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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큰, 참교육, 유튜브 등의 생각

1.
요 몇 달 전엔 네이버 웹툰 참교육을 재미있고 봤다.
주인공인 나 화진은 <아저씨>의 차 태식하고 묘하게 비슷한 점이 많다.
특수부대 출신으로 인간흉기 급의 무공을 보유하고 있고,
중국서 조폭 영화 좀 본 듯이 늘 검정색으로 빼입고 다니고.. 머리도 장발.
그리고 아내를 모종의 이유로 인해 잃은 상태임.

"전당포 털 거면 번지수 잘못 찾았어. / 틀렸어. 넌 지금 그 애들한테 사과를 했어야 해."랑
"이제야 번지수 제대로 찾았군. 사죄란 너를 패는 사람이 아니라 네가 팬 사람에게 하는 거다!"
이 대사도 묘하게 닮은 쌍이다.
오.. 전자의 말 두 마디는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인데, 그래도 둘 다 동일 인물에게 한 말임! (종석)

나중에는 주인공의 후임으로 임 한림이라는 여군 후배까지 등장하는데, 얘는 현실의 은하캠핑이나 깡레이더 같은 캐릭터이려나;;;
그래도 교권보호국 정도면.. 일본처럼 아예 배틀로얄-_-을 만든 것보다는 그나마 더 현실적인 설정인 것 같다. (가까운 미래, 공교육이 완전 개판이 되고 학폭 때문에 순직하는 교사가 속출할 지경)

2.
테이큰과 아저씨의 제일 결정적인 차이는?

패트리스: It doesn't matter what we call you... what does matter is what you're doing here.
브라이언: The last girl.. I'm her father.
패트리스 상클레어: Oh my..
브라이언: Give her to me.
패트리스 상클레어: I wish I could, honestly. I'm a father myself... but let me tell you Mr. Whoever-you-are...
(* 친아빠라잖아.. 갑분싸해지고 납득이 됨)

만석: 왔냐...? 너 정체가 뭐냐? 그 꼬마가 뭐라고 여기까지 온 거야?
태식: 옆집 아저씨.
만석: (풉..) 옆집 아저씨..? 너 도라이 정신병자지? .. 종석이 어딨어?
(* 전혀 납득되지 않음.. ㅡ,.ㅡ;; )

트로포야라는 도시는 영화 테이큰이 아니었으면 알바니아에 살지 않는 외국인들이 접할 일이 전혀 없을 듣보잡 지역일 텐데.. 재미있게도 지난 2020년 1월엔 I love Tropoja라는 영화가 만들어져 나왔는가 보다.
그냥 알바니아 자국 영화이며, 우리나라에서는 개봉하지 않았고 알려지지도 않았다.

3.
개인적으로 구글로 웹툰 ‘참교육’을 검색해서 보고 나서는 “아 맞다, 편의점 샛별이 드라마에서도 김유정이 일진들 신나게 줘패는 장면이 있었지? 그것도 다시 보고 싶네..” 생각을 했다.
그랬는데 유튜브를 들어갔더니 첫 화면에.. 편의점 샛별이에서 김 유정이 일진들 줘패는 장면 모음이 AI 추천으로 곧바로 나왔다. 내가 검색을 하지도 않았는데.. ㄷㄷㄷㄷ

물론 내가 이전에 편의점 샛별이 주요 장면을 유튜브에서 찾아서 본 적은 있었다.
배경에 등장하는 어느 전철역이 경인선 도원 역이라는 것도 알아냈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오래된 일이기 때문에 요즘은 내 계정 기준으로 유튜브 첫 화면 첫 페이지에 편의점 샛별이가 바로 뜨지는 않고 있었다. 그랬는데 갑자기 결과가 잠깐 바뀌었다.

4.
그리고 올해 초에 본인은 모 SNS에서.. 우파 진영에서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사람들 좀 반성하고 자제했으면 좋겠다는 요지로 댓글을 달았다.
도대체 누가 무슨 근거로 교황이 체포됐네, 트럼프와 펜스가 합작해서 바이든을 몰아내고 부정선거를 폭로할 거라네 하는 소리를 퍼뜨려 왔나 모르겠다. 수 년 전엔 뭉괴뢰의 법적 임기는 레카의 잔여 임기까지가 전부라는 말을 대놓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악성 문슬람 대깨문이나 광우뻥 네월호 선동꾼만치 악하고 해로운 사람은 아니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지만.. 희망사항 자기 신념이랑 현실은 좀 구분합시당..)
그래서 나는.. 저런 거 퍼뜨리는 사람은 정체가 무엇이고 무슨 부귀영화를 바라고 저러는지.. 마치 “외국에서 페북으로 군인 사칭하면서 페친 신청하고 메시지 보내는 사기꾼”만큼이나 정체가 궁금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말이다..

유튜브에 접속했더니 “sns에서 메시지를 보내는 외국인들 왜 그러는 걸까?”(진 용진)라는 동영상이 첫 화면에 갑툭튀해 있는 게 아닌가~!

5.
그 뿐만이 아니다.
하루는 특이한 저예산 옛날 영화가 문득 떠올라서 devil 2010이라고만 검색을 한번 했었는데..
그 다음에 유튜브 첫 화면에 "화씨 247"의 평론 동영상이 딱 자동 추천되기까지 했다.

devil은 엘리베이터에 사람들이 갇히는 내용이고, 화씨 247은 섭씨 120도짜리 사우나 안에 사람들이 갇히는 내용이다.
자매품으로 관짝 안에 산 채로 갇히는 베리드, 뚜껑 닫힌 수영장 안에 갇히는 12피트.. 이런 영화도 있으며, 수 년 전엔 이 블로그에서도 이런 영화들만 소개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국산 영화 "악마를 보았다"도 2010년작이고 영어 제목이 I saw the devil이다.
그러니 잔머리 좀 굴리는 검색엔진이라면 차라리 저걸 더 관련성 높은 검색결과로 제안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튜브는 그걸 제치고, 유사한 감금 장르 영화를 끄집어내는 지능을 발휘하여 내 취향을 더 정확하게 저격한 것이다.

처음이면 그냥 우연인데 이런 일이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정말..
구글이고 유튜브고 페북이고 뭐고 네티즌들이 무료 서비스를 통해 검색으로 입력한 것, 글쓴 것들을 몽~~~땅~~ 수집하고 데이터화하고 수치로 모델링해서 내 마음과 행동 패턴을.. 무슨 마법이 아니라 수식 계산만으로 얼추 읽어내고 있는 게 틀림없다.

자기 검색 서비스를 몽땅 공짜로 제공하는 대신, 전세계에서 무료로 수집된 천문학적인 양의 검색어들을 갖고 뭔가 수치화할 수 있는 의미, 트렌드 같은 건 뼛속 골수까지 다 끄집어낸 셈이다. 꼭 반도체나 자동차 엔진 만드는 회사만 지하실에서 외계인을 고문하는 게 아니다.;;

1980년대에 컴맹들이 컴퓨터에 대해 가졌던 공포와 우려는..
구글과 유튜브가 무슨 금수저들이 매달 500$씩 내고 이용하는 독점 점유물이 되고 사람들 이마빡에다가 666 반도체 칩을 새겨 넣는 게 아니라, 바로 저렇게 훨씬 더 친근하고 편리하고 상업적인 형태로 더 교묘하게 실현되지 싶다.

종말론자들이 설레발 오지랖 부린 것도 있었지만, 큰 그림은 그렇게 심하게 틀리지 않았다는 것..;;
지구를 지켜라 영화에서 그 사장이 진짜 외계인이 맞긴 했던 것처럼 말이다.. ㄷㄷㄷㄷ 으잉?? (정말 시대를 앞서갔던 창의적인 문제작이었음)

Posted by 사무엘

2021/09/17 19:35 2021/09/1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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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개드립 등

1. 4딸라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
"중립국."
"동무, 중립국도, 마찬가지 자본주의 나라요. 굶주림과 범죄가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중립국."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자랑스러운 권리를 왜 포기하는 거요?"
"중립국."
"동무, 지금 인민공화국에서는 이러쿵저러쿵 하고 있는데, 동무는 가기만 하면 인민영웅이 될 거요."
"중립국."


최 인훈의 유명한 소설인 <광장>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4딸라 드립이랑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같은 패턴이다. ㅋㅋㅋㅋㅋㅋㅋ

"네, 세트 하시면 가격은.."
"4딸라."
"이러시면 안 돼요.. 여기 버거킹이에요."
"4딸라."
"더블패티인데..."
"4딸라."
"이거 세트 메뉴인데.."
"4딸라!"
(그럼 4900원으로 하시죠~! / 오케이 땡큐! 는... -_-)


원작 소설은.. 무려 1960년작이라는 게 굉장히 놀라운 점이다.
6· 25 사변이 끝난 지 10년이 채 지나지 않았던 시절인데.. "난 남한도 북한도 싫고 제3 중립국으로 갈 거야!"는 자칫 잘못하면 코렁탕 먹기 딱 좋은 민감한 소재였다.

이 작품은 할배와 원조가카 사이의 과도기 때 절묘하게 발표됐기 때문에 무사할 수 있었다.
작가는 20대 중반일 때.. 딱 존 카맥이 둠을 만들고 윤 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지고 손 기정이 마라톤에서 우승했던 나이 때 저 소설을 썼다.

2. 텐트와 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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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라고 제안을 했더니 울 어머니와 누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강변에 텐트가 아니라 아파트였으면 거절하지 않았겠지 ㅋㅋㅋㅋㅋㅋ
아침에 일어나 보니, 사진에서 텐트의 오른쪽뿐만 아니라 왼쪽에도 작은 도랑이 있어서 물이 흐르고 있었다. 돗자리와 텐트가 젖을 수도 있었다.

내 경험상, 나의 텐트 운용 엔진은 전진 7단, 후진 3단 정도 된다.

더우면

  • -1 옷 최대한 벗기
  • -2 텐트 창문 덮개 개방
  • -3 물 적시기

0 중간: 텐트 창문 다 닫고 아무 준비물 없이 그대로 잠듦

추우면

  • 1 얇은 여름 이불(모시)
  • 2 여름 침낭
  • 3 담요
  • 4 담요는 밑에다 깔고 겨울 침낭
  • 5 침낭 두 겹 (여름 침낭까지 추가 동원)
  • 6 내복과 패딩 잠바
  • 7 보조 이불까지 추가

2018년의 폭염 속에서 해변에다 텐트 쳤을 때는 -3으로도 부족해서 더위에 허덕였으며..
올해 초, -15도의 혹한 속에서 꽁꽁 언 강물 얼음판 위에다 텐트 쳤을 때는 7까지 다 하고 잤다. (갈 때부터 해외여행 캐리어에다가 담요를 쑤셔 넣었..)

나의 목표는 인위적인 냉· 난방 전혀 없이 체온만으로 자연 속의 한 마리 멧돼지마냥 푹 잘 자고 컴퓨터 작업도 겸사겸사 하다가 돌아오는 것이다.
그냥 에어컨이나 난로를 켜 버리는 건 맨손 무술이 아니라 총 쏴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과 같으며, 마라톤 선수가 중간에 그냥 버스· 지하철을 슬쩍 타 버리는 것과 같다. 그냥 반칙 실격이다. ㄲㄲㄲㄲㄲㄲㄲ

요즘 날씨는 처음 텐트를 쳤을 때는 -1.5 정도에서 시작했다가 새벽과 아침엔 0.5에서 1까지 가는 듯.. 쉽게 말해 밖에서 자기에 정말 정말 좋은 날씨이다. 이런 때에 겨우 집에서 선풍기나 틀어 놓고 자는 건 내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뭐, 울 어머니나 누나 등 가족은 저 등급에다가 +1 ~ +1.5쯤 더해서 인식하는 편이더라만..

독자 여러분도 기회가 되는 대로 밤에 으슥한 산이나 강가에서 자연을 많이 즐겨 보셨으면 좋겠다. ^^ 특히 비 예보가 있는 날 밤에 계곡이나 강물 바로 옆에 텐트 치는 게 내 경험상 제일 좋다.
보안을 위해 구체적인 위치는 공개하지 않지만-_- 내가 텐트 치는 숙소는 한두 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 분산돼 있다. 이것들은 다

  • 접근성: 도보/자전거/차로 몇 분
  • 편의시설: 화장실, 식수대, 공공 와이파이
  • 방수 가능 여부: 비가 올 때..
  • 주변 소음: 자동차 도로에서 가까운 곳은 밤에도 시끄러운 편
  • 은폐/보안성: 사람 발길이 잦은 곳이면 해가 뜨자마자 철수해야 함

등으로 자체적으로 점수가 매겨져 있고,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돌아가며 이용한다. 온도별 대처 요령도 그렇고.. 이게 일상생활이 되니 분야와 상황별 매뉴얼이 다 구축된다. ㅋㅋㅋㅋ
아침엔 입을 옷을 고민하고 점심 때는 밥 먹을 식당을 고민하고, 밤에는 텐트 칠 곳을 고민하니 의식주가 골고루 갖춰진다.

3. 흑돼지

하루는 근처 식당 간판에서 "팔공산에서 방목한 흑돼지"라는 광고 문구를 보고 약간 의아했던 적이 있었다.
팔공산이라고 하면 대구에 있는 산이지 않은가. 그 대도시에도 한켠에 돼지 농장이 있나..? 그리고 흑돼지는 제주도가 유명하지 않나..??

알고 보니 전라북도 장수군과 진안군 사이에도 팔공산이라는 이름의 산이 있고, 거기서도 흑돼지를 키우고 심지어 한우도 키우는가 보더라.
산의 인지도로나 돼지의 인지도로나 다 콩라인...이어 보인다만, 그래도 기회가 되면 여기 돼지를 먹을 기회도 있었으면 좋겠다. ^^

4. 성경 이야기 패러디

이런 게 요 근래에 떠올랐다. ㄲㄲㄲㄲㄲㄲ

(1)
이세벨: 어이 아합 (우리 자기~^^)
아합: 이세벨, 어서 오고.
이세벨: 아침부터 왜 이렇게 죽상이야.
아합: 나봇이 꼴받게 하잖아. 씨X 젓X색X가.
이세벨: ㅋㅋ 떨 한 대 할래? (왕상 21:4-6)

(2) 탕자의 비유
작은아들은 타지에서 아버지의 자산을 탕진하여 알거지가 됐다. 그는 돼지가 먹는 사료도 얻어먹지 못하던 와중에 불현듯 현타가 왔다. “우리집은 먹을 게 너무 많아 썩어날 지경인데 난 이렇게 굶어 죽는구나 ㅠㅠㅠ” (눅 15:16-17)

Posted by 사무엘

2021/08/26 19:34 2021/08/26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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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은 한 달 내내 날씨가 지독하게 더웠다.
본인은 올해의 하계 휴가는 예전의 관행과 달리, 인천· 경기도를 벗어나지 않는 단거리 위주로 산발적으로 다녀왔다. 그리고 새로운 장소를 개척하기보다는 이미 검증된 기존 장소를 찾아갔다. 코로나19 시국과 개인적인 신상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이렇게 움직이게 됐다.

먼저 을왕리 해수욕장에 당일치기로 다녀온 뒤, 다음으로는 양평 계곡에 다녀오고 거기 부근에서 캠핑을 했다. 당초 계획했던 동해 바다를 포기하는 대신, 이걸 황해 바다와 계곡으로 나눠서 퉁친 셈이었다.

방역 때문에 밤에 시원한 바다 코앞에서 텐트 치고 놀지를 못하게 한다니.. 그럼 멀리 동해까지 원정 가는 것의 의미가 없어진다.
하지만 아무리 코로나니 뭐니 해도 이 더위에 어디든 바다는 보고 와야 하니 그냥 가까운 곳을 찾아가게 됐다.

1. 첫째 날: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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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왕리는 3년 전에 다녀 온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이 어디 가지는 않아서 주변 지리가 낯익어 보였다.
그때도 한낮에 찾아가니 물이 다 빠져 있었는데.. 나중에 용유도 일대의 만조· 간조 시간대를 찾아보니 진짜로 오후 2시 반쯤이 물이 제일 없는 시간대였다. 황해에서 물놀이를 생각하고 있다면 이런 것도 고려를 해야겠다.

그래도 만조 ↔ 간조 사이의 간격이 얼추 6시간이니, 두어 시간 정도 지나자 물이 금방 들어왔다. 한참 멀리 떨어져서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부표들도 금세 물에 잠겼다.
워낙 폭염이 강하고 수심이 얕기도 한지라, 바닷물은 그냥 온수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지근했다. 그리고 아래가 내려다보이지 않을 정도로 탁한 흙탕물이었다.

동해는 시종일관 거센 파도가 휘몰아치고 거품 낀 맑은 물이 솟구치는 대신, 바닥도 급격히 깊어져서 물에 얼마 들어가지를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원도건 부산이건 별 구분 없이 말이다.
이런 사소한 것들도 매년 꾸준히 바다에 다녀오니 차이점이 눈에 들어오고 경험과 노하우가 생긴다.;;

여기서는 발 담그고 해변 산책, 식사와 카페 휴식 정도만 했다. 방역을 빌미로 해수욕장이 폐장 상태이고, 샤워장조차 운영하고 있지 않으니 뭘 더 할 수가 없었다.
그럼 발을 씻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야외 수도꼭지 같은 거라도 있어야지? 그것도 없으면 사람들이 나갈 때 온통 공중 화장실로 몰릴 것이고 세면대 하수구가 모래에 막혀서 배기지를 못할 텐데.. 이미 공중 화장실 세면대는 개판이 돼 있었다.;;;

2. 둘째 날: 계곡

이튿날, 본인이 찾아간 곳은 양평의 모 계곡이었다. 여기도 수 년 전에 교회 수련회 일정에 껴서 친구들과 다녀온 적이 있어서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작년에 굉장히 시원하고 인상이 좋았던 안양 병목안 산림욕장의 계곡, 또는 양주 송추 계곡도 후보에 껴 있었다. 하지만 거기는 연계 관광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지라, 이번에도 역시 검증된 피서 휴양 코스인 양평을 선택하게 됐다. 서울을 떠나서 국도 6호선을 따라 한강 경치를 감상하는 건 나를 언제나 들뜨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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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에서는 인구 밀도 대비 수량이 부족해서 앉거나 눕는 기동밖에 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하지만 이 길고 긴 폭염 와중에 이만치라도 맑고 차가운 물이 흐르는 곳, 선풍기와 에어컨 없이 지낼 수 있는 곳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물이 적은 대신 퀄리티가 바닷물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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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물이 졸졸 흐르는 전용석에 기다랗게 누워서 한 30분이 넘게 컴퓨터 작업을 했다.
그늘 밑에 돗자리 깔고 거기서도 낮잠을 자고 간식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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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저문 뒤에는 계곡을 나와서 근처를 방황하던 중,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어느 공터를 발견했다.
놀이터였던 곳이 방치된 것 같은데.. 차도에서 가깝지만 길에서는 공터 안이 수풀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 은폐 보안성을 자랑(?)했다. 게다가 옆에 정자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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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바로 옆에 흐르거나 화장실· 수도꼭지 같은 것만 근처에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캠핑을 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였다. 여기서 텐트 치고 밤을 보냈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3. 셋째 날: 한강 주변 카페, 두물머리 세미원

계곡에서는 6시간을 채 있지 않았던 반면, 이 캠핑 아지트에서는 자는 시간을 포함해서 무려 12시간 가까이 있었다.
둘째 날까지 물놀이와 캠핑을 했다면 셋째 날엔 두물머리 일대에서 시각 힐링과 관광을 즐겼다. 이런 연계 코스 때문에 계곡에 갈 때도 다른 지역 대신 양평을 선택한 것이었다.
다만, 이 관광지들은 상수원 보호 구역에 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관광만 가능하다. 이제 물놀이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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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교회 수련회를 다녀오면서 개척한 적이 있던 카페인데.. 예나 지금이나 주변 경치가 가히 킹왕짱이었다. 날씨도 흐릴 거라는 예보와 달리 쾌청해서 더욱 좋았다. 여기서 제대로 씻고 전자기기들을 충전하고 간식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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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햇볕이 내리쬐고 날씨가 많이 더워져서 야외 활동은 자제할까 생각도 했지만..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근처의 '세미원'이라는 곳을 가 봤다.
'평범한 연꽃 공원처럼 보이는데 무슨 입장료까지 받나, 옆에 있는 두물머리 공원과 차이가 뭐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들어갔지만 생각이 곧 바뀌었다.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시설이 정말 잘 꾸며져 있고 볼거리가 많았다.

특히 저 사진에서 보다시피, 입구에서부터 울창한 나무들 아래로 물이 졸졸 흐르는 징검다리길이 있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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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에는 이렇게 커다란 연꽃들이 가득했다. 꽃이 피었다가 시든 자리는 무슨 샤워기 같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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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도 이렇게 잘 꾸며진 공원과 연못이 아주 넓게 갖춰져 있었다. 그저 풀숲뿐인 두물머리 공원과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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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하늘과 강이 참 예뻐서 한 컷 찍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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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원에서도 다리를 통해 이웃집인 두물머리 공원으로 갈 수 있었다. 단, 두물머리에서 세미원으로 재입장을 하기 위해서는 티켓을 잘 간수하고 있어야 한다.
뙤약볕 아래에서 긴 거리를 걸어 다니느라 다리가 아프고 피곤했지만 그래도 돌아다닐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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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돌아오면서 강북이 아니라 강남에서 강북 쪽을 바라보며 찍은 한강 경치이다.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이상이다. 본인은 이렇게 이번 휴가철엔 바다(3) - 계곡 개울(1) - 큰 강(2)의 순으로 답사를 하고 돌아왔다.
각 장소별로 물놀이는 바다(2 발만..) - 계곡 개울(3 제일 많이) - 큰 강(1 전혀 못 함)의 순으로 했다.
사진은 바다(1 별로) - 계곡 개울(2 조금) - 큰 강(3 제일 많이) 이런 순으로 많이 남겼다.

Posted by 사무엘

2021/08/15 08:34 2021/08/1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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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한 괴질(폐렴)

2021년도 벌써 절반이 지난 하반기로 접어들었다.
이번 7월은 3년 전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극악의 무더위에다, 급격히 무섭게 확산되기 시작한 우한 괴질 때문에 인해 전국적으로 몹시 힘든 시기가 아닐 수 없었다.
서울과 수도권에는 사회적 거리 두기 등급이 최고 단계(lev 4)로 올라서 저녁 모임이 사실상 봉쇄돼 버렸으며, 교회 예배도 10%나 20%도 아니고 대면 예배가 또 통째로 금지돼 버렸기 때문이다.

이 시국에 대해서 요즘 기독교계에는

  • 교회도 방역 시책 꼭꼭 잘 지켜서 괜히 교회에서 확진자 나와서 주변 불신자들한테 욕먹고 간증 상실하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비대면 예배는 종교적으로 다른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게 절대 아니다.
  • 우한 괴질은 선동하는 것만치 위험한 게 아니며, 이런 뻘짓 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저건 효과도 일관성도 없는 정치방역 방역독재일 뿐이며 더 나아가 예배를 못 드리게 하는 교묘한 기독교 박해이다.

대충 이런 두 시각이 공존하면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으로 보인다. 난 편의상 전자를 좌파, 후자를 우파라고 분류한다.

왼쪽으로 도가 지나치면 "우리 문프달님 짱, K방역 짱, 말 안 듣고 방역수칙 안 지키는 놈들만 나쁜놈. 비대면 예배는 제2의 종교개혁" 이런 쳐돌은 짓거리로 빠지며..
오른쪽으로 도가 지나치면 방역 정책의 무능 모순 정치질 비판을 넘어서 거의 백신 = 666, ㅇㅎ 폐렴 = 여느 독감이나 그에 준하는 이상한 음모론 짓거리로 빠진다.
이에 대해 한데 치우치지 않은 좀 정상적이고 건전한 분별이 필요하다.

나는 우리 주님께서 납세를 손수 실천해 보인 정도로.. 교회도 정부의 방역 시책에 따르는 것이 잘못됐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들을 실족시킬까 염려하노니..." (마 17:27) 마태복음 17장 끝부분 이야기를 방역 시책에다 대입해서 읽어 보시라.

방역 시책이 대놓고 노골적으로 "교회만 예배 금지. 엿먹어라~! 성당이나 절이나 다른 집회들은 몽땅 OK" 이딴 식으로 말하지 않는 한, 그리고 우리가 의대 간호대 약대를 나온 의료인이 아닌 한, 일단은 전문가와 행정가의 말에 순응해 봐라.
최소한의 본분은 다하고 나서 그 다음에,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교묘하게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 같으면 편파적인 정치 방역을 욕하고 비판하고 집회를 하고 SNS에다 글 올리고 시위를 하든지 말든지 하는 거다.

이게 가장 이성적이고 건전하고 성경적으로나 개인 양심에 거리낄 게 없는 대처가 아닐까 한다.
그냥 정부 시책에만 100% 따라서 비대면 예배를 드리건, 아니면 벌금 먹으면 내고 말지 생까고 끝까지 모이건.. 그건 각 교회들이 재량껏 결정할 사항이다. 옳고 그름을 따질 문제는 아니어 보인다. 한쪽이 믿음이 좋은 게 아니고 다른 한쪽이 마냥 타협하고 믿음을 저버린 것도 아니다. 내가 보기엔 벌써 그 정도 지경까지 된 건 아니다.

옛날에는 거리설교 때문에 교인이 공권력과 갈등을 빚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요즘은 예배 자체 때문에 이런 갈등이 생기기도 하는구나.;; 이게 담대함인지, 아니면 그냥 무례 객기 깽판인지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2. 옛날 프로그램 수정 내역

사회가 뒤숭숭하지만 그래도 내 개인적으로 프로그램 개발은 계속되고 있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다음 버전 개발 근황은 오는 8월쯤에 한번 올라올 것이다. 날개셋뿐만 아니라, 옛날 자료실에 있는 '3차원 그래픽 시연 프로그램'과 '삼각형의 오심 그리기 프로그램'을 약간 고친 소식도 여기서 같이 전하고자 한다.
먼저 전자는.. Shift를 누르고 있는 동안 우버튼+드래그(시점 전환)가 되지 않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했다.

Shift는 위/아래 화살표나 마우스 왼쪽 버튼을 눌러서 이동할 때 Z축은 움직이지 않게 한다. 그래서 얘를 누르면 위나 아래를 보는 채로 앞뒤로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얘는 이동 말고 시점 전환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기능이니.. 누르든 말든 오른쪽 버튼 드래그는 잘 동작해야 한다.

내가 지난 2010년대 동안 우버튼 드래그가 가능하지 않은 맥북을 사용해서 그런지.. 이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해야 할 필요성은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오심 그리기 프로그램은 벌써 5년이나 전인 2016년 가을에 기능이 많이 추가되고 업데이트 된 적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또 자그마한 기능을 추가했다. 바로 나폴레옹의 정삼각형을 그리는 기능이다.
얘는 그 특성상 삼각형의 무게중심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무게중심과 동일한 색깔로 그려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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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식물

부모님께서 은퇴 후에 여기저기 식물을 심고 가꾸는 것에 재미를 붙여 계시는데..
본인도 그걸 어깨 너머로 여러 번 보면서 조금씩 재미를 붙이고 있다.
정식으로 분양받은 텃밭 말고 옥상 화분, 강가, 산기슭 같은 곳에 몰래 씨를 뿌려 놓은 게 자라는 걸 보면.. 무슨 광주리에 담아서 강에다 띄워 보낸 모세(?) 생각도 나고.. 그래도 줄기가 길어지고 잎이 커지고 꽃도 피는 게 참 경이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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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나름 강가에서 자그맣게나마 인간이 먹을 수 있는 땅의 소출이 나왔다. 지름 8cm 남짓이다.
인간이 만든 각종 복잡한 기계류의 전선· 케이블하고.. 식물의 줄기는 구조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그래서 성경에서도 첫 열매, 첫 열매 거리는 것일 테고.. (출 23:16, 잠 3:9 등)
박 넝쿨이 죽어 없어진 것 + 더운 것 때문에 버럭 징징거렸던 요나의 심정이 정말 이해가 된다.

천재지변으로 하루아침에 농사를 망치게 됐다면 농부는 완전 멘붕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풍년이라 해도 전근대 시절 옛날 농민들은 수확한 거 대부분을 세금으로 빼앗기고 가난하게 살아야 했다.;;
그 빈곤의 악순환을 끊어 준 건 누가 뭐래도 산업화 근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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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랬던 호박은 한 달 남짓한 시간 만에 1m가 넘는 넝쿨로 자랐다.
저 작은 상자로는 감당할 수 없어서 지금은 모처에다가 옮겨 심었는데.. 오랫동안 야생과 같은 급으로 햇볕을 못 받고 뿌리를 마음껏 아래로 내리지 못해서 그런지.. 지금도 발육이 좀 부진한 것 같다.

4. 강과 계곡

본인은 2010년대 중후반쯤에 등산에 처음으로 재미를 붙였다. 그래서 이 블로그에다가도 서울 근교의 산들을 오른 사진 기록을 수십 편씩 올렸다.
그 등산 취미가 나중에는 차박과 캠핑으로 미묘하게 바뀌었다. 산을 정상까지 오르는 것보다는 산기슭이나 중턱 적당한 곳이라도 텐트 치고 자는 것으로 목표가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한여름에는 등산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덥다. 열대야가 심하면 등산뿐만 아니라 캠핑도 불가능해지고 그냥 집에서 에어컨 틀고 자는 게 더 낫게 된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자연에 대한 본인의 관심은 산과 평지를 거쳐서 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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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뚝섬 한강 공원에서 오리배를 탄 적이 있었는데 요 근래에는 양화 한강 공원에서도 오리배를 몰아 봤다. 이거 바람 때문에 생각보다 시원하고 좋았다. 평소에 수십 m 이상의 거대한 교량 위에서 내려다보기만 하던 한강 물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일이 언제 있겠는가?

내가 알기로 서울에서 오리배가 있는 한강 공원은 뚝섬, 양화, 여의도 정도이다. 또 더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단, 양화는 내가 갔던 시절에는 전동은 없고 수동 페달만 있어서 주행이 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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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 한강 공원과 가까이 있는 선유도를 나름 보트로 이렇게 접근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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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물 좀 보소~
요즘 같은 계절에 이런 계곡물이 있으면 난 온몸을 담궈서 자가침례를 행하고, 그걸로 모자라서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을 벌컥벌컥 마시기도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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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맑고 공기 좋은 자연 속에서 버그 하나 잡고 기능 하나 구현하고 갔다.
참고로, 이 사진을 찍어 주신 분은 저런 짓을 도대체 왜 하냐는 송충이 씹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ㅋㅋㅋ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21/07/22 08:34 2021/07/22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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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가 좋다

1. 산, 차박, 텐트에 이어 멧돼지

이 블로그는 평소에 온통 긴 글, 진지한 글밖에 안 올라오는 편인데.. 오늘은 오랜만에 블로그 주인장의 개인 취향과 관련된 뜬금없는 소리를 좀 늘어놓도록 하겠다.
본인은 5년쯤 전부터 등산을 시작하면서 자연인 야인의 생활이랄까.. 이런 것에 재미를 붙였다.

집 대신 차에서 자기 시작했고, 그 뒤엔 차에서 내려서 텐트에서 자기 시작했다.
이 넓고 적막한 공간을 그저 지나쳐 버리는 게 아니라 여기서 밤을 보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나야 예수 믿는 사람이니, 무작정 속세를 떠난 도인 도사 같은 걸 지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성경에도 엘리야나 요한 같은 야인이 있다. 그건 충분히 동경할 만하다.
이렇게 캠핑을 즐기면서 취향이 바뀐 것이 바로.. 멧돼지에 대한 호감이다.;;

산에서 잔다고 하니까 주변으로부터 한결같이 돌아오는 반응은 멧돼지를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호랑이가 사라진 뒤부터 멧돼지가 생태계의 최대 포식자가 되긴 했다. 흠, 코뿔소도 아니고 멧돼지라니..
그런데 사진으로 자꾸 보니 언제부턴가 그냥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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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무 도야지가 살이 참 토실토실하다. ^^;;
멧돼지라고 하니까 6 25 노래 가사에 나오는 '멧도적 오랑캐'가 연상되기도 한다만, 그래도 멧돼지는 불의의 역도들은 아니지.

영화 대사 중에서 ‘멧돼지’가 나오는 걸 생각해 보면.. 별로 긍정적이지는 않다. ㅠㅠ

  •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주인공 일행이 고고장에 몰래 놀러 갔는데 어느 체대생 누님이 햄버거(!!)에게 빡쳐서 “이 멧돼지 같은 자식”이라고 욕을 한다.
  • 그리고 <범죄도시>에서도 위성락이 체포된 뒤에 마석도 형사에게 “야이 멧돼지 같은 xx야~”하면서 도발하다가 배빵을 당한다.;;

내가 기억하는 건 이 정도..?
난 저 캐릭터들처럼 뚱뚱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멧돼지가 좋다.;;
이건 내가 돼지고기를 음식으로서 아주 좋아하는 것과는 완전히 별개의 감정이다. ^^

2. 돼지 관련 어린이용 매체

돼지와 관련해서 문득 30년도 더 전 옛날 추억을 끄집어내 본다.
본인은 초등학교(그 당시엔 국민학교)에 입학하고서 얼마 뒤에 시에서 개최한 동화 구연 대회에 참가했다. 그리고 거기서 저학년부 금상을 탔다. (대상은 없고 금상이 1등) =_=;; 입상 비결은 특별한 거 없고 그냥 동화책 테이프에서 들은 대로 똑같이 연기와 감정 표현을 한 것이 전부였다.

그때 구연했던 동화는 ‘아기 돼지 삼형제’였다.
아기돼지 삼형제를 읊었던 그 어린이는 커서 야생 멧돼지를 동경하는 어른이 된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기돼지 삼형제’ 동화의 작가는 그림이나 안데르센 같은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영국의 ‘조셉 제이콥스’라는 19세기 민속학/인문학자였다. ‘제이콥스’라는 이름은 꽤 특이해서 내 기억에 각인돼 있었다.

작가의 이름부터가 ‘요셉 야곱’=_=;;이고.. 동화 내용이 뭔가 ‘모래 위에/반석 위에 지은 집’ 같은 인상이 강해서 꽤 성경적인 심상이 느껴지지 않는가?
물론 성경은 집을 지은 터가 차이가 나는 반면, 저 동화는 집에 들어간 건축 자재가 차이가 난다.;;;

저 동화에서 포식자 악역은 늑대인지 이리인지 아무튼 ‘개’과 동물이다. 동양의 전래 동화였으면 ‘고양이’과인 호랑이였을 텐데 이런 차이점이 있다.;; 그러고 보니 새끼 염소들이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동화도 있었는데 서양에서는 이솝 우화의 양치기 소년 이야기 이래로 늑대가 고정 악역인가 보다.

그런데 왜 저 동화에서는 어째 집까지 짓는 주인공이 다른 동물이 아니라 돼지로 지정됐을까? 집을 튼튼히 잘 지어서 어려운 상황에 대비하는 것은 뭔가 개미와 배짱이 우화에서 개미와 비슷한 설정인데.. 어쨌든 저 동화에서는 돼지가 그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흠, 그리고 “엄마 돼지 아기 돼지”라는 동요도 있다. “토실토실 아기 돼지 젖 달라고 꿀꿀꿀” 이러는 그 오글거리는 노래 말이다. 게다가 후렴은 온통 꿀꿀꿀꿀~만 있다!! ㅋㅋㅋ
현실에서는 엄마 돼지는 집채만 한 덩치에 옆으로 자빠져 있고, 그 옆으로 새끼들 예닐곱 마리가 달라붙어서 젖을 빠는데.. 그 모습은 얼추 이렇다. (어이쿠, 이 사진에는 새끼가 무려 10마리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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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동요는 김 규환(1926-2011)이 작곡했다. 이분은 가을길, 바둑이 방울(딸랑딸랑 딸랑~!)을 작곡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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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검색을 좀 해 보니 '멧돼지가 쿵쿵, 호박이 둥둥'(2015)이라는 제목의 창작 동화까지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전래동화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를 패러디 한 거라고 한다.

끝으로.. 경기도 이천에는 “돼지 보러 오면 돼지”라는 기막힌 이름의 돼지 박물관도 있다. 나중에 저기 가 보고 싶다. (☞ 링크)

3. 멧돼지를 키우는 사람

집돼지도 아니고 야생 멧돼지를 어째어째 하다 보니 시골에서 개인적으로 키우는 사람이 국내에도 몇몇 있어서 매스컴을 탄 적이 있었다.
가장 먼저 무려 2005년, 내가 스펀지에 출연했던 그 시절에 부산 기장군에 이런 분이 있었는가 보다. (☞ 주요 정지 화면, ☞ 방송 내용)

저 할배의 경우, 멧돼지 새끼를 지인한테서 받았고, 키워서 잡아먹으려 했는데 그만 정이 들어서 이렇게 아들처럼 키우게 됐댄다 ㅋㅋㅋㅋ
워낙 엄청난 옛날이어서 영상의 화질은 물론이고 종횡비부터가 지금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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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를 타고 다니다니.. 바로 저거야~~!!!
우와~ 나도 산에서 멧돼지 하나 데려와서 이렇게 교감하고 싶다. 타고 다니기도 하고... ㅋㅋㅋㅋㅋ

그리고 2016년경엔 영암에서 방송이 하나 더 나갔다. (☞ 방송)
이번 출연자는 영암에서 말을 키우는 분인데.. 어느 사냥꾼 지인으로부터 생후 열흘 남짓밖에 안 된 멧돼지 새끼를 받아서 말들과 같이 키우게 됐댄다.
어미는 안타깝지만 유해조수 수렵 기간에 사냥 당했다고 한다. 그러니 쟨 나름 불쌍한 고아 신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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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는데 돼지는 역시 어쩔 수 없는 돼지다. 돼지코를 벌름거리면서 음식 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맡아서 찾아간다.
시도 때도 없이 배고프다고 보채고, 먹을 걸 발견해서 한번 먹기 시작하면 주인이 아무리 제지해도 막무가내..;;

그건 이전 2005년도 방송에서 출연했던 멧돼지하고 완전 똑같다.
저렇게 먹어대니 그 작던 새끼가 저런 엄청난 덩치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완전 귀여워~~~ ㅠㅠㅠ +_+

멧돼지와 집돼지의 외형 차이는 정확하게 무엇일까? 멧돼지는 시커먼 털이 났고 주둥이가 더 뾰족하게 쑥 튀어나온 것 같다.;; 뭐, 일반 집돼지 중에도 시커먼 흑돼지 자체는 있는데, 그렇다고 그게 멧돼지인 건 아니다.
근데 저 영상은 촬영 분량을 만드느라고 저렇게 자유롭게 풀어 준 것이지 싶다. 평소에 저런 멧돼지를 아무 통제 없이 놔 뒀다간 위험하긴 하겠다.. ㅋㅋㅋ

유해조수 명목으로 지정된 기간에 지정된 장소에서 합법적으로 사살된 멧돼지는 집돼지와 마찬가지로 사체가 식용되기도 한댄다.
농촌에서는 피해 신고를 한 농가에게 단백질 보상 차원에서 주고, 그리고 도시에서는 모처럼 회식이라도 하라고 양로원 노인정 복지관 등에다 기증한댄다.
그럴 여건이 안 되거나 사체의 상태가 심하게 안 좋으면, 여느 로드킬 동물이나 쓰레기를 처리하듯이 그냥 소각 폐기하게 된다.

4. 기타 옛날 회상

(1) 동화 구연 대회가 끝나고 상까지 받았던 날 저녁엔.. 본인은 부모님 및 학교 선생님과 함께 입상 기념으로 어느 고급 레스토랑에서 수프 등 여러 요리가 차례로 나오는 '비프 커틀릿'(일명 비후까스)을 먹었다. 그거 1인분 가격이 딱 5천원이었다.
지금은 직장인의 평범한 식당 점심도 5천원으로는 택도 없고 편의점 도시락조차 4천원을 넘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때의 5천원은 요즘 물가로 2~3만원 이상은 너끈히 될 것이다.

(2) 내가 최초로 입학해서 저학년 시절에 다녔던 초등학교는 월성 국민학교였다.
그런데 그.. 1966년 2월에 낙하산 강하 훈련 중에 동료의 기능 고장 낙하산을 펴 주다가 한강 얼음판에 추락사로 순직했던 이 원등 상사(1935-1966)도 경주 출신에 월성 국민학교 졸업생이더라..(1948년) 신기했다.

월성은 이미 1920년대 말부터 있었던 학교인데, 근처에 흥무 초등이 1981년에, 유림 초등이 1993년에 추가로 만들어졌다. 월성은 구시가지와 가까우면서 주변 부지 부족, 문화재 보호 개발 제한 때문에 증축이 안 되어서 결국 학교를 또 만든 것이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21/07/02 08:34 2021/07/02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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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회중 찬양 인도 회고

* 본인은 다니는 교회에서 10년 넘게 예배 전의 회중 찬송 인도를 했다. 그리고 지금은 우한 폐렴 때문에 무기한 중단된 지 1년이 넘었지만, 그래도 청년부 특송의 선곡과 지도도 6년 가까이 해 왔다.

1. 현충일 주일

올해는 2010년 이후로 11년 만에 현충일이 일요일(주일)과 겹치게 됐다. (그 전에는 2016년이 윤년이어서 토요일 다음에 일요일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월요일로 이동함.. ㄲㄲㄲ)
그래서 난 이 날은 준비찬송 곡에다가도 조기를 달았다. 바로.. 곡을 몽땅 단조로만 편성했다.

찬송가라는 업계에서 단조는 굉장히 드물다. 이름부터가 괜히 ‘마이너’가 아니다..

  • 중세 엄근진 스타일: “우리 주(여호와) 하나님”이 이 카테고리에서 거의 유일 독점에 가까운 인지도를 자랑한다.
  • 단조이지만 좀 경쾌한 느낌이 드는 CCM: “온 땅이여 주를 찬양” 같은 거..
  • 히브리 민요 스타일: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내가 의도한 건 물론 중세 엄근진이다. 분투와 승리가 아니면 고난, 십자가 장르가 이런 날 어울릴 것이다.
(1) “우리 주 하나님” 다음으로 (2) “온 인류의 구주께서”(behold the savior of mankind)라는 신곡을 발견해서 넣었다. 악보를 읽어보니 “우리 주 하나님”과 거의 같은 중세 엄근진 스타일에 가사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3) “어느 민족 누구게나” 이건 뭐.. 분투와 승리 장르에 있는 절대지존의 단조곡이기 때문에 현충일 주일에 0순위로 광속으로 선택됐다.

끝으로, (4) “밝은 빛을 따라서”는 이스라엘 국가 Hatikvah(희망)와 같은 멜로디이다.
예전에 악보를 처음으로 읽어 보니, 첫 시작이 동요 “썰매” (모두 모두 달려라 달려라)하고 조가 같고 첫 마디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걸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레미파솔 라 라 / 시b …).
그래서 얘도 그 동요처럼 굉장히 경쾌하고 빠른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공식 연주 음원을 들어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훨~씬 느리고 진지한 분위기(?)의 곡이었다.

저런 것들로 곡이 편성됐다.
다만, 세상 음악은 단조라고 해서 마냥 장송곡 스타일만 있는 게 아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기는 좀 그렇지만 댄스곡들도 단조가 많으며, 또 요즘 애들이 단조 음악을 제일 많이 접하는 경로는 누가 뭐래도 게임 BGM이지 싶다. 게임 BGM이 장조이면 분위기가 너무 명랑 발랄하고 안정적으로 바뀌어서 몰입감과 긴장감이 떨어질 것이다.

  • 단조로 시작했다가 중간에 장조로 전환되는 곡으로는 “6 25 노래”(아아 잊으랴), 그리고 송 명희/최 덕신 “동참”(너 고통 당할 때) 정도가 기억 난다.
  • 기독교에는 “부활과 영생”이란 게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예배는 분명히 누군가의 죽으심을 기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세상 현충일 기념식과 같지는 않다. “무슨 장례식 온 듯이 깜장으로 조폭처럼 쫙 빼 입고” 마냥 옛날 순교자들을 꺼이꺼이 추모하고 성역화하고 묵념만 하는 게 아니다.
  • 과거에 주일이 9월 18일 철도의 날과 겹쳤을 때는 난 “구원 열차”(나는 구원 열차 올라타고서 ...) 내지 “다함께 천국행 기차를 탑시다”를 넣기도 했다. 이 얼마나 적절한 선곡인가! ^___^

2. 무반주 생목소리

요즘이야 울 교회가 인원이 늘어서 어지간한 집회(주일 예배, 여름 수련회 집회 등) 때 참석자 중에 피아노 반주가 가능한 사람이 전혀 없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옛날에는 집회를 앞두고 준비 찬송을 불러야 하는데 반주자가 전혀 없을 때가 아주 가끔 있었다.
그럴 때는 부득이하게 인도자인 내가 그냥 무반주 생목소리로 찬송을 부르곤 했다.

그렇게 생목소리로 찬송을 부르는 중에 반주자가 뒤늦게 도착하기도 하는데..
반주자는 피아노 앞에 앉아서 멀뚱멀뚱 기다리다가 다음 곡부터 반주를 하는 게 아니다.
지금 불러지고 있는 부분으로 바로 들어와서 반주를 시작한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내가 무반주 생목소리로도 반주가 있을 때와 아무 차이 없이, 언제나 악보와 동일한 음높이로 찬송가를 부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주자가 악보대로 코드 넣고 반주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다.
반주자가 직접 형제님하고는 아무 때나 이렇게 같이 호흡 맞출 수 있고 반주하기가 편하다고 얘기하는 걸 듣고서야.. 이 기질이 반주자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난 예나 지금이나 조가 반음이라도 올라가거나 내려간 곡은 다른 곡으로 인식한다. 뭔가 음식이 쉬어서 맛이 변한 것 같은 차이가 느껴진다.
음반에서 G장조로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곡을 Ab 같은 다른 조로 바꿔서 부르게 되면.. 음반을 들으면서 경험했던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색소폰 같은 이조악기를 배울 때도 굉장히 애먹었다.

3. 마구니

한번은 "이 세상의 모든 죄를"이라는 찬송가 3절을 부르던 중..
"아버지를 멀리 떠나 바른 길을 저버리고 여러가지 죄악으로 주홍같이 되었으니
물 같은 것 가지고는 씻을 수가 아주 없네, 주님 귀한 보배피로 날 정결케 하셨도다"

글자가 순간 "물 같은 것 끼얹어선"이라고 눈에 들어와서 피식 뿜을 뻔했다. 진짜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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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소리는 방송 타고 퍼지고 있는데.. >_<
순간 아찔했다. 다행히 스스로 감정을 컨트롤 해서 겉으로 드러나는 방송사고는 나지 않았다.
어떤 목사가 바둑에 빠져 버려서 기도 마무리를 아멘 대신 '아다리'라고 했네 그게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찬양인도자도 가끔은 마구니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기름이나 화학약품 화재는 물을 부어서 끌 수 없으며, 인간의 죄는 물 같은 걸로 씻을 수 없다.

4. 추억의 특송 편성

예전에도 몇 번 자랑한 적이 있었지만..
본인이 기획했던 역대 교회 청년부 특송 중에서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장 공들였고 가장 창의적이고 훌륭했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2017년 4월작이었다.

“맑고 밝은 날 / 변찮는 주님의 귀한 약속 /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
19세기 찬송가의 앞뒤로 짤막한 1970년대 CCM을 넣은 3곡 메들리이다. (☞ 듣기)

이건 특정 테마 없이 완전히 백지 상태에서 1100여 곡이 수록된 찬송가 책을 거의 2시간 가까이 뒤진 끝에.. 세 곡 조합을 자체적으로 발굴한 것이었다.
박자와 조가 동일하고(E장조 4/4박자), 멜로디와 가사가 모두 연달아 부르기 적합한 곡들 조합 말이다.

세 곡 모두 우리 교회에서 한 번도 불린 적 없었고 나도 모르던 신곡이었다. 처음 보는 곡의 악보를 머릿속으로 읽기만 하면서 “이 곡이 이렇게 끝나니, 다음엔 얘를 부르면 되겠다” 이렇게 시뮬레이션을 하며 곡을 골랐었다.
전주와 간주, 반복 같은 바리에이션도 다 내가 직접 구상했다.
내가 없는 멜로디를 새로 만들어 낼 능력은 없지만, 그래도 이미 있는 곡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스킬은 이때 그럭저럭 발휘됐다.

  • “맑고 밝은 날”은 어린이 찬송 스타일의 분위기 띄우는 짤막하고 명랑 발랄한 첫곡.
  • “변찮는 주님의 귀한 약속”은 예수님이 우리의 본보기 예제이다, 우리는 그분을 따르겠다는 가사의 중간 주제곡. <예수 나를 오라 하네>와 후렴 가사가 거의 같다.
    • Where he leads I’ll follow, follow all the way (저거)
    • Where he leads me I’ll follow, I’ll go with him all the way (예수 나를 오라 하네)
  •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는 워십쏭 스타일의 조용하고 우아한 마무리 곡. 특히 조를 올려서 한번 더 반복한다.

지금 다시 보니.. 첫 곡의 마지막 소절 가사 “매일 주님 사랑 따라 말씀대로 살리라”의 원래 영어 가사는 Living each day by the PROMISES in God’s WORD 이다.
그런데 다음 곡 “변찮는 주님의 귀한 약속”은 1절 가사가 Sweet are the PROMISES, kind is the WORD이다.
우와~~! 대박인데? 영어로 불렀으면 똑같이 약속과 말씀이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시너지 효과가 더욱 커졌겠다. 이어서 부르기 더욱 적절한 조합이었다.

교회에서 특송이 계속됐으면 나도 이런 것들 연구를 계속하고 더 많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만..
이게 중단된 지가 벌써 어언 1년 반이 돼 가니 아쉽고 안타깝다.
나야 이 타이밍에 맞춰 청년부 졸업 준비를 하니 그나마 타격이 덜하지만, 20대 시절, 대학 시절의 추억이 집콕과 마스크에 가려져 삭제된 세대는 좀 안습한 처지가 됐다.

Posted by 사무엘

2021/06/15 08:35 2021/06/1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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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근황

1. 2021년 상반기, 교통 분야의 변화

여의대로와 경인로 사이엔 길 중앙을 틀어막고 공사가 몇 년째 벌어지고 있었는데.. 공사가 끝난 깔끔한 모습을 본인은 며칠 전에야 드디어 처음으로 목격했다.
신안산선이나 GTX 같은 지하철 공사인가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여의도-신월 지하 유료 도로. 여의도와 경인 고속도로가 이렇게 곧장 연결되었다니 신기한 노릇이다.

그건 반가운 소식이지만, 정말 노이로제 걸릴 정도로 난무하는 변태 같은 시속 50, 50, 50, 50 소리 때문에 미치겠다. 시속 80~100은 밟아도 될 것 같은 멀쩡한 6~8차로 도로에서 이게 무슨 개짓거리냐?? 저 신월-여의 지하 도로 출입구에도 시속 50 단속 카메라가 붙어 있더라.

작년에 재난지원금 뿌려서 재정이 부족한 걸 이딴 식으로 회수하려 든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정상적인 애매한 자동차들 속도를 찍어누르지 말고 악성 무단횡단자나 엄하게 처벌하면 도로가 훨씬 더 안전해질 것 같은데 말이다.
멀쩡한 대만 유학생을 죽게 한 음주운전 가해자놈한테는 솜방망이 처벌로 나라 망신이나 시키고.. 사법 분야는 영 마음에 안 든다.

뭐 그건 그렇고, 자동차뿐만 아니라 도시철도 쪽도..
서울 지하철 5호선의 동쪽 종점이 상일동에서 무려 몇십 년 만에 하남 검단산으로 바뀌었다.
공교롭게도 6호선은 봉화산, 7호선은 도봉산 이렇게 종점 근처에 산이 있었는데 5호선도 그 관행을 따르게 된 듯하다.

그 검단산 근처에 성남시에도 영장산과 망덕산 사이에 '검단산'이 있긴 하다. 하지만 성남 검단산은 두 산 사이에 끼여 있고 정상에 군부대도 있어서 접근성과 존재감이 하남 검단산보다는 훨씬 떨어진다. 굳이 '하남'을 붙일 필요는 없는데 왜 저렇게 작명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 안 그래도 외국 여행을 못 가서 국내 여행과 등산이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각광 받고 있다는데, 나도 등산 다시 가 보고 싶네..
앞으로 신분당선 강남-신사 구간, 그리고 서울 동부의 29번 고속도로를 연결하는 한강 교량, 400번 제2순환 고속도로, 동해남부선 복선 전철, 경기도 GTX 등이 기대된다.

2. 프로그램 개발

보통 프로그램 개발 근황은 날개셋 카테고리에다가 올리는 편인데 이번에는 분량이 짧고 별 컨텐츠가 없기 때문에 여기에다가도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지난달에 나온 날개셋 한글 입력기 10.2는 외부 모듈의 동작 안정성과 프로그램 호환성이 크게 개선되었음을 당당하게 내세운 버전이었다. 실제로 한글과 비한글(조합과 비조합)을 섞어 가며 입력할 때 프로그램별로 자잘하게 발생하는 문제들은 이제 확실하게 해결됐다.

그래서 정말 답이 없는 Windows Terminal 요놈에 대한 인위 보정만 제외하면 나머지 수동 보정 옵션은 없어졌다.
사실은 MS IME조차도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놀랍게도 일종의 보정을 해서 동작하고 있다(타 프로그램일 때와는 기능 수행 순서가 정반대). 무슨 기준으로 보정하는지를 알 길이 없어서 내 프로그램에서는 불가피하게 수동 보정으로 남겨 놨을 뿐이다.

하지만 크롬 브라우저에서는 여전히 그것도 버전업 될 때마다 계속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한글을 입력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조합이 마우스 클릭 등 외부에 의해 강제 종료됐을 때의 처리가 영 원활하지 않다.
그리고 심지어 조합이 종료됐을 때 이전에 입력됐던 글자들이 무더기로 삽입되는 현상까지도 본인이 발견은 했지만.. 정확한 재연 조건을 도무지 모르겠다. 크롬과의 악연은 2년쯤 전인 2019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어휴~~ㅠㅠㅠ

그것 말고도 제어판 대화상자를 DPI 설정이 다른 모니터로 옮겼을 때 내부 컨트롤 배치가 확 깨지는 문제를 버그 신고를 통해 발견해서 해결했고, 입력 도구와 대화상자 UI 곳곳에서 버그를 고치고 외형이나 동작을 자잘하게 고쳤다.
다음 버전은 일단은 6월애 내놓으려 하는데, 10.3이 될 수 있을지 그 이상이나 이하가 될지 잘 모르겠다.

3. 캠핑 노숙

요즘처럼 날씨가 좋을 땐 본인은 밤에 집에서 잠을 자지 않는다.
금요일 밤엔 자전거만 몰고 갈 수 있는 곳에 가고, 토요일 밤에는 차로 좀 가야 하는 곳에서 텐트를 친다. 이튿날 아침에 곧장 교회에 가기 위해 운전을 또 하니까 이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차로 간 곳은 충분히 외져서 인적이 전혀 없고 보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자전거로 간 곳은 속세와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은 단순 공원 안에서 짱박힌 수준.. 그래서 한밤중이나 이른 아침에 산책을 하는 주변 사람들 눈에 가끔 띌 수도 있었다.
프로그래머로서 이런 건 hash값의 충돌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텐트 근처까지 누군가가 데리고 오는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리곤 한다. 물론 텐트는 창과 문을 다 닫았으니 보이지는 않고..
텐트 주변에 시시하게 겨우 개가 아니라 야생 멧돼지가 다가오는 날은 언제쯤 도래할지 모르겠다.

자연 속의 환상적인 내 개인 연구실 겸 침실을 놔두고.. 더워서 선풍기를 틀어야 하는 갑갑한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도대체 왜 자리요? 그건 무술 연마 없이 그냥 총 쏴서 사람을 제압하는 것과 같고, 등산 없이 그냥 헬기나 케이블카 타고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내게 집은 주민등록 근거지와 수도 전기의 보급, 씻기 등의 개인정비=_=, 책과 옷 등을 보관하는 창고 정도의 역할을 한다. 먹고 자는 곳은 아님. 처자식 없이 혼자 사는 동안 당분간은 계속 그럴 것 같다.
쓰레기 버리고 오존층 파괴하고 이산화탄소 농도 늘리는 것만 자연에 대한 비매너인 게 아니다. 이런 날 자연 속에서 밤을 보내지 않는 것도 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한겨울은 엄청나게 춥다.
나야 추운 것 자체는 아주 땡큐이지만.. 이 때문에 추가 담요와 잠바 같은 방한 보온 장비가 많이 필요해져서 보행 시의 무게 부담(payload)이 증가하며, 이동 반경이 감소한다.
그리고 -10도 밑으로 내려가면 전자기기들도 잘 못 버틴다. 폰의 배터리가 일시적으로 곤두박질치거나 차의 스마트키가 버벅거릴 정도로..

여름이 되면 짐은 한결 가벼워진다. 더 멀리 이동 가능하고 간편하게 텐트 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낮이 길고 이동에 부담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산이나 공원 내부의 더 깊숙한 곳까지 이른 시간부터 접근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안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기온이 올라가면 야생에서는 벌레도 증가한다. 더워서 텐트 창문도 열어야 할 판인데 도대체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모기 떼들이 5분 안으로 창문 방충망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이런 장단점을 감안하면..
적당히 추워서 최소한의 장비만으로 간단하게 보온이 되고, 산에 조금씩 초록색이 늘어 가고, 아직 모기도 들끓지 않는 지금이야말로 텐트 캠핑 노숙에 입문하기 최적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1/04/21 19:36 2021/04/2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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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근황과 잡설

0.
지난 2월은 직장을 옮긴 것, 요 근래에 누적된 야근· 초과 근무 수당, 그리고 연말정산 환급이 더해져서 급여가 평소보다 꽤 많이 나왔다.
마치 여객기가.. 전투기처럼 상시 초음속 비행은 못 하지만, 제트 기류 뒷바람을 잘 탄 거나 하강이라는 변수까지 더해져서 일시적으로 초음속 비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뭐, 정말 잘나가는 능력자들은 2월 뽀록이 났을 때가 아니라 평소에 이만치, 아니 그 이상도 더 벌 것이다. 특히 올해는 넥슨과 넷마블에서 전사원 연봉을 크게 인상한 것이 매스컴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우한 폐렴 타격 따위 없이 일거리가 넘쳐나는 이 정도 직장이 있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노릇이다.

난 15년쯤 전에 병특을 하면서 앞으로 게임 업계엔 절대로 종사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_-을 했었다;;
회사의 근무 여건이나 복리후생이 불만족스러워서가 아니라, 내가 온라인 게임을 즐기거나 만드는 쪽 적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게임은 이제 나올 거 다 나왔고 혁신이란 게 거의 끝났다고 생각해서 더욱 발길이 꺼려졌다. 블리자드, id, SEGA 같은 전설적인 개발사들이 과거의 명성을 다 날려먹고 괜히 삽질· 몰락하는 게 아니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것도 나의 단견일 뿐이고 NC 같은 곳은 리니지 모바일 하나 잘 만들어서 또 돈을 빗자루로 쓸어담고 있다.;;
SI나 정부 과제나 대기업 납품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뭔가 독창적인 걸 만들어서 end user를 상대로 장사를 할 수 있는 분야가 그나마 게임이긴 하다.

어차피 월화수목금금금 갈려 들어가는 건 마찬가지라면, 넥슨이나 넷마블 같은 곳에 들어가면 그래도 월급이라도 많이 받을 수 있다. 그러니 거긴 아무리 판교의 등대, 구로의 등대 운운하더라도 똑똑한 프로그래머들이 몰리는 것 같다.
뭐 그건 그렇고.. 오늘은 2021년 봄을 맞이하며 접한 여러 주변 소식, 그리고 개인적인 근황을 잡생각들을 늘어놓도록 하겠다.

1.
최소 2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중앙선 청량리-부전 심야 열차가 딱 올해 초(2021년 1월 5일)에 폐지돼 없어졌다..;; ㅠㅠㅠㅠㅠㅠㅠ 난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이런 열차가 있다는 걸 내가 처음으로 알게 된 건 2003년 말, 서울-경주 저녁 6:30 새마을호를 놓쳐서 대체 교통편을 찾던 때였다.
사실 이건 Looking for you를 들을 기회를 한번 날려 버린 치명적인 실수였다. 나의 공식적인 철(도 성)령 강림일이 2004년 1월 31일 제 4타째였는데, 저 새마을호를 안 놓치고 탔으면 철령 강림일이 더 앞당겨질 수도 있었다.

서울 역 대신 청량리 역에서 밤 9시에 출발해서 고향 경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가 있다고 해서 잘 이용했고, 본인은 그 뒤로도 지난 20여 년 동안 얘를 종종 탔다.
하행보다는 상행을 더 자주 이용했다. 경주에서 0시 무렵에 출발해서 서울에 딱 아침 6시쯤에 도착하는 놈이었다.

너무 북적대는 경부선의 대구-구미-대전-천안이 아니라 영천-의성-안동-영주-제천.. 이름부터가 정겹게 느껴졌다. 얘를 타면 고속도로나 고속철에 비해 뭔가 시간이 정지하고 속세를 떠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처음에는 시각표 상으로 청량리-경주가 무려 6시간 반이나 걸렸다. 그러다가 중앙선이 복선화와 선형 개량, 증속이 거듭되면서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5시간 반대로 많이 줄어들었다.

우리나라는 침대차가 진작에 퇴출됐고 심야열차라는 게 없어지는 추세인데, 그나마 최후의 보루로 꿋꿋이 남아 있었던 중앙선 밤차마저 드디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니 아쉽고 허전하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기존 경주 역과 서경주 역 자체가 영업을 중단해 버리고, 신경주 역이 일반열차까지 같이 취급하게 될 것이다.

2.
본인은 지난 겨울엔 어느 때보다도 야영 외박을 많이 했다. 산과 강, 각종 오지에 가서 텐트를 쳤을 뿐만 아니라 꽁꽁 얼음 위에서도 몇 번 성공적으로 자고 왔다.

.내 경험상 -10에서 -5도 사이 정도가 침낭과 담요와 패딩 잠바가 제 성능을 발휘하면서 밖에서 자기 좋은 최적의 환경이었던 것 같다.
화학에서 물질의 상평형이던가, 이상기체의 부피던가 머시기 할 때는 온도-압력이라는 변수에 대한 그래프를 그렸던 것 같은데...

사람의 거주 쾌적성을 나타낼 때는 압력은 무슨 멕시코시티 같은 특이한 고지대가 아닌 한 별 관계 없을 것이다. 그냥 온도-습도를 변수로 삼아야 하지 싶다.
무거운 담요와 침낭을 들고 다니느라 불평하는 게 아니라 이 추위를 즐길 수 있을 때 감사하고 즐기는 것이 진정한 야인 자연인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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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지난 설날 때 고향에서 아무도 없는 어느 공원 풀밭에 텐트를 치고 잤던 당시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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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음에 이어.. 산 속 군용 벙커에서 하룻밤 자는 데 성공했다~! 밖에 눈이나 비가 왔으면 더 아늑하고 좋았을 텐데. 여기는 텐트를 칠 필요가 없으니 돗자리만 깔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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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그러고 보니 벙커도 외관이 뭔가 비슷하게 생긴 구석이 있었구나~! 돌문만 없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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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뜰녘에 눈을 떠서 내가 간밤에 머물렀던 곳의 어귀를 내려다보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의 첫날 매우 이른 아침 곧 해 돋을 때에 그들이 돌무덤에 가며 자기들끼리 이르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돌무덤 입구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고 바라볼 때에 돌이 이미 굴려져 있음을 보았으니 이는 그 돌이 심히 컸기 때문이더라~~" (막 16:2-4)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3.
2021년에 대한민국 땅에서 이런 등록문화재 실물을 구경하게 될 줄이야..
차주가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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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그리 멀지 않은 과거(1~2년쯤 전?)에 각그랜저와 쏘나타 Y2 모델(스텔라 바로 다음의 그 초기형), 그리고 에스페로를 목격한 적이 있었다. 시간 여행이 따로 없었음..
옛날에 SBS 모닝와이드 블랙박스로 본 세상의 어느 에피소드에서는 그 귀하신 각그랜저 하나가 애석하게도 교차로에서 접촉 사고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더라만.. 너무 옛날 차여서 수리하기 꽤 난감했을 것 같다.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다음 버전의 출시 이후 n년까지 mainstream support, 그 다음 n년까지 extended support 같은 생명 주기가 있는 것처럼.. 자동차도 다음 모델의 출시 이후 n년까지 수리용 부품 지원 같은 정책이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싶다.
제주도 내지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제무시 트럭 내지 새한 덤프 트럭이 “아직도” 현역인지 그것도 궁금하다.

4.
끝으로,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
There's a dear and precious book, Tho' it's worn and faded now, Which recalls the happy days of long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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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쯤인가 친구에게서 선물 받아서 15년이 넘게 애용했던 영어 성경책.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 덕분에 휴대성 하나는 정말 만족스러웠으나..
가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가죽이 몽땅 떨어져 나가고 앞뒤 종이까지 뜯겨지는 매우 안습한 처지가 되었다.

울 교회의 목사님께서 이를 위하야 어엿비 너겨 저거보다는 더 두껍고 크지만 그래도 여전히 휴대성이 나쁘지 않은 다른 성경책을 하사해 주시였다. 감사합니다~!
나는 찬송가 책도 5년 남짓 봤는데 표지와 종이가 이미 10년 넘은 연식처럼 해지고 너덜거린다.
곡 고르느라 매주 굉장히 많이 뒤적이기 때문이다.
Random access를 많이 시키면 하드디스크 수명이 짧아지듯이 종이책도 마찬가지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03/08 08:35 2021/03/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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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일로

서울 역 북부에서 시작해서 서대문 역(5)과 독립문 역(3)을 찍고 지하철 3호선의 선형을 따라 고양· 파주 방면으로 가는 도로는 국도 1호선 구간인 한편으로 이름이 '통일로'이다.
이 길 자체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그게 고양과 파주까지 4차선 도로로 한데 뚫리고 '통일로'라는 이름까지 붙은 건 1972년 봄의 일이라고 한다. '통일호'라는 열차 이름은 1950년대 할배 때부터 있었지만, '통일로'는 박통이 붙인 이름이다.

그리고 바로 이 타이밍에 맞춰서 통일로의 종점에 임진각 관광지가 만들어졌으며, 통일촌이라는 민통선 마을도 생겼다. 그로부터 몇 달 뒤인 7월 4일엔 우리가 학교에서도 배우는 7· 4 남북 공동 성명이 발표됐다.
그러니 그때는 온통 통일, 통일 하던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진짜로 남북 통일이 이뤄질 줄 알고 많이 들떴었다.

지금이야 서울에서 파주 임진각 방면으로 갈 때 강변북로에서 이어지는 자동차 전용 도로인 자유로, 혹은 최근에 개통한 서울-문산 고속도로(17)가 즐겨 쓰인다.
자유로는 통일로 이후로 딱 20년이 지난 1992년에 개통했으며,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오두산 통일 전망대가 같이 만들어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자유로나 고속도로와 달리, 기존의 통일로는 자동차 전용 도로도 아닌 데다 차로도 너무 좁고 확장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그냥 그저 그런 시내 도로 내지 국도 레벨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임진각으로 가는 도로의 원조는 바로 이 길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통일로의 고양시 북쪽 지점에는 '통일로 휴게소'라고 온갖 기념비들과 공원이 들어서 있고 공릉천이라는 하천도 가까이 있다. 본인은 북극 한파가 전국을 강타했던 새해의 첫 주말에는 거기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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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휴게소라고 해서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바로 근처에 식당이나 가게들이 들어선 건 아니고.. 그냥 공터 광장과 공원 정도만이 꾸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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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운동이니, 서울 올림픽이니 하는 왕창 옛날 냄새가 진동하는 기념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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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들어가서 올라갈 수 있는 정자 같은 게 아니어서 아쉽다. 자유롭게 개방된 2층 정자라면 올림픽대로에 있는 청담 도로 공원 같은 느낌도 났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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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휴게소'의 길 건너편에는 6· 25 사변 필리핀군 참전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기념비에 새겨진 문구에 따르면, 필리핀군은 488명이 참전했으며, 이 기념비는 1974년 10월 2일에 건립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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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군 기념비의 옆에는 고양시 출신 인물 중에 6· 25 참전 용사를 기리는 기념비가 있었다.
작년에 칠곡 왜관에서 봤던 애국 동산이 떠오른다. 거기서도 자기 지역 출신의 6· 25 참전 용사들을 잔뜩 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안보 관광을 많이 다니고 나니, 과거에 비슷한 부류의 기념물을 봤던 것이 서로 연계가 될 지경이다.
이 기념비는 2004년 7월 27일에 여기 말고 다른 곳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다가 2011년 1월 4일부로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통일로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런 볼거리도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통일로라는 이름의 도로는 경상북도 경주에도 있다.
신라의 삼국 통일을 남북 통일 염원과도 오마주한다는 취지로 1977년엔 경주 남산의 동쪽 기슭에 통일전이라는 기념비가 건립됐기 때문이다. 통일전 근처의 도로 이름이 통일로이며, 심지어 '통일전 휴게소'도 있다.

내가 보기에 경주시는 박통 시절부터 관광 도시로서 특별 지원 대상으로 지정되어 혜택을 아주 많이 받았다. 1968년 12월에 국립공원 지정, 1974년에 보문 관광단지 개발, 통금에서 진작부터 열외, 호화 귀족 열차이던 새마을호 정차 따위 말이다. 게다가 도시형 국립공원이라는 건 현재까지도 경주시가 전국에서 유일하다.

끝으로.. 통일로라는 길이 닦이던 그 시절에 결의됐던 7· 4 성명이라는 건.. 우리나라가 영원히 으르렁대면서 적대할 것 같던 북괴하고도 그나마 “눈 가리고 아웅으로라도 좀 싸우지 말고 서로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을 모색해 보자~”라는 제스처를 취해 봤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특히 1 21 김 신조 사태 때문에 서로 분위기가 얼마나 험악해져 있었던가?)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고 통일은 개뿔.. 남북 지도자는 애초에 서로 온전히 신뢰 가능한 대상이 아니었다.
전근대 시절 옛날에 유럽에서는 귀족 장교들이 자국 졸병들보다 적국 장교를 더 신뢰할 정도였다고 하더라만(적이지만 최소한 약속을 어기지는 않는다) 20세기 후반의 한반도엔 그런 거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 못 가 남한은 통일은커녕 자기 내부에서도 유신 독재(ㅋㅋ)가 시작되었고, 북괴 역시 특히 74년을 기점으로 주체사상과 함께 더욱 흑화하게 됐다. 쟤들도 겉으로는 통일 통일 거리면서 한쪽에서는 땅굴이나 파고, 공작원을 보내 남한 대통령을 암살까지 하려 했다. 그러니 통일은 더욱 물 건너가고 반공 분위기만 더 강해졌다.

2. 캠핑

통일로 휴게소를 방문하던 당시엔 서울의 낮 기온이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강추위가 며칠 동안 전국을 강타하던 중이었다. 오죽했으면 최남단의 제주도까지 한파 경보가 내려졌으며, 한강이 얼고 황해 바다조차 일부 얼어서 양식업(...;; )과 비닐하우스 화훼업(치솟는 난방비)이 큰 피해를 호소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본인은 평범한 산 속이나 물가가 아니라, 이번엔 아예 얼어붙은 강 위에서 텐트 치고 자는 것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장 통일로 휴게소 부근부터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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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중앙까지 100% 언 건 아니지만 주변에는 물이 흐르다가 완벽하게 얼어 버린 곳이 있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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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 주차장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 텐트 치기 적합한 곳을 발견했다.
이불· 침낭 등 장비가 굉장히 많고 무거운 상태였기 때문에 도보 접근성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이것들을 오래 들고 다니니 팔과 허리가 뻐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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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에는 통일로 IC 부근의 상류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는 전구간이 꽁꽁 얼고 위에 눈까지 쌓였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공원 같은 것도 없어서 인적이 더욱 없었다. 다만, 나 역시 강물 쪽으로 가기 위해서 갈대더미들을 타넘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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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세상에 이런 횡재가..
오도독오도독 눈 밟는 소리가 걸을 때가 아니라 누워서 몸 뒤척일 때 나는 그 느낌을 아시겠는가?
-15도도 이제 별 거 아닌 듯..^^ 아 그런데 다 좋은데 발은 좀 시렵다.. 이건 어쩔 수 없다..
믿음이 부족해서 강 중앙으로 더 가까이 가지 못했던 것이 아쉬울 뿐이다.

한숨 잘 잔 뒤 집으로 귀환했다.
그 당시엔 폰과 컴퓨터뿐만 아니라 차키의 버튼이 갑자기 먹히지 않기 시작했다. 키가 문제인지 차가 문제인지.. 차 문 못 열고 시동 못 걸면 어떡하나 깜짝 놀랐다. 키를 따뜻한 곳에 두니 다행히 다시 살아났다.

귀환할 때는 동부 간선 도로를 이용해 봤다.
의정부에서 서울 북부 구간이 싹 리모델링 돼서 확장되고 지하화가 된 걸 처음 봤는데.. 이게 딱 올해부터 개통한 거라고 한다.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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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천에서 야영을 한 뒤, 다음날 밤에는 중랑천 모처의 얼음판에서 또 야영을 했다.
여기는 공릉천보다도 얼음이 덜 생겨 있어서 중앙으로 접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텐트를 친 곳은 보다시피 명백하게 땅이 아니라 얼음이었다.

산천 어디서든 텐트만 치면 나만의 밀실이 생긴다는 게 좋다. 그리고 밖이 아무리 추워도 장비를 충분히 챙기면 체온 에어포켓으로 버틸 수 있다는 것도 좋다. 이렇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1/01/29 08:35 2021/01/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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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초 혹한기의 여행· 캠핑

1. 운종 저수지

본인은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를 여기서 보냈다. 한국학 중앙 연구원 근처의 운종 저수지.
수 년 전에 도보로 등산 다녀왔던 산과 들을 이제 차 끌고 다시 찾아가서 텐트 치고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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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엔 차와 사람이 없다시피하고 고요하고 밤 하늘에 별이 보이고.. 적막함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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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바깥 기온은 -4도로, 저수지의 물은 얼어 있었다.
개운하게 아침에 일어나서 밖에 머리를 내밀어 본 뒤에야 밖이 얼마나 추웠는지를 실감했다.

나는 괜찮은데 전자기기들이 추위에 못 견디더라.
전화기는 배터리가 떨어지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지고, 컴퓨터도 실제로 배터리가 고갈되지 않았는데도 꺼져 버렸다.
심지어 자동차까지.. 배터리와 점화 플러그를 교체한 지 1년 남짓밖에 안 됐는데도 시동 걸 때 움찔 하는 걸 거의 처음 봤다.

2. 율동 공원

모처럼 분당 근처까지 찾아간 김에 국군 수도 병원, 새마을 연수원, 율동 공원 부근을 다시 들렀다. 4년 전에 영장산 등산을 마치고 이쪽으로 도보로 하산한 적이 있어서 추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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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은 (1) 북쪽의 산책로 위주의 평범한 공터, 그리고 (2) 남쪽의 저수지 순환 산책로 이렇게 두 파트로 나뉜다. 주차장은 관대하게도 3시간까지는 무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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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내부에서 저수지를 도보로 산책할 수 있고, 살짝 외곽에서 경치를 감상하며 차로 둘러볼 수도 있었다.
나름 운종과 율동, 이렇게 성남에 있는 저수지 두 곳을 비슷한 시기에 둘러보게 됐다.

3. 고랑포 공원

그로부터 한 주 뒤, 새해에도 날씨가 만만찮게 몹시 추웠다.
서울은 상수원 보호 구역을 낀 동부가 서부보다 아무래도 더 깨끗하며, 개발되지 않은 산천이 더 많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은 혼자 바람 쐬고 싶을 때 양평· 남양주 쪽으로 가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파주· 연천 쪽으로 가서 새해를 맞이했다.
먼저 지난 11월에 개통한 서울-문산 고속도로를 전구간(흥도-내포) 150km/h까지 밟으며 시승해 봤다. 수원 내지 광명에서나 보던 17이라는 고속도로 번호를 여기서도 보니 반갑긴 하더라만..

한강 따라 뺑 도는 기존의 자유로에 비해 이 정도 단축되는 거리와 시간만으로 편도 3000원에 달하는 톨비가 justify가 될지는 모르겠다.
이 고속도로가 진짜 경쟁력을 얻으려면 빌어먹을 과속 단속 카메라, 특히 제일 병신 같은 구간 단속 카메라를 몽땅 떼어내고, 여기는 자유로보다도 더 빠르게 밟을 수 있다는 걸 어필해야 할 텐데 말이다. 굳이 카메라를 설치할 거면 리미트 자체를 150 정도로 크게 상향하든가.

사진은 별도로 첨부하지 않지만... 지난 2013년 이후로 무려 7년 만에 임진각에 다시 가 봤는데, 주변 시설이 꽤 바뀐 것 같았다. 거기 내부를 순환하는 관광용 평화열차는 610mm 협궤이며, 이는 남이섬 내부의 유니세프 나눔 열차와 동일한 궤간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천년고도 경주 출신으로서 경순왕릉 부근에도 갔다. 공식 명칭이 30년이 넘게 ‘신라 경순왕릉’이었는데, 지역 부심 내세우려고 2011년 7월부터 ‘연천 경순왕릉’이라고 명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안압지가 ‘동궁과 월지’라고 공식 명칭이 바뀔 때 같이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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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과 해돋이 구경은 저 왕릉의 바로 근처인 고랑포구 역사 공원에서 했다. 넓은 풀밭에다 바로 옆에 임진강.. 혼자 있기 정말 좋은 장소였고 한편으로 엄청나게 춥기도 했다. ㅎㅎ
반경 300m 이내엔 아무 사람도, 차도 불빛도 없었고.. 밤하늘엔 별이 총총히 보이고 달빛이 주변을 비췄다~

무난방 캠핑의 묘미라는 게.. 밖은 영하의 추위이지만 침낭과 담요 안은 내 체온만으로 따뜻하고 아늑한 에어포켓(?)이 형성되는 것이다.
다만 지난주에 분당에서 -4도를 버텼던 정도의 방한 장비만 다시 챙겼더니, -10~-15도에 달하는 추위를 버티는 건 좀 무리였다. ^^ 새벽에는 에어포켓 안조차도 냉기로 뚫렸으며 특히 발도 시려웠다.

기왕 연천 고랑포구까지 왔는데.. 여건만 된다면 제1땅굴을 관할하는 상승 전망대까지 가 보고 싶었다. 그러지 못한 것 역시 아쉽다.

4. 북한군 묘지 (구 적군 묘지)

파주와 연천을 잇는 국도 37호선을 달리면서.. 지금까지 말로만 들었던 적군 묘지라는 곳에 잠시 들러 봤다. 딱히 코렁탕 보안 시설은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자랑하거나 기념할 만한 시설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로에 이정표나 표지판으로 안내가 잘 돼 있지는 않다. 파주시 적성면의 답곡 교차로에서 국도의 서쪽 파주 방면으로 진입하면 거의 곧바로 진입로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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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묘지는 6· 25 전쟁 중에 수습된 북괴 공산군과 중공군의 유해를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안장해 놓은 곳으로, 1996년 6월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다고 소개되어 있다. 공산군 + 중공군 = 적군이기 때문에 원래 이름은 적군 묘지였다.
그런데 중공군 전사자의 유해는 몇백 구 정도 있던 것을 과거 레카 시절에 모두 중국으로 송환해 줬다. 그래서 여기에는 이제 북한 사람만 묻혀 있기 때문에 이름이 나중에 북한군 묘지로 바뀌었다.

대부분의 일반인에게야 적군 묘지 같은 건 완전히 듣보잡이겠지만..
좋게 말하면 진보 좌파, 나쁘게 말하면 친종북 빨갱이 성향의 단체들에서 저기를 주기적으로 찾아가서 추모제 비스무리한 걸 했다. 그러자 보수 우파 단체에서는 근처에서 규탄 시위를 하며 맞불을 놨다.

병림픽이 벌어질 기미가 보이자 정부에서는 여기에 민간인의 출입을 금지시켰으며, 국도에서 묘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쇠사슬로 막아 놨다.
그래도 입구 어귀에 차 한두 대 정도는 세워 놓을 공간이 있었으며, 묘지 자체도 울타리가 둘러져서 삼엄한 경비를 받는 상태가 아니었다. 주변 마을 농로를 통해서도 묘지로 얼마든지 접근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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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묘지 사진을 검색해 보면 묘비가 세로로 길쭉한 작대기 모양인 게 많이 뜨는데.. 그건 옛날 풍경인 것 같다. 지금은 그런 거 없고 다 이런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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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언덕을 깎아서 단촐하게 묘지를 만들어 놨더라.
6· 25뿐만 아니라 1· 21 사태 때 사살된 무장공비들도 여기에 묻혀 있었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무명이지만 장교나 무장공비는 이름이 기재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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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 묘지에 제일 먼저 묻힌 1호는.. 유해 수습 장소조차 불분명한 6 25 전사자인데 이름은 어째 곽 재천이라고 알려져 있다.
안 그래도 작년 여름에 다부동 전투 기념관을 다녀왔는데, 다부동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무명 적군도 하나 눈에 띄어서 흥미로웠다.

Posted by 사무엘

2021/01/18 08:34 2021/01/18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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