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씨는.. 최악의 불볕과 최악의 찜통은 별개 개념이라는 걸 온몸으로 입증해 보이는 듯하다. 미치겠다.;;
이렇게 이번 여름방학도 벌써 절반이 넘게 지났고 <날개셋> 한글 입력기 8.0이 나온 지도 역시 한 달이 좀 넘었다. 그 동안 서적 번역 등 다른 일에 관심이 쏠려 있어서 방학 전반부 동안은 사소한 이슈 말고 굵직한 기능을 설계하고 구현하는 코딩은 거의 못 하고 지냈다.
그래도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8.0은 별다른 새로운 버그 없이 높은 완성도로 잘 만들어졌다. 이 프로그램도 가까운 미래에는 꿈에도 그리던 전체 신규 기능 개발 완료와 고정· 정착 단계에 진입하는 게 아주 요원한 꿈은 아닐 것 같다.
국민 교육 헌장을 보면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라고 나와 있는데, 실상은 "안으로는 약 빨고 밖으로는 외계인 고문을 일삼으면서" 결과물을 내야 할 거 같다.
본인은 석사를 졸업한 지 이제 3년이 지났다.
내 석사 논문은 아시다시피 저 입력기의 이론적 배경과 구조, 주요 기능이 주제였다. 지금 동일 주제로 논문을 다시 쓰면 그때보다 수십까지는 아니어도 10수 페이지 정도는 더 써 넣을 분량이 있다.
가령, 다음 글자로 넘어갔을 때도 초성이 아니라 변함없이 종성 문맥으로 동작하는 '종성 지향 두벌식'은 6.7 버전에서 첫 도입되었으며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역사에서 무척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기능이지만, 논문이 다 완성되고 졸업하자마자 그 직후에야 추가된 기능이다. 그러니 논문엔 못 들어갔다.
7.9와 8.0대에서는 종성 지향 두벌식의 정반대 이념이며 두벌식 연구자의 떡밥이던 '초성 지향 두벌식'까지 추가되었다. '살 → 사라'가 아니라 반대로 '사ㄹ → 살ㅈ' 이런 식으로 되는 입력 방식 말이다.
전자는 별도의 날개셋문자 타입으로 구현된 반면, 후자는 '고급 입력기'가 제공하는 낱자 치환 옵션의 일환으로 구현되었다. 기술 계층이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이다.
또한 그때 이후로 키보드 입력이라는 물리적인 프로세스 자체에 대한 기술적 이해도가 더 깊어진 덕분에, 키 입력을 흉내 내는 기능이 독립된 날개셋문자 타입으로 추가되었다. 최근에는 입력 패드 구현체가 그런 키보드 입력이 드디어 지원되기 시작한 쾌거도 이뤘다.
이런 것들이 논문에 더 들어갈 수가 있었다는 뜻이다. 박사 졸업 이수 요건에 속하는 학술지 소논문에 이런 걸 적절히 투고할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엄연히 국어 정보학과 관련된 개인적인 연구 실적이니까.
- 한글의 고유한 특성과 활용 가능성: 한글은 IME가 필요한 복잡한 스케일의 문자이지만 중국· 일본어처럼 문장 단위가 아니라 1글자 단위로만 조합을 잡으면 된다. 이렇게 한글 같은 문자만이 처해 있는 특수한 상황에서 IME만이 제공할 수 있는 여러 편의 기능이 있을 것이다.
- 세벌식의 우수성: 두벌식은 자음 종류 구분과 음절 경계 구분을 위한 온갖 테크닉이 필요하다. 그러나 세벌식은 그게 기본적으로 되기 때문에 타자기나 두벌식에서는 불가능한 다른 응용 기능을 언어 의존적인 데이터 없이 바로 구현할 수 있다. PC에서 세벌식 입력 방식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 이 시스템의 엔진의 독창성: 한글 입력 방식을 규정하는 모든 세부적인 동작을 customize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두-세벌의 중간에 속하는 입력 방식도 구현 가능하다.
- 이 시스템의 구현체의 독창성: 이 엔진을 편집기, IME, 입력 패드라는 다양한 기술적인 구현체를 통해 제공한다.
지금 논문을 다시 쓴다면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위와 같은 네 카테고리로 더 분명하게 구분해서 깔끔하게 결론이나 초록을 썼지 싶다. 뭐 그건 이미 다 지난 일이고...
난 다음 박사 논문을 위해서는 "한글의 고유한 특성과 활용 가능성"이라는 기본 명제는 동일하지만, 입력이 아닌 출력에 속하는 한글 글꼴과 관련된 연구를 할 생각이다. 그러니 입력기는 빨리 마무리를 좀 지어야 한다.
논문 얘기가 너무 길어졌는데, 어쨌든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다음 버전에서 만날 수 있는 사소한 변화들을 늘어놓으면 다음과 같다.
1. 이제는 프로그램을 설치할 때, 원하는 구현체만 선택해서 설치할 수 있게 했다.
세 구현체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다.
항목 | 편집기 | 외부 모듈 | 입력 패드 |
형태 | EXE (32/64비트 하나만) | DLL (32/64비트 모두) | EXE+DLL (각각 32/64비트 모두) |
도스용 프로그램에 비유 | 자체한글 에디터 | 한글 바이오스 (입력 부분만) | 램 상주 키보드 인터럽트 유틸리티 |
기능 지원 범위 | 오로지 자기 내부 | 자기를 사용하는 타 프로그램 내부 | 실행 중인 모든 프로그램들 |
TSF A급 | O | △ (동작 환경에 따라 다름) | X |
Alt 지원 | O | X | O |
특이사항 | 자체 옛한글 글꼴, 텍스트 필터, 키 입력으로 붙여넣기. 성능 오버헤드가 가장 작음 | 명령 프롬프트 및 Metro UI에서 유일하게 동작 가능 | 구현체들 중 크기가 가장 작고 가벼움. 키보드 모드는 옵션으로 제공 |
2. 웹 브라우저 같은 외부 프로그램의 텍스트를 <날개셋> 편집기의 빈 문서 창에다가 drag & drop을 하고 나면 가끔 편집기의 프레임이 고전 테마 형태의 이상한 모양으로 일시적으로 바뀌는 문제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운영체제의 버그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현상이지만 Windows Vista부터 8.1까지 일관되게 발생하는 현상이고, 또 문제를 회피하는 방법도 있으므로 그걸 적용했다.
3. 도움말에서 "외부 모듈 → 알려진 버그" 부분에, 키보드 보안 프로그램으로 인한 오동작 가능성을 더 자세히 언급했다. 이런 문제가 있을 수 있는 프로그램은 크게 "IE 브라우저"뿐만 아니라 요즘은 "온라인 게임"이 더 중요하다. IME도 나름 키보드 입력을 가로채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디지털 서명이 없는 날개셋 같은 프로그램을 여타 보안 프로그램이 차단할 수도 있다.
5년 전에 스타크래프트 2가 출시 직후에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문제를 일으켰었는데, 앞으로 다른 게임에서 이런 부류의 문제가 계속 보고될 수도 있다.
4.
얼마 전, 인디자인 9에서 한글 입력과 관련된 귀찮은 문제가 출판 디자인 업계에서 거론된 적이 있었다. 한글 조합 중에 space, tab 등의 글쇠를 누르면 원래는 한글 조합도 중단되고 해당 글쇠 문자도 뒤에 입력이 돼야 한다. 그런데 인디자인은 이때 조합만 중단되고 해당 글쇠는 씹히기 시작했다. 그것도 예전엔 안 그러다가 최신 버전에서 갑자기 그러기 시작했다. space/tab이 아니라 IME가 인위적으로 처리를 하는 비한글 문자는 씹히는 문제가 없었다(세벌식 자판의 숫자처럼).
그런데 이와 비슷한 문제가 MS Word에서도 부분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 최근 확인되었다. "고급 입력기"가 제공하는 사용자 정의 조합이나 한글 출력 치환 기능을 이용해서 평범한 알파벳이나 숫자를 조합하는 상태를 만들고 나면, space, tab을 눌렀을 때 조합만 종료되고 해당 글쇠는 씹힌다. 그 반면, 한글이나 전각, 특수문자, 2글자 이상의 긴 조합을 만들고 있을 때는 그런 현상이 없다! 간단히 "일본어 히라가나/가타카나" 예제 유형만 MS Word에서 사용해 봐도 확인 가능하다.
TSF를 지원하는 다른 모든 프로그램들은 안 그러는데 오로지 MS 워드만 왜 저러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아니, 애초에 왜 그 타가 씹힐 수가 있는지도 이해가 안 되지만.. 문제의 증상과 해결(회피) 방법이 인디자인과 Word가 동일하기 때문에 도움말에 동일한 항목으로 보충 설명을 넣었다.
5.
끝으로,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About 대화상자에 Windows 10을 인식하는 데이터도 추가했다.
그리고 외부 모듈에서 옛한글을 사용하는 것과 관련된 추가 설명을 UI나 도움말에 넣었다. (시스템 계층에서 한글 표현 방식도 제대로 설정했는지 확인하라, 옛한글 글쇠배열을 가져오기만 하는 것과 빠른설정으로 총체적으로 맞추는 건 다르다 등)
지금까지 두벌식으로 옛한글 글쇠배열을 설정하면 4단 아랫자리에 있는 한쪽이 길쭉한 반치음들은 종성까지 입력 가능한 형태로 배당되었는데, 이제는 그걸 없애고 초성으로만 배당되게 했다. 이들 자음은 어차피 초성 형태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성 표현은 <날개셋> 편집기 내부에서 사용자 정의 영역 글자를 이용해서 편의상으로나 존재한다.
현대 한글 두벌식을 사용할 때는 ㄸ, ㅃ, ㅉ이 받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초성으로만 입력된다.
옛한글 두벌식일 때는 이들은 종성으로도 입력 가능하고 그 대신 반치음들이 그런 형태를 이어받게 되는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