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철도 역사 -- 그땐 그랬지

예전에 한 번씩 언급했던 얘기들도 있지만 다들 한데 모아서 나열해 본다.

1. 구한말

(1) 을미사변이 일어나던 당시, 민비를 살해하러 경복궁으로 침투했던 일본 낭인들은 무려 배를 타고 한반도를 빙 돌아서 인천항에 도착한 뒤, 거기서 서울로 갔다. 그때는 아직 경부선 철도라는 게 없었고, 비행기는 더욱 없었기 때문이다.

(2) 한반도의 첫 철도인 경인선이 표준궤로 부설된 것은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진 것이고 무척 다행이었다. 일제는 미국이 건설하다가 만 이 철도를 도로 협궤로 개궤할까 고민을 했었지만.. 이내 고민을 접고 표준궤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 궤간이 경부선으로도 이어졌다. 그때는 이미 자국 내에서도 협궤는 좀 아닌 것 같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었다고 한다.

(3) 이토 히로부미는 열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수원-안양 부근에서 원 태우 의사가 던진 돌에 맞아서 다쳤고, 끝내는 최후도 기차역에서 맞이했다. (국내 철도역은 아니지만)

2. 일제강점기

  • 이때는 부산 방면이 상행이고, 경성과 대륙 방면은 하행이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이게 당연한 선택이다.
  • 지금의 부산 역은 그때는 그냥 초량 역이었다. 진짜 부산 역은 더 남쪽의 바다 코앞에 만들어져 있었으며, 거기서 곧장 연락선으로 갈아타서 일본으로 갈 수 있었다.
  • 원래 서대문이 경성 역이었는데 3· 1 운동 이후에 없어지고, 남대문이 경성 역이 된 건 유명한 일화이다. 경성-신촌의 과격한 90도 드리프트에는 사연과 내력이 존재할 것이다.
  • 1930년대 이후의 아카츠키 호가 서울-부산을 6시간 반 만에 찍었다. 이게 그 당시 한반도에서 가장 빠른 육상 교통수단이었다.
  • 저 시절에 한반도의 유일한 복선 철도는 경부· 경의선이었다. 경인선과 경원선도 복선화 계획이 있긴 했지만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 저 시절에 한반도의 유일한 전기 철도는 금강산선이었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는 게 증기 기관차로는 도저히 무리였기 때문이다.
  • 오늘날 경인선은 전철만 복복선으로 다니는 노선이다만.. 저 시절에는 단선에서 모든 열차가 모든 역에 정차하는 형태로 하루 10여 회 남짓 운행됐었다.
  • 일제가 건설 중이던 최후의 철도는 동해중부선이었다. 금강산선의 선로조차도 전쟁 물자로 공출되어 나가던 와중에 저기는 그래도 일제가 대륙 진출을 위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1) 경부선 철도는 1905년 개통 당시에는 지금의 국도 4호선의 선형처럼 금오산 고갯길을 오르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실제로 열차를 운행해 보니 증기 기관차의 출력이 너무 딸려서 고작 그 오르막도 제대로 오르지를 못했다.
보조 기관차를 장착하는 별짓을 다 하다가 10여 년 뒤에는 결국 산기슭을 북쪽으로 빙빙 돌면서 구미 시내를 더 가까이 우회하는 형태로 철길이 새로 만들어졌다. 참 공교롭게도 박 정희가 비슷한 시기에 딱 거기 일대에서 태어났다.

(2) 1930년대에는 경성(서울 역)-서소문(충정로)-아현-신촌-서강-대흥-공덕-용산을 삥 도는 10km 남짓한 '경성 순환 노선'이라는 일종의 단거리 도시철도가 다닌 적이 있었다. 노면전차가 아니니 혼동하지 말 것~!!
이 짧은 단선 철도에서 꽤 빡세게 교행을 하면서 양방향 운행을 했다니 일본이 철도 운영 기술은 정말 뛰어났던 것 같다. 딱 이 비슷한 시기에 서울-부산을 증기 기관차로 6시간 반을 찍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 철도는 전철이 아니었으며, 디젤 동차 내지 휘발유 동차가 투입됐었다고 한다.
1944년에 일제가 전쟁 때문에 물자 공출 명목으로 선로와 차량을 뜯어가 버리면서 폐지됐다. 하긴, 저 때는 기름이 없어서 목탄가스 자동차가 다닐 정도로 경제 사정이 궁핍했었다.

3. 해방 이후

(1) 경인선은 나름 증기 기관차 → 디젤 동차 → 전철을 모두 경험한 철도이다. 디젤 기관차나 휘발유 동차가 공식 운행된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디젤 동차의 경우, 1965~66년 사이에 복선화와 함께 도입되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요런 차량이 경원선에서도(용산-성북) 전철화 이전에 운행됐었다.

(2) 우리나라 철도에서 공식 운행된 마지막 협궤는 잘 알다시피 구 수인선이다.
정규 열차 운행 구간 중에 마지막 통표 폐색 구간은 정선선 정선-아우라지 구간이라고 알려져 있다. 정선선은 비둘기호가 마지막으로 다녔던 곳이기도 하고, 원시적인 폐색 방식이 최후까지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한 셈이다.
한편, 원시적인 완목 신호기가 2024년 현재 아직도 현역으로 쓰이는 최후의 장소는 강원도 북평선의 삼화 역이라고 한다. 여기는 여객철도는 아니고 시멘트 공장에서 운영하는 사철/화물철도라고 한다.

(3) 공장이나 발전소로 들어가던 철길 중에 없어진 것들이 많다. 서천화력선(장항선의 지선), 화순선(우리나라 탄광 1호!), 군산 부근에 있던 전설적인 세풍제지선..
오류동 역에서 뻗어서 남쪽 부천과 시흥시의 공장과 군부대로 들어가던 경기화학선도 생각난다.
부산에는 문현선이라고 1972년, 수려선과 비슷한 시기에 폐선된 철도가 있었다. 그 반면 우암선은 지금도 현역이다.

현대제철(당진)· 포스코 같은 제철소로 들어가는 철도는 지금도 남아 있다.
그 반면, 서빙고 역에서 용산 미군 기지로 들어가는 철도, 호남선의 지선으로서 논산 육군훈련소 부지로 들어가는 철도(연무대 역!)는 아마 지금은 준폐선 상태겠지..??

(4) 철도청 포함 정부에서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시골에서 전적으로 주민들이 요구하고 주민들이 역 건물을 직접 짓기까지 해서 만들어진 역이 딱 두 곳 있다. 경부선 신거(새마을 운동 관련)와 영동선 양원(진짜 노답 첩첩산중 오지여서). 물론 둘 다 지금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역은 아니다.

(5) 교외선은 폐선될 듯 말 듯하면서도 그래도 완전히 버려지지는 않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복선 노반만 확보해 놓고 일단은 단선으로라도 전철화해서 가끔 전동차나 ITX-청춘, 화물열차를 굴리면 되지 않을까 싶다.

해방 후에 우리나라에서는 교외선과 경원선 선로를 주축으로 해서 순환 노선 열차를 운행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일제 시절 당시의 자그마한 경성순환선보다 고리의 크기가 훨씬 더 커졌다.
고속도로는 '서울외곽순환'이 '수도권1순환'이라고 이름이 바뀌었는데, 철도는 '서울교외'가 그냥 '교외'라고 개명됐다는 차이가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4/07/19 19:35 2024/07/1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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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늘어놓는 철도 덕질 썰이다.

1. 역명

(1) 서울 지하철 7호선 뚝섬유원지 역이 '자양'이라고 개명됐다. 이건 옛날 7호선 건설 당시에 임시로 쓰였던 가칭으로 되돌아간 것이어서 흥미롭다. 개명 얼마 전에 영문 표기가 뚝섬 resort에서 뚝섬 park라고 바뀌었던 바 있다.

여기는 지금 같은 형태의 한강 공원(고수부지?)이라는 게 생기기 전, 먼 옛날에는 진짜로 강수욕장(!!)도 있고 맛집들 즐비하고 얼추 서울 교외 유원지 같았던 곳이긴 했다. 지금으로 치면 서쪽 끄트머리의 행주산성 유원지와 비슷하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이야 저기 일대가 몽땅 다 개발됐고 뚝섬도 여러 한강 공원 중 하나일 뿐이다. 딱히 '유원지'라고 부르기에는 정체성이 많이 흐려졌다.

(2) KTX 신경주 역이 앞의 '신'자를 떼고 그냥 '경주'라고 개명됐다! 구 경주 역이 폐역돼 없어졌고, '서경주' 역도 새로 생긴 와중인데, 이건 언젠가는 행해질 조치인 것 같았다. 수긍이 간다.
울산은 고속철 울산 역과 일반열차 태화강 역이 따로 돌아가는 반면, 경주는 그렇지 않다.
대구는 지리· 역사와 관련된 여러 내력(경로의존성..)으로 인해, 메이저인 동대구 역에서 '동'자를 떼어내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듯하다.

(3) 난 개인적으로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서쪽 종점인 '석남'은 그렇게 적절한 작명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GTX A선이 개통되면서 판교-이매 사이의 '성남' 역과 사실상 동명이역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한국어는 비음화 자음동화가 존재하는 언어다. 이건 전산상으로는 문제 없을지 모르겠지만, 실질적으로는 5호선 양평과 중앙선 양평 같은 충돌이나 마찬가지이다.

2. 노선

서울시에서는 9호선을 끝으로 저런 형태인 시내 도시철도는 더 건설하지 않고 있다. (도시 한쪽 끝과 한쪽 끝을 완전히 관통, 대형 중전철, 100% 공기관 운영) 그 대신 패러다임이 광역 일반철도(대규모) 아니면 경전철(소규모)로 바뀌었다.

사실 전국적으로도 중전철 기반의 도시철도를 건설한 건 무려 20여 년 전의 대전 지하철 1호선이 마지막이다. (그 뒤로는 다 경전철) 하필 한국형 표준 전동차 프로토타입이 제정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말이다. 서울에서는 9호선 전동차가 딱 그 표준 프로토타입이 적용된 차량이다.

규모가 큰 광역전철급은 교류에 좌측통행이고, 규모가 작은 도시철도-경전철은 직류에 우측통행인 것이 흥미롭다. 자동차만 해도 작은 승용차 급은 휘발유 엔진에 디스크/유압식 브레이크 위주인 반면, 대형 버스· 트럭은 디젤 엔진에 드럼/에어 브레이크 위주인데.. 서로 무관한 기술 간에 상관관계가 성립하는 것 같다.

서울보다 작은 도시들은 경전철만으로 기존 지하철과 대등한 도시철도 노선으로 치는 반면(부산 4, 대구 3, 인천 2 등), 서울은 그렇지 않다. 반대로 GTX는 광역전철의 특별 심화판 격이다.

지금 GTX A선 수서-동탄은.. 서울 시내까지 깊숙하게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자기만의 구간이 새로 개통한 게 전혀 없고, 그냥 이미 있는 고속선에다 역만 개통한 거다.
공항철도가 김포까지만 개통했던 것, 분당선이 수서까지만 개통했던 것, 경의선이 DMC까지만 개통했던 것과 비슷한 처지이다. 정말 못해도 삼성까지는 개통해서 바로 갈 수 있어야 수요가 더 늘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공항철도 서울 역과 GTX A선이 쭉 연결되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신분당선은 용산이 아니라 남산 아래로 지나가서 광화문 쪽으로 가고 말이다.

* 여담이지만.. 요즘 생기는 전철들 덕분에 한강 하저터널이 알게 모르게 부쩍 늘어났고 더 생기고 있다.
한때는 5호선에다 기껏해야 분당선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소사대곡선도 하저터널이요, 8호선 북쪽 연장과 GTX까지 다 강 아래로 한강을 건널 예정이다.
그에 비해 부산에는 낙동강 하저터널이 아직 단 하나도 없다.;;;

3. 차량 -- 퇴역

(1) 1996~97년부터 CDC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도입됐던 통근형 디젤 동차 차량이 지난 2023년말부로 완전히 퇴역하고 사라졌다.

통일호라는 차종이 2004년 KTX 개통과 함께 없어진 뒤에 얘들은 ‘통근열차’라는 이름으로 서울 북부의 경의선과 경원선에서 명맥을 유지했었다. 그러다가 일부 차종은 2007~08년경엔 RDC로 개조되었고, 노후화된 NDC 동차의 뒤를 잇는 무궁화호로 운행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경의선과 경원선이 몽땅 전철화되면서 CDC가 퇴출되었고.. 이 CDC, 아니 RDC는 마지막에는 광주선에서 광주-광주송정 셔틀을 뛰다가 퇴역하게 됐다.
2010년에 무궁화호 NDC, 2013년에 새마을호 DHC에 이어 2023년엔 통일/무궁화호 CDC/RDC가 뒤를 이은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는 디젤 동차가 씨가 말라 간다.;;;

(2) NDC와 DHC의 경우, VIP용 바리에이션 차량이 있었다.
NDC는 퇴역이 임박했던 2009년에 한 편성이 비즈니스 동차로 개조되어서 코레일 사장급 VIP 전용으로 쓰였다. 얘는 2015년에 완전히 퇴역했으며, 현재는 철도 박물관에서 그래도 운행 가능한 형태로 동태보존 되어 있다.

DHC는 이미 1999년 김 대중 시절에 만들어진 경복호가 잘 알려져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인사 전용 차량..
DHC 차량 자체는 이미 10년도 더 전에 전량 퇴역했으니, 이제는 경복호만이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새마을호 디젤 동차의 외형을 지닌 철도 차량이다.
얘는 현역이긴 하지만, KTX 차량 중에도 ‘트레인 원’이라고 불리는 VIP 객차가 있기 때문에 요즘은 자주 쓰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3) 지금이 전기 철도가 주류가 됐다고 해서 디젤 동차만이 찬밥 신세인 건 아니다.
지난 21세기 초에, 특히 경부선 전철화 완료와 함께 리즈 시절을 경험했던 8200호대 전기 기관차는 생각보다 미래가 불투명하다. 얘는 전기 차량이기는 하지만 ‘전동차’와는 접점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기관차 피견인형 객차라는 게 마지막으로 도입된 게 무려 20년도 더 전 일이다. 8200은 전동차가 아니고, 화물에 특화된 전기 기관차가 아니고, 그렇다고 비전철화 구간을 위한 디젤 기관차도 아니다 보니 가까운 미래에 존재감이 애매한 계륵이 될 가능성이 높다.
수출되거나, 무게와 기어비를 바꿔서 화물용으로 개조되거나.. 뭔가 특단의 조치가 취해질 것 같다.

4. 차량 -- 도입

퇴역하고 없어지는 차량이 있다면, 새로 도입되는 차량도 있는 법..

(1) 고속철도 KTX라는 게 개통한 지 어언 20주년이 넘었다. 오리지널 18량짜리 KTX 차량의 기술을 기반으로 2010년대엔 ‘산천’이 등장했고, 그 다음으로 ‘이음’에 이어 ‘청룡’이 개발되었다니 참 고무적인 일이다. ‘이음’은 시속 200대의 준고속 에디션이기 때문에 이 청룡이 산천 다음의 제3세대 차량이다.

이 청룡은 신칸센처럼 동력분산식으로 개발되어서 기술적으로 이전 TGV와의 접점이 없어졌다. 동력차가 더 촘촘하게 분포해 있기 때문에 가감속이 더 뛰어나며, 최신 기술이 접목되어 최고 속도도 더 높은가 보다.

(2) 서울 지하철 9호선과 공항철도를 직결 운행하는 차량은 언제쯤 등장하려나 궁금해진다.
현재 수도권 전철에서 직교 겸용 차량이 다니는 곳은 오로지 1호선과 4호선 차량밖에 없는데.. 서울 1기 지하철이 아니라 3기 지하철 구간에서 이런 직교 겸용 차량이 다시 등장한다면 느낌이 무척 색다를 것 같다.

평창 동계 올림픽을 하던 시절엔 KTX가 서울 역을 떠나서 행신이 아니라 공항철도로 진입해서 인천 공항까지 가던 적이 있었다. 심지어 검암 역은 저상홈을 따로 만들어서 KTX의 정차 취급까지 했었다. 그랬던 게 이제는 일반열차가 아니라 9호선과의 직결을 준비 중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5/19 19:35 2024/05/1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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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증기 기관차 지하철

1863년 1월, 영국 런던에서는 세계 최초의 지하철 메트로폴리탄 선이라는 게 개통했다.
이때는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링컨이니 남북전쟁이니 하는 얘기랑, 대도시 지하철이 동시대라니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때 우리나라 조선은?? 이제 겨우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됐다. ㄲㄲㄲㄲㄲㄲ

허나, 남북전쟁은 일개 내전 주제에 기관총 저격총에, 철도 보급 총력전에 초보적인 잠수함까지 등장한 의외의 첨단 과학기술 전쟁이었다. 그 와중에 런던에서는 지하철이 개통하긴 했는데..
지하철에서는 증기 기관차가 다녔다. ㅡ,.ㅡ;; 아직 전기 철도라는 게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하에서 석탄 매연 문제가 장난 아니게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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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이 돼서야 영국 지하철에서 처음으로 전기 철도라는 게 등장하고 지하철의 주 동력원은 전기로 바뀌었다. 증기 기관차를 경험한 적 있는 지하철은 당연히 세계 전체를 통틀어 저기가 유일하다.

이렇게 전철이 개발되면서부터 유럽 열강들 대도시의 지하철은 1890~1910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
일본은 최초의 도쿄 지하철인 긴자 선이 딱 영국 스타일로 표준궤에 제3궤조 집전식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뒤에는 전부 협궤에 가공전차선으로 바뀌었다.

2. 원자력 기관차

1950년대 냉전 초창기는 증기 기관차가 슬슬 끝물을 보던 시절이었다. 이때 미국과 소련에서는 탄수차 대신 원자로를 얹어서 물을 끓이고 터빈을 돌리는 원자력 기관차라는 무시무시한 물건을 생각했었다.;; 이른바 atomic train, nuclear locomo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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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원자력답게 연료봉을 하나 꽂아 주면 거의 1년은 마일트레인 급의 무시무시한 화차들을 잘 끌고 다닐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오긴 했다. 원자로를 표준궤 열차 수준으로 소형화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건 도저히 극복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안전 문제가 너무 노답인 데다, 그 시절엔 기름값이 확 싸지고 디젤 내지 전기 기관차 기술도 눈부시게 발달해 버렸다. 경쟁 후보 대비 가성비가 확 떨어진 바람에 이 계획은 1950년대에 구상 단계에서 다 백지화됐다. 오늘날 원자로가 탑재된 교통수단은 전부 해군에 소속되어 망망대해에서만 뛰고 있다(잠수함, 항공모함).

3. 가스 터빈 고속철

1964년 10월에 개통된 일본 신칸센은 자동차와 비행기에 밀려 몰락하던 세계의 철도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100여 년 전, 영국에서 "철도를 지하에다 집어넣어서 도시 교통체증을 해결해 보자",
30여 년 전, 독일에서 "신호 대기 없이 쭉쭉 달리는 자동차만의 전용 도로를 만들어 보자"에 이어..
일본에서는 "건널목을 몽땅 없애고 총알탄 열차를 만들어서 교통난을 해소하자"라는 엄청난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실현한 것이다. 물론 쟤들은 미래가 없는 노답 협궤 기존선들 때문에 상황이 더 절박했던 것도 있고 말이다.

일본 신칸센이 열차로서 시속 200km를 최초로 넘자, 프랑스에서는 TGV라는 고속철을 자체 개발했다. 그런데 얘들은 처음엔 가스 터빈을 동력원으로 검토했다. 즉, 프랑스는 내연기관 고속열차를 연구 개발해 본 유일한 나라이다.

1963년에 신칸센 전철이 시운전 시속 250km를 돌파한 데 이어, TGV 001호는 가스 터빈 엔진으로 1972년에 시운전 시속 318km를 기록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1973년 이후 오일쇼크가 닥치자 기름값 유지비가 감당이 안 됐고.. 이를 계기로 TGV도 개발 차량이 아닌 영업용 차량은 신칸센처럼 100% 전철로 동력원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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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원자력 기관차는 기름값 하락이 몰락에 일조했던 반면, 얘는 반대로 기름값 상승이 몰락에 기여했다는 차이가 있다.
교통수단에서 터보샤프트 급 가스 터빈 엔진은 헬리콥터나 탱크 정도에서 쓰이고 있다. 철도 차량의 동력원으로는 사례가 없지는 않지만 아주 마이너하다.
초창기 가스터빈 떼제베 001과, 후대의 전철 떼제베는 관계가 마치 우리나라 DEC / EEC 열차쌍과 비슷해 보인다.

4. 제트 엔진 고속철

이건 초음속 자동차의 철도 버전이며, 앞의 2번과 3번을 합친 것 같은 무시무시한 야사이다.
미국과 소련에서는 가스 터빈 정도가 아니라 노즐까지 달린 제트 엔진을 철도 차량에 접목할 생각도 했었다. 1960년대 중후반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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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개발한 Yak-40, 미국에서 개발한 M-497)

그래서 이런 게 실제로 개발됐었다. 달에 먼저 가겠다고 우주 경쟁을 하던 시절에 서로 이런 것도 만들었다는게 참.. ㄷㄷㄷㄷ 얘들는 바퀴식 고속전철이 한참 나중에야 달성한 시속 300~400을 1960년대에 진작에 찍기도 했다.

오오~ 전차선과 팬터그래프가 달리지 않은 고속철도라니.. 게다가 얘는 바퀴를 굴리는 게 아니라 공기를 뒤로 밀어내면서 달리니 마찰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공전 현상 따위의 영향도 받지 않겠다.
과거 우리나라의 새마을호 디젤 동차가 잠수함 엔진을 얹었다면, 쟤들은 폭격기 엔진을 얹었다.

그러나 이런 게 실용화되지 못한 이유는 뭐..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연료 소모가 너무 극심할 뿐만 아니라, 선로 주변에 배기가스와 귀를 찢는 소음 문제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때는 훨씬 더 경제적이고 주변에 민폐 덜 끼치면서 시속 200~300을 찍는 신칸센 고속전철이 개통돼 있었기 때문에 가성비 면에서 더욱 수지가 맞지 않았다.

철도 차량의 제트 엔진은 차체를 통째로 공중에 들어올리는 건 아니니까 비행기보다 연료 소모가 적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 지표면은 비행기들의 순항 고도 지점보다 공기의 밀도가 높고 공기 저항이 훨씬 더 심하기 때문이다.

비행기만 해도 저고도에서는 속도와 연비가 우리 생각 이상으로 급격히 떨어진다. 비행기가 괜히 힘들게 수 km 이상 위로 상승하는 건 단순히 승객들에게 멋진 구름 경치를 제공하기 위해서인 게 아니다. 자동차에 경제 속도가 있듯이 비행기에도 경제 고도가 있는 셈이다.

10km 고도에서 마하 1~2를 찍는 전투기라도 겨우 수백 m 고도에서는 그 속도로 날지 못한다. 엔진에 과부하가 걸리는 걸 넘어 기체가 공기 저항을 못 버티고 부서진다고 한다.;;
이걸 생각하면 사막에서 제트 엔진 얹어서 시속 1600km대로 주행한다는 초음속 자동차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옛날에는 rocket이라는 말이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않아서 진짜로 로켓을 연구하는 NASA의 연구소마저 이름이 '제트 추진 연구소'였었다. 그런데 훨씬 더 옛날에 영국에서 증기 기관차의 이름이 그 당시로서는 초고속이었다고 '로켓 호'라고 지어졌다니.. 이것도 참 의미심장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4/03/10 08:35 2024/03/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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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이한 시내버스

(1)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어떤 시내버스 노선은.. 한번 다니면서 같은 지점으로 돌아오거나 심지어 같은 길을 같은 방향으로 또 경유하는 경우가 있다. 한 노선 갖고 여기저기 들쑤시는 굴곡 노선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런 버스는 같은 번호이더라도 A 방향, B 방향을 잘 구분하면서 타야 된다.
서울에서는 동대문구 쪽에 2233과 2112, 그리고 성남 57 말이다.;; 지도 그림만 봐서는 저 노선의 필순을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다.; 단순하고 직관적인 지하철 노선을 이해하는 식으로 시내버스 노선을 이해하려 해서는 곤란한다.

(2) 2022년 이후, 서울에 노란 순환 버스는 01 딱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원래 버스 개편 당시엔 강남이나 여의도, 중구 도심 같은 곳을 짤막하게 도는 마을버스처럼 계획됐지만.. 그건 진짜 마을버스들의 역할로 넘어가고 색깔은 그냥 학원 학교 버스한테 넘어가면서 정체성이 너무 애매해졌다.
현재 유일한 순환버스 01은 그래도 남산 꼭대기와 청와대를 연결하는 굉장히 독특한 순환 노선이다.

서울 시내버스들 중에서는 파란색 110이 거의 유일하게 서울 강북을 ‘순환’하는 형태이다. 용산구 한남동에서 평창동, 정릉까지 간다.
노랑뿐만 아니라 빨강도 굉장히 보기 힘들다. 경기도 소속의 광역버스나 아예 중앙 정부 소속의 M 좌석버스가 있을 뿐, 서울 소속의 광역버스가 많을 리 없기 때문이다.

(3) 버스를 비교해 보면 아무래도 좌석형 시외/고속버스가 덩치가 제일 크고(길이 12m 이상), 입석형 시내버스는 그보다 약간 더 작다(11m급 에어로시티). 마을버스에서는 더 작은 8.5~9m급 차량이 투입되기도 하며, 아예 카운티 같은 중형 버스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성북 05는 현재까지 서울에서 아예 스타렉스 승합차가 투입되어 다니는 유일한 마을버스 노선이다. 노선 길이는 겨우 2.1km이고 차량 딱 한 대가 20분 간격으로 다닌다.
도대체 이런 애들 장난 같은 노선이 왜 필요한가 싶지만.. 저기 일대가 북한산 기슭이어서 골목길의 경사가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셔틀버스에 가까운 마을 버스의 혜택을 입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굴린다.

2. 마을버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마을버스는 버스라는 대중교통 중에서 스케일이 제일 작은 시스템이다. (시외 > 광역 > 도시형 시내 > 마을..)
그래서 그런지 기본요금도 도시형 시내(초록색 지선, 파란색 간선 포함)버스보다 싸고, 운영 시스템이 그런 시내버스와는 따로 노는 감이 좀 있다. 이런 자잘하고 영세한 버스들까지 몽땅 다 환승 할인이 되고 버스 위치 조회가 되게 하고, 준공영제에 끌어들인 건 정말 대단한 조치였던 것 같다.

마을버스는 대도시의 깊숙한 구석 주택 골목을 꼼꼼히 돌면서 승객을 모아서는.. 인근의 대로변과 지하철역을 연계한다. 얘 한 번만 타서 어디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얘는 스케일이 더 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걸 돕는 역할을 한다.
마을버스의 유사품으로 이런 게 있다.

(1) 도심순환: 서울 버스 개편 때 '노랑 버스'로 계획했던 물건이다. 대도시 내부의 단거리 셔틀이라는 점은 마을버스와 비슷하지만, 주거 지역이 아니라 상업 업무 지역만을 돌아다닌다.
앞서 얘기했듯이, 지금은 남산-청와대 셔틀 말고는 이 버스가 모조리 사라지고 사문화돼 있어서 아쉽다. 사실, 노랑 버스는 햇병아리 어린애들을 태우는 학원· 학교 버스 이미지로 굳어졌기 때문에 색깔도 좀 논란의 여지가 있다.

(2) 농어촌버스: 운행 거리가 길고 관할 지역이 왕창 넓지만.. 여기는 인구와 수요가 너무 적기 때문에 영세하다. 시골 마을 어귀 곳곳을 돌면서 승객을 태워서 시장, 철도역, 시외버스 터미널, 관청 따위가 있는 중심부를 연결한다.
대도시와 비교해 보면.. 시골에는 마을버스 같은 세심한 물건 따위는 없으며, 농어촌버스가 간선버스 내지 지하철 역할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정작 농어촌버스는 몇 시간에 한 대, 심지어 하루에 n번꼴로 운행되니 거의 시외버스 급의 배차이다.

이러니 시골은 대중교통이 열악하고 자가용이 필수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마을버스? 대도시에서도 적자가 심해서 난리인데 그런 게 시골에 있을 수가 없다. ㄲㄲㄲㄲㄲ
7, 80대 노인들이 교통사고를 많이 낸다면서 면허 반납을 유도한다 해도, 시골에서는 그게 현실적으로 매우 난감하다.

3. 서울 지하철역

(1) 대청 역은 서울 지하철 3호선과 분당선이 정확하게 수직으로 교차하는 곳이다. 하지만 주변에 이미 역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인해, 여기는 분당선은 역이 아예 만들어지지 않고 3호선 역만 있다.
둘 이상의 전철 노선이 환승 없이 지나치는 경우는 있지만, 역이 아예 대놓고 하나만 만들어진 경우는 좀 드문 것 같다. 아, 5호선 마장-답십리 사이에 2호선 신답이 환승되지 않는 것도 비슷한 사례일까?

대청 역 주변에는 탄천 물재생센터가 있다. 장한평 주변에 중랑 물재생센터가 있는 것과 비슷한 관계이다.
저기도 분당선 역을 3개씩이나 만들지 말고 2개로 줄이고(구룡-개포동-대모산), 그 대신 대청을 환승역으로 만들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쉽다.

(2) 서울 지하철들은 지상 철교로 한강을 건넌 뒤에는 다시 터널로 들어가면서 아래로 내려간다. 아직 지상 구간인데 일부러 주변이 가려져 있지는 않는 편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주변이 방음벽으로 가려져 있는 곳은 2호선 당산 철교를 지난 직후인 합정 역 근처가 거의 유일한 것 같다. 이 방음벽 때문에 선로 바로 옆에 있는 절두산 가톨릭 순교 성지는 거의 제대로 못 본다.

한편, 지하철 1호선을 타고 한강 철교를 건너서 강북에 진입한 거의 직후엔 차창 밖으로 거대한 기와집을 하나 보게 된다. 이거 정체도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새남터 순교지. 이것도 가톨릭과 관계 있는 건물이었다.
하긴, 한강 철교 남단은 노량진이고 거기 근처엔 사육신묘가 있다. 어떤 형태로든 죽은 사람을 기리는 시설이 있다는 게 흥미롭다. 옛날에는 이렇게 한강 도성 바깥의 한강 근처까지만 가도 이미 서울을 벗어난 교외 깡촌이긴 했다. 사형장이 있고 무덤이 있었을 정도니까..

(3) 2호선에서 신설동은 서울 지하철 최초의 환승역인 데다 지하 유령 승강장의 존재 때문에 많이 유명하다.
걔 말고 역삼 역은 역사 내부에 최초로 에스컬레이터라는 게 설치된 역(!!)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안 그럴 것 같지만 역세권에 나름 민간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보안 시설이 들어서 있다. 물론 군부대나 교도소 같은 곳은 아니고, 한국 은행과 금융결제원이 1번 출구 바로 옆에 있다.

4. 고속도로 나들목과 철도역의 위상

각종 지방도나 국도의 이정표에서 무슨 시· 군까지 남은 거리(km 수)는.. 통상적으로 해당 지역의 시청· 군청까지의 거리라고 알려져 있다. 관청이 있는 곳이 해당 지역의 중심부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고속도로의 이정표에서 그 지역까지 남은 거리수는 당연히 그 지역 관청과는 아무 관계 없고 그냥 그 지역 이름을 딴 나들목까지의 거리일 뿐이다. 고속도로라는 건 그 지역의 중심부를 대놓고 관통하지도 않는다.

반세기 전에 경부 고속도로라는 걸 처음 만들던 시절엔 지역 공무원들도 이런 관념이 없었으니 "고속도로가 뭐야? 먹는 거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들목을 닥치고 우리 시내 중심부로 유치해야겠네!!" 이랬었다고 한다.
하긴, 철도역은 과거에는 저렇게 지역 중심부를 대놓고 지났지만 요즘은 다들 선로와 역사가 외곽으로 이설되면서 뭔가 고속도로 진출입로 같은 존재로 슬슬 바뀌어 가고 있다.

5. 길의 선형과 유래

(1) 지금 제1 수도권 순환 고속도로(100)라고 명명된 그 ‘외곽순환 고속도로’는 맨 처음에는 1991년 10월 31일, 동남부의 구리-판교 고속도로라는 명칭과 구간으로 시작했었다.
서울 지하철 2호선에서 맨 처음 개통된 구간은 동남부의 신설동-종합운동장이었다(1980년 10월 31일).
서울 지하철 5호선이 맨 처음 개통된 구간은 역시 동부 말단의 왕십리-상일동이었다(1995년 11월 15일).
모두들 뭔가 동질감이 느껴진다. 날짜도 비슷하고..!!

(2) 우리나라의 고속도로에서 중앙 버스 전용 차로가 시행된 건 경부 고속도로 신탄진-양재, 쉽게 말해 대전-서울 사이 구간이 최초이다. 1994년엔 명절에 시범 시행됐다가 1995년부터 전면 시행되었고 이때 파란 차선이라는 것도 처음 등장했다.
한편, 서울 시내에서 대중교통을 위한 중앙(측면이 아닌) 버스 전용 차로가 시행된 건 1996년 2월, 천호대로 신설동-광나루 구간이 최초이다. 해당 구간에 서울 지하철 5호선이 개통된 뒤, 파헤쳤던 길을 복구하면서 그 위에다 곧바로 중앙 버스 전용 차로를 아주 수월하게 만들었다.

(3) 전국의 고속도로 중에 단위 거리 당 건설비가 제일 높은 축에 드는 도로는 저 외곽순환 고속도로이다. 땅값이 너무 비싸서 토지 보상 비용이 많이 들고, 고가와 터널도 많이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처럼 서울 시내의 간선 도로 중에서 건설비가 제일 높았던 도로는 내부순환로이다. 기존 도로나 지형과의 접점이 없이 온통 고가도로로 때우고, 북악산을 뚫기까지 하면서 서울 북부에다가 정말 힘들게 길을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곳은 고육지책으로 하천 위로 그대로 고가도로를 만들기도 했다.

물론 2010년대 이후엔 강남순환로라고 관악산을 몽땅 지하 터널로 통과하는 더 무시무시한 길이 생겼다. 고속도로에도 제2경인 고속도로의 동쪽 연장 구간이 청계산이고 관악산이고 몽땅 다 지하로 관통해 버리니, 비슷한 수준의 강적이 등장했다.

(4) 대구는 ‘동대구’ 역이 대구 역보다 더 크다는 것, 2010년대 이전에는 복합 버스 터미널이 없었다는 것, 그냥 평범하게 ‘대구’라는 이름이 붙은 고속도로 나들목이나 분기점이 없다는 것이 무척 특이하다.
철도 쪽이야 대구 역이 경부선 창립 멤버로 있었으니까 ‘동대구’라는 이름이 나중에 추가로 붙었겠지만, 근처의 고속도로 나들목도 ‘동’자가 붙은 이유는 뭘까? 아마 1969년, 경부 고속도로 대구-부산 구간이 한창 건설 중일 때 동대구 역도 같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똑같이 ‘동’자가 붙은 것 같다.
실제로 동대구 역은 1969년 7월에 완공됐고, 고속도로는 그 해 말에 완공됐다.

(5) 우리나라 고속도로 중에서 대놓고 ‘지선’이라는 말이 붙은 도로로 내게 개인적으로 익숙한 것은.. 호남 고속도로 지선 251, 그리고 중부내륙 고속도로 지선 451이다.
이것 말고 중앙 고속도로 지선 551, 서해안 고속도로 지선인 151도 있고.. 남해 고속도로는 짤막한 지선이 여러 개 있어서 번호를 102부터 104까지 차지하고 있다.
251은 대전에서 호남 고속도로로 가는 게 철도 대전선의 도로 버전인 것 같다. 451은 북쪽의 대구에서는 45가 아니라 근처의 중앙 고속도로 55와 훨씬 더 가까이 있는데.. 남쪽 기점에서는 실제로 45와 연결되고 있기 때문에 저런 번호가 붙었다.

고속도로 노선 번호가 정착된 지도 20년이 넘었는데 이제는 이 번호 체계도 너무 복잡해져 있다. 하지만 이름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된 것도 사실이니, 번호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 고속도로도 그냥 국도처럼 아주 흔해 빠진 존재라고 생각해야 한다.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의 구분을 없애고 시스템을 다 통합하고.. 유인 톨게이트도 없애고, 통행료를 걷을 거면 그냥 다 하이패스 기반으로 바꾸고 말이다.

(6) 같은 도로에 상행과 하행이 멀찍이 떨어져 있고 심지어 고저 차이도 있다거나.. 반대로 같은 길의 복제판이(= 상· 하행 모두) 근처에 따로 있는 것.
둘 다 흔한 경우는 아닐 것이다. 둘 다 도로의 확장과 관련된 사연이 있어서 저렇게 됐다.
전자의 경우는 경부 고속도로 청주-남이 사이가 대표적이다. 수원 요금소는 상행과 하행이 분리되어 따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도로뿐만 아니라 경부선 철도도 일부 구간--특히 대구-부산 사이--은 상· 하행이 뚝 떨어진 경우가 있다.

후자의 경우는 제2 버전이 나란히 지나는 중부 고속도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인천 공항 고속도로도 상· 하행 복층 구간이 짤막하게나마 존재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4/01/29 08:35 2024/01/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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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국내 철도 근황

1. 국내의 셔틀 열차

철도 노선 중에는 장거리 간선 다음으로 단거리 지선이 있으며, 이보다도 더 짧아서 사실상 양쪽 끝만 왕래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셔틀 노선'도 있다.
서울 지하철에서 이렇게 셔틀에 가까운 지선의 대표적인 예는 2호선의 성수-신설동, 신도림-까치산 지선일 것이다. 광역전철이나 일반열차 레벨에서는 다음과 같은 게 있다.

(1) 경의중앙선의 서울-신촌-대곡 지선: 열차를 1시간에 1대 남짓밖에 못 굴리는 구간이니 별도의 4량짜리 운행 계통을 이렇게 만들었다. 경의중앙선의 전신이 바로 용산-왕십리-성북 국철이었는데 걔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 노선도 나중에는 교외선과 연계해서 별도의 운행 계통으로 분리되면 좋을 것 같다. 경춘선이 중앙선으로부터 분리되듯이 말이다.

(2) 영등포-광명 셔틀: 수요로나 선로용량으로나 처지가 정말 안습하지만.. 그래도 폐지되지는 않고 4량으로 꿋꿋이 버티고 있는 노선이다. 신안산선이 개통되어 광명 역을 경유하는 전용 전철 노선이 개통되면 이 무리수 많은 셔틀은 바로 빛의 속도로 폐지되어 없어지지 싶다.

(3) 광주-광주송정: 현재 CDC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다니며 명맥을 잇고 있는 곳이다. 통근열차는 경의선과 경원선에서 전철에 밀려 차례로 퇴출되었는데, 그 뒤 굉장히 뜻밖에도 광주선에서 최후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20여 년 전에 비둘기호가 정선선에서 최후를 맞이했던 것처럼 말이다.

신촌 역과 광주 역은 역사가 길지만, 둘 다 간선에서 벗어나는 바람에 완전히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호남 고속철이 개통된 뒤부터는 광주-광주송정의 관계가 진짜 대구-동대구.. 아니, 그걸 능가하는 관계가 됐으니 말이다.
그 대신 저 두 역에는 단거리 셔틀 열차가 드물게나마 다니게 된 것이다.

2. 공항선 일대의 최근 근황

공항철도에서는 한동안 인천공항 역(현재의 제1터미널 역) 이후로 '용유'라고 차량기지 내부의 임시역을 운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2017년, 인천 공항 자기 부상 열차가 개통되고부터 이 역은 폐지되고 없어졌다. 그렇잖아도 공항철도는 용유 쪽이 아니라 제2터미널 쪽으로 연장되기도 했고 말이다.

이건 먼 옛날, 분당선의 죽전 차량기지 안에 '보정'이라는 임시역이 있었다가 폐지된 것과 비슷한 변화인 것 같다. 그 임시역은 없어졌으며, 거기서 약간 떨어진 분당선 지하 본선상에 정식으로 보정 역이 따로 생겼다.
공항선의 경우, 자기 부상 열차가 용유 역을 경유하기 시작했다. 마침 얘도 노선색이 개나리 노란색이어서 분당선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기껏 개통한 자기 부상 열차는 승객이 너무 없고 적자가 심했는지, 지금은 운행을 중단한 상태이다. 그러니 얘로나 기존 공항선 열차로나 용유 역을 갈 수는 없게 됐다.

3. 단선 전철

일반열차가 아니라 통근형 전동차가 다니는 광역철도/도시철도/경전철은 종점· 말단 같은 곳을 제외하면 아무래도 복선으로 만드는 게 국룰이었다. 철도를 아예 안 만들면 안 만들었지, 만든다면 복선 전철로 만들어야 속도와 수송량 면에서 자동차 대비 경쟁력이 갖춰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0년대 이후부터는 그런 클리셰도 조금씩 깨지고 있다.
수도권 전철 1호선의 경원선 소요산 이북 구간은 연장 구간은 단선 전철로 만들어진다. 즉, 열차만 CDC 대신 전동차로 바뀌지, 전동차가 예전의 통근열차가 그랬던 것처럼 교행 대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예정이다. 물론 배차간격은 30분~1시간에 달한다.

그리고 사실은 부산권에도 양산 경전철은 정말 이례적으로 단선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부산 지하철 1호선이 전국에서 유일한 3도어 규격 차량을 쓰듯, 저기는 주요 구간이 기본적으로 단선인 전국 최초 유일의 도시철도가 될 듯하다. 무엇이건 튀는 면모를 하나씩 갖춘 셈이다.

난 부산 지하철 2호선의 북쪽 양산 연장 구간이 단선으로 만들어지는 걸로 들었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거기는 복선이고, 새로 만들어지는 경전철이 단선이다. 글쎄, 당장 건설비는 좀 아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단선에서 열차 운행을 조밀하게 하는 건 굉장히 스트레스 받고 힘들 텐데 그건 좀 우려된다. 아무리 부산도 서울· 수도권에 밀려 인구가 줄어들고 많이 몰락했다지만, 엄연한 도시철도를 단선으로 만들 정도로 수요가 막장인가 싶은 의문이 든다.

나중에 서울 외곽의 교외선에 전동차가 운행된다면 거기도 현재로서는 단선 전철이 예상된다. 당장 운영은 단선으로 하더라도 복선 노반은 확보해 놓고 운영했으면 좋겠다.

4. 서울의 경전철 비교

서울은 노면전차(1899), 지하철(1974), 광역전철의 도입은 전국 최초였다.
그러나 시내버스나 경전철의 도입은 전국 최초가 아니었다. (각각 대구, 부산)

신림 경전철(2022)은 고무차륜 3량이다. 우이 경전철(2017)은 철차륜 2량이다.
전자는 차량이 더 작기 때문에 둘의 편성 당 수송 인원수는 서로 대등하다.

신림 경전철은 여건상의 한계로 인해 여의도까지는 못 가고 샛강에서 멈췄다. 사실, 반대쪽 끝인 서울대 안으로 더 깊숙히 들어가지 못한 것도 아쉽다.
우이 경전철은 여건상의 한계로 인해 왕십리까지는 못 가고 신설동에서 멈췄다.

신림 경전철은 강남 쪽에 있고 관악산 기슭에서 끝난다.
우이 경전철은 강북 쪽에 있고 북한산 기슭에서 끝난다.

Posted by 사무엘

2023/12/01 08:35 2023/12/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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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시스템, 용어 등 이야기

1. 궤간

수요가 적은 곳에 철도를 건설할 때는 중전철 대신 경전철로 축하중과 차량 크기를 줄이는 건 기본이요, 전차선은 가공전차선 대신 제3궤조로 만들고, 1량짜리 꼬마 동차를 투입하고 심지어 부산처럼 선로 수까지 후려쳐서 단선으로 만드는 극단적인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제아무리 규모가 작은 경전철이라도 요즘은 협궤는 쓰지 않는 게 국룰이다. 그렇잖아도 요즘은 1435mm 표준궤에다가 폭이 3m가 넘는 차량을 얹어서 굴리는데, 궤간을 후려치면 차량이 너무 비좁아지고 주행 안정성이 떨어지고 각종 부품 호환에도 문제가 생긴다.
요즘은 쬐끄만 스마트폰이라도 CPU는 64비트이지, 작은 기기라고 해서 구닥다리 16비트나 32비트 CPU를 쓰지는 않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비트수까지 후려치는 건 사람이 직접 다루지 않는 임베디드 환경 한정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은 미국이 표준궤로 건설하려다가 만 것을 일본이 물려받았으니 망정이지.. 처음부터 100% 일본의 자본과 기술로 건설됐으면 협궤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첫 단추를 표준궤로 깔았으니 경부선과 경의선도 선뜻 일본 자국의 표준과 다른 표준궤로 잘 만들어질 수 있었다. ㄲㄲㄲㄲ
참고로, 잠깐 활동하다가 말았던 대한제국 철도국은 미국의 영향을 받아서 처음부터 나라의 표준 철도 궤간을 일본 같은 협궤가 아니라 표준궤로 지정했었다고 한다.

2. 등판능력

우리집 근처의 모 지하철역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출입구 계단은 수평으로 정사각형 블록을 두 개 이동하는 동안 수직으로 한 칸 상승하는 각도이다. 기울기가 0.5, 즉 50%이고 이를 각도로 환산하면 약 27도이다. 그나마 이것도 어지간한 고층 건물 비상구의 계단보다는 완만한 경사이다. 그런 곳은 거의 30~32도대에 달한다. (60%대 초반)

그리고 우리나라 스키장에서 경사가 가장 심한 슬로프의 경사각도 이와 비슷한 20후반~30초반이고 기울기로 환산하면 60%대이다. 이 정도면 연비 따위 쌈싸먹은 중량과 출력에다 무한궤도까지 깔아서 접지력과 마찰력을 극대화한 군용 탱크 정도나 오를 수 있다.

오늘날 고무 바퀴로 달리는 대부분의 자동차들의 등판능력의 한계는 35%~40%대이다. (18~20도) 참고로 대형 여객기의 이륙 상승각이 15도~20도이니 이와 비슷하다.
국내의 자동차 도로의 법적 오르막 설계 한계는 17%라고 한다. (9~10도) (도로의 구조·시설 기준에 관한 규칙 제25조 종단경사)

물론 이 정도 각도면 완전 극단적인 험지이며 자동차가 정상적으로 달릴 수 있는 경사가 아니다. 낡고 제대로 정비 안 한 자동차는 이런 경사를 오래 오르면 엔진 힘이 딸려서 퍼져 버린다.
종이에다가 저 기울기를 그려 보면 전혀 가팔라 보이지 않지만, 실제 지형을 보면.. 이것만으로도 엄청 급격하고 가팔라 보일 것이다.;;;

자동차가 다니는 산길의 경사는 계단의 경사보다야 훨씬 더 원만하다.
그러나 철도 차량은 그런 자동차보다도 등판능력이 훨씬 더 부족하다.
저 바닥에서는 백분율 %보다 더 작은 단위인 퍼밀(천분율)을 쓰며, 최고 열악한 선로에 대해서 35퍼밀(3.5%)을 한계로 규정한다. 이것은 각도로 환산하면 2도밖에 되지 않는다. (국유철도건설규칙 제11조 구배의 한도)

30퍼밀, 3%대만 되어도 철도의 입장에서는 기관차가 굉장한 부담을 느끼는 험한 경사이다.
서울 2호선 합정-당산, 그리고 경의선 전철 효창공원-용산 구간이.. 철도의 입장에서 법적인 한계를 간신히 준수하는 극악의 급경사이다.

이건 엔진 출력을 강화해서 극복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세게 밟아 봤자 바퀴만 헛돌지, 경사를 못 오르고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인천 지하철 2호선 검바위 역 부근의 급경사는 5.5%로, 이건 고무바퀴 경전철이니까 가능한 오르막이다. 일반 철도에서는 존재 불가능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니 러시아-우크라이나 일대에 있는 크림대교도 도로교와 철교가 이렇게 완전히 다르게 생긴 것이다.
철교를 도로교처럼 저렇게 봉긋 솟아오르게 만들면 열차가 자력으로 전혀 지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_=

크림대교는 울나라 인천대교나 영종대교와 달리, 현수교나 사장교 형태로 만들지는 않았나 보다. 건설비를 절약하려고 단순한 공법을 사용했는지, 교각이 굉장히 촘촘하고 높이도 낮은 편이다. 그래서 큰 선박이 아래로 통과할 수 없겠다.

3. 시설

우리나라의 고속도로는 (1) 톨게이트를 모조리 없애고 미국 프리웨이처럼 (2) 노선과 진출입로에 번호를 매기는 것이 장기적인 미래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럼 철도는? 역 번호는 초창기부터 잘 정착했다. 광역전철이나 경전철 노선들은 아직까지 번호 없이 이름만으로 통용되고 있는데, 이것도 노선이 10개쯤 되면 번호를 부여하자는 얘기가 차차 나오지 싶다. GTX 노선이야 특정 지명만으로 이름을 붙이기 난감하기 때문에 진작부터 ABC라고 번호에 준하는 명칭이 붙었다.

한편, 고속도로의 톨게이트에 맞먹을 급으로 우리나라 철도에서 가까운 미래에 완수하려는 과업은.. (1) 모든 기관차를 1인 승무로 바꾸는 것, (2) 그리고 역들 승강장을 고상홈으로 바꾸는 것이지 싶다.

대형 여객기를 부기장 없이 1인만으로 조종하는 건 정서적으로 여전히 거부감이 많다. 그러나 철도야 900명이 넘게 타는 KTX도 이미 한 명이 운전하고 있는데 기존 기관차도 사각지대 카메라를 늘리고 각종 절차들을 간소화· 자동화해서 승무원을 줄이는 게 업계의 유행이다.
지하철/전철 쪽도 최장길이인 서울 1~4호선 10량은 아직까지는 앞의 기관사, 뒤의 차장 이렇게 2인 승무인데.. 가까운 미래에 1인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고상홈이야.. 자동차에서 저상버스가 도입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고속버스는 아래의 짐칸 때문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일본의 신칸센 역들은 진작부터 고상홈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장거리 고속열차를 마치 지하철 타듯이 계단 없이 간편하게 타고 내리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다. 우리나라도 그런 스타일을 도입하게 될 것이다.

4. 용어

우리나라가 군대에서 일본식 한자어나 일본어식 음차가 많다며, 엑스반도(밴드-_-), 구보(달리기 뜀뛰기), 고참(선임), 미싱(물청소), 도수체조(맨손체조), 반합(밥통, 도시락), 요대(허리띠), 모포(담요), 화이바(헬멧, 방탄모), 총기수입(손질) 등의 용어들을 바꿔 가는 추세이다.
심지어 헌병이라는 말조차 군사경찰로 바꿨는데 이건 짧고 익숙한 단어를 굳이 왜 바꿨는지 모르겠다.

그것처럼 철도 업계에도 일본식 한자어.. 뭔가 무슨 한자로 이뤄졌을지 얼추 짐작은 되지만 좀 딱딱하고 건조하고 약간 위압적으로 느껴지는 용어가 좀 있다.
방금 얘기가 나왔던 구배(경사)부터 시작해서 사구간(절연구간).. 대합실은 거의 20년 전에 이미 맞이방이라고 바뀌었다.
차량기지는 딱히 일본식 용어 같지는 않은데 괜히 차량사무소라고 공식 용어가 바뀌었다.

'-창'.. 공작창, 정비창이라는 말도 요즘은 안 쓴다. '자전차, 변소'(자전거, 화장실)라고 하면 굉장히 옛날 할아버지 말투처럼 들리듯이 말이다. 군대 영창은 용어뿐만 아니라 그 제도 자체가 요 몇 년 전에 폐지됐다.
그러고 보니 '무'(務)자가 들어간 장소 이름들이 우리나라에서 잘 안 쓰는 일본식 한자어로 여겨지는가 보다. 내무반(군대), 역무실(철도), 형무소(교정시설)처럼 말이다. 의무실조차도 공식 용어가 아니고 '건강관리실'이 표준이다.

우리나라도 해방 이후에 한동안 형무소라는 말을 써 왔다. 그러나 리 승만 할배 이후에 경무대가 청와대라고 이름이 바뀐 시기(1960~61)에 수형 시설의 이름도 교도소와 구치소로 바뀌고 세분화됐다.
우리나라는 반일 감정, 그리고 ‘무 duty’라는 의미에서 느껴지는 건조함과 권위주의 위압감 때문에 정서적으로 이런 조어를 피한 것 같다. =_=

그에 반해 일본에서는 태평양 전쟁 전범들이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된 걸 '법무사'(士가 아니라 死!!!!)했다고 표현을 정도이니.. 일본이 저 '무'자를 정서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더 즐겨 쓰긴 하는가 보다. 참고로 '경무대'는 '무'의 한자가 武이며, 일본식 한자어가 전혀 아닌 조선 고유의 명칭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9/24 19:35 2023/09/2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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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토가 분단되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철도의 변화

우리나라 인서울에서 일반열차를 취급하는 거대한 시종착역은? 서울, 용산, 청량리이다.
영등포는 저런 역들에 밀려서 고속열차(KTX, SRT)는 취급하지 않게 됐다. '대구' 역이 동대구에 밀려서 KTX를 취급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노량진은 한때는 소수의 일반열차를 취급했지만 2000년대 초부터 이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일반열차를 취급하지 않지만 굉장히 큰 부지를 갖추고 있는 역으로는 경의선 방면의 수색, 경원선 방면의 광운대(구 성북), 그리고 중앙선 방면의 망우 정도가 있다. 수색과 망우는 애매하게 가까운 곳에 환승역이 또 놓여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DMC, 상봉).

만약 우리나라가 분단되지 않았다면.. 망우는 몰라도 수색과 광운대 역은 뭔가 강북의 영등포처럼 일반열차가 다니는 큰 역이 됐지 싶다. 경의선과 경원선은 일제 시대의 복선이 그대로 유지되고, 서울 부근은 아예 2복선도 됐을 것이다.
아울러, 경의선 개성과 경원선 철원은 수원이나 춘천 같은 아주 중요한 역이 됐을 것이다. 특히 철원은 금강산선이 분기하는 곳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상상만 해도 흥미롭지 않은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예로부터 춘천 사람, 정확히는 춘천의 지주· 유지들이 한 근성 했다.
경춘선은 일제 말기에 만들어진 사철인데..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 자본으로 만들어졌다~!
교통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일제가 강원도청을 춘천에서 철원으로 옮기려 하자 춘천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사재를 털어서 서울에서 춘천으로 가는 철도를 뚝딱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이것이 경춘선의 유래이다.
난 강원도청은 원주에 있다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춘천이 뺏어 버린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2. 1988년

지난 쌍팔년도 1988년은.. 서울 올림픽이 열렸을 뿐만 아니라, 철도나 안보 관광과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변화가 제법 있었던 해이다.

(1) 경북 청도에는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면서 주민들이 1967년에 직접 건립했던 '신거'라는 이름의 간이역이 있었다. 하지만 수요 저조로 인해 1988년경에 비록 완전 폐역은 아니지만 역 건물이 헐렸다. (날짜 불명)
그런데 공교롭게도, 경북 봉화에서 주민들이 직접 건립하고 철도청에다 열차 좀 세워 달라고 민원을 때렸던 영동선 '양원' 역이 이 해 4월 1일에 정식 개업했다~!
오지에 사는 주민들이 직접 세운 간이역이 비슷한 시기에 하나는 없어지고 하나는 새로 생긴 셈이다.

(2) 1974년 11월경엔 연천 고랑포에서 북괴의 남침 땅굴이 최초로(제1) 발견됐는데.. 얘는 1976년부터 한동안 일반인에게 공개돼 오다가 1988년부터 비공개로 바뀌었다고 한다. 다른 땅굴들과 달리 너무 얕고 전방과 가깝고, 단면적이 너무 작아서 다니기 힘든 점이 감안된 듯하다.
지금까지 발견된 남침 땅굴 4개 중에 1호인 얘만 유일하게 비공개이다. 그런데.. 1988년에 정확하게 언제부터 비공개로 바뀌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나 신문· 방송 보도 자료를 전혀 못 찾겠다.

(3) 아울러, 1988년에는 철원에서 안보 관광지를 크게 정비했다.
우리가 아는 그 월정리 역 건물을 처음으로 만들고 구 철원 역 터에다가 승강장을 꽂은 때가 이때라고 한다.
이것도 1988년의 정확히 언제 있었던 일인지 자료를 못 찾겠다. 올림픽 때문에 정신 없었을 하반기는 아니고 정황상 상반기에 있었던 일 같다.
이 철원의 이벤트와 제1땅굴의 봉인이 서로 연계해서 같이 발생한 사건인지는 잘 모르겠다.

3. 우주 개발과 각종 토목 건설

철덕과 우주덕이 결합하면.. 취소된 아폴로 18, 19, 20호 얘기를 읽으면서 취소된 구 서울 3기 지하철 10, 11, 12호선 계획이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흠, 미국의 우주 탐사 계획에 제동을 건 게 베트남 전쟁이었다면, 한국의 3기 지하철 계획에 제동을 건 것은 IMF였구나.;;

그리고 역덕/밀덕과 우주덕이 결합하면.. 아폴로 8호와 함께 미드웨이 해전 정도가 떠오를 수 있을 듯하다.
미드웨이 해전은 2차 대전의 딱 중반이던 1942년 6월에, 미국이 기가 막힌 첩보를 통해 일본의 대형 항공모함 4척을 몽땅 격침시키고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이 일본을 역전하는 첫 계기를 마련한 전투이다.

그것처럼 아폴로 8호는 1968년 말, 유인 달 착륙 경쟁의 중반쯤 되던 시기에, 미국이 소련을 역전하는 첫 계기를 마련한 미션이다. 시간에 너무 쫓긴 나머지, 처음 시도하는 여러 위험한 실험들을 한꺼번에 과감하게 추진했는데, 그게 다행히 전부 멋지게 성공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지구 대기권뿐만 아니라 지구 중력까지 벗어난 우주에 역사상 처음으로 나가 본 것, 일부 윤곽이 아니라 완전히 동그란 지구의 전체 모습을 최초로 목격한 게 아폴로 8호 때이다~!

그리고 요즘은 고속도로나 지하철 모두, 국가가 주도해서 국비만으로 주요 굵직한 간선을 건설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젠 여기저기 자잘한 지선이나 경전철을 만들고 있고, ‘민자’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것처럼 오늘날은 우주 개발도 옛날 냉전 시절처럼 국가가 육성하고 체제 우월성 경쟁을 위해 인간을 달에 보내려고 미친 돈지랄을 하는 형태는 진작에 끝났다.
이제는 철저히 민간 기업 위주로, 실용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1세계와 2세계가 경쟁하는 게 아니라, 여러 나라들이 힘을 합치고 협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북한이 남한보다 1년 더 먼저, 1973년에 평양 지하철 천리마선을 개통한 것에도 체제 경쟁 입김이 분명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엔 운동 경기 기록은 말할 것도 없고, 뭐든지 먼저 만들고 건물도 더 크게 올리고, 깃대를 올려도 더 높게 올려야 직성이 풀리던 정말 오글거리고 유치한 시절이었다.

남한과 북한은 겨우 대성동 기정동 깃대라든가 63빌딩 VS 류경호텔을 갖고 경쟁했지만, 미국과 소련은 우주를 갖고 경쟁했다는 스케일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또한, 남한은 그때 이후로 그야말로 눈부신 서울· 수도권 지하철과 광역전철망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반면, 북한 평양은 저 때 이후로 시간이 정지해 버렸다는 차이가 있을 뿐..

Posted by 사무엘

2023/05/09 08:35 2023/05/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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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했던 말도 있지만 오랜만에 철도 역사 얘기를 정리해 본다.

1.
수도권 전철 1호선의 경부선 남쪽 방면 종점은 1974년 첫 개통 이래로 30년 가까이 쭉~ 수원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2003년 4월 30일, 거의 30년 만에 딱 두 정거장 남하한 병점으로 연장됐다. 그리고 2005년 1월 20일, 이 종점은 무려 천안까지 내려갔다. 경부선 천안-수원간 2복선 전철화가 모두 완료됐다.

그럼.. 수원 다음에 바로 천안으로 한꺼번에 개통하면 될 것을.. 아니면 화끈하게 오산이나 평택 정도의 중간 지점도 아니고, 그 당시에 겨우 화성시 병점까지만 먼저 연장 개통한 이유는 무엇일까?
수원과 병점 사이에는 '세류'라는 역 하나만 달랑 있다. 여기는 바로 옆에 공군 기지가 있어서 여객 수요가 별로 없고, 전철이 굳이 선개통을 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여객이 아니라 시설 때문이었다.
수원을 살짝 벗어난 병점 역 근처에 병점 차량기지가 만들어졌고, 전동차 회차를 위한 전용 입체교차로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게 전철 운영을 위해 꼭 필요했기 때문에 이 짧은 구간부터 먼저 개통을 한 것이다.

2.
이 과정은 우리나라의 지폐 신권의 도입 과정과 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원래 한국 은행의 의도는 2009년에 새로운 5만원권과 함께 기존 지폐들도 새 도안을 내놓고, 모든 지폐를 한꺼번에 신권으로 교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전 2007년에 기존권의 신권을 먼저 풀게 되었고 특히 5천원은 2006년 초에.. 0순위로 제일 먼저 시급히 내놓았다. 신권을 이렇게 준비되는 대로 찔끔찔끔 '축차투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그 당시에 5천원 구권의 위조지폐가 엄청나게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명 "77246 위조지폐" 사건인데, 이 엄청난 사고를 친 범인은 무려 2013년에야 잡혔다.
돈은 위조지폐 때문에 신권이 일찍 나오게 됐고 전철은 수원 역의 회차 시설이 너무 열악했기 때문에 병점부터 먼저 시급히 개통했다.

병점 기지와 입체 회차 시설이 없던 시절에는 수원까지 간 하행 전동차가 상행으로 가기 위해 자동차로 치면.. "유턴"이라는 걸 해야 하는데.. 하행 외선에서 상행 외선으로 평면교차로 가다 보니 중간에 내선 일반열차 선로를 횡단해야 했다.
새마을호처럼 수원 역을 전속력으로 무정차 통과하는 열차도 있는 선로를 횡단하는 건... '비보호 좌회전'만큼이나 굉장히 위험 부담이 큰 기동이었다.

물론 철도는 아주 정교한 신호와 시각표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이게 진짜 자동차 도로 같은 비보호인 건 아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전철은 일반열차를 피해서 회차를 해야 하니 회차 용량을 늘릴 수 없고, 이 때문에 경부선 전철 자체를 충분히 증차할 수 없었다. 1981년에 애써 경부선 서울-수원 2복선화까지 했는데 회차 용량이 선로 용량을 많이 까먹어서 도루묵으로 만들었다.

2002년 2월에는 수원 역 부근에서 서울 메트로 소속 전동차가 일반열차를 먼저 보내주려 신호 대기 중이었는데.. 철도청 선로 보수 차량이 이를 추돌하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짙은 안개 속에서 철도청 새내기 신입 기관사가 앞을 제대로 못 보고 사고를 낸 거라고 전해진다. 아마 이 사고도 철도청에게 트라우마를 안기고, 병점 역의 시급 조기 개통에 영향을 줬으리라 생각된다.

3.
그리고 이 병점 차량기지는 아무 곳에다 새로 만든 게 아니었다.
경부선 수원-천안간 2복선화 과정에서 병점 부근의 선로가 선형개량이 되어서 딴 데로 이설되었다. 병점 기지는 바로 이설 전 기존 선로 부지에다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2010년에는 여기에 '서동탄'이라는 전철역도 만들어지게 됐다.

이건 뭐랑 비슷한가 하면.. 서울 송파구 잠실 근처에 있는 석촌 호수이다.
여기는 원래 한강의 남쪽 지류가 흐르던 곳이었다. 그런데 1970년대에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벌여서 물길의 방향을 통째로 바꿔 버리고, 거기만 호수로 남겨둔 것이다. 그래서 거기 일대에 '송파 나루' 같은 지명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석촌호수가 원래 한강이 있던 곳이었다면, 병점 차량기지는 원래 경부선 선로가 있던 곳이었던 셈이다.

4.
(1) 참고로, 병점 기지가 만들어지고 2년쯤 뒤인 2005년 7월엔 인서울인 이문 차량기지가 새로 생겼다. 얘는 망우선의 잉여역이던 '이문 역'을 대체하는 형태로 부지를 확보해서 만들어졌다. 근처에 이미 '신이문'이라는 전철역이 별도로 있다.

(2) 2005년 1월 20일로부터 11개월 뒤, 12월 20일엔 경부선에 이어 경인선도 주안 이후로 동인천 역까지.. 즉, 마지막 인천 역을 제외한 나머지 전구간이 2복선화가 완료됐다.
이로써 수도권 전철 1호선은 인천 라인과 수원-천안 라인이 모두 복복선으로 갖춰졌다. 경부선 라인은 2008년에 천안 이남으로 장항선 구간까지 침투해 들어가긴 했지만.. 이건 존재감이 좀 덜하다.
그리고 인천은 일반열차가 다니지는 않지만.. 승장장 이후로 인상선로가 없어서 열차가 빨리 진입하지 못하며, 이게 회차 용량을 여전히 떨어뜨린다. 이 한계는 오늘날까지도 개선되지 않았다.

(3) 병점 차량기지는 오랫동안 누리로 전동차의 주박 기지로 쓰였다. 하지만 지난 2020년 5월말부터 서울-신창 누리로 열차가 폐지됐고, 얘들은 경부선 대신 웬 중앙· 영동· 태백선 쪽으로 전보(!!) 발령됐다. 소속도 강릉 기지로 변경.. 그러니 병점 기지에서는 이제 누리로를 볼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3/02/07 08:35 2023/02/0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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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상 정지 / 탈출 / 자폭

교통수단에는 위급한 상황에서 (1) 자기 차체/기체/선체 따위를 강제로 세우고 정지시키고, (2) 탑승자를 붙잡고 감싸거나 (3) 반대로 강제로 내보내서 보호하는 안전 기능이 존재한다.

자동차는 (2)에 속하는 안전벨트와 에어백이 있다. (3)은 버스 한정으로 유리창을 부수는 망치가 해당되는 듯하다.
오토바이는 어느 쪽으로든 그런 안전장치를 장착할 여건이 도저히 안 되기 때문에 탑승자가 헬멧을 써야 한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다음으로 철도 차량은 (2)나 (3)의 범주에 드는 안전 장치가 없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안전벨트는 무의미하고, 유리창도 자동차 같은 정도의 강화 유리를 쓰지 않는다.
얘들은 승객이 아니라 차량이 '독 안에 든 쥐' 수준으로 매우 정교한 통제를 받고 있기 때문에 (1)이 크게 발달해 있다. 선로와 차량이 연계해서 조금이라도 조건에 어긋나면 바로 감속하고 차량을 강제로 세운다. 심지어 기관사가 일정 간격으로 생존 인증 신호를 보내지 않아도 차량이 비상 정지한다.

사실, (2)/(3)보다는 (1)이 더 발달된 교통수단이 원론적으로 더 안전한 교통수단이기도 할 것이다. (2)/(3)은 사고가 난 뒤의 대처이지만, (1)은 사고가 애초에 나지 않게 하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공중에 뜬 비행기나 우주 발사체 정도가 되면 (1)이 아예 가능하지 않다. 비행기의 GPWS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pull up!" 경보만 하염없이 내보낼 뿐, 철도의 ATS/ATC/ATO처럼 기체를 안전하게 세운다거나 착륙시키지는 못한다.

비행기 중에서 경비행기와 전투기는 (3)형에 속하는 비상 탈출용 낙하산을 갖추고 있다. 전투기의 경우 더 빠르게 기체로부터 이탈하라고 사출 좌석까지 있다.
유인 우주발사체에는 비슷한 개념으로 비상 탈출용 로켓이 있다. 선박으로 치면 구명보트나 튜브에 대응한다.

이렇게 교통수단별 안전/탈출 시스템을 살펴봤는데, 문득 드는 생각은..
운전 중인 자동차가 갑자기 통제가 안 되고 폭주할 때 어떡하느냐 하는 것이다.

시동도 못 끄고, 어디 옆에 쫘악 긁거나 들이받을 데도 없고 도저히 세울 방법이 없는데, 앞이 낭떠러지이거나 사람들이 가득 있으면..
자동차에 대해서 (1)에 해당하는 강제 정지 조치는 핸들을 옆으로 확 돌려서 차를 전복시키는 것이지 싶다. 실제 상황에서 이런 것까지 차분하게 판단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더 큰 사고를 막으려면 그렇게라도 해서 굴러가는 차 바퀴를 지면에서 떼어 놓고 차를 어떻게든 세워야 된다.

차가 어디 부딪히지 않고 혼자 뒤집히는 것만으로는 탑승자가 사망· 중상 급으로 다치지 않는다. 벨트를 단단히 매고 에어백과 튼튼한 A필러의 도움까지 받는다면 말이다.
다만, 벨트를 안 한 채로 차가 뒤집혀서 탑승자가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로 바닥에 떨어지거나 심지어 원심력 때문에 차 밖으로 튕겨나가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렇게 되면 사람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러니 차 탈 때 안전벨트는 꼭 매야 한다.

우주 로켓은 통제력을 상실하고 아무 방향으로 폭주할 때를 대비해서 주변에 민폐를 끼치지 말라는 취지로 자폭 모드라는 게 있다. 1986년 챌린저 호 폭발 사고 때도 고체 연료 부스터가 제멋대로 날아가기 시작하자 지상 기지에서 원격으로 명령을 내려서 그걸 자폭시켰었다.
육상 교통수단이라면 어떻게든 강제 정지만 시키면 되겠지만, 쟤들은 비행선도 아니고 공중에 혼자 둥실둥실 떠 있을 수 없다. 그러니 격추나 자폭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2. 주행 방해· 위험 행위

대중교통의 운행을 방해하는 행위는 수십~수백 명에 달하는 탑승객의 시간을 빼앗고 안전을 위협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중범죄로 강하게 처벌된다.

먼저 자동차는? 열차나 비행기 등의 타 교통수단과 달리 차체가 아주 작기 때문에 운전석이 객실과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운전사가 악성 진상이나 취객이 저지르는 범죄에 노출되기도 쉬운 편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지금으로부터 10~15년 쯤 전, 지하철역들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때와 비슷한 시기에 시내버스의 운전석이 투명 플라스틱 칸막이로 둘러지기 시작했다. 즉, 이것도 처음부터 당연히 존재해 온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승강장 투신 자살이 여러 건 터진 뒤에야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었듯, 지상에서는 버스 운전사 폭행 사건이 몇 건 터진 뒤에야 이런 칸막이가 생겼다. 물론 버스 운전석 칸막이는 스크린도어보다는 훨씬 더 저렴할 것이다.
외국의 경우(아마 일본?), 버스보다 더 작은 택시도 운전석이 칸막이로 둘러진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다.

굳이 차내가 아니라 밖에서는 도로에다가 압정이나 쇳조각 같은 자그마한 장애물을 설치하는 것만으로 타이어 펑크를 유발할 수 있다. 길거리에서 무한궤도 차량이 다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비슷한 원리로, 철길 레일 위에다가 짱돌을 올려놓는 것도 굉장히 위험한 짓에 심각한 범죄로 간주된다. 열차는 비록 타이어 펑크는 해당사항이 없겠지만, 그런 장애물을 부수지 못하고 타고 올라가다간 탈선 사고가 날 수 있다. 철도에서는 이게 제일 큰 위험이다.

정말 자그마한 과속방지턱 하나만으로도 자동차의 통과 가능 속도가 얼마나 낮춰지는가? 이게 바퀴의 약점이며, 철도 차량은 그런 약점의 파급 효과가 더욱 크다.

비행기야 내부 보안이 철도역이나 버스 터미널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이 삼엄하기 때문에 민간인이 지상에서 비행기에 호락호락 접근해서 해코지를 할 수는 없다. 조종실에 잠입하는 것도 과거에 테러 몇 건을 겪고 나서는 보안이 강화되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 대신, 지상의 민간인이 저공 비행 중인 비행기에다가 의외로 쉽게 테러를 저지르는 방법이 있다. 바로.. 비행기를 향해 레이저 포인터 불빛을 쏘는 것이다.
이건 테란 메딕의 기술인 옵티컬 플레어의 실사판이며, 밤에 자동차 운전자끼리 구사하는 하이빔 테러보다 더 치명적이다. 비행기 조종사의 시야를 일시적으로 차단하고, 심하면 영구적인 안구 손상까지 야기하기 때문이다. 레이저를 겨우 선글라스로 차폐할 수 있지는 않을 테고.. 비행기에다 기계적인 대미지를 전혀 주지 않으면서 안전을 치명적으로 위협할 수 있다.

그럼 반대로 생각하면.. 전시에 적국 군용기의 야간 작전 수행을 이런 식으로 방해할 수도 있겠는데? 하지만 그러면 조종사는 레이저 불빛이 발사된 쪽으로 폭격을 하면 될 테니 실용성은 별로 없겠다.;;;
도로에 압정과 유리 조각, 철길에 짱돌, 공중으로 레이저.. 흥미롭다.

3. 철도 차량의 관절대차

우리나라에 KTX, 고속철도라는 게 등장한 지 좀 있으면 무려 20주년이 된다.
외국물 먹은 KTX 차량은 지금까지 국내의 기존 철도 차량에는 존재하지 않던 흥미로운 특성이 있었는데.. 하나는 바로 ‘관절대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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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특히 트럭 업계에서는 바퀴가 장착되는 부위를 차축 내지 축(axle)이라고 부르는 반면, 철도 차량에서는 상응하는 동일 부위를 ‘대차’(bogie)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동차 차축이야 말 그대로 차량의 좌우에 달리는 바퀴 한 쌍을 끼우는 작대기 하나만을 가리키지만, 철도 대차는 그 작대기를 앞뒤로 2개, 즉 한 쌍 단위로 묶어서 바퀴를 총 4개 끼우는 형태인 게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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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랜딩기어도 트럭의 복륜이라기보다는 약간 철도 대차처럼 생긴 구석이 있어 보인다;; 둘 다 굉장히 단단하고 무겁다는 공통점도 있다.)

자동차가 앞바퀴 뒷바퀴가 있는 것처럼 철도 차량도 평범하게 차량의 앞과 뒤에 대차를 하나씩 장착하는 게 보통인데..
관절대차는 대차 하나가 앞차의 뒷부분과 뒷차의 앞부분을 담당하게 한 것이다. 굉장히 신기한 형태이다.

이렇게 하면 같은 개수의 차량을 굴리는 데 필요한 대차의 수가 일단 절반에 가깝게 줄어든다.
그리고 튼튼한 대차가 앞뒤의 차량을 동시에 굳게 붙들고 있기 때문에 차량이 옆으로 뒤집히고 탈선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진다. 차량의 주행 안정성이 더 나아진다는 것이다.

과거에 국내에서는 광명 역 탈선 사고(2011), 강릉선 탈선 사고(2018) 같은 꽤 중대한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허나, 그 정도 충격량에도 불구하고 관절대차 덕분에 차량이 뒤집히거나 더 심하게 부서지지 않았으며, 인명 피해도 더 적을 수 있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안전에 관한 한 관절대차는 확실히 메리트가 있었다.

그렇다고 관절대차가 장점밖에 없는 만능인 것 역시 아니다. (1) 그 특성상 당연히 객차를 분리하는 유동적인 편성이 불가능한데.. 뭐, 이건 기관차-객차가 아닌 동차에서 원래부터 크게 희생하는 특성이긴 하다.

그리고 대차의 수가 줄어드는 만큼, (2) 차량 하나의 길이와 무게 한계에 제약이 더 커진다. 그런데 이 역시 고속 주행을 위해서는 어차피 공기 저항을 극복해야 하고 차량의 피지컬을 크게 최적화해야 하니 그리 큰 단점이 아니다.

고속철도 차량의 관점에서 관절대차의 진짜 큰 단점은 (3) 동력분산식 구조와 같이 연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뭐,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서로 어울리는 형태가 아니다. 동력차와 무동력차가 한데 연결되었을 수도 있는데 바퀴는 양 차량에 걸쳐 있으면 설계가 좀 난감할 것이다.;;

일본의 바로 다음으로 고속철 차량을 의욕적으로 개발했던 프랑스는 관절대차를 최초로 도입했다. 쟤들은 동력집중식을 채택했기 때문에 관절대차가 단점보다 장점이 확실히 더 크다고 본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KTX와 KTX-산천에서 관절대차가 채택되어 있으며, 김포와 부산 김해, 그리고 서울 우이라는 경전철 차량도 의외로 관절대차 기반이다.

그 반면, ITX-청춘/새마을, 그리고 심지어 KTX-이음은 동력분산식이어서 그런지 관절대차를 채택하지 않았다.
일본의 신칸센이야 골수 동력분산식이기 때문에 역시 관절대차와 인연이 없으며, 독일의 ICE도 마찬가지이다.

1985년 8월에 발생했던 일본 최악의 항공 사고인 JAL123기 추락 말이다.
이거 사고 원인은 뒤쪽 벌크헤드의 수리를 부실하게 했기 때문으로 밝혀져 있다. 아래의 그림에서 원래 위처럼 수리돼야 하는 게 아래처럼 얼렁뚱땅 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보강판이 한데 이어져 있지 않으니.. 결국 리벳 한 줄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고 외력에 훨씬 더 취약해지게 된다.
수 년 동안 반복된 비행으로 인해 압력을 너무 많이 받은 부위가 결국 피로파괴를 일으켰고, 유압 상실과 조종 불가로 인해 여객기의 추락과 끔찍한 인명 피해를 야기한 것이다.

그런데 철도에서 관절대차가 개념상 하는 일이 바로 저 파란 보강판이 양 옆의 철판을 붙드는 것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철판 둘은 앞뒤 차량에 대응하고.. 절묘한 관계가 아닐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2/11/04 08:35 2022/11/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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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속도

자동차는 시속 100 이상으로 달리는 게 법적으로 특별한 '고속'으로 간주된다. 고속도로는 신호 대기가 없고 보행자와 느린 차량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아서 좋은 대신, 모든 탑승자에게 안전벨트 착용도 의무이다. 그리고 입석이나 10% 남짓 정원 초과가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
1차로를 추월용으로 비워 두는 지정차로도 내가 알기로 고속도로에서만 엄격하게 적용된다.

허나, 철도에서는 시속 200 이상으로 꾸준히 달리는 열차와 선로 시스템을 고속철도라고 규정한다. 철도는 소음· 진동이나 급가속· 급선회 없이 주행의 품질이 워낙 좋기 때문에 자동차 도로보다 요구 사항이 더 높다. 그리고 고속철은 시속 200~300으로 달리더라도 안전벨트 따위 없고 정원 초과 입석 승객도 얼마든지 받는다.

자동차가 100이 경계이고 철도가 100의 두 배의 200이 경계라면.. 비행기는 100의 뒤에다 0을 하나 더 찍은 1000대의 속도가 초음속이라는 중요한 경계를 형성한다. 초음속으로 날아야 다른 평범한 비행기보다 더 빠른 '고속기'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바닥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속 900~1000대의 아음속 여객기가 대세이다. 초음속기는 경제성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여객기의 주류가 되어 있지 못하다.

자동차의 경우, 1920년대에 독일과 오스트리아 같은 일부 유럽 국가에서 평면교차 신호대기가 없는 자동차 전용 고속도로라는 것을 처음으로 구상하고 만들었다. (아우토반..!!)
철도에서 비슷하게 건널목을 없애고 터널과 교량으로 굴곡 선형을 없애서 고속선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구상하고 실현한 나라는.. 잘 알다시피 1960년대의 일본이다. (신칸센)

고속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깔끔한 선로와 고성능 동력원뿐만 아니라 차량의 공기 저항 최소화, 선로와 차륜을 극도로 정밀하게 유지 보수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이에 덧붙여서 신호· 통신 시스템도 첨단화돼야 한다.
바깥 경치가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이제는 기관사가 신호기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다. 현재 이 차량에 적용되는 신호가 차내의 계기판에 나타나게 해야 한다.

일본 신칸센은 그 당시에 그런 것도 다 자체 개발했다고 한다. 중앙 집중 제어 장치(CTC)도 당연지사..
그 시절에 한쪽에서는 원시적인 단선에서 증기 기관차가 통표를 싹 낚아채면서 다녔는데.. 그에 비해 신칸센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과학 기술의 산물인지를 알 수 있다. 아무튼...

자동차는 완전 통제 무인 운전이 보급되지 않는 한, 현행 교통법규가 지금보다 더 증속을 허용할 가능성이 전무하다. 즉, 인간의 조종 능력의 한계 때문에 더 빨라지는 게 불가능하다.
비행기는.. 뭔가 획기적인 고효율 제트 엔진이 개발되지 않는 한 가성비가 안 맞아서 증속을 못 한다.
그나마 가까운 미래에 지금보다 속도가 유의미하게 더 빨라질 가능성이 제일 높은 교통수단은 철도 같은 육상의 궤도 교통수단이라 하겠다. 물론 새로 지어지는 것 한정으로 말이다.

일본의 신칸센 다음으로 곧장 등장한 고속철도는 잘 알다시피 프랑스 TGV이다. 얘는 1970년대 초 맨 처음엔 잠시 가스 터빈 엔진 기반으로 개발된 적도 있었다는 게 매우 흥미롭다. (헬리콥터나 탱크처럼!) 전철로 먼저 개발됐던 신칸센과의 차별화 시도를 일부러 했던 것이다. 뭐, 전철 설비도 처음 만드는 비용이 정말 엄청 비싸기도 하니까..
하지만 계산기를 두들겨 보니 가스 터빈은 연료비가 너무 많이 들고 환경 문제도 있다는 게 고려되어 신칸센과 동일한 전기 모터 기반으로 계획이 바뀌었다.

2. 바퀴와 무한궤도

동물에게 달린 다리와 기계에 달린 바퀴는 하는 일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동작하는 원리는 서로 놀라울 정도로 상극이다.
혈관과 신경이 연결된 생체 조직에서 배배 꼬이지 않고 끝없이 굴러갈 수 있는 바퀴라는 부위는 존재 불가능하다. 반대로 다리를 기계로 구현하는 것은 다족이건 사족· 이족이건 공학적으로 극도로 어렵고 까다롭다. 이건 굉장히 흥미로운 차이점인 것 같다.

바퀴는 관성 버프를 받아서 평평한 길에서는 아주 빠르고 편하게 잘 굴러갈 수 있는 대신, 지형에 따른 효율의 편차가 굉장히 커진다.
경사를 오를 때 사람은 좀 가파르더라도 이동 거리가 짧은 계단이 유리한 반면, 바퀴 달린 교통수단은 긴 경사면/빗면이 반드시 필요하다.
바퀴는 계단을 오르내리기란 거의 불가능이며, 과속방지턱 하나만 있어도 주행 가능 속도가 크게 떨어진다. 비포장 도로에서는 어지간한 급커브처럼 시속 40 이상도 내기 힘들어진다.

다리 달린 동물이야 아스팔트 도로, 사막의 모래밭, 자갈밭도 모두 별 차이 없이 동일한 속도로 주행 가능하다.
인간이 21세기 최첨단 과학 기술을 동원한다 해도, 숲 속에서 산짐승보다 더 빠르고 날렵하게 달리는 건 불가능하다. 모래 사막· 자갈 사막에서 낙타의 수송력을 능가할 수도 없다. 아예 헬리콥터를 띄워서 기름을 퍼부으며 위험하게 떠 다니지 않는 한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리 움직이는 걸로 육지를 시속 200~300으로 달리는 건.. 생체로든 기계로든 심각한 무리수일 것이다. =_=;; 두 방식의 장단점은 절대적이기보다는 좀 상대적인 구석이 있다.
(또한, 다리뿐만 아니라 새나 곤충의 날개도 말이다. 동물들은 날개를 퍼덕일지언정, 프로펠러나 로터나 팬 같은 걸 돌리는 게 없다는 걸 생각해 보자. 쟤들은 비행 원리도 고정익과 회전익 중 하나로 정확하게 딱 떨어지는 형태가 아니다. 하늘에 뜨기 위해서 활주로가 필요한 새가 있는가?? =_= 이런 것도 참 오묘하다.)

생물과의 비교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바퀴와 다리는 특성이 이렇게 다른 게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같은 바퀴 중에도 자동차의 고무 바퀴와 철도 차량의 철바퀴는 특성이 굉장히 다르며, 심지어 이들의 중간인 무한궤도라는 것도 있다.
철도는 바퀴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특화된 방식이다. 그 반면 무한궤도는 바퀴의 단점을 보완하는 쪽으로 특화된 방식이다~!

철도는 바퀴와 노면의 마찰을 줄여서 일반적인 자동차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차량을 견인할 수 있다. 조향이 필요하지 않으니 안정된 고속 주행이 가능하고, 매끈한 궤도 위만 달리니 승차감도 아주 좋다.
그러나 이런 쇠바퀴로 울퉁불퉁한 일반 도로를 주행할 수는 없으며, 철도는 마찰이 작다는 특성상 오르막 등판능력도 매우 취약하다.

한편, 무한궤도는 일부 건설기계나 군용 무기(탱크..!!)에서 쓰이는데, 차축이 많이 달렸고 바퀴가 구를 궤도를 자기가 내장하고 있는 형태이다. 일반 자동차보다 접지압이 훨씬 더 높기 때문에 모래밭 수렁을 포함한 온갖 험지를 더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으며 등판능력이 더 높다. 고무 타이어 기반이 아니니 압정이나 유리 조각을 잘못 밟아서 타이어가 터질 일도, 타이어 옆을 칼로 긁는 테러를 당할 일도 없다.

또한 얘는 그 특성상, 비포장 도로를 달릴 때 바퀴에 밟혔던 돌멩이가 튀어오르는 게 없다. 비행기가 선회하듯이 좌우의 구동 속도를 달리해서 매우 작은 회전 반경으로 방향을 틀 수도 있다.
빙판길에서는..?? 무한궤도는 고무 타이어에 장착하는 체인의 넘사벽급 상위 호환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무한궤도는 단단한 쇳덩어리인 만큼 엄청나게 무겁고 연비가 안 좋으며.. 고속 주행과도 상극이다. 고무 타이어만으로도 충분한 잘 닦인 길에서는 너무 단단한 무한궤도가 오히려 도로 포장을 손상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도로에서는 무한궤도 차량을 그냥 일반 트럭에다 실어서 나르거나, 고무 같은 걸로 무한궤도를 감싸서 자력 주행한다고 한다.

3. 보조 전원/엔진(APU)

승용차 같은 작은 차량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우리 주변의 여러 교통수단들은 주행· 비행을 위한 주 엔진뿐만 아니라 보조 엔진이 추가로 장착된 경우가 많다. 개발툴로 치면 실제 코드 생성용 컴파일러 vs IDE의 빠른 문법 체크용 컴파일러처럼 말이다.;;

크레인, 레미콘 같은 중장비· 건설기계는 이동 말고 자기 기계를 가동하기 위해서 별도의 보조 엔진이 당연히 필요하다.
그리고 꼭 그런 부류가 아니더라도 버스처럼 사람을 많이 태우는 교통수단의 경우, 접객 공간에 전기를 공급하는 게 엔진 힘만으로는 다 감당하기 곤란할 수 있다.

특히 쌍팔년도 이전, 기술이 부족하던 시절엔 40인승 대형 버스에 탑재되는 6~7000cc 급 디젤 엔진의 최대 출력이 200마력이 채 안 되고, 요즘으로 치면 겨우 중형 승용차급인 150~160마력 남짓이기도 했다.
그런데 버스 내부의 넓은 공간을 식히기 위한 에어컨을 가동한다면..?? 부족한 엔진 출력을 끌어다 쓴 발전기나 압축기만으로는 답이 없었다. 에어컨 내지 발전기만을 위한 전용 엔진을 가동해야 했다.

또한 얘는 자동차의 본 엔진 시동과 무관하게 켜고 끌 수 있다. 관광버스는 운전사가 시동을 끈 채로 차에서 장시간 대기할 일이 많으니, 이런 게 설령 주 운전사의 복리후생을 위해서 필요한 구석이 있었다. 주 엔진의 출력이 충분하다 할지라도 말이다.

비행기는 엔진의 무서운 괴력으로 하늘을 날았다가 사뿐히 내려앉지만, 정작 공항 계류장에 있는 동안은 너무 시끄럽고 연료 소모와 후폭풍이 심한 주 엔진을 함부로 가동하지 못한다. 터미널 건물에서 뒤로 돌아서 활주로로 가는 동안 견인차의 도움을 받을 정도이다.
그래서 이렇게 주 엔진이 꺼져 있는 동안 객실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 공항 시설의 전기를 끌어다 쓸 수 있지만, 자체 보조 엔진을 가동해서 전력을 생산하기도 한다.

비행이 시작되면 보조 엔진은 시동이 꺼지며, 주 엔진이 발전기까지 같이 돌리게 된다. 그러나 비행 중에 주 엔진이 꺼지는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보조 엔진이 다시 동작한다. 추락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라도 기내에 전기가 공급되고 조종에 필수적인 장비가 동작하고, 조종실과 지상의 통신이 되게는 해 준다.

보조 엔진은 벌크헤드나 블랙박스와 마찬가지로 비행기의 맨 뒤 꽁무니에 장착되는 편이다. 얘마저 맛이 가면 동체나 날개의 하체에 비상용 풍력 발전기(램 에어 터빈 RAT)가 비행풍을 맞으면서 돌아가서 최소한의 전기를 생산하는 발악을 한다. 비행의 입장에서는 공기 저항을 늘리는 물건이지만.. 전력을 생성하는 게 현실적으로 훨씬 더 중요하니 말이다.

끝으로, 철도 차량은 기관차-객차의 경우, 별도의 발전차가 앞이나 뒤에 편성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엔진 차원에서 객실 전원 공급 장치(HEP Head End Power)라는 파트가 같이 있다면.. 전원 공급이 자체적으로 가능했다. 무슨 10량 이상의 엄청 긴 열차만 아니면 됐다.

디젤이더라도 새마을호 디젤 동차나 7000호대 봉고 기관차는 HEP가 장착돼 있었다. 반대로 전기이더라도 초창기 8000호대 기관차는 HEP가 없었기 때문에 여객열차는 발전차를 또 편성해야 했다.
7000호대 디젤 기관차의 HEP는 엔진 소음을 심하게 키우고 문제가 많아서 결국 쓰지 않게 됐다는 건 잘 알려진 일화이다.

이렇게, 보조 동력에 의지하지 않은 채 엔진의 동력이나 자체 배터리만으로 차내에서 전기를 많이 끌어다 쓰는 건 아무래도 무리이다.
특히 자동차용 납 배터리는 시동을 걸 때 전기를 잠깐 짧고 굵게 썼다가 다시 곧장 충전하는 것에 최적화돼 있다.
시동을 끈 채로 많이 방전시켰다가 오랫동안 재충전을 안 하고 방치해 버리면 영원히 충전을 다시 못 하게 되고 배터리가 망가져 버린다. 명색이 이차 전지라지만 반쪽짜리 이차 전지일 뿐인 것 같다.

소싯적에 전자기기에서 쓰이던 니켈카드뮴 배터리는 메모리 효과 때문에 완충 완방이 권장되었다지만.. 이런 납 배터리 내지 리튬이온 배터리는 그렇지 않다. 그냥 조금 쓰고 바로 바로 충전해 주는 게 낫다.

Posted by 사무엘

2022/11/01 08:35 2022/11/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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