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부르는 찬양곡 중에 "찬양하라 내 영혼아"라는 짤막한 곡이 있다.
국내외로 모두 대체로 작곡자 미상이라고 적혀 있고, 국내에서는 '예수전도단 번역'이라고 소개돼 있다. CCM 앨범 중에는 1991년에 나온 주찬양 7집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에서 거의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성경 좀 읽은 분들은 이 곡의 가사가 기본적으로 시 103:1에서 착안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절은 시편 구절대로 "찬양하라"인데, 2절은 "감사하라", 3절은 "기뻐하라"라고 뭔가 다른 좋은 동사들로 바리에이션이 있다. 이것은 살전 5:16-18의 3대 권면에서 '기도하라'만 빼고 적당히 가져와서 가사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사실, '기뻐하라'(시 33:1 등), '감사하라'(시 106:1, 107:1, 136:1 등)는 시편 다른 곳에서도 많이 나오기도 하고 말이다.

단, 가사의 번역에는 아쉬운 점이 좀 있다. 먼저 1절의 동사는 원래 praise가 아니라 bless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우리말 성경의 번역 관행에 따라 단어를 구분하자면 찬양보다는 찬미, 찬송이 더 적합하다.
그리고 한국어 찬송가 특유의 영/혼 혼동도 아쉽다. "내 영혼아"가 아니라 "오 내 혼아"가 되면 음절수가 딱 맞다. 성경 구절에는 감탄사 O가 실제로 있기도 하니까 말이다.
<내 평생에 가는 길>(It is well with my soul) 찬송도 후렴이 "내 영혼 평안해" 대신 "내 혼이 평안해"라고 고쳐 주면 교리적으로 더 정확해진다.

그럼 마지막으로,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이겠는지를 생각해 보자. '내 속에 있는 것들'의 정체는 뭘까? 내 자아? 내 세포? 내 장기? 혹은 병균? 박테리아? '그들의 벌레'만큼(막 9:44, 46, 48)이나 알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성경은 성경으로 풀면 된다. 성경에서 within me에 속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면 답이 나온다.
"오 내 혼아, 어찌하여 네가 낙심하느냐? 어찌하여 네가 내 속에서 불안해하느냐?" (시 43:5, 시 42:11) 등.

사람의 자아 내지 인격, '나 자신'을 구성하는 것은 혼이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몸이라는 껍데기 안에 '혼'이 들어있어서 나 자신이 나의 혼을 제3자 대면하듯이 "내 혼아" 이런 형태로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구약 시절에는 교리적으로 몸과 혼이 완전히 밀착해 있었다고 함) 내 속에는 혼도 있고 영도 있고 마음, 생각 등도 있다. 한편, '내 속중심'(bowel)이라는 단어도 있는데 이건 문자적인 신체 장기와 마음(창 43:30, 왕상 3:26)을 모두 가리키더라.

이런 심상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내 속에 있는 것들아"가 내포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 결국 쉽게 말해서 예수님의 명령처럼 혼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이다. 찬양 악보집에 따라서는 "내 속에 있는 것들아"라는 표현이 생소하다고 가사 자체를 "온 맘과 정성 다하여"라고 고친 물건도 있다.

또한 그냥 in이 아니라 within이기 때문에 '안'이 아닌 특별히 '속'이라고 번역한 듯하다. 둘은 구분이 굉장히 헷갈리기 쉬운 단어이긴 한데, '안'의 반의어는 '밖'이고 '속'의 반의어는 '겉'이다. 이런 관점의 차이가 있다.

준비 찬송으로 이거 부르면서 '내 속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해 주니 아주 도움 됐다면서 반응이 좋았다.
나 역시 나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찬송을 회중들에게 같이 부르자고 주문할 수는 없으니 곡들의 배경과 의미에 대한 공부가 필수이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이번 기회에 성경이 말하는 몸, 혼(soul), 영(spirit)에 대해서 얘기를 해 보겠다.
한글 글자판에만 두벌식과 세벌식이 있는 게 아니라 신학계에서도 2분법(몸 / 영혼)과 3분법(몸 / 혼 / 영)으로 해석 노선이 대립하는가 보다.
하지만 본인은 언어· 단어 차원에서 명백하게 다른 개념을 자기가 당장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왜 한데 싸잡아서 일컫는지 모르겠다.

물론 혼과 영은 단순한 언어 직관만으로는 엄밀한 구분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 엄밀하게 구분해서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는 성경적으로 혼이라고 부르는 존재는 대충 영혼이라고 싸잡아서 말하고,
성경에서 영이라는 일컫는 더 추상적인 존재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성령' 말고는 나머지는 다 그냥 정신, 기운 정도로나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Q정전에서 유래된 그 이름도 유명한 병맛 용어인 '정신승리'도 영어로는 spiritual victory이다.

혼, 영에 해당하는 '가장' 가까운 순우리말을 굳이 찾자면 내 생각엔 각각 넋, 얼 정도라고 본다. '넋을 잃다/넋이 나가다/얼이 빠지다/넋을 위로하다' 이런 데에만 쓰기에는 아까운 단어이지만, 지금은 좀 국뽕(우리얼! 말과 글과 얼 ㅋㅋ)이나 동양철학스러운 느낌이 너무 짙어져 버린 것도 사실이다. 정서상 당장 성경 번역에다 반영하자는 말은 아니다.
반도에 기독교가 처음 전파되고 성경이 처음으로 번역됐을 때 성경의 표현이 언어의 용례를 주도해서 정착시켰다면 모를까 지금은 좀 늦은 감이 있다.

단순 어학 사전에서는 이를 엄밀하게 구분하는 용례를 찾을 수 없다. soul을 찾아도, spirit을 찾아도 다 비슷하게 정신, 영혼 따위의 풀이가 나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넋, 얼을 찾아도 마찬가지이고. 마치 heart-mind, 생각-마음 같은 미묘한 유의어 관계이다.

이런 전문용어들의 엄밀한 구분을 위해서는 어학사전이 아니라 해당 업계의 전문 용어사전을 참조해야 한다.
가령, 국어/영한사전에서 철도 용어인 궤조/궤도/선로, rail/railway/track의 엄밀한 차이를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 뒤섞여서 제시돼 나오지. 이런 예가 한둘이 아닐 것이며 성경· 신학 용어도 예외가 아니다.

성경엔 spirit이 비인격적인 '정신' 같은 용례가 없지는 않다. 세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부귀영화를 보고는 너무 놀라서 멘탈이 붕괴되었다고 할 때 "there was no more spirit in her"이 딱 한 번 있다. 어쩌면 저 숙어 자체가 그냥 관용구인 것일지도..
언행에서 어떤 영이 나왔느냐는 물음(욥 26:4)에서의 영(사람의 영, 짐승의 영, 마귀의 영, 하나님의 영..)도 영 자체에 어떤 인격적인 의미를 부여한 용례는 아니다.

하지만 아합 왕을 꾀어내어 죽이겠다고 말한 것은 독립된 인격체로서 어떤 영이다(왕상 22:21). 이게 이해가 안 되니 평범한 공포물을 많이 본 현대인들은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 장면(마 14:26)이나 욥 4:15 같은 장면에서 ghost 같은 '귀신, 유령'을 떠올리며, 심지어 성경조차 그렇게 번역된 경우가 있다.

성경의 표현은 여기서도 그냥 a spirit이다. 영은 살과 뼈가 없는 존재라고 예수님도 말씀하셨다(눅 24:39). 이건 사람이 죽어서 구천을 떠도는 귀신 같은 존재가 아니다.
ghost는 성령님을 나타내는 Holy Ghost가 아니면 다 give/yield up the ghost라고 해서 말 그대로 '숨지다/죽다'에서 '숨'을 의미하는 용도로만 쓰였다. 그 이상 wraith, phantom, spectre 같은 개념은 성경에 존재하지 않는다. 차라리 저런 영들이 사람의 관점에서 gods(신들)라고 일컬어지긴 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말은 굳이 콧구멍 두 개, 손발가락 5개 같은 외형뿐만 아니라 사람도 몸· 혼· 영으로 하나님의 삼위일체 계층을 이어받았다는 뜻도 있다. 한글 개역성경은 영과 혼 구분을 전혀 안 한 건 아니지만 사람의 창조를 설명하는 창 2:7에서 혼을 영으로 뒤바꿔서 번역했고, 짐승에게도 영이 있음을 말하는 전 3:21에서는 영을 혼으로 뒤바꿔 번역한 흑역사가 있다.

복음을 전해서 다른 사람을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는 행위를 영어로 soul-winning이라고 하는데.. 이게 우리말로는 번역이 완전히 엉망진창이다. 여기서도 멀쩡한 혼을 영으로 바꿔서 흔히 '구령'(口令 말고)이라고 하는데, 동음이의어는 둘째치고라도 명백히 오역이다. 개역성경이 창 2:7의 'living soul'을 '생령'으로 엉뚱하게 번역한 것과 동급의 오류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영을 혼이라만 바로잡으면 우리말은 婚과 동음이의어가 되어서 매우 생뚱맞은 결혼 프러포즈처럼 들리게 된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어느 동네에서는 win을 문자적으로 번역해서 '혼을 이김/이겨 옴'이라고 자체적으로 말을 만들어 쓴다. 영적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뜻을 표현하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저건 더 이상한 번역이 아닐 수 없다.
상을 탔다고 할 때 상을 이겨 왔다고 말하지는 않잖아(win a prize)..;; 트로피나 상장을 발로 잘근잘근 짓이기기라도 하나?

상대편을 무슨 승부를 벌여서 이겼다고 자동사가 아닌 '타동사' 형태로 영어로 말할 때는 beat를 쓴다. win은 대회 이름(win the game)이나 보상을 목적어로 받을 때에나 '이기다'라는 뜻이지, 적군이나 경쟁자를 받는 단어가 아니다. Doom 게임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은 아래의 1994년도 어느 PC 잡지의 문구가 두 단어의 용례를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 "올해의 게임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고(win) 싶은 신작 게임이 있는가? 그렇다면 Doom부터 제치고(beat) 올라와라." 대~~박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니 win에 beat 같은 인격체 목적어가 들어갔다면 그건 남의 마음을 얻어서 내 편으로 끌어들였다고, '승리하다'와는 완전히 별개의 의미와 용례가 있다고 봐야 한다. 아무튼 이런 것도 영· 혼과 관란하여 언어에 존재하는 혼동의 카오스의 한 예이다.

개인적으로 spirit이라는 단어를 태어나서 최초로 본 곳은 페르시아의 왕자 2 게임의 부제 the spirit and the flame이었다.
soul이라는 단어는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서울시가 '아시아의 혼(심장, 눈동자?)' 이라고 자화자찬 홍보를 하는 듯하다. 이거 아니면 쏘울메이트 같은 거.

둠 2의 몬스터 중에는 대놓고 '(구원받지 못하고) 잃어버려진 혼'이 있다(lost soul). 그런데 lost soul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곳은 pain elemental(고통의 근원?)이라는 몬스터이다. 이것도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작명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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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기독교 카테고리에 넣을지 언어 카테고리에 넣을지 꽤 고민되는 내용이 됐다.

Posted by 사무엘

2017/06/03 08:33 2017/06/0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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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터널의 번호

예전에도 남산 터널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명칭의 일관성에 대해서 살짝만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서울 남산 터널은 “제1~제3 남산 터널” 같은 식으로 불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게 제1~제4 땅굴, 제2 경인 고속도로 같은 유사 분야의 다른 명칭들과 일관성이 있다. 교량조차도 한강대교, 양화대교, 한남대교는 예전 명칭이 각각 제1~제3 한강교였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순서를 나타내는 의존명사 ‘-호’는 일반적으로는 보통 제일 끝에 붙는다. 서식 2호, 명령 1호처럼.. 이게 자연스럽다. 그 반면 “남산 1호 터널”은 다른 유사 용례가 없고 너무 이상하게 느껴진다.
참고로 호 뒤에 추가로 더 붙는 ‘호실’, ‘호선’, ‘호기’ 같은 걸 보면 ‘실, 호, 기’도 의존명사이기는 마찬가지다. ‘터널’과 같은 위상의 형태소가 아니다.

요까지만 글을 썼는데..
팔당 역 근처의 국도변에 연달아 등장하는 터널들의 이름도 찾아보니 거기는 '팔당 제1터널', '팔당 제2터널'... 이렇게 이름이 붙어 있었다.;;; 일관성 없는 혼란의 극치이긴 하다만 제n이 그래도 차라리 n호보다는 나은 것 같다.

2. 비슷한 단어

decease (디씨-스) 죽다 / disease (디지-즈) 질병
철자와 발음과 뜻이 서로 은근히 헷갈리기 쉬운 단어쌍인 것 같다.
loyal(충성스러운)과 royal(왕가의)
 jealous(질투심 강한, 시샘하는)와 zealous(열광· 열성· 열심적인)에서도 비슷한 심상이 연상된다.

sharp / pointed
'날카롭다'와 '뾰족하다'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뾰족한 건 진짜 0차원 점으로 모이는 것만 해당하고, 날카로운 건 1차원에도 해당된다. 칼날이 닿는 곳이 선을 형성하니까 말이다. 송곳을 끝이 뾰족하다고는 하지만 날카롭다고는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도 미래에 구분이 없이 모호해질 여지는 있음)

dark는 '어둡다'와 '캄캄하다' 중에 어디에 더 가까울까 궁금해한 적이 있다. 송 명희 시인의 찬송시 중에도 "우리의 어두운 눈이 그를 미워했고, 우리의 캄캄한 마음이 그를 몰랐으며"가 있으니 말이다.
물리적으로 빛이 안 비쳐서 풍경이 시커먼 것 중심인 단어가 있는가 하면, 바깥과는 무관하게 내가 지금 앞이 안 보이는 것 중심인 단어도 있다. 둘 다 dark에 대응할 수도 있지만, "아 문제가 너무 안 풀려서 눈앞이 캄캄하다"라고 말할 때는 "눈앞에 어둡다"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진짜로 시력이 어둡거나 야맹증을 앓고 있는 건 "눈이 어둡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관계가 서로 오묘하다.

pull / tow / haul
모두 기본적으로 '끌다, 견인하다'라는 뜻이 있다. pull은 뜻이 제일 넓고 보편적이기 때문에 사고 차량이나 불법주차 차량을 다른 기계로 견인하는 건 tow라고 표현하는 것 같다. 공항에서 갓 출발한 비행기를 자력 주행 가능한 곳으로 밀거나 끌어 주는 차량도 tow car라고 부른다.
한편, haul은 기관차가 객차를 끌고 간다고 할 때 종종 본 것 같다. tow와는 어감이 미묘하게 다른 상황이어서 그런 것 같다.

3. 중국어

내가 제대로 구사할 줄 아는 외국어는 현재 영어밖에 없긴 하다만, 그래도 중국어에 일말의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은 (1) 열차 안내방송과 (2) 아저씨 대사다.
(1)이야 “번쯔 리에처 목포 더 무궁화 하오 리에처” 같은 것이고, (2)는.. 해당 영화가 정말 명대사가 너무 많은 작품이어서 말이다. “즈 차예시 총 샨양 아이더. 허 디얼바.”

테이큰에 이어 아저씨에 너무 꽂힌 나머지 오죽했으면 도대체 심양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대륙 지도를 꺼내서 찾아 보기까지 했다. 딱히 차가 특산품인 동네는 아닌거 같던데. ㄲㄲㄲㄲㄲㄲ
그나저나 덩달아 같이 알게 된 건, 하얼빈이 우리나라에서 딱 정북향이라는 점이다. 안 중근 의사가 순국한 곳인 다롄-뤼순과도 생각보다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다. 하얼빈도 막연히 황해 건너편 대륙 어딘가에 있지 않겠나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시기적으로 별 관계 없는 임시정부의 망명 동선 같은 것과 헷갈렸던 것 같다. 만주, 훈춘 이런 건 그냥 동쪽 끝이고.

“중국서 조폭영화 좀 봤는갑네. 깜장으로 쫙 빼.. 무슨 장례식 왔나. ㅋㅋㅋㅋ” 를 통역할 수 있으려면 중국어 공부를 많이 해야 할 듯하다.

인터넷 글을 통해 보게 된 새로운 영단어들을 단어장으로 정리해서 틈틈이 외우고 있다. 일본어도 최소한 글자(히라/가타)는 좀 읽을 수 있게 테이블을 암기하고 있는데 머릿속에 정말 안 들어가진다. 특히 읽는 거 말고 쓰는 건..;;

어학이라는 게 사람에게 매우 큰 지적 자산이요 스펙이 되는 건 사실이다. 언어 장벽으로 사람들을 갈라 놓은 게 괜히 신의 한수가 아니다. 이거 생각 이상으로 극복하기 어렵다. 언어를 뒤엎는다는 건 아예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 놓는 거니까.
본인은 창조론자에 언어 신수설을 믿는 사람으로서, 언어마다 문법과 어휘에 이유 없이 존재하는 온갖 괴상한 굴절과 불규칙들도 배후에 일종의 지적 설계가 있다고 추측할 정도이다. -_-;;

이 와중에 그나마 영어 같은 언어가 세계어가 된 건 축복이다. 철자법이 개판인 것만 빼면 그나마 글자도 형태가 간단하고, 이 정도면 굴절어가 아닌 그냥 고립어(형태론)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굴절이 굉장히 단순해졌고, 그러면서 정/부정관사 단/복수처럼 엄밀해야 할 건 엄밀하게 남아 있고, 쓸데없는 높임법 따위 없이 2인칭은 하나님이래도 you라고 간단하게 호칭할 수 있고..

그렇다고 해서 모국어가 쓰레기라는 소리는 아니다. 본인은 이런 주류 영어· 알파벳과는 구조가 극과 극으로 너무 다른 한국어· 한글이 그 때문에 오히려 유니크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창의적인 활용 방안을 찾는 중이다. 하지만 한국어도 언어의 사회성을 심각하게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는 최대한 모호하고 무질서한 면모를 없애고 문법과 어휘를 조금씩 개량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4. More..

  • 우리말의 '보통'은 생각보다 뜻이 굉장히 많고 중의적이다. 부사로서 in general이라는 뜻과 형용사로서 ordinary라는 뜻이 있는 품사통용어이다. 아, 거기에다 빈도부사(sometimes) 같은 뜻도 지닌다. 와/과(접속조사 and & 부사격조사 with), 그리고 '다른'(형용사 different & 관형사 another)만큼이나 어떨 때는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진다.
  • 친정, 처가, 외가 .. 다 기본적으로 같은 의미인 거 맞지?
  • 똑같이 '돌'이 들어가는 이름인데 리빙스턴 / 산돌(서체 회사 이름이기도!), 아인슈타인 / 일석..;; 어감이 굉장히 다르다.
  • 똑같은 lawyer이어도 성경에 나오는 율법사와 오늘날의 변호사는 완전히 다른 개념임. 유대교의 priest와 천주교의 priest가 완전히 다르듯이 말이다.
  • 정신승리, 영적 승리.. 영어로는 똑같이 spiritual victory인데 그야말로 천차만별로 뉘앙스가 달라진다. 영어는 <아Q정전>의 영문 번역본에서 실제로 쓰인 단어이기도 하다.
  • 영어는 I/Y 같은 고모음에서 장모음/단모음이 오락가락 하는 편인 것 같다. vitamin(바이/비타민), missile(미싸이얼/미쓸), direct(다이렉트/디렉트). 비타민은 그렇다 치지만 미국 영어는 뒤의 두 단어에 대해서 영국식 국제 영어와는 달리 단모음을 선호한다.
  • 난 '이름'이 full name(성명)도 되고 first name(...)도 되는 게 불편하고 싫었는데 잘 알다시피 영어에도 어차피 day(날/낮), man(사람/남자), egg(알/달걀) 같은 어정쩡한 의미 관계는 얼마든지 있다. 특히 man과 day는 성경 번역과도 아주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 정도의 의미 중의성을 제공한다.
  • pray, bless, repent 이런 단어들은 기본적인 심상은 공통이지만 동작 주체 내지 대상이 사람이냐 하나님이냐에 따라서 구체적인 번역이 달라지는 단어이다. (기도하다/부탁하다, 복을 빌다/복 주다/찬송하다, 회개하다/돌이키다)
  • 난 개인적으로 '미덥다 미쁘다' 이런 용언이 안 그래도 믿음 짱 종교의 경전인 성경에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솔직히 정치색만 없으면 두음법칙도 없는 게 더 낫고.. 친구와 동무, 국민과 인민도 구분해서 쓰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굳이 얼음보숭이 같은 이상한 말 만들 필요 없이 이미 있는 말이라도 적절히 구분해서 잘 쓰면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17/02/24 08:34 2017/02/2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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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세카이 2017/02/28 15:53 # M/D Reply Permalink

    터널 명칭같은것은 일관성 있게 만드는게 좋다고 동의는 하지만
    문법과 어휘를 개량한다는 발상은 지나친거 같습니다.
    언어가 수학공식처럼 예외없이 맞아떨어져야할 필요도 의무도 없고 누가 강제할 수도 없는데
    (외국인들 한국어 공부하기 편하라는 배려?)
    사람들이 쓰는 현상을 관찰해서 규칙을 찾아내는것은 좋지만
    어떠한 규칙에 맞게 예외를 줄이도록 강제한다는 것이 가능할련지
    누가 자기 무의식에 각인된 습관을 바꾸려고 할까요?

    말(언어)은 사람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이기에
    세월이 흐르고 사회가 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언어도 흘러가는데로 되는거겠죠
    청각성이 약한 불필요한 한자어들은 조금씩 사라질 것이라 예상합니다

    그나저나 문자생활에서
    한자를 섞어 쓰지 않는다는 점은 다행인거 같습니다

    1. 사무엘 2017/02/28 17:13 # M/D Permalink

      오랜만에 뵙네요~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어가 좀 더 외국인이 학습하기 편하고, 외국인뿐만 아니라 기계 처리도 용이한 언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최대한 수학 공식처럼 맞아떨어지고 활용 형태가 예측 가능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고 실현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발상 자체가 잘못되었으니 제가 생각을 바꿔야 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전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개량이라고 하니 어감이 좀 강해 보이긴 합니다만, 별거 아니고요.
      시간과 시각(두 시각의 차이가 시간), '다르다'와 '틀리다' 같은 이미 있던 구분이 문란해지는 건 최소한 막자~
      '장'이 한글로만 쓰면 동일한 문맥에서 pieces와 chapter가 구분 안 되고 소리로 변별이 안 되어 매우 불편하니 다른 말을 만들어 보자
      그 대신, 아무 영양가 없이 쓸데없이 복잡하기만 한 '서, 석, 세' 같은 구분은 없애자. (평소에 그냥 종이 세 장이라고 하지, 일일이 '석 장' 그러나요 요즘?)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시도조차 안 하고는 모국어로는 뭐가 불편하고 개념 표현이나 구분이 안 되니까 학문 한답시고 영어나 한자 글자 들먹이지는 말자는 뜻입니다. 아니면 언어에는 우열이 존재하는 게 맞으니 언어의 상대성 같은 얘기를 처음부터 하지를 말아야겠죠.

  2. 신세카이 2017/03/22 13:24 # M/D Reply Permalink

    어휘에 대해서 조금 더 제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저 같은 경우는 전공공부를 하면서
    영어 원서도 많이보고 번역본도 많이 봤는데
    왜 이 단어를 이렇게 번역을 했을까라는 의문이 든 경우가 많아서요
    또 번역본마다 번역이 달라서
    전문분야에서는 우리말로 번역하기 보다는 그냥 영어를 그대로 쓰는것이
    훨씬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단, 영어를 우리말로 그대로 가져올 때 확실한 규칙을 만들어서
    모두가 잘 지킬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고는 생각했습니다.
    외래어 표기법이 있긴하지만 사람들이 잘 안 지키더라고요

    전문분야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말에 없는 어휘는 그걸 그대로 쓰되 표기법만 정확히 통일하는것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훨씬 나을거라고 봅니다

    한국인들은 언어의 프레임 자체가 한국어에 맞게 되 있기 때문에
    어휘를 굳이 우리식으로 바꾸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은 한국화 될 수 밖에 없다고 보거든요

    사실 지금 현대 한국인이 쓰고 있는 많은 어휘들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들여온 말이 많습니다. (과학,민주주의 등등)
    문화라는 것은 상호교류를 통해 발전하는 것이죠

    1. 사무엘 2017/03/22 18:38 # M/D Permalink

      번역과 외래어 표기법에서 일관성이 결여되어 발생하는 불편 사항들은 대학 나올 정도의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거의 모두가 이미 공감하고 있을 겁니다.
      용어 정도야 영어식으로 직통으로 이해하면 참 편하겠지만 이미 한국어 문법이 정착해 버린 저같은 토박이들은 영어로 "만" 돼 있는 텍스트는 도저히 빠르게 읽을 수가 없으니.. 양 언어의 장점만을 우리 실정에 맞게 얻는 방법을 고민하고 연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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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언어 관련 생각들

1.
“A is better than B.” (A는 B보다 더 낫다)라는 영어 평서문에 담긴 정보를 생각해 보자.
여기서 A를 묻는 wh 질문을 만든다면 “Who is better than B?” (누가 B보다 낫다고?)가 될 것이다. 이건 쉬운 문제다.
그럼 B를 묻는 질문은 뭐가 될까?

Who is A better than? (A가 누구보다 낫다고?)
Than who is A better?

내 문법 시스템으로는 위와 같은 두 문장이 만들어지긴 한데... 평생 저런 형태의 문장을 만들 일이 없다가 만들고 보니 정말 괜찮은가 모르겠다.
인간의 언어가 경이로운 점이 뭐냐 하면 화자는 평생 접한 적이 없는 새로운 문장을 그것도 안긴 문장· 이어진 문장 같은 복잡한 형태로 자유자재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2.
그리고 than 다음에는 문법 원칙상으로는 목적격이 아니라 주격이 온다. better than me가 아니라 일단은 better than I가 맞다는 것. 하지만 It's me/I만큼이나 이건 원어민들 사이에서도 구분이 굉장히 문란해져 있다.
게다가 who와 whom의 구분도 이와 같은 처지이다. 3인칭 단수는 him/her을 쓸 곳에다가 he/she를 갖다붙이지는 않을 텐데 왜 그러는 걸까?

테이큰에서도 리암 니슨이 유괴범을 고문하면서 "You sold my daughter? You sold her? Huh? To who(m)?"라고 물을 때 나는 당연히 whom이라고 말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다시 들어 보니 너무나 분명하게 그냥 who였다.
의문대명사 얘기가 나오자마자 이번에도 내 머리는 0.1초 만에 테이큰 대사를 검색 결과로 내놓았다. 영화 한 편 제대로 봐 놓으니 실생활에서 대사를 정말 많이 우려먹으며 지낸다. 테이큰은 좋은 영화이다~ㅎㅎ

3.
다음으로, “Replace A with B.” (A를 B로 바꿔라)라는 문장을 생각해 보자.
여기서 A를 묻는 wh 질문은 What do we replace? (우리는 뭘 바꾸는가?) 이다.
그럼 또 B를 묻는 질문은 어떻게 만들면 될까? 영어는 with만 붙이면 간단히 해결된다.

With what do we replace? (우리는 무엇으로 바꾸는가?)
What do we replace with?

그래서 찾기/바꾸기 대화상자를 우리말로 옮길 때면 난 늘 껄끄러웠다. Find what / Replace with가 각각 "찾을 문자열 / 바꿀 문자열"이긴 한데, '바꿀 문자열'은 문맥에 따라 개념상 B뿐만 아니라 A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어에서 체언 없이 조사를 앞세워서 '으로 바꿈'이라고는 안 쓰니까 의미가 엄밀하지 못하게 되는 건 뭐 어쩔 수 없다. (뭐, See also를 가뿐하게 '도보시오'라고 옮긴 백괴사전은 참 기발하다.)

4.
우리말에서 (내가 보기에) 관계가 굉장히 이상해져 있는 단어의 쌍이 최소한 둘 있는데, 바로 '장/쪽'과 '성/이름'이다. 양면이냐 단면이냐가 분명치 않다 보니 '다섯 장'은 대부분의 경우 다섯 페이지이지만 가끔은 앞뒤로 열 페이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page/sheet에는 양면 개념이 없는 것 같은데 우리말만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이름의 경우, 가끔은 first와 family를 모두 포함한 full name을 뜻하지만 가끔은 그 자체가 '성'과 대립하여 first name만을 뜻하기도 한다. 한 단어가 상위 개념과 하위 개념을 모두 포함하다니 거 참..;;
성/이름도 그렇고 다시 '장'으로 돌아오면, '장'은 '쪽'뿐만 아니라 알다시피 chapter를 의미하기도 해서 더욱 지저분하다. 이런 건 순우리말만으로 도저히 변별이 불가능하다면 외래어를 로컬라이즈 해서라도 논리적으로 분간이 되게 만들어야 하지 않나 싶다.

5.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한국어에는 sibling을 뜻하는 한 단어가 없나 참 궁금하다. '내일', '초록' 같은 건 순우리말이 없어서 한자어라도 있지만, sibling은 부모/자식 같은 한 단어도 없어서 그냥 "형제 자매는 있습니까?" 이렇게 매번 풀어서 설명하게 되는 게 불편하다. 이렇게 꼭 필요한 우리말이 없으니 전산학에서 트리 구조를 설명할 때는 오늘도 '시블링, 시블링' 이런 외국어가 나올 수밖에 없다.

6.
한국어는 '저희'라는 1인칭 복수형이 존재하는 것도 다른 언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아이템이라고 한다. '우리'와는 달리 청자를 확실히 배제한 1인칭 복수이고 1인칭 쪽을 좀 낮춤으로써 청자를 높이는 효과까지 있으니, 특히 회사가 고객에게 말할 때 사용하기에 무척 적절한 대명사이다. 언어학자에 따라서는 이것을 제4인칭으로 분류하기까지 한다고 들었다.

7.
종교관 중에는 이신론(deist)이라는 게 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긴 하지만 그 신은 아주 기계적이고 정교한 자연 법칙에 가까운 추상적인 존재일 뿐, 무슨 인격을 갖고 있고 인간의 삶에 관여하거나 인간에게 무슨 계시를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종교관이다. 뉴턴의 법칙은 절대적인 법칙이긴 해도 무슨 종교적인 숭배의 대상은 아닐 테니까. 유신론을 뭔가 무신론 내지 불가지론 스타일로 풀이한 것 같다.

미국이 지폐에까지 In God we trust가 적혀 있는 나라이고, 메이플라워 서약 역시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멘"으로 시작할 정도로 기독교 이념이 철철 넘쳤다고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초대 대통령을 포함한 건국 공신들이 다 프리메이슨이네, 구원받은 크리스천이 아니네 하는 이의 제기도 많다. 이들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믿은 신자가 아니라 실제로는 저런 이신론자였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이신론의 '이'는 한자로 무엇일까?
二(2)는 당연히 아니요,異(다름)도 아니며, 바로 理(이치)이다. 이성이라고 할 때의 그 한자이다.
한때 일부 '유(柳)씨' 가문에서 자기 성을 한글로 '유'가 아닌 '류'로 쓰게 해 달라고 소송도 냈던 것 같던데, 理는 '리'로 좀 구분해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리신론'. 二나 異와는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게다가 우리는 이미 "그럴 리가 없다" 같은 문맥에서 의존명사 理는 두음법칙 없이 오랫동안 잘 사용해 오고 있다. 그래서 내가 이런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기도 하는 것 같다.

8.
뭐, 영어도 만능은 아니긴 마찬가지다. time이 시각도 되고 시간도 되고.. number가 번호도 되고 수도 되어서 꽤 모호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 건 본인이 예전 글에서 몇 번 지적한 바 있거니와, free가 무료 & 자유를 다 의미하는 것도 상당히 불편한 점이다. "free software"는 영어권 사람이 문서에다가 친히 'free as in free beer(맥주가 공짜!)'이라고 모호성 해소를 해 줄 정도로 free는 유명한 다의어이다.

한국어가 ㅐ와 ㅔ의 중화로 인해 '내, 네'가 동음반의어가 돼 버린 것은 굉장한 막장 상황이긴 하다만, 영어도 2인칭 대명사의 단· 복수 구분이 없는 것과, 남녀 구분 없이 3인칭 단수 사람을 간단히 일컫는 대명사가 없는 것은 굉장히 불편한 점이다. 이것 때문에 (s)he, he or she, 심지어 they 등 갖가지 꼼수가 나돈다. 그렇다고 사람까지 it으로 싸잡아 일컬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9.
영어에서 안테나(antenna)의 복수형은 antennas또는 antennae이다.
곤충의 더듬이를 가리키는 안테나의 복수형은 불규칙인 antennae인 반면,
더 나중에 생긴 기계 안테나의 복수형은 규칙인 antennas이다.

이와 비슷한 진통을 겪고 있는 대표적인 단어는 mouse이다. 요놈의 복수형에 대해서는 영어권에서도 혼란이 많다.
전통적인 생물 생쥐의 복수는 mice이지만, 컴퓨터 포인팅 장비인 마우스는 mouses도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동사 hang은 처음에는 '걸다, 매달다'이다가 '사람 목을 매달다 → 교수형에 처하다'라는 뜻이 확장되어 나갔다.
본래 뜻인 '걸다, 매달다'의 과거형은 불규칙인 hung이지만, '교수형에 처하다'의 과거형은 역시나 hanged이다.
이렇듯, 다의어의 경우, 단어의 활용· 파생 형태에까지 그대로 의미 확장이 반영되지는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10.
그나저나 일본어에는 우리말 주격조사 이/가(일본어 발음으로는 '가')와 보조사 은/는(일본어 발음으로는 '와')에 개념적으로 거의 그대로 대응하는 조사가 존재한다는구나..!! 신기하다. 그래서 '고레와', '고레가' 요런 말이 있었구나.
지구상에 이런 개념 pair가 존재하는 언어는 한국어/일본어 정도밖에 없다고 한다. 굉장한 레어템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두 언어가 문법 구조는 무척 비슷하며, 상호간 학습 장벽을 크게 낮춰 준다.
일본어는 음운 구조가 워낙 간단하다 보니 한국어처럼 받침 유무에 따른 이/가 바리에이션 같은 건 없다. 다만, 쓰기는 '하'라고 적고 읽기는 '와'라고 이상하게 한다는 것도 어렴풋이 들었다.

11.
'르' 불규칙이 적용되는 형용사 용언인 '빠르다'와'다르다'를 생각해 보자. 얘들은 '-ㄹ리'가 붙어서 '빨리, 달리'라고 부사형 활용이 가능하다. '-이/-히'라는 부사형 접미사가 붙어서 얼추'빠르게, 다르게'를 짧게 줄인 뜻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멀다/가깝다'에 서 '멀게/가깝게' 대신 '멀리/가까이'라고 하는 것처럼.

그런데 이런 활용은 보편 생산적이지 않다. 즉, '바르다'(right, correct 형용사), '가파르다', '푸르게' 같은 용언은 저렇게 활용이 가능하지 않다. '게으르다'는 '게을리 하다' 정도로만 활용 가능한데 양상이 좀 다른 듯.
그래서 '달리', '빨리' 같은 단어는 좀 예외적인 케이스로 간주되어서 사전에 별도로 등재돼 있기도 하다.
올림픽 표어를 '보다 빠르게'라고 번역할 때와, '더 빨리'라고 번역할 때는 어감이 서로 확 달라지는 것 같다. "더 빨리, 더 높게, 더 힘차게" 중에서 faster만 '-게'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주목하라.

'다르다'가 활용된 '다른'은 말 그대로 활용된 형용사(different)도 되지만, another를 의미하는 관형사 '다른'도 된다. 같은 형태의 단어가 두 의미를 모두 지닌다는 게 꽤 흥미롭다. '와/과'가 and뿐만 아니라 with의 뜻도 갖는 것처럼.
사전에서 '다른'을 찾아 보면 관형사의 뜻만 실려 있다. 형용사 하나만 있는 영어와는 달리, 국어의 체언 수식언에서 형용사와 관형사가 구분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 때문이다. 국어에서 형용사는 수식언 중에서 용언에서 유래된 것만을 일컬으니까 말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새 이름으로'에서 '새'는 관형사이지만, '새로운'은 형용사이다.

12.
옛날에는 인간 학문의 모든 분야가 그런 것처럼 언어 쪽도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학풍이 꼴보수였다.
대표적인 예가 <걸리버 여행기>를 지은 조너선 스위프트인데.. 사회 풍자적인 선구자라는 점에서는 중국의 루 쉰과도 이미지가 비슷해 보인다.

루 쉰은 한자를 없애지 않으면 중국 인민은 망한다고까지 한자를 디스한 걸로 유명한데, 스위프트는 사전을 만들어서 사랑스러운 자기 모국어 영어의 스냅샷을 기록으로 남기고, 앞으로 세속화되거나(?) 더럽혀지지 않게 영원토록 불변의 언어로 남길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couldn't 같은 구어체의 어휘가 버젓이 인쇄되어 나오는 것에도 왕창 분노했다고... 이런 사람이 오늘날의 일명 인터넷 축약어, 한글 파괴 이런 걸 보면 노발대발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에휴.." 이랬을 것 같다.

오늘날은 분위기가 이와는 완전 반대로 갔으니 참 아이러니다. "그 어떤 것도 절대적인 건 존재하지 않는다, 사전은 말뭉치 데이터를 바탕으로 당대의 언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반영만 하면 된다."이다. '너무'도 사람들이 다 긍정적으로 쓰면 뜻풀이를 바꿀 수 있다. 동성애자들도 결혼을 하니까 결혼의 정의도 굳이 남자와 여자가 하는 건 아니라고 업데이트 할 필요가 있다는 식이니까.

지금 학풍이 0이고 스위프트가 1이라면 난 그래도 여전히 0.7~0.8 정도의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다. 내가 모든 걸 감히 판단할 만한 실력은 없지만, 난 그래도 언어에도 타락이라는 게 있긴 하다고 개인적으로 믿는다. 물론, 그 타락이라는 게 겨우 맞춤법 안 지키고 상스러운 비속어 남발 같은 단편적인 현상만을 의미하는 건 아님.
그냥 쓰기 나름, 정하기 나름인 용례가 바뀌는 것은 상관없지만, '다르다/틀리다'처럼 분명하게 구분이 되고 있던 개념의 구분이 문란해지는 것만은 막았으면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6/02/01 08:35 2016/02/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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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진섭 2016/02/02 20:45 # M/D Reply Permalink

    sibling 격공합니다!!!!!
    4남매라 그런지 몰라도, 상대방에 대해 질문할 때 이 형제자매 관계를 물어볼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마땅한 단어가 없나 생각했지만 없는거였군요 ㅠㅠㅋㅋㅋ

    1. 사무엘 2016/02/03 00:18 # M/D Permalink

      '내일, 초록'과 더불어 순우리말에는 왜 없는지 궁금한 단어 중 하나입니다. 게다가 이건 이례적으로 한자어 중에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요!

  2. 박한철 2016/02/05 02:05 # M/D Reply Permalink

    1. 내일은 원래 해당하는 순우리말이 있었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구요 (검색해 보면 '하제'라는 단어가 나오네요).
    2. sibling 에 해당하는 우리말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거기에 해당하는 용어가 없죠. 비슷한 예가 형/오빠/언니/누나 에서도 발견됩니다. 원래 '언니'는 같은 성(性)의 손위 형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죠. (즉 형도 언니...) 또한 손과 팔, 발과 다리를 구별하지 않는 언어도 많습니다. 일본어는 특이하게도 손(て)과 팔(うで)은 구별하지만 발과 다리는 같은 단어 あし로 나타냅니다. 주로 옷을 잘 안 입던 더운 나라의 언어에서 저 구별이 없다는데 이해가 되는 대목이죠.
    3. 색깔에 해당하는 어휘는 많은 언어가 아주 개판입니다. 순우리말의 색깔은 사실 검정/하양/빨강/노랑/파랑의 5개밖에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http://www.handprint.com/HP/WCL/IMG/berlin.gif 에서 보면 5 terms에 해당합니다. 저 표가 나타내는 것은, 언어에 따라 색깔을 분류해서 보는 정도가 다르고, 가령 빨강과 노랑을 구별해서 부르는 언어는 저 표에서 보면 대체로 검정과 파랑도 구별해서 부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어에서는 blue와 green을 같은 파랑이라는 단어로 불렀다는 것이죠.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wiki/Distinction_of_blue_and_green_in_various_languages 를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네요.

    1. 사무엘 2016/02/05 10:44 # M/D Permalink

      좋은 의견 주셔서 고맙습니다. ^^
      만약 순우리말이 있었다면 왜 하필 '내일'만 한자어로 바뀌었는지는 여전히 개인적으로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네요. (어제, 오늘, 모레는 변함없는데) 게다가 시블링은 왜 한자어 equivalent조차도 없는지도... 그나저나 '하제'는 카이스트에 있는 유명한 게임 프로그래밍 동아리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

      잘 통용되고 있는 다른 외래어나 한자어를 어설프게 순화하는 걸로 국립 국어원이 욕 많이 먹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시블링이나 챕터(장?) 같은 거나 잘 처리하는 규범을 제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 왔습니다.

      색깔 어휘 분화 디테일은 흥미로운 자료네요. 한국어는 딱 삼원색과 흑백만 가장 생산성이 뛰어난 형용사 용언으로 존재하고, 나머지는 없거나 그거 파생형이죠. 언제부터 어쩌다가 언어가 이렇게 형성됐는지.. 언어란 건 정말 신비로운 영역에 있는 것 같습니다.

  3. 허국현 2016/02/05 10:00 # M/D Reply Permalink

    1. 저라면 Who is better than B?라고 묻겠습니다.

    2. whom은 이제는 거의 찾기 힘듭니다. 성경에서나 자주 보이는 정도...

    4. Facebook을 가입할 때, 이름은 필수 항목이지만, 성은 아닙니다. 인도 같은 곳에서는 아직도 성만 없이 이름만 있는 곳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동네에서는 "이새의 아들 다윗"처럼 아버지 이름을 붙이거나, "마사라 타운의 사토시"처럼 지명을 앞에 붙인다고 합니다.

    6. 한국어가 또 참 특이한 것이 모르는 사람에게 높임말로 쓸 2인칭 단수 명사로 적절한 것이 없습니다. 제일 가까운 것이 "당신"이기는 한데, 국어 사전을 찾아 보면 가까운 사람에게는 높임말이지만, 가깝지 않은 사람에게는 높임말이 아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어가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것은 생략하는 언어이다 보니,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끔 성경 외우다 보면 "당신"이 무척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참 대안이 없는 단어입니다.

    7. 은/는 과 이/가의 구분은 참 어렵습니다. 워낙에 자주 받는 질문이라 제가 6개 항목으로 정리해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http://wiseinit.com/2015/05/18/%ec%9d%80%eb%8a%94topic-marker-vs-%ec%9d%b4%ea%b0%80subject-marker-korean-grammar-vs-grammar-10/)

    "정리 된 것은 좋긴 한데 정말 어렵다"가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었습니다. a, the 틀리는 것 같은 거니까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답했던 기억이 나네요.

    1. 사무엘 2016/02/05 11:06 # M/D Permalink

      - 아.. 현대 영어에서는 whom이 그 정도로 몰락하고 있나요? 놀랍습니다.

      - 똑같이 패밀리 네임이 있다 하더라도 언어와 문화마다 사소하게는 자기 이름과 표기하는 순서도 다르고, 패밀리 네임이 부여된 기준도 다 다릅니다.
      한국은 전국을 통틀어도 몇백 개밖에 안 되지만 일본은 성씨의 유니크함이 그야말로 넘사벽..;; 듣자하니 중세에 난잡하게 만들어진 아이들에게 아무렇게나 성씨를 만들어 부여하다 보니 저렇게 된 거라고도 하고요.

      - '당신'은 아예 3인칭까지도 되는 이상한 단어이죠.;; 한국어의 2인칭 대명사 문제는 정말 답이 없는 수준입니다.

      - 행 19:15 (Jesus I know, and Paul I know; but who are ye?)도 관용적으로 그냥 보조사(는/도)를 쓸까, 아니면 곧이곧대로 목적격조사(을/를)를 써서 번역할까 고민되는 예입니다. 영어는 도치를 통해 어순이 바뀐 반면, 한국어는 보조사 자체가 주격도 되고 목적격도 됩니다.

  4. 박한철 2016/02/05 14:42 # M/D Reply Permalink

    허국현님:
    은는이가에 대한 문서는 외국인을 위한 거지만 정말 좋군요! a와 the에 비견된다는 표현이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적절한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국어가 모어라는 게 이렇게 뼈저리게 느껴진 적이 없네요 ㄷㄷ 저렇게 보니 은/는이 정말 막강하고 널리 (마구) 쓰이는 조사네요.
    사무엘님:
    일본어에서 색 표현을 보면 또 재밌는 게, 흑백적청에 대해선 한국어와 비슷하고 (예: 파랗다 靑い(あおい), 파랑 靑(あお)), 노랗다는 黃色い(きいろい) 인 걸 보면 왠지 명사형으로 黃(き) 였던 노랑이 황색 黃色(きいろ) 이 되고 그게 다시 형용사형이 된 게 아니냐 싶은 거죠. 이들 다섯 색을 제외한 모든 색은 한국어처럼 명사형만 존재합니다. 즉 일본어에선 흑백적청/황/기타 색 순으로 서열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즉 위 표에선 4 terms ~ 5 terms 정도에 있다고 봐야 할까요? 중국에서도 오색이 기본이고 靑은 blue와 green을 모두 가리키니, 동북아 3국에서 색깔은 많으면 5색이 기본이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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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관련 생각들

또 오랜만에 우리말 관련 뻘생각들을 투척한다.

1.
여자의 멸칭 '년'은 한자어가 전혀 아닌데, 남녀를 싸잡아 부르는 멸칭은 왜 '년놈'이 아니고 '연놈'이라고 두음법칙이 과잉 적용돼 있는지 나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ㄴ 음가를 빼서 ㅇ으로 바꿔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2.
'박다'와 '받다'에는 모두 다의어 명목으로 '충돌하다/부딪치다'라는 뜻이 있다. 그런데 둘의 차이가 뭘까? 표준 국어 대사전의 풀이는 다음과 같다.

박다 01
「9」머리 따위를 부딪치다.
받다 02
「1」머리나 뿔 따위로 세차게 부딪치다.

공식 석상에서 더 정확한 단어로 인정되는 것은 '받다'인 듯하다. '들이받다'가 있으니까.
그런데 <블랙박스로 본 세상> 같은 프로를 보면, 사람들은 전부 '박았다'라고 말을 하는데 자막은 온통 '받았다'라고 보정을 해서 나가는 게 본인이 보기엔 굉장히 어색했다.

차와 차가 부딪친 것은 '들이받다'뿐만이 아니라 '꼬라박다' 같은 말도 쓴다.
사전의 뜻도 비슷해 보이는데, 현실을 반영하여 '박다'와 '받다'에 대한 더 정확한 관계가 정립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구어 말뭉치까지 분석을 해야 하려나?

3.
현재 사전에 '뱃속'이라는 단어는 오로지 다음과 같은 비유적인 의미만 풀이되어 있다.

‘마음01’(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을 속되게 이르는 말.

즉, 뱃속에 있는 것이 마음의 상징인 심장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뱃속은 마음과는 다른 뜻으로 훨씬 더 많이 쓰이며 이는 말뭉치를 분석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뱃속의 아기", "뱃속에 들어간 음식" 등, 소화기관이나 자궁 용례가 더 많다. 배의 속에는 심장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국어사전이 반영해야 하지 않나 싶다.

4.
언어학에는 동사가 기술하는 동사의 방향성을 나타내는 '태'(voice)라는 개념이 있다.
그런데 우리말에서 한자어에 접사가 붙어 동사가 되는 단어들을 보면, 태는 그 단어 자체의 의미에 의해 결정될 때가 있는가 하면, 그 접사에 의해 결정될 때도 있다. 이게 굉장히 뒤죽박죽이며, 국어사전은 이런 걸 딱히 명확하게 결정하지 않는 편이어서 혼란이 더욱 가중된다.

  • 시키다: 남을 하게 함
  • 하다: 자기가 뭘 함(자동사), 남을 뭘 하게 함(타동사?)
  • 되다: 자기가 뭘 당함
  • 되어지다: (비공식. 마치 이중과거만큼이나 이중피동?)

단어마다 위의 태 매핑이 정확하게 어떻게 되는 걸까?
예를 들어 지금 킹 제임스 흠정역 성경에는 창세기부터 계시록을 통틀어 '소멸하다'라는 단어가 없다. '소멸되다'와 '소멸시키다'만 있다. 남을 없애는 건 '시키다'이고, 자기가 없어지는 건 '되다'로만 옮겨졌다.
'소멸하다'라고만 써 놓고 consuming fire을 '소멸하는 불'이라고 써 놓으면, 이게 꺼져 가는 불인지 아니면 다른 걸 태워 없애는 불인지 언뜻 봐서 분간이 안 된다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인해 '오염'이나 '마취' 같은 단어도 동사가 될 때엔 '시키다' 아니면 '되다'만 붙지, '하다'는 거의 안 붙는 실정이다. 이런 현상에 대한 국어사전의 공식적인 규명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5.
(1) And의 처리 문제랑, (2) 정관사 the의 표현 문제, (3) 과거 시제를 "-니라"라고 뭉뚱그리는 건
우리말 성경의 번역에서 정말 영원한 아킬레스건으로 남지 싶다.
뭐 특정 역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어의 구조적인 한계에 가깝기 때문에.
그리고 And it came to pass도 이거 번역하는 방법이 없을까?

6.
'장'은 page(페이지 수 단위)랑 chapter가 굉장히 헷갈리고,
'절'은 verse랑 clause(주어 술어가 갖춰진 안긴문장 단위)가 굉장히 헷갈릴 때가 있다.
우리말 순화를 연구하려면 괜히 잘만 쓰이고 있는 다른 외래어들을 다듬을 게 아니라 이런 것들부터나 좀 확실하게 구분하는 우리말을 만들어서 국립국어원 차원에서 밀어 붙였으면 좋겠다.

7.
"어머니께서 내게 과자를 만들어 주셨다"라는 문장을 길게 영작하면 My mother made cookies for me. 정도가 된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요건 그냥 My mother made me cookies. 라고 해도 된다. 중학교 영문법상으로는 전자와 후자는 각각 3형식과 4형식이다.

하지만, 맨 첫 예문에서 목적어가 me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길면.. 예를 들어 children who have never eaten anything since yesterday 정도 되면.. 영어는 길고 복잡한 덩어리는 뒤로 빼는 걸 좋아하는 언어이다. 오죽했으면 가주어 it까지 있을 정도이고.. 그러니 그때는 cookies for children who ... 이렇게 가는 게 훨씬 나은 작문이다. 또한 영어는 3음절 이상 정도 되는 긴 형용사는 비교/최상급도 -er, -est를 안 붙이고 more / most로.. 이것 자체도 형용사인데 부사로 임시로 품사통용이 된다.

이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길이에 대한 선호 편차가 한국어에 존재하는 대표적인 예는 아마 긴 부정과 짧은 부정이지 싶다. '안'이 자연스럽게 붙을 수 있는 용언과, 그렇지 않고 '-지 않다'로 써 줘야 하는 용언의 차이를 규명하라고 하면 한국어 토박이에게도 쉽지 않을 것이다.

8.
우리말에서 품사 통용 때문에 헷갈리는 문법 요소 4천왕은 조사, 어미, 접미사, 의존명사이다. 이를 다음과 같이 표로 정리해 보았다.

  어미 (E*) 접미사 (X*) 의존명사 (NNB)
조사 (J*) 완전히 다름.
AND: 와/과/랑(조사) vs 고/며 (어미)
너희들(접미사) 다 안녕들(조사) 하신가? 너뿐(조사)만이 아니라 나도 그렇게 했을 뿐(의존명사)이었다.
어미   그림(명사 파생 접미사)을 잘 그림(명사형 전성어미). 이곳에서 산 지(의존명사)는 오래 됐지만 계속 여기서 살지(어미)는 모르겠다.
접미사     김 씨(의존명사)는 김씨(명사 파생 접미사) 집안의 자랑이다.

위의 표는 헷갈리기 쉬운 품사 위주로 둘씩만 비교했지만, 실제로는 한 단어가 셋 이상의 품사가 통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는 위의 표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명사 파생 접미사도 되며, '들'에도 의존명사 의미가 있다.

9.
그리고.. 이건 아마 예전에도 했던 말일 텐데,
개인적으로 '다르다'와 '틀리다'는 반드시 구분해서 쓰도록 하고 국어사전에서도 different를 '틀리다'라고 쓴 것은 "'다르다'의 잘못"이라고 선을 그어 줬으면 좋겠다.
그 반면에 '서, 세, 석' 같은 단순 발음 편의를 위한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구분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어서 "'세'로 통일을 원칙으로 하되 '석 장'도 허용" 같은 식으로 나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맞다/맞는다'가 개판인 것, 그리고 '와/과'가 접속조사(and)뿐만 아니라 부사격조사(with)의 뜻도 있어서 굉장히 불편한 것 역시 이미 예전 글에 언급돼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5/06/05 08:42 2015/06/05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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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언어학 잡설

1. '여' 불규칙

ㄱ부터 ㅎ까지
'가다(go), 나다(bring forth), 사다(buy), 자다(sleep), 차다(kick), 타다(get on), 파다(dig)'
라는 용어들을 생각해 보면, 이들은 과거형은
'갔다, 났다, 샀다, 잤다, 찼다, 탔다, 팠다'
라는 아주 규칙적인 패턴으로 활용된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하다'(do)만은..
'하였다' 아니면 '했다'라고 굉장히 이상하게 활용된다. 중등학교 국어 시간엔 이를 '여' 불규칙이라고 배운다.
그런데 어미 '여'가 쓸데없이 붙는 것도 이상한데, 그게 축약되어서 '했다'가 되는 건 또 뭐냐..? '하다' 말고 그 어떤 용언도 활용 시에 ㅏ와 ㅐ가 그런 식으로 연계하여 변하는 경우는 없다.

'가다'의 경우, 다른 'Xㅏ다' 용언과는 달리, 명령형에서 '가거라'라고 생뚱맞은 '거'가 불규칙으로 첨가되기는 한다. 그러나 이 '거'는 명령형에서만 첨가되지 '해서/하여서, 했다/하였다'의 '여'에 비하면 등장이 훨씬 제한적이다.

'갔다', '팠다'처럼 '핬다'라는 단어는 한국어의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었던 걸까? 원래 있긴 했는데 혹시 전설모음 역행동화가 일어나서 '했다'라고 바뀌기라도 한 건 아닐까? 난 잘 모르겠다.

본인은 '바라다'가 자꾸 '바랬다', '바랬는데', '바램'처럼 활용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의 현상이 아닌가 하고 거의 10년도 넘게 더 전부터 생각해 왔다. '하다'는 '함'이 '햄'으로 바뀌는 건 아니니 둘이 완전히 같은 양상은 아닌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도 자음 하나만 다른 '자라다'는 활용 과정에서 '라'가 '래'로 바뀌는 현상이 결코 전혀 없으니 참으로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자랐다', '자랐는데', '자람' 등.. =_= 신기하다.

2. 지난 학기에 들은 변형 생성 문법 수업의 편린

(1) 아무래도 교재가 영어 원서이고 영어 통사론을 다루는 비중이 적지 않다 보니.. 선생님이 영어 고어 문법 얘기도 종종 하셨다. 그래서 내 머리엔 KJV 영어가 떠오른 적이 적지 않았다.

옛날에는 be + 동사PP가 수동태뿐만 아니라 마치 지금의 have + 동사PP처럼 완료 시제를 나타내기도 했다고 한다. KJV에 "is come"이 왜 이리도 많이 등장하는지 이제 알 것 같다.

(2) have가 의문문으로 등장할 때 Do you have 대신 곧바로 Have가 나오는 거..
난 개인적으로 have ye any meat? (요 21:5)가 곧장 떠오르던데 오늘날에도 이런 패턴이 영국의 일부 방언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마치 C언어로 치면, C이긴 한데 오늘날 안 쓰는 오리지널 K&R 스타일 C 같은 느낌이다. #include 과감히 생략하고 main 함수에 int나 return 다 생략하고 바로 printf("hello, world!");를 하는... 좋게 말하면 간결하고 나쁘게 말하면 불친절한 스타일 되겠다.

(3) 문법을 설명하는 데도 문장 구조 binary tree를 그려서 노드를 이리 저리 옮기는 게 많다. 마치 빨강 검정 나무의 동작을 다루는 것 같았다. 물론 둘은 개념과 성격은 서로 완전히 다르지만 말이다.
또한, 전산학 자료구조 시간에는 tree 노드를 표현할 때 sibling, child 등 다 중성 어휘를 쓰지만, 언어학에서는 sister, daughter 같은 여성형 어휘를 쓰더라.

프로그래밍 언어와 자연어를 설명하는 이론을 모두 마스터하고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4/07/28 08:33 2014/07/2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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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에 한글 맞춤법이 바뀌면서(본격적으로 시행된 건 1989년 3월 1일부터) 생긴 대표적인 변화 중 하나는 종결 어미 '-읍니다'가 '-습니다'로 바뀐 것이다.
이 변화 때문에 사람들이 '-음'까지 '-슴'으로 잘못 표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8시에 갔슴). 그리고 재야에서 현행 한글 맞춤법에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은 이것이 형태주의에서 표음주의로 후퇴한 개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습니다'는 한국어의 형태소를 더 잘 반영한 바람직한 변화이다.
이때의 '-습-'은 상대 높임을 나타내는 교착 선어말 어미로, '용언의 어간+시제 선어말 어미'까지 나왔고 앞 글자에 받침이 있을 때 등장하는 선어말 어미이다.
시제 선어말 어미가 마침 -ㅆ이기 때문에 '습'과 음운이 겹치는 것 같지만, 이들은 원래 서로 다른 형태소이다.

ㅆ이 아닌 다른 받침을 생각해 보면 명확해진다.
가령, '괜찮습니다'는 맞지만 '괜찮슴'이라고는 안 하고 '괜찮음'이 맞다.
그리고 '괜찮사옵니다'/'괜찮소'라고 하지, '괜찮아옵니다'/'괜찮오'라고는 안 한다.

앞 글자에 받침이 없으면 이 선어말 어미는 '습' 대신 그냥 '-ㅂ'으로만 훨씬 더 단순하게 실현된다. 갑니다, 감, 가옵니다, 가오 등.
이 정도면 '습' 또는 'ㅅ'의 존재감에 대해 충분히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맞춤법 개정 전에는 ㅆ 다음에만 '읍니다'이고, '괜찮습니다' 같은 다른 자음 받침 다음에는 '습니다'를 썼었다. 어차피 둘은 동일한 형태소이니, 괜히 그럴 필요가 없이 ㅆ 다음에도 똑같이 '습니다'로 적어 주는 게 더 합리적임을 알 수 있다.
1988년의 맞춤법 개정안에 비판적인 논조여서 내부적으로 성과 이름을 여전히 띄어 쓰고 있는 한글 학회에서도, '-습니다'에 대해서는 아무 문제 제기를 한 적이 없다.

한국어의 변화무쌍함과, 그에 비례하여 한글 맞춤법의 복잡함과 어려움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습니다'냐 '읍니다'냐를 따지는 건 국어학 내지 언어학에서 형태론이라는 분야에 속한다.
국어학 전공자 내지 국어 교사 지망생들은 용언의 어미를 공부할 때 '가/시/었/겠/습/니다'라는 단어를 일일이 떼어내서 각 형태소들의 의미를 공부한다. 어간과 어말 어미 사이에 저 화려한 선어말 어미들의 나열을 보시라.

어떤 언어를 공부할 때 모르는 단어는 사전을 찾으면서 익혀야 할 텐데,
복잡한 용언 활용이 일어난 한국어 문장은 단어를 떼어내서 사전에 존재하는 표제어 형태를 유추해 내는 것부터가 굉장히 높은 수준의 언어 직관을 필요로 할 것 같다. 특히 한국어를 외국어로서 공부하는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오랜만에 모처럼 우리말 분야에 글 하나 투척했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13/06/16 08:32 2013/06/1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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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언어 현상 관찰 -- 下

* 上에서 이어짐

5. 동사와 형용사가 오락가락 하는 단어

영어의 correct/incorrect 및 right/wrong은 형용사이다. 그 반면, 국어의 '맞다/틀리다'는 영어에서 같은 의미에 대응하는 단어들과는 달리, 품사가 동사이다.

국어에서 동사와 형용사는 똑같이 활용이 일어나는 용언으로 분류되나, 서로 차이점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동사는 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인 '-ㄴ-/-는-'이 붙을 수 있지만 형용사는 그렇지 않다. '맞다'는 동사이기 때문에 “맞은 답을 고르시오”라고 안 하고, “맞는 답을 고르시오”라고 쓰인다. 형용사인 '낮다'(low)는 '낮은 언덕'이라고 활용된다는 점을 같이 생각해 보시라.

그런데 '맞다'와는 달리 '알맞다'는 형용사이다. '맞다'일 때는 “맞는 답을 고르시오”인데, '알맞다'를 쓰면 “알맞은 답을 고르시오”라고 써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맞다' 역시, 동사임에도 불구하고 가끔 형용사처럼 즐겨 쓰이기도 한다. “A가 하니라 B처럼 하는 게 맞다”라고 표현하지, “B처럼 하는 게 맞는다”라고 쓰면 굉장히 어색한 건 나만의 생각인지?

반의어인 '틀리다'도 마찬가지여서 '틀리다', '틀린다', '틀렸다' 등의 쓰임이 오늘날은 굉장히 뒤죽박죽이 돼 있다. 그런 와중에 잘 알다시피 '다르다'의 의미까지 들어왔으니 카오스 그 자체. 최신 말뭉치를 통해 용례를 뽑아 보면 아주 가관이지 싶다.

동사와 형용사가 오락가락 하는 단어로 또 '웃기다'가 있다. 원래는 누구를 웃게 한다는 뜻의 사동사인데, '웃긴'이라고 하면 '우스운'이라는 형용사로 사실상 보편적으로 통용 중이기 때문이다. 이런 예가 국어에 좀 더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6. 영단어 발음의 한글 표기와 관련된 혼란

첫째, 음절 말미의 자음을 별도의 음절로 빼내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내가 아는 한 규칙성 따윈 없으며, 진짜 case by case이다. 이 요소를 이용해 똑같은 영단어의 다의성을 구분하는 경우까지 있다.

타이프, 타입(type): 전자는 인쇄 분야 용어, 후자는 그냥 보통명사
네트, 넷(net): 전자는 스포츠 분야 용어, 후자는 컴퓨터 쪽 용어
태그(tag), 백(bag), 랙(lag), 개그(gag)
빅(big), 버그(bug)


둘째, 단모음을 읽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일본이나 영국, 심지어 독일의 영향을 받아서 A는 쿨하게 ㅏ로, O는 ㅗ로 표기하는 색이었지만, 지금은 미국식 발음에 더 가깝게 A는 ㅐ로, O는 ㅏ로 바꾸는 추세이다. 특히 단모음 O의 혼란이 심하다.

도트, 닷(dot): 전자는 그래픽 용어(도트 노가다, 도트 프린터), 후자는 인터넷 용어(닷컴, 닷넷 등)
톱, 탑(top) / 톰, 탐(Tom)
알레르기, 앨러지 / 게놈, 지넘 같은 예도..


셋째, 모음을 장모음으로 읽느냐, 단모음으로 읽느냐이다. 한 단어에 모음 두 개가 있을 때 첫 모음을 장모음으로 읽을지 단모음으로 읽을지 문제는, 로마자 알파벳을 쓰는 영어권에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혼란으로 남지 싶다.

프로필, 프로파일(profile): 전자는 누구의 신상 정보인 반면, 후자는 정밀 검사를 뜻한다.
디렉트, 다이렉트(direct): 전자가 영어권에서 더 널리 쓰이는 발음이지만, DirectX는 유독 후자의 발음으로 불린다.
ASUS: 아수스, 에이서스
Radeon: 레이디언, 라데온
LATEX: 라텍스-_-, 레이텍. 전자 발음을 꿋꿋이 고집하는 분들도 국내에 여럿 계신다.


인도 식 영어에는 data도 라라 크로프트(Lara)를 읽듯이 자기네끼리 '다타'라고 읽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7. 숫자의 한자음에 존재하는 두음법칙

국어의 한자어 숫자 0(영)부터 9(구) 중, 유일하게 자음이 ㄹ이어서 두음법칙이 적용되는 숫자가 있으니, 바로 6(륙)이다. 얘는 원래 육이 아니라 륙이 맞는 독음이지만, 이게 어두에서의 대표음이다 보니 '륙'은 존재감이 굉장히 줄어들어 있다.

이번 <날개셋> 한글 입력기 6.7은 '숫자를 한글로' 텍스트 필터의 알고리즘을 수정하여, 천 단위와 소숫점 단위에서 처음 등장하는 6은 '육'으로, 그리고 그 단위 안에서 그 뒤부터 등장하는 6은 '륙'으로 변환하게 했다.

숫자 하니까 떠오르는 여담이다만, 영어 number는 일반적으로 연속적인 양 내지 개수를 나타내는 '수'를 뜻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산적인 개체를 식별하는 '번호'도 된다(telephone number).

성경에서 이런 이중적인 개념 때문에 중의적인 심상이 만들어지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계 13:18의 그 이름도 유명한 짐승의 수 666임이 틀림없다.
666은 짐승의 number라고 하는데 수일까 아니면 일련번호의 성격이 더 강할까?

8. 접두사와 접미사

같은 접사나 단어라도, 단어나 문장의 앞에 등장할 때와 뒤에 등장할 때의 뉘앙스는 서로 달라진다. 예를 들어 女를 생각해 보자.

여형사(female)
형사녀(-ess 여성형 접미사)


요즘 '쩍벌남', '된장녀'처럼 남-녀를 꼭 접미사처럼 쓰는 게 유행이다 보니 위의 두 단어는 뭔가 쓰임이 달라져 있다. 접두사 '여'는 전통적인 female이라는 관형어 역할을 하는 반면, 접미사 '녀'는 웬지 단어 뒤에 붙은 여성형 접미사 역할을 하는 듯이 느껴지지 않는지?

난 영어에서 비슷하다면 비슷한 현상을 발견하는 게 뭐냐 하면 대명사에서 주격과 목적격의 관계 같다.
영어는 SVO형 언어라는 특성상, 도치 형태가 아니라면 주어는 언제나 문장의 처음에 나오고, 목적어는 언제나 문장의 끝에 등장한다. 그러다 보니 주격이 문장의 말미에 등장하는 게 되려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바로 이런 심리 때문에 “나예요”가 It's I 대신, 구어를 중심으로 자꾸 It's me로 바뀌는 게 아닐까?
“He's taller than I.” 같은 문장도 자꾸 than me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I는 문장을 시작하는 단어이고 me는 문장을 끝내는 단어라는 편견이 내게만 있는 건 아니라 생각된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봤던 월트 디즈니 만화영화에서 둘의 차이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발견된다. <미녀와 야수>와 <알라딘>은 1991년과 1992년, 아주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전자는 결말부에서 저주의 마법이 풀린 야수가 벨에게 “자기야, 나야!” 정도의 뉘앙스로 말할 때 “Bell, it's me!”라고 me를 썼다.
그 반면 후자에서는, 갓 잠에서 깨어나 심기가 불편한 신비의 동굴(Cave of Wonders)이 “Who disturbs my slumber?”이라는 아주 유명한 질문을 할 때, 알라딘이 쫄아서 “어.. 접니다. 알라딘이에요.”라는 의미로 “It is I, Aladdin.”이라고 me가 아닌 I를 써서 대답한다. I가 me보다 격식을 차린 말투라는 뜻 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2/11/08 08:30 2012/11/0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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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의사신 2012/11/08 08:57 # M/D Reply Permalink

    1. Data는 토익 지문 같은 것 들을 때, "다라"에 비슷하게 읽는 것을 자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2. Tom과 같은 예로 Bob이 있습니다. 밥으로 발음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번역하고 싶어도, 보브로 번역해야 말이 되는 경우가 있어, 자주 그런 것을 봤습니다. Don이라는 이름도 그렇게 되고요.

    3. He's taller than me라고 영어 작문 시간에 썼다가 감점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교수님이 원어민이셨는데, "그렇게 많이들 쓰길래 그랬는데,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라고 질문했더니, 원어민도 자주 틀리는 문법이라는 말씀을 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1. 사무엘 2012/11/08 10:12 # M/D Permalink

      1. 헉, 토익은 international 영어를 표방해서 그런가요? 단모음 data 발음을 실제로 들려 주는군요.
      2.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스크루지네 회사의 조수의 이름이 ‘보브’이죠. 아직도 기억합니다.
      3. 그렇게 me와 I가 문란해지는 게 한국어로 치면 다르다/틀리다 문란 현상에 대응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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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언어 현상 관찰 -- 上

철도, 컴퓨터, 교통 덕질에 밀려서 너무 오랫동안 먼지가 쌓여 있던 언어 카테고리에 오랜만에 글 나가신다.

1. 이다

영어에서 be 동사는 존재를 나타내는 아주 독특하고 중요한 단어이다.
한국어에는 be에 부분적으로 대응하는 개념으로 '이다'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역시 문법적 역할을 분류하기가 꽤 까다로운 단어이다. '다'로 끝나니 용언 같아 보이긴 하나 그러기에는 존재감이 너무 없고.

요즘은 '이다'를 '서술격 조사'로 분류하는 게 대세여서 학교 문법을 포함해 어지간한 사전에도 그렇게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조사가 아닌 단순한 종결어미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

be는 한국어로 치면 '이다'와 '있다' 사이를 함축적으로 감싸는 단어라 볼 수 있다. (이것도 영어로는 have를 쓸 걸 한국어로는 그냥 '있다'로 번역하는 경우가 있어서 더욱 미묘한 구석이 있지만..) 게다가 I am이라고 하면 하나님의 타이틀과도 관계가 있어서 성경 번역에 민감성을 한층 더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런 것 말이다.

Before Abraham was, I am. (요 8:58;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나는 있느니라)
I AM THAT I AM. (출 3:14; 나는 곧 나니라;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등~)
I AM hath sent me unto you. (엥, I AM 자체가 명사로!)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햄릿>에도 아래와 같은 너무나 유명한 문장이 있다. 한국어는 영어 표현의 함축성을 그대로 표현할 수가 없어서 한 단계 의역되었음을 알 수 있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a question.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물론 영어권 사람들에게 와 닿는 의미는 한국어 번역과 동일하다. 그들에게 본디 문장에 대해 paraphrase를 시켜 봐도 to live, or to die가 들어간다.

이뿐만이 아니라 영어의 be 동사는 한국어의 '이다'와 크게 다른 점이 하나 발견되는데, 그것은 바로 시제이다.

공 병우 박사는 세벌식 한글 타자기의 [발명가이다].
내가 [어릴 때는/어렸을 때]는 인터넷도 없었고 스마트폰 같은 것도 없었다.
세종대왕은 조선의 [성군이다].


이런 문장을 영작하게 되면 모두 현재 시제가 아니라 반드시 과거 시제인 was가 붙는다. 공 박사건 세종대왕이건 2012년 현재는 죽고 없는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과거 시제를 쓰는가 보다.

그러나 한국어는 지금도 그분들에 대한 역사적 행적이 변함없는 사실이라는 점을 중점에 두고 '이었다'보다는 '이다'를 선호한다.
“세종대왕은 조선의 [성군이었다]”라고 쓰면 꼭 “명왕성은 태양계의 아홉째 행성이었다”처럼 역사가 번복되었거나, 아니면 세종대왕이 말기에는 폭군으로 흑화했다는 여운을 강하게 남기게 된다.

혹시 내 언어 직관과 다른 생각을 갖고 계신 분 있으면 의견 기다리겠다.

2. '-이/가'와 '-은/는'의 차이는 무엇일까?

간단한 것 같아도 둘은 개념적으로 서로 꽤 다른 단어이다.

전자는 격(格)을 갖는 조사로, 주격 조사와 보격 조사의 역할을 겸한다. 다시 말해 선행사가 주어임을 나타내거나 보어임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그에 반해 후자는 격이 없는 보조사 또는 특수 조사라고 불리며, 문맥 독립이 아니라 문맥 의존적인 문법을 구성한다. 보조사는 대체로 주격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으나, 문맥에 따라 목적격도 되고, 사실은 보격도 안 되라는 법이 없다. '-은/는' 말고도 보조사로는 '-만', '-도' 같은 것 게 더 있다.

보조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문법적으로 굉장히 wild하고 어려운 개념이다.
격조사는 국어 통사론의 맨 첫 단원에서 문장의 필수 요소로 곧장 다뤄지는 반면, 보조사는 통사론이 다 끝나고 화용론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다뤄진다. 그 정도로 서로 차원이 다르다.

마치 스타크래프트에서 스포닝 풀을 짓고 나면 저글링의 발업(격조사)은 해처리 수준에서 곧장 가능한 반면, 아드레날린업(보조사)은 무려 하이브까지 올린 뒤에야 가능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랄까. 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스타크래프트 세 종족을 통틀어서 한 유닛의 업그레이드 사이에 이 정도로 기술 격차가 존재하는 건 저것밖에 없다.

3. '없다'와 '아니다'

'없다'와 '아니다'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용법과 의미를 지닌 개념이다. 이게 구분이 아예 없으면 '없는 것보다는 낫다'와 '도대체 나은 구석이 전혀 없다'를 언어적으로 분간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영어에서 no는 감탄사로도 쓰임과 동시에 두 의미를 문맥에 따라 적당히 지니며, none이나 nothing 같은 파생어에도 그 형태가 살아 있다. 그 반면, not은 '아니다'의 의미만이 더 부각되는 것 같다.

No trespassing 무단 침입 금지
No way 길 없음 / 안 돼(not at all과 비슷)

... There is [none righteous, no, not one]. (롬 3:10)
의로운 자는 [없다, 정말 하나도 없다.]

And Enoch walked with God: and he [was not]; for God took him. (창 5:24)
에녹은 하나님과 걷다가 [사라졌다/없어졌다.] ...

For my thoughts [are not your thoughts, neither are your ways my ways], saith the Lord. (사 55:8)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이 아니며/생각과 같지 않으며/생각과 다르며] ...


이런 부정문은 한국어와 영어가 서로 일대일 대응하지 않고 형태가 크게 달라지는 대표적인 문법이라 볼 수 있겠다.
한국어는 void처럼 공허함을 뜻하는 無에 해당하는 단어가 토박이말에 없는 반면, '없다'라는 용언이 따로 존재하는 건 때에 따라서는 굉장히 편리하다. 물론, 영어의 no처럼 '없음'이라는 의미를 넣어 주는 관형사가 없기 때문에, 한국어에서는 없다는 의미는 주어가 아닌 서술어에서 반드시 전달되지 않으면 안 되기도 하고 말이다.

잘 알다시피 킹 제임스 이외의 변개된 성경에서는 신약 성경에서 13개 구절이 삭제되어 있다. 한국어 성경은 행 8:37이나 막 9:44, 46 같은 유명한 구절을 펴면 '없음'이라는 간결한 표현이 있지만, 영어 성경은 그런 게 없다.  굳이 '없음'을 표현하려면 그 문맥에서 none, gone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missing, omitted이라고 '누락됨'이라는 단어로 돌려서 표현을 해야 할 것이다.

한국어가 부정문도 서술어 형태를 좋아하는 것은, '알다'의 반대말로 '모르다'가 동사로 존재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내가 알기로 '-에 무지한, 무식한'이라는 형용사 말고, '모르다'가 동사로 딱 존재하는 언어는 의외로 흔치 않다.

'전혀'라는 부사와 잘 어울린다는 특성상, '모르다'는 '아니다'와 '없다'와 더불어 부정의 의미가 담긴 대표적인 단어이다. M의 OST인 <나는 널 몰라>가 생각나는군.. 한국어를 가르칠 때 “모른다”와 “모르겠다”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도 꽤 쉽지 않을 것 같다. 참고로 영어로는 똑같이 둘 다 그냥 I don't know로 번역 가능하다.

4. 우편향

언어가 그 자체적으로 왼쪽보다 오른쪽을 더 좋아하는 현상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난 모르겠다.
한국어의 경우 오른쪽은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옳은 쪽'에서  유래된 말인 반면, 왼쪽은 '외다'라는 '뭔가 정상 궤도에서 이탈하고 뒤틀림' 같은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오른쪽과는 달리, 무슨 뜻이더라도 좋은 어원은 절대 아니다.

이말년이 이런 성향을 잘 간파하여 '외길'이라는 브랜드를 좋아하는 것이 틀림없다. ㅋㅋㅋㅋ. 물론 최 현배 박사의 호 '외솔'은 속세를 초월한 빳빳한 지조, 강직함, 대쪽같음을 나타내려고 '외'라는 형태소를 긍정적으로 해석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왼쪽과 오른쪽의 관계는 신기하게도 영어도 마찬가지여서, 오른쪽이 아예 right와 동음이의어도 아닌 다의어 관계이다! 글쎄, 반대로 left는 그렇게 안 좋은 심상이 담긴 걸까? 혹시 잉여? -_-
내가 제대로 아는 언어가 저 두 개밖에 없어서 다른 언어는 어떤지 궁금하다.

성경을 보면 물론 우리더러 좌로나 우로나 편파적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권고(신 5:32, 잠 4:27 등)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은 우편향이기도 하다는 것이 성경을 통해 분명히 발견된다.
여러 근거들이 있지만 한 가지 예만 들면, 하나님의 권능과 구원을 찬양하는 문맥에서 등장하는 하나님의 손은 열이면 열 모두 무조건 오른손이다. 시편에 '주의 오른손'은 수도 없이 등장하지만 왼손은 단 한 번도 안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왼손잡이가 무슨 동성애에 필적하는 나쁘고 가증스럽고 죄악된 기질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런 특수한 경우를 빼면, 일반적으로는 사람이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들고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며 왼쪽과 오른쪽에 대해 그런 편견을 갖고 사는 게 아무 근거 없는 인습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자 한다.

또한 사회 이념에서 좌익과 우익이라는 구분이 역사적으로는 무슨 프랑스 의회에서 좀 진보 성향이 왼쪽, 보수 성향이 오른쪽에 앉은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지만, 이 역시 아무 근거 없이 정립된 개념은 아니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비록, '뉴 라이트'인가 뭔가 하는 진영에서 '오른쪽'의 의미를 모독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좀 한숨이 나오긴 하다만...

* 다음 下에서 다른 소재로 이야기는 계속된다. 기대하시라.

Posted by 사무엘

2012/11/05 08:29 2012/11/05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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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의사신 2012/11/05 20:35 # M/D Reply Permalink

    영어 단어 중에 sinister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사악한, 해로운, 불길한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인데요. 이 단어의 어원을 보면, to the left라는 것이 있습니다.

    http://www.etymonline.com/index.php?term=sinister

    예로부터 왼쪽을 무척 나쁘게 본 듯 합니다.

    1. 사무엘 2012/11/05 22:03 # M/D Permalink

      정말 오랜만에 댓글이 올라왔네요. ^^
      sinister의 어원이 그런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왼쪽은 거의 “저 방향은 해로운 방향이다” 급이군요!

  2. 개인적인 의견 남겨 봅니다. 2012/11/06 10:39 # M/D Reply Permalink

    한국어는 영어다.
    영어는 주어에 집착하는 언어다.
    주어는 동작이나 상태의 주체가 되는 말이라고 사전에 나온다.

    I go to school.
    나는 학교에 간다.

    간단한 초딩 영어지만 졸라 어려운 문장이다.
    우리는 대부분 학교하면 school의 의미가 떠오른다.
    (어깨 형님들은 제외 -.-;;)

    What is school ?
    학교가 뭐니 ?

    Who am I ?
    나는 누구지 ?

    우리말은 영어가 아니다.
    우리말은 주어에 집착하지 않는다.

    핵교 댕겨오겠심미더~

    학교는 맹자가 만든 개념으로 학과 교의 합성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학이 뭔지, 교가 뭔지 따지기보다 맹자가 말한 학교의 개념을 알아보면 된다.

    중요한건 맹자이전에 학교라는 개념은 없었다라고 한다.

    우리말에서 '나'는 학교에 가고 집에 돌아오는 그 역동적인 상황 속에 녹아있다.
    그래서 나는 누군지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영어는 언어 구조상 나는 누군지 고민해야 한다.
    존재의 문제가 걸려있다. (언어의 장애 요소)

    ----------------------
    data-p 언어로 놀고있는 초딩의꿈입니다.
    최근에 올리신 국어정보처리시스템 경진대회 글 읽고 깜짝 놀랬습니다.
    이런 대회가 있는지도 최근에 알았지만 두분이 같은해 금상, 은상 수상자시라니... ㅎㅎ

    1. 사무엘 2012/11/06 11:32 # M/D Permalink

      반갑습니다. 언어 비교에 관심이 많으신 분 같군요.
      한국어와 영어는 설계 철학이 서로 정말 다른 언어이죠.

      그리고 저는 data-p 언어는 모르고 있었는데 고안자이신 최 선생님과는 처음에 그렇게 해서 아는 사이가 됐습니다.
      인연이란 게 놀랍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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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이곳 학교 이야기

본인의 고등학교 시절에 해당하는 20세기 말에는 국어와 관련된 사건이 주변에 유난히 많이 일어났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감수성 예민하던(?) 본인의 진로 결정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1999년에는 웬 뜬금없는 한자 병용 정책이 내려져서 한글 전용 지지 진영과 반대편 진영이 극심한 키배를 벌였고 서로 으르렁거리며 격렬하게 싸웠다. (그때 나도 혈기 넘치는 키보드 워리어 중 하나였다 ㄲㄲㄲㄲ) 지금 도로 표지판과 지하철 역명판에 한자가 병기된 건 이 시절의 산물이다.
사실, 소위 '한자파'들은 1998년에 전국 한자 교육 추진 총연합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그때부터 이미 의기투합해 있었다. 그러고 보니 1998년에는 복 거일 씨의 영어 공용화 드립 때문에 시끄러웠다. 이 때가 뭐가 씌인 해이기라도 했는지?

그래도 1999년 3월 1일에는 그 보수적인 조선일보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따라 전면적으로 가로쓰기를 시행하고, 예전에 비해 한자를 크게 줄이기도 했다.
2000년에는 한글 로마자 표기법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바뀌었다.

운동 단체들만 시끌벅적했던 게 아니다.
1998년부터는 21세기 세종 계획이라는 게 정부 차원에서 10년간 추진되어, 한국어의 말뭉치 데이터를 구축하고 가공하고 이것으로부터 뭔가 의미 있는 실험 결과를 도출하는 연구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출판사가 아닌 학술 연구소와 정부에서 각각 대형 국어 사전을 내놓았다. 전자는 바로 연세 한국어 사전(1998)이요, 후자는 그 이름도 유명한 국립 국어원의 표준 국어 대사전(1999)이다.

공교롭게도 이들의 첫 종이 사전은 둘 모두 두산동아에서 출판했다. 현재는 다들 개정판을 인터넷으로만 제공하고 종이 사전을 내지는 않는 듯.

연세대는 국어학에 관한 한 서울대와는 다른 독자적인 학풍을 형성하고 있다. 옛날에는 최 현배 파, 이 희승 파로 갈려서 교과서 용어조차 다를 정도로 서로 이질적이었지만 지금은 물론 그 정도는 아니고..;;
그래도 연세대가 좀 말뭉치 기반 언어 연구라든가 사전학, 비교 언어학처럼 언어학 중에서도 응용 분야를 더 좋아한다.

이런 맥락에서 연세대에서는 국문과 교수들과 관련 인사를 주축으로, 이미 1980년대 중반에 국어사전을 자체적으로 만들겠다는 선언을 했다. 옛날 조선어 학회 시절에 천신만고 끝에 발간된 <큰사전>의 정신과 사명감을 계승하겠다고 말이다. (당장 정신적 지주인 故 최 현배 박사가 연세대 교수!)

10년에 가까운 시간과 수백 명에 달하는 인원이 동원된 끝에, 1998년 한글날에 처음으로 연세 한국어 사전 초판이 발간되었다. 그리고 2000년 한글날에는 웹 기반 사전 서비스가 시작되었으며, 컨텐츠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증보와 개정을 거듭하고 있다.;;

본인이 재학 중인 연세 대학교의 '언어 정보학' 협동 과정은 1990년대 말에 바로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개설된 상당히 독보적인 학과이다. 사전 편찬실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마침 국가에서도 세종 계획이다 뭐다 하면서 국어 정보학 분야에 종사할 인력을 원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특히, 국어학과 컴퓨터 기술을 잘 융합할 수 있는 사람을!

나도 옛날에는 사전을 만든 국어학자들이 민족주의 정신이 투철한 독립 운동가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여기서 공부를 좀 해 보니, 저분들이 정말 똑똑한 수재였으며 이런 험난한 길을 안 갔으면 훨씬 더 돈 많이 벌고 성공했을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내 홈페이지에 있는 석인 정 태진 선생의 일화를 읽어 보기 바란다.

그래서 이 학과에는 말뭉치 언어학 내지 사전 편찬과 관련된 수업이 필수로 등재되어 있다. 사전 편찬학 수업을 들으면서 사전 편찬과 성경 번역도 뭔가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걸 느꼈다. 사전을 잘 만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어렴풋이 느꼈으며, 사전 원고를 검증하는 도구(컴퓨터 프로그램)가 조금만 더 똑똑하면 지금보다 상당수의 번거로운 노가다 수작업을 줄이고 사전의 오류도 줄일 수 있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사전 뜻풀이에 정작 이 사전에 없는 어려운 어휘가 쓰인다거나, A라는 뜻풀이에 B 단어가 등장하고 B의 뜻풀이에 A 단어가 등장하는 순환 뜻풀이 같은 것. 일명 순환 참조가 되시겠다.

요즘은 사전 편찬자가 자기 언어 직감에 의지하여 뜻풀이와 예문을 작성하기보다는, 다량의 말뭉치를 분석하여 거기서 도출된 통계대로 용례와 뜻풀이를 추출하는 방법이 일반화되고 있다. 편찬자의 주관이 안 들어가고 객관적이라는 장점 하나는 확보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연세 한국어 사전은 철저하게 이 방법을 활용하여 만들어진 게 특징이며 여타 사전들과 다른 점이라고 한다. 그런데 현행 표준어 규범까지 무시할 정도로 독자 노선을 간 줄은 몰랐다.

지금이야 드디어 '짜장면'이 복수 표준어가 되었다지만, 10년도 더 전에 나온 연세 한국어 사전은 '자장면'의 풀이가 “짜장면의 잘못”이라고 되어 있었다! 덜덜덜;;; 미래를 내다본 것일까? 개인적으로 굉장히 놀랐다.
당연히 국민 중에 '자장면'을 쓰는 사람은 전혀에 가깝게 없었을 것이고, 그 추세가 밑천인 말뭉치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어서 그런 풀이가 나왔지 싶다.

이런 식으로 연세 사전은 라이벌(?)인 표준 국어 대사전과는 정반대의 뜻풀이를 한 게 여럿 있었다.
'흉내 내다' 대신 '흉내내다'를 한 단어로 풀이하고, '-측(one's side)'을 의존명사로 보아 붙이는 용법을 지지하였다. 아래아한글의 맞춤법 검사기만 돌려 봐도 빨간 줄이 쳐질 단어이지만, 솔직히 '흉내 내다'는 무의식적으로 붙여서 써지는 경우가 더 많긴 하다.

옛날에 문법 용어를 두고 동사 vs 움직씨 같은 기싸움을 한 것을, 사전으로 무대를 옮겨서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국어 정보학 쪽으로 식견이 있는 일부 사람들은 이런 파격적인 시도를 한 연세 사전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한편, 이에 반해 표준 국어 대사전은 정부 기관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편찬했으니, 성경으로 치면 한국의 유일한 공역이라 할 수 있으며 여타 사전들과는 그 위상이 다르다.

하지만 이 사전은 이것대로 표제어 수 늘리느라 중국· 일본에서도 안 쓰는 이상한 한자어들을 잔뜩 덧붙였다고 비판 받고, 잘못된 풀이와 틀린 용법까지 무분별하게 다 실어서 책 두께를 부풀렸다고 욕 많이 얻어먹긴 마찬가지였다. 여기 국문과 대학원 재학생들 중에서도 표준 국어 대사전 좋아하는 분 별로 못 봤다. -_- 그래도 국립 국어원에서 만든 만큼 이건 표준어/맞춤법 규범을 어기지는 않는다.

21세기 세종 계획이 만료된 뒤, 이곳 언어 정보학 협동 과정은 한국어 교육 쪽과의 접목을 통해 경쟁력 확보를 시도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그쪽이 수요가 많고(한류 열풍 약빨이 오래 가야 할 텐데!), 사전 편찬은 언어 교육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말뭉치 같은 걸 접목할 수 있는 응용 분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보다 '언어'에 비해 '정보'의 비중이 덜해진 건 사실이며 그건 나로서는 약간 아쉬운 점이다.

이런 와중에 본인은 진짜 두 분야를 완벽하게 섞은 연구를 하려고 이곳에 진학해 있다. 교수나 랩이 주도적으로 뭔가를 push해 넣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개인플레이 위주이고 혼자 알아서 덕질을 찾아서 할 수 있는 곳을 의도적으로 선택했다. 난 그런 곳이 낫다.
나는 더 빠른 하드웨어를 만들거나, 수학적으로 더 엄밀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하는 것보다는, 이를 이용해서 한국어와 한글 다루는 걸 더 멋있고 편리하게 만드는 응용 쪽이 아무래도 훨씬 더 잘 어울린다.

Posted by 사무엘

2011/10/18 19:31 2011/10/1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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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범준 2011/10/20 12:36 # M/D Reply Permalink

    1. 석인 정태진 선생의 일화 잘 읽어보았습니다. 그런 분들의 숭고한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 이 나라의 말을 당당하게 사용하고 있을지.... 또 우리말 사전을 편찬한 그 공로 또한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2. 사전 편찬 = 성경 번역 : 동감입니다.
    사전은 사전대로 우리말 단어들의 용례를 올바로 조사하는 노력이 상당히 많이 들고, 성경은 성경대로 원어와 번역 언어를 비교하여 올바른 단어를 선정하고, 또한 문맥을 훼손하지 않고 원문 그대로 번역하는 과정이 까다롭기 때문에 또 힘들고... 마치 그리스도예수안에 분들이나 영어 킹-성경 번역자들이 겪었던 고초를 보는 것 같네요.

    3. 연세 사전은 아직 겪어본 적이 없고, 동아 사전은 초등학교 때 제 옆에 끼다시피 한 사전이었습니다.(연세 사전에 비하면) 동아 사전도 그다지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더군요.

    1. 사무엘 2011/10/20 21:42 # M/D Permalink

      덧붙이자면, 저는 개인적으로는.. 사전이 오늘날의 언어 모습을 무조건 투영만 하진 말고, 어떤 건 잘잘못을 가리고 교정도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아무리 사람들이 구분 없이 혼용하고 있더라도 '다르다'와 '틀리다'는 반드시 구분해서 뜻풀이를 실어 준다거나, '째'와 '번째'를 구분하는 것 말이지요.
      그런데 그런 걸 판단하는 게 역시 사람 주관이 많이 개입하기 때문에 어디까지 선을 그을지를 판단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2. 비밀방문자 2014/12/03 13:49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 사무엘 2014/12/01 00:50 # M/D Permalink

      안녕하세요~!
      선생님 같은 내력이 있으신 분께서 누추한 제 블로그를 찾아 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 반갑습니다. 또한 제 프로그램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계신다니 기쁩니다.
      저도 한글이나 세벌식 글자판 같은 게 없었으면 그냥 평범한 여타 분야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지내거나 철도로 업종을 바꿨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10대 나이 때부터 시작한 본업을 지금도 버릴 수가 없고 지금까지 잊은 적이 없네요. ^^
      한글 학회 행사 같은 일이 있을 때 한번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올리는 제 댓글은 공개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여기에다가는 이 정도로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3. 들꽃 주중식 2014/12/03 13:55 # M/D Reply Permalink

    사무엘 님께

    바로 답장을 주셨군요.
    고맙습니다.

    들꽃 주중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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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발음 넋두리 외

오늘날 영어는 세계와 소통하기 위한 필수 매개체요, 좋든 싫든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예전에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지 싶은데, 난 그나마 한국어 "보다"야 영어가 세계어가 된 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언문일치가 개떡인 점, 한국어와 구조가 너무 다른 점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 어려울 뿐이지, 그나마 그 정도 굴절이나 그 정도 불규칙은 다른 언어에 비해서는 나은 편이다.

그 반면에 나의 모국어인 한국어는 높임법이나 다른 복잡한 요인을 차치하고라도, 언어에서 기본 중의 기본인 대명사부터가 정말 답이 안 나오는 안습한 언어이다.;;

1인칭: '날다'의 활용형(나는)과 충돌이 있어서 '날으는'이라는 기형적인 활용형이 어쩔 수 없이 쓰인다. 나/내, 너/네도 은근히 헷갈리지 싶은데, '내'/'네'는 이제 발음 구분이 안 된다. -_-;; (영어도 I와 eye가 동음이의어이긴 하지만, 문제될 상황은 거의 없다)

2인칭: you를 딱부러지게 옮기지를 못해서 님, 너님, 회원님, 고객님, 선생님 등등등등...;; 아 골치아파. (뭐, 영어는 2인칭에 단· 복수 구분이 없는 게 아주 기괴하긴 함.)

3인칭: 관형사 '그'가 3인칭 인격체 대명사처럼 굳어져 버렸다. 조사 없이 단독으로 쓰인 건 너무 어색하다. '그녀' 문제는 우리말 운동 진영에서 전형적인 떡밥이기도 하고... (반대로 영어는 he/she 성별 구분 때문에 굉장히 불편하긴 함. 그래서 단수까지도 they로 싸잡아 표현하기도 하고.)

요컨대 한국어는 1인칭과 2인칭 대명사는 불필요하게 쓸데없는 호칭만 너무 다양하고 자잘하게 발달해 버려서, 아주 neutral한 표현 하나를 콕 집어 쓰기가 어려우며,
3인칭은 관형사 '그' 말고는 어휘 자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래서 가끔은, 하나님을 가리킬 때조차도 대놓고 you라고 깔끔하게 싸잡아 부르는 언어가 부러울 때가 있다. 불경스럽다고? 하나님은 그런 불경스러운 언어를 쓰셔서 절대무오 최종 권위 성경을 만드셨다! -_-;; 통념과는 달리, 킹 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가리키는 대명사(You, He)에 첫 글자 대문자 처리조차도 되어 있지 않다.

물론, 글 써 놓고 보니까, 뭐 영어도 만능은 아니어서 언어적인 flaw가 있긴 하다.
그래도 한국어는 대명사의 표현이 부족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옛날 사람들은 그런 대명사 없이 글을 어떻게 쓰고 의사소통을 어떻게 불편 없이 했는지 '무척' 궁금하다. 내가 선조들의 삶의 방식은 공부 안 하고서, 그저 한국어가 영어 번역투로 잘 대응하질 않아서 찌질하게 징징대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본인처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외국 장기간 체류 경험도 없는 사람은 글을 읽으면서 새로운 단어를 종종 접하곤 한다. 이 단어가 실제로 어떻게 발음되는지는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다. 뜻만 알면 되니까 발음 기호는 보지도 않고, 이 단어는 어렴풋이 이렇게 발음되겠지 하고 넘어갔는데.. 알고 보니 낚시였던 경우가 본인은 은근히 많았다.

오랜만에 학교로 돌아와 대학원에서 공부를 다시 시작하니, 공과 대학 수업은 다들 영어 강의로 물갈이되어 있었다. 몇몇 단어는 교수님의 발음이 이상한가 싶었는데, 사전을 찾아 보니 교수님이 맞고 내 짐작이 다 틀려 있었다. -_-;; 그도 그럴 것이 공대 교수들은 거의 다 영어권 국가에서 박사 받고 온 분들이니까.

다음은 내가 생각하던 틀린 발음과, 실제 맞는 발음을 나열한 것이다. 수 년째 잘못 알고 있던 발음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단어를 실제로 입 밖에 내면서 외국인과 얘기를 주고받아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suffice: 서피스, 서파이스 (surface 내지 office 때문에)
merely: 멀리, 미얼리 (were 영향)
duplicate: 더플리케이트, 듀플리케이트
Reagan: 리이건, 레이건
geek: 지크, 기크 (당연히 gee 영향)
obtain: 압튼, 옵테인 (certain 영향)
adjacent: 앧저슨트, 얻제이슨트

즉, 본인은 대체로 단모음 위주로 발음을 예상한 반면, 실제 발음은 장모음인 경우가 많았다.
G 다음에 I, E, Y가 오면 거의 다 ㄱ 대신 ㅈ으로 소리가 바뀌기 때문에 생물학 용어인 '게놈'도 영어식 발음은 '지넘'이지 않던가? 그런데 사전을 찾아 보면, ge... 단어 중에도 ㄱ 발음이 적지 않다. 결국 발음을 알아맞히는 건 복불복인가 보다. -_-;;

장모음 ea는 대부분이 그냥 '이'인데, 가끔 '에'(sweat)인 경우가 있고, great나 저 대통령 이름에서처럼 '에이'가 되기도 하며, create에서는 아예 '이에이'라는 긴 발음이 된다. 그래서 프로토스 기본 유닛인 Zealot도 영어 발음은 '젤럿'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완전히 '질럿'으로 알려져 있다. ㅋㅋ

어찌 보면, 이런 판타지 같은 정서법을 끼고 사는 영어권 사람들이 참 골치아프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adjacent는 프로그램 개발 관련 기술 문서를 읽느라 중학교 시절부터 알고 있던 단어인데, 본인은 10년이 넘게 '앧저슨트'라고 마음속으로 읽어 왔다. -_-;;

그래서 다국적 컴퓨터 회사인 Asus는 '에이서스'와 '아수스' 사이에서 발음이 난립하고 있다.
data는 '데이터'라고 읽지만, 툼 레이더의 여걸 Lara Croft는 '라라 크로프트'이다. '레이러' 따위가 아니다. -_-;;
영어권에는 단어를 발음하는 큰 줄기가 단모음식 아니면 장모음식으로 갈라져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는 워낙 미국물을 좋아해서 영어 발음도 철저하게 아메리칸식으로 공부해 왔지만,
영국에서는 진짜로 모음+R은 해당 모음을 장음화만 하고 혀는 안 굴린다. 단모음 A를 ㅐ로 전설모음화하지 않으며, ㅏ로 있는 그대로 발음하는 걸 좋아한다. 오오..;;
무엇보다도 영국에서는 모음+T+모음 사이에서 T가 R로 안 바뀐다. water는 그대로 워터이지, 워러로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F나 TH 같은 발음은 동일하며, 억양도 동일하기 때문에 영국 영어와 미국 영어가 무슨 표준 베이징 중국어와 광동어의 차이만치 심하기라도 한 건 절대 아니다.
사실은 킹 제임스 성경을 읽으면서도, 이걸 실제로 소리내어 읽는 소리는 어떻게 날까 적지 않게 궁금했다. 이놈의 thou, thee, -eth 어미를 원어민이 실제로 읽는 걸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며, KJV가 그렇게도 운율감이 좋고 읽기 편하다고 하는데 내가 그걸 실감할 수가 없어서 답답했던 것이다. 지금은 그 시절에 비해서는 의문이 좀 해소되어, 덜 궁금하다.

공대는 그렇다 치고 문과대 쪽으로 가면,--난 인문계와 이공계를 두루 섭렵하는 협동 과정 소속 ㅋㅋ-- 교수님들이 본인에 대해, 공대 출신이다 보니 문과 출신만치 체계적인 글쓰기 스킬은 부족한 감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듯하다. 그런데 난 공대 출신 치고는 사실 문과 기질이 강하며, 정보 올림피아드 입상 실적만 아니었으면 지금과는 완전 딴판의 진로를 갔을 사람이었다...... 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래도 진짜 문과 교수님들이 보기에는 본인 같은 사람도 그냥 영락없는 공돌이인가 보다. ㄲㄲㄲㄲ

그리고 사실은 공대도 대학원에 가면 비록 성격이 문과와는 좀 다를지언정, 글쓰기가 많으며 심지어 랩미팅에 대비한 프레젠테이션도 많다. 실험을 해야 하고, 돈이 많이 든다는 특성상 펀딩을 받으려면 눈에 보이는 연구 실적이 많아야 하고, 고로 대학원생은 석사 들어가자마자 논문을 정말 미친 듯이 써 댄다. 그것도 모국어도 아니고, 이공계의 학술 공용어인 영어로 쓴다. 논문에 이름 실린 경력이 연예인으로 치면 filmography 같은 거다.

그 바닥은 랩생활을 하기 때문에, 공동 연구의 공동 저자로 낄 기회도 많다. 그러면서 이공계 논문 잘 쓰고 발표 잘 하는 법 같은 테크닉을 랩생활 하면서, 혹은 대학원 수업을 통해 공부한다.

- 단독 저자이더라도 논문의 1인칭 주어는 We이다.
- 결론은 Conclusion이 아니라 반드시 Conclusions라고 복수형으로 쓴다.
- 세속 글쓰기와는 달리 성 구분 없는 3인칭 단수를 (s)he 처럼 쓰지 말라. 차라리 they로 대체하거나, 그런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다른 어휘를 고르거나 아예 문장을 다른 형태로 다시 써라.

이런 식의 팁이 엄청 많다. 이런 격식 있는 글쓰기 스킬이 하루 아침에 숙달될 리가 없으니, 지도교수한테 무진장 깨지면서, 또 아마도 랩 선배한테 코치를 가장한 갈굼도 당하면서 익숙해지는 거겠지...?

그나저나, 영어는 숫자 형태로 된 날짜나 시각을 말할 때 단위를 붙이지 않고 숫자만 연달아 읽는다.
그러면 “좀 있다 40분에 나가자. (지금이 6시 20분이면)” / “졸업식은 15일이다. (이 달 15일)” 이런 말을 영어로 표현하는 방법은 없나? 주변의 영문과 출신 선배에게 물어 보니, 자기도 그 생각은 미처 안 했는데 아마 방법이 없는 듯하다고 대답했다.
그냥 무조건 “20분 뒤에 나가자” / “이번 주 금요일이다” 같은 식으로 형태를 바꿔야 하는지 궁금하다. at the n-th minute, on the n-th day 이런 표현은 안 쓰는 듯?

Posted by 사무엘

2011/09/03 08:35 2011/09/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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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1/09/03 14:46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 사무엘 2011/09/04 07:52 # M/D Permalink

      그건 URL을 UTF8로 인식하느냐 예전의 2바이트 인코딩으로 인식하느냐 하는 것 때문에 발생하는 잡음입니다. 혼동의 여지를 원천봉쇄하기 위해서 그냥 앗싸리 모든 파일명은 영문과 숫자로만 쓰라고 권고하는 것이죠.
      본문과 관련이 없는 질문· 문의는 본문의 댓글보다는 제 메일이나 그냥 차라리 방명록을 이용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2. 인민 2011/09/04 13:00 # M/D Reply Permalink

    1. ㅐ와 ㅔ 구분은 안습... 묻혀진 ㅐ에게 묵념. 그래서 요즘 한국에서 말 터놓을 수 있는 상대에게는 1인칭을 '네(내 의 실제발음)'로, 2인칭을 중국의 ?처럼 '니'로 발음하죠. 단지 저는 '너가' 로 발음할 뿐. 진짜로 중국탓일까요?

    2. 영어 r 발음은 접근음이기 때문에 모음처럼 발음됩니다. 비슷한 예로 영어권에서는 일찍이 깨닫고 자음으로 취급했지만 아시아 특유의 음성학 때문에 모음처럼 취급되는 w나 j가 있겠죠. (요나흐 : jonah)

    1. RC 2011/11/22 13:19 # M/D Permalink

      '네'를 '니'로 발음하는 건 서남 지방 방언의 영향입니다.

  3. 삼각형 2011/09/04 00:06 # M/D Reply Permalink

    내가 네 것을 썼니? 같이 내와 네는 문맥으로 구분하는 것 뿐이 답이 안 나옵니다. 저는 하려고 노력하지만 ㅐ와 ㅔ발음 구분을 명확하게 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지라.

    저는 '그'의 경우 '그 사람' 정도로 쓰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 여자'로 쓸 수도 없고 난감하네요.

    요즘은 사전이 발음도 나와서 발음을 모를 경우 발음기호도 참고해 가며 들어보고 있습니다. thou, thee 같은 것도 사전으로만 들었죠.

    영어의 he, she의 경우 우리나라의 은,는,이,가,을,를 처럼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은/는' 같이 's/he' 따위로 표현하는 모양이더군요. (사람이름)야, 같은 것도 (사람이름)이야로 쓸지 아닐지도 종성 여부에 따라 달라지니 컴퓨터가 자연어를 처리할 때 꽤나 골아파지는 부분입니다.

    한국어도 격식 있게 글을 쓰려면 단어 선택이나 문체에 주의해야 합니다. 나보다는 필자 따위의 표현이나 직함을 쓰고, 문장 끝도 ~ 하다는 것이 명확하다. 라던가, ~으로 밝혀졌다. 따위와 같이 괜시리 늘여주고 말입니다. 이런 건 뉴스에서 많이 써서 익숙할 것 같습니다.

  4. 사무엘 2011/09/04 07:49 # M/D Reply Permalink

    의견 감사합니다. 저도 ㅐ, ㅔ는 생각만 해도 너무 답답한 거 있죠.
    구분이 안 돼서는 안 되는 음운이고 옛날에는 분명히 달랐으니까 지금까지 다른 표기가 이어져 오는 것 아니겠어요(아래아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 시절에 이미 멸ㅋ종ㅋ).

    본문에서는 다루지 않았습니다만,

    - KJV의 영어는 현대 영어보다야 제약을 덜 받는 편입니다. 2인칭이 thou/ye 구분이 있고 굴절도 더 명확하였으며, 그때는 he라고만 써도 여자 차별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안 하던 시절이었으니.. ㅋㅋ

    - 독일어도 동일한 S/sie가 2인칭과 3인칭을 모두 받는 특이한 케이스입니다만, 마치 eye is와 I am처럼 동사가 굴절되는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대부분 구분됩니다. '네/내'만한 판타지는 아니지요.

  5. http://singleheart.myid.net/ 2011/09/04 18:37 # M/D Reply Permalink

    3인칭 대명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영어의 영향 같습니다. 우리말은 원래 중복을 그렇게 꺼리지 않았고, 사실 요즘도 '그'나 '그녀'는 글에서나 쓰지 말할 때에는 안 쓸 겁니다. 예전에는 '그 XX(분, 사람, 자 등등)'라고 했을 말을 요즘 글에서는 그냥 '그'로 쓰고 있죠.
    영어가 문법은 다른 유명한 유럽어보다 간단한데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표기법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나라나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특정 기관이 언어를 통제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표준어가 바뀌는 데 수십년씩 걸리기는 하지만, 수백년 동안 표기가 안 바뀌는 영어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1. 사무엘 2011/09/04 21:41 # M/D Permalink

      중복을 무척 싫어하고 대명사를 좋아하는 영어의 습성은 뭐랄까 포인터를 좋아하고 call by value보다는 call by reference를 좋아하는 프로그래밍 언어의 습성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ㅎㅎ 말씀하신 것처럼, '그'/'그녀'는 확실히 번역투이고 문어체에서는 그렇게 잘 쓰이지는 않는 게 사실이네요.

      영어는 come(코움?), do(도우?), have(헤이브?) 등 영어의 근간을 이루는 기초 단어들부터가 철자 따로 발음 따로 제멋대로입니다. =_=;;;

  6. 소범준 2011/09/05 18:49 # M/D Reply Permalink

    1. 솔직히 킹제임스 성경의 영어가 현대 영어보다 더 쉬운 게 2인칭의 단수 복수 구분 때문이랄까요.
    솔직히 지금 영어는 '여기까ㅎ지ㅎ' 수준으로 발전을 멈춘 듯 싶네요. 그래서 저는 정말 킹제임스 성경의 영어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2. 저의 대학 영어 발음 교재를 보니 '지금의 발음 습관이 후에는 고치기 어렵게 된다.'고 하거든요.
    저도 영단어의 발음을 정확히 몰랐을 땐 제 식대로(!) 했는데 나중에 정확한 발음을 알면 글에 쓰신 것처럼
    대박 안ㅠ습ㅠ;;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는 대명사 면에서 볼 때 정말 한국어에 비하면 효율적인 언어죠. 다만 지금의 경우 2인칭 구분이 안되는 것만 빼고요.

    1. 사무엘 2011/09/06 09:28 # M/D Permalink

      영어와 관련해서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셨군요. ^^

      킹 제임스 영어는 현대 영어보다 더 활발한 동사의 굴절이 한국어로 치면 마치 조사 같은 역할을 해 줘서 더욱 자유로운 도치도 가능하게 해 줍니다. Ye/thou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3인칭 단수 동사 활용(-th)과 명사의 복수형(-s)도 구분이 되죠.

  7. 특백 2011/09/11 10:51 # M/D Reply Permalink

    thou 자체가 원래 존칭을 갖고 있지 않나요. 그때는 보면 '서문을 대심하여 예임스[Iames ㄲㄲ]왕께 바치는 헌사'에서도 다 you로 썼는데 성경의 존엄성을 위해 고어를 살려서 (영국식 어투로 읽는 맛도 있으니까 KJB 좋죠 ㄲㄲ)

    다만 몇가지는 S+V+O 말고 V+S+O 같은 구절 몇개도 있어서 처음 이해하기에 조금 어렵다...
    가 있지만 뭐 저야 '처음' 이 아니니까

    1. 사무엘 2011/09/12 00:26 # M/D Permalink

      무슨 말인지 저도 바로 알겠습니다. KJV에는 좀 아리까리한 도치도 좀 있어요.
      그래도 주격도 되고 목적격도 되는 한국어의 보조사의(은/는/도 같은 것) 아리까리함보다 더하겠습니까.

      C/C++ 언어를 컴파일할 때 < > 토큰이나 () 토큰의 의미를 까려면 결국 문맥을 알아야 (context free grammar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문법) 하듯,
      저런 것들은 결국 문법이 아니라 어휘와 화용 계층으로 가야 제대로 분석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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