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업계에서 인텔의 경쟁사라고 하면 가장 먼저 (1) 동급의 x64 CPU를 만들어서 경쟁하는 AMD,
(2) 아키텍처 차원에서 x64에 도전하는 ARM 내지 애플, 혹은 심지어 (3) 울나라 삼성 전자까지 떠올릴 수 있다. 인텔이 메모리 반도체에도 손을 뻗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텔은 저것들보다는 대외 인지도가 낮은 분야에서 AT&T와도 경합한 게 좀 있었다.

1. 바이너리: 오브젝트 파일 포맷

C/C++ 언어로 코딩을 한 뒤에 컴파일을 돌리면 생기는 자잘한 obj 파일들 말이다. 기계어 코드를 담는 이 컨테이너 껍데기의 포맷은 누가 언제 제정했을까?
x86 진영에서는 CPU 본가인 인텔에서 제정한 OMF 방식이 16비트 시절부터 널리 쓰였다. 볼랜드니 마소니 컴파일러가 다르더라도 obj 파일은 호환됐기 때문에 툴을 달리하여 링크가 가능했다.

그러나 마소에서는 32비트 Windows NT를 개발하면서 실행 파일 포맷을 바꾸고(NE에서 PE), 빌드 툴체인도 싹 갈아치웠다. 단순히 OMF의 32비트 확장을 쓰는 게 아니라 obj/lib의 포맷도 AT&T에서 제정한 COFF 방식으로 바꿨다. 그 반면, 볼랜드 컴파일러들은 32비트에서도 여전히 OMF 방식을 쓰면서 서로 파편화가 발생하게 됐다.

그 시절에 마소에서는 빌드를 더 편하게 하기 위해서, 로딩을 더 빠르게 하기 위해서(메모리 매핑), 거기에다 이식성까지 고려해서 같은 여러 명분으로 COFF를 도입했었다. 다만, 지금은 그런 명분이 기술적으로 많이 옅어지고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GNU 툴킷의 도스용 버전에 속하는 djgpp 컴파일러도 라이브러리· 오브젝트 파일 포맷은 COFF 방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바이너리 에디터로 들여다보면 arch! 앞에 이런 문자열이 있고.. "이건 마소 진영과 오픈소스 진영이 공통이네?" 이런 생각을 예전에 했었다.

2. 텍스트: 어셈블리어 문법

자기네 x86 기계어를 간단한 숫자와 영단어 나열만으로 풀어서 표기하는 어셈블리어 말이다. 이것도 인텔 식 문법과 AT&T 식 문법이 공존한다. 이건 단순히 '어셈블러' 제조사 간의 문법 차이가 아니라 '어셈블리어' 차원에서의 더 저수준 차이점이다.

인텔 문법 AT&T 문법
mov eax, 5
add esp, 24h
movsxd rax, ecx
paddd xmm2, xmm1
movl $5, %eax
addl $0x24, %esp
movslq %ecx, %rax
paddd %xmm1, %xmm2

간단하게는 숫자 앞에 $, 레지스터 이름 앞에 %가 막 붙어 있는 게 AT&T 문법인데, 본인 역시 Visual C++이 표시해 주는 인텔 문법에만 익숙하다. 하지만 역시 리눅스 진영 gdb 같은 데에서는 AT&T 문법이 주류이다.
현업에서 어셈블리어를 직접 짤 일은 없지만, 그래도 프로그램을 디버깅 하다 보면 디버거가 디스어셈블리해 준 어셈블리어 코드를 보게는 된다.

마소는 이거 문법은 딱히 AT&T 식으로 갈아타지 않았고 인텔 문법을 고수하는 듯하다. Macro Assembler 같은 기존 제품과의 호환 문제가 있기 때문인 듯하다.
뭐, 어차피 같은 CPU 아키텍처이고, 짜는 게 아니라 읽기만 한다면야 자잘한 표기 차이는 그렇게 심각한 차이점은 아닐 것이다.

프로그래밍 언어라는 건 적당히 고급 언어를 표방하면서 실용성을 갖춘 게 인기를 얻고 대중화되는 편이다.
그럼 실용성 대신에 한쪽으로 특화된 언어는 (1) 함수형처럼 수학 내지 순수주의 쪽으로 특화되거나, 아니면 (2) 어셈블리어처럼 기계 지향적인 쪽으로 특화되는 것 같다.

한 소프트웨어의 모든 코드를 저런 특화 언어만으로 작성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이다.
그래서 기존의 실용적인(?) 다중 패러다임 언어들은 저 (1), (2)의 특성을 제한적으로 부분적으로 제공하곤 한다. 그게 (1) 람다 아니면 (2) 인라인 어셈블리인 셈이다.;;

요즘 세상에 대학교 컴공과에서 어셈블리어 코딩 실습을 하는 건 군대에서 총검술, 사관학교에서 승마 실습을 잠깐 하는 것과 아주 비슷한 모양새인 것 같다.
비록 현대의 전장이나 현대의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버렸지만, 코딩이라는 전투에서 백병전이 어셈블리어 실습이 아니겠나..;; =_=;; 실무에서는 쓸 일이 없지만 컴공 엔지니어를 양성한다는 학교에서는 컴퓨터의 밑바닥 모습을 이런 식으로라도 경험시켜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6/30 08:35 2024/06/3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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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분비물

-- 인체에서 소변과 대변은 만들어지는 원리가 서로 완전히 다르다. 대변은 배출물이지 배설물이 아니라는 건 중학교 과학 시간에 배우는 사항이다.
-- 소변은 그 상태 그대로 식물한테 거름이 되지 못한다. 더 희석시키고 삭혀야만 영양분이 되지, 그 상태 그대로는 오히려 식물을 말라죽게 한다.

-- 땀냄새, 또는 쇳덩어리를 만졌던 손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는.. 다 원래부터 땀이나 금속류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다. 땀에 들어있던 유기물이 세균에 의해 분해되고 부패하면서, 혹은 손에 원래 묻어 있던 분비물이 금속과 반응해서 변질되면서 그런 냄새가 나는 것이다.
-- 코 주변(개기름),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암내..), 발바닥(발냄새)은 대놓고 대소변 급 배설물은 아니지만 신체의 타 부위와는 다른 독특한 분비물이 나오는 듯하다. 걔네들이 분해되고 부패하면서 악취가 나게 된다.

-- 태아는 생후 얼추 6주째부터 이미 어머니와는 피가 섞이지 않는다. 어머니와 혈액형이 다른 피가 흐른다.
-- 하지만!!! 모유는 어머니 피가 그대로 변형되어 만들어진다. 모유는 분비되는 과정은 땀과 비슷하지만 성분은 피이다. 오~ 땀과 피..
그렇기 때문에 아기한테 모유를 먹이려는 산모는 그 동안 술이나 다른 약물 등을 절대로 섭취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모유에도 그대로 스며들어서 아기까지 먹게 되기 때문이다.

2. 인지

-- 사람은 산소 부족이 아니라 이산화탄소 과다를 감지해서 호흡 충동을 느낀다.
-- 사람의 눈에 펼쳐지는 풍경에는 눈뿐만 아니라 두뇌에 의한 편견 보정이 엄청 많이 작용한다. (두 눈 영상의 합성, 각종 착시 현상 따위)
-- 사람이 소리 자체뿐만 아니라 소리가 나는 방향까지 인지하는 능력은 참 경이롭기 그지없다.
-- 혀로 느끼는 맛은 그렇다 치고, 숨을 내쉬면서 같이 느끼는 그 '맛 아닌 맛'은 뭘까..?? 혓바닥 부위별로 단맛 신맛 짠맛 쓴맛을 따로 느낀다는 낭설은 현재는 과학적으로 부정된 듯하다.

3. 건강 관리

-- 헬스장이라도 고층에 있으면 출입구에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필요하다. 아무 데서나 무작정 힘만 쓴다고 운동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긴 하지만, 독극물 주입 사형 집행을 하는데 너무 위생 따지면서 잘 소독된 일회용 주삿바늘을 사용하는 건.. 좀 삽질스럽게 보인다 ㄲㄲㄲㄲ
옛날엔 서양에서는 단두대 사형 집행인이 목을 칠 때는 치더라도 깔끔한 연미복 차림에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사형수를 대했다고 하는데 마치 그런 것 같네. =_=;; 조선의 망나니 칼잡이 같은 과가 아니었다.)

-- 지난 수십 년 동안 병원 한 번도 안 갔지만 잔병치레 전혀 없었고 쌩쌩했다는 말은 자랑이 절대 아니다. 그건 그냥 건강 관리를 안 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람 몸은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훅 갈 가능성이 일반인들 편견보다 무척 높다.
-- 치아 건강을 위해 어설픈 소금물이나 알코올 가글보다는.. 물리적인 양치 내지 주기적인 스케일링이 훨씬 더 도움 되고 가성비도 좋다.

-- 사람이 평소에 위생이나 미용을 위해 사용하는 세제, 치약, 샴푸 같은 건 CF에 나오는 것보다 적게 짜 넣어도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자외선 차단 크림은 예외. 땡볕 아래에서 몇 시간째 위력을 발휘하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진하게 많이, 피부색까지 좀 허옇게 변할 정도로 발라야 한댄다.
하긴 요즘은 비타민 D 운운하면서 피부를 그을리고 태우는 게 건강에 좋은 게 아니라고 그런다. 살균의 범주를 넘는 자외선은 그저 백해무익한 전자기파일 뿐이다.;;
-- 피부를 햇볕에 그을려서 태우는 것, 때를 너무 밀거나 귀지를 너무 많이 집요하게 제거하는 것은 오늘날은 건강 관점에서 그다지 권장되지 않는다. 포경수술에 대한 인식도 현재는 달라졌다.

-- 세상엔 평생 목욕 안 한 사람, 평생 양치 안 한 사람, 평생 헤비스모커 골초로 지내고도 8, 90살 넘게 산 사람도 있다. 평생 라면만 먹으면서 8, 90 넘게 산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게 보편적인 케이스라고 여겨지지는 않는 것 같다.
-- 옛날에는 나쁜 피(?)를 마구 빼내는 치료법, 모공을 차단하는 치료법(!!!)도 있었다.
마취 없이 외과 수술이 진행되어서 환자가 꼼짝달싹 못 하게 꽉 잘 붙잡는 힘센 조수가 필수였었다!!
심지어 팔다리 자르는 외과 수술을 받느니 죽고 말겠다고.. ㅈㅅ하는 환자도 있었다. =_=;;;

4. 식중독

-- 물, 소금, 산소, 비타민A... 다 인체에게 꼭 필요한 물질이다. 그러나 짧은 시간 동안 급격히 과다 섭취하면 독이 된다. 중독을 일으키고 심하면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다.
오랫동안 굶었던 사람한테 밥을 갑자기 너무 많이 먹여도 탈 난다. 심하면 그 사람이 급체를 일으키고 죽을 수 있다.

-- 상하고 썩어 가는 음식은 공통적으로 시큼한 맛이 난다. 인간은 그런 건 냄새만 맡아도 거의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느끼고 구역질을 일으킨다. 다만, 식초는 시큼하기만 하고 독성은 없는 예외적인 식품이라 하겠다.
-- 식물한테는 상한 우유 정도는 뿌려 줘도 괜찮다. 그 대신, 식물한테는 염분이야말로 자신을 말라죽게 하는 진짜 독극물이다.
초식동물들은 풀을 뜯어서는 염분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소금을 따로 섭취하려고 난리를 친다. 오오~ 이게 동물과 식물의 차이점인가?

-- 생물독은 신경독 또는 출혈독으로 나뉜다. 복어의 독은 대표적인 신경독이며, 대부분의 독사들의 독도 신경독이다. 다만, 독사 중에 붐슬랭 같은 몇몇 소수종의 독은 '출혈독'이다.
-- 살모넬라 균과 노로 바이러스는 음식을 상하게 하지 않고 맛과 냄새에 아무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 식중독을 일으킨다고 한다. 바이러스의 경우 심지어 겨울에도 발병 가능하다.

5. 상태 이상

-- 사람 신체가 물에만 수십 일 이상 맨몸으로 담겨 있으면.. 어디 탈이 나서 죽는다고 한다. 익사 말고. 호흡에 지장이 없더라도 그냥 피부가 퉁퉁 붓고 탈이 나서라고 어디서 봤는데..
-- 물구나무서기를 며칠 이상 계속 하고 있으면 역시 죽는댄다. 눈과 머리에 피가 너무 쏠려서.
-- 사람이 누워 있다가 갑자기 황급히 벌떡 일어나서 머리의 위치가 상승하면 머리에 순간 피가 안 통해서 움찔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갑자기 차가운 음식을 잔뜩 먹어도 머리 띵해질 수 있다.;;
-- 무중력 상태에서 오래 있으면 피부가 붓고 몸 망가진다. 이러니 인간은 이 지구의 중력가속도를 벗어나도 살기가 힘들다.

-- 심지어 영원히 꼼짝달싹 못 한 채 누워 있기만 해도 짓눌려서 피가 오랫동안 잘 안 통한 부위에 욕창이 생기고.. 영원히 서 있기만 해도 몸에 탈 나고 심하면 죽는댄다.
자면서 몸을 뒤척이는 건 생각보다 아주 중요한 생체반응이다. 전신마비 환자는 이 당연한 걸 스스로 못 하기 때문에 간병인이 체위를 일정 간격으로 바꿔 줘야 한다.

-- 인공호흡보다 심폐소생이 훨씬 더 중요하다. 피를 돌게 하는 게 산소를 공급하는 것의 상위 호환이다.
같은 맥락으로, 제대로 된 교수형은 켁켁 목을 어설프게 졸라서 질식사 시키는 처형법이 아니다. 목을 물리적으로 뎅겅 짜르지만 않을 뿐, 안의 경동맥을 부러뜨려서 사람을 즉사시킨다.

Posted by 사무엘

2024/06/27 19:35 2024/06/2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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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에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바둑, 오목, 체스, 스크래블 같은 보드 게임의 AI 위주로 ‘컴퓨터 올림피아드’라는 대회가 잠깐 개최된 적이 있었다. 기억을 정말 오랜만에 다시 떠올린다. ㅠㅠㅠㅠ
IOI라고 불리는 '국제 정보 올림피아드'와 헷갈리지 마시길. 요즘은 저걸 검색하면 구글도 자꾸 IOI 쪽으로 안내하는 것 같은데 그거랑은 다르다. 컴올은 공식 명칭에 '국제 I'라는 말이 없다. ㄲㄲㄲㄲ

IOI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중등 수준의 10대 청소년들이 문제 푸는 프로그램을 '즉석에서 작성'해서 그 코드의 성능과 정확도를 평가 받는 대회이다. 그 반면, 저건 현업에 종사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개발사들이 오랫동안 미리 연구 개발해 놓은 자기 자기 제품의 AI 성능을 현장에서 겨루는 대회이다. 즉, 로봇 쥐 미로 찾기와 비슷하며, 저런 보드 게임을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끼리 대국한다는 차이가 있다.

근데 컴터 올림피아드도 첫 대회가 1989년부터 시작됐다니.. 그건 IOI와 동일하다. 그리고 가끔은 IOI에서도 간단한 게임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해서 주최측 AI와 대국하고 채점되는 형태의 문제가 나오기는 한다. 그러니 둘이 완전히 다른 별개 분야의 대회까지는 아니긴 하다.

본인이 저 대회에 대해 들어 본 건.. 한때 왕년에 영단어 보드 게임인 스크래블의 AI를 연구하느라 관련 자료를 많이 찾아봤었기 때문이다.
무려 1988년에는 World's fastest Scrabble program (by 앤드루 아펠, 가이 제이콥슨)이라는 논문이 CACM에 게재돼서 후대의 스크래블 AI 개발자에게 아주 큰 영향을 줬다. 모든 가능한 수를 찾는 기본 작업은 이 논문에서 소개된 알고리즘으로 해치우고, 그 뒤에 단순히 당장 점수가 가장 높은 수를 넘어 장기적인 이익을 따지는 건 전략과 휴리스틱의 영역으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래된 생각이긴 하다만, 스크래블 게임의 컴퓨터 구현은 대학교 수준의 자료구조와 알고리즘 코딩 주제로 아주 적합하다. 만약 내가 학원이나 학교에서 저런 전공 과목을 가르칠 기회가 있다면 실습이나 과제로 저걸 꼭 넣었지 싶다. =_=;;
하긴, 석사 논문으로 두벌식 한글 연속입력 오토마타를 연구했던 모 교수님은 자기가 강의하는 형식언어와 오토마타 수업 시간에 한글 입력 오토마타를 구현하는 과제를 고정 편성으로 넣었더구만.. 그런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저 논문을 투고했던 연구진은 딱 이듬해인 1989년, 제1회 컴퓨터 올림피아드의 스크래블 부문에 참가해서 우승했다고 한다. 타이밍 절묘하군..

그 뒤 2회와 3회에서는 Jim Homan이라고 MIT 출신의 다른 엄친아 공돌이가 개발한 스크래블 AI가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정황상, 아마 저 논문 내용을 바탕으로 AI를 더 발전시킨 것 같다.
그리고 그 사람은 저 AI 엔진을 토대로 CrossWise라는 굉장히 깔끔한 크로스워드 게임(설정을 맞춰서 스크래블 게임도 가능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판매했다.

그것 말고 브라이언 셰퍼드라는 사람이 개발한 Maven이라는 스크래블 AI도 유명했다. 얘도 개발 역사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됐고, 스크래블 보드 게임의 총판사에서는 Maven을 공식적으로 밀었다고 하는데.. 얘에 대해서는 나도 더 아는 바가 없다. 이쪽은 딱히 컴올에 참가한 이력도 없는 것 같다.

뭐, 이것도 다 지난 얘기이다. 지금은 스크래블 게임쯤이야 폰이나 웹에서도 돌릴 수 있을 텐데.. 유행이 지난 것 같다.
하다못해 바둑조차도 세계를 석권해 버린 알파고 개발진이 "이젠 바둑은 더 연구할 게 없다~~" 명목으로 발을 뺐을 정도이니 말이다. -_-;;

저 컴퓨터 올림피아드는 스폰서 내지 운영진을 섭외할 수 없어서 1991년 이후부터 1990년대 내내 맥이 끊겼다. 그러다가 2000년대 이후부터 다시 개최는 되고 있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인지도가 별로 없고 마이너하다는 냄새가 풍긴다. 고전적인 최적화나 휴리스틱 위주의 AI는 유행이 끝나고 닥치고 인공신경망이 대세가 돼서 그런지..??

우리나라에서 보드 게임 AI 외길을 가고 있는 제품은 '장기도사'가 유일하지 싶다. 의미 있는 연구이긴 하다만, 보드 게임이라는 장르 자체도 마이너해지고, AI 패러다임도 마이너해져서 수요가 무척 적을 것 같다. 뭐, 그런 식으로 염세적으로만 따지자면 본인의 주특기인 세벌식 자판도 마이너 중의 초 마이너이긴 하다만 말이다. -_-;;

고전적인 AI 대신 2010년대를 풍미했던 건 인공신경망들이었다. 2012년, 사물 인식을 기가 막히게 잘한다는 AlexNet부터 시작해서 VGG, ResNet, YOLO가 뒤를 잇고 chatGPT, transformer 등등이 쏟아져 나왔으니까.
컴퓨팅 패러다임이 싹 달라졌다. 이 과정에서 파이썬은 머신러닝 학계와 업계의 공용 언어가 되었고, 교육과 실무를 다 장악해 버렸다. ㄷㄷㄷㄷ 파이썬과 루아(Lua)가 처지가 극과 극으로 달라지게 될 줄은 20년 전엔 정말 예상할 수 없었다. 이것도 생각할 점이라 하겠다.

글을 맺기 전에 잠깐.. 그러고 보니 World Cyber games도 생각난다. 얘는 컴퓨터 AI가 아니라 사람이 겨루는 대회이지만, 그래도 E-스포츠 전문이니 뭔가 컴퓨터스럽고 사이버틱한 느낌이 나기 때문이다.
얘도 2001년에 처음으로 시작됐다가 2010년대엔 스폰서를 못 구해서 한동안 중단됐던 적이 있다. 그 뒤 지금은 재개되기는 했지만 권위나 인지도가 예전만 하지는 않다는 게 컴퓨터 올림피아드와 비슷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4/06/25 08:35 2024/06/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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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체에서 접하는 옛날 풍경 모습이란 게 한때는 그냥 사람이 붓에다 물감 찍어서 그린 그림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그게 흑백 사진을 거쳐서 컬러 사진으로 바뀌었는데, 이제는 애초에 흑백 사진밖에 전해지는 게 없던 장면조차 컬러로 재구성된 게 늘고 있다.
컬러이더라도 화질이 안 좋았던 것을 리마스터링까지 한다. 이런 건 소실된 색/화소 정보를 AI의 힘으로 창작해서 복원한 것이다.

AI는 완전히 생판 무에서 유를 창조할 정도로 혁명적인 일은 절대 못 한다.
뭔가 패턴이 있고 생노가다 같긴 하지만, 진짜 노가다보다는 미묘하게 복잡하고 전문성과 창의성(?)이 필요해서 자동화가 안 되고 인력 수작업이 필요했던 일들.. 그러면서 법적 책임과 부담감이 크지는 않은 일.
AI는 딱 그런 업종을 0순위로 잠식할 것으로 보인다.

(1) 음악: 없는 곡을 AI가 작곡도 하는 세상인데, 기존 악보 멜로디를 읽고서 E G Fm 등 코드를 매긴다거나 반주를 넣는 건(편곡) 당연히 자동화될 것이다. 이것도 답이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곡에 대한 해석과 창작이라는 범주에 든다!
코드를 만에 하나 좀 이상하게 넣었다고 해서 당장 인명· 재산 손실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AI화하기에 딱 좋아 보인다.

(2) 폰트: 한 폰트 패밀리로부터 다양한 굵기 내지 이탤릭 바리에이션을 자동 생성하기. 윤곽선을 단순히 기계적으로 산술적으로 부풀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로 인한 세밀한 공간 배치를 인간이 보기 좋게 알아서 하는 것 말이다. 힌팅을 더 똑똑하고 정교하게 생성하는 것도 포함이다.
그리고 한글· 한자의 경우, 샘플 몇 글자만 넣어 주면 그로부터 규칙성을 파악해서 나머지 수천 자의 글자 모양까지 알아서 유추해서 자형 생성하기.

AI는 한글· 한자에 대해서도 알파벳처럼 폰트들이 엄청 많이 넘치도록 개발되게 도와줄 것이다. 한글· 한자가 글자수가 수천 자나 된다고 해서 진짜로 문자로서 자형의 절대적인 정보량? 엔트로피가 알파벳의 수백 배 이상인 건 아니다. '가각간갇'이 무슨 알파벳의 ABCD 급으로 서로 완전히 다른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옛날엔.. 알파벳은 글자 수가 적어서 폰트도 크기가 작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반면.. 한글 한자는 너무 무겁고 뚱뚱하고 컴퓨터 자원도 많이 차지한다고.. 이러니 동양이 서양보다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고 열등하고 도태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정서가 있었다. 100여 년 전, 공 병우니 최 현배니 하던 시절엔 기계식 타자기만 갖고도 문자의 우열이 비교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그 정도로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컴퓨터 자원이야 풍부해서 넘쳐나고, AI가 사람으로 하여금 진짜로 본질적으로 창의성이 필요한 작업만 하면 되게 나머지를 보조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이 이런 AI를 만들기 위한 연구 개발은(코딩, 수학식, 논문 등)... 알파벳처럼 원초적으로 가볍고 취급하기 쉬운 tier 1급 문자로 행해졌음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3) 코드 정적분석: 재래식 알고리즘만으로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정적분석만으로 실행 결과를 100% 정확하게 예측하고 논리 결함을 찾아내는 게 불가능하다. 그 이상부터는 그냥 휴리스틱/AI의 영역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코드뿐만 아니라 주석에 적힌 자연어 문구도 의미를 파악해서 "이거는 시스템 정보나 패스워드가 하드코딩된 거 아냐?" 같은 것도 정적분석이 찾아낼 수 있다. AI는 재래식 정적분석 툴의 쓸데없는 오탐들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4) 그 밖에 이런 AI 기술로 내 생각엔 인쇄된 글자 모양을 보고 그냥 OCR을 하는 게 아니라 이게 무슨 폰트인지를 알아맞힌다거나, (산돌, 윤~~ ㅋㅋㅋ) 거대한 인파 사진을 보고 여기 사람 머리가 몇 개인지 카운트 하는 것.. 아 이건 딥러닝 AI까지는 아니라 그냥 컴퓨터 비전이려나.. 이런 기술이 개발되면 일상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다.

(5) 그리고 식당· 카페의 무인 키오스크가 아예 커맨드라인 콘솔이 도입될 게 아니라면 진짜 사람 말을 빨랑빨랑 알아들었으면 좋겠다. 지금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는 너무 느리고 답답한 반면, 단순 주문 접수는 지금 정도의 NLP로도 그렇게 어렵지 않을 테니 말이다. 확실히 AI 덕분에 단순 안내 데스크나 전화 상담 직원은 많이 없어질 것 같다.

다만, AI는 저렇게 창의성이 필요한 분야, 참고· 보조용 도구로서 강세이다. 법적 책임까지 수반되는 분야에 진입하는 건 많이 더디지 싶다. 그래서 의료 법조 쪽은 그냥 자문· 상담부터 시작할 것으로 보이며, 자동차의 완전 자율주행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 철도는 통제가 너무 잘 된 환경이니 AI 없이 재래식(?) 로직만으로 이미 무인 자동운전이 가능할 지경이다. 차량 번호판 숫자나 QR코드를 인식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정도로 잘 통제된 이미지의 인식은 AI가 아니라 그냥 통상적인 컴퓨터 비전 분야..)
그러니 자동차와 철도의 중간 난이도인 비행기나 선박의 운항에 AI 기반의 자동 운항이 먼저 파고들지 않을까 싶다. 허나, 승객 수백 명이 타는 여객기에 무인까지는 아니어도 부기장이 없어지고 1인 조종이 가능해질지는 과연..?? 저비용 항공사에서 작은 기종부터 1인 조종을 시킬 수는 있겠다.

* 미용· 이발은 굳이 AI화 자동화하자면 못 할 건 없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여겨진다. 사람이 직접 가위 들고 사람 머리 깎는 건 가까운 미래에도 변함없을 것 같다. ㄲㄲㄲㄲㄲㄲ

* 빌 게이츠는 무려 25~30년 전부터 제품에다가 자연어를 알아듣는 AI 비서? 에이전트를 넣으려고 애썼던 사람이다.
마소 Bob이라든가 Office 길잡이..;;는 좀 무리한 흑역사였긴 하지만.. 반대로 저 아저씨가 시대를 앞서간 시도를 한 거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 귀요미를 겨우 램 16MB, 150MHz짜리 펜티엄 컴터에다 집어넣으려 했으니 욕 먹었던 거지..;; 현실의 기술이 아이디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 미국 말고 의외로.. 중국이 2010년대 이후부터 머신러닝, 언어모델 쪽 연구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외국의 최신 논문을 찾아 보면 중국 사람 이름이 엄청 많이 보인다.
그런데 중국은 그런 첨단 AI 기술을 이용해서 인터넷의 불온 컨텐츠를 검열하고 인민들 행동패턴을 감시하는 데도 적극 활용한다는 게 함정....

지난 1990년대 중반까지 기계번역 프로그램이 잠깐 나오다가 유행이 식은 적이 있었다. 일한이라면 모를까 영한은 이거 뭐 도저히 실용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한영은.. 난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절대 개발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인공신경망 기반 AI로 언어 장벽이 이 정도까지 무너지고 낮아진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물론 무슨 기업간 회의나 대통령 연설, UN 컨퍼런스를 기계번역으로 때워도 되는 건 아니지만, 일상적으로 뭔 말인지 내용 파악하는 용도로는 기계번역이 정말 쓸 만해졌다.
게다가 이게 텍스트를 읽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waveform 형태의 말소리를 받아 적은 transcript를 생성하고 그걸 번역까지 하다니.. 유튜브에서 자기 동영상의 음성에서 자막을 아주 정확하게 실시간 생성해 주는 것만 해도 신기하기 그지없다.

암호 해독을 위해 언어학자가 아니라 수학자가 필요한 시대는 이미 20세기 중후반에 찾아왔다. 이제는 기계번역이나 자연어 처리 영역도 언어학자가 아니라 수학자와 데이터 과학자의 차지가 됐다.
2020년대가 되니 인간이 달이나 화성이나 해저에 기지를 만드는 건 전혀 가망이 없고, 그 대신 쌍팔년도 SF에서 거의 상상하지 못했던 스마트폰과 유튜브가 대세가 됐다. 그래서 카폰이라는 게 완전히 사라졌고, 무전기는 군· 경· 소방 같은 특수 직종에서나 쓰이는 물건이 된 거다. 뭐, 언어 자동 통번역기는.. 그 시절에도 상상은 했었고 얼추 실현돼 간다.

머신러닝에서 모델이라는 건 코드와 데이터의 성격을 모두 지니고 경계가 참 애매한 것 같다. =_=;; 물론 순수하게 데이터에 속하는 건 훈련용으로 먹이는 텍스트나 그림들이겠지만 저런 신경망 자체도 머신러닝 라이브러리 코드의 관점에서는 데이터일 것이다.
그리고 훈련시키는 건 뭔가 압축하는 것과 비슷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의 문제를 풀이하는 건(추론) 압축을 푸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런 AI는 참 엄청나고 대단하긴 하지만.. 공짜로 평범한 계산량으로 돌아가는 물건이 아니다. AI를 돌리기 위해 동원되는 컴퓨팅 자원을 보면 정말 억소리 난다.
chatGPT가 저렇게 답을 '즉시' 뱉어내기 위해서 지구 반대편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성능 슈퍼컴이 전기를 있는 대로 잡아먹고 열을 펑펑 내뿜으며 돌아가야 한다. 살인적인 분량의 신경망 연산이 행해지기 때문이다. 저기 서버가 하루 유지 비용이 원화로 몇 억? 몇십 억이니 그런다. 이때 컴퓨터 내부의 신경망 상태는 상상을 초월하게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훈련이나 추론 과정의 추적이 도저히 불가능할 지경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절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유인 달 착륙과 귀환을 몇 차례 성공하긴 했다. 그러나 그건 정말 위험하고 어렵고 힘들고 비싸게 가까스로 해낸 것이었다. 민간인의 대중적인 달 여행이라든가 달· 화성 기지로 이어지는 건 지금 관점에서도 가까운 미래엔 요원하다.

그리고 AI의 발달 추세에도 이런 우주 개발과 비슷한 면모가 있는 것 같다. 과거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자연어 처리가 가능해지기는 했지만.. 그걸 가능케 하는 컴퓨팅 환경이 저 우주 로켓 같은 물건이라는 거다. 물론 컴퓨터 업계도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만 빠는 건 아니니.. 그 연산에 특화된 CPU를 만들어 간다.

30여 년 전, 486이니 펜티엄이니 하던 시절엔 멀티미디어 지원이 컴터 업계의 최대 관심사였던 것 기억하시는가?
크게 (1) 동영상 아니면 (2) 게임용 3D 그래픽 실시간 렌더링이라는 두 분야이다.
하긴 그 시절엔 MPEG 동영상을 감상하기 위해서 전용 카드를 꽂네 마네 했던 것 같다. 요즘은 재생이 아니라 컴터 화면을 실시간으로 녹화하고 인코딩할 때에나 전용 카드가 필요한 듯하다.

나중에는 엄청난 물량을 자랑하는 멀티미디어 연산에 특화된 명령이 CPU에 추가되고, GPU라는 건 그래픽 가속기라는 이름으로 도입되곤 했었다.
그랬는데 이제는 단순 그래픽 처리를 넘어 머신러닝 신경망 연산에 특화된 CPU가 대세이다. 당연히 서버에 접속해서 API를 호출해서 구현된 거라고 생각한 통· 번역이 핸드폰에서 비행기 모드까지 켰는데도 동작한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저런 컴퓨터에 비해 인간의 두뇌는? 환경에 끼치는 부작용이 없고 당분 몇 스푼만 공급해 주면 한 나절을 거뜬히 돌아간다.
물론 두뇌와 컴퓨터가 서로 비교 가능한 존재는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는 생체라는 게 참 경이롭다. 두뇌와 컴퓨터는 다리와 바퀴가 다른 것만큼이나 다른 건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의 이스트소프트는 맨 처음 1990년대엔 21세기 워드라는 평범한(?) 업무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가 알툴즈로 명성 내지 악명을 떨쳤고.. 그러다가 게임이 더 돈 된다고 생각했던지 '카발'이라는 온라인 게임을 만들었고 지금 와서는 AI 기업을 표방하고 있다. (게임과 AI 모두 GPU가 쓰인다는 공통점이..)
각각의 제품들이 어떤 평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시류를 따라 참 다양한 분야를 개척하면서 생존하려고 애쓴다는 것 하나는 확실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4/06/22 08:35 2024/06/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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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상

1990년대 말까지 국산 승용차 중에서 가장 비싼 고급차의 대명사는 논쟁의 여지 없이 그랜저였다.
다시 말하지만, 벤츠니 마이바흐니 롤스로이스니 하는 외제차는 논외로 하고, 국산차 중에서 말이다. ㄲㄲㄲㄲㄲㄲ
특히 쌍팔년도 시절에 카폰이 장착된 그랜저는 정말 최고급 금수저의 상징이었다.

오죽했으면 현대에서 한때 CF를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친구가 물었습니다. 나는 그랜저로 답했습니다.” 이딴 식으로 만들었을 정도였다.
옛날에 극악무도한 범죄 단체였던 지존파에서는 그랜저 몰고 다니는 놈들을 콕 찝어서 죽이려 했을 정도였다.

30여 년 전 어린 시절에 친구 부모님을 통해 그랜저를 얻어 탈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분명히 승차감의 차이를 느꼈다. 엑셀로 시속 60 정도를 밟을 때의 소음과 진동이랑, 그랜저로 시속 100 이상을 밟을 때의 소음 진동이 비슷하게 느껴졌다고. ㄲㄲㄲㄲㄲㄲ

그랜저 말고 기함급 최고급 승용차를 표방하는 차량이 없는 게 아니었다. 대우 로얄/임페리얼/브로엄이라든가 쌍용 오피러스 등.. 그러나 그것들은 그랜저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심지어 같은 제조사에서 다이너스티나 아슬란 같은 차를 만든 것조차도 그랜저를 대체하지 못했다.
오늘날은 일부러 에쿠스니 제네시스니 하는 상위 브랜드를 새로 만들어서 그랜저의 격을 상대적으로 낮췄을 뿐이다.

그랜저는 30년 전 1990년대나 2020년대 지금이나 평범한 사양 기준으로 차값이 꾸준히 3~4천만 원이라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그랜저는 세월이 흐르면서 더 대중화되고, 최고급 차량에서 그냥 적당히 고급스러운 차량 정도로 급이 낮아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이야 내가 모는 국산 양산차가 30년 전 각그랜저 최고급 모델보다 엔진 출력과 연비가 더 뛰어나며, 편의 장비 안전 장치가 더 잘 갖춰져 있다.
차 안에 전화기와 내비는 그 시절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첨단 기술이었거늘.. 그게 지금 이 정도로 개나 소나 흔하게 보급됐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누리는 것을 30년 전에 누렸던 사람은 훨씬 소수였을 것이다.

2. 개발 배경

어지간한 차덕들은 다 아시겠지만, 각그랜저는 현대차와 일본 미쓰비시가 공동 개발해서 1986년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맛깔나는 신형 고급 국산차를 개발해서 공식 의전 차량으로 선보일 필요가 있었다. 현대차는 포드 그라나다의 후속 모델을 개발해야 하고, 미쓰비시에서는 데보네어라는 자기 차량을 이제 좀 업데이트? 페이스리프트할 때가 된 상태였다. 그래서 서로 이해관계가 맞았다.

일본의 데보네어 1세대는 1964년에 선보이고 나서는 무려 20년이 넘게 외형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고급차이긴 하지만 구닥다리 디자인이 너무 오래 유지됐기 때문에 그야말로 자동차계의 고인물 썩은물 살아 있는 화석 소리를 들을 지경이었다.
글쎄, 1964년이면 데보네어 원조 1세대는 자기네 도쿄 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건 아닌가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그랜저와 데보네어 모두 올림픽 입김이 개입한 건데 말이다.

아무튼, 이를 계기로 새로 공동 개발된 동일한 차량이 한국에서는 그랜저, 일본에서는 데보네어 2세대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

  • 일본은 철도 차량인 신칸센도 1964년에 도쿄 올림픽에 맞춰 개통했다. 그런데 신칸센도 첫 도입 차량인 0계가 무려 20년 가까이 똑같이 생산됐고, 후대 차량인 100계는 1985년에야 등장했다.
  • 일본에서는 택시도 ‘도요타 크라운 컴포트’라는 낡은 모델이 1995년부터 무려 2018년까지 똑같이 생산됐었다. 뭔가 이 분야의 기록을 작정하고 노리기라도 하는 것 같다. ㅠㅠㅠ
  • 일본 말고 우리나라 얘기를 하자면, 그 당시 서울 올림픽을 위해서 그랜저뿐만 아니라 서울 지하철 3호선과 4호선, 한강 종합 개발과 올림픽 대로를 건설했다. 그리고 신칸센 같은 신문물까지는 못 만들어도 철도에다 7000호대 신형(!) 봉고 기관차와 유선형 새마을호 신형 객차를 도입했었다.

3. 기술 디테일

(1) 각그랜저는 그 특유의 각진 외형이 정말 고급스러운 느낌을 줬다. 처음 등장했던 쌍팔년도 당시엔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 각그랜저는 누가 디자인한 걸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이것도 쥬지아로의 작품이라고 한다. 흐음~ 포니, 엑셀, 쏘나타 2세대, 각그랜저까지 다 동일 인물이구나.
각그랜저는 크라이슬러 뉴요커 같은 1980년대 초의 '미국 고급차'의 디자인 스타일을 참고한 형태였다.

(2) 각그랜저는 맨 처음에 2000cc부터 시작했다. 그러다가 후기형이라고 불리는 2400cc가 나오고, 1989년 말에 대망의 V6 3000cc형이 추가되는 것으로 업데이트(..)를 마쳤다. 즉, 요즘 차들의 버전 관리 관행과는 다르게, 페이스리프트에다가 엔진 덩치의 확장을 같이 진행한 것이다.
2.4부터는 뒤쪽 외형이 바뀌었다. 그리고 2.0과 2.4, 3.0 모두 앞쪽 라디에이터 그릴의 모양이 다 다르다. 3.0은 타이어 휠 모양도 달라졌다. 자세한 건 아래의 사진들을 참고하시길..

(3) 물론 6기통 모델은 1989년 초에 대우 임페리얼이 국산 승용차 중 최초로 6기통 3000cc를 개척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내놓은 것이었다.
임페리얼은 후륜구동에다 직렬 6기통이었던 반면, 그랜저는 전륜구동에 V형 6기통이었다. 그래서 같은 실린더, 같은 배기량이어도 차가 굴러가는 특성이 차이가 좀 있었다. 참고로 현대차는 과거에 포드 그라나다를 면허 생산하면서 겨우 2000cc 배기량 엔진에다가도 V6 엔진을 얹었던 경험이 있긴 했다.

(4) 지금으로서는 정말 믿어지지 않지만.. 1986년에 그랜저 2000cc 초기형이 첫 출시됐을 때는 명색이 최고급 기함급 차량이라면서 자동 변속기 모델이 없었다~!
그 대신 그때 그랜저가 최신 기술이랍시고 자랑했던 것은 무려 5단 수동 변속기였다. 이전 차량들은 겨우 4단 수동이었기 때문에.. 자동 변속기 모델은 나중에 도입됐다.
그리고 그랜저는 속도계 바늘이 나름 180이 아니라 200km/h까지 그려져 있었다. 1990년대가 아니라 1986년에 말이다.

(5) 그랜저 V6와 임페리얼은 6기통 3000cc 배기량뿐만 아니라 ABS가 장착된 국산차의 원조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ABS가 경차에도 의무적으로 무조건 장착되는 안전장치가 됐다는 걸 생각하면.. 이것도 참 격세지감이다.
그 뒤 최초로 에어백이 장착된 차량은 1992년에 출시된 뉴 그랜저이다. 그것도 지금으로서는 구형 기술인 SRS 방식이다. (화약으로 펑 터뜨리는..)

4. 여담

(1) 여러 옛날 자료들을 볼 때, 그랜저는 2000cc 초기형이 첫 출시됐을 때는 흑백 같은 무채색이 아니라 특유의 이 누런 색으로 먼저 만들어졌던 것 같다. 요게 개인적으로 애착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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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2.4 후기형은 라디에이터 그릴이 세로가 아닌 가로로 바뀌었고, 뒤쪽 브레이크등의 배치도 더 대중적인 그 모양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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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최고급 3.0 모델은 라디에이터 그릴은 가로+세로 복합이고, 타이어 휠 모양도 바뀌었다. 이런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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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처음에 그랜저는 그야말로 VIP 의전 급의 고급차를 의도하고 만들어졌다. 그러니 택시 같은 싸구려(?) 영업용 모델은 절대 만들지 않았다.
택시로 쓰이는 차들은 최대한 저렴하게 도입하느라 내부 옵션들은 몽땅 깡통 수준으로 생략하고 타이어 휠조차 저렴한 동글동글 철제를 쓰는 편인 걸 생각해 보자. 더구나 그 시절에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택시는 거의 다 포니 일색이고 가끔 스텔라 정도나 눈에 띄었다는 걸 생각해 보자. 지금처럼 고급차 위주의 모범 택시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물론 지금이야 그랜저 택시는 흔하지는 않아도 당연히 굴러다닌다.

(3) 한국과 일본에서 그랜저 - 데보네어 2세대가 나란히 출시됐고, 훗날 뉴 그랜저 - 데보네어 3세대가 나란히 출시됐다. 그러나 거의 같은 차가 한국에서는 대박을 친 반면, 일본에서는 쪽박을 쳤다. 이 구도는 훗날 에쿠스 초기형 - 프라우디아까지 이어지면서 현대와 미쓰비시는 처지가 역전됐다.
에쿠스 초기형은 현대차에서 내놓은 마지막 '전륜구동' 기함급 승용차이기도 했다. 마치 포니가 처음이자 마지막 '후륜구동' 소형 승용차였던 것처럼 말이다.

(4) 에쿠스의 경우, 3800cc 모델이나 5000cc 최고급 모델이나 외형상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엠블럼만 주작해서 더 큰 차라고 구라를 칠 수가 있었다. 차를 제로백 테스트를 시키거나 시속 150~200km으로 밟기라도 해서 차가 힘들어하는 정도를 비교하지 않으면 배기량 차이를 알 길이 없을 테니 말이다.
그 반면.. 각그랜저는 이런 외형 차이가 여럿 있기 때문에 엠블럼만 갖고 배기량 주작질을 할 수 없었다.

(5) 각그랜저가 출시됐던 당시에 현대차에서 내세웠던 광고카피는 "고급 승용차의 최고봉"이었다.
최고봉...;; 그 뒤 이 단어는 개인적으로 신앙 서적 오스왈드 챔버스 '주님은 나의 최고봉'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ㄲㄲ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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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찬송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의 2절 가사에 보통명사로서 grandeur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when I look down from lofty mountain grandeur
기독교계에서 부르는 수천~수만 편에 달하는 찬송가들 중에서 '그랜저'가 나오는 유일한 곡이 아닐까 싶다!! 정말 웅장한 자연 풍경, 장관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Posted by 사무엘

2024/06/19 08:35 2024/06/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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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와 타의의 경계 문제

고의가 아니라 몰라서 잘못한 것, 속아서 잘못한 것은 전적으로 무죄일까? 이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은 무엇일까?

1.
롬 4:15에 따르면 성경은 죄형법정주의를 지지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법을 어겼어도 정~~~~말 악의가 전혀 없이 순도 100%의 순진무구 무지 때문이었다면? 그 법이나 규칙에 대해 숙지할 기회가 단 1도 없었거나 법을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하나님이라도 그건 그 사람의 여건을 감안하신다. 무죄 또는 책임 면제로 인정해 주신다.

창세기 20장에서 이 여자가 유부녀인 줄 진짜 몰랐다고 항변했던 아비멜렉이 좋은 예이다. 이건 간음이 죄인 것 자체는 알되, 적용 대상을 몰랐던 경우이긴 하다만..
그리고 아예 선악 분별력 자체가 없는 아기도 이 범주에 들기 때문에 죄에 대한 책임이 부과되지 않는다.

허나.. 현실에서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이 정말 전적으로 무과실인 경우는..?? 안타깝지만 별로 없을 가능성이 높다.
자기도 진리에 관심이 없고 하나님의 진짜 성품에 관심이 없고..
반대로 이단들을 보니 뽀대 나고 내 육신적인 욕망을 채워 줄 수 있어 보이고.. 이런저런 이상하고 불순한 동기가 '결합'해서 자발적으로 더 이상한 데에 빠지는 것도 기여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무지가 100% 전적으로 무죄이고 오로지 선량한 피해자밖에 없는 거라면..
성경에 하나님이 강한 미혹을 보내신다, 파라오의 마음을 더욱 강퍅하게 만드신다~~ 거짓을 믿게 만든다.. 이런 말이 쓰여 있어서는 안 된다. 아니, 에덴 동산 시절에서부터 하나님이 뱀 따위 이브에게 얼씬도 못 하게 봉쇄를 했어야 했다.

모든 마약 중독자가 100% 오로지 강제로 납치 당해서 주사기를 강제로 꽂혀서 생겨난 거라면 그 사람들은 그냥 치료만 받으면 되는 피해자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약 사범은 환자이면서 한편으로 범죄자이지, 마냥 심신미약 우대를 받는 게 절대 아니다.
이런 불편하고 안타까운 진실은 "언뜻 보기에 착하고 불쌍해 보이기까지는 하는 사람이 왜 지옥에 가느냐~~?" "성경에 왜 미혹을 보낸다는 구절이 있느냐?"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현실에서 이단에 빠져서 돈· 시간을 잔뜩 날린 사람들을 우리가 마치 욥의 친구마냥 판단하고 정죄하고 2차 가해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죄가 아니라는 말은 우리 인간이 아니라 종합적인 판단자인 하나님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니 말이다.

2.
성경의 열왕기상 13장에는 "속은 건 변명이 되지 않는다"라는 교훈이 담긴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실려 있다.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 북왕국은 왕이 대놓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우면서 우상 숭배와 타락으로 폭주하고 있었다. 이때 남쪽 유다 왕국에서 무명의 젊은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가 일어나서 북왕국 왕을 용감하게 책망하고, 이적과 표적을 행했다.
그는 임무 수행 과정에서 누구로부터 그 어떤 향응이나 접대를 받지 말고, 먹지도 마시지도 말며, 임무 완수 후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딴 길로 신속히 귀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런데 이 소문을 들은 북왕국의 어느 늙은 선지자는 이 사람이 너무 반갑고 부럽기도 해서 꼭 만나보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임무를 마치고 귀환 중이던 저 선지자를 찾아가서는 선의의 거짓말까지 해서 접대와 교제를 베풀었다. "아~ 나도 선지자입니다. 같은 업계 종사자~ 내가 꿈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니까요? 당신 만나서 접대하라고?"

처음에는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단호하게 FM대로만 행동하던 그 사람은 "나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니까요?" 이 한 마디에 최소한의 확인 기도도 없이 낚여 버렸다. (어 하나님, 왜 완전히 상반된 지시를 다른 사람에게 또 내리셨습니까? 저 사람 말은 사실입니까?)
사실, 일체의 사람과 마주치지 말고 현장에서 최대한 빨리 이탈하고 무슨 저격수마냥 바람처럼 사라졌어야 했는데.. 완전히 귀환하고 나서 실컷 먹고 마셔도 됐는데 현장 근처에서 퍼질러 앉아 쉰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그는 얼마 못 가 하나님이 보낸 사자(lion! messenger 아님)의 공격을 받아서 죽었다. 사자는 그 사람을 목을 물어서 딱 죽이기만 했지, 그 이상 시체에는 전혀 손대지 않았으며 잡아먹지도 않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심지어 고인이 타고 가던 자동차.. 아니-_- 나귀도 건드리지 않았다. 이건 평범한 배고픈 야생 사자의 사냥이 아니었다.

하나님 말씀을 사칭하여 속인 늙은 선지자가 죽은 게 아니라, 속은 사람이 죽었다.
그렇다고 해서 늙은 선지자도 잘못이 없는 건 절대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예레미야서 28장에서는 버젓이 주, 여호와의 이름을 팔아서 거짓 예언을 주작해서 선포하던 '하나냐'라는 사람이 두 달 만에 벌 받아서 밥숟가락 놓았으니 말이다.

뭐, 열왕기상에는.. "나 좀 때려 봐" 이 부탁을 안 들었다고, 그 벌로 사자에게 물려 죽은 사람도 나온다(왕상 20:36). 다만, 이건 평범한 사적인 부탁이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행해진 명령을 거절한 것이고, 하나님 말씀을 거역한 것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엘리사를 조롱하던 초글링들 수십 명이 곰의 공격을 받아서 학살당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3.
성경 다음으로 세상 얘기..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97년에 화성시의 어느 해안 초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파릇파릇한 소위 소초장이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이상한 사람한테 감쪽같이 속았다. 그 사람이 자기 부대의 상관인 줄 알고 K2 소총을 실탄 수십 발과 함께 넘겨줘 버렸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보이스피싱 범죄를 능가하는 막장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사람은 국군 군복 차림에다, 그 당시 디자인이 바뀐 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새 계급장을 달고 있었고(소령!!), 이 부대의 행보관이 누군지도 알았다.
그 사람은 그렇게 총을 들고 나가서는 지금까지 영원히 증발 상태이다. 현재로서는 그놈은 아마 북괴 간첩이었을 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상급 부대에서 누구를 불쑥 보내서 부대를 시찰시킬 거면 언제쯤이라고 언질을 미리 준다. 불시에 들이닥쳐서 부대 기강을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히 밤에는.. 보안뿐만 아니라 아군 팀킬을 막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정보는 줘야 한다.
더구나 저런 신분의 지휘관이 운전병이나 부관 하나 없이 단독으로 총 들고, 군용차도 아닌 민간 승용차를 타고 돌아다닌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상급 부대에서 이 사람을 보낸 게 진짜 맞는지 좀 의심해서 확인 전화 한 통이라도 넣어 봤으면.. 병이나 부사관 중에 누구라도 소초장한테 그렇게 건의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결국 뒤늦게야 부대가 다 뒤집혔고 난리가 났지만 저 사람과 총은 못 찾았다. 겨우 탄피 하나 잃어버린 정도가 아니라, 총과 실탄 탄창이 통째로 사라졌으니..

소초장은 너무 큰 사고를 친 관계로 구속되고 군사재판에 회부됐다. 그래도 대법원까지 간 형사 재판에서는 최종 무죄가 나왔다. 피고가 고의나 과실이 아니라 정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항적으로 속을 수밖에 없는 것에 속아서 총을 넘겨 준 거라는 정황이 참작됐기 때문이다. (과연?)
하지만 그 사람은 장기 복무는 물 건너갔지 싶다. 임관을 어느 코스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이다.
아무쪼록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세상에서 있었던 사건이 나란히 오버랩된다.
세상 법은 갈수록 피의자에게 유리해지고 옛날처럼 엄하게 집행하지 않고, 결과가 아니라 의도와 과정을 많이 참작하고 잔혹한 형벌도 안 내리는 추세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받을 판정과 책임이 없어지는 건 아닐 것이다.

* 여담

(1) 예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난 위조· 가짜 신분증에 속아서 미성년자한테 술을 판매한 가게를 처벌하려거든 그 미성년자부터 더 강하게 처벌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음주운전 교통사고가 나면 그 운전자의 동승자 내지 마지막으로 술을 판매한 식당· 가게도 반드시 책임을 물었으면 좋겠다. 귀가할 때 누가 운전하는지를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은 죄 말이다.

(2) 30여 년 전, 지존파에게 붙잡혔던 어떤 여성 피해자는 걔네들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소기업 사장 부부의 살해에 가담 당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걸로 살인 공범 기소는 당연히 되지 않았다.
허나, 포로 학대나 민간인 학살 같은 끔찍한 전쟁 범죄를 저질렀던 군인들이 기소돼서는 "난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이렇게 변명하는 건 무조건 타의 100%라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정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어쩔 수 없이 까라면 깠던 것인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6/16 19:35 2024/06/1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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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이타닉 호 침몰 사고(1912년 4월)로부터 딱 25년 뒤인 1937년 5월엔.. 그 이름도 유명한 힌덴부르크 비행선의 화재· 추락 사고가 났다. 둘 다 출발 후 3일인가 4일 정도 지나서 사고가 났다. 특히 후자는 목적지인 뉴욕까지 완전히 다 와서 착륙 직전이었다.

증기선과 비행선이라니.. 오늘날--적어도 20세기 후반부터--에는 한물 간 느린 물건이 저 시절엔 장거리 대륙 횡단 여행용으로 현역이었다는 게 흥미롭다.
둘 다 엄청 거대하기도 했다. 타이타닉이 길이가 거의 270m인데, 힌덴부르크도 무려 245m에 달했다고 한다.

비행선이 아니라 비행기인 에어버스 A380이나 보잉 747 등은 그냥 70m 남짓이다. 힌덴부르크의 길이의 1/3이 채 되지 않으며, 명함도 내밀 수 없다.
물론 배수량이 50000톤이 넘는 타이타닉과 달리, 힌덴부르크 기체의 최대 이륙 가능 중량은 232톤에 불과했다. 덩치는 저렇게 육중하지만 실제 무게는 오늘날의 대형 비행기보다 가벼웠던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선박은 물에만 뜨면 되지만 비행선은 아예 공기 중에서도 떠야 했으니 말이다.

공통점 말고 차이점을 더 살펴보면.. 타이타닉 호는 영국 소속이었던 반면, 힌덴부르크 호는 히 총통 휘하의 나치 독일 소속이었다.
그리고 타이타닉 때는 탑승자가 2200여 명 중 1/3 정도밖에 살아남지 못한 반면, 후자 때는 반대로 탑승자 97명 중1/3 정도만 희생되고 나머지는 살아남았다. 탑승자가 100명이 채 안 됐었고 그냥 옛날 콩코드와 비슷했다;;

2.
일반적인 비행기들은 끊임없이 빠르게 움직여야만 양력을 얻을 수 있는 반면, 비행선이나 헬리콥터나 인공위성(정지궤도)은 공중에 뜬 채로 가만히 있을 수 있다. 떠 있는 방식이 서로 극과 극으로 다르지만 말이다. ㄲㄲㄲㄲㄲ
비행선은 오늘날의 양력 기반 비행기와는 비행 원리가 완전히 다른 관계로, 사고가 나도 비행기보다는 훨씬 덜 위험했다.
일단 화재의 규모부터. 저 거대한 몸뚱아리에다가 헬륨이 아닌 수소를 집어넣었으니 엄청난 불바다 생지옥이 펼쳐졌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비행선 안의 수소는 부력 생성용의 가벼운 몸빵일 뿐, 내연기관 구동용 연료가 아니다! 수소를 초저온에 액화시키거나 압축해서 꽉꽉 구겨넣은 게 아니었다는 걸 생각해 보자. 저 때는 그런 기술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화재라기보다는 가스 폭발에 가깝게 한번 쾅 화염이 치솟은 뒤엔.. 불은 생각보다 금방 꺼지고 없어졌다.

오히려 오늘날 최신 배터리 기술이 접목되어 만들어진 전기차들이 한번 불이 나면 불이 지독하게 안 꺼져서 골칫거리이다. 그 작은 몸체에서 열과 불길이 끝도 없이 솟아오르기 때문에 엄청난 비열을 자랑하는 물조차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불을 끄는 게 아니라 자기가 몽땅 증발해 버린댄다.
그래서 불 끄는 데 물이 수만 리터가 필요하다는 거다. 비행선의 수소 탱크도 위험물이긴 하지만 저 정도로 에너지가 밀집된 위험물은 아니었다.

끝으로.. 힌덴부르크의 경우, 공중도 아니고 다 도착해서 하강과 주기(!!!) 거의 직전까지 가서 원인 불명의 화재가 발생했다. 수소가 빠져나가고 부력을 상실할 때도 생각보다 천천히 사뿐히 내려앉았다.
출입문 쪽이 바닥을 향하게 내려앉는 바람에 거기 있던 사람들이 탈출을 못 하고 죽긴 했다. 하지만 이것도 다 화재로 인한 사망이지, 추락 충격으로 인한 사망은 전혀 아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힌덴부르크가 미국에 다 와서 사뿐히 내려앉는 최후의 모습이 일단 영화 필름 기록으로 남아 있다. 여러 방송사에서 촬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꽃이 튀고 화재가 발생하는 결정적인 순간엔 하필 아무도 촬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그 모습은 참 안타깝지만 기록이 없다!! 폭발 사고가 나는 모습이 생생히 촬영된 챌린저 우주왕복선과는 상황이 달랐다. (☞ 당시 기록 영상. 2:53~54 사이)

오늘날 전해지는 최후 모습을 보면.. 둥실둥실 기지로 내려가다가 (중간 생략) 갑자기 불길에 휩싸인 채 기우뚱 상태..로 화면이 바뀐다. 눈부신 화염으로 인한 광량차 때문에 하늘 배경은 갑자기 저녁처럼 어두워져 있고 말이다.

1975년에는 나치에 반대하는 유대인 공작원이 힌덴부르크 안에다가 몰래 폭탄을 심었다는 음모론을 넣어서 '힌덴부르크'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긴 했다.
그러나 음모론은 음모론일 뿐.. 도대체 어디서 불이 갑자기 왜 났는지.. 힌덴부르크의 사고 원인은 결국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공식적으로 '불명'으로 처리됐다.

저 당시에 사람이 타는 비행선에 위험한 수소가 잔뜩 들어있었던 이유를 아는 분들은 이미 아실 것이다. 안전한 헬륨은 수소보다 더 비싸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그 당시 미국이 적성국인 나치 독일에다가는 헬륨을 수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어찌나 물자가 풍부했는지 독일을 상대로는 헬륨을 안 팔고, 일본을 상대로는 석유를 안 팔아서 추축국들을 똥줄 타게 만들었다. 참 흥미로운 점이다.

여담이지만.. 옛날에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 역에서 안 중근 의사에게 저격 당했을 때 말이다. 이건 중요한 행사이니 러시아에서 전 과정을 영화 필름으로 녹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영상을 일본에서 입수해서는 이토가 총 맞는 장면은 완전히 폐기하고 없애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토의 최후 영상도 이미 쓰러져서 실려가는 장면만 녹화됐지, 안 중근이 나오고 저격 당하는 장면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이건 마치 힌덴부르크 비행선의 최후와 비슷한 구석이 느껴진다.

4.
저렇게 갑자기 불길에 휩싸여 추락하는 힌덴부르크의 모습을 보고 어느 기자가 너무 멘붕해서 "Oh the humanity!!" 무슨 세상 종말 인류 멸망급의 감탄사를 내뱉었다. Doom Comics에도 나오는 대사인데 그게 이 힌덴부르크 사고에서 유래됐구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몸소 이 지옥의 괴물들을 무찔러 주면 뭘하나~ 지구가 이미 방사능에 오염돼 버렸는걸.. 그럼 우리 아이와 아이의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오~ 인류여!!! (oh the humanity!!)"
이런 미친 병맛 중2병 쩌는 개드립 대사가 있다~~~ ㅠㅠㅠㅠㅠㅠㅠ

5.
비행선의 비행 원리와 관련하여 혹시 이런 생각이 들지 않으려나 모르겠다.
탱크 안에다가 수소나 헬륨 따위를 넣을 게 아니라, 공기를 싹 빼내서 아무 물질도 없는 진공으로 만들어 버리면 어떨까? 진공 비행선은 만들 수만 있다면 수소 비행선보다도 더 가볍고, 폭발 위험도 없지 않겠느냐 말이다.

옛날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진작부터 했었다. 그러나 이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지구의 대기압이라는 게 진공을 호락호락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힌덴부르크 같은 거대한 비행선이 내부가 진공이면.. 대기압에 짓눌려 금세 짜부러져 버린다.
그리고 그 압력을 버틸 정도로 튼튼한 진공 탱크는 두꺼운 금속 재질이 필수이며.. 그러면 너무 무거워져서 어차피 비행선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뭔가 영구기관 같은 딜레마에 빠진다~!

비록 비행선이 오늘날 같은 정교한 엔진이 탑재된 물건은 아니지만, 저걸 만드는 것도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옛날에 마찰이라는 물리 현상을 모르던 시절엔 사람들이 자연이 물체가 움직이는 걸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처럼 대기압이라는 걸 모르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자연이 진공을 싫어한다, 진공을 만드는 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거라고 생각했을 법도 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4/06/14 08:35 2024/06/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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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을 개발하는 프로그래머는 클라이언트 내지 서버 개발자로 역할이 크게 나뉜다.

사용자가 자기 머신에(PC 내지 폰) 직접 설치해서 구동하는 그 exe / apk야 클라 개발자의 작품이다.
현란한 그래픽을 구현하고, 같은 하드웨어에서 화면 프레임 수를 늘리려고 고생하는 애들 역시 클라 개발자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용자들을 동시에 수용하고 계정 정보를 관리하고, 이것들이 해킹당하지 않게 보호하고, 클라가 뿌릴 게임 내부 상태를 전해 주는 건.. 서버 및 서버 개발자의 몫이다.

클라 프로그램이 뻗는 건 그 사용자만의 문제이지만, 서버가 뻗는다면....;;;; 뭐 그렇다.
조금 어설프게 비유하자면 클라는 또박또박 보도를 하는 뉴스 앵커이지만, 서버는 뉴스 대본을 생성하고 보도 순서와 분량을 정하는 보도국뻘 된다.

그런데 데스크톱이나 모바일 '앱' 말고 웹 개발로 가면.. 프런트 엔드와 백 엔드라는 계층 구분이 있다.
웹 프로그램은 머신에 설치되는 게 아니라 웹브라우저 화면에서 바로 구동된다. 그렇기 때문에 개념적으로는 클라라는 게 없고 서버 프로그램만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거기서도 계층 구분이 있다. 사용자한테 보이는 부분, 더 기술적으로는 js html css처럼 서버로부터 받기는 했지만 사용자의 웹브라우저에서 구동되고 사용자가 소스를 직접 볼 수 있는 부분은 프런트 엔드이다.
그 반면, 저런 html을 생성하는 프로그램이라든가 DB처럼.. 진짜로 서버에서만 돌아가고 사용자가 코드를 볼 수 없는 부분은 백 엔드라고 불린다.

프런트 엔드 웹 개발자는 웹 '디자이너'와 영역이 겹치며 같이 작업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백 엔드는 디자이너와의 접점이 없으며, 그 대신 Java, C#, 심지어 C++처럼 머신 종속적인 데스크톱용 프로그래밍 언어와 접점이 있을 수 있다. (사용하는 프레임워크가 무엇이냐에 따라)

글쎄, php는 딱히 기계 종속적이지 않으면서 백 엔드 개발에 최적화된 언어인 듯하다.
JavaScript야 웹 개발계의 유니코드요 세계공용어로 등극했으며, 프런트와 백에서 모두 쓰이고 있다.

원래 컴퓨터 업계에서 '프런트/백 엔드' 이런 말은 컴파일러에서 주로 쓰이던 용어였다. 구문 해석해서 parse tree 내지 IR(중간 표현)을 생성하는 게 프런트이고, 이걸로부터 실제 머신 코드를 생성하고 최적화도 하는 게 백이었는데.. 2000년대 이후부터는 웹 개발에서의 계층을 구분할 때도 저런 용어가 쓰이게 된 것이다.

1990년대.. 웹의 초창기에는 웹만을 위한 프로그래밍이라는 개념이 아주 희박했다. 프런트/백의 엄밀한 구분도 없었고 온갖 비표준 파편화 기술들이 난립했었다.
프런트 엔드에 속하는 건 사용자가 폼에 입력한 값이 올바른지 로컬에서 체크해서 에러 메시지 띄우는 수준의 아주 간단한 코드?? 이런 코드는 html 코드의 주석 안에 자그맣게 짱박혀 있곤 했다.;; html이라는 문서가 main이지, 이런 코드는 약간의 동적 요소만 가미해 줄 뿐,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

하긴, html 자체를 동적으로 생성하는 기술을 공부해서 DB 만지고 게시판 같은 거 자작하는 게 지금으로 치면 백 엔드 개발이었겠다. CGI 역시 백 엔드의 범주에 드는 초창기 기술일 테고. =_=;; 옛날 제로보드 스킨은 일종의 프런트 엔드 개발이었겠다. ㄲㄲㄲ
플래시니 Java 애플릿 같은 건 물론 프런트이고, 지금의 관점에서는 특정 기업 솔루션에 종속적인 비표준 기술이 됐다.

프런트 엔드에서 돌아가는 웹 프로그램 코드는 특정 기계어로 컴파일되지는 않는다. 무슨 C/C++ 프로그램처럼 저수준 메모리 문제나 보안 문제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특정 JavaScript 코드를 실행함으로써 메모리· 보안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건 그 브라우저에 내장된 js 엔진의 버그이지, js 코드의 버그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문제 있는 js 코드는 다른 부작용 없이 깔끔하게 실행이 거부되고 에러 메시지와 함께 튕기기만 돼야 할 테니 말이다.

그 대신 그 코드는 보통 난독화 처리가 돼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코드가 노출돼 있다고 해서 사용자가 그 코드를 읽어서 뭔가 로직을 파악하기는 매우 난감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웹 프로그래밍에서 보안의 최대 관심사는 buffer overrun 같은 부류가 아니라.. 신뢰할 수 없는 임의의 외부 문자열이 코드나 태그, SQL 따위로 인식되어 실행되지 않게 하기 위주인 것 같다. C로 치면 % format 문자열에다가 동적 생성된 외부 문자열을 공급하지 말라는 것과 비슷하다.

문득 드는 생각은.. 웹 개발을 위한 전용 IDE가 있을까?
옛날에 나모나 드림위버, FrontPage 같은 위지윅 html 에디터가 있었고.. Visual Studio 6 시절엔 Visual InterDev라고 비베 냄새가 나는 웹 개발 IDE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런 건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유행이 지나고 한물 갔다. 심지어 마소에서 Expression Studio라고 새로 만들던 웹 개발 저작도구도 2010년대 초반에 개발이 중단됐다.

웹은 과연 IDE의 무덤인지.. 개발에 이클립스 내지 Visual Studio Code 같은 범용적인 에디터/IDE만 쓰이는 것 같다.

※ 비유 개드립

  • "웹 디자인 - 웹 프런트 엔드 개발 - 웹 백 엔드 개발"은 뭔가 "장갑차 - 전차 - 자주포" 순으로 성향이 바뀐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ㄲㄲㄲㄲㄲㄲ
  • 프런트 엔드에서 css / js / html라는 역할 구분 세분화는 입법 사법 행정 삼권분립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 PC용 앱은 일반 봉지 라면, 모바일 앱은 컵라면 사발면.. 그리고 웹사이트를 구동하는 프로그램은 식당 납품용으로 대량 판매하는 라면 사리 내지 스프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 웹 개발이나 컴파일러뿐이겠는가. 인공위성은 프런트 엔드, 발사체는 백 엔드 기술인 것 같고.. 자동차에서도 주행과 관련은 없지만 탑승자가 대면하고 사용하는 부품들은 프런트요, 엔진룸 안에서 차량을 굴리는 데 기여하는 부품은 백에 대응하는 듯.. 이런 식의 구분은 다른 여러 분야에도 존재한다.

※ 모바일 관련

mobile이라는 말이 원래는 물리적인 이동, 교통과 관련된 단어였다. 미술 조형물 모빌이라든가, automobile 자동차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관련 '통신' 뉘앙스가 더 짙어졌다.
그리고 우리말은 참 희한하게도 '모빌'은 통상적인 의미, '모바일'은 통신 의미로 분화됐다. 마치 '도트/닷', '네트/넷'의 뉘앙스 변화와 비슷한 재미있는 현상이다.
'통신사'가 지금이야 SK 텔레콤 같은 게 먼저 떠오르지만 원래 연합뉴스 같은 언론사 용어였다는 것도 생각해 보자.

Posted by 사무엘

2024/06/11 19:35 2024/06/1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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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스코(포항 제철) 1고로: 1973 ~ 2021 (48년)

1960년대 말, 울나라에서 그 깜냥에 제철소를 만들겠다니 말도 안 된다면서 선진국 금융기관들에서는 울나라에 돈을 빌려 주지 않았다. (보나마나 실패할 것이고, 빌려준 돈은 떼일 것이다) 그래서 울나라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갓 수교를 맺은 일본으로부터 일제 시대 착취 피해자 배상 명분으로 받았던 보상금과 차관을 슬쩍 전용해서 제철소의 건설에다 투입했다.

그러니 포항 제철 박 태준 초대 회장은 기공식 때 "우린 조상님들 피값으로 제철소를 만든다. 감히 실패한다면 다같이 우향우 해서 쪼기 영일만 바닷물에 뛰어내려서 죽어서 속죄하자" 이렇게 결의했었다.
1973년 6월 9일, 이렇게 만들어진 고로에서 시뻘건 쇳물이 쏟아져 나오자 박 회장과 측근들은 만세 부르고 부둥켜안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한국 철강 협회에서는 6월 9일을 '철의 날'이라고 자체적으로 기리는 기념일로 정했다. 고속도로를 만든 다음에 제철소, 제철소도 만든 그 다음에야 자동차 공장과 조선소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엄청난 고온에서 불순물 없이 품질 좋고 단단한 철을 저렴하게 많이 뽑아내는 건 첨단 기술이 필요한 일이다.

바로 그 제1고로가 수명이 한참 다해서 지난 2021년 12월 29일에 종풍식을 하고 폐쇄됐다.
참고로 용광로는 마치 냉동실이나 원자로처럼 일부러 끄고 대대적인 정비를 할 때를 제외하면 중간에 가동이 절대로 중단돼서는 안 되는 크리티컬한 물건이다. 뜨거운 쇳물이 24시간 내내 흐르고 있어야지, 그게 아무 준비 없이 식어서 굳어 버리면.. 고로에 엉겨붙어서 장비가 다 망가지기 때문이다.

포스코 측에서는 이 1고로를 보존하고 활용해서 철강 박물관 같은 걸 만들려는가 보다. 마땅히 그리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상수도 제1정수장이 지금 수도 박물관으로 바뀐 것과 비슷한 활용이다.

2. 고리 원자력 발전소 원자로 1호기: 1978 ~ 2017 (39년)

포항제철은 만드는 데 3년이 걸렸지만, 울나라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는 더 어려워서 그런지 6년이나 걸렸다. 1972년부터 박통의 8대 유신 시절 내내 만들어서 1978년 4월 말에야 상업 운전이 시작됐다.

원자력 같은 어려운 전문 분야는 박통의 공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원자력이라든가 항공· 우주 쪽은 일찍이 1950년대 후반, 할배 때부터 외국 유학파 공돌이들을 국비장학생 명목으로 육성했기 때문이다. 그 가난하던 시절에 나랏돈을 근근이 쪼개서 말이다.

그랬기 때문에 나중에 박통 시절에 "부디 귀국해서 우리나라를 위해서 일해 주시오~" 이렇게 읍소할 한국인 엘리트 공돌이들이 있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 고리 원전의 건설에도 경부 고속도로나 포항제철, 현대차, 삼양 라면 같은 일화가 전해지는 게 더 있는지 궁금하다.

원자로는 가동을 중단한다고 다가 아니다. 완전히 폐쇄하고 해체하는 데만 10수 년씩 걸린다. 더구나 잔여 시설을 박물관으로 개조하는 것도 좀.. 곤란할 것이다. =_=;;
고리 다음으로 월성 원자력 발전소 1호기의 생애는 1983 ~ 2018이었다. 그 시절 뭉 머시기 정권의 탈원전 기조에 희생되어 실제 성능과 안정성 대비 무리해서 일찍 퇴역하게 됐다고 난 알고 있다.

3. 고가도로들

다음으로 교통 인프라 차례다.
대도시는 길거리에 차가 너무 많이 다니다 보니 차선과 중앙선을 긋고, 폭을 넓혀서 차로를 늘리고, 교차로에는 신호등을 설치하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신호 대기가 없는 입체 교차 고가도로를 만드는 게 상징처럼 됐다.
옛날엔 그랬다. 우리나라는 박통 시절에 이걸 집중적으로 많이 만들었다.

시내 도로뿐만 아니라 고속도로도 옛날에 산을 꼬불꼬불 타넘던 걸 터널과 고가를 남발하면서 곧게 뻗은 길로 다시 만들곤 했다. 그러면 예전의 길은 국도나 지방도로 격하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너무 노후하고 붕괴 위험이 커지고, 굳이 유지 보수할 명분이 사라진 고가 도로는 나중에 도로 철거되기도 했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열거해도 이 정도이다.

  • 아현(1968-2014)
  • 청계(1976-2003)
  • 서울 역(1969-2015)
  • 서대문(1971-2015)

요즘은 옛날보다는 친환경, 보행자 위주 교통 인프라를 추구하고 있기는 하다. 그래도 예전엔 저런 것들이 조국 근대화 흔적이고 상징이었다.

그나저나.. 이웃 일본에서는 1950~60년대에 수도 고속도로라는 걸 온통 고가도로로 도배하면서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시설이 온통 낡고 노후화해서 대대적으로 보수를 해야 하는데 그게 돈이 한두 푼 드는 일이 아니어서 그럴 엄두를 못 낸다고 한다.
재정이 부족하니 장기적으로 고속도로 톨비 징수를 폐지하려는 계획도 완전히 물 건너갔다. 이런 것도 참 문제이다.;;

4. 서울 지하철 일명 초저항: 1974 ~ 2004 (30년)

끝으로, 이건 건물이나 시설이 아니라 차량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역사상 최초로 운행되었던 지하철 전동차는 아주 의미심장한 역사 유물이다.

전방에 출입문이 있고 단면이 식빵처럼 생긴 바로 그 차량. 운영 회사에 따라 파랑(철도청) 또는 빨강(지하철 공사)으로 나뉘었던 차량이다. 동호인 용어로는 '초저항'(초기 저항)이라고 한다.
얘는 1986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도입되었다. 초기 도입분은 일본 히타치 사에서 생산했지만, 그 뒤로 한국과 일본의 여러 기업이 이 차량의 생산에 개입했다.

얘는 1호선뿐만 아니라 2호선(지하철 공사)과 안산선(철도청)에서도 활약했었다. 하지만 현재는 '개조 저항'이라고 정말 극소수 낡은 차량의 일부 객차 짬뽕 편성에서나 이 차량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거 말고 오리지날 식빵 모양을 유지하던 그 차량은 2004년경에 다 퇴역해서 지금은 없다.

코레일과 서울 메트로 모두 이 차량을 소중하게 생각해서 자기 방식대로 한 량씩 보존해 놓고는 있다. (철도박물관 vs 신정 차량기지)

Posted by 사무엘

2024/06/09 08:35 2024/06/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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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법자와 범죄자

“우리는 무법자(outlaw)이지 범죄자(criminal)가 아니다.”라고 자기는 아예 법 따위에 매이지 않는다는 걸 ㅂㅅ 같지만 멋있게(?) 표현한 말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일반적으로 법이란 게 없이는 통제가 안 되고 사회를 유지할 수 없는 존재이다. 로마서 13장에 나오는 “위의 권위에 복종하라”는 단순히 악법도 법이니 닥치고 '까라면 까'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성경적으로 대놓고 잘못된 법은 어기더라도 그 법을 집행하는 권위를 일단 인정하고 처벌이라도 감내하라는 얘기이다.

그 어떤 악한, 심지어 북괴 같은 막장 국가라고 해도 법이 대놓고 "이 세상은 어차피 약육강식이다. 마음껏 도둑질하고 약탈해도 좋다, 길거리에서 아무 여자나 마음껏 강간해라" 이렇게 돼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윗대가리 통치자 내지 그 주변 가족, 친지가 빽 믿고 내로남불로 저런 짓을 교묘하게 저지를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건 우리가 신경 쓸 필요 없는 사항이다.

법이라는 게 상당수가 (1) 정당한 위법(사형 집행, 전쟁터에서 적군 죽이기, 정당방위), (2) 정당하지 않지만 고의성도 없는 위법(과실치사), (3) 고의적인 악행(살인), 거기에다 추가로 (4) 스스로 옳다고 믿고 고의로 악행(신념형..).. 이런 걸 변별하는 시스템인 것 같다.

2. 연계 범죄

한번 죄를 짓고 나면 그걸 은폐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혹은 그걸로 궁극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서 다른 죄도 덩달아 왕창 짓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위조지폐를 만드는 애들은 그걸로 물건을 직접 사서 이득을 보는 게 아니다. 즉, 5만 원짜리 위폐로 5만 원짜리 물건을 사지 않는다!!
보통은 500원짜리 껌을 5만 원짜리 위폐로 결제하고, 거스름돈 49500원을 챙겨서 이득을 본다. 아니면 택시를 불러서 기본요금 거리만 가고는 비슷한 수법을 구사하거나.

이 짓은 통화위조죄에다가 사기죄까지 추가시킨다. 위폐를 받은 사람이 당하는 손해는 비슷하거나 동일하지만, 피의자의 죄질은 후자가 더 나쁘게 평가된다.
그것처럼.. 사람을 죽이면 살인죄인데, 살인은 보통 그걸로 그대로 끝나지 않는다. 증거를 인멸하려고 시체를 어디 숨긴다거나 심지어 토막낸다거나 훼손하면.. 이것도 전부 다 별개의 죄로 추가된다.
사람 죽이고 나서 그 상태 그대로 자수하거나 체포돼야만 살인죄 하나에만 걸린다. 법이 그렇게 돼 있다.;;

3. 화폐 위조와 화폐 훼손

위조지폐의 경우, 저렇게 통화위조나 사기죄뿐만 아니라 저작권법 위반으로도 형량을 늘릴 수 있다. 한국 은행이 지폐 도안 디자인에다가 칼같은 저작권을 걸어 놨기 때문이다. 으음~~ 영화· 음반이나 폰트뿐만 아니라 현금 비주얼도 문화 컨텐츠인 건가 싶다.

그런데 고액권 지폐 말고 동전은 원가 비용 대비 액면가가 워낙 낮아졌기 때문에 처지가 반대가 됐다. 10원짜리는 아예 녹여 버려서 금속값을 챙기는 게 남는 장사가 됐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저런 짓을 하다가 최초로 적발된 사람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동전을 녹여서 파는 행위를 죄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법이란 게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는 그걸 그냥 '폐기물관리법 위반' 명목으로 아주 가벼운 꿀밤 수준의 처벌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화폐 훼손을 금지하는 법은 내 기억으로 2011년쯤에야 새로 제정됐다.

4. 지능 범죄

법이라는 걸 잘 살펴보면 어떤 죄는 가족끼리 저질렀다거나, 합의가 잘 됐다거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형벌을 감경한다(반의사불벌죄).
그러나 어떤 죄는 가족끼리 저질러졌으면 오히려 가중 처벌한다. 그리고 단순히 형벌만 센 게 아니라 색출 자체를 다른 죄보다 더 악랄하게 하는 게 있다.

가령, 예비 음모 미수까지 몽땅 처벌한다거나, 정황· 의도를 거의 고려하지 않고 그냥 걸리면 그 결과만으로 무조건 처벌한다거나, 수사기관 측에서 함정 미끼까지 던지는 것 말이다. 마약이나 대규모 위조지폐, 산업스파이 같은 지능범죄에 대한 수사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편이다. 냉정하게 보자면 "무죄 추정의 원칙"이 좀 무시된다.
옛날에는 이와 관련하여 중한 죄에 대해서는 불고지죄(알고도 신고하지 않은 죄)나 연좌제(죄인의 가족· 친지까지) 같은 것까지 있었다. 고문은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그건 너무 미개하고 잔혹하다고 여겨져서 없어지는 추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기회 제공'까지는 지능범죄를 적발하기 위한 정당한 수사 기법으로 쓰인다. 그러나 대놓고 범죄 저지르라고 꼬드기는 '범의 유발'은 인정하지 않는다.
성경적으로는 볼 때 하나님이 인간을 시험하는 범위도 딱 거기까지이다. 이미 마음을 악하게 먹은 사람에게 더 기회를 주고 결과적으로 더 강퍅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아예 대놓고 무조건 죄 지으라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씹으면서 로봇 조종하듯이 조작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시피 우리나라 사법은 경찰이 형사 피의자를 잡은 뒤에 검찰이 넘겨받아서 기소하는 형태이다. 그런데 경찰만으로 물리력이 부족한 지경이 되면 군대가 투입되게 되고, 경찰만으로 수사력 정보력이 부족해지면 그 건은 국정원 같은 첩보기관..;;까지 나서서 공조하게 된다. 그런 관계이다.

5. 생명 윤리

우리나라는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인 안락사까지만 인정하며, 그 이상으로 더 선 넘는 적극적인 안락사는 인정하지 않는다. 이건 어지간한 노인들로 하여금 "나 같은 건 어서 나가 죽어 줘야 자식들이 편안해하겠지" 이런 무언의 압박 분위기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민감한 문제이다.

그런데.. 이런 극심한 저출산 시국에 앞으로 젊은 세대들이 그 많은 노인들을 도저히 부양할 수 없고, 자식 없는 홀애비 홀애미가 넘쳐나고, 복지 비용을 감당 못 해서 나라 살림이 파탄나는 지경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들이 옛날처럼 고려장을 대놓고 벌일 수는 없으니 방법은 하나.. "존엄하고 품위 있게 죽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 운운하면서 소극적인 안락사는 적극 장려하고 권장하게 되지 싶다. 지금 노인들에게 운전 면허 반납을 장려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뜻이다.

그 밖에 우리나라는 산모의 생명이 위험해진다거나, 강간으로 인한 임신, 태아에게 극악한 유전병· 장애가 있는 경우 등 아주 소수의 극단적인 상황에 한해서만 낙태를 허용한다. (모자보건법) 그런데 내가 알기로 지금은 낙태죄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에 저 조항 자체가 별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혼이나 파양도 각종 사기 결혼· 입양으로부터 선의의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수준으로만 규정돼 있다. 세상법이 성경 율법보다는 세부 디테일이 더 규정돼 있어야 하니까.. 가령, 중범죄 전과를 사전에 알리지 않은 것도 이혼 사유이다.

6. 나머지

(1) 공문서 위조, 통화 위조 같은 죄는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나라 자국 것만으로 한정이다. 딴 외국의 공문서는 한국 법의 관점에서는 다 사문서일 뿐이다. 이건 마치 다변수 함수에서 x로 편미분을 하면 y z 다른 변수들은 다 그냥 상수 취급일 뿐인 것과 비슷한 패턴인 것 같다. ㄲㄲㄲㄲㄲ

(2) 예전에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은 집합에서 조건제시법과 원소나열법의 차이와 같다고 얘기했던 바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정'도 개념적으로는 일반사면과 비슷하다. 조건제시이지, 원소나열이 아니다. 구원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로 예정됐다는 차원일 뿐, "특정 누구누구는 구원받기로 예정됐다, 지옥 자식 마귀 자식으로 처음부터 예정됐다"라고 생각해서는 심히 곤란하다. 하나님의 예정은 read-only operation이다.

(3) 우리나라는 사형 제도가 사문화돼 버렸고, 휴전도 사문화됐다. 통일 지향...?? 이건 헌법 차원에서 규정하는 이념이다만 이것도 이제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사문이 된 것 같다.
하다못해 이북 북괴조차 "남조선 괴뢰"라는 멸칭을 안 쓰고 우리나라를 무려 "대한민국"이라고 불러 주는 게.. 단순히 울나라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그냥 남남으로 생까려는 의도가 더 크니까 말이다. 욕쟁이 할머니가 정감(?) 있게 "이거나 쳐먹어 이 썩을놈아!" 이러다가 갑자기 정색을 하고 "고객님, 왜 이러십니까" 하는 걸 생각해 보시라. ㄲㄲㄲㄲㄲ

※ 행정부와 사법부의 관계

  • 법무부(法務部)는 사법부(司法府)가 아닌 행정부(行政府) 관할이다. 부의 한자도 다른 것에서 알 수 있듯, 府는 部보다 더 큰 집합이다.
  • 어느 범죄자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판결을 내리는 건 사법부의 판사이지만, 그걸 실제로 집행하라고 법무부장관에게 명령을 내리는 건..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다.
  • 비슷한 맥락에서, 범죄자들에게 징역을 때리는 건 사법부의 판사이다. 그러나 도중에 가석방이나 사면을 내리는 곳은 행정부 계층이다.

성경을 보면, 율법 같은 성문법이나 말씀 계시가 완성되지 않았던 옛날에는 하나님의 직접 개입이 잦았다. 이방인의 꿈에 나타나서 불륜· 간음을 저지하기도 하셨고(창세기의 아비멜렉), 민수기 같은 책을 보면 "이럴 땐 어떡할까요?" / "그럴 땐 이렇게 해라. 이걸 관례로 정착시켜라" 이런 패턴이 종종 나온다.

그것처럼.. 오늘날도 어떤 규칙이나 절차가 법으로 정식 제정되기 전엔 행정부 차원에서 긴급조치나 긴급명령이 먼저 발동된다. 그게 국회를 통해 정식 입법되고 나면 기존 명령은 폐지된다.
예를 들어 그 유명한 금융실명제만 해도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1993)"이던 것이 훗날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1997)"이라고 바뀌었다.

말이 나왔으니 사회 제도 중에서 '긴급'이 들어가는 것들을 더 살펴보면 이렇다.

  • 긴급자동차: 출동 중인 구급차나 소방차, 용의자를 쫓고 있는 경찰차가 대표적이다. 각종 교통법규 위반이 어느 선까지는 허용되며, 딴 차들로부터 양보도 보장받는다.
  • 긴급통화: 112 119 신고는 공중전화에서 돈 안 넣고도 할 수 있고, 개통되지 않은 휴대폰으로도 할 수 있다.
    119 신고는 우리 쪽에서 전화를 끊어도 통화가 끊기지 않는다;; 112 신고는 문자로도 넣을 수 있고, 급박한 상황에서 "짜장면 좀 배달해 주세요"라고 암호· 은어를 써도 신고로 접수될 정도로 민감하다. 그 말인즉슨, 긴급통화로 인정되는 이런 번호로는 장난전화를 더욱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 긴급피난: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에서 도저히 어쩔 수 없어서 남을 해친 것.. 아 이건 정당방위에 더 가깝고, 긴급피난은 남이 자기를 해치지 않았는데도 내가 먼저 사고를 친 것에 해당된다. 차량 급발진 때문에 남의 집 답벼락을 부쉈거나, 슈퍼 급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거나.. 어쨌든 둘 다 위법행위의 조각사유로 인정된다.
  • 긴급체포: 이건 경찰이 아닌 일반인이 구사할 일은 없는 용어이다만.. 암튼 중대한 범죄 현행범이나 용의자를 발견해서 무조건 당장 잡아야 할 때 '선체포 후영장' 차원에서 허용되고 시전된다.

※ 군대 식으로 법 적용하기

휴버대 같은 야쿠자 미화물을 보니 야쿠자(+ 그에 준하는 조폭들도 마찬가지)들은 체면에 살고 체면에 죽는 집단이라고 그런다.
현실의 군대는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집단이다. 그래서..

(1) 병사들이 밥 먹는 것은 단순히 공짜인 정도를 넘어, 전투력 유지를 위한 급양 명령의 수행이다. 즉, 이건 의무이니 정당한 사유 없는 무단결식은 징계감이다.
군대는 병사에게 그 어떤 벌이나 불이익을 주더라도 밥을 굶기는 건 절대 없다. 휴가를 짜를지언정 영내에서 식사를 짜르지는 않는다! 밥 굶기는 건 아동학대 같은 데서나 존재한다.

(2) 사관학교에는 자퇴가 없다. 다니다가 못 견뎌서 때려치우고 나오는 것도 먼저 요청을 한 뒤에 '퇴교 명령'을 받아서 나갈 뿐이다. 퇴교가 군대에서 그 생도에게 내리는 마지막 명령인 셈이다.
이렇게 나간 사람은 앞으로 장교는 그 어떤 임관 코스로도 영원히 다시 될 수 없다. 미필 퇴교자는 병이나 부사관으로 군생활을 다시 시작한다.

(3) 1년 6개월 이상의 금고· 징역 실형을 선고받은 심각한 범죄자는 군대에서도 안 받아 주고 전시근로역으로 처분시킨다.
그러나 그 죄목 자체가 병역기피(병역법 제86조) 쪽이라면 저런 열외에 해당되지 않는다! 빵 살고 나와서는 여전히 신검 다시 받아야 한다. 울나라 법이 그 정도로 허술한 바보는 아니다.

전과자가 돼서라도 군대를 안 가고 싶거들랑 병역기피가 아니라 다른 흉악범죄(?)를 확실하게 저지르거나 배째라 병역거부를(86조가 아닌 제88조) 시전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이야 3년짜리 대체복무 제도가 생겼으니 이것 때문에 전과자 될 일은 많이 없어졌다.

(4) 일단 입영은 했지만 그 뒤에 실종된 탈영병들한테는 말이다. 다들 잘 알다시피 나라에서 3년인가 간격으로 3군 참모총장 명의로 어서 자수하고 복귀하라는 명령을 꾸준히 내린다. 그래서 탈영죄의 공소시효(10년)가 끝나더라도 다음엔 명령 불복종죄를 물을 수 있다. 그걸 빌미로 장기 탈영병을 40대 후반의 아재가 될 때까지 군법 위반 범죄자로 만들고, 합법적으로 계~~~속 뒤끝 부리며 압박할 수 있다.;;;

법조인들 중에는 공소시효를 꼼수로 회피하면서 사람을 저렇게 들볶는 게 법리상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 허나,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병사들의 낮은 임금도 현행 근로기준법과 맞지 않고(지금은 굉장히 많이 오르긴 했지만), 군인은 민간인과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징병제 국가에서 특례가 적용돼야 한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아~ 그래서 결혼 선호 우선순위 2등이 군인이라는 개드립도 있는 거구나. 1등은 당연히 민간인 ㄲㄲㄲㄲㄲ
이륜차에 대한 취급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애매한 면모가 많은 것처럼, 군인이 받는 법적 취급도 그런 구석이 있는 것 같다.

(5) 전에 한번 했던 말일 텐데.. 나는 마 11:11 "하늘의 왕국에서 가장 작은 자라도 그 위대하다는 침례자 요한보다도 더 큰 자다"라는 구절을.. 이렇게 풀이한다.
율법 대신에 군법을 대입해서 말이다. 전자의 요한은 그야말로 광나는 전투화에 A급 전투복 입은 S급 울트라 모범병사요, 모든 간부들이 탐내면서 제발 군대에서 말뚝 박기만을 바라는 인재이다. 허나, 후자의 쬐끄레기는 그냥 전역한 민간인.. 즉, 이건 신분의 차이를 나타낸다.

민간인이라도 군인처럼 일찍 일어나고 규칙적으로 각 잡고 살고 치약으로 깔끔하게 살면 좋다.
그러나 민간인한테 저렇게 살지 않으면 잡혀가서 '군사재판'에 회부된다고 야바위를 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24/06/06 08:35 2024/06/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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