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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oftware is licensed, not sold

자동차의 소유 내지 운전 면허하고, 소프트웨어의 사용권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서 같이 생각해 볼 만한 사항인 것 같다. 자동차는 도난 방지 기능이 있고, 소프트웨어는 불법 복제 방지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 옛날에는 전통적으로 물리적인 열쇠에만 의존하다 보니 보안이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수천 대 중 한 대꼴로 자물쇠 패턴이 일치하는 차량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차는 내 키로 문을 열 수 있었다. 컴퓨터로 치면 마치 hash의 충돌과 비슷한 상황이라 하겠다.
그리고 영화 테이큰에서도 보듯이 열쇠 구멍을 적당히 쑤셔서 문을 따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스타터 모터에 전기 자극을 줘서 시동을 걸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과거에는 3rd-party 업체에서 개발한 싸제 도난 방지 시스템이 많이 쓰였다. 지정된 인증을 통과하지 않으면 물리적인 열쇠만으로 문을 따거나 시동을 걸 수 없으며, 오히려 경보음이 울리게 하는 것 말이다. 지금이야 이 정도 도난 방지 기능이 들어간 스마트키는 옵션이 아니라 자동차 제조사에서 기본으로 제공해 주는 영역이 됐다.

그럼 소프트웨어는 어떨까?
과거에는 좀 묵직하고 규모가 있는 제품은 병렬 포트에 락을 꽂는 것(..!)부터 시작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적인 온갖 방법으로 "귀하(= 소프트웨어 개발자/개발사)의 소중한 자산을 안전하게 보호하십시오"라고 광고하는 복제 방지 솔루션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해커들이 작정하고 공략하면 몽땅 크랙 되는 건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그나마 인터넷이 발달한 게 소프트웨어의 복제와 배포뿐만 아니라 개발사에서 사용자의 접속 여부를 파악하는 것까지(= 정품 인증) 용이하게 만들어 줬으니 호재이다. 스타크래프트도 배틀넷에 접속할 때만은 CD key를 체크했듯이 말이다.

자동차는 철저하게 자기 소유 위주이고 운전만 면허이지만, 소프트웨어는 처음부터 소유라는 개념 없이 사용권이 허가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영어로는 똑같이 license라고 한다.
자동차는 물리적인 실물이 존재하고 조작하는 것이 매우 위험한 물건이지만, 소프트웨어는 실물이 없이 무한 복제가 가능하고 사용 자체에 위험성은 없는 물건이라는 차이가 있다. 형태가 서로 매우 극과 극이라 하겠다.

그래서 불가피한 상황에서 자동차 문을 따거나 배선을 뜯어고쳐서 키 없이 시동 거는 방법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보면.. "남의 차에다가 이 짓을 하는 건 불법입니다. 반드시 자기 소유의 차에다가만 at your own risk로 시도하세요!"라는 주의 문구가 있다.

소프트웨어도.. 정품 사용자가 자기 개인 소장용으로만 복제판을 만들거나.. 혼자 쓰는데 번거로워서 정품 인증 절차를 없앤(..) 크랙을 돌리는 것은 내가 알기로 합법이다. 글쎄, 단순 복제판을 넘어서 후자는 엄밀하게 따지면 사용권 계약서에 명시된 "리버스 엔지니어링과 변조 금지"의 위반일 수 있겠지만 그것까지 현실적으로 다 따지고 잡아내고 법을 집행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싶다.

소프트웨어의 라이선스는 대외 공개 여부, 유료/무료, 소스 공개 여부 같은 변수를 따져서 다음과 같은 범주로 나눌 수 있겠다.

2. 소프트웨어 라이선스의 등급

(1) 존재 자체가 영업 기밀: 개발사의 내부에서만 쓰이며,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애초에 남에게 판매 자체를 하지 않는다. 주로 서버(호스트) 사이드 프로그램, 혹은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 내부적으로만 쓰이는 아주 특수한 도구가 이 범주에 속한다. 이런 프로그램의 내부를 외부인이 구경하고 싶으면 아예 개발사를 통째로 사 버리고 인수해야 할 것이다.. >_<

(2) 상업용: 돈 받고 사용권을 판매하는 상업용 소프트웨어들. 옛날에는 제품을 디스크에 담고 패키지로 포장해서 일시불로 무기한· 영구적인 사용권을 제공했으나, 지금은 프로그램 자체는 웹사이트에서 받게 하고 사용권을 기간제로 찔끔찔끔 제공하는 형태가 대세이다. 얘부터는 소스 코드만이 영업 기밀이다.

(3) 무료 공개: 누구나 무료로 사용 가능하다. 하지만 제공된 형태 그대로 제품을 사용하는 것 말고 상업적 목적의 재배포, 변조 등등은 여전히 금지이다.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이 등급이다.

(4) GPL 오픈소스: 단순히 무료 사용을 넘어서 소스까지 공개인 파격적인 제품이다. 하지만 저작권 자체가 아예 없는 건 아니며, 얘는 전염성, 즉 "오픈소스 덕을 봤으면 너도 오픈소스에 동참하라" +_+라는 이념이 담긴 등급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 영업 기밀에 속하는 소프트웨어에다 GPL 기반의 코드를 쓸 수는 없다.

(5) LGPL 오픈소스: GPL보다는 조건이 완화됐다. 요 등급은 상업용 제품에다가 끌어다 쓰더라도 자기 코드를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요즘 많이 쓰이고 있는 MIT 라이선스도 이쪽 계열인 걸로 안다.
다만, 있는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 좀 변조해서 쓴다면 어떻게 바꿨는지 그 변조한 코드만은(자기 코드 말고) 공개하라는 식으로 바리에이션이 있다.

(6) public domain: 너무 오래돼서 저작권이 소멸됐거나, 저작권을 주장하는 주체 자체가 사라져서 존재하지 않거나,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데 개발자가 너무 대인배여서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고 "완전 니 마음대로 쓰셈"을 시전한 경우이다. SQLite처럼 드물게 public domain인 제품이 있다.

요 6등급 분류가 굉장히 깔끔하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범주에 딱 정확하게 떨어지지 않는 물건도 있다.

(1) 태생적인 반제품: 요즘은 소프트웨어라는 게 전반적으로 릴리스 후에도 끊임없이 보안 패치를 해야 하는 반제품 형태가 돼 있다. 하지만 그것 말고 미들웨어 라이브러리 같은 제품 중엔 유료로 판매되는 상업용이면서 아무 end-user에게나 판매하지 않고, 구매자에게 소스를 제공하는 형태가 있다.

(2) abandonware: 도스용/16비트용 프로그램들, 아래아한글 3.0/97, Windows 95/XP 따위.. 오늘날 아무도 실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는 옛날 구버전 소프트웨어들은 아무래도 상업적인 가치는 없다. 하지만 개발사에서 판매와 지원을 중단했다고 해서 그 프로그램의 저작권 자체가 법적으로 소실된 건 아니다. 저작권이야 거의 70년인가 그 동안 유지되기 때문이다. abandonware가 곧 public domain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한물 갔다고 해서 과거의 상업용 소프트웨어를 마음대로 불법복제 해서 써서는 안 된다. 개발사에서 정식으로 무료화를 선언하지 않은 한 말이다. 허나, 이제 더 정식으로 판매되지 않고, 돈 주고 사겠다고 해도 구할 수 없어서 복제해서 쓰는 걸 누가 어떻게 뭐라 하겠는가? 그런 구닥다리 제품으로 복돌이가 개인 단위로 무슨 금전적인 이익을 얻고 있을 리도 없고..
이런 이유로 인해 현실적으로는 개발사에서 저 정도는 사실상 그냥 방치· 묵인해 주고 있을 뿐이다.

3. 오픈소스

요즘 어지간히 규모 있는 소프트웨어에서 about 대화상자나 도움말의 한구석 acknowledgements란을 꺼내 보면.. 이 제품이 내부적으로 사용한 방대한 오픈소스 라이브러리 목록이 없는 경우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동영상이나 일반 데이터 압축, 암호화, 영상 처리, 폰트 렌더링, 심지어 머신러닝…

그 정도 규모와 기능이면 돈 받고 판매하는 미들웨어 솔루션으로 손색이 없을 텐데 이런 게 소스까지 공개로 죄다 풀리니 요즘 소프트웨어들은 기술 수준이 엄청나게 상향평준화될 수밖에 없다. 소프트웨어 업계는 자동차 같은 다른 업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오픈소스'라는 진영 내지 이념· 트렌드 때문에 판도가 굉장히 크게 바뀌었다.

이 진영이 없었으면, 혹은 오픈소스라 해도 몽땅 무식한 GPL 일색이어서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면.. 컴퓨터에서 같은 기능을 사용하더라도 소비자는 더 비싼 제품을 써야 하고, 개발사는 여기 저기 로얄티를 내야 하는 게 많았을 것이다.

기능을 사용하는 것 자체는 몽땅 무료로 풀리게 됐으니.. 소프트웨어 업계는 그 사용자들이 무슨 기능을 즐겨 사용하고 무슨 생각과 취향을 갖고 있는지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이걸로 "어떤 더 고차원적인 돈벌이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용자의 취향을 더 정확하게 저격한 광고를 내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 듯하다.

물론, 마소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에서 zlib나 FreeType, libPNG를 사용했네, MIT/LGPL 라이선스를 준수하네 이런 식의 acknowledgement를 볼 일은 지금까지 없었다. 걔네들은 오픈소스 진영과 동떨어진 채 타사에서 유료 구입하거나 자체 개발해 놓은 밑천이 워낙 많으니 어지간한 상황에 대해서는 그런 게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지낼 수는 없을 것이고, 지금은 마소도 옛날 빌 게이츠/스티버 발머 시절처럼 오픈소스에 적대적인 독불장군이 절대 아니니 오픈소스 진영과 엮이는 비중이 차차 늘 것으로 보인다.

4. 소프트웨어 라이선스의 종류

이렇게 각종 소프트웨어들이 소스째로 무료로 풀렸다는 게 모든 지적 컨텐츠들이 풀려서 개나 소나 아무렇게나 사용해도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오늘날 컴퓨터로 남이 만든 것을 활용해서 이를 바탕으로 또 뭔가 새로운 걸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어느 때보다도 저작권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하고 있어야 한다.

컴퓨터가 실행하는 코드의 집합체인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디지털 폰트, 그리고 하다못해 짤막한 4단짜리 찬양 악보나 노래 음원 하나라도 무료 사용이 허용되는 조건이 까다로워지는 것이 요즘 추세이다.

물론, 개인이 혼자 집에서 무료로 비영리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보고 듣고 즐기는 것을 막는 저작권자는 사실상 없다. 음악, 특히 찬송 같은 건 알려져서 자기 곡이 어느 교회건 예배 때 회중 찬송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할 작곡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임의의 개작, 개조, 제작자 변조, 무단으로 상업적 활용 같은 걸 허용하는 저작권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운전 면허가 자가용과 사업용이 나뉘어 있듯, 소프트웨어의 사용권도 그런 형태로 나뉘는 경향이 있다.
폰트는 유료로 구매했다 하더라도 자기 개인 단위의 인쇄물이나 웹페이지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1차 라이선스, 더 나아가 옥외 간판이나 본격 상업 매체에 적용되는 2차 라이선스, 아예 제품에 범용적으로 포함되거나 특정 BI/CI에 들어가고 자기들만이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전속 서체 급의 3차 라이선스 형태로 나뉘어진다.

반디소프트의 반디집의 경우 2020년 7.0 버전부터 유료 버전을 따로 내놓기 시작했는데, 파워 유저를 대상으로 하는 개인 단위 유료(프로) 에디션, 그리고 기업에서의 사용을 염두에 둔 PC 단위 유료(엔터프라이즈) 에디션을 내놓은 게 무척 독특하다. 현실성 있는 유료화 정책에 대해 개발사에서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엔터프라이즈 에디션을 구매하지 않은 기업 내부라고 해도 각 직원이 무료 에디션은 여전히 사용할 수 있다. 그 대신 얘는 광고가 뜨며, 기업 서버와의 최소한의 접촉을 막을 수 없다(업데이트 체크, 언제나 온라인으로만 설치).

이런 라이선스 종류는 아까 같은 영업기밀~소스 공개 같은 수직 비교와는 다른 양상의 수평 비교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0/03/12 08:35 2020/03/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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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옛날 영화 이야기

1. 복수극

킬 빌(2004), 악마를 보았다(2010),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2010).
굉장히 폭력적이고 잔혹한 묘사가 담긴 복수극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제각각 개성과 차이점도 있다.

국산인 ‘악마를…’만 주인공이 남자이다. 나머지 둘은 주인공이 여자이고 자기 자신이 당한 것에 대한 복수를 한다. 이 두 영화는 복수 대상이 다수 내지 집단인 반면, ‘악마를…’은 복수 대상이 단 한 사람이다. 그 대신 결투가 끝난 뒤에도 적을 곧장 죽이지 않으며, 고통을 더 오래 겪게 만들겠다는 명목으로 살짝 다치게만 한 뒤 일부러 살려 준다.

‘킬 빌’은 잘 알다시피 온갖 옛날 영화 오마주가 가득하며, 사지가 썰리고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비현실적인 과장이 많다. 하지만 나머지 둘은 악역이 저지르는 흉악 범죄를 부각시키면서 다소 진지한 분위기이다.

‘킬 빌’과 ‘악마를…’은 주인공이 킬러 교육을 받았건, 첩보기관 요원이든 해서 기예의 달인이라는 설정이 있다. 하지만 ‘내 무덤에…’의 주인공은 그런 것과 무관한 평범한 여류 작가이다. 그런 그녀가 공범도 없이 혼자 남정네들을 하나씩 능숙하게 유인해서 빠따 한 방에 즉시 기절시키고, 그 무거운 남성을 질질 끌고 가서 미리 세팅해 놓은 형틀에다 번쩍 들어서 묶고 고정시키는 건 굉장히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킬 빌’과 ‘악마를…’은 복수가 다 끝난 뒤엔 주인공이 우는지 웃는지, 희열인지 오열인지 모를 므흣한 표정 연기를 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그러나 ‘내 무덤에…’는 주인공이 그냥 앉아서 담담한 표정만 짓는 걸로 끝이다.
‘킬 빌’ 같은 “사랑해요 미안해요” 애증의 관계가 아니고, ‘악마를…’처럼 “난 네놈이 최대한 오래, 죽은 뒤에까지 영원히 고통받았으면 좋겠어" 라이벌(?) 구도도 아니고.. 그저 죽이고 싶은 강간범일 뿐이니 뭔가 보복의 관점이 다른 것 같다.

다만, ‘악마를…’과 ‘내 무덤에…’끼리도 꽤 비슷한 점이 있는데, 바로 마지막 악역이 죽는 방식이다. 악역의 지인이 찾아와서 뭘 건드리자 장치가 작동해서 악역 당사자가 죽는 것이다. 전자에서는 단두대가 내려와서 목을 뎅겅~ 해 버리고, 후자에서는 총이 격발된다.

아이고 내가 별 걸 다 비교하고 분석하고 있네;;
하긴, 그러고 보니 ‘복수는 나의 것’(2002)이라는 영화도 있었는데 위의 영화들 같은 전개는 아니다. 예쁘장한 여주인공이 평범한 조폭을 넘어 무려 무정부주의 반국가단체 멤버이고, 애 유괴조차도 착한 유괴와 나쁜 유괴가 따로 있다는 드립을 날리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런 '처절 복수' 말고 본인이 특별하게 기억하여 분류하는 영화는 분야별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전쟁사: 미드웨이, 연평해전, 인천 상륙작전
  • 권선징악 액션: 테이큰, 아저씨
  • 저예산 감금: 베리드, 화씨 247도, 12피트, 데블
  • 병맛 레트로: 쿵 퓨리
  • 철도: 라이터를 켜라, 튜브, 부산행
  • 남자에 대한 여자의 병적인 집착과 광기: 크러시(1993), 올가미(1997)

2. 옛날 버스

최근에 유튜브의 AI가 내 취향을 정확하게 저격해서 적절한 옛날 영화를 하나 제안해 줬다. =_=;;
1981년작 영화 ‘도시로 간 처녀’.

그 시절에 상경해서 버스 안내양으로 일하던 여성들의 애환뿐만 아니라, 전방엔진(FR) 형태에 하차벨이 없던 옛날 버스의 실제 모습을 생생하게 구경할 수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1978년의 서울 강남을 아쉬운 대로 재연한 2004년작 영화인데, 저건 딱 그 시기에 실제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그러니 시대 반영이 더욱 정확할 수밖에 없다.

현대 FB보다도 더 옛날인 HD 170급의 골동품 버스를 이렇게 보다니 반가웠다. 지금이야 현대 버스는 바퀴 fender가 둥글고 대우 버스가 각져 있지만, 1970년대엔 현대 버스가 펜더가 각져 있었다. 사실 저 땐 아직 대우도 아니고 새한이었다.

저 때가 앞문과 중문이 분리된 버스가 등장하기 시작한 과도기 같다. 문이 두 개 달린 버스는 중문이 뒷바퀴의 앞쪽에 있는 반면, 중문 하나만 있는 옛날 버스는 그 문이 앞바퀴의 뒤쪽에 있다. 그리고 자세히 관찰해 보면 앞문은 자동화가 돼서 운전사가 스위치로 개폐하지만, 중문은 여전히 안내양이 손으로 여닫는다.

‘말죽거리…’ 감독도 바로 저런 오리지널 버스를 구하고 싶었지만, 못 구해서 그것보다는 덜 옛날(?) 버스의 앞문을 부득이하게 틀어막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내가 보기에 감독의 말은 사실이다. 말죽거리에서 쓰인 버스는 BF105 정도로 추정된다. 전방의 방향지시등이 헤드라이트의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외형으로 미뤄볼 때 BF101은 아니고 빼박 확실하게 1980년대의 비교적 신형(?) 차량이다.

  • 본인은 금호 클래식카에 수집되어 있는 이 버스가.. 아마 말죽거리 잔혹사 소품으로 쓰인 버스라고 추측한다. 외형이 동일하다. 그런데 뒤의 등짝에 SMC 새한이 아닌 DAEWOO라는 엠블럼이 새겨진 것부터가 이 차량은 1970년대 차량이 절대 아님을 입증한다. -_- (대우 자동차 상호는 1983년에 등장) 얘는 BF105인데 1970년대 차량처럼 보이게 나중에 인위로 개조된 것이다.
  • 진짜 1980년대의 BF105 시내버스는 이렇다. 동일한 외형이지만 이미 앞문과 중문의 구분이 생겼고, 중문은 슬라이딩 형태로 바뀌었고 하차벨까지 생겨 있다. 엔진 배치가 여전히 전방인 것만 빼면 오늘날의 시내버스와 거의 차이가 없다.
  • 한편, 얘는 진짜로 1970년대의 옛날 시내버스인데, 메이커는 저 외형만 봐서는 모르겠다. =_=;; 아마 외제차 수입인 듯.. 좌석이 무슨 지하철처럼 벽면을 따라 롱시트 형태인 게 아주 인상적이다.

참고로 국내 최고의 버스 고증 전문가인 이 종원 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이 영화는 아직 자동문이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셈이다.

“82년 자동문이 생기고 인건비가 오르면서 안내양 수가 줄기 시작했다. 혼잡할 때만 안내양이 있었다. 안내양이 있을 땐 승객이 중문으로 타서 안내양에서 돈을 주고, 앞문으로 내렸다. 안내양이 없을 땐 앞문으로만 타고 내렸다.
84년에야 돈을 먼저 내는 선불제가 도입됐다. 이때부터 앞문으로 타서 중문으로 내렸다. 80년대 후반 아시안 게임, 올림픽 게임이 열리면서 버스가 발전했다. 정부에서 차체가 전보다 10~14cm 낮은 저상버스를 만들었다. 엔진도 뒤에 달려 소음이 줄었다.”


지금이야 카드로 찍기만 하면 모든 요금 처리가 전산으로 정확히 처리되고, 승객의 동선과 버스 이용 통계, 차내 혼잡도가 몽땅 빅데이터로 실시간 자동 집계되는 세상이지만..
40년 남짓 전 저 때만 해도 미개한 원시시대 그 자체였다.

카드는커녕 버스 토큰도 아직 없었는지 안내양이 승객으로부터 현금을 직접 취급했다. 그리고 승객 대비 돈이 너무 적게 걷힌다 싶으면 안내양이 근무 중에 요금을 슬쩍 횡령하지는 않나 의심을 받고 굴욕적인 몸수색까지 당해야 했다!
저 영화 중에도 그런 장면이 나온다. 운동 선수로 치면 도핑 모니터링 요원이 보는 앞에서 소변 검사를 받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도시로 간 처녀’는 이런 시대 배경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주연 여배우가 꽤 예쁜 건 버스부터 충분히 구경한 뒤에야 눈에 들어왔다. =_=;;

Posted by 사무엘

2020/03/07 08:35 2020/03/0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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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행기

교통수단들별로 조향과 자세 제어를 위해 존재하는 기동을 잘 생각해 보면..
비행기는 3차원 공간에서 roll (갸우뚱), pitch (끄덕끄덕), yaw (설레설레)가 모두 있다. roll과 pitch는 조종간을 움직여서 조작하고, yaw는 러더 페달을 밟아서 조작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와 달리 자동차는 핸들 조작에 대응하는 yaw만 존재하는 셈이나,
육상 교통수단 중에도 이륜차는 yaw뿐만 아니라 ROLL도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커브를 빠르게 돌 때 원심력을 상쇄하기 위해 차체를 커브 안쪽으로 기울이는 것 말이다. 이륜차니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비행기도 상황이 같지는 않지만 비슷하다. 좌우로 선회한다고 해서 마치 자동차 핸들을 꺾듯이 yaw만 간단히 주는 식으로 기동하지 않는다.
roll을 줘서 기체를 한쪽으로 기울인 뒤, 그 상태로 pitch를 위로 향하게 하면 기체는 옆으로 선회하게 된다. 비행기를 타 봤다면 이건 익숙한 경험일 것이다. yaw는 roll/pitch부터 주고 나서 자세를 최종적으로 바로잡는 보조 용도로나 쓰인다.

이는 roll, pitch, yaw의 순으로 갈수록 항공역학적으로 부담이 크고 기동의 난이도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roll은 비행기의 진행 방향 기준에서 볼 때 동체의 형태가 바뀌는 게 전무하고 주익만 까딱까딱 위· 아래로 움직인다. 그러나 yaw는 동체 양쪽의 엔진 출력을 달리해야 하고, 그 결과도 양쪽이 받는 공기의 양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비행기가 roll 없이 자동차 같은 평이한 코너링을 할 수는 없다.

이런 조종도 비행기가 바른 각도 이내에서 일정 속도 이상으로 날고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착륙이 임박해서 기체가 왕창 속력이 줄었을 때는 조종이 잘 되지 않으니, 아직 속도와 고도가 높을 때 미리 바른 착륙 자세를 설정해 놓아야 한다. 그래서 비행기 조종이 어려우며, 상하 좌우 두 축으로만 가면 되는데도 굳이 축이 3개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착륙을 하려다가 실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인 것이다.

하긴, 회전익인 헬리콥터는 상승이나 하강을 위해서 pitch를 조절할 필요는 없고 수직 이착륙이 가능하다. 그 대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pitch를 낮춰야 한다. 걔는 전진이 '앞으로 기울어져 선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헬리콥터는 하늘로 떠서 전진하는 원리가 고정익 비행기와는 완전히 다른지라, 거기는 거기만의 항공역학이 따로 존재한다. 테일 로터가 없으면 동체가 로터의 회전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뱅글뱅글 돌아가 버리니, 걔의 회전 속도를 조절하는 것으로 yaw는 자동으로 해결될 듯하다.

2. 대중교통의 송풍구

자동차에서 바람(에어컨이건 히터건 단순 바람이건 무엇이든)이 나오는 송풍기는 보통 이런 모양이다. 사각형이고, 풍향을 조절하는 칸막이가 수평 수직 각 축별로 있으며, 풍량 조절은 별도의 동그란 게이지를 돌려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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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버스를 타면 이렇게 동그랗게 생긴 송풍구를 볼 수 있다. 지금 당장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송풍구가 위에 달려 있는 열차 같은 다른 교통수단들도 비슷한 형태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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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사람이 팔을 위로 뻗어서 힘들게 조작해야 해서 그런지, 잡다한 게이지들 없이 앞서 살펴보았던 승용차용 송풍기보다 더 간편하게 조작 가능하게 돼 있다.
한 칸막이로 수평· 수직 기울이기가 모두 가능하다. 비행기로 치면 yaw와 pitch가 모두 된다. 그리고 칸막이 자체를 다이얼 돌리듯이 돌려서 roll을 하면.. 그걸로 풍량 조절이 된다.
오오.. 이런 식으로 동그란 칸막이 하나에다가 풍향과 풍량 조절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구나~! 순간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이스틱, 트랙볼, 마우스 같은 포인팅 장비들도 기본적으로는 수평· 수직 두 축의 궤적만 전할 수 있는데, 마우스는 모르겠다만 나머지 둘은 스틱이나 볼 자체를 좌우로 비틀어 돌려서 한 축의 궤적을 더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휠 같은 데에다 활용할 수도 있겠다만 처음에 지원되던 수직 단일로 한정이다. 요즘은 휠도 수평· 수직을 모두 지원하는 추세여서 제대로 지원하려면 얘만의 고유한 손잡이가 필요하다.

3. 성경에서 너비와 길이와 깊이

엡 3:18을 보면 "모든 성도들과 함께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어떠함을 능히 깨닫고"라고 나와 있다.
앞뒤 문맥을 보고는 많은 성경 역본이나 주석이 저 구절을.. '하나님의 사랑이 x y z축 어디로나 얼마나 방대하고 위대한지 깨닫고"라고 편하게 번역하거나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해당 본문 문장은 통사론적으로 그렇게 연결되는 구조가 아니다. 추상적인 게 아니라 그냥 말 그대로 물리적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이다. 이거 정체가 뭘까?

단서가 될 만한 관련 참고 구절은 롬 8:39이다. 같은 바울이 "높이, 깊이, 그 어떤 창조물이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놓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는 우주의 어마어마한 높이와 깊이를 가리키며, 하나님의 사랑이나 지식은 그런 것조차 아득히 초월한다는 걸 말한다. 저 높이와 깊이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단절시켜 버릴 법해 보이는 물리적인 장벽일 뿐이지, 최소한 사랑 같은 훈훈한 추상명사는 아님이 명백하다.

바울은 서신서를 저술하면서 하나님의 영감으로 우주의 스케일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유를 구사할 때 그런 단어를 종종 사용한 것이다. 한국어로 번역하면서는 '-이', '-음' 이라고 접사의 종류가 달라지긴 했지만, 하나로 일치시키는 게 더 바람직할 것이다.

여담이지만, 송 명희 작사 <계신 주님>이라는 찬양 가사를 보면서도 뭔가 3차원적인 심상을 느낄 수 있다.

나의 앞에 계신 주님, 나의 눈동자에 주 있게 하소서 (roll)
나의 머리 위에 계신 주님, 나의 머리 들어 주 바라보게 하소서 (pitch)
나의 좌우 옆에 계신 주님, 나와 동행하시는 주 알게 하소서 (yaw)
나의 뒤에 계신 주님, 나를 안으시며 보호 하시는 주 의지하게 하소서


최 용덕 작사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와도 좋은 대조를 이루지 않는가? ^_^

Posted by 사무엘

2020/02/28 19:34 2020/02/2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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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A6 도로 살인 사건

1961년, 영국의 A6 도로 살인 사건은 정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막장 반전극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 소개글 1, 소개글 2)

일단, 강도 강간 살인 사건의 피해자부터가 유부남이 바람 피우던 불륜 커플이었다. 야밤에 차 몰고 나가서 외지에서 데이트 중이었는데, 갑툭튀한 복면+권총 차림의 단독 강도에게 털렸다. 피해자들은 돈 주고 이 차도 주고 신고도 안 할 테니 제발 풀어 달라고 강도에게 읍소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강도에게 저항하다가 총을 여러 발 맞고 말았다.

남자는 치명상을 입어서 목숨을 잃었다. 여자는 근처 농민에게 간신히 구조되어 살아나긴 했지만, 중상으로 인해 하반신이 마비되어 평생 휠체어 신세가 됐다. 범인은 남녀가 모두 죽은 줄 알고 이들을 밖에 버린 뒤, 차를 빼앗아 몰고 도주했다.

다른 목격자가 없는지라 범행 도구인 권총과 탄창의 동선, 근처 대중교통과 호텔 투숙객 목록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용의자가 어렵게 추려졌다. 하지만 정황 증거뿐, 물증이 없었다.
급기야는 무슨 테이큰의 “Good luck” 목소리 식별하듯이 생존 여성 피해자(발레리 스토리.. 스펠링이 Storie임)에게 용의자의 “시끄러, 조용히 안 해?”(현장에서 들었던) 목소리와 말투 재현을 들려주는 것만으로 “아, 이거 범인 목소리 확실해요!”를 확인받았다. 이를 토대로 ‘제임스 핸래티’라는 용의자가 결국 기소되었다.

체포된 핸래티는 이렇다 할 알리바이가 입증되지 않았으며, 이랬다 저랬다 말을 바꾸기도 하면서 의심 살 짓을 했다. 하지만 유죄건 무죄건 어느 쪽으로든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에 여러 인권 변호사들이 핸래티의 무죄를 호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사법부는 피해자의 증언에 더 큰 가중치를 두고 유죄를 확정해 버렸으며, 1962년 4월에 핸래티를 사형에 처했다.

여론은 들끓었다. 심지어 피해자 여자가 자기 불륜을 덮으려고 엉뚱한 사람을 누명 씌웠네, 피해자 남자의 부인이 불륜을 응징하려고 킬러를 따로 고용해서 보냈네 하면서 온갖 낭설이 떠돌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이 밖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게 되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저 외딴 곳에 권총 강도 달랑 한 명이, 그것도 별로 비싸지도 않은 소형차를 노리고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게 좀 뜬금없어 보이긴 한다... 또한, 성경조차도 유죄 판결은 최소한 두세 명 이상의 일치하는 증언을 확보한 뒤에 내리라고 돼 있는데 저건 그것도 아니었다.
논란이 너무 거세어지면서 급기야는 영국에서는 이 사건을 끝으로 사형 제도 자체가 폐지되고 말았다..;;

그러나, DNA 감식 기술이 도입되고 이 사건을 1999년(피해자 속옷의 정액)과 2001년(가해자 무덤..!)에 다시 조사한 결과는..

“핸래티는 진범이 맞았다!!!”


수만~수십만 분의 1의 확률이 맞아떨어지고 두 결과가 완벽하게 교차검증이 되니 더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비록 1960년대 당시에는 저런 기술이 없어서 검사와 판사가 자신의 감과 재량만으로 기소하고 다소 무리수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었지만, 마치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듯이 판결 자체는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 와중에 애꿎은 사형 제도만 같이 사형 당했고..

인권 진영에서는 수십 년에 달하는 자기 신념과 노력이 순식간에 도로아미타불 물거품이 됐으니 완전 멘붕 해야 했다. 그들 중 일부는 이미 인지부조화 상태에 빠져서 "아냐, DNA 감식이 잘못된 거야. 핸래티는 무죄가 틀림없어"를 끝까지 고집하기도 했다.;;

핸래티의 부모는 아들놈이 마지막 면회 때 도대체 무슨 약을 먹고 뻔뻔스럽게 “제발 저의 억울함을 풀어 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겼었나 허탈해할 수밖에 없었다.
최초의 피해자이던 ‘발레리 스토리’는 언론 인터뷰에 응하면서 이제야 애매한 사람을 골로 보낸 썅년이라는 누명을 벗었다고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분. 독신으로 살면서 긴 한을 푼 뒤, 77세의 나이로 지난 2016년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라도 DNA 감식 덕분에 1998년 대구 여대생 사망 사건의 진범이 근처 외노자였던 걸로 밝혀진 바 있다. 덕분에 당시 덤프 트럭 기사와 동기 남학생이 의혹과 누명을 완전히 벗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잘 알다시피 1980년대 “화성 살인의 추억” 진범이 밝혀졌으며, 결과적으로 같은 싸이코패스인 유 영철의 추측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죽은 게 아니면 다른 죄를 짓다 걸려서 이미 수감 중일 것이다. 사고 안 치고 이렇게 오래 조용히는 못 지낸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데모질 따위가 아니라, 과학 기술이야말로 범죄 수사에서 인권을 얼마나 상상할 수 없이 많이 크게 향상시켜 줬는지를 실감한다.
저런 게 없는데 당장 치안은 유지해야 되니 옛날에는 피해자의 증언과 용의자의 자백에만 목숨을 걸면서 강압수사에 고문까지 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피, 정액, DNA 같은 걸 생각하면 경이롭다. 사람이 자기 체액을 흘리면서 남긴 족적이라는 건 호락호락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핏자국쯤이야 어지간히 씻고 또 씻어도 루미놀 시약으로 식별 가능하며, 죽은 지 몇십 년이 지나서 다 썩은 시체에서도 저렇게 DNA를 추출하는 거 봐라. 겨우 지문이나 배설물 같은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성경의 “땅이 자기 입을 벌려 네 손에서 네 동생의 피를 받았은즉..”(창 4:11),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가 흘려진 땅은 그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민 35:33)
같은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영적인 계층, 문학적인 서사 과장 빈말이 결코 아니어 보인다.
그럼 시체를 땅이 아니라 바다에 쥐도 새도 모르게 던져 버리면 어떻냐고? “바다가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내주고…” (계 20:13)도 있다.

본인은 성경적으로나 개인 감정적으로나 강경 단호한 사형 제도 찬성론자이다. 늘 드는 비유이지만, 인간에게 사형 제도는 결혼 제도와 동급으로 성경적이고, 육식이 가능한 것만큼이나 이치에 맞다.
저렇게 나중에라도 극적으로 진범이 밝혀지는 사건도 있지만, 다음과 같은 국내 장기 미제 사건들은 생각하면 참 안타깝다.

영국의 저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강간까지 해서 자기 흔적을 더욱 커다랗게 남겨 놓았기 때문에 진범이 식별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 미제 사건들 중에는 용의자는커녕 피해자의 시체조차 못 찾은 것도 있다.. CCTV와 DNA 감식이 있었으면 금세 범인이 잡혔거나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인데~!

  • 1986 유명 모델/배우 윤 영실 실종
  • 1991 김 은정 아나운서 실종
  • 1991 대구 성서 초등학생 5인 실종· 살인 (일명 개구리 소년)
  • 1991 이 형호 군 유괴 살인
  • 1991~94 대천 영· 유아 연쇄 유괴· 실종
  • 1998 사바이 단란주점 살인
  • 1999 대구 아동 황산 테러 -- 죄질이 매우 나쁘고 참혹했던 사건.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는 계기가 됨!
  • 2000 김 신혜 존속살인 의심 (용의자가 잡히긴 했지만 피해자의 친딸이며, 현재까지 줄곧 무죄를 주장하고 있음)
  • 2001 부산 배산 여대생 살인
  • 2004 서천 카센터 방화 살인
  • 2004 광주 여대생 테이프 살인
  • 2005 서울 신정동 연쇄 살인
  • 2006 영등포 노들길 살인
  • 2008 서천 종천면 할머니 실종
  • 2008 부산 청테이프 살인
  • 2008 대구 초등학생 납치 살인

Posted by 사무엘

2020/02/26 08:36 2020/02/2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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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영상

유튜브가 광고 없는 유료 프리미엄 서비스를 밀고 홍보하기 시작하더니, 2019년 하반기쯤부터는 반대로 일반 무료 상태에서는 광고가 예전보다 더 길어지고 잦아진 것을 다들 느끼실 것이다. 원래 5초 1회로 시작했던 것이 6~7초 2회로 늘었다. 요런 걸로 유료 가입자를 확보하고 수익을 내려는가 보다.

하긴, 유튜브는 인터넷에서 깨진 동영상 링크라는 걸 없애고, 오프라인 다운로드가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60프레임 HD급 초고화질 동영상까지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실현한 엄청난 사이트이다. 모니터 주사율만 해도 평소에 50~60Hz를 쓰다가 75Hz이상을 맞추면 화면이 훨씬 더 부드러워진 게 느껴지는데.. 동영상도 60프레임짜리를 보면 화질을 떠나서 움직임이 확~ 더 자연스럽고 부드럽고 보기 편한 게 티가 난다.

쟤는 그냥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영상 기록들의 아카이브인 동시에 전세계의 개인 방송, 교회 설교 같은 것까지 몽땅 감당하고 있다. 집에 TV가 없어도 유튜브가 TV나 마찬가지이다. 동영상을 하나 보기 시작했다가 같이 뜨는 관련 동영상까지 섭렵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런 괴물이 등장할 거라고는 198, 90년대의 그 어떤 SF 작가도 예상하지 못했으며..
저걸 돌리려면 평소에 서버 유지비도 정말 장난 아니게 들지 싶다.;;; 이걸 버틸 재간이 안 되는 국내의 중소 동영상 포털들은 수지가 안 맞으니 2010년대 초· 중반을 못 넘기고 다들 망했다.

한 20여 년 전에 컴퓨터에서 동영상이라는 건 그냥 320*240의 자그마한 화면에서 노이즈 대신 JPG artifact가 가득한 허접한 화질로 보는 avi, mpg, mov가 전부였다. 전반적인 화질은 기존 VHS 비디오 테이프보다 결코 좋을 게 없고, 단지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이라는 의의만 있을 뿐이었다.
1990년대 초-중까지는 MPEG1/2급 동영상을 시청하기 위해서 별도의 그래픽 가속 하드웨어를 장착해야 할 정도였다. 동영상 캡처/인코딩이 아니라 단순 시청을 위해서도 말이다. 이런 가속은 통상적인 3D 그래픽용 가속과는 별개의 분야일 것이다.

그러다가 한 2000년경엔 갑자기 온갖 코덱들이 난립하기 시작해서 통합 코덱 패키지가 나오고, '사사미'라고 자막이 화면에 깔끔하게 입혀진 채로 뜨는 새끈한 동영상 재생기가 개발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고화질 영화· 애니 동영상은 각종 P2P 불법 공유 네트워크를 통해 많이 오갔던 것 같다.
온라인 실시간 스트리밍으로는 어림도 없고.. 유튜브만 해도 2010년대 이전에는 여전히 3~400대 해상도에 머물러 있었으며 동영상 하나당 10분 시간 제한까지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난 동영상 압축 알고리즘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다. 인접한 프레임, 그리고 인접한 픽셀들이 서로 유사하다는 것을 이용해서 차이점만 담는다는 것이 골자일 텐데.. 이건 컴퓨터에서 캐시의 개념을 설명할 때 언급하는 시간 지역성, 공간 지역성하고 비슷한 개념 같다. 그나마 동영상 재생 및 압축 기술이 다들 대인배 오픈소스로 풀려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폰이나 PC에서 더 저렴하고 간편하게 동영상을 즐길 수 있다.

2. CPU의 다양다변화, 병렬화

21세기에 컴퓨터 CPU에서 단일 코어 클럭 속도의 '기하급수' 증가가 드디어 멈췄다. 그 대신 지금까지 슈퍼컴퓨터 세계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멀티코어가 개인용 PC에도 등장하게 됐다. 이게 1차 변화이다.

그래서 어느 플랫폼에서나 동일한 방식으로 스레드를 생성하라고, CPU의 여러 코어를 잘 제어하고 활용하라고 OpenMP라는 규격이 제정되기도 했다. 이건 특정 연산에 대해서 적당히 병렬화하라고 지시를 내리는 여러 C 함수와 언어 확장, #pragma들의 모음이다. 난 지금까지 UI의 반응성 향상을 위해서만(= 백그라운드 작업) 스레드를 사용해 왔지, CPU 자원을 몽땅 쪽쪽 빨아서 쓰기 위해서 스레드를 동원해 본 적은 없었다.

요즘 컴퓨터들은 뺑뺑이를 돌려 봤자 전체 CPU 사용량이 10%대밖에 되지 않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별다른 최적화 없이 무턱대로 스레드를 만들어서 CPU 사용량을 늘리면 그래 봤자 throughput이 그저 전체 CPU 사용량에 비례해서 팍팍 오르는 것은 확실히 아니어 보인다.

작업 스레드를 만들면 각 작업들의 수행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려지기 때문이다. 이는 어지간한 하이엔드급 컴에서도 관찰 가능한 현상이다. 뭐랄까, 작업 스레드가 증가하면 context switching 같은 다른 오버헤드도 추가되어서 전체 효율이 떨어지는 것 같다.

프로그램을 너무 많이 띄워서 메모리가 부족해지면 가상 메모리 페이징(디스크 스와핑)만 죽어라고 하느라 컴퓨터의 작업 수행 속도가 급락한다. 좁은 화면에 창을 너무 많이 띄우면 사람도 창 전환만 하느라 작업 능률이 급락하며, 반대로 모니터를 여러 개 연결하는 건 생산성을 사기급으로 향상시킨다.
이와 마찬가지로 CPU의 성능에 걸맞지 않게 작업 스레드가 너무 많아지만.. 작업 전환 비용의 증가만으로 성능이 극도로 떨어질 수 있겠다.

그런데 요즘은 그걸로 끝이 아니다. 게임용 3D 그래픽 렌더링이나 좀 보조하라고 만들어졌던 add-on인 GPU도 거기에만 쓰는 게 아깝다. 굳이 3D 그래픽이 아니어도 그것처럼 단순무식하고 물량빨인 계산 작업이 있으면 거기에도 GPU를 투입할 수 있다. 특히 살인적인 노가다 계산이 필요한 머신러닝 분야에서 GPU 연산이 더욱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것도 별도의 프로그래밍 영역이 됐다. nVIDIA에서 GPU 활용 프로그래밍을 위해 OpenMP와 비슷한 컨셉으로 CUDA라는 라이브러리를 내놓았다. 이건 그냥 인텔 내장 그래픽을 쓰는 노트북 같은 기계에서는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이 멀티코어 CPU와 다른 점이다. 그것 말고 OpenCL 같은 다른 GPU 라이브러리도 등장했다.

하긴, 아직 싱글코어 시절일 때도 아까 얘기했던 동영상 정도의 멀티미디어 처리를 위해서 인텔에서는 SIMD(1명령 다중 데이터) 정도의 병렬 처리를 지원하는 명령을 도입한 적이 있었다. 그게 옛날 1990년대 말의 펜티엄 프로~III 기간에 추가된 MMX 내지 SSE 명령이다. 얘가 기존 x87 명령을 대신해서 부동소수점 연산까지 처리한다.

옛날에 하드웨어의 성능을 극한으로 짜내는 게임을 만들려면 어셈블리어를 알아야 하고 비디오 메모리에 직통으로 내용을 직접 뿌린다거나 해야 했다. 지금은 특정 CPU의 인스트럭션을 써 주는 짓은 필요 없지만, 그것과는 좀 다른 양상으로 하드웨어를 직접 다루는 최적화 테크닉이 필요한 시대가 되어 있다.

3. 슈퍼컴퓨터 내지 CPU 아키텍처의 명멸

본인은 어린 시절에 슈퍼컴퓨터라고 하면 덩치가 크고, 내부에 무슨 금칠이라도 했는지 가격이 억소리 나게 비싸면서.. 개인용 PC보다 메모리가 훨씬 더 방대하고 반응 속도가 수십 수백 배 정도 더 빠른 물건 정도로나 생각했다.
뭐, 20세기 옛날에는 개인용 컴퓨터 대비 전용 슈퍼컴의 차이가 그런 단순한 차이점에 더 근접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은 개인용 PC가 10~20년 전의 업계 최고의 슈퍼컴보다 더 빠르다. 마치 오늘날의 무선 인터넷이 10~20년 전의 유선 인터넷보다 더 빠르듯이.. 정말 경이로운 노릇이다.
이제 슈퍼컴이라고 해서 개인용 PC보다 단순히 기계적으로 무식하게 더 빠르지는 않다. "개인용 PC가 64비트 3~4GHz대니까 슈퍼컴은 machine word가 256비트이고 클럭 속도는 40GHz 정도 하겠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제는 슈퍼컴 전용 아키텍처, 전용 운영체제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비트 수가 차이 나는 것도 아니고.. 다 똑같이 x86이다.
차이가 나는 건 계산을 위한 코어수뿐이다. 그걸 정교하게 제어하는 별도의 프로그램을 짜서 돌려야 슈퍼컴의 성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단일 코어의 클럭 속도는 이제 개인 PC도 슈퍼컴과 비슷하거나 더 나으면 낫지,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
그냥 단일 코어만 열나게 돌리는 PC용 PI 계산 프로그램을 그대로 돌리면 슈퍼컴이라고 해서 몇백만 자리가 즉시 짠~ 하고 튀어나오지 않는다.

옛날의 전용 패러다임과 재래식 생산 공정 하에서 슈퍼컴을 열심히 연구 개발했던 크레이 같은 공돌이가 오늘날의 컴퓨팅 환경을 본다면 놀라서 까무러치지 않을까 싶다.
통상적인 시뮬레이션· 계산용 슈퍼컴은.. 단순히 외부로부터의 대용량 트래픽 처리용인 고성능 서버하고는 지향하는 게 다르다. 스포츠 사격과 군대 사격이 다른 것만큼이나 다르다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IBM 메인프레임은 둘 중 어느 용도에 더 가까운 걸까..?

오늘날은 PC가 성능이 워낙 향상되어서 PC와 슈퍼컴 사이의 경계 축에 들던 '워크스테이션'이라는 컴퓨터 체급도 의미가 많이 퇴색했다. 굳이 따지자면 맥 프로 같은 high-end급 PC일 뿐이겠지.
그 시절에 워크스테이션이란 운영체제도 OS/2나 솔라리스, NextStep, Windows NT 정도 돌리던 전문가 업무용 컴터였으며 가격은 거의 경차 한 대에 육박했었다. 노는 물이 도스나 Windows 3.1 따위하고는 완전히 달랐다.

이런 식으로.. 데스크톱 PC는 호환성이 깡패인 x86+x64 천지가 됐고, 모바일은 ARM인데 얘들도 PC로 호시탐탐 진출하려고 노력하는 중.. 거기에다 게임기는 아직 PowerPC가 살아 있나 모르겠고, 메인프레임에 IBM POWER 정도가 살아 있는 것 같다.
이젠 구글과 애플도 CPU를 직접 만들려고 하고.. 과거 Windows NT 3~4 시절과는 다른 의미의 CPU 아키텍처 춘추 전국 시대가 열리는 게 아닌가 모르겠다. 결국은 이식성 좋게 만들어진 소프트웨어가 승자가 된다.

4. 전자와 전산의 관계

가만히 생각해 보면.. C++ 언어로 Windows MFC 등.. 상대적으로 '특정 플랫폼 실무에 가까운 프로그래밍'을 자주 하는 사람은 전산· 컴공보다는 전자공학 쪽에 더 많았던 것 같다. 과거에 유명한 Visual C++ 프로그래밍 베스트셀러 책을 집필했던 분들도 전공이 그런 쪽이었다. 세부적으로는 로봇 공학이라든가 디지털 신호 처리 쪽으로 말이다.

그럼 진짜 전산· 컴공을 한 사람들은 뭘 하는가 하면.. 좀 더 크로스 플랫폼이나 오픈소스에 친화된 스타일의 코딩을 한다. 뭐, 웹 프로그래밍도 방법론은 사뭇 다르지만 크로스 플랫폼 프로그래밍의 범주에 들 테고..
특히 PL 쪽 덕후들은 C++ 같은 지저분한(?) 언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Rust나 go 같은 더 마이너한 언어, 함수형 언어 같은 걸 즐겨 쓴다. 쉽게 말해 더 추상적이고 고차원적인(?) 걸 추구하는 듯하다.

아 그렇다고 모든 전자과 출신이나 모든 전산과 출신이 취향이 그렇게 갈린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그리고 신호 처리는 전자공학이지만 컴퓨터그래픽스는 명백하게 전산학의 세부 분야인 것 같다. 요컨대 영상을 렌더링 하는 건 전산학이고, 그 생성된 영상을 손실 압축해서 저장하는 건 전자공학 쪽인 셈이다. 다음으로 영상 인식 같은 건 전자와 전산이 별 구분 없이 같이 파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0/02/16 08:36 2020/02/1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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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갓 태어난 아기 내지 꼬마였던 1980년대, 레이건과 전대갈 대통령 시절 겸 히로히토 일왕의 말기는 미국· 일본· 한국 모두 경제가 호황이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잘 나가던 때였음이 틀림없다.
데모 하느라 성적이 개판이어도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대기업들에서 모셔 가려고 난리이던 시절? 방학 때 공사판에서 한두 달 노가다만 뛰면 대학 등록금이 짠 마련되던 시절? 적당히 월급 저축해서 집을 마련하고, 남자 혼자 외벌이만으로 집안을 먹여 살리는 게 가능하던 시절?

아 물론 이런 것들은 추억 보정을 받아 비현실적으로 미화된 것도 있고 걸러 가며 들어야 할 것도 있다. 그 시절에 전반적인 분위기가 저랬다고 해서 너님도 반드시 저 혜택을 입는 게 가능했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저렇게 풍요로운 시절을 보낸 세대들은 더 과거에는 우리보다 훨씬 더 험악하고 무질서하고 힘들고 어려운 나날을 겪기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6· 25 전쟁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1970년대의 악몽이던 석유 쇼크는 어떻게 극복했겠는가?

이때는 냉전의 여파로 과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기도 했다. 우주왕복선이 등장했고 이제 막 컴퓨터 '정보화 시대' 운운하고 있었다. 그래서 각종 창작물에서 로봇, 우주선, 컴퓨터에 대한 만능주의 환상이 마음껏 반영되어 들어가곤 했다.

그리고 음악은 만능 음향 제조기인 신시사이저가 발명된 지 얼마 안 되어 전자 음향이 세계적인 대세가 돼 있었다. 영상에서 CG는 아무래도 1990년대 이후부터 각종 영화와 CF에서 널리 퍼졌으며 1980년대엔 아직 소수의 실험적인 시도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 반면, 음향은 그보다 약간 이른 아날로그 시대부터 전자화 가상화가 진행된 셈이다.
이 글에서는 이런 점들을 감안하여 그 시절의 매체들 몇 가지를 회고해 보고자 한다.

1. 주찬양 2집 알렐루야

먼저 찬양 음반부터 언급하도록 하겠다.
세상에는 창세기 1장 6일 창조의 둘째 날 말고도.. 시리즈로 나온 물건들 중에 유독 둘째 넘버링이 존재감이 없거나 특이하거나 흑역사가 된 것이 좀 있다. 인텔 8086/88 다음으로 80186 CPU라든가 보잉 707 다음으로 717처럼 말이다.

옛날에.. 무려 1991년에 발매되었던 주찬양 선교단 10주년 컬렉션 음반에는 과거에 내놓았던 1집부터 7집의 곡들 중에서 명곡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유독 2집 소속인 곡은 전혀 없었다. 그러니 본인은 주찬양 2집은 도대체 뭔가 자연스럽게 의문이 들게 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얘는 평범하게 최 덕신의 창작곡으로 구성된 앨범이 아니었다.
미국의 빌 게이더 & 글로리아 게이더 부부의 창작곡으로 구성한 찬양 예배 앨범 Alleluia를 그대로 번역하여 수록한 음반이었다. 아무래도 1집과 3집의 사이에 나왔을 테니 발매 시기는 1986년~87년 정도로 좁혀진다.
영어 원판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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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We've gathered together just to praise the Lord.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뭐 이렇게 시작하고..
맨 첫째 1번 트랙은.. 무슨 올림픽 개막식 같은 느낌도 든다.
사회자가 시편 150편을 인용하면서 "나팔 소리로, 비파와 하프로 그분을 찬양할지어다" 이렇게 말하면 그 뒤로 오케스트라가 진짜로 그렇게 연주를 하고.. 그런다. ㅎㅎ 그래 봤자 스타일은 어쩔 수 없는 전형적인 1980년대 스타일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주찬양 2집은 주찬양 앨범들 중에 유일하게 외국 음반 번역이며 성격이 좀 특이하다.

"살아 계신 주"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예수 예수 예수 그 이름만 거기 있네"
"섬길 수록 더 귀한 주님" (주 내 맘에 오신 후에...)

요 찬송이 바로 게이더 부부의 곡이며, 저 앨범에 소개돼 있다.

7번 트랙이 "섬길 수록 더 귀한 주님"인데, (테이프에서는 B면 둘째 곡) 앞에 어떤 노년 신사의 인생 간증이 먼저 나온다. 영어 원판은 자기가 이제 70세가 됐다고 나오는데, 주찬양 2집 번역판에서는 회갑의 나이가 됐다고 약간 초월번역 됐다.
"일제로부터의 해방, 6· 25 사변 등의 여러 격변의 세월.." 운운하는 회고도 원판에는 없는 로컬라이징이다. 영어 원판이라고 해서 대공황이나 2차 세계 대전 같은 사건의 언급은 없다.. ^^

다만, 미국에서 어린 시절에 대공황과 2차 대전을 겪은 1910~20년대생은 정말 불굴의 Greatest Generation이라고 실제로 일컬어지긴 한다. 생존을 위해 겨우 10대 나이로 생업 전선에 내던져지고, 군 입대도 하는 개고생을 하면서.. 지금의 위대한 미국 천조국을 일궈낸 세대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처럼 나라 자체가 없어졌거나 헌정 체제가 널뛰기 하듯이 격변하는 일은 없었겠지만, 개인의 인생은 만만찮게 힘들었던 셈이다.
트럼프 성님이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고 슬로건을 만들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원조 great가 먼저 있었음)

1980년대 기준으로 나이 70이면 진짜 딱 저 세대에 맞게 떨어진다~! 다만, 검색을 더 해 보니 알렐루야 영어 원판 앨범은 1973년작으로 더 오래됐다고 한다. ㅎㅎ

2. 철도 음악

본인은 철덕으로서 Looking for you도 1988년작 음반에 수록된 1980년대 곡이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글쎄, 그 정도로 오래됐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데..;;
그리고 혹시 기억하는 분이 계시나 모르겠는데, 지난 2006~07년 사이... 08년부터 Let it be 가야금과 국악풍 시그널송이 도입되기 전의 과도기에 새마을호에서는 정차역 안내방송 전에 뭔가 전자악기 풍의 경쾌한 G장조 시그널송이 연주된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동일한 음악이 1988년도 롯데 월드 쇼핑몰 CF에서 쓰인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저 음악은 그보다 더 전부터 발표되었고 존재했다는 뜻이다.
저 음악의 제목과 작곡자는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것도 여러 무명의 영상 음악 아카이브/라이브러리에 수록된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롯데 월드 CF를 찾아낸 것만으로도 대단한 발견이다.

굳이 철도 BGM이 아니어도, 잊혀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불려지는 1980년대 BGM이나 팝송 따위가 있다면.. 그 음악이 만들어진 시대 배경과 맥락을 같이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3. 국내 가요와 동요

우리나라가 1980년대에 영화는 3S 정책과 맞물려서 좀 침체돼 있었다고 하나, 노래는 이때 의외로 명작들이 많이 배출된 것 같다.

  • 건전가요 아 대한민국
  • 코리아나 손에 손잡고
  • 해바라기 사랑으로
  • 이 상은 담다디
  • 혜은이 파란 나라, 피노키오
  • 신 형원 터, 개똥벌레
  • 동요 새싹들이다, 노을
  • 배따라기 아빠와 크레파스
  • 김 원중 바위섬

바위섬의 경우, 그냥 평범한 동요가 아니라 광주 사태 추모를 염두에 두고 가사가 쓰여진 거라고 한다. 어쩐지 그래서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졌다고 성경으로 치면 벧후 3:6 (그때 있던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을 연상케 하는 암울한 말이 있었던 것이군..

4. 영화 쿵 퓨리~!

아아~ 본인은 <쿵 퓨리>(Kung Fury, 2015)라는 미친 30분짜리 단편영화를 얼마 전에야 우연히 접했다.
정말 인간의 약빤 의식의 흐름과 병맛은 도대체 끝이 어딘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현웃 하면서 잘 봤다. ㅠㅠㅠㅠㅠ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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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대의 마이애미, GTA 바이스 시티
    (그러고 보니 "로보캅"은 배경이 디트로이트이고, "블루스 브라더스"는 시카고가 배경이구나! LA 배경도 어딘가에 있긴 할 것이다;;)
  • 들고 다니는 커다란 붐박스 라디오
  • 그 시절 티가 빵빵 나는 테크노스러운 전자음향 음악, 어설프게 SF스러운 폰트, 아날로그 VHS 노이즈와 그 색감
  • 모탈 컴뱃과 섀도 워리어 (서양 스타일로 왜곡된 오리엔탈리즘)
  • 킬 빌 (온갖 B급 영상물들 패러디)
  • 맥가이버와 스트리트 파이터 류 (빨간 머리띠만 -_-), 듀크 뉴켐 3D
  • 자동차 키트
  • 쿵푸 팬더 (!!!)
  • 공룡, 북유럽 신화
  • 그 시절 특유의 로봇, 우주선, 컴퓨터 해킹에 대한 만능주의 환상

젠장~ 쿵 퓨리에서는 저런 것들이 몽땅 다 오마주 되어, 짬뽕 돼서 나온다. =_=;;

옛날에 텔레비전에서 사람 실물이 튀어나오는 장면 정도는 어지간한 만화에서도 나왔지만, 여기서는 악당(히틀러..;; )이 전화기에다 대고 총질을 하니까 전화를 받는 사람이 죽는다. =_=;;
Hackerman, Kung Fuhrer 자막이 뜨는 그 촌스럽고 오글거리는 장면에서는 아 ㅆㅂ 소리와 함께 경악이.. '해커맨'을 보면, 서양에도 '금요일날, 프린터기, 역전앞' 같은 겹말이 얼마든지 쓰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병맛을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다. 이런 것인 줄 알았으면 돈 주고도 볼 의향이 있다.
만든 사람들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지.. 단, 만든 사람들 소변 도핑 검사도 시키는 조건으로 말이다.
운동 선수들 스포츠뿐만 아니라 영화도 정정당당한 상상력만 발휘해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ㅠㅠㅠㅠ

맨날 쿵푸 쿵푸 하는데 이건 功夫(우리말로 치면 '공부'에 더 가까운 소리!)에서 유래된 비격식 민간 어원이고, 위키백과에서는 '중국 권법의 총칭'이라고 분류돼 있다. 즉, 태권도나 가라테 같은 특정 무술 명칭이 아니라 일종의 집합이라는 것이다.
쿵푸의 하위 분류로 창시자별로 홍가권, 영춘권, 태극권, 절권도 등등의 파생이 있다. 마치 SVGA는 EGA, VGA 같은 특정 그래픽 모드가 아니라 여러 VGA 확장들의 총칭이듯이 말이다. 에휴.. 명작 병맛 영화 하나 덕분에 내가 이런 것까지 직접 찾아보게 됐다. ㄲㄲㄲ

철덕으로서 일말의 동질감이 느껴진 부분을 찾자면..
주인공이 번개를 맞고 코브라에 물려서 각성해서 쿵 퓨리가 된 것과 비슷하게, 본인은 새마을호를 타고 Looking for you를 들음으로써 철덕으로 각성했다.
그리고 히틀러가 쿵푸를 너무 좋아해서 자기 이름까지 쿵 퓌어러라고 지었듯이, 본인은 철도를 너무 좋아해서 영어 닉도 새뮤얼(새마을..)이라고 지었다. 이런 것도 비슷한 점이라 하겠다. 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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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영화에서 컴퓨터와 관련된 부분만 코멘트를 몇 가지 더 하겠다.
이렇게 시커먼 배경의 바둑판 격자 사이버 공간(?)은 1980년대 초창기 CG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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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CG 합성 영화라고 일컬어지는 그 유명한 1982년작 트론(TRON)에서 이런 장면이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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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선우 감독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때문에 쫄딱 망하기 전, 옛날에 만들었던 수작 중 하나인 <성공시대>(1988)에서도.. 컴퓨미라는(..!!) 가상의 제품과 그 광고 역시 전형적인 1980년대 상상력에 근거한 것이었다. ㅡ,.ㅡ;; 참, 그러고 보니 쿵 퓨리도 작품 중에 전화기 광고가 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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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쿵 퓨리로 돌아온다.
1980년대 8비트 컴퓨터에서 Java 코드가 줄줄 흘러나오는 건.. 저 영화의 개막장 안드로메다 초월 설정과 전개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 되는 비중의 아이템이니 그냥 넘어가자~ 해킹으로 시간 워프는 물론이고 주인공의 총상까지 치료하는 영화인걸 뭐.. ㅡ,.ㅡ;; 외계인의 컴퓨터를 해킹해서 방어막을 무력화시키는 것쯤은 시간 해킹에 비하면 완전 약과였다(인디펜던스 데이;;).

예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8비트 컴퓨터는 기술과 성능상의 한계로 인해 화면 해상도가 오늘날의 컴퓨터보다 매우 낮다. 코딩은 닥치고 어셈블리어, 아니면 최대한 잘해 봤자 C 정도만 나오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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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심지어 화면이 맛이 갔을 때 모니터를 툭 치니까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깨알같은 디테일까지 영화에 반영돼 있다!!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ㅠㅠㅠ 요즘은 스마트폰 같은 게 맛이 갔다고 해서 툭 치지는 않는다. 참 오래된 추억의 관행이다.
비현실적인 사기 해킹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찰물은 후대에도 로보캅 3, 걸캅스 등 여럿 있지만, 이 정도는 돼야 정말 진한 병맛이 느껴진다.

Posted by 사무엘

2020/01/25 08:35 2020/01/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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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는 숨을 오랫동안 참고 있으면 곧 극심한 괴로움을 호소하면서 기도를 열어서 무엇이라도 무조건적으로 빨아들이려고 애쓰게 된다. 주변이 온통 물이나 유독가스뿐이더라도 말이다. 이 때문에 다른 물질(흡입), 다른 도구, 외력(강제로 호흡 차단)으로 인해 질식사를 할지언정, 혼자 숨을 참아서 자살할;;; 수는 없다. 이건 인간이 스스로 호락호락 목숨을 끊을 수 없게 하는 일종의 안전 장치이기도 한 것 같다.

글쎄, 과거에 대종교의 핵심 간부이면서 독립 운동가였던 나 철, 서 일 같은 사람은 스스로 숨을 참아서 목숨을 끊고 자결· 순국했다고 전해진다. 마치 어느 만렙 불교 승려가 꼿꼿한 가부좌 자세로 분신 인신공양을 한 것만큼이나.. 저게 아주 특수한 수련을 통해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평범한 일반인에게 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숨을 안 쉬어서 인체가 괴로움을 느끼는 판단 기준은.. 정말 의외인데 산소 부족이 아니다. 반대로 체내에 축적된 이산화탄소의 증가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것만큼이나 이산화탄소는 물질대사로 인해 계속해서 생성되니까.. 그리고 이게 산소 부족보다 먼저 감지되는 더 민감한 현상이다.

코나 입을 틀어막거나 목을 조르는 게 아니라 그냥 얼굴만 비닐봉지로 씌워서 밀폐해 보면(...;;) 얼마 못 가 숨이 가빠지고 얼굴이 벌개지긴 한다. 이것도 산소 부족 때문이 아니라 봉지 내부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해서 호흡만으로 이산화탄소의 배출과 농도 조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요즘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평균 농도가 0.04%, 대략 400ppm으로 여겨지는데, 날숨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4%가량으로, 약 100배 증가한다.

이산화탄소의 배출은 잘 하고 있으면서 순수하게 산소만 부족한 상황은 인체가 제대로 감지를 못 한다고 한다. 그냥 나른하고 체력이 딸리고.. 물론 그 상태로 등산 같은 무리한 신체 활동을 하면 고산병 같은 증세도 일어나겠지만, 대기압이 정상이면서 격렬한 신체 활동 없이 산소만 없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픽 쓰러지고 훅 갈 수도 있다.

하긴, 그렇게 위험을 감지할 기력 자체가 사라지니까 말이다. 스타에서 다크 템플러가 일꾼을 원샷 원킬 하는 것은 under attack 경보가 안 뜨듯이.. 일산화탄소 중독 같은 걸로 질식한 사람만 해도 다 그냥 픽 쓰러지지, 얼굴 벌개지고 켁켁거리면서 의식을 잃지는 않는다는 걸 생각해 보자.

그리고 굳이 그 정도로 위험한 유독가스가 아니라 질소만 100% 있는 곳에 있어도 사람은 똑같이 픽 쓰러질 수 있다. 누가 나쁜 마음 품으면 이런 중독과 질식을 이용해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고통 없이 쉽게 가는 자살· 살인 방법을 고안할 수도 있을 정도이다.

수영을 하면서도 과호흡이라고 해야 하나, 이산화탄소만 내보내어 인체가 내보내는 자연스러운 호흡 충동을 강제로 억제함으로써 실제 체력보다 더 오래 숨을 참는 테크닉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도 조심해서 활용해야 한다. 멀쩡히 수영하던 중에 뇌의 산소 부족 때문에 아무 이상 징후 없이 의식을 잃고 익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키는 Shallow Water Blackout이라는 현상 내지 용어도 있으니 참고하시라.

이런 맥락에서, 요즘은 하품도 산소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최소한 주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졸음 운전은 명백하게 차내의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한 현상으로 여겨진다. 물론 그래도 날숨보다는 훨씬 낮은 농도이니까 졸리기만 하는 것으로 끝나지, 그 이상이면 탑승자들이 견디지 못한다.

운동을 할 때 몸이 지치는 것에도 숨이 차는 것과 근육이 저린 건 별개의 영역인데, 호흡과 관련해서도 산소 부족과 이산화탄소 과다는 서로 완전히 별개로 생각해야겠다.
인체가 자기 상태를 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이것 말고도 몇 가지 더 알려져 있다. 허기를 표현하는 배꼽시계만 해도 지금 정말로 영양분이 부족한 상태만을 곧이곧대로 나타내는 게 아니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며..

좀 극단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사람이 극심한 저체온증으로 동사하기 직전에 정신줄이 오락가락 다 놓였을 때는 오히려 불타는 듯한 더위를 느끼고 옷을 훌훌 벗기도 한댄다. paradoxical undressing이라고 이름까지 붙었는데 이것도 그 이유는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못해 있다.

이건 자가색정사만큼이나 사람의 사인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다. (스스로 옷을 벗은 단순 저체온증 동사자도 마치 강력 범죄를 당해서 탈의당하고 희생된 것처럼 보이게 되니까..) 그리고 온도나 음식뿐만 아니라 호흡 상태 판단 알고리즘에도 저런 식으로 헛점이 있는가 보다.

그래도 호흡이 어느 물질이 어떻게 변화하는 과정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체내의 산소 부족과 이산화탄소 과다는 대부분, 사실상 동치라고 봐도 무방하긴 하다.

끝으로 호흡 하니까 떠오르는 게..
음식의 맛은 혀로 느낀다고들 그런다. 그런데 숨을 참으면서 음식을 먹을 때는 절대로 감지되지 않다가, 숨을 코로 내쉴 때만 느껴지는 그 형언할 수 없는 ‘끝맛’은 도대체 무슨 기관 내지 장기가 어떤 원리로 감지하는 것일까? 굉장히 궁금해진다.

Posted by 사무엘

2020/01/09 08:35 2020/01/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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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사람들 열전

1. 중국: 한어병음의 고안자

중국에서는 1950년대 말을 기해서 공식 표기 문자를 간체자로 바꿨으며, 비슷한 시기에 발음 표기도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주음부호 대신 알파벳 기반의 한어병음으로 교체했다.

간체자는 모르겠고 한어병음을 고안한 사람은 '저우 유광'(周有光)이라는 경제학자 겸 언어학자이다. 중국을 우주 개발 강국으로 터를 닦아 놓은 첸 쉐썬만큼이나 자기 나라에 큰 영향을 끼친 천재 중 하나이다. 각각 문과, 이과 버전인지..?

저우 유광은 겁나게 똑똑했을 뿐만 아니라 겁나게 장수하기도 했다. 1906년에 태어나서 바로 3년 전, 2017년에 죽었다! 이 얘기를 해 주니 중국인 지인들도 꽤 놀라더라. >_<
철덕의 예시를 든다면, 경부선이 개통해서 증기 기관차가 다니던 해에 태어난 사람이 SRT 수서 고속철이 개통하는 걸 보고 죽었다는 얘기다. 심지어 자기 아들이 2015년에 80살의 나이로 먼저 죽었다..!!

남자가, 그것도 장수촌에서 평생 농사만 지으며 스트레스 없이 산 할배도 아니고, 교수 등 고위관직을 넘나들던 아저씨가 110세를 찍었다니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백 선엽 장군이 오늘 내일 100세 진입이긴 하다만..

그리고 첸 쉐썬 박사도 저우 박사만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1911년 태생, 2009년 사망으로, 100세에 근접하며 꽤 장수했다.
비슷한 연배인 타국의 로켓 과학자들과는 확연하게 비교된다. 독일-미국의 베르너 폰 브라운(1912-1977), 소련의 세르게이 코롤료프(1907-1966) 말이다.
누구든 몸 관리는 자기가 알아서 잘 해야겠다.;;

2. 일본: LHA의 개발자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1988년에 한국에서는 어떤 겁나게 똑똑한 의사가 '백신'이라는 이름으로 안티바이러스 유틸을 만들었다.
그런데 1988년에 일본에서는 어떤 겁나게 똑똑한 의사가 파일 압축 유틸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LHA. 개발자인 요시자키 하루야스는 최근 사진과 근황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은 아니다만, 여러 사이트들에서 1955년생의 내과의사(physician) 겸 아마추어 프로그래머라고 그럭저럭 소개돼 있다.

저 사람이 압축 알고리즘 자체를 완전히 새로 고안한 건 아니었다. 단지, 그 당시 외국 서적을 통해 압축 알고리즘 이론을 공부해 보고는 흥미를 느껴서 그걸 그대로 또는 자기 식으로 조금 바꿔서 어셈블리어로 코딩해 보고 lzh 파일 포맷을 만들고, 파일들을 한데 묶어 주는 유틸리티를 구현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니지만 말이다.

그때는 PC 통신으로 파일을 주고 받기 위해서는 압축 유틸을 다루는 게 필수였다. 소요 시간과 전화 요금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껏해야 format a: , diskcopy a: b: 이러던 시절에 압축 유틸리티는 이례적으로 명령 옵션 사용이 좀 복잡한 프로그램이었다. 그 시절에 압축 유틸리티라는 게 lha a xxx.lzh *.* (압축하기) 이런 식으로 사용되곤 했기 때문이다.

LHA는 일단 일본 내부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국민 압축 프로그램으로 등극했으며, 일본과 가까워서 그런지 한국에서도 유명세를 탔다. 내 개인적으로도 집 컴이 286 AT이던 시절, 태어나서 처음으로 써 본 압축 유틸리티는 pkzip이 아니라 LHA였다.
한국· 일본뿐만 아니라 영미권에도 알려졌는지, id 소프트웨어에서 Doom 같은 게임을 배포할 때 바이너리들이 이 방식으로 압축되었다고 한다. (정작 그 시절에 도스용 아래아한글은 내 기억으로 zip 압축이었는데..)

개발자분은 pkzip의 개발자인 필 카츠와도 종종 연락하고 친목을 나누면서 90년대 초까지는 프로그램을 버전업도 했다.
그러나 그는 본업이 따로 있는 사람인지라(능덕..) 프로그래밍에서는 서서히 손을 떼게 되었고, LHA는 후임 개발자 없이 압축률과 처리 속도 면에서 ZIP을 비롯한 타 압축 파일에 밀리기 시작했다. 유니코드, 64비트, 멀티코어 지원, 보안 문제 등등에도 대응하지 못했다.

Windows의 경우 XP에선가 zip 압축 파일 내부를 탐색기에서 일반 폴더 들여다보듯이 직통으로 조회하는 기능이 추가되었는데, 일본어판은 LZH 파일 내부도 그렇게 들여다보는 기능이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내가 직접 확인은 못 해 봤음)

허나 2010년대에 와서는 일본 내부에서도 각종 소프트웨어에서 LZH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대를 풍미했던 압축 파일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누가 만들었는지 LHICE라는 프로그램과 *.ice라는 압축 파일도 나돌았었는데.. 이건 그냥 LHA/LZH과 동일한 클론일 뿐이다.

3. 한국: 배우 신 영균

지난해 11월엔 원로 배우 신 영균 씨가 전재산 환원을 선언하면서 언론 인터뷰에 나섰다. (☞ 링크)
기사의 제목을 "내 관엔 성경책만 넣어 달라"라고 뽑으니 이거 뭐 당사자가 오늘 내일 하는 위독한 상황이고 유언을 남기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당사자는 91세의 나이에도 쟁쟁하시다. 사진만 보면 그냥 평범한 70대 노신사 정도로나 보일 정도로 건강하다~!

이분은.. 그야말로 만능 엄찬아였다.
집안 사정 때문에 서울대 치의대를 나와서 치과 의사를 시작했지만.. 연기를 너무 좋아하던 개인적인 꿈을 떨칠 수 없어서 결국 병원 때려치우고 이미 처자식이 있는 상태에서 데뷔했다. 196~70년대에 배우 및 영화 제작자로 전격 전업했다.
그래서 그 이름도 유명한 1964년의 최고 흥행작 <빨간 마후라>에서 주연 배우를 맡았다.

이분은 그러다가 사업과 부동산 투자에도 손대서 대성공을 거뒀다. 영화관을 통째로 소유하는 등 몇백억 대의 자산가가 되었고, 나중에는 교수, 정치인까지 역임했다.
인생 자체가 영화나 다름없는 입 쩍 벌어지는 ㅎㄷㄷ한 분이다. 의사부터 하다가 사업, 정치까지 다 손대고 갑부가 됐다는 점에서는 안 철수나 공 병우하고도 비슷하네..

그런데 이분은 그냥 세상적인 성공으로도 모자라서 신앙까지 완전 독실했다. 프로필 상의 종교는 침례교였다는데..
그 당시에 잘나가던 배우들이 갖은 스캔들에 이혼 이력 하나 없는 경우가 없다시피했던 반면, 이분은 그렇지 않았다. 술· 담배 안 하고, 평생 한 아내하고만 아무 트러블 없이 가정과 직업에 충실하며 살았다.

이 정도면 가히 모든 걸 완벽하게 이룬 분 같다. 완전 부럽다. 자기 인생이 자기가 연기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자서전이라도 쓴 게 없나 궁금하다.
이런 옛날 사람에 대해 내가 어떻게 아냐 하면.. 잘 알다시피 예전에 “소령 강 재구”부터 시작해서 옛날 영화 좀 뒤져보다가 프로필이 하도 인상적인 분이 있어서 기억에 남게 됐다.

비슷한 시기에 마침 17년을 재직하다가 91세 나이로 퇴직하신 맥도널드 최고령 알바 어르신 얘기가 보도됐던데.. 그분하고 거의 같은 연배인 것도 신기하다.

4. 박사

우리나라와 관련된 근현대 인물 중에는.. 대학원에서 논문 쓰고 통과되어 정식으로 박사학위를 받지 않았지만 관례상 박사라고 불리는 인물이 좀 있다.

가령, 서 재필은 의사이지, 박사학위 소지자는 아니다. 아마 의사 doctor와 박사 doctor가 헷갈려서 박사라는 호칭이 붙은 것 같다. 옛날에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프란체스카 여사를 보고도 '호주댁'(오스트레일리아?)이라는 별명이 통용될 정도였으니..
뭐, 서 재필은 한국인 최초로 서양의 의대 코스를 마친 사람었으며, 의사는 그 자체만으로 석· 박사에 준하는 고된 교육과정을 마친 사람이긴 하다.

또한, 호머 헐버트 역시 다트머스 대학을 나오긴 했지만 박사학위 소지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 정도 공식 학력만으로도 교육자로서 거의 대학 강사급의 일을 한 똑똑한 사람이긴 했다. 언어학, 신학 등 다방면에서 말이다.
이들과 달리 이 승만 할배야 누구나 잘 알다시피 진짜 미국 대학 박사 1호였고, 프랭크 스코필드는 수의학 박사였다. 공 병우 박사도 단순 의사를 넘어 나고야 제국 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까지 딴 사람이다.

5. 과학 분야 노벨 상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일본은 이제 일곱째도 아니고 17째도 아니고.. 무려 27째 노벨 상 수상자를 배출했다고 한다.
저 동네는 애초에 중소기업 연구원이 노벨 상을 받는 미친 나라이다. 노벨 상이 무슨 동네 똥개 이름도 아니고 뭐 저렇게 흔해 빠졌냐..

지난 2014년엔 청색 LED 관련 연구를 한 사람이 물리학상을 받았었는데 이번에는 리튬이온 전지 차례구나. 디스플레이, 그리고 2차 전지.. 다 오늘날 매우 중요하고 실용성이 높은 연구 분야이다.
일본의 저력은 알면 알수록 대단하고 무섭다. 그리고 저런 라이벌을 과거에 실력으로 꺾었던 현대와 삼성 경영주와 엔지니어들이야말로 진짜 우리나라 최고의 애국자였다.

요즘은 노벨 상 수상자들의 연령이 예전에 비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야말로 평생을 한 분야 외길만 파다가 인생 황혼기인 7, 80대 때 받는 게 보통이다.
정말 엄청난 돈지랄 인프라가 필요해서 여기 국력과 경제력으로 도저히 감당 불가능한 예외적인 분야가 아닌 한.. 노벨 상 수상자가 나오려면 방망이 깎던 노인, 독 짓는 늙은이, 은전 한 닢 같은 근성의 외곬수 과학 기술 덕후가 존중받고 예우받고 마음껏 오덕질을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저런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 그냥 떼거지로 우글거려야 하고, 상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는데 덤으로 따라오는 구조가 돼야 한다.

우주인이니 금메달리스트니 스타 과학자(그놈의 노벨 상 받는)니 육성하겠다고 난리법석 떨고 나라에서 멍석 깔고 전시행정 쑈 헛짓을 벌이면 벌일수록, 우리나라는 노벨 상과는 더욱 멀어지고 요원해질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1/01 08:32 2020/01/0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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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식물보다 키우는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드니 식품 버전인 고기 역시 채소보다 비싼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동물은 해체해서 식용 부위를 추출하는 것도 식물보다 훨씬 더 어려우며 고급 기술이 필요하다. 어디 그 뿐이랴? 보관하는 데도 식물보다 훨씬 더 저온의 냉장· 냉동이 필수이다.

하지만 인간은 근본적으로 채식만 해서는 영양학적으로 제대로 성장하고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고기를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인간은 소화 기관의 구조가 육식 동물에 더 가까운지라, 식물을 섬유질까지 몽땅 뽕을 뽑으면서 오랫동안 길게 소화하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걸 생각하면 풀만 뜯어 먹으면서 그 엄청난 덩치와 체력, 그리고 쇠고기라는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 내는 소가 참 대단하긴 하다. 개와 돼지는 사료가 인간의 음식과 어느 정도 호환되는 잡식이기라도 하지만 소는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일본인은 초식동물이니 길거리의 풀을 뜯어먹으며 진격하라"는...;; 가능할 리가 만무하다.

아 그런데 일본은 메이지 유신 근대화 이전엔 서민들에게 육식이 아예 법으로 금지되기도 했었다.!! 물자 절약 내지 정신력 단련(?) 명분으로 그것도 무려 1000년이 넘게 말이다. 물론, 알음알음 산짐승이나 물고기를 몰래 잡아먹는 것까지 금지는 가능하지 않았겠지만.. 이 정도면 무타구치 렌야 같은 사람이 "일본인은 초식동물" 드립을 칠 만도 했겠다. ㄲㄲㄲㄲ

또한, 한반도의 조선만 해도 소를 무단 도축하다 걸리면 사형이었다. 조선이 무슨 힌두 교를 믿어서 소가 숭배 대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소는 단순 식용으로 함부로 잡기에는 다른 용도로도 너무 비싸고 귀하신 몸이며 거의 국가 차원에서 수효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은 상업과 교통· 통신 기술의 발달, 냉동 기술의 발달 덕분에 인류는 어느 때보다도 고기를 풍부하고 저렴하게 먹고 있다.
고기는 식물에 없는 영양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영양과 별개로 부드럽고 기름기가 흐르는 게 비주얼과 냄새까지도 일품이다. 그렇다 보니

  • "반찬이 온통 잡범들뿐이네. 어디 살인 사건 하나 없나?"  (영화 아저씨 대사 중)
  • "식탁에서 자연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구나. 그런데 자연에도 달리는 동물이 있는데 여긴 그게 없네."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빨리 라면 끓여 주세요~ 그분..)

처럼 고기 타령을 하는 방법도 참 예술적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굶주리는 사람들도 있고, 또 식용 가축은 너무 많이 키우는 경우 각종 배설물로 인한 수질 오염과 지구 온난화(메탄 가스..) 문제가 커진다. 구제역 같은 질병 리스크도 있고 말이다.
엄청난 대량 생산과 동물학대 급의 착취로 단가만을 낮췄을 뿐이지, 고기 한 점을 얻는 데 드는 절대적인 비용이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차이가 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통상적인 소· 돼지고기나 생선 말고 좀 기괴한 다른 형태의 단백질 공급원, 그리고 기존 고기들의 대체제들이 연구 개발되고 있는 사례를 나열해 보았다.

1. 민물고기

서양에서는 위생 관념이 막장이던 옛날에도 생선을 날것으로 먹는다는 생각은 차마 안 했던가 보다. 회와 초밥을 세계화시킨 것은 일본이다. 생고기는 익힌 고기와 달리 잘 썰리지 않기 때문에.. 요리사가 잘 썰어 주는 게 중요하다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바닷물고기가 아니라 붕어 같은 민물고기를 회를 쳐서 먹는다면..?? 그것도 양식도 아닌 자연산을 그대로..??

이건 베어 그릴스 급의 그 어떤 생존왕이라도 권하지 않는 식사법이다. "난 관대하기 때문에 기생충의 숙주가 되고 싶어 미치겠소~!"가 아니라면 구충약을 단단히 챙기고 at your own risk로 먹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 쫄깃한 맛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여서 민물회 매니아 취향인 사람도 있다.

민물고기는 척추동물 급에서는 활동 범위가 가장 제한되고 좁은 생물이다. 안 그래도 물 밖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바다로 나갈 수도 없으니 말이다. 교통수단으로 치면 안 그래도 앞뒤로밖에 못 다니는 철도 차량인데 동력원도 단거리용 직류 전기만 가능한 도시철도 지하철에 비유할 수 있겠다. (일반열차용 교류 전철화 구간을 이용할 수 없음)
그리고 민물고기는 인류가 거의 최초로 섭취한 육류라고 여겨진다. 바닷물고기나 다른 육상 동물보다는 더 쉽게 얻을 수 있었을 테니..

2. 충식

취향이 정말 특이한 일부 말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듬이 달린 검정색 또는 형형색색의 벌레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징그러움과 더러움과 혐오감을 느낀다.
이런 생물들이 크기까지 척추동물 급으로 거대하다거나, 밟아 죽일 때마다 헤모글로빈이 섞인 시뻘건 피가 찍찍 터져 나왔다면.. 마치 사람 말고 다른 동물이 도구와 불을 다루는 것만큼이나 공포와 끔찍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덩치 작고 징그럽고 체액이 뻘겋지도 않고, 인간에게 민폐를 끼치는 경우가 많고, 번식력 하나는 왕창 막강하니.. 인간은 이런 곤충을 별 생각 없이 정말 잘 죽인다. 그리고 곤충이 식용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먹을 게 없으면 역사적으로 곤충도 먹어 왔다. 메뚜기 정도면 단백질 공급원이 될 수 있으며, 메뚜기 섭취는 심지어 성경에도 나올 정도이다. (레위기, 침례인 요한..)

실제로 곤충은 먹이 공급 비용 대비 뽑아낼 수 있는 단백질의 효율이 의외로 좋다고 한다. 그리고 동물 학대 논란 따위 전혀 없이 바글바글 떼거지로 양성해서는 곧바로 굽고 튀기고 가공해서 식품으로 만들 수 있다.;;; 벌레를 죽이는 건 돼지나 소 따위를 도축하는 것보다는 비교할 수 없이 가볍고 쉬운 일일 테니..

벌레(번데기 포함)를 그대로 굽거나 튀겨서 내놓는 것이랑, 벌레로부터 단백질 같은 성분만 추출해서 벌레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분말, 칩, 육포 등..) 식품을 만드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 현실에서는 중국 정도가 전자 같은 충식에 우호적인 듯하며, 영상물에서 사람들에게 충식에 대해 꽤 대놓고 긍정적으로 널리 홍보한 사례는 아마 라이온 킹이지 싶다. 심바는 자기 몸의 8할은 타 포유류가 아니라 곤충인 채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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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면, 오늘날 고기의 대체제로 연구되고 있는 건 후자이다. 충식이라는 티를 최대한 안 내려 하지만, 여전히 소비자로 하여금 심리적인 거부감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라 하겠다.

3. 콩고기 등의 식물성 고기

식물성 재료를 이용하여 고기의 외형과 맛을 재현하는 기술이 생각보다 오래 전부터 많이 발달해 왔다. 동물을 사랑하지만 고기 맛을 잊지는 못하는 채식주의자라든가, 원가를 최대한 낮추면서 얼큰한 국물과 고기 건더기를 fake로라도 구현해야 하는 라면 스프 제조업자들이 환영할 만한 소식이다.

고기화하기 제일 만만한 작물은 단연 콩이다. 콩은 지력을 소모하는 타 식물들과 달리,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해서 지력을 회복시켜 주는 아주 신기하고 유용한 식물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지방과 단백질이 풍부해서 진작부터 밭에서 수확하는 고기 급의 취급을 받아 왔다. 성경에서 다니엘이 바빌론에서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와 와인 대신에 먹었던 것도 그냥 채소가 아니라 콩이었다. (단 1:12)

대놓고 가공육이 아니면서 각종 냉동· 인스턴트 식품에서 고기 비스무리하게 박혀 있는 것들, 성분에 '대두단백'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것들은 전부 콩고기이다. 이것들이 고기 맛을 저렴하게 내는 데 이미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가공 비용이 들어가긴 하지만 그래도 원재료가 진짜 고기보다 워낙 저렴하니 수지가 맞는 듯하다.

콩고기도 싸구려만 있는 게 아니며, 비싸게 고퀄리티로 만들면 요리사도 구분을 못 할 정도로 레알 동물 고기하고 맛과 식감이 비슷해진다고 한다.
다만, 너무 비싸지면 그냥 진짜 고기를 쓰고 말지 콩고기를 만든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마치 위조지폐가 제조 비용이 액면가 이상으로 너무 비싸지면 만드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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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말고도.. 밥이나 분식류를 만들지 어떻게 저걸로 고기를 만드나 싶은 밀이나 쌀로도 고기를 빚어 내는가 보다. 햄· 소시지· 스팸 같은 가공육이야 싸구려는 진짜 고기 대신에 밀가루만 잔뜩 들어있긴 하지만.. 그런 곡식에도 단백질이 없지는 않다.

물론 이런 식물성 고기로 김치를 볶는 것까지 가능한 삼겹살이라든가.. 꽃등심, 갈비를 재현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햄버거 패티용 다진 고기라든가 제육볶음 정도는 충분히 따라잡았다. 기름기와 영양분까지 진짜 고기를 대체하지는 못해도 외형과 맛은 얼추 비슷해졌다는 것이다.

4. 배양육 (인조 고기)

앞의 2번은 척추동물을 죽이지 않는 것이고 3번은 동물을 죽이지 않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거 4번은 아예 채식만치도 생명체를 죽이지 않고, 실험실에서 생화학적인 방법만으로 고기를 만드는 방법을 말한다. 식용 가축의 줄기 세포를 키워서 살코기를 얻는 방법이 쓰인다.

이건 동물을 full scale로 키우는 게 아니라 고기를 얻는 부분만 인위로 얻는 아주 획기적인 방법이다. 글쎄, 원가를 더 절감하기 위해서 일명 GMO라고 불리는 유전자 조작까지 행해질 여지가 있는데, 그건 현재로서는 논란이 많으며 벌써부터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

배양육은 진짜 고기를 얻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윤리 문제와 비효율을 상당수 해결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생산 비용 자체가 너무 높다. 굉장히 비싸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식물성 고기는 저렴하기라도 한 반면, 식물에도 의존하지 않는 인공 배양육이 기존 대체 고기의 장점을 곧장 흡수 가능하지는 않은 실정이다.
그렇다고 당장 양산해서 단가를 낮출 수 있을 정도로 맛 좋고 육즙과 품질이 뛰어난가 하면 그렇지도 않기 때문에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5. 똥고기

인간의 배설물이 끔찍하게 더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거기에도 인체에 흡수되지 않은 영양분이 적지 않다는 것은 인류의 오랜 실험 정신(!) 덕분에 알려져 있었다.

식물에게야 동물의 배설물이 거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대변이 아닌 소변 정도는 여과· 정수해서 사람이 다시 마시는 기술이 실제로 쓰이고 있다. 특히 우주 정거장 같은 데서 말이다. 우주에서는 물이 귀한데 무겁기까지 하기 때문에 식수를 따로 챙길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소 연료가 연소한 결과물로 생긴 물이라든가 인체에서 나온 오줌까지 몽땅 재활용해서 식수로 활용해야 한다.

허나, 대변을 퇴비로 삭힌 것도 아니고 오리지널 X로부터 영양분을 추출하고 살균 처리를 해서 고기 패티를 만들었다면 선뜻 먹을 수 있겠는가? ㅠㅠ
이건 배양육이나 식물성 고기처럼 여러 기업들에서 앞다투어 연구한 건 아니고, 오덕의 나라 일본의 어느 대학교 연구팀(이케다 미츠유키 교수??)에서 2011년에 딱 한 번 결과물을 발표해서 전세계적으로 매스컴을 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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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생 문제는 정말 걱정 안 해도 된다면서 연구 책임자가 직접 먹으면서 인증을 했다.;;
그리고 생산 비용이 아무래도 기존 진짜 고기보다 더 비싸지만 생짜 배양육보다는 저렴하며, 이 역시 추가적인 후속 연구와 대량생산을 통해 충분히 낮출 수 있다고 그런다.

그러나 그 뒤로 연구가 얼마나 더 진행됐는지, 2019년 현재는 딱히 검색돼 나오는 게 없다. 연구하는 중에는 맨날 X과 부대끼며 사느라 X냄새 때문에 고생 많이 하지는 않았으려나 모르겠다... ㅠㅠㅠ

제주도에는 일명 똥돼지라고 불리는 '제주 흑돼지'가 유명하다. 털 색깔이 검기도 하거니와, 먼 옛날에 실제로 인분을 먹이면서 독특하게 사육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은 진짜로 똥을 먹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대변은 영양분만 들어있는 게 아니라 온갖 세균도 많기 때문이다.

이상이다.
1번은 좀 성격이 다르니 그렇다 치고, 나머지 대체 고기 생산 기술은 21세기 인류를 먹여 살릴 고부가가치 신기술 중 하나라면서 세계의 내로라하는 갑부들이 관심을 갖고 투자하고 있기도 하다.

단백질의 출처라는 게 식물로도 모자라서 벌레, 줄기세포, 심지어 대변까지 등장했다..;; 그나마 이미 어느 정도 통용되고 있는 것은 식물이 유일하고, 줄기세포 배양육은 아직 완성도를 더 끌어올려야 한다. 벌레와 대변은 기술적인 난관은 물론이고 사람에게 팔아먹으려면 심리적인 거부감도 극복시켜 줘야 할 것이고, 그게 안 되면 그냥 동물 사료용이나 환경 처리 기술 정도에나 의미를 둬야 할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맛 좋은 대체 고기가 저렴하게 보급되어 마치 쿼츠 시계나 디지털 카메라 같은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면.. 기존의 진짜 고기는 마치 기계식 시계나 필름 카메라처럼 현역 일선 주류에서 물러나고, 소수의 매니아 고급 취향용으로나 명맥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다만, 진짜 고기는 안 그래도 비싼데 대량 생산 메리트까지 없어지면 그 가격을 서민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렵게 되겠다. 그리고 그런 시대가 현재로서는 겨우 수 년 안으로 가깝게 금방 찾아올 것 같지는 않다.

*. 여담: 곤충이 죽는 방식

기왕 충식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문득 의문이 든다. 곤충은 죽을 때 왜 늘 벌렁 뒤집힌 채로 죽을까?
밟거나 누르거나 파리채로 때리는 등의 물리적인 방법으로 죽일 때는 실감하기 어렵지만, 살충제라는 비충격· 비파괴식(?) 방법으로 죽여 보면 놈은 약속이나 한 듯이 뒤집힌 채로 발버둥 치다가 죽는다. 파리건 바퀴벌레건.. 비행 가능 여부와 무관하게 말이다.

몸체를 일부러 뒤집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굉장히 흥미로운 현상인 것 같다.
그래서 각종 만화나 일러스트에서 곤충이 뒤집힌 모습은 죽은 모습과 거의 동급으로 취급된다. 사람 얼굴 그림에서 눈이 X자 모양으로 그려지고 혀가 튀어나온 게 기절하거나 죽은 모습의 상징이듯이 말이다.

글쎄, 겉의 현상만 보고서 본인이 세우는 가설은 곤충은 (1) 살충제가 뿜어져 나오는 바람에도 휩쓸려 날아갈 정도로 가볍고, (2) 배보다 위의 등 쪽이 훨씬 더 무겁다. 자동차나 선박만 해도 무게 중심이 높으면 잘 전복되듯이, 이런 구조 때문에 "곤충은 살충제에 몸이 마비되어 죽을 때는 대체로 벌렁 뒤집힐 것이다" 정도로 추측한다.

물론 이에 대한 답변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확인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다리가 맛이 가는 것하고 몸이 뒤집히는 것하고 무슨 인과관계가 있는지 답변이 납득이나 수긍이 가지 않는다.

멀쩡히 살아 있고 날지 못하는 곤충을 매끄러운 평지에서 180도 벌렁 뒤집어 놓으면 스스로 똑바로 설 수 있기는 한가 모르겠다. 가능한 놈도 있고 불가능한 놈도 있을 것 같다.
저렇게 뒤집힌 채 다리를 꼼지락거리며 사경을 헤매고 있는 곤충을 도로 뒤집어 놓으면 어떨까 궁금해진다. 실제로 이동하지는 못하겠지만 뒤집히지 않은 원래 자세대로 죽는 것 자체는 가능하지 않을까?

여담이지만 평범하게 자연사 내지 병사한 놈은 이론적으로는 그냥 배가 땅을 향한 평상시의 자세로 죽는다고도 한다. 허나, 대부분의 곤충은 인간에 의해 끔살 당하거나 아니면 자연에서 다른 동물에게 잡아먹히지, 자연사하는 놈이 과연 얼마나 되려나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26 08:35 2019/12/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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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이야기

지난 추석 때 산에서 벌초를 해 보니 동물과 식물의 차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이 들곤 했다.
톱과 낫으로 식물에게 하는 짓을 동물에게 그대로 했다간.. 그야말로 종류를 불문하고 처참한 광경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식물은 그렇게 베고 또 베어도 죽지 않고 끈질기게 또 자라난다. 뿌리까지 완전히 뽑아 버리거나 약을 쳐서 화학적으로 말려 죽이지 않는 한 말이다.

식물은 동물 같은 고통을 느낀다는 개념 자체가 없으며, 한쪽에서 발생하는 질병이 다른 쪽에서는 전혀 위험을 일으키지 않는다.
생명을 지니고 있는데 동물과 식물은 그 근원이 어쩜 이렇게 서로 다를까 싶다. 식물은 죽어서 부패하는 과정도 동물(특히 빨간 피가 흐르는 것들)보다는 훨씬 덜 역겹고 덜 징그럽지 않던가..

그리고 한편으로.. 산에서 야생 전투모기에게 수십 군데를 물려서-_- 서울 모기와는 차원이 다르게 오래 가는 가려움과 붓기를 체험해 봤다.;;
모기에게는 사람의 이산화탄소와 땀 냄새가 마치 삼겹살 굽는 냄새처럼 느껴지기라도 하는 걸까? 그리고 모기도 단백질이 그렇게 궁하지 않을 때는(;;) 그냥 평범하게 식물의 진액만 빨아먹는다는데?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모기나 거머리가 사람에게 아무 고통을 주지 않으면서 피부를 찢고 피를 쪽 빨아 가는 기술은 인류가 아직 개발하지 못한(주사기..) 신묘막측의 영역이 틀림없다..;;
이런 일이 있었던 관계로, 오늘은 특별히 식물에 대해서 그 동안 관찰하고 생각해 온 여러 썰들을 풀어 보겠다.

1. 풋사과와 풋고추

우리말에서 '풋-'이라는 접두사가 활발하게 쓰이는 식용 식물이 사과와 고추 말고 또 존재하는가 모르겠다. 둘 다 '풋' 버전은 표면이 초록색이다가, 완전히 익은 놈은 빨간색이 된다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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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의 경우, 빨간 고추는 너무 매우니 단독으로 우적우적 먹는 일은 사실상 없고, 다지고 갈아서 고춧가루나 다른 양념의 형태로 많이 먹는다. 그러나 초록색 풋고추는 복불복으로 아직 덜 맵기도 하기 때문에 얘만 단독으로 된장에 찍어 먹기도 하는 것 같다.

어떤 풋고추가 매운지의 여부를 외형만 봐서는 알 수 없으며, 내 경험상으로는 그냥 복불복 운에 의존해야 하는 것 같다. 다만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속담은 신빙성이 있다. 작고 홀쭉한 놈이 더 매울 가능성이 높으며, 반대로 큼직한 풋고추는 대체로 맵지 않더라.

한편, 사과의 경우 일부 초록색 껍질의 사과를 보면 마치 한국에서 흰 껍질 계란을 보는 것처럼 희귀· 희소함이 느껴진다. 이건 대놓고 설익은 풋사과를 딴 게 아니라 초록색 상태에서 여느 익은 빨간 사과에 준하는 맛이 나는 '아오리'라는 별도의 사과 품종이라고 한다.

배는 사과 같은 껍질의 색깔 변화도 없고, 내부가 공기에 노출되면 갈색으로 변색되는 것도 없으니..
금속으로 치면 철과 구리의 이온화 경향 같은 차이가 생물학적으로 존재하는가 궁금한 생각이 든다.

2. 억새

난 어린 시절부터 억새라고 하면 그냥 길다란 잎의 단면이 날카로워서 맨살이 베이기 쉬운 귀찮은 풀 정도로만 알아 왔다.
줄기에 뾰족한 가시가 숭숭 돋은 물건은 장미를 비롯해 여럿 있지만.. 잎이 저런 구조인 물건은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게 딱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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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은 억새도 갈대처럼 꼭대기에 하얀 이삭들이 달려 있어서 언뜻 보기에 둘이 잘 구분되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인터넷으로 억새를 검색하면 둘의 차이점, 구분 방법이 잔뜩 걸려 나올 정도이다.
둘이 그 정도로 서로 닮았는지는 본인도 미처 몰랐다. 다만, 갈대는 물 주변과 습지에서 더 즐겨 서식하고 억새보다 키가 훨씬 더 크다.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는 1937년도 곡인 '짝사랑'이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으악새는 그냥 억새의 방언인지, 아니면 다른 조류 동물인지 심상이 중의적이어서 영원한 논쟁거리로 남아 있는가 보다. 작사자가 오래 전에 죽고 없으니 말이다.

옛날에 "화왕산 억새 태우기"라는 행사가 경남 창영에서 3년 주기로 개최되어 왔다. 그러나 딱 10년 전의 6회 때 불을 잘못 질러서 방문객이 5명이나 숨지는 참사가 터지는 바람에 이 행사는 영원히 폐지되었다.

3. 관목(灌木 shrub)

세상의 식물 중에는 가로수 같은 아름드리 나무가 아니고, 나팔꽃처럼 덩굴 줄기밖에 없는 부류도 아니고..
굳이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나무이긴 한데 나무라는 걸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키가 왕창 작아서 몸통이 안 보이는 물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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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관목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다 자라도 키가 2미터를 안 넘고 작고, 초록색 잎만 둥그렇게 무성하면서 줄기· 몸통이 안 보이는 작은 나무(?) 말이다.
길거리나 정원 같은 데서 조경용으로 맨날 보는 식물이니 하나도 생소할 것 없다. 어떤 도로에서는 길가가 아니라 정중앙에 중앙분리대 대용으로 이런 부류의 식물이 심겨 있기도 하다.

얘들은 지면까지 차지하는 부피가 골고루 크기 때문에 조밀하게 심어서 사실상의 울타리 역할도 한다.
내가 이런 식물의 존재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별로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하긴, 대나무는 잘 알다시피 나무가 아니라 풀이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과일과 야채의 경계도 많이 헷갈리는 편이다.

4. 잔디

정원을 구성하는 식물 중에서 나무, 관목보다도 더욱 키가 작고 지표면을 가장 낮게 덮고 있는 건 잔디일 것이다.;; 얘는 뿌리와 잎만 있지 줄기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사람이나 동물들에게 허구헌날 밟히고, 초식동물에게 뜯어먹히지만 얘는 그래도 끈질기게 버티고 살아남는가 보다. 아 그러고 보니 땅뿐만 아니라 무덤 봉분을 뒤덮고 있는 것도 이런 부류의 잔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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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잔디가 심어져 있으면 미관에 더 좋은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온도와 습도 조절이 되고, 운동 경기를 할 때 선수들의 부상 위험도 크게 줄여 준다. 또한, 돗자리를 깔 때도 밑면에 흙먼지가 덜 묻게 해 준다. 신이 창조해 주신 정말 고맙고 유용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잔디도 겨울에는 죽어서 누래지는 놈이 있는가 하면, 언제나 초록색이 유지되는 상록(?) 잔디 또한 있다고 한다.

5. 잡초

'잡초'라는 건 발효와 부패의 차이만큼이나 매우 인위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분류이다. 잡초라는 종이 생물학적으로 따로 있다거나, 얘들이 무슨 해충· 병원균 급으로 인간이나 자연에게 심각한 해를 끼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똑같은 초록색이라고 해서 모든 식물이 식용 가능한 건 아니다. 글쎄, 상추나 깻잎 같은 건 인간이 먹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모든 채소잎을 뜯어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심지어 초식동물조차도 아무 식물이나 마음대로 먹을 수 있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밀림· 정글은 녹색 사막이라고 불릴 정도로 보기보다 인구 부양력이 형편없다. 그냥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는 의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잡초는.. 광합성을 해서 산소를 만들고 뿌리로 흙을 붙잡아 두는 등 식물의 아주 기본적인 공통 역할을 하는 것 외에 딱히 인간에게 기여하는 게 없고, 심고 관리하지 않아도 자라기는 왕창 잘 자라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인간이 진짜로 재배하려고 하는 농작물(생산성이 더 높은)의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에 잡초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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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가 무성한 뻘밭. 잔디밭과 비교하면 풀들의 키부터가 들쭉날쭉이고 미관에 좋지 않다. 마치 난개발로 스프롤 현상이 심한 도시의 건물들 모습 같다.)

아니면 농사와 무관하게.. 그냥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곳에 불쑥불쑥 불청객처럼 자꾸 자라고 생겨나기 때문에 잡초이다. 이런 잡초는 야외에서 시야를 가리고 미관을 해친다.
먹을 수 있는 식물이 잡초라고 불릴 일은 절대 없을 테니, 식용 가능하지 않은 것은 잡초의 필수 조건이라 하겠다.

왜 하필 인간에게 별로 유용하지 않은 식물이 유용한 식물보다 억척같이 잘 자라는 걸까? 그 근본 이유를 성경에서 찾자면 인류의 타락과 더불어 "또한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 (창 3:18) 말씀을 펴야 할 것이다.
농사를 짓는다거나 육군 군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이런 녹색 괴물의 강인함과 생명의 끈질김에 줄곧 경악하게 된다.;;

6. 약품

끝으로, 식물에게 치는 약품은 다음과 같은 종류로 나뉘는 듯하다.

  • 영양제 또는 병충해 치료제: 대상 식물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 위해
  • 농약: 대상 식물의 주변에 붙어서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해충· 잡초· 세균 따위를 제거하기 위해
  • 제초제· 고엽제: 대상 식물을 죽이기 위해

1번 영양제· 치료제는 혼자 성격이 많이 다르니 논외로 하고, 어떤 약품이 농약이냐 제초제냐 하는 것은 경계가 애매한 구석이 있다. 에프킬라가 모기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궁극적으로는 해롭듯이, 그 끈질긴 잡초를 말라 죽게 하는 농약이 보호 대상 식물에게도 어떤 형태로든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다. 단지, 이로운 농작물이 죽기 전에 잡초를 먼저 죽게 해 줄 뿐이다.

골프장은 산을 깎고 많은 나무들을 베어내어야 만들 수 있지만, 내부의 깔끔한 잔디밭도 농약을 왕창 많이 쳐서 유지되는 것이라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다만, 도를 넘는 정도는 아니고 나라에서 전국에 등록된 골프장들을 상대로 관리 실태를(농약 사용량 같은..) 조사도 한다고 한다.

농약은 번개탄만큼이나 자살 수단으로 하도 많이 악용된지라 미성년자의 구매, 얼굴 안 보이는 인터넷 거래를 통한 구매가 전면 금지되어 있다. 뭐, 자살이 아니라 실수로 마신 경우도 있고, 또 음식에다 고의로 몰래 타서 남을 죽이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었다. 그러라고 만든 농약이 아닐 텐데..

그렇다고 위험하고 환경에 해롭다는 이유로 농약을 아예 안 쓰면 인류는 다시 옛날처럼 잡초와 병충해와 힘겹게 싸워야 하고 농산물의 가격은 수직 상승하게 된다. 친자연, 유기농만 고집하다간 후진국형 기생충과 전염병에 다시 시달리게 될 것이다.

농약은 잡초뿐만 아니라 병충해도 상대하기 때문에 살충제하고 성분이나 용도가 뭔가 호환되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가령, 그라목손은 살충제로 치면 DDT 같은 위상이랄까?? 너무 위험하고 장기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사용이 금지되긴 했지만 당장 후진국에서 사람들이 말라리아 때문에 픽픽 쓰러지는 와중에 DDT보다 가성비 더 좋은 모기 퇴치제 대안은 없는 실정이다.

농약 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맨날 친자연을 외쳐도 애초에 자연이 인간에게 좋은 것만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세상일이 그렇게 단순하고 쉽게 돌아가는 게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9/12/23 08:34 2019/12/2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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