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앙 자가진단

※ 나는 왜 예수님을 믿는가 -- 크게 작용한 요인들
  • 세상 그 어느 종교도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가르치지 않으며, 교주가 부활했다고 가르치지 않고, 또 이 정도로 역사적으로 방대한 증거와 증인들을 갖추고 있지 않으므로
  • 인간이 자기 노력과 근성으로 신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신이 먼저 인간을 찾아주고 은혜와 사랑을 베풀었다고 가르치므로
  • 없어졌으면 애시당초 진작에 씨가 말라 버렸을 정도로 황당하고 믿어지지 않는 교리를 갖고 있는데, 아직까지 당당히 존속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최소한 무시할 수는 없고 한번 살펴볼 가치가 있다고 여겨졌으므로
  • 이 정도로 무수히 많은 이단들이 압도적으로 집착할 정도이면, 웬지 이 바닥에 분명 진리가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어서
  • 성경은 그 논조와 내용을 볼 때 인간이 쓸 만한 책이 절대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서 (가령, 정치적으로 치우침이 없음. 인간 자신에게 절대 이롭지 않은 내용이 지나치게 장황하게-_- 많이 들어있음)
  • 그래도 몇몇 증명 불가능하고 이해가 안 되는 사항들만 일단 믿고 나면, 이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각종 교리와 윤리관은 아주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인간에게 건전하다는 게 너무 분명하게 확 느껴져서
  • 죄 문제라는 인간에 대한 상태 진단과, 그 해결책에 너무나 공감이 가서. 최소한 줘도 못 먹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지?
  •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라는 절대적인 의의 기준이 온갖 상대주의· 다원주의보다는 훨씬 더 명확하고 깔끔하고 건전하고 뒤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 사회 구조 탓이다, 그 상황에서는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다 등등)

그래서 내가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고할 것.

※ 나는 왜 예수님을 믿는가 -- 조금 작용한 요인들

  • 개독안티들의 무례하고 표독스러운 말투에, 사실 여부를 떠나 괜히 반발심과 환멸을 느껴서 (다른 건 몰라도 저놈들 말은 절대로 듣지 말아야겠다는 식)
  • 역사적으로 기독교의 과오라고 알려진 것들이 상당수가 기독교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사실은 크리스천들도 오히려 피해자라는 걸 알게 되어서
  •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수준의 간단한 변증론. 가령,
    “지금 예수 믿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실 없는 게, 지금 안 믿었는데 진짜로 지옥이 있어서 낭패 보는 것보다 더 안전하고 리스크가 적다.”
    “신이 없다고 단정짓기엔 인간의 지식은 너무 좁고 빈약하다” 같은 식.
  • 내세와 심판이 있을 거라는 양심의 자극. 죽음에 대한 두려움
  • 성경이 과학적으로도 옳다는 걸 뒷받침하는 몇몇 자료들
  • 이 정도 교리면, 정말 만에 하나 성경의 내용이 다 거짓이고 허구이고 설령 근거 없이 맹목적으로 믿는다 해도, 크게 손해 볼 게 없다고 생각되어서. 성경은 최소한 날 골탕먹이려고가 아니라 날 '위해서' 기록된 책이라는 느낌이 와서

※ 내 신앙관에 영향을 거의 끼치지 않은 것들

  • 좋든  싫든, 주변 교회 사람들의 행동과 평판
  • 잘한 것이든 못한 것이든, 해당 종교계에서 유명한 사람들의 언행 (그 사람들이랑 나랑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 나는 베르테르 효과 같은 것과는 담을 쌓고 지냄)
  • 세상 불신자들로부터의 평판, 매스미디어에 묘사된 이미지
  • 육신을 들뜨게 하거나 흥분시키거나 만족시키는 종교심. 나는 그런 부류의 종교심은 이미 철도교로 다 충족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종교에다 내 영원을 걸지는 않는다.
  • 기복신앙

하지만 현실에서는 저런 것들을 보고 교회를 나가거나 종교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무진장 많다. ㅜㅜ

※ 지금은 발현되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 깊은 시험에 들고 신앙 면역 체계가 무너졌을 때 큰 위험이 될 수 있는 잠재적인 암적 요소들

  • 성경에서 여전히 잘 이해되지 않고 해결이 안 된 의문이나 논리적 모순(처럼 보이는 것들) 몇 군데. 목사님에게 여쭈거나 주석서를 봐도 알 수 없는 것들
  • 성경이 밥 먹여 주냐... 같은 부류의 유치하지만, 좁은 길을 가는 성도에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험. 현실의 염려 (눅 8:14)
  • 신앙생활이 매너리즘으로 변질돼 가는 것
  • 하나님의 뜻을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이것도 하지 말고 저것도 안 하면 도대체 뭘 하라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들이닥치는 것

Posted by 사무엘

2012/05/21 19:28 2012/05/21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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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옛날에 폰 노이만(폰 노이만 구조라는 컴퓨터 근간을 닦은 사람)이라는 사람은 기계어로 직접 컴퓨터에다 코딩을 하는 기계어 매니아였다. 기계어가 너무 불편하다고 어느 제자가 어셈블리 비슷한 상위 계층 언어를 만들려 하자 “귀한 컴퓨터 자원으로 쓸데없는 짓이나 한다”고 그를 나무랐다.;;
이거 마치 희대의 저격수인 시모 하이하가 조준경 그딴 걸 왜 쓰냐고 나무란 것과 비슷한 맥락 같다.;;
 
그 반면, 데이크스트라(다익스트라. 그래프 탐색 알고리즘을 고안한 그 사람)는 어셈블리/기계어 같은 언어를 비생산적이고 삽질스럽다고 아주 강하게 디스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구조화 프로그래밍을 주장하면서 GOTO문을 배격한 사람이 기계스러운 BRANCH 따위가 난무하는 저급 언어를 좋아할 리가 없겠다.
 
둘 다 우주괴수급의 천재 수학자 및 전산학자이다만, 이런 식의 관점의 차이가 존재하는가 보다. 재미있는 일이다.
 
2.

밸브 코퍼레이션의 창립자 게이브 뉴웰 (카운터 스트라이크, 하프 라이프, 포탈 등의 게임 개발사)
페이스북의 창립자인 마크 주커버그 (나보다 더 어림..)
마이크로소프트의 창립자인 빌 게이츠 (설명 불필요)
 
억만장자 IT 기업인인 이들은 모두 하버드 대학 중퇴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 미국인이기도 하고.

3.

개발자가 소프트웨어를 팔아서 먹고 살려면

(1) 관공서나 기업에서 구입하지 않을 수 없는 핵심적인 프로그램을 개발 (교육이나 업무 분야)
(2) 하드웨어에 같이 들어가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하드웨어와 함께 판매
(3) 온라인 게임 개발 (늘 서버 접속을 하기 때문에 이용료 징수 가능)
(4) 아니면 개인을 대상으로도 유료 판매가 가능한 유통 경로(앱스토어, 스마트폰 등)를 거치는 프로그램 개발

중 하나로는 가야 할 것 같다. 저 네 가지 말고 혹시 다른 방법이 있을까?

4.

내가 맥 OS에 매력을 느끼는 큰 이유 중 하나는.. 폰트 래스터라이저가 정말 짱이라는 점.
똑같은 글꼴을 화면에 찍어 내는 퀄리티가 서로 게임이 안 되는 수준이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는 Windows, 아래는 맥이다.
Windows는 ClearType을 시키면 맑은 고딕처럼 전용 힌팅이 들어간 글꼴이 아니면 그냥 안티알리어싱이 없는 것보다 약간 나은 정도로만 찍히는 반면.
Mac은 힌팅이 없다시피한 글꼴도 Adobe Reader 이상의 퀄리티로 찍어 준다!

5.

그나저나 맥 OS는 Finder (윈도우로 치면 탐색기)에서 파일이나 디렉터리의 이름을 바꾸는 게 엔터이고, 실행하거나 여는 게 Cmd+아래라니 참 희한하다. 윈도우라면 이름 바꾸는 건 F2이고, 여는 게 응당 엔터인데 말이다.

6.

과거에 MS 오피스가 2003에서 2007로 버전업되었을 때 비주얼이 화려해지고 좋아진 기능이 분명 적지 않았지만, 내게는 굉장히 마음에 안 드는 변화도 있었다. 그것 중 하나는 파워포인트에서 '컬러 타자기' 애니메이션 효과가 굉장히 느려져서 랙이 심해지고 프레임 수가 감소한 것이었다. 글자가 말 그대로 타자기로 찍듯이 한 글자씩 천천히 나타나는 것 말이다. 그렇게 현란하거나 CPU의 부하가 심한 효과도 아니다.

그랬는데 2010을 나중에 써 보니, 마치 2003처럼 애니메이션이 다시 매끄러워져 있었다.
혹시 컴퓨터가 빨라지고 화면 해상도가 낮아져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서 컴퓨터를 바꿔서 확인해 보았다.
그랬더니 같은 1280*1024 화면이라도 역시 2010에서는 Core2 duo급 컴에서도 매끄럽게 나오는 반면, 2007에서는 쿼드코어 i5급 컴에서도 버벅거렸다.

그래서 이것은 소프트웨어적인 알고리즘 개선 덕분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2007과 2010 사이엔 이런 차이도 존재하는가 보다.

7.

근래엔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구성 파일들에 대해서 바이러스 및 악성 코드 진단 문의가 부쩍 늘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개발자의 공식 입장을 내 홈페이지에다가도 게시할 필요를 느끼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히 “바이러스 아님”이다. 모든 프로그램들은 바이러스도, 안티바이러스(일명 백신)도 알지 못하는 100% 청정 컴퓨터에서 개발되며, 개발 환경에서 갓 빌드된 직후의 실행 파일들이 곧바로 설치 패키지로 포장된다. 바이러스 같은 게 들어갈 일이란 없다. 이 일 때문에 본인에게 문의하면 언제나 동일한 대답밖에 돌아올 게 없으며, 그 외에 더 할 말이 없음을 이 자리에서 밝히는 바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실행 파일과 MSI 패키지가 디지털 서명을 받지 못한 관계로, 웹브라우저부터가 빨간 경고와 함께 <날개셋> 프로그램의 다운로드를 저지(discourage)하는 것도 좀 아쉬운 점이다. 이건 훗날 프로그램이 더 나은 수익원과 배포 통로를 확보했을 때에나 해결 가능할 것 같다.

그래서 이 참에 아예 프로그램 다운로드 페이지에다가 설명을 써 놨다. “10년이 넘게 인생을 걸며 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개선해 온 저를 믿으신다면, 그런 보안 경고들은 모두 무시하고 안심하고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문득 생각해 볼 문제: 비주얼 C++이나 그에 상응하는 개발툴이 설치된 컴퓨터를 자동으로 감지하여 프로그램이 링크될 때 쓰이는 C 라이브러리 같은 lib, obj 파일을 감염시키는 컴퓨터 바이러스 프로그램이 존재할까? 처음부터 바이러스에 감염된 프로그램이 생성되도록? -_-;;

Posted by 사무엘

2012/05/19 08:22 2012/05/19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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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라크넹 2012/05/19 15:49 # M/D Reply Permalink

    개발툴을 감염시켜 개발툴에서 생성되는 모든 코드에 자기 자신을 복제시키는 바이러스는 실제로 있습니다. 이를테면 2009년에 델파이 SysConst.pas 파일을 변경시키는 Win32.Induc 바이러스가 등장한 적이 있었습니다.
    http://www.securityfocus.com/brief/999

    그리고 이 가능성은 무려 *1982년*에 Ken Thompson이 제기한 적도 있죠. (Ken Thompson은 최근 작고한 Dennis Ritchie와 함께 유닉스 운영체제를 만든 장본인 중 하나입니다.)
    http://cm.bell-labs.com/who/ken/trust.html

  2. 백성 2012/05/19 22:59 # M/D Reply Permalink

    오히려 깨알같은 영광의 코레일. ㄲㄲㄲㄲ

  3. 사무엘 2012/05/19 23:59 # M/D Reply Permalink

    아라크넹: 그건 진짜 우물/상수도에다 독을 타는 거나 마찬가지인 테러 행위이니, 전산학의 선구자들에 의해 예견될 법도 하겠네요.;;

    백성: 영광의 캐리어보다는 영광의 코레일. ㄲ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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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C++11이라고 개명된 C++ 확장 규격인 C++0x에는 잘 알다시피 여러 참신한 프로그래밍 요소들이 추가되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상당한 타이핑 수고를 덜어 줄 걸로 예상되는 auto 리뉴얼, 숫자와 포인터 사이의 모호성을 해소한 nullptr, 그리고 숫자와 enum 사이의 모호성을 해소한 enum class가 있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C++11에는 아주 심오하고도 재미있는 개념이 하나 또 추가되었다. 복사 생성자에 이은 이동 생성자, 그리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type modifier인 &&이다. R-value 참조자라고 불린다. 이 글에서는 이것이 왜 도입되었는지를 실질적인 코드를 예를 들면서 설명하겠다.
다음은 생성자에서 주어진 문자열의 복사본을 보관하는 일만 하는 아주 간단한 클래스이다.

//typedef const char*  PCSTR;
class MyObject {
    PCSTR dat;
public:
    MyObject(PCSTR s): dat(strdup(s)) {}
    ~MyObject() { free( const_cast<PSTR>(dat) ); }
    operator PCSTR() const { return dat; }
};

C++은 언어 차원에서 포인터를 자동으로 관리해 주는 게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저렇게만 달랑 짜 놓은 클래스는 함부로 값을 대입하거나 함수 호출 때 개체를 reference가 아닌 value로 넘겨 줬다간, 동일 메모리의 다중 해제 때문에 프로그램이 jot망하게 된다. C++ 프로그래머라면 누구라도 위의 코드의 문제를 즉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포인터처럼 외부 자원을 따로 가리키는 클래스는 복사 생성자와 대입 연산자를 별도로 구현해 줘야 한다. 구현을 안 할 거면 하다못해 해당 함수들을 빈 껍데기만 private 형태로 정의해서 접근이 되지 않게 해 놓기라도 해야 안전하다.

MyObject(const MyObject& s): dat(strdup(s))
{
    puts("복사 생성자");
}
MyObject& operator=(const MyObject& s)
{
    free(dat); dat=strdup(s.dat); puts("복사 대입");
    return *this;
}

자, 그럼 이를 이용해 그 이름도 유명한 Swap 루틴을 구현해서 복사 생성자와 대입 연산자를 테스트해 보자.

template<typename T>
void Swap(T& a, T& b) { T c(a); a=b; b=c; }

int main()
{
    MyObject a("새마을호"), b("무궁화호");
    printf("%s(%X) %s(%X)\n", (PCSTR)a,(PCSTR)a, (PCSTR)b,(PCSTR)b);
    Swap(a,b);
    printf("%s(%X) %s(%X)\n", (PCSTR)a,(PCSTR)a, (PCSTR)b,(PCSTR)b);
    return 0;
}

프로그램의 실행 결과는 다음과 같은 식으로 나올 것이다.

새마을호(181380) 무궁화호(181390)
복사 생성자
복사 대입
복사 대입
무궁화호(1813B8) 새마을호(1813D0)

복사 생성자와 대입 연산자 덕분에 메모리 관리는 옳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 프로그램이 뻗는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방법은 비효율적인 면모가 있다. 개체의 값을 맞바꾸기 위한 세 번의 연산 작업 동안, 당연한 말이지만 메모리 할당과 해제, 그리고 문자열의 복사가 매번 발생했다. 그래서 비록 문자열 값은 동일하지만 그 문자열이 담긴 메모리 주소는 a와 b 모두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R-value 참조자를 쓰면, 이 클래스에 대해서 Swap 연산이 메모리를 일일이 재할당· 복사· 해제하는 게 아니라 a와 b가 가리키는 문자열 메모리 주소만 간편하게 맞바꾸도록 하는 언어적인 근간을 마련할 수 있다. 기존 참조자는 &로 표현하고, 이와 구분하기 위해 R-value 참조자는 &&로 표현된다. 참조자(&)는 포인터(*)와는 달리 다중 참조자(참조자의 참조자) 같은 개념이 없기 때문에, &&을 이런 식으로 활용해도 문법에 모호성이 생기지 않는다.

& 대신 &&를 이용해서 자신과 동일한 타입의 개체를 받아들이는 생성자와 대입 연산자를 추가로 정의할 수 있다. 이 경우, 이들 함수는 복사가 아닌 이동 생성자와 이동 대입 함수가 된다. 아래의 예를 보라.

MyObject(MyObject&& s)
{
    dat=s.dat, s.dat=NULL; puts("이동 생성자");
}
MyObject& operator=(MyObject&& s)
{
    //주의: 실제 코드라면 자기 자신에다가 대입하는 건 아닌지 체크하는
    //로직이 추가되어야 한다. if(&s!=this)일 때만 수행하도록.
    free(dat); dat=s.dat, s.dat=NULL; puts("이동 대입");
    return *this;
}

복사 버전과는 달리, strdup 함수 대신 그냥 포인터 대입을 썼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핵심이다.
그러면 s가 가리키던 메모리 영역이 내 것이 된다. 그 뒤 s가 가리키던 메모리는 NULL로 없애 줘야 한다. free 함수는 그 스펙상 자체적으로 NULL 체크를 하기 때문에, 소멸자 함수는 그대로 놔 둬도 된다.

즉, 이동 생성자와 이동 대입은 s의 값을 내 것으로 설정하긴 하나,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s의 내부 상태를 건드려서 바꿔 놓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복사 생성자/대입과는 달리 s가 const 타입이 아니다.

이것만 선언해 줬다고 해서 Swap 함수의 동작 방식이 이동 연산으로 곧장 바뀌는 건 물론 아니다. 그랬다간 s의 상태가 바뀌고 프로그램 로직이 달라져 버리기 때문에, 컴파일러가 섣불리 동작을 바꿀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Swap 함수의 코드도 move-aware하게 살짝 고쳐야 한다.

template<typename T>
void Swap(T& a, T& b)
{
    T c(static_cast<T&&>(a)); a=static_cast<T&&>(b); b=static_cast<T&&>(c);
}

즉, 개체를 생성하고 대입하는 곳에서, 가져오는 개체를 가능한 한 move로 취급하라고 명시적인 형변환을 해 줘야 한다. 이렇게 해 주고 나면 드디어 우리의 목표가 이뤄진다!

새마을호(181380) 무궁화호(181390)
이동 생성자
이동 대입
이동 대입
무궁화호(181390) 새마을호(181380)

물론, 저런 형변환 연산이 보기 싫은 사람은 <vector>에 정의되어 있는 std::move 함수로 이동 대입을 해도 되며, 보통 R-value 참조자를 설명해 놓은 인터넷 사이트들도 그 함수를 곧장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그 함수의 언어적인 근거가 바로 이 문법이라는 건 알 필요가 있다.

생성이나 대입에서 R-value 참조자를 받지 않고 기존의 L-value 참조자만 받는 클래스에 대해서는, 이동 대입이나 생성도 자동으로 옛날처럼 복사 대입이나 생성 방식으로 행해진다.
다시 말해, Swap 함수의 로직을 저렇게 고치더라도 R-value 참조자가 구현되어 있지 않은 기존 타입들에 대한 동작은 전혀 바뀌지 않으며 컴파일 에러 같은 게 나지도 않는다. 그러니 호환성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미 눈치챈 분도 있겠지만, MFC의 CString처럼 자기가 가리키는 메모리에 대해서 자체적으로 reference counting을 하고 copy-on-modify 같은 테크닉을 구현해 놓았기 때문에, 어차피 복사 생성이나 call by value 때 무식한 오버헤드가 발생하지 않는 클래스라면, 구태여 이동 생성자나 이동 대입 연산자를 또 구현할 필요가 없다. 이동 생성/대입은 언제까지나 기존의 복사 생성/대입을 보조하기 위해서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std::vector 같은 배열 컨테이너 클래스에다가 덩치 큰 개체를 집어넣거나 뺄 때 복사 생성자가 쓸데없는 오버헤드를 발생시키는 걸 막는 게 이 문법의 주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딱히 smart한 복사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지 않은 클래스를 STL 컨테이너에다 집어넣고 쓰는 C++ 코드라면, 적절한 이동 생성자와 대입 연산자를 구현해 주고 R-value 참조자를 지원하는 최신 C++ 컴파일러로 다시 빌드를 하는 것만으로도 성능 향상을 경험할 수 있다.

예전에는 배열 컨테이너 클래스들이 원소들의 일괄 삽입이나 삭제를 위해 무식한 memmove 함수를 내부적으로 쓰는 게 불가피했는데 이 역할을 이동 대입이 어느 정도 대체도 할 수 있게 됐다.
&&을 DLL symbol로 표기하기 위한 새로운 C++ type decoration도 별도로 물론 있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의 이름이 왜 R-value 참조자인 것일까?
이 참조자는 참조자이긴 하지만, 오리지널 참조자처럼 L-value가 아니라 R-value를 취급하라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L-value, R-value란 무엇인가? 대입문에서 좌변과 우변을 뜻한다. L-value란 값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대입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변수를 가리키며, R-value는 값을 표현할 수만 있지 그 자신이 다른 값으로 바뀔 수는 없는 상수, 혹은 임시 개체를 가리킨다고 보면 얼추 맞다.

아래의 코드에서 볼 수 있듯 기존 L-value 참조자는 dereference된 포인터와 같은 역할을 한다.

int& GetValue() { … }
GetValue() = 100;

int *GetValue() { … }
*GetValue() = 100;

그렇기 때문에 아래와 같은 특성도 존재한다.

void GetValue2(int& x) { x=… }

int a;
GetValue2(a); //a는 L-value이므로 OK
GetValue2(500); //에러. 당연한 귀결임

L-value 참조자가 상수값 내지 임시 생성 개체 같은 R-value를 함수의 인자로 받아들이려면, 해당 참조자는 const로 선언되어서 값의 변경이 함수 내부에서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되어야 한다. int&가 아니라 const int&로 말이다.

그런데 R-value 참조자는 const 속성 없이도 임시 개체나 상수값을 받아들이며, 그걸 뒤끝 없이 자유롭게 고칠 수 있다. 위의 GetValue2 함수가 int&&로 선언되었다면, 반대로 a를 전달한 게 에러가 나고 500을 전달한 건 괜찮다. a를 전달하려면 static_cast<int&&>(a)로 형변환을 해 줘야 한다. 그러면 마치 int&인 것처럼 실행되긴 한다.

R-value 참조자로 돌아온 함수의 리턴값은 말 그대로 R-value이기 때문에 대입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아래의 코드는 에러를 일으킨다. (R-value 참조자의 리턴값은 당연히 그 역시 R-value로 왔을 때에만 의미가 있을 것이다.)

int&& GetValue3() { … }
GetValue3() = 100; //에러

이런 R-value 참조자라는 괴상망측한 개념은 왜 도입된 것일까? 그리고 이게 앞서 이 글에서 언급한 이동 생성자/대입 연산하고는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R-value 참조자의 형태로 함수 인자로 넘어온 개체는 그 함수의 실행이 끝난 뒤엔 어차피 소멸되고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내부가 바뀌어도 상관없다. 즉, 이 참조자는 태생적으로 const 속성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const-ness가 보장되지 않아도 되는 제한적인 문맥에서, 쓸데없는 복사를 할 필요 없이 꼼수를 좀 더 합법적으로 구사할 수 있게 위해 이런 문법이 추가되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마지막으로 R-value 참조자가 유용하게 쓰이는 용도를 딱 하나만 더 소개하고 글을 맺겠다.
윈도우 API+MFC 기준으로, RECT 구조체를 받아서 이 값을 적당히 변형한 뒤에 이를 토대로 후처리를 하는 함수를 생각해 보자.

void Foo(const RECT& rc)
{
    RECT rc2 = rc; //rc는 const이기 때문에 복사본을 만들어야 함

    ::OffsetRect(&rc2, x,y); //변형
    ::DrawText(hDC, strMsg, -1, &rc2, 0);
}

void Foo(RECT&& rc)
{
    ::OffsetRect(&rc, x,y); //복사본 만들 필요 없이 rc를 곧바로 고쳐서 사용하면 됨
    ::DrawText(hDC, strMsg, -1, &rc, 0);
}

CRect r(100, 200, 400, 350);
Foo(r); //const RECT& 버전이 호출됨
Foo( CRect(0,0, 400,300) ); //임시 개체임. RECT&& 버전이 호출됨

RECT를 value로 전달했다면 당연히 복사가 일어나고, const reference로 전달했다면 역시 복사가 행해져야 한다. 그러나 애초에 함수에 전달되는 인자가 임시 개체였다면, 임시 개체에 대한 복사본을 또 만들 필요 없이 그냥 그 임시 개체를 바로 고쳐 쓰면 된다. 위의 코드의 의미가 이해가 되시겠는가?

R-value 참조자라는 게 왜 필요한지, 그리고 이게 왜 이동 생성/대입과 관계가 있는지 본인은 이해하는 데 굉장히 긴 시간이 걸렸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다른 설명만 읽어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서 직접 코드를 돌리고 컴파일을 해 본 뒤에야 개념을 깨우쳤는데, 알고 나니 정말 이런 걸 생각해 낸 사람들은 천재라는 생각이 든다.;; C++은 참으로 복잡미묘한 언어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2/05/16 08:41 2012/05/16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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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yn 2012/05/16 11:06 # M/D Reply Permalink

    move constructor 만쉐~

  2. Lyn 2012/05/16 11:08 # M/D Reply Permalink

    레퍼런스->RValue 레퍼런스로 변경해주는 std::move 함수가 추가되었습니다 : )

    1. 사무엘 2012/05/16 15:01 # M/D Permalink

      네, 이동 생성자는 멋진 개념이죠. 그리고 본문에도 그 함수가 언급돼 있습니다. ^^

  3. 아라크넹 2012/05/16 11:55 # M/D Reply Permalink

    r-value reference의 또 다른 중요한 사용 용도는 메소드를 다른 객체의 메소드로 forwarding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맨 마지막 예시의 변형이긴 하네요.

    struct A { void foo(std::string, std::string&); };
    struct B { A a; void foo(std::string, std::string&); };
    void B::foo(std::string arg1, std::string& arg2) { a.foo(arg1, arg2); }

    이 코드의 경우 B::foo는 A::foo로 forwarding하게 되지만 arg1을 옮기는 과정에서 복사 생성자를 거치게 됩니다. 하지만 B::foo를 다음과 같이 고치면:

    void B::foo(std::string&& arg1, std::string& arg2) { a.foo(std::forward<std::string>(arg1), arg2); }

    복사 생성자를 거치지 않게 됩니다. std::forward는 r-value를 받았으면 r-value를 반환하고 l-value를 받았으면 l-value를 반환하는 거 빼면 아무 변화도 주지 않는 identity function입니다.

    다음 문서를 부분적으로 참고했습니다.
    http://www.open-std.org/jtc1/sc22/wg21/docs/papers/2006/n2027.html#Perfect_Forwarding
    http://cpp-next.com/archive/2009/12/onward-forward/

    1. 사무엘 2012/05/16 15:01 # M/D Permalink

      한 문법이 추가되면서 여러 방면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죠(마치 팔방미인이 된 auto처럼). R-value 참조자도 그런 개념인 것 같습니다.

  4. Lyn 2012/05/16 15:34 # M/D Reply Permalink

    점점 코드가 암호화되어가고있습니다 ㅡㅜ

    이제 대입버그도 두군데서 나오겠군요

  5. 김 기윤 2012/05/16 19:59 # M/D Reply Permalink

    C++11 스펙에서 봤던 것이긴 한데, 제대로 이해는 못 했었고, 지금도 제대로 이해를 못 했습니다(.....) 단지 좋은거다~ 라는 정도만 이해하고 있을 뿐.. orz..

    1. 사무엘 2012/05/17 10:28 # M/D Permalink

      요즘 스마트폰 때문에 뭐든지 '스마트'해졌다고 그러는데, R-value 참조자는 C++ 언어의 디자인과 C++ 라이브러리의 동작을 좀더 '스마트'하게 개선하는 효과가 있는 듯합니다. ^^
      물론 C++은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갈수록 더 배우기 어려운 복잡한 언어가 돼 가고 있죠.

    2. Lyn 2012/05/17 11:22 # M/D Permalink

      한번쓰고 버릴 데이터를 대입할때 복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

      라는것만 이해하면 나머진 쉽더라구요.
      물론 전 사무엘님보다 능력이 딸려서 거의 1주일을 문서 들여다보고 고민 ㅜㅜ

    3. 김 기윤 2012/05/17 18:29 # M/D Permalink

      오히려 람다가 훨씬 쉬워요 orz..

  6. 주의사신 2012/05/17 17:12 # M/D Reply Permalink

    졸업 작품 만들 적에 VC++ 10에 추가된 C++11을 많이 사용했는데, 안 그래도 어려운 C++이 더 어려워지는 느낌을 조금 받기는 했습니다.

    1. 사무엘 2012/05/18 10:58 # M/D Permalink

      “나의 C++은 이런 언어가 아니라능!!” 하는 생각이 들죠. ㄲㄲㄲㄲㄲㄲ

      static 멤버는 선언뿐만 아니라 정의도 밖에서 반드시 해 줘야 하게 바뀜 (1980년대 말)
      템플릿 추가 (1990년대 초중반)
      bool, namespace, typename, explicit, *_cast 등 추가 (1990년대 중반)
      iostream.h에서 .h가 빠지고, C++ 라이브러리들도 std namespace로 이동 (1990년대 중후반)
      export 흑역사
      C++11 (2011년)

      흠, 이런 역사에 대해서 정리해도 글 한편이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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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함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회로부터 온 옛날 메일이 구석에 처박혀 있는 걸 발견했고, 거기에 역대 동문들의 근황 목록이 있는 걸 열어 봤다.
내가 다닌 학교의 특성상, 역시 선후배나 동기들이 다들 프로필이 너무 쟁쟁하고 너무 잘 돼 있고 대단했다.

  • 삼성맨이 된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생산직이든 영업부 사무직이든, 박사급 정예 연구원이든 분야 한번 참 많았다. 인터넷 신문 기사 댓글이나 SNS, 파워 블로그만 보면 삼성 욕하는 글로 넘쳐나지만, 역시 넷심은 민심과 일치하지 않는 법. 현실을 지배하는 건 돈의 힘이며, 삼성 전자는 지금도 여전히 공돌이들이 들어가고 싶어하는 직장 1위이다.
  • 좀 덜 유명하고 입결이 낮다 싶은 학교에 갔다 싶은 친구들은 그 대신 과가 전부 의대였다. 예외가 없었다. ㅋㅋ
  •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 이공계의 희망이다 싶던 친구들이 공무원, 금융권, 의전으로 U턴을 생각보다 많이 해 있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전교 최고의 수학 영재로 이름을 날리던 어느 후배가 서울대 치의전에 가 있었고, 나와 대학을 같이 가고 나중에 서울대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 석사까지 했던 1기 아래 후배도 다시 의전으로 진로 변경한 듯.

워낙 똑똑한 사람들이니 어딜 가도 다 제 갈 길을 잘 찾아가 있다. 그래서 이런 와중에 나는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면서 각오를 새로 하게 되었다.

어차피 저것들은 다 내 길이 아니다. 난 어차피 그런 학교도 공부 성적이 아닌 오덕질로 간 것이고, 내 진로에는 선례가 없다. 빨랑 석사 졸업하고 나서 박사 가서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다음 아이템에 목숨 거는 수밖에.
이거 덕질에 비하면, 철도 덕질은 덕질도 아니고 오히려 진짜 덕질을 은폐하기 위한 떡밥일 뿐이었음이 밝혀질 것이다.

남은 남이고 나는 나다. 오늘은 본인의 고등학교 동문 중에, 매스컴에 아마 가장 널리 알려져 있을 인물을 소개하겠다. 바로 금 나나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02년 5월, 얘가 미스코리아 진으로 뽑혔다. 나나는 본인의 바로 한 기수 아래인 후배이고, 믿어지지 않겠지만 본인은 얘를 학교 기숙사에서 마주친 적도 있다.

원래 미스코리아 대회는 1988년부터 2001년까지는 전국구 공중파 방송인 MBC가 생중계를 해 줬다. 하지만 선정성과 성 상품화 논란 때문에 미스코리아 안티까지 생긴 마당에 하필 딱 2002년부터 그 관행이 폐지되고, 미스코리아 중계는 케이블 TV로 관할이 넘어갔다.

대회는 세종 문화 회관에서 열렸다. 카이스트에서도 고등학교 선배와 동기들은 TV를 주시하였고, 몇몇 동기들은 아예 현장에서 나나를 보러 서울로 갔다. 그 시절 물가로 5만원짜리 좌석이 3층에 있고 무대에서 완전 멀리 떨어진 위치였다. 더 가깝고 좋은 자리는 당연히 돈이 훨씬 더 많이 든다.

구체적인 디테일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건, 나나는 그때 인터뷰의 질문에 말을 너무 조리 있게 지적으로 잘 했었다는 점이다. 관중석에서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런 이미지에다가 특목고+의대 출신이라는 점이 더해진 덕분에, 나나는 쟁쟁한 서울 출신 경쟁자들을 모조리 제치고 결국 진을 차지했다.

TV를 보던 고등학교 동문들은 그때 동기나 선후배 가리지 않고 서로 얼싸안고 난리가 났었다고 본인의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수상 소감을 말할 때 얘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더니 끝에 “경북 과학고 파이팅!”이라고 외쳐서 감동이 더욱 고조되었다.
마치 우리나라가 월드컵 16강 진출했을 때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에 간 직후이니까 모교에 대한 애교심(?)도 팔팔하던 시절이다.

이 일은 당연히 고등학교의 인지도의 변화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 당시 교내 1층 복도에는 재학 시절에 전국 규모 이상의 경시대회에서 입상한 학생들의 사진이 걸린 명예의 전당이라는 게 있었는데, 금 나나는 재학 시절에 다른 입상 경력이 없고 미스코리아 입상은 졸업 이후의 행적임에도 불구하고 사진이 추후에 추가되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인터넷에 얘 팬카페도 생겼다. 그 후 그녀는 언론에도 잘 알려졌듯이 책도 여러 권 쓰고 나중엔 하버드 대학에 편입해 들어갔다. 들어갈 때는 미스코리아 경력 버프도 많이 받아서 들어갔겠지만, 결국 졸업할 때도 역시나 성적 우수자로 졸업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미국의 다른 대학에서 생물, 영양, 보건 쪽으로 박사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듯. 뭐 이미 너무 유명인사가 돼 버렸고 앞날이 창창하니 굳이 더 근황을 궁금해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과학고 동문 중에 이런 이력의 소유자가 나오는 건 분명 특이한 경우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나 역시 그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는 않은 괴팍한 분야에서 특이한 연구로 가까운 미래에 이름을 남기련다.

재작년인 2010년엔 뜻하지 않은 경로로 고등학교 후배를 만난 적이 두 번 있었다.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갔던 예비군 동미참 훈련 때, 예비군 아저씨들 중에 정말 우연히도 2기수 후배와 마주쳤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경우인데.. 정 동수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사랑 침례 교회에서 그 해 8월에 개최했던 청년부 교제 모임 때는 무려 10기수 후배를 만나기도 했다. 나는 6기이고 그 친구는 2008년에 입학한 무려 16기! 세상에, 킹 제임스 진영에서 까마득한 고등학교 후배를 만나다니!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나 모르겠다. 세상이 좁다는 걸 느꼈다.

Posted by 사무엘

2012/05/13 19:34 2012/05/1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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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yn 2012/05/13 22:56 # M/D Reply Permalink

    세상엔 머리좋은사람이 넘 많음 ㅡㅜ

    1. 사무엘 2012/05/14 08:50 # M/D Permalink

      저도 천재다, 머리가 좋다 소리를 주변으로부터는 듣는 편입니다만, 별 소용이 없어요.
      그 좋은 머리가 사회가 요구하는 쪽으로 돌아가질 않거든요.
      그러니 이상한 프로그램 만들면서 험난한 가시밭길을 가고 있죠. ㅋㅋㅋㅋㅋ

  2. 김재호 2012/05/14 00:15 # M/D Reply Permalink

    삼성전자 이야기에 참 공감합니다. 온라인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삼성을 벌레 취급해도 오프라인에서는 삼성 다닌다고 하면 모두가 부러워하죠. 그런거 볼 때면 기분이 참 이상해요.
    그런데 금나나양은 정말 예쁘군요. :) 당시에는 월드컵에 정신이 쏠려서 그랬는지 전 여지껏 누군지도 몰랐네요.

    1. 사무엘 2012/05/14 08:50 # M/D Permalink

      김 재호 님, 처음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

      - 삼성에 대한 인식 차이는, 국내 기업들이 어차피 직원들을 똑같이 X같이 부려먹는다면, 돈이라도 많이 주면서 부려먹는 직장을 선택한 심리도 기여를 한 것 같습니다.
      - 아, 이 글에다가도 나나 사진을 같이 올릴 생각을 안 했네요. 나중에 고쳐야겠습니다.

      유익한 블로그를 운영하고 계시는군요.
      SNS 때문에 사람들이 진지한 장문을 쓰질 않게 됐다고 지적하신 건 저도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앞으로 저도 종종 연락드리겠습니다. ^^

  3. Lyn 2012/05/14 12:11 # M/D Reply Permalink

    사무엘님 // 에이 방향만 바꾸심 되잖아요 ...

    1. 사무엘 2012/05/14 19:46 # M/D Permalink

      오, 절대 아니에요. 한 방향으로 완전히 최적화돼서 굳어 버린 머리가 그렇게 쉽게 방향이 바뀔 리가 있나요?
      저는 그저 기상천외하고 엉뚱할 뿐이지, 남들이 잘하리라고 예상하는 게 남보다 뛰어난 건 거의 없습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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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때 국내에서는 일제에 항거한 여러 독립 운동가들이 활동하였다. 그 중 유명한 분들은 위인전이 만들어지고 학교에서도 그 행적이 거듭 가르쳐지고 있다. 유 관순, 안 중근, 윤 봉길 같은 사람들 말이다. 일본에서는 이토 히로부미가 거의 국부급의 존경을 받고 위인전이 만들어지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를 살해한 안 의사가 존경받고 떠받들여지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이념적으로 조선과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정통성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그런 분들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가능하게 했다고 그 공로를 인정한다. 특히 삼일절에 굉장히 큰 의미를 부여하여, 그 날이 공휴일 국경일로 지정되어 있고, 삼일 운동의 이념을 물려받았다고 헌법에 명시가 되어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에 대한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남한과는 달리 삼일절에 거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북한 사람들은 1919년 이 날에 무슨 대대적인 시위가 있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으며, 유 관순을 그렇게 대단하게 보지 않는다. 공휴일도 물론 아님. 사실, 북한이 태극기를 굉장히 싫어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삼일절을 그렇게 좋게 부각시키고 싶지 않을 법도 해 보인다.

그런데 역사를 공부해 보니, 그런 major한 독립 운동가뿐만이 아니라 다소 minor한 분들의 행적에 대해서도 본인은 관심이 간다. 성경을 많이 읽으면 다니엘, 예레미야뿐만이 아니라 학개, 나훔, 요엘 같은 사람도 알게 되듯이 말이다.

예를 들어 이토 히로부미의 경우, 1909년에 안 중근 의사가 하얼삔 역에서 총살하기 전에, 이미 한국 내에서도 1905년, 경부선 열차 탑승 중에 원 태우 의사에게서 짱돌 테러를 당해 매우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을사조약 체결에 분개한 나머지 이토의 얼굴에다 깨진 유리 파편 세례를 안긴 원 의사는 그때 겨우 24세 청년이었다!

체포된 원 의사는 비록 곧바로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온갖 악독한 고문을 당한 끝에 온몸이 만신창이 불구+고자 신세가 되었고, 형기를 마치고 풀려난 뒤에도 일제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찍힌 채 감시와 착취를 당하며 기구한 일생을 살았다. 그래도 다행히 일제가 망할 때까지 끈질기게 생존하면서 천수에 가깝게 살긴 했다(1882~1950). 게다가 안 중근의 의거도 원 태우의 의거에 사상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하니, 원 의사는 비록 안 의사만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그 공적이 매우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틴데일 성경과 킹 제임스 성경의 관계처럼?

(여담이다만, 이 이토 히로부미라는 양반은 열차 여행 중에 저렇게 크게 다치고 나중엔 아예 역 플랫폼에서 살해당하기까지 하니, 개인적으로는 철도 트라우마가 생길 법도 해 보인다.)

오늘은 이분 말고 또 다른 인물을 소개하겠다. 일제로부터 직접적으로 해코지를 당한 적이 있는 독립 운동가 중 최연소자는 흔히 유 관순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더 어린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주 재년(1929~1944). 요절하지 않았다면 지금 80대 노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전라남도 여수 출신이다.

그는 일제 말기를 산 사람이었다. 전쟁 때문에 일제의 식민 통치는 그야말로 막장 of 막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일제는 식량을 포함해 온갖 물자를 수탈하였으며 조선 사람들을 갖가지 명목으로 꼬투리를 잡아 체포· 구금하고 노동자나 군인으로 강제 징용해 갔다. 조선어의 교육은 이미 금지되었고, 학교에서는 조선인들도 천황 폐하에게 충성을 바쳐서 대동아 공영권에 이바지하라는 개드립을 어린 학생들에게 주입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 재년은 저것들은 다 헛소리일 뿐이고 일제는 이 상태로는 아무리 발악을 해 봤자 물자가 곧 바닥나고 전쟁에서 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니 우리 조선은 그 기회를 타고 미국 같은 연합국의 힘을 이용해서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통· 통신이 안습하기 그지없던 그 시절에 이 정도로 앞서간 생각을 했다는 건 여간 대단한 게 아니었다. 물론 일본 헌병 앞에서 이런 말을 한다는 건 나 죽여 달라는 소리와 동급이었지만 말이다.

1943년 9월 23일, 그는 의분을 참지 못하고 이런 일본 디스 문구를 집 근처 돌담장에다가 공개적으로 새겨 적고 말았다.
“조선과 일본은 서로 다른 나라이다. 일본 섬놈들은 반드시 패망한다. 조선 만세!”
실제로 쓰기는 한문으로 썼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은 이 문구가 일본 헌병들의 눈에 띈 것은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서였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100여 명에 달하는 경찰과 헌병들이 동원되어 이런 말을 씨부린 놈이 누구냐고 마을을 샅샅이 뒤지면서 주민들을 다그쳤다. 자수하는 놈이 없으면 마을을 다 불질러 버리겠다고 공갈까지 했다. 그랬는데 자신이 범인이라며 자수하는 사람은 겨우 10대 중반의 중학생(오늘날로 치면)이었으니 왜경들은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여수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그 뒤에 당한 건 유 관순 때와 똑같았다. “이런 짓을 네놈 혼자 저질렀을 리가 없다. 공범· 배후가 누구냐? 누가 이런 사실을 알려 줬는지 어서 대라!”라는 심문과 함께, 그는 구타, 물 고문, 전기 고문 등 극심한 고문을 당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굽히지 않고 이건 자신만의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개념으로 치면 내란 선동에 의한 치안 위반죄가 적용되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1944년 1월에 풀려나긴 했다. 나이가 너무 어리고 물리적으로 누굴 죽이고 부순 것도 아니니 실형을 곧바로 집행하지는 않았지만, 집행유예 기간을 보아라. 상당히 긴 기간 동안 네놈을 블랙리스트 인물로 여기고 계속 감시하겠다는 일제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옛날에 유 관순이 징역 3년이었고, 의자 집어 던진 것 때문에 법정 모독죄 4년 추가였다)

그러나 그는 15~16살의 나이에 당한 악독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인해 건강이 이미 심하게 망가진 상태였으며, 결국 그 해 4월 8일에 세상을 떠났다.
한국 교회사를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날짜를 보고 뭔가 패턴이 보일 것이다. 최 권능 목사라고 불리던 최 봉석 목사의 소천일이 1944년 4월 15일이요, 주 기철 목사가 4월 21일(혹은 22일)이니, 그야말로 1주 간격이다. 어째 이 시기에 유명한 항일 인사가 많이 세상을 떠났다.

유 관순에 비해 주 재년 열사의 행적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거의 알려져 있지 못했다. 메이저급 독립 운동가나 항일 열사들은 박 정희 정권 시절인 196, 70년대에 이미 훈장이 추서되었고 나중에는 심지어 사회주의· 좌파 계열 독립 운동가들까지도 공적이 추가로 인정되었다. 그 반면, 주 열사에 대해서는 유족들이 끈질기게 국가를 상대로 청원을 한 끝에야 재조명을 받았으며 2006년에 비로소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일제로부터 독립 운동을 하다 투옥 당하고 형벌을 받았다는 판결 문헌 기록이 발견된 덕분이다.

그 시절에 일제의 검열을 통과하여 신문을 내고 선생질을 하기 위해서는 어지간히 의협심이 충만한 사람이 아닌 이상, 비록 진심은 그게 아니더라도 윤 봉길 의사의 의거에 대해서 규탄(?)하는 기사를 내고 디스를 해야 했으며, 강단에서는 천황 폐하께 충성하라고 징병 독려를 해야 했다. 맨날 손 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같은 짓만 했다간 신문사고 학교고 다 남아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런 프로파간다를 듣는 사람들은, 쟤도 입에 풀칠하려고 그저 그러려니 하는 개소리로 여기고 재해석을 해서 받아들였다. 그땐 그랬다.

그런데 그 와중에 겨우 10대 소년이 목숨을 걸고 저렇게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진실을 있는 그대로 까발렸다니 정말 타의 귀감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춘천에 김유정 역이 있고 안산에 상록수 역이 있는 것처럼 주 재년 열사는 여수가 자랑하는 위인으로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주 열사에 대해 더 관심 있으신 분은 오마이뉴스 기사를 참고하라.

Posted by 사무엘

2012/05/11 08:28 2012/05/11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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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특집 포스트 (스압 주의)

1. 어버이날과 부모님에 대해서

내가 분류해 보니,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각종 특별한 명절, 기념일 등의 명칭은 크게 다음과 같은 다섯 갈래로 나뉜다.

  • ‘절’로 끝나는 한자어: 제헌절,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성탄절
  • ‘일’로 끝나는 한자어: 석가탄신일, 식목일, 현충일
  • 완전히 독립적인 한자어: 추석, 단오
  • ‘날’로 끝나는 고유어: 한글날, 어버이날, 어린이날, 설날
  • ‘-의 날’로 끝나는 고유어: 철도의 날, 스승의 날

이런 조어 원리는 그다지 규칙성이 없고 전적으로 그냥 어감을 고려한 case by case인 걸로 보인다.
똑같이 종교 공휴일일 뿐인데 성탄절과 석가탄신일의 조어 원리가 서로 다른 이유라든가, 어린이날이 ‘아동의 날’이 되지 않고 굳이 그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딱 떨어지는 규칙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자, 5월 5일 어린이날 다음으로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다. 어린이날이야 아동 문학가 소파 방 정환이 제정한 굉장히 한국적인 근거를 지닌 날인 반면, 어버이날은 명목상의 근거는 미국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나 확실치 않다. 외국엔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이 따로 있는 곳도 많고, 또 한국의 어버이날이 어린이날보다 나중인 것이 윤리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요즘은 철없는 막장 부모도 많아서 참 문제이긴 하다만, 그래도 ‘일반적인’ 경우로 볼 때, 인생의 참으로 막대한 부분을 희생하여 우리를 이 정도까지 키운 부모님의 은혜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성경도 예외가 아님. 십계명에서 종교적인 규범에 속하는 1~4를 제끼고 곧바로 등장하는 인륜 규범 1타는 “부모를 공경하라(honour)”이다. 이것은 단순히 부모 명령에 무조건 ‘까라면 까’라는 식의 발상이라기보다는, 그보다도 일단 자기 부모를 사랑하고 기쁘게 하고 남들 보는 데서 부모님 품위를 존중하고 명예를 높여 주라는 뜻이다.

부모의 사상과 가치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 자녀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대체로 부모가 너님들 먹여 살릴 여건을 만들고 체통 세우느라 사고방식이 최대한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방향만을 추구하게 돼서 그런 거다. 부모 세대라고 해서 쿨하고 개방적인 걸 몰라서 그렇게 고리타분하게 산 게 절대 아니다. 그러니 동의는 못 하더라도 부모님 마음을 이해는 할 필요가 있다.

제아무리 가난하고 못 배운 부모라 해도, 너님을 낳아서 키울 필요가 없었다면 그 연세에 이르기까지 신세 못 펴고 그 모양 그 꼴로 살 필요는 없는 사람이다. 정말이다.

물론, 부모가 예수 믿지 말고 네 신앙을 부인하라고 한다거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교리 노선을 추구하는 교회에 강제로 다니라고 한다면 그런 데에까지 맹목적으로 순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품위와 명예를 존중해 주면서 불순종할 수는 있다. 어떻게 그렇게 할지는 먼저 구원받고 먼저 바른 신앙을 물려받은 자녀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서 방법을 생각해야 할 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소한의 윤리와 기강을 갖춘 문명 사회에서는 효도를 강조하고 패륜은 엄벌로 다스렸다. 구약 율법은 부모를 저주하거나 때리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으며, 심지어 신명기에는 고집 세고 식탐이 심하고 부모의 교정만으로 씨가 안 먹히는 싹수 노란 자식은 아예 마을 차원에서 린치를 가해서 죽여 버리라는 섬뜩한 추가 지시까지 있다(신 21:18-21). 하나님은 그 정도로 패륜을 싫어하신다. 특히 “아 ㅆㅂ, 내가 어쩌다가 이런 집/곳에서 태어나게 됐어” 부류의 패드립 말이다(사 29:16, 45:9) .

이 명령이 특히 무시무시한 이유는, 부모의 말이 사실인지 이웃 주민이나 자식 당사자로부터 최후 변론을 듣는 절차도 전혀 없이 완전 비민주 인민재판 즉결처분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배도 행위가 발견되었을 때는 ‘부지런히’ 진상 파악부터 하라고 돼 하지만(신 13:12-16, 17:2-7) 저건 그렇지 않다. 사실, 자식 새끼를 제발 좀 어찌해 달라고 친부모가 제 발로 찾아올 정도면 자식이 얼마나 막장인지 더 말을 들을 필요도 없었을 터이다. 이 명령이 실제로 얼마나 시행되었는지는 모르겠다.

2. 가정과 성에 대해서

5월이고 하니 가정에 대해서도 생각을 좀 다시 해 보게 된다.

오늘날 이 정도라도 사회가 유지되고 돌아간 데엔 가정의 공이 절대적이었을 것이고, 특히 여성의 희생과 헌신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옛날에 지금 같은 여성 인권 단체가 있었고 사람들이 좀 힘들다고 덥석 집 나가고 이혼을 해 버렸다면, 파탄 나는 집안과 인생 망치고 자살이나 범죄로 빠지는 애들이 넘쳐나게 됐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송 현 선생님이 예전에 글로 아주 통렬하게 표현하신 적이 있다. (☞ 링크 클릭)

옛날에 가혹한 여성 인권 유린이라 불릴 정도로 엄한 성 억압(?) 관습이 왜 있었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민망하니, 구체적인 예를 거론하진 않겠다) 마치 고문처럼 그것도 물론 나쁜 관습이고 부조리이다. 언제까지나 여성만 일방적으로 당하고 살 수는 없는 것 역시 본인은 안다. 단지 옛날에 죄의 결과 때문에 그런 게 왜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간다는 뜻이다.

성이라는 건 정말로 생판 모르던 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유지시키는 근간으로만 ‘은밀하게’ 쓰여야 하는 선물이요 비밀 병기이다. 부부 사생활은 하나님도 전혀 간섭 안 하고, 서로 같이 뭘 하며 즐기든 존중해 주는 절대적인 영역이다(히 13:4. honour과 동일한 어근인 honourable).

그러나 반대로 성이라는 게 다른 용도로 오· 남용되는 것을 하나님은 구역질을 할 정도로 가증스럽게 여기며 미워하고 정죄한다. 결혼한 부부가 사생활에 문제가 있어서 성 교육이나 상담을 받는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미혼 청소년이나 청년에겐 피임법을 가르칠 게 아니라 잠언 6장이나 딤후 2:22를 숙지시켜야 한다. 이걸 몰라서 인생 망친 안타까운 예가 허다하다. 옛날에 서 부희 씨도 그랬고.

도대체 성을 왜 남의 것하고 비교를 하는가? 그게 공공연한 개방과 비교의 대상이 되고 금전 거래의 대상이 되고 개나 소나 다른 용도로 문란하게 쓰이기 시작하면, 그때야말로 진짜로 옛날에 어떤 아저씨의 절규처럼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헬게이트가 시작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경에서 창세기 1~2장은 전반적으로 작가 관찰자 시점으로 천지 창조에 대한 과정을 묘사하는 내용인데, 끝부분에 유일하게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아예 독자에게 코멘트를 남긴 구절이 있다. 바로 창 2:24로, 그게 그 이름도 유명한 “남자가 자기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한 육체가 될지니라”라는 결혼 제도 구절이다. 기독교식 결혼식의 목사 주례에서 단골로 듣는 구절이다.

3. 출산과 자녀 교육에 대해서

성경의 사고방식은 결혼과 출산에 아주 옹호적이다. 성경에는 “다산하고 번성하라”라는 명령만 있을 뿐 맬서스 같은 사고방식은 결코 찾을 수 없다. 소위 가족 계획이란 건 성경적으로 보면 하나님도 간섭 안 하는 영역을 공권력이 나서서 자기 편한 대로 제어하겠다고 하는 굉장히 무모한 생각이다.

흔히 중국 하면 자녀를 한 명씩밖에 못 낳는 나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과거에 마오 쩌둥은 한때 굉장한 산아 장려책을 폈으며 20세기 중반에만 해도 6억 남짓이던 중국 인구를 10억이 넘게 불려 놓았다. 중국이 처음부터 지금만치 인구가 많은 게 아니었다는 게 충격적이다.

마 주석은 쪽수가 국력이라고 여겼으며 어느 문헌에 따르면, “아이는 전투기에서 투하하는 폭탄과 같다”고 교시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라? 무신론 공산주의 국가의 지도자답지 않게 저 말의 표현 자체는 묘하게 성경적이다. (시 127:3-5) 무기에다 비유한 게 일치한다. 비록 그러다 얼마 못 가서 중국은 다시 산아 제한으로 돌아섰지만 말이다.

단, 성경이 말하는 다자녀 예찬은 자녀들을 성경대로 잘 양육했을 때에나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안 그러면 뼈 빠지게 자식 키워 봤자 미래에 부모는 휴거되는데 자녀는 못 되고 땅에 남아서 오히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온갖 재앙을 당하거나, 그것도 모자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군대에 징집되어 계 19:18-21의 악역에 동참하는 비참한 신세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종말이 지금으로부터 가까운 시간에 발생한다면 말이다.

성경은 자녀 양육에 대해 절대적으로 각 가정의 부모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있다. 그리고 체벌에도 아주 옹호적이다. 잠언에 애들 때리면서 키우라는 말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른다. 나도 부모님에게 맞으면서 컸지만, 그거 정말 공감한다. 안 그랬으면 내가 죄의 결과가 얼마나 처참한지를 실감을 못 했을 것이다.

사랑의 체벌은 가정 폭력 및 아동 학대하고는 가히 종이 한 장 차이인 걸지도 모르겠다. 이게 인생에서 정말 미묘한 점이고, 어찌 보면 세상이 참으로 공평한 면모이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 없이 돈만 쏟아 붓는다고 절대로 저절로 바르게 크지는 않으니 말이다. 내 말이 안 믿어지면, 한번 실제로 저렇게 해 봐라.

부모가 세상적으로 잘났기 때문에 애를 때리고 자녀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게 아니다. 비록 부모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게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고, 그렇게 안 하면 애가 정말로 바르게 클 수가 없으며 자녀에게 그 정도까지의 악역을 눈물을 머금고라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밖에 없기 때문이다.

허나, 오늘날 사회는 부모의 권위가 실종되고, 애들을 부모로부터 점점 떼어 놓으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매우 큰 심각한 문제이다. 아이들에게 바른 크리스천 신앙을 전수해 줄 수 있는 건 올바른 가정 교육밖에 없는데 요즘은 이런 현상까지 있는 듯하다.

http://cbck.org/bbs/board.html?board_table=com&write_id=1715#c_1744
대부분의 가정에서 지원을 안 받으면 손해라고 여기고 한창 부모와 상호작용할 나이의 어린 아이들을 어린이집, 유치원 등 교육기관에 위탁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http://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board01&wr_id=4546
능력 있는 국민들까지 공짜로 내모는 정부 때문에 엄마 정신이 병들고 애기도 파괴됩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아 씨바, 결혼은커녕 여친 사귄 적도 전혀 없는 주제에 벌써부터 너무 애늙은이 같은 글을 써 버렸다. ㅋㅋㅋㅋㅋ 하지만 이 글은 어버이날 기념 특집이니 양해 바란다.

4. 철도 성령님으로부터 받은 계시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부모님의 은혜와 관련하여 가장 감화를 받았던 때는 2007년 봄의 어느 날이었다. 병특 복무 중이었고, 그러고 보니 훈련소에 들어가기 얼마 전이었다.

대전에 볼일이 있어서 경부선 새마을호 특실을 탔다. 그때 본인은 새마을호 특실의 음악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의 샘플을 채널별로 15분씩 녹음해 놓으려고 컴퓨터와 양방향 잭을 챙긴 상태였다. 특실에는 마치 비행기 객실처럼 다음과 같은 6개의 채널이 있다. (지금은 없어졌음)

  1. 자연의 소리 (이지리스닝 instrumental)
  2. 한국 가요
  3. 가곡
  4. 재즈
  5. 클래식
  6. 객실에서 방영되는 TV 방송

일반실은 이어폰을 꽂으면 6번만 들을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랬는데 1번과 2번 채널 다음으로 3번 가곡 채널을 듣고 있으니 얼마 후 <어머니의 마음>이 흘러나왔다. 양 주동 박사가 작사한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그 곡 말이다.

그 곡은 가사가 잘 알다시피 정말 애절하고 감동적으로 지어져 있다. 국문학 박사가 쓴 가사답게 예스러운 표현도 제법 들어가서 품위 있어 보인다. 100을 의미하는 ‘온’, 그리고 일부러 음운을 탈락시킨 ‘따(땅) 위에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그지없다’ 등. 3절 가사를 보시라. 눈물 없이는 못 듣는다.

사람의 마음 속에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 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요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3절이 흘러나올 때, 철도 성령님으로부터 계시가 내려왔다. 아아, 어머니께서 나를 낳아서 키워 주신 덕분에 내가 지금 이런 지상천국 열차를 타면서 한없는 행복에 젖을 수 있구나!

그 깨달음으로 인해 행복과 감격과 감동이 교차하면서 콧등이 찡해졌고, 나는 옆자리 승객이 보건 말건 엉엉 흐느껴 울음을 터뜨렸다. 남들은 군대에 가서 유격 훈련 때 PT 체조 8번을 하면서 <어머니의 마음>이 <스승의 은혜>로 바뀌는 체험을 한다지만 나는 그걸 열차 안에서 체험했다.

세상에 지구상의 어느 교통수단에서 이런 체험을 할 수 있었겠는가?
비성경적인 은사주의는 성경을 바르게 나누어 알면 퇴치되지만, 사실 철도만으로도 충분히 퇴치 가능하다. 철도 성령만도 못한 이상한 흥분이나 쾌락 따위엔 관심조차 안 가게 된다.

철도가 나의 삶을 얼마나 엄청나게 변화시켰고 음침하고 어둡던 나의 가치관을 건전하게 바꿨으며, 심지어 신앙에도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이 자리에서 다 간증하기에는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다. 이 땅에 성경과 복음과 더불어 이런 철도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그저 감사드릴 뿐이며, 우리나라에 철도 덕후들이 많이 많이 배출되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2/05/08 08:21 2012/05/08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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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슈페리어 2012/05/08 14:59 # M/D Reply Permalink

    안녕하세요. 용묵님. 글을 통해서는 처음 인사드리지만 오래전부터 용묵님의 글을 즐겨 읽고있는 독자입니다.

    용묵님의 글 솜씨에 매번 감탄합니다. 이 블로그의 글 덕분에 성경과 교회에 대해 바른 개념을 탑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음을 글을 통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용묵님 블로그의 모든글을 다 읽고 있지는 못하지만(철도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요) 앞으로 더 써주실 유익한 글에 미리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화창한 5월 맑은 하늘만큼 푸른 나날 보내시고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1. 사무엘 2012/05/08 16:09 # M/D Permalink

      거의 열흘 만에 첫 의견을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ㅋㅋㅋ

      제 홈페이지가 바이블 빌리버들도 철도 덕후가 되고, 세상적인 철도 덕후들도 예수님을 만나고 거듭나는 공간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본문의 저 좌석 사진을 보세요. 당장 나가서 타고 싶지 않으세요? ㅋㅋ)

    2. 슈페리어 2012/05/09 07:55 # M/D Permalink

      저는 집이 춘천인지라 망우역에서 춘천역까지의 경춘선 경로를 자주 애용합니다.

      경춘선 전철 여행에서 바깥의 경치와 풍경에 늘 감탄하며 때때로 지난 이 길에 무궁화호와 통일호 열차가 이 길을 다녔었던 지난 유년시절 과거를 기억하고는 합니다.(저는 올해 서른입니다.) 시간이 참 빨라 벌써 그 길은 전철로 교체되었고 itx까지 다니는군요. 지난 달 itx를 처음 시승해 보았는데 2층전동차에 상당히 현대적인 내구조인지라 많이 놀랐습니다ㅎ

      여담이지만 저 역시 itx를 처음 타던 그날 itx의 승차구조가 낯설고 익숙치 않아 좌석표를 쥐고 한참 헤메고 있었는데 저처럼 똑같이 좌석표를 쥐고 복도에서 헤메고 있던 미국처자를 만났습니다.
      결국 예감으로 때려맞추고 간신히 좌석찾아서 미국처자자리도 찾아주고 저도 편안히 앉아갔던 기억이 드네요.

      이번주 일요일에는 사랑침례교회에 나가보려 합니다.

      미로같은 인터넷세상에서 킹제임스성경,킵바이블,용묵님의 블로그를 우연으로 알게되어 정보와 지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옳은 예배당을 찾아 용기내보려합니다.
      사는곳에서 교통편으로 2시간이상 걸리는 거리이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벌써 많이 기대되고 기다려집니다.

      다시한번 많은 성경과 교회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알려주신 블로그를 운영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3. 사무엘 2012/05/09 13:12 # M/D Permalink

      오옷, 경춘선 라인에 사시군요. ^^;; 나이도 저와 거의 동갑이고. 더욱 반갑습니다.
      언젠가 만나서 구원 간증도 나누고 교제할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면,
      1. 사랑 침례교회가 딱 오는 13일부터 인천 논현동의 새 예배당으로 이사 간 건 아시지요? 서울이나 춘천에서 가기에는 더 멀어졌습니다.
      2. 저는 사랑 침례교회 성도가 아닙니다. 서울에 있는 다른 교회를 다니지요. 하지만 이곳도 사랑 교회와는 물론 가까이 교제합니다.

    4. 슈페리어 2012/05/09 19:44 # M/D Permalink

      그러시군요. 저는 서울에 중랑구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용묵님이 출석하시는 교회는 어디이신가요?

      아무래도 제가 흠정역성경으로 예배,교제하는 교회를 찾고있는데 서울이면 더 좋을 것 같아서요.

      킵바이블홈페이지에 공지사항에 사랑침례교회가 있길래 그곳을 생각하고 있었긴 합니다ㅎ

    5. 사무엘 2012/05/09 21:41 # M/D Permalink

      저는 진리 침례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
      http://www.ilovekjb.com/zbxe/churchmap

    6. 슈페리어 2012/05/10 00:07 # M/D Permalink

      인천까지 가지 않아도 될 것 같군요:) 다행입니다ㅋ
      이번주 일요일 예배에 참석해야겠어요.

      어버이날을 맞이해 강원도에 다녀왔습니다. 아까 글 남겨드린 시각에는 춘천에 있었습니다. 지금 막 서울 자취방에 도착했어요. 오늘은 저녁늦게 전철을 탔습니다.

      요새 날씨가 쾌창해 낮에 경춘선을 타면 산과 들녘의 풍경이 아주 좋습니다. 밤에 경춘선 전철을 이용한다면 음악을 들으며 잡생각에 빠지기 아주 좋지요ㅎ

      방금 전철로 오는 길에는 itx전철이 먼저 지나가야되니 전철길을 비켜줘야하니까 잠시 멈추겠다고 하는 안내방송과 함께 3분간 어느 정차역에서 멈추더니

      옆차선으로 itx가 쌩~하고 지나가더군요ㅋ
      역시 무정차의 포스는 남다릅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오랜만에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드리게 됩니다.

      그동안 인생,진리,종교에 대해 나름의 수많은 고민도 참 많았는데 우연하게 킵바이블,흠정역을 알게 되어 용기내 교회에 참석할 생각을 하니 기대도 되고 약간 떨리기까지 하네요ㅎ

    7. 사무엘 2012/05/10 11:19 # M/D Permalink

      그럼 오는 일요일에 뵐 수 있겠군요? 기대할게요. ^^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성경대로 믿고 행하는 지역 교회를 섬기는 일을 하는 게 마땅합니다.

  2. 백성 2012/05/09 02:47 # M/D Reply Permalink

    에, 그게, 그러니까, 저는 철도의 전원 공급 방식이라든가 자기부상열차의 구동 메커니즘 따위를 숙달해서 남에게 가르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요!

    1. 사무엘 2012/05/09 13:13 # M/D Permalink

      물리 공부 열심히 해서 철도 지식의 대중화와 저변 확대에 기여하면 하나님도 크게 기뻐하실 것임. :-)

    2. 백성 2012/05/10 09:10 # M/D Permalink

      뭔가 논리전개가 이상합니다.......
      나능 물리학을 그런곳에 쓰지 않겠어

  3. 이도훈 2012/05/11 15:59 # M/D Reply Permalink

    캐나다의 '스카이 트레인'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학연수 중인 밴쿠버에서 매일 타고다니는 대중교통 수단인데 이것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면서 공항까지 닿는 라인을 건설했다는데 그 전엔 택시비가 살인적인 이 곳에서 얼마나 불편했을지 상상이 안 갑니다.

    스카이 트레인은 무인운전이라 맨 앞에 좌석에 앉으면 열차 정면 창 밖을 바라보며 경치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크게 지하라인과 공중라인으로 구분되는데 지하라인은 한국의 지하철 같으나 노선이 단 1개 뿐이고 공항까지 닿습니다. 반면에 지상라인은 모노레일처럼 공중에 떠서 달리는데 2개의 노선이 있습니다.
    각 객차의 폭과 높이는 한국의 그것과 유사합니다. 엄청나게 큰 모노레일이라 보심 되겠습니다. ㅋ
    공중을 달린다는 특성상, 커브가 많아 진동이 심하고 서 있기가 좀 불편합니다. 의자는....... 좌석이 벽에 밀착되어 서로를 마주보고 앉는 한국 방식이 아니라 좌석버스처럼 전방을 주시하는 방식인데요. 절반은 전방, 나머지는 후방을 항하게 되어있어서 착석한 승객 중 절반은 뒤로 타고가게 됩니다. ㅋㅋㅋ
    좌석버스식 배치로 인해 한 자리가 점유하는 공간이 넉넉하여 일단 앉기만 하면 편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태울 공간이 훨씬 적다는 점이 단점인데, 서울지하철 처럼 무지막지한 사람들이 탑승한다면 결코 버티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서로의 공간을 침해하지 않는 배려, 그리고 빠른 배차간격으로 한국의 지옥철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여유를 느낍니다.

    요금이 2000원이 넘고 시간제라 환승도 발권 2시간 이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저 같은 경우 1달 대중교통 자유이용권을 구입하여 다니죠. 그것도 지하철 Zone 구분에 따라 가격차이가 나는데 역에 따라 그 구역이 나뉩니다.(한국처럼 km 단위가 아니죠)
    존1, 존2, 존3로 나뉘는데 제일 저렴한 존1 티켓으로 타도 존2 지역을 가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경비원에게 적발당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거든요. 그냥 계단에서 인적이 드물 때 직원이 기다리고 있다가 확인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한국의 징수시스템에 경의를 표합니다. 밴쿠버 전철은 개찰구가 없어 표 없이 들어가도 별 탈이 없습니다. 심지어 버스도 상당수가 2개가 일렬로 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뒷문에는 표 검사도 안 하고 그냥 탑니다. 양심을 믿는거죠. 캐나다 현지인들은 어떨지 몰라도 아시아 사람들의 무임승차는 무시 못할 수준입니다.
    하지만 부정승차가 적발될 경우 $173 라는 무시무시한 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ㄷㄷ
    전 처음 여기 왔을 때 개찰구가 없길래 "아! 내가 지금 복지국가에 있다." 라고 생각하며 그냥 탔는데 입국 6일만에 적발되어 손발이 닳도록 싹싹 빌었고...... 입국 직후라는 이유로 다행히 용서를 받았습니다.ㅠㅠ

    한국 대중교통은 위대합니다. 선진국 캐나다보다 훨씬 진보적인 환승체계와 효율적인 요금징수 체계에 경의를 표하며, 단 한 가지 문제점으로 지적받고 있는 '타자마자 하차 찍기' 꼼수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1. 사무엘 2012/05/11 19:15 # M/D Permalink

      캐나다의 궤도교통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참고로 미국 로스 앤젤레스의 지하철도 제가 본 바로는 개집표기가 없더군요. 열차 안에서 불시에 임의 검표를 한다고 합니다.

      또한, 외국에는 말씀하신 것처럼 전방 좌석형 지하철이 많습니다. 한국은 굉장히 큰 전동차를 쓰고 있으면서 지금까지 좌석형 열차에 인색한 것도 좀 이례적인 것 같네요. 요즘 좌석형 전동차가 도입되고 있는 건 광역전철 위주이지 지하철은 아니죠.

  4. 지만 2012/05/11 16:34 # M/D Reply Permalink

    518운동은 북한의 소행이고
    대한민국의 못사는 80%거지들은 세금을 안내서 20%부자들이 이들을 먹여살리고 있다(그래서 간접세를 늘리자는 건가?) 라.
    흥미롭네요.
    이 말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나머지 말들을 믿어야 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입니다.

    1. 사무엘 2012/05/11 19:15 # M/D Permalink

      이 글은 가정에 대한 글이지 정치나 시사에 대한 글이 아닙니다.
      좀 왜곡· 과장이 있다 싶은 부분은 스스로 걸러내고 분별해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또한, 진실은 의외로 굉장히 극단적인 곳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5. 다물 2012/05/14 14:31 # M/D Reply Permalink

    성탄절은 성인이 태어난 날이라는 뜻입니다.
    불교에서 성탄절은 부처님 오신날이죠.
    "기독탄신일"등으로 부르는게 맞습니다.
    (아래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인데 여기에는 기독탄신일로 되어 있습니다.
    http://likms.assembly.go.kr/law/jsp/law/Law.jsp?WORK_TYPE=LAW_BON&LAW_ID=B0345&PROM_NO=19674&PROM_DT=20060906&HanChk=Y)

    물론 용묵님 종교도 있고 실제 달력에도 그렇게 적힌게 많으니 그 표현이 무조건 잘못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가운데에서 보면 그런 개념입니다.


    ~~ 절은 국경일입니다.(성탄절은 기독탄신일이라고 할 경우) 한글날이 국경일 중 ~~절로 끝나지 않는데 한글날은 처음에는 국경일이 아니었다가 나중에 국경일이 되어서 이름이 좀 다르다고 봐야겠죠.
    그 밖에 ~~날로 되는 것은 국경일은 아니고 기념일 정도라고 봐야겠죠 ^^

    1. 사무엘 2012/05/14 19:47 # M/D Permalink

      저는 기독탄신일이라는 단어를 대학 졸업하고 나서야 접했답니다.
      왜 성탄절이 먼저 압도적으로 먼저 퍼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보충 설명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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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계획과 달 탐사 이야기

콩코드 여객기가 날아다니고 인간이 달에 갔다 오던 1970년대는 그야말로 항공 우주덕을 꿈꾸는 과학도가 많이도 생겼을 것 같은 시기이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인간이 달뿐만이 아니라 화성도 정복하고 우주 식민지를 개척할 것 같은 희망에 부풀지 않았었을까 싶다. 비록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지만 본인은 이 시절을 어느 정도 동경까지 하고 있다.

아시아 최초의 우주인인 일본의 모리 마모루 박사는 그 당시에 만화영화 아톰을 보면서 과학자의 길을 꿈꾸었으며, 세계적인 우주론 전문가로 손꼽히는 천문학자인 연세대 이 영욱 교수도 어렸을 때 비슷한 체험을 하고 아폴로 계획의 성과에 감화도 받으면서 이 분야의 진로를 선택했다.

이 교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는 것을 봤다. 그 뒤 천문과 우주에 빠져 매일 하늘을 바라보게 됐다”면서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우주에서 쏟아지는 유성우(流星雨)를 본다고 3시간 동안 집 마당에 서있기도 했다. 마침 아폴로 달착륙 때 해설을 통해 ‘아폴로 박사’로 유명해진 고(故) 조경철 박사도 연세대 교수였다. 그렇게 연세대와 인연을 맺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 링크 클릭)

모리 박사는 13세이던 1961년 옛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우주인이 되겠다는 꿈을 꿨다고 한다. 그래서 무엇보다 어린 시절의 꿈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 링크 클릭)


이제 막 통신 위성을 통한 TV 중계 기술이 개발되어 1964년의 도쿄 올림픽이 역사상 최초로 지구 반대편으로 생방송 중계된 올림픽으로 기록되던 시절이었는데, 그로부터 겨우 5년 남짓한 시간 만에 인류는 달 착륙 모습을 라이브로 중계하는 데 성공할 줄이야! 대단하지 않은가?

물론 성경은 바벨 탑(창 11:4)이라든가 루시퍼의 반역(사 14:13)에서 볼 수 있듯, 하늘로 자꾸 오르려는 인간의 욕망을 부정적으로 디스하는 경향이 있다. 하늘이 인간에게는 금단의 영역이라는 심상은, 그리스 신화의 이카루스 이야기에도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순수하게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과학 기술을 개발하는 것 자체는 딱히 선악 대립 구도가 없는 이념 중립적 영역이라 하겠다. 아폴로 8호 승무원은 달을 돌면서 오죽했으면 감격에 겨운 나머지 창세기 1장을 낭독하기도 했다. 바로 이런 광경을 보면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시절에 구소련은 달에 무인 탐사선을 보내서 달 뒷면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고, 달 표면까지 내려가서 월석을 채취해 오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달 표면에 사람을 착륙시키는 것까지는 차마 달성을 못 했고 천조국 미국이 대신 해냈다.

한때는(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갑자기 ‘달 착륙 구라설 / 아폴로 계획 자작극 음모론’이 인터넷에 나돌았다. 무슨 사진 모양이 이상하고 그림자 모양이 이상하다는 둥. 그 당시 기술로 우주선이 밴 앨런 벨트를 살아서 통과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둥. 그리고 그때 달에 착륙했다가 다시 출발은 어떻게 했겠냐는 둥.
그러나 이것은 우주 개발 역사와 달 탐사 우주선의 메커니즘 디테일도 제대로 모르는 비전문가의 무지의 소치이다.

  • 아폴로 8호 때는 3명의 승무원이 달 궤도를 빙글 돌기만 하고 돌아왔고, 10호 때는 승무원이 달 표면 고도 10km대까지 내려갔다가 되돌아왔다. 즉,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니라 점진적인 연습과 리허설을 거듭한 끝에 이뤄진 과업이다.
  • 그 후 아폴로 11~17호 중 13호만 빼고 미국은 무려 여섯 차례나 인간을 달에 성공적으로 착륙시켰다가 귀환시켰다. 13호는 중간에 발생한 문제로 인해 착륙은 포기하고, 달 궤도를 멀찍이 삥 돌기만 한 후 지구로 귀환했다. 그래도 목숨 부지하고 돌아온 것만 해도 어디냐. 13호의 승무원은 인류 역사상 지구에서 제일 멀리까지 나갔다가 돌아온 사람이 되었다.
  • 사령선은 달의 궤도를 가까이서 빙빙 돌고 있고, 여기서 착륙선을 별도로 내려 보내서 착륙한다. 승무원 3명 중 1명은 모선에 남아 있고, 2명만 달 표면을 밟게 된다.
  • 수 차례의 달 탐사가 진행되면서 인간이 달에다 남겨 놓고 온 흔적들도 많다. 가령, 착륙선의 발사대와 발사 흔적도 그렇고 아폴로 11호는 레이저 반사경을 달 표면에다 놔 두고 돌아왔으며, 이건 지금까지도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를 측정할 때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 아폴로 11호 때는, 착륙선이 다시 발사되어 올라가면서 발생한 배기가스의 강한 후폭풍 때문에, 인근에 꽂아 놨던 성조기가 쓸려 날아갔다. 어이쿠.. 그래서 그 뒤의 아폴로 미션 때는 성조기는 착륙선보다 최소 30m 이상 충분히 멀리 떨어진 곳에다 꽂게 되었다. 달 표면은 생각보다 딱딱해서 깃발을 꽂기가 힘들었다고 함.
  • 현재까지 인간의 마지막 달 방문으로 남아 있는 아폴로 17호 계획 때는, 달에 놔 두고 온 월면차에다 카메라를 달아 놓고 그걸 원격 조종을 시킨 덕분에, 착륙선이 달을 떠나는 모습을 밖에서 영상으로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그 원격 조종은 우주선 승무원이 아니라 지구의 관제 센터에서 1.3초 이상의 랙을 감수하면서 했다! 뭔가 느낌이 비장하다.
  • 미국 백악관에서는 만에 하나 달 탐사 중에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여 탐사선이 박살 난다거나 누가 죽는다거나 할 때를 대비해, 언제라도 즉시 중계를 중단하고 미리 써 놓은 유감 성명을 대통령이 발표할 준비를 해 놓고 있었다고 한다. “참으로 애석하다. 승무원의 유족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전한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은 헛되지 않을 것이고 그 어떤 역경도 우주 정복을 향한 인류의 꿈을 좌절시키지 못할 것이다.” 등등등.. ㅋ

이런 디테일을 모두 제대로 알기나 하고서 음모론, 자작극을 주장하는 사람을 난 못 봤다.
내가 기독교 식으로 좀 강한 비유를 동원하자면, 인간이 달에 갔다 왔다는 건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인 것만큼이나 확실한 사실이다. 마치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고 안 믿으려면 무수한 역사적 사실들을 부정해야 하듯, 달 착륙도 증거가 의혹보다 월등히 더 많다.

만약 NASA의 달 착륙이 진짜로 자작극이라면 미국의 모든 첩보 기관들은 그 진실을 알고 있는 전세계 수많은 대학과 연구소, 기업들을 입 막고 매수하는 일에 대부분의 예산과 정보력을 쏟아붓고 있을 것이다. 정말이다. 성경의 마 28:12-13이랑 완전 똑같은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요즘 NASA는 달 내부에서 아폴로 11호의 착륙 지점 같은 역사적으로 너무나 유서 깊은 장소를 있는 그대로 영구 보존하고, 훗날 이곳을 찾는 타국의 달 탐사선이 이를 훼손하지 못하게 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려 하는 중이다.

자, 음모론 반박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부터는 내부 메커니즘 얘기로 들어가 보겠다.

인간을 달로 보내기 위해서는 높이가 100m가 넘는(서울 종로구의 삼일 빌딩만 한 높이!) 인류가 지금까지 만든 가장 거대한 로켓이 동원된다. 지구의 중력뿐만이 아니라 공기의 저항까지 극복하면서 위로 올라가야 하고 하중은 기계선과 착륙선, 연료의 무게까지 전부 감안해야 하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로켓 한번 쏘는 데는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이 든다.

그 반면, 달에서 착륙선이 다시 출발할 때는 사정이 다르다. 중력부터가 잘 알다시피 지구의 1/6에 불과하고, 대기가 없고, 자그마한 착륙선 윗부분만 사령선이 있는 고도인 수십 km 위까지 올라가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를 떠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간단한 구조로 작은 힘만 써도 충분했던 것이다.

뭐, 이 과정도 조금이라도 수틀렸다간 우주선 승무원은 달을 못 빠져 나가고 갇혀서 거기서 죽게 됐을지도 모르고.. ㄷㄷㄷㄷ 더구나 금성이나 화성 같은 큰 행성이라면 이 정도 힘만으로 빠져나가는 건 어림도 없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달은 대기가 없기 때문에 여러 모로 드나드는 데 유리하다. 달을 떠나는 것까지도 괜찮은데 문제는 우주선이 다시 지구 대기권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이것은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에 재돌입, 또는 재진입(reentry)라고 항공 우주 분야에 용어가 따로 존재한다.

지구 기준으로 고도가 대략 100~200km 외기권에서 딱 열권, 중간권으로 들어갈 때가 고비인데, 이게 사실 우주 비행의 모든 과정을 통틀어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하다못해 지구에서 발사 도중에 사고가 나면 맨 꼭대기에 있던 승무원은 비상 탈출을 할 수 있는 반면, 재돌입 중에 기계가 탈이 나면 이건 뭐 탈출도 못 하고 안의 승무원은 죽는 수밖에 없다.

왜 위험한가? 잘 알다시피 우주선은 지구 중력에 이끌려 총알보다 더 빠른 초속 수 km의 속도로 활강하는데, 공기와의 극심한 마찰로 인해 우주선의 표면은 수백, 심지어 수천 도로 열을 받기 때문이다.
발사를 할 때는 대기가 짙은 지표면에서는 천천히 뜨고 우주 공간에서 빠르게 날아가니까 아무 문제될 게 없는 반면, 재진입 때는 낙하의 특성상 대기가 짙어질수록 우주선의 속도도 빨라지는 게 문제이다.

도대체 얼마나 빨리 움직여야 공기와의 마찰 때문에 열이 생기는지 잘 모르겠다. 하긴, 초음속 자동차도 그런 속도로 달리면 당장 타이어부터가 못 배겨내고 타 버린다고 하고, 콩코드도 성층권에서 초음속 비행을 한번 하고 나면 몸체가 그 마찰 때문에 수백 도로 달궈진다. 아니, 지구에 빨려드는 유성도 거의 전부가 이것 때문에 지표면까지 못 닿고 불타 없어지니, 공기와의 마찰은 참 대단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우주선의 재돌입 각도는 5~6도 정도이다. 설마 45도~90도 급강하일 리는 없으니까. =_=;; 각도가 너무 낮으면 재돌입 자체를 못 한다. 이 경우, 강물에 비스듬하게 던져진 돌이 물수제비를 일으키며 튕겨 나가듯 우주선은 다시 지구 궤도 밖으로 튕겨 날아가 버린다.
각도가 너무 높으면? 우주선은 극심한 마찰열을 견디지 못하고 유성 꼴 난다. 안의 승무원도 당연히 끔살.

속도를 낮춰서 천천히 발사의 역순으로 90도 강하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재돌입할 때는 우주선에 아무 연료도 남아 있지 않다. 즉, 동력이 없이 지구의 중력에 그대로 끌려 들어오면서, 유성 불쏘시개 꼴도 나지 않아야 한다는 게 큰 딜레마이다. 그래서 재돌입이 어렵고 위험하다.

재돌입 중에 우주선이 제일 뜨겁고 견디기 힘들어져 있을 때는 약 3분 동안 우주선과 중앙 통제실(Mission Control Center) 사이의 교신도 잠시 두절될 정도라고 한다. 전철로 치면 마치 1호선 남영-서울역 사이의 직-교류 절연 구간인 것 같다. 3분이 지나도록 우주선으로부터 연락이 없고 감감 무소식이면, 저기 무슨 사고라도 났나 싶은 불길한 예감 때문에 MCC는 초상집 분위기로 변한다.

우주선을 처음 발사할 때도 그렇고 재돌입할 때도 그렇고 그 안에 탄 사람은 지구 중력 가속도의 몇 배에 달하는 강한 가속도 때문에 신체의 피가 한쪽으로 쏠려서 신체의 이상 현상을 겪으며, 최악의 경우 뇌에 혈액 공급이 제대로 안 되어 졸도까지 한다. 이는 급강하, 급상승 같은 과격한 조종 훈련을 하는 전투기 조종사도 동일하게 겪는 현상이다. 그래서 이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혈액 순환이 최대한 잘 되게 포즈를 취하는 교육도 받는다.

이런 모든 달 착륙, 이륙, 재돌입 시나리오를 처음에 생각해 낸 미국 내지 소련의 로켓 과학자와 천체 물리학자들이 얼마나 괴물 같은 수재들일지 난 실감이 잘 가지 않는다. (하물며 인간을 처음으로 만들고 창세 전에 구원 계획과 경륜을 다 짜 놓은 하나님의 지혜이겠는가? 롬 11:33-36)

믿거나 말거나, 우주에 한번 갔다 온 사람들은 대체로 인생의 가치관이 크게 바뀐다고 한다. 특히 달에 갔다 온 사람이 더욱 그렇게 되며, 심하면 인생무상을 느끼고 잠적하여 우주에까지 갔다 온 것치고는 너무 조용하게 살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음모론 진영에서는 우주에서 못 볼 걸 보고 와서 그런 거라고 풀이하는데 과연 글쎄다.

비록 지금이 기계, 전자, IT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했지만, 당장 기름값만 생각해도 알 수 있듯 세계 경제는 40년 전보다 더 팍팍하고 어렵다. 세계 각국의 행정부는 빚에 허덕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건이 된다면 이제 또 달에 다녀오는 사람이 생기고 우주 개발도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1. 인간이 아폴로 17호 이래로 다시 달에 갔다 온다.
2. 북한 정권(김 일성 가문에 정통성을 둔)이 붕괴한다.
3. 남한의 헌법과 정치 모델이 바뀐다. (1987년 헌법 기반이던 게)

여러분이 생각하는 미래 실현 가능성은? ㅋㅋ
뭐, 듀크 뉴켐 포에버도 나왔고, 북한 류경 호텔도 건설이 재개됐으니 세상은 점점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긴 한 거 같다.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Posted by 사무엘

2012/05/05 08:31 2012/05/05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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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북한과 관련된 정보들을 좀 나열해 보겠다. 스펀지에 소개될 법도 한 아이템이 아닌가 싶다.

1. 이북5도청

우리나라와 북한과의 관계는 정말 미묘하고 복잡하다.
한편으로는 상대방을 독립 국가로 인정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라는 헌법 조항에 의거, 한반도 북부를 무단 점거하고 있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정서가 오늘날까지도 없지는 않다.

분단 이래로 잘 알다시피 경기도와 강원도의 일부가 북한으로 넘어갔으며, 황해도, 평안남/북도와 함경남/북도는 완전히 북한 영토가 되었다. 그러니 거기는 대한민국의 행정력이 닿지 않는다. 하지만 그곳 역시 원래는 우리 땅이라는 발상에 근거하여, 우리나라에는 '이북5도청'이라는 행정 기관이 있어서 형식으로나마 그 지역의 도 지사와 시장을 선출하고 근무를 시키고 있다! 하는 일은 실향민 지원, 북한 문화 기록 보존 같은 쪽으로, 행정보다는 학술적인 쪽에 가깝다.

이 기관은 무려 1949년부터 있어 왔다. 남한 단독 정부가 수립되고 북한으로부터 대남 송전이 중단되는 등 분단의 앙금이 굳기 시작한 때부터이다. 이북5도청은 서울의 완전 북부 끝자락인 종로구 구기동, 북한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상명 대학교 근처이긴 하지만 그곳보다도 더 북쪽이다.

다만, 북한은 또 자기 식으로 행정 구역을 개편하여 황해도가 남북으로 분할되고 없는 도가 생기기도 했다는 것을 여러분 역시 잘 아실 것이다. 도의 개수를 일부러 남한의 그것의 개수와 똑같게 맞춘 거라고 한다.

2. 자유의 마을

우리나라의 비무장 지대, 일명 DMZ라 함은 민간인이 접근할 수 없는 휴전선 전· 후방 2km 구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거기는 사람의 손길이 반세기가 넘게 끊어지면서 천혜의 자연이 살아 숨쉬는 생태 관광지가 되어 간다고들 한다. 전세계를 통틀어 보기 드문 세계 최대 규모의 온대 원시림!! (다만 지뢰 때문에 좀 문제이긴 하다만 말이다)

허나, 우리나라에서는 '자유의 마을', 혹은 '대성동 마을'이라 하여 전국에서 유일하게 비무장 지대에 자리잡은 민간인 거주지가 있다. 이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된 덕분이다. 첫째는 당연히 국토가 분단되기 전부터 그 자리에 마을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판문점과 가까이 있는 덕분에 6· 25 전쟁 때 마을이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치는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 경의선 최북단의 도라산 역보다도 더욱 북쪽이며, 국내 민간 지도나 자동차 내비로는 지리 정보가 전혀 안 뜬다. 민간인이 측량 조사 자체를 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구글 어스가 진리

남과 북에 걸쳐서 멀쩡히 있던 마을이 국토가 분단되면서 찢어지는 바람에 북쪽에는 남한의 '대성동 자유의 마을'에 해당하는 '기정동 평화의 마을'이 생겼다. 60여 년 전에 미국이고 소련이고, 공산주의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모르던 깡촌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마을이 반토막 났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외부인이 이 마을을 방문하는 건 육사나 국정원을 방문하는 것 이상으로 까다롭다. 1주일 전에 신청을 한 뒤 현장에서는 신분증 까고 출입증을 발급받은 뒤 여러 단계의 군부대 초소를 통과해야 한다. 내부 주민 역시 이동이나 주거의 자유가 좀 제약을 받기 때문에, 심야에 통금이 있는 건 물론이고 휴전선 근처에서 영농 활동이라도 할라치면 군부대에 신고를 해야 한다. 매일 저녁에도 점호 비슷한 가구 시찰이 있다.

마을 주변에 있는 건 진짜로 논밭 아니면 군부대뿐. 코앞이 휴전선이고 북한 쪽 마을을 마주보고 있기 때문에, 전쟁 났다 하면 0순위로 박살날 동네이다. 실제로 휴전 뒤에도 남북간엔 몇 차례 무력 충돌 및 납치, 월북 같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엔 자기 체제가 좋다고 서로 대남· 대북 방송을 귀가 따갑도록 틀어 댄 건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이곳은 사실 마치 공항 면세 구역 내지 뉴욕의 UN 본부 같은 치외법권 지대이다. UN군 사령관의 관할에 있으며, 여기 주민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다른 혜택은 누리는 반면 납세와 병역의 의무가 없다. 여기서 태어난 남자는 군대에 안 가도 된다는 뜻.

냉전 시대엔 남쪽 마을과 북쪽 마을이 태극기 깃대와 인공기 깃대를 서로 더 높게 올리려는 병림픽 비슷한 기싸움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엄청 옛날에 어렸을 때 학교에서 사회/도덕 교과서를 통해 이 일화에 대해 알게 됐는데 그게 이 마을 얘기였구나. 결국 이 병림픽은 쓸데없는 짓이라는 걸 깨달은 남쪽에서 먼저 기권(?)을 하면서 끝이 났던 걸로 기억.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 이해를 돕기 위해 지도 그림을 한 장 첨부한다. (출처: 위키백과)
38선 시절에 비해 남한이 영토 자체는 훨씬 더 많이 수복했음을 알 수 있다. 허나 서울 근처의 평지 겸 전략 요충지는 북한이 주도권을 잡았다.
판문점, 자유의 마을 등등이 있는 곳은 지도에서 제3 땅굴 근처, 즉 휴전선의 선형이 90도로 꺾이면서 남하하는 그 모서리이다. 원래 대성동과 기정동 마을은 38선 시절에도 같은 마을이었는데 휴전선 때문에 둘로 찢어진 셈이다.

3.
북한의 애국가는 가사에 다행히 김씨 부자 찬양 내용이 들어있지 않으며, 그냥 평범한 조국 찬가 스타일이다. 하지만 장군님 찬송가가 응당 따로 존재하며, 실제로 공식 석상에서는 애국가보다도 그게 더 많이 불리는 모양이다.
유튜브에서 검색만 해 보면 바로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소개하는 건 국가 보안법에 저촉되어 최악의 경우 코렁탕 취식의 사유가 될 수 있으니 하지 않겠다.

이렇게 무조건 금지하고 하지 말라고만 하니까, 딱히 이북이 좋은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냥 제도권에 대한 반발 심리로 친북 성향(?)이 생긴 사람들이 과거에 있기도 하지 않았겠나 싶다. 하지만 본인은 나라의 법을 이해하며, 그에 반발하지는 않는다.

걔네들은 잘 알다시피 컴퓨터로 타자를 할 때도 '김일성', '김정일'은 별도의 코드값에 배당된 문자로 더 진하게 찍으며, 읽을 때는 악센트를 잔뜩 실어서 '키임정일'처럼 읽는다. 그리고 그 이름은 두 줄에 구간이 걸치지 않게 처리된다(word wrap). 문자의 형태로라도 수령님의 거룩하신 존함을 다루는 분위기는, 옛날에 구약 성경 필사 서기관이 사자음어 YHWH 기록할 때 하나님의 존함을 다루던 경건함에 맞먹는다. -_-;;

남한에서는 세계구급으로 성장한 대형 교회 브랜드가 나왔고 세계 최대의 기독교계 이단 종교인 모 종교도 배출되었다. 그러는 동안 이북에서는 그 이름도 유명한 '주체 사상'.. juche라는 영어 단어를 전세계에 퍼뜨리는 데 성공했다! 이 단군의 후손들은 어째 종교 분야에 한 근성 하는 건 틀림없나 보다. 철도를 종교의 경지로 승화한 나도 그렇고. ㅋㅋㅋㅋㅋ

4.
사실, 내가 이 정도로 북한 문제나 통일 쪽에 관심이 생긴 것도 철도 덕분이다. 국토가 분단되면서 반토막이 난 길은 고속도로가 아니라 철도이기 때문이다. 먼저, 경의선 장단 역 근처에 수십 년이 넘게 버려져 있다가 2000년대에 와서야 등록 문화재로 지정된 녹슨 증기 기관차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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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때 폭격을 당하고 그 여파로 기관차가 탈선하는 바람에 저 지경이 된 거라는 걸 모르는 분은 없겠지. 표면 전체를 통틀어 무려 1천여 발에 가까운 총알을 맞았다고 한다. 그때 저 기관차를 운전했던 분은 신원이 알려졌으며, 201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경원선 신탄리 역 북쪽 끝자락에 놓여 있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 표지도 있다. 분단의 비극을 빼고 한국 철도를 논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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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현재 디젤 통근열차 CDC가 다니는 구간은 저 경의선과 경원선밖에 없다. 그런데 KTX 개통 전에 이들 통근열차의 등급 명칭은 잘 알다시피 '통일호'였다. 오늘날은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두 철도 노선에만 통일호의 후예가 다니고 있으니, 이 역시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요컨대 많은 사람들이 특히 어린 시절부터 철도 덕후가 되어서 애국심, 특히 국토 사랑 정신을 마음껏 고취하면 좋겠다. 나는 대학 졸업할 때가 다 돼서야 철도 끝물을 맛보게 된 게 한이다.
학창 시절 때 죽어도 공부하기 싫던 우리나라 현대사와 지리 공부에 요즘만치 물미가 트인 적이 없다. 내가 옛날에 철도 커리큘럼을 짠 적이 있었는데, 그때 북한 철도 내지 남북 분단 관련 철도사 얘기를 충분히 편성했던가 궁금하다. 부족하면 보강해야지.

... 이 나라의 온 국민이 철덕이 되어 철도님께서 그들 위에 자신의 영을 두시기를 원하노라! ... (민 11:29 패러디)

Posted by 사무엘

2012/05/02 08:22 2012/05/02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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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왕배덕배 2012/05/14 22:38 # M/D Reply Permalink

    ...............철도 태그가 성경과 기독교 태그보다도 많군요.............

    1. 사무엘 2012/05/15 09:31 # M/D Permalink

      그건 꽤 오래 전부터 그랬습니다. ㅋㅋㅋㅋ

      철도는 저의 생업과 관련된 기술이나 노하우가 아니고, 민감한 사상· 이념이나 종교관 같은 것도 아니며 순수하게 그저 좋아하는 덕질거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제일 부담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분야이거든요.
      철도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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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리+지하철 뻘글

1.

우리나라는 잘 알다시피 삼권분립과 민주주의 정치를 표방하는 나라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입법부를 상징하는 국회의사당은 여의도에, 행정부의 상징인 정부 종합 청사는 종로구의 광화문-경복궁 일대에, 그리고 사법부를 상징하는 검찰청· 대법원은 딱 강남 서초구에 있다.
정부 청사는 과천과 대전에도 있긴 하지만 어째 우리나라 정치를 구성하는 각 축이 서울 최고 도심과, 강남과 여의도라는 부도심에 하나씩 마치 터줏대감처럼 자리잡아 있는 게 굉장히 신기하다. 의도적인 배치인지?

우리나라야 땅도 좁고 교육· 문화· 정치· 경제 할 것 없이 닥치고 무조건 서울 올인이지만, 미국만 해도 잘 알다시피 행정 수도와 실질적인 경제 수도는 완전히 다르다. 행정 수도인 워싱턴 D.C.는 시내 전역에 고도 제한까지 걸려 있는 한가한 계획형 중소도시 규모인 반면, 뉴욕이...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규모이다.
오스트레일리아도 행정 수도인 캔버라와, 실질적인 경제 중심지인 시드니는 서로 따로 논다.

그래서 서울의 과포화를 막고자 우리나라에서도 행정 수도의 이전이 논의되곤 했다. 이는 심지어 옛날에 박통도 구상하던 떡밥이었다. 그 시절에 그에게는 국토 균형 발전 나부랭이보다도, 서울이 북한하고 너무 가까이 있는 것부터가 굉장한 골칫거리였기 때문이다. 그의 재임 시절에 무장공비가 북악산을 넘어 청와대에 쳐들어 올 뻔하기도 했으니 얼마나 충격이 컸겠는가?

그래서 그는 강북 사대문 안의 옛 서울보다도 최소한 한강은 건넌 뒤인 강남을 개발하고, 서울에 있던 각종 연구소들을 대전으로 옮겼다.
하지만 전쟁이라도 나서 서울 전체가 박살이 나지 않는 한, 한 나라의 최고 중심지에서 잘 살던 사람이 지방으로 쉽게 내려가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뭐, 박통은 균형 발전에도 관심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서울의 무분별한 팽창과 과포화를 막으려고 외곽 곳곳에 그린벨트를 만들었다. 그게 오늘날엔 대부분 해제되는 추세이지만 말이다.

2.

예전에 본인은 군부대와 인접해 있는 전철역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군부대 정도가 아니라 역 주변이 농경지 내지 허허벌판인 곳도 서울 시내에 있다. 분당선 모란-야탑이나 8호선 복정-산성처럼 역의 중간 구간이 허허벌판인 게 아니라 아예 역 주변이 비어 있는 것 말이다. 걔네들은 또 어차피 서울 밖이기도 하고.

강서구에는 역시나 5호선 마곡 역 주변과 아직 개통도 안 한 9호선 마곡나루 역 주변이 아주 유명한 예이다. 몇 년 안으로 이런 진풍경은 볼 수 없어질 것이고 여기도 빽빽한 빌딩으로 가득 들어설 터이니, 관심 있으신 분은 미리 여길 답사해서 사진 기록을 많이 남겨 두기 바란다.

한편, 남서쪽에는 7호선 천왕 역 주변이 대표적인 허허벌판이었다. 장암(7), 남태령(4), 청계산입구(신분당선)에 필적하는 잉여역이었으나 이것도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모습이 바뀌는 중이다. 명목상 서울이긴 하지만 여전히 광명시와도 아주 가까운 위치임.

허허벌판이 서쪽에만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아서 뜻밖의 장소에도 있다. 바로 동쪽 끝자락인 8호선 문정 역 주변. 지하철까지 지나는 멀쩡한 성남 대로 근처에 웬 큼직한 면적의 땅이 놀고 있어서 무척 놀라게 된다. 물론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는 때는 흔치 않다.

6호선의 주변에는 딱히 이런 허허벌판을 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주변이 명목상 허허벌판으로 가려져 있는 녹사평 역이 있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어째 2기 지하철의 주변에만 이런 허허벌판이 있는 것 같지만, 2호선 강남 구간도 처음 건설되던 시절에는 허허벌판이 많았고, 4호선 노원· 도봉구 구간도 그 당시에는 말도 못 할 정도로 주변이 황량했다.

3.
고려대와 경희대 사이에 홍릉 수목원과 카이스트 서울캠(현재는 경영 대학원만 서울에 남아 있음), 고등 과학원, KDI와 각종 연구소들이 들어서 있는 그쪽 일대는 서울에서 가장 대덕 연구 단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임이 틀림없다.
한때는 국가 정보 대학원도 여기에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이 덩치가 커지고 여기도 예전만치 오지 느낌이 안 나게 되자, 지금은 성남과 의왕의 경계인 모 산골짜기로 이사를 감. 시기를 보니 국정원이 남산에서 내곡동으로 이사 갈 때 같이 간 걸로 보인다.

4.
마곡 역은 어째 출입구가 하나뿐이고 도로(공항로)의 건너편에 출입구가 없다. 지하철이 도로 정중앙을 파면서 건설되지 않고, 이례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쳐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도로 옆도 허허벌판인데 거기를 파헤치면 되지, 굳이 멀쩡한 도로를 파헤쳐서 민폐 끼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터널식으로 지을 필요는 더욱 없으므로)

5.
전철 노선 중에, 양 역은 지하인데 그 사이에 지상 구간이 잠깐 나오는 예로 어떤 게 있을까? 의외로 흔치 않다. 한강을 건너는 지하철 노선을 생각해 봐도, 양 역 중 하나는 꼭 지상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8호선 복정-산성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고 3호선의 북쪽 일산선 구간은 자주 지상과 지하를 오르내리긴 하는데, 저런 경우가 또 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공항 철도 DMC-김포공항 구간이 추가되어 있다. 양 역은 모두 지하이지만 중간에 강도 건너고 지상 구간이 충분히 존재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2/04/30 08:35 2012/04/3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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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I+에 대하여

GDI+는 잘 알다시피 전통적인 윈도우 API가 제공하는 GDI에서 더 나아가, 더 향상된 그래픽과 더 깔끔해진 프로그래밍 패러다임을 제공하는 그래픽 API이다. 사실, 닷넷에서는 애초에 기본 그래픽 API가 GDI+이다. (System.Drawing 네임스페이스)

GDI+는 벌써 10년 전, 닷넷 프레임워크가 첫 등장하고 윈도우와 오피스에 XP라는 브랜드가 붙던 시절에 도입되었다. MS가 제공하는 API로는 흔치 않게 C언어 함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DirectX 같은 COM도 아닌, C++ 언어 형태로 되어 있다. 물론, 그래도 실제로 링크를 해 보면 symbol들은 다 C언어 함수 호출 형태로 된다. C++ 클래스는 단순히 C 함수를 호출하는 wrapper인 것이다.

GDI+는 여러 편리한 기능을 많이 제공하지만, 무엇보다도 벡터 그래픽에 안티앨리어싱을 넣기 위해서라도 쓰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간단한 기능은 그냥 기존 GDI 함수에다가도 옵션을 확장해서 좀 넣어 주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재래식 GDI로도 안티앨리어싱된 텍스트는 얼마든지 찍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LOGFONT 구조체에 글꼴의 품질을 지정하는 추상화 계층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 추가된 안티앨리어싱 기능도 얼마든지 지정 가능)

재래식 GDI는 열악하던 컴퓨터 환경에서 최대한 장치 독립적인 추상적인 그래픽 계층을 구현하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래스터 그래픽보다는 벡터 그래픽에, 애니메이션보다는 정적인 그래픽에 초점이 가 있었다. 그 추상화 계층이 확장성 측면에서 편리한 점은 분명 있었지만, 색깔을 하나 바꾸려고 해도 펜이나 브러시를 다시 만들고, 도스 시절의 그래픽 프로그래밍 때는 할 필요가 없었던 GDI 객체 관리를 해야 하니 상당히 불편했다.

그래서 GDI는 게임 그래픽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구석이 있었다. 물론, 지금과 같은 틀을 유지하면서도 JPG/PNG 이미지를 지원하고, 알파 채널 비트맵 Blit이나 별도의 gradient fill 함수를 추가하고, 윈도우 2000처럼 펜이나 브러시의 색깔을 손쉽게 바꿀 수 있는 DC pen/DC brush 같은 기능을 stock object로 넣는 등, 기능 개선이 꾸준히 진행돼 왔다. 하지만 MS 측에서는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 참에 API를 근본적으로 갈아엎고 싶다는 욕망을 느꼈던 모양이다.

GDI+는 모든 API가 자신만의 별도의 namespace 안에 선언되어 있으며, POINT 같은 간단한 자료형도 자신만의 것을 재정의하여 쓸 정도로 기존 윈도우 API와는 거리를 두고 만들어졌다. 그리고 C++답게 같은 함수도 다양한 overload 버전이 존재하며, 좌표는 정수뿐만이 아니라 실수로도 받기 때문에 편리하다.

사소한 것이다만, 글자를 찍을 때 null-terminated string에 대해서 글자 길이 지정을 생략해도 되는 것 역시 마음에 든다.
전통적으로 윈도우의 GDI 함수들은 글자를 찍는 함수들은 문자열 길이를 반드시 지정해 주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한 null-terminated string을 부분적으로 여러 줄에 걸쳐 찍어야 할 일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API 디자인이 수긍은 가지만, 어차피 한 줄밖에 찍을 일이 없는 문자열을 매번 _wcslen 해 주는 것도 귀찮지 않은가. 예전에는 gdi가 아니라 user 계층에 있는 DrawText 같은 고수준 함수나 문자열 길이 지정을 -1로 생략이 가능했던 반면, GDI+는 이 정책이 좀 더 확대되었다.

GDI+는 GDI에 비해서 state machine으로서의 의미가 크게 퇴색했다. 그래서 그리기에 필요한 모든 정보들을 함수 호출 때 매개변수로 일일이 전달해 줘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current position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MoveTo와 LineTo 따로가 아니며, SelectOjbect라는 개념도 없어져서 그리기 함수 때 매번 펜이나 브러시에 해당하는 개체를 따로 공급해 줘야 한다.

이런 디자인은 편리한 점도 있지만, 당장 화면에 뭔가를 찍는 드로잉 말고 벡터 path를 기록한다거나 메타파일 같은 걸 만들 때는, 내가 보기에 좀 불편하게 작용하는 점도 있는 것 같다. 가령, GDI에서는 똑같이 HDC이고 여기에다가 BeginPath를 해 주면 그때부터 path 그리기 모드로 GDI가 상태 관리를 하면서 동작한다. 그러던 것이 GDI+에서는 Graphics와 GraphicsPath라고 클래스가 아예 갈라졌다. 두 개체를 상태별로 분리한 건 분명 잘한 디자인이라는 거 인정한다.

하지만 Graphics 말고 GraphicsPath는 어차피 예전 위치에서 계속해서 이어서 그래픽을 기술하는 게 많은 만큼, 재래식 GDI처럼 current position이 있는 게 편리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API 체계에서는 직전 위치에 대한 정보를 응용 프로그램이 계속 공급해 줘야 한다.

또한, 복잡한 path를 화면에다 그릴 때, 예전 GDI는 지금 DC가 가지고 있는 펜과 브러시로 윤곽선을 그리고 내부를 채우는 것을 함수 호출 한 번으로 동시에 할 수 있었다. 그러나 GDI+는 선을 그리는 것과 내부를 채우는 것을 따로 해야 한다. path의 경계를 추출하여 래스터라이즈하는 것은 상당히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작업인데, 동일한 작업이 비효율적으로 중복 적용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즉, 본인은 GDI+에 대해서 참신한 기능은 분명 마음에 든다. 이 글에서 언급된 것 말고도 여러 고급 기능들이 있다. 윈도우 비스타 Aero와 연동하는 일부 드로잉 기능(가령, 클라이언트 영역에도 반투명 Aero 효과를 추가하고, 거기에다 글자를 찍는 것)은 오로지 GDI+로만 접근해야 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1) 그냥 재래식 GDI API에다가 옵션을 추가하는 형태로 구현했어도 충분해 보이는 것, (2) GDI+가 바꿔 놓은 API 디자인이 오히려 좀 불편하고 비효율적일 수도 있겠다 싶은 것에 대해 비판적인 안목을 갖고 있다. 속도가 재래식 GDI보다 꽤 느린 건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2/04/28 08:39 2012/04/28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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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yn 2012/04/28 13:19 # M/D Reply Permalink

    이젠 D2D의 시대... 근데... D2D로 만든 프로그램은 IE9/10밖에 없잖아... 안될거야 아마

  2. 주의사신 2012/04/28 15:33 # M/D Reply Permalink

    1. GDI+ 쓰면서 상당히 의아하게 여겼던 것이 둥근 모서리 사각형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Path 이용해서 하나 만들어서 썼던 기억이 나네요.

    2. DirectX 10 렌더링 된 것 위에다가 GDI+로 뭔가 그리고 싶어서 DirectX의 포인터 열어 가지고 GDI+ 내용을 적어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현업이었다면, 아마 GDI+ 쓰지 않고 디자이너가 만든 그래픽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3. 사무엘 2012/04/28 19:08 # M/D Reply Permalink

    Lyn: 그렇죠. 이제는 GDI+에 대해서도 대체 API가 나왔죠. 하지만 GDI+는 디자인 방식이 굉장히 특이하긴 했습니다.

    주의사신: 네, Graphics 클래스에는 DrawRectangle만 있지 GDI 같은 RoundRect에 해당하는 개념은 없습니다.
    저는 DirectX 9 이후로 딱히 게임 쪽 프로그래밍을 한 적이 없어서 그래픽 기술이 어떻게 돼 가나 궁금해질 때가 있네요. ^^

  4. Lyn 2012/04/28 22:11 # M/D Reply Permalink

    그래픽기술은 이제 100% 프로그래밍쉐이더의 세계로 이사갔죠

    기본파이프라인을 아예 제공하지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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