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이야기

1. 석유를 나타내는 말

세상에 기름은 돼지 기름이나 버터 같은 동물성이 있고, 씨앗을 짜서 만든 식물성이 있으며, 한편으로 신기하게도 석유 같은 광물성이 있다. 석유는 사람이 먹을 수는 없지만 연소 내지 폭발할 때의 화력이 매우 좋아서 동력과 난방용 연료로 쓰이며, 플라스틱 같은 화합물을 만들 때도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한국어에서는 석유라는 단어의 어원이 말 그대로 '돌+기름'인데, 이는 영어 petroleum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앞부분 petro- 는... 진짜 말 그대로 성경의 '베드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베드로'가 무슨 뜻인지는 교회깨나 다닌 사람에게는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으리라. 정말 한국식으로 치면 돌이, 돌쇠에 딱 대응하는 이름이다. 乭이라고 한국식 한자까지 있다.

성경에는 '게바'(cephas)라고 해서 베드로의 히브리/시리아 식 번역 명칭도 요한복음과 고린도전서에서 몇 차례 나오는데, 둘 다 딱 stone이라는 뜻이다. 교회의 밑바탕을 가리키는 반석(페트라~~)보다는 개념적으로 작은 단어이며, 교회가 베드로의 위에 세워진 거라고 둘러대는 건 좀 말장난 오바이다. 아무튼..

petro 다음으로 oleum은 평범한 기름 oil이라는 뜻이고.. 그러니 petroleum은 그냥 '돌+기름'의 한자어 대신 라틴어 버전인 것이다. "일석" 이 희승과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미국식 영어에서는 이 단어를 잘 안 쓰고 어지간하면 다 '가솔린'에서 유래된 gas라고 싸잡아서 말한다. 좀 더 격식을 차린 영국식 영어에서나 석유 내지 주유소를 가리킬 때 "petro-"가 붙은 말을 쓰는 편이라고 본인은 들었다.

석유 원유를 분별 증류하여 나온 다양한 기름들 중, 오리지널 원유와 제일 밑의 중유만이 시커멓다.
휘발유와 LPG, 등유는 별도의 색소가 들어가지 않은 한 완전 무색 투명하며, 경유는 약간 노리끼리하다. 엔진 오일 정도 되면 좀 갈색에 가까워진다.

2. 국내 자원 사정

우리나라는 무슨 쿠웨이트나 사우디아라비아처럼 땅에서 석유가 펑펑 나고 전국민이 세금을 안 내도 될 정도인 그런 곳은 아니다. 다만, 원유를 수입해서 종류별로 잘 정제한 석유를 다시 수출해서 외화를 벌기는 한다. 이것도 나름 첨단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해에서 천연가스와 석유를 소량 채굴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시 영토· 영해를 통틀어서 기름이 단 한 방울도 전혀 안 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산유국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민망한 양이며, 몇 군데 개척한 유전 역시 곧 고갈이 예상된다. 화력과 원자력 대비 풍력· 태양력의 전력 생산량과 비슷한 비율이다.
그러니 큰 그림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석유가 나지 않으며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 지구가 적도 부분이 수십 km 남짓 더 길다고 해서 지구가 대체로 '구'인 사실은 변하지 않듯 말이다.

우리나라에 아주 많이 매장돼 있는 건 석유 대신 석탄이다. 그것도 남한 땅에 많이 있는 건 증기 기관이나 화력 발전, 제철 같은 동력· 산업용으로 적당한 역청탄· 갈탄류가 아니라 연탄으로 만들어 가늘고 길게 오래 태우기에 적합한 무연탄 위주이다. 하지만 무연탄은 난방 인프라가 가스로 바뀐 뒤에는 크게 쓸모가 없으니 난감한 일이다.

그래서 국내에서 석탄 채굴은 진작에 한물 간 사양 사업으로 간주되어 국가 차원에서 구조조정 됐다. 강원도 경제를 살리려고 강원랜드가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끝으로.. 무연 휘발유 할 때의 '무연'은 연기(煙)가 아니라 납(鉛) 성분이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석탄에서 무연탄은 진짜로 연기가 없다는 뜻이다. 석탄과 석유의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우리나라에 무연 휘발유가 처음 도입된 건 1987년 7월 1일부터이다.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가 도입된 시기(7월 6일)와 아주 비슷하다.
이때부터 새로 생산되는 차들은 무연 휘발유만 사용하게 조치가 취해졌으며, 5년 반 동안의 과도기를 거친 뒤 1993년 1월부터는 기존 유연 휘발유의 판매와 유통이 전면 금지되었다.

다시 말해 국내의 주유소에 "보통 휘발유/무연 휘발유"가 공존하던 시절은 딱 저 때.. 노 태우 시절과 거의 정확하게 오버랩 된다고 생각하면 정확하다. 응답하라 1988에는 그 고증이 반영돼 있었나 모르겠다. 이때 휘발유 값은 리터당 5~600원 이랬지 싶다.

옛날에는 수은이 건전지와 온도계에 쓰였지만(수은주) 지금은 안전 문제 때문에 안 쓰이고.. 석면이라든가 프레온 가스도 이제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그와 마찬가지로 유연 휘발유도 노킹 방지를 위한 '납' 성분 첨가제가 문제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3. 석유 비축 기지

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근처에 있는 지금의 하늘 공원이 옛날에는 '난지도'라는 하중도였으며, 오랫동안 쓰레기 매립장 역할을 해 왔다. 그 언덕 자체가 사실은 쓰레기 산이라는 게 지금으로서는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거기 근처에는 '매봉산'이라고 인공이 아닌 자연 언덕도 하나 있는데, 거기 기슭에는 난지도 쓰레기장이 조성된 시기와 비슷한 1970년대 중후반에 석유 비축 시설이 만들어졌다. 저 때는 오일 쇼크 때문에 국가적으로 상당한 경제 타격을 입은 상태였으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석유 비축량을 더 늘려야겠다고 충분히 생각할 만도 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쓰레기장에다 석유 기지까지.. 저기엔 서울 최외곽으로서 민간인 출입금지 님비 시설만 골라서 들어서게 됐다. 그러다가 지금은 더 버틸 수가 없어져서 난지도는 저 멀리 김포의 수도권 매립지로 대체되고, 석유 저장고 역시 다른 곳으로 이사 갔다. 서울 근교에 있던 군부대와 공장이 더 외곽으로 이사 가는 것과 동일한 현상이다.

그리고 매봉산에 있던 석유 비축 기지는 작년부터 잘 알다시피 문화 시설로 탈바꿈 중이다. 그렇게 하는 게 주변의 월드컵 경기장 내지 각종 공원들과도 잘 어울린다.

그럼 지금은 서울· 수도권 근교에 석유 기지가 전혀 없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서울의 동쪽 끝에 있는 아차산에서도 또 동쪽 기슭.. 행정구역상으로는 구리시에 한국 석유 공사에서 관리하는 기지가 있다. 보안 시설 기간 시설이니 지도에는 당연히 표시돼 있지 않으며, 산 속에서도 잘 숨겨져 있기 때문에 정규 등산로만 다녀서는 이런 게 있는 줄 눈치 채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조직 구조가 어찌 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한국 석유 공사는 옛날 유공(대한 석유 공사, 현재는 SK 에너지)과는 뿌리가 다른 공기업이다.
하긴, 학회 이름만 해도 분야가 비슷한데 "대한 ..학회"랑 "한국 ..학회"가 서로 따로 노는 경우가 있다만..

옛날엔 냉동 기술이 없었던 관계로, 여름에 얼음은 굉장히 비싼 사치품이었다. 석빙고니 동빙고· 서빙고 같은 창고를 만들어서 겨울철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얼음을 국가 차원에서 비축해서 관리해야 했다. 그리고 왕이나 외국 사신 같은 국빈 VIP가 납셨을 때에나 얼음보숭이를 만들어서 대접했을 정도였다.

그랬는데 이제 얼음은 가정집 냉동실에서도 만들고 구경할 수 있는 존재가 됐고, 얼음이 아니라 그 냉장고를 돌리는 전력 생산의 원동력(중 하나)인 석유를 국가에서 관리하게 된 셈이다.

4. 송유관

우리나라는 경제가 발전하고 자동차가 엄청 많이 보급되면서 석유의 소비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그래서 그 많은 석유를 유조차만으로 수송하는 것에 한계에 부딪히자.. 사람으로 치면 지하철을 건설하는 것과 비슷한 조치가 석유를 대상으로도 취해졌다. 바로 지하 송유관 건설이다.

장거리 송유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1980년대부터 하다가 1990년에 대한 송유관 공사가 설립됐다. 지하철로 치면 마치 서울 메트로나 서울 도시철도 공사가 창립된 것처럼 말이다. 이때까지 국내에는 서산-천안처럼 항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단거리 송유관 몇 군데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992년 말에야 인천과 김포 공항, 인천과 고양을 잇는 '경인 송유관'이 개통했으며 1997년 8월에 서울에서 울산-여수를 잇는 '전국구 송유관' 인프라가 완공됐다고 한다.
이걸 다 만들었다고 해서 송유관 공사가 할 일이 다 끝난 건 물론 아니다. 만들어진 송유관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기름 도둑을 잡아 내는 똑똑한 기술을 개발하고, 또 외국의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하기도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8/08/15 08:37 2018/08/1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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