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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시스템, 용어 등 이야기

1. 궤간

수요가 적은 곳에 철도를 건설할 때는 중전철 대신 경전철로 축하중과 차량 크기를 줄이는 건 기본이요, 전차선은 가공전차선 대신 제3궤조로 만들고, 1량짜리 꼬마 동차를 투입하고 심지어 부산처럼 선로 수까지 후려쳐서 단선으로 만드는 극단적인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제아무리 규모가 작은 경전철이라도 요즘은 협궤는 쓰지 않는 게 국룰이다. 그렇잖아도 요즘은 1435mm 표준궤에다가 폭이 3m가 넘는 차량을 얹어서 굴리는데, 궤간을 후려치면 차량이 너무 비좁아지고 주행 안정성이 떨어지고 각종 부품 호환에도 문제가 생긴다.
요즘은 쬐끄만 스마트폰이라도 CPU는 64비트이지, 작은 기기라고 해서 구닥다리 16비트나 32비트 CPU를 쓰지는 않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비트수까지 후려치는 건 사람이 직접 다루지 않는 임베디드 환경 한정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은 미국이 표준궤로 건설하려다가 만 것을 일본이 물려받았으니 망정이지.. 처음부터 100% 일본의 자본과 기술로 건설됐으면 협궤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첫 단추를 표준궤로 깔았으니 경부선과 경의선도 선뜻 일본 자국의 표준과 다른 표준궤로 잘 만들어질 수 있었다. ㄲㄲㄲㄲ
참고로, 잠깐 활동하다가 말았던 대한제국 철도국은 미국의 영향을 받아서 처음부터 나라의 표준 철도 궤간을 일본 같은 협궤가 아니라 표준궤로 지정했었다고 한다.

2. 등판능력

우리집 근처의 모 지하철역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출입구 계단은 수평으로 정사각형 블록을 두 개 이동하는 동안 수직으로 한 칸 상승하는 각도이다. 기울기가 0.5, 즉 50%이고 이를 각도로 환산하면 약 27도이다. 그나마 이것도 어지간한 고층 건물 비상구의 계단보다는 완만한 경사이다. 그런 곳은 거의 30~32도대에 달한다. (60%대 초반)

그리고 우리나라 스키장에서 경사가 가장 심한 슬로프의 경사각도 이와 비슷한 20후반~30초반이고 기울기로 환산하면 60%대이다. 이 정도면 연비 따위 쌈싸먹은 중량과 출력에다 무한궤도까지 깔아서 접지력과 마찰력을 극대화한 군용 탱크 정도나 오를 수 있다.

오늘날 고무 바퀴로 달리는 대부분의 자동차들의 등판능력의 한계는 35%~40%대이다. (18~20도) 참고로 대형 여객기의 이륙 상승각이 15도~20도이니 이와 비슷하다.
국내의 자동차 도로의 법적 오르막 설계 한계는 17%라고 한다. (9~10도) (도로의 구조·시설 기준에 관한 규칙 제25조 종단경사)

물론 이 정도 각도면 완전 극단적인 험지이며 자동차가 정상적으로 달릴 수 있는 경사가 아니다. 낡고 제대로 정비 안 한 자동차는 이런 경사를 오래 오르면 엔진 힘이 딸려서 퍼져 버린다.
종이에다가 저 기울기를 그려 보면 전혀 가팔라 보이지 않지만, 실제 지형을 보면.. 이것만으로도 엄청 급격하고 가팔라 보일 것이다.;;;

자동차가 다니는 산길의 경사는 계단의 경사보다야 훨씬 더 원만하다.
그러나 철도 차량은 그런 자동차보다도 등판능력이 훨씬 더 부족하다.
저 바닥에서는 백분율 %보다 더 작은 단위인 퍼밀(천분율)을 쓰며, 최고 열악한 선로에 대해서 35퍼밀(3.5%)을 한계로 규정한다. 이것은 각도로 환산하면 2도밖에 되지 않는다. (국유철도건설규칙 제11조 구배의 한도)

30퍼밀, 3%대만 되어도 철도의 입장에서는 기관차가 굉장한 부담을 느끼는 험한 경사이다.
서울 2호선 합정-당산, 그리고 경의선 전철 효창공원-용산 구간이.. 철도의 입장에서 법적인 한계를 간신히 준수하는 극악의 급경사이다.

이건 엔진 출력을 강화해서 극복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세게 밟아 봤자 바퀴만 헛돌지, 경사를 못 오르고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인천 지하철 2호선 검바위 역 부근의 급경사는 5.5%로, 이건 고무바퀴 경전철이니까 가능한 오르막이다. 일반 철도에서는 존재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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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러시아-우크라이나 일대에 있는 크림대교도 도로교와 철교가 이렇게 완전히 다르게 생긴 것이다.
철교를 도로교처럼 저렇게 봉긋 솟아오르게 만들면 열차가 자력으로 전혀 지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_=

크림대교는 울나라 인천대교나 영종대교와 달리, 현수교나 사장교 형태로 만들지는 않았나 보다. 건설비를 절약하려고 단순한 공법을 사용했는지, 교각이 굉장히 촘촘하고 높이도 낮은 편이다. 그래서 큰 선박이 아래로 통과할 수 없겠다.

3. 시설

우리나라의 고속도로는 (1) 톨게이트를 모조리 없애고 미국 프리웨이처럼 (2) 노선과 진출입로에 번호를 매기는 것이 장기적인 미래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럼 철도는? 역 번호는 초창기부터 잘 정착했다. 광역전철이나 경전철 노선들은 아직까지 번호 없이 이름만으로 통용되고 있는데, 이것도 노선이 10개쯤 되면 번호를 부여하자는 얘기가 차차 나오지 싶다. GTX 노선이야 특정 지명만으로 이름을 붙이기 난감하기 때문에 진작부터 ABC라고 번호에 준하는 명칭이 붙었다.

한편, 고속도로의 톨게이트에 맞먹을 급으로 우리나라 철도에서 가까운 미래에 완수하려는 과업은.. (1) 모든 기관차를 1인 승무로 바꾸는 것, (2) 그리고 역들 승강장을 고상홈으로 바꾸는 것이지 싶다.

대형 여객기를 부기장 없이 1인만으로 조종하는 건 정서적으로 여전히 거부감이 많다. 그러나 철도야 900명이 넘게 타는 KTX도 이미 한 명이 운전하고 있는데 기존 기관차도 사각지대 카메라를 늘리고 각종 절차들을 간소화· 자동화해서 승무원을 줄이는 게 업계의 유행이다.
지하철/전철 쪽도 최장길이인 서울 1~4호선 10량은 아직까지는 앞의 기관사, 뒤의 차장 이렇게 2인 승무인데.. 가까운 미래에 1인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고상홈이야.. 자동차에서 저상버스가 도입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고속버스는 아래의 짐칸 때문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일본의 신칸센 역들은 진작부터 고상홈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장거리 고속열차를 마치 지하철 타듯이 계단 없이 간편하게 타고 내리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다. 우리나라도 그런 스타일을 도입하게 될 것이다.

4. 용어

우리나라가 군대에서 일본식 한자어나 일본어식 음차가 많다며, 엑스반도(밴드-_-), 구보(달리기 뜀뛰기), 고참(선임), 미싱(물청소), 도수체조(맨손체조), 반합(밥통, 도시락), 요대(허리띠), 모포(담요), 화이바(헬멧, 방탄모), 총기수입(손질) 등의 용어들을 바꿔 가는 추세이다.
심지어 헌병이라는 말조차 군사경찰로 바꿨는데 이건 짧고 익숙한 단어를 굳이 왜 바꿨는지 모르겠다.

그것처럼 철도 업계에도 일본식 한자어.. 뭔가 무슨 한자로 이뤄졌을지 얼추 짐작은 되지만 좀 딱딱하고 건조하고 약간 위압적으로 느껴지는 용어가 좀 있다.
방금 얘기가 나왔던 구배(경사)부터 시작해서 사구간(절연구간).. 대합실은 거의 20년 전에 이미 맞이방이라고 바뀌었다.
차량기지는 딱히 일본식 용어 같지는 않은데 괜히 차량사무소라고 공식 용어가 바뀌었다.

'-창'.. 공작창, 정비창이라는 말도 요즘은 안 쓴다. '자전차, 변소'(자전거, 화장실)라고 하면 굉장히 옛날 할아버지 말투처럼 들리듯이 말이다. 군대 영창은 용어뿐만 아니라 그 제도 자체가 요 몇 년 전에 폐지됐다.
그러고 보니 '무'(務)자가 들어간 장소 이름들이 우리나라에서 잘 안 쓰는 일본식 한자어로 여겨지는가 보다. 내무반(군대), 역무실(철도), 형무소(교정시설)처럼 말이다. 의무실조차도 공식 용어가 아니고 '건강관리실'이 표준이다.

우리나라도 해방 이후에 한동안 형무소라는 말을 써 왔다. 그러나 리 승만 할배 이후에 경무대가 청와대라고 이름이 바뀐 시기(1960~61)에 수형 시설의 이름도 교도소와 구치소로 바뀌고 세분화됐다.
우리나라는 반일 감정, 그리고 ‘무 duty’라는 의미에서 느껴지는 건조함과 권위주의 위압감 때문에 정서적으로 이런 조어를 피한 것 같다. =_=

그에 반해 일본에서는 태평양 전쟁 전범들이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된 걸 '법무사'(士가 아니라 死!!!!)했다고 표현을 정도이니.. 일본이 저 '무'자를 정서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더 즐겨 쓰긴 하는가 보다. 참고로 '경무대'는 '무'의 한자가 武이며, 일본식 한자어가 전혀 아닌 조선 고유의 명칭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9/24 19:35 2023/09/2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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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전벨트가 없다~!

정말 압도적인 차이점이다. 더 나아가 열차에는 구토 봉투, 산소 마스크, 구명조끼 등 그 어떤 비상용 장비도 비치돼 있지 않다.

2.
일반실 좌석은 복도의 입석 승객이 잡으라고 모서리 부분이 약간 패여서 손잡이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버스의 경우, 시내버스만이 그렇게 돼 있다.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광역/시외 이상급의 버스는 입석과 승차 정원 초과가 아예 법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에 그런 거 없다.
여객기는.. 승무원들조차 무조건 착석해야 하는 이· 착륙이라는 위험한 절차가 있는 이상, 아무리 단거리 저가 항공이라 해도 입석은 전혀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반면 열차는 버스보다 더 안전하고 더 대량 수송 지향적이기 때문에, 입석형 통근형이 아닌 좌석형 장거리 간선 차량에도 입석 손잡이가 갖춰져 있다.
심지어 시속 200~300으로 달리는 고속열차도.. 좌석에 안전벨트가 없는 걸로도 모자라 입석 승객용 손잡이까지 있는 건 철도만의 고유한 특징이 아닐 수 없다.

애초에 '고속'의 정의가 자동차 도로는 시속 100 이상이 기준이지만, 철도는 시속 200 이상이 기준이다. 또한 철도는 승객뿐만 아니라 운전자의 입자에서도 자동차처럼 2시간마다 휴식 같은 제약에서도 당연히 열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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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일본 신칸센의 좌석이다. 창문은 마치 여객기처럼 작지만 좌석에 잡다한 안전벨트 따위가 없으며, 좌석 등받이의 양 끝 모서리에 동그란 돌기 같은 게 있다(입석 승객용 손잡이). 버스나 여객기의 좌석은 이런 형태가 절대로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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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철도 차량의 경우, 무궁화호는 위의 사진에서 보다시피 아주 큼직한 손잡이가 있었고, 새마을호는 고급 열차를 표방하다 보니 손잡이가 아예 없었다. KTX도 원칙은 입석을 안 받는 것을 표방했기 때문에 손잡이가 없다.
그나마 ITX-새마을은 큼직한 손잡이까지는 아니고 신칸센처럼 자그마한 돌기 정도로 타협했다.

3.
앞뒤 좌석을 서로 마주보게 회전시킬 수 있다.
가족이나 친구 일행끼리 마주보면서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은 세상에 얼마 없다. 자동차의 경우 일반 버스에서는 안 되고 일명 '봉고' 승합차 정도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걔네들도 등받이를 앞뒤로 미는 것까지만 가능하지, 열차의 좌석처럼 좌석을 통째로 뱅그르르 회전시키는 것은 안 된다. 뱅그르르 회전이 가능한 건 진짜 철도 차량 객차의 좌석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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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좌석 2개를 통째로 회전시킬 공간이 확보돼야 하기 때문에 열차 객실의 좌석은 앞뒤로도 충분한 간격이 필요하다. KTX는 이런 회전이 가능하지 않고 순방향과 역방향 배치가 고정돼 있어서 초기에 논란이 있었다.

참고로, 철도 차량 중에도 옛 통일호 객차는 봉고차처럼 등받이를 앞뒤로 미는 것만으로 좌석의 방향을 조절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이런 좌석은 등받이의 앞뒤 구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고급화에 한계가 있다. 등받이 뒤에 컵 받침대, 개인 모니터, 쓰레기 담는 그물 등등.. 아무것도 장착할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좌석은 최하급 열차 내지 봉고차에만 머물렀던 것이다.

4.
객실과 분리된 짐칸 공간이 따로 있지는 않다.
고속버스는 객실 아래에 짐칸이 있으며 여객기는 아예 부치는 수화물이라는 개념이 따로 있다. 그래서 선반에 올리기도 힘들 정도로 거대한 캐리어 같은 건 거기에다 싣거나 보내면 된다.

하지만 철도는 운행 중에 정차가 잦다는 특성상, 객실과 분리된 짐칸이라는 걸 운용하기는 어렵다. 객실 밖의 공간에 짐칸을 둔 열차도 있긴 하지만, 이 공간은 운행 중에 아무 승객이나 자유롭게 접근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도난· 분실의 위험이 약간이나마 더 높다.

5.
주행 중에 객실이 24시간 내내 가장 밝다. 이 역시 운행 중 정차가 잦다는 특성 때문에 존재하는 특징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열차는 승차감이 좋은 것과 별개로, 밤에 탑승 중에 잠을 자는 용도로는 버스나 여객기에 비해 불리한 면모가 있다. 전용 침대차가 아닌 이상 말이다.

* 보너스: 철도 차량의 운전석 창문 밖엔 백미러가 있는가?

자동차야 후진 또는 주행 중 차선 변경을 안전하기 하기 위해 후방 시야를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운전석 창문 밖에 툭 튀어나온 백미러라는 게 반드시 있어야 한다.
물론 이건 주행 중에 차량의 공기 저항을 늘리는 부작용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은 이것도 다 카메라 화면으로 대체하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거울보다야 콩알만 한 렌즈만 노출시키는 게 공기 저항 부담이 덜할 테니까 말이다.

버스나 트럭 같은 큰 차는 운전석의 바로 전방 아래쪽도 사각지대이기 때문에 거기를 비추는 거울도 같이 달려 있다. 자그마한 거울로 최대한 넓은 영역을 비추기 위해서 거울의 표면은 볼록하게 만들어져 있다.
이런 게 달려 있어도 차량 주변의 사각지대를 모두 없앨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각지대 교통사고를 예방하려면 시동이 걸려 있는 대형 차량의 주변에는 차든 보행자든 너무 가까이 얼쩡거리지 않는 게 좋다.

공기 저항에 목숨 걸어야 하는 비행기는 아무래도 백미러 따위와 접점이 없는 교통수단일 것이다. 그럼 철도 차량은..?
여객열차라면 출발 전에 승객이 모두 타거나 내렸는지 확인하기 위한 용도로 저런 거울이 있으면 좋을 때가 있다.
하지만 자동차만치 절실하게 필요하지는 않다. 열차는 역에 정차하는 지점이 늘 일정하기 때문에 그냥 역 승강장의 앞쪽에다가 기관사가 볼 수 있는 커다란 거울을 비치하는 게 더 낫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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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철도 차량들은 길쭉한 백미러가 기관실의 양 끝에 있는 편이었다. 기관차라든가 CDC, NDC, 심지어 새마을호 디젤 동차에도 있었다.
하지만 KTX를 비롯해 2000년대 이후에 생산된 전동차와 기관차는 그렇게 돌출된 백미러가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얘들이야말로 거울 대신 측면· 후방 카메라 영상이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12/23 19:34 2020/12/2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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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기둥에다가 케이블을 연결하고, “그 케이블 아래로 뭔가를 또 늘어뜨려서 하부를 지탱”한다는 개념은 현수교뿐만 아니라 전기 철도에서 전차선을 설치할 때도 쓰인다.
현수선을 영어로는 카테너리(catenary)라고 한다. 이것은 철덕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단어일 것이다. 전기 철도에서 가공전차선(= 제3궤조가 아닌 공중 부설) 방식으로 전깃줄을 매다는 방식들에 온통 저 이름이 붙기 때문이다.

전기 철도는 사용하는 전기 종류에 따라 직류와 교류로 나뉘고, 전차선이 부설된 위치에 따라 제3궤조(아래) 또는 가공전차선(공중)으로 나뉜다. 가공전차선의 경우, 차량 쪽의 집전 장치는 트롤리 폴, 뷔겔, 팬터그래프의 순으로 바뀌어 왔다. 옛날 원시적인 노면전차에서는 전자가 쓰여 왔지만 오늘날 전기 철도 차량의 대세는 팬터그래프이다.

그런 것처럼 공중에다가 전차선을 매다는 방식도 생각보다 매우 다양하다. 어느 방식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건설 비용과 유지 보수 비용, 그리고 심지어 열차의 주행 속도 한계까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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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차선 하나만 대롱대롱 매달아 놓는 건(직접현가식) 형태가 간편하고 건설 비용이 저렴하다. 하지만 전선이란 게 아무래도 축 늘어지는 관계로, 전신주 기둥에 가까운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이 높이와 장력이 동일하게 유지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이런 생짜 방식은 고속 주행을 하지 않는 옛날의 소형 노면전차 수준에서나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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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노면 전차. 차량의 집전 장치인 뷔겔이나 트롤리 폴도 원시적이지만, 전깃줄도 현대의 전기 철도에 비하면 꽤 단순하고 허술하게 매달려 있다.)

(2) 현대의 전기 철도에서는 선의 계층을 하나 더 추가했다. 보조 가선을 양 기둥과 연결해서 늘어뜨린 뒤, 보조 가선의 아래에다 전차선을 매달아 놓는 것이다.
교량으로 치면 현수교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셈이다. 전봇대는 주탑이요, 보조 가선은 주케이블, 전차선은 보조 케이블과 이어진 다리 상판에 대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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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전기 철도 설비는 이 정도가 보통이다. 과거의 노면 전차 시절에 비해 얼마나 복잡한가~!)

이렇게 하면 전차선의 높이와 장력이 훨씬 더 균일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열차가 안정되게 고속 주행을 할 수 있다.
이 방식은 심플 카테너리, 헤비 카테너리, 트윈-심플 카테너리, 컴파운드 카테너리 등 여러 변종이 존재하는데, 어떤 형태든 핵심은 전차선의 위에 선이 이중으로 깔렸고 이들이 상하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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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너리는 전차선 위의 보조선이 축 쳐지는 역할을 대신함으로써 아래의 진짜 전차선을 평평하게 유지하는 방식이다.)

카테너리 방식은 여러 장점 덕분에 고속철까지 커버하는 주류 전차선 형태가 됐다. 단점은 아무래도 터널을 더 높게 만들어야 하고 시설이 더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3) 요즘은 스크린도어 때문에 제대로 보기가 어렵겠지만, 지하철 선로를 눈여겨본 분이라면 지하철의 전차선은 여느 지상 전철만치 선이 치렁치렁 복잡하지 않고 단촐(?)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 지하철은 터널의 단면적을 줄여서 건설비를 절약하기 위해 전차선 한 줄만을 단단 딱딱한 쇠막대기 형태로 만들어서 천장에 매달아 놓는다(강체 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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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의 전차선은 지상 철도의 전차선보다 왠지 군더더기 없고 더 깔끔 단촐하게 생겼다.)

강체 가선 방식은 복잡한 줄들을 여러 겹 주렁주렁 매달아 놓는 게 없어서 공간을 덜 차지하고 깔끔하며, 유지보수 비용도 덜 드는 등 장점이 많다. 자갈 노반 대비 콘크리트 노반의 장점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유연성이 없는 강체의 특성상 팬터그래프의 높이와 잘 맞게 처음에 건설을 아주 정확하게 잘 해야 하며, 그러고도 고속 주행과는 어울리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얘는 천상 지하철용이다.

일반인에게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겠지만, 강체 전차선을 매다는 방식은 일명 T-bar 아니면 R-bar이라는 두 계열로 나뉘어 있다. T는 1960년대에 일본에서 독자 개발한 방식으로, 구조물이 꼭대기 천장에 달려 있다. 그 반면 R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점진적으로 발전시킨 방식으로, 구조물이 전차선의 옆으로 비스듬하게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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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R-bar, 오른쪽은 T-bar. 복정 역은 코레일 광역전철과 서울 지하철이 지하에서 매우 가깝게 교차하는 환승역이다 보니, 서로 다른 강체 전차선을 쉽게 대조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는 1974년의 서울 지하철 1호선 때부터 모든 지하철들이 전통적으로 T를 사용해 왔다. R은 1990년대에 최초의 지하철 형태의 광역전철인 과천선과 분당선이 만들어질 때 철도청에서 처음 도입했다. 이때 지하 교류 구간에, VVVF 전동차에, R-bar까지 나름 신기술이 많이 등장한 셈이다.

오늘날 기술적으로는 R이 T보다 더 우수하고 경제적이고 발전 가능성이 더 높은 솔루션으로 여겨진다. T는 직류 전용인 반면 R은 둘에 모두 대응 가능하다는 차이까지 있다.
하지만 T는 R보다 훨씬 일찍부터 국산화에 성공했고 덕분에 단가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지하철에서는 T가 주류 노릇을 해 왔다. 2010년대에 와서는 R도 국산화에 성공했으니, 앞으로 만들어지는 가공전차선 방식의 지하 철도에는 R-bar를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11/19 19:34 2020/11/19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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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차량의 회송 방식

사람이 타는 교통수단이라는 건 형태와 처지에 따라 "(1) 화물 < (2) 이동 수단 < (3) 주거 공간" 사이에서 가변적인 위상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간단한 이륜차는 (3)의 특성은 거의 없으며 화물과 이동 수단 사이에 해당한다. 접을 수 있는 자전거는 승용차에도 실을 수 있게 (1)을 더 강화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륜차 말고도 모든 교통수단들은 엄연히 공장에서 생산되는 공산품이며, 공장에서 갓 생산된 뒤 개인이나 운수 회사 같은 고객이 있는 곳으로 인도될 때까지는 거대한 화물과 동일하게 간주된다. 예외적으로 배야 거주성이 가장 강한 놈이며 팍팍 같은 모델을 반복해서 찍어내는 생산이라기보다는 건축· 건조에 가깝긴 하지만.. 그래도 자동차 정도만 돼도 법적으로는 거의 '준부동산'으로 취급된다. 그래서 차량 안은 여느 건물 내부와 마찬가지로 주거침입죄가 적용되는 배경이 될 수 있다.

상품이 교통수단 그 자체이니 그 물건을 목적지까지 그대로 굴려서 전달할 수도 있다. 육상이 아닌 다른 교통수단부터 생각해 보자면, 비행기는 그것 말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 보잉 사 공장에서 생산된 여객기는 그걸 구매한 항공사까지 자가비행으로 인도된다. 그 거대한 비행기를 분해해서 육로· 해상 수송을 할 수는 없으며 다른 비행기에다 실어서 수송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배 역시 동력도 없고 카누, 요트, 보트로나 불리는 자그마한 레저용 양산 장난감 급이 아니라.. ship이라 불리고 등기 등록을 하고 이름까지 붙은 거대한 물건이라면 조선소에서 항구까지 당연히 자력으로 가야 한다. 단, 그것만 있는 건 아니고 선박에는 예인선이라는 게 있어서 엔진이 퍼진 배를 견인하거나, 아니면 법을 어긴 배를 나포하기도 한다.

그럼 철도 차량은 사정이 어떨까? 다음과 같은 세 경우가 모두 존재한다.

  • 자력회송: 선로 위에서 자기 동력으로 주행하는 것을 말한다. 자동차로 치면 소비자에게 아직 정식으로 판매되지 않아서 임시 번호판을 달고 자력 주행하는 차량과 같다.
  • 갑종회송: 선로 위에서 자기 바퀴로 구르긴 하지만 자기 동력이 아니라 다른 기관차에 끌려다니는 것을 말한다. 자동차로 치면 바퀴의 일부를 땅에 댄 채 견인되어 가는 것과 같다.
  • 을종회송: 차량이 통째로 트레일러나 화물선 같은 타 교통수단에 실려서 운송되는 것을 가리킨다. 자동차로 치면 승용차 여러 대를 한꺼번에 수송하는 대형 트레일러를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철도 차량이 트레일러로 수송되는 경우, 각 객차들은 당연히 분리되어야 한다.

자력회송은 신차 출고보다는 이미 운행에 투입된 차량이 스케줄의 소화를 마치고 차고지로 들어가는 상황에서(혹은 반대 경우도 포함) 더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시운전'도 이런 자력회송과 비슷한 운행이다. 차량을 베타테스트한 후 차고지로 들어가는 게 목적이니까.. 다만 평범한 회송의 경우 차고지로 들어가는 게 목적인 반면, 시운전은 움직이는 것을 테스트하는 것 자체가 주 목적이라는 차이가 있다. 각각 결과와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니 관점이 서로 다르다.

물론, 기관사가 아닌 승객의 입장에서는 회송이건 시운전이건 이런 열차들은 승강장으로 들어오긴 하지만 승객을 태우지는 않고 불 끄고 무정차 통과하는 기분 나쁜 열차일 뿐일 것이다.

신차를 회송할 때는 자력보다는 갑종회송이 더 즐겨 쓰인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당연한 것이.. 신차를 고객에게 인계하는데 이동 과정에서 이미 차량의 동력원을 가동해 버려서 차량을 조금이나마 닳게(wear out) 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바퀴까지 통째로 다른 차량 위에다 얹기에는 크기와 무게가 너무 부담 되고 번거롭기도 하니까.

지하철 차량의 경우 전기 규격의 차이(직류 vs 교류) 때문에 일반열차의 선로에서는 자력회송을 하고 싶어도 어차피 못 한다. 하지만 궤간은 일반열차와 동일한 표준궤이니 선로 위에서 디젤 기관차로 견인해서 수송하는 갑종회송이 가능하며, 지하철 차량의 반입은 갑종회송 방식이 많이 쓰였다.
지난 2012년 6월 3일엔 KTX-산천 열차가 웬 영동선으로 얼굴마담 나들이를 가서 그 당시에 아직 잔존하던 스위치백 구간까지 통과했었는데.. 이 역시 자력회송은 아니고 디젤 기관차에 끌려가는 갑종회송이었다.

자력회송이 '시운전'과 관련이 있다면, 갑종회송은 '구원운전'과 관련이 있다. 한 차량이 동력 계통에 문제가 생겨서 선로 중간에 퍼져 버리면 다른 기관차가 와서 그 열차를 견인해서 끌고 가는 것 말이다.

40여 년 전, 수도권 전철이 첫 개통하던 시절과는 달리 요즘은 육로 수송 인프라가 크게 발달했고 기존 철도와 직결하지 않는 노선과 차량 형태로 철도가 많이 개통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차를 반입할 때 을종수송의 비중이 늘어나는 게 요즘 추세이다. 예전에는 엄청 많이 우회하더라도 최대한 기존 일반열차 선로와 지하철 선로를 거쳐서 차량을 반입했지만, 지금은 그냥 트레일러에 싣는다는 뜻이다.

경전철은 말 그대로 차량의 크기와 편성수도 적으니 트레일러 수송에 대한 부담이 중전철보다 덜하다.
공항 철도 열차는 선로가 다 완성되고 경의선과의 연결선이 개통하지도 않았을 때 차량이 반입됐다 보니, 인천 바닷가까지는 기관차 갑종회송을 했지만 영종도의 용유 차량 기지까지는 배와 트레일러를 이용해서 차량을 을종회송 방식으로 반입했다.
단, 2010년의 2차 개통 때 추가로 도입된 차량들은 철길만 거쳐서 반입했다.

서울 지하철 9호선 역시 일반열차 선로와 연결되는 구간이 아직 전혀 없던 관계로 트레일러로 차량을 반입했다. 하지만 앞으로 공항 철도와의 직통 운행이 시작되면 자연히 공항 철도를 거쳐서 경의선으로도 가는 길이 연결되므로, 추가 차량은 그쪽으로 갑종회송 방식으로 반입되지 않겠나 싶다. 9호선은 끔찍한 혼잡을 호소하고 있는데 언제쯤 차량이 더 반입되려나 모르겠다.

이상. 철도 차량의 회송과 신차 반입에 대해서는 몇 년 전에도 한번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갑/을종/자력'이라는 용어를 동원해서 또 한데 정리해 보게 됐다.
차량 시운전이라고 하면 본인은 성경의 눅 14:19 말씀이 떠오른다.

"다른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사서 그것들을 시험하러 가니 원하건대 나를 용서하라, 하며" (식사 초대를 거절하면서 대는 핑계)

요즘으로 치면 자가용을 뽑았기 때문에 시승하러 가는 것과 비슷한 심상이지 않은가? -_-

Posted by 사무엘

2016/11/09 08:35 2016/11/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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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폐단· 단폐단

한국 철도에서 운행 중인 특대형 디젤 기관차(정확히는 디젤 전기 기관차)는 앞부분이 잘 알다시피 이렇게 생겼다. (사진들의 출처: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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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끔은 앞부분이 이렇게 생긴 열차가 다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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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눈치 챈 독자도 계시겠지만, 이것은 새로운 다른 기관차가 아니라, 똑같은 기관차를 방향만 달리하여 배치한 것이다.
기관차의 뒷부분이 전방을 향하게 하고, 기관차의 원래의 앞부분을 후방으로 배치하여 객차를 연결한 뒤 기관차를 전진이 아닌 후진시킴으로써 앞으로 나아간다. 본인이 예전에 몇 번이나 언급한 적이 있듯, 모든 철도 동력차들은 전진과 후진을 완전히 동일한 성능으로 자유자재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비행기와는 다르다.

기관차의 운전석은 통상 앞부분과 가까이 배치되어 있으며, 전방의 시야도 넓게 확보되어 있다. 이런 직관적인 앞부분으로 기관차를 자연스럽게 운전하는 것을 '단폐단 운전'이라고 한다. 운전석과 차체의 진행 방향 끝부분이 가까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관차의 양방향 중 운전석 방향과 먼 반대쪽으로 열차를 운전하는 것을 '장폐단 운전'이라고 한다.

철도는 신호 시스템이 아주 발달해 있고 방향 전환이 필요 없는 교통수단이긴 하지만, 그래도 장폐단 운전이 단폐단 운전보다 더 위험하고 기관사의 심신에 부담을 많이 끼치는 근무인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운전석에서 차량의 말단이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그렇잖아도 눈에 안 띄는 사각지대가 많아지는데, 그나마도 양 끝의 작고 좁은 창문만을 통해서 앞을 오랫동안 내다보느라 기관사의 자세도 구부정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장폐단 편성은 왜 생기는 걸까? 기관차의 방향을 돌려 주는 전차대나 루프선이 없는 노선을 운행했다가 되돌아올 때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는 바로 경인선이다.
경인선에서는 전동차뿐만이 아니라 인천항을 왕래하는 화물 열차도 비정기적으로 운행된다.
그러나 경인선의 종점인 인천 역은 인상선도, 루프선도, 전차대도 없이 열차가 있는 그대로 들어갔다가 도로 나올 수만 있는 매우 열악한 종착역이다. 그래서 인천 방면을 향하고 있던 기관차는 도로 서울 방면으로 돌아갈 때도 뒤쪽인 인천을 향한 채 주행하게 된다.

철도 차량은 아무래도 앞뒤 주행에 모두 유동적으로 대응 가능한 형태로 만드는 게 유리함을 알 수 있다. 앞으로 도입될 예정인 7600호대 디젤 전기 기관차는 앞뒤에 동일하게 운전석과 큰 창문이 달린 전후 대칭형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이 경우 마치 동차처럼 장폐단· 단폐단이라는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다.

물론, 전기 기관차는 진작부터 운전실이 앞뒤에 둘 달린 전후 대칭형으로 만들어져 있긴 했다. 기계 부품을 배치하는 데 다른 동력원 기관차보다 자유도가 더 높기 때문일 것이다.
전기나 디젤과는 달리 과거의 증기 기관차는 보일러와 탄수차, 차륜의 배치 같은 여러 문제 때문에 태생적으로 전후 대칭형으로 만들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얘는 길쭉한 보일러가 앞으로 불쑥 돌출돼 있으니, 장폐단 형태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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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게, 중형 기관차인 4400호대 디젤 기관차는 설계상의 정방향이 장폐단 형태이다. 증기 기관차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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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명 봉고 기관차라고도 불린 7000호대 디젤 기관차는 반대로 후진(=장폐단 주행)을 아예 고려하지 않은 극단적인 설계 때문에 사실상 단폐단 전진 운전밖에 못 한다. 운전석 안에서 후방 시야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얘는 작년 말에 다 퇴역했기 때문에 지금은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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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차륜 배치

자동차에는 엔진이 자동차의 어느 쪽에 적재되고 구동축이 어느 쪽 바퀴에 연결되는지를 나타내는 FF(전륜구동), FR(후륜구동), RR, 4WD 같은 용어가 있다. 이와 비슷한 개념이 철도 차량에도 응당 존재한다.

먼저, 동력 분산식 차량의 경우, 연결된 차량 자체가 동력차인지 아니면 단순히 끌려다니는 객차인지를 나타내는 표기가 있다. Tc(한쪽 말단에 운전실이 달린 객차), M(동력차), M'(전동차 한정. 동력차이면서 팬터그래프도 달린 차), T(단순 객차)가 그것.

그리고 다음으로 한 차량을 이루는 대차의 차륜 구성을 나타내는 표기가 있다. 연속으로 이어져 있는 바퀴의 수를 나열하는데, 동력이 연결된 바퀴는 A, B, C로 시작하는 알파벳으로 적고, 그렇지 않은 바퀴는 아라비아 숫자로 적는다.

예를 들어, 아래의 8200호대 전기 기관차의 차륜을 표기하면 Bo-Bo이다. (보다시피 전후 대칭인 것도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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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라고 적힌 걸 보니, 한 대차당 바퀴가 두 개 있고 각 바퀴에 모두 동력이 전달된다는 뜻이다. 이 기관차 하나만을 자동차 같은 차량에다 비유한다면 진짜 4WD급인 셈이다.
B 다음에 붙은 o는 그 구동축이 동력원이 내연 기관 같은 다른 엔진이 아니라 전기 모터임을 뜻한다. 순수 전기 기관차뿐만이 아니라 디젤 전기 기관차의 구동축도 결국 전기 모터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o가 붙는다.

사실, 8200호대 전기 기관차는 차륜이 한 레일당 총 4개로 적은 편이다. 가볍고 접지력이 낮은 것에 비해서 출력만 너무 강하다 보니, 이 기관차는 오르막에서 바퀴가 헛도는 공전 현상이 종종 발생했다고 한다.
8000호대 전기 기관차는 Bo-Bo-Bo이며, 특대형 디젤 기관차는 Co-Co로 6개이다. 최근에 도입되고 있는 8500호대 신규 전기 기관차 역시 이 추세게 맞추어 Co-Co로 돌아갔다.

오늘날의 디젤이나 전기 기관차는 차륜이 비교적 규칙적이고 배치 방식이 그렇게까지 다양하지는 않기 때문에 조합이 기껏 저 정도밖에 안 된다. 다양한 차륜의 종결자는 역시 증기 기관차였다.
얘는 엔진 내부에서 전문적인 동력비 조절 장치를 갖추고 있지 않은 원시적인 구조이기 때문에 바퀴의 개수와 크기가 기관차의 출력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다. 그래서 여객용 기관차는 구동축이 걸리는 바퀴를 크게 하여 좀 더 빨리 달릴 수 있게 했고, 반대로 화물용 기관차는 작은 바퀴를 여러 개 달아서 속도 대신 토크(견인력)를 크게 했다.

19세기에 앞바퀴가 엄청 큼직한 자전거가 잠시 등장했던 것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때는 체인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지 않아서 두발자전거도 세발자전거처럼 페달이 앞바퀴에 곧장 연결되어 있었으며 앞바퀴가 구동축이었다.
그리고 바퀴를 크게 하는 게 오늘날로 치면 고단 기어를 써서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접지면의 바퀴는 더 많이 돌게 하기 때문에, 속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 물론 그만큼 페달을 밟는 데 힘은 많이 들겠지만 말이다.

이렇듯, 철도에는 장폐단· 단폐단 같은 미처 생각도 못 했던 특성 구분이 존재한다는 걸 우리는 알 수 있었다.
비행기의 랜딩 기어 바퀴의 배치도 이런 표기법으로 기술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지?

다만, 랜딩 기어 바퀴에는 구동축 같은 건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반대로 철도 차량은 비행기나 트럭의 바퀴처럼 바퀴가 안쪽으로 두 겹이 배치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고려할 점이다. 궤도를 구성하는 한 쌍의 레일의 안쪽에 또 차륜을 얹을 레일이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무슨 복수의 궤간을 지원하도록 특수하게 설계된 선로가 아닌 이상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9/06 08:34 2013/09/06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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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철도의 집전 장치

전기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은 아니고, 훌륭한 동력 공급원이며 매력적인 에너지이다. 그러나 생산과 동시에 광속으로 흘러가 버린다는 특성상, 전기는 여느 물리적인 연료와는 달리 저장과 축적이 어렵다는 게 난감한 점이다. 획기적인 장거리 무선 송전 기술이라도 개발되지 않는 한, 전기로 움직이는 교통수단에다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은 다음 세 시나리오 중 하나로 귀착될 것이다.

  1. 자기가 전력을 직접 생산해서 쓴다: 이건 뭐 원자력 잠수함에서나 가능한 일이니 제낀다. 디젤 전기 기관차 같은 경우도 응당 논외로 하고.
  2. 전적으로 배터리로부터 공급받는다: 무겁고 비싼 배터리의 충전 용량과 충전 시간, 그리고 수명 같은 여러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다. 게다가 배터리는 충· 방전을 거듭할수록 용량이 하락하기 때문에 교체가 필요한 소모품이다. 그래서 순수 배터리 기반 전기 자동차는 단거리나 소형 교통수단에 머물러 있고, 하이브리드는 반대로 무게와 가격 문제 때문에 중형급 이상의 고급차에나 적용되고 있다.
  3. 전차선으로부터 공급받는다: 철도는 그나마 이게 가능해서 다행이다. 아니면 딱 전차선이 놓인 노선만 달리는 시내버스 정도나 말이다.

그래서 3번에 속하는 전기 철도 차량의 경우, 차량의 일정 부분이 전차선과 접촉하면서 끊임없이 전기를 공급받아야 한다. 가장 무난한 방식은 전차선을 선로의 위에다 달고, 열차는 천장에 달린 팬터그래프가 그 전차선과 접촉하여 전기를 받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어떤 철도가 전철화되면 선로 주변엔 일정 간격으로 어마어마한 개수의 전봇대가 세워지고 빨랫줄마냥 전깃줄이 선로를 따라 주렁주렁 달린다. 전철화는 아무래도 주변 미관에는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없다. 무슨 지중화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전철화 작업에는 초기에 굉장히 많은 시설 부설 비용이 들기 때문에, 초기 투자 비용을 능가하는 이익이 날 거라는 확신이 설 정도로 장사가 잘 되는 노선만을 선별하여 전철화를 해야 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팬터그래프 집전 방식이 최초로 쓰인 것은 아니다. 전차선을 열차의 위에다 설치하는 게 아니라 아래의 선로에다 같이 설치하는 방식이 먼저 쓰였다. 일명 제3궤조 집전식.

여기서 용어 설명을 좀 하겠다.
'궤조'란, 열차 하나가 다닐 수 있는 철길을 구성하는 길다란 선 모양의 쇳덩어리 하나를 가리킨다.
이 궤조가 특정 궤간을 유지하여 평행하게 둘 깔리면 '궤도'가 된다. 열차가 궤도를 벗어나는 사고를 일으키면 탈선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모노레일은 궤도가 단 하나의 궤조로만 구성된 교통수단이다.
끝으로, 노반이 다져지고 침목도 깔리고 열차가 실제로 달릴 수 있는 형태로 궤도가 놓인 철도 시설 전체를 '선로'라고 부른다.

따라서 제3궤조라 함은, 한 궤도에 양 바퀴를 올려놓는 두 개의 궤조뿐만 아니라 전력을 공급하는 제3의 궤조가 하나 또 놓인다는 걸 일컫는다. 전기 철도라고 해서 무조건 치렁치렁 전차선과 전봇대가 달려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꽤 유명한 사진이다. 이것은 독일의 베르너 폰 지멘스가 발명한 세계 최초의 전기 기관차로, 1879년에 베를린 박람회에 출품하여 선보인 모습이다.
좌우로 총 6명의 승객이 앉은 객차가 3개(= 총 18명) 편성되었으니, 영락없는 놀이공원용 꼬마열차 크기이다. 궤간은 겨우 490mm로 일본 케이프 궤간의 절반, 표준궤의 1/3 규모에 불과하다. 박람회장 내부에 설치된 시험선은 300m 남짓한 길이였다고 한다.

규모가 워낙 작기 때문에 혹시 그냥 배터리로 달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아니고, 그 작은 선로의 중앙에 직류 150V짜리 제3궤조가 있었다. (오늘날 지하철이 사용하는 1500V가 아님! 0이 하나 빠졌다. 그냥 가정용 전기 콘센트와 비슷한 규모의 전압.)
기관차는 3마력짜리 전동기로 그냥 사람이 살짝 빨리 걷는 속도인 시속 6km를 냈다고 한다. 단, 객차를 끌지 않고 기관차만 혼자 달릴 때는 그 두 배의 속도도 가능했다고.

제3궤조 집전식은 선로 주변의 미관을 해치지 않으며 시설 부설 비용이 저렴하다. 차량의 위에 치렁치렁거리는 주변 시설이 없으니 특히 지하철의 경우, 딱 열차 하나만 간신히 지나갈 만치 터널을 작게 뚫어도 된다는 큰 장점이 있다. 건설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극단적으로 작은 터널은, 팬터그래프 집전 방식을 기준으로 건설된 지하철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위의 사진은 세계에서 최초로 건설된 지하철인 런던 지하철이다. 런던이야 제3으로도 모자라서 제4궤조라는 특이한 집전 방식까지 독자적으로 개발해서 쓰는 동네이다만, 얘네들뿐만 아니라 고무 타이어로 유명한 파리 지하철도 제3궤조요, 일본 도쿄의 지하철도 초창기에 개통한 두 노선인 '긴자'(1927) 선과 '마루노우치'(1954) 선은 직류 600V 제3궤조 집전식이다. 그러니 이들 지하철이 다니는 곳은 선로 주변에 전차선이 보이지 않는다.

전차선을 차량 아래의 선로에다 또 하나의 궤조 형태로 설치하는 방식은 저렴하고 미관에 좋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단점도 만만찮아서 선로에 사람이나 이물질이 떨어지면 안전이 굉장히 위협받게 된다. 또한 선로 분기나 교차가 발생하는 지점에서 전력을 공급해 주기 어려우며, 건널목 같은 데는 아예 절연을 시켜 줘야 한다. 선로가 침수되거나 결빙됐을 때도 골치가 더 아파지는 건 덤이다. (작년 겨울에 의정부 경전철이 운행 멈춘 것 기억하시는지?)

물론, 바닥에 놓인 전차선의 위에다 덮개를 씌워서 제3궤조를 사람이 밟는 것 정도로는 감전이 되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는 다 있다. 하지만 그 경우 열차의 입장에서 집전 설비가 더 복잡해지고 유지 비용이 증가하는 건 불가피하며, 이런 한계로 인해 제3궤조 방식 전철은 고속화가 좀 어렵다. 영국에서 있는 수단 없는 방법을 다 동원하여 시속 160~170km 정도까지 달려 본 게 최고 한계라고 한다.

게다가 제3궤조로는 직류 수백 V, 혹은 정말 많아야 1000몇백 V 정도까지는 보내도, 이런 방식으로 수만 V에 달하는 교류 전기를 보내는 건 아무래도 위험하고 무리이다. 장거리 철도로 쓰기에는 전력 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3궤조 집전 방식은 고속철 내지 장거리 간선용으로는 쓰이지 않으며, 끽해야 광역전철이고 지하철, 혹은 아예 저비용 경전철용으로 용도가 굳어져 가는 추세이다.
롯데월드에 가 보니 범퍼카가 천장을 향하는 집전봉이 달려 있지 않고 바닥으로부터 전기를 공급받는다는데, 이게 개념적으로는 제3궤조식으로 바뀐 셈이다. 하루 종일 눈 코 뜰 새 없이 움직여야 하는 카에 배터리가 있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공중에다 전차선을 따로 부설하는 방식도 사실 역사가 길며, 우리나라만 해도 그 기원을 찾자면 서울에 노면전차가 다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옛날에는 전차선으로부터 전기를 끌어 오기 위해 '집전봉'(trolley pole)이라는 막대가 쓰였다. 이건 점과 점을 일치시켜 접촉해야 했기 때문에 전차선이 레일과 조금만 어긋나 있어도 전기 공급이 끊어지기 쉬웠으며, 특히 한 상태로 차량이 전진과 후진을 동시에 할 수 없었고 고속 주행도 당연히 어려웠다.

그래서 접촉면을 점이 아니라 전차선과 수직 방향인 선으로 바꿔, 선의 아무 지점에나 전차선이 닿아도 집전이 가능하게 한 뷔겔(bow collector)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것도 전차선의 높이 변화라든가 주행 방향에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어서 스프링이 달린 팬터그래프 집전 방식이 발명되었으며, 이것으로 오늘날의 신칸센이나 KTX 같은 고속열차가 달리고 있다.

뷔겔과 팬터그래프의 차이는 간단하다. 전자는 열차 지붕에서 전차선까지 닿는 데 꺾이지 않는 막대기 하나가 쓰이지만, 후자는 사람의 팔처럼 한 번 꺾이는 막대기가 쓰인다.

앞으로 전기 철도를 구경할 일이 있으면 집전 장치가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도록 하자.

Posted by 사무엘

2013/06/03 08:37 2013/06/03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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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좌석 배당 알고리즘

열차의 승차권을 구입하면 좌석은 어떤 식으로 배당될까?
객차 하나당 좌석은 차량에 따라 60~70개 정도가 있으며, 열차 한 편성은 일반실만 생각하더라도 최하 4량부터 시작하고 KTX의 경우 거의 15량에 가깝다. 수백 개의 좌석들은 어떤 순서와 원칙대로 승객에게 팔려 나갈까?

난 철덕후로서 그 알고리즘이 예전부터 굉장히 궁금했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은가?

버스 정도면 그냥 아무렇게나 랜덤으로 배당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우등 고속버스는 가장 쉽다. 승차 정원부터가 30명이 채 안 되는 소규모인 데다, 좌석이 구조적으로 2개짜리와 1개짜리로 나뉘어 있으니 말이다.

단독 승객에게는 진행 방향 기준으로 오른쪽의 단독 좌석부터 먼저 배당해 주고, 그게 매진되거나 2인 승객이 있으면 2인 좌석을 준다. 상석인 맨 앞자리는 약간 나중에 팔리도록 다른 가중치를 부여하고, 반대로 최악의 자리인 맨 뒷자리는 최하위 우선순위로 팔리게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열차는 단순하게만 좌석을 배당해서는 대략 곤란하다.
1부터 n호차까지, 그리고 진짜 무식하게 1번부터 m호석까지 앞에서 뒤로 순서대로 꽉꽉 승객을 채워 넣어서 뒤의 객차는 텅 빈 채로 달리게 할 리는 없을 테고..

그렇다고 좌석을(특히 단독 승객) 완전 랜덤으로만 여기저기 들쭉날쭉으로 배당하면 좌석의 단편화(fragmentation)가 너무 심해진다. 그래서 승객이 얼마 타지도 않은 상태인데 이따금씩 타는 2인 이상의 다수 승객은 이어진 좌석을 못 구해서 서로 찢어져서 앉아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결국 본인이 추측하기로는 열차의 좌석 배당은 저 양 극단의 중간을 절충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 같다.
두세 개의 객차를 묶음으로 나눠서 한 묶음 안에서 좌석을 무작위로 배당한 뒤, 그 묶음의 좌석이 다 매진되면 다음 묶음으로 간다. 각 묶음은 1~3호차, 4~6호차, 7~9호차 같은 규칙으로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1, 4, 7호차와 2, 5, 8호차, 3, 6, 9호차 같은 규칙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각 객차 안에서는 전체의 50~60% 정도는 단독 승객이 무작위로 띄엄띄엄 앉을 수 있게 배려한다. 즉, 2개짜리 좌석이라도 한 자리에 단독 승객이 있으면 거기는 일단 건너뛰고 다른 빈 자리를 찾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머지 자리는 가능한 한 2인 승객이 한꺼번에 찜할 수 있게 비워 두며, 한 객차의 좌석의 10~20% 정도는 마치 KTX 동반석처럼 4인 가족이 연속해서 앉을 수 있게, 가능한 한 1~2인 승객에게 금세 팔리지 않도록 비워 둔다.

단독 승객의 경우 창측 좌석이 내측 좌석보다 먼저 팔리게 하는 건 기본이다. 또한 열차에서는 출입문과 가까운 맨 앞이나 맨 뒤 좌석이 '안 좋은 자리'이므로 이것 역시 다른 좌석이 모두 팔린 뒤에 나중에 팔리게 해야 할 것이다.
단독 승객용 좌석과 2인 이상 승객용 좌석 영역을 정하는 것 역시 '엿장수 마음대로' 무작위로 하면 되며, 그 비율 역시 평소에 승차권이 팔리는 단위 통계를 근거로 합리적으로 정하면 될 것이다.

저런 균형적인 요소에 덧붙여 환승 동선도 고려 대상이 된다.
국내의 예를 들면 KTX 천안아산 역과 장항선 아산 역은 남쪽 끝에서 만난다. 그리고 KTX는 한 편성이 무려 400m가 약간 안 되는 매우 긴 열차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부선 KTX를 타다가 천안아산 역에서 장항선으로 환승하는 승객은 부산 방면(하행) 열차의 경우 최대한 앞쪽 객차로 좌석이 배당되고, 서울 방면 열차는 뒤쪽 객차로 좌석이 배당된다. 지하철에서 환승을 빨리 할 수 있는 객차의 위치와 정확히 같은 개념이며, 한국 철도도 그 정도 센스는 이미 갖추고 있다.

이 정도면 내가 보기에 열차 좌석 배당 전략을 짜는 건, 마치 열차 시각표를 짜는 것에 필적하는 철도 영업 기술의 결정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실성 있는 열차 운행 시각표를 짜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철도 인프라와 지형 특성, 차량 제원, 승객 패턴 등의 알토란 같은 영업 기밀이 총동원되어야 한다. 이런 걸 계획하는 건 인원을 더 투입한다고 신속하게 되는 게 아니며, 핵심 똘똘이 인력 한두 명이 다 도맡아 한다.

좌석 배당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말이다. 철덕이라면 반드시 정복해야 하는 분야 중 하나 되시겠다.
비행기는 무게 배분이(한쪽에만 승객 무게가 지나치게 쏠리지 않게) 좌석 배당에 감안되는 요인이라고 하는데, 철도는 무게 배분 걱정은 할 필요가 없는 대신 길다는 특성상 다른 변수가 존재하는 셈이다.

자, 여기까지만 글을 쓰려고 했는데, 빈 좌석에다 승객을 일정 규칙대로 채워 넣는 과정을 생각하자니 컴퓨터그래픽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알고리즘 분야가 문득 떠오르더라.
바로 디더링이다.

디더링은 적은 수의 색깔을 섞어서 더 화려한 색깔을 아쉬운 대로 표현하는 기법이다. 색을 물리적으로 섞을 수는 없으니 결국 서로 다른 색깔을 번갈아가며 늘어놔야 하는데, 한 색깔이 뭉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색깔들끼리 최대한 고르게 퍼지도록 픽셀을 배열해야 한다.

본인은 과거에 Windows 3.x 시절에 그림판에서 임의의 RGB 값을 주면 그 색을 16컬러만으로 디더링하여 표현하는 걸 보고 무척 신기해했었다. 가령, 흑에서 백으로 단계를 증가시킬 때, 검은색에서 흰색 점이 차츰 늘어나는 순서가 어떻게 정해지는지가 무척 궁금했다.

그 규칙을 디더링에서 threshold matrix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그래픽 프로그램에서는 8*8짜리를 사용한다. (출처는 위키백과) 저기서 1부터 16까지의 점을 순서대로 채우면 25% 음영이 그려지고, 32까지 채우면 흑백이 딱 반반씩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50% 음영이 되는 식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처음에는 4픽셀 간격으로 띄엄띄엄 점을 그리고, 나중에는 그 사이의 4픽셀 간격을 채우는 식으로, 점들이 뭉치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최대한 흩어져서 퍼져 있게 한다. 임의의 격자 크기가 주어졌을 때 threshold matrix를 생성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있을 법해 보이는데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마방진도 아니고 말이다.

더 나아가 임의의 색을 16컬러 디더링 패턴으로 표현해 내는 프로그램을 직접 짜 보면 어떨까? 주어진 색을 가장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2색 또는 3색 조합을 구한 뒤, 그 비율만큼 threshold matrix를 각각의 색으로 채우면 될 것이다. 색조합을 구하는 것은 미지수의 개수가 식의 개수보다 더 많아서 답이 하나로 딱 떨어지지 않는 부등식이 될 터이니, LP(선형 계획법) 같은 계산 기법이 동원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threshold matrix만을 정석대로 적용하면 ordered dithering이 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그림이 칙칙하고 보기가 안 좋기 때문에, 디더링된 색깔의 픽셀이 인접 픽셀에 시각적으로 끼치는 영향을 감안하여(error diffusion) 더 정교하게 디더링을 수행하는 알고리즘이 실생활에서 쓰인다. 더 깊게 들어가는 건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므로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겠다.

뜬금없이 디더링 얘기를 꺼낸 이유는.. 저렇게 디더링 점을 찍어 나가는 게 마치 열차 좌석을 배당하는 것과 비슷한 심상이 느껴져서이다. 열차 좌석의 점유 여부를 흑백 픽셀로 표현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픽셀들의 상태를 표시하는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한쪽은 검은 색이 듬성듬성 있고, 한쪽은 검은 색이나 흰 색이 좀 연속해서 있겠지 아마?

철도의 좌석 배당 알고리즘과 래스터 그래픽의 디더링 알고리즘은 서로 따로 생각하고 있었던 주제인데 이렇게 한 글로 연결이 됐다. 마치 예전에 내가 열차의 급행 등급과 셸 정렬을 한데 묶어서 글을 썼듯이 말이다.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3/04/08 08:18 2013/04/08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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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지하철역과 주차장

지하철은 역에 접근하는 여러 교통수단들과 어떤 방식으로 연계를 하고 있을까?

가장 먼저 도보는 trivial, self-explanatory이다. 설명이 더 필요하지 않다.
버스는 교통 카드를 이용할 경우 잘 알다시피 환승 할인이 된다(30분 이내에 환승시. 그리고 최대 5회까지). 외국에서도 서울의 대중교통 요금 시스템을 배우러 올 정도로 시스템이 합리적으로 잘 바뀌었다.

그리고 자전거가 있다. 저탄소 녹색 성장이라는 구호 아래 나라에서 나름 권장은 많이 한다. 역 주변에 자전거 주차대를 많이 설치해 놓았으며, 일부 역은 전동차에다 자전거 휴대도 가능하게 계단에 경사로를 설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도로에서 자전거를 몰기는 위험한 곳이 많고, 자전거를 휴대하여 승차하는 것도 마냥 쉽지만은 않다는 한계가 있다. 자전거는 스마트폰만큼이나 도난에도 취약한 편이고 말이다. (공공 자전거 주차대에는 CCTV 정도는 장착해 둬야 할 듯.)

허나, 지하철이 대중교통으로서 진짜로 자가용의 수요를 흡수하려면 버스나 자전거 같은 것뿐만 아니라 역설적으로 승용차와의 연계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딴 게 필요한 게 아니라 주차 시설 말이다. 버스 이용자가 지하철로 이동하는 것보다는 자가용 이용자가 지하철로 전향하는 게 훨씬 더 성공적인 현상이지 않은가? 교회로 치면 불신자가 교회로 새로 유입되어야지, 한 교회의 기존 신자를 다른 교회로 옮기기만 하는 제로썸 게임은 성장에 한계가 있단 말이다.

서울 중심부보다는 변두리 외곽의 역들이 이런 식으로 승용차를 맞이할 채비를 더욱 갖출 필요가 있다. 대중교통이 열악한 경기도 외곽에서 서울 근교의 전철역까지는 승용차를 타고, 거기서 서울 도심까지는 지하철을 타는 식의 통근 패턴이 지금보다 더 활발하게 정착되어야 한다.

그 주차장은 기본적으로 유료이지만 지하철 환승객에게는 주차료를 아주 크게 깎아 주는 식으로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굳이 좁아 터진 서울 시내까지 스트레스 받으면서 차를 직접 끌고 가느니, 그냥 여기에 세워 놓고 주차료+지하철비가 시간과 비용면에서 훨씬 더 수지가 맞게끔 장점이 와 닿을 수 있어야 한다.

복정 역은 외곽+2개 노선 환승+주차장이라는 세 변수를 두루 갖춘 좋은 사례이다. 주변이 허허벌판이다 보니 주차장은 그냥 평지에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건물의 주차장은 보통 지하에 있는 편이고 지하철은 승강장도 지하에 있는데, 두 시설 다 지하에다 넣는 게 승객의 동선면에서 더욱 유리할 것이다. 이미 주차장 없이 완공되어 버린 기존역들은 어쩔 수 없고.

그러니 주차장이 갖춰진 지하철역은 사람이 드나드는 출입구뿐만 아니라 자동차가 드나드는 출입구도 어딘가에 생기게 된다. 개화산(5호선), 잠실(8호선. 2호선 말고), 동묘앞(1호선)처럼 인근에 지하철 관련 건물이 따로 있는 역들은 바로 그 건물의 지하에 주차장을 갖추는 것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지하 승강장 + 지하 주차장이 갖춰진 역은 내가 알기로 공항 철도 서울 역, 그리고 신분당선의 판교 역 정도이다. 특히 판교의 경우 아직 지어지지 않은 건물의 내부에 있는 역으로 형태가 변모할 예정이니 지하 주차장이 미리 건설되는 게 당연한 이치이다. 상업 시설이 같이 갖춰져 있는 민자 역사들 역시 비슷한 이유로 인해 주차장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내 경험상 성남의 8호선 수진 역은 출입구 바로 옆에 노상 공영 주차장이 있어서 본인 역시 몇 번 편리하게 이용한 적이 있다. 관리 요원이 퇴근한 저녁과 심야 시간대에는 무료 개방이기도 해서 더욱 좋았다.
다만, 도심 지하철이 아닌 광역전철들은 사정이 좀 낫다. 특히 지상 고가역들은 고가 아래가 주차장으로 개방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경춘선 갈매 역이 좋은 예. 물론 무료이다.

중앙선 전철역들도 대체로 역 주변에 무료 주차장이 있다. 최근에는 서울 강북 최동단에 있는 양원 역의 주차장을 유용하게 이용했다. 장애인 차량 주차 구역만 안 건드리면 된다. 물론, 무료이기 때문에 자리가 언제나 있다는 보장은 못 한다. 운빨이 작용해야 된다.

공항 철도도 역마다 주차 시설을 갖추고 있다. 유료이더라도 요금이 공항 주차장보다 무척 저렴하기 때문에, 영종도를 내 기름값과 톨비를 들여서 자가용으로 직접 힘들게 건너느니, 차라리 차를 역에다 두고 공항까지는 열차로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절로 들게 만든다. 이 전략에 대해서는 교통 평론가 겸 철덕인 한 우진 님께서 정리해 놓은 게 있으니 참고하면 되겠다.

영종도 공항 화물 터미널 역의 근처에는 소규모 '무료 주차장'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무료인 만큼 관리인도 없고, 차량 파손 및 도난 우려도 감수해야 한다고.

이렇듯, 현재 전철역들의 주차 편의는 역마다 케바케인 편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교통수단들이 힘을 합쳐서 파이의 크기를 키우고 시너지 효과를 내려면 철도역들도 주차에 대한 배려를 좀 더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서울 2기 지하철들은 내부가 깊어서 공간이 많아서 사업 아이템이랍시고 물품 보관 서비스 같은 것까지 한다는데, 자전거나 자동차 주차에 대한 배려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Posted by 사무엘

2013/03/19 19:36 2013/03/19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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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단식 승강장

고속버스나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 보면 행선지별로 여러 개의 플랫폼이 있다. 승객은 자기 목적지에 해당하는 플랫폼까지 걸어서 이동한 후, 그 플랫폼에 딱 90도 수직으로 들어와 있는 버스에 탑승한다. 철도역과는 달리, 버스 터미널은 버스를 타기 위해서 계단을 오르내릴 필요가 없어서 좋다.

그런데 철도역 중에도 아주 일부는 버스 터미널처럼 생긴 게 있다. 철도역이 근본적으로 계단이 존재하는 이유는 선로는 역의 앞뒤를 끝없이 관통하고 있는데 거기를 수직으로 교차하는 게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로의 한쪽이 막혀서 더 진행하지 않는 시종착역이라면, 선로와 접객 시설이 굳이 교차하지 않아도 되므로 계단이나 육교나 지하도 따위가 없이 ‘바로타’를 실현할 수 있다.

이런 형태의 열차 승강장을 ‘두단식 승강장’이라고 한다. 이것은 어떤 노선의 시종착역이 가질 수 있는 특성 중 하나이다. 이건 물론 상대식이나 섬식 같은 선로와 승강장 배치 방식과는 약간 다른 개념이다. 이런 역에서는 승강장의 한쪽 길이에 맞춰서 선로도 정확하게 끝이 나 버리고, 선로가 끊어진 쪽의 공간을 이용해 승객이 계단 없이 다른 쪽 플랫폼을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두단식 승강장 내지 선로는 승객에게는 편하지만 열차 운영자의 관점에서는 그리 좋은 디자인이 아니다.
우리나라 지하철들의 시종착역을 보면, 종점이라고 해서 선로가 곧바로 끝나는 구조가 아니다. 굳이 연장 계획이 수립된 노선이 아니라 할지라도 앞으로 더 진행해서 열차 한 편성 정도가 더 들어갈 수는 있는 공간이 있다. (요즘은 스크린도어 때문에 앞을 들여다보기가 어렵긴 하지만 말이다)

이 공간은 괜히 만들어 놓은 게 아니며, ‘인상선’이라고 한다. 한 방향(가령 상행)에서 운행을 마친 열차는 더 전진하여 인상선으로 진입하여 운행 시격을 맞추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가, 시간이 되면 거기서 맞은편 선로로 분기하여 새로 운행을 시작한다.

이런 인상선이 없는 노선이라면, 열차는 그 종착역에 진입하기 전에 미리 진행 방향을 바꿔서 들어가야 한다. 시종착 열차를 받아들이는 회차 용량이 감소하며, 인상선 여유 공간이 없기 때문에 열차는 더욱 조심스럽고 천천히 승강장에 진입해야 한다. 조금만 승강장을 벗어나도(overrun) 탈선이 발생하니까.

이런 이유로 인해 일반적으로 철도를 건설할 때는, 비록 시종착역이라 해도 인상선을 확보해 놓지, 선로를 승강장 길이에 맞춰 칼같이 끊지는 않는 게 관행이다. 특히 일본이나 영국처럼 역사 깊은 철도 종주국이 아니라 한 박자 뒤에 철도를 도입한 한국에서는 두단식 승강장을 보기가 대단히 어렵다.

현재 국내에는 다음 역들이 두단식 승강장이다. 왠지 다들 서쪽에 몰려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목포, 여수엑스포: 다들 영남이 아닌 서쪽 호남 지방에 있는 호남선과 전라선의 종점이며, 목포의 경우 우리나라 최서단에 있는 역이다. 여수 역은 처음엔 안 이랬다가 리모델링을 거치면서 두단식이 되었다.

인천: 지하철 매니아들에게는 진작부터 잘 알려진 유명한 두단식 승강장이다. 바다와 항구가 코앞이니 수도권 서쪽으로 최고 끝임.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개화(서울 지하철 9호선): 김포공항까지 제치고 서울에서 최고 서쪽에 있는 지하철역이다. 서울 시내에서 스크린도어가 없는 유일한 지하철역인 건 덤. 두단식인 데다 역의 번호도 통상적인 910이나 하다못해 909도 아니고, 대놓고 901로 지정되어, 9호선 개화 역 쪽은 연장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인증했다.

지하철 덕후라면 잘 알겠지만 1990년대 중후반엔 서울 지하철 2호선이 당산 철교를 부수고 재건하느라 고리가 잠시 끊어졌으며, 지상 고가이던 당산 역이 잠시 두단식 승강장으로 바뀐 적이 있었다. 이때도 당산 역은 본선의 역 중에서는 상당히 서쪽 끝자락에 있었다는 게 흥미롭다. 한국 철도에서 두단식 승강장은 여러 모로 서쪽과 인연이 있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2/06/19 08:25 2012/06/19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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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건널목 이야기

철도와 일반 도로가 평면 교차하는 곳에는 잘 알다시피 건널목이라는 게 설치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철도 차량은 어지간한 육상 자동차하고는 잽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질량을 갖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억소리나는 운동 에너지를 자랑한다. 그렇잖아도 이렇게 무거운 데다 쇠로 된 바퀴로 쇠로 된 길을 달리기 때문에 철도 차량은 가감속이 무진장 더디다. 새마을호가 비상 제동 수준의 강한 제동을 걸어야 시속 100km 상태에서 무려 600m를 더 진행한 후에야 완전히 멈춰 설 수 있을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열차가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주변의 다른 사람이나 자동차들이 알아서 피해야 한다. 열차는 장애물 앞에서 딱 멈춰 설 수가 없다.
그러니 건널목에서는 열차의 통과 우선순위가 언제나 갑이다. 사람과 자동차들이 기다리지, 열차가 잠시 멈췄다가 사람과 자동차들을 피해 다니는 일은 없다.

건널목에서 충돌 사고가 났다 하면 육중한 열차는 하나도 탈이 없지만 자동차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개발살이 난 채로 수십~100수십 미터를 질질 끌려가며, 사람이 치이기라도 하면 즉시 끔살 당한다. 철도 차량 객차 내부에 안전벨트가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와는 달리, 사람이 밖으로 튕겨져 나갈 정도로 급정거를 할 일이 없기 때문.

물론, 속도를 주체하질 못한다는 특성이 장점으로만 작용하는 건 아닌지라, 장애물과 충돌한 열차가 그래도 뒷부분이 도무지 멈춰 서질 못한 나머지 탈선해서 앞 객차를 타넘고 오르는 일이라도 생기면, 철도로도 대형 인명 참사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건널목에도 세 가지 모델이 있어서 비교적 통행량이 많은 건널목은 표지판+노란 색의 차단기+경보기 3콤보가 모두 갖춰져 있지만, 잉여스러운 장소에는 몇몇 요소가 생략된 건널목도 있다. 자기 폐색 구간에 열차가 바퀴가 닿은 게 감지되면 띵동~ 띵동~ 소리와 함께 차단기가 내려온다. 그리고 열차가 다 지나가면 다시 차단기는 올라간다.

우리나라의 교통 관련법에 의하면 철길과 도로의 교차는 45도보다 작은 각도로 하지는 않게 되어 있다. 대부분이 90도 수직이지만, 그래도 시골 도로를 보면 예각 교차도 그럭저럭 볼 수 있다. 건널목 사고를 줄이기 위해 요즘은 많은 건널목이 입체화되었으며, 특히 오늘날 새로 건설하는 철도는 건널목을 전혀에 가깝게 만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원선은 서빙고 역 일대와 회기-외대앞 역 사이에 일반열차도 아닌 전동차가 수시로 다니는 선로에 건널목이 있으니 안타까운 현실이다. 어서 입체화가 되어야 할 것이다.

본인은 어렸을 때 주변에 중앙선 철길이 있는 지역에서 자랐다. 철길이 지역을 심리적으로 양분하는 효과는 무척 컸다. 옛날에 나라 분위기가 더 살벌하던 시절에는 ‘철길로 다니지 맙시다’와 더불어, 레일 위에다 돌을 올려 놓아서 열차 운행을 고의로 방해하거나 열차를 전복시키는 자는 무슨무슨 형에 처해진다는 경고문도 꼭 붙어 있었다.

우리나라에 발생했던 상당히 참혹한 건널목 사고로 철덕이라면 1970년의 장항선 모산 수학여행 참사를 기억할 것이다. 그건 아주 극단적인 예이다.
2002년 5월 1일에는 잘 알다시피 전라선 상행 새마을호에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괴이한 3콤보 건널목 인명 사고가 난 적이 있다.

오늘날에도 전국에서 건널목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연간 10~20여 명은 있는 모양이다. 이것도 물론 2, 30여 년 전의 100수십여 명에 비해서는 매우 크게 감소한 것이다.

비교적 최근인 2011년 7월 30일에는 좀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났다. KTX가 건널목에서 제네시스 승용차와 충돌하여 여성 운전자가 목숨을 잃었는데.. 아니, 고속선에서 시속 300km로 질주하고 있을 KTX가 호남선 구간도 아닌 무슨 연기군에서 웬 건널목 사고에 연루되는 게 가능한지 궁금할 것이다. 이 KTX는 대전-서울 구간을 기존선으로 달리는 녀석이었다.

건널목을 건너던 중에 차가 시동 꺼져 뻗은 것도 아니고, 자세한 경위를 들어 보니 정말 “아 씨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급이다. 차가 건널목을 통과하고 있던 도중에 차단기가 내려와 버렸다.;; 그래서 그 차는 철길에 갇혀 고립됐다. 타이밍 한번 정말 더럽다. ㄷㄷㄷㄷ

경부선은 복선이기 때문에 철길의 폭과 양쪽 건널목 사이의 간격이 단선보다 훨씬 더 크다. 그래서 이런 케이스가 가능했다. 복선 건널목이 단선 건널목보다 더욱 위험하다는 건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마치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하이패스가 인식되지 않아서 차단봉이 내려오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일단 통과는 해야 하듯, 이때도 차 범퍼로 차단기의 철길 안쪽면을 툭 치기만 하면 차단기는 다시 올라가게 돼 있다. 차단기는 위험을 알려서 사람을 살리려고 만들어진 장치이지 사람을 잡으려고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랬는데,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된 그 운전자는 당황하여 그대로 차를 세운 채 철길 위에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하다못해 밖으로 탈출하지도 않았다. 마치 자신이 철길 밖의 건널목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그냥 가만히 있었다. 열차가 알아서 정지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가 보다.

충돌 직전 몇 초 동안 KTX 열차가 비상 제동을 걸면서 필사적으로 경적을 빵빵 울릴 때 그분,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뒤 시밤쾅! 그 고급 승용차는 박살 난 채 전복되어 나뒹굴었다. 이건 뭐 스크린도어에 끼인 채로 열차가 출발해 버려서 사람이 죽은 것 같은 그런 기괴한 사고이다만, 더 근본적으로는 고인이 철도에 대해서 너무 무지하여 벌어진 참극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철도 당국은 사고의 원흉인 평면교차와 건널목을 없애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신호 받으면서 수시로 가다 서다 하기가 어려운 교통수단일수록 자기만의 독립된 길에서 쭉 가기만 하게 해 주는 게 당연히 유리하니까 말이다.

다만 철도가 너무 입체화만 되면 사람의 발이 철길과 직접 교감을 할 기회가 없어지니, 발을 어느 정도 뻗어야 표준궤 궤간인지 감을 익히기가 어렵다. 난 고향에 가면 철길 건널목에 도보로 들를 일이 있을 때 그거 연습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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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여담 하나.

<다리>(Bridge)라고 2003년에 체코에서 만들어진 단편 독립영화가 있다. 원제목은 Most인데, 이건 영어의 형용사/부사를 뜻하는 most가 아니라, 자기네 체코 어로 bridge라는 뜻이다. 스토리는 대략 이렇다.

어느 강에 철교가 놓여 있는데, 이게 배가 지나갈 때는 공간 확보하려고 다리를 들어올리게 돼 있다. 다시 말해 이 다리는 승강교이며, 자동차가 아니라 배와 열차 사이의 평면교차로이다.
신호 지시에 따라 다리를 올리고 내리는 관리자가 있고, 그에게는 어린 외아들이 있다. 그런데 어느 열차의 기관사가 적색 정지 신호를 못 본 채, 다리가 열려 있는 철교 구간으로 열차를 진입시키고 만다. 그러고 보니 이 열차는 가감속의 매우 힘든 증기 기관차이며, 영화의 배경은 20세기 초중반으로 보인다.
다리 관리실 근처에서 놀고 있던 아들은 멀리서 이 열차를 보고 황급히 놀라지만,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배경 소음 때문에 아버지는 상황 파악을 못 한다. 아들은 열차가 끊어진 다리로 더 진입을 못 하게 하려고 선로 쪽으로 달려가다가 잘못해서 다리의 부품에 끼이고 만다.
아버지는 그제서야 모든 상황을 파악한다. 지금이라도 다리를 황급히 내리면 열차를 아주 간신히 다리 건너편으로 통과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다리가 내려가면서 부품에 끼여 있던 아들이 끔살 당하게 된다. 그 반면, 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열차는 끊어진 선로 너머 강으로 추락하고 수백 명의 승객들이 죽거나 다친다.
이때 애 아버지는 눈물을 머금고 결국 승객들을 살리는 길을 택한다. 다리를 내리는 스위치를 누른 후 절규한다. 열차 안의 승객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심히 다리를 통과하는데, 예전에 굉장히 방탕하게 살던 한 여인만이, 이 일의 진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예전의 방탕한 생활을 딱 끊고 결혼도 하고 바른 생활로 돌아오더라는 내용.


이 영화는 기독교적인 메시지를 의도하고 만들어졌다. 그 다리 관리인이 자기 아들을 희생시켜서 수백 명의 승객들을 살렸듯이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도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셔서... 이하 생략이다.

영화 제작자의 의도는 알겠으나, 설정이 좀 억지스러운 면모가 있긴 하다. 오늘날 철도에 구비되어 있는 기본 중의 기본 시스템인 ATS 하나만 있어도 적색 신호를 무시하고 가는 열차는 얄짤없이 자동으로 멈춰 서게 된다. 하지만 저 때는 아예 증기 기관차가 다니던 시절이니 기관사의 시력과 재량이 철도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겠다.

요즘은 그런 원시적인 후진국형 철도 사고는 근무 기강이 빠질 대로 다 빠진 막장이거나, 진짜 철도 인프라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 곳에서나 난다.
아무튼 철도는 디테일을 알면 알수록 더욱 재미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2/05/27 08:24 2012/05/2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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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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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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