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 : 1 : 2 : 3 : 4 : 5 : ... 216 : Next »

올해 봄 호박 농사 근황

올해도 벌써 5월이 끝나 간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10.7이 나온 지도 거의 한 달이 돼 간다.
해마다 봄이면 언론에서 맨날 봄 가뭄이 심하다고 떠들곤 했다. 그러나 올해 봄은 초여름 더위가 일찍 찾아오긴 했지만 비도 꼬박꼬박 많이 내린 것 같다. 봄 가뭄이니 산불이니 하는 말이 없었다.

지난 3월 이래로 이 블로그에 호박 얘기가 전혀 없었다니.. 오랜만에 그거 근황을 전하도록 하겠다.
작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실내에서 호박씨를 뿌려 봤는데.. 안타깝게도 결과가 별로 좋지 못했다. 작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실내에서 암꽃을 수분시켜서 사과· 배보다 큰 호박을 따기도 했는데.. 그런 일이 그 뒤로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설마 동일한 화분에다 계속 연작을 해서 그런지?

호박이 조금 자라려 하면 어김없이 잎에 흰가루병이 생기고.. 나중에는 온통 진딧물이 꼬이곤 했다.
한때는 호박이 하루 이틀 간격으로 꽃을 피우곤 했는데 나중엔 기력이 다했는지 꽃이 더 피지 않고, 잎이 시들고 빠졌다.
특히 전에도 얘기했었지만.. 작년 겨울 동안 실내에서는 암꽃이 단 한 송이도 피지 못했다. 씨방이 맺히던 것이 기력이 부족한지 암꽃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다 떨어졌다.

흐~~ 이 정도면 저 화분의 흙이 지력이 다한 건지? 비료만 보충해 주는 걸로는 안 되는지? 다 엎어버리고 화분을 다시 세팅해야 할지..???
그래도 이제 3월 말부터는 날이 따뜻하니 화분을 실외로 옮기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시 호박씨를 흙에 파묻었다. 이때가 4월 1일인가 2일이었다. 그 뒤..

사용자 삽입 이미지

4월 10일경에 이랬던 아이는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저기 싹이 돋기 시작하더니 사흘 뒤에는 이렇게 됐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4월 22일에는 진도가 빠른 아이들은 벌써 본잎도 이만치 커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4월 25~26일, 화분이 터져나갈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로부터 1주일에서 열흘 정도 지난 5월 2일과 5월 5일.. 잎이 엄청나게 커졌다.
이때 파릇파릇한 호박잎을 수십 장이나 따서 먹었다.
이 많은 호박들을 저 비좁은 화분에서 모두 끝까지 키우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을 솎아내야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이고~ 이 큼고 넓적하고 허연 힘줄(줄무늬)이 가득한 잎 좀 보소. 장기복무에 탈락한 호박들이 남긴 유산이다.
찌거나 데쳐서 쌈장 찍어서 고기와 함께 먹기도 했고, 라면에다 넣어서 먹기도 했다. 별미였다.
지금은 잎만 수십 장 얻었지만, 몇 달 뒤엔 작은 거라도 열매를 10여 개라도 좀 얻었으면 좋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5월 11일, 너무 조밀하던 아이들을 대대적으로 정리하니 화분들이 다시 휑해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로부터 1주일쯤 뒤인 5월 19일, 그래도 살아남은 아이들이 몸집이 예전에 비해 길어졌다. 화분이 휑하다는 느낌이 거의 없어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5월 22일, 몸집이 눈에 띄게 길어진 게 느껴졌다. 바닥에 치렁치렁 늘어진 덩굴 줄기를 추스르고, 막대기를 타고 오르도록 가이드를 하기 시작했다. 우주 발사체에다 비유하자면, 이제야 얘들이 수직 상승이 아니라 수평 이동을 시작하고 지구 공전 궤도에 진입한 것 같았다. 생후 40~50일쯤 된 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호박은 이런 덩굴손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그로부터 사흘이 또 지난 5월 25일의 모습이다.
아아~호박이여~!! 어서 꽃 피고 열매도 맺히기를. 다음 호박 근황글에서는 꽃과 열매 이야기가 올라왔으면 좋겠다.

※ 여담

1.
화분에서 다 키울 수 없어서 퇴출된 호박 중 일부는 집 근처의 공원 모처에 몰래 옮겨 심어 보기도 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살면 다행이고, 죽어도 그냥 본전이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식물은 뿌리째 뽑힌 채 방치되면 마치 물 밖으로 꺼내어진 물고기처럼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시들고 죽는다.
그런데.. 최대한 조심해서 주변의 흙까지 다 같이 파더라도, '옮겨 심기'는 식물에게 큰 부담과 스트레스를 주는 것 같다. 흠 그러고 보니 금붕어 어항 물갈이와도 비슷한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옮겨져서 심긴 식물은 분명히 죽은 건 아니지만, 성장도 못?안? 하는 채로 한참을 저렇게 있으면서 발육이 뒤쳐졌다. 이거 효율을 좀 개선할 수 있겠는지 궁금하다.
화분에서 붙박이로 있었던 아이들은 저렇게 굵어지고 길어지고 난리를 치는 중인 반면, 쟤는 그냥 난쟁이가 돼 버렸다. 그 상태로 이제 잎 몇 장 더 나고 흰 줄무늬가 생긴 게 생존 인증의 전부이다.

이것 말고도 옮겨 심은 애들이 여럿 있지만, 그나마 제일 잘 자라고 있는 아이가 저런 상태이다.
그래도 이제 뿌리를 다시 잘 내렸는지, 살짝 잡아당기는 정도로는 꼼짝도 안 한다.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잘 보살펴 줘야겠다.
뉴스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면서 울나라도 올여름에 재앙 급의 물폭탄이나 폭염이 예상된다고 벌써부터 난리를 치고 있다. 그러면 얘는 또 물에 잠기려나? 자연재해나 도난 걱정, 공간 걱정 없이 호박을 마음껏 키워 보고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실내에서 키우고 있는 이 생후 한 달짜리 호박도 제법 많이 컸다. ㅎㅎ 얘는 힘줄이 전혀 없네.. 단호박인가 보다.

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살아 있는 호박은 아니지만.. 보기가 참 좋아서 힐링용으로 잠시 소개한다. 침실에 온통 이런 방석, 베개로 가득하면 참 훈훈할 것 같다.

나는 이걸 호박 쿠션이라고 부르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베개라고도 하고 심지어 인형이라고도 부르더라. 사람의 평소 개념 인지 알고리즘이 어떻느냐에 따라서 어휘 선택이 달라지는 듯하다.
아무렴, 동물이나 만화 캐릭터 얼굴이 아니라 식물.. 그것도 채소 열매가 쿠션이나 베개 모양으로 쓰이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호박이 이래서 매력만점 채소인 것이다. 열매뿐만 아니라 덩굴과 잎까지도 말이다.

우리 예쁜 여친님이 호박 쿠션을 선물해 줬을 뿐만 아니라 주기적으로 쿠션을 세탁까지ㅠㅠㅠ 해 주고 있다.
그런데 쿠션의 안에 들어가는 솜이 반영구적인 재질이 아닌지, 세탁을 여러 번 하면 비가역적으로 뭉개지고 망가지는 것 같다. 그러면 예전처럼 푹신하고 탱탱하지를 않아서 쿠션· 베개 용도로는 못 쓰고 그냥 관상· 전시용이 된다.

3.
이렇게 호박들이 잘 자라고 있는 와중에 본인의 가장 큰 고민은 앞서 얘기했듯이 백해무익 불청객인 진딧물이다.
저 화분과 저 흙의 문제인지..??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호박이 어느 정도 자란 뒤부터는 실내와 실외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멀쩡히 시퍼렇게 잘 자라던 잎이 갑자기 쭈글쭈글해지고 시들고 말라 죽는다. 그런 잎은 뒷면을 들여다보면 진딧물 떼거지가 새까맣게 뒤덮힌 끔찍한 몰골이다.
이건 뭐 그냥 시꺼먼 점들이니까 난 벌레일 거라고 생각도 안 했고 그냥 얼룩이나 세균 차원의 병이라고 생각했었다.

진딧물은 단순히 식물의 진액만 빨아먹는 게 아니라 자기가 소화시키지 못한 똥까지 주변에 싸지르면서 식물을 완전히 작살을 내 죽인다고 한다. 정말 보이는 족족 무조건 박멸해야 된다. 오히려 완전 야생에서는 이런 문제가 없다.

인터넷을 보니 물에다가 퐁퐁 같은 주방 세제를 타서는 분무기로 잎과 줄기, 주변의 흙까지 뿌려 주라고 했는데.. 당장 눈에 띄는 진딧물을 퇴치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진딧물을 손으로 일일이 터뜨리고 뭉개고 거기다가 세제 탄 물을 뿌렸더니 그 부위가 깨끗해졌다.

하지만 문제는 겨우 그렇게만 해 준다고 딴 데 있는 진딧물이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거. 그런데 이것 말고 딱히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본인의 호박 농사가 꽤 큰 고비에 부딪힌 것 같다. =_=;;

Posted by 사무엘

2024/05/28 08:35 2024/05/28 08:35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302

예수 믿고 교회 다니고 성경 읽는다는 사람들은 걸어다니는 성경 구절 검색엔진뿐만 아니라 찬송가 가사 검색엔진이 될 필요도 있다.
상황별로, 혹은 비슷한 가사, 비슷한 조나 박자.. 이어서 같이 부르기 좋은 곡. 이런 게 줄줄이 생각나도록 말이다. 그게 인생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1.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난 개인적으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찬송가는 예수쟁이 크리스천의 아리랑 같은.. 거의 민요 급의 노래라고 생각한다. 진취적인 행진곡 군가풍이 아니고, 3박자이지만 그렇다고 막 왈츠 춤곡 아니고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 급의 얼쑤 지화자 좋다~~=_=도 아니고 적당히 샤방샤방한 느낌이 든다는 점에서 말이다.

한편, 수십 년 전엔 미국의 어느 군소 장로교 교파에서 저 경기도 아리랑 멜로디에다 영어 가사를 얹어서 Christ, You are the fullness of God이라는 창작 찬송가를 수록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게 무슨 TV 방송에서 "미국인들이 아리랑 멜로디 듣고 엄청 감동하더라" 이렇게 국뽕(!!!) 주입하는 쪽으로 소개됐었다. 하지만 지금은 딱히 출처 검색이 안 되는 걸 보니, 다 지나간 일인 듯하다.

근데 아리랑이 멜로디가 좋으면 뭐 하냐? 가사는 그놈의 한이 맺혀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걸어가다 1시간도 채 못 되어 발병 나서 자빠질 거다"로 끝이다.
그 반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은... 완전 차원이 다르지 않느냐 말이다.

이 비참한 죄인이던 내가 구원받았고 그 은혜가 너무 고맙고~~ 난 죽더라도 하늘나라 본향으로 돌아갈 거고.
이제는 사람 골병 들게 만드는 원한이란 걸 품을 이유가 없고, 한 맺혀서 남을 저주해야 할 필요가 추호도 없다. 내가 한을 품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가 한없는 거지.

사람이 이렇게 삶의 이유와 목적, 명분,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관념이 달라지면 그게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로 나타난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인 사회가 건강· 건전한 정도로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고 저런 찬송가가 만들어졌던 18~19세기 서양의 문화가 다 건전하고 좋기만 했다는 것도 당연히 절대 아니다. 허나,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정도면 그야말로 불멸의 명작 찬송가이고 세계 각국의 크리스천들이 이 정도면 가사 다 외우고 조선 시대 사람들이 아리랑 불렀듯이 필요할 때 어디서나 암송해야 하지 않겠나 싶다.

2. 미국의 맹인 여성 두 분

(1) 헬렌 켈러 (1880-1968)
나는 죽기 직전에 딱 사흘만이라도 눈을 뜨고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을 좀 해 보고 싶다. 그게 내 소원이다.
눈을 뜨게 된다면 제일 먼저 내 인생의 은사인 설리반 선생을 보러 갈 것이다. 지금까지 감촉으로만 느꼈던 선생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볼 것이다. 그리고 바람에 나풀거리는 잎사귀들, 아름다운 석양과 노을을 보고, (… 무슨 휴가 나온 군인처럼 구경할 거, 돌아다닐 곳 계획 다 짜 놓고…) 마지막 날엔 도시에서 출근하는 사람들 얼굴을 보고 오페라하우스와 영화관 구경도 할 것이다.
그렇게 세상을 보고 나서 눈을 감기 직전에 사흘 동안이나마 시력을 허락해 주신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영면에 들어갈 것이다.

(2) 패니 크로스비 (1820-1915)
나는 영아 시절에 내 눈을 망가뜨렸다는 돌팔이 의사양반에게 아무런 악감정이 없다. 하나님께서 나를 평생 맹인인 채로 사용하시려고 그 일을 허락하신 것이다. 나는 이대로도 너무너무 행복하다.
굳이 지금 눈 뜨지 않아도 좋다. 죽어서 하늘나라에서 눈을 떴을 때 사랑하는 예수님 얼굴부터 맨 먼저 보게 될 테니까!
세상에서 OME로 더럽혀지지 않은 눈, 포장 안 뜯고 “아무것도 안 본 눈 삽니다”를 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인생을 다시 산다고 해도 이렇게 맹인으로 살 의향 있다.

영성의 레벨이 다르구만. ㅠㅠㅠ
헬렌 켈러는 좌파적인 사회 활동 때문에 쌍팔년도 우리나라 위인전에서는 오로지 어린 시절만 다뤄지곤 했다. 저 사람이 장애를 극복하고 대학까지 나와서 뭐가 됐고 무슨 활동을 했는지 얘기는 함구하곤 했다. ㅡ,.ㅡ;;; 뭔가 마크 트웨인과 비슷한 인상이다.

패니 크로스비야 뭐.. 인류 역사상 찬송시를 제일 많이 남긴 단일 인물이다.
현대인들이 페북이나 트위터 인스타에다가 자기 먹방이나 여행 자랑글 올리는 것과 대등한 빈도로.. 그딴 글 대신 예수님 생각하고 자랑하고 찬송하는 시만 썼던 사람이다. ㄷㄷㄷ
그리고 패니 크로스비는 간호사 겸 의료 행정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과 동갑이었고 비슷한 시기에 죽은 사람이기도 했다. ㄲㄲㄲㄲ

3.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의 작사자

찬송가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은 울나라 기독교계에서 두루 사랑받는 명작 찬송가이다. 가사 내용의 특성상 연말이나 교회 창립 기념일 때 부르기 좋다.
얘는 특이하게도 멜로디가 두 버전이 존재한다. 한국인 박 재훈 작곡의 흥겨운 민요풍 버전이 있고, 그것보다는 차분하게 "복의 근원 강림하사" 멜로디 기반인 외국곡 버전이 있다.

우리나라 찬송가들엔 둘이 쌍둥이처럼 같이 수록돼 있는 편이다. (이렇게 같은 가사에 두 멜로디가 모두 유명한 다른 예로는 성탄 찬송인지 캐롤인지 애매한 Away in a manger도 있음)
그런데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의 작사자는.. 한국인이나 서양인이 아니라 '사사오 데스사부로'라는 일본인 목사이다. 일본 교회들이야 박 재훈 멜로디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 "복의 근원 강림하사" 멜로디로만 부른다. 신기하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아마 반일 감정 때문에 작사자가 오랫동안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던 것 같다. 미들 네임이 아닌데도 이름을 T. Sasao 이렇게 때우거나 아니면 아예 미상이라고 처리하기도 했다. 일본 법학 서적에서는 어떤 법리를 지지하는 학자들 실명이 일일이 언급돼 있는데, 그게 울나라로 번역되면서 싹 다 짤리고 쪽수만 남아서 다수설 소수설 이렇게 바뀌었듯이 말이다.;;;

그나저나 사사오 데스사부로는 "우리들이 싸울 것은 혈기 아니요"도 작사했다.
일본어 가사답게 처음에는 후렴이 "일심(一心)으로써 힘써 싸우세"였다. 그러다가 21세기 새찬송가에서는 "한마음으로"라고 더 순화됐다.
마치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시 103:1)"가 "온 마음 정성 다하여 다 찬양하라"로 바뀐 것처럼 말이다.

4. "주 다시 세상에 오시리 -- 오늘 오신다면?"

끝으로.. Jesus is coming to Earth again -- what if it were today? 라는.. 꽤 드라마틱한 종말· 재림 카테고리의 찬송가가 있다.
참고로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캐롤 "울면 안 돼"가 제목이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이다. ㄲㄲㄲㄲㄲㄲ
그것처럼 "예수님이 다시 오신대.. 혹시 그게 오늘 지금 당장이면 어떡하지? 얼마나 신날까?" 라는 뉘앙스가 저 찬송가에 담겨 있다.

통상적인 클래식 찬송가들은 앞절은 구원이나 순례자의 길, 평안 등을 노래하다가 '마지막' 절이 재림이나 천국 등을 거론하는 편이다. 자기가 죽든지 아니면 세상이 끝나든지. 허나, 이 곡은 마지막 절뿐만 아니라 가사 전체가 몽땅 재림 얘기이다.

나머지 가사들은 다 성경을 근거로 유추 가능하고 그대로 부르면 되는데.. 3절 "주 오실 징조가 넘치고 새 날의 먼 동이 터 온다"가 오래 전부터 내 눈길을 끌었다.
"주 오실 징조", 재림의 징조가 넘친댄다. Signs of His coming multiply..

그런데 이 곡은 1912년에 발표됐다.
아직 1차 세계대전도 시작되지 않았고 UN이고 WCC고 이스라엘 국가고 뭐고 없던 시절이었는데? 핵무기, 미사일, 컴퓨터, 인터넷도 없었는데? 이 곡의 작사자는 그 시절에 뭘 근거로 재림 징조가 넘치고 "말세다 말세"라고 추측을 했던 걸까?

먼저, 과학기술을 생각해 보자. 20세기의 포스에 밀려서 그렇지 19세기도 중후반은 과학기술이 과거 대비 정말 폭발적으로, 상상을 초월하게 발전했던 시기이다.
증기기관, 내연기관, 자동차, 철도, 흑백이나마 사진과 영화, 타자기, 교류 전기, 전화, 전신기, 축음기, 증기선 철갑선, 기관총, 길거리 공중 화장실.. 이런 게 다 이때 등장했다.

끈질긴 비과학 낭설이던 생물 자연발생설이 요 시기에야 완전히 논파되고 부정되고 폐기됐다. 세균이라는 게 이제야 알려져서 "길거리에서 침 뱉지 마시오" 캠페인이 미국에서 1900년대 초에 막 벌어졌을 지경이었다.
작고 허접하긴 해도 무려 비행기(!!)가 발명됐으며, 이제 막 타이타닉 호도 건조됐다. 선박으로 위험한 모험이 아니라 안락한 장거리 대륙 횡단 여행이 가능해졌다.

초보적인 수준의 국제기구들도 등장했다. 이때는 그런 기관의 명칭이 '국제 ***, 세계 ***'가 아니라 '만국 ***'이라고 번역되는 편이었다.
세계 언어들을 통합적으로 분석하려고 IPA 음성부호가 제정됐고, 심지어 에스페란토라고 국제 공용어를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다.

서유럽에서 예전에 비해 꽤 오랫동안 전쟁이 없으면서 과학기술 물질문명이 저렇게 발전했고, 쟤들이 가히 세계를 정복했다. 그래서 세계사에서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 재임기를 포함하는 이 19세기~20세기 초를 '벨 에포크'라고 부른다.
이렇게 서양 백인들이 찬란한 물질 문명을 이룩하고 세계를 석권하고 선교사까지 곳곳에 보냈으니, 인간 세계는 볼짱 다 봤고 예수님만 다시 오시면 되는 걸까 설마???

하지만 이 시기에 밝은 면모만 있는 건 당연히 절대 아니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뼈빠지게 일하고도 복지 사각지대에서 빈곤에 시달렸다. 아예 자국민도 아닌 피식민지 원주민들은 논밭이나 광산에서 지옥 같은 착취를 당했다. 흑인은 인간과 짐승 사이에 진화가 덜 된 생물이라고 여겨졌고, 장애인도 인간 취급을 못 받았다.

저 브루주아들을 쓸어버리고 혁명을 이뤄야겠다고 공산주의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그때 상류층이 다니던 기독교회들은 무력과 권력으로 빨갱이들 때려잡고 노동자 운동을 진압하자는 선동만 했지, 이웃 사랑 실천은 너무 안 했던 것 같다. 이에 대한 자정 노력의 일환인지, 영국에서 자선냄비 구세군이라는 교파가 만들어졌을 정도였다.

거기에다.. 내 뇌피셜로는 1908년 퉁구스카 대폭발,
1910년 핼리 혜성의 꼬리 괴담...에 대한 경험도
저 작사자의 뇌리에 "주 오실 징조가 넘치고"라고 녹아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ㅎㅎ 저것들도 당대 사람들을 크게 동요시키고 큰 충격을 줬던 사건이다. 종말 신드롬이 굳이 1990년대 세기말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는 거다.

암튼.. 인류가 앞으로 또 무슨 세상 징후를 겪은 뒤에야 예수님이 오실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1910년대에나 2020년대에나 맹 똑같이 주님 다시 오실 징조는 늘어나고 있고, 예수님은 동일한 확률로 언제든지 오실 수 있는 거다.

언제나 종말 정신에 입각해서 살면 되지, 굳이 이 찬송가가 만들어지던 당대의 배경 맥락을 이렇게 미주알고주알 따질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 다만 이렇게 너무 막연하고 보편 일반적이고 원론적인 얘기에만 빠져들다가 "예수님이 문자적으로 재림 자체를 안 하신다, 그냥 마음 속에 오신다, 이미 와 계신다".. 그 따위로 교리가 변질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저런 정황을 생각하면.. 19세기 말에 근대화된 서구 열강과 일본은 천국이었고 오로지 구한말 조선 땅만 시궁창 헬이었다고 너무 "지나치게" 열등감 갖고 자조 자괴할 필요까지는 없는지도 모르겠다. (세계 평균 이하의 미개한 시궁창이었다는 건 사실이지만, '지나치게'까진.. 정도의 문제다. =_=).

5. 여담: 자매 감성

찬송가와 관련하여 100% 다 그렇다는 건 아니겠지만, 교회 다니는 젊은 자매님들은 대체로 이런 경향이 있더라.

(1) 나는 favorite 찬송가가 "주 하나님 큰일을 행하셨네", "놀라운 주의 은혜", "주 보혈로 날 구해 준", "그 참혹한 십자가에" 등 구원· 복음과 관련된 쪽에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교회에서 만났던 여러 자매들은 전반적으로 공통적으로.. 뭐 인도하시느니, 힐링하시느니, 어루만져 주신다느니.. 그런 인도와 보호 장르의 곡을 확실히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다. 킹 진영, 비킹 진영을 불문하고. ^^

(2) "주 품에 품으소서"(Still; Reuben Morgan)와 "참 좋으신 주님"(김 기영).. 두 곡을 약속이나 한 듯이 완전 너무 좋아하곤 했다. 물론 다들 훌륭한 곡이긴 하지만 나는 그 정도로 감흥을 느낀 건 아니다.

(3) 앞서 소개했던 찬송가 "주 다시 세상에 오시리"라든가 "샤론의 꽃 예수", "나 어느 날 꿈속을 헤매며"는 뭔가 자매 감성이 느껴지곤 했는데 역시나 작사 작곡자가 여성이다. 후자는 1절 가사가 너무 몽환적인 판타지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일부 교파에서는 가사를 살짝 수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형제보다는 자매가 확실히 더.. 단순히 성경적인 설교, 은혜로운 설교 정도가 아니라 "오늘 설교 완전 나 저격이었어~!! 어제 이런 일이 있었는데 마침 주일 예배 설교가 딱 이런 내용이었어" 식으로 주관적인 감탄사를 훨씬 더 자주 말하더라. 이런 사례가 여러 사람들에게서 계속 나오는 게 흥미로웠다. 겨우 한두 케이스였으면 내가 이렇게 글을 안 남긴다.

(4) 이건 신앙의 영역은 아니겠지만.. 한창 우한 폐렴 때문에 백신 좀 맞으라고 국가적으로 난리였던 시절에 말이다. 현직 의사들 중에서 백신의 효능에 대해 의구심을 적극적으로 표시한 사람도 남자보다는 여자 의사 중에서 훨씬 더 많았다.
뭐 유사과학 음모론 괴담에 홀렸건, 진짜로 통계적으로 의심스러웠건 의학적인 근거는 내가 판단하지 못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성향이 그랬다. 이런 거 감수성도 남자와 여자의 종특 차이인지 모르겠다.

(5) 여친을 비롯해 나보다는 최신 CCM 동향에 더 밝은 사람들과 교제를 해 보면.. 아예 19세기 클래식 찬송가 아니면 2010년대 이후의 복잡현란한 CCM을 잘 알지(마커스워십??), 198~90년대 초창기 국내 CCM은(최 덕신, 옹기장이) 대체로 잘 모르더라. 음~ 나이대나 신앙 생활 짬이 나하고 별로 차이가 안 나는데 이런 차이가 있구나~~ ^^

난 반대로 2000년대 이후 CCM은 유입이 끊겨서 최신 동향을 잘 모르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최신 게임도 몽땅 고전 게임으로 바뀌는 와중에, CCM도 초창기 버전은 이제 C~ 컨템퍼러리(동시대, 현시대)하지 않게 된 듯하다. ㄲㄲㄲ
이제 엑셀이라고 하면 자동차가 아니라 컴터 소프트웨어가 떠오르고, 봉고라고 하면 승합차가 아니라 트럭을 떠올리는 시대이다. 이러니 신 상우 '하나님의 은혜'는 2020년 손 경민 '은혜'에 밀려 잊혀지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4/05/25 08:35 2024/05/25 08:35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301

사람이 뭔가 죄를 짓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 사고를 친 정도와 그 의도가 다음과 같은 잣대로 평가된다.
처벌 수위 견적=_=을 낼 때 이런 게 반영된다.

1. 경범죄

이건 위반한다고 해서 '체포'된다거나 전과가 남지는 않는 경미한 위· 범법 행위이다. 그냥 범칙금이나 유치장 구류 한 방으로 경찰 선에서 끝나고 다른 뒤끝이 없다. 판· 검사한테 가지도 않는다. 의료에다 비유하자면 병원에 가지 않고 약국이나 가정 상비약 선에서 끝나는 것과 비슷하다.

횡단보도 무단횡단이나 노상방뇨를 비롯해 일상생활에서 어지간한 새치기 민폐, 무임승차, 무전취식은 다 경범죄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 짓거리가 상습적이고 악질적이고 규모가 커지면 중범죄인 사기, 업무방해, 주거침입 등으로 업글된다. 처벌도 벌금이나 징역으로 바뀐다.
음주운전, 뺑소니나 강도, 성추행범 몰카범은 잡히면 그대로 체포된다. 이런 거 현행범은 일반 시민이라도 제압해도 될 정도이다. 이게 바로 경범죄와 중범죄의 차이이다.

참고로, 과태료는 범칙금과 다르다. 법원도, 경찰도 거치지 않는 행정 계층에서의 금융치료-_- 되시겠다. 사고를 냈을 때의 벌칙이라기보다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각종 행정 조치를 어겼을 때의 제재에 가깝다. (산불을 냈을 때가 아니라 산에 화기를 반입하다가 적발됐을 때, 교통사고를 냈을 때가 아니라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게 적발됐을 때처럼..)
쓰레기 무단투기나 불법주차는 과태료 깜이지 경범죄조차도 아니다. 그 반면, 과속이나 신호위반 적발은 범칙금과 과태료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특이한 사례이다.

2. 중지미수

중범죄에 가담하고 현장까지 갔지만.. 나중에 회개해서(죄책감 때문에?)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그 범죄를 수행하지 않고 때려치운 것. 이건 상식적으로 당연히 가장 관대하게 처분된다.
뒤에 나올 자수나 장애· 불능미수는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 (형법 제52조) 이렇게 감경 면제가 옵션이다. 그 반면, 중지미수는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한다" (형법 제26조)로, 감경 면제가 반드시 수반된다.

3. 과실

고의가 "전혀" 없이 전적으로 실수나 사고로 인명· 재산 손실이 크게 난 경우이다. 이건 감방을 가더라도 징역이 아니라 금고형으로 처분되는 편이다.

지난 2019년 말, 진주시에서는 미친 칼치기 끼어들기 때문에 시내버스가 급정거하고, 서 있던 한 여고생이 버스 안에서 뒹굴면서 목을 다치는 사고가 났었다. 결국 평생 전신마비 장애인..
이건 음주 무면허 뺑소니가 아닌 일상적인 과실 교통사고 중에서는 죄질이 엄청나게 나쁜 축에 들었다. 그러나 가해자는 금고 1년으로 모든 처벌이 끝났다.

그렇다고 모든 과실죄가 금고형인 건 아니다. 실수로 산불을 낸 건 고의성이 없었더라도 산림보호법에 의거하여 3년 이하의 징역이다. 형법에 규정된 '실화와 방화의 죄'보다 처벌이 더 무겁다.

4. 장애-불능미수

나쁜 의도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가해자의 삽질이나 실수, 착오 때문에 대미지가 가지 않은 것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정황 하나만 참작될 뿐, 중지미수나 과실보다는 죄질이 나쁘게 평가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건 미수범까지 처벌한다는 조항이 있는 죄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모든 중범죄가 미수범을 처벌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음주운전은 심각한 중범죄이긴 하지만 미수범을 처벌하지는 않는다. 음주운전을 할 의도가 명백했지만 차가 고장 났다거나 다른 이유로 인해 결과적으로 음주운전이 실행되지 않았다면 그건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5. 자수

죄를 저질러서 이미 사고를 쳤지만.. 그래도 당사자가 뒤늦게라도 죄를 뉘우치고 순순히 자수하고 자백하면서 수사에 협조한다면? 그럼 형이 많이 가벼워진다.

2000년대 이전에 중국에서는 "모든 피의자는 수사관에게 사실 그대로 이실직고하면서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이게 형법에 명시돼 있었다고 전해진다.
미국에서는 사법거래라고 해서 이런 자수 자백을 유도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그 대신,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직접 합의를 시도하는 것을 매우 금기시한다. 우리나라는 반대로 경찰이 피의자한테 "나한테 다 털어놓으면 내가 형량 가볍게 해 줄게" 이렇게 사법거래 하듯 떠보는 거는 상당수가 그냥 낚시라고 한다. ㅡ,.ㅡ;;

6. 중범죄

자, 경범죄가 아니고 미수· 자수 같은 할인 요인이 없는 범죄라면.. 일단 원칙대로 간다.
집행유예 중에 또 사고를 쳤냐, 동종 전과가 이미 있느냐, 일반인이 아니라 그 바닥 업계 종사자냐(더욱 객관적이고 청렴해야 하는..), 돈 받고 일하던 중에 사고를 쳤냐(더욱 실수하지 말아야 하는..).. 이런 것들은 가중 처벌 요인이다.

강력 흉악범죄를 무리를 짓거나 도구를 써서 저질렀으면 특수라는 이름으로 가중처벌된다. 주위에 보이는 흉기를 우발적으로 집었느냐, 아니면 흉기를 미리 계획해서 챙겨 갔느냐를 갖고도 형량이 크게 달라진다.

그 반면, 초범이거나 그놈의 심신미약이 참작되면 형이 감경된다.
극악무도한 존속살인이지만 애가 극심한 학대를 견디다 못해 부모를 죽였거나, 극악의 조현병· 치매 간병을 견디다 못해 노부모를 죽인 거면.. 이 역시 참작된다.
옛날에 안 두희 구타 살인은 정말 빼박 흉악 범죄였음에도 불구하고 열화와 같은 국민적인 지지와 공감 때문에 가해자가 징역 3년으로 최대한 감경됐다. 그나마도 특사 받아서 형기를 1년 반 정도밖에 안 살고 풀려났었다.

형사범죄의 처분 절차는 다음과 같다. 위에서 아래의 순으로 더 깊숙히 들어간다.

  • 내사종결(경찰 컷): 이때는 증인도 아니고 참고인이며, 가해자는 용의자라고 불린다.
  • 혐의/공소권 없음(검사 컷): 용의자가 죽어 버렸다거나, 알고 보니 정당방위· 긴급피난으로 퉁쳐졌다거나, 공소시효가 끝났다거니, 증거가 충분치 않다거나 등등등이다.
  • 기소유예: 혐의가 없는 건 아니지만 검사 재량으로 기소하지 않고 봐 준 경우이다. 이 범죄 용의자가 시민의 제보로 검거됐다면 이 등급까지만 가도 공로가 인정되어 포상금· 현상금이 나온다.
  • 선고유예: 여기부터는 재판이 시작된다. 증인이 동원되며, 가해자는 피의자라고 불린다.
  • 무죄판결: 판사가 이렇게 판정해 주면 제일 좋겠지만, 여기까지 가는 길이 참 험난하며 여러 사람들이 피곤하다.
  • 집행유예: 감방에 직접 가지만 않을 뿐, 다른 모든 불이익은 똑같다. 여기서부터는 빼박 범죄자-전과자이다.
  • 실형(집행정지 / 면제 / 가석방 / 사면): 이것들은 복역 중에 조금이라도 더 좋은 쪽으로 겪을 수 있는 변수 이벤트이다.

내가 왜 어쩌다가 이런 걸 찾아보고 있지?? ㄲㄲㄲㄲㄲ

(1) 장교 임관이나 국정원 입사=_=처럼 신원조회가 빡세게 행해지는 직업에 입문하고 싶다면 정말 중범죄와 관련된 그 어떤 기록도 없는 게 좋을 것이다. 전과는 말할 것도 없고 기소유예조차도 말이다.
100만원 이상의 벌금부터는 국회의원에서 짤리고, 각종 고위 공직 선거에 당선됐던 것도 무효 처분을 당한다.

(2) 벌금을 넘어선 징역· 금고는 집행유예라도 넓은 의미에서의 실형에 속한다. 좁은 의미로는 정말로 감방 들어가는 것만 실형으로 치지만 말이다.
공무원이 아닌 일반 사기업은 사람을 뽑을 때 저 정도로 빡센 신원 조회는 안, 아니면 못 한다. 하지만 "해외여행에 결격사유 없는 자"라고 명시해서 전과자를 우회적으로 거른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게 단순히 군 미필만 거르는 게 아니다.

(3) 30년이 넘는 징역 vs 무기징역 vs 사형..;; 물론 법적으로야 위력을 나타내는 부등호가 < 이지만, 일반인이 보기엔 그게 그거인 것 같다. 마치 사망이냐 실종이냐 전신마비냐 식물인간이냐 처럼 말이다.;;
참고로 무기금고와 무기징역을 합쳐서 종신형이라고 부른다. 천주교에서 공식적으로 신부와 주교를 합쳐서 사제라고 부르듯이 말이다.
사형수는 미결수도 아니고 기결수도 아닌 므흣한 존재이다.

(4) 사회에서 엄청 끔찍한 죄를 지어서 높은 형량을 받았느냐~~ 랑, 교도소에서 너무 사고를 많이 치고 수형 성적이 개판이냐~ 는 약간 별개의 개념이다. 둘이 딱히 상관관계가 있지는 않다.
교도소 중에서도 최악 흉악범만 취급하는 제일 빡센 곳이 있는가 하면, 교도소 안에서 징벌용 독방이라는 것도 있다.

(5) 가석방은 감방에서만 내보내 주고 죄는 그대로인 반면, 사면은 아예 죄 자체를 없애서 교도소에서도 내보내 주는 조치이다.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의 차이는.. 사면 대상자의 집합을 조건제시법으로 기술하냐, 원소나열법으로 기술하냐의 차이와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사면이 행해진 건 김 영삼 시절 1995년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그 뒤 광복절 특사, 삼일절 특사 같은 관행은 다들 특별사면이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 '예정'도 조건제시법이지, 원소나열법인 게 아니다.

(6) 우리나라 법에서 집행유예라는 건 3년 이하의 금고나 징역형에 대해서만 존재했다. 그런데 벌금형에 대해서도 집행유예를 만들자니..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안 그래도 벌금을 몸으로 때우는 대체제도 비현실적으로 너무 관대해서 문제인 와중에 말이다.
한편, 외국에서는 사형에 집행유예가 있는 경우가 있댄다. 우리나라는 이건 이미 수십 년째 집행유예 상태이다. 자유형처럼 오랫동안 길게 지속되는 벌이 아니라, 벌금이나 사형처럼 한 순간에 끝나는 벌에다 집행유예를 두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7) 그리고 요즘은 수형 중인 죄수에게 투표권을 주는가 보다. 처음엔 집행유예 죄수한테만 주다가 나중에는 감방 실형 죄수한테도 말이다.
선거권 박탈은 금고· 징역 복역 기간과(집행유예 기간 포함) 함께 당연히 뒤따르는 명예 몰수가 아닌가 싶었는데.. 사실은 세계 인권의 관점에서 보면 이건 굉장히 반민주적인 폭거라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4/05/22 08:35 2024/05/22 08:35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300

* 오랜만에 늘어놓는 철도 덕질 썰이다.

1. 역명

(1) 서울 지하철 7호선 뚝섬유원지 역이 '자양'이라고 개명됐다. 이건 옛날 7호선 건설 당시에 임시로 쓰였던 가칭으로 되돌아간 것이어서 흥미롭다. 개명 얼마 전에 영문 표기가 뚝섬 resort에서 뚝섬 park라고 바뀌었던 바 있다.

여기는 지금 같은 형태의 한강 공원(고수부지?)이라는 게 생기기 전, 먼 옛날에는 진짜로 강수욕장(!!)도 있고 맛집들 즐비하고 얼추 서울 교외 유원지 같았던 곳이긴 했다. 지금으로 치면 서쪽 끄트머리의 행주산성 유원지와 비슷하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이야 저기 일대가 몽땅 다 개발됐고 뚝섬도 여러 한강 공원 중 하나일 뿐이다. 딱히 '유원지'라고 부르기에는 정체성이 많이 흐려졌다.

(2) KTX 신경주 역이 앞의 '신'자를 떼고 그냥 '경주'라고 개명됐다! 구 경주 역이 폐역돼 없어졌고, '서경주' 역도 새로 생긴 와중인데, 이건 언젠가는 행해질 조치인 것 같았다. 수긍이 간다.
울산은 고속철 울산 역과 일반열차 태화강 역이 따로 돌아가는 반면, 경주는 그렇지 않다.
대구는 지리· 역사와 관련된 여러 내력(경로의존성..)으로 인해, 메이저인 동대구 역에서 '동'자를 떼어내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듯하다.

(3) 난 개인적으로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서쪽 종점인 '석남'은 그렇게 적절한 작명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GTX A선이 개통되면서 판교-이매 사이의 '성남' 역과 사실상 동명이역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한국어는 비음화 자음동화가 존재하는 언어다. 이건 전산상으로는 문제 없을지 모르겠지만, 실질적으로는 5호선 양평과 중앙선 양평 같은 충돌이나 마찬가지이다.

2. 노선

서울시에서는 9호선을 끝으로 저런 형태인 시내 도시철도는 더 건설하지 않고 있다. (도시 한쪽 끝과 한쪽 끝을 완전히 관통, 대형 중전철, 100% 공기관 운영) 그 대신 패러다임이 광역 일반철도(대규모) 아니면 경전철(소규모)로 바뀌었다.

사실 전국적으로도 중전철 기반의 도시철도를 건설한 건 무려 20여 년 전의 대전 지하철 1호선이 마지막이다. (그 뒤로는 다 경전철) 하필 한국형 표준 전동차 프로토타입이 제정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말이다. 서울에서는 9호선 전동차가 딱 그 표준 프로토타입이 적용된 차량이다.

규모가 큰 광역전철급은 교류에 좌측통행이고, 규모가 작은 도시철도-경전철은 직류에 우측통행인 것이 흥미롭다. 자동차만 해도 작은 승용차 급은 휘발유 엔진에 디스크/유압식 브레이크 위주인 반면, 대형 버스· 트럭은 디젤 엔진에 드럼/에어 브레이크 위주인데.. 서로 무관한 기술 간에 상관관계가 성립하는 것 같다.

서울보다 작은 도시들은 경전철만으로 기존 지하철과 대등한 도시철도 노선으로 치는 반면(부산 4, 대구 3, 인천 2 등), 서울은 그렇지 않다. 반대로 GTX는 광역전철의 특별 심화판 격이다.

지금 GTX A선 수서-동탄은.. 서울 시내까지 깊숙하게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자기만의 구간이 새로 개통한 게 전혀 없고, 그냥 이미 있는 고속선에다 역만 개통한 거다.
공항철도가 김포까지만 개통했던 것, 분당선이 수서까지만 개통했던 것, 경의선이 DMC까지만 개통했던 것과 비슷한 처지이다. 정말 못해도 삼성까지는 개통해서 바로 갈 수 있어야 수요가 더 늘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공항철도 서울 역과 GTX A선이 쭉 연결되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신분당선은 용산이 아니라 남산 아래로 지나가서 광화문 쪽으로 가고 말이다.

* 여담이지만.. 요즘 생기는 전철들 덕분에 한강 하저터널이 알게 모르게 부쩍 늘어났고 더 생기고 있다.
한때는 5호선에다 기껏해야 분당선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소사대곡선도 하저터널이요, 8호선 북쪽 연장과 GTX까지 다 강 아래로 한강을 건널 예정이다.
그에 비해 부산에는 낙동강 하저터널이 아직 단 하나도 없다.;;;

3. 차량 -- 퇴역

(1) 1996~97년부터 CDC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도입됐던 통근형 디젤 동차 차량이 지난 2023년말부로 완전히 퇴역하고 사라졌다.

통일호라는 차종이 2004년 KTX 개통과 함께 없어진 뒤에 얘들은 ‘통근열차’라는 이름으로 서울 북부의 경의선과 경원선에서 명맥을 유지했었다. 그러다가 일부 차종은 2007~08년경엔 RDC로 개조되었고, 노후화된 NDC 동차의 뒤를 잇는 무궁화호로 운행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경의선과 경원선이 몽땅 전철화되면서 CDC가 퇴출되었고.. 이 CDC, 아니 RDC는 마지막에는 광주선에서 광주-광주송정 셔틀을 뛰다가 퇴역하게 됐다.
2010년에 무궁화호 NDC, 2013년에 새마을호 DHC에 이어 2023년엔 통일/무궁화호 CDC/RDC가 뒤를 이은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는 디젤 동차가 씨가 말라 간다.;;;

(2) NDC와 DHC의 경우, VIP용 바리에이션 차량이 있었다.
NDC는 퇴역이 임박했던 2009년에 한 편성이 비즈니스 동차로 개조되어서 코레일 사장급 VIP 전용으로 쓰였다. 얘는 2015년에 완전히 퇴역했으며, 현재는 철도 박물관에서 그래도 운행 가능한 형태로 동태보존 되어 있다.

DHC는 이미 1999년 김 대중 시절에 만들어진 경복호가 잘 알려져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인사 전용 차량..
DHC 차량 자체는 이미 10년도 더 전에 전량 퇴역했으니, 이제는 경복호만이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새마을호 디젤 동차의 외형을 지닌 철도 차량이다.
얘는 현역이긴 하지만, KTX 차량 중에도 ‘트레인 원’이라고 불리는 VIP 객차가 있기 때문에 요즘은 자주 쓰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3) 지금이 전기 철도가 주류가 됐다고 해서 디젤 동차만이 찬밥 신세인 건 아니다.
지난 21세기 초에, 특히 경부선 전철화 완료와 함께 리즈 시절을 경험했던 8200호대 전기 기관차는 생각보다 미래가 불투명하다. 얘는 전기 차량이기는 하지만 ‘전동차’와는 접점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기관차 피견인형 객차라는 게 마지막으로 도입된 게 무려 20년도 더 전 일이다. 8200은 전동차가 아니고, 화물에 특화된 전기 기관차가 아니고, 그렇다고 비전철화 구간을 위한 디젤 기관차도 아니다 보니 가까운 미래에 존재감이 애매한 계륵이 될 가능성이 높다.
수출되거나, 무게와 기어비를 바꿔서 화물용으로 개조되거나.. 뭔가 특단의 조치가 취해질 것 같다.

4. 차량 -- 도입

퇴역하고 없어지는 차량이 있다면, 새로 도입되는 차량도 있는 법..

(1) 고속철도 KTX라는 게 개통한 지 어언 20주년이 넘었다. 오리지널 18량짜리 KTX 차량의 기술을 기반으로 2010년대엔 ‘산천’이 등장했고, 그 다음으로 ‘이음’에 이어 ‘청룡’이 개발되었다니 참 고무적인 일이다. ‘이음’은 시속 200대의 준고속 에디션이기 때문에 이 청룡이 산천 다음의 제3세대 차량이다.

이 청룡은 신칸센처럼 동력분산식으로 개발되어서 기술적으로 이전 TGV와의 접점이 없어졌다. 동력차가 더 촘촘하게 분포해 있기 때문에 가감속이 더 뛰어나며, 최신 기술이 접목되어 최고 속도도 더 높은가 보다.

(2) 서울 지하철 9호선과 공항철도를 직결 운행하는 차량은 언제쯤 등장하려나 궁금해진다.
현재 수도권 전철에서 직교 겸용 차량이 다니는 곳은 오로지 1호선과 4호선 차량밖에 없는데.. 서울 1기 지하철이 아니라 3기 지하철 구간에서 이런 직교 겸용 차량이 다시 등장한다면 느낌이 무척 색다를 것 같다.

평창 동계 올림픽을 하던 시절엔 KTX가 서울 역을 떠나서 행신이 아니라 공항철도로 진입해서 인천 공항까지 가던 적이 있었다. 심지어 검암 역은 저상홈을 따로 만들어서 KTX의 정차 취급까지 했었다. 그랬던 게 이제는 일반열차가 아니라 9호선과의 직결을 준비 중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5/19 19:35 2024/05/19 19:35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299

1. 언어 고안자의 부고

일본에서 지진이 났던 올해 1월 1일 말이다.
파스칼 언어를 고안한 스위스의 컴퓨터 과학자 '니클라우스 비르트' (취리히 연방 공대 교수, 튜링 상 수상자)가 세상을 떠났다. ㄷㄷㄷㄷ
이거 뭐 뒷북 부고 소식을 연달아 전하는구나..;; 이번에는 분야가 신앙 쪽이 아니라 컴공이라는 점만 다르고 말이다.

지난 2011년 가을엔 C 언어를 고안한 '데니스 리치'가 세상을 떠났었다.
C야 워낙 대중적인 언어이고, 또 저 시기는 무려 스티브 잡스의 부고와도 시기가 비슷했다. (딱 1주일 차이) 그래서 데니스 리치의 부고는 이때 작게 잠깐이나마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기가 별 개연성 없고, 파스칼 언어도 C에 비해 아주 마이너하다 보니, 저 사람의 부고는 아무 존재감 없이 묻혀 지나간 것 같다. =_=;;;

파스칼과 C는 1970년을 전후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패러다임을 반영하여 만들어진 언어이다. 물론 C가 근소하게 더 나중이긴 하다만.
파스칼은 진짜 순수 학자가 만든 반면, C는 AT&T니 벨이니 유닉스니 하면서 학계보다는 더 실무 엔지니어 지향적인 사람이 만들었다. 물론 이것도 상대적인 차이일 뿐, 데니스 리치도 튜링 상 수상자이고 일반인 입장에서 넘사벽 천재인 건 마찬가지이다.

2. 파스칼 언어 구조에 대한 생각

(1) 파스칼은 블록을 begin end로 표현하는 반면, C는 간단히 중괄호 { }로 때운다. 그리고 C는 세미콜론이 문장을 종결하는 부호인 반면, 파스칼에서는 문장을 '구분'하는 부호이다.

그렇기 때문에 C에서 { 1,2,5 } 이렇게 5 다음엔 ,를 붙이지 않듯,
파스칼에서는 begin a(); b(); c() end. end 직전의 마지막 문장에는 세미콜론을 붙이지 않아도 된다.
아주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세미콜론 ; 은 .와 ,로 이루어진 부호인데 C는 거기서 .의 특성을 더 중시한 반면, 파스칼은 ,의 특성을 더 중시했다고 볼 수 있다.

글쎄, 파스칼은 개념적으로 알골이라는 초창기 언어에서 영향을 받았고, Ada라는 엄청난 언어와도 유사점이 많다고 하는데.. 특히 이 begin end 말이다. 허나, 이 2000년대 관점에서는 저것들도 다 한물 간 언어가 돼 버리긴 했다.

(2) 파스칼은 program, unit, label, const, type, var 등 파트가 언어 문법 차원에서 나뉘어 있는 게 좀 구시대적이고 고지식하게 느껴지지만.. 한편으로 아주 깔끔하고 명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const도 말이다. C/C++에서는 그냥 type modifier의 일종일 뿐인 반면, 파스칼에서는 읽기 전용 상수값들만 선언하는 구간을 나타낸다. 의미는 같지만 용법은 요즘 언어들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게 흥미롭다.

C++은 블록 아무 데서나 중구난방으로 타입 선언, 변수 선언, 실행문이 막 섞일 수 있다. 같은 문장이 명칭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따라서 변수(객체) 선언일 수도 있고 함수 선언일 수도 있다. 당장 타이핑 하기에는 간결하지만, 지저분하고 정신 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에 비해 파스칼은 실행문이 있는 곳과 비실행 선언문이 있는 곳이 더 엄격하게 구분돼 있다. 여느 타입이나 변수뿐만 아니라 goto문 라벨조차도 선언을 미리 쭉 한 뒤에야 실제 문장에서 써먹을 수 있다.
이런 구조 덕분에 파스칼은 컴파일러를 만들기가 더 편하다. 언어 문법 차원에서 소스 코드를 두 번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만 쭉 읽으면서도 최적화 계획을 미리 세우면서 컴파일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특성이 있고, 또 파스칼은 C/C++ 같은 텍스트 인클루드가 난무하는 언어도 아니다 보니, 비슷한 분량의 코드를 컴파일하는 속도가 C/C++보다 훨씬 더 빠르다. 이런 점에서는 파스칼이 같은 네이티브 코드 생성 언어이면서 생산성이 더 뛰어나다.

(3) 파스칼은 C/C++ 계열 언어처럼 main 함수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며, 그냥 코드의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begin end. 가 제일 먼저 실행된다. 요 begin end가 HTML로 치면 <body> </body> 태그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앞의 여러 uses, const, type 등의 선언들은 <head></head> 에 대응하고 말이다.

그리고 파스칼은 이 코드가 단독 실행형 프로그램인지, 아니면 라이브러리(= 파스칼 언어 용어로는 유닛)인지를 소스 코드 차원에서 명시하고 있다.
main 함수가 없는 대신, 맨 첫줄에 program 어쩌구; 아니면 unit 어쩌구; 이런다.
이건 Windows 프로그래밍의 관점에서 보면 모듈 def 파일의 내용을 일부 포함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 뒤, 마지막 end 다음에 이어지는 마침표는 프로그램 코드의 완전한 끝을 의미한다. end.
이거 다음에 등장하는 텍스트들은 컴파일러가 몽땅 무시하고 짤라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주석이라고 감싸지 않아도, 파스칼 문법에 맞지 않은 텍스트가 등장해도 에러 처리되지 않는다!! 컴파일러에 따라서는 end. 이후에 또 whitespace가 아닌 문자가 있다고 경고 정도나 찍어 줄 뿐이다.

(4) 파스칼의 소스 코드는 C/C++처럼 헤더와 몸체의 구분이 없다. 그래도 단독 실행 프로그램이 아닌 유닛의 소스 코드는 내부적으로 선언부와 구현부의 구분이 존재한다. 그렇잖아도 파스칼은 모든 명칭에 대해서 사전 선언을 요구하는 언어이니.. 이런 구분이 존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 구획을 나누는 키워드가 interface와 implementation이라는 길고 어려운 단어이다. 본인은 저 단어를 중학교 시절에 파스칼 언어의 예약어 명목으로 처음으로 접했었다.;;

(5) 표준 입출력 말고.. 텍스트의 입출력과 관련해서 플랫폼 종속적인 비표준 기능을 제공하는 라이브러리가 Turbo C에서는 conio.h였다. 그리고 Turbo Pascal에서는 uses crt.. 즉 CRT라는 이름의 모듈이었다.
그런데 C/C++에서는 CRT라는 게 C runtime library의 약자이며 conio는 console I/O를 뜻한다. 그럼 파스칼에서 저 CRT는 무엇의 이니셜일까?

그건 화면이라는 뜻에서 그냥 브라운관 CRT를 의미하는 듯하다.
그나저나 C건 파스칼이건 함수를 호출하는 건 동일할 텐데.. 역사적으로 함수 호출 컨벤션에 왜 PASCAL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는지는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잘 모르겠다.;;

아무쪼록.. 파스칼은 이대로 묻히기에는 좀 아까운 독특한 언어이지만, 어쩌다 보니 오늘날 주류에서 밀려난 비운의 언어가 된 듯한 느낌이다.;;

3. 여담: 관련 타 언어들

(1)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새로 채택한 언어인 Kotlin, 그리고 애플 진영에서 새로 채택한 언어인 Swift에서 모두 함수의 인자 나열을 C/Java 스타일인 (Type1 val1, Type2 val2)가 아니라..
파스칼 같은 (val1: Type1, val2: Type2)
요 문법을 채택해 있다. 따끈따끈 신흥 언어에서 나름 복고풍 파스칼이 느껴지는 것 같다. ㄷㄷㄷ

그리고 Kotlin은 변수를 선언할 때는 파스칼처럼 var 키워드를 쓰는데, 상수 명칭을 선언할 때는 그냥 '값'이라는 뜻에서 val 키워드를 쓴다.
정작 변수(var)는 L-value라고 여겨지는 반면, 값(var)은 R-value인데도 말이다~! L과 R의 교묘한 언어유희가 아닐 수 없다.

(2) 프로그래밍 언어 분야에는 의외로 미국 말고 유럽.. 그것도 서유럽 영프독이 아닌 다른 마이너(?) 국가 출신들이 기여한 게 많다.

  • 파스칼은 저렇게 뜬금없이 스위스.
  • 파이썬은 네덜란드 (귀도 반 로섬!!)
  • C++은 덴마크 사람인 비야네 스트롭스트룹!!
  • 그리고 볼랜드와 마소에서 펄펄 날았던 PL 전문가 겸 엔지니어인 Anders Hejlsberg도 덴마크!!

애초에 터보 컴파일러 씨리즈로 왕년에 이름을 날렸던 '볼랜드' 사 자체가 덴마크계 사람이 창립한 기업이었다.
한편, Lua는 브라질인지 포루투갈인지 아무튼 그쪽 바닥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5/17 08:35 2024/05/17 08:35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298

지금으로부터 1년쯤 전이던 2023년 4~5월 사이에 국내외에서는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았던 크리스천 세 분 정도가 소천하여 주님 품으로 갔다.
공교롭게도 표준역 킹 제임스 성경 2판이 출간되어서 막 시끌시끌하던 시기와 비슷하다.
다들 이 블로그에서 이전 글에 언급한 적이 있었던 분들이긴 하다만.. 그때 이후로 새로 추가된 정보도 있으니 한데 모아서 다시 소개하도록 하겠다.

1. 론 해밀턴 (1950 ~ 2023. 4. 19.)

O Rejoice in the Lord (God never moves without purpose or plan ...)라는 훌륭한 찬송가의 작사 작곡자이다. “전능하신 우리 주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후렴 끝부분이 “나 주 안에 연단 받은 후 정금같이 되리”인 그 곡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분은 질병 때문에 왼쪽 눈을 잃고 인생 대부분을 궁예처럼 살았다. 그런데 그렇게 눈을 하나 잃은 때도 1978년.. 저 찬송가는 작곡자가 눈을 잃은 뒤에 인생 간증을 담아서 만든 거라고 한다.

본인은 저 찬송가 가사의 안티테제(?) 격으로 An American Crime이라는 2007년도 영화가 떠오른다. 1965년에 미국 인디애나 주 깡촌에서 벌어졌던 실비아 라이컨스 양 학대치사 사건을 다룬 끔찍한 범죄 영화 말이다. 이것도 이미 이 블로그에서 옛날에 언급했던 바 있다.
영화에서는 피해자인 10대 소녀가 누적된 질병과 상처, 영양실조로 인해 결국 죽고 나서 쓸쓸히.. 이렇게 독백하는 걸로 끝난다.

Reverend Bill used to say: "In every situation, God always has a plan". (살아 생전에 다녔던 동네 교회 목사의 말)
I guess I'm still trying to figure out what that plan was. (그 계획이 뭔지 난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개인적으로 저 찬송을 부를 때면 저렇게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다 포함해서 하나님의 plan이 무엇이고 허락하시는 뜻이 어디까지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곤 한다. 찬송가 영어 가사에 따르면 하나님은 결코 실수를 하지 않으시고 내 인생 행로를 다 아신다고 했으니까.

아무튼 세월이 흘러서 그 가사를 쓴 찬송가의 작곡자도 소천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에서 실비아 라이컨스를 연기한 배우 엘렌 페이지.
현재는 남자로 성전환을 해서 ‘엘리엇 페이지’가 됐다 ㄷㄷㄷㄷㄷ)

2. 오야마 레이지 목사 (1927 ~ 2023. 5. 16.)

이 사람은 자기 나라가 이웃 민족에게 저지른 참혹한 죄악에 대해 알게 되고는 너무 멘붕해서 반세기 이상 평생을 사죄하는 일에 앞장섰던 엄청난 일본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특히 1919년 4월, 제암리 학살 사건에 꽂혔다. 한국과 일본이 이제 막 수교를 맺었던 1965년~67년엔가 한국을 찾아와서 사죄하고.. 십시일반 모금을 해서 제암리 예배당 재건 비용을 대려 했다.
이때는 정작 제암리 학살 유족 후손들조차 더러운 왜놈의 돈 따위 받기 싫다고 차갑게 거절했는데도 말이다.

“바로 옆의 니 형제와도 화해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일본 교회의 예배를 받아 주실 리가 없다~ 일본은 대대적으로 사죄해야 한다 //
일본의 과거 침략 만행을 진심으로 사죄합니다.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그만 됐다고 하실 때까지 계속 무릎 꿇고 고개 숙이고 있겠습니다” 이랬고..

제일 최근엔 2019년까지도 노구를 이끌고 한국 와서 도게자를 했다. 당연히 삼일 운동 100주년을 기념해서다.
저분은 소천했지만 그의 아들이 계속해서 사죄와 화해 운동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2020년대에 와서는 새에덴교회 소 강석 목사와 접촉 중인가 보다.

무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죄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신앙의 양심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성 특유의 끈질긴 집념과 근성의 산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JR 서일본에서 2005년도 전철 탈선 사고 사과문을 홈페이지에다 현재까지 박제해 놓고 있고, JAL(일본항공)에서 신입사원들한테 1985년도 여객기 추락 사고를 세뇌 주입시키고, 일각에서 20년 전의 의사자 이 수현 씨를 계속 기억하고 추모하기도 하니 말이다.

저 정도로 진심을 다했으니 승무원들이 훈련이 워낙 투철하게 돼서 지난 1월 2일의 여객기 화재 사고 때 수백 명의 승객들이 단 1명도 사망하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정 광진 변호사 (1937 ~ 2023. 5. 19.)

딸을 4명 두고 있었는데 3명을 1995년 백화점 붕괴 때문에 한꺼번에 잃은 그야말로 욥의 현실판인 분이었다. 그것도 다들 20대 꽃다운 나이였는데!!
이분은 종로학원의 설립자 정 경진의 동생이고.. 서울대 법대 나와서 사법시험 합격하고 판사로만 10여 년 재직하며 엘리트 코스를 갔다. 그런데 장녀가 초등학교 시절에 질병으로 인해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론 해밀턴보다 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처음엔 치료를 시도하느라 의료비도 많이 들었는데, 완전히 맹인이 된 뒤에는 특수학교로 통학을 시켜야 하니 자가용이 없으면 도저히 안 되는 지경이 됐다. 자녀 4명이나 키우는데 이런 일까지 생기니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는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음..;;;

그래도 장녀를 미국 유학까지 보내고 정말 잘 키웠는데.. 그 아이들을 한꺼번에 잃었고 시신조차 못 찾았다고 한다. 그나마 하나 남은 딸도 사고의 충격 때문인지 몇 년 뒤 병으로 죽었다.
이 정도면 이분도 아까 저 American Crime의 결말부 만만찮게 “신이란 게 있다면 도대체 지금 머릿속에 뭔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따질 만도 해 보인다.

저분은 사고 보상금에다가 사재를 보태서 '삼윤 장학재단'이라는 걸 만들어서 자기보다 형편이 더 어렵지만 '살아는 있는' 장애인들의 교육과 지원에 애썼다. 그러고 작년 5월에 세상을 떠났다.
하긴, 이렇게 자녀를 잃은 사람이 죽은 자녀 몸값으로 억만금을 받는다 한들.. 그걸로 서울 한강뷰 아파트를 사겠는가, 세계일주 오성급 호텔 원정을 가겠는가? 자녀 이름을 딴 장학 재단 만들거나 복지와 관련된 일에 보상금을 쓰게 된다.

딸들은 살아 생전에 서울에 소재한 영화교회라는 곳을 다녔으며, 이분도 신앙이 있었고 교회 장로였다고 전해진다. 소천했을 때 빈소가 분당 서울대 병원이었고, 새에덴교회에서 무료 법률 상담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니 노후는 분당에서 보냈던 것 같다.
어째 새에덴교회가 오야마 레이지 목사와 정 광진 변호사하고 모두 접점이 있는 것이 흥미롭다.

Posted by 사무엘

2024/05/14 19:35 2024/05/14 19:35
, ,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297

등산 답사기: 백운산

본인은 지난 2010년대 중후반에 등산을 여기저기 집중적으로 한 적이 있었다. 뭐, 설악산· 지리산 급이 아니라 그냥 인서울 뒷산 산책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그때는 이 블로그의 여행 카테고리도 등산 사진들로 가득 찼었다.
그러다가 2020년대부터는.. 딱히 코로나19와 관계는 없지만 등산 유행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내 관심사는 산 같은 자연 오지에서 아예 밤을 보내거나=_=;; 농작물을 키우는 것으로 확장됐는지 바뀌었는지.. 어쨌든 그렇게 됐다.

그 와중에 이번 어린이날 연휴 때는 뜻하지 않은 생소한 지역에서 오랜만에 등산을 하게 됐다. 바로 인천 영종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백운산.
높이가 256m라니 그냥 아차산이나 서울 남산 같은 아담한 산이다. 날씨도 아주 맑고 화창할 때 잘 다녀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백운산은 공항철도 운서 역의 남동쪽에 있다. 하늘 고등학교, 인천 과학 고등학교 등 뭔가 교육과 관련된 시설들이 왠지 백운산의 서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이 산의 등산로는 저렇게 얼추 T자 모양이며, 본인은 저 '현위치'라고 적힌 지점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별로 크지도 않은 산인데, 생각 같아서는 동쪽 끝의 용궁사라든가 남쪽 끝의 백운사 방면으로 하산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가용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야 해서 그럴 수 없었다. 그냥 저 전망조망대와 백운정까지만 갔다가 돌아오는 걸로 경로를 정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현위치'의 주변은 이렇게 생겼다. 저 오른쪽의 계단을 오르면 된다.
이 당시 백운산에는 산책· 등산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으며, 옆의 차도는 차들이 잔뜩 세워져 있었다. 산행하는 사람들의 차겠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산을 오르는 길은 특별한 게 없고 온통 빽빽한 숲이었다. 나무들 덕분에 그늘이 많아서 좋았다. 주말마다 등산을 다니던 옛날 생각이 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상까지 2km 남짓한 거리 중에서 40% 정도를 간 지점인데.. 정자와 벤치와 테이블, 그리고 심지어 운동과 산림욕 시설까지 갖춰진 휴게소 같은 공터가 나왔다.
이런 곳에서 캠핑까지는 못 해도 2~3시간은 죽치고 앉아 있고 싶었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뒤로는 또 산길이 쭉 이어졌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제 정상이 임박했는지 뻥 뚫린 천장, 아니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드디어 산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정상이 등장했다. 웅장하기 그지없다~!
산 기슭의 각종 교육 시설들, 그리고 빽빽한 아파트들, 그리고 저 멀리 인천 공항 터미널까지.
이 맑고 더운 날씨에 안개가 있을 리는 없고.. 미세먼지 때문에 시야가 안 좋은 것 같다.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왼쪽 끝의 저 다리는 인천대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백운산 퀘스트에는 이런 경치 보상이 있는가 보다.
아까 그 입산 지점에서 여기까지는 1시간까지는 절대 아니고 50분이면 충분한 듯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망대의 근처에는 저렇게 커다란 정자가 있고, 옛날 봉화대를 재현해 놓은 기념물이 있었다.
정자는 드러누워서 쉬기 딱 좋은 모양이었으며.. 옆에는 이렇게 정상 표지석도 놓여 있었다.
작지만 산으로서 정상에 있을 건 다 갖춰져 있으니 개인적으로도 인상이 참 좋게 느껴졌다. ㄲㄲㄲㄲㄲ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자를 지나서 동쪽으로 더 가면.. 요런 벤치와 평상이 나왔다. 여기나 저기나 나의 캠핑 본능을 자극하는 것 같다만.. ^^
내 취향을 저격했는지 "캠핑, 텐트, 취사 금지" 현수막이 주변에 걸려 있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헬리패드가 요렇게 다른 공터에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요건 헬리패드에서 저쪽을 내려다본 풍경..
원래 영종도에는 농촌· 어촌 마을 내지 자그마한 단독주택이나 빌라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온통 고층 아파트와 빌딩들이 올라가는 중이다.
나중엔 영종도가 중구에서 분리돼서 영종구 정도가 되지 않을까 모르겠다.

이상이다. 본인은 이 이상은 더 진행하지 않고 돌아왔다. 하산은 왔던 길 재탕이기 때문에 사진을 생략하겠다.
백운산에서 약 2시간 반 동안 좋은 시간을 보냈다.
더위에 대비해서 물이나 수건이나 자외선 크림을 더 챙기고, 돗자리 같은 거라도 챙겼으면 산에서 더 오래 있을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는 못해서 아쉬웠다.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자연과 벗하는 일상이 틈틈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4/05/12 08:35 2024/05/12 08:35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296

1. 자원 낭비

나는 어떤 리소스가 아무 하는 일 없이 쓸데없이 새어 나가고 낭비되는 걸 아주 싫어한다.
수도꼭지를 꽉 잠갔는데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거, 씻거나 설거지 하는 중에 틀어 놓은 수돗물이 잠시라도 그냥 무의미하게 하수구로 흘러가는 거,
냉장고 문이 필요 이상으로 오래 열린 거, 자동차 엔진의 장시간 공회전 같은 것 말이다. 이런 쪽으로 좀 구두쇠 기질이 있다.

냉장고는 비어 있는 걸 추구한다. 특히 음식을 냉장고에 놔 두고는 잊어버리는 바람에 상해서 버리는 것은 극혐이다.
회사에서 퇴근하기 전에 내 컴터는 당연히 절전이나 최대 절전으로 해 놓는다. 주말· 공휴일 전날에 퇴근할 때는 완전히 끈다.

가게가 영업 중이라는 건 내부 조명과 간판 불빛으로 표시하면 되지, 감히 문을 열어 놓은 채로 에어컨을 튼다니.. 그건 열역학적으로 정말 개뻘짓이다.
운전하다가 횡단보도 신호 대기 정도 걸리면(30~40초) 기어를 N으로 바꾼다. 교차로 파란불 신호가 이제 막 끝나 버려서 2~3분쯤 기다려야 될 것 같으면 시동을 꺼 버린다. 그러니 나는 ISG 같은 장치도 엔진에 크게 무리 주는 게 아니면 선호한다.

이건 마치 엔진 실린더나 총기의 총열에 구멍이 뚫려서 연료나 화약의 폭발력이 밖으로 줄줄 새는 것과 같다. 아니면 농사를 짓는데 잡초들이 잔뜩 자라서 물과 비료를 잔뜩 줘도 그게 농작물이 아니라 잡초 쪽으로 줄줄 새는 것과 같다. 이런 건 난 눈 뜨고 못 봐 준다.

이런 기질이 있으니 자원이 아니라 세금이 줄줄 새는 것도 눈 뜨고 못 봐 준다.
살 뒤룩뒤룩 찐 거대한 정부나 보편적 복지 같은 것도 경계하게 된다. 내돈내산이 아니라 눈먼 남의 돈을 또 어중이떠중이 남에게 분배하는 일에 공무원들이 영혼을 담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공산주의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 성깔은 개인적인 코딩 스타일에도 반영돼 들어간다.
쓸데없이 동적 메모리 할당 좀 안 했으면 좋겠는데? 조금이라도 CPU 사이클 줄이거나 지역변수 하나라도 없앨 수 없나..??
좋게 말하면 최적화 덕후이지만, 삐딱하게 보면 별 도움도 안 되는 어설픈 최적화나 잔뜩 하느라 작업 시간 더 잡아먹고, 코드를 더 알아보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솔직히 개인이나 한두 프로그램만의 문제를 떠나서 요즘 개인용 범용 컴터들은.. 운영체제의 덩치가 너무 비대해지고 쓸데없이 깔리는 프로그램이 너무 많고 너무 비효율적인 것 같다. 아무리 메모리가 많아지고 싸졌더라도 말이다. 똑같은 일을 하는 데 낭비되는 컴퓨팅 파워가 이루 말도 못 할 지경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안 듦.. ㅡ,.ㅡ;;

다만, 세상 기계들은 갈수록 똑똑해지고 효율이 좋아진다. 그래서 인간이 저런 쪼잔한 강박관념을 조금은 덜 가져도 되는 쪽으로 바뀌어 가는 것 역시 사실이다.
가령, 요즘 보일러라든가 인버터 방식 에어컨은 어설프게 껐다 켜기를 반복할 바에야, 작은 출력으로 계속 켜 놓는 게 차라리 더 낫다는 게 주지의 사실이다. 이건 마치..

  • 빨래나 설거지, 청소를 그때 그때 소량을 수시로 하는 게 낫냐.. 아니면 날 잡아서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게 더 낫냐..?
  • 자전거로 평지를 계속 달릴 때 작은 힘으로 페달을 계속 돌려 주는 거랑, 아예 페달에서 발을 떼고 쉬다가 일정 간격으로 힘 줘서 재가속을 하는 것 중 어느 게 덜 힘드냐?

와 비슷한 문제인데.. 기계들은 전자에 더 최적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자동차들은 심한 기복 없이 D에서 악셀을 같은 강도로 '살포시' 꾸준히 누르고 있을 때 정말 최적의 성능과 연비가 나오도록 연료와 공기 분배 알고리즘이 맞춰져 있다. D+브레이크 정지쯤은 당연히 N과 동급으로 알아서 접수하고..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운전할 필요가 있다.

기계 장치라기보다 화학 장치에 가까운 배터리조차도 완충 완방 패러다임은 끝난 지 오래다. 찔끔찔끔 바로 충전하는 게 더 낫다.
정렬 알고리즘도 현실에서는 거의 정렬된 데이터를 다시 정렬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데이터의 상태에 민감한 알고리즘이 실용성이 더 높다. 그래서 퀵 정렬이 병합이나 힙 정렬보다 더 우위이며, 삽입 정렬도 O(n^2) 복잡도인 것치고는 실용성이 더 높다고 취급된다.;; 아이고 별 얘기가 다 나오네.

2. 지하철역에서의 질서

(1)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오르내리면서 좀 급하게 이동하려는 사람들을 배려해서 한줄로만 서고 한쪽 줄을 비워 두는 게 당연한 매너이다. 요즘은 두 줄로 에스컬레이터를 꽉꽉 채운 채 서 있으라는 오지랖 홍보 캠페인은 그만둔 것 같아서 다행이다.

물론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도의적으로 발을 좀 살살 디뎌야 한다. 특히 내려갈 때 말이다.. 붙박이 콘크리트 계단을 뛰어 내려갈 때처럼 쿵쿵거리지 말지어다.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나면 막대한 수리 비용이 깨지며, 수리하는 동안 에스컬레이터를 아예 이용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민폐 인간들 때문에 에스컬레이터에서 오르내리지 말라는 소리가 또 나오게 된다.

(2) 진짜 두 줄로 설 필요가 있는 곳은 지하철 승강장이다. 출입문의 양 옆에 각각 두 줄씩 줄 서서 기다렸다가 열차를 타는 거다. 모르는 사람의 옆에 붙는 게 자연스럽지는 않은 행동이니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계도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출퇴근 시간엔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이 왕창 많아지고 줄도 엄청 길어지기 때문이다. 한 줄로만 늘어서서는 줄이 길어지는 게 감당이 안 되게 된다. 사람 많은 지하철 승강장에서는 뒤에 줄서는 사람들 공간도 제발 좀 생각해라.

(3) 그리고 요즘은 스크린도어 덕분에 선로로 추락할 걱정이 없으며, 지하철이 올 때 하나도 위험하지 않다. 그러니 제일 앞 출입문 바로 옆에 선 사람들은 제발 좀 출입문-스크린도어 쪽에 바짝 붙어 서라. 마치 버스나 택시에서 승객이 내릴 때 개문사고를 예방하려면 차를 길가에 빈틈 없이 바싹 붙여서 세워야 하듯이 말이다.
거기서 마치 스크린도어가 없던 시절처럼 띄엄띄엄 서 있는 인간들 보면 짜증이 치민다. 나중에 온 사람들은 줄 설 공간이 없어서 난리인데..

난 그럼 스크린도어 쪽으로 대놓고 새치기를 해 버린다. 누가 저지하면 "아, 줄 서신 거 아닌 줄 알았네요"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물러난다. excuse me나 sorry 같은 말은 절대로 안 한다는 게 포인트.
얘들은 열차가 오면 빨랑 들어가서 자리에 앉고 싶지 않은가?? ㅡ,.ㅡ;; 자기에게 주어진 권리는 자기가 스스로 챙겨야지, 이렇게라도 인간들 의식을 바꿔 놓고 싶다.

3. 인종 차별..??

교통, 경제 쪽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그 다음으로 딴 분야 생각이다. ㄲㄲㄲㄲㄲㄲ
아직 엄마하고 같이 여탕까지 들어갈 수 있는 영유아 꼬맹이라 해도 남자애는 머리 긴 예쁜 여자 알아볼 줄은 안다. 그건 본능이다.
그리고 어디 영어유치원에서는 시커먼 흑형이 싼타 분장 하고 들어오니까 무섭다고 겁내고 울더라. 이것도 본능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유아들이 어디서 그런 외모지상주의(?)를 배웠겠는가 말이다.
인간의 본능을 차별이라고 프레임 씌우고 억지로 강제로 개조해 봐라, 그게 얼마나 갈 수 있을지.. ㄲㄲㄲㄲ

19세기 말엔 흑인은 진화가 덜 돼서 짐승과 인간의 중간쯤인 생물이라고 취급하더니만,
21세기 초엔 인어공주를 흑인 버전으로 만들겠다고 난리이고.. -_-;;;
인간들이 왜 이렇게 한쪽 극단으로만 치우치는 걸 좋아하나 모르겠다.
정치범들까지 누명 씌워서 사형 때리거나, 아니면 아예 피해자가 용서 안 하는 범죄자를 솜방망이 처벌해서 인권 유린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과 비슷하다.

4. 바보짓

  • 페북 등 SNS에서 활동 내역 없는 예쁜 여자 사칭 사진 유령 계정의 낚시질에 홀딱 넘어가서 보이스피싱인지 몸캠인지 당하고 코가 꿰인 사람
  • 대형 버스나 트럭을 몰고 신월 지하차도에 들어갔다가 천장에 차가 끼이는 대형 사고 친 사람

정상적인 분별력과 사고방식으로는 저런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존재 가능한지 모르는데, 저런 사례가 잊을 법하면 생기는 것 같다. =_=;;;;

고속도로에서 낮에 앞이 훤히 보이는데도 졸다가 공사· 사고 현장을 들이받는 거는.. 어처구니없지만 일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신월 지하차도에서 차가 끼이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경고문 표지판들을 무시해야 할까? -_-;;;;
이건 뭐 음주· 졸음운전도 아니고, 초행길에 "내비가 저리로 안내해서"라는 가능성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 내비는 안내 대상인 차량의 차종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는 모르고 동작하는 건가 싶다.

그리고 광우뻥으로도 모자라서 싸드 괴담, 또 뭐지? 끊임없이 선동에 낚여 주는 사람도. 한 번은 실수이지만 두 번은 바보, 세 번은 공범이지 싶다.

5. 그 밖에

몇몇은 내 블로그 대문에 걸려 있기도 했었다.

  • 난방이란 씻을 물을 데우라고 있는 시설이다. 공기나 방바닥을 데우는 용도가 절대 아니다.
  • 그런즉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을진대,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다.
  • 철도를 명절에만 생각나는 여러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중 하나로만 생각하는 것과 같다.

역사· 종교 분야의 내 개똥철학은 이미 여러 번 글을 통해 밝힌 바 있었을 것이다.

  • 우리나라가 깨끗한 독립운동가 기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시대 부역자 군경 간부를 재활용했던 것은 옛날에 Windows 95가 분명 32비트 운영체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16비트 코드를 재활용했던 것과 상황이 비슷하다.
  • 예수 믿어서 한번 받은 구원, 한번 바뀐 신분이 영원한 것은 한번 남한 들어온 탈북자가 이제 어떤 짓을 해도 북으로 재북송은 절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죄 지어도 남한 교도소에 갇히고 남한 사형장에 갈 뿐이다. 그게 정상이다.

관심분야 별로 내가 꽂힌 이유

  • 한글: 그 모양. 창제 동기와 시기. 한글도 알파벳과 같은 수준의 기계화 가능하고 빠르게 잘 칠 수 있다. 오덕질 가능하다. 한글 입력 오토마타를 단순히 오버헤드 부담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
  • 컴퓨터: 디지털이다. 입출력되는 모든 정보를 최소한의 0 1  단위로 기계가 다 파악하고 있다. 이걸로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고 나만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다.
  • 철도: Looking for you 음악 때문에. 우리나라 역사 지리
  • 호박: 잎과 덩굴과 열매가 너무 예쁘고 경이로워서. 청각이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 멧돼지: 역시 크고 시커먼 게 귀여워서

Posted by 사무엘

2024/05/09 08:35 2024/05/09 08:35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295

1. 운전자에 대한 안전 장치

자동차 계기판에서 안전벨트 미착용 경고등은 차량의 기계 상태(주행 가능 여부)와 전혀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빨간색으로 경보음까지 울리면서 심각하게 표시되는 유일한 경고등이다. 성격이 타 경고등과는 아주 다른 셈이다.
안전벨트 착용은 법적으로는 고속도로 주행 시 한정으로 반드시 의무이다. 고속도로 주행 중에는 승차 정원 초과 10% 유도리도 적용되지 않는다.

그 반면, 오토바이는 다른 건 몰라도 헬멧 착용은 운전자와 동승자(있다면)에게 언제 어디서든 무조건 의무이다. 안 쓰고 오토바이 타다가 경찰에게 걸리면 과태료다. 사실 오토바이의 그 무서운 속도와 탑승자의 위험성을 생각하면.. 굳이 법에 의한 강요가 없어도 탑승자가 알아서 구해다 써야 한다.

자전거 운전자도 헬멧을 써야 한다고 법에 규정은 돼 있지만.. 얘는 위반 시 처벌은 없다. 뭔가 자전거의 음주운전과 비슷한 처지인 것 같다.
자전거는 오토바이보다야 훨씬 느리고, 사람이 자기 체력을 소모해서 차체를 굴리니 헬멧도 더 작고 가볍고 통풍이 더 잘 되게 만들어져 있다.

2. 종류별로 경미한 교통법규 위반

  • 보행자: 무단횡단
  • 오토바이: 헬멧 미착용, 자동차 전용 도로 주행
  • 자동차: 깜빡이 미점등, 승차정원 초과, 밤에 헤드라이트 안 켜는 스텔스 차량, 안전벨트 미착용 (현실적으론 거의 단속되지 않음)

(1) 차도에서 차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건 자전거만 가능하다. 오토바이는 원래 언제나 차로를 하나만 독립적으로 차지해야 한다.
자전거는 인도로 다닐 때는 천천히 역주행을 할 수 있지만, 차도에서는 역주행을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교차로나 커브에서는 더욱 말이다.

(2) 나는 도로를 횡단 중이고, 차가 옆에서 비보호로 좌· 우회전해서 들어오려 할 때 말이다.
난 그 차가 깜빡이를 켜고 들어오면 빨리 달려가서 비켜준다. 하지만 깜빡이 안 켜고 건방지게 들어오면 나는 그 차가 없을 때와 동일하게 천천히 느긋하게 "흠 저 차 운전자는 시간 많은가 보네, 급하지 않은가 보다" 이러면서 건넌다.

자동차나 오토바이는.. 직진을 할 게 아니라면 언제든 깜빡이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보행자는 횡단을 할 거면 손을 위로 들면서 자기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시해야 한다.
자전거는 방향 전환을 하려면 손을 그 방향으로 뻗는 수신호를 해야 한다.

3. 의도나 서술의 3단계

법조문은 어떤 서술의 강제성이 "(1) 할 수 있다(may 옵션) / (2) 한다(do) / (3) 반드시 해야 한다(must 강제)" 이렇게 3등급으로 나뉘는 편이다.

주행 중 급정거 같은 사고는 (1) 정말 불가피했고 어쩔 수 없어서 면책되는 정당방위· 긴급피난 급인 것, (2) 그냥 부주의나 실수로 저지른 것, (3) 고의로 악의적으로 저지른 범죄.. 이렇게 등급이 나뉜다. (3)이면 뭐 보험금도 안 나오고 형사 처벌감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도로 길바닥에 그려진 좌회전/우회전 표식도 이와 비슷한 유형이라고 느껴진다.
(1) '할 수 있다'는 직진과 우회전이 같이 그려져 있는 거.
(2) '한다'는 우회전만 있는 거.
(3) '해야 한다'는 직진 금지 X 표시와 함께 우회전이 있는 거.

(1)에서야 직진 차량이 앞에서 신호 대기 중이라고 해서 뒤의 우회전 차량이 빵빵 거리지 말아야 한다.
(2)는.. 직진한다고 해서 지시위반이 아닐 뿐이지 뒤의 우회전 차량에게 민폐를 끼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3)은 아예 직진하는 길이 없거나, 직진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일 것이다. 사고가 나면 지시위반으로 처리된다.

4. 신호에 대해서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의 신호 체계는 길의 크기나 교통량의 규모에 따라 다음 양상으로 나뉜다.

  • 레벨 1: 길 좁고 교통량 적고 차와 보행자가 뒤섞여서 어차피 빨리 못 달리기 때문에 신호가 없다. 이런 길은 닥치고 천천히 조심해서 다니는 수밖에 없고, 시야 확보가 안 되는 교차로에서는 반드시 일시정지 해야 한다. (골목, 또는 시골길. 일상적으로 비보호 위주)
  • 레벨 2: 적록 신호에 의지해서 그럭저럭 돌아간다. 심야에는 가끔 점멸 신호로 바뀌기도 한다. (대부분의 시내 차도들)
  • 레벨 3: 보행자가 아예 없는 자동차 전용에다 교차로도 다 입체화돼 있다. 신호 신경 쓸 일 없이 빠르게 달릴 수 있어서 좋다. 졸음운전에 대한 계도가 많으며, "전방 n km 사고 정체"처럼 길 상태를 나타내는 전광판 안내도 있다. (고속도로, 고속화도로)

보충 설명

  • 레벨 3인 도로가 언제나 레벨 2짜리 도로보다 크다는 보장은 없다. 서울 여의도에는 10차로에 달하는 대로(여의대로)가 있지만 그래 봤자 신호 받는 레벨 2짜리 시내 도로이다. 그러나 지방의 자그마한 4차로 고속도로이더라도 걔는 레벨 3에 속한다.
  • 레벨 2 도로에 존재하는 버스 전용 차로(시내버스 BRT용)와 레벨 3 도로에 존재하는 버스 전용 차로(고속버스)는 성격이 좀 다르다.
  • 로터리 내지 회전교차로는 규모에 따라 레벨 1일 수도 있고 레벨 2일 수도 있다. 위치가 좀 애매하다.

5. 교차로와 관련하여 생각할 점

- 점멸 신호는 레벨 2짜리 도로를 제한적으로 조건부로 레벨 1로 운용하는 것과 같다. 다같이 비보호이면 다같이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교차로 일시 정지 의무가 부과된다. 황색 점멸을 초록불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우를 절대로 범하지 말아야 한다.
- 비보호로 진행하는 차(가령, 우회전)들은.. 기다렸다가 신호 받고 진행하는 차(가령, 맞은편에서 좌회전)들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비보호는 신호 대기를 하지 않는 대신에 다른 걸 조심해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 난 뉴스에서 우회전 사고가 났다고 그러면서 맨날 운전자만 나쁜놈으로 만들고, 무단횡단 보행자나 역주행 자라니는 비난하지 않는 게 너무 싫다. 손을 들고 건너려 하는 보행자가 있다면 차가 서야겠지만, 시도 때도 없이 차를 무조건 세우는 건 결사반대다. 우회전 후에 파란불 횡단보도가 있다 해도 그때는 건너는 사람이 없으면 차가 빨리빨리 지나가야 된다.

- 예전에 했던 말인 듯한데.. 난 차들이 정지선 좀 침범해도 좋으니, 교차로 신호등이 교차로의 건너편에 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보행자도 차들의 신호를 미리 보고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신호등 위치를 옮기는 뻘짓을 처음에 누가 고안해 냈는지 모르겠고, 생각 같아서는 멱살 잡고 싶다.

- 그리고 직진 후 좌회전 교차로에서 좌회전 유도차로(Extended bay)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아주 좋은 시스템이다. 이것도 미개한 운전자들 때문에 더 도입하지 않고 없애는 게 마음에 안 든다.
거기서 멀뚱멀뚱하게 서 있다가 민폐 끼치는 센스 없는 운전자는 면허 시험에서 걸러내거나 금융 치료 시켜야지 에휴~~ 또한, 좌회전 유도 차로의 운영을 위해서라도 교차로 신호등은 제발 좀 건너편에다가 설치해야 된다.

6. 과속 단속 카메라는 사탄 마귀다

우리나라는 시내 도로, 국도, 고속도로 등을 막론하고 과속 단속 카메라가 변태적으로, 병적으로, 사회악 수준으로 너무 많다.
공사 현장이거나 커브 틀자마자 바로 사거리 교차로가 나오는 정도로 극단적으로 위험한 곳이 아니면.. 대부분의 카메라들은 쓸데없이 차들의 멀쩡한 주행 흐름을 깨고 시간 낭비 기름 낭비만 초래하는 과잉 단속이다. 심지어 저런 곳이라 해도 AI니 IoT니 기술이 더 발달했다면, 당장 파란불이 계속되고 씽씽 달려도 될 때는 가려서 단속을 안 하는 게 더 낫다.

굳이 단속을 할 거면 시속 80(시내), 100(국도), 150(고속도로) 정도로 좀 완화해야 된다. 요즘 최첨단 자동차 엔진과 브레이크 성능을 뭘로 보는 거냔 말이다. 숫자를 건드리기 싫으면 면 같은 숫자에서 단위만 km 대신 마일로 바꾸든가.
작년 2023년 한 해 동안 사이다 같은 의거가 둘 벌어진 적이 있었다. (1) 하나는 6월경에 청도의 어느 무료 캠핑장에서 누가 무단 알박기 텐트들을 칼로 다 찢어버린 사건이었다.
(2) 그리고 다른 하나는 10월경에 제주도에서 누가 과속 단속 당한 것에 앙심을 품고 이동식 단속 카메라 하나를 밤에 몰래 뜯어간 사건.. 난 이 둘을 완전히 동급으로 취급한다.

악랄한 구간 단속, 그리고 24시간 내내 시속 30을 못 넘게 만드는 정신나간 어린이 보호 구역 단속을 어찌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교통 문화는 정말 답이 없을 것이다.
"400미터 거리에 신호등이 5개, 통과하는 데 20분"(☞ 링크) 이것도 진짜 웃기는 짜장 같은 짓이다. 21세기 신 적기조례이구만 이거. ㅡ,.ㅡ;;

구간 단속을 할 정신머리로 1차로 저속 주행 같은 지정차로 위반 내지 유령 정체 유발을 단속하는 게 국가 경쟁력과 민족 긍지 고취를 위해 100배는 더 이득이다.
운전자들도 좀 비판적인 안목을 갖고, "우리가 마음 편히 주행할 권리 내지 자유를 빼앗긴다, 극소수 미친 또라이들 때문에 대다수 정상적인 운전자들까지 똥군기 연대책임 단체기합을 당한다" 이런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7. 진출로에서 제발 빠릿빠릿 좀 나가라

진출로의 한참 뒤부터 차들이 몰려들어서 거북이걸음 중인데.. 정작 진짜로 길이 갈리는 진출로 부근은 정체가 전혀 없다. 차들이 자기 앞에 한참 공간이 많은데도 슬금슬금 느긋하게 가고 있는 것 보면 분노와 짜증이 확..!!
이러니 누가 새치기 끼어들기를 안 하겠나? 뒤에서 순순히 기다리는 차들만 바보 되지.

이건 끼어들기 단속을 할 게 아니라 끼어들기를 조장하는 게으른 운전자들한테도 단속 계도 내지 페널티를 부과해야 된다.
칼치기 차량보다도.. 지정차로 안 지키고 1차로 저속 주행하면서 우측 추월을 강요하는 운전자가 더 나쁘듯이 말이다.
"지금 내 차가 차지하는 공간은 뒷차 운전자로부터 빌려 쓰는 공간이다"라는 관념을 운전학원에서부터 좀 가르쳐야 된다. 다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쓸데없는 교통사고나 보복운전 병림픽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8. 음주운전 교통사고 트렌드

(1) 10여 년 전엔 멀쩡히 가던 앞차의 뒤꽁무니를 쎄게 추돌하곤 했다. 앞차는 불이 나서 탑승자 전원이 몰살 당했다.
2012년 6월 새벽, 인천공항 고속도로. 공항 직원 일가족 4명 사망.
2015년 2월 새벽, 구미에서. 학원 선생 + 차 타고 귀가하던 학생 4명 사망.

(2) 비교적 최근엔 벌건 대낮에 인도 내지 횡단보도로 돌진해서 멀쩡한 보행자를 쳐서 죽였다.
2018년 9월, 부산에서 윤 창호 사건.
2023년 4월, 대전 스쿨존 사고. 초등생 1명 사망, 3명 부상

(3) 그리고 요즘은 배달 오토바이가 타겟이 되는 일이 늘었다.
2020년 9월, 을왕리 해수욕장 부근.
지난 2월쯤, 서울 강남 언주 역 부근, BJ 예송
라이더는 모두 사망. 공교롭게도 이 두 사고는 가해 차량이 비싼 외제차였고, 운전자는 새파랗게 젊은 여자였다.

아 그러고 보니 작년 1월엔 현직 개원의가 음주운전으로 배달 오토바이를 쳐서 사망 사고를 냈었는데 말이다.
요즘은 의사가 중대한 의료사고뿐만 아니라 다른 범죄로 금고 이상 실형을 받으면 의사 면허가 취소되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난 그건 그닥 합리적인 법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그 법대로라면 저 의사는 당장 면허가 취소돼야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5/06 08:35 2024/05/06 08:35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294

자동차라는 건 정말 유용하고 편리한 발명품인 한편으로,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야기하는 위험한 흉기가 될 수도 하다. 아울러 자동차는 몹시 크고 비싸고, 운행으로 인해 사회나 환경에 끼치는 여파도 크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는 처음에 개발하고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소비자가 구매· 소유하고 본격적으로 운전을 하는 것까지 온갖 까다로운 법과 규제들이 걸려 있다.

1. 번호판

누구든지 공도에서 차를 운행하려면 반드시 그 차량을 국가 기관에 등록해서 번호판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차체에다 그 번호판을 부착해서 전· 후방에서 번호를 식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차적 조회를 통해 어떤 차량으로부터 그 차량의 운전자 내지 차주를 추적할 수 있게 말이다.

이런 번호판이 없는 차량은 공항 활주로(램프 버스, 토잉카)나 자동차 학원(장내 기능검정), 영화 촬영 세트, 혹은 자동차 연구소 주행 시험장이나 카레이싱 서킷처럼 외부와 단절된 자기 시설 내부만 돌아다닐 수 있다. 공도를 주행할 수 없다.
그리고 공도를 다니는 차량이 번호판을 갖고 장난을 치는 건 우리 생각보다 아주 심각하고 무거운 범죄로 여겨진다. 번호판을 달지 않는다거나, 위· 변조하거나, 고의이든 실수이든 번호판의 일부 부위를 가리는 것 따위. 이건 신분증 위조, 공문서 위조나 마찬가지이다.

왜 그렇냐 하면.. 차주가 추적되지 않는 자동차, 운행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자동차로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무법천지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 교통사고 뺑소니는 애교이고, (2) 운전 자체는 모범적으로 하더라도 차로 장물· 시체를 운반하거나 범죄 용의자가 도주할 수도 있다. 그리고 (3) 그 차와 관련된 세금이나 보험료의 징수에도 애로사항이 꽃핀다.

물론, 번호판이 외형상 멀쩡히 달려 있어도 그 번호판으로 실제 차주의 추적이 안 되는 차가 있다. 우리는 그런 차를 대포차라고 부른다. 대포통장(금융)이나 대포폰(통신)과 마찬가지로 대포차는 사회적인 해악이 매우 크기 때문에 국가 공권력에서 엄하게 단속하고 처벌한다.

오토바이는 번호판을 뒤에만 달아도 되는 반면, 자동차는 앞뒤에 다 있어야 한다.
자가용 승용차는 지역 표기가 없는 반면, 택시· 버스 등의 영업용 자동차나 오토바이의 번호판은 여전히 지역이 표기돼 있다.
오토바이는 번호판을 받으러 지역 관공서를 자가운전으로 갈 때에 한해서는 번호판 없이 운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자동차는 공도를 다니려면 임시 번호판이든 뭐든 없어서는 안 된다.

새 차를 구입한 뒤엔 정식 등록하기 전, 임시 번호판 상태일 때 최대한 오래 많이 시운전을 해 봐야 한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이때 차량에 문제가 발견돼서 차주가 인수를 거부하면 차주에게 그 어떤 손해나 책임도 가지 않기 때문이다.

2. 세금

이렇듯, 자동차는 운전자-차주의 추적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무나 돈만 내고 구입해서 바로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신분증 까고 뭔가 등록을 하고 개통을 해야만 소유와 운전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자동차의 유지비는 기름값이나 기계적인 정비 비용만이 전부가 아니다. 가만히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고정으로 깨지는 비용도 있다. 공간을 차지하는 비용인 주차비 같은 건 너무 당연한 거고, 그것 말고 자동차세와 보험료라는 행정 비용이 있다.

자동차세는 주민세의 자동차 버전 같으면서 한편으로 재산세의 일종이다. 연초에 한 번 완납하거나 아니면 1년에 두 번에 걸쳐 낼 수 있다.
자가용 승용차는 배기량에 비례해서 비싸지는데, 그 임률 자체가 1000cc, 1500cc, 2000cc 이렇게 등급별로 달라진다. 2000cc 이상부터는 동일.
즉, 우리나라의 자동차세는 배기량의 정비례를 넘어서 얼추 제곱에 비례하는 구석이 있다. 5명밖에 안 타는 자가용이 배기량이 지나치게 높은 걸 잉여· 사치스럽다고 보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 택시 같은 영업용 자동차라든가, 혹은 자가용이라도 트럭이나 승합차 같은 건 배기량과 무관하게 경차 급의 아주 저렴한 액수로 퉁쳐진다고 한다. 그 대신 승합차는 시속 110km 리미트가 걸렸고, 4.5톤 이상 대형 트럭은 시속 90 리미트가 강제로 부과된다.

자동차세를 오랫동안 체납하면 공무원들이 찾아와서 그 차의 번호판을 떼 가서 운행을 할 수 없게 만든다(번호판 영치). 불법주차 차량의 바퀴에다가 차꼬를 채우는 것보다 수위가 쎄다. 그러고도 체납이 악의적으로 계속되면 결국 차 자체를 압류 당하게 된다. ㄲㄲㄲㄲㄲㄲㄲ

뭐, 운전자가 현실적으로 세금을 제일 많이 내는 통로는 저런 자동차세 직접세보다도 기름값에 포함된 간접세의 비중이 클 것이다. 여러 변동 요인이 있지만, 기름값에서 얼추 절반이나 과반은 세금이다.
전국의 그 많은 도로들을 유지 보수하는 비용, 그리고 무수히 많은 교차로 신호등들의 운영 비용과 전기료..를 생각해 보시라. 빼박 소모품인 기름에다가 세금을 매겨서 충당하는 게 제일 간단하다.

3. 보험료

다음으로 자동차 보험..
얘는 사고를 냈을 때 대인은 1억 5천까지, 대물은 2천만 원까지 정말 최소한으로만 보장하는 법적 의무 마지노 선인 '책임보험'부터 시작한다. 오토바이 라이딩기어에다가 비유하자면 그냥 헬멧 하나 달랑 쓴 것과 같다.

이것만으로는 현실에서의 사고 보상 위력이 정말 턱도 없다. 대물만 해도.. 자기가 꼬라박아서 부순 차량의 수리 비용뿐만 아니라, 수리 기간 동안 피해자가 동급의 중고차를 렌트하는 비용까지 가해자가 다 물어줘야 한다~! 대물에는 기회비용까지 포함된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종합보험이 필수이다. 종합은 대인과 대물의 보상 한도를 크게 끌어올려 주며, 옵션으로 자기 자신이나 자기 차가 부서진 것에 대한 보상도 넣을 수 있다. 이제 좀 부츠나 장갑, 두터운 슈트까지 포함된다.

대물은 요즘 세상에 못 해도 1억이나 2억은 잡아야 하고 대인은 무한.. 이렇게 종합보험을 들면 사망· 중상해나 악질(무면허· 음주· 뺑소니)이 아닌 교통사고는 무조건 합의가 되고 형사 처벌을 안 받을 수 있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의 실드를 받는다.

대물 한도를 늘린다고 해서 보험료가 그에 비례해서 폭발적으로 느는 건 아니다. 그 대신 보험사들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대물을 10억 이상 무한대로 해 주지는 않는다. 무한은 대인에만 존재한다.
사고가 너무 잦거나, 자기 과실로 고급 신차가 가득 실려 있는 카캐리어를 뒤집어엎는 사고를 한번 냈다거나 하면.. 이듬해부터 보험료가 급등할 것이며, 나중엔 종합보험의 가입이 거절되는 뒤끝이 올 것이다. (책임보험만..) 자동차 보험업계에서의 신용이 작살나 버리기 때문이다. 보험료 할인율이 이 바닥의 신용 등급이나 마찬가지다.

자동차 보험은 여타 생명 보험 따위와는 달리, 1년 단위로 보험료를 한꺼번에 내고, 1년이 차면 가입을 통째로 다시 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예전에 계약했던 보험사를 계속 이용하건, 보험사를 바꾸건 그건 차주의 재량이다.
영업용 자동차는 대물은 몰라도 대인은 무조건 무한으로 잡아서 종합보험에 준하는 보장이 돼 있어야만 운행 가능하다.
보험이 나름 피해자에게 많이 유리하게 짜여 있는데 중상해 교통사고 피해자들이 병원비 때문에 고통 받는다는 얘기가 왜 여전히 나오는지 잘 모르겠다.

자동차 보험은 가입돼 있지 않으면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그 상태로 운행을 하다가 걸리면 사고를 내지 않았더라도 형사 처벌이 기다린다. 그러니 강제성으로 치면 자동차세와 사실상 동급이다.
허나, 운전자 보험은 운전자 개인의 손해, 법률 비용을 보상하는 보험으로, 자동차 보험과 무관한 시스템이다. 법적 의무가 전혀 아니며 뭔가 자동차계의 애플케어 같은 옵션 상품이다. 혼자서 직업적으로 자동차 여러 대를 많이 운전하는 사람이 아니면 딱히 들 필요 없다.

4. 정기 검사

우리나라의 경우, 자동차의 소유주는 자기 차를 몇 년에 한 번씩은 반드시 국가 공인 검사센터로 몰고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런 법적 의무가 있는 이유는 당연히..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자동차가 공도를 돌아다니면 그 차주뿐만 아니라 남의 안전까지 위협하기 때문이다. 엔진오일 교환 한번 안 하는 무관심 차알못들한테는 이렇게라도 해서 차를 강제로 최소한의 관리를 받게 해야 한다.

이 검사에서는 엔진오일이나 타이어 공기뿐만 아니라 자동차관리법에 저촉될 정도로 불법 튜닝한 거, 헤드라이트 전구가 나갔거나 너무 어두워진 것, 그리고 밤에 번호판을 비춰 주는 램프가 나간 것을 찾아낸다. 이런 건 당장 차의 주행에는 영향이 없지만 주변 운전자에게 위험을 끼치며, 이 차의 신원 파악과 통제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게 걸리면 즉시 시정 조치 후에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한다.

그리고 배기가스 정화 계통에 문제가 생긴 것도 검사 및 시정 대상이다. 지방에서는 '자동차 검사'라고 하며, 수도권 등 일부 대도시로 등록된 차량은 상위 호환인 '종합 검사'라고 해서 이렇게 배기가스 검사를 추가로 더 하는 걸로 난 알고 있다. 물론 비용도 약간 더 비싸다.

검사 주기는 자가용 차량의 경우 첫 차 구입 후에 4년 뒤, 그 다음부터는 2년마다 한 번이다.
그 반면, 영업용 차량은 영리를 목적으로 빡세게 엄청 많이 굴리니 구입 직후부터 매년 검사를 받아야 한다. 얘들은 자동차세가 저렴한 대신, 이런 조건이 더 빡센 셈이다.

그러니 전국의 자동차 검사소들은 1년 365일 내내 일감이 끊이지 않는다.
얘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차량이 법에 대놓고 걸리는 사항이 없는지,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요소가 없는지 같은 최소한의 검사만 빨랑빨랑 해 준다.
배터리를 포함해 차량의 모든 소모품들의 교환 주기를 꼼꼼하게 체크해 주는 건 아니니 그런 건 단골 카센터나 차량 제조사 공인 정비소에서 점검하고 해결해야 한다.

5. 면허

(1) 잘 알다시피 사람이 자차의 소유 여부와 관계 없이 차를 몰려면 운전 면허를 따야 한다.
미국처럼 경제력 있으면서 땅 넓고 대중교통 없고 자동차가 신발이나 다름없는 필수품인 나라는 중학교만 졸업한 10대 중반 애들이 바로 면허를 딴다. 햄버거 가게 알바 출퇴근을 위해서라도 허름한 중고차라도 없으면 안 되기 때문.. 저기는 대학교에 그 많은 학부생들도 차를 굴린다.

우리나라는 그 정도는 아니어서 고등학교 정도는 졸업한 뒤에야 면허를 딴다. 실제로 차를 굴리는 건 못해도 대학 졸업하고 취업한 뒤.. 그것도 지방에 살 때나 그렇고 서울· 수도권에서는 차 없이 사는 비중도 높다. 결혼하고 애 정도 생긴 뒤에나 자가용을 생각하게 된다.

하긴, 일본은 국력 경제력은 세계 톱급이지만 서민들의 자동차는 미치도록 작은 경차 위주이다. 뭐, 선진국이니까 아예 이륜차 삼륜차 툭툭이가 아니라 네 바퀴 달린 경차가 주류인 셈이다. 베트남은 가 보니까 오토바이 하나에 온 식구가 낑겨 타고 다니는 것도 눈에 띄더라만..

(2) 운전 면허는 운전하는 차량의 크기(대형, 보통), 그리고 차량의 운행 성격(자가용, 영업용)에 따라 난이도가 나뉜다.
그리고 사람이 많이 타는 차에 가중치가 훨씬 더 크게 부여된다. 트럭은 축이 하나 더 달렸고 대형 버스와 대등한 덩치를 자랑하는 11.5톤까지도 1종 보통으로 몰 수 있는 반면.. 승합차는 봉고 15인승이 한계이다. 트럭은 커 봤자 사람은 최대 3명밖에 안 타기 때문이다.;;

다른 차량을 견인하는 트레일러나 렉카 같은 차량은 조금 다른 운전 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정 크기 이상부터는 특수 면허가 필요하다. 대형과 특수는 보통 면허부터 따고 나서 1년 뒤에 도전 가능하다.

(3) 장내 기능 검정을 넘어 도로 주행을 연습하거나 시험 응시하는 건 엄연한 공도 주행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연습 면허'가 필요하다. 자동차 학원에서 이런 거 처리를 알아서 하기 때문에 수강생이 느끼지 않을 뿐..
이 면허는 유효 기간이 있으며 경력 n년 이상의 조교가 반드시 동승해야 하는 등의 여러 제약이 붙는다. 이 상태로 대물 사고를 넘어서 인사 사고를 내면 바로 면허가 취소되며 아마 1년 동안 연습 면허를 못 딴다.

또한, 정식 운전 면허를 갓 딴 운전자는 향후 2년 동안은 자기가 운전하는 차의 뒤에다가 "초보운전"이라는 표시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옛날에는 그 표식의 위치와 글자 크기까지 법으로 꼼꼼하게 규정돼 있었는데 그 규정이 폐지됐다. 그 법이 폐지되면서 '아이가 타고 있어요, 나도 내가 무서워요' 등의 다양한 문구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글쎄, 재치 있다기보다는 좀 개념 없어 보이는 문구도 있지만 말이다.

(4) 운전 면허는 한 번 땄다고 영원히 지속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갱신을 해 줘야 한다. 요즘은 주기가 10년이니 여권 유효기간과 비슷해 보인다.
2종은 그냥 신청만 하면 바로 갱신되는 반면, 1종 보통은 형식적이나마 적성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1종 대형은 그게 더 까다로워서 신체검사 내지 건강 검진 결과 제출이 필요하다고 한다.

요즘은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가 많이 느는 추세여서 앞으로 노인들은 적성검사가 더 엄격해지고 주기도 더 짧아지지 않을까 싶다.

(5) 글쎄, 세계 각국의 '군주'(왕, 황제)는 통상적으로 외국 나갈 때 여권이 없어도 예우 차원에서 입국이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그냥 자기 얼굴이 여권이나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영국 왕의 경우, 자국 내에서 운전면허를 정식으로 따지 않아도 운전이 허용된다고 한다. 불체포 특권 같은 건지? 왕은 여권이나 면허증의 발급 주체보다 더 높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무려 왕이나 되는 사람이면 당연히 운전사가 몰아 주는 차를 타지, 자기가 직접 운전을 할 일이 없을 것이다. 애초에 면허 따위 없어도 생활이 아무 지장이 없다.
롤스로이스 팬텀 같은 차에 무슨 쪼잔하게 자율주행 기능이 들어갈 것 같지는 않다. -_-;;

그럼 자동차와 교통법규 이야기를 앞으로 좀 더 이어 나가도록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4/05/03 08:35 2024/05/03 08:35
, ,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293

« Previous : 1 : 2 : 3 : 4 : 5 : ... 216 : Next »

블로그 이미지

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ite Stats

Total hits:
2727466
Today:
452
Yesterday:
16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