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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프레임

내가 기독교 신앙, 특히 이단과 관련해서 굉장히 답답하게 생각하는 사고방식의 예를 좀 들면 다음과 같다.

(1) 창세기의 간극 얘기를 들으면 뭔 듣도 보도 못한 김 기동이니 귀신이니 아담 이전 인류(?) 이런 거 떠올리지 말고, “왜 둘째 날에는 ‘보기 좋았더라’가 없을까? 그러게, 물과 땅은 언제 창조됐고 루시퍼는 언제 타락했을까? 예레미야서에도 without form and void가 나오는구나!”를 좀 생각해 보자.

(2) 구원의 영원한 보장 얘기가 나오면 뭔 구원파 생각 좀 하지 말고, 바울 서신서가 실제로 뭘 말하며, 모순되는 듯한 히브리서 야고보서가 뭘 말하는 것이겠는지 생각하는 시늉이라도 해 보라.

(3) 왕국 얘기가 나오면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 따위 생각하지 말고, 성경 용어가 kingdom이고 예수님이 왕 중 왕이며 통치 형태가 왕국이라는 걸 좀 생각하자.

(4) 휴거 얘기가 나오면 다미선교회니 뭐니부터 생각하지 말고, 살전 4:16-17을 제발 좀 먼저 떠올려 보자~!

하.. 이런 분들은 정말 오로지 이단 소리 안 듣는 것에만 목숨을 거는 것 같다. 그게 뭐 그리 대수라고? ㅡ,.ㅡ;;; 세상으로부터의 편견이 그렇게도 두렵나?
이런 사고방식이니까 요한계시록을 읽는 게 통째로 금기시되고, 교회들이 대문 앞에다가 “신천지 출입금지”라고 써 붙이는 것 같다.

이단들이 “우리도 성경 믿어요, 성경 공부해요~!” 이러면 이분들은 아예 성경 읽고 공부하는 걸 그만두지 싶다. =_=;;
거리설교를 이상하게 보고, 구원 확인 질문을 불쾌히 여기는 것도 이런 사고방식과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아니, 예수 믿어서 은혜로 구원이 없으면 그건 기독교라고 부를 수 없잖아..!!!

그리고.. 신천지 추수꾼이 교회에 쳐들어와서 집기를 부수고 폭력을 쓰고 난동을 부리면서 예배를 방해한다면야 그러면 경찰에 신고하고 세상 공권력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저건 좀..;; 성경의 비유를 이상하게 갖다붙여서 이단 교리 펴는 것까지도 경찰에다 신고해서 강제로 찍어누르고 금지시킬 생각인가?? ㅡ,.ㅡ;;
무슨 무한리필 부페 식당 입구에 “운동부 회식 금지”라고 써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좀 민망하다.;;

그래서 본인은 제안한다.
“나는 저 이단들과 같지 않음을 감사하나이다” 이렇게 쪼잔하게 지내지 말고,
이렇게 단순하고 상식적으로 건전하게 성경대로 믿는 게 이단이면 난 그냥 이단 소리 듣고 말겠다” 같은 대인배 마인드를 가져 보면 어떨까? 자기가 믿는 것, 자기가 가는 신앙 노선에 대한 확신을 좀 가져 보시라.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그 길을 따라 내 조상들의 하나님께 그렇게 경배하고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나이다.” (행 24:14) 말씀을 좌우명으로 삼고, 가슴 펴고 통 크게 살아 보시라~!!

난 자동차, 철도, 컴퓨터, 호박, 멧돼지, 군사, 역사 등 이것저것 온갖 잡학에 관심이 많은 편이긴 한데..
저런 미주알고주알 진짜 이단(?)들 교리는 거의 모른다. 정답만 알면 되지 오답을 일부러 공부할 필요는 전혀 없으니까..
정답의 일부가 오답이랑 비슷해 보이는 건 정답의 잘못/탓이 전혀 아니다.;; 그리고 비슷해 보여도 실상은 전혀 같지 않은데 같은 줄로 착각하는 건 당사자의 잘못일 뿐이다.;;

※ 보너스: 후대 드립

내 경험상, 자신들이 지지하지 않는 교리나 학설을 반박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그 theory의 내용 본질을 저격하는 게 아니라 출처· 기원· 계보를 따지고 트집 잡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 요일 5:7 삼위일체 요한의 콤마는 원래 성경 본문에 없었고 후대에 추가된 것이다.
  • 젊은 지구 창조론은 웬 안식교에서 만들어낸 산물이다.
  • 반대로 간극 이론은 토머스 캘머와 넬슨 다비 같은 19세기 최근 사람들이 세대주의에 입각해서 진화론에 대항하려고 따로 만들어 낸 것이다.
  • 또 간극 얘기인데, replenish는 처음에 ‘다시’라는 뜻이 절대 절대 없었다. 후대에 진화론에 대항하려고 이런 의미가 재조명되고 추가됐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것도 교리를 직접 파고드는 게 아니라 진영논리 이단 프레임에 입각한 좀 비합리 비논리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안식교가 주장하건 몰몬 교가 주장하건, 성경이 6일이라고 말한 것을 6일이라고 그대로 믿고, 1천 년이라고 말한 것을 1천 년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올바르고 잘하는 것이지 않는가?

더구나 그렇게 기원· 출처를 따진 것이 정확하게 맞는 팩트조차도 아닌 경우가 왕왕 있다.
요한의 콤마는 피터 럭크만 박사의 반박 자료에 따르면, 이미 고대 로마 제국 교부 시절부터 멀쩡하게 있어서 삼위일체 교리를 방어하는 데 잘만 쓰였다.

간극 역시 19세기보다야 훨씬 전부터 사람들이 간파했다. 사탄 마귀의 타락과 이전 세상의 멸망이라는 개념 자체를 깨우치기 위해서 무슨 대단한 지성이나 과학 발견이 필요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토머스 캘머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의 출간보다 수십 년 이상 먼저 간극을 주장했었다.

replenish는.. 더 말을 하지 않겠다. 멀쩡히 중세부터 쓰였던 단어이고 더 강조해서 반복해서 채우고, 소모되어서 없어진 것을 다시 보충한다는 뜻이다. 애초부터 단순 fill과 동일한 단어가 아니었는데 이것도 무슨 재창조 교리를 옹호하기 위해서 의미가 왜곡된 거라는 소설은 어쩌다가 튀어나왔나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2/10/04 08:35 2022/10/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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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 네로

로마 제국의 네로 황제는 세계사에 불멸의 이름을 남긴 폭군이었으며, 특히 마가 씌인 듯한 잔인한 기독교 박해로 인해 교회사의 관점에서는 더욱 악평을 받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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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장발 노안인 인상에 걸맞지 않게, 나이가 아주 젊었다.
겨우 30 초반의 나이에 부하들의 신임을 잃고 폐위당한 뒤,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참고로 조선에서 손꼽히는 폭군이었던 연산군도 겨우 20대 때 흥청망청 놀면서 나라를 말아먹은 뒤, 30이 될까말까인 나이에 죽었다.

네로에게 흔히 따라다니는 꼬리표는 로마 대화재 배후설이다.
부하들을 시켜 시내를 일부러 불질러 놓고는 불 구경 하면서 띵까띵까 악기 연주하고 시를 지었다..???
(꼴도 보기 싫던 낡고 흉측한 건물들이 다 사라지니 속이 다 시원하다~~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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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건 아무래도 9 11 테러 자작극설 음모론이라든가, "할배가 일부러 다리를 폭파하고 먼저 튀었다", "빵이 없다고? 그럼 과자/고기를 쳐먹으면 되지"(마리 앙투아네트) 급의 악성 루머로 여겨진다. 정황상 네로가 그 정도까지 악마 싸이코패스는 아니었다.

그는 불 구경은커녕, 외지로 휴가를 가 있었다. 그 와중에 화재 소식을 듣고는 기겁하여 전차를 몰고 수십 km를 달려서 현장에 헐레벌떡 돌아왔다.
황제가 직접 발로 뛰며 화재 진압을 지휘하고, 자기 사재를 털어서 구호 물자를 마련하고, 심지어 궁궐의 일부를 개방해서 이재민들 임시 거처도 마련했다.
재난에 정말 최선을 다해 대처했다는 건 제아무리 네로를 싫어하고 혹평하는 역사가라도 인정하는 사실이라고 한다.

하지만 네로가 선정을 베푼 건 거기까지가 끝이었던 것 같다.
화재 발원지에다가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다른 건물을 올리려 해서 "이거 너무 노골적인데? 혹시 저 건물 올리려고 일부러 불지른 거 아냐?" 의혹을 본격적으로 살 짓을 하긴 했다. 그리고 무리한 토목 공사 때문에 나라 경제를 말아먹기도 했다.

그리고 자기 평판이 깎이고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는 것 같자, 그는 그제서야 예수쟁이들에게 방화범 누명을 씌워서 화풀이를 시작했다. 이건 명백한 팩트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의 집단이란 게 등장한 지 30년 남짓밖에 안 됐던 시절인데.. 이때 이들의 대외 이미지는 막 나쁜놈 사회악이라기보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들' 아싸 정도였다.

남들 다 믿는 걸 로마 잡신들을 섬기지 않고, 국가 공권력 자체는 인정하는 것 같지만 황제를 신성시하지 않고 웬 듣보잡 예수라는 교주가 부활했다며 설치고 다닌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얘기를 나눠보면 천성은 착하고 성품도 훌륭해 보이고.. 쟤들이 도대체 무슨 믿는 구석이 있는지,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는 신비로운 부류였다.

그랬는데 민심이 흉흉할 때 과거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이나 '중세 유럽 페스트 창궐 후의 종교 재판'처럼 누구 아싸 한 놈 희생양 삼아 조져야겠다는 여론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그리고 이때는 크리스천들이 걸려들었다. "이게 다 저 예수 믿는 이상한 놈들 때문이다. / 저놈들은 이번 화재 피해를 별로 입지 않았다 / 사실 쟤들이 방화범이다 / 쟤들은 로마 제국의 반역자다" 이런 식으로..

네로는 이 사람들을 그냥 곱게 죽인 게 아니라 동물 가죽을 뒤집어씌우고 나서 맹수들에게 던져넣기, 십자가형, 길거리 인간 횃불(= 화형-_-) 급으로 정말 가학적이고 잔혹하게 죽였다.
어떤 방식이건, 이런 잔인한 양민 학살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속 이어지자 다른 비기독교인들조차 "쟤들이 아무리 나쁜놈들이라지만 이건 너무했다, 선 넘었다"라고 이의 제기를 할 정도가 됐다고 한다.

게다가 이때는 거짓으로 신자 행세를 하다가 조직을 밀고하는 가짜 끄나풀 간첩 배신자까지 들끓었다. 그러니 이때는 어중이떠중이 다 교회로 전도 초청 따위는 꿈도 꿀 수 없고, 진짜 신자 형제를 가려내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사람 마음속을 알 수가 없으니 신뢰할 만한 이웃 교회 지도자의 추천과 보증이 아주 중요한 변별 요인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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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이 바로 이때 네로를 대면한 뒤, 참수형을 당해 순교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AD 67년경. 신약 성경 데모데후서는 이런 배경에서 기록되었다.

(죄수를 사형에 처하라는 어명까지 악기를 띵띵 연주하면서 내리는 개싸이코패스 네로의 기백.ㄲㄲㄲㄲㄲㄲㄲ
저 아저씨가 현대인이었으면 락 같은 데에 심취해서 아마 일본 환타 CF에 나오는 DJ 선생이나 가죽점퍼(록커) 선생처럼 코스프레를 했지 싶다. ㅋㅋㅋㅋㅋㅋㅋ)

바울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와 같이 어째 로마 시민이었다.
로마 시민은 (1) 범죄 혐의가 있더라도 채찍질 같은 고문을 동반한 심문을 받지 않으며, (2) 반역죄가 아닌 한 사형을 당하지도 않을 정도로 엄청난 특권층이었다.
그리고 로마 시민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로마로 가서 지역구가 아닌 전국구 재판을 청구할 권리까지 있었는가 보다. 바울이 사도행전에서 로마 행을 고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소원대로 로마에 가서 사도행전 28장 이후의 연대기부터는 노이즈 마케팅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복음을 널리 전했다. 최신 학문 유행 문화의 원산지였고 지금으로 치면 뉴욕이나 도쿄와도 같은 대도시였던 로마에서 복음을 전한 것이다. 그리고 로마 정부로부터도 예수 믿고 전하는 것에 대해서 처음엔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로마 대화재 사건을 계기로 다시 체포되었으며, 이때는 결국 반역죄로 사형을 당하게 됐다. 네로가 바울을 어떻게든 죽여 없애 버리려고 안달이 났기 때문이다. (3) 하지만 그는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에 이때도 십자가형 같은 잔인한 형벌을 받지 않고 곱게(?) 참수만 당했다.

참고로, 네로 시절엔 아직 콜로세움 경기장은 없었다. 그건 AD 80년 이후에나 등장했기 때문이다. 네로 때의 순교랑, 원형 경기장에서 양민들이 맨손 무방비로 굶주린 사자 떼와 맞닥뜨리는 장면을 동시에 떠올릴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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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의 입장에서 네로에 의한 박해는 정말 엄청나고 혹독한 환란이었다. 베드로전서 역시 제일 가깝게는 이런 시국을 염두에 두고 기록되었다. 그 시절 사람들은 저 네로놈이 적그리스도이고, 이 순간만 잘 넘기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거라고 생각했다.

뭐, 예수님이 곧장 다시 오시지는 않았고 로마 제국에 의한 기독교 박해는 그 뒤로도 수백 년 동안 잊을 만하면 간헐적으로 또 계속되었다.
이게 횟수를 따져 보니 총 열 번이었다. (☞ 관련 링크) 계 2:10에서 말하는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하리라'가 이 로마 제국의 박해를 의미한다고 분석하는 해석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네로의 깽판 자체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이 황제 역시 AD 68년에 쿠데타로 인해 황제 자리에서 쫓겨난 채 자살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세상 역사에서 네로는 처음엔 통치를 잘 하다가 말년에 궁예처럼 흑화해서 광기어린 실책을 저지른 폭군이다. 히틀러처럼 그냥 예술만 했으면 좋았을 걸 괜히 정치를 하다가 돌아 버린 사람 정도?
뭐, 폭군으로서는 평범한(?) 범주에 들지, 무슨 공산주의나 파시즘이 가미됐던 20세기 최악의 싸이코패스들.. 히틀러, 김 일성, 폴 포트, 이디 아민 정도까지는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니 죽은 뒤의 장례도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고 지워 버리는 정도는 아니라, 평범한 왕보다만 약간 덜 예우하는 수준으로 그쳤다고 한다.

물론 아무리 실드를 친다 해도 폭군은 폭군이며,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 박해의 첫 포문을 열었던 악역이 네로인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기독교인들만 왜 그리 잔인하게 죽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2/09/26 08:35 2022/09/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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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성경 이야기들 -- 下

7. 부분적인 순종

  • 아브라함: 혼자만 나온 게 아니라 사고뭉치 룻도 같이 데리고 와서 쓸데없이 전쟁에도 연루되고 두고두고 고생했다.
  • 출 3~4에서 모세: 혼자서는 도저히 일을 못 하겠다고 뒤로 빼서 결국 형 아론까지 붙긴 했지만.. 그게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
  • 베드로는 영혼 없이 "네에~ (참 잘도 잡히겠네요.) 그래도 일단 님하 말대로 그물을 하나 던져는 보겠습니다": 그 뒤 그물이 찢어지고 배가 뒤집힐 뻔함.
  • 아말렉을 몽땅 다 진멸하지 않고 살진 짐승을 '선의로' 살려서 데리고 온 사울: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아울러, 출5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파라오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 주라는 명령을 전하기는 했지만 너무 쫄아서 선포와 경고가 아니라 애원, 타협, 협상하는 말투가 돼 버렸다.

말 안 들으면 니들이 재앙 당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재앙 당한다.. 노예가 줄어들면 너희들도 좋을 거 없지 않느냐는 식으로 물 잔뜩 탔다.
그러니 파라오의 반응은? 더욱 기고만장해서 꿈쩍도 안 하고 "이것들 너무 편하게 해 줬더니  안 되겠어? 앞으로는 일을 더 시키겠다"로 맞받아친 것이다.

부분적인 순종, 불완전한 순종은 대놓고 불순종보다는 낫다. 그러나 그 역시 100점짜리 결과를 가져올 수는 없다는 걸 성경은 거듭 가르쳐 주는 듯하다. 꼭 사울처럼 마음 상태가 처음부터 글러먹은 게 아니더라도 말이다.

이건 크리스천이 복음을 전할 때도 염두에 둬야 할 원칙인 것 같다.
죄, 심판, 복음 얘기를 제대로 안 하면서 "예수 믿어서 나쁠 거 없다, 손해볼 것 없다~ 너한테도 좋다" 이런 걸 너무 강조하는 건.. 듣는 사람의 기분도 못 잡으면서 잃어버려진 혼을 제대로 구하지도 못할 것이다.
이건 그냥 종교 영업 행위나 다를 바 없게 될 것이다.

8. 게으르다, 목이 뻣뻣하다

출애굽기에서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 보고 '게으르다' (idle)라고 평했고, (5:17 노예 시절)
하나님은 '목이 뻣뻣하다~~~~' (stiffnecked) 라고 평하시었다. (32:9 금송아지 사건)

파라오야.. 좀 편하게 대해 줬더니 노예 주제에 뱃대지 불러서 헬렐레 빠져 가지고 힘들다고 징징댄다고.. 먹고 살 만하니까 그 다음으로 신이나 찾아 댕기고 종교 활동이나 쳐 한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하나님은.. 10대 재앙과 홍해 기적까지 베풀면서 가련한 이 군상들을 비참한 노예 신세에서 구출해 줬는데..
광야 생활이 쪼~금 힘든 거 갖고 금세 불평 불만 터뜨리고, 심지어 도로 이집트로 돌아갈 생각을 한다고 정말 마음이 완악하고 바른 믿음이 없다고 그걸 질타하셨다.

지극히 세속적인 관점 vs 지극히 영적인 관점.
같은 인간 집단을 보는 관점이 서로 극과 극으로 정말 다르다. =_=;;

9. 에스더기: 왕권의 상징

세상에서 보안을 상징하는 물건은 열쇠요,(허가되지 않은 사람이 물건이나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게)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은 도장(이 명령이나 메시지가 진짜 당사자 본인의 것)인 것 같다. 유언 같은 건 주작되지 않고 진짜 당사자가 살아 생전에 정신이 멀쩡할 때 자의로 남긴 게 맞음을 입증하는 체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재산 상속이나 어느 조직의 후계자와 관련된 분쟁이 어찌나 많은지!!)

인감은 도장을 지문처럼 활용할 수 있게 등록해 놓은 체계이다.
동양은 모르겠다만, 서양에서는 왕이 끼는 반지가 옥새를 겸하게 만들어져 있었던 것 같다. 성경에서도 에 3:12.. 성경 전체에서 가장 긴 절이라고 일컬어지는 구절이 이에 대해서 언급한다.

에스더기는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것과 '주, 하나님, 여호와' 같은 단어가 본문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이색적인데, 유난히 왕의 권위와 관련된 언급이 많은 것 같다. 전 8:4 "왕의 말씀이 있는 곳에 권능이 있나니...", 더 나아가 마 8:9(권위 아래에 있는 사람)의 제일 실질적인 사례가 이 책인 것이다. 하필 그 권능을 이용해서 license to kill the Jews가 전파됐으니 문제지..

왕이 내린 명령이 옥새로 날인되고, 그게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파발들을 통해 방방곡곡으로 전파된다. 한번 내린 어명은 워낙 최고존엄급 절대 권위가 있기 때문에 왕 자신이라도 쉽게 식언· 번복할 수 없다. 그 대신 그걸 다른 명령을 추가로 내려서 대체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에스더 같은 이질적인 책이 어째 성경에 포함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현대의 암호학은 수학 이론과 컴퓨터의 계산빨을 이용해서 디지털 세계에서 보안과 권위/권한이라는 분야를 모두 담당하는 도구인 셈이다.

10. 혼전 임신에 대한 화형 응징

옛날에 신라의 김 유신은 여동생 문희를 혼전임신 죄목으로 불태워 죽이려 했고, 이거 보고는 김 춘추가 그녀와 일종의 shotgun marriage를 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건 창세기 38장에서 야곱의 아들 유다가 며느리 다말을 혼외임신 죄목으로 불태워 죽이려 한 것과(창 38:24-25)... 심상이 아주아주 아주 비슷하게 느껴진다. =_=

물론 서로 완전히 같은 상황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본인이 김 유신 장군 묘를 종종 구경하면서 동시에 교회도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낸 덕분에 더 각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ㅋㅋㅋㅋ

한반도는 역사를 통틀어서 화형이란 게 없다시피했다.
신라가 존재하던 시절에 내가 동북아시아 역사에서 화형이라는 단어를 본 건 박 제상이 일본에서 고문 당하다가 화형 당해 순국했다는 얘기밖에 없다. (왜놈들이야말로 그때부터 왕창 잔혹.. -_-)

성경도 마찬가지다. 목을 조르거나 짜르거나 그냥 몸통에다가 칼을 쑤셔넣어서 죽이는 건 자주 나오지만, 홀랑 불태우는 거.. 특히 초자연적인 불 말고 저런 식의 화형은 등장이 역시 거의 없다. 그런데 대놓고 let her be burned는 이례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것도 둘 다 아녀자를.. 부정한 임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이러니..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는 마리아도 예수님을 초자연적으로 수태했던 당시에 처신을 잘못했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겠다. 나름 약혼남이 자기 아이가 아닌 아기를 속도위반 임신으로 잘 덮어 준 셈이다.

11. 빤스런(..)

그리고 성경에는 나름 빤스런이라는 것도 나온다.
아니, 빤스 정도가 아니라 몸에 걸치고 있던 걸 홀랑 버리고(붙잡히니까) 발가벗은 채로 줄행랑을 쳤다고 나온다. 도마뱀이 자기 꼬리 끊고 도망치듯이 말이다.

  • 막 14:51-52 예수님이 배반당하고 붙잡히시던 당시에, 성경에 이런 민망한 장면이 왜 기록됐을까, 이 청년은 누구일까 참 궁금해진다.
  • 행 19:15-16 그 유명한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에 대해서도 들어서 아는데, 닌 도대체 누구냐?" 역관광 장면이다.;;
  • 그리고 암 2:16도 이런 빤스런 장면을 언급한 예언이다.

12. 양비론

"진실로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가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함께 모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주의 거룩한 아이 예수님을 대적하며" (행 4:27)

본인은 오래 전부터 다른 주제는 몰라도 인간이 구원받아야 하는 죄인이라는 것,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에는 좌우 구분이 없고 정말 피장파장이라는 말을 해 왔다. 서민이건 기득권 정치· 종교 지도자건, 심지어 외세건 똑같이 말이다. 진정한 양비론이다.

빌라도는 그냥 세속적이고 보신주의적인 정치인이었을 뿐, 사도신경에까지 거론될 정도로 독보적인 악역은 아니었다.
진리가 무엇인지 죄와 심판은 무엇인지 같은 건 관심 없고, 그저 유대인의 왕을 참칭하는 내란 수괴 정치범만 아니라면 누가 무슨 짓을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국내 교회들이 한때는 "예배 때 사도신경 암송 안 하는 교회는 이단" 이러는 편이었지 싶은데.. 그래도 세월이 흘러서 요즘은 사도신경을 절대시하는 비중이 예전에 비해 줄어든 듯하다.

여담으로, 기독교라고 불리는 여러 교파들 중엔 가톨릭이나 개신교 말고 어디어디 지역 '정교회'라는 게 있다. 여기는 하나님 예수님 이러기는 하지만 교리 바리에이션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다.
세계 지리에서 중부· 남부 아프리카 국가들의 종교는 상당수가 가톨릭도 이슬람도 아닌 기독교라고 분류돼 있다. 그러나 그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개신교 같은 기독교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 중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분명 사도행전 8장에 뿌리를 둔 역사적인 교회이지만.. 에녹서 같은 위경도 같이 정경으로 인정하고, 특히 빌라도와 그의 아내까지.. 부부를 반쯤 선한 인물, 성인으로 취급한다. 예수님을 처형하는 것을 꺼렸을 뿐만 아니라(롯???) 훗날 회개하고 크리스천이 됐고 순교까지 했다고 말이다.;; 역사적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2/09/21 08:35 2022/09/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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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성경 이야기들 -- 上

1. 창세기와 계시록의 2 6 7 패턴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를 보면, 둘째 날에만 유일하게 '보기 좋았다'라는 말이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여섯째 날은 그냥 보기 좋은 게 아니라 '매우 보기 좋았다'라고 끝난다.
마지막 일곱째 날은 하나님도 쉬시고 아무 코멘트 없이, 그 날을 복 주셨다고만 나온다.

이와 비슷한 패턴이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 얘기에서도 발견되는 것 같다.
각 교회별로 격려와 질타(책망)가 하나씩 있는 구조인데, 2타인 서머나 교회와 6타 필라델피아 교회는 책망이 없다.
2타는 책망이 없이 격려와 행동강령 당부만 있지만, 6타에 대해서는 더 적극적인 칭찬과 긍정적인 약속이 추가로 들어있다.
그러다가 다음 마지막 7타 라오디케아는 제일 부정적인 책망만 가득하고 심지어 약 처방이 있다.

창세기 1장의 6일이 문자적인 6일이듯, 계시록 20장의 1천 년도 문자적인 1천 년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2. 나무나라 비유

똑똑하면서 선량하고 인성 인품 좋은 사람, 자기 관심분야에서 바쁘고 할 일 많은 사람들은 굳이 권력에 연연하지 않는다. 정치판에 들어오라는 손짓에 어지간해서는 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능력은 쥐뿔 없으면서 찌질하고 열등감 쩔었고 남 앞에 나서길 좋아하고 명예욕 권력욕 많은 저질 인간은..
그런 기회가 오면 넙죽넙죽 나서는 편이다. 심지어 자기보다 더 큰 사람, 더 훌륭한 사람을 모함하고 음해하면서까지 나선다.
그래서 큰 권력을 쥐게 되면 피바람을 일으키고 나라를 다 말아먹는다.

자, 그럼 이 시점에서 사사기 9:8-15에 나오는 나무나라 비유를 읽어 보시라.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어쩜 이렇게 딱 정확하게 저격하고 풍자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근래 모습과도 싱크로율이 아주 높다.

이게 인간 사회 정치의 역설 비극인 듯하다. 진짜 정치를 해야 하는 사람이 정치판에서 버티지를 못하는...
내가 개인 블로그를 10년 넘게 운영하면서 정치 쪽 글도 쓰고 성경 얘기도 많이 했는데, 저 구절을 언급한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지 싶다.;;

3. 복음서의 엄청난 표현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 중에는.. 선뜻 실감이 가지 않고 믿어지지 않는 엄청난 일이 지금 당장 이뤄질 거라는 식으로 과장 막말(?)처럼 보이는 워딩이 생각보다 많다.
정말 액면 그대로 사실일까? 지금이 아니면 정확하게 어느 문맥에서 성립한다는 걸까? 이러니 제자들이 예수님 말씀을 제대로 못 알아들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1) 나(예수님)와 복음을 위하여 집· 토지(부동산!!)나 가족 인척 관계(형제 자매 부모 아내 자녀)까지 희생하고 버린 자는.. "지금 이 시대"에 그 재산과 인맥을 백 배나 받되 핍박과 함께 받고,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으리라. (막 10:29-30)
==>> 나중에, 죽은 뒤에 보상 받는다는 말이야 종교적으로 그리 어려운 약속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받는다고 했다. 이게 뭘 의미할까..??

(2) 죽음을 맛보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마 16:28, 막 9:1, 눅 9:27)
==>>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바로 영접해서 지금처럼 초림과 재림의 구분이 생기지 않았다면 저 때 진짜로 저 일이 이뤄졌지 싶다.

(3) 이 세대가 가기 전에 다 이루리라. (마 24:34)
==>> 참고로 앞의 마 23:36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모든 것이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라는 심판 선포는 뜬구름 잡는 먼 미래가 아니라 현재, contemporary한 문맥이다. generation 세대를 쓸데없이 길게 늘어뜨리는 말장난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다음은 시기보다는 그냥 규모의 엄청남을 뜻한다.

(4) ... 만일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심지어 이 세상이라도 기록된 책들을 담지 못할 줄로 나는 생각하노라. (요 21:25)
==>> 이 지구가 얼마나 넓은데.. 예수님이 하나님이고, 단순 공생애 사역이 아니라 창조주로서 지질학 천문학 역사까지 몽땅 다 망라해야 이 말이 문자적으로 성립할 것 같다.

(5) 너희에게 만일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들어서 저리로 옮길 것이요.. (마 17:20)
==>> 믿음이 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의 이론적인 상한이 이 정도라는 뜻이 아닐까 한다.

(6) 들의 백합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깊이 생각해 보라. ... 솔로몬도 이것들 중 하나와 같이 차려입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입히시거든... (마 6:28-30)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금과 은으로 떡칠을 했던 솔로몬의 부귀영화가 야생 들풀 짜끄레기보다도 못했다니..?? 이 말은 정말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곱씹어야 할 것 같다.

자연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하나님이 각 개체들 차원에서 다 알고 모니터링 컨트롤을 하고 계신다는 뜻이다. 그러니 성경에는 신이 인간의 세포 분열(= 머리카락 수)을 모조리 파악하고(마 10:30), 일개 어류가 동전을 삼킨 것까지 안다는 묘사가 존재하는 것이다(마 17:27).

4. 인칭과 인용 방식

성경에서 다니엘서 4장은 1인칭과 3인칭이 뒤섞인 굉장히 독특한 시점으로 서술되었다.
처음엔 느부갓네살 왕이 내리는 조서 내용 그 자체인 듯이 시작하다가, 그 다음에는 느부갓네살 기준인 "내가 이러쿵저러쿵 하던 중에 이런 꿈을 꿨거든? 그러니 다니엘아, 해석 좀 해 보삼~~"이라고 텍스트 전체가 1인칭 시점으로 문장이 전개된다.
그 뒤, 다니엘의 답변부터가 "다니엘이 말하기를..." 이런 식의 평범한 3인칭 시점이다.

내가 알기로 다니엘서는 성경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원문의 언어도 100% 히브리어가 아니다. 중간에 아람 어인지 뭔지가 껴서 바뀐다. 12개의 챕터 중 전반부는 재미있는 기적 스토리, 후반부는 어려운 예언으로 구획 구분이 잘 된 편인데.. 그래도 바빌론 포로기라는 격변의 시기에 기록돼서 그런지 집필 논조가 일관돼 있지 않다.
사실, 스토리가 다루고 있는 시간 간극도 꽤 큰 편이다. 맨 처음에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안 먹은 건 다니엘의 유년기 시절이지만, 마지막에 사자굴에 쳐넣어졌다가 나온 건.. 그야말로 늙어 죽기 직전의 말년이다.

다음으로, 사도행전 1:4는 간접 인용과 직접 인용이 뒤섞인 구절이다.
언뜻 보기에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라는 당부는 간접이고, "그 약속에 대해서는 니들도 내게서(예수님) 이미 들어서 잘 알지?"라는 확인은 직접인 것 같다. (KJV, NASV)
하지만 인용 방식이 바뀌는 게 뭔가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에 어지간한 성경 역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까지 몽땅 직접 인용에다 포함시키곤 한다. (개역, NIV 등)

성경 중에는 직접 인용에 대해 따옴표가 쳐져 있거나, 심지어 예수님 말씀의 직접 인용을 빨간색 글자로 표시한 책이 있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편집조차도 하려면 결국 답이 100% 정확하게 떨어지지 않고 모호한 행 1:4 같은 구절에서 막히게 된다.

5. 영적 존재에 대해서

수백 년 전 옛날의 신자들은 꼭 천당 지옥이 아니더라도 성경이 묘사하는 영적 세계, 영적 존재에 대한 동경, 환상이 오늘날의 신자보다 훨~씬 더 강했던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첫째, 그 재료 귀하고 인건비 많이 들던 시절에 성경책 하나에도 뭔 삽화와 무늬가 그렇게 많이 들어갔는지..?? 1611년 KJV 원판 책만 봐도 그렇다. 천사 그림, 스랍, 그룹(세라핌 케루빔) 그림 따위 말이다. 그러니 안 그래도 비싼 책이 더 비싸질 수밖에 없다~! ㄲㄲㄲㄲ

둘째, 그 사고방식이 옛날 찬송가 가사에도 투영돼 있다.
20세기에 나온 CCM이나 캐롤 가사 중에 천사가 주어로 나오는 “천사 찬송하기를 / 천사 화답하도다” 이런 걸 보신 분이 있는가? 전혀 없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And can it be라는 찰스 웨슬리의 구원 찬송도 여러 절 중에 2절, “세라핌조차 감격에 못 이겨 주의 깊은 사랑을 노래하도다” 이런 초월적인 내용이 있다.. 이건 영 실감이 안 가서 요즘 찬양집에서는 생략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어로 번역도 절대 되지 않았다. 저 가사는 무려 1738년작이었다.

6. 성경의 논리 전개 방식

  • "... 이런 사람은 불신자만도 못한 인간" (딤전 5:8)
  • "(니들이 인간 취급도 안 하는) 세리조차도 그 정도는 할 줄 안다" (마 5:46,47)
  • "그건 마귀들도 믿는 사항이다" (약 2:19)

성경엔 이런 식으로 대적이나 불신자의 존재를 의식한 영적 하한 '마지노 선'을 설정한 논리 전개가 종종 나온다.
"병시나 산소, 문과 출신인 나도 알고 있음"처럼 말이다. 흥미로운 일이다.

  • 선행으로 구원을 얻는 게 아닌 것만큼이나 악행으로 구원을 잃지도 않는다
  • 마음 생각만으로 죄를 지을 수 있는 것만큼이나(탐욕 등) 마음 생각만으로 구원받을 수도 있다
  • 예수님은 보이는 병을 고치는 것과 동급으로 보이지 않는 죄를 사할 수도 있다 (마 9:5,6)
  • 평생 나쁜짓 하다가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구원받는 사람이 있는 것과 동급으로, 반대편 극단에는 평생 가난하고 호구 같이 불쌍하게 살았는데, 복음은 거부하고 지옥 가는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운 사람도 있을 수 있... 아니, 적지 않다.

이렇듯, 성경은 비유 내지 비례식을 동원한 논리 전개도 많이 나온다. 신앙 생활 원리도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죽어라고 말 안 듣던 네놈들이 하물며 내가 죽은 뒤엔 얼마나 더 깽판 칠까..? (신 31:27)
  • 죄인인 너희도 자식 새끼 잘 챙겨줄 줄은 아는데 하물며 하늘의 아버지는 너희를 얼마나 더 잘 챙겨 주시겠는가? (마 7:11, 눅 11:13)
  • 동적 바인딩으로 생성된 이방인 교회가 이 정도로 잘됐으면 하물며 정적 바인딩인 유대인들이 회복되면 얼마나 더 잘되겠는가? (롬 11:12,24)

특히 "A:B인데 하물며 C:D는 어떻겠는가?" 요런 패턴 말이다. 로마서에 많이 나온다.

Posted by 사무엘

2022/09/18 08:35 2022/09/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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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찬양 중에는 가사가 "주께 영광, 거룩하신 주".. 이런 관점인 것도 있고, "평안, 평화, 평강"이 주제인 것도 있다. 그리고 '사랑'은 뭐.. 더 말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그런 키워드 중 grace '은혜'는 어떨까..??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1. 신 상우 <하나님의 은혜>(1998)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

얘는 이 분야에서 가장 독보적인 곡일 것이다. 발표된 지 20년이 넘은 유명한 곡이니 나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성악가 박 종호가 부른 음반 음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참고로 이거 작사· 작곡자는 오랫동안 암 투병을 하다가 지난 2017년에 이미 소천했다고 한다.

2. 조 성은 <은혜 아니면>(2009) "어둠 속 헤매이던 내 영혼 갈길 몰라 방황할 때에 ...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

신 상우 이후로 21세기엔 이런 은혜 성가가 만들어졌다.
내 개인적으로는 교회에서의 장년부 특송을 통해 2010년대 말쯤에 접했다.

3. 소 진영(마커스워십) <오직 예수 뿐이네>(2016)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

난 HTML과 CCM 지식은 1990년대 말에서 사실상 멈춰 있다.;;
사람들이 테이프나 CD 같은 음반을 구매하지 않게 됐고, 옛날 1990년대에 CCM계에서 한가닥 하던 뮤지선들은 이제 다들 목사나 교수로 신분이 업글됐다.
이 와중에 세상 음악 말고 요즘 CCM계는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요즘도 "경배와 찬양" 시리즈가 진행되고 있는지, 기존곡 컴필레이션이나 리메이크 말고 신곡 앨범을 발표하는 사람이 있는지 난 잘 모르겠다.

이 와중에 2010년대부터는 마커스워십이라는 게 그렇게도 뜨는가 보다.;;; 일단 저런 곡이 있다는 걸 체크해 뒀다. 외국곡 번역이 아니라 스스로 곡을 만들기도 하는가 보다.

난 한 치의 예외 없이 무조건 옛날 찬송가가 더 낫다고 꼰대처럼 고집하고, 요즘 CCM은 질이 낮아지고 가사가 깊이가 없어지고 가요 같아지고 있다고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전반적인 추세는.. 몇백 년 전 클래식 찬송가는 "거룩 거룩 거룩, 영광을 주께 돌려드리세, 만물은 다 찬양하여라, 천사 화답하여라" 이런 관점이 많았던 반면, 요즘 CCM은 "나 주께 나아가기 원합니다, 예배하기 원합니다, 성령님이여 오소서" 이런 거 위주로 가사를 쓰는 관점과 스타일이 달라졌다는 것 자체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겠는지는 각자 판단해 보시라.

그리고 젊은 사람 MZ세대라고 해서 마커스워십 부류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이 차이가 있겠지만.. 가사가 너무 자조적인 신세 한탄 일색이라는 비판도 있고.. 또 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노란리본충이라는 비판도 있더라.

뭐, 그런 걸로 트집 잡자면 끝이 없고 이 글이 그런 걸 따지는 게 목적은 아니니 그런 얘기를 더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찬양 사역자가 좌독인 건 참 안타까운 일인 것 같다. 부흥 부흥 이러다가 2000년대 이후 좀 이상해진 사람처럼 말이다.

4. 손 경민 <은혜>(2020) "내가 누려 왔던 모든 것들이 ... 은혜 은혜 한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것 하나도 없었던 것을..."

이건 아예 코로나 시국 때 발표된 완전 따끈한 최신곡이구나.. 여친 교회에서 맨 처음에 특송으로 들었다가 요즘은 회중 찬송으로도 종종 불러 봤다.
이렇듯, 은혜 하나만으로도 지금까지 생각보다 다양한 신곡이 발표되었음을 알 수 있다. 킹 제임스 진영 교회에서는 거의 접하지 못하거나 한 5년~10년은 더 지나야 접했지 싶다.

한번은 여친 교회에서 주일 예배 때 설교 주제가 '은혜'였던 적이 있었다. 곁들여진 찬송은 당연히 저런 곡들 위주였다.
기성 교회 대형 교회에서 “킹 제임스 이외의 다른 성서에서는 이 구절이 변개되고 삭제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문자적으로는 천년왕국 때 이뤄지고, 지금 우리에게는 영적인 교훈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강해를 기대할 수는 없으니 아쉽다.

그 대신.. 목사가 목사이다 보니 예화의 스펙트럼이 상상을 초월하게 넓더라. 일례로 은혜를 주제로 한 설교에서 시인 피 천득의 생애가 알 게 뭐냐..;; 그리고 이게 원래 그리스어로 무슨무슨 뜻이고 이런이런 깊은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라는 원어 인용이 잦다.

나 같았으면 은혜와 긍휼의 차이, 은혜와 믿음의 관계, 은혜와 평강의 관계.. 성경에서 이런 용어가 등장하는 용례 위주로 썰을 풀거나 이런 설교 강해를 기대했을 텐데, 이 바닥은 성경 개념을 접근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대형 교회는 찬양이 정말 다양하게 선곡되고, 어린애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잘 돼 있고 사람들 사교의 폭이 넓고 인력풀이 쟁쟁한 것 하나는 부러워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2/09/09 08:34 2022/09/0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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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5년쯤 전이던 2007년엔 무슬림과 관련해서 꽤 엽기· 충격적인 소식이 몇 가지 좀 있었다.

1.
한동대에서 어느 무슬림 유학생 한 명 때문에 애들이 몽땅 설득 당해서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잃고 교회를 떠나고 학교가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이 사건이 기독교계 언론에 소개되기까지 했다. (☞ 당시 보도 자료)

내가 알기로 무슬림들은 요한복음 구절을 많이 끄집어 와서 예수님도 아버지 하나님의 "대언자"이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은 아니라는 식으로 논리를 즐겨 편다.
요 14:28 "내 아버지께서 나보다 더 크시니라" 같은 구절을 아주 좋아한다. 어휴~~ (흠 그럼 요일 5:20 뒷부분은 어찌 생각하는지..??)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님을 피조된 콩라인 2인자 정도로 생각하고, 이슬람에서는 마호메트 같은 대언자로 보는 건가 싶다.

근데 그로부터 12년 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2019년엔 한동대에 무슬림 유학생이 1명이 아니라 40여 명이 지원했다고 하니 참 가관이다. 교수와 교직원들이 한동대의 기독교 정체성이 훼손되는 일은 절대로 없게 하겠다고 다짐을 했다는데, 글쎄? (☞ 당시 보도 자료)
저기는 학교가 학교이다 보니 중국인 유학생이 아니라 무슬림들이 일부러 많이 몰려오는가 보다. =_=

2.
그리고 2007년 4월 18일에는 터키의 말라티야에서 독일인 선교사 및 현지인 신자로 구성된 크리스천 세 명이 어느 무슬림 침입자 미친놈들한테 산 채로 칼로 수백 군데를 찔리고 사지가 잘리는 고문을 당하며 순교했다. 당연히 자기 신앙을 부인하지 않은 대가로 말이다. 사건이 벌어진 장소가 Zirve(지르베)라는 이름의 기독교 출판사 사무실이었기 때문에 저 명칭으로도 관련 자료를 검색할 수 있다. (☞ 링크)

공교롭게도 역시 12년 뒤에는 터키에서 김 진욱 선교사가 일단 표면적으로는 '강도살인'을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의 크리스천들은 이 또한 이 사람이 기독교 신앙/포교 때문에 교묘하게 해코지를 당한 것이라고 추측· 주장하고 있다. (☞ 당시 보도 자료)

터키가 대외적으로는 6· 25 사변 때 우리나라를 도와 준 형제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터키는 여전히 우리나라에 우호적이며, 2017년엔 6 25 참전 터키군을 소재로 한 '아일라'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터키의 내부는 무슬림 강경파가 우글거리는 위험한 지경인 것 같다. 하긴, 저 사람들은 6 25 때 중공군에게 돌격할 때도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쳤다고 하니 원.. =_=;; 우라 돌격, 반자이 어택의 이슬람 버전 되시겠다.

2007년에 우리나라 밖에서는 저런 일이 있었던 반면,
정작 자국에서는 선교라는 단어를 치명적으로 더럽히고 모독했던 "분당 샘물 교회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이 하필 아주 비슷한 시기인 7월쯤에 발생했다.
이 무슨 개쪽 개망신인가? "진짜" 선교와 순교였던 저 터키 사건에 비하면 너무 부끄럽고 민망해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저런 병크에다가 감히 선교라는 신성한 단어를 갖다붙이지 말지어다.

그리고 더 전 2004년엔 김 선일 씨가 이라크에서 참변을 당한 적이 있었다.
이건 정말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고 유족이 위로받아야 할 사건임은 이견이 없다.
허나, 이건 직무 중 순직이니 그 직장에서 예우하고 보상해 주면 될 일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그 사람 개인의 종교색이 개입할 여지라고는 전무하다.

근데 그 사람이 다니던 교회에서 웬 순교라고 치켜세우는 건 정말 아니다 싶었다. "한국군은 이라크에서 철수해 주세요. 저는 살고 싶습니다~ 이렇게 죽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 울부짖은 게 무슨 신앙 고백이나 순교와 관계가 있단 말인가..??
제너럴 셔먼 호 사건 때 토머스인가? 그 목사가 순교의 피를 흘렸네 하는 것보다 '더' 개연성이 없어 보인다.

울나라 기독교계에서 이런 식의 왜곡 미화는 좀 안 했으면 좋겠다. 고인의 명예는 다른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챙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8/24 08:35 2022/08/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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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엔 '말씀 보존 학회'(말보회), 그리고 '창조 과학회'(창조회)라는 기독교 단체가 있다.
둘 다 특정 분야에 대해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무식하게 고지식(?)하게 밀어붙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때문에 호불호가 크게 갈리면서 열성 지지자와 골수 안티를 모두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말보회는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를 주장하면서 기성 교계와 신학계를 몽땅 적으로 만들었다.
창조회는 젊은 지구/우주를 주장하면서 기성 고생물학, 지질학, 천문학계와 몽땅 대립하고 있다.

물론 이들 단체에는 명백하게 옳은 것· 건전한 것, 선한 것이 많이 있다. 먼저 말보회의 경우, 독특한 성경관만 주장하는 게 아니다.

  • 교회 교파로서의 노선은 평범한 침례교의 완벽한 상위 호환이다. 유아세례 부정, 주의 만찬과 침례, 스스로 자기 믿음 고백 후 물침례는 본인이 보기에 성경적으로 100% 아멘이고 옳다.
  • 창조회와 마찬가지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6일 창조(창세기)와 1000년 통치(계시록)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나 타협이 없다.
  • 피터 럭크만 스타일로 성경을 성경으로 나누어 풀이하는 세대주의. 일곱 부활, 일곱 침례 등등~
  • 성경의 문자적 해석도 잡고 세상 과학과도 충돌하지 않는 솔루션인 간극 재창조
  • "당신은 지금 죽는다면 바로 하늘나라로 갈 확신이 있습니까?" 칼같이 단호한 신약 은혜의 복음 교리. 거리 설교
  • 구원의 영원한 보장, 전천년주의 환란 전 휴거
  • 예수님의 문자적인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 이스라엘의 문자적인 회복. 교회와 유대인의 구분
  • 아기· 어린이의 특례 구원 (죽으면 무조건 다 하늘로 간다~! 그러니 유아세례 같은 거 필요하지 않다는 거다. 옳소! 아멘~!)
  • 칼빈주의도, 알미니안주의도 아님. 섭리와 자유의지 사이의 균형.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뜻의 구분. '미리 아심'이 곧 답정너 예정은 아님.
  • 비성경적인 이상한 은사주의 거부, 이상한 종교 통합 거부
  • 본질적이지 않은 불필요한 각종 절기나 예배 절차 폐지

우와, 써 놓고 보니 아이템이 적지 않다. 말보회의 이런 교리 노선은.. 성경에도 논리와 체계라는 게 있다는 걸 내게 알려 줬다. 이런 걸 한국에 처음으로 알리고 이슈화하고 퍼뜨린 공로는 응당 말보회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런 체계가 있으니 교회가 일부 인간들의 병신같은 짓 때문에 욕 먹더라도 내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온· 오프라인으로 기독교를 소개하고 예수님을 전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으로 창조회에 대해서는 내가 길게 얘기하지 않겠다. 내가 이 진영에 대해서 유익하게 생각하는 것은.. 역시 말보회하고는 분야와 방식이 다르지만 어쨌든 자기 분야에서 성경을 설화나 비유 짬뽕이 아니라 문자적으로 있는 그대로 믿으려 한다는 것, 성경이 레알 사실임을 입증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정작 이 두 진영은 창조 연대기에 대해서는 관점이 별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신론적 진화 따위를 믿지 않고 24시간 6일 창조를 믿는 건 동일하지만, 말보회는 그보다 위에 더 오래된 이전 세상이 있었다는 걸 믿는다. 창조회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를 믿으면서 말보회나 럭크만은 싫어하는 사람, 간극 재창조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창조회도 지지하는 편이다.

자, 좋은 점 얘기를 이 정도로 했으니 그 다음으로는 내가 말보회와 창조회에 대해서 안타깝고 아쉽게 생각하는 것, 동의하지 않는 성향에 대해서 털어놓도록 하겠다.

내가 쟤들의 내부 사정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일단 내가 보기에 저 두 진영은 공통으로..
발전이 없이 너무 정체돼 있다...!!! 이게 제일 큰 문제이다.

뭔가 마이너한 걸 주장하고 자기 반대편을 비판하고 공격하긴 하는데.. 반대편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해서 알지도 못하고 너무 무식한 방식으로, 케케묵은 쌍팔년도 방식과 저질 음모론을 고수하며 공격한다. 그러니 털리고 비웃음만 당한다.
까놓고 말해 럭크만과 같은 실력은(원어 원문 및 KJV 변증..) 없으면서 럭크만의 싸움닭 기질만 잔뜩 배워 왔다.

가령, 로마 가톨릭이 화체설, 교황, 마리아 평생 동정, 연옥 등 비성경적인 교리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걸 비판하는 거랑.. 아예 교황이 예수회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세계의 기독교/개신교회를 말살시키고 세계를 정복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선동하는 건 별개의 문제이지 않은가..? 그런 주장을 하려면 근거를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가져와야 된다.

그리고 쟤들은 흠정역이 자기네 한킹을 도둑질 해서 만든 짝퉁 성경이라는 욕과 비방을 도대체 언제까지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려나 모르겠다. 흠정역은 지난 20여 년의 노력 끝에 무려 6판이 나왔고, 맞춤법과 각종 표현이 정말 많이 정제되었다. 번역 스타일이나 신념 때문에 자기 마음에 드는 표현이 들어가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예배용 성경으로서 영어 KJV를 있는 그대로 번역한 한국어 역본 중에서는 흠정역의 완성도를 따라갈 물건이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까지 한킹을 도둑질한 거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쟤들은 1세대 설립자도 소천했는데.. 맨날 네거티브만 할 게 아니라 자기네 한킹이 더 나은 번역이라는 걸 팩트와 데이터로 입증해야 한다. 그럴려면 공부를 해야 된다.

이미 다 늙은 1세대 목회자들이야 어쩔 수 없다 치지만.. 말보회의 후계자뻘 되는 젊은 목회자들..? 거기 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은 흠정역 진영과 교류(!!!)도 하면서 태도를 바꾸고 새로운 팩트와 데이터를 흡수하고, 국내의 킹진영이 다같이 살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창조회는 말이다.. 설마 아직도 1990년대의 긴가민가한 노아의 방주 항해 실험이나 1970년대에 바다에서 공룡(사경룡) 사체 끌어올린 사진을 우려먹고 있는 걸까..?? 아직도 “진화론에서는 인류의 먼 조상이 원숭이라고 주장한대~ ㅋㅋㅋㅋㅋ” 이러는 걸까?
세상 학계는 1990년대 "생명 영원한 신비" 다큐의 내용조차도 일부는 부정되고 수정돼서 지금과 맞지 않는다고 고개를 젓는다. 제발 "이게 다 창조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세상 학계의 텃새 음모" 핑계 따위 대지 말길..

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젊다는 건 하나님 운운하지 않아도 철저하게 과학만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쟤들은 과학 쪽으로 무리수를 둘 게 아니라 지질 시대가 이전 세상의 흔적이라는 것만 알면 연구 방향이 훨씬 더 깔끔해질 텐데 아쉽다.

요컨대 말보회나 창조회가 잘하는 것도 있고 병크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병크가 그들이 추구하고 있는 옳은 방향까지 다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참고로 내 노선은 말보회와 90~95% 정도는 싱크로가 되는 것 같다. 차이점은 얼추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 한킹보다는 흠정역을 더 선호
  • 세대주의와 재창조 간극까지는 믿지만 말보회만치 무조건 "마태복음 히브리서는 신약 교회용이 아님~!!"을 너무 강박관념적으로 따지지 않음
  • 구약 유대인들이 율법 지키는 행위로 구원받았다고 단정은 짓지 않음
  • 기성 교단을 쟤들만치 무작정 다 적대시하지는 않음. 하나님이 기성 교회들도 사용하고 역사하고 계시는 것 인정.

말씀 보존 학회, 그리고 여기뿐만 아니라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에 세대주의니 럭크만이니 하는 물을 먹은 진영은 딤후 2:15가 말하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공부하라"의 덕후· 신봉자이다. 여기서 '나누다'라는 말은 공유 share이 아니라 분별· 구분· 분할한다는 뜻인 divide이다. 성경이 자기 자신을 공부하는 방법론을 스스로 이렇게 정의해 놓은 셈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성경 용어들을 기존 일반 교단들보다 더 세부적으로 나누는 걸 좋아한다. 대표적으로 영과 혼을 구분하고(영혼몸 삼분법), 하나님의 왕국과 하늘의 왕국을 구분한다. 교회와 유대인을 구분한다. 말씀에 대해 시대와 적용 대상을 구분한다.
침례도 다 같은 침례가 아니어서 일곱 종류나 있고, 부활도 여러 종류가 있다. 복음조차 왕국 복음과 은혜의 복음으로 나뉜다.

본인도 기본적으로 이런 성경 공부 방식에 동의하면서 그 유익을 인정한다. 이 패러다임 덕분에 여러 성경 난제들이 풀렸고 불신자에게 복음 변증이 가능해졌고 황당한 이단 교리들을 명쾌하게 걸러내게 됐다.
개나 소나 다 비유로 영해하는 게 아니라 "특정 시대 특정 대상에게는 문자적인 건데 지금 우리에게는 영적 교훈만 적용되는 것이다" 이게 훨씬 더 논리적이고 깔끔하고 합리적이지 않냐 말이다.

다만, 한편으로는 성경이 무슨 과학 교재나 논문 같은 스타일로 100% 딱딱 분석 가능한 책이 아니라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성경의 어떤 곳에서는 혼이나 영이나 그렇게까지 다른 개념이 아니고 심지어 ‘혼=그냥 사람’, ‘영=그냥 마음’처럼 쓰이기도 했다.

마 19:23-24 같은 구절에서는 예수님조차 대놓고 하늘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을 별 구분 없이 섞어 쓰셨다. 제아무리 마태복음이 유대인의 왕 예수님이니 왕국 복음이니 하지만, 바로 그 책의 중반부에서 웬 뜬금없이 신약 교회에 대한 예언과 지침이 나오기도 한다.

또, 워딩으로 가면.. 그렇게도 단어 단위로 성경을 보면서 우리말 KJV 번역본들은 it came to pass는 왜 번역을 안/못 했을까? word와 oracle의 차이는 무엇일까? damnation과 condemnation의 차이는?

그러니 구분할 건 구분하더라도 거기에만 묻혀서 시야를 너무 좁히지 말고, 성경의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에 대해서 열린 시각은 갖고 있어야 할 것 같다. 그 자체가 잘못된 비정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이 그렇게도 칼같이 딱딱 맞아떨어지고 분석 가능했으면 이미 수백 년 전에 분석이 다 끝났고, 기독교계에 이렇게 다양하게 찢어진 교파가 존재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 여담

1.
난 먼 옛날, 컴퓨터 프로그래밍 초보였던 시절에 베이직 다음으로 파스칼 언어를 잠시 공부했던 적이 있었다. 파스칼은 베이직과 C 사이의 완충재 역할을 하면서 C를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그것처럼 본인은 KJV를 모르던 시절에 NIV를 읽었던 것이 개인적으로는 굉장한 도움이 됐다. 그때는 제네시스, 엑소더스, 리비티쿠스 등, 성경의 각종 영어 명칭과 atonement, passover 같은 신학 용어들부터 전혀 까맣게 모르던 시절이었으니..

게다가 NIV의 변개(!!) 구절들이 내 신앙에 대놓고 부정적인 영향을 줄 정도로 내가 성경을 깊고 긴밀하게 많이 알던 상태도 아니었다. 그러니 부정적인 영향보다는 긍정적인 영향이 더 컸을 수밖에 없다.

2.
나는 한글 입력기의 개발자이다 보니 세벌식 자판에 처음 입문하는 분들로부터 390과 최종 중 무엇을 고르면 좋겠냐는 문의를 종종 받는다.
그런데 이와 마찬가지로.. 킹 제임스 진영에 처음 입문하는 분들로부터 한킹과 흠정역 중 무엇을 고르면 좋겠냐는 문의도 받는다. 아유~ 이런 것도 통합이 좀 됐으면 좋겠는데..

세벌식 글쇠배열이야 이미 둘을 절충한 3-2012 같은 솔루션이 있으니.. 세벌식 사용자들의 공감을 얻어서 적당한 것을 채택만 하면 된다. 하지만 한킹과 흠정역은.. 이건 종교 쪽이어서 통합이 쉽지 않을 것 같다.
한킹은 다른 어휘나 표현을 떠나서.. TR을 번역했지 영어 KJV를 번역하지 않은 표현을 도대체 언제까지 그냥 놔 두려나 궁금하다.

3.
말보회 한킹은 '환난'과 '환란'을 자의로 구분해서 번역했구나. 굉장히 신기하다.
이 바닥에서는 저런 식으로 비공식적인 용어 구분이 나도는 게 있다. 가령, '성경'과 '성서'.
"그러나 킹 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나머지 성서들에서는 이 구절이 '(구원부터 받은 뒤에) 말씀의 젖 먹으면서 자라라'가 아니라 '신령한 젖 먹고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라고 완전히 다른 의미로 변개되었습니다." 같은 식이다.

사실 벧전 2:2 같은 경우는 애초에 번역의 차이가 아니지..
번역의 차이를 논하기에 앞서 아예 원문 오리진, 쏘스가 다르고, 둘 다 옳을 수 없다는 걸 먼저 논해야 된다.
행 12:4 '이스터/유월절' 이런 게 동일한 그리스어 '파스카'에 대한 번역의 차이이고 '원어'를 논할 일이다. 그 반면, 벧전 2:2는 '원문'의 차이이다.

4.
일본은 뭔가 학술적인 건 어지간한 건 다 한국보다 앞선 나라이다. 그런데 쟤네들 내부에서는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이슈가 거론된 적이 없는지? 일본의 말보회 같은 단체는 없는지?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일본어 역본이 민간 차원에서 혹시 존재하는지 굉장히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아는 바가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2/08/18 08:36 2022/08/1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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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본질과 근원

  • 총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님.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거다.
  • 돈이 나쁜 게 아님. 돈을 사랑하는 게 나쁜 거다.
  • 사람 몸에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게 아님. 사람 마음 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훨씬 더 더럽다.

아멘. 이렇게 본질을 보는 것이 성경적인 사고방식이다.
(단, 술은 총과 같은 급으로 중립적이거나 필요악 같은 물질은 아니라고 생각됨..)

그리고 성경에 대해 더 잘 알고 성경을 성경으로 바르게 풀이하는 안목을 기르고, 성경의 난해 구절들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라고 신학을 하는 거다. 성경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신학이다.
그런데 "성경 따로 신학 따로"는 마치 "믿음 따로 행위 따로"만큼이나 서로 굉장히 안 어울리는 모습이다.

7. 지나친 의로움

지나치게 의로운 건 신자의 바람직한 자세가 절대 절대 아니다.
"오직 예수 이름에만 구원" 이런 걸 부정하라거나 수위를 낮추라는 게 아니고, 예를 들어 요런 것 말이다.

(1) 난 오로지 주님하고만 같이 있으면 되니 보상· 상급 같은 건 없어도 돼요~~
(뭔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위해 부당한 고난· 손해· 희생 같은 걸 한 번도 감내한 적이 없나 보구나~)

(2) 주여, 성장하고 싶으니 제게 어서 고난과 환란을 마음껏 주시옵소서
(주님이 너한테 쪼끄만 고난 하나 허락하시면 넌 곧바로 "왜 나한테만 그래요!!!! 하나님 너무하십니다" 하면서 삐칠 거 같은데??)

(3) 이 세상 따위 더 빨리 타락하고 망조 들고 심판이 임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 환경에서 너는 열외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셈.. 비슷한 논리로 나는 조선인들은 좌빨 정권에서 싹 다 망하고 거지 돼 봐야 정신 차린다는 극언 악담을 결코 지지하지 않는다.)

내가 내리는 결론은, 크리스천이 원래 지는 십자가와 고난이 뭔지를 모르기 때문에 저렇게 배부른 한가한 소리가 나온다는 것..
더 나아가 구원 취소와 상실(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부정), 교회 대환란 통과 등등의 오류가 나오는 이유도 이와 거의 같다고 본다.

8. 균형 잡힌 적용

(1) 엡 2:8-9 "너희가 행위가 아닌 믿음을 통해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걸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들은 바로 다음에 나오는 "우리는 그분의 작품,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 이런 말씀을 간과하고 소홀히 여기기 쉽다.

(2) 요 8:7 "너희 중에 죄 없는 자부터 먼저 돌로 쳐라"
이거에만 꽂혀서 온갖 죄를 양비론으로 퉁치고 합리화하고 변명하는 데 써먹는 이상한 사람들은.. 그 다음 11절에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라는 명령도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알 리가 없다.

(3) 마 7:1-2 "판단하지 말라, 니가 그 잣대로 판단받을 것임"
여기에만 꽂혀서 정당한 판단과 권면까지 일축하고 제멋대로 사는 방탕한 인생들은 그리 멀지도 않은 15절부터 '거짓 대언자(선지자)를 조심하라' 이런 말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건 어떤 놈이 거짓 선지자인지 아닌지 판단부터 해야 실천할 수 있는 명령일 텐데 말이다.

(4) 그 유명한 빌 4:13 "내게 힘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도..
'우와~ 내가 뭐든지 할 수 있대!'라고 들뜨기 전에 앞의 12절을 포함한 주변 문맥을 좀 보도록 하자.

그 구절에서 내가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말은.. 돈 왕창 벌고 대박 내고 출세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내 힘으로는 못 하는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 마음의 평안을 지키는 것, 고난 중에도 기뻐하고 궁핍 중에도 만족하는 걸 그리스도 안에서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너무 시시하고 김 빠지지?? ㅋㅋㅋ
하나님이 내가 구하는 걸 뭐든지 들어 주신다는 말 앞에는..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단서가 먼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성경 말씀은 지 꼴리는 것에만 매달리지 말고 제발 시기와 대상을 분별하고 균형 있게 총체적으로 머리에 입력하고 적용하도록 하자~!

9.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것

(1) 나는 예수 믿고 성경 읽고 교회 댕긴다는 사람이 구원 확인 질문을 귀찮아하거나 불쾌해하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이런 이상한 신자(?)도 넘쳐나는 와중에, 교회에 그 어떤 행실 이상한 개독들이 우글거린다고 해도 난 전혀 이상할 게 없다고 여긴다.

(2) 나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서 어떻게 “공산당이 싫어요”를 불편해하거나 정치 발언(?)이라고 매도할 수 있는지 정말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왜, 클레멘타인 영화를 봤더니 암세포가 암에 걸려 죽었다고 그러잖는가..? 이런 비정상적인 인간들이 넘쳐나니 나도 15~20년쯤 전에 반일정신병 초기로 들어가려던 게 싹~ 자가치료가 돼 버렸다.

친일파보다 훨씬 더 위선적인 놈, 나라에 훨씬 더 큰 해를 끼치는 놈들이 우글거리는데 아직도 친일파 타령이나 하고 있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나는 위의 둘을 영적으로 거의 동급의 이상한 현상으로 취급한다.

10. 개인적인 원수와 인류의 원수

개인과 인류의 차이는.. “One small step for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라는 아폴로 11호 달 착륙 명대사에서 확인할 수 있고, 또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도 유의미한 차이를 만든다. 예수님을 인류의 구원자가 아니라 나 개인의 구원자라고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것처럼 개인적인 '원수'와 보편적인 '원수 마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개인적인 원수는 일곱 번에 일흔 번(490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한 반면, 원수 마귀와 마귀의 자식들은 싸워 무찌르라고 하였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자신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지, 인류의 원수 내지 민족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오류에 빠져서 이를 거꾸로 적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꼭 저런 영적· 종교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말이다. 개인적 원한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 자들이 북괴와의 평화(?), 김 정은과의 화해는 어쩜 그렇게 쉽게 입에 담는 걸까?
성경으로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성경을 자신에게 맞추어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옳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11. 죄 또는 정신 질환

(1) 고의로 짓는 추악한 죄를 무슨 연약함 내지 질병 정도로 치부하며 합리화하는 건 아주 아주 잘못된 짓이다.
특히 자기가 잘못해서 벌받는 걸 박해, 시련 연단 따위로 포장하는 거 완전 극혐.. 대가리 깨뜨려 버리고 싶다.

(2) 하지만 반대로, 진짜로 정신질환 때문에 정상적인 판단을 못 하고 망상, 집착, 불면증 우울증, PTSD 트라우마 등등에 시달리는 건 죄와는 전혀 무관하며, 성경이 다루는 영역이 아니다!!

대놓고 복음을 거절하는 게 아니고 성경 말씀을 믿는다는데도 저러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 마귀야 물러가라"...를 외치면서 환자를 잡을 게 아니라, 그냥 정신꽈 치료를 받게 하고 약 먹이고 주사 놔야 될 것이다.

목사는 그런 사람까지 감당하는 직업이 아니다. 혼과 영을 괜히 구분하는 게 아니니까..
본인도 지난 10여 년 동안 (1)은 왕창 파고들면서 비판하고 까는 편이었지만.. (2)에 대해서는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이 무슨 사도의 표적이 존재하는 시대도 아닌데 역할 분담은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지금 기도 응답으로 아주 가끔 난치병이 치료되는 것은 개인마다 케바케일 뿐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사도들이 환자 누구에게든 손만 얹어서 바로 나았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 단, 어떤 사람의 증상만 보고는 이게 위의 (1) (2) 둘 중 어느 상황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을 때도 있을 것 같다.
  • 성경에 교만을 정죄하고 까는 논조는 차고 넘치는데.. 반대로 교묘한 인격 비하 말살인 가스라이팅에 대해서 다루는 게 있는가..?? 문득 궁금해진다. 일단 내가 당장 떠오르는 건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2/06/16 08:35 2022/06/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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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증거 없이 믿어야 하는 것, 그 대신 논리적으로 성립하는 것

뭐 이미 여러 번 했던 말이지만, 나는 이 맛에 성경 읽고 예수 믿는다. 이 정도의 합리성을 갖춘 하나님을 믿는다.
증명이 불가능하여 일단 믿어야 되는 게 있지만, 그 대신 성립하는 논리 체계가 있다.

(1) 인간에게 절대로 공평해야 하는 건 정말로 공평하다. 상대적인 것, 본질적이지 않은 여건들만 제각각이고 불공평하다. (재산, 신체 능력, 지적 능력..) 인간이 구원받는 것에 그런 불공평한 요소들이 개입하는 일은 일절 없다!
인간이 선행으로 구원받는다면 신은 모든 인간이 선행을 행할 수 있는 최선의 여건을 절대적으로 공평하게 마련해 줘야만 한다. (그건 훗날 천년왕국 시절이지, 지금은 아님!)

(2) 일한 댓가로 뭔가를 받는 게 아님. 먼저 구원부터 받고 안식부터 한 다음에 일한다. 그 다음에 훨씬 더 수준 높은 보상을 받는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고 내 개인의 미래를 알지 못한다.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실지를 모를 뿐이다. 그 대신, 내가 구원받았는지조차 알 수 없다거나, 신의 존재 여부가 불가지론이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3)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이, 아기는 병이나 사고로 죽으면 무조건 천당 간다. 죄성이 있지만 죄에 대한 책임이 부과되지 않는다.
그 대신, 이런 특례가 적용되는 애들은 유아세례 내지 침례의 대상도 아니며, 살아 있는 동안 체벌이라도 불사하는 의의 훈육이 필요하다.

(4) 인간이 잡범급 불순종 죄를 지어서 타락하고 자연 세계가 저주를 받고 후손들까지 낙원에서 쫓겨났을 정도라면.. 루시퍼는 더 옛날에 아예 정치범급 반역죄를 지어서 자기네 세상/왕국이 송두리째 멸망했었다.
이 비례 관계를 생각하면 간극 재창조는 하~~~나도 이상할 것 없고 오히려 아주 합리적인 교리인 걸 알 수 있다. (그 이전 세상이 어떤 형태였겠는지 디테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음!)

(5) 탈북자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대한민국 교도소에 갇히지, 북으로 도로 송환은 절대 되지 않는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고 영원히 보장이다. 선행으로 구원을 얻은 게 아니니 악행으로 구원을 잃지도 않는다.
그리고 일상적인 고난이나 시련, 박해를 겪을지언정, 하나님의 진노인 야곱의 대환란을 겪지는 않는다.

(6) "그때에 성경 역본 세계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가 선호하는 번역을 취사선택하였더라"... 처럼 되지 않고 절대 기준인 말씀이 있다.

2. 신앙 생활의 유불리

예전에도 한번 했던 말이지만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언급하자면..

(1) 인간에게 유리한 것: 믿음만으로 구원받고, 구원부터 먼저 받은 다음에 헌신하고 섬기고 일한다.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히 보장된다.
이건 인간 직장으로 치면 월급부터 먼저 받고 나서 일하는 것과도 같은 정말 파격적인 조건이다. 세상 다른 종교에서 사람들이 얻으려고 죽어라고 노력하는 것을.. 기독교에서는 당연히 먼저 받고 나서 그 다음에 더 고차원적인 목표를 추구한다.

(2) 인간에게 불리한 것: 개인의 미래를 알 수 없으며, 특히 죽을 타이밍은 절대 알 수 없음. (죽기 직전에만 믿고 구원받겠다는 잔머리 봉쇄) 이건 학교 선생이 시험 문제를 학생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신의 권한이고 재량의 영역이다.
또한 기도 응답도 꼭 인간이 원하는 때에 인간이 원하는 형태로 온다는 보장이 절대 없는 것 역시.. 일면 답답하며 불리한 점이다.

합법적으로 알 방법이 없다고 돼 있는 걸 귀신이니 무당이니 점 굿 이상한 예언기도?? 동원해서 알려고 하고,
명백하게 답이 나와 있는 건... 그렇게 믿는 걸 교만이니 어쩌구 하는 것이.. 인간의 뒤틀린 심보이다.

신앙 생활에는 인내와 기다림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남과의 상대적인 비교, 외형적인 간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자극적인 것만 쫓아가는 것.. 이런 것과는 완전 상극이다.
하지만 내가 성경을 통해 접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인간에게 유리한 것과 불리한 것이 모두 갖춰져 있다. 권리와 의무가 같이 있지, 오로지 의무만 있는 종교 노예가 아니다. 헌신을 명목으로 신앙 열정페이 착취 같은 것도 없다.

3. 죽음과 관련된 가치관

(1) 귀신 이야기: 죽은 사람은 천당이나 지옥으로 가서 현 세상과는 영원히 격리된다. 죽은 사람 흉내를 내는 극소수의 더러운 영은 있을 수 있지만, 우리와 함께 살았던 바로 그 사람이 죽은 뒤에도 이렇게 이상한 형태로 나타날 일은 절대 없다. 다윗은 "나는 그에게 가려니와 그는 내게 오지 않을 거다"(삼하 12:23)라고 정확하게 통찰했었다.

(2) 영혼 결혼식: 결혼 제도는 사람의 사후에는 의미나 효력이 없다. 이게 현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성경에서 “부활이란 게 있다면 이 여자는 칠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됩니까?” 이건 사두개인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나름 굉장히 머리를 굴려서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질문이었다(마 22:28).

(3) 죽은 동물에 대한 추모: 인간 이외의 동물들은 인간과 달리 불멸의 혼과 내세가 존재하지 않는다. 죽으면 그대로 소멸되고 끝이다. 물론 그 동물들 '종' 자체는 어떤 형태로든 영원히 존재하겠지만, 과거에 인간과 그런 경험과 기억을 교감했던 바로 그 동물 개체는 영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히 죽은 사람이나 죽은 동물을 기억하면서 슬퍼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며, 어차피 죽으면 끝인 동물을 마음껏 학대해도 된다는 얘기도 아니다. 나야 개인적인 감정만 생각하자면 동물이 아니라 아예 죽은 호박 식물까지도 추모하고 싶다.
하지만 추모도 정도껏 하지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을 갖고 정신줄 놓을 정도로 엉엉 꺼이꺼이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삶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거늘,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논어 11편 11장.. 공자)

"내가 땅의 것들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내가 하늘의 것들을 말하면 너희가 어떻게 믿겠느냐?" (요한복음 3:12)


"난 그런 건 몰라" vs "답을 뻔히 알려 줘도 니들이 못 받아들이는구나"
이게 바로 인간이 저술한 책과 신이 저술한 책의 관점 차이이다.

성경을 읽으면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는 성격이 얼마나 다르며 사후에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관념은 우주나 외계인, 외계 생명 같은 것에 대해서도 영향을 끼친다.
본인은 비록 100% 단정 확신까지는 아니지만.. 이런 우주의 규모와 인간의 과학 기술을 감안할 때, 인간이 지구 밖에서 다른 지적 생명체와 마주친다거나 지구 밖의 다른 행성에 정착해서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4.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 한자에 양 양(羊)를 부수로 아름답다(美), 의롭다(義) 등의 추상적이면서 굉장히 좋은 뜻의 글자가 굉장히 '뜬금없이' 들어있다.
    개인적으로 무슨 한자에 숨겨진 창세기 같은 설을 다 공감하는 건 아니지만, 배 선(船)짜의 8이 노아의 가족을 상징한다는 식의 끼워맞추기보다는 차라리 저게 훨씬 더 개연성과 설득력이 있다.

  • 강물은 하류로 갈수록 점점 짜워지지 않는다. 강과 바다가 경계가 있어서 바다에서부터 탁 짠물이 시작된다. (기조력 때문에 바닷물이 강으로 역류하는 건 논외)
  • 달과 태양이 하필 지구에서 겉보기 크기가 거의 같다.
  • 생명은 말할 것도 없고, 언어라는 것도 우연히 이렇게 만들어질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꽥꽥뷁뷁으로부터 파싱에 스택이 필요할 정도의 복잡한 문법이 저절로 도출되기란..

  • 하필 기원전 5xx~4xx년대부터 중국 대륙에 공자를 비롯해 제자백가 사상가들이 뜬금없이 출현했다. 석가모니의 탄생과 불교의 창시조차도 얼추 이 시기이다. 남유다 왕국의 멸망과 유대인 바빌론 포로기하고 정말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잠언과 전도서의 전파)

세속 세계사의 관점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상하리만치 존재감이 별로 없다. 그러니 모세가 홍해를 갈랐는 것이, 솔로몬 왕 때 정말 그렇게 금과 은이 넘쳐났었는지, 이것들이 진짜 역사적으로 사실인지 선뜻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사실, 세계사에서는 유대교나 기독교와는 별로 접점이 없고 오히려 대척점에 있었던 이집트, 그리스, 로마 같은 나라의 문명이 훨씬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러나, 그러나.. 기원전 5xx~4xx년대의 저 트렌드는 유대인 내지 성경적인 배경을 토대로 형성되었던 것 같다. 내 느낌상으로는 말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런 식으로 영향을 끼친 것이다.
아 당연히... 이런 증거들은 신의 존재나 지적설계 창조에 대한 '심증'일 뿐이지, 물증은 아니다.

예전에도 한번 했던 말이지만.. 난 구글 지도 상으로 아라랏 산 정상에 방주의 흔적이 있기 때문에 노아의 홍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냥 성경에 기록돼 있고 예수님이 직접 언급을 하셨기 때문에 노아의 홍수를 믿을 뿐이다.;;
논리를 통해서 믿어야 할 게 있고, 증명 없이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를 염두에 두고 믿어야 할 게 따로 있다.

군대가 아주 제한된 상황에서 제한된 대상에게 살인이 허용되는 조직이고,
첩보기관이 아주 제한된 상황에서 악으로 악에 맞서고 "목표는 수단을 정당화한다"를 실천하는 곳이듯..
종교는 아주 제한된 초월적인 영역에 대해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와 원천봉쇄의 오류, 진영논리가 허용되는 곳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5. 거리 설교 노하우

끝으로.. '복음 선포, 거리 설교'에 대한 자료를 이 블로그 말고 html 고정 페이지에다가 올렸음을 알리며 글을 맺겠다. (☞ 보러 가기)

이건 지금으로부터 5년쯤 전에 개인적으로 만들었던 비공개 private 자료이다.
불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내용이 아니고, 신자들의 일반적인 신앙 생활과 관련된 내용도 아니다.
신자가 불특정 다수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할 때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하는지, 불신자의 반응에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하면 좋을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같은 아이템들을 서술한 매뉴얼이다. 이런 글을 읽을 만한 독자층이 매우 좁으니 굳이 공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오랫동안 봉인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만들어서 혼자 갖고 있어 봤자 지금까지 제대로 활용할 곳도 없었고, 이 내용 갖고 생산적인 토의를 할 만한 상대도 없다 보니.. 이제야 그냥 봉인을 해제하고 글을 html 형태로 편집해서 개인 홈페이지에다가 올리게 됐다.
A4 7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이며, 여러 모로 블로그보다는 영구 박제 자료 아카이빙 형태가 바람직하다.

-- 복음 자체야 고전 15에 매우 간결하게 요약되어 있다. 하지만 “예수 믿어야 한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그 전에 불신자가 이해 내지 동의하지 못하는 전제조건과 배경 설정을 말해야 하는 게 생각보다 많다. 그러니 이것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야 함을 느꼈다. 신의 존재, 내세의 존재, 그 근거인 성경의 신뢰성, 정확하게 믿어야 하는 대상 등을 소개하다 보면 내용은 자연스럽게 길어진다.

-- 이는 마치 교육과정과도 비슷하다. 거리설교에 시간은 한정돼 있고 청자의 집중도도 매우 제한돼 있다. 마냥 자기 성경 지식이나 인생 간증만 장황하게 늘어놓는 게 아니라 불신자의 입장에서 교육학적으로 꼭 필요한 아이템들을 논리적으로 개연성을 갖춘 순서대로 조리 있게 편성할 필요를 차츰 느끼기 시작했다.

-- 범죄 경력 없이 그냥 하루하루 돈 벌고 남 하는 대로 적당히 유흥 즐기고,
“기독교는 다 좋은데 너무 편협하고 배타적이고 자기 안 믿으면 다 지옥이라고 그러니 싫다.”
“죽으면 다 끝이거나 혹은 어찌 될지는 죽어 봐야 알겠지.”
“성경은 도덕 경전 수준의 내용은 있겠지만 일부 설화나 고증오류도 있고 잔혹한 내용, 요즘 시대에 안 맞는 내용도 있겠지” 정도로 생각하는 통계상으로 가장 평범한 전형적인 불신자를 설정했다.

-- 필요 이상으로 세상의 악한 풍조 책망은 하지 않는다. 그건 악한 원인에 의한 결과일 뿐이므로 거리설교에서는 원인을 먼저 공략해야 한다. 음란방탕이나 동성애 같은 거창한 사회 이슈를 책망하기에 앞서 각 개인 단위로 “절대적인 선과 악은 없다, 죽으면 다 끝이다” 이런 것부터나 반박하고 회개를 촉구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아이템을 모으다 보니 챕터가 0부터 13까지 무려 14개나 나왔다.
예수 믿고 구원의 확신이 있는 분이라면 제각기 자기만의 거리 설교 레퍼토리를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
본인은 이 우한 괴질 시국에서도 더위와 추위를 가리지 않고 길거리에서 손수 선포의 어리석음(고전 1:21)을 실천하고 계시는 이 땅의 복음 전도자들을 응원하는 바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6/13 08:35 2022/06/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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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의 자연 세계가 성경이 말하는 죄로 인한 저주를 받지 않았다면.. 우리가 인지하는 생화학이라는 분야의 과학 관찰 결과는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더 길고(창5, 사 65:20) 육식동물들도 초식을 했을 거(사 65:25)라는 건 좀 고전적인 이야기이다. 더 생각해 보면...

(1) 식물이 더 빨리 쑥쑥 큼직하게 잘 자랐을 것이다.
힘들게 밭 갈고 잡초 뽑고 약 치지 않아도, 유전자 다양성과 면역력을 몽땅 삼싸먹으며 마개조 학대에 가깝게 품종개량을 하지 않아도.. 식용 열매가 큼직하게 많이 잘 맺혔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호박이 자라는 걸 가까이에서 관찰해 보니 이 생각이 절실히 들더라.

(2) 동식물에 지금 같은 원인 모를/악질적인 병충해가 없었을 것이다.
식물의 적은 식물이고 서로 견제하고 말려 죽이고 독을 만들어서 내뿜고.. 우한 괴질 같은 이상한 바이러스가 생긴 걸로도 모자라서 자꾸 이상한 변이가 생겨나는 거 말이다.
이런 메커니즘의 과학적 디테일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이런 것도 성경적으로는 응당 죄의 저주가 야기한 결과이다.

(3) 모기가 흡혈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난 예수님은 성육신했던 당시에 더운 여름에도 모기에 물려서 피를 빨리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4) 인간 포함 동물의 배설물이 지금 같은 끔찍한 외형과 악취를 내뿜지 않고, 시종일관 그냥 태변과 비슷한 형태였을 것이다.

(5) 인간 포함 동물의 사체가 지금 같은 끔찍한 외형과 악취를 내뿜지 않고, 그냥 죽은 식물이 말라 비틀어져 분해되는 것과 별 차이 없이 분해됐을 것이다.

그래서 만해 한 용운은..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은 똥, 그보다 더 더러운 건 시체.. (+ 그보다 더 더러운 건 네놈들의 마음)"라고 그랬었다. 이건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모두 굉장히 잘 통찰한 발언이다!

이 정도면 혈액도 그렇고.. 뭔가 단백질의 분자/원자 구조 차원의 왜곡이 발생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나님이 3천여 년 전의 옛날 사람인 욥이 아니라 양자역학과 DNA 분자생물학을 아는 현대의 물리학자 생물학자 등등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욥기 38~41장 사이의 배틀을 뜬다면 어떤 질문을 하실지 개인적으로 굉장히 궁금하다..!!!

"내가 태초에 공간의 중심을 중성자로 채웠을 때 넌 어디에 있었느냐? 알고 있다면 말해보아라. 중성자의 붕괴는 전자와 양성자를 낳고 원소를 생성시키는데 그 중성자 붕괴의 반감기는 누가 정했느냐?" 아마 이런 식으로 얘기가 나올 테니까.. =_=;;

신의 창조를 믿는 사람들은 진화론을 막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탄적인 생각 이런 식으로 매도하고 공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정도까지 적대시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진다.
진화론은 무신론보다는 죄의 저주를 받은 이 자연 세계에서 존재하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과 죽음을 관찰하면서 만들어진 이론이고, 그 관찰 자체는 과학적으로 명백히 사실이기 때문이다. 생명의 기원 말고 생명의 "분화" 말이다.

지금 자연에 다~ 아름답고 조화로운 지적설계의 산물 "만" 있는 건 절대 아니기는 마찬가지이다.
모기의 흡혈은 말할 것도 없고..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다 남의 알을 밀어내고 자기 알 슬쩍 낳는 습성도 그럼 하나님이 처음부터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일까?
마냥 적대시하고 대립할 게 아니라, 그림이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얘기하는 게 바람직한 문제 접근 방식이라 여겨진다.

그럼 다음으로, 위의 (1)에서 논했던 식물의 생산력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인간은 4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농사를 지어서 식물의 몸체나 과육을 주식으로 먹으며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산업· 공업을 위한 석유, 물, 희소 화학 원소뿐만 아니라 저런 농작물 종자도 전략 안보 물자인 게 주지의 사실이다.

오늘날은 과학 기술이 발달해서 식량 생산이 획기적으로 늘었으며, 지구에서 50억을 넘어 80억 인구를 부양 중이라고 그런다. 질소 합성법을 개발하고 오랫동안 어마어마한 품종 개량까지 한 덕분이다.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는 건 인간의 욕심이나 정치·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지, 절대적인 식량 생산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난 도시 촌놈 농알못이다 보니, "그럼 열매 먹고 남은 씨 중에 큼직하고 소금물 아래로 가라앉는 걸 아무거나 심으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일부 곡물은 종자 회사가 특단의 생산력 마개조 최적화를 한 종자를 매년 구입해야 된댄다.
그 최적화는 당대에만 유효할 뿐, 후대로 유전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걔가 맺은 과육 안에 들어있는 씨를 또 뿌려 갖고는.. 원래 종자와 동등한 양과 질을 지닌 열매가 절대로 맺히지 않는다.

인간들이 도대체 식물에다가도 무슨 짓을 하길래..???? 그냥 비료 주고 약만 치는 게 아닌가 보다.
그렇다고 종자 회사가 악의적으로 종자에다가 터미네이터 락을 건 것은 아니고.. 단순히 유전적인 특성이 계속 유지되지 못하기 때문에 생산력이 떨어지는 거라고 한다.

군견이나 경주마 같은 건 체력 좋은 우수한 놈이 대대로 계속 나오도록 혈통을 특별히 보존한다고 하는데 옥수수 종자는 어떻게 관리되나 모르겠다.
이 품종 개량이라는 게 죄로 인한 땅의 저주를 근본적으로 완전히 풀어 버린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저 조건부로 일사적으로 우회· 회피만 했을 뿐이다.

각종 산기슭이나 강변의 공원 공터에 '무단 경작 금지'라는 팻말이 붙은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남의 사유지라면 당연히 무단 경작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어차피 누구의 땅도 아니고 야생 자연을 재현해 놓은 곳에다가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식물을 좀 심어서 가꾸는 게 왜 문제이고 금지인 걸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조차도 현재 세상의 자연이 에덴 동산 같은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관상용 꽃, 풀, 나무 따위를 심는 게 아니라 먹을 만한 열매를 얻기 위한 작물을 심으려면, 주변 환경을 있는 자연 그대로 놔두는 게 아니라 인위적으로 조절과 변형을 많이 가하고 물과 온도, 영양분 튜닝을 많이 해야 한다.

냄새 나는 퇴비를 잔뜩 뿌려야 하고, 쓰레기가 될 가능성이 높은 비닐 등 각종 구조물을 설치해야 하고, 병충해 대비를 하느라 심지어 독한 농약도 쳐야 한다. 게다가 작정하고 이런 식용 작물을 재배하는데 겨우 한두 그루만 심지는 않을 테고..
결국은 작은 텃밭이라도 농작물이 자라는 곳은 천연 자연과는 다른 장소가 되어 버린다. 이는 공원의 설립 취지를 망치므로 금지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과육을 많이 내는 쪽으로 품종개량된 작물은 야생에서는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집돼지가 멧돼지에 비해 야생에서 제대로 생존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온통 시퍼런 식물들로 가득한 동남아시아 열대우림 정글이 정작 '녹색 사막'이라고 불리며 광합성 산소 공급 이외에 실질적인 인구 부양은 못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땅에 임한 천연 자연에 대한 저주의 증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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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농사의 특성이 자연의 특성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감을 잡았다면..
강가나 공원 등, 적당히 흙 밟을 수 있고 수풀 우거진 곳이라고 해서 각종 음식물 쓰레기--그것도 축축하고 냄새 나는 것--를 함부로 버리거나 파묻고, 심지어 방뇨까지 하면서 “어차피 다 거름이 될 거니까 괜찮다” 이러는 게 그리 바람직하지 못한 사고방식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음쓰나 배설물이 썩고 분해되면 물론 거름이 되기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하루 아침 한두 시간 만에 뚝딱 되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흉측한 비주얼과 악취, 벌레, 위생 문제 뒷감당은 어찌 하려고?
거름을 만들 거면 자기 텃밭이나 뒷간, 아니면 정말 사람이 아무도 없는 첩첩산중에서나 만들어야 한다. 사람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공공장소에서는 자제해야 한다.

심지어 천연 퇴비 말고 화학 비료도 마찬가지다. 화학 비료는 당장 공기 중에서 악취를 풍기거나 세균과 벌레를 꼬이게 하지 않는다. 분해가 잘 되지 않는 플라스틱 같은 물질이 아니며, 중금속이나 농약 같은 유독성 물질도 아니다.

얘는 흔한 편견과 달리, 성분 자체가 식물이나 인체나 환경에 해로운 게 아니다. 단지, 식물에게 필요한 영양 성분이 일부만 '너무 많이' 들어있어서 문제이다. 그래서 잉여 분량이 토양을 산성화시키고, 물에 씻겨 들어갔을 때 부영양화를 야기해서 수중 생물을 공멸시킨다.

다시 말해 얘는 환경에 문제를 끼치는 방식이 다른 여느 인공 화학 물질과는 좀 다르다. 어찌 보면 식물계의 정크푸드 인스턴트 식품인 건지도 모르겠다. 당장은 싼 가격에 풍부한 영양을 공급하고 효과도 있지만.. 영양 불균형을 초래하고 건강이나 환경을 해칠 위험이 크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말이다. 식물계의 도핑 약물까지는 아니고 가공식품에 가까운 듯.. ㄲㄲㄲ

이런 이유로 인해 농지가 아닌 공원이나 텃밭 수준에서는 농약과 마찬가지로 화학 비료의 사용도 금지된다. 허나, 현실에서는 이런 걸로 영양을 팍팍 주입하지 않으면.. 농사에 들인 노력 대비 상품으로 내놓을 수 있는 과육이 풍부하게 많이 맺히질 않는다. 병충해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식량을 생산하는 논밭은 평범한 자연과는 형태가 좀 다른 곳이 될 수밖에 없다.

이상이다.
잡초 및 병충해와 싸우며 힘겹게 자라고 있는 텃밭의 호박이나, 새끼들 데리고 산을 뒤지며 먹을 것을 찾아 다니는 멧돼지들이나.. 다 "창조 세계가 지금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산고를 치르는"(롬 8:22) 사례에 속하는 것 같다.
그에 비해 인간들이 너무 먹고 살기 힘들어서 결혼도 출산도 기피하는 건 성격이 약간은 다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6/05 08:35 2022/06/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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