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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서울 밖으로 등산 갈 때는 성남, 하남, 구리 등 동쪽을 다니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서쪽의 광명으로 원정을 갔다.
광명에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도덕산, 구름산, 가학산, 서독산이 자그마한 산맥을 이룬다. 산들의 높이 자체는 200m대에 지나지 않지만 수평 거리가 긴 편이어서 산책하기 좋다. KTX 광명 역은 최남단에 있는 서독산의 동쪽에 있으며, 광명 시내보다는 안양과 더 가까이 있다.

본인은 광명시 보건소 근처에서 구름산을 오르기 시작해서 구름산과 가학산의 정상을 보고, 거기서 곧장 하산했다. 그리고 광명시에서 대대적으로 밀고 있는 관광 명소인 '광명 동굴'을 구경하고 왔다. 즉, 맨 위와 맨 아래의 두 산은 건너뛰고 중앙의 두 산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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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어째 공원처럼 등산로가 넓고 울타리가 둘러져 있고 벤치와 정자도 많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는 그렇잖아도 '구름산 도시 자연 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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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구름산과 가학산을 통틀어서 산 속의 정자들은 이렇게.. 나무 기둥이 수직이 아니라 아래로 쩍 벌어진 스타일이었다. 이런 정자는 처음 봤다.

공원 구간을 벗어난 뒤부터 등산로는 여느 산길처럼 울타리 없는 좁은 흙길로 바뀌었다. 중간에 산을 관통하는 구름산 터널을 타넘었다. 여기는 전반적으로 흙산이지만 바위도 종종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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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의 관악산 방면을 바라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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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앞두고 여느 정자보다 좀 높은 2층 정자가 나타났다. 산불 감시 초소라고 하는데 겉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등산객용 전망대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장대비가 쏟아지는 산 속에서 이런 정자를 찾아가서 비를 피하고 야영을 하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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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동쪽 아래는 빽빽한 시가지인 반면, 서쪽 아래는 비교적 한적한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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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상에 도달했다. 정상에는 커다란 표지석이 있고, 붉은 기둥의 정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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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산 정상에서 가학산으로 가려면 능선만 타는 게 아니라 고개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야 했다. 능선에는 군부대가 있고 철조망이 쳐져 있어서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꼭대기에 있지만 공군은 아니고 육군 부대였던 걸로 본인은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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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이다. 등산로가 군부대 철책보다 아래에 있다.
그리고 어디서부턴가 이 길은 '광명 누리길'이라는 팻말이 나타났다. 각 도시들이 자기 관할인 산들에 등산로· 산책로를 개척해 놓고 이름을 붙이는 건 유행이라도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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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드디어 가학산의 정상에도 도달했다. 표지석은 앞면과 뒷면에 한글과 한자 표기가 모두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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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얘기했듯이, 가학산 정상에서 계속 남쪽으로 진행해서 서독산으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은 그러지 않고 서쪽의 광명 동굴 방면으로 하산했다. 여기는 보다시피 그냥 절벽이기 때문에 굉장히 급격한 계단을 따라 잠깐 내려가야 했다.

산 아래에 분홍색으로 칠해진 저 건물은 '광명 자원 회수 시설'이라고 한다. 굴뚝이 정말 크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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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동굴이란 자연 동굴이 아니라 가학산의 기슭과 아래에 꽤 방대하게 뚫려 있던 광산이 원조이다. 강원도가 아니라 서울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그리고 그냥 평범한 동네 뒷산 같은 이런 산의 아래에 광산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꼭대기는 군부대이고 땅 속은 광산이라니 으음..
석탄은 아니고 여러 종류의 중금속들이 그럭저럭 채굴돼 나왔다고 한다. 구리, 아연뿐만 아니라 금과 은도 약간이나마 나왔다.

이 광산은 일제 강점기이던 1912년에 처음 개척되었고 해방 후에도 수십 년간 광부들의 일터 역할을 했으나, 그로부터 딱 60년 뒤인 1972년에 환경 오염 문제(그리고 아마 채산성도 감소)로 인해 폐광하게 됐다.
그 뒤 이 부지는 몇십 년 동안 버려져 있었는데, 2010년대에 들어서 광명시에서 약 빤 모험을 시작했다. 폐광을 테마파크 관광지로 마개조한 것이다.

이건 온통 산이고 광산도 제일 많은(그래서 철도도 산업선이 제일 먼저 깔린..) 강원도에서도 시도한 적이 없는 일이었다. 강원도는 광업이 망하면서 지역 경제가 싹 죽자 호텔· 콘도 짓고 올림픽 유치하고 강원랜드 같은 카지노만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 과정을 거쳐서 구 가학 광산은 2011년에 처음으로 일부 구간만 민간에 개방되었다가 몇 년 뒤엔 별별 물고기· 식물 전시관, 좀비 체험(!)관, 그리고 와인 갤러리 등이 추가되고 이름도 '광명 동굴'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료 입장으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높은 천장에 거대한 계단을 타고 밖으로 나가던 홀(?) 비슷한 장소는 공연장으로 바뀌었으며, 그쪽으로 나가지는 않게 동선도 바뀌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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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갱도라는 게 대체로 그렇듯이, 출입구는 평지보다 높은 곳에 있지만 채굴을 계속할수록 엄청나게 낮고 깊어진다. 가학 광산도 원래 지하 9층까지 있었지만 광명 동굴은 두 층만 사용하며, 지금도 민간에 개방된 공간은 극히 일부뿐이다. 물론 그 두 층이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건물 두 층 높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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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답게 나름 이렇게 보물 코스프레를 해 놓은 곳도 있다. "알리바바와 40명의 도둑"에서 '열려라 참깨' 동굴 안 모습이 이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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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전시관 구경을 다 하고 올라온 뒤에는 광산 역사관과 와인 갤러리를 둘러본 뒤 퇴장하게 돼 있었다. 저런 모형도 있고, 방 중앙에는 아래의 광부들이 탄 리프트를 끌어올리는 엘리베이터 기계실처럼 생긴 물건도 전시돼 있었다.
공교롭게도 Doom 2의 레벨 26 The abandoned mines가 딱 이런 구조물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맵이다.

세상엔 여러 극한 직업들이 있지만 광부는 그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3D 극한 직업이지 싶다. 뭐, 농부· 어부에 비해서 날씨는 별로 타지 않는 직업일 것 같지만, 날씨보다 더 위험한 요소가 널려 있다. 오죽했으면 미성년자는 물론이고 여성은 소수의 부득이한 상황을 제외하면, 갱내 근로가 아예 대놓고 "금지"돼 있으며(근로기준법 제72조), 우리나라에서 옛날에 어떻게든 외화 벌려고 그 먼 독일까지 괜히 광부(+간호사)를 보낸 게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 시절엔 가정과 나라가 얼마나 가난했으면, 거기에라도 가려고 대졸자들이 바글바글 몰렸으며, 너도 나도 손에 일부러 연탄 가루까지 묻히면서 면접관에게 "꼭 가고 싶습니다!"라고 외쳤었다. 돈을 훨씬 더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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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전등갓조차도 와인 잔을 엎어 놓은 형태이더라.
하긴, 포도주는 생각보다 종류가 굉장히 많고 와인 잔도 종류가 다양했다.
포도를 재배하지도, 포도주를 생산하지도 않는 웬 수도권의 어느 도시가 전국 최대의 포도주 판매· 유통처가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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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등산과 동굴 구경을 마치고 나왔다.
차 없이는 다니기 힘들어 보이는 오지이지만 유일하게 17번 버스가 광명 동굴을 찾은 뚜벅이들의 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나가니 KTX 광명 역이 나왔다. 난 광명 역의 주변 지상에서는 철길을 전혀 볼 수 없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또한, 역 주변으로는 어마어마한 높이과 크기의 아파트인지 주상복합인지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다. (호반베르디움??)
본인은 여기서 오랜만에 광명 셔틀 전철을 타고 귀가했다.

광명에는 저렇게 폐광을 창의적으로 활용한 동굴이 있고 고속철 역이 있고 경륜 경기장도 있고(광명 스피돔. 하남에는 미사리 카누 경기장), 이케아도 있다(하남에는 스타필드?).
나름 광명 시장이 시의 인지도를 올리려고 유치해 낸 거라고 하니, 그 사람이 참 유능한 인물인 것 같다.

저기는 그냥 경부선 철길에서 미묘하게 비껴 간 오지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내 생각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옛날에는 "지하철 타면서 농사 짓는 이색적인 사람"라고 해서 광명의 어느 서울 근처 그린벨트에서 사는 할아버지 소개를 본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거기도 온통 개발되고 있으니 그런 사람을 볼 일이 없어질 것이다.

광명에서는 광명 동굴을 명물로 밀고 있는데, 구리시에서는 왕릉을 밀고 있다. 오죽했으면 근처의 버스 정류장을 아예 긴 명사절로 지었다. (우리나라 최대 왕릉군인 동구릉.. -_-)
다음 산행 내지 산책 때는 저기도 언젠가 가 볼 생각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19 08:32 2018/01/19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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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아차산

본인은 지난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이 블로그의 여행 카테고리가 대부분이 등산 후기로 도배될 정도로.. 서울 근교의 어지간한 산들은 다 돌아다녀 봤다.
그러면 다음으로는 설악산이나 지리산, 한라산(!!)처럼 점점 더 먼 곳에 있고 더 크고 높고 유명한 산들로 원정이라도 가야겠지만 본인 여건상 그렇게는 못 하고, 일단은 예전에 이미 올랐던 산들을 다른 등산로로 다시 오르는 쪽으로 등산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특히 지금 정도로 지리 특성과 역사 배경을 치밀하게 분석하면서 사진과 여행기를 남기는 관행이 정착하기 "전", 완전 초창기나 더 옛날에 올랐던 산들이 이런 복습 대상이다.
아차산은 서울 시내에 가까이 있고 높이도 아주 낮아서 만만하고, 먼 옛날에 회사 사람들과 같이 오른 적이 있으며 2016년경에 용마산 쪽에서 혼자 답사한 적도 있기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또 찾아갈 일은 없으리라 여겨졌다. 하지만 그런 편견을 깨고 다시 가 보니 예상 밖으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아차산은 도보 내지 대중교통으로는 말 그대로 서울 지하철 5호선 아차산 역에서 접근 가능하다. 단, 역은 천호대로라는 큰길에 있으며 여기서 등산로 입구까지는 또 수백 m~ 1km가량 떨어져 있는데, 등산로 코앞까지 도달하는 대중교통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산을 향해 미묘하게 오르막 형태인 긴 먹자골목과 주택, 빌라를 지나야 한다.

자동차로는 여기뿐만 아니라 ‘아차산로’라는 찻길을 통해 산기슭의 공영 주차장까지 접근할 수 있다. 아차산-광나루 사이의 고갯길을 지나다 보면 위로 차도가 고가 형태로 지나는 걸 볼 수 있는데, 바로 그 길이다. 아차산은 마치 북악산의 북악 스카이웨이처럼 막 높게는 아니어도 내부에 자동차 도로가 닦여 있으며, 이게 동쪽의 장신대와 워커힐 호텔 및 아파트 쪽으로도 간다.

아차산의 여러 등산로 중 이렇게 남쪽 공영 주차장 일대는 여느 산답지 않게 상당한 고퀄로 꾸며져 있다. 바로 근처에 외국인들이 찾는 고급 호텔이 있기 때문인지, 아차산성 같은 고대 유적이 있기 때문인지, 등산로가 서울 둘레길로 지정됐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가 법적으로 무슨 국립공원 같은 급은 절대 아니며 발굴된 삼국시대 유적이 무슨 경주 남산 같은 급으로 양과 질이 엄청난 것도 아닌데, 더구나 이웃의 용마산 등산로를 비교해 봐도 아차산 서울 구간은 뭔가 특별한 관리를 받아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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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기 전, 주차장 근처에 이런 생태 공원이 있는 걸 발견하고 들러 봤다. 공원 자체도 평지가 아니라 비탈길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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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아차산성 + 아차산 정상을 향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날은 맑고 덥지 않으며, 나뭇잎들은 아직 단풍으로 물들지 않고 초록색이 남아 있으니 이런 날이 등산 가기 아주 좋았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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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성은 주변 조사와 복원 공사가 한창이니 여기 일대에 민간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울타리· 표지판과 함께 근처만을 스치듯이 구경할 수 있었다.
사실, 산에 군사 보안 시설이 전혀 아니면서 민간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을 보는 일은 몹시 드물다. 우면산 같은 산은 아예 과거 지뢰 매설 지역이라는 경고문까지 있지 않던가?

아차산엔 군사 시설 같은 건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등산로를 벗어난 다른 어딘가에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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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가 곁들어진 흙길을 벗어난 뒤부터는 등산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흙길 대신 암반이 등장하고, 나무 없이 하늘이 뻥 뚫린 곳이 나타났다. 그리고 산 아래의 전망도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본인은 옛날에 아차산을 오를 때에는 이런 흙길 대신 암반이 굉장히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는 여기 말고 다른 곳으로 산을 올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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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망대에는 무료 망원경도 비치되어 있었다. 평범한 서울 야산에서는 보기 드문 시설이다.
아차산과 그 북쪽 산맥(?)은 나름 서울과 구리시의 경계이다. 예전에 일자산이 동서로 서울과 하남시를 갈랐던 것처럼 말이다. 둘 다 서울 동부에서 서울 둘레길 경로라는 공통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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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한 언덕을 올라서 아까 전에 지나쳤던 다른 언덕을 찍은 것이다. 요게 아차산 상부의 특징이다.
여기 일대의 넓은 공터가 아마 정상은 아니고 "해맞이 광장"이었지 싶다. 여기서 풍경 사진을 여러 구도로 남기긴 했지만, 전부 게재는 시간과 지면 관계상 생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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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산 위의 풀밭 같은 평지를 지났다.
산 꼭대기 근처에 넓은 평지가 있으면 거기는 십중팔구 H자 모양의 헬리패드가 있을 텐데, 여기는 그렇지도 않았다.
풀밭에 돗자리 깔고 앉고 싶기도 하지만.. 길을 벗어나지 말라고 울타리가 낮게나마 계속 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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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돌무더기 위의 마지막 평지가 바로 아차산의 정상이었다. 정상 표지석 같은 건 없고 그냥 문화재 유적 설명만 있었다.
아차산 자체는 높이가 300m도 채 되지 않고 서울 남산과 비슷한 급일 뿐이다. 다만, 높이 대비 비탈이 완만하고 이동 거리는 긴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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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깔린 돌무더기는 역사 고증을 거친 건지 아니면 별 생각 없이 만든 건지는 모르겠다만, 흰색과 누런색이 어우러진 게 마치 은덩이 금덩이 같고 색깔 배색이 나름 화려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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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정상의 바로 옆에는 저렇게 이웃의 용마산이 있다. 아차산 정상 이후에 그냥 이 봉우리로만 하산하는 길은 딱히 제대로 보이지 않는 반면, 서울 둘레길은 용마산 방면으로 형성돼 있다. 거기서 용마산 정상으로 가려면 서쪽으로 더 가야 하고, 둘레길은 북쪽 망우산 방면으로 향한다.

본인은 아차산 정상을 찍은 이후에는 일단 서울 둘레길을 선택했다. 여기부터는 작년에 답사했던 구간과 중복이니 헬리패드나 보루 같은 장소를 옛날에 봤던 기억이 슬금슬금 나기 시작했다. 그때는 용마산 정상 도착 직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 반면, 이번엔 날씨가 아주 맑으니 분위기가 좋은 대조를 이뤘다.

단, 그때는 망우산 묘지 구경을 하느라 서울 북부로 빠져나가 버렸으니 이번에는 산 동쪽의 구리시 방면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깔딱고개를 오르내린 뒤 사거리가 등장했을 때, 본인은 "아치울 마을" 방면을 선택했다. 좀 충분히 많이 걷고 나서 구리시 북부에서 하산하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심지어 발 아래로 아차산 터널조차 넘어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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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고 좁은 구리시에서도 아차산의 자기 관할 영역 내부에 나름 ‘구리 둘레길’이라는 걸 제정해서 홍보하고 있었다. 여기는 별다른 문화재 유적은 없고 그냥 울창한 숲길이 이어졌다.
처음 입산했던 서울 광진구 관할 구간에 비해 훨씬 조촐 단촐했으며 다른 등산객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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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에는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다만, 수질 검사를 언제 해서 결과가 어떻게 나왔다는 쪽지가 붙어 있지는 않았다.
아치울 마을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은 나름 계곡을 따라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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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마을이 나타났다. 등산 마치고 내려가면서 과천, 광주, 남양주, 하남, 성남 등 여러 곳의 산기슭 마을을 구경했는데, 구리시의 마을을 이렇게 구경하는 건 처음이었다.
본인은 뒷산이 병풍처럼 깔렸고 단독주택과 빌라들이 들어선 한적한 마을에 사는 것에 대한 로망이 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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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차산 등산을 마치고 마을 어귀에까지 도달한 뒤, 대로(아차산로, 국도 43호선)로 나가서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바로 옆에 강변북로(거의 시점!)와 한강이 지난다.
이곳을 지나는 버스들은 대부분 광나루 역을 경유하고, 모든 버스들이 닥치고 강변 역으로 갔다. 거기가 시· 종점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일대에 석유 공사의 본사일 리는 없고 철조망이 둘러진 무슨 시설이 있는 것을 차창 밖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민간 지도에는 당연히 숨겨져 있고.. 나름 아차산에도 보안 시설이 하나 있긴 하구나.
성남 석운동에는 송유관 공사가 있더니 성격이 비슷한 시설인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16 08:37 2018/01/1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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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산 전망대와 행주산성

본인은 작년에 강화도에 나들이를 다녀와서 이 블로그에다가도 여행기를 올린 바 있다.
그때 본인은 고인돌이나 마니산, 고려 행궁뿐만 아니라 북쪽에서 전망대도 보고 왔다. 남한과 북한이 첩첩산중의 육지가 아니라 거대한 강을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러니 여기는 DMZ 같은 건 없으며, 강 건너편에는 의외로 북한의 마을이 곧바로 보이고(선전용으로 일부러 때깔 곱게 꾸며 놓은 것이지만..) 군인이 아닌 평범한 주민들도 보인다. 이런 광경은 한반도의 서부인 한강 하구에만 존재한다.

그러니 본인은 이렇게 강 건너편의 북한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강화도 말고 또 있는지 궁금해졌다. 지도를 찾아보니 '오두산 통일 전망대'라는 게 있다는 걸 새로 알게 됐다. 오두산은 높이가 100m 남짓한 낮은 산이며 백제 시대에 '오두산성'이라는 성곽도 만들어진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가 임진강이 한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있어서 경관이 아주 좋으며, 자연스럽게 강 건너편의 북한 땅을 보기에도 좋다. 게다가 그 어느 전망대보다도 서울과 가까이 있고 자유로 도로의 바로 옆이기까지 하니 접근성도 훌륭하다.

이런 이유로 인해 1992년 9월, 노 태우 정권 시절에 여기에 통일 전망대가 건립되었다고 한다. 사실은 자유로와 거의 동시에 완공된 거나 마찬가지이다. 이에 본인은 하루 날을 잡아서 차를 몰고 여기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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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산을 올라서 아래의 자유로를 내려다 본 모습이다. 반대로 자유로를 저렇게 달리는 도중에도 이 전망대가 차창 밖으로 보인다.
자가용이 없더라도 셔틀버스가 평지에서 30분 간격으로 운행되기 때문에 얼마든지 전망대를 찾아갈 수 있다. 자세한 건 해당 기관의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그런데 이 높은 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라온 근성의 자덕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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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의 입구 모습이다. 여기는 위도가 가장 높고 바다를 옆에 낀 강원도 고성의 통일 전망대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정반대이다.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오두산 전망대는 북한을 코앞에서 볼 수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여느 전망대들과는 달리 "민통선 안에 있지 않다!" 여기 주변의 지형과 군사분계선의 특이한 선형 덕분에 가능한 전국 유일의 예외가 아닌가 싶다. 덕분에 이 전망대는 드나들기 위해서 신분증을 까고 차량 번호를 적고 출입 허가증을 받는 식의 난리를 칠 필요가 없다.

군부대 내부에 있는 전망대들은 북측 방면 사진 촬영은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엄격한 통제가 걸리는 편이지만, 이 전망대는 그런 게 전혀 없이 아주 관대한 분위기였다.
아, 그렇다고 해서 이 전망대 주변에 일제의 군사 시설이 전혀 없다는 얘기는 당연히 아니다. 여기 일대는 국내의 인터넷 지도 사이트들이 항공 사진을 제공하지 않는 엄연한 전방 보안 지역이다.

전망대 안에는 실향민들을 위해 북한의 주요 도시들 내부를 3D 그래픽으로 재현해 놓은 동영상 상영관이 있고, 북한의 도발 역사와 통일의 필요성, 남과 북이 추구하는 통일 이념 같은 원론적인 얘기들이 전시돼 있었다.
남한이 서부 지방도 땅을 좀 더 많이, 송악산 정도까지만 수복했으면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고려 시대 유적이 더 많아졌을 것이고 경의선 전철이 개성까지도 뚫렸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면 오두산 전망대 같은 전망대도 이곳이 아니라 송악산 정도로 더 북상하게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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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주된 풍경은 이것이다.
저~~멀리 보이는 땅은 북한 개풍군이다.
그리고 왼쪽 중간에 있는 땅은 남한 김포시 하성면이다. 북한 땅과 남한 땅 사이에 있는 물길은 임진강과 합류한 한강으로, 반쯤 이미 서해 바다이다.
김포시 하성면과 내가 있는 곳 사이에 있는 물길은 한강이다. 그리고 오른쪽에 있는 물길은 임진강이다. 지리 구도가 대략 이렇게 된다. 이 말이 이해가 잘 되지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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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안에 들어가 보면 여기가 어디쯤인지 지도와 함께 잘 설명되어 있다. 한강 하구 정도로 가면 강폭이 거의 2km에 달한다.
여기도 나름 두 물줄기가 만나는 셈인데, 남양주 두물머리나 정선 아우라지와는 분위기가 영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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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전망대에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북한의 마을과 주민들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사람은 망원경으로 봐도 매우 자그마해서 식별이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논밭에서 농삿일을 하는 건 분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여기 주변에는 선전 구호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오두산 전망대가 또 아주 좋은 건 여느 전망대들과 달리 망원경이 무료라는 점이었다. 덕분에 망원경을 비교적 오랫동안 만지작거리면서 망원경으로 비치는 상을 카메라로 찍는 시도까지 할 수 있었다. 물론 원하는 각도를 맞추기란 대단히 어려웠고 색깔도 뿌옇긴 하지만, 그래도 사물 자체는 카메라의 줌에만 의존하는 것보다 더 선명하게 찍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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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남한 쪽(김포 하성면)을 보고 찍은 모습이다. 흐리던 하늘이 맑고 파래져서 경치 구경하기에 적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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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폭(=거리)이 좀 압박스럽긴 해도 수심이 막 깊어 보이지 않고 심지어 밀물 썰물까지도 있다는데.. 누가 미친척 하고 근성으로 헤엄쳐서 월북이나 탈북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긴,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기도 했다.
다대포 해수욕장이 있는 부산 낙동강 하구와는 달리, 군사적으로 완전히 봉인되어 버린 한강 하구의 안습한 현실을 이렇게 목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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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산에서 남한 내륙 쪽을 둘러보니, 맞은편 언덕 위에는 웬 거대한 한옥 건물이 보였다. 저건 도대체 뭔가 궁금해서 찾아 봤더니 '고려 통일 대전'이라고 고려의 종묘뻘 되는 행사를 치르는 '고려 역사 선양회'라는 단체 소속의 사유지라고 한다. 헐... 저기서 1년에 한 번 '대제'를 지낸다고..

이렇게 본인은 오두산 통일 전망대 구경을 잘 마쳤다. 이런 걸 보면 맨날 뉴스에서 핵 만들고 미사일 쏘는 그 또라이 북괴라는 나라가 내가 사는 곳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실존한다는 걸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파주에서 데이트 코스 관광지로 알려져 있는 헤이리 예술 마을, 프로방스 마을도 여기서 그리 멀지 않고 북한과도 불과 4~5km 남짓밖에 떨어지지 않은 전방이라는 것에 놀랐다. 거기도 보안 문제 때문에 국내 인터넷 지도에서 항공 사진이 제공도지 않는다.

말이 나왔으니 좀 정치적인 이슈 얘기를 하자면, 본인은 인제 와서 남북이 뭔가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방법으로 통일을 이룬다는 건 거의 '영어 공용어화'만큼이나 가능하지 않으며 타이밍이 물 건너 갔다고 상당히 비관적으로 생각한다. 북괴 체제를 붕괴시킬 기회를 다 놓쳐 버렸기 때문이다.

통일만 되면 한국이 인구가 7500만이 되고 탄탄한 내수 시장을 갖춘 동북아시아 강국이 되고 어쩌구 희망적으로 나불거리는 건, 북한 주민들이 굶주린 약골· 마약 중독자가 아니고 남조선 인민들에 준하는 체력과 생산성이 있으며, 김씨 정권에 세뇌되지 않은 정상적인 정치관 종교관 국가관을 갖고 있을 때에나 성립하는 얘기이다. 지금 그 전제조건이 성립하는가? 전혀, 네버..

그러니 지금은 정말 통일을 외칠 때가 아니라, 통일이 안 되고 설령 북한 땅을 다른 세력이 다스려도 좋으니 전적으로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소말리아 아이티 캄보디아보다도 못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구출하고, 북괴 정권을 고립하고 압박시키고 무너뜨리는 일에 신경써야 할 때이다. 지금은 우리가 힘이 충분치 못해서 휴전선 전방에서 '북괴의 위협'만 제거하고 예방하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북괴의 존재' 자체를 제거하는 것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걸 할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영구분단만 유지해도 중간은 간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북괴랑 대화하자네 퍼주자네 하는 놈들은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다 쳐죽이고 씨를 말려야 된다. 이놈들은 일제 시대 친일파 따위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나쁜 악마들이기 때문이다. 악마를 상대로는 전기톱이 훌륭한 대화수단이거늘 무슨 달러 현찰이 대화수단이란 말인가?
꼭 이런 애들이 북괴를 좋게 말할 수는 없으니 오로지 남한만 정체성을 부정하고 역사를 부정적으로만 평가하며, 맨날 민족 민족 들먹이지만 동족이 자유를 빼앗긴 굶주린 노예로 사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오두산 전망대 다음으로 본인은 동일하게 자유로와 아주 가까이 있는 행주산성을 덤으로 들렀다. 언덕의 높이가 서로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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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이 자리잡았던 덕양산은 서울 봉화산만큼이나 산맥 없이 혼자 우뚝 솟은 독립구릉이다. 강 쪽으로는 거의 절벽이고 육지에서는 경사가 완만한 편이어서 요새화에 유리하고 군사적 가치가 높았다고 한다.
언덕의 특성상 경사의 압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정말 낮기 때문에 성인 남자의 체력 기준으로는 슬금슬금 오르면 정말 금방 정상까지 갈 수 있다. 예전에 서울 응봉산을 오르던 정도의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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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도달하니 역시 자유로+강변북로와 한강, 마곡철교(공항 철도), 방화대교 등의 다리가 내려다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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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행주대첩 승전을 기념하는 기념비와 정자도 있었다.
행주산성 안에 있는 각종 건물들은 조선 시대에 있었던 오리지널이 아니라 다들 후대에 새로 건설된 것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간판이 '덕양정', '대첩비각', '충의정' 등으로 한문이 아닌 한글로 적혀 있었다.

행주대첩(권 율)은 진주성 대첩(김 시민), 한산도 대첩(이 순신)과 더불어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3대 대첩 중 하나이다. 이 순신은 임팩트가 독보적으로 너무 크고, 진주성은 그래도 2차 전투 때는 함락되어 버리기라도 했다만, 행주대첩에 대해서는 본인이 지금까지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주산성 안에는 적당히 나무 아래에서 쉴 공간이 많이 있었으며, 그 당시 전투를 기리는 기념관도 드문드문 자리잡아 있어서 휴식과 힐링용으로 좋았다. 단, 본인의 막연한 예상과는 달리 여기는 돌로 쌓은 성벽 같은 건 없었다. 토성 비스무리한 것만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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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본인은 이 정도로 서울 서부까지 온 김에 행주대교를 건넜으며, 인천 계양 역 근처의 경인 아라뱃길 공원을 구경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여기는 정작 배의 통행은 전무하다시피하고, 오히려 양 옆 둑길이 훌륭한 자전거 라이딩 코스가 되었을 뿐이다. =_=;; 이러려고 괜히 운하를 팠나 자괴감이 충분히 들 만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07 08:29 2018/01/07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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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창경· 창덕궁과 종묘를 다녀오고 나서 몇 달 뒤, 다음으로는 종로가 아닌 시청, 정동 쪽으로 놓여 있는 고궁을 답사했다. 이번에는 자전거 없이 전적으로 걸어다니기만 했는데, 답사 동선의 고저차를 감안하면 궁극적으로 이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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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시청 역은 서울 시청 및 서울 광장뿐만 아니라 덕수궁과도 아주 가까이 있다. 입구의 이름은 '대한문'인데, 본인은 저 명칭을 20여 년 전에 나왔던 어린이용 비디오 한자 교재의 출판사 이름으로 먼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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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일대는 지난 2017년 3월, 반공 애국 시민들이 박 근혜 대통령의 인민재판 부당 탄핵을 반대한다고 태극기를 흔들며 목놓아 외쳤던 역사적인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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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안으로 들어간다. 정전인 중화전이다. (돌바닥에 비석 같은 신하들 자리..) 이런 것들 이름을 붙이는 방식은 어떠했는지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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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에는 동서양 건축 양식이 퓨전으로 섞인 의외의 건물이 있었다. 이름은 '정관헌'이라고 하고, 구한말인 1900년에 고종이 연회장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추가로 지은 거라고 한다.
그리고 근처에는 '석조전'이라고 더 나중에 지어진 서양식 석조 건물도 있다. 덕수궁은 마냥 기와집 일색이 아니라 안에 의외로 이런 서양식 건물이 있었다. 물론 지금 있는 건물은 재건 복원된 것이고,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나머지 덕흥전, 함녕전 등의 건물도 둘러보고 사진을 찍었지만 소개를 생략하겠다. 이렇게 덕수궁을 둘러본 뒤 본인은 후문 쪽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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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구세군 회관을 지났다. 옛날엔 뭔가 근대식 건물이라 하면 전부 붉은 벽돌 일색이었던 것 같다. 그게 지금으로 치면 '유리궁전' 같은 유행이었던 듯.
본인이 방문하던 당시에도 뭔가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는지, 제복 차림의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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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로와 새문안로2길 사이에는.. 서울 도심의 최고 입지임에도 불구하고, 덕수궁 복원을 위한 문화재 발굴과 조사라는 명목으로 민간인의 접근이 봉인된 넓은 폐허(?) 공터가 있다. 다른 구간은 높은 담장 때문에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지만, 그래도 출입문이 있는 곳에서는 철문 사이에다 렌즈를 집어넣어서 내부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건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하긴, 인제 와서 서대문(돈의문)이라든가 이 일대의 한양도성도 과연 부지 확보와 복원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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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참을 찾아 헤맨 끝에, 그 이름도 유명한 구 러시아 공사관 첨탑에 도달했다. 고종 황제의 흑역사인 1896년 '아관파천'의 현장이다. '구'에서 알 수 있듯, 지금의 러시아가 아니라 공산주의 소련 이전의 '러시아 제국' 시절 얘기다. 노(魯)뿐만 아니라 아(俄)도 러시아를 가리키는 한자로 쓰인 것이 생소하게 보인다.

원래 러시아 공사관은 훨씬 더 넓고 큰 건물이었지만 그것들은 6· 25 전쟁 중에 몽땅 파괴되고 이 부분만 현재까지 남아서 전해진다. 아까 그 폐허 부지와 직선 거리상으로는 가까운 곳에 있지만, 높이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여기로 가려면 정동 공원 등 다른 곳에서 접근해야 한다.

사진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주변 지형의 특성으로 인해, 구도는 전부 탑을 올려다보는 형태 말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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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아래의 정동 공원도 경치가 좋아서 사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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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 다음으로 나가서 새문안로를 횡단하니 경희궁의 진입로인 흥화문은 곧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희궁은 조선의 궁전 5개 중에서는 존재감이 제일 없다. 서울의 궁전들 중에서 훼손이 제일 심해서 볼 게 제일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 궁전들보다 잔디밭 마당이 유난히 넓고, 곳곳이 복원 공사가 한창이었다.

본인조차도 한글 학회 회관 근처에 '경희궁의 아침'이라는 오피스텔 단지가 있는 걸 보고는, 수 년 동안 "경복궁도 아니고 경희궁은 뭐야?"라고 생각했지, 이 도심 근처에 다른 궁전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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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은 자기 건물만 철거된 게 아니라 부지 자체도 다른 건물로 막 잠식당해 왔다. 한때는 명문 서울 고등학교가 이 자리에 있다가 그나마 강남으로 이전했으며, 서울 교육청도 여기에 떡 자리잡고 있다.
컨텐츠가 빈약하고 온통 공사판이어서 그런지, 여기는 인서울 궁전들 중에서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아무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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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건물 없이 땅만 덩그러니 놀고 있다. 대문인 흥화문, 그리고 정전인 숭정전이 사실상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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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 구경은 뭐 이 정도로 끝..?? 주변 사진을 더 찍은 것도 있지만 블로그에다가는 여기까지만 공개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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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본인은 경희궁의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서울 역사 박물관을 찾아갔다. 학교에 갈 때 버스를 갈아타는 지점이며, 마당에는 노면 전차가 하나 전시되어 있기도 하니 본인은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1층은 도서관 자료실과 특별 전시관이고, 2층은 조선 시대, 일제 시대, 해방 이후의 순으로 상설 전시관이 있었다. 아, 여기 역시 관대하게도 무료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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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방문하던 당시에는 특별 전시가 두 개가 진행 중이었다. 하나는 "파독 간호사 여성들의 삶"이라고 뭔가 국제시장스러운 소재였다. 그것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른 하나로, 우당 이 회영 육형제 가문에 관한 소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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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은 조선 시대에 요즘 시세로 치면 못해도 몇백 억에 달할 땅과 재산을 소유한 플래티넘 금수저 출신이었다. 단순히 농사나 장사로 부자가 된 것도 아니고 대대로 관료였다. 얘들은 일제의 식민 통치를 묵인만 해도 원래 하던 정치인이나 법조인 한 자리나 꿰차서 전관예우를 충분히 받고 얼마든지 계속해서 떵떵거리며 살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나라를 빼앗겼다는 소식에 육형제 전체가 삼국지의 도원결의보다 더 드라마틱한 결의를 했다. 그 많던 재산을 정말 헐값에 몽땅 처분하고 만주로 건너가서 '신흥 무관 학교'를 세우는 미친 짓을 했다. 그리고 지지리도 돈 안 되는 일인 무장 투쟁 노선 독립운동가의 양성과 지원에 가산을 탕진했다. 이거 무슨 독립 운동가 배출의 숨은 요람이었다는 남쪽 끝 '소안도' 섬 얘기를 듣는 느낌이다.

여섯째인 막내는 맏형에 비하면 거의 맏형의 아들 수준으로 터울이 크긴 하다만.. 이 육형제가 모두 그 부자 가문에 걸맞지 않은 힘든 가시밭길을 걷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나마 다섯째 '이 시영'만이 유일하게 해방 이후에까지 살아남아서 초대 부통령을 역임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선행을 한 독립 운동가와 그 가문이 안 중근· 윤 봉길, 유 관순, 김 구만치 진작부터 널리 알려지고 칭송받지 못한 주 이유는 이들이 일체의 진영과 파벌을 싫어하고 뭔가 신 채호처럼 이상주의 순수주의 무정부주의 독고다이 아나키즘 성향의 항일 노선을 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그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도 그리 호의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다. 처음엔 같이 관여하다가 감투 싸움 밥그릇 싸움에 환멸을 느끼고 뛰쳐나왔다. 기독교계로 치면 하나님은 믿되 일종의 무교회주의를 지향한 셈이다.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 어디든 진영 논리 파벌 싸움이 지저분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진영과 파벌과 정치로 여러 사람을 한데 결집시키지 않고서는 뭔가 큰 일을 이룰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이분들의 행적은 2% 부족한 듯한 아쉬움과 한계가 남았다. 전근대적인 조선 봉건주의를 타파하고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점은 매우 훌륭하지만, 그 뒤에 현실적인 대안 역할을 할 이념을 제대로 판단하고 채택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그래도 저런 중립 노선만으로도 아예 사회주의 공산주의 좌빨 노선보다는 훨씬 더 건전하고 나았다.

부통령 '이 시영'이라는 이름을 본인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저 사람이 저런 가문 출신이었다는 점은 지금까지 미처 몰랐다. 저런 이상주의 중립 성향의 사람이.. 미국물 먹은 노련한 현실주의자요 강경한 반공 독재 스타일인 이 승만과 사이가 좋을 리가 없었다. 그 와중에 전쟁이 나고 희대의 흑역사 병크인 보도연맹 학살 사건까지 터지자, 그는 "내가 이럴려고 정치인 됐나" 자괴감을 느꼈다. 그래서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담화를 발표한 뒤 정계를 은퇴했다. 청렴한 정치와 남북 통일까지 이루기에는 현실이 너무 급박하고 안 좋았다.

그나저나, '신흥 무관 학교'와 옆의 '경희궁'이 나란히 등장하는 건 참 절묘한 우연인 것 같다. 저 학교가 경희 대학교의 먼 전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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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구경을 한 뒤 2층으로 올라갔다. 박물관의 이름답게 서울의 역사가 조선 이 성계 시절부터 잘 전시되어 있었다. 이 순신· 세종대왕의 동상이 놓여 있는 광화문 앞의 세종대로가 옛날에는 저런 모양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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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 이전에 한반도에서 통용되던 대로(큰길)들은 이런 형태였구나.
해남대로는 경부선+호남선을 얼추 합한 선형이며 오늘날의 국도 1호선과 비슷한 것 같고, 영남대로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긴 하지만 잘 알다시피 용인-이천-충주-문경을 경유하니 경부선이나 경부 고속도로와는 완전히 다른 선형이다. 그리고 부산도 우리가 지금 아는 부산항 쪽으로 가는 건 아니다.

블로그에다가는 여기까지만 소개하도록 하겠다.
자료를 어떻게 입수했는지 일제 강점기 때 경성의 파노라마 사진 내지 서울 축소 지도가 있어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해방 후 대한민국 시절 자료는 말할 것도 없고..
서울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은 마장동의 청계천로에 있는 '청계천 박물관'도 가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아주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본인은 성곽이나 궁궐을 몽땅 원형대로 복원하라는 식으로 무작정 환경이나 문화재 덕후 성향은 아니다. 조선은 외세의 침략에 제대로 대처를 못 하고 굴욕적으로 망했으니 끝이 매우 좋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필요 이상으로 국뽕 불어넣고 미화할 필요는 전혀 없다. (특히 민비 미화..)
하지만 반대 극단으로 가서 무작정 조선만 인구의 과반이 노비이고 길거리에 똥덩어리가 굴러다니던 헬 중의 헬이었으며 차라리 일제 통치가 나았다는 식의 비하 역시 걸러 가며 들으려 한다.

그리고 본인은 항일 독립 운동가들을 예우하고 존경하지만, 그 사람을 띄워 주면서 의도하는 결론이 또 되도 않은 친일파 괴담 내지 분단의 원흉 이딴 식이라면 그 진영의 주장 역시 철저하게 씹을 것이다. 늘 말하지만 걔네들은 일본· 미국을 비판하는 잣대와 중국· 북괴를 비판하는 잣대가 절~대로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믿고 거르는 게 건전한 역사관이라고 본인은 믿는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01 08:32 2018/01/0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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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저 멀리 텔레비전에서는 무슨 쇼 프로에서 연예인들이 등산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주변이 시끌벅적하고 화면이 잘 안 보였지만, 그래도 저 고깔 모양의 정상 표지석은 99% 청계산 매봉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TV 근처로 다가가서 확인해 보니 내 예상이 맞았다.

예전에는 깜깜한 밤에 지상 전철 승강장에서 저 멀리 보이는 헤드라이트 불빛의 모양만 보고는 8000호대 전기 기관차가 오는 거라고 예상을 했고 예상이 실제로 적중한 적이 있었다. 뭐, 이것도 철덕에게는 기본 중의 기본 스킬이겠지만.. 철도만큼이나 등산도 짬이 차니까 이런 감까지 생기는구나 싶었다.

서울 강북에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같은 산이 있다면 강남에는 관악산과 청계산이라는 제법 크고 높은 네임드급 산이 있다. 청계산은 전반적으로 흙산이기 때문에 손으로 로프를 잡고 올라야 하는 건 거의 없으며, 오르기 쉬운 편에 든다.
신분당선이 개통한 뒤에는 '청계산입구'라는 역이 생긴 덕분에, 거기 근처에 있는 서울 신원동 등산로로는 주말에 등산객이 굉장히 늘었다. 기슭에는 산악용품 가게와 등산객 뒤풀이용 식당들이 즐비하다. 신분당선이 없던 시절에는 4432 같은 버스가 청계산으로 가는 길을 책임졌던 것으로 본인은 기억한다.

거기서 옥녀봉 또는 582m짜리 매봉 정상까지 갔다가 그대로 돌아오는 게 무난한 코스이다. 내 기억으로 매봉 정상은 미묘하게 갈림길도 있다. 입산과 하산 지점은 동일하지만 중간에 거치는 경로를 달리할 수 있다. 본인은 그쪽으로 청계산 등산은 회사 사람과도 하고 교회 사람과도 해 봤다.

하지만 거기보다 더 남쪽으로 서울을 벗어난 성남시 고등동· 상적동 옛골 마을 일대에도 청계산 등산로가 있다. 4432의 종점 근처인데, 본인은 옛날에 인릉산을 찾아갈 때 여기까지 가 본 적이 있다. 그 시절엔 거기에서 또 청계산을 오를 생각은 미처 못 했으며, 예전에 갔던 매봉이 청계산에서 가장 높은 정상이기 때문에 청계산을 더 오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청계산에는 매봉보다 더 높은 정상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우면산이나 성남 검단산처럼 공군 방공 부대도 있다. 민간인 등산객은 거기로 접근할 수 없고 거기서 살짝 떨어진 곳의 공터를 정상인 줄 알고 간다.
이렇게 흥미로운 정보들이 많이 입수되었기 때문에 본인은 지금까지 들른 적이 없는 청계산 등산로와 정상을 개척하기 위해 성남시 상적동 옛골 마을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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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골 마을은 이렇게 생긴 평온한 동네이다. '상적천'이라는 개천이 지나며, 이 때문에 근처의 경부 고속도로도 여기는 살짝 교량 형태로 지난다(상적교). 주변엔 등산객을 위한 식당과 카페가 많지만 막 유명한 유원지 같은 정도는 아니다.
저기까지 대중교통으로 갈지 아니면 아예 차를 가져갈지 고민하다가 차를 선택했다. 딱 봐도 아무 곳에나 딱히 주차 걱정을 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 곳이며, 이번에는 등산 경로를 여기로 다시 돌아오는 형태로 계획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등산을 마친 뒤에 몸이 땀범벅 녹초가 됐는데, 편안한 귀가를 위해 차를 가져간 건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 새벽에 적당한 곳에다 차를 세워 놓은 뒤, 차에서 한숨 자고 나서 아침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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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귀에는 이렇게 청계산 꼭대기의 군부대로 가는 길이 떡 놓여 있었다. "경고 - 민간인 차량 통제"라는 팻말과 함께 말이다.
사실은 경부 고속도로 부산 방면에서도 이 길로 합류하는 비밀 진출로가 있다. 마치 헌릉로에서 국정원으로 들어가는 진출로처럼 말이다. 경부 고속도로 개통 초기에는 "상적 IC"라고 진출입로가 정식 등재도 돼 있었지만 나중에 슬그머니 폐쇄된 듯하다. 비상 활주로만큼이나 고속도로의 또 다른 군사 활용의 예라 하겠다.

하지만 민간인은 차량만 못 들어갈 뿐이지, 보행자 등산객은 저기로 통행 가능하다. 저기에는 엄연히 성남 누비길 구간과 청계산 등산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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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길을 따라 오르막을 오르면 군부대 초소가 나온다. 민간인은 초소 너머 군부대 내부로는 물론 들어갈 수 없지만, 그래도 차도를 벗어나 옆으로 등산로로 들어갈 수 있다. 본인의 등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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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샘 약수터에 도달했다. 맑고 시원한 물 보급을 받을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북쪽의 매봉이 아니라 남쪽의 망경대 방면으로 가야 하는데, 마침 옻샘이 나왔다는 건 지도상으로 계획했던 길을 잘 찾아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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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은.. 숲이 울창하고 뭐 이런 분위기였다. 날씨가 무척 맑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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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폭포라는 자그마한 폭포가 있어서 들렀다.
그리고 여기 부근(대략 4~500 m 떨어진..)에는 군부대로 향하는 샛길도 있었다. 본인 역시 따라 가서 주변 구경을 좀 하다가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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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힐링의 숲'이라고, 그냥 평범한 탁자나 벤치, 마룻바닥뿐만 아니라 저렇게 S자형으로 반쯤 누울 수 있는 목재 의자가 산에 놓여 있었다. 저기 누워 있으니까 굉장히 편하긴 했다. 이대로 한숨 자고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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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의 숲 이후부터는 이정표 없이 한참 동안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했다.
그러다 드디어 '혈읍재'라고 불리는 고개에 도달했다. 고개의 이름이 '피가 울다'라는 섬뜩한 뜻인 이유는 조선 시대와 관련된 역사적 사연이 있다.
거기에서부터 또 계단을 타고 한참을 오르면 이제 정상이 얼마 안 남았는지 옆으로 철조망을 따라 군사 시설이 보이고... 나중에는 이런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위의 사진 시야를 기준으로 전방에 있는 작은 길은 산을 내려가는 찻길이다. 저 길 자체는 민간인도 통행 가능해 보였지만, 본인은 아직 하산할 생각이 없으므로 저기로 가지 않았다.
사진에 나오지 않은 뒤로는 각종 차들이 세워져 있었다. 번호판이 '국'인 희귀한 차량도 있었다(국방부 소속!!).

그리고 역시 사진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오른쪽으로, 위쪽의 건물 방면으로 올라가는 찻길이 있었다. 망경대 정상으로 간 뒤 이수봉 방면으로 산행을 계속하려면 그 오르막길을 가야 했다. 본인은 그 방향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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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우측 상단의 관악산 정상이 보인다. 산 아래에 있는 건물들은 과천 시내이다.
청계산은 전반적으로 나무로 빽빽하게 덮여 있으며, 등산 중에 산 아래를 내려다볼 만한 전망대 같은 곳은 거의 전무하다. 그나마 정상에 근접해서야 이런 사진을 찍을 만한 곳이 나왔다. 그리고 위의 사진은 아직 완전히 정상에 도착해서 찍은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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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 봉우리들의 다른 정상들은 다 흙바닥 공터이고 정상 표지석도 있는 반면, 망경대만은 북한산이나 도봉산의 정상처럼 꼭대기가 그냥 바위였다. 청계산에서 유일하게 밧줄 붙잡고 꽤 아슬아슬하게 올라야 했다. 여기는 본인도 부득이하게 백팩을 아래에다 내려다놓고 몸만 올라갔다. 위의 사진에서 본인 손에 맥북이 들려 있지 않은 게 이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덜 위험한 우회 등산로를 거쳐서 바위로 오는 길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놔 두고 온 백팩 때문에 그리로 내려가 볼 수도 없었다.
이 정상은 곁에 있는 군부대가 자리잡은 봉우리보다는 약간 미묘하게 낮지만, 그래도 아까 그 흰 돔이 2개 달린 관측 시설보다는 훨씬 높았다. 국가 안보를 위해 이 시설들을 찍은 사진은 블로그에 게재하지는 않기로 하겠다. 궁금하신 분은 직접 등산 가서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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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랜드가 내려다보였다. 저기는 한때는 잘나갔었으나.. 시설물의 퀄리티가 넘사벽급 대기업 관할인 롯데월드와 에버랜드에 비할 바는 못 되니 슬슬 인기가 하락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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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항 방면으로도.. 본인은 저 앞에 보이는 산들도 나름 올라 봤다. 저 멀리 병풍 같은 산이 바로 성남과 광주의 경계 역할을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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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경대 바위 위에서 경치 구경을 실컷 한 뒤, 본인은 하산하여 남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내려가던 중에 이렇게 평평하고 나무가 없는 공터가 나왔다.
위의 사진은 저 흰 돔이 보이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뒤 돌아서 왔던 길 쪽으로 찍은 것이다. 이 공터에서는 아래로 내려가는 찻길 또는 이수봉 방면 오르막 도보 등산로를 선택할 수 있었다. 본인은 이수봉 쪽으로 갔다. 여기를 끝으로 찻길 분기점은 더 등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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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중간에 이런 헬리패드가 나왔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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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산을 더 오른 뒤에야 드디어 이수봉에 도달했다. 본인은 지금까지 청계산에서 이런 정상 표지석을 본 적이 없으니, 새로운 등산로 탐험을 이 기회에 그럭저럭 잘 해냈다.
이제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도 길 잃지 않고 잘 해서 차가 있는 곳으로 무사히 돌아가야 하니까 말이다. 이정표가 나오면 국사봉이나 과천 매봉 방면 말고 '옛골'이라고 적혀 있는 곳만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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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철조망이 쳐진 거대한 구역이 나타났다. 그런데 평범한 '군사 시설, 무단 접근과 촬영을 금함 -- oooo부대장'이 아니라, 관리 주체가 웬 듣도 보도 못한 기관인 '도시환경 연구소'라고 적혀 있었다. 본인으로서는 인터넷 검색을 해 봐도 정체를 알 길이 없다.
철조망 사진도 이곳에다가 대놓고 올리지는 않겠다. 위의 사진은 철조망 구역을 다 지나치고 나서 다시 울창한 숲이 등장한 뒤의 하산 경로 풍경을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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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언제부턴가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이 길 옆에 등장했다. 이 계곡이 아래의 상적천으로까지 이어지는 모양이다. 그리고 올라갈 때 옻샘 약수터를 만났다면, 내려올 때는 '천수샘 약수터'를 지났다. 하지만 여기 물은 대장균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되어 음용 불가라고 옆에 쓰여 있었다.

산을 오를 때는 종아리가 힘들고 땀이 왕창 나고 물도 많이 마시게 되는데, 내려갈 때는 그런 식으로 덥고 힘든 것은 없다. 그 대신 무릎과 발목 관절이 남아나질 못하는 것 같았다. 등산을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슬슬 삭신이 쑤시고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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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륙이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등산로 옆으로 갑자기 이런 밭이 등장했다. 그리고 저 고개 너머엔 사격장이 있는지 본인이 방문하던 당시에 사격 훈련을 하고 있었다. 총소리가 막 들렸다. 실제로 구글 어쓰로 보니 그쪽엔 예상대로 사격장처럼 생긴 시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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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그 밭에서 거의 6, 700미터쯤 걸은 뒤에야 옛골 마을이 다시 등장했으며, 본인은 모든 등산과 하산을 계획했던 경로로 잘 마쳤다.
정리하자면, 청계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차도는 앞부분은 기슭의 군부대 때문에 막혀 있지만, 정상 인근의 군부대가 다시 등장할 때까지 그 사이 구간은 등산객도 이용할 수 있는 것 같다.

서울 시내 구간만 이용할 때는 청계산에 군부대가 있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는데(단지, 1982년의 C-123 수송기 추락 사고로 순직한 특전사 장병에 대한 위령비만 있을 뿐), 이렇게 남쪽의 그린벨트 지대를 차로 답사하고 군사 시설 위주로 청계산의 진짜 정상도 구경하고, 계곡도 구경하는 등 굉장히 큰 성과를 올렸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7/11/23 08:31 2017/11/2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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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동안 본인은 등산은 너무 더워서 한동안 못 했다. 자전거로 한강 공원 정도나 다니다가, 여기서 더 나아가 서울과 적당히 떨어져 있으면서 큰 강이나 호수를 보러 놀러 갈 만한 곳은 없는지 찾아보게 되었다.
그 결과 본인의 눈에 띈 곳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남양주와 양평 사이였다. 강 두 개가 만난다고 해서 지명부터가 '양수'리, '두물머리'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거기 일대에는 웬 다산 정 약용 선생 유적지가 있고, 강가에는 숲과 풀밭이 잘 꾸며져 있었다. 놀다 오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토요일 아침에 곧장 차를 몰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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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검단산을 올랐다가 하남시 배알미동 방면으로 하산하면서 팔당댐을 멀리서 본 적은 있다. 그런데 댐 위의 '공도교'를 건너는 건 이번이 난생 처음이었다.
여기는 국가 기간 시설인 댐 위이고 이게 딱히 교량 역할을 하라고 만들어진 시설물은 아니지만.. 강북의 국도 6호선과 팔당대교가 주말에 워낙 많이 막히는 관계로 주말에만 소형차에 한해서 공도교의 통행이 허용되고 있었다. 도로의 폭은 그냥 2차선에 불과하며 좌우로는 온통 철조망이 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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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유적지 겸 생태 공원 주변은 한가한 농촌 마을이었다. 이렇게 유적지 어귀에 공영 주차장이 있고, 카페나 생태 공원에 더 가까운 곳에도 주차장이 또 있었다.
아침 11시쯤에 왔을 때는 주차장이 널널한 편이었지만 오후 2~3시가 넘어가면서 여기는 차들로 온통 꽉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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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이 유적지의 주인공인 다산 정 약용 선생의 생가(복원된 레플리카), 기념관, 동상, 묘지가 한데 있는 단지를 들렀다. 이분은 경치 한번 참 좋은 곳에서 태어났구나.
묘지는 단지 안의 10몇 m 남짓한 높이의 언덕을 올라가면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생가와 묘지가 같이 조성돼 있는 건 이 승복 어린이 기념관도 비슷한 형태였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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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약용은 '다산'이 아니라 '다작'이라는 호가 더 어울렸을 것 같다. 천재이고 생각보다 굉장히 대단한 인물이었다. 목민심서 말고 나머지 책들은 일반인에게는 다 듣보잡이긴 하다만... ㅠㅠ

이 사람은 평범한 유학자가 아니라 실학의 선구자라고 불린다. 윤리 도덕 분야 말고도 왕년엔 수원 화성을 쌓을 때 거중기를 고안해서 투입 인력과 공사 기간과 절감해 줬고, 과학과 추리를 이용한 사건 수사로 억울한 누명을 벗겨 주기도 했다. 손대는 분야마다 뭔가 비리를 척결하고 시스템을 개선하고 경영 효율을 올려 놨다. 그런 능력에다가 어진 인품까지 갖췄다는 게 매우 중요하다.

설령 김 성모 식으로 우려먹기 재탕을 거듭한다 하더라도 컴퓨터도 없던 시절에 그것도 한문으로 저렇게 많은 책을 쓰기란 매우 어려울 텐데.. 물론 정 약용의 경우 17년 동안, 다시 말해 박 정희 대통령의 통치 기간에 맞먹는 긴 기간을 유배 생활을 하느라 저술 활동을 할 시간이 많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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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근처에 있는 실학 박물관을 찾아갔다. 다산 유원지의 다른 모든 시설은 무료이지만 이 박물관만은 입장료를 받았다.
여기는 말 그대로 정 약용에만 국한되지 않고 조선 후기에 실학이 등장한 배경, 그때 깨어 있던 사람들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배경, 조선 후기에 지리학과 천문학이 조금이나마 발전한 과정 같은 게 소개되어 있었다.

이런 실학의 이념은 훗날 국민 교육 헌장에도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며'라는 문구로 어느 정도 반영돼 들어간 셈이다.
참, 내가 갔을 때는 특별 전시회 명목으로 한글로 글을 남긴 조선 여성들의 실학 트렌드 이런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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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공부를 이 정도로 한 뒤, 그 다음부터 본인은 본격적으로 자연을 즐기러 나갔다.
실학 박물관을 나와서 강 쪽으로 가는 길에는 이렇게 분위기 좋은 풀밭이 꾸며진 카페들이 날 반겨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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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 멀리 강이 보이기 시작한다. 돗자리는 이런 나무 아래 풀밭에 아무 데나 펴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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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라기보다 호수나 저수지, 심지어 바다처럼 보이는 커다란 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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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가 정말 아름다웠다.
여기는 엄연한 상수원 보호 구역이기 때문에 서울 시내의 한강 공원 따위와는 레벨이 다르다.
또한, 한강 종합 개발 사업 같은 게 없었으니 콘크리트 제방 같은 것도 없으며, 땅과 물의 경계는 그냥 흙· 뻘밭인 걸 알 수 있다.
이런 곳에서 물놀이를 할 수는 없다. 물에 들어가려면 바다나 산 속 계곡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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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면적이 워낙 크니 강바람도 바닷바람 만만찮게 느껴졌다. 시원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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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이렇게 돗자리를 깔고 뒹굴뒹굴 하다가 잠시 눈을 붙이기도 하고 프로그래밍 작업도 했다.
그러다가 폰과 노트북의 배터리가 더 견디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쯤엔 아까 봐 뒀던 카페에 들어가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음료수와 전기를 보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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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게 웬일? 내가 카페에 들어간 사이에 저녁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풀밭과 강가에 그 많던 인파와 돗자리족· 텐트족들은 어느새 쏙 들어가고 일부 우산을 들고 산책하는 사람만 보였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차 안은 너무 더워서 도저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로 밖이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지내기엔 쌀쌀해지고, 차 안이 비바람을 피하는 아늑하고 포근하고 따뜻한 아지트가 됐다.

이렇게 더 있다가 완전히 해가 진 뒤에 돌아왔다. 이런 휴양지가 있었다니, 가 보길 정말 잘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7/11/03 08:30 2017/11/0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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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창덕궁, 창경궁

서울에서 광화문과 경복궁이야 매우 유명한 역사 유물 겸 관광지이다. 그리고 그 근처의 종로3가에는 탑골공원이 있으며, 여기까지는 본인이 오래 전에 진작부터 가 봤다.
하지만 그보다 좀 더 옆에 종로3가와 4가 사이, 그리고 종로와 율곡로 사이에 서울 도심을 떡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유적지는 궁궐도 아닌 것이 도대체 정체가 뭔지 오래 전부터 굉장히 궁금했다. 버스를 타고 차창 밖으로 진입로를 어렴풋이 보긴 했지만 들를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하루는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책을 사 오면서 드디어 저기를 들르게 되었다.
서울 시내는 차를 몰고 돌아다닐 곳은 못 되고, 대중교통은 자기 경로를 벗어난 곳은 가지 않으며 단거리를 조금씩만 이동할 때도 기본요금이 깨지는 게 부담되니.. 찔끔 찔끔 돌아다닐 때는 정말 자전거가 최고였다.
덕분에 먼저 창덕궁과 창경궁을 구경한 뒤, 그 아래에 있는 종묘도 구경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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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은 안국 역 근처 현대 그룹 사옥의 옆에 있다.
원래는 종묘와 창덕궁이 경계 구분 없이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허나 훗날 일제가 교통 편의를 위해 둘 사이에 율곡로라는 도로를 닦으면서 둘은 담장을 두고 단절됐다. 율곡 이 이의 생가가 거기 일대에 있었대나 어쨌대나..
안에 들어가면 이렇게 넓은 공터와 드문드문 놓인 기와집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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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이라는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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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기와, 담장, 벽면만 이렇게 사진을 찍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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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공터 구석에 혼자 짱박혀 있어도 힐링힐링 될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곳은 아무래도 내국인보다는 외국인 관광객이 더 많이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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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동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면 창경궁 쪽으로 갈 수도 있다. 이때는 입장료가 추가로 부과되나, 구매한 당일 동안은 창덕궁과 창경궁 구간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
지도에 표시된 바와 같이 내부는 꽤 넓다. 북쪽으로는 저렇게 호수도 있고 식물원도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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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과 그 근처에는 이런 건물과 정자가 지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현판들이 다 저런 스타일이었구나.
몇 년 전에 광화문 현판 때문에 여론이 분열되어 대판 싸움 벌어졌던 시절이 생각난다. (1) 역사와 고증에 충실하게 저런 한문 스타일로 복원하자는 쪽이 있었지만, (2) 광화문은 여느 유적과는 달리 차들이 씽씽 지나다니는 길거리에서 훤히 보이는 서울 중심부의 상징인데.. 기왕 한글 현판이 몇십 년 동안 있었다면(박통 친필..!) 새 현판도 우리 고유 문자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영 역시 매우 강경하게 맞섰다.

한글을 사랑하는 그 마음은 본인 역시 적극 이해하지만..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 문제는 독도가 어느 나라 영토이냐 같은 심각한 급이 아니다. 그냥 East Sea냐 Sea of Japan이냐 하는 문제와 비슷한 격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외국인이 무슨 명칭을 쓰건, 우리나라 동쪽 영해의 범위가 법적으로나 행정적으로 달라지는 건 전~혀 없으니,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된다. Korea라는 명칭이 엄연히 붙은 채로 정착한 '대한 해협'처럼 말이다.

광화문 현판도 마찬가지다. 광화문을 무슨 퓨전 사극 만들듯이 리메이크라도 하는 게 아니고 그저 옛날 스타일로 복원하는 거라면 굳이 기를 쓰고 한글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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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근처에 있는 이 건물은 벽면에 붉은색이 없이 배색이 좀 소박했으며 담장의 텍스처도 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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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랑 비교하면 차이를 알 수 있다.

그럼 다음으로 종묘로 넘어간다. 이곳은 조선 시대 왕들의 묘지는 아니지만 이들의 위패 안장해 놓은 사당이다. 뭔가를 쓸데없이 높게 떠받드는 걸 빈정댈 때 '신줏단지 모시듯'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때의 '신주'(神主)가 바로 저 위패를 가리킨다.

태조 이 성계가 유교 이념으로 조선을 건국하면서 자기 궁궐보다도 종묘와 사직단을 먼저 만들었다고 한다. 그때의 종묘는 설계 크기가 지금보다 작았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모셔야 할 위패가 증가하면서 가로로 쭉쭉 몇 차례 증축되어 왔다.
그래서 종묘는 100미터가 넘는 긴 길이를 자랑하는 목조 건물이다. 그리고 '정전'이라는 본 건물만 있다가 나중에는 좀 더 작은 복제품(?) 격인 '영녕전'도 따로 만들어졌는데.. 궁금하신 분은 구글 등에서 검색해서 유래를 알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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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안은 간단하게만 묘사하면 "숲이 우거진 공원 산책로 + 넓은 돌바닥 마당이 깔린 집회 장소" 정도 된다. 산책로 안에는 자그마한 연못도 있다.
또한 나름 조상님들이 들어가라고 돌로 포장된 길이 있는데.. 내 눈에는 뭔가 철도의 전신을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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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는 이 건물과 터뿐만 아니라 조상신에게 제사 지내는 퍼포먼스까지 무형 문화재요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조선 시대에는 1년에 다섯 번이나 임금님까지 친히 나서서 제사 행사가 있었으나 현재는 1년에 두 번만 재연 행사를 치른다고 한다.
공자 종주국인 중국에서는 이런 걸 진작에 버리고 전통과 단절해 버린 관계로.. 오히려 중국의 학자들이 한국에 와서 과거의 종묘 제도에 대해 연구한다고 그런다.

위의 건물은 음식을 요리하는 등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작업하고 거주하는 곳이라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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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은 정말 길쭉하고 마당이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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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녕전은 중앙에 이렇게 돌출된 입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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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는 평일에는 1시간 간격으로 가이드를 동반한 단체 단위 입장만 가능하다.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취한 조치라고 그런다. 토요일(일요일 말고)이나 일부 특례가 적용되는 날에만 가이드 없이 개인 단위 자유 입장이 가능하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는 옛 종묘를 불질렀지만, 그때 이후로 재건된 지금의 종묘는 훗날 일제 강점기 때도 별다른 훼손 없이 잘 버텼으며, 심지어 6· 25 전쟁 때도 파괴되지 않았다.
종로라는 그 번화가 바로 근처에 이렇게 속세를 완전히 이탈한 듯한 관광지가 있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비록 조상신을 이런 식으로 떠받들고 제사를 지내는 건 내 개인적인 종교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관행이다만.. 임금은 어느 문으로 들어와서 어느 문으로 나가고, 건물이 이렇게 돼 있고 이렇게 설명을 듣는 게 마치 성경의 출애굽기와 에스겔서에서 각각 성막과 성전의 규격에 대해 설명을 듣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또한, 서울에서 조선 시대 역사 관광지들을 많이 봤으니, 나중에 고향 갈 일이 있으면 더 옛날 신라의 역사 관광지도 더 눈여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북한 지역까지 갈 수 있다면 고려 시대 역사 관광지도 볼 수 있겠지만, 그건 예측 가능한 미래에는 여전히 불가능 봉인의 영역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10/31 08:38 2017/10/3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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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관악산

본인은 성남 산행을 마친 뒤, 그 다음으로는 정상에 거대한 구가 놓여 있고 방송사 송신탑과 기상청 레이더가 있는 서울 남부의 그 유명한 산을 올랐다. 나름 상수도에 준하는 대단히 중요한 국가 기간 시설이 놓여 있는 셈이다. 중구에 있는 남산은 이름만 남산일 뿐이고 실제로는 이 관악산이 서울의 실질적인 남산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서울과 그 근교에 있는 별별 산들을 다 찾아가 봤지만, 정작 관악산은 이 블로그에서 다루지 않고 있었다. 수 년 전에 회사· 교회 동료와 이미 몇 번 가 봤기 때문이다. 관악산 대신에 서쪽의 삼성산은 가 봤었다.

하지만 등산로와 둘레길의 차이도 모르고 서울 지리에 대해서도 배경 지식이 전무하던 시절과, 2016년 이래로 수십 회에 걸친 개인적인 등산 노하우가 쌓이고 산들에 대한 비교 분석· 기록 관행이 정립된 지금이 동일한 산에 대한 등산 경험이 같을 수가 없는 법이다.
스타크래프트도 리마스터링판이 나오는 와중에 등산로를 그 시절과 최대한 다르게 하여 또 다시 '리마스터링 등산'을 했다. 사실, 2015~16년 초창기에 갔던 인능산, 대모-구룡산, 인왕산 같은 산도 기회가 되면 리마스터링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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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쪽 등산로는 너무 잘 알려져 있으니 거기를 피해서 사당 역에서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사당 역에서 제일 남쪽을 향하고 있는 4번 출구로 나간 뒤, 한 블록쯤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이런 아담한 골목이 나온다. 여기서 관악산 등산로까지는 거리가 1km가 채 되지 않으며 도보로 접근 가능하다.
단, 위의 사진은 내리막 경사가 말해 주듯, 산이 아닌 역 방면으로 뒤돌아보며 찍은 것이다.

등산로 입구에는 차를 대여섯 대 정도 댈 만한 공터도 있긴 했다. 완전 이른 새벽에 자기 차를 끌고 오면 주차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공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저기는 인근 주민의 차량으로 24시간 점령당해 있을 가능성이 90% 이상인 레드오션으로 보인다.
공원이나 둘레길 말고 '연주대'라고 안내되어 있는 곳을 찾아서 입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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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돌계단과 흙바닥 위주의 평범한 오르막 언덕이 시작됐다. 등산로 주변에는 각종 진지와 참호가 유난히 많이 보였다. 생각해 보니 수방사 본부가 여기 근처에 있긴 하다.
숲이 울창하면서도 이렇게 서울 시내를 북쪽으로 쫙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많아서 좋았다. 경치 조망 하나는 용마산· 아차산급으로 아주 우수했다.
등산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맑고 땡볕이 이어지다가 이 날은 천만다행으로 흐리고 해가 안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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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좌측에 공사판이 벌어진 곳이 살피재 고개이고, 그 오른쪽의 산이 서달산이다. 서울 현충원은 저 산 넘어 건너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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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산 자체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관악산은 엄연히 북악산, 도봉산 같은 바위산이다. 이름에 괜히 '악'(岳)자가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여길 오랫동안 안 올라서 그런지, 난 어이없게도 옆의 청계산 같은 퀄리티를 생각했다가 좀 당혹스러움을 겪었다. 관악산은 발뿐만 아니라 손도 써서 바위를 올라야 하는 험난한 구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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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지도에서는 볼 수 없는 어느 공터에 헬리콥터가 시동이 걸린 채 로터가 돌아가고 있었다.
위의 사진에서는 좀 짤렸지만 왼쪽으로는 남태령 마을의 아담한 집들이 옹기종기 늘어선 게 보였다.
관악산을 오르니 이런 곳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등산 할 맛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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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돌로 가득한 어느 등산로의 모습이다.
관악산은 혼자 거대한 피라미드 같은 산이 아니며 나름 여러 봉우리들이 삐죽삐죽 솟았고 봉우리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능선도 복잡 정교하게 발달해 있었다. 다만, 보안 때문인지 그런 봉우리들에 대한 안내는 미흡한 편이었다.

흙을 판 것도 아니고 바위를 뚫고 또 저런 군사용 참호 같은 건 어떻게 만들었나 모르겠다.
비바람과 추위를 피해서 저기서 쉬거나 한숨 자면 아늑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움푹 패인 곳에 쏙 들어가서 짱박히는 걸 좋아한다. 테트리스라든가 세균전 같은 게임에서도 언제 가장 강렬한 쾌감이 발생하는지를 생각해 보시라. 다 인간의 그런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작대기 쑤셔넣을 때, 주변의 상대편 세균을 몽땅 내 편으로 바꿀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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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돌길뿐만 아니라 여느 평범한 산 같은 흙길도 있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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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캠퍼스도 내려다보였고..
그러고 보니 비행기 항로인 것치고는 이 날은 비행기는 그렇게 자주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같다.
근처의 삼성산을 오를 때는 하늘에서 그야말로 수 분 간격으로 비행기가 돌아다녔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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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쪽으로는 경마 공원이 보였으며 그 주변에는 비닐하우스들이 가득했다.

연주대 정상이 가까워져 오자 마지막 오르막 돌계단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 때쯤엔 본인도 체력에 살짝 한계가 느껴졌다. =_=;; 계단을 오르는 속도가 곤두박질쳤다. 해가 안 나고 덜 더웠음에도 불구하고 땀을 얼마나 흘렸으면, 물은 2리터 가까이 챙겨 간 것을 몽땅 다 마시고도 갈증을 겪었다. 그러고도 화장실은 아침부터 낮까지 한 번도 안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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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특유의 연주대 정자가 드디어 나타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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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 됐건 밥이 됐건 정상에 도달했다. 정상까지도 온통 바위이구나. 저 바위 너머에도 등산로가 이어져 있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산은 정상과 가까워질수록 인구 밀도가 급증하는 것이 공통된 현상이다.
관악산은 정상 근처의 제법 높은 부위까지도 절이 있어서 불교스러운 냄새가 많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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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의 상징인 기상청 레이더와 송신탑을 가까이에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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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산을 내려갈 차례인데.. 하산은 안양 쪽으로 갈까 하다가 그냥 더 짧고 대중교통 연계도 더 잘 되는 과천 방면을 선택했다. 산을 오르는 데 시간과 체력 소모가 예상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내려가는 길은 전반적으로 계곡을 따라 온통 목조 계단 또는 돌계단이 끝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오를 때처럼 바깥 경치를 볼 수 있지는 않았다.

군사 시설 같은 것도 없고, 반대로 오를 때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약수터가 종종 있었다. 여러 모로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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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한 번도 쉬지 않고 1시간 남짓한 시간 만에 과천 향교 방면으로 잘 착륙했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밟는 것으로 모든 산행이 끝났다.

사진 첨부를 생략하지만, 알고 보니 관악산 과천 구간에는 남산처럼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었다. 단지 민간인 관광용이 아니라 송신탑에서 볼일을 봐야 하는 방송사 직원 및 관계자 전용일 뿐..
거기 긴급히 갈 일이 있을 때 매번 등산(!)을 하거나 비싼 헬기를 탈 수는 없으니 뭐 수긍이 가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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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갔던 수락산에도 기슭에 무슨 향교가 있었던 것 같다. 검색해 보니 그건 노강서원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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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기슭에는 나름 공원· 공터가 잘 꾸며져 있었다. 단지 개울에 물이 바짝 말라 버린 게 아쉬운 점이었다. 삼성산 등산 후에 도달했던 안양 예술 공원을 따라 흐르던 개울도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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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이번엔 하남· 남양주가 아니라 과천에 잘 도착했다. 아담하고 한적한 분위기가 났다. 서울은 산기슭에 빌라가 있는 편이지만 서울 밖에서는 대체로 산기슭에 알록달록한 단독 주택들이 놓여 있다. 붉은 벽돌 건물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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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내려온 길을 올려다보는 걸로 여행기의 종지부를 찍는다. 공교롭게도 산행을 완전히 마치고 나자 빗줄기가 굵어졌다.
서울 사당뿐만 아니라 과천 정부청사 역에서도 관악산 등산로까지 비교적 가까이 접근 가능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7/09/12 19:35 2017/09/1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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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변 자전거 라이딩

본인은 레저· 여행과 운동을 겸하는 활동 차원에서 등산을 작년 초쯤부터 적극 시행하고 있다. 단, 너무 더워서 등산을 원없이 하기 어려운 한여름에는 산이라기보다 공원에 가까운 낮은 산만 쉬엄쉬엄 오른다.
그리고 지금까지 언급을 별로 안 한 것 같은데, 본인은 사실 기름 안 먹는 자가용인 자전거를 타는 것 역시 굉장히 좋아한다. 수직 이동 대신 수평 이동이라는 대체제도 나쁘지 않다. 그러니 오늘은 오랜만에 날 잡아서 자전거 타고 돌아다닌 얘기를 좀 꺼내 보겠다.

아마 서울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4대강 사업..!!) 여기는 주변 하천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잘 닦여 있으니 좋다. 산에 등산로뿐만 아니라 둘레길이 있는 것처럼 강가에는 자동차 전용 도로나 산책로뿐만 아니라 자전거계의 고속도로가 닦여 있다. 신호, 장애물 따위 신경 안 쓰고 오로지 내가 지쳐서 못 달릴 때까지 원없이 속력을 낼 수 있다. 특히 한강, 중랑천, 청계천이 한데 만나는 용답-군자 일대는 최고의 교통 요지인 것 같다.

1. 청계천 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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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청계천의 최말단 구간이다. 내부순환로 고가 아래의 그늘을 따라 길이 나 있어서 다니기가 수월하다. 오른쪽에 길이 끊어진 흔적은 아마 청계 고가 + 청계 IC의 철거의 결과물일 것이다.
이쪽으로 계속 가면 청계9~1가의 순으로 서울 도심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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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왕십리-청량리 사이의 경의중앙선 철교가 나오는 지점에서부터는 청계천을 따라 나란히 달리는 자전거 도로가 없다. 여기서부터는 도보만 가능하며, 자전거는 위의 차도를 따라 달려야 한다.
본인은 옛날에 청계천의 시점인 종각 일대와 심지어 세종 문화 회관 근처의 한글 회관까지도 자전거로 다녀온 적이 있다.

2. 중랑천 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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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간선 도로는 중랑천의 좌우로 상하행이 지나는 독특한 구조인데, 자동차 도로보다 더 안쪽에 이렇게 자전거 도로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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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도로 같은 게 없기 때문에 위로 하늘은 뻥 뚫려 있으며 그늘이 없다. 가끔 등장하는 다리 아래에서나 햇볕을 피해 쉴 수 있다.
여기는 자전거 도로와 자동차 도로 사이의 높이 차이가 제일 작은 구간인 것 같다. 사진에는 잘 안 나와 있지만, 저 멀리 병풍처럼 펼쳐진 용마산의 경치를 구경하는 것도 여기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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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개인적으로 군자교를 넘어 장안교 정도까지 가 봤다.

3. 한강 북단, 서쪽 방면

한강은 '-천'으로 끝나는 일개 하천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훨씬 더 큰 강이다. 그래서 그런지 바람도 더 세게 불고 일부 구간에서는 바다 냄새조차 느껴진다.
경의중앙선 응봉· 옥수 역은 한강 공원에서 바로 탈 수 있을 정도로 한강에 가까이 있다. 그러니 강변북로는 철길을 피해서 더 외곽에 교량 형태로 건설되었으며, 그 교량 아래로 자전거 도로가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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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자전거 도로가 자동차 도로와 만날 일이 전혀 없지만, 한강에는 반포대교라는 예외가 한 군데 있다. 아랫층은 두 도로가 교차하기 때문에 횡단보도와 신호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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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덕분에 반포대교에서는 굳이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로 교각 위까지 오르는 번거로움이 없이도 자전거나 도보로 한강을 건널 수가 있다. 그래도 배가 지나갈 최소한의 공간이 필요하니, 아랫층도 중간에는 좀 가파른 오르막이 있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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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동작대교 아래를 지나면서 찍은 사진이다. 옥수-반포-한남 이쯤 구간부터는 철길이 좀 더 내륙쪽으로 들어가고, 강변북로도 교량 구간이 끝난다. 자전거 라이더의 입장에서는 위의 그늘도 없어진다.

그리고 동작-한강 사이에는 둔치? 고수부지?의 공간이 넉넉한 덕분인지 이촌 한강 공원이 나온다. 많이 더우면 풀밭에 돗자리를 깔거나 심지어 텐트 치고 여기서 피서 외박을 하는 사람들도 많으며, 내가 찾아갔던 한낮에도 이미 텐트 치고 쉬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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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이쪽 구간에서는 한강대교를 넘어 한강 철교까지 다녀왔다.

4. 한강 북단, 동쪽 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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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중랑천이 한강과 합류하는 구간이다. 저 멀리 앞으로 동호대교가 보이고, 길이 나와 있는 대로 왼쪽으로 뺑 돌면 동쪽의 한강 상류 방면으로 향하게 된다. 경치가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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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타워를 향해 동쪽으로 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는 강변북로가 자전거 도로 바로 옆으로 나란히 지난다. 고가 같은 건 없다.
성수대교를 지나서 한참 달리면 영동대교가 나온다. 청담대교는 영동대교와 꽤 가까이 있다.
동쪽으로 끝없이 가면 서울을 벗어나 구리· 남양주까지도 직통으로 갈 수 있는 모양이던데.. 본인은 그러지는 못하고 청담대교까지만 다녀왔다.

이상이다.
기회가 되면 이런 식으로 한강 남단과 탄천 방면도 달려 보고 싶다.
더 욕심이 생기면 등산과 자전거 모두 차 끌고 서울 바깥까지 원정 가서 하게 될지도 모른다.

자전거를 몰다 보면 확 밟아 주고 나서 주기적으로 또 힘들여서 재가속을 할지, 아니면 평소에 페달을 덜 힘든 상태로 지속적으로 밟으면서 속도를 유지할지..
자동차 운전할 때 하던 고민을 자전거 몰 때도 동일하게 하게 된다.
요즘은 엔진 성능이 좋아서 초소형 경차급이 아니면 어지간한 승용차들은 경제 속도가 6, 70이 아니라 8, 90은 된다고 그러는데..
자전거는 사람이 덜 힘들고 가성비 높은 경제 속도는 한 2, 30은 될까?

등산을 가면, 나는 조금만 오른 뒤엔 힘들어서 쉬어야 되는데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지치지도 않고 날 추월해서 성큼성큼 오르는 걸 보면 자괴감을 느끼곤 했다.
자전거도 마찬가지. 어째 저렇게 빨리 달릴 수 있나 싶은 라이더가 적지 않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자전거 자체도 나보다 더 가볍고 잘 나가는 고급품을 쓰지 싶다.

강가에는 바람이 부는데 한강 구간에서 역풍이 세게 불 때면 참 죽을 맛이었다. 이거 무슨 비행기의 제트 기류도 아니고.. 정말 오르막과 대등한 급의 장애물이더라. 쒜빠지게 밟아도 자전거가 나아가질 않고, 밟아도 금세 속도가 떨어지니 말이다. 바람은 하필, 언제나 내가 진행하는 방향의 역방향으로만 분다는 징크스라도 있는 것 같았다.

끝으로, 강을 보니 마치 철길을 보는 것처럼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다.
이 강을 따라 좌우 어디로든 얼마나 더 갈 수 있고 끝에는 뭐가 나올까? 버스나 철도 노선에도 시점과 종점이 있는데 강의 시점과 종점은 어떻게 될까?

산에는 물이 졸졸 흐르는 시내· 계곡이 있다. 거기는 물의 폭이 좁은 편이지만 지형의 고저 상하가 분명하며 물의 유속도 빠르다. 그러나 상류가 아닌 하류로 가면 바닥의 모든 지형이 바다를 향해 내리막이라는 보장이 없을 텐데 어떻게 물이 꾸준히 바다로 흐를 수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다시 말해 그 긴 물줄기의 방향성이 어떻게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그리고 자연에서 강물은 바다로 흘러들어갈 때까지 여러 물줄기가 합류하곤 한다. 상류에서 하류로 갈수록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지고, 탄천과 중랑천이 합류하며, 하류 막바지에서는 임진강도 한강으로 합류한다. 즉, 강물은 바다로 들어가는 지점을 root로 하는 tree 형태의 그래프와 얼추 비슷하다. 이런 양상은 졸업식 노래에서도 3절 가사에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이라고 묘사되어 있다.

그럼 문득 드는 의문은, 그 반대의 경우는 자연적으로 결코 존재하지 않느냐이다. 상류에서 하류로 가는 과정에서 물줄기가 새로 갈라지고 분기하는 건 없나? 하중도가 생기는 원리를 보면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지만 내가 당장 떠오르는 예는 없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성경의 창 2:10에서 강물이 무려 네 갈래로 분기되어 나갔다는 묘사가 굉장히 특이하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에덴 동산과 이 강은 과연 지구상의 어디에 있었을지 말이다. 성경의 진술이 과학· 역사적으로 레알이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이 점을 더욱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강의 경우, 지리적으로 쭈욱 추적해 보니 강원도 태백에 소재한 '검룡소'라는 어느 고지대에서 발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남한강이 그렇고, 북한강은 북한 강원도 통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이건 무슨 까마득히 먼 조상 계보를 추적하는 듯한 느낌이다. 서울에서 폭이 무려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를 상회하는 그 큰 강도 시작은 저렇게 심히 멀고 미약했던 셈이다.

한강의 하류 종점은 6· 25 전쟁의 여파로 인해 사실상 군사분계선 역할을 하면서 민간인에게는 접근이 완전히 봉인되고 막혀 버렸다. 이 부근은 북한과 너무 가까워져 버리니 이건 뭐 도저히 어쩔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동쪽 상류 방면과는 달리, 서쪽 하류 방면으로 서울 시내 구간을 벗어나는 순간부터는 한가로운 풀밭과 자전거 도로가 펼쳐진 한강 공원 같은 거 없다. 북단과 남단을 막론하고 곧장 살벌한 철조망이 등장한다. 사실, 한강 공원 개발 전에 강 주변의 모습이 원래 저런 모래밭 황무지였다.

그리고 북한 같은 변수가 없다 해도, 배 타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서울 시내로 들어가는 건 꼬불꼬불 우회가 심하기도 하다. 그러니 조선 말기 때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때에도 인천항 + 육로가 여전히 쓰였으며(가령, 민비 살해 자객 일행이 한양에 올 때..),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수로 운송을 위해 공항 고속도로와 비슷한 선형으로 한강에서 바다로 더 가깝게 가는 경인운하, 일명 아라뱃길을 팠다. 아라뱃길의 좌우로도 자전거 도로가 잘 닦여 있다고 들었는데, 거기 갈 일이 있으면 한번 구경하고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7/09/09 19:32 2017/09/0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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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지난번에 이배재 고개에서 등산을 마친 뒤, 그로부터 거의 한 달 뒤에 거기를 다시 찾아갔다. 그리고 거기서 남쪽으로 산행을 계속했다. 이게 성남· 광주 산행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듯하다.

4~5월을 전후하면서 계절이 바뀌면서 날씨가 급격히 더워졌다. 등산의 최대의 적인 더위에 의한 대미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번보다도 더 이른 거의 6시 무렵부터 산을 오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본인의 집에서 지하철· 버스의 첫차를 타서는 이배재 고개에 그 시간대에 도착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새벽에 출발해서 이배재 고개까지 내 차를 직접 가져가는 것도 무리였다. 주차 문제도 있거니와, 이번에도 목적지 미정의 편도 경로를 계획했기 때문이다. 산에서 내려온 뒤에 차가 있는 곳까지 되돌아가는 게 삽질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새벽 5시 반에 암사가 아닌 가락시장에서 출발하는 서울 지하철 8호선 첫차를 탈 수 있는 곳에다 차를 세우고, 거기서 이배재 고개까지는 지하철과 버스로 갔다. 저 지하철 첫차는 마침 모란 역에서 5시 50분경에 광주로 출발하는 버스와 딱 연계가 잘 됐다. 이렇게 자가용과 대중교통을 적절히 혼합함으로써 이배재 고개에는 아침 6시 15분쯤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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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재 고갯길, 그 아래로 저 멀리 펼쳐진 성남 시내의 모습이다. 산을 이제 막 오르기 시작했다.

반팔· 반바지 차림에다 차량까지 동원해서 최대한 일찍 갔음에도 불구하고, 아침이 되자 금세 더위가 느껴졌다. 조금 힘을 쓰며 오르막을 오르자 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이제 가을이 될 때까지 긴팔 차림으로 여유롭게 등산은 못 하겠다.

또한,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이번에 간 이배재 고개 남쪽의 갈마치 고개와 고불산· 영장산 일대는 북쪽의 검단산· 망덕산 구간보다 훨씬 단조롭고 볼 게 없었다. 온통 풀숲만 가득했고 유적이나 군사 시설, 전망대 같은 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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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마치 고개 아래로 지나는 자동차 도로이다. 내가 육교를 다 건널 때까지 아래로 지나가는 차량이 없었을 정도로 차량 통행이 뜸해 보였다.
그리고 여기는 이배재 고개 육교와는 달리, 아래에서 등산로로 올라오는 계단 같은 게 없었다. 서로 그냥 단절돼 있다. 하긴, 서울의 북악 스카이웨이(북악산)에도 이렇게 차도와 단절된 육교가 있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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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걸 그만두고 한동안 정말 하염없이 걷기만 했다. 동쪽의 광주 방면으로 하산하는 갈림길이 종종 나오긴 했으나, 일단 분당 메모리얼 파크가 나올 때까지는 계속 앞만 보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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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드디어 묘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번 등산 때는 저 멀리 병풍처럼 펼쳐진 풍경으로만 봤던 메모리얼 파크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직접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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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로부터 몇백 m 더 진행하자, 예전에 한번 와 본 적이 있는 영장산 정상이 나왔다. 지난번과는 전혀 겹치지 않는 완전히 다른 경로로 정상까지 오른 것이었다. 그때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일종의 수평 이동을 한 것이고, 이번에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수직 이동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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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는 경로가 달랐으니 내려가는 경로도 차별화가 돼야 할 것이다. 지난번에는 태재고개 방면으로 적당히 가다가 분당의 새마을 연수원 방면으로 하산했지만, 이번에는 분당이 아니라 귀가 교통편이 더 불편할 수도 있는 광주 방면을 과감하게 선택했다.
그런데 정작 태재고개 방면(성남 누비길)으로 더 내려가는 길목에서는 광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딱히 보이지 않았다. 다들 율동 공원 방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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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산을 오르내리니 이런 정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성남 누비길을 이탈하여 철망이 옆에 둘러진 좁은 산길이 나타났다. 철망 건너편에 있는 것은 '성남 300 컨트리클럽'. 산에서 골프장을 구경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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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이 길을 따라가면 광주 방면으로 산을 내려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진로를 이쪽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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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의 저 집은 정체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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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본인은 광주시 목동 소재의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 착륙했다. 어느 지점부터는 마을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보이지 않아서 그냥 마을을 향해 길이 없는 비탈길을 막무가내로 내려가기도 했다.
시골인데 논밭보다는 공장이 눈에 더 많이 띄는 게 인상적이었다. 맑은 한낮이니 풍경 사진 찍기에는 최적의 날씨였다.

이렇게 산행을 마치긴 했으나, 무작정 난생 처음 보는 동네에 발을 디뎠는데 여기를 대중교통으로 빠져나가서 집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지금까지 산기슭의 여러 마을들을 답사해 본 내 경험상, 이럴 때는 그냥 산을 등지고 큰길이 나올 때까지 무작정 걷는 것밖에 답이 없었다. 그러다 보면 버스 정류장이 나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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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비만 내면 말 그대로 집의 잡다한 모든 관리가 끝나는 공동주택과는 달리, 단독주택은 모든 관리를 집 주인이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 그건 결코 편하지 않으며, 금전적으로도 관리비보다 저렴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한적한 시골에 마당과 차고가 갖춰진 내 집을 별장 형태로라도 갖고 싶긴 하다.

그나저나 이번에도 한참 걷고 나니 버스 정류장이 나왔으며, 배차간격이 긴 버스가 그래도 의외로 금방 왔다.
이 버스는 성남이나 서울로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경강선 전철역으로 가는 덕분에 이걸 타고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7/09/01 19:30 2017/09/0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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