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1월 중순의 어느 날, 본인은 인터넷 SNS를 통해 알게 된 어느 지인을 오프라인에서 만나러 그 지인이 다니는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른바 '제네바 개혁 교회'라고 장로교 계열인데, 기성 주류 교단보다 더 근본주의랄까, 옛날 스타일을 추구하고 교리에 따른 분리를 더 엄격하게 시행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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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요즘 같은 세상에 근본주의라고 하면 일부 침례교 교파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저런 곳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니 신기했다.
본인이 다니는 교회도 비성경적인 은사주의를 거부하고 종교 일치 운동 거부하고 동성애 합법화 반대하는 등.. 대세를 따르지 않고 근본주의를 따르는 면모가 있다. 하지만 그걸 '남자는 무조건 정장, 여자는 무조건 긴 치마' 식으로 율법적으로 강요하지는 않는다.

특히 신기한 건 '칼빈주의'였다.
본인은 루터, 칼빈이라든가 예정론이라는 학설을 태어나서 처음 들은 곳이 교회가 아니었다. 그 대신, 아동용 세계사 만화와 중학교(세계사, 윤리)에서 최초로 접했다. 본인은 어린 시절에 장로교가 아니라 감리교 계열에 속하는 성결교를 다녀서 그런 사람을 교회에서 못 들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루터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작사뿐만 아니라 작곡까지 했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칼빈은 이에 질세라 시편 찬송가라는 걸 만들었나 보다. 전 악보를 통틀어서 4분음표와 2분음표밖에 없고 뭔가 종잡을 수 없는 조와 음계로 시편을 1편부터 150편까지 몽땅 노래 형태로 만들었다고 한다. (글쎄, 시편에는 저주도 쓰여 있는데 그런 가사까지 곡으로 옮겼는지는 모르겠다.)

또한, 장로교 내지 개혁 교회 쪽에서는 일명 TULIP이라고 요약되는 5대 강령을 가히 신앙의 핵심· 진수로 떠받들고 있었다. 성결교에 성결 중생 신유 재림(무순)이라는 4대 강령이 있는 것과 비교된다.
종교 개혁자들이 그 서슬 퍼런 교황과 맞장 뜨고 양심의 자유와 성경적 진리를 추구한 것, 엄격 진지 근엄하고 청빈 검소 고결하게 산 것은 분명 훌륭한 일이다. 성경을 독일어로 직접 번역한 루터야 말할 것도 없고, 칼빈도 제네바에서 올바른 성경이 안심하고 번역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놓은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다만, 인간이 자기 스스로 죄를 인지하고 예수님을 영접할 능력마저 상실했을 정도로 타락했다거나, 하나님이 답정너 선택하고 '예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거나, 선물을 받으려고 단순히 손을 뻗는 동작조차도 선물에 대한 값을 치르는 행위이고 자기 의라고 우기는 주장들은 좀 말장난 궤변처럼 들린다. 난 동의하지 않는다.

아무리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이 킹왕짱 절대적이라 해도.. 그 끔찍한 죄악이 인간의 자유 의지 책임으로 귀착되지 않는 한낱 역할극에 불과한 건 절대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씁 어쩔 수 없지" 그냥 허락하시는 뜻을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
칼빈 신학이 실제로 무어라 가르치는지를 내가 직접 배운 게 아니니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주위로부터 들리는 말에 따르면 칼빈주의 내지 예정론이 그런 걸 가르치는 것으로 보인다.

칼빈· 루터와 달리,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요한) 웨슬리는 세계사· 윤리 시간에 다뤄질 정도로 유명하지는 않다. 이쪽은 반대로 인간의 자유 의지를 강조하면서 칼빈주의 교리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존 웨슬리의 동생인 찰스 웨슬리는 O Horrible Decree라는 제목으로 TULIP 강령을 신랄하게 디스하고 극딜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

뭐 그것까지는 좋은데.. 거기는 반대로 반쯤 행위로 구원 유지, 구원의 상실을 가르치는 것으로 본인은 들었다.
비교하는 게 무의미할지 모르지만, 본인은 그게 어찌 보면 칼빈주의보다 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기본 중의 기본인 구원관이 정확하게 정립돼 있지 못하니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식으로 아주 이상한 낭설도 교회에 잔뜩 퍼진 게 아닐까?

이런 식으로.. 본인은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에 모두 진리도 있고 오류도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 개혁자들도 다 교리적으로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이고, 신학 얘기가 너무 길어졌다만.. 뭔가 다른 교파에 속한 교회, 그것도 주류 대형 교회가 아니라 마이너한 성향의 교회에 가 보는 건 꽤 신기한 경험이었다.

2.
그나저나 이 교회는 송파구 문정동에 소재해 있고, 교회 근처에는 길 옆으로 문정 근린 공원이라는 도심 속 녹지가 쭉 들어서 있었다.
이 정도로 작지 않은 폭의 공간에 건물 대신 풀밭과 벤치, 주차장이 1km가 넘게 이어지는 건.. 평범한 계획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지형이 아니다.
풍납동의 풍납토성 구간이야 유적 발굴 명목으로 개발이 봉인되고 풀밭과 언덕이 길게 이어져 있긴 하지만, 문정 공원은 그런 케이스도 아닌 것 같다.

이건 90% 이상의 확률로 폐선 철도 부지일 거라고 감이 어렴풋이 왔다. 내 안에서 살아서 역사하는 철령께서 내게 계시를 주셨다.
실제로 홍대 일대에는 당인리선 폐선 부지를 따라 어중간한 주차 공간과 건물, 골목이 길게 나 있다. 신촌에도 골목길이 과거 경성 순환 철도의 선형대로 형성된 것을 볼 수 있다. 철길이 없어지더라도 철길을 따라 형성된 건물들의 선형이 쉽게 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의 구시가지가 아니라 동남부 외곽에 웬 철도가 있었다가 폐선된 적은 없다. 저 공간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저건 근처의 외곽순환 고속도로와 비슷한 선형으로 수도권 남부 순환 철도를 미래에 '만들려고' 국가에서 1980년대에 확보해 놨던 부지였다. 단선 전철로 여객보다는 화물 수송을 염두에 뒀으며, 의왕에 있는 컨테이너 화물 기지에 이르기까지 선로를 이을 계획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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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는 경부선 의왕(위의 그림에서는 '부곡')에서 분기하는 오봉 화물 기지에서 시작해서 무려 중앙선 도농까지였다.
북쪽의 교외선(능곡-의정부)과 연결하면 진짜로 그럴싸한 순환선 철도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계획은 여러 난항에 부딪혔다. 서울 외곽에 자리잡은 군부대 등 보안 시설들과 마찰이 있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여기 일대에 분당선과 서울 지하철 8호선 같은 여객 철도가 지하로 건설하려는 대체 계획이 잡히면서.. 지상 화물 철도의 건설 계획은 1993년에 완전히 나가리 났다.
그 뒤로 이 부지는 미개발 상태로 오랫동안 놀면서 주차장 정도로나 쓰였다. 그러다가 2000년대 이후에 여기가 문정 근린 공원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렇게만 알면 끝인데.. 본인은 그 공원의 일부 구간에 만들다가 말았던 철길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정보를 뒤늦게 입수했다. 그래서 즉시 차를 끌고 달려가서 공원을 또 답사했다. 그리고 거기가 바로 공교롭게도 딱 제네바 개혁 교회 근처였다. 2km에 달하는 전체 공원 구간을 다 돌아다녀 봤는데, 레일이 있는 곳은 유일하게 저기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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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옷~~!!!
남부 순환 철도라는 게 이게 무슨 구 수인선 같은 역사 유물도 아닌데, 철길을 공원에다 일부러 깔았을 리는 없을 테고.. 저건 그 시절에 만들다가 말았던 폐선 흔적이 틀림없을 것이다.
간격은 표준궤가 맞는데 궤조가 유난히도 작고 가녀린 것 같다. 공원의 그 어느 표지판이나 구조물에도 여기가 철도 노반이었음을 암시하는 문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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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철도 불모지인 서울의 동남부에서 고가나 지하가 아닌 평지에 깔린 레일을 이렇게 보게 되다니.. 완전 좋다. ^_^ 뭐, 철길의 길이는 100미터가 채 될까 말까이니 너무 많은 걸 바라지는 않는 게 좋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도 있는 게 어디냐.
계획 당시에 땅이 얼마나 놀고 있었으면 평지에다가 대놓고 철길을 놓을 생각을 했을까? 외곽순환 고속도로와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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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게도 중간에 요렇게 교차로를 만들어 놓은 곳이 있었다.

서울 서부 외곽의 오류동에는.. 경인선에서 분기하는 경기화학선의 폐선 잔해가 건물 뒤로 지나가는 게 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동부 외곽에는 지금까지 어렴풋이 말로만 들었던 남부 순환 철도의 흔적이 철덕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심지어 강동구에 있는 한영 중· 고등학교와 인근의 큰길인 동남로 사이에 있는 큰 공간도.. 그 시절에 확보해 뒀던 철길 노반의 흔적이다. (☞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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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다. 모처럼 철도와 기독교· 성경을 융합한 글이 하나 완성됐다. ^__^
보라매 공원은 원래 공군 사관학교의 부지였고, 여의도 공원은 원래 여의도 공항 활주로 내지 여의도 광장의 부지였다.
또한, 강북 구도심에는 용산선 철길이 있어서 거의 폐선 상태였는데, 2010년대에 싹 걷히고 지하의 경의선· 공항 철도로 형태가 바뀌었다. 그리고 거기도 지상 구간은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이런 식으로 대도시의 도심에 놓여 있는 공원은 제각기 사연과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제네바 개혁 교회는 이렇게 만들려다가 만 철도 폐선 부지를 활용한 공원의 근처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성도들이 쉬는 시간에 밖에서 교제하기 좋겠다.
본인이 다니는 교회의 근처에는 큰 도로의 중앙에 무슨 계기로 조성된 '거리 공원'이란 게 있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19/01/25 08:32 2019/01/2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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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 용태 2019/02/15 21:13 # M/D Reply Permalink

    정말 오랫만이네요.. 여전하신 모습 반갑습니다ㅠ유튜브에서 영상 하나 보다가 용묵님 생각나서 방문합니다.https://youtu.be/xEs3UcUElac요즘은 궤도교통수단(?)의 내비게이션 앱을 만들고 있습니다!

    1. 사무엘 2019/02/16 08:34 # M/D Permalink

      와~ 그러게요!! 너무 오랜만인걸요? 정 용태 님, 반갑습니다. ^^;;
      어디서 또 이런 진귀한 자료를.. 링크도 감사드리구요.
      조향 장치가 없이 앞· 뒤로만 가는 교통수단은 운전을 어떻게 하나 무척 궁금하고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여전히 같은 학교와 직장에 적을 두고 있고 근황에 별 변화가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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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인선 특급

작년(2017년) 7월 7일부터 경인선엔 일반적인 급행을 넘어 그거보다도 정차역이 적은 일명 '특급'이 운행되기 시작했다.
사실 경인선에는 지난 2010~2012년 사이에 일명 '급행A'라는 이름으로 역사상 최초로 특급의 전신이 잠시 운행되었다가 곧 없어진 적이 있는데, 그게 5년 남짓 만에 다시 부활한 것이다.

그때와 지금의 특급 정차역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지금 매우 인상적인 것은 구로-용산 구간에서도 여러 역들을 건너뛰고 노량진· 신도림· 구로에만 정차한다는 것이다. 즉, 노량진과 신도림 사이의 대방· 신길· 영등포는 스킵이다.
그리고 기존 급행이 정차하는 역곡도 건너뛰어서 구로 다음의 정차역은 무려 부천이다.

물론 특급은 거의 1시간에 1대꼴로만 다니기 때문에 경부선 천안 급행에 준하는 간격이다. 그리고 이른 아침과 저녁에는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대에 이 열차를 탈 수는 없다는 게 아쉬운 점으로 느껴진다.
운행이 뜸한 전동차도 순위를 매기면 상위권은 얼추 이렇게 분류 가능할 것 같다.

  • 하루 다섯 손가락 안의 횟수: 서울-천안 급행 (하루 단 3회), 중앙선 지평 (하루 단 4회)
  • 1시간에 0.n대급: 광명 셔틀. 그리고 최근에 연장된 분당선 청량리-왕십리 구간 (평일 한정 하루 9회)
  • 1시간에 1대꼴: 경의선 신촌-지상 가좌, 용산-천안 급행, 광주 지하철 녹동
  • 1시간에 2~3대: 1호선 종점들 (신창, 소요산), 경의선 서강-지하 가좌, 중앙선 덕소 이후 용문까지

이거 다음으로는 1시간에 4~5대 꼴로 서울 7호선 장암, 서동탄, 경의중앙선 (경의선은 DMC 이북부터, 중앙선은 덕소까지), 경춘선, 1호선 천안 정도가 오를 듯하다.

2. 강남의 지하철역 배치

서울 강남의 삼성동 일대에 횡축으로 지하철들이 들어선 걸 보면 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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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아래에 가장 먼저(1980년대) 생긴 2호선은 쿨하게 두 블록 간격으로(거의 1.3km!) 선릉과 삼성 역이 들어섰다.
  • 그 다음으로 생긴 7호선은 어정쩡한 거리의 구간에 굳이 역을 여러 개 만들지 않기 위해 청담 역을 엄청나게 길게 만드는 꼼수를 썼다. 그렇기 때문에 '청담역 사거리'라는 이름의 교차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 그 반면 가장 나중에 생긴 9호선은 중간에 역을 하나 더 만들었다. 코엑스에 가려면 당연히 삼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봉은사가 코엑스에서 더 가까워졌다.

위의 그림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더 아래의 대치동· 개포동을 지나는 3호선과 분당선도 9호선처럼 각 블록마다 일일이 역을 다 만들었다. 3호선은 그렇다 치더라도 분당선은 광역전철인데도 도시철도 수준으로 역을 너무 많이 만들어서 비판받고 있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성북· 강북구에 비해서 강남구는 지하철역이 정말 많긴 하다.

그리고 봉은사는 원래 서울 도심과는 전혀 관계 없는 조용한 오지 언덕에 자리잡은 절이었는데.. 강남 지역 개발과 지하철 9호선 연장 개통 덕분에 초대박 난 사례임이 틀림없다.
분당선 구성 역 덕분에 초역세권이 된 옆의 전통사, 그리고 처음부터 서울 종로 한복판에 자리잡은 조계사 뺨치는 입지를 갖추게 됐다.

3. 지하철 소프트 환승 예외

현재 서울· 수도권의 대중교통 통합 요금제는 잘 알다시피 버스와 버스(같은 번호끼리는 제외), 버스와 지하철 간의 환승 할인(30분 이내)은 인정하지만 지하철과 지하철 간의 환승은 인정되지 않는다. 지하철에는 애초에 하드웨어적인 환승 통로가 있으니 카드를 찍을 필요 자체가 없으며, 굳이 별도의 조건부 환승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말이다.

지하철 간의 환승 할인도 기술적으로 구현하려면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다. 단지 할 필요가 없으며, 한번 예외를 만들었다간 형평성 차원에서 여기저기 다 열어 줘야 되기 때문에 그게 번거로우니 안 할 뿐이다.
물론 용산(1)-신용산(4) 같은 경우는 버스 한 정거장 거리도 안 되고 해 줬으면 싶기도 하다.

지금이야 환승 통로가 뚫렸으니 의미가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지상 청량리(지금의 경의· 중앙선)와 지하 청량리(1)도 서로 별개의 역이었으며 환승이 안 됐었다. 사람이 승차권을 일일이 개표하던 시절에는 승차권에다 특수한 표시를 해서 두 청량리 간에 상호 소프트 환승이 가능하게 유도리를 봐 줬을 정도였다. 자동차로 치면 외곽순환 고속도로의 청계 TG 영수증을 제시할 경우, 경부 고속도로의 판교 TG에서는 통행료 추가 징수를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이패스가 있으면 이런 거 다 자동으로 처리됨)

아무튼, 지금도 우리나라 전철에서 지하철의 환승은 무조건 전용 통로를 이용하는 것만이 원칙인데, 여건상 전용 통로가 갖춰지지 못했을 때에만 극히 제한적으로 소프트/간접 환승 예외를 인정한다. 그래서 노량진 역이 1호선과 9호선 환승 통로가 없던 시절에 지하철 간 환승 할인이 인정되었으며, 현재는 유일하게 경의선 서울 역과 타 노선 간의 환승만이 예외로 남아 있다. 공항 철도도 전용 환승 통로가 뚫린 뒤부터는 간접 환승이 막혔다.

옛날에 노량진과 서울 역 딱 둘밖에 없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만...
지금은 카드를 찍고 나갔다가 5분 안으로 그 동일한 게이트로 다시 들어갈 때는, 환승 횟수가 1회 차감되지만 기본 요금 재부과는 없는 유도리도 추가되었다.
글쎄, 없는 것보다는 나은지 모르겠지만, 이것만으로는 반대편 승강장 횡단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실생활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이다. 화장실 다녀오는 것 정도만 가능하고 그나마도 남자 소변 한정일 것이다. 서울 지하철이 지하철을 카드 찍고 나갔다가 그대로 다시 들어가는 쪽은 정책이 엄격한 편이다.

4. 중복 구간과 연속 환승역

수도권 광역전철과 지하철에서 둘 이상의 노선이 나란히 지나면서 환승역도 연달아 만드는 예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청량리-회기 (1 vs 중앙): 지상/지하 청량리, 국철/지하철 청량리 등으로 구분하다가 2010년에부터 정식 환승 통로가 생겼다. 물론 청량리는 환승 거리가 회기보다 훨씬 더 길다.
  • 상봉-망우 (중앙 vs 경춘): 역간거리가 좀 짧긴 하다. 상봉은 그나마 두 노선의 승강장이 가까이 붙은 편이지만 망우는 선로 수가 매우 많고 전철 승강장이 양 끝에 있어서 환승 거리가 길다.
  • 동대문역사문화-을지로4가 (2 vs 5): 얘는 5호선이 꼬깃꼬깃 굴곡져 있기 때문에 둘 다 평행이 아니라 수직 교차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 신용산-서울역 (1 vs 4): 4호선이 미군 기지를 피해서 만들어지느라 1호선과의 어설픈 중복 구간을 형성했다. 그래도 1호선의 수요를 분산하는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 효창공원-공덕 (6 vs 경의): 옛 용산선 구간을 따라 경의선과 공항 철도가 복층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여기는 지하철 6호선조차도 동일 노선을 그대로 따라가니 무려 3중복이다. 그래도 공항철도는 급행을 표방하느라 효창공원 역엔 서지 않는다.
  • 수색-DMC: 원래 경의선 수색 역이 먼저 있었는데 거기서 어중간하게 떨어진 곳에 지하철 6호선이 또 수색이라는 이름의 역을 독자적으로 만들었다. 마치 경의선 신촌과 2호선 신촌처럼 말이다. 그런데 경의선까지 수도권 전철로 들어오면서 지하철 수색은 DMC로 이름이 바뀌고, 기존 수색도 역이 유지되면서 굉장히 가까운 중복역이 생겨 버렸다.

5. 서울 지하철의 선형과 연장 가능성

서울 지하철 중 순환선이거나(2호선) 이미 광역전철들과 얽힐 대로 얽힌 다른 1기 지하철들을 제치고 5호선 이후부터 살펴보면..
5호선은 Y자 분기 굴곡(배차간격 너무 길어짐)에다 강북 도심에서도 1· 2호선과 차별화하기 위한 온갖 굴곡으로 가득하다. 6호선도 은평구와 용산구의 지하철 소외 지역을 일부러 들쑤시느라 굴곡이 심하며, 서쪽 끝은 아예 단선 루프로 매듭 지어져 있다(매듭을 역행하기가 매우 불편)
8호선은 남쪽의 성남 구시가지를 경유하느라 선형이 분당선에 비해 좋지 못하다.

그나마 선형이 전반적으로 곧은 축에 드는 지하철은 7호선과 9호선이다. 얘들은 정말 잘 만들었고 승객들이 터져난다. 특히 7호선의 경우 인천 서쪽 끝까지 계속해서 연장 떡밥이 나돌고 있을 정도이다.
다만, 이렇게 서쪽으로 잘 나가고 있는 7호선과 달리, 9호선은 서쪽 연장 없이 김포시와의 연계는 별개의 김포 경전철로 귀착된 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다. 9호선은 공항 철도와의 직통 운행은 어째 성사되려나 모르겠다. 직· 교류 겸용 차량이 필요할 텐데..

그리고 노선이 굴곡졌다 해도 5호선은 상일동 지선이 하남시로 연장되고 있고, 8호선도 암사 이북이 구리시로 연장 중이다. 8호선은 복정-산성 사이라든가 모란 종점 근처에 역을 하나 더 만들 생각도 있는 모양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01/16 08:34 2019/01/16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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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마지막 블로그 글은 몇 년 동안 새 글이 없이 먼지만 쌓여 가던 '철도-관련 미디어' 카테고리 소속이 되겠다. 만세~!

내가 맨날 Looking for you 타령만 죽어라고 늘어놓고 있어서 존재감이 많이 묻히긴 했지만.. 옛날(200x년대) 새마을호 열차에서는 Looking for you 음악만 흘러나온 건 아니었다.
열차가 시발역에서 운행을 시작했을 때, 그리고 종착역 도착을 앞두고는 황홀하고 모던하고 미래지향적이고 하이테크스러운 분위기의 다른 BGM이 흘러나왔다. 그러면서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 즐거운 여행 되셨습니까?" 요런 안내방송이 나왔다. (☞ 동영상 링크) 본인은 이 BGM을 일명 로고송이라고 불러 왔다. 보통명사 또는 고유명사로 말이다.

초창기에는 출발 때에 한해서 새마을호의 로고송 자체가 Looking for you이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즉, Looking for you를 배경으로 하고 "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랬다는 거다. 이건 각 역별 도착 시각을 일일이 그것도 4개 국어로 다 안내해 주던 시절의 추억인데, 본인은 직접 들어 보지는 못했다. 지금은 KTX에서도 그러지는 않는걸..

그러던 것이 Looking for you 이후에 별도 로고송+안내방송으로 바뀌었다. 종착 Looking for you는 그래도 06년 말 정도까지 유지됐지만 출발 Looking for you는 KTX의 개통 이후에 얼마 못 가 스티브 바라캇 Dreamers로 바뀌었기 때문에 2002년 이래로 길게 잡아도 2년 남짓밖에 유지되지 못했다.

그건 그런데.. 문제는 곡명이 다 알려져서 철덕들의 찬송가로 등극한 Looking for you 말고, 그 고유 로고송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그 시절에 무궁화호에서 연주되었던 로고송은 CAGNET의 What will I do(원곡은 아닌 듯하고 C장조로 조가 올라간 리메이크)라고 출처가 곧 알려졌다. 얘도 나쁘지 않은 곡이지만 새마을호 로고송 같은 황홀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은 없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새마을호 로고송의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D장조와 D단조를 오르내리는 그 황홀한 멜로디는 출처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렇게 철덕들의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 로고송은 2008년 무렵부터 다른 곡으로 대체되었다.

본인은 지난 2009년 1월 6일 아침, 서울 교통방송 라디오에서 정확히 같은 음색은 아니지만 로고송의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것을 우연히 목격..은 아니고 청격했었다. (☞ 옛날 글 링크) 그걸 블로그에 공개했으며 다른 철도 동호인께서 호응하는 댓글까지 올려 주셨다. 하지만 일은 그걸로 끝나고 여전히 정확한 출처를 알아내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이 사실이 나무위키에도 등재돼 있을 정도였다. (코모넷 항목.. 코모넷은 그 당시 새마을호에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던 협력업체. 현재는 폐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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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는데 그로부터 거의 1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2018년 12월 17일,
디씨 철갤에서 어느 갤러에 의해.. 이 음악의 출처를 근성으로 "단서를 쫓아 여러 음반 뒤져가며 듣고 또 듣고 생노가다 해가며" 찾아냈다는 소식이 타전되었다!

출처는 바로 Headline News라고, 방송국 BGM용 컴필레이션 음반.. 그것도 엄청 옛날인 1992년 5월에 발매된 음반의 6번 트랙인 Outlook이었다. 이건 우리나라 철덕 역사에 길이 남을 발견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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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나 TV 방송에서 광고나 섹션 전환, 아니면 심지어 방송사고 등 여러가지 상황에서 들려줄 만한 짤막한 BGM들 모음집이다. 이 분야의 음악만 전문적으로 작곡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심각하게 마이너한 분야의 음악인 관계로 전곡이 유튜브 같은 데에 공개돼 있지는 않으며, 인터넷 상으로는 맛보기로 중간 30초 분량밖에 못 듣는다. 하지만 곡 자체도 1분 30초 남짓으로 짧은 편이다.

안내방송 멘트에 가려져서 제대로 듣기 어렵던 구간을 이렇게 음악만 들으니 감회가 새롭다.
게다가 본인이 라디오에서 들었던 곡은 저 앨범의 4번 트랙(Young Blood 젊은 피??)이라는 것도 덤으로 알 수 있었다! 같은 작곡자가 같은 멜로디를 다른 악기와 다른 분위기로 리메이크 해서 연주했던 듯하다.

이 곡의 작곡자(Nicolo Bardoni & Stephen Warr)에 대해서는 새마을호 Looking for you의 작곡자인 MALTA보다도 안 알려져 있고, 하물며 음반은 Obsession보다도 더 구하기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출처를 알게 된 것만 해도 어디냐.. 이런 듣보잡 마이너 음반까지 뒤져서 로고송의 출처를 알아낸 그 철갤러 분께 진심으로 경의와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철덕의 오랜 의문이 이렇게 풀리니 기분 좋게 올해를 마무리할 수 있겠다.

※ 그리고 이미 국내의 어느 용자께서 이 곡의 음원을 구해서 유튜브에 이미 올리셨다.

Posted by 사무엘

2018/12/29 19:33 2018/12/29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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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ㅂㄴㅌㅍ 2019/01/08 16:03 # M/D Reply Permalink

    https://youtu.be/tRuHFQ4L1Hw
    유튜브에 어떤 분이 울려놓으셨네요.

    1. 사무엘 2019/01/08 16:08 # M/D Permalink

      우와 세상에, 빠르기도 해라 ㄷㄷㄷㄷㄷ ㅠㅠㅠㅠㅠㅠ
      제가 살면서 이 음악을 음원 원본으로 듣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알려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철덕 네티즌들의 정보력은 끝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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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철도 관련 사진 몇 장

1. 로마자 표기

지금이야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 개정된 지 어언 20년이 돼 가기 때문에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은 과거의 유물로 전락해 있다.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은 소리 표기는 정확할지 모르지만 ㅓ, ㅜ를 표기할 때 컴퓨터 키보드에 없는 반달점 붙은 글자를 써야 하고, ㅋㅌㅍㅎ에 ' 를 덧붙이는 등 실용적으로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런데 국내에서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은 1980, 90년대에만 도입되어 쓰였기 때문에 생각보다 역사가 길지 않다.
1970년대 같은 더 옛날로 가면 오히려 그때는 지금처럼 ㅓ를 EO를 써서 표기하고 있었다. 현재의 로마자 표기법은 어찌 보면 더 먼 과거로 복귀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 증거로.. 서울 지하철 1호선 공식 기록 영상에 등재돼 있는 '수원' 역명의 로마자는 SU WEON이라고 적혀 있다. '서울역앞'도 SEOUL YEOG-AP이고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서울 지하철 2호선도 전구간 개통하기 전, 신설동부터 강남 구간의 부분 개통만 했을 때는 로마자 표기법이 보다시피 매큔-라이샤워가 아니었다.
'서초'도 화면상으로는 짤렸지만 Se...로 시작하는 걸 볼 수 있다(Seocho).

1983~84년 사이에 로마자 표기법이 개정되면서 1984년, 2호선이 전구간 개통할 때쯤부터 매큔-라이샤워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기존 안내판들은 다 새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1980년대에 2호선에서 구 로마자 표기법이 잠깐 쓰였던 시절은 우주왕복선으로 치면.. 액체 연료 탱크에도 하얀 도색이 칠해져 있던 초창기 시절을 보는 것 같다.

또한, 저 "교대 - Gyodae"라는 압박스러운 표기에서 유추할 수 있듯, 2호선은 개통 당시에 '이대'역도 Idae...라고 표기했던 적이 있다. 그러다 얼마 못 가, 로마자 표기는 각각 'SNU of education', 'Ewha womans univ..'처럼 긴 정식 명칭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지하철 역명판에 지금처럼 한자까지 병기된 것은 훗날, 2000년의 현행 로마자 표기법 개정과 비슷하다.

이 글을 쓰면서 뒤늦게 알게 된 건데.. 전국의 다른 모든 **여대들은 ** women's university라고 표기하고 있고 그게 직관적인 반면, 역사가 가장 오래된 이화여대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공식 영문 표기가 womans university이다. 믿어지지 않으면 직접 확인해 보시길.. 어퍼스트로피도 생략하고 없는 단어를 새로 만들어 냈다.

다음은 교대와 아주 가까이 있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역삼 역의 개통 당시 승강장 모습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역시 로마자 표기법은 매큔-라이샤워 이전의 초창기이고 지금과 동일하다. 그래도 한자 표기는 없다.
인상적인 것은 에스컬레이터 픽토그램이 큼직하게 그려져 있는 모습이다. 국내에서 지하철 역사상 최초로 내부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 역이 저기라고 한다.
스크린도어가 최초로 설치된 역은 기준과 조건에 따라 인천, 김포공항, 신길 등으로 나뉜다만... 에스컬레이터 1호는 저기이다.

옛날에는 자동차에 자동 변속기가 고가 사치품이었던 관계로 이 옵션이 장착된 자동차는 겉면에 automatic이라고 써 붙여서 큼직하게 광고를 했었다.
그것처럼 옛날에는 에스컬레이터도 있다는 것도 자랑하고 광고하고 유세를 떨 만한 사유였던 듯하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은 노선의 구분을 위해 지금과 같은 노선색 체계를 정립했으며(2호선은 초록색!), 그리고 일명 '지하철체'라고 불리는 역명판 전용 서체도 정립했다. 1호선만 있던 박통 시절에는 그런 게 아직 없었다.

그러다가 1984년, 2호선이 순환선 형태로 완전히 개통할 즈음에는 매큔-라이샤워 로마자 표기법이 도입되었으며, 65세 이상 노인의 무임승차도 딱 이때부터 시행되었다. 2호선의 완전 개통을 알리는 다음 대한뉴스 동영상을 보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호선의 성수 지선에 위치한 용답 역이 원래 이름은 기지였다는 사실 자체는 본인도 알고 있었지만 사진으로나마 당시 흔적을 접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Kiji (vs Idae...) 대신에 Car Depot (vs Ewha WU..) 인 것, 역번호가 본선이 아닌 지선 형태로 매겨진 것을 감안하면, 저건 개통 초창기가 아니며 2호선 전체 완공 후 좀 시간이 흐른 뒤의 모습이다. 실제로 저 역은 1980년대까지는 계속해서 이름이 '기지'이다가 90년대에 와서야 용답이라고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도 저기는 서울에서 제일 먼저 생긴 지하철 차량 기지이다 보니 지금으로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서울 시내· 중심부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잡긴 했다.

2. 철교의 정체

지난 여름에 용산 역을 가 보니, 내부 광장에는 "필름 속에 담긴 한국 철도 -- 철도를 통해서 본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희망" (주최 주관 코레일, 후원 국토교통부)라는 제목으로 자그마한 옛날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는 모르겠다.

경인선을 비롯해 일제 시대 옛날 철도의 모습, 해방자호 이런 건 유명한 흑백 사진이다.
나중에는 김 대중 시절에 경의선을 연결해서 도라산 역을 개통하던 것, 그리고 2007년 노 무현 때의 동해선 연결 남북 시범 운행 사진도 걸려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6· 25 때의 모습이라면서 바로 문제의 저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3번은 "대동강 철교"라고 소개돼 있지만 글자가 패치된 흔적이 보인다.
안 봐도 비디오다. 저건 "한강 철교"라고 자료를 잘못 만들었다가 오류를 지적받고는 허겁지겁 수정한 것이다.

저 사진은 1950년 12월 초, 평양에서 북한 공산 괴뢰군의 대동강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서 유엔군이 다리를 폭격해서 저렇게 부숴 놓은 것이다. 그때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해 우리가 눈물을 머금고 후퇴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머지않아 다리를 망가뜨려 놓을 테니까 피난 가려면 빨리 가라고 사전에 시민들에게 경고를 하긴 했다.
하지만 그때 교통 통신이 지금처럼 좋지가 못했으니, 다리가 파괴되고 열차 운행이 중단된 뒤에야 소식을 뒤늦게 접한 사람들은 저거라도 붙잡아서 어떻게든 강 건너 피난 가려고 북적거렸다.
한강 인도교 내지 철교를 배경으로 피난민들의 영상 기록이 남겨진 건 내가 알기로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8/11/19 19:34 2018/11/19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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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MB 2018/11/25 23:21 # M/D Reply Permalink

    신길역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된게 초기에는 난간형이었던걸로 알고있습니다

    1. 사무엘 2018/11/26 05:55 # M/D Permalink

      네, 맞습니다. 1호선 지상 신길이지요.
      과거에 도철에서는 스크린도어를 설치해 놓고도 한동안 가동을 안 해서 언론으로부터 까이기도 했죠. 그게 엊그제 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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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철도 근황

2018년 하반기 현재, 우리나라의 고속철 운행 동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먼저, 호남(2015)에 이어 평창과 강릉까지도 전용선(경강선) 노선이 개통했다. 덕분에 청량리, 양평, 원주도 KTX가 서는 역이 되었다. 경강선은 기존의 영동· 태백선과 달리 무궁화-새마을 같은 일반열차가 아예 다니지 않는다. 느린 열차가 달리기에는 아까운 선로이니..

그 반면, 인천 공항까지 직통으로 가던 KTX는 폐지됐다. 올림픽도 끝난 와중에 수요가 전무하니 말이다. 더구나 일관되게 동-서 횡축 이동인 강원도라면 모를까, 남부 지방에서 이용하기에는 서울 역 경유 공항 행은 동선이 너무 안 좋다. 누차 말하지만 광명 역에서 인천대교와 비슷한 선형으로 공항을 갈 수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한때 공항 철도 검암 역이던가 거기에 KTX 정차 대비를 위해서 저상홈도 만들고 작업을 많이 했었는데, 이제는 필요 없어졌다. 앞으로 공항 철도는 KTX가 아니라 서울 지하철 9호선과의 직통 운행 대비나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서울 1기 지하철 이래로 직-교류 겸용 전동차가 또 등장하게 되겠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고속철 노선은 강원도 노선을 제외하면 얼추 X자 모양을 하고 있다. 하부의 V자는 각각 영남 방면과 호남 방면이다. 영남은 부산뿐만 아니라 포항 방면으로도 나뉘고, 호남은 목포와 여수로 또 나뉘긴 하지만 그건 일단 논외로 한다.

그리고 상부의 V자는 각각 서울 방면과 수서 방면이다.
수서 고속철(SRT)이 개통하기 전에는 전국의 모든 고속철 열차들이 대전 이북부터는 한데 몰렸다. X가 아니라 뒤집힌 Y자 모양이었던 셈.
그 상태로 금천구청 이북부터는 고속철이 일반열차들과도 합류하기 때문에 저기는 최악의 선로 용량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사실, (1) SRT가 개통하기 1년 남짓 전에 고속철의 운행에 숨통을 먼저 터 준 것은 (2) 대전· 대구 시내 잔여 구간의 개통이었다.
이 과업까지 완수된 뒤에야 경부 고속철은 운행 계통이 일체의 병목 구간 없이 기존 경부선과 완전히 분리되었으며, 말단뿐만 아니라 중간에서도 일반열차와 스레드 동기화 보조를 맞출 필요 없이 원활히 운행을 할 수 있게 됐다. 더 곧은 길에서 더 빠르게 달려서 운행 시간이 몇 분 단축된 건 덤이다.

그래서 오늘날 KTX는 위의 두 조치 덕분에 일반열차와 부대끼는 걱정은 별로 할 필요가 없다. 이제 강원도를 제외한 전국의 모든 KTX가 한데 몰리는 유일한 구간은 오송-평택 사이이다.
요즘 고속철은 전반적으로 승객 많고 장사가 잘 되고 있다. 선로 용량이 부족해서 열차를 더 투입하지 못하고, 자리가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이다. 그러니 저 병목 구간도 2복선으로 확장했어야 했다는 의견이 있다.

느린 일반열차와의 분리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유사 구간을 달리는 고속철의 운행 계통까지 완전히 이원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날이 언제 올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이런 변수도 있다. (1) SRT 전용선인 지하 고속선은 훗날 고심도 광역 급행 전철(GTX)도 사용할 예정이라 한다.

(2) 그리고 SRT 고속선과 기존 경부 고속선이 합류하는 지제 인근에는 심지어 경부선 기존선과 경부 고속선을 연결하는 선로까지 만들어질 예정이다!
그래서 수원 역을 경유한 KTX가 대전까지 계속해서 느린 기존선으로 가는 게 아니라, 거기서부터 곧장 고속선으로 합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훗날 수인선에도 KTX가 들어갈 예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건 꼭 필요한 조치라 하겠다.
전국의 광역시들 중 대전은 유일하게 공항이 없고(대전 대신 청주..), 울산은 유일하게 지하철이 없으며, 인천은 유일하게 KTX가 없다. 공항 가는 KTX가 없어지는 대신 미래에는 수인선 구간으로 인천을 경유하는 KTX가 부활할 것으로 보인다.

떼제베 KTX로 달랑 서울-부산만, 그것도 대구-부산은 아직 통째로 기존선으로 오가던 1단계 개통이 엊그제 같은데..
2010년대부터는 2단계 구간 개통 이후로 마산, 포항, 여수(엑스포 때문) 등 온갖 노선들이 많이 생겼다. 굵직한 고속선이 새로 생긴 것도 호남, 수서, 경강 이렇게 3개이며, 포항까지 치면 4개이다.

또한 차량과 내부 시스템도 굉장히 다양해지고 복잡해졌다. KTX라는 명칭은 차급(무궁화/새마을 대비), 차종(떼제베, 산천 등), 운영사(코레일 vs 수서 SR) 등 다양한 맥락에서 무엇을 식별하는 명칭인지를 꼼꼼히 따져야 하게 됐다. 이렇게 한국 철도는 오늘도 변모하고 있다.

지금은 완전히 퇴역한 지 5년이 훌쩍 넘었지만,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동차(일명 DHC)는 처음 도입되었던 당시부터 이미 떼제베의 외형을 참고하여 만들어졌다는 게 흥미롭게 느껴진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와 관련된 대우 중공업 관계자의 내부 증언이 전해지는 게 있다. 물론 이건 1990년대에 고속철 차량이 떼제베로 결정된 것과는 무관하고 시기적으로 앞선 사건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사무엘

2018/10/05 08:34 2018/10/0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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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식 새마을호 객차의 퇴역 외

1. 새마을호 객차의 완전 퇴역

지난 2018년 4월 30일을 끝으로, 재래식 새마을호 열차가 최후의 유일한 운행 노선이던 장항선에서도 운행을 마치고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사실, 5년 전 2013년 1월 4일엔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동차가 완전히 퇴역했으며, 그때 이후로 새마을호는 경부선 같은 간선에서 야금야금 퇴출되고 ITX-청춘으로 대체되어 왔다. 그러니 이번 객차형 새마을호의 은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장항선은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어중간한 길이에다 비전철 단선이라는 특성 덕분에, 경부선 같은 1루에서 밀려난 새마을호의 한직 역할을 해 왔다. 모든 객차가 특실 좌석인 구특전 동차형 새마을호도 장항선에서 최후까지 남아 있었다.

그럼 장항선에 앞으로 무궁화호밖에 안 남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ITX-새마을 도색을 한 새마을호가 뒤를 잇는다. 그런데 장항선은 전철화가 돼 있지 않으니, 우리가 아는 ITX-새마을 전동차가 다니지는 않는다.
전동차가 아니라 디젤 기관차가 견인하고, 과거에 무궁화호였던 일명 '디자인리미트 신형 객차'가 새마을호 객차로 승격되고 ITX-새마을 스타일로 도색되어 다니게 된다.

즉, 일반열차 중에 무궁화호보다 상위인 새마을호라는 차급 자체는 유지된다.
그러나 과거처럼 동그란 창문에다가 64석 간격에 종아리 받침대까지 있던 그 새마을호 열차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ITX-새마을은 여전히 무궁화호와 동일한 72석 간격이다.

옛날에는 같은 객차가 새마을호에서 무궁화호로 강등되면 강등됐지 격상되는 일은 없다시피했는데.. 10여 년 전에 통일호 동차가 RDC 무궁화호로 승격됐던 것처럼 이번에는 무궁화호 객차가 ITX-새마을로 승격되었다. ITX-새마을은 이제 전동차 이름이 아니라 더 추상적인 차급의 명칭으로 등극하는 셈이다.

2. 기존의 열차 등급 체계가 모호해짐

먼 옛날에 열차가 매우 희귀하던 시절에는 마치 선박처럼 각각의 열차에다가 서로 다른 이름이 지어지고 끝에 '호'라는 접미사까지 추가되곤 했다. 1950년대에는 여객기에도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창랑호, 만송호, 우남호 같은 이름이 붙었다는 걸 생각해 보시라.

그 뒤 열차의 운행 횟수가 증가하면서 각각의 열차에다가 서로 다른 이름을 짓는 관행은 없어졌으며, 그건 그냥 차량의 번호로 대체됐다. 그래도 증기 기관차 시절에는 각각의 기관차 종류별로 모가, 미카, 파시, 혀기, 마터 등의 고유한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그건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다. 디젤 이후부터는 종류(천· 백)와 개별 차량(십· 일)을 모두 4자리 번호만으로 식별하게 됐기 때문이다.

한때는 대등한 등급의 열차도 경부선을 다니는 놈과 호남선을 다니는 놈이 다를 정도로 온갖 명칭들이 난립하고 있었지만, 이것들을 모두 정리하여 새마을-무궁화-통일-비둘기 4종류의 명칭이 노선과 차량 종류를 불문하고 오로지 차급만을 나타내는 깔끔한 체계가 1984년 1월부터 정착했다.

그게 20년 가까이 잘 유지되고 있었는데 2000년 11월엔 정선선에서 비둘기호가 마지막 운행을 마치고 사라졌다.
2004년 4월부터는 KTX라는 더 높은 등급이 등장하고, 객차형 통일호가 경춘선· 중앙선 등을 마지막으로 운행하다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2010년경부터는 누리로, ITX-청춘, ITX-새마을 같은 새로운 전동차들이 자꾸 등장했다.

  • 누리로는 기존 무궁화호를 전혀 건드리지 않으면서 무궁화호와 대등한 차급을 표방하는 반면,
  • 경춘선에만 2층 열차 형태로 다니는 ITX-청춘은 새마을호보다 높고 KTX보다 낮은 새로운 차급이다.
  • 한편, ITX-새마을은 기존 새마을호를 대등하게 대체· 계승하는 차급이다.

즉, 이들의 위상은 모두 제각각 다르다.

그리고 2018년에는 재래식 새마을호가 최후의 노선이던 장항선에서 종말을 고하게 되었으며, 그 다음으로는 머지않아 경원선 통근열차도 전철에 밀려 사라질 예정이다.
그러니 재래식 차급의 관점에서 보면 새마을-무궁화-통일-비둘기 중에서 남는 차급은 무궁화호밖에 없다. 무궁화호는 고속철이나 여타 새로운 차급으로 재편성되지 않은 나머지 기관차-객차형 일반열차들을 싸잡아 일컫는 명칭이 됐다. 기존 차급 체계가 굉장히 많이 문란해진 셈인데 교통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3. 전철 노선도의 배색 체계가 모호해짐

1990년대까지만 해도 수도권 전철 노선도에는 서울 지하철 1호선이 서울 역-청량리 구간만 빨강이고 나머지 철도청 광역전철들은 '국철'이라는 이름으로 몽땅 회색이었다.

그러다가 2000년부터 노선도의 디자인이 확 바뀌었다. 서울 지하철과 직통 운행하는 국철들은 애초부터 그 지하철의 일부 구간인 듯이 동일한 색깔과 노선명으로 구분 없이 표기되게 됐다. 그리고 1호선은 회색도 빨강도 아닌 군청색/남색이라는 새로운 색으로 전구간이(종로선, 경부선, 경인선, 경원선) 싹 통일되었다.

이건 열차의 운행 계통을 승객에게 직관적으로 이해시킨다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바람직한 조치였다. 하지만 그 당시 서울 지하철과 직결하는 구간이 없이 전적으로 혼자 노는 국철이던 '분당선'만은 번호 없이 노선명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리고 용산-성북 계열은 여전히 '국철'이라는 이름으로 뭔가 1호선의 어정쩡한 지선처럼 여겨지게 됐다.

그 뒤 지금은.. 코레일이 공사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공항 철도와 신분당선처럼 운영 주체가 도시의 지하철이 아니면서도 다소 이질적인 철도가 등장했다. 그리고 서울 지하철과 직결하지 않는 광역전철도 경춘선, 경의선, 경강선, 그리고 앞으로는 소사-원시(일명 서해선)에 이르기까지 등 더욱 많이 생기게 됐다. 이젠 광역전철들도 노선도에서 색깔 분배를 어찌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게 됐다.

그 와중에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경전철이다. 경전철은 노선도에서 선(edge)은 모두 회색으로 그리고, 역명(vertex)을 고유한 노선색으로 그리는 것으로 디자인 기준이 정해졌다고 한다. 우이 경전철은 종점이 북한산이어서 그런지 초록색 계열이다. 다만, 이 방식대로라면 환승역은 무슨 색으로 칠할지 좀 애매해질 것 같다.
과거에 국철을 표시하던 색깔이 이제는 경전철을 나타나는 대표색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꽤 흥미롭다.

4. 철도 차량의 특징

철도 차량은 자동차와 비교했을 때, 고무 타이어 대신 쇠바퀴가 달렸고 레일 위를 달린다는 원초적인 차이점 말고도 다음과 같은 큰 차이가 있다.

(1) 좌석에 안전벨트가 없다. 자동차는 입석형 시내버스 정도나 안전벨트가 없지만, 열차는 KTX조차도 안전벨트가 없고 자리 주변이 제일 깨끗하다. 철도는 자동차와 같은 급의 정면충돌 교통사고와 급정거, 전복 상황을 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2) 위와 비슷한 이유로 인해, 객실의 유리창이 자동차와 동급의 안전유리 재질이 아니다. 그래서 돌 같은 거 맞았을 때 생각보다 잘 깨져서 파편 때문에 인명 사고가 종종 난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비상 상황에서 유리창을 깨고 차량을 탈출해야 할 때, 자동차 창문처럼 너무 안 깨져서 "창문 어디부터 두들겨야 잘 깨지고.." 이런 걸 고민할 필요도 없다.

(3) 그리고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인데, 철도 차량은 차축에 차동 기어가 일단 일반적으로는 없다. 철도는 자동차와 같은 급의 급커브 주행을 염두에 두지 않으며, 안 그래도 바퀴와 레일의 마찰이 작은데 접지력을 약화시킬 여지가 있는 장치와도 구조상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도 차량 차축을 보면 양 바퀴 사이에 아령처럼 길다란 작대기만 끼워져 있지, 자동차 차축처럼 중앙에 동그란 공처럼 불룩 튀어나온 부위가 없다.
그 대신, 얘는 바퀴 단면이 약간 경사져 있다. 레일에 닿는 바퀴의 지름이 커브의 안쪽과 바깥쪽이 서로 차이가 나게 하는 방식으로 커브를 극복한다. 종이컵을 옆으로 눕혀서 데구르르 굴려 보면 위쪽과 아래쪽의 지름의 차이로 인해 커브를 틀며 돌지 않던가? 그걸 생각하면 된다.

물론 철도 차량에서 이를 구현하려면 레일과 바퀴 모두 커브의 곡률까지 고려해서 굉장히 정교하게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퀴가 종이컵처럼 두께가 무한한 게 아닌데, 이 방식만으로는 지하철처럼 반지름 100~200m대밖에 안 되는 급커브를 부드럽게 도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때는 주행 중에 커브 안쪽 바퀴가 헛돌면서 끼릭끼릭 쇳소리가 나는 걸 피할 수 없다.

5. 철도의 날 날짜가 바뀌었나?

딱 위의 4번까지만 글을 쓰고 끝내려 했는데 본인은 최근에 철도와 관련하여 웬 생뚱맞고 해괴망측한 소식을 들었다.
건국 이래로 70년 가까이 시종일관 9월 18일이던 우리나라의 철도의 날 기념일이... 올해(2018)부터 별안간 6월 28일로 바뀌었다고 한다.

현행 철도의 날은 1899년 9월 18일에 한반도에서 최초로 개통한 철도인 경인선의 개통일을 기준으로 제정돼 있다.
일본이나 미국 같은 여러 나라들도 철도의 날은 그 나라의 최초의 일반열차 철도 내지(한국으로 치면 경인선), 아주 중요한 장거리 간선 철도(한국으로 치면 경부선)가 개통한 날 당일, 또는 그 날짜 근처로 제정돼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의 철도의 날은 아주 합리적인 날짜이다. 경인선은 오늘날까지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동차만으로 2복선 완급 분리 운행을 하는 트래픽 킹왕짱인 철도이다. 경인선이 당장 없어져 버리면 그쪽 사람들 출퇴근길이 어떻게 바뀔까?

그런데 그 날짜가 문헌상 잘못됐다거나, 경인선이 완전히 폐선되어서 사람들 기억에서 싹 잊혀졌다거나, 사실은 경인선보다 훨씬 더 중요한 철도가 더 옛날에 개통된 게 있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일제 잔재 청산한다는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구한말에 도대체 무슨 일을 했고 무슨 존재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듣도 보도 못한 대한제국 철도국이 1894년 6월 28일에 창설됐대서 저 날로 전격 변경한댄다. 야 이..

내가 옛날에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까지는 개인적으로 찬성하는 소신이었고 그건 지금도 변함 없지만.. 저건 정말 너무 어거지다. 조선총독부 청사도 건물 자체보다는 그게 북악산 정면을 딱 가리는 위치가 미관에 너무 좋지 않아서 철거하는 걸 말리지 않겠다 정도이다. 무슨 일제 쇠말뚝 마냥 민족 정기, 일제 잔재 청산..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말이다.

젠장, 별 게 다 일제 잔재래. 경인선 철길을 걷어내든가, 아니면 서울역 구 역사나 철도 좌측통행도 다 일제 잔재 적폐니까 다 때려부숴 보라고, 이 미친놈들..

일자리 날아가고 경제 운지하고 있는 동안 맹 쓸데없는 것만 자꾸 바꾼다니까.. 괜히 여권 디자인이나 바꾸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근처에 있는 국군의 날은 일제하고는 정말 1도 관계 없는 날이다. 하지만 그건 저놈들이 골수 종북좌빨 성향이니까 38선을 넘은 날이 고깝고 불편해서 못 바꿔 안달인 것이다. 그러니 임팩트가 훨~씬 덜한 독립군이니 광복군이니 뭐라도 갖다붙이려고 수작이지.

쟤들은 진짜로 일제 잔재 청산이 목적이 아니라 그냥 대한민국 정체성의 부정과 말소, 역사 왜곡이 목적인 아주 사악하고 나쁜놈들이다. 아유 또 괜히 성질 나네..

Posted by 사무엘

2018/05/20 08:39 2018/05/2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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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의 모든 것

* 예전에 썼던 글 두 편을 종합하고 내용을 보충하여 재정리했다.

경의선 철도는... 경원선과 더불어 서울과 경기도 북부를 잇는 로컬 철도의 양대 산맥이다. 1905년 초에 완공된 경부선에 이어, 그 해 11월 5일에 개통됐다.
그리고 1908년에는 잘 알다시피 고종 황제의 호를 딴 '융희호'라고 신의주, 평양, 서울... 부산을 한데 있는 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일제 강점기부터는 압록강 철교도 완공됐다. 그래서 한반도의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차 타고 대륙으로 뻗어 가는 게 가능해졌다. 지금으로서는 정말 실감이 안 가고 믿어지지 않는다.

1. 용산선과의 관계

경의선은 원래 용산-효창-가좌로 가는 구간이 오리지널 경의선이었다. 그러나 1920년대에 서울-신촌-가좌 선로가 완공되면서 거기가 경의선 본선이 되었으며, 원래 구간은 지선인 용산선으로 따로 분류되게 되었다.
오늘날은 그 용산선이 없어졌다. 아니, 정확히는 지상으로 보기로만 없어졌고 지하로 싹 내려갔다. 공항 철도와 나란히 달리는 복층 복선 전철로 바뀌어서 여기가 다시 경의선 본선에 편입했으며(경의선이 위, 공항 철도가 아래), 반대로 서울-신촌-가좌 지상 구간이 지선으로 바뀌었다. 내력이 참 특이하다.

이로써 과거의 용산-성북 국철 전동차가 동쪽으로는 덕소, 팔당을 거쳐서 양평, 용문까지 길어졌고 서쪽으로는 경의선과 직결하여 문산까지 가는 상전벽해를 이루게 됐다.;; 앞으로 분당선이 수인선과 만나면 비슷한 마술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참고로 안산에 있는 한대앞-오이도 구간은 안산선과 수인선이 공용하게 되는데, 이건 복층이나 복복선이 아니고 완전히 동일한 복선 선로 공유이다. 역에 설치된 대피선 내지 승강장만으로 열차를 구분하니 경의선· 공항선과는 사정이 다르다. 어차피 사당 이남부터는 선로 용량이 많이 남기도 하니 말이다.

정리하자면, 용산에서 지하 경의선 본선이 출발하고 서울에서는 공항선과 경의선 지선이 출발한다.
공항선은 공덕에서 경의선 본선과 만나서 홍대입구를 거쳐 DMC로 같이 가며, 경의선 지선은 신촌을 거쳐서 가좌-DMC 일대에서 본선과 합류한다. 경의선과 공항선은 DMC 이북부터는 헤어져서 제 갈길을 가며, 역들도 승객의 환승만 되지 선로 차원에서의 교차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색 역에서 경의선과 공항철도를 연결하는 지선이 뚫렸다. 주 목적은 서울 역 KTX를 인천 공항까지 보내기 위해서.
공항철도 서울 역은 아주 깊은 지하에 있기 때문에 경부선과 연결되지 않는다. 지금 수인선의 지하 인천 역이 지상의 경인선과 연결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경부선을 달려온 KTX는 지하가 아니라 경의선 지선과 저 연결선을 거쳐서 공항선으로 진입하며, 서울 역을 출발한 공항철도 열차는 처음부터 지하의 공항선을 통해서 공항까지 가게 된다. 이런 구조가 아주 흥미로우며 철덕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2. 차량 기지와 병목 구간

경의선상에는 성격이 다른 차량 기지가 세 군데나 있다. 서울에서 가까운 순으로 나열하자면 먼저 (1) 새마을· 무궁화호와 기관차들.. 그러니 사실상 모든 일반열차들이 드나드는 수색 기지가 있다. 그 다음 (2) KTX가 입출고하는 고양(행신) 기지, 마지막으로 (3) 경의선 전동차가 드나드는 문산 기지가 이어진다.

그 짧은 거리에 차량 기지가 이렇게 다양하게 존재하는 철도는 경의선밖에 없다. 그 많은 일반열차들이 죄다 경의선을 회송 구간으로 사용하니, 경의선 중에서도 회송 구간을 직통으로 지나는 서울-신촌-가좌 지상에는 경의선 전동차를 1시간에 1대꼴밖에 못 넣는다. 그리고 그 선로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일반열차들의 운행이 순식간에 개판이 돼 버린다.

그런데 전국에서 열차 통과 트래픽이 제일 많은 구간에 '서소문 건널목'이라고 자동차 도로와 평면교차를 하는 건널목이 버젓이 있다는 게 참 골때리는 점이다.;; 물론 여기는 심야 시간을 제외하면 시도 때도 없이 열차가 지나느라 가히 '열리지 않는 건널목'이다. 거기는 위로 고가 도로가 지나고 아래로는 지하철 2호선이 지나는 관계로 입체화도 도저히 할 수 없다.

먼 옛날에는 용산 역 근처에도 거대한 철도 차량 정비창이 있어서 거기서 일반열차 내지 전동차의 주박과 정비를 취급했었다. 허나 지금은 그게 싹 없어져서 전동차는 구로로, 일반열차들은 수색으로 모두 이전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은 구로 기지마저도 광명으로 이전하려는 계획이 논의 중이다. 흠, 구로는 차량 기지뿐만 아니라 철도 관제 센터까지 있는 곳인데 이전이 쉽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한편, 누리로 전동차는 예외적으로 서울과 신창의 중간에 있는 병점 기지 소속이다. 마치 KTX로 치면 서울이나 부산이 아닌 오송 기지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수서 고속철 역시 서울 시계에서 기존 경부선으로 합류할 길이 도저히 없기 때문에 그 기지로는 못 들어가고 광주와 부산에만 기지가 있다.

3. 복선이었다가 단선으로 쪼그라든 유일한 철도

요즘은 철도를 만든다 하면 당연히 복선 전철이 필수이며, 당장은 단선만 놓는다 하더라도 추후 확장을 위한 복선 노반은 반드시 미리 확보해 둔다.
그런데 애초부터 만년 단선이면 단선이지, 복선으로 깔렸다가 도로 단선으로 쪼그라든 철도가 우리나라의 역사상 있긴 했을까? 경의선은 바로 그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940년대에는 일제가 전쟁에 미쳐서 온갖 물자를 수탈하던 때였다. 수익성 없는 지역에서는 이미 있던 철도 선로도 뜯어 가던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경부선과 경의선은 대륙 진출을 위해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오히려 복선화 공사를 완료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에 복선 철도라고는 경부+경의선이 유일했다. 경인선조차도 해방 후 1965년에야 복선화가 됐으니 말이다.

그 밖에 경주-청량리 중앙선이 1942년에 완공됐으며, 더 장기적으로는 경원선도 러시아 진출을 염두에 두고 복선화가 계획돼 있었다. 산악 관광 철도인 금강산선과 직결 가능한 철원까지는 심지어 전철화도 말이다. 어디 그뿐이랴? 지금의 7번 국도와 비슷한 동해선도 한창 건설 중이었다.

일제가 패망하면서 이 계획 내지 공사 과업은 모두 파토가 났다. 그런데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고 전쟁까지 대판 치르면서 경의선은 짧아졌을 뿐만 아니라 기껏 복선이었던 선로마저 남과 북에서 모두 단선으로 반토막 나고 말았다. 분단으로 인해 해당 구간의 수익성이 곤두박질 치면서 굳이 복선을 복구하고 유지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철도가 복선화와는 반대로 단선화(singling)되는 건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건이다. 그것도 복선이 된 지 10년도 채 못 가서 말이다.

남한 구간만이 먼 훗날 2009년에야 수도권 전철이 개통하면서 새로, 2차로 복선화되긴 했다. 물론 고가 위로 직선화도 많이 되었기 때문에 마냥 옛날 노선대로만 복원된 건 아니다.

믿어지지 않지만 경의선의 과거 복선 시절을 말해 주는 빼박 증거가 있다. 무엇이냐 하면 바로 철교의 교각이다.
도라산역으로 가는 임진강 철교는 6· 25 사변 중에 폭격을 받아 파괴됐다가 복구되지 못한 하행선 교각이 남아 있다. 상행 교각만 복구해서 단선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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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흔적이 북한에도 있다! 예성강(례성강)을 건너는 철교가 역시 상선만 복구되어 단선으로 쓰이고 있다. 하선은 교각만 우두커니 남아 있다. 그것도 두 군데나 말이다. 한포 역, 금천 역 근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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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말고 력포나 대동강 같은 평양 근처 구간까지 가도 경의선은 여전히 단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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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평양 인근의 대동강 양각도를 관통하는 경의선 단선 철교의 모습이며, 오른쪽은 무려 3복선인 우리나라 서울 한강 철교의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에서는 경의선이 평양 이북 신의주 방면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복선화도 그쪽만 돼 있다. 그 반면, 남쪽 구간은 남한의 경의선 구간보다 더 긺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아오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단선이다.
애초에 북한에서는 경부선· 경의선이라는 말도 안 쓰며, 첫 음절의 ㄱ을 ㅍ으로 바꿔서 부른다. 개성-평양 사이 구간은 우리 입장에서는 경의선이지만 걔들 입장에서는 평부선인 것이다.

여담이지만, 경의선 하니까 임진각에 있는 꼬마 협궤 증기 기관차가 생각나는데, 걔는 궤간이 어떤지 궁금해진다.
남이섬에 있는 유니세프 나눔열차는 610mm인 게 알려져 있는데 동일한가 모르겠다. 나중에 다시 갈 일 있으면 확인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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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8/05/11 08:38 2018/05/1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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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전하는 군부대들

2010년대 이후부터 추세를 지켜보니, 서울에 있던 군부대들이 수방사 자체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면 다들 이전했거나 이전 예정이구나!

  • 용산 미군 기지는 일부 사령부만 남기고 나머지는 몽땅 평택으로,
  • 남동부 끝자락 마천동에 있던 특전사 부대는 이천 마장면으로,
  • 서초동 한복판에 있던 정보사령부는 안양의 군사 허브인 박달산 일대로.

이거 뭐, 롸임이 "간은 충청도로, 눈은 경상도로, 심장은 서울로.."같은 느낌이다. 사실, 지금의 서울 지하철들의 선형도 이런 군부대의 영향을 받은 채로 형성되었다.

용산 미군 기지: 여기는 막 높고 험한 산까지는 아니어도 '둔지산'이라고 불리는 약간의 언덕 고지대이다. 조선 시대에는 용산이 아니라 남산 기슭부터가 이미 한양의 끝이었고 군사 훈련장이 있었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군 병영이 들어왔으며 지금은 미군 기지가 들어섰을 뿐.
이 넓은 땅이 반환되면 앞으로 업무 지구로든, 공원으로든 어찌 활용될지 앞으로 기대된다. 얘를 피하느라 서울 지하철 4호선도 한강을 건넌 직후엔 어중간한 드리프트에다 1호선과 많이 겹치는 형태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천 특전사 부대: 지하철 5호선 종점인 마천 역이 지상 도로를 쭉 따라 큰길인 오금로에 못 생기고 커브까지 틀고서 생뚱맞은 마천 초등학교 골목길에 만들어진 주 이유가 근처의 이 군부대 때문으로 추정된다.
개인적으로는 아침 일찍 여기를 지나면서 기상 나팔 BGM 들으며 청량산을 올라서 남한산성까지 간 적이 있었는데, 그로부터 몇 달 못 가 위례 신도시 개발을 위해 군부대가 이전하고 없어졌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정보사령부: 법원과 서리풀 공원 일대는 지금까지 내가 갈 일이 없어서 딱히 관련 데이터가 없다. 거기도 직선으로 쭉쭉 뻗어야 할 길이 지금까지 군부대+언덕에 가로막혀 몇십 년째 봉인돼 있었다. 지하철들도(2, 7호선) 이곳을 피해서 커브를 틀고 있고.. 그래도 그 언덕을 뚫고 서울 강남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서리풀 터널'이 이제야 건설 중이다.

이 글에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았지만 금천구청 역 바로 근처에도 군부대가 있었으며 군부대 진입 전용선 철길까지 있었다. 거기 있던 부대는 이전해서 나간 게 이미 2000년대 말~2010년대 초로 꽤 오래됐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부대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울러, 군부대뿐만 아니라 인서울에 있던 지하철 차량 기지 중에서도 구로와 창동은 이전 예정이다.
지하철 차량 기지는 지축, 수서, 고덕, 방화, 신내 등 전반적으로 굉장히 외곽에 있는 편이다. 서울 최초의 지하철 차량 기지인 군자는 나름 시내 깊숙한 곳에 있는 편인데, 얘는 그래도 딱히 이전 얘기가 없다.

2. 울릉도와 제주도 신공항

울릉도와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적당히 크며, 다리를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본토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다. 그래서 독자적인 행정구역 명칭이 있다. 울릉도는 그냥 경북 울릉 '군'이지만, 제주도는 잘 알다시피 그보다 더 큰 도 단위로 분리돼 있다.

울릉도는 공항이 없는 관계로 고정익기가 뜨고 내릴 수 없다. 옛날에 헬리콥터 기반의 여객기가 정기 취항한 적이 있었지만 아마 수지가 안 맞고 인명 사고까지 나는 바람에 나가리 났었지 싶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중형 버스 크기의 소형 프로펠러기라도 드나들 수 있는 공항을 만들려고 터 닦고 준비 중인가 보다.

한편, 제주도는 공항이 있긴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게 전세계에서 최상위권을 다툴 정도로 바쁘고 정신 없으며 더 확장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남쪽 서귀포시에 작은 트래픽을 감당 가능한 공항을 하나 더 만들자는 얘기가 진작부터 있었다. 뜬금없는 해저 터널보다야 차라리 공항 하나 더 만드는 게 더 현실적일 것 같은데 이건 어찌 진행 중인가 모르겠다.

이렇듯, 울릉도와 제주도는 이렇게 위치 차이(경북· 강원권 vs 전남권), 독립 행정구역 단위의 차이(시/군 단위 vs 도 단위)와 공항 현황 차이(0 vs 1)가 있다. 6· 25 전쟁 때 울릉도는 전쟁의 여파를 전혀 겪지 않았다. 제주도는 비록 빨치산의 침투와 토벌 과정에서 4· 3 같은 사건은 있었지만 그때 따로 북괴 공산군이 상륙해서 섬을 또 점령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UN에서 최악의 경우에 제주도에 대만 같은 남한 망명 정부를 세울 생각도 했던 것이다.

3. 서울· 수도권 오지 내지 조밀도 생각

서울 강북은 북악산과 북한산 기슭에 있는 삼청동, 청운동, 평창동, 구기동, 부암동 같은 곳이 청와대와 가깝다는 이유로 개발이 영구봉인된 오지이다. 중구라면 모를까, 종로구는 시내 도심만 포함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은 아무래도 구룡산· 대모산 이남의 세곡동· 내곡동, 청계산 근처의 신원동, 원지동, 염곡동 같은 곳이 오지이지만.. 이미 아파트가 지어지고 야금야금 재개발되고 있기 때문에 지금 같은 모습을 더 보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성남은 대장동, 석운동, 동원동 같은 곳이 오지이다. 아직까지는..
하남은 검단산의 동쪽으로 상수도 보호원으로 얽힌 일부, 그리고 서울과 하남 경계가 그린벨트이긴 한데.. 여기도 곳곳이 재개발 중이다.

서울의 서쪽으로 광명, 부천은.. 그냥 지역 경계 구분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빽빽해졌다.
군포와 구리는 인구는 많을지 모르지만 도시 크기가 너무 작은 것 같다.
과천은 지도 상의 면적은 그럭저럭 존재감 있지만 청계산과 관악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그 사이의 좁은 시가지는 면적이 아주 작다. 과천선 철도 양 옆 구간 말고는 정말 별 거 없다.

4. 자잘한 섬으로 이뤄진 지역

우리나라의 해안· 항구 도시들을 보면, 아주 크고 두드러지는 섬(본토와 다리로 연결된 것도 포함)이 본진이고 그 주변의 작은 섬들까지 행정구역상 포함된 것(제주도, 울릉군, 진도군, 고흥군, 거제시..), 본진은 본토에 있고 주변의 작은 섬들이 거기에 덤으로 딸린 것(보령시, 영광군, 여수시)이 있다.

그런데 섬으로만 구성되었는데 딱히 두드러지는 본진이 없이 그것도 거리도 꽤 멀리 떨어진 섬들이 싸잡아서 한 행정구역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바로 (1) 전남 신안군, 그리고 (2) 인천 옹진군이 여기에 속한다.

목포 바로 옆의 압해도가 신안군으로서는 본토와 가깝고 군청도 있어서 나름 본진이다. 하지만 압해도는 신안군을 구성하는 다른 섬들보다 압도적으로 크지 않으며, 저 멀리 흑산도와 가거도(최서남단 오지!)까지도 행정구역상 신안군이다. 태양계로 치면 한 행성이 단독 궤도를 구성하지 못하는 소행성대나 왜행성 같은 처지이다.

옹진군은.. 오이도 남쪽의 화성시와도 붙어 있는 영흥도도 옹진이지만, 서쪽 최전방의 연평도와 백령도까지도 옹진군 소속이다. 이건 뭐 우리가 황해도 본토를 수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거기 근처의 섬만 수복하다 보니, 행정구역이 좀 기형적으로 편성된 경우라 하겠다.

국가 차원에서 영토가 단독 주도적이지 않은 다수의 자잘한 섬들로 구성된 대표적인 예는 인도네시아이지 싶다.
인구도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나라인데 국제적으로는 저기가 별 존재감이 없다. 그리고 오세아니아 대륙과 가까워 보일 정도로 굉장히 남쪽에 있기도 해서 유라시아 대륙 문화권이라는 생각도 별로 안 들 정도이다.

5. 서울의 옛 영화 촬영소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답십리 사거리' 교차로의 동쪽을 보면, 배봉산의 남쪽 기슭 구간을 차지하는 거대한 고개가 있고, 그 고개를 '답십리로'라는 길이 횡축으로 지나간다. 그리고 그 길의 곁에는 딱히 업무· 주거 건물이 없이 언덕뿐이며, '답십리 공원'이 조성돼 있다. 동쪽으로 더 가야 야구 연습장이나 체육관 정도만 있다.

그런데 먼 옛날.. 1964년부터 1970년까지는 여기 일대에 영화 촬영소가 있었다고 한다. 정확히는 동대문구 체육관과 근처의 동답 초등학교의 부지에 말이다. 나라에서 만든 게 아니라 어느 대인배가 사재를 털어서 만들었다.
그래서 답십리 사거리의 동쪽에 나오는 교차로의 이름은 '촬영소 사거리'이다. 촬영소라는 명칭이 붙어 있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됐다.

지금으로 치면 남양주 종합 촬영소 같은 곳이 서울에 있었다는 게 무척 흥미롭다. 뭐, 1960년대에 국산 영화에서 많은 걸 바랄 수는 없겠지만, 6년 남짓한 시간 동안 이곳에서 무려 90편에 달하는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동대문구에서는 2010년대에 와서야 여기에 영화 테마 공원을 뒤늦게 조성하려고 계획 중이라 한다. 마치 중랑구에서 망우리 공동 묘지를 근현대사 체험 테마 공원으로 꾸미려 하듯이 말이다.

지명을 보면 그 지역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마장(말을 키우던 곳), 잠실(누에밭) 같은 농촌스러운 지명은 조선 시대 같은 너무 옛날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으니 오늘날 실감이 잘 안 간다. 뭐더라, 과수원에서 유래된 명칭도 있었는데.. 아무튼 그 시절엔 거기는 인서울 도시가 아니라 그냥 한양도성 안으로 보급할 물자를 생산하는 기지였을 뿐이다.

그에 반해 촬영소, 해방촌, 기자촌 같은 명칭은 그래도 일제 강점기 이후 대한민국 시절의 사연과 유래가 담겨 있으니 이질감이 덜하다. 이런 예가 더 있는지 앞으로 더 눈여겨봐야겠다.
참고로 동대문 운동장은 조선은 아니지만 일제 시대에 생긴 시설이다. 그리고 '충무로'는 영화 촬영소라기보다는 영화 제작사들이 많이 입주했던 곳인데, 지금은 영화보다는 인쇄소로 더 유명한 듯하다.

6. 영화에 등장한 가상의 지명

본인은 먼 옛날 대학 시절에 <그녀를 믿지 마세요>(2004) 영화를 친구 컴을 통해 우연히 봤다.
그때는 본인이 한창 철덕이 되어 가던 시절이었는데, 마침 무궁화호 열차 씬과 함께 '용강'이라는 가상의 역이 나왔다.
경북선에 '용궁'이라는 역이 있긴 하지만 '용강'은 허구이다. 사실 충북선 소이 역(무배치간이)에서 역 바깥 장면을 찍었으며, 역 승강장 씬은 바로 옆의 음성 역에서 찍었다.

그 뒤 비교적 최근에 나온 <부산행>(2016)의 경우, 맨 처음에 '진양'이라는 고속도로 톨게이트가 가상의 지명이다. 뭔가 우리나라 어딘가에 저런 이름의 고속도로 진출입로가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나 보다. 기존 지명과 안 겹치게 이름을 그럴싸하게 잘 지었다.

이 장면이 촬영된 곳은 아주 한적하고 차량 통행이 드물어서 영화 찍기에도 유리한 영동 고속도로 속사 IC라고 한다. 하이패스가 없으면 무인 정산기에다 느리게 지폐 한 장씩 넣으면서 통행료를 결제해야 한다.
본인은 이 승복 기념관을 찾아갈 때 여기를 지난 적이 있지만 그 당시에는 이곳과 부산행 영화의 관련성을 아직 모르던 상태였다.

끝으로 철도와 관계는 없지만 <아저씨>(2010)에서 잠시 등장하는 차 태식의 집 주소 "서울 용산구 동자동 산 21"도 생각난다. 이 역시 당연히 실존하지 않는 주소이다. 최대한 현실적으로 끼워맞추면 서울 역과 남산 사이의 으슥한 허름한 주택가이다.
영화를 실제로 찍은 곳은 부산 매축지 마을이라는 '도심 속 오지'이다. 서울로 치면 무슨 금화 아파트, 시범 아파트 같은 그런 곳인데, 거기도 몇 년 뒤로 다 헐리고 재개발될 공산이 크다.

Posted by 사무엘

2018/05/08 08:36 2018/05/0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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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동과 부강 역 인근의 비밀 선로

경부선 성환 역은 동쪽 인근의 학정리 야산을 다 점유하고 있는 군부대 탄약창으로 이어지는 선로가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대전 근처의 영동 역도 서쪽으로 거대한 탄약창으로 이어지는 선로가 있다. 육군 종합 행정 학교가 영동 제일 요양 병원 근처로 이전해 오긴 했는데, 탄약창은 그것보다 더 북쪽에 있는 별개의 부대이다.

한편, 부강 역은 가까운 동북쪽으로는 철길이 아니고 도로이지만, 거대한 컨테이너 화물 기지가 있고, 또 뭔가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어 보이는 코렁시설이 있다. 단순 화물 기지이기만 했으면 저렇게 민간 지도에서 가려지고 숨겨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2010년에 '부강화물선'이 개통하여 민간 지도에도 보이는 화물 기지가 있다.

저기는 세종 자치시 중심부와 꽤 가까우며 바로 옆에 호남 고속선이 지나는 게 흥미로운 형태이다. 나름 물류 허브도 추구하는 것 같다.

2. 서울 지하철 5호선의 동쪽 지선

서울 지하철 5호선은 강동 역 이후로는 잘 알다시피 상일동과 마천 방면으로 Y 자 모양으로 노선이 갈라진다. 역 수는 마천 지선이 좀 더 많다.
상일동 지선: 고덕 차량기지가 지나는 관계로 서울 지하철 5호선 중 가장 먼저 개통한 구간이다(왕십리-상일동).
서울 지하철 2호선이 군자 차량기지를 끼고 신설동-종합운동장이 가장 먼저 개통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때는 성수 지선이 2호선의 본선이었음)

2010년대에 들어서 두 지선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마천 지선은 기존 지하철의 연장 건설로 인한 환승역이 생겼다. 오금이 3호선과 환승되고, 그리고 앞으로 올림픽공원은 9호선과 환승될 예정이다.
그 반면, 상일동 지선은 노선 자체가 하남시 쪽으로 더 연장되어 길어질 예정이다. 환승역이 생기는 것과, 노선이 더 연장되는 것 중 어느 게 더 호재일까?

상일동 지선은 서쪽이 한강으로 막혀 있어서 타 노선과 환승이 될 여지가 없는 반면, 마천 지선은 동쪽이 청량산으로 막혀 있어서 자기 자신이 더 연장될 여지가 없다. 무척 독특한 차이점이다.

상일동 쪽은 한강과 가까우며 명일 공원, 길동 공원, 고덕산 이렇게 언덕과 근린공원이 많다. 그런데 '굽은다리'라는 역은 도대체 무슨 다리가 굽었다는 말인지 모르겠으며, '고분다리'라는 명칭과도 맞물려서 초행 방문자를 더욱 헷갈리게 하고 있댄다.

마천 쪽은 둔촌동이라는 역명도 그렇고 왠지 '둔촌 이 집' 선생을 기리는 흔적이 눈에 띈다. 후손들이 자기 선조를 띄워 주려고 많이 노력을 한 것 같다. '둔촌'은 강서구의 '등촌'과는 전혀 무관한 명칭이다.

마천역은 처음 만들던 당시에는 특전사 부대와 군인 아파트 보안 때문인지 지금의 오금로· 마천로 큰길 쪽으로 출구를 못 만들고 마천 초등학교 쪽의 엉뚱한 골목길에다가 출구를 만들었다.
하지만 군부대가 몽땅 이전하고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큰길 쪽에 지하철 출구가 만들어지지 못한 게 안타까운 지경이 됐다. 사실, 지금 용산구에 있는 미군 기지가 대거 이전하고 나면.. 미군 기지 때문에 잔뜩 굴곡지고 왜곡돼 있는 기존 서울 지하철들의 선형도(특히 4호선) 눈에 더욱 띌 것이다.

3. 크게 뒤집어엎어진 서울 지하철 계획

서울에 지하철에는 원래 이렇게 계획되었다가 대판 갈아엎어져서 사라진 흑역사가 두 건 정도 존재한다.

(1)
하나는 1970년대, 양 택식 서울 시장 시절에 나왔던 구 1기 지하철 계획이다. 강남이나 여의도 따위 안중에 없이 강북 사대문 안만을 염두에 둔 방사형으로 5개 노선을 계획했다. 특히 5호선은 천호대로와 종로를 직결 운행했으며(나중에는 송파대로와 성남대로까지!!), 종로 구간은 1호선과 복복선 선로를 나란히 달릴 예정이었다.

그렇게 계획이 추진되어서 일단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갖은 난관을 뚫고 잘 개통했다. 그랬는데.. 1974년 광복절, 육 영수 여사 피격 사건이 터졌다. 그래서 양 시장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이어야 했을 지하철 개통식은 아주 침통한 분위기에서 치러져야 했으며, 박 대통령도 참석을 못 했다.

생각을 해 보시라. 옛날 대한뉴스 영상을 보면 2호선 때 전대갈부터 시작해 1990년대 분당선 때(김 영삼)까지만 해도 지하철· 전철이 개통하면 대통령이 친히 와서 시승을 하고 관계자들 노고를 치하해 주는 게 관행이었다. 하물며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철의 개통은 경부 고속도로의 개통에 준하는 기쁘고 뜻깊은 일이거늘, 그 당시의 기록 영상을 보면 정작 1호선 개통 때 박 대통령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영부인이 총을 맞았으니 거기 갈 수가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양 시장은 경질됐다. 운이 참 더럽게 없는 것 같다. 후임 구 자춘 시장은 1호선이야 이미 완공돼 버렸고 어차피 구간도 종로밖에 없으니 그렇다 치지만 나머지 1기 지하철 계획을 싹 갈아엎어 버렸다.
그는 서울을 다핵도시로 키울 생각을 하고 20분 만에 선을 쭉쭉 그어서 이례적인 지금의 2호선 순환선 디자인을 확정했다.

오늘날 서울 1기 지하철들은 초기 지하철이다 보니, 얕긴 하지만 추후 건설된 지하철들과 환승이 막장인 편이다. 1기와 2기끼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서울 지하철 최초의 환승역인 신설동 역까지 잠실 역에 준하는 평행형 승강장 막장환승인 이유는 이렇게 지하철 건설 계획의 리부트와 단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 계획대로 1호선과 5호선의 환승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 뒀던 신설동 역 지하 3층 유령 승강장이 버려지게 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2)
다음으로 대판 나가리 난 중대 계획은.. 짐작하셨겠지만 3기 지하철 계획이다. 이건 1990년대 초중반에 계획이 나왔지만 몇 년 못 가 외환 위기· IMF· 긴축 재정으로 인해 흑역사로 전락했다.
지하철 건설 기술과 노하우가 그럭저럭 축적되다 보니, 2기 지하철들은 미래에 또 건설될 3기 지하철과의 환승을 미리 대비까지 하면서 건설되었다. 그런데 그것들이 상당수 활용되지 못하게 되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듯, 지하철 건설 역사 한 분야만 봐도 사람 일이라는 건 가까운 미래조차도 알 수 없는 것 같다. 앞에서 언급된 양 택식 서울 시장만 해도 지하철 잘 만들어 놓고는 개통식 당일에 저런 일이 터질 줄 누가 예상했겠는가?

환승 대비를 해 놓은 것으로는 7호선 논현(11호선), 6호선 녹사평(11호선), 8호선 몽촌토성(9호선, 색깔띠까지) 등 내가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여럿 있다. 그나마 여의도는 십자형 환승역으로 예상이 정확하게 잘 적중했으며, 오금과 가락시장도 3호선의 남쪽 연장에 대비한 설계가 계획대로 쓰였다. 9호선이 연장되어 8호선과 만나는 건 당초 계획됐던 몽촌토성이 아니라 석촌이 당첨됐다.

3기 지하철 계획 중 기존 노선의 연장(3호선 오금, 7호선 부평구청)과 9호선 신규 건설만이 살아남았다. 이들은 2009~2012년 사이에 완공됐다. 10호선은 서울 외곽 내지 시외 구간만이 변별성을 인정받아 광역전철 신안산선으로 대체됐으며, 그야말로 2020년대 중반은 가야 결과물이 나올 듯하다.

11호선도 남쪽의 서울 외곽· 시외 구간만이 원형 그대로 살아남아서 사철 광역전철인 신분당선으로 대체됐다. 하지만 북쪽은 아직 논현까지 올라오지 못한 상태이다.
12호선은 서울 최초의 경전철로 대체되었는데, 원래 계획되었던 왕십리 환승은 가망 없고 신설동에서 시작한다.

요약하자면 구 1기 지하철은 그냥 나가리 났다. 3기 지하철은 일부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일부 구간이 서울 지하철이 아니라 민자 광역전철이나 경전철이라는 생소한 형태로 부활했다.

4. 미래의 간선 철도: 경강선, 강원선, 중부내륙선

우리나라는 1970년대의 태백선 이후로 지방에 장거리 간선 철도 건설의 맥이 끊기다시피했다. 그 뒤로 생긴 철도들은 다 수도권 광역전철이나 공항 철도가 아니면 다 기존 철도의 선형을 유지한 고속화나 복선· 전철화, 선형 개량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10년대 중후반에 가서는 서쪽으로는 소사-원시선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철도 소외지이던 강원도에 철도다운 철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횡축으로는 경강선이요, 종축으로는 동해선이다.

2018년 현재 경강선은 두 파트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원래 '성남여주선'이라는 이름으로 판교-이매-여주를 이으며 현재 통근형 전동차가 다니는 그 광역전철 노선이다. 다른 하나는 원주에서 분기하여 영동 고속도로와 유사한 선형을 타고, 기존 태백선보다 더 북쪽인 평창-강릉 방면으로 가는 준고속선이다.

얘는 물론 평창 동계 올림픽 때문에 만들어졌지만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나름 '동서 고속철' 역할을 잘 감당할 것이다. 영동 고속도로는 이미 2001년에 온통 고가 놓고 터널 뚫어서 지금과 같은 깔끔한 형태로 잘 개통했건만 철도가 지금까지 너무 오랫동안 낙후해 있었다.

원주 서쪽의 중앙선 철도는 이미 진작부터 복선 전철화가 완료됐으며, 선형 개량을 통해 열차의 주행 속도가 경부선 급으로 상향 조정됐다. 서울에서 강원도로 가기 위해 경유해야 하는 곳이 먼 옛날의 영주(영동선!)에서 제천(태백선)을 거쳐 원주로 점점 더 짧아졌다.

미래에, 대략 2020년대 중반쯤엔 경강선은 여주와 원주 구간이 한데 연결될 것이며, 더 나아가 판교 이후의 서쪽으로도 더 확장돼서 광명을 찍고 시흥시 월곶까지 갈 것이다. 중간에 성남, 의왕, 안양 사이 구간은 나름 외곽순환 고속도로와도 비슷한 선형이 된다는 게 아주 흥미롭다. 그래, 거기도 철도가 진작에 필요했다.
이렇게 된 이상 쭉쭉 서쪽으로 가서 제2경인 고속도로처럼 인천 공항까지 가 버려도 되지 않을까 싶다.

경강선은 그렇고.. 종축으로 동해선은 먼저 부산 시내 기장군 정도 구간이 전면적인 선형 리모델링과 동시에 광역전철로 탈바꿈했다. 서울· 수도권 광역전철이 등장한 지 무려 40여 년 만의 일이다.
그리고 과거에 동해남부선이라고 불리면서 포항 북부에서 끊겼던 철길은 계속 북상할 것이다. 그래서 영덕과 울진에 역사상 최초로 철도가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지금 영동선의 지선으로 취급되고 있는 삼척선과 만나고, 이것까지 동해선으로 흡수되어 동해 역까지 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동해-강릉도 전부 동해선으로 흡수되고 영동선은 영주-동백산-동해 구간만 불리게 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강릉 이북으로 최북단의 제진 역 구간은 동해중부선이라는 명칭으로 불렸으니, 국도 7호선에 상응하는 길다란 종축 철도는 일관되게 동해선이 되는 게 자연스럽겠다.
이렇듯, 경강선과 동해선 모두 말단에 광역전철 구간이 있으면서 나머지 강원도 방면 구간은 찢어진 채로 공사 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아, 까먹을 뻔 했는데... 경강선은 여주와 원주로 가는 중에 부발 역 일대에서 중부내륙선이 분기하기도 할 예정이다. 얘는 충주(충북선)와 문경(문경선)을 경유하면서 점촌· 김천(경북선)과 연결된다. 현재의 말 그대로 영남대로 내지 중부내륙 고속도로와 얼추 비슷한 선형이 되는 셈이다.

지금이야 안 그래도 좁은 땅에 이미 건설된 도로와 철도도 많다. 그러니 옛날에 경부선과 경부 고속도로를 처음 만들 때처럼 총력전 치르듯이 일을 추진할 필요는 없고, 이미 있는 구간에서 뭔가 아쉽다 싶은 missing link만 찔끔찔끔 잇는 식으로 길을 만드는 게 추세이다. 고속도로도 갈수록 세 자릿수 번호가 늘어고 있듯이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3/22 08:35 2018/03/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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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썼던 글에 내용을 보충하고, 본인의 실제 답사기를 추가했다.)

오늘날 중앙선과 동해선(구 동해남부선)의 환승역인 경주 역은 무려 3· 1 운동 직전인 1918년 가을에 생겼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과는 약 20년의 격차가 있지만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역사가 굉장히 길다고 할 수 있다. 철도 덕후라면, 모름지기 1920년대, 30년대, 40년대 이렇게 연도만 입력하면 그 당시에 개통해 있던 철도 노선도가 머리에 쫙 떠올라야 한다.

그때 경주 역은 동해남부선 경주-포항 구간과 함께 개통한 역이었다. 중앙선은 1939년 전구간 개통이니까 그로부터 또 20년 뒤의 일이다. 다만, 동해남부선과 비슷한 시기에 경주-영천 구간도 중앙선이 아니라 경동선이라는 이름으로 경주로 가는 다른 철도가 있긴 했다. 지금 대구선의 전신뻘 된다.

중앙선이 완전 개통하기 얼마 전이던 1935년 12월, 동해남부선은 남쪽 구간이 마저 개통하여 포항-경주-울산-부산이 한데 연결되었다. 일제는 포항 이북으로도 쭉 철도를 놓으려고 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해 이 계획은 무산되었고, 그 상태 그대로 패망하게 되었다. 동해선이 그냥 동해 '남부'선으로 남게 된 게 이 때문이며, 이 철도가 일제가 한반도에 부설하던 마지막 철도였다.

본인이 전에도 글로 썼지만, 일제 강점기가 장기화됐다면 한반도의 교통 인프라도 일본의 그것과 굉장히 비슷해졌을 것이다. 자동차 도로는 좌측통행을 할 것이고 일제 강점기 때 그랬던 것처럼 한반도에도 지역별로 개성 넘치는 여러 사철이 등장했을 것이다. 동해남부선도, 경춘선도 시작은 다 사철이었다.

대륙 진출(진출이라고 적고 침략이라고 읽는다)을 염두에 두고 애초부터 표준궤로 건설되었던 경부선과는 달리, 동해남부선은 무려 762mm 협궤였다. 바로 과거의 수인선과 동일한 협궤였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 총독부가 이를 인수한 후 이내 표준궤로 개궤했다.
이렇게 완성된 경주 역 주변의 동해남부선과 중앙선의 선형은 아래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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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쪽의 충효동 방면을 호남선 목포 방면이라고 보고,
경주 역이 있는 동남쪽 울산 방면을 경부선 대구 방면이라고 보고,
나원 역이 있는 북쪽의 포항 방면을 경부선 서울 방면이라고 보면
이는 대전 역의 위상과 정확히 같다.

이들 철도가 처음 생긴 시절에는 초록색 선이 없었다.
그리고 경부선과 호남선이 만나는 지점도 사정이 정확하게 이와 같았다. 호남선에서 경부선 상행 방면으로 바로 가는 선로가 없었다. (곡물을 일본으로 반출하려면 부산으로만 가면 됐으니..)

그래서 목포에서 부산이 아닌 서울로 가려면 대전 역에서 기관차의 방향을 바꿔야 했으며,
영천에서 울산이 아닌 포항으로 가려면 경주 역에서 기관차의 방향을 바꿔야 했다.

이 때문에 서울을 오가는 호남· 전라선 열차들이 대전에서는 기관차의 방향을 전환하느라 정차 시간이 길었으며 대전 역이 대기 시간 동안 짬을 내어 사먹는 우동으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이런 불편을 덜기 위해 호남선은 1978년 복선화 과정에서 서울 방면으로 직통하는 삼각선이 추가되었다.

한편, 다시 중앙선 얘기로 돌아오면, 중앙선의 건설로 인해 경주에는 시내를 정면 관통하여 경주 역을 잇는 분홍색 선로가 생겼다.
그렇잖아도 중앙선 역시 남쪽에서 올라오는데, 기왕이면 금관총· 대릉원이 있는 좀더 남쪽으로 선로를 만들지 왜 저렇게 부자연스러운 급커브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원래 경주 역은 중앙선이 아니라 동해남부선의 선형에 맞춰진 형태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저것도 나름 서울-신촌 사이와 비슷한 급커브라는 생각이 든다.

본인은 초딩 시절에 흥무 초등학교를 다닌 적이 있는데,
빨강-파랑 초기 도색을 한 새마을호가 수시로 드나들던 걸 본 기억이 선하다. 벌써 20년 가까이 전의 이야기이다.
철도는 확실히 지역을 분단시키는 효과가 있긴 했다.

이 선로는 경주 시내를 정면으로, 그것도 여러 건널목을 만들면서(평면 교차) 관통한지라 문제가 많았다. 딱 큰길만 따라간 것도 아니고, 이쪽 일대의 위성 사진 지도를 보면 정확하게 수평· 수직선이 아니라 분홍색 비스듬한 선을 따라 건물들의 배치가 왜곡돼 있는 걸 알 수 있다. 그게 옛 철길의 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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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경주 인근에서 (1) 동해선 상행으로 분기의 어려움과 (2) 경주 시내 관통으로 인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1980~90년대에 일련의 조치가 취해졌다.
먼저, (1) 1985년엔 중앙선과 동해선 상행을 연결하는 초록색 선이 새로 생겼다. 그리고 초록색 선과 분홍색 선이 분기되는 충효 제2터널 지점에 '서경주'라는 이름의 작은 신호소가 생겼다.

그 뒤.. (2) 기존의 분홍색 선로를 철거해 버리고 영천에서 경주 시내에서는 초록색과 보라색 선만으로, 즉 황성동 쪽까지 엄청난 우회를 해서 다니게 선로를 바꿨다. 분홍색 선 대신, 북쪽의 '금장터널'이 있는 곳에 아주 작은 삼각선을 만들어서 중앙선 영천 방면과 동해선 울산 방면을 왕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아래 그림에서 before과 after의 차이를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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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워낙 문화 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도시이다. 그러니 이런 시내 관통 선로 철거의 배후에는 유네스코의 권고가 있기도 했다고 한다. 철도와는 다른 분야로 최근엔 태릉 선수촌이 지방으로 완전히 이전했는데, 이 역시 인근에 있는 태릉과 강릉을 보존하고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정식 등재하기 위해서 취해진 조치였다. (뭐, 선수촌의 부지 크기와 확장 문제도 작용했지만 말이다.)
시대가 바뀌니 일제가 졸속으로 동해남부선 철길을 막 놓으면서 경주 시내를 땅따먹기 하던 시절과는 정반대 조치가 취해지고 있는 셈이다.

선로가 이렇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경주 쪽의 수요가 많기 때문에 포항-대구를 왕래하는 열차들은 어차피 경주는 들렀다 가는 관행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 때문에 이 노선에는 전진과 후진이 비교적 자유로운 전후 대칭 동차형 열차가 다니곤 했다.

그래서 1992년 11월 1일, 북쪽에 새로 생긴 선로 분기 지점의 근처에 '금장'이라는 이름의 역이 생겼다. 개업 당시에는 일개 듣보잡 신호장에 불과하였으나, 메이저인 경주 역이 위치가 저렇게 어정쩡하던 것에 대한 반사 이익을 제대로 받아서 급성장했다.

인근에 아파트촌과 동국대 경주 캠퍼스가 있어서 위치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새마을호가 정차하는 역으로까지 발전했다. 2005년부터는 코레일이 포항 승객의 편의와 열차 속도 향상을 위해 경주 역을 무정차 통과시키고 대신 이 역에 열차를 꾸준히 늘렸다.
참고로 2005년에는 대구선이 외곽으로 이설되면서 금장과 이름도 비슷한 금강 역이 생겼으나, 이 역은 이렇다 할 인기를 얻지 못하고 이내 여객 취급 중지 처분을 받았다. 이와도 아주 대조적이지 않은지?

또한, 금장 역의 개통으로 인해 기존의 서경주 신호소는 존재의 목적을 완전히 상실하고 폐쇄됐다. 건물 자체는 철거되지 않고 경주시 부엉길 9-34라고 도로명 주소까지 할당받아 있지만, 전혀 쓰이지 않고 방치되어 있다.
이에 본인은 이번 설에 고향을 방문한 기념으로 옛 중앙선 선로의 분기 지점 주변을 답사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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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의 경주 시내 관통 구선로 중에는 형산강을 건너는 교량이 있었다. 선로가 철거된 뒤에는 교각만 10년 가까이 덩그러니 방치돼 있다가 2002년경에 '장군교'라는 이름의 인도교로 리모델링 됐다. 김 유신 장군 묘가 근처에 있다고 다리 이름도 저렇게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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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중앙선의 흔적은 교량뿐만 아니라 송화산 언덕 아래를 지나는 터널로도 남아 있다. 한때 열차가 다니던 이 터널은 이제 끝이 막힌 채 누군가의 창고로 쓰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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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면, 오늘날 새로 만들어서 쓰이고 있는 철길과 터널의 모습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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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굴다리는 아주 짧고 작지만, 굴다리를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다리 아래에서는 목소리가 마치 마이크를 튼 것처럼 굉장히 잘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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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있는 송화산 등산로를 약간 올랐다. 그래서 현재 쓰이는 금장 방면 중앙선 우회 선로(왼쪽)와 장군교(오른쪽)를 모두 볼 수 있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마 본인이 지금 서 있는 곳의 아래에 아까 그 폐터널이 지나지 싶다.

송화산은 동국대 경주 캠퍼스를 감싸는 그냥 듣보잡 동네 뒷산처럼 생겼지만, 나름 국립공원이더라. 그래서 서울 북한산에서나 보던 방문객 집계 게이트도 있었다. 이 산은 경치나 문화재 같은 무슨 메리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교량과 폐터널을 둘러보고 언덕도 올라 봤는데, 그럼 서경주 신호장은 어디에 있을까?
폐터널도, 언덕도 아닌 다른 민가의 뒤쪽으로 가서 철길 근처에 접근해야 했다.
주변은 시골 마을이다 보니 개를 키우는 집이 많았는데, 이 개들이 온통 시끄럽게 짖어 대면서 외부인인 본인을 반겼다.

무슨 강력 미제 사건을 보면 "범행이 벌어지던 당시에 현장에 있던 사나운 개가 웬일로 짖지 않았다. 개를 미리 어떻게 처리했거나, 아니면 범인은 면식범이다." 이런 식으로 설명된 게 있다. (예: 2008년 대구 초등생 납치 살해 사건)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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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잡초로 뒤덮힌 이 폐건물을 보라. 이것이 민가나 다른 건물이 아니라 구 서경주 신호장이다. 창문이나 출입문 같은 건 일부러 다 틀어막은 듯하다. 문자로 된 그 어떤 간판이나 표지판도 존재하지 않는다.

수풀 덤불을 헤치고 현장에 도달하니, 마치 서부 전선 DMZ 안에 내팽겨쳐져 있다는 파주 장단면 사무소 폐건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비슷하게 DMZ 근처에 나뒹굴고 있던 녹슨 증기 기관차 정도야 인양해서 복원 후 임진각에다 전시도 해 놨다. 하지만 건물은.. 철원 노동당사처럼 해당 지역 자체를 수복하지 않은 이상, 딴 데로 옮기기가 곤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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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건물은 애초에 이 구간을 지나는 열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도 잠깐이나마 어렵지 않게 구경할 수 있다.
하지만 금장 역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시설을 자가용을 몰고 찾아가서 이런 시간이 정지한 듯한 오지에서 대면하게 되니 참 뿌듯함이 느껴졌다. 옛 서경주 신호소를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나라 철도 역사에 대한 내공이 꽤 갖춰진 철덕이라고 불리기에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 추가 설명

1. 신호소와 신호장

신호소와 신호장은 모두 뭔가 철도 정거장처럼 생겼고 철도라는 그래프에서 vertex 역할을 한다. 하지만 승강장이 없고 여객 취급을 하지는 않는다.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신호장은 단선에서 열차의 교행을 대비한다는 용도가 더 강하고, 신호소는 선로의 분기와 합류를 취급한다는 성격이 더 강하다.

철도 시설의 기술 발달과(특히 CTC화) 자동화로 인해 신호소는 더 만들지 않는 게 추세이지만, 전국에 신호소는 다섯 군데 정도 더 있다고 한다(미전, 북송정, 북영주, 용강, 신대).

2. 경주 역과 인근 역들의 미래 운명

한때는 경주 역에서 합체· 분리를 하는 포항· 울산 행 새마을호 복합 열차가 다녔고 서울-부전 새마을호까지 경주 역을 경유하였으나, 2010년에 KTX 신경주 역이 개통한 뒤엔 다 이제 옛날 추억이 됐다. 지금은 경주에서 서울로 바로 가는 열차는 레어템인 중앙선 열차(밤차 또는 낮의 완행)뿐이다. 그러니 서울로 가려면 동대구 역에서 열차를 갈아타든가 아니면 신경주 역으로 가야 된다.
신경주 역에서 서울로 가는 KTX가 평균 4~50분 간격으로 신경주 역에 정차해 주고 있으니, 이 구닥다리 역에 장거리 열차를 남겨 둘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포항은 한때는 KTX 비수혜 지역으로 여겨져서 서울-포항 새마을호가 하루 2차례 다니긴 했다(경주 대신 서경주에 정차). 그러나 이 역시 2015년에 동해선 KTX가 개통하면서 폐지됐다.
앞으로 몇 년 안 가 지금 경주 시내의 재래선 철길들은 다 없어질 예정이다. 기존 중앙선과 동해남부선조차도 신경주 중심으로 복선 전철화· 선형 개량을 거듭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 신경주 뿐만 아니라 현곡 초등학교 근처에도 지금의 서경주와 나원 역을 대체하는 역이 생길 예정이니 이는 반가운 일이다. 다만, 난립하고 있는 여러 역명들의 교통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경주 역은 역사적 상징성을 인정받아, 철길이 없어지는 것과는 별개로 건물 자체는 영구 보존하기로 지난 2013년경에 결정되었다. 그럼 이웃의 다른 지역은 상황이 어떨까?

  • 영천: 역시 경주와 비슷한 시기에 생겼고 중앙선과 대구선의 환승역이지만, 고속철의 영향을 받은 것이 전혀 없고 주변의 지역이 바뀌는 것도 없다 보니.. 지금의 위상이 계속 유지된다. 그냥 근처의 동대구 역에 빌붙는 게 더 편하니까.
  • 포항: 원래 있던 역은 보다시피 싹 없어지고 사라졌다.
  • 울산: 고속선과 기존 동해남부선이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덕분에 고속철 울산 역과 기존 태화강 역이 공존하게 된 경우라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8/03/16 08:30 2018/03/1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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