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국토 분단과 관련된 몇 가지 용어에 대해 살펴보자.

1. 우선, 38선과 오늘날의 휴전선은 다르다.
38선은 일제의 패망 이후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나눠서 지배하기 위해, 지형을 고려하지 않고 지리적인 위도 38도를 기준으로 땅을 수평 분할한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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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면 오늘날 남한과 북한 사이의 실질적인 국경 역할을 하고 있는 휴전선은 6· 25가 휴전/정전으로 끝나면서 나중에 생겼다. 꼬불꼬불한 곡선 형태로 38선 시절에 비해 서울이 북한과 더욱 가까워진 반면, 강원도 쪽 영토는 남한이 훨씬 더 많이 수복하여 속초와 고성이 남한 땅이 되었다.

휴전선은 일명 군사 분계선(MDL)이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미터법이 대세인 우리나라에서 그 길이가 유독 마일이라는 단위로 일컬어지는 흔치 않은 존재이다. (155마일)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2. 흔히 휴전선 하면 이런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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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전방 GOP라 불리는 곳에서 근무하는 국군 병사들이 곁에 바싹 붙어서 순찰하고 정비하는 그 철조망은.. 한반도를 딱 반으로 가르는 그 '휴전선'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민족 대표 33인이 서울에서 벌인 3· 1 만세 운동과, 그 후에 유 관순이 음력 3월 1일에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벌인 만세 운동만큼이나 서로 혼동하기 쉬운 개념이다.

국군 병사들이 지키는 철조망은 휴전선 이남의 '남방 한계선'을 나타내는 철조망이다. 물론 북한 쪽에는 '북방 한계선'이 있다. 이것은 실제 휴전선과는 명목상 2km정도 떨어져 있으나, 그게 칼같이 지켜지는 건 아니어서 2km보다 더 가까이 있는 경우가 많다.

어쨌든 남과 북의 군인이 동일한 단일 철조망을 공유하면서 진짜 코앞에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게 하기에는 피차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각자 자기 진영의 철조망을 갖고서 서로 거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휴전선을 포함하여 남북 양쪽의 한계선 사이의 공간이 바로 천연 자연의 보고라고 불리는 그 이름도 유명한 비무장지대(DMZ)이다. 금강초롱과 끈끈이주걱까지 서식한다고 하나, 거기는 지뢰도 엄청 많이 묻혀 있는 위험한 지대이다. -_-

동쪽 강원도 쪽으로 갈수록 DMZ는 첩첩산중 지형이 되지만 서쪽 경기도는 DMZ가 평지이다. 판문점이 있는 공동 경비 구역(JSA)은 DMZ에 속하며, 대성동 마을도 이례적으로 JSA 인근 DMZ 내부에 있는 마을이다. 그리고 DMZ는 마치 뉴욕 한가운데의 UN 본사처럼 UN의 관할에 있는 땅이니, UN 본사를 판문점으로 옮기겠다는 허 경영의 공약(?)은 완전히 터무니없는 발상은 아닌 듯하다. -_-;;

남방 한계선과는 달리, 진짜 오리지널 휴전선(군사 분계선)은 극소수 육로로 월북이나 귀순을 하는 용자 말고는 접근하는 사람이 없다시피하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구간은 진짜 60여 년 전 휴전 당시에 만들어진 철조망이 시뻘겋게 녹슨 형태로 방치돼 있거나, 아예 애초에 철조망도 없이 낡은 표지판만이 남아서 여기가 군사 분계선임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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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남북의 군인들이 전방에서 매일 철통같이 순찰하고 정비하는 철조망은 휴전선이 아니라 거기에서 파생된 남방 한계선임을 기억하자. DMZ 내부까지 들어가는 병사는 JSA에서 근무하는 권총 든 헌병이라든가 GOP보다도 안의 GP 순찰병 정도밖에 없다.
이런 위험한 곳에까지 들어가는 병사는 체력 좋고 사상이 확실하게 건전한 사람만을 엄격하게 가려서 뽑는다.

3. 끝으로, 민간인은 남방 한계선까지라도 선뜻 갈 수 있는 게 당연히 아니다. 남방 한계선보다 더 수 km 남쪽으로는 드디어 민통선이라고 불리는 민간인 통제선이 있다. 민통선은 무슨 남방 한계선처럼 전구간이 살벌한 철조망이 둘러져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동차 도로는 마치 청와대 근처처럼 헌병 초소로 가로막혀 있으며, 아무나 드나들 수 없다.

민통선 내부 구간을 방문하려면 사전에 방문 신청을 하고 군인들로부터 신원 확인을 받는 등 여러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하다. 도라산, 제진, 월정리 역은 바로 민통선 내부에 있는 철도역이다. 그래도 여기는 DMZ와는 달리, UN 관할이 아닌 엄연히 대한민국 영토인 건 맞다. 휴전 직후에는 민통선 구간이 남방 한계선으로부터 무려 10~20km가까이나 떨어져 있기도 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다시 북쪽으로 많이 올라갔다. 통제가 완화되었다는 뜻이다.

※ 별첨

우리나라에는 현충원 같은 묘지만 있는 게 아니라, 사실은 '적군 묘지'도 있다. 스펀지 같은 데에 소개될 만한 아이템이 아닌가 싶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산 55에 소재한 적군 묘지에는 6·25 이래로 우리나라에서 죽은 북한군, 중공군, 무장공비, 테러범들이 묻혀 있다. 찾아와 줄 유족이 있을 리 없는데도!
1968년 김 신조 무장공비 침투 사건 때 사살된 공비들, 1987년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범 김 현희의 파트너(자살)까지 다 묻혀 있다고 하니 놀랍기 그지없다. 자세한 건 링크 참고.

제아무리 제네바 협약 같은 게 있다지만, 적군에게까지 이런 예를 갖추는 우리나라는 정말 인심 좋은 나라이다.
하긴, 해방 직후에 일본 민간인들이 권력을 잃고 본토로 쫓겨날 때도, 한국인들이 폭동· 약탈 하나 없이 고이 보내 줘서 걔네들이 무척 감탄했다는 일화도 전해지는데.. (그런데 저 나쁜놈들은 우키시마 호 폭침 사건으로 은혜를 끝까지 원수로 갚았고..)

그런데 더욱 경악할 만한 안타까운 사실이 있다. 저 적군들은 그래도 북한의 입장에서는 나름 자기네 나라로부터 명령을 수행하다가 순직/순국한 호국영령들이다. 미국의 경우, 자국 군인이 죽으면 지구 끝까지 추적해서라도 유해를 찾아 오는 걸로 익히 유명하며, 한국도 나름 그 원칙을 수행하려 노력 중이다.

허나 북한은 한 번도 우리나라에 자국 병사의 유해 인도를 요청하거나 제의한 적이 없다. 특히 각종 지저분한 테러 공작의 경우, 공작원의 시신 인도를 요청했다간 그 행위를 자기가 저질렀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니 절대로 안 한다.

인권이고 예우고 뭐시고 없는 북한 정권은, 이용 가치가 끝난 병사나 공작원은 자기네 인력이라도 철저히 무시하고 토사구팽하는가 보다. 남과 북이 사이가 좋던 시절에 판문점을 통해 쌀과 소와 관광객이 오고 가긴 했어도, 북한군 유해가 갔다는 소식은 여러분도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1996년의 강릉 잠수함 무장 공비 침투 사건 때 사살된 북한군의 유해는 북한으로 송환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북한이 자기들이 벌인 만행에 대해서 “유감 표명”까지 했을 정도로 예외적인 경우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2/03 08:18 2013/02/03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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