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어휘 메모

1. 곁의 두 숫자를 한데 싸잡아 지칭하기

예전에 몇 번 언급했던 바와 같이, 한국어는 영어 대비 참 기괴한 면모가 많은 언어이다.

  • 청자를 포함하지 않으면서 화자를 낮추는 1인칭 복수 대명사 ‘저희’
  • 청자를 의식하지 않는 독백투 “어 그게 뭐더라?” 따위
  • 부정 의미의 한 단어 타동사 “모르다”.. 내가 아는 외국어 중엔 이게 존재하는 언어는 없다. 전~부 “do not know”.. ‘알다’에다가 not 연산자를 씌울 뿐이지. 한국어에서 “싸다 / 비싸다”와 비슷하게 말이다.

그리고 한두, 두셋, 서너, 너댓, 대여섯, 예닐곱처럼 주변의 숫자 둘 정도를 싸잡아서 일컫는 므흣한 단어가 존재하는 것도 독특하다.
영어에서 아주 적절한 사례를 개인적으로 꼽자면.. 디즈니 포카혼타스에서 초반부 뮤지컬 ‘Virginia Company’ 노래의 reprise 부분에 나오는 요 대사가 아닐까 한다.

We'll kill ourselves an Injun--or maybe two or three
우린 인뎐도 해치울 거야~ 하나? 아니면 두세 놈 정도?


이건 “신대륙을 개척하다가 미개한 야만인과 맞닥뜨리면? 야만인쯤이야 걍 없애 버리면 그만이지~ 숫자가 많지도 않을 거야” 정도의 뉘앙스이다.
자막이나 더빙은 저런 뉘앙스를 짧은 음표와 화면에 도저히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아주 아주 뭉뚱그려진 의역만 나갔다.

  • 저 영어 문장은 kill Indians라고만 하지 않고 간접목적어 ourselves를 집어넣은 4형식 문장이다.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처럼..;; (저 성경 구절은 뭐 5형식 중의적 해석까지 가능..)
  • Indian을 Injun이라고 줄여 놓은 걸 보면.. 구개음화는 꼭 한국어에만 존재하는 음운 변화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긴, don’t you / could you 따위의 발음이 ‘츄 / 쥬’로 바뀌는 것도 같은 예이다.
  • 뒷부분에 mine, mine, mine 노래에서는 제임스 폐하를 Jimmy라고 가리키는 것도 나오는데.. 우리나라는 아시다시피 애칭이라는 개념이 없는 문화권이다. (Bill이랑 William이 어떻게 같은 이름인가!) ‘지미’가 아니라 ‘젬쑤 왕’ 정도로 줄이는 게 더 직관적일 것 같다.

2. 동물 관련 순우리말

(1) 흘레
동물의 교미(mating)를 나타내는 명사이며 '흘레하다'라는 형태로 동사도 될 수 있다.
이 단어는 국어사전에도 엄연히 올라 있긴 하지만.. 현실의 인지도는 가히 듣보잡 사어 수준이다. 텔레비전 순우리말 퀴즈 같은 데서나 나올 것 같다. 저 말소리가 어딜 봐서 그런 동작을 연상시킬 수 있을까..??

매기: 수퇘지와 암소가 흘레하여 낳는다는 짐승. (표준 국어 대사전)


그래서 '짝짓기'라는 말이 대신 쓰이게 됐는데.. 이걸 처음으로 퍼뜨린 곳은 다름아닌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 TV 프로였다고 한다.

(2) 무녀리
한자어 무녀(巫女/舞女) 따위와는 전혀 관계 없고, 그냥 '문열이'를 대충 풀어서 적은 것이다. 한 배에서 태어난 여러 포유류 새끼들 중에서 엄마 태라는 문을 제일 먼저 열고 나온 놈을 '무녀리'라고 한댄다.
그런데 이런 무녀리는 확률적으로 다른 새끼들에 비해 덩치 작고 약하고 젖 쟁탈 경쟁에서도 밀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얘는 사람으로 치면 열 달을 덜 채우고 좀 모자란 채 태어난 '팔불출'과 비슷한 뉘앙스의 단어가 됐다.

이 단어를 '문열이'라고 형태를 밝혀 표기하지 않는 이유는.. '문닫이'라는 단어가 있는 게 아니니 생산성이 없고, 의미도 gate/door opener라는 원래 뜻과는 상관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지키미'를 '지킴이'로 적는 것보다도 명분이 더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열쭝이'라는 말도 있다.
이 역시 "1.겨우 날기 시작한 새 새끼 2.겁이 많고 나약한 사람"이라는 뜻.

3. 돼지에게서 유래된 한자어

돼지를 가리키는 가장 일반적인 한자어는 돈(豚)이긴 한데.. 다른 한자도 있다. 마치 개를 가리키는 견(犬)과 구(狗)의 관계와 비슷해 보인다.

  • 저돌적: 앞뒤를 헤아리지 않고 돌진하는. '저'가 저팔계, 제육 할 때의 猪(돼지 저)이다. 멧돼지가 원래 저렇게 저돌적으로 돌진을 잘 하나 보다. '전투적으로, 의욕적으로' 대신 '저돌적'을 즐겨 사용해야겠다. ^^;;
  • 해안면: 강원도 양구에 원래 뱀이 그렇게 많이 들끓었나 보다. 그런데 돼지를 잔뜩 데려와서 키우니 돼지가 뱀들을 내쫓거나 잡아먹어서 없애 줬다고 한다. 그래서 지명의 '해'가 亥(돼지 해)이다.

4. 도전

현재까지는 '도전'이라는 말이 챌린지의 뜻으로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지만, 앞으로 미래엔 전기 절도(盜電)라는 쓰임도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도청, 도촬처럼 말이다. 챌린지와 어감상 구분하기 위해서 '도'는 좀 장음이 될 것이다.

세계 각국이 앞으로 2, 30년 안으로 내연기관 자동차를 주류에서 퇴출시키려 하고 있다. 그 자리를 전기차가 차지할 것이고 충전 시설이 곳곳에 들어설 것이다.
충전 시설을 이용하려는 운전자 사이에 자잘한 마찰이나 분쟁이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꼭 자동차가 아니라 폰 충전기를 공공장소 콘센트에다 몰래 쓰윽 꽂는 것도 지금보다 더 강하고 적극적으로 금지되는 분위기가 형성되리라 여겨진다.

아직까지는 우리나라가 이런 것에 관대한 편이다. 하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 자리값에 이미 그런 가격이 포함돼 있는 카페 같은 곳이 아닌 이상,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콘센트를 사용하는 것도 반드시 꼬박꼬박 돈을 내야 한다.
이런 시국이 예상되는데 앞으로 즐겨 쓰이게 될 단어는 아무래도 '도전'의 새로운 동음이의어 한자어일 수밖에 없다. 지금도 사전에 올라 있기는 하지만 잘 쓰이지 않을 뿐.. 하지만 언론에서 매번 번거롭게 '전기 절도'라고 풀어서 쓰지 않는 한, '도전'의 쓰임이 재조명을 받게 될 것이다.

5. 군대, 경찰, 소방..??

공무원 중에서 사회의 치안과 안녕을 직접적으로 담당하는 직업, 대놓고 순직할 가능성이 높은 직업, 오늘날까지도 계급장 달린 제복이 남아 있는 직업을 꼽자면 군인, 경찰, 소방관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각각 외적과 싸우고 자국 범죄자와 싸우고, 화마와 싸운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 거기에다 자연재해나 유해조수와 싸우는 건 일단 소방관에서 시작하는데, 감당이 안 되면 경찰, 군인의 순으로 공조도 하게 된다.

군인, 경찰관, 소방관이 들어가 있는 조직을 건물 관점에서 가리키는 명칭은 각각 군부대, 경찰서, 소방서 정도에 대응한다.
그런데 집단 전체의 총체적인 명칭은 무엇일까? 군인이 있는 곳이야 군대 내지 그냥 군이라고 간단하게 부를 수 있을 것이고, 경찰도 단독으로 직업이나 집단, 심지어 사람까지도 두루 간편하게 가리킬 수 있다. 꼭 경찰'관'이나 순경이라고 안 해도 된다.

하지만 '소방'은 그렇지 않다! 이 단어는 그냥 '화재를 진압하거나 예방함', firefighting이라는 동작만 나타낼 뿐, 그 일을 수행하는 관청 조직이라는 뜻이 없다. 그래서 신문 기사를 쓸 때 난감하다.
"신고를 받은 경찰과 소방(???)에서는 멧돼지의 포획에 나섰다" 이런 식으로 간편하게 워딩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소방 당국' 정도는 돼야 관청 조직이라는 뜻이 들어가니 번거롭다.

"경찰을 부르겠다!", "경찰에 신고하겠다", "군대를 동원해서 진압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 군대 대신에 소방 당국을 집어넣으려면 어떡해야 할까?
그러니 신고 전화번호인 119 '일일구'가 소방 당국을 가리키는 편의상의 총칭으로 통용되고 있는 거다. 신기하지 않은가? 경찰에 신고하려고 할 때 "112 불러라, 112에 신고해라" 이렇게는 잘 말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 보자~!

게다가 119는 화재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의료 응급 상황까지 다 처리하지 않는가? 애초에 '소방'이라는 말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수백 년 뒤, 먼 미래에 우리의 후손은 필요에 따라서 '이릴구' 이런 말을 표준어로 받아들여서 "화재와 응급 환자,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정부 조직"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 언론에서 "경찰과 이릴구가 출동.." 운운하면서 말이다. 그건 중립적인 2인칭 대명사 '너님/유님'만큼이나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6. 방송

라디오나 텔레비전 따위가 없던 시절, 우리말에서 '방송'이라는 단어는 원래 '내놓아 보냄', 석방과 거의 같은 뜻이었다고 한다.
영어로 치면 release와 비슷한데.. 영어에서는 죄수만 release하는 게 아니라, 제품을 출시하는 것도 release라고 한다. 한국어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의미 확장이다.

한편으로 현재 영어에서 방송을 뜻하는 broadcast는 원래 씨앗을 널리 흩뿌린다는 뜻인 농사 용어였다.;;
이런 걸 생각하면 언어의 의미 변화라는 게 참 신통방통하게 느껴진다. 우리말에서 '생도'도 꼭 사관학교 재학생에 국한되지 않은 제자, 학생이라는 더 넓은 뜻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7. 나머지

(1) '백엽상'은 백이 white 白이 아니었구나..!! 충격이다. =_=;; 당연히 화이트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다른 어원에서 유래됐기 때문에 100 百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학교마다 운동장 한켠에 있었던 물건이지만 요즘은 거의 찾을 수 없어지고 있다..

(2) 우리말에 "if and only if"(역도 성립하는 필요충분조건)라든가 "and/or"(둘 다인지 하나만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분명히 나타내는 조사, 부사, 어미 따위가 좀 있었으면 좋겠다.

(3) '괴멸/궤멸'은 분간이 거의 안 되는 발음에 뜻은 거의 같은 단어쌍인 것 같다. '저지/제지', '환난/환란'처럼 말이다.
우리말에 이런 예가 더 있지 싶은데 당장은 기억이 안 난다.

(4) 우리말은 '낳다'와 그 반의어 '태어나다'가 모두 능동인 반면, 영어는 be born이 수동 형태이다. '출산되었다/출산 당했다' 이렇게 워딩을 하지 않는다는 게 인상적이다.
영어는 '결혼하고 결혼 당하다'(marry and be married to)라고 말하지만, 한국어는 이 역시 '장가 가다, 시집 가다'라고 모두 능동이라는 차이가 있다.

(5) 금융과 관련된 '외상, 어음'이 한자어가 전혀 아니고 순우리말이라니 굉장히 의외이다.
기왕이면 더치페이, 1/n을 뜻하는 '각추렴'도 대중적으로 더 널리 쓰였으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2/07/02 08:35 2022/07/0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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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셀레인 2022/07/02 16:53 # M/D Reply Permalink

    1. 저돌적이 돼지에서 유래된 단어인줄 처음 알았습니다.
    2. 군대, 경찰, 소방 중에 소방이란 단어에만 해당 조직이 없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3. 백엽상도 하얀색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일백 백이군요.. 백엽상 하니까 생각난 것인데 섭씨 온도란 말은 Celsius 씨를 음차한 것이고, 화씨 온도란 말은 Fahrenheit 씨를 음차한 것이라고 물리학 수업 때 배웠던 것이 기억납니다.

    1. 사무엘 2022/07/03 00:02 # M/D Permalink

      그래서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어휘들의 어원을 찾아보면 기괴하고 신기한 예를 생각보다 많이 금방 찾을 수 있는 것 갈습니다.. ^^
      섭씨 화씨는 동양에서 외국 인명을 음차한 것이지만,
      Confucius, Mencius는 반대로 서양에서 중국 인명인 공자· 맹자를 음차한 표기이지요.. ^^ 이 관계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2. 신세카이 2022/07/15 20:24 # M/D Reply Permalink

    안녕하세요

    언어라는 게 그 사용자들의 사고의 프레임이 담겨있는데

    숫자를 한두개 두세개 세네개 이런 표현이 있는 거 자체가
    이게 동양적인 사고 방식이 담긴 거 같아요
    동양은 더불어 사는 걸 중요시 하고 서양은 홀로 서는 걸 중요시하고
    동양은 전체와 상황에 따른 조화를 중요시하고
    서양은 부분과 본성을 중요시하고

    동양은 어떤 여러 맥락을 중요시하기에
    숫자를 어림잡아 표현하는 게 있는 것 같네요


    한국어에서 2인칭 대명사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것과
    상대의 이름을 그대로 부는 게 무례한 행동이 되는 것이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기보다는
    관계를 통해서 어떤 호칭을 부여하여 쓰는 것들
    예를 들면 "누구 엄마"라고 말하거나 친인척들간에 호칭이 복잡한 거
    상대를 상대와 나의 관계를 통해서 인식하기 때문인 것과
    조선 시대 성리학 이념이 왕과 노예가 있던 신분제 사회에서
    인간을 평등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
    언어에 높임법이 불필요하게 복잡하게 발달하게 된 이유가 된 것 같네요

    명절에 친척들 모여서 쓸레없이 호칭이 복잡하니
    그냥 이름 뒤에 씨를 붙여서 말하면 훨씬 좋지 않나
    이렇게 생각했던 게 저는 강산이 몇번 변하기 전에도 아주 옛날에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제가 좀 돌연변이인지...
    이런 말이 요즘에는 많이 나오드라고요

    예전에 내부자들이라는 영화에서
    조승우가 검사였고 이병헌이 한쪽 손목이 짤린 깡패로 나왔었는데
    처음에 조승우가 이병헌을 깡패라고 하대하다가
    같이 지내보니까 생각보다 똑똑하고 나름 대우할만 하다고 판단했는지
    말을 하다가 말 끝에 "요"자를 붙이니까
    이병헌이 말끝에다가 "요"자 붙였다고 좋아했었던 게 있었는데
    이걸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이해하겠지만
    만약에 이 영화를 영어로 번역해서 미국인이 자막으로 본다고 하면
    그 느낌을 미국인은 이해하지 못할 거 같네요 ㅎㅎㅎ

    사실 언어라는 게 그 존재 목적이 참된 본질이
    정보의 교류 즉 의사소통과 정보의 저장인데
    높임법이 쓸데없이 너무 복잡한 것은
    언어의 본질로서 조금 효율성이 떨어지는 거 같네요

    만인을 평등한 존재로 보지 않는 성리학 이념 유교 문화는
    만인평등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에 맞지 않고
    한국에서는 그게 언어로 직접적으로 표현이 되니

    한국어에는 이런 개선점이 있긴 한데
    언어라는 게 누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더 좋은 쪽으로 달라지겠죠
    200년 300년 뒤에 한반도 땅에 사는 사람들이 쓰는 한국어가
    지금 우리가 쓰는 한국어와 많이 다를 수도 있겠죠 ㅎㅎㅎㅎ

    문자 생활에서
    한글 맞춤법이 제가 보기에는 문제가 좀 있어요
    그냥 소리나는 대로만 적으면 글을 읽을 때 불편할 수 있는데
    형태소를 밝혀서 적는 것은 좋지만
    맞춤법 원칙 중에 조사는 붙여쓰고 의존명사는 띄어쓴다
    그런데 똑같은 단어가 상황에 따라서 조사가 되기도 하고 의존명사가 되기도 해서
    그걸 누가 하나하나 다 구별할까요?
    원칙 자체도 지키기가 어렵고
    또 다른 문제는
    예외 규정이 너무 많아서 거의 무한대 수준이라
    제가 보기에는 한글 맞춤법을 완벽하게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는 거 같네요 제 성격이 원리원칙 따지는 거 좋아해서 맞춤법을 잘 지킬려고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게 별 의미가 없는 거 같드라고요
    -로서(자격, 예를 들면 선생님으로서)
    -로써(수단 방법)
    이런 걸 꼭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그냥 하나도 통일하고 문맥에 따라서 알아서 이해하면 될 텐데
    띄어쓰기도 규칙을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그냥 어절 단위로 붙여쓰는 게 더 좋지 않은지....
    이게 완전히 음소문자인 로마자와 비교해서
    한글은 음소문자이면서도 모아쓰기 자체에 음절 단위로 일부분 띄어쓰기 효과가 있거든요

    모두가 지킬 수 없는 모두가 지키기 어려운 규칙이 있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그 규칙을 지키라고 강요할 게 아니라
    그 규칙이 수정되어야 맞다고 봐요

    한글이 우수하긴 한데
    세종대왕이 없었어도 한자를 쓰지만 않는다면
    로마자를 변형해서 쓰는 식으로 해도
    문자 생활이 크게 불편하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한자를 쓰면 안 되는 이유가
    언어 문자의 본질에서 벗어나서
    표의문자는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글자를 3000자 이상을 외워야 하기에
    이걸 익히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서
    이건 디지털 시대가 아니여도 종이에 펜을 쓰는 시대여도 비효율적이고
    요즘 컴퓨터와 스마트폰 시대에는 글자를 입력하기가
    너무 비효율적이고 복잡하죠

    루쉰이 한자가 없어지지 않으면 중국이 망한다고 말했었죠
    중국의 13억? 인구가 한자를 버리고 로마자를 변형해서 사용하면
    그 중국 사람들이 쓸데없이 허비되는 천문학적인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생산적인 것에 사용할 수 있을 텐데 ㅎㅎㅎㅎ

    1. 사무엘 2022/07/16 11:45 # M/D Permalink

      저도 말씀하신 내용에 대부분 매우 공감합니다. ㅎㅎ
      익숙해졌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쓸 뿐이지 같은 내용을 전달해도 한국어가 영어보다 CPU 부담과 계산량이 더 많고(높임법과 호칭..) 음절수는 더 많이 필요하고,
      그러면서 정작 생략되고 문맥에 의존하는 면모는 더 많고.. 좀 비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그나마 한국어에 비해서 한글은 굉장히 깔끔한 문자이지만..
      정작 주된 베이스 언어인 한국어가 한자라는 그림문자에 많이 종속돼 버려서.. 온전한 한글 전용이 현실적으로 힘들어져 있죠. 거의 다 걷어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괄호 한자 병기가 여전히 필요합니다.

      그리고 모아쓰기 덕분에 적당히 붙여써도 잘 알아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긴 한데.. 그게 역설적으로 띄어쓰기를 어중간하게 만든 면모도 있어요.
      알파벳 같은 문자로 음소 단위로 다 풀어 썼으면.. 아예 체언과 조사까지.. 어영부영 애매하다 싶은 것까지 몽땅 다 띄어쓰면 됩니다. 사이소리는 어퍼스트로피나 하이픈으로 처리해도 됩니다.

      길게 합성된 복합명사 한자어를 띄어쓸 것이냐,
      짤막한 1음절짜리 한자어를 의존명사, 접사, 관형사 중 뭘로 볼 것이냐.. 이것 경계가 헷갈리는 것도 띄어쓰기를 어렵게 하는 요인입니다. 답이 없지요..

      그러니 한국어에서의 띄어쓰기는 반드시 띄어쓰는 것, 아니면 대충 허용하는 것 1루부터 2루나 3루 정도 분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글은 편리하고 고마운 문자이며, 한자는 너무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문자란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요즘 젊은 중국인들은 폰 없이 백지와 펜만으로 글자 마음대로 쓰는 거 가능이나 할지 모르겠네요.. 쓰는 건 읽는 것과는 완전 별개의 영역일 텐데.. =_=;;

      * 정작 세상에서 제일 높은 킹왕짱인 하나님을 언급하는 성경조차 한국어 같은 높임법 따위 존재하지 않는 영어 히브리어 그리스어 등으로 기록됐다는 것도 생각할 점입니다.
      더구나 한자 따위 그림 말장난 없이, 표음문자만으로 다 잘만 표기됐지요.

  3. 신세카이 2022/07/16 15:34 # M/D Reply Permalink

    정보의 저장과 교류라는
    언어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비교해 보자면

    군대에서 "상시전투준비태세"라는 말이 있어요
    언제든 적과 싸워서 이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죠
    단어 그대로요
    그런데 이거 영어로 fight tonight 이거든요
    오늘 밤 싸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한국어가 모국어인 제가 느끼기에도
    상시전투준비태세라는 말보다 fight tonight이 더 의미가 쉽게 잘 전달되는 거 같거든요

    제가 누구와 대화 중에
    "인생이라는 게 새옹지마 아니겠나요?" 이랬는데
    이걸 상대가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를 못 알아듣던데
    의사소통에서 상대가 못 알아들을 단어를 선택한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건지
    아니면 그 고사성어도 못 알아먹은 상대한테 문제가 있는 건지.....
    이런 정도가 젊은 세대일수록 심하다 느끼는데
    이런 문제가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가
    한국어가 표의문자인 한자를 너무 오래 쓰다보니 그게 녹아들어서
    언어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청각적 분별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이거든요

    저는 청각적 분별력에 문제만 없다면
    꼭 순우리말을 고집할 필요도 없고 세계화 시대인데 영어든 머든
    우리말에 없는 단어 개념이 있다면 그걸 꼭 우리말로 바꿀 필요없이
    그대로 쓰는 게 좋다고 봐요
    네티즌이나 누리꾼이나..... 꼭 누리꾼이라는 단어를 만들 필요가 있는지....?
    언어라는 게 소리를 통해서 그 의미가 정확히 전달된다면
    그 자체로 본질에 충실한 것이고
    그걸로 충분한 거겠죠

    1. 사무엘 2022/07/16 19:53 # M/D Permalink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십니다. 무분별한 한자의 남발 때문에 언어의 청각성이 열화됐지요.

      “한글로만 써서 뜻이 잘 통하지 않는 단어”가 아니라, “말로 소리냈을 때 뜻이 잘 통하지 않는 단어”라는 관점에서 접근을 해야죠.
      이 문제는 그 말을 더 분명한 다른 어휘로 바꾸거나 순화하거나 차라리 다른 외래어로 대체하든가 해서 해결해야 할 겁니다.

      일본어는 훈독과 음독 체계를 모두 운용해서 청각성 문제를 개선하려 했지만, 이 역시 장단점이 모두 있습니다. 한자를 읽는 방식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졌으니까요.;;

  4. 신세카이 2022/08/14 01:13 # M/D Reply Permalink

    한국어에 대해서

    1. 높임법과 호칭이 불필요하게 복잡하다
    2. 어휘 자체에 표의문자인 한자가 녹아들어 청각적 분별력이 약화되었다
    3. 문자 사용에서 한글 그 자체는 효율적이고 좋지만 한글을 사용하는 규칙인 맞춤법이 불필요하게 너무 복잡하여 간소화 할 필요가 있다

    이거 말고 조금 더 얘기를 하자면

    문장을 만들 때
    단어 뒤에 어떤 조사를 붙이느냐로(은는이가, 를,에게, 이다 등)
    문장 구성 성분을 결정하므로
    영어의 경우는 주어 동사 목적어 등 순서가 고정되는 경우가 많으나
    한국어는 문장에서 구성 성분의 위치를 바꾸기가 상대적으로 쉽죠
    그리고 상대가 알 거라고 예상하는 것은 생략하기도 쉽기 때문에
    2인칭 대명사 "너"라는 말을 무례하다는 이유로 잘 쓰지 못하지만
    생략하는 식으로 하고

    이런 이유로 문맥과 눈치에 의존하는 비중이 영어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더 큰 거 같아요

    말하는 쪽에서는 듣는 쪽이 이미 알 거라고 예상하고 어떤 성분을 생략했는데 그 예상과 다르게 듣는 쪽에서 모르는 상황이면
    한 번 더 되묻게 되죠
    그러니까 영어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변수가 더 많다는 거죠
    변수가 많으면 그 변수로 인해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비해서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언어 구사력이나 지적 수준이 말과 글에 더 많이 드러나는 거 같은 느낌이 드네요
    듣는 경우는 말을 알아듣는 능력에 눈치가 요구되는 비중이 조금 더 큰 거 같고


    예전에 리갈하이라는 일본드라마에서
    주인공 코미카드가 어떤 다른 변호사의 문서를 읽고
    일본이든 한국이든 미국이든 변호사가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일본에서는 한자 같이 쓰기 때문에
    한자의 획이 잘못된 것을 보고
    아 이 사람은 변호사나 되면서 한자를 제대로 못 쓴다면
    아마도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일 것이다 이렇게 예상을 하고
    그 상황에서 그 문서를 쓸 사람이 누구이며 외국에서 오래 살다온 사람이 누구일까 추리하다 맨날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는 그런 말을 자주하는 사람이 사우디에서 오래 살았던 그 변호사가 범인이었다는 걸 알게 되죠

    한글 맞춤법을 100프로 완벽하게 지키는 사람은 없지만
    머 예외 규정도 거의 무한대고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그런데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너무 쉬운 맞춤법을 틀려버리면
    조금 무식해 보이는 효과가 있는 거 같고
    영어는 그냥 단어 하나하나 스팰링만 제대로 외우면 되잖아요? 띄어쓰기도 별로 고민할 게 없잖아요?
    변수가 많으니까 문체나 습관 등이 그 사람의 성향이
    말과 글에 더 잘 드러나는 거 같네요

    또 다른 것은
    문화적인 요소인데
    동양 문화권이 고맥락 사회에요
    의사소통을 할 때 직설적으로 말하기 보다는 살짝 돌려서 말하는 경우가 많고 그 정도가 일본이 가장 심하죠
    눈치가 중요하죠
    일본에서 이웃이 "딸이 피아노를 참 잘 치네요"이렇게 말하면
    표정을 잘 살펴야 한다고 해요
    그게 피아노를 진짜 잘 연주한다는 칭찬이 아니라
    피아노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스트레스 받는다는 말을 돌려서 말한 거라고

    어디서 봤는데 어떤 러시아 사람이 한국에 유학을 와서
    자기는 나름 한국어를 잘하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했는데
    배송이 안 되서 전화를 하니까 거기 직원이
    "지금 이런저런 상황으로 어려울 거 같다" 이렇게 말하니까
    러시아 사람은 아 어려우니까 더 열심히 노력해서 빨리 보내드릴게요
    이렇게 이해를 했다는 거에요 ㅎㅎㅎㅎ
    불가능하다는 말이잖아요?

    고맥락 사회여서 돌려말하는 것은 별로 단점까지는 아닌 거 같고
    저도 한국 사람이니까 그 정도는 다 알아들으니까요

    한국어에 대해서 단점 개선점을 얘기했는데
    그런데 이게 우리가 모두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기 때문에
    그 단점이 잘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만약에 제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했다면
    영어의 단점이 많이 보였을 수도 있죠
    간단한 예로
    영어에서는 의성어 의태어 같은 게 많이 부족하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만약에 제가 태어나기 전에 어떤 언어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단순히 언어의 효율성 간결함 이런 이유가 아니라
    영어가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영어를 쓰는 국가가 많고 제3국가의 사람들도 미국이나 영국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제3국가의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영어를 쓰기에
    그 이유로 인해서 한국어보다는 영어를 선택했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런데 머 저의 선택 범위 밖이니까요
    인공지능으로 자동 번역기가 얼머나 더 발전할려나 모르겠네요
    그러면 통역사들 다 굶어죽을려나? ㅎㅎㅎ

    1. 사무엘 2022/08/15 10:54 # M/D Permalink

      한국어의 특성, 그리고 '문맥과 눈치에 의존하는 비중이 더 크다' 맞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던가요, 저는 한국어를 구사할 때 필요한 CPU 계산량과 거기에 걸리는 부하가 영어를 구사할 때보다 더 많고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는 듯한 장점이 있지요. 한국어는 기계번역이 접근할 엄두를 못 내다 보니.. 기계가 어설프게 사람처럼 사칭할 엄두를 못 냅니다. SNS의 각종 불량 광고 계정들 말이죠..;;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합니다.
      hwp가 듣보잡이어서 랜섬웨어가 침투하지 않는 것처럼 보안은 좀 유리한 구석이 있네요~ ㅎㅎ

      한글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캐 구린 이유는
      일단 모아쓰기 특성상 적당히 안 띄고 붙여도 어지간해서는 말이 되고, 그렇다고 몽땅 다 띄거나 몽땅 다 붙이는 것 어느 것에도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 복잡한 품사통용어들도 난이도를 더 높이구요. 그러니 반드시 필요한 띄어쓰기, 재량껏 옵셔널한 띄어쓰기 이렇게 계층을 나누긴 해야 할 듯합니다.

      영어도 다 만능은 아니어서 성별 구분 없는 사람 단수 3인칭, 2인칭 복수형.. 이런 기본적인 게 없어서 답답하게 느껴질 때는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어의 답답함에 비할 바는 아닌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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