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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본인도 좀 흔치 않은 협동과정 대학원에 소속돼 있긴 하다만..
서울대에 있는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은 더 독특한 곳인 것 같다.

박사 졸업생 중에.. 문 중양 교수는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학부이지만 이쪽으로 전공을 완전히 바꿔서 현재는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물론 조선 및 한국의 과학사 쪽에 특화돼 있다. 국사 연구에도 이공계들이 좀 많이 와야 한다고 호소하던 허 성도 전 서울대 중문과 교수 같은 분이 좋아할 듯하다.

장 대익 교수는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학부인데 대학원을 가서는 진화생물학, 인지과학 이런 걸 쭉 파다가 어쨌든 역시 서울대 교수가 됐다. 다만 여느 교수들과는 달리 전공의 스펙트럼이 막 깊고 좁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분은 열렬한 다윈 매니아이고 창조과학의 맹렬 안티 저격수이기도 하다.;;

김 태호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 학부 졸업 후에 이 분야로 진로를 옮겼고, 현재는 전북대 교수 겸 '한국 과학 문명학 연구소'에 재직 중이다. 세벌식 자판 사용자이고, 작년 가을엔 연세대에서 무려 한글 기계화의 역사에 대해 강연도 했다.
강연 중 화면을 보니 직결식 글꼴도 잠시 나오던데.. 청중 중에 그 직결식 글꼴을 만든 사람도 있었다는 걸 과연 알았을지 궁금하다.

2. 멋있는 법조인

  • 한 문철: "예상할 수도 없었고 피할 수도 없었던 사고. 100대 0입니다!" (이 판정을 보험사 직원들이 싫어합니다)
  • 천 종호: "안 돼 안 바꿔 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 / 그럼 니 돈 주면 되지 왜 남의 돈을 뺏어 주...나!!! 공부만 잘하면 되나?"
  • 박 준영: 명대사 때문은 아니고.. 그야말로 한국판 엔자이 사건들을 전부 들춰 내서 피고인들의 누명을 벗겨 줬거나 그러려고 애쓰고 있구나.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 2007년의 수원 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 그리고 무기수 김 신혜 사건까지 다 동일 인물인 줄은 몰랐다.

그런데 글쎄, 아무리 사회 약자를 위해서 발벗고 일한다 해도, 변호사까지 돼서는 사무실 월세도 못 내고 파산에 스토리펀딩 운운하는 건 내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좀 언플 오바 같다. 선장이 자기 할 일 다했고 다른 선원과 승객들 다 대피시켰고, 자기도 충분히 구조되고 탈출할 수 있는데도.. 선장은 배와 함께 가라앉는다고 객기 부리는 것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데..
뭐 종합적인 평은 지켜봐야 할 일이고.

다만, 머리는 좋아서 사시까지 붙었는데 그 뒤로 사상은 이상해지고 맛이 가서 6· 25가 무슨 침인지 모른다거나, 자기 나라 정체성 부정과 적화 부역에 앞장서고 있는 이상한 법조인들과 그거 출신 정치인들은 하나도 멋있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아주 징그러운 괴물처럼 보인다.

3. 멋진 말들

싸움  관련

  • 빈 라덴을 용서하는 건 신이 할 일이다. 그러나 빈 라덴과 신의 만남을 주선하는 건 우리가 할 일이다. -- 미국 해병대 표어
  • 제군들은 조국을 위해 죽지 마라. 적군이 우리나라를 위해 죽게 만들어라. -- 조지 패튼 장군
  • 북한/베트남/쿠바를 폭격해서 석기 시대로 되돌려 놓겠다. -- 커티스 르 메이 장군
  • 적의 뇌를 먹어 삼켜라. 그렇게 힘의 근원을 취하라. -- 메이어 다간 (전 이스라엘 모사드 국장)
  • 나는 만년 전사다. 여러분도 전사가 되어라. -- 남 재준 (전 국정원장)

우주 개발 관련 인물

  • 세상에 불가능한 게 무엇인지를 말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어제의 꿈은 오늘의 희망이요, 내일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 로버트 고다드
  • 우리는 달에 갈 것입니다. 우리는 달에 갈 것입니다. 우리는 1960년대 안에 달에 갈 것이고, 다른 일들도 할 것입니다.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입니다. -- 케네디 대통령

케네디는 그렇다 치더라도, 옛날에 로버트 고다드도 이렇게 멋진 말을 남겼는 줄은 지금까지 몰랐다. 나이키 광고 카피보다 훨씬 더 고퀄이다.
게다가 저 말은 고다드가 액체 연료 로켓을 개발해서 유명인사 되고 떼돈 번 뒤, 풍요로운 노후를 보내면서.. 밥 로스 화가가 "참 쉽죠?" 이러듯이, 기자들이나 후학 앞에서 덕담이랍시고 지어낸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 말은 고다드가 1904년, 고등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덕분에 그 당시 관행이었던 졸업생 대표 고별 연설 때 나왔다..;; 질병 때문에 학교를 늦게 들어가서 동기들보다 나이가 두 살 정도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정말 후덜덜이다.
참고로 서 재필도 1889년에 미국에서 고등학교 졸업식 때 고별 연설을 한 바 있다. 공부 하나는 정말 겁나게 잘했는가 보다. 그리고 같은 고졸이어도 100년 전의 고졸과 지금의 학력 인플레 하에서의 고졸은 같은 레벨이 아니었을 거라는 게 실감이 간다.

물론 세상에는 엄연히 인간의 힘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도 있으며, "오로지 정신력만으로 까라면 까"가 많은 폐단과 부작용을 야기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노력만으로 신 앞에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해서 인간의 정상적인 지적 활동과 노력이 몽땅 쓸데없는 바보짓인 것도 절대 아니다. 최소한의 상식적인 분별력과 판단력이 있으면 21세기가 다 돼 가지고서 달 착륙 자작극이네 NASA 음모론 그딴 소리는 절대 나올 수 없다.

  • 아폴로 13 (1995): Hello, Houston. This is Odyssey. It's good to see you again.
  • 에어 포스 원 (1997): Liberty 2-4 is changing call signs. Liberty 2-4 is now Air Force One!
  • 라이터를 켜라 (2002): "열차가 부산역에 멈춰 섰다. 다시 반복한다. 열차가 부산역에 안전하게 멈춰 섰다."

다들 비슷한 형태의 결말부이긴 한데,
1이 제일 스케일 크고 감격스럽고 멋있고.. 2는 그냥 통쾌하고 정의 실현을 대리 만족한 정도이고, 3은... 좀 병맛스럽다.

4. 경찰에 대한 뻔한 이미지

법조인 다음으로 경찰을 살펴보면.. 영화에서 경찰이 묘사되는 모습을 보면 뭔가 판에 박힌 패턴이 있는 것 같다.
먼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꼭 나온다. <아저씨>에서는 차 태식에게 "이 아줌마 콧구멍에서 반점이 나왔어. 뭔 얘긴지 알아?"라고 열과 성의를 다해 심문을 하던 박 형사가 있으며,
<범죄도시>에서 '진실의 방'을 빤히 쳐다보던 피의자에게 "뭐 보노, 새꺄? xx 터쟈뿔라.."라고 일침을 놓는 오 동균 형사가 있다. 주연 못지않게 아주 웃겼다.

그리고 미국물의 경우, 경찰은 근무 중에 끼니를 때우기 위해 꼭 도넛을 먹고 있다. 주토피아에서 아주 잘 묘사돼 있지만 꼭 주토피아만 그런 건 아니다.
일본의 경우 도넛 역할을 하는 게 컵라면이라고 한다. 옛날에 강력 사건이 벌어져서 단체로 수색 작업에 나선 경찰들 모습이 매스컴을 탔는데.. "어, 그런데 저 경찰들이 먹고 있는 건 뭐야?" 이런 식으로 마케팅이 돼서 컵라면이 대박을 쳤다고 한다.

옛날에는 설거지를 해도 서양에서는 동물인 해면을, 동양에서는 식물인 수세미를 썼다고 하는데 문화권별로 재미있는 차이점이 보인다.

5. 한국, 일본, 미국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 군대를 일정 기간 강제로 의무적으로 다녀와야 하는 나라 vs
  • 국제법상 군대를 가질 수 없는 나라 (침략 전쟁, 해외 파병, 무기 수출 같은 거 할 수 없는 자위대만으로..)

한국과 미국의 차이는..

  • 이 좁아 터진 땅덩어리 하나 겨우 지켜 내느라(그것도.. 같은 언어 쓰는 명목상의 동족으로부터) 천신만고 겪은 나라, 육군이 비대한 나라 vs
  • 2차 대전, 6·25, 베트남전, 걸프전, 이라크전 등등 세계 방방곡곡 남의 나라의 평화를 지키느라 애쓴 자국 군인의 노고를 치하하는 나라, 해군이 비대한 나라

완전 극과 극이다.

6. 괴담과 도시전설

그러고 보니.. 내가 초딩 정도로 어렸던 시절엔 도대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이상한 괴담, 도시전설 같은 게 그리도 많이 나돌았다.
밤이 되면 학교 안의 무슨 동상· 석상이 살아 움직여서 책을 읽는다네, 눈에서 빛이 난다네 하는 거,
옛날에 조폐공사 사장의 딸 '김 민지' 양이 끔찍하게 유괴 살해 당해서 현행 동전 디자인에 그 아이의 족적이 곳곳에 들어갔네 어쩌네 하고.. ㅠㅠ

공포의 삐에로 인형의 섬뜩한 한 마디 "또 둘이네."라든가..
그러니 <공포특급>, <오싹오싹 공포체험> 이런 책도 인기가 많았다. 요즘은 국내에 암약 중인 "조선족 장기 적출단의 실체" 같은 게 괴담 역할을 대신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옛날에 관련 중국· 홍콩 영화가 인기를 끌기라도 했는지, '강시'라고 팔· 다리의 관절이 굽지를 않는 청나라 복장의 좀비? 드라큘라?에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 알게 된 걸까?
이놈한테 당하지 않으려면 숨을 쉬지 않고 꾹 참아야 된댄다. 쟤는 모기처럼 이산화탄소를 감지하는 능력이라도 있는 걸까?

끝으로, 초딩 시절에는 정말 몸서리칠 정도로 무서웠던 의료 통과의례가 두 차례 있었다. 하나는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포경수술이요, 다른 하나는 주사의 끝판왕 일명 '불주사'라고 불리는 결핵 예방 접종이다.
세월이 흘러 포경수술은 굳이 모든 애들이 반드시 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대세가 굳어져 가고 있다.

이거 원조는 유대인의 표적으로서 성경에서 당당히 언급되는 할례이다. 그런데 어느 미개한 곳에서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를 대상으로 소중한 부위에다가 무슨 짓을 하길래 거기에다가도 할례라는 말을 붙이고, 그러다 애 잡거나 성 불구로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불주사라는 용어 그 자체는 옛날에 물자가 부족해서 주사 바늘을 일회용으로 못 쓰고 알코올 램프 불꽃으로 소독해서 재활용하던 관행에서 유래되었다(흐음, 알코올 자체도 소독제인데..??). 하지만 주사 바늘은 사용 과정에서 바늘 끝이 미세하게 손상되고 뭉툭해져서 관통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굳이 위생과 감염 문제가 아니더라도 재사용해서 좋을 것은 전무하다. 마치 아날로그 신호나 JPG 그림이 열화되는 것처럼 성능이 떨어지게 된다.

내 기억으로 결핵 예방 접종(BCG)은 처음에 어깨가 아닌 팔뚝에 준비 주사를 놔 보고 며칠 뒤에 거기가 부풀어올랐는지의 여부에 따라 후속 접종을 하거나 안 했지 싶다.

엄청 옛날에 행해졌다고 전해지는 천연두 예방접종은 더 뜨겁고 따갑고 아팠는지 모르겠다만, 그 시절 얘기가 와전되고 과장되어.. 결핵 예방 접종까지도 무슨 담배빵을 지지기라도 하는 듯이 '불주사'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에게 극도의 공포심을 선사했던가 보다.

지금도 흉터가 남는 주사식 결핵 예방 접종 자체는 시행되고 있는가 보다. 그리고 옛날에 초등학교에서는 크리스마스 씰도 결핵 퇴치 기금을 모으자는 취지로 판매? 강매되었던 것인데 요즘은 옛날 이야기가 돼 간다. 차라리 카톡 이모티콘 같은 걸 이런 형태로 판매하는 게 더 나을지도..?

7. 흔한 오류

내 경험상, 가방끈 길고 머리에 든 게 많은 사람이 특별히 빠지기 쉬운 위험, 오류 내지 함정이란 별 거 아니다.

(1) 자기가 배우고 아는 지식이나 이론이 실제로 유효하게 적용되는 조건, 문맥, 한계, 범위를 분간하지 못하고 아무 데서나 나대는 것.
(2) 자기가 이 분야에서 전문가이니까 딴 분야에서도 전문가일 거라고 착각하는 것. 위의 1번이랑 비슷하지만 좀 더 고의적이고 적극적인 맥락에서다.


이 함정에 빠지면 그 누구라도 헛똑똑이 바보가 될 수 있다. "세상에 나보다 더 겸손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내지 "저는 평생에 거짓말이라고는 전혀 한 적 없습니다"처럼 되고 "난 오로지 완벽한 사람들로만 구성돼 있는 교회에 다니고 싶어" 같은 망상에 빠지게 된다.
마음 상태 문제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능도 전혀 개입하지 않는 건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12 08:33 2018/06/1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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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둥글다 =_=;;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해변에서 가까이서 본 광안대교와, (대략 1.2km 정도 떨어짐)
저 멀리 일본 쓰시마 섬의 한국 전망대에서 본 광안대교(대략 50km)는 외형상 서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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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쪽에서 본 교량은 해수면 수평선의 아래로 푹 꺼지듯 내려앉아 있음이 명백하다.
굳이 이 사진 말고 어느 풍경 사진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원근법 때문에 작게 보이는 게 아니라는 건 교량 위 아래의 기둥 크기 비율을 고려하면 금방 알 수 있다. 망원경으로 보더라도 아래로 꺼진 건 명백하게 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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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광안리 해수욕장 해변은 말 그대로 해수면에 거의 근접하는 낮은 고도인 반면, 쓰시마 섬에 소재한 '한국 전망대'는 해발 70m에 달하는 언덕 위의 고지대이다! 그럼 상식적으로 광안대교가 밑동까지도 잘 보여야 정상일 것이다. 참고로 광안대교의 도로는 해발 45~50m 남짓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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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차이가 왜 발생할까?
답은 하나, 지구는 둥글기 때문이다.
배가 저 멀리 사라질 때도 그냥 중앙의 소실점 근처에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수평선 아래로 내려앉듯이 사라지는데..
그 현상만 갖고는 flat earther들이 선뜻 수긍하질 않으니, 이럴 땐 일개 선박보다 훨씬 더 크고 확실한 증거인 광안대교 풍경을 제시해 보자.

이 문제 갖고 고민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특히 성경 믿고 신의 창조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말이다.
과학으로 검증이나 재현 불가능한 영역에 대해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해서, "세계 지도가 평면이니까 지구도 평면이다" 수준의 유체이탈이나 마찬가지인 아무말을 지지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예수님 부활이 사실인 것만큼이나 아폴로 승무원들이 달에 다녀 온 것도 사실이고, 지구가 둥근 구인 것도 사실이다. 그건 창조· 진화라든가 성경의 무오성하고는 아무 관계 없다.
"땅의 원"(circle of the earth - 사 40:22)이 지구가 둥글다는 말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땅의 네 모퉁이"(four corners of the earth - 계 7:1)는 지구가 평면이라는 말이 아니다. 성경이 그 문맥에서 직접적으로 말하는 바는 그런 게 아니다.

그리고.. 세상을 너무 음모론 괴담스럽게 볼 필요 없다. 세상이 영적으로 아무리 악해도 멀쩡히 눈과 귀로 관찰 가능하고 재현 가능한 것을 호락호락 조작하고 사기를 치지는 않는다. 지구 모양을 갖고 사기를 쳐서 도대체 누가 무슨 이득을 얼마나 볼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늘 하는 얘기가 있는데, 세상 다른 현상은 다 음모론적으로 접근한다 해도 최소한 (1) 전기차가 망한 것과 (2) 인간이 과거에 달이 간 적이 있는지, 갔다면 지금은 왜 달에 더 안/못(?) 가고 있느냐 하는 건 음모론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현상이다.

(1)은 무슨 석유 회사의 외압 로비 같은 거 전혀에 가깝게 없으며, 있다 해도 전기차 몰락의 주 요인이 결코 아니다. 그냥 전기차가 배터리의 무게와 가격, 항속 거리와 충전 시간이라는 고질적인 문제 때문에 기름차의 기술 발달을 따라가지 못해서 망했을 뿐이다. 전기차는 처음에 간단하게 만드는 게 기름차보다 쉬웠을 뿐이지 그 이후로는 실용화가 한계에 직면한 것이다. 디젤 엔진 기반의 대형 버스와 트레일러가 배터리 기반 전기차로 가능할까?? 21세기에도 어림도 없는 일이다.

(2) 역시.. 천문학적인 발사 비용 대비 효과가 없으니 더 안 보내는 것일 뿐이다. 허무하게 들리지만 현실에서 이것보다 더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
우주 관련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꼭 미국 NASA만 세상 모든 정보를 움켜쥔 빅 브라더스 흑막인 것처럼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도대체 왜 소련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미국 최대의 경쟁자요 어떻게든 미국의 행보에서 약점 잡을 것 찾느라 목숨을 걸었던 소련조차 미국이 달에 사람을 보냈던 걸 빼박 다 ㅇㅈ했구만.. 설마 미국과 소련이 나란히 같이 짜고 조작극을 벌였다고 믿으시는가? 애초에 NASA 자체가 소련의 스푸트니크 쇼크에 멘붕 하고서 미국이 허겁지겁 설립한 연구 기관일 뿐인데 말이다.

지금은 그 냉전이 끝났다. 컴퓨터가 처음으로 대중화되고 정보화 시대네 뭐네 말이 나오자 이번에는 666이 어떻고 모든 것이 컴퓨터에 의해 중앙 통제되고 정보 접근성으로 인한 신분 계층 차별이 일어나고 모든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게 될 거라는 식으로 괴담이 왕창 나돌았다.
난 그 심정은 이해한다. 198, 90년대라면 나도 그런 쪽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2010년대의 뚜껑을 열어 보니 세상은 그렇게 막장으로 무식하고 폐쇄적이고 흉물스럽기보다는.. 훨씬 더 상업주의 자본주의적으로 돈의 논리를 따라 개방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양의 기술과 정보들이 부자들의 전유물이 되기는커녕, 대중들에게 개방되고 무료로 내지 아주 저렴하게 풀렸다. CCTV, 블랙박스, 중앙집권 전산화 덕분에 치안, 행정과 금융이 정말 투명하고 깨끗해지고 신속· 공정해졌다.

남극과 달은 은폐는커녕 표면의 스트리트 뷰가 나도는 지경이다!
아폴로 우주선을 제어하던 컴퓨터 프로그램의 어셈블리어 소스가 github에 공개되어 있다. 설마 그게 다~~ 주작 조작이겠는가?

물론 그것들이 마냥 자선행위 차원에서 풀린 건 아니며, 그 투자 비용은 더 교묘한 방식과 다른 형태로 어떻게든 회수되긴 할 것이다.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던 기술과 집중되었던 자본이 나중에는 인간성을 말살하는 쪽으로 얼마든지 악하게 쓰일 수 있으며,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 가능성은 본인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게 언제 어떤 형태로 구체적으로 실현될지 우리로서는 선뜻 추측할 수 있지 않다. 다만 한 가지, 그 엄청난 기술들이 대중들을 통제하여 고작 아폴로 계획 자작극이나 지구 평면이라는 엄청난 팩트(?)를 은폐하는 데 동원되어 쓰이고 있다고 믿는 건... 성경을 믿는 것보다 정말 엄청나게 더 큰 믿음을 필요로 하는 게 틀림없다.

고대 그리스의 에라토스테네스는 같은 날 같은 정오 시간대에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그림자 길이가 차이가 난다는 걸 발견하고는 그걸 토대로 지구의 둘레를 추측 계산해 내기까지 했다. 이 때는 성경의 구약과 신약 중간 시기이던.. 그야말로 엄청난 옛날이다. 기구 하나조차 띄울 여력이 안 되던 시절에 지구가 둥근 건 너무 당연한 귀결이고, 그 둘레를 오늘날의 측정값과 비교해 봐도 상당히 정확하게 알아맞힌 것이다.

컴퓨터, 우주선, 휴대전화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지금으로부터 2천 몇 백 년 전의 사람보다도 통찰력이 뒤쳐져서야 되겠는가?
세상 자녀들이 빛의 자녀보다 더 지혜롭게 머리 잘 돌아가는 분야가 있다는 건 성경도 인정한 팩트이다(눅 16:8). 그걸 굳이 부인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07 08:33 2018/06/0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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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봄 나들이

1. 남산

본인은 옛날에 서울 남산을 가장 먼저 북서쪽에서 도보로 올라 본 뒤, 다음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봤다. 이제 올해엔 반대편 남동쪽에서 버스를 타고 오름으로써 가능한 모든 접근 수단을 이용하게 됐다. 걷는 건 너무 힘들고, 케이블카는 대기 시간이 너무 길고 비싸니.. 가성비가 제일 나은 건 버스인 것 같다.

남산 안의 차도는 노선 버스, 관광 버스, 등록된 직원이나 기자, 공무 수행 차량만 이용 가능하지 일반인이 자가용을 끌고 들어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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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과 마찬가지로 남산도 자전거를 타고 오르는 사람이 많이 있다. 하지만 본인은 여건상 저기까지 자전거를 몰고 갈 일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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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서울시에서 전멸하다시피한 노란색 순환 버스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02, 03, 05라는 세 노선이 존재한다.
낙산의 정상까지 올라가는 건 종로구와 성북구의 마을 버스이다. 남한산성의 정상까지 올라가는 건 평범한 성남시 시내버스이다. 그 반면, 서울 남산의 정상까지 올라가는 건 전용 등급이나 마찬가지인 순환 버스이다.

참고로 순환 버스는 운행 구간이 짧지만 기본 요금이 여전히 1200원으로 타 버스와 동일하다. 요금도, 차량도 모두 대형 버스와 동급이지, 마을 버스 등급이 아니다.
남산 내부의 차도는 편도 1차선 일방통행으로만 돼 있기 때문에 올라갔던 길로 되돌아올 수도 없다. 그러므로 버스 노선들 역시 편도로만 짜여 있다.

이런 노란 버스 말고, 초록색 줄무늬 계열로 뭔가 독특하게 도색된 과거의 한국 화이바 제작 전기 버스도 정규 노선 순환 버스로 투입돼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짧은 항속 거리와 출력 부족, 고장 같은 여러 문제로 인해 이제 저것들도 내부는 다 내연 기관 기반으로 재개조된 듯하다. 산을 내려갈 때는 저런 버스를 타게 됐는데, 구동음이 전기 모터 소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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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는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관광객이 정말 많았다. 봄에는 학교나 유치원에서 소풍 나온 애들, 일부 가족과 커플, 그리고 외국인 관광객도 많았다. 여기가 확실히 서울의 명물이긴 하다. 지금 지리적으로 서울의 남산 역할을 하는 건 관악산이나 청계산이지, 이 남산은 서울의 딱 중심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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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남산의 다른 봉우리 꼭대기에는 군사 시설이 있다. 남산을 도보 등산로 대신 차도를 이용해서 오르내리면 군부대 진입로도 잠시 마주치게 된다.

남산의 기슭에 있던 옛 중앙정보부 청사가 없어졌을 뿐이지 남산 꼭대기에 군부대는 수도 방위를 위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이해하면 정확하다. 그런데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곳에서 남사스렇게 철조망을 치고 '군사시설 방향 촬영 금지' 이렇게 티를 낼 수도 없으니, 이 정도 노출쯤은 그냥 묵인해 주는 것일 뿐이다.

2. 배봉산

재작년에 갔던 배봉산을 그로부터 2년 뒤, 신록의 계절을 맞이하여 다시 올라가 봤다.
처음 갔을 때는 자전거를 세워 놨기 때문에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제약이 없이 남쪽에서 북쪽 편도로 산을 완전히 종단했으며, 휘경2동 주민 센터 방면으로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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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작고 낮고 아담하니 산 전체가 공원화돼 있었다.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와는 별개로, 둘레길이 통나무 바닥과 울타리 형태로 조성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배봉산에도 남쪽의 꼭대기에 군부대가 오랫동안 자리잡아 있었으며, 그게 없어진 진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한다. 배봉산이 정상까지 딱히 차도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의외다.
군부대가 있던 정상 자리에는 '해맞이 생태 공원'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그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배봉산은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상에 여전히 접근할 수 없고 봉인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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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와 둘레길이 이렇게 서로 마주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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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봉산은 낮고 길쭉하고 공원이 꾸며져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니 서울 동쪽 끝의 일자산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일자산은 배봉산보다 훨씬 더 길며, 등산로가 서울 둘레길의 일부이다. 배봉산은 그렇지 않다.
이런 곳에 종종 놀러 와서 잠도 이런 밖에서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더워지고 모기가 들끓기 전에 말이다.

3. 한글 비석 공원

본인은 작년 가을에 불암산 등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도로명 주소를 통해, 1500년대에 한글 문장을 써 넣은 무덤 비석이 여기 일대에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
그 뒤 최근에 본인은 공릉동 일대를 방문한 일이 생겼는데, 이때 덤으로 짬을 내어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한글 비석을 보러 갔다.

버스을 타면 서라벌 고등학교 근처에서 내리게 된다. 길 건너편에 먼저 '한글 비석 근린 공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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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은 넓으며 곁에 벤치도 여럿 있어서 앉아서 쉬기 좋았다.
의왕시에 있는 갈미 한글 공원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국어학자 이 희승 박사의 출생지라는 이유로 조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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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원 한켠에는 한글 비석을 정교하게 복제한 '레플리카'가 전시되어 있었다. 현장에 가면 다음과 같은 소개· 안내 문구가 있다.

비명(碑名): 한글 고비(古碑)

- 이곳에 세워 놓은 비석은 노원구 하계동 산12번지에 있는 한글 고비를 동일한 형태로 제작하여 1997년 6월 20일 "한글비 근린 공원"인 이 공원에 세우게 되었다.
- 한글 고비는 국내에서는 오직 조선 시대의 유일한 국문 고비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어 1974년 1월 1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었다.

- 영비(靈碑)라고 부르는 한글 고비는 1536년도에 세워진 것으로 조선 중종 때의 문인 이 문건이 승문원 종9품 부정자의 벼슬을 지낸 선친 이 윤탁과 어머니 고령 신 씨를 합장한 묘 앞에서 부모 묘의 훼손을 염려하여 세웠으며 한글 30자(비석 서측)는 15세기 고어의 모습을 보여 주는 국어학의 학술 자료로서 훈민정음 창제 초기의 국문 서예에 대한 연구 자료로 매우 중요한 것이기에 교육적인 측면에서 진품과 유사한 본 비석을 만들어 세우게 된 것이다.

1997. 6. 20. 노원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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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는 서라벌 고등학교는 으리으리한 성처럼 꾸며진 사립 학교였다. 고려대 모 건물처럼 생겼다는 생각이 든다면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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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은 한글 비석은 "공원 → 서라벌 고등학교 → 큰길" 쪽으로 나가서 길 건너 2~300m쯤 가야 나온다. 인근 도로의 확장 공사 때문에 원래 있던 자리에서 15m 남짓 옆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 길엔 노선 버스는 전혀 안 다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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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각종 조선 왕릉 옆에 있는 그 건물 같고, 사람 모양의 석상은 초안산에서 본 석상 같다. 고인의 무덤은 카메라 시점에서 오른쪽에 있으며, 문제의 한글 비석 원판은 저 건물의 안에 잘 보관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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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말이야 아주 신령한 비석이다. 그러니 이걸 무너뜨리는(훼손하는) 자는 화를 입을 것이다. 다른 문구는 다 한문으로 썼지만 이 경고문만은 한문을 모르는 사람도 읽고 주의하라고 특별히 한글로 써 두는 바이다."


훈민정음 서문도 그렇고 이 문구도 그렇고.. 중세 한국어는 한편으로는 음운 구조가 더 복잡하지만 한편으로는 현대어보다 생략을 많이 하고 표현이 간결· 함축적이기도 했던 것 같다. 또한 '-느니라', '-노라'처럼 요즘은 성경 같은 책에서나 볼 수 있는 고어체를 그 시절에는 입말로도 직접 사용했을까? 킹 제임스 성경의 영어 고어에서도 여러 모로 비슷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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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끝으로...
한글 비석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굉장히 참신한 한글 파괴 현장을 목격했다..;; (정확히는 한글 맞춤법 파괴)
평생 듣도 보도 못했던 용언이 하나 새로 생겼다. ㅠ.ㅠ
노이즈 마케팅을 의도하고 현수막을 일부러 저렇게 만든 건지는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8/05/29 08:35 2018/05/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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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올해 2018년은 지난 1936년과 어쩜 이렇게 닮았나 모르겠다. 공통점이 무려 두 가지나 존재한다.

  • 운동 경기를 빙자하여 사악한 진영에 의한 불순한 정치 프로파간다 선전 무대가 열렸음. 순수 아리안 혈통 vs 백두혈통? ㄲㄲ
  • 거기에서 누구는 태극기를 못 달고 나가는 설움을 감내해야 함

젠장.
강원도 평창에 북한 빨갱이들이 득시글거리고 있던 동안, 본인은 그쪽으로는 정말 오줌도 누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올림픽이 개최됐으니 뭔가 상징적인 기념 이벤트는 있어야겠고.. 그래서 결심했다.

상쾌한 토요일 어느 아침, 강원도 평창 대신 서울 평창동을 답사하면서 북한 사람 대신 북한산이나 잠시 접견하고 왔다. 공산당이 싫다고 콩사탕까지 싫어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시흥과 양평도 서울의 동 이름과 경기도의 시 이름이 겹치긴 한다.

평창동은 북악산의 뒤쪽, 북한산 기슭에 자리잡은 고지대 마을로, 부자들의 저택 단지 겸 서민들에게는 자리값 약간 비싼 데이트 코스와 카페, 드라마 촬영지 등으로 알려진 곳이다. 똑같이 내부순환로 이북의 산기슭이어도 근처의 구기동, 정릉동과는 분위기가 묘하게 다르다.

무슨 교통편으로 이동할까 고민하던 끝에 자가용을 선택했는데, 그게 결과적으로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다. 저기는 뚜벅이로 갈 곳이 못 됐다. 지도나 심지어 로드뷰만 봐서는 실제 현장에 가서 경험하게 되는 엄청난 고저 차이의 압박을 제대로 예측할 수 없다.
딱 하나, 종로 06이라는 마을버스가 평창동 산길을 구석구석 한 바퀴 돌긴 하지만, 배차 간격이 무려 30분이어서 무효였다..;;

늘 얘기하듯이.. 차를 가져가면 당장 이동은 편하지만, 그 뒤에 산행 동선에 큰 제약이 걸리며(되돌아와야 하므로), 그리고 주차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저기도 꼬불꼬불 좁은 산길에 어디 차 세울 데가 있으려나 일면 걱정이 됐다.
하지만 이것도 로드뷰를 보면서 미리 다 잘 알아보고 갔다. 최종 목적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외부인도 차를 세울 만한 공터가 용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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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의 압박이 엄청나다. 사진을 찍은 방향의 뒤쪽으로도 계속 계단이 있다.
이렇게 산지에 계단식으로 집들이 늘어서 있는 걸 부산에서 봤는데 나름 서울에서도 구경하게 됐다.
그리고 여기는 보다시피 평지 시내와는 달리 눈이 내린 흔적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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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 평창동 마을의 흔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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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다를까 여기도 계곡이 있었다(평창 계곡). 본인이 방문했던 당시에는 물이 마르지 않고 남아 있긴 했으나, 몽땅 얼어붙어 버린 관계로 물이 흐르는 걸 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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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어느 집 입구에 태극기가 게양되어 펄럭이는 걸 발견했다.
이 날은 국경일도 아니고 국기를 달 아무 이유가 없는 날이었는데.. 여기 집 주인분도 태극기 없는 친종북 반역 평양 체육대회를 규탄하는 애국 보수 시민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문득 반가웠다.
태극기가 최대한 넓은 면이 노출된 순간을 노려서 사진을 한 컷 찍었다.

드라큘라가 마늘이나 십자가를 싫어하듯이, 북한 공산 괴뢰 집단은 '한국(韓)', '태극기' 이런 말이나 물건을 아주 싫어한다. 그러니 걔네들이 싫어하는 말을 즐겨 쓰면서 악의 무리들을 멀리하고 퇴치하면 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용어의 차이에 대해서도 좀 짚고 넘어가고 싶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라는 명칭에는 북한이라는 정권의 특성과 정체성과 일치하는 단어가 단 하나도 없다. 민주주의? 공화국? 개뿔..

하지만 '북한 공산 괴뢰 집단'은 구구절절 정확한 명칭이다! 한반도의 북쪽에 자리잡았다고 해서 북한, 사유재산이 없으니 공산, 예나 지금이나 소련 내지 중국의 꼭둑각시이니 괴뢰.. 우리 헌법 FM대로라면 애초에 국가도 아닌 반국가단체일 뿐이니 집단.. 참으로 절묘하다. 우리는 terminology에서도 놈들에게 양보하거나 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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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주변 구경을 하고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북한산 등산로 출입구를 발견했다. 여기 명칭은 '평창 공원 지킴터'이다. 참고로 동쪽으로 북악 터널을 지나 국민대 근처에 있는 등산로 출입구는 '북악 공원 지킴터'이다.
나름 찾는 사람이 많은 유명한 등산로여서 그런지, 주변에는 외부인의 불법 주차를 절대 금지한다는 경고 현수막이 잔뜩 붙어 있었다.

북한산은 전체가 국립공원이다 보니 역시나 경비 초소와 공중 화장실 같은 게 마련돼 있었으며, 여기 말고 다른 데서 산을 무단으로 오를 수 없게 일부 구간은 높은 울타리와 철조망까지 둘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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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어디 봉우리 정상까지는 안 가고 30분 남짓 산책만 하다가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왔다. 진지한 북한산 산행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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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부터 잠입하거나 그 지역으로 탈출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국가보안법 제6조)

으하하하.
그런데 왜 '점'도 아니고 '정'이라고 써 놨나 모르겠다. 저건 무슨 의존명사인지 한자인지, '정보'의 약자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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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에는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 말고, 서울 둘레길 루프의 일부로서 산의 능선만 타는 산길이 있다. 그래서 북악 터널 위쪽을 도보로 건너서 국민 대학교 내지 정릉 방면으로 갈 수도 있다. 본인은 그런 길이 있는 걸 지도를 통해서만 확인했지 직접 가 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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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평창동 답사와 북한산 등산로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평창동은 '평창문화로'라고 내부순환로보다 미묘하게 더 북쪽을 지나는 큰 도로에서 북쪽 방향으로 방향을 꺾어서 평창25길, 평창30길, 평창36길 같은 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1차 진입로는 폭은 보다시피 왕복 2차로 이상급으로 넉넉한 편이지만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1단 엔진 브레이크를 걸고도 엔진 rpm과 함께 속도가 계속 붙어서 주기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정도였다. 눈이라도 오면 다니기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2/20 08:36 2018/02/2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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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이기는 법

* 예전에 썼던 일본에 대한 생각 글 및 기업 관련 일화 글과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1. 학문· 기술 업적과 제품 시장 점유율로 이긴다. (100점)

2차 대전 이후의 국제화 세계화 자본주의 개방 경쟁 시대에 이거야말로 남의 나라를 합법적으로 제일 수준 높게 이기는 방법이다. 예전 글에서 소개한 적이 있듯이,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를 쳐바르고 기술 종속 관계를 역전시킨 현대 자동차라든가, 반도체 분야에서 이름은 모르겠다만 일본 기업들을 쳐바른 삼성전자, LG전자 등등..
이것만 알아도 되도 않은 이상한 반기업 구호들 반 이상은 필터링된다. 이공계가 세상을 바꾼다.

2. 문화 예술로 이긴다. (50점)

겨우 한류 스타 욘사마가 어떻고 하는 것만 얘기하는 게 아님. 그야말로 사람들 정신 세계 전반을 점령하는 것을 말한다. 위의 100점짜리와는 분야가 굉장히 다르고 별 것 아니어 보이지만 그래도 중요하다. 이것에 대한 우려 때문에 우리나라가 일본과 경제 협력을 위한 재수교는 무려 1965년에 했어도, 대중문화 개방은 90년대 말이 다 돼서야 성사됐다.
내 한글 입력기는 비록 기술 쪽으로 최첨단 극치를 추구하지는 않지만, 나름 이 바닥을 기여하고 공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예술은 아니지만 문화에는 해당한다.

3. 운동 경기에서 이긴다. (30점)

열심히 노오오력해서 한일전에서 일본 이겨 주는 것도 아주 합법적이고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스포츠는 경기 당시에 짜릿함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 외에 우리 일상생활에 딱히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다.
또한, 축구 한일전이 벌어질 때에만 열혈 민족주의 애국자이고 다른 상황에서는 자기 나라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 이상한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나 태극기는 도대체 무슨 의미를 지닌 존재인 걸까?

4. 목소리와 키보드 배틀에서 이긴다. (5점)

국가관 역사관이 이상한 사람을 키배로 제압하고 산업화해 주고, 어디에 일본해가 어떻고 독도가 어떻고 하는 곳에 득달같이 달라붙고, 일본 정치인들 망언을 규탄하는 시위 벌이는 건..;; 들이는 시간에 비해서 그렇게 생산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5. 국민성, 공중도덕 등으로..

이건 이기는 법이라기보다는 지지 않는 법의 범주에 드는 것 같다.

6. 전쟁에서 이긴다? (??)

가능하지도 않고 그래야만 할 필요도 의미도 없음.
한· 일은 정치 이념 프레임이 동일한 나라이며, 예측 가능한 미래에 서로 전쟁 벌일 확률은 남북한이 전쟁 벌일 확률보다는 넘사벽급으로 낮다.

한일전 하니까 옛날 일화가 하나 떠오른다.
뭐, 예전에 비해 반일 감정이 많이 옅어진 편인 지금도 한일전이라 하면 일단 나라의 자존심이 걸려 있고 그야말로 절대로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진짜 한일전의 원조는 먼 옛날 1954년, 우리나라가 FIFA 월드컵에 최초로 참가하던 시절에 벌어졌다(그 당시 스위스 개최).
우리로서는 6· 25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됐고, 스포츠 분야에서 해방 후 최초로 앙숙 일본과 맞장을 뜨게 됐다. 1953년에 치러진 아시아 지역 예선전이다.

해방된 지 아직 10년이 채 안 되었으니 분위기가 얼마나 비장했을까?
씅만 리 할배 대통령은 승부에 대한 극심한 중압감과 부담감 때문에 처음엔 이 경기 자체를 원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냥 월드컵 출전을 포기하고 말지, 일본놈들과는 상종을 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 경기는 우리 홈그라운드에서 한 판, 일본으로 원정 가서 한 판씩 하는데 “쪽발이 왜놈들을 한국 땅에 들어오게 할 수 없다”라는 똥고집, 그리고 그 와중에 일본이 우리를 이겨 버리기까지 했을 때 뒷감당을 할 수 없다는 걱정이 반반씩 할배의 머리를 압박했다.
(하긴,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정부와 협력해서 반인륜 범죄를 저지르는 데 가담하고 부역한 외국인은 우리나라에 입국할 수 없다고 지금까지도 출입국 관리법에 명시돼 있긴 하다. 뭐 이젠 그런 사람들은 거의 다 죽고 없겠지만..)

뭐 어쨌든, 일본 선수들이 한국으로 올 수 없으니 우리 선수들이 두 판 모두 일본에 가서 경기를 치르게 됐다. 출정식 때 할배 각하는 친히 선수들에게 “이기지 못하면 살아서 돌아오지 마라 / 졌다가는 국민 세금으로 배 탈 생각일랑 말고 대한해협을 헤엄 쳐서 귀국해라” 이런 급의 공포스러운 막말 훈화를 했다는 카더라가 전해진다. 아니면 축구 협회 대표와 선수팀 감독이 각하를 끈질기게 설득하는 과정에서 저런 맹세를 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저런 처절한 배수진 하에서 스포츠계의 합법 도핑인 반일로이드가 약발이 제대로 적중했다..;; 우리나라는 1차전에서 5:1로 일본을 압도적으로 꺾었으며, 2차전에서도 2:2 무승부를 달성해서 무난히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이때야 스포츠 분야의 극일 가중치가 지금 같은 30점이 아니라 당연히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독립 주권 국가로서 한국이 일본을 당당히 이겼으니까.

뭐, 본선 가서는 헝가리에게 9:0, 터키에게 7:0으로 지고 광탈하긴 했지만, 그건 너무나 열악한 여건 하에서 첫 출전을 하고도 정말 혼신을 다해서 얻은 결과였다. 10몇 대, 20대 0으로 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했던 값진 투혼이요 성공적인 실패, 위대한 패배였다. (그리고 일본만 이겼으면 됐고 그것만으로 목표 달성이지, 나머지 결과는 어차피 아오안이었을 것이다..;; )

이 승만은 정말 쥐뿔도 힘 없는 가난한 나라 처지에서도 그래도 미국을 최대한 이용해서 일본을 상대로 갑질을 하고 반일 노선을 고집했다. 평화선에, “대마도 내놔”에, 재일 교포 북송에 결사 반대하여 일본 적십자사 테러 시도에, 그것도 모자라서 왜관 발언은 최고의 압권이었다.
“지금 우리가 아무리 전쟁 중이고 위급하다지만, 감히 일본놈들이 우리 집안 내부 싸움에 개입하려 든다면(심지어 남한을 돕는 것도 포함) 우린 일본놈들부터 죽이고 나서 괴뢰군을 쏘겠다.

하긴, 이 할배의 입장에서는 일본이 유엔군 병참기지가 돼서 경제적으로 어부지리 덕을 보고 있는 것조차도 차마 눈꼴 시려 못 볼 지경이었을 게다.

저 때야 해방된 지 얼마 안 됐으니 그렇다 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난 2002년 월드컵은 개최 장소도 이례적으로 한일 공동 개최로 귀착됐었다. 20여 년 전에 이거 개최지 결정하던 과정도 내 기억으로 분위기가 장난 아니게 험악했다. 둘 중 한 나라 단독 개최로 결정 났다면 무슨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그래, 한국과 일본은 뭐 그런 사이이다.

하지만 감정은 감정이고, 이성적으로 분별할 건 따로 분별해야지..
까놓고 말해서 일본이 평화 헌법을 건드리거나 심지어 자위대를 군대로 승격하는 것보다, 당장 코앞에 있는 미친 또라이 국가의 핵탄두가 실험을 거듭하면서 위력이 더 강력해지고, 미사일의 사거리가 갈수록 더 길어지는 게 훨씬 더 위험한 일이다!

지금은 20세기 초 같은 제국주의 군국주의 이념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다. 일본의 작은 또라이짓에 대해서는 난리를 치고 발광을 하면서, 바로 옆에 현존하는 훨씬 더 직접적인 위협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고 방어 체계를 구축하지 말라고 X랄인 것은 정말 머리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쟤들은 종북들을 이용해서 남조선을 살살 삥뜯거나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완전히 떼어 놓기 위해서 핵을 만들 뿐이다. 터뜨려서 자폭하거나 심지어 미국을 공격하기 위해서 핵을 만드는 게 절대로 아니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건 걔네들도 잘 알 것이다.

본인 역시 지금 당장 더 절박하고 시급한 문제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종북 쪽을 더 비판하고 까며 지낸다. 하지만 우파가 반일· 극일 분야도 좌향좌들보다 훨씬 더 건전하게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본인은 행동으로 입증하고 싶다. 사상과 행적 모든 면이 우월하다는 것을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12/05 08:33 2017/12/0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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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입시 제도

옛날엔 대학 입시는 그냥 깔끔하게 대학별 본고사 아니면 학력고사 한 방이었고, 법조인 선발과 양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법 시험 원큐였다.
그러다가 지금은 아시다시피 사법 시험은 로스쿨로 바뀌었으며, 요즘 대학 입시는.. 뭐 내신에 수능에 수시가 어떻고 수행평가가 어떻고 생활기록부가 어떻고 등등~

확실하게 차이를 말할 수 있는 건, 어느 분야든 더 복잡하고 골치 아파졌고 돈 더 들게 됐다는 것이다. 추세가 그렇다.
왜 이렇게 된 걸까? 과거와 현재의 차이 내지 장단점은 무엇일까?

사람을 선발하는 제도는 모름지기 (1) 평가 잣대가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하고, (2) 부유층 사교육 돈지랄로 변질되지 않고 기회의 평등이 잘 제공돼야 한다.
그러면서 시험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게 (3) 시험 당일의 원큐 운빨에 너무 좌지우지되지 않고 문제풀이 테크닉만 익히는 방식이 되지 않아야 하며, (4) 응시자의 지식(현재) AND/OR 잠재적인 학업 능력(미래)을 전인적으로 잘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들을 모두 만족하는 제도를 만들기란 대단히 어렵다. 사실은 이들 이념 중에는 교통수단의 접근성과 이동성만큼이나 상호 모순적이어서 둘 다 만족하기가 근본적으로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도 있다.

시험 한 방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금수저건 흙수저건 무조건 공평하게 서열화되는 체계라면 (1)이 주장하는 객관성이나 평등 같은 건 잘 달성 가능하다. 요즘은 교통· 통신 수단의 발달과 복지 제도 발달 덕분에 기회의 평등은 옛날에 비해 굉장히 잘 보장되고 있다. 파이의 크기는 별로 안 커져서 각종 고학력 전문직들을 위한 일자리는 부족하고 불경기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와 채용은 안 하려 하는 판에 기회는 누구에게나 다 열려 있으니, 이것 때문에 경쟁이 더 치열해진 것은 세상을 탓할 일이 아니다.

내가 늘 말하지만 옛날에 고학력 실업자가 없고 석사만 졸업하고도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건 옛날이 파라다이스여서 그랬던 건 개뿔 전혀 아니고, 애초에 국민들 대다수가 깡촌에서 대학 갈 여건 자체가 안 됐기 때문이다. 관점을 달리해서 봐야 한다.

(2)는? 듣기로는 차라리 7, 80년대 같은 적당한 옛날이 지금보다 더 나았다고 그러는 것 같다. 교과서에 충실하게 시험 공부만 죽어라고 해서 개천에서 용 나는 게 그럭저럭 가능했던 모양이다.
다만, 학력고사조차 없이 대학별 본고사만 있던 완전 195, 60년대 옛날에는 대학들이 자기 학교 자존심을 걸고 문제를 살인적으로 어렵게 냈다. 가령, "sqrt(2)가 무리수임을 증명하시오"가 옛날에 서울대 본고사 문제였다. 수능에 최적화된 요즘 고딩들 중에 귀류법을 생각해 내서 쓱쓱 풀어 낼 애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렇기 때문에 실력 측정 변별력은 좋았을지 모르겠으나, 그걸 대비한 맞춤형 사교육이 횡행했다. 그리고 채점이 전적으로 대학 재량이었던 관계로 내부 부정도 있어서 (1)이 절대적으로 보장되기가 더욱 어려웠다. 그러니 결국 나라가 개입해서 학력고사라는 걸 만들었고, 그게 나중에는 수능으로 바뀌었다. 수능은 학력고사와는 달리 현재의 암기 지식 측정보다는 말 그대로 미래의 학업 능력 측정 지향적이다. "일단은" 말이다.

(3)은 수능처럼 굉장히 형식화되고 과거 학력고사· 본고사에 비해 쉬워진 시험이 (1)과 (2)를 건진 대신에 상대적으로 비판받고 있는 점이다. 수능이 첫 도입되었던 시절에는 '원큐'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 준답시고 수능을 1년에 두 번 치기도 했었다. 그러나 수능을 두 번 준비하는 게 수험생에게 더 큰 짐을 지운다는 지적으로 인해 연 1회로 제도가 바뀌어 정착했으며, 시험에 대한 감을 익히는 건 그냥 모의고사로 대체되었다.

마지막 (4)로 가면.. 고민할 게 많다. 이것 때문에 중등 교육을 포함해 각종 법조나 행정 고시 분야들이 제도가 바뀌고 갈팡질팡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입식 입시 위주의 교육이란 게 단시간에 학생에게 많은 지식을 주입하는 용도로는 효율적이고 평가자에게나 학생에게나 비용이 덜 들며, 평가 방식도 일면 객관적이고 공평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특히나 나라가 가난하고 이것저것 배부른 고민 할 여유가 없던 시절, 인성이고 창의성이고 나발이고 그건 개나 줘 버리고, 학교에 보내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하던 시절에는 장점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의 의식 수준과 경제 수준이 올라가면서 그런 무식한 교육 방식은 약발이 다했다. 정작 사회가 필요로 하는 다방면 융합 적응형의 창의적인(?) 인재를 발굴하는 데는 한계에 다다랐다. 학교 성적 비관해서 자살한 애들 소식에,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이젠 족해"로 시작하는 서 태지 노래도 벌써 20년이 훌쩍 지나서 30년 전 소식이 돼 간다.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를 설계하는 높으신 분들도 바보는 아니니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민하는 '척'은 한다.

2. 로스쿨

다음으로 법조인 양성 시험 얘기로 넘어가 보자.
물론 법전과 판례를 달달 암기하는 머리가 기본적으로는 필요하지만.. 머리가 오로지 그 쪽으로만 굳어 버리면 요즘 세상에 온갖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하는 민사 소송에 대처하기 힘들다. 가령, 소프트웨어의 저작권 관련 온갖 복잡한 라이선스(특히 오픈소스 진영)들을 이해하고 법 자문을 하는 건 그 바닥으로 배경이 전혀 없는 채로 별세계에서 사시만 달랑 합격해서 온 사람보다는 학부 때 컴공 전공하고 실제로 GPL이니 MIT 라이선스니 하는 오픈소스 끌어다가 간단한 프로젝트 진행한 경험도 있다가 로스쿨에서 따로 추가로 법 공부한 사람이 맡는 게 더 믿음이 가긴 할 것이다.

물론, 변리사나 특허 심사위원처럼 법과 이공계를 융합한 전문 업종이 이미 있기도 하고, 평생 글만 팠던 사시 출신 변호사라도 생소한 빽빽한 글을 비판적으로 읽는 건 전문가이며 대체로 상상을 초월하는 지능과 학업 능력의 소유자이다. 그러니 저런 새로운 분야 하나쯤 새로 공부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국정원 요원만 해도 자기가 지키려는 기술이 뭔지 최소한의 배경은 알아야 산업 스파이가 노리는 걸 눈치채고 방어를 할 테니 관련 분야 논문도 찾아보고 늘 새로운 걸 공부한댄다.
이게 답이 딱 떨어지는 문제가 아니니 지금도 사시 존치론자와 로스쿨 옹호론자들은 상대방을 로퀴와 사시충이라고 부르면서 싸워 왔다. 하지만 로스쿨 자체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정착 단계에 도달하긴 했다.

로스쿨은.. (1) 입학을 위해 대학 졸업장을 요구하고 (2) 학비 작살나게 많이 깨지되 정말 공인된 일부 극소수 중의 극소수 빈곤층에게만 장학 혜택 있고, (3) 3년 과정이 사법연수원 역할까지 포함하며, (4) 처음에 뽑을 때 전국에서 2천 명 정도 균등하게 많이 뽑고, (5) 나중에 변호사 시험은 최대 5년 동안 5번밖에 응시 못 하는 식으로 강제 필터링.. 이런 시스템적인 제약이 몇 가지 추가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로스쿨은 알다시피 출세로 가는 길로 여겨져서 문과· 이과를 가리지 않고 전국에서 날고 기는 공부벌레 수재들이 몰린다. 사시에서는 고민할 필요가 없던 출신 대학과 평점이 매우 중요하다. 변호사 시험도 아니고 맨 처음 입문 단계의 법학 적성, 일명 LEET 시험은 당장 복잡한 법학 지식을 묻는 시험이 아니며 무슨 미적분 같은 수학 시험도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기출문제 한번 봐라. 눈 돌아간다. 수능 언어 영역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렵고 길고 생소한 글을 읽고서 "주어진 텍스트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등.. 수학 없이도 독해력, 논리력, 추리력을 통해서 공부 적성 아닌 사람, 머리 나쁜 사람 떨구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로스쿨은 합격하고 입학한 것만으로도 경사 났다고 추켜세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그 뒤엔 3년간 미칠 듯한 공부지옥과 점수 경쟁, 변호사 시험 스트레스가 기다리고 있지만 말이다. (변호사 시험은 의대의 국시와는 달리, 점수가 아닌 등수가 중요한 상대평가이다!)

그런데.. 입문자에 대한 진입장벽이나 고시낭인 양성을 막기 위한 단순 제약 같은 것은 사시에도 도입 가능해 보이는 것들이고, 로스쿨의 교육 시스템 자체가 딱히 법대 + 사시 학원 강의보다 크게 나은 차별화 요소가 있나? 난 잘 모르겠다.
다재다능한 배경의 인재를 뽑겠다고 도입한 전국의 로스쿨들도 출신 배경의 다양성은 개뿔이고 결국은 변시 합격률에 목 메는 반쯤 학원처럼 돼 있다.

내가 거시적으로 보기에 로스쿨의 가장 큰 의미는 국가가 나서서 법조인 양성 과정을 좀 더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고, 사시 특유의 지나친 고위험성· 투기성을 여러 제도를 통해서 강제로 분산한 것이다. 그런데 컴퓨터가 추상화 계층이 늘면 성능 오버헤드가 조금씩 추가되듯, 그 과정에서 입문하는 소비자(학생)의 금전적인 부담이 증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귀결이다.

로스쿨은 의대· 공대처럼 실험 장비· 기자재를 쓰는 게 없고 밤낮 책과만 씨름하는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학비가 엄청나게 비싼 걸로 악명 높다. 사시 학원 강사보다 교수(법대 교수 내지 현직 법조인 출신의..)가 인건비가 훨씬 더 높기도 하거니와, 학교당 로스쿨이 인원도 굉장히 적기 때문에 단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로스쿨은 무슨 신림동 고시촌처럼 한데 밀집해 있는 게 아니고 전국의 지거국이나 명문대를 중심으로 학교와 학생이 골고루 흩어져 있다. 그나마 서울대 로스쿨의 TO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200명인데, 그래도 이는 과거의 서울대 법대가 매년 배출하던 사시 합격자 수보다 훨씬 적은 수이다. 그럼 하물며 학생 수가 50명밖에 안 되는 지방대 로스쿨에서 법학을 가르치는 그 많은 교수들을 굴리려면 학교 입장에서는 돈이 얼마나 들까? 로스쿨 유치를 위해 대학들이 거액을 들여 건물 짓고 시설 새로 만들었으며, 투자 비용을 학생으로부터 회수해야 하는 건 부가적인 문제일 뿐이고 말이다.

결국 로스쿨은 학벌 타파(?)와 지역 평등을 위해 구조적으로, 근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비효율과 더욱 가중되는 학생 부담을 감수했음을 의미한다. 이건 극소수 장학 제도 갖고 실드 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시 옹호론자이든 로스쿨 찬성론자이든 일단 이 원론적인 설정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로스쿨이 그런 것을 다 상쇄할 정도로 기존 사시 체제의 단점을 보완해 주느냐, "단순 시험 점수 잘 받은 사람"과 "훌륭한 법조인 자질" 사이의 괴리를 더 잘 상쇄해 주느냐로 귀착될 것이다.

여기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 참고로 노 무현, 문 재인, 조 국 등 일명 진보 내지 좌파라고 불리는 법조인 배경의 인사들은 다 로스쿨 찬성론자였으며, 노 무현의 경우 대통령 재임 시절에 로스쿨을 도입한 것 때문에 자기가 신분 상승을 위해 올라탔던 사다리(= 사시)를 자기가 치워 버렸다고 비판받기도 했다는 것 역시 생각할 점이다.

3. 측정할 수 없거나 측정하기 어려운 것을 무리하게 측정하려는 것이 근본 문제

사시와 로스쿨 문제도 그렇고 앞서 언급했던 대학 입시도 그렇고.. 시험으로 줄세우기만 하면 제일 뒤끝 없고 공정하고 그나마 빈부격차 문제에서도 제일 자유로운 것 같다. 그러나 그로 인한 병폐도 있고, 단순 시험 문제 풀이 기계와 실제로 시험이 의도했던 모범적인 인재(?)상 사이의 괴리도 커진다.

그 폐단을 해결하려고 시험 점수만 보는 게 아니라 학생의 출신과 배경을 보고 대외 활동을 보는 식으로 비정량적인 것을 좀 보자니 그건 또 사교육 돈지랄로 변질되고 입시 제도는 하루가 멀다 하고 오락가락 바뀐다. 오죽했으면 교외 경시대회 실적은 학생부에 반영도 안 하게 됐는데.. 정보 올림피아드 입상의 혜택을 크게 입은 본인으로서는 참 애석함을 느낀다. 그것도 안 하면 도대체 학교 시험만으로 나타나지 않은 학생의 잠재성을 어떻게 보라고?

그리고 그 어떤 교육과정이나 시험으로도 사람 내면에 있는 사상이나 인성을 본질적으로 측정할 수는 없다. 그러니 그 어려운 사법 시험을 떡 붙고도 6· 25 전쟁이 무슨침인지를 분간 못 하는 똑똑한 바보도 법조인이 되는데, 이를 걸러내질 못한다.

창의성 같은 건 일부 공모전이나 경진대회를 통해 측정 가능하겠지만 정량적인 측정이 아니니 이 역시 사교육+부정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수치화하기 어려운 능력이나 배경까지 무리해서 측정하려다 보니 결국 부정이 들어갈 수 있고, 사교육 돈지랄로 귀착되는 식으로 거기는 거기대로 또 병폐와 부작용을 만들어 내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걸 측정하려는 걸 아예 포기해서도 안 되는데.. 참 어려운 문제이다.

이 글에서는 로스쿨 얘기에 대학 입시 얘기가 조금 두서없이 뒤섞이긴 했다만.. 이런 시험 관련 제도들 관련 문제는 딱 떨어지는 답이 없어 보인다.
애초에 근본적으로 국가나 사회 분위기가 '무리해서 대학 갈 필요 없는 세상', '자기 기술만 기막히게 좋으면 대접받고 충분히 성공하는 세상' 이런 식으로 가지 않는 한은, 전제가 애초부터 잘못된 상태에서 결론이 올바로 나올 수가 없다.

위에 높으신 분들이 무슨 대책을 내놓고 교육과정과 입시제도를 업데이트 한다 해도, 이랬다 저랬다 여러 이념을 어중간하게 절충한 조삼모사에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한계는 염두에 둬야 할 듯하다. 그래야 그 한계 안에서 차선· 차악을 찾아 적응할 수 있지 괜히 답이 없는 문제에 끙끙대다 세상 비관 염세주의로 빠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7/19 08:31 2017/07/1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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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허국현 2017/07/19 10:11 # M/D Reply Permalink

    현 학교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사는데 필요한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일 것입니다. 전 아래 세 가지만 제대로 배우고 나와도 성공이라고 봅니다.

    1) 공부하는 법 -> 16년간 하는 것이 공부고, 졸업하고도 자기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해 공부해야 하는데, 도무지 16년간 6개월도 공부하는 법을 배워 본 기억이 없습니다. 제가 받아 본 교육이란 교회에서 한 특강 2개 정도?

    2) 돈 버는/관리하는 법 -> 16년간 하고 나서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일인데, 역시 6개월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왜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지, 어떻게 해야 돈을 더 벌 수 있는지, 가르쳐야 합니다.

    3) 생각하는 법 -> 결국 공부하고 돈을 벌려면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좀 더 빠르게 정확한 생각을 하고,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해 보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 역시 안 가르칩니다.

    저도 이것들은 배우지 못해서 계속 공부 중입니다...

    1. 사무엘 2017/07/19 13:01 # M/D Permalink

      저는 개인 구원이나 인성 같은 것은 애초에 세상의 교육제도로 감당이 불가능한 것이고 그런 건 결국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면서 제대로 감당해야 한다.. 이런 쪽만 생각해 왔는데, 말씀하신 것들은 무슨 영적인 것도 아니고 일반 학교에서도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는 영역이네요..!

      생각하는 법은 학술적인 영역과 영적인 영역이 다 포함돼 있을 것 같고, 돈의 경우는 유대인들이 타지에서 어렵게 살아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애들한테 경제 관념 하나는 철저하게 주입시킨다고 그럽니다. 단순히 "돈은 노동의 대가로 주어진다, 일하지 않았으면 먹지도 마라" 차원이 아니라..
      "돈은 맡고 있는 사람이 오히려 맡긴 사람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유일한 물건이다", "돈으로 돈을 버는 것이 가능하다" 같은 자본주의 이념 자체를요~

      공부하는 법... 저도 완전 쥐약입니다. 하나 미치고 빠져든 영역은 딱히 공부하는 법 따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저절로 머리가 다 흡수해 버리지만..(Looking for you, 철도..)
      의무감에 하는 공부는 절대로 머리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린 나이에 철 들고 악착같이 공부해서 머리에 집어넣는 애들이 부러울 뿐입니다~

      결국 아무리 무상 교육 제도가 잘 돼 있어도 자신만의 경쟁력과 변별력을 갖추고 사회 경쟁에서 이기는 건 각 개인이 알아서 길을 찾아서 뚫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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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검증

*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도저히 어려운 주제이다 보니, 팩트폭격과 더불어 조금 거친 표현이 있음을 미리 양해 구한다.

1. 반미 반전 이런 구호나 운동 극혐

1950년 6월 25일 당일이 일요일이었는데 올해도 6월 25일이 일요일이구나.
2000년 이래로 우리나라에서 불순불온한 진영이 없애라고 외쳐 온 공략 대상을 쭉 살펴보면 (1) 주한미군, (2) 국가보안법, (3) 국정원, 그 다음은 (4) 싸드로 정리된다.
(1)에 대해서 적을 이롭게 하는 사악한 선동질 한 동일한 놈들이 (2), (3)을 거쳐서 (4)에 대해 외치는 구호도 우리나라를 위해서 외치는 구호일 리는 당연히 전혀 절대 만무하다.

저건 두 말할 나위도 없이 북괴의 입장을 100% 정확하게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다. 놈들이 원하는 것의 정반대로 하는 것만이 우리나라가 살 길이다. 북괴가 이런 쪽으로는 의외로 단순무식하게 일관성이 있다. 허나, 지구상에서 제일 반미 할 자격 없는 애들이 자기 주제를 모르고 저 짓거리 하는 걸 보면 울화가 치미는 걸 억제할 수 없다.

배은망덕한 놈들, 광우뻥 때부터 지금까지 역사로부터 배운 게 없는 미개한 놈들, 군복 차림에 가스통 들고 흥분해서 날뛰는 틀딱충 꼰대보다 더 사악한 놈들. 병역특례 부실복무나 하고서 안보 장사(?) 만화 그리고 있는 모 웹툰 작가보다도 더 위선적인 놈들.

이런 날 내 머리에 곧장 떠오른 성경 본문은 에스겔서 16장이었다.
남조선 인민들의 기구한 내력과 분에 넘치는 은혜, 그리고 병들고 썩어빠진 정신 상태가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와 절묘하게 씽크되는 걸 볼 수 있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저 본문을 꼭 보고 두 번 보시길..
그리고 열왕기상 20장도 같이 보면 좋다. 자기의 적을 보고도 "그는 내 형제니라"(왕상 20:32) 이러는 멍청한 왕을 두면 그 밑의 백성이 얼마나 고생하게 되는지를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전쟁의 반대가 평화인 건 자기가 힘이 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전쟁의 반대는 그냥 항복과 노예이다!
꼭 자기들이 전쟁을 하거나 평화를 유지할 선택권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에 본인은 굉장한 어이없음을 느낀다. 남조선이 무슨 스위스 같은 영구중립국이기라도 했냐? 일제 강점기에 6· 25를 겪은 게 100년도 채 안 지났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저런 식으로 하냐? 하다못해 중· 고등학교에서 일진 양아치들한테 안 당하기 위해서라도 힘이 있어야 하는 건(혹은 최소한 힘이 센 것처럼 보이는 것) 너무 당연한 이치 아닌가?

다른 나라도 아니고 한반도에서 Imagine 가사나 읊어 대면서 반전 (반미) 평화, 서로 싸우지 맙시다, 남북이 서로 협력하고 화해합시다 이딴 소리 하는 놈들은 그냥 99%는 빨갱이 내지 걔네들에게 놀아나는 저능아들이다. 내 말이 기분 나쁘면 북괴 수뇌부 앞에서나 그런 평화타령 한번 늘어놓아 보든가.

그리고 내가 이런 얘기까지는 안 하려 했는데.. 경험상 아동문학이 어떻고 사교육 주입식 입시교육 없는 세상, 대안학교.. 애들 참교육이 어떻고 이러는 부류 중에 사상 이상한 사람들 정말 많이 봤다.
옛날에 TV로도 방영됐던 몽실 언니 작가도 보니까 참.. 죄송한 말이지만 불순한 분 같지는 않고 정말 순진한 건지...;;;
유언장 중에 한 대목이 이거다.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주세요"

그게 당신이 원한다고 굶주리는 애들한테 가 지나? 어유..
누군 뭐 바보여서 자금줄 압박, 고립, 대북제재 하는 줄 아나?
우리나라도 못살던 시절엔 몽실언니 같은 불쌍한 애들 많았지. 사회 분위기도 반쯤 살벌한 병영 분위기에 약자 인권 훨씬 더 열악했던 것도 사실이지.

근데 애들이 그렇게 불쌍하면.. <태양 아래> 같은 영화는 본 적 있나? 거기 나오는 주인공 진미는 오늘 내일 굶어죽는 꽃제비도 아니고 평양 금수저 최상류층이다. 그런 애들조차 완전히 로봇으로 세뇌당하고 개조돼서 지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 보라는 부탁에도 바싹 긴장하고는 당령 읊어대고 앉았는데 걔들은 불쌍하다는 생각 안 드냐?

하이튼 절대악과 필요악 뒤섞어서 사람 속이는 건 도사들이야.. 썩을놈들이.
작정하고 사리분별 못하는 애들 오염시키고, 그리고 법조인들 차근차근 적화시키고. 통상적인 경제력과 병력만 빼고 체제 전복시키는 방법도 정말 치밀하다니까. 한 10대, 20대 나이 때까지는 사회 한쪽에서의 부조리 때문에 필요악만 나쁜 줄 알고 의분에 차서 무작정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딴 생각을 어떻게 30대 40대가 가도록 평생 무덤까지 가져갈 수가 있냐?

"나라가 이제 온통 용공사상에 오염되었다. 좋을 리 없어! 왜 우리는 국가 체제를 보호하기 위해 종북 빨갱이들을 적절히 처리하지 않는거지? 내가 개인적으로 페북과 블로그에 맨날 이런 글이나 싸질러댄다 해도, 남조선은 아이들에게 어떤 곳이 돼 버리겠나? 그리고 아이들의 아이들, 그리고... 아, 나라의 앞날은 어둡다!"
-- 뭐 패러디인지는 알아서 검색을..;; -_-;

2. 바퀴벌레가 극소수 한두 마리 좀 있어 봤자..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냐 종북 같은 게 어디 있냐?
남한과 북한은 군사력과 경제력 차이가 서로 쨉이 안 되는데 극소수 '김 일성 만세' 이러는 또라이가 설령 있다 한들, 일부 병신 미친놈들일 뿐이지 나라에 무슨 위협이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사실, 교회식으로 비유하자면
콘스탄틴 로마 황제의 기독교 공인이 진짜로 기독교가 세상을 이기고 영적 승리를 쟁취한 줄로 안다거나,
요즘 세상에 사탄 마귀가 어디 있냐, 지옥 같은 거 없다 이렇게 생각한다거나 혹은
성경 변개라는 게 "너는 루시퍼를 숭배할지니라" 이렇게 고치는 게 전부인 줄로 아는 참 순진하고 한심한 분별력으로는 이념 쪽으로도 저렇게 naive하게 생각할 수도 있긴 할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게 만만하고 낭만적이지 않다. 이 문제는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집 싱크대에 바퀴벌레 한두 마리가 주기적으로 대놓고 보일 정도이면 보이지 않는 곳에는 바퀴벌레가 얼마나 우글거리고 있을까?
법정에서까지 극소수 "김 일성 만세" 외치는 미친놈이 있을 정도이면 보이지 않는 곳에 서식하는 빨갱이들은 도대체 몇 마리나 될까?
몇백 명이 먹는 급식 중 극소수에서 머리카락 몇 올이나 바퀴벌레가 한 마리쯤 나와 봤자 식당 위생은 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걸까?
이렇게 말이다.

굳이 핵이나 미사일 같은 비대칭무기 얘기를 하지는 않겠다.
군사력과 경제력 차이가 제아무리 쨉이 안 돼도 이념 적화로 인해서 순식간에 나라 망하는 건, 아주 쬐그만 구멍 하나 때문에 댐이 무너지고 풍선이 순식간에 터지는 것만큼이나,
몇 년을 재부팅 없이 돌아가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메모리 leak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뻗는 것만큼이나 아주 쉽게 가능한 일이다.

조잡한 폭탄으로 자그마한 구멍만 뚫어도 커다란 여객기가 공중분해될 수 있고(대한항공 858처럼), 비슷한 자그마한 결함으로 인해 컬럼비아 우주왕복선도 그냥 확 공중분해돼 버렸었다.
왜냐하면 댐에는 엄청난 양의 물이 담겨 있었고, 비행기와 우주선 역시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이 지상에서 좀체 구경하거나 상상하기 어려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 시국에 대해서도 바로 저런 그림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비유를 들어 볼까?
루시퍼의 죄와 아담의 죄(그리고 이전 세상과 현 세상)를 분간 못 하는 정도의 통찰력이라면, 그냥 나라 윗대가리들의 평범한 부정부패 비리랑 아예 적에다가 퍼주는 반역죄의 차이도 분간 못 할 수는 있겠다.
성경과 현 시국... 물론 분야는 다르지만 일관된 논리로 해석 가능하다는 것이다.

3. 국정원의 여론몰이? 댓글 알바?

우리나라 같은 곳은 지나친 방종과 무질서, 안전불감증이 문제이지, 뭐 누가 검열을 하네, 민주주의가 죽었네 공안 통치네 뭐네 하는 건 정말 1도 고려할 가치가 없는 헛소리이다. 그런 건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아직도 카톡 대신에 라인이나 ISIL이나 쓴다는 듣보잡 메신저들 잘 쓰고 계시나? 루머 괴담 하고는.. ㅉㅉ

요즘 같은 세상에 국정원 요원이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얼굴 안 보이는 사이버 공간에서 얼마든지 공작 활동을 한다. 그곳으로부터 지령이 대놓고 내려오고 유언비어 거짓 선동이 하도 많이 나돌고 불길처럼 퍼져 나가니, 저건 국가 안보 차원에서 국정원에서도 자기 정체를 숨기고 맞불 놓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쉽게 말해 악에 대해 같은 악으로 맞서서 대응한 것뿐이다.

왜? 국정원은 세상 정부 소속의 방첩기관일 뿐, 무슨 신약 기독교회 같은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군대가 살인이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집단인 것만큼이나 거기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게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집단이니까 말이다.

흉악범들이 교수대에서 사형 당하는 걸 보고 동정하기에 앞서 흉악범에게 살해당한 피해자를 훨씬 더 동정해야 하듯.. 국정원의 존재가 불편한 것보다 국정원 같은 기관을 필요하게 만드는 놈들의 존재가 훨씬 더 불편하고 거북해야 하는 게 정상이다.
"진짜" 검열과 공안 통치 같은 건 그나마 지금 국정원을 무너뜨리고 해체하자고 외치는 애들의 바람이 이뤄졌을 때에나 진짜로 찾아올 것이다.

물론 국정원 요원들이 무능해서 임무 수행이 실패하고, 정체가 들켜서 언론 타고 존재를 노출해 버린 것은 실드 칠 수 없는 흑역사이다. 옛날에 스파르타 애들이 훈련 중에 민가에서 음식을 훔쳐 먹다가 잡히면, 도둑질 때문에 벌받은 게 아니라 병신같이 들키고 잡힌 것 자체 때문에 벌받았듯이 말이다.
저기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걸 봐 주는 곳인 만큼, 평가 내지 비판할 때도 의도나 과정 같은 거 따질 필요 없이 오로지 결과만으로 냉정하게 하면 된다. 단순히 본연의 임무에 실패한 것에 대해서도 없는 간첩을 조작해서 무고한 사람을 조진 것만큼이나 욕해도 된다.

4. (잘못된)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자

우리나라는 헌법에서 '말로는' 평화 통일을 지향한다. 그러나 통일이라는 게 마치 결혼처럼 나만 잘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현실에서는 남과 북 체제 중 하나가 물리적으로 없어지지 않는 한 통일 그딴 거 저언혀, 네버 가능하지 않다.
이는 우리나라가 사상과 양심의 자유, 인권 같은 걸 기본적으로 보장함에도 불구하고 신념에 따른 병역(집총) 거부자를 계속해서 실형으로 처벌해야만 하는 이유와도 정확하게 일맥상통한다. 유엔까지는 모르겠다만, 엠네스티나 EU 따위가 남의 나라 안보와 체제까지 책임지고 지켜 주지는 않는다!

내가 여호와의 증인 신자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서 이런 말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것을 최신식 국립호텔에서 1년 반만 살다 나오는 걸로 끝나게 해 주는 국가에서 사는 것을 매우 고맙게 여겨야 할 것이다. (뭐, 그 뒤로도 몇 년간 사회적으로 따가운 시선에다 취업· 여권 발급 같은 데서 불이익이 뒤끝으로 더 따르긴 하겠지만)

우리나라 법조계도 장사를 하루 이틀 하는 게 아니니, 여증들 상대하는 건 이골이 나 있다. 판결문은 보통 "님들에게 대체복무 같은 시스템이 있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구제책이 없고 사법부가 월권을 해서 그런 걸 마련해 줄 수는 없다. 그러니 실형 땅땅땅" 이런 식으로 나오는 편이다.

사실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실용주의(pragmatism) 관점으로만 접근하자면야 지뢰 제거 내지, 군복무보다 훨씬 긴 기간 동안 왕창 힘든 사회봉사로 퉁치는 것을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들의 교리와 사상이 성경 교리로나 사회 통념으로나 근본적으로 옳지 못하고 해롭고 잘못됐다는 것을 일깨우는 차원에서는 계속 실형 때려서 전과자 만드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전국민이 동성애자이면 사회가 유지가 되겠으며,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전국민이 여증 신자가 된다면 남조선이라는 나라가 제대로 유지가 되겠는가?

개인적으로 수혈 안 받는 거야 자유이지만, 자기 애한테도 수혈 안 시키고 심지어 자기가 의료인이 돼서 다른 환자한테까지 수혈 안 시키는 건 갈수록 죄질이 더 나빠지는 범죄이듯이 말이다. (이것도 성경하고 아무 상관 없음)
여증들은 수혈과 집총 거부하는 그 집념으로 술 같은 거나 거부했으면 어지간한 기독교인들 이상으로 더 좋은 평판을 얻었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국군은 침략 전쟁을 전혀 지향하지 않으며 근본 이념이 철저하게 방어적이다. 방어를 위한 전쟁 대비조차 하지 말자는 애들은 진짜 온갖 악독한 욕을 들어도 싼 나쁜놈들이다.

5. 5· 18과 6· 25의 차이

뭐, 전대갈이 법이 규정하는 절차대로 곱게 권좌에 오른 건 아니었으니 5· 18은 일단은 누구 말마따나 의로운(?) 항쟁으로 시작했다고 치자. 그러나 나중에 누구의 거짓 선동이 있었건 뭐가 있었건 어찌 됐든 폭동으로 변질된 것도 사실이다. 루터의 종교 개혁이 나중엔 결국 정치 항쟁으로 변질되었듯이.
그리고 투입된 군인들 역시 과잉방어건, 스트레스와 패닉 속에서 맛이 가서 그랬든, 잘못된 정보에 입각했든 어쨌든 민간인을 죽인 게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광주 5· 18은 제주 4· 3 사태만큼이나 일종의 쌍방과실이다. 앞으로는 그렇게 자국의 민· 관· 군 간에 비극적인 오해와 오사가 없게 진상을 규명하고 화해할 필요가 있다. 민간인 피해 보상은 해야겠지만, 어쨌든 국가의 명령을 수행하느라 목숨 바친 군경에 대해서도 명예를 절대적으로 존중하고 예우해야 한다. 그리고 정황상 둘을 이간질한 진짜 배후의 악한 제3자 세력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니, 이것도 꼼꼼히 연구 조사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이에 반해 6· 25는 빼도 박도 못하고 북괴의 고의성과 과실이 100%로 오래 전부터 입증된 침략 전쟁이다. 이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만큼이나 입증된 사실이다.
그런데 역사를 왜곡하는 사악하고 나쁜놈이 하는 짓이 뭐냐 하면.. 정말로 쌍방과실인 사건에 대해서는 오로지 국가 공권력만 일방적으로 나쁜놈으로 몰아가고, 100:0인 전쟁에 대해서는 '남북 공동 책임 반반씩' 이 짓거리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빨갱이라도 6· 25를 무슨 남조선이 먼저 벌인 북침 이럴 수는 없으니, 그 대신 오로지 국군이나 미군 시행착오 저지르고 뭘 민간인 학살을 하고 잘못한 것만 부각시킨다.
그리고 미국놈들만 없었으면 이 모든 부작용(?) 없이 우리끼리 통일 이뤄서 행복하게 잘 살았을 거라 말한다. 물론, 무슨 통일인지는 절대로 얘기 안 한다.
이런 쳐죽일 놈들이 같은 하늘 아래에 있어서 김 정호 옥사설보다 더 해롭고 악질적인 역사 왜곡을 책과 교육을 통해서 퍼뜨리고 있는 한, 나는 일제의 역사 왜곡 같은 훨씬 덜 중요한 왜곡엔 제대로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

전 두환 회고록이 무슨 히틀러의 <나의 투쟁> 같은 취급을 받고 어디서는 아예 출판 금지 신청까지 했다는데..
뭐 동의한다. 단, 이 승만에 대해서 거짓말 헛소리 잔뜩 늘어놓고 애들 정신건강 해치는 기존 불쏘시개들도 다같이 싹 회수· 폐기 처분해 준다면 말이다. 나도 역사 인식에 대해서 마음에 안 드는 걸 지적하라면 그들 만만찮게 많이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5· 18은 설령 폭동 없이 정말 의로운(?) 항쟁만 있었다고 하더라도 4· 19보다는 격이 낮고, 4· 19는 6· 25 참전 용사 유공자보다 더 낮은 격으로 취급돼야 마땅하다. 겨우 이 승만· 전 두환 끌어내리는 데 실패했고 1공 4공 5공이 좀 더 오래 갔다 해도 남조선이 근본적으로 북한 꼴 날 일은 절대,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민주화? 직선제?는 되면 더 좋고 안 돼도 상관없거나 어쩔 수 없고, 북괴 같은 안보 위협만 없으면 굳이 난리 안 쳐도 더 쉽게 실현됐을 일이었다.
이것이 팩트다.

6. 가난한 서민을 위한 정치인 같은 건 없음 -- 위선이나 떨지 말길

요즘 맨날 나오는 말이 수저 계급론에 경제 민주화, 갑질 이런 것들이다. 물론 요즘 사회에 문제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제아무리 사회가 빈부격차와 개인의 사리사욕을 인정하면서 발전한다 해도 그 격차라는 것도 한계가 있고, 그게 저열한 시민의식과 결합하면서 계층간의 불만과 위화감이 커지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썩어빠진 부자들 기득권들에 대한 증오 부추기면서 세상을 바꾸자느니 적폐청산 하자고 떠드는 애들은 그들이야말로 이미 부자 기득권이며, 눈먼 나랏돈 말고 자기 재산을 남에게 기꺼이 기부하고 베풀어서 자기까지 그 평등의 대상에 포함시킬 생각이라고는 단 1도 없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입시 제도를 평준화시키더라도 자기 자식은 이미 외국 명문 사립학교 다 보낸 뒤에나 한다. 적폐청산? 정말 개뿔 헛소리다. 그냥 당장 입에 발린 거짓말로 우매한 민중을 선동질하는 라이온 킹의 스카 같은 나쁜놈일 뿐이다.

기업을 적대시하고 사업가가 부자가 될 수 없는 세상이면 거기는 그냥 군경· 관료· 법조 공무원 같은 철밥통이 아닌 평범한 기술 스킬로는 부자가 절대로 될 수 없는 세상이고 다같이 거지 되어 평등해지는 세상일 뿐이다. 기업만 부패하지 정부는 그럼 부패하지 않을 것 같냐? 내가 제일 답답해하는 점이 바로 이거다. 사람이 먼저 < "지 아들이 먼저, 북괴가 먼저" 이런 것 보고도 모르겠냐?

가난한 서민을 위한 정치인이 없는 건 가난한 서민을 위한 의적(?) 흉악범이 없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사실이다.
제아무리 주둥이로는 썩어빠진 부자들 기득권들 증오한다는 사회불만형 연쇄살인범 흉악범죄자들이 정작 현실에서 정말 죽여 줬으면 하는 놈들 죽이는 경우란 전혀에 가깝게 없다. 99.9%는 어차피 같은 서민이나 자기보다 더 약한 사람밖에 해치지 못한다! 옛날에 지존파도 그렇고 연쇄살인마 지 춘길도 그렇고 선례는 수두룩하다.

지가 국회의원이고 재벌이고 유명인사 죽이고 싶다고 해서 우주최강 철통보안 속에서 사는 그 사람들이 니 손에 선뜻 죽어 주겠냐?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냐? ㅉㅉㅉ 무슨 윤 봉길· 안 중근의 후예 나셨네. 근데 어쩌나, 그때는 그래도 CCTV 금속 탐지기라도 없던 시절인데.

흉악범죄자의 욕망이 절대 실현 불가능인 것만큼이나 "능력껏 벌어서 필요껏 나눠 쓰는 세상", "사람이 먼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 이딴 구호들도 서로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동일한 차원에서 절대 실현 불가능이다. 저것들 전~부 기출문제들이니 앞으로 또 어떤 선전선동 구호가 문제로 출제될지 예상해 보시라.
그러니 헬조선을 조금이라도 헬이 덜 되게 하고 싶고 타락 속도를 늦추고 싶으면 그딴 망상보다 당장 북괴에다 안 퍼 주는 세상부터 만들려 힘쓰는 게 훨씬 더 현실성 있고 도덕적으로도 올바른 선택이다.

부정부패 없는 세상, 군대가 필요 없는 세상 같은 거야 그 어떤 인간의 힘으로도 이룩할 수 없다. 그건 예수님의 재림 말고는 답 없는 거 맞다. 허나, 북괴에게 안 퍼 주는 세상, '돈으로 평화를 사려는 수작' 하에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적과 내통하지 않는 세상 정도는 인간의 힘으로도 이룩할 수 있고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우리에겐 이것부터가 먼저다.

옛날에 잉카 황제가 스페인 군대에게서 황금을 댓다리 많이 퍼줘서 평화를 사는 게 성공했던가? 개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 그런데 또 같은 사기를 치는 인간 악마가 결국 대통령까지 돼서 주한 미군 철수에 싸드 철회까지 밀어붙이니, 지금이 무슨 재벌 욕할 때이고 겨우 친일파 같은 걸 욕할 때이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지금 정치판은 청렴하냐 부패했냐, 친부자냐 친서민이냐 같은 구도로 양 진영이 나뉜 게 전혀, 절대 아니다.
둘 다 부자 기득권들이고 둘 다 기회주의적이며 비슷하게 부패했다! 단지 한쪽은 그래도 국가관과 안보관이 최소한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정도까지는 아니고(병역비리 방산비리까지 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쪽은 아예 대놓고 북괴가 대화 상대라고 사기를 치는 양의 탈을 쓴 이리요, 마음의 조국은 따로 있는 놈들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최악과 차악 중에서는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걸 그 숱한 시행착오로도 깨닫지 못하는 바보 병신이라면 손발이 직접 고생해 보고서 몸으로 깨닫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긴 한데.. 그렇게 하기에는 나 포함 억울하게 피해 보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차마 그렇게 될 대로 되라고 무책임하게는 말 못 하겠다.
간첩의 정체를 폭로하는 일은 정치 성향 취향도 아니고 좌우 균형이 필요한 분야가 아니다. 옳고 그름의 영역이기 때문에 본인은 그 어떤 강경한 표현도 불사하면서 팩트 폭격을 종종 가할 것이며, 욕 먹거나 명성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6/28 01:44 2017/06/28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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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7/06/28 17:26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 사무엘 2017/06/28 17:58 # M/D Permalink

      반갑다?
      1) 뭐 그 정도는 진화론을 논하면서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나", "인간과 원숭이의 공통조상으로부터 진화했나" 그런 차이일 뿐으로 보인다? ㅎㅎ
      2) 경제 독립을 못 하니 굳이 여증이 아닌 청년들도 결혼 과정에서 자기 마음대로 못 하고 부모에게 많이 휘둘리지..
      3) 여증들은 같은 행동을 과거 일제 강점기 때 일제를 상대로 했을 때는(뭐 실제로 일관되게 신사 참배와 징집을 거부하다가 열나게 박해 받긴 했음) 주 기철 목사 만큼이나 의도치 않은 항일 독립운동으로 인정받았겠지만, 자국 정부가 있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범죄자 되는 거 감수해야지..
      부모와 갈등 빚는 여증 집안 자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런 경우도 있구나.. 잘 알았음~ ^^

  2. 사포 2017/07/11 12:00 # M/D Reply Permalink

    정말 저랑 같은 생각이십니다...ㅠ 앞날이 너무 걱정되어요..

    1. 사무엘 2017/07/11 15:48 # M/D Permalink

      심각한 내용의 글에 공감해 주시고, 더구나 동감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표현까지 해 주시니 더욱 감사드립니다~!
      무엇이 절대악이고 무엇이 필요악인지를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이 분야에서 옳고 그름 답이란 곧장 튀어나올 텐데 어쩌다가 소신 발언을 하는 게 분위기 깨는 일, 용기를 잔뜩 내야 하는 일이 돼 버렸나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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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으로부터 계속됨)
그 다음으로는.. 한국어 정보 처리· 전산화 분야의 1세대 숨은 원로이며 올해 초에 작고하신 고 박 동인 부장을 회고하고 추모하는 순서가 있었다.
이분은 공식적인 최종 학력은 의외로 그냥 서강대 전자공학과 학사가 끝이지만, 업계에서의 실력과 짬은 석박사급 연구원들을 부하로 부릴 정도였다. 주변으로부터 "대학원 가서 학위 좀 받지?" 권유도 받았지만 자기는 그냥 현장에서 '부장' 호칭으로 불리는 게 좋다면서 사양했다고 한다.

박사 학위 없는 사실상의 박사 포스인 게 철도계로 치면 30년간 열차 시각표 외길만 간 김 영근 씨 같은 인상이 느껴진다.
2014년 한글날엔 국가로부터 공로 표창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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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이분을 대학원 코스웍 재학 시절에 교수님이 특강 강사로 초청하신 덕분에 알게 됐으며 나름 같이 얘기도 나눈 적이 있다. 알다시피 본인은 옛날 이야기를 좀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우리나라에 컴퓨터가 처음으로 도입되던 시절이 어떻고 성 기수 박사가 어떻고 글자판이 어떻고 하면서 맞장구를 치고 관련 질문을 하자 그분도 굉장히 놀라고 대단해하고 내 나이를 궁금해하셨다. "자네 대전으로 내려와서 살아도 괜찮으면 ETRI에 입사하는 거 어때?" 이런 말씀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셨다. ㅎㅎ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인이 박 부장님을 대면한 경험이었다. 참고로 이분은 전공과 학벌은 보다시피 박 근혜 대통령과 동일하지만, 외모와 인상은 대조적으로 문 재인 씨와 아주 비슷했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어째 고인의 생전 모습 사진 한 장을 제대로 구할 수가 없나 모르겠네.. 어쨌든 그렇다. 나이도 1952~53년생 연배로 거의 일치함.

추모 세션이 끝난 뒤엔 학술대회하고 나란히 개최된 올해치 국어 정보 처리 시스템 경진대회의 시상식이 있었다. 내가 참가했던 2011년 당시보다 대회 진행이 더욱 체계적으로 잘 바뀌어 있었다. 대회 측에서 요구하는 과제를 수행하는 성능을 측정해서 순위가 매겨지게 진짜 '경진대회'처럼 바뀌었으며, 분야가 이런 지정 과제와 자유 공모로 딱 이원화됐다. 단, 상은 여전히 두 분야를 통합해서 주더라.

이로써 학회의 첫째 날 일정이 저녁 7시쯤에 모두 끝났다. 주최 측에서 근처 식당에서 쇠고기 전골과 육회 요리로 만찬을 제공했기 때문에 밥을 맛있게 먹었다. 본인은 일행이 전혀 없는 관계로 어디에 앉을지가 좀 난감한 상태였는데.. NC 소프트에 재직하면서 동시에 대학원도 다니고 있어서 나처럼 박사 수료 상태인 어떤 여자분과 얘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었다. 이분도 나와 비슷한 처지에서 논문을 투고했으며, 나중에 알고 보니 논문 발표가 나하고 같은 세션에서 나의 바로 다음 차례였다. 기막힌 우연이군.

식사를 마친 뒤엔 난 다시 혼자가 됐다. 이 날은 어제와는 달리 숙소 안 잡고 (1) 노숙하거나 (2) 24시간 영업하는 가게(PC방, 패스트푸드점, 카페 따위) 에서 버티거나 정말 춥고 피곤할 때에만 (3) 찜질방 정도에나 가려고 생각해 둔 상태였다.

어제 해운대 해수욕장에 갔으니 오늘은 그 다음으로 유명한 광안리 해수욕장으로 갔다. 광안리는 해운대만큼이나 지하철 2호선 역에서 비교적 편하게 접근 가능했으며, 21세기 부산의 명물이라는 광안대교가 전방에 보이고 경치가 멋있었다. 단, 모래의 품질은 해운대보다 못해서 자갈이 종종 섞여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들은 이튿날 아침에 찍은 것임)

여기서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뒹굴면서 바다와 교감을 했다. 본격 신선놀음 모드. 해변의 구석진 곳에 가서 진짜로 여기서 잠까지 잘 생각도 했으나..
부슬부슬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새벽 1시 반쯤부터는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근처의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비를 피하고 있다가 결국 근처에 24시간 영업을 하는 카페에서 이튿날 아침 6시까지 버텼다. 이렇게 하루를 보냈다.

차를 가져갔으면 전천후 이동식 텐트가 있으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런 상황에서 숙박 걱정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자기기 충전은 해결할 수 없으며, 기름값과 톨비 깨지고 어딜 가나 주차비를 뜯겼을 테니 부산 정도는 이렇게 자는 게 더 낫고 마음이 편했다.

※ 토요일(10/8): 학회, 부경 대학교 석당 박물관, 용두산 공원+부산 타워, 국제/자갈치 시장

오늘은 드디어 논문 발표 세션이 있었다. 본인은 아침 9시에 제일 먼저 하기 때문에 서둘러 학교로 돌아갔다.
13년 전의 동일 학회에서는 금요일 오후부터 논문 투고자의 발표 세션이 곧장 시작됐고, 토요일에도 점심을 먹은 뒤에까지 세션이 이어졌다. 그 당시에 당장 내 논문의 발표가 토요일 오후 제일 끄트머리였기 때문에 교수님이 "니가 발표할 때쯤엔 사람들이 다들 가고 별로 없겠다" 그러실 정도였다(그리고 실제로 그러했던 걸로 기억. -_-).

허나 그 사이에 절차가 많이 간소화됐는지 지금은 토요일 오전에 발표 세션을 몽땅 몰아서 진행하는 걸로 바뀌었다. 그 대신 세션이 무려 4개가 동시에 진행된다.
어째 개수를 맞췄는지 논문이 총 64개가 투고됐으며, 구두 발표가 절반이었다. 그리고 단순히 "우린 이런 실험을 했소" 통계와 결과 나열이기만 해서 굳이 구두 발표가 필요하지 않은 논문은 포스터 발표로 대체했는데, 이게 나머지 절반이었다. 논문 투고자들이 원하는 발표 형태가 처음부터 감쪽같이 32/32로 나뉘지는 않았을 텐데 중간 조정이 있었지 싶다.

나는 뭔가 발표나 강의를 할 때 비록 말하는 속도가 여전히 너무 빠를지언정, 시간은 그리 초과되지 않고 그럭저럭 지키는 노하우를 오랜 시행착오 끝에 터득했다. 이런 연구를 왜 했고 논문의 초 핵심 본질만 요약하는 한편으로, 논문에서 분량상 차마 다루지 못한 보충 설명 위주로만 발표를 했다. ppt는 14장이고 사실은 지금까지 탱자탱자 놀다가 ppt 자체를 전날 밤에 카페에서 급조해서 준비했다. -_-;;

나는 그럭저럭 후회 없이 말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걸 알아들었을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1인당 발표 시간은 15분에 불과하다고 공지가 됐을 텐데 다른 분들은 최하 20장 이상에 30~40장짜리.. 이거 무슨 30분에서 1시간 분량으로 자기 연구의 모든 것을 미주알고주알 소개하는 강의 자료를 가져오신 경우가 많았다.
난 14장짜리 ppt로도 15분에 간신히 맞춰서(약간만 초과해서) 발표를 마쳤는데도 말이다.

본인은 어쩌다 보니 한글 입력기와 글꼴 같은 글자 단위의 입출력 기술 관련 연구를 계속하게 됐다. 내 최대의 관심사는 "한글이니까 가능한 고유한 활용 방법을 개척하는 것"이다. 이건 누가 봐도 명백하게 언어정보학 내지 언어공학의 범주에 든다. 그게 아니면 다른 카테고리를 붙일 여지가 없다.
순수하게 전산학이나 컴공의 영역도 아니고, 순수하게 언어학이나 산업디자인의 영역도 아님. 저 바닥엔 난 독자적인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고 논문 쓸 거리도 더 있다.

허나, 언어공학을 한다면서 정작 인공지능에 통계, 빅데이터, 머신 러닝 어쩌구 하는 분야는 난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으며 딱히 전문가도 아니다. 내가 자동차나 철도 공학에 관심만 많지 그쪽으로 딱히 전문가가 아닌 것만큼이나 저쪽도 막 전문가가 아니다. 내가 창작한 프로그램과 논문들은 "한글 및 한국어 정보 처리"라는 범주에는 들지만 뭔가 '주류'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니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교수님들도 잘 모르고 생각 못 한 기괴한 주제로 논문을 쓸 거니까 뭐 시간만 주어지면 졸업이야 별 문제 없이 하겠지만, 이렇게 학위 받아서 내 논문의 연구 분야를 주제로 일자리 수요가 있을지, 취업은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런 약간의 어두운 생각도 들었지만 역시나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을 고민 할 시간에 날개셋 코딩이나 한 줄 더 해라"라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극복하기로 했다.

나 말고 '비주류' 주제 연구는 사실상 딱 하나 더 있었다. 숭실대에서 한글 메타폰트에 대해서 연구 발표를 했는데, 흥미롭게도 이 역시 본인과 동일한 세션에 있었다.
오전엔 이런 식으로 내 논문 발표 후에는 남들 발표를 듣고 포스터를 보는 걸로 시간을 보냈다.

학회에서는 먼저 가 버리지 말고 논문 발표를 끝까지 듣고 귀가하라는 취지에서, 세션이 다 끝난 뒤에 점심 식권을 배부했다. 덕분에 점심도 우동 스타일의 만두국으로 든든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이로써 학회가 완전히 끝났고, 본인은 오후에 계획했던 주변 관광을 시작했다. 그런데 비가 아침에 좀 그치나 싶었는데 낮부터 또 빗줄기가 굵어졌다. 본인은 열차의 선반에 올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왔지만, 돗자리와 담요는 챙겼어도 우산은 가져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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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비도 피할 겸 먼저 학회장 바로 옆에 있는 석당 박물관부터 관람했다. 건물도 근대 문화재급인데 안에는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기와, 토기, 인물화· 풍경화 등 고미술품과 과거 유물이 많이 전시돼 있었다.
연세 대학교는 일부 건물이 구한말 때 지어져서 근현대 문화 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여기도 나름 건립 배경은 다르지만 그에 준하는 옛날 건물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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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건물 밖에 있는 부산 전차도 가까이에서 구경했다. 원래 이 시간대엔 내부도 개방하지만 비 때문에 이번엔 안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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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학교 밖으로 나와서 비를 맞으면서 용두산 방면 동쪽으로 걸어갔다. 중간에 영락 교회라고 크고 역사가 길고 유명한 듯한 교회 예배당을 지나쳐 갔다.
용두산 공원 진입로와 부산 타워가 가까이 보일 무렵에 '부산 근대 역사관'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보수산에서 관람했던 '부산 광복 기념관'과 비슷한 컨셉으로 반일 항일 테마인 박물관이었다. 여기에도 응당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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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곳이었다. 부산이 항구 무역 도시이니만큼 일제의 경제 침탈을 더욱 부각시켜 설명해 놓은 게 인상적이었다.
아, 해방 후 얘기도 없지는 않음. 안에는 부산 전차를 비롯해 옛날 부산 시내와 상점들을 재연해 놓은 곳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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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남산에 타워가 있다면, 부산은 용두산에 타워가 있다. 하지만 용두산은 높이가 50여 m에 불과한 아주 낮은 언덕일 뿐이기 때문에 캐리어 끌고 도보로도 큰 부담 없이 쓱싹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서울 남산 같은 케이블카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부산 타워도 높이나 크기면에서 서울 남산 타워에 비할 바는 못 된다. 부산 타워는 그냥 하얀 등대 컨셉이며, 서울의 것과는 달리 전파 송신 기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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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옆엔 웬 공터와 정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어둑어둑하고 비 오는 날 공원이나 산 속 정자에서 혼자 누워서 비를 피해 자거나 코딩하는 것을.. 바닷가에서 뒹구는 것만큼이나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한다.
여기서 좀 쉬다가 입장료를 내고 타워를 올랐다. 본인 주변엔 온통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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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에서 영도 쪽을 내려다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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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국제 시장 쪽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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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건 자갈치 시장 방면이다. 본인은 타워에서 내려온 뒤엔 이쪽으로 직접 답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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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앞에 있는 다리가 영도대교이다. "매일 오후 2시 정각~15분, 도개 중엔 차량 진입 금지"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시간대가 안 맞아서 실제로 다리를 들어올리는 모습은 못 봤다.
본인은 몇 년 전에 해양 대학교로 가느라 바로 저 영도대교를 건넌 적이 있었을 텐데 그때는 지금 같은 부산 지리 감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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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도 노량진 수산 시장이 있으며 본인은 몇 번 가 봤다. 허나 부산은 아예 바다를 낀 항구 도시이니 수산 시장의 규모가 서울을 능가할 수밖에 없다.
'자갈치'는 과자 이름이기만 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원전이 따로 있더라. 또한, 저 캐치프레이즈는 "왔노라, 보았노라, 질렀노라"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시저가 남긴 말의 원래 뜻은 우리말로 치면 "나 왔음. 봤음. 이김."처럼 극도로 간결하고 시크한 뉘앙스일 뿐인데 번역 과정에서 '-노라'라는 종결어미가 동원되면서 필요 이상의 간지가 추가된 것에 가깝다.
갈매기 모양의 상점 본건물을 가까이에서 본 모습은 굳이 여기에 사진을 또 첨부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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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어는 개인적으로 얼마 전에 먹어 봤기 때문에 부산에서는 특별히 광어에 준하는 우럭을 선택했다.
예전에 해수욕장 투어를 하면서 식당에서 코스 요리도 먹어 보고 그냥 회덮밥도 먹어 봤으니, 이번에는 포장만 해서 먹어 봤다.

밖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우산 쓰고서 청승맞다면 청승맞은 모습으로 회를 혼자 열심히 "쳐묵쳐묵" 했다. 정말 꿀맛이었다. 돼지도 그렇고 광어나 우럭도 그렇고, 외형이 못생긴 편인 동물들이 살은 아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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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비 내리는 바다를 구경하면서 식사를 했다.

허기를 달랜 뒤 북쪽으로 가서 국제 시장 일대를 더 돌아다니려 했으나, 비가 계속 많이 오고 길거리가 예상 이상으로 차와 사람들로 굉장히 혼잡한 관계로, 계획한 것만치 많이는 못 다녔다. 안 그래도 날이 빠르게 어두워져서 사진을 찍기 더 힘들어지기도 했다.

해수욕장에서 더 놀자니 비가 계속 내릴 뿐만 아니라, 돗자리가 양면에 모두 흙이 너무 많이 묻어서 더는 무리였다. 김해 경전철 시승을 하자니 여기서 지리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동선이 안 맞았다. 사실, 비 내리는 한낮이라면 편안히 이동하면서 비 내리는 차창 밖을 구경할 수 있는 김해 경전철 시승도 나쁘지 않은 관광이긴 했을 텐데 말이다.

이것저것 고민 끝에 당초 계획보다 일찍 고향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갔는데 경주를 들르는 건 자연스러운 동선이니까. 다만, 지금 생각해 보니 부산에서 이 정도로 역사 안보 관광을 했는데 UN군 묘지 공원을 미처 못 들른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시 부산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부전 역에서 내렸다. 여기서 꽤 오랫동안 머물면서 폰과 컴퓨터를 충전했다. 역에서 자체적으로 아예 벽면 콘센트에다가 멀티탭을 연결해 놓고 "필요하면 전자기기 충전하고 가세요"라고 친절하게 써 붙여 놓아 있었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졌지만 복선전철로 탈바꿈한 동해남부선의 모습을 얼추 확인할 수 있었다. 선로를 복선으로 폭을 확장하려다 보니 시내 접근성을 희생하고 선로가 바다 구경을 할 수 없는 곳으로 많이 이설됐다. 대표적으로 (신)해운대 역은 바다와는 완전히 동떨어졌고 오히려 군부대가 가까이 있는 산기슭으로 이사 갔다. 경춘선 강촌 역과 비슷한 꼴이 났다. 얘도 이름과는 달리 이제 전혀 강 근처에 있지 않으니 말이다.

리모델링된 역들은 무궁화호가 서는 저상홈 승강장과 전철이 서는 고상홈 승강장이 수평으로 나란히(수직· 앞뒤가 아니라) 생겼는데, 신기한 것은 같은 역이 무궁화호 승강장에 적힌 역명과 전철 승강장에 적힌 역명이 서로 다른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점이다.
가령, 전자는 수영 역인데 후자는 센텀 역, 그리고 전자는 그냥 해운대인데 후자는 신해운대. 궁극적으로는 전철역명으로 변경할 거라고는 하는데 그럴 거면 옛 역명으로 간판을 만들기는 왜 만들었는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2015년쯤부터는 동해남부선이 완전히 신선으로 이설돼서 지금의 서경주· 경주 역도 다 없어지고 신경주 역이 일반열차까지 취급하게 될 거라고 하는데 2016년 말인 현재까지도 실현되지 않았다. 그래도 동남권 '부울경'에 철도가 앞으로 많이 바뀔 예정이니 느긋하게 지켜볼 생각이다.
얼마 안 있어 동해남부선 광역전철이 개통하면 임랑이나 일광, 송정처럼 부산 북부에 교통이 더 불편한 곳에 있는 해수욕장들도 찾아가기가 더 수월해질 것이다.

경주에서 서울로 돌아갈 때는 오랜만에 KTX를 이용했다. 전국의 고속도로들이 저렇게 차선 곳곳을 틀어막고 공사 중인 걸 보니 주말에 고속버스를 탔다가는 왕창 막힐 것 같아서였다.
비록 철도 노조가 파업 중이긴 하지만 코레일도 바보가 아니다. 아무리 사람이 부족하다 해도 회사에 돈을 압도적으로 제일 많이 벌어 주는 cash cow 효자인 KTX는 그야말로 최하 우선순위로 감축될 것이다. 게다가 입석 승객까지 넘쳐나는 일요일 오후에 상행은 감축 같은 건 절대 없다고 봐야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열차를 기필코 굴릴 것이다.

사실, 대전· 대구 시내 구간이 개통한 지도 1년이 넘었는데 그 뒤로 KTX를 타 보는 게 처음이었다. 열차는 대구 시내를 벗어나자 곧장 지하 터널로 들어갔으며, 대전 근처에서도 옥천에서부터 천천히 가는 게 아니라 또 터널로 들어가서 곧장 판암 IC까지 직통으로 달렸다. 예전에 비해 느리게 달리는 구간이 확실히 줄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이거 뭐 날씨가 싹 바뀌었다. KTX를 탄 게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계절이 다른 나라로 날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학회가 1주일만 늦게 열렸어도 해수욕은 못 할 수도 있었겠다.

이렇게.. 논문 쓰느라 코딩 시간을 빼앗기고 좀 힘든 나날을 보내긴 했지만, 덕분에 부산에서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왔다. 2003년엔 대전에 있다가 서울을 갔다 왔지만, 2016년엔 서울에 있다가 부산을 다녀 왔다.
그리고 학회가 끝난 뒤엔 내가 쓴 논문이 우수 논문 중 하나로 뽑혔다는 뜻밖의 기쁜 소식도 덤으로 접했다. 요즘 뜨고 잘나가는 연구 분야를 다룬 게 아닌데 이런 논문도 알아 주니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01 19:32 2016/11/0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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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는 말

본인은 지난 여름에 <부산행>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얼마 전엔 어째 진짜로 부산을 갈 일이 생겼다. 한글 및 한국어 정보 처리 학술대회에다 논문을 투고하고 발표하게 됐기 때문이다. 올해는 28회째이다.
아무 이유 없이 쓴 건 아니고.. 학술지에 소논문을 게재하는 게 박사 졸업 이수요건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두 편이 규정돼 있기 때문에 이런 걸 조만간 하나 더 써야 한다.

이번에 쓴 논문은 사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8.6에 넣으려 했던 새로운 기능에 대한 아이디어가 주제이다(하지만 결국 못 넣고 또 다음 버전 기약을..ㅠㅠ). 분량 제한 때문에 모든 아이디어나 진짜 복잡한 고급 기능 소개는 넣지도 못하고 그냥 기본적인 것에다 약간의 응용 수준까지만 다뤘다.
이런 논문은 학술지 사이트에 영원히 기록으로 남고 후속 연구자들이 검색해서 열람도 하게 되는데, 저런 태생적인 한계만 감안한다면야 나름 후회 없게 논문을 썼다.

이런 기능을 넣을 생각 자체는 회사일을 하다가 떠올리게 됐다. 별개인 것 같은 기능이 알고 보니 한글 입력에다가 이렇게 접목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게 내 개인 프로그램에다가도 들어가고 논문으로 써서 졸업 이수요건도 채우게 됐으니 MS의 과거 캐치프레이즈를 빌려서 표현하자면 everything at once를 얼추 달성했다.

본인이 저 학술대회와 인연을 맺은 것 자체는 대학 학부 시절이던 엄청난 옛날, 2003년 제15회 시절이다. 지금은 은퇴하신 김 진형 교수님의 제안으로 논문을 덜컥 투고했는데, 지금도 검색하면 그걸 볼 수는 있다. 물론 그로부터 13년 뒤,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버전이 8.x가 꺾인 지금 관점에서 보면 겨우 2.x를 기준으로 작성된 논문은 가히 흑역사 급의 민망한 퀄리티가 돼 있다.
하지만 그 학술대회에서는 기조 강연 겸 기념품으로 Unicode CJK IME를 득템하게 되었으니 이것은 아직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외부 모듈조차 개발돼 있지 않던 당시에 중요한 동기 부여와 기폭제 역할을 했다.

다음으로 본인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2012년에는 이 학술대회는 아니지만 비슷한 격으로 동시 병행 개최되던 국어 정보 처리 시스템 경진대회를 참관하러 부산을 방문했었다. 거기서 전년인 2011년 대회의 입상자들을 초청해서 관람권을 줬기 때문이다. 그때 경진대회와 학술대회의 개최 장소는 해양 대학교였다.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부산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올해 대회도 또 부산에서 열리니, 본인으로서는 지리적인 면모가 약간 아쉬웠다.
여기는 자가용과는 완전 상극인 위치였다. 강원도나 경기도의 적당한 오지라면 미지 탐험도 할 겸 응당 차를 가져갔겠지만, 일행도 없이 혼자 이 장거리를 차 끌고 가는 건 금전과 체력 소모가 심하다.
또한 부산은 대도시일 뿐만 아니라 인구밀도 대비 도로 사정이 안 좋은 걸로 전국적으로 악명 높으며, 반대로 학회 장소는 지하철역에서 아주 가까이 있다. 그러니 여행은 어딜 가든 캐리어 끌면서 뚜벅이 형태로 가게 됐다.

그리고 교통· 지리와 관련된 또 다른 악재는.. 기왕 부산을 대중교통만으로 방문하는 흔치 않은 기회가 왔는데, 하필 동해남부선 복선 전철의 개통 시기를 미묘하게 비껴 가게 됐다는 것이다. 선로는 다 완공됐지만 서울 수도권 바깥에서 통근형 전동차가 다니는 진풍경은 못 봤다.

단점 얘기는 여기까지. 뭐 그렇긴 하지만 이번에 본인은 태어난 이래로 제일 치밀하게 부산 투어를 해서 제한된 시간 동안 뽕을 뽑고 왔다.
<부산행>, <해운대> 같은 영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부산은 어째 재난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부산은 근대기 개항 이래로 일제 강점기, 6· 25, 그 뒤 민주화 운동까지 우여곡절이 참 많은 동네이다.

대도시로서 1960년대에 전국에서 최초로 직할시로 승격됐으며, 해방 직후에 서울· 평양과 더불어 한반도에서 노면전차가 다녔던 3대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6· 25 전쟁 중에 평양에 잠시 태극기가 꽂힌 적이 있던 것만큼이나, 부산은 전쟁 중에 임시 수도였던 적이 있다. 그리고 전국의 피난민들이 한데 몰려들었으며, 전국의 대학교들이 부산에 한 자리에 임시 캠퍼스를 개설해서 학생들에게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학회 장소인 동아 대학교 부민 캠퍼스가 부산 역사의 중심지인 아주 기가 막힌 곳에 있었다. 그래서 더욱 보람찬 관광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 목요일(10/6): 해운대 해수욕장

학회의 시작은 금요일부터이지만, 본인은 부산에서 작정하고 놀기 위해서 그 전날에 집을 나섰다. 물놀이와 노숙이 가능하게 갈아입을 옷 여러 벌에다 돗자리와 작은 담요까지 커다란 캐리어에다 몽땅 집어넣었다.

8월 말까지는 논문 쓰는 것 때문에 '문장을 어떻게 다듬을까, 주제별 분량 편성을 어떻게 할까' 갖고 왕창 고민했다면, 9월 말에 학회 참가가 확정된 뒤부터는 여행 계획을 짜느라 '일정 전후로 관광은 어떻게 할까, 열차냐 버스냐, 어디부터 먼저 갈까, 산에서 잘까 바다에서 잘까'로 고민의 양상이 바뀌었다.
차 없이 장거리 여행을 하면 무슨 교통편을 선택할지가 마치 프로그램 짜듯 고민거리가 된다. 그런데 동서울-해운대 직행 시외버스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가는 길은 모든 논란이 종결돼 버렸다. okay!

해운대까지는 5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오랜만에 보는 대구-부산 민자 고속도로 구간은 경부선 철길과 나란히 지나고 경치도 무척 아름다웠다. 단,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영동뿐만 아니라 전국의 고속도로들이 죄다 곳곳이 보수 공사 중이었으며, 차선이 하나 틀어막혀서 차량 정체가 발생하곤 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남쪽으로 몇 블록 걸어가니 말로만 듣던 해운대 해수욕장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곧장 근처 여관에 방을 잡아서 짐들을 갖다놓고, 물놀이용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버스 안에서 배터리를 다 소진해 버린 폰과 노트북 PC는 콘센트에 꽂아서 충전시켜 놨다. 그 뒤 방 열쇠만 몸에 지닌 채 해변으로 가서 물에 뛰어들었다.

나 요즘 해수욕 즐기는 데 재미 붙였다. 올해에만 해도 동· 서· 남해 바다에서 제각각 다 놀아 봤다.
계곡이나 강에 비해서 바다는 물이 덜 시원하고 끈적거리고 모래 붙는 거 신경을 써야 한다. 물놀이를 마친 뒤에 샤워 같은 후처리가 반드시 필요해서 번거롭다. 하지만 일단 면적이 압도적으로 넓으며 파도가 치는 게 역동적이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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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아주 맑고 따스해서 물놀이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바로 전날 이 동네에 강풍과 물폭탄이 쏟아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만, 시설이 부서진 게 있는지 근처에서는 무슨 복구 공사가 한창이긴 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명품 해수욕장답게 모래는 자갈· 돌 같은 걸 전혀 찾을 수 없으며 품질이 좋아 보였다. 글쎄, 소실되는 양이 많아서 모래를 외부에서 사 와서 보충한다고는 하던데..;;
또한, 시골이 아닌 대도시 소재이다 보니, 모래사장 바로 뒤로 곧장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것도 이색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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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가까이 물에서 돌아다닌 뒤엔 여관으로 돌아가서 씻고 옷을 다시 갈아입고, 해변에 두 번째로 찾아갔다. 이제부터는 물엔 가끔씩 발만 담그고 나왔으며, 모래밭에 돗자리를 깔고 이런 식으로 뒹굴거렸다. 점심 도시락도 이 자리에서 꺼내서 먹었다.
맥북은 산과 바다 어디에서든 저렇게 나의 든든한 동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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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이 공식적으로는 폐장한 상태이고 평일에 날도 저물고 있었지만 저 정도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해변을 거닐고 있었다. 해변의 끝부분에는 낚시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물놀이에다 산책을 많이 하니 꽤 피곤해져서 숙소로 돌아가 좀 쉬었다. 그 뒤 완전히 밤이 된 뒤에 세 번째로 해변으로 갔다. 돗자리와 담요, 컴퓨터, 간식/야식거리만 챙겨서 아까보다는 짐을 줄인 상태로 가서 뒹굴거렸다.

부산 아니랄까봐, 해수욕장 모래밭에서도 인근 건물에서 쏘는 와이파이가 잡혔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 8.6의 업로드와 내 홈페이지 갱신은 바로 부산 해운대에서 행해졌다.
인제는 제법 쌀쌀함이 느껴져서 담요가 제 역할을 했다. 이대로 자 버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잠들었다.

※ 금요일(10/7): 보수산 중앙/민주 공원, 임시 수도 기념관, 학회, 광안리 해수욕장

오후부터 드디어 학회가 시작되니 그 전에 아침엔 부산 역과 동아 대학교의 사이에 있는 보수산이라는 산을 올랐다. 이 산의 정상에는 꽤 큰 규모의 여러 공원들이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뒤에 설명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일제 강점기, 6· 25, 민주 항쟁 등 이념 한번 참 다양하더라.

해운대에서 부산 역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역에서 목적지까지는 버스 환승을 했다.
여담이지만 부산 지하철 최초의 환승역인 서면 역은 어떻게 만들었는지 상당한 개념환승(환승 거리 짧음)인 게 좋았다. 서울 지하철 최초의 환승역인 신설동 역은 전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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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북쪽에 있는 무슨 충혼탑. 검색을 해 보면 무엇을 기리기 위해 언제 세운 탑인지가 나오겠지만 생략한다. =_=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있게 해 놓은 것 같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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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혼탑의 이남으로는 이렇게 조각 공원도 조성돼 있었다. 경치 좋고 날씨도 좋아서 여기서 산책이나 혼자 코딩, 아니면 심지어 노숙을 하기에도 적절해 보였다.
그 뒤로는 4· 19 혁명 기념탑이 있었는데 사진은 생략함.
또한 산 정상에서 주변 풍경을 몇 장 찍은 것도 있으나, 이것보다는 부산 타워에서 찍은 사진이 더 높고 전망이 좋으니 그걸로 대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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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 근처에는 부산 광복 기념관이 있었다. 이건 일제 강점기 역사 버전이다.
1876년에 체결되었던 강화도 조약이 생각보다 꽤 불평등한 조약인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엔 3· 1 운동 기간 당시(1919년 3~4월)에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 각지에서 벌어졌던 만세 시위에 대한 기록도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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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의 글씨체부터가 뭔가 노사모스럽고 "사람이 먼저" 이런 구호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지금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내부에 안내 표지판들의 주요 용어들도 통상적으로 잘 쓰이지 않는 순우리말로 바꿔 적어서 옷차림으로 치면 개량 한복스러운 느낌이 났다. 나도 엄청 국수주의적인(?) 한글 입력기를 전문으로 개발하는 사람이고 저런 시도 자체는 나쁠 게 없으나, 정치색과 관련된 이상한 편견이 생기고 나니 보기가 괜히 민망하다. =_=;;

보수산 꼭대기에 있는 각종 건물과 시설 중 이 민주 항쟁 기념관이 규모가 제일 컸다. 그래서 공원 전체의 대표 이름도 '민주 공원'이다.
이 승만 말기의 4· 19라든가 박 정희 말기의 부마 항쟁,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까지는 나도 의미를 인정하겠다만.. 거기에 왜 5· 18까지 다루고 있고(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이며 지역적으로 딱히 부산과 관계가 있지도 않음) 효순· 미선 반미 시위나 6· 15 정상 회담 얘기는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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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민주 항쟁 기념관보다도 더 남쪽으로 가서 샛길로 빠지면 '대한해협 전승비'가 나온다.
6· 25 전쟁 당시에 북한군은 38선을 넘어서 육로 전방으로만 쳐들어온 게 아니라 동시에 부산으로도 후방 교란을 목적으로 무장 병력을 침투시켰다. 그랬는데 우리나라 해군이 1950년 6월 26일 새벽에 이 괴선박을 발견하여 격침시켜서 수백 명에 달하는 적군들을 꼬르륵~ 수장시켰다. 비록 국군이 그 뒤로 밀려서 서울도 빼앗기고 후퇴하게 됐지만 어쨌든 이 전투가 우리나라로서는 6· 25 '전쟁' 중에 벌어진 전투들 중 최초의 '승전'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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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산에는 이렇게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하여 볼것들이 아주 많았다.
산을 오르내리는 지름길은 이렇게 압박스러웠다. 이런 데서는 살기가 무척 힘들 것 같다.
여기서 동아 대학교까지는 근성으로 걸어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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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대학교 부민 캠퍼스가 나타났다. 고풍스러운 빨간 벽돌 건물이 먼저 날 반겼는데, 이건 실제로 옛날 건물이며 지금은 동아 대학교에서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학회는 그 옆의 신축 건물인 '국제관'에서 열림.
여기까지 관람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니, 일단 본인은 학교 뒤에 있는 임시 수도 기념관을 답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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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수도 기념관도 빨간 벽돌 스타일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상하이에 임시 정부 거처가 있었던 것처럼 6· 25 전쟁 중엔 우리나라 정부도 부산으로 피난 가서 대통령이 바로 여기에서 지냈다. 국회도 부산에서 열렸고.
저 건물은 그때의 그 건물 자체는 아니고 원형을 따라 나중에 다시 지어진 거라고 한다. 대통령 관저, 그리고 전시관 이렇게 두 파트로 나뉘어 있으며, 두 건물은 살짝 간격을 두고 서로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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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접실과 대통령 집무실이다. 지난번에 고성에서 봤던 대통령 별장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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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저렇게만 써 놔도 업적과 흑역사에 대해 충분히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잘 써 놨다.
한강 다리 폭파나 보도연맹 같은 극단적인 팩트까지 다룰려거들랑 남조선 대통령의 실책에다가 0이 몇 개는 더 붙은 수준의 훨씬 더한 악행을 저지른 공산당의 민간인 학살까지 같이 거론해야지. 예를 들면 개전 초기의 서울대 병원 대학살 같은.

오글거리는 미화나 우상화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악의적이고 불순한 왜곡이나 좀 하지 마라. 그 시절에 저런 대통령이나 희생이라도 없었고, 욕먹을 걸 감수하고라도 살짝 장기집권 안 했으면, 남조선 전체가 빨갱이 치하에 들어갔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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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국제시장>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역사 기록을 종합해 보면 1953년에는 부산에 화재 참사가 두 번이나 났었다. 1월 30일엔 국제 시장에서, 그리고 그 해 11월 27일엔 부산 역 일대에서 큰 불이 나서 피난민들의 생계 터전이 송두리째 박살이 났다.

그리고 195~60년대 우리나라의 컬러 사진을 보면 산업화 이전의 옛날이 오히려 꼬질꼬질하며, 산과 언덕에도 나무라고는 찾을 수 없고 지금의 북한처럼 누런 흙이 다 드러나 보이는 걸 알 수 있다. 사진이 낡고 바래서 누런 톤으로 변한 게 아니다. 인간이 화석 연료와 각종 금속· 플라스틱 재료를 활용하기 전에는 당장 동네 뒷산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그런 연료와 건축 자재 역할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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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할 때는 총기를 갖고 오되(우리가 득템 노획해야 하니까), 손에 쥐지 말고 목에다 덜렁덜렁 걸치고 오너라."
"살 수 있는 유일의 길은 귀순뿐이다! 용단을 내려서 귀순하라!"
전시관에는 6· 25 전쟁 당시에 살포되었던 삐라들이 특집 전시되어 있었다. 하긴, 강원도 화천의 파로호 안보 기념관에서도 봤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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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에는 무슨 초등~중등학교가 아니라 인서울 대학교들도 부산으로 피난 가서 저런 데서 수업이 진행됐다.

역사 얘기를 더 보충하자면, 6· 25 전쟁 당시 우리나라 정부는 1950년 8월 18일부로 부산을 임시 수도로 정했다. 그러다 9월 28일에 서울을 수복하고 국군과 UN군이 10월 19일에 평양까지 점령하자 정부는 10월 27일에 환도를 결정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해 1951년에 전세가 도로 38선 이남으로 밀리자 정부는 1· 4 후퇴 바로 직전인 1월 3일에 다시 부산으로 본진을 옮겼다.
국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한 날이 1950년 10월 1일인데, 적군이 38선 이남으로 도로 넘어온 날이 1951년 1월 1일이니 정확히 3개월 만의 통한의 후퇴였다.

3월 14일, 아군이 2차 서울 수복을 이뤄 냈지만 이번에는 우리 정부는 예전처럼 곧장 환도하지 않고, 전쟁이 완전히 휴전으로 귀착될 때까지 후방인 부산에 계속 머물렀다. 그래서 1953년 광복절에야 2차 환도가 이뤄졌다.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다.
건전한 대한민국 국민, 특히 서울 시민이라면 윤 봉길· 안 중근 의사 같은 사람이 거사를 이룬 날이나 순국한 날뿐만 아니라 6· 25 전쟁 때 우리나라가 서울을 수복한 날도 기억하는 게 좋을 것이다.

여기까지 구경하고 나니 이제 시간이 되어 본인은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첫째 날에는 강당에서 가만히 앉아서 그저 강연들을 듣기만 하면 됐다. 처음에는 근래에(지금으로부터 1년 이내에) 언어 공학 분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신진 연구자들 4명이 초청을 받아 자기 연구 분야에 대한 강의를 했고, 그 다음엔 이 바닥에 이미 유명한 교수들 4분이 강의를 했다.

카이스트 학부 시절에는 얼굴을 한 번도 못 뵈었고 딱히 학부 강의를 하지도 않는 것 같으시던 최 기선 교수님은 예나 지금이나 시맨틱 웹이 어떻고 온톨로지가 어떻고 하는 외길을 가시는 듯하던데 강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_=;;
경주에서 한번 뵌 적이 있는 변 정용 교수님도 여기서 강의를 하셨고 본인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분들 말고 또 기계번역과 관련된 강의도 있었다.

그리고 이 학술대회에 후원을 많이 해 준 네이버, NC소프트와 솔트룩스라는 기업의 "자기 회사 자랑 + 인재 모집" 소개 세션도 있었다. 네이버야 검색엔진 전문이니까 자연어 처리에 관심이 왕창 많을 수밖에 없는 기업이지만, 엔씨는 온라인 게임 개발사 아냐?
비주얼 C++에 유니티 3D 엔진을 잘 다루는 클라이언트 개발자, 유닉스 셸 스크립트와 컴터 보안에 능통한 서버/DB 개발자, 혹은 2D 원화/3D 모델 디자이너만 뽑을 것 같은데.. 의외로 거기 내부에도 인공지능 및 자연어 처리 연구소가 있어서 석· 박사급 연구원들이 논문도 많이 내고 있었다. 경쟁사인 넥슨엔 그런 게 있다는 얘기를 못 들었는데 말이다. (下에서 계속됨)

Posted by 사무엘

2016/10/29 08:30 2016/10/2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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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2016년이고 좀 있으면 우리나라에 제6공화국이 출범한 지도 30주년이 되는데.. 우리나라는 개헌과 디노미네이션(화폐 개혁)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21세기 전반부에 풀고 가야 할 대표적인 숙제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는 둘 다 지금 당장까지는 아니어도 예측 가능한 가까운 미래에 추진하는 것에 찬성 입장이다.
먼저 정치 쪽은.. 대통령 선거 타이밍을 국회의원의 타이밍과 맞추고, 대통령은 미국처럼 4년 + 호응 좋으면 1회 중임 가능하게 하는 게 어떨까?

우리나라가 역사 정서적으로 독재자의 엿장수 식 개헌에 대한 트라우마가 좀 있는 건 사실이다. 이에 대한 반발 때문에 지금 헌법은 반대로 고치기가 너무 어렵게 바뀐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본인이 예전에도 생각을 밝혔듯이, 옛날에 그 정도 독재는 당대의 국민 의식 대비 북한의 위협 때문에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 그 정도로 위태롭던 시기에도 그 정도 인권유린이나 정치범 탄압 부작용밖에 없었다면, 세계 역사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나마 아주 선량한(?) 독재였다고 본다.

그 독재 권위라도 없이 국론이 완전 사분오열돼서 나라꼴이 도떼기시장 개판오분전이 되고 뭐 하나 큰 사업을 시작하려 해도 맨날 반대를 위한 반대에, 조선 시대식 당파 싸움에, 제발 데모질 좀 하지 말라고 데모가 벌어지고, 이 틈을 노려 공산주의자 간첩들이 활개를 치면서 민· 관을 마음껏 이간질하다가 또 북한이 남침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라. 이것보다야 차라리 강력한 독재가 나았으며 특히 그 옛날에는 그게 더 절실한 필요악이었다. 오죽했으면 전땅크의 5. 18은 몰라도 박통의 5. 16 쿠데타는 그 시절에 어지간한 지식인 지도층들도 지지했을 정도였다(예: 장 준하).

그 와중에 민주화라는 것도 백성들이 그냥 저항만 한다고 이뤄질 수 있는 거 아니다. 통치자들이 기본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최소한의 선량한 마인드는 갖춰져 있었으니 정권 교체가 가능했다. 그게 아니라면 북한은 주민들이 민주 의식 저항 의식이 남조선 인민들보다 부족해서 저 지경이 된 것이겠는가?

예전의 통치자들이 국민을 우습게 여기고 비리 저지르고 잘못한 거야 신나게 까고 비판하고 씹어야 할 것이다. 두 번 다시 그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게 국민이 감시를 잘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큰 그림을 보면 명백히 썩은 내 풀풀 나는 쓰레기 시궁창 속에서 그나마 이 정도 꽃이라도 기적적으로 피워 낸 거라고 볼 수 있다.

그게 아니라 무슨.. 우리나라가 해방 직후에 우리 민족끼리 아~주 평화롭게 통일 국가 이뤄서 잘 살 수 있었는데 무슨 나쁜놈이 친미 친일 공화국을 만들고 나라를 분단시키고 좋은 기회를 다 망가뜨렸네 하는 그딴 소리에는 본인이 내 양심과 명예를 걸고 죽어도 전~혀 동의하지 않으며 온몸으로 반대한다.
통일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그 시절에 그런 식의 통일이란 100% 김 일성 치하의 적화통일을 의미할 뿐이지. 그 나이 쳐먹도록 아직도 그런 순진한 말을 믿고 있냐?

얘기가 좀 엉뚱하게 흘렀다만.. 아무튼 북한을 대치하고 있는 시국 속에서 우리나라는 미군정을 졸업하고 군사 정권까지 청산한 뒤, '직접 민주주의'까지 잘 이뤘다. 하지만 이제는 1987년 체제도 좀 초월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이렇게 정치 시스템을 고치는 일은(민주화? 직선제 등등).. 좋은 일이긴 하지만 그게 무슨 북한 주민들을 구출한 급이 아닌 이상, 나라를 외적 침략으로부터 지키거나 가난을 극복한 일만치 위대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 역시 변함없다. 그게 급이 서로 같을 수가 없다.

다음으로 화폐 얘기다. 우리나라의 헌정 시스템은 since 1987이라지만, 지금의 '원'이라는 단위 체계는 무려 since 1962이다. 박통 때 제정된 돈이 만약 있기만 하다면 지금도 동일한 액면가로 통용 가능하다. (물론 그런 골동품 돈은 액면가 그대로 써 버리는 건 완전 바보짓이다. 수집가에게 파는 게 훨씬 더 이익이므로.)

허나, 대한민국 급의 선진국들 중에서 이 '원'만치 가치가 너무 작고 반대로 자릿수가 너무 큰 화폐단위를 쓰는 나라는 없다. 반세기 동안 인플레가 쌓이고 쌓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10만원 지폐까지 만들 지경이 된다면 그걸 하느니 끝의 0 한두 개를 좀 없애 버리면 어떨까 싶다.

그리고 화폐를 새로 만들 때쯤이면, 제발 조선 시대 이씨 말고 대한민국 시대 인물도 모델로 좀 넣자.
굳이 조선을 또 넣을 거면 성역 고정출연급인 세종대왕 이 순신 말고는 장 영실· 정 약용 같은 발명가, 실학자 계열을 넣고 말이다. 유학자들만 너무 빨아댄다. 유교탈레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요즘 저게 평판이 얼마나 안 좋은데!

이런 개헌과 화폐 개혁이 통일과 함께 안 그래도 어차피 사회 기반을 갈아엎어야 할 타이밍 때 원큐로 싹 같이 진행돼 버리면 비용도 제일 덜 들고 좋을 것이다. 이 시기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광복 전후, 6· 25 전후 같은 급으로 분위기가 싹 달라질 것이고 그 날은 아마 국경일· 기념일 정도는 돼서 달력에 표기될 것이다.

아, 한반도에 유일하게 바람직한 통일, 평화 통일, 진정한 통일이란 당연한 말이지만 이북의 김돼지 정권이 스스로 무너지든, 군사력으로 쳐부수든 어쨌든 걔네들이 축출되고 제거되고 처벌받는 통일밖에 없다. 그것 말고 적과 싸우다 져서 통일 '당하든가', 적과 내통하고 적당하게 타협하고 적에게 왕창 돈 갖다 바쳐서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얻은 통일 따위는 안 하는 것만도 못한 잘못된 통일이다.
아무리 통일이 좋기로서니 주체사상 내지 김돼지 부자 동상을 그대로 놔 두고 존치시킬 생각이신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해 보라.

제대로 된 통일이 불가능하다면 차선· 차악 차원에서 차라리 영구분단이 1억 배 이상 낫다. 사채· 보증 써서 막느니 차라리 평범한 신용불량자가 되는 게 나은 것과 정확하게 같은 이치이다.

어차피 북괴는 교류 끊고 고립만 제대로 잘 시켜도 알아서 붕괴한다. 굳이 전쟁 벌여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조차 없다.
상황이 급하고 저자세로 나와야 되는 건 걔네들이지 우리가 아니다. 걔네들이 그 와중에 핵까지 개발하는 데 성공한 건 그렇게 고립시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군인의 본분에다 비유하자면 작전에 실패한 것도 아니고 경계에 실패한 것과 같다. 우리나라 역사상 이런 비극이 앞으로 다시는 없어야 한다.

북괴 정권은 완전히 패망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폭탄 끌어안고 최후의 발악을 할 것이다. 자기가 없어지더라도 땅 한 평, 인민 한 명이라도 남조선에 도움이 될 건 하나도 남겨놓지 않고 독 뿌리고 방사능 오염시키고서 망할 게 뻔히 보인다. 차라리 중국에다 주면 줬지 우리한텐 안 준다. 옛날에 일제가 핵폭탄 안 맞았으면 마지막까지 전인민 옥쇄니 뭐니 하면서 무슨 짓거리를 하려고 했었던가? 그걸 생각하면 된다. 북한은 그런 나라이다.

그렇게 김돼지 정권을 몰아냈다고 생각해 보자. 못 먹어서 허약하고 기형이고 마약에까지 취한 인민들.. 물론 인도적인 차원에서 구제는 해야겠지만, 반쯤 병신인 인민들에게 최소한의 경제력이나 생산 능력이 있을 리 없을 것이고 이건 통일 비용을 왕창 잡아먹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민족끼리'의 허상을 버리고, 북괴 정권을 도와준 건 인민에게는 절대 안 간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괴를 조직적으로 고립 압박해서 망하게 해야 한다. 이럴 자신이 없으면 그냥 영구분단으로 가든가.

이 개념을 복습해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 전혀 사실이 아님

  1. 통일은 지금 외세의 방해 때문에 못 하고 있다.
  2. 김씨 부자 정권과 주체사상을 그대로 존치하면서 남북을 통일하는 것이 가능하다 / 적절하다 / 옳다.
  3. 북한 정권은 완전히 개과천선해서 대남적화 야욕이 없어졌다.
  4. 북한은 정부가 인민들을 먹여 살리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데도 다른 외형적인 불가피한 이유 때문에 못살고 있다.

* 100% 절대무오한 사실임

  1. 통일은 남 탓 할 필요 없이 북괴의 잘못된 통치 이념과 사상 때문에 못 하는 것일 뿐이다.
  2. 북한은 이념으로서 스탈린이니 레닌이니 하는 공산주의는 물론 진작에 버렸다. 하지만 근처에 있는 제일 만만한 나라의 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해 공산주의자들이 사용하던 위장, 간첩질, 거짓 선동, 유언비어, 역사왜곡, 계층간 이간질 등 온갖 비열하고 더러운 방법은 여전히 적극 운용 중이다.
  3. 정상적인 경제개발 및 군사력 육성으로 남조선을 적화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쟤들은 더 극단적이고(핵 등 비대칭무기) 치사한(위와 같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북쪽에 대해서 positive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쟤들이 공략하는 건 오로지 남쪽에 대한 negative이다.
  4. 우리나라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때는 "아는 게 힘이다. 이제라도 우리보다 힘센 일본을 배우자. 근대화하자" 이런 움직임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북한에게서 우리가 일말의 배울 만한 선한 것이 있나? 전혀 그렇지 않다. 쟤들은 하다못해 경제력과 군사력을 키워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적화통일을 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비열하고 더러운 전술에 속지 말아야 하고 경계 분리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5. 자기도 말로만, 입으로만 북한 정권 싫어한다 김 일성 싫어한다 그러면서 필요악과 절대악은 구분할 줄 모르고, 6·25 전쟁이 무슨 남북 양비론인 줄 알고, 적화통일 반대한다면서 적화통일 자금줄 대주는 일에는 아무 관념이 없는 무지한 사람들이 남조선에 너무 많다.

위와 같은 나의 팩트 인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내가 우리나라 근현대사 내지 정치와 관련하여 쓰는 글에는 북괴, 종북개빨, 더 나아가서 좌좀 깨시민 같은 과격한 단어가 사라질 일이 없을 것이다.

나의 정치 성향이 마음에 안 들고 불편해서 견딜 수 없다면, 누구든지 위의 저 전제조건들만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면 된다. 남이 지지하는 것의 욕만 자꾸 하지 말고 자기가 지지하는 것이 옳고 맞다는 걸 입증해 보이면 된다. A가 틀렸다고 해서 자동으로 B가 맞게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오픈소스가 아니지만 난 사상 체계는 철저한 오픈소스다. 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지 논리를 구성하는 근거 팩트들을 아주 투명하게 제시해 놓았다. 저것만 무너뜨리고 논파하면 내 생각을 바꿔 놓을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진영논리에 사로잡혀서 남이 뭐라고 지껄이든 듣지 않고 답은 정해 놓고 박박 우기는 거야말로 폐쇄 클로우즈드 소스겠지.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한 나라 체계 하에서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서 특혜 받고 나쁜짓 하고 평범하게 부정축재 해 온 놈과,
아예 적국에게 자금 바치고는 그걸 온갖 평화드립 궤변으로 합리화하고 오로지 자국 폄하만 일삼는 놈이 어떻게 서로 레벨이 같냐..? -_-;;
저 둘은 성경에서 아담의 죄와 루시퍼의 죄가 다른 것만큼이나 다르고, 노아의 홍수와 이전 세상 홍수가 다른 것만큼이나 완전히 다르다.

후자가 전자보다 청렴하기라도 한 것도 당연히 절~대 아님. 선조의 친일 내력이나 자식새끼의 특혜/병역비리를 파자면 절대적으로 평균이나 그 이상 나온다. 서로 네거티브 대결만 해서는 양쪽 다 오십 보 백 보이고 끝이 안 난다. 6· 25의 책임이 양비론인 게 아니라 이런 거나 양비론 피장파장이다. 그러니 결국은 대적관과 이념의 건전함으로 결판을 낼 수밖에 없다.

통일이란 건 너무나 엄청난 일이다. 마치 결혼이나 교통사고처럼 나(혹은 우리나라)만 잘한다고 혼자 할 수 있거나 예방 가능한 게 아니다.
그게 어느 때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가 통일에 덧붙여서 개헌· 디노미네이션까지 국가 체계를 적절한 타이밍에 잘 개편해 내는 복을 누리게 될지는 모르겠다. 옛날에 더 늦기 전에 좋은 타이밍 때 220볼트 승압을 싹 해치웠고 철도 표준궤 개궤를 해서 미래에 후손들이 편해진 것처럼 말이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그때쯤이면 한글 글자판도 세벌식 중심으로 다시 제대로 논의됐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26 08:31 2016/10/2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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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포 2016/10/26 15:10 # M/D Reply Permalink

    저와 생각이 비슷하시네요! 그런 상황에서 최근에 대형 사건이 터져서 정말 당황스럽습니다..

    1. 사무엘 2016/10/26 15:52 # M/D Permalink

      오랜만입니다. ^^;;
      여러 모로 진짜 나쁜놈들에게 크게 약점 잡히고 먹잇감 트집잡힐 거리를 던져 주게 됐죠.
      말세가 되니 우리나라도, 심지어 미국도 지도자 복이 없어지는 건 마찬가지 같습니다.
      그래도 당장 빠르게 망하는 것보다는 천천히 망하는 걸 선택해야지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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