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 : 1 : 2 : 3 : 4 : 5 : ... 31 : Next »

1. 텍스트 에디터

macOS의 워드 프로세서 겸 에디터인 TextEdit은 신기하게도 '자동 줄 바꿈'을 끄는 기능이 없다...! 개인적으로 굉장한 문화 충격을 느꼈다. 줄 바꿈을 창이 아닌 용지를 기준으로 하게 하고 용지의 폭을 9999로 지정하는 간접적인 방법만 동원할 수 있다.

하긴 macOS는 터미널 창도 창 크기에 맞춰 줄 정렬을 꼬박꼬박 다시 해 주고 xcode의 코드 에디터에서도 자동 줄 바꿈이 지원되니.. 그쪽 바닥은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wrap에 친화적인 것 같다.

2. 텍스트 뷰어

에디터처럼 파일을 linked list 형태로 재구성하지 말고 수백 MB~수 GB의 파일이라도 O(1) 상수 시간으로 즉시 읽어들이는 텍스트 뷰어가 좀 있으면 좋겠다. 당장 화면에 표시해야 하는 맨 앞이나 맨 뒷부분만 줄 바꿈과 탭 적용을 한 뒤, 나머지 화면에 안 보이는 부분에 대한 줄 수 계산, 글자 폭 계산 같은 건 그때 그때 백그라운드로 진행한다.
파일의 앞부분이나 맨 뒷부분만 신속하게 조회 가능하되, 필요하면 다른 부분으로 스크롤이나 텍스트 검색도 가능해야 한다. 텍스트 수정은..?? 파일의 크기를 변경하지 않는(= 삽입, 삭제) 변경만 있어도 좋다.

유닉스의 tail 명령은 뒷부분 조회는 가능하지만 내가 원하는 모든 기능이 들어있지는 않다.
워드 프로세서가 아니라 텍스트 에디터도 전문적인 개발 분야이듯.. 텍스트 뷰어만으로도 별개의 개발 분야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방대한 로그 파일 같은 건 이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열람해야 할 것이다.

3. 그래픽 에디터

(1) 요즘 세상에 2, 16, 256색 팔레트 기반의 이미지를 전문적으로 처리 가능한 그래픽 에디터가 살아 있기는 한가 모르겠다. 수요가 매우 드물어졌지만 그래도 전혀 없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나는 그런 일이 생기면 닥치고 Paint Shop Pro 구버전으로 고고씽 한다..;;

(2) 한편, 세상이 하도 많이 바뀌어서 손실 압축 코덱 기반의 통상적인 동영상이 gif 움짤보다도 더 가볍고 효율이 좋아지는 지경이 됐다. 전자는 jpg처럼 양자화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하고, 후자는 디더링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한다.
무손실 압축 기반으로 트루컬러가 지원되는 깔끔한 소규모 동영상 포맷이 등장하고 그게 Windows의 애니메이션 컨트롤 같은 데서도 지원됐으면 좋겠다. 일반적인 그래픽 툴로도 쉽게 만들 수 있고 말이다.

4. 파일 관리 셸

프로그래밍을 업으로 삼는 개발자 내지 파워 유저들은 갓 설치한 운영체제의 GUI 기반 파일 관리 셸에서 거의 공통으로 제일 먼저 설정을 변경하는 것이 있다. 바로 (1) 파일 목록에서 확장자까지 표시하도록 하고, (2) 숨김 파일도 나오게 하는 것이다.

  • Windows의 탐색기(Explorer): 예전에는 보기 옵션 대화상자를 꺼내고 번거로운 단계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Windows 8인가 10쯤부터는 '보기' 탭에 체크 옵션이 바로 표시되기 때문에 접근하기 편해졌다.
  • macOS의 Finder: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어디 설정 파일을 텍스트 에디터로 열어서 고쳐야 하지 싶다. GUI에서 이런 설정을 변경할 수 있지는 않다. 구체적인 방법은 검색해 보면 나올 것이다.
  • 리눅스: 셸 엔진이 무엇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GNOME, KDE??).. 리눅스는 역시 GUI 셸이라도 기본적으로 파일의 확장자가 꼬박꼬박 표시되고 있지 싶다.

이런 사소한 디테일도 세 운영체제의 정책이 서로 차이가 있는 셈이다.
컴퓨터의 내부 디테일을 모조리 파악하고 싶어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파일 확장자를 도대체 왜 숨기는지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아이콘은 확장자의 기능을 완벽하게 대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인이나 컴맹의 입장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쓸데없이 자세한 정보를 가능한 한 숨기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니 확장자나 숨김 파일을 취급하는 방식은 앞으로도 이렇게 옵션과 재량의 영역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5. 웹브라우저

요즘은 웹페이지 내부에서도 지도나 하드카피 문서(구글 도서 검색 같은..)를 조회하고 영역을 Ctrl+휠로 확대/축소할 수 있다.
그런데 똑같이 키보드 포커스를 주고 Ctrl+휠을 굴렸을 때 그 영역만이 확대/축소될 때가 있고, 아니면 웹페이지 전체가 확대/축소되어 버릴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정확한 패턴이나 조건은 아직 모르겠다. 사용하는 브라우저와 이용하는 사이트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케바케인 것 같다.

확대/축소에 이렇게 중의성이 발생한 게 참 웃긴데.. 사용자가 원하는 결과는 대부분의 경우 전자, 즉 그 영역만 확대/축소되는 것이다. 웹브라우저 내지 웹사이트를 개발할 때 이런 동작과 사용자 경험 쪽도 고려가 됐으면 좋겠다.

6. 요즘 Windows 10 근황

  • 언제부턴가 시작 메뉴와 작업 표시줄의 배경색이 Windows 10 특유의 검정이 아니라 밝은 회색으로 바뀐 컴퓨터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싸제 테마로 customize를 한 건지 궁금했는데.. 그건 아니고 버전 1903부터 밝은 색 테마가 정식으로 추가된 거라고 한다.
  • 집과 회사 컴퓨터를 몇 대 살펴보니.. xps/oxps 확장자가 자체 viewer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곳이 좀 눈에 띈다. 정작 xps/oxps 파일을 생성해 주는 가상 프린터 드라이버는 다들 기본으로 설치돼 있는데, viewer가 없거나 연결돼 있지 않은 게 말이 되는지..?? 어디 좀 착오가 있는 것 같다.
  • Windows 10이 나온 지 벌써 5년이 돼 간다. 대부분의 운영체제 설정 기능들이 데스크톱 UI인 제어판(Control Panel)에서 메트로 UI인 Settings로 갈아탔지만, 키보드의 반복 속도를 설정하는 기능은 아무리 눈 씻고 검색해도 없는 것 같다.
    Settings에는 키보드 설정과 입력 언어 설정이 별 구분 없이 뒤섞여 있으며, 제어판 한구석에 처박힌 구닥다리 제어판 애플릿을 꺼내야 변경 가능하다.
  • 그리고 내 경험상, 처음 사용하는 컴퓨터들은 마우스 포인터 뒷배경에 그림자 효과가 적용돼 있지 않은 것 같다. 왜 뺐는지..?? 이걸 지정하는 것도 Settings에는 없고, 제어판 애플릿을 따로 열어야 한다.

7. 스플래시 화면

덩치와 규모가 좀 있는 소프트웨어라면 실행되어 로딩 중일 때 일명 스플래시 화면이라는 게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얘는 표시하는 내용이 About 대화상자와 좀 겹치는 구석이 있지만(제품 명칭, 버전, 저작권자..), 그 대화상자보다는 화려한 그림의 비중이 더 크다.

뭐, 요즘은 정말로 어마어마하게 방대 거대해서 로딩 시간이 긴 프로그램이라든지, 10년 20년 전부터 화려한 스플래시 화면이 컨셉이요 전통이었던 프로그램이 아닌 이상, 굳이 스플래시 화면을 넣지는 않는 편이다. 그냥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자기 화면만 띄운다.
컴퓨터의 성능이 갈수록 좋아지면서 프로그램이 구동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충분히 짧아졌고, 또 요즘은 추세도 새 프로그램의 구동을 요란하게 알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설치 프로그램만 해도 화면 전체를 자기 창으로 꽉 채우고 파랑-검정 그러데이션을 띄우던 유행은 이미 20년도 더 전, 2000년대 초반쯤부터 없어졌고 간단한 마법사로 바뀌었다.
그리고 Windows 8쯤부터는 tada.wav 이래로 오랜 전통이던 운영체제의 시작 음향도 없어졌다. 이런 식이다.

옛날에 Windows 95 시절에는 딱 한 번, 워드패드도 실행될 때 스플래시 화면이 잠깐 나타나던 적이 있었다. 그 자그마한 프로그램에도 말이다.;; 물론 98과 그 이후부터는 싹 없어졌고 다시는 부활하지 않았다.
오늘날 마소 제품들 중에 Office나 Visual Studio 같은 건 실행될 때 스플래시 화면이 뜬다. 그런데 과거에 비해 중요한 변화가 생긴 게 있다.

옛날 버전들은 스플래시 화면에다가 마우스 포인터를 가져가면 모래시계 모양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Office는 2010부터, VS는 2012부터.. 마우스 포인터를 가져가도 모래시계가 아니라 일반 화살표 모양이 유지되며, 스플래시 화면을 마우스로 드래그 하면 그 화면을 딴 데로 이동시킬 수도 있다.

즉, 스플래시 화면에 대한 사용자 반응성을 더 개선한 것이다. 스플래시 화면이 들어갈 정도로 방대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분이라면 이런 면모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뭐, 본인이 개발하고 있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스플래시 화면이 필요할 정도로 방대한 프로그램이 전혀 아니기 때문에 해당사항이 없다.

8. ESC 또는 Alt+F4

Visual Studio는 '닷넷'으로 바뀌었던 200x 버전 시절부터 '시작 페이지'라는 것을 제공해 왔는데, 2019부터 이걸 그냥 대화상자로 대체했다. 그런데 이거 동작 방식이 꽤 재미있다.
대화상자를 ESC를 눌러서 닫으면 프로그램 실행이 계속 진행되어 정식 IDE 창이 뜬다. 하지만 대화상자를 Alt+F4 또는  [X] 버튼 클릭으로 종료하면.. 프로그램이 통째로 종료된다. 이 차이점을 눈치 챈 분 혹시 계시는가?

Windows에서 ESC와 Alt+F4는 차이점이 매우 미미하다. 대화상자를 '취소'로 닫을 수 있는 건 공통인데 후자는 전자의 상위 호환으로, 프로그램 main 창을 종료하고 시스템 종료까지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대화상자는 자신이 ESC로 닫혔는지 Alt+F4로 닫혔는지 같은 걸 일반적으로 분간할 수 없다. WM_CLOSE 내지 IDCANCEL 메시지가 오는 건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굳이 둘을 구분해서 동작한다니.. by design인 걸까?
지금 메모장에서 파일을 저장하지 않고 종료했을 때 나타나는 "....를 저장할까요?" 메시지 대화상자를 Alt+F4로 닫으면 ESC로 닫았을 때와 달리 저장 대화상자가 뜬다. 이는 메시지 대화상자가 MessageBox가 아닌 TaskDialog 기반으로 바뀐 10여 년 전 Windows Vista 때부터 생긴 버그인데, 아직까지도 여전하고 고쳐지지 않았다..;;

ESC와 Alt+F4의 동작이 다른 프로그램을 메모장 이후로 처음으로 하나 더 발견하게 됐다.

9. 버전 넘버링

마소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Windows, Office, Visual Studio 같은 제품을 버전업할 때마다 외형 비주얼도 그야말로 널뛰기 하듯이 바꾸는 게 유행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이제 어지간히 만들 것들은 다 만들었는지 그런 유행이 사실상 끝났다.

그리고 버전 번호도 옛날처럼 과감하게 성큼성큼 올라가지 않고 있다. 글쎄, 웹브라우저들은 크롬의 주도 하에 버전이 자비심 없이 막 올라가는 중이지만 마소 제품들은 그렇지 않다. 다음 사례들을 생각해 보라.

  • Windows: 잘 아시다시피 지난 2015년부터 주 버전 및 브랜드는 Windows 10으로 고정돼 버렸으며, 이제는 연도/월이 기재된 별도의 하위 버전만 올리고 있다. (그래도 서버 제품군의 경우, 2016에 이어 2019를 따로 내놓은 듯하던데.. 연도 기반 네이밍의 의미가 많이 퇴색했다.)
  • Office: 2016과 2019, 그리고 365까지 모두 16.x 버전으로 동일하다.
  • Visual Studio: 최신 2019는 버전 번호가 Office와 마찬가지로 16.x이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통용되는 _MSC_VER 값은 2015까지는 100씩 증가해서 1900에 도달했지만, 다음 2017은 1910, 2019는 1920이 되어서 10씩만 증가하고 있다.
  • .NET Framework: 10년 전인 2010년에 4.5가 나왔지만 10년째 4.x 버전을 졸업하지 않고 있다. Windows 10과 함께 4.6이 나왔고 최신 버전에서도 그냥 4.8대이다.
  • DirectX: Windows 10과 함께 버전 12.x가 나왔으며, 12라는 숫자가 앞으로 더 올라갈 것 같지는 않다.
  • Internet Explorer, Media Player: 얘들은 최소한의 보안 패치만 하지 후속 개발 자체가 중단된 레거시이다. 버전 역시 각각 11, 12에서 멈추고 봉인됐다.

지난 2~30년 동안 PC용 소프트웨어들은 기술이 하도 많이 발전하고 상향평준화하다 보니.. 그냥 무료 서비스 아니면 기간제 구독형으로 바뀌는 추세인 것 같다. 그래서 MS Office도 이제 20xx 같은 연도가 붙은 정규 릴리스 대신 슬슬 구독형을 밀고 있으며, Adobe의 비싼 그래픽 툴들도 진작에 구독형으로 바뀌었다.
Visual Studio는 기본적인 IDE와 컴파일러의 경우, 인디 개발자를 대상으로는 사실상 완전히 무료로 풀렸고, 일정 규모 이상의 인원을 갖춘 기업을 대상으로만 유료이다.

소프트웨어가 구독형으로 바뀌었으니 새 버전 출시와 업데이트도 예전보다 훨씬 더 자주 부담 없이 수시로 행해진다. 거창하게 서비스 팩이니 뭐니 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다. Visual Studio만 해도 예전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업데이트를 하라고 뜬다. 16.5.0 다음으로 16.5.1 같은 식..
이런 추세와 달리, 한 카피당 사용권 얼마 같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유료 소프트웨어를 end-user에게 판매하는 개발자· 개발사와 제품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아 있을지 궁금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0/08/14 08:35 2020/08/14 08:35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784

금융, 은행 이야기

1. 경제, 금융에 대해서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본인이 이 나이가 되도록 제일 관심이 없고 모르는 분야들 중 하나는 경제, 경영, 금융 쪽이다. 20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빚이 있는 건 무조건 나쁜 것이고 샤일록 같은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자는 무조건 나쁜놈이며, 돈이 돈을 버는 것도 다 잘못됐다는 식으로 꽤 고지식하게 생각해 왔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세상 물정을 알게 되면서, 약간 더 자본주의(?) 친화적으로 관점이 바뀌었다. 특히 정치 성향이 우파 쪽으로 가면서 경제 관점도 덩달아 우파 쪽으로 더 기운 것도 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서 국가 차원에서 그렇게도 저축을 강조했던 이유가 단순히 근검절약(?) 때문이 아니라, 자잘한 돈을 한데 모아서 국가 차원에서 기업에다가 투자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한참 나중에야 알게 됐다.

세상에 모든 고가 귀중품은 돈을 주고 보관을 맡겨야 하지만, 돈만은 받아서 맡은 사람이 맡긴 사람에게 오히려 이자 명목으로 돈을 주는 신기한 물건이다. 성경에 나오는 달란트/므나 비유에도 이런 원리가 담겨 있으며, 예수님도 이자를 받는 것 자체는 정당한 경제 활동이라고 인정하지 않으셨는가?

또한, 컴퓨터에 가상 메모리라는 게 존재하듯, 인간의 금융도 신용을 바탕으로, 지금 당장 실체가 없는 돈이라도 지금 여건이라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마련될 수 있다는 신용을 바탕으로 돌아가는 것의 비중이 크다. 물론 컴퓨터에 페이지 폴트와 프로세스 강제 종료라는 게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금융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 각 프로세스별 private 공간: 사유재산
  • 실제 메모리보다 더 많은 가상 메모리: 대출
  • 수표나 어음 거래: 현금에 대한 포인터. 함수에 call by value 대신 call by reference
  • 페이지 폴트: 부도
  • 무한 재귀호출로 인한 stack overflow: 빚을 빚으로 막는 돌려막기 신공, 일명 폰지(Ponzi) 사기

금융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건 단순 수학 실력하고도 영역이 좀 다를 것이다. 그게 동일하다면 수학의 무슨 난제를 풀어내고 필즈 상은 받은 천재들은 어디 투자도 왕창 잘하고 경제 흐름 예측도 잘해서 몽땅 억만장자이기도 할 테니까.. 물론 실제로 그것까지 잘하는 수학 괴수도 있지만 모든 수학 괴수가 그런 건 아니다.
또한, 금융은 돈을 다룬다는 점에서 회계와 비슷하지만 이와도 영역이 완전히 같지는 않을 것이다.

이 바닥으로 취업하면 일단 어지간한 대기업 이상으로 돈 자체는 왕창 많이 잘 벌 수 있다. 특히 말단 은행원 이상으로 전문직으로 들어가면 억대 연봉도 순식간이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까지는 아니어도 인간의 돈을 취급하고 더 나아가 경제 정책을 결정하는 일이 절대로 재미있지는 않다. 정말 꼼꼼해야 하고 실수가 없어야 한다. 경제 정책을 결정하는 일의 예를 들자면 올해의 금리나 환율을 정하고 화폐를 얼마나 찍어낼지 결정하는 것 따위이다. 아 이건 통화 정책에 더 가까운 건가?

모든 전문직들이 그렇듯이, 직원에게 아무 이유 없이 많은 연봉을 주는 게 아니다. 죽어라고 일 시키면서 뽕을 뽑으며, 월급값에 걸맞은 영업 실적도 요구한다. 은행의 경우, 초등학교 교사 정도면 퇴근할 만한 시간대가(4시~4시 반?) 이제 창구 셔터를 내리고 자기 업무를 보기 시작하는 시간대이다.

그리고 은행원은 자동차를 파는 게 아니라 자기네 금융 상품을 고객에게 팔아야 한다. 이것도 아마 말단 은행원의 통과의례인 것 같은데, 전화기 돌리면서 무슨 예금이나 보험 가입을 권유하고 멀쩡한 카드를 새 카드로 교체해 주겠다고 설득하는 거.. 난 돈을 아무리 많이 준대도 그런 일은 내 적성이 아니다..;; 못 하겠다.

2. 은행의 종류

병원이 동네 의원(3차), 그보다 더 큰 2차 병원, 그리고 제일 크고 비싼 1차 대학 병원으로 나뉘고 법원도 그와 유사한 지방· 대법원으로 구분되듯.. 은행도 몇 가지 종류와 계층으로 분류할 수 있다.

중앙 은행(0차..??)은 일반 end user를 상대하는 게 아니라 앞서 말했던 거시적인 경제· 통화 정책을 결정하는 은행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 은행'이 유일하다. 자주 벌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얘들은 다른 금융 기관이 망했을 때 필요하다면 돈줄을 수혈해서 살려주기도 한다.

얘는 도서관에다 비유하면 국영 중앙 도서관과 같으며(도서 대출이나 일반적인 열람실 기능은 없음), 법조계에다 비유하자면 그냥 큰 법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에 가깝다. 일반 민간인을 재판하는 게 아니라 다른 법이 헌법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험 업계에다 비유하자면 end user가 아니라 보험사가 또 자체적으로 가입하는 재보험 전문 회사하고도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하다.

그 뒤 일반적인 예금· 적금과 대출을 담당하는 상업 은행은 제1금융권이라고 불린다. 국민, 신한, 우리, 하나 같은 은행은 전국구의 민간 사립(?) 은행이다. 옛날에 외환 은행은 외국어 대학교의 은행 버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하나 은행과 합쳐졌구나..
기업 은행은 좀 국공립 같은 냄새가 나며, 심지어 국립 관공서인 우체국도 반쯤 예금과 대출 기능이 있다. 요즘 PC방은 식당처럼 바뀌어 가고 있고, 우체국은 전통적인 편지 배달만으로는 장사가 안 되니 택배와 은행에 양다리를 걸치는 것 같다.

민간 은행 중에는 저런 전국구뿐만 아니라 대구, 부산, 광주 같은 지역구도 있다. 전국구 은행보다 금리가 높다거나 해당 지역 주민에게 혜택이 더 큰 식으로 메리트가 있으니까 살아남는 게 아닐까?
물론 현실적으로 대다수 일반인들은 은행별로 개성과 장단점이 뚜렷해서 자기 취향에 맞는 은행을 고른다기보다는.. 그냥 회사에서 월급 지급용으로 거래하는 은행을 따라 선택의 여지 없이 계좌를 개설하는 비중이 더 클 것이다.

은행에서 하는 일은 다음과 같은 계층으로 나뉜다.

  • 집에서 인터넷뱅킹으로: 일상적인 계좌이체, 금융거래
  • ATM 기기로: 현금 입출금, 인뱅보다 더 큰 규모의 돈거래, 통장 정리
  • 은행 입출금 창구에서: 얼굴 대면이 필요할 정도로 초고액의 돈거래
  • 은행 종합 상담 창구에서: 통장 계좌 자체의 개설과 관리, 한도 변경, 금융상품 가입, 대출 상담 등 위의 계층에서 처리되지 않은 나머지 모든 복잡한 것들

그리고 은행은 대략 이런 식으로 시스템이 발전해 온 것 같다.

  • 198-90년대: 운영 시스템 전산화, ATM
  • 1990년대: 금융실명제, 신용카드, 대기 번호표
  • 2000년대: 인터넷 뱅킹
  • 2010년대: 모바일 뱅킹, 전자문서 (이 때문에 대규모 문서를 관리하던 인력이 많이 감축됐다고 함)

1루에서 한 계단 내려가면 제2금융권이 나오는데.. 얘들은 1루보다는 대출 조건이 덜 까다롭고 예금과 대출 모두 금리가 더 높다. 하지만 전반적인 자금 사정이 1루만치 좋지는 못하며, 낮은 확률로나마 망할 가능성도 더 높다.
새마을 금고, 상호 저축은행, 농-수-축협 같은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단, '-협'들은 자체적으로 지역구와 전국구로 나뉘어 있는데, 이들 간판을 건 전국구 은행은 오늘날 1금융권이다.

3. 은행 계좌의 익명성

스위스라는 나라는 오랫동안 세계 어느 진영의 편도 들지 않는 '중립국' 지위로 유명했는데, 고객의 익명성을 절대 보장하고, 세계 어느 나라에다가도 심지어 범죄 수사 협조 목적으로도 예금주에 대한 신상을 제공하지 않는 정책으로도 유명했다. 이 때문에 스위스 은행은 세계 각국의 악질 독재자와 범죄 조직이 검은 돈을 보관하는 은신처로 명성이 자자했다.

스위스 은행이라고 해서 물리적인 보안 시스템이 더 철저하다거나, 금리가 더 높다거나 한 건 절대 아니고 그냥 저 정치적 중립에다 가미된 익명성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어떤 경우에도 사용자의 대화 내용을 세계 각국 공권력에 제공하지 않는다는 익명 인스턴트 메신저--라인? 텔레그램?--와 비슷한 지위이다.

물론 스위스의 이런 정책은 세계 다른 나라들로부터 원성을 샀으며, 스위스 역시 이제는 무작정 혼자 독고다이로 놀지 않는다. 적어도 2010년대부터는 스위스 은행도 익명 보장 정책을 버렸으며, 검은 돈, 피 묻은 돈이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국제적인 범죄 수사에 협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옛날에는 롤스로이스가 사회 평판이 좋지 않은 졸부나 독재자에게는 돈이 아무리 많다 해도 차를 팔지 않았고 심지어 엘비스 프리슬리 같은 자국의 스타 연예인에게조차도 '천박한 딴따라'라는 이유로 판매를 거부했을 정도였다. 한때는 그 정도로 콧대가 높았는데... 이 역시 지금은 옛말이고 이제 차값만 지불하면 아무에게나 군소리 없이 차를 판다. 스위스 은행의 태도 변화도 이런 양상인 것 같다.

뭐 아무튼, 우리나라는 저런 지하 경제 검은 돈을 뿌리뽑기 위해 지난 1993년부터 잘 알다시피 금융실명제가 시행되어서 잘 정착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출도 아니고 신규 계좌 개설이 너무 까다롭고 어려워져 있다고 원성이 자자하다.

물론 특별한 대외 활동을 하는 게 아닌 이상(어디 모임에서 총무가 돼서 곗돈· 회비 관리 같은?) 한 사람이 불필요하게 은행 계좌를 너무 많이 갖고 있을 필요는 없다. 각각의 계좌는 은행 전산망의 메모리를 차지하고 미약하게나마 작업 오버헤드를 늘린다. 하지만 저게 무슨 오· 남용이나 범죄 가능성이 있어서 계좌 생성에 제약을 거는 것인지 난 잘 모르겠다.

은행 계좌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치면 마치 heap 핸들처럼 느껴진다. 어지간해서는 한 프로세스가 default heap만 갖고 놀아도 충분하지만, 적절한 작업 단위별로 새로운 heap을 생성하면 자잘한 메모리 할당을 많이 하더라도 메모리의 단편화를 방지할 수 있고 성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4. 투자 은행

은행에는 지금까지 거론했던 중앙 은행, 상업 은행 말고 투자 은행이라는 것도 있다. 얘네들은 이름이 투자증권, 금융투자, 증권 등등으로 끝난다. 외국계 투자 은행으로는 모건 스탠리, 골드만 삭스 같은 이름이 유명하다. 얘들은 통상적인 은행들이 돈을 불리는 것보다 더 과격한 high risk high return인 투자를 하면서 예금주의 돈을 불려 주고 자기도 그걸로 이윤을 챙기지만.. 반대로 말하면 투자를 잘못하면 원금을 까먹을 수도 있다.

이 정도면 반쯤 도박이나 마찬가지 같은데.. 그래도 요즘은 세계가 옛날처럼 경제가 폭발적으로 쭉쭉 성장하는 타이밍이 아니고, 일반 상업 은행에서의 일반적인 예금· 적금만으로는 금리가 너무 낮다. 그러니 이런 투기를 하는 금융기관이 존재하며, 사실 이런 것도 있어야 돈이 크게 돌아가고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건 내 적성은 아니다. 그런 곳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그런 기관을 이용하는 고객이나, 다 보통 인물은 아닌 것 같다.

투자 은행에 대해서는 나도 아는 게 거의 없어서 더 쓸 게 없다. 지난 2008년 미국 발 금융 위기도 이쪽에서 뭔가 삐끗해서 발생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더 나아가 1930년대의 미국 대공황은 어쩌다가 발생했는지, 무슨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발생했는지에 대해 관련 학자들마저 의견이 하나로 일치하지 않고 각자 성향별로 견해가 엇갈리는가 보다.

5. 사채

끝으로.. 소득 별로 없고 신용 등급이 낮아서 제2루, 제2금융권마저도 접근하지 못하는데 바닷물이라도 마시는 심정으로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 그들은 엄청나게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고라도 일명 사채라고 부르는 3루로 가게 된다. 하지만 사채를 끌어다 써서 급한 불을 끄고 빚도 갚아서 해피엔딩을 이룬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보증 서서 잘 되거나 도박으로 돈 따서 성공한 사람의 비율만큼만 있지 싶다.

정상적인 경제 관념을 지니고 분수껏 쓰는 사람이 제3금융권을 이용할 일이란 없는 게 정상이다. 집이나 차를 살 때처럼 통상적인 거금이 필요할 때 사채를 끌어들이는 건 난 상상이 잘 안 된다. 특히 자동차는 한 대라도 더 팔기 위해서 지금 당장은 돈을 아주 조금만 내고 빚을 가늘고 길게 찔끔찔끔 갚아 나가는 할부 제도가 자체적으로 굉장히 발달해 있다. 구매자가 굳이 사채를 동원하지 않아도 된다.

허나, 가족이 갑자기 큰 사고를 당하거나 큰 병에 걸렸을 때.. 그리고 좀 나이가 있는 사람은 자기 사업 하다가 당장 어음을 막아야 하고 직원 월급을 줘야 할 때처럼 일반인 정상인이라도 급전에 대한 수요 내지 유혹이 전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어 보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금은 양지에서 돈 좀 못 냈다고 해서 본인이나 자녀를 노예로 팔아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러니 그냥 그 시점에서 파산 선언, 상속 포기 등의 다른 방법으로 욕심을 내려놓고 작은 불이익을 감수하는 게 나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사채를 썼을 때야말로 본인이나 자녀가 신체적으로 해코지를 당할 확률이 수직 상승한다.

사채는 금리가 살인적으로 높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제때에 돈을 갚으려고 찾아가면 걔네들이 잠적해 버려서 채무자를 어떻게든 빚과 이자의 수렁으로 밀어넣었다고 한다.
글쎄, 요즘은 사채도 법의 통제를 받아서 일정 수준 이상의 이자는 못 받고 일정 수준 이상의 빚 독촉은 못 하게 바뀌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뒤끝이 있다.

한때 제3금융권을 이용했던 것만으로도 당사자의 신용 등급이 하락해서 다음부터는 다른 사람과 동등한 경제력으로도 1~2금융권 대출을 못 받고 계속 제3루만 맴돌게 된다는 것이다. 자동차 보험으로 치면 제3금융권 이용 이력이 무슨 대형 사고 이력처럼 취급되는가 보다.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어떤 사람이 만화를 그려서 설명한 바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물며 나라가 전반적으로 가난하던 시절에는 이렇게 횡행하는 사채가 정상적인 기업 활동도 못 하게 만들고 나라를 말아먹을 지경이었다. 과거에 박 정희 대통령의 유신 독재 목적에도 이런 사채를 강제로 손 보는 게 포함돼 있을 정도였다.

하다못해 어떤 연예인이 사채 광고에 얼굴을 비추는 것도 좋은 소리를 못 듣는다. "저 연예인 어지간히도 몰락했나 보군. 저런 데에까지 출연할 정도이면.." (환상의 똥꼬쑈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급으로..) 대외적으로 딱 이런 생각을 심어 주게 된다.

뭐 요즘은 사채업자만이 절대악인 건 물론 아니다. 채무자들 역시 마냥 불쌍하게 당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채권자를 역관광 태우고 해코지 하는 경우도 있다. ㄲㄲㄲ
그러니 이런 사람들과는 어떤 형태로든 돈 문제로 지저분하게 얽히지 않는 게 제일 좋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역시 답이 없고 쉽지 않은 문제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8/11 08:36 2020/08/11 08:36
, , , , ,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783

미국이 세계 대다수 나라들과 달리 일상생활에서 미터법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 거기에서 정착해서 살려면 인치, 마일, 화씨 같은 생소한 단위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런데 거기는 용지의 표준 크기도 A4가 아니다. 이런 것도 차이가 있을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냥 나의 단견이었다. 애초에 길이 단위계가 일치하지 않는 나라인데 용지의 표준 길이 역시 얼마든지 덩달아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미국에서 표준으로 쓰이는 용지 크기는 '레터'라고 해서 가로 21.59cm, 27.94cm이다. 인치로 환산하면 8.5 * 11로 딱 떨어진다. 210 * 297인 A4보다 가로는 약간 더 길고, 세로는 약간 더 짧다. 그 동네엔 레터의 자매품으로 '리갈 legal'이라고 폭은 동일한데 세로로 훨씬 더 긴 용지도 있다.
으음, 그러고 보니 본인은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도 대중적으로 쓰이는 종이 규격이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먼 옛날에는 전지부터 시작해서 'n절지'라는 명칭의 종이가 보편적이었다.
제일 큰 전지는 학교 미술 과제나 교회 수련회 과제로 뭔가 가족이나 조 단위의 글· 그림 컨텐츠를 만들 때 썼다. 2나 4절지는 프레젠테이션 프로젝터라는 게 없던 시절에 괘도라는 교보재를 만들 때 쓰이는 크기였다. 즉, 걔들은 개인이 휴대하는 인쇄· 출판물이 아니라 대중을 향한 전시· 게시용이었다.

8절지와 16절지 정도로 작은 게 휴대용 책이나 유인물 크기이다.
그런데 N절지라는 말은 '전지'라는 제일 큰 종이를 반반씩 접어서 N등분했다는 뜻일 뿐, 기준인 전지의 절대적인 크기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저때 8절지를 반으로 접은 16절지는 내 기억으로 지금의 A4 용지보다는 작았다. 저 규격의 정체는 무엇일까..??
1부터 16까지 2의 승수 단위로 쓰이는 게 많은 것이 마치 음악에서 음표· 쉼표의 크기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옛날에 공책, 연습장, 혹은 아무 제본도 안 돼 있는 쌩종이 갱지(?)는 오늘날의 A4용지만치 새하얗거나 두껍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 시험지나 신문지 급으로 누런색 회색이 대놓고 느껴질 정도의 저질인 것 역시 아니지만.. 어쨌든 낙서나 필기를 하는 용도로 그런 종이가 쓰였다. 거기에다 미술 활동을 위해서는 좀 더 두꺼운 도화지가 쓰였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컴퓨터와 프린터라는 걸 접하게 됐는데.. 그 시절에 프린터의 주류는 '찌이익~~' 시끄러운 소리로 악명 높던 도트 프린터였다.
이 도트 프린터는 동작 원리가 타자기의 연장선이나 다름없었다.
동작 전에 초기화 같은 건 일체 필요하지 않고(수력 발전과 비슷..??), 페이지라는 개념이 전혀 없이 오로지 줄(line)이라는 개념만 있을 뿐이었다.

그때 도트 프린터에는 80칼럼짜리 또는 132/136칼럼짜리라는 두 종류의 전용 용지가 쓰였다.
80칼럼은 그야말로 20세기 중반, IBM의 펀치 카드의 줄당 문자 수에서 유래되어서 TTY(전신 타자기)와 컴퓨터의 텍스트 모드에까지 계승된 매우 유서 깊은 규격이다.

80칼럼 용지는 폭이 24cm로 A4의 가로폭보다 더 크고, 양 옆에 세로로 일정 간격으로 원형의 구멍이 숭숭 뚫려서 프린터의 급지 트랙터에 걸리게 돼 있다.
그리고 용지가 세로로 길다랗게 이어진 형태이며, 사용자가 필요하면 구간 구분을 위해 주욱 뜯을 수 있다. 이 정도면 나름 실용적인 디자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80칼럼보다 폭이 더 큰 13x칼럼 용지도 세로의 구획 간격은 11인치(28cm)로, 80칼럼과 동일하며 미국 표준인 레터와도 동일하다.
라인 피드(다음 줄), 폼 피드(다음 페이지) 같은 명령이 제어 문자로 존재하며, 과거에 인쇄용 비트맵 폰트는 화면용과 달리 90도 transpose되어 있는 게 다 이런 기술 배경 때문이었다.
화면용 폰트는 각 글자를 상에서 하로 찍는 것을 좌에서 우로 진행해야 해서 좀 번거롭지만, 전치시킨 인쇄용 폰트는 한 방향으로만 쭈욱 찍으면 되기 때문이다.

본인은 이런 도트 프린터 용지 실물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요즘은 영수증 인쇄용으로도 도트 프린터 방식이 퇴출된 걸 보면 참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아직도 도트가 쓰이는 곳은 은행 ATM기의 통장 정리 기능밖에 없지 싶은데 이제는 종이 통장도 거의 퇴출 단계이니...
그렇게 도트가 한물 가고 1990년대 이후 잉크젯 프린터라는 걸 구경하면서부터 본인도 A4 용지라는 것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 같다.

그럼 다시 전지 얘기로 돌아온다.
A계열의 전지, 즉 A0은 종횡비가 sqrt(2):1이면서 넓이가 1제곱미터에 대응하는 크기라고 정의된다. 종횡비가 저렇게 잡힌 이유는 반으로 접어도 가로· 세로 축만 바뀐 채 종횡비가 재귀적으로 동일하게 유지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음악으로 치면 평균율처럼..??
숫자로 표현하면 841 * 1189밀리미터이며, A1~n은 저걸 반으로 쭉쭉 접은 물건들이다. 이게 국제 표준이며, 한국 역시 이를 따른다.

그에 비해 B계열 전지는 종횡비는 동일하게 sqrt(2):1이면서 넓이가 1.5제곱미터인 놈이다. 그래서 1030 * 1456에서 시작한다. B4는 257 * 364, B5는 182 * 257이 되며, B4가 시험지에 얼추 대응하는 크기이다.
요게 정석이지만.. 일각에는 폭을 1m, 길이를 1414로 맞춘.. 바리에이션 B도 있는 것 같다. 넓이가 아닌 길이에서 미터를 맞춘 셈이다. 톤이라는 무게 단위에 여러 바리에이션이 있고, 정보량 단위에도 1000/1024 바리에이션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끝으로, 크기가 A와 B의 얼추 중간인 C계열도 있다. 하지만 얘는 정확한 sqrt(2)라고 보기엔 오차가 좀 큰 것 같고, 길이나 넓이가 정확하게 둘의 중간이지도 않은 것 같고.. 존재의 목적과 의미가 뭔지 모르겠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실물로나, 용지 종류 목록에서나 한 번도 본 적 없다. 일단 C0의 크기는 917 * 1297이라는 것만 적어 둔다.

오늘날은 가정용으로도 컬러 레이저 프린터가 쓰일 정도로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기술이 많이 발전되고 대중화됐다. 하지만 A4보다 더 큰 B4 내지 A3 용지를 뽑는 프린터는 여전히 거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전문 인쇄소에 의지해야 한다. 이건 기술 문제가 아니라 그냥 수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도트 프린터 전용지를 포함해 국제 표준 ABC 용지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맨 먼저 언급했던 컴퓨터 이전의 전통적인(?) 종이는 일명 "4*6판 전지"라고 불리는 788 * 1090 크기를 기반으로 두고 있다. 얘는 sqrt(2) 종횡비가 아니며 그렇다고 6/4도 아니다. 어디서 무슨 근거에서 유래된 크기인지, 한국 말고 통용되는 곳이 더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스케치북이나 도화지 등 미술 쪽에 쓰이는 종이는 이 전지의 8절지이며, 이 규격은 책을 만드는 데도 쓰인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 작은 "국판"이라는 것도 있어서 국판 전지는 636 * 939이다. 종횡비는 그 어느 기존 규격과도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 것 같은데, 얘 역시 출처와 유래를 알 길이 없다. 얘 역시 "4*6판"과 더불어 책 만드는 용도로 주로 쓰인다.

지금까지 논의되었던 종이들의 크기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sqrt(2) 종횡비인 국제 표준 ABC를 나열하였다.

구분 A B C
0 841 * 1189 1030 * 1456 917 * 1298
1 594 * 841 728 * 1030 648 * 917
2 420 * 594 515 * 728 458 * 648
3 208 * 420 364 * 515 324 * 458
4 210 * 297 257 * 364 229 * 324
5 148 * 210 182 * 257 162 * 229
6 105 * 148 128 * 182 114 * 162

다음은 한국 재래식(?) 규격이다.

구분 4*6전지 국판
전지 788 * 1090 636 * 939
2절지 545 * 788 468 * 636
4절지 394 * 545 318 * 468
8절지 272 * 394 234 * 318
16절지 197 * 272 159 * 234
32절지 136 * 197 117 * 159

다음은 세로 길이가 11인치로 동일한 도트 프린터 및 미국 표준 규격이다..

종류 크기
도트 80 240 * 280
도트 132 380 * 280
레터 216 * 280

수많은 종이들을 한 치의 오차 없이 가로와 세로로 정확하게 잘라서 직사각형을 만드는 건 궤간을 정확하게 유지하면서 긴 철길 레일을 깔거나 차선을 그리는 것과 비슷한 일일 것 같다.

요즘이야 책 출판 시장은 인터넷에 밀려 많이 위축되고 침체된 게 사실이다. 특히 사전류는 치명타를 맞은 것 같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부류의 종이책은 모니터 화면이 대체할 수 없는 독서 접근성을 제공하며, 휘발성이 너무 강한 인터넷 텍스트보다 권위와 공신력이 훨씬 더 높다. ISBN 코드가 기재된 책은 인류 역사상 이런 저자와 이런 문헌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영원히 남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이책이 무슨 우체통이나 공중전화와 비슷한 급으로 명맥만 유지하는 레거시로 전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책의 외형이 필요 이상으로 사치스럽다는 비판이 있었다. 내용에 비해 쓸데없이 크고, 종이는 너무 크고 재질이 고급스럽고.. 재질이 고급스러워서 나쁠 것은 없지만 그게 다 책값의 불필요한 상승으로 이어지니 문제이다.

특히 옛날과 달리 '문고판'이라고 A5도 아닌 무려 A6.. 주머니에도 쏙 들어갈 정도의 작고 아담하고 저렴한 책이 전멸했다고 한다. 아무 이유 없이 없어진 건 아니고 아마 경제성이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소비자들이 내용이 아니라 비주얼을 보고 책을 고르는가 보다.

그에 반해 작은 걸 좋아하는 일본은 1980년대에 수많은 문고판 교양 서적들이 쏟아져나왔으며 내가 알기로 지금도 그러하다. 특히 과학 분야 말이다. 어릴 때부터 그런 양서를 접한 뒤에 나중에 위대한 과학자가 된 사람도 당연히 적지 않았을 테고..
한국의 출판인들은 그런 일본을 부러워하면서 그런 책들 판권을 사서 번역해서 비슷한 형태로 출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혹은 일각에서는 교통· 통신이 불편하던 시절이니 안 걸릴 거라고 믿고 무단 표절도 했다.

한자 때문에 글자 크기를 무작정 깨알같이 작게 줄이기도 어려웠을 텐데 어째 책을 그렇게 작게 만들 생각을 했나 모르겠다. 그나마 세로쓰기를 해서 공간을 확보한 거라는 의견도 있지만, 세로쓰기는 다른 단점도 크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종이의 크기 얘기를 하다가 책과 독서 문화.. 뭐 이런 사회 이슈 얘기까지 잠깐 논하게 됐는데.. 선진국 강대국은 출판 문화와 국민들의 독서 문화부터가 좀 남다르긴 해 보인다.

글이 좀 길어졌는데.. 우리는 종이의 크기와 종횡비, 텔레비전이나 모니터의 종횡비, 그리고 극장 스크린의 종횡비에는 다양한 역사적· 기술적 배경과 사연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다음으로, 종이의 종횡비의 연장선 차원에서.. 나라별 국기들의 종횡비에 대해 논하고서 글을 맺도록 하겠다.

지구에는 200여 개의 나라가 있고 나라에는 나라의 상징인 국기가 있다. 그런데 국기의 도안뿐만 아니라 화면의 가로 세로 종횡비도 생각보다 제각각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종횡비는 3:2이다. 태극기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의 국기도 이와 동일하다.
그 다음으로 흔한 건 2:1로, 당장 북한 인공기부터가 공식적으로는 저 비율이다.

이것들 말고 마이너한 종횡비로는..
4:3이 있고 완전 정사각형 1:1도 있다. 심지어 토고의 국기는 이런 데에서까지 쓸데없이 수학적인 걸 추구했는지 종횡비가 황금비(1.618..)이다..;; 지갑 속 신용카드의 종횡비와 같다는 뜻이다.
네팔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기 모양이 사각형 자체가 아니며, 세로가 가로보다 더 길기까지 하다. 다만, A4 용지라든가(루트2 :1) 와이드 화면 16:9 종횡비인 국기는 내가 들어 보지 못했다.

이런 국기 종횡비를 보고도 철도가 떠오르는 게 있다. 마치 국가별 철도 궤간의 차이를 보는 것 같다. 3:2가 이 바닥의 표준궤 1435mm와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국기의 종횡비쯤이야 철도 궤간이나 통행 방향, 전압처럼 산업 차원에서의 표준화가 필요한 분야는 전혀 아니니, 뭐 제각각 따로 놀아도 할 말은 없다. 자국 내에서 자기 국기만 게양할 때에야 자기 마음대로 아무 비율과 도안으로 게양하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여러 나라 국기들을 획일적인 종횡비로 한데 진열할 때도 있다.
그러니 보편적인 3:2나 2:1 정도의 종횡비에다 공간을 맞출 때는 내부 도안을 이런 식으로 보정· 재배치한다는 식의 통일 규격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20/07/29 08:35 2020/07/29 08:35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778

지성과 문명을 갖춘 인간 사회라면 어디건 전통이란 걸 만들고 자신의 족보와 역사 기록을 남겨서 후세에 전하는 걸 중요하게 여겨 왔다. 그래서 대한민국 이전의 조선만 해도 왕조 실록이라는 게 있고, 궁중 유물 중에는 왕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가 있다. 이걸 '어진'이라고 한다. '어명, 어용' 이럴 때의 御에다가 '진리, 사진' 할 때의 眞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조선의 태조 이 성계의 어진이다.
어진은 비록 사진은 아니지만, 여느 그림과 달리 최고존엄의 초상화인 만큼 국가 공인 최고의 화가를 최고의 보수를 주고 고용하고, 최고 품질의 종이와 물감과 도구를 동원해서 그린 것이다. 그만큼 과장 좀 보태면 "머리털 하나라도 그대로 가감 없이 사실적으로 그려 넣어라.. 안 그러면 죽는다" 급의 책임감이 부과되기도 했다.

그러니 어진은 호락호락 만만한 퀄리티가 아니며, 역사적인 가치도 그만큼 크다.
유대인 맛소라들이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까다로운 방식과 검증 시스템 하에서 성경 말씀을 필사했듯이, 그리고 조선 사서들이 "폐하께서 '이건 좀 실록에 기록하지 말고 우리끼리 하는 말로..'라고 말씀하시였다"까지 몽땅 다 실록에다가 옮겼듯이.. 어진도 그에 준하는 근성의 산물인 것이다.

아 물론 어진은 글이 아니라 그림인 관계로 무조건 사실적으로 그려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 얼굴 주인공의 취향이 반영된 뽀샵질도 들어간다거나..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만 가능하다.

실록을 기록하고 어진을 그리고 보관하는 것은 조선 이전의 고려도 했던 관행이다. 오히려 조선이 고려의 시스템을 그대로 이어받고 약간만 더 강화· 보완했을 뿐이다. 하지만 고려의 실록은 임진왜란 때 거의 다 소실돼 버렸고 이를 참조해서 조선 시대 때 따로 편찬된 역사 기록만이 전해진다.

그에 비해 조선은 기록의 끝판왕인 나라였고 이중 삼중으로 백업도 많이 한 것, 제일 최근에 멸망한 왕조인 것, 조선의 도읍 한양이 현재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로 그대로 계승된 것으로 인해.. 실록을 포함해 압도적으로 많은 역사 기록이 남아서 전해진다. 고종과 순종은 심지어 흑백이나마 얼굴 사진도 남아 있다. 그러고 보니 고종의 부친인 흥선대원군도 사진이 있으니 이 사람은 사진이 찍힌 가장 오래된 조선 정치인인 걸까?

그 유물들 중에서 조선 어진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기존 그림이 소실되고 다시 그려진 것이 있긴 하다. 이건 초상화라기보다 상상화에 더 가까워진다.
허나, 조선 시대 어진은 일제 시대와 6· 25를 거치면서 끈질기게 살아 남았다가 대한민국 초창기 시절의 참화 한 방에 상당수가 완전/부분 소실되어 버렸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왼쪽은 왕자 시절의 영조, 오른쪽은 조선 후기의 철종. 둘 다 왕복 차림은 아니다.)

이건 찢어진 게 아니라 불에 그을리고 탄 부분을 도려낸 것이다. 전부 1954년 12월, 부산 용두산 대화재의 상흔이다. 이 정도면 2008년 숭례문 방화 화재는 애교 수준이다.

6· 25 전쟁 때 서울을 빼앗기게 생기자.. 공무원들이 다른 돈다발이나 식량이나 군사 무기뿐만 아니라 이런 유물까지 챙겨서 열차에 싣고 부산으로 허겁지겁 피난 보낸 것 자체는 잘한 일이었다.
그런데 안 그래도 부산은 판자촌에서 대형 화재가 몇 번이나 나서 1953년엔 국제시장이고 부산 역이고 몽땅 태워먹을 정도였는데, 휴전 이후에도 이 사람들이 뭘 깜빡 했는지 유물들을 다시 서울로 옮길 생각을 1년 넘게 하지 않았다. 이 지역은 화재에 취약하고 언제 또 불이 날지 모르니 어서 창고를 정리해야 한다고 경고했던 소수의 사람이 있긴 했으나.. 그 경고는 묵살당했다.

그러다가 1954년 12월, 용두산 대화재 때 결국 재앙이 벌어지고 말았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 되지만 저 때는 촛불을 켜 놓고 자다가 화재 사고가 많이 났다. 용두산 대화재, 그리고 1977년 이리 역 폭발 사고의 원인이 바로 이것이었다.;;

불 자체가 문화재 창고에서 시작된 건 아니었으며, 불이 거기까지 번지기 전에 짐을 미리 뺄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어이없게도 창고 열쇠를 못 찾아서 그러지 못했다. 부서별로 "문교부: 야, 너한테 열쇠가 있는 거 아니었어?" / "구황실 재산 관리 총국: 아닌데? 그거 원래 너네 관할 아냐?" 하면서 우왕좌왕했다고 당시의 경향 신문 보도 자료가 남아 있다.

장비를 동원해서 창고를 부술 여건도 못 됐고.. 결국 창고가 통째로 불길에 휩싸이는 걸 사람들이 뻔히 지켜보면서 발만 동동 굴려야 했다고 한다.
맹렬한 불길 때문에 창고의 한쪽 벽면이 붕괴된 뒤에야 짐을 빼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빨간 옷은 순조, 아래는 문조, 정원군 원종..)

어진이 불에 탄 모양이 그로테스크하기 그지없다. 돌돌 말려 있는 상태에서 불이 붙어서 저렇게 된 것이다. 지폐가 불에 탄 모습을 비교 참고용으로 소개한다. 지폐도 단순 종이를 넘어 섬유에 가까운 튼튼한 재질로 만들어진다는 걸 생각해 보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당시에 창고에 어진 말고 무엇이 더 보관돼 있다가 소실됐는지조차도 파악이 제대로 못 되고 묻혔다. 그걸 기록해 놨던 문서가 1960년 6월, 다른 화재로 인해 소실됐기 때문이다.. -_-;;

일제 시대에 기존의 조선 황실은 일제로부터 귀족 정도 등급으로 대접 받았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다 해방 후 한반도에는 대한민국이라고 황실이나 귀족 신분을 인정하지 않는 민주 공화정 국가가 세워졌다. 기존 조선 황실은 아주 최소한의 기본적인 예우만 받을 뿐, 신분은 일반 평민 시민으로 모조리 조정되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들은 항일 독립 운동을 도운 것보다 일제로부터 떡고물 받으면서 그냥 편하게 산 비중이 훨씬 더 컸다. 그러니 해방 후에 대한민국 땅에서 옛 조선 황실 복원 떡밥 따위는 단 1도 거론되지 않고 싹 묻혀 버렸다. 이 사람들은 새 나라에서는 그 어떤 정치적인 목소리도 낼 수 없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그냥 찌그러져 있어야지..

조선 시대 궁궐을 비롯해 조선 황실의 재산도 깔끔하게 국가 소유로 넘어갔다. 그리고 나라에서는 건국 극초반부터 ‘구황실 재산 관리 총국’이라는 행정 기관을 설립해서 이것들의 수효와 규모를 파악하고 체계적으로 보관· 관리하려 했다. 그랬으나...

관리 조직 내부의 부정부패 비리로 인해 구황실 재산이 부동산과 동산을 가리지 않고 개인의 자산으로 야금야금 유출되기 시작했으며, 그 정황이 윗선에도 포착되었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제1공화국이 무너진 혼란 가운데에서도 암행어사 급의 외부 인사를 파견해서 모든 황실 재산이 잘 남아 있는지, 서류상의 목록과 실물이 일치하는지 전수조사를 지시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창경궁 안에 소재해 있던 구황실 재산 관리 총국 본사에 원인 모를 화재가 나서 관련 증빙 서류들이 소실돼 버렸다. 6년 전에 부산에 보관돼 있던 궁중유물 목록도 이때 사라졌다. 그래서 그때 구체적으로 무엇이 보관돼 있다가 소실되었는지조차 현재로서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

이 화재는 재산 유출 관련 비리가 탄로나지 못하게 하려고 내부 관계자가 저지른 방화일 가능성이 정황상 매우 높았다. 하지만 그때는 주변에 CCTV 같은 게 없고 행정이 전산화돼 있지도 않았고.. 이렇다 할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이 사건은 화재의 원인이나 범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미제 사건으로 흐지부지 묻혀 버렸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1년에 황실 재산 관리 총국은 폐지되고, 문화재 관리국이라는 상위 호환 조직으로 흡수되었다.

그럼 다시 어진 얘기로 돌아온다.
어진은 우측 상단에 그림의 주인공 내지 그림이 그려진 날짜 같은 식별 정보가 기록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른쪽이 소실된 어진은 얼굴이 남아 있더라도 누구의 얼굴인지 몰라서 애를 먹으며, 고고학자들이 각종 추리를 동원해서 어진의 정체를 추적한다. 파일로 치면 뒷부분의 데이터가 아니라 앞부분의 헤더를 날린 것과 비슷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손상된 원래 순종 어진(좌) vs 2014년경에 복원된 버전(우). 얘 정도면 우측의 헤더가 날아갔어도 주인을 식별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저 때는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페이스리프트(?)된 뒤이기 때문에 군주가 왕을 넘어 황제 취급을 받았다. 그래서 고종과 순종은 어진에 그려진 옷의 색깔부터가 노랗다.

비록 불의의 사고 때문에 수십, 수백 년째 전해지던 어진이 불에 타 버렸지만.. 요즘은 추가적인 사료 내지, 옛날에 어진을 흑백 사진으로라도 찍어 놨던 것 등 조금이라도 단서가 될 만한 건 몽땅 싹싹 긁어모아서 어진을 용케 복원하기도 한다.

하긴, (1) 어린 시절에 비무장 지대 안에 시뻘겋게 녹슨 채 버려진 증기 기관차라고만 사진으로 봤던 그 열차는 그럭저럭 녹 벗기는 복원 작업을 거쳐 임진각에 전시돼 있다. 지금은 복원을 했기 때문에 약간 짙은 갈색이지, 그 전엔 진짜 시뻘갰다.

(2) 어린 시절에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채 방치된 낡은 모습으로 봤던 순종 어차는.. 2000년대에 정교하게 복원 재도색 리마스터링을 해서 아주 반들반들 광택 나는 새 차처럼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그리고 (3) 1950년대에 만들어졌던 시발 자동차조차 실물은 다 소실되어 버려서 지금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건 레플리카뿐인데, 순종 어차는 오리지널 진품인지라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사례이다. 그러고 보니 이건 전부 교통수단들이구나..

뭐든지 기록이 보존되고 복원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가령, 수원 화성은 뻔히 후대에 재건된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그 기록이 너무 상세하게 고퀄로 잘 돼 있던 덕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됐을 정도이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등 따시고 배부르고 먹고 살 만하니까 그 다음으로 이런 문화재 복원 같은 정신적인 만족 분야에도 관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얘기했던 바와 같이, 실록이나 어진 같은 걸 만드는 방식, 기록과 보존 같은 개념은 성경 말씀의 기록과 보존과 관련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Posted by 사무엘

2020/07/23 08:34 2020/07/23 08:34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776

1. 독특한 윈도우 클래스

Windows의 GUI에는 버튼, 리스트박스, 에디트 컨트롤 등의 잘 알려진 제1군 컨트롤 윈도우들이 있고, 공용 컨트롤이라는 제2군 윈도우도 있다. 이런 것들은 누구나 널리 사용하라고 클래스 이름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Spy++로 들여다보면, 정식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런 클래스들이 공용으로 쓰이는 것 같다.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 NetUIHWND: MS Office 프로그램들, 그리고 심지어 워드패드와 그림판에서도 리본이 이 클래스 이름으로 만들어져 있다. 마소에서만 내부적으로 사용한다. (Visual C++의 MFC 확장판에서 제공되는 리본은 마소 오리지널이 아님)
  • DirectUIHWND: task dialog 내부, IE 브라우저의 탭, 탐색기 제어판에서 뭔가 웹페이지처럼 꾸며진 대화상자들에서 종종 쓰인다. 클래스 스타일에 CS_GLOBALCLASS도 버젓이 지정돼 있다. 마소 내부에서 사용하는 GUI 엔진 윈도우 같은데..
  • HwndWrapper[모듈이름;;GUID]: 닷넷이나 WPF처럼 통상적인 Windows API나 기성 컨트롤이 아닌 다른 프레임워크를 이용해서 GUI를 꾸미는 프로그램 같다. 내가 아는 프로그램 중에는 Visual Studio 2010과 그 이후 버전, 그리고 아래아한글(+ 타 오피스 제품 포함) 요 두 프로그램만이 이런 스타일이다.

2. 파일 및 디렉터리의 삭제, 디스크 제거

Windows는 프로그램을 memory-mapped file 형태로 불러온다는 특성으로 인해.. 실행 중인 프로그램을 삭제할 수 없다. 그래서 실행 중인 프로그램을 제거하거나 업데이트 하는 것도 좀 어려운 편이다.
실행 중인 프로그램 파일을 '개명'하는 건 가능하다. 여기서 개명이란 같은 드라이브 안에서의 디렉터리 이동도 포함한다.

이런 Windows와 달리 macOS나 리눅스는 실행 중인 프로그램 파일을 삭제할 수 있다.
허나, 실행 중인 프로그램의 current directory를 당장 삭제할 수 있는 운영체제는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없다. 삭제 예약만 해 놓은 뒤, 프로그램이 종료되거나 디렉터리가 딴 데로 바뀌었을 때 삭제되는 게 그나마 제일 관대한 처분이다.

프로세스의 current directory는 USB 메모리를 안전하게 제거할 수 없다고 운영체제가 꼬장 부리면서 사용자를 귀찮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특히 Windows의 경우, 파일 열기/저장 공용 대화상자를 열어서 USB  메모리를 조회하면 해당 프로그램의 current directory도 거기로 바뀌기 때문에 대화상자를 닫은 뒤에도 저런 꼬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뭐, 사용자가 USB 메모리를 물리적으로 강제로 제거해 버리는 것에는 장사 없다. 과거의 디스켓이나 광학 드라이브도 매체를 강제로 꺼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발생하면 운영체제의 관점에서는 current directory가 갑자기 없어지는 것이나 다름없고, 거기에 파일이 열려 있던 것들도 다 꼬여 버린다. 프로세스가 아닌 스레드를 강제 종료하는 것만큼이나 좋지 않은 현상이다.
디스크 내용을 날리고 싶지 않으면 사용자도 가능한 한 그런 짓은 하지 않는 게 좋다.

3. Windows의 런타임 환경

Windows에서 전통적인 API 기반의 네이티브 코드 데스크톱 프로그램 말고 선보였던 프로그램 실행 환경으로는..
먼저 2000년대(XP..)엔 .NET이란 게 있었다. 얘는 네이티브가 아니라 가상 머신에서 돌아갔고, 언어도 C#가 주류였다. C++에는 C++/CLI라는 변종 언어가 도입됐다.
그 뒤 2010년대(8..)엔 메트로 UI와 함께 C++/CX라는 변종 언어가 도입됐다. 얘는 데스크톱 환경은 아니지만 의외로 네이티브 코드 기반이었다.

.NET이 표방했던 것이 언어의 통합이라면, Windows 8이 표방했던 것은 기기(PC와 모바일?)의 통합이었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시작 버튼을 없애는 초강수까지 뒀었다.
그러나 Windows 8은 망했으며, 결정적으로 Windows Phone/Mobile도 안드로이드와 iOS에 완전히 밀렸다. 이젠 마소에서도 그쪽 사업을 접었다. 그 대신 Windows 10은 ARM용이 정식으로 출시되어서 그 CPU에서 네이티브 데스크톱 앱을 그대로 돌릴 수 있게 됐다.

그럼 이 와중에 메트로 앱을 돌리는 Windows Runtime이라는 건 무슨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되는지 난 궁금하다. 답을 잘 모르겠다.
그냥 데스크톱 앱보다 글자 큼직하고 시각적으로 flat하고, 안드로이드 용어로 치자면 material design스러운 외형을 제공하는 GUI 엔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 보이는데..??
쉽게 말해 기존 공용 컨트롤이 '제어판'을 가동한다면 이 UI 엔진은 '설정'을 가동한다는 것이다.

마소에서 새로운 걸 시도한 것이 언제나 다 성공적이고 오래 유지된 건 아니었던 듯하다.
그래서 GDI+는 닷넷 시절에 잠깐 뜨다가 Direct2D 부류로 대체됐고, 오히려 운영체제의 근간으로서 넘사벽급의 짬밥을 자랑하는 재래식 GDI보다도 존재감이 없어졌다.
Edge 브라우저는 잘 알다시피 재개발되어서 사실상 크롬과 다를 바 없는 브라우저가 됐다. 마소의 지난 20여 년의 개발 트렌드를 회고해 보니 이런 분석과 결론이 나온다.

4. 이모지, 날개셋 입력 패드

Windows 10의 1803버전쯤부터는 win+.을 눌러서 이모지 문자표를 꺼내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에서는 지난 9.81 버전부터 자체적으로 이모지 문자표가 추가되었다. 그럼 이건 언뜻 보기에는 기능 중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꼭 그렇지 않다.

운영체제의 이모지 문자표는 마우스로 딴 델 클릭하기만 해도 사라져 버리는 반면, 날개셋의 입력 도구는 그렇지 않다. 더구나 결정적으로 이 문자표는 날개셋 편집기에서 자체 입력기를 지정해 놓았을 때는 사용할 수 없다.
그리고 내 프로그램에서는 선택된 이모지를 복사하기, 그리고 cursor가 가리키는 이모지를 문자표에서 찾아서 역으로 표시하기 같은 기능도 갖추고 있다.

예전에도 언급했듯, 2018~19년에 걸쳐 추가된 ‘필기 인식’과 ‘이모지’는 날개셋의 고유 기능이 아니라 운영체제가 제공하는 기능을 자체적인 UI 껍데기를 씌워서 제공하는 대표적인 입력 도구이다. Full feature를 갖춘 한글 IME로서 저런 기능도 한 프로그램 내부에서 제공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뭐 그건 그런데.. 운영체제에서 기본 제공하는 이모지 문자표는 응용 프로그램에다가 어떤 방식으로 이모지 문자를 보내는 걸까? 그게 갑자기 궁금해졌다. 쟤는 기술적으로는 ‘날개셋 입력 패드’과 비슷하게 훅킹을 사용해서 IME 메시지를 보낼 것 같은데..

프로그램이 TSF를 감지하는지 여부를 따져서 지원하면 TSF 방식으로 문자를 보내고, 그렇지 않으면 기존의 IME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IME 메시지만을 사용하는 날개셋 입력 패드보다 더 고차원적이다. 사실, TSF를 지원해야만 메트로 앱에서도 이모지를 입력할 수 있을 것이다.

날개셋 입력 패드를 처음 개발하던 시절에 본인도 개인적으로는 TSF 방식을 뚫어 볼까 생각을 했었다. 이게 성공하면 외부 모듈뿐만 아니라 입력 패드도 편집기와 비슷하게 주변 문자를 자유자재로 변형하면서 신기한 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외부 모듈 하나만 개발해 봐도 내 경험상 TSF는 기술 난이도가 헬이고 응용 프로그램별로 제멋대로 동작하는 구현의 파편화가 너무 심하다. 더구나 그 TSF의 혜택을 보는 프로그램은 매우 소수이며, 편집기와 외부 모듈 다음으로 입력 패드 자체도 사용 빈도가 매우 낮은 제3군의 실험적인 유틸일 뿐이다.

그렇게 TSF를 뚫어 봤자 훅킹은 어차피 메트로 앱에서는 통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 단계에서 막히니..
시간과 노력 대비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어서 그 이상의 연구는 포기했다. 입력 패드는 write-only인 IME 프로토콜만 사용하는 데스크톱 앱 전용 프로그램으로 굳어져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5. 유니코드 5.2 자모

아시다시피 지난 10여 년 전에 KS X 1026-1 및 유니코드 5.2에서 옛한글 자모가 여럿 추가되었다.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연속된 공간을 쭉 확보하지 못하고 덕지덕지 지저분하게 추가되었지만, 그래도 잘 살펴보면 프로그래머의 관점에서 복잡함과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추가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답부터 말하면, 어떤 글자가 한글 초성인지 중성인지 종성인지 판별하기 위해 과거(유니코드 1.1)에는 A<=X<=B라는 영역 검사 하나만이 필요했다. 이제는 그래도 그 영역 검사가 각 성분별로 하나씩만 더 추가되면 된다.

  • 초성은 U+1100부터 1159까지 하던 영역에서 끝부분을 115E로 늘린 뒤(5개 추가), A960부터 A97C라는 새로운 영역 한 곳만 더 살펴보면 된다.
  • 중성은 U+1160부터 11A2까지 하던 영역에서 끝부분을 11A7로 늘린 뒤(5개 추가), D7B0부터 D7C6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더 살펴보면 된다.
  • 종성도 그런 식으로 기존 영역을 조금 확장하고 나서 새로운 영역을 더 살펴보면 된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KS X 1026-1은 종성에 ㅇ으로 시작하는 겹받침(ㅇㄱ, ㅇㄲ, ㅇㅇ, ㅇㅋ)을 그냥 이응이 아닌 옛이응으로 수정한 규격(잠수함 패치..)이기도 하다.

그리고 KS X 1026-2는 정규화 규칙을 추가로 규정해서 현대 한글을 옛한글 자모의 조합으로 표현하는 것을 금지하고, 현대 한글 글자마디와 옛한글 자모가 합성되는 것도 명시적으로 금지했다. 한 한글은 오직 한 가지 방식으로만 표현되게 했다.
Windows는 2012년에 나온 8부터 저게 반영됐고, 날개셋 편집기에서는 지난 2015년에 나온 8.0 버전에서야 반영됐다. 저 표준을 제정한 분과 개인적으로 얘기까지 나누며 설명을 들은 뒤에야 말이다. 엇, 그러고 보니 둘 다 8부터네?!?

유니코드 2.0에서 한글 글자마디 11172자를 따 온 건 예전에 서울 올림픽 유치 성공만큼이나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쾌거였다. 현대 한글이 그렇게 정립된 뒤에 옛한글도 저렇게 됨으로써 한글 코드 논란은 완전히 종식됐다.

그 뒤로 유니코드 자체도 2003년쯤이던가 4.0에서 U+10FFFF라는 상한을 명확하게 정하고, 이 이상 글자를 더 등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 이상은 UTF-16으로는 더 표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UTF-8도 4바이트 방식까지만 사용하고 5~6바이트 방식은 봉인했다.

따라서 현재 유니코드에 정의된 모든 평면이 고갈되고 글자들로 꽉 차는 날이 온다면.. 유니코드 위원회는 해산될 것이다. 지금의 문자 코드 체계는 지구와 현 인류 문명이 송두리째 멸망하지 않는 한 쭉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0/07/14 19:32 2020/07/14 19:32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773

5. 항공모함

군대라는 게 작전 방식의 특수성과 차이로 인해 육해공 3군으로 나뉘곤 한다. 하지만 타 영역을 살짝 걸치는 병과도 조금씩 존재한다.
가령, 해병대는 육군과 해군의 조합처럼 보인다. 법적으로는 해군에 소속돼 있고 병도 지원자만 받지만.. 병의 의무 복무 기간은 육군과 동일하다. (우리나라 기준)
그리고 육군에서도 헬기 정도는 육군 항공대 명목으로 운용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 것처럼 항공모함은 바다 위의 공군 기지이니 해군과 공군의 조합 같다. 항공모함은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92~30년대 전간기 때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존재 가능성과 필요성이 논의되었으며.. 덕분에 2차 대전의 태평양 전쟁에서 제대로 활약하게 되었다.

항공모함은 그 특성상 덩치가 정말 거대하며, 건조 비용이 억소리 나게 비싸고 운영하는 비용도 나라 등골 브레이커 수준이다. 하지만 이게 있으면 망망대해에서 전투기를 출격시켜서 억만 리 타지에서 깜짝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잠수함이 몰래 쏘는 어뢰하고는 다른 차원으로 전투력의 레벨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옛날에 타이타닉 여객선은 내부에 별 시설이 다 있는 그냥 작은 도시, 작은 사회나 마찬가지였는데.. 오늘날은 대형 항공모함이 그러하다. 천조국의 기상이 깃든 니미츠 급을 예로 들면, 수천 명이 먼 바다에 나가서 오랫동안 근무하는 곳이니 안에 수영장도 있고 극장도 있고.. 내부에 별도의 번지수 주소가 있고 우편번호가 할당돼 있다. 항공모함 안에서 길을 잃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안에서 잘 짱박혀서 탈영하는 것조차도 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작은 도시 안에 작은 원자력 발전소도 없으란 법이 없으니.. 이런 거대한 항공모함은 무식한 디젤 엔진 대신 원자력으로 움직인다.
다만, 항공모함은 배로서는 그렇게 거대함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지상 공항에 비할 바는 못 되니.. 활주로의 길이가 부족하고 환경이 열악한 관계로 아무 군용기나 다 띄우지는 못한다. 그 항공모함의 규격에 맞게 제작된 함재기만이 이· 착함 가능하다. 이함할 때는 양력을 얻는 데 도움이 되라고 모선도 전속력으로 같이 전진해 주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재기가 항공모함의 활주로를 벗어나서 뜨는 걸 보면, 잠시 배 밑으로 추락하는 듯하다가 아슬아슬하게 다시 붕~ 뜨는 게 다반사이고.. 아예 못 뜨고 바다에 떨어지는 사고도 종종 난다. 배의 앞부분의 수면에 추락한 함재기는 같이 전진하던 모선과 부딪혀서 으스러진다.

함재기가 임무를 마치고 착함하는 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이다. 아니, 착함이 더 어렵다.
한 직후에도 활주로를 오버런해서 도로 바다로 빠지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배와 함재기가 힘을 합쳐서 필사적으로 감속을 해야 한다. 이 정도면 공군과는 약간 다른 방식의 노하우가 필요해 보인다.

글쎄, 소말리아 해적이나 알 카에다, ISIL 같은 조무래기(?)들을 토벌하는 데 딱히 항공모함이 투입된 것 같지는 않은데 앞으로 태평양 전쟁 시즌 2 같은 사건이 벌어질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실, 그 옛날의 2차 대전 중에도 선진국들의 군 수뇌부와 군수업체에서는 선박이 아니라 잠수함이나 타 수송기를 기반으로 하는 항공모함(?)까지 구상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그건 너무 무리수이니 실현되지는 않았다. 오늘날 기준으로는 잠수함에서 그냥 미사일만 쏘면 되지 굳이 인터셉터를 날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동차 캐리어도 아니고 비행기 캐리어는.. 아직은 스타크래프트 캐리어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프로토스는 우주 항공모함을 굴리고, 테란은 우주 전함을 굴린다니.. 흥미롭다.

6. 아이스크림

천조국은 무려 1940년대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저 멀리 태평양 전장에 가 있는 병사들한테까지 아이스크림을 보급으로 챙겨 줄 수 있던 유일한 나라였다. 아이스크림 제조 공장선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은 병사들의 사기에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줬으며, 다른 유럽군에서도 이걸 부러워했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투기와 전함을 팍팍 찍어내고 원자폭탄 만들어 내고 적군의 암호를 몽땅 해독했다는 얘기뿐만 아니라 저런 소소한 병사 복지마저도.. 정~~말 대단하고 경악스럽지다. 천조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몇십 년 더 앞서 갔다.

7. 인종 차별

1941년 말의 진주만 공습 때 '도리스 밀러'(1919-1943)라는 한 흑인 병사는.. 기습을 당해 죽거나 다친 사수들을 대신하여 즉석에서 전함에 비치된 대공용 중기관총을 조종하며 용감하게 응사했다. 심지어 일본 적기를 격추시키기까지 했다.

이게 대단한 이유는.. 저 사람은 취사병이었고, 지금까지 총 쏘는 훈련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었는데도 저 정도의 무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마이클 베이의 "진주만"(2001) 영화에도 이 장면이 괜히 들어간 게 아니다.
마치 <15소년 표류기> 소설에서 흑인 견습 선원인 모코가 요리사 일을 하고 있다가 끝부분에서 침입자 악당을 대포 한 방에 때려잡는 장면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병사들에게 아이스크림까지 나눠 주던 천하의 천조국도 1940년대에는 아직 인종 차별이 지금보다 훨씬 더 심하게 존재했다. 군대에서 흑인과 백인은 훈련을 따로 받았으며, 흑인 병사는 감히 전함의 기관총 사수 같은 보직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랬는데 도리스 밀러와 같은 사례가 생기면서 그런 유리천장은 차츰 없어지게 됐다. 그는 명예 훈장까지는 아니지만 해군 십자장을 받았고.. 올해 초엔 미국에서 새로 취역한 핵 항공모함에 이름도 붙었다.

6· 25 사변을 거친 뒤 베트남전 타이밍이 되자, 미군에서는 흑인이 백인 신병을 가르치는 훈련소 교관도 맡으며(검프! 입대한 동기가 무엇인가!! 네놈 IQ는 160은 되는가 보다!).. 풀 메탈 자켓에서는 교관이 대놓고 "나는 검둥이건 유대인이건 집시건 아무 차별 안 한다. 여기서는 네놈들은 다 똑같이 쓸모없기 때문이지!"라고 능력 위주의 평등을 표방한다. 그 정도로 분위기와 방침이 바뀌었다.

1970년대 말에 중국에서는 마오 쩌둥이 '흑묘백묘' 운운하면서 "고양이는 색깔 불문하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라는 논리를 펴는 지경이 되었다. 이건 공산주의건 자본주의건 경제만 살릴 수 있다면 체제를 가리지 않겠다는 실용주의를 표방한 말이었다.
미국은 체제는 이미 건전하니까 걱정할 필요 없고, 인종에 대해서 '흑묘백묘'가 아니라 아예 '흑인백인 인종무관' 실용주의가 나중에 등장하게 된 듯하다. "흰둥이건 검둥이건 적군만 잘 잡으면 된다"라고..

8. 대테러부대

경찰과 군대에는 정규전(경찰은 일반적인 시위 진압이나 범죄자 검거. 군인은 일반적인 야전 전투)을 수행하는 대다수의 일반적인 경력· 병력이 있는 한편으로, 뭔가 마이너하고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서도 있다.
가령, 일반 경찰이 담당하기에는 어려운 규모의 무장 테러리스트를 잡는 부대 말이다. 이런 애들을 잡기 위해서 무슨 탱크나 대포나 전투기를 동원할 필요는 없음이 명확하다.

이럴 때는 이런 임무를 위해 시꺼먼 복장을 하고 별도의 훈련을 받은 경찰 내지 군대 소속의 대테러부대가 투입된다. 이런 부대는 정체성이 경찰과 군대 어느 것에 딱 정확하게 떨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아예 대놓고 특전사나 UDT 같은 급도 아니기 때문이다. 경찰특공대, 미국 SWAT.. 그런 쪽이다. (뭐, 그렇다고 군 특전사에서도 대테러임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대테러부대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생각만치 오래되지 않았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독일(서독) 정부가 괜히 허둥대고 삽질한 게 아니었으며, 인질들이 전원 죽는 비극이 괜히 벌어진 게 아니었다. 법적 문제 때문에 정규군을 함부로 투입할 수 없었으며, 반대로 독일 경찰은 이런 상황에 대한 대처 매뉴얼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북괴의 연이은 테러에 이골이 나 있던 한국 같은 나라나 극도의 통제된 분위기 하에서 치안이 덤으로 갖춰지는 정도에 불과했다.

경찰 소속의 대테러부대는 무력만 강화한 '경찰'이기 때문에 자국민을 최대한 보호해야 하고, 악당들도 사살보다는 생포하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나 작전 지역이 국내가 아니거나 악당이 수가 많고 화력이 강하거나.. 아예 자국민이 아니다거나 하면 이들을 상대하는 공권력도 경찰이 아닌 군대 소속으로 바뀌게 된다.

참고로 지난 2009년 용산 철거 현장 참사 때 시위 진압을 위해 투입됐다가 순직한 사람들은 경찰특공대 소속이었다. 시위대가 무슨 전문적인 무장 테러리스트는 아니고, 그렇다고 통상적인 시위 현장 같은 전투경찰을 투입하기에는 장소가 위험하니 경찰특공대가 적절한 대응이었지만.. 그래도 안타깝게도 화재로 인한 희생자가 발생했다.

9. 토크멘터리 전쟁사

개인적으로 유튜브에서 연재되었던 토크멘터리 전쟁사 시리즈를 재미있게 봐 왔다.
국방부에서 유치한 애국심(?) 고취용으로 오글거리는 어용 관제 군대 홍보물만 만들 줄 알았더니 의외로 이런 재미있고 유익하고 수준 높고 건전한 교양 프로도 만들어 왔다. 그런데 왜 갑자기 종영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배후 음모 없이 정말로 단순한 소재 고갈 때문일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놈의 친중종북 좌익 빨갱이 정권의 마음에 안 드는 너무 건전한 애국 메시지 때문에 짤린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6/17 08:35 2020/06/17 08:35
,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763

1. 옛날 냉병기 시절

옛날에 총(개인 화기)이라는 게 아직 없어서 전쟁터에서 갑옷 입고 투구 쓰고 냉병기로 적군을 직접 때리고 베고 찔러 죽이던 시절에는 군인과 무인의 차이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 지금은 총검술 같은 부류가 제식처럼 거의 보여주기 스킬 아니면 특전사· 공작원의 영역에 머물고 있지만 그때는 그게 지금 군인의 사격술이나 수류탄과 동급으로 군인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스킬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손가락 하나 방아쇠에 걸어서 까딱하는 것만으로 적군을 죽일 수 있는 마법 같은 도구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열을 갖춰 적진을 향해 용맹스럽게 닥치고 돌격하는 게 매우 중요했다. 화살..?? 정도는 그래도 갑옷과 방패로 그럭저럭 막을 수 있고, 기관총 참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때는 기예의 달인이 벌이는 일당백의 비중이 컸으며 그게 군대의 사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의 관점에서야 무모한 개죽음처럼 보이지만, 신라 시대에 괜히 '관창' 같은 화랑을 혼자 희생시킨 게 아니었다.
심지어는 개떼같이 다 나와서 싸울 필요 없이, 각 진영의 대표 장수가 나와서 일대일로 결투를 벌인 결과만으로 전투의 승부를 가르는 일도 있었다.

성경에는 다윗과 골리앗 대결이 아주 유명한 예이다.
옛날에 "태조 왕 건" 드라마에서도 신라 박 술희와 후백제 애술의 결투씬이 시대적 배경과 이유가 있어서 들어간 셈이다.
그러니 영화 "봉오동 전투"도 총격전에다가 일대일 검술 대결을 어설프게 흉내 내서 집어넣었던데.. 저건 배경이 무려 20세기 근현대이니 현실성이 없다.

중일 전쟁 때 일본이 저지른 전쟁 범죄 중에 "100인 참수 경쟁"이란 게 있었다. 그게 일본군이 무슨 중세 판타지 급의 백병전을 벌여서 무장한 적군을 칼 한 자루만으로 순삭한 것이라면 아주 용맹스러운 무공이겠지만.. 실제로는 힘없는 민간인과 포로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한 것이니 그냥 범죄이고 상 또라이 싸이코 같은 짓일 뿐이었다. 심지어 신문 기사를 썼던 기자조차도 "엥..? 적군을 죽인 게 아니었어요?" 얘기를 나중에 듣고는 기겁했었다고 한다. (목적어 생략.. -_-)

자, 저런 낭만(?)이 있던 옛날과 달리..
지금이야 총기 화기의 성능이 워낙 좋기 때문에 그 어떤 체격 좋고 두꺼운 갑옷을 입은 병사라도 총에 맞으면 그대로 쓰러지고 죽는다. 소총탄을 막을 정도로 무겁고 두꺼운 장갑은 기계류에나 장착할 수 있지, 그걸 사람이 걸쳤다면 제대로 활동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오늘날 전쟁터에서 사격이 시작되면 제아무리 용맹한 군인이라도 일단은 닥치고 엎드리고 엄폐하고 숨어야 한다. 이것이 냉병기 시절과의 큰 차이점이다.
또한, 지금은 병사들과 같이 "돌격 앞으로~!"라고 외치고 뛰어드는 건 소대장 수준의 초급 장교의 몫이지, 더 높으신 분들이 야전에서 병사들을 직접 지휘하지는 않는다. 최고위 장수 장군 내지 아예 왕이 솔선수범해서 말 타고 앞장서서 돌격하던 옛날과는 많이 다르다.

오늘날 무인과 군인은 화가와 사진가만큼이나 영역이 달라져 있다.
사진 찍사는 무슨 붓이나 연필이나 물감을 능숙하게 다룰 필요는 없으며, 반대로 카메라의 기본 개념과 사용법을 잘 숙지해야 한다(소총 분해와 조립, 조준 따위).
하지만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는 색깔과 공간 배분· 구도에 대한 감이 여전히 필요하니, 사진가도 미술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무인과 군인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라라 크로프트와 빛의 수호자" 게임의 컷씬에서 라라가 몇천 년 전의 옛날 장수인 '톨텍'에게 소총 사용법을 가르치는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저 장면에서 톨텍은 총열이 무슨 칼날이고, 개머리판 부분이 손잡이인 것처럼 생각했나 보다. ㅎㅎ

2. 근현대의 주요 전쟁사

19세기

  • 크림 전쟁: 나이팅게일, 최초의 종군기자와 전장 사진
  • 남북전쟁: 국제전이 아니라 일개 나라 안 내전에 불과했지만.. 천조국은 내전 하나도 유럽을 능가하는 당대 최첨단을 달리는 수준으로 치렀다.
    • 후미장전식 총기가 등장하면서 머스킷 전열보병 전술이 몰락하고 개인 각개전투 전술이 등장. 저격수도 등장.
    • 엄폐가 중요해지면서 예복과 전투복의 구분이 생김. 전투복은 100년 전 독립전쟁 시절보다 훨씬 더 저채도의 칙칙한 색상으로 바뀜
    • 병사들의 모자 크기(?)와 헤어스타일도 옆머리까지 꼬불꼬불 말던 시절보다는 짧아짐. 그래도 장교들은 여전히 수염이 덥수룩..;;
    • 초보적인 수준의 철갑선과 잠수함이 출현했고 찔끔찔끔 교전도 했음.
    • 철도를 이용한 대규모 병참 보급과 전면전이 실현됨.
      비행기와 탱크만 없는 1차 세계대전에 가까운 정도였다. 아직 내연기관이 아직 발명되지 않았으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국 독립전쟁 vs 남북전쟁의 차이..)

남북전쟁이 끝난 게 1865년, 제너럴 셔먼 호 사건은 1866년, 그리고 신미양요는 한~참 뒤인 1871년이었다.
조선과 미국이 거리가 워낙 멀기도 하고, 미국도 전쟁 피해를 복구하느라 정신 없었기 때문에 신미양요가 저렇게 늦게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미국에 대한 조선의 인식은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고종: 미리견(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떠한 나라인가? (1871년 4월 어전회의에서..)

영의정 김 병학 (지금으로 치면 거의 국무총리와 비슷!!): 미리견이라는 나라는 화성돈(워싱턴)이라는 촌장이 영길리(영국)라는 나라와 교섭하면서 성곽과 연못을 개척해서 세운 작은 부족국가라고 지도에 나와 있네요.
얘들은 바다를 왕래할 때 약탈하는 습성이 있는 날강도 해적떼입니다. 일체의 교역 따위 할 필요 없구요, 만약 교역을 하게 되면 우리나라(조선) 국체를 보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고종: 흠.. 그렇다면 우리가 저 코쟁이 오랑캐들과 교역하면 요사스러운 잡학들이 유입되어 공자의 예법이 무너질 것이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겠구나.


대륙 횡단 열차를 굴리고, 세계에서 거의 최초로 후장식 총기를 도입하여 유럽보다도 앞선 방식으로 전투(남북전쟁)를 벌였던 엄청난 나라가.. 한낱 공자의 예법도 모르는 요사스러운 해적 오랑캐 내지 왜구 정도로 전락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웃 일본은 네덜란드를 거쳐서 외국어 통번역가부터 잔뜩 양성해서 서양 문물을 미친 듯이 받아들이면서 근대화 중이었는데.. 조선은 저 지경이었으니 안 망한 게 더 이상하지..
참고로, 야사에 따르면 고종이 신하들과 나눈 다른 대화로는 저 때로부터 30년쯤 뒤에 철도가 개통했을 때 "기차가 더 빠를까, 전차가 더 빠를까?"도 있다. 휴우~

20세기

  • 1차 대전: 참호전, 독가스, 탱크, 초보적인 수준의 전투기
  • 2차 대전(연합군): 역대 최대 규모의 해전.. 대형 전함, 뇌격기, 잠수함과 항공모함과 함재기, 수직 강하 폭격, 그리고 끝물에 개발되거나 등장하기 시작한 핵무기와 미사일, 제트기.
  • 6· 25 한국 전쟁(UN군):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가 자그마한 듣보잡 작은 나라 하나를 도와주기 위해 결집함. 시기적으로 매우 특수한 배경 덕분에 가능했지, 이런 사례는 전무후무함. 이념 각축장 대리전 성격이 강했음.
  • 베트남전: 밀림을 날아다니는 헬리콥터, M16 소총. 언론이 조장한 반전 여론이 매우 강해졌음. 프래깅(상관 살해)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고 문제시됨
  • 걸프전(다국적군): 전투기와 미사일로 속전속결. 수송기도 맹활약했음. 전투 장면이 TV로 생중계됨.

중동 전쟁 쪽은 내가 딱히 기억하거나 아는 게 없다.;;

본인 생각에 역사는 국사와 세계사를 통합해서 가르치고 시험 문제도 그런 식으로 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 교사의 양성 과정과 교육과정을 감안하면 그건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역사의 모든 것을 동일 선상에서 객관적으로 봤다간 국뽕이고 동심이고 다 박살나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18~19세기부터 벌어지는 동· 서양의 격차는 자괴감 들기에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악질 무단횡단자에게 100:0 판정이 늘어나는 것만큼이나 공교육에서 역사에 대한 인식도 갈수록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말이다.

3. 기관총

그냥 총도 아니고 총알을 분당 수백 발씩 드르륵 갈겨 주는 기관총이라는 건 후장식 총기에 이어서 등장한 정말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처음에는 대포처럼 크고 무거운 공용화기--혼자 간편하게 들고 다닐 수 없고 여러 명이 운용-- 형태로 먼저 등장했다가 나중에 더 작은 개인화기 버전도 등장하게 됐다.

물론 요즘은 일반 보병이 사용하는 일개 소총도 기관총 같은 자동 연사 기능이 있으며(방아쇠를 당기고 있으면 알아서 드르륵~), 심지어 소총탄 대신 권총탄을 갈기는 기관단총 같은 물건도 있다.
하지만 기관총이란 게 이름에 걸맞게 오랫동안 연사가 가능하려면 발열 관리를 위해 냉각 계통이 필요하고, 총구도 여러 개를 돌려 쓸 수 있어야 하는 등 단순 자동소총에는 필요하지 않은 추가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그러니 이것저것 오늘날까지도 기관총은 용도별로 경/중, 개인용과 공용의 체급 구분이 존재한다.
일반 소총이 정밀· 정확도 쪽으로 더 발전하면 저격수가 사용하는 망원경 달린 커다란 저격 소총으로 바뀌고(스타 고스트..??), 연사력 쪽으로 더 발전하면 M60 같은 경기관총으로 바뀌는 것 같다(둠 2 chaingunner).

모든 기관총이 그런 건 아니지만 기관총이라 하면 (1) 여러 총열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묘사가 많다.
그리고 급탄을 탄창 단위로 탄창 내부의 스프링에 의지해서 하는 게 아니라 (2) 수십· 수백 발의 총알이 일렬로 연결되어 들어간다. 이건 방아쇠만 당기고 있는다고 그냥 되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관총은 작동을 위한 별도의 동력이 필요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그냥 총이 아니라 넘사벽급의 화력을 내는 기관총은 무력의 종결자에 등극했다. 기관총이 없는 군대가 기관총을 보유한 군대를 상대로 싸워서 이길 가능성은.. 가히 0이 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19세기엔 본격적으로 제국주의가 세계에 손길을 뻗치게 됐다.
오죽했으면 개틀링 기관총을 발명했던 리처드 조던 개틀링은 기관총 덕분에 앞으로 군대는 병사가 덜 필요해도 될 것이고, 더 나아가 너도 나도 기관총을 들고 있으면 다들 무서워서 전쟁을 할 엄두를 못 내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역설적인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참 순진하게 예상했었다.

처음에는 기관총이 "유럽 vs 미개한 식민지" 이런 형태로 쓰였다. 그때야 일방적인 관광 플레이가 가능했다. 하지만 유럽 사람들은 얼마 못 가 동급인 자기들끼리 기관총 vs 기관총 형태로 싸우게 됐다. 1차 세계대전 참호전 말이다.
이때는 전략 전술이 기술 발달을 따라가지 못해서 병사들이 생지옥 속에서 끔찍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 기관총으로 철통 방어하는 참호를 돌파하기 위해서 결국 탱크, 군용기, 독가스 따위가 등장하게 됐다.

무서워서 전쟁을 안 하게 될 정도로 너무 강한 캐사기급 무기라는 개념은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자인 알프레드 노벨도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기관총 분야와 폭탄(!!) 분야에서 각각 저렇게 생각하는 엔지니어가 있었다는 게 흥미롭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인류가 20세기에 세계 대전급의 전쟁을 두 번이나 겪고 핵무기라는 것까지 발명된 뒤에야 현실이 되었다. 그 끔찍한 기관총조차 아득히 능가하여 화약 폭발력이 아니라 원자력 정도는 건드리는 경지가 돼서야 말이다.

4. 물과 뭍(!!)에서 폭발 무기의 종류

뭍이라는 말을 참 오랜만에 꺼내 보네.. 한 8~90년대까지만 해도 어린이용 동화책에서도 볼 수 있던 단어였는데 2000년대 이후로는 진짜 국어사전에서나 볼 수 있는 사어가 된 것 같다.

  • 목표물을 향해 날아간 뒤에 폭발: 각종 포탄(육지· 공중), 수류탄, 미사일 또는 어뢰(수중). 자체 추진이나 유도 기능까지 필요하기 때문에 비싸고 크기 대비 폭발 에너지가 적다.
  • 반대로 목표물이 근처에 와서 뭘 건드려 주면 폭발: 지뢰(육지) 또는 기뢰(수중). 이런 무기는 통제가 안 되어 "아무나 맞혀라"가 돼서는 매우 곤란하다.
  • 아래로 자유 낙하하면서 폭발: 항공포탄(육지) 또는 폭뢰(수중). 부가적인 설비 없이 순수하게 폭약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화력이 좋다.

옛날에는 화포로 배를 완전히 부숴서 격침시키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폭약을 싣고 불 붙인 작은 무인선을 적함에다가 접근시키고 충돌시켜서 펑~! 하는 저그 스커지 같은 전술도 쓰였었다.

내 기억으로 제너럴 셔먼 호를 격침시킨 방식도 그랬는데.. 거기는 바다가 아니라 대동강이고 배의 동선에 제약이 심했기 때문에 그런 전술이 가능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0/06/14 08:33 2020/06/14 08:33
, ,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762

1. 16색 팔레트

과거에 컴퓨터에서는 컬러를 표현할 수 있긴 하지만 해상도가 낮고 색깔수도 아주 제한됐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고해상도라는 게 기껏 640*480이었고, 이 해상도에서는 표준 VGA 기준으로는 겨우 16색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1980년대 말에는 가로· 세로의 픽셀수가 모두 8비트 범위를 벗어난 것만으로도 고해상도라는 소리를 들었던 듯하다.

16색으로 가장 균형 잡힌 색상 팔레트를 꾸미는 방법은 뭐 뻔하다.
RGB 각 축별로 0, 1 조합을 시켜서 검정부터 하양까지 2^3 = 8색을 만들고, 이것보다 한 단계 더 밝은(혹은 어두운) 8색을 추가해서 16색을 만들곤 했다. 기본색 8색은 적록청과 흑백, 그리고 혼합된 색인 청록, 분홍, 노랑이다.

제일 단순하게 생각하면.. 어두운 그룹에서 비트별 on/off는 각각 128/0을 배당하고, 밝은 그룹에서 on/off야 최대치인 255/0을 배당한다.
다만, 0~15까지의 16색 중에서 7번(어두운 그룹의 가장 밝은 색)과 8번(밝은 그룹의 가장 어두운 색)은 각각 밝은 회색과 어두운 회색인데 얘는 예외적으로 각각 (192,192,192)와 (128,128,128)로 간주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7번 색이 어두운 회색이 되고, 8번 색은 0번 검정(0,0,0)이 중복 배당되기 때문이다.

요게 바로 산술적으로 제일 단순하게 유도되는 팔레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도스 시절에 EGA/VGA 그래픽 카드가 실제로 제공했던 기본 16색은 이와 대동소이한 차이가 있었다.
(1) 먼저, 어두운 그룹의 가중치가 128이 아니라 170 (0xAA)이어서 전반적으로 저것들보다 더 밝았다. 난 168인 줄로 오랫동안 알고 있었는데, 지금 다시 찾아보니 그렇지 않고 170이다. 최대치인 255의 정확히 2/3에 해당하는 값이다. 어째 256은 2의 8승이지만, 255는 3의 배수였구나.

(2) 그리고 밝은 그룹이야 on의 가중치는 응당 255이지만, off의 가중치가 0이 아니라 85이다. 그래서 밝은 파랑도 그저 (0,0,255)가 아니라 (85,85,255)이다. 앞서 언급된 단순 팔레트가 0 1/2 1로 색깔을 쪼갰다면 얘는 더 세분화해서 0 1/3 2/3 1을 추구한 셈이다.
이 체계에서는 따로 보정을 하지 않아도 7번은 산술적으로 자연스럽게 (170,170,170)이라는 밝은 회색이 되고, 8번은 (85,85,85)인 어두운 회색이 된다. 다른 색들은 전반적으로 단순 팔레트보다 더 밝지만, 회색은 어째 단순 팔레트보다 더 어두워졌다.

(3) 또한 VGA 팔레트는..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6번 색을 산술적인 (170,170,0) 어두운 노랑? 올리브색 대신, (170,85,0)으로 예외적인 변화를 줬다. 올리브색 대신 갈색을 만든 것이다. 노랑은 원래 밝은 색인데 어두운 노랑은 정체성이 모호하니.. 갈색이 더 실용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VGA 팔레트는 단순 팔레트보다 약간 더 알록달록하고 채도가 높아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끝으로, Windows도 독자적으로 약간 변화를 준 16색 팔레트를 사용했다.
밝은 그룹은 255/0으로 간단하지만 어두운 그룹이 상황이 약간 복잡하다. on의 가중치는 170인데, off의 가중치는 0과 85가 뒤섞인 편이다.

파랑은 깔끔하게 (0,0,170)이지만 빨강과 초록에는 파랑이 반 정도 섞여서 각각 (170,0,85)와 (0,170,85)이다.
혼색인 cyan과 분홍, 올리브에도 색이 full로 들어가지 않은 나머지 축에는 0이 아닌 85가 들어간다. VGA와 달리 갈색 보정은 없고 올리브색은 (170,170,85)이다.

의외인 것은 7, 8번 회색들이다. 각각 (195,199,203), (134,138,142)로, RGB 값이 모두 근소하게 다른 별개의 가중치가 부여돼 있다. 흑백과 더불어 화면에서 제일 많이 보게 될 중립 무채색이니 나름 심혈을 기울여 이런 색을 만들었지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금까지 소개된 팔레트 세 종을 한데 늘어놓고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Windows 팔레트는 밝은 그룹은 단순한 팔레트와 비슷하고, 어두운 그룹은 갈색 보정 여부만 제외하면 VGA 팔레트와 더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Windows의 경우, 고전 테마 GUI나 명령 프롬프트에서 기존 VGA 16색을 표시할 일이 있을 때 256색/high/true 컬러일 때는 128/255 기반의 단순 팔레트를 사용한다. 그러나 16색일 때만은위와 같이 약간 더 밝아진 팔레트를 사용한다.
그래서 똑같은 색상표를 사용하더라도 16색이다가 상위 색상으로 모드를 바꾸면 화면이 더 어둡고 차분하게 착 가라앉은 듯한 느낌이 든다. 흥미로운 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256색 VGADemo

1990년대 초· 중반에 도스에다 Windows 3.1 정도나 설치돼 있던 컴에서는 일반적으로 util\tool이라는 디렉터리가 있었고, 여기에 각종 파일 압축 프로그램, 하드디스크 파킹, 파일 관리 셸 등 단독으로 돌아가는 자잘한 싸제 유틸리티들이 들어있곤 했다. 어느 디렉터리에서나 실행 가능하게 path도 걸려 있고 말이다.

그때 본인의 컴퓨터에 들어있었던 '툴' 프로그램 중에는 com인지 exe인지는 기억 안 나지만 vgademo라는 자그마한 프로그램도 있었다.
게임이 아니면서 VGA 320*200 256색 13h 모드로 진입해서 완전 현란한 팔레트 스크롤과 함께 선과 폴리곤, 원 그리기 따위를 선보이는 2D 그래픽 데모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맨 처음에는 저렇게 동그란 그러데이션 형태의 인트로 화면이 나온다. 이때 space를 누르면 본 게임(?)이 시작된다.
한참 알아서 그림을 그리다가 일정 주기로 씬이 자동으로 바뀐다. 그럼 기존 화면은 fadeout 되기도 하고 모자이크 처리되면서 사라지기도 했다. (모자이크가 점점 더 커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거 단순히 난수 생성해서 아무렇게나 선을 찍찍 그어대는 게 아니다. 여러가지 그리기 시나리오와 화면 전환 조건, 무작위한 팔레트 스크롤 방식 등에 대해 나름 치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CGA, EGA만 구경하다가 VGA에서 게임도 아니면서 이런 그래픽을 뿜어내는 프로그램을 PC에서 접했을 때 사람들이 적지 않게 놀랐지 싶다. 1990년대 초에 말이다. 해상도를 극도로 희생했지만 256색을 표현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누가 언제 만든 무슨 이름의 프로그램이었는지 알 길이 없었는데.. 검색을 통해 razzle dazzle이라는.. 바로 요놈이라는 것을 나중에 파악할 수 있었다.
나름 셰어웨어 형태로 돈 받고 팔았고, 90년대 말까지 개발이 됐던 프로그램이었다. 그 시절에 유행했던 프로그램  장르인 눈요기 화면 보호기로는 꽤 적합했지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20/06/11 19:35 2020/06/11 19:35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761

1. 법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작정하고 법을 찾아 본 건 다음 분야들이다. 다들 내 관심 분야 내지 생활 패턴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들이다.

  • 병특 하던 시절에 복무 관련 규정들: 이건 까딱 잘못하다 걸리면 편입이 취소되고 다시 군대로 끌려가는 문제이므로 제일 크리티컬했다. 그래도 이 법은 사회에서 '을'인 복무자에게 굉장히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다. 일단 편입해 들어가면 회사가 아니라 복무자 자신이 티오(인원 배당)를 갖는다는 개념부터 시작해서 말이다.
  • 거리설교 관련: 주변에 민폐를 잘못 끼치면 경범죄에 걸려서 과태료를 물기 때문이다.
  • 캠핑과 야영 관련: 내가 자연 속에서 밤을 보내는 걸 좀 좋아해서 그렇다. 4개 정도의 법이 얽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 자동차의 합법적인 크기와 무게 관련: 개인적인 관심사 때문이다. 도로교통법뿐만 아니라 도로법이던가 둘 이상의 법에서 중복 규정돼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 남북교류 협력에 관한 법률: 오래 전에 개인적으로 굉장히 특이한 경험을 한 게 있어서 그렇다. 덕분에 우리나라에 국가보안법 말고 이런 법도 있다는 걸 난생 처음으로 알게 됐다. 이에 대해서는 더 먼 미래에 기회가 되면 언급할 일이 있을 것이다.

법 하니까 더 떠오르는 생각으로는.. 우리나라는 사형 제도를 법적으로 완전히 폐지한 건 아닌데 그냥 집행만 무기한 안 하고 있다.
그리고 한반도 전체가 우리나라 영토이며 통일을 지향한다고 헌법에 명시는 해 놨지만.. 현실적으로는 그게 불가능한 지경이다. 애초에 6· 25 사변도 말은 휴전이라고 써 놨지만 사실상 종전이 됐고 휴전선이 국경선으로 굳어졌다. 이렇게 법과 현실이 서로 안 맞는 구석이 생겨 있는 게 느껴진다.

외국으로 가면.. 일본은 군대를 보유하는 것을 영원히 절대로 금지한다고 헌법에 명시돼 있지만, 자위대가 사실상 군대나 마찬가지이다. 이것도 법과 현실의 괴리라고 봐야 할까?
물론 저 헌법 때문에 일본은 자기네 무기를 해외로 수출하지 못하고 무조건 내수로만 소비해야 한다. 그리고 외국에 파병도 할 수 없다. 그러니 규제가 전혀 없는 건 아닌 것도 사실이다.

2. 취사· 야영을 할 수 없는 곳

구분 적용 대상 야영 금지 근거 위반 시 처벌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평지나 언덕, 산기슭 정도에 공원 형태로 조성된 녹지 제49조+동법 시행령 제50조 제56조, 10만원 이하 과태료
자연공원법 국-도-군립공원(주로 경치 좋은 산) 및 지질공원(공룡 화석, 지층, 운석..) 제27조 제86조, 200만원 이하 과태료
하천법 나라에서 지정한 국가하천 및 지방하천의 특정 구간 제46조 제98조, 300만원 이하 과태료
수도법 취수시설이 설치된 하천, 호수 등(상수원) 제7조 제83조,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

  • 그러니 수락산은 산 중턱까지 민간 산장 휴게소가 들어서 있는 반면, 근처의 국립공원인 북한산은 그런 거 없고 등산로를 이탈하는 것, 계곡에 들어가는 것 몽땅 금지이다. 그 대신 북한산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곳이다 보니 적당히 낮은 고도까지는 등산로가 아주 널찍하게 잘 닦였고, 화장실과 각종 표지판들도 충분히 갖춰져 있다.
    (하루 만에 완주가 불가능한 국립공원인 지리산은 지정된 구역에서만 야영을 할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야영 허용 구역에 반드시 도달해야 한다.)
  • 산보다는 강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더 강하다. (위반 시의 처벌이 더 강함) 물론 현실에서는 낑낑대며 올라야 하는 산보다는 강이 접근성이 더 좋고 공간이 더 많고 야영하기도 더 쉽다.
  • 단순 공원보다는 특별한 공원에 대한 위반 처벌이 더 강하다. 그리고 단순 하천에 비해 상수원 하천은 뭐.. 처벌 수준을 교통 범죄에다 비유하면, 신호위반 속도위반이던 것이 음주운전으로 껑충 뛴 것과 비슷하다.
  • 4월부터 10월에 저녁 7시까지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한강 공원의 텐트는 원래는 아예 안 되는데 예외적으로 봐주는 것에 가깝다. 위반 시의 과태료 100만원은 도시공원과 비교했을 때는 비현실적으로 높은 편이지만, 자연공원법이나 하천법보다는 낮게 잡힌 것이다. 저기는 1980년대 한강 종합 개발 사업의 산물일 뿐, 국립공원만치 대단한 곳은 아니니까..
    더구나 상수원도 아니다. 한강의 취수 마지노 선은 잠실대교 수중보이기 때문이다. 거기보다 하류 구간은 취수용으로 쓰이지 않는다.
  • 그냥 이름 없는 평범한 산의 정상에서 밤에 텐트 치고 자는 건 위의 법들 중 어느 것에도 걸리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잠만 자는 게 아니라 고기까지 구워 먹으려면 속 편하게 돈 내고 전용 캠핑장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아예 멀리 해수욕장까지 가든가..

3. 민사와 형사

소송에서 민사 vs 형사, 경찰의 교통과 vs 강력과, 의료에서 당장 생명하고는 별 지장이 없는 과(성형) vs 직접 관련이 있는 과(외과)..
요것들이 다 심상이 서로 비슷한 관계인 것 같다.

가령, 누가 내 돈을 빌려 놓고는 기한 내에 갚지 않고 떼먹었다면 민사 소송을 걸어서 강제집행으로 돌려받는 게 순서이다. 사기죄로 엮어서 형사 소송까지 걸려면, 그 사람이 애시당초 돈을 갚을 생각이 없었고 단순 채무불이행 이상으로 매우 악의적으로 채권자를 물먹였다는 정황까지 입증해야 한다.

교통사고 가해자의 경우도 특례법 위반 여부, 고의성 여부, 피해 규모 등에 따라 보험사의 배상만으로 끝나는지 아니면 형사 처벌까지 받아서 콩밥 먹어야 하는지의 여부가 결정된다.

그리고..

  • '피고'는 민사에서만 쓰는 말이고 '피고인'은 형사에서만 쓰는 말이다. 다시 말해 '피고인'은 '피고'와 달리, 재판에서 패소했다간 전과자가 된다. 이걸 왜 구분하며 그것도 왜 하필 '人'짜의 여부로 구분하는지는 참 의아하게 느껴진다. 영어로는 둘 다 그냥 defendant 이다. 경우에 따라 민/형 구분을 위해 앞에 civil / criminal이 붙을 뿐..
  • 완전 생뚱맞은 bar이라는 단어에 변호사라는 뜻이 있는 게 의외이다. 미국에서 변호사 시험은 bar exam이라고 하고, ‘대한 변호사 협회’도 영어로 bar association이라고 부른다. 경찰을 police officer 대신 cop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심상이려나?
  • 변호사와 판사는 민· 형사 소송에서 모두 등장하는 반면, 그럼 검사는 형사 말고 민사에서는 별 필요나 존재감이 없는 존재인 건가..??

4. 형벌의 분류

우리나라 법에 규정된 형벌은 방식을 보자면 재산형과 자유형으로 나뉜다. 자격상실· 정지는 명예형에 속하긴 하지만 형법상의 처분보다는 행정 처분에 더 가까워 보인다. 신체형(태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밖에 형벌을 '규모 내지 급'으로 나누면.. 경범죄급과 중범죄급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전자는 말 그대로 경범죄처벌법의 벌칙이 대부분이며 뒤끝이 없다. 빨간줄이 그인다거나 향후 몇 년 동안 범죄 기록이 조회된다거나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검사가 개입해서 정식으로 기소하고 재판까지 열기에는 너무 자잘하고 사소하고 경미한 영역을 담당한다.

이것을 표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 재산형 자유형
경범죄 과료 (과태료,범칙금) 구류
중범죄 벌금 금고/징역

그런데 범칙금이라는 건 정체가 굉장히 모호한 것 같다. 과료나 벌금 같은 부류는 아닌 행정 처벌인데 굳이 과태료와 다른 명칭을 부여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5. 범죄 자체에 대한 중독

세상의 강력 범죄들은 우발적이건 계획적이건 대부분 돈 때문에, 또는 여러 방식의 뒤틀리고 비뚤어진 심성 때문에(자기가 무시 당하고 있다는 생각, 욱하는 감정 조절 실패, 너 죽고 나 죽자는 자포자기 등) 벌어진다.

물론, 그 정도 알량한 이유만으로 끔찍한 범죄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범죄자는 그에 상응하는 형사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그 정도 이유나 목적조차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 자체만이 목적이고 오로지 거기서만 짜릿함과 쾌감을 느끼는 이상한 사람도 드물게나마 분야별로 있는 게 현실이다.

(1) 원한을 해소하거나 돈을 뺏거나 다른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살인 자체만을 즐기는 거라면 그냥 미친 싸이코패스 쾌락 살인마이다.
국내의 경우 옛날에 “살인을 더 할 수 없어서 우울하고 답답하다. 이럴 거면 날 빨리 사형 집행이나 해 주쇼”로 악명높았던 정 남규 정도가 이 등급일 것이다. 그 사람은 교도소에서 이제 남을 죽일 수는 없으니, 결국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2) 자기한테 당장 필요한 물건이 아니고 사흘 굶은 상태도 아닌데 남의 물건을 습관적으로 쓰윽~ 하는 건.. ‘도벽’이라고 말까지 만들어져 있다. 남에게 안 들키고 슬쩍이 성공하면 뭔가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라도 하나 보다. 마치 도박 중독과 비슷하게 말이다.
손버릇이 나쁜 건 어린애부터 성인까지 의외로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3) 그리고 방화도 있다. 10여 년 전에 악명을 떨쳤던 울산 봉대산 불다람쥐 사건 기억하는 분 계신지? 2014년엔 우울증 기분 탓에 습관적으로 서울 대모산에서 산불을 낸 50대 주부가 검거되기도 했다. 야산이나 건물에 몰래 불을 질러서 활활 타는 걸 보고 그 자체만으로 후련함과 쾌감을 느끼는 극도로 위험한 연쇄방화범 부류도 있다.

도박 중독이나 알코올 중독처럼 살인, 절도, 방화도 중독이 있는 것 같다. 가해자는 범죄자와 정신병자라는 두 영역에 모두 걸쳐 있는 셈이다.
강간도 중범죄이며 변태 중독자가 없을 리가 없는 분야이다. 하지만 성욕은 식욕 수면욕 배설욕처럼 그나마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 욕망이다. 이건 다른 범죄 중독과는 약간 다른 분야로 간주하여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겠다.

흉악범은 보통 누굴 죽이기 위해서,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살인을 이미 저지른 뒤에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서 불이나 물을 동원하는 경우가 있다. (현장 방화, 또는 자동차 째로 수장..)
하지만 피해자의 시신이 화재 현장에서 발견됐거나 물에서 건져졌다 하더라도.. 현대의 법의학 기술은 사람이 진짜로 화재로 인해 죽었거나 익사했는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이미 죽은 뒤에 거기에 놓인 것인지 정도는 아주 간단히 정확하게 판별해 낸다. 폐에서 검출된 이물질이라든가 시신 표면의 다른 상처들을 보면 된다.

또한 시신에서 옷을 벗기거나 다른 옷을 강제로 입히는 것은 생각보다 부자연스럽고 꽤 힘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발적인 탈의와 환복인지 아니면 죽은 후에 그렇게 된 건인지도 판별 가능하다고 한다. 옛날에 나치 독일이 유대인들을 가스실에서 학살할 때 샤워를 시킨다고 거짓말을 한 이유도 시신에서 옷을 일일이 벗기는 수고를 덜기 위해서였다. -_-

Posted by 사무엘

2020/06/06 08:32 2020/06/06 08:32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759

1. 에러 메시지의 친근성

먼 옛날 도스 시절에는 명령 프롬프트에서 파일 이름이나 명령을 잘못 입력하면 갖가지 에러 메시지들을 볼 수 있었다. 제일 흔한 건 Bad command or file name... 아무말이나 입력하고 엔터 누르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날 Windows의 명령 프롬프트에서 XXXX is not recognized as an internal or external command, operable program or batch file이라고 정말 길고 정황하게 나오는 그 메시지가 옛날에는 저렇게 간결하고 무뚝뚝하게 나왔던 것이다. bad가 뭐냐 도대체.. ㅡ,.ㅡ;;

유닉스 계열만 해도 XXX: command not found 내지 XXX: no such file or directory로 나뉘어 있으나.. 도스는 그 특성상 파일 실행과 명령의 구분이 없는 관계로, 단일 메시지에 파일과 명령을 모두 포함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문장 한 줄만 뜨고 아무 뒤끝 없이 프롬프트로 돌아오는 에러와 달리.. 어떤 에러는 Abort? Retry? Ignore? 이러면서 사용자를 물고 늘어지고 놔 주질 않았다. 이게 초딩 시절엔 굉장히 무섭고 강압적으로 느껴졌다.

이런 무서운 에러는 디스켓과 관련해서 자주 볼 수 있었다. 드라이브에 디스켓을 넣지 않은 상태에서 A: 같은 드라이브 변경을 시도했거나.. 아니면 디스켓 파일을 복사하던 중에 오류가 발생했을 때도 저런 사태가 벌어졌다. 디스크 에러와 데이터 에러라는 게 있었는데, 둘의 차이는 지금 생각해 봐도 오리무중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그림은 도스/Windows 9x vs 오늘날 NT 계열 Windows에서 각각 디스크 없이 FDD 드라이브 전환을 시도했을 때의 에러 메시지의 모습이다.
아 옛날에는 ignore이 아니라 fail이었구나... 아무튼 저런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디스켓이 거의 복불복 지뢰밭 수준으로 오류가 잦았으며, 일반 프로그램이 파일을 읽고 쓰다가 지뢰를 밟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표면 검사를 해서 bad sector 기입을 해 주는 게 필수이기도 했다.

사실, 시스템 전체의 관점에서는 에러가 이런 식으로 발생하는 게 효율적이다. 무작정 실패 판정만 내리고 끝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디스켓을 집어넣을 기회를 다시 준다거나, 오류를 무시하고 일단 더 진행한다거나.. 그러는 게 더 유도리가 있으며, 사용자 친화적이기까지 하다. 사용자가 모든 경황을 아는 전문가라면 말이다.

하지만 초보자의 입장에서는 저런 말이 뜨면 뭘 해야 할지를 모르고, 그냥 다 끄고 명령을 내리기 이전 상황으로나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저놈의 메시지는 Ctrl+C고 ESC고 뭘 눌러도 없어지질 않고.. UI 측면에서 좀 미스인 건 사실이다.

게다가 말들이 표현이 아주 세고 기계적이고 부정적이다. Abort는 무슨 약속 예약 취소 같은 걸 넘어서 하던 걸 다 때려치우고 철회, 중단한다는 뜻이다. 오죽했으면 낙태라는 뜻까지 있다. Ignore도.. 무시, 묵살, '씹기', 생까기 같은.. 절대로 좋은 어감이 아니다.

물론 어떤 장애물에 부딪혀서 일이 진행되지 않았을 때, 그냥 포기하거나, 한번 더 시도하거나, 그 장애물을 일단 제끼고 넘어가는..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존재하며 필요하다.
DOS가 없어지고 Windows로 바뀐 오늘날까지도 본인이 프로그래머로서 저 패턴의 메시지를 보는 것은 디버깅 중인 프로그램이 뻗었을 때.. 더 구체적으로는 assertion failure가 났을 때이다. Retry가 디버거 실행과 연결된다.

Windows 2000/ME에서는 Abort/Retry/Ignore(중단/다시 시도/무시 MB_ABORTRETRYIGNORE) 대신, Cancel/Try again/Continue(취소/다시 시도/계속 MB_CANCELTRYCONTINUE)라고 말이 다소 부드럽게 바뀐 메시지 박스가 등장했다. 기존의 표현이 바뀌지는 않았으며, 새로운 플래그를 사용하는 프로그램에서만 새로운 표현을 볼 수 있다. 사실, A/R/I라는 단축키가 도스 시절 이래로 아주 익숙하며, 새로운 표현은 CTC로 이니셜이 겹치기도 하니 말을 일괄적으로 변경해 버리는 건 좀 부담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MessageBox의 리턴값까지도 IDRETRY와 별도로 IDTRYAGAIN을 추가하고 IDIGNORE뿐만 아니라 IDCONTINUE도.. 이름뿐만 아니라 값까지 서로 별개로 추가해 버린 것은 의외이다. 두 쌍은 용도가 완전히 동일한데도 말이다.
참고로 MessageBox의 후신격인 TaskDialog에는 표준 버튼으로 '재시도 try again'만이 도입되었고, ignoer/continue는 포함되지 않았다. 기존의 확인/닫기/취소 등으로 보편적인 의사결정은 다 표현할 수 있다고 간주한 듯하다.

지금이야 Cancel/Try again/Continue가 첫 등장한 지도 20년 가까이 지났다. 컴퓨터 대신 PC, 디바이스라고 하고 응용 프로그램도 그냥 앱이라고 하는 세상이다. 게다가 이제는 전통적으로 무뚝뚝함과 충격과 공포 그 자체이던 패닉 BSOD화면에도 이모티콘과 한글 메시지가 표시되는 세상이 됐다. press any key의 번역은 "... 누르십시오" 대신 "... 누르세요"로 바뀌었다. 여러 모로 격식이 없어지고 말이 친근하게 바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C/C++ 프로그램의 디버그 빌드에서 assertion failure가 났을 때, 무식한 A/R/I 메시지박스와 함께 "Press Retry to debug this application"이 뜨던 건.. 깔끔한 task dialog로 바뀌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
end user는 볼 일 없고 어차피 개발자들이나 보는 메시지이니 아무도 신경 안 쓰려나? =_=

2. 반응성과 존재감

어떤 소프트웨어가 인터페이스 내지 반응성 관점에서 사용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면 자잘하게 뻗는다거나 화면 잔상이 생기는 버그가 없어야 하고, 키· 마우스 입력에 대한 반응이 신속해야 할 것이다. 반응성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스레드 같은 것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 어지간해서는 5초 이상 반응이 없어서 '응답 없음' 판정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마우스로 창 크기를 변경했을 때 너무 굼뜬다거나, 화면 전체가 지워져서 번쩍거리면서 그려진다거나 하지도 않아야 한다. 새로 그리는 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게 있으면, 스크롤 내지 크기 변경 중에는 뼈대만 간략하게 그렸다가 키보드· 마우스 버튼이 놓였을 때 다시 그려도 좋다.

그런데.. 이런 것들과 반대로, 눈에 보이지 않고 백그라운드에서만 몰래 돌아가는 프로그램에도 지켜야 할 덕목이 있다.
사용자가 직접 명령을 내려서 실행된 게 아닌 서비스, 업데이트 체크 같은 부류의 프로그램이라면 정말 절대적으로 사용자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

컴퓨터의 성능을 떨어뜨리는 티를 절대 내지 말아야 한다.
요즘 컴터는 코어가 많으니 한 프로그램이 코어 하나를 다 점유한다고 해서 당장 속도가 느려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컴터를 열받게 할 수 있고 배터리 소모를 증가시킬 수 있고, 냉각팬이 쓸데없이 돌아가게 만들 수 있다. 특히 노트북에서 말이다.

업데이트를 받더라도 무슨 당장 안 받으면 컴퓨터가 악성 코드에 감염되어 박살나기라도 하는 울트라 초특급 필수가 아니라면 아주 쉬엄쉬엄 찔끔찔끔 받도록 하고, 네트웍 상태가 안 좋아서 발생하는 딜레이가 UI의 딜레이나 CPU 쳐묵 대기 상태로 절대로 이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이는 음악회에서 넘돌이 넘순이(페이지 터너..;;)가 연주자보다 더 돋보여서는 안 되고, 무슨 집회에서 통역사가 연사보다 더 돋보이지 말아야 하는 것과도 같은 이치이다.
인터넷 연결이 안 된 곳에서 Windows Update 서비스라든가, 구글 크롬 브라우저의 software report tool이 도대체 뭔 짓을 하느라 CPU 코어를 다 쓰면서 날뛰고 있었나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요 둘이 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n초 이상 응답이 없으면 저렇게 다운 의심 판정을 받게 되고, 운전자는 교차로에서 파란불 신호를 받고도 n초 이상 응답 없이 움직이지 않으면 뒷차로부터 경적 세례를 받고 욕 먹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서로 비슷한 양상의 현상인 것 같다.

3. 이식성

로터스 1-2-3, dBase III+ 같은 프로그램은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명품 업무용 소프트웨어였다. 하지만 도스에서 Windows로 넘어가는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그대로 도태해서 사라졌다.

내가 듣기로는 이 두 프로그램은 긴 짬밥답게 주요 코드가 쑤제 어셈블리어로 한땀 한땀 작성됐다고 한다. 덕분에 1980년대에 컴퓨터가 느리고 비싸던 시절에는 잘 최적화돼서 쌩쌩 돌아갔겠지만, 훗날 이 코드는 구조 확장이나 유지 보수가 도저히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특히 dBase가 말이다.

이래 가지고는 Windows로 포팅은 물론이고 같은 도스에서 32비트로 갈아타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의 하드웨어에서 돌아가지만 시간이 그 상태 그대로 멈춰 버린 코드는 그야말로 오늘만 사는 죽은 코드나 다름없다.

운영체제 중에서 Windows 9x야 저사양 똥컴 x86만 겨냥한 특이한 변종이니 어셈블리어 최적화가 없으면 안 됐고.. OS/2도 잘 만들어진 32비트 OS이긴 하지만 이식성이 부족했다. 훗날 64비트니 ARM이니에 전혀 대처하지 못하고 그대로 묻혀 버렸다.

그러나 유닉스처럼 C/C++을 처음부터 주력으로 사용한 Windows NT는 비록 처음에 나왔을 때는 너무 무겁고 느리다고 욕 먹었을지언정, 결국 여러 아키텍처들을 거쳐 오늘날까지 천수를 누리는 운영체제 커널이 됐다. 미래를 대비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이다.

이런 게 이식성의 힘이다. 다만, 이 2020년대에는 이제 x86 계열과 ARM 계열 말고 또 획기적으로 새로운 컴퓨터 아키텍처가 설마 등장할 일이 있을까 싶다. ARM은 전력 효율이 x86이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x86을 완전히 대체할 정도로 범용적인 성능이 좋은 건 아니다. 그러니 결국 이 두 아키텍처가 64비트 형태로 끝까지 갈 것 같다.

4. Windows와 맥이 추구한 가치의 차이

과거에 비해 텃새랄까 격차가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사과가 그려진 맥OS 컴퓨터는 예술, 출판, 디자인 업계에서 오늘날까지도 Windows보다 강세이다. UI 비주얼이 간지 날 뿐만 아니라, 같은 글꼴을 써도 글자의 렌더링이 정말 고퀄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그 분야 말고 게임은.. 특히 모바일용 말고 PC용은 맥 진영이 절대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Windows가 강세이다.

물론 게임은 애초에 특정 업계 종사자만 쓰는 업무용 생산성 앱이 아니며, Windows는 게임을 즐기는 end user 고객의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운영체제이다.
오늘날의 결과만 놓고 보면 저런 점유율이 당연히 저절로 이뤄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먼 옛날에 IBM 호환 PC라는 물건은 동시대의 다른 컴퓨터들에 비해 사용자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는 기술에는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믿어지지 않지만 한때 Windows 같은 멀티태스킹에 하드웨어 추상화가 갖춰진 복잡한 환경에서 현란한 게임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PC용 게임은 하드웨어 자원의 독점이 가능한 도스용으로만 나왔다.

그리고 90년대 중반, Windows 95는 바로 이런 배경에서 출시되었다.
빌 게이츠는 가히 목숨을 걸고 Windows를 게임과 멀티미디어에 최적화된 홈 엔터테인먼트 운영체제로 만들려고 애썼다. 구닥다리 WinG로는 성이 안 차고 OpenGL은 그 시절엔 아직 업무용에다 NT의 전유물이었으니.. 거기서도 하드웨어 직통 액세스가 가능한 DirectX를 만들고 게임 개발을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했다. Doom을 만들어 냈던 이드 소프트웨어를 인수할 생각까지 했던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이런 마소 진영에 비해, 맥은 클래식 시절이건 OS X의 개발 초창기이건 잡스 아저씨가 저렇게 게임에 눈독을 들였다거나, Doom을 자기 맥OS에서 꼭 구동하고 말겠다고 나선 적이 없다. 빌처럼 가정 소비자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방법, 시장에서 팔리는 제품을 만드는 방법을 기를 쓰고 연구하기보다는 그냥 자신의 천재적인 감과 괴팍· 고상한 취향을 따라 제품을 만들었다. 다수의 보편적인 소비자보다는 소수의 골수 매니아 애플빠를 양성하는 노선을 추구한 듯하다.

5. 설치/배포 패키지

Windows Installer (msi)라는 기술이 개발된 게 20여 년 전 1999~2000년 사이의 일이다.
소프트웨어의 설치와 제거라는 게 '파일 열기/저장 대화상자'만큼이나 응용 프로그램들이 공통으로 요청하고 수행하는 기능이니, 이를 위한 공통의 API를 정의하고 만든 것은 일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얘는 2009~2010년 정도까지 버전업이 되었다가 그 뒤부터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는 것 같다. 2010년대부터는 마소에서도 Office나 Visual Studio 같은 제품을 배포할 때 msi를 사용하지 않는다. 또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설치/제거 시스템을 개발하기라도 한 것 같다.

통상적인 배포 패키지 시스템이라면 프로그램의 구성요소들을 세부적으로 나눠서 지금 당장은 사용자가 원하는 부분만 설치하고, 설치하지 않은 기능은 나중에 언제든지 추가 설치 가능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2010년대 이후의 배포 패키지 시스템이라면 적어도 두 가지 요소를 반드시 지원해야 할 것 같다.

(1) 먼저, 웹을 통한 설치이다. 지금 로컬 installer 실행 파일에 내장된 데이터가 아니라 지정된 주소를 통해 서버로부터 데이터를 받아서 설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2) 요즘 프로그램들의 거의 필수 기능이 된 최신 버전 체크 및 자동 업데이트와의 연계이다. 현재 버전과 최신 버전을 비교하여 부분만 자동 업데이트가 가능한지 판단하고, 꼭 바뀌어야 하는 분량만큼만 다운로드를 한다.
설치 후에 마이너 버전이 바뀐 것은 '프로그램 추가/제거' 목록에도 당연히 반영된다.

Windows Installer가 웹 연계 내지 자동 업데이트까지 고려하여 개발되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로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 싶다.
통합된 API가 없으니 Visual Studio고 아래아한글이고 다 독자적인 설치 및 업데이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데.. 업데이트를 시켜 보면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설치 관리자 자체부터 업데이트 하는 경우가 굉장히 잦다.

저건 뭐 한번 만들어 놓고 나면 버전 체크, 파일 설치 등등 끝.. 처음에 한번 안정적으로 잘 만들어 놨으면 바뀔 일이 없어야 하는 시스템이지 않은가? 그런데 뭐 이리 자주 바뀌나 모르겠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런 분야도 운영체제 차원에서의 통합 솔루션이 나와야 할 것 같다.
그나저나 10~20여 년 전에 시대를 풍미한 배포 패키지이던 InstallShield는 요즘도 잘 먹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6. 각종 약관 동의 화면

웹사이트에서 회원 가입을 할 때나 응용 프로그램을 처음 설치할 때는 사용자에게 뭔가 법적으로 동의를 구하는 계약 안내문이 표시되는 것이 관례이다. 사용자가 그 내용에 대해 명시적으로 yes라고 동의 의사를 밝혀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응용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경우라면 안내문의 내용은 주로 저작권과 관련된 것이다. 마소에서는 이 안내문의 명칭을 EULA(end-user license agreement)라고 붙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상업용 소프트웨어에는 불법 복제 금지와 관련된 경고문이 으레 들어가지만 그것 말고도 해킹이나 리버스 엔지니어링 금지 같은 조항도 있다.
한편으로 웹사이트 회원 가입이라면 개인 정보 수집 정책과 관련된 내용이 꼭 포함된다.

아울러, 요즘은 응용 프로그램도 사용권 계약과는 별개로 사용자의 사용 패턴 데이터나 오류 정보를 수집해서 개발사 서버로 보내도 되겠는지 동의를 구하기도 한다. 이걸로 사용자 개인을 식별하는 건 절대로 아니니 안심하라고 하면서.. 물론 이건 동의하지 않아도 프로그램을 설치하거나 사용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이런 약관이나 법적 주의사항 고지 문구는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까지 일일이 어려운 단어와 장황한 문장으로 미주알고주알 열거하면서 길고 딱딱하고 재미없는 걸로 악명 높다.
뭐 이건 온갖 애매한 상황까지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방어해서 갑 쪽의 법적 책임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말이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계약서는 아니지만.. 망토 하나를 만들어도 소송을 피하기 위해 “주의: 이걸 목에다 두르고 옥상에서 뛰어내리지 마시오” 경고문까지 들어가는 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이지 않은가?

그런데 말이 하도 재미없으니 갑이나 을이나 텍스트를 꼼꼼히 제대로 읽지 않는 건 마찬가지 같다. 그러니 한 10여 년 전이었나? “본 약관이 해지되는 순간 뼈와 살이 분리됩니다”던가? 개드립이 들어간 약관이 복붙 되어서 여러 웹사이트들에서 그대로 쓰인 게 뉴스에까지 방영되곤 했다.

약관과 관련된 말이 좀 길어졌는데..
본인이 이걸 표시하는 소프트웨어 UI와 관련해서 굉장히 큰 불만을 품고 있는 건.. 아니, 이건 나만의 불만도 분명 아닐 것이다.
안 그래도 재미없고 귀찮아서 안 읽는 긴 약관을 너무 작은 크기의 텍스트 셀에다가 집어넣고는 창의 크기 조절도 안 되게 해 놓으면.. 사용자는 읽고 싶은 생각이 더욱 멀리 달아날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쪼금 생각을 한 곳에서는 약관을 plain text가 아니라 서식을 적용한 텍스트로 제공하고, 인쇄 기능 정도는 갖다놓았다. 하지만 이걸 인쇄까지 해서 보는 사람도 과연 얼마나 될까?
그냥 화면에서 창 크기 조절과 본문 검색 정도만 가능하게 하는 게 제일 좋아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0/05/14 08:36 2020/05/14 08:36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751

« Previous : 1 : 2 : 3 : 4 : 5 : ... 31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20/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ite Stats

Total hits:
1444631
Today:
464
Yesterday:
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