선이 모두 존재해서 서로 경쟁 중이다. 저기는 80km가 안 되는 짧은 거리이지만, 100km 이상 규정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고속버스 노선이 여전히 존재하는 중이다. 마치 이화여대 초등교육과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사립 기관이듯이 말이다. (국립 교육대들보다 먼저 존재했음)
뭐, 신경주 역에서 KTX를 타면 동대구 역까지 20분이 채 걸리지 않지만.. 운임과 역 접근성 때문에 버스도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역이 시내에서 너무 멀므로..)

그리고 고속버스는 태생적으로 중간 정차가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 시점과 종점만 있는 시외버스라는 게 원래는 고속버스의 전유물이었다. 고속버스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두세 시간 간격으로 정차하고, 아니면 시점 또는 종점과 동일한 지역에 소재한 정류장에 딱 한 번만 추가 정차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대구-서울 고속버스이다. 상행은 동대구 역 근처에 있는 터미널을 출발한 뒤에 서대구 정류장을 들렀다가 서울로 가며, 하행은 반대로 서대구 정류장을 들렀다가 터미널로 간다. 대구 시내 안에서 터미널과 정류장 사이만 왕복하는 용도로는 고속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즉, 쟤들은 터미널을 출발하자마자 곧장 고속도로로 진입하지 않는다. 굳이 대구 시내를 횡단해서 서대구 정류장을 경유하느라 고속버스의 표정속도가 하락하는 건 개인적으로 아쉽게 느끼는 점이다.
이 정도만이 고속버스에게 허용된다. 이런 고속버스와는 달리, 동서울을 출발한 직행 시외버스는 경주에서 승객을 하차시킨 뒤 포항까지도 간다.

다음으로 운임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고속버스는 시외버스보다 고급스럽고 사치스러운(?) 교통수단으로 간주되어 운임에다 부가가치세가 붙는다. 즉, 원가 대비 차삯이 더 비싸다. 하지만 겨우 고속버스가 사치품인 것은 무슨 1970년대에 경부 고속도로라는 게 처음 생겼고 버스 안에 안내양까지 탑승하던 시절의 사고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법리적으로 볼 때 부가세를 폐지하는 것이 옳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고속버스에는 1991년인가 92년부터 우등이라는 등급이 생겨서 좌석 수가 더 적고 넓고 큼직한 대신, 더 비싼 버스가 등장했다. 열차는 상위 등급이 정차역 수가 적고 더 빨리 가는 반면, 고속버스는 처음부터 중간 무정차를 표방했기 때문에 우등이라고 해서 더 빠른 건 아니다. 그 대신 버스는 그 구조상 한 차량 안에서 특실/일등석(!) 같은 구분은 없다.

새마을호에 종아리 받침대가 달린 한국 철도 역사상 최고급 좌석이 등장한 것도 비슷하게 1990년대 초인 것으로 본인은 기억하는데.. 우등 고속을 의식한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우등 고속이 더 나중인지는 정확한 시기와 역학관계를 잘 모르겠다. 승차감과 좌석 앞뒤 간격은 철도인 새마을호가 더 낫고(특히 특실은!), 좌석과 팔걸이의 폭은 아예 2-1 배열인 우등 고속이 더 컸던 것으로 본인은 기억한다.

직행형 시외버스에도 우등형 좌석 차량이 있다. 단, 얘들은 앞뒤 간격이 우등 고속보다 약간 더 좁아서 28인승이 아닌 33인승이다.

고속버스 업계에서는 우등 고속이 생긴 지 25년 가까이 지난 2017년부터 우등보다도 더 고급스러운 21인승 프리미엄 우등이라는 것도 등장했다. 하지만 이건 서울-부산 같은 소수 장거리 노선 말고는 막 보급되기 어려울 듯하다. 우리나라가 무슨 1000km짜리 노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속도의 향상 없이 내장재만 잔뜩 고급화해서 비싼 운임을 받는 건 타 교통수단 대비 경쟁력을 확보하기 곤란하다. 다만, 좌석에 콘센트나 폰 충전 단자가 있는 버스라면 개인적으로 귀가 약간 솔깃해지긴 한다!

지금이야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시외버스도 고속버스 못지않은 승차권 전산 발매 인프라를 갖췄고, 심지어 시내/광역버스처럼 교통카드 결제가 가능해지기도 했다. 줄 서서 창구에서 표 사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맨 처음에는 무인 예매 발권기라는 게 생겼고 2000년대 초반에는 홈티켓이 유행했는데, 이제는 그냥 모바일 승차권을 써도 된다.
그리고 고속버스도 무조건 한 차량으로 시점-종점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휴게소 환승이라는 것도 이미 10여 년 전에 생겼다.

이 추세라면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라는 두 체계는 궁극적으로 하나로 통합해도 되지 않나 싶다. 육군이 서부와 동부 전선 야전군(제1, 제3)을 통합해서 그냥 전방 담당 사령부를 만든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게 별다른 특권이 아니며 직행 시외버스와 고속형 시외버스의 경계가 굉장히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고속버스만 타 시외버스와 다르게 취급할 이유가 별로 없다. 단일 시외버스 체계에서 시골 지방을 위한 완행 아니면 직행 구분만 하면 될 것 같다. 차량과 전산망 말고 터미널 건물은 요즘 모든 지역들이 고속과 시외 구분 없이 통합해서 만드는 게 대세가 된 지 오래다.

한반도에 철도와 시내버스까지는 일제 시대에도 있었던 교통수단이다. 그러나 고속철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전에 고속도로와 고속버스라는 것은 그 시절을 넘어 할배 슬하의 1공화국 시절에도 없었다. 1970년대 박통 때에 와서야 등장했다.
사실, 일제 시대 경성 시내 사진을 봐도 길거리에 자동차와 노면전차까지는 다니지만, 길에 차선이 그어지고 신호등이 설치된 걸 본 적은 없을 것이다. 미국 LA는 1940년대 모습이 이미 우리나라의 1970년대 이상 같고 자동차의 모양만이 옛날 디자인 같은데.. 참 대조적이다.

그렇게 길거리에 교통 시설이 아무것도 없다시피했기 때문에 미군정은 1946년에 자기 재량으로 한반도에서 자동차의 통행 방향을 좌측에서 우측으로 곧장 변경할 수 있었다. 자동차가 극히 드물던 시절, 고속버스를 타는 것만으로도 지금으로 치면 비행기를 타는 것 같은 희소한 경험이던 시절에 사람들의 삶이 어떠했을지가 궁금해진다.

Posted by 사무엘

2019/03/28 19:33 2019/03/2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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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중부 고속도로(37)는 중부 고속도로(35)의 서울-수도권 구간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건설된 고속도로이다.
도로를 확장해야겠는데 기존 도로는 다들 평지가 아닌 고가 교량 형태여서 그걸 건드릴 수는 없다. 그래서 옆에 도로를 더 만들게 됐다.

그럼 보통은 기존 도로는 전부 하행, 새 도로는 전부 상행.. 이런 식으로 개편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나, 중앙분리대를 제거하고 각종 도로 표지판들을 변경하고 진출입로를 이설하는 작업마저도 여의찮았는지 결국 기존 도로는 하나도 안 건드리고 그대로 놔 두게 됐다. "새 도로 추가.. 그 대신 새 도로는 중간에 진출입로가 없는 직행" 컨셉으로 제2중부 고속도로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결과는 운전자들에게 "중부냐, 제2중부냐" 하는 눈치 게임으로 전가됐다.

중부와 제2중부가 병행하는 구간, 그리고 그 이북으로는 휴게소가 다음과 같이 3개가 존재한다.

(1) 마장 프리미엄 휴게소

중부와 제2중부 고속도로 사이의 섬이라는 꽤 적절한 위치에 굉장히 거대한 규모로.. 거의 복합 쇼핑센터 컨셉으로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졌다(2013). 도로들보다 나중에 생겼다는 점으로 인해 진출입로에 입체 교차로 같은 건 없다. 그래서 중부에서는 상행만(하남 방면), 제2중부에서는 하행(청주 방면)만 이 휴게소에 접근 가능하다.

즉, 두 고속도로에서 한 휴게소를 공유하지만 방향은 제각기 반쪽짜리이다. 그리고 방향별로 주차장이 서로 분리돼 있기 때문에 들어왔던 차량이 방향을 바꿔서 나갈 수는 없다.

(2) 이천 휴게소

상행과 하행 휴게소가 제각기 3km 가까이 떨어져 있다. 상행은 두 고속도로가 공유하며, 나갈 때 중부와 제2중부 정도야 도로를 바꿔치기 할 수도 있다.
하행은 마장 프리미엄 휴게소와 아주 가까이 있는데, 얘는 오로지 중부 고속도로의 하행만 접근 가능하고 제2중부는 해당사항 없다. 그쪽은 어차피 마장 휴게소로 가면 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이 구간에서 중부+상행이라면 마장과 이천 휴게소를 모두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제2중부+상행과 중부+하행은 이천 휴게소만 이용 가능하며, 제2중부+하행은 마장 휴게소만 이용 가능하다.

(3) 하남드림(구 만남의 광장) 휴게소

경부 고속도로에 있는 '만남의 광장 휴게소'의 중부 고속도로 버전이다. 과거에는 실제로 이름도 동일하게 '만남의 광장'이었다고 한다.
다만, 얘가 경부 고속도로 만남의 광장과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 경부 만남의 광장은 그래도 과거에 톨게이트가 있었고 현재도 시내 도로와 고속도로의 경계인 지점에 있는 반면, 하남드림은 앞뒤로 여전히 차들이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 상에 있다.
  • 경부 만남의 광장은 상행 방면에서는 진입할 수 없는 반면, 하남드림은 상행 방면에서도 지하도를 거쳐서 진입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부의 상행에서는 죽전 휴게소가 마지막 휴게소이지만 중부의 상행은 하남드림이 마지막 휴게소이다.
그리고 이 두 만남의 광장은 모두 서울/동서울 톨게이트를 지나고 요금제가 개방식으로 바뀐 구간에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차들을 진행 방향별로 분리하지 않으며, 나갈 때는 상행이나 하행 아무데나 자유롭게 나가면 된다. 단지, 경부 만남의 광장은 들어오는 게 하행에서만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3/21 08:31 2019/03/2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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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 학회 사건 때 투옥되기도 했던 교사 겸 국어학자 정 태진 선생, 그리고 미군 장성인 조지 패튼과 월튼 워커..
이 사람들은 1940~50년대에 모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당시의 비포장 도로 사정을 감안하면 차가 절대로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저 인물들이 당한 사고는 안전 벨트를 매고 있었다면 사람이 죽을 정도의 사고는 절대 아니었다. 더구나 보행자도 아니고 차량 탑승자가 말이다.

하지만 20세기 중반에 자동차에는 안전 유리 정도나 도입되었지, 안전 벨트 비스무리한 물건은 아직 비행기 조종석을 벗어나지 못한 단계였다. 사고가 나면 탑승자는 관성 때문에 앞으로 튕겨나가서 좌석이나 유리창과 부딪치고, 최악의 경우 밖으로 날아가서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러니 장성급 VIP라 해도 교통사고가 났다 하면 얄짤없이 사망 아니면 중상을 면할 수 없었다. 하물며 정 태진의 경우는 아예 군용 트럭 짐받이에 아슬아슬하게 낑겨 타고 있다가 차가 전복됐으니 원..

기술의 발달 덕분에 자동차가 예전보다 얼마나 더 안전해졌는지를 실감한다. 안전 유리조차도 없던 자동차 초창기엔, 믿어지지 않지만 겨우 시속 30~40km로 달리다가 정면 충돌이 나도 사람이 죽을 수 있었다. 8기통 5000cc로 자동차 최대 출력이 30~40마력이던 100년 전쯤 시절 얘기다.
한편으로, 쿨하게 벨트 따위 없이 빠르기도 엄청 빠른 고속철이라는 교통수단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사람이 교통수단의 곁에서 얼쩡거리다가 죽거나 다쳤다고 하면, 보통은 저렇게 달리는 자동차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떠올린다.
무겁고 딱딱한 쇳덩이인 자동차와 퍽 부딪치고 나서 딱딱한 아스팔트· 시멘트 바닥으로 내던져지면 사람은 신체 곳곳이 부러지고 꺾이고 긁힌다. 하지만 아예 신체가 차 밑으로 들어가서 바퀴에 깔리는 것보다야, 차라리 튕겨 나가서 내던져지고 구르는 걸로 끝나는 게 나을 것이다.

일반적인 자동차에 치인 결과가 이러한데, 하물며 훨씬 더 무거운 열차에 치이거나 깔리면 시체가 온전히 남지도 못할 것이다. 지하철 선로 투신은 이루 형언하기 어려운 끔찍한 자살 방법이다.
단, 철도에는 굳이 달리는 차량에 치이지 않고도 끔살 당하는 다른 고유한 방법이 있다. 바로 전차선에 감전되는 것이다..;;

열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가면 사람이 근처에만 있어도 빨려 들어가서 죽거나 다치듯, 고압 전차선은 굳이 완전히 접촉하지 않고 십수 cm 남짓 근처에만 도달해도 감전될 수 있다.
또한, 똑같이 감전사해도 그냥 말단 부위에 화상만 남기고 비교적 곱게 죽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열을 너무 많이 받아서 온몸이 순식간에 새까만 숯덩이 가루가 되기도 한다.

전압과 전류, 신체 상태가 어떻게 맞물리면 저렇게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전철이야 다들 가공전차선(공중) 방식이니, 감전 사고가 나는 건 사람이 일부러 열차의 지붕으로 올라가는 뻘짓을 했을 때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전철은 제3궤조 집전식이니 그 바닥은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서양에는 touch the third rail (왕창 위험한 짓을 함)이라는 관용구까지 있다.

한편, 비행기와 선박은 자동차처럼 곱게 바퀴만 굴리는 게 아니라, 주변의 유체(공기 또는 물)를 빨아들이고 뒤로 내뿜는 추진 장치가 밖에 돌출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주행 여부와 관계없이 시동이 걸려 있는 것만으로도 곁에 있으면 더욱 위험하다.

선박의 경우, 주변에서 작업하던 인부가 스크루에 빨려들어가 끔살 당할 수 있다. 이런 사고는 범선이나 심지어 증기 외륜선 시절에도 걱정할 필요가 없던 부류일 것이다.
헬리콥터의 경우, 커다란 메인 로터는 머리 위 높은 곳에서 돌아가니까 괜찮지만, 테일 로터에 사람이 부딪히는 사고가 날 수 있다. 선풍기 날개에 손가락을 다치는 것 정도와는 비교가 안 되는 심각한 부상을 야기한다.

그리고 이 바닥의 갑은 제트기의 팬에 빨려들어가는 것이다.
수십~100수십 톤에 달하는 대형 비행기를 그냥 밀어내는 정도가 아니라 공중에 띄우기까지 해야 하는데.. 엔진의 힘이 얼마나 돼야 하며, 단위 시간 동안 빨아들이고 팽창시켜 내뿜는 공기의 양이 얼마나 될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단순히 새 정도가 아니라 사람도 당연히 빨려들어갈 수 있다.

지난 2006년 1월 16일에는 미국 엘 파소 공항에서 항공 정비사가 보잉 737 국내선(컨티넨탈) 여객기의 팬에 빨려들어가는 사고가 실제로 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합성이나 주작이 아닌지 신빙성이 약간 의심은 된다만, 사고 현장의 사진도 검색해 보면 나온다. 해당 엔진 전체는 말할 것도 없고 주변 바닥까지 온통.. 사람은 뼈도 옷도 유품도 없고 형체가 전혀 없이, 그냥 시뻘건 피와 살점으로 범벅이 됐더라..;;

FPS 게임에 나오는 gib(피떡)라는 것의 더 잔혹한 실사판을 볼 수 있었다. 그냥 사람이 사지 잘리고 바닥에 피 흘리며 죽어 있는 어지간한 전쟁터나 교통사고 현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렇게 사고가 난 뒤의 모습 말고, 심지어 옆 비행기에서 그 사람이 실제로 쏙 빨려들어가서 죽는 모습을 촬영했다는 동영상까지도 굴러다니는 게 있는데, 이건 합성 주작인 것 같다. 하지만 사건 자체는 실제로 일어난 게 맞다.

요약하자면..

  • 육상 교통수단은 그 특성상 움직이는 차체에 사람이 치이거나 깔리는 교통사고가 날 수 있다. 차와 차끼리도 서로 부딪칠 수 있다.
  • 그에 덧붙여서 철도는 전차선이 존재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보니 차체의 운행 여부와 관계 없이, 아니 오히려 반대로 정지해 있을 때 감전 사고가 날 수 있다.
  • 다음으로, 땅 위에서 바퀴를 굴리는 형태가 아닌 교통수단들은(비행기, 선박) 추진 프로펠러에 빨려들어가는 사고가 날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9/03/17 08:32 2019/03/1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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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지금까지 블로그에다 자동차에 대해 올린 글들의 성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현기차에 호의적이며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와 동향 자체를 현기차 중심으로 보는 편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액센트-아반떼-쏘나타-그랜저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승용차 계보 말고, i30이니 i40이니 심지어 벨로스터니 하는 승용차는 길거리에서 별로 보지도 못했고 개인적인 관심 역시 없다시피했다.

우리나라의 승용차 정서랄까 문화는 "(1) 국토와 경제력에 비해 너무 큰 차를 밝힌다, (2) 세계 평균 이상으로 너무 무채색+세단만 일률적으로 선호한다" 정도로 요약되는 듯하다.
(1)에다가 배기량 비례 자동차세 문제도 얽히다 보니, 이 반도에서는 제조사들이 이미 1990년대부터 차체만 큼직하고 엔진은 그에 어울리지 앉는 너무 작은 걸 얹어야 했다(배기량 후려치기).
(2)는... 한국에서 유독 흰 달걀이 전멸해 버린 것과도 비슷한 맥락의 관행 같다. 아무튼..

현대차에서는 지난 2007년에 맨 먼저 i30부터 내놓았다. 한국이 아닌 유럽 시장을 겨냥한 아반떼 급의 준중형 해치백 승용차로, 앞좌석과 뒷좌석 문이 있고 그 다음에 트렁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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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2011년에 좀 더 큰 쏘나타 체급의 '왜건형' 승용차인 i40가 나왔다. i30보다 뒷좌석 뒤의 공간이 좀 더 길다. 체격과 외형이 SUV와 비슷하지만, 승용차이기 때문에 SUV보다 차체가 낮으며 바퀴 크기도 더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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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벨로스터도 나왔다. 얘는 소-준중형 사이인 '쿠페형' 승용차로, 뒷좌석 쪽엔 문이 없다. i30, i40보다 더 아담하게 생겼지만 그렇다고 너무 동글동글 귀여운 경차를 표방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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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요즘 모델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벨로스터는 뒷좌석 쪽엔 오른쪽(진행 방향 기준) 조수석 방면만 문이 두 짝인 비대칭 도어라고 한다. 기아 레이가 뒷좌석 왼쪽은 일반 도어이고 오른쪽은 미닫이인 비대칭형인데.. 이와 비슷한 사례라 하겠다.

이 세 차들은 해치백· 왜건· 쿠페로 체급과 외형이 대동소이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트렁크가 돌출돼 있지 않고 뒷유리에 와이퍼가 달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얘들은 유럽이 아닌 국내에서는 정서상 생소한 외형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차에서는 얘들을 국내에서 팔기 위해 역사상 유례가 없던 파격· 개성· 감성 마케팅을 시작했다. 2, 30대 젊은 계층을 집중 공략했다.

이때 마케팅을 도대체 누가 담당하고 승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과정에서 현대차 역사상 약을 최고로 거하게 빤 CF가 만들어지고 송출되었다. 국적도, 출처도 일체 노출하지 않은 PYL 브랜드 말이다. 지금 제네시스처럼 PYL이 브랜드인 셈이다.

저게 자동차 CF였다니..
내가 알기로 현대에서는 자기 차가 포르셰를 추월한다던가(엘란트라, 티뷰론)..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람보르기니로 대답했습니다. ㄲㄲㄲㄲ)" 같은 캐 오글거리는 CF를 잘 만드는데.. 저건 1993~4년경에 데미소다 CF를 봤을 때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자우림 김 윤아의 생글생글 발랄 돋는 노랫소리가 워낙 강렬하니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놈의 유니크..;; 영화 테이큰 대사를 들어 보자.

This is a business. This is a very UNIQUE business with very UNIQUE clientele. (패트리스 상클레어. 동영상 링크에서는 46~50초 지점)


인신매매업이 아주 독특 특이한 업종이랜다. =_=;;
하긴 이건 성경에도 미래에 흥왕할 산업이라고 언급돼 있긴 하지. (계 18:13 끝부분)
자기도 자녀가 셋이나 있으면서 남의 딸을 매정하게 팔아넘기는 걸 보면 "그런즉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들을 줄 줄 알거든"(눅 11:13)도 떠오른다. 뭐 그건 그렇고..

패트리스 상클레어의 발음을 들어 보면 알겠지만 '유니크'는 원래 2음절에 강세가 있다.
그런데 저 PYL CF에서는 리듬을 맞추기 위해 "유~ 유니크~!" 라고 노래 아주 대놓고 1음절에다 강세가 들어간다. 그것도 참 특이하게 들렸다.

우리는 그냥 어색한 '유니크' 정도로 알아듣는 반면, 영어 토박이들은 강세 위치 때문에 이걸 영락없이 내시(eunuch)처럼 알아듣는가 보다. 정확히는 이건 '유니크'가 아니라 '유너크'에 더 가깝지만.
여담이지만 더 옛날, 월트 디즈니 알라딘에서는 쟈파가 princess를 2음절에다 강세를 준 게 복선 클리셰처럼 나온 적이 있다. 저건 원래 1음절 강세니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현대차에서는 지난 2012~13년 사이에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상당히 기발한 CF를 만들어서 뿌렸으며, 홍대 클럽에서 유명 가수와 연예인들을 초청해서 PYL 콘서트를 열고 젊은 감성 마케팅을 벌였었다. 20~25년쯤 전의 X세대 마케팅 이런 거랑 비슷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i30, i40, 벨로스타의 판매는 영 시원찮았으며, 투자한 마케팅 비용을 회수하지 못했다.
디자인이 특이한 것에 비해 가격이나 성능 메리트가 별로 없었으며, 그리고 이 마케팅이 제일 근본적으로 헛다리를 짚은 요인으로는..
그 젊음 젊음 하는 애들은 경제 여건상 애초에 차를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계층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상대적 빈곤감이네 뭐네 하면서.. "열악한 곳에 취업하느니 아예 취업을 안 하고 말겠다" 심보로 청년들의 사회 진출은 갈수록 늦어지고, 결혼도 출산도 안 하는 지경인데..
차 자체야 지방에서 이동을 위해 꼭 필요한데 지갑 사정이 넉넉하지 못하다면, 싸구려 중고차를 지르면 된다. 하지만 20대들은 차값은 둘째치고 보험료 때문에라도 차를 못 굴린다. 이런 연령대는 운전 경력과 실력은 부족한 주제에 철딱서니 없이 사고를 잘 내는 블랙리스트 고객으로 팍 찍혀 있어서 보험료가 굉장히(몇 배로) 비싸기 때문이다.

이런 계층을 상대로 너무 이색적인 컨셉의 차를 팔려다 보니 잘 안 팔려서 결국 현대차는 큰 손해를 보게 됐고, PYL 브랜드는 몇 년 못 가 조용히 폐기됐다.
i30, i40, 벨로스터라는 차 자체는 지금도 나오고 있지만 그냥 근근이 먹고 사는 지경이다.

글쎄, 과거에 비슷하게 파격 젊음 감성 스포티를 표방했던 스쿠프는 그래도 세단 파생형 쿠페이고 스포츠카를 표방해서 그런지 PYL 꼴은 안 났던 것 같은데 말이다.
물론 스쿠프는 그 기술과 엔진 성능으로는 껍데기만 스포츠이지, 진짜 스포츠카를 자처하기에는 택도 없긴 했다. 그리고 기아 엘란은 나름 외제차를 기반으로 진짜 스포츠카를 표방이긴 했다만 고객을 너무 잘못 설정하고 값을 너무 비싸게 부르는 바람에 망했었다.

차는 집 다음으로 비싼 물건이며 주 고객이 최하 40대 이상으로 올라가니, 우리나라 정서상으로는 너무 튀는 모험은 여전히 위험해 보인다. 보수적인 아재 취향을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2012~13년을 풍미했던 PYL 얘기가 좀 길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으로 현대는 그런 아재 취향의 준대형 고급차 체급에서도 큰 삽질을 한 적이 있다. 바로 아슬란이다(2014-17) =_=;;

제네시스가 명목상 현대가 아닌 자체 브랜드의 차종으로 이동하고 에쿠스도 저기로 흡수됨으로써 현대 엠블럼을 걸고 나오는 승용차 중에서 제일 고급은 그랜저가 이어받았다. 그런데 그랜저는 30여 년의 세월 동안 굉장히 흔해졌으며 예전 같은 고급스러운 느낌도 덜해졌다. 이에, 현대에서는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의 틈새 차급을 겨냥하여 전륜구동 형태로 그랜저보다 더 큰 차를 그것도 내수 전용으로만 내놓았지만...

역시나 가성비 시원찮고, "이거 살 돈이면 더 보태서 제네시스나 다른 외제차를 사고 말지"가 되면서 이 차는 시원하게 망했다. 이름이 터키어로 사자라는 뜻이라는데, '어슬렁'이라는 적절한 멸칭으로 까였다. 그리고 지금은 마지막 재고가 아주 저렴하게 떨이 처분된 뒤 단종됐다. 차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국내 고객들의 정서와 수요에 잘 안 맞아서 "다른 대안이 넘쳐나는 와중에 굳이 그 돈 주고 살 정도까지는 아닌 차" 신세가 되어 망한 것이다.

그렇잖아도 이미 2016년에 이들을 싸잡아서 "현대차, 아슬란-PYL 어쩌나"라는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으니, 역시 이번에도 내가 뒷북을 제대로 잡은 것 같다. 이제 승용차에서 틈새 차급을 공략한 게 초대박을 치는 건 준중형 엘란트라/아반떼 이후로 더는 없는 것 같다.
아반떼는 작년 가을(2018. 9.)에 무슨 일본 차와 비슷하게 생긴 삼각형 헤드라이트 모양으로 페이스리프트가 됐는데.. 이게 호불호가 갈리는 중이다.

에쿠스는 잘 알다시피 지난 2015년 말을 끝으로 단종되었고 EQ900이라는 제네시스 차급으로 흡수됐다.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 잡지가 휴간된 때와 비슷한 시기여서 본인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9/03/02 08:31 2019/03/0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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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람과 방향

우리말에서 '남침'이란 남쪽"을" 침범/침략한다는 뜻이다. 글쎄, SVO형 언어인 중국어의 어순을 고려한다면 '침남'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어에서는 단어가 저렇게 형성됐다.
과거에 북괴가 한 짓이 남침이며, 여기서 '남'이 target, destination이다. 어휘력 문제인지 아니면 이념과 역사관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반도에서 이거 뜻을 분간할 줄 모르는 사람도 있대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곤 했다.

그런데 바람의 방향을 말할 때 '남풍'은 남쪽으로 부는 바람이 아니라 남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다. '남'이 source, origin이니 '남침'과는 사정이 다르다.
비슷한 맥락으로 편서풍은 서쪽에 있는 중국에서부터 불어서 반도에 황사와 미세먼지를 가져오는 바람을 말한다.

영어에서 "I'm coming!"을 "오는 중이야"가 아니라 "가는 중이야"라고 번역하고, 부정의문문의 대답일 때는 "Yes, I did"를 "아니, 했다니까"라고 번역하는 것처럼.. 혹시 방향별 바람의 명칭도 언어에 따라서 보정해서 번역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허나, 바람의 방향은 목적지가 아닌 출처를 따지는 게 인간의 보편적인 관습상 더 중요한가 보다. 바람은 수학의 벡터 같은 존재는 아닌 듯하다.

성경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바람은 동풍이다. 서풍은 출애굽기 이집트의 재앙에서 메뚜기 떼 처리용으로 딱 한 번만 나온다. (출 10:19) 서쪽 아프리카에 있는 이집트에서 들끓는 메뚜기들을 동쪽 홍해로 쓸어 넣으려면 서풍이 불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와 대조적으로, 홍해 경부 고속도로를 만든 바람은 동풍이었다고 나온다(출 14:21). 그 말인즉슨, 바닷물은 모세가 서 있는 방향에서 건너편으로 갈라진 게 아니라, 건너편에서 모세가 있는 쪽으로 역순으로 갈라졌다는 뜻이다. <십계>나 <이집트의 왕자> 같은 영화에서 묘사된 바와는 다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본인이 예전에 이집트의 왕자를 분석하면서도 언급한 바 있다.

성경에서 이런 것만 쭉 살펴보면 "하나님은 특정 방향을 선호하신다"라고.. 그럴싸해 보이지만 논란의 여지도 있는 그런 패턴 내지 팩트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복음이 자연스럽게 전파되어 온 방향이 '동 → 서'(동풍)이며, 반대로 '서 → 동'은 뭔가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방향이라고 한다.

이런 것까지 생각해 보면,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땐> 찬송가의 결말부에 나오는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는 도대체 무슨 심상으로 써 넣은 가사인지 문득 굉장히 궁금해진다!
이 곡을 만든 분(최 영택. 작사· 작곡 모두)은 나이 지긋한 교회 장로로, 김천에서 자기 이름을 딴 병원을 차린 정신과 의사이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의 작곡자이기도 한데, 두 곡은 어쩐지 동일 작곡자의 작품인 티가 미묘하게 나는 것 같다.

2. 천체들의 회전 방향

우주의 관점, 아니 더 정확히는 태양계의 관점에서 봤을 때 천체들의 주된 회전 방향은 '반시계 방향'이다. 태양계 행성들을 위에서 아래로, 북극 방향으로 내려다봤을 때 도는 방향이 반시계라는 뜻이다. 자전과 공전 모두 말이다.

  • 어떤 행성의 공전 방향은 그 공전 대상인 모성의 자전 방향과 대체로 동일하다. 그리고 자전 방향도 자신의 공전 방향과 대개 일치한다.
  • 그런데 태양은 반시계 방향으로 자전한다.

이런 재귀적인 논리 전개에 따라, 지구를 포함해 태양을 도는 모든 행성들은 반시계 방향으로 공전하며, 자전 방향도 대부분 반시계 방향이다. 지구를 도는 달도 마찬가지이다.
지구는 옆에서 적도를 봤을 때 바다와 대륙들이 서에서 동으로, 즉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면서 스크롤된다. 그리고 반대로 지표면에서 태양을 보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보인다.

뭐, 예외는 금성(행성들 중 혼자 유일하게 자전 방향이 반대), 천왕성(자전축이 90도대여서 데굴데굴 구르는 형태로 공전), 그리고 해왕성의 위성인 트리톤(해왕성의 자전 방향과 반대인 역행 공전)이 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자그마한 예외 수준이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방향은 동에서 서(즉, 동풍의 방향)라고 여겨진다.
지구가 서에서 동으로 자전하고 있으니, 지구상의 어떤 물체를 동에서 서로 이동시키려면 신의 입장에서는 물체를 잠시 집어서 지구로부터 떼었다가 잠시 후에 제자리에 다시 놓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만 해도 인간 같은 미물이 보기에는 그 물체가 갑자기 공중에 떴다가 초고속 공간 워프를 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려면 물체를 들었다가 지구의 자전 속도보다 더 앞선 지점에다가 놓아야 한다. 뭐, 하나님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겠냐만, 그게 좀 더 번거롭다.
성경과 과학을 굳이 어거지로 조화시켜 보자면 이런 디테일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ㅎㅎ

이렇듯, 교통에서 좌측· 우측통행만큼이나 시계· 반시계 회전 방향 문제는 무척 흥미롭다. 어째 시계는 또 그렇게 도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통용되었나 싶기도 한데..
한편으로 육상 트랙의 회전 방향은 반시계 방향이 세계 표준으로 정착해 있다.

과연 우리 태양계 밖의 다른 항성계 중에는 시계 방향이 주류인 물건이 있을까?
사실은 태양도 자기 천체들을 이끌고 우리 은하를 공전하고 있긴 한데, 거기를 도는 방향은 우리 은하의 북쪽에서 아래를 내려다봤을 때 반시계가 아닌 "시계 방향"이라고 한다.
다만, 이 태양의 공전은 그 스케일과 주기(수억 년에 1회!)가 정말 까마득할 정도로 방대하기 때문에 여느 행성의 공전과 같은 급으로 취급하기는 곤란하다. 저걸 도대체 어떻게 관측하고 알아 냈는지, 우리 은하의 중심부에는 도대체 무슨 거대한 중력원이 있는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3. 지구와 달의 역학 구도

(1) 달처럼 자전 주기와 공전 주기가 동일하여 모성에서는 언제나 앞면만 보이는 위성을 동주기 자전 위성이라고 한다. 동주기 자전이라는 건 자전 방향과 공전 방향이 서로 일치한다는 것도 당연히 내포함을 알 수 있다.

지구의 위성인 달은 잘 알다시피 다른 행성들의 여느 위성과는 다른 특이한 점이 무척 많다. 유난히 큰 것, 지구에서의 겉보기 크기가 태양과 거의 같은 것 말이다. 다만, 자전과 공전 주기가 동일한 건 천체역학적으로 볼 때 긴 시간이 주어지면 다른 천체에서도 궁극적으로 도달 가능한 현상이다. 트리톤만 해도 동주기 자전 위성이며, 이것 자체는 달만의 유니크한 점이라고 보기 어렵다.

(2) 사실, 위성이 모성을 공전하면 위성뿐만 아니라 모성도 위성의 질량의 영향을 받아서 들썩거리게 된다. 위성과 모성 모두 둘의 질량 중심점(barycenter)을 축으로 돌게 되는데, 그 질량 중심이 어차피 모성의 내부에 있기 때문에 모성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지구와 달의 질량 중심은 지구의 중심으로부터 467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한다. 지구의 반지름 6378km보다는 짧으니 여전히 지구의 내부이긴 하다. (☞ 관련 동영상)
그 반면 명왕성과 위성 카론의 경우, 크기와 질량이 어느 한 쪽이 압도적으로 크지 못하기 때문에 그 중심이 두 행성의 외부인 우주 공간에 존재한다. 이 때문에 이들은 상대방을 마주 보면서 빙글빙글 돌게 된다.

(3) 앞서 살펴봤다시피 지구와 달의 질량 중심은 지구의 내부에 있고.. 다음으로 지구와 달 사이의 공간에서 양 행성간의 인력이 동등해지는 중간점은 거의 9:1쯤 되는 지점에 있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약 384000km인데, 그 중점은 약 345000km라는 것이다. 이건 '라그랑주 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9/02/21 19:31 2019/02/21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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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욥기는 모세오경과 더불어 가장 오래되고 먼저 기록된 책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이게 평범한 책이 아니다. 너무 엄청나고 극단적인 스토리와 판타스틱한 서술들, 그리고 인류의 만년 의문 떡밥인 '의인의 까닭 없는 고난'을 다룬다는 점으로 인해 욥기는 문학성 하나는 가히 최고라고 인정받고 있다. 물론 불신자들은 문학적 가치와 의미만 인정할 뿐, 저게 설마 레알 실존인물 실화일 거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성경은 세상의 통념과 달리, 다른 책에서 욥을 거듭해서 실존 인물이라고 언급하고 인용하니(약 5:11 같은..), 이게 딜레마이다. 노아, 아벨만큼이나 말이다.
가령, 그 천하의 예수님이 창세기 4장 인물인 아벨이 실존 인물이라고 인정하셨다(마 23:35). 예수님보다 더 잘나고 똑똑한 비평가라면 창세기 1~11장은 그냥 설화이고 상징 비유 묵시문학이라고 치부해도 될 것이다. 욥기 역시 마찬가지일 테고 말이다.

그 문제의 책 욥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스 땅에 욥이라는 이름의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완전하고 곧바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멀리하는 자더라. 그에게 아들 7명과 딸 3명이 태어나니라. 또한 그의 재산은 양이 7000마리요, 낙타가 3000마리요, 소가 500겨리요, 암나귀가 500마리이며 집안사람들도 심히 많았으므로 이 사람은 동쪽의 모든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더라." (욥 1:1-3; 가독성을 위해 성경 본문에서 수량 표기를 아라비아 숫자로 바꿈)

욥은 노아· 다니엘과 더불어 구약의 3대 의인이라고 일컬어진다(겔 14:14). 특히 노아와 욥은 하나님께서 친히 내리신 perfect(창 6:9, 욥 1:1)라는 수식어까지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무슨 예수님과 동급의 완전무결이라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단지 구약 + 인간의 관점에서 그럭저럭 흠잡을 데 없고 타인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한 만점 합격점이라는 뜻이다. 마치 all(모든)처럼 말이다. 도대체 어느 문맥과 범위에서 전체 또는 완벽인지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욥은 아시다시피 한번 쫄딱 망했다가 그래도 다음과 같은 해피 엔딩을 맞이한다.
"... {주}께서 그의 포로 된 것을 돌이키시고 또 {주}께서 욥에게 그가 전에 소유했던 것의 두 배를 주시므로 ... 그는 양 14000마리와 낙타 6000마리와 소 1000겨리와 암나귀 1000마리를 소유하였더라. 또 그가 아들 7명과 딸 3명을 두었더라." (욥 42:10,12,13)

욥은 고난 이후에 자기 재산에 속하는 가축들은 몽땅 다 정확히 두 배로 보상받았다. 그런데 자녀는 예나 지금이나 열 명 그대로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설명은.. 자녀는 재산과 별개이며 두 배 보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인권이나 보험(!!) 관점에서 보자면 대인과 대물은 엄연히 다르며, 자식은 단순히 부모의 소유물 개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거라면 애초에 가축 수와 자녀 수를 나란히 늘어놓은 욥기의 진술 방식 자체가 좀 문제가 있으며, 독자에게 오해와 혼동의 여지를 남기는 거라고 간주해야 할 것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성경적인 결론은.. 구원받은 자녀는 다른 가축이나 재물과 달리, 내세에서도 영원히 남아 있고 만나볼 수 있기 때문에.. 사고로 죽었어도 영원의 관점에서는 손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잠시 이 세상에서 이별하고 못 보는 기간 / 내세에서 n년간 보는 기간"의 비율은 n이 무한대로 갈 때 극한값이 0으로 가는 것이 자명하니..;;
그러므로 20명을 몽땅 새로 줄 필요 없이 새 자녀 10명만 추가로 주면 10+10 = 20이 된다.

이것이 인간과 짐승(가축)의 본질적인 차이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낳았고 낳았고'만 잔뜩 나오는 마태복음 1장의 리스트의 진술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목록에서 일부 인물이 누락된 이유도 덤으로 말이다.
또한, "지금은 그가 죽었으니 어찌하여 내가 금식하리요? 내가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삼하 12:23)라고.. 어린아이의 구원을 당당히 믿은 다윗의 말도 이해할 수 있다.

세상에는 인간의 과학과 지성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많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여전히 많다. 죽음도 그 문제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내세관은 꽤 건전하다. 죽은 사람 갖고 사기를 치는 수많은 미신, 괴담 등에 휩쓸릴 일이 없게 하며, 그 반대편 극단인 "죽으면 다 소멸하고 끝" 염세 회의 허무주의 쪽으로 빠지지도 않게 해 주기 때문에 더욱 좋다.

이런 신앙이 있으니 손 양원 목사는 "미국 유학 보내려던 아들을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으로 보내 주셔서 감사"라는 초인적인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육신의 몸을 입고 영원히 살 수는 없지만..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생명 인격체를 만드는 일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만 할 수 있다는 게 굉장한 아이러니인 것 같다. 구원받는 것도 그렇게 현세에서 살아 있는 동안만 가능하듯이 말이다.

한편, 이런 "현세 10+내세 10 = 20"설 말고.. 그 10명은 그냥 욥의 기존 자녀들이 죽었다가 다시 부활한 것일 거라고 추측하는 분도 있다. 뭐, 그것도 욥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해피엔딩이며, 성경의 심상 면에서 일리가 있다.
성경에는 구약 성도들의 집단 부활이라든가(마 27:52-53) 모세의 부활(유 9)처럼 아주 implicit하고 간략하게 기록된 엄청난 부활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욥 당사자도 단순 내세 이상으로 육체의 부활을 믿은 와중에(욥 19:26), 욥기에 부활의 실제 사례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또한 완전히 새로운 자녀를 만드는 건 욥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그것도 10명이나 다시 낳으려면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와중에 욥의 기존 아내는.. 욥을 완전히 떠나 버렸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고난 후에 재배회를 했는지.. 그렇지 않고 욥이 재혼을 하기라도 했는지 성경에 언급이 전혀 없다. (본인은 개인적으로는 욥의 아내는 막 악처까지는 아니어도 그래도 신앙이 남편만치 좋지는 못했던 그냥 예쁘장한 부잣집 사모님 스타일이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ㄲㄲㄲ 사탄이 욥의 아내를 괜히 살려 둔 게 아님..)

이런 시나리오에 비해, 죽었던 기존 자녀만 다시 초자연적으로 살아나는 시나리오는 기적 그 자체 말고는 주변의 미주알고주알 디테일을 생각할 필요 없이 단순 깔끔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부활설은 근처에서 노골적으로 비교하며 등장하는 '2배 보상'이라는 심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자녀는 무슨 물건 같은 존재는 아니겠지만 부모의 입장에서는 명백히 주님으로부터 온 유산이요 보상이다(시 127:3-5). 하나님께서 욥에게 가축을 2배로 보상해 주셨거늘, 하물며 자녀도 2배로 보충해 주지 않으셨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않을까?

욥기의 도입부에서는 자녀 수부터 먼저 나온 뒤에 다음에 가축 수인데, 결말부에서는 2배로 늘어난 가축 수부터 나온 뒤에 그 다음이 자녀 수이다. 이것도 생각해 볼 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2/19 08:36 2019/02/1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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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은 통신 기술이 옛날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정도로 눈부시게, 폭발적으로 발달했다.
전화기만 해도 처음 발명됐던 시절엔 가히 혁신 혁명이었는데 오늘날은 무전기를 넘어 휴대전화와 인터넷까지 일상이 됐으며, 무선 인터넷이 10~15년 전의 유선 인터넷보다 더 빠른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손바닥만 한 작은 기기로 글과 음성은 말할 것도 없고, 고화질 사진과 동영상을 아날로그도 아닌 디지털 형태로 지구 반대편으로 즉시, 당연한 듯이 주고받을 수 있다.

이런 기술이 없던 옛날에는.. 국가 차원에서 긴급한 상황을 빨리 알리기 위해 봉화와 파발이 쓰였다. 봉화는 전파 속도가 비교적 빠른 대신, 전할 수 있는 게 불/연기의 on/off 정도이니 정보량으로 치면 겨우 두어 비트 남짓한 정말 최소한의 상태밖에 전할 수 없었다.

그리고 봉화가 빨라 봤자.. 조선 시대 기준으로 제일 이상적인 상황과 근무 조건을 가정했을 때, 부산에 적이 침입했다는 소식이 봉화들을 거쳐서 400km가 넘게 떨어진 한양의 조정까지 전해지는 데 대략 두세 시간 정도 걸렸을 거라고 그런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휴대폰 기지국도 없고 전화선도 없던 시절엔 이런 식으로 위급한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파발은 사람이 말 타고 현장까지 물리적으로 달려가서 문서를 전하는 것이니 정보량은 많지만 속도가 거북이 수준일 수밖에 없다. 길목에는 지친 말을 교체해서 바꿔 타는 곳이 일정 간격으로 갖춰져 있었다.

이런 봉화와 파발은 내륙에서의 통신 수단이다.
교통과 통신의 관계를 생각해 봤을 때, 파발마는 통신을 위한 교통수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선박 같은 업계에는 '교통수단 간의 통신'도 필요하며, 이와 관련된 표준 규격이 오래 전부터 제정되고 쓰여 왔다. 전파를 이용한 통신 기술이 발명되기 전부터 말이다.

철도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한 폐색 구간에 둘 이상의 열차가 절대로 동시에 진입하지 않게 하기 위한 통신· 안전 장비가 도입되었다.
선박이야 조향이 가능하므로 철도 같은 그런 경로상의 제약은 없다. 하지만 걔네들은 인간이 환경을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망망대해를 돌아다닌다! 바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겪을지 알 수 없고 무슨 정체불명의 괴선박 유령선과 마주칠지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철도와는 사정이 다르다.

비행기의 경우, 위급한 상황에서 비상 착륙은 어느 나라에서든 인도적인 차원에서 무조건 허용하게 되어 있다. 굳이 기체의 이상이 아니라 기내에 응급 환자라도 발생하면 아까운 연료를 버리기까지 하면서 착륙하게 된다.
그것처럼 망망대해에서 조난 신호를 보낸 선박이 있으면 신호를 받은 근처의 다른 선박이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달려가서 구해 주도록 국제법이 그렇게 정해져 있다.

이건 의무이기 때문에, 정당한 사유 없이 고의로 그 요청을 외면한 선박은 나중에 처벌 받는다. 어떤 경우건 일단 사람 목숨은 구하고 나서 그 다음에 구조자들이 자기 일을 못 해서 손해 본 비용을 관계자나 보험사를 상대로 청구하든가 말든가 한다.
꼭 조난 말고도.. 거대한 선박들이 나눌 만한 질문· 응답 내지 주변에 전파하는 자기 상태 정보는 패턴이 뻔히 정해져 있다.

  • 본선은 후진 중이다.
  • 본선 주변에 사람이 바다에 빠져 있다, 또는 잠수부가 작업 중이다. 그러니 주의하라.
  • 본선은 지금 통제가 안 되고 있으니 접근하지 말라.
  • 당신 즉시 정지하라.
  • 도와달라, 도선사를 보내 달라 등등..

여객기에는 자신이 테러리스트에게 장악당해 있음을 외부에 알리는 불빛 표식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택시도 지붕의 택시등이 평소와 달리 뻘겋게 번쩍거리는 건 기사가 택시 강도를 만났다거나 위험에 빠졌다는 것을 알리는 표식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상태를 비언어적인 간편한 수단을 동원하여 잘 보이고 잘 들리게 표현하고, 때로는 간단한 임의의 written language까지 전하는 체계가 선박 쪽은 일찍부터 훨씬 더 정교하게 발달했다. 뭔가 수화 같은 느낌이 드는데.. 선박의 항해사 내지 조타수라면 이 규약은 당연히 달달 외워서 골수에 박혀 있어야 할 것이다.

1. 가장 먼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신호기(signal flag)라는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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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깃발들은 무슨 국기가 아니라 A~Z까지 알파벳을 의미한다.
이럴 거면 차라리 그냥 백지에다 커다랗게 알파벳을 그려 넣고 펄럭일 법도 해 보이는데, 누가 왜 언제 무슨 계기로 이런 도안을 따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잘은 모르겠지만 가독성· 시안성 면에서 장점이 있으니까 만든 게 아닐까?

알파벳 26자 말고 숫자와 특수 용도 깃발도 더 있어서 신호기 한 세트는 총 40종류의 깃발로 구성된다. 그리고 모든 신호기 도안은 빨노파+흑백 이렇게 5종류의 색만 써서 그려져 있다. 딱 삼원색+무채색.. 한국어에서 용언이 존재하는 기본색들로만 그려졌다는 뜻이다.
아래의 퇴역 군함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깃발들은 만국기가 아니라 다 신호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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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깃발들은 알파벳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단독 또는 두 종류가 결합되어서 다른 의미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A는 "본선 주변에서 잠수부가 작업 중이니 천천히 통과하라"이고, B는 "위험물 운반/하역 중"이다. 예/아니요는 Y/N이 아니라 C/N이다.

이런 것들이 규약이 다 정해져 있다.
또한, 알파벳을 "에이 비 씨"(영국/미국)나 "아 베 체"(독일) 같은 특정 언어대로 읽는 게 아니라 "알파, 브라보, 찰리, ..." 식으로 더 튀게 읽는다. '델타'(D)처럼 비슷한 그리스 문자의 독음에서 따 온 것도 있지만 모든 글자가 그런 건 물론 아니다. 에코(E)는 국내에서도 2와 E를 구분하기 위해서 쓰인다. 유니코드 코드값 같은 16진수를 다룬다거나 자연상수가 등장할 때 말이다.

한국어만 해도 굳이 2와 e가 아니어도 숫자 '삼'과 '사' 같은 건 헷갈리기 쉽다. 그래서 주유소 같은 데서는 '잉이삽산' 식으로 받침 발음을 왜곡해서 clearify하지 않던가?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알파벳의 발음도 '엠'과 '엔' 같은 건 시끄러운 곳에서 청각적으로 명확한 분간이 어렵다. 거기에다 언어 중립성 같은 문제가 있기도 해서 저런 국제 명칭이 따로 제정된 듯하다.
한자에는 숫자의 변조를 막기 위해서 갖은자라는 게 존재하는데, 글자 언어가 아닌 말소리 언어에서는 발음의 혼동을 막기 위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는 게 흥미롭다.

2. 그리고 다음으로 수기 신호(flag semaphore)가 있다.

이건 동일한 도안인 깃발이 두 개 있고 그걸 사람이 양팔로, 마치 시계의 시침과 분침처럼 각각 어느 각도로 들고 어떻게 흔드느냐에 따라 표현하는 글자가 달라지는 체계이다. 수기용 깃발은 바다에서는 빨강+노랑, 육지에서는 하양+파랑으로 정해져 있지만, 사실 깃발 자체보다는 사람의 팔이 변별 요소 역할을 한다. 깃발은 신호수의 팔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더 분명히 드러내 주는 역할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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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신호는 깃발 두 개만 있으면 되니 전용 신호기보다는 준비물이 단순하다. 하지만 표현 가능한 정보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숫자의 신호와 알파벳의 신호가 동일하다. 그래서 이 신호가 문자인지 숫자인지를 나타내는 수기를 먼저 보여준 뒤 다음 글자가 이어진다.

3. 끝으로, 발광 신호와 모스 부호가 있다.

'신호기'라고 하니까 개인적으로는 무슨 철도 신호기 같은 물건이 떠오른다만.. 저기서 기는 당연히 旗(banner)이지, 機가 아니다. 그리고 신호기건 수기건 다 깜깜한 밤이나 짙은 안개처럼 시야가 제한된 곳에서는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때는 커다란 헤드라이트 같은 조명을 상대방 선박에게 비추고 이걸 주기적으로 깜빡여서 신호를 보낸다. 저런 A~Z, 0~9 같은 숫자를 그 이름도 유명한 모스 부호계로 인코딩 하고, 깜빡이는 시간 간격으로 돈(점)/쓰(선)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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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 부호는 잘 알다시피 전신을 보낼 때 사용되지만, 가까이 있는 선박끼리는 저렇게 눈에 보이는 빛의 형태로도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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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 부호와 점자는 무슨 관계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난 모스 부호는 뭔가 허프만 트라이(trie)처럼 여러 글자들을 쭉 늘어놓아도 모호성이 없는 binary 부호 체계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살펴보니 그렇지 않더라. 글자 경계 구분을 따로 해 줘야 한다. 가령, 돈만 4개 늘어놓으면 H가 되기 때문에 E(1개), I(2개), S(3개)는 사이에 구분자를 넣어 줘야 표현 가능하다.

옛날에 울펜슈타인 3D 게임에서도 어떤 레벨의 BGM에는 '띠디디.. 띠 띠디..' 이렇게 히틀러를 제거하라는 지령의 모스 부호가 비프음 형태로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월남전 때 베트콩에게 포로로 붙잡혔던 어느 미군이 말은 위에서 억지로 시킨 대로 하지만, 눈을 깜빡이는 걸로 torture(놈들이 포로들에게 고문을..)이라는 단어의 모스 부호를 표현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정도면 교묘하게 숨겨진 모스 부호는 추리 소설에서 다잉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고 문제의 해결 단서까지 될 수 있을 것 같다.

재래식 우체통 편지도 간신히 오늘 내일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마당에 전보 서비스가 아직도 있긴 한가 보다. 본인은 지난 2000년, 정보 올림피아드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 교회 어르신에게서 축전을 받았던 게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보라는 걸 접한 경험이었다.
서양에서는 이렇게 유한한 개수의 문자를 어디서나 편리하게 주고받을 수 있게 부호화하는 방법을 연구해 왔는데 동양의 한자라는 문자는 이런 실용성과는 너무 안 어울려 보이는 게 사실이다.

끝으로, 본인이 갑자기 이런 재래식 선박 신호 체계를 찾아 본 이유를 얘기하고 글을 맺고자 한다. 6· 25 개전 초기의 대한해협 해전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 "J.F (너의 국기를 게양하라.)"
  • "N.H.I.J.P.O (너의 국적을 제시하라.)"
  • "I.J.G (언제 어디를 출항하였는가?)"
  • "L.D.O (목적항구가 어디인가?)"
  • "K (정지하라)"
  • "O.L (정지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이런 것들.

관련 이야기들을 찾아보면 그 당시 우리나라 해군이 북괴 선박에게 실시했던 구체적인 검문 절차를 알 수 있다. 그땐 날이 저물어 있었기 때문에 수기 다음으로는 발광 신호로 저 글자들을 전했다고 한다.
그런데 저 알파벳 이니셜들이 의미하는 게 뭔지 궁금해졌다. 저 이니셜들은 대한해협 해전 이야기 말고 다른 어떤 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

현재 사용되는 신호용 알파벳과 의미들은 1969년에 대대적으로 개정되면서 제정된 거라고 한다. 그러니 6· 25 전쟁 당시와는 체계가 다르다.
그럼 옛날 신호 체계는 어떠했는지 검색을 해 보면.. International Code of Signals 1931년판이라는 게 나온다. 하지만 너무 옛날 책이어서 그런지 인터넷 상으로 내용을 열람할 수는 없어 보인다. 천하의 구글도 이 책을 스캔 뜨지는 않았다. 그래서 저 이니셜들이 정말로 그때 국제적으로 통용되었던 신호가 맞는지는 본인은 아직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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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9/02/10 08:33 2019/02/1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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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포 2019/02/11 10:24 # M/D Reply Permalink

    그나마 비행기들은 비교적 근현대에 나와서인지 무선 통신이 필수여서 그런지 영어를 공용어로 정하고 의사소통을 하는 것 같더라구요. 다행(?) 이지요.
    유튜브에 비행기, 관제탑 간의 대화들을 단편적으로 모아서 올리는 채널들이 있는데요, 막상 또 거기서 들어보면 종종 영어를 잘 못해서 관제탑한테 혼나는 기장(대체로 대륙 출신...)들도 있더라구요 ㅋㅋ 국제적 교통이라는게 참 중요하고 민감한 부분이다 보니 저런 교통수단 간의 의사소통 방법까지는 숙지하고 잘 구사하는 수준을 갖췄으면 참 좋겠네요.

    1. 사무엘 2019/02/11 11:17 # M/D Permalink

      네, 그렇죠. 비행기는 인류의 역사와 비교했을 때 굉장히 최근에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워낙 빠르게 이동하기 때문에 비행 중엔 선박처럼 맨눈으로 확인하는 통신 수단이 아무 의미가 없죠. 무선 통신이 필수이겠습니다.
      마치 같은 컴퓨터여도 모바일 개발 환경(언어, 프레임워크)은.. 수십 년(!)에 달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PC에 비해 온갖 지저분한 레거시나 호환성 요소가 없고 굉장히 깔끔한 것과 비슷한 차이점인 것 같습니다.

      관제탑이나 비행기에서 일하는 거.. 참 멋있지요. 같은 영어 단어를 써도 어감이 서로 다르게 전달돼서 오해가 발생하고 그게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 적도 있기 때문에 이런 교신 언어는 닥치고 단순명료해야 할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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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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