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라는 게 없어지고 새벽에 얇은 이불이라도 덮어야 하는 요즘 같은 시기는 야영 캠핑을 위한 그야말로 최적의 시기이다.
(1) 근래에 서울에서는 상암동과 청담동의 모처에서 주차와 보안이 완벽에 가까운 아지트를 하나씩 개척했다.
여기는 보안을 위해 구체적인 위치와 방문 소감을 블로그에다 공개하지 못하니, 이 점을 양해 구한다. =_=;;
(2) 그리고 서울보다 한적한 고향 경주야 뭐 텐트 칠 만한 넓은 풀밭이 곳곳에 넘쳐난다.
이 자그마한 텐트와 돗자리만 펼치면 숲속이든 물가든 어디서든 나를 무더위와 추위와 비와 벌레로부터 보호해 주는 차단막이 생기고 나만의 개인 공간이 생긴다는 거다. 참 아늑하고 좋다~!
개인적으로는 꼭 쓰레기 버리고 환경 오염시키는 것만 죄가 아니며, 이렇게 좋은 날 정당한 사유 없이 밖에서 캠핑을 하지 않는 것도 자연에 대한 일종의 죄라고 생각한다. 부작위에 의한 죄에 가깝다.
반드시 집에서 가족을 돌봐야 하는 등의 정당한, 불가피한 사유가 있지 않은 한 말이다. ㄲㄲ
물론 바깥 텐트는 전기와 상하수도, 와이파이 공급이 실내보다 열악하고 모기 같은 벌레에 더 취약하다는 일부 단점이 있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글 수는 없듯, 한낱 모기 따위 무서워서 이 좋은 텐트를 포기할 수는 없다.
요즘은 9월, 10월에도 모기가 기승이다. 그런데 내가 청각이 둔해진 건지 다른 변화가 생긴 건지 모르겠다만.. 모기에 물리기는 하는데 주변에서 모기가 날아다니는 특유의 불쾌한 웽~ 소리는 좀체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컴퓨터 프로그램의 오류를 수정하는 작업을 흔히 디버그/디버깅이라고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텐트와 돗자리 주변에 달라붙은 벌레들을 떼어내는 것도 debugging이라고 할 수 있다. 한겨울에 비행기의 주변에 쌓인 눈을 치우는 걸 디아이싱(de-icing)이라고 부르듯이..
사람은 자연 안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사람은 자연 안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사람은 자연 안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뜨앗~~ㅋㅋㅋㅋㅋㅋㅋ
텐트의 광고 카피로서는 매우 적절하게 잘 뽑은 문구이군..;;;
근데 중국산 아니랄까 봐, '있을떄' 띄어쓰기는 그렇다 쳐도 ㄸ 입력하고 나서 ㅐ 누를 때 Shift를 안 뗐나 보구나.. ㅠㅠㅠㅠㅠㅠ
그리고 저거 폰트는.. HY필기이다. 아래아한글에 내장돼 있는 그 필기체와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서체.
요즘은 저것보다 훨씬 더 실감나는 손글씨체들이 넘쳐나는 시대다. 그런데 딱 합성 조미료 같은 초보적인 스타일.. 응답하라 199x 쌍팔년도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필기체를 쓴 것도 참 안습하다.
곁의 '맑은 고딕'과 어우러져.. 이 인쇄물은 맥이 절대 아니고 일반 Windows 컴터에서 디자인알못이 아래아한글이나 MS 오피스 한글판 번들 서체만으로 대충 만든 거라는 티가 난다.
HERC는 지금까지 아무리 찾아봐도 제조사 홈페이지라는 게 안 나오고 도대체 무슨 업체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본인은 지금까지 이 텐트 안에서 수백~수천 회에 달하는 밤을 보냈다.
(3) 끝으로.. 본인은 이번 추석 때는 귀경길에 오랜만에 중앙 고속도로를 타면서 단양팔경 휴게소 상행 방면을 밤이 아닌 낮에 들를 수 있었다.
여기는 중앙 고속도로에서 경부 고속도로의 추풍령/금강 휴게소와 얼추 비슷한 역할을 하는 휴게소이다. 건설 당시 기준으로 고속도로의 시종점에서 얼추 중간 지점에 있을 뿐만 아니라, 여기도 영동-옥천 만만찮은 험준한 산지이며 고속도로 준공 기념탑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부 고속도로의 거기 부근에 금강이 지난다면, 여기 부근엔 남한강이 지난다~! 정말 비슷한 관계이지 않은가?
단, 단양팔경 휴게소는 언덕 위에 만들어진 관계로 진출입로의 압박이 좀 있으며, 상행과 하행이 서로 7km가 넘게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고 하행이 아니라 상행 휴게소가 원조라 여겨진다.
하행도 휴게소 건물 뒤에 꽤 근사한 정원이 꾸며져 있긴 하지만, 상행이 볼거리가 훨씬 더 많다.
고속도로 준공탑도 여기에 있고, 남한강이 보이는 전망대도 근처에 있으며..
이렇게 휴게소 뒷산을 올라서 '단양 신라 적성비'에도 가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2년 전에 가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깜깜한 밤이어서 경치 구경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서울 부근 하남시에 있는 이성산성은 아마도 신라 것이 아닌가 추측만 하는 정도이지만, 단양적성은 아예 적성비까지 세워져 있고 확실하게 신라의 리즈 시절 흔적인 셈이다.
성을 오르는 길은 이렇게 생겼다. 적성비는 이 언덕의 꼭대기에 있다.
그리고 드디어 목적지 도달..!! 길게 잡아도 15분 정도만 오르면 도달 가능하다.
세상에 뒷산 등산 산책을 하면서 옛날 문화재 답사까지 할 수 있는 고속도로 휴게소가 전국에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니 이 휴게소는 장거리 여행을 갈 일이 있을 때 일부러 들러 볼 가치가 충분하다. 하행 말고 상행 말이다.
그리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단양적성 부근의 이 넓은 풀밭에서도 텐트 치고 밤을 보내 보고 싶다~!!! ^^;;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