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나들이 2

특별한 여행이라기보다는 그냥 본인의 일상· 근황에 가까운 가벼운 나들이를 요 근래에 했던 것들을 또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솔직히 말해 요즘 개인 연구건 직장일이건 잘 안 풀리고 있다. ㅠㅠ 시간은 자꾸 흘러만 가는데 답이 딱 안 나오고 개발 방향이 갈팡질팡이고 버그는 안 잡힌다. 올여름 중으로 날개셋 9.5 최종판과 후속 논문이 과연 나올 수 있을까..? 이 와중에 날씨가 점점 더 더워지는것도 개인적으로는 악재다.

이럴 때일수록 좀 쉬고 머릿속을 초기화한 뒤, 완전히 새로워진 관점에서 문제를 다시 접근하면 해결책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1. 노숙

내가 이런 걸 왜 지금까지 몰랐나 싶다.
비 내리는 날 새벽과 아침에 숲 속 나무 정자 아래에서 빗소리 듣고 풀 냄새 맡으며 뒹굴거리는 건.. 가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중독성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이런 걸 가리키는 '한뎃잠'이라는 훌륭한 순우리말도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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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안 올 때는 그냥 집 근처 공원의 벤치에 누워서 자 보기도 했다.
이런 짓 하지 말라고 벤치의 중간에 일부러 칸막이나 손잡이를 만들어 넣는 것 같다만, 그래도 그게 없어서 한 사람이 쭉 누울 수 있는 벤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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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뎃잠을 여러 번 자 보면서 느낀 건데.. 사람이 자는 동안에는 (1) 체온이 생각보다 많이 떨어지고 중간에 잘 깨긴 하더라. 어지간히 더운 곳이 아닌 이상, 잘 때 덮는 이불이 괜히 필요한 게 아니다.
또한, 찬 공기뿐만 아니라 (2) 차가운 바닥으로 열을 빼앗기는 것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푹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온을 위해서 밑에 까는 이불이 필요하다.

본인은 몸에 열이 많고 더위를 많이 탄다. 여름보다 겨울을 더 좋아하고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취향이다.
또한 불면증이라는 걸 전혀 모르는 체질이다. 피곤하면 어디서나 눈만 감으면 곧장 잠들며, 5~6시간이 워프된 후에 개운한 상태로 일어난다.
일부러 물을 1리터쯤 마시고 잠든 게 아니라면, 밤중에 오줌 마려워서 깨는 것조차도 거의 없다. 그 대신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부터 가지만..

그래서 본인은 나름 야영· 노숙에 최적화된 체질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런데도 보온을 충분히 하지 않은 생태로 밖에서 잠들면 기대했던 것보다 이른 서너 시간 남짓 후에 깨 버리더라. 충분히 못 자고 수면 리듬이 깨졌으니 그 뒤로는 편안한 하루가 보장되지 못한다. 그래도 그대로 코나 목이 가 버리고 감기에 걸린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새벽 1~2시에 잠드는 순간까지도 밖이 춥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데, 5~6시 무렵에 눈을 뜨면 밖이 상당히 춥다. 그래서 다른 부위보다도 얼굴을 잘 감싸서 호흡할 때 찬 공기가 코로 대놓고 들어가지 않게 조치를 취해야 했다.

물론 이것도 늦어도 5월 초 정도까지의 이야기이고, 계절이 여름으로 바뀐 뒤부터는 해당되지 않는다. 집에서 자듯이 대충 이불 덮고 자도 숙면을 취할 수 있다.
그 대신, 이제부터는 모기 때문에 밖에서 제대로 자기 어렵다. 모기를 피해서 몸을 감싸고 덮어 버리면 밖이 시원하다는 장점이 사라지니까..
방수· 방충이 되는 1인용 텐트를 장만해서 적극 활용하고 싶어진다.

2. 남한강 이남-남한산성-서울 동남부 깜짝 드라이빙

팔당 댐에서 동쪽으로 더 가면 강북은 국도 6호선을 따라 양평으로 가는데, 강남의 광주 방면으로는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오래 전부터 궁금했다. 그래서 하루는 머리를 식히고 분위기를 전환할 겸 달려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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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더 경치 좋고 쉬기 좋은 곳만 찾자면 북한강(가평 방면)이나 남한강 이북(양평 방면) 쪽으로 가는 게 더 낫지만, 더 남쪽으로는 갈 일이 잘 없으니 희소가치가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 개발되지 않은 오지 탐험은 늘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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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으로의 합류가 얼마 남지 않은 경안천의 모습이다.

그리고 남한산성을 도보 등산과 시내버스(성남)에 이어, 동남쪽의 광주시 구간을 통해 드디어 자가용으로도 가 보게 됐다. 전에 서울 남산을 도보 등산과 케이블카에 이어 시내버스로도 간 것처럼 말이다.

서쪽 성남시 구간의 도로는 경사가 굉장히 급한 반면, 동쪽 광주시 구간의 도로는 길고 경사가 완만해 보였다. 꼭대기 근처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산을 타고 오른다는 느낌 자체가 별로 안 들 정도였다.

3. 북악산 한양도성 구간 산책

본인은 지금까지 북악산을 세 번 정도 서로 다른 등산로로 종단· 횡단을 해 봤는데.. 나름 남쪽으로 청와대를 가장 가까이 지나고(직접 볼 수는 없지만) 산의 정상을 지나고, 유일하게 신분증을 까고 출입 신고를 해야 입장할 수 있는 한양도성 구간을 최근에 한번 더 답사했다. 재작년 봄에 최초로 답사한 뒤 2년 만의 일이다. 사실, 여기가 제일 북악산다운 곳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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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문 근처에 있는 최 규식 경무관 동상이 대대적으로 때 빼고 광 내서 밝은 구리색으로 싹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1· 21 사태 당시에 같이 순직했던 정 종수 경사에 대해서도.. 참 늦은 감이 있지만 흉상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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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덥긴 해도, 산은 잎이 초록색일 때 올라야 제일 좋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위의 사진은 정상에서 청운대를 내려다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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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작년엔 정상 표지석만 찍었고 이렇게 내가 나온 모습을 촬영하지는 않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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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의 한양도성 등산로(혹은 산책로? 탐방로?)는 성 바깥쪽이 온통 철조망으로 둘러져 있다. 북악산의 다른 영역과 한양도성 등산로를 완전히 분리· 단절하여, 여기로 오려면 반드시 안내소를 거쳐서 번호표 목걸이를 받아야 하게 말이다.

이 등산로보다 더 안쪽으로 청와대를 둘러싸는 철조망도 당연히 있으며, 이건 등산로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등산로를 이탈하여 풀숲을 헤치며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 볼 수 있겠지만, 그런 시도를 했다가는 당사자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는 단순한 동네 뒷산이나 공원이 아니라 무슨 전방 같은 군사 시설 주변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독특한 분위기가 조선 시대 유물과 한데 어우러졌다는 것이 북악산 등산의 묘미이다.

대부분의 산책로는 한양도성 안쪽으로 성을 따라 나 있지만, 잠깐 성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기도 한다.

4. 용마-망우산 구간 재답사

본인이 지금까지 아차· 용마· 망우산 일대를 올랐던 내력은 다음과 같다.

  • 가장 먼저 서쪽 중곡 역 방면에서 용마산을 오르기 시작해서 정상을 찍었다. 다음으로 능선 겸 서울 둘레길을 따라서 북상하다가, 더 동쪽의 망우산 중심부로 이탈하여 망우산 정상 표지도 봤다. 하산은 북쪽의 시립 묘지(일명 망우리 공동묘지) 방면으로 했다. 당시 산에서 비를 철철 맞았던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 2차 답사 때는 동쪽의 아차산 입구에서 산을 올라서 산 정상을 찍었다. 그 뒤 용마산 쪽으로 자리를 옮겨서 북상하다가 구리 아치울 마을 방면으로 하산했다. 날씨는 아주 좋았다.
  • 3차로는 아예 차를 가져가서 시립 묘지에서 들어갔다가 그리로 나왔다. 차도를 따라 시민 묘지만 한 바퀴 돌면서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각종 옛날 유명인사들의 묘소도 구경할 수 있었다. 답사 당일은 아주 흐렸으며 산에 안개가 자욱했다.

그리고 이번 4차 답사 때는..
이들 산의 종축 중앙이고, 용마 터널 근처이기도 한 사가정 공원에서 용마산을 올랐다. 여기서 용마산 능선에 도달하고 나니, 망우산 방면과 아치울 마을 방면이 갈리는 교차로도 거의 곧장 나왔다.

본인은 거기서 계속 북쪽으로 가서 예전처럼 시립 묘지 구간으로 들어갔다. 다만, 계속 길만 따라 간 건 아니며, 도중에 동쪽으로 진로를 바꿔서 백교(한다리) 마을에 도달함으로써 산의 횡단을 마쳤다. 이 정도면 여기 산들도 안 간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대부분의 등산로를 밟아 보게 됐다.

'사가정'이란 이 일대에서 살았던 '서 거정'(1420-1488)이라는 조선 시대 문신의 호라고 한다. 개드립을 좀 치자면, 기왕 저렇게 호를 지을 거면 왜 '사가장'이라고 지을 생각은 안 했나 모르겠다.
사가정 공원은 생각보다 이른 2005년에야 생겼다. 일자산 근처에 온통 둔촌 둔촌 하는 것처럼, 이곳에서도 옛날에 이 산의 기슭에 살았던 유명한 학자 내지 관료를 홍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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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등산로가 시작되다 보니 처음에는 길이 돌계단처럼 나 있고 곳곳에 벤치와 오두막, 운동 기구가 있었다.
숲이 울창한 덕분에 온통 짙은 그늘이 져 있어서 직사광선 노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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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용마산 남북 능선에 진입했다. 아치울 마을로 하산하는 갈림길을 지나서 북쪽으로 쭉 가면, 망우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도 나온다. 거기도 지나치면 길이 포장된 도로로 바뀌고 망우산 묘지 구간으로 진입한다.
본인은 묘지 구간을 좀 지나다가 동원천 약수터 방면으로 이탈하여 숲 속을 방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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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방황하던 끝에 용마-망우산을 횡단하는 덴 성공했다. 그리고 딱 한 번 하늘이 트인 공터가 나왔다. 누군가의 묘지..
여기만 나무 베어내고 숲을 잔디밭으로 바꿔 놓아 있었다. 망우산의 항공 사진을 보면, 이렇게 혼자 외딴 곳에 자리잡은 묘지가 몇 군데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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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다 그친 뒤에 산을 오르니 날씨 맑고 하늘 푸르고, 5월이어서 잎도 온통 짙은 초록색인 데다.. 계곡마다 물이 졸졸 흐르고 있어서 정말 좋았다. 서울 방면과 구리 방면 어느 쪽으로든 말이다. 어떤 곳은 물이 등산로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기도 했다.
비록 산 아래의 경치는 거의 보지 못했지만 산 속의 경치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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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길을 따라 내려가니 이내 차도와 함께 저수지와 마을이 나왔다. 아치울보다 더 북쪽에는 백교/한다리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다.
늘 산기슭의 한적한 전원마을을 구경하면서 산행을 마치는 건 내 스타일 등산의 뻔한 클리셰가 돼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04 08:29 2018/06/0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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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9월의 짤막한 활동 일지

1. 뚝섬 한강 공원에서의 외박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 밤엔, 아예 돗자리와 노트북 PC, 밤참 간식거리를 몽땅 싸들고 자전거를 몰고 여기서 외박을 했다. 여기는 아무래도 집 근처보다는 확실히 더 시원했고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이것도 지금 다시 회상해 보니 재미있는 추억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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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자리가 아니라 풀밭에다 아예 텐트를 친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1인용 작은 텐트라도 하나 장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너무 작은 건 침낭이나 영현빽(..!!) 같은 느낌도 들긴 한다만.. 하긴, 잠도 생물학적으로는 일시적인 죽음이긴 하지.

2. 경기화학선의 흔적 추가 답사

본인은 2년 전에 오류동 역에서 분기해 나가는 전설의 지선 철도이던 경기화학선 폐선 부지를 답사한 적이 있었다.
그 뒤 근래에는 거기보다 더 남부인 부천 옥길동 일대에서 같은 선로가 이어지는 곳을 추가로 답사했다. (☞ 예전 글) 거기에 일종의 선로 분기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 선로는 진짜 경기화학 공장 내부의 역(명목상)으로 들어갔고, 다른 하나는 시흥시 방면으로 10여 km 남짓 더 경기 자동차 과학 고등학교 근처까지 내려가서는 군부대에 도달했다. (제3 군수 지원 사령부 소속의 모 부대임)
그리고 이 분기점 일대는 마치 그린벨트처럼 자연의 정취가 살아 있는 곳이며, 이런 기막힌 위치에 '은빛 전원 교회'라는 예배당도 있었다.

본인은 이런 지리 여건에 깊은 흥미를 느끼게 됐다. 그리고 여기도 싹 다 개발되고 아파트가 지어질 거라는 소리에 하루 날잡아서 현장으로 달려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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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일단 은빛 전원 교회부터가 건물이 통째로 흔적도 없이 싹 철거되어 사라져 있었다. 몇 달쯤 전의 일이고 이 교회 예배당은 딴 데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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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상으로 경기화학 공장 공터의 화물 하역장인 곳에도 그런 거 없다. 공장 방면 선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도로를 만들려는지 터가 닦이고 있었다.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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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군부대 방면 선로와 공장 방면 선로가 분기하는 지점이다. 인터넷 지도 로드뷰 내지, 이곳을 나보다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사진 기록과 대비해 봐도, 선로 상태는 더 안 좋아졌으며 잡초는 더욱 무성해져 있었다. 오른쪽이 공장 방면인데, 선로가 저걸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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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군부대 방면으로 내려가는 선로도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는 이 이상 더 접근을 사실상 할 수 없다. 다른 곳에서 또 선로의 흔적을 추적해야 한다.
여기는 그래도 간간이 군용 화물을 실은 열차가 오간다고도 들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상태가 아니었다. 열차가 다닐 수 있는 상태가 아니며 수인선 폐선 부지와 별 다를 바 없다. 그나마 이런 상태의 선로를 볼 수 있는 나날도 얼마 안 남았고 조만간 다 없어질 것 같다.

재작년에는 본인은 이천에 가서 수려선 오천 역 역사로 쓰였던 옛 폐건물을 답사하고 촬영하고 오기도 했다. 그때는 정말 운이 좋았다. 그 건물 역시 주변 지역의 재개발로 인해 철거하네 마네 하던 상황이었는데, 내가 다녀간 뒤 거의 정확히 한 달 뒤에 실제로 철거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화학선 분기점 주변은 내가 한 발 늦었다. better late than never 차원에서 지금 같은 사진을 건진 거라도 다행으로 여겨야겠지만, 상태가 더 좋던 시절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3. 도산 공원· 도산 안 창호 기념관

서울 강북에는 지리학자 김 정호를 기리는 명칭인 '고산자로'라는 도로가 있다. 그런데 강남 압구정 일대에는 '도산대로'라는 도로도 있는 것을 언젠가 버스 차창 밖으로 어렴풋이 봤다.
도산? 검색해 보니 안 창호의 호를 가리키는 게 맞았다. 게다가 이분의 묘지와 기념관까지 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건 신사동 가로수길에 비해 굉장히 인지도가 없고 너무 생소하게 들렸다.

이런 곳이 있다는 제보를 입수한 본인은 도산 공원을 다녀왔다. 하긴, 근처의 전철역들과는 1km 가까이 골고루 어설프게 멀리 떨어져 있긴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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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창호는 순국 후에 처음에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러나 1970년대 초에 박통이 무슨 필이 꽂혔는지 안 창호에 대한 대대적인 재평가와 승격을 지시했으며, 1971년에는 이 부지에 기념관과 근린공원의 건립을 지시하고 묘지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잘은 모르지만 안 창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대단한 인물이며, 미국에도 이 사람을 기리는 이름이 붙은 도로 내지 건물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는 안 창호가 실제로 활동하고 지낸 곳은 아니지만 어쨌든 강남 금싸라기 땅을 당당히 점유하고 있는 공원과 기념관이 됐다. 시설이 완공되고 개장한 때는 1973년. 건설 당시에는 여기 주변은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황량한 허허벌판이었다.
안 창호 기념관은 1988년에 더 남쪽에 개장한 윤 봉길 의사 기념관보다도 건립 시기가 훨씬 더 이르다. 하긴, 윤 의사 기념관 역시 당사자의 고향이나 거처와는 무관한 곳에 있긴 하다.

나중에 이 홈페이지에 정식으로 여행기가 올라오겠지만, 본인은 다산 정 약용 선생의 묘지와 기념관도 다녀왔다. 왠지 안 창호와 비슷한 성향의 인물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이건 당사자의 출생지인 물 좋은 남양주 두물머리 시골 마을에 있기 때문에 부지가 훨씬 더 넓으며, 반쯤 강변 유원지 + 테마파크의 형태를 하고 있다. 어떤 인물을 기리는 공간을 이렇게 교외에 거창하게 만들지, 아니면 소박하지만 접근하기 아주 편한 인서울에 만들지.. 이건 제각기 장단점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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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안은 이렇게 온통 나무들로 울창해서 직사광선이 바로 내리쬐는 곳이 거의 없었다. 중간 중간 운동 기구와 의자, 정자도 있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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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의 중간에는 안 창호 선생의 동상도 커다랗게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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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 "나 하나를 건전한 인격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 민족을 건전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안 창호는 사상 세계가 굉장히 심오했으며, 남 탓 사회 탓 정치인 탓 외세 탓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은 가장 먼저 나 자신 개인에게서"를 통한 의식 개조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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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창호 기념관은 한 층의 넓은 방 한 칸에 이런 분위기로 사진과 유품이 전시돼 있는 정도였다. 정 약용 기념관보다는 훨씬 더 조촐하다. 이분에 대해서는 보통 콧수염 난 미중년 아저씨의 모습으로만 기억하는데, 생애에 마지막으로 찍힌 사진으로 여겨지는 1937년 서대문 형무소 수감 사진에서는 수염이 더부룩하고 젊은 시절보다 다소 초췌해져 있다.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 해 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는 김 구로 치면 '나의 소원'과 같은 급의 발언인데.. 안 창호는 같은 말을 그래도 훨씬 더 실천주의적으로 멋있게 했다.
또한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기도 했으니, 아마 고전 10:31을 염두에 두고 저런 말을 했을 수도 있다. (먹든지 마시든지 모든 행동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vs 대한 독립을 위해서..)

이 정도 구경을 했다.

4. 우이 경전철

그리고 지난 2017년 9월 2일엔.. 드디어 서울에서도 경전철 시대가 개막됐다.
어디 먼 곳이 아니라 서울 시내에, 그것도 서울 지하철 최초의 환승역인 그 낡은 신설동 역을 기점으로 신분당선처럼 전방이 보이는 무인 운전 전철이 새로 개통하다니 느낌이 대단히 새롭다. 1974년에 최초로 생긴 역과 2017년에 새로 생긴 역이 이렇게 한데 연결됐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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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역들의 건설 시기가 너무 차이가 나는 만큼, 분당선 왕십리 역은 아무래도 북쪽으로 더 이어질 가능성이 없으며, 우이 경전철 신설동 역은 남쪽으로 더 내려갈 가능성이 없다. 신설동에서 경전철과 2호선 성수 지선 사이의 환승은 내가 직접 해 보니 굉장한 막장 환승인 것을 감안해야겠다.

열차의 구동음은 서울 지하철 2호선 신형 전동차와 다를 바 없이 동일하다. 다만, 차량 편성은 듣던 대로 겨우 2량이다. 승강장이 정말 짧긴 하더라.
인구 수에 비해 전철 수가 너무 부족하던(4호선이 유일) 성북구 일대가 이 전철의 혜택을 많이 입겠다. 또한 130번 같은 시내버스가 타격을 입을지도 모르겠다.

도봉산에 이어 북한산도 궤도 교통수단으로 가는 날이 오다니 감개무량하다. 산으로 가는 전철답게 노선색도 산뜻한 연두색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9/25 08:37 2017/09/2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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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색소폰 연주

아시다시피 본인은 Looking for you를 3천 번 들었다.
성경의 사무엘이 '사무엘아' 음성을 두 번 듣고 나서 세 번째 들은 뒤엔 출처를 공부한 뒤 들을 준비를 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네 번째 '사무엘아' 음성을 들은 뒤에야 하나님의 음성에 제대로 응답하게 됐다.

그것처럼 나도 새마을호에서 Looking for you를 두 번 듣고 나서 세 번째 들은 뒤엔 출처를 인터넷으로 검색했고, 다음엔 들을 준비를 하고 새마을호를 탔다. 네 번째 Looking for you가 흘러나왔을 때 나는 철도 안에서 거듭났고 철도를 내 개인의 교통수단으로 영접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뒤로 나는 Looking for you를 주선율, 주요 화음, 대략의 비트까지 다 청음 채보했다.
콩나물 대가리를 한땀 한땀 입력해 넣고 원곡과 대조하면서, 어느 기보가 원음에 더 근접한 정확한 기보인지를 고민하면서..
Looking for you 작곡자의 마음과 심정을 이해하는 자가훈련을 했다.

이 음악의 어느 부분이 나를 감화시켜서 나를 철덕으로 만들었는지, 왜 이런 결과가 야기될 수밖에 없는지를 연구했다.
그리고.. Looking for you의 주선율을 만든 악기 공부를 (잠깐 동안이지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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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성탄절, 우리 교회 복음 전도 집회에서.
아, 교회에서 Looking for you 연주했다는 얘기는 아님. 오해 마시길..

2. 나의 등산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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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부 서식이 있으니 올랐던 산들의 높이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어서 매우 좋다.
이것도 중복 정보 없이 정규화가 잘된 구조로 구축하려면 산에 대한 테이블과 등산 세션과 관련된 테이블을 분리하긴 해야 하는데, 엑셀로 그것까지 하기에는 많이 귀찮지.

입산 지점에 최종적으로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가서 어디로 하산했는지,
산 속에서 주로 본 게 무엇인지, 바깥 경치로 주로 무엇을 봤는지,
정상에는 무엇이 있었고 어떤 형태였는지, 산이 행정적으로 어떤 관리를 받고 있는지 같은 것을 일목요연하게 조회 가능하게 했다.

3. 코딩

그럼 이제 일상생활 얘기로 넘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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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화면을 비추느라 명암차 때문에 주변이 어두워진 거지, 촬영 당시에 책상 주변은 실제로는 저 사진만치 어둡지 않았음)
화면이 미치도록 광활한 데스크톱 컴과,
눕든지 앉든지 편한 자세로 침대, 책상, 자동차 등 아무 데서나 사용 가능한 놋붉 컴 중
뭘로 코딩을 할지가 매우 고민된다. 일종의 행복한 고민.

참고로 노트북의 화면 전체와, 데스크톱 모니터의 오른쪽에 떠 있는 작은 프로그램 창하고 화면 크기(화소 수)가 동일하다. ㄲㄲㄲㄲㄲㄲㄲㄲ 미래의 리드미 문서를 작성하고 있는 날개셋 편집기의 화면임.
내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그림과 동영상들이 화질이 얼마나 구린지를 까발리고 정죄하는 마법의 모니터다.

역시 프로그래머에게 화면이 큰 건 컴퓨터에게 램이 많은 것과 같다~! 정말 다다익선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꾸 창 전환이나 스크롤 하는 게(개발툴, 웹브라우저, 에디터, msdn 등등) 컴터로 치면 메모리 부족해서 하드디스크 스와핑 하는 것과 개념적으로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이다.

무식하게 혼자 3~5K급으로 해상도가 너무 높은 모니터 하나냐, 혹은 걍 2K 해상도급 모니터 듀얼/트리플 중 어느 게 더 좋을지는 잘 모르겠다. 제각기 장단점이 있어 보인다.
참고로 배(선박)와 DLL(Windows 파일..;; )은 작은 놈 여럿보다는 큰 놈 하나가 성능면에서 더 효율적이다.

일체형 PC는 간지나고 공간 덜 차지하고 지저분한 선 없이 콘센트 하나만 꽂으면 모니터 본체 스피커가 전부 OK이니 정말 좋긴 하다.
다만, 이렇게 한번 세팅된 이후로 부품 업그레이드가 어려울 것이고 발열 제어도 곤란하니 엔드급 게임은 무리일 것이다.

구조적으로 볼 때 철도 차량의 동력분산 / 동력집중의 차이와 비슷해 보인다. 일체형 PC가 동력집중이 아니라 분산식에 대응한다. 그리고 트렁크· 캐빈· 엔진룸 따위의 구분이 없는 원박스 형태의 자동차도 일체형 PC와 비슷한 컨셉이라 볼 수 있겠다. (공간 활용 최대, 그러나 정비가 어렵다는 점에서 비슷)

4. 시간 부족과 일정 압박

CPU 클럭 속도 향상의 병목은 발열이고, 자동차 속도 향상의 병목은 공기 저항이다. 스마트폰 성능 향상의 병목은 배터리 용량이다.
그리고 날개셋 한글 입력기 개발에서 최악의 병목은 잠으로 인한 시간 부족 되시겠다.
난 오랜 경험상 매일 6시간이 정말 마지노선이고 그 이하로는 도저히 못 줄이겠다. 결국은 낮에 졸음과 집중력 저하로 인해 밤에 안 잔 것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되더라. -_-;;

어지간한 고시 준비생만치 시간을 분초 단위로 쪼개며 살아도 시원찮을 판에 이래 가지고 날개셋 9.0은 언제 완성할 것이며 박사 졸업은 도대체 언제 하나..;;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보다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 선호함. 눈 감았다 뜨면 그냥 6시간이 싹 워프되고 개운 가뿐하게 일어나긴 한다. 천성적으로 남 눈치 안 보고 앞날 걱정을 미리 안 하는 체질이어서 그런지 스트레스는 적게 받는 편. 불면증 같은 게 어떻게 존재하는지 이해를 못 한다.

단지 잠을 더 줄일 수가 없을 뿐임.
이것도 기초체력 문제인가..? 잠 적으신 분이 굉장히 부럽다.

5. 덕질

논문 쓸 '꺼리, 아이템'들을 만들어내는 활동은 재미있지만 (코딩, 시스템 구현, 실험 등등)
그걸로 온갖 형식 갖춰서 실제로 논문을 쓰는 건 꽤 성가시고 번거롭다. =_=;;
그래도.. 잔인한 주인이 무자비하게 내린 온갖 복잡한 재귀호출 뺑뺑이와 자질구레한 메모리 할당· 해제 요청들을 컴퓨터는 진짜 순식간에 전광석화처럼 해낸다.

소프트웨어의 추상화 계층이 올라가면 코드를 유지보수하고 확장하기는 편해지지만 컴퓨터의 입장에서는 뭘 하나 하려 해도 포인터가 가리키는 대로 메모리를 여러 단계 요리조리 따라가야 하고, 캐시 미스가 나면 더 느린 메모리에 갔다가 와야 된다.

사용자가 '확인'을 누르거나 키보드를 하나 눌러서 화면에 글자 한 자가 찍힐 때까지 컴퓨터가 전자적으로 처리하는 일의 양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하물며 실존하지 않는 종이, 실존하지 않는 음악과 영상이 존재하는 것 같은 경험을 사람에게 제공하기 위해서 컴퓨터는 얼마나 많은 계산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있을까?
프로그래머로서 이런 컴퓨터가 고맙고 대단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글자를 온통 배배 틀고 배경과 뒤섞어 놓은 일명 '캡챠'는 사람은 곧바로 알아보지만 컴퓨터가 알아보지 못하는 (걸 지향하는) 그림이다.
그러나 사람이 도무지 판독할 수 없는 랜덤 노이즈로 보이는 QR 코드 같은 건 컴퓨터가 곧바로 판독해 낸다.
예전에도 말했듯이 주석과 들여쓰기가 잘 된 코드와, IOCCC용 난독화 코드는 컴퓨터가 해석하는 데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런 걸 생각해 봐도 사람과 기계는 근본적으로 특성이 달라도 이렇게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6. 컴퓨터 세팅

개인용 컴퓨터를 새로 지르거나 회사 같은 데서 내 업무용 컴터를 받았을 때 내가 기종을 불문하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 키보드 속도를 최고속으로 맞춘다. 보통 디폴트 값은 반복 속도가 늘 최고속에서 한 단계 낮은 걸로 돼 있는데.. 난 이게 최고속으로 돼 있지 않으면 답답하고 불편해서 못 쓴다. 키를 이 정도 시간 동안 눌렀으면 cursor나 선택 막대가 어느 정도로 이동해 있을 거라는 예상치와 기대치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재입력/반복 키보드 속도 조절 체계'는 IBM PC AT 시절 이래로 변함없이 이어져 온 유구한 전통이다.
  • <날개셋> 한글 입력기를 설치한다. 내 홈페이지에 대외적으로 공개돼 있는 최신 버전이 아니라, 나 혼자만 갖고 있는 "개발 중"인 진짜 최신 버전이다. 한글을 내가 원하는 형태로 입력 가능하고 그 구닥다리 16*16 비트맵 폰트를 화면으로 좀 봐야 내가 심리적으로 안정된다.
  • Looking for you.mp3 복사해 넣는다. 음악 파일 중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가 무조건 제일 먼저 집어넣는 파일, 특히 사운드 테스트용으로 쓰는 파일은 답정너 looking for you이다. 이게 흘러나와야 내 개인용 컴퓨터라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노트북 내지 미니키보드들의 왼쪽 아래를 보면 Ctrl의 오른쪽에 Alt가 있는 것은 보장되지만 이것 말고 Fn, Win, 한자 키 같은 것은 생각보다 배치가 제멋대로이고 파편화가 심하다. 규격이 통일돼 있지 않다. 이것 때문에 한 키보드에 적응되고 나면 다른 키보드에서 modifier 키를 잘못 누르기 쉬워서 몹시 불편하다.

말이 나왔으니 하나 더.. 요즘 Windows 10은 사용자에게 선택의 여지를 안 주고 시도 때도 없이 강제 업데이트를 해서 꺼져야 할 때 바로 안 꺼지고, 켜져야 할 때 바로 안 켜지는 게 굉장히 싫다. 대규모 업데이트가 너무 잦고, 심지어 업데이트 후에 컴퓨터가 맛이 가는 것도 몇 번 겪어서 하기가 더욱 싫어진다. 그리고 컴퓨터를 오래 쓰고 나면 언제부턴가 시작 메뉴에서 앱들 검색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기 시작한다. 나만 이러는 거 아니지?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서 이더넷 유선 랜도 데이터 요금이 부과되는 네트워크라고 속이는 레지스트리 패치를 적용시켰다. 그래야 운영체제가 제멋대로 깽판을 안 부린다. 제아무리 보안 업데이트도 인터넷 패킷 종량제 앞에서는 깨갱 할 수밖에 없으니까.

7. 삼각형의 오심을 그리는 프로그램

작년이니 엄청 옛날에 이미 작업된 사항이긴 한데, 막 중요한 건 아니어서 이제야 여기서 공지를 하게 됐다. 홈페이지의 '옛날 자료실'에 올라와 있는 '삼각형 오심을 그리는 프로그램'이 거의 10여 년 만에 기능이 크게 추가되고 보강됐다. 수학 강사인 교회 지인의 제안으로 행해진 작업이다.

삼각형의 오심이야 간단한 기하 알고리즘으로 (1) 두 직선의 교점과 (2) 두 변이 이루는 각을 이등분하는 변만 구할 줄 알면 컴퓨터로 아주 쉽게 구할 수 있다. 삼각형은 2차원 평면도형 중 가장 간단한 물건인데 얘의 모양에다 중심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도 이렇게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된다.

구체적인 개선 사항은 해당 웹페이지에도 나와 있지만, '구점원'이라는 걸 그리는 걸 추가했다. 삼각형 세 변들에 대해 변의 중점으로만 이뤄진 작은 삼각형의 외심원을 구한 것인데, 이게 또 방점과 접하고 수심을 지나기도 하는 등 기하학적인 의미가 장난이 아니다. 이걸 제6심이라고도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내심을 제외한 수심, 구점원 중심, 무게중심, 외심 이렇게 네 점은 언제나 한 직선상에 있다는 게 보장된다..;; 이 오일러 직선을 그리는 기능도 추가했다.
또한 삼각형의 꼭지점만 마우스로 끌어서 이동시키는 게 아니라 삼각형 내부를 끌면 삼각형이 통째로 움직이게 했다. 한 점이 삼각형의 내부에 있는지 판별하는 건 세 점의 방향성 판별 공식을 이용해서 구현 가능하다.

웹브라우저에서 윤곽선 폰트 에디터까지 구동하는 세상인데 이런 간단한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쯤은 이제 플래시조차 필요 없고 HTML+(JS)로 다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엔드 유저의 관점에서는 EXE 형태의 프로그램이 점점 필요 없어지고 있긴 한데, 일단 내가 아는 skill은 C++과 Windows API이니 저렇게 간다. GDI 말고 다른 API를 동원해서 선들을 안티앨리어싱도 좀 시킬 걸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완벽하게 만들려고 욕심 부리면 뭐 한도 끝도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7/02/26 19:33 2017/02/26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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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2/28 10:37 # M/D Reply Permalink

    왜 여친얘기는없죠

    1. 사무엘 2017/02/28 14:36 # M/D Permalink

      헉, 돌직구를 맞았군요~~ ㅠㅠ (그런데 누구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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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으로부터 계속됨)
그 다음으로는.. 한국어 정보 처리· 전산화 분야의 1세대 숨은 원로이며 올해 초에 작고하신 고 박 동인 부장을 회고하고 추모하는 순서가 있었다.
이분은 공식적인 최종 학력은 의외로 그냥 서강대 전자공학과 학사가 끝이지만, 업계에서의 실력과 짬은 석박사급 연구원들을 부하로 부릴 정도였다. 주변으로부터 "대학원 가서 학위 좀 받지?" 권유도 받았지만 자기는 그냥 현장에서 '부장' 호칭으로 불리는 게 좋다면서 사양했다고 한다.

박사 학위 없는 사실상의 박사 포스인 게 철도계로 치면 30년간 열차 시각표 외길만 간 김 영근 씨 같은 인상이 느껴진다.
2014년 한글날엔 국가로부터 공로 표창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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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이분을 대학원 코스웍 재학 시절에 교수님이 특강 강사로 초청하신 덕분에 알게 됐으며 나름 같이 얘기도 나눈 적이 있다. 알다시피 본인은 옛날 이야기를 좀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우리나라에 컴퓨터가 처음으로 도입되던 시절이 어떻고 성 기수 박사가 어떻고 글자판이 어떻고 하면서 맞장구를 치고 관련 질문을 하자 그분도 굉장히 놀라고 대단해하고 내 나이를 궁금해하셨다. "자네 대전으로 내려와서 살아도 괜찮으면 ETRI에 입사하는 거 어때?" 이런 말씀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셨다. ㅎㅎ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인이 박 부장님을 대면한 경험이었다. 참고로 이분은 전공과 학벌은 보다시피 박 근혜 대통령과 동일하지만, 외모와 인상은 대조적으로 문 재인 씨와 아주 비슷했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어째 고인의 생전 모습 사진 한 장을 제대로 구할 수가 없나 모르겠네.. 어쨌든 그렇다. 나이도 1952~53년생 연배로 거의 일치함.

추모 세션이 끝난 뒤엔 학술대회하고 나란히 개최된 올해치 국어 정보 처리 시스템 경진대회의 시상식이 있었다. 내가 참가했던 2011년 당시보다 대회 진행이 더욱 체계적으로 잘 바뀌어 있었다. 대회 측에서 요구하는 과제를 수행하는 성능을 측정해서 순위가 매겨지게 진짜 '경진대회'처럼 바뀌었으며, 분야가 이런 지정 과제와 자유 공모로 딱 이원화됐다. 단, 상은 여전히 두 분야를 통합해서 주더라.

이로써 학회의 첫째 날 일정이 저녁 7시쯤에 모두 끝났다. 주최 측에서 근처 식당에서 쇠고기 전골과 육회 요리로 만찬을 제공했기 때문에 밥을 맛있게 먹었다. 본인은 일행이 전혀 없는 관계로 어디에 앉을지가 좀 난감한 상태였는데.. NC 소프트에 재직하면서 동시에 대학원도 다니고 있어서 나처럼 박사 수료 상태인 어떤 여자분과 얘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었다. 이분도 나와 비슷한 처지에서 논문을 투고했으며, 나중에 알고 보니 논문 발표가 나하고 같은 세션에서 나의 바로 다음 차례였다. 기막힌 우연이군.

식사를 마친 뒤엔 난 다시 혼자가 됐다. 이 날은 어제와는 달리 숙소 안 잡고 (1) 노숙하거나 (2) 24시간 영업하는 가게(PC방, 패스트푸드점, 카페 따위) 에서 버티거나 정말 춥고 피곤할 때에만 (3) 찜질방 정도에나 가려고 생각해 둔 상태였다.

어제 해운대 해수욕장에 갔으니 오늘은 그 다음으로 유명한 광안리 해수욕장으로 갔다. 광안리는 해운대만큼이나 지하철 2호선 역에서 비교적 편하게 접근 가능했으며, 21세기 부산의 명물이라는 광안대교가 전방에 보이고 경치가 멋있었다. 단, 모래의 품질은 해운대보다 못해서 자갈이 종종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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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들은 이튿날 아침에 찍은 것임)

여기서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뒹굴면서 바다와 교감을 했다. 본격 신선놀음 모드. 해변의 구석진 곳에 가서 진짜로 여기서 잠까지 잘 생각도 했으나..
부슬부슬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새벽 1시 반쯤부터는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근처의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비를 피하고 있다가 결국 근처에 24시간 영업을 하는 카페에서 이튿날 아침 6시까지 버텼다. 이렇게 하루를 보냈다.

차를 가져갔으면 전천후 이동식 텐트가 있으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런 상황에서 숙박 걱정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자기기 충전은 해결할 수 없으며, 기름값과 톨비 깨지고 어딜 가나 주차비를 뜯겼을 테니 부산 정도는 이렇게 자는 게 더 낫고 마음이 편했다.

※ 토요일(10/8): 학회, 부경 대학교 석당 박물관, 용두산 공원+부산 타워, 국제/자갈치 시장

오늘은 드디어 논문 발표 세션이 있었다. 본인은 아침 9시에 제일 먼저 하기 때문에 서둘러 학교로 돌아갔다.
13년 전의 동일 학회에서는 금요일 오후부터 논문 투고자의 발표 세션이 곧장 시작됐고, 토요일에도 점심을 먹은 뒤에까지 세션이 이어졌다. 그 당시에 당장 내 논문의 발표가 토요일 오후 제일 끄트머리였기 때문에 교수님이 "니가 발표할 때쯤엔 사람들이 다들 가고 별로 없겠다" 그러실 정도였다(그리고 실제로 그러했던 걸로 기억. -_-).

허나 그 사이에 절차가 많이 간소화됐는지 지금은 토요일 오전에 발표 세션을 몽땅 몰아서 진행하는 걸로 바뀌었다. 그 대신 세션이 무려 4개가 동시에 진행된다.
어째 개수를 맞췄는지 논문이 총 64개가 투고됐으며, 구두 발표가 절반이었다. 그리고 단순히 "우린 이런 실험을 했소" 통계와 결과 나열이기만 해서 굳이 구두 발표가 필요하지 않은 논문은 포스터 발표로 대체했는데, 이게 나머지 절반이었다. 논문 투고자들이 원하는 발표 형태가 처음부터 감쪽같이 32/32로 나뉘지는 않았을 텐데 중간 조정이 있었지 싶다.

나는 뭔가 발표나 강의를 할 때 비록 말하는 속도가 여전히 너무 빠를지언정, 시간은 그리 초과되지 않고 그럭저럭 지키는 노하우를 오랜 시행착오 끝에 터득했다. 이런 연구를 왜 했고 논문의 초 핵심 본질만 요약하는 한편으로, 논문에서 분량상 차마 다루지 못한 보충 설명 위주로만 발표를 했다. ppt는 14장이고 사실은 지금까지 탱자탱자 놀다가 ppt 자체를 전날 밤에 카페에서 급조해서 준비했다. -_-;;

나는 그럭저럭 후회 없이 말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걸 알아들었을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1인당 발표 시간은 15분에 불과하다고 공지가 됐을 텐데 다른 분들은 최하 20장 이상에 30~40장짜리.. 이거 무슨 30분에서 1시간 분량으로 자기 연구의 모든 것을 미주알고주알 소개하는 강의 자료를 가져오신 경우가 많았다.
난 14장짜리 ppt로도 15분에 간신히 맞춰서(약간만 초과해서) 발표를 마쳤는데도 말이다.

본인은 어쩌다 보니 한글 입력기와 글꼴 같은 글자 단위의 입출력 기술 관련 연구를 계속하게 됐다. 내 최대의 관심사는 "한글이니까 가능한 고유한 활용 방법을 개척하는 것"이다. 이건 누가 봐도 명백하게 언어정보학 내지 언어공학의 범주에 든다. 그게 아니면 다른 카테고리를 붙일 여지가 없다.
순수하게 전산학이나 컴공의 영역도 아니고, 순수하게 언어학이나 산업디자인의 영역도 아님. 저 바닥엔 난 독자적인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고 논문 쓸 거리도 더 있다.

허나, 언어공학을 한다면서 정작 인공지능에 통계, 빅데이터, 머신 러닝 어쩌구 하는 분야는 난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으며 딱히 전문가도 아니다. 내가 자동차나 철도 공학에 관심만 많지 그쪽으로 딱히 전문가가 아닌 것만큼이나 저쪽도 막 전문가가 아니다. 내가 창작한 프로그램과 논문들은 "한글 및 한국어 정보 처리"라는 범주에는 들지만 뭔가 '주류'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니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교수님들도 잘 모르고 생각 못 한 기괴한 주제로 논문을 쓸 거니까 뭐 시간만 주어지면 졸업이야 별 문제 없이 하겠지만, 이렇게 학위 받아서 내 논문의 연구 분야를 주제로 일자리 수요가 있을지, 취업은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런 약간의 어두운 생각도 들었지만 역시나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을 고민 할 시간에 날개셋 코딩이나 한 줄 더 해라"라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극복하기로 했다.

나 말고 '비주류' 주제 연구는 사실상 딱 하나 더 있었다. 숭실대에서 한글 메타폰트에 대해서 연구 발표를 했는데, 흥미롭게도 이 역시 본인과 동일한 세션에 있었다.
오전엔 이런 식으로 내 논문 발표 후에는 남들 발표를 듣고 포스터를 보는 걸로 시간을 보냈다.

학회에서는 먼저 가 버리지 말고 논문 발표를 끝까지 듣고 귀가하라는 취지에서, 세션이 다 끝난 뒤에 점심 식권을 배부했다. 덕분에 점심도 우동 스타일의 만두국으로 든든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이로써 학회가 완전히 끝났고, 본인은 오후에 계획했던 주변 관광을 시작했다. 그런데 비가 아침에 좀 그치나 싶었는데 낮부터 또 빗줄기가 굵어졌다. 본인은 열차의 선반에 올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왔지만, 돗자리와 담요는 챙겼어도 우산은 가져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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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비도 피할 겸 먼저 학회장 바로 옆에 있는 석당 박물관부터 관람했다. 건물도 근대 문화재급인데 안에는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기와, 토기, 인물화· 풍경화 등 고미술품과 과거 유물이 많이 전시돼 있었다.
연세 대학교는 일부 건물이 구한말 때 지어져서 근현대 문화 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여기도 나름 건립 배경은 다르지만 그에 준하는 옛날 건물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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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건물 밖에 있는 부산 전차도 가까이에서 구경했다. 원래 이 시간대엔 내부도 개방하지만 비 때문에 이번엔 안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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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학교 밖으로 나와서 비를 맞으면서 용두산 방면 동쪽으로 걸어갔다. 중간에 영락 교회라고 크고 역사가 길고 유명한 듯한 교회 예배당을 지나쳐 갔다.
용두산 공원 진입로와 부산 타워가 가까이 보일 무렵에 '부산 근대 역사관'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보수산에서 관람했던 '부산 광복 기념관'과 비슷한 컨셉으로 반일 항일 테마인 박물관이었다. 여기에도 응당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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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곳이었다. 부산이 항구 무역 도시이니만큼 일제의 경제 침탈을 더욱 부각시켜 설명해 놓은 게 인상적이었다.
아, 해방 후 얘기도 없지는 않음. 안에는 부산 전차를 비롯해 옛날 부산 시내와 상점들을 재연해 놓은 곳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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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남산에 타워가 있다면, 부산은 용두산에 타워가 있다. 하지만 용두산은 높이가 50여 m에 불과한 아주 낮은 언덕일 뿐이기 때문에 캐리어 끌고 도보로도 큰 부담 없이 쓱싹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서울 남산 같은 케이블카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부산 타워도 높이나 크기면에서 서울 남산 타워에 비할 바는 못 된다. 부산 타워는 그냥 하얀 등대 컨셉이며, 서울의 것과는 달리 전파 송신 기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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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옆엔 웬 공터와 정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어둑어둑하고 비 오는 날 공원이나 산 속 정자에서 혼자 누워서 비를 피해 자거나 코딩하는 것을.. 바닷가에서 뒹구는 것만큼이나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한다.
여기서 좀 쉬다가 입장료를 내고 타워를 올랐다. 본인 주변엔 온통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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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에서 영도 쪽을 내려다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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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국제 시장 쪽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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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건 자갈치 시장 방면이다. 본인은 타워에서 내려온 뒤엔 이쪽으로 직접 답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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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앞에 있는 다리가 영도대교이다. "매일 오후 2시 정각~15분, 도개 중엔 차량 진입 금지"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시간대가 안 맞아서 실제로 다리를 들어올리는 모습은 못 봤다.
본인은 몇 년 전에 해양 대학교로 가느라 바로 저 영도대교를 건넌 적이 있었을 텐데 그때는 지금 같은 부산 지리 감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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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도 노량진 수산 시장이 있으며 본인은 몇 번 가 봤다. 허나 부산은 아예 바다를 낀 항구 도시이니 수산 시장의 규모가 서울을 능가할 수밖에 없다.
'자갈치'는 과자 이름이기만 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원전이 따로 있더라. 또한, 저 캐치프레이즈는 "왔노라, 보았노라, 질렀노라"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시저가 남긴 말의 원래 뜻은 우리말로 치면 "나 왔음. 봤음. 이김."처럼 극도로 간결하고 시크한 뉘앙스일 뿐인데 번역 과정에서 '-노라'라는 종결어미가 동원되면서 필요 이상의 간지가 추가된 것에 가깝다.
갈매기 모양의 상점 본건물을 가까이에서 본 모습은 굳이 여기에 사진을 또 첨부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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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어는 개인적으로 얼마 전에 먹어 봤기 때문에 부산에서는 특별히 광어에 준하는 우럭을 선택했다.
예전에 해수욕장 투어를 하면서 식당에서 코스 요리도 먹어 보고 그냥 회덮밥도 먹어 봤으니, 이번에는 포장만 해서 먹어 봤다.

밖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우산 쓰고서 청승맞다면 청승맞은 모습으로 회를 혼자 열심히 "쳐묵쳐묵" 했다. 정말 꿀맛이었다. 돼지도 그렇고 광어나 우럭도 그렇고, 외형이 못생긴 편인 동물들이 살은 아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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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비 내리는 바다를 구경하면서 식사를 했다.

허기를 달랜 뒤 북쪽으로 가서 국제 시장 일대를 더 돌아다니려 했으나, 비가 계속 많이 오고 길거리가 예상 이상으로 차와 사람들로 굉장히 혼잡한 관계로, 계획한 것만치 많이는 못 다녔다. 안 그래도 날이 빠르게 어두워져서 사진을 찍기 더 힘들어지기도 했다.

해수욕장에서 더 놀자니 비가 계속 내릴 뿐만 아니라, 돗자리가 양면에 모두 흙이 너무 많이 묻어서 더는 무리였다. 김해 경전철 시승을 하자니 여기서 지리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동선이 안 맞았다. 사실, 비 내리는 한낮이라면 편안히 이동하면서 비 내리는 차창 밖을 구경할 수 있는 김해 경전철 시승도 나쁘지 않은 관광이긴 했을 텐데 말이다.

이것저것 고민 끝에 당초 계획보다 일찍 고향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갔는데 경주를 들르는 건 자연스러운 동선이니까. 다만, 지금 생각해 보니 부산에서 이 정도로 역사 안보 관광을 했는데 UN군 묘지 공원을 미처 못 들른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시 부산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부전 역에서 내렸다. 여기서 꽤 오랫동안 머물면서 폰과 컴퓨터를 충전했다. 역에서 자체적으로 아예 벽면 콘센트에다가 멀티탭을 연결해 놓고 "필요하면 전자기기 충전하고 가세요"라고 친절하게 써 붙여 놓아 있었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졌지만 복선전철로 탈바꿈한 동해남부선의 모습을 얼추 확인할 수 있었다. 선로를 복선으로 폭을 확장하려다 보니 시내 접근성을 희생하고 선로가 바다 구경을 할 수 없는 곳으로 많이 이설됐다. 대표적으로 (신)해운대 역은 바다와는 완전히 동떨어졌고 오히려 군부대가 가까이 있는 산기슭으로 이사 갔다. 경춘선 강촌 역과 비슷한 꼴이 났다. 얘도 이름과는 달리 이제 전혀 강 근처에 있지 않으니 말이다.

리모델링된 역들은 무궁화호가 서는 저상홈 승강장과 전철이 서는 고상홈 승강장이 수평으로 나란히(수직· 앞뒤가 아니라) 생겼는데, 신기한 것은 같은 역이 무궁화호 승강장에 적힌 역명과 전철 승강장에 적힌 역명이 서로 다른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점이다.
가령, 전자는 수영 역인데 후자는 센텀 역, 그리고 전자는 그냥 해운대인데 후자는 신해운대. 궁극적으로는 전철역명으로 변경할 거라고는 하는데 그럴 거면 옛 역명으로 간판을 만들기는 왜 만들었는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2015년쯤부터는 동해남부선이 완전히 신선으로 이설돼서 지금의 서경주· 경주 역도 다 없어지고 신경주 역이 일반열차까지 취급하게 될 거라고 하는데 2016년 말인 현재까지도 실현되지 않았다. 그래도 동남권 '부울경'에 철도가 앞으로 많이 바뀔 예정이니 느긋하게 지켜볼 생각이다.
얼마 안 있어 동해남부선 광역전철이 개통하면 임랑이나 일광, 송정처럼 부산 북부에 교통이 더 불편한 곳에 있는 해수욕장들도 찾아가기가 더 수월해질 것이다.

경주에서 서울로 돌아갈 때는 오랜만에 KTX를 이용했다. 전국의 고속도로들이 저렇게 차선 곳곳을 틀어막고 공사 중인 걸 보니 주말에 고속버스를 탔다가는 왕창 막힐 것 같아서였다.
비록 철도 노조가 파업 중이긴 하지만 코레일도 바보가 아니다. 아무리 사람이 부족하다 해도 회사에 돈을 압도적으로 제일 많이 벌어 주는 cash cow 효자인 KTX는 그야말로 최하 우선순위로 감축될 것이다. 게다가 입석 승객까지 넘쳐나는 일요일 오후에 상행은 감축 같은 건 절대 없다고 봐야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열차를 기필코 굴릴 것이다.

사실, 대전· 대구 시내 구간이 개통한 지도 1년이 넘었는데 그 뒤로 KTX를 타 보는 게 처음이었다. 열차는 대구 시내를 벗어나자 곧장 지하 터널로 들어갔으며, 대전 근처에서도 옥천에서부터 천천히 가는 게 아니라 또 터널로 들어가서 곧장 판암 IC까지 직통으로 달렸다. 예전에 비해 느리게 달리는 구간이 확실히 줄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이거 뭐 날씨가 싹 바뀌었다. KTX를 탄 게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계절이 다른 나라로 날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학회가 1주일만 늦게 열렸어도 해수욕은 못 할 수도 있었겠다.

이렇게.. 논문 쓰느라 코딩 시간을 빼앗기고 좀 힘든 나날을 보내긴 했지만, 덕분에 부산에서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왔다. 2003년엔 대전에 있다가 서울을 갔다 왔지만, 2016년엔 서울에 있다가 부산을 다녀 왔다.
그리고 학회가 끝난 뒤엔 내가 쓴 논문이 우수 논문 중 하나로 뽑혔다는 뜻밖의 기쁜 소식도 덤으로 접했다. 요즘 뜨고 잘나가는 연구 분야를 다룬 게 아닌데 이런 논문도 알아 주니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01 19:32 2016/11/0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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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는 말

본인은 지난 여름에 <부산행>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얼마 전엔 어째 진짜로 부산을 갈 일이 생겼다. 한글 및 한국어 정보 처리 학술대회에다 논문을 투고하고 발표하게 됐기 때문이다. 올해는 28회째이다.
아무 이유 없이 쓴 건 아니고.. 학술지에 소논문을 게재하는 게 박사 졸업 이수요건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두 편이 규정돼 있기 때문에 이런 걸 조만간 하나 더 써야 한다.

이번에 쓴 논문은 사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8.6에 넣으려 했던 새로운 기능에 대한 아이디어가 주제이다(하지만 결국 못 넣고 또 다음 버전 기약을..ㅠㅠ). 분량 제한 때문에 모든 아이디어나 진짜 복잡한 고급 기능 소개는 넣지도 못하고 그냥 기본적인 것에다 약간의 응용 수준까지만 다뤘다.
이런 논문은 학술지 사이트에 영원히 기록으로 남고 후속 연구자들이 검색해서 열람도 하게 되는데, 저런 태생적인 한계만 감안한다면야 나름 후회 없게 논문을 썼다.

이런 기능을 넣을 생각 자체는 회사일을 하다가 떠올리게 됐다. 별개인 것 같은 기능이 알고 보니 한글 입력에다가 이렇게 접목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게 내 개인 프로그램에다가도 들어가고 논문으로 써서 졸업 이수요건도 채우게 됐으니 MS의 과거 캐치프레이즈를 빌려서 표현하자면 everything at once를 얼추 달성했다.

본인이 저 학술대회와 인연을 맺은 것 자체는 대학 학부 시절이던 엄청난 옛날, 2003년 제15회 시절이다. 지금은 은퇴하신 김 진형 교수님의 제안으로 논문을 덜컥 투고했는데, 지금도 검색하면 그걸 볼 수는 있다. 물론 그로부터 13년 뒤,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버전이 8.x가 꺾인 지금 관점에서 보면 겨우 2.x를 기준으로 작성된 논문은 가히 흑역사 급의 민망한 퀄리티가 돼 있다.
하지만 그 학술대회에서는 기조 강연 겸 기념품으로 Unicode CJK IME를 득템하게 되었으니 이것은 아직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외부 모듈조차 개발돼 있지 않던 당시에 중요한 동기 부여와 기폭제 역할을 했다.

다음으로 본인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2012년에는 이 학술대회는 아니지만 비슷한 격으로 동시 병행 개최되던 국어 정보 처리 시스템 경진대회를 참관하러 부산을 방문했었다. 거기서 전년인 2011년 대회의 입상자들을 초청해서 관람권을 줬기 때문이다. 그때 경진대회와 학술대회의 개최 장소는 해양 대학교였다.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부산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올해 대회도 또 부산에서 열리니, 본인으로서는 지리적인 면모가 약간 아쉬웠다.
여기는 자가용과는 완전 상극인 위치였다. 강원도나 경기도의 적당한 오지라면 미지 탐험도 할 겸 응당 차를 가져갔겠지만, 일행도 없이 혼자 이 장거리를 차 끌고 가는 건 금전과 체력 소모가 심하다.
또한 부산은 대도시일 뿐만 아니라 인구밀도 대비 도로 사정이 안 좋은 걸로 전국적으로 악명 높으며, 반대로 학회 장소는 지하철역에서 아주 가까이 있다. 그러니 여행은 어딜 가든 캐리어 끌면서 뚜벅이 형태로 가게 됐다.

그리고 교통· 지리와 관련된 또 다른 악재는.. 기왕 부산을 대중교통만으로 방문하는 흔치 않은 기회가 왔는데, 하필 동해남부선 복선 전철의 개통 시기를 미묘하게 비껴 가게 됐다는 것이다. 선로는 다 완공됐지만 서울 수도권 바깥에서 통근형 전동차가 다니는 진풍경은 못 봤다.

단점 얘기는 여기까지. 뭐 그렇긴 하지만 이번에 본인은 태어난 이래로 제일 치밀하게 부산 투어를 해서 제한된 시간 동안 뽕을 뽑고 왔다.
<부산행>, <해운대> 같은 영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부산은 어째 재난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부산은 근대기 개항 이래로 일제 강점기, 6· 25, 그 뒤 민주화 운동까지 우여곡절이 참 많은 동네이다.

대도시로서 1960년대에 전국에서 최초로 직할시로 승격됐으며, 해방 직후에 서울· 평양과 더불어 한반도에서 노면전차가 다녔던 3대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6· 25 전쟁 중에 평양에 잠시 태극기가 꽂힌 적이 있던 것만큼이나, 부산은 전쟁 중에 임시 수도였던 적이 있다. 그리고 전국의 피난민들이 한데 몰려들었으며, 전국의 대학교들이 부산에 한 자리에 임시 캠퍼스를 개설해서 학생들에게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학회 장소인 동아 대학교 부민 캠퍼스가 부산 역사의 중심지인 아주 기가 막힌 곳에 있었다. 그래서 더욱 보람찬 관광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 목요일(10/6): 해운대 해수욕장

학회의 시작은 금요일부터이지만, 본인은 부산에서 작정하고 놀기 위해서 그 전날에 집을 나섰다. 물놀이와 노숙이 가능하게 갈아입을 옷 여러 벌에다 돗자리와 작은 담요까지 커다란 캐리어에다 몽땅 집어넣었다.

8월 말까지는 논문 쓰는 것 때문에 '문장을 어떻게 다듬을까, 주제별 분량 편성을 어떻게 할까' 갖고 왕창 고민했다면, 9월 말에 학회 참가가 확정된 뒤부터는 여행 계획을 짜느라 '일정 전후로 관광은 어떻게 할까, 열차냐 버스냐, 어디부터 먼저 갈까, 산에서 잘까 바다에서 잘까'로 고민의 양상이 바뀌었다.
차 없이 장거리 여행을 하면 무슨 교통편을 선택할지가 마치 프로그램 짜듯 고민거리가 된다. 그런데 동서울-해운대 직행 시외버스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가는 길은 모든 논란이 종결돼 버렸다. okay!

해운대까지는 5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오랜만에 보는 대구-부산 민자 고속도로 구간은 경부선 철길과 나란히 지나고 경치도 무척 아름다웠다. 단,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영동뿐만 아니라 전국의 고속도로들이 죄다 곳곳이 보수 공사 중이었으며, 차선이 하나 틀어막혀서 차량 정체가 발생하곤 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남쪽으로 몇 블록 걸어가니 말로만 듣던 해운대 해수욕장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곧장 근처 여관에 방을 잡아서 짐들을 갖다놓고, 물놀이용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버스 안에서 배터리를 다 소진해 버린 폰과 노트북 PC는 콘센트에 꽂아서 충전시켜 놨다. 그 뒤 방 열쇠만 몸에 지닌 채 해변으로 가서 물에 뛰어들었다.

나 요즘 해수욕 즐기는 데 재미 붙였다. 올해에만 해도 동· 서· 남해 바다에서 제각각 다 놀아 봤다.
계곡이나 강에 비해서 바다는 물이 덜 시원하고 끈적거리고 모래 붙는 거 신경을 써야 한다. 물놀이를 마친 뒤에 샤워 같은 후처리가 반드시 필요해서 번거롭다. 하지만 일단 면적이 압도적으로 넓으며 파도가 치는 게 역동적이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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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아주 맑고 따스해서 물놀이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바로 전날 이 동네에 강풍과 물폭탄이 쏟아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만, 시설이 부서진 게 있는지 근처에서는 무슨 복구 공사가 한창이긴 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명품 해수욕장답게 모래는 자갈· 돌 같은 걸 전혀 찾을 수 없으며 품질이 좋아 보였다. 글쎄, 소실되는 양이 많아서 모래를 외부에서 사 와서 보충한다고는 하던데..;;
또한, 시골이 아닌 대도시 소재이다 보니, 모래사장 바로 뒤로 곧장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것도 이색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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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가까이 물에서 돌아다닌 뒤엔 여관으로 돌아가서 씻고 옷을 다시 갈아입고, 해변에 두 번째로 찾아갔다. 이제부터는 물엔 가끔씩 발만 담그고 나왔으며, 모래밭에 돗자리를 깔고 이런 식으로 뒹굴거렸다. 점심 도시락도 이 자리에서 꺼내서 먹었다.
맥북은 산과 바다 어디에서든 저렇게 나의 든든한 동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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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이 공식적으로는 폐장한 상태이고 평일에 날도 저물고 있었지만 저 정도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해변을 거닐고 있었다. 해변의 끝부분에는 낚시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물놀이에다 산책을 많이 하니 꽤 피곤해져서 숙소로 돌아가 좀 쉬었다. 그 뒤 완전히 밤이 된 뒤에 세 번째로 해변으로 갔다. 돗자리와 담요, 컴퓨터, 간식/야식거리만 챙겨서 아까보다는 짐을 줄인 상태로 가서 뒹굴거렸다.

부산 아니랄까봐, 해수욕장 모래밭에서도 인근 건물에서 쏘는 와이파이가 잡혔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8.6의 업로드와 내 홈페이지 갱신은 바로 부산 해운대에서 행해졌다.
인제는 제법 쌀쌀함이 느껴져서 담요가 제 역할을 했다. 이대로 자 버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잠들었다.

※ 금요일(10/7): 보수산 중앙/민주 공원, 임시 수도 기념관, 학회, 광안리 해수욕장

오후부터 드디어 학회가 시작되니 그 전에 아침엔 부산 역과 동아 대학교의 사이에 있는 보수산이라는 산을 올랐다. 이 산의 정상에는 꽤 큰 규모의 여러 공원들이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뒤에 설명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일제 강점기, 6· 25, 민주 항쟁 등 이념 한번 참 다양하더라.

해운대에서 부산 역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역에서 목적지까지는 버스 환승을 했다.
여담이지만 부산 지하철 최초의 환승역인 서면 역은 어떻게 만들었는지 상당한 개념환승(환승 거리 짧음)인 게 좋았다. 서울 지하철 최초의 환승역인 신설동 역은 전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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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북쪽에 있는 무슨 충혼탑. 검색을 해 보면 무엇을 기리기 위해 언제 세운 탑인지가 나오겠지만 생략한다. =_=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있게 해 놓은 것 같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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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혼탑의 이남으로는 이렇게 조각 공원도 조성돼 있었다. 경치 좋고 날씨도 좋아서 여기서 산책이나 혼자 코딩, 아니면 심지어 노숙을 하기에도 적절해 보였다.
그 뒤로는 4· 19 혁명 기념탑이 있었는데 사진은 생략함.
또한 산 정상에서 주변 풍경을 몇 장 찍은 것도 있으나, 이것보다는 부산 타워에서 찍은 사진이 더 높고 전망이 좋으니 그걸로 대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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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 근처에는 부산 광복 기념관이 있었다. 이건 일제 강점기 역사 버전이다.
1876년에 체결되었던 강화도 조약이 생각보다 꽤 불평등한 조약인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엔 3· 1 운동 기간 당시(1919년 3~4월)에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 각지에서 벌어졌던 만세 시위에 대한 기록도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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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의 글씨체부터가 뭔가 노사모스럽고 "사람이 먼저" 이런 구호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지금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내부에 안내 표지판들의 주요 용어들도 통상적으로 잘 쓰이지 않는 순우리말로 바꿔 적어서 옷차림으로 치면 개량 한복스러운 느낌이 났다. 나도 엄청 국수주의적인(?) 한글 입력기를 전문으로 개발하는 사람이고 저런 시도 자체는 나쁠 게 없으나, 정치색과 관련된 이상한 편견이 생기고 나니 보기가 괜히 민망하다. =_=;;

보수산 꼭대기에 있는 각종 건물과 시설 중 이 민주 항쟁 기념관이 규모가 제일 컸다. 그래서 공원 전체의 대표 이름도 '민주 공원'이다.
이 승만 말기의 4· 19라든가 박 정희 말기의 부마 항쟁,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까지는 나도 의미를 인정하겠다만.. 거기에 왜 5· 18까지 다루고 있고(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이며 지역적으로 딱히 부산과 관계가 있지도 않음) 효순· 미선 반미 시위나 6· 15 정상 회담 얘기는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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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민주 항쟁 기념관보다도 더 남쪽으로 가서 샛길로 빠지면 '대한해협 전승비'가 나온다.
6· 25 전쟁 당시에 북한군은 38선을 넘어서 육로 전방으로만 쳐들어온 게 아니라 동시에 부산으로도 후방 교란을 목적으로 무장 병력을 침투시켰다. 그랬는데 우리나라 해군이 1950년 6월 26일 새벽에 이 괴선박을 발견하여 격침시켜서 수백 명에 달하는 적군들을 꼬르륵~ 수장시켰다. 비록 국군이 그 뒤로 밀려서 서울도 빼앗기고 후퇴하게 됐지만 어쨌든 이 전투가 우리나라로서는 6· 25 '전쟁' 중에 벌어진 전투들 중 최초의 '승전'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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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산에는 이렇게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하여 볼것들이 아주 많았다.
산을 오르내리는 지름길은 이렇게 압박스러웠다. 이런 데서는 살기가 무척 힘들 것 같다.
여기서 동아 대학교까지는 근성으로 걸어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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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대학교 부민 캠퍼스가 나타났다. 고풍스러운 빨간 벽돌 건물이 먼저 날 반겼는데, 이건 실제로 옛날 건물이며 지금은 동아 대학교에서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학회는 그 옆의 신축 건물인 '국제관'에서 열림.
여기까지 관람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니, 일단 본인은 학교 뒤에 있는 임시 수도 기념관을 답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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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수도 기념관도 빨간 벽돌 스타일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상하이에 임시 정부 거처가 있었던 것처럼 6· 25 전쟁 중엔 우리나라 정부도 부산으로 피난 가서 대통령이 바로 여기에서 지냈다. 국회도 부산에서 열렸고.
저 건물은 그때의 그 건물 자체는 아니고 원형을 따라 나중에 다시 지어진 거라고 한다. 대통령 관저, 그리고 전시관 이렇게 두 파트로 나뉘어 있으며, 두 건물은 살짝 간격을 두고 서로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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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접실과 대통령 집무실이다. 지난번에 고성에서 봤던 대통령 별장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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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저렇게만 써 놔도 업적과 흑역사에 대해 충분히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잘 써 놨다.
한강 다리 폭파나 보도연맹 같은 극단적인 팩트까지 다룰려거들랑 남조선 대통령의 실책에다가 0이 몇 개는 더 붙은 수준의 훨씬 더한 악행을 저지른 공산당의 민간인 학살까지 같이 거론해야지. 예를 들면 개전 초기의 서울대 병원 대학살 같은.

오글거리는 미화나 우상화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악의적이고 불순한 왜곡이나 좀 하지 마라. 그 시절에 저런 대통령이나 희생이라도 없었고, 욕먹을 걸 감수하고라도 살짝 장기집권 안 했으면, 남조선 전체가 빨갱이 치하에 들어갔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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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국제시장>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역사 기록을 종합해 보면 1953년에는 부산에 화재 참사가 두 번이나 났었다. 1월 30일엔 국제 시장에서, 그리고 그 해 11월 27일엔 부산 역 일대에서 큰 불이 나서 피난민들의 생계 터전이 송두리째 박살이 났다.

그리고 195~60년대 우리나라의 컬러 사진을 보면 산업화 이전의 옛날이 오히려 꼬질꼬질하며, 산과 언덕에도 나무라고는 찾을 수 없고 지금의 북한처럼 누런 흙이 다 드러나 보이는 걸 알 수 있다. 사진이 낡고 바래서 누런 톤으로 변한 게 아니다. 인간이 화석 연료와 각종 금속· 플라스틱 재료를 활용하기 전에는 당장 동네 뒷산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그런 연료와 건축 자재 역할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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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할 때는 총기를 갖고 오되(우리가 득템 노획해야 하니까), 손에 쥐지 말고 목에다 덜렁덜렁 걸치고 오너라."
"살 수 있는 유일의 길은 귀순뿐이다! 용단을 내려서 귀순하라!"
전시관에는 6· 25 전쟁 당시에 살포되었던 삐라들이 특집 전시되어 있었다. 하긴, 강원도 화천의 파로호 안보 기념관에서도 봤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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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에는 무슨 초등~중등학교가 아니라 인서울 대학교들도 부산으로 피난 가서 저런 데서 수업이 진행됐다.

역사 얘기를 더 보충하자면, 6· 25 전쟁 당시 우리나라 정부는 1950년 8월 18일부로 부산을 임시 수도로 정했다. 그러다 9월 28일에 서울을 수복하고 국군과 UN군이 10월 19일에 평양까지 점령하자 정부는 10월 27일에 환도를 결정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해 1951년에 전세가 도로 38선 이남으로 밀리자 정부는 1· 4 후퇴 바로 직전인 1월 3일에 다시 부산으로 본진을 옮겼다.
국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한 날이 1950년 10월 1일인데, 적군이 38선 이남으로 도로 넘어온 날이 1951년 1월 1일이니 정확히 3개월 만의 통한의 후퇴였다.

3월 14일, 아군이 2차 서울 수복을 이뤄 냈지만 이번에는 우리 정부는 예전처럼 곧장 환도하지 않고, 전쟁이 완전히 휴전으로 귀착될 때까지 후방인 부산에 계속 머물렀다. 그래서 1953년 광복절에야 2차 환도가 이뤄졌다.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다.
건전한 대한민국 국민, 특히 서울 시민이라면 윤 봉길· 안 중근 의사 같은 사람이 거사를 이룬 날이나 순국한 날뿐만 아니라 6· 25 전쟁 때 우리나라가 서울을 수복한 날도 기억하는 게 좋을 것이다.

여기까지 구경하고 나니 이제 시간이 되어 본인은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첫째 날에는 강당에서 가만히 앉아서 그저 강연들을 듣기만 하면 됐다. 처음에는 근래에(지금으로부터 1년 이내에) 언어 공학 분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신진 연구자들 4명이 초청을 받아 자기 연구 분야에 대한 강의를 했고, 그 다음엔 이 바닥에 이미 유명한 교수들 4분이 강의를 했다.

카이스트 학부 시절에는 얼굴을 한 번도 못 뵈었고 딱히 학부 강의를 하지도 않는 것 같으시던 최 기선 교수님은 예나 지금이나 시맨틱 웹이 어떻고 온톨로지가 어떻고 하는 외길을 가시는 듯하던데 강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_=;;
경주에서 한번 뵌 적이 있는 변 정용 교수님도 여기서 강의를 하셨고 본인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분들 말고 또 기계번역과 관련된 강의도 있었다.

그리고 이 학술대회에 후원을 많이 해 준 네이버, NC소프트와 솔트룩스라는 기업의 "자기 회사 자랑 + 인재 모집" 소개 세션도 있었다. 네이버야 검색엔진 전문이니까 자연어 처리에 관심이 왕창 많을 수밖에 없는 기업이지만, 엔씨는 온라인 게임 개발사 아냐?
비주얼 C++에 유니티 3D 엔진을 잘 다루는 클라이언트 개발자, 유닉스 셸 스크립트와 컴터 보안에 능통한 서버/DB 개발자, 혹은 2D 원화/3D 모델 디자이너만 뽑을 것 같은데.. 의외로 거기 내부에도 인공지능 및 자연어 처리 연구소가 있어서 석· 박사급 연구원들이 논문도 많이 내고 있었다. 경쟁사인 넥슨엔 그런 게 있다는 얘기를 못 들었는데 말이다. (下에서 계속됨)

Posted by 사무엘

2016/10/29 08:30 2016/10/2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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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기간 정산

1. 폭염과 열대야의 악몽

여름은 참 최악의 계절이다. 끝이 안 보이는 미친 날씨 때문에 차박(내 인생의 큰 낙), 등산(운동..;;), 거리설교(교회), 자전거 출퇴근(회사)은 오래 전부터 몽땅 올스톱 됐다. (그런데 이런 날씨에도 끝까지 근성으로 교회에서 매주 거리설교 나가시는 분들은 완전 존경을..)

어떻게 자정~새벽 2시 한밤중에 기온이 이렇게 높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아침 8~9시 무렵이면 이미 오후 2~3시처럼 덥다. 그나마 새벽 4~6시 사이가 가장 인간적인 생활이 가능한 시간대인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괴로운 건 시간대를 불문하고 지하철 승강장이 너무 덥다는 것이다. 일단 차를 타고 나면 차 안은 시원하긴 하지만, 지하철을 기다리는 단 몇 분 동안에 이미 옷이 땀으로 흠뻑 젖곤 했다.

여름이 겨울보다 좋은 건 정전기 없고 손이 시렵지 않고(밖에서 놋붉 꺼내서 코딩할 때..), 아침에 피부가 트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 말고는 전부 단점뿐이다. 다만, 워낙 더워서 그런지 8월부터는 그래도 모기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적(바다)· 녹조(강) 소식이 예전만치 심하게 들리지 않았으며 차 송풍기의 냄새가 싹 사라진 건 일말의 다행스러운 점이다.

변변한 태풍 하나 없을 정도로 무더위와 가뭄이 심각했건만, 옛날처럼 언론에서 가뭄이다, 절수, 제한급수 이러면서 호들갑을 안 떤 것부터가 4대강 같은 전국적인 치수 사업을 잘한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여름은 절대로 그냥 못 지나갔을 텐데 말이다.

어디 지형적으로 유속이 느려지는 곳은 여전히 녹조가 생기긴 하지만 그건 4대강 때문이 아니라 4대강 덕분에 그것밖에 안 생긴 거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물 관리를 안 했으면 뭐 녹조가 없긴 했을 것이다. 그냥 바짝 마르고 쩍쩍 갈라진 강바닥만 있었을 테니까.
그리고 화력 발전을 안 한 덕분인지, 고등어를 없애 버린 덕분인지 언제부턴가 미세먼지 얘기도 쏙 들어갔다.

이럴 땐 그래도 산기슭에 있고 중앙 냉방도 나오는 학교 연구실이 시원하고 좋다. 하지만 이제 수업 학점은 다 채웠고 학위논문 지도를 받을 때까지는 당분간 휴학을 하게 되는데, 이제부터는 학교에 차를 가져갈 수 없어서 접근성 메리트가 크게 떨어진다. 등록을 해야만 정기주차 신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학 기간엔 회사를 더 자주 나가고 특히 이번 방학 동안에는 한마음 미션에서 성경 강의도 뛰느라 학교엔 사실상 더욱 갈 여유가 없었다.
그 대신 집 근처 카페(낮과 저녁)와 패스트푸드점(심야)에 피서 가서 코딩을 하는 신풍조가 생겼다.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도 거기가 생각보다 집중 잘 되고 능률이 좋더라. 음료수값 정도 투자할 가치는 있어 보인다.

올해가 가기 전에 서해, 동해, 남해를 다 구경하고 오고 싶다. 시원하고 차 세울 수 있는 공터가 넘쳐나는 외지에서 차박을 실컷 하고 싶다. 자동차는 훌륭한 이동식 텐트이다.
가을 이후부터는 등산도 다시 계속할 것이다. 가야 하는 산들이 몇 개 더 남아 있다.
그리고 내년에는 여권의 유효기간이 1년 남짓 남는 관계로, 마지막으로 여권에 도장을 하나 더 남기고 올 예정이다. 사증란이 아직 한참 남아 있는데.. -_-;; 어디로 갈지는 아직 미정이다.

그나저나 자가용을 굴리고 나니 개인적인 철덕 기질과는 별개로 예전보다 열차를 확실히 덜 타게 된다.
예전 같았으면 진작에 답사 다녀 왔을 수인선과 서울 9호선 연장 구간, 신분당선 이런 것들도 아직 못 가 봤다. 내가 사는 곳에서 너무 멀기도 하다만.

2. 코딩 드립

진실로 수확할 것은 많되 일꾼들이 적도다.
진실로 코딩할 것은 많되 체력과 머리가 따라주지 못하는도다.

코딩하고 싶은데 코딩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가 아니라 철덕은 코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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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이야, 이거 재미있어.. 그래, 코딩이!
이전에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던 기능들이 새로 구현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게 재미가 없을 리가 있나.
그래서 내가 코레일에도 안/못 들어가고 이 짓 하고 있는 거 아니겠는가?

예전에도 말을 한 적이 있나 모르겠는데..
프로그램 짜는 거 자체보다도, 그 전에 제한된 시간과 지능 하에서 코딩을 무엇부터 어떻게 할지, 프로그램 짜는 절차를 먼저 프로그래밍하는 것도 굉장히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그래야 손발이 덜 고생하기 때문이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8.6 (다음 버전)은 대박 예감을 하고 있다.
아, 굳이 많은 사용자를 확보한다거나 수익을 많이 낸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내 기준과 논리 체계 하에서 구조적인 대박이 확실시된다는 뜻이다.

3. 여러가지 사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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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한번 시원스레 잘 내린다. 한창 학교에 틀어박혀서 종합 시험(논문 제출 자격 시험) 공부를 하던 때의 풍경이다. 학교에서 외박을 했다.
7월 초까지만 해도 아직 장마철이어서 종종 비도 오고, 이른 아침엔 그렇게까지 덥지는 않았었는데 얼마 못 가 날씨가 불지옥 급으로 바뀌었다.
참고로 본인이 이 사진을 찍고 있던 동안 여기서 400m쯤 떨어진 곳에 있던 중앙 도서관은 지하가 침수돼서 매스컴까지 타고 난리가 났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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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근처에는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원 말고도 '매봉산'이라는 아주 작은 언덕이 있다. 사실 이게 다른 공원들보다 지하철역에서도 더 가까이 있다. 얘는 높이나 면적이 강남구의 매봉-도곡 역 근처에 있는 또 다른 '매봉산'과도 비슷해 보인다. 둘 다 산책용 근린 공원이 조성돼 있다.

단, 응암동 매봉산은 도곡동 매봉산에는 없는 시설이 있다. 바로 유류 저장고.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76년엔 매봉산 기슭에 석유 비축 시설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1978년엔 여기 근처에 난지도가 만들어졌다. 그 시절에 여기는 인서울이 아니며 민간인 거주를 의도하지 않은 완전 외곽 변두리로 취급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난지도도 폐쇄되고 월드컵 경기장이 건설되자 여기는 민간인 친화적인 곳으로 탈바꿈했다. 석유 비축 시설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졌다. 이제는 더 쓰이지 않는 동그란 석유 탱크는 녹슨 채로 매봉산 등산객들을 맞이하는 중이다. 이제는 더 쓰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탱크들은 지금도 여전히 민간 지도의 항공 사진에 표시되어 보이지 않는다. 현재는 탱크를 완전히 철거하고 거기 일대를 리모델링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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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5호선의 종점인 마천 역에서 나와서 남쪽으로 쭉 걸어가면 군부대가 나오고 남한산성 방면의 청량산 등산로가 이어진다.
그런데 거기서 북쪽으로 쭉 걸어가면 '천마산'이라고 봉화산보다도 더 아담한 언덕과 함께 근린공원이 조성돼 있다. 이 산의 건너편은 하남시.
지형이 흥미로운 것 같아서 여기도 한번 원정 산책을 갔다 왔다. 주차 공간도 있어서 접근성이 나쁘지 않았다.

4. 비행기 조종

교회 어르신 중에 공군 관계자가 계셔서..;; 올여름엔 난생 처음으로 비행기 조종이라는 진귀한 경험을 한번 해 봤다.
씨러스 SR22 경비행기로 사천 공항에서 청주 국제공항 중간 기착 후, 김포 국제공항까지 날아가 봤다. 물론 시뮬레이터로. (세종 대학교 모의 비행 훈련 센터)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항공 시뮬 게임을 해 본 거라고는 초딩 시절에 1990년도 LHX (공격 헬기)가 전부였다. 그 흔한 플심 같은 것도 전혀 안 해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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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승 경비행기인지라 순항 속도 자체는 KTX와 별로 차이가 안 났지만 (1) 중간 정차 안 하고 (2) 지형 안 타고 직선으로 쭉 가고 (3) 가감속이 훨씬 더 민첩하기 때문에 정말 금방 이동했다. 우리나라가 땅이 얼마나 좁은지 알 수 있다. 지금 같은 경제력과 구매력으로 일본처럼 인구 1억에 국토 길이가 1천 km는 돼야 그나마 비행기가 국내선만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하철 전동차의 마스콘은 내가 있는 쪽으로 당겨서 가속을 하고 앞으로 밀어서 감속을 한다. 이게 자동차의 액셀과 브레이크 페달 역할을 한다.
철도 차량과는 달리, 비행기의 엔진(스로틀) 레버는 앞으로 밀어서 출력을 올린다. 특별히 글라이더처럼 활강을 하는 게 아니라면 엔진은 자동차로 치면 오르막을 오를 때처럼 늘 켜져 있으며, 마치 송풍기 풍량을 조절하듯이 출력 강약을 조절할 뿐이다. 변속이나 엔진 브레이크(연료 공급이 아니라 바퀴 회전 관성 의해 엔진도 역으로 회전수가 덩달아 유지되는 것) 같은 건 없다.

비행기는 가만히 놔두면 내 예상 이상으로 뒤집히거나 자세가 불안정해지기가 쉬운가 보다. 시뮬레이터만으로도 그게 느껴졌다. 조종간 잡는 거, 그리고 착륙할 때 고도와 속도, 위치 잡는 거 꽤 힘들었다. 물론 착륙 테크닉은 기계화 자동화도 돼 있을 것이고, 자동차로 치면 마치 주차 테크닉처럼 많이 해서 경험이 쌓이면 실력이 금방 늘겠지만 아무래도 속도감이 잘 안 느껴지는 공간에서 기체의 위치를 원하는 대로 맞추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비행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정말 안 움직인다 싶은데 좀 한눈 팔다 다시 아래를 보면 풍경이 싹 바뀌어 있다. 비행기 타는 경험이 그렇다.
시뮬레이터의 가격만 해도 시뮬 대상인 비행기 자체의 가격과 비슷한 어마어마한 고가이다. 단지, 한번 도입한 뒤에 유지비가 비행기 실물을 띄우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더 저렴할 뿐이다.

조종간, 브레이크, 플랩, 스로틀 레버 정도를 만져 봤고 나머지 계기는 정신이 없어서 머리에 경험을 못 담았다.
가이드를 해 주신 교관님은 밑에 지형을 척 보더니 여기는 어디쯤이고 저 멀리 있는 산은 무슨 산이고.. 남한 땅 지형 지리 정보가 머리에 다 입력돼 있으신 듯했다.
그야말로 자기 손바닥 안처럼 다 파악하고 계셨다. 20년 가까이를 전투기 몰고 전국의 하늘을 날아다니신 짬이 어디 간 게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비행기 얘기· 군사 안보 얘기, 교회 얘기 등등도 많이 나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9/01 08:32 2016/09/0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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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생활 관련 잡설

1.
내가 한겨울에 운전을 하면서 지금까지 본 가장 낮은 기온은 -13도이다.
그런데 기온이 영상과 영하를 오락가락 할 때 차에서 표시해 주는 온도계를 보면, 가끔 0도라고 표시할 때도 있고 -0도라고 표시할 때도 있다.

기온이 영상이었다가 어느 땐가 영하로 내려갔다면, 그 사이에 0도이던 순간이 적어도 한 번 이상 존재했겠다는 중간값 정리 개드립이 떠오르는 한편으로.. (시각 t에 대한 기온 변화 함수는 연속함수일 테니..)
또 하나 떠오른 생각은.. "저 컴퓨터는 온도를 내부적으로 부동소수점 실수로 표현하고 있겠구나!"였다.

2의 보수 기반 정수로 표현했다면 0이 두 종류가 있을 수가 없었을 테니까.
이공계 지식을 알면 기계 내부의 별별 디테일이 머리에 들어온다.
그나저나 연도에는 서기 0년이 없다고 한다. 서기 1년의 이전 해는 바로 기원전 1년. 마치 건물에서 지상 1층의 아래는 0층이 아니라 바로 지하 1층인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2.
밤에 잠을 자는데 그냥 평범한 침실이 아니라, 밖에 어디 아늑하고 아담하고 눈에 안 띄는 곳에 콕 짱박혀서 자고 싶다. 집 밖에서 야영을 하고 싶다.
하루 종일 대형 트럭이나 트레일러를 몰다가 밤에 뒷좌석의 간이 침대에서 길다랗게 누워 자는 화물차 운전사 있잖아.. 뭐 그런 거에 갑자기 꽂혀서 로망이 생겼다.

트럭이 아니라 버스도. 땅 넓어서 이동에 며칠씩 걸리는 나라에서는 버스 안에도 화장실이 있고 운전사가 두 명 타서 한 명은 운전하고 다른 한 명은 짐칸에서 자다가 몇 시간 주기로 교대 근무를 한다는데.. 뭐 그렇게 자는 것도 좋다. 되게 편안하게 잘 잘 수 있을 것 같다.

청계천 공원이나, 아예 깊은 산 속 수풀 덤불에 짱박혀서 침낭과 외투 껴입고 자고 싶기도 하고,
무슨 무장공비나 북파공작원처럼 비트 파서 맥북과 함께 밤을 보내고 싶기도 하다.
아 근데.. 산에서 자면... 그땐 식물들도 광합성 안 하고 호흡만 하기 때문에 산소 공급 측면에서는 안 좋으려나.

성경을 동원해서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밖은 폭풍 때문에 배가 다 가라앉게 생겼는데 밑전에서 쿨쿨 잘 쳐자던 요나처럼 자고 싶다. 서리해서 먹는 수박이 박진감 넘치고 더 맛있듯, 저거 그야말로 꿀잠이지 않았을까? 오죽했으면 선장이 한심해서 sleeper라는 단어까지 썼다. ㅋㅋ

3.
과식과 과속은 훌륭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다. 다음은 고기와 관련된 명언들이다.

  •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죠." (베어 그릴스)
  • "밥상에 자연의 향기가 물씬 풍기네. 자연에도 달리는 동물이 있는데 여긴 그게 없네."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빨리 라면 끓여 주세요~~" 의 주인공. ㅠㅠㅠ 그런데 세종대왕도 딱 저런 타입이었다~ 고기와 학문을 사랑하신 우리 대왕님)
  • "이모, 반찬이 죄다 잡범이네. 아니, 어떻게 살인사건이 하나도 없나?" (영화 아저씨 대사 중)
  •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니 가다가 길가에 난 풀을 뜯어먹으며 진격하라." (일본군 병맛 졸장 무타구치 렌야)

4.
지금까지 컵라면으로만 접하던 육개장 사발면이 언제부턴가 봉지 라면으로도 나오는 걸 편의점에서 봤다.
이걸 보니 딱 바로 든 생각은... 뭔가 스마트폰 앱이 데스크톱 PC용으로 포팅되어 출시된 듯한 느낌이다~~!! 카카오톡처럼.
신라면과 짜파게티는 반대로 PC에서 오랜 인기를 누리던 장수 소프트웨어가 모바일용으로 포팅된 예이다.
식당에서 라면을 시켰을 때 보통은 면이나 스프가 신라면 베이스가 많다고 하는데, 그럼 이건 서버 기반의 웹 애플리케이션인 걸까? =_=;; 라면 하나를 두고도 별 희한한 생각이 다 들었다. ^^

5.
2000년대 이래로 우리나라 가요계는 그야말로 그냥 아이돌도 아니고 '걸그룹' 아이돌 위주로 구도가 급격히 바뀐 듯하다. H.O.T 같은 남자 그룹도 아니고, 이 효리나 박 정현 같은 여성 솔로도 아니고.. 하긴 옛날에는 핑클이나 SES 같은 그룹도 있긴 했다만 요즘은 그때보다 애들이 더 어리고, 무엇보다 그룹 당 인원 수가 무진장 많으며 게다가 다국적이기까지 하다. 아이고 정말 정신없다. 그 와중에도 아이유는 어째 솔로로 여전히 잘 나가고는 있다만...

올해 연초에 방영됐던 '프로듀스 101'은 참 인상적이었다. 슈스케 시리즈보다 스케일과 선정성이 더 커졌다. "정말 자본주의의 진수이구나.. 도대체 어떤 사람이 약 빨고 이런 프로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저런 걸 한다고 또 저기 출연을 하는 여자애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참가를 신청해서 저 고생인 걸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출연자들은 다들 98년에서 2002년생.. 나보다 띠동갑 이상으로 어린 걸 보고는 기겁을 했다.

예능과 끼만으로 돈 버는 게 쉬울 리가 있겠나..;; 저런 스트레스 받느니 차라리 학업 스트레스가 낫지. 나중에 내 자녀가 철딱서니 없이 '나도 연예인 될래. 걸그룹 아이돌 할래' 이러면 참 골치 아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드라마도 그렇고 노래도 그렇고.. 정공파로 나가는 건 약발이 다했으니 '병맛'으로 승부하는 것 같다. "병맛으로 인한 중독성 때문에 욕을 하면서도 저게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자꾸 보게 된다" 같은 것이랄까.. 텔미, 크레용팝 빠빠빠, 픽 미 다 그런 부류인 것 같다. 걸그룹과 관련해서 본인이 최근에 얻은 경험으로는..;;

  • 서현과 설현이 서로 다른 인물이라는 걸 얼마 전에 확실하게 깨우쳤다. 특히 설현은 쏠 스마트폰 CF에 출연해서 더 유명해졌다.
  • 10년이 넘게 국제 정보 올림피아드의 약자로만 알았던 이니셜이 이제는 걸그룹 명칭이 됐구나. 101이 그대로 알파벳으로.. 참 기발하다. =_=;;
  • 크레용팝 빠빠빠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곳은 서울 아차산 기슭에 자리잡은 폐업한 유원지인 "용마랜드"라는 것을 알게 됐다. 뮤비에 나온 장면을 항공 사진 지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 한때 교회에서 <주께 가오니>를 굉장히 과격한 독수리춤 안무로 표현해서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던 그 당사자가.. 훗날 트와이스라는 걸그룹의 멤버로 데뷔했음을 알게 됐다! 이름은 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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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석면은 거의 방사능 물질과 같은 급으로 왕창 위험한 물질이었구나. 수 년 전부터 "지하철 역사 내부에서 석면 검출" 이러는 뉴스 보도를 여느 "미세먼지 주의보"처럼 그리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지내 왔는데.. 그렇게 사소하게 치부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슬레이트 지붕도 전부 석면이라면.. 그렇게도 위험한 물질인 것치고는 일상생활에서 너무 흔히 봐 왔는데 말이다.

보온· 단열재로 쓰였다는데 그럼 스티로폼과도 용도가 비슷한 건가?
한 분야에서 가성비가 아주 뛰어난 물건이 환경을 치명적으로 파괴하고 인체에 안 좋다는 게 뒤늦게 밝혀져서 흑역사로 전락한 게.. 토머스 미즐리의 발명품 말고도 더 있었다.

7.
끝으로, 운전자의 직업병을 소개한다.
골목길을 거닐다가 옆에 요런 적당한 공터를 발견하면.. 차를 세워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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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발견한 어느 한적한 골목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05/08 08:23 2016/05/08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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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과 잡설

* 이번엔 프로그래밍 말고 다른 분야의 컬렉션이다.

1. 이메일 주소 변경

이미 오래 된 일이지만... 본인은 대외적으로 홍보하고 사용하는 이메일 주소를 올해 상반기부터 드림위즈에서 gmail로 변경했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도움말에 안내되어 있는 메일 주소도 고쳤다. 지금까지는 영문 홈페이지에다가만 gmail을 안내했지만 이제는 한국어 사이트에다가도 주소를 바꿨다.

변경한 이유는 드림위즈가 이메일을 보내는 본연의 기능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서비스가 낙후해 있고 용량이 적고 비번이 8글자까지밖에 입력 안 되는 개막장인 정도여서가 아니다.
메일을 보냈는데 실제로는 상대방에게 메일이 가 있지 않아서 중요한 일정에서 골탕을 여러 번 먹고 나니, 이제는 안심하고 드림위즈 메일을 이용할 수 없어졌다.
지도교수님에게 보낸 수강 관련 중요 메일이 안 가고, 문서 작업 때문에 보낸 초안 원고가 안 가고.. 게다가 늘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진짜 러시안 룰렛마냥 복불복인 것 같다.

예전에 알집이나 알FTP가 왜 욕을 바가지로 먹었던가? 구린 라이선스 정책은 부가적인 얘기이고, 중간에 파일을 잘라먹고 사용자의 데이터를 파괴해 버리는 크리티컬한 버그 때문에 욕 먹었던 것이다. 자기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을 못 하니까. 드림위즈 메일도 이와 동일한 이유 때문에 버리기로 했다.
하긴, 주변 지인에게 이걸 얘기하니 돌아오는 반응은 "드림위즈 아직도 살아 있었어?"이긴 했다. =_=;;

gmail은 다 좋지만 국내 포털들과는 달리 간편한 대용량 첨부 기능과 수신 확인 기능이 없는 게 아쉽긴 하다.
대용량 첨부 중에서는 오로지 다음만이 2GB가 넘는 ‘초대용량’까지도 첨부가 된다. 드림위즈와 네이버는 그렇지 않더라.

2. 복날 몸보신

교회엔 내가 철도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핫도그(ㄱㄱㄱ, ㄱㅈㄱ 또는 ㅂㅅㅌ의 애칭)에 사족을 못 쓰는 지인이 있다.
난 경험상 개고기는 수육은 좀 느끼한 것 같고 그래도 개장국은 맛있게 잘 먹는다. 양념도 마음에 들고. 개고기는 성경적으로는 하나도 걸릴 것 없으니, 하나님께서 주신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말씀과 기도로 성결하게 한 후 먹으면 된다. 난 오히려 청국장이나 홍어 같은 건 못 먹는다.

하긴, 핫도그라 하니까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의 아문센의 남극 탐험이 생각 난다. 그거야말로 그 당시 장비와 보급 기술만 갖고는 핫도그 없이는 성공할 수 없었다. 아, 거기서는 고기도 다 날것으로 먹었을 테니 '핫'은 아니겠다만.. -_-;;

일단은 개는 극지방에서의 생존성과 수송력 제공 가성비가 말을 훨씬 더 능가했다. 스스로 체온 조절이 가능하고 식량도 사람의 것과 동일했다. 영국의 스콧 팀은 조랑말과 스노우모빌을 운용했지만 둘 다 남극의 혹한 속에서는 죽고 고장나고 피봤다.

아문센 팀은 탐험 과정에서 효용이 떨어진 개들을 사정없이 잡아먹었다. 심지어는 먼저 잡거나 죽은 개의 고기를 다른 개에게 사료로 주기도 했다! 하지만 열량 소모가 극심한 남극에서는 최대한 여유를 갖고 준비한 기존 보급에다 바다표범 현지 조달로도 식량이 부족했고,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스콧과 영국 언론은 영국 신사 드립을 치면서 개썰매나 타고 개고기를 쳐먹은(는) 야만인이라고 아문센을 사정없이 깠다. 그러나 신사면 뭘 하나, 결국 스콧은 아문센과는 달리 남극에서 살아서 못 돌아오고 다 죽었다.

요즘은 고어텍스, GPS, 초고밀도 생존 식품 같은 첨단 기술 덕분에 그때처럼 '서플라이 디팟'을 미리 안 만들고 동력기관이나 동물도 안 쓰고, 심지어 비행기로 실시간 보급조차 안 받고 사람만으로 남극점에 뚝딱 갔다 온다. 하지만 그래도 한여름에만 갈 수 있는 건 변함없으며 1인당 100수십 kg에 달하는 보급 자루를 썰매에다 싣고 질질 끌면서 정말 힘들게 살 잔뜩 빠지면서 갔다 온다.

옛날에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던 시절엔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프로파간다 하에서 손님들의 동선상에 있는 보신탕집들은 강제로 셧다운 당하고, 사철탕· 영양탕 등으로 간판 바꿔 달고 음지에서 영업하던 적이 있었다.;;; 정말로 개고기만 딱히 야만적이고 잔인하다고 볼 이유가 없는데..
오히려 애완견을 집 안에서까지 데리고 와서 키우는 게 성경적으로 당장 대놓고 죄악은 아니더라도 별로 비추에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다. 인간 학살자 독재자들이 이상한 동물 보호론자였다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개고기는 아무래도 규모의 경제에서 밀리는지라 국밥류로 한 끼 식사 정도 하려면 초밥 정식 먹듯이 1만 몇천 원 이상 들 각오는 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 사람이 가면 1인 1국밥 식사 대신 야채가 많아서 가성비가 더 높은 전골류를 권하더라.
저 친구가 "맛 한번 보지도 않고 개고기를 반대한다" 이렇게 한탄을 하길래, 모 전대통령의 "나한테 당해 보지도 않고.." 드립이 문득 떠올랐다.

3. 전동차 재림 신앙

언젠가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던 때의 일이었다. "아차!" 도시락통을 놔 둔 채 전동차에서 내렸다는 걸 알아 챈 건 왕십리 역에서 하차한 지 3분 남짓한 시간이 경과한 뒤였다.
전동차 안에서 노트북 PC로 다른 작업에 너무 집중하고 있던 게 화근이었다. 전동차로부터는 이미 100미터가 넘게 떨어진 상태.

유실물이 있다는 것을 감지한 직후에는 불안과 흥분 때문에 마치 차에 갓 시동을 건 직후처럼 심장 회전 rpm이 치솟았다. 그러나 난 최대한 침착하려 애쓰면서 rpm을 조절했다.
"역무실에다 신고를 해야 할 텐데 이 역에 코레일 역무실은 어디쯤 있더라?"(분당선이므로) 생각을 하면서 다시 코레일 관할 구간으로 갔다.

그런데 생각을 해 보니 왕십리역은 분당선의 시종점이고, 여기는 딱히 차량 기지나 주박 공간이 있지는 않다. 단지 인상선만 있을 뿐.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가설이 도출됐다. 그 열차가 떠난 지 아직 10분도 채 경과하지 않았으니, 내가 탔던 열차는 인상선을 거쳤다가 다시 반대편 승강장으로 곧 그대로 들어올 것이다. 청소부 아줌마는 바닥만 신경쓰지 그 짧은 시간 동안 선반을 일일이 다 살펴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행 1:11 말씀이 내게 평안과 위로를 주었다.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바라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그렇다. "너희 전철 승객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패닉에 빠져 있느냐? 너희를 떠나 인상선으로 들어간 이 동일한 상행 열차는 너희가 봤던 상태 그대로 진행 방향만 바꿔서 하행선 승강장으로 되돌아오리라." 아멘.

상행 열차는 맨 앞칸을 탔으므로 이번엔 난 하행 승강장의 맨 뒷칸에서 다음에 들어올 열차를 기다렸다. 잠시 후 하행 열차가 들어왔고, 그 열차의 선반에 아까 내가 놔 뒀던 도시락통이 있는 걸 창문을 통해 확인했다. 역무실에 연락을 할 필요조차도 없었다.

"그럼 그렇지!" 전동차 재림 신앙은 그 믿음대로 응답되었고 간증거리가 되었다. 지하철 영화 <튜브>에서 위기를 넘겼을 때 통제실 권 실장이 기뻐하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
다른 승객들은 열차에 올라타서 자리에 앉았지만, 나는 그 도시락통만 쓱 끄집어 낸 뒤 도로 내렸다. 주변의 다른 승객들은 나의 행동에 저런 배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5/07/29 08:33 2015/07/2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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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여름의 여행 일지

1.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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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4호선의 북쪽 종점인 당고개 역의 주변을 보면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게 참 인상적이다.
기왕 등산을 할 거면 그 산을 한번 올라 보고 싶다는 생각을 진작부터 했다.
결국은 같은 수락산이긴 한데 지난 3월엔 깔딱고개 근처까지 간 반면, 이번엔 귀임봉을 지났으며, '서울 둘레길'을 지나서 7호선 마들 역 근처로 귀환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맥북은 나의 소중한 등산 동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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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앙선 아신 역

이제 전동차의 운행 계통은 경의선과 중앙선이 통합되어 경의중앙선이라고 불리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경의선과 중앙선은 같은 수도권 광역전철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분위기가 아무래도 차이가 있다. 중앙선이 지나는 지역인 양평은 상수도 보호로 인해 태생적으로 개발 제한 봉인이 걸린 곳이 많으며, 개량된 중앙선 역시 강을 가까이 지나는 구간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풍경 사진 중에서 역시 산과 강을 담은 것만 투척한다. 색감이 예뻐서. 한적한 경춘선이나 중앙선 전철역으로 나가서 코딩이나 독서를 하고 있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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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린벨트 마을 답사

방학+주말을 기념해서 등산만 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고 차 끌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했다.

난 예전에도 한번 언급한 바와 같이, 서울 외곽의 야산과 그린벨트 지대 탐험에 대한 로망이 좀 있는 사람이다. 한번은 동부간선 → 지방도 23호선을 타고, 서울 공항 근처의 신촌동과 심곡동 마을을 드디어 밤에 몰래 답사했다. 여기 사는 주민은 어떤 사람들일까? 대대로 여기 살던 선조의 후손? 아니면 겁나게 부자들? 민통선 안에서 농사 짓는 사람들만큼이나 신기하게 느껴진다.
미처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지만 전방에서 갑자기 굉음과 함께 거대한 수송기가 활주로에 내려앉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서울 공항(=공군 기지)이 코앞이니까.

그 뒤 청계산로로 갈아탔다. 자연의 정취가 살아 있는 으슥하고 한적한 도로를 달리면서 대왕 저수지와 신구대학 식물원 일대를 구경했다. 여기는 바깥쪽 차선이 다 자전거 도로로 만들어져 있었다. 요런 데서 차 세워 놓고 혼자 자면 가히 야영 캠핑이 따로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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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고가 도로는 서울-용인 고속도로(171)이다.

계속 진행하자 길은 경부 고속도로를 나란히 지나면서 북쪽으로 가기 시작했으며, 말 그대로 청계산 등산로와 신분당선 청계산입구 역이 나왔다. 중간엔 서울 신원동의 새정이마을을 들러서 답사했다.

4. 경기화학선 폐선 부지

양재-서초 IC 사이는 잠깐 경부 고속도로 구간으로 건넜고, 다음으로 본인은 남부순환로를 타고 서울의 서쪽 끝으로 갔다. 남부순환로는 중간에 압박스러운 경사는 그렇다 치고, 중앙에 화단이 쭉 조성돼 있는 게 참 인상적이었다. 서울에서 이런 도로는 여기밖에 없는 듯. 도로 폭이 차선수를 홀수 개로 어정쩡하게밖에 만들 수 없는 규모이기라도 했나 보다.

그리고 본인이 새벽에 간 곳은.. 오류동 역과 푸른수목원의 사이에 있는 경기화학선 폐선 부지였다. 세상에, 주거지 근처에 이렇게 풀이 무성하게 우거진 폐선을 보는 건 옛날 수인선 협궤 폐선 이래로 처음이었다. 게다가 여긴 엄연히 인서울 지대인데! 과연 철덕의 성지 순례 코스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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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서울 지하철 7호선 천왕 차량기지

서울 남서쪽 끝까지 먼 길을 찾아가서 철도 답사를 했는데, 여기를 들르지 않고 간다면 그건 철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천왕 차량기지를 경건한 마음으로 한바퀴 빙 돌면서 성지순례를 했다. 자동차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여기를 직접 가 보는 날이 오는구나!

차량기지 중에는 도봉이나 개화처럼 아예 내부에 역이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7호선 장암, 9호선 개화 역) 지축, 창동, 구로, 군자, 신내처럼 다른 전철역 근처에서 기지를 그럭저럭 볼 수 있는 것도 있다.
아니면 철도로는 접근을 못 해도 고덕이나 수서나 모란처럼 고속/고속화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차창 밖으로 어렴풋이 볼 수 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천왕 차량기지는 그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차량기지들 중에 가장 존재감이 없고 접근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곳이라고 여겨져 왔다.

여느 차량기지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구간은 담장과 철조망이 쳐져서 은폐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용케 요런 곳을 찾았다. SR001 전동차가 지상에 나와 있는 실물 사진을 건지는 데 성공했다. 허나, 내가 하는 행동은 남이 보기엔 영락없이 국가 기간 시설에서 어슬렁거리면서 무단 촬영이나 하는 수상한 간첩-_-처럼 보였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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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을 통해 그린벨트 마을 3군데와 경기화학선 철길, 그리고 천왕 차량기지 답사라는 수확을 거두고 돌아왔다. 자동차는 이런 데 활용하라고 만들어진 편리한 문명의 이기임을 실감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5/07/10 08:36 2015/07/1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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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의 재발견

5년 전에 했던 얘기를 오랜만에 다시 늘어놓자면, 본인은 일단 운동이라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괜히 고생스럽고 힘만 들고 딱히 성취감이 느껴지는 게 없고, 이걸 해도 들인 노력에 비해 딱히 체력이 향상되거나 건강이 좋아진다는 느낌이 '거의'(전혀는 아니겠지만) 안 들어서이다. 가성비가 안 맞다.

초중고 시절을 통틀어서 체육 시간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시간이었다.
(1) 애들이 왜 이렇게 연예인에게 열광을 하는지, 그리고 (2) 공이라는 도대체 왜 차고 뛰어다니는지 뭔 재미로 하는지를 이해를 못 한 채 학창 시절을 보냈다.
구한말 때 서양 선교사들이 볼 차고 노는 걸 보면서 조선 양반들이 “ㅉㅉㅉ 하인을 시켜서 주워 오게 하면 될 걸 왜 저리 뛰어다니고 고생이냐” 라고 비아냥거렸다는 게 실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어쨌든 그 양반들 심정은 이해한다.

하물며 등산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난 “어차피 내려갈 걸 왜 힘들게 올라가냐”라는 지극히 경제적인 사고방식의 신봉자이다.
난 어떻게 '운동 중독'이라는 게 있을 수 있는지를 이해 못 한다.

러닝 머신?
쭉쭉 달리면 서울 지하철 터널이나 중앙선, 경부고속선의 전경이 화면에 펼쳐지는 러닝머신이라도 있지 않다면 동기 부여가 안 될 것 같다.
그나마 난 술· 담배를 전혀 안 하고, 먹고 자는 걸 스트레스 없이 잘하고 지내며, 또 전철역에서 회사까지 편도로 3km가 좀 안 되는 거리를 자전거를 타는 게 최소한의 건강 유지 활동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체중을 줄이는 데 부족하고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는 없는지라..
미리 운동 안 해 놓으면 40대가 넘어서 고생한다는 반 협박성 얘기에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얼마 전부터 가끔 등산을 시작했다.

이건 뭐 안 믿어지지만 어쨌든 반신반의하며 그물을 던지는 베드로의 심정과 같고(눅 5:5),
마지못해 일단 요르단 강에 가서 목욕을 한 나아만 장군의 심정과도 같다(왕하 5:13-14).
젊었을 때 실컷 개고생 해서 돈 벌어 놓고 늙어서는 병원비로 그 돈을 다 탕진하며 가족에게 민폐 끼치는 바보짓은 나도 하고 싶지 않아서 말이다.
북한산 정상에서의 맥북 인증샷도 이런 맥락에서 만들어진 사진이다.

그랬는데 요즘은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는 차원에서 발상을 좀 바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신체 활동을 귀찮하고 싫어하지만,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예외가 있다.

1. 난 운동을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게으르지는 않으며, 성질이 급하다. 할일 없이 기다리는 것을 움직이는 것보다 더 싫어한다. 고로 평소에 달리기를 아무리 싫어하더라도, 파란불 신호가 곧 끝나 가거나 지하철 문이 닫히려고 하면 필사적으로 뛰어가서 건너거나 탄다.
2. 난 뭔가 동기와 의미 부여만 되고 나면 움직이는 것도 삽질로 생각하지 않으며, 얼마든지 한다.

그래서 2번 원칙에 의거하여, 등산을 괜히 삽질만 하는 운동이 아니라 여행과 지리 답사로 자가승화할 생각이다.
기왕 등산을 가는 거면 오르기로 한 산에는 어떤 의미가 있고, 여기 주변은 조선 시대엔 어떤 지역이었는데 나중에 어떻게 바뀌었고 우리나라 정부 수립 이래로 어떤 개발 역사가 있었는지 같은 걸 모두 공부를 하면서 가는 것이다.

예전에 청계산을 오르던 중엔, 지금으로부터 30년쯤 전에 C123 수송기가 성남 서울 공항에 착륙하려다가 안개 때문에 시야를 잃고 여기 근처에 추락해서 탑승자가 모두 사망했다는 표지판을 본 적이 있다. 그런 것들이 본인의 기억에 남아 있다.

또한 본인은 서울 교외의 그린벨트 지역에 대해서 굉장히 동경을 하고 있다. 지방도 23호선의 왼쪽에 있는 성남의 그린벨트, 그리고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 최남단에 자리잡은 그린벨트 말이다. 철도가 없는 이런 오지들은 왜 분당이나 판교 같은 신도시와는 달리 개발되지 못했는지도 세세히 알고 싶다.
서울 남부의 산들, 그리고 분당의 동쪽을 가로막고 성남과 광주를 분리하고 있는 산들도 생각해 보면, 주변엔 가 보고 싶은 산들이 온통 널린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초엔 타워팰리스가 내려다보이는 서울 강남 일대의 모 야산을 정상까지 오르고 왔다. 인터넷 항공 사진으로만 보던 곳을 실제로 가 보니 힘들지만 재미있었다.
타워팰리스와 구룡마을은 같은 시와 같은 구에 사는 사람끼리도 이 정도로 빈부격차가 존재한다는 걸 단적으로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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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은 이남과 이북이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 한쪽 방향으로는 여러 등산로가 개방되어 있는 반면, 정상에서 반대편으로 넘어갈 수는 없다. 건너편은 문화 유산과 군사 사실 보호라는 명목으로 능선을 따라 철조망이 빽빽이 쳐져 있다. 산 절반이 이렇게 틀어막혀 있는 곳은 청와대를 감싸고 있는 북악산 말고는 이것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난 왜 그렇게 됐는지,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지만, 자세한 내막을 이 자리에서 얘기할 수는 없다. ㅎㅎ 직접 가서 보니까 역시 감쪽같이 잘 은폐해 놨더라.

하긴, 여기 말고도 서울 시내를 감싸는 산들은 다 이런 식으로 수도 방위를 위한 군사 시설이 조금씩 비치되어 있는 것 같다.
나보다 덜 헉헉대고 덜 쉬고도 더 빨리 오랫동안 산을 잘 오르는 사람들이 좀 부럽긴 했다.
그래도 등산을 조금이라도 철도와 연관지어서 덜 괴롭게 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서 만족스럽다.

끝으로, 높이 300미터 남짓한 산의 정상이 이 정도라면, 비슷한 높이인 와룡산에서 내려오는 건 일도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명 개구리 소년이라고 알려진 옛날 성서 초등학교 애들은 나쁜 흉악범에게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죽었지, 자기들끼리 스스로 길을 잃거나 조난 당한 건 확실히 아닌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5/05/19 08:27 2015/05/19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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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 용태 2015/05/20 21:42 # M/D Reply Permalink

    등산의 재발견!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읽다 보니 러닝머신이나 등산을 할때 아 이제 역행이다 / 아 힘드네 이제 타행 모드로 힘빼서 달리자 하면서 완급조절을 하는 버릇이 있네요.. 그러면 좀 덜 심심합니다;;; 같이 등산 가는 친구들보다 덜 지치는 효과도 있구요.

    진지하게.. 런닝머신에서 심박수와 속도 등등의 정보를 받아와서 시뮬레이터와 연계해서 주행하면 좋겠다는 생각 많이 했었습니다ㅋㅋ 예전 벤처기업 기술 전시회 가보면 가끔 그런 아이템이 구현(물론 철도가 아닌 그냥 운동장이나 산책로로서)돼 있는걸 볼 수 있는데 별 흥미는 일지 않았습니다..ㅋ

    1. 사무엘 2015/05/21 01:46 # M/D Permalink

      저게 그냥 운동장이나 산책로가 아니라 고증에 충실한 현존 철길이어야 하는데.. ㅜ.ㅜ 공감하시는 분이 계셔서 무척 기쁩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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