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봄 나들이

1. 남산

본인은 옛날에 서울 남산을 가장 먼저 북서쪽에서 도보로 올라 본 뒤, 다음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봤다. 이제 올해엔 반대편 남동쪽에서 버스를 타고 오름으로써 가능한 모든 접근 수단을 이용하게 됐다. 걷는 건 너무 힘들고, 케이블카는 대기 시간이 너무 길고 비싸니.. 가성비가 제일 나은 건 버스인 것 같다.

남산 안의 차도는 노선 버스, 관광 버스, 등록된 직원이나 기자, 공무 수행 차량만 이용 가능하지 일반인이 자가용을 끌고 들어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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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과 마찬가지로 남산도 자전거를 타고 오르는 사람이 많이 있다. 하지만 본인은 여건상 저기까지 자전거를 몰고 갈 일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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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서울시에서 전멸하다시피한 노란색 순환 버스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02, 03, 05라는 세 노선이 존재한다.
낙산의 정상까지 올라가는 건 종로구와 성북구의 마을 버스이다. 남한산성의 정상까지 올라가는 건 평범한 성남시 시내버스이다. 그 반면, 서울 남산의 정상까지 올라가는 건 전용 등급이나 마찬가지인 순환 버스이다.

참고로 순환 버스는 운행 구간이 짧지만 기본 요금이 여전히 1200원으로 타 버스와 동일하다. 요금도, 차량도 모두 대형 버스와 동급이지, 마을 버스 등급이 아니다.
남산 내부의 차도는 편도 1차선 일방통행으로만 돼 있기 때문에 올라갔던 길로 되돌아올 수도 없다. 그러므로 버스 노선들 역시 편도로만 짜여 있다.

이런 노란 버스 말고, 초록색 줄무늬 계열로 뭔가 독특하게 도색된 과거의 한국 화이바 제작 전기 버스도 정규 노선 순환 버스로 투입돼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짧은 항속 거리와 출력 부족, 고장 같은 여러 문제로 인해 이제 저것들도 내부는 다 내연 기관 기반으로 재개조된 듯하다. 산을 내려갈 때는 저런 버스를 타게 됐는데, 구동음이 전기 모터 소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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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는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관광객이 정말 많았다. 봄에는 학교나 유치원에서 소풍 나온 애들, 일부 가족과 커플, 그리고 외국인 관광객도 많았다. 여기가 확실히 서울의 명물이긴 하다. 지금 지리적으로 서울의 남산 역할을 하는 건 관악산이나 청계산이지, 이 남산은 서울의 딱 중심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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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남산의 다른 봉우리 꼭대기에는 군사 시설이 있다. 남산을 도보 등산로 대신 차도를 이용해서 오르내리면 군부대 진입로도 잠시 마주치게 된다.

남산의 기슭에 있던 옛 중앙정보부 청사가 없어졌을 뿐이지 남산 꼭대기에 군부대는 수도 방위를 위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이해하면 정확하다. 그런데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곳에서 남사스렇게 철조망을 치고 '군사시설 방향 촬영 금지' 이렇게 티를 낼 수도 없으니, 이 정도 노출쯤은 그냥 묵인해 주는 것일 뿐이다.

2. 배봉산

재작년에 갔던 배봉산을 그로부터 2년 뒤, 신록의 계절을 맞이하여 다시 올라가 봤다.
처음 갔을 때는 자전거를 세워 놨기 때문에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제약이 없이 남쪽에서 북쪽 편도로 산을 완전히 종단했으며, 휘경2동 주민 센터 방면으로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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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작고 낮고 아담하니 산 전체가 공원화돼 있었다.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와는 별개로, 둘레길이 통나무 바닥과 울타리 형태로 조성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배봉산에도 남쪽의 꼭대기에 군부대가 오랫동안 자리잡아 있었으며, 그게 없어진 진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한다. 배봉산이 정상까지 딱히 차도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의외다.
군부대가 있던 정상 자리에는 '해맞이 생태 공원'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그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배봉산은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상에 여전히 접근할 수 없고 봉인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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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와 둘레길이 이렇게 서로 마주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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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봉산은 낮고 길쭉하고 공원이 꾸며져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니 서울 동쪽 끝의 일자산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일자산은 배봉산보다 훨씬 더 길며, 등산로가 서울 둘레길의 일부이다. 배봉산은 그렇지 않다.
이런 곳에 종종 놀러 와서 잠도 이런 밖에서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더워지고 모기가 들끓기 전에 말이다.

3. 한글 비석 공원

본인은 작년 가을에 불암산 등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도로명 주소를 통해, 1500년대에 한글 문장을 써 넣은 무덤 비석이 여기 일대에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
그 뒤 최근에 본인은 공릉동 일대를 방문한 일이 생겼는데, 이때 덤으로 짬을 내어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한글 비석을 보러 갔다.

버스을 타면 서라벌 고등학교 근처에서 내리게 된다. 길 건너편에 먼저 '한글 비석 근린 공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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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은 넓으며 곁에 벤치도 여럿 있어서 앉아서 쉬기 좋았다.
의왕시에 있는 갈미 한글 공원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국어학자 이 희승 박사의 출생지라는 이유로 조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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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원 한켠에는 한글 비석을 정교하게 복제한 '레플리카'가 전시되어 있었다. 현장에 가면 다음과 같은 소개· 안내 문구가 있다.

비명(碑名): 한글 고비(古碑)

- 이곳에 세워 놓은 비석은 노원구 하계동 산12번지에 있는 한글 고비를 동일한 형태로 제작하여 1997년 6월 20일 "한글비 근린 공원"인 이 공원에 세우게 되었다.
- 한글 고비는 국내에서는 오직 조선 시대의 유일한 국문 고비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어 1974년 1월 1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었다.

- 영비(靈碑)라고 부르는 한글 고비는 1536년도에 세워진 것으로 조선 중종 때의 문인 이 문건이 승문원 종9품 부정자의 벼슬을 지낸 선친 이 윤탁과 어머니 고령 신 씨를 합장한 묘 앞에서 부모 묘의 훼손을 염려하여 세웠으며 한글 30자(비석 서측)는 15세기 고어의 모습을 보여 주는 국어학의 학술 자료로서 훈민정음 창제 초기의 국문 서예에 대한 연구 자료로 매우 중요한 것이기에 교육적인 측면에서 진품과 유사한 본 비석을 만들어 세우게 된 것이다.

1997. 6. 20. 노원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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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는 서라벌 고등학교는 으리으리한 성처럼 꾸며진 사립 학교였다. 고려대 모 건물처럼 생겼다는 생각이 든다면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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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은 한글 비석은 "공원 → 서라벌 고등학교 → 큰길" 쪽으로 나가서 길 건너 2~300m쯤 가야 나온다. 인근 도로의 확장 공사 때문에 원래 있던 자리에서 15m 남짓 옆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 길엔 노선 버스는 전혀 안 다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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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각종 조선 왕릉 옆에 있는 그 건물 같고, 사람 모양의 석상은 초안산에서 본 석상 같다. 고인의 무덤은 카메라 시점에서 오른쪽에 있으며, 문제의 한글 비석 원판은 저 건물의 안에 잘 보관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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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말이야 아주 신령한 비석이다. 그러니 이걸 무너뜨리는(훼손하는) 자는 화를 입을 것이다. 다른 문구는 다 한문으로 썼지만 이 경고문만은 한문을 모르는 사람도 읽고 주의하라고 특별히 한글로 써 두는 바이다."


훈민정음 서문도 그렇고 이 문구도 그렇고.. 중세 한국어는 한편으로는 음운 구조가 더 복잡하지만 한편으로는 현대어보다 생략을 많이 하고 표현이 간결· 함축적이기도 했던 것 같다. 또한 '-느니라', '-노라'처럼 요즘은 성경 같은 책에서나 볼 수 있는 고어체를 그 시절에는 입말로도 직접 사용했을까? 킹 제임스 성경의 영어 고어에서도 여러 모로 비슷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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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끝으로...
한글 비석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굉장히 참신한 한글 파괴 현장을 목격했다..;; (정확히는 한글 맞춤법 파괴)
평생 듣도 보도 못했던 용언이 하나 새로 생겼다. ㅠ.ㅠ
노이즈 마케팅을 의도하고 현수막을 일부러 저렇게 만든 건지는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8/05/29 08:35 2018/05/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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