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에서 ‘만’은 굉장히 요주의 품사통용어이다. 다음 예문을 통해서 구체적인 용례와 띄어쓰기 요령을 익혀 보자. 국어 정서법에서 띄어쓰기는 한자 없이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잘 숙지해야 하는 개념이니 말이다.

  1. 시간을 사흘만 주십시오.
  2. 사흘 만에 일을 다 끝내겠습니다. (이거 얼마 만인가!)
  3. 그건 충분히 할 만한 일입니다.
  4. 소일거리로 이것만 한 게 없습니다. (집채만 한 파도. 짐승만도 못한..)

해설.
1. 주격 또는 목적격으로 only, just의 뜻을 담고 있는 보조사이다. 제일 쉽다.

2. 이때는 의존명사이기 때문에 띄어 쓴다. 괄호 안의 문장처럼 쓰이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명사라는 게 감이 올 것이다. 접사인 '쯤'하고는 상황이 다르며(이제 얼마쯤 왔지?), '오래간만/오랜만'도 그 자체가 한 단어 명사이다.

3. ‘만하다’가 보조형용사이다. “할 만하지?”처럼 활용도 된다.
참고로, 중간에 ‘도’가 붙어서 “그럴 만도 하다”라고 쓰면 이때 ‘만’은 의존명사이다. 사실상 ‘도’밖에 붙는 게 없는 어정쩡한 의존명사인데, 아까 2번 의존명사와는 별개인 다른 의존명사이다.. ㅡ,.ㅡ;;

4. 이 ‘만’은 1번과 마찬가지로 다시 보조사이다. 다만, ‘-하다/-못하다’와 연결됐을 때는 do ONLY this가 아니라 뭔가 no/nothing more than 같은 비교의 뜻이 될 뿐이다.
심리적으로는 자꾸 ‘만하다’가 한 단어인 것 같이 느껴지는데, 솔직히 나도 그렇다. 하지만 일단 규정상으로는 ‘만하다’는 3번처럼 용언이 이어질 때에만 허용되고, 체언 뒤에서는 ‘하다’뿐만 아니라 ‘못하다’도 올 수 있다는 점이 감안되어 둘을 띄우게 되었다.

끝으로, 위의 모든 규정에도 불구하고 형용사 ‘볼만하다, 이만하다, 쥐방울만하다, (고만)고만하다, 웬만하다’ 같은 단어는 용례가 굳어진 한 단어로 간주되어서 사전에도 등재되어 있고, 몽땅 붙여 쓴다. ㅡ,.ㅡ;;

그러므로 한 단어가 아닌 일반적인 상황에 대해서 총정리를 하자면..

  • 기간 한도를 나타내는 체언 뒤에서는 띄우고(2번)
  • ‘-ㄹ’로 끝나는 용언 뒤에서도 띄운다(3번).
  • 그 밖에 한정이나 비교의 뜻으로 체언 뒤에 나올 때는 보조사이기 때문에 붙인다고 생각하면 되겠다(1, 4번).

그러고 보니 '뿐'도 조사(너뿐..)도 되고 의존명사도 돼서(그럴 뿐) 띄어쓰기를 아주 복잡하게 만드는 단어이며, '한', '못' 이런 것도 어디서는 각각 독립적인 관형사와 부사였다가 어디서는 그냥 한 단어의 어근/어간이어서 사람 헷갈리게 하기 딱 좋은 단어이다.
글이 좀 짧은 것 같으니, 보너스로 이런 문법 놀이를 몇 가지 좀 더 하고 글을 맺겠다.

(1) 가량: 접미사이다. '쯤'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명사가 아님.

  • 사람이 열 명쯤 모였다.
  • 사람이 열 명가량 모였다.
  • 사람이 열 명 정도 모였다. (정도程度: 일반명사)
  • 사람이 열 명 남짓 모였다. (남짓: 의존명사 겸 형용사! '남짓한'일 때는 형용사이지만 '남짓 되는'일 때는 명사이다.)

(2) 커녕: 이것 자체가 조사(보조사)이다. 부사가 아님.

  • 사람커녕 쥐새끼 한 마리 안 보인다. (원래 이렇게 쓰는 단어임.)
  • 사람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 안 보인다. (강조의 의미로 앞에 은/는이 붙었음)
  • 사람은 물론 쥐새끼 한 마리 안 보인다. (물론: 부사)
  • 사람은 고사하고 쥐새끼 한 마리 안 보인다. (고사하고: 부사. 학교 문법에서는 이건 불완전동사도 아니고, 통째로 단독으로 부사로 친다.)

오늘날은 '막론'도 '막론하고'의 형태로만 쓰이는 것 같지만 이건 '고사하고'처럼 완전히 이 형태만으로 굳어졌다고 보지는 않는 듯하다.

그리고 기왕 생각난 김에 보너스로...
언어학에는 구(phrase)와 절(clause)처럼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르고 헷갈리는 용어 pair가 있다. 어근과 어간도 그런 예에 속하는데..

어근(뿌리 root)
단어에서 접사를 제외한 핵심 부분을 말한다. 어근은 단독으로도 쓰일 수 있지만 접사는 그렇지 않다. 접사는 붙는 위치에 따라 접두사(un-, de-, en-) 또는 접미사(-less, -ness)로 나뉘며, 접사가 붙은 단어를 흔히 파생어라고 부른다.
영어의 경우, 화자가 생소한 파생어를 일부러 필요에 따라 창조해 냈다면 접사와 어근을 하이픈으로 연결하거나, 둘 중 하나를 대문자로 쓰곤 한다. 이게 한국어 관행으로 치면 한자를 괄호 안에 병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간(줄기 stem)
얘는 한국어에서 동일 용언(동사와 형용사)이라면 온갖 활용 형태와 무관하게 변함없이 고정돼 있는 앞부분을 말한다. 어절에서 어미를 제외한 핵심 부분이다. 가령, ‘먹으면, 먹어서, 먹다’에서 ‘먹’ 부분이다.
어간은 그 자체가 접사과 어근으로 더 쪼개지는 파생어일 수 있다. 그러므로 어간은 어근보다 더 큰 구분 단위이다.

근이니 간이니 하니까 소리도 비슷하게 들리고 헷갈린다. 하지만 용어가 모두 식물의 외형을 본따서 만들어졌다는 걸 생각하면 곧바로 직관적으로 이해가 될 것이다. 지하의 뿌리에서 지상의 줄기가 자라고, 줄기로부터 가지들이 뻗어 나가는 걸 떠올려 보라.

어근과 어간은 말 그대로 언어의 ‘근간’을 형성하는 구성요소이다. 내장 간(肝)도 아니고 줄기 간(幹)은 좀 생소한 한자 같지만 우리 주변에서 생각보다 자주 볼 수 있다. 뿌리-줄기뿐만 아니라 줄기-가지 관계도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교통에서 얘기하는 간선-지선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0/03/02 08:35 2020/03/0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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