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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부자 금수저 열전

우리나라엔 삼성이니 현대니 백 종원, 이 수만=_=이니 하는 기업인 말고도 다음 인물들이 정말 엄청난 부자였다. 물려받았던 자수성가했건..

1. 육 영수 (훗날 박 정희 대통령 영부인)

옥천에서 손꼽히는 초호화 부잣집 출신이었다. 일제 시대 1930~40년대에 이미 집에 자가용이 있었고 전화기가 있었다. =_=;;
생가를 찾아가 보면.. 꼴랑 집 한 채가 아니라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의 '단지' 형태이다. 근처에 있는 정 지용 시인 생가하고는 완전 넘사벽 급으로 차이가 난다.

그러니 이분의 애비(육 종관)는 사위 박 정희를 아주 깔보고 개무시했다. 가난한 군바리 놈팽이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저 때는 인재가 부족해서 30대에 무궁화나 별까지 다는 사람도 있는 "대신"에, 계급이 높아 봤자 군인들의 연봉이나 복리후생도 개판이었다.

"신랑 육 영수 군과 신부 박 정희 양.."은 실제로, 진짜로 그 당시 결혼식 사회자가 저질렀던 실수이다. 심지어 신부가 신랑보다 키도 더 컸고. ㄲㄲㄲㄲㄲ
그랬는데 사위가 결혼 후 10년 만에 나라를 뒤엎어버리고 대통령이 되니.. 장인어른이 뒤늦게 사위에게 사죄를 했댄다.

박 정희는 모욕을 당한 건 절대로 잊지 않고 이를 악물고 자기 신분을 상승해서 설욕하는 타입이었다. 교사였다가 일본군 장교가 돼서, 나중엔 대통령이 돼서..

2. 공 병우 (안과 의사 + 한글 기계화 연구인)

이 사람은 진짜 개룡남이다. 그 옛날, 1930년대에 혈혈단신으로 일본 유학 가서 나고야 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까지 따고 안과 의사가 됐다.
그 뒤 경성 한복판에서 개원을 했으니 진짜 돈을 빗자루로 쓸어담았다. 물려받은 거 없이 자기 노력 능력만으로 저렇게 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창기엔 개인 납세자 중에서 전국 톱급으로 세금을 많이 낸 걸로 유명세를 탔다. 안 그래도 능력자 억만장자인 데다, 강직하고 옳곧은 성품 덕에 소득을 하나도 안 숨기고 곧이곧대로 신고했더니 저런 세금폭탄이 떨어졌다.. 근데 그거 다 내고도 하나도 꼴리는 거 없었댄다.
"왜놈들로부터 해방돼서 이제야 내 나라가 세워졌는데 닥치고 정직하게 세금 내서 나랏님을 도와주자" 그런 마음이었다고.. ㅠㅠㅠㅠ

공 박사는 1950년대, 나라가 6 25 때문에 보릿고개니 국제시장, 몽실언니 이러는 개판오분전 폐허가 됐을 때도 혼자 여권 발급받고 미국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유학이나 비즈니스가 아니라 단순 관광 목적으로 말이다..!! (창랑호 만송호 이런 뱅기를 탔으려나?)
1960년대 글자판 표준화 갖고 싸우던 시절에도 이미 외제차 자가용을 굴렸고 아예 운전수까지 고용했다.

그때 나라에서 세벌식 자판을 표준으로 채택했으면 공 박사가 고맙다고 꾸벅꾸벅 하면서 ETRI 같은 기관에 저 사람 사재만으로 슈퍼컴이나 각종 연구 자재 장비가 더 기증될 수도 있었다(고 본다. 내 뇌피셜).;;;
그 시절에 공 박사 같은 애국자 천재와 국가가 대립하고 싸우는 관계가 돼 버린 건.. 참 두고두고 땅을 칠 국가적 불행이었다.

3. 백 남준 (예술가)

1950년대에 서울 한복판에서 자가용 있고 "피아노" 있고, 바나나를 먹을 수 있는 집에서 자랐다. =_=;; 자 이 정도면 말 다 했지? 아마 집에서 TV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 그는 생계 걱정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덕질을 마음껏 할 수 있었고, 그게 개인적인 천재성까지 가미돼서 독보적인 비디오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분은 정~~말 성품이 온화하고 친절하고 겸손하고, 칭찬이나 공을 주변 조력자들에게 돌리고.. 인성이 정말 킹왕짱이었다고 한다. 개차반 졸부가 절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공 병우 박사에 대해서는 2000년대 이후 스마트폰 모바일 시대까지 살아 있었으면 무슨 덕질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백 남준은 2010년대 이후 브라운관 디스플레이가 없어진 뒤에는 무슨 덕질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난 오랫동안 백 남준과 백 "낙"준이 헷갈리긴 했다.. ^^

4. 근현대사 관련 인물

  • 윤 보선도 예상 이상의 명문가 금수저 출신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제 시대에 사비로 영국 유학까지 가능했던 걸까?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은 의외로 정치에도 관심이 있었는지.. 2공화국이 물 건너간 뒤에도 박 정희의 라이벌 격으로 대선에 출마했었다.
  • 이 시영· 이 회영 6형제는 대대로 고위 벼슬을 지낸 갑부 집안 출신이었는데.. 독립운동 하느라 가산을 탕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 그 반면 이 완용· 이 하영 이런 인간들은 친일매국의 댓가로 일제 시대 동안 신흥 갑부로 등극했다. 부동산 재산이 정말 엄청났었다. 물론 그게 전부 일제로부터 받은 건 아니고, 자기들이 머리 굴려서 재테크로 재산을 더 불린 것도 많다.

5. 나머지

한편, 서울대 치대를 나와서 치과 의사를 하다가 관두고 사업을 해서 여느 치과 의사보다 훨씬 더 떼돈 번 사람도 있다. 하긴, 치과 의사가 될 머리로 뭘 하든 성공 못 하겠나 싶다.

  • 오스템임플란트 창업자
  • 원로 배우 신 영균 (.....;)

글쎄, 가수 자우림 윤아의 남편도 서울대 치대 나온 치과 의사이다. 자우림이 어느 인터뷰에서 "설대 치대 출신 치과 의사와 같이 살아 보니 어때요?"라는 질문에 "지금까지 남편이 저보다 돈 더 많이 벌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라고 대답해서 주변을 벙 찌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마지막으로, 이런 인물도 떠오른다.

  • 정석의 저자 홍 성대: 사립 고등학교를 설립하고 모교에다 강의동을 지어서 기증할 정도로 억만장자가 됐다.
  • 前 카이스트 화학과 김 봉수 교수: 생활비가 교수 월급만으로 감당이 안 돼서 주식을 시작했다는데.. 관심 분야 업계 흐름과 주식의 세계를 그야말로 자기 전공 공부하듯이 공부한 듯하다. 그야말로 교수 연봉의 수십, 수백 배를 벌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4/10/04 08:35 2024/10/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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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기와 장소별로 인상적이었던 작품들

(1) 1970년대 중후반에는 성행위, 폭력, 고문 등.. 뭔가 하드코어한 장면을 높은 수위로 묘사하는 걸로 주목 받은 영화가 여럿 등장했다. 이탈리아 영화 중에 "살로 소돔의 120일"(1975), "카니발 홀로코스트"(1980).
일본에는 "쇼군의 새디즘"(1976)이라든가 "감각의 제국"(1976)이 다 비슷한 시기의 작품이었다.

(2) "마지막 황제"(1987)와 "시네마 천국"(1988)도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명작 영화이구나. 스토리 배경이나 장르는 둘이 서로 다르지만.

(3) 한때 인조인간이나 사이보그, 반쯤 좀비 귀신인 인간.. 이런 장르가 아주 인기였던 것 같다. 로보캅, 터미네이터, 아 그리고 가위손..! 드라큘라나 프랑켄슈타인은 원작 소설이 아주 옛날옛적부터 있었고.

(4) 후뢰시맨-_- 같은 특촬물이라든가 애니-실사 합성 영상물(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도 쌍팔년도 시절의 참신한 촬영 기법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닥치고 다 CG가 대세가 됐다.

(5) 쉬리(1999) 이후로 본인의 대학 시절.. 딱 2000년대 초중반이 울나라 국산 영화의 중흥기 황금기였던 것 같다.
"라이터를 켜라"(2002)는 지금도 유튜브에서 요약, 평론이 올라오는 명작이고.. "지구를 지켜라"(2003)도 시대를 앞서갔던 문제작, 포스터를 너무 생뚱맞게 만들어서 망한 비운의 명작 소리를 듣는다. 이것 말고도 여러 작품들이 떠오른다.

(6) 그때 "친구", "공공의 적", "두사부일체" 등 조폭물 시리즈가 큰 인기를 얻었다.
그 뒤 2010년대에 들어서는 범죄도시 시리즈라든가 청년경찰, 나쁜 녀석들, 베테랑, 극한직업 같은 영화들도 잘 만든 것 같다.

(7) 2012년에는 일본에서 "공포의 물고기"라는 애니가 나왔고, 우리나라에서는 "파닥파닥"이 만들어졌다. 이것도 꽤 의미심장하다.;;

(8) 2015~16년 사이에는 우리나라에서 일제 시대 배경의 반일물이 인기를 끌었다. "암살"(2015)과 "밀정"(2016).
2019년이야 3· 1 운동 100주년이니 "항거", "말모이", "엄복동", "봉오동 전투" 등의 일제 시대 배경 작품이 유난히 많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얘들은 명작까지는 못 되는 퀄리티이거나 심지어 엄청난 졸작 망작도 있었다.
이거 유행이 식고 관객들이 식상하기도 했으니, 향후 몇 년간은 일제 시대 영화가 흥행 주류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2. 옛날 영화 제목의 음역· 번역

  • The Hidden (1987) ==> 하이든 (!!!!!!!!!)
  • The Sword And The Sorcerer (1982) ==> 스워드 (ㄷㄷㄷㄷㄷㄷㄷㄷ..)
  • The Hitman (1991) ==> 스트롱맨 (네놈을 살려 두긴 "쌀"이 아까워!!)

옛날에는 영화 제목을 우리말로 옮기는 방식이 꽤 창의적인 경우가 있었다. ㅋㅋㅋㅋ

3. 뮤지컬과의 관계

본인은 의외로 꽤 최근에 "할리우드(영화)랑 브로드웨이(연극, 뮤지컬)는 영역이 다르고 지리적인 위치도 완전히 다르구나!!" =_=;; 이걸 깨닫고는 현타를 경험했었다. ㄲㄲㄲㄲㄲㄲ

라이온 킹, 맘마미아, 시카고, 명성황후-_-, 영웅..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며 봤던 뮤지컬 포스터들이 뒤늦게 떠올랐다.
대학 시절에는 노 영해 교수라고 교양 수업을 개설해서 뮤지컬을 가르쳤던 저 바닥 전문가도 계셨는데.. 그땐 난 저런 분야는 정말 까맣게 몰랐다. -_-;;

이 바닥은 영화보다 저변이 더 좁으니 소수의 연뮤덕 매니아 고인물들이 업계를 먹여살리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같은 작품이라도 매번 공연할 때마다 100% ctrl+C, V 동일한 공연이 나오지를 않으니.. 여러 번 반복해서 보는 사람도 있댄다.
안 중근 의사를 소재로 한 "영웅"의 경우, 2009년 이후로 무려 15년째 10차례가 넘게 공연 중이며, 영화(2022)도 나오고 최근엔 심지어 뮤지컬 공연을 촬영한 실황 영화까지 만들어져 있다.

영화관이야 요즘은 입장 게이트를 지키는 검표 요원까지 차차 생략할 정도로 온통 무인화 자동화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뮤지컬은 그 특성상 여전히 직원들이 “1막이 끝났습니다. 20분 휴식 후 X시 Y분까지 극장 안으로 들어와 주세요~ 사전 승락되지 않은 촬영은 금지입니다” 등등으로 일일이 직접 통제를 한다. 지연 입장 조건도 훨씬 더 까다롭다.
그래도 뮤지컬은 영화처럼 광고만 지겹도록 10분씩 나오는 게 전혀 없고 칼같이 정시에 본 공연이 시작된다. 그거 하나는 참 좋다.. ^^

영화와 뮤지컬은.. 뭐랄까.. 기름 주유소와 LPG 충전소의 차이를 보는 것 같다.
일반 기름 주유소는 전부 무인화 셀프화가 된 반면, LPG 충전소는 액체보다 더 위험한 기체를 다루는 관계로 법적으로 무인화를 못 한다. 가스 안전 교육을 이수한 직원만이 가스 충전기를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4. 영화에서의 전쟁 전투 묘사

영화에서 각종 폭발(포탄, 자동차 등)은 화염만 실제보다 더 딥다 크게 묘사되고, 폭발음은 더 작게 묘사된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낑낑대면서 폭탄 전선 해체하는 장면 따위 없다. 발 떼면 터지는 지뢰 같은 것도 없다.

영화에서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끝까지 싸우다 전멸하는 연출을 좋아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훨씬 더 조심하면서 신중· 소심하게 움직이며, 병력을 반도 채 잃지 않았어도 철수하고 후퇴하고 추가 지원을 요청한다거나 한다. 현실의 전장은 영화 300 같은 스타일이 아니다.

(1) 스타십 트루퍼스: 수백 년 뒤를 다루는 SF물인데도 저그 괴물들을 상대하는데 미사일은 안 쓴다. 알보병들이 수류탄 하나 깔 생각조차 안 하고 소총만 드르르륵 갈기다가 죽어나가는 게 참 이상하다.

(2) 태극기 휘날리며: 제아무리 1950년대 배경이라지만.. 마지막 금성 전투는 너무 비현실적인 백병전 지향적으로 연출됐다. 무슨 1차 세계대전 참호전이나 그 이하 19세기의 전투 같은 스타일이다.

(3) 봉오동 전투: 독립군 장수가 일본군 장교하고 검으로 맛다이 떠서 목 따는 씬이 있던데...;;; 정말 어이가 달아나는 줄. 저 때가 1920년대인지, 아니면 기원전 삼국지 무협지 시절인지..??
근데 이런 식의 국뽕 왜곡은 중국에서도 엄청 많이 한다. 중일 전쟁 시절에 재야의 은둔 쿵푸 고수가 일본군 1개 소대를 다 쳐바른다는 식으로.. 유튜브 검색하면 많이 나온다. ㅠㅠㅠㅠㅠㅠ

(4) 그레이트 월: 이 바닥 판타지의 끝판왕.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여군들 발 묶어놓고 아래로 점프하면서 괴물들 잡는 거는.. 현실성, 전술적 가치는 안드로메다 행이다. 잊을 수 없네.

(5) 패트리어트: 이때는 전열보병이라는 그 당시 전투 방식 자체가 미친 짓이었다. 그러니 영화가 특별히 더 왜곡하고 과장하고 고증 무시할 필요가 없었다. =_=

하긴, 전투기 공중전을 찍어도 적당히 도그파이팅 하면서 그림다운 그림이 나오는 거는 1~2차 세계대전 사이가 마지막이지 싶다.
오늘날의 전투는 버튼 띡 눌러서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갑자기 폭탄이 날아와서 적군을 쳐잡는 형태이기 때문에 영화 연출이 들어갈 게 별로 없다. 옛날처럼 드라마틱한 전쟁 영웅이 배출되는 형태로 전쟁이 진행되지 않는다.;;

Posted by 사무엘

2024/09/29 08:35 2024/09/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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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전화 급 범죄들

1. 장난전화

경찰 112와 소방 119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긴급전화는 그 어떤 극한 상황에서 타전되는 신고도 받을 수 있도록 정말 엄청나게 민감하게 설계되어 있다.
얘들은 돈이 없어도 공중전화로 바로 걸 수 있으며, 개통되지 않은 핸드폰으로도 전파만 물리적으로 터진다면 걸 수 있다. 발신자의 위치는 곧바로 추적되며, 걸었다가 발신자 쪽에서 끊어도 연결이 유지된다.

이런 하드웨어적인 특례뿐만 아니라 컨텐츠 면에서도 말이다.
112 신고는 통화가 아닌 문자 메시지로도 가능하다.
그리고 범죄자가 옆에서 듣고 있기라도 해서 말을 곧이곧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도 대비가 다 돼 있다. "중국집이죠? 여기여기여기로 짜장면 좀 갖다주세요" 주문을 진지하게 하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말귀를 알아듣고 그 주소로 경찰이 출동한다.

심지어는 구체적인 조건은 잘 모르겠지만, 그만 됐다고 안 와도 된다고 철회 전화를 해도 통하지 않는다. 그것조차 악당이 협박해서 철회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경찰이 일단은 무조건 온다는 것이다. 경이롭지 않은가?

그런 만큼 이런 곳에는 장난전화를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가 정말 정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위급한 상황에 처하거나, 아니면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목격했을 때에나 그런 번호로 연락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 기분이 꼴린다고 무슨 불장난 하듯이 장난전화를 걸고 심지어 허위 신고까지 하면.. 이제는 나라에서 이런 것에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경범죄로 끝나던 것이 과태료이고, 상습적이고 악질적이면 민· 형사 처벌을 때리면서 혹독한 금융치료 참교육을 시킨다(경찰· 소방관들의 출동 비용). 그래야만 마땅하다.

하긴, 굳이 경찰· 소방이 아니라 어디라도 장난전화를 걸지는 말아야지. 공항이나 철도역 같은 곳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거짓말은 죄질이 아주 나쁜 부류이고,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칼부림 예고라든가.. 중국집에 음식 허위 주문도 말이다.

20여 년 전에 용궁반점은 도대체 언제 어디서 벌어진 일인지 모르겠다만, 전설적인 장난전화 사례였다. 당장 들으면 웃기지만 이건 범죄에 가까운 수준으로 멀쩡한 가게에다 영업 방해를 저지른 게 아닌가? 아무래도 불편하게 들린다.
그러고 보니 '멘탈 갑 콜센터 직원' 이거는.. 장난전화라기보다는 그냥 무례한 깽판 진상 고객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직원이 갖고 놀면서 잘 대처한 거구나. 이거는 사이다 같다.

지난 2012년에는 이 대웅이라고 당시 군복무 중이었던 청년이 나라 망신을 단단히 시켰다.
마치 IP 주소 속이듯이 발신자 번호를 속이는 앱을 이용해서 미국 뉴저지 경찰서를 상대로 자살 예고 내지 테러 협박 허위 신고를 수 차례 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해당 지역은 위험물이 진짜 있는지 경찰 특수부대가 출동하면서 수색을 해야 했고 엄청난 시간 낭비, 행정력 낭비가 초래됐다.

결국 수사가 시작됐고 범인은 이듬해에 잡혔다. 번호를 속여 봤자 결국은 추적하면 다 잡히는데 저런 바보짓을 왜 한 걸까.
저 친구는 다행히 미국으로 송환까지 되지는 않고 국내에서 벌금형만 받았다. 하지만 미국의 트라우마 역린을 제대로 건드리는 중범죄를 저질렀으니, 이제 미국엔 평생 못 가게 됐다. 자기 인생에 스스로 걸림돌을 놓고 장렬히 자폭을 한 거다.
장난전화를 걸 때는 짜릿하고 "등신들 엿먹어라~" 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그게 자기한테도 그대로 돌아왔다.

뭐.. 미국 내부에서는 더 과거이던 2004년경, 어느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에 웬 경찰 사칭 전화가 와서 "거기 모 백인 여자 알바생이 손님 돈을 훔친 걸로 의심되니 퇴근시키지 말고 소지품과 몸을 수색해라"...;;;를 시작으로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성희롱 성추행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점장은 그게 진짜 경찰의 지시인 줄 알고 그 짓을 진짜로 알바생에게 행했기 때문이다.

천조국이라면 이런 범죄는 정말 엄하게 처벌됐겠으나.. 천조국은 한편으로 악마의 변호사도 많은 나라인 듯하다.
정신병자 급인 가해자 당사자는 심신미약 비스무리한 이유로 형사처벌을 거의 받지 않았다. 그 대신 민사가 걸렸고, 애먼 맥도널드 본사만 직원 교육을 똑바로 시키지 않아서 이런 상황에서 대처를 잘 못 했다는 명목으로 배상금을 물게 됐다.

전화기는 얼굴 안 보이는 통신 수단이니 거 참, 정말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사람이 낚일 수도 있구나 싶다.

2. 비슷한 유형의 다른 범죄 사건

(1) 이 대웅 이후로 거의 10년 뒤엔 권 도형이라는 친구가 암호화폐 관련 사기를 쳐서 세계를 거하게 농락했다. 미국 행인지 한국 행인지 아직도 결정이 안 됐나?
요 몇 년 잠깐 동안은 떵떵거리며 살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쟤는 인생 끝났다. 젊은 시절은 몽땅 다 구치소· 교도소에서 보내게 되겠다. 재산 추징과 몰수도 행해지겠지?

(2) 그리고 또 생각나는 건 얼마 전에 착륙하는 여객기 안에서 비상구를 열어젖혀서 난동을 부린 친구이다. 이건 형사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으로 작년에 판결이 이미 났다.
벌금형이 아니라 징역이다. 비록 집행유예이지만 저 형량은 집유가 가능한 거의 상한선을 찍은 엄청난 중형이다.

비행기에서 헛짓거리 한 걸 국가 공권력이 얼마나 심각하고 중한 죄라고 여겼는지를 알 수 있다.
게다가 저걸로 끝이 아니고, 이 역시 금융치료가 남아 있다.
민사에서는 7억 3000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이.. ㅡ,.ㅡ;; 저 애 부모는 정말 뒷목 잡지 않았을까 싶다.

비행기의 비상구 문은 잘 가고 있을 때는 열 필요가 없고, 바람 압력 때문에 열 수도 없다.
그러나 비상 상황이라면 저속 저고도 상태일 때고, 이때는 손으로 힘 줘서 열 수 있어야 한다. 비행기는 타 교통수단과 달리, 유리창을 깨고 탈출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상구 문은 한번 열었으면 도로 닫으면 되지, 그것만으로 뭐 탈출 슬라이드까지 다 펼쳐지고 비행기에 저 정도로 비가역적인 손상이 가해지나 궁금해지긴 한다.

(3) 얼마 전에 경복궁 담장에다가 스프레이 낙서질을 했던 미친놈들도 중고삐리여서 형사처벌은 면했으나, 금융치료는 비껴 가지 않았다.
1억 수천만에 달하는 복구 비용(약품값, 장비 대여, 복구 인력 인건비)이 청구됐다.

이상이다.
뒷일 생각 안 하고 지금 당장의 짜릿함이나 스트레스 해소, 화풀이를 위해서 장난전화 허위신고를 한다거나, 어디 불을 지른다거나 공공시설을 망가뜨리는 짓이 오늘날까지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불과 관련된 사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 분야에도 싸이코가 적지 않았다. 숭례문을 불지른 놈, 지하주차장의 차들을 다 태워먹은 놈, 습관적으로 10여 년 동안 산불을 저질렀던 봉대산 불다람쥐놈, 등등.
음 그리고.. 지 기분 꼴린다고, 혹은 처음에 금전 거래로 상호 동의와 합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멀쩡한 상대 남자를 성추행 강간범으로 신고하고 무고하는 것도 장난전화 허위신고의 범주에 들겠다.

이런 것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이며, 어떻게 해야 저런 미친놈들이 더 나오지 않게 할 수 있을지..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의 탈을 쓰고 경제관념이 어째 저렇게 지지리도 없을 수가 있는지 참..
거짓말의 여파라든가 자기가 저지른 일의 뒷감당, 책임이라는 개념이 그런 인간들 머리 속에는 없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4/09/26 19:35 2024/09/2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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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써 놓고 보니 군대 이야기가 많아졌다.;;

1. 하이브리드 업종

세상엔 하이브리드 업종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먼저 연기 쪽.. 뮤지컬 배우는 연기를 기본으로 하면서 노래도 어지간한 성악가나 가수 수준으로 하는 사람이다. 두 영역의 능력이 다 필요하다.
쿵푸 무술 배우는?? 이연걸, 견자단 같은 사람을 생각해 보면 당연히 일반인보다야 훨씬 더 몸 좋고 힘 좋고 싸움 잘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연기를 위한 무술은 진짜 실전용 무술하고는 영역이 다르다.

연기용 무술은 실제로 상대를 타격하고 제압하고 무력화시키는 격투술 호신술보다는 화려한 연출 시범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다.
실제로 소림사에서도 레알 무술인 지망생이랑, 무술 연기 지망생은 따로 구분해서 무술을 가르친다고 한다. 사격만 스포츠 사격이랑 군대 사격이 다른 게 아니구만.
군인과 무인이 영역이 달라지고, 무술인과 연기자도 영역이 달라지는 건 필연인 듯하다. ㅎㅎ

다음으로 기상캐스터는.. 뉴스 아나운서나 방송 리포터 급으로 격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본격 연예인이나 레이싱모델도 아니다. 정체성이 뭘까..??

옛날에 김 동완 아저씨가 현역이던 시절에는 예보자가 라이브로 일기도를 그려 가면서 날씨 설명을 해야 했다.
하지만 크로마 키 기반의 화려한 CG가 발달하면서 사람은 각본대로 손짓 하면서 대본을 또박또박 읽기만 하면 되게 되었고, 예전에 비해 기상학 쪽으로 필요한 전문성은 다소 줄어들었다. (아예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님)
그래서인지 1990년대 이 익선 아나운서 이후부터 기상캐스터 자리는 그야말로 방송사별로 예쁜 아가씨들 각축장이 됐다.

각종 스포츠의 중계 방식을 보면 업계 경력이 있는 해설자, 그리고 해설을 일반인들에게 걸출한 입담으로 풀이해 주는 캐스터 2인으로 편성되는 편이다. 일기예보 하는 사람은 해설자이던 게 캐스터로 성격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하긴 일기예보가 하도 자주 틀리니 이제는 날씨 예보가 아니라 중계로 바뀌고 있다는 드립도 나돌곤 한다.;;

2. 각종 군종과 병꽈의 경계

군용기라는 게 꼭 공군에서만 운용하는 게 아니다. 공군은 비행기를 띄우기 때문이 아니라 제공권 장악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공군이다.
비행기를 몰더라도 공군이 아니라 육군 항공대에서 헬기 조종을 주로 할 수 있고, 해군 항공대에서 함공모함 함재기 조종을 주로 할 수도 있다.

회전익기는 고정익기하고는 영역, 성격, 조종 특성이 완전히 별개라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공격헬기 조종사를 양성할 때 무슨 5G~6G짜리 가속도를 견디는 훈련을 시킨다거나, 헬기 조종석에 사출 좌석을 설치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함재기는 그 특성상 아무래도 지상 기지에서 발진하는 공군 전투기보다는 작고 항속거리도 짧다. 하지만 훨씬 더 짧은 활주로에서 이착함 하는 게 훨씬 고되고 힘들 테니 그런 쪽으로 고충이 있다.
오죽하면 "공군 조종사는 비행 시간으로 짬이 차지만 함재기 조종사는 이· 착함 횟수로 짬이 찬다" 이럴 정도니까 말이다.

그래도 지상 기지 전투기와 항공모함 함재기가 근본부터 완전히 다른 비행기는 아닌 모양이다. 전투기 제조사에서는 같은 기체를 베이스로 해서 약간만 변화를 줘서 공군 에디션과 항모 함재기 에디션을 모두 만든다고 한다.
마치 과거에 같은 선체 베이스로 전함도 만들고 항공모함도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자동차는 같은 차체 프레임으로 트럭도 만들고 버스도 만든 것에다가 비유할 수 있겠다.

한편, 육· 해군에서 항공대를 운용하는 것처럼 반대로 공군에서도 지상 기지에서 미사일 터렛을 운용하는 게 있다.
대공포는 육군이 아니라 공군 관할이다. 그렇기 때문에 활주로가 있는 비행장뿐만 아니라 웬 산꼭대기에도 공군 부대가 있을 수 있다.

뭐, 육군은 보병과 포병이 주된 전투 병과인데.. 포 중에서 박격포는 포병이 아니라 보병 관할이다. 얘는 여느 화포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완전히 같은 물건은 아니겠지만 뭔가 바주카 포와 비슷하달까? FPS 게임으로 치면 로켓 런처와 비슷하다.

하긴, 옛날에 공용화기로서 육중한 기관총이란 게 처음 발명됐을 때는 이걸 보병에다 넣어야 하나 포병에다 분류해야 하나 말이 많았었다고 한다. 인류의 전쟁사에 한 획을 그을 너무 획기적인 무기가 발명됐기 때문이다.
기관총 하나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전쟁이 종결돼 버릴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는데.. 실제로는 그 정도는 아니었고 핵무기가 발명된 뒤에야 옛날 같은 형태의 전쟁이 많이 없어졌다.

3. 한 분야 특화

뭔가 한 분야에 특화된 성능을 발휘하는 튜닝 물건은 험악한 환경에서의 안정성, 신뢰성, 생존성(?)이 떨어진다. 이게 자연의 보편적인 등가교환=_= 법칙인 듯하다.

(1) 살코기를 많이 만들도록 품종개량된 식용 가축 동물은 야생에서는 제대로 못 산다.
과육 열매를 많이 맺도록 품종개량된 농작물도 야생에 내던져지면 잡초와의 경쟁에서 당연히 못 버틴다.
똑같이 식물이 자라는 곳이어도 논밭이 진짜 자연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지극히 인위적인 장소가 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아무 데서나 무단경작을 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 농사가 유난히 고달픈 일인 이유, 성경 창 3:18-19의 의미와도 모두 일맥상통한다.

(2) 철이나 알루미늄 같은 금속은 돌보다 더 단단하고 튼튼하고, 한편으로 예쁜 광택이 나고 얇게 펼 수도 있고.. 여러 모로 활용하기 좋다.
특히 열에도 훨씬 더 강하다. 마그마나 용암은 용광로 쇳물이 아니다. 저런 건 삽으로 퍼서 철제 양동이에 아무 문제 없이 퍼 담을 수 있다. 뜨거움의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그러니 "쓰레기를 몽땅 다 화산 분화구에다 집어넣어서 태워 없애면 어떨까?"는.. 쓰레기를 우주로 날려 보내는 것만큼이나 현실성· 실용성이 없다. ㅎㅎ)

이러니 금속이 좋기는 한데.. 금속은 일반적인 돌덩어리에는 해당되지 않는 골치 아픈 문제가 있다. 화학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거.. 녹과 부식에 취약하다. 금속은 유기물 같은 부패는 없지만 부식이란 게 있다.
금속을 녹이고 가공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전에 광석으로부터 산소 원자를 떼어내고 순금속을 추출하는 것부터가 고열을 동반한 엄청난 첨단 기술이었다. 원시시대를 석기, 청동기, 철기로 괜히 나누는 게 아니다.

금속은 마치 과육만 많이 잘 만들고 생존력은 비실비실한 농작물만큼이나 부자연스러운 상태를 인위로 만들어서 억지로 유지시키는 것에 가깝다. 그 억지라는 건 페인트칠이나 도금 같은 걸 말한다.

(3) 옛날의 구닥다리 화승총은 현장 조달한 조악한 쇠구슬을 넣고도 쏠 수 있었겠지만 오늘날의 최첨단 초정밀 소총은 어림도 없다.
100년 전 구닥다리 자동차 엔진은 저질 기름을 넣어도 꿀럭거리기만 할 뿐 일단 돌아가기는 하겠지만.. 오늘날의 초정밀 자동차의 엔진에다 그랬다가는 큰일 난다. 배기가스 정화 계통이 다 망가지고, 엔진에 불순물이 끼고.. 그야말로 비가역적인 손상을 입는다.

(4) 일반 육군 보병들이야 사격의 유효사거리를 거의 100~200m 정도로 잡는다. 쟤들은 실전에서도 특정 타겟 조준사격보다는 다같이 엄호· 기선제압 사격을 훨씬 더 많이 한다. 그렇기 때문에 총 멘 채로 진흙탕도 구르고 유격에 각개전투에 별 짓 다 한다.

그렇지 않고 조준경 달고 2~3km 거리에서 저격을 하는 스나이퍼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런 초정밀 총은 초민감한 악기 다루듯이 전용 케이스에 넣어서 신줏단지 모시듯 보관해야 하고, 총과 저격수가 완전히 물아일체여야 한다. 사수는 그 감이 무뎌지지 않게 수시로 혹독한 훈련을 해야 하고, 총도 수시로 닦고 조이고 초정밀 관리를 해야 한다. 저격소총을 땅개들 돌격소총처럼 험하게 다뤘다간 큰일난다.

(5) 군인들을 위한 전투용 총기는 한없이 무겁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하루 종일 들고 다닐 군인들의 부담을 생각해서 말이다. 하지만 스포츠 사격이나 저격수용 총은 반동을 줄이는 것에 특화되어 엄청나게 무겁다.
칼도 다 같은 칼이 아니어서 사형 집행용 참수검은.. 찌르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베는 것에만 특화돼 있다. 그리고 엄청 둔기 수준으로 엄청 무겁다. 여느 검도용 검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저격수 사격은 스포츠 공기총 사격과도 영역이 완전히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최소한의 공통 테크닉 이후부터는 노하우가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 똑같이 피아노를 전공해도 재즈 피아노랑 클래식 피아노가 호환되지 않듯이..

Posted by 사무엘

2024/09/24 08:35 2024/09/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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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중반, 일반 서민 땅개들은 DOS를 벗어나지 못하고 기껏해야 Windows 3.x니 이런 바닥에서 놀고 있었는데,
하늘 위로, 혹은 바다 건너편에는 서민이 범접조차 할 수 없는 별세계가 있었다.
아래의 것들은 골수 얼리어답터나 직업적으로 컴터 연구하는 사람, 해외 문물을 재정 타격 없이 접할 수 있는 금수저의 산물이었다.

1. 매킨토시

매킨토시 컴터 화면으로 실사 사진이나 전자출판 인쇄물 화면이 쫙 뿌려져 있는 건 그야말로 꿈만 같은 신세계 별세계 그 자체였다.
이때는 산돌, 윤 같은 서체도 맥의 전유물이었다. Windows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PC는 저해상도 화면과 프린터에 튜닝이 잘 된 한양, 휴먼, 큐닉스의 나와바리였을 뿐이다.

마소 진영의 빌 게이츠는 장사꾼이어서 악랄한 독점뿐만 아니라 박리다매, 하위 호환성, 고객 눈높이.. 이런 이념을 중시했었다. 그러나 잡스는 그렇지 않고 교주, 소수의 매니아, 고가 프리미엄.. 이런 쪽이었다.
본가부터가 저런데 그 당시 애플 매킨토시의 한국 총판이었던 엘렉스는 안 그래도 비싼 제품 가격을 더 지랄맞게 쳐 올렸다.

PC로 치면 286 AT밖에 안 됐을 저가 보급 사양부터가 1990년대 가격으로 2, 300만 원부터 시작했다. 하이엔드급은 6, 700만 원.. 돈 좀 보태면 집이나 차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흉악한 가격에 빡쳐서 그냥 미국 현지에 가서 제품을 직접 사서 들여 오는 사람도 있었다.

2. OS/2 2.x

1990년대 초에 각종 도스용으로 나왔던 업무용 프로그램· 개발툴들은 DOS뿐만 아니라 OS/2 지원을 Windows 지원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PC용으로 만들어졌던 진정한 32비트 운영체제였다고는 하는데.. 이후에 OS/2 Warp니 멀린이니 이런 거 나왔다가 존재감 없이 사라진 것 같다. 들리는 말로는 코드 구조가 어셈블리어 기계어 코드 일색이고 포터블하지 못했던 것도 OS/2의 명줄을 더 재촉했다고 한다.

나와 개인적인 접점은 전무하다. 단지, "OS/2 써 보려면 컴터 램이 4MB 이상은 있어야 합니다" 이런 문구를 1992년도 컴터 잡지에서 보고 깜짝 놀라긴 했었다. ㅎㅎ

3. Windows NT 3.x

껍데기는 Windows 3.1처럼 생겼고 심지어 버전 번호도 똑같이 시작했지만 내부 구동은 정말 넘사벽으로 다른 물건이다.
안정적이고 탄탄하고 순수 32비트 기반이고.. 다 좋은데 램이 지랄맞을 정도로 많이 필요해서 돌릴 수 있는 컴퓨터가 별로 없었다. OS/2보다 더 자비심이 없었다.

NT는 Windows 2000, XP의 전신이고 심지어 오늘날 Windows 10/11의 먼 조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도스 기반의 Windows 3은 x86에서 86 real, 286 standard, 386 enhanced 다양한 모드로 실행 가능했다.
그 반면, Windows NT는 그냥 여러 CPU를 지원했다. x86은 무조건 386인 거고, 그 밖에 MIPS, DEC alpha 등.. 개발 방향과 성격이 이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NT는 DirectX라는 게 개발되기 전부터 OpenGL을 지원하고 있었다. 게임보다는 업무용 그래픽을 위해서.
OpenGL에 대해서는 좀있다 다시 얘기하도록 하겠다.

4. NeXTSTEP

잡스가 애플을 잠시 떠나 있던 동안 개발했던 고급 컴퓨터와 거기서 돌아가던 운영체제 되시겠다.
id 소프트웨어의 존 카맥이 이 환경에서 Doom과 Quake를 개발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Windows용 아래아한글 3.0b가 요 NeXTSTEP의 UI를 차용한 독자 UI를 채택했던 바 있다. 특히 스크롤바의 화살표 삼각형이 양쪽 끝에 있는 게 아니라 한데 몰려 있는 거 말이다. ◀-----▶가 아니라 -----◀▶

이상이다.
일반 흙수저 서민들이 저런 급의 OS를 만져보게 된 첫 기폭제가 사실상 Windows 95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해진 건 램값이 싸진 덕분이다.
1990년대 이후 PC의 발전을 논할 때는 컴퓨터 속도의 향상(그 뒤 멀티코어화), 램 용량의 증대(단가 하락), 그리고 네트워크 속도 향상.. 이 순서를 기억하면 될 것 같다.

1990년대 말쯤부터는 슈퍼컴퓨터만을 위한 전용 컴터 아키텍처라는 것도 없어졌고,
워크스테이션이라는 개념도 아주 희박해져서 그냥 하이엔드 급 PC로 흡수된 것 같다.

※ 번외: OpenGL과 화면 보호기

과거..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에는 Windows 컴터에 "3D 텍스트, 3D 미로, 3D 날으는 객체들, 3D 미로"라는 화면보호기가 있었다.
Windows 95 때는 '쁘라스 확장팩'에만 수록되어 있었고, 98부터 XP에는 기본 내장돼 들어갔었다.

얘들은 OpenGL이라는 하드웨어 가속 3차원 그래픽 라이브러리의 기술 데모 명목으로 만들어졌다.
마소는 전통적으로 게임용 그래픽 명목으로 DirectX를 강력하게 지지하곤 했는데 웬 OpenGL인 걸까?
"얘들은 '3D 핀볼'처럼 제3자 외주 개발 프로그램이기라도 했나? 근데 겨우 화면보호기를 외주로 개발해?"

개인적으로 궁금했는데 그게 아니구나.
얘들은 마소에서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인데, Windows 95가 아니라 Windows NT 3.5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95 시절에 출시됐던 Hover! 이라든가 Fury!! 같은 초보적인 수준의 가정용 3D 게임과는 기술 계보가 완전히 달랐다. 이게 핵심이다.

(* 참고로, 저 당시에 마소는 팀 간에 경쟁과 알력 싸움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Windows 9x 팀 vs NT 팀, Office 팀, Visual C++ 팀 등등.. 그래서 서로 정보 공유도 안 하고, 같은 기능 API도 다 따로따로 중복 개발했을 정도였다.. 무슨 구 일본군 육군 vs 해군처럼.. 그 당시 빌 게이츠라든가 스티브 발머는 정말 살벌한 경영자였다. *)

하드웨어 가속이 없이 평범한 재래식 그래픽으로는 화면보호기에 점, 선, 글자 같은 초보적인 그래픽 애니메이션만 가능했다. 그것도 2D 위주..
물론, 쌍팔년도 시절 화면보호기의 정석 교과서는 별들이 씽씽 3차원 원근법이 적용되어 날아다니는 '우주여행'이긴 했다. 아니면 불꽃놀이..??? 시꺼먼 화면에서 점과 선만 갖고 나름 근사한 눈요깃거리였다. 직접 코딩해서 만들어 보고 싶다.

그런데 OpenGL이나 DirectX 같은 게 등장한 덕분에 텍스처나 광원이 들어간 3차원 애니메이션이 구현 가능해졌다.
그래서 마소에서는 OpenGL 데모를 화면보호기 형태로 제공하기로 했고.. 사내 OpenGL 화면보호기 덕질 공모전을 열어서 제일 우수한 작품 하나를 Windows 제품에다 넣기로 했다.
그랬는데 결국은 출품된 작품들을 모두 제품에다 넣어서... 그게 저렇게 전세계에 퍼진 것이다.

얘들은 훗날 Windows Vista에서 대부분 빠지고 '3D 텍스트'만 남았다. 그리고 비누방울 같은 다른 보호기가 도입돼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새로 개발된 걔들은 당연히 Direct3D 기반이겠지..??

지금이야 화면보호기라는 개념 자체가 완전히 레거시 퇴물이 됐다. 마치 도스 시절에는 하드디스크 파킹 유틸리티가 각종 현란한 그래픽과 함께 유행이었는데 그것도 유행 지나고 퇴물이 됐듯이 말이다.
화면보호기가 하는 일은 세계 절경 풍경이 나오는 잠금 화면, 아니면 아예 컴 화면을 완전히 끄는 절전 모드로 계승되었다. 스마트폰에 화면보호기 따위가 있지는 않다.

이 화면 보호기 얘기는 the old new thing 블로그의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하긴, 옛날에는 화면 보호기처럼 화면 전체를 마치 프레젠테이션 화면 전환처럼 조작하는 거 말이다.
Doom 게임에서 화면 녹으면서 내려가던 효과, 하늘소 프로그램에서 텍스트 화면이 좌우로 쫙 갈라지는 거..
비디오 메모리를 직접 조작하던 게 추억의 프로그래밍 테크닉이었다. ^^

Posted by 사무엘

2024/08/17 19:35 2024/08/1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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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손과 발, 눈과 귀

손과 발 중 어느 것이 없는 게 더 불편할까? 눈(시력)과 귀(청력) 중 어느 것이 없는 게 더 불편할까? 둘은 마치 교통과 통신만큼이나 담당하는 영역이 서로 다른 것 같다.
인간이 일상적으로는 손을 써서 학교나 직장에서 많은 일을 하지만.. 다리가 없어서 자력으로 어디 이동을 할 수 없다면.. 이거 뭐 말짱꽝이 된다. 오오~ 그러고 보니 수난 이대 소설이 이런 상황을 잘 다루고 있다.

그리고 눈은 엄청 멀리 떨어진 곳까지 영상이라는 2차원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소리는 영상보다야 정보량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귀는 딴일을 하는 중에도, 굳이 고개를 돌리고 주목하지 않아도 시야각의 제약 없이 어디서나 정보를 습득하게 해 준다. 더구나 소리는 지형이나 장애물을 가리지 않고 잘 퍼지기까지 한다.

이러니 이 유튜브 비디오 시대에도 라디오가 완전히 쫄딱 망할 일은 없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앞을 못 보는 게 소리를 못 듣는 것보다 더 불편하고 더 큰 장애로 보이지만..
사실은 소리를 못 듣는 것도 앞을 못 보는 것에 필적할 정도로 엄청난 장애라고 그런다. 서로 대등하고 호각인 거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유전적인 특성 때문에 선천적으로 냄새를 못 맡는 사람이 있다. 외형상 코의 모양은 평범하고 정상이기 때문에 이게 당장 티가 나지는 않는다.
putty 터미널 프로그램의 개발자 Simon Tatham이 냄새를 못 맡는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본인은 과거에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비슷한 체험을 했었다. 딱히 콧물감기에 걸리지 않았는데 김치에다가 코를 박아도 아무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게 무척 놀라웠었다..!
냄새를 못 맡는 건 시청각 장애에 비해서는 그나마 덜 심각한 장애로 여겨진다. 정확하게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이걸로는 병역 감면이나 면제가 가능하지도 않지 싶다.

하지만 음식이 상하거나 썩은 냄새, 타는 냄새.. 악취 이런 걸 못 맡으면 뭔가 결정적인 순간에 위험을 감지하지 못해서 화재나 식중독 같은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잠재적으로 커질 것 같다.
마치 땀이 안 나는 병이 있는 것처럼 몸 사리면서 조심해서 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2. 건강에 대한 관념

난 아주 어린 꼬마 시절엔..

(1) 머리를 감기만 했는데 머리카락이 도대체 왜 수십 개씩 빠진다고 하는지 이해를 전혀 못 했다.
흰머리 뽑듯이 족집게로 머리카락을 뽑은 게 아닌데 그게 왜 저절로 빠지지??

(2) 걷다가 넘어지거나 엉덩방아를 찧으면 피부가 까지고 피가 나고 아파서 울 수 있고, 빨간약을 바르기는 한다만.. 도대체 그거 갖고 어떻게 뼈까지 부러질 수 있는지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3미터 높이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줄?

(3) 커피를 마시면 잠을 쫓을 수 있다는 말을 이해를 못 했다.
심지어 영어 회화 교재에도 I’m sleepy / Drink some coffee 라고 적혀 있던 대화의 인과관계를 전혀 몰랐다. 졸리는데 왜 커피를 마셔?

(4) 반대로, 잠이야 아무 때든 조용한곳에서 누워서 눈만 감으면 100% 언제든지 경험 가능한 건데, 불면증이라는 게 세상에 도대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서 예전에 당연하던 것이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바뀌어 간다~~!!!.

3. 기억

나는 이런 게 도대체 왜 기억이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의 교가의 멜로디를 모두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교는=_= 일부 멜로디를 기억하는 게 있지만 다녔던 학교 중 어느 곳의 교가인지는 모른다.
중학교 교가는 일부 가사를 기억한다. 셋잇단음표와 함께 "거룩한 화랑 정신 핏속에 이어받아 온 겨레 떨치는 횃불이 되자"가 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교가는 가사 대부분을 기억한다.
고등학교 교가는 일부 구간이 찬송가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와 비슷한 곳이 있다.
대학교 교가는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의 작곡자인 그 침신대 교수가 작곡했다.

그리고 단 4주 동안밖에 접하지 않았지만 논산 육군훈련소가=_=를 멜로디는 음원 차원에서 100%, 가사 대부분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국군 도수체조 BGM은 들어도 들어도 정말 와 닿지 않고 기억이 잘 되지 않는다.

유사품인 국민체조 BGM 대비 멜로디가 그닥 명랑 경쾌하거나 매력적이지 않고, key부터가 깔끔한 G가 아니라 애매하게 낮고 어려운 G플랫.. 코드 진행이 장조인지 단조인지 모르겠고 어정쩡하고.. 뭐 그렇다. 그래서 머리에 잘 입력되지 않는다.
음악 전문가이신 여친님도 들어 보더니 정말 그렇다고 인증해 주셨다.

난 개인적으로 매일 아침에 이거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할 국군 장병에게 이 BGM이 그리 좋은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_=

아무 음악이나 한번 듣지마자 바로 기억에 들어갔으면 좋겠지만 나 포함 대부분의 인간은 그러지 못할 것이다.
기억 아이템이라는 것을 취준생에다가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뇌의 기억장소라는 직장에 취업하는 것과 비슷하다.

단기 기억에만 남아 있는 건 인턴, 계약직에 불과하다. 재계약이 안 되면 곧 짤린다. 잊혀진다.
장기 기억으로 들어가는 건 정규직/장기복무 합격에 대응한다.
평생 각인되는 거는 종신직 정년보장 철밥통 자리에 들어가는 거고..
인간의 뇌라는 직장이 제공하는 일자리는 그렇게 많거나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4. 욕구

인간 같은 동물에게는 잠뿐만 아니라 식욕, 성욕 같은 다른 기본 욕구들이 존재한다.
인간의 기본 욕구가 부적절한 방식으로 잘못 발산됐을 때 사회에서 가해지는 제재는 무엇이 있을까?

(1) 밥
조난을 당해서 무인도나 밀림이나 망망대해 구명보트에서 몇 달째 고립돼 있었고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사람 시체라도 뜯어먹었다면.. 그건 뭐 그 당사자를 비난할 수 없다.
문명의 손길이 닿는 곳에서도 정말 굶어죽기 일보직전에 최후의 발악으로 마트를 털기라도 한 거면 일말의 장발장 동정표가 주어질 수 있다.

허나, 이 2020년대 대한민국은 길거리에 아사자 시체가 굴러다니는 무복지 막장 국가가 아니다. 행려병자나 거지가 떠돌던 시절도 이미 지났다.
그렇기 때문에 사지 멀쩡한 사람이 밥을 못 먹어서 긴급피난이 인정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래도 먹튀는 절도죄, 사기죄 같은 잡범 급이지, 정치범 흉악범 급은 아니다.

(2) 배설
노상방뇨 노상방분은 그냥 경범죄로 취급되어 과태료 범칙금 감이다. X을 잘못 싸면 그 사람의 체면과 사회 위신이 심각하게 저해되겠지만-_-, 인간의 생리욕구를 해소한 것만 갖고 사람을 체포하고 형사 처벌을 하지는 않는다.
글쎄, 그 후폭풍 여파가 심하게 악질적이면 재물손괴죄로 이어질 수는 있겠다만 말이다.

반대로 아무 악의 없이 너무너무너무 극단적인 상황에서 급똥 때문에 불가피하게 사회적인 민폐를 끼친 거는 긴급피난으로 인정될 수 있다. (남자가 닥치고 여자 화장실이라도 뛰쳐들어가서 해결을 했다거나..)
하긴, 수영 선수들이 수영장 경기장에 있으면서 몰래몰래 소변을 지리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한다. =_= 마라톤 선수는 경기 중에 지리고..

(3) 수면
근무 중, 학습 중 같은 상황에서 졸아 버리면 그냥 그 조직 내부에서 잔소리 듣거나 징계받는 걸로 끝이다. 이거 갖고 판· 검사는 물론이고 경찰 면담을 할 일조차 없다.
졸음운전은 문제가 좀 심각하긴 하지만, 사고가 나더라도 그냥 평범한 과실로 다뤄진다. 음주운전과는 달리 특별히 더 가중 처벌되는 게 없다.

(4) 성
이거는 제일 위험하고 심각한 사항이다. 손 하나 까딱 잘못 놀리면 체포되고 벌금이나 징역까지 받을 수 있고, 최악의 흉악범으로 전락할 수 있다. 사회적 매장은 덤.
옛날에 우리나라에서는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린 피해자가 적지 않았다고 하는데, 요즘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서 열외돼서 억울하게 성추행범으로 몰린 피해자가 적지 않은가 보다.

정상적인 성욕과 끔찍한 성범죄는 마치 사랑의 체벌과 아동학대, 살인과 연명 치료 중단만큼이나 한 끗발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성범죄를 없애겠다고 아예 고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런 쪽의 유혹은 대적하고 맞서 싸우는 게 불가능· 무의미하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도 이건 그냥 피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고 말한다.

대놓고 적군이라면 싸우고 죽여야겠지만, 우리 편 사람이 잠시 헷가닥 맛이 가서 나한테 덤비는 거면.. 죽일 수가 없잖은가? 내가 그냥 피하거나 "잠시 실례" 기절만 시키거나..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그리고 사실, 강간은 성욕 해소가 본질이 아니다. 성욕만 주체할 수 없는 지경이라면 그건 혼자 화장실 가서 조용히 몰래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강간은 그냥 자기보다 약한 여성을 제압하고 제멋대로 범하는 과정 자체에서 쾌감을 얻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마치 고문이 진짜로 자백 받아내고 정보를 얻는 게 목적이 아니며, 결혼이 성욕 해소가 본질이 아닌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8/11 08:35 2024/08/1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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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나라의 인천 국제공항은 경부 고속철도 내지 서해안 고속도로와 비슷하게 1992년쯤부터 공사를 시작해서 2001년 3월 29일에 개항했다. 외국 여행이 전면 자유화되고 나니, 기존의 김포 공항만으로는 폭증하는 항공 수요를 도저히 다 감당할 수 없겠다는 게 예측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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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안에서는 서울-부산 간 육상 트래픽의 폭주를 해소하려 고속철을 만들었다. 그것처럼 나라 사이에는 항공 트래픽 폭주를 해소하려 공항을.. 둘 다 비슷한 시기에 구상하고 만들기 시작했다는 게 흥미롭다.

고속철이 대전-천안 시험선의 건설부터 시작됐다면, 공항은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를 간척하는 어마어마한 토목공사부터 시작됐다. 건물을 올리기 전에 건물을 지을 땅부터 확보해야 하니 말이다.
여객터미널과 부속 시설들의 공사는 1996년쯤부터 시작됐다. 참고로 고속철의 경우, 1998년에야 KTX 제 1호차가 처음으로 수입돼 들어왔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개발 과정에서 베타테스트라는 걸 하고.. 철도 노선이 새로 개통하기 전에는 몇 달에 걸쳐 시운전을 한다.
그것처럼 인천 공항도 개항을 앞두고 모든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지, 세계 각국에서 날아오는 비행기들을 잘 처리해 내는지 테스트를 꼼꼼히 했다.

2.
그리고 인천 공항의 정식 개항 하루 전이던 2001년 3월 28일, 이때 국내의 메이저 항공사이던 대한 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은 본진을 옮기는 대공사를 벌였다.
김포에서 마지막 비행기를 띄운 뒤, 미리 싸 둔 어마어마한 양의 이삿짐들을 인천 공항으로 날랐다. 김포에 주기돼 있던 비행기들 수십 대도 인천까지 초단거리 비행을 시켜서 밤 늦게까지 차곡차곡 자가비행 탁송(?)했다.

그 비행기는 김포에서 겨우 인천을 가더라도 최단거리 직선으로 날아가는 게 아니라, 규정된 항로를 따라서 안양 부근을 찍고 훨씬 더 길게 우회해서 빙빙 돌면서 갔다.
이건 지하철 개통을 앞두고 거대한 전동차들 수십 량을 반입하는 것과 비슷한 절차인데.. 이때 저기 주변을 살았던 사람들은 참 진귀한 구경을 했지 싶다. 끊임없는 비행기 소음 때문에 고생했을지도..??

이들은 트럭 1000대가 넘는 분량의 이삿짐을 나르느라 공항 고속도로 톨비만 총 7천만 원 가까이 들었고, 각 회사당 이사 비용이 수십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어지간한 정부 기관의 지방 이전 비용에 맞먹었다.
지상조업에 쓰이는 토잉카, 소방차, 발전차, 탑승교 차량 등 온갖 특수한 중장비들도 몽땅 그렇게 탁송했다. 이런 기계류들 중에는 일반적인 공도를 주행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거운 것들도 있었다. 개통한 지 얼마 안 됐던 영종대교를 살금살금 조심해서 통과해야 했다.

어제까지 김포이다가 바로 다음날부터 인천..
항공사들은 업무가 단절 없이 진행돼야 했기 때문에 모든 짐을 어차피 하루아침에 몽땅 다 옮기지도 못했다. 이사는 단계적으로 진행됐으며, 이 운송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해서 일부 물자를 날릴 것에 대비한 보험도 단단히 들었었다고 한다.

옛날에 오키나와에서는 시내 도로들을 미군정 시절의 우측통행에서 일본 본토 방식인 좌측통행으로 바꾸는 7 30 조치가 취해졌었다. 1978년 7월 29일 밤 10시부터 긴급한 소방차 경찰차 구급차를 제외한 모든 차량들의 통행이 금지됐고, 이때부터 이튿날 아침 6시까지 공무원들이 모든 공도에서 우측통행 기준의 기존 표식과 신호등을 가리고, 미리 설치해 놨던 좌측통행 표식과 신호등을 꺼내 놓은 것이다.
이것도 참 역사적인 일회성 사건인데, 김포 공항에서 인천 공항으로의 이전 역시 그에 맞먹는 엄청난 사건이었던 것 같다.

3.
인천 공항은 그렇게 여객터미널 하나로 개항한 뒤, 지난 20여 년 동안 차근차근 확장도 해 왔다.
2008년 7월에는 확장 탑승동이 하나 완공됐고, 여객터미널과 탑승동 사이를 오가는 지하 경전철이 생겼다.
원래는 이렇게 확장 탑승동을 여러 개, 최대 무려 3개까지 만드는 식으로 확장한다는 것이 계획이었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인해 그 계획이 엎어지고, 2018년 1월에는 아예 여객터미널이 하나 더 생겼다.
지금은 일반항공(= 자가용 비행기)의 취급에 특화된 제3 여객터미널을 더 만들 계획이 있다고 한다.

공항이라는 게 여객터미널과 활주로, 관제 시설만 덩그러니 만든다고 다가 아니고 안에서 돌아가는 시스템도 상상을 초월하게 복잡 정교하다.
특히 수하물을 비행기에서 출입국장까지 착오 없이 신속 정확하게 보내는 지하 컨베이어 네트워크의 길이는 이미 100수십 km에 달한다고 한다. 제2터미널이 생긴 지금은 더 길어졌지 싶다. 어지간한 택배 물류허브의 복잡도를 능가한다.

우리나라 인천 공항은 터미널 화장실이 깨끗하고 무선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프런트 엔드뿐만 아니라 이런 백 엔드까지도 우수하다고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4.
(1) 지금이야 다 지나간 일, 상관 없는 이야기가 돼 버렸지만.. 인천 공항이 완공이 임박했던 1999~2000년 즈음에는 한글 운동 단체들에서 새 공항의 이름을 '세종'이라고 지어 달라고 청원 민원을 넣고 난리를 쳤었다.
이 진영에서는 공문서 한자 혼용 반대, 영어 공용화 반대, 한글날의 국경일+공휴일 지정뿐만 아니라 세종대왕이나 조선어 학회 사건 투옥자들을 기리는 일에도 앞장서는 편이었다.
허나, 인천이라는 지명을 홍보하고 싶어하는 정치 논리 앞에서 세종은 설득력이 부족했다. 그 대신, '세종'이라는 이름은 잘 알다시피 새로 만들어지는 행정수도의 이름에 쓰이게 되었다.

(2) 1996년인가 마이클 잭슨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공연 장비들을 무려 An-225에다 싣고 방한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파괴된 비운의 비행기, 세계에서 가장 거대했던 6발 화물기)
이때는 이 비행기를 김포 공항이 차마 감당할 수 없어서 오산 공군 기지에 착륙했었다고 한다. 물론 저 사람 당사자야 여객기 일등석이건 전용기건 뭐든 타고 김포 공항에 내렸고, 화물기만 저리로 보냈다는 뜻이다.
지금이라면 둘 다 인천 공항에 얼마든지 착륙 가능했을 것이다.

(3)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북한의 VIP 내지 손님들은 다 인천 공항으로만 드나들어 왔다. 북한 사람들한테는 감히 성남 서울 공항을 보여주지 않는 게 우리나라의 방침이라고 한다. 보안· 안보 문제 때문에.

(4) 우리나라의 모든 공항들은 '한국 공항 공사' 관할이다. 그러나 인천 공항은 '인천 공항 공사'라는 별도의 운영사가 있다. 마치 서울이 다른 시· 도들과는 다른 취급을 받는 것, 강원랜드만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자국민이 출입 가능한 카지노인 것과 비슷한 모양새이다.
그래도 국내선 면세점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제주 공항에만 있다.

(5) 인천 공항이 생긴 덕분에 김포 공항의 청사 하나가 텅 비어서 놀면서 리모델링 대상이 됐다. 바로 그 낡고 빈 건물을 배경으로 영화 <튜브>(2003, 백 운학 감독) 초반부의 공항 총격전 씬이 촬영될 수 있었다.
원래 감독의 의도는 강남 테헤란로에서의 총격적이었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무리. 그 대신 공항이 선택된 것이다.
그 당시, 김포 공항 주변에서는 "여기 안에서 영화 촬영 중이니 총소리가 들리더라도 놀라지 마세요" 안내를 하는 차량과 현수막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4/07/25 08:35 2024/07/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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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외형과 인상

1. 복장

사람은 말이나 글을 동원할 필요 없이, 자신의 복장만으로 주변에 무언의 메시지를 어느 정도 전할 수 있고 주변 분위기에 부응할 수도 있다. 이런 게 사회 관습이 되면 드레스 코드라는 일종의 매너로 발전한다.

장례식 때 온통 검은색 옷을 입는 거,
결혼식 때 신부가 물론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지만 그렇다고 여느 파티처럼 한없이 현란하고 화려하고 컬러풀한 옷을 입지는 않는 거.. (최대한 아름답게 보이기는 하되, 한편으로 너는 이제 평생 한 남자하고만 즐겨야 한다!!)
이런 게 다 유래와 의미가 있다.

그래서 하다못해 옛날에 죄수의 목을 치던 사형 집행인 말이다. 이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평판이 썩 좋은 직업이 아니었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망나니라고 해서 대놓고 개차반인 사람이 술 취한 상태로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사형 집행인이 연미복? 턱시도?를 깔끔하게 잘~~ 차려 입고.. 목을 칠 때는 치더라도 사형수를 개인적으로 대면할 때는 아주 공손하고 댄디하고 따뜻 정중하게 대한 경우가 있었다. 특히 단두대가 발명된 뒤부터 말이다.

이런 점에서 옷차림은 음악과도 비슷한 면모가 있는 것 같다. 데모 투쟁 이러는 데서 샤방샤방 조용한 음악을 틀지는 않을 것이다. 타이타닉 호가 침몰하는 와중에 찬송가를 틀면 틀지, 디스코 댄스곡이나 락 헤비메탈을 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옷차림과 음악 모두 mood의 영향을 받으며 자신들이 mood를 결정하기도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프랑스 영화 안젤리크(2013)에서는..
여주인공이 페락 백작과 정략 결혼 당하는 게 싫어서 결혼식 당일에 까만 승마복을 입고 입장했다.;;;
신랑이 빨간 드레스를 챙겨 줬지만, 신부는 그걸 무시하고 결혼식 날 거의 남장에 가까운 복장을 하고 들어왔다. 이 남자와 결혼하기 싫다는 소극적인 저항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반대로 본인이 다니는 교회의 어느 자매님은.. 과거에 침례식 때 빨간 드레스를 입고 왔었다고 한다~!
한때 세상적으로 완전 잘 나가고 잘 놀던 분이었는데, 뒤늦게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서 그 기절로 열혈 크리스천이 됐다.
믿음 고백하고 침례받는 날은 그야말로 자기 인생 최고의 기념일이기 때문에 그 느낌을 저런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었다고.. ㅋㅋ 교회 사람들은 당연히 눈이 휘둥그레졌었다고 한다. ㅡ,.ㅡ;;

으음. 빨간 드레스가 참 강렬하게 와 닿는다. ^^
옛날에 탈옥수 신 창원이 체포됐을 땐 그 당시에 그가 입고 있었던 컬러풀한 옷이 같이 큰 주목을 받았다.
요 몇 달 전엔 어떤 갑부 아줌마가 걸출한 입담으로 대한민국 최대의 도파민 분비 기자회견을 했을 때 역시.. 당사자가 입고 있었던 캐주얼한 옷이 왕창 주목받고 옷도 구설수에 오르곤 했다.

보석이 12종이나 콕콕 박혀 있던 구약 이스라엘 제사장들의 복장도 정말 왕창 튀지 않았을까? 주변 이방 민족 이방 종교들 성직자하고는 완전히 다른 인상이었지 싶다.

2. 대머리

세상에 그 어떤 논쟁도 바로 셧다운 시키고 상대방을 입 다물게 만들고, 그 어떤 화기애애한 대화도 갑분싸 시킬 수 있는 치트키가 바로.. "하지만 넌 대머리잖아"..;; 라고 한다.
뭐 농반진반으로 하는 말이겠지. ㄲㄲㄲㄲㄲㄲ 저건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원천봉쇄의 오류 중 하나이다.

헤어 스타일은 사람의 얼굴 인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다. 의상 만만찮게 사람의 외형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남자보다도 여자에게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그런지 옛날 사람들은 자기 머리카락이 멀쩡히 있는데도 가발을 많이 썼다.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굳이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말이다. 서양에서 법조인이나 고관대작 남자들이 쓴 가발은 유명하다.

허나, 그 반대급부로 탈모· 대머리는.. 그 사람의 생명 유지는 말할 것도 없고 지능, 인격, 팔다리 피지컬과도 추호도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사회생활에 큰 지장을 주고, 막대한 스트레스와 멘탈 대미지를 야기하곤 했다.
현대 의학으로도 피를 100% 똑같이 인공적으로 만들지는 못하고, 그것처럼 빠진 털을 다시 돋아나게 하지는 못한다. 탈모는 기본적으로 불치병이다.

먹기만 하면 대머리 정수리에서 검은 머리털이 숭숭 돋아나는 탈모 치료약을 만들면 그 사람은 그야말로 억만장자가 될 텐데.. 약이 아니면 치료 시술로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건 없는 생명을 새로 만드는 것과 동급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어떤 질병이나 부상이 정말 불가피하고 심각한 건지를 따져보는 잣대가 둘 있는데, (1) 건강보험이 적용되냐, (2) 그걸로 군대를 빠질 수 있느냐 이다.
단순히 노화나 유전으로 인한 탈모는 보다시피 치료가 의미가 없기 때문에 건보 열외이다. 그러나 지루성 피부염이나 스트레스 같은 질병으로 인한 탈모의 치료는 건보 적용 대상이다.
(탈모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스트레스 때문에 탈모가 더 진행되고.. 악순환인 건가. ㅡ,.ㅡ)

그리고 머리털 정도를 넘어서 눈썹 포함 몸의 털들이 싸그리 다 빠지고 최근 1년 동안 치료를 해도 아무 차도가 없는 극단적인 범발성 탈모는... 군대에서도 5급으로 처분한다고 한다.
뛰고 구르고 방아쇠 당기는 데는 지장이 없을지라도, 동료 병사들한테 심각한 비주얼 테러를 야기하는 건 군 사기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_-;;; 그게 아니라 20대에 벌써 정수리만 살짝 벗겨지는 정도로는 현역 처분이다.

성경의 레위기 13장은 부정 vs 정결 판별 요령으로 가득한데 40절은 이렇다. "머리털이 빠진 사람은 대머리이다. 허나 그는 정결하다"
주변 문맥을 같이 보면, 쉽게 말해서 "대머리인 것 자체만으로 부정한 건 아니다" 이런 뉘앙스이다. ㄲㄲㄲㄲㄲㄲ
이건 노화와 함께 뒤따를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에 특별히 격리 처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왕하 2:23에 나오는 초글링 개떼들의 "대머리야 올라가라, 대머리야 올라가라 ㅋㅋㅋㅋㅋㅋ" 조롱은 정말 전설적인 일화이다.
대머리가 놀림감이었다는 게 무려 성경에 기록돼 있을 정도니까.
빡친 엘리사 당사자의 저주 한 마디에 저 애들 40여 명이 곰의 습격을 받아서 사망· 중상 떼죽음을 당했다.
물론 겨우 개인적인 대머리 조롱 때문은 아니고 신성모독적인 배경 때문에 피바다 징벌이 임했던 것일 거다.

3. 무력· 폭력

이건 사람이 몸에 걸치고 있는 것 말고, 손에 든 도구를 이용해서 외형과 인상에 변화를 주는 방법이다. -_-;;

  • 말을 공손하게 댄디하게 하되, 손에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서 그리해라. 그러면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 친절한 말보다는 친절한 말과 총으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 알 카포네 (미국 마피아 두목)
  •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아가리를 한 대 쳐맞기 전까지는. -- 마이크 타이슨 (권투 선수)
  •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 마오 쩌둥 (중국 초대 주석)

이래서 인간 사는 곳에는 폭력이 끊이질 않으며, 사회가 법과 공권력이란 게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가 보다.
저기서 말하는 친절하고 공손하고 댄디한 건 앞서 소개했던 서양의 사형 집행인이 예의 차리는 것하고 일면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_-;;

4. 마네킹

우리 주변에는 사람이 아닌데 사람처럼 생긴 '물건'이 있다. 대표적으로 마네킹.. 백화점을 비롯해 옷 가게에서 옷을 착용한 모습을 preview 시켜 주는 몸빵 셔틀이다.

옛날에는 마네킹이 살색에다 가발도 씌워져 있어서 사람과 꽤 비슷하게 만들어지는 편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아닌 물건이 사람과 어설프게 많이 닮아 있으면.. 그건 사람에게 거부감과 공포심을 유발하기 쉽다. 시체 토막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마네킹 공장이나 창고를 배경으로 괴담· 호러물이 한둘 만들어진 게 아니다. ㄲㄲㄲㄲ

그렇기 때문에 2000년대 이후의 마네킹은 말 그대로 몸빵 기능에만 충실해서 색깔은 하얗고 이목구비는 단순해지거나 아예 생략해 버리고, 머리카락도 없고.. 옛날 마네킹에 비해 기하학적으로 훨씬 더 단순한 모습이 됐다. 사람의 체형 체구만 흉내 낼 뿐, 그 이상 사람과 비슷한 면모는 깔끔하게 없앤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네.. 마네킹의 디자인 컨셉이 이렇게 바뀌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진다.

자동차 충돌 실험용으로 쓰이는 '더미'는 마네킹의 탈을 쓴 기계에 가까운 비싼 물건이다.
글쎄, 미대생들을 위한 데생 실습용 인체 석고상은 여전히 실제 사람과 비슷한 모양이어야겠지만 색깔까지 그대로 재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색깔까지 재현해야 되면 아예 누드 모델을 쓰고 말지..)

그것 말고.. 리얼돌...??? 하아 이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대놓고 기계를 표방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앞으로 진짜로 인간을 닮은 물건이 개발될 일이 있을지, 그런 걸 만들 필요나 명분이 있는지 모르겠다.

5. 그림자

끝으로.. 사람 그 자체 말고 사람의 그림자만으로 이런 기발한 메시지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도.. 참 흥미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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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토 각하께서는 뼛속까지 호색한 색마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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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는 장애인 제조기입니다! (심지어 아예 뇌사 장기 기증자 제조기, 과부 제조기라는 극언까지..)
뾰족한 사람 발등 그림자만 편파적으로 촬영해서 폭행· 협박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꿔 놓은 그림도 있던데.. 뭐 그런 식이다.
아이고. 의상이나 헤어스타일에서 시작해서 이야기가 좀 밖으로 샜나? 아무튼 오늘도 여러 생각을 늘어놓게 됐다. ^^

Posted by 사무엘

2024/07/22 08:35 2024/07/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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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1) 현대 왕회장은 경부 고속도로 건설하던 시절에, (현대건설)
하늘이 두 쪽 나는 한이 있어도 완공 기한을 무조건 맞춰야 하는데 하필 재수없게 제일 어려운 대전-대구 옥천 터널 구간을 맡았다.
육중한 돌산에다가 터널 하나를 못 뚫어서(옥천 당재터널) 인부들이 사고로 죽어 나가고, 나중엔 무섭다면서 작업을 거부하고 포기하고 나가는 지경이 됐다.

그는 결국은 기업 이윤을 포기하고 훨씬 더 비싸지만 더 빨리 굳는 시멘트를 전격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그걸로 시간 더 벌어서 공사 기간을 간신히 맞추고 제때 완공했다.
경부 고속도로는 개통식 3시간을 앞두고 전구간 차선 도색을 간신히 끝냈다고 한다.

(2) 왕회장은 1977년쯤.. 고유모델 포니 개발하는 걸 포기하라는 미국 대사의 회유를 거절했다.
나중에 1980년대엔 자체 엔진 개발 따위 때려치우라는 일본 미쓰비시 측의 회유를 거절하고 이 현순 박사의 편을 끝까지 들어 줬다.

물론 돈 버는 기업의 입장에서 모든 걸 고지식하게 다 자체개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저 두 과감한 결정은 원천기술이라는 걸 만들고 오늘날의 현대 자동차를 있게 한 선견지명이 됐다.

(3) 그리고 현대 왕회장은 1981년경엔 정말 뜬금없이 스포츠 외교대사가 돼서 서울 올림픽 유치를 이끌어냈다. 세계 각국이 일본 나고야가 이기는 건 너무 당연하고 "몇 표 차로 이길까?"를 갖고 내기를 했던 시절에 말이다.

나고야가 막 돈지랄 선물 공세를 하면서 방심할 때 이 사람은 감성 마케팅을 했다. 꽃바구니를 손수 돌리고, 호텔 입구와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울나라를 홍보하고, "이 시국에 코리아 같은 개발도상국에게 기회를 부디 한번 주세요" 그렇게 정말 겸허하고 공손하게 처신하면서 IOC 위원들 마음을 움직였다.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자기 회사 물건을 팔려고 "불가능이란 없다" 이렇게 뛰는 영업맨의 자세가 아니었을지..?? 그게 52:27 "쎄울~~" 바덴바덴의 기적을 만들었다.

어디 그뿐이랴, 현대와 스포츠의 인연을 말하면서 양궁을 빼놓을 수는 없다.
우리나라 엘리트 체육이 수영은 박 태환, 피겨는 김 연아, 마라톤은 옛날에 이 봉주.. 이렇게 극소수 1인 천재 독주 위주인 반면, 양궁은 그렇지 않다.

저기는 양궁의 박 태환, 양궁의 김 연아 같은 괴물들이 그냥 우글거린다. 지금의 올림픽 국대가 다음 올림픽 국대에 다시 선발된다고 절대 장담을 못 한다.
양궁에다 후원을 잔뜩 하면서 이런 인재풀을 만들어 놓은 일등공신도 바로 현대 정 주영 가문이었다.

이거 뭐 온갖 분야에서 신화를 만들었구나.
내가 아는 일화만 이 정도이고.. 그 밖에 조선소 건립이나 해외 중동 건설과 관련해서 생겨난 일화나 기적은 알지도 못한다.
그랬던 사람이 1992년 대선에 한번 출마했었고.. 쌍팔년도 시절에 유행했던 개그인 최불암 씨리즈에도 개그 캐릭터로 등장한다. (최불암과 절친이었다고 함)

1998년에는.. 뭔 바람이 들었는지 북한으로 울트라리스크... 아니, 진짜 소몰이를 했다.
이러니 우리나라에 대기업 총수, 재벌은 여럿 있지만 저 사람이 왕회장이라고 불리는가 보다. 저 사람이라면 그럴 자격이 있는 것 같다. "이봐, 해 보기는 했어?"라고 말할 자격이 되는 것 같다. =_=;;

※ 삼성

삼성, 특히 예전 이 건희 회장 시절의 삼성은 이것저것 여러(모든) 분야에서 원천기술을 보유하려고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 무리수를 감행해서라도, 그게 언제나 실용적인 결과를 내지는 않았더라도 말이다.

“현대에서는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가전, 반도체, 컴퓨터를 만들면서(그 당시 현대전자) 또 자동차도 만드는데 우리는 왜 자동차를 못 만드냐?”
이러면서 한때 자동차 제조에 손을 댔었다. 저 사람이 개인적으로 엄청난 기계덕 차덕이기도 했으니..

그리고 컴퓨터 쪽이야 메모리 반도체에 정말 과감하게 투자했던 건 말할 것도 없고,
어째 소프트웨어 개발팀을 잘 꾸려서 1990년대에 훈민정음이라는 워드 프로세서를 자체 개발하기도 했다. 하긴 삼성 소프트웨어 멤버십도 꽤 옛날부터 있었지?

도스 시절부터 워드를 꾸준히 개발해 왔던 한컴조차도 Windows로 갈아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초창기 아래아한글 3.0 시절엔 삽질이 많았다.
하물며 워드를 처음부터 만들지 않았던 기업에서 무려 1992년에 도스가 아닌 처음부터 Windows용으로 그 정도 규모의 소프트웨어를 밑바닥부터 뚝딱 만든 건 엄청난 기술력의 산물이었다.

특히 훈민정음 95는 동시대의 아래아한글 2.5 확장팩처럼 엄청난 글꼴과 클립아트 데이터에다가.. HTML 문서 지원 어쩌구 하면서 당대에 뜨는 기술 트렌드도 엄청 많이 참고해서 개발됐었다.

그런데 개발팀이 Windows 표준 GUI 가이드라인은 참고하지 않았는지 ‘도움말’ 메뉴라는 게 없고, 메뉴 설명이 프로그램 제목 표시줄에 표시된다거나.. 삽입/겹침, 한/영 상태를 빨간색 caret으로 표시하는 식으로 좀 특이한 UI 피드백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프로그램 전반적인 디자인이 워드 프로세서보다는 DTP에 가까운 컨셉으로 설계된 느낌이었다.

훈민정음은 아래아한글과 MS Word에 밀려서 오래 전부터 시장 경쟁력을 잃었지만, 이 건희 회장이 오랫동안 애착을 갖고 개발팀을 유지시켰다…고 난 들었다. 자체 워드 프로세서 엔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야 된다고 말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무려 2014년이 돼서야 훈민정음을 사내에서도 완전히 퇴출시키고 사용을 중단했다.

으음.. 지금 훈민정음 같은 존재가 된 건 타이젠 OS이려나? 이것도 협력사들이 다 빠져나가고 삼성 스마트 가전에만 탑재되는 전용 물건처럼 됐다. 그래도 운영체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설계하고 만든 노하우가 어딘가에 쓰이기는 할 것 같은데 말이다.
 
내가 딱히 삼성맨은 아니지만 삼성에 대해서 불현듯 이런 기억이 떠오른다.
쟤들이 지금처럼 갤럭시 시리즈로 세계를 석권하기 전엔 아담한 Windows용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고, 애니콜과 옴니아를 만들기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옛날에 한컴 vs 마소 이러던 것이 지금은 네이버 vs 구글, 삼성 vs 애플.. 이런 구도로 바뀐 느낌이다.
더 옛날 금성 패미콤 vs 삼성 SPC-100은 브리사 vs 포니 같은 골동품인 건지?

(1) 천지인 한글 입력 방식은 잘 알다시피 삼성전자 직원의 사내 발명에서 유래됐다. 무려 1994년작으로, 일본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QR 코드라는 게 발명됐었다~!
1988년엔 한국의 의사가 V3을 만들었고 일본 의사가 LHA를 만들었던 것과 비슷한 짝을 이룬다.

(2) 물론 요즘 산업계는 돈 안 되고 승산 없는 분야는 빨랑빨랑 접고 손 떼고, 자기 전문이 아닌 기술은 그냥 사서 쓰는 게 대세이다. 기업들 트렌드가 옛날 같은 독점보다는 개방으로 바뀌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마소에서는 모바일 OS를 완전히 접었고, LG전자는 스마트폰을 완전히 포기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4/07/17 08:35 2024/07/1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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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을 개발하는 프로그래머는 클라이언트 내지 서버 개발자로 역할이 크게 나뉜다.

사용자가 자기 머신에(PC 내지 폰) 직접 설치해서 구동하는 그 exe / apk야 클라 개발자의 작품이다.
현란한 그래픽을 구현하고, 같은 하드웨어에서 화면 프레임 수를 늘리려고 고생하는 애들 역시 클라 개발자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용자들을 동시에 수용하고 계정 정보를 관리하고, 이것들이 해킹당하지 않게 보호하고, 클라가 뿌릴 게임 내부 상태를 전해 주는 건.. 서버 및 서버 개발자의 몫이다.

클라 프로그램이 뻗는 건 그 사용자만의 문제이지만, 서버가 뻗는다면....;;;; 뭐 그렇다.
조금 어설프게 비유하자면 클라는 또박또박 보도를 하는 뉴스 앵커이지만, 서버는 뉴스 대본을 생성하고 보도 순서와 분량을 정하는 보도국뻘 된다.

그런데 데스크톱이나 모바일 '앱' 말고 웹 개발로 가면.. 프런트 엔드와 백 엔드라는 계층 구분이 있다.
웹 프로그램은 머신에 설치되는 게 아니라 웹브라우저 화면에서 바로 구동된다. 그렇기 때문에 개념적으로는 클라라는 게 없고 서버 프로그램만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거기서도 계층 구분이 있다. 사용자한테 보이는 부분, 더 기술적으로는 js html css처럼 서버로부터 받기는 했지만 사용자의 웹브라우저에서 구동되고 사용자가 소스를 직접 볼 수 있는 부분은 프런트 엔드이다.
그 반면, 저런 html을 생성하는 프로그램이라든가 DB처럼.. 진짜로 서버에서만 돌아가고 사용자가 코드를 볼 수 없는 부분은 백 엔드라고 불린다.

프런트 엔드 웹 개발자는 웹 '디자이너'와 영역이 겹치며 같이 작업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백 엔드는 디자이너와의 접점이 없으며, 그 대신 Java, C#, 심지어 C++처럼 머신 종속적인 데스크톱용 프로그래밍 언어와 접점이 있을 수 있다. (사용하는 프레임워크가 무엇이냐에 따라)

글쎄, php는 딱히 기계 종속적이지 않으면서 백 엔드 개발에 최적화된 언어인 듯하다.
JavaScript야 웹 개발계의 유니코드요 세계공용어로 등극했으며, 프런트와 백에서 모두 쓰이고 있다.

원래 컴퓨터 업계에서 '프런트/백 엔드' 이런 말은 컴파일러에서 주로 쓰이던 용어였다. 구문 해석해서 parse tree 내지 IR(중간 표현)을 생성하는 게 프런트이고, 이걸로부터 실제 머신 코드를 생성하고 최적화도 하는 게 백이었는데.. 2000년대 이후부터는 웹 개발에서의 계층을 구분할 때도 저런 용어가 쓰이게 된 것이다.

1990년대.. 웹의 초창기에는 웹만을 위한 프로그래밍이라는 개념이 아주 희박했다. 프런트/백의 엄밀한 구분도 없었고 온갖 비표준 파편화 기술들이 난립했었다.
프런트 엔드에 속하는 건 사용자가 폼에 입력한 값이 올바른지 로컬에서 체크해서 에러 메시지 띄우는 수준의 아주 간단한 코드?? 이런 코드는 html 코드의 주석 안에 자그맣게 짱박혀 있곤 했다.;; html이라는 문서가 main이지, 이런 코드는 약간의 동적 요소만 가미해 줄 뿐,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

하긴, html 자체를 동적으로 생성하는 기술을 공부해서 DB 만지고 게시판 같은 거 자작하는 게 지금으로 치면 백 엔드 개발이었겠다. CGI 역시 백 엔드의 범주에 드는 초창기 기술일 테고. =_=;; 옛날 제로보드 스킨은 일종의 프런트 엔드 개발이었겠다. ㄲㄲㄲ
플래시니 Java 애플릿 같은 건 물론 프런트이고, 지금의 관점에서는 특정 기업 솔루션에 종속적인 비표준 기술이 됐다.

프런트 엔드에서 돌아가는 웹 프로그램 코드는 특정 기계어로 컴파일되지는 않는다. 무슨 C/C++ 프로그램처럼 저수준 메모리 문제나 보안 문제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특정 JavaScript 코드를 실행함으로써 메모리· 보안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건 그 브라우저에 내장된 js 엔진의 버그이지, js 코드의 버그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문제 있는 js 코드는 다른 부작용 없이 깔끔하게 실행이 거부되고 에러 메시지와 함께 튕기기만 돼야 할 테니 말이다.

그 대신 그 코드는 보통 난독화 처리가 돼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코드가 노출돼 있다고 해서 사용자가 그 코드를 읽어서 뭔가 로직을 파악하기는 매우 난감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웹 프로그래밍에서 보안의 최대 관심사는 buffer overrun 같은 부류가 아니라.. 신뢰할 수 없는 임의의 외부 문자열이 코드나 태그, SQL 따위로 인식되어 실행되지 않게 하기 위주인 것 같다. C로 치면 % format 문자열에다가 동적 생성된 외부 문자열을 공급하지 말라는 것과 비슷하다.

문득 드는 생각은.. 웹 개발을 위한 전용 IDE가 있을까?
옛날에 나모나 드림위버, FrontPage 같은 위지윅 html 에디터가 있었고.. Visual Studio 6 시절엔 Visual InterDev라고 비베 냄새가 나는 웹 개발 IDE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런 건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유행이 지나고 한물 갔다. 심지어 마소에서 Expression Studio라고 새로 만들던 웹 개발 저작도구도 2010년대 초반에 개발이 중단됐다.

웹은 과연 IDE의 무덤인지.. 개발에 이클립스 내지 Visual Studio Code 같은 범용적인 에디터/IDE만 쓰이는 것 같다.

※ 비유 개드립

  • "웹 디자인 - 웹 프런트 엔드 개발 - 웹 백 엔드 개발"은 뭔가 "장갑차 - 전차 - 자주포" 순으로 성향이 바뀐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ㄲㄲㄲㄲㄲㄲ
  • 프런트 엔드에서 css / js / html라는 역할 구분 세분화는 입법 사법 행정 삼권분립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 PC용 앱은 일반 봉지 라면, 모바일 앱은 컵라면 사발면.. 그리고 웹사이트를 구동하는 프로그램은 식당 납품용으로 대량 판매하는 라면 사리 내지 스프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 웹 개발이나 컴파일러뿐이겠는가. 인공위성은 프런트 엔드, 발사체는 백 엔드 기술인 것 같고.. 자동차에서도 주행과 관련은 없지만 탑승자가 대면하고 사용하는 부품들은 프런트요, 엔진룸 안에서 차량을 굴리는 데 기여하는 부품은 백에 대응하는 듯.. 이런 식의 구분은 다른 여러 분야에도 존재한다.

※ 모바일 관련

mobile이라는 말이 원래는 물리적인 이동, 교통과 관련된 단어였다. 미술 조형물 모빌이라든가, automobile 자동차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관련 '통신' 뉘앙스가 더 짙어졌다.
그리고 우리말은 참 희한하게도 '모빌'은 통상적인 의미, '모바일'은 통신 의미로 분화됐다. 마치 '도트/닷', '네트/넷'의 뉘앙스 변화와 비슷한 재미있는 현상이다.
'통신사'가 지금이야 SK 텔레콤 같은 게 먼저 떠오르지만 원래 연합뉴스 같은 언론사 용어였다는 것도 생각해 보자.

Posted by 사무엘

2024/06/11 19:35 2024/06/1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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