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세기 중후반 기름차의 기술 트렌드

(1) 연비
1970년대 말엔 오일쇼크 때문에 고배기량 차량 만드는 게 좀 터부시됐었다. 그래서 그라나다 같은 고급차도 고작 2000cc였던 것이다.
현대 자동차는 그라나다 이후로 10여 년이 지난 1989년에야 그랜저의 최상위 3000cc 모델을 내놓으면서 V6 엔진을 다시 만들게 됐다. 4단이 아닌 5단 수동 변속기는 그랜저 기본 모델이 처음으로 실현했고 말이다.

(2) 환경
그러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서는 자동차계의 기술 트렌드가 환경을 중시하여 삼원 촉매와 무연휘발유로 갔던 듯하다. 그리고 이거 환경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기계식 카뷰레터가 퇴출되고 전자 제어 연료 분사, MPI 같은 게 등장한다.. 이때는 엔진에 컴퓨터 전자회로가 얹혔다는 것만으로도 CF에다 대놓고 자랑을 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자동차 말고 비행기나 선박 같은 타 교통수단들은 사람이 없는 곳을 주로 다니는 관계로 환경 규제가 자동차보다는 덜 빡세게 적용된다.
어선용 엔진에 무슨 유로6 규제 따위는 없다. 거기는 검은 매연 쩌는 저질 중유가 쓰이기도 한다.
자동차에서는 진작 퇴출된 유연 휘발유가 항공 연료로는 2020년대까지 현역이었다고 들었다.

(3) 성능
그 뒤 1990년대 초쯤에 DOHC와 터보차저 국내 양산차에 소개되고 도입됐다. 이를 계기로 동 배기량에서 자동차의 성능이 크게 향상됐다. 2000cc가 채 안 되는 승용차의 최대 출력이 100마력을 넘어가고, 끽해야 100~200마력 남짓하던 중· 소형 디젤차의 출력이 200~300마력을 찍게 됐다.

이렇듯, 요즘 자동차는 30년, 40년 전 자동차보다 동 배기량 대비 출력이 더 좋고 연비도 더 좋고, 그러면서 해로운 배기가스는 덜 뿜는다. 성능이 정말 좋아졌다.
그 대신 내부 구조가 훨씬 더 복잡해지고 컴퓨터 전자 제어의 비중이 더 커지고 또.. 연료의 품질에 훨씬 더 민감해졌다. 침수에 더 취약해진 것도 덤..

옛날 엔진 같았으면 정제가 덜 된 저질 연료를 넣어서 돌리면 꿀럭꿀럭 매연 나오고 엔진음과 출력이 좀 안 좋은 걸로 끝나겠지만, 지금 엔진은 그렇지 않다. 그랬다간 진짜 탈 나고 비가역적으로 망가진다. 특히 배기가스 정화 계통이 망가지면 당장 굴러가고 운행이 가능하더라도 언젠가 결국은 자동차 검사에서 걸린다.

2. 성능 향상

요즘 차들이 성능이 정말 좋아졌다고 느끼는 게..
디젤이 아닌 휘발유 차가 고속도로에서 시속 120~130을 밟고 있는데 엔진 회전수가 그냥 2000rpm 초반에서 그럭저럭이다.
시내버스가 출발 가속하는데 무슨 승용차를 탄 것처럼 뒤로 쏠리는 걸 경험한다.

이렇게 엔진 출력이 올라가니, 그 출력을 더 정교하게 제어하라고 변속기도 단수가 올라갔다.
자고로 승용차의 변속기는 수동 5단 아니면 자동 4단이 정석이 아닌가 싶었으나.. 요즘은 경차가 아닌 이상 기본 6단에서 시작하고 8단 이상도 흔하다. 물론 그 다양한 단수는 수동이 아니라 자동 변속기로 구현한 거다.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1900년대 초 구한말에 돌아다녔던 순종 어차는 캐딜락 리무진이었다. 무려 5000cc가 넘는 배기량의 8기통짜리 엔진 기반이었는데 최대 출력이 꼴랑 32마력 남짓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자.;; 320마력이 아니다.

어차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현대에서 면허 생산했던 포드 그라나다를 생각해 보자. 얘는 나름 그랜저의 전신으로 여겨지는 엄청난 고성능 호화 고급차였다. 그야말로 부의 상징 그 자체였고 오늘날 제네시스나 EQ900 이상의 위상이었다.

하지만 얘는 변속기는 4단 수동이었고, 엔진은 2000cc 배기량에 최대 출력 102마력 남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실린더가 V형 6기통이었다.
요즘 같으면 겨우 2000cc 덩치에다가 쓸데없이 복잡하게 6기통을 넣지는 않을 텐데 그때는 그랬다.

실린더 수를 늘려서 자잘한 폭발을 여러 실린더에다가 분담시키면.. 당장 엔진 동작이 부드러워지고 진동이 줄어들기는 한다. 즉, 고급차의 덕목인 '좋은 승차감'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면 차량 성능에 비해서 엔진이 너무 복잡해지고 비싸지고, 한 실린더 당 토크가 너무 약해지는 부작용도 있었다. 수동 운전 실수로 시동 꺼뜨리기도 더 쉬웠을 듯..

3. 에어컨

자동차의 에어컨은 승용차용이 약 4~5마력 정도 엔진 출력을 잡아먹고, 대형 버스용은 그 10배인 40~50마력의 출력을 쓴다고 한다. 그럼 1인 공간당 1마력이라고 생각하면 얼추 맞는 것 같다.
옛날에 가정용 세탁기의 모터가 3/4 ~ 1마력짜리라고 얘기를 들었는데.. 공기를 압축해서 냉매를 액화시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러니 쌍팔년도 이전에 무려 6~7000cc짜리 디젤 엔진으로 꼴랑 160마력 남짓한 출력밖에 안 나오던 시절에는 버스에 에어컨을 장착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계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차량 성능에 끼치는 부담이 너무 크니까.. 에어컨 컴프레셔 전용 엔진이나 발전기가 필요할 정도였다.
그 반면, 트럭은 운전자· 탑승자의 공간이 아주 작으니 에어컨은 승용차와 비슷한 사이즈만 있으면 되겠다. 물론 냉동 탑차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지겠지만. ㄲㄲㄲㄲ

4. 비행기와의 접점

하긴 옛날에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비행기도 말이다.
골동품 여객기인 보잉 707은 좌석 수가 겨우 100여 개 중반. 콩코드보다 약간 더 큰 수준의 협동체에 불과했다. 그러나 얘는 엔진이 무려 4개나 달린 4발기였다. 마치 2000cc V6 자동차 엔진 같은 느낌이다.

747은 1970년대 기술로 사람을 400명씩이나 태우는 초대형이니 4발기였고, 콩코드는 마하 2로 날기라도 하니까 덩치 작은 4발기였던 반면.. 707은.. 영화 벤허가 만들어졌던 시절의 기술의 한계였다. ㅎㅎ
그래도 그때는 707만으로도 정말 획기적이었고 보잉을 여객기 명가로 등극시켜 준 명품이었다. 뭔가 보잉 사의 Windows 3.0 같은 작품이었다.

요즘은 3발기도 유행이 지났고, 엔진 하나가 성능이 워낙 좋아졌기 때문에 어지간한 비행기들은 다 깔끔하게 2발기가 국룰이다. 경비행기 정도나 단발..
그러고 보니 경비행기는 엔진이 2개가 아니라 날개가 두 겹으로 깔린 복엽기가 있구낭..

5. 전기차와의 접점

요즘은 기름차보다도 전기차의 성능이 참 경이롭기 그지없다. 뭐 뻑하면 300~400마력이고 토크는 40~50kgf를 찍는다. 제로백은 그냥 5초대다.
슈퍼카나 기함급 고급차가 아니라 어지간한 서민 양산형 차량이 저런 성능을 내는 건 기름차로는 오늘날의 기술로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전기차는 배터리 때문에 비슷한 체급의 기름차보다 수백 kg 이상 더 무겁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저런 성능이면 그 무게를 상쇄할 수 있다.

하긴, 자동차뿐만 아니라 철도 차량도 전철화 덕분에 알음알음 성능이 좋아지고 있다.
앞으로는 전후대칭 동력분산식 전동차가 여객열차의 주류가 될 것이고, 일반열차도 무슨 지하철처럼 급격하게 가감속을 하게 될 것이다. 사실, 디젤 대신 전기 기관차가 도입된 것만으로도 같은 구간의 열차 소요 시간이 더 단축됐고, 지연 만회도 더 잘 하게 됐다.

허나, 자동차는 전기차가 성능이 그렇게 좋으면 뭘 하나. 정작 서울-부산 고속버스나 40톤짜리 트레일러, 각종 건설기계나 군용차, VIP 의전차가 전기차로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난 들어 보지 못했다.
배터리 전기차가 대형화되지 못하는 건 과거에 크고 무겁던 브라운관 TV가 30인치대 이상으로 도저히 대형화를 못 했던 것과 비슷하게 개인적으로 느껴진다.

철도 차량은 위의 전차선 덕분에 배터리 걱정을 할 필요 없어서 좋다. 비접촉 무선 집전이 가능하다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8/31 08:35 2024/08/31 08:35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336

성경이 말하는 남녀 질서

* 이런 고리타분하고 기초적인 주제에 대해서 지난 10여 년 동안 내가 이 블로그에 글을 쓴 적이 없었던가 보다. 지금 생각날 때 써서 올린다~!! ^^

...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 (고전 14:34)
나는 여자가 가르치는 것이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 (딤전 2:12)

이거는 다른 가장들(기혼 남자)까지 한데 모여 있는 교회 내부 집회에서 그 회중을 대표하고 인도하는 활동이 여성에게 일단 불허라는 뜻이다. 설교는 말할 것도 없고 대표기도 같은 것도 말이다. (딤전 2:8)

그러나 여자는 성인 남자가 아니라 어린애들을 가르치는 건 당연히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주일학교 교사..!!
애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이가 찬 미혼 자매들에게 훈수 놓는 것도 할 수 있다. 여자는 일체의 권위를 절대 행세하지 못하고 닥치고 입 다물라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글쎄, 음대 나온 자매가 성가대에서 성인 남자들까지 가르치는 거는? 조금 수위가 높아지지만 그것까지는 괜찮다고 본다.
성가대 연습은 공개적으로 행해지는 게 아니고, 찬양 중에도 지휘자가 혼자 드러나고 주목받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예 불신자 남성을 초청해서 지휘할 바에야 믿는 자매가 훨씬 낫다.

그리고 이것도 내 뇌피셜이다만.. 남자고 여자고 성인 청년이지만 다들 미혼인 파라처치/선교단체의 예배라면 찬양인도나 대표기도 정도는 자매도 못 하란 법 없다고 본다.
어차피 다들 미혼이고 인원부터가 성경이 상정하는 일반적인 정규분포 구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 애매한 상태이다. 뭐 그런 식이면 요즘처럼 이렇게 결혼을 안 하거나 너무 늦게 하는 풍조도 총체적으로 다 비정상이긴 하지만..;;

성경에서 인간의 위계질서를 논하면서 남자를 여자보다 더 우선시하는 건 기혼이 전제됐을 때의 얘기이다.
남자여서 예우받는 게 아니라 가장이어서 예우받는 거다. 그 가장 역할을 남자가 맡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남자가 예우받는 듯이 보인다. 내가 알기로 논리가 그렇다.

끝으로..
교회 안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자기를 드러내고 복음 전하는 것에는 당연히 남녀노소 구분이니 위계질서니 없다! 누구나 해야 한다.

나는 세상 법에서 이거랑 비슷한 법리가 적용되는 게 요거라고 생각한다.
"현행범인은 누구든지 영장없이 체포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212조)
우리나라의 법은 사적제재를 절대 금지하고 정의 실현은 오로지 경찰과 사법에다가만 위임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당장 음주운전 차량을 세우고 차키 뺏고 운전자를 팔 꺾어서 제압하는 것 정도는 사법 수사권이 없는 그 누구에게라도 허용해 준다.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허용해 준다. 당연히 진짜 경찰이 올 때까지 일시적으로만 말이다.

  • 당장 사람을 해치려 하는 중범죄 현행범은 그 누구라도 제압이 허용되듯이, (그 뒤 신속히 경찰에게 인계)
  • 의사나 정식 구급대원이 환자를 완전히 인계하기 전까지는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이라도 CPR을 잠시라도 중단하지 말아야 하듯이,

여자라도 교회 강단에서 설교를 안 할 뿐이지, 세상을 향한 복음 선포는 저것과 동급으로 시급하게 해야 한다.
이거는 "여자는 잠잠하라"가 적용되는 상황이 전혀 아니다. 애초에 교회 안이 전혀 아닌걸..

개인적으로 여자 목사는 바람직하지 않고 교리적으로 잘못됐다는 소신이다. 물론 그 여성도 신학 공부 많이 했고 성경 많이 알고 어지간한 남성들보다 훨씬 더 똑똑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녀는 강단에 서는 목회 말고 다른 방식으로 주의 일을 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허나, 이와 별개로.. 자기는 남자로서 그리스도인의 본분을 다하지도 않는 주제에 다른 바람직한 자매를 보고 "어디 여자 주제에 나댄다" 이런 미친 소리를 함부로 하는 것 역시 본인은 완전 극혐한다.

※ 여담

(1)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와 더불어 성경이 남녀 차별적이라고 비판(?)받게 만드는 양대 구절은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이다. 이거는 교회 잠잠보다도 버전보다도 더 쉽게 논파할 수 있다.
성경에는 그 구절 바로 다음엔 "남편은 자기 아내를 목숨 바쳐 사랑해 줘라~ 모질게 대하지 마라"도 있는데?
남자 쪽 조건은 싹 무시하면서 여자 쪽 조건만 들이대는 건 그 사람의 논리가 잘못된 거다. 성경은 결코 편파적이지 않다. 가정에서 역할의 차이는 우열 차이 내지 계급 차이가 아니다.

(2) 로마서 16장에 나오는 뵈베를 신약 교회 최초의 '여자 집사'로 만들고 싶어서 저 사람이 deacon이었다고, 헬라어 원어로는 집사라는 뜻도 된다는 얘기가 종종 나돈다. 심지어 요즘 성경들은 번역 자체가 그렇게 되는 편이다.
남자 집사는 스테판이고 여자 집사는 뵈베인 거냐? 뭐, 성경 번역에 대한 최종 권위가 있는 사람에게는 이건 그다지 영양가 있는 낭설이 아니다. 뵈베는 지역 교회를 섬기는 주님의 종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3) 바울 서신서에 나오는 "형제들아"가 요즘 성경에서는 "형제 자매 여러분"으로 바뀌는 추세이다. 우리말 성경은 무려 30여 년 전의 표준새번역에서 이런 양성평등 시도가 행해졌다.
저 brethren 형제는 마치 '청년'이나 영어 man처럼 기본적으로 남자사람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여자까지 포함하는 그런 사람 집단을 말한다. 말을 꼭 그렇게 바꿀 필요가 있는지?

성경도 필요할 때는 일부러 남자와 여자를 콕콕 찝어서 저격하기도 했다. 약 4:4 "너희 간음남과 간음녀들아" 말이다. 시쳇말 좀 쓰자면 "이 간음하는 연놈들아" 같은 뉘앙스다.
그런데 여기서는 킹 외의 변개된 역본들은 남자를 빼고 간음녀만 들어있다! 아니면 성중립 차원에서 "간음하는 사람들아"가 고작이다. 마치 요한복음 8장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 이야기에서 남자는 없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8/28 19:35 2024/08/28 19:35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335

지난 2015년은 참 공교롭게도 국내의 여러 킹 제임스 진영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찬송가를 제각각 편찬해 냈던 해였다.

(1) 영광을 주께 2판 (초판은 2002년쯤에) -- 말씀 보존 학회
(2) 마제스티 찬송가 -- 사랑 침례교회
(3) 복음 찬송가 2판 (초판은 2009년쯤에) -- 타 독립 침례교회 진영에서. 2022년인가 23년쯤엔 3판도 나왔음.

이렇게 찬송가를 따로 만드는 이유는.. 기존 통일찬송가/새찬송가 가사가 교리적으로 만족스럽지 않거나 심지어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려고, 주요 신학 용어 구분을 더 엄밀히 하려고, (영 vs 혼, 천국 vs 하나님 왕국 등등) 성경 구절 인용 가사를 자기네 역본에 더 맞추려고~~ 등의 명분 때문이다.

'교리적으로 만족스럽지 않거나 심지어 잘못된 부분'이 뭔지를 물으신다면..
구원의 상실 암시라든가 단순 신세 한탄(...), 직통계시 은사주의라든가 후천년주의 종말론 뉘앙스가 느껴지는 것 말이다.
당연히 "돈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라든가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이런 가사는 교리적으로 문제될 게 단 1도 없다. 하지만 찬송가에 그렇게 명확한 가사만 있는 건 아니어서 문제다.

그리고 이런 독립 침례교 쪽 찬송가는 성탄절을 안 지킨다는 특성상, '탄생' 카테고리의 곡이 아주 적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교리적으로 별 영양가가 없으니 저 찬송가들엔 어디에도 실려 있지 않고..
기껏해야 '천사들의 노래가', '하늘에 찬송이 울리던 그 날' 정도만 살아남았다. 그나마도 예배 때 불릴 일은 없다시피하다.

마제스티는 기억이 안 난다만, (1)은 '침례교 찬송가'가 베이스이고, (3)은 기존 통일찬송가(후대에 개정된 새찬송가가 아님)를 베이스로 삼았다. 무엇을 베이스로 삼느냐에 따라 '참 즐거운 노래를'의 조가 Eb 장조 또는 F장조로 달라지고, '그 참혹한 십자가에'가 G장초 또는 Ab 장조로 달라진다.

개인적으로는 퀄리티는 (3) 복음찬송가가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클래식 찬송가뿐만 아니라 20세기 중후반의 복음성가 내지 올드 스타일 CCM까지 다 수록해서 곡이 제일 많다. 나머지 두 찬송가는 4~500곡 수준인 반면, 얘만 1200곡에 달한다. 그리고 그리고 거의 모든 악보에 반주 코드가 꼼꼼히 적혀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공식 홈페이지가 있어서 악보 조회와 가사 검색이 가능하고, 주요 교회들로부터 수집한 음원까지 제공된다.

왜, 기존 통일찬송가 / 새찬송가만 해도 생존해 있는 편찬위원의 창작곡이 몇 곡 수록돼서 호불호가 갈리곤 한다.
그것처럼 킹 진영 찬송가들도 각 진영별로 자기 진영 목사가 작사· 작곡한 창작곡이 수록된 경우가 있는데..
이런 쪽의 저변도 (3)이 가장 넓다. 유 진선, 구 정민, 임 동선, 박 노찬(대체로 번역)..

(1)은 초판에서는 김 기준, 2판에서는 조 동화(작사만)를 볼 수 있다. 조 동화는 '나 하나 꽃 피어'라는 시로 세상에서도 유명한 그 시인· 교사 겸 목사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현재는 저 두 분이 모두 말보회를 떠나 있다는 거. 미래에 영광을 주께 3판이 나온다면 거기서는 조 동화 작사 찬송가까지도 아마 없어져 있을 것이다. 저 동네는 일을 처리하는 게 대체로 저런 식이어서.. -_-;;

(2) 마제스티 찬송가는 자기 진영 창작곡이 수록된 건 딱히 없는 걸로 나는 알고 있다. 그 교회 덩치와 인재풀이면 가까운 미래의 2판, 3판에서는 자체 창작곡이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단, (2)에는.. '킹 제임스 바이블 쏭'이라는 노래가 끝에 번역 수록돼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내게 읽어 주신 책~~" 이렇게 시작하는 가사 말이다.

참고로, 본인의 여친의 동성 절친..이 저 마제스티 찬송가의 교열에 참여했었다. 음악 계열 전공자인 관계로.. 그래서 머리말/감사의 글에 이름이 실려 있다. ㅎㅎ

만약 우리나라 킹 제임스 진영이 서로 에큐메니컬 운동(!!!!)을 한다면.. 이렇게 창작곡 찬송가 교류부터 하는 게 제일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한킹 쓰는 교회에서 상대방 구 정민, 유 진선 곡을 부른다거나, 흠정역 쓰던 교회에서 김 기준· 조 동화 곡을 부른다거나. 교리나 번역 때문에 싸울 일 없고 그것도 음악을 매체로 교류하니까 제일 거부감 없지 않겠는가.

아 물론 이마저도 당장 실현 가능성은 없다.. ^^
시간과 여건, 재정이 된다면 아마 표준역 쓰는 진영에서도 자체 찬송가를 만들 판이고, 말보회에서 기록말살된 목사님들도 자체적으로 찬송가를 만들려 한다. 아주 그냥 춘추전국시대가 따로 없다. ㅠㅠㅠ

* 여담: 찬송가 오마주를 넣은 CCM

한때 우리나라 CCM계에 송 명희와 최 덕신 콤비가 있었고,
19세기 말 미국에 패니 크로스비와 윌리엄 도언 콤비가 있었던 것처럼..
비교적 최근인 20세기 말에는 미국에 Nancy Price와 Don Besig이라는 CCM 작사 작곡자 남녀 콤비가 있었다.

이쪽은 작곡 스타일이 뭔가 진취적이고 웅장하고 감동적이다. 마지막 절에서는 조가 반음 올라가기도 한다.
이분들의 아주 대표적인 작품이 뭐냐 하면 “여기에 모인 우리 -- 이 믿음 더욱 굳세라”이다. 더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따끈한 1990년도 곡이지만 워낙 고퀄이니 개신교 새찬송가에 수록도 됐다. (620장)

저 콤비의 작품 중에 “주님께 감사 기도 드릴 때 / We are yours, Lord”가 있다.
국내에 많이 알려진 것 같지는 않지만.. 이것도 곡과 가사가 아주 훌륭하다.
언제적 작품인지는 인터넷을 도저히 뒤져도 안 나오는데.. 최소한 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형제
When we pray, we will pray with thankful hearts.
When we sing, we will sing with joyful voices.
When we serve, we will serve with willing hands.
For we are Yours, Lord. For we are Yours, Lord.

자매
When we speak, we will speak with loving care.
When we act, we will act with firm conviction
When we give, we will give with boundless joy
For we are Yours, Lord. For we are Yours, Lord. (☞ 음원 링크)


형제 파트는 경배의 태도이고 자매 파트는 행실의 태도인 걸 주목해 보라.
그런데 이렇게 한 파트가 끝나고 나서는 갑자기 분위기가 싹 조용하게 바뀌고 심지어 반주도 잠시 꺼지면서 아카펠라가 나온다. 저 영상에서 1분 45초 이후 지점부터이다.
Within this calm and peaceful place, near to Your heart, O Lord...

근데 얘는.. 알고 보니 Near to the heart of God이라는 1901년인지 1903년도 클래식 찬송가의 오마주이더라~! (☞ 음원 링크)
There is a place of comfort sweet, near to the heart of God
우리나라 개신교 찬송가에는 딱히 소개되지 않은 것 같다. 작사 작곡자는 Cleland B. McAfee라는 사람인데.. 나로서는 일단은 듣보잡(ㅠㅠㅠ)이다.;;

이게 참 신기한 게..
내가 이전에 다녔던 교회의 찬송가(복음찬송가 2판)에서는 We are yours, Lord만 수록돼 있고, 지금 다니는 교회의 찬송가(영광을 주께 1판)에는 Near to the heart of God만 있다.

처음 보는 찬송가 책의 악보를 읽고 있었는데.. 어 이거 낯설지 않고 어디서 봤던 멜로디이다.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전자가 중간에 후자를 오마주해서 넣었다는 걸 알게 됐다. 참 신기하다~! 예전에는 그게 그런 관계인 줄 알지 못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4/08/26 08:35 2024/08/26 08:35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334

몇몇 성경 번역 이슈

1. '-시니라'의 시제

한국어 성경은 개역성경의 선례 덕분에 '-느니라, -도다, -소서' 같은 고어체가 여전히 현역이다.
그런데 창 1:1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거는 시제가 현재일까 과거일까?
'하시니라'는 형태· 통사론 상으로는 당연히 현재 시제이다!! '하셨느니라'가 과거이지 '하시니라'가 도대체 어떻게 과거 시제가 되겠는가.

하지만 더 상위의 의미· 화용론 레벨에서는 '하시니라'가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도 모두 포함하는 시제로 오랫동안 구분 없이 뭉뚱그려서 사용돼 왔다.
개역, 한킹, 흠정역 어느 역본도 모든 구절에서 철두철미하게 용언 형태소 차원의 시제 구분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걸 악의적인 변개나 오역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그렇다.
우리말이 단· 복수나 정· 부정관사 구분을 별로 안 하고,
초록과 파랑을 별 구분 없이 '푸르다'라고 표현하고,
"A와 B의 C"만으로 "A의 C" + "B의 C"를 모두 표현한 것과 비슷하게...
그냥 한국어 한국 문화권이 시제를 엄밀하게 따지지 않고 지냈다. 그리고 그게 성경 번역에도 반영됐던 거다.

차라리 현대어 어미를 썼으면 '창조하셨다, 숨을 거두셨다'라고 시제가 더 분명히 구분됐을 텐데, 고어체 어미가 시제 구분이 불분명했던 편이다.
'-함, -음'도 생각해 보자. 엄밀히 따지면 '-했음, -갔음'이라고 써야 과거가 되지만 통상적으로는 일일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학교에 감, 밥을 먹음" 그냥 이렇게 써도 문맥에 따라 과거라고 통용되는 편이다.

그래서 뒤늦게 창 1:1을 "창조하셨느니라"로 바꿔야 된다느니, 기존의 "창조하시니라"만으로 충분하다느니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가령, 말보회 한킹의 경우, 처음에는 '시니라'이다가 나중에 '셨느니라'라고 바뀌었다.
흠정역은 6일 창조 이전의 과거의 존재를 부정하는 진영이다 보니 저기 시제는 절대 바꿀 생각이 없는 상태이고. (허나, 요 1:1 하나님이셨느니라 이거는 과거 시제로 개정했음)

영어 문장대로 용언의 현재 과거 시제를 철저하게 해 준 최초이자 현재 유일한 역본은 바로 바로...... 표준역이다.
가령, 요 19:30은 고어체로 번역된 우리말 성경 중에 유일하게 표준역만 '숨을 거두셨더라'이고 딴 역본들은 '거두시니라, 돌아가시니라' 등이다.
그 반면, 2장 가나의 혼인 잔치처럼 영킹이 saith 같은 현재 시제를 쓴 곳에서는 '하시니라'이다.

이거는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말 성경 번역이 점진적으로 자연스럽게 개선돼 나가야 할 점인 것 같다.
마치 요한일서의 beloved를 마치 dear XXX처럼 "사랑하는 자"라고 쓰던 것을 더 엄밀하게 "사랑받는 자"라고 바꾸듯이 말이다.

우리말도 영어 영향을 받아서 100년 전보다는 단· 복수나 능동· 피동 구분을 더 엄밀하게 따지면서 하지 싶다. 그게 마냥 번역투라고 부정적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걸 엄밀하게 따지지 않던 옛날 성경이 악의적인 변개나 오역을 저질렀다고 판단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2. 무엇을/어떻게

의문사 무엇(what)과 어떻게(how)는 지칭하는 영역이 언어 품사 차원에서 다르다. "이건 뭘 표현한 거야?" / "이거 어떻게 만들었어?" 처럼 말이다.
그런데 우리말에는 '어떡하다'라는 굉장히 미묘 므흣한 단어가 있다. 그래서 같은 의문이지만 영어로는 what으로 시작하는 반면, 우리말로는 how에 가까운 뉘앙스로 표현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때가 발생한다.

그래서 성경에서 유명한 행 16:31의 바로 앞 절.. 30절 감옥 간수의 질문을 보자.
개역, 표준, 한킹 같은 우리말 성경들은 모두 "어떡해야 구원받을 수 있죠?"라고 번역되었다.
그러나 한킹 이후에 등장한 킹 계열 역본.. 흠정역 내지 표준역만이 "무엇을 해야 구원받을 수 있죠?"라고 what을 직역했다. 흥미롭지 않은가?

문제나 위기가 생기고 난감한 상황이 됐을 때 한국어 화자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은 "이를 어쩌면 좋지? 어떡해야 하지?"이다. "뭘 해야 하지"가 아니다. 예전에 월급값 못 한 여경들이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오또캐스트라' 드립을 생각해 보자.
"뭘 해야 하지"는 그건 자기 신변과 무관한 업무를 인계받으면서 "이제 내가 뭘 하면 되지?"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뭐죠?" 아주 객관적으로나 할 만한 말인 거다.

영어는 명사 지향적이고 체언을 꾸미는 관형어가 발달해 있다. 그러나 우리말은 동사 지향적이고 용언을 꾸미는 부사어가 발달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있다"라고 하지 않고 "사람이 많이 있다"라고 말한다.

이런 정서가 반영되어 영어로는 what(무엇을 명사)으로 표현하는 것을 우리말로는 how(어떻게 동작)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오죽했으면 방문 용건을 묻는 질문조차 "어떻게 오셨습니까?"("무슨 일로"가 아니라)라고 묻는 경우가 있고, 그걸 마 동석이 어느 영화에서 "봉고차 타고. 내비 찍고 왔어"라고 동문서답 개드립을 치지 않았던가.

이게 한국어다. 이것 말고도 영어로는 come인데 우리말로는 정황상 '가다'라고 번역해야 할 때가 있고, 부정의문문의 대답도 대놓고 yes/no의 번역이 갈리곤 한다. ㄲㄲㄲㄲ

3. 챔피언

성경에 나오는 블레셋(필리스틴) 장수 ‘골리앗’은 성경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정말 유명하다. 스타의 테란 메카닉 유닛의 이름으로도 쓰였을 정도이다.
하지만 사무엘상 17장을 읽어보면 성경 기자, 아니 하나님은 골리앗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걸 극도로 꺼리고 있다. 거의 다 ‘그 블레셋 사람’, ‘그 블레셋 사람’ 일색이다. 이 점을 한번 생각해 보자.

이건 의도적인 서사이다.
성경의 진술 방식에서 이름 언급이 매우 중요하다는 건 누가복음 “부자(익명)와 나사로”, 룻기 “보아스와 아무개(익명..)”, 그리고 다니엘서 풀무불 씬에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친구 이름들의 등장 빈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곳곳에 미주알고주알 명단들이 나오는 거다. 하다못해 로마서 16장 안부 인사 대상자 명단처럼 말이다.

그 대신, 성경은 골리앗이.. 그냥 평범한 파이터, 글래디에이터, 워리어 따위가 아니라 ‘챔피언’이었다고 언급한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champion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곳이 삼상 17이다. 우리말로는 대체로 ‘투사’라고 번역됐다.

오늘날이야 챔피언은 무슨 개인 단위 게임이나 스포츠의 전국 단위 우승자, 1등 타이틀 보유자..라는 뜻이 강하다. 바둑 챔피언, 20xx년도 탁구 챔피언.
그래서 “세상에서 너무 챔피언이 되려 애쓸 필요 없다. 성경에서 챔피언은 부정적인 인물인 골리앗에게나 쓰였다” 이렇게 적용하는 경우가 있다.

무슨 뜻인지는 이해하겠다만 그건 “성경에서 그림(pictures)이 민 33:52 같은 부정적인 뜻으로 쓰였으니 각종 영화 산업들도 영적으로 별로 안 좋은 것들이다~ 영화사들도 다 OOO pictures이잖아?” 와 비슷한 급으로 아주 간접적이고 영적인 적용이라 하겠다.

챔피언은 원래는 자기 고용주나 VIP를 대신/대표해서 전투나 결투에 나가서 싸우는 직업 싸움꾼..이란 뜻에서 출발했다. 성경의 용례도 1차적으로는 이거지 싶다.
골리앗 저 시절에 “블레셋 대왕배 특전사 격투기 대회 우승 타이틀”이라든가.. 무슨 태평양 전쟁 일본군마냥 100인 참수 시합 같은 게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무언무언가를 지키고 수호하는 사람한테도 챔피언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다. 그 대상이 굳이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친환경 전기차를 운전하는 당신은 환경 챔피언입니다” 이렇게 써도 된다는 것이다. (전기차가 진짜로 완벽하게 친환경인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기아 니로 CF에 나오는 환경전투사 같은..;;
글쎄, 싸이의 노래 가사처럼 음악에 미치면서 인생을 즐기는 건 무슨 챔피언인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만 말이다.

물론, 지키고 싸우는 게 직업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일반인들보다 더 힘 좋고 체격 좋고 잘 싸울 것이다. 골리앗이라면 더욱 그랬을 것이고. 그래서 우승자라는 의미가 나중에 추가된 것이다.
직업이 챔피언인 사람은 지위 내지 실력도 챔피언일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말보회 한킹은 챔피언을 그냥 투사가 아니라 ‘최고 투사’라고 번역했더라. 저런 번역은 한킹이 유일하다. 원래 의미에다가 나중 의미까지 저렇게 넣고 싶었던가 보다. 한킹은 전반적인 번역 스타일이 영킹 직역뿐만 아니라 ‘나중 의미’도 더 살리는 쪽이다 보니.. 일면 수긍이 간다.
또한, testament를 그냥 언약이라고만 옮기기는 아까워서 흠정역이 ‘상속 언약’이라고 번역한 것과 비슷한 워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킹은 testament는 그렇게 번역하지 않음)

4. 은과 돈과 재물

행 8:20 말이다.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네 돈과 더불어 망하라. 이는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라.” (행 8:20)
여기서 ‘네 돈’ 부분을 ‘돈’ 대신 ‘은’이라고 번역한 역본이 생각보다 여럿 있다. 당장 개역성경도 그렇고, NASV나 NRSV도 그렇다.

궁금해서 잠시 조사를 해 보니, 이건 원문 변개 이슈는 아니다. 변개된 계보의 성서 중에도 ‘돈’인 역본 또한 많기 때문이다.
같은 헬라어가 문맥에 따라서 은도 되고 돈도 되는 것 같다. 즉, 이건 번역에서의 바리에이션이다.
베드로는 금과 은이 아니라 유독 은과 금이라는 말을 썼는데, (행 3:6, 벧전 1:18) 이때의 은과 저기서의 돈이 같은 단어이다.

우리 한자어에서는 현금, 등록금, 계약금 등.. 금을 돈과 비슷한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보면 금에 앞서 은이 먼저 화폐로 널리 통용됐다.
오죽했으면 돈을 보관하는 기관의 이름도 ‘은행’이지 않은가? 그리고 '은전 한 닢'이라는 유명한 수필도 있다. ㄲㄲㄲ

성경에 등장하는 화폐들도 거의 다 은화이다.
주님의 몸값부터 시작해서 요셉의 몸값, 사도행전 19장에서 불태운 주술 서적의 가격.. 은이다.
서양의 로마 제국뿐만 아니라 동양의 중국도 이런 은본위제 국가로 유명했으며, 아편 전쟁 당시에도 은이 거래됐었다.

‘네 돈’ 말고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할 때의 ‘돈’은 앞의 돈/은과는 다른 헬라어이다. 용어 몇 개를 찾아보니 이건 보편적인 ‘부, 재물’과 비슷한 맥락으로서 돈을 의미하는 것 같다.

베드로는 사도행전과 베드로전서에서 하나님의 선물은 한낱 은이나 금과 견줄 바가 아니라는 요지의 말을 여러 번 했었다. 아무쪼록, 우리 같은 헬알못(?) 일반인은 은이니 돈이니 재물이니 이런 게 알쏭달쏭하면 우리의 모국어, 아니면 최소한 영어로 알아들을 수 있는 최종 권위인 킹 제임스 성경이 규정해 준 원어의 뜻을 따르면 될 것이다.

하긴,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의 시편 8편에서 “인간을 천사보다 약간 낮게 하시고”에 '천사'가 히브리어로 그냥 엘로힘.. 하나님/신들과 같은 단어라고 한다. 돈/은과 비슷한 관계인 것 같다.
같은 단어가 하나님, 신, 천사 모두 가능하다니 너무하지 않은가? =_=;; 하지만 이건 문맥상 하나님일 리가 없고, 신약 히브리서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도 헬라어로 천사라는 단어가 들어갔다고 들었다. 저기서의 의미는 당연히 천사가 돼야 할 것이다.

5. 맺음말

여러 주제의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이제 글을 맺고자 한다.
성경 읽을 때는 여건이 허락한다면 다양한 번역본을 참고하면서 다양한 의미와 다양한 관점을 학술적으로 섭렵해서 나쁠 건 없다.
그러나 그런 면모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닥치고 익숙한 단일 모국어 역본만 철썩같이 반복해서 읽으면서 골수에 새겨서 "암송"하고, 일상생활에서 곧장 그 말씀이 떠오르게 하는 거.

이 둘에 대한 균형을 맞춰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둘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으면 전자보다는 후자를 더 우선시해야 할 것이다.

진리는 기본적으로 형태가 단순하다. 성경의 하나님은 헛똑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적사기 말장난 기만을 싫어한다.
이솝 우화던가? 당장 고양이가 쫓아오는데, 똑똑한 쥐는 탈출하는 방법 100가지 중에서 뭐가 지금 가장 효율적일지 짱구 굴리면서 고민만 하다가 고양이에게 잡아먹혔다.
그러나 닥치고 달리기인지 개헤엄인지 방법을 하나밖에 모르던 평범한(?) 쥐는 자기가 아는 방법 하나만 X나 무식하게 밀어붙여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저것 잡다하게 아는 건 많은데 지혜가 없고 분별력이 없고, 어느 게 나에게 당장 필요한 진리인지를 모르는 건 영적으로 바람직하게 성장한 상태가 아니다.
전자가 오히려 혼동을 야기하면서 후자의 활동에 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으니까 절대적으로 옳은 건 없다~~ 세상에 100%라는 건 없다" 이건 유한한 자원에서 최대의 가성비를 찾는 공학 같은 세상 학문에서나 통용되는 특징이다.
그 반면, 성경을 대하는 태도는 "나의 최종 권위는 이건데 그래도 추가로 참고적으로 요렇게도 볼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저렇게도 생각하긴 했다" 이렇게 중심 절대값부터 잡고 나서 부가설명 액세서리를 참고하는 형태가 돼야 할 것이다. 교리에 대한 문자적 해석부터 한 다음에 영적 교훈을 넓고 다양하게 적용하듯이 말이다.

성경 말씀이나 찬송가 가사 같은 건 책을 보고 있지 않아도, 폰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아도 일상생활 중에 튀어나오고 흥얼거릴 수 있어야 한다.
찬송가라고 해서 맨날 군가 아니면 중세 장송곡 같은 식상한 멜로디여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거 뭐 악보를 읽기도 어려울 정도로 정도로 박자가 너무 복잡한 2000년대 이후 CCM은..;; 과연 어렵고 힘들 때나 성령 충만할 때 누구나 쉽게 떠올려서 그대로 부를 수 있을까? 세월을 안 타고 모든 성도들이 부르는 불후의 명곡이 될 수 있을까?

그것처럼 그 좋은 영어 성경도 말이다. 영어 성경에 Believe in the Lord Jesus Christ, Rejoice in the Lord 같은 쉬운 문구만 있는 게 아니다. 성막이나 성전 설명을 영킹으로 바로 읽고 알아듣고 머리에 외울 수 있겠는가?
영어 영어 하다가 자기한테 본질적인 걸 놓치지도 말아야 하리라 생각된다.

Posted by 사무엘

2024/08/23 08:35 2024/08/23 08:35
, ,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333

1. 화질

  • 영화 필름은 기본적인 화질은 좋지만.. 상태가 안 좋아지면 색이 바래지고 화면 곳곳에 검은 점들이 반짝반짝 거렸던 편이다.
  • 아날로그 TV는 근본적인 화질이 별로 안 좋고, 그놈의 노이즈가 문제였다. VHS 비디오 테이프는 TV보다도 화질이 더 안 좋았다.
  • 컴퓨터로 재생하는 디지털 동영상은?? 빡센 압축 때문에 JPG 깍두기 화질 열화라는 게 있었다.

그랬는데..
오늘날 영상 재생 기술은 정말 정말 경이롭기 그지없다.
한 프레임 한 프레임이 아주 정교한 정지 영상처럼 화질이 좋다. 그것도 다 아날로그가 아니라 디지털 방식으로.. 옛날 같은 잡음 노이즈 깍두기 등등을 거의 찾을 수 없다.

텔레비전이고 영화고 화질이 엄청나게 좋아졌다는 걸 뭘로 느끼는가 하면.. 영상 속 각종 자막이나 글자가 2, 30년 전보다 엄청나게 작아진 걸 보고 느낀다.
저화질에서는 저런 작은 글자를 넣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뭐 일반인이 유튜브로 이미 1K, 2K니 4K니 하는 초고화질 영상을 보는 세상이니, 영화관의 그 커다란 벽면에다 쏠 정도인 영상은.. 7K급이라고 카더라처럼 듣긴 했다.
물론 전자기파의 속도나 대역폭 자체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아닐 테니.. 전자 신호를 갈아넣는 기술이 더 발전하고 그거 중계하고 쏘는 인프라들이 곳곳에 엄청 많이 깔린 것이다. 컴퓨터의 하드웨어도 더 발달했고 말이다.

아날로그 TV로 아무 채널이나 틀면 나오는 치지지직 백색잡음을 일부러 들으려 해도 듣기 어렵고, 아예 그걸 따로 인코딩을 한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서 시청하는 지경이다.
(디지털 방식에서는 그런 아무말 전파는 디코딩 실패 오류로 처리되니 애당초 화면에 뿌려지질 않음)

이건 뭐 아날로그 시계 바늘을 작대기 실물 현물을 기울여서 구현하는 게 아니라, 작대기 모양 직사각형을 삼각함수 회전변환으로 좌표 계산해서 구현한 것과 같다. 백색잡음조차 그런 방식으로 졸라 어렵게 현학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이제는 텔레비전도 반쯤 컴퓨터가 됐다. KBS MBC 같은 제1군 지상파, 그 뒤 셋톱박스 얹어서 시청하는 제2군 케이블 방송, 그 다음으로 넷플릭스 같은 영화 스트리밍 제3군을 골고루 나눠서 시청하는 영상 단말기가 됐다.
DVD나 블루레이 같은 물리적인 영상 저장 매체는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지만 존재감이 아주 작아지고 주류에서 밀려났다.

2. 사진

요즘 사진과 영화는 처음에 발명됐던 것처럼 필름에다가 아날로그 기술로 빛을 화학적으로 담고 현상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영화는 저렇게 극초고화질로 압축된 디지털 동영상이고, 사진은 고화질 고해상도로 정교하게 컬러 인쇄물일 뿐이다.
이를 제조하는 기계가 그 이미지의 모든 정보를 픽셀 단위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알고 있다. 이게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이다.

쌍팔년도 시절엔 사진관에 가서 필름을 맡기고 나면 최소한 다음날이나 며칠 뒤에 사진을 찾아 왔었다!
그게 조금 발전하면 “23분 완성, 5분 초고속 완성”..;;
사진 인화, 현상을 겁나게 신속하게 해 준다는 뜻이었는데 지금 관점으로는 정말 바보 같다. “고성능 특급 증기 기관차로 경성-부산을 무려 6시간 반 만에 주파”처럼 들리니까 말이다. (저건 1930년대 아카츠키 호 소개 문구. -_-)

3. 가정용 비디오 테이프

1990년대 말까지는 음성은 카세트 테이프, 영상은 VHS 테이프(매체)라는 아날로그 매체가 수십 년 동안 쓰였다.
영상은 아무래도 음성보다 정보량이 월등히 더 많이 들다 보니, VHS는 길쭉한 테이프(매체 속에 돌돌 감겨 있는 실제 띠)를 딱 최단거리 수직이 아니라 비스듬하게 삐딱하게 기울여서. 즉 |를 /로 바꾸는 꼼수까지 썼다. 그래서 헤드와 테이프가 접촉하는 구간을 늘리고 정보를 더 집어넣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때문에 VHS 비디오 재생기는 헤드도 테이프(띠)를 비스듬하게 감쌌으며, 테이프(매체)를 넣거나 뺄 때, 그리고 재생하거나 정지할 때 각종 고정/해제 전처리 후처리 준비가 꽤 오래 걸렸다. 카세트 테이프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카세트 테이프는 일부 아날로그 감성 충만한 투박한 물건은 재생 버튼을 누르자마자 즉시 재생도 됐던 반면, 그건 비디오 테이프에서는 어림도 없었다.

게다가 정말 의외의 사실인데, 아날로그 비디오 테이프는 영상을 띄워 놓은 채로 일시정지 기능을 구현하는 게 몹시 무리였다. 엥??? 컴퓨터가 쏴 주는 디지털 영상에서는 정말 식은 죽 먹기도 아닌 일이 도대체 왜 저런 거지..???
일시정지도 무슨 미분을 하듯이 전진 후진을 반복하며 그 구간을 헤드에서 계속 읽어서 신호로 보내야 했다. 오랫동안 일시정지를 시키면 테이프나 헤드에 무리가 갔으며, 그 동안에 화면 화질이 떨어지고 노이즈도 잔뜩 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런 비디오 재생기에는 요즘 컴퓨터처럼 비디오 메모리나 그래픽 카드 같은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한번 자신이 만들어 낸 영상 정보를 디지털 형태로 0과 1 차원에서 다 기억해서 화면으로 지속적으로 쏴 주는 형태가 아니다.
그러니 일시정지조차도 테이프를 같은 지점만 계속 읽는 방식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차가 멈춰 있는 상태로 핸들을 너무 많이 돌리면 타이어에 좋지 않은 영향이 가는데, 이와 비슷하게 장시간 일시정지는 테이프에 무리를 줄 수밖에 없었다.

이 유튜브 시대에 옛날 비디오 테이프를 생각하니.. 쌍팔년도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게 열악했다 싶다. 인간이 달이나 화성으로 나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딴 분야는 시대가 많이 변하긴 했다.

뭔가 비스듬하게 기울이는 거는 문자 타이포그래피에서 이탤릭체에서도 볼 수 있고, 또 대파를 비스듬하게 써는 것(실제 부피 대비 더 커 보기에),
로켓이 발사될 때 살짝 비스듬하게 기울어져서 상승하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역시 배기가스 분출 구간을 좀 더 늘리는 효과를 낸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담으로, 보잉 747의 아버지라 불리는 항공 엔지니어 조셉 서터는 생몰년이 1921-2016이다.
그런데 카세트 테이프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 오텐스는 생몰년이 1926~2021...;; 뭐 비슷하다면 비슷하다.
VHS의 아버지 내지 주 개발자라고 불리는 엔지니어는 전해지는 게 없는지 궁금하다.

4. 에디슨 과학 박물관

본인은 지난 6월에 여친과 함께 강릉에 갔을 때 말이다.
경포호 부근에서 어디 놀러 갈 데 없나 검색을 하다가 '에디슨 과학 박물관'이란 걸 우연히 발견했었다. 막 많은 기대를 하지는 않고 찾아가 봤는데.. 알고 보니 이거 엄청난 대박이었다.

이 좁은 대한민국에서 참 위대한 오덕 수집가가 계셨구나. '에디슨 과학'은 대표 명칭이고, 사실은 전구, 축음기, 영사기별로 박물관이 따로 있어서 건물 세 채가 한 세트이다. 과학기술과 예술 분야가 잘 만나고 박물관 만들기에 좋은 주제인 것 같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름만 들었을 때는 황금귀 진공관 스피커 덕후가 떠올랐는데, 소재가 거기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더라.
인류가 역사상 최초로 영상과 음성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됐다니.. 그 당시엔 이게 가히 요술 마법 수준이 아니었을까 싶다. 전기· 전자 공학이 그야말로 세상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고 있었고, 그게 나중에 궁극적으로는 반도체와 컴퓨터의 발명으로 이어졌으니 말이다. 전화기, 무선 통신, 교류 전기..

에디슨이 카메라 자체를 처음 발명한 건 아닌 것 같다만.. 그래도 그 뒤에 축음기와 영사기를 만들어서 사진의 영역을 크게 확장한 것은 사실이다. 하긴, 영화도 처음에는 무성 영화부터 시작했다가 나중에 유성으로 바뀌고 컬러도 도입됐다.

축음기가 발명되기 전엔 오르골이라는 게 있었다. 축음기와 음반이 임의의 소리를 저장하고 재생하는 mp3 같은 물건이라면, 오르골은 악보를 기록하고 저장해서 음악 연주를 자동화하는 midi 같은 물건이다. 이거.. 나름 구멍 뚫어서 0과 1 정보를 표현하는 천공 카드의 먼 전신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일종의 디지털 정보 저장 매체인 셈이다.

오르골은 자그마한 크기에 딸랑딸랑 예쁜 소리가 나오는 실로폰형 액세서리만 있는 게 아니더라. 야외에서 멀리까지 소리가 크게 나가는 '리코더형' 오르골도 있는데, 20세기 초중반 미국에서 야외 서커스장이나 회전목마 유원지 따위에서 흘러나오던 무슨 피리 소리 같은 BGM들이 바로 이 오르골로 연주되던 결과물이었다. 오오 그랬던 것이군!!

소장품이 저 건물 안에 일일이 제대로 전시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많아서 거의 창고 수준이라고 하며.. 작동 가능한 현물이 전 세계에 거의 없다시피한 진귀한 축음기나 오르골도 볼 수 있다. 심지어 얼추 1시간 간격으로 가이드가 전시품들에 대해 설명도 해 준다.

우리나라에 올드카 수집 덕후만 있는 게 아니라 이런 분야의 수집 덕후도 계셨다니 정말 대단하다.
뭐, 일본의 어느 대기업 회장이 이 소장품들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내가 이거 박물관을 도쿄 한복판에 건립할 수 있게 지원해 주겠다. 박물관을 일본에다 짓는 게 어때?"라고 제안했는데 설립자분께서 거절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4/08/20 08:35 2024/08/20 08:35
,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332

1990년대 초중반, 일반 서민 땅개들은 DOS를 벗어나지 못하고 기껏해야 Windows 3.x니 이런 바닥에서 놀고 있었는데,
하늘 위로, 혹은 바다 건너편에는 서민이 범접조차 할 수 없는 별세계가 있었다.
아래의 것들은 골수 얼리어답터나 직업적으로 컴터 연구하는 사람, 해외 문물을 재정 타격 없이 접할 수 있는 금수저의 산물이었다.

1. 매킨토시

매킨토시 컴터 화면으로 실사 사진이나 전자출판 인쇄물 화면이 쫙 뿌려져 있는 건 그야말로 꿈만 같은 신세계 별세계 그 자체였다.
이때는 산돌, 윤 같은 서체도 맥의 전유물이었다. Windows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PC는 저해상도 화면과 프린터에 튜닝이 잘 된 한양, 휴먼, 큐닉스의 나와바리였을 뿐이다.

마소 진영의 빌 게이츠는 장사꾼이어서 악랄한 독점뿐만 아니라 박리다매, 하위 호환성, 고객 눈높이.. 이런 이념을 중시했었다. 그러나 잡스는 그렇지 않고 교주, 소수의 매니아, 고가 프리미엄.. 이런 쪽이었다.
본가부터가 저런데 그 당시 애플 매킨토시의 한국 총판이었던 엘렉스는 안 그래도 비싼 제품 가격을 더 지랄맞게 쳐 올렸다.

PC로 치면 286 AT밖에 안 됐을 저가 보급 사양부터가 1990년대 가격으로 2, 300만 원부터 시작했다. 하이엔드급은 6, 700만 원.. 돈 좀 보태면 집이나 차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흉악한 가격에 빡쳐서 그냥 미국 현지에 가서 제품을 직접 사서 들여 오는 사람도 있었다.

2. OS/2 2.x

1990년대 초에 각종 도스용으로 나왔던 업무용 프로그램· 개발툴들은 DOS뿐만 아니라 OS/2 지원을 Windows 지원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PC용으로 만들어졌던 진정한 32비트 운영체제였다고는 하는데.. 이후에 OS/2 Warp니 멀린이니 이런 거 나왔다가 존재감 없이 사라진 것 같다. 들리는 말로는 코드 구조가 어셈블리어 기계어 코드 일색이고 포터블하지 못했던 것도 OS/2의 명줄을 더 재촉했다고 한다.

나와 개인적인 접점은 전무하다. 단지, "OS/2 써 보려면 컴터 램이 4MB 이상은 있어야 합니다" 이런 문구를 1992년도 컴터 잡지에서 보고 깜짝 놀라긴 했었다. ㅎㅎ

3. Windows NT 3.x

껍데기는 Windows 3.1처럼 생겼고 심지어 버전 번호도 똑같이 시작했지만 내부 구동은 정말 넘사벽으로 다른 물건이다.
안정적이고 탄탄하고 순수 32비트 기반이고.. 다 좋은데 램이 지랄맞을 정도로 많이 필요해서 돌릴 수 있는 컴퓨터가 별로 없었다. OS/2보다 더 자비심이 없었다.

NT는 Windows 2000, XP의 전신이고 심지어 오늘날 Windows 10/11의 먼 조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도스 기반의 Windows 3은 x86에서 86 real, 286 standard, 386 enhanced 다양한 모드로 실행 가능했다.
그 반면, Windows NT는 그냥 여러 CPU를 지원했다. x86은 무조건 386인 거고, 그 밖에 MIPS, DEC alpha 등.. 개발 방향과 성격이 이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NT는 DirectX라는 게 개발되기 전부터 OpenGL을 지원하고 있었다. 게임보다는 업무용 그래픽을 위해서.
OpenGL에 대해서는 좀있다 다시 얘기하도록 하겠다.

4. NeXTSTEP

잡스가 애플을 잠시 떠나 있던 동안 개발했던 고급 컴퓨터와 거기서 돌아가던 운영체제 되시겠다.
id 소프트웨어의 존 카맥이 이 환경에서 Doom과 Quake를 개발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Windows용 아래아한글 3.0b가 요 NeXTSTEP의 UI를 차용한 독자 UI를 채택했던 바 있다. 특히 스크롤바의 화살표 삼각형이 양쪽 끝에 있는 게 아니라 한데 몰려 있는 거 말이다. ◀-----▶가 아니라 -----◀▶

이상이다.
일반 흙수저 서민들이 저런 급의 OS를 만져보게 된 첫 기폭제가 사실상 Windows 95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해진 건 램값이 싸진 덕분이다.
1990년대 이후 PC의 발전을 논할 때는 컴퓨터 속도의 향상(그 뒤 멀티코어화), 램 용량의 증대(단가 하락), 그리고 네트워크 속도 향상.. 이 순서를 기억하면 될 것 같다.

1990년대 말쯤부터는 슈퍼컴퓨터만을 위한 전용 컴터 아키텍처라는 것도 없어졌고,
워크스테이션이라는 개념도 아주 희박해져서 그냥 하이엔드 급 PC로 흡수된 것 같다.

※ 번외: OpenGL과 화면 보호기

과거..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에는 Windows 컴터에 "3D 텍스트, 3D 미로, 3D 날으는 객체들, 3D 미로"라는 화면보호기가 있었다.
Windows 95 때는 '쁘라스 확장팩'에만 수록되어 있었고, 98부터 XP에는 기본 내장돼 들어갔었다.

얘들은 OpenGL이라는 하드웨어 가속 3차원 그래픽 라이브러리의 기술 데모 명목으로 만들어졌다.
마소는 전통적으로 게임용 그래픽 명목으로 DirectX를 강력하게 지지하곤 했는데 웬 OpenGL인 걸까?
"얘들은 '3D 핀볼'처럼 제3자 외주 개발 프로그램이기라도 했나? 근데 겨우 화면보호기를 외주로 개발해?"

개인적으로 궁금했는데 그게 아니구나.
얘들은 마소에서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인데, Windows 95가 아니라 Windows NT 3.5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95 시절에 출시됐던 Hover! 이라든가 Fury!! 같은 초보적인 수준의 가정용 3D 게임과는 기술 계보가 완전히 달랐다. 이게 핵심이다.

(* 참고로, 저 당시에 마소는 팀 간에 경쟁과 알력 싸움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Windows 9x 팀 vs NT 팀, Office 팀, Visual C++ 팀 등등.. 그래서 서로 정보 공유도 안 하고, 같은 기능 API도 다 따로따로 중복 개발했을 정도였다.. 무슨 구 일본군 육군 vs 해군처럼.. 그 당시 빌 게이츠라든가 스티브 발머는 정말 살벌한 경영자였다. *)

하드웨어 가속이 없이 평범한 재래식 그래픽으로는 화면보호기에 점, 선, 글자 같은 초보적인 그래픽 애니메이션만 가능했다. 그것도 2D 위주..
물론, 쌍팔년도 시절 화면보호기의 정석 교과서는 별들이 씽씽 3차원 원근법이 적용되어 날아다니는 '우주여행'이긴 했다. 아니면 불꽃놀이..??? 시꺼먼 화면에서 점과 선만 갖고 나름 근사한 눈요깃거리였다. 직접 코딩해서 만들어 보고 싶다.

그런데 OpenGL이나 DirectX 같은 게 등장한 덕분에 텍스처나 광원이 들어간 3차원 애니메이션이 구현 가능해졌다.
그래서 마소에서는 OpenGL 데모를 화면보호기 형태로 제공하기로 했고.. 사내 OpenGL 화면보호기 덕질 공모전을 열어서 제일 우수한 작품 하나를 Windows 제품에다 넣기로 했다.
그랬는데 결국은 출품된 작품들을 모두 제품에다 넣어서... 그게 저렇게 전세계에 퍼진 것이다.

얘들은 훗날 Windows Vista에서 대부분 빠지고 '3D 텍스트'만 남았다. 그리고 비누방울 같은 다른 보호기가 도입돼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새로 개발된 걔들은 당연히 Direct3D 기반이겠지..??

지금이야 화면보호기라는 개념 자체가 완전히 레거시 퇴물이 됐다. 마치 도스 시절에는 하드디스크 파킹 유틸리티가 각종 현란한 그래픽과 함께 유행이었는데 그것도 유행 지나고 퇴물이 됐듯이 말이다.
화면보호기가 하는 일은 세계 절경 풍경이 나오는 잠금 화면, 아니면 아예 컴 화면을 완전히 끄는 절전 모드로 계승되었다. 스마트폰에 화면보호기 따위가 있지는 않다.

이 화면 보호기 얘기는 the old new thing 블로그의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하긴, 옛날에는 화면 보호기처럼 화면 전체를 마치 프레젠테이션 화면 전환처럼 조작하는 거 말이다.
Doom 게임에서 화면 녹으면서 내려가던 효과, 하늘소 프로그램에서 텍스트 화면이 좌우로 쫙 갈라지는 거..
비디오 메모리를 직접 조작하던 게 추억의 프로그래밍 테크닉이었다. ^^

Posted by 사무엘

2024/08/17 19:35 2024/08/17 19:35
,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331

비행기의 특성

1. 과속

비행기는 비행 중에 설계 한도를 초과하는 과속을 하면 기체가 공기 저항을 못 버티고 공중분해될 수 있다. 특히 대놓고 공기와 부딪히라고 돌출되어 있는 날개가 바로 부러질 수 있다. 이건 엔진의 과열· 과부하와는 완전히 별개인 문제이다.

몇만 톤짜리 대형 선박이 전속력으로 항해 중인데 갑자기 닻을 내리면.. 닻을 잡고 있던 설비가 못 버티고 통째로 뽑히고 부러져 버린다. 비행기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선박보다 m은 훨씬 더 작고 v가 훨씬 더 크겠지만.

성층권에서 마하 2가 넘게 날 수 있는 전투기도 동네 뒷산 급의 저고도에서는 시속 6~700km밖에 못 낸다. 연비도 훨씬 더 나빠진다. 저고도는 공기 저항이 훨씬 더 강하기 때문이다.
허나, 역사적으로 전투기가 작전 중에 적국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저공 저속 비행을 한 사례가 있었다. 이걸 포복비행이라고 부르는데, 어감상 아주 매우 적절한 작명인 것 같다.

2. 저속, 실속

반대로 비행기가 너무 느리게 가면..?? 비행기를 띄울 만한 충분한 양력이 발생하지 못해서 고도도 낮아지고 나중엔 추락한다.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고 주행 가능하기 위한 최저 속도가 있고, 자동차 엔진에 시동 유지를 위한 최저 회전수가 있는 것처럼.. 비행기에는 실속에 빠지지 않기 위한 최소 속도라는 게 존재한다. 공기 중에 움직이는 물체는 공기 저항과 양력 모두 속도의 제곱에 비례해서 붙는다.

비행기는 느려지면 자세 제어 같은 조종도 잘 안 된다. 그런데 착륙을 하려면 이런 기동을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착륙이 임박했는데 활주로 주변에 문제가 생겨서 다시 떠야 한다면 대처하기가 어렵다.
전투기처럼 자기 무게 대비 엔진 출력이 강한 비행기라면 이럴 때 큰 어려움 없이 금방 다시 뜰 수 있다. 그러나 덩치 크고 뚱뚱한 여객기는 신속한 대처가 어려워서 사고가 날 수 있다.

물론 전투기는 여객기보다 기동성이 좋은 대신, 여객기에서 기대하지 않는 훨씬 더 험악한 기동 훈련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사고의 위험이 있다.

3. 역추진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 풀악셀 밟아서 "웨에에엥~" 터빈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공기를 빨아들이는 쿠우우우우~~ 소리는.. 정말 역동적이고 박력있고 아름답고 멋지다. 특히 붕붕이(피스톤 엔진) 말고 쌕쌕이(제트;;) 비행기들 말이다.

그런데 뜰 때야 그렇다 치는데, 비행기는 착륙하고 내려앉은 직후에도 생각보다 꽤 큰 소음이 발생한다.
자동차로 치면, 급격한 내리막길을 갈 때 기어를 1단이나 2단 고정으로 바꿔서 엔진 브레이크를 걸어서 엔진 굉음이 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뭐.. 그렇다고 비행기에 그런 장치가 있는 건 아니다. 저 때 비행기는 감속을 위해 역추진을 한다.
바퀴를 브레이크로 붙잡기만 하는 게 아니라, 공기를 앞으로 내뿜어서 제동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이때 뒤로 낙하산 같은 거라도 펼쳐서 저항을 더 키우고 싶지만.. (닻의 비행기 버전?) 현실적으로 그럴 수는 없으니 엔진 역추진에다가 날개 위의 스포일러까지 동원해서 최대한 어서 기체를 세운다.

아 하긴, 과거의 우주왕복선은 착륙 후에 낙하산을 뒤로 펼치기는 했었다. 얘는 아예 엔진이고 연료고 없는 글라이더 상태로 지구로 귀환하고, 주행 속도도 훨씬 더 빠른 상태이다. 엔진 역추진 같은 게 없으니 낙하산이라도 없으면 진짜로 안 됐기 때문이다.

비행기는 저 엔진 역추진 기능을 이용해서 이론적으로는 자력으로 후진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거는 시끄럽고 연료 소모가 극심하고 주변에 배기가스 후폭풍도 많이 끼친다.
그렇기 때문에 얘들은 공항 여객터미널 부근에서 택싱을 위해 후진할 때는 자력으로 움직이지 않고 토잉카의 도움을 받는다.

비행기라든가 진공 청소기 같은 걸 생각해 보면, 평범한(?) 공기의 움직임만으로 이런 엄청난 소음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놀랍게 느껴진다. 선풍기나 단순 헤어드라이어하고 비교하면 얼마나 시끄러운지..???
그런 기계들은 성능을 크게 희생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동작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4. 외형과 균형, 과적

-- 비행기는 자동차나 선박과는 달리, 자세와 형체와 표면 상태가 매우 매우 크리티컬 급으로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육상 교통수단은 무게만 신경 쓰면 되고 선박은 거기에다 무게중심 정도만 신경 쓰면 되는 반면, 비행기는 기체 외형이 당장 양력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 트럭과 버스, 여객선과 화물선은 외형이 서로 많이 다르게 생겼다. 그러나 비행기에서 여객기와 화물기는 창문 모양 말고는 외형이 완전히 동일하다. 그래야만 한다.
눈 내린 날에 비행기 표면의 눈과 얼음을 벗겨내는 게 단순히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 눈조차도 비행기 주변의 양력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 비행기는 입석이나 정원초과가 절대 존재할 수 없는 교통수단이다.;;
비행기가 과적을 하면.. 활주거리를 초과해서도 이륙을 못 해서 활주로에서 사고를 내게 된다.
하늘에 뜬 뒤에도 무게 배분이 안 돼서 기체가 한쪽으로 기우뚱 하면.. 역시 실속에 빠지고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개념적으로 배가 한쪽으로 쏠려서 뒤집히는 것과 비슷하다.

-- 자동차는 접지력을 늘리기 위해서 차체의 무게를 일부러 늘리는 경우가 있다. (철도 기관차, 비행기 토잉카, 후륜구동 차량 등등)
선박도 무게중심 안정성을 늘리기 위해서 화물을 다 내린 배에다가 일부러 바닷물을 평형수라는 명목으로 좀 싣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비행기는 그 어떤 경우에도 일부러 무게를 늘리는 짓은 할 필요가 없다.

-- NASA에서 우주왕복선을 수송하는 데 썼던 그 보잉 747 기반의 화물기는.. 우주왕복선을 실은 상태에서는 미국 서부에서 동부로 대륙 횡단도 한번에 못 했다. 무게나 기체의 모양, 순항 고도 등 모든 것이 평범한 여객기일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서 연비가 곤두박질.. 중간에 내려서 급유를 받아야 했다!!

5. 주변 공기가 끼치는 영향

(1) 기온이 올라가면 자연의 물질들은 뭐든지 '팽창'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이게 교통수단에게는 단순히 엔진이나 브레이크의 과열 가능성 이상으로 그리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철도에서는 쇠로 된 레일이 부피가 늘어나고 휘려 하며, 강도가 약해진다. 열차들이 불가피하게 감속 운행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전기철도의 경우, 가공전차선의 장력을 관리하는 데도 복잡한 설비가 필요해진다.

자동차는 고무 타이어가 열 받아서 폭발할 위험이 커진다. 공기를 너무 빵빵하게 주입한 타이어뿐만 아니라, 헐렁헐렁해서 짓눌리고 변형되는 타이어도 위험하다. 그 상태로 고속 주행을 하면 마찰열이 입빠이=_=;; 쌓이기 때문이다.

그럼 비행기는...??? 엄청 고온일 때는 주변 공기가 팽창해서 밀도가 낮아지고.. 이 때문에 양력이 떨어져서 비행기의 이륙이 어려워진다.
하긴, 멀쩡히 잘 날다가도 갑자기 공기 밀도가 낮은 공간을 지나가면 휘청 급강하하기도 한다.

(2) 비행기가 순항 고도 이상으로 고도를 한없이 무리해서 높이면..?? 결국 공기가 부족해져서 연료 연소가 안 되고 엔진 시동이 꺼져 버린다. 그 뒤 추락..;;

부력만으로 공기 중에 떠오르려면 거대한 비행선 같은 뻘짓이 필요하다. 추력만으로 비행하는 건 연료 소모가 너무 극심하다. 그 중간에 속하는 양력이라는 건 주변 공기와 매우 복잡 정교한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얻는 힘이다.

몇 년 전에 NASA의 화성 탐사선에서 드론을 띄워서 양력 비행에 성공한 건 여간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 공기가 희박하다는 화성에서 그걸 해냈으니 말이다. 한편으로 비행기는 로켓으로나 가능한 기동을 흉내 내려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구에만 생명이 있는 것처럼 지구만이 태양계의 행성들 중 실용적인 양력 비행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행성이라 여겨진다.

6. 엔진 구조

-- 자동차는 한 엔진에서 실린더가 몇 기통이냐~ 이걸 논하는 반면, 비행기는 그냥 엔진 개수를 통째로 따진다. 요즘 비행기들은 어지간해서는 그냥 쌍발(2개)이지만 말이다. 자동차는 스레드 지향적이고 비행기는 프로세스 지향적인 것 같다. =_= (플라이휠은 스레드 동기화 장치이고ㄲㄲㄲㄲ)

-- 자동차는 정지 상태에서 출발할 때와 최고 속도로 달릴 때 서로 다른 특성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걸 변속기라는 장치로 구현한다. 그러나 비행기 급이 되면.. 출발 - 아음속 - 초음속 - 극초음속.. 속도대별로 아예 서로 다른 엔진이 필요하다.

-- 초음속에 특화된 엔진은 아음속에서는 연비와 효율이 매우 떨어진다.
옛날에 콩코드가 이래서 무슨 KTX가 기존선-고속선 오가는 것처럼 유동적인 운항을 할 수 없었고 계륵 같은 상황을 맞이했다. 비행기는 열차가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지 상태에서 이륙하는 것도 여느 여객기보다 까다로워서 제한된 활주로에서 매우 급가속을해서 고각으로 힘겹게 떠야 했다고 한다.

-- 반대로 램 제트 같은 극초음속 엔진으로는 정지 상태에서 출발을 할 수 없다.
이러니 단 분리 없이 한 엔진, 한 기체로 비행기와 우주 발사체를 겸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현재 인류의 기술로는 불가능.. 이건 SF의 영역이다.

-- 헬기(회전익기)의 로터, 프롭기의 프로펠러, 제트기의 팬 블레이드.. 이 셋의 관계는 참 미묘해 보인다.
이런 프로펠러나 헬기 로터의 회전 속도는 생각보다 그닥 높지 않다. 휘발유 엔진 자동차의 통상적인 회전수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은 편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속도와 크기로 공기를 휘젓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시끄럽다.

-- 한때는 고속 고성능 증기기관차의 이름을 로켓이라고 불렀는데.. 정작 훗날 진짜 우주 로켓을 연구하던 NASA 연구소는 "제트 추진 연구소"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게 아이러니이다. 로켓이라는 이름이 로보캅마냥 촌스러웠다고.

-- 선박은 목재+돛 범선에서 19세기 말에 금속+엔진 기반으로 바뀐 것이 엄청난 혁신이었다.
자동차는 내연기관이 도입된 것이 혁신이었고, 철도는 전기가 도입된 것이 혁신이었다.
비행기는? 내연기관은 기본으로 깔고서 20세기 중반에 제트 엔진으로 바뀐 게 혁신이었다. 동력 비행을 최초로 가능하게 한것은 왕복 내연기관이지만, 초음속 비행을 가능하게 한 것은 제트 엔진이다.

7. 항공 관련 속도

(1) 비행기에 "V1.. rotate!" 이런 고정 대사가 있다면, 우주 로켓 쪽은 10초 카운트다운과 "ignition sequence start.. we have (a) liftoff!"가 고정 대사인 듯하다.
그러고 보니 후자는 처음 출발할 때는 승무원들이 기체를 조종하지는 않는다. 그땐 가만히 안전벨트 붙들어 매고 누워 있기만 하지.
항공 쪽에서 쓰이는 V1, V2 속도 같은 건 물리학에서 말하는 각종 중력 탈출 속도, 우주 속도와는 전혀 무관한 개념이다.

(2) 자동차는 시속 100 이상이 고속도로 고속 주행으로 여겨지고, 철도는 시속 200 이상이 고속철도로 분류된다. 비행기는 대략 1000 이상이 초음속으로 여겨진다는 차이가 있다.
1960년대 즈음에 한국에서는 고속도로를 만들었고(자동차), 일본에서는 신칸센(철도)을 만들었고.. 미국과 구소련에서는 우주선을 만들었다.

8. 초음속기

옛날에 구소련과 서유럽에서는 각각 Tu-144 내지 콩코드라는 초음속 여객기를 개발했었다.
완전 뜬금없는 얘기이긴 하지만, 냉전 시절에 구소련과 미국의 전산학자들이 제각기 고안했던 자료구조인 AVL tree와 red-black tree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heap sort와 quick sort 같은 느낌도 들고 말이다.
물론 오늘날까지 현업에서 살아남아서 C++ 라이브러리의 컨테이너를 구현하는 데도 쓰이고 있는 것은 미국산인 RB tree이다.

2020년대에 와서 일각에서는 초음속기를 다시 만들려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옛날 콩코드 시절의 문제점이 구조적으로 개선된 게 하나도 없는데 그게 호락호락 다시 운항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소닉붐 같은 건 애초에 물리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현상이기도 한데 말이다.
미국 보잉이 초음속기 2707을 개발하다가 괜히 포기한 게 아니다. 포기한 게 결국 신의 한 수가 됐다. 최종 승자는 구소련도, 서구도 아닌 미국으로..

9. 나머지 잡설

- 교통수단별 전담하는 고등 교육기관이 철도는 교통대, 우송대이고, 항공은 항공대, 한서대.. 선박은 해양대인가 싶다. 사관학교(공· 해군)는 제외하고 생각했을 때 말이다.

- 비행기의 비행 중에 발생하는 버드 스트라이크는 도로의 육상 교통수단에서 발생하는 로드킬이랑, 건축물에 발생하는 조류 충돌(특히 유리창이나 투명 방음벽)의 딱 중간에 속하는 이벤트 같다.
그러고 보니 "벌레 - 곤충"은 "항공기 - 비행기"와 비슷한 관계인지도..??

-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비행기는 고속에서 양력을 최대한 잘 받는 형태로 설계된다.
그러나 자동차 스포츠카는 뒤에 공기 스포일러라는 작대기가 장착돼서 양력이 생기지 말라고, 고속 주행 중에도 차체가 뜨지 않게 설계된다. 비행기와는 상극이다.

-- 헬기는 단점이 많지만 수직 이착륙과 공중 체류라는 독보적인 장점 덕분에 살아남았다. 비행선은 장점이 많지만 독보적인 단점 때문에 도태됐다.
헬기 근처에 사람이 있으면 테일로터에 맞는 게 위험하다. 그 반면, 제트기는 근처에 사람이 있으면 엔진에 빨려들어가는 게 위험하다.

-- 자동차는 1단 전용 기어를 넣어서 제한적으로 후진이 가능하다. 그 반면, 일반적인 체인 자전거는 기어가 절묘하게 만들어져서 후진이 가능하지 않다.
전후동력형 철도 차량은 전진과 후진을 아무 차이 없이 할 수 있다. 그리고 비행기의 후진 능력은..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다.

-- 옛날에 버스를 프론트 엔진 형태로 만들다가 지금은 다 리어 엔진으로 바뀌었듯이..
비행기도 요즘은 쓰이지 않는 옛날 디자인이 좀 있었다. 삼발기라든가, 앞쪽에 랜딩기어가 양쪽에 둘 달렸던 역삼각형 디자인 말이다. 지상 평지에 정지해 있을 때는 비행기 앞쪽이 위로 들려 올라갔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4/08/14 08:35 2024/08/14 08:35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330

1. 손과 발, 눈과 귀

손과 발 중 어느 것이 없는 게 더 불편할까? 눈(시력)과 귀(청력) 중 어느 것이 없는 게 더 불편할까? 둘은 마치 교통과 통신만큼이나 담당하는 영역이 서로 다른 것 같다.
인간이 일상적으로는 손을 써서 학교나 직장에서 많은 일을 하지만.. 다리가 없어서 자력으로 어디 이동을 할 수 없다면.. 이거 뭐 말짱꽝이 된다. 오오~ 그러고 보니 수난 이대 소설이 이런 상황을 잘 다루고 있다.

그리고 눈은 엄청 멀리 떨어진 곳까지 영상이라는 2차원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소리는 영상보다야 정보량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귀는 딴일을 하는 중에도, 굳이 고개를 돌리고 주목하지 않아도 시야각의 제약 없이 어디서나 정보를 습득하게 해 준다. 더구나 소리는 지형이나 장애물을 가리지 않고 잘 퍼지기까지 한다.

이러니 이 유튜브 비디오 시대에도 라디오가 완전히 쫄딱 망할 일은 없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앞을 못 보는 게 소리를 못 듣는 것보다 더 불편하고 더 큰 장애로 보이지만..
사실은 소리를 못 듣는 것도 앞을 못 보는 것에 필적할 정도로 엄청난 장애라고 그런다. 서로 대등하고 호각인 거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유전적인 특성 때문에 선천적으로 냄새를 못 맡는 사람이 있다. 외형상 코의 모양은 평범하고 정상이기 때문에 이게 당장 티가 나지는 않는다.
putty 터미널 프로그램의 개발자 Simon Tatham이 냄새를 못 맡는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본인은 과거에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비슷한 체험을 했었다. 딱히 콧물감기에 걸리지 않았는데 김치에다가 코를 박아도 아무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게 무척 놀라웠었다..!
냄새를 못 맡는 건 시청각 장애에 비해서는 그나마 덜 심각한 장애로 여겨진다. 정확하게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이걸로는 병역 감면이나 면제가 가능하지도 않지 싶다.

하지만 음식이 상하거나 썩은 냄새, 타는 냄새.. 악취 이런 걸 못 맡으면 뭔가 결정적인 순간에 위험을 감지하지 못해서 화재나 식중독 같은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잠재적으로 커질 것 같다.
마치 땀이 안 나는 병이 있는 것처럼 몸 사리면서 조심해서 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2. 건강에 대한 관념

난 아주 어린 꼬마 시절엔..

(1) 머리를 감기만 했는데 머리카락이 도대체 왜 수십 개씩 빠진다고 하는지 이해를 전혀 못 했다.
흰머리 뽑듯이 족집게로 머리카락을 뽑은 게 아닌데 그게 왜 저절로 빠지지??

(2) 걷다가 넘어지거나 엉덩방아를 찧으면 피부가 까지고 피가 나고 아파서 울 수 있고, 빨간약을 바르기는 한다만.. 도대체 그거 갖고 어떻게 뼈까지 부러질 수 있는지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3미터 높이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줄?

(3) 커피를 마시면 잠을 쫓을 수 있다는 말을 이해를 못 했다.
심지어 영어 회화 교재에도 I’m sleepy / Drink some coffee 라고 적혀 있던 대화의 인과관계를 전혀 몰랐다. 졸리는데 왜 커피를 마셔?

(4) 반대로, 잠이야 아무 때든 조용한곳에서 누워서 눈만 감으면 100% 언제든지 경험 가능한 건데, 불면증이라는 게 세상에 도대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서 예전에 당연하던 것이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바뀌어 간다~~!!!.

3. 기억

나는 이런 게 도대체 왜 기억이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의 교가의 멜로디를 모두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교는=_= 일부 멜로디를 기억하는 게 있지만 다녔던 학교 중 어느 곳의 교가인지는 모른다.
중학교 교가는 일부 가사를 기억한다. 셋잇단음표와 함께 "거룩한 화랑 정신 핏속에 이어받아 온 겨레 떨치는 횃불이 되자"가 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교가는 가사 대부분을 기억한다.
고등학교 교가는 일부 구간이 찬송가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와 비슷한 곳이 있다.
대학교 교가는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의 작곡자인 그 침신대 교수가 작곡했다.

그리고 단 4주 동안밖에 접하지 않았지만 논산 육군훈련소가=_=를 멜로디는 음원 차원에서 100%, 가사 대부분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국군 도수체조 BGM은 들어도 들어도 정말 와 닿지 않고 기억이 잘 되지 않는다.

유사품인 국민체조 BGM 대비 멜로디가 그닥 명랑 경쾌하거나 매력적이지 않고, key부터가 깔끔한 G가 아니라 애매하게 낮고 어려운 G플랫.. 코드 진행이 장조인지 단조인지 모르겠고 어정쩡하고.. 뭐 그렇다. 그래서 머리에 잘 입력되지 않는다.
음악 전문가이신 여친님도 들어 보더니 정말 그렇다고 인증해 주셨다.

난 개인적으로 매일 아침에 이거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할 국군 장병에게 이 BGM이 그리 좋은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_=

아무 음악이나 한번 듣지마자 바로 기억에 들어갔으면 좋겠지만 나 포함 대부분의 인간은 그러지 못할 것이다.
기억 아이템이라는 것을 취준생에다가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뇌의 기억장소라는 직장에 취업하는 것과 비슷하다.

단기 기억에만 남아 있는 건 인턴, 계약직에 불과하다. 재계약이 안 되면 곧 짤린다. 잊혀진다.
장기 기억으로 들어가는 건 정규직/장기복무 합격에 대응한다.
평생 각인되는 거는 종신직 정년보장 철밥통 자리에 들어가는 거고..
인간의 뇌라는 직장이 제공하는 일자리는 그렇게 많거나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4. 욕구

인간 같은 동물에게는 잠뿐만 아니라 식욕, 성욕 같은 다른 기본 욕구들이 존재한다.
인간의 기본 욕구가 부적절한 방식으로 잘못 발산됐을 때 사회에서 가해지는 제재는 무엇이 있을까?

(1) 밥
조난을 당해서 무인도나 밀림이나 망망대해 구명보트에서 몇 달째 고립돼 있었고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사람 시체라도 뜯어먹었다면.. 그건 뭐 그 당사자를 비난할 수 없다.
문명의 손길이 닿는 곳에서도 정말 굶어죽기 일보직전에 최후의 발악으로 마트를 털기라도 한 거면 일말의 장발장 동정표가 주어질 수 있다.

허나, 이 2020년대 대한민국은 길거리에 아사자 시체가 굴러다니는 무복지 막장 국가가 아니다. 행려병자나 거지가 떠돌던 시절도 이미 지났다.
그렇기 때문에 사지 멀쩡한 사람이 밥을 못 먹어서 긴급피난이 인정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래도 먹튀는 절도죄, 사기죄 같은 잡범 급이지, 정치범 흉악범 급은 아니다.

(2) 배설
노상방뇨 노상방분은 그냥 경범죄로 취급되어 과태료 범칙금 감이다. X을 잘못 싸면 그 사람의 체면과 사회 위신이 심각하게 저해되겠지만-_-, 인간의 생리욕구를 해소한 것만 갖고 사람을 체포하고 형사 처벌을 하지는 않는다.
글쎄, 그 후폭풍 여파가 심하게 악질적이면 재물손괴죄로 이어질 수는 있겠다만 말이다.

반대로 아무 악의 없이 너무너무너무 극단적인 상황에서 급똥 때문에 불가피하게 사회적인 민폐를 끼친 거는 긴급피난으로 인정될 수 있다. (남자가 닥치고 여자 화장실이라도 뛰쳐들어가서 해결을 했다거나..)
하긴, 수영 선수들이 수영장 경기장에 있으면서 몰래몰래 소변을 지리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한다. =_= 마라톤 선수는 경기 중에 지리고..

(3) 수면
근무 중, 학습 중 같은 상황에서 졸아 버리면 그냥 그 조직 내부에서 잔소리 듣거나 징계받는 걸로 끝이다. 이거 갖고 판· 검사는 물론이고 경찰 면담을 할 일조차 없다.
졸음운전은 문제가 좀 심각하긴 하지만, 사고가 나더라도 그냥 평범한 과실로 다뤄진다. 음주운전과는 달리 특별히 더 가중 처벌되는 게 없다.

(4) 성
이거는 제일 위험하고 심각한 사항이다. 손 하나 까딱 잘못 놀리면 체포되고 벌금이나 징역까지 받을 수 있고, 최악의 흉악범으로 전락할 수 있다. 사회적 매장은 덤.
옛날에 우리나라에서는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린 피해자가 적지 않았다고 하는데, 요즘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서 열외돼서 억울하게 성추행범으로 몰린 피해자가 적지 않은가 보다.

정상적인 성욕과 끔찍한 성범죄는 마치 사랑의 체벌과 아동학대, 살인과 연명 치료 중단만큼이나 한 끗발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성범죄를 없애겠다고 아예 고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런 쪽의 유혹은 대적하고 맞서 싸우는 게 불가능· 무의미하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도 이건 그냥 피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고 말한다.

대놓고 적군이라면 싸우고 죽여야겠지만, 우리 편 사람이 잠시 헷가닥 맛이 가서 나한테 덤비는 거면.. 죽일 수가 없잖은가? 내가 그냥 피하거나 "잠시 실례" 기절만 시키거나..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그리고 사실, 강간은 성욕 해소가 본질이 아니다. 성욕만 주체할 수 없는 지경이라면 그건 혼자 화장실 가서 조용히 몰래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강간은 그냥 자기보다 약한 여성을 제압하고 제멋대로 범하는 과정 자체에서 쾌감을 얻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마치 고문이 진짜로 자백 받아내고 정보를 얻는 게 목적이 아니며, 결혼이 성욕 해소가 본질이 아닌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8/11 08:35 2024/08/11 08:35
,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329

대형 및 특수 차량들

0. 특성

대형 버스나 트럭은 일반인들이 면허 따서 흔히 운전하는 자가용 승용차에는 없는 특성이 여럿 존재한다.

(1) 엔진과 파워트레인

- 이 바닥은 휘발유 엔진 같은 건 없고 닥치고 디젤 엔진이다. 글쎄, 시내버스 정도에나 천연가스· 전기가 있고 아주 극소수 수소 연료전지도 연구 중이긴 하지만.. 고속버스라든가 40톤짜리 트레일러에 디젤 말고 다른 동력원이 존재한다는 얘기는 난 들은 적 없다.

- 그래도 자동차용 디젤 엔진은 어지간하면 다들 6기통으로 때우는 듯하다. 휘발유는 실린더 하나로 감당 가능한 최대 배기량에 한계가 크기 때문에 10리터가 넘는 배기량을 6기통만으로 구현하는 건 어림도 없다.

- 엔진룸이 운전석의 앞에 있지 않다. (트럭은 바로 아래, 버스는 차체 맨 뒤) 핸들이 승용차보다 아주 평평하게 놓여 있고, 같은 각도를 회전하려 해도 핸들을 여러 바퀴 많이 돌려야 된다.

- 이 바닥은 승용차의 세계와 달리, 수동 변속기가 주류이다. 그리고 평지에서 가벼운 상태로 출발할 때 한정으로 2단에서 바로 출발 가능한 경우가 있다.

(2) 제동

- 브레이크의 제동력을 전하는 매체가 브레이크액이 아니라 압축 공기이다. 대형차가 승용차와 달리 걸핏하면 축 축 취익 방귀/트림 소리를 내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 브레이크는 제동력이 강하기는 하지만 압축 공기가 소모되면 브레이크를 못 쓰게 된다는 걸 유의해야 한다. 그래서 계기판에도 공기압 게이지라는 게 있다.

- 차체가 매우 무겁기 때문에 승용차 같은 간편한 형태로 주차 브레이크를 구현하지 못한다. 그리고 드물게 있는 자동 변속기 차량이라도 P가 없다. 그리고 엔진 브레이크를 구현하는 방식도 승용차와는 좀 다르다.

(3) 운전의 관점에서

- 운전하기 위해서 면허부터가 '보통'보다 더 까다로운 '대형'이 필요하다. 처음에 취득하는 것도 보통부터 따고 나서 1년이 경과해야 응시 가능하다. 그리고 대형은 갱신하는 절차(운전자의 건강 상태 증명)가 보통보다 더 빡세다.
여객은 15인승을 초과하는 중형 버스부터, 화물은 11.5톤 초과분부터. 유조차는 아마 3킬로리터 이상부터 대형 면허가 필요하다. 이 말인즉슨, 사람이 아니라 단순 화물을 나르는 거면 어지간한 크기는 다 보통 면허만으로 커버 가능하다.

- 승용차를 몰 때보다 사각지대에 훨씬 더 유의해야 한다. 그래서 백미러에도 볼록거울이 존재한다.

- 이런 차량은 최대 속도 리미터가 걸려 있다. 승합차/버스는 110, 그리고 4.5톤 이상 트럭은 90밖에 못 낸다. 즉, 고속도로에서 승용차 몰던 것처럼 마음껏 추월 차로를 넘나들면서 밟지 못한다. 그리고 그건 엔진 출력이 부족해서 못 하는 게 아니다.

뭐 이렇다. =_=;;
(1) 차가 완전히 서지 않은 상태에서 D/R 전· 후진을 급격하게 변환하지 말기. (2) 주차 브레이크 없이 P에만 의존해서 차 고정을 절대 하지 말기... 이건 승용차라도 변속기를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수칙이다. 대형 차량은 자동 변속기라도 P가 아예 없다.

그나저나 자동차에 디젤과 수동 변속,공기압 브레이크가 대형차의 특성이라면, 우리나라 철도에서는 교류와 좌측통행(일반열차, 광역철도), 가공전차선이 직류와 우측통행(도시철도, 경전철), 제3궤조 대비 대형차의 특성처럼 정착한 듯하다.

1. 자력 주행 가능한 특수한 차량들

세상에는 바퀴가 달렸고 엔진도 달려서 자력 주행이 가능하지만 그래도 주행이 주 용도는 아닌 기계류가 있다.
건설기계(불도저, 굴착기), 농기계(경운기, 트랙터), 군용 무기(장갑차, 탱크, 자주포..) 따위 말이다.

이런 물건들은 어디 멀리 수송할 일이 있으면 그냥 트럭에 실어서 보내는 게 낫다.
쟤들은 자력 이동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몹시 느리고 연비에도 안 좋기 때문이다. 바퀴가 아니라 무한궤도가 깔린 차량은 오프라인 험지 주행에만 너무 최적화돼 있기 때문에 일반 아스팔트 도로는 파손시킬 우려도 있다.

이는 스타에서 프로토스 리버나 하이템플러를 적진까지 직접 이동시키는 게 아니라 셔틀에다 실어서 보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여객기들이 엔진의 추진 방향을 바꿔서 후진을 하라면 할 수는 있지만, 공항 계류장에서는 그리하지 않고 그냥 토잉카의 견인을 받는 것과도 비슷한 이치라 할 수 있다.

글쎄, 지게차라든가 믹서 트럭이나 덤프 트럭은 공사 현장에서 진지하게 작업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뭔가를 수송한다는 성격도 강한 차량이다.
그렇기 때문에 얘들은 건설기계와 일반 차량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 얘들은 일정 규모 이상부터는 차량으로 등록할 수도 있고 건설기계로 등록할 수도 있다고 한다. 취사선택 가능하다.

저런 특수한 농기계나 건설기계나 군용차· 무기는 번호판이 장착되지 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경운기나 트랙터가 시골 농로를 번호판 없이 주행하는 것 정도는 그냥 묵인되는 것 같고..
가끔 탱크와 장갑차 무리가 훈련이나 작전을 위해서 공도에서 길게 대열 운행을 하는 건.. 미리 관할 관청에 신고해서 허가를 받은 뒤에 하는 것이다. 엄청 크고 무거운 화물을 수송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도로 점용 허가를 받는 것과 비슷하다.

2. 엔진룸이 앞에 튀어나온 트럭· 버스

승용차 말고 트럭이나 버스는 엔진이 차량의 아래에 있다. 승용차처럼 엔진룸(보닛/본네트)이 앞에 툭 돌출되어 있지 않다.
엔진이 하부에 있으면 정비하기가 어려우며, 탑승자의 승차감에도 그닥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버스의 맨 뒷자리를 생각해 보자. 그게 높이로나 승차감으로나 트럭의 좌석과 비슷한 곳이다.

그리고 엔진을 저렇게 배치하면 전방 충돌 사고가 났을 때 엔진이 먼저 몸빵 역할을 못 한다. 운전자를 포함한 앞좌석 탑승자가 위험에 더 노출된다. 크고 무거운 차는 튼튼하고 안전할 것 같지만, 그래도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트럭은 운전사가 사망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잦다.

장점은 운전자가 더 앞쪽에 있으니까 시야 확보에 더 유리하다는 것 정도? 그래도 차체가 워낙 크고, 트럭의 경우 높기까지 하기 때문에 우회전 같은 걸 할 때 사각지대 사고는 여전히 잊을 법하면 꼭 난다.
사각지대를 비추는 볼록 거울들이 있기는 하지만, 운전자가 그걸 언제나 꼼꼼히 살펴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늘 시간에 쫓겨 똥줄 타며 운행하다 보면 오로지 전방의 신호등만 뚫어지게 쳐다보게 된다. 그게 파란불이 되면 그냥 악셀 밟고 출발해 버린다.;; 뭐 그건 그렇고.

버스나 트럭이 저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엔진룸을 아래에다 집어넣는 이유는 간단하다. 제한된 차체 크기 내에서 짐을 싣거나 승객을 태울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 우리나라는 엄청 옛날에 새한 8톤 덤프 트럭이 엔진룸이 튀어나온 형태였었다. 하지만 이 차량은 1983년, 대우 자동차의 출범 거의 직후에 단종됐으며, 이런 형태의 차량은 그 뒤로 두 번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
  • 현대 리베로가 이례적으로 엔진룸이 앞에 튀어나온 1톤 트럭이었지만 얼마 못 가 단종됐다. 얘는 통상적인 화물 운송 트럭이 아니라 견인차로는 그나마 인기를 끌었다.
  • 그래서 국내에서 엔진룸 있는 트럭의 최후의 보루는 바로.. 군용차였다. (5톤 및 2.5톤 트럭) 그러나 이마저도 역사 속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차세대 군용 트럭은 민간 싸제 트럭과 형태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형 트레일러 천국인 미국은 다들 엔진룸이 있는 형태이다. 왜 그럴까?
트레일러의 길이 한계는 견인되는 그 짐받이 차량의 길이에만 적용되게 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에 법이 바뀌었다.
그렇기 때문에 트레일러를 끄는 트랙터는 좀 길어져도 된다. 길이에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엔진룸 돌출 형태가 주류가 된 것이다.

물론 법이 저렇게 관대하게 바뀐 이유는, 차에서 먹고 자고 살다시피하면서 엄청난 장거리 장시간 운행을 하는 운전사의 편의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땅이 엄청 좁아서 자동차 산업이 통째로 왜곡될 정도로 경차만 너무 우대하고 있는 일본과는 상황이 반대라 하겠다. 너무 작은 일본 내수 승용차나, 너무 크고 연비 안 좋은 미국 내수 승용차는 둘 다 한국이나 유럽 같은 시장에 그대로 내놓으면 경쟁력이 부족할 것이다.

3. 사고 유형

대형 화물차는 과속이나 음주운전 사고는 잘 없다. 그런 사고는 철딱서니 없는 양아치 운전자가 쓸데없이 고급 승용차를 몰다가 내는 편이다.
그 대신, 대형 화물차가 일반적인 승용차보다 더 잘 내는 사고는 이런 부류인 것 같다.

  • 내리막에서 브레이크 파열(fade 현상) 때문에 신호 대기 차량들 추돌
  • 격무에 시달리다가 졸아서 앞차 추돌
  • 시야 불량 때문에 우회전 중 보행자와 충돌
  • 적재 불량 때문에 주행 중에 화물들이 우수수.. (유리 소주병들 잔뜩, 또는 돌이나 쇳덩어리 같은 무거운 화물은.. ㄷㄷㄷㄷ)
  • 정비 불량 때문에 차량 자체의 부품이 우수수.. (타이어, 서스펜션..)
  • 정비 불량 때문에 달리다가 타이어 파열

이런 사고가 빈번하니 화물차를 저격하여 적재 불량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중과실 중 하나로 제일 최근에 추가되었을 정도이다. 11대 중과실이던 게 12대 중과실로.. 버스가 사람을 태울 때 '개문발차'와 더불어 트럭에서는 적재불량이 나란히 등재된 셈이다.

그리고 화물이 아니라 차량 자체의 부품도 말이다.
옛날에는 서스펜션 부품이 빠져서 도로에 떨어지고, 그걸 뒷차가 밟아서 공중에 퍽 떠 버리고.. 그게 더 뒷차나 심지어 맞은편 방향 차량의 유리창으로 날아가서 테러를 일으키는 사고가 종종 벌어졌다.
쇳덩어리는 말할 것도 없고, 타이어만 해도 대형차의 것은 한 짝 무게가 수십~100수십 kg에 달한다. 그게 통통 튀다가 다른 차량의 앞유리를 찍으면.. 그냥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다.

뭐, 타이어는 술술 빠질 때도 있고, 아니면 펑 터지기도 한다.
펑 터지면서 주변 차량을 파손시키도 하고, 그거 때문에 트럭도 제동력이나 조향력을 상실해서 다른 사고를 내게 된다.
저렴한 재생 타이어가 주행 중에 말썽을 일으킨 사고가 트럭뿐만 아니라 시내버스에서도 가끔 발생해서 뉴스를 타곤 했는데.. 아마 요즘은 재생 타이어의 사용이 아예 금지됐지 싶다.

안전에는 추가적인 비용과 오버헤드가 뒤따르지만, 그게 소탐대실을 예방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인가 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8/08 08:35 2024/08/08 08:35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328

호박 농사 근황 -- 下

2. 옥상 외의 호박들

본인은 집 옥상 말고도 다른 여러 아지트에 호박을 심었다. 집 옥상 화분에 호박 싹이 너무 많이 나서 몇몇 포기를 옮겨 심기도 했다.
이런 곳에서는 호박이 수꽃까지는 폈지만.. 덩치가 막 커진다거나 암꽃이 피지는 못했다. 강변만 제외하고 말이다. 다시 말해 호박 농사가 유의미하게 성공한 곳은 옥상과 강변 두 곳뿐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집 옥상이 아니라 강변 무단경작 현장에서 딱 하나 얻은 열매이다.
타임라인 상으로는 낙과했던 옥상 4호와 비슷한 6월 29일에 인공수분 한 것이 성공해서 열매가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얘는 무럭무럭 정말 잘 자라서 큼직해졌다. 옥상 화분이 아니라 야생에서 자라고 있으니 말이다. 허옇고 반들반들하던 게 생후 10일쯤부터 색이 짙어지고 쭈글쭈글해지고 뭔가 호박처럼 바뀌었다.
그런데 7월 13일쯤에 찾아가서 흙바닥 부위를 만져 보니 거기는 물러지고 상하고 있었다. 에구.. 밑에 스티로폼 바닥이라도 깔아 줄 걸 그랬나..
결국 얘는 부득이하게 따게 되었다. 크기를 측정해 보니 옥상 1호보다 크고, 2호보다는 작은 정도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흰 과육이 아주 탐스럽다~!!^^
여친님이 이 호박으로 맛있는 호박 부침개를 만들어 줬다. 그리고 싱싱한 호박잎을 잔뜩 딴 걸 데쳐서 호박잎 무침도 만들어 줬다. 이건 시금치와 비슷한 맛과 식감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강변 말고 여기 들판1의 난쟁이 호박은 지난번 근황 때도 소개한 적이 있다.
물과 비료를 더 주고, 무엇보다도 주변의 잡초들을 더 많이 없애 줬어야 했다.
얘도 꽃을 여러 번 필사적으로 피우고 나서는 점점 기력이 쇠하는 것 같다. ㅠㅠㅠㅠㅠㅠ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들판 2. 얘들은 사실, 지난 5월 중순쯤에 심은 아이들이다.
5월 말에야 싹이 나기 시작했고, 6월 중순에도 아직 저 모양이었다.
오랫동안 비실비실한 난쟁이였는데 비료와 빗물의 힘으로 드디어 힘차게 자라기 시작했다. 오른쪽 모양으로.
캬~ 이 둘이 같은 호박 사진이라는 게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근에는 드디어 꽃도 폈다마는..
얘들은 침입자에 의해서 잎이 여러 장 뜯기는 테러를 당했다. 앞으로 안심하고 농사를 더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야외 무단경작이란 게 보안이 취약한 건 어쩔 수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집안 양동이에서 키우고 있던 이 아이들은.. 아무래도 공간이 너무 비좁았던 것 같다.
한참 꽃을 예쁘게 피웠던 게 마지막 유작이 되어 버렸다. 그 뒤부터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없어졌다.

3. 강변의 비극: 제헌절의 저주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강변 호박은 지난번에도 잠깐 소개했었지만 옥상에 있던 아이를 인구 밀도 조절을 위해 흙째로 옮겨 심은 것들이었다.
몇 주 동안은 본가 호박보다 훨씬 비실비실한 난쟁이 지체아 상태였고, 실제로 몇 포기는 적응을 못 한 채 죽기도 했다.
그러나 살아남은 아이들은 6월쯤부터 갑자기 폭발적으로 미친 듯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난쟁이 발육장애를 벗어나서 급기야는 기존 본가 호박보다도 덩치가 더 커졌다. 얘들은 화분 상자라는 제약이 없고 강변에서 야생의 흙 기운을 마음껏 받으니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 호박은 지난 제헌절 부근에 서울· 수도권에 폭우가 쏟아졌을 때 모두 물에 잠겼다. 딱 한 번, 몇 시간 정도 흙탕물에 파묻힌 대미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50일 남짓한 짤막한 생애를 마감했다.
거 참, 작년에도 강변 호박이 모두 물에 잠겨 죽은 때가 이때와 거의 일치했다. 이건 제헌절의 저주라고 이름이라도 붙여야 할 것 같다.

작년에는 맺히고 있던 단호박 열매도 같이 침수됐던 걸 나중에 건져서 허겁지겁 먹었다. 열매가 침수됐더니 보통은 쪼갰을 때 열매 내부에서만 나는 향긋한 냄새가 이미 겉에서도 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냄새는 며칠 못 가 강렬해지면서 고약한 악취로 바뀌려 했다.
다시 말해 열매도 절대로 오래 놔 둘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러니 곧바로 요리를 해서 먹었다.

그에 반해 이번에는 유일하게 맺히고 있던 강변 호박 열매를 며칠 전에 미리 땄으니 엄청난 전화위복이 됐다.
강변 호박을 미리 딴 것은 엄청난 전화위복이 됐다. 딱히 호박의 최후를 대비해서 딴 게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잘한 조치가 된 것이다.

저 무성했던 덩굴들이 남긴 열매가 겨우 하나밖에 없었다니 그건 좀 아쉽다. 그게 아주 튼실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호박들이 살판 나서 그런지 자기 덩치를 키우는 영양 생장에만 꽂혀 있었나 보다. 아무리 기다려도 암꽃이 덩치 대비 도무지 피질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 무성하던 잎이라도 더 많이 따 먹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침수된 잎은 잎 자체는 아직 시들지 않았더라도, 미세하게 달라붙은 진흙들 때문에 사실상 먹을 수 없다. ㅠㅠㅠ

작년에는 저렇게 물난리가 난 둑에다가 늦둥이 호박을 더 심었다. 무려 7월 하순에 호박씨를 새로 심었으니 얘들이 한창 자랄 때쯤에는 여름이 끝나서 날씨가 추워져 버렸고, 이 아이들은 거의 3개월 정도밖에 못 살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양파에서 배 크기 정도의 애호박은 몇 개 얻을 수 있었다.

올해는.. 다른 바쁜 일이 너무 많고 거주지도 바뀐 관계로 강가에는 호박을 더 심지 않고 농사를 종결했다.
지금 이 장소에서 호박 농사는 2021년부터 지금까지 4년째 해 오고 있는데, 이게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지난 4년 동안 둑 침수가 없었던 해는 첫 2021년 한 해뿐이었다.

지금 글은 어쩌다 보니 두 파트로 나뉠 정도로 분량이 길어졌다. 허나, 다음 9월쯤에 올리는 호박 농사 근황은 호박밭 자체가 한 군데밖 남지 않았고 1~3호 요리라든가 8~10호, 그리고 그 이후의 1x호 정도 얘기로 분량이 짧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무쪼록 호박은 정말.. 사랑이다!!! ^^

Posted by 사무엘

2024/08/05 08:35 2024/08/05 08:35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2327


블로그 이미지

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24/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ite Stats

Total hits:
3040921
Today:
548
Yesterday:
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