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석유(휘발유, 등유, 경유..)가 아니고 전기도 아니고 뭔가 석유에 준하는 연료인 '가스'에 대해서 그 특성과 기술적인 디테일을 지금까지 잘 모르고 지냈다.
가스라는 건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한 물질이며, 종류별로 끓는점에도 차이가 있다. 끓는점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저장하고 활용하는 방법에도 차이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공기업에도 가스 공사와 석유 공사가 괜히 분리돼 있는 게 아니다. 채굴하고 다루고 사업을 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영어에서 egg가 계란도 되고 더 보편적인 알도 되듯(저그 럴커 에그..), gas는 보편적인 기체라는 뜻이 있는 한편으로 특별히 가연성 기체 연료 가스라는 뜻도 있고, 심지어 미국 한정으로는 가솔린 휘발유의 준말 역할까지 한다(gas station). 물론, 석유는 상온에서 액체인 반면(끓는점이 수십~수백 도), 가스는 끓는점이 얼마이건 상온과 지표면 대기압 하에서 말 그대로 기체라는 점은 공통이다(끓는점이 -수십 도).

알코올이 에탄올과 메탄올 두 종류로 나뉘는 것처럼, 연료--가열과 동력원 모두--로 쓰이는 가스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천연 가스인 LNG, 또는 석유 가스인 LPG. 두 이니셜에서 L은 모두 액화했다는 뜻이다.
LPG는 석유의 범주에 드는 추출물 중에서 그나마 분자량이 작고 제일 낮은 온도에서 기화· 증류되어 나오는 놈인 반면, LNG는 그보다 더 가볍고 석유의 범주를 벗어나는 물질이라는 차이가 있다. 다들 탄화수소 계열의 화합물인 건 동일하지만 말이다.

LNG의 주성분은 흔히 메탄 가스라고 불리는 메테인이며, LPG의 주성분은 프로페인(프로판..)과 뷰테인(부탄)이다. 하지만 뷰테인 같은 물질은 천연 가스와 같이 섞여서 추출되기도 하고 석유 원유에 녹아 있기도 하다. 그러니 출처의 경계가 모호한 구석이 있다.

석유는 장구한 시간 동안 화석화와 탄화까지 거친 뒤에야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메테인 정도는 식물 유기물이 잔뜩 부패할 때도 간단하게 생성된다. 괜히 '천연' 가스라고 불리는 게 아니며, 매장량도 석유보다 훨씬 더, 석탄 급으로 매우 풍부하다고 여겨진다. 우리나라 동해에서 많이 채굴되고 있는 것 역시 이것이다.

사실, 천연 가스는 애초에 유전 근처에서도 많이 채굴된다. 하지만 천연 가스를 따로 수집하고 내보내는 전문적인 시설이 없다면, 얘는 아깝지만 불태워서 없애 버리곤 한다. 가만히 놔두면 불시에 화재· 폭발 사고를 일으켜서 유전을 통째로 날려먹는 골칫거리 지뢰가 되기 때문이다.

LNG와 LPG 중 더 작고 단순한 설비로 인간이 당장 활용하기 더 용이한 것은 LPG이다. LPG가 좀 더 묵직한지라, 액화시켜서 작은 부피로 저장하고 수송하기 더 쉽기 때문이다.
LPG는 공기보다 무겁지만 LNG는 공기보다 가볍다. 그래서인지 단위 분자량당 열량도 LPG가 조금 더 크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가스레인지에서 사용하는 가스가 LPG였다. 얘는 무겁고 두꺼운 금속으로 만들어진 길쭉한 '가스통'의 형태로 배달하곤 했다. 본인은 어린 시절에 살던 집에서 가스 배달(?)이 오던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석유를 담는 통이 제리캔이나 드럼통이라면 가스는 저런 통에다가 담았던 셈이다.
또한 휴대용 가스레인지에서 쓰이는 일명 '부탄 가스', 그리고 라이터에 들어있는 액체 연료도 다 LPG 계열의 물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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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는데 요즘은 집집마다 가스통을 교환하던 번거로운 관행이 진작에 사라졌으며, 수도관이나 송유관처럼 가스관을 통해 가스 레인지나 가스 보일러에 가스가 손쉽게 공급되고 있다. 이건 도시 차원에서 '도시 가스'라는 명목으로 각 가정에 천연 가스를 연료로 공급하는 인프라가 구축된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다.

생각해 보면 이건 매우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긴, LPG는 가스 레인지에 쓰이고 난방용으로는 안 쓰였던 것 같다. 내 기억이 맞다면 연탄 아니면 등유 기름 보일러를 썼겠지?
참고로 국내에서 제주도는 2019년 현재까지도 내륙과 같은 도시가스 인프라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LPG 가스통과 기름 보일러가 여전히 현역이다. 하긴, 울릉도 같은 다른 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집집마다 가스관을 구축하고 연결하는 초기 비용은 분명 만만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게 일단 이뤄지고 나면 수입에 의존하는 석유 가스 대신, 더 풍부한 천연 가스를 굳이 힘들게 '액화'시키거나 압축할 필요 없이 기체 상태 그대로 손쉽게 공급할 수 있다.
천연 가스는 LPG 가스통 수준의 용기에 담기에는 효율과 경제성이 매우 떨어지며, 가스관이 저렇게 구축됐다면 그 관으로 굳이 석유 가스를 공급할 필요가 없다. 이는 전기 교통수단으로 치면 배터리 대신 전차선이 쫙 깔리는 것과 같다.

또한, 천연 가스가 약간이나마 더 안전한 것은 덤으로 얻는 장점이다. 얘는 누출돼도 공기보다 가벼워서 하늘로 싹 올라가 버리는 반면, 석유 가스는 누출되면 지면에 내려앉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쌓이고 쌓여 있다가 불꽃을 만나면 한꺼번에 펑 폭발해서 대형 사고를 일으키는 것이다. 연탄이 일산화탄소 중독 위험이 있다면 LPG는 이런 식의 누출과 폭발 위험이 있다.

이렇듯, 천연 가스는 액화시켜서 많은 양을 한데 저장하고 수송하는 기술이 개발된 뒤에야 에너지원으로 활용 가능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1) 파이프를 통해 있는 상태 그대로 공급하는 게 제일 좋겠지만, 그 정도 시설까지 구축할 여력이 안 된다면 (2) 온도를 -160도 가까이 낮춰서 액화시킨 LNG 형태로 수송한다(부피 1/600 감소).

선박만 해도 LNG선은 유조선보다 만들기 훨씬 더 까다롭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탄소가 붙은 천연 가스가 이 정도인데, 하물며 압축이나 액화가 더 어려운 쌩 수소는 연료로서의 실용화가 얼마나 더 난감할지가 같이 상상이 될 것이다. 그을음 없고 해양 오염 걱정도 없는(유조선의 기름 유출 사고..) 깨끗한 에너지원을 개척하는 일은 어떤 형태로든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유전에서 아까운 천연 가스를 그냥 불태워 없애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 것이다.

위의 (1), (2)보다 소규모 설비로 천연 가스를 꽉꽉 쑤셔넣는 방법은 저온 대신 고압을 미는 것이다. 일명 (3) 압축 천연 가스.. CNG이다. 이건 같은 부피의 탱크에 저장 가능한 가스의 양이 LNG의 1/3 남짓밖에 안 되지만(부피 1/200 감소) 천연 가스를 기술의 힘으로 기존 석유 가스처럼 활용 가능하게 하는 나름 합리적인 tradeoff이다. 얘는 짐작하다시피 교통수단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럼 이제 가스로 다니는 차량에 대해서 얘기를 해 보자.
가정용 연료에 LPG가 먼저 쓰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차량용 연료도 LPG가 먼저 쓰였다. LPG 차는 토크가 딸리는지 가속력이 약간 부족한 것 외에는 휘발유 차와 기술적으로는 그다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석유 연료를 통한 세수 확보 문제 때문에, LPG 승용차는 택시나 렌터카 같은 영업용 차량 형태로만 허용되었다. 자가용은 장애인이나 국가유공자만이 아무 제약 없이 소유 가능했다. 일반인은 경차, 7인승 이상의 큰 차, 아니면 5년 이상 차령의 중고차라는 괴상한 형태로만 LPG 차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점점 제약이 완화돼서 올해 4월부터는 일반인도 자유롭게 LPG 차를 굴릴 수 있게 됐다. 자가용 굴리는 서민들에게 석유 차만 강요해서 유류세를 걷는 것보다, 친환경 차를 타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나랏님이 판단한 모양이다. 안 그래도 요즘 미세먼지 때문에 이만저만 고달픈 게 아니니 말이다.

참고로 다마스와 라보는 같은 경차 승용차들처럼 연료가 휘발유일까, 아니면 여느 승합차와 트럭처럼 경유일까 문득 궁금했는데.. 어느 것도 아닌 LPG 전용이라고 한다. 휘발유는 돈 한 푼이 궁해서 생계형 경차 상용차를 뽑은 서민에게 어울릴 것 같지 않고, 디젤 엔진은 그 작은 차체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데 결국은 이도 저도 아닌 제3의 선택을 한 셈이다.

LPG 차량은 처음부터 제조사에 의해 LPG 전용으로 나온 것, 아니면 휘발유 차량이 개조되어 휘발유/LPG 겸용이 된 것 이렇게 두 계열로 나뉜다. 겸용의 경우 오지에서 가스 충전소를 못 찾으면 아쉬운 대로 휘발유로 달릴 수 있으니 좋긴 하지만.. 마치 전기 하이브리드 차량처럼 평소에 차가 더 무거워지고, 가스통 때문에 트렁크의 용량이 줄어든다는 단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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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가스는 디젤이나 하이브리드처럼 평소에 차를 엄청 많이 굴리는 운전자가 연료비 절감을 위해 고려하는 여러 카드들 중 하나인 것 같다. 초창기의 LPG 엔진은 마치 디젤처럼 추운 겨울에 시동이 잘 안 걸리는 문제가 있었는데, 이것은 LPI라는 직분사 기술이 개발되면서 그럭저럭 해결된 모양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천연 가스 차량이다. LPG 차량은 있어도 LNG 차량은 없다. 천연 가스는 자동차 수준 크기의 설비에서 액화해서 굴릴 수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CNG 형태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CNG 엔진과 LPG 엔진은 서로 호환되지 않으며, 충전소도 서로 다르다. 동일한 주유소에서 휘발유와 경유를 같이 팔듯이 동일한 가스 충전소에서 석유 가스와 천연 가스를 같이 제공하는 건 가능하지 않다.

CNG 엔진은 LPG 엔진과는 차원이 다른 신기술로 여겨지며, 국내에서는 시내버스의 형태로 먼저 등장했다. 마치 전국 지하철에 스크린도어가 단기간에 쫙 깔린 것처럼, 우리나라는 전국의 시내버스들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단기간에 CNG 기반으로 싹 물갈이 됐다.
이건 도시의 대기 오염을 완화하는 데 실제로 매우 큰 기여를 했다. 엔진이 달린 버스 뒷면에서 시커먼 그을음을 볼 일이 없어진 것이 그냥 이뤄진 게 아니다.

버스 말고 소형차 승용차가 처음부터 CNG 형태로 만들어진 건 현재로서는 없다. 안 그래도 LPG 충전소도 부족해서 난리인데 CNG는 뭐.. 버스에서도 CNG가 시내버스 수준에서만 머물고 시외· 고속버스 버전이 없는 이유는 엔진 출력 문제라기보다는.. 충전소 문제, 항속 거리 문제, 그리고 커다란 가스통으로 인한 짐칸 공간 감소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앞으로 CNG 차량이 늘어난다면 천연 가스 충전소는 오히려 건물의 기존 도시가스 인프라를 이용해서 구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기존 승용차를 CNG 겸용으로 개조하는 건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게다가 이건 진작부터 LPG 같은 일반인 접근성 제약이 없고 누구나 개조 가능했다! 같은 가스차여도 LPG와 CNG는 이렇게 법적· 기술적 계보가 달랐던 셈이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없으니 CNG 승용차는 그냥 아는 사람만 사용하는 전유물이 돼 왔다.

CNG도 몇 년만 굴리면 개조 비용을 회수하고도 남을 정도로 연료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절약된다고 한다. 다만, CNG는 충전소가 더 부족한데 항속 거리는 LPG보다 더 짧은 것이 분명 큰 단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잘 생각해 보고 선택해야 한다.

앞으로 수소, 전기 하이브리드 등 자동차의 에너지원은 더욱 다양해지고, 시대의 변화에 맞게 관련 법이나 규제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가스 엔진은 석유 가스건 천연 가스건 압축 착화가 아니라 휘발유 엔진처럼 점화 플러그가 쓰인다고 한다. 얘는 아무래도 경유보다는 근처의 휘발유와 성격이 비슷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걸로 디젤의 전담 영역인 커다란 버스까지 굴린다니 대단한 노릇이다.

여담으로..

  • 천연 가스를 수송하는 LNG선에는 원양어선의 생선 냉동 기능을 아득히 초월하는 초강력 초저온 냉동 기능이 필요하며, 천연 가스 기반 엔진도 덩달아 존재한다. 수송하던 LNG가 온도 관리가 안 되어 조금씩 기화해서 부피가 커져 버리고 팽창을 감당을 못 하게 되면, 그걸 엔진으로 보내서 배를 움직이기 위한 연료로라도 써먹게 해야 덜 아깝기 때문이다.
  • 석유는 저런 가스들과 달리 상온에서 액체이지만, 그래도 이런 일반적인 특성과 별개로 '유증기'라는 게 있기 때문에 여전히 취급에 주의해야 한다. 물이 일반적인 기압에서는 100도에서야 끓지만 그래도 일정량은 상온에서도 수증기 형태로 존재해서 공기 중의 습기를 형성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 그리고 가스를 보충하는 건 주유라고 안 하고 충전(??)이라는 용어가 정착해 있다. 교통카드의 돈도 충전하고 가스도 충전하고... 이때는 한자가 電(전기)이나 錢(돈)이 아니라 塡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9/10/24 08:33 2019/10/2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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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이야기

1. 석유를 나타내는 말

세상에 기름은 돼지 기름이나 버터 같은 동물성이 있고, 씨앗을 짜서 만든 식물성이 있으며, 한편으로 신기하게도 석유 같은 광물성이 있다. 석유는 사람이 먹을 수는 없지만 연소 내지 폭발할 때의 화력이 매우 좋아서 동력과 난방용 연료로 쓰이며, 플라스틱 같은 화합물을 만들 때도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한국어에서는 석유라는 단어의 어원이 말 그대로 '돌+기름'인데, 이는 영어 petroleum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앞부분 petro- 는... 진짜 말 그대로 성경의 '베드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베드로'가 무슨 뜻인지는 교회깨나 다닌 사람에게는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으리라. 정말 한국식으로 치면 돌이, 돌쇠에 딱 대응하는 이름이다. 乭이라고 한국식 한자까지 있다.

성경에는 '게바'(cephas)라고 해서 베드로의 히브리/시리아 식 번역 명칭도 요한복음과 고린도전서에서 몇 차례 나오는데, 둘 다 딱 stone이라는 뜻이다. 교회의 밑바탕을 가리키는 반석(페트라~~)보다는 개념적으로 작은 단어이며, 교회가 베드로의 위에 세워진 거라고 둘러대는 건 좀 말장난 오바이다. 아무튼..

petro 다음으로 oleum은 평범한 기름 oil이라는 뜻이고.. 그러니 petroleum은 그냥 '돌+기름'의 한자어 대신 라틴어 버전인 것이다. "일석" 이 희승과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미국식 영어에서는 이 단어를 잘 안 쓰고 어지간하면 다 '가솔린'에서 유래된 gas라고 싸잡아서 말한다. 좀 더 격식을 차린 영국식 영어에서나 석유 내지 주유소를 가리킬 때 "petro-"가 붙은 말을 쓰는 편이라고 본인은 들었다.

석유 원유를 분별 증류하여 나온 다양한 기름들 중, 오리지널 원유와 제일 밑의 중유만이 시커멓다.
휘발유와 LPG, 등유는 별도의 색소가 들어가지 않은 한 완전 무색 투명하며, 경유는 약간 노리끼리하다. 엔진 오일 정도 되면 좀 갈색에 가까워진다.

2. 국내 자원 사정

우리나라는 무슨 쿠웨이트나 사우디아라비아처럼 땅에서 석유가 펑펑 나고 전국민이 세금을 안 내도 될 정도인 그런 곳은 아니다. 다만, 원유를 수입해서 종류별로 잘 정제한 석유를 다시 수출해서 외화를 벌기는 한다. 이것도 나름 첨단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해에서 천연가스와 석유를 소량 채굴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시 영토· 영해를 통틀어서 기름이 단 한 방울도 전혀 안 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산유국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민망한 양이며, 몇 군데 개척한 유전 역시 곧 고갈이 예상된다. 화력과 원자력 대비 풍력· 태양력의 전력 생산량과 비슷한 비율이다.
그러니 큰 그림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석유가 나지 않으며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 지구가 적도 부분이 수십 km 남짓 더 길다고 해서 지구가 대체로 '구'인 사실은 변하지 않듯 말이다.

우리나라에 아주 많이 매장돼 있는 건 석유 대신 석탄이다. 그것도 남한 땅에 많이 있는 건 증기 기관이나 화력 발전, 제철 같은 동력· 산업용으로 적당한 역청탄· 갈탄류가 아니라 연탄으로 만들어 가늘고 길게 오래 태우기에 적합한 무연탄 위주이다. 하지만 무연탄은 난방 인프라가 가스로 바뀐 뒤에는 크게 쓸모가 없으니 난감한 일이다.

그래서 국내에서 석탄 채굴은 진작에 한물 간 사양 사업으로 간주되어 국가 차원에서 구조조정 됐다. 강원도 경제를 살리려고 강원랜드가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끝으로.. 무연 휘발유 할 때의 '무연'은 연기(煙)가 아니라 납(鉛) 성분이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석탄에서 무연탄은 진짜로 연기가 없다는 뜻이다. 석탄과 석유의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우리나라에 무연 휘발유가 처음 도입된 건 1987년 7월 1일부터이다.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가 도입된 시기(7월 6일)와 아주 비슷하다.
이때부터 새로 생산되는 차들은 무연 휘발유만 사용하게 조치가 취해졌으며, 5년 반 동안의 과도기를 거친 뒤 1993년 1월부터는 기존 유연 휘발유의 판매와 유통이 전면 금지되었다.

다시 말해 국내의 주유소에 "보통 휘발유/무연 휘발유"가 공존하던 시절은 딱 저 때.. 노 태우 시절과 거의 정확하게 오버랩 된다고 생각하면 정확하다. 응답하라 1988에는 그 고증이 반영돼 있었나 모르겠다. 이때 휘발유 값은 리터당 5~600원 이랬지 싶다.

옛날에는 수은이 건전지와 온도계에 쓰였지만(수은주) 지금은 안전 문제 때문에 안 쓰이고.. 석면이라든가 프레온 가스도 이제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그와 마찬가지로 유연 휘발유도 노킹 방지를 위한 '납' 성분 첨가제가 문제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3. 석유 비축 기지

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근처에 있는 지금의 하늘 공원이 옛날에는 '난지도'라는 하중도였으며, 오랫동안 쓰레기 매립장 역할을 해 왔다. 그 언덕 자체가 사실은 쓰레기 산이라는 게 지금으로서는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거기 근처에는 '매봉산'이라고 인공이 아닌 자연 언덕도 하나 있는데, 거기 기슭에는 난지도 쓰레기장이 조성된 시기와 비슷한 1970년대 중후반에 석유 비축 시설이 만들어졌다. 저 때는 오일 쇼크 때문에 국가적으로 상당한 경제 타격을 입은 상태였으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석유 비축량을 더 늘려야겠다고 충분히 생각할 만도 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쓰레기장에다 석유 기지까지.. 저기엔 서울 최외곽으로서 민간인 출입금지 님비 시설만 골라서 들어서게 됐다. 그러다가 지금은 더 버틸 수가 없어져서 난지도는 저 멀리 김포의 수도권 매립지로 대체되고, 석유 저장고 역시 다른 곳으로 이사 갔다. 서울 근교에 있던 군부대와 공장이 더 외곽으로 이사 가는 것과 동일한 현상이다.

그리고 매봉산에 있던 석유 비축 기지는 작년부터 잘 알다시피 문화 시설로 탈바꿈 중이다. 그렇게 하는 게 주변의 월드컵 경기장 내지 각종 공원들과도 잘 어울린다.

그럼 지금은 서울· 수도권 근교에 석유 기지가 전혀 없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서울의 동쪽 끝에 있는 아차산에서도 또 동쪽 기슭.. 행정구역상으로는 구리시에 한국 석유 공사에서 관리하는 기지가 있다. 보안 시설 기간 시설이니 지도에는 당연히 표시돼 있지 않으며, 산 속에서도 잘 숨겨져 있기 때문에 정규 등산로만 다녀서는 이런 게 있는 줄 눈치 채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조직 구조가 어찌 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한국 석유 공사는 옛날 유공(대한 석유 공사, 현재는 SK 에너지)과는 뿌리가 다른 공기업이다.
하긴, 학회 이름만 해도 분야가 비슷한데 "대한 ..학회"랑 "한국 ..학회"가 서로 따로 노는 경우가 있다만..

옛날엔 냉동 기술이 없었던 관계로, 여름에 얼음은 굉장히 비싼 사치품이었다. 석빙고니 동빙고· 서빙고 같은 창고를 만들어서 겨울철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얼음을 국가 차원에서 비축해서 관리해야 했다. 그리고 왕이나 외국 사신 같은 국빈 VIP가 납셨을 때에나 얼음보숭이를 만들어서 대접했을 정도였다.

그랬는데 이제 얼음은 가정집 냉동실에서도 만들고 구경할 수 있는 존재가 됐고, 얼음이 아니라 그 냉장고를 돌리는 전력 생산의 원동력(중 하나)인 석유를 국가에서 관리하게 된 셈이다.

4. 송유관

우리나라는 경제가 발전하고 자동차가 엄청 많이 보급되면서 석유의 소비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그래서 그 많은 석유를 유조차만으로 수송하는 것에 한계에 부딪히자.. 사람으로 치면 지하철을 건설하는 것과 비슷한 조치가 석유를 대상으로도 취해졌다. 바로 지하 송유관 건설이다.

장거리 송유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1980년대부터 하다가 1990년에 대한 송유관 공사가 설립됐다. 지하철로 치면 마치 서울 메트로나 서울 도시철도 공사가 창립된 것처럼 말이다. 이때까지 국내에는 서산-천안처럼 항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단거리 송유관 몇 군데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992년 말에야 인천과 김포 공항, 인천과 고양을 잇는 '경인 송유관'이 개통했으며 1997년 8월에 서울에서 울산-여수를 잇는 '전국구 송유관' 인프라가 완공됐다고 한다.
이걸 다 만들었다고 해서 송유관 공사가 할 일이 다 끝난 건 물론 아니다. 만들어진 송유관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기름 도둑을 잡아 내는 똑똑한 기술을 개발하고, 또 외국의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하기도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8/08/15 08:37 2018/08/1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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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유

휘발유(가솔린)와 디젤은 내연기관 기반 자동차의 양대 동력원이다. 양 엔진의 차이점이야 자동차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기초 상식 축에 든다. 하지만 기계공학적으로 고찰했을 때 같은 2또는 4행정 엔진이면서 두 엔진이 본질적으로 왜 그런 차이가 발생하는지, 왜 양 엔진이 요구하는 연료에 차이가 있는지 같은 것까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해당 분야 전공자 공돌이가 아니면 흔치 않다. 물론 본인도 그만치 잘 안다는 뜻은 아니다.

휘발유, 등유, 경유 같은 연료는 석유를 분별 증류 기법으로 추출하어 얻어진다. 소를 한 마리 잡고 나면 앞다리 뒷다리 등심 안심 같은 다양한 부위별로 고기가 나오고 내장과 뼈도 나오듯, 석유도 그 자체는 다양한 탄화수소 화합물의 복잡한 혼합물이다. 그래서 끓는점이 겨우 몇십 도에서 대략 300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질이 섞여있다. 밀도는 기름답게 물보다 약간(수~10% 남짓) 가벼운 정도.

원유는 보통 시커먼 색깔인 반면, 정제된 차량용 연료는 시커멓지 않고 오히려 투명에 가깝다는 게 인상적이다. 갓 캐낸 원유에서 자동차에 엔진에다 주입해도 탈이 안 날 정도의 깨끗한 연료를 추출하는 것은 바닷물· 강물로부터 식수를 얻는 것 이상의 첨단 기술이다. 그래서 산유국이라 해도 정제 기술이 마땅찮으면 외국에서 석유를 역수입해야 하며, 반대로 땅에서 석유가 안 나는 우리나라 같은 나라도 역설적으로 석유를 수출하기도 한다.

휘발유 엔진은 말 그대로 석유에서 가볍고 휘발성이 매우 높은 물질을 연료로 사용하며, 디젤 엔진은 휘발유보다는 밀도가 더 높고 불이 덜 잘 붙으며 끓는점도 더 높은 경유· 중유를 사용한다. 순수하게 제조 원가만 따진다면 둘은 가격 차이가 거의 없거나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휘발유가 더 저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세금 보정으로 인해, 주유소에서는 승용차 연료로만 쓰이는 휘발유가 범용성이 더 뛰어난 경유보다 더 비싸다.

요즘은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의 85% 정도로 책정돼 있다. 그러나 몇십 년 전에는 더 저렴해서 거의 6, 70%에 불과하기도 했다. 디젤도 승용차 연료로 많이 보급되었고, 또 환경 문제도 있고 해서 그나마 옛날에 비해 더 비싸진 것일 뿐이다. 그나저나 디젤 엔진이 왜 범용성이 더 뛰어난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얘기하도록 하겠다.

2. 휘발유 엔진과 디젤 엔진의 차이

휘발유와 디젤(앞으로 '엔진'이라는 단어의 표기를 종종 생략할 것임)은 서로 다른 연료를 사용하며 연료를 연소하는 방식이 다르다. 전자는 점화 플러그를 사용하지만 후자는 압축 착화 방식을 사용한다. 휘발유 엔진은 시동을 최초로 걸 때뿐만 아니라 시동을 유지하는 데에도 전기 에너지의 도움을 소량이나마 지속적으로 받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휘발유 차량은 점화 플러그도 차량의 성능에 큰 영향을 주는 부품이다. 얘는 폐차할 때까지 반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한 부품이 아니며 성능이 조금씩 열화되는 소모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엔진오일보다는 긴 주기이지만 그럭저럭 교체해 줘야 한다. 허나 이건 차덕 급이 아니면 인지하기 쉽지 않은 사실이다.

뭐, 디젤도 전기 '불꽃'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일 뿐, 시동 걸 때 전기로 스타터 모터를 돌리지 않는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얘는 오히려 스파크보다도 더 힘든 메커니즘을 사용한다. 요즘 차량들은 기술의 발달로 인해 많이 나아졌다지만, 디젤은 저런 특성상 휘발유 차량보다는 시동이 잘 안 걸릴 확률이 더 높다. 특히 날씨가 추울 때 말이다. 어렸을 때 차에 시동이 잘 안 걸려서 운전자와 탑승자가 고생하던 모습은 아무래도 승용차보다는 트럭에서 훨씬 더 많이 구경했던 것 같다.

휘발유와 디젤 엔진이 성능이 서로 큰 차이가 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같은 배기량일 때 디젤 엔진의 토크가 훨씬 더 강하며(1.x~2배 가까이) 더 저회전 상태에서도 그 최대 토크가 금세 발휘된다.
디젤은 안 그래도 더 에너지 밀도가 높은 연료를 사용하는 데다 열효율이 더 좋은 관계로, 힘만 좋은 게 아니라 연비도 더 좋다. 그런데 연료의 단가마저도 비록 정치적인 이유가 더 크긴 하지만 디젤이 더 싸다. 그러니 이런 경제성만 생각하면 세상의 모든 자동차가 디젤 엔진으로만 만들어져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디젤 역시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비록 공밀레 기술 개발로 인해 정말 많이 극복되었다고는 하지만, 휘발유에 비해 고질적인 단점으로는 소음과 진동, 그리고 공해(오염) 문제가 있다.
디젤 엔진은 동급 배기량의 휘발유 엔진보다 더 강한 힘을 내부적으로 견뎌야 한다는 특성상, 더 비싼 부품을 써서 더 크고 무겁고 튼튼하게 만들어야 하며, 엔진오일도 더 비싼 디젤용을 써야 한다. 초기의 차값부터 시작해 기름값 외의 유지비까지 전반적으로 좀 더 깨진다는 점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성능면에서도, 디젤이 저속 토크가 강하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나 속도까지 곱해진 전반적인 출력은 정작 동 배기량의 휘발유 엔진보다 오랫동안 뒤쳐져 있었다. 회전수를 휘발유 엔진만치 높게 올리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는 터보차저(공기 과급기) 같은 다른 메커니즘의 도움을 받아서 극복되고 있으며 요즘은 디젤도 실린더의 스트로크를 낮춰서 과거의 디젤답지 않은 고rpm을 추구하는 게 추세이긴 하다.

디젤의 성능을 평가절하하는 또 다른 요인은 반응성이다. 디젤 엔진은 토크가 좋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능과 별개로 반응성이 떨어지고 '둔하다'. 단순히 엔진이 좀 무거워서 둔한 차원이 아니다. 그래서 정작 제로백이 휘발유 차량보다 불리하다. 경주용 자동차나 스포츠카가 디젤로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것도 기술의 발달로 인해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극복되었겠지만, 디젤 엔진의 좋은 힘은 근본적으로 간지나는 스포츠카의 급발진보다는 트럭에다 짐 잔뜩 싣고 오르막 오르는 용도에 더 유리한 게 사실이다.
반응성 말고도 엔진 브레이크 효과 역시 토크가 상대적으로 약하고 상시 rpm이 높은 휘발유 엔진이 더 강하며, 하이브리드와의 접목도 덩치가 더 작고 연비도 더 낮은 휘발유가 더 유리하다. 겨울에 히터를 켰을 때 더 빨리 더운 바람이 나오는 쪽도 휘발유 엔진이다.

단, 터보차저와의 접목은 디젤이 약간 더 유리하다. 휘발유 승용차에서 터보는 아직까지 액세서리 고급 옵션에 가까운 반면, 요즘 디젤 차에서 터보는 성능 보완을 위한 사실상 필수품 취급을 받고 있다.

3. 환경 문제

오늘날 디젤 엔진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태클은 환경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디젤은 근본적으로 휘발유보다 더 '더티'한 연료를 사용하며 매연을 내뿜는다. 정지 상태에서 가속할 때, 다시 말해 저회전 상태에서 엔진이 부하가 많이 걸릴 때 뿌뿌뿡~ 매연이 특별히 더 심하다.
지금처럼 천연가스 버스가 도입되기 전, 옛날에 길거리의 시내버스들의 뒤쪽 엔진 부분을 보면 온통 시커맸다. 이게 평범한 흙먼지가 아니라 다 불완전 연소의 산물인 탄소 알갱이였다. -_-;; 트럭의 경우도 과적은 도로 파손이나 차량 안전뿐만 아니라 매연 발생의 관점에서도 매우 좋지 않다.

그에 반해, 휘발유는 저런 매연이 없으며 촉매 변환만 잘 돌려 주면 배기가스 문제는 거의 없다.
휘발유는 잘 알다시피 노킹 방지 첨가제에 들어간 납 성분이 문제 되었지만 이것도 무연 휘발유로 극복되었다. 그런데 경유는 어째 납 대신 유황 성분이 문제를 일으켰다. 황의 연소로 인해 이산화황(아황산가스)이라는 해로운 공해 물질을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화석 연료가 연소해서 사람 몸에 좋은 게 나오는 일은 없는 법이다.

그러니 오늘날까지도 디젤 차량은 세계 각국에서 굉장히 강한 환경 규제가 걸려 있으며 이는 선진국으로 갈수록 더욱 엄격하다. 선진국은 시민들이 눈이 높고 환경 생각할 만치 돈과 기술도 있으며, 수십 년 전에 이미 대규모 스모그나 공해병 같은 병크와 시행착오도 먼저 경험했으니 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있다.

국내의 경우 디젤 차는 구입할 때부터 차값에 환경 개선 부담금이 포함되며, 정기적으로 무슨 검사를 받고 매연 저감 장치를 장착하고 어쩌구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디젤 엔진 자체를 매연이 안 나오게 만들 수는 없는지, 그 대신 후처리 보정 장치가 추가되어야 하고 이것은 엔진의 덩치와 차량의 단가를 올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엔진룸의 부피가 승용차 급으로 비슷하다면 디젤 엔진은 공간 부족으로 인해 동급 덩치의 휘발유 엔진만치 큰 배기량이 들어가지는 못한다.

또한 시민의 안전을 위해 지하철역에 몽땅 스크린도어를 설치한 것처럼 디젤 기반인 수많은 시내버스들을 죄다 천연가스 기반으로 개조· 교체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이다. 실제로 이것만으로도 공기 질을 이 정도나마 개선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그와 반대로 선진국에서 다 쓰고 퇴역시킨 차량을 저가에 수입해서 굴리는 개발도상국의 도시들이 공기 사정이 열악하다. 당장 떠오르는 게, 시커먼 구닥다리 경유 버스와 2행정 오토바이들로 가득하던 베트남이구나.

4. 실린더 크기의 한계

오늘날 휘발유 엔진은 그냥 소형 발전기· 예초기· 동력톱이나 오토바이· 승용차 엔진으로 머무르고 있다. 그 반면, 디젤 엔진은 버스· 트럭, 철도 기관차· 선박 등 본격적으로 거대한 기계들을 돌리는 만능 엔진으로 등극해 있다.
왜 이런 특성과 차이가 존재하는 걸까? (한편으로 천연가스는 구조적으로 디젤보다는 휘발유 엔진과 더 비슷하지만 택시와 버스에 모두 쓰인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로는 휘발유 엔진이 대형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 실린더가 가질 수 있는 부피는 거의 500~600cc가 실용적인 가성비가 유지되는 한계라고 한다.
그러나 디젤 엔진은 그런 제약이 없어서 무슨 선박 엔진 같은 집채만 한 초거대 단일 실린더도 만들 수 있다. 단순히 연비나 토크가 좋아서가 아니라 이것 때문에 디젤 엔진이 선택의 여지 없이 쓰인다.

정말 그런가 확인해 보자. 대형 버스에 준하거나 그 이상의 고배기량인 엔진을 휘발유 기반으로 얹은 슈퍼카들을 보면..
6700cc 12기통 (롤스로이스 팬텀..;; )
8000cc 16기통 (부가티 베이론)
배기량을 기통수로 나누면 진짜로 500~600cc대를 벗어나지 않는다. 실린더 수가 무지막지하다.
그러나 디젤로 가면 현대 자동차 F 엔진은 3900cc 배기량이 4기통이요,
버스 엔진을 보면 6000cc부터 심지어 11리터급이 그냥 6기통만으로 커버된다. 이런 게 휘발유 엔진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물론 내연기관은 흡입, 압축, 폭발, 배기 각 행정별로 발생하는 힘이 일정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상태가 서로 제각기 다른 실린더들이 어느 정도는 여럿 있어야 엔진의 진동이 줄어들고 승차감이 좋아진다. '툭툭툭툭'거리는 엔진음이 '두두두두/들들들들'로 바뀐다.
하지만 무려 12기통, 16기통 이건.. 어쩔 수 없어서 저렇게 만든 것이지, 만들고 싶어서 저렇게 만든 건 아니리라 여겨진다. 승차감이 문제라면 휘발유보다 진동이 더 심한 디젤이 겨우 6기통인 건 어떻게 설명할 건가?

기통수가 너무 많아지면 휘발유 엔진도 어차피 디젤처럼 복잡하고 무거워지며, 제어하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휘발유 엔진의 정숙성과 신속한 반응성을 살리기 위해 무리해서 트럭· 버스였으면 디젤을 쓸 것을 휘발유 엔진을 고집한 것이지 싶다. 물론 디젤에 비해 연비는 길바닥에다 그냥 동전을 뿌리는 수준으로 감수하고 말이다.

뭐, 오토바이 중에 배기량이 거의 1700~2000cc에 달하는 대형 모델 중에는 겨우 2기통 엔진인 것도 있다. 그건 자동차에는 적용하기 곤란한 방식으로 보어· 스트로크 비율을 보정해서 실린더당 800cc가 넘는 체적을 구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로 손꼽히는 Benz Patent-Motorwagen 삼륜차도 원시적인 950cc짜리 휘발유 단기통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성능은 1마력이 채 될까말까인 비효율의 극치 수준임. 자동차계의 에니악;;)
그리고 에쿠스/EQ900의 기함급인 VL500도 8기통이니 실린더가 휘발유 엔진치고는 약간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비록 디젤이 소음· 진동과 공해 문제가 있고 더 무겁고 복잡하지만 그래도 엔진으로서의 기술 수준은 단순 휘발유 엔진보다 더 높으며 범용성도 더 뛰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범용성 때문에 경유가 더 저렴하기까지 한 것이다.
휘발유 엔진은 딱히 고안자의 이름을 따서 '오토 엔진'이라고 불리지는 않는 편인데, 디젤만 고안자의 이름이 매번 언급되는 건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경유· 중유까지 diesel fuel이라고 불리지 않는가.

사실 휘발유에다가도 압축 착화로 점화해서 디젤 엔진의 장점을 적용해서 연구가 있긴 하다. 일명 HCCI 또는 GDCI 엔진. 그러면 휘발유로도 디젤 엔진 같은 고연비의 달성이 가능해지며, 결정적으로 단일 엔진에서 휘발유와 경유를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점화 플러그 없는 휘발유 엔진은 아직까지는 어댑터 없는 노트북, 탄피 없는 총알, 혹은 돼지고기 육회만큼이나 쉽지 않은 영역인 것 같다.

지금 내가 모는 차뿐만 아니라 디젤 차, 후륜구동, 하이브리드, 전기차 등 다양한 차들을 몰면서 차이를 분석해 보고 싶다. 특히 전륜과 후륜의 차이라는 언더스티어/오버스티어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사실, 자동차 학원에서 운전 연습을 할 때 1종 보통의 특성상 디젤+후륜에다 수동 변속기이기까지 하여 승용차하고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1톤 트럭을 실컷 몰아 본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경험은 기억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연료 분사와 흡기 메커니즘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차근차근 더 공부해 보고 싶다. 아직은 공개적인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이론을 숙지하지 못한 상태이다.

글을 맺으면서 드는 생각인데, 자동차가 내연기관이 주류가 된 것처럼 총기도 일단은 탄피가 빠지는 화약 격발 방식이 주류가 돼 있다. 공기총은 자동차에다 비유하면 전기 자동차 정도 되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7/04/25 08:36 2017/04/2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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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여지가 있는 발명

1990년대까지만 해도 휘발유로 달리는 어지간한 승용차의 연류 주입구에는 이런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UNLEADED FUEL ONLY”
lead는 ‘지도하다, 거느리다, 지휘’ 같은 뜻이 있지만, 동음이의어로 ‘납’이라는 뜻도 있다. 발음도 [liːd]가 아닌 [led]로 다르다.

그래서 위의 문구는 ‘납이 첨가되지 않은 연료만 쓰세요’, 즉 이 차는 무연휘발유 차량이라는 뜻이다.
영어가 동음이의어인 것처럼 한국어도 좀 혼동의 여지가 있는데 ‘무연’이란 납 성분이 없다는 뜻이지(無鉛), 배기가스가 전혀 안 나온다는(無煙) 뜻은 아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웬 납? 자동차 연료에 납을 왜 집어넣는 걸까?

'테트라에틸'이라는 납 성분 첨가제는 내연기관의 노킹(knocking) 현상을 없애기 위해 발명되었다.
4행정 엔진이라면 흡입-압축-폭발-배기가 원활하게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폭발 때 연료가 모두 완전히 타서 없어지지 않고 실린더 벽에 일부가 잔류하다가, 예기치 않은 다른 사이클 때 작은 폭발을 일으키며 엔진을 푸덜덜~ 털털거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엔진의 효율을 떨어뜨림은 물론이고 자동차의 내구성과 안전까지 위협했다.

유연휘발유는 이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함으로써 자동차 기술의 발달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마법과 같던 이 발명은 얼마 못 가 환경 문제로 인해 치명적인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납이 인체에 얼마나 해롭던가? 그런데 자동차의 배기가스에 그런 게 섞여 나왔으니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건강이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되었으며, 유연휘발유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들부터가 얼마 못 가 손발이 오그라들고마비되고 이상한 병을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갔다.

오늘날 무연휘발유에는 납 대신 다른 대체 첨가제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유연휘발유는 이미 옛날에 유통이 중단되고 퇴출되었다. 한 2, 30년쯤 전에는 우리나라도 주유소에 ‘휘발유 vs 무연휘발유’가 따로 있었지만, 오늘날은 무연이라는 말을 붙일 필요도 없이 휘발유가 곧 무조건 무연휘발유이다. 요즘 컴퓨터계에서 IBM PC 호환 기종이라는 말을 안 쓰는 것과 같은 맥락임(IBM PC 호환이 아닌 PC가 없으므로.).

디젤 엔진에서 쓰이는 경유가 매연이 심하다고 하여 요즘은 유황의 함량을 줄이고(그 이름도 유명한 아황산가스의 주범!), 매연 저감 장치를 부착하고 시내버스를 천연가스 차량으로 대체하려고 국가에서 노력하듯, 휘발유에 대해서도 훨씬 전에 이런 식의 환경 개선을 위한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디젤 엔진에도 노킹 현상 같은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휘발유 엔진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엔진 구조가 서로 완전히 다른 휘발유-경유 사이에 혼유 사고가 났다간 차 엔진이 다 망가지고 차가 개발살이 나지만, 같은 휘발유 사이에도 무연과 유연은 엔진이 서로 호환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쪽에 최적화된 엔진에 별도의 변환 장치 없이 다른 쪽 휘발유를 넣어서도 역시 안 됐었다.

인류에게 거의 수천 년 만에 최초로 말보다 더 빠른 이동 수단을 선사하였으며 오늘날까지 우리가 너무나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가, 사실은 완전 공해덩어리 물질로 이뤄져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컴퓨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잊을 법하면 무슨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가 백혈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이 나오는 것일 테고.

유연휘발유처럼 발명 당시에는 인류 과학 기술의 총아요 마법의 물질이라고 추앙받았지만, 오늘날은 환경 문제 때문에 완전히 천덕꾸러기가 된 대표적인 다른 물질로, 역시나 그 이름도 유명한 프레온 가스라는 상표명으로 잘 알려진 CFC (chlorofluorocarbon)가 있다.

암모니아 냉매에 비해 독성 없고 폭발 안 하고 안전하고 순환식 냉매로서의 성능도 좋고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고... 오존층 파괴만 안 하면 정말 인간이 20세기에 발명해 낸 가장 완벽하고 훌륭한 꿈의 물질로 두고두고 칭송받았을 텐데! 참 안타까운 경우가 아닐 수 없다.

오죽했으면, CFC를 소개하는 기자회견을 할 때, 프레온 가스를 사람이 훅 빨아들인 뒤 그 입김을 다시 훅 불어서 양초를 끄는 시범을 보였을 정도이니까. 안전성과 불연성을 모두 입증한 셈이다. 만약 그 물질이 가연· 폭발성 유독가스였다면 흠..;;;

오늘날도 비록 CFC가 오존층 파괴의 주범이라고 까일지언정, 냉장고 자체가 마치 자동차의 연료 탱크 마냥 위험한 물건으로 취급된다거나 냉매의 폭발이나 유출 사고로 인해서 일가족이 죽었다는 소식은 전혀 없지 않은가. 이게 CFC 덕분이다.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는 CFC 대체 물질이 오랫동안 연구되어 왔고 국제적으로도 이 물질을 앞으로 완전히 퇴출시키기로 몬트리올 의정서까지 발효되어 있긴 한데, 이제 연구가 어디까지 진척됐나 모르겠다. 대체 물질은 CFC 원판이 내던 그 탁월한 성능까지 재연하기란 쉽지 않았지 싶다.

그런데 정말 기막힌 사실은, 유연휘발유와 CFC를 발명한 사람은 동일 인물이라는 것! 이를 발명한 토머스 미즐리(1889-1944)는 코넬 대학을 나온 미국의 과학자 겸 공학자· 발명가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철저한 환경오염 규제 기준 같은 게 없었다. 오늘날 줄기세포가 어떻고 DNA가 어떻고 하면서 생명공학이 각광을 받듯이 물리와 화학 분야에서 인류의 생활을 바꿔 놓은 발명이 이제 막 터져나오던 시절이었다. 그때 듀폰 같은 회사의 명성이 어땠던가? 나일론 같은 합성 섬유, 에어컨, 형광등도 20세기의 발명품이다.

미즐리 역시 19~20세기를 움직인 과학 학문인 물리와 화학에 정통하고, 전자공학보다는 기계공학 쪽으로 세계를 움직인 공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러나 대표작 발명품들이 죄다 환경을 치명적으로 해치는 걸로 밝혀져 이것들이 그의 사후 오점이 되었다.

그는 말년에 건강이 안 좋아져서 거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아마 유연휘발유로 인한 납 중독 때문으로 추정한다. 그는 이때도 공돌이 기질을 발휘하여, 자신이 침대에서 일어나는 걸 보조해 주는 기계를 만들어서 자기 침대에다 장착했다. 그런데 1944년의 어느 날 밤, 신체에 연결된 그 기계가 오동작하는 바람에, 자고 있던 그의 목을 감은 채 압박했고... 그 후 이하 생략. 그는 그렇게 50대 중반의 나이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ㄷㄷㄷ;;

그의 죽음은, 배에서 실종된 후 변사체가 바다에 떠오른 루돌프 디젤만큼이나 허무하고(디젤 엔진의 발명자),
황열병을 연구하다가 자신이 그 병에 걸려 죽은 노구치 히데요만큼이나 어찌 보면 장렬하다.

Trivia:

1. 킹제임스 흠정역의 주번역자는 CFC 대체 물질을 연구하는 공대 교수인 걸로 잘 알려져 있다.
한편으로는 목회를 하고 성경을 만드느라 온 정신을 쏟고 있으면서 또 한편으로 동일 기간의 논문 출판 실적을 보면 정말 덜덜덜;;;.

2. 이타이 이타이 병은 카드뮴 중독 때문이고, 미나마타 병은 수은 중독 때문인데... 납 중독과 관련하여 생긴 병명은 모르겠다.

3. 죽은 후에 자기 연구가 디스당한 다른 유명한 사례로는,
명왕성: 1930년대에 미국인인 클라이드 톰보가 발견했기 때문에 미국에서 유난히 애착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발견자가 1997년에 사망하자마자 천문학계에서는 이 행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고, 2006년에 명왕성은 결국 행성에서 제외되고 왜행성급으로 강등됨. 자기 궤도에서 다른 천체를 완전히 몰아낼 정도로 충분히 중력이 크지 못하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까 전에 언급된 노구치 히데요가 있다. 전자 현미경으로나 관찰할 수 있는 미세한 세균을 그게 발명되기도 전에 자기가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고 논문으로 발표했는데, 그게 나중에 오류로 드러나 죄다 부정되었다. 악의가 없는 오류에 불과한 건지, 아니면 고의적인 논문 조작인지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의 사후 위신이 크게 추락하고 말았다.

Posted by 사무엘

2011/12/21 19:15 2011/12/2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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