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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본인은 1박 2일 강원도 종합 여행을 추진했다. 이게 기대 이상으로 쏠쏠하고 아주 좋았다.

  • 갈 때는 새벽에 널널한 고속도로에서 원없이 밟으며 쾌속 주행
  • 동해 바다에서 해수욕
  • 회 코스 요리로 혼밥
  • 바다를 즐긴 뒤에는 꼬불꼬불 산 타는 국도를 달리며 경치 감상
  • 내륙의 강과 계곡에서 물놀이

본인은 더위에 약하고 바다에 대한 로망이 크다.
언제 어디서나 눈만 감으면 정말 잘 자고 불면이라고는 도무지 모르고 지내는 타입이지만.. 이것도 무더위 앞에서는 답이 없다.
알람 안 맞춰 놓고도 새벽 2~3시에 저절로 깨는 게 가능하구나. 잠 자는 것조차도 중간에 시동이 꺼져 버린다. 지금은 "이게 나라냐?" 할 때가 아니고.. "이게 날씨냐?"가 목구멍 위로 올라오곤 했다.

하도 답답해서 하루는 냅다 컴퓨터를 켰다. 그러자 "서울에서 제일 가까운 해수욕장"이 머리보다 먼저 손가락이 움직이며 검색란에 쳐졌다. 모든 일과를 중단하고 그냥 영종도든 강화도든 차 끌고 달려가서 바닷물에 반신욕 한 채로 잠들고 싶을 정도였다.

김 성모 만화를 보면 "벼.. 병원에 가면 돼. 아무리 심하게 다쳐도 병원에 가면 금방 회복될 수 있지"라고 굉장한 현대의학 병원 만능주의가 담긴 대사가 있는데.. 나는 "바.. 바다로 가면 돼. 아무리 습하고 더워서 땀이 쩔어도 바닷물에만 들어가면 금방 회복될 수 있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본인은 그때 돌아온 직후부터 내년 여름을 기약했으며,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여름에 강원도를 비슷한 방식으로 다녀왔다.
단, 작년에는 영동 고속도로 이북으로 '안보 관광'이 테마였던 반면, 올해는 영동 고속도로 이남으로 '철도 답사'를 테마로 삼았다. 덕분에 공통 테마인 자연 경치 감상 말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여행 분위기가 작년과는 사뭇 달라졌다. 올해는 반공 이데올로기 자가주입 이벤트는 없었다.

미리 결론부터 누설하자면, 이번 여행에서는 삼척선(동해 관광 열차), 정선선(아리랑 관광 열차), 그리고 함백선(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화물용 지선) 이렇게 정규 여객 열차로 가기 힘든 마이너한 철도들의 모든 역과 주변 지역을 차로 직접 답사함으로써 개인 철덕력을 강화하는 큰 성과를 거뒀다.

또한 작년 말에 개통한 광주-원주 고속도로(52. 일명 '제2 영동')의 혜택도 바로 입을 수 있었다. 중간에 나들목이나 분기점 따위가 없는 제2중부(37) 고속도로에도 저기를 드나드는 분기점이 하나 생겼다. 올해 여름부터는 주말에 영동 고속도로도 경기도 구간에는 버스 전용 차선이 시행된다고 그러던데, 강원도를 가는 게 목적이라면 그걸 볼 일은 더 없어졌다.

이번 여행에서 딱 하나 아쉬웠던 건 날씨였다. 동해 바닷가에 도착하던 당시에 강원도 전역에는 그냥 비를 넘어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뭐, 그래도 바닷물은 어지간해서는 따뜻한 편이고(나는 10월에도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물놀이 잘만 했음..) 나 같은 사람은 얼마든지 입수할 수는 있다. 파도가 강하면 멀리 나가지만 않으면 되니까.

그래도 땡볕이 내리쬘 때에 비해서야 해수욕으로부터 얻는 쾌감과 성취감, 가성비가 감소하는 건 어쩔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해변의 바닷물이 온통 흙탕물로 변하고, 고체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건 좀 문제였다.
이 때문에 황해보다 맑다는 동해 바닷물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해수욕은 그냥 하반신 정도만 잠시 담그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맑은 날씨에 맑은 바다를 구경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나머지는 다 좋은 편이었다.
긍정적인 점을 떠올리자면, 이 더운 8월에 밖이 쌀쌀하고 차가 따뜻한 곳에 가서 빗소리 들으면서 차 안에서 쉰 것도 피서라면 피서이다. 밖이 더웠으면 차 안에서는 도저히 지낼 수 없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해가 안 난 덕분에 피부가 탈 일이 없었던 것도 좋은 점이다. 예전에 맑은 날씨에 해수욕을 했을 때는 심지어 맨 밑바닥의 발등조차도 슬리퍼에 가려진 부분은 흰데 발가락 같은 노출 부위는 새까매지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물은 온도만 낮춰 줄 뿐, 자외선은 전혀 차단하지 않고 수심 1m를 넘게도 그대로 투과시켜 주는가 보다. 그 정도 수심이면 이미 총에 맞을 걱정조차도 거의 할 필요 없어지는데도 말이다.

자, 말이 길어져서 지겨우실 테니 이제부터는 사진을 투척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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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달려서 강릉· 정동진을 열차가 아닌 자가용으로 난생 처음으로 찾아갔다. 게다가 해수욕장 개장 기간 끝물에 맞춰 간신히 찾아갔는데 입구부터가 벌써 물난리가 나 있었다. 안습..

하긴, 비 소식 자체는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미리 알고 있던 것이었다. 강릉과 가까워질수록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다.
하지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복병은 해변뿐만 아니라 도로에도 있었다. 바다를 따라 꼬불꼬불 달리는 도로들은 자연히 해발 고도가 낮은 편이고, 곳곳이 침수되어 흙탕물 웅덩이가 생겨 있곤 했다. 차로 지나가다가 몇 번 아슬아슬한 상황을 겪었으며, 급기야 망상 해수욕장 이남의 길은 진입 통제까지 걸린 상태였다. 이런 건 다음부터 바다에 갈 일 있으면 참고해야 할 변수이고 시행착오였다.

뭐, 강릉은 고속도로의 경로 때문에 그냥 잠시 들른 것이고, 본인의 진짜 목적지는 삼척이었다. 여기 상황을 이렇게 확인한 뒤, 본인은 거기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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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선은 영동선의 지선으로 취급되며, 무궁화호 같은 정규 여객 열차가 아니라 동해 바다열차라는 관광 열차만이 다닌다. 영동선의 정동진처럼 열차 안과 승강장에서 해변이 곧장 보이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주요 구간이 해수욕장과 충분히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추암 역은 지붕도 없고 높은 곳에 놓인 선로 옆에 철제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임시 승강장' 형태였다. 그런데 역 진입 계단의 바로 아래에는 공교롭게도 쓰레기장(...)이 있어서 미관상 별로 안 좋은 관계로.. 진입로의 사진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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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의 추암 해수욕장의 모습이다.

2017년 현재 우리나라에 동해선은 참 묘하게도 고속도로와 철도 모두 남쪽과 북쪽 구간이 서로 끊어지고 단절돼 있다. 얼추 포항-삼척 사이가 말이다.
일제는 1940년대에 태평양 전쟁 때문에 물자가 부족해서 한반도에서 이미 놓여 있던 철도의 선로를 막 뜯어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동해북부선은 어째 새로 건설 중이었다는 게 아이러니이다. 물론 거기도 그 당시에 공사가 제대로 진행되지는 못했겠지만 말이다.

동해 고속도로(65)와 철도 동해선이 전구간 완공되어서 삼척선이 간선으로 승격되고, 삼척에도 정규 여객 열차가 다녔으면 좋겠다. 서쪽의 황해에서는 지금으로부터 10여 년쯤 전엔 군산선과 장항선이 다리로 연결되면서 지선이 본선으로 승격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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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암 다음으로 '삼척해변'이라는 역에도 이렇게 땅밟기를 했다.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바다열차가 도착하고 관광객들이 탑승하는 걸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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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해수욕장 부근에 차를 세우고 자리를 잡았다. 바다는 뭐.. 이런 상태였다. 하지만 물이 보기만치 심하게 더럽거나 차갑거나 파도가 살인적으로 강한 건 아니어서 마음만 먹으면 해수욕을 할 수는 있었다. 내 경험상 한여름에 바다는 계곡에 비하면 오히려 더 따뜻한 편이다.

하지만 이 날씨에 옷을 다 적시면서 해수욕을 했다가 전신 샤워를 하기에는 귀찮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서는 30분 남짓 하반신만 담그는 걸로 만족하고 나왔다.
바다 코앞에 저렇게 테이블과 의자, 파라솔이 있으니 좋았다. 그리고 빗줄기도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빗물을 잔뜩 뒤집어쓴 내 애마는 상부 한정으로 아주 깨끗해졌다. 비를 어설프게 맞거나 비 자체가 흙먼지가 섞여서 지저분하면.. 잘 알다시피 흙먼지 얼룩이 빗방울 모양으로 생기면서 차 표면이 아주 더러워지는데.. 비 맞고 나서 차가 더 깨끗해지는지 혹은 더러워지는지는 좀 케바케인 것 같다. 어떤 경우든 세차를 한 다음날에 비가 오는 건 차주의 입장에서는 머피의 법칙 같은 악재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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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서 한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는 역시 횟집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본인은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반찬까지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비웠으며, 다음에 나온 매운탕도 혼자 다 먹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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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해변을 나서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삼척선의 종점인 삼척 역도 입구와 승강장 선로 사진을 남겼다. 이 역은 영업 중이었으며, 바다열차를 타려는 승객들이 안에 좀 있었다. (계속)

Posted by 사무엘

2017/08/22 19:23 2017/08/22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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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엔 거의 한 달 간격으로 나란히 산행 후기를 올리게 됐다.
본인은 이제 인서울에서는 어지간한 산들은 다 오른 것 같다. 서울 외곽은 지금까지 주로 동쪽으로 살펴본 편이었다. 남양주 예봉산, 하남 검단산을 오르면서 오지를 탐험한 건 꽤 즐거운 경험이었다.

경부선이나 과천선 철도 주변에 있는 산들은 직선 거리로는 본인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다. 그러나 청계산 내지 관악산처럼 다른 산의 남쪽에 있는 산들은 교통이 불편해서 심리적으로 안 가게 된다. 북쪽으로 의정부의 사패산 같은 산도 다른 메이저 산에 가려져 있다. 게다가 그런 곳은 딱히 그린벨트 지대가 없어서 산기슭까지도 건물들이 빽빽해서 속세를 벗어난다는 느낌이 별로 안 든다.

본인은 서울의 동남부에 있는 성남에서는 불곡산을 올랐고 얼마 전에 영장산을 오른데 이어, 이번에는 분당이 아닌 구 성남 시가지의 동쪽에 있는 산을 다녀왔다. 성남과 광주 사이의 산맥 답사가 세 번째를 맞이했다. 등산 지점은 점점 더 북상하고 서울과 더 가까워졌다.
분당· 판교에 직장을 뒀던 사람으로서(지금은 회사가 서울로 이사를 감), 서울 지하철 8호선이 지나는 구 성남 시가지와 거기 산기슭은 분위기가 어떨지 참 궁금했는데 이 답사가 의문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다.

자, 그럼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어디까지 등산을 할지 경로를 짜는 게 첫 고민거리였다.
작년에는 서울 마천 역 근처의 청량산 방면에서 등산을 시작해서 남한산성까지 올라갔었는데, 그때는 남한산성의 북쪽(서문과 북문)만 그야말로 수박 겉 핥듯이 둘러보고 도로 북쪽의 하남시 쪽으로 하산해 버렸다. 남문이나 심지어 조선 행궁 같은 것도 전혀 구경을 못 했다.

그래서 이번 산행에서는 일단 남한산성 남부까지는 성남시에서 접근해서 그냥 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그래서 그때 못 한 남한산성 유적지 구경을 잠깐 한 뒤, 남쪽으로 내려가서 검단산과 망덕산까지 쭈욱 걷고 이배재 고개까지 구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성남시에도 하남 검단산과 이름이 동일한 산이 있다.

아침 일찍(7시 무렵), 엄청난 높이의 에스컬레이터로 악명 높은 서울 지하철 8호선 산성 역에서 내렸다. 여느 출구로 나간 게 아니라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있는 북쪽의 환승 주차장으로 나간 뒤, 거기서 더 북쪽에 있는 폴리텍 대학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서 9번 버스를 탔다. 산기슭의 '남한산성 입구'가 아니라 실제로 산을 올라가기도 하는 얼마 안 되는 버스이기 때문이다.

얘는 평소에는 성남 시내를 빙빙 돌다가 산을 오르지만, 주말 한정으로 등산객과 관광객을 위해 지하철역-남한산성 직행 셔틀이나 마찬가지인 9-1이 다니기도 한다.
산을 오르려면 기름이 굉장히 많이 들 것이고 평일에는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이 적어서 채산성이 안 맞을 텐데, 그래도 9번 버스는 10~20분대의 배차간격으로 다니는 편이었다. 지름길이 아니라 좀 이리저리 돌다가 산을 올라가는 것쯤은 얼마든지 봐 줄 만했다.

산을 오르면서 차창 밖 경치 중에서도 사진 찍고 싶은 게 여럿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카메라를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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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남한산성 내부에 도착했다. 위의 사진은 만해 한 용운 기념관, 그리고 조선 행궁 '한남루'의 입구이다. 한낮인 것 같은 시간대이지만 방문 당시는 아직 아침 8시 남짓밖에 안 됐다. 그러니 둘 다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이제 흙색의 낙엽은 바닥에서나 볼 수 있고 산들이 전반적으로 다 싱그러운 초록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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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남한산성 남문이다. 자동차는 아래로 난 터널을 통해 성곽을 입체교차하여 산성 내부 구간으로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서울의 북악산도 팔각정까지 자동차 도로가 있긴 하다. 그러나 얘는 애초에 북악산의 뒤, 한양도성(서울성곽)의 바깥만 지나며 성곽과 만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는 터널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

북악산에서 한양도성을 근접 구경하고 싶으면 도보로 등산을 해야 한다. 그래도 이것도 차도가 전혀 존재하지 않고 험준한 북한산을 올라야만 도달할 수 있는 북한산성보다는 사정이 나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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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 밖으로 나가자 남쪽으로 내가 가려는 길은 안내가 아주 잘 돼 있었다.
서울에 공식적으로 '둘레길'이 있는 것처럼 성남시에서도 '누비길'이라는 산길 브랜드를 만들어서 홍보하고 있었다. 성남과 광주를 지리적으로 가로막는 산들의 쭉 이으면 자동으로 길이 나오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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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길이 이렇게 평범한 시골길 같다가 나중에는 그냥 산길 흙길로 바뀌었다.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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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턴가 차도가 합류하더니 길이 이렇게 바뀌었다. 산 속에 깔린 자동차 도로는 사람용 등산로보다 경사가 완만한 대신 우회하는 길이가 훨씬 더 길다. 누비길은 얼마 안 가서 차도로부터 분리되어 나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누비길도 자꾸 이쪽으로 안내되어 있었다. 왜 그런가 싶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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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검단산이 하남 검단산보다 훨씬 덜 유명하며, 누비길 말고 딱히 산 자체에 대한 등산로가 인터넷 지도에 별로 안 나오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갑자기 길 좌우로 철조망이 둘러지고 "과거 지뢰 매설 지역" 경고문이 나타났다.
이 산의 정상에는 공군 부대가 있다. 그것 때문에 자동차 도로도 필요했던 거다.

그러니 성남 검단산은 서울로 치면 우면산 같은 분위기였다. 이 길이 공식적으로 성남 누비길의 일부이며 남한산성에서 검단산까지 가는 최단경로이긴 하다. 하지만 서쪽의 약수터 쪽으로 우회하면 이런 군사 시설을 덜 마주치고 검단산 정상 쪽으로 갈 수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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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를 따라 걷고 또 걸은 끝에 검단산의 정상에 도달했다. 진짜 제일 높은 정상에는 군부대와 각종 통신 시설(KT 검단산 중계소?)이 있기 때문에, 민간인을 위한 정상은 차도를 벗어나 왼쪽으로 꺾어서 진짜 정상보다 2, 300m쯤 떨어진 공터에 따로 있었다. 공터에는 헬리패드가 있고 무덤 비석 같은 자그마한 '검단산' 표지석이 놓여 있는 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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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지체 없이 계속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검단산 정상을 지난 뒤부터는 군대 냄새도, 자동차 도로 같은 것도 없이 순수하게 자연의 정취가 느껴지는 산길이 쭉 이어졌다. 안 그래도 날씨도 맑고 따스하고, 주변 경치가 몹시 아름다웠다.

여기는 간간이 사기막골(성남)이나 불당리(광주) 같은 주변 마을로 하산하는 분기점이 있었다. 성남 쪽은 산기슭에 공장(상대원 공업단지)도 있고 뭔가 대도시 같지만, 서쪽의 광주 쪽은 산봉우리가 더 있기도 하고 그나마 골짜기에 간간이 놓인 집들은 시골 분위기 그 자체였다. 다만, 어느 쪽으로든 시야가 나무로 가려져서 시야가 좋지 않은 건 아쉬웠다. 전망대 같은 건 누비길 전구간을 통틀어 전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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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도 그때 그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즉석 코딩으로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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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오르내리며 한참을 걸은 끝에 드디어 망덕산의 정상에도 도달했다. 여기는 딱히 공터가 있지 않고 평범한 등산로 길목에 탁자· 벤치와 정상 표지석이 있었다. 봉우리 이름은 '왕기봉'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성남 누비길에서는 휴식 공간에서도 딱히 운동 기구 같은 건 못 본 거 같다. 만만한 공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막 높은 산도 아닌 그 중간 컨셉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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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덕산 정상을 지나자 등산로는 다음 목적지인 이배재 고갯길을 향하여 고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산은 분홍색 꽃나무가 많이 섞여 있는 반면, 앞에 펼쳐진 저 먼산은 전적으로 초록색으로 배경을 은은하게 물들여 놓은 게 풍경이 장관이었다.
저런 산의 어귀에 있는 마을에 혼자 틀어박혀서 광주시의 맑은 공기 마시면서 논문과 코딩에 전념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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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재 고갯길에는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다. 사실, 산들의 높이가 500미터대로 막 낮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고갯길만 해도 이미 고도가 200m를 훌쩍 넘기 때문에 내가 발로 이동해서 만든 고저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출발할 때도 남한산성까지는 버스를 타기도 했고 말이다.

이름이 왜 '이배재'냐 하면, 옛날에 과거 보러 한양으로 올라오던 선비들이 이 고갯길에서 왕궁을 향해서 절을 두 번 했기 때문이라고 그런다.
하긴, 근대화 이전에 한반도에서 한양(서울)-동래(부산)을 육로로 연결하던 지름길은 광주· 용인· 충주를 경유하는 '영남대로'였다. 수원과 대전을 경유하는 육로는 20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었다(철도와 고속도로 모두). 예전에 한번 언급한 적이 있듯, 비행기 항로도 지형에 구애받지 않으니 영남대로의 선형과 더 가깝다.

숭실 대학교 근처에 있는 고갯길은 조심해서 살펴 가라고 해서 옛 이름이 '살피재'였다는데, 고갯길의 이름에도 이런 식으로 다 사연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육교를 타고 맞은편 산으로 등산을 계속할 수도 있다. 예전에 서울 지하철 3호선 녹번-홍제 구간 사이에(지상 도로는 통일로) 백련산과 북한산을 잇는 육교를 봤던 게 생각났다. 성남 누비길도 맞은편 산을 한 번만 더 넘어서 '갈마치 고개'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시간과 보급 관계상 본인은 거기까지는 안 가고 이 고갯길에서 버스를 타는 것으로 등산· 답사를 마쳤다. 이 길목은 광주 북부에서 모란 역(분당· 서울 8)을 잇는 버스가 수 분 간격으로 많이 다니고 있었다.

이배재로 다음으로 성남 시내에서는 '둔촌대로'라고 폭이 굉장히 방대한 길이 나 있었다. 길가엔 차들이 평행도 아니고 수직으로 주차돼 있었는데 이건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서울 지하철 8호선보다 한두 블록 아래로 성남 구시가지의 남쪽 끝을 지나는 큰길이다.

이 둔촌과 서울 '둔촌동'의 둔촌은 모두 동일하게 '둔촌 이 집' 선생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서울 일자산을 미리 다녀와 본 덕분에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지도를 찾아보니 이 사람의 묘지가 여기 일대에 있다.
그런데 고려 말기의 너무 옛날 사람이기도 하고, 그가 이 정도로 칭송받을 정도로 뭘 그렇게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게 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후손인 광주 이씨 사람들이야 떠받들 만도 하겠지만 타지의 다른 사람들은 글쎄..

이렇게 산에서 역사 유적(남한산성), 군사 시설, 그리고 자연 풍경을 모두 구경하고 성남 시가지 구경은 덤으로.. 오늘도 유익한 답사를 하고 왔다.

Posted by 사무엘

2017/08/06 08:31 2017/08/0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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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일자산 탐방기

본인은 올해 초에 서울과 고양시의 경계 역할을 하는 서울의 서쪽 병풍인 봉산· 앵봉산을 다녀왔다. 그 다음으로는 서울과 하남시의 경계 역할을 하는 동쪽 병풍인 일자산을 다녀오겠다고 진작부터 계획하고 있었는데, 서쪽 답사 이후 70여 일이 지난 뒤에야 계획을 실행하게 되었다. 둘 다 서울 둘레길에 포함되어 있다.

봉산· 앵봉산도 해발 200m대의 낮은 산이지만 일자산은 최고 높은 곳이 150m가 채 안 될 정도로 더욱 낮은 산이다. 그러니 등산 대상으로서의 의미는 별로 없고, 그냥 교외의 고지대에 자리잡은 공원 내지 산책로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름처럼 꼭대기 능선이 一자 모양으로 수 km에 걸쳐 있기 때문에 걷기에는 좋다.

일자산의 존재감은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선형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5호선은 잘 알다시피 강동 역을 끝으로 동쪽으로 더 직진하지 않고 상일동과 마천이라는 두 지선으로 갈라지는데, 일자산은 그 상일동· 마천 지선의 선형과 얼추 평행하게 동쪽 끝을 가로막고 있는 형태나 마찬가지이다.

천호대로를 타고 강동 역보다 더 동쪽으로 가면 서울 시가지가 끝나고 밭이나 화훼단지 농장 같은 거나 볼 수 있는 그린벨트 완충지대가 나타난다. 그리고 외곽순환 고속도로 진입로까지 지난 뒤부터는 행정구역이 서울에서 하남으로 바뀐다. 일자산은 서울과 하남의 경계 역할을 하다가 북쪽 끝에서 천호대로와 만난다.

본인은 이런 지리 정보를 염두에 두고, 5호선 마천 지선의 첫 정거장인 둔촌동 역에서 내려서 일자산으로 접근을 시작했다. 둔촌동 역 근처에는 지은 지 꽤 오래 된 듯한 주공 아파트 단지가 있었고, 전통 시장도 길 건너편 주변에 보였다.
그리고 여기 버스 정류장에는 서울 버스뿐만 아니라 하남시 내부로 들어가는 하남시 소속 마을버스도 일부 다녔다. 본인은 여기서 하남 마을버스 7번 또는 8번으로 환승해서 일자산 기슭에 자리잡은 보훈 병원 내지 대순진리회 방면으로 가려 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 버스는 평소에도 배차 간격이 20분을 넘고, 주말· 공휴일엔 45분까지 벌어지며 심지어 수틀리면 아예 운휴까지 하는 막장 버스였다. 아이고, 일자산 근처가 그렇게까지 오지는 아닌 것 같던데 이 무슨 낭패..
결국 산기슭까지 1.5km 정도 거리는 그냥 걸어서 갔다. 지하철 한두 정거장, 버스 서너 정거장 거리인데 어차피 도저히 못 걸을 거리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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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문드문 서울 지하철 9호선 연장 공사가 진행 중인 게 보였다. 서울 지하철 3호선의 동남쪽 말단 구간 중에는 경찰 병원도 있는데 보훈 병원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군인도 경찰도 아닌 다른 국가유공자를 위한 병원 같아 보이긴 하다)
5호선은 상일동 지선이 더 연장되어 검단산 기슭까지 갈 예정이라는데, 9호선이 동쪽 끝까지 연장되면 일자산을 찾아가기가 더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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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여곡절 끝에 어쨌든 일자산 진입로를 발견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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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을 따라 산등성이를 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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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조금 걷자 어마어마한 규모의 묘지가 나왔다. 예전에 망우산 공동묘지를 돌아다니던 거 생각이 났다.
당시 현장에서 눈으로 본 광경은 꽃과 풀 색깔이 어우러져서 색감이 이 사진으로 찍힌 것보다 더 밝고 알록달록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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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를 지난 뒤에는 이렇게 잘 닦인 산책로가 이어졌다. 산악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녀도 될 법해 보이는데, 안전을 위해서 자제해 달라는 표지판도 곁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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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현대의 기준으로도 서울의 완전 끝자락인데 하물며 옛날에는 한양과 아무 관계 없는 깡촌일 뿐이었다. 일자산은 성곽 같은 역사 유물도 없고, 군사 시설도 없는 듣보잡 동네 뒷산 언덕에 불과하지만, 역사적인 에피소드가 딱 하나 있었다.
둔촌 '이 집'이라고 고려 말(1300년대, 신 돈과 동시대)의 재야학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 사람이 말년에는 일자산 일대에서 속세를 떠나 살았다고 한다. 굉장히 옛날 인물이고 지금까지 본인이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인데 아무튼.. 젊은 시절에 많은 독서와 공부의 필요성에 대해서 저런 격언을 남긴 모양이다. 참고로 무덤은 서울이 아닌 성남시에 있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이라는 지명은 바로 저 사람의 아호에서 비롯되었다. 村이라는 글자가 있지만 의외로 지명이 아니라 인명이다. 강서구의 등촌동과는 전혀 관계 없으니 헷갈릴 일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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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길은 계속 이어졌다. 서울 쪽보다는 하남 쪽이 전망이 더 좋았으며, 당연한 말이지만 훨씬 더 시골 분위기였다. 그리고 워낙 낮은 산이니 딱히 전망을 볼 만한 것도 별로 없었다. 단, 북쪽으로 가까워질수록 마주치는 등산객? 방문객이 갈수록 많아져서 아무도 없는 배경 사진을 찍기가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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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산의 정상처럼 생긴 공터에 도달했다. 등산이라고 할 것도 없는 언덕인데 시계와 온갖 운동 기구와 벤치가 비치되어 있고, 사진에 안 나왔지만 근처엔 컵라면과 음료수를 파는 산장(?) 천막도 있었다. 등산복 차림으로 벤치와 탁자에 앉아서 쉬거나 음식을 먹는 일행도 많이 보여서 이거 무슨 꽤 높은 산의 정상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자산의 산책로는 이것으로 끝이고, 그 다음으로는 내려가는 비탈길만 있었다. 하산은 그냥 5분이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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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내려오니 앞에는 뭔가 초원/정원처럼 꾸미려고 준비 중인 듯한 넓은 공터가 보였다. 모래 뻘밭에다 인위로 심어 놓은 나무가 듬성듬성 놓여 있으니 무슨 사막 같다. 차나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은 포장되고, 식물이 있는 곳에는 잔디가 어서 심겨야 할 것 같다.
일자산은 출발 지점이나 도착 지점 모두 주차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차를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편도 동선으로 인해 차마 그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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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둔촌동에서 출발해서 천호대로의 하남 초이동 근처 구간에서 일자산 산책을 마쳤다. 산에서 걸은 거리는 약 3km 정도 되고, 하산 후에 버스 정류장까지는 또 600m 정도 걸었다. 그러니 전부 합하면 최소한 5km 이상을 걸었다. 진짜 등산 매니아들은 이 정도는 약과고 10수 km 이상도 걷긴 하는데...

아까 지도에서도 볼 수 있듯, 서울 강동구에는 일자산의 북쪽으로 명일 근린공원과 고덕산 같은 언덕 숲길이 더 있으며 이 역시 공식적으로 서울 둘레길의 일부이다. 한데 이어지지 못하고 중간에 시내를 통과해야 하긴 하지만. 또한 둘레길은 아니지만 길동 생태 공원이 있고 일자산에도 산책로 말고 다른 공원이 더 있다. 인서울의 말석 외곽 위치여서 교통이 불편한 건 단점이겠지만 이런 거 하나는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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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꽃들이 굉장히 예뻐서 사진에다 몇 장 담았다. 여기는 경치 좋고 높고 유명한 산의 기슭이어서 등산용품 매점이나 식당· 유원지가 있는 게 아니다. 그냥 법적으로 개발 제한 구역이다 보니 화훼단지나 주말농장 같은 것만 있다. 서울에서 이런 사진 찍을 수 있는 곳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도 야금야금 그린벨트가 풀리고 개발되고 곳곳에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으니, 이런 광경을 보는 날도 얼마 안 남을 것으로 보인다. 그 전에 자연의 정취가 있는 곳은 많이 돌아다녀야겠다. 평지는 자동차로 다니고, 산은 운동을 겸하는 등산으로 다니면서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7/06 08:37 2017/07/0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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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영장산 (성남)

본인은 한동안 인서울 산만 오르다가 오랜만에 다시 성남을 찾아갔다. 이 지역에서는 작년에 분당의 동남부에 있는 불곡산을 오른 적이 있다. 성남 분당과 광주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산들을 오르는 건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 뒤 이번에는 불곡산보다 더 북쪽에 있는 산을 올랐다.

지도를 펴서 분당선 내지 성남대로의 동쪽을 살펴보면 야탑과 서현은 시가지가 동쪽으로 깊숙히 조성돼 있다. 그러나 그 중간의 이매의 동쪽은 곧바로 산으로 뒤덮여 있으며, 기슭에는 고도 제한이라도 있는지 저층 건물로 된 아담한 마을만 좀 있는 정도이다. 지금이야 이매가 경강선과의 환승역까지 됐지만 분당선이 처음 만들어지던 시절엔 역이 있지도 않았었다. 야탑에서 서현은 거리가 3km가 훌쩍 넘음에도 불구하고 그때엔 중간에 역을 만들 필요가 인지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본인은 저 산을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진작부터 했다. 그런데 다른 산들과는 달리 이 산은 이렇다 할 등산로 진입로가 전혀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정상까지 가는 경로가 비법정 탐방로까지 포함해서 그야말로 거미줄처럼 빽빽이 그려져 있는 '네임드급' 산인 북한산과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이런 이유로 인해 한동안 이 산으로 갈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도에 안 나와 있다고 해서 길이 없는 건 아니었다. '판교로'라고 야탑 역 근처의 도로 한구석에 등산로가 있으며, 이매동 마을에서도 이 산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단지 이 산에는 역시나 군부대 같은 보안 시설도 많이 있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유명해지거나 등산객이 몰리지는 말라고, 아는 사람만 조용히 찾아오라고 지도에 등산로가 표시되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본인은 인터넷 검색을 한 끝에, 경남아너스빌 아파트와 807 의무경찰대 생활관이 있는 곳에서부터 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의무/전투경찰들은 군부대에 소속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식 경찰 공무원도 아닌데 병영이라고 해야 하나 평소에 어디서 먹고 자는지 의문이 들었다. 도봉산인가 북한산도 오르는 길목에 의무경찰 생활관이 있는 걸 본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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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의 등산로는 요렇게 계단에서 시작되었다. 친절하게도 불곡산과 영장산을 한눈에 그려 놓은 안내도가 곁에 있어서 좋았다.
예전에 불곡산은 우측 중앙 하단의 이마트 근처 '정자공원 등산로'에서 올라서 불곡산 정상과 근처의 형제봉을 오른 뒤, 태재고개 쪽으로 가다가 반대편 광주 방면으로 하산했다.

오늘은 왼쪽 최하단의 '전경대 등산로'에서 올라서 종지봉(글자가 잘 안 보임)과 매지봉을 거쳐서 영장산 정상까지 간 뒤, 새마을 연수원 방면으로 하산했다. 광주 쪽으로 가기에는 그 뒤로 넘어야 할 산이 더 많이 있어서 다시 분당 방면을 선택한 것이다.
안내도에서 보다시피 이 산맥의 능선이 성남과 광주의 경계인 듯하다. 영장산과 태재고개 사이의 길고 긴 능선은 두 번의 등산으로도 답사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으로 남게 됐다. 그래도 전경대-영장산까지만 해도 봉우리를 여럿 넘으면서 4km에 달하는 장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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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오른 언덕은 높이도 별로 안 높고 나무들에다 일정 간격으로 정자와 운동 기구들이나 놓여 있어서 별 특징 없는 평범한 동네 뒷산 티가 풀풀 났다. 위치가 위치이다 보니 저 아래로는 성남 아트 센터 건물이 보였다.
그런데 성남 아트 센터를 지난 뒤부터 남쪽에 갑자기 예기치 않은 철조망 울타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이매동 일대에 숨겨진 무슨 군부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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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이 둘러진 등산로도 지나자 급격한 비탈길이 이어졌다. 이를 다 오르고 나자 '종지봉' 정상에 도달했다. 정자도 하나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높이도 별로 안 높고 그리 볼 게 없었다. 진짜 등산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지금까지 1.7km 정도를 이동했고, 여기서 영장산 정상까지는 2.3km 남짓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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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벅터벅 걸으니 또 양 옆이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지대가 나타났다. 한쪽은 분당 예비군 훈련장 방면이고 다른 한쪽은 국군 수도 병원 방면이다.
산을 오른 날이 평일이었던 관계로 안 그래도 아침에 야탑 역 주변에서부터 군복 입은 아저씨들이 보였다. 그리고 나중에 아침 10시 무렵엔 역시나 콩 볶는 듯한 총소리가 등산로에까지 들렸다.
참고로 본인은 예비군이 7, 8년차까지 완전히 끝났고 올해부터 민방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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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보듯 하늘은 푸르고 날씨는 맑고 적당히 쌀쌀해서 등산 가기 아주 좋은 날씨였다. 그래도 얼굴은 추워서 콧물이 날 지경인데 점퍼를 입고 있던 팔과 어깨는 더워서 땀으로 흠뻑 젖고, 땀이 식으면서 또 추워졌다. 이런 날씨에도 열 조절을 하기가 참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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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는 '분당 메모리얼 파크', 쉽게 말해 서울 망우산에 있던 묘지 공원이다.
아마 이 부근의 땅 아래로 경강선 이매-삼동 구간 선로도 지나가고 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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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있는 연못은 반대편 율동 공원 인근에 있는 '분당 저수지'이다.
이 산은 전구간 통틀어서 전망대가 하나도 없어서 먼 곳 경치를 촬영할 만한 곳이 없었다. 아쉬운 점이다. 딱히 옛날 유물 같은 게 있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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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앞두고 경사가 급격히 가팔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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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100m 정도 남겨 두니 태극기가 펄럭이는 돌무더기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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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상에 도달했다. 등산객이 종종 다니는 편이었기 때문에 이번엔 혼자 타이머 맞춰 놓고 쇼를 하지 않아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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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지나 온 길을 다시 복습해 보면 맹산 자연 생태 공원은 구경을 못 했고 그 대신 종지봉(정자)을 지났다. 그 뒤 산불 감시탑 겸 전망대가 있던 매지봉을 지나쳤고, 솔밭쉼터도 거친 뒤 정상에 도달했다. 이들 명칭에 대해서는 첫 화면에 있는 안내도를 참고할 것.
그 다음으로는 앞으로 더 진행해서 거북터로 내려간 뒤, 거기서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새마을 연수원 방면으로 하산했다.

이 길은 일종의 계곡이었다. 난 지금까지의 등산 경험을 생각해 보니 하산은 계곡 쪽으로 많이 하는 편이었다. 수락산이나 북한산을 갔을 때도 그랬고.
그리고 이쪽은 산중턱까지 개발이 많이 돼서 논밭도 있고 건물도 이것저것 많이 지어져 있었다. 영장산의 환경 파괴가 심하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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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새마을 중앙 연수원'의 입구에 도달했다. 연수원은 말 그대로 무슨 수련원이나 학교 분교처럼 건물 한 채에 운동장 하나가 전부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대학 캠퍼스 같은 으리으리한 규모였다.
지금까지도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우리나라의 '새마을 정신' 컨설팅/카운슬링을 해 주는 곳인가 보다. 누가 언제 세운 기관이고 어떤 사람이 근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2~3분 간격으로 으리으리한 고급 승용차도 드나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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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원을 뒤로 하고 시내로 나가는 길은 이랬다. 버스가 다니긴 하지만 배차간격이 심각하게 길기 때문에 좀 기다려야 했다. 예전에 검단산 등산을 마친 뒤에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시절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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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 길을 걸어서 밖으로 나가니 국군 수도 병원과 율동 공원으로 가는 길목이 보였다. 여기가 이런 동네이구나! 교차로이지만 신호등은 그냥 황색 점멸이었다.
수도 병원 간판의 에메랄드 배경색이 굉장히 예뻐 보였다. 율동 공원도 자동차 내지 자전거라도 있으면 더 돌아다녀 보고 싶었지만 그 당시로서는 무리였다. 이런 게 있다고 풍경 사진 몇 장 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여친이라도 생기면 데이트 코스로 적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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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하늘 위로는 비행기가 자주 날아다녔다. 근처의 서울 공항에서 띄운 걸로 추정되는 군용기뿐만 아니라 민항기도 볼 수 있었다.
폰 카메라가 화소 수와 색감, 시야각 등이 경이로울 정도로 발전했지만 아무래도 렌즈 크기의 제약으로 인해 줌 성능은 취약하다. 하늘의 비행기 사진을 제대로 찍으려면 별도의 디지털 카메라가 필요하더라.

이것으로 등산을 마쳤다.
성남 분당은 분당선 및 성남대로를 조금만 벗어나서 동쪽으로 가면 이런 미지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게 흥미롭다. 물론 서쪽도 미지의 세계이긴 마찬가지이다. 다음에는 기회가 되면 서쪽의 대장동· 석운동에 있는 산, 그리고 성남 검단산 같은 북쪽의 산을 답사할 계획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6/09 08:37 2017/06/0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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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달산· 서울 현충원 답사기

6월을 맞이하여 본인은 호국보훈 이념을 등산과 결합한 꽤 특별한 이벤트를 기획했다. 서울 현충원이 자리잡아 있는 서달산을 오르고, 현충원을 정문이 아닌 산을 통해서 방문하고 왔다.
본인은 비록 서울 현충원과는 아무 연고가 없는 가문의 출신이지만, 지난 2007년에 한번 혼자 현충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딱 10년 뒤에 거기를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참고로 사진들을 보면 짐작이 가겠지만, 시간대가 이른 아침은 아니고 그냥 낮~저녁 사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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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이 아니라 숭실대입구 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3번과 4번 출구 사이로 나 있는 비탈길을 계속 올랐다. 일명 '살피재'라는 고갯길이다. 지하철역 자체도 고도 차이로 인해 굉장히 깊지만 그래도 역이 있는 곳이 제일 높은 지점은 아니었다.
길가에는 한 경직 기념관, 기독교 박물관 등 숭실대 캠퍼스 건물이 계속 보였다.
그렇게 버스 한 정거장 거리 정도를 계속 걸으면 건물이 없이 산길 같은 구간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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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 생태다리를 통해서 서달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숭실대 뒷쪽으로 달마사를 거쳐서 서달산을 오르는 경로도 있긴 한 모양이던데, 길이 골목길 위주로 복잡한 것 같아서 본인은 그리로 가지 않았다.
참고로 서달산은 해발 높이가 200m가 채 되지 않는 낮은 산이며, 산 속 숲에 들어가기 전부터 길거리에서 이미 고도를 상당수 올려 놓은 상태이다. 저기서 추가로 오르는 높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서달산의 정상은 서쪽 끝자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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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아니나다를까, 건물 몇 층 높이를 계단으로 오르는 기분으로 설렁설렁 언덕을 오르자 현충원의 상도 방면 뒷문이 나타났다. 오후 6시까지 개방이라고 하며, 가 보지는 않았지만 동쪽으로 사당 방면 뒷문도 하나 더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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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은 하늘을 제대로 보기 어렵고 어두컴컴할 정도로 나무들이 빽빽했다. 계절이 계절이다 보니 그야말로 싱그러운 초록색 그 자체였으며, 아카시아 같은 향기도 느껴졌다.
6월에 나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많았는지, 주변엔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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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가 낮을지언정 그래도 산은 산이니 정상에 도달했다. 저 정자는 이미 동네 어르신으로 추정되는 아저씨들이 점령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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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는 이런 2층짜리 정자도 있었다. 정자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 산이 숲이 얼마나 조밀하게 우거져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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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정상을 구경한 뒤엔 서쪽의 숭실대 방면으로 하산하거나 동남쪽으로 산길 산책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본인은 그쪽으로 가지 않고 아까 그 상도 방면 뒷문으로 가서 현충원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직선 거리로만 따지면 현충원 묘소들 중 산속 가장 깊은 곳에 놓인 박 정희 대통령 묘소와 아주 가깝다. 하지만 이 길은 묘소는 고사하고 곧장 현충원 내부로 들어가는 길도 아니었다. '호국지장사'라는 절까지 굉장히 우회를 한 뒤에야 현충원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우회가 심한 데다, 내리막이 계속되기까지 하니 나중에 다시 이쪽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니, 비록 수평 이동이 길더라도 현충원을 나갈 때는 그냥 정문으로 나가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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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정을 거쳐서 박 정희 대통령 부부 묘소를 10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 대통령까지 되긴 했지만 애비의 처지와 딸의 처지가 모두 참 기구하다.
지금의 악한 대통령은 노골적인 좌편향과 친중종북 성향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으며 도덕 청렴은 개뿔, 우리나라에서 정말 청산되어야 할 적폐는 무슨 이중국적· 위장전입이나 논문 표절 따위가 아니라 그냥 '내로남불'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입증해 보이고 있다.

왜, 자기가 좋아하는 대통령,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혼자 똥을 싸도 그저 잘한다고 언론에서 칭송해 댈 것 같은 우리 달님 달링님을 까니까 기분 나쁘신가? 문 창극, 김 종훈, 윤 창중 시절에 그 정도까지 쌍욕 안 퍼붓고 개 난리 안 쳤으면, 나도 지금 이렇게 거친 말 독한 말을 안 늘어놓는다. 잣대가 동일해야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나라 꼴이 도대체 어찌 되려는지.. 이러려고 공산화 막고 가난 떨쳐내고 근대화 한 게 아니었을 텐데.. 저기 모셔져 있는 가문의 대통령이 얼마나 훌륭한 분이었는지를 깨닫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하면서 본인은 묵념을 하고 방명록에 이름도 당당히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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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길을 내려가면서 병사 묘역의 구도 좋은 지점에서 사진을 하나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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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에서 100을 만든 분에 이어 아예 0에서 1을 만든 위대한 건국 대통령 할배의 묘소도 참배하고 방명록에다 내 이름을 썼다. 시뻘겋게 미쳐 돌아가는 나라 현실에 대한 자그마한 저항의 뜻을 이렇게 표현했다.

"배달민족의 독립을 되찾아 우리를 나라 있는 백성 되게 하시고"라는 시작하는 헌시를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한다.
저기서 나라란 당연히 자유가 있는 정상적인 나라를 말한다. 북괴 같은 나라 말고. 일제만 망하고 물러났다고 해서 결코 저절로 수립 가능하지 않았다.

난 이분에 대한 온갖 악의적인 중상모략과, 정황에 대한 고려 없는 악성 거짓 루머를 어지간한 부정부패 이상으로 나라를 좀먹으며 사람 정신을 병들게 하는 사회악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이 주제에 대해서는 내 인생을 걸고, 그 어떤 인간관계 단절과 물질적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평생 한 치의 양보 없이 맞서 싸울 것이다.

누차 말하지만 그냥 단편적이고 개인적인 대통령 호불호를 문제 삼는 게 결코 아니다. 단순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승만은 건국의 공을 무색케 하는 과오도 너무 많이 저질러서 괜히 호감이 안 간다" "난 외교 노선보다는 무장 항쟁 노선을 더 좋아한다" 수준이면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는 건전한 생각과 취향으로서 존중한다.

단지 내가 극도로 싫어하고 공격하는 건, 예전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악의적으로 일부러 친일 청산을 안 하고 전쟁 초기에 그냥 도망갔네 식의 개소리, 그리고 각종 학살 참극에 대해서 김 일성· 마오 쩌둥과 이 승만에 대한 비판의 잣대가 전혀 같지 않은 것 따위를 말한다. 이젠 정말 지긋지긋하다.
왜 그냥 싫어하는 게 아니라 거짓을 근거로 싫어하며, 그 근거가 거짓이라고 반박해 줘도 듣지를 않는가? 그렇게 귀를 틀어막고 살 거면 남이 과격한 어조로 거짓을 저격하는 건 왜 듣고 반응하는데? 그런 것에 불쾌해할 자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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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을 간 끝에 드디어 정문에 도착했으며, 입구에 있는 멋진 분수대를 마지막으로 사진에 담았다.
10년 전과는 달리 지금은 지하철 9호선이 생겨 있으며, 특히 9호선이 현충원 입구와 더 가까이 만들어져 있어서 접근성이 더욱 좋다. 하지만 4호선과 9호선간의 막장환승은 답이 없는 것 같다. 고속터미널 7-9호선은 무빙워크라도 있다지만 저건.. 답이 없다.

글을 맺기 전에 역사 상식 하나..
현충원의 유래 정도는 검색만 하면 다 나오긴 하지만, 본인이 기억하고 있는 바를 이곳에다가도 또 늘어놓자면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6· 25 전쟁 이전에도 38선 부근에서는 호전적인 북괴의 도발에 의한 국지적인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지금 이스라엘 vs 팔레스타인만큼이나 분위기가 험악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사자가 계속 찔끔찔끔 발생했으며, 이들은 처음엔 서울 중심부에서 가까운 장충단 공원에 매장되었다. 다시 말해 그때는 매장지가 지금 같은 '서달산'이 아니라 남산 기슭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6· 25라는 전면전이 터지자 전사자가 훨씬 더 많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이들을 매장하고 추모할 공간이 부족해졌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새로 묘지를 만들 만한 곳을 전국적으로 물색하게 됐다. 아직 전쟁 중이던 1952년에 이와 관련된 신문 보도가 나갔었다.

그때 투표 같은 민주적인 절차가 있었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 리박사 할배 각하가 여러 후보들을 몸소 검토해 본 뒤 그냥 답정너로 지금의 서달산 부지를 지목한 게 아닐까 싶다. 1950년대엔 한강 이남은 아직 인서울조차 아니었고 동작대교 같은 것도 없었다. 교통이야 지금과 비할 바가 못 됐겠지만 저 정도면 솔직히 서울 교외에 묘지로서 굉장히 좋은 입지이긴 했다.

그래서 이 묘지는 1955년에 '국군 묘지'라는 이름으로 첫 개장했다가 나중에 '국립 묘지'라는 명칭을 거쳐서 지금은 현충원이 됐다. 정부 청사가 서울, 과천, 대전, 세종 등 여러 곳에 있듯, 현충원도 서울에만 있는 시설이 아니다. 그래서 전체 명칭은 '서울 현충원'이다. 이 승만 당사자도 비록 하야 후 외국에서 죽었지만, 그래도 자기가 남을 위해 장지해 놨던 명당에 고이 묻히게 됐다.

서울 현충원은 이제 공식적으로는 공간이 더 없다. 국민 정서상 극히 예외적인 특례로 봐 줄 만한 위인· 유명인이 아니고 단순히 국가원수, 전투 중 전사, 몇십 년째 군 장기 근속 같은 규정만을 만족해서 현충원에 가는 거라면 신규 인원을 받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는 서울 대신 대전 현충원으로 가야 한다. 대전 현충원도 무려 1985년에 개장했다.

우리나라가 군사· 정치적으로 안정화가 됐고 굳이 나라를 구하는 특출난 위인이 나올 상황이 아니라면, 앞으로 서울 현충원에 누군가가 무리해서 비집고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대전 현충원의 국가 원수 묘역에 최 규하 다음으로 둘째로 들어가는 인물은 과연 누가 될지 무척 궁금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7/06/06 08:31 2017/06/0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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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벌 2017/06/22 20:45 # M/D Reply Permalink

    앗! 저도 6월 6일 현충원 갔었는데. 아들과 함께.
    그 날 사람 엄청 많더군요...

    1. 사무엘 2017/06/23 09:34 # M/D Permalink

      좋은 일 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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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초에 본인은 1년 전에 한번 오른 적이 있는 불암산을 다시 찾았다. 단, 북쪽의 당고개 역 인근에서 출발했던 그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태릉 방면의 남쪽 구간만 잠깐 오르다가 곧장 하산했다. 여기를 답사하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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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지도를 만지작거리던 중, '공릉산 백세문'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문과 산책로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 근처에는 서울 과학 기술 대학교와 원자력 병원이 있고, 산기슭에는 서울여대, 육사, 태릉 선수촌 등이 있다. 예전에 불암산을 올랐다가 돌아오면서 이 도로(화랑로)를 버스 타고 지난 적은 있지만, 정작 근처의 불암산 구간을 답사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여기를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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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뒤로 난 언덕길의 좌우로는 처음엔 평범한 울타리가 있다가 나중엔 살벌한 철책으로 바뀌기도 했다. 왼쪽엔 한전 인재 개발원은 고압 전기 시설 때문에 경비가 삼엄하며, 오른쪽에는 문화재인 태릉에다가 태릉 사격장이 있으니 아무래도 아무나 못 들어가게 통제를 해야 한다.
불암산이 남쪽엔 요주의 문화재와 보안 시설이 많이 자리잡아 있다. 그래서 이런 것들 말고 참호 같은 군사 시설도 있었고 거기에는 '촬영 금지 - xxxx부대장 백' 이런 표시가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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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는 철책을 따라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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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딱 한 군데 전망이 트인 곳에서는 육사 캠퍼스가 희미하게 보였다. 지인용(智仁勇) 탑과 근처의 동그란 육군 박물관이 보인다. 봉화산에서는 육사를 전혀 볼 수 없었는데 산에서 저기를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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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인재 개발원에서는 한참 멀어졌다고 생각하지만 바닥에는 한전에서 매설한 듯한 무슨 표지석이 눈에 띄었다. 3 말고 4라고 적힌 것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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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불암산 남부의 등산로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나타났다. 서울 둘레길을 선택하면 인서울에 속한 산중턱 능선만 계속 타면서 북쪽의 당고개· 수락산 방면으로 갈 수 있다. 사실, 공릉산 백세문에서 시작해서 본인이 지금까지 걸은 길도 서울 둘레길이다.

아니면 다른 길로 가서 봉우리를 갈아탈 수 있다. 그러면 거기서 또 다른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거기서 불암산의 정상으로 가거나 아니면 이 상태로 삼육 대학교 방면으로 하산할 수 있다.
본인은 오랜 고민 끝에 서울 둘레길은 더 가지 않고 정상· 삼육대 방면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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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철책이고 울타리고 뭐고 다 없어지고 산행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고 본인은 삼육대 방면으로 하산했다. 그러자 여기부터는 삼육대 사유지임을 알리는 표지판과 각종 울타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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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산 정상은 바로 저기이다. 북한· 수락산처럼 얘도 꼭대기 부근은 온통 바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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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삼육대 캠퍼스 안에 있는 그 유명한 '제명호'라는 인공 호수이다.
종교 계열 학교 아니랄까봐, 곳곳에서 금주 금연 강조하고 성경 말씀이 걸려 있고 "거룩한 안식일에 드리는 예배에 등산객 여러분도 초대합니다" 이런 표지판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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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육 대학교 백주년 기념관의 모습. 삼육 대학교 캠퍼스를 구경한 건 이번이 난생 처음이었다.
비록 불암산 자체는 별로 높게 오르지 않고 등산을 짤막하게 마쳤지만 작년에 갔던 곳과 중복되지 않는 구간만 다닌다는 목표는 달성했다.

천장산 기슭에 의릉이 있는 것처럼 여기 근처에는 태릉과 강릉(?)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가 보지는 않았다. 그 대신 본인은 여기 근처에 있는 또 다른 낮은 산인 초안산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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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안산은 전철 1호선 녹천 역에서 내리면 코앞에 있다.
옆에 중랑천을 흐르는 동부 간선 도로가 원래는 강의 양 옆으로 상행과 하행이 달리는데, 여기 초안산 구간만은 부지가 없어서 전철 선로가 중랑천의 바로 옆을 지난다. 이 때문에 이곳은 동부 간선 도로도 폭이 좁아지기 때문에 병목과 정체가 발생하곤 했다.

도로의 확장을 위해 철도 선로를 이설하겠다는 계획이 거의 2000년대부터 나온 걸로 기억하는데 아직도 진행은 지지부진한가 보다. 그래도 여기 주변의 풍경이 가까운 미래에 바뀌기는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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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안산은 워낙 작고 낮은 산이며, 비슷한 체급인 봉화산처럼 등산로도 여기저기 많이 뚫려 있었다. 여느 산들처럼 어디에서 어디 지점까지가 수 km 거리가 아니다. 그냥 몇백 m만 설렁설렁 걸으면 된다.
원래는 산의 규모가 더 큰데 덕흥로라는 길을 내느라 둘로 쪼개진 듯하다(창동 주공 4단지 아파트, 생태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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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산치고는 정상 주변에 헬리패드도 있고 정자와 심지어 태극기 등, 메이저급 산의 정상에 있을 만한 시설은 다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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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초안산을 찾은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이것.
초안산에는 조선 시대 궁궐 내시, 양반, 서민 등의 무덤이 1000여 개 가까이 있다고 한다. 정상 근처를 보니 웬 묘비와 석상들이 여럿 보였다. 내가 지금까지 올랐던 다른 산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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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천 역에서 /자 모양으로 산을 남서쪽으로 가로질러서 하산했다. 역시 빽빽한 아파트와 빌라들이 나를 반겨 주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7/05/25 08:31 2017/05/25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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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여행

지난 설날 때 본인은 가족과 함께 당일치기로 강화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강화도는 민족 영산(?)이라는 마니산이 있고, 고려 시대에 나라가 몽골의 침략을 받았을 때 임시 수도였으며 1876년 강화도 조약의 장소이기도 해서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그러고 보니 팔만대장경도 지금이야 경남 합천군의 해인사에 있지만, 만들어진 곳은 강화도이다. 고려는 그야말로 "불심으로 대동단결"을 실천한 국가였음을 알 수 있다. 방대한 무게와 부피를 자랑하는 수많은 경전들을 그 시절의 교통 인프라 여건에서 섬-내륙으로 바다까지 건너면서 수송하는 것조차도 굉장히 큰일이었을 텐데 말이다.
과거에 신라에 유일하게 여왕이 있었고 여러 가문이 차례로 번갈아가며 왕위를 잇는 관행이 있었다면, 고려에는 저런 종교 배경의 특성상 말기에 신 돈 같은 비선실세(?) 승려도 존재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고려의 뒤를 이은 조선의 이념은 '숭유억불'이었다. 조선의 개국공신들이 보기엔 고려가 망한 것에는 타락하고 막장으로 치달은 정교일치 불교계의 책임이 커 보였던 것 같다.
뭐, 지금에 와서는 조선도 이미지가 바닥을 기며, 유교 역시 진작부터 꼰대(질)의 상징에  '유교탈레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같은 말이 나돌 정도로 평가가 최악이다. 뭐든지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고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걸 느낀다.

아무튼,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차를 몰고 서쪽으로 향했다.
서울 근교에서 자연을 벗하며 놀 만한 곳으로는 동쪽으로 남한강이 있는 양평, 혹은 북한강이 있는 가평· 춘천 방면도 생각할 수 있을 텐데 거기보다 더 색다른 곳을 찾다 보니 강화도로 의견이 쉽게 한데 모였다.

강화도는 면적이 300㎢가 넘고 생각보다 크더라. 시내와 대부분의 볼거리는 북부에 있는 반면, 마니산만 혼자 최남단에 있는 듯했다. 북부에는 강화대교, 남부에는 초지대교가 있어서 육지와 통한다. 서울에서 강화도 남부를 가는 건 인천 공항 가는 것과 비슷한 거리이고, 북부는 그것보다 거리가 살짝 더 길어지는 듯하다.
강화도로 가는 길은 올림픽대로 + 국도 48호선(북부) 또는 지방도 356호선(남부) 끝이다. 아주 직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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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산성. 강화도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유적이지 싶다. 안내문 표지판 말고 다른 시설은 없이 그냥 도심 속의 공원처럼 꾸며져 있었다. 주차 걱정 없는 시골이니 그냥 골목길 담벼락 아무데나 차 세우고 내려서 구경했다.
그러고 보니 고려 행궁도 지도상으로 근처에 있는데 거기에는 못 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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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돌하르방이 있다면 강화도에는 고인돌이 있다. 그나마 돌하르방은 훗날 유명세를 타서 레플리카가 만들어진 게 훨씬 더 많은 반면, 여기에 있는 고인돌은 옛날에 만들어진 레알이다.
접근하기도 편하게 딱 국도변에 넓은 들판과 함께 강화도 전체에서 가장 고퀄이라 여겨지는 고인돌이 놓여 있었다. 영국의 스톤헨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고인돌들은 딱히 식별 수단이 없으니 그냥 발견 순서대로 번호를 붙여서 부르는가 보다.

여기 주변에는 마침 강화 역사 박물관과 강화 자연사 박물관이라는 두 박물관도 있었다. 하지만 설 당일이 휴관이어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그나저나 '고인돌'은 안 그래도 영어로도 dolmen이라고 하는데 故人인지 '고이다+전성어미ㄴ'인지 어원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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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근리에 있는 고인돌을 하나 더 답사했다. 처음에 봤던 것보다는 크기가 약간 더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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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의 풍경은 사방이 온통 논밭 벌판이고, 그러면서 높이가 300m쯤 돼 보이는 낮은 산들이 종종 둘러져 있는.. 그런 형태였다. 산들은 정상에도 뭔가 정자나 군사 시설 같은 게 빠짐없이 세워져 있는 편이었고, 그게 지상에서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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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우리는 강화도의 최북단에 있는 평화 전망대로 갔다. 여기는 민통선 안이기 때문에 중간에 검문을 받고 출입증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연고지나 지인 초청이 없어도 되며, 사전 방문 신청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다. 모든 차량 동승자가 아니라 그냥 대표자 한 명의 이름과 연락처, 차 번호만 적으면 됐다. 내 경험상 국내 민통선 안의 출입 정책은 각 지역과 관할 부대마다 케바케였다.

우리나라 군사분계선은 대부분 높은 산지이며, 선 주변에는 DMZ라고 불리는 완충 지대가 있다. 그러나 군사분계선의 서쪽 끝은 그 특성이 내륙· 동부와는 극과 극 수준으로 다르다. 여기는 육지가 아니라 물이 그대로 군사분계선이고 양측 강변이 남방과 북방한계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기는 DMZ 같은 건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 대신 동부와는 달리 강안경계라는 게 있다. 한강이 서울 시내 구간만 해도 강폭이 1km 남짓한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에 육박하고 강북과 강남을 가르는데.. 강화도가 있는 한강 최하류로 가면 강폭은 2km에 달하며, 강남과 강북이 무려 남조선과 북조선을 가른다..! 군사분계선이 육지에서 강으로 바뀌는 경계를 보고 싶으면 강화도에 도달하기 전에 파주의 오두산 전망대에 가 보면 된다.

6· 25 때 우리나라가 지형상의 불리함으로 인해 서부는 오히려 있던 땅도 빼앗겨서 38선 이남, 한강 이남으로 후퇴하게 됐다. 이 때문에 서울이 북한과 더욱 가까워졌으며, 군사분계선이 저런 식으로 한강을 따라 형성되었다. 다대포 해수욕장까지 있는 낙동강 하구와는 달리, 한강 하구는 민간인이 접근 불가능한 영역으로 봉인되어 버렸다. 여기를 뱃길로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아라뱃길이라는 경인 운하를 나중에 또 만들어야 하게 됐다.

황해에는 강과 바다에 형성된 군사분계선 근처에 섬이 여럿 있다. 게다가 연평도나 백령도 같은 섬은 위도가 상당히 높고 북한의 본토와 더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남한 땅이다. 이건 북괴가 전쟁 당시에는 섬들을 점령할 해군력이 없었기 때문에 종전 후에도 남한 땅이 될 수 있었다. 휴전 직전엔 오히려 국군과 UN군이 북한 지역 위도의 다른 섬들까지도 몽땅 점령해 있었지만 휴전과 함께 철수했다.

이런 여러 이유로 인해 강화도를 포함한 그 일대의 섬들은 비록 다리가 놓였다 하더라도, 일반적인 육군 전방 부대가 아니라 상륙 작전을 염두에 둔 해병대가 주둔한다. 민통선 검문도 응당 얘네들 몫이다. 그리고 군용차도 일반적인 전차(탱크)보다는 수륙 양용 장갑차 같은 게 더 친숙하다.
아니, 우리나라 해병대 전체가 그냥 서부 전선의 전방 도서 지역을 지키라고 존재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병대는 훈련소와 자대, 본부도 후방인 포항이 아니면 전방인 황해 이렇게 딱 두 지역에만 있다.

옛날에 태평양 전쟁 시절처럼 섬을 땅따먹기 하면서 물과 육지에서 모두 작전을 수행하는 게 쉬울 리 없으니 해병대는 일반 육군 보병보다 전투력이 더 뛰어난 정예 병력으로 간주된다. 100% 지원자만 그것도 경쟁을 뚫고 들어갈 정도이며, 훈련 때 목봉 체조 같은 것도 육군이나 해군이 아닌 해병대만 한다. 다만, 그게 전투력과는 별 관계 없는 지나친 이빨과 마초이즘 기수놀이, 똥군기로 변질된 건 문제이긴 하다.

해병대 아니랄까봐 "빨간 배경에 노란 글씨"로 민통선 내 행동 주의 사항이 적힌 안내판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전망대 내부의 통제는 해병대의 이미지와는 달리 그리 빡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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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강 건너 펼쳐져 있는 북한 땅이다. 황해도 개풍군. 내륙처럼 남북의 DMZ 산림 없이 강 너머로 곧장 북한의 마을과 논밭, 건물, 심지어 사람까지 곧장 보이기 때문에 전국의 어느 전망대보다도 어떤 의미에서 북한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그것도 위도상 최남단의 북한 땅을 말이다. 이게 강화도에 소재한 전망대에서 얻을 수 있는 소득이었다. 그런데 저기는 북한의 입장에서 민통선 내부이지 않을까?

철원의 평화 전망대나 고성의 통일 전망대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안 보였고, 파주의 도라 전망대에서도 기껏해야 군인 극소수만을 봤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당장 빨간 점퍼를 입은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주택 담벼락을 서성거리는 두세 명의 사람 등 역대 전망대들 중 북한 민간인(군인이 아닌)을 제일 다양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같이 "북한 방면 사진 촬영 금지" 이런 통제도 없었다.

아, 물론 사람까지 보는 건 육안으로는 불가능하고 유료 망원경을 동원해서 봐야 한다. 이런 곳에서는 500원 투자할 가치가 있다.
저 멀리 세로로 선전 구호가 쓰인 걸로 추정되는 기둥도 있었는데 글자가 무엇인지는 아쉽지만 망원경으로도 제대로 식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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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봉우리의 이름이 제적봉이랜다. '적'의 한자가 enemy(敵)가 아니라 red(赤)이다. 즉, "공산당 빨갱이들을 제압하다"라는 뜻이다.
이름의 유래 설명에 따르면, '제적봉'이라는 이름은 박 정희 대통령의 개입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예전에 이 승만 대통령은 호수의 이름을 반공 컨셉을 넣어서 '파로호'(오랑캐들을 격파하다)라고 지은 적이 있는데, 이것과 무척 비슷한 심상을 형성한다. 조선 시대 얘기지만 '척화비'도 동일한 맥락일 수 있겠다.

이렇게 평화 전망대를 구경한 후, 우리는 교동도를 찾아갔다. 민통선 검문소는 교동대교보다 한참 앞에 있었다. 전망대에 갈 때와 비슷하게 간단한 출입 신청서만 작성하면 출입 허가는 곧장 나오며, 한번 출입증을 받으면 내 기억으로 2~3일 정도 교동도에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하다. 여느 민통선 구역처럼 해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통금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자정~새벽 4시 정도에만 출입을 자제하면 된다.

교동도는 2014년이 돼서야 다리가 놓였으며, 아무래도 주민 출입이 뜸하니 대교 주제에 도로폭은 겨우 2차선이었다(편도 1차선).
그리고 섬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농촌 마을일 뿐 어촌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는 게 인상적이었다. 해수욕장? 횟집? 그런 거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보안 때문에 바다로 나갈 수가 없으니까. 괜히 민통선 마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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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갔을 때는 교동도에 있는 커다란 '고구 저수지'가 온통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하늘의 색과 바닥의 색이 거의 동일한 게 무슨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을 보는 듯했다. 썰매를 타고 놀고 싶었다.

교동도를 한 바퀴 도니 날이 슬슬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래도 강화도까지 왔는데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마니산을 어귀는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에 남쪽으로 향했다.
정상의 참성단까지 가는 길은 서울 남산처럼 흙길 등산로와 계단 등산로가 모두 닦여 있는 듯했다. 등산은 차마 못 하고 돌아왔지만 여기도 마치 제주도 한라산이나 성산 일출봉을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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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산악인은 대자연에 동화되어야 한다. 자유· 평화· 사랑의 참 세계를 향한 행진이 있을 따름이다"
아이고 이거 무슨 예비 의료인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라도 하는 것 같다. 등산을 이렇게 거창하게 윤색해 놓은 시는 난생 처음 본다. =_=;;

나중에 강화도를 다시 찾아오는 건 결혼하고 애까지 동반한 뒤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짧은 시간 동안 강화도에서 의미 있는 여행을 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Posted by 사무엘

2017/04/22 08:33 2017/04/2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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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앵봉산· 봉산

서울 북서쪽의 은평구에는 동쪽으로는 북한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서울과 고양시의 경계 병풍 역할을 하는 길다란 언덕? 산?이 있다. 높이가 200여 m 남짓밖에 안 되니 등산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그냥 공원· 산책로에 가깝다.
정상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그냥 대놓고 횡단· 종단에 의의를 둬야 한다. 또한 산기슭은 온통 건물들이 들어서 있으며 등산용품 매장이나 유원지 같은 걸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저기는 전형적인 동네 뒷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봉우리엔 북쪽에서부터 남쪽 순으로 앵봉산· 봉산· 수색산이라고 이름이 붙어 있다. 본인은 지난 한겨울에 저기를 다녀 왔다.
서울 시내 등산을 다니면서 본인은 한양도성, 북한산성 등 산과 관련된 여러 유물, 제도, 순환 관광 코스들에 대해 알게 됐다. 저기를 답사하면서 이번에는 '서울 둘레길'에 대해서 이제야 드디어 확실하게 감을 잡았다.

예전에 북한산이나 아차산을 오를 때도,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아니라 능선이나 중턱에 이상한 길이 나 있는 건 지도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들이 다 한데 이어져 있고 서울시에서 비교적 최근에 작정하고 일관된 시스템으로 '둘레길'이라는 걸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는 건 처음으로 알게 됐다. 공식 홈페이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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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나름 지리 공부도 되고 나쁘지 않은 발상인 것 같다. 높은 산들은 그냥 중턱에만 길이 나 있고, 앵봉산· 봉산처럼 낮고 긴 산은 정상 능선이 경로이다.
서남부는 산이 없는 관계로 예외적으로 안양천을 따라 길이 나 있다. 그러니 옛날에는 산을 피하느라 경부선 철도도 영등포로 우회하는 형태로 놓인 것이지 싶다.

이런 의미를 두고 서울 지하철 3호선 구파발 역에서 내려서 먼저 앵봉산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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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와 정자, 체력 단련 시설이 나오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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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참호 같은 군사 시설도 등장했다.
안 그래도 답사 당시 날씨가 몹시 추웠는데 저 참호 안에 들어가서 한숨 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저기 안은 왠지 따뜻할 것 같았다.
한겨울엔 땀이 안 나는 대신 콧물이 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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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산의 건너편은 초록색 펜스로 가려졌다. 군사 시설 때문은 아니고, 건너편에 서오릉이 있어서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이다. 이 점에서는 의릉 때문에 펜스가 쳐진 서울 천장산과 사정이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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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딱 한 군데 전망대가 있기도 해서 풍경 사진을 남길 수도 있었다. 여기 말고 다른 곳은 온통 나무가 우거져서 산 아래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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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는 이렇게 텔레비전 송신탑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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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펜스의 색깔이 잠시 검정으로 바뀌기도 하다가 다시 초록으로 복귀하면서 내리막이 이어졌다.
나중엔 울타리와 산책로도 없어지고 흙길이 나오다가 서오릉로와 합류하는 걸로 앵봉산 구간이 끝났다. 여기까지 3km가 넘게 좀 걸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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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들이 다니는 서오릉로를 횡단하면 봉산 구간이 곧장 나온다.
이 공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차를 세워 놓기에 안성맞춤인데 여기는 딱히 차 끌고 방문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게 딜레마이다.
참고로, 답사 당시에 저기는 길이 온통 빙판으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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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도 정상(?)이라고 불리는 곳에는 정말 금방 도달할 수 있다. 꽤 넓은 공터가 닦여 있으며, 전망대와 정자, 그리고 봉수대 모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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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건너편에는 비슷한 높이의 언덕인 망월산이 있고, 망월산과 봉산 사이에 '고양 향동 공공주택 지구'라는 이름으로 한창 공사판이 벌어진 게 보였다. 몇 년 뒤면 저기도 온통 아파트들이 빽빽하게 들어서게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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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높이가 대략 어떻고 산기슭이 어떤 분위기인지는 위의 사진 한 장으로 대략 설명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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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지난 뒤에도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이런 식으로 길이 계속 이어졌다.
산이 자연스럽게 끝날 때까지 증산· 수색 방면으로 계속 가고 싶었지만, 시간과 보급의 한계로 인해 서울 시립 서북 병원쯤에서 하산을 결정했다. 내려가는 길이 온통 미끄러운 빙판이 돼 있어서 다니기가 몹시 힘들었다.

최종 하산 지점은 봉산을 정면으로 관통하여 서울과 고양시를 잇는 터널 근처였다. 이건 작년 여름 시점의 로드뷰를 봐도 아직 미개통 상태였을 정도로 정말 최근에 뚫린 터널인 것 같았다.
국도 1호선 증산로 방면으로 한참을 걸은 뒤, 최종적으로는 새절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다. 비록 산의 절대적인 높이는 낮은 편이지만 여느 산을 오를 때와 비슷한 시간 동안 총 7km가 넘게 걸은 것 같다.

산 너머로 그린벨트 마을 같은 게 있었으면 고양시 쪽으로 하산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저쪽은 공사판이고 볼 게 없어서 도로 서울 시내 방면으로 하산하게 됐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본격적으로 '서울 둘레길'이라는 컨셉으로 북한산 쪽도 돌아다녀 보고 이곳의 완전 반대편인 동부의 일자산 쪽도 가고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7/04/19 08:34 2017/04/1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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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수락산

2016년은 내 평생 등산을 제일 많이 간 해였다. 서울 근교에 있는 20여 개의 산을 일일이 답사했다.
그 뒤 한동안 바빠서 등산을 못 하다가 모처럼 시간을 내어 수락산을 다시 도전했다. 이번엔 인서울인 수락산, 당고개 다음으로 장암 역(= 의정부)에서 올랐으며 예전과는 달리 물론 정상에 도달했다. 정상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산 건너편으로 넘어가면서 몇 시간 동안이나마 좋은 추억을 만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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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은 국립공원이 아니니 북한산· 도봉산처럼 탐방 지원 센터나 각종 출입 금지 구역 같은 건 없다. 등산로도 더 다양하게 열려 있었다. 그래도 그린벨트 구역, 문화재 보호 구역 같은 건 있었다.
장암 쪽에서 접근하는 등산로에는 각종 산장 식당들을 외에도 '노강서원'과 석림사가 있었다. 석림사까지 지난 뒤부터는 흙길 등산로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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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계곡 쪽 등산로만 골라서 올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수락산은 '물'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어지간한 산들은 계곡이 있어도 특히 한겨울엔 가뭄을 버티지 못하고 바짝 말라 있기 십상인데.. 수락산은 곳곳에서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이웃의 북한산에도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긴 하다. 하지만 거기는 다 자연 보호를 명목으로 출입이 금지돼 있으며 눈으로 구경만 가능하다.
서울 근교에서 수락산처럼 출입금지도 아니면서 이 정도로 고퀄 대규모의 계곡과 물웅덩이가 존재하는 산은 본인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난 물에 들어가서 노는 걸 아주 좋아한다. 추워서 두꺼운 외투를 입은 상태였지만 옷 벗고 물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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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폭포 옆으로 나란히 등산로가 조성돼 있기도 했다. 시기가 시기이니 산은 온통 낙엽으로 뒤덮여 갈색으로 변했다.
여름과 가을의 초록색이 시각적으로 더 좋긴 하지만, 그래도 등산자의 입장에서는 덥지 않은 동계 산행이 다른 계절 산행보다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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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올라서 한 봉우리의 능선에 진입하자 주변 전망도 얼추 보이기 시작했다. 수락산도 단순한 흙산이 아니며, 높은 부분은 화강암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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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뿌옇고 흐렸다. 그래도 아래로는 도봉 차량 기지가 보이고, 저 멀리는 도봉산이 분명하게 보였다.
수락산은 가끔 굉장히 가파른 계단을 타고 바위를 오르는 곳이 있었지만, 도봉산이나 북한산만치 험하게 손으로 뭘 잡고 올라야 하는 건 없었다.
(아, 검색을 해 보니 수락산도 '기차 바위'인가 여기는 줄을 잡고 바위를 타야 하는 험한 구간이 있다고 한다. 단순히 내가 거치지 않았을 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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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상 능선에 도달했으며, 거의 다 왔다. 정상은 불과 2~300m밖에 남지 않았다. 정상의 반대쪽으로 가면 일명 '기차 바위'에 도달하는데, 난 거기로는 가지 않았다.
고도가 더 올라가니 도봉산 역과 장암 역이 나란히 보이는 지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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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수락산 정상이다. 오르는 데 역시 2시간 정도 걸렸다. 해발 637m라니 검단산이나 예봉산보다 약~간만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태극기가 펄럭이고 안내문이 쓰여 있는 저 바위 위로는 도대체 올라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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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체없이 하산을 시작했다.
남쪽으로 계속 진행했으면 인서울인 수락산 내지 당고개 역 방면으로 하산하거나, 또 방향을 꺾어서 불암산으로 산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본인은 산을 횡단하는 게 목적이었기에 남양주 청학동 방면을 선택했다.
여기는 군데군데 눈이 덜 녹은 흔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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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장을 하나 지나자 '내원암'이라는 웬 절간 내지 암자가 나왔다.
수락산은 성곽이나 봉수대 같은 건 없지만 서원이나 절 같은 옛날 스타일 건물이 등산로 바로 옆에 종종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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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덩이의 물이 참 탐스러웠다.
별도로 사진을 첨부하지는 않지만, 수락산은 약수터도 잘 돌아가고 있었다.
어지간한 산들은 약수터 자체가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물이 고갈됐거나 더러워서 식음 불가 상태인 반면, 여기서는 마실 수 있는 물이 나오는 약수터가 몇 군데 있었다. 더워서 땀을 흘리는 상태는 아니지만 목이 좀 말랐는데 등산 당시 꽤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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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렇게 바위도 하나 타고.. 하지만 철봉과 발받침이 있으니 딱히 힘들거나 위험하지 않았다.
그 뒤 하산을 계속하니까 흙길이 점점 폭이 커지고 전깃줄과 전봇대가 보이고 건물들과 차량까지 보이면서 계곡과 등산로는 유원지로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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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렇게. 계곡을 반쯤은 운하처럼 바꿔 놓은 것 같다. 한여름 장마철에 가게들이 영업을 하고 피서객들로 북적이는 모습을 한번 보고 싶다.
다만, 그린벨트 구역에서는 건물을 무단 증축하는 건 물론이고 계곡 근처에다 함부로 정자 같은 걸 만들어 놓고 "우리 식당 이용할 사람들만 근처 물가에서 노셈" 이러는 것조차도 원래 다 불법이다. 사유지 드립을 치지만 걔네들도 이미 법을 어기고 있긴 마찬가지다. 피서철만 되면 이런 게 뉴스에 종종 보도되나, 생계형 잡범형 불법 행위라고 해서 단호하게 근절되지도 않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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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지를 빠져나오니 드디어 시내버스가 다니는 찻길이 나왔다. 그래도 길이 별로 크지 않고 여전히 오지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나는 이런 느낌이 좋다.
예전에 갔던 도봉산에서는 완전히 건너편으로 넘어갔으면 양주시 송추 유원지 근처에 도달했을 텐데, 거기서는 대중교통으로 서울로 돌아오는 게 애로사항이 꽃폈지 싶다.
하지만 여기는 다행히 당고개 역까지 가는 남양주 소속 시내버스가 다니기 때문에 별 어려움 없이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꼬불꼬불 비탈길(순화궁 고개?)을 타고 덕릉 예비군 훈련장을 지나는 게 인상적이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등산을 마치고 나자 드디어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서울 지하철 7호선 종점에서 내려서 등산을 시작해서는 4호선 종점으로 돌아왔다.
수락산에 대한 총평은.. 산 이름이 괜히 '수락산'(물이 떨어진다?)으로 붙은 게 아니구나 싶었다. 예전에 수락산을 올랐을 때는 이런 면모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
일찍 가서 자리만 맡아 놓으면 차를 생각보다 높은 고도까지 몰고 갈 수 있으며 주차도 별 문제 없어 보였다. 의정부 쪽이나 남양주 쪽 모두 말이다. 왔던 곳으로 되돌아온다면야 차를 가져가는 데 문제가 없지만 이번에는 편도 동선이었으니 부득이 차 없이 뚜벅이 산행을 했다. 나중에 여름에 피서를 위해 수락산에 다시 가 보고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7/03/27 08:36 2017/03/2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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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부에서 동쪽 북부까지 늘어선 산들을 살펴보면 북악산 - 북한산 - 도봉산의 순이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쯤만 해도 본인은 북악산과 북한산의 차이도 몰랐는데 등산 많이 하면서 서울 지리 지식이 참 많이 늘었다. 북한산과 도봉산의 사이에 있는 것이 '우이령 고갯길'이며 본인은 거기도 갔다 와 봤다.

북한산은 서울 주변의 여러 산들과 비교했을 때 워낙 거대하고 등산로가 많은 산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난번에 갔던 정릉-백운대-우이동보다 더 서쪽으로 가서 형제봉· 문수봉 일대를 오른 뒤, 평창· 구기동 일대로 하산하는 경로를 짜서 북한산을 올랐다.

본인은 예전에 북악산을 북동쪽으로 종단해서 국민 대학교 방면으로 하산한 적이 있었다. 계속해서 북한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근처에 존재한다는 것까지는 그 당시 확인했지만, 시간과 체력 문제 때문에 더 진행하지 않고 귀가했었다.
그때 더 가지 못했던 길을 이제야 다시 찾아가서 개척하게 됐다. 지하철 길음 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국민 대학교로 러쉬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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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가 대중적으로는 홍대만큼이나 미대가 유명한 걸로 본인은 알고 있다. 뭐, 주변에 애들 놀 곳이 차고 넘치는 홍대에 비해, 북악산과 북한산 사이의 산기슭에 자리잡은 국민대는 위치와 분위기 차이가 많이 나긴 한다. 국민대는 놀기 좋은 위치가 아니라 등산 가기 참 좋은 위치에 있다.

그리고 본인 개인에게 국민대의 인지도는 강 승식 교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어 형태소 분석기를 연구· 개발하고 있는 컴퓨터공학과 교수여서 말이다. 아,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만나 보고 아는 사이는 아님.
2010년대부터는 U-tagger라는 걸출한 작품 때문에 울산대가 국어 정보처리 경진대회에서 상을 연달아 휩쓸기도 하면서 이 바닥의 막강한 경쟁자로 등극해 있긴 하다. 거기는 주 개발자인 박사 출신 학생은 들어 봤지만 교수님은 누군지 잘 모르겠다.

이런 잡생각을 하다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온다. 국민대 정문을 지나서 더 북쪽으로 가면 사진과 같은 터널이 보이며, 사진 기준 오른쪽에 공터와 함께 등산로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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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몇 차례 언급했듯, 북한산은 평범한 산이 아니라 국립공원이다. 그래서 입구에 이런 간단한 초소가 있고 밤에 '통금'도 존재한다. 하지만 저 초소는 안이 잠겨 있고 근무자는 없었다.

국민대 근처에 있는 등산로 출입구의 명칭은 '북악공원 지킴터'이다. 여느 등산로 입구처럼 '탐방 지원 센터'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는 않다. 아마 '탐방 지원 센터'보다는 더 간소화된(?) 시설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바로 옆에 대학교가 있다 보니..;; 네임드급 산의 등산로 출입구라고 해서 식당과 등산용품 매점이 즐비하다거나 하지는 않은 것도 이색적이었다.

아, 등산 당시의 개인 근황과 관련된 중요한 사실을 지금까지 얘기를 안 했구나.
본인은 지금까지 거의 모든 등산을 꼭두새벽이나 그에 준하는 매우 이른 아침에 해 왔다. 조금이라도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등산은 점심 시간이 지난 오후 2시 무렵에 시작했다. 그 이유는 이 등산은 평범한 정규 스케줄에 근거해서 진행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4년 반이 넘게 아무 탈 없이 잘 썼던 맥북이 아무 징후도 없다가 하드디스크 케이블의 노후화로 인한 인식 + 부팅 불가라는 중대한 기능 고장을 최초로 일으켰다. 교체 부품을 주문해서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당일 즉시 수리는 안 되었으며, 컴을 얄짤없이 며칠 맡겨야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애플 공인 서비스센터는 무슨 삼성이나 LG전자 서비스센터처럼 곳곳에 많이 있지 않다. 회사와 가까운 분당 소재의 센터들은 아이폰만 취급하지 컴퓨터의 수리는 되지 않아서 서울 센터들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 며칠간 날개셋 코딩은 어차피 못 할 텐데, 맥북 없이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그 동안 몰아서 미리 처리하는 쪽으로 개인 스케줄을 재조정했다. 그래서 오전에 서비스센터를 들렀던 당일의 오후에 등산을 급히 가게 된 것이다. 본인은 노트북 PC의 고장에 대비해서 이런 식으로 시간 손실을 최소화하는 Plan B 전략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이 날은 낮 기온도 10도가 안 될 정도로 매우 추웠던 덕분에 한낮에도 무더위 걱정 없이 높은 산의 등산이 가능했다. 단지, 낮이 매우 짧아져 있어서 등산 시간에 제약이 심했던 게 아쉽다. 오후 2시도 정말 아슬아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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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공원 지킴터'의 등산로는 이런 모양으로 시작되었다. 오르막이 계속됐다.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마지막으로 등산을 갔을 때보다 단풍은 더욱 진행돼 있었다.
나중에 갈림길이 몇 번 나왔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북악산이나 정릉 탐방 지원 센터 방면으로 빠지지 않게 주의했다. 나의 목표는 '형제봉 + 대성문'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기에는 심곡사· 영불사라는 절을 찾아가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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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특유의 울타리 쳐진 흙길과 문명화(?)의 흔적은 영불사까지가 끝이었다. 그 뒤부터는 여느 산처럼 숲이 우거지고 비좁고 가파른 산길 산행이 시작됐다. 해발 287m에, 대성문까지 약 2.5km가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난 지 얼마 안 됐다.

여기서 능선에 도달할 때까지는 별다른 볼거리가 없었다. 전망대나 계곡이나 특이한 자연· 인공물 같은 거 없고, 묵묵히 산을 오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중간에 형제봉에 근접했으며 거기로 가는 갈림길도 있었지만 본인이 못 보고 그냥 지나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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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일말의 전망대 비슷한 바위가 나왔다. 여기서는 전망이 훤히 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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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울타리 쳐진 흙길이 나왔다. 여기는 벤치 하나 없고 전망대가 있는 것도 아닌데 공간이 굉장히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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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더 올라간 뒤에야.. 드디어 첫 목적지인 북한산성 대성문에 잘 도달했다.
예전에 정릉에서 북한산을 올랐을 때는 보국문에 도달한 뒤 동쪽의 대동문 쪽으로 갔다. 이번에는 보국문의 서쪽인 대성문에 도달한 뒤, 또 서쪽의 대남문으로 갔다. 여기 고도는 이미 620m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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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국-대동과는 달리 대성-대남은 거리가 무척 짧은 편이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잠시 하강만 하면 곧 대남문이며, 성곽 전방의 저 봉우리는 그 이름도 유명한 문수봉 정상이다.
허나, 등산을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시간상의 한계(이미 오후 3시가 다 돼 감), 그리고 어차피 성곽을 따라 그대로 오르지도 못한다는 이유(안전상의 문제로 우회 등산로 이용) 때문에 본인은 문수봉은 가지 않았다. 그냥 이 사진만으로 만족한 뒤, 대남문에서 하산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는 그게 바람직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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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대남문이다. 벌써부터 태양의 고도가 극도로 낮아지는(= 날이 저묾) 게 티가 난다. 이러면 찍은 사진의 색감과 명도· 채도도 별로 안 좋고 특히 역광은 감당할 수가 없어서 풍경 사진 남기는 데는 큰 악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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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문에서 구기동 방면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저기까지도 대략 2.5km 정도라고 한다. 처음에는 통나무 계단이 있었지만 그게 끝난 뒤부터는 흙길이 아니라 돌길이 굉장히 길게 지겹도록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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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길은 언제부턴가 계곡으로 바뀌었다(구기 계곡). 산 중턱에는 계곡을 건너는 다리도 몇 개 있었지만 물은 바짝 말랐거나 고인 웅덩이 형태로만 있었다. 하지만 아래로 계속 내려가자 그래도 나름 흐르는 맑은 물이 몇 군데 있었다.
해수욕장뿐만 아니라 이런 계곡에서 물놀이 하는 것도 좋다. 물론 국립공원들은 계곡이 죄다 민간인 출입 금지이기 때문에 저것들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추워서 콧물이 나고 손이 시려운 지경인데도 본인은 물놀이 생각을 하면서 산을 내려갔다. 몸은 별로 안 추운데 손가락 같은 말단은 어쩔 수 없이 추위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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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 탐방 지원 센터를 지나서 드디어 하산을 마쳤다. 서울 종로구 산기슭 그린벨트 지대에 이렇게 땅밟기를 하게 됐다. 여기엔 정치인들이 많이 산다는데...

버스가 다닐 정도의 큰길에 도달하니 '현대'라는 이름이 붙은 아파트도 아니고 3층짜리 벽돌 빌라가 있었다. 이건 물론 고도 제한 때문에 건물을 저렇게 지은 것이지 싶다.
지도를 보니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이북 5도청'이 여기서 불과 몇백 m, 버스 한두 정거장 남짓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5km가 넘는 산길을 다니고 와서 다리에 근육통을 호소하는 상태에서 선뜻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또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풍경 사진을 찍기에는 이미 날이 많이 춥고 어두워져 있었다.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귀가했다. 이북 5도청을 일부러 안 찾아가고 하산길에 자연스럽게 구경하려면 구기보다 더 서쪽의 비봉 탐방 지원 센터 방면으로 하산했어야 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구기 터널과도 꽤 가까이 있었다. 거기를 지나면 이미 지하철 3호선과 6호선이 나오는 은평구가 나온다.

이북 5도청을 구경하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한국 고전 번역원은 버스 차창 밖으로 잠시 구경했다. 조선 왕조 실록은 전산화와 번역이 완료됐지만 그보다 분량이 더 방대하고 디테일한 승정원 일기는 여전히 완역이 요원한 상태라고 한다.
한편, 북한산은 비록 서울 북부의 확장을 가로막는 지형 장애물이긴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덕분에 나름 군사· 안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고 또 시민들에게 굉장히 좋은 휴식처 역할도 한다는 게 느껴졌다.

북악산, 인왕산, 남산 (, 그리고 낙산)에 있던 성곽은 한양도성이다. 그러나 북한산에 있는 성곽은 북한산성이며 성남 쪽의 산엔 잘 알다시피 남한산성도 있다.
남한산성 일대는 6· 25 때 부산이 그랬고 고려 시대 때 강화도가 그랬던 것처럼 유사시에 임시 수도 역할을 할 수 있게 행궁이 있다. 저긴 워낙 천혜의 요새이기 때문에... 실제로 병자호란이 치러졌으며 지금은 도로가 닦여서 안에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고 심지어 마을버스까지 다닌다.

그 반면 북한산성은 발로 힘들게 등산을 하지 않으면 접근할 방법이 없으며, 군사 목적으로 건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여기서 전쟁을 치른 내력이 없다.
그러니 북한산성은 접근성이 좋은 한양도성과, 역사 내력과 유적이 풍부한 남한산성에 밀려서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없는 것 같다. 남한산성과 비교했을 때 마치 북극과 남극, 그리고 지구형 행성과 가스형 행성의 차이를 보는 것 같다.

또한, 남한산성은 거기 유적지 일대만 도립공원인 반면, 북한산성은 그냥 산 전체가 통째로 국립공원이니 격이 차이가 있다. 뭐, 유적지 때문이 아니라 자연 환경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2/12 08:36 2017/02/1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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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partan10 2017/02/18 22:06 # M/D Reply Permalink

    우왕! 등산 다니시는군요! 저도 예전에 잠깐 동네 뒷동산..이라 하기는 뭐하지만 ㅋ; 문학산 이라고 나름 괜찬아서 한동안 등산 다닌적 있었는데 ㅎ 요 몇년새에는 자전거에 빠져서 어제도 두시간 타고오고 오늘도 세시간 넘게 타구왔네요 ㅎㅎ 등산도 물론 좋지만 자전거도 한번 추천드려 봅니다~ (글을 몇개 안봐서 자전거도 즐기시는지는 잘 모르겟네요~.~ 안타신다면 자전거도 강추!! 다만 항상 안전조심하셔야 해요 안전제일~.~ 자전거 조심 안하면 은근히 사고 많이나는것 같더라구요 봄철 자전거시즌만 되면 관련 기사들 많이 뜨던뎅; 조심 또 조심!)

    1. 사무엘 2017/02/19 02:32 # M/D Permalink

      네, 작년(2016)은 제가 태어나서 산을 제일 많이 오른 해입니다. 신체 활동 중에 그나마 등산에 재미를 붙여서 서울 시내의 산들 대부분을 오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올해에는 성남 일대에 몇 곳 더, 그리고 서울에서는 둘레길 위주로 가려고 계획해 놓은 산이 있습니다.

      spartan10 님께서는 인천에 사시거나 사셨나 보군요. 저도 거기 살았으면 문학산을 당연히 갔겠습니다. ^^
      그리고 자전거는 여가· 레포츠용보다는 지하철역에서 회사 사이의 출퇴근용으로 일상적으로 2~3km 남짓 타고 있답니다. 저도 자전거 좋아해요.

  2. spartan10 2017/02/18 22:08 # M/D Reply Permalink

    그나저나 항상 올때마다 느꼈던 거지만.. 역시 용묵님은 아직도 포스팅을 정성스럽게 하시네요! 항상 보기좋고 존경?스럽습니다~^^ 저도 작년인가 한번 블로그 해보려 잠깐 만져본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빡시고 귀찬?기도 하고 정성이 많이 필요한 일이더라구요 그것도 꾸준히 한다는게.. 뭐 뭐든일이 다 그렇겠지만 처음 적응기간에는 그렇지만 어느정도 적응이 되고 습관이 되고 난 후에는 괜찮겠지만서도.. 쨌든 전 잠깐 해보다 gg쳤다는~.~ 블로그 하시는분들 대단!!

    1. 사무엘 2017/02/19 02:33 # M/D Permalink

      사실 그렇긴 해요. 코딩만큼이나 블로그질 글쓰기도 시간 많이 잡아먹는 일이죠. 하지만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가 글 쓸 거리가 있고 성취감을 느끼는 일이니 어쩌다 보니 몇 년째 계속하게 됐습니다.

      언제까지 이 블로그에 글이 2~3일 간격으로 꾸준히 올라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만약 예약분까지 몽땅 고갈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옛날 글과 새 글을 교대로 다시 올리면서 블로그 구조를 또 총체적으로 개편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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