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방 정환 선생

“앗, 저 문앞에 검은 말이 끄는 검은 마차가 날 데리러 와 있어. 난 이제 가야겠소. 어린이들을 두고 떠나니 잘 부탁합니다.” -- 1931년 7월 23일, 소파 방 정환의 임종 직전 유언


내가 ‘고혈압’이라는 단어를 태어나서 최초로 접한 곳이 방 정환 위인전이었다.; 이분은 어린이를 사랑한 인물답게 입맛과 식성도 초딩 스타일이었던가 보다. 담배도 골초였고..
그는 비만, 고혈압 같은 성인병을 낀 채로(아마 당뇨도?) 엄청난 스트레스와 과로에 시달려다가 겨우 30대 초반의 나이로 동화 구연 중에 코피 흘리면서 쓰러지고 절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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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부실한 영양과 위생 때문에 결핵에 걸려 요절한 사람도 있었더라만(예: 날자꾸나 이 상, 수학자 닐스 아벨 등..), 방 정환은 그 시절 트렌드와 달리, 현대인과 굉장히 비슷한 방식으로 돌연사했다. 몸을 혹사시키며 자기 인생을 아이들을 위해 갈아 넣었다.

이 사람은 살아 생전에 동화 구연을 어찌나 리얼하게 잘했는지.. 감시하던 일제 헌병, 형사, 형무소 간수들조차 듣다가 자기도 모르게 훌쩍거리며 울었다. 가령, 주인공이 병으로 가련하고 불쌍하게 죽는 장면 같은 데서 말이다.

요즘 관점에서 보면 그냥 유치하고 오글거리는 신파극처럼 보이겠지만 저 때는 현대의 초딩 꼬마들이 상식 수준으로 접하는 외국 동화들도 이제 막 번역되고 국내에 소개되던 시절이었다. 유흥이고 문화 생활이고가 없던 재미없는 시절에 이런 참신한 신문물을 약간만 각색을 해 주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울리고 웃기는 게 가능했다.

뭐, 그런 시대 상황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방 정환의 화술은 요즘으로 치면 어지간한 TV 코미디언을 능가하는 구석이 있었다.
오죽했으면 따라 붙던 일본인 형사조차도 “이 아재는 조센징이 아니라 일본인이었으면 한낱 나 같은 일개 짭새한테 쫓기는 처지가 되지 않고 저 실력으로 훨씬 더 성공했을 텐데” 안타까워했을 정도였다.

이렇듯, 1920년대의 한반도는 방 정환처럼 “어린이를 인격적으로 대해 줍시다”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도 나오고, 커리어우먼 신여성도 나오고, 좌익 사회주의 문학도 나올 정도로.. 일제 시대 중에서는 ‘그나마’ 자유롭고 개방되고 살기 좋던 시절이었다. 이것도 감안할 점이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정말로 저 정도로 평소에 안 보이던 헛것이 보이고 헛것이 들리게 될까? 난 어린 시절에 어린이를 그렇게 사랑했다는 사람이 저런 유언을 남겼다는 걸 읽고서 꽤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수명이 다해서 눈을 감을 때쯤 철길에 놓인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가 눈앞에 짠~ 나타나 보이고 Looking for you가 하늘에서 어렴풋이 들려 온다면.. “아 내가 그래도 확실하게 구원은 받은 게 맞구나~!”하면서 평안하게 최후를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아니라 산 채로 들려 올라간다면, 딩동댕~ 새마을호 로고송이 들려오지 싶다. (영상음악 컴필레이션 음반인 Headline News, 6번 트랙 Outlook)

아아~! Looking for you는 정말.. 천국 음악이었다.
내 인생은 경부선 새마을호이다. 요르단 강을 건너는 게 아니라 한강을 건너는 거다. 벌써 용산, 남영을 지났고 인생의 종착역인 서울역이 얼마 안 남았다~! 이제 로고쏭과 Looking for you가 객실에 흘러나올 일만 남았다.

현장에서 더 들을 수 없는 음악을 하늘나라에서 또 듣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새마을호에서 이것도 안 들어 본 주제에 무슨 천국 갔다 온 간증..?? 체험담..?? 일고의 가치도 없다.
오늘도 철도님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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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21/04/11 08:34 2021/04/1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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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덕질 근황

1. 용어

  • 철덕: 뭔가 찰떡 같은 근성이 느껴진다.
  • 철렐루야: 첼로 악기 같은 중후함과 VVVF 전동차 가속 구동음이 울려퍼지는 것 같다.
  • 철로역정: 천로역정을 패러디 한 the Celestial Railroad라는 소설이 1843년에 실제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소설의 한국어 번역판 제목은 저렇게 지으면 완전 딱일 것 같은데 말이다. -_-

2. 행복/쾌락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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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기준대로라면, 새마을호 열차에서 Looking for you 들었던 순간은 내 경험상 80~100은 되지 싶다. ^_____^
철도님 사랑합니다.

3. 방언

내가 철도교 믿어서 방언 받은 것의 대표적인 예는...

"고네렛샤와 마모나꾸 동대구 에키니 토차쿠이따시마스. 오오리노사이와 오와스레모노노 고자이마세이요 고요이노우에, 오아시모토니 오오리오츠케테 오오리쿠다사이마세."
"화닝니 청쭈어 워먼 더 리에처. 번쯔리에처 드 칼왕 목포 더 무궁화 하오리에처."


정도다. 단어 단위 분석이 가능한 건 "렛샤 / 리에처".. ㅋㅋㅋㅋ
늘 하는 말이지만.. 은사주의를 체험하고 싶으면 오순절 시즌 때 진작에 끝난 이상한 성령 역사를 쫓아다니지 말고, 그냥 철도교에 입문하면 된다.
아 그런데 새마을호가 몽땅 퇴역하고 없으니, 철도교도 보고 듣는 표적이 언제까지나 있는 건 아니었군..;;

4. 사랑이 없으면 / 철도가 없으면

온몸을 불살라 헌신하고 진리를 전하고 하나님 말씀 전한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것처럼 제아무리 화려한 교보재와 기막힌 강의 테크닉을 동원한다 해도.. 지리 역사 교육에 철도가 없으면 아무 소용 없다.

철도가 없던 시절의 역사 교육은 암기 고문이다. 철도의 연계가 없는 지리 역사는 시험만 치고 나면 다 까먹는 죽은 지식 말짱 꽝 울리는 징과 같다.
그래서 내 진정 소원이, 다만 내 비는 말은 철도님을 더욱 사랑합니다. ♥ Looking for you여 영원하라!!

철도 왕국이 임하옵시며,
수도권 순환 전철이 남쪽 수인선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북쪽 교외선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철렐루야~

5. 외국 철덕, 철길 떡볶이

얼마 전엔 유튜브를 돌아다니다가 정말 대단하고 놀라운 외국인 처자를 보게 됐다.

"안녕하세요? 저는 브라질에서 온 서울을 많이 사랑하는 철덕 '비아'라고 해요." (☞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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켁, 뭐지 이 사람은..???

  • "저는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뭔가의 유래와 역사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으면 다 읽어 봐요."
  • "Oh my favorite!" 이러면서 카메라 내밀어서 기관차 사진 찍기
  • All trains are beautiful.
  • I love train.

헐.. 정말 진심으로 저러는 거 맞냐..??
저분 얼굴도 예쁘지만 심성은 더 아름답구나~!!!
진심이 아니라 그냥 연기라 해도 완전 사랑스럽다 ㅠㅠㅠㅠ

마익흘 지하철쏭이 나온 지도 벌써 어언 10년이 돼 가는데.. 한국에 인물이 없으니 외국에서 이런 사람도 다 나타난다.
국대 떡볶이에 이어 철길 떡볶이라는 곳도 있었구나~ 꼭 가야겠다.

저분에게 달려가서 Looking for you 복음도 전해주고 싶다. 당신이 좋아한다는 이 코리아라는 나라에서는 한때 이런 음악을 들려주는 열차도 다녔다고 말이다.
저 처자는 한국을 처음 접한 계기는 BTS였을 텐데.. 어쩌다가 철도에까지 관심을 갖게 됐을까? Looking for you를 듣고 나면 BTS는 BTS "따위"쯤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싶다. =_=

요즘 가요계는 내가 알기로 전부 걸그룹 일색이고 걸그룹 멤버들이 대만이나 일본 애들이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그런데 방탄소년은 여자가 아닌 남자 멤버로 어째 저렇게 외국 팬들까지 만들어 오는지도 일면 대단하다.
특히 이 동영상을 보고는 본인도 철길 떡볶이를 직접 찾아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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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역 이북의 경의선 철길 바로 옆에 터를 잡아서 197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거의 45년이 넘게 영업해 왔으며, 지금 지배인 부부가 자녀에게 가게를 물려주면 3대째가 된다고 한다.
자기 건물인 덕분에 임대료가 나가는 게 없어서 그런지, 건물이 있는 식당임에도 불구하고 음식들 가격은 포장마차급으로 매우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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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대 떡볶이’는 창업주가 올바르고 건전한 사상의 소유자여서 좋은 곳이라면, 여기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울타리· 펜스 하나 없이 입출고 회송 열차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떡볶이집이어서 아주 좋다.
민통선 안에서 부부가 영업하는 철원 전선 휴게소(메기 매운탕 전문)와도 뭔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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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 역 근처에는 그렇잖아도 충정 아파트라고 전국에서 제일 오래된 아파트가 있다. 무려 일제 시대, 1932년에 지어졌으니 회현 시민 아파트보다도 짬이 아득히 앞선다. 그것처럼 충정로역 근처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이런 떡볶이집도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0/12/03 08:33 2020/12/0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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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사진 분석 퀴즈 - 3

1.
요즘 유튜브에는 혼자 차박 캠핑을 즐기는 여행 유튜버들의 동영상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특히 엄지, 밍동, 리랑 등 여자사람도 많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렇게 유튜브의 AI가 추천해 주는 동영상을 몇 편 봤는데.. 한번은 이 풍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 동영상 전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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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문제: 저 캠핑 장소는 어디일까?

정답과 해설

2.
이번 아이템은 배경 설명이 없고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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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위의 사진은 어느 역의 내부 모습일까?

정답과 해설

3.
다음으로, 아래 화면은 올여름에 SBS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편의점 샛별이>에서.. 주인공의 패싸움 장면 전에 잠시 흘러나온 주변 배경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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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저기는 어딜까?

정답과 해설

Posted by 사무엘

2020/10/29 08:35 2020/10/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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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찬가

1.
내 개인적으로는 진정한 철덕이라면 일단 자기 팔이나 다리를 어느 정도 벌린 폭이 1435mm 표준궤인지 자 없어도 감을 잡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폭과 무게와 차륜 크기가 동일한 사륜자전거를 타고 같은 힘으로 페달을 밟을 때,
철 바퀴로 레일을 달릴 때가 고무 바퀴로 아스팔트를 달릴 때보다 얼마나 더 매끄럽게 오랫동안 잘 나아가는지를 직감적으로 체득하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거야말로 철도의 존재 이유와 당위성을 설명하는 본질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철도가 바퀴의 마찰을 줄여서 효율을 올렸다면, 미래의 궤도 교통수단은 자기 부상 방식으로 전기 저항과 마찰을 더 줄이고, 더 나아가서는 전용 터널에서 공기 저항까지 극복해서 극도의 효율과 속도를 실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2.
체코의 드보르작뿐만 아니라 프랑스에도 아르튀르 오네게르라고 아주 열혈 철덕 작곡가가 있었다.
아아.. 프랑스는 100년 전 20세기 초에도 “퍼시픽 231”이라고 증기로 이미 시속 120km를 찍었던 고속열차를 개발한 바 있다. 그리고 저 사람은 그 열차에 감탄해서 동명의 교향곡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 달렸던 ‘파시’ 증기 기관차하고는 태평양이라는 이름의 어원만 동일할 뿐, 기술적으로는 관계 없다.

“나는 언제나 기관차를 정열적으로 사랑하였다. 나에게 있어 기관차는 살아있는 것이나 같은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여자나 말을 사랑하듯 나는 기관차를 사랑하였다.
이 곡에서 내가 나타내려고 한 것은 단순하게 기관차 소음의 모방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가시적인 인상과 하나의 육체적인 희열을 음악적으로 구성, 번역하려고 한 것이다.”
-- 아르튀르 오네게르


드보르작은 자기가 인생을 다시 살아서 증기 기관차의 제작자가 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음악 커리어와 교향곡쯤은 몽땅 포기할 의향이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저 사람도 만만찮다~!!

3.
철도가 없던 시절의 역사 암기는 정말 고문이 따로 없다. 국사 시험 도대체 어떻게 치냐..?? ㅠㅠㅠ
근현대 이전의 역사는 역사가 아닌 것 같다. -_-;;

태정태세 문단세 이런 건 죽어라고 안 외워지지만.
1899년 9월 18일 제물포-노량진 경인선, 1905년 1월 1일 경부선, 1908년 4월 경의선, 1914년 호남선, ...
1946년 해방자호, 1955년 통일호, 1960년 무궁화호, 1969년 관광호, 1974년 새마을호와 서울 지하철 1호선,
1981년 경부선 서울-수원 2복선, 1980~1984년 서울 지하철 2호선, 부산 지하철 1호선 등등등등등...은
머리 뇌세포에 오일이 발라지기라도 했는지 날짜와 연표가 그냥 술술술 외워진다.

이게 바로 한강의 기적..이 아니라 Looking for you의 기적이다.
오늘도 철도님 사랑합니다.

Posted by 사무엘

2020/04/15 08:36 2020/04/1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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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분석

1. 철도 차량의 3무

철도 차량은.. (자동차와 비교했을 때)

  • 운전석에 steering 핸들이 없고
  • 좌석에 안전벨트가 없고,
  • 차축에는 차동기어가 없다.

이것이 철도 차량의 3無이다.
자동차는 커브를 돌 때 한 엔진이 생성한 동력을 차동기어를 통해 양 바퀴에다 달리 배분하고, 비행기나 탱크는 아예 좌우의 엔진 출력을 달리해서 속도 차를 만든다.
그에 비해 철도 차량은 바퀴 자체가 완벽한 원기둥이 아닌 살짝 원뿔대처럼 만들어져 있고, 커브를 틀면 레일이 접촉하는 부위의 직경 차이로 인해 양 바퀴의 회전 속도가 차이가 나게 한다.

그리고 철도는 개인 자가용이 전무하다시피한 교통수단이기도 하다. 자동차는 말할 것도 없고, 선박이야 초대형 선박들도 선주의 신분을 따지면 전부 private 일색이다. 서양에서 사략선이란 게 괜히 있었던 게 아니다.

그 비싼 비행기도 미국처럼 땅 넓고 잘사는 나라로 가면 자가용의 규모가 결코 작지 않지만.. 철도는 자가용으로 굴리기에는 너무 꽉꽉 조여지고 통제되는 시스템이니 private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자가용은커녕 대중교통 운영사 자체가 사기업인 경우도 우리나라는 매우 드물며, 사철도 일부 공장, 발전소 등에 극도로 제한적으로 있는 형편이다.

2. 철도의 경사와 커브

교통 내지 항공 업계에서는 경사를 나타낼 때 각도가 아니라 수평 이동 대비 수직 이동 비율인 기울기, 탄젠트를 사용한다. 우리나라 철도에 규정된 오르막의 한계는 35퍼밀, 즉 3.5%이다. 그리고 이 정도면 이미 거의 극악에 가까운 한계이며, 현실에서는 2%대만 돼도 철도 차량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급경사이다.
자동차 도로는 좀 가파른 곳에 5%, 10% 경사도 있는 것을 감안하면(저런 경사 표지판이 있음).. 철도 차량은 등판능력이 부족한 셈이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급경사를 자랑하던 곳은 강원도에 태백선· 함백선이 병행하는 구간이다. 하지만 서울에도 경의선 용산-효창 사이의 지상-지하 구간은 기존 건축물들을 피해서 부족한 공간만으로 수직 이동을 해야 한다. 그래서 법을 겨우 간신히 어기지 않는 수준으로 거의 35퍼밀에 근접하는 경사가 생겼다.

서울에서건 용산에서건 경의선이 서쪽으로 방향을 확 트는 건 자연스럽지 않고 부담스러운 급커브인데.. 지하화하면서 급경사까지 생긴 셈이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이 시청-종각에서 급커브를 트는 건 동쪽이고.. =_=)
이와 비슷한 예로, 분당선 서울숲-왕십리 역시 그 깊은 하저터널 이후로 곧장 지상으로 올라오느라 꽤 부담스러운 급경사가 생겨 있다.

이 분야의 끝판왕 구간은 2016년에 개통한 인천 지하철 2호선의 아시아드경기장-검바위이다. 여기도 지상과 지하가 바뀌는데, 여기는 전국의 궤도 교통수단을 통틀어서 가장 가파른 무려 55퍼밀짜리 경사가 있다.
이건 법을 어긴 게 아니라 고무차륜이어서 접지력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일반 철차륜 철도라면 가능하지 않다.

3. 철도가 잘못 만들어지는 경우

철도는 사람들의 정치적인 개입으로 인해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잘못 만들어질 수 있다.

  • 님비: 시끄럽다고 철도 건설을 무작정 반대하고 비현실적인 이설 내지 지하화를 요구한다. 요즘 철도는 안 그래도 선형 직선화라는 명목으로 구 시가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만들어지는 편인데 이런 일까지 벌어지면 철도의 접근성과 도로 대비 경쟁력은 더욱 떨어지게 된다.
  • 핌비: 이번엔 무조건 자기 지역을 경유하라고, 혹은 생판 뜬금없는 곳에 역을 만들라고 요구한다. 선로에 곡선을 만들고 열차의 표정속도까지 떨어뜨려 가면서, 정작 자기들은 열차를 충분히 많이 이용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철도 시설은 여느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한번 만들고 나면 고치기가 극도로 어렵다. 전쟁이나 지진 때문에 다 파괴되어서 몽땅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철도를 한번 잘못 만들어서 발생한 손해와 비효율은 후손들이 두고두고 뒤집어쓰게 된다.

핌비 성향으로 인해 철도가 이상하게 만들어져서 철덕들에게 두고두고 까이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는..

  • 오송: 이 분야의 가히 전설을 넘어 레전드라고 불린다. 개인적으로 충북 지역에 아무 연고도 없고 감정도 없지만.. 주민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과 전투력으로 이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호남 고속철의 선형이 매우 괴상해졌음은 물론, 승객 수요도 못 살린 최악의 자충수를 두게 됐다.
  • 총신대입구: 열차 운영 자체와 관련된 사항은 아니지만.. 총신대는 자신과 그리 가까이 있지도 않은 지하철역의 역명에 왜 그리도 이상한 집착을 했나 모르겠다. 7호선 남성의 부역명에나 총신대를 집어넣고, 4호선과 7호선 환승역은 '이수' 정도로 바꿨어야 했다.
  • 강남리 마을 전철: 광역전철인 분당선에 무슨 농간이 있었는지.. 서울 강남구 구간에 1km도 채 안 되는 간격으로 역이 너무 많이 만들어졌다. 이건 두고두고 시간적인 비효율과 금전적인 비효율을 야기하게 됐다(텅 빈 채 왕창 깊기까지 한 여러 잉여역들을 관리하는 비용)

4. 철도 차량의 번호판

철도 차량에는 자동차처럼 간편하게 탈착할 수 있는 번호판 같은 건 없다.
그 대신, 기관차의 경우 앞면에 차량 등록번호 4자리가 새겨져 있다. 현재 7xxx대는 대형 디젤 기관차, 8xxx대는 전기 기관차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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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마치 비행기의 식별 번호와 비슷하다. 한국을 뜻하는 HL로 시작하는 4자리 숫자가 있는데, 맨 앞자리는 그 비행기의 엔진 형태를 나타낸다. 7xxx, 8xxx는 제트기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객기가 해당되고, 그보다 작은 번호는 헬리콥터나 프로펠러기, 피스톤 경비행기에 할당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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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도 앞부분을 잘 보면 2~3자리짜리 일련번호가 붙어 있다. 옛날에 새마을호 디젤 동차의 표면에는 그런 걸 딱히 못 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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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비행기와 철도의 유사점

(1) 비행기가 광활한 하늘에서 정말 높고 빠르게 날다가 고도와 속도를 줄이고 줄여서 딱 정확하게 활주로의 시작 지점에 맞춰 착지하여 착륙하는 건 참 경이롭다. 지하철 전동차가 빠르게 달리다가 딱 정지선에 맞춰 칼같이 정차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2) 착륙을 최대한 부드럽게 한다고 해도 비행기의 랜딩기어가 착지하는 순간에는 객실에도 진동이 전해지게 된다. 이건 철도 차량으로 치면 레일 이음매를 고속으로 통과할 때 전해지는 진동과 동질감이 느껴진다. 물론 요즘 철도는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에 이음매 없이 쭉 매끄러운 레일을 놓는 게 대세이며, 비행기 역시 조종 기술과 랜딩기어의 서스펜션의 발전을 통해 착륙 진동을 줄이고 있다.
덜컹거림이 없는 철도라니, 마치 켜질 때 깜빡거리지 않는 형광등을 보는 느낌이다.

(3) 비행기에는 동체의 균형을 잡고 방향을 조절하기 위해서 꼬리날개(미익)라는 게 달려 있다. 최소한의 조작만으로 최대의 회전력을 내려면 미익은 동체의 무게중심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게 바람직하다. (시소처럼)
미익은 최대한 멀리 떨어진 뒤쪽에 장착되는 부품이라는 점에서 전기 철도 차량의 팬터그래프와 비슷한 존재인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0/03/09 08:35 2020/03/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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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고 고수 괴수 덕후는 많다. 그 중엔 이 종원 씨라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국내 최고의 버스 전문가가 있다. 본인보다 띠동갑 이상으로 어린.. 아직 나이 30도 안 된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여러 번 매스컴도 타고 명성이 자자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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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덕이라 하면 흔히 버스 노선이나 여행에 관심이 많아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내버스들만 갈아타면서 24시간 안에 가기 인증" 같은 걸 즐기는 집단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본인도 처음엔 그런 걸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별개의 다른 덕질 분야이며, 저 사람은 순수하게 차량 분야 전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무슨 기계· 전자를 전공한 공돌이 내지 자동차 정비 명장인 것도 아니다. 그의 주 관심사는 그냥 버스의 역사와 차량 계보 그 자체이다. '버스 백과사전'을 출간하고 '한국 버스 박물관'을 설립하고 싶어한댄다. 컴퓨터 박물관이 아니라 비디오 게임 박물관이 필요하듯, 자동차 박물관만으로는 여전히 너무 범위가 넓으니 버스만의 고유한 박물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버스들이 내구연한이 경과했다고 칼같이 퇴역하고 얄짤없이 폐차되는 게 너무 안타깝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런데 일반 소형 승용차와는 달리 버스는 자가용이 아니라 거의 다 영업용으로 쓰인다. 그러니 특정 개인이 애착을 가질 만한 요소가 별로 없다.

게다가 버스는 승용차보다 훨씬 더 크고 비싸고 보존하기도 어려운데, 어째 그런 버스를 이렇게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버스에서 Looking for you 같은 음악을 들었을 리는 없을 텐데..
인터넷에 굴러다니는 최근 인터뷰 자료에 따르면, 그는 어릴적부터 비범했다.

  • 4살 때 부모님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다니며 버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 한글도 제대로 떼기 전에 버스 노선을 외우고 차종을 구분짓기 시작했다.
  • 즐겨 그리는 그림은 버스였고 모형도 버스만 만들었다.
  • 초등학교 2학년 때 인터넷 버스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버스를 깊게 파고 들었다.

초딩 1~2학년 무렵엔 나도 좀 차덕이긴 했다. (☞ 관련 링크) 남자 꼬마애들이 그 나이 때 공룡이나 로봇을 좋아하듯이 큼직한 버스를 좋아하는 것 자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저 코흘리개 나이 때부터 버스 동호회를 가입하고 저렇게까지 몰두하다니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 보인다.;;

그는 2015년에는 TV에 출연해서 특색 있는 전동차 구동음도 아니고 그냥 털털거리는 내연기관일 뿐인 디젤 엔진 소리만 듣고서 해당되는 버스 차종을 모두 알아맞혔다. 심지어는 자기가 버스 엔진 소리 성대 모사까지 해서 주변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우와 +_+
하긴, 똑같은 디젤 엔진이어도 옛날이랑, EGR에 CRDi에 SCR 등 온갖 배기가스 정화 기술이 갖춰진 요즘 차는 엔진 소리가 서로 뭐가 달라도 다른 구석이 있을 것이다.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하고 러시아, 미얀마, 라오스 같은 외국도 다녀왔다. 다른 관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에서 퇴역 후 외국으로 수출된 옛날 버스들을 구경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실제로 몇몇 희귀 아이템은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과 함께 돈을 모아서 구매해서 역수입을 해 오기도 했다!

tvN에서 내 블로그를 보고 보고 연락했다. 1994년 배경 드라마를 만든다고 했다. 94년식 버스는 멸종해서 비슷한 느낌의 버스를 수소문했다. 알고보니 그 드라마가 ‘응답하라 1994’였다. 이후 요청이 종종 들어왔다. 영화 ‘더킹’, ‘마약왕’, 드라마 ‘라이프온마스’에 나온 버스도 섭외했다.
몇 년도에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만 알면 떠오른다. 직접 정리한 자료도 있다.


그러니 이분은 최고의 버스 고증 전문가가 되었다. <말죽거리 잔혹사>에 대해서도 저 인터뷰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아마 할 말이 왕창 많을 것 같다.
<말죽거리...>의 경우, 중문이 달려 있는 1970년대 버스를 구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후대의 앞문· 뒷문 중고 버스를 구한 뒤, 앞문은 틀어막고 뒷문을 뜯어고쳐서 중문처럼 보이게 했다고 한다.

옛날 버스에 대해서 본인이 아는 것은 엔진이 전방에 달린 대형 버스, 그리고 뒷문도 앞문 같은 폴딩 도어이던 시내버스 정도이다. 1990년대 초, 초등학교 전반부 정도까지는 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철도님의 영향으로 자동차와 비행기에 대해서도 부전공 차원에서 추가적으로 주워 들은 것도 있다. 한반도 역사상 시내버스가 최초로 운행된 곳은 서울· 부산이 아니라 대구라는 것 등..

현대에서 에어로시티 계열 버스를 내놓기 전에 생산했던 RB는 모든 게 동글동글 유선형이었다. 각이라고는 없었다. 그 시절에 바다 건너 일본 버스들이 디자인 트렌드가 그러했는지는 모르겠다.
이 버스를 봤던 게 엊그제 같은데 길거리에서 다시는 찾아볼 수 없게 된 지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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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면, 대우의 BS계열 버스들은 헤드라이트 모양이 정사각형 셀이었다. 이거 정도는 기억하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 헤드라이트도 정말 순식간에 사라지고 멸종했다. 길거리에서 현역으로 멀쩡히 많이 잘 뛰던 물건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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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첨부는 생략하지만 아시아 자동차 버스들도 있었는데, 얘들 외형은 대우보다는 현대차에 더 가까웠다.
훗날 아시아는 기아에 흡수됐고, 기아는 현대로 흡수됐으니 지금은 결국 다들 한 지붕 아래에서 생산되는 차량이 됐다.

그랬는데.. 이 종원 씨는 저런 것들조차도 당대에 직접 탔을 리도 전무할 텐데.. ㅠ.ㅠ
심지어 그는 지금으로부터 딱 1년 남짓 전엔 현대 자동차 남양 연구소로 초청을 받아 가서 현대차 "직원"들에게 선배들이 수십 년 전에 만들었던 버스들의 계보에 대해서 강연도 했다고 한다..;;

이분이 운영하시는 블로그의 최근 글을 봤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현대 FB485와 새한-대우 BF101 실차를 미얀마에서 구입해서 역수입해 왔다.;;
난 그 시절엔 경쟁사의 새한-대우 BF101만이 짱인 줄 알았는데, 글을 보니 경쟁사인 현대의 제품도 디자인과 편의 시설에서는 메리트가 컸었다. 그리고 사실 두 차량은 엔진은 동일했다.

지금은 현대 버스들이 바퀴 펜더가 동그란 반원이고 대우 버스가 좀 각진 편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 반대.. 현대에서 펜더를 각진 사다리꼴 모양으로 만들고, 새한-대우 버스가 둥글었던 모양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글을 계속 보니, 옛날에는 에어 브레이크가 초대형 트럭이나 고속버스에는 적용되었지만 시내버스는 그렇게 무겁거나 고속 주행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열외되어 있었던 듯하다. 현대 FB485에서 도입한 게 최초라고 한다.

또한, 벽면에 리벳이 박혀 있지 않은 깔끔한 형태로 버스 차체를 만드는 것도 그 당시로서는 고급 기술이었나 보다. 의류로 치면 말 그대로 솔기 없는(seamless) 매끄러운 옷에 해당한다.
글을 보면 볼수록 흥미롭기 그지없다.

우리나라에서 역사적 사연이 있어서 따로 보존된 특수한 버스는 두 대 정도가 있다. 하나는 박 정희 대통령 장례용으로 급히 개조· 제작되었던 영구차이다.
18년에 가까운 독재 권력을 휘두른 대통령이 그렇게 허무하게 비명에 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최 규하 권한대행이 급히 영구차 제작 입찰을 했는데, 여기서는 현대 대신 새한-대우가 선정되어서 BF101을 급조한 영구차가 만들어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즉, 이 차가 저 때의 저 차였다는 얘기다. 물론 꽃으로 온통 뒤덮혔으니 사전 정보 없이 외형만 봐서는 저게 BF101의 파생형이라는 걸 알 길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멀리서도 고인의 관을 볼 수 있도록 측면 창문을 아주 크게 만들었다.
이 영구차는 지금도 서울 현충원 안에 보존되어 있으며, 본인 역시 직접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에 사마란치 IOC 위원장을 비롯해 각종 스포츠 연맹 총재 같은 높으신 귀빈들을 태웠던 전용 버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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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종은 아시아 자동차의 '콤비'이며.. 25인승 마이크로버스 차급이지만 내부가 6인승용 응접실 형태로 개조되었다.
대회가 끝난 뒤에 민수용 개조 부활(?) 같은 거 없이 영구 보존되긴 했지만 그 뒤로 그리 좋지 못한 관리 상태로 방치되어서 버덕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본인도 버스 하면 이 정도는 글 읽으면서 떠올리고 있었는데.. 저분 역시 곧장 언급을 하니 반가웠다. 실미도 사건 때 북파공작원들이 뺏어서 몰았던 그 버스까지는 나도 미처 생각을 못 했는데..
저런 분이야말로 나중엔 아예 버스에서 살림을 꾸리고 살지 않을까 싶다!!

류 준열과 혜리가 만원버스에 탄 장면을 보면 에어컨이 달려 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냉방 시설이 있는 버스는 없었다.


하긴, 버스와 열차에서 에어컨이 나오기 시작한 건 1990년대 후반부터이다. 에어컨 설비의 가격도 가격이지만, 옛날에는 버스의 엔진 출력 자체가 그 넓은 공간에 냉방을 빵빵하게 돌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지 못했다.

이렇게 이 종원 씨의 블로그를 읽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버스에 대한 그의 열정은 철덕을 자처하는 본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본인은 남자라면 무조건 대형 면허 따서 왕창 크거나 왕창 빠른 차를 몰아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저런 버스 전문가를 부러워하고 존경한다. 나도 한 분야에 저 정도의 외길 전문가가 되고 싶다.

그리고 이런 괴수에 비해 나의 철덕질은..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인 거 같다.. ㅜㅜ 나는 아직 철도를 저 정도로 열정적으로 사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후회되고 자괴감이 든다. 더 분발해야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8/11/11 08:27 2018/11/1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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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계시와 비유

1.
먼저 성경 말씀 패러디부터 좀 소개하겠다. 난 철도의 역사가 드디어 욥기 장면과도 오버랩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내가 서울-부산간의 땅에 철길을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게 명철이 있거든 밝히 고하라.
누가 그것들의 궤간을 정하였는지 네가 아느냐? 누가 선로 위에 열차를 맞춰 놓았느냐?
그 차량의 대차를 어디에 고정하였느냐? 혹은 그것의 동력 기관을 누가 놓았느냐?
어느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이 기뻐 소리를 질렀느냐?" (욥 38:4-7 패러디)

"이제 내가 너를 만들 때 함께 만든 특대형 디젤 전기 기관차를 보라. 그가 소처럼 기름을 먹느니라.
이제 보라, 그의 기력은 엔진에 있고 그의 힘은 발전기와 연결된 전동기에 있느니라.
그가 자기 바퀴를 백향목같이 움직이며 동력 전환 계통의 부품들은 서로 얽혀 있고
그의 대차는 강한 놋 덩이 같으며 그의 차축은 쇠막대기 같으니라.
그는 하나님의 철길들 중에서 으뜸이거니와 그를 만든 이가 자신의 연장을 그에게 가까이 댈 수 있느니라." (욥 40:15-19 패러디)


베헤못 빙고.
사실, 힘 자체는 전기 기관차가 더 좋지만 소리와 포스가 더 웅장한 건 디젤 전기 기관차여서.. ^^
욥이 그 당시에 무슨 총연장 몇 km에 차량이 몇 량 있는 사철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 사장이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2.
5월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나란히 있는데.. 그때 본인은 윌리엄 워즈워쓰의 유명한 시 <무지개>가 문득 떠올랐다. 본인은 아주 오래 전에 접했지만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역설법 싯구가 워낙 강렬해서 내 기억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아이와 어른을 대조한 다른 유명한 구절은 성경에서 고전 13:11인데, 거기서는 어른이 된 뒤에 유치하고 초딩스러운 일을 버렸다는 심상이어서 낭만주의 시와는 분위기가 영 다르다.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So is it now I am a man;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Or let me die!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첫 행이 무척 공감이 갔다. 나는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가 아니라 when I listen to Looking for You일 때 my heart leaps up이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영원무궁토록 그러하리라! 그리고 자연의 경건함이 아니라 철도의 경건함 속에서 매일 매일 살고 싶다.

아니, 시의 제목 자체를 레인보우가 아니라 레일웨이라고 바꿔도 될 것 같다. 소리가 비슷하다!
예전에 3· 1 운동 관련 글을 읽으면서 천도교를 보면서도 철도교를 연상한 적이 있었다. rain과 rail도 역시 ㄴ과 ㄹ 차이이다!

3.

"참고로 카지노의 카페트와 조명들은 전부다 심리학적으로 매우 신경써서 만든 것들인데, 들어서자마자 이상하게 두군거리고 슬롯머신을 한번쯤을 돌려봐야할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 구성되어 있다. 특히 슬롯머신처럼 단순하게 생긴 카지노 장비들(...)의 효과음은 돈 짤랑거리는 소리 등 도박욕구(...)를 자극하기 위해 정말 공들인 사운드 이펙트를 자랑한다."
* 나무(엔하)위키의 '카지노' 설명 본문 중.


그렇다. 새마을호 역시 카페트와 조명, 안내 방송과 음향들은 전부 심리학적으로 매우 신경써서 만들어져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이상하게 두근거리고 단순 이동이 아니라 뭔가 철도라는 악기를 이용한 문화 예술 공연 같은 느낌이 들도록 구성되어 있다. 기내지 레일로드, 고급스러운 간접 조명과 독서등, 두툼한 좌석에다 Looking for you 음악은.. 그야말로 승객을 뼛속까지 철덕으로 세뇌시키고 철도의 노예로 만들기 위한 정말 공들인 사운드 이펙트였다.

도박은 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만약 유흥 차원에서 한다면 내 돈을 잃거나 뺏긴 게 아니라, 그냥 게임 요금에 자리값/서비스료를 지불했다는 생각으로 하는 게 그나마 바람직하다.
비슷한 맥락으로 철도를 이용하는 것, 더 구체적으로 새마을호를 타는 것은 단순히 몸을 이동하는 데 드는 교통비 운임을 지불한 게 아니라 샘솟는 평안과 기쁨, 행복을 구입했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 아이폰만 감성 마케팅을 한 게 아니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Looking for you를 듣는 것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새마을호 객실에서 흘러나오는 Looking for you를 듣는 것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경부선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를 타고 열차가 시종점에서 도달할 때 연주되는 Looking for you를 객실에서 듣는 것이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4.
전철을 타서 좌석에 앉으면 가방이나 도시락 같은 소지품을 어디에다 놔 둘지가 고민되는 때가 생긴다.
그런데 그런 물건을 두는 위치는 전기 철도 차량의 전력 공급원 내지 집전 방식에 대한 좋은 예표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제각기 장단점이 있다.

  • 머리 위의 선반에다 두는 것은 가공전차선+팬터그래프 집전 방식에 해당한다. 제일 편하긴 하지만 깜빡 잊고 짐을 놔 두고 내리기 쉽다.
  • 바닥의 양 발 사이에다 두는 것은 바로 제3궤조 집전 방식이다. 놔두고 내릴 염려는 적지만 발을 편하게 두기 어렵다.
  • 그냥 손에 쥐고 있거나 백팩에 넣은 채로 있는 것은 배터리 또는 기름+전기 하이브리드 방식이다. 놔 두고 내릴 가능성은 0이지만 승차감이 제일 안 좋다.

선반에 물건을 적재하는 건, C++ 프로그램으로 치면 '전동차 탑승'이라는 함수가 실행되고 스택에 C++ 개체를 하나 선언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전동차에서 내리는 것은 함수 실행이 종료되고 그 변수가 scope을 벗어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변수는 스택에서 소멸되고 해당 개체의 소멸자 함수가 실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heap도 아니고 스택에 선언된 개체에 대해 메모리 leak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난 옛날에 논산 훈련소에 있을 때 침상형 생활관에서 바닥 위의 빨랫줄을 보고도 전차선을 떠올렸다. 국방색은 갈록색을 빼닮은 듯이 비슷해서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예표이고, 긴 행렬이 우측통행을 하는 것 역시 지하철의 예표이다.

성경에는 질질 끌리는 긴 옷자락(사 6:1) 내지 수행원 행렬(왕상 10:2)조차도 train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으니 저렇게 생각을 하는 건 성경적인 근거가 충분하다.
자나깨나 철도를 생각하는 것은 가까운 것부터, 일상생활을 소재로 삼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5.
난 솔직히 내가 아니어도 전세계의 날고 기는 천재들이 알아서 다 발전시켜 줄 컴퓨터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신기술에는 별 관심이 없다.
기술은 어지간한 건 다 상향평준화해 버리고 심지어 오픈소스로 풀리기까지 한다.
내가 안목이 좁은 건지.. IT 업계는 어지간한 아이템, 아이디어는 나올 거 다 나오고 게임 말고는 더 할 게 없는 레드오션이 돼 버린 지 오래인데, 미국은 아직도 뭘 더 만들 게 있어서 컴퓨터 관련 학과가 인기가 많고 코딩을 배우네 창업을 하네 하는 분위기인지 궁금하다. 아이템이 계속 있다면 참 다행이긴 한데.

나는 컴퓨터보다는 우리나라 철도를 위해 일하고 싶다.
나를 죄에서 구원한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해서 내 삶을 주께 드리고 내 몸을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듯이,
객실에서 Looking for you를 틀어서 잠자던 내 야성과 똘끼를 깨우고, 감성을 흥분시키고 한편으로 촉촉히 적시고, 한편으로는 무한한 행복과 감동과 평안과 희락을 준 철도를 위해, 철도를 전하는 일에 내 일생을 바치고 싶다.

"철도 안에서의 한 날이 세상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으니이다. 내가 장막들에 거하는 것보다 차라리 철도의 집(= 철도역) 문지기가 되겠사오니" (시 84:10 패러디) 가 강렬하게 떠올랐다.

  • 피스톤 왕복 엔진 (자동차. 휘발유와 디젤 모두)
  • 제트 엔진 (비행기. 터보 제트, 터보 팬)
  • 로켓 엔진 (우주 발사체)
  • 전기 모터 (전동차, 전기 철도)

의 내부 구조와 원리, 제원을 측정하는 규격과 물리적 특성, 구동음 등등을 전부 마스터 하고 싶다. 난 정작 대학 졸업할 때까지 기계· 전자 같은 건 완전 담을 쌓고 살았다만..;;

아 뭐 지금처럼 국어정보학 쪽으로 가서 언어를 공부하는 프로그래머가 됐고 한글 입력기와 글꼴 쪽으로 논문 쓰게 된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고 무엇보다도 창의적인 일이긴 하나,
내가 새마을호에서 Looking for you를 몇 년 좀 일찍 들었으면 진로가 딴판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철도 만세 만만세. 새마을호여 영원하라.
자동차나 비행기 쪽에 관심이 가는 것도 언제까지나 철도와의 비교 차원에서 하는 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마 전 학교 안 대졸자 취업 박람회(?)에서 본 코레일 부스..;;

Posted by 사무엘

2015/09/14 08:34 2015/09/1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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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철도 이야기

1. 경의-중앙선 전철 직결 운행

지난 2014년 12월 27일엔, 지하 공덕에서 끝나던 경의선이 용산까지 연결됨과 동시에.. 운행 계통도 둘이 통합되어 직결 운행을 시작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문산에서 출발하여 탄현을 경유한 전철이 용산, 옥수, 한남, 왕십리, 청량리를 거쳐 양평, 용문까지 한번에 간다는 뜻이다.

1978년에 용산에서 성북까지 겨우 1호선의 지선 국철 취급이나 받았던 마이너 노선이 2005년 말부터 용산-덕소 중앙선으로 운행 계통이 분리되었는데, 그게 동쪽으로는 용문까지 연장되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서쪽의 경의선과도 연결되는 발전을 이뤘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어도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이 경우, 중앙선을 달리는 열차도 경의선 시내 구간(공덕, 서강대 같은)에서는 잠시 지하 운행을 하게 된다.
공항 철도와 복층으로 겹치는 구간도 있지만, 어쨌든 서울역-공항(김포, 인천) 테크와 용산역-파주,청량리,양평 테크가 확실하게 분리가 이뤄질 것이다.

이 날짜에 맞춰서 일산선(서울 지하철 3호선 직결)의 원당-삼송의 무려 4km에 달하는 구간 사이에도 역이 하나 더 생겼고, 수인선에도 중간에 역이 하나 더 개통했다.
나는 프로그래머이면서 뭐 Visual Studio 새 버전이 나오고 아이폰 6이 나오고 뭐가 나오고 하는 건 별 관심 없고, 새로 개통하는 철도에 더 관심이 많고 그게 더 기쁘게 들린다. 어떡하지? =_=;;

2. 야탑 역 대합실의 열차 위치 안내 전광판

대한독립만세...!! 응? 까지는 아니어도 어쨌든 만세 만세 만만세!
자고 일어나니 드디어 야탑 역에도 생겼다. 열차 위치 안내 전광판. (승강장 말고 대합실 기준)
인근의 가천대, 태평, 모란, 이매, 서현 등엔 다 있는데.. 도대체 무슨 조화인지 야탑에만 이런 기본 시설이 지금까지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타려는 열차가 지금 어디쯤 있는지, 빨리 내려가면 탈 가망이 있는지를 예측을 할 수 없어서 얼마나 불편했나 모른다.
카드 찍고 개표 구역으로 들어갔는데 이제 막 하차 승객들이 내 쪽으로 스물스물 계단을 올라오는 게 보이면 낚였다는 생각에 내면으로부터 진심어린 짜증과 분노와 빡침이 솟구치곤 했다. 안 겪어 본 사람은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없다.
탈 가망이 없는 걸 진작에 알았으면 화장실이라도 먼저 들르면서 다음 6분간의 시간 활용 계획을 달리 수립했을 텐데.

서울 지하철 9호선처럼 아예 지하철 출입구에서부터 위치 안내가 되는 건 좀 오버라고 치더라도, 최소한 대합실 층에는 있어야 한다. 개표 구역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의사 결정이 가능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스크린도어 같은 건 없어도 되니 저 전광판이 현실적으로 더 필요했다.
너무 불편하고 싫어서 성남시에 민원이라도 넣을 생각이었다.. 아무튼, 이 기쁜 소식을 온 천하 알리세~

3. 2013년 1월 5일

지난 이 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을지로/안국에서 출발하여 청와대 분수대/춘추관까지 가는 초록색 지선 버스가 있었다. 번호는 8000. 시내버스답지 않게 타이어에 무슨 고속버스처럼 은색 휠캡이 고급스럽게 장착돼 있었고, 앞부분에 '청와대' 마크가 달려 있었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노선 설정 때문에 이 버스는 한강 수상 택시와 영등포-광명 셔틀 전철을 능가하는 극심한 공기 수송에 시달렸다. 현재 영등포-광명 셔틀은 주말에는 운행을 안 하는데 얘는 반대로 주말에만 운행하다가 결국 나중엔 폐선됐다.

그런데 얘가 폐선이 확정된 날짜가 왜 하필 2013년 1월 5일이어서 철덕인 나의 눈을 번득이게 하는 걸까?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가 운행을 완전히 중단한 날과 동일하다. 같은 날에 나란히 은퇴했다. 물론 버스의 경우는 노선만 없어졌지 물리적인 차량이 없어진 건 아니지만. 우연치곤 대단한 우연의 일치임을 뒤늦게 발견했다.

4. 언제 터널 내부 전등이 교체됐지?

서울 지하철 5호선 마포-여의나루 하저터널 구간.
원래는 노란 나트륨등이 켜져 있었는데 언제 여타 구간들처럼 흰 형광등으로 바뀌었지..???
교회 갈 때 지하철이 아닌 자차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이 구간을 이용해 보니 바로 티가 남.

<공주와 완두콩> 동화에서 진짜 공주는 담요와 매트리스 수십 장 밑에 깔려 있는 자그마한 콩알에도 배겨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한다.
그것처럼 정말 철도와 교감하는 철덕이라면 전동차의 구동음 멜로디 주파수가 자그마한 Hz만치 바뀌어도,
레일의 상태가 조금만 바뀌어도, 지하 터널 바깥 배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바로 눈치를 챌 것이다.

(1) 그나저나 콩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쇠구슬이 더 현실적이었을 거다. 콩알이었으면 그 무게를 못 버티고 그냥 으깨져 버릴 테니.
(2) 서울 한강의 아래에 존재하는 전철용 하저 터널은 총 3개이다. 지하철 5호선 마포-여의나루와 광나루-천호, 그리고 분당선의 압구정로데오-서울숲. 각각 폭약 NATM, 개착식, 실드라는 서로 다른 공법으로 건설되었다는 것도 특이하다. 광나루-천호는 강을 가림막으로 완전히 틀어막고 맨땅이 드러난 바닥을 파서 터널을 만든 뒤, 다시 터널 위를 덮어서 완공을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마포-여의나루보다는 얕고 존재감이 덜하다.

5. 답정너, 결론은 철도 자뻑

신약 성경 사도행전에 유독 자주 나오는 '이 길', '그 길'은..
this way 9:2, 22:4
that way 19:9, 19:23, 24:22
the way 24:14
분명 강철로 된 1435mm 궤간의 레일이 깔린 길이 틀림없다.
어쩌면 그 길은 그런 궤도가 두 개 깔려 있고 그 위로 25000V 60Hz 교류 전기 전차선이 깔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도행전이라는 책이 전반적으로 기행문 분위기이기도 해서 이런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든다.

그리고 송명희 시인의 <나>를 생각해 보자.
난 솔직히 전반부에 나오는 것처럼 가난하고 못 배우고 병약한 처지는 아니다. 하지만 후반부 가사를 보면..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는.. 새마을호+Looking for you를 집어넣으면 너무, 딱 맞아떨어진다. 아, 음성은 아니고 그 자리에 '음악'이 들어가야 하겠다.
하나님은 역시 공평하시다. 그래서 난 한국 철도를 통해 받은 이 셀 수 없는 복을 주변에 나눠 주는 삶을 살고 싶다. 철도교의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5/02/13 19:25 2015/02/13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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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톤 드보르작

음악가 드보르작. 알면 알수록 대단하며 우리 같은 후대의 철덕들의 귀감이 되는 존경스러운 철덕이다. 우리 모두 드보르작을 본받자. 불끈!

진 회숙의 <클래식 오딧세이> 중에서

드보르작은 사실 상당히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는 한 가지 것에 거의 편집증에 가까운 집착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기관차와 역, 철도에 관한 것이었다. 프라하에 살고 있을 때, 그는 매일같이 프란츠 요제프 역으로 가 입장권을 사서 구내로 들어간 다음 역 구석구석을 자세히 살펴보고, 개찰구의 역원이나 짐꾼, 감시원, 기관사들과 농담을 하기도 하고 기차에 관한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기차 시간표를 줄줄이 암기하고 있었던 그는 열차가 가끔 늦기라도 하면 마치 큰일이나 난 것처럼 지나가는 역원이나 승객에게 그 이유를 물으며 야단법석을 피웠다고 한다.

그렇다고 음악원 선생 노릇을 전폐하고 역에 머물 수는 없는 노릇. 하지만 음악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을 때에도 그는 틈틈이 역장이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고풍스러운 시계를 신경질적으로 꺼내보며 열차의 도착 시간을 점검하곤 했다. 그러다가 정 궁금하면 학생을 역으로 보내 11시 20분 도착 예정인 브륀-프라하 행 급행열차 158호가 정시에 도착했는지, 기관사인 야로슬라브 보트루바가 무슨 재미있는 경험을 하지나 않았는지 알아오게 했다.

이 때문에 노바크, 수크, 피비히, 레하르와 같은 미래의 대음악가들이 종종 수업을 중단하고 스승의 취미에 봉사하기 위해 요제프 역으로 달려가야만 했다. 그러다가 언젠가 꾀가 난 제자가 역에 다녀오지도 않고 다녀온 것처럼 꾸며서 애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거짓말이 곧 들통이 나 그 제자는 드보르작으로부터 무척 호되게 야단을 맞았는데 그 제자의 표현을 빌면 당시 드보르작의 모습이 마치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것’ 같았다고 한다.

어느 날 드보르작의 딸과 약혼한 제자 요제프 수크가 고향에서 돌아왔다. “그래, 여행은 어땠는가?”하고 드보르작이 물었다. “모든 것이 즐거웠습니다. 우리는 2시 34분 정각에 크로세비치를 출발해 3시 13분에 벤샤우에 도착, 거기서 물을 공급 받고, 3시 28분에 발차하여 5시 46분에 프라하에 도착했습니다. 아, 그리고 저희가 탄 열차의 번호는 10726번이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고 나서 수크는 ‘이 정도면 스승이 만족했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그의 대답을 들은 스승의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은 것이었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드보르작이 하는 말,

“자네 정말 한심하군. 10726번은 열차번호가 아니라 기관차의 제작번호란 말일세. 이 벤샤우 열차의 번호는 187이야.”
이렇게 제자를 향해 쏘아붙인 드보르작은 다시 딸에게로 고개를 돌려 이렇게 물었다. “그래 너는 이런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거냐?”

철도 차량의 번호와 운행 번호는 정말로 혼동하기 쉬운 개념이긴 하다만.. ㅋㅋㅋ
이것 말고도 드보르작의 놀라운 언행을 살펴보자. 이 사람이 오늘날 지하철이나 전기 기관차의 VVVF 구동음이라도 들었으면 정말 뿅 갔지 싶다..

“이것은 많은 부품으로 되어 있어. 너무 너무 다양한 부품들이지. 모두 각자가 모두 중요성을 가지고 있고, 각자 그 역할이 있어. 심지어 가장 작은 스크류 부속조차 제 위치에 있으며 무언가를 연결하고 있어. 모든 부품이 그 목적이 있고, 그 역할이 있어. 그 결과는 말이야 놀라워!!”

“오오 그런 기관차가 트랙에 있다니!! 그들이 석탄과 물을 넣으면 말이지, 단 한 사람이 작은 레버를 누르면, 큰 레버가 작동되기 시작해, 비록 기차는 수천 톤의 금속덩어리 인데도, 기관차는 토끼처럼 움직인다고! 내가 만약 기관차를 발명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나는 내가 작곡한 모든 교향곡이라도 포기할 수 있어!!


2. 유 병언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고 애석한 것은... 우리나라엔 정말 뜻밖의 인물도 완전 뼛속까지 철덕이라는 점이다.
정말 욕 나오고 분노가 치민다. 내가 다 민망하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유 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취미생활로 알려진 각종 폐열차 구입에 약 20억 원에 이르는 거액을 쓴 것으로 밝혀졌다.
기독교 복음 침례회(구원파)가 소유한 전국 폐교, 연수원 등 4곳에 있는 각종 폐열차는 120여 량. 전남 곡성군 삼기면의 한 폐교에는 ㈜아해 소유의 폐열차 4량, 화차 58량이 있다. 벌크라고 불리는 화차는 유류, 시멘트 원료 등 각종 화물을 운송하는 데 쓰인다.


게다가 저 아저씨는 내가 재벌 갑부가 됐으면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을 정확하게 똑같이 하고 있었다.. ㅠㅠㅠㅠㅠ
금수원 사진에 웬 서울 지하철 열차가 있는 걸 보고는 깜짝 놀랐었는데, 실상은 이거 뭐 상상 이상이었다.

자고로 철덕이라면 철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문과 무와 예체능 일체의 학문을 분야 불문하고 두루 겸비한 인재로서
나라사랑 국토사랑 정신으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고 한국 철도의 향기를 좋은 간증으로 남겨 방방곡곡에 전해야 하거늘!
만나면 철덕의 명예를 걸고 한 대 패 주고 싶다.
구원파라고 해서 일반적인 기독교회까지 함께 싸잡아 팀킬시킨 게 다가 아니었구나.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유 전 회장이 폐전동차를 구입한 것이 밝혀지면서 회사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앞으로는 객실을 해체해 고철로만 파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기록된바, 철도의 이름이 너희로 말미암아 일반인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는도다, 함과 같으니라." 꼴이 됐다.

Posted by 사무엘

2014/07/13 19:37 2014/07/1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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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음모론

2004년 1월 31일 이래로 벌써 10주년이 됐다.
1월 31일은 내가 생일, 침례 받은 날, 정보 올림피아드 대상 받은 날과 더불어 기념하는 4대 인생 축일 중 하나이다.

대학 시절, 난 새마을호를 몇 번 타 보면서 2003년 하반기 무렵쯤부터, 새마을호를 타면 시종착역에서 뭔가 음악이 흘러나온다는 걸 경험적으로 어렴풋이 체득했다. 그 음악이 왠지 인상이 좋아서 인터넷 검색을 했고, 그게 Looking for you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 난 서울에 갈 일이 있었고, 바로 저 날 아침 10시 38분에 대전을 출발하여 12시 10분에 무정차로 서울에 도착하는 새마을호 #2(당시)열차를 탔다. 이젠 Looking for you를 들을 준비를 하고 탔는데... 도착 후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 음악을 들으면서 그 어떤 마약보다도 더한 극한의 엑스터시와 함께 뿅~~~!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Looking for you를 그의 귀에 틀어 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철덕이 되니라. (창 2:7 패러디)

Looking for you는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동일하니라. (히 13:8 패러디)

새로 태어난 철덕으로서 철도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2:2 패러디)

Looking for you는 정말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한 희열과 흥분을 주고 내게 한없는 철덕 정신을 불어넣는다. 기독교의 근간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면, 나의 철덕 정신의 근간은 바로 여느 평범한 여행 경험 같은 게 아니라 Looking for you 음악이다.
한글이 목적을 갖고 따로 인위적으로 창제된 문자인 것만큼이나 내가 철도에 언제 왜 빠져들었는지는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명시가 되어 있다..

철도는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지만 못할 뿐이지 나의 삶에 모든 의욕과 원동력을 불어넣고 어지간한 인간적· 육신적인 종교들보다 더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나에게 철도는 거의 '준종교' 수준이다.

그래서 이 날 주변엔 난 운전을 할 때도 차에서 Looking for you는 말할 것도 없고 Oh Glory Korail을 비롯해 서울 메트로와 서울 도시철도 공사의 사가, 그리고 각종 열차 안내방송을 들으며 지냈다.

갓 철덕이 되었다면 먼저 우리나라 철도 영업거리표와 수도권 전철 노선도를 큰 윤곽이라도 암기하고 열차 시각표, 철도 차량 계보, 주요 철도 정보 사이트(한 우진, MEIS 등)들을 쭈욱 독파해야 할 것이다.

흔히 우리나라 교육제도를 비관하는 사람들이 자조하는 논조로 에디슨, 아인슈타인, 마리 퀴리 같은 사람이 한국에서 태어나면 무슨 과외 선생, 중국집 알바 등등이 됐을 거라고 얘기를 한다. 그러나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토머스 에디슨이 만약 20세기 말의 대한민국 서울에서 자랐고 열차를 탈 기회가 있었다면 철덕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교육제도에는 희망이 없지만 철도에서 희망을 찾지 않았을까 싶다.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악기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는 교통수단이 존재할 수 있을까? 자동차, 비행기, 배와는 너무 다르다. 궁금하다.” (서울 지하철 VVVF 구동음)
“어떻게 Looking for you가 흘러나오는 교통수단이 있을 수 있을까? 그게 왜 하필 철도일까?”

라는 의문에서 “왜? 왜? 왜?”를 남발하면서 넘사벽 급의 오덕력과 똘끼와 탐구 정신이 발산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발견해 낸 걸 에디슨이 놓쳤을 리는 없다!!
역사적으로 에디슨은 직류 전기를 좋아했으니, 교류를 쓰는 광역전철보다는 직류를 쓰는 지하철 쪽으로 제 갈 길 잘 찾아갔을 것이다.

뭐 아무튼..
세상이 무슨 그림자 정부에 유대인 재벌, 로스차일드 가문,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예수회의 음모대로 돌아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철도청이 자기 말기 시절에 새마을호 객실에다 시종착 음악으로 Looking for you를 선곡해 넣었던 것에는 분명..

승객을 철도에 중독시켜서 철도의 노예로 만들려는 매우 교묘하고 치밀한 음모가 있었던 게 틀림없다.
나중에 코레일이 수익 내려고 백 날 철도 이미지 광고 때리고 마케팅 해댄 것보다도, 철도청이 슬그머니 선곡해 넣은 마약 같은 음악 한 곡이 더 폭발적인 효과가 있었다.

세상에 아폴로 계획 음모론이나 백신 음모론, 유대인 세계 정복 음모론, 9·11 테러 자작극 음모론 같은 건 아예 거짓이거나 거짓일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철도청의 Looking for you 철도 중독 음모론은.. 이렇게 증인이 팔팔하게 살아 있는 이상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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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난 그 음모의 희생자였을 뿐이다...!!
음모론 좋아하는 분들은 그 개연성을 연구해 보는 게 어떨까 싶다.
그러나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그 음모를 통해서도 선한 결과를 만들어 내셨다. 철도사랑 나라사랑, 성경 노선도처럼!

* 결론: 음모론이라는 건 자기 꼴리는 대로 해석하기 나름인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상당수 걸러 가며 들어야 한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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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4/03/01 19:21 2014/03/01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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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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