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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메라, 애니메이션

요즘은 스마트폰의 카메라에 렌즈가 하나가 아닌 둘이 달려서 나온다고 한다. 음향은 진작부터 2채널 스테레오가 보편화되긴 했다만, 영상도 사람의 두 눈처럼 두 렌즈의 결과를 적절히 합성함으로써 시야각과 광량을 더 개선하고 더 나아가 공간 인식에도 참고하려는가 보다.

총으로 치면 총열이 두 개 달린 초강력 샷건 같다. 비록 카메라는 셔터를 누를 때 반동이 발생한다던가 하지는 않지만, 촬영도 조준 잘해서 흔들리지 않게 찍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뭔가 사격과 비슷한 면모가 있어 보인다.

총이 휴대성을 강조하느라 총구가 너무 작으면 화력이 감소하며, 총열이 짧으면 명중률도 급격히 떨어진다. 이와 비슷하게 렌즈도 너무 작으면 화각이 감소하고 화면 가장자리가 휘는 왜곡이 심해진다. 초소형 몰래 카메라로 열악하게 찍은 영상일수록 그런 현상이 더 심한 걸 볼 수 있다.

동영상을 촬영하는 카메라는 그냥 자동화기를 넘어서 기관총 정도 될 텐데..
이게 실사 영화를 만들 때만 쓰이는 건 아니다. 실사 영화 그림을 토대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도 하는데, 한장 한장 보면서 2D 그림으로 일일이 베껴 그려 넣는 기법은 (1) 로토스코핑이다. 그리고 실사이긴 하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게 아니라.. 찰흙 인형이나 레고 구조물을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이동시키고 바꾸면서 찍는 건 (2)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다.

(1)은 애니메이션으로 실사에 준하는 자연스러운 영상을 만들어 낼 수 있고 (2)도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장면을 실사로 뽑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참신하긴 하지만, 노가다 양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3D CG 기술이 발달했고 인건비 절약이 중요한 오늘날에는 잘 쓰이지 않는다. 3D CG로 오히려 2D 만화 그림체를 흉내 내고, 없는 찰흙 인형을 만들어 내는 세상이 됐으니 말이다.

그리고 사격과 카메라 얘기가 동시에 나왔으니 말인데, 요즘 스마트폰이 아주 가끔은 오발신(?) 현상이 있는가 보다.
전화기가 평소에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는 분에게서 오는 전화를 받아서 응답했는데 저쪽에서는 배경음만 들리고 아무 말이 없다.
나중에 그 사람에게 직접 묻거나 다시 전화를 해 보면 자기는 그때 전화를 한 적이 없댄다.

자동차가 급발진 의심 증세가 있고 총기도 오발 사고가 날 수 있는데 스마트폰도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평소에 전화기를 잠금 해 놓고 지내지 않나? 어떻게 그렇게 의도하지 않은 오발신이 될 수 있지? 궁금하다.

2. 총은 살살 쏘면 맞아도 안 아파?

  • 총은 살살 쏘면 맞아도 안 아파~!
  • 하드디스크는 데이터를 엄청 많이 집어넣게 되면 무게가 늘어난다.
  • 에어컨은 살살 약하게 틀면 전기를 덜 먹는다.

이런 예가 또 뭐가 더 있을까?
으음..; 뭐랄까 "무거운 사람이 가벼운 사람보다 같은 높이에서 더 빨리 떨어진다" 같은 급의 발상 같다.
기초 과학 법칙에 극도로 무지하거나, 현대 문명의 이기들의 기본적인 동작 원리에 대해 너무 무지하고 이게 다들 그냥 요술상자 매직· 블랙박스인 줄로만 아는 기계치라면 이렇게 순진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영구기관 같은 사이비 유사 과학 데에도 낚이기 쉬울 것이다. 사실, 마찰이 아주 작아서 굉장히 오래 술술 잘 돌아가는 듯이 보이는 기계만 해도 일상적으로 보기는 쉽지 않으며, 영구기관인 걸로 착각하기 쉬우니 말이다.

에어컨이 전기를 덜 먹게 하려면 송풍기의 강도를 낮출 게 아니라 설정 온도를 높이거나, 아예 냉방을 끄고 송풍 모드로만 바꿔야 한다. 총을 살살 때리는 게 가능한 몽둥이의 연장선으로 생각한다거나, 에어컨을 뭔가 최첨단 고성능 선풍기의 연장선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비행기는 고도를 낮춰 착륙하려면, 기수를 아래로 향하게 할 게 아니라 위로 들고 엔진 출력이나 서서히 낮춰야 한다. 기수가 먼저 땅에 닿는 건 비행기가 추락하는 상황이다..;;
자동차가 피시테일에 빠져서 요동치고 있다면 오히려 가속을 해서 무게 중심이 뒤로 쏠리게 해서 불안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
이렇듯, 기계를 잘 다루려면 우리의 직관과 맞지 않는 방향으로 조작을 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3. 90도 직사

군대에서는 총을 사용하는 훈련을 마친 뒤 복귀해서는 병사들 전원이 오와열 맞춰서 총구를 하늘로 들고 "노리쇠 후퇴 전진, 어깨 위에 총, 격발, 이상 무" 이렇게 총기에 총알이 없다는 걸 확인한다. 그런데 이때 격발이 되어서 진짜로 하늘을 향해 90도로 총을 쏴 버리면 어떻게 될까?

  • "건전지에 전선으로 양극을 연결하면 어떻게 되나요?"
  • "자동차 운전 중에 기어를 갑자기 R로 바꾸면 어떻게 되나요?"
  • "망원경으로 태양을 직접 보면 어떻게 되나요?"

꼭 destructive하고 위험한 쪽으로 비상한 호기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어딘가엔 꼭 있다.

저 경우, 물론 바람 때문에 총알이 정확하게 지금 우리가 있는 곳으로 그대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또한 공기의 저항 때문에 탄두는 처음에 격발됐을 때보다는 훨씬 더 천천히 땅에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수치를 동원해서 구체적으로 그 위력이 얼마 정도 되는지... 총알은 고도 몇백 m 정도까지 올랐다가 1기압의 지표면에서 얼마 정도의 종단 속도로 떨어질지, 머리에 맞으면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인터넷 검색을 해 봐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낭설이 많기 때문에 인터넷 검색만으로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려워 보인다.

뭐, 밤 하늘에 비행기를 향해 레이저 포인터를 쏘는 것도 금지고, 공중으로 총을 쏘는 것도 도대체 무슨 사고가 터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단은 절대 금지이긴 하다.
그리고 총알도 아니고 박격포를 90도로 쐈다가는 정말 큰일 날 것이다. (박격포는 그 특성상 포병이 아닌 보병에 속하는 병과이다.)
저격수나 포병이나 다 규모가 차이가 있을 뿐 보병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화력 지원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4. 인간의 건강과 복지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과학 기술

  • 질소 합성: 인간은 다른 것보다도 우선 잘 먹어서 영양 상태가 좋아야 면역력도 좋아지고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공기 중의 질소를 인공적으로 농축해서 암모니아를 합성하고 비료를 만들 수 있게 됨으로써 식량 생산에 치트키를 넣을 수 있게 됐다.
  • 백신과 항생제: 인류를 무수한 세균성 질병으로부터 구한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이게 없던 시절엔 야외· 야전에서 좀 크게 다쳤다 하면 환부가 세균에 감염돼서 사람이 픽픽 죽거나 사지를 통째로 절단하는 게 다반사였다. 심지어 출산이나 발치 이후에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 수돗물 염소 소독: 깨끗한 상수도를 보급하는 기본적인 인프라야말로 그 어떤 의료· 제약 기술 이상으로 인류의 건강과 복지에 큰 기여를 했다. 깨끗한 물을 마시고 흐르는 물로 늘 손을 씻는 것 말이다.
  • 비타민의 존재 규명: 이거 존재를 모르던 시절에는 평범한 식단을 유지할 수 없는 군인이나 선원들이 전쟁 내지 항해 중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비타민 결핍증으로 픽픽 쓰러지고 죽어도 속수무책이었다.

안전 유리가 없던 19세기 말의 자동차 초창기 시절에는 시속 60이 채 안 되는 속도로 교통사고가 나도 앞유리창이 와장창~ 하면서 수류탄 파편으로 변해서 탑승자에게 사망 또는 중상을 야기했다. 뭔가 기본적인 안전 장치가 없다 보니, 지금으로서는 사람이 죽을 이유가 전무한 간단한 상황에서도 사람이 픽픽 죽거나 중상을 입어야 했다.
그리고 굳이 자동차가 아니더라도 항생제나 백신이 없던 시절에 인류의 의료도 딱 그런 정도로 열악했었다.

세균의 존재를 모르던 불과 200년 남짓 전만 해도, 의사들이 방금 전에 시체를 부검했던 손으로 그대로 다른 환자들의 환부를 만졌다. 의사라는 사람들부터가 손 씻기의 필요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으며, 이 점에서는 오히려 동양이나 유대인들보다도 더 미개했다.

양치질에서 물리적으로 구석구석 칫솔질을 잘 하는 게 치약 바르고 묻히고 가글링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듯, 손 씻는 것도 '흐르는' 깨끗한 물에 손가락 구석구석을 비비고 문지르는 게 비누를 묻히는 것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완전 기름때 위주가 아닌 이상..). 그리고 그 물을 잘 소독하여 보급하는 것의 중요성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으로서는 정말 믿어지지 않지만 수십 년 전에는 여객기 스튜어디스가 누적된 간접 흡연 때문에 폐암에 걸려서 이걸 산업 재해로 인정해 달라고 소송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위험한 힌덴부르크 수소 비행선도 객실 안에 흡연실과 라이터가 있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참 어이가 없다.

그리고 대소변은 반드시 화장실에서 처리하도록 하고 길거리에서는 함부로 침 뱉지 말고, 기침은 팔꿈치로 입을 가리면서 하고, 다같이 식사를 하는 곳에서는 국을 국자로 푸는 것.. 이런 기본적인 위생 관념이 전염병 예방에 기여를 한다. 미국도 20세기 초에는 "제발 침 뱉지 맙시다" 계몽 운동을 할 정도였다.

한 가지 더..
세균의 존재가 규명된 것까지는 좋은데, 20세기 초에 일본에서는 그 당시의 최신 첨단 학문 트렌드였던 '세균설'을 너무 맹신한 나머지, 비타민 결핍증까지 세균 탓이라고 오인해서 군인들을 필요 이상의 위생 검열로 고생시키면서 결핍증은 전혀 해결하지 못한 병크를 저지르기도 했다. 바이러스까지도 세균이라고 주장했던(주작? 단순 착오?) 노구치 히데요를 배출했던 동네답다.

5. 기타 기계· 기술 분야 얘기

(1) 에어컨은 필터 청소를 안 하고 관리를 잘 안 하면.. 켠 직후에 그 특유의 더러운 냄새가 바람에 잔뜩 섞여 나온다. 하지만 그 냄새는 본격적으로 냉동이 시작되고 찬 바람이 나오면 없어지는 편이다. 처음이 문제다.

디젤 차량도 차가 적당히 속도가 붙고 엔진 회전수가 올라간 뒤에는 괜찮은데 갓 출발할 때, 혹은 급가속을 할 때가 크리티컬이다. 연료의 불완전 연소 빈도가 높고 이때 매연이 뿌뿡 뿜어져 나온다.
VVVF 전동차 중에서 초기형인 GTO(사이리스터 소자) 기반 차량은 가속할 때 특유의 시끄러운 전자음이 나는데, 정작 전동기가 최대 출력에 도달하면 윙윙 소리가 인간의 가청 대역 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조용해진다. 이런 것들이 다 기계의 특성인 것 같다.

(2) 내연기관에서 반켈 엔진이 왕복 운동이 아니라 회전 운동을 직통으로 생성하는 형태라면, 전동기에서 선형 모터는 특수하게 생긴 차량과 궤도를 이용해서 회전조차 생략하고 차체의 운동을 직통으로 구현한... 그런 형태로 볼 수 있겠다.
하긴, 옛날에 KTX가 처음 개통했던 시절엔 KTX가 살짝 떠서 달리는 자기 부상 열차(선로 위의 호버크래프트!!)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렇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부상 열차가 다 시속 SF스럽게 400~500km/h로 달리는 것도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09 19:37 2018/06/09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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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름과 테이프

아날로그 방식으로 정보(주로 시청각 정보)를 저장하던 대표적인 매체는 '필름'과 '테이프'이지 싶다.
필름은 주로 (1) 정지 사진을 찍는 용도로 쓰이지만, 잘 알다시피 수만~십수만 장 이상 빠르게 돌리면서 환등· 영사를 해서 (2) 영화를 돌리기도 하며, (3) 방대한 양의 옛 종이 문헌을 촬영해서 내용을 초소형으로 보존하는 용도로 쓰기도 한다.
(3)은 TIF 내지 PDF의 아날로그판쯤 되며, 카메라가 아니라 스캐너에 더 가까운 영역으로 보인다. 이 세 종류의 필름들이 다 동일한 재질인 것도 물론 아니다.

한편, 테이프는 '자기 테이프'라는 이름으로 컴퓨터의 기억장치로 쓰이기도 하지만 일단은 '카세트 테이프' 같은 음성 저장용으로 널리 쓰였다. 그러니 유성 영화도 화면은 필름을 돌려서 상영하고, 음성은 테이프로 재생했다.
카세트 테이프는 앞뒤 구분이 있는 반면, 비디오 테이프는 그렇지 않다. 전자는 내 기억으로 최초로 개발한 곳이 필립스이고, 후자는 SONY/JVC 등 아무튼 서로 다르긴 한데.. 카세트 테이프는 테이프 단면을 좌우로 반반씩만 나눠서 사용하기라도 했나 싶다.

그런데 '릴 테이프'라고, 방송국 장비라 하면 곧장 떠오를.. 그 커다란 바퀴가 뱅글뱅글 돌아가는 기계가 있는데.. 그게 인간이 개발한 아날로그 녹음 장비 중에서는 음질이 제일 좋았다. CD건 카세트건 각종 음반들의 최초 마스터 원본 음원을 저장하는 데 요게 쓰였다고 한다. 아날로그 시절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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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면, 비디오 테이프는 말 그대로 '테이프'에 영상과 음성이 모두 담겨 있으니 신기한 일이다. 물론, 물리적인 매체 없이 전파· 전자기 신호만 취급하던 과거 TV와 비디오 테이프의 화질은 필름의 그것에 필적할 수 없었다. 디지털처럼 해상도가 정확한 숫자로 딱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주사선의 수를 세어서 수직 해상도가 200~300대.. 그냥 VGA mode 13h 320*200보다 약간 더 좋은 수준이었다.

뭐, 실물이 있는 아날로그도 해상도가 마냥 무한대는 아닐 것이다. 디지털 같은 날카로운 계단 현상이 없는 대신, 단지 경계가 흐릿해서 알아보기 어려울 뿐이다.
그래도 영화 필름은 어지간히 오래된 것이라도 스캐닝과 복원, 리마스터링을 아주 잘 하면 디지털 규격 기준으로 거의 6K급의 해상도까지는 뽑을 수 있다고 한다. 애초에 그 넓고 큰 벽면에다가 쏴도 될 정도의 영상이 담겨진 매체이니 말이다.

인간이 1970년대에 달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 기록들은 실시간으로 전송한 동영상은 전파를 통해 보낸 것이며, 고화질 사진들은 필름 카메라로 찍은 것이다. 컬러 사진과 TV 기술만 있고, 그렇다고 없는 영상을 주작할 수 있는 디지털 CG 기술은 없던 시절이다.
참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그에 반해 세상에서 제일 끔찍하고 처참한 사진 기록이 남을 수 있었던 1940년대 2차 세계 대전 시절에는 아직 컬러가 거의 보급되지 않았었다.)

2. 매체의 차이

참고로, 어떤 정보 저장 매체가 아날로그냐 디지털이냐 하는 것은 그 매체를 읽고 쓰는 기계의 재량에 달렸지, 그 매체 자체의 물리적 특성이나 저수준 메커니즘에 막 절대적으로 의존하지는 않는다.
가령, 레이저 디스크는 기술 수준이 100% 디지털 매체인 CD와 동급이다. 하지만 그 시절에 영상 신호까지 모두 디지털로 취급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부담스러웠던지라, 얘는 아날로그 기반이다. 그 대신 화질은 MPEG2급으로, 아날로그치고는 HD 축에 들었고 괜찮았다. 가정용 VHS/VCD(MPEG1)보다는 확실히 더 좋으니 말이다.

하긴, 초창기의 PC용 그래픽 카드만 해도 구닥다리 CGA와 EGA는 디지털이지만 정작 VGA는 고해상도 고색상 처리를 위해 신호 전송 방식이 오히려 아날로그 기반으로 잠시 되돌아갔다는 것도 감안할 점이다.

반대로 테이프도.. 카세트나 비디오 테이프는 일단 아날로그 최적화이다. 컴퓨터에서 쓰이는 테이프 리더는 기술적으로 모뎀이나 다름없었다. 매체가 전화선이냐 테이프냐는 차이만 있을 뿐, 거기서 얻어진 치지직~ 하는 아날로그 음성 신호를 디지털 0~1 뭉치로 변환하는 건 완전 동일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테이프가 비록 카세트 테이프 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테라~페타바이트급 분량의 방대한 백업과 아카이빙 용으로 업계에서 여전히 쓰이고 있다. 그 테이프와 옛날 테이프의 기술적인 차이가 어떤게 있는지 궁금해진다. 일찍부터 기업용과 가정용은 성격이 굉장히 달랐다고 하는데...

아울러, 아날로그 매체들도 다 똑같은 아날로그가 아니며 디지털도 다 똑같은 디지털이 아니다. 오디오 CD는 소프트웨어적인 음성 압축은 전혀 없이 그냥 raw한 PCM 신호만이 디지털 형태로 쭉 들어있기 때문에 MP3보다는 정보의 집적도가 훨씬 낮다. 물리적인 오류에도 상대적으로 더 여유가 있다.

테이프들보다 더 아날로그스러운 물건으로는 필름(영상) 또는 LP가 있을 것이다. 비디오 테이프는 영화 필름과 동급의 아날로그를 구현한 건 아니니, 컴퓨터처럼 640*480으로 딱 떨어지는 것도 아니면서 한편으로 주사선 수 정도의 해상도는 명시적인 제약이 있다. 그리고 겨우 그런 화질을 거대한 영화관 벽면에다 쏴서 상영할 수는 없다.
LP 레코드는 그 자체에 뭔가 재생 위치 정보 같은 게 없는데(테이프의 감긴 위치 같은).. 곡의 탐색은 어떻게 했는지, 바늘의 위치로 그런 것을 변경했었는지 궁금하다. 본인은 LP가 실물 기기에서 재생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3. 비디오 테이프의 기술적 한계

테이프는 비디오건 카세트건 재생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자동차 타이어가 닳듯이 테이프가 늘어나고 화질· 음질이 조금씩 안 좋아지는 단점이 있었다. 아예 0 아니면 1로 깔끔하게 오류, 에러, 배드 섹터로 처리되는 게 아니라 아날로그답게 그냥 흐리멍텅해지는 것이다.
물론, CD 같은 디지털 매체도 싸구려 재료로 당장 컴퓨터에서 인식만 되게 만들어지고 어설프게 구워진 것은 10수 년도 못 버티고 내용이 지워져 버린다. 하지만 그건 보존· 보관과 관련된 문제인 것이고, 테이프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사용만으로도 열화를 피할 수 없었다.

또한, 테이프 간에 복제를 해도 100% 정확하게 깨끗하게 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특히 TV로 재생되는 신호를 잡아내는 식으로 녹화를 하면 절대로 원본과 같은 퀄리티가 나오지 않았으며, 오랫동안 재생되어 삭은 것 같은 열화가 대놓고 진행되었다.
그 열화된 사본을 재생하면서 녹화하고, 또 그 복사본을 같은 방식으로 재생+녹화 복사하고, 또 복사하고.. 이렇게 세대를 거듭하면..

영상의 색감(채도)이 갈수록 떨어지고 번쩍거리기 시작하고, 스테레오였던 음성은 모노로 짤리고, 영상과 음성이 뭉개지고 흐려지더니 급기야 컬러가 싹 사라져서 흑백으로 바뀌고.. 화면이 흔들리고 노이즈가 끼고.. 나중에는 영상은 그냥 백색잡음(white noise)으로, 음성은 테이프 늘어난 듯한 바람 소리로 수렴해 버린다. 이게 바로 자기 테이프에 기록된 아날로그 신호의 궁극적인 종말점인 듯하다.
다음 동영상은 VHS 비디오 테이프의 세대별 화질 열화 양상을 보여준다. (generation loss)

100% 아날로그인 영화 필름이 몇십 년 오래되면 영상의 색깔이 누렇게 바래지고(컬러) 경계가 뿌옇게 흐려지고(흑백), 무엇보다 필름 단면에 먼지· 이물질이 많이 붙었는지 백색 화면에서도 검은 점 같은 게 쉴 새 없이 깜빡거리게 된다. 이 정도면 그래도 우리가 충분히 직관적으로 예상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의 화질 열화이다.

그리고 반대로 100% 디지털인 컴퓨터에서 그림이나 동영상을 손실 압축 방식으로 계속 저장하거나, 압축률을 높여서 저장하면 그 특유의 경계가 뭉개지고 깨지는 artifact를 볼 수 있다.
허나, 비디오 테이프의 아날로그 신호가 망가지는 모습은.. 정말 이질적이고 참으로 인상적이기까지 하다.

그럼 옛날에는 비디오 테이프만 갖고는 정확하게 복제된 비디오 테이프를 얻는 게 불가능했나?
영화가 비디오 테이프로 출시되면 동일 매체인 마스터 테이프를 복제하는 게 아니라 매번 영화 필름으로부터 테이프에다 기록을 해야 했나?
그건 아니었을 텐데.. 비싸더라도 TV 신호 변환-역변환이 아니라 테이프의 신호를 직통으로 베껴 쓰는 전문적인 비디오 테이프 복사기도 있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소프트웨어의 디버깅으로 치자면 실행을 하지 않는 정적 분석처럼 말이다.

하나 더 첨언하자면, 옛날 아날로그 비디오에서는 각 화면의 정확한 픽셀은커녕 정지화면을 제대로 보기도 어려웠다. 일시정지 기능이 굉장히 구현하기 어려운 기능이었기 때문이다. 비디오 플레이어에 컴퓨터 같은 자체적인 비디오 메모리가 있지 않으니, 한번 보낸 영상이 그대로 자연스럽게 유지되지 않았다. "즐겁게 재생하다가 그대로 멈춰라"를 할 수 없었다.

pause 상태가 되면 비디오 테이프는 안 돌아가지만 헤드는 어떻게든 돌면서 테이프의 동일 지점을 미세하게 계속 스캔해야 했다. 그러니 자동차 타이어가 헛돌고 특정 지점만 계속 닳는 것과 같으며, 테이프에 좋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기껏 정지시킨 화면은 화질이 구려지고(심하면 흑백으로..) 노이즈가 꼈다.

뭐, 굳이 따지자면 비디오 테이프는 일시정지가 어렵지만, 컴퓨터의 디지털 동영상은 역방향 재생이 불가능한 형태이다. (구간 seek를 위한 키프레임만 일정 시간 간격으로 놓여 있을 뿐임)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f'(x) 함수로부터 f(-x)를 실시간으로 유도하는 게 쉬울 리가 없을 것이다. 서로 제각기 희생하고 포기한 분야가 있다.

4. 브라운관 수상기

두툼한 브라운관(CRT, 음극선관)은 완전히 퇴물로 전락해서 21세기 무렵부터는 전세계적으로 생산이 중단됐다. 증기 기관차는 1950~60년대부터 자취를 감췄으니 이와는 거의 반세기에 가까운 간격이다.
차라리 완전 옛날 물건에 속하는 LP, 카메라용 필름 같은 건 극소수 마이너한 수요라도 있다지만, 브라운관 모니터나 카세트· 비디오 테이프 같은 건 진짜로 명줄이 끊겼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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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설계 한도 이내의 아무 해상도나 픽셀의 뭉개짐 없이 자연스럽게 지원 가능한 디스플레이 기술은 예나 지금이나 브라운관이 유일한데... 그걸 생각하면 과거의 브라운관 모니터가 문득 다시 보고 싶어질 때도 있다.
옛날에 형광등이 처음 켜질 때 딜레이가 있던 것처럼.. 브라운관 모니터는 처음 켤 때 전자총을 예열하느라 화면이 서서히 fade in 되는 딜레이도 있었다.

너무 어린 시절이어서 정확한 디테일이 기억 나지는 않지만, 과거에도 텔레비전은 자체적으로 공중파 영상을 수신하는 부분과 영상 신호를 표시하는 부분이 분명하게 분리되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전자를 사용하지 않고 후자를 다른 기계와 연결하면 TV를 컴퓨터, 비디오, CCTV 등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감시용 녹화 영상이 아니라 학교 방송부에서 송출하는 내부 방송도 공중파가 아니니 CCTV의 일종이지 않겠는가?

단자를 잘 연결하면 가정용 텔레비전을 컴퓨터 모니터로 쓰는 것도 실제로 가능은 하다. 하지만 고해상도 화면이 선명하게 표시되지 않기 때문에 이걸로 눈 버리지 않고 컴퓨터 작업을 하기는 어렵다(브라운관 기준).

같은 브라운관 기술 기반이어도 텔레비전과 컴퓨터 모니터는 만드는 방식이 미묘하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마치 군대 사격과 스포츠 사격의 차이와 비슷한 양상인 것 같다. 텔레비전은 안 그래도 멀리 떨어져서 시청하니 화면 크기를 더 키우는 데 중점을 둔 반면, 모니터는 가까이서 들여다보며 문자를 읽을 일이 많으니 작더라도 픽셀이 더 선명하게 찍히도록 만들어진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컴퓨터 모니터가 4:3이 아닌 16:9 종횡비의 와이드 화면이 급격히 대세가 됐다. 이때는 컴퓨터 모니터가 액정 위주로 바뀐 뒤이다.
그럼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브라운관 모니터 중에도 단순히 크고 해상도 높은 모니터가 아니라, 와이드 종횡비인 모니터가 있었을까?

본인은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나, 검색을 해 보니 실제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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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본인의 대학 시절, id 소프트웨어에서 Doom 3이 나오네 마네 하던 시절에 이런 홍보 동영상을 봤었는데..
영상 중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존 카맥이 코딩을 하는 장면이 있다.

알고 보니 저건 굉장히 옛날 모습이었다. 당대의 Doom 3 제품이 아니라 무려 1995년, 도스용 Quake를 개발하던 시절의 모습이다.
그런데 1995년.. 서민들의 컴퓨터는 해상도가 기껏해야 800*600, 1024*768 이러던 시절이었을 텐데 존 카맥이 쓰던 컴퓨터의 모니터는.. 1920*1080 와이드 화면이었다. 액정이 아닌 브라운관 모니터로 저런 해상도와 종횡비를 지원하는 물건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크기와 무게, 가격은 감당하기 심히 압박스럽겠지만..;;

그리고 저 당시에 존 카맥의 Quake 개발 환경은 도스도, Windows도 아니고.. 그 이름도 유명한 NextStep이었다. 개발에 사용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부터가 그야말로 평범하지 않은 값비싼 명품 일색이었다. 뭐, 저분은 Doom 1/2가 초대박을 터뜨린 덕분에 백만장자가 됐고, 고급 스포츠카를 굴리며 떵떵거리며 살았으니 개발 장비를 최고급으로 지르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존 카맥은 2013년을 끝으로 id 소프트웨어에서 퇴사하여, 게임 개발자 및 실시간 렌더링 3D 컴퓨터그래픽 '구루'(guru)로서의 커리어는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그래도 경영이나 기획 쪽이 아닌 순수 기술자· 엔지니어이다 보니, id의 창립자들 중에서는 제일 오랫동안 남아 있다가 퇴사한 거다. 그랬는데 어째 Doom의 2016년도 리부트작에서는 일말의 기여를 하거나 자문에 응해 준 게 있는지 'former(前) 어쩌구' 하는 직함으로 크레딧에 등장한 모양이다.

지금이야 개나 소나 들고 다니는 그 작은 스마트폰의 화면 해상도가 20여 년 전 존 카맥이 쓰던 최고급 모니터의 그것보다 더 높은 지경이다. 3K~4K 해상도가 기본이고, 아이맥은 5K 화면까지 나와 있다.
또한, 휴대용 전자기기에서 액정 화면이라 하면 옛날 계산기처럼 그냥 녹색 배경에 검은색으로 7-segment 숫자나 찍혀 나오는 장비가 고작이었는데.. 언제부턴가 거기서 초고해상도 천연색 그림이 찍혀 나오고 있다.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공장소에서 볼 수 있는 LED 전광판은 크기는 좀 더 크지만, 오랫동안 청색과 백색의 불모지로 여겨져서 주황이나 녹색 글자만 볼 수 있었지만 이 역시 천연색으로 바뀐 지 오래다. 얘는 디스플레이라기보다는 광원· 조명 기술로 각광받고 있으며, LCD에다가 빛을 비추는 수단으로도 쓰인다. 애초에 LED와 LCD는 비슷해 보여도 영어 이니셜의 의미가 서로 완전히 다르다.

5. 프로젝션 장비

끝으로.. 프로젝터 얘기만 더 하고 글을 맺겠다.
지금이야 컴퓨터 화면을 벽면에 그대로 쏴 주는 프로젝터가 주류이지만 옛날에, 1990년대까지만 해도 OHP 필름을 쏴 주는 프로젝터가 학교나 회의실 같은 데서 널리 쓰였으며 필름 인쇄가 가능한 잉크젯 프린터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아날로그· 오프라인 매체답게 필름에다 실시간으로 밑줄을 긋는 등 수정이 자유로우며, 필름 여러 장을 옮기고 겹칠 수도 있는 건 오늘날의 컴퓨터 기반 프레젠테이션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장점이라 하겠다.

그러다가 그게 발전하여 그냥 실물 영상을 TV 화면으로 보내 주는 기기도 잠시 쓰였으나.. 얘는 가성비가 별로였을 것 같으며 실제로 금방 사라졌다. 캠코더? 비디오 카메라? 는 동영상을 찍으라고 만들어진 물건이지 발표 자료를 표시하는 용도는 아닐 테니까. 그래도 본인은 학창 시절에 이런 물건을 본 기억이 있다.

이런 장비가 없던 더 옛날엔 그냥 A0 전지 크기의 괘도가 교보재로 쓰였다. 지금도 전자 장비를 동원할 수 없는 군대 같은 데서는 야전 교육용으로 저런 게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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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8/04/25 08:33 2018/04/2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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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과 공기의 차이

1기압에 온도가 20도대인 지구의 공기는 사람이 활동하기 쾌적한 환경이다. 기온이 체온에 근접하면 체열을 밖으로 제대로 내보낼 수가 없어서 더위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20도대의 물은 수영을 하기에 여전히 꽤 차가운 물이다. 물의 온도는 체온에 근접해야 그럭저럭 미지근하고 물놀이를 할 만하다고 여겨진다.

7~80도대, 심지어 그보다 더 뜨거운 공기는 사우나에서 겪을 수 있으며 잠깐 정도면 버틸 만하다. 그러나 같은 온도의 물은.. 닿는 즉시 화상을 입는 뜨겁고 위험한 물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온도라는 건 도대체 과학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사실, 인체 내부는 온도의 변화에 의외로 취약하다. 체온이 정상보다 단 몇 도만 더 높거나 낮아지면 사람은 정상적인 활동을 못 하고 앓아눕게 된다.

저온에서는 세포의 물질대사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한다. 사람이 추운 실외에서 이불 같은 거 안 덮고 그냥 자다간 그대로 동사하는 수가 있다.
그리고 반대로 고온도.. 뇌를 구성하는 단백질은 40도 정도만 돼도 생화학적으로 변성되고 맛이 가 버린다고 그런다. 여기에는 내부의 감기 같은 질병 때문에 열이 나는 것, 혹은 외부의 혹독한 무더위 때문에 열이 나는 것(열사병..)이 모두 포함된다.

특히 소아 때 이런 열병을 오랫동안 겪는 건 굉장히 치명적인지라, 병이 나은 뒤에도 머리와 몸에 영구적인 장애가 남기 십상이다. 헬렌 켈러가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나라는 한여름에 어린이집 교사와 운전사의 부주의로 인해 어떤 아이가 한여름 땡볕에 더운 차내에서 몇 시간째 방치되어 혼수 상태에 빠진 사고가 몇 건 나곤 했는데 그 애가 지금은 어찌 됐나 모르겠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더 끔찍한 얘기를 꺼내자면, "왕창 고온인 공기" vs "온도 자체는 그리 높지 않지만 열전달 효율이 넘사벽급으로 높은 유체" 이 둘의 차이가 따지고 보면 화형과 팽형의 차이를 만든다. 새까맣게 탄 시체도 끔찍하지만, 검지만 않을 뿐 뻘겋게 익고 퉁퉁 불어 터진 시체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뜨거운 공기든 뜨거운 물이든, 작열통은 의학적으로 볼 때 신체 절단과 더불어 인간이 느끼는 가장 끔찍하고 괴로운 고통으로 여겨지고 있다. 성경에서도 지옥이 괜히 결코 꺼지지 않는 "불"로 묘사되는 게 아니다. 주토피아에 나오는 것처럼 "ice them"이면 차라리 양반이지, 진짜 본좌는 "burn them"인 것이다.

수은주가 달린 일반 온도계를 펄펄 타는 불에다 던져 넣으면 재질에 따라서 불타거나 녹고 깨지고 파괴될 것이다. 그러나 펄펄 끓는 물에 넣어서 100도대의 온도를 측정하는 것 정도는 문제가 없다. 이걸 생각하면 단백질로 구성된 인체(생체)만이 그런 저고온(?)에 굉장히 취약한 재질이라는 걸 유추할 수 있다. 고온의 공기는 그나마 고온의 여파가 끼치는 '정도'가 덜한 매체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뿐이다.

2. 습도

앞에서 물의 온도와 공기의 온도 얘기가 나왔는데.. 사실은 사람이 공기 중에서 더위나 추위를 느끼는 것에는 공기의 온도뿐만 아니라 잘 알다시피 공기에 포함된 습기도 굉장히 큰 기여를 한다. 이런 차이 때문에 날씨가 더워도 굉장히 기분 좋게 더울 때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낮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겨 40도에 근접한다면, 직사광선은 굉장히 뜨겁고 따가우며 땀 나고 더운 게 맞다. 실내에서는 에어컨을 틀어야 한다.
그래도 기온만 높지 습도가 별로 높지 않다면 상황이 낫다. 밖에서 조금만 바람이 불거나 그늘에 들어가면 금세 시원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해가 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온이 굉장히 신속하게 내려간다.

이와 반대로 습도가 높으면.. 낮 기온이 30도를 채 넘지 않고 심지어 해가 안 나더라도 푹푹 찌며 쏟아지는 땀을 감당할 수 없어진다. 땀이 나도 잘 증발하지도 않기 때문에 불쾌지수가 최고로 치닫는다.
이런 날이 꼭 밤에도 기온이 내려가질 않고 열대야가 계속돼서 사람들을 고통에 시달리게 만든다. 에어컨은 온도가 아니라 습도를 낮추는 기능 때문에 더 필요하다.

습도라는 건 공기 중에 존재하는 수증기의 농도를 말한다. 물은 1기압에서 섭씨 100도에서 끓기 시작해서 몽땅 수증기로 바뀌며, 물의 끓는점이나 어는점은 잘 알다시피 공기의 압력에 따라 달라진다(고산 지대에서는 물이 더 낮은 온도에서 끓음). 물이 공기를 녹이고 있는 것만큼이나 반대로 공기도 수분을 함유할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100도보다 낮은 온도에서도 공기와 접촉하는 수면에서는 일부가 수증기로 증발하기도 한다.
이건 안개 내지 구름과는 다른 개념이다. 그건 수증기가 아닌 미세한 물 알갱이가 공기 중을 떠다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순수한 회색과 흑백이 교대로 촘촘하게 늘어선 디더링의 차이와도 비슷하다. 물이 어떻게 이런 두 형태로 모두 존재할 수 있는지 난 완전히 직관적으로 이해를 못 하겠다.

공기가 머금을 수 있는 습기의 한계라는 게 공기의 온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습도에는 절대 습도와 상대 습도라는 개념이 따로 존재한다. 물이 온도가 올라갈수록 기체를 녹이고 있기 어려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기 역시 온도가 올라갈수록 습기를 품기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같은 양의 수분을 머금고 있더라도 온도가 올라가면 상대 습도는 더 올라간다. 겨울이 전반적으로 건조하고 여름이 전반적으로 습한 것도 이런 상대 습도의 차이 때문이다.

3. 진공

그럼 물과 공기가 있는 상황이 아니라, 반대로 물과 공기가 전무하여 진공에 가까운 우주로 나가면 온도라는 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솔직히 말해 이 역시 난 잘 모르겠고 상상이 잘 안 된다.
공기 제로, 압력 제로, 습도 제로이다 보니 거기는 햇볕을 받느냐 마느냐에 따라 뻑하면 영하 1~200도와 영상 수백 도를 오르내리게 된다. 단지 그 온도의 여파가 지구 표면보다 훨씬 덜하다. 진공인 게 인체에 훨씬 더 해롭지, 온도 자체가 사람을 즉시 태워 죽이거나 얼려 죽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 우주 공간에서 온도가 영향을 전혀 안 끼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위성은 뱅글뱅글 돌면서 몸체가 태양열을 골고루 받게 자세를 잡는다. 이거 조절 잘못해서 배터리가 과열이라도 되면 터지는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또한, 우주 공간에서 수성이나 금성 같은 내행성으로 날아가는 탐사선은 커다란 양산처럼 생긴 차폐막을 앞에 두르는 형태로 설계되었다.

달에 착륙했던 아폴로 우주선 승무원들 역시 직사광선을 피해서 그늘 또는 저녁 시간대를 선택해서 주로 활동했다.
그러니 이런 정황들을 종합했을 때, 진공에서의 온도라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갈피를 잘 못 잡겠다. 일단 진공이라면 앞서 언급했듯이 각종 물질의 상태가 바뀌는 온도(끓는점, 어는점??)부터가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는 형태로 바뀌어 버리기도 하니 말이다.

참고로, 사람이 우주에 맨몸으로 있으면 체내의 공기가 유출되고 체액이 끓어오르면서 신체 상태가 잠수병 이상으로 엉망진창이 되며, 수 분 이내로 의식을 잃고 곱게 질식사한다. 그렇다고 해서 눈알이 튀어나오거나 몸이 풍선 터져듯이 터지면서 끔살 당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잘 훈련받으면 수 초 정도 동안 맨몸으로 우주 공간에 노출되고도 살 수 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진공은 무중력과는 별개의 조건이다. 진공은 쇠구슬과 깃털이 똑같은 속도로 떨어지는 것이고, 무중력은 둘 다 둥둥 떠다니는 것이다. 물론 둘 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상황인 건 마찬가지이다만... 우주 개발 초기에 선진국에서 벌어졌던 여러 테스트· 훈련, 생체 실험-_- 중에는 진공을 버티는 것이 당연히 포함돼 있었다. 원심 가속기나 자유 낙하를 통해 흉내 냈던 무중력과는 별개의 코스이다.

4. 열이 전달되는 원리

온도를 변화시키는 열이 전파되는 메커니즘으로는 "대류, 전도, 복사"라는 세 종류가 있다. 이 개념 자체는 초· 중딩 과학 시간에 진작부터 배운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굉장히 심오한 개념이다. '열전달'은 전자기학, 뉴턴 역학, 양자 역학만큼이나 물리학의 엄연한 한 분야이고 공대에서 전공 필수 과목이다.

'대류'(convection)는 유체(주로 기체) 내부에서 온도의 차이가 나는 분자들이 물리적으로 직접 상하로 움직이고 돌면서 열이 골고루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 바닷가에서 바람이 끊임없이 부는 것(땅과 물의 엄청난 비열 차이!), 화재 현장에서 불꽃이라든가 뜨거운 공기가 굳이 위로 솟구치는 것이 모두 대류 현상이다.
그러니 이건 가장 거시적인 규모의 열 전달이다. 분자간의 온도 차이가 아니라 단순 농도· 밀도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확산'과는 다른 현상이다.

열은 매체가 저렇게 몸소 움직이지 않아도 전해질 수 있다. 펄펄 끓는 냄비의 영향으로 냄비 손잡이라든가 안에 넣어 뒀던 국자까지 뜨거워지는 게 대표적인 예이다. 금속의 분자가 직접 움직일 리는 없으니, 이때는 직접 이동이 아니라 일종의 열역학적 '진동'이라는 미시 현상을 통해서.. 마치 소리가 전해지듯이 열이 전해진다. 이 현상을 '(열)전도'(thermal conduction)라고 한다.

진정 골때리는 건 가장 미시적인 현상인 '복사'(radiation)이다. 열은 전자기파의 형태로 아무 매질· 매체가 없는 곳에서도 퍼져 나가서 전해질 수 있다. 적외선이라고 다들 들어 보셨을 것이다. 애초에 전자기파는 파동 같기도 하고 입자 같기도 한 이상한 물건이니 말이다. 저 복사는 copy나 duplication과는 아무 관계 없고, '내리쬠'이라는 뜻이다.

'복사'라는 게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우주 공간에서도 태양열이 지구로 전해질 수 있다. 음파(소리)는 순수한 진동일 뿐이기 때문에 공기가 없는 곳에서는 퍼져 나갈 수 없고 속도도 훨씬 더 느리지만, 복사열은 위상이 빛과 같다.
전자레인지는 그릇은 별로 데우지 않고 안의 음식만 데우는 것이 무척 기가 막히고 신기한데, 이것만 봐도 열은 대류나 전도 같은 물리적인 접촉이 아니어도 직통으로 전해지는 게 가능함을 알 수 있다. 복사는 도선의 전기 저항으로 인해 발생하는 열하고도 물론 다른 개념이다.

물을 끓이면 왜 물이 가만히 있질 않고 보글보글 사정없이 요동치는지, 무슨 근거와 원동력으로 저러는 걸까? 이건 열전달 내지 물질의 상태 변화와 관련된 여러 미시적인 현상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그리고 지표면에서 물과 공기뿐만 아니라 그 밑으로 땅 속에서도 물질이 끊임없이 순환하고 화산· 지진 같은 지질 현상이 발생하는 원동력도 따지고 보면 맨틀의 대류 같은 열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구의 자전은 아주 서서히 느려지고 있지만, 지구 내부는 지열 때문이든 자기장 때문이든 활동이 여전히 왕성하고, 옛날보다 오히려 더 활발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지구 발 밑에 지옥이라는 뜨거운 장소가 있다면, 지구의 내부 구조와 양상은 타 행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5. 열병합 발전소 -- 열전달과 폐열 재활용의 실제 사례

발전소 중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수력· 화력이나 원자력 말고 '열병합'이라는 놈이 있다. 얘는 사실 화력 발전의 파생 변종이다.
물을 끓이고 증기 터빈을 돌려서 발전기를 가동하려면 열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이 열이라는 게 열역학 이론적인 한계 내지 기술의 한계로 인해 전부 전력 생산에 쓰이지는 못한다. 거의 과반이 폐열로 버려진다. 딱히 재활용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8~90도에 달하는 뜨거운 물이 한 트럭이 있다 해도, 그것만으로 아무리 용을 써 봤자 100도 이상으로 실제로 펄펄 끓는 물을 한 컵만치라도 만들어서 증기 기관을 굴릴 수는 없잖은가? 그런 맥락에서 말이다.

전체 열량의 합이야 물론 90도짜리 물 한 트럭이 100도짜리 물 한 컵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외부에서 에너지를 소비하여 열을 가해 주지 않는 한, 물의 온도 자체를 스스로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건 열역학적으로 자연스러운 방향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열병합 발전소는 이런 어중간한 열이 담긴 온수를 수집해서 난방용으로 주변 지역에 공급해 준다. 전기만 파는 게 아니라 열도 판다. 전동차에 회생 제동이 있다면 화력 발전소에는 이런 열병합 시설이 있는 셈이다.

그럼 처음부터 모든 화력 발전소에다 열병합 시설을 추가하면 되지 않나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열이라는 건 폐열을 기껏 수집한다고 해도 무슨 태양 복사열처럼 간편하게 전해서 활용 가능한 게 아니다. 열이 담긴 물을 수송할 수 있는 거리에 큰 한계가 있다. 쟤들은 대류, 전도, 복사가 아니라 송유관처럼 '열배관'이라고 극한의 보온 시설이 갖춰진 비싼 특수 수도관에다가 온수를 공급하는 형태로 열을 전한다.

그러니 열병합 발전은 온수를 곧장 중앙 집중 난방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도시 위주로 소규모 화력 발전+열병합 시설을 갖춘 '지역 난방 공사'의 형태로 운영된다.
2018년 현재 경의선 곡산 역 근처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열병합 발전소의 자체 구비가 아니라 정식 화력 발전소와(한국 동서 발전 소속) 연계하는 대규모 열병합 발전소가 있다. 전국 유일의 인서울 화력 발전소인 당인리 발전소와 비슷한 격의 명물인 듯한데, 얘들도 얼마 못 가 더 외곽으로 이전하지 싶다.

그나저나 원자력 발전소에서도 폐열이 담긴 온수(원자로 냉각용)가 나오긴 한다. 그렇다고 해서 원자로를 소형화해서 대도시 근처의 지역 난방 공사를 운용할 수는 없으니(..; ) 이런 온수는 양식 같은 다른 용도로 활용되는 편이다. 원자력 발전소는 우주 기지와 마찬가지로 육지에서 최대한 떨어진 바닷가에 건설된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말이다.

6. 차든지 뜨겁든지

"나는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이건 성경에서 예수님 말씀의 직접 인용일 정도로 유명한 문구(계 3:15)이다.
물론 성경의 저 문맥에서 제일 좁은 뜻은 양자택일하라고 해서 진짜로 '차가운 극단'으로 나가지 말고 "영이 뜨거운 가운데"(롬 12:11) 주님을 섬기라는 책망 내지 독려이다. "그럴 거면 차라리 나가 죽어!" / "학교 때려치우고 공장이나 가!" 이런 부모나 선생의 막말 꾸중이 진짜로 애더러 공장 가거나 나가 죽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듯이 말이다.

하지만 뭐, 좀 더 넓게 비유적으로는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이거 아니면 저거, 모 아니면 도 진영을 확실하게 골라서 화끈하게 살아라, 박쥐 같은 밍숭맹숭 회색분자 기회주의자가 되지 마라"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앞서 비유를 들었던 것처럼.. 폐열만 어중간하게 담긴 미지근한 물은 아예 펄펄 끓을 정도로 뜨거운 물이나, 얼음이 껴 있을 정도로 차가운 물에 비해서 효용이 낮다. 찬물과 더운물을 섞어서 미지근한 물을 만들기는 쉽지만, 미지근한 물이 저절로 찬물+더운물로 분리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열을 가하든 냉각을 시키든 에너지를 써야 한다. 이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것만큼이나 절대적인 사실이다.

그러니 "차든지 뜨겁든지 하길 원한다"란, "정체되거나 뒤쳐지지 말고 늘 전진하길 바란다", "아래로 떨어지지 말고 위를 향해 오르길 바란다" 같은 말을 "열역학적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쪽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라는 비유를 동원해서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 밖에..

  • 학창 시절에 열역학을 더 열심히 공부했으면, 비빔면을 끓여 먹을 때 이 정도 양은 물을 몇 번 헹궜을 때 면을 완전히 식힐 수 있을지를 숫자와 수식으로 모델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물에 대해서는 "10리터를 한꺼번에 끓이는 것보다 5리터부터 먼저 데운 뒤 나머지 5리터를 추가로 부으면 10리터 전체를 더 빨리 끓게 할 수 있다.", 심지어 "뜨거운 물이 더 빨리 언다" 같은 믿기 힘든 말도 존재한다. 물에다 날씬한 돌을 잘 던지면 수면에 몇 번 통통 튀는 것도 가능한데, 그것만큼이나 본인은 저런 현상은 어떻게 과학적으로 가능한지 입증할 만한 지식이 부족하다.

  • 한국어는 '덥다'와 '뜨겁다', '춥다'와 '차갑다'의 차이가 존재하는 게 꽤 절묘한 것 같다. '덥다/춥다'는 사람이 느끼는 관점이고, '뜨겁다/차갑다'는 온도를 내는 해당 객체의 관점이다. "난 지금 덥다" / "난 뜨거운 남자다"처럼 말이다.
  • 물리라는 학문은 계속 미시적으로 파고들다 보면 결국은 역시 '파동과 입자'로 귀착된다. 그리고 직선이나 포물선이나 갖고 노는 게 아니라 결국은 삼각함수의 형태로 표현되는 진동을 논하게 된다.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한 미시세계 입자들의 끊임없는 불규칙한 운동.. 일명 '브라운 운동'은 어떻게 벌어지는지, 걔네들은 무슨 원동력으로 계속 운동하는지, 텔레비전의 백색잡음 같은 움직임도 왜 발생하는지.. 따지고 보면 참 궁금한 게 많다. 이런 것도 열역학과 전혀 무관한 게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3/19 08:36 2018/03/1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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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여 년 전, 본인이 MMORPG 게임을 개발하던 회사에서 병특 복무를 하던 시절에는 주된 업무 주문이 기존 제품을 WOW와 더 비슷하게 고치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 WOW가 인기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은 회사에서 어쩌다 보니 안드로이드 앱을 개발하게 됐는데, 주된 작업이 기존 제품을 다른 유명 SNS 앱과 더 비슷하게 고치는 것이다.

세상은 유행이 변하고 이런 식으로 돌고 도는 것 같다. 20년쯤 전에 Codeguru 같은 사이트에서 MFC CWnd 클래스를 상속받아서 온갖 기발한 UI 컨트롤 내지 MS Office 스타일의 도구모음줄을 만들어 올리고 테크닉을 공유하는 게 유행이었다면.. 지금은 안드로이드에서 더 현란하고 기가 막힌 화면 전환, GUI 컨트롤을 만드는 게 유행의 뒤를 물려받아 있다. 또한 소스포지라든가 다른 사이트들은 다 망하고 개발자 관련해서는 오로지 스택 오버플로우와 github만이 본좌이다..

요즘은 소프트웨어로 엔드 유저로부터 수익을 내는 방식이 "특정 기술과 기능, 컨텐츠 자체에 대한 접근성" 자체는 아니어 보인다. 기술과 기능, 컨텐츠는 이제 너무 넘쳐나고 저렴해진지라, 정말 획기적이고 새로운 게 아니면 그닥 변별이 안 되는 것 같다. id 소프트웨어가 1990년대 옛날처럼 없던 그래픽 기술을 새로 개발하고 선보이면서 주목받지는 않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그 대신 요즘은 다들 모바일에서 다들 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드는 대가로 수익을 내는가 보다. 이모티콘, 아바타 같은 것 말이다.

2.
카카오톡에서 그냥 있으니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기본 이모티콘들을 지금까지 써 왔다.
라이언인지 뭔지 알 게 뭐야? 난 그냥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의 '쿠마키치'=_=;; 짝퉁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알고 보니 사자였구나. 갈기 없는 숫사자랜다~ ㅋㅋ

카카오프렌즈 이게 사이버 공간을 떠나서 봉제인형과 각종 캐릭터로 로얄티 받으면서 그야말로 돈을 빗자루로 쓸어담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둘리· 호돌이처럼 옛날에 히트 쳤던 걸 제외하면 캐릭터 지지리도 못 만드는 나라인 걸로 본인은 알고 있는데..-_-;; 어째 이걸로도 돈줄을 성공적으로 텄구나.

영화나 만화처럼 뭔가 스토리가 있는 매체에서 유래된 캐릭터가 아니고,
앵그리버드의 동그랗고 눈썹 짙은 빨간 새처럼 인기 게임에서 유래된 것도 아니고..
그저 채팅 앱의 이모티콘에서 유래된 캐릭터가 이렇게 초대박을 치리라고는 난 절대로 예상할 수 없었다.

한낱 아스키 아트에 불과하던 이모티콘이란 게 그 다음으로는 찐빵 얼굴에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기호, 픽토그램 수준이었다가 이제는 거의 움짤 수준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리고 이게 말을 직접 하기 난감할 때, 얼굴 표정과 므흣한 감정을 대신 전달하는 용도로 생각보다 유용하기도 하다.

그리고 유튜브 동영상의 썸네일 이미지도 있다. 그냥 동영상의 임의 구간 스틸 영상을 썸네일로 지정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고 문제 의식을 하나도 느끼지 않고 지냈는데.. 이것도 글자와 그림을 넣어서 귀신 같이 꾸며 주는 앱이 있다...;;

난 그냥 날개셋이나 우직하게 만들고 논문 써야지, 미래의 시장 판도를 예측하고 유행을 읽고 돈 벌 아이템 찾는 사업가 기질은 정말 아닌 것 같다.. ㅠㅠ

그나저나 애니메이션 이모티콘들은 gif도(꼴랑 256색) 아니고 플래시도 아니고(모바일에서 망함..) 도대체 무슨 기술을 써서 표현하는지 궁금해진다. 애니메이션 png 규격이 완성되기라도 했나..?

3.
프로그래밍 환경 내지 플랫폼을 처음부터 오랫동안 접하면 API나 방법론이 수시로 바뀌는 것 때문에 귀찮고 지저분한 일을 많이 겪게 된다. 안드로이드 내지 Cocoa API에서 숱하게 나오는 deprecated 경고들을 보니 그런 생각이 더욱 절실히 든다. 이러니 인터넷에 굴러다니는 코드들을 아무거나 선뜻 믿고 쓸 수가 없다.

그런 시절을 몽땅 건너뛰고 모든 게 그럭저럭 갖춰지고 안정화된 뒤에 프로그래밍을 시작하면 지저분한 일을 겪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젠 모든 게 다 갖춰진 너무 방대하고 복잡한 프로그래밍 시스템 속에서 방황하게 된다. 오늘날의 웹 내지 앱 개발 환경과 30여 년 전 GWBASIC 내지 끽해야 도스 API 인터럽트 프로그래밍 환경은 얼마나 극과 극으로 다른가?
Windows는 그나마 초딩 시절부터 내가 오랫동안 써 왔으니까 익숙해진 것이지, 내가 2, 30년쯤 뒤에 늦게 태어났으면 프로그래밍을 진로로 정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옛날에는 컴퓨터 성능이 빈약하고 각종 소프트웨어 시스템도 지금보다 훨씬 더 단순했겠지만.. 그게 아무 이유 없이 단순한 건 아니었다. 성능 대비 기계값이 지금보다 훨씬 더 비싸고 프로그래밍 관련 정보를 구하기도 더 어려웠다. 금수저 내지 최소한 중산층 집안이 아니면 아무나 컴퓨터를 접할 수 없었으며, 프로그래밍 저변이 지금처럼 널리 확대될 수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프로그래밍 여건에 관한 한 일장일단이 있다.

그 최첨단 문명의 이기인 컴퓨터가 그래도 기업· 연구소· 군대· 정부 기관의 전유물이 되지 않고, Google 같은 엄청난 검색 엔진이 부자들의 전유물이 되지 않고, 만민에게 정보 접근성이 주어지고 차별이 사실상 없어진 것은 매우 다행이고 축복이어 보인다. 비록, 그 반대급부로 어린애들에게 음란물과 폭력물에 대한 접근성까지 너무 올라간 것은 좀 심각한 문제이지만 말이다.

이건 컴퓨터가 진지하고 심각한 일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도구로도 활용해도 돈벌이가 되니까 자본주의 내지 시장 경제 논리에 의해 대중화가 된 것일 뿐이다. 돈줄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뤄진 현상에 대해서 너무 지나치게 염세주의 음모론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컴퓨터가 워낙 비싼 기계이니까 소수의 엘리트에게만 기회를 주는 게 아니라, 일단 컴퓨터 자체는 팍팍 뿌린다. 대량생산으로 가격을 낮추고 온갖 교묘한 우회 결제 수단으로(= 일시불로 기계값을 몽땅 내지 않아도 되게 오랫동안 찔끔찔끔..) 소비자 부담을 줄여서 말이다. 그 뒤 온갖 컨텐츠들로 더 많은 수익을 내는 게 소비자에게도 좋고 생산자에게도 좋은 것이다.

4.
미국이나 이스라엘, 인도 같은 나라 말고 유럽에서 나름 세계구급 IT 강국을 꼽자면 노키아와 리누스 토르발스를 배출한 핀란드가 떠오르는 편인데.. 옛날에는 불가리아도 한 끗발 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슷한 이름의 요구르트 때문에 "생명 연장이라는 게 요구르트만 딥다 쳐먹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같은 개드립의 원산지라는 이미지가 강한 편이다.;;

하지만 저 나라는 요구르트만 개발한 게 아니라, 1980년대에 국가적으로 컴퓨터 교육을 실시하고 나름 고급 IT 엔지니어 육성을 했다.
1989년 5월에 제 1회, 국제 정보 올림피아드라는 게 최초로 개최된 곳도 미국이나 다른 유명한 나라가 아니라 바로 '불가리아'였다. 이 역시 생각할 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양성된 컴퓨터 똘똘이들이 자국에서 자기 재능을 좋은 방향으로 쓰면서 돈과 명예를 얻는 인프라가 없었다는 거다.
그래서 불가리아에서 컴퓨터와 관련해서 세계구 급으로 선한 게 개발되어 나온 게 없었다. 그 대신 불가리아 산 컴퓨터 바이러스들이 악명을 떨쳤다.
당장 떠오르는 건 DIR-II, 어둠의 복수자(dark avenger) 바이러스. 이들의 원산지가 바로 저 나라였다. 그러고 나서 1990년대 이후부터 불가리아의 존재감은.. 지금 다들 알려진 바와 같다.

그 먼 옛날에 컴퓨터 바이러스를 만들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 비싸고 귀하던 IBM PC의 내부 구조와 도스 API, x86 어셈블리를 다 마스터 했고 컴공이 얼마나 대단했겠는가? 그랬는데 만들어 낸 건 고작 남에게 해를 끼치는 물건뿐이었던 거다.
지금도 북괴에서는 아무리 컴퓨터 똘똘이가 돼 봤자 하는 일은 당의 명령대로 오픈소스들 다 무단으로 베껴서 이상한 프로그램 만들거나, 중국으로 외화벌이 정보전사로 파견 나가서 사이버 범죄, 남조선 종북 여론몰이 같은 지저분한 짓밖에 없다. 그런 것과 비슷한 맥락의 안타까운 상황이다.

5.
전에 얘기한 적이 있던가?
본인은 초딩 저학년 때 8비트 컴, 중· 고학년 때 16비트 IBM 호환 PC, 중학교 때 Windows와 PC통신, 고등학교 때 인터넷, 대학교 때 휴대전화, 대학원 때 스마트폰을 순서대로 접했다.
대학교 때 기숙사에서 10Mbps 유선 랜을 처음으로 접했고, 2003년쯤에 무선 인터넷과 USB 메모리라는 걸 처음으로 접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부터 대학원 연구실을 시작으로 유선 랜의 속도가 100Mbps로 올랐으며, 그로부터 얼마 안 가 교내 네트워크 주소들이 공인 고정 class B ip 대신, 가변 사설 ip로 바뀌었지 싶다.
이제는 그냥 무선 인터넷으로도 신호가 좋은 곳에서는 늘 100Mbps까지는 아니어도 수십 Mbps의 속도가 나오고, 유튜브로 HD급 동영상을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보는 시대가 됐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충격적이다. PC통신으로 사진 한 장 받던 시절의 전송 속도와 지금 속도를 비교하면 말이다.

지금이 우주 정거장 관광 단가가 1억 원 근처까지 내려갔다거나,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 영화가 묘사하는 세상이 오지는 않았다. 컴퓨터의 클럭 속도가 싱글 코어로 10GHz를 넘어간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과거에 상상하지 못했던 SNS 미디어, 고화질 동영상과 더 새끈해진 글꼴, 각진 게 아니라 날렵한 외형의 자동차들이 시대의 변화를 대신 말해 주고 있다. 이것 말고도..

  •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엔 오지에서 운전을 하다가 차가 퍼지거나 사고가 나면 보험사 연락을 어떻게 했을까?
  • CCTV와 블랙박스가 없던 시절엔 교통사고 과실 비율 산정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됐을 것이며(바퀴가 굴러가는 이상 절대적인 100:0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_-),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억울한 경우도 얼마나 많았을까?
  • 구글과 riss.kr, dbpia가 없던 시절에 도대체 학술 문헌 검색을 어떻게 하고 논문이란 걸 어떻게 썼을까? (일일이 도서관 찾아다니면서 실물을..)
  • msdn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스택 오버플로우와 검색 엔진이 없던 시절에는 도대체 생소한 플랫폼에 대한 프로그래밍 자료 검색을 어떻게 하면서 코딩을 어떻게 했을까?
  •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냥 이더넷 랜선을 꽂는 건 동일한데 랜 카드와 내부 기술 기반이 뭐가 바뀌었길래 인터넷 속도가 옛날보다 10배 이상으로 뻥튀기될 수 있었을까??
  • 전자기파의 물리적인 특성이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건 없을 텐데 텔레비전의 화질은 어쩜 이렇게 좋아졌을까?

이런 걸 생각하면 과학 기술, 특히 정보 통신 분야의 기술이 세상을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바꿔 놓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전까지 몇몇 얼리어답터들이나 쓰던 PDA, 휴대용 MP3 플레이어가 휴대전화와 결합해서 스마트폰으로 탄생한 건 정말 2000년대의 혁신 중의 혁신이 아닐 수 없었다. 그냥 크기도 작고 기능도 열악한 특수 목적 컴퓨터의 범주인 '임베디드'로부터 '모바일'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범주가 파생돼 나왔다. Windows CE가 Phone, Mobile 등 갖가지 브랜드로 재탄생해야 한 것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지금이야 그냥 10이라는 브랜드로 통합됐고, 스마트폰 OS로는 안드로이드가 지구를 평정했다만 말이다.

물론 냉동 기술이나 플라스틱, 의학· 생명 공학처럼 굳이 IT에 속하지 않는 획기적인 기술도 있다.
기술의 발달 덕분에 쿼츠 시계는 기계식 태엽 시계를 가격과 성능 모든 면에서 쳐발랐고, LED는 백열등은 말할 것도 없고 형광등까지 쳐발라서 인류가 발명한 가장 고효율 광원을 달성했다. 핵 무기는 같은 무게의 재래식 폭탄에 비해 위력 계수에 0을 몇 개 더 붙였다.

이런 정도의 혁신이 앞으로 어느 분야에서건 또 나올 게 있으려나 모르겠다.
무탄피총, 실리콘 반도체를 능가하는 컴퓨터 소자, 자동차에서 현행 기계들의 한계를 극복하는 무단 변속기나 반켈 엔진, 혁신적인 무선 송전이나 2차 전지, 핵융합 발전 같은 것 말이다.

6.
정보 통신 쪽 얘기를 계속하자면..
자동차의 번호를 자동으로 인식하는 무인 단속 카메라와 무인 주차 시스템도 지금이야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지만,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건 1990년대 중후반부터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이런 게 없던 시절에는 과속· 신호 위반 같은 건 경찰관이 숨어 있다가 위반 차량을 강제로 불러다 세우는 식으로 단속을 할 수밖에 없었다.

차량 번호판을 인식하는 기술은 길거리에서 도난· 수배 차량이나 세금· 통행료 상습 체납 차량을 즉시 잡아내는 데에도 아주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이게 없었으면 컴퓨터와 행정 전산망이 있더라도 사람이 일일이 차 번호를 입력해서 조회해야 했으니 일이 얼마나 불편했을지 모른다. 스피드건이 생각보다 속도를 굉장히 정확히 측정해 주는 것만큼이나 신기한 일이다.

단순히 편해진 것뿐만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시스템이 더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바뀐 것은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 모든 것이 전산화되고 컴퓨터가 통제하는 세상에 대해 무슨 666 짐승의 표인 것처럼 공포심만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3/07 08:26 2018/03/07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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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호 2018/03/07 13:23 # M/D Reply Permalink

    애니메이션 이모티콘은 WebP 라는 기술로 구현했을거에요.
    DIR 2 바이러스의 기억이 덕분에 오랜만에 생각 났습니다. ㅎㅎ

    1. 사무엘 2018/03/07 13:52 # M/D Permalink

      아하~ 새로운 이미지 겸 동영상 포맷이 있군요. 정보에 감사드립니다.
      그에 반해 Windows의 애니메이션 컨트롤은 아직도 RLE 기반 avi만 지원하는지.. 좀 변모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재호 님, 정말 오랜만이고 반갑습니다. ^_^

  2. 덧붙임 2018/03/07 17:46 # M/D Reply Permalink

    애니메이션 PNG를 지원하는 확장자로 파이어폭스나 크롬, 사파리 등에서 APNG하는 형식도 있습니다.

    1. 사무엘 2018/03/07 20:59 # M/D Permalink

      예, apng라는 게 있다는 건 압니다만 완전히 표준화가 안 됐는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적고 인지도가 부족하다고 들었습니다.
      언제까지나 구닥다리 gif에 머무를 수는 없을 텐데, 실사가 아닌 애니메이션 영역도 좀 기술이 발전해야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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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유

휘발유(가솔린)와 디젤은 내연기관 기반 자동차의 양대 동력원이다. 양 엔진의 차이점이야 자동차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기초 상식 축에 든다. 하지만 기계공학적으로 고찰했을 때 같은 2또는 4행정 엔진이면서 두 엔진이 본질적으로 왜 그런 차이가 발생하는지, 왜 양 엔진이 요구하는 연료에 차이가 있는지 같은 것까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해당 분야 전공자 공돌이가 아니면 흔치 않다. 물론 본인도 그만치 잘 안다는 뜻은 아니다.

휘발유, 등유, 경유 같은 연료는 석유를 분별 증류 기법으로 추출하어 얻어진다. 소를 한 마리 잡고 나면 앞다리 뒷다리 등심 안심 같은 다양한 부위별로 고기가 나오고 내장과 뼈도 나오듯, 석유도 그 자체는 다양한 탄화수소 화합물의 복잡한 혼합물이다. 그래서 끓는점이 겨우 몇십 도에서 대략 300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질이 섞여있다. 밀도는 기름답게 물보다 약간(수~10% 남짓) 가벼운 정도.

원유는 보통 시커먼 색깔인 반면, 정제된 차량용 연료는 시커멓지 않고 오히려 투명에 가깝다는 게 인상적이다. 갓 캐낸 원유에서 자동차에 엔진에다 주입해도 탈이 안 날 정도의 깨끗한 연료를 추출하는 것은 바닷물· 강물로부터 식수를 얻는 것 이상의 첨단 기술이다. 그래서 산유국이라 해도 정제 기술이 마땅찮으면 외국에서 석유를 역수입해야 하며, 반대로 땅에서 석유가 안 나는 우리나라 같은 나라도 역설적으로 석유를 수출하기도 한다.

휘발유 엔진은 말 그대로 석유에서 가볍고 휘발성이 매우 높은 물질을 연료로 사용하며, 디젤 엔진은 휘발유보다는 밀도가 더 높고 불이 덜 잘 붙으며 끓는점도 더 높은 경유· 중유를 사용한다. 순수하게 제조 원가만 따진다면 둘은 가격 차이가 거의 없거나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휘발유가 더 저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세금 보정으로 인해, 주유소에서는 승용차 연료로만 쓰이는 휘발유가 범용성이 더 뛰어난 경유보다 더 비싸다.

요즘은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의 85% 정도로 책정돼 있다. 그러나 몇십 년 전에는 더 저렴해서 거의 6, 70%에 불과하기도 했다. 디젤도 승용차 연료로 많이 보급되었고, 또 환경 문제도 있고 해서 그나마 옛날에 비해 더 비싸진 것일 뿐이다. 그나저나 디젤 엔진이 왜 범용성이 더 뛰어난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얘기하도록 하겠다.

2. 휘발유 엔진과 디젤 엔진의 차이

휘발유와 디젤(앞으로 '엔진'이라는 단어의 표기를 종종 생략할 것임)은 서로 다른 연료를 사용하며 연료를 연소하는 방식이 다르다. 전자는 점화 플러그를 사용하지만 후자는 압축 착화 방식을 사용한다. 휘발유 엔진은 시동을 최초로 걸 때뿐만 아니라 시동을 유지하는 데에도 전기 에너지의 도움을 소량이나마 지속적으로 받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휘발유 차량은 점화 플러그도 차량의 성능에 큰 영향을 주는 부품이다. 얘는 폐차할 때까지 반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한 부품이 아니며 성능이 조금씩 열화되는 소모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엔진오일보다는 긴 주기이지만 그럭저럭 교체해 줘야 한다. 허나 이건 차덕 급이 아니면 인지하기 쉽지 않은 사실이다.

뭐, 디젤도 전기 '불꽃'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일 뿐, 시동 걸 때 전기로 스타터 모터를 돌리지 않는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얘는 오히려 스파크보다도 더 힘든 메커니즘을 사용한다. 요즘 차량들은 기술의 발달로 인해 많이 나아졌다지만, 디젤은 저런 특성상 휘발유 차량보다는 시동이 잘 안 걸릴 확률이 더 높다. 특히 날씨가 추울 때 말이다. 어렸을 때 차에 시동이 잘 안 걸려서 운전자와 탑승자가 고생하던 모습은 아무래도 승용차보다는 트럭에서 훨씬 더 많이 구경했던 것 같다.

휘발유와 디젤 엔진이 성능이 서로 큰 차이가 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같은 배기량일 때 디젤 엔진의 토크가 훨씬 더 강하며(1.x~2배 가까이) 더 저회전 상태에서도 그 최대 토크가 금세 발휘된다.
디젤은 안 그래도 더 에너지 밀도가 높은 연료를 사용하는 데다 열효율이 더 좋은 관계로, 힘만 좋은 게 아니라 연비도 더 좋다. 그런데 연료의 단가마저도 비록 정치적인 이유가 더 크긴 하지만 디젤이 더 싸다. 그러니 이런 경제성만 생각하면 세상의 모든 자동차가 디젤 엔진으로만 만들어져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디젤 역시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비록 공밀레 기술 개발로 인해 정말 많이 극복되었다고는 하지만, 휘발유에 비해 고질적인 단점으로는 소음과 진동, 그리고 공해(오염) 문제가 있다.
디젤 엔진은 동급 배기량의 휘발유 엔진보다 더 강한 힘을 내부적으로 견뎌야 한다는 특성상, 더 비싼 부품을 써서 더 크고 무겁고 튼튼하게 만들어야 하며, 엔진오일도 더 비싼 디젤용을 써야 한다. 초기의 차값부터 시작해 기름값 외의 유지비까지 전반적으로 좀 더 깨진다는 점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성능면에서도, 디젤이 저속 토크가 강하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나 속도까지 곱해진 전반적인 출력은 정작 동 배기량의 휘발유 엔진보다 오랫동안 뒤쳐져 있었다. 회전수를 휘발유 엔진만치 높게 올리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는 터보차저(공기 과급기) 같은 다른 메커니즘의 도움을 받아서 극복되고 있으며 요즘은 디젤도 실린더의 스트로크를 낮춰서 과거의 디젤답지 않은 고rpm을 추구하는 게 추세이긴 하다.

디젤의 성능을 평가절하하는 또 다른 요인은 반응성이다. 디젤 엔진은 토크가 좋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능과 별개로 반응성이 떨어지고 '둔하다'. 단순히 엔진이 좀 무거워서 둔한 차원이 아니다. 그래서 정작 제로백이 휘발유 차량보다 불리하다. 경주용 자동차나 스포츠카가 디젤로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것도 기술의 발달로 인해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극복되었겠지만, 디젤 엔진의 좋은 힘은 근본적으로 간지나는 스포츠카의 급발진보다는 트럭에다 짐 잔뜩 싣고 오르막 오르는 용도에 더 유리한 게 사실이다.
반응성 말고도 엔진 브레이크 효과 역시 토크가 상대적으로 약하고 상시 rpm이 높은 휘발유 엔진이 더 강하며, 하이브리드와의 접목도 덩치가 더 작고 연비도 더 낮은 휘발유가 더 유리하다. 겨울에 히터를 켰을 때 더 빨리 더운 바람이 나오는 쪽도 휘발유 엔진이다.

단, 터보차저와의 접목은 디젤이 약간 더 유리하다. 휘발유 승용차에서 터보는 아직까지 액세서리 고급 옵션에 가까운 반면, 요즘 디젤 차에서 터보는 성능 보완을 위한 사실상 필수품 취급을 받고 있다.

3. 환경 문제

오늘날 디젤 엔진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태클은 환경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디젤은 근본적으로 휘발유보다 더 '더티'한 연료를 사용하며 매연을 내뿜는다. 정지 상태에서 가속할 때, 다시 말해 저회전 상태에서 엔진이 부하가 많이 걸릴 때 뿌뿌뿡~ 매연이 특별히 더 심하다.
지금처럼 천연가스 버스가 도입되기 전, 옛날에 길거리의 시내버스들의 뒤쪽 엔진 부분을 보면 온통 시커맸다. 이게 평범한 흙먼지가 아니라 다 불완전 연소의 산물인 탄소 알갱이였다. -_-;; 트럭의 경우도 과적은 도로 파손이나 차량 안전뿐만 아니라 매연 발생의 관점에서도 매우 좋지 않다.

그에 반해, 휘발유는 저런 매연이 없으며 촉매 변환만 잘 돌려 주면 배기가스 문제는 거의 없다.
휘발유는 잘 알다시피 노킹 방지 첨가제에 들어간 납 성분이 문제 되었지만 이것도 무연 휘발유로 극복되었다. 그런데 경유는 어째 납 대신 유황 성분이 문제를 일으켰다. 황의 연소로 인해 이산화황(아황산가스)이라는 해로운 공해 물질을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화석 연료가 연소해서 사람 몸에 좋은 게 나오는 일은 없는 법이다.

그러니 오늘날까지도 디젤 차량은 세계 각국에서 굉장히 강한 환경 규제가 걸려 있으며 이는 선진국으로 갈수록 더욱 엄격하다. 선진국은 시민들이 눈이 높고 환경 생각할 만치 돈과 기술도 있으며, 수십 년 전에 이미 대규모 스모그나 공해병 같은 병크와 시행착오도 먼저 경험했으니 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있다.

국내의 경우 디젤 차는 구입할 때부터 차값에 환경 개선 부담금이 포함되며, 정기적으로 무슨 검사를 받고 매연 저감 장치를 장착하고 어쩌구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디젤 엔진 자체를 매연이 안 나오게 만들 수는 없는지, 그 대신 후처리 보정 장치가 추가되어야 하고 이것은 엔진의 덩치와 차량의 단가를 올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엔진룸의 부피가 승용차 급으로 비슷하다면 디젤 엔진은 공간 부족으로 인해 동급 덩치의 휘발유 엔진만치 큰 배기량이 들어가지는 못한다.

또한 시민의 안전을 위해 지하철역에 몽땅 스크린도어를 설치한 것처럼 디젤 기반인 수많은 시내버스들을 죄다 천연가스 기반으로 개조· 교체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이다. 실제로 이것만으로도 공기 질을 이 정도나마 개선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그와 반대로 선진국에서 다 쓰고 퇴역시킨 차량을 저가에 수입해서 굴리는 개발도상국의 도시들이 공기 사정이 열악하다. 당장 떠오르는 게, 시커먼 구닥다리 경유 버스와 2행정 오토바이들로 가득하던 베트남이구나.

4. 실린더 크기의 한계

오늘날 휘발유 엔진은 그냥 소형 발전기· 예초기· 동력톱이나 오토바이· 승용차 엔진으로 머무르고 있다. 그 반면, 디젤 엔진은 버스· 트럭, 철도 기관차· 선박 등 본격적으로 거대한 기계들을 돌리는 만능 엔진으로 등극해 있다.
왜 이런 특성과 차이가 존재하는 걸까? (한편으로 천연가스는 구조적으로 디젤보다는 휘발유 엔진과 더 비슷하지만 택시와 버스에 모두 쓰인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로는 휘발유 엔진이 대형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 실린더가 가질 수 있는 부피는 거의 500~600cc가 실용적인 가성비가 유지되는 한계라고 한다.
그러나 디젤 엔진은 그런 제약이 없어서 무슨 선박 엔진 같은 집채만 한 초거대 단일 실린더도 만들 수 있다. 단순히 연비나 토크가 좋아서가 아니라 이것 때문에 디젤 엔진이 선택의 여지 없이 쓰인다.

정말 그런가 확인해 보자. 대형 버스에 준하거나 그 이상의 고배기량인 엔진을 휘발유 기반으로 얹은 슈퍼카들을 보면..
6700cc 12기통 (롤스로이스 팬텀..;; )
8000cc 16기통 (부가티 베이론)
배기량을 기통수로 나누면 진짜로 500~600cc대를 벗어나지 않는다. 실린더 수가 무지막지하다.
그러나 디젤로 가면 현대 자동차 F 엔진은 3900cc 배기량이 4기통이요,
버스 엔진을 보면 6000cc부터 심지어 11리터급이 그냥 6기통만으로 커버된다. 이런 게 휘발유 엔진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물론 내연기관은 흡입, 압축, 폭발, 배기 각 행정별로 발생하는 힘이 일정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상태가 서로 제각기 다른 실린더들이 어느 정도는 여럿 있어야 엔진의 진동이 줄어들고 승차감이 좋아진다. '툭툭툭툭'거리는 엔진음이 '두두두두/들들들들'로 바뀐다.
하지만 무려 12기통, 16기통 이건.. 어쩔 수 없어서 저렇게 만든 것이지, 만들고 싶어서 저렇게 만든 건 아니리라 여겨진다. 승차감이 문제라면 휘발유보다 진동이 더 심한 디젤이 겨우 6기통인 건 어떻게 설명할 건가?

기통수가 너무 많아지면 휘발유 엔진도 어차피 디젤처럼 복잡하고 무거워지며, 제어하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휘발유 엔진의 정숙성과 신속한 반응성을 살리기 위해 무리해서 트럭· 버스였으면 디젤을 쓸 것을 휘발유 엔진을 고집한 것이지 싶다. 물론 디젤에 비해 연비는 길바닥에다 그냥 동전을 뿌리는 수준으로 감수하고 말이다.

뭐, 오토바이 중에 배기량이 거의 1700~2000cc에 달하는 대형 모델 중에는 겨우 2기통 엔진인 것도 있다. 그건 자동차에는 적용하기 곤란한 방식으로 보어· 스트로크 비율을 보정해서 실린더당 800cc가 넘는 체적을 구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로 손꼽히는 Benz Patent-Motorwagen 삼륜차도 원시적인 950cc짜리 휘발유 단기통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성능은 1마력이 채 될까말까인 비효율의 극치 수준임. 자동차계의 에니악;;)
그리고 에쿠스/EQ900의 기함급인 VL500도 8기통이니 실린더가 휘발유 엔진치고는 약간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비록 디젤이 소음· 진동과 공해 문제가 있고 더 무겁고 복잡하지만 그래도 엔진으로서의 기술 수준은 단순 휘발유 엔진보다 더 높으며 범용성도 더 뛰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범용성 때문에 경유가 더 저렴하기까지 한 것이다.
휘발유 엔진은 딱히 고안자의 이름을 따서 '오토 엔진'이라고 불리지는 않는 편인데, 디젤만 고안자의 이름이 매번 언급되는 건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경유· 중유까지 diesel fuel이라고 불리지 않는가.

사실 휘발유에다가도 압축 착화로 점화해서 디젤 엔진의 장점을 적용해서 연구가 있긴 하다. 일명 HCCI 또는 GDCI 엔진. 그러면 휘발유로도 디젤 엔진 같은 고연비의 달성이 가능해지며, 결정적으로 단일 엔진에서 휘발유와 경유를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점화 플러그 없는 휘발유 엔진은 아직까지는 어댑터 없는 노트북, 탄피 없는 총알, 혹은 돼지고기 육회만큼이나 쉽지 않은 영역인 것 같다.

지금 내가 모는 차뿐만 아니라 디젤 차, 후륜구동, 하이브리드, 전기차 등 다양한 차들을 몰면서 차이를 분석해 보고 싶다. 특히 전륜과 후륜의 차이라는 언더스티어/오버스티어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사실, 자동차 학원에서 운전 연습을 할 때 1종 보통의 특성상 디젤+후륜에다 수동 변속기이기까지 하여 승용차하고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1톤 트럭을 실컷 몰아 본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경험은 기억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연료 분사와 흡기 메커니즘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차근차근 더 공부해 보고 싶다. 아직은 공개적인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이론을 숙지하지 못한 상태이다.

글을 맺으면서 드는 생각인데, 자동차가 내연기관이 주류가 된 것처럼 총기도 일단은 탄피가 빠지는 화약 격발 방식이 주류가 돼 있다. 공기총은 자동차에다 비유하면 전기 자동차 정도 되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7/04/25 08:36 2017/04/2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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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이야기

나는 전기 에너지라는 게 실체가 무엇이고 본질적으로 어떻게 존재 가능하고 인간이 무슨 면모를 어떻게 측정하고 제어 가능한지 전혀 이해를 못 하고 있다.
더구나, 원자력· 방사능처럼 무슨 원자 단위 미시세계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제외하면 일상생활에서 중력이 아닌 다른 모든 힘들은 근원이 따지고 보면 전자기력이라니 이것도 이 나이 되도록 그 의미가 실감이 안 간다. 인간의 근육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화약이나 내연기관처럼 열과 폭발에 의해 발생하는 힘도 근원이 이거라는 말이지 않은가? 인간이 그런 열기관으로 지구의 중력을 뚫고 달까지 갔다 왔는데, 그 힘의 근원이 중력일 리는 없을 것이다. 중력과는 별개이고 중력보다 훨씬 더 큰 힘의 원천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따지자면 난 질량이라는 것도 본질적으로 무엇인지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그게 하필 무엇이기에 무슨 원동력이 있어서 그렇게 남을 끌어당기는 힘을 내는지 말이다.

(사실, 이 자연계에 존재하는 힘의 원천들 중 중력은 가장 약하고 작은 힘에 속한다. 그냥 작은 게 아니라 소숫점 개수가 확 달라질 정도로 매우 작다. 물리 시간에 배우는 만유인력 상수가 괜히 10의 마이너스 몇 승 규모인 게 아니다. 엄청 작기 때문에 반대급부로 얘는 주로 천체의 운동 같은 방대한 세계에서 주로 의미를 지닌다.)

전기에 대해서 아주 기본적인 개념에 속하는 전압과 전류 정도는 흔히 아래로 흐르는 물에다 비유해서 설명하곤 한다. 전압은 수압 또는 물이 처음에 떨어지는 높이에 해당하며, 전류는 물의 흐름 정도에 해당한다고.
허나, 눈에 보이지 않고 질량도 없고 광속으로 흘러 없어지는 그 기운(?)이 어떻게 물이라는 액체에다 비유가 가능한지 그 이유부터 모르겠으며, 그 전기라는 물 자체는 어디에서 나며 어떻게 수집 가능한지 모르겠다. 게다가 직류와 달리 교류는 그 전압이 파동처럼 시시각각 변하면서 심지어 마이너스까지 된다. 이런 건 물 비유로도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아무튼 전기는 참 알 수 없는 존재이다. 건전지와는 달리 교류 전기 콘센트는 + - 구분이란 게 존재하지 않고 아무 쪽으로나 꽂아도 되는 게 어릴 때부터 좀 신기하긴 했다.
직류와 교류 전기는 민물고기· 바닷물고기 관계와 아주 비슷해 보인다. 둘 중에서는 면적이 더 넓고(장거리) 염분을 걸러내야 하는(변압) 바닷물이 아무래도 교류에 어울리는 것 같다. 연어는 직-교류 겸용 전동차이며, 차량 기지가 직류 서울 지하철 구간에 있는 서울 메트로 소속 1호선 전동차에 대응하는 셈이다.

뭐, 또 다른 비유를 동원하여 전기를 엔진이 내는 출력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전압은 토크이고 전류는 엔진 rpm 그 자체, 전력은 이들이 곱해져서 단위 시간 동안 산출하는 일률에 얼추 대응하는 게 맞다.
우리나라는 잘 알다시피 가정용으로 공급되는 전기가 먼 옛날엔 100V이다가 이제는 220V로 완전히 바뀌었으며, 이 과정에서 플러그의 모양도 바뀌었다. 고압으로 송전할수록 송전 손실이 줄어드는 건 사실이지만, 가정용 전기를 승압한 이유가 이 때문은 아니다. 장거리 송전 자체를 무슨 100이나 220V 단위로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승압을 한 이유는 안전보다 효율을 약간 더 추구해서 전기 시설들의 전반적인 복잡도와 부하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이게 주된 이유이고, 보조적인 이유는 외국에서 밀수입된 100V 기준의 외국 가전 제품들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해서 국산 전자기기 제조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게 아니었으면 승압 사업을 무려 1970년대에부터 작정하고 추진할 필요는 없었다. 흑백 TV도 마을에서 잘사는 집에나 한두 기 있었고 에어컨 같은 건 꿈도 못 꾸던 시절에 굳이 고전압 설비가 있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승압 자체는 미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들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대세가 됐으니 그 당시에 미래를 내다보고 잘 추진한 과업이었다.

이렇게 공급 전압을 올린 것은 자동차로 치면 엔진의 배기량을 올린 것, 컴퓨터 CPU와 소프트웨어로 치면 비트수를 올린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같은 구조의 엔진이면 배기량에 얼추 비례해서 엔진의 토크+출력도 올라가니까.
승압을 하면 전력 소비가 많은 기기를 써도 이미 전압도 높기 때문에 큰 무리나 과열 없이 돌릴 수 있다. 경차로 에어컨 틀고 오르막을 고속으로 오르면 차가 굉장한 무리를 받고 경차의 장점인 연비조차도 다 물 건너가듯, 저전압으로 무리해서 높은 전력을 뽑아내는 건 대략 좋지 않다.

교류 220V이긴 한데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는 흔치 않은 60hz 주파수를 택해서(세계적으로는 50hz가 대중적임) 같은 220V들끼리도 호환이 잘 안 되게 했다고 한다. 철도로 치면 이웃 나라와는 일부러 궤간을 다르게 하는 것과 같은데, 오늘날처럼 어지간한 전자 기기들이 내부적으로 변압을 다 하고 어느 정도 가변 전압에 대비돼 있는 여건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제약이 된 걸로 보인다.

흔히 혼동하기 쉬운 개념이 하나 있다. 전기료가 부과되는 단위는 전력이 아니라 그게 축적된 '전력량'이다. 그래서 단위 역시 킬로와트가 아니라 킬로와트"시"이다. '전력=마력=와트=일률' 이렇게 단위의 차원이 동일하고 그걸 시간에 대해 적분한 '와트시=일=주울'이 차원이 동일하다. 자동차의 연료 소비량이 단순히 엔진 배기량, rpm이나 주행 거리에 정비례만 하지는 않고 여러 변수가 있다는 것을 같이 생각하면 납득 가능하다.

그에 반해 스마트폰용 보조 배터리는 용량을 그냥 전류/전하량의 단위인 암페어로 나타낸다.
차량용 블랙박스가 자동차 배터리의 고갈을 감지하고 자동으로 꺼지도록 설정하는 기준은 전압이다.
내가 잘은 모르지만 자동차의 배터리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의 배터리보다 훨씬 더 무겁고(납이 들어있다! 위험한 황산 용액은 덤.) 용량도 큰 반면, 자기 충전 상태를 엄밀하게 나타내는 메커니즘이 없는 것 같다.

최첨단 전자 기기들로 무장한 오늘날 2010년대의 자동차들도 시동이 꺼진 동안에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처럼 "지금 배터리가 몇 %가량 남았습니다. (방전 위험이 있으니 전기 장치들을 끄거나 시동을 걸어 주세요)" 계기판에 숫자로 표시해 주는 걸 내가 본 적이 없다. 연료 경고등처럼 이런 기본적인 기능이 없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자동차 배터리의 방전은 스마트폰· 노트북의 배터리 방전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인데도 말이다.
그러니 방전 징후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전하량이 줄면서 전압도 같이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화학 전지의 특성만이 사용되는 것 같다.

다만, 자동차 배터리는 그 한여름 땡볕에도, 혹은 심지어 교통사고가 나고 화재가 발생했을 때에도 스스로 발화하거나 터지지는 않는다는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배터리의 폭발 때문에 인공위성이 궤도가 바뀌고 고장 나고 우주 쓰레기가 증가하기까지 한다. 또한 흑역사로 전락한 삼성 갤럭시 노트 7의 경우를 생각해 봐도 이건 중요한 변수가 아닐 수 없다. 하긴, 배터리뿐만 아니라 냉장고 냉매도 어떤 경우에도 폭발하지 않는다는 게 대단한 장점이다. (프레온 가스 vs 암모니아. 후자를 사용하는 거대 냉동 창고에서는 지금도 가끔씩 폭발 및 질식 사고가 발생한다)

이렇듯, 자동차 배터리는 사람이 들고 다니는 전자 기기들의 배터리와는 특성이 여러 모로 다르긴 하다.
자동차 제조사(=대기업)에서 자차에 직접 장착한 순정 내비는 있다. 하지만 순정 블랙박스는 없다. 시동이 꺼진 자동차의 배터리를 지속적으로 소모하는 부품을 자동차 제조사에서 직접 넣는 것을 걔들이 책임소재 차원에서 기피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블랙박스는 중소기업 보호 업종으로 지정돼 있다고도 어디서 들은 것 같다.

그럼 다시 전기 얘기로 돌아오면..
전압은 왕창 높지만 전류가 극단적으로 낮은 대표적인 전기는 정전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잠깐 짜릿하게만 만들고 이내 없어져 버린다. 정전기는 적당한 습기를 만들어서 예방 가능하지만, 한편으로 물은 전기를 잘 흐르게 해서 감전의 위험을 높이기도 하니 이 역시 대단한 아이러니이다. 마치 촛불은 불어서 끄지만 큰 불은 후후 불면 오히려 잘 타는 것, 물건이 매달린 실을 살살 당겼을 때와 확 강하게 당겼을 때 실이나 물건이 떨어지는 결과가 달라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우리가 평상시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콘센트에다 전자 기기를 꽂고, 전기로 달리는 열차를 잘 타고 다닌다. 허나, 어린아기가 콘센트 구멍에다가 쇠젓가락을 집어넣는다거나.. 성인도 전차선에 신체나 낚싯대 같은 게 닿아서 감전 당하는 사고가 아주 가끔은 발생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편리하게 사용하는 전기가 실은 얼마나 위력적이고 위험한지를 알 수 있다.

인체는 전기가 통하긴 하는데 곱게 흘려 보내 주는 게 아니라 내부에 저항도 제법 있는 구조이다. 그래서 일정 한도 이상의 고압 전기가 일정량 이상 쫘르륵 흐르면 일종의 전기 신호로 반응하던 모세혈관 신경 등이 다 터지고 망가지며, 저항으로 인한 열 때문에 내장이 중화상을 입으면서 꽤 처참하게 죽는다. 전기를 이용해서 고문 방법과 사형 방법이 모두 괜히 개발된 게 아니다.

전기 없는 인간 생활이라는 건 상상할 수 없다 보니 전기와 관련된 일자리도 마를 날이 없다.
비유를 들기 위해 컴퓨터 쪽을 보면.. 학원만 간단히 나와서는 SI 갑을 관계 계약을 한 뒤 완전 글자판떼기 노가다 코딩으로 연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세계 수백· 수천만 이상의 사람들이 매일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유지보수하고 운영체제를 만들고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드는.. 가히 IT업계의 최전방에서 덕업일치까지 실현하며 사는 괴수도 있다.

그런 것처럼 전기 전자 쪽도 단순 시설 유지보수부터 시작해서 석박사급의 최첨단 회로 설계와 기술 개발까지 온갖 등급의 엔지니어들이 존재한다. 일례로, 서울 강남 구룡 역 근처의 수도 전기공고는 과거에는 졸업 후에 곧장 한전 취업이 보장돼 있어서 최강의 입결을 자랑하는 실업계 고등학교였다.
이런 전기 기술자 양성 시설 중에는 의외로 지도에 가려진 보안 시설도 있다. 철도 수색 역 바로 근처에는 숲으로 가려진 전력 기술 교육원이 있고, 한전 인재 개발원도 그냥 산 속에 가려져 있다. 요런 유사 시설이 안양 어딘가에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개인적으로는 마치 열기관의 이론적인 열 효율을 계산하듯이 어떤 전기 에너지로 낼 수 있는 전동기의 이론적인 최대 출력, 전등의 최대 밝기, 충전과 발전의 차이와 물리적인 효율 한계, 물을 전기 분해하는 데 드는 에너지 이런 것들에 대한 감을 깨우치고 싶다. 그런 감이 있으면 자동차에서 전자 기기를 켜는 게 엔진에 얼마나 부하를 주고 연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옛날에 자전거 바퀴에 연결되어서 헤드라이트를 켜던 발전기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긴 했는데 지금은 그런 물건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전자공학 괴수들은 그런 거 감을 다 정확하게 잡고 있으려나?

또한, 전에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직류 장거리 송전과 변압은 무선 송전만큼이나, 핵 융합이나 수소 연료 전지만큼이나 여전히 떡밥인 것 같다.
보통 발전기를 generator라고 하는데, 특별히 도체를 자기장 안에서 운동시켜서 교류 전기를 만들어 내는 발전기를 alternator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거의 모든 발전기들이 다 이 원리로 전기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태양과 무관한 에너지원을 사용하는 별종 원자력 발전소라 하더라도 핵 융합 발전이 아닌 한 결국은 증기 터빈 기반이다.

교류 발전기가 전자석과 대응한다면 화학 전지는 영구 자석과 비슷한 개념에 대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 에너지 공급 없이 어째서 자체적으로 쇠만 끌어당기는 영구 자석이 존재 가능한지를 깊게 설명하려면 양자역학 수준의 이론이 필요하다.
또한 전자기 유도 방식이 아니라 빛으로 전기를 만들어 내는 광전지는 원리는 모르겠지만 직류 전기를 생성한다고 한다. 정렬 알고리즘 중에 비교 연산으로 정렬을 하지 않는 변칙적인 알고리즘을 보는 것 같다.

전(자)기 쪽은 너무 심오해서 썰을 풀 거, 공부해야 할 걸 찾자면 한도 끝도 없다.
맨 처음에 전자기학의 근간은 물리학이 닦았겠지만 그 뒤로 물리학은 양자역학 등 너무 미시적이고 초월적인 세계로 트렌드가 이동하고, 전자기학으로부터 실생활에 유용한 기술을 개발하는 학문 영역은 전기· 전자공학으로 넘어갔다. 화학· 생물학으로부터 화학공학과 생명공학이 파생되어서 별개의 과가 되었지만 물리학으로부터는 물리공학이 아니라 기계· 전자공학이라고 최소한 두 과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물리학에서 파생된 공학들이 이공계에서 취업이 제일 잘 되는 과이다.. ^^;;

Posted by 사무엘

2017/04/16 08:32 2017/04/1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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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텔레비전 수상기

자동차, 컴퓨터, 전화기만큼이나 텔레비전이 기술적으로 무섭게 발전한 것도 보면 굉장히 경이롭다.

  • 디지털: 노이즈라는 게 없어졌다는 게 솔직히 아직도 잘 안 믿긴다. 옛날 아날로그 특유의 무신호 치지직 화면(white noise)도 없어지고 화면조정용 색깔막대 영상도 볼 일이 없어졌다. 같은 전파를 주고받는 방법을 도대체 어떻게 바꿔서 이런 게 실현된 걸까? 디지털에서는 오류가 너무 심해서 화면이 아예 안 나오면 안 나왔지, 치직거리면서 나오지는 않는다.
  • 고화질: 두 말하면 잔소리. 화질이 정말 엄청나게 좋아졌다. 단, 디지털과 고화질이 동치 개념은 아니기 때문에 과거엔 아날로그 기반으로 HD 규격이 나온 게 있기도 하다.
  • 왕창 크고 평평하고 납작한 수상기: 과거의 브라운관 TV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브라운관은 화면 크기에 정비례해서 두께까지 왕창 두꺼워지기 때문에(공간 복잡도 O(n^3)!) 일정 수준 이상으로 대형화가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리고 어차피 영상 신호의 화질도 요즘 같은 대화면을 받쳐줄 만치 좋지 않았다.

TV를 흔히 '바보 상자'라고 부르는데.. 요즘 텔레비전은 차라리 패널(panel)에 가깝지 이제 상자 모양이 아니다. 옛날에(2006년) 한국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서 텔레비전에 중독된 현대인을 풍자하는 black box라는 이름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서 오타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입상한 바 있다. 텔레비전 안에 온갖 희한한 세계가 펼쳐져 있다. 허나, 요즘 텔레비전의 모양으로는 그런 소재를 설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보 상자'라는 개념은 영어권에도 있어서 fool's tube라고 하는데.. 튜브 역시 브라운관의 잔재가 담긴 별명인 건 동일하다. 그래도 '유튜브'가 이 별명을 잘 활용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또한 요즘 텔레비전은 무슨 형광등 켜지듯이 켠 직후에 서서히 밝아지면서 화면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밝기와 색감 등 잡다한 요소들을 조절하는 다이얼 같은 것도 다 사라졌으며, 정 조절이 필요하면 모니터 자체에 내장된 프로그램 UI를 통해서 소프트웨어적으로 조절한다. 그래서 모니터에 다이얼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상하좌우 화살표와 Enter, ESC에 해당하는 key가 있으며, 화살표 key가 트랙패드 같은 걸로 대체된 물건도 있다.

한때 TV는 평범한 월급쟁이 가정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고가 사치품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잣집이나 공공장소에 옹기종기 모여서 TV를 시청해야 했다. 그리고 잠금 장치가 달린 TV 전용 케이스도 있을 정도였다.
지금이야 뭐 개인용 스마트폰으로 TV 방송을 시청하는 시대가 된 지 오래이다. 그러니 텔레비전 케이스도 '컴퓨터 책상'만큼이나 아련한 옛날 추억이 돼 간다. 하지만 지금 당연한 것이 생각보다 가까운 과거에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2. 대한뉴스

요 근래부터 옛날 대한뉴스 영상들이 유튜브에 올라오고 있어서 재미있게 본다. 경부 고속도로 개통이나 국민 교육 헌장 선포 같은 유명한 사건도 있지만 본인의 주 관심 분야는 철도 개통 쪽이다. 화면 중앙에 태극 마크 워터마크가 엷게 첨가됐지만 전반적인 화질은 괜찮다.

대한뉴스는 무려 1953년부터 1994년 말까지 국립 영화 제작소에서 만들었던 '나라 안팎 사정 기록 영상'이다. 만드는 곳의 특성상 뭔가 국방일보스럽고 정책 및 프로파간다 홍보(긍정적인 것만) 성격이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잘 보존된 역사 기록이며 영상 실록 역할을 한다.
그 시절엔 이게 전국의 모든 극장에서 영화 상영 전에 의무적으로 흘러나왔다고 한다. 레퍼토리는 두 주 간격으로 교체되었다고. 국산 영화를 일정 비율 이상 강제로 상영해야 하는 스크린 쿼터라든가.. 과거에 음반에 의무적으로 건전가요를 한 곡 넣어야 했던 것과 비슷한 관행이다.

하지만 대한뉴스가 그저 정권의 나팔수 이상으로 오늘날 귀중한 영상 자료인 이유는 이것 말고 딱히 대안이 없는 시기도 있기 때문이다.
1950~60년대에도 텔레비전 방송 자체는 물론 있었다. 하지만 여러분 중에 박통 말고 이 승만 대통령이 텔레비전에 나온 걸 기억하거나 다른 매체를 통해 본 분 계시는가? 없을 거다. 그 시절에 방송되었다 하더라도 지금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그때는 TV를 갖고 있는 집이 극소수였다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시청자 말고 방송국의 입장에서도 물자 사정이 열악했기 때문에 영상 기록을 지금처럼 몽땅 저장(아카이빙)할 여건이 못 됐다. 하물며 그 당시 최첨단을 달리던 방송 장비나 저장 매체는 얼마나 비쌌겠는가? 게다가 외제 수입 일색이기까지 했지 않겠는가?

녹화라는 건 꼭 필요한 것만 아주 신중하게 골라서 해야 했으며, 또한 한 테이프를 계속해서 덮어써서 녹화하면서 우려먹어야 했다. 그러니 그 시절의 방송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 시절의 영상 기록은 외국인 선교사나 종군기자의 촬영분이 아니라면 그냥 닥치고 국가가 알아서 고이 보관해 놓은 대한뉴스로 가야 한다. "새로운 특급열차는 우리 이 대통령 각하께서 무궁화호라고 명명해 주셨는데.."(1960년 2월) 이렇게 전해지는 보도 자료는 출처가 무슨 KBS 같은 전파 타는 뉴스 방송이 아니라 대한뉴스라는 영화라는 것이다. 하긴, 저 때는 아직 "KBS"라는 이름의 방송사조차 존재하지 않았었다.

대한뉴스를 아무 거나 골라서 틀어 보면 건전가요나 행진곡 풍의 촌티 풀풀 나는 BGM에, 감정이라고는 싹 빠진 국어책 읽기 같은 건조한 남자 목소리가 참 인상적이다.
그리고 단순히 정책 홍보가 아니라 뭔가 초등학생 선생님이 애들 가르치는 듯한 설명충 스타일이다. "그럼 태백선 열차를 타고 우리나라 최고의 시멘트 생산지인 어디어디로 가 보시겠습니다." 같은 식. 무지한 백성들을 선진조국 창조 건설의 역군으로 계몽하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_=;;

정말 격세지감 그 자체이다만, 196, 70년대에 농촌 깡촌 오지에서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알 길이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저런 거라도 필요했다. 옛날에는 깜깜한 방에서 무성 영화를 틀어 놓고 "우리나라 바깥에는 이런 곳도 있고 이런 일도 벌어지고 있답니다"라고 변사가 따로 설명해 주면 사람들이 입 헤 벌리고 구경했으며, 소파 방 정환은 영사기도 아니고 영사기 내지 프로젝터의 전신인 환등기만 갖고도 온갖 덕질을 했지 않던가. 게다가 국내에서 영화는 텔레비전보다 더 일찍부터 컬러로 바뀌기도 했다.

개나 소나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올리고 그게 순식간에 인터넷 상으로 퍼져나가고 1인 방송 미디어까지 등장한 오늘날의 잣대로 그 시절을 그저 꼬질꼬질하다고 판단하는 건 적절하지 못하다. 당시의 최첨단을 달리던 영화· 방송의 분위기가 저렇게 꼬질꼬질할 정도였으면 오프라인 사회 분위기는 훨씬 더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이었다고 봐야 한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이거 기억 나시지 않는가?

허나, 집집마다 전화와 신문, 올컬러 TV가 싸게 보급되고 지식과 소식의 소통 속도가 빨라지면서 대한뉴스는 존재 의의와 가성비가 급격히 떨어졌다. TV 뉴스로 진작부터 접한 나라 안팎 소식을 한참 뒤에 극장에서 대한뉴스로 뒷북으로 접하는 지경이 됐다. 그러니 대한뉴스를 폐지하자는 여론이 진작부터 거론되었으며, 얘는 그래도 1994년 말까지 꿋꿋이 만들어지고 상영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건 어찌 보면 PC 통신이 인터넷에 밀려 사라진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시기를 따지자면 방위병이 폐지된 때와 동일하며, 수인선 협궤 철도가 없어지기 딱 1년 전의 일이다.

옛날에는 텔레비전은 방송 시간이 지금보다 훨씬 짧았다(24시간 방송이 시작된 것 자체가 21세기부터..). 그리고 기술과 자재의 부족으로 인해 생방송이 많았고, 영화는 후시녹음이 많았다. 아니면 똑같이 후시녹음을 하더라도 후시녹음을 한 어설픈 티가 요즘 영상물보다 훨씬 더 났다. 배경은 너무 조용하고 배우 목소리는 울리고 입 모양 씽크가 안 맞는 등.

철도 분야의 대한뉴스를 몇 편 보니, 열차 달리는 장면에 같이 삽입된 열차 소리는 십중팔구 화면 속의 그 열차가 실제로 달리는 소리가 아니다. 화면엔 디젤 기관차 내지 지하철 전동차가 달리는데 소리는 증기 기관차 달리는 '쉭 씩'인 식이다. 이런 것도 당연히 화면 따로 소리 따로인 후시녹음이다.
베테랑 기관사가 역을 저속으로 통과하면서 통표를 확 낚아채거나 거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요즘은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그리고 끝으로.. 옛날에 영상물에다 자막은 어떻게 만들어 넣었을지가 궁금해진다. 텔레비전 화면에 넣는 방법과 영화 화면에 넣는 방법이 서로 달랐을 텐데.
옛날에는 그냥 닥치고 어설픈 흰색 손글씨밖에 없었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서체는 활자로 바뀌고 흰 글씨 주변에 검은 테두리가 추가되었다.

요즘은 자막도 흰 별도의 배경에다가 검은 글씨 형태로 넣는 추세이다. 그래서 배경이 없이 고딕· 둥근고딕· 엑스포체 같은 옛날 서체로 자막이 들어간 영상을 딱 보면 1990년대 영상인 게 느껴진다. 아래의 자막들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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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7/03/16 08:35 2017/03/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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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저항에 대한 생각

물이나 공기 같은 물질은 고정된 형체가 없기 때문에 물리학적으로 유체(fluid)라고 분류된다. 얘들은 비록 형체가 없을지언정 자신만의 밀도와 점성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 담겨 있는 다른 물질(기체 속의 액체/고체, 혹은 액체 속의 고체)을 상대로 이것저것 힘을 작용한다. 부력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저절로 작용하는 힘이지만 양력과 항력은 유체 속에서 고유한 운동을 하는 놈에게만 덤으로 생기는 힘에 속한다.

유체역학에서 항력이라고도 불리는 이 저항은 물체의 운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계산하는 일을 무척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다.
가장 기초적으로는, 종이나 나뭇잎을 높은 데서 떨어뜨렸는데 자유 낙하하지 않고 팔랑거리며 천천히 떨어지는 게 공기의 저항 때문이다. 미개하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공기 저항과 중력 가속도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서 막연하게 가벼운 물체는 천천히 떨어지고 무거운 물체는 빨리 떨어지는 줄 알았던 듯하다.

하지만 공기를 쫙 뺀 진공 속에서는 깃털과 쇠구슬이 엄연히 동일한 속도로 떨어진다. 또한 달에 간 아폴로 월면차가 인증을 했듯이, 거기는 그 가벼운 흙먼지조차도 지구처럼 자욱한 연기 형태로 남지 않고 파도 물보라처럼 곧장 깔끔하게 낙하해 없어지는 걸 알 수 있다. 지구의 물보라보다 천천히 떨어지기 때문에(중력 가속도가 더 작음) 뭔가 실사 같지 않고 게임에서 나타나는 흙먼지 이펙트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걸 1970년대 초에 CG로 재연한 게 아니라면 이건 지구에서 자연스럽게 촬영하기란 불가능하다.

공기의 저항이란 게 없다면 낙하산도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이 공기 저항 덕분에 무려 수 km에 달하는 높은 고도의 구름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고도 사람이 다치거나 물건이 부서지지 않는다. 이거 생각해 보면 꽤 신기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빗방울이 일정 속도 이상으로는 더 가속이 되지 않는 덕분이다.

하물며 공기보다 밀도가 월등히 더 높은 물의 저항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공기 중에서 총알을 빠르게 발사시키는 총은 물 속 불과 수십 cm 깊이에 잠겨 있는 목표물에도 거의 무용지물이다. 운동 에너지 1/2 mv^2에서 차라리 v를 크게 희생하고 m이라도 더 높인 작살총을 쏘는 게 더 나을 정도이다.

물 속에서 다리로 바닥을 저벅저벅 디디면서 빠르게 걷기란 저항 때문에 불가능에 가깝다. 작정하고 수영을 하며 나아가는 사람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 신발조차도 거추장스럽기 때문에 벗어야 할 정도이다.
수영은 단순히 물에 떠서 생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물에서 빠르게 나아갈 수 있게 한다는 의미도 있다. 비행기가 단순히 공중에 뜨는 것뿐만 아니라 빠르게 비행하는 것도 중요하듯이 말이다.

유체 속에서 운동하는 물체에 작용하는 항력은 물체의 속도가 올라갈수록 급격히 커진다. 설마 지수함수 급은 아니지만 일단 유체와 그 물체 사이의 상대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며, 이것 말고도 유체의 밀도와 물체의 운동 방향 단면적, 그리고 유체의 모양이 결정하는 '공기저항(항력) 계수'에 비례한다. 더 자세한 것은 위키백과 설명과, 이 분야 전공자로 추정되는 어떤 분의 블로그 글을 링크하는 것으로 설명을 생략하겠다.

이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동력은 아예 속도의 3제곱에 비례한다. 저 항력 방정식에다가 속도가 한번 더 곱해지기 때문이다. 이러니 공기 중에서 달리는 차량은 고속에서의 가속이 급격히 힘들어지며, 일정 속도 이상부터는 공기 저항에 적극 대비하는 설계가 대단히 중요해진다.

물론, 정지 상태에서 첫 출발하는 것도 정지 마찰력의 극복 때문에 힘이 대단히 많이 필요하며, 저단 기어가 이런 이유 때문에 존재한다. 하지만 경제 속도를 넘어선 고속은 안 그래도 엔진이 토크가 떨어지고 힘을 쥐어 짜다시피하는 상태인데 공기 저항 때문에 더욱 어려워진다.

심지어 자동차에 에어컨이 아무리 엔진 힘을 깎아 먹는다 해도, 어지간한 고속 주행 중엔 그냥 그 에어컨을 켜는 게 창문을 열어서 바람 저항을 받는 것보다 더 나을 정도이다. 승객도 시원하고 차에도 부담이 덜 가고.. 공기의 저항이란 게 에어컨의 오버헤드에 맞먹을 정도라는 뜻이다.

이러니 부가티 베이런이 500마력에서 1000마력으로 엔진 출력을 두 배로 올렸는데도 최고 속도는 시속 300대에서 겨우 400대로밖에 못 올렸다.
아예 공기와의 마찰열까지 고려해야 하는 건 왕복엔진 자동차 수준에서 걱정할 일은 아니겠지만 차체는 아니어도 타이어가 열받는 것 정도는 현실성이 있다. 이건 무슨 법칙에 근거해서 발생하는 현상이며 무슨 변수로 기술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

공기 저항의 극복을 위해서는 물체의 단면적을 그저 작게만 만드는 게 장땡이 아니다. 일명 '유선형'이라고 불리는 매끄러운 설계가 필요한데, 그 수학 이론적인 배경은 잘 모르겠다. 단지 베지어 곡선이라는 것도 비행기를 설계하는 어느 엔지니어가 이 분야만 파다가 만들어 낸 곡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공기 저항 공식에서 단면적 외의 다른 변수가 바로 '항력 계수'이며, 주요 도형에 대해 알려진 항력 계수는 다음과 같다. 유명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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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계수들은 도형의 모양을 기술하는 수식에 대해 온갖 적분 등 복잡한 연산을 동원해서 산출했는지, 아니면 그저 경험적으로 얻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아, measured라고 써 놓은 걸 보니 경험적으로 얻은 값인 듯.

위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 의외로 그저 동글동글하게만 만드는 것도 장땡이 아니다. 물론 걔도 아예 각이 진 놈들보다는 계수가 작지만 말이다.
정말로 동글동글하게 만들어야 하는 건 사방팔방으로부터 가해지는 극심한 수압을 견뎌야 하는 잠수정이다. 그리고 걔들은 고속 주행이 목표인 물건이 아니다.

하다못해 골프공조차도 매끈한 구가 아니며, 표면이 온통 옴푹 패여 있다. 이 역시 나름 유체역학적으로 공기 저항을 극복하고 잘 날아가라고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며, 골프공 제조사의 고유한 기술과 노하우가 담겨 있다. 이걸 영어로 dimple이라고 하는데, 사람 얼굴에 옴푹 패인(?) '보조개'라는 뜻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여 년 전 대우 에스페로가 광고에서 항력(공기 저항) 계수가 0.29라고, 그 당시 국산 양산차들 중 최저인 과학적인 외형이라며 이 수치를 최초로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자랑을 쳤었다. 마치 뇌세포의 성분 DHA가 들어간 '아인슈타인 우유'처럼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좋아 보이게 마케팅을 한 셈이다. 본인은 이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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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로는 첫 출시되었을 때는 쏘나타 같은 2000cc급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후기 모델들은 아반떼 같은 준중형급으로 엔진을 다운사이징한 게 이례적이다. 물론 차체의 크기는 동일한 채로 말이다.)

한편, 이륜차는 단면적이 일반 자동차보다 작음에도 불구하고 공기 저항에는 의외로 그리 유리한 외형이 아니다.
오토바이는 워낙 가볍고 단위 중량 당 마력이 큰지라 초반 가속은 자동차를 아득히 관광 태운다. 하지만 의외로 시속 200 이상급의 고속은 헉헉대는데, 다름아닌 공기 저항에 걸리기 때문이다. 이륜차가 그런 고속 주행을 하면 안전 관점에서도 심각하게 안 좋기도 하고 말이다.

엔진 없이 사람의 발로 페달을 밟아 달리는 자전거도 돈지랄을 한 경량화에다 기어비 최적화, 초인적인 라이더 같은 최상의 변수를 동원하면 순간적으로나마 거의 시속 100을 능가하는 고속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의 초고속 주행 기록은 앞에서 커다란 우산? 양산?을 후방으로 펼쳐 주고 주행하는 자동차를 바짝 붙어서 따라가면서 세운 거라고 한다. 다시 말해 공기 저항을 앞의 자동차가 대신 받아 주니 고속 주행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단체 관광버스들이 교통사고의 위험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앞뒤로 대열운행, 일명 떼빙을 여전히 일삼는 이유는 1차적으로는 다같이 무리해서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서일 것이다. 허나, 보조적인 이유로는 연비 때문이기도 하다고 한다. 커다란 선두가 공기 저항을 다 받으면서 출발하니까 뒷차들은 상대적으로 나아가기가 쉽다고..
그 정도로 연료 절감 효과가 존재하고 경험적으로 입증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원리는 철도 차량에도 적용 가능할 듯하다. 단순히 쇠 레일+쇠 바퀴로 인한 마찰 계수 감소 말고, 다수 차량의 밀집 운행으로 인한 효율 증대도 장점이 되겠다.

사실, 자동차의 옆에 툭 튀어나와 있는 백미러는(후면경) 유체역학적으로는 굉장히 안 좋으며, 방해가 되는 물건이다. 비행기의 날개처럼 양력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돌출된 것도 아니고..
허나 운전을 위해서는 절대로 없어서 안 되는 필요악이기 때문에 달려 있다. 이걸 자그마한 카메라로 100% 대체가 가능하다면 연비 개선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상...;;
열역학에서는 이상 기체라는 개념까지 설정해서 기체가 열과 압력을 받아서 액화나 기화하고 그 과정에서 열을 수송하는 과정을 수식으로 설명한다. 거기는 물리뿐만 아니라 반쯤은 화학에도 속하는 영역 같다. 물론 엔진이나 냉동 기관 같은 게 다 열역학 이론에서 비롯된 기계이므로 이건 굉장히 중요한 학문이요 기술이다. 에어컨이 발명된 덕분에 인간이 거주하고 도시를 건설할 수 있는 영역이 크게 넓어졌으며, 냉장· 냉동고가 발명된 덕분에 식품의 장거리 수송과 장기간 보존이 가능해졌다. 동력 엔진의 발명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고.

하지만 유체역학에서는 그렇게 기체의 상태 변화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 안에서 운동하는 강체의 에너지 효율을 다룬다. 서로 영역이 다른 셈이다. 하지만 자동차나 비행기가 만들어졌는데 걔네가 조금이라도 연료를 덜 소모하고 더 경제적으로 움직이게 하려면 차체를 유체역학적으로 잘 디자인 하는 게 필수이니 두 역학 분야는 동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바늘과 실 같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11 19:29 2016/11/11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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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를 구성하는 기체들

지구 대기권을 구성하는 '공기'라는 물질은 아무 색도 맛도 냄새도 없어서 '공기수송'처럼 존재감 없음을 비유하는 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이 공기는 실제로는 생각보다 구성이 복잡하고 무게와 압력도 있는 물질이다. 공기 덕분에 양력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어서 그 무거운 비행기가 뜰 수 있으며, 반대로 자동차나 비행기는 공기에 의한 마찰과 저항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고속화가 힘들다.
즉, 공기는 물리적으로 엄연히 존재감이 있으며, 화학적으로 성분도 제법 다양하다. 오늘은 오랜만에 기초 과학 상식을 복습해 보고자 한다.

기체는 눈에 안 보이고 몹시 가볍기 때문에 양 내지 성분 비율을 논할 때 부피가 참 직관적이긴 하지만, 그건 온도와 기압을 동기화시켜야 제대로 된 비교가 가능하다는 맹점이 있다. 기체의 '질량(무게)'과 '부피'는 중학교 과학 시절부터 날 참 헷갈리게 했던 주제이며 지금까지도 별로 와 닿지가 않는다. (그냥 시험 점수를 위해서 달달 외우는 정도를 넘어 본질과 원리를 밑바닥부터 싹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

'몰'이라는 단위도 따지고 보면 질량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하지만 공기 중의 약 78%가 질소라고 할 때 그 비율은 일단 내가 알기로 1기압에서의 부피 비율이다. 실생활에서 기체의 양이라고 했을 때 현실적으로 더 큰 의미를 갖는 건 질량보다는 부피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 질소

공기에서 3/4 내지 4/5 가까이 차지하는 가장 많은 물질은 질소이다. 무슨 유독가스가 '공기보다 무겁다/가볍다'라고 할 때 그 레퍼런스와 가장 가까운 기체는 응당 질소이다. 질소는 원자 번호가 7번으로 얘보다도 가벼운 원소는 수소, 헬륨 등 극히 드물다. 공기보다 가벼운 가스보다는 무거운 가스가 더 많다.

무색 무미 무취 무독성에 안정적이고 물질의 변화를 촉진하지 않는 기체가 지구 공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점으로 보인다. 질소처럼 공기 중에 75~80%씩이나 들어있는데도 호흡 시 인체에 아무 탈을 내지 않는 기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물론 산소가 없이 질소'만' 그렇게 꽉 차 있으면 사람은 응당 질식(사)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고압 심해에서 있다가 갑자기 나올 때 혈관 내에서 기포를 형성해 혈관을 막는 '잠수병'의 주범 기체도 질소이다. 아무래도 대기에서 차지하는 성분이 많기 때문에 그렇다.

변질 걱정 없이 굉장히 장기간 보존해야 하는 공산품은 진공 포장을 하는데, 식료품의 경우 산화 방지를 위해 일명 '질소 밀봉 포장'을 해서 보존한다. 이게 과도하다 보니 "질소를 한 봉지 구입하시면 감자칩을 요만치 보너스로 드립니다"라는 개드립이 나오기도 했다.
비행기 랜딩기어 타이어에는 일반 공기가 아니라 100% 질소를 주입한다. 착륙 마찰열로 인한 발화· 연소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다. 얘를 액화한 액체 질소는 초강력 냉각과 냉동 용도로 쓰인다. 산소보다도 끓는점이 더 낮다.

그런데 얘는 그저 안정적이고 다른 원소와 결합하지 않는 비활성 기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자동차 실린더 같은 고온 고압에서는 환경 오염 물질인 질소 산화물로 합성되기도 한다. 그리고 질소 화합물은 아이러니하게도 폭발물의 제조에도 쓰인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이런 질소가 의외로 단백질의 주요 구성 성분이고 비료의 원료라는 것이다. 산소만큼이나 질소도 알고 보면 생명 유지에 매우 중요한 원소인 셈이다. 물론 이건 대기 성분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원소로서의 특성일 뿐이기 때문에 공기 중의 질소를 쌩으로 바로 활용하는 건 가능하지 않았다. 그러다 '질소 고정' 같은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 20세기에 와서야 가능해졌다.

2. 산소

질소가 단백질을 구성하여 생명체를 존재 가능하게 한다면, 산소는 그 생명체가 본격적으로 생명 활동을 할 수 있게 한다. 산소가 없이는 인간 포함 코로 호흡하는 생명체들은 단 몇 분간도 살 수 없다.
공기 중에 산소 농도가 높으면 사람 역시 조금만 숨을 쉬어도 더 크고 많은 신체 활동을 할 수 있다. 반대로 산소가 부족한 고산지대에서는 전문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이라면 발을 땅에서 떼어서 걷는 것만으로도 100미터 전력질주를 한 듯이 숨이 차서 고생하게 된다.

모든 신체 활동에 산소가 쓰인다. 하지만 근육을 쓰는 비중이 더 높기 때문에 오래 했을 때 근육이 땡겨서 못 하는 건 무산소 운동이다. 반대로 팔다리 근육은 그다지 힘든 상태가 아닌데 오로지 숨이 차서 못 하는 건 유산소 운동이다.
가만히 있으면서 무거운 기구를 들거나 옮기기를 반복하는 힘 쓰는 운동은 대체로 무산소이다. 그 반면, 수영· 등산· 달리기처럼 순간적으로 강한 근력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꾸준한 신체의 이동을 수반하는 운동들은 대체로 유산소 운동이다. 둘은 비슷한 자질 같지만 서로 완전히 동등하지는 않다.

화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산소는 말 그대로 '산화'라고 불리는 물질의 화학 반응에 그야말로 터보 모드 가속을 넣는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꺼져 가는 불씨를 순수 산소 속에다 집어넣으면 불길이 확 일어나서 탄다. 자동차 엔진의 터보차저는 본질적으로 하는 일이 공기를 더 집어넣는 건데,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산소를 더 집어넣는 거라고 볼 수 있다.

철 같은 금속도 불꽃을 일으키며 맹렬하게 타 버려서 어떻게 태우느냐에 따라 산화철로 바뀌거나 아예 녹는다. 금속을 녹일 정도인 초고온의 불꽃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료를 특수한 걸로 많이 투입해야겠지만, 고농도의 산소를 공급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산소는 자신은 아무 변화 없이 화학 반응을 촉진만 하는 '촉매'가 아니다. 화학 반응을 일으킨 뒤 자신은 다른 원소와 결합하여 '산화물'이라는 다른 물질로 바뀌어 버린다. 제일 흔하고 만만한 산화물은 바로 이산화탄소 되겠다. 동물은 호흡으로, 그리고 각종 동력 엔진들은 폭발과 연소를 통해 온통 산소를 없애고 이산화탄소를 배설하기만 하는 반면, 녹색 식물은 광합성이라는 경이로운 메커니즘을 통해 물과 빛, 이산화탄소를 역으로 산소와 양분으로 바꾼다.

현대 과학으로도 이런 식물이 하는 일을 흉내 내고 대체하는 기계는 못 만들고 있다. 그나마 인간이 백열등과 형광들을 거쳐서 LED라는 사기적인 빛을 만드는 것까지 성공한 덕분에, 미래엔 날씨를 안 가리는 실내 농업이 가능할지 논하는 정도이다. 질소 공급이 해결됐고 빛 문제도 해결됐다고 치는데 다음으로 물 문제는 변덕스러운 자연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조달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산소는 여러 모로 유익한 기체이긴 하나, 그렇다고 산소가 공기 중에 지금의 질소가 있는 것만치 대부분을 차지해 버리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된다. 불이 너무 쉽게 붙고 화재 진압을 하기 너무 어려워진다. 그리고 사람 같은 생물체 역시 폐에 과부하가 걸리고 산소 중독이 발생하여 신체 이곳 저곳에 탈이 난다.
나중에 언급할 일산화탄소 중독에 걸려서 죽어 가는 사람이라면 헤모글로빈에 달라붙은 일산화탄소를 떼어내기 위해서 100% 고압 산소 주입 처방을 내리긴 한다. 허나 그건 예외적이고 특수한 응급 상황이기 때문에 그러는 거다.

산소에는 지금까지 언급한 것과 같은 유익한 산소만 있는 게 아니다. 노화를 촉진하고 인체의 수명을 깎아먹는 '활성산소'라는 것도 있다. 둘 다 같은 O2이지 않은지? 이게 화학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물도 경수만 있는 게 아니라 얼음이 가라앉는 '중수'라는 게 있을 수 있는데 활성산소도 뭔가 돌턴의 원자설 범위를 넘어서는 미세한 차이가 있는 산소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3. 이산화탄소

탄소는 그야말로 마법에 가까운 화합물을 만드는 능력이 있는 만능 원소이다. 다이아몬드, 흑연, 그을음 검댕이 다 동일 원소 기반의 물질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얘가 불꽃을 활활 내어 타면서 산소와 결합하고 난 기체 찌꺼기가 이산화탄소이다. 그나마 식물이 있으니 산소와 이산화탄소 사이를 오가면서 탄소가 재활용 순환이 가능하다.

단, 이것도 조건이 있다. 산소 공급을 잘 받으면서 '완전 연소'를 이뤘다면 불꽃이 파랗고 에너지도 더 많이 나면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좀 답답하게 '불완전 연소'를 했다면 불꽃은 노래지고 에너지가 덜 나며 연기· 그을음이 발생하면서 부산물도 일산화탄소가 나오게 된다.

이산화탄소는 질소나 산소 같은 기체와는 특성이 많이 다르다. 끓는점이 그런 기체들보다 훨씬 더 높아서 비교적 쉽게 액화나 응고 가능하다. 드라이아이스라고 다 들어 보셨을 것이다. 또한 얘는 물에도 더 잘 녹는 편이며, 이때 물을 탄산이라는 비교적 약한 산성으로 바꾼다. 탄산은 톡 쏘는 맛이 좋아서 청량음료를 만들 때 쓰인다.

이산화탄소는 공기에 대략 0.03%(백분율), 혹은 표현을 달리하면 300ppm(백만분율) 정도 존재하니 질소와 산소에 비하면 가히 극미량이다. 사람이 내뱉는 숨은 산소가 몽땅 이산화탄소로 바뀐 게 아니라 20% vs 0.03%이던 것이 16% vs 4% 정도로 바뀐 수준이라고 한다. 다만, 최근에는 화석 연료 소비의 증가 때문에 전지구적인 이산화탄소 농도가 0.04%로 증가했다고 전해진다.

이산화탄소는 연소의 부산물로 나온 물건인 만큼, 산소와는 정반대로 불을 꺼 버리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질소나 산소보다 인체에 훨씬 더 해롭다.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찔끔찔끔 증가하여 0.x%정도가 되면 슬슬 나른함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리고 공기 전체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사람의 날숨과 근접하게 되면(이산화탄소 2~3%) 점점 호흡이 거칠어지고 어지러움이 느껴질 지경이 된다.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정상적인 날숨의 농도인 4%대를 초과하게 되면 두통, 구토 등 본격적인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호흡을 통해서 이산화탄소를 내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폐가 상하고 운동 능력이 떨어진다. 수 시간 이상 이런 환경에 노출되면 영구적인 장애와 사망까지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도 이산화탄소 농도이면 촛불쯤은 바람 없이도 곧바로 꺼뜨릴 수 있다고 한다.

10%를 넘는 이산화탄소에 노출되면 사람은 불과 몇 분 만에 활동 불가능에 빠지고 의식을 잃는다. 물에 얼굴까지 잠긴 것과 마찬가지로 신속하게 질식한다. 하물며 이산화탄소가 지금의 산소 농도와 비슷한 수준으로 있다면.. 사람은 그런 곳에 들어가는 즉시 폐가 이산화탄소로 인해 작살이 나면서 기절하고 죽는다.

이런 이산화탄소는 유감스럽게도 온실효과를 일으키며 지구 온난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양도 얼마 안 되는 주제에 인간에게 끼치는 민폐가 꽤 크다. 그래서 세계는 지금도 탄산가스 배출을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그런데 태양계에서 지구의 이웃인 금성은 대기의 무려 95% 가까이가 이산화탄소이며 양도 엄청 많아서 대기압이 지구의 90배에 달하는 완전 미친 행성이다. 이 정도 공기압은 바닷속 수심 900미터에서 받는 압력과 비슷해서 빈 깡통쯤은 곧장 찌그러지며 어지간한 잠수함들조차 내려가지 못하는(심해 전용 잠수정 필요) 살인적인 압력이다.
이러니 금성은 낮과 밤, 여름과 겨울, 적도와 극지대 구분이 없이 지표면 전체가 1년 내내 섭씨 450~500도에 달하는 고온 고압 불지옥을 자랑한다. 가스형 행성도 아니고 지구와 가장 가까운 행성이 어쩌다 저 지경이 됐는지가 참 안쓰러울 뿐이다.

4. 일산화탄소

일산화탄소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분자에서 탄소 원자가 이산화탄소보다 하나 더 적다. 원래는 이산화탄소가 생겨야 할 상황에서 뭔가 2% 부족한 여건 때문에 생기는 물건에 가까우며, 똑같은 무색 무미 무취..이지만 그런 것치고는 원조인 이산화탄소와 비교했을 때 특성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마치 같은 산소 원자 기반임에도 불구하고 기체 분자로서 산소와 오존은 서로 확 다르듯이 말이다.

이산화탄소가 섭씨 -100도 이상의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도 액화· 응고하는 것과 달리, 일산화탄소는 다시 질소· 산소처럼 -200도에 가까운 엄청나게 낮은 온도에서 액화· 응고한다. 또한 일산화탄소는 이산화탄소처럼 더 반응할 게 없어서 불을 꺼뜨리지 않으며, 산소와는 불꽃까지 내면서 활활 타며 반응해서 원래 의도했던 목적지인 이산화탄소로 변한다.

사실, 진공이라고 해도 정말 아무 물질도 없는 0의 진공은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하듯, 현실에서는 대체로 완전연소가 이뤄지는 상황에서도 일산화탄소는 극미량 찔끔찔끔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가 엄청 많이 다니는 도심은 농촌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뿐만 아니라 일산화탄소의 농도도 상대적으로 더 높다. 불완전연소가 일어나서 사람 건강이나 기계의 동작 효율에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산소는 질소만큼 있으면 위험하고 이산화탄소는 지금의 산소만큼만 있어도 사람을 즉사시킬 정도인데.. 일산화탄소는 그 적은 이산화탄소만큼만 있어도 극도로 위험하다. 이산화탄소는 농도를 논할 때 퍼센트와 ppm이 번갈아가며 쓰이지만 일산화탄소는 스케일이 워낙 작기 때문에 십중팔구 ppm으로 농도를 기술한다.

일산화탄소가 위험한 이유는 잘 알다시피, 사람의 뻘건 혈액 속에 존재하는 철 이온 기반 헤모글로빈이 산소보다 일산화탄소와 반응을 거의 200배가 넘게 더 잘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 걸까..? 그러니 일산화탄소가 정말 극미량만 있어도 헤모글로빈이 병신이 돼 버리고 뇌 방면 산소 공급에 애로사항이 꽃핀다. 곧바로 두통, 어지럼증, 체력 저하가 발생하며 심하면 사망. 단적으로 말해 연탄가스 중독의 주범이 요놈이다. 옛날에는 이걸로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아니면 뇌가 손상되어 평생 장애인이 되거나.

일산화탄소의 부피 대비 농도가 겨우 10ppm만 돼도 당장 죽지는 않지만 거기서 수십 분간 있어 보면 사람의 컨디션이 살짝 달라진다. 호흡 계통에 문제가 있는 환자는 겨우 이것만으로도 몸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다.
농도가 지금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비슷한 급의 세 자리수 ppm에 진입하면 혈액이 본격적으로 제 기능을 못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금방 숨이 차고 신체 활동이 힘들어진다.

1000ppm이 넘어가는 농도에서 몇 시간째 노출되면 사람은 드디어 금세 의식이 몽롱해지며 얼마 못 가 매우 높은 확률로 픽 쓰러져 죽는다. 이산화탄소가 이 정도 농도이면 아직 그냥 아주 살짝 나른함이 느껴질 정도에 불과하며, 건강과 생명엔 여전히 아무 지장이 없다. 얘는 치사량이 이산화탄소의 수백 분의 1 이하에 불과해서 훨씬 더 위험함을 알 수 있다.

전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로봇은 동력 계통의 유연함이 인간의 근육에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기계는 생명체와 달리 방사선 피폭에 강하고, 또 호흡을 하지 않기 때문에 유독성 기체 속에서도 잘 버티는 게 장점이다.
사실, 생명체도 헤모글로빈이 아닌 헤모시아닌(구리 이온) 기반인 무척추동물들은 일산화탄소 중독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헤모시아닌은 산소 운반 효율도 헤모글로빈의 1/4에 불과하다는 게 단점이다. 개미나 바퀴벌레를 터뜨려 죽였는데 무슨 피 빨아먹은 모기도 아닌 것이 죄다 시뻘건 혈흔을 만들어 낸다면 그것도 참 골칫거리이지 싶다.. -_-

5. 특별판: 수소

원래는 지구의 대기에서 질소와 산소 다음으로 많이 있는 기체는 '아르곤'이라는 진짜 비활성 기체이다(부피 비율은 대략 1%가량). 얘도 화학적으로 다른 용도가 있긴 하지만 워낙 화합물을 안 만들고 존재감도 없다 보니 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겠다. 그 대신, 질소, 탄소, 산소 얘기가 다 나온 마당에 왠지 누락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수소 얘기를 하고서 글을 맺겠다.

수소는 원자 번호 1번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으며,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를 통틀어서 가장 가볍고 가장 흔하고 많은 원소이다. 그리고 산소와 반응도 아주 격렬하게 한다. 불꽃이 튀면 퍽 하고 타 버리는 게 무슨 천연가스 같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천연가스 같은 연료로 사용하기에는 수소는 너무 가볍고 한편으로 위험하다. 지구 대기에 수소를 거의 찾을 수 없는 이유는 그 가벼운 수소를 대기로 가둬 두기에는 지구의 중력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지만, 수소를 채운 풍선이나 비행선이 하늘로 둥둥 뜨는 걸 생각하면 좀 이해가 될 것이다. 너무 가볍고 자유로운(?) 기체답게 액화와 응고는 절대영도보다 겨우 10~20도 높은 극한에 근접해야만 가능하다. 압축과 보관도 평범한 기술로는 할 수 없다.

탄소가 붙은 탄화수소(알코올, 천연가스 등) 계열이 아니라 순수하게 수소만을 연료로 활용할 수 있다면 효율도 좋고 고갈 걱정도 없고 탄산가스가 아닌 수증기만 나오는 매우 깨끗한 엔진을 만들 수 있을 텐데.. 그건 다름아닌 저런 기술적인 난관으로 인해 21세기인 오늘날까지도 아직 제대로 실용화가 안 된 채 떡밥에 머무르고 있다. 또한 원소로서의 수소가 아니라 수소 기체는 지구상에 흔치 않으며, 물을 전기 분해해서 수소를 얻는 비용도 그리 만만찮다는 걸 알아야 한다.

수소는 앞서 소개한 기체들과는 달리, 대기 중 농도가 얼마인 곳에 인체가 노출되면 무슨 반응이 오고, 독성이 있고 하는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수소가 그만치 대기 중에 섞여 있었다가는 자기가 진작에 스스로 폭발해서 다른 화합물로 변해 버리고 없기 때문에 인체의 반응 자시고 할 게 없다. 폭발이 위험한 거지 딱히 폐에 생화학적인 민폐를 끼칠 여지는 없다.

이런 수소는 자기 바로 다음으로 가벼운 비활성 기체 원소인 헬륨과는 특성이 완전히 상극이다. 헬륨은 수소 같은 반응성이 없으며, 양도 수소보다 훨씬 적고 값이 더 비싸다.
수소가 들어간 화합물 중에 물이야 워낙 특이하고 유명한 놈이다. 그것 말고 그다지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화합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메탄(탄소+수소): 자연에서는 쓰레기가 썩을 때, 더 구체적으로는 식물이 부패· 분해될 때(초식동물의 소화 과정도 포함) 생성된다. 그러니 쓰레기 매립지에는 이렇게 생성된 메탄을 수집해서 연료로 활용하는 설비도 있다. 하지만 메탄 자체는 천연가스의 주성분이며, 무색 무취로 별로 더럽지 않은 물질이다. 메탄과 메탄'올'의 차이는 CH4와 CH3OH의(수산화기 OH) 차이에서 유래된다.
  • 황화수소(황+수소): 달걀 썩는 악취의 주범으로, 황을 포함한 단백질이 부패할 때 난다.
  • 암모니아(질소+수소): 대변이 아니라 소변 테크로부터 유래되며, 화장실의 지린내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17 08:39 2016/10/17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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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력: 공기보다 가벼운 가스를 잔뜩 실어서 뜬다. 배가 물에 뜨는 것과 개념적으로 동일한 원리임. 비행선이나 기구는 둥실둥실 우아하게 뜨고 내릴 수 있으며 공중 정지가 가능하고 연료도 적게 들어서 좋다. 그러나 얘는 중량 대비 동체의 부피가 너무 커지며 비행 속도도 대단히 느려서 실용성이 떨어진다. 엔진이 꺼졌다고 바로 추락하지는 않지만, 피탄 면적이 너무 크기 때문에(가스가 새면?) 그게 안전 관점에서 안 좋다.

(2) 양력(고정익. 동체가 움직여서 생성): 고성능 엔진으로 공기+배기가스 혼합 가스를 내뿜어서 추력을 만들긴 하지만, 추력으로는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고 그 뒤 날개로 양력을 발생시켜서 뜬다.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끊임없이 빠르게 움직여야만 양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조종이 까다로우며, 이착륙 시엔 매우 길고(가속) 넓은(날개 폭..) 활주로가 필요하다. 그래도 장거리 비행에 충분한 비행 속도와 경제성(항속거리)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식이 바로 이 방식이다.

(3) 양력(회전익. 날개 자체가 공기를 휘저어서 생성): 엔진으로 로터를 회전시키고 그걸로 직통으로 양력을 발생시켜서 뜬다. 고정익기보다 더 불안정하고 조종과 자세 제어가 까다로운 데다, 느리고 연비도 안 좋다. 하지만 활주로 없이 달랑 뜰 수 있고 공중 정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여전히 고정익기와는 별개의 활용 영역이 존재한다.

(4) 추력: 날개 없이 연료를 태운 배기가스를 내뿜는 반작용 추력만으로 뜬다. 날개도 없이 초기에 굉장한 고도와 속도를 얻을 수 있으나, 연료 소모가 너무 극심하여 연료와 중량 대비 항속 거리가 매우 짧다. 이건 비행기보다는 로켓이나 미사일, 우주선의 동력원으로 더 적합하다. 지구 중력을 탈출하려면 닥치고 위로 솟구쳐 올라가야 하며, 달이나 우주 같은 곳은 애초에 대기가 없어서 부력이고 양력이고가 전혀 발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기가 없다는 말은 연료를 태울 산소도 없음을 의미하므로, 연료 자체를 산화제와 함께 섞어서 만들어야 한다.

(2)의 원리로 날도록 만들어진 비행기/비행체라도 중량 대비 엔진 출력이 캐사기급으로 좋다면 제한적으로 (3)이나 (4) 같은 기동을 할 수 있다.
그래서 F-22 같은 최신 전투기는 무슨 로켓처럼 수직 상승이 가능하다. 그리고 사람이 안 타서 가벼운 무선조종 항공기 같은 것도 실속에 빠졌을 때 엔진 출력을 최대로 올리고 차라리 프로펠러가 있는 쪽이 위로 향하도록 하면.. 프로펠러가 마치 헬리콥터 로터처럼 돼서 비행기를 호버링 상태로 최소한 추락 사고는 안 내고 보전이 가능하다. 반쯤은 틸트로터 비행기처럼 운항 가능한가 보다.

물론 덩치 큰 여객기에게는 저런 건 어림도 없는 소리다. 동체를 수직으로 세웠다가는 곧바로 추락한다..;;

이런 기계들 말고 새와 곤충 같은 생명체가 공중에 뜨는 건 일단 (1)과 (4) 부력과 추력은 제끼고 시작한다. (1)은 크기 압박, (4)는 분출과 힘 압박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구현 가능하지 않다. 결국 남는 건 양력인데, 생물의 비행은 고정익과 항공익 어느 하나로 딱 떨어지지는 않아 보인다.

날개를 직접 퍼덕여서 상하 압력차와 양력을 만드니, 대놓고 고정익은 아니다. 게다가 어디서든 간편하게 떴다가 내릴 수 있으니 고정익의 한계를 갖고 있지 않다. 새가 무슨 활주로가 필요하다거나, 주변 공기를 다 빨아들여서 온갖 요동을 치고 후폭풍을 일으키며 날지는 않는다!
하지만 긴 날개를 쫙 펴서 글라이더처럼 활강하는 새도 있기 때문에 고정익 비행 원리도 사용하지 않는 건 아니다. 고정익 항공기를 발명한 선구자들이 새들의 날갯짓을 눈에 불을 켜고 관찰한 건 다 이유가 있다.

새들은 하늘을 날기 편하라고 여느 육상 동물들보다 시력이 아주 좋으며, 덩치 대비 폐활량도 훨씬 더 우수하다고 한다. 뼈도 가볍고 공기구멍이 많다던데, 그럼 골다공증이 인간에게는 병이지만 새들에게는 자연스러운 현상인가 보다.

지상에서 무려 9~10km 위인 어지간한 여객기 순항 고도에서 나는 철새들도 있다. 이들은 그 먼 길을 어떻게 찾아가는지 정말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매 같은 새가 공중을 날다가 거의 8~90도로 급강하해서 지표면의 작은 동물이나 물고기를 채어 가는 건 어지간한 전투기의 기동 뺨치는 스킬이다. 이런 기술은 절대로 그냥 저절로 생길 수가 없으니 '지적 설계'의 근거로 인용되기도 한다.

큰 새가 아니라 벌새나 참새 같은 극단적으로 작은 새들은 활강 따위 없이 닥치고 죽어라고 날갯짓을 해야만 공중에 뜰 수 있다. 이는 헬리콥터의 특성에 더욱 가깝다. 날개를 퍼덕이는 횟수가 초당 수십 회에 달하기 때문에(분당 2~3천 회) 소리가 '퍼덕퍼덕'이 아니라 말 그대로 엔진 소리처럼 '부웅', 영어로는 droning이 된다.

이 때문에 요런 동물들은 체력 소모가 장난이 아니며, 덩치 대비 식사량도 엄청나게 많다. 내연기관으로 치면 회전수가 왕창 높은 오토바이용 2행정 숏 스트로크 엔진 같다. 디젤 엔진과는 스타일이 완전 반대다.
새들은 그렇게 힘들게 공중에 떠 있다 보면 곧 지치기 때문에 착륙해서 쉬어야 한다. 옛날에 중국에서 "저 새는 해로운 새다" 운동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무슨 무기를 쓴 게 아니라, 모조리 쭈욱 도열해서 참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쉬질 못하게 해서 비행 중에 지쳐 떨어지게 하는 방법으로 참새를 잡았다.

새 다음으로 곤충으로 가면.. 전세계에서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이고 있는 동물은 같은 사람이 아니며, 사자· 호랑이 같은 맹수도 아니고 뱀도 아니고.. 모기라고 한다. 곱게 피만 빨아먹고 꺼지는 게 아니라 나쁜 병원균을 같이 옮겨서... (그래도 모기 다음의 굳건한 2위는 사람이 맞댄다. ㄲㄲ)
모기는 비행체로서는 힘이 아주 부족하며 항속거리도 짧다. 지상에서 스스로 10층 이상의 고층 빌딩을 오르지는 못하며, 엘리베이터나 계단 복도 등을 타고 올라온다고 한다.

하지만 모기는 기동성은 최고이다. 공중정지부터 시작해 그야말로 상하좌우전후 6방향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그나마 민첩하지 않아서 파리보다야 훨씬 쉽게 잡을 수 있는 게 다행이다. 게다가 피를 빨아먹은 뒤엔 무거워서 민첩성· 반응성이 더욱 떨어지기 때문에 인간에게 잡힐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원하는 시뻘건 액체를 얻었으면 빨리 여기를 빠져나가고 사라지는 게 사람과 모기에게 모두 좋을 텐데, 그런 것까지 생각할 정도로 모기가 똑똑하지는 못하다. 게다가 모기의 '웨엥' 날갯짓 소리는 흡혈 이상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극도의 불쾌감과 모기에 대한 살생 충동을 부추기는 요소이다.

* 여담: 복엽기

라이트 형제가 최초로 발명한 비행기를 포함해 1910~1920년대까지의 비행기의 형태는 복엽기가 대세였다. 복엽기란, 날개가 위아래로 두 겹이 달린 비행기를 말한다. 그게 옛날 비행기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건 한눈에 봐도 공기 저항을 최소화한 '에어로다이나미컬'한 디자인은 아니어 보이는데.. 초창기에 비행기의 모양이 저랬던 이유가 무엇일까?
날개를 두 겹으로 배열하면 같은 속도에서 공기를 더 많이 부딪치고 양력도 더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2배까지는 아니어도 1.x배 정도는 말이다. 또한 이렇게 하면 한 날개에 걸리는 공기의 압력 오버헤드를 분담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

옛날의 비행기는 100여 년 전의 열악한 엔진+날개 기술로 일단 어떻게든 공중에 뜨는 걸 목표로 했다. 속도는 일단 안정적으로 뜬 뒤에 그 다음에 생각할 문제였던 것이다. 애초에 고정익기는 이륙할 때(양력)와 착륙할 때(제동) 모두 뒷바람이 아닌 맞바람이 필요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금속으로 더 튼튼한 비행기 날개를 넣는 기술이 개발되고 엔진의 성능도 향상되면서 비행기의 트렌드는 단엽기로 바뀌었다.
헬리콥터로 치면 상하로 로터가 둘 달린 동축 반전 로터가 만들어졌다가, 나중에는 지금 같은 테일로터 방식이 주류가 된 것과 비슷한 변화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 여담: 라이트 형제에 대해서

세상을 바꿔 놓은 발명들이 일단 개발된 뒤에도 아무 탈 없이 곱게 정착하고 실용화된 건 아니었다.
자동차의 경우 영국에서는 잘 알다시피 멀쩡하게 잘 만들어 놓고도 적기 조례라는 규제 병크(기존 마차 운수업자들 보호..) 때문에 자동차 기술이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뒤쳐지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세계 최초로 동력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는 이제 유명인사가 되고 돈방석에 앉은 게 아니라... 자국 정부 기관으로부터는 외면받고, 비행 기술을 시샘하는 동종업계 종사자들로부터는 웬 표절 도용 소송을 당해서 굉장히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됐다. 그 동안 정작 프랑스와 영국, 심지어 일본 같은 경쟁국에서는 라이트 형제를 VIP로 대접했으며, 한편으로는 비행기 제조 기술을 빼내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한국도 아니고 선진국에 엔지니어· 덕후의 천국인 미국이 그것도 자국 국민으로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발명을 한 라이트 형제를 당대에 그렇게 홀대했다는 건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형인 윌버 라이트는 여기 저기 쓸데없는 소송에 말리면서 몸과 마음이 쇠약해졌으며, 1912년에 40대 중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동생인 오빌 라이트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비행기 기술이 지금의 컴퓨터 기술만큼이나 가히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본 뒤, 1948년에 죽었다. 1903년에 플라이어 1호를 띄우고도 40년이 넘게 더 살아 있었던 것이다.

오빌과 윌버가 한 비행기를 같이 타고 조종한 건 1910년 5월 25일의 가족 비행이 마지막이었다. 지금까지는 여든이 넘은 친부가 "둘이서 한 비행기를 타다가 추락 사고라도 나서 다 죽어 버리면 비행기 연구의 맥이 끊어지지 않느냐? 그러니 연구 중에 비행기엔 반드시 한 명씩만 타고 다른 한 명은 땅에 있어라"라고 당부했기 때문이라고 함..;;

그리고 끝으로, 라이트 형제는 목사의 아들인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런데 평생을 비행기에 미쳐 사느라 두 사람 모두 독신으로 살다가 갔다..;; 후세는 못 남겼지만 전세계인들이 영원히 기억하는 이름을 남겼다.
비행기를 발명해서 유명해지고 신문 기자로부터 혹시 결혼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을 받자 이들은 이렇게 대답한 것이 잘 알려져 있다.

  • 오빌: 형부터 결혼하면 그 다음에 나도 할 거예요.
  • 윌버: 비행기와 부인에게 둘 다 쓸 시간은 없습니다. (!!)

그래서 둘 다 독신이 됐대나 어쨌대나..;;

Posted by 사무엘

2016/08/04 08:38 2016/08/0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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