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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마 숫자

전세계가 말과 글은 서로 달라도 숫자만은 아라비아 숫자로 사실상 완전히 통일되어 있다. 문자도 아닌 숫자야 무슨 민족 정체성이니 뭐니를 논할 여지 없이, 편리한 것만 냉큼 받아들여서 쓰면 그만이다. 자릿수마다 번거롭게 일일이 새로운 기호를 도입하지 않고 숫자 자체만 쭉 늘어놓는다는 점, 그리고 0을 사용한다는 점이 정말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아라비아 숫자 없이 수학이란 학문이 지금처럼 발전하기란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전에 동양에서 쓰이던 한자 숫자, 그리고 서양에서 쓰이던 로마 숫자는 실용적인 용도로는 완전히 도태했다. 하지만 예스럽고 간지 나고 권위 있어 보인다는 점 덕분에 책에서 제일 큰 단원(챕터)의 번호, 그리고 아날로그 시계의 숫자 같은 용도 정도로는 아직도 쓰이고 있다. 또한 저작권 문구 같은 데서 MCM 어쩌구 하는 것도 19xx하는 연도 숫자이더라. 로마 숫자 자체가 사실상 천 자리까지만 표현 가능하기도 하니까..

로마 숫자와 아라비아 숫자 사이를 상호 변환하는 알고리즘은 꽤 재미있는 코딩 주제이다. 뭔가 100원, 500원, 1000원 등 다양한 화폐로 특정 액수를 표현하는 문제 같기도 하다. 그리고 로마 숫자와 한자 숫자를 비교해 보면 이런 표기법조차 동양과 서양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다는 게 느껴진다.

가령, 동양은 세로쓰기, 서양은 가로쓰기이다. 이 때문인지 1~3도 한자는 가로줄이지만 로마 숫자는 I가 반복되는 세로줄이다. 그리고 동양은 10000 단위로 끊지만 서양은 언어 차원에서 1000 단위가 보편적이다.

2. 숫자: 수량 또는 번호

숫자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기계에서 똑같이 숫자를 입력하는데 계산기와 컴퓨터 키패드는 글쇠배열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789 456 123 순인 반면, 전화기나 도어록의 버튼은 123 456 789의 순이다.

이런 차이는 역사적인 사연 때문에 생기긴 했지만 나름 일리가 있다. 숫자라는 게 사칙연산의 대상인 수량을 표기할 때 쓰이지만, 그런 의미가 전혀 없이 그냥 문자의 연장선으로서 식별 번호를 표기할 때도 쓰이기 때문이다.
789 456 123은 전자용이고 123 456 789는 후자용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전자는 0과 1이 가까이 있는 반면, 후자는 9와 0이 가까이 있다.

컴퓨터는 계산기의 연장선으로서 발명된 기계이다 보니, 키패드의 숫자 배열은 응당 계산기 방식을 따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정반대 방식의 숫자 배열이 혼재해 있으니 좌측· 우측통행만큼이나 사용자에게 혼동을 주는 것 같다.
더구나 컴퓨터도 키보드의 1줄짜리 숫자 배열은 수학 친화적이고 문자 코드의 배당 순서와도 일치하는 012..789가 아니라, 번호 지향적인 123..890이다! 엄밀히 말하면 키보드와 키패드의 배열 원칙이 서로 다른 셈이다.

회계· 경리처럼 다량의 숫자를 취급하는 업종에 종사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전자 숫자보다는 후자 숫자를 취급할 일이 더 많을 것이다.
내 타자연습 연습글 중에도 원주율 소수점을 입력하는 숫자 전용 연습글이 있는데.. 이걸 숫자 전용 패드로 입력한다면 123 방식이 더 익숙할지, 789 방식이 더 자연스러울지 궁금해진다.

요즘은 안 그러는 것 같다만.. 옛날에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외래어를 순명조 같은 별도의 튀는 글꼴로 표기하고, 성경에서도 인명· 지명 고유명사는 고딕 같은 별도의 글꼴로 표기하곤 했다.
그 정도의 관행이라면 숫자도.. 산술 연산 수량용 숫자와 번호용 숫자를 글꼴을 달리하여 구분 표기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번호용 숫자는 숫자계의 고유명사나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의 수 666은 어디에 속하는 걸까? 영어 nuumber는 두 의미가 모두 포함돼 있다.

하긴, 숫자 단독 나열에 대해서는 고유명사라는 관념이 희박하다 보니 과거에 80486 같은 CPU 이름은 상표권을 인정받지 못했으며, 인텔에서는 펜티엄, 코어 같은 별도의 작명을 하게 되기도 했다. 영화 제목인 300이나 1987은 또 어떨까?
고유명사 기능을 하는 숫자는 여느 숫자와 달리, 억· 만 같은 자리수를 일일이 따지지 않고, 한 자리나 두 자리씩(특히 영어) 각 숫자를 끊어서 읽는 경향이 있다.

그 외에..

  • 라틴 알파벳이야 W와 I 같은 글자의 특성 차이로 인해 가변폭 글꼴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런 글꼴도 숫자까지 0과 1의 폭을 달리하는 가변폭으로 만드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적어도 본문용 글꼴이라면 말이다. 숫자도 가변폭인 글꼴은 아주 특이한 장식용 한정인 것 같다.
  • 3579 같은 홀수는 아래로 삐치고, 2468 짝수는 위로 삐치게 만든 글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위 아래로 들쭉날쭉 삐침이 있는 라틴 알파벳 소문자와 그럭저럭 어울리는 참신한(?) 시도인 것 같다. Constantia라는 글꼴은 모든 56789만 저런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3. 수사(數詞): 명사 또는 관형사

숫자 말고 언어의 수사 얘기를 하자면.. 영어는 한 숫자를 읽는 방법이 정말 오로지 원 투 쓰리 등 한 가지밖에 없어서 매우 단순하고 편리하고 직관적이다. 파생형으로는 몇 째를 나타내는 1st, 2nd, 3rd, -nth 바리에이션이 있는 것이 전부이다.
그 반면, 한국어는 숫자를 순우리말과 한자어로 모두 읽을 수 있으며 그 원칙에 일관성이 없다(두 시 삼십오 분). 게다가 순우리말은 모든 숫자에 대한 대응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1~4는 명사일 때(하나, 둘, 셋)와 관형사일 때(한, 두, 세) 형태가 달라지기까지 한다.

어디 그 뿐이랴? 뒤에 붙는 의존명사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서/석/세' 같은 쓸데없는 바리에이션도 있다. 학습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지저분한 난장판이 따로 없다.
저건 '다르다/틀리다' 같은 유의미한 구분도 아니고.. 종이가 세 장이건, 석 장이건 세상이 달라질 게 무엇인가? 구분이 문란해져도 아무 상관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4. 사병

군대에서 장교나 부사관 같은 간부가 아니고, 수가 제일 많고 계급이 제일 낮고, 명령을 내리는 게 아니라 받기만 해서(what) 훈련받은 대로(how) 수행하는 군인을 병(兵)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 글자로만 써 놓으면 질병(病)과 구분이 잘 안 되니, 앞뒤에 다른 글자를 붙여서 사병, 병사, 졸병 등으로 부르는 편이다.

이들에 비해 '병'이 들어가지 않은 '군사'는 좀 옛스러운 말 같다. "군사 정권", "그리스도의 군사" 이런 말밖에 안 떠오른다.
soldier를 가리키는 한자어에서 '사'는 모두 士이다. 장기에서는 兵과 卒이 한 칸씩밖에 못 움직이고 후퇴는 못 하는데, 士는 한 칸씩밖에 못 움직이고 궁궐 안만 돌아다닐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병이건 사건 졸이건 이동 능력은 비슷하게 최하이고 말이다..;;

그런데 '사병' 같은 단어에서 私가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이건 오늘날의 PMC 내지 일부 막장 국가에서 존재하는 군벌, 혹은 과거의 지방 호족, 영주들이 거느리는 싸제 군대에 소속된 병사를 가리킬 때에나 쓰일 법하다. 국가 소속의 정규 상비군과는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의 일치이기라도 한지, 영어로도 이병/일병은 private이다. 그래서 私가 더욱 잘 연상되는 것 같다.
같은 일을 하는 조직이어도(기업, 학교 등..) '사'보다는 '공'이 붙은 게 더 안정적이고 뽀대 나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그래서 영어의 private은 public과 반대로 '사사로운, 사적인'뿐만 아니라 '평민 양민인, 급이 제일 바닥인'이라는 의미가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편으로 common은 '공통의, 공공의'라는 아주 public스러운 뜻이 있는데 거기서 부정적인 뉘앙스가 가미되어 '속된, 품위 없는, 졸렬한'이라는 뜻도 있다. private하고는 방향은 다르게 시작했는데 파생 의미가 비슷한 방식으로 꼬여서 형성된 것 같다.

5. 영어 이니셜

세상엔 영어 이니셜들이 굉장히 많이 쓰이고 있는데...
(1) 먼저, 영어 단어들로 구성되었지만 영어 어순대로 배열되지는 않은 이니셜도 있다. 어째 표준과 관련된 이니셜들이 그런 편인데.. ISO와 UTC가 대표적인 예이다. 영어 어순대로라면 각각 IOS와 CUT가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ISO는 그나마 국제 표준화 기구라는 한국어 어순과 맞는 편이지만, UTC는.. 조금 므흣하다.

(2) 명칭의 이니셜을 구성하는 단어들이 훗날 바뀌었지만, 이니셜을 그대로 유지하고 오히려 새 단어를 이니셜에 맞춰 어거지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영상 매체의 이름인 VHS, DVD처럼 말이다.

(3) 또한, 이니셜이 자음-모음 순으로 어째 읽기 쉽게 배열되어서 그 자체가 연달아 읽는 단어처럼 되어 버리기도 한다. UNICEF, UNESCO 같은 국제 기구 명칭, 그리고 레이저, 레이더 같은 과학 기술 용어가 그 예이다.

6. 기관과 기관장의 명칭

동사무소는 한때 주민센터이다가 행정복지센터라고 더 복잡하게 이름이 바뀌었는데, 여기를 대표하는 최고 수장은 동장 또는 읍장, 면장이다.
시청/군청부터는 건물 뒤에 '청'이 붙기 시작한다. 시를 대표하는 최고 수장은 비교적 직관적인 '시장'이지만, 군의 최고 수장은 군장이 아니라 '군수'이다. 어감상 말을 따로 저렇게 만들었는가 보다.

그리고 도청의 최고 수장은 '장'도 '수'도 붙지 않고 '도지사'이다. 다들 어디서 유래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관성 없고 참 제멋대로라는 생각이 든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이 전국구라면 시 의원과 시장은 지역구 개념인 거겠지? (지방자치)
그럼 국무총리는 뭐고 의전 서열이 어떻게 되는 건지.. 중학교 사회 공부를 다시 해 보게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19/07/12 08:32 2019/07/1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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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재구 소령이라고 1965년 10월경에 월남전 파병을 앞두고 훈련을 하던 중에.. 부하가 안전핀 뽑고 실수로 놓친 수류탄을 자기 몸으로 덮어서 부하들 목숨을 구하고 혼자 장렬히 산화한 육사 출신 군인이 있다.
여기까지는 본인이 이전에 이미 몇 차례 언급한 적이 있으며, 아예 홍천에 있는 기념관을 다녀 온 얘기까지 늘어놨었다.

이분에게는 순직 당시에 겨우 2살밖에 안 된 아들이 있었는데 부인은 졸지에 과부가 됐다. 하지만 이 모자는 잔뜩 매스컴 타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기 때문에 방방곡곡에서 온정이 쏟아졌다.
높으신 분들을 포함해 전국 각지에서 성금과 조의금이 도착했다. 육사의 후배 생도들이 단체로 찾아가서 미망인을 위로했으며, 존경스러운 대선배님이 남긴 유일한 후세이면서 유복자나 마찬가지인 어린 아들(강 병훈 군, 1964-)을 "도리도리 까꿍~" 하면서 놀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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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미망인은 재혼하지 않고 혼자서 외아들을 키웠다.
박 정희 대통령은 그 아이가 나중에 커서 원한다면 육사에 특례로 입학시켜 주라는 정말 파격적인 지시를 내렸다.
뭐, 알고 보니 박통이 스스로 독자적으로 이런 지시를 내린 건 아니고, 어느 시민이 올린 청와대 청원이 받아들여진 것과 비슷하게 일이 성사된 것이었다.

국가 유공자의 자녀에게 병역 의무를 열외시켜 주는 규정은 지금도 우리나라에 있다. 정확히는 상이· 전몰 군경의 아들 한 명에 한해서 신검 등급과 무관하게 공익--사회 복무 요원-- 6개월만으로 병역 의무를 퉁치는 것이다.
하지만 사관학교 특례 입학은 우리나라 역사상 제안되거나 시행된 적이 없었다. 이건 미국에서도 명예 훈장 수훈자의 자녀에게나 주어지는 특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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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들은 다행히 잘 컸다. 특례 입학이 보장된 육사 대신, 자기 실력만으로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들어갔다. 복싱 선수 김 득구의 유복자가 그래도 홀어머니 밑에서 잘 커서 치과 의사가 된 것처럼 말이다.
그는 그냥 평범한 공돌이로 회사 생활을 하다가 스타트업을 차리기도 하고, 나중에는 양재천 일대에 와인 카페를 연 것으로 2000년대까지의 근황이 검색된다. 그 뒤에는 그 가게가 없어졌고 최근 근황을 알 수 없다.

이분은 뭔가 윤 봉길의 아들, 안 중근의 아들과 비슷한 인생을 살았지 싶다. 자기는 아버지를 직접 본 적도 없는데 주변에서는 온통 그 아버지 얘기를 하면서 자기를 예의주시 주목하니까 말이다.
그는 교과서에서 자기 아버지의 일화에 대해 배우고, 자기 아버지의 행적을 재연한 영화를 봤다. 수류탄 사고가 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타이밍에(1966) 아예 "소령 강 재구"라는 영화도 나왔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육사를 수석 입학 내지 졸업한 생도가 인터뷰 때 맨날 얘기하는 클리셰 중 하나가 "강 재구 소령님처럼 남을 위해 살신성인 하는 군인이 되겠습니다"였다.
주변 분위기가 이 정도이니 정작 고인의 아들은 주변 시선이 너무 부담스럽고, 육사에 들어가고 싶다가도 단념했을 법도 해 보인다. 그럼 자기는 뒤이어서 "아버님처럼 남을 위해 살신성인 하는 군인이 되겠습니다"라고 읊고 싶겠는가?

참고로 강 재구 전기 영화는 그 이름도 유명한 "빨간 마후라"(1964)와 비슷한 시기의 영화이다. 저게 공군 버전이면 강 재구는 육군 버전인 셈.
위인을 추모하고 기림과 동시에 육사에 대해서 완전 간지 나게 홍보하고 한창 진행 중이던 월남전 파병에 대해서도 홍보하는 프로파간다도 가미되었다.

제작 명분이 아주 훌륭하니 이런 영화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제작 지원을 두둑히 해 줬다. 그래서 "소령 강 재구"는 1960년대의 국내 여건에서 무려 올컬러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아직 대한뉴스조차도 흑백이던 시절에 말이다.
지리덕· 역덕이라면 서울과 인천 사이에 전철이고 경인 고속도로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그냥 시외버스로 오가고, 주변은 온통 비포장길 민둥산 황무지이던... 당시 국내 모습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어서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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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부하 병사의 군기를 주입하기 위해서 고참 병사도 아니고 소대장(강 재구)이 직접 빠따를 때리는 장면이라든가,
생도 남친의 직각식사 동작을 보고는(강 재구 말고 다른 조연) 여친이 "니 어디 아프나? 똑똑하던 애가 왜 저리 됐노? ㅠㅠ"라고...;;
마치 국제시장에서 막순이가 영어를 구사하며 이산가족 TV에 출연하자 시청자들이 진심으로 안쓰러워한 것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게 영화의 깨알같은 재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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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을 안 그래도 너무 바람직한 모범 FM 생도 겸 군인으로 묘사했는데, 대사도 성우가 따로 과장을 잔뜩 넣은 후시녹음이다 보니 말투가 정말 오글거린다. ㅡ,.ㅡ;;

"기상 동작 다시~!"
"아직도 고등학교 때의 느릿느릿한 동작을 가시지 못하고 있지? 이래 가지고 장교가 되겠다는 거냐? 부대 차렷! 우향 우! 앞으로~~갓! 뛰어~~갓!! (...) 왕성한 군인 정신과 원기가 생길 때까지 계속 연병장을 돈다. 알겠나!"
"육사는 직선과 직각으로 조화된 국군의 요람이다. 목표를 향해서 직각보행이다. 앞으로 갓~!!"
"몽둥이로 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개나 소에게 하는 짓이다. 그 말의 뜻을 새기면서 해라."


그에 반해 풀 메탈 자켓에서는 교관이 병사들에게 군기를 주입하기 위해서 욕쟁이 할머니 뺨치는 온갖 마초스러운 막말 쌍욕 섹드립 패드립으로 오바하며 기선 제압을 한다. 특히 훈련병들 이름을 즉석에서 제멋대로 바꿔서 불러 주는 게 압권이다.

강 재구 영화와 참 비교된다.;;; ㅋㅋ 한국과 미국이라는 차이, 그리고 사관학교와 해병대 병영이라는 차이도 있지만.. 군대에서 상급자가 어떤 성향이냐에 따라서 분위기가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요즘 실제 군대의 모습은 이 두 영화의 평균에 가까우려나? ㅡ,.ㅡ;;

사실, 국군 역사상 남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군인이 저분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아주 비슷한 시기에(1966년 2월!) 낙하산 강하 훈련을 하던 중에 다른 동료/후임 낙하산을 바로잡아 주고는 자기는 추락사한 이 원등 상사도 있고,

1971년 1월에는 전 명세라고 육군 항공대 출신의 조종사가 월북을 시도하는 여객기 테러리스트를 제압한 후, 놈이 기폭시킨 사제폭탄을 강 재구 소령이 한 것처럼 직접 껴안아서 승객들 목숨을 구하고 산화했었다.
강 재구의 경우는 일단 시기적으로 처음이고(1965년..), 육사 출신 장교이기도 해서 빽이 든든하니 군인 정신의 귀감으로 정말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기린다고 봐도 되겠다.

그럼, 끝으로 이와 관련된 내 직업병 얘기를 좀 늘어놓고 글을 맺겠다.

"강 병훈 군이 훗날 육사 입교를 지원한다면 우선적으로 입교할 수 있도록 조치하시기 바랍니다."


라는 공문을 보니 느낌이 짠하다. 이것도 그 특유의 글자체를 보니 공 병우 세벌식 타자기로 작성되었다. 1965년이면 아직 졸속 네벌식 표준이 제정되기 전이기도 하니까... 글자 모양이 약간 엉성하긴 해도 세벌식이 타자 속도와 편의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물건이었다.

유럽 같은 알파벳 문화권이 아닌 듣보잡 전쟁 폐허 거지 나라에 고유한 자국 문자가 존재하는 걸로도 모자라서 그걸 찍는 기계식 타자기까지 이미 만들어져 있다니!
휴전 협정 문서를 만들 때부터 미국을 포함한 유엔군 측은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는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미 만들어진 것을 활용도 제대로 못 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공 병우 박사는 약 빤 급의 괴수 천재였다. 그것도 본업도 안과 의사 할 거 다 하면서 저 쪽 오덕질도 그만치 했으니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5/02 08:38 2019/05/02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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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옛날 언어의 간결함

예전에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세상에 생명의 기원보다도 더 알 수 없는 게 바로 언어의 기원이다.
먼 옛날, 최초의 언어가 어떠했는지는 문헌 기록도 음성 녹음도 없고, 아예 문자조차 없으니 제대로 알 길이 없다. 이런 게 저절로 우연히 생겨날 수는 없다고 믿어 버리면 증명도 반증도 할 수 없고 그냥 개인 신념의 영역이 된다.

언어별로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대체로 고대 언어는 현대의 언어보다 문법이 더 복잡하고 불규칙도 더 많고, 사용되는 음운도 더 다양했으리라고 추측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반대로 옛날 언어가 어휘나 표현이 더 간결한 것도 있었다.

(1) 예를 들어.. 영어 고어에는 before보다 더 짧은 ere(air, heir와 같은 '에어')가 있고.. enemy보다 더 짧은 foe가 있다. 그리고 뻔한 문맥에서 목적어 같은 걸 생략도 많이 했다. 아래의 KJV 구절을 살펴보자.

  • Abimelech king of Gerar sent, and took Sarah. (창 20:2)
  • Bring these men home, and slay, and make ready. (창 43:16)

'사람을 보내어'인데 그냥 sent를 자동사인 듯이 썼으며
'가축을 잡아서'인데 그냥 slay 한 단어로만 씨크하게 표현했다.

(2) 그런데 영어 이전의 성경의 언어였던 히브리어· 그리스어 레벨에서는 이런 자비심 없는 축약이 더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KJV 영어 본문에서 이탤릭체 처리된 단어들을 찾아보면.. 없으면 단순히 문법적으로만 어색하거나, 아까 사람 내지 가축처럼 어렴풋이 유추 가능한 정도를 넘어서 뜻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들도 있다.

시 12:5 끝부분의 "I will set [him] in safety [from him that] puffeth at him."에서 []로 둘러싸인 부분이 전부 이탤릭이다. 도대체 히브리어 원어 원문은 얼마나 암호처럼 짧게 기록됐길래 영어에서 저런 목적어와 수식어를 창작해서 집어넣어 줘야 했는지가 궁금해진다. (물론 KJV 외의 타 성경들도 동일하게 저렇게 번역했음)

(3) KJV는 they라는 짤막한 단어를 3인칭 복수 대명사로도 쓰고, people 같은 '일반적인 사람' 용도로도 쓴다. 이것 자체는 현대 영어에서도 존재하는 관행이지만, KJV는 중의성· 모호성이 느껴지기도 할 정도로 they를 즐겨 쓰는 감이 있다.
왕하 19:35를 보면.. "they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they는 모두 죽은 송장이 되어 있었더라"처럼.. 서로 다른 대상에 대해서도 똑같은 they가 쓰인다.

출 20:13 "살인하지 말라"도 타 성경들은 murder 정도를 넣었지만 KJV만은 그냥 짧은 kill이다.

(4) 영어를 비롯한 성경 언어 쪽 얘기가 길어졌는데, 반대편의 한국어도 마찬가지이다. 훈민정음 서문이라든가 이 윤탁 한글 영비 같은 걸 보면.. "영한 비라. 거운 사람은 재화를 입으리라" 말이 굉장히 짧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요즘 같으면 못해도 "이것은 신령한 비입니다. 이 비를 무너뜨리는 사람은 재앙을 당할 것입니다" 정도로는 풀어서 쓸 텐데? 띄어쓰기가 없는 고어체를 감안하더라도 주어 생략에다 '거우다?'라는 짤막한 단어.. 뭔가 현대 한국어의 화자는 알지 못하는 옛 한국어의 면모인 것 같다.

2. 의존명사

한국어에는 의존명사라는 게 있다. '리', '수' 같은 건 분명 고유한 뜻과 뉘앙스가 있긴 한데, 그게 구체적으로 뭔지를 설명해 보라고 하면 난감하다. 얘들은 '-ㄹ' 꼴로 활용된 용언으로부터 수식을 받은 바로 다음에만 등장하며(그럴 리, 할 수..), 특히 '리' 다음에는 '없다'만 쓰인다.

어처구니, 어이 같은 단어는 그런 통상적인 의존명사에 속하지는 않지만.. 뒤에 붙는 용언이 답정너 너무 뻔하고 다른 형태로 쓰이는 일이 없다시피하다. 그래서 '어이없다, 어처구니없다'가 그냥 한 단어로 인정될 지경이다. '쓸데없다'처럼 말이다.

한국어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너무 어렵고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원성이 자자하지만.. 한국어가 단어와 형태소의 경계를 구분하는 게 그만치 어렵다. 이것 때문에 사전 편찬자와 국어 문법학자들도 고충이 많다. 용언에 극도로 제한된 뻔한 형태로만 활용되는 불완전동사가 있는 것만큼이나(더불다, 가로다, 달다) 체언에는 아주 제한된 형태로만 쓰이는 의존명사 같은 물건이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제한된 형태, 관용구 형태로만 쓰이는 명사가 영어에도 있는 것 같다. 유익· 편의라는 뜻인 sake 내지 behalf 같은 단어 말이다. 얘들은 오로지 one's sake, ?n behalf of .., for the sake of 형태로만 쓰이고 단독 내지 다른 형태로 쓰이는 일이 없다. 이것 말고 다른 예도 있지 싶다.

3. 일관성을 찾을 수 없는 혼돈의 카오스

(1) 외래어 표기법의 노답 문제

  • 자음 음절 경계: 플룻 플루트 로보트 백 태그..;; 답이 없다. ㅡ는 음가가 참 불분명한 모음이다.
  • 장모음: 윈도우 보우 리모트 보트 스노우.. [ou]라는 영어 장모음은 u를 무시하고 '오'로만 표기하는 게 원칙이지만 snow나 window 같은 단어는 여전히 '우'까지 표기한 형태가 더 익숙하다.
  • 모음 경계: washer는 와셔일까, 워셔일까? ㅏ~ㅓ, ㅗ~ㅓ 경계가 의외로 헷갈린다.

(2) 한글 맞춤법 및 발음에서 노답 문제

  • 사잇소리와 사이시옷: 비빔밥/볶음밥 중에서 왜 전자만 밥이 '빱'으로 바뀔까? 물고기/불고기 중에서 왜 전자만 '꼬' 소리가 날까? '김밥'의 발음은 밥과 빱 중에 무엇이 더 바람직할까?
  • 띄어쓰기: 한자어 복합명사들의 띄어쓰기부터가 아주 모호하다. 또한, 순우리말 중에도 '잘 만 듯 못' 요런 어절들은 단어도 되고 접사도 되기 때문에, 뒤에 '+하다' 같은 게 이어질 때 띄어쓰기 여부가 아주 구리다.

4. ㅐ와 ㅔ의 발음

이건 한국어 음운 체계에 남아 있는 희대의 미스터리이다.
원래 '아 다르고 어 다르다'만큼이나, I와 you를 구분할 정도로 완전히 다른 소리였는데 어쩌다가 요즘 사람들이 절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소리의 쌍으로 전락했나 모르겠다. 서로 다르게 발음도 못 하고, 알아듣지도 못한다. 장음· 단음 구분이 망가진 것처럼 말이다.

요즘 통용되는 그 소리는 원래의 ㅐ도, ㅔ도 아닌 중간의 소리라고들 한다. 그런데 그 소리가 영어나 일본어에서도 쓰이는 보편적인(?) 소리인 건지도 모르겠다.
ㅐ/ㅔ뿐만 아니라 ㅒ와 ㅖ의 구분도 완전히 사라졌으며, ㅙ/ㅞ/ㅚ도 서로 변별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덕분에 재련과 제련, 결재와 결제, 제제와 제재 같은 한자어의 표기도 굉장히 헷갈리게 되었다.

한글이 처음 창제되던 당시에는 저 모음들이 어떻게 구분되어 발음되었는지.. 몇백 년 전 사람을 만나서 물어 보고 싶기라도 한 심정이다.

5. 사라져 가는 순우리말

까닭(이유), 달걀(계란), 뭍(육지, 땅) 같은 순우리말 단어는 한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방송과 도서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 단어였는데 갈수록 용례가 줄어들고 있는 게 보인다. 특히 '뭍'의 경우, 옛날에 전래동화 책에서 봤던 기억이 남아 있기도 하지만 이제는 사전에서나 찾을 수 있는 단어로 전락했다.

이런 식으로 '미덥다, 미쁘다, 미련하다' 같은 단어도 사라지는 것 같다. 어째 다 '미'짜로 시작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콩팥은 신장에 밀려서, 허파도 폐에 밀려서 앞날을 장담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금 세대는 알아듣기라도 하지만 다음 세대 애들한테는 완전히 듣보잡이 되겠지?

Posted by 사무엘

2019/04/03 08:35 2019/04/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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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세카이 2019/04/13 21:16 # M/D Reply Permalink

    맞춤법 같은 경우는 어느 정도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판단됩니다
    언어생활에서 문자의 경우 쓸데없이 맞춤법이 복잡해서는 되고
    일관성과 규칙성이 있어야 할 텐데
    이런 거 있잖아요 본동사 뒤에 보조동사에서
    아 어 다음은 띄어쓰는 게 원칙이지만 붙여쓰는 것도 허용한다
    허용할 거면 아예 다 붙여쓰자고 하든지 아니면 허용하지 말든지

    또 대부분 사람들이 맞춤법을 잘 지키지 않드라고요
    모두가 지킬 수 없는 신호등이 있다면 모두가 그 신호등에 맞추는 게 아니라
    그 신호등을 대부분이 맞출 수 있게 바꾸는 게 맞겠죠

    일본어는 띄어쓰기가 아예 없고 로마자를 쓰는 나라는 대부분 단어 별로 띄어쓰죠

    언어에서 중요한 것은 청각적 분별력인데 이것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꼭 순우리말이 아니여도 상관없다고 판단됩니다
    이미 한국어는 한자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아닌 경우도 많지만 한자를 알면
    단어를 이해하기에 도움이 되는 것도 일부분 사실이긴 합니다
    그렇다고 한자를 같이 표기하자는 것은 엇나간 것이고
    스마트폰으로 디지털화 된 시대에 바람직하지 않겠죠

    그리고 언어는 그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관이 스며들어 있는데
    한국어에서 '우리'라는 단어를 영어에서 '나'가 들어갈 자리에 많이 쓰느데
    이것은 한국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정립하지 않고
    자신이 속한 집단에 투영하는 것을 나타내는 듯 합니다
    저는 우리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내 집 내 회사 내 팀 이라고 말하죠
    또 다르다 와 틀리다를 구분하지 않는 것은
    나와 다른 의견을 틀린 의견으로 간주하는
    남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집단주의적 사고가 들어 있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쓸데없이 높임법이 발달된 것도
    존중의 의미보다는 남과 나를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서열을 매기는 성리학적 세계관이 들어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영어권처럼 그냥 이름을 부르던지 상대를 you라고 편하게 부르는 게
    저 개인적으로는 더 좋습니다

    저는 제 직장 상사나 사장도 제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거래 관계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언어라는 것이 혼자서만 좋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사회의 변화에 맞게 언어도 변하고
    개인은 그 흐름에 맞춰야겠죠

    1. 사무엘 2019/04/14 00:18 # M/D Permalink

      여러 좋은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청각적 변별이 중요하니, 괜히 잘 쓰이고 있는 외래어들을 어설프게 순화할 게 아니라 장(chapter) 같은 동음이의어가 너무 많은 단음절 한자어나 대체 용어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어에서 상용 한자의 한계를 정했듯이.. 우리말 한자어들도 한글로만 표기했을 때 의미 파악에 지장이 없는 것의 한계를 정하고 나머지 듣보잡들은 실생활에서는 쓰지 말거나 순화해서 쓰는 식으로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나-우리', '다르다-틀리다'에 대한 생각에도 동의하구요,
      쓸데없는 높임법 대신 아무나 이름과 you로 부를 수 있는 언어가 더 합리적이고 편하다는 것 역시 공감합니다.
      하지만 당장 모국어와 문자가 이런 식으로 형성돼 버렸고 언어의 사회성이라는 걸 개인이 하루아침에 뜯어고칠 수 있는 게 아니니..;; 비합리적이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이 먼저 형성돼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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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텐실 폰트

* 굉장히 오랜만에 폰트 분야에 글을 하나 추가하게 됐다.

지금은 실생활에서 좀 보기가 힘들다만.. 30대 이상의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 중에는 요런 투박한 모양의 글자 내지 숫자를 각종 표지판이나 벽면, 차량의 외부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양각· 음각 형태로 새겨지거나 오려 붙여진 게 아니라, 물감· 페인트로 칠해진 형태로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글꼴의 컨셉은 글자가 가독성을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획의 일부가 규칙적으로 끊어지고 단절돼 있다는 것이다. 특히 O 대신 ()이고, ㅁ 대신 [] 모양이다.

미술· 디자인 쪽으로 조예가 있는 분이라면 이미 다 눈치 채고 아시겠지만, 이건 '스텐실'이라고 불리는 인쇄 내지 칠하기 기법에 맞춰진 글꼴이다.
투명한 필름지 같은 것에다가 도안을 그려서 선이나 면을 잘라내고, 그걸 종이 위에다 올린다. 그 뒤 필름에다가 칠을 하면 필름이 없어서 종이가 노출된 영역에만 색이 칠해진다. 이 필름지를 이용하면 동일한 그림도 여러 번 쉽게 찍어낼 수 있다.

판화와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판화는 개념적으로 도장과 비슷하며, 찍는 과정에서 좌우가 바뀐다. 하지만 스텐실은 칠하는 방식이 다르니 그런 mirroring이 발생하지 않는다. 판화와 달리 칠을 더 다채롭고 다이나믹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스텐실은 판화에는 해당사항이 없는 한계도 존재하는데, 내부의 구멍을 구조적으로 표현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부의 구멍이 존재하는 글자는 부득이하게 획의 일부를 끊어서 구멍 내부도 외부와 연결되게 해야 한다.

기왕 획의 일부를 끊었으니 이걸 일관된 개성과 컨셉으로 삼아서 스텐실용 글꼴을 만들어 보자는 발상은 서체 디자이너들이 누구나 할 수 있었던 생각이다.
저 영문 Stencil 글꼴에서 보듯, 획 굵기의 기복이 있는 세리프 계열 글꼴이 단절감이 덜하고 좀 더 어울린다. 어차피 획이 최대한 가늘어지는 곳에다가 단절을 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세리프 계열에도 스텐실 글꼴이 얼마든지 존재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디지털 글꼴이 없던 옛날에 이런 글자들은 스텐실 기법으로 만들어지고 복제된 도안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버스의 경우, 동일한 노선을 달리는 버스가 수십 대 이상 있었을 테니 이렇게 행선지를 인쇄하는 게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옛날에 군부대 근처에 있던 "접근금지", "위험" 표지판도 다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지금이야 옛날 같은 투박함과 엉성함은 사라지고 스텐실 컨셉을 일부러 흉내 낸 깔끔한 글꼴을 골라 쓰는 시대가 됐지만 말이다.

일반적인 책과 문서에서는 Times 같은 평범한 본문용 서체를 쓰는 반면,

  • 타자기나 코딩용으로는 딱딱한 불변폭 서체를 쓰고,
  • 기계가 인식하기 편하라고 타자기와 비슷하면서 획을 간소화시킨 그 특유의 OCR용 서체도 만들고,
  • 멋을 내기 위해서는 기울이고 날리고 최대한 한붓그리기를 추구한 필기용 서체를 쓰고,
  • 열악한 디지털 기계에서는 8픽셀도 채 안 되는 높이 내지 7-segment 같은 극도로 단순한 형태로 문자 외형을 간소화도 하고,
  • 스텐실용으로는 이렇게 구멍이 없는 서체를 쓰는 등..
문자를 용도에 따라 다채롭게 활용 가능하게 하는 것이 타이포그래피의 묘미임이 틀림없다.

그나저나 오늘날 같은 디지털 인쇄와 복사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 등사처럼 아날로그 판화· 인쇄술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의문과 관심이 문득 생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3/26 08:36 2019/03/2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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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대화 수단

한국어는 체언보다 용언을 좋아하는 언어이고, 수식도 형용사보다 부사 위주로 하는 걸 좋아하는 언어이다. 어색한 번역투라는 건 대체로 영어의 문장 구조를 따라 체언의 주변에다 자꾸 무리해서 수식어를 붙이다 보니 생긴다.
간단한 예로 "많은 사람이 있다" vs "사람이 많이 있다"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된다. 더구나 한국어에 more, no 같은 단어는 부사(더)나 형용사(없다)로만 있지, 영어와 대등한 관형사 같은 품사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어가 얼마나 동사를 좋아하면.. '모르다'조차도 동사 한 단어로 딱 존재한다. 이게 보통일이 아니다. '모르다'와 동일한 의미의 타동사가 존재하는 언어는 내가 아는 언어 중에는 모국어인 한국어가 유일하다.

영어(do not know)· 독일어(kennen nicht)· 중국어(不知)는 물론이요, 한국어와 그나마 구조적으로 비슷하다는 일본어도 '知らない'(알지 않는다)로 우회해서 표현하고.. 그렇지 않은가? 동사 한 단어로 존재하는 게 편할 때도 물론 있다. "난 그런 거 몰라요~ 난 모른다! / 전쟁을 모르는 세대"처럼..
'모르다'는 '없다, 아니다'와 더불어 '너무, 전혀' 같은 부정 담당 부사가 직통으로 붙을 수 있는 소수의 용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렇듯, 한국어는 부사와 서술어를 좋아하는 언어여서 그런지 체언인 명사의 쓰임이 까다롭지 않고 아주 단순하다. 그냥 그 명칭 자체만 들었으면 장땡이지 그게 단수냐 복수냐, 아무 물건이냐 그 특정 물건이냐(부정관사 정관사) 같은 건 별로 엄밀하게 따지지 않는다.
이건 존재에 대한 인지 방식 자체가 한국어 사고방식과 영어 같은 서양 언어의 사고방식은 서로 매우 다르다는 걸 시사한다. 솔직히 어떤 개체의 개수가 0(없음)이냐 1(유니크)이냐 다수(* 양산형)냐 하는 것은 차이가 꽤 크긴 하다.

영어를 기준으로 고유명사는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쓰기도 하니, 이건 외국어 학습자의 입장에서는 생소한 단어이더라도 딱히 번역을 할 필요 없고 음역만 하면 된다는 게 시각적으로 보장된다. 무척 편리하다.

다만, 표기를 넘어 언어 차원에서 명사의 종류를 매번 꼬박꼬박 구분해하는 게 다 좋기만 한 건 아니다. 그게 더 복잡하고 피곤하고 헷갈리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어떤 명사가 일반-보통명사냐 고유명사냐 하는 기준은 굉장히 주관적이며, 우리 생각만치 절대불변으로 딱딱 떨어지지 않는다.

고유명사라도 너무 흔해지고 의미가 확장되면 보통명사로 바뀌기도 한다.  영어도 특이한 문맥에서는 고유명사 앞에서 부정관사(!!)를 잘만 붙여 쓰고 심지어 복수형도 만든다.
가령, 자동차 이름인 쏘나타, 그랜저, 아반떼 같은 것은 명백히 첫 글자를 대문자로 적는 고유명사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차가 아니며, 같은 종류의 차가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그랜저 네 대, 쏘나타 다섯 대"랑 "사과 네 개, 귤 다섯 개"에서 각 명칭들이 서로 완전히 다르게 취급되어야 할 이유는 별로 없을 것이다.

아울러, 한국어는 명사에 성 구분도 없다. 유럽 언어에 존재하는 성 구분은 동양 철학의 전유물이라 여겨지는 음양설의 서양 버전이 아닌가 싶다. 국가나 선박을 she로 가리키는 거, 혹은 성경에서 지혜까지 she로 가리키는 것은 동양권 언어의 화자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고 곧이곧대로 번역하기도 난감해 보인다.

그 대신 한국어가 상당히 꼼꼼하게 구분하는 건 사람이냐 물건이냐, 혹은 생물이냐 무생물이냐 하는 것이다. 솔직히 한국인은 마우스라는 컴퓨터 장치를 발명했어도 거기에다가 생쥐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었을 것이며, 크레인이라는 기계를 발명했어도 거기에다가 학이나 두루미라는 이름을 선뜻 붙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예로, 영어의 명사화 접미사 -er, -or는 그 동작을 담당하는 사람이나 물건, 추상명사를 아무 구분 없이 모두 가리킬 수 있는 굉장히 요긴한 형태소이다. speaker는 기계 스피커도 되고 연설자도 되며, printer는 기계 프린터도 되고 옛날 인쇄공도 된다.

하지만 이는 한국어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사고방식이다. 한국어에서는 물건일 때는 -개, -기 등으로, 사람일 때는 -꾼, -장이/쟁이, -자, -사 따위로 꼭 구분해서 번역돼야 한다. 포괄적인 대명사 one의 번역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인해 좀 난감해진다.
이게 불편해서 그런지 저 영어 접미사가 인터넷 통신체 위주로 국어에 이미 많이 유입된 것도 현실이다. 악플러, 갤러, 불편러 등~

둠 코믹스에서 "아 전기톱! 훌륭한 대화수단이지!"가 원문으로 the great communicator인데.. 이게 원전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별칭이었다고 한다. '위대한 소통가'라고.. 이건 정치인으로서 정말 영광스러운 타이틀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커뮤니케이터'가 사람도 가리키고 물건 도구도 가리킬 수 있으니 저런 패러디가 가능하다.

Allow me to communicate to you my desire to have your guns!
너희 총을 원한다는 갈망을 담소 나누고 싶구나!
C'mere boys, I got somethin' to say!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저 만화에서 둠가이는 말 대신 주먹... 아니, 말 대신 전기톱으로 좀비맨들을 썰어 버리는 게 담소이고 의사소통이다. ㅡ,.ㅡ;; 뭐, 현실에서도 좋은 말이 안 통하고 꼭 폭력을 동원하고 힘으로 찍어눌러야 말귀 알아듣고 버로우 타는 부류들도 없지는 않다.

국민이나 의회와 그렇게도 소통을 잘 했다던 레이건 대통령도 공산주의자 같은 악의 무리와는 일체의 대화도, 타협도 없었다.
그는 굉장히 독실 신실한 크리스천이었고 사상 건전하고 성경관 쪽으로도 당장 기억은 안 나지만 명언을 남겼던 사람이다.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때는 소련을 맹비난하면서 악의 제국 드립까지 구사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든다.

좌파들은 그걸 '포용정책'이라고 부르더군요.
우리가 적을 적대시하지 않기만 하면, 그 잔인한 독재자가 반인륜적 범죄를 멈추고 평화를 사랑할 거라고 말입니다.
그들을 반대하는 사람은 다 전쟁광이고 말이죠.
... 전쟁만은 피하기 위해 우리의 자유를 팔아넘기는 것은 전체주의의 내리막길로 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적에 대한 순진한 포용 정책이나 대책 없이 희망적인 사고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배신하는 짓이고, 우리의 자유를 탕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폭탄이 무섭다고 우리의 안전과 자유를 팔아넘기는 비윤리적인 짓을 저지를 순 없습니다.
그건 공산국가의 철의 장막 뒤에서 노예 생활을 하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에게 "자유에 대한 희망을 버리세요. 우린 우리가 무사하기 위해서라면 당신들의 지배자와도 타협할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험보다 치욕을 택하는 나라는 지배당하기 딱 좋은 마음 상태이며, 지배 당해야 마땅하다"


1964년 10월 27일, 월남전이 진행 중이고 일본에서는 신칸센이 갓 개통했던 시절에 했던 A time for choosing이라는 연설에다가 1982년 6월 8일자 대국민 담화가 섞여 있긴 한데.. 완전 아멘 사이다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청와대에 서식하고 있는 누가 보기에는 완전 자기 저격이고, 엄청 거슬리고 불편한 내용이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9/02/05 08:33 2019/02/0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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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모이

1. 말모이

독자 여러분은 '말모이'라는 단어를 혹시 들어 보셨는가?
이건 word + collection을 직역한 합성어로, 구한말-일제 시대 급의 과거에 일부 국어학자들이 사전(dictionary)을 순우리말로 옮겨서 표현했던 단어이다.

코퍼스를 뜻하는 '말뭉치'도 어쩌면 ‘말모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연세대인지 고려대인지 어디 교수가 처음으로 만들어 쓰기 시작한 용어이다. 그 최초 제안자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건 물론 현대에 만들어졌으며 오늘날까지도 업계에서 활발히 쓰이는 용어이다.

다만, 명사로만 이뤄진 합성어인 말뭉치와 달리, 말모이에서 '모이'는 '먹다'(eat)로부터 '먹이'(food)를 만들듯이 '모으다'의 어간에다가 명사화 접미사 '-이'를 붙인 파생어이다.
결합 과정에서 모음 음운이 하나 탈락하긴 했지만(모으다 ≠ 모다) 그건 별로 어색하지 않으며, 저건 ‘해돋이’, ‘한살이’만큼이나 아무 문제 없는 조어이다. 하지만 어감이 이상하다고 까는 사람도 있다. horse + food (for birds to peck up)가 떠오른다고 말이다. =_=;;

뭐, 그건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동음이의어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옛날에는 ‘시발’이라는 자동차도 있었다. 어감이라는 걸 판단하는 기준이 옛날과 지금이 서로 같지 않다는 걸 감안해야 할 것이다.

2. 동명의 최근 영화

세월이 흘러서 조선어 학회가 영화의 소재로 등장하고 ‘말모이’라는 단어가 영화 제목이 되는 날이 왔다. 그놈의 좌편향 반일 프레임이 지긋지긋하다고 싫어하는 분들의 심정을 본인 역시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나, 언어와 신앙 분야(과거에 일사각오..)는 내가 특별 관리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요런 영화는 찾아서.. ‘혼영’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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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얘는 여느 전쟁 영화 같은 본격적인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일제 말기에 저런 단체가 있어서 국어사전을 만들려고 했고, 그러다가 왜놈들에게 잡혀서 회원들이 고초를 겪었다. 원고를 빼앗기기까지 했지만 다행히 해방 후에 서울역 창고에서 되찾았고, 사전은 마침내 성공적으로 출간돼 나왔다.”
라는 기본 배경만이 팩트이다. 아, 그 당시에 저기서 ‘한글’이라는 제목의 기관지를 발간했다는 것도 추가적인 팩트이고..

허나, 그것 이후로 세부적인 주인공, 조선어 학회 구성원, 중간에 일어난 사건 등등등은 순도 99%에 가까운 허구 창작이라는 점을 감안하도록 하자. 세상에, 조선어 학회의 대표가 친일파로 변절한 중학교 이사장의 아들 부잣집 도련님이라니, 완전 충격이다. ㅡ,.ㅡ;; ㅠ_ㅠ

더구나 영화에는 어설픈 첩보전까지 나온다. 조선어 학회가 일제의 어용 학술단체로 변절한 듯이 간판을 바꿔 달고, 조선총독부가 허가해 준 합법 집회에서는 대표가 일제 부역 독려 연설까지 하며 페이크를 친다. 그 뒤 그들은 야밤에 극장에서 진짜 동지들을 몰래 모아서 지방 방언을 수집한다.;;; 작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그런 건 그냥 드라마틱한 효과를 내려고 일부러 만든 설정이다. 이 영화의 등장 인물 중에는 조선어 학회 대표는 물론이고 일반 회원 중에서도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딴 인물이 없다. 그러니 <말모이>는 어찌 보면 과거의 <밀정>이나 <암살> 같은 부류보다도 현실성이 더 떨어진다.

3. 실제 조선어 학회의 대표

그 당시에 조선어 학회 ‘대표’의 직함명은 ‘간사장(간사+장)’이었다. 193, 40년대에 조선어 학회의 간사장을 역임한 핵심 간부로는 이 극로, 신 명균 같은 사람이 있다.
이 극로는 이 미륵(압록강은 흐른다)처럼 그 시절에 극소수이던 독일 유학 박사이고, 독일의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걸출한 학자로서 조선어 학회에서는 최 현배보다도 중요도가 더 높은 인물이었다.

이 사람이 남긴 매우 긍정적인 행적이 하나 전해진다. 근무 중에 눈병을 앓아서 근처 병원을 찾아갔는데(1938년경) 거기가 바로 개업한 지 얼마 안 됐던 공안과였다. 그는 거기서 자기를 치료해 준 원장 선생에게 대뜸 한글뽕(?)을 주입시켰다. 그리고 그 의사양반은 거기서 큰 감화를 받은 나머지, 훗날 세벌식 한글 타자기를 발명하게 되었다!
뭐, 말모이 같은 영화에는 들어갈 만한 문맥이 없었겠지만, 이런 일화가 영화 같은 매체에서 소개될 기회가 없는 건 아쉬운 점이다.

다만, 이 극로는 해방 후에는 월북을 하는 바람에 남한에서 존재감이 묻혀 버렸다. (사후에 평양 애국렬사릉에 안장됨) 오죽했으면 해방 후에 조선어 학회가 한글 학회로 이름을 바꾼 이유(1949) 중 하나도.. 대표의 월북으로 인한 빨갱이 누명을 조금이라도 벗기 위해서였다.

다음으로 신 명균은 나도 대학 시절 내내 전혀 몰랐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인물인데.. 1941년쯤에 일제의 한국어 탄압과 민족 말살 정책에 항의하여 ‘자결’을 해 버렸다. 그러니, 조선어 학회 사건에 연루되지도 않았고 투옥 기록도 없고.. 존재도 한참 뒤에야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이런 분들과 달리, 해방 이후 남한에서 그럭저럭 오래 살았던 최 현배 선생은 조선어 학회 간사이긴 했지만 간사장까지 맡은 적은 없었다.

4. 조선어 학회 사건이 발생한 진짜 이유

사실, 조선어 학회는 조선어 국어사전 편찬과 출간 자체는 조선총독부로부터 1940년에 허가를 받았다. 총칼 무장 독립 운동이 아닌 학술 활동일 뿐인데, 일제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탄압할 정도로 야박하지는 않았다.
뭐 그래도, 국어사전의 편찬에 관심을 가질 정도의 인물이라면 항일 성향도 강하다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으니, 놈들이 예의주시하고 감시를 하긴 했다.

그런데 갑자기 조선어 학회가 1942년에 뒤늦게 조선 시대 사화를 당하듯이 화를 입은 이유는.. 잘 알다시피 여학생 일기장 사건 때문이다. “국어(=일본어)를 사용하는 학생을 선생이 혼내 줬다” → 어라? 국가 정책을 무시하고 왜 일본어 쓰는 애를 혼내지? → 그 교사를 뒷조사 해 보니 전교조.. 아니 조선어 학회 소속 → 이거 알고 보니 골수 불령선인 악질 반동이구만? → 안 그래도 요주의 인물이었는데 그럼 그렇지, 요놈 잘 걸렸다.

일제의 고등 경찰인지 특별 고등 경찰인지 거기서 실적 껀수 하나 올리려고 요렇게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학자들을 잡아들이고 투옥시킨 것이다. 그리고 만들던 사전 원고도 빼앗겼다. 다만, 이건 피의자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참고하려고 증거물 차원에서 압수한 것이지, 그게 무슨 일제의 입장에서 나쁜.. 이를테면 일본의 국가기밀 누설, 조선총독부 폭파 음모, 총독 내지 덴노 암살 음모, 본토 테러 지령 같은 것이어서 압수당한 건 아니었다.

일상생활에서 조선어의 사용이 금지되긴 했지만, 그래도 조선어 사전 원고를 작성한 것 자체까지 법적으로 죄는 아니었다. 애초에 조선어 학회도 무슨 광복군 의열단 같은 단체가 아니니까 말이다. 굳이 그 사전 편찬자들을 해코지 하려면 명목상으로 다른 정치적이고 더 큰 죄를 뒤집어씌워야 했다.

애매한 학자들을 골수 반동분자로 조작하기 위해 잔인한 고문에 의한 자백 강요가 되풀이되었으며, 거기에다 춥고 비위생적인 형무소 수감이 장기화되면서 이 윤재, 한 징 선생 두 분이 결국 옥사했다.
그때 그 일기를 썼던 여학생은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학교를 졸업했는데, 자기 일기로 인해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을 뒤늦게 전해 듣고는 큰 충격을 받고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빠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일을 가족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일생을 보냈다.

그러다가 저분은 1982년 여름, 일본의 역사 왜곡 때문에 전국적인 반일 정서가 강해졌던 시절에 환갑을 앞둔 나이가 돼서야 “내가 그때의 영생여고보 학생 박 영희였습니다”라고 선언하고 중앙일보 인터뷰를 했다. “그때 일기장을 빼앗기고 은사가 지금 어디 있는지 대라는 협박과 함께 온갖 불법 감금과 폭행을 당했던 피해자가 바로 본인이고 아직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자기들이 저지른 죄악을 오리발 내밀고 발뺌하고 부정한다니, 왜놈들은 정말 인간도 아닙니다!”라고 규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인터뷰 내용은 한국일보에도 실렸던 모양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0년쯤 전에 옛날엔 “내가 소설과 영화 상록수의 실제 주인공이고 최 용신의 옛 약혼자인 김 학준이오!” 커밍아웃이 나왔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쯤 뒤 1990년대 초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의 증언이 처음으로 나왔으니.. 이런 식으로 옛날 역사의 증인들이 하나 둘 나타난 듯하다.

그러니 <말모이> 같은 소재의 영화가 좀 더 진지하게 역사 고증과 사실성을 추구한다면, 저런 사람의 회상으로 시작하는 액자식 구성을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그 대신, 그랬으면 또 월북한 빨갱이 학자를 미화한다는 색깔 논란에 휩싸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 극로는 깨끗이 잊고 최 현배를 대신 부각시키거나..

5. 그들은 왜 그렇게 사전 편찬에 목숨을 걸었는가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한국어에 이런 단어가 있었나 싶은 듣보잡 어휘가 의외로 많이 잠들어 있다. 가령, 미혼 해녀를 '비바리'라고 하고, 돌싱 여성을 '되모시'라고 한다.
한자어 합성이긴 하지만, 1/n 더치페이를 나타내는 '각추렴'이라는 말도 있다.

호칭과 높임법이 너무 불편해서 영어로 대화하는 거, 정말 어휘가 없어서 외래어 쓰는 것을 뭐라할 수는 없다. 그런 걸 어설프게 순화어 만드는 건 별 영양가가 없는 짓이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당장 멀쩡하게 이미 있는 말부터 제대로 활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안 쓰여서 사어가 됐다면 그걸 고유명사화해서 브랜드명으로 써먹는 방법도 있을 테고 말이다.

더구나 한국어는 체언보다 용언을, 형용사보다 부사를 훨씬 더 좋아하는 언어이지 않던가. 순우리말도 저런 지엽적인 명사보다는 동사 같은 용언을 더 많이 찾아서 살려 써야 된다.
본인의 오래된 생각이긴 하다만.. 영어로는 reliable이라고 한 단어로 간단하게 표현하는 걸 우리는 맨날 '믿을 만한, 신뢰할 수 있는'이라고 길게 풀어서 번역해야 한다면 몹시 불편하고 비경제적이다. 이런 예가 한두 개가 아니라 수백 수천 개로 늘어난다면 한국어의 사고 체계는 영어의 사고 체계와 비교했을 때 결코 편리하다고 볼 수 없게 된다.

그런데 그걸 '미덥다'라고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믿음직하다'보다도 더 짧다. 한국어에 원래 그런 어휘가 있다는 증언을 바로 국어사전이 해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faithful에는 '신실하다'뿐만 아니라 '미쁘다'도 들어가 있어야 한다. throw는 그냥 '던지다'이지만, hurl에는 '내박치다'라는 뜻풀이가 실려 있어야 한다.

영일 사전을 그대로 베끼기만 해서는 진짜 우리말다운 표현이 반영된 영한 사전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국어 사전과의 적절한 연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어 최초의 사전이라 일컬어지는 조선어 학회 큰사전의 존재 의의였다.

6. Aftermath

이렇듯, 조선어 학회는 일제 시대에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내놓고 사전 편찬 작업을 했다. 영화에서는 맞춤법이라기보다는 방언 수집· 분류와 표준어 제정처럼 묘사되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사전을 편찬하려면 실제로 저런 식으로 온갖 어휘들을 수집하기도 해야 했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해방 후에는 이 학회 출신의 학자들이 미군정 하에서 거의 즉시 한국어 교과서를 편찬하고 사전을 실제로 출간하는 과업까지 이뤘다.
한글 학회 큰사전 이후로 나중에는 신 기철· 신 용철이 편찬한 '새우리말 큰사전'도 민간 국어사전의 양대 산맥을 구성했다. 그러다가 2000년대부터는 국립 국어원의 '표준 국어 대사전'이 나오면서 민간에서 국어사전을 또 편찬할 일은 사실상 없어졌다.

그런데 이때는 대세가 이미 인터넷으로 기울고 있었던지라, 국가 기관에서 편찬한 국어사전조차도 초판 종이책이 많이 팔리지 않아 출판사가 적자를 봤다고 한다. 그 뒤로 사전이 수차례 개정되고 증보되었지만 종이책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참 격세지감이다.

이상이다.
영화가 배경 말고 이야기의 주 뼈대가 거의 다 허구인 것은 아쉬운 점이다. 햄· 소시지 같은 가공육인 것을 처음부터 감안하고 먹긴 했지만, 성분 분포를 보니 싸구려 잡육과 밀가루가 너무 많이 들어간 것 같다.

그래도 맨날 뻔한 무장 항일 투쟁 말고 조선어 학회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나온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아저씨>의 오 명규 사장과 <범죄도시>의 장 첸을 한데 만나니 반갑기도 했다.
국내에 있는 영화 소품용 1930년대 올드카 대여 업체들은 다 좌핸들 차량만 보유 중인가 보다. 그 시절 배경 드라마나 영화들을 봐도 다 그런 것 같다. 진짜 일제 시대에는 일본을 따라 다 좌측통행 우핸들이었을 텐데 말이다.

* 이 글은 한글 학회 홈페이지에 공식 기재된 학회 연혁을 상당수 참고하여 작성되었음을 밝힌다. 내 기억에만 의지해서 쓴 게 아니다.
아울러, 관심 있으신 분은 조선어 학회 사건의 전말에 대해 잘 소개해 놓은 다음 사이트의 자료도 추가로 참고하시기 바란다. #1 / #2

Posted by 사무엘

2019/01/19 08:33 2019/01/1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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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문체, 어문 정책 등

1. 교과서의 문체

지금까지 이런 말을 한 적은 없었지 싶은데..
본인은 먼 옛날 초딩 시절에 형· 누나(가족, 사촌 등)의 교과서를 미리 보니, 교과서가 갈수록 글자 크기가 작아지고, 컬러이던 것이 흑백으로 바뀌는(중등 이상) 것에서 일종의 문화 충격을 느꼈고 심리적으로 겁을 먹었었다.

특히 말투가 반말로 바뀌는 게 싫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1990년대엔 초1~2에서는 '해요체'였고, 과도기인 초3에서 좀 더 격식을 차린 '하오체', 그 다음 초4부터 '해라체' 반말로 바뀌었다. 지금은 어떤가 모르겠다.
그냥 반말도 모자라서 '하여라(해라)/써라'에서 연결어미가 더 생략되어 '하라/쓰라'라고만 하면.. 더 건조하고 무뚝뚝하게 느껴졌다.

  • 하십시오: 아주 높임
  • 하시오: 약간 높임
  • 하세요: 두루 높임
  • 해요: 두루 낮춤
  • 하게: 약간 낮춤
  • 해라: 아주 낮춤

이게 바로 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어의 문체이다. 군대에서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요'로 끝나는 비격식체 '두루 높임/낮춤'이다.
학교 교과서는 맨 처음엔 두루 높임으로 시작했다가(계산하세요), 약간 높임을 보여준 뒤(계산하시오) 곧장 아주 낮춤으로 바뀐 셈이다(계산하여라).

물론 한국어의 글에서는 존댓말보다 이런 반말이 훨씬 더 보편적이다. 그리고 간결하기 때문에 쓰는 것일 뿐, 굳이 독자를 낮출 의도가 있는 건 아니다. 사실 한국어는 제일 짧은 반말을 쓰더라도 용언 뒤에 각종 어미들이 덕지덕지 달라붙느라 여전히 좀 거추장스러운 구석이 있다. (예: 프로그래밍 언어를 한국어로 설계해 보면?)
하지만 저런 말투의 변화조차도 어린 동심의 입장에서는 병아리가 알을 깨는 것과 같은 큰 변화였던 것이다.

한국과 달리 서양 내지 영어권 애들은 그런 거 고민이 필요 없는 언어를 쓴다. 부모님 하나님도 그냥 you라고 부르고.. 나이 꼰대질 없이 누구든 그냥 통성명부터 한 뒤, you 아니면 이름으로 부르면 되니 참 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군대에서도 하급자는 상급자에게 sir을 앞뒤에 덧붙이는 것만 빼면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말하면 된다.

이런 의사소통에서의 효율이 더 멀리 나아가 학문과 기술의 발달 깊이, 그리고 업무 프로세스의 효율 차이까지 가져온 건지도 모른다.
1990년대 대한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 같은 극단적인 예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2. 옛날 한글 개역성경의 이색 문체

오늘날 우리말에서 성경 같은 경전은 '-느니라, -도다, -노라, -소서' 같은 엄격 진지 근엄한 고어 문체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고 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전근대적인 절대권위라는 게 몽땅 무너진 오늘날에는 일상생활에서 저런 말투를 사용하거나 접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천주교야 오래 전부터 현대어 스타일로 번역된 공동번역을 사용했기 때문에 상황이 어떤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독교회 쪽은 사정이 달라서 개역성경의 문체를 하루아침에 탈피하는 건 신자들의 정서상 아직 요원해 보인다. 그러니 2000년대에 와서도 교회에서 예배용으로 사용하는 성경의 주류는 여전히 개역성경을 약간만 고친 개역개정판에 머무르고 있다.

심지어 킹 제임스 성경 진영에서도 본문 내용이 변개되고 삭제된 것들을 논할 뿐, 문체는 개역성경의 고어 문체를 별 이의 없이 그대로 수용해서 성경을 번역하는 편이다. 아니, KJV도 고어체이니 한국어 역시 의도적으로 고어체로 번역하는 게 더 어울릴 지경이다.

본인은 어린 시절에 성경의 이런 문체가 신기하게 느껴졌으며, 또 맨 끝에 있던 계 22:18-19.. 그 유명한 성경 변개 금지 경고문(말씀에다 더하거나 빼는 자는 이렇게 될 것이다)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 인상이 잠재의식 속에 남아서 본인을 훗날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로 이끈 건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아직 한글 개역성경만 보던 옛날에..
본인은 한글 개역성경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이 끊어지시는 부분만이 이례적으로 고어체 대신 평범한 '-다'로 끝나는 것을 일찍부터 주목했다. 이것도 인상이 아주 강렬했다.

  •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마 27:50)
  •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막 15:37)
  •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눅 23:46)
  •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요 19:30)

요한복음만 빼고 마태, 마가, 누가복음이 저렇다.
동사 용언이 ㄴ이나 '았' 같은 시제 선어말 어미 없이 으뜸꼴 형태 그대로 쓰이는 건 무슨 제목이나 자막 같은 데서.. "누구누구 죽다", "어디에 가다"처럼 드물게 쓰이기는 한다.
그런데 존대 선어말 어미 '시'는 붙어서 '떠나시다, 운명하시다'는 어린 동심에 굉장히 특이한 심상을 만들어 냈다.

개역성경에서 '-시다'라고 끝나는 구절을 찾아보면 사복음서에만 딱 10군데가 나온다. 마 16:4 "떠나가시다"부터 요 18:1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까지..
하지만 이것들은 별 의미는 없고, 단순히 이 부분을 맡은 번역자의 번역 스타일 때문에 들어간 특이한 일탈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훗날 개역개정판에서는 다들 '떠나시니라'(마 27:50), '숨지시니라'(막 15:37, 눅 23:46) 같은 '-시니라' 꼴로 바뀌었다.

3. 여담: 한중일의 언어 정책 변화

동북아시아 삼국은 20세기가 가히 격변의 시대였다. 사회· 정치뿐만 아니라 문자 언어 쪽도 큰 변화를 겪었다.

(1) 중국: 1956~1964년에 걸쳐 공산당 마오의 령도력으로 한자들의 획을 대폭 줄인 '간체자'를 제정했다. 1953년, 6· 25 휴전 협정 당시까지만 해도 중국은 '나라 국'을 國이라고 쓰고 있었지만 그로부터 불과 몇 년 뒤부터는 그렇지 않게 됐다.
또한 보조 표음용으로 알파벳 기반의 한어병음도 1958년에 전격 시행하여 기존 주음부호를 대체했다. 오늘날은 '대만'만 옛날 정체(번체)와 주음부호를 계속해서 쓰고 있다.

(2) 일본: 1949년, 아직 미군정 하에 있을 때 '신자체'를 만들었다.
이런 글자의 변화 말고도 지금처럼 히라가나를 고유어의 표기에 활용하는 일본어 정서법 역시 해방(한국의)/패전(일본의) 이후에 도입되고 정착했다. 그 전에는 지금은 히라가나로 표기했을 말도 다 가타카나로 표기했다.

(3) 한국: 아직 일제 시대이던 1933년에 초안이 나온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업적이었다. 이때 아래아 같은 잉여 옛한글은 사용하지 않기로 하고 한국어 정서법이 지금과 얼추 비슷하게 정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정서법을 바탕으로 한국어 성경(개역성경전서 1938)과 국어사전(조선어 학회 큰사전 1947~57)이 출간될 수 있었다. 저 1938년도 성경을 또 개정하여 1961년에 나온 것이 바로 개역개정판 이전까지 국내에서 널리 쓰였던 그 개역성경이다.

한국은 중· 일과 달리, 국가 차원에서 한자를 손본 적은 없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러니 그냥 정자체를 그대로 쓰고 있고, 그냥 조금 한자깨나 아는 사람들이 중국보다는 일본식 약자를 무단으로 쓰는 편이었다.

4. 여담: 소나기

자고로 옛날에 이 승만은 지금 본인과 비슷한 나이 때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소설가 황 순원은 지금 본인과 비슷한 나이 때 일생일대의 명작 걸작인 단편소설 <소나기>를 지었다.

소나기는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렸고, 아니 그 전에 한메 같은 타자연습 프로그램의 연습글로도 신물나도록 봤다. 내가 알기로 이 소설은 발표된 이래로 자국의 국어 교과서에서 누락된 적이 없다. 영화와 애니로도 이미 실컷 만들어져 나왔다.

다른 때도 아니고 아직 6· 25 전쟁도 안 끝났고 나라가 온통 박살이 나 있었을 때..
쉽게 말해 그 암울하던 이 범선의 <학마을 사람들> 사건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을 시절에 어째 저런 전원적이고 낭만적이고 아기자기 예쁜 소설이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놀랍기 그지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초 중딩 시절에는 소나기 정도만 해도 텍스트가 상당히 길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느낌이 안 든다.
  • 남자애는.. 정말 숙맥이다.;;
  • 한편으로는 단선 철길 폐색 구간의 양방향에서 잘못 진입한 열차가 떠오르기도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8/10/25 08:34 2018/10/2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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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중국은 그 넓은 대륙 전지역이 강제로 단일 시간대를 쓰며, 대만(중화민국)쯤은 자기뿐만 아니라 남들까지 승인하지 못하게 압력을 넣을 정도로 강경하게 1중국 단일 국가 정체성을 쪽수빨로 밀어붙이고 있다. 조금 수틀렸다간 지금의 유럽처럼 십수 개 이상의 나라로 쪼개지고 서로 독립하네 마네 내전 헬게이트가 밤낮 벌어졌을 수도 있는 대륙이 어쨌든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유지되고 있다. 뭐, 지금도 구석 곳곳에서 분쟁과 잡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나라는 워낙 작다 보니 미국처럼 외국 나가서 세계 평화를 지키다가 산화한 자국 군인 같은 개념이 없고, 일본이나 중국처럼 자국 내부의 무슨 소수 민족 갈등 문제 같은 것도 없다. 옛날에는 울릉도나 제주도 사람들이 본토인들에 비해 문화가 이질적이었을지 모르지만, 거기도 본토 행정구역 편입과 동화가 이미 몇백 년 전에 마무리 됐으니 이제 와서 문제될 것은 없다. 굳이 민족간 갈등이라면 재중· 재러시아 동포라든가 탈북자, 북한 관련 문제가 있을 뿐이다.

이런 한국에 비해 중국은 참 크고 아름다운(?) 단일 국가이긴 한데, 이 때문에 말과 글까지 전지역에서 완전히 깔끔한 단일 체계로 유지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사정이 생각보다 복잡하다.
우리나라에서 중국어라고 하면 99%는 '니 하오 마, 워 쓰 뿌, 한 궈, 쭝 궈 런' 이러는 베이징 표준 중국어, 일명 보통화를 떠올린다. 실제로 이게 화자가 가장 많아서 중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통용되며, 중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권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륙에는 일명 Cantonese라고 불리는 광둥(광동)어 방언도 있다. 언어 구조는 중국어와 뿌리를 공유하지만 음운과 어휘는 보통화와 이질감이 굉장히 커서 통역이 필요할 정도라고 한다. 즉, 같은 글자를 발음하는 방식이 다르고 성조 체계도 다르다. 이 말인즉슨, 보통화에 맞춰진 병음 기반 입력 방식을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표준 중국어는 일부 음운에 ㄴㄹㅇ 같은 유성음 받침이 존재하는 것 말고 다른 종성이 없다. 그래서 초성은 '성모'요, 중성과 종성은 한데 뭉뚱그려서 '운모'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중국어는 음운 체계가 두벌식스럽다는 뜻이다.
그런데 광동어는 무성음 받침이 존재하며 한자들의 독음이 의외로 한국어 한자음에 더 근접해 있다.

전세계에서 모국어 화자가 가장 많은 보통화와는 달리, 광동화는 화자가 1억이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물 좋은(?) 홍콩과 그 인접 지역에서 통용되고 유명 무술 영화 같은 데서 많이 나오는 관계로 화자 수에 비해 임팩트가 좀 있어 보인다.

실제로 이 연걸만 해도 보디가드 영화에서 홍콩 여주인공으로부터 "대륙 아저씨"라고 비아냥 받지만 말하는 것은 광동화이다. 성조도 있고 뭔가 중국어처럼 들리긴 하지만 보통화를 배운 사람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내뱉는다.
킬 빌에서도 파이 메이 싸부가 광둥어 대신 일본어밖에 할 줄 모른다고 여주인공을 개무시하는 걸 볼 수 있다.

중국어는 (1) 말뿐만 아니라 (2) 글자도 잘 알다시피 간체자와 번체자로 파편화돼 있다.
간체자는 기존 한자가 획이 너무 많고 불편하다는 실용적인 이유로 인해 1950년대 말에 마오 쩌둥이 자기 재량으로 고안하고 제정한 문자 체계이다. 화폐 개혁이 아니고, 철자법이나 맞춤법 개정도 아닌 일종의 문자 개혁을 한 셈이다. 공산당 특유의 불도저 식 독재가 아니면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당장 1953년에 6· 25 전쟁 휴전 당시에만 해도 중국도 '나라 국'을 國이라고 썼는데 불과 몇 년 뒤에 그게 싹 달라진 걸 보면 굉장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지금 같은 고성능 컴퓨터가 처음부터 짠 등장해서 잘 보급돼서 사람이 손으로 직접 한자를 쓸 일이 없어지다시피했다면 굳이 번거롭게 간체자 따위 만들어서 시간(옛날 문헌)과 공간(한국 및 대만..) 단절을 초래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지금 같은 상황이 아니었으며, 마오 휘하의 중국 공산당은 옛것을 청산한답시고 간체자보다 훨씬 더 심한 병크 뻘짓도 많이 저지르긴 했다.

이 때문에 오늘날 중국은 한자의 종주국이면서도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그런 종주국은 아닌.. 뭔가 어색한 위상을 지니게 됐다.
(그러고 보니 그럼 중국 말고 일본의 한자 약자는? 1949년에 '신자체'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간체자보다도 먼저 자체 제정한 거라고 한다.)

문제는 간체자와 번체(글)가, 보통화와 광동화(말)가 서로 딱 정확하게 맞물리는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 커진다. 2*2=4개 조합이 모두 제각기 존재한다.
중국 대륙이야 보통화+간체이지만, 대만은 보통화+번체여서 문자만 서로 다르다.
홍콩과 마카오에서는 광동화+번체이지만, 중국에서 광동어가 통용되는 접경 지역은 광동화+간체여서 역시 문자만 차이가 난다.

  보통화 광동화
간체 베이징 포함 중국 본토 중국의 홍콩 접경 일부 지역
번체 대만 홍콩, 마카오

컴퓨터의 localize 관점에서 봤을 때 중국어 간체(chs)와 중국어 번체(cht)는 응당 서로 다른 것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표준 중국어(보통화+간체) 입력기라고 해서 번체 한자 입력 기능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zhongguo라고 입력했을 때 玉가 아니라 或이 들어간 中國이 제시되게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럼 중국과 대만이 한 IME를 옵션만 바꿔서 쓰면 되느냐 하면 또 그렇지는 않다. 말이야 보통화 기반이니 '니 하오 마, 워 아이 니' 같은 간단한 말이야 그대로 통한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수십 년 이상 단절되었던 관계로, 최신 유행어라든가 외래어, 학술 용어로 가면 미묘하게 차이가 발생한다. 같은 브라우저 기능도 '즐겨찾기'와 '책갈피'로 서로 다르게 불리듯이, 다른 쪽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현지에서 말을 그렇게 쓰지는 않는 것들이 생겨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어 입력기와 대만어 입력기는 그냥 서로 다른 어휘 DB를 사용한다. 간체자냐 번체자냐 하는 건 문자 표현 수단의 차이일 뿐, 말 자체의 차이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차이에 불과하다.

여담이지만, 보통화와 광동화도 차이가 나는 건 구어체 발화이지, 같은 문장이나 단어를 글자로 쓴다면 간체/번체만 일치한다면 글이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대륙 사람도 백지 상태에서 쓸 줄을 모를 뿐이지, 옛 번체자를 그럭저럭 알아보기는 한다고 한다. 이 사람들이 현대 중국어 말고 소위 말하는 공자 맹자 고전까지 그대로 읽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진다.

물론, 그런 차이는 있다고 한다. 's, 다시 말해 '~의' 소유격을 나타낼 때 문어체의 고전에서는 之가 즐겨 쓰였지만 구어 위주의 현대 중국어는 잘 알다시피 de 的이 쓰인다.
일상적으로 之를 쓰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중국 사람들이 그렇게 쓰인 문장을 아예 독해를 못 하는 건 아니라고..
한국 사람들이 "-느니라, -노라, -느뇨" 이딴 말을 일상생활에서 안 쓴다고 해서 그걸 못 알아듣는 건 아니니 말이다.

오히려 중국어는 한국어 같은 복잡다난한 어미나 조사가 없고, 그야말로 어간 어근만 성조 넣어서 내뱉으면 되는 간결한 형태 고립어인데, 딱히 고어체와 현대어체가 달라질 만한 게 있는지.. 온통 궁금한 것 투성이이다.
중국어가 구어는 '한어'이지만 문어는 '한문'이 아니라 '중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런 고전과 현대 중국어를 구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심상의 차이 때문에 우리나라 역시 고전 중국어 시대의 인명 지명은 국어 발음으로 표기하고, 현대의 중국 인명 지명은 현지음으로 표기하는 게 아닐까 한다.

한편, 중국과 대만은 자기 나라 말을 한자 없이 (3) 발음만 표기하는 수단도 서로 달라져 있다.
원래 중국에서는 20세기 초에 한자의 획을 적당히 떼어내서 카타카나처럼 생긴 주음부호(bopomofo)라는 걸 만들어 쓰고 있었다. 그랬는데 대륙 중공은 1950년대 말에 간체자와 동시에 라틴 알파벳 기반의 한어병음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이걸로 주음부호를 대체했다.

괜히 어설픈 독자 문자 대신에 라틴 알파벳을 채용한 것은 오늘날 같은 컴퓨터 시대에 혜안 선견지명이긴 했다.
하지만 옛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게 대만이고, 그걸 버린 것은 중화인민공화국인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두 나라 입력기는 언어 DB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말소리 입력법까지도 서로 달라지게 됐다.

※ 입력법

컴퓨터에서 중국어를 입력하는 방법은.. (1) 한자의 모양으로부터 입력하는 방법과, (2) 말소리에 대응하는 한자를 입력하는 방법으로 크게 나뉜다.
(1)의 가장 궁극적이고 원시적인 형태는.. 그냥 필기 인식(..;;; )일 것이다. 한자나 중국어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이 생판 모르는 한자도 곧장 입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너무 느리고 비효율적이고 그림과 문자의 구분이 없고.. 이럴려고 컴퓨터를 쓰나 싶은 자괴감이 들기에 충분하다.

그러니 한자를 적당히 기본 단위로 분해한 오필화수입법이나 창힐수입법이란 게 있다. 나름 중국에서 날고 기는 천재들이 머리를 짜내어 고안한 방식이겠지만, 일반인들은 그런 천재가 아니며 한자부터가 추상화나 기계화가 꽤 난감한 문자인 관계로.. 그런 입력법들은 처음에 그 체계 내지 파자(破字, 문자를 더 작은 모양 단위로 쪼갬) 이념을 익히는 게 까다롭다. 비록 익숙해지고 나면 속도가 제법 나겠지만 높은 진입장벽은 근본적으로 어쩔 수 없는 핸디캡이다.

(2)는 결국 더 단순한 표음문자의 도움을 받아서 한자를 '간접적으로' 입력하는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빠르고 효율적인 입력 방식을 구현하기 어렵다. 한글만 해도 로마자 입력법이 기존의 두벌식이나 세벌식 글자판보다 절대로 효율적이지 못한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더구나 한자를 이런 식으로 입력하는 건 소리가 같은 한자들에 대해 후보를 고르는 과정을 반드시 필요로 하며, 글자보다는 단어 및 문장 묶음 단위의 입력을 지향해야 한다. 즉, 일이 더 복잡해진다.

하지만 (1)이 워낙 복잡하고 그에 비해 (2)는 직관적이고 입문하기가 쉽다 보니,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입력법은 후자이다. (2)는 언어 데이터에다가 딥 러닝이니 뭐니 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여, 후보 추천과 자동 완성 같은 쪽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2)에 속하는 입력법이 한어병음뿐만 아니라 주음부호 방식이 존재한다.
주음부호는 알파벳보다 글자수가 많다 보니 4단의 숫자 글쇠까지 사용한다는 점, 단어보다는 성모+운모+성조까지 모두 입력해서 글자 단위 완성을 지향한다는 점, pin-gan / ping-an, xi-an / xian 같은 모호성이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글 입력에서 세벌식과 비슷한 심상이 느껴진다.

PC에서는 숫자 글쇠가 후보 선택이 아니라 주음부호 입력용으로 계속 쓰이기 때문에 입력 방식이 병음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런 제약이 없는 모바일 스크린 키보드용 입력기에서는 주음부호도 병음처럼 쫘르륵 한데 늘어놓고 단어를 고르는 식으로 서로 비슷하게 동작하는 편이다.

※ 성조

끝으로, 중국어는 성조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표준 중국어 기준으로 흔히 4종류가 있다고 하는데, 지방 방언 중에는 성조 체계가 더 복잡한 것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표준 중국어도 표기에 반영하는 것만 4종류이지, 표기를 생략하는 덜 중요한 성조(경성?)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5종류이다.
알파벳 기반의 Pinyin에서는 경성이 생략되지만 주음부호에서는 1성인 평성(-)이 생략되고, 경성(·)이 점으로 표기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한국어도 중세 시절에는 원래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중국어의 영향을 받아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성조가 비스무리하게 있었다고 한다. 그걸 표기하려 했던 흔적이 바로 방점이다. 하지만 성조는 몇백 년 전에 이미 깔끔하게 소멸하고, 그나마 장음과 단음 구분으로 간소화됐다고 하지만 오늘날은 이나마도 극도로 문란해진 지 오래다.

글쎄, 말, 벌, 눈, 밤 같은 단어는 어느 길이가 어느 뜻인지 한국 토박이도 분간을 못 하고 그냥 다 문맥에 의존한다. 하지만 '적다'처럼 용언에서는 짧은 '적'은 write이고 긴 '적'은 few라고 절대 헷갈리지 않는 것 같다. 옛날 사람들은 현대인보다 말의 길이와 ㅐ/ㅔ 구분 같은 것도 훨씬 더 신경 쓰며 살았을 것 같은데, 중세 국어가 현대 국어보다 더 복잡하고 정교했을 것 같다.

사실, 이건 중국어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 토박이들도 그 많은 글자들의 성조를 칼같이 다 구분해서 쓰고, 하나라도 어긋나면 완전히 말을 못 알아듣는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성조를 외국인 학습자들처럼 과격한 연기 하듯이 큼직하게 구사하지도 않는다. 애초에 성조는 노래를 부를 때만 해도 깡그리 무시되는 요소이다. (뭐 그렇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뮤직비디오에 자막이 반드시 들어간다고 한다. 일본에서 한자로 적힌 고유명사에다가는 곁에 히라가나 발음이 거의 반드시 병기되는 것처럼 말이다. 읽는 방법이 워낙 다양할 수 있고 복잡해서..)

성조가 여전히 필요하긴 하지만, 그래도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치부되고 문란해지는 기미가 조금씩 보인다는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9/20 08:32 2018/09/2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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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허국현 2018/09/20 09:49 # M/D Reply Permalink

    한중일은 독특하게 2차 세계대전 이후로 해서 언어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일본어도 2차 세계대전 이전 언어보다 보면 문법이 상당히 이질적이라 우리 고전 문학 보는 느낌이 납니다.

    1. 사무엘 2018/09/20 10:41 # M/D Permalink

      네 그렇습니다. 일본어는 일제 시대까지만 해도 표기법이 지금과 같지 않고 카타카나를 더 많이 쓰고.. 뭐 그랬지요.
      그에 비해 한국은 해방과 6·25 전쟁을 계기로 크게 바뀌었다기보다는 그 전 1933년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 때 정서법이 크게 바뀌었고 오늘날의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

      요약하면,
      중국: 1950년대 마오의 령도력으로 (한어병음, 간체자)
      일본: 1940년대 미군정 하에 있을 때 (신자체)
      한국: 1930년대 한글 맞춤법 통일안

  2. 2MB 2018/10/03 15:29 # M/D Reply Permalink

    일본어 직접입력 키보드는 90년대면 모를까 요새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나가 4열까지 배치되어 있다 보니까...

    1. 사무엘 2018/10/03 17:32 # M/D Permalink

      그렇군요.. 안 그래도 히라가나/가타카나를 직통으로 입력하는 글쇠배열을 요즘 쓰는 사람이 있으려나 궁금했는데.. 역시 본토 현지에서도 듣보잡이 돼 가는군요.
      그 글자가 자음-모음으로 구분되는 형태가 아닌데 왼손 오른손에 글자들이 어떤 기준으로 배열돼 있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

  3. 2MB 2018/10/04 01:19 # M/D Reply Permalink

    그나마 60대 이상 연령층에서 조금씩 쓰인다고는 합니다만 2013년 점유율 조사에서도 10%대 초반이라고 나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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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 관련 여러 생각들

1. 빛과 색

본인은 기업 이미지 광고의 최고봉으로 2006년쯤, 동요풍의 한전 CM송 "빛으로 만드는 세상"을 꼽는다.

"빛이 있어 세상은 밝고 따뜻해~ 우리들 마음에도 빛이 가득해. 빛은 사랑 빛은 행복.."
정말 이걸 누가 작사· 작곡했는지 진지하게 궁금해진다. '유 재광'이라는 사람이 검색되지만, 더 자세한 프로필· 근황이나 다른 활동 내역이 알려진 건 없다. 노래가 딱히 상업적인 분위기가 아니니 초등학생용 동요로 실제로 불리기도 한다.

저 CF의 궁극적인 의도는 그 빛이라는 게 전기 에너지가 있으니까 1년 내내 존재 가능한 것이고, 그러니 전기를 공급하는 우리 한전이 최고... 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백열등과 형광등을 거쳐서 인류 역사상 가장 효율이 높은 전기 광원인 LED등까지 발명하는 지경에 다다랐다. LED 덕분에 그 자그마한 스마트폰에 달린 꼬마전구가 어지간한 휴대용 손전등 역할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굳이 그런 물리적인 빛에 국한시키지 않더라도 성경도 빛에다가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인 심상을 부여하고, 반대로 어둠은 일관되게 나쁘다고 디스한다.
창 1:2에 나오는 어둠, 고후 4:6와 6:14에 나오는 빛과 어둠, 엡 5:8과 살전 5:5에 나오는 '빛의 자녀', 요한일서에서 시종일관 나오는 '빛'... 이루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니 "빛으로 만드는 세상" 가사가 신앙적으로도 뭔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1950년대에 만들어진 옛날 동요인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은 어떨까?
얘도 가사와 곡이 매우 아름다우며 2005년부터 일본의 소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실렸을 정도로 명곡이긴 하다만.. 이 곡의 가사는 딱히 광명과 암흑을 비교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냥 "여름엔 파랄 거예요, 겨울엔 하얄 거예요"이다.

저기서 '빛'은 그냥 '색'이라는 의미이다. 한국어는 green과 blue를 별로 구분하지 않고 '푸르다'라는 말을 썼듯이, 심지어 color와 light도 별로 구분하지 않고 '빛'이라는 말을 썼다. 그래서 한자도 光(빛 광)뿐만 아니라 色도 "빛 색"이라고 불렀고, 색깔뿐만 아니라 '빛깔'이라는 말도 있었던 것이다.

즉, 결론적으로 "파란 마음 하얀 마음"의 가사는 "빛으로 만드는 세상"이 아니라 포카혼타스 "Colors of the wind"(바람의 빛깔)와 더 비슷한 공감각적 심상이라고 보면 정확하겠다.
저 동요가 일본어로 번역될 때도 응당 光이 아니라 色이 쓰였다.

영어에 man 남자/사람, good 좋다/선하다, day 낮/날 같은 중의성이 있는 것처럼.. 한국어에도 저 정도 중의성은 감수해야 하는가 보다. 사전만 보고 무식하게 곧이곧대로 번역하다간 실수하기 쉽다.

내 모국어인 한국어는 한편으로 괴상망측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 ㅁ과 ㅂ 대응(어머니 아버지, 물 불, 맑다 밝다, 묽다 붉다)이라든가, 빛과 색의 중의적 관계,
내가 아는 다른 어떤 외국어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딱 한 단어짜리 '모르다' 동사,
하필 흑백과 삼원색만 활용 가능한 용언 형태로 말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꽤 심오하다는 생각도 든다.
(잘 알다시피 영어는 '빛'이 '색'이 아니라 '가벼운'과 동음이의어 관계다.)

2. 긍정적인 심상과 부정적인 심상의 구분

'친히'는 화자 내지 주체가 더 높은 사람이라는 뉘앙스가 깔려 있는 걸까, 아니면 꼭 그런 의미 없이 단순히 '내가 직접'이라는 뜻만 있는 걸까? 쉽게 말해 "내가 친히 주님을 만나 보리라" 같은 찬송가 가사는 어법 격식에 어긋난 불경스러운 표현일까, 아닐까?
일단은 전자인 것 같지만 국립 국어원 코퍼스를 뒤져 보면 후자의 용례도 없는 건 아니다.

비슷한 예로 '기념'도 있다. 결혼 기념, 생일 기념, 완공 기념처럼 꼭 긍정적인 사건, 기쁜 소식만 기리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중요하고 의미 있고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은 모두 기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걸까?
이런 인식에 대한 혼란 때문에 일각에서는 당장 '전쟁 기념관'이라는 박물관 명칭부터가 제대로 된 작명인지 이의를 제기하곤 한다. 하긴, 더 심한 예로 '2010년 국권 피탈 100주년 기념'이라고 하면 다소 어색해 보이긴 한다.

그런데 '기념'을 안 쓰면 딱히 다른 대안이 있어 보이지도 않으니 더 난감하다. 전몰자라면 '추모, 추도'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war memorial은 기념이 아니면 도대체 뭐라고 번역하란 말인가?
사실 이렇게 꼭 긍정적인 뜻으로만 써야 한다, 부정적인 뜻으로만 써야 한다는 식의 제약과 구분은 세월이 흐르면서 문란해지고 없어지는 편이다. '너무'가 아주 대표적인 예이고, 또 '장이'와 '쟁이'의 구분도 비슷하게 슬금슬금 흔들리는 중이다.

3. '우리' (we, our)

한국이라는 나라의 민족 문화는 개인보다 집단, 서열을 좋아한다. 그래서 서구· 영어권에서는 I, my라고 표현할 것도 '우리'라고 표현하는 게 많다. 우리집, 우리나라처럼.. 그래도 영어로도 논문 쓸 때는 내 경험상 we를 의도적으로 썼던 듯하다. 한국어로는 주어가 '나'나 '우리'가 아니라 아예 '본 연구/본 논문' 같은 무생물이 됐을 상황이어서..

그런데, 이렇게 개인주의적인 영어로도 our을 당당히 쓰는 상황이 있으니 바로 '우리 은하'이다. 겨우 집이나 나라가 아니라 우주 차원이다. 인간 중에 이 은하, 아니 태양계조차 벗어나서 사는 개체는 전무하니, 이 정도 되면 단일 집단 의식과 소속감을 갖기에 충분할 듯하다. =_=;;

물론 오글거리는 Our Galaxy 말고 the Galaxy, the Milky Way 같은 말도 쓴다.
영어에서 정관사 the는 아까 언급되었던 그것을 가리키는(a cup -> the cup) 포인터라는 용법은 아주 명백한 반면, 한편으로 보통명사로만 이뤄진 '준' 고유명사를 가리킬 때도 쓰이고(the sun, the Great Wall), 그 명사에 속하는 집단을 가리킬 때도 쓰인다.

그런데 한편으로 완전히 생판 새로운 이름인 고유명사의 앞에는 관사가 붙지 않는다. 이거 무슨 국기에 대한 경례 앞에서만 충성 구호를 생략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으로는 정관사가 쓰이는 방식이 원칙이 없고 귀걸이 코걸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렵다.;;

4. 정확하게 알고 구분해서 써야 할 한자어들

(1) 전기세가 아니라 전기료가 맞다. 먼저 한전은 엄연히 정부 기관이 아닌 공기업인 관계로, 전기 요금은 세금(稅)이 아니다. 또한 전기는 무형의 에너지일 뿐, 무슨 부동산이나 고가의 장비처럼 임대 형태로(貰) 빌려 사용하는 물건도 아니다. 그러니 수도나 가스처럼 비(費)나 료(料)만 붙으면 된다.

(2) 교육부 노동부 법무부.. 이럴 때는 部를 쓰지만,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이럴 때는 府를 쓴다. 전자는 행정부를 구성하는 하위 조직들을 가리키고, 후자는 국가 권력을 지탱하는 세 축의 구성원이다. 뭔가 辭典과 事典의 차이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3) 이제는 완전히 폐지됐으니 역사 속의 유물이긴 하다만, 사법고시가 아니라 '사법 시험'이 정확한 명칭이다.
옛날에 행정· 기술· 외무 고시는 말 그대로 '고시'였다. 이 고시(高試)라는 말 자체가 무슨 재귀적인 영어 이니셜처럼(GNU is Not Unix ???) 저런 시험을 가리키는 '고등고시(考試)'의 준말이다. 사법 시험도 반세기도 전 옛날에는 고등고시의 사법과에 속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바뀐 게 무려 1963년의 일이다.

한편, 교사를 뽑는 시험도 공식 명칭은 '임용 시험'이다. 임고, 임용고시라고 부를 때도 考試이지, 고등고시의 준말인 高試는 아니다.

(4) 대장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집단의 우두머리, chief, leader라는 뜻으로는 한자로 隊長이라고 쓴다. 隊가 특공대, 구급대, 심지어 군대, 소대, 중대 등등의 그 '대'이기 때문이다.
포스타 대장은 大將이니 한자가 완전히 다르다. 여기서는 그냥 장군이 아니라 큰 장군이라는 뜻이다.
의외로 '큰 어른'(大長)이라는 직관적인 한자어는 딱히 안 쓰이는 것 같다. 큰창자를 나타내는 대장(大腸)은 당연히 논외로 하고..

(5) '전쟁/사건 발발' 이럴 때 사용하는 '발발'은 勃發이구나. 설마 發만 두 번 중첩시켜서 發發인가 했는데 그건 아니다. 勃은 한국어 한자어에서 다른 용례가 있긴 한가 모르겠다.

(6) 궤도(軌道)는 동일한 한자로 영어의 orbit과 railway를 모두 의미하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천체의 공전 궤도와, 궤조-궤도-선로의 순으로 연결되는 철도 용어는 문맥이 완전히 달라 보이는데 말이다.

(7) 핵 분열(核分裂)도 한자는 동일하지만 '핵'이라는 게 생물학적인 의미도 있고 물리학적인 의미도 있기 때문에 nuclear division (세포)과 nuclear fission (원자 공학)을 모두 포함한다. 예전에 봤던 '고립어'(언어 유형 vs 계통)의 중의성을 보는 것 같다. 동일한 단위가 무게와 부피, 화폐 단위(톤, 달란트..)를 오락가락 하고 열량과 에너지(칼로리..)를 오락가락 하는 것과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8) 배터리에다 전기 에너지를 보충하는 것도 충전이고 교통 카드에 돈을 보충하는 것도 충전인 게 개인적으로 좀 의아하게 느껴진다. 이 경우 한자는 물론 다르다. 후자는 혹시 돈 전(錢)을 쓰기라도 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塡이라는 다른 생소한 한자가 쓰인다. 영어로는 전반적으로 charge, load, replenish 이런 뜻이다.

5. 나머지 생각들

(1) 귤과 오렌지, 회전 교차로와 로터리처럼.. 동일 개념에 대한 외래어와 순화어 관계인 게 아니라, 실제로는 가리키는 개념이 서로 미묘하게 다른 것들이 세상에 많다. 이런 예가 얼마나 더 있으려나 궁금하다.

(2) 교통사고 뉴스 보도를 시청하다 보면 "이 사고로 승용차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찌그러졌으며..." 이런 표현을 자주 듣는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라는 길고 긴 부사구를 좀 간결하게 표현할 수 없을까? 저 표현을 영작을 했다면 이렇게 장황하고 길지 않을 것 같다. ****ly 같은 미지의 한 단어로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까?
언론에서 '평당' 대신에 '3.3제곱미터당'이라고 말하는 게 참 바보 같고 부자연스럽고 불편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3) 알맹이는 '-맹이'인데 돌멩이는 '-멩이'인 게 문득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지며, 서로 어떤 어원의 접미사가 붙은 것인지 진지하게 궁금해진다.
또한 어미 '-려고', '-러'도 정확한 용도 구분이 모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려고'가 그냥 '-려'로 줄어드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9/14 08:33 2018/09/1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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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정치 분야에서 언어 구사가 좀 과격한 구석이 있을지언정, 우리 남한만치 한자어나 외래어를 막 남발하지 않고 순화를 많이 한다고 그런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로 아이스크림 대신 얼음보숭이 같은 오글거리는 말까지 적극 사용할 정도는 아니라는 탈북자의 증언도 있다.

이런 와중에 남한 같았으면 그냥 '정지'라고 할 것을 북한의 도로 표지판은 진짜 단순무식하게 '섯!'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언어학적 의미 전달이야 이보다 더 명확할 수 없고 문제가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격식이 안 어울리다 보니 우리 같은 사람들은 빵터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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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를 알 수 없는 이 흐릿한 사진이 제일 유명하지만, 구글링을 해 보면 이것 말고 다른 장소에서도 곳곳에 '섯/섯!'이라고 적힌 북한 표지판이 많이 나온다. 교차 검증이 되는 셈이므로 이 자료는 신빙성이 있다.

그런데 북한에 '섯!' 표지판이 있다면, 옛날에 남한에는 주차 대신 '둠'이라는 표지판이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Doom 게임이 아니라-_-;; '(세워) 두다'의 명사형이다.
본인도 지금까지 '그랬다 카더라'라고 소문만 들었는데 그 표지판의 실제 모습을 우연히 발견했다. 다음은 1970~80년대의 어느 대한뉴스에서 교통 질서 캠페인이 나오던 화면을 캡처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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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 참 강렬하지 않은가..??? =_=;;
이런 말이 잠시나마 만들어져 쓰인 배경에는 국어학자 최 현배 박사가 있었다. 이분이 한국어에서 '-음/ㅁ' 명사화 접미사를 굉장히 좋아했던 분이기 때문이다. 저서를 '지음'으로, 생활을 '살음'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내가 지금까지 관련 자료를 소개한 적이 없었구나. 그분의 저서..라기보다는 유고작인 <한글만 쓰기의 주장>의 한 부분을 인용하고자 한다. 원작의 맞춤법과 띄어쓰기, 외래어 표기를 그대로 옮겨 썼다.

한국 국어 교육 학회의 주최로 1968년 12월 8일은 은석 국민 학교에서 열린 강연회 연사로 초빙되어 우리 나라에 온, 일본 경도 대학 언어학 교수 이스이 히사노스께(泉井久之助) 박사는 "意味와 文法"이란 제목의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요지를 말하였다:

한국말은 움직씨의 끝에 뒷가지 "음"을 붙여서 이름씨로 만드는 편리한 말본이 있다. 이 말본을 활용하면 개념의 혼란없이 한자말을 모두 한글로 풀어쓸 수 있다. 한글은 한자의 음을 빌릴 필요없이, 새로운 말을 구성해 낼 수 있다.

일본말은 움직씨에 뒷가지를 붙여서 이름씨로 만드는 말본이 없기 때문에, 한자와의 인연을 결코 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한국 말본은 일본 말본보다 우수하여, 한자와의 전면적 결별이 용이하다. 이점에 대해서는 일본인이 부러워해야 할 바이다. 정거장의 개설구를 "나가는 곳", 집찰구를 "나오는 곳" "分離"를 "나눔", "誕生"을 "낳음" 들로 쉽사리 새 이름씨로 풀어 쓸 수 있기 때문에, 한자 전폐는 더욱 용이하다. 고.

이스이 교수는 학술회의 회원이기도 하고, 많은 언어학 저서도 있는 일본 유수한 노 언어학자인데, 강연 뒤 신문 기자와의 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한글 연구의 방향도 제시하였다.

"음"을 붙여서 움직이름씨(동명사, Gerund)를 만들고, 이를 사색의 대상으로 한다면, 의미의 세계가 넓어져서, 한국인의 정신 활동이 크게 발달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언어학은 지금 있는 말을 분석 정리하는 데에 그치지 말고, 한글의 조어력을 발달시키고, 한글의 저력(속힘)을 발굴해 내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그리고 그는, 최근 한국 정부가 취한 한글 전용화 계획은 한국의 사회적인 편리를 위해서나,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발전을 위해 잘한 일이라고, 덧붙여 말하였다.
참 고맙고도 존경할만한 말씀이다. 일본인인 언어학 박사 교오또 대학 노교수가 학자적 양심 그대로 배달말본의 우수성, 조어력의 풍부함에 대한 학적 소견을 솔직히 베풀어서, 자비자굴(自卑自屈)에 빠진 우리 학계에 큰 각성과 격려를 주었으니, 이것이 참 고맙지 아니한가?


지금이야 민족이나 인종, 심지어 언어를 서로 대놓고 비교하면서 어느 게 우수하네 마네 하는 소리는 그야말로 히틀러스러운 나치즘, 파시즘, 국뽕 전체주의 소리 들으면서 욕 먹기 딱 좋다. 더구나 난 일본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동명사를 만드는 게 한국어보다 뭐가 그렇게 불편한지 저 말의 배경도 잘 모르겠다. 뭐, 일본인 학자가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저 때가 어떤 시절이었는가? 최 현배 박사는 1970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지금으로부터 무려 반세기 전의 옛날 사람이다.
1968년 12월 8월이면 뭐 떠오르는 거 없으신가? 박 정희 대통령에 의해 국민 교육 헌장이 선포된 지 겨우 사흘 뒤의 일이다(12월 5일).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옛날이 아닐 수 없다.

저 때는 언어건 문화건 경제건 "우린 안 될 거야 아마"라고 아무 꿈도 희망도 없던 시궁창 헬조선 반도에서 국민들에게 "우리는 우수한 민족이다, 우리(는/도) 할 수 있다"라고 정치인 지식인들 할 것 없이 무지한 국민들에게 마음껏 국뽕이라는 동기 부여를 주입해 줘야 했다. 그러던 와중에 한글은 가히 이보다 더 훌륭할 수 없는 약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저 글을 보면 알 만한 거물급 국어학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를 쓸 만한 문맥에서까지 문자인 '한글'이 엄밀한 구분 없이 종종 섞여 쓰여 있다.

최 현배는 당대를 살았던 공 병우· 이 승만 같은 인물과 비슷한 급의 천재이고, "방망이 깎던 노인"을 연상케 할 정도로 아주 강직하고 괴팍한 고집쟁이였다. 194~50년대엔 단순히 한자를 없애는 수준을 넘어서 문자를 기계화하지 못하면 민족이 망할 거라고까지 생각해서 <글자의 혁명> 같은 굉장히 과격한 책도 쓴 적이 있다. (한글을 라틴 알파벳 같은 풀어쓰기 문자로 마개조하자)

그리고 일본인 스승 밑에서 언어학을 공부했고 언어학뿐만 아니라 교육학과 철학에도 일가견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조선어 학회 사건 때 투옥되어 고초를 겪고 죽을 뻔하기까지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일본의 일 짜만 나와도 몸서리 쳤던 골수 민족주의자 항일 인사였다.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아들 말고 아버지)이 개인 소신으로는 평생 일본을 싫어하며 지냈듯이 말이다(군 복무 시절에 동료들이 미친 식인귀 일본군에게 잡아먹혔으며, 자기도 극적으로 구조되지 못했으면 그렇게 될 뻔..).

이런 최 현배 박사의 주장에 대해서 날틀, 배꽃계집큰배움터 같은 이상한 오해와 음해가 나돌았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장려했던 순우리말 용어는 말본, 셈본, 넘보랏살, 콩팥 이런 온건한 선을 넘지 않았으며, 그리고 저런 '둠'이야말로 주작이 아닌 팩트이다. 최 박사의 저서를 보면 '둠'이 제안된 배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순화라는 게 명사를 억지로 뭉쳐 붙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동사를 명사화해서 표현할 때 영한사전 번역투 영향을 받아서 천편일률적으로 '-는 것'만 쓸 게 아니라, '-음/ㅁ', '-기' 같은 접미사도 많이 활용하는 것이 표현의 다양성 차원에서 좋다고 여겨진다. 뭐, 전에도 얘기했듯이 영어는 근본적으로 명사와 형용사를 좋아하는 반면, 한국어는 동사(용언)와 부사를 좋아하는 언어라는 차이가 있기도 하다.

도시락, 동아리, 모꼬지 이런 말은 최 현배의 사후에 그의 학풍을 물려받은 대학생 우리말 사랑 단체에서 1980년대쯤에 만들거나 재발견하여 보급되었다. 특히 동아리가 '서클'을 성공적으로 대체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이거 이후로 국내에서 순우리말 순화 운동은 1990년대에 컴퓨터 분야를 중심으로 무른모, 셈틀, 누리그물(...;; ) 이런 거나 나오다가 지금은 완전히 생명력을 잃고 자취를 감춘 것 같다.

이상. '둠, 섯'에서 시작해서 오랜만에 한글, 국어, 최 현배 박사 등 여러 얘기가 나왔다. 나의 모국어인 한국어의 문법과 어휘를 어떻게 활용하고 개량하면 이 영어 만능 시대에 더 간결하게 구사하고, 더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쏟아져 나오는 용어들을 일일이 다 번역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결국은 있는 그대로 빌려 쓰는 말도 있겠지만, 그게 결국은 독해력· 문해력의 격차로 이어지고 학문 수준의 격차로 이어지 않을지?

진실은 한국어· 한글이 앞으로 수십~수백 년 안에 사멸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던 옛날 민족주의 성향의 언어학자들하고, 그런 거 아무 의미 없다고 상대주의적으로만 흘러가는 요즘 추세의 중간에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Posted by 사무엘

2018/04/10 08:37 2018/04/1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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