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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교회 지인과 헤어진 뒤에는 서울로 돌아가면서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경기화학선 내지 항동 철길이라 불리는 그 선로를 거의 전구간 농로를 따라 차와 도보로 답사했다. 마음 속 오랜 숙원을 이뤘다.

그 철길은 오류동에서 시작해서 서울 항동과 부천 옥길동을 경유한 뒤 선로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하나는 부근의 '경기화학(현재 KG케미칼.. 울산 온산 공단 소재)'이라는 공장으로 가는 걸로 끝나고, 다른 하나는 시흥의 경기 자동차 과학 고등학교 부근까지 더 내려가서 7578부대(육군 3군수지원 사령부)의 뒷문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부천 옥길동 일대가 아파트 건설 부지로 개발되면서 경기화학 공장과 해당 선로는 흔적도 없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공장 부지는 대략 2017~18년부터 '부광로'라는 넓은 도로로 바뀌었다. 본인은 도로 공사가 시작되고 있을 때 현장 근처를 간신히 방문했던 적이 있다. (☞ 3년 전 글)

다른 사람들의 과거 답사기들을 검색해서 읽어 보면, 2015~2016년까지만 해도 매주 목요일 아침 또는 심야에 하루 한두 번꼴로 관련 시설(군부대 or 공장??)을 드나드는 열차가 아주 천천히 조심해서 통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젠 그런 거 없고 저 선로는 이미 녹슬고 잡초가 무성하며.. 거의 교외선과 비슷한 준 폐선 상태이다.

그나마 서울 항동 구간은 유명해서 공원 산책로로 바뀌기라도 했지만, 시외 구간은 선로가 언제 철거될지 모른다. 그러니 아직 선로가 남아 있을 때 방문해서 기록을 남겨 두는 건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참고로, 여기 말고 인서울에 폐철길이 수백 m 이상의 유의미한 산책로 형태로 꾸며진 곳은 구 경춘선 성북-화랑대 구간밖에 없을 것이다. 용산선 지상 구간도 얼마든지 철길 공원으로 꾸며질 수 있었을 텐데 그리 되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
그리고 서빙고 역에서도 차도를 가로지르기까지 하면서 인근의 미군부대 내부로 들어가는 지선 철길이 있긴 하지만.. 그건 길이가 너무 짧아 보인다.

한국어 위키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경기화학선은 생각보다 옛날인 1960년대에 만들어져서 꽤 오랫동안 열차가 다녔다고 한다. 서울 밖에서 얘의 선형은 목감천과 얼추 비슷하며, 시흥(과림동)과 광명(노온사동)의 경계나 마찬가지이다.
본인은 광명 능촌교에서 북쪽 노온사교까지 약 1.5km 구간, 그리고 시점(항동..)과 종점(군부대) 부근은 걸어서 왕복 답사했고, 나머지 구간은 차를 몰고 따라가면서 주요 구간만 촬영하는 식으로 답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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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은 도보 답사를 하며 촬영한 주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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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종점 부근에 와서는 선로가 주변의 도로보다 높이가 약간 더 높아졌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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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커브를 틀고는 군부대의 뒷문 안으로 들어갔다. 보다시피 종점 근처는 선로의 상태가 저 북쪽보다 더 양호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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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북쪽으로 농로를 따라 차를 몰면서 선로의 궤적을 추적했는데.. 어떤 곳은 위의 사진과 같이 풀숲으로 뒤덮혀서 상태가 극도로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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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선로가 차도보다 고도가 낮아졌고.. 아예 빗물에 침수되어 있는 안습한 구간도 딱 한 번 등장했다. 여기에 열차가 다시 다니려면 노반 정비를 많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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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 vs 광명이 아니라 부천 구간으로 들어서자 철길의 선형이 차도와는 평행이 아니라 수직으로 따로 놀기 시작했으며, 근처에서 차로 나란히 이동하면서 선로를 추적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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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가 바로 경기화학 공장 방면과 군부대 방면의 선로가 갈라지는 지점이었던 흔적이다. 매우 중요하다. 부천 옥길동 연동로159번길 소재.
이곳은 여행 당시에 미처 들르지 못해서 추후에 재답사하여 풍경 사진을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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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서울에 도달했으니 이 철길의 항동 구간을 또 답사했다. 5년 전에도 여기를 들른 적이 있었지만(☞ 그 시절 기록), 빌라촌이 끝난 뒤에도 철길이 저렇게 계속 이어지는 것은 그때도 발견하지 못했었다. 오류동 역보다도 7호선 천왕 역에서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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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이렇게 항동이라는 가상의 임시 승강장까지 꾸며 놓았다. 그리고 벤치도 열차 궤도를 둥글게 말아 놓은 기발한 모양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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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길은 이어지고.. 이것으로 본인의 여행도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안양, 안산, 시흥, 인천, 화성, 수원, 광명, 부천 등..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서울 동부는 상수원 보호 명목으로 산과 강이 발달해 있고, 서남부는 그런 건 좀 덜하지만 동부보다 철도 관련 볼거리가 확실히 더 많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신도시가 만들어지는 곳에는 어디든 공원도 참 기가 막히게 잘 꾸며 놓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수서 역 주변의 율현 공원을 보고도 무척 놀랐던 적이 있다.
이번 여행 중에도 미처 들르지 못한 공원을 도대체 몇 개를 발견했나 모르겠다. 그만치 세상은 넓으며, 인적 드물고 노숙할 만한 곳도 넘쳐난다는 걸 느꼈다.

끝으로 문득 든 생각인데.. 내 것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차량 내비 지도에는 여느 인터넷 지도와 달리, 철길이 표시돼 있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몹시 불편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역만 나와 있지 역과 역을 잇는 선분이 없다.
애마를 철도 답사 용도로 많이 활용하는 사람으로서 이건 작지 않은 애로사항이라 하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0/10/07 08:37 2020/10/0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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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수인분당선은 이제 역이 무려 60개를 넘는다. S자 모양으로 늘어진 노선도가 압박스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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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시간대이지만 열차 안엔 나처럼 카메라 들고 기웃거리는 아재들이 제법 있었다. 뻔할 뻔 자.. 철덕은 다른 철덕을 알아본다. ㄲㄲㄲ 심지어 뉴시스이던가 기자양반도 한 명 탑승해서 승객을 인터뷰했다.

  • 이번에 새로 개통한 수인선 구간은 사리-야목-어천-오목천-고색 이렇게 5개역이다.
  • 여기는 행정구역이 대부분 화성이며, 수인선 전체를 통틀어 가장 한적한 구간이다. 괜히 제일 늦게 개통한 게 아니다. 경부선 평택 이남, 중앙선 양평, 경강선 광주-이천, 경춘선 구간과 성격이 비슷하다.
  • 한적한 구간에 걸맞게 거리 대비 역수는 적은 편이며, 선로가 정말 반들반들하고 승차감이 좋았다. 전동차가 전속력 최고 출력으로 밟느라 웅~ 소리가 강하게 날 때는 뭔가 터보프롭 비행기 엔진 소리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 수원 근처의 오목천과 고색만 지하이고, 나머지는 지상이다. 하지만 지상 구간도 중간에 지하 터널을 잠시 통과하기도 한다.
  • 어천-오목천 사이에는 군부대를 지나고 경부고속선 선로와 만난다.
  • 고색은 지하이지만 분당선 오리처럼 승강장이 쌍섬식이다. 수원을 대신하여 중간 회차· 종착역 역할을 담당시키기 위해 여분 선로를 만든 것이다.
  • 남동인더스파크 역은 화물 취급을 염두에 두고 넓은 부지에다 선로도 여러 개 확보해 놨지만.. 현재로서는 화물 취급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 남동인더스-원인재 사이에 승기천을 건너는 구간에도 달월-소래포구와 마찬가지로 옛 수인선 철교가 인도교 형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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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야목 역에서는 잠시 내려 보기도 했다.
위의 사진을 보면 오고 있는 열차들의 위치가 각각 무려 상갈, 야탑, 선릉이다. 배차간격이 얼마나 긴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인천 방면이 아니라 수원-왕십리 방면 안내 표지판에도 오이도 행 열차가 표시돼 있는데, 이건 애시당초 이 역까지 오지 않고 그 전에 끊기는 열차이다. 그래도 어찌된 일인지 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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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목 역은 안산선 반월 역과 마찬가지로 출구가 하나만 있었다. 논밭뿐인 반대쪽은 출구가 있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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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열차를 타고 인천 역까지 갈 수 있었다.
월미 모노레일은 말도 많고 탈도 많더니 그래도 '바다열차'라는 이름으로 재개통을 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거의 4시간 동안 열차와 역 주변을 머물면서 수인선 열차 시승을 마쳤다. 그 뒤 본인은 차를 몰고 여기 근처에 사는 교회 지인을 만나러 시흥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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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과 함께 간 곳은 시흥에 있는 갯골 생태 공원이었다. 그렇잖아도 인천에 소래 습지 생태 공원이 있는 걸 알기만 하고 가 보지는 못했는데, 근처에 비슷한 유형의 공원이 더 있으니 반가웠다.
날씨가 우중충했지만 오전부터 공원에 온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우리가 있는 동안은 비가 더 내리지 않고 밖이 아주 시원했다. 그래서 파란 하늘을 사진으로 남길 수 없어서 아쉬운 것만 빼면 날씨 자체는 야외 산책을 하기에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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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숲길과 넓은 풀밭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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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작동하는 염전과 소금 창고도 있었다.
서울 동부에 있는 팔당 일대의 공원들이 상수원 보호로 인해 보존된 자연을 내세우고 있다면, 서울 서남부의 이 동네는 염전과 갯벌을 내세우고 있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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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 건물 형태로 22m 높이의 전망대가 우두커니 세워져 있었다. 바람이 불면 조금씩 들썩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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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 공원 풍경은 장관이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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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목안 공원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협궤 화차가 전시돼 있어서 매우 반가웠다! 뜻밖의 소득이었다. 병목안이 돌이라면 여기는 소금 가마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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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혹시 수인선의 지선이었던 걸까? 그렇다면 수인선과 직통 운행을 했을 법도 해 보이는데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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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은 아주 넓어서 더 돌아다닐 수도 있었지만.. 1시간 남짓 정도만 산책한 뒤 점심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낮이 되니 사람은 더 많아졌고 주차장도 빈 자리를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
시흥에 있는 소래산 내지 군자봉 등산도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것 역시 미래의 다음 답사를 기약하기로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0/10/04 19:37 2020/10/04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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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인은 서해선 전철을 시승했다. 이 전철은..

  • 경기도 서남부의 종축 광역전철이다. 참고로 경강선은 경기도 동남부의 횡축 전철이다. 종축인 동해선 전철도 있긴 하지만 그건 소재지가 부산이다.;;
  • 노선색이 연두색인 게 우이 경전철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 4량 편성이고 경의선과 비슷하게 평일 낮 기준 1시간에 3대(20분..) 간격이다.
  • 원시-소사까지 편도로 다 완주하는 데 딱 30분 정도 걸렸다.
  • 모든 역이 지하이지만 시흥시청-신현 중간에 딱 한 번 마치 8호선 복정-산성처럼 잠시 밖에 나왔다가 들어간다.
  • 코레일 직영이 아니어서 그런지 시종착 때 여느 코레일 전동차와는 다른 희한한 음악이 흘러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특징이 있었다. 특별히 사진을 찍지는 않았다.
전철 시승을 마친 뒤엔 계속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경치 구경을 계속했다. 여기는 안산선도 수인선을 따라 만들어진 구간이기 때문에, 답사하는 게 넓은 의미에서의 수인선 일대 답사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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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온천 역의 주변은 듣던 대로 온천 개발을 하려다 만 공터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땅이 다른 용도로 개발되지도 않고 역명이 바뀌지도 않고(공단도 초지라고 바뀌었는데~!) 시간이 정지한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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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으로 향하던 안산선이 오이도 역 부근에서는 갑자기 동북쪽으로 코너를 트는 게 마치 서울 지하철 5호선의 방화 역 부근의 선형 같다. ㄲㄲㄲㄲ
오이도 역의 동쪽은 바로 앞이 야산 언덕이고, 예나 지금이나 한가한 농촌이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이때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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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안산선을 넘어 수인선 구간에 진입했다. 본인이 찾아간 곳은 구 수인선 협궤가 사용하다가 지금은 인도교로 바뀐 소래 철교였다. (건너편의 교량은 당연히 현재의 수인선 복선전철 교량)
여기 근처를 찾아갈 일 자체는 두어 번 있었지만(부모님 볼일, 사랑 침례교회 방문 등), 다리를 직접 건너 본 적은 없었다. 기왕 수인선 답사를 왔는데 여기는 내 발로 디뎌 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칠곡에서 호국의 다리(낙동강)를 건너 봤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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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호국의 다리와 소래 철교 모두 비 내릴 때 우산 쓰면서 다녀 보게 됐다.
다리 아래는 온통 갯벌 뻘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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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쪽에는 '장도포대지'라고 조선 시대에 쓰였던 해안 방어용 대포 터렛도 전시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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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각이 오후 4시 무렵이 됐다. 본인은 지하철 4호선의 종점명으로는 맨날 귀가 따갑게 들었던 오이도를 찾아갔다. 총신대입구? 서울대입구? 한대앞? 그 어떤 전철역들도 역명과 실물이 오이도만치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오이도는 야산 언덕이 있는 부분만이 실제 섬이었고 나머지 식당과 공장들이 있는 평지는 모두 바다를 메운 간척지이다.;;;
직접 가서 보니 뭔가 포항 죽도시장 어시장 같은 분위기였다. 본인은 밥을 여기서 먹고 갯벌 구경을 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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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상 전망대'라고.. 해군이 아니라 해양 경찰이 사용하던 퇴역 경비함을 리모델링한 전시관과 전망대가 있었다. 1980년부터 2009년까지 거의 30년을 굴렸던 배이다. 물론 여기도 안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슬슬 날이 저물어 갔다. 이제 잘 곳을 찾아야 했는데.. 캠핑을 하더라도 최소한 천장이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비가 의외로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기 때문이다. 공원은 많지만 비를 피할 정자가 있는 곳은 찾기 쉽지 않았다.
근처에 오이도 선사 유적 공원이 있었는데 왜 거기를 떠올리지 못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사람 없고 한산 썰렁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달월 역 주변도 노숙하기 좋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공장 단지 주변을 배회하다가 옥구 공원 주차장 근처의 어느 풀밭 언덕에 텐트를 치고 잠들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엔 오이도 역에다가 차를 세우고 이번 여행의 메인 테마인 수인선 전철을 수원에서 인천까지 드디어 시승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0/10/02 08:35 2020/10/0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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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가는 길.. 요게 무슨 시설인지 사진만 보고 아시는 분은 굉장한 용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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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노골적인 힌트를 드리자면, 수 년 전에 저기서 벌어진(벌어졌다는) 일보다 이번 뭉괴뢰 정부에서 저지른 탈북자 북송이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더 큰 죄악이다. 이건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항이며 우리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요즘은 대통령이 대놓고 종북 발언을 하기가 좀 뭣하니, 통일부 장관을 희대의 빨갱이로 임명해 놓고 그놈을 통해서 자기 심정을 대리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안산을 전철이 아닌 차로, 그리고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지방도만 이용해서 가니 무척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이 지역에서 본인이 가장 먼저 답사한 것은 반월-상록수 역 사이에서 KTX가 달리는 경부고속선 선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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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암천 다음으로 반월천에도 맑은 물이 시원스럽게 흐르고 있었다. 낮이 되어 살짝 덥기까지 한데.. 옷 벗고 들어가서 물놀이를 하고 싶어졌다.
반월천의 물은 수리산에서 발원해서 저 멀리 시화호 쪽으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지금 이 시야에서 바로 옆이 경부고속선이며, 뒤에는 안산선 전철이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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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경부고속선 선로와 함께 나란히 반월 호수 부근까지 갔다.
여기까지 간 김에 일직 터널 위의 유명한 열차 촬영 명당도 다시 들러 보고 싶었다.
본인은 무려 7년 전에 가 본 적이 있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삽질만 하다가 재답사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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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터널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남쪽의 다른 산길을 잘못 올랐다. 거기도 어귀는 터널 근처의 산길과 비슷하게 생겼고, 옆으로 철조망이 처진 것까지 동일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맞는 길로 가긴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지름길 진입로는 검찰일보인가 어디의 사유지로 바뀌고, 주변이 철망이 쳐지고 CCTV까지 생겨 있었다. 이 때문에 더 들어가 보지 못했다.

나중에 여기 일대의 인터넷 지도를 보니, 터널 주변을 더 크게 우회해서 터널의 위쪽으로 접근하는 다른 길이 있긴 한 듯하다. 하지만 그 길은 7년 전에 갔던 길은 아니며, 그렇게 갔을 때 그 촬영 명당에 실제로 도달할 수 있는지도 직접 답사를 하지 않는 한 모르겠다. 7년 전에는 갈 수 있었던 길이 지금은 막혔다는 것 하나는 사실인 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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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인해 KTX 명당에는 못 들렀고, 그 대신 바로 옆의 경치 좋은 반월 호수 주변을 산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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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름 없는 야산의 꼭대기에는 군사 시설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있다. 산의 이름이라든가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가 궁금해지는데 인터넷 지도에는 딱히 안 나오는 것 같다. 그저 덕고개 당숲 같은 주변 산책 코스만 나올 뿐..
이렇게 정신없이 돌아다닌 뒤, 한적한 반월 역에 들러서 각종 재충전과 보급을 했다. 안산 시내의 공영 주차장들은 3시간까지는 무료여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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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최 용신 기념관 및 묘지를 지난 2005년 이후 무려 15년 만에 다시 찾아갔다.
그 긴 세월 동안 샘골 공원은 싹 리모델링 되었고 최 용신 기념관이 정식으로 지어졌으며 주차장도 생겼다. 주차장엔 샘골 교회에서 굴리는 승합차도 두어 대 세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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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이렇게 바뀌었을 줄이야.. 길도 다 포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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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에는 약혼남이던 김 학준의 약력도 소개돼 있었다. 이분도 조선어 학회 사건 때 투옥된 적이 있었나...? 저건 김 학준의 약력인지 정 태진의 약력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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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첫 답사했던 당시와는 비교도 안 되게 싹 바뀌었다. 다만, 지금은 코로나19 시국 때문에 기념관 안에는 못 들어갔다.
기념관이 여기 언덕 위에서는 단층 건물인 것 같지만, 언덕 아래쪽으로 층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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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이다.

이제 본인은 수인선의 개통에 앞서 서해선 전철부터 타 보기 위해 남쪽 종점인 원시 역 부근으로 갔다. 본인은 아직 서해선도 전혀 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초지 역 이남은 크고 한적한 도로의 양 옆에 역시 듣던 대로 공장들이 가득했다. 근처의 야산에 웬 전망대 공원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지만 시간 관계상 가 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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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원시 역 이남으로 도로의 끝은.. 이렇게 시화호로 흘러드는 반월천의 하류가 가로막고 있었다. 강 건너편은 화성시이다.
여기도 나름 공원이 잘 꾸며져 있었으며 강에는 낚시를 하는 사람도 좀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때부터 맑고 푸르고 화창하던 하늘이 흐려지고 어두워졌다.

Posted by 사무엘

2020/09/29 19:35 2020/09/2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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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2일을 낀 주말에 본인은 수인선의 전구간 복선전철 부활을 기념하고 경축하기 위해 답사 여행을 떠났다. 기왕 수원· 화성· 안산까지 가는 김에, 딱 수인선 열차만 타는 게 아니라 주변의 지역들까지 포함해서 아예 2박 2일짜리 경기도 서남부 종합 여행을 다녀왔다.
한 달 전에 다녀온 3박 4일짜리 여행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이번에도 짧은 시간 동안 철도와 관련된 많은 장소들을 답사하면서 좋은 경험과 추억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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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퇴근한 당일 밤에 곧장 여행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안양의 수리산 기슭에 있는 병목안 산림욕장이었다. 여기 한구석에 짱박혀서 텐트 치고 잠들었다.
조용하고 한적하고 시원하고, 계곡에 물도 졸졸 흐르고.. 여기는 정말 최고의 숙소였다. 나 말고도 큼직한 차 끌고 와서는 뒷문 열어 놓고 자는 아재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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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잘 자고 새벽에 눈을 떴다. 다음으로는 산림욕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병목안 시민 공원'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경치가 워낙 좋으니 이른 아침부터 산책과 운동을 하는 인근 주민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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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과거에 채석장이었다고 한다. 서울로 치면 용마산 채석장을 리모델링한 용마 폭포 공원 같은 곳이다.
여기서 채집한 돌이 경부선 복선화 및 수인선의 건설 공사에서 쓰였으며, 옛날에는 돌을 수월하게 나르라고 경부선 안양 역에서 여기까지 아예 철길도 깔려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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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채석장이었던 곳답게 넓은 풀밭과 거대한 바위 언덕이 일품이었다. 그러고 보니 인공 폭포도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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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내부에는 채석장 시절에 쓰였던 쬐끄만 선로와 협궤 화차 레플리카가 한구석에 전시돼 있었다. 오오~~ 표준궤와 협궤가 모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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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흔적이 있는 공원이라니 대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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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병목안'은 여기 지형의 특성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병목 현상' 할 때의 병목과 동일한 의미의 단어이다.
여기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광명에는 폐광산을 공원화한 광명 동굴이 있는데.. 채석장도 뭔가 심상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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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아래에도 경치 좋은 산책로가 잘 꾸며져 있었다. 집 근처에 이런 공원이 있으면 무척 좋겠다.
여기서 특별히 소개하지는 않지만 공원과 산림욕장 사이에는 캠핑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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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목안 공원 다음으로는 안양에 있는 다른 공원인 '삼덕 공원'을 찾아갔다. 얘는 도심에 가까이 있는 자그마한 근린공원이다. (공원도 많이 돌아다녀 보니 급의 차이가 있는 게 느껴진다.;;) 그래도 바로 옆에 공영주차장이 있기도 해서 자가용 접근성은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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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덕 공원은 삼덕 제지라는 기업을 운영하던 업주가 지난 2003년에 은퇴하면서 공장 부지를 안양시에다 통째로 기부한 덕분에 조성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이런 훈훈한 미담만 전해지지만.. 그 이면에는 씁쓸한 사연이 전해진다.
업주는 말도 안 되는 요구와 음해· 파업을 남발하는 악성 노조의 갑질 횡포에 이골이 난 나머지, 거의 40년을 경영했던 공장을 에라이 싹 처분해 버리고 이민 간 거라고 한다..;; 덕분에 배은망덕한 종업원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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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한쪽 구석에는 창업주의 흉상,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공장 굴뚝의 축소 레플리카가 남아 있다. 이 사람도 당연히 흙수저 개룡남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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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원의 옆으로는 수암천이 시원스럽게 흐르고 있었다. 올여름에는 비가 많이 와서 가뭄 걱정 없고 개천마다 물이 졸졸 흐르고 있는 건 참 보기 좋았다.
얘는 먼저 봤던 수리산 병목안 계곡에서 발원해서 안양 역 건너편까지 흐른 뒤, 안양천으로 합류한다. 원래 시내에서는 대부분의 구간이 복개되었는데, 요 근래에 다시 뚜껑을 걷어내고 복원을 많이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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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는 남산의 남쪽으로 용산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지막한 언덕이 하나 있다. '둔지산'이라고 이름도 당당히 붙어 있지만, 그다지 높지 않고 전지역이 미군 기지로 점령되어 있기 때문에 이 이름은 인지도가 대단히 낮다.

그런데 안양에도 존재감이 서울의 둔지산 같은 산이 있다. 바로 수리산의 북쪽, 서독산의 남쪽에 있는 일명 박달산이다. 얘는 언덕 전체가 예비군 훈련장을 포함한 군부대들로 꽉 차 있다. 그러니 여기 주변엔 산책로나 등산로 따위는 일체 존재하지 않고 그냥 차량 진입로 한 곳만 있다.
서울 근교에서 예비군 훈련장이 있는 산을 따져 보자면 서북부에는 노고산, 동남부에는 인능산이 있는데.. 서남부에는 그런 역할을 하는 산이 바로 이 산인 셈이다.

뭐, 얘도 그냥 수리산의 일부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수리산의 유명 봉우리는 저기서 멀리 떨어져 있다. 북악산과 북한산이 다른 산인 것처럼, 그리고 관악산과 삼성산이 다른 산인 것처럼 여기도 뭔가 다른 산으로 취급하는 것 역시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본인은 수리산은 오른 적이 아직 한 번도 없다.;;

여기까지 온 김에 본인은 인터넷 지도 로드뷰로 볼 수 없는 풍경도 좀 염탐을 했다.
안양 구경은 오전에 이 정도로 한 뒤, 본인은 시흥을 거쳐서 더 남쪽 안산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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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7 08:36 2020/09/2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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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옥천-대전-청주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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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경부 고속도로 구도로에 있는 옥천 터널 중에 현재 완전히 쓰이지 않게 된 '상행선' 구간이다. 작년에는 상행선 터널의 답사가 미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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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행선 터널은 의외로 식물 공장을 운영하는 '넥스트온'이라는 스타트업 기업이 전세를 내서 쓰고 있었다! 대표이사는 반도체 기술자 출신이고.. 이게 꽤 획기적인 사업 아이템이었는지 CNN에서 소개된 적도 있다고 한다.
이번 여행을 통해 그냥 공원 형태로 개방(구 왜관), 와인 관광지로 개방(구 남성현)에 이어 식물 공장으로 마개조된 폐터널까지 구경하게 됐다.

경부 고속도로 옥천 터널은 처음에 만들 때는 조국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없는 자본과 부족한 기술로 그렇게도 힘들게 어렵게 고생해서 뚫었는데.. 약 30년 동안 현역으로 쓰이다가 지금은 은퇴 후 용도가 저렇게 바뀌었다. 사람이 젊은 시절에 개같이 일하고 돈 벌다가, 늙어서 은퇴한 뒤에는 시골 가서 농사 짓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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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은 경부 고속도로 쪽에만 구도로 폐터널이 있느냐? 그렇지 않다. 철도 분야에도 유명한 레거시가 있다.
2004년, 경부 고속철도가 1차 개통만 했을 때는 대구에서 대전 방면으로 가는 고속선이 무려 옥천에서 끊어졌다. 거기서 대전까지는 짧지 않은 거리이지만 KTX도 얄짤없이 기존선으로 달렸다. 그때 경부선 기존선과 고속선을 잇는 연결선은 '대전남연걸선'이라고 불렸다.

그러다가 무려 10여 년 뒤, 대전과 대구에도 더 깊숙한 고속철 도심 통과 구간이 개통하면서 이 연결선은 쓰이지 않게 되었다. 더구나 김천구미 역이 개통한 뒤부터는 대전-대구 사이에 기존선을 달리는 KTX는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됐기 때문에 연결선이 더욱 필요가 없어졌다.
대전-서울 사이에서는 수원 정차 때문에, 그리고 대구-부산 사이에서는 구포· 밀양 정차 때문에 아직도 기존선 주행 KTX가 있다. 그러나 대구-대전 사이에는 그런 게 전혀 없다.

인근의 옥천 주민들은 옳다구나 하고 대전남연결선을 하루속히 철거해 주길 바라고 있지만.. 연결선도 고가 교각 형태인 구간이 많고 다 철거하는 데 몇백 억의 예산이 필요한 실정이다.
옥천군에서는 철거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일부 구간을 레일바이크 같은 관광지로 재활용할 길을 찾고 있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고 시간만 하염없이 가는 중이라고 한다.

작년의 옥천 여행 때는 철도 답사가 전무했으니, 이번 기회에 옥천-대전을 고속도로 대신 국도 4호선으로 달려 보았다. 그러면서 과거의 영광만을 간직한 채 열차 운행이 끊긴 대전남연결선 선로를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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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에서 세천, 판암, 대전 역 쪽으로 가려면 서남쪽으로 진행해야 한다. 국도와 경부선 철도의 선형도 그렇게 돼 있다. 본인 역시 국도를 계속 따라가며 거기를 답사하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않고, 세천삼거리에서 지방도 571로 갈아탔다. 고속도로 건너편의 '신상로'라는 길로 진입했다.

이 길도 딱 보면 알 수 있듯, 과거 경부 고속도로의 폐도 구간이다. 구도로가 옥천뿐만 아니라 대전 외곽에도 이렇게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비룡 JC가 근처에 있기도 한데, 여기는 통영-대전 고속도로(35)가 개통한 1990년대 중반에 선형이 개량되었지 싶다.
이 길을 통해서 본인이 최종적으로 진입한 곳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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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를 따라 지나가는 꼬불꼬불 산길이었다.
이 길을 이 기회에 한번 지나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성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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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동 전망대라고 불리는 곳 주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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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가 침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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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산길과 시골 마을이 계속 이어졌다.
여기도 행정구역상 대전이라니~! 게다가 중간에 동구에서 대덕구로 구가 바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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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따라 계속 북상하다가 금강을 만나고, 말로만 듣던 대청댐에 도달했다.
수도권에 팔당이 있다면 충청권에는 대청이 있는 셈이다. 이건 댐 근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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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여차여차 하다가 꼬불꼬불 산을 타고 올라가 대청댐 전망대에도 도달했다. 마침 날씨가 맑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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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아래는 아직도 흙탕물이고 수위가 평소보다 높은 게 느껴진다. 바다는 쓰나미와 만조 때문에, 그리고 강물은 비와 댐 방류 때문에 수위가 오른다는 흥미로운 차이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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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이번 여행의 마지막 사진이다.
동락 전투 기념 공원에서 시작해서 대청댐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니.. 여행을 다닌 대부분의 지역은 경상도이지만, 여행의 시작과 끝은 어째 충북에서 인증하게 됐다.

청남대도 근처에 있고 이정표도 봤지만, 거기는 시간 관계상 가지 않았다. 창원에서 청해대를 보고 여기서 청남대까지 봤으면 그것도 의미 있는 경험이 됐겠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이제 여기서 중부 고속도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문의 IC 진입). 고속도로는 딱히 정체 구간은 없었지만, 느린 대형차가 자기보다 더 느린 다른 대형차를 느릿느릿 추월하기 위해 1차로로 들어오는 일이 굉장히 잦았다. 이게 뒷차들의 원활한 고속 주행에 큰 지장을 줬다.

이렇게 3박 4일 동안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총 1200km를 넘게 주행하면서 경북 6· 25 접전지, 박 정희 대통령 관련 공원, 새마을호 열차, 경부선 구터널, 경부 고속도로 구도로와 구터널을 들렀다. 그러면서 산과 강과 바다도 덤으로 구경했다. 비 내리는 날씨도 땡볕 뙤약볕보다는 나은 경험이었다.

내년에는 서해안과 서남쪽을 답사할 것이고, 내후년에는 강원도 북부 전방을 다시 가 보는 것으로 일단 계획은 잡아 놨다. 이런 식으로 휴가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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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4 08:33 2020/09/0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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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창원 관광

이튿날 눈을 떠 보니 근처의 청도천은 여전히 수위가 높고 흙탕물이 출렁이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은 완전히 맑고 파래졌다.
이제 본인은 더 남쪽 창원으로 향했다. 이 날은 일요일인 관계로, 창원 진해에 있는 등대 성서 침례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석했다. 담임 목사님과는 예전에 신앙 서적을 같이 번역하기도 하면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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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국도 25호선인 시골 들판길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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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를 드린 뒤엔 목사님, 그리고 몇몇 교회 분들과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그 뒤엔 목사님과 본인만 근처 관광을 다니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진해선 경화 역 공원이었다.
벚꽃이 잔뜩 피는 진해 군항제 때 관광객이 제일 몰리는 곳이긴 하지만.. 본인의 관심사는 벚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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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역에 동차형 새마을호가 있다면, 여기엔 기관차-객차형 새마을호가 전시되어 있었다. 이 역시 이런 게 있다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찾아갔다.
단, 여기는 객실 내부가 다른 용도로 건물처럼 완전히 개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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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찬재 목사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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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구시가지와 진해를 가로막는 언덕 중 하나인 안민 고개에서 남해와 진해 시내를 쪽을 내려다 본 모습이다. 이때는 날씨가 다시 흐려지는 중이었다. 사실, 이때가 여행 기간 전체를 통틀어서 날씨가 제일 변덕스럽게 널뛰기 하듯이 변했었다.

창원에는 현대로템 공장이 있고 진해에도 해군 기지, 해군 사관학교, 육군 종합 정비창 등 보안 시설이 무척 많다.
그래서 여기는 위성/항공 사진 지도에서 산이라고 표시된 곳이 진짜 산인지 아니면 보안상 가려진 곳인지 헷갈리는 곳이 많으며, 인천과 마찬가지로 본토와 인접한 남해안 바닷가에 딱히 해수욕장이 있지는 않다.

자연 해변 관광을 즐기려면 거제도 같은 남쪽이나 전라도 같은 서쪽으로 더 가야 한다.
그에 비해, 엄청난 대도시이면서 본토의 해변에 해수욕장도 남아 있는 부산이 이례적인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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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기지 근처에는 여기가 영화 "연평해전"의 촬영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더라.
사건의 실제 배경은 평택 기지이지만, 그 영화가 촬영된 곳은 평택보다 더 한산한 후방의 진해 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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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희생자를 잠수 수색하다가 과로로 순직한 한 주호 준위의 동상이다.
잊지 말아야 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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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는 진해 해양 공원을 다니면서 철도나 안보, 역사 같은 다른 의미는 없이, 경치 구경만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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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무인도들이 콕콕 박혀 있는 건 동해나 황해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하롱 베이의 한국판 같았다.
나도 자그마한 보트를 장만해서 매일 이 섬 저 섬 돌아다니면서 텐트 치고 캠핑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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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해수욕장은 아니지만 이 정도 모래사장도 주변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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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은 이 정도까지 했다.
주 기철 목사 기념관이 여기 근처에 있었지만 못 갔다. 주일성수 정신이 너무 투철한지, 저기는 여느 기념관답지 않게 월요일이 아니라 일요일에 휴관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해대'라고 불리는 이 승만 별장도 있다고 들었지만 해군 기지 내부에 있어서 보안과 코로나 창궐의 이유로 인해 못 갔다.
하지만 역사적인 사연이 있는 곳을 못 간 대신, 자연 경치 구경을 더 오래 하면서 힐링을 할 수 있었다.

참고로 진해와 마산은 모두 창원시에 흡수· 통합되어서 지금은 창원 내부의 구 이름 정도로나 남아 있다. 경상북도에서 점촌이 문경에 통합된 것처럼 말이다.
옛날에는 '구마 고속도로'라는 것도 있었고(현재는 45 내지 451번 고속도로로 변경), 마산이라고 하면 김 주열 열사라든가 부마 항쟁처럼 뭔가 항쟁의 지역 같은 인상이 강했는데.. 오늘날은 마산이라는 이름이 싹 없어져 있다.

이제 아쉽지만 서울로 돌아갈 때가 됐다.
목사님과 작별인사를 한 뒤 서울로 돌아갔는데.. 작년에 갔던 옥천의 경부 고속도로 폐구간을 다시 찾아갔다.
시간도 마침 자정이 됐으니.. 거기서 마지막 캠핑을 한 뒤, 이튿날 아침엔 거기 일대 답사를 추가로 진행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0/09/01 19:35 2020/09/0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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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청도 관광

짧은 시간 동안 이곳 저곳을 우산 들고 돌아다니느라 꽤 힘들었는데.. 곧장 또 청도로 이동했다. 칠곡에서 대구까지는 경부 고속도로(1), 대구에서 청도까지는 대구-부산 고속도로(55)로 답이 딱 나왔다.
경부는 차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다니는 차도 그 이상으로 많고 비도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서 예전만치 빠르게 달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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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와인 터널은 남성현 역에서부터 길 안내가 잘 돼 있어서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길 곳곳에 토사와 빗물이 흘러내리고 있어서 분위기가 심상찮더니, 역시 폭우로 인해 영업을 중단한 상태였다. 그래서 안에 들어가 보지 못하고 주변 경치 사진만 몇 장 찍었다.

왜관에 이어서 청도까지 경부선 폐터널을 연달아 감상하는 것을 노렸는데.. 아쉽다. 어쩐지 주변에 주차된 차들이 너무 없어 보이긴 했다.
허탕 치고 돌아가는 관광객들에게 주변 상인들이 복숭아라도 팔려고 들이밀고 있는 게 좀 안쓰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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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 이름인지 단순 사자성어인지 알 수 없는 이 한자 문구는 경부선을 건설하던 당시에 일본인이 새겨 놓은 것인데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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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터널에 못 들어간 대신,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 빗길을 뚫고 대신 찾아간 곳은 새마을 운동 발상지 기념 공원과 내부의 기념관이었다. 청도에 이런 역사적 사연이 있었구나~!
단, 놀랍게도 포항에도 기계면에 새마을 운동 발상지 기념 공원이 있으며, 두 지역이 서로 자기가 새마을 운동의 원조라고 주장하며 싸우는 중이라고 한다..! 이름도 참 새마을스럽게 '기계'네..;;;

다만, 두 곳의 자료를 대조해 보면, 시기적으로 원조 발상지는 청도가 맞는 듯하다. 포항 저 동네는 새마을 운동이 전국적으로 시작되고 나서 첫 성과가 가장 탁월해서 대통령에게 직접 칭찬을 들은 마을이다. 관계가 그렇게 정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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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에 우리나라 농촌은 저런 대대적인 마개조 사업이 필요할 정도로 상황이 개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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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 기념관은 단순히 원조가카의 치적을 자랑하는 보수 성향의 성지가 아님을 주의하라. 1957년은 아직 1공화국이지, 박통이 집권하지도 않았던 시절이다!
박통의 집권 전부터 이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몇몇 지도자들이 스스로 "잘 살아 보세"를 외치면서 힘을 합쳐서 길을 닦고 주민들 의식 개조 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우리 마을 코앞에 경부선 철길이 지나는데 여기다가 열차도 세워 달라고 철도청에다 투서를 찔러 넣고 돈 모아서 철도역까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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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차에 1969년 여름, 경상도의 수해 현장 순시를 마친 박통의 눈에 이곳 신도리 마을의 모습이 눈에 띄었고 이곳의 내력이 보고되었다.
이것을 보고 박통은 feel이 꽂혀서 그 해 11월에 농촌 근대화 촉진법을 발표했다고 한다..;; 류 태영 박사 같은 참모의 도움으로 "근면 자조 협동"을 내세우며 대대적인 "우리는 할 수 있다 / 잘 살아 보세" 의식 개조 농촌 근대화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의외로 1960년대 3공 시절에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이런 것만 있었지 국가 차원에서의 새마을 운동은 아직 없었다.
그러니 그 시절부터 자체적으로 근대화 운동(?)을 하고 있던 마을이라면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라고 주장할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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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에 새마을 운동이 얼마나 중요했던지 최고 등급 열차 이름도 새마을호가 되고... 박통의 따님은 '새마음(!!!)의 길'이라고 20대 중반의 나이로 책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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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운동은 우리나라가 K팝, 한류, K방역-_- 같은 것보다 더 선하고 건전한 문물을 세계에 전한 것이었다.
이웃의 중공이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같은 뻘짓을 하면서 자폭하던 동안, 한국은 그나마 제정신 박힌 건전한 운동을 하며 중흥을 이룩한 것에 그 후손들은 감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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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카는 대통령이 되기 1년 남짓 전에 여기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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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더 이상의 기념관 내부 사진 소개는 생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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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엔 공원도 넓게 잘 꾸며져 있었다. 날씨가 맑을 때 왔으면 경치가 더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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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 공원에 이어 여기서도 박 정희 대통령 동상을 보게 되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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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거 역은 실제 역사는 수십 년 전에 철거되고 없지만, 이 공원 내부에 레플리카가 지어져 있었다. 마치 중앙선 구 능내 역, 영동선 양원 역, 함백선 함백 역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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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원은 이런 풍경의 마을 내지 펜션촌으로도 이어졌다. 날씨가 날씨이다 보니 개천은 역시 흙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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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 공원처럼 여기도 이렇게 산의 측면에다가 자기 이름을 새겨 놓은 구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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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건물이 철거되고 역명판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게 마치 옛날 군함 백두산함이 스크랩되고 현재 마스트만 남아 있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렇게 새마을 운동 발상지 기념 공원을 답사한 뒤 오늘,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청도 역이었다. 왜냐하면 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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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역한 지 벌써 7년이 넘은.. 과거 한국 철도계의 왕자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 한 편성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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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대해 말은 오래 전에 들었지만 성지 순례를 이제야 하게 됐다.
새마을호 디젤 동차 실물을 만난 기쁨도 잠시.. 열차의 보존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표면 곳곳에 부식이 진행되고 있고, 열차로 올라가는 사다리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어서 몹시 아쉬웠다. 심지어 거미줄에 큼직한 거미가 붙어 있기까지 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관리를 안 하고 신경을 쓰고 지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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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내부에는 새마을호 열차뿐만 아니라 아주 자그맣게 토속 공원이 꾸며져 있기도 하다. 예전에 중앙 고속도로 단양 휴게소 부산 방향의 테마 공원의 하위 호환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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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이것으로 둘째 날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다.
해가 진 뒤에야 허기를 달랜 뒤, 잠은 교외의 어느 으슥한 공원 정자에다 텐트 치고 잤다. 환상적이었다. 비는 저녁쯤에 그친 듯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0/08/29 19:36 2020/08/29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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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낙동강 일대 관광

칠곡 관광의 제1부는 전적 기념관 구경이었고, 제2부는 왜관 지구 전적 기념관에서 낙동강을 따라 남쪽으로 2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왜관 소방서 앞 사거리" 일대 답사 형태로 진행됐다.
여기는 경부선 철길이 단선이던 시절에 쓰였던 구 철교(지금 "호국의 다리")와 구 터널이 남아 있으며, 이것 말고도 아기자기한 의미를 지닌 공원들이 가까이 밀집해 있었다. 주차 걱정도 전혀 없어서 더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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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구 경부선 왜관 터널의 입구이다. 경부선이 단선이던 시절, 1905년부터 적어도 1930년대 말까지 약 30년 동안은 철길이 여기를 지났다는 뜻이다. 지금은 터널 바로 옆에 식당 건물이 들어섰다.
이런 폐터널은 사유지의 창고로 개조되어 방치되는 편이다만.. 얘는 등록문화재로 정식으로 등재되고 터널의 양방향이 뚫려서 공원으로도 이어지게 개조되었다. 지방 정부 차원에서 보존을 위해 나름 노력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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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무나 터널 안에 들어가 볼 수도 있다. 바닥에는 일부 빗물이 떨어지고 고인 곳도 있었다.
터널의 유래를 설명한 표지판 그림도 옆에 같이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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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은 근처의 "왜관 소공원"이라는 아담한 공원으로 이어졌다. 공원은 여기 저기에 공터와 정자가 있어서 경치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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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사과 같은 열매가 열린 가로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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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 소공원의 길 건너편에는 '애국 동산'이라고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0여 명이 으리으리한 묘비와 함께 소개돼 있는 묘지 언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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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병철(1903-1945). 유 관순과 거의 동갑내기로 10대 중반의 나이로 칠곡에서 3· 1 운동에 참여했다가 경찰서 정모 한번 했고..
그 뒤로 임시정부와 신간회에 후원, 야학 교사, 그리고 이미 다 와해되어 별 의미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독립군(?) 군자금 모집까지 다양한 분야 계열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한 분이다. 이 때문에 3· 1 운동으로부터 거의 20년 가까이 뒤인 1938년에 한번 더 경찰서 정모를 당하기도 했다.

이 정도 이력만으로 그는 일제 말기에 불령선인으로 찍히기에 충분했다. 감시를 받으며 지내던 와중에 1945년 여름, 사실상 마지막 의거인 "부민관 폭탄 투척" 사건이 터지자 또 어거지 같은 꼬투리를 잡혀 왜경에게 체포되었다.
그래서 아마 호송 열차를 타고 대구로 끌려가는 길이었지 싶은데.. 그는 열차가 낙동강 철교를 달리고 있을 때.. 비록 손은 결박 당했겠지만 경찰들을 몸으로 뿌리치고 확 뛰쳐나가서 다리 아래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순국한 때는 8월 7일.. 경부선이 전구간 복선화가 완료되어 새로운 낙동강 철교가 개통한 지 겨우 1년 남짓 된 시절이었고, 저 때는 무엇보다도 히로시마에 작은 꼬마가 떨어진 바로 다음날이었다.
1주일~열흘 남짓 동안 조금만 수모를 참고 버텼으면 조국의 광복을 보고 석방돼 나왔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에 서울도 아닌 지방에서 그런 바깥 소식, 게다가 일제에게 불리한 소식을 접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저 사람이 무슨 총칼 폭탄으로 일본인을 죽인 것도 아니고, 저 정도 행적은 사형 당할 정도의 죄도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일제가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런 시기에 또 잡혀 들어가면 무슨 꼬투리를 잡혀서든 살아서 나오기 힘들 거라고 예상했던 것 같다. (영원히 행방불명된 김 익상 의사의 최후와 비슷..)
아니면 고문 당하면서 동지들의 신변까지 실토하게 될 것을 염려했거나..

내가 여러 번 강조하지만 일제가 원폭 맞아서 갑작스럽게 항복하고 허겁지겁 빠져나온 것은 미국에게나 우리에게나 매우 엄청난 행운이었다.
자국민한테도 1억 옥쇄 X랄하던 미친놈들이 시간이 충분했으면 나가더라도 감옥에 갇혀 있던 항일 애국지사들을 다 죽이고 증겨 인멸하고 파괴하고 나갔을 것이다.

동남아에서 도망칠 때도 위안부들 다 죽이고 나갔던 것처럼. 히틀러가 패전을 앞두고 파리를 몽땅 불지르려고 했던 것처럼..
도 병철 같은 사람이 체포되던 중에 괜히 자결을 한 게 아니었다. "1주일만 참았으면 됐을 텐데" 같은 아쉬움도.. 결말을 다 아는 후손들이나 할 수 있는 얘기이지, 당대를 살았던 사람이 그걸 알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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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념비의 뒷면에는 여기에 무덤은 없지만 어쨌든 칠곡 출신의 애국지사들 수십 명의 명단이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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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언덕의 꼭대기에는 UN이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진 왜관 지구 전승비가 놓여 있었다. 여기는 정식 현충원은 아니지만 참 독특한 보훈 시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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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터널, 소공원, 애국 동산 다음으로 경부선 구교량이라 할 수 있는 '호국의 다리'를 반쯤 건너 보는 것으로 칠곡 관광을 마무리했다. 날씨가 날씨이다 보니 강물은 온통 흙탕물이고 풍경은 뭐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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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강변 공원도 금방이라도 침수될 듯 물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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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도 중앙선의 옛 시내 관통 구간이 교량(장군교)에서 폐터널로 바로 이어지는 구간이 있는데.. 마치 그런 걸 보는 것 같았다.

Posted by 사무엘

2020/08/27 08:35 2020/08/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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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칠곡 다부동/왜관 지구 전적 기념관, 호국 평화 기념관

다음으로 1시간이 좀 넘게 운전해서 칠곡에 갔다. 꼬불꼬불 해변길과 포항 시내를 거친 뒤, 20번 고속도로(포항-익산)를 처음으로 달려 봤다. 다만, 여전히 몹시 피곤해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거의 30분 가까이 기절하듯이 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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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장 먼저 백 선엽 장군의 공훈이 남아 있는 다부동 전적 기념관에 도착했다. 55번 고속도로 다부 IC의 바로 옆에 있어서 찾아가기 쉬웠다. 기념관의 뜰에는 탱크와 미사일이 전시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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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8~9월에 낙동강 전선에서는 인천 상륙 작전을 앞두고 가히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한 혈투가 벌어졌다. 여기서 물러나고 대구까지 북괴에게 빼앗기면 더 물러날 곳도, 더 확보할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됐다면 남한 수뇌부는 진짜로 제주도나 외국 망명까지 고려하는 지경이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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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은 비가 내려서 온통 물바다인데 마침 비가 전혀 들어오지 않는 쉼터가 있었다.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었다. 여기서 새참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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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 경찰 추모비와 무명 용사 묘지가 있었다.
백 선엽 장군은 종북 반역 매국 세력의 패악질로 인해 자신이 현충원에 못 들어간다면 차라리 자기를 여기 다부동 전적지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남겼던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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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기념관은 지난 6월부터 10월까지 리모델링 공사 중이어서 안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규모도 작고, 홈페이지를 보니 막 특별한 것이 전시돼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하필 백 선엽 장군의 서거로 인해서 이곳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아진 시기에 기념관이 개방되어 있지 않은 것은 일면 아쉬운 점이다. 리모델링 자체는 백 장군의 서거 이전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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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인은 서쪽으로 10여 km 정도 더 이동해서 낙동강 근처까지 갔다. 왜관 지구 전적 기념관과 호국 평화 기념관은 서로 가까이 붙어 있는데, 후자가 뭔가 전쟁 기념관의 칠곡 버전처럼 제법 규모 있게 꾸며져 있었다. 여기부터 먼저 들어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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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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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편과 악의 무리들이 나란히 대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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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칠곡은 6· 25 사변 당시에 남한이 영토의 90%를 빼앗기는 위기에 처했을 때, 낙동강을 마지노 선으로 잡고 최후의 접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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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있는 분들은 이 기념관을 직접 방문해서 관람해 보시기 바란다.
일일이 사진을 소개하지는 않지만 1950년 8월 하순에 벌어졌던 유학산 전투, 수암산 전투, 가산산성 전투 이런 것도 다뤄져 있다.

이랬는데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한 덕분에 불과 한 달 뒤인 9월 하순엔 남북 영토가 전쟁 이전 시점으로 되돌아갔으니 정말 고맙고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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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주인공의 실제 모델 인물. 그랬구나.
다만, 내 기억으로 영화에서는 형이 중공군에 합류했고 강원도 산간의 금성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뭔가 각색이 있었던 듯하다.
중공군이 칠곡까지 남하한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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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의 꼭대기 층에서는 아래의 낙동강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경부고속선 철길이 근처를 지나는데, 마침 주행 중인 KTX를 굉장히 괜찮은 구도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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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 지구 전적 기념관의 입구이다. 저 언덕 위에 자그맣게 보이는 건물이 방금 관람했던 호국 평화 기념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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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 기념관은 평화 기념관보다 규모가 작고 볼거리가 적었지만 최소한 전투 장면을 인형으로 재현해 놓은 모습은 유익했다. 김 재옥 기념관과 장사 상륙 작전 기념관에도 이런 레플리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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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유치하고 원색적인 북괴 비난 같지만.. 솔직히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북괴의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쟤들이 전면 개방되지 않는 한 우리도 저런 놈들과 협력, 통일 같은 수작에는 절대로 응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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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야외엔 이런 전적비도 있었다. 둘째 날 오전에는 이렇게 전적 기념관들을 관람하며 시간을 보냈다.

Posted by 사무엘

2020/08/24 19:34 2020/08/2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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