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물, 바다, 수소의 연료화

흔히 우리는 바다가 온통 소금물이니 소금은 다들 염전에서 바닷물을 증발시켜서 얻는 줄 안다. 하지만 대량의 물을 물리· 화학적으로 변형하는 것은 우리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 비용)가 드는 일이며, 염전 또한 아무 바닷가에나 쉽게 크게 만들 수 있는 시설이 아니다. 정제 비용은 덤이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생산되는 소금의 출처는 바닷물보다는 의외로 암염의 비중이 더 크다고 한다. 망망대해 가운데에서 마실 물 걱정을 하는 것처럼, 주변이 온통 바닷물이지만 여전히 소금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흔해 빠진 게 물인데 산소와 수소쯤은 물을 전기 분해하면 바로 얻을 수 있잖아?"도 그때 드는 전기의 양을 생각하면 그리 만만한 생각이 아니다. 수소는 생산한 뒤에도 너무 위험하고 안전하게 보관하는 게 어렵다 보니, 21세기의 기술로도 그 막강한 폭발력을 동력 기관으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친환경과 가성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뭐, 소금은 이렇게 바다가 아니라 육지에서도 많이 얻는다만, 우리가 바다에서 진짜 의외로 더 많이 얻는 것은.. 바로 산소라고 한다. 아마존 숲을 포함해 육상 식물이 만드는 산소보다 전세계 바다의 해조류와 미생물이 광합성을 해서 만드는 산소가 더 많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모르겠지만, 일단 지표면에서 면적부터가 바다가 훨씬 더 크기도 하니..

게다가 거대한 양의 바닷물은 이산화탄소를 품고 있기도 하다. 나중에 태양이 적색거성으로 바뀌어서 화력이 강해지고, 태양열 때문에 바닷물이 증발하는 지경이 되면 바닷물이 품고 있던 이산화탄소가 몽땅 증발돼 나오면서 온실효과까지 가미되어.. 지구는 순식간에 금성 같은 불지옥으로 바뀔 거라는 전망이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여러 모로 바다는 소금보다도 더 중요한 분야에서 인류에게 고마운 역할을 하는 듯하다. 아,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 역할도 톡톡히 한다. 소금은 암염으로 더 많이 생산될지 모르지만 생선이 육상 동물 육류보다 더 저렴하고 영양 가성비가 뛰어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2. 음속 -- 진동이 전해지는 속도

공기 중에서 음속이라는 게 초속 330~350m, 시속으로 환산하면 1100~1200km 정도 된다.
음속이 광속보다는 훨씬 더 느리기 때문에, 번갯불이 먼저 번쩍인 뒤(눈에 도달) 수 초 뒤에 폭음이 귀에 도달하여 들리는 것 정도는 주지의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등산 중에 하늘 위로 비교적 낮게 날아가는 비행기를 봤는데, 비행기는 엔진 소리가 들려 오는 곳보다 더 앞서 나가 있는 게 무척 신기했다. 고도가 낮은 것 같아도 못해도 3~4km 정도는 돼 보인다.

그런데 하물며 우주 관측은 광속으로도 감당 못 할 까마득히 먼 거리를 다룬다는 게 더 신기한 노릇이다. 몇백만 년 전의 별의 모습을 이제야 보는 것이니 말이다. 겨우 수 초 전에 비행기가 지구 대류권 상공에서 낸 엔진 소리를 뒤늦게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공기 중의 음속은 인간의 비행기로도 낼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느린 속도이다. 하지만 액체와 고체 속에서는 음속이 훨씬 더 빨라진다.
물 속에서는 극심한 저항 때문에 총알도 제대로 안 나아가고 모든 것이 둔해지고 느려지지만, 음속은 공기 중보다 대체로 4~5배 정도 더 빨라진다. (초속 1.4~1.5km)

게다가 금속 같은 고체 매질 속에서는 음속이 초속 5~6km대로 치솟는다.
지진파가 바로 고체 속에서 나아가는 음파와 본질적으로 비슷한 존재이다. P파 S파 종류별로 속도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초속 수 km대의 스케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원지에서 수백 km 떨어진 곳에 진동이 겨우 몇십 초 만에 느껴졌네 하는 게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 경주와 포항의 지진 때문에 이쪽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 바 있다.
하지만 전파 같은 초월적인 광속도 아니고 그렇다고 로켓이나 우주 발사체의 속도도 아니고, 일상적으로 저런 규모의 속도를 접할 일은 그다지 없을 것이다.

소리가 나아가는 건 총알이나 바람이 나아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질량을 가진 물체가 직접 이동하는 게 아니라, 진동만 전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과 고체 속에서 음속이 더 빨라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공기 저항을 없앤답시고 진공을 만들어 버리면 음속이 증가하기는커녕, 소리가 아예 전해지지 못하게 된다. 열은 복사라는 방식으로 진공 속에서도 나아가서 전해질 수 있는 반면, 음파는 그냥 끝이다.

자연에는 물질의 운동뿐만 아니라 파동/진동도 존재한다는 것이 물리 과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주범임이 틀림없다..;; 그냥 이차함수 포물선까지만 생각하면 되던 게 이제 삼각함수가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빛이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모두 지니고 있는 건.. 신학으로 치면 인간이면서 하나님, 삼위일체 급의 난해한 개념이다.

3. 전열기

전기 에너지를 이용하면 잘 알다시피 바퀴를 굴리는 동력을 생성할 수 있고 강렬한 빛(LED)을 만들 수도 있고 컴퓨터를 돌리고 메모리 소자에다 정보를 기록할 수도 있다.
이런 무궁무진한 활용에 비해, 전기로 겨우 열이나 만드는 건 제일 수준 낮은 활용인 것 같다. 어차피 모든 에너지는 열, 그것도 더 재활용하기 곤란한 폐열로 귀착되니 말이다.
마치 싱싱한 참돔이나 우럭, 넙치 활어를 받아서는 회를 만들어 먹지 못하고 몽땅 탕으로 끓여 먹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국가의 정책 차원에서 기름값이 워낙 비싸다 보니 요리나 난방용 전열기가 의미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전기 제품은 안 그래도 간편하고 화력 좋고 그 자체로서는 공해도 전무한데, 전자 공학 기술의 눈부신 발달 덕분에 전열기도 옛날의 전열기보다 에너지 효율이 당연히 훨씬 더 좋다. 같은 전력을 소모했을 때 빛이나 동력이 나와야 하는 곳에서는 열로 낭비되는 에너지 없이 빛이나 동력만 많이 나오고, 진짜 열이 나와야 하는 곳에서는 열만 아주 강렬하게 잘 뿜어져 나온다.

그러고 보니 똑같이 전기로 음식을 데우는데, 단순히 바닥만 뜨겁게 달궈 주는 전기 오븐이 있는 반면에 전자 레인지도 있는 게 신기하게 느껴진다. 후자가 전력 소모가 더 많고 더 고차원적이고 심오한 방법으로 음식을 데우는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한편으로, 전기가 아닌 통상적인 연료를 사용하는 가스 레인지나 석유 난로도 전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건 아니다. 처음 점화를 할 때는 전기 스파크를 사용하기 때문이며, 이건 휘발유 자동차 엔진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스 레인지의 경우 건전지를 집어넣는 부분이 있으며, 석유 난로는 최소한의 전자식 UI 제공을 위해 전기를 사용한다. 물론 순수 전기 난로보다 전력 소모가 훨~~씬 적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4. 20세기 중반의 리즈 시절

요즘 이공계에서 석· 박사까지 공부하는 종사자들은 추세를 다 알겠지만..
오늘날은 어느 분야건 무슨 20세기 초와 그 이전처럼 울트라 초천재 과학자 한 명이 그야말로 X선처럼 0에서 1을 만드는 급의 기상천외한 걸 창조하거나 발견해 내고 세상을 획기적으로 바꾸던 그런 시절은 지났다. 모든 연구는 엄청난 자금빨을 동원해 집단으로 행해지며 단독 저자 논문은 거의 없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여러 학문들이 손 잡고 힘을 합쳐서 궁극적으로는 (1) 모든 사람들의 취향을 파악하고 마음을 읽어 내는 스마트한 시스템, 그리고 (2) 사람을 닮은 기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달려가고 있다.

옛날에, 20세기 이전에 생물학이라는 건 그냥 생물의 생태를 관찰하고 분류하고 해부하는 정도의 방법론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파브르나 멘델처럼 말이다. 그랬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타 분야의 과학· 공학이 발달한 성과물을 접목하여 예전에 상상도 할 수 없던 미시적인 수준의 분석이 가능해졌다.
이른바 분자 생물학이라는 게 태동한 것이다. 그리고 막대한 양의 DNA 데이터를 분석하다 보니 컴퓨팅 기술과도 손을 잡게 됐다. 이게 물리학으로 치면 마치 뉴턴 고전 역학에서 전자기학, 양자역학으로 넘어가는 급의 패러다임 변화이다.

생물학이 그렇게 되는 동안 의학은? X선 덕분에 방사선 치료니 영상 의학이니 하는 분야가 새로 생겼다. 옛날의 의사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언어 공학 쪽은? 언어라는 게 인간이 동물과 다르고 기계와 다른 매우 큰 차별화 요소이다 보니 해결되지 못한 문제와 연구할 것이 아주 많다.
언어학에도 말뭉치 언어학이라는 분야는 컴퓨터 기술의 발달 덕분에 생겨났고.. 이런 식으로 학문들이 타 분야의 도움을 받아서 새로운 유행이 생겨나는 것 같다.

이공계의 트렌드 내지 패러다임이 이렇게 바뀌기 전에.. 그 저변과 기술 기반을 제공한 시절이 내 생각에 20세기 중반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된 동안 과학 기술이 얼마나 눈부시게 발달했던가?
전자공학 쪽에서는 진공관 컴퓨터와 더불어 (1) 트랜지스터가 발명되었다. 항공우주 분야는 (2) 로켓, 인공위성,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3) 원자력 발전이 이때부터 시작됐다. 끝으로 생물학에서는 (4) DNA 구조가 규명되었다.

1950~60년대에 미국의 일류대 대학원에서 이공계 공부를 한 사람들은 그야말로 천지개벽 수준의 과학 기술 업적이 펑펑 터져나오는 걸 경험한 셈이다. 부럽다.

5. 공군 전투 조종 장교 : 이공계 대학원생

  • 비행 시간 : 논문 수, 짬, 연구 실적
  • 전방석 : 1저자, 주저자
  • 후방석 : 공동· 교신저자
  • 전역 후 민항사 : 졸업 후 유명 대기업· 연구소 취업
  • 테스트 파일럿 : 스타트업 창업
  • 장성 진급 : 대학 교수 부임

서로 아귀가 묘하게 잘 맞는 것 같다..;;

6. 기타 수학· 과학 분야 얘기

(1) 예전에 벡터의 내적과 외적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하필 3차원에서는 두 벡터가 주어졌을 때 이 둘과 일차독립이면서 크기도 일정한 의미를 갖는 다른 벡터를 구하는 외적(벡터곱)이라는 연산이 존재하는 게 정말 심오하고 보통일이 아니라는 게 거듭 느껴진다. 3차원 공간을 구성하는 세 축의 방향을 안내해 주는 나침반이나 마찬가지이다.
FBI이니 뭐니 오른손 왼손 손가락 뻗으면서 외웠던 자기장 방향도 이 외적의 개념을 나타낸 셈이다. 또한, 복소수의 개념을 확장한 사원수의 곱셈 연산은 영락없이 벡터 외적 연산을 떠올리게 한다.

(2) 사람이 갈색이나 노랑이 아니고 초록색이나 파란색 머리카락은 100% 염색이지, 자연적으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색깔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장미꽃은 원래 백색, 분홍, 홍색 계열 위주이지 청색..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았다. 파란색 꽃 자체는 그렇게 드문 건 아니지만 장미에는 그런 게 없었으나.. 21세기에 와서야 유전 공학의 힘으로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우와..;;
LED도 청색을 구현하기가 제일 어려웠는데 파란색에 뭔가 생물학적인 다른 사연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3) 똑같은 선풍기 바람도 사람에게는 체온보다 낮은 시원한 바람이지만, 아이스크림은 선풍기 바람을 쐬어 주면 반대로 더 빨리 녹게 된다. 아이스크림의 녹는 속도를 늦추려면 오히려 패딩 점퍼로 싸는 게 낫다.
그리고 똑같은 바람도 촛불은 끄게 하지만 큰 불에는 말 그대로 '불난 집에 부채질' 꼴이 되는 것이 흥미롭다. 온도와 풍속이 해당 상황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영향을 끼친다..;;

(4) 동위원소 물질은 생물로 치면 무슨 유전자 변형 같다..;; 동물이 염색체 하나가 더 붙어서 기형이 태어나는 것 같은 느낌.. 원자로의 냉각수로 쓰이는 중수는 산소+수소이긴 한데 수소가 그냥 수소가 아니라 중성자(中)가 하나 더 붙은 중수소(重)이다. 그래서 중수의 얼음은 일반 물에 집어넣으면 가라앉으며, 끓는점과 어는점도 일반 물보다 몇 도가량 더 높다. 그런데 사람 몸에는 썩 좋지 않다고 한다.

(5) 인체에 대해 다룬 책들의 삽화를 보면 동맥피만 빨갛고 정맥피는 완전 시퍼렇기라도 한 것처럼 그려져 있다. 게다가 피부에 비치는 정맥 혈관이 검푸르게 보이기까지 하니(특히 좀비의 혈관..) 더욱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정맥이라고 해서 멀쩡한 혈액이 실제로 푸른색인 건 아니다. 명도· 채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람의 피는 언제나 붉다.

이건 마치 태양에 흑점이란 게 있다고 해서, 우주에서 맨눈으로 관측한 태양의 표면에 검은 구멍이 숭숭 보이는 건 절대 아닌 것과도 비슷한 이치이다. 흑점은 태양의 다른 부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뜨겁고 덜 밝을 뿐, 여전히 극도로 눈부시고 밝은 건 마찬가지이다.
대기의 산란 같은 게 없는 우주에서 태양을 보면 빨강이나 노랑, 주황 같은 색은 전혀 없으며, 그냥 맹렬한 흰 빛만을 볼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8/11/08 08:31 2018/11/0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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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라는 게 2010년대부터야 (1) 표면 대부분이 그냥 터치식 액정 화면인 스마트폰이 주류가 됐다. 그보다 약간 전 2000년대 과도기에는 피처폰이 있었고, 인류 역사상 가장 작은 전화기인 (2) 폴더식 휴대전화도 있었다. (뭐, 특수한 소비자 계층을 위해 폴더형 스마트폰도 있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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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는 본체는 건물의 전화선에 연결돼 있고, 송수화기가 거기로부터 반경 몇십 m 정도까지는 떨어져 있어도 되는 (3) 무선 전화기가 많이 쓰였다. 무선 이전에는 당연히 유선이었고. 대략 1990년대의 얘기다.
전화기 송수화기와 본체를 연결하는 선은 여느 케이블과 달리, 유난히 굵고 꼬불꼬불한 형태였던 것 같다. 여기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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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의 숫자 버튼들은 눌렀을 때 들리는 삑삑 신호음의 음높이가 각 숫자마다 모두 달랐다. 절대음감 황금귀는 그 음만 듣고도 무슨 숫자가 눌렸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그 반면 디지털 도어락은 저런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될 테니, 모든 버튼의 음높이가 당연히 동일하게 맞춰져 있다.

뭐, 그 시절에도 진정한 의미의 무선 전화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카폰 같은 건 고가의 사치품으로 쓰였다. 우등 고속버스 안에는 1993년부터 무려 이동식 공중 전화기가 비치되기도 했다. 이용/통화료는 도입 당시에 40초당 100원이었다는데, 길거리의 공종 전화보다는 분명 더 비쌌을 것이다.

더 옛날, 한 1980년대쯤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제 (4) 전화기의 숫자 버튼은 다이얼로 바뀐다. 다이얼은 한번 돌렸다가 되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버튼만치 번호를 빠르게 입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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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엄청 어린 시절에 다이얼 전화기를 써 본 기억이 있다. 요런 고전 전화기는 전화가 왔을 때 금속판이 부딪치면서 그 특유의 따르르릉~ 소리가 났다. 하긴, 옛날에는 초인종만 해도 요즘 같은 전자음 일색이 아니라 진짜 금속판이 부딪치는 청명한 딩동 소리가 났었는데.. (말 그대로 종)

이것보다 더 옛날 전화기는 거의 1960년대와 그 이전의 골동품이다. 여기부터는 본인이 실물을 직접 구경하거나 사용해 본 적이 없다. (5) 전화기가 새까만 상자 모양인데, 어딜 봐도 숫자를 입력하는 부분이 안 보인다. 그 대신 옆구리에 옛날 자동차의 수동식 윈도우처럼 뭔가 돌리는 손잡이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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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무려 발전기와 연결된 손잡이라고 한다. 이걸 뱅글뱅글 돌리면 약한 전류가 생겨서 전화국으로 신호가 가고, 교환원과 연결되는가 보다. 그래서 송수화기를 들고 교환원에게 전화번호를 "구두로 전달"하면, 교환원이 그 전화번호로 연결을 해서 발신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준다고 한다. 그렇게 통화가 성사되고, 전화비는 물론 발신자에게 청구되는 식...??? >_<

전화번호 숫자를 사람에게 불러 줘야 했다니 그 불편함과 번거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겠다.
하긴, 다이얼식 전화기가 도입된 뒤에도 시외 장거리 통화를 위해서는 여전히 교환원을 불러야 했다. 이렇게 말이다. (1968년도 대한뉴스 제 665호)
국내에서 지역 번호가 도입되고 이 절차까지 전국적으로 완전히 자동화가 된 건 1987년경의 일이라고 한다.
전화 교환원 내지 교환수는 타자수, 안내양만큼이나 20세기 중반 옛날에나 있었던 여성 위주의 직업이었다. 그러다 20세기 후반에는 완전히 사라졌다.

또한, 이 시점에서 전화기의 전원 공급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휴대전화야 당연히 배터리가 있어야 하고 주기적으로 충전을 해야겠지만, 유선 전화는 사정이 좀 달라서 전화선이 통신 겸 전원 공급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의 유선 전화기는 전통적으로 타 전자 기기와 같은 100/220볼트 전원 플러그를 갖추고 있지 않았으며, 딱히 전원 on/off 버튼 같은 것도 없다. 그리고 건물이 정전됐을 때에도 전화는 여전히 사용 가능하다. 신기하지 않은가?

물론 유선 전화도 전화선 케이블을 뽑아 버리면 먹통이 되겠지만, 그래도 "수신자의 전화기가 꺼져 있습니다" 이런 말은 유선 전화보다는 무선 휴대전화로 오면서 훨씬 더 자주 듣게 된 에러 메시지이다.
이런 차이가 존재하는 이유는.. 유선 전화에서는 가입된 모든 전화들이 교환국에서 쏴 주는 동일한 전원을 송· 수신용으로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공동 전지식'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하는 게 사실 속 시원하고 편하다.

그런데 전화라는 게 처음 등장했던 시절에는 이런 인프라가 없었다. 그렇다고 전화기가 외부 전원을 따로 끌어다 쓰지도 않았기 때문에 전화를 걸려면 사람이 손으로 소형 발전기를 돌리는 막장짓을 해야 했다. 옛날에 자동차에 스타터 모터가 없던 시절엔 밖에 노출된 엔진 플라이휠을 사람이 직접 힘들게 돌려서 시동을 걸었던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런 특성 때문에 그 시절에 옛날, 특히 군용 전화기는 전기 고문 도구(!)로 즐겨 쓰이기도 했다. 전화선을 통신용으로 안 쓰고 사람 몸에다 꽂은 뒤, 전화기 손잡이를 열나게 돌려 주면 됐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교환국에서 전기를 쏴 주니 전화기에서 전류를 직접 생산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역으로 일반 전원 플러그 대신에 전화선으로부터 전기를 빼돌려 쓰려는 수작이 적발되는 경우가 있다고 그런다.

이건 벼룩의 간을 빼 먹는 짓이다. 전화기가 동작하는 데에나 적합한 최소한의 전압(20~40V 남짓)과 전력으로 누군가가 비정상적인 exploit을 시도하면 그쪽으로 과부하가 걸린다. 마치 송유관에서 비정상적으로 유압이 감소하는 지점을 중앙 통제실에서 감지해서 기름 유출과 절취를 적발하듯, 전화선 전류의 오용도 꼬리가 길면 밟히게 마련이다.

참고로, 1980년대 초반까지는 전화선 플러그 자체가 100V 플러그와 동일한 모양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고 전화기를 진짜 100V 전원 플러그에다 꽂으면 기기가 과전압 때문에 타 버렸다.
그러다가 전화 플러그는 220V 같은 둥근 쇠막대를 가로 세로 두 줄 총 네 개씩 꽂는 형태로 바뀌었다.

전화기의 전원 얘기가 꽤 길어졌다.
아무튼, 저것보다 더 옛날 구식 전화기를 찾자면 거의 1940년대 일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분명 가정용 전화기임에도 (6) 지금의 공중전화처럼 거대하고 표면이 목재(...)이며, 송수화기가 분리되어 있는 그 물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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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사극에서 주재소에서 일본 헌병이 양손으로 송화기를 입에, 수화기를 귀에다 댄 뒤, "무시무시~?" 이러는 장면이 떠오를 것만 같다.
옛날에는 이런 원시적인 전화기조차도 일반 서민이 장만할 만한 물건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텔레비전만 해도 1950년대 말~1960년에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옛날 KBS의 전신 방송사에서 방송을 최초로 시작했을 때는..
주 겨우 4회에 저녁 6시 반부터 9시까지 꼴랑, 겨우 2시간 반씩만 방송을 했다. 그래 봤자 인서울 말고는 전파가 가지도 않았고, 서울 안에서도 TV 수상기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 부유층밖에 없었다. 그 시절에 따로 뉴스 영화라는 게 괜히 필요했던 게 아니었다.

자막 같은 보조 영상 처리는 카메라 바로 앞에다가 스케치북을 비추기도 하는 등 정~말 미흡하고 허접하기 그지없었으며, 물자가 부족하니 대부분 생방송이고 녹화분 백업 같은 것도 없다시피했다. 오늘날 TV의 영향력과 대조해 보자면 그 시작은 심히 미약하기 그지없었는데.. 그것처럼 전화기 역시 아주 귀하고 한편으로 다루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자, 우리는 지금까지 스마트폰에서 버튼/다이얼 유선 전화기, 수동 발전기가 달린 전화기까지 시간 여행을 해 보았다. 전화기의 모양이 워낙 드라마틱하게 변화했기 때문에 요즘 10대 어린애들은 ☎ <- 이게 어째서 왜 전화기인지도 이해하지 못할 지경이 돼 있다. 마치 저장 아이콘이 왜 디스켓 모양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이제부터는 '전화기'보다 더 거시적인 전화 시설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과거에서 현재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다.

1899년 9월에 한반도 땅에 최초의 철도 경인선이 개통한 것보다 몇 년 전.. 1895년 9월에 한성-제물포(= 서울-인천)간에 모스 부호 전신이 개통했으며 1896년에 음성 통화가 되는 자석식 전화기가 왕궁 위주로 설치됐다고 한다.
그 뒤 한성-제물포 사이의 시외 음성 통화가 가능해진 것은 1902년이다. 그래 봤자 전화 가입자는 극소수 부유층뿐이었다.

김 구가 소싯적에 일본인 상인을 죽이고(일명 치하포 사건) 감옥에 갇혔을 때, 고종 황제가 갓 개통됐던 전화로 긴급 명령을 내려 사형 집행을 중단시켰네 뭐네 하는 기록이 백범일지에 적혀 있다. 하지만 아직 1900년도 되기 전이던 그때는 고증상 시외 전화 같은 게 없었다는 반론이 있으며, 한편으로는 고종이 전화 통화가 아니라 전보로 명령을 내린 것이라는 재반론도 있다.

우리나라의 전화의 개통과 관련하여 이런 유명한 논란거리도 있다는 게 흥미롭다. 백범일지 기록이 미주알고주알 세부적인 디테일까지 다 정확하지는 않으며, 최악의 경우 주작이 들어갔을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전화기는 자동차보다야 저렴한 물건이겠지만 이게 집집마다 빠짐없이 보급된 건 생각보다 최근의 일이다. 최소한 박통을 지나서 1980년대 전대갈 시절은 돼서야 마이카 시대와 비슷한 타이밍에 보급됐다.
자동차 등록 대수 1천만 대 돌파가 1997년의 일이고 2천만 대 돌파는 지난 2014년경인데, 전화 1천만 회선 돌파는 1987년 9월경에 이뤄졌다. 2천만 회선 돌파는 더 이른 1993년 11월이다. 1가구 1 전화를 넘어 2전화까지 달성된 셈이다.

그러니 옛날에는 전화번호부 책 한 권으로 시· 도의 전화 가입자 전체 명단을 쭉~ 나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이야 리스트가 너무 방대하고 별 효용이 없으며, 개인 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도 했기 때문에 그런 명단을 만들지 않는다.
또한, 2천만을 찍고 나서 2010년대 이후로는 무슨 4천, 5천만 회선을 돌파했다거나 한 것도 아니다. 인구가 그만치 무한한 게 아니니 2900만 회선 정도에서 정점을 찍은 뒤 3천만은 돌파하지 못하고 이제는 감소 추세라고 한다.

전화번호라는 게 기본적으로 4자리 숫자이고 그 앞에 일명 '국번'이라고 불리는 전화 교환국의 번호가 붙어 있었다. 그래서 전화번호를 부르는 포맷도 이것 영향을 받아서 단순히 'xx 다시(dash) yyyy'가 아니라, 'xx국에 yyyy' 이런 식이었다.
지금이야 국번이라 불리는 앞쪽 번호가 기본이 3자리이고 대부분 4자리까지 차지하여 번호의 자릿수와 대등하다. 하지만 옛날에 전화 회선수가 적던 시절엔 국번이 정말 씨크하게 한 자리밖에 없던 시절도 있었다.

자동차의 번호도 기본이 4자리 숫자리고 앞 번호가 지금은 2자리인데 이제 번호가 부족해서 3자리로 확장하려 하는 것과 비슷하다. 옛날에는 자동차의 앞번호도 한 자리였던 것이 지금의 전화번호와 사정이 비슷해 보인다.

유독 전땅크 시절에 국내에 전화가 폭발적으로 보급될 수 있었던 것은 1985년, 우리나라에서 대용량 전화 전전자(全電子) 교환기를 국내 자체 기술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무선 휴대전화까지 보급된 지금의 입장에서야 구닥다리가 됐지만 그 시절엔 국번 내지 지역번호만 보고는 전국에서 폭주하는 그 어떤 전화 트래픽에도 자동으로 대처하여 회선 교환을 자동으로 해 주는 최첨단 장비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1982년부터 ETRI에서 연구진들이 "이 정도 시간과 자금을 투입하고도 개발에 실패할 경우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각서까지 쓰고 굉장한 모험을 감내하며 개발한 것이었다. 승용차 포니, 경부 고속도로, 한국형 고속철, 포항 제철 등에 필적하는 중요 과업이었다. 거의 이런 근성으로 연구진들을 갈아넣은 끝에 개발에 성공했다.

  • 1950년대 월드컵 한일전에 처음 출전할 때: 왜놈들한테 졌다가는 대한 해협을 헤엄 쳐서 귀국하겠습니다.
  • 포항 제철 처음 만들 때: 이건 우리 선조들의 피눈물이 담긴 일제 피해 배상금을 밑천으로 만드는 거다. 실패라도 한다면 우리 다같이 우향우 해서 영일만 바다에 뛰어내려서 죽자.
  • 전화 교환기: 지금 얘기하는 대로..

어쨌든, 이게 개발이 성공하고 1986년에 상용화된 뒤에야 수동 교환원이라는 직업이 완전히 확인사살 퇴출되었으며, 전국 통합 지역번호라는 게 도입되어 장거리 시외 전화도 돈만 더 들 뿐 편리하게 걸 수 있게 되었다. 총기가 격발· 급탄 절차가 완전히 자동화되어서 원시적인 화승총이던 것이 기관총으로 변모한 것과도 같다.

전자식 교환기가 개발되기 전에는 장거리 전화를 거는 게 불편한 건 말할 것도 없고, 늘어나는 전화 가입 수요 자체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무슨 최신형 아이폰을 구입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집에 전화 개통 예약 대기가 몇 달~1년치까지 밀렸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회선을 하나 추가할 때마다 전화 시설 측면에서 늘어나는 부담이 만만찮았던 것 같다.

그러니 이미 전화 회선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위화감이 커졌으며, 196, 70년대에는 전화 회선을 무슨 명절 귀향 열차 암표처럼 타인에게 편법으로 양도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전기통신법이 개정되어 전화 회선의 타인 양도가 뒤늦게 금지되긴 했지만, 새로 개설되는 회선에만 이 제약이 적용됐기 때문에 일명 백색 전화(양도 가능. 1970년 8월 이전 가입의 기존 전화) 청색 전화(양도 불가..) 촌극이 벌어졌을 정도였다. 당연히 전자의 가격은 폭등했다.

전화 자동화 사업 완료를 기념하는 1987년자 홍보 영상은 다음과 같다. (대한뉴스 제 1651호)
이것 역시 한번 만들고 끝이 아니라 처리 가능 용량을 더 증가한 업그레이드 시스템을 계속해서 개발하여 추후의 회선 증가에도 대처해 왔다.

ETRI에서는 무려 1982년에 국내 최초로 인터넷 연결도 해냈고(전 길남 박사 연구팀),
1988년엔 삼성 전자에서 국내 최초로 벽돌만 한 휴대전화를 만들어 내고.. 그게 나름 국내에서 세계 최첨단을 달린다는 전자 통신 연구진들이 그 시절에 하던 일이었다.

그러다가 2000년부터는 지역번호가 도 단위로 통합되어 더 단순해졌으며, 자동차 번호판은 영업용 말고 자가용 한정으로 지역 표기가 없어졌다.
이런 인프라를 바탕으로 기존 유선 전화와 무선 휴대 전화의 통합은 어떻게 이뤄졌으며, 발신자 표시 같은 기능은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도 개인적인 의문이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지도에 표기되어 있는 도로나 철도뿐만 아니라 비행기의 항로, 그리고 광케이블(땅 속+바닷속) 내지 송유관의 배치는 어찌 되고 관리가 어찌 되고 있는지 같은 것도 궁금해진다. 전화와 통신 기술의 발달도 자동차 같은 교통 분야의 기술 발달과 연계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 같다.

끝으로 하나 더.. 전화기는 지금까지 주로 다뤘던 개인용만 있는 게 아니라 회사 같은 데서 쓰는.. "내선 연결" 인터폰 기능이 있는 약간 특수한 물건도 있다.
스마트폰 모양도 아니고 여전히 구닥다리 유선 버튼식이지만, 대표 전화번호 하에서 각 자리별로 전화를 세부적으로 걸 수 있으며, 남에게 내 전화를 전달하거나 남에게 온 전화를 자기가 대신 받을 수도 있다. 회사에 취직하면 처음에 이런 전화기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사실, 별표*와 우물정# 버튼도 원래 이런 특수한 용도를 위해 만들어져 있다.

텔레비전도 전파를 받는 게 아니라 그냥 고정된 위치만 보여주는 CCTV라는 게 있고, 인터넷 세계에도 사내 전용망인 인트라넷이 있다. 그런 것처럼 전화에도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좀 local한 용도가 있는 셈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9/26 08:36 2018/09/2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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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저장 매체들

우리가 맨날 주머니에 넣고 들고 다니고 들여다보는 자그마한 스마트폰은 예전의 다른 휴대용 전자 기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첨단 기술들이 복합적으로 집약된 결과물이다.
예나 지금이나 빛의 속도가 달라진 게 없고 전자기파의 특성이 달라진 건 없고,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중에서 파는 랜 케이블의 재질이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어째 인터넷 속도는 캐사기급으로 빨라졌는지? 더구나 유선이 아닌 무선까지도 말이다.

마치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원리만큼이나 난 직관적으로 저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HD 동영상 보기 vs 30년쯤 전 모뎀 PC 통신으로 사진 한 장 다운로드 시켜 놓고 머리 감기/담배 피우고 오기...;;
이건 진짜 1950년대 전쟁 폐허 vs 1980년대 올림픽 개최만큼이나 너무 파격적인 차이가 아닐 수 없다.

스마트폰은 불과 2, 30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초고성능 컴퓨터이다. 기존의 PC와는 발전 배경과 주 용도가 다르다 보니 구조적으로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는데.. 매우 중요한 차이는 네트워크 연결에 대한 관점이 아닌가 싶다.
PC는 원래 오프라인 상태로 쓰다가 인터넷 연결은 덤으로 추가로 가능한 구도인 반면, 스마트폰은 애초부터 기지국과의 연결을 전제로 깔고 운용된다. 그리고 PC와 달리 스마트폰은 365일 24시간 내내 켜져 있다.

그래서 현재 시각을 표시하는 기능만 해도 PC는 배터리 기반의 자체 시계가 있으며, 요즘 운영체제들이 주기적으로 시각 동기화 정도나 해 준다. 그 반면, 스마트폰은 기지국과의 연결이 끊어지면 현재 시각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인터넷 연결을 위해서 데스크톱 PC는 대개 유선 이더넷만 지원하고, 노트북 PC는 유선과 무선 와이파이를 모두 지원한다. 그 반면 스마트폰은 무선만 지원하고, 노트북 같은 다른 기기가 자신을 통해서 무선 인터넷 연결을 또 할 수 있게 태더링 기능까지 제공한다. 재미있는 차이점이다.

21세기 최신 과학 기술의 산물인 스마트폰을 가능하게 한 근간 기술을 몇 가지 추려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디스플레이: 옛날엔 PC의 모니터는 크고 무거운 CRT(브라운관) 방식이 대세였다. 그리고 반대로 액정이라 하면 지금 같은 천연색 화면이 아니라, 그 시절 전자 계산기처럼 녹두색 배경에다 기껏 7-segment 숫자 내지 도트가 다 보이는 저해상도 비트맵 글꼴 정도나 찍는 허접한 단색 화면이 전부였다.

(2) 플래시 메모리: 하드디스크는 기계적으로 동작하기 때문에 전력 소모가 많으며 진동과 충격에 취약하다. 즉, 근본적으로 모바일에 친화적인 물건이 아니다.
뭐, 그 대신 스마트폰의 메모리가 PC의 하드디스크와 비슷한 가격으로 수백 GB~테라바이트까지 가지는 못한다. 컴퓨터에서 과연 주 기억장치와 보조 기억장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날이 올까?

(3) 저전력 저발열 CPU: 난 저 정도로 고성능 CPU가 달린 스마트폰이 어떻게 냉각 팬이 없고 웽 소리를 전혀 안 내며 동작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 그지없다.
물론, 오로지 메모리 용량 최적화이지 전력 소모 최적화와는 거리가 먼 구닥다리 x86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그런 스마트폰용 CPU를 만들 수는 없다. 그리고 스마트폰은 대체로 하드웨어 차원에서의 멀티미디어 처리 지원이 PC만치 범용적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 동영상이나 여유롭게 재생하지는 못한다.

(4) 그리고 2차 전지: 스마트폰은 냉장고처럼 24시간 켜져 있는 물건이다. 그런데 그걸 옛날 휴대용 전자 기기들처럼 1.5V짜리 건전지를 주기적으로 갈아 끼우면서 사용해야 한다면 정말 끔찍할 것이다. 게다가 그 물건들은 지금 건전지의 용량이 얼마나 남았는지 같은 것도 나오지 않고, 그냥 예고 없이 픽 꺼져 버리고 안 켜지곤 했다.

철도에서는 전기 기관차가 디젤로는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괴력을 자랑하면서 수십 량의 화차를 견인하는 차력쑈를 펼치고 있다. 1만 마력이 넘는 힘으로 시속 300으로 달리는 KTX도 전기로 달린다.
하지만 이건 레일을 따라 전차선이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지, 배터리만으로 도로의 대형 버스나 트레일러의 동력원이 전기 모터로 대체되는 건 요원한 일이다.

배터리는 콘센트를 꽂을 수 없는 환경에서 인류가 사용하는 기계 중에 인력과 기름을 쓰지 않는 나머지 모든 것들의 동력을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공기 중의 산소를 조달할 수 없는 곳에서 동작하는 기계는, 연료에 산화제가 같이 동봉된 로켓을 사용할 게 아니라면 전기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월면차라든가 심해 잠수함 말이다. 산소는 물론이고 태양 자체로부터 한없이 멀어지는 외행성 탐사선은 아예 원자력 전지를 사용해야 한다.

내가 알기로 배터리는 크게 세 계열로 나뉜다.

(1) 납+황산
그 특성상 자동차(+잠수함) 같은 거대한 동력 기계에서 쓰이지, 최소한 사람이 일상적으로 갖고 다니는 전자기기에서는 볼 일이 없는 물건이다.
용량 대비 재료값이 저렴하지만, 무겁고 자연 방전 잘 되고 충전 속도가 더디며, 일정 수준 이상 방전되면 완전히 망가져서 못 쓰게 된다. (전압이 약해지는 것을 통해 방전을 간접적으로 유추함)
황산 용액은 인체에 위험하지만 그래도 고열로 인한 폭발 위험 같은 건 없다. 자동차가 안 그래도 교통사고와 화재의 위험에 노출된 물건인 걸 감안하면 이건 자동차 배터리로서 큰 장점이다.

(2) 니켈-카드뮴
일명 메모리 효과로 인해, 지금까지도 '완충 완방'이라는 더는 유효하지 않은 편견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주범이다.
한때 노트북 등 여러 전자기기에서 쓰였지만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 것 같다. 카드뮴보다 재료 단가가 비싸지만 용량과 수명 등에서 더 유리하고 메모리 효과 단점도 없는 니켈-수소로 대체되었다.

(3) 리튬 이온
일단 소형 전자기기 정도 규모에서는 이만 한 가성비가 없는 만능 소재이다. 에너지 밀도가 아주 높고 메모리 효과 없고, 그러면서 아주 가벼우니 좋다. 하지만 수명이 짧은 편이며, 폭발 위험과 재료 고갈로 인한 조달 문제가 남아 있다.

모든 배터리들은 기온이 매우 낮은 곳에서는 제대로 동작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참 안타깝지만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공통점도 있다. 충전과 방전을 수백· 수천 회 반복하며 쓰다 보면 최대 충전 가능 용량이 조금씩 감소한다. 그래서 휴대전화나 노트북 PC의 배터리는 몇 년 주기로 교환해 줘야 된다. 화학 반응이 완전히 가역이 아니기라도 한가 보다.

옛날에는 총에 탄창을 교체하듯이 스마트폰의 뒷구멍(?)을 열어서 배터리를 통째로 교체하는 게 가능했는데, 요즘은 주 배터리는 탈착이 가능하지 않은 형태가 됐다. 그 대신 외장형 보조 배터리를 케이블을 통해 연결해야 한다. 이런 관행의 원조는 애플 진영의 아이폰이다. 쟤들은 컴퓨터고 뭐고 온통 일체형으로 만드는 걸 좋아해 왔기 때문이다. 모니터고 본체고 배터리고 몽땅 분리 불가능한 일체형..

이런 2차 전지, 일명 배터리들은 재충전 가능한 화학 전지를 말한다. 배터리와 비슷하면서 다른 물건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축전기(일명 콘덴서)
얘는 화학 반응 없이 찰나의 전기 에너지 자체를 찔끔 저장하고 있다가, 고전압의 전하 형태로 순식간에 찌릿 방출하는 물건이다. 극초소용량에 초고속 충전· 방전되는 배터리와 비슷하다. 그러니 전력을 축적하는 용도보다는 다른 전자 기기 내부의 부품으로 쓰이곤 한다.
스타크래프트에서 프로토스의 실드 배터리는.. 실드를 전기 에너지처럼 취급해서 마치 축전기처럼 보충하는 형태에서 모티브를 딴 듯하다.

(2) 건전지
2차 전지(배터리)의 반의어로서 충전 불가능한 1회용 1차 전지를 가리킬 때 '건전지'라는 용어가 쓰이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단어 자체는 '습전지'의 반의어이기 때문에 충전 가능 여부가 함축되어 있지는 않다. 둘 다 똑같이 화학 전지인데, 자동차 배터리처럼 황산 용액이 출렁거리는 게 아니라 전해액을 종이 같은 데에 흡수시켜서 곧장 줄줄 흐르지 않게 했다는 뜻일 뿐이다.

망간-아연 전지가 대표적인 건전지요 1차 전지이긴 하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2차 전지 중에도 건전지 형태인 물건이 있다.
시계 같은 데에 들어가는 일명 '단추형 소형 건전지'라는 것도 있는데 얘들은 대체로 재충전 가능하지 않은 1차 전지이다. 옛날에는 수은 건전지가 많이 쓰였지만 요즘은 수은이 몸에 안 좋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인해 온도계로도, 건전지로도 모두 퇴출된 지 오래다. 유연휘발유, 프레온 가스, 석면처럼 말이다.

건전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난 개인적으로 건전지를 갈아 끼우면서 써야 하는 무선 마우스는 너무 불편하다. 왜 저런 걸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평소에 충전 가능하게 마우스 거치함이라도 만들어 놓든가 하지..

(3) 연료 전지
얘는 연료를 사용하여 전기를 만들어 내긴 하는데, 연료를 태워서 운동 에너지로 발전기를 '돌리는' 방식이 아니다. 그렇다고 화학 전지처럼 연료(?)의 화학적인 전위차를 이용해 축적돼 있던 전기를 뱉어 내는 것도 아니니 그 특성을 말하기가 좀 뭣하다.
현재로서는 산소와 수소를 이용해서 전기 분해의 정반대 메커니즘으로 물과 전기를 만들어 내는 게 가장 기본적인 형태라고 한다.

말 그대로 연료의 형태이므로 차에 기름 넣듯이 매우 빠르게 충전을 할 수 있고 자연 방전 걱정이 없다는 점, 시끄러운 엔진 가동 없이 전기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아주 매력적이다. 화학 전지 기반의 기존 배터리가 넘볼 수 없는 장점이 있지만 얘 역시 수소의 보관, 백금 촉매의 가격 등 여러 문제 때문에 압도적인 대안 역할은 아직까지 못 하고 있다.
더티한 탄소가 달라붙은 통상적인 탄화수소 계열이 아니라 수소 자체를 곧장 반응시킬 수만 있다면 참 깨끗한 무공해 에너지원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어려운 일이다.

국내에서 현대 자동차가 수소 연료 전지 차량의 연구 개발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휘발유 엔진은 배기가스의 정화, 즉 후처리를 위해서 백금 촉매 변환 장치를 사용하는데, 수소 엔진은 산· 수소의 반응이라는 본업의 촉진을 위해서 백금 촉매를 사용하니 촉매의 비중이 더 클 것이다.

참고로 수소로 달리는 자동차는 수소 연료 전지 기반뿐만 아니라, 수소 자체를 연소시키는 내연기관 기반도 별개로 있다. 개념적으로 서로 다른 물건이다. 비록 반응의 부산물로 둘 다 물이 나오는 건 동일하지만 말이다. 수소는 로켓 엔진에도 이미 사용되고 있는데 그게 연료 전지 기반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연료를 태워서 발전기를 돌리는 방식도 다 같은 게 아니다. 교통수단들이나 다른 소형· 이동식 발전기들은 말 그대로 내연기관이 장착되어서 엔진의 회전력으로 발전기를 곧장 돌리지만, 거대한 화력 발전소에는 외연기관인 보일러와 증기 터빈이 있다. 화력 발전소는 석유보다도 석탄을 더 많이 활용하니 말이다.
과거의 증기 기관차는 석탄과 물을 주기적으로 보충해야 했던 반면, 화력 발전소에서는 한번 터빈을 통과했던 수증기를 수집· 냉각 후에 계속 재활용한다고 한다.

(4) 원자력 전지
원자력 발전소는 열의 근원이 석탄· 석유가 아니라 방사성 원소의 붕괴 에너지라는 차이가 있을 뿐, 물을 끓이고 터빈을 돌려서 전기를 생산한다는 점은 화력 발전과 동일하다. 그에 반해 원자력 전지는 열전 효과(Seebeck effect)를 이용해서 전기를 생산한다.

이렇게 자료를 모아 보니, 통상적인 화학 전지나 교류 발전기, 심지어 광전지 말고도 전기를 비축하거나 생산하는 방식은 다양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오늘날의 원자력 발전은 다 20세기 초· 중반에 발견되고 규명된 '핵 분열' 원리를 이용하며, 그것도 그 에너지 자체를 곧장 전기로 바꾸는 게 아니라 열로 물 끓여서 터빈을 돌리는 용도로 간접적으로만 사용한다.

핵 분열을 넘어 태양 같은 항성들의 동력원이기도 한 '핵 융합'을 인간이 직접 제어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되면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더 안전하게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mc^2의 형태 그대로 뽕을 뽑을 수 있게 된다. 핵 융합의 원료 자체는 그야말로 주변에 무한에 가깝기 때문이다. (예: 중수소는 바닷물..) 사실, 원자 폭탄과 수소 폭탄이 구조적인 차이도 핵 분열과 핵 융합이다.

하지만 핵 융합을 일으키기 위해 필요한 엄청난 고온 고압 환경이 아무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발목을 잡고 있다. 이건 뭐 초전도 상태를 만들기 위한 극저온과 반대편 극단의 영역이 아닌가 생각된다.
핵 융합, 무선 송전, 직류 고압 송전... 가능하다면 요 세 개가 아마 2020년대 인류의 생활을 바꿔 놓을 과학 기술 떡밥으로 남을 듯하다. 과거의 괴수 전기 공학자 테슬라는 무선 송전을 어느 정도 실현도 했던 것 같지만, 직류 고압 송전은 자기 관심 분야가 아니었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8/09/17 08:35 2018/09/1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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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둥글다 =_=;;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해변에서 가까이서 본 광안대교와, (대략 1.2km 정도 떨어짐)
저 멀리 일본 쓰시마 섬의 한국 전망대에서 본 광안대교(대략 50km)는 외형상 서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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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쪽에서 본 교량은 해수면 수평선의 아래로 푹 꺼지듯 내려앉아 있음이 명백하다.
굳이 이 사진 말고 어느 풍경 사진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원근법 때문에 작게 보이는 게 아니라는 건 교량 위 아래의 기둥 크기 비율을 고려하면 금방 알 수 있다. 망원경으로 보더라도 아래로 꺼진 건 명백하게 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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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광안리 해수욕장 해변은 말 그대로 해수면에 거의 근접하는 낮은 고도인 반면, 쓰시마 섬에 소재한 '한국 전망대'는 해발 70m에 달하는 언덕 위의 고지대이다! 그럼 상식적으로 광안대교가 밑동까지도 잘 보여야 정상일 것이다. 참고로 광안대교의 도로는 해발 45~50m 남짓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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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차이가 왜 발생할까?
답은 하나, 지구는 둥글기 때문이다.
배가 저 멀리 사라질 때도 그냥 중앙의 소실점 근처에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수평선 아래로 내려앉듯이 사라지는데..
그 현상만 갖고는 flat earther들이 선뜻 수긍하질 않으니, 이럴 땐 일개 선박보다 훨씬 더 크고 확실한 증거인 광안대교 풍경을 제시해 보자.

이 문제 갖고 고민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특히 성경 믿고 신의 창조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말이다.
과학으로 검증이나 재현 불가능한 영역에 대해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해서, "세계 지도가 평면이니까 지구도 평면이다" 수준의 유체이탈이나 마찬가지인 아무말을 지지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예수님 부활이 사실인 것만큼이나 아폴로 승무원들이 달에 다녀 온 것도 사실이고, 지구가 둥근 구인 것도 사실이다. 그건 창조· 진화라든가 성경의 무오성하고는 아무 관계 없다.
"땅의 원"(circle of the earth - 사 40:22)이 지구가 둥글다는 말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땅의 네 모퉁이"(four corners of the earth - 계 7:1)는 지구가 평면이라는 말이 아니다. 성경이 그 문맥에서 직접적으로 말하는 바는 그런 게 아니다.

그리고.. 세상을 너무 음모론 괴담스럽게 볼 필요 없다. 세상이 영적으로 아무리 악해도 멀쩡히 눈과 귀로 관찰 가능하고 재현 가능한 것을 호락호락 조작하고 사기를 치지는 않는다. 지구 모양을 갖고 사기를 쳐서 도대체 누가 무슨 이득을 얼마나 볼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늘 하는 얘기가 있는데, 세상 다른 현상은 다 음모론적으로 접근한다 해도 최소한 (1) 전기차가 망한 것과 (2) 인간이 과거에 달이 간 적이 있는지, 갔다면 지금은 왜 달에 더 안/못(?) 가고 있느냐 하는 건 음모론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현상이다.

(1)은 무슨 석유 회사의 외압 로비 같은 거 전혀에 가깝게 없으며, 있다 해도 전기차 몰락의 주 요인이 결코 아니다. 그냥 전기차가 배터리의 무게와 가격, 항속 거리와 충전 시간이라는 고질적인 문제 때문에 기름차의 기술 발달을 따라가지 못해서 망했을 뿐이다. 전기차는 처음에 간단하게 만드는 게 기름차보다 쉬웠을 뿐이지 그 이후로는 실용화가 한계에 직면한 것이다. 디젤 엔진 기반의 대형 버스와 트레일러가 배터리 기반 전기차로 가능할까?? 21세기에도 어림도 없는 일이다.

(2) 역시.. 천문학적인 발사 비용 대비 효과가 없으니 더 안 보내는 것일 뿐이다. 허무하게 들리지만 현실에서 이것보다 더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
우주 관련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꼭 미국 NASA만 세상 모든 정보를 움켜쥔 빅 브라더스 흑막인 것처럼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도대체 왜 소련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미국 최대의 경쟁자요 어떻게든 미국의 행보에서 약점 잡을 것 찾느라 목숨을 걸었던 소련조차 미국이 달에 사람을 보냈던 걸 빼박 다 ㅇㅈ했구만.. 설마 미국과 소련이 나란히 같이 짜고 조작극을 벌였다고 믿으시는가? 애초에 NASA 자체가 소련의 스푸트니크 쇼크에 멘붕 하고서 미국이 허겁지겁 설립한 연구 기관일 뿐인데 말이다.

지금은 그 냉전이 끝났다. 컴퓨터가 처음으로 대중화되고 정보화 시대네 뭐네 말이 나오자 이번에는 666이 어떻고 모든 것이 컴퓨터에 의해 중앙 통제되고 정보 접근성으로 인한 신분 계층 차별이 일어나고 모든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게 될 거라는 식으로 괴담이 왕창 나돌았다.
난 그 심정은 이해한다. 198, 90년대라면 나도 그런 쪽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2010년대의 뚜껑을 열어 보니 세상은 그렇게 막장으로 무식하고 폐쇄적이고 흉물스럽기보다는.. 훨씬 더 상업주의 자본주의적으로 돈의 논리를 따라 개방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양의 기술과 정보들이 부자들의 전유물이 되기는커녕, 대중들에게 개방되고 무료로 내지 아주 저렴하게 풀렸다. CCTV, 블랙박스, 중앙집권 전산화 덕분에 치안, 행정과 금융이 정말 투명하고 깨끗해지고 신속· 공정해졌다.

남극과 달은 은폐는커녕 표면의 스트리트 뷰가 나도는 지경이다!
아폴로 우주선을 제어하던 컴퓨터 프로그램의 어셈블리어 소스가 github에 공개되어 있다. 설마 그게 다~~ 주작 조작이겠는가?

물론 그것들이 마냥 자선행위 차원에서 풀린 건 아니며, 그 투자 비용은 더 교묘한 방식과 다른 형태로 어떻게든 회수되긴 할 것이다.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던 기술과 집중되었던 자본이 나중에는 인간성을 말살하는 쪽으로 얼마든지 악하게 쓰일 수 있으며,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 가능성은 본인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게 언제 어떤 형태로 구체적으로 실현될지 우리로서는 선뜻 추측할 수 있지 않다. 다만 한 가지, 그 엄청난 기술들이 대중들을 통제하여 고작 아폴로 계획 자작극이나 지구 평면이라는 엄청난 팩트(?)를 은폐하는 데 동원되어 쓰이고 있다고 믿는 건... 성경을 믿는 것보다 정말 엄청나게 더 큰 믿음을 필요로 하는 게 틀림없다.

고대 그리스의 에라토스테네스는 같은 날 같은 정오 시간대에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그림자 길이가 차이가 난다는 걸 발견하고는 그걸 토대로 지구의 둘레를 추측 계산해 내기까지 했다. 이 때는 성경의 구약과 신약 중간 시기이던.. 그야말로 엄청난 옛날이다. 기구 하나조차 띄울 여력이 안 되던 시절에 지구가 둥근 건 너무 당연한 귀결이고, 그 둘레를 오늘날의 측정값과 비교해 봐도 상당히 정확하게 알아맞힌 것이다.

컴퓨터, 우주선, 휴대전화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지금으로부터 2천 몇 백 년 전의 사람보다도 통찰력이 뒤쳐져서야 되겠는가?
세상 자녀들이 빛의 자녀보다 더 지혜롭게 머리 잘 돌아가는 분야가 있다는 건 성경도 인정한 팩트이다(눅 16:8). 그걸 굳이 부인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07 08:33 2018/06/0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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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세카이 2018/07/14 01:08 # M/D Reply Permalink

    제가 이걸 수학적으로 계산해 보았습니다
    저는 수학과 물리를 좋아하는 이과생이었고
    수학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도 있었으며
    대학에서는 공업수학과 4대역학(열역학, 재료역학, 유체역학, 동역학)을 공부했었습니다

    initial condition :
    1) 현대 과학에서 말하는 대로
    지구는 반지름이 6377000 m인 구라고 가정
    2) 쓰지마 섬의 한국 전망대에서 광안대교까지 거리는 50000 m라 가정(네이버 지도에서 보면 실제는 56000 m 정도)


    1st. 쓰지마섬의 한국 전망대에서 관측자의 높이를 해발 0 m 라고 가정했을 때
    50000 m 떨어진 거리의 광안대교는 해발 몇 미터부터 보일 것인가?

    고1 수학에서 원의 접선의 방정식과 피타고라스 정리를 이용하면 이건 금방 풀 수 있습니다
    제 연습장에는 완벽하게 풀이했지만 타자로 치기 번거로운 관계로
    간단한 풀이방법과 결과만 소개하고 실제로 맞는지는 직접 계산해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저는 공학용 계산기를 사용했으며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구가 둥글면
    해발 196 m부터 보이게 됩니다
    즉 광안대교가 보여서는 안 됩니다


    2nd. 쓰지마 섬의 한국 전망대에서 관측자의 높이를 해발 70m라고 가정했을 때
    50000 m 떨어진 광안대교는 해발 몇 미터부터 보일 것인가?

    원 밖의 한 점에서 그은 접선의 방정식입니다
    첫번째 풀이보단 많이 복잡하지만 이것도 고1 수학 수준입니다

    지구의 중심을 xy좌표의 (0,0)으로 하고 반지름은 6377000 입니다
    쓰지마 섬의 한국 전망대에서 관측자의 높이(원 밖의 점)를 (0, 지구 반지름 + 해발고도)
    즉 (0, 6377070)으로 가정합니다

    연습장 3쪽 정도 나왔는데
    31.743 m부터 보여야 합니다
    광안대교 도로의 높이가 50미터라고 하면 30/50즉 해수면에서 도로까지 거의 60%에 해당하는 지점이
    안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참고로 해발 70미터에서 해수면(지구의 표면)이 보일 수 있는 최대 거리는 29879m입니다

    <풀이법>

    해발 고도를 0m라고 가정 했을 때

    "반지름 * 각도 = 호의 길이"를 이용하여 호의 각도를 구하고
    빛이 직진하며 이 각도로 반지름과 탄제토 각도를 곱하고
    피타고라스 정리를 활용하면
    쉽게 구할 수 있으며

    해발 고도를 70m라고 가정했을 때

    직선의 방정식 y = mx + 6377070
    원의 방정식 x^2 + y^2 = 6377000^2

    직선이 원의 방정식에 접하는 기울기를 찾고
    (제가 찾은 것은 m = -4.685511425 * (10^-3)
    그러므로 직선의 방정식은 y = -4.685511425 * (10^-3) x + 63377070)
    원의 중심에서 광안대교까지 그른 직선의 방정식
    Y축에서 시계방향으로 (50000/6377000) 라디안 만큼 기울어진 직선
    즉 기울기 tan(pi/2 - 50/6377)
    직선의 방정식은 y = tan(pi/2 - 50/6377) x
    를 연립하고
    (0, 0)에서 부터 거리를 구하고
    이것에 원의 반지름을 빼면 됩니다

    <사람들이 직접 계산해 보지 않는 이유>
    심리적인 건데 요즘 과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필수로 극한의 개념을 배우게 되는데
    미분과 적분이나 테일러 급수전개나
    역학에서 미소 변화에서 tan a = a로 근사값으로 계산해 버리는데
    이게 지구도 그렇게 거대해서 극한의 개념이 적용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사실 지구가 크다고 해도 극한의 개념이 적용될 정도로 크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고1 수준의 수학 문제니까
    사무엘님도 충분히 계산해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2. 신세카이 2018/07/14 02:48 # M/D Reply Permalink

    아리스토텔레스의 지구 크기 계산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비친 그림자의 길이 차이로
    지구의 둘레의 길이를 측정했다는 것은 정말 유명한데요

    처음에 전제 조건을 다는 것이
    태양이 무한히 먼 거리이고 빛에 평행하게 들어온다고 가정을 하는데

    실제로 태양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멀지 않고
    빛이 직진은 하지만 평행하게 들어오지 않는다면
    지구가 둥글지 않아도 그림자의 길이에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구글에서 "햇살 구름"이라고 검색해서
    여러 이미지들을 보면
    구름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절대 평행하게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사무엘 2018/07/14 06:56 # M/D Permalink

      안녕하세요! 신세카이 님과 지금까지는 주로 정치· 종교 쪽 얘기만 나눴던 것 같은데 이 분야 얘기는 완전 처음이네요. ^^ 자세한 보충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이공계이신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저도 이 글을 쓰면서 삼각함수 동원해서 광안대교의 예상 높이를 혼자 얼추 계산해 보기도 했습니다. 부산과 쓰시마 섬에서 계산으로 얻은 높이 차이는 님의 말씀처럼 100수십 m대의 값이 나왔었습니다. 저는 input에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196보다는 작은 값을 얻었던 걸로 기억하네요.

      예전에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갔을 때는 얘들은 도대체 태양열을 받는 각도가 얼마나 차이가 나서 한국보다 더운가 계산하려 '시도'한 적도 있답니다. (이건 지구의 자전축 기울기부터 시작해서 계산에 필요한 input 값들을 정확하게 얻는 것부터가 어려워서 포기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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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과 공기의 차이

1기압에 온도가 20도대인 지구의 공기는 사람이 활동하기 쾌적한 환경이다. 기온이 체온에 근접하면 체열을 밖으로 제대로 내보낼 수가 없어서 더위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20도대의 물은 수영을 하기에 여전히 꽤 차가운 물이다. 물의 온도는 체온에 근접해야 그럭저럭 미지근하고 물놀이를 할 만하다고 여겨진다.

7~80도대, 심지어 그보다 더 뜨거운 공기는 사우나에서 겪을 수 있으며 잠깐 정도면 버틸 만하다. 그러나 같은 온도의 물은.. 닿는 즉시 화상을 입는 뜨겁고 위험한 물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온도라는 건 도대체 과학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사실, 인체 내부는 온도의 변화에 의외로 취약하다. 체온이 정상보다 단 몇 도만 더 높거나 낮아지면 사람은 정상적인 활동을 못 하고 앓아눕게 된다.

저온에서는 세포의 물질대사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한다. 사람이 추운 실외에서 이불 같은 거 안 덮고 그냥 자다간 그대로 동사하는 수가 있다.
그리고 반대로 고온도.. 뇌를 구성하는 단백질은 40도 정도만 돼도 생화학적으로 변성되고 맛이 가 버린다고 그런다. 여기에는 내부의 감기 같은 질병 때문에 열이 나는 것, 혹은 외부의 혹독한 무더위 때문에 열이 나는 것(열사병..)이 모두 포함된다.

특히 소아 때 이런 열병을 오랫동안 겪는 건 굉장히 치명적인지라, 병이 나은 뒤에도 머리와 몸에 영구적인 장애가 남기 십상이다. 헬렌 켈러가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나라는 한여름에 어린이집 교사와 운전사의 부주의로 인해 어떤 아이가 한여름 땡볕에 더운 차내에서 몇 시간째 방치되어 혼수 상태에 빠진 사고가 몇 건 나곤 했는데 그 애가 지금은 어찌 됐나 모르겠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더 끔찍한 얘기를 꺼내자면, "왕창 고온인 공기" vs "온도 자체는 그리 높지 않지만 열전달 효율이 넘사벽급으로 높은 유체" 이 둘의 차이가 따지고 보면 화형과 팽형의 차이를 만든다. 새까맣게 탄 시체도 끔찍하지만, 검지만 않을 뿐 뻘겋게 익고 퉁퉁 불어 터진 시체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뜨거운 공기든 뜨거운 물이든, 작열통은 의학적으로 볼 때 신체 절단과 더불어 인간이 느끼는 가장 끔찍하고 괴로운 고통으로 여겨지고 있다. 성경에서도 지옥이 괜히 결코 꺼지지 않는 "불"로 묘사되는 게 아니다. 주토피아에 나오는 것처럼 "ice them"이면 차라리 양반이지, 진짜 본좌는 "burn them"인 것이다.

수은주가 달린 일반 온도계를 펄펄 타는 불에다 던져 넣으면 재질에 따라서 불타거나 녹고 깨지고 파괴될 것이다. 그러나 펄펄 끓는 물에 넣어서 100도대의 온도를 측정하는 것 정도는 문제가 없다. 이걸 생각하면 단백질로 구성된 인체(생체)만이 그런 저고온(?)에 굉장히 취약한 재질이라는 걸 유추할 수 있다. 고온의 공기는 그나마 고온의 여파가 끼치는 '정도'가 덜한 매체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뿐이다.

2. 습도

앞에서 물의 온도와 공기의 온도 얘기가 나왔는데.. 사실은 사람이 공기 중에서 더위나 추위를 느끼는 것에는 공기의 온도뿐만 아니라 잘 알다시피 공기에 포함된 습기도 굉장히 큰 기여를 한다. 이런 차이 때문에 날씨가 더워도 굉장히 기분 좋게 더울 때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낮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겨 40도에 근접한다면, 직사광선은 굉장히 뜨겁고 따가우며 땀 나고 더운 게 맞다. 실내에서는 에어컨을 틀어야 한다.
그래도 기온만 높지 습도가 별로 높지 않다면 상황이 낫다. 밖에서 조금만 바람이 불거나 그늘에 들어가면 금세 시원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해가 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온이 굉장히 신속하게 내려간다.

이와 반대로 습도가 높으면.. 낮 기온이 30도를 채 넘지 않고 심지어 해가 안 나더라도 푹푹 찌며 쏟아지는 땀을 감당할 수 없어진다. 땀이 나도 잘 증발하지도 않기 때문에 불쾌지수가 최고로 치닫는다.
이런 날이 꼭 밤에도 기온이 내려가질 않고 열대야가 계속돼서 사람들을 고통에 시달리게 만든다. 에어컨은 온도가 아니라 습도를 낮추는 기능 때문에 더 필요하다.

습도라는 건 공기 중에 존재하는 수증기의 농도를 말한다. 물은 1기압에서 섭씨 100도에서 끓기 시작해서 몽땅 수증기로 바뀌며, 물의 끓는점이나 어는점은 잘 알다시피 공기의 압력에 따라 달라진다(고산 지대에서는 물이 더 낮은 온도에서 끓음). 물이 공기를 녹이고 있는 것만큼이나 반대로 공기도 수분을 함유할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100도보다 낮은 온도에서도 공기와 접촉하는 수면에서는 일부가 수증기로 증발하기도 한다.
이건 안개 내지 구름과는 다른 개념이다. 그건 수증기가 아닌 미세한 물 알갱이가 공기 중을 떠다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순수한 회색과 흑백이 교대로 촘촘하게 늘어선 디더링의 차이와도 비슷하다. 물이 어떻게 이런 두 형태로 모두 존재할 수 있는지 난 완전히 직관적으로 이해를 못 하겠다.

공기가 머금을 수 있는 습기의 한계라는 게 공기의 온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습도에는 절대 습도와 상대 습도라는 개념이 따로 존재한다. 물이 온도가 올라갈수록 기체를 녹이고 있기 어려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기 역시 온도가 올라갈수록 습기를 품기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같은 양의 수분을 머금고 있더라도 온도가 올라가면 상대 습도는 더 올라간다. 겨울이 전반적으로 건조하고 여름이 전반적으로 습한 것도 이런 상대 습도의 차이 때문이다.

3. 진공

그럼 물과 공기가 있는 상황이 아니라, 반대로 물과 공기가 전무하여 진공에 가까운 우주로 나가면 온도라는 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솔직히 말해 이 역시 난 잘 모르겠고 상상이 잘 안 된다.
공기 제로, 압력 제로, 습도 제로이다 보니 거기는 햇볕을 받느냐 마느냐에 따라 뻑하면 영하 1~200도와 영상 수백 도를 오르내리게 된다. 단지 그 온도의 여파가 지구 표면보다 훨씬 덜하다. 진공인 게 인체에 훨씬 더 해롭지, 온도 자체가 사람을 즉시 태워 죽이거나 얼려 죽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 우주 공간에서 온도가 영향을 전혀 안 끼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위성은 뱅글뱅글 돌면서 몸체가 태양열을 골고루 받게 자세를 잡는다. 이거 조절 잘못해서 배터리가 과열이라도 되면 터지는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또한, 우주 공간에서 수성이나 금성 같은 내행성으로 날아가는 탐사선은 커다란 양산처럼 생긴 차폐막을 앞에 두르는 형태로 설계되었다.

달에 착륙했던 아폴로 우주선 승무원들 역시 직사광선을 피해서 그늘 또는 저녁 시간대를 선택해서 주로 활동했다.
그러니 이런 정황들을 종합했을 때, 진공에서의 온도라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갈피를 잘 못 잡겠다. 일단 진공이라면 앞서 언급했듯이 각종 물질의 상태가 바뀌는 온도(끓는점, 어는점??)부터가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는 형태로 바뀌어 버리기도 하니 말이다.

참고로, 사람이 우주에 맨몸으로 있으면 체내의 공기가 유출되고 체액이 끓어오르면서 신체 상태가 잠수병 이상으로 엉망진창이 되며, 수 분 이내로 의식을 잃고 곱게 질식사한다. 그렇다고 해서 눈알이 튀어나오거나 몸이 풍선 터져듯이 터지면서 끔살 당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잘 훈련받으면 수 초 정도 동안 맨몸으로 우주 공간에 노출되고도 살 수 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진공은 무중력과는 별개의 조건이다. 진공은 쇠구슬과 깃털이 똑같은 속도로 떨어지는 것이고, 무중력은 둘 다 둥둥 떠다니는 것이다. 물론 둘 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상황인 건 마찬가지이다만... 우주 개발 초기에 선진국에서 벌어졌던 여러 테스트· 훈련, 생체 실험-_- 중에는 진공을 버티는 것이 당연히 포함돼 있었다. 원심 가속기나 자유 낙하를 통해 흉내 냈던 무중력과는 별개의 코스이다.

4. 열이 전달되는 원리

온도를 변화시키는 열이 전파되는 메커니즘으로는 "대류, 전도, 복사"라는 세 종류가 있다. 이 개념 자체는 초· 중딩 과학 시간에 진작부터 배운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굉장히 심오한 개념이다. '열전달'은 전자기학, 뉴턴 역학, 양자 역학만큼이나 물리학의 엄연한 한 분야이고 공대에서 전공 필수 과목이다.

'대류'(convection)는 유체(주로 기체) 내부에서 온도의 차이가 나는 분자들이 물리적으로 직접 상하로 움직이고 돌면서 열이 골고루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 바닷가에서 바람이 끊임없이 부는 것(땅과 물의 엄청난 비열 차이!), 화재 현장에서 불꽃이라든가 뜨거운 공기가 굳이 위로 솟구치는 것이 모두 대류 현상이다.
그러니 이건 가장 거시적인 규모의 열 전달이다. 분자간의 온도 차이가 아니라 단순 농도· 밀도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확산'과는 다른 현상이다.

열은 매체가 저렇게 몸소 움직이지 않아도 전해질 수 있다. 펄펄 끓는 냄비의 영향으로 냄비 손잡이라든가 안에 넣어 뒀던 국자까지 뜨거워지는 게 대표적인 예이다. 금속의 분자가 직접 움직일 리는 없으니, 이때는 직접 이동이 아니라 일종의 열역학적 '진동'이라는 미시 현상을 통해서.. 마치 소리가 전해지듯이 열이 전해진다. 이 현상을 '(열)전도'(thermal conduction)라고 한다.

진정 골때리는 건 가장 미시적인 현상인 '복사'(radiation)이다. 열은 전자기파의 형태로 아무 매질· 매체가 없는 곳에서도 퍼져 나가서 전해질 수 있다. 적외선이라고 다들 들어 보셨을 것이다. 애초에 전자기파는 파동 같기도 하고 입자 같기도 한 이상한 물건이니 말이다. 저 복사는 copy나 duplication과는 아무 관계 없고, '내리쬠'이라는 뜻이다.

'복사'라는 게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우주 공간에서도 태양열이 지구로 전해질 수 있다. 음파(소리)는 순수한 진동일 뿐이기 때문에 공기가 없는 곳에서는 퍼져 나갈 수 없고 속도도 훨씬 더 느리지만, 복사열은 위상이 빛과 같다.
전자레인지는 그릇은 별로 데우지 않고 안의 음식만 데우는 것이 무척 기가 막히고 신기한데, 이것만 봐도 열은 대류나 전도 같은 물리적인 접촉이 아니어도 직통으로 전해지는 게 가능함을 알 수 있다. 복사는 도선의 전기 저항으로 인해 발생하는 열하고도 물론 다른 개념이다.

물을 끓이면 왜 물이 가만히 있질 않고 보글보글 사정없이 요동치는지, 무슨 근거와 원동력으로 저러는 걸까? 이건 열전달 내지 물질의 상태 변화와 관련된 여러 미시적인 현상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그리고 지표면에서 물과 공기뿐만 아니라 그 밑으로 땅 속에서도 물질이 끊임없이 순환하고 화산· 지진 같은 지질 현상이 발생하는 원동력도 따지고 보면 맨틀의 대류 같은 열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구의 자전은 아주 서서히 느려지고 있지만, 지구 내부는 지열 때문이든 자기장 때문이든 활동이 여전히 왕성하고, 옛날보다 오히려 더 활발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지구 발 밑에 지옥이라는 뜨거운 장소가 있다면, 지구의 내부 구조와 양상은 타 행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5. 열병합 발전소 -- 열전달과 폐열 재활용의 실제 사례

발전소 중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수력· 화력이나 원자력 말고 '열병합'이라는 놈이 있다. 얘는 사실 화력 발전의 파생 변종이다.
물을 끓이고 증기 터빈을 돌려서 발전기를 가동하려면 열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이 열이라는 게 열역학 이론적인 한계 내지 기술의 한계로 인해 전부 전력 생산에 쓰이지는 못한다. 거의 과반이 폐열로 버려진다. 딱히 재활용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8~90도에 달하는 뜨거운 물이 한 트럭이 있다 해도, 그것만으로 아무리 용을 써 봤자 100도 이상으로 실제로 펄펄 끓는 물을 한 컵만치라도 만들어서 증기 기관을 굴릴 수는 없잖은가? 그런 맥락에서 말이다.

전체 열량의 합이야 물론 90도짜리 물 한 트럭이 100도짜리 물 한 컵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외부에서 에너지를 소비하여 열을 가해 주지 않는 한, 물의 온도 자체를 스스로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건 열역학적으로 자연스러운 방향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열병합 발전소는 이런 어중간한 열이 담긴 온수를 수집해서 난방용으로 주변 지역에 공급해 준다. 전기만 파는 게 아니라 열도 판다. 전동차에 회생 제동이 있다면 화력 발전소에는 이런 열병합 시설이 있는 셈이다.

그럼 처음부터 모든 화력 발전소에다 열병합 시설을 추가하면 되지 않나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열이라는 건 폐열을 기껏 수집한다고 해도 무슨 태양 복사열처럼 간편하게 전해서 활용 가능한 게 아니다. 열이 담긴 물을 수송할 수 있는 거리에 큰 한계가 있다. 쟤들은 대류, 전도, 복사가 아니라 송유관처럼 '열배관'이라고 극한의 보온 시설이 갖춰진 비싼 특수 수도관에다가 온수를 공급하는 형태로 열을 전한다.

그러니 열병합 발전은 온수를 곧장 중앙 집중 난방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도시 위주로 소규모 화력 발전+열병합 시설을 갖춘 '지역 난방 공사'의 형태로 운영된다.
2018년 현재 경의선 곡산 역 근처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열병합 발전소의 자체 구비가 아니라 정식 화력 발전소와(한국 동서 발전 소속) 연계하는 대규모 열병합 발전소가 있다. 전국 유일의 인서울 화력 발전소인 당인리 발전소와 비슷한 격의 명물인 듯한데, 얘들도 얼마 못 가 더 외곽으로 이전하지 싶다.

그나저나 원자력 발전소에서도 폐열이 담긴 온수(원자로 냉각용)가 나오긴 한다. 그렇다고 해서 원자로를 소형화해서 대도시 근처의 지역 난방 공사를 운용할 수는 없으니(..; ) 이런 온수는 양식 같은 다른 용도로 활용되는 편이다. 원자력 발전소는 우주 기지와 마찬가지로 육지에서 최대한 떨어진 바닷가에 건설된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말이다.

6. 차든지 뜨겁든지

"나는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이건 성경에서 예수님 말씀의 직접 인용일 정도로 유명한 문구(계 3:15)이다.
물론 성경의 저 문맥에서 제일 좁은 뜻은 양자택일하라고 해서 진짜로 '차가운 극단'으로 나가지 말고 "영이 뜨거운 가운데"(롬 12:11) 주님을 섬기라는 책망 내지 독려이다. "그럴 거면 차라리 나가 죽어!" / "학교 때려치우고 공장이나 가!" 이런 부모나 선생의 막말 꾸중이 진짜로 애더러 공장 가거나 나가 죽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듯이 말이다.

하지만 뭐, 좀 더 넓게 비유적으로는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이거 아니면 저거, 모 아니면 도 진영을 확실하게 골라서 화끈하게 살아라, 박쥐 같은 밍숭맹숭 회색분자 기회주의자가 되지 마라"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앞서 비유를 들었던 것처럼.. 폐열만 어중간하게 담긴 미지근한 물은 아예 펄펄 끓을 정도로 뜨거운 물이나, 얼음이 껴 있을 정도로 차가운 물에 비해서 효용이 낮다. 찬물과 더운물을 섞어서 미지근한 물을 만들기는 쉽지만, 미지근한 물이 저절로 찬물+더운물로 분리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열을 가하든 냉각을 시키든 에너지를 써야 한다. 이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것만큼이나 절대적인 사실이다.

그러니 "차든지 뜨겁든지 하길 원한다"란, "정체되거나 뒤쳐지지 말고 늘 전진하길 바란다", "아래로 떨어지지 말고 위를 향해 오르길 바란다" 같은 말을 "열역학적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쪽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라는 비유를 동원해서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 밖에..

  • 학창 시절에 열역학을 더 열심히 공부했으면, 비빔면을 끓여 먹을 때 이 정도 양은 물을 몇 번 헹궜을 때 면을 완전히 식힐 수 있을지를 숫자와 수식으로 모델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물에 대해서는 "10리터를 한꺼번에 끓이는 것보다 5리터부터 먼저 데운 뒤 나머지 5리터를 추가로 부으면 10리터 전체를 더 빨리 끓게 할 수 있다.", 심지어 "뜨거운 물이 더 빨리 언다" 같은 믿기 힘든 말도 존재한다. 물에다 날씬한 돌을 잘 던지면 수면에 몇 번 통통 튀는 것도 가능한데, 그것만큼이나 본인은 저런 현상은 어떻게 과학적으로 가능한지 입증할 만한 지식이 부족하다.

  • 한국어는 '덥다'와 '뜨겁다', '춥다'와 '차갑다'의 차이가 존재하는 게 꽤 절묘한 것 같다. '덥다/춥다'는 사람이 느끼는 관점이고, '뜨겁다/차갑다'는 온도를 내는 해당 객체의 관점이다. "난 지금 덥다" / "난 뜨거운 남자다"처럼 말이다.
  • 물리라는 학문은 계속 미시적으로 파고들다 보면 결국은 역시 '파동과 입자'로 귀착된다. 그리고 직선이나 포물선이나 갖고 노는 게 아니라 결국은 삼각함수의 형태로 표현되는 진동을 논하게 된다.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한 미시세계 입자들의 끊임없는 불규칙한 운동.. 일명 '브라운 운동'은 어떻게 벌어지는지, 걔네들은 무슨 원동력으로 계속 운동하는지, 텔레비전의 백색잡음 같은 움직임도 왜 발생하는지.. 따지고 보면 참 궁금한 게 많다. 이런 것도 열역학과 전혀 무관한 게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3/19 08:36 2018/03/1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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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여 년 전, 본인이 MMORPG 게임을 개발하던 회사에서 병특 복무를 하던 시절에는 주된 업무 주문이 기존 제품을 WOW와 더 비슷하게 고치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 WOW가 인기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은 회사에서 어쩌다 보니 안드로이드 앱을 개발하게 됐는데, 주된 작업이 기존 제품을 다른 유명 SNS 앱과 더 비슷하게 고치는 것이다.

세상은 유행이 변하고 이런 식으로 돌고 도는 것 같다. 20년쯤 전에 Codeguru 같은 사이트에서 MFC CWnd 클래스를 상속받아서 온갖 기발한 UI 컨트롤 내지 MS Office 스타일의 도구모음줄을 만들어 올리고 테크닉을 공유하는 게 유행이었다면.. 지금은 안드로이드에서 더 현란하고 기가 막힌 화면 전환, GUI 컨트롤을 만드는 게 유행의 뒤를 물려받아 있다. 또한 소스포지라든가 다른 사이트들은 다 망하고 개발자 관련해서는 오로지 스택 오버플로우와 github만이 본좌이다..

요즘은 소프트웨어로 엔드 유저로부터 수익을 내는 방식이 "특정 기술과 기능, 컨텐츠 자체에 대한 접근성" 자체는 아니어 보인다. 기술과 기능, 컨텐츠는 이제 너무 넘쳐나고 저렴해진지라, 정말 획기적이고 새로운 게 아니면 그닥 변별이 안 되는 것 같다. id 소프트웨어가 1990년대 옛날처럼 없던 그래픽 기술을 새로 개발하고 선보이면서 주목받지는 않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그 대신 요즘은 다들 모바일에서 다들 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드는 대가로 수익을 내는가 보다. 이모티콘, 아바타 같은 것 말이다.

2.
카카오톡에서 그냥 있으니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기본 이모티콘들을 지금까지 써 왔다.
라이언인지 뭔지 알 게 뭐야? 난 그냥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의 '쿠마키치'=_=;; 짝퉁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알고 보니 사자였구나. 갈기 없는 숫사자랜다~ ㅋㅋ

카카오프렌즈 이게 사이버 공간을 떠나서 봉제인형과 각종 캐릭터로 로얄티 받으면서 그야말로 돈을 빗자루로 쓸어담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둘리· 호돌이처럼 옛날에 히트 쳤던 걸 제외하면 캐릭터 지지리도 못 만드는 나라인 걸로 본인은 알고 있는데..-_-;; 어째 이걸로도 돈줄을 성공적으로 텄구나.

영화나 만화처럼 뭔가 스토리가 있는 매체에서 유래된 캐릭터가 아니고,
앵그리버드의 동그랗고 눈썹 짙은 빨간 새처럼 인기 게임에서 유래된 것도 아니고..
그저 채팅 앱의 이모티콘에서 유래된 캐릭터가 이렇게 초대박을 치리라고는 난 절대로 예상할 수 없었다.

한낱 아스키 아트에 불과하던 이모티콘이란 게 그 다음으로는 찐빵 얼굴에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기호, 픽토그램 수준이었다가 이제는 거의 움짤 수준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리고 이게 말을 직접 하기 난감할 때, 얼굴 표정과 므흣한 감정을 대신 전달하는 용도로 생각보다 유용하기도 하다.

그리고 유튜브 동영상의 썸네일 이미지도 있다. 그냥 동영상의 임의 구간 스틸 영상을 썸네일로 지정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고 문제 의식을 하나도 느끼지 않고 지냈는데.. 이것도 글자와 그림을 넣어서 귀신 같이 꾸며 주는 앱이 있다...;;

난 그냥 날개셋이나 우직하게 만들고 논문 써야지, 미래의 시장 판도를 예측하고 유행을 읽고 돈 벌 아이템 찾는 사업가 기질은 정말 아닌 것 같다.. ㅠㅠ

그나저나 애니메이션 이모티콘들은 gif도(꼴랑 256색) 아니고 플래시도 아니고(모바일에서 망함..) 도대체 무슨 기술을 써서 표현하는지 궁금해진다. 애니메이션 png 규격이 완성되기라도 했나..?

3.
프로그래밍 환경 내지 플랫폼을 처음부터 오랫동안 접하면 API나 방법론이 수시로 바뀌는 것 때문에 귀찮고 지저분한 일을 많이 겪게 된다. 안드로이드 내지 Cocoa API에서 숱하게 나오는 deprecated 경고들을 보니 그런 생각이 더욱 절실히 든다. 이러니 인터넷에 굴러다니는 코드들을 아무거나 선뜻 믿고 쓸 수가 없다.

그런 시절을 몽땅 건너뛰고 모든 게 그럭저럭 갖춰지고 안정화된 뒤에 프로그래밍을 시작하면 지저분한 일을 겪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젠 모든 게 다 갖춰진 너무 방대하고 복잡한 프로그래밍 시스템 속에서 방황하게 된다. 오늘날의 웹 내지 앱 개발 환경과 30여 년 전 GWBASIC 내지 끽해야 도스 API 인터럽트 프로그래밍 환경은 얼마나 극과 극으로 다른가?
Windows는 그나마 초딩 시절부터 내가 오랫동안 써 왔으니까 익숙해진 것이지, 내가 2, 30년쯤 뒤에 늦게 태어났으면 프로그래밍을 진로로 정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옛날에는 컴퓨터 성능이 빈약하고 각종 소프트웨어 시스템도 지금보다 훨씬 더 단순했겠지만.. 그게 아무 이유 없이 단순한 건 아니었다. 성능 대비 기계값이 지금보다 훨씬 더 비싸고 프로그래밍 관련 정보를 구하기도 더 어려웠다. 금수저 내지 최소한 중산층 집안이 아니면 아무나 컴퓨터를 접할 수 없었으며, 프로그래밍 저변이 지금처럼 널리 확대될 수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프로그래밍 여건에 관한 한 일장일단이 있다.

그 최첨단 문명의 이기인 컴퓨터가 그래도 기업· 연구소· 군대· 정부 기관의 전유물이 되지 않고, Google 같은 엄청난 검색 엔진이 부자들의 전유물이 되지 않고, 만민에게 정보 접근성이 주어지고 차별이 사실상 없어진 것은 매우 다행이고 축복이어 보인다. 비록, 그 반대급부로 어린애들에게 음란물과 폭력물에 대한 접근성까지 너무 올라간 것은 좀 심각한 문제이지만 말이다.

이건 컴퓨터가 진지하고 심각한 일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도구로도 활용해도 돈벌이가 되니까 자본주의 내지 시장 경제 논리에 의해 대중화가 된 것일 뿐이다. 돈줄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뤄진 현상에 대해서 너무 지나치게 염세주의 음모론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컴퓨터가 워낙 비싼 기계이니까 소수의 엘리트에게만 기회를 주는 게 아니라, 일단 컴퓨터 자체는 팍팍 뿌린다. 대량생산으로 가격을 낮추고 온갖 교묘한 우회 결제 수단으로(= 일시불로 기계값을 몽땅 내지 않아도 되게 오랫동안 찔끔찔끔..) 소비자 부담을 줄여서 말이다. 그 뒤 온갖 컨텐츠들로 더 많은 수익을 내는 게 소비자에게도 좋고 생산자에게도 좋은 것이다.

4.
미국이나 이스라엘, 인도 같은 나라 말고 유럽에서 나름 세계구급 IT 강국을 꼽자면 노키아와 리누스 토르발스를 배출한 핀란드가 떠오르는 편인데.. 옛날에는 불가리아도 한 끗발 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슷한 이름의 요구르트 때문에 "생명 연장이라는 게 요구르트만 딥다 쳐먹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같은 개드립의 원산지라는 이미지가 강한 편이다.;;

하지만 저 나라는 요구르트만 개발한 게 아니라, 1980년대에 국가적으로 컴퓨터 교육을 실시하고 나름 고급 IT 엔지니어 육성을 했다.
1989년 5월에 제 1회, 국제 정보 올림피아드라는 게 최초로 개최된 곳도 미국이나 다른 유명한 나라가 아니라 바로 '불가리아'였다. 이 역시 생각할 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양성된 컴퓨터 똘똘이들이 자국에서 자기 재능을 좋은 방향으로 쓰면서 돈과 명예를 얻는 인프라가 없었다는 거다.
그래서 불가리아에서 컴퓨터와 관련해서 세계구 급으로 선한 게 개발되어 나온 게 없었다. 그 대신 불가리아 산 컴퓨터 바이러스들이 악명을 떨쳤다.
당장 떠오르는 건 DIR-II, 어둠의 복수자(dark avenger) 바이러스. 이들의 원산지가 바로 저 나라였다. 그러고 나서 1990년대 이후부터 불가리아의 존재감은.. 지금 다들 알려진 바와 같다.

그 먼 옛날에 컴퓨터 바이러스를 만들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 비싸고 귀하던 IBM PC의 내부 구조와 도스 API, x86 어셈블리를 다 마스터 했고 컴공이 얼마나 대단했겠는가? 그랬는데 만들어 낸 건 고작 남에게 해를 끼치는 물건뿐이었던 거다.
지금도 북괴에서는 아무리 컴퓨터 똘똘이가 돼 봤자 하는 일은 당의 명령대로 오픈소스들 다 무단으로 베껴서 이상한 프로그램 만들거나, 중국으로 외화벌이 정보전사로 파견 나가서 사이버 범죄, 남조선 종북 여론몰이 같은 지저분한 짓밖에 없다. 그런 것과 비슷한 맥락의 안타까운 상황이다.

5.
전에 얘기한 적이 있던가?
본인은 초딩 저학년 때 8비트 컴, 중· 고학년 때 16비트 IBM 호환 PC, 중학교 때 Windows와 PC통신, 고등학교 때 인터넷, 대학교 때 휴대전화, 대학원 때 스마트폰을 순서대로 접했다.
대학교 때 기숙사에서 10Mbps 유선 랜을 처음으로 접했고, 2003년쯤에 무선 인터넷과 USB 메모리라는 걸 처음으로 접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부터 대학원 연구실을 시작으로 유선 랜의 속도가 100Mbps로 올랐으며, 그로부터 얼마 안 가 교내 네트워크 주소들이 공인 고정 class B ip 대신, 가변 사설 ip로 바뀌었지 싶다.
이제는 그냥 무선 인터넷으로도 신호가 좋은 곳에서는 늘 100Mbps까지는 아니어도 수십 Mbps의 속도가 나오고, 유튜브로 HD급 동영상을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보는 시대가 됐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충격적이다. PC통신으로 사진 한 장 받던 시절의 전송 속도와 지금 속도를 비교하면 말이다.

지금이 우주 정거장 관광 단가가 1억 원 근처까지 내려갔다거나,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 영화가 묘사하는 세상이 오지는 않았다. 컴퓨터의 클럭 속도가 싱글 코어로 10GHz를 넘어간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과거에 상상하지 못했던 SNS 미디어, 고화질 동영상과 더 새끈해진 글꼴, 각진 게 아니라 날렵한 외형의 자동차들이 시대의 변화를 대신 말해 주고 있다. 이것 말고도..

  •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엔 오지에서 운전을 하다가 차가 퍼지거나 사고가 나면 보험사 연락을 어떻게 했을까?
  • CCTV와 블랙박스가 없던 시절엔 교통사고 과실 비율 산정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됐을 것이며(바퀴가 굴러가는 이상 절대적인 100:0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_-),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억울한 경우도 얼마나 많았을까?
  • 구글과 riss.kr, dbpia가 없던 시절에 도대체 학술 문헌 검색을 어떻게 하고 논문이란 걸 어떻게 썼을까? (일일이 도서관 찾아다니면서 실물을..)
  • msdn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스택 오버플로우와 검색 엔진이 없던 시절에는 도대체 생소한 플랫폼에 대한 프로그래밍 자료 검색을 어떻게 하면서 코딩을 어떻게 했을까?
  •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냥 이더넷 랜선을 꽂는 건 동일한데 랜 카드와 내부 기술 기반이 뭐가 바뀌었길래 인터넷 속도가 옛날보다 10배 이상으로 뻥튀기될 수 있었을까??
  • 전자기파의 물리적인 특성이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건 없을 텐데 텔레비전의 화질은 어쩜 이렇게 좋아졌을까?

이런 걸 생각하면 과학 기술, 특히 정보 통신 분야의 기술이 세상을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바꿔 놓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전까지 몇몇 얼리어답터들이나 쓰던 PDA, 휴대용 MP3 플레이어가 휴대전화와 결합해서 스마트폰으로 탄생한 건 정말 2000년대의 혁신 중의 혁신이 아닐 수 없었다. 그냥 크기도 작고 기능도 열악한 특수 목적 컴퓨터의 범주인 '임베디드'로부터 '모바일'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범주가 파생돼 나왔다. Windows CE가 Phone, Mobile 등 갖가지 브랜드로 재탄생해야 한 것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지금이야 그냥 10이라는 브랜드로 통합됐고, 스마트폰 OS로는 안드로이드가 지구를 평정했다만 말이다.

물론 냉동 기술이나 플라스틱, 의학· 생명 공학처럼 굳이 IT에 속하지 않는 획기적인 기술도 있다.
기술의 발달 덕분에 쿼츠 시계는 기계식 태엽 시계를 가격과 성능 모든 면에서 쳐발랐고, LED는 백열등은 말할 것도 없고 형광등까지 쳐발라서 인류가 발명한 가장 고효율 광원을 달성했다. 핵 무기는 같은 무게의 재래식 폭탄에 비해 위력 계수에 0을 몇 개 더 붙였다.

이런 정도의 혁신이 앞으로 어느 분야에서건 또 나올 게 있으려나 모르겠다.
무탄피총, 실리콘 반도체를 능가하는 컴퓨터 소자, 자동차에서 현행 기계들의 한계를 극복하는 무단 변속기나 반켈 엔진, 혁신적인 무선 송전이나 2차 전지, 핵융합 발전 같은 것 말이다.

6.
정보 통신 쪽 얘기를 계속하자면..
자동차의 번호를 자동으로 인식하는 무인 단속 카메라와 무인 주차 시스템도 지금이야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지만,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건 1990년대 중후반부터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이런 게 없던 시절에는 과속· 신호 위반 같은 건 경찰관이 숨어 있다가 위반 차량을 강제로 불러다 세우는 식으로 단속을 할 수밖에 없었다.

차량 번호판을 인식하는 기술은 길거리에서 도난· 수배 차량이나 세금· 통행료 상습 체납 차량을 즉시 잡아내는 데에도 아주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이게 없었으면 컴퓨터와 행정 전산망이 있더라도 사람이 일일이 차 번호를 입력해서 조회해야 했으니 일이 얼마나 불편했을지 모른다. 스피드건이 생각보다 속도를 굉장히 정확히 측정해 주는 것만큼이나 신기한 일이다.

단순히 편해진 것뿐만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시스템이 더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바뀐 것은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 모든 것이 전산화되고 컴퓨터가 통제하는 세상에 대해 무슨 666 짐승의 표인 것처럼 공포심만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3/07 08:26 2018/03/07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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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호 2018/03/07 13:23 # M/D Reply Permalink

    애니메이션 이모티콘은 WebP 라는 기술로 구현했을거에요.
    DIR 2 바이러스의 기억이 덕분에 오랜만에 생각 났습니다. ㅎㅎ

    1. 사무엘 2018/03/07 13:52 # M/D Permalink

      아하~ 새로운 이미지 겸 동영상 포맷이 있군요. 정보에 감사드립니다.
      그에 반해 Windows의 애니메이션 컨트롤은 아직도 RLE 기반 avi만 지원하는지.. 좀 변모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재호 님, 정말 오랜만이고 반갑습니다. ^_^

  2. 덧붙임 2018/03/07 17:46 # M/D Reply Permalink

    애니메이션 PNG를 지원하는 확장자로 파이어폭스나 크롬, 사파리 등에서 APNG하는 형식도 있습니다.

    1. 사무엘 2018/03/07 20:59 # M/D Permalink

      예, apng라는 게 있다는 건 압니다만 완전히 표준화가 안 됐는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적고 인지도가 부족하다고 들었습니다.
      언제까지나 구닥다리 gif에 머무를 수는 없을 텐데, 실사가 아닌 애니메이션 영역도 좀 기술이 발전해야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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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생방

공중이나 바다가 아닌 평범한 육상 재래전 전쟁터에서 군인을 가장 많이 죽이는 것은 폭발물 파편이다. 근원지가 수류탄이든 지뢰이든 포격이든 폭격이든, 어쨌든 날아가서 박히기만 하는 게 아니라 터져서 넓은 면적에 파편을 날리는 폭탄이 짱이다. 단순 총알은 파괴 면적이 너무 작은 관계로, 저격이 아니라면 그 자체가 사람을 죽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래도 총은 여전히 군인의 상징이며, 소총 사격은 화망을 형성해서 아군을 엄호하거나 적군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충분히 한다. 당장 kill 수를 많이 못 낸다고 해서 개인화기가 일체의 쓸모나 필요가 없는 건 결코 아니다. 지금 세계가 명목상 교류와 평화를 추구하고 옛날 같은 제국주의 침략 전쟁을 지향하지는 않는 시대가 됐다고 해서, 군사력 자체가 당장 필요하지 않게 된 건 절대 아니듯이 말이다.

그런데,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게 하는 방법은 폭탄이나 총알, 심지어 총검을 이용한 물리적인 충격만 있는 게 아니다. 파리를 굳이 손바닥이나 파리채로 쳐서 잡는 게 아니라 에프킬라를 뿌려서 잡듯, 방탄조끼나 헬멧이 아니라 방독면으로 방어해야 하는 방식의 전투도 있다. 이를 특별히 '화생방전'이라고 한다. 이건 공격 수단들의 근간 원리에서 각각 첫 글자를 딴 명칭인데, 마치 군사의 육해공처럼, 물리 화학 생물이라는 과학의 세 분야를 두루 아우르는 용어이기도 하다.

단, 보다시피 '물화생'은 아니고 '화생방'이다. 물리는 분야가 너무 넓어서 그런 것 같다. 과학의 각 분야에 대응하는 공학을 생각해 봐도 화학공학, 생명공학은 있지만 물리공학이라는 말은 없으니 말이다. 그 대신 기계공학, 전자공학, 원자력공학, 항공우주공학 등이 있을 뿐이지.
스타에서 테란의 물리학 연구소는 배틀크루저의 야마토 포를 개발하는 곳인데, 물리학의 어느 분야를 주로 연구하는지가 문득 궁금해진다.

스타에도 응당 화생방에 해당하는 개념이 있다. 디파일러의 플레이그가 생물에 해당하고, 베슬의 이레디는 방사능에 속한다.
원래는 고스트의 핵도 방사능이어야 하지만, 설정과 밸런스 문제 때문에 게임엔 반영 안 됐고 그냥 크고 무시무시한 폭탄이라고 구현돼 있다.
화학은 잘 모르겠다. 스타에 딱히 독가스 같은 게 등장하지는 않으니까.. 단지, 광범위 대량학살용으로는 독가스보다 더 고차원적인 프로토스의 싸이오닉 스톰이 존재할 뿐이다.

난 태어나서 화생방(전)이라는 단어를 처음 본 곳은 아마 초딩 시절 전화번호부 끝부분 부록에 적혀 있던 '전시 국민 행동 요령'이었지 싶다.
성경에도 계시록뿐만 아니라 슥 14:12처럼 사람이 산 채로 눈과 살과 혀가 녹아/썩어 없어지는 묘사는 뭔가 화생방전을 떠올리는 섬뜩한 장면으로 보인다.

2. 전쟁의 주요 양상

  • 고지전: 나로서는 이거 뭐 6· 25 말고는 다른 고지전 자체가 떠오르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한반도 중부의 서쪽은 평지 위주였지만 우리에게 지형적으로 불리하고 판문점도 가까이 있어서 제대로 싸울 수 없었던 반면, 동부의 첩첩산중에서는 고개를 하나 점령해서 조금이라도 영토를 더 수복하려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으니 말이다.
  • 참호전: 1차 세계 대전 당첨이다. 여차여차 하다 보니 서로 평지에서 땅따먹기를 한 뒤, 참호 파고 지겹도록 시즈 탱크 우주 방어만 벌이는 지경이 벌어졌다. 무슨 FPS에서 캠핑처럼.. 공격이 방어보다 너무 불리하다 보니, 참호 하나 점령하려고 갈려 들어간 병사들이 그 당시에 얼마였나 모르겠다. 그 교착 상태를 해소하려던 와중에 원시적인 탱크와 전투기가 발명됐고 독가스도 동원됐다.
  • 상륙전: 바다에서 육지로 상륙하면서 섬을 하나씩 점령하는 형태의 전투는 2차 세계 대전 중에서 태평양 전선이 대표적이다. 전쟁의 규모가 커지다 보니 미군 해병대의 비중이 본격적으로 커졌다. 뭐, 거기 말고도 본토 진출을 위해서 서부 전선의 노르망디 상륙이 있고 나중에 6· 25 때 인천 상륙도 전쟁사의 한 획을 그었지만..

오늘날은 세상에 고층 건물이 즐비한 대도시가 많기 때문에 전쟁이 나면 '시가전'의 비중이 커질 것이다.
만약 북괴가 다시 남침해서 서울로 쳐들어온다 해도, 2017년의 서울은 1950년 당시의 그 허접한 서울이 절대 아니다.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복잡하고 빽빽해진 건물숲 속에서 시가전을 제대로 치러야 할 것이며, 그렇게 호락호락 사흘 만에 서울 점령이란 절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 속의 전쟁 중에 시가전으로서 내가 딱 떠오르는 건 없다. 그리고 2차 대전은 동부(vs 러시아)나 태평양 전선(vs 일본..) 말고 서부 전선에 대해서는 내가 딱히 기억이나 존재감이 느껴지는 게 없다.

3. 탄피 처리

공기총 같은 거 말고 화약으로 격발하는 총들은 탄두와 화약이 탄피로 감싸져 있는 탄환을 사용한다. 음식을 먹고 나면 그릇이 남고 커피를 마시고 나면 컵이 남듯, 총을 쏘고 나면 탄피 껍데기만 남아서 사출된다.
탄피 부분까지 싹 폭발해서 없어지거나, 아니면 같이 발사되어 날아가는 총알이 있다면, 마치 손잡이 부분까지 몽땅 과자로 돼 있어서 다 먹어치울 수 있는 길거리 아이스크림 콘만큼이나 참 좋을 것이다. 하지만 총알을 그렇게 만들었다간 화약 부분이 평소에는 어지간히 열받아도 절대로 폭발하지 않고 안전하게 있다가 원하는 순간에만 격발하게 만들기가 도저히 불가능하다. (실용적인 가성비 수준에서..)

탄피 처리라는 게 군대에서 골치아픈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얘는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가능한 한 몽땅 회수해서 재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환경 보호(?)나 물자 절약 따위 말고 좀 더 social한 이유로는..
평시에는 탄약의 무단 유출을 감지하고 자살· 프래깅 같은 부정 사용을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총을 몇 발 쐈는지 알고 싶을 때 탄피 개수를 세는 것만치 단순무식하고 효과적이면서도 정확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시에야 적에게 총 쏘는 게 병사들의 재량 영역이 되며, 수십· 수백 발의 총알이 순식간에 없어진다. 그러니 실탄 사용 내역을 평시만치 일일이 파악하고 통제하면서 탄피를 챙길 여유가 없다. 그 대신, 적군에게 아군의 위치 내지 이동 경로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 흔적을 치우는 과정에서 탄피도 눈에 띄는 것 정도는 다 줍고 치운다.
그리고 전투가 끝나고 병사들이 병영으로 복귀한 뒤에는 모든 병사들을 일일이 정말 빡세게 몸수색을 해서 잔여 실탄을 몰래 짱박아 둔 게 절대 없도록 조치를 취한다고 한다. 1996년 강릉 무장공비 토벌 작전이 끝났을 때에도 이런 후처리 절차가 응당 행해졌다고 한다.

4.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

사람을 죽이는 전쟁 얘기를 했으니 다음으로는 사람 살리는 얘기로 넘어가 보겠다.
멀쩡하던 사람이 어디로 추락하거나 뭘 맞거나 부딪치지 않았는데 외상 없이 의식을 잃고 픽 쓰러지는 건 아무래도 흔히 보는 장면은 아니다. 신경계나 뇌 쪽의 문제로 인해 몸이 셧다운 된 게 아니라면 저런 건 대체로 (1) 호흡기 아니면 (2) 순환기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목에 생선 가시 같은 게 걸려서 숨을 못 쉬고 쓰러지는 건 기도 폐쇄로 인한 질식이니 (1)번 계열이다. 본인이나 어린 자녀가 갑자기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뒤늦게 네이버에서 검색하려 든다면 너무 늦을 것이다. 평소에 숙지해 둬야지.
그리고 물에 빠진 건 숨을 못 쉰 질식에다 폐에 물이 들어간 것까지 복합이다.

호흡과 무관한 순환 계통 문제는 부정맥 같은 심장의 지병 때문이다. 그런데 혈액 순환이 잠시만 중단돼도 어차피 호흡기 문제와 마찬가지로 뇌에 산소가 제대로 못 가게 되고, 뇌세포가 죽기 시작해서 몸에는 심각한 트러블이 발생한다.
물에 빠져서 질식으로 인해 의식을 잃어 가는 거나, 심장 박동이 중단되어 쓰러진 거나 원인은 다르지만 결과는 비슷하며, 단 몇 분간의 golden time 이내에 최소한의 적절한 조치가 취해져야 하는 건 동일하다.

이거 하냐 못 하냐에 따라 사람이 사냐 죽느냐, 혹은 살더라도 온전히 살아나냐 반신불수가 되느냐가 갈린다. 그래서 소위 '심폐소생술'(CPR)이라 하는 기법이 도입되고 대대적으로 홍보되고 있다.
누군가가 쓰러지면 먼저 "괜찮으세요?" 물어 보고, 의식이 없으면 주변 사람을 지목해서 "왼쪽 저 여자분은 당장 119에 신고해 주세요, 저기 흰 옷 입으신 분은 근처의 심장 제세동기를 가져와 주세요" 지시를 한다. 그 뒤 CPR 실시다.

심폐소생술은 배터리가 방전된 차를 시동이 걸릴 때까지만 밀어 주는 게 아니다. 의료진이 와서 환자를 인계할 때까지 시술자의 손으로 심장의 역할을 얼추 대신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가슴을 눌러야 한다. 하다못해 사람이 수 분 동안 숨을 참으면 참았지, 심장 박동이 그만치 멈춰 버리면 어찌 되겠는가?
약한 갈비뼈는 부러뜨리는 것도 감수한다는 심정으로 굉장히 세게, 분당 110~120회 남짓한 주기로 생각보다 빠르게, 오래 해야 한다.. 이건 수~10수 분 간격으로 옆 사람과 주기적으로 교대도 해야 할 정도로 꽤 힘든 노동이다.

전문적인 의료· 보건인이라면 몇 차례의 CPR 후 환자 상태를 봐서 인공호흡을 재량껏 시도할 수도 있으나, 일반인을 상대로 한 매뉴얼에서는 그런 건 물에 빠진 가족을 구한 정도가 아니면 안 해도 된다고 진작에 빠졌다. 환자가 독극물에 중독돼 있는 경우 구강 접촉은 시술자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거니와, 명백한 호흡기 쪽 이상이 아니라면 심장 압박만 잘 해 줘도 산소 전달은 그럭저럭 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CPR이 그만큼 더욱 중요하다고 보는 셈이다.

CPR과 인공호흡은 의식을 잃은 사람을 구명하는 양대 조치로 여겨지고 있는데, 취지와 목적과 효과가 이렇게 서로 차이가 있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와 닿았다. 호흡과 혈액 순환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 기회에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참고로 사람의 목을 졸라 죽이는 교수형도 흔히 생각하는 호흡의 차단이 아니라, 그에 앞서 뇌로 가는 혈류를 막아서 훨씬 더 신속하게 사형수를 죽이는 것이 목적이다. 물론 집행을 잘못하면 여전히 켁켁거리면서 더 고통스럽게 죽게 될 수도 있다.

5. 보건의료인과 군대의 관계

아군을 살리는 일은 적군을 죽이는 일 이상으로 매우 중요하고 어렵고 책임감이 큰 스킬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 스킬의 보유자는 어떤 형태로든 소총 들고 전장에서 뛰어나니는 알보병 소총수 같은 보직에는 결코 투입되지 않는다. 그 대신,

  • 군 소속의 의사가 돼서 장교 계급으로 병역을 수행하는 방법이 있다.
  • 아니면 군대와는 빠이빠이 하고 그냥 공중보건의 신분으로 스킬의 난이도 대비 굉장한 저임금과 널널함으로 병역을 수행할 수도 있다.
  • 보건의료 계열 출신이긴 하지만 정식 의사보다 낮은 급이거나(물리치료사..) 미묘하게 다른 계열이라면(의공, 수의학 등등..) 의무병으로 빠질 수 있다. 위생병은 의무병의 옛 명칭 되겠다.

단,

  • 공보의로 병역을 마친 의사들은 여느 보충역들처럼 명목상 예비역 이등병이며, 예비군 훈련을 받는다. 의사들은 직장인(봉직) 내지 자영업자(개원)이지, 무슨 보건소 직원 같은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군· 경이나 교사, 소방관만치 전시 보직이 국가 차원에서 완전히 동일하게 보장되지 않는다.
  • 의사라도 극소수 만학도 의대생이나 의전 출신처럼 군대를 다른 경로로 이미 다녀온 사람이 예외적으로 있다. 이들은 여느 의사들 같은 공보의나 군의관 복무 경험이 있지 않다.

6. 주유와 충전의 차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기계들은 동력의 원천이 기름 먹는 (1) 내연기관이 아니면 전기 먹는 (2) 모터이다.
에너지 공급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주유는 사람에다 비유하면 식량을 그냥 가방이나 창고에 넣고 비축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아무리 많은 양도 비축이 금방 끝날 뿐만 아니라, 공간이 허락하는 한 얼마든지 해도 문제 없다.
그러나 충전은 실제로 사람 몸에다 밥을 먹이는 것과 얼추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리며, 인간이 소화하고 비축할 수 있는 양만큼만 가능하다.

전기는 에너지 그 자체이다. 배터리의 전기가 소모될 때 발생하는 화학 메커니즘을 역방향으로 가해 줘야 충전이 된다. 세상엔 공짜란 없으니 말이다. 충전 아니면 방전, 그리고 전동기 아니면 발전기.. 전기는 이렇게 상호 가역적인 에너지 이동 메커니즘이 있는 게 신기하다. 마치 생물에서 광합성 아니면 세포호흡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사람이 손으로 수동 발전기를 죽어라고 돌려 가지고 그 알량한 전기로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얼마 없다. 결국 기계가 필요하다.
반대로, 아무리 힘이 넘쳐나도 배터리가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과다한 에너지가 짧은 시간 동안 가해지면 배터리가 터진다. 충전 시간을 무슨 주유 시간마냥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수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사람은 오랫동안 굶은 상태에서 갑자기 기름진 음식을 막 먹으면 몸에 큰 탈이 나고 심하면 그걸로 죽기까지 한다. 그것처럼 배터리도 무슨 탱크 안에 잘 밀폐· 보관돼 있는 석유처럼 stable한 물건이 아니다. 완충과 완방 반복 시의 내부 상태 변화, 충전 가능 용량의 감소, 너무 추운 환경에서의 자연 방전처럼 까탈스러운 변수들이 존재한다. (아 하긴, 석유조차도 휘발유 같은 건 생각만치 오래 보관 가능하지 않으며, 증발과 변질 때문에 몇 년밖에 못 간다고는 하더라..)

이런 전기와는 달리, 석유는 그 자체는 에너지가 아니라 평범한 액체일 뿐이다. 엔진이 돌아가야만 그제서야 석유가 연소와 폭발을 통해 에너지로 바뀐다. 엔진은 연료의 공급과 비축이 신속하고 간편하고 안정된 반면, 그 엔진을 최초로 돌리기 위해서는 전기 같은 외부 에너지 공급이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다. 관계가 이렇게 설명된다.

순수 전기차가 배터리의 용량과 무게· 가격 문제 때문에 도저히 실용화가 못 되고 소형차 수준에 머물러 있는 건, 과거에 브라운관이 화면 크기에 비례해서 급격히 두꺼워지고 무거워지는 것 때문에 30인치대 이상의 대형화는 도저히 엄두를 못 냈던 한계를 보는 것 같다. 요즘의 왕창 크고 넓으면서 두께는 왕창 얇은 텔레비전과 얼마나 비교되는가?

과거에는 전기 자동차는 소형차보다도 더 작은 경차 수준에 머물다가 그나마 기술이 발전해서 이젠 소형이나 준중형 승용차까지는 노리는 모양이다. 하지만 대형 버스나 트레일러가 순수 전기만으로 지금처럼 힘차게 달리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전기차는 자체 동력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까지 엔진의 힘과 열의 도움을 받아 자연스럽게 얻던 냉난방마저 추가로 자력으로 해결해야 하니 그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획기적인 배터리나 무선 송전 기술이 개발되지 않는 한, 전기차는 대형차· 군용차까지 몽땅 대체하지는 못하고 그냥 개인용 자가용 수준에 머무르면서 기름 자동차와 공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철도에서는 전기 기관차가 대형차 영역인 여객과 화물 수송에서 그야말로 디젤이 넘보지 못하는 차력쇼를 선보이고 있는 것과 무척 대조적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부피 당 에너지 축적 능력 면에서 석유를 능가하는 원천은 없는 듯하다.

참고로 하이브리드 차는 엔진이 어중간하게 크고 무거워지고 비싸지기 때문에 경차나 소형 승용차에서는 수지가 맞지 않고, 심지어 이미 더 크고 무겁고 복잡한 디젤과도 그리 궁합이 안 좋다. 승용차 중에서 최하 준중형 이상은 가야 하고, 적당히 비싸면서 가성비도 챙긴 쏘나타-그랜저급 승용차가 하이브리드를 얹기 제일 적당하다.
하지만 아예 최고급 기함급 대형 승용차는 오로지 성능만 추구한다거나 돈이 썩어나는 부자들만 공략하는 너무 고매한 컨셉이어서 그런지, 휘발유 말고 다른 동력원을 얹은 사례가 없다. (에쿠스 디젤이나 롤스로이스 하이브리드 같은 건.. ㅡ,.ㅡ;;)

* 이상, 위의 모든 아이템들은 민방위 교육 가서 떠올랐던 생각과 글감들이다~
그러고 보니 육군 대령이나 준장급은 예편한 뒤에 예비군 내지 민방위의 안보 강사로 종종 빠지는 것 같고, 대위· 소령급은 예편 후에 군무원으로 취직해서 예비군 동대장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7/09/28 08:34 2017/09/28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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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계획과 달 탐사 이야기

* 옛날 2012년에 썼던 글을 리메이크 한 것이다. 월면차와 도킹 관련 내용을 새로 추가했다.

1. 인간이 달에 가기까지

콩코드 여객기가 날아다니고 인간이 달에 갔다 오던 1970년대는 그야말로 항공 우주덕을 꿈꾸는 과학도가 많이도 생겼을 것 같은 시기이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인간이 달뿐만이 아니라 화성도 정복하고 우주 식민지를 개척할 것 같은 희망에 부풀지 않았었을까 싶다. 비록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지만 본인은 이 시절을 어느 정도 동경까지 하고 있다.

아시아 최초의 우주인인 일본의 모리 마모루 박사는 그 당시에 만화영화 아톰을 보면서 과학자의 길을 꿈꾸었으며, 세계적인 우주론 전문가로 손꼽히는 천문학자인 연세대 이 영욱 교수도 어렸을 때 비슷한 체험을 하고 아폴로 계획의 성과에 감화도 받으면서 이 분야의 진로를 선택했다.

이 교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는 것을 봤다. 그 뒤 천문과 우주에 빠져 매일 하늘을 바라보게 됐다”면서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우주에서 쏟아지는 유성우(流星雨)를 본다고 3시간 동안 집 마당에 서있기도 했다. 마침 아폴로 달착륙 때 해설을 통해 ‘아폴로 박사’로 유명해진 고(故) 조경철 박사도 연세대 교수였다. 그렇게 연세대와 인연을 맺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 링크 클릭)

모리 박사는 13세이던 1961년 옛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우주인이 되겠다는 꿈을 꿨다고 한다. 그래서 무엇보다 어린 시절의 꿈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 링크 클릭)


이제 막 통신 위성을 통한 TV 중계 기술이 개발되어 1964년의 도쿄 올림픽이 역사상 최초로 지구 반대편으로 생방송 중계된 올림픽으로 기록되던 시절이었는데, 그로부터 겨우 5년 남짓한 시간 만에 인류는 달 착륙 모습을 라이브로 중계하는 데 성공할 줄이야! 대단하지 않은가?

물론 성경은 바벨 탑(창 11:4)이라든가 루시퍼의 반역(사 14:13)에서 볼 수 있듯, 하늘로 자꾸 오르려는 인간의 욕망을 부정적으로 디스하는 경향이 있다. 하늘이 인간에게는 금단의 영역이라는 심상은,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 이야기에도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순수하게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과학 기술을 개발하는 것 자체는 딱히 선악 대립 구도가 없는 이념 중립적 영역이라 하겠다. 아폴로 8호 승무원은 달을 돌면서 오죽했으면 감격에 겨운 나머지 1968년 크리스마스 이브를 기념하여 창세기 1장을 낭독하기도 했다. 바로 이런 광경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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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아폴로 8호는 새턴 V 로켓으로 유인 우주 비행을 최초로 시도하는 것이었으며, 아예 지구 궤도를 벗어나서 달의 궤도까지 가는 것도 완전 최초였던 미션이었다. 달 착륙선만 빼고 각종 위험한 모험은 다 하고 왔다. 오히려 그 다음 9호는 달까지 가지는 않고 지구 궤도에 머물면서 달 착륙선과 우주복의 안정성을 시험했다.

구소련은 1950년대 말에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쏴서(= 대륙간 탄도 미사일 발사 기술까지 인증) 스푸트니크 쇼크를 일으키며 미국을 도발했다. 하지만 미국이 작정하고 NASA를 만들고 쇼미더머니를 치면서 이 분야를 무섭게 추격하자 10여 년 만에 전세는 역전되었다.

소련은 달에 무인 탐사선을 보내서 달 뒷면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고, 달 표면까지 내려가서 월석을 채취해 오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달 표면에 사람을 착륙시키는 것까지는 차마 달성을 못 했고 천조국 미국이 대신 해냈다.

한때는(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갑자기 ‘달 착륙 구라설 / 아폴로 계획 자작극 음모론’이 인터넷에 나돌았다. 무슨 사진 모양이 이상하고 그림자 모양이 이상하다는 둥. 그 당시 기술로 우주선이 밴 앨런 벨트를 살아서 통과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둥. 그리고 그때 달에 착륙했다가 다시 출발은 어떻게 했겠냐는 둥.

그러나 이것은 우주 개발 역사와 달 탐사 우주선의 메커니즘 디테일도 제대로 모르는 비전문가의 무지의 소치이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니라 점진적인 연습과 리허설을 거듭한 끝에 이뤄진 과업이다.

  • 아폴로 8호와 9호를 거쳐서 10호 때는 드디어 착륙선을 내려서 승무원이 달 표면 고도 10km대까지만 내려갔다가 도로 되돌아와서 사령선에 합류했다. 그 당시 착륙선은 기술적으로 달에 착륙까지는 가능했지만 거기서 재이륙을 아직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최종 단계인 그것만 빼고 달에 갔다가 돌아오는 리허설을 다 수행했다. 10호 미션 도중엔 그 유명한 "이 똥이 누구 똥이냐"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 그 후 아폴로 11~17호 중 13호만 빼고 미국은 무려 여섯 차례나 인간을 달에 성공적으로 착륙시켰다가 귀환시켰다. 13호는 중간에 발생한 문제로 인해 착륙은 포기하고, 달 궤도를 멀찍이 삥 돌기만 한 후 지구로 귀환했다. 그래도 목숨 부지하고 돌아온 것만 해도 어디냐. 13호의 승무원은 인류 역사상 지구에서 제일 멀리까지 나갔다가 돌아온 사람이 되었다.
  • 사령선은 달의 궤도를 가까이서 빙빙 돌고 있고, 여기서 착륙선을 별도로 내려 보내서 착륙한다. 승무원 3명 중 1명은 모선인 사령선에 남아 있고, 2명만 달 표면을 밟게 된다. 사령관은 혼자 달을 빙빙 돌면서 고독스럽게 사령선을 지킨다. 어두컴컴한 달 뒷면을 도는 동안은 다른 승무원 내지 지구 기지와도 통신이 전면 두절된다.
  • 수 차례의 달 탐사가 진행되면서 인간이 달에다 남겨 놓고 온 흔적들도 많다. 가령, 착륙선의 발사대와 발사 흔적도 그렇고 아폴로 11호는 레이저 반사경을 달 표면에다 놔 두고 돌아왔으며, 이건 지금까지도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를 측정할 때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 아폴로 11호 때는, 미션 완료 후 착륙선이 다시 발사되어 올라가면서 발생한 배기가스의 강한 후폭풍 때문에, 인근에 꽂아 놨던 성조기가 쓸려 날아갔다. 어이쿠.. 그래서 그 뒤의 아폴로 미션 때는 성조기는 착륙선보다 최소 30m 이상 충분히 멀리 떨어진 곳에다 꽂게 되었다. 달 표면은 생각보다 딱딱해서 깃발을 꽂기가 힘들었다고 함.

이런 디테일을 모두 제대로 알기나 하고서 음모론, 자작극을 주장하는 사람을 난 못 봤다.
내가 기독교 식으로 좀 강한 비유를 동원하자면, 인간이 달에 갔다 왔다는 건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인 것만큼이나 확실한 사실이다. 마치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고 안 믿으려면 무수한 역사적 사실들을 부정해야 하듯, 달 착륙도 증거가 의혹보다 월등히 더 많다.

만약 NASA의 달 착륙이 진짜로 자작극이라면 미국의 모든 첩보 기관들은 그 진실을 알고 있는 전세계 수많은 대학과 연구소, 기업들을 입 막고 매수하는 일에 대부분의 예산과 정보력을 쏟아붓고 있을 것이다. 정말이다. 성경의 마 28:12-13이랑 완전 똑같은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요즘 NASA는 달 내부에서 아폴로 11호의 착륙 지점 같은 역사적으로 너무나 유서 깊은 장소를 있는 그대로 영구 보존하고, 훗날 이곳을 찾는 타국의 달 탐사선이 이를 훼손하지 못하게 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려 하는 중이다.
다음은 역대 아폴로 계획 착륙선들이 달 표면에 착륙한 지점을 한데 나타낸 것이다. 무슨 사격 훈련 후에 표적지에 찍힌 탄착군을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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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월면차

인간이 만들어 낸 전기차 중에 가장 독특한 임무를 수행한 물건은 월면차이지 싶다.
달은 공기가 없으니 기름으로 달리는 내연기관 차량을 운용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산소를 연료와 함께 섞어서 폭발 추진을 시키는 로켓을 만드는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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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면차는 아폴로 계획 11~17호 미션 중에서 15회 때부터 총 세 차례 투입되었다.
이게 없던 시절엔 기껏 쒜빠지게 고생해서 달에 갔는데.. 너무 힘들어서 승무원들이 좀 멀리까지 주변 지역 탐사를 하기가 어려웠다.
온갖 생존 장비들이 달린 우주복은 무게가 100수십 kg이 훌쩍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나마 중력이 1/6인 달이니까 부담이 군인의 '완전군장' 수준으로 줄어들었지, 지구였으면 자력으로 들고 일어서지도 못한다. 그 상태로 월석을 채취까지 하면 중량 부담이 얼마나 더 커졌을까?

월면차는 달에 간 우주비행사들의 기동성을 크게 올려 줬다. 같은 거리를 더 빠르게 가고도 산소 소모량은 1/3 수준으로 줄여 줬다! 달에 두 명이 내려갔으니 월면차 역시 두 명이 모두 같이 탈 수 있었다. 개인 월면차 두 대를 제각기 끌고 다닌 건 아님. 지구에서 테스트할 때보다 더 펄펄 날아다녔다는 것도 두 말하면 잔소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없이 멀리 가지는 못했다. 혹시 월면차가 중간에 퍼지더라도 차를 버리고 착륙선이 있는 곳으로 걸어서 돌아올 수 있게, 착륙 지점으로부터 반경 6km 이내까지만 돌아다니게 FM에 명시를 했다고 한다. 달에는 보험사 긴급출동 같은 것도 있을 리 없으니까..!

월면차의 주행 장면은 달 착륙이 사실임을 매우 강력하게 입증하는 흥미롭고 감격스러운 영상이다. 저거 대수롭지 않아 보여도 지구에서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는 영상이 아니다.
진공이니 (1) 바퀴가 튀긴 흙먼지조차도 연기를 형성하지 않고 마치 물보라처럼 착착 가라앉는다. (2) 차 속도 대비 흙먼지는 꽤 높고 큼직하게 생기며 지구보다 느린 속도로 가라앉는다. 그런데 사람의 동작은 슬로우 모션이 아님.

지구에서 CG 없이 1970년대의 아날로그 기술만으로 저런 걸 치밀하게 주작할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아예 무중력이어서 사람이 둥둥 떠다니는 건 와이어 써서 어설프게나마 만들었겠지만, 흙먼지가 저렇게 천천히 떨어지는 걸 어떻게 구현하겠는가? 훨씬 더 어렵다.

그 월면차들은 지구로 귀환할 때 회수한 게 아니라 전부 달에 버려져 있다..;; (오오~) 아예 월면차에다가 카메라를 장착한 뒤, 인근의 착륙선이 도로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이건 월면차의 투입과 동시에 시도했던 것이지만, 카메라를 지구에서 원격 조종해야 하니 꽤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한다. 마지막 17호 때에야 간신히 성공했다. 아폴로 17호 때 촬영한 둥근 지구 사진(아프리카 대륙이 나온)만큼이나 아주 유명한 과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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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면차를 두고 온 대신 아폴로 승무원들은 월석을 더 싣고 왔다. 월석은 지구의 사막이나 극지방에 있는 돌멩이는 물론이고 공기와의 마찰을 경험한 운석과도 성분이 다르고 유니크하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3. 도킹과 재진입

달에 처음 갈 때는 어마어마한 지구 중력을 탈출하기 위해 인류가 발명한 가장 대형+고성능 로켓이 투입된다. 이름하여 새턴 V. 얘는 높이가 110미터, 연료 만재 중량이 3000톤에 달하며, 1단 엔진의 출력은 1억 6천만 마력이 넘는다!

지구의 중력뿐만이 아니라 공기의 저항까지 극복하면서 위로 올라가야 하고 하중은 기계선과 착륙선· 연료의 무게까지 전부 감안해야 하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로켓 한번 쏘는 데는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이 든다. 이걸로 달까지 가는데 3~4일 정도 걸린다.

하지만 달 착륙선이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이륙할 때는 차 떼고 포 떼고 아주 작은 로켓이 발사된다. 일차적으로는 달이 대기가 없고 중력이 작은 덕분이며, 또한 얘는 달을 돌고 있는 사령선이 있는 고도에만 도달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늘로 오르기만 하면 장땡인 게 아니다. 달의 공중에서 착륙선과 사령선이 정확하게 한 지점에서 만나서 도킹 합체하는 게 얼마나 어려울지 상상이 가는가?
착륙선은 처음엔 수직 상승을 하다가 점점 수평으로 속도를 내야 하고, 그렇게 사령선과 상대 속도를 비슷하게 맞췄다가 착 합체를 해야 한다.

비행기로 치면 공중 급유, 혹은 지상으로 치면 말이나 오토바이를 탄 채로 옆에서 달리는 다른 자동차나 열차에 옮겨 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뭐 하나 삐끗 했다간 끝장이다. 그러니 아폴로 11호 이전 미션들이 달 궤도 진입 및 착륙선 분리와 합체를 차근차근 조심스레 리허설을 해야 했다.

달에서 도킹에 실패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달에 착륙했던 두 승무원은 달을 빠져나가는 데 실패하고 거기서 죽어 버리고, 사령선 선장만 혼자 돌아오는 참극이 벌어진다. 이건 어찌 보면 '깔끔하게 전원 사망'보다도 당사자에게 더 큰 트라우마를 안기지 않겠는가?

그것도 달 표면에 단번에 추락사 같은 부류라면 모르겠는데, 달 표면에 당장 생존은 한 채로 버려진다면 더 골치 아파진다. 그들은 굶어 죽거나, 아니 그 전에 산소가 먼저 고갈될 것이니 천천히 질식사한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청산가리 독약이라도 미리 챙겨 가지 않았다면 말이다. 아니, 이 사람들은 독약은 몰라도 최소한 유서는 미리 써 놓고 달에 갔다 왔지 싶다.

지구에서 이들에게 뭔가 도와 줄 수 있는 건 이제 없다. 그냥 통신을 끊고 미국 대통령은 "평화를 갈망하며 미지의 세계를 찾아갔던 영웅은 이제 그곳에서 평화롭게 영면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유족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ㅠㅠ" 이런 담화문이나 발표하고 세계는 그냥 초상집 분위기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먼 미래에 남극에서 로버트 스콧의 시신, 에베레스트 산에서 조지 맬러리의 시신을 발견하듯이, 후속 발사된 발사된 유인 또는 무인 달 탐사선이 아폴로 우주선 승무원의 시신을 찾아낸 게 보도되거나 할 것이다.

뭐, 합류를 성공적으로 했다 하더라도, 그 다음으로 공기가 없던 곳에서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재진입도 묘기가 따로 없다. 속도를 낮춰서 천천히 발사의 역순으로 90도 강하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재돌입할 때는 우주선에 아무 연료도 남아 있지 않다. 즉, 동력이 없이 지구의 중력에 그대로 끌려 들어오면서, 컬럼비아 우주왕복선 꼴, 유성 불쏘시개 꼴도 나지 않아야 한다는 게 큰 딜레마이다. 그래서 재돌입이 어렵고 위험하다.

이런 걸 생각하면 인간이 우주로 나간다는 건 정말 유리몸을 가진 캐릭터를 조종하는 아케이드 퍼즐 게임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뭐 하나 잘못되어서 경로를 이탈하거나 트랩을 툭 건드리면 즉사다. 칼날 위로 외줄타기를 하는 거나 다름없다. 게임 오버인데 현실은 게임이 아니다.

이 와중에 그 우주 개발 시대 동안 그래도 지구 바깥에서 사람이 사고로 죽어서 시신이 우주로 유실된 게 없다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중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것도 다 지구에서 시신이 수습됐으니까.

아폴로 13호의 경우, 지구 중력은 완전히 벗어난 뒤에 달 착륙을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 문제가 터진 게 정말 기적적인 천만다행이었다. 이미 사령선과 착륙선이 분리되어 달 착륙이 시작됐거나, 아예 지구 중력을 벗어나기도 전이거나, 지구 대기권 재진입 도중이거나.. 뭐 그랬으면 그 당시 귀환을 위해 동원되었던 테크닉의 대부분이 적용 불가능했을 것이고 승무원들이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필 13공포증을 극복하긴커녕 오히려 더 증폭시킨 미션이 돼 버린 건 안타까운 일이다)

50년 전의 기계· 전자 기술로 달까지 사람을 보내고 오는 기술을 개발했던 미국, 그리고 그에 준하는 기술을 보유했던 구소련이 정말 대단하고 경이롭게 보인다. 이런 기술과 오늘날의 인터넷· 통신 기술이 세상에 공존하지 않는다는 게 뭔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19 08:30 2016/11/1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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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간에 이종교배를 하면 예전에 없던 새로운 종(종간잡종) 자체는 나올 수 있다. 동물의 경우 노새나 라이거가 대표적인 예이고 식물도 그런 예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교배했다고 원하는 형태의 잡종이 툭툭 튀어나오는 건 아니다. 가령, 감자와 토마토가 지상과 지하에서 동시에 열리는 포메이토 같은 건 SF 수준의 유전자 조작이 필요해 보이는데 만드는 게 이론적으로 가능한지, 그리고 감자와 토마토 정도야 그냥 따로 키우면 되지, 왜 그런 이상한 생물을 가성비 차원에서 굳이 만들 필요가 있는지 필요성 자체조차 난 잘 모르겠다. 이런 거라도 만드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돼지를 채찍질 하는 게 유전공학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또한 잡종은 일반적으로 번식 가능하지 않다. 노새와 라이거는 유전자가 서로 맞지 않기 때문에 이대로 대를 잇는 자손을 남길 수는 없다. 유전과 관련하여 나름 금도의 벽이 있는 셈이다. 이 분야에 대해 비전공자로서 본인이 아는 건 이 정도까지가 전부이다.

그런데 동물을 성질을 죽이기 위해 화학적으로 거세시켰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식물에다 특수한 처리를 해서 씨 없는 포도나 씨 없는 수박을 만든 건 정말 대단해 보인다. 프로그래밍으로 치면 치밀한 API 훅킹이나 문서화되지 않은 꼼수 기능을 동원해 불법복제 크랙을 만들거나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과 비슷해 보인다.

씨 없는 수박의 경우 씨가 아예 안 만들어지는 건 아니며, 검고 딱딱한 진짜 씨가 생기기 전에 하얗고 물렁물렁한 초기 단계의 씨 흔적 정도는 남아 있다고 한다. 이건 '뼈 없는 닭갈비' 같은 급은 아닐 테니까. 그래도 그런 씨의 잔재는 수박을 먹는 데 불쾌함을 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동식물을 막론하고 그 자그맣고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씨에서 엄청난 동식물 성체가 자라난다는 건 손톱만 한 SD카드에 수 GB에 달하는 정보가 저장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난 자연 창조 섭리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그 열매 안에 씨가 안 생기도록 유전적인 제어는 또 어떻게 하는지 이 역시 신기한 영역에 속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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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이말년 본좌님의 압박..!! ㅋㅋㅋㅋㅋㅋ
단, 우 장춘 박사는 이미 일본인 학자에 의해 발명된 씨 없는 수박을 국내에 처음으로 들여와서 소개했을 뿐이지, 통념과는 달리 그걸 최초로 발명한 분은 아니다.

우 박사가 업적을 남긴 분야는 따로 있다. 배추와 양배추를 교배해서 얻은 잡종이... '유채'라는 이미 존재하는 다른 제3의 종과 유전자 차원에서 완전히 동일함을 입증했다. 라이거와는 달리 번식에도 아무 문제 없다. 그게 유채에서만 어떻게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음. 어떻게 배추와 양배추를 교배했는데 배추와는 별 관계 없어 보이는 유채가 나오지?

유채는 공교롭게도 한국어와 영어에서 모두 이름과 관련된 우여곡절이 존재한다.
'유채'라는 단어는 한자어인데, 얘의 순우리말 이름은 웬 뜬금없는 '평지'이다. 물론 지금은 plain / flat land라는 한자어에게 소리를 완전히 빼앗겨서 유채를 저렇게 부르면 아무도 못 알아들을 듯하다.

영어로는 더 골때리게도 rape여서 흉악 범죄와 완전히 동음이의어이다! 욕설과 동음이의어인 ‘시발 자동차’가 차라리 덜 민망할 지경. 그래서 유채씨를 짜서 만든 식용유를 과거에는 rapeseed oil이라고 부르다가 지금은 ‘캐나다’라는 나라 이름을 일부 집어넣어서 ‘카놀라유’라는 새로운 마케팅 명칭이 통용된다.

우 박사는 이 유채를 연구해서 1930년대에 유전학적으로 '종의 합성'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제시했다. 이 덕택에 종의 분화를 설명하는 다윈의 진화론이 일부 수정되고 보강됐다고 한다.
여느 외국인도 아니고 무려 한국인 과학자가 종과 종 사이의 변화를 실험으로 입증해서 U's triangle이라고 자기 이름을 학계에 남겼을 정도인데 이건 창조 진화 논쟁에서 꽤 중요한 사건이 아닌가? 특히 대진화를 믿지 않는 진영에서 인정할 건 인정하고 해명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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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진영의 아젠다는 진화란 소진화와 대진화로 나뉘며, 종과 종이 바뀌는 대진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반면 안티들은 대진화도 얼마든지 관찰되고 실험으로 입증되었는데 창조좀비들이 스스로 귀를 막고 눈을 막아서 반박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깐다.

창조 진영에서 말하는 "종과 종 사이의 변화는 관찰되지 않는다"라는 명제는 화학으로 치면 원소가 다른 원소와의 화학 반응을 통해서 다른 원소로 변하는 일은 없다는.. 그러니까 싼 물질에다 마술을 부려서 금을 짠~ 만들겠다는 연금술은 그저 떡밥일 뿐 그런 기술은 존재 불가능하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의 주장으로 보인다.

오늘날이야 원자보다 더 작은 단위(원자핵, 전자 등등)의 관찰과 조작을 해서 동일 원소의 동위원소도 논하며, 무슨 방사능 가속 실험실에서 새로운 원소를 너끈히 만들어 내고 심지어 이런 원소가 존재한다면 이런 특성을 갖고 있을 거라고 예측까지 가능한 세상이 됐다. 그러니 원소야말로 절대불변의 물질의 본질을 나타내는 경계 단위라는 통념은 엄밀히 말해 진작부터 깨져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기술 덕분에 원래의 목표이던 구리를 초원자 단위로 조작해서 금을 뚝딱 만드는 게 가능해지고 저렴하게 실용화됐나? 금값이 구리값과 대등하게 폭락하고 금융계에 일대격변이 일어났나? 그렇지는 않다는 거다. 극한의 환경에서 잠깐만 존재 가능하다가 0.1초 만에 원자핵이 붕괴해서 다른 원소로 변해 버리는 그런 불안정한 방사성 원소를 하나 만들어 낸 게 학술적인 의미 이상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을 당장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않는다.
인조 다이아몬드는 있어도 인조 금 같은 건 없다는 얘기다. 또한 인조 다이아몬드조차도 퀄리티나 제조 원가가 다이아몬드의 가격을 흑연의 가격과 동등하게 낮출 정도의 물건은 결코 아니다.

그러니 생물 쪽으로 가서 종을 원소에다 비유해 보자. 유채건 뭐건 그런 종간변화가 관찰된 것 자체야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종의 기원' 진화 이론이 바뀌었다고 해서, 원숭이건 뭐건 미지의 공통 조상이 진화해서 지적 생명체인 인간이 되었다는 그 비현실적인 확률을 설명하는 데 그게 실질적인 기여를 한 건 여전히 거의 없다.
그러니 창조 진화 논쟁은 서로 주장하는 바가 다르고 서로 핀트가 어긋난 쪽만 공략하면서 소모전을 계속하고 있으며, 여전히 생명의 기원과 분화에 신의 창조가 들어가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물론 신의 개입이라는 건 과학으로 재연이나 설명 가능하지는 않다. 과학은 천체들이 뉴턴의 법칙대로 돈다는 것만 설명할 뿐, 처음에 누가 그 천체들을 만들어서 언제 그렇게 힘을 가해서 뺑뺑이 돌리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답을 주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달은 그 외형이나 특징이 너무 특이해서 인위적인(?) 개입이 있었지 아무래도 우연히 저렇게 만들어진 것 같진 않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격이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할 것이 있다.
성경의 하나님은 생물, 생리, 천문 등 여러 분야에서 사람에게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지 말라는 법칙을 정해 놓았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들을 거스르고 금기의 벽을 깨고, 자신에게 당장 불편하다 싶은 건 안 불편하게 하는 기술을 그 좋은 머리로 꾸준히 개발해 왔다(전 7:29).

간단한 예부터 들자면..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으리니'(창 3:19)에 반대하여 땀 안 흘리고 편하게 일하려고 에어컨 같은 엄청난 냉방 기술을 개발했으며, '고통 중에 자식을 낳을 것이요'(창 3:16)를 무효화하려고 무통 분만 기술을 개발했다.
'땅을 일정 주기로 쉬게 하라'라는 명령을 어기려고 질소 합성법을 개발하여 식량 생산에 치트키를 입력해 넣었다.
인간은 땅과 첫째 하늘까지만 영역을 두고 사는 게 원칙이지만.. 알다시피 우주 개발도 진행해서 왕년에는 인간이 달에까지 갔다 왔다.

분야를 불문하고 이런 엄청난 일들을 벌여 온 인간인데 하물며 유전공학 쪽은 어련하겠는가?
성경의 하나님은 잡종· 이종교배를 통해 생명의 본디 프로토타입인 유전자가 교란되는 것을 명백히 싫어하시는 것으로 보인다. 레 19:19가 대표적인 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노새'라는 가축이 가성비가 뛰어나고 좋으니 잡종을 만들며, 그 밖에 어느 동식물이든 필요하다면 유전자 조작도 얼마든지 일삼을 것이다.

자, 그런데.. 이런 일체의 시도 자체가 다 나쁘기만 할 것일까? 그걸로 인해 무슨 성경이나 하나님의 권위가 깎이기라도 하는 걸까?

하나님의 법칙을 자꾸 거슬러서 인간이 나중에 어떤 형태로든 보이지 않는 대가를 치르고 삽질하는 것이야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문제이고 뭐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 더운 여름에 에어컨이 발명된 것 자체를 저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주 개발을 하느라 돈지랄 하는 걸로 다른 사회 복지에나 좀 투자할 것이지!" 뭐 정치적으로 이런 이견이 제기된다면야 그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우주 개발 덕분에 월석의 특징이 밝혀지고 천왕성과 명왕성 사진이 공개된 것 자체를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비록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법에 도전하는 영역일지언정 과학 기술 자체는 거대한 칼과 같아서 기본적으로 가치 중립적이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뿐이다. 크리스천이 전쟁 무기를 생산하는 회사에 다니는 걸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듯, 유전공학을 연구하는 과학자 내지 NASA에서 근무하는 항공 우주공학자가 되지 말라는 법은 전혀 없다.

기독교 변증법 중에서 좀 구차하다면 구차하지만, "인간이 지금까지 밝혀 낸 지식이 이것밖에 안 되는데 그 영역의 밖에 있는 신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게 있다.
그런데 이런 논리는 대상을 외계인으로 바꿔도 동일하게 적용 가능하며, 난 둘 다 말이 된다고 본다. 몇백억 광년에 달하는 방대한 우주에 지적 생명체가 인간밖에 없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으니 SETI 프로젝트도 하고 옛날에 외행성 탐사선에다가 외계인들 있으면 보라고 금속판도 집어넣는 쇼를 한 것이다.

물론 본인은 크리스천으로서 이 방대한 우주에 지적 생명체는 인간밖에 없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고 여긴다. 허나 그건 내 믿음일 뿐이니,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큼이나 외계인을 찾는 그 심정은 동의하진 않더라도 동일하게 기회를 보장해 주고 존중해 줘야 한다고 본다. 그 시도 자체를 종교의 힘으로 봉쇄하고 강제로 찍어누르는 건 옛날 갈릴레오 재판 같은 병신짓을 재연하는 것일 테고.

말이 길어졌는데, 결론을 내리자면 이렇다.
다른 분야들도 그렇겠지만 과학과 종교 사이의 논쟁을 보면 양 진영들이 진실을 서로 다른 쪽에서 부분적으로만 갖고 있으며, 상대방을 향해서 뭔가 헛발질만 일삼는 게 눈에 많이 띈다. 원거리 공격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말이 안 통하니, 서로 빡치고 감정만 상해서 결국은 인신공격을 일삼는 백병전으로 논쟁의 양상이 바뀐다.

본인은 창조과학(?) 쪽이 문자적인 6일 창조를 목숨 걸고 사수하는 것 하나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창 1~3이 허구 설화라고 매도하고 하루가 원어로는 어떻고 헛소리 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허나 예전부터 내가 우려해 왔듯이 창조과학 진영도 다른 데서 쓸데없는 적을 만들고 삽질하는 게 너무 많아서 역효과가 크다. 과학과 성경 어느 하나도 확실하게 방어를 못 한 채 쓸데없이 저격당하고 털릴 구실을 많이 주고 있다.
자기들이 삽질해 놓고는 감당 못 하겠으면 딤전 6:20 "거짓으로 과학이라 불리는 것"이라는 실드 뒤에서 정신 승리하고 쏙 숨어 버리는 식이니 누가 인정해 주겠는가? 아무리 목적이 선하다고 해도 그럼 창조 과학조차도 "거짓으로 과학으로 불리는 것"일 가능성은 없을 줄 아는가??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지금 기독교회들은 진화론 걱정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노아의 홍수의 과학적 증거가 발견됐네 그딴 걸 한가하게 논할 때가 아니다. 과학에 앞서 자기들 본업인 성경 해석 노선부터가 진영별로 다 찢어지고 파편화돼 있다. 이게 해결되지 않는 한 창조과학회 식의 문제 접근 방식은 세속 과학계를 절대로 설득할 수 없고 논쟁을 이길 수 없다고 난 장담한다. 자기 코가 석 자라는 것부터 알고 정신 차려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성경과 과학 논쟁의 핵심에 있는 '간극'이고 말이다. 이전 세상의 멸망을 지질학· 천문학과 결부지어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전에 성경 용어와 루시퍼의 타락 같은 자기네 교리 체계부터 정립하는 게 선행돼야 할 것이다.

제발 쓸데없는 논쟁 헛발질은 하지 말고... 상대방의 의견을 반대하더라도 그 의견이 정확하게 뭔지는 알고서 반대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창조 진화 논쟁은 여느 정치· 종교 분야 논쟁만큼이나 서로 덕 될 게 없어 보인다.
신자들은 인간이 저렇게 도발적인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무슨 하나님이나 성경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거라는 속좁은 생각은 하지 말고, 오히려 걔네들 위에서 여유롭게 "그래 종과 종 경계도 얼마든지 그렇게 흔들릴 수 있지. 하지만 그래 봤자 부처님..은 아니고 하나님 손바닥 안일 뿐이야" 이렇게 상대하려면 과학 지식과 성경 지식이 모두 균형 있게 갖춰져 있어야 할 텐데.. 쉬운 일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이상, 지난 여름에 수박 먹으면서 문득 들었던 잡생각을 글로 정리해 보았다.

* 여담 1: 우 장춘, 석 주명, 공 병우 박사

우 장춘 박사는 일본에서 고생 잔뜩 하고 자라면서도 공부 엄청 열심히 해서 과학자로서 성공했고, 또 해방 후에 우리나라에서도 일체의 물욕과 명예욕 없이 너무 우직하게 학자의 길, 농학자 외길만 고집한 존경스러운 분이다.
사적으로 쓰라고 준 돈도 몽땅 영농 선진화 연구를 위해 종자를 구입하는 데 쓰거나, 연구소에 물을 대기 위해 우물을 파는 작업을 발주하는 비용으로 써 버린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그 와중에 그래도 자식 농사도 잘 지어서 딸은 미국에서 저명한 대학 교수가 돼 있다. (영문학자+수필가인 피 천득의 딸도 외국에서 대학 교수인데.. 그것도 부친 같은 문과가 아니라 물리학과로!)

나비 박사 석 주명은 6· 25 전쟁 때 표본 데이터도 날리고 서울에서 아군의 오인 사격으로 인해 참 원통하고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지만, 우 장춘은 생활권이 일본과 부산 사이여서 그런지 6· 25의 포화도 직접적으로 맞지 않고 잘 생존한 듯하다. 농작물뿐만 아니라 수목 쪽으로도(산림 녹화) 공헌한 숨은 과학자들이 여럿 있는데, 언젠가 이런 분들에 대해서도 다룰 일이 있으면 좋겠다.

한편, 공 병우 박사는 애초부터 한반도 북부의 실향민이기도 하고 6· 25 때 이북에 끌려가기까지 했다가 월남했다.

* 여담 2: 당신은 어느 레벨인가?

(1) 이 세상은 우연히 저절로 생긴 게 아니라 신에 의해 창조된 거다.
이 정도야 뭐 물증이 없더라도 심증상으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증명도 반증도 가능하지 않은 신념의 영역이니 누가 뭐라 할 사람 없다.

(2) 이 세상은 신에 의해 지금으로부터 6천여 년 전에 엿새 만에 창조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의 입장은 “지금 현 세상이 그때 그렇게 창조된 거지 그게 우주 전체의 완전 첫 기원을 말하는 것은 아님”이다. 6일 창조만 이용해서 모든 기원을 갖다붙이고 노아의 홍수만으로 모든 지질 시대 격변을 설명하다 보면, 결국은 어거지가 등장하고 생물학뿐만 아니라 지질학 천문학까지 여러 분야와 적을 만들게 된다.
많고 많은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결국 유신론적 진화론을 동원하거나 '하루'의 문자적 해석을 부정하게 된다. 성경의 용어 정의는 놔두고 관점을 바꿔서 "세상들"을 분리할 생각은 왜 안 하는 걸까? 성경을 바르게 나눌 줄 모르기 때문이다.

(3) 지구는 가만히 있고 태양 포함 다른 행성과 별들이 지구를 돈다. 일명 천동설.
성경에는 여호수아와 히스기야 시대에 그림자의 회전이 잠시 멈추었다는 기록이 있긴 한데, 내가 보기엔 그것도 차라리 지구의 자전을 중단시키는 게 태양의 공전(?)을 중단시키는 것보다는 구현하기 더 쉬울 거 같다. -_-;;

(4) 지구는 납작 평평하다.
설마 '땅의 원 위에 앉으신 이'(사 40:22) 내지 '땅의 네 모퉁이'(계 7:1) 같은 걸 flat earth의 근거로 갖다붙인 건 아니겠지.. 3~4 때문에 1이나 2(부분)까지 도매급으로 비웃음과 조롱 당할까 심히 두렵다.
1~4를 두고 생각나는 한자성어와 속담이 있다. ‘화사첨족’. 잘 그린다고 하니까 뱀 발까지 그린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16 08:28 2016/11/16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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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허국현 2016/11/16 12:06 # M/D Reply Permalink

    1. 군에 있을 때, 근무지가 지휘통제실이다 보니 "다음 주에 훈련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습니다. 그때마다 대답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기다려 봐. 주일날이나 월요일 되서 짐 싸고 있으면 훈련 가는 거고 아님 마는 거지. 내일 일도 자주 바뀌는데 어떻게 일주일 뒤를 알겠니."라고 답했습니다. 사실 제 근무지의 특성상 대대장님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는데, 함부로 노출시키면 실제로 제 생각이 대대장님 말씀이 되어 버릴 수도 있어서 그렇게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대할 때마다 개인적인 생각도 비슷합니다. "그냥 기다렸다가 하나님을 만나면 다 해결될 일"이라고 여깁니다. 코드랑 로그를 읽을 수 없어서 어셈블리 코드 읽느라고 고생하느니 나중에 코드랑 로그 접근 가능할 때 마음껏 읽어 봐도 되니까요.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얻을 것이 별로 없어 보이는 영역이 이 부분이더라고요. (그런데 재미는 있어서 가끔 찾아 보게 되긴 합니다.)

    2. 누군가가 기를 쓰고 진화에 대해 변론하려고 하면 이렇게 답변해 주곤 했습니다. "진화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영역이 많아. 지금 너는 '그것이 다 밝혀지면, 신이 없음이 증명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고, 그 믿음은 서글프게도 우리가 죽을 때까지 증명이 안 돼. 너나 나나 증명할 수 없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은 같아. 진화론 역시도 그런 종교적인 성격을 띄고 있어. 결국 너의 선택이야.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그 죄를 용서해 주신 것을 믿을지, 아니면 과학이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언젠가 증명해 줄 것을 믿을지."

    1. 사무엘 2016/11/16 13:46 # M/D Permalink

      사실, 진화론이 주로 다루는 건 종의 분화이지 아예 무에서 유로 ‘기원’은 애초에 큰 관심사도 아니지요. 그냥 단백질 같은 생명체의 구성 물질이 이렇게 합성이 가능하더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 범위를 넘어서는 기원에 대한 시나리오는 그냥 뭘 믿건 그냥 신념의 영역이지요.

      진화론도 생물학의 한 분야이며, 관찰과 실험을 통해 입증된 사실을 다루고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팩트의 전부인 줄 알고서 어차피 과학적인 관찰과 재현이 불가능하고, 신의 창조를 믿는 것보다 더 큰 믿음이 필요해 보이는 것을 믿는 사람도 있는 건 사실이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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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저항에 대한 생각

물이나 공기 같은 물질은 고정된 형체가 없기 때문에 물리학적으로 유체(fluid)라고 분류된다. 얘들은 비록 형체가 없을지언정 자신만의 밀도와 점성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 담겨 있는 다른 물질(기체 속의 액체/고체, 혹은 액체 속의 고체)을 상대로 이것저것 힘을 작용한다. 부력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저절로 작용하는 힘이지만 양력과 항력은 유체 속에서 고유한 운동을 하는 놈에게만 덤으로 생기는 힘에 속한다.

유체역학에서 항력이라고도 불리는 이 저항은 물체의 운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계산하는 일을 무척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다.
가장 기초적으로는, 종이나 나뭇잎을 높은 데서 떨어뜨렸는데 자유 낙하하지 않고 팔랑거리며 천천히 떨어지는 게 공기의 저항 때문이다. 미개하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공기 저항과 중력 가속도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서 막연하게 가벼운 물체는 천천히 떨어지고 무거운 물체는 빨리 떨어지는 줄 알았던 듯하다.

하지만 공기를 쫙 뺀 진공 속에서는 깃털과 쇠구슬이 엄연히 동일한 속도로 떨어진다. 또한 달에 간 아폴로 월면차가 인증을 했듯이, 거기는 그 가벼운 흙먼지조차도 지구처럼 자욱한 연기 형태로 남지 않고 파도 물보라처럼 곧장 깔끔하게 낙하해 없어지는 걸 알 수 있다. 지구의 물보라보다 천천히 떨어지기 때문에(중력 가속도가 더 작음) 뭔가 실사 같지 않고 게임에서 나타나는 흙먼지 이펙트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걸 1970년대 초에 CG로 재연한 게 아니라면 이건 지구에서 자연스럽게 촬영하기란 불가능하다.

공기의 저항이란 게 없다면 낙하산도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이 공기 저항 덕분에 무려 수 km에 달하는 높은 고도의 구름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고도 사람이 다치거나 물건이 부서지지 않는다. 이거 생각해 보면 꽤 신기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빗방울이 일정 속도 이상으로는 더 가속이 되지 않는 덕분이다.

하물며 공기보다 밀도가 월등히 더 높은 물의 저항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공기 중에서 총알을 빠르게 발사시키는 총은 물 속 불과 수십 cm 깊이에 잠겨 있는 목표물에도 거의 무용지물이다. 운동 에너지 1/2 mv^2에서 차라리 v를 크게 희생하고 m이라도 더 높인 작살총을 쏘는 게 더 나을 정도이다.

물 속에서 다리로 바닥을 저벅저벅 디디면서 빠르게 걷기란 저항 때문에 불가능에 가깝다. 작정하고 수영을 하며 나아가는 사람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신발조차도 거추장스럽기 때문에 벗어야 할 정도이다.
수영은 단순히 물에 떠서 생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물에서 빠르게 나아갈 수 있게 한다는 의미도 있다. 비행기가 단순히 공중에 뜨는 것뿐만 아니라 빠르게 비행하는 것도 중요하듯이 말이다.

유체 속에서 운동하는 물체에 작용하는 항력은 물체의 속도가 올라갈수록 급격히 커진다. 설마 지수함수 급은 아니지만 일단 유체와 그 물체 사이의 상대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며, 이것 말고도 유체의 밀도와 물체의 운동 방향 단면적, 그리고 유체의 모양이 결정하는 '공기저항(항력) 계수'에 비례한다. 더 자세한 것은 위키백과 설명과, 이 분야 전공자로 추정되는 어떤 분의 블로그 글을 링크하는 것으로 설명을 생략하겠다.

이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동력은 아예 속도의 3제곱에 비례한다. 저 항력 방정식에다가 속도가 한번 더 곱해지기 때문이다. 이러니 공기 중에서 달리는 차량은 고속에서의 가속이 급격히 힘들어지며, 일정 속도 이상부터는 공기 저항에 적극 대비하는 설계가 대단히 중요해진다.

물론, 정지 상태에서 첫 출발하는 것도 정지 마찰력의 극복 때문에 힘이 대단히 많이 필요하며, 저단 기어가 이런 이유 때문에 존재한다. 하지만 경제 속도를 넘어선 고속은 안 그래도 엔진이 토크가 떨어지고 힘을 쥐어 짜다시피하는 상태인데 공기 저항 때문에 더욱 어려워진다.

심지어 자동차에 에어컨이 아무리 엔진 힘을 깎아 먹는다 해도, 어지간한 고속 주행 중엔 그냥 그 에어컨을 켜는 게 창문을 열어서 바람 저항을 받는 것보다 더 나을 정도이다. 승객도 시원하고 차에도 부담이 덜 가고.. 공기의 저항이란 게 에어컨의 오버헤드에 맞먹을 정도라는 뜻이다.

이러니 부가티 베이런이 500마력에서 1000마력으로 엔진 출력을 두 배로 올렸는데도 최고 속도는 시속 300대에서 겨우 400대로밖에 못 올렸다.
아예 공기와의 마찰열까지 고려해야 하는 건 왕복엔진 자동차 수준에서 걱정할 일은 아니겠지만 차체는 아니어도 타이어가 열받는 것 정도는 현실성이 있다. 이건 무슨 법칙에 근거해서 발생하는 현상이며 무슨 변수로 기술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

공기 저항의 극복을 위해서는 물체의 단면적을 그저 작게만 만드는 게 장땡이 아니다. 일명 '유선형'이라고 불리는 매끄러운 설계가 필요한데, 그 수학 이론적인 배경은 잘 모르겠다. 단지 베지어 곡선이라는 것도 비행기를 설계하는 어느 엔지니어가 이 분야만 파다가 만들어 낸 곡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공기 저항 공식에서 단면적 외의 다른 변수가 바로 '항력 계수'이며, 주요 도형에 대해 알려진 항력 계수는 다음과 같다. 유명한 그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 계수들은 도형의 모양을 기술하는 수식에 대해 온갖 적분 등 복잡한 연산을 동원해서 산출했는지, 아니면 그저 경험적으로 얻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아, measured라고 써 놓은 걸 보니 경험적으로 얻은 값인 듯.

위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 의외로 그저 동글동글하게만 만드는 것도 장땡이 아니다. 물론 걔도 아예 각이 진 놈들보다는 계수가 작지만 말이다.
정말로 동글동글하게 만들어야 하는 건 사방팔방으로부터 가해지는 극심한 수압을 견뎌야 하는 잠수정이다. 그리고 걔들은 고속 주행이 목표인 물건이 아니다.

하다못해 골프공조차도 매끈한 구가 아니며, 표면이 온통 옴푹 패여 있다. 이 역시 나름 유체역학적으로 공기 저항을 극복하고 잘 날아가라고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며, 골프공 제조사의 고유한 기술과 노하우가 담겨 있다. 이걸 영어로 dimple이라고 하는데, 사람 얼굴에 옴푹 패인(?) '보조개'라는 뜻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여 년 전 대우 에스페로가 광고에서 항력(공기 저항) 계수가 0.29라고, 그 당시 국산 양산차들 중 최저인 과학적인 외형이라며 이 수치를 최초로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자랑을 쳤었다. 마치 뇌세포의 성분 DHA가 들어간 '아인슈타인 우유'처럼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좋아 보이게 마케팅을 한 셈이다. 본인은 이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에스페로는 첫 출시되었을 때는 쏘나타 같은 2000cc급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후기 모델들은 아반떼 같은 준중형급으로 엔진을 다운사이징한 게 이례적이다. 물론 차체의 크기는 동일한 채로 말이다.)

한편, 이륜차는 단면적이 일반 자동차보다 작음에도 불구하고 공기 저항에는 의외로 그리 유리한 외형이 아니다.
오토바이는 워낙 가볍고 단위 중량 당 마력이 큰지라 초반 가속은 자동차를 아득히 관광 태운다. 하지만 의외로 시속 200 이상급의 고속은 헉헉대는데, 다름아닌 공기 저항에 걸리기 때문이다. 이륜차가 그런 고속 주행을 하면 안전 관점에서도 심각하게 안 좋기도 하고 말이다.

엔진 없이 사람의 발로 페달을 밟아 달리는 자전거도 돈지랄을 한 경량화에다 기어비 최적화, 초인적인 라이더 같은 최상의 변수를 동원하면 순간적으로나마 거의 시속 100을 능가하는 고속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의 초고속 주행 기록은 앞에서 커다란 우산? 양산?을 후방으로 펼쳐 주고 주행하는 자동차를 바짝 붙어서 따라가면서 세운 거라고 한다. 다시 말해 공기 저항을 앞의 자동차가 대신 받아 주니 고속 주행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단체 관광버스들이 교통사고의 위험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앞뒤로 대열운행, 일명 떼빙을 여전히 일삼는 이유는 1차적으로는 다같이 무리해서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서일 것이다. 허나, 보조적인 이유로는 연비 때문이기도 하다고 한다. 커다란 선두가 공기 저항을 다 받으면서 출발하니까 뒷차들은 상대적으로 나아가기가 쉽다고..
그 정도로 연료 절감 효과가 존재하고 경험적으로 입증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원리는 철도 차량에도 적용 가능할 듯하다. 단순히 쇠 레일+쇠 바퀴로 인한 마찰 계수 감소 말고, 다수 차량의 밀집 운행으로 인한 효율 증대도 장점이 되겠다.

사실, 자동차의 옆에 툭 튀어나와 있는 백미러는(후면경) 유체역학적으로는 굉장히 안 좋으며, 방해가 되는 물건이다. 비행기의 날개처럼 양력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돌출된 것도 아니고..
허나 운전을 위해서는 절대로 없어서 안 되는 필요악이기 때문에 달려 있다. 이걸 자그마한 카메라로 100% 대체가 가능하다면 연비 개선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상...;;
열역학에서는 이상 기체라는 개념까지 설정해서 기체가 열과 압력을 받아서 액화나 기화하고 그 과정에서 열을 수송하는 과정을 수식으로 설명한다. 거기는 물리뿐만 아니라 반쯤은 화학에도 속하는 영역 같다. 물론 엔진이나 냉동 기관 같은 게 다 열역학 이론에서 비롯된 기계이므로 이건 굉장히 중요한 학문이요 기술이다. 에어컨이 발명된 덕분에 인간이 거주하고 도시를 건설할 수 있는 영역이 크게 넓어졌으며, 냉장· 냉동고가 발명된 덕분에 식품의 장거리 수송과 장기간 보존이 가능해졌다. 동력 엔진의 발명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고.

하지만 유체역학에서는 그렇게 기체의 상태 변화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 안에서 운동하는 강체의 에너지 효율을 다룬다. 서로 영역이 다른 셈이다. 하지만 자동차나 비행기가 만들어졌는데 걔네가 조금이라도 연료를 덜 소모하고 더 경제적으로 움직이게 하려면 차체를 유체역학적으로 잘 디자인 하는 게 필수이니 두 역학 분야는 동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바늘과 실 같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11 19:29 2016/11/11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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