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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는 숨을 오랫동안 참고 있으면 곧 극심한 괴로움을 호소하면서 기도를 열어서 무엇이라도 무조건적으로 빨아들이려고 애쓰게 된다. 주변이 온통 물이나 유독가스뿐이더라도 말이다. 이 때문에 다른 물질(흡입), 다른 도구, 외력(강제로 호흡 차단)으로 인해 질식사를 할지언정, 혼자 숨을 참아서 자살할;;; 수는 없다. 이건 인간이 스스로 호락호락 목숨을 끊을 수 없게 하는 일종의 안전 장치이기도 한 것 같다.

글쎄, 과거에 대종교의 핵심 간부이면서 독립 운동가였던 나 철, 서 일 같은 사람은 스스로 숨을 참아서 목숨을 끊고 자결· 순국했다고 전해진다. 마치 어느 만렙 불교 승려가 꼿꼿한 가부좌 자세로 분신 인신공양을 한 것만큼이나.. 저게 아주 특수한 수련을 통해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평범한 일반인에게 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숨을 안 쉬어서 인체가 괴로움을 느끼는 판단 기준은.. 정말 의외인데 산소 부족이 아니다. 반대로 체내에 축적된 이산화탄소의 증가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것만큼이나 이산화탄소는 물질대사로 인해 계속해서 생성되니까.. 그리고 이게 산소 부족보다 먼저 감지되는 더 민감한 현상이다.

코나 입을 틀어막거나 목을 조르는 게 아니라 그냥 얼굴만 비닐봉지로 씌워서 밀폐해 보면(...;;) 얼마 못 가 숨이 가빠지고 얼굴이 벌개지긴 한다. 이것도 산소 부족 때문이 아니라 봉지 내부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해서 호흡만으로 이산화탄소의 배출과 농도 조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요즘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평균 농도가 0.04%, 대략 400ppm으로 여겨지는데, 날숨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4%가량으로, 약 100배 증가한다.

이산화탄소의 배출은 잘 하고 있으면서 순수하게 산소만 부족한 상황은 인체가 제대로 감지를 못 한다고 한다. 그냥 나른하고 체력이 딸리고.. 물론 그 상태로 등산 같은 무리한 신체 활동을 하면 고산병 같은 증세도 일어나겠지만, 대기압이 정상이면서 격렬한 신체 활동 없이 산소만 없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픽 쓰러지고 훅 갈 수도 있다.

하긴, 그렇게 위험을 감지할 기력 자체가 사라지니까 말이다. 스타에서 다크 템플러가 일꾼을 원샷 원킬 하는 것은 under attack 경보가 안 뜨듯이.. 일산화탄소 중독 같은 걸로 질식한 사람만 해도 다 그냥 픽 쓰러지지, 얼굴 벌개지고 켁켁거리면서 의식을 잃지는 않는다는 걸 생각해 보자.

그리고 굳이 그 정도로 위험한 유독가스가 아니라 질소만 100% 있는 곳에 있어도 사람은 똑같이 픽 쓰러질 수 있다. 누가 나쁜 마음 품으면 이런 중독과 질식을 이용해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고통 없이 쉽게 가는 자살· 살인 방법을 고안할 수도 있을 정도이다.

수영을 하면서도 과호흡이라고 해야 하나, 이산화탄소만 내보내어 인체가 내보내는 자연스러운 호흡 충동을 강제로 억제함으로써 실제 체력보다 더 오래 숨을 참는 테크닉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도 조심해서 활용해야 한다. 멀쩡히 수영하던 중에 뇌의 산소 부족 때문에 아무 이상 징후 없이 의식을 잃고 익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키는 Shallow Water Blackout이라는 현상 내지 용어도 있으니 참고하시라.

이런 맥락에서, 요즘은 하품도 산소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최소한 주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졸음 운전은 명백하게 차내의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한 현상으로 여겨진다. 물론 그래도 날숨보다는 훨씬 낮은 농도이니까 졸리기만 하는 것으로 끝나지, 그 이상이면 탑승자들이 견디지 못한다.

운동을 할 때 몸이 지치는 것에도 숨이 차는 것과 근육이 저린 건 별개의 영역인데, 호흡과 관련해서도 산소 부족과 이산화탄소 과다는 서로 완전히 별개로 생각해야겠다.
인체가 자기 상태를 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이것 말고도 몇 가지 더 알려져 있다. 허기를 표현하는 배꼽시계만 해도 지금 정말로 영양분이 부족한 상태만을 곧이곧대로 나타내는 게 아니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며..

좀 극단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사람이 극심한 저체온증으로 동사하기 직전에 정신줄이 오락가락 다 놓였을 때는 오히려 불타는 듯한 더위를 느끼고 옷을 훌훌 벗기도 한댄다. paradoxical undressing이라고 이름까지 붙었는데 이것도 그 이유는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못해 있다.

이건 자가색정사만큼이나 사람의 사인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다. (스스로 옷을 벗은 단순 저체온증 동사자도 마치 강력 범죄를 당해서 탈의당하고 희생된 것처럼 보이게 되니까..) 그리고 온도나 음식뿐만 아니라 호흡 상태 판단 알고리즘에도 저런 식으로 헛점이 있는가 보다.

그래도 호흡이 어느 물질이 어떻게 변화하는 과정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체내의 산소 부족과 이산화탄소 과다는 대부분, 사실상 동치라고 봐도 무방하긴 하다.

끝으로 호흡 하니까 떠오르는 게..
음식의 맛은 혀로 느낀다고들 그런다. 그런데 숨을 참으면서 음식을 먹을 때는 절대로 감지되지 않다가, 숨을 코로 내쉴 때만 느껴지는 그 형언할 수 없는 ‘끝맛’은 도대체 무슨 기관 내지 장기가 어떤 원리로 감지하는 것일까? 굉장히 궁금해진다.

Posted by 사무엘

2020/01/09 08:35 2020/01/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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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식물보다 키우는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드니 식품 버전인 고기 역시 채소보다 비싼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동물은 해체해서 식용 부위를 추출하는 것도 식물보다 훨씬 더 어려우며 고급 기술이 필요하다. 어디 그 뿐이랴? 보관하는 데도 식물보다 훨씬 더 저온의 냉장· 냉동이 필수이다.

하지만 인간은 근본적으로 채식만 해서는 영양학적으로 제대로 성장하고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고기를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인간은 소화 기관의 구조가 육식 동물에 더 가까운지라, 식물을 섬유질까지 몽땅 뽕을 뽑으면서 오랫동안 길게 소화하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걸 생각하면 풀만 뜯어 먹으면서 그 엄청난 덩치와 체력, 그리고 쇠고기라는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 내는 소가 참 대단하긴 하다. 개와 돼지는 사료가 인간의 음식과 어느 정도 호환되는 잡식이기라도 하지만 소는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일본인은 초식동물이니 길거리의 풀을 뜯어먹으며 진격하라"는...;; 가능할 리가 만무하다.

아 그런데 일본은 메이지 유신 근대화 이전엔 서민들에게 육식이 아예 법으로 금지되기도 했었다.!! 물자 절약 내지 정신력 단련(?) 명분으로 그것도 무려 1000년이 넘게 말이다. 물론, 알음알음 산짐승이나 물고기를 몰래 잡아먹는 것까지 금지는 가능하지 않았겠지만.. 이 정도면 무타구치 렌야 같은 사람이 "일본인은 초식동물" 드립을 칠 만도 했겠다. ㄲㄲㄲㄲ

또한, 한반도의 조선만 해도 소를 무단 도축하다 걸리면 사형이었다. 조선이 무슨 힌두 교를 믿어서 소가 숭배 대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소는 단순 식용으로 함부로 잡기에는 다른 용도로도 너무 비싸고 귀하신 몸이며 거의 국가 차원에서 수효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은 상업과 교통· 통신 기술의 발달, 냉동 기술의 발달 덕분에 인류는 어느 때보다도 고기를 풍부하고 저렴하게 먹고 있다.
고기는 식물에 없는 영양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영양과 별개로 부드럽고 기름기가 흐르는 게 비주얼과 냄새까지도 일품이다. 그렇다 보니

  • "반찬이 온통 잡범들뿐이네. 어디 살인 사건 하나 없나?"  (영화 아저씨 대사 중)
  • "식탁에서 자연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구나. 그런데 자연에도 달리는 동물이 있는데 여긴 그게 없네."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빨리 라면 끓여 주세요~ 그분..)

처럼 고기 타령을 하는 방법도 참 예술적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굶주리는 사람들도 있고, 또 식용 가축은 너무 많이 키우는 경우 각종 배설물로 인한 수질 오염과 지구 온난화(메탄 가스..) 문제가 커진다. 구제역 같은 질병 리스크도 있고 말이다.
엄청난 대량 생산과 동물학대 급의 착취로 단가만을 낮췄을 뿐이지, 고기 한 점을 얻는 데 드는 절대적인 비용이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차이가 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통상적인 소· 돼지고기나 생선 말고 좀 기괴한 다른 형태의 단백질 공급원, 그리고 기존 고기들의 대체제들이 연구 개발되고 있는 사례를 나열해 보았다.

1. 민물고기

서양에서는 위생 관념이 막장이던 옛날에도 생선을 날것으로 먹는다는 생각은 차마 안 했던가 보다. 회와 초밥을 세계화시킨 것은 일본이다. 생고기는 익힌 고기와 달리 잘 썰리지 않기 때문에.. 요리사가 잘 썰어 주는 게 중요하다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바닷물고기가 아니라 붕어 같은 민물고기를 회를 쳐서 먹는다면..?? 그것도 양식도 아닌 자연산을 그대로..??

이건 베어 그릴스 급의 그 어떤 생존왕이라도 권하지 않는 식사법이다. "난 관대하기 때문에 기생충의 숙주가 되고 싶어 미치겠소~!"가 아니라면 구충약을 단단히 챙기고 at your own risk로 먹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 쫄깃한 맛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여서 민물회 매니아 취향인 사람도 있다.

민물고기는 척추동물 급에서는 활동 범위가 가장 제한되고 좁은 생물이다. 안 그래도 물 밖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바다로 나갈 수도 없으니 말이다. 교통수단으로 치면 안 그래도 앞뒤로밖에 못 다니는 철도 차량인데 동력원도 단거리용 직류 전기만 가능한 도시철도 지하철에 비유할 수 있겠다. (일반열차용 교류 전철화 구간을 이용할 수 없음)
그리고 민물고기는 인류가 거의 최초로 섭취한 육류라고 여겨진다. 바닷물고기나 다른 육상 동물보다는 더 쉽게 얻을 수 있었을 테니..

2. 충식

취향이 정말 특이한 일부 말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듬이 달린 검정색 또는 형형색색의 벌레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징그러움과 더러움과 혐오감을 느낀다.
이런 생물들이 크기까지 척추동물 급으로 거대하다거나, 밟아 죽일 때마다 헤모글로빈이 섞인 시뻘건 피가 찍찍 터져 나왔다면.. 마치 사람 말고 다른 동물이 도구와 불을 다루는 것만큼이나 공포와 끔찍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덩치 작고 징그럽고 체액이 뻘겋지도 않고, 인간에게 민폐를 끼치는 경우가 많고, 번식력 하나는 왕창 막강하니.. 인간은 이런 곤충을 별 생각 없이 정말 잘 죽인다. 그리고 곤충이 식용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먹을 게 없으면 역사적으로 곤충도 먹어 왔다. 메뚜기 정도면 단백질 공급원이 될 수 있으며, 메뚜기 섭취는 심지어 성경에도 나올 정도이다. (레위기, 침례인 요한..)

실제로 곤충은 먹이 공급 비용 대비 뽑아낼 수 있는 단백질의 효율이 의외로 좋다고 한다. 그리고 동물 학대 논란 따위 전혀 없이 바글바글 떼거지로 양성해서는 곧바로 굽고 튀기고 가공해서 식품으로 만들 수 있다.;;; 벌레를 죽이는 건 돼지나 소 따위를 도축하는 것보다는 비교할 수 없이 가볍고 쉬운 일일 테니..

벌레(번데기 포함)를 그대로 굽거나 튀겨서 내놓는 것이랑, 벌레로부터 단백질 같은 성분만 추출해서 벌레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분말, 칩, 육포 등..) 식품을 만드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 현실에서는 중국 정도가 전자 같은 충식에 우호적인 듯하며, 영상물에서 사람들에게 충식에 대해 꽤 대놓고 긍정적으로 널리 홍보한 사례는 아마 라이온 킹이지 싶다. 심바는 자기 몸의 8할은 타 포유류가 아니라 곤충인 채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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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면, 오늘날 고기의 대체제로 연구되고 있는 건 후자이다. 충식이라는 티를 최대한 안 내려 하지만, 여전히 소비자로 하여금 심리적인 거부감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라 하겠다.

3. 콩고기 등의 식물성 고기

식물성 재료를 이용하여 고기의 외형과 맛을 재현하는 기술이 생각보다 오래 전부터 많이 발달해 왔다. 동물을 사랑하지만 고기 맛을 잊지는 못하는 채식주의자라든가, 원가를 최대한 낮추면서 얼큰한 국물과 고기 건더기를 fake로라도 구현해야 하는 라면 스프 제조업자들이 환영할 만한 소식이다.

고기화하기 제일 만만한 작물은 단연 콩이다. 콩은 지력을 소모하는 타 식물들과 달리,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해서 지력을 회복시켜 주는 아주 신기하고 유용한 식물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지방과 단백질이 풍부해서 진작부터 밭에서 수확하는 고기 급의 취급을 받아 왔다. 성경에서 다니엘이 바빌론에서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와 와인 대신에 먹었던 것도 그냥 채소가 아니라 콩이었다. (단 1:12)

대놓고 가공육이 아니면서 각종 냉동· 인스턴트 식품에서 고기 비스무리하게 박혀 있는 것들, 성분에 '대두단백'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것들은 전부 콩고기이다. 이것들이 고기 맛을 저렴하게 내는 데 이미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가공 비용이 들어가긴 하지만 그래도 원재료가 진짜 고기보다 워낙 저렴하니 수지가 맞는 듯하다.

콩고기도 싸구려만 있는 게 아니며, 비싸게 고퀄리티로 만들면 요리사도 구분을 못 할 정도로 레알 동물 고기하고 맛과 식감이 비슷해진다고 한다.
다만, 너무 비싸지면 그냥 진짜 고기를 쓰고 말지 콩고기를 만든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마치 위조지폐가 제조 비용이 액면가 이상으로 너무 비싸지면 만드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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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말고도.. 밥이나 분식류를 만들지 어떻게 저걸로 고기를 만드나 싶은 밀이나 쌀로도 고기를 빚어 내는가 보다. 햄· 소시지· 스팸 같은 가공육이야 싸구려는 진짜 고기 대신에 밀가루만 잔뜩 들어있긴 하지만.. 그런 곡식에도 단백질이 없지는 않다.

물론 이런 식물성 고기로 김치를 볶는 것까지 가능한 삼겹살이라든가.. 꽃등심, 갈비를 재현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햄버거 패티용 다진 고기라든가 제육볶음 정도는 충분히 따라잡았다. 기름기와 영양분까지 진짜 고기를 대체하지는 못해도 외형과 맛은 얼추 비슷해졌다는 것이다.

4. 배양육 (인조 고기)

앞의 2번은 척추동물을 죽이지 않는 것이고 3번은 동물을 죽이지 않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거 4번은 아예 채식만치도 생명체를 죽이지 않고, 실험실에서 생화학적인 방법만으로 고기를 만드는 방법을 말한다. 식용 가축의 줄기 세포를 키워서 살코기를 얻는 방법이 쓰인다.

이건 동물을 full scale로 키우는 게 아니라 고기를 얻는 부분만 인위로 얻는 아주 획기적인 방법이다. 글쎄, 원가를 더 절감하기 위해서 일명 GMO라고 불리는 유전자 조작까지 행해질 여지가 있는데, 그건 현재로서는 논란이 많으며 벌써부터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

배양육은 진짜 고기를 얻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윤리 문제와 비효율을 상당수 해결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생산 비용 자체가 너무 높다. 굉장히 비싸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식물성 고기는 저렴하기라도 한 반면, 식물에도 의존하지 않는 인공 배양육이 기존 대체 고기의 장점을 곧장 흡수 가능하지는 않은 실정이다.
그렇다고 당장 양산해서 단가를 낮출 수 있을 정도로 맛 좋고 육즙과 품질이 뛰어난가 하면 그렇지도 않기 때문에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5. 똥고기

인간의 배설물이 끔찍하게 더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거기에도 인체에 흡수되지 않은 영양분이 적지 않다는 것은 인류의 오랜 실험 정신(!) 덕분에 알려져 있었다.

식물에게야 동물의 배설물이 거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대변이 아닌 소변 정도는 여과· 정수해서 사람이 다시 마시는 기술이 실제로 쓰이고 있다. 특히 우주 정거장 같은 데서 말이다. 우주에서는 물이 귀한데 무겁기까지 하기 때문에 식수를 따로 챙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소 연료가 연소한 결과물로 생긴 물이라든가 인체에서 나온 오줌까지 몽땅 재활용해서 식수로 활용해야 한다.

허나, 대변을 퇴비로 삭힌 것도 아니고 오리지널 X로부터 영양분을 추출하고 살균 처리를 해서 고기 패티를 만들었다면 선뜻 먹을 수 있겠는가? ㅠㅠ
이건 배양육이나 식물성 고기처럼 여러 기업들에서 앞다투어 연구한 건 아니고, 오덕의 나라 일본의 어느 대학교 연구팀(이케다 미츠유키 교수??)에서 2011년에 딱 한 번 결과물을 발표해서 전세계적으로 매스컴을 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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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생 문제는 정말 걱정 안 해도 된다면서 연구 책임자가 직접 먹으면서 인증을 했다.;;
그리고 생산 비용이 아무래도 기존 진짜 고기보다 더 비싸지만 생짜 배양육보다는 저렴하며, 이 역시 추가적인 후속 연구와 대량생산을 통해 충분히 낮출 수 있다고 그런다.

그러나 그 뒤로 연구가 얼마나 더 진행됐는지, 2019년 현재는 딱히 검색돼 나오는 게 없다. 연구하는 중에는 맨날 X과 부대끼며 사느라 X냄새 때문에 고생 많이 하지는 않았으려나 모르겠다... ㅠㅠㅠ

제주도에는 일명 똥돼지라고 불리는 '제주 흑돼지'가 유명하다. 털 색깔이 검기도 하거니와, 먼 옛날에 실제로 인분을 먹이면서 독특하게 사육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은 진짜로 똥을 먹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대변은 영양분만 들어있는 게 아니라 온갖 세균도 많기 때문이다.

이상이다.
1번은 좀 성격이 다르니 그렇다 치고, 나머지 대체 고기 생산 기술은 21세기 인류를 먹여 살릴 고부가가치 신기술 중 하나라면서 세계의 내로라하는 갑부들이 관심을 갖고 투자하고 있기도 하다.

단백질의 출처라는 게 식물로도 모자라서 벌레, 줄기세포, 심지어 대변까지 등장했다..;; 그나마 이미 어느 정도 통용되고 있는 것은 식물이 유일하고, 줄기세포 배양육은 아직 완성도를 더 끌어올려야 한다. 벌레와 대변은 기술적인 난관은 물론이고 사람에게 팔아먹으려면 심리적인 거부감도 극복시켜 줘야 할 것이고, 그게 안 되면 그냥 동물 사료용이나 환경 처리 기술 정도에나 의미를 둬야 할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맛 좋은 대체 고기가 저렴하게 보급되어 마치 쿼츠 시계나 디지털 카메라 같은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면.. 기존의 진짜 고기는 마치 기계식 시계나 필름 카메라처럼 현역 일선 주류에서 물러나고, 소수의 매니아 고급 취향용으로나 명맥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다만, 진짜 고기는 안 그래도 비싼데 대량 생산 메리트까지 없어지면 그 가격을 서민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렵게 되겠다. 그리고 그런 시대가 현재로서는 겨우 수 년 안으로 가깝게 금방 찾아올 것 같지는 않다.

*. 여담: 곤충이 죽는 방식

기왕 충식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문득 의문이 든다. 곤충은 죽을 때 왜 늘 벌렁 뒤집힌 채로 죽을까?
밟거나 누르거나 파리채로 때리는 등의 물리적인 방법으로 죽일 때는 실감하기 어렵지만, 살충제라는 비충격· 비파괴식(?) 방법으로 죽여 보면 놈은 약속이나 한 듯이 뒤집힌 채로 발버둥 치다가 죽는다. 파리건 바퀴벌레건.. 비행 가능 여부와 무관하게 말이다.

몸체를 일부러 뒤집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굉장히 흥미로운 현상인 것 같다.
그래서 각종 만화나 일러스트에서 곤충이 뒤집힌 모습은 죽은 모습과 거의 동급으로 취급된다. 사람 얼굴 그림에서 눈이 X자 모양으로 그려지고 혀가 튀어나온 게 기절하거나 죽은 모습의 상징이듯이 말이다.

글쎄, 겉의 현상만 보고서 본인이 세우는 가설은 곤충은 (1) 살충제가 뿜어져 나오는 바람에도 휩쓸려 날아갈 정도로 가볍고, (2) 배보다 위의 등 쪽이 훨씬 더 무겁다. 자동차나 선박만 해도 무게 중심이 높으면 잘 전복되듯이, 이런 구조 때문에 "곤충은 살충제에 몸이 마비되어 죽을 때는 대체로 벌렁 뒤집힐 것이다" 정도로 추측한다.

물론 이에 대한 답변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확인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다리가 맛이 가는 것하고 몸이 뒤집히는 것하고 무슨 인과관계가 있는지 답변이 납득이나 수긍이 가지 않는다.

멀쩡히 살아 있고 날지 못하는 곤충을 매끄러운 평지에서 180도 벌렁 뒤집어 놓으면 스스로 똑바로 설 수 있기는 한가 모르겠다. 가능한 놈도 있고 불가능한 놈도 있을 것 같다.
저렇게 뒤집힌 채 다리를 꼼지락거리며 사경을 헤매고 있는 곤충을 도로 뒤집어 놓으면 어떨까 궁금해진다. 실제로 이동하지는 못하겠지만 뒤집히지 않은 원래 자세대로 죽는 것 자체는 가능하지 않을까?

여담이지만 평범하게 자연사 내지 병사한 놈은 이론적으로는 그냥 배가 땅을 향한 평상시의 자세로 죽는다고도 한다. 허나, 대부분의 곤충은 인간에 의해 끔살 당하거나 아니면 자연에서 다른 동물에게 잡아먹히지, 자연사하는 놈이 과연 얼마나 되려나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26 08:35 2019/12/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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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이야기

지난 추석 때 산에서 벌초를 해 보니 동물과 식물의 차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이 들곤 했다.
톱과 낫으로 식물에게 하는 짓을 동물에게 그대로 했다간.. 그야말로 종류를 불문하고 처참한 광경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식물은 그렇게 베고 또 베어도 죽지 않고 끈질기게 또 자라난다. 뿌리까지 완전히 뽑아 버리거나 약을 쳐서 화학적으로 말려 죽이지 않는 한 말이다.

식물은 동물 같은 고통을 느낀다는 개념 자체가 없으며, 한쪽에서 발생하는 질병이 다른 쪽에서는 전혀 위험을 일으키지 않는다.
생명을 지니고 있는데 동물과 식물은 그 근원이 어쩜 이렇게 서로 다를까 싶다. 식물은 죽어서 부패하는 과정도 동물(특히 빨간 피가 흐르는 것들)보다는 훨씬 덜 역겹고 덜 징그럽지 않던가..

그리고 한편으로.. 산에서 야생 전투모기에게 수십 군데를 물려서-_- 서울 모기와는 차원이 다르게 오래 가는 가려움과 붓기를 체험해 봤다.;;
모기에게는 사람의 이산화탄소와 땀 냄새가 마치 삼겹살 굽는 냄새처럼 느껴지기라도 하는 걸까? 그리고 모기도 단백질이 그렇게 궁하지 않을 때는(;;) 그냥 평범하게 식물의 진액만 빨아먹는다는데?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모기나 거머리가 사람에게 아무 고통을 주지 않으면서 피부를 찢고 피를 쪽 빨아 가는 기술은 인류가 아직 개발하지 못한(주사기..) 신묘막측의 영역이 틀림없다..;;
이런 일이 있었던 관계로, 오늘은 특별히 식물에 대해서 그 동안 관찰하고 생각해 온 여러 썰들을 풀어 보겠다.

1. 풋사과와 풋고추

우리말에서 '풋-'이라는 접두사가 활발하게 쓰이는 식용 식물이 사과와 고추 말고 또 존재하는가 모르겠다. 둘 다 '풋' 버전은 표면이 초록색이다가, 완전히 익은 놈은 빨간색이 된다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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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의 경우, 빨간 고추는 너무 매우니 단독으로 우적우적 먹는 일은 사실상 없고, 다지고 갈아서 고춧가루나 다른 양념의 형태로 많이 먹는다. 그러나 초록색 풋고추는 복불복으로 아직 덜 맵기도 하기 때문에 얘만 단독으로 된장에 찍어 먹기도 하는 것 같다.

어떤 풋고추가 매운지의 여부를 외형만 봐서는 알 수 없으며, 내 경험상으로는 그냥 복불복 운에 의존해야 하는 것 같다. 다만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속담은 신빙성이 있다. 작고 홀쭉한 놈이 더 매울 가능성이 높으며, 반대로 큼직한 풋고추는 대체로 맵지 않더라.

한편, 사과의 경우 일부 초록색 껍질의 사과를 보면 마치 한국에서 흰 껍질 계란을 보는 것처럼 희귀· 희소함이 느껴진다. 이건 대놓고 설익은 풋사과를 딴 게 아니라 초록색 상태에서 여느 익은 빨간 사과에 준하는 맛이 나는 '아오리'라는 별도의 사과 품종이라고 한다.

배는 사과 같은 껍질의 색깔 변화도 없고, 내부가 공기에 노출되면 갈색으로 변색되는 것도 없으니..
금속으로 치면 철과 구리의 이온화 경향 같은 차이가 생물학적으로 존재하는가 궁금한 생각이 든다.

2. 억새

난 어린 시절부터 억새라고 하면 그냥 길다란 잎의 단면이 날카로워서 맨살이 베이기 쉬운 귀찮은 풀 정도로만 알아 왔다.
줄기에 뾰족한 가시가 숭숭 돋은 물건은 장미를 비롯해 여럿 있지만.. 잎이 저런 구조인 물건은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게 딱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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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은 억새도 갈대처럼 꼭대기에 하얀 이삭들이 달려 있어서 언뜻 보기에 둘이 잘 구분되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인터넷으로 억새를 검색하면 둘의 차이점, 구분 방법이 잔뜩 걸려 나올 정도이다.
둘이 그 정도로 서로 닮았는지는 본인도 미처 몰랐다. 다만, 갈대는 물 주변과 습지에서 더 즐겨 서식하고 억새보다 키가 훨씬 더 크다.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는 1937년도 곡인 '짝사랑'이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으악새는 그냥 억새의 방언인지, 아니면 다른 조류 동물인지 심상이 중의적이어서 영원한 논쟁거리로 남아 있는가 보다. 작사자가 오래 전에 죽고 없으니 말이다.

옛날에 "화왕산 억새 태우기"라는 행사가 경남 창영에서 3년 주기로 개최되어 왔다. 그러나 딱 10년 전의 6회 때 불을 잘못 질러서 방문객이 5명이나 숨지는 참사가 터지는 바람에 이 행사는 영원히 폐지되었다.

3. 관목(灌木 shrub)

세상의 식물 중에는 가로수 같은 아름드리 나무가 아니고, 나팔꽃처럼 덩굴 줄기밖에 없는 부류도 아니고..
굳이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나무이긴 한데 나무라는 걸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키가 왕창 작아서 몸통이 안 보이는 물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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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관목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다 자라도 키가 2미터를 안 넘고 작고, 초록색 잎만 둥그렇게 무성하면서 줄기· 몸통이 안 보이는 작은 나무(?) 말이다.
길거리나 정원 같은 데서 조경용으로 맨날 보는 식물이니 하나도 생소할 것 없다. 어떤 도로에서는 길가가 아니라 정중앙에 중앙분리대 대용으로 이런 부류의 식물이 심겨 있기도 하다.

얘들은 지면까지 차지하는 부피가 골고루 크기 때문에 조밀하게 심어서 사실상의 울타리 역할도 한다.
내가 이런 식물의 존재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별로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하긴, 대나무는 잘 알다시피 나무가 아니라 풀이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과일과 야채의 경계도 많이 헷갈리는 편이다.

4. 잔디

정원을 구성하는 식물 중에서 나무, 관목보다도 더욱 키가 작고 지표면을 가장 낮게 덮고 있는 건 잔디일 것이다.;; 얘는 뿌리와 잎만 있지 줄기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사람이나 동물들에게 허구헌날 밟히고, 초식동물에게 뜯어먹히지만 얘는 그래도 끈질기게 버티고 살아남는가 보다. 아 그러고 보니 땅뿐만 아니라 무덤 봉분을 뒤덮고 있는 것도 이런 부류의 잔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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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잔디가 심어져 있으면 미관에 더 좋은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온도와 습도 조절이 되고, 운동 경기를 할 때 선수들의 부상 위험도 크게 줄여 준다. 또한, 돗자리를 깔 때도 밑면에 흙먼지가 덜 묻게 해 준다. 신이 창조해 주신 정말 고맙고 유용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잔디도 겨울에는 죽어서 누래지는 놈이 있는가 하면, 언제나 초록색이 유지되는 상록(?) 잔디 또한 있다고 한다.

5. 잡초

'잡초'라는 건 발효와 부패의 차이만큼이나 매우 인위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분류이다. 잡초라는 종이 생물학적으로 따로 있다거나, 얘들이 무슨 해충· 병원균 급으로 인간이나 자연에게 심각한 해를 끼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똑같은 초록색이라고 해서 모든 식물이 식용 가능한 건 아니다. 글쎄, 상추나 깻잎 같은 건 인간이 먹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모든 채소잎을 뜯어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심지어 초식동물조차도 아무 식물이나 마음대로 먹을 수 있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밀림· 정글은 녹색 사막이라고 불릴 정도로 보기보다 인구 부양력이 형편없다. 그냥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는 의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잡초는.. 광합성을 해서 산소를 만들고 뿌리로 흙을 붙잡아 두는 등 식물의 아주 기본적인 공통 역할을 하는 것 외에 딱히 인간에게 기여하는 게 없고, 심고 관리하지 않아도 자라기는 왕창 잘 자라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인간이 진짜로 재배하려고 하는 농작물(생산성이 더 높은)의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에 잡초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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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가 무성한 뻘밭. 잔디밭과 비교하면 풀들의 키부터가 들쭉날쭉이고 미관에 좋지 않다. 마치 난개발로 스프롤 현상이 심한 도시의 건물들 모습 같다.)

아니면 농사와 무관하게.. 그냥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곳에 불쑥불쑥 불청객처럼 자꾸 자라고 생겨나기 때문에 잡초이다. 이런 잡초는 야외에서 시야를 가리고 미관을 해친다.
먹을 수 있는 식물이 잡초라고 불릴 일은 절대 없을 테니, 식용 가능하지 않은 것은 잡초의 필수 조건이라 하겠다.

왜 하필 인간에게 별로 유용하지 않은 식물이 유용한 식물보다 억척같이 잘 자라는 걸까? 그 근본 이유를 성경에서 찾자면 인류의 타락과 더불어 "또한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 (창 3:18) 말씀을 펴야 할 것이다.
농사를 짓는다거나 육군 군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이런 녹색 괴물의 강인함과 생명의 끈질김에 줄곧 경악하게 된다.;;

6. 약품

끝으로, 식물에게 치는 약품은 다음과 같은 종류로 나뉘는 듯하다.

  • 영양제 또는 병충해 치료제: 대상 식물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 위해
  • 농약: 대상 식물의 주변에 붙어서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해충· 잡초· 세균 따위를 제거하기 위해
  • 제초제· 고엽제: 대상 식물을 죽이기 위해

1번 영양제· 치료제는 혼자 성격이 많이 다르니 논외로 하고, 어떤 약품이 농약이냐 제초제냐 하는 것은 경계가 애매한 구석이 있다. 에프킬라가 모기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궁극적으로는 해롭듯이, 그 끈질긴 잡초를 말라 죽게 하는 농약이 보호 대상 식물에게도 어떤 형태로든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다. 단지, 이로운 농작물이 죽기 전에 잡초를 먼저 죽게 해 줄 뿐이다.

골프장은 산을 깎고 많은 나무들을 베어내어야 만들 수 있지만, 내부의 깔끔한 잔디밭도 농약을 왕창 많이 쳐서 유지되는 것이라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다만, 도를 넘는 정도는 아니고 나라에서 전국에 등록된 골프장들을 상대로 관리 실태를(농약 사용량 같은..) 조사도 한다고 한다.

농약은 번개탄만큼이나 자살 수단으로 하도 많이 악용된지라 미성년자의 구매, 얼굴 안 보이는 인터넷 거래를 통한 구매가 전면 금지되어 있다. 뭐, 자살이 아니라 실수로 마신 경우도 있고, 또 음식에다 고의로 몰래 타서 남을 죽이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었다. 그러라고 만든 농약이 아닐 텐데..

그렇다고 위험하고 환경에 해롭다는 이유로 농약을 아예 안 쓰면 인류는 다시 옛날처럼 잡초와 병충해와 힘겹게 싸워야 하고 농산물의 가격은 수직 상승하게 된다. 친자연, 유기농만 고집하다간 후진국형 기생충과 전염병에 다시 시달리게 될 것이다.

농약은 잡초뿐만 아니라 병충해도 상대하기 때문에 살충제하고 성분이나 용도가 뭔가 호환되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가령, 그라목손은 살충제로 치면 DDT 같은 위상이랄까?? 너무 위험하고 장기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사용이 금지되긴 했지만 당장 후진국에서 사람들이 말라리아 때문에 픽픽 쓰러지는 와중에 DDT보다 가성비 더 좋은 모기 퇴치제 대안은 없는 실정이다.

농약 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맨날 친자연을 외쳐도 애초에 자연이 인간에게 좋은 것만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세상일이 그렇게 단순하고 쉽게 돌아가는 게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23 08:34 2019/12/2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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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로남불 진영논리는 이제 좀 그만

입으로만 맨날 정의니 진보니 평등이니 외치던 어느 운동권 출신 법학자가 알고 보니 자기는 지력이 못 따라 주는 지 애새끼를 온갖 추악한 불법과 편법과 비리를 동원해서 신분 상승시키려 했다는 것이 만천하에 폭로되었다. 학업 성적으로나, 집안 경제력으로나 '장학금'하고는 억만 리 떨어진 애가 장학금을 뭔 빽으로 어찌 그리 많이 받아 쳐먹었는지! 지금 꼬라지를 보니, 차라리 옛날에 최 숭실· 정 유라 정도면 정말 선량하고 기특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도 결국은 답정너 법무부 장관까지 됐다. 이건 내가 보기엔 지금 대통령이 퇴임 후에 여느 전직 대통령들처럼 잡혀 들어가지 않기 위한 철저한 준비 작업으로 보인다.
게다가 저 양반은 그 와중에도 로스쿨 교수 타이틀까지 휴직 상태로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자신을 대체할 교수를 뽑지도 못하게 해 놓고 말이다. 탐욕의 끝이 어디인지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최· 정 모녀한테 그렇게까지 열받을 필요가 없었는 게..
일단 이건 우리나라에서 최고 민감한 주제인 병역하고 전혀 무관한 일이다. 그 아줌마한테 아들이 있지는 않았으니까..
또한, 난리가 났던 분야가 무슨 의전· 로스쿨이나 평범한 문과대, 공대,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따위가 아니다. 애초에 돈 왕창 깨지고 서민들이 범접하지 못하는 예체능 쪽이다.

흙수저 서민의 신분 상승이라든가 안정된 직장하고는 전혀 무관하고, 학술적인 면모도 별로 없는 분야이다. 논문이나 시험 성적 따위가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대회 입상 실적에만 목숨 걸어야 하는 곳이다.
그런 바닥에서 뭐 기여입학 좀 하고 수업 많이 빠지고 학사관리가 파행이었던 게 그게 그렇게까지 문제이고 욕 먹을 일이고 저 사람들만 혼자 심하게 잘못한 짓이었나? 고삐리의 의학 논문 1저자에 비하면 완전 별나라 얘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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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 머리가 나쁘지 않고서는 좌좀좌빨이 될 수 없겠다는 걸 실감한다. 거기에다가 양심까지 털나면(혹은 탈나면) 금상첨화다. 비슷한 게 이 외수 버전, 심지어 당사자 자신 버전도 있다. 과거에 자신이 해 놓은 말에 정확하게 걸려드는 게 어찌나 많은지, 이건 뭐 조적조 미래 예언 바이블 수준이다.
기록이 몽땅 다 남고, 쥐나 새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도청장치가 존재하는 요즘 세상에 어째 겁도 없이 저렇게 자승자박하는 말을 함부로 씨부리는 걸까?

그래서 그런지 내 주변의 좌좀들은 저 아줌마에 비해서는 일말의 염치가 있는지, 요즘은 온· 오프라인을 불문하고 정치 얘기가 쏙~ 들어갔더라.
3~4년 전 정권 때 무슨무슨 장관이고 총리고 내정자가 저 따구였으면 단언하건대 나라가 뒤집어졌을 텐데!

심은 대로 거둔다는 걸 개돼지 좀비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냥 무조건 묻지 마 진영논리는 출 32:26처럼 신을 대상으로 행사하는 것이지, 사람을 대상으로 행사하는 건 여러 모로 추하고 보기 좋지 않다.

내가 마르고 닳도록 강조하는 거지만 우리나라 정치판은 색깔과 이념만으로 변별하고 승부해야 된다. 종교는 오로지 교리만 보고 판단해야 하듯이 말이다. 우리나라 수준에서 뭔 되도 않은 도덕 청렴 지조냐? 도대체 언제까지 내로남불 행태에나 실망할 참이냐?
그건 좌든 우든 피장파장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으니 지금 시국은 확실하게 친일친미냐, 아니면 친중종북이냐 양자택일 구도라고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저건 좌우 같은 취향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영역이라는 것도 덤으로 인지하고 말이다.

2. 경마? 승마?

아무튼.. 본인은 정 유라가 요즘 뉴스를 보면 참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든 한편으로..
승마라는 게 어떻게 돌아가는 스포츠인지도 문득 궁금해서 한번 찾아 봤다. 난 저 바닥은 진짜 하나도 1도 경험하거나 관람한 게 없고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일단 무슨 육상이나 사이클 경기처럼 말 탄 기수 여러 명이 평지를 죽어라고 달리고 경쟁자를 추월해서 빨리 골인하는 순서대로 금은동메달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 그건 경마이지, 승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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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반해 승마는 혼자서 장애물 넘고 말을 갖고 묘기를 하는 기교로 승부를 낸다. 마치 군대 사격과 스포츠 사격만큼이나 서로 지향점이 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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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선수의 복장이 어째 옛날 마술사 정장과 닮아서 馬術과 魔術을 모두 의도한 건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성경에서 약 3:3이 한국어 기준으로는 혀(=언어 말)와 동물 말이 모두 떠올라서 공감각적 심상이 형성되는 것처럼 말이다.
선거 관련 용어인 출마도 한자는 馬이며, 승마에 빗대어서 의미가 확장된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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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에는 전군을 통틀어 유일하게, 군견도 아니고 군마를 운용하는 군마대라는 부대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 소속되어 말을 조련할 줄 아는 특수 전공 출신의 병사가 생도들에게 승마를 맛보기 수준으로 가르치는 조교 역할을 한댄다.
이건 프로그래머 양성 커리큘럼에다 비유하자면, 엄청 옛날 CPU의 어셈블리어 코딩을 맛보기 차원에서 가르치는 것과 비슷하겠다. 군인에게 승마는 총검술 같은 완전 레거시 스킬일 테니 말이다.

한편.. 말 탄 선수들이 헬멧을 쓰는 건.. 무슨 오토바이 같은 통상적인 충돌 사고가 아니라, 말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에 대비한 것이다.
큰 말의 등은 일반인이 선뜻 올라타기 어려울 정도로 꽤 높다. 그런데 무슨 말이 몸뚱이가 앞뒤로 두 동강(...;;) 나서 사람이 아래로 푹 꺼질 리는 없으니, 말에서 떨어지게 되면 절대로 다리부터 먼저 곱게 착지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낙마 사고는 이륜차 교통사고와는 다른 방향으로 매우 위험하다. 뻑하면 팔· 다리 부러지는 중상을 입거나 심지어 허리나 목이 부러지고 사망까지 할 수 있다. 이건 뭐 무작정 사람 몸을 말에다 결박만 해 놓는다고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6년 12월 7일, 도하 아시안게임 때 김 형칠 선수가 경기 중에 낙마 사고로 목숨을 잃는 참극을 당한 바 있다.
평범하게 말에서 내동댕이쳐진 충격만으로 죽은 추락사가 아니었다. 말이 앞다리가 장애물에 걸리는 바람에 앞으로 고꾸라졌으며, 사람과 말의 상하 위치가 완전히 뒤집혔다. 그래서 그는 500kg에 달하는 말의 몸뚱이에 깔려 현장에서 즉사했다.;;

하필 경부선 전구간 전철화가 완료되기 하루 전날 저런 일이 있었다니..
마치 이 한열 열사가 새마을호 전후동력 디젤 동차가 운행되기 바로 전날 죽은 것과 비슷한 심상이 느껴졌다.

3. 복권

말 하니까 경마에 이어 복권 쪽으로도 의식이 흐르는구나. ㄲㄲㄲㄲ
세상의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들 중에는 지불한 액수만큼 성능이 무조건 발휘되는(그렇지 않다면 불량품이므로 교환· 환불 대상) 일반적인 물건만 있는 게 아니다. 아예 대놓고 모 아니면 도이고 복불복 형태여서 운에 맡겨야 하며, '꽝'이 있을 수 있는 물건도 있다. 요즘은 온라인 게임의 유료 아이템조차 랜덤박스라고 저런 형태로 나오는 게 있다고 들었다.

주식이나 투자용 금융 상품은 그 운빨이란 게 소비자에만 있는 게 아니고 경제 전반의 미래에 달려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운빨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소비자의 실력과 안목과 감도 필요하다. 또한, 경마만 해도 말과 선수에 대해서 뭘 좀 알아야 승률이 높은 말에게 베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것 말고 진짜 운밖에 변수가 없는 것도 있는데, 애들을 상대로는 물건 자체에 당첨 여부가 고정적으로 담겨 있는 각종 뽑기나 과자 봉지 속 사은품 아이템이 있었다. (컴파일 타임??) 긁어 보면 당첨 여부를 알 수 있다.
그에 반해 복권은 나중에 당첨 번호가 추첨을 통해 따로 정해진다. (런타임??)

우리나라에서는 초창기에 나라가 워낙 가난하다 보니, 국가적으로 목돈이 필요할 때 무슨 국채도 아니고 복권을 비정기적으로 발행한 바 있다. 예를 들어 1948년 런던 올림픽 참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이재민 복구를 위해, 6· 25 전쟁 피해 복구를 위해...
사람들은 당첨 대박을 꿈꾸면서 푼돈을 내서 복권을 사지만, 실제로는 이걸로 벌어들인 돈의 절반 이하 매우 소수만 당첨금 지급용으로 사용된다. 나머지 이윤은 당장 저런 일에 쓰였다. 이게 대한민국의 복권 시즌 1이었다.

그 뒤 제2기는 197, 80년대 주택 복권이고, 제3기는 1990년대에 엑스포 복권이니 체육 복권이니 하면서 온갖 은행과 공공기관, 지방 자치 단체에서 발행한 복권들이 난립하던 시기이다. 중앙 정부에서 복권을 발행하던 1기와는 양상이 확 달라진 셈이다. 그러다가 2002년 말, 스포츠토토와 로또가 전국을 평정한 시즌4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당첨금을 지급하는 은행이 국민 은행이다가 농협으로 굉장히 오래 전에 바뀌었더라. 허나, 본인은 이쪽으로 관심이 없다 보니 그 사실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

사실, 복권 몇 장 내지 몇만 원 판돈으로 카지노 몇 판 수준의 가벼운 노름은..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돈을 억울하게(?) 잃은 게 아니다. 약간의 즐거운 희망고문을 체험한 비용, 그리고 유흥을 즐기고 자리를 차지하고 서빙을 받은 게임비를 지불했을 뿐이라고 생각해야 된다. 내가 물리적으로 내는 돈과 저렇게 얻는 효과를 비교했을 때 가성비가 안 맞다면 안 하면 되고, 예산을 다 소모했다면 미련 없이 일어나야 된다.

저걸로 작정하고 생업을 대체하겠다? 대박 내겠다? 잃었던 돈을 되찾겠다? 세상에 그것만치 멍청한 망상이 없으니 단념해야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신병 수준으로 그런 멍청한 망상에 빠진 중독자가 적지 않은 덕분에 저런 업계가 잘 돌아가고 있다. ㅠ.ㅠ 도박의 최종 승자는 도박장 업주일 뿐이거늘 말이다. 복권도 마찬가지로, 돈을 제일 많이 버는 최종 승자는 그냥 복권 발행사일 뿐이다.

다만, 저거랑 별개로.. 복권의 가격에 세금도 이미 포함돼 있었는데 당첨금에다가 세금을 굉장히 많이 또 떼어 가는 건 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든다. 나야 뭐 복권 고액 당첨자가 된 적이 없었고 그럴 일도 없으니 어찌 됐건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원론적으로만 생각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고위층들의 편법 비리 소식을 접하다 보면.. 평범하게 일하고 돈 버는 것에 대해 회의감과 허탈감,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이래 갖고는 집 장만이고 자녀 양육이고 노후고 미래가 안 보이니 자꾸 "인생한방" 쪽으로 관심이 늘어 간다. 바람직한 사회 분위기는 당연히 아닐 것이다. 다만, 이것도 마냥 서민들만의 탓은 아니고 인간의 욕심과 결부지어서 총체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복잡한 문제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9/16 08:36 2019/09/1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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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민 아파트

고급형으로 시작했던 한국의 원조 아파트와 달리, '시민 아파트'라는 것이 등장하면서 아파트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이건 서민· 빈민들을 좁은 서울 땅에 최대한 많이 수용하기 위해 나라에서 작정하고 건축한 저가의(언제까지나 상대적으로) 양산형 보급형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로 치면 경차인 셈이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시골 빈민들이 아무 일자리나 구하러 무작정 닥치고 서울로 몰려드니.. 서울의 인구는 조선, 일제 시대 등을 통틀어 어느 때보다도 크게 증가하고 있었다. 이들도 발 뻗고 잘 곳이 있어야 한지라, 서울 시내엔 무슨 6· 25 피난민들이 몰렸던 부산처럼 무허가 판잣집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서 도시 미관을 해치기 시작했다. 당장 청계천 주변만 해도 195, 60년대 사진을 보면 판잣집들이 장난이 아니게 많이 늘어서 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이런 판자촌을 대체할 아파트들을 '시민 아파트'라는 이름으로 서울 곳곳에 시급히 짓게 되었다. 2천 가구에 달하는 주택을 공급할 작정이었기 때문에 과거의 고급형 아파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규모였다. 이 과업을 추진한 주역이 바로 당시 서울 시장이자 불도저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김 현옥이다.

시민 아파트라는 명목으로 지어진 가장 오래된 최초의 아파트는 1969년 4월에 최초 입주가 시작된 '금화 시민 아파트'였다. 경기 대학교 서울 캠퍼스의 바로 뒤쪽 언덕에 있다. 여기서 금화란 아파트가 자리잡은 기슭인 안산의 다른 이름이다. 무악산, 금화산 모두 같은 산을 가리킨다.
2010년대 초중반까지 서울에 이런 붕괴 직전의 폐가 흉가가 있다면서 매스컴을 탔던 그 문제의 아파트가 바로 이것이었는데.. 2015년에 다 철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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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2000년대 초부터 이미 안전 진단 검사에서 허구헌날 D급 E급 폐급을 받아서 오늘 내일 하고 있었지만, 입주민들은 여기가 아니면 딱히 갈 데가 없던지라 불안해하면서도 철거 직전까지 이 아파트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래도 다행히 불미스러운 붕괴 사고는 안 나고 곱게 철거되긴 했다.

다른 유명한 시민 아파트로는 삼일 시민 아파트라는 게 있었다. 얘는 산기슭 위주로 만들어진 다른 시민 아파트들과 달리 평지인 청계천 근처에 지어졌으며, 유일하게 주상복합 형태이기도 했다. 1960년대 말 당시에 남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고(63 빌딩 이전) 지리적으로도 가깝던 삼일 빌딩과 비슷한 시기에 지어져서 이름도 똑같이 '삼일'이라고 붙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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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 고가 도로 위에서 아파트 한 동을 본 모습. 얘는 큰 그림을 찾기가 어려웠다)

삼일 시민 아파트는 2004년경에 철거되었다. 청계 고가의 철거와 비슷한 타이밍이다. 일부 상가 건물은 아직까지 현존하긴 하지만 아파트의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또 이 글에서 언급할 가치가 있는 시민 아파트는 남산 기슭에 있는 회현 시민 아파트이다. 2개 동 중 2차분은 1970년 5월, 전국에서 마지막으로 건설된 시민 아파트이며 2019년 현재까지 철거되지 않고 입주민도 존재하는 유일한 시민 아파트이다. 역사적 가치를 감안하여 보존하느냐, 아니면 안전을 위해 철거하느냐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는데, 얘는 리모델링만 하고 철거까지는 하지 않는 것으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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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 ㄷ자 모양으로 한 동 형태이다. 두 동으로 따로 떨어진 게 아님.)

시민 아파트의 건설과 관련하여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흑역사가 있으니 바로 1970년 4월의 '와우 시민 아파트 붕괴 사고'이다.
서민용 양산형 보급형 아파트를 짓는다는 계획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다혈질 불도저 시장이 너무 짧은 기간과 너무 부족한 예산만 주고서 까라면 까 군대식으로 시공업체들을 쥐어짜며 밀어붙인 게 문제였다. 업자들도 물자 떼어먹기 비리와 졸속 부실 시공이 관행이었고.. 이 때문에 홍대 근처 와우산 기슭의 지반을 제대로 안 닦고 지었던 아파트 한 동이 해빙기에 지반이 내려앉으면서 같이 자빠져 버렸다.

이 사고로 30여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그나마 입주가 덜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이 정도 피해밖에 안 난 것이었다.
이 사고의 책임을 지고 김 현옥은 서울 시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후임인 양 택식 시장은 훗날 서울 지하철 1호선을 잘 완성했는데, 하필 개통식 때 영부인 저격 사건이 터져서 물러나게 되니 이래 저래 참 허무하다.

김 현옥 시장은 아파트로도 감당이 안 되는 판자촌 주민들을 지금의 성남 구시가지인 서울 외곽 변두리로 반강제로 이주시키기까지 했다. 거기 가면 서울시에서 주거와 교통과 각종 생활 인프라를 저렴하게 책임져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현장은 텐트 하나 달랑 쳐져 있는 허허벌판이었으며 약속이 지켜진 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광주대단지 사건 같은 병크가 터지기도 했다. 이것은 아파트 붕괴 사고와 더불어 흑역사의 양대 산맥이다.

시민 아파트들은 저렇게 시범타로 붕괴된 것을 차치하더라도 애초에 고급 프리미엄이 아니라 열악하게 지어졌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서 상태가 급속히 악화됐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던 고가차도들이 2000년대 이후부터 하나 둘 철거됐듯, 시민 아파트들도 지금은 거의 다 남지 않고 주차장, 공원 등 다양한 형태로 바뀌었다. 회현 시민 아파트 제2동은 와우 아파트 사고를 반면교사 삼아 그나마 더 튼튼하게 지어졌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인왕산 수성동 계곡도 원래 거기에 옥인 시민 아파트가 있었는데 철거되고 원래 형태가 복원됐다고 들었다.

5. 그 이후

지금까지 얘기가 나왔던 게 일제 시대의 충정 아파트, 그리고 할배 때의 종암 아파트, 나중에 박통 때의 마포와 시민 아파트 시리즈들인데.. 이 정도면 우리나라의 초창기 원조 아파트들과 건설 트렌드는 그럭저럭 다 다룬 것 같다.

1970년을 전후해서 너무 무리해서 지었던 시민 아파트는 아파트에 대한 대외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깎아내렸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그 인식을 개선하고자 아파트의 컨셉을 다시 고급화했으며, 그 첫 작품으로 1971년 말에 (1) '여의도 시범 아파트'를 내놓았다. 이름조차도 '시민' 대신 '시범(example!!)'이라고 바꾼 것이다. 여의도 시범 아파트는 국내에서 엘리베이터가 최초로 설치된 고층 아파트라고 한다..;;

아울러, 시민 아파트 자체는 망했지만 시민 아파트의 본래 취지이던 '서민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주택 공급'이라는 이념도 여전히 등한시할 수는 없다. 그 역할은 대한 주택 공사에서 분양하는 (2) '주공 아파트'가 담당하게 됐다. 주공 아파트 1호는 1972년에 지어진 반포 주공 아파트라고 한다. 그리고 74년에는 잠실 주공 아파트도 만들어졌다. 여의도와 강남의 이 아파트들은 아직까지 재건축되지 않고 건재하는 중이다.

1970년대에는 강남 허허벌판도 활발하게 개발되기 시작했다. 그 이름도 유명한 (3) 대치동 은마 아파트는 1979년부터 입주가 시작됐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시간· 공간 배경이 그 바닥이다.
세월이 흘러 서울의 서쪽 양천구의 (4) 목동에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1985년부터 1988년에  걸쳐 입주가 진행됐다. 간선 도로가 독특한 일방통행 형태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끝으로, (5) 1988 서울 올림픽과 관련된 대규모 아파트 건설과 분양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을 방문하는 수많은 선수와 언론 기자들이 거주할 '올림픽 선수 기자촌 아파트'가 올림픽 공원 바로 옆에 동그란 방사형으로 지어졌으며, 올림픽이 끝나고 그들이 떠난 뒤엔 민간에 분양되었다. 그리고 가락시장 남쪽의 문정동에는 '올림픽 훼밀리타운 아파트'라고 해서 선수의 가족들.. 그러니 기자촌보다는 올림픽과의 관련이 약간 덜한 주변 사람들이 머물라고 역시 수천 세대 규모로 지어졌다. 세월이 흘러 이 건물들 역시 노후하여 재건축 대상에 올라 있다.

이런 식이면 요즘은 올림픽 한번 치르려면 경기장뿐만 아니라 주변에 아파트를 짓는 것도 필수인 듯하다. 그 많은 사람들을 짧지만은 않은 기간 동안(수 주 이상) 내내 호텔에 투숙시킬 수는 없으니 말이다. 서울 올림픽보다 최근인 평창 동계 올림픽도 동일하게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라는 유물을 평창군에 남겼다.
그 반면, 옛날에 2차 대전이 끝난 직후에 치러졌던 1948 런던 올림픽 때는 세계가 가난하다 보니 군대 천막과 대학교 기숙사를 동원해서 선수촌을 꾸렸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서울과 수도권은 땅값이 치솟고 온통 아파트 천지가 돼 왔다. 그린벨트는 차근차근 풀리고, 논밭으로 놀고 있던 땅엔 건물이 들어서고, 군부대나 그에 준하는 엄한 시설들은 더 먼 데로 이전하고, 꾸질꾸질한 상가와 단독 주택, 낡고 낮은 아파트들은 재개발된다. 그리고 그걸로도 감당을 못 하니 서울 밖에 신도시가 개발되고 이것도 1기, 2기를 거쳐서 3기까지 만드네 마네 하는 지경이다. 일산과 분당이라는 1기 신도시 건설이 시작된 게 무려 노 태우 때였다.

원래 허허벌판이던 곳을 개발하는 거라면 차라리 나은데 재건축이라면 이미 살고 있던 사람들을 보상하고 이주시키는 게 보통 문제가 아닐 것 같다. 원래 그 땅이나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은 보상에 동의하고 빠져나갔는데 거기에 세들어 살던 사람들, 애초에 그 부동산에 대해 온전한 권리를 갖고 있지 않던 사람들이 더 난리를 치는 편이라고 들었다. 뭐, 악의적인 알박기를 시전하는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6. 여러가지 관련 생각들

(1) 서울대나 카이스트 같은 일부 국립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교수 아파트, 그리고 예전에 천장산 근처에서 봤던 과학자 아파트는 어디서 어떻게 운영되는 걸까..?

(2) 옛날에는 아파트 이름이 그냥 지역명이나 시공사의 이름이 붙은 무미건조한 2~3음절 한자어 위주였지만, 2000년대부터는 그 이름도 브랜드화해서 온갖 외래어가 섞인 복잡한 명칭으로 바뀌고 있다. 자이, 래미안, 푸르지오, 블루밍 등등..

그래서 주택 공사조차도 주공이라는 싼티 나는 이름 대신 휴먼시아라는 그럴싸한 브랜드명을 개발했는데, 이게 웬걸 '휴거'(휴먼시아에 사는 거지 깽깽이..)라는 엽기적인 개드립 앞에서 버로우 타고 그걸 흑역사 처리한 바 있다.
쟤들은 LH라는 이니셜을 쓰는데 SH(서울 주택 도시 공사)는 또 뭔지?
옛날에는 주택 마련 복권이라고 해서 매주 TV에서 예쁘장한 아가씨들이 "쏘세요!" 소리와 함께 다트를 던지거나 공을 아무거나 꺼내는 추첨도 했는데.. 요즘도 그런 걸 하는지, 목돈 마련 절차가 어찌 되나 궁금하다. 나도 이런 건 조만간 알아야 할 텐데.. >_<

(3)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에 남산 외인 아파트의 발파 해체 장면이 굉장히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렇게 건물을 철거할 때나, 또 예전에 삼풍 백화점이 스스로 붕괴했을 때에나, 심지어 9· 11 테러 때 세계 무역 센터가 무너졌을 때에도.. 건물이 무너질 때는 정말 엄청난 양의 먼지 폭풍이 발생하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급격하게 주변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 아주 가늘고 길게 야금야금 조용히 건물을 철거하는 것도 고급 기술이다.
일본에서 지난 2012~13년에.. 우리나라 영친왕이 머물렀던 것으로 유명한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의 신관을 천천히 철거했다. 수십~수백 배속 화면을 보면 건물이 차츰차츰 높이가 낮아지면서 땅으로 꺼져 사라지는 걸 볼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9/09/01 19:35 2019/09/0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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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오늘날 한국인들 대부분의 주거 형태, 또는 최소한 선호하고 지향하는 주거 형태는 아파트임이 틀림없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서울· 수도권 중심부의 직장· 상권과 최대한 가까운 곳에 집을 잡고 살려고 바둥대고 애쓴다. 하지만 결혼해서 처자식이 생기고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해지면 어쩔 수 없이 더 멀고 저렴한 외곽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집이 서울 도심에서 몇 km 멀어질 때마다 주거비는 크게 감소하지만 교통비와 통근 시간이 얼마씩 증가하고 삶의 질은 그에 비례해서 떨어진다는 무슨 연구 결과가 나온 게 있다.
다만, 이공계 출신의 경우, 공장이나 연구소, 사업장이 아예 대놓고 지방에 있기 때문에 인서울에 집착하는 게 무의미해지기도 한다. 문돌이도 지방직 공무원에 합격해서 외진 데로 발령 나면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래도 안정된 직업을 얻은 지방행이니 사정이 낫다.

이 와중에 아파트는.. 비록 층· 벽간 소음 같은 문제가 케바케로 있긴 하지만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몰려 살기 용이하게 해 주며, 행정 능률과 토지의 이용 효율을 끌어올리는 여러 장점들이 있다. 그에 비해 단독 주택은 특별히 넓은 정원 있고 차고에다 수영장 있고 개집 있고 다락방까지 있는 미국식 전원 생활이 아닌 이상, 왠지 꾸질꾸질하고 별로 좋지 않아 보인다.

좁은 골목길에 치안 안 좋고, 주차 문제도 심각하고.. 더구나 집의 모든 관리를 주인이 일일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점은 느긋한 전원 생활형이라 해도 변함없다. 어지간해서는 그냥 월 몇만 원 관리비로 모든 걸 퉁치는 게 나아 보인다. 이런 점에서 단독 주택과 아파트의 차이는 자동차로 치면 자가용이냐 대중교통+렌트냐의 차이와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뭐, 반대로 아파트도 좁고 열악하고 닭장 같은 곳은 단독 주택만도 못한 곳, 돈이 부족한 사회 초년생 신혼 부부나 잠시 세들어 사는 곳처럼 묘사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 공동 주택도 급이 다 같은 게 아니기 때문이며, 사실 저게 미국에서 아파트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기도 하다. 뭐, 뉴욕 같이 뽁짝뽁짝 대도시는 논외로 하고 말이다.

아파트는 여느 기숙사나 관사, 고시원 같은 곳과 달리, 화장실이 공동이 아니라 각 집마다 따로 있다. 더 좋은 곳은 안방에도 부부 욕실 같은 게 딸려 있기도 하다.
그리고 보통은 입구가 여럿 있어서 각 입구마다 층당 집이 둘만 있는 게 보통이다. 층수는 10층 이상으로 쭉쭉 잘도 올라간다.

하지만 맨션인지 빌라인지 하는 곳은 통상적인 아파트만치 높지 않다. 층수는 그냥 한 자리수이며, 입구는 하나만 있다. 그리고 한 층에서 모든 집들이 한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뭐, 아파트 중에도 이런 형태인 게 없지는 않긴 하지만, 입구별로 층당 집이 둘씩만 있는 아파트보다는 폐쇄성· 보안성이 약한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초가집도 기와집도 아닌 이런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는 한국 땅에 언제 처음으로 등장한 걸까? 그리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주거용 아파트는 무엇일까?

2. 일제 시대

아파트라는 게 조선 내지 대한제국 시절에 존재했을 리는 만무하고.. 짐작하다시피 이건 일제 시대 때 일본인이 지은 건물이 최초이다. 1930년에 경성 미쿠니(三國)상사라는 곳에서 일본인 직원을 위한 관사를 지금의 회현동에 지었다고 한다. 그게 '미쿠니 아파트'라고 불렸다.

화장실은 공동이고 단순 기숙사· 숙소 같은 느낌을 탈피하기 어려운 구석도 있으나, 그래도 이게 한반도에서 상업· 업무가 아닌 주거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3층 이상짜리 건물이었다.
지금처럼 여러 동으로 이루어진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그냥 한 채가 전부였지만, 그 시절에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이 아파트 한 채 안에 수십 세대가 한꺼번에 입주해서 살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미쿠니 아파트는 1990년에 철거돼서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그 뒤 1935년에, 같은 회사에서 또 지은 아파트가 바로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로 지어진 '유림 아파트'이다. 얘는 직원 관사가 아니라 일반인에게 임대· 분양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진정한 아파트였다. 뭐, 그래 봤자 그 시절에 이런 곳에서 살 만한 사람은 일본인밖에 없었다. 조선인은 부자라 해도 이런 데가 아닌 전용 한옥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얘는 '충정 아파트'라고 이름이 바뀐 뒤, 놀랍게도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고 심지어 거주민도 아직 있다! 2019년 현재 한국 땅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아파트가 이 아파트이다.
위치도 어디 엄한 산기슭 비탈길이 아니다. 충정로 역 9번 출구로 나가면 100미터도 채 안 되는 전방에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흐음.. 녹색 도색이 참 추레해 보인다..)
이 아파트는 중간에 호텔로 용도가 바뀌었다가 다시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리고 1979년쯤에 충정로 도로의 확장 공사 때문에 일부가 헐리기도 했다. 그 대신 한 층 더 증축되어 5층이 됐다. 이건 엄밀히 말하면 무허가 불법 증축이었으며, 헐린 것과 인과관계가 있는 증축도 아니었다.

충정 아파트 다음으로 1942년엔 대한 주택 공사의 전신인 '조선 주택영단'이라는 조직 명의로 한국인이 건설한 아파트도 등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더 자세한 기록이 전해지는 게 없으며, 건물도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니 한국인이 지은 아파트의 역사는 역시나 해방 후, 더 구체적으로는 6· 25 전쟁까지 끝난 뒤에나 제대로 시작될 수 있었다.

옛날 일본인들이 건물 하나는 튼튼하게 잘 만들어 놨나 보다. =_=;;; 구 서울 역이나 중앙청 건물처럼 말이다. 사실, 태평양 전쟁이 없었고 일제 식민지가 평화롭게 계속됐으면 아파트도 더 지어졌고 1940년대엔 경성에 아예 지하철이 들어설 수도 있었을 거라고 그런다.
일본은 아예 경기도 용인 정도에다가 일본의 수도를 옮겨서 본진으로 삼고, 조선인들은 지진 많은 자기네 섬이나 아니면 만주 벌판으로 쫓아낼 작정이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이다. 그런 망상은 실현되지 않았다.

3. 해방 이후

해방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지어진 최초의 아파트는 1958년 11월, 고려대 근처의 야산 기슭에 지어진 종암 아파트였다(3개동). 철도나 원자로 같은 기간 시설, 공공시설이 아니라 민간 아파트 건물이 지어졌을 뿐인데 준공식 때 무려 할배 대통령이 참석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아파트의 완공이란 게 그 시절엔 보통일이 아니었다. 집집마다 편리하고 위생적인 수세식 화장실이 갖춰진 것조차도 그때는 최첨단 테크놀러지라고 언론 대서특필감이었으니 말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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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암 아파트는 37년을 존속하다가 1995년에 헐렸으며, 그 부지에는 다른 아파트가 재건축되어 들어섰다.

할배 시절은 워낙 가난하고 열악했으니 국내의 아파트 건축 기록이 이런 것밖에 없다. 본격적으로 아파트가 지어진 것은 역시나 그 다음 박통 때부터이다.
박통 때 최초로 지어진 아파트는 1962년과 1964년 두 차례에 걸쳐 완공된 '마포 아파트'이다. 얘는 우리나라 최초로 대규모 단지 형태를 표방하고(10개동 642세대) 지어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6개동까지만 지어졌던 1962년 당시의 항공 사진. 광활한 공간이 참 인상적이다.)
이 아파트는 30년 남짓 존속하다가 종암 아파트보다도 더 이른 1991년에 철거되었다. 그 자리에는 마포 삼성 아파트(1994년, 14개동 941가구!!)가 들어섰는데, 얘는 우리나라 최초의 "재건축 아파트"(2세대!)라고 한다.

종암과 마포라는 두 원조 아파트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처음엔 상류층을 위한 고급형으로 출발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나중에 60년대 중· 후반에는 세운 상가, 낙원 상가 같은 주상 복합 아파트가 만들어졌으며, 미군 간부를 포함해 외국에서 모셔 온 VIP가 처자식 데리고 편히 지내라고 '외인 아파트'도 지어졌다. 이것들 역시 모두 서민과는 큰 관계가 없는 고급형이었다. 대학 교수, 정· 재계 인사, 인기 연예인 같은 계층이나 들어가 살 수 있었다.
(下에서 계속됨)

Posted by 사무엘

2019/08/30 08:33 2019/08/3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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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UN의 군사 활동 양상

6· 25 사변 당시의 유엔군과 지금의 유엔 평화유지군의 관계는, 구 일본군과 지금의 일본 자위대와 비슷한 관계/위상이지 않을까 싶다. 전자가 후자로 바뀌면서 뭔가가 크게 너프 됐다는 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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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유엔 평화유지군은 옛날처럼 그렇게 적극적으로 누구 편을 들고 싸우지 않는다. 그리고 옛날 유엔군이 지금처럼 파란 전투모 쓰고 흰 탱크 몰면서 위장이라고는 완전히 포기한 외형으로 북괴와 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계 대전 때는 연합군, 6· 25 때는 유엔군, 그리고 걸프 전쟁 때는 다국적군이 뭔가 정의의 편에 선 진영이었다. 우리나라는 인류 역사상 거의 전무후무한 수많은 나라들의 도움을 한몸에 받았다.

2. 탄약창

육군 부대들 중에서 탄약창은 돌아가는 스타일이 공군과 가장 비슷한 곳이지 싶다. 근무 인원에 비해 엄청나게 넓으며, 행군하고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곳을 방어한다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생방 훈련을 빡세게 하는 것도 공군과 비슷하다.

그도 그럴 것이 탄약창이 보관하고 취급하는 물건들은 전투력의 원천인 총알을 날아가게 하는 폭발력을 내는 위험한 화학 물질들이다. 자동차나 비행기를 움직이게 하는 석유만큼이나 취급에 절대 주의해야 한다. 공격을 받아서 탄약들이 비좁은 곳에서 연쇄적으로 유폭이라도 한다면 Doom 2의 Barrel o' fun이 현실에서 벌어지게 된다..;;
뭐 그래도 탄약창이 비행기를 띄우는 곳은 아니니 공군 기지처럼 반드시 넓은 평지에 있다거나, 활주로 비스무리한 게 있고 새를 쫓아내는 인원을 운용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한편, 군함의 경우 배 한 척이 육군으로 치면 병사들의 생활관과 전차와 자주포와 곡사포와 탄약창 역할을 몽땅 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다른 곳을 많이 맞아서 부서질 경우, 항해 불가능 상태가 되고 물이 새서 침몰할 수 있다. 하지만 탄약고를 맞아서 탄약들이 폭발한다면.. 평범하게 침몰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무리 큰 배라도 화염 버섯구름과 함께 두 동강 나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박살날 수 있다. 승조원들은 거의 다 죽는다..;;

3. 지휘통제소 지하 벙커

공항이나 항공모함에는 관제탑이 있고 철도에도 모처에 종합 사령실 내지 관제 센터가 있다. 그것처럼.. 군대에도 높으신 분들이 모여서 작전 회의를 하는 비밀 지휘통제실이란 게 있다. 지난 2011년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을 지휘했던 그런 장소 말이다.

공항 관제탑이야 시야 확보 때문에 눈에 잘 띄는 높은 곳에 있지만, 철도나 군대의 비밀 장소는 그런 거 없고 일반인들의 눈에 안 띄는 곳에 꽁꽁 숨겨져 있다. 폭격을 맞아도 안전한 지하 벙커 형태가 대부분일 것이다.

안 그래도 군부대는 전지역이 민간인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보안 시설인데, 이런 지휘통제실은 보안 시설 중에서도 더욱 삼엄한 보안 시설이다. 저기는 병(상황병 보직)과 간부를 막론하고 신원 조회를 통과한 인원만 출입할 수 있다. 평범한 생활관이나 연병장 정도를 사진 찍다가 걸리면 카메라를 빼앗기고 벌금이나 영창 같은 경징계를 받는 수준에 그치겠지만, 저기서 얼쩡거리다가 걸리면 아마 군사 재판에 회부될 것이다.

우리나라에 지하 벙커가 한 곳만 있지는 않다.
먼저 관악산 남태령의 수방사 부대 지하에 B1이라는 벙커가 있어서 대통령이 취임 첫 해에 관례적으로 여기를 방문한다고 한다. 대통령은 취임 첫 해에 경호처 요원들의 경호 시범을 관람한다던데 벙커 방문도 그렇게 하는가 보다.

그리고 의외로 서울대 내부 지하에도 B5라는 벙커가 있는데... 한국어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B1과 B5는 어차피 같은 관악산이기도 하고 별로 멀지도 않으니 둘이 지하 통로로 연결도 돼 있다고 한다. 또한, 용산의 국방부 청사 지하에도 B2라는 벙커가 있다. (그럼 B3, B4는??)

우리나라 정부뿐만 아니라 미군 역시 자체적인 지하 벙커를 만들어 놓은 게 있다.
일단 서울 안의 미국 영토인 용산 주한미군 부대 내부에 'CC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있다. 참고로 CC는.. 스타크래프트 테란의 건물 명칭의 이니셜과 같다.
과거 전땅크가 12· 12 사태를 일으켰던 당시에 노 재현 국방 장관은 홈그라운드인 국방부 B2 벙커는 너무 가까우니 위험하고.. 근처의 저 미군 벙커로 피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악산뿐만 아니라 청계산에도 군부대가 많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지만.. 알고 보니 본인이 예전에 오른 적이 있는 상적동 쪽에 'CP Tango'라는 이름으로 주한미군 지하 벙커가 하나 더 있다. 우와.. 2005년에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이던 '콘돌리자 라이스' 여사가 성남 서울 공항을 통해 방한한 뒤 곧장 저기를 방문하여 매스컴을 탄 적이 있다.

미군 지하 벙커는 대구의 미군 기지에도 있으며, 앞으로 주한 미군 기지들이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로 통합되고 나면 거기에도 응당 생길 것이다.
CP에서 P는 GP처럼 post를 뜻한다. CC보다는 격이 낮은 듯..

북한은 6· 25 때 평양 시내가 폭격 맞아서 아주 박살이 난 경험이 있고, 미 제국주의 원쑤들의 첩보 위성도 많이 의식할 테니, 지하를 들쑤셔서 별 시설들을 다 만들어 놨지 싶다.

4. 국군 유해의 항공 송환

지난 2012년 2MB 시절에는 1950년 가을, 6· 25 전쟁 중에 북한 지역에서 전사한 군인들 유해에 대한 조사가 미국과 북한 합동으로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 국군으로 밝혀진 유해가 12구가 하와이를 거쳤다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레카 시절에는 추가적인 송환 실적이 없다가.. 지난 바로 작년에 7년 전보다 훨씬 더 많은 64구의 유해가 추가로 발굴되어서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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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를 운구한 수송기가 우리나라 영공에 진입하자 이번에는 우리나라 전투기들이 작정하고 출동해서 수송기를 호위했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수송기를 향해 거수 경례를 했으며, 에어 포스 원 명대사보다 더 멋진 말을 현실에서 남겼다. (☞ 링크)

"오랜 시간 먼 길 거쳐 오시느라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공군이 안전히 호위하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 때는 유해 수는 훨씬 더 많지만 7년 전과 달리 신원과 유족이 완전히 확인된 유해는 없었던 모양이다.

참고로 전투기들이 멋지게 날아가는 모습을 같은 공중에서 촬영한 사진이나 동영상들은..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카메라맨이 별도의 비행기를 타고 그쪽을 보면서 촬영한 것들이다.
이런 영상물은 저렇게 언론 보도 자료로도 쓰이고 군 내부에서의 정훈 자료로도 쓰인다. 더구나 군용기는 아무 때나 원하는 대로 쉽게 띄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 한번 떴을 때 NG 없이 잘 찍어야 한다.

공군에는 군용기의 공중 촬영만 전담하는 부사관 보직이 따로 존재한다고 한다. 타군의 여느 사진병보다는 훨씬 더 전문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병이 아닌 간부가 맡는다.

5. 개념 연예인

훈훈한 이야기 하나 더 하고 글을 맺겠다.
지난 2016년 말, 배우 이 시영 씨가 MBC의 연말 연예인 시상식에서 버라이어티 신인상을 받았었다. (☞ 링크, 정지 화면 자막 나열)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에 출연한 것 때문인데, 저분은 여느 꼴페와는 정반대로 마치 독립운동가 이 시영이 떠오를 정도로 소감을 정말 건전하고 개념 있게 잘 말했다.

"이 상을 제가 받아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일주일도 안 되게 군대 다녀와서는 상을 받는다는 게 너무 죄송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라를 지키고 계시는 국군 장병들께서 주시는 상이라고 생각하고 고맙게 받겠습니다. (...) 지금까지 많은 군인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제가 안전하고 행복한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


개인적으로 완전 감동 받았다. 영화 <언니>가 저런 훌륭한 배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쫄딱 망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8/10 08:35 2019/08/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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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집 밖에서 알게 모르게 바뀐 것들 관찰

  • 카페에서.. 밖으로 가져가지 않고 실내에서 마시는 음료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담아 주는 게 금지되었다.
  • 백 종원 편의점 도시락에는 원래 동그란 혼합소시지 두 개와 함께 노란 계란말이가 상징처럼 곁들어지곤 했다. 그러다가 지난 16년인가 17년 계란 파동 때부터는 생산원가가 너무 올라서 그런지 다른 가공육으로 슬쩍 대체되었다. 그렇게 1~2년쯤 계속되더니 얼마 전부터는 다시 계란말이로 돌아온 듯하다. 반갑다.
  • 그리고 한때는 카드를 결제하는 수많은 무인 기계들은(셀프 주유/제품 주문, 승차권 발권 등) 말 그대로 카드를 쓰윽 '긁는' 형태가 많았는데 그게 하루아침에 싹 없어진 것 같다. 무조건 카드를 '꽂았다가 빼는' 형태로 바뀌었다. 무슨 보안 강화 때문에 취해진 조치라고 하는데 구체적인 사유는 잘 모르겠다.

하긴, 카드로 단돈 몇천, 몇만 원을 긁을 때마다 매번 서명을 하던 번거로운 관행도 사라진 지 벌써 수 년째 됐다. 오랜만에 20만 원 가까운 금액을 결제할 때 서명을 하면서 옛날 생각이 났다.

2. 음식 관련

(1) 육개장은 여느 국밥이나 탕류와 달리, 질그릇 뚝배기에 담지 않고 냉면과 동일한 큼직한 금속 그릇에다 담는 게 유행인 걸까? 이것도 문득 궁금해진다.
글쎄, 검색을 해 보니 뚝배기에 담긴 육개장도 없지는 않지만, 본인이 집이나 직장 주변의 여러 식당에서 먹어 본 바로는 다들 금속 그릇이었다.

(2) 국과 찌개와 전골의 경계는 무엇인지(단순히 국물과 건더기 비중??),
똑같이 생선을 넣어서 만든 시뻘건 국물 요리인데 꼭 횟감으로 쓰고 남은 재료를 넣은 것만 '매운탕'이고 나머지는 그냥 찌개/탕인지(고등어/꽁치/대구).. 구분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3) 된장과 김치는 한식에서 국 또는 찌개를 담당하는 양대 재료 계열이 아닌가 싶다.
내 경험상으로도 된장에다가는 시래기나 우거지를 곁들이지, 김치나 묵은지를 된장과 함께 요리하지는 않는 것 같다. 또한 된장은 인스턴트 라면 스프로 재현하기가 어려운지, 육개장이나 김치찌개 라면은 있어도 된장찌개 라면은 못 봤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렇게 된장과 김치는 각각 애완동물의 양대 계열인 개와 고양이에 대응하는 심상이 느껴진다.;;
옛날에 어떤 아저씨의 발언 때문에 '개와 돼지'의 연상 비중이 올라갔으며 사실, 성경에서도 둘을 부정한 동물이라고 부정적인 동일선상에 놓고 있다(마 7:6; 벧후 2:22). 허나, 가축이 아닌 애완/반려동물로서는 개와 어울리는 것은 고양이인 듯하다. 주위를 살펴보면, 개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고양이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서 취향이 아주 분명하게 갈리는 것 같다.

3. 아날로그 카운터

지금처럼 기계란 기계에 LCD/LED 디스플레이가 몽땅 깔리기 전, 옛날에는 각종 가변적인 정보를 공개적으로 표시할 때 롤지나 플랩 같은 아날로그 매체가 많이 쓰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특히 점수나 시각, 수량 같은 숫자는 정확하게 무슨 명칭으로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위로 뱅글뱅글 돌아가면서 각 자릿수를 표시하는 카운터가 있었다. 수량을 나타내는 카운터가 쓰인 곳으로는..

  • 자동차 계기판의 구간· 적산거리계
  • 테이프 재생기
  • 주유기 (주유량과 금액이 쭉쭉 올라가는..)

정도가 기억에 남아 있다.
테이프 재생기의 경우, 카운터 옆에 버튼이 두 개 있었다. 한 버튼은 카운터를 0으로 초기화하는 놈이요, 다른 하나는 카운터가 돌아가다가 0이 됐을 때 재생이나 감기 등을 자동으로 중단시킬지 옵션을 지정하는 놈이었다(오오!!).

자동차야 주행으로 인해 한없이 증가만 하는 적산거리계와는 별개로, 구간거리계에는 역시 0 초기화 버튼이 있었다. 이런 reset 버튼이 별도의 동력 없이 어떤 원리로 동작하는지는 마치 진공 청소기의 코드 감기 버튼만큼이나 궁금해진다. (탄성 같은 걸 사용하겠지..)
아 그나저나, 이런 아날로그 카운터가 오늘날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고.. 가스나 수도 계량기에서는 여전히 쓰이고 있긴 한다.

4. 칸막이

2010년대 들어 육상 대중 교통수단에서 칸막이가 생김으로써 풍경이 바뀐 분야가 두 곳 있다. 하나는 지하철 승강장의 스크린도어, 그리고 다른 하나는 버스 운전석을 에워싸는 투명 칸막이이다. 20세기, 그리고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보기 어려웠던 물건들이다.

전자는 잘 알다시피 승강장 투신 자살이 급증하고 사회 문제로 공론화되면서 수백 개에 달하는 많은 역들에 결국 모두 설치됐다.
후자는 버스 운전기사에 대한 폭행 사건이 몇 건 발생하면서 등장했다. 이전에는 주행 중에 기사를 폭행한 것만 특가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았지만 2010년대 중반쯤엔가 그때부터는 정차 중에 폭행한 것도 동일한 수위로 처벌되게 법이 강화되었다.

5. 구기 종목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공놀이들이 존재한다. 그 중 야구, 축구, 농구는 세계구급 경기가 치러지며 억대 연봉을 자랑하는 프로 선수도 있고, 돈줄이 장난 아니게 많이 얽힌 인기 종목이다.

그에 반해 피구, 족구, 발야구 같은 건..;;
뭔가 학교 체육 시간이나 회사원들 워크숍에서도 많이 하지만, 정작 공인된 협회· 단체가 없고 프로 선수나 국제 경기 따위도 없는 비주류이다. 공도 그냥 축구공이나 배구공을 그대로 쓴다.

가위바위보와 팔씨름조차도 협회가 있는데 저것들은 그냥 민간 차원으로만 전승되는 공놀이이인가 싶은 의문이 든다.
뭐, 배구는 분명 프로 경기까지는 있지만 위의 야축농에 비하면 비인기 마이너인 것 같다. 얘만 왜 모래사장 버전인 '비치발리볼'이라는 바리에이션이 존재할까 생각해 봤는데.. 하긴, 모래밭에서는 농구공 드리블이 도저히 되지 않을 것이고, 굉장히 넓은 공간이 필요한 축구와 야구도 마찬가지.. 그러니 배구 정도가 적합하다.

6. 각종 관계 비유

(1) 이와 잇몸의 관계는 자동차에서 타이어와 휠의 관계와 아주 비슷해 보인다.;;

(2) 마네킹, 더미, 러브돌(;;): 똑같이 사람 모양의 인형이지만 용도가 서로 완전히 다르며, 세부적으로 만드는 방식도 차이가 있다.

(3) 스마트폰은 화면을 켜는 순간부터 배터리 소모량이 치솟는다.
이는 자동차로 치면 시동만 걸려 있다가 액셀러레이터 페달까지 밟아서 연료 소모가 폭증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4) 해동했던 고기를 또 냉동하는 것은 고기의 품질에 굉장한 악영향을 끼친다. 이는 마치 사진을 jpg로 저장했다가 또 고치고 저장하는 걸 반복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5) 옛날에 미혼 여자는 댕기머리를 하고 기혼 여자는 머리카락에다 비녀를 꽂았다. 남자는 미혼일 때는 역시 댕기머리가 있었던 것 같고, 결혼한 뒤에는 상투를 틀었다.
오늘날은 남자는 별 특이 사항이 없고, 여자는 파마머리가 사실상 기혼의 상징인 것 같다. 찰랑찰랑한 생머리가 나이 들어서까지 유지되지는 않는가 보다.

(6) 여객기 이코노미석의 좌석은 관례적으로 파란색 계열이다. 영화관의 좌석은 관례적으로 죄다 빨간색 계열이다.
그에 반해 열차 좌석은 KTX나 무궁화호 일부 객실의 경우처럼 초록색도 있는 편이고 케바케이다.
버스나 일반적인 강당의 좌석은 빨강이나 갈색 위주인 것 같다.

(7) 지금은 없어졌지만 미국 팬암 항공사는 1920년대에 창립되고 20세기 중반에 나름 세계를 호령하는 리즈 시절을 구가했다는 점에서 구소련과 비슷하다. 둘 다 1991년 12월이라는 꽤 비슷한 시기에 망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것도 동일하다.

팬암 이후로 미국에는 팬암 같은 독보적인 영향력을 가진 단일 메이저 항공사가 존재하지 않고 유나이티드, 델타, 아메리칸 이렇게 3개가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중국도 국토가 거대해서 그런지 국영 항공사가 3개로(국제, 동방, 남방) 나뉘어 있다.
팬암은 마소의 Windows/Office XP보다 훨씬 전부터 경험 ,경험(experience)를 강조하는 광고를 내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7. 나머지

(1) 중이 제 머리는 못 깎으며, 컴공과만 나왔다고 해서 컴퓨터 조립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제아무리 최정예 특전사네 UDT네 뭐네 해도 맨몸에 총 맞으면 죽는 건 똑같다. (스타에서 마린과 고스트의 체력 차이는..??)
제아무리 골수 철덕이어도 명절 귀향 열차 승차권을 뚝딱 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주변에서 본인에게 이런 걸 문의하는 분이 가끔 계신데..;; 번지수 잘못 찾은 거다. ㅠㅠ

(2) 세상에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군대라는 비민주적인 조직이 있어야 하고, 위장 조작까지도 불사하는 첩보 기관이 음지에 있어야 한다.
아무리 "목표는 수단을 정당화한다"라는 무자비한 이념을 지지하지 않는다 해도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이 없을 수는 없다. 이는 세상에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는 걸 보여주는 예인 듯하며, 이런 생각과 관찰이 법리에도 응당 영향을 끼친다.

Posted by 사무엘

2019/06/25 08:37 2019/06/2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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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크기별 분류

1. 야외 시계탑

오늘날이야 스마트폰 덕분에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정확한 현재 시각을 얻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해시계· 물시계 같은 자연(?) 시계 말고 자체적으로 돌아가는 시계라는 건 전근대 시절 기계 기술의 정수가 담긴 상당히 비싼 물건이었다.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안정되게 균일한 속도로 움직이는 기계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그리고 시계가 널리 보급된 뒤에도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일반인들은 정확한 표준 시각을 알기 위해서 오랫동안 텔레비전 방송의 시각 표시와 시보에 의존해야 했다.

시계가 집집마다 개인마다 쉽게 보유 가능한 물건이 아니었던 시절에는 공공장소· 광장에 커다란 시계탑이 세워지곤 했다. 철도역 광장 같은 곳도 당연히 포함이었다. 이건 20세기 초중반까지, 아직 노면전차와 증기 기관차가 다니고 건물은 온통 빨간 벽돌 외형에다 목재 인테리어가 보편적이던 시절의 얘기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대 병원 시계탑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계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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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한 멀리서도 시각을 확인하라고 탑은 높게 세워졌다. 그렇잖아도 수백 년 전의 옛날 시계들은 추에 작용하는 중력을 동력원으로 삼아서 돌아가는 아주 원시적인 구조였다. 그렇기 때문에 어차피 크고 높게 만드는 게 구조적으로 유리했다.

시계탑은 바늘의 위치로 시각을 시각적으로(?) 표시할 뿐만 아니라, 주요 이벤트는 소리로도 멀리 알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뎅뎅' 소리가 나는 종이란 게 달렸다. 옛날에는 시계탑의 종은 사람이 직접 쳤던 것 같다..;;

오늘날이야 시계가 너무 흔해진 관계로 시계탑이라는 시설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물건을 일부러 보존하는 것 말고, 공익을 위해 새로 만들 일은 없어졌다.

2. 실내 벽걸이 -- 대형

금속의 탄성을 이용한 용수철과 태엽 같은 장치가 발명되면서 기계식 시계는 더욱 작아질 수 있게 되었다.
실내에 비치 가능한 시계 중에서 가장 큰 물건은 디스플레이 아래로 '추'가 진자 운동을 하는 '괘종시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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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시계는 매시 정각에는 그 시각 수만큼, 그리고 매시 30분에는 또 한 번 종이 쳤다. 추가 노출돼 있어야 하는 이유라든가, 시계 바늘 위치에 따라 종이 연결되는 원리는 난 잘 모르겠다.

오늘날의 전자식 아날로그 시계는 제일 시끄러워 봐야 1초 간격으로 tick, '째깍' 소리가 나는 반면..
요런 기계식 시계는 근처에서 가만히 들어 보면 정말 사전적인 의미의 '똑딱똑딱'에 충실한 소리가 났다. 마치 열차로 치면 증기 기관차의 고전적인 '칙칙폭폭' 같은 소리인 셈이다. (참고로 "시계는 아침부터 똑딱똑딱"이라는 그 동요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인 1920년대에 작곡됐음)

글쎄, 요즘은 초침 달린 아날로그 형태이면서 '째깍' 소리조차도 안 나는 물건이 있고, 심지어 초침이 계단식이 아니라 물 흐르듯이 등속 운동을 하는 놈도 있지만.. 그래도 등속 운동 시계는 주류 디자인은 아닌지라 흔히 볼 수 있지 않는 듯하다.

전자식 시계는 서 버렸다면 건전지를 교체한 뒤, 뒷면의 자그마한 다이얼을 아무 방향으로나 돌려서 시각을 맞추면 된다.
하지만 기계식 괘종시계는 절차가 이와 달랐다. 무슨 자그마한 공구를 시계 표면의 작은 구멍에다가 집어넣고 돌려서 일명 '밥을 줘야' 했다. 태엽을 조이는 작업이다.

바늘 위치는 별도의 다이얼을 통해 간접적으로 조절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직접 조절하면 됐다. 태엽을 조이고 바늘 모양을 맞춘 뒤에, 무슨 트리거를 또 조작하고 나서 추를 흔들어 주면.. 그때부터 추는 멈추지 않고 시계 바늘과 함께 운동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 다른 어르신이 시계를 조작하는 모습을 봤던 기억이 전부인지라 기억이 100% 정확하지는 않지만 신기하기 그지없다. 자동차로 치면 타이어를 교환하는 작업 같기도 하고, 밀어서 시동 거는 작업 같기도 하고..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한 뒤에는 시계 바늘을 강제로 역방향으로 돌리는 조작을 해서는 안 됐다. 그러면 바늘과 연결된 내부 장치가 망가질 위험이 있었다. 특성이 전자식 시계와는 여러 모로 달랐다.

3. 실내 벽걸이 -- 소형

뭐, 기계식으로도 시계의 소형화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단지 가성비가 차이가 날 뿐이다.
괘종시계보다 작은 벽걸이 시계는 오늘날도 볼 수 있듯이 지름 수십 cm 남짓한 동그란 원반형 시계가 될 것이다.
기계식 시계는 무조건 아날로그이겠지만 전자식 시계는 아날로그/디지털이 모두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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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괘종시계의 소형화 변종으로 '뻐꾸기 시계'라는 것도 있었다. 시계 본체가 새장 모양이고, 매시 정각에는 뻐꾸기 인형이 튀어나오는 그 물건 말이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중반이 돼서야 소개돼서 2000년대까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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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물건의 원형을 처음으로 생각해 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얘 덕분에 "뻐꾹 왈츠"라는 곡도 인지도가 올라가고, 웬 뻐꾸기가 시계와 관련 있는 새처럼 사람들 기억에 새겨지게 됐다.
뻐꾸기 벽시계는 시기적으로 최근인지라, 무늬만 괘종시계이지 내부 메커니즘은 이미 전자식으로 다 바뀐 물건이었다.

4. 탁상

시계가 더 작아지면 이제 벽에 고정시켜 놓는 게 아니라 탁상시계 내지 자명종 같은 급이 된다. 귀가 두 개 달렸고 때르르릉~ 울리는 바로 그 시계 말이다.
얘는 사용자가 시계 본체에 수시로 손을 뻗어서 접근 가능하다는 점이 벽시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알람 기능이 이 레벨에서 드디어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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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금속판을 물리적으로 때리는 방식으로 알람 소리가 동작했다. 구식 다이얼 전화기의 따르르릉 소리처럼 말이다. 그러던 것이 나중에는 다들 그냥 전자음으로 바뀌었다.

본인은 옛날에 전자식 디지털 탁상 시계가 콘센트 하나를 떡 차지하여 돌아가는 형태인 걸 본 기억이 있다. 배터리도, 메모리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플러그를 빼 버리면 시계는 바로 꺼졌다. 저장하고 있던 시각도 날아갔기 때문에 매번 다시 맞춰 줘야 했다.
그에 반해, 요즘 시계는 전자식으로 돌아간다 해도 전력 소모가 굉장히 작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그냥 건전지만으로 몇 달은 버틴다. AC 전원 자체를 쓰지 않는다.

그나저나 과거에 컴퓨터도 전자식이 아닌 전기식이 있었듯이, 시계에도 메커니즘은 기계식인데 동력만 태엽 대신 모터로 조달하는 '전기식 시계'라는 게 있긴 했다고 한다.

5. 회중

이제 사람이 목에 걸거나 주머니에 넣어서 휴대 가능한 정도로 시계의 크기가 더욱 작아졌다. 이것보다 조금만 더 작아지면 손목에 두를 수 있게 된다. 회중시계에는 '시곗줄'이라는 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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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중시계라 하면 옛날에 의사나 철도 기관사가 한때 사용했던 물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앞부분에서 토끼가 차고 있던 물건, 아이작 뉴턴이 달걀 대신 물에다 삶아 버린(...) 물건, 그리고 윤 봉길 의사가 거사를 앞두고 김 구 주석과 맞교환한 물건 정도로 본인의 기억에 남아 있다.

의사들이야 수술칼을 집고 정교한 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 시절의 크고 무거운 손목시계는 거추장스러우니까, 그리고 철도 기관사는 매번 종합 사령실과 시각을 동기화시키고 정시 운행을 해야 하는데 붙박이 벽걸이 시계는 조작이 불편하기 때문에 그 중간 위상인 회중시계가 선호되었다고 한다.

6. 손목

이렇게 작은 시계를 기계식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역시 매우 어려웠으며 제품도 고가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손목시계가 있으면 활동하는 데 굉장히 편리하기 때문에 20세기 중반쯤부터는 군사 같은 업종을 중심으로 차츰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40년대 말에 한반도에 들어온 소련군들이 손목시계만 잔뜩 약탈해서 주렁주렁 차고 다녔으며, 6· 25 때 비밀 작전을 펼치던 군인들도 한데 모여서 자기 손목시계의 시각을 동기화시킨 뒤, 각자 흩어져서 작전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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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손목시계가 저렴하게 널리 보급된 것은 아무래도 전자식 시계가 발명된 20세기 후반부터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손목시계는 외형이 미묘하게 남녀 구분도 있는 게 특징이다.
이상이다.

(1) 스마트폰과 컴퓨터의 화면에 흡수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있는 시계의 형태는 "3. 벽걸이 소형" 다수, "4. 탁상" 소수, "6. 손목시계" 소수 정도인 것 같다. 스마트폰은 굳이 따지자면 회중시계에 가깝고, 스마트워치는 손목시계 그 자체의 변종에 가깝다. 시계탑, 괘종, 회중시계는 멸종이다.

(2) 옛날에는 매일 한 장씩 찢어 내는 달력도 많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사라졌다.
그리고 로마 숫자를 1부터 12까지나마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던 곳도 시계였는데 이 역시 요즘 시계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는 것 같다.

(3) 시계 바늘의 위치와 관련해서..
시계 가게에 있는 시계들은 바늘이 일부러 전부 제각각 랜덤으로 맞춰져 있다는 건 상식이었다. 동기화 메커니즘이 없던 시절엔 모든 시계들을 정확하게 맞춰 놔도 어차피 얼마 못 가 전부 다 어긋나게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모든 CF는 소비자의 심리를 고도로 겨냥해서 바늘의 모양이 제일 괜찮은 10시 10분으로 맞춰 놓네 마네 하는 말이 있었다.
우리는 바늘이라고 하지만 영어로는 needle이 아닌 hand라고 부른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4) 컴퓨터에서는 Windows 3.x까지만 해도 시계 앱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시각 표시는 그냥 운영체제 셸의 작업 표시줄에 나타나는 기능으로 축소되었다.
다만, 전문적인 스톱워치/알람 앱은 스마트폰에 존재한다.

(5) 그러고 보니, 용(dagon)이나 성(castle)뿐만 아니라 '종'(bell)도 동양과 서양의 심상이 서로 차이가 난다.
동양의 종은 왕창 거대하며, 나무로 된 큰 막대기로 종의 겉면을 쳐서 소리를 낸다. 그러나 서양의 종은 그렇게까지는 크지 않고, 손잡이를 잡아당겨서 종 내부의 금속판을 속면과 충돌시켜서 소리를 낸다. 소리도 '뎅뎅'보다는 '땡땡 딸랑딸랑'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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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종근당 CF에서 마지막에 늘 나왔던 "CG 황금색 종 + '뎅' 소리" 씬은.. 서양식 종 비주얼에다가 동양식 종소리를 넣은 일종의 짬뽕이다. 무척 흥미로운 사실이다.

(6) 끝으로, 건물 말고 자동차 내부의 시계에 대해서 좀 생각해 보고 글을 맺겠다.
옛날, 한 1980년대까지는 계기판에서 속도계 옆에 아날로그 시계가 덩그러니 놓여 있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 공간은 엔진 회전수를 나타내는 타코미터로 대체되고, 시계는 계기판 또는 대시보드에 디지털 형태로 자그맣게 나오는 형태로 바뀌었다.

요즘 사람에게 스마트폰이 있다면 요즘 자동차는 내비게이션이 달려서 이게 진행 속도와 현재 시각을 자동차의 오리지널 계기보다도 더 정확하게 알려 주고 있다. 그래서 자동차의 자체 시계는 차내 영상 서비스와 통합되어서 따로 나오지 않는 추세이다. 다만, 버스는 앞유리에 자동차 부품으로서가 아니라 완전 별개의 액세서리로서 시계가 걸려 있기도 하다. 승객들이 보라고 말이다.

오히려 차량용 블랙박스가 서버 동기화· 통신 같은 기능이 없기 때문에 내부 시계의 시각이 어긋날 여지가 있다. 여기 시각까지 자동 동기화되는 건 내비와 자동 연계가 되는 순정 블랙박스가 등장하면 도입되지 싶다.

옛날에 자동차의 기기들이 대체로 아날로그· 기계식이던 시절에는 시동이 꺼져 있을 때도 도어의 창문을 돌려서 개폐할 수 있었고.. 연료계 바늘은 언제나 실제 연료량을 가리키고 있었으며, 아날로그 시계도 상시 동작하고 있었다. 요즘 자동차에서는 이런 특성을 찾을 수 없게 됐다.

Posted by 사무엘

2019/06/10 08:29 2019/06/10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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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 이야기

1. 바퀴를 굴릴 수 없는 곳에서 짐을 나를 때

인간은 손으로 다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짐을 간편하게 한데 넣어 다니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가방을 사용한다. 그런데 그 가방도 운반하기 위해서는 손을 사용해야 하니, (1) 손을 전혀 쓰지 않고 싶거나 (2) 팔과 손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짐을 날라야 할 때는 백팩이나 배낭처럼 어깨에다 메는 물건을 사용하게 된다.
참고로 바퀴 달린 캐리어는 끌기 위해 여전히 손을 하나 써야 하기 때문에 (1)은 충족하지 못하지만, 바퀴 덕분에 (2)는 그럭저럭 충족한다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메는 부류에 속하는 물건 중에는 '지게'라는 것도 있다. 얘는 짐을 몽땅 감싸는 게 아니라 짐의 아래만을 받치는 형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게는 그 위에 쌓는 짐의 크기에 그다지 제약을 부과하지 않으며, 짐꾼의 체력이 허용하는 한 굉장히 많은 짐을 싣게 해 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흑백 원본에다가 뭔가 어설프게 색을 입힌 사진인 듯..)
지게는 왠지 옛날에 나무꾼들이 많이 사용했을 것 같다. 하지만 얘는 나무 말고 다른 짐을 나르는 데도 많이 사용되었으며, 오늘날도 나무는 아니고 알루미늄 재질의 지게가 만들어져 쓰이고 있다. 대문자 A 글자를 닮은 외형 덕분에 영어권에서는 A-frame carrier라고 불린다.

지게가 하필 나무꾼의 상징으로 등극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사람이 다른 백팩이나 캐리어도 아니고 지게를 동원해서 저렇게 많은 짐을 꾸역꾸역 날라야 하는 상황이란, 바퀴를 활용할 수 없을 때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꼬불꼬불 좁은 산길은 이 조건에 완벽하게 해당된다. 거기서는 자동차는커녕 수레조차 끌 수 없으며, 캐리어의 그 작고 연약한 바퀴 역시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열악한 지형을 감당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운송 수단은 사람의 다리와 지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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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게 부대

과거 6· 25 전쟁 중에는 민간 지게꾼들이 미군에 의해 대거 징발되어 수송· 보급 임무를 수행했다. 일명 '지게 부대'인데.. 명칭이 뭔가 '부대찌개'를 연상케 한다. 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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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고? 한반도는 온통 산지이고 도로다운 도로 인프라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 시대엔 차도가 그나마 전국에서 제일 잘 닦여 있던 경성 시내조차도 아스팔트 포장이나 차선이나 신호등 따위 없었다. 아무 시설이 없으니 해방 후 미군정이 1946년 봄에 자동차의 통행 방향조차 우측으로 곧장 변경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물며 서울을 벗어나면 그냥 전부 흙길 뻘밭..

지게 부대는 1951년 이후의 첩첩산중 고지전에서나 운용한 게 아니라 1950년 7월, 이미 대전이 함락되고 낙동강 고지를 사수하네 마네 하던 시절부터 운용되었다. 경부 고속도로의 건설 비화만 봐도 알 수 있듯, 대전-대구 사이 구간 역시 지형이 만만찮게 험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활약상에 대해서는 다른 글동영상이 이미 많이 올라와 있으므로 참고하시기 바란다. 원래 3, 40대 장정들만 모집한다고 광고했는데 더 어린 소년들과 60대 노인들까지 왕창 몰렸다고 한다.

<야인시대>에서 김 두한이 기를 쓰고 "4딸라!"를 고집하면서 올리려고 했던 건.. 이렇게 미군에 고용되어 부역한 민간인들의 임금(일당)이었던 셈이다. 뭐, 지게꾼들 말고 배에 산더미처럼 쌓인 보급품들을 하역하는 알바(?)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그 시절 물가 기준으로 실제로 받았던 일당은 낮과 밤이 서로 차이가 있긴 했지만, 평균을 내면 4딸라는 개뿔, 1$도 안 되는 50센트 남짓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건 미군이 로동력을 저렴하게 착취한 게 결코 아니었다. 노동 여건을 비롯해 그 시절의 병사 월급이나 타 업종 소득과 환율을 총체적으로 감안하면.. 저것도 오히려 넉넉하고 후하게 준 것이었다. 그래서 지원자가 몰렸었다.
드라마 내지 원작 소설에서는 무슨 근거로 무슨 약을 빨고 하필 4딸라를 고집했던가 모르겠다..

또한, 한반도의 이런 안습한 도로 사정은 남한뿐만 아니라 북괴의 입장에서도 동일하게 불리한 요인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인천 상륙 작전으로 허를 한번 찔리자 놈들도 보급로가 완전히 작살나서 곧 후퇴해야 하게 됐다.

3. 나무꾼

지게가 나왔으니 말인데.. 옛날에는 나무를 벨 때 <선녀와 나무꾼>, <금도끼 은도끼> 같은 전래동화에 묘사된 바와 같이 도끼를 주로 썼던 것 같다. 인간의 팔힘만으로 육중한 나무를 찍어서 쓰러뜨리는 건 굉장히 힘든 노동이다.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도 없을 리가 있겠나...

지금은 톱이 주류로 바뀌었다. 옛날에도 톱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흥부전>에서 박을 썰어서 개방하는 장면에서나 봤던 것 같다.
요즘은 그냥 톱이 아니라 동력 엔진이 달린 전기톱, 사슬톱, 기관톱(??)이 있으니 힘을 덜 들이고 나무를 벨 수 있다. 하지만 대단히 위험한 건 감수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이야 전기, 가스 같은 편리한 에너지 덕분에 옛날처럼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나무를 벨 필요는 없어졌다. 원시적인 지게보다는 지게차 같은 다른 육중한 동력 기계가 더 친숙한 세상이 됐다. 이제 도끼는 망치에 가까운 소형 버전이 유리창 깨고 자물쇠 딸 때, 비상 탈출용으로 쓰이는 것 같다.

더티한 화석연료가 역설적으로 산림을 보호해 주고, 원자력은 화석연료를 아껴 준다는 것이 반박불가의 진리이다. 인류가 문명의 이기들을 다 때려치우고 하루아침에 석기시대로 돌아가서 살 게 아니라면 말이다. 산업화 되기 전인 조선 시대 내지 북한이 온통 민둥산인 건 이유가 있다.

뭐, 조선 시대나 6· 25 전쟁 당시가 아닌 지금도 벌목 자체는 행해지고 있을 것이고.. 또 히말라야 산맥 같은 높은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등산가들의 수많은 보급 물자들을 같이 날라 주는 현지인 짐꾼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 역시 결국은 지게 같은 원시적인 도구를 써서 짐을 나른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무슨 군부대나 차도가 있는 것도 아니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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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과거에는 나무꾼을 '나뭇군'이라고 표기했었다. 그리고 30년쯤 전에 맞춤법이 바뀌면서 '나무꾼'이라고 바뀌었다. 일꾼, 짐꾼, 몰이꾼처럼 말이다. 이 접미사는 사이시옷 대신 된소리 형태로 표기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4. 언어 관련

끝으로.. '지게'는 스펠링이 '개'가 아니라 왜 '게'인 걸까?
명사화 접사 '-개'와 '-게'는 공교롭게도 모두 용언 어간 뒤에 붙어서 그 동작을 수행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라는 의미를 만들어 준다. 전자는 베개, 지우개, 가리개, 덮개 따위가 있고 후자는 집게, 그리고 지게 정도가 있다.

의미와 용례가 비슷해 보이는데 왜 이런 구분이 생긴 것일까? 얼마 있지도 않은 후자를 '집개, 지개'라고 통합하면 많이 어색하려나? 둘의 어원이 궁금하다.
아, '-개'의 경우, 드물게나마 체언 뒤에 붙는 '-쟁이'와 비슷한 역할도 한다. 오줌싸개, 코흘리개 말이다. 이때는 '-개'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 된다. '-게'에는 이런 용법이 존재하지 않으니 참 흥미로운 면모라 하겠다.

다음으로, '지게'를 사람 등에다 장착하는 동작을 표현하는 용언으로는 '지다'뿐만 아니라 '메다'도 있다. 그리고 '-게' '-개'뿐만 아니라 '메다'와 '매다'도 만만찮게 헷갈린다.
'메다'는 어깨에 짊어지는 것, 무형의 임무를 떠맡는 것, load, charge와 관계가 있고.. '매다'는 매듭, 매달기, 묶는 것과 관계가 있다(tie, bind).

거기에다 추가적으로 김매기는 '매다'이고, 뭔가 채워져서 막히는 것도 '메다'이다.
그래서 목을 어떻게 해서 자살하는 건 '매다'(묶어서 대롱대롱..)이고, 목이 어떻게 돼서 말이 안 나오는 건 '메다'이다.
이상이다. '지게'에서 시작해서 별 희한한 주제의 얘기들이 다 튀어나왔다.

Posted by 사무엘

2019/05/30 08:34 2019/05/3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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