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전해짐
과거(20세기쯤?)엔 활발히 쓰였지만 현재는 환경을 파괴한다고, 인체에 해롭다고, 혹은 단순히 안전상 위험하거나 부작용이 있다는 이유로 사용이 전면 금지된 물건들을 기억 나는 대로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엔진 노킹 방지용 유연 휘발유: 납 중독 위험
- 수은 온도계와 수은 건전지: 수은 중독 위험
- 메탄올 워셔액: 역시 맹독으로 인한 위험
메탄올의 경우.. 위험물인 건 사실이지만, 워셔액 성분으로 인한 자동차 탑승자의 골병 내지 중독 사례가 실제로 보고된 게 있는지는 난 잘 모르겠다.
- 살충제(모기) DDT: 생물 농축과 부작용, 내성
- 제초제 그라목손(파라콰트): 맹독으로 인한 자살/무차별 연쇄살인 위험
- 살충제(식물 병충해) 파라티온: 역시 맹독으로 인한 위험
주유소에서 차에 바로 주입하지 않는 말통 기름을 판매할 때는 반드시 직원이 나와서 구매자를 대면하고, 구매자의 신상을 확보하고 구매 내역을 기록도 한다. 이것처럼 농촌에서 농약은 휘발유나 번개탄에 맞먹는 위험한 물건이며, 인터넷을 통한 비대면 익명 구매가 허용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197~80년대에 누군가가 개봉한 음료수에다가 그라목손을 섞고 재밀봉해서 자판기 곁에다가 몰래 놔 둬서 생사람 여럿 잡은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일본의 음료수들은 재밀봉이 원천 불가능한 원터치 캔 형태로 바뀌기도 했다.
단, 그라목손은 환경 오염은 생각보다 심하지 않은 듯하다. 생체가 아닌 흙에 닿으면 오히려 비활성화돼 버린다니까.. 잎만 죽게 하고 뿌리는 제대로 죽이지 못한댄다. 여느 고엽제 같은 물건과는 성격이 달라 보인다.
- 건축자재 석면: 폐에 발암물질 농축.. 화생방 어느 분야로도 딱히 특이사항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먼지와 동일한 특성만으로 치명적으로 위험한 매우 이례적인 놈이다.
- 냉매 CFC 프레온: 반대로 인체에는 당장 아무 위험이 없는 무독성이지만.. 장기적으로 오존층 파괴
- 화산 폭발 실험 실습용 중크롬산암모늄: 단순히 위험하다는 이유로 수십 년 전에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삭제됨
20세기 초는 서양을 중심으로 인류가 과학 기술 유토피아 환상에 젖어 있던 때였다. 그게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많이 버로우 타긴 했지만, 20세기 중후반엔 냉전과 더불어 과학 기술이 또 다시 무섭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유전 공학, 원자력, 우주 시대, 컴퓨터 정보화 시대까지 열리면서 1980년대쯤엔 인류는 예전과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과학 기술 유토피아 환상에 빠져들기 시작했는데..
이때는 세계 대전이 아니라 자원 고갈 우려와 환경 오염 문제를 갖고 비관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특히, 인간이 과학 기술의 힘으로 발명해서 편리하게 사용하던 각종 물질들이 알고 보니 아주 해로운 놈이었다는 게 밝혀졌을 때 말이다.
하지만 2020년대가 다 된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문제 역시 친환경 과학 기술의 힘으로 많이 극복됐다. 그저 무식하게 과학 기술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친환경 친자연으로 살던 옛날은 각종 원시적인 전염병들이 창궐하고 영아 사망률 높고, 먹고 사는 문제 해결하기에 급급하던 시절이지, 지금보다 더 좋던 시절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에도 얘기했었지만 지저분한 화석 연료는 나무를 베지 않아도 되게 해 주었고, 위험하다는 원자력은 화석 연료조차 쓰지 않아도 되게 해 주는 관계라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단, 저런 해로운 물질들의 대체제를 만드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대체제는 생산 비용이 비싸거나 성능이 원판만 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게 안타까운 노릇이다.
- 요즘 워셔액은 메탄올 대신 에탄올이 들어갔다 보니, 워셔액을 분사했을 때 차내에까지 자욱한 술 냄새가 난다. 하지만 에탄올 워셔액은 예전의 메탄올 워셔액보다 단가가 훨씬 더 비싸다.
- DDT만 해도 이미 20세기 중후반에 진작부터 사용이 금지되긴 했지만.. 당장 말라리아 사망자가 넘쳐나는 동남아-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에서는 현실적으로 DDT의 압도적인 가성비를 능가할 대체 살충제가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듯이 DDT가 아직까지도 애용되고 있다고 한다. 당장 호랑이나 사자에게 물려 죽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동네에서 자연 보호 맹수 보호를 주장할 수는 없듯이 말이다.
- 그라목손 역시 금지되던 당시엔 농민들이 많이 반발했었다. 얘만치 저렴하면서 강한 잡초 제거 성능을 발휘하는 농약이 없다고 한다. 단순히 성능이 너무 강해서 위험한 것만이 문제이고 다른 부작용은 없다면.. 엑기스를 희석하고 괴상한 맛과 냄새를 첨가해서 판매하면 되지 않을까?
참고로, 화학 조미료 성분인 L-글루타민산나트륨(일명 MSG)은 이례적으로 누명을 벗은 사례이다. 저렴하게 감칠맛을 내는 마법의 물질로 추앙받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인체에 해롭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그러던 것이 임상 실험을 통해 인체에 정말로 무해하다는 것이 입증되긴 했는데.. 소비자의 인식은 여전히 썩 좋지 않은가 보다. 그러고 보니 이런 조미료는 뭐고 방부제는 뭔지.. 가공 식품의 세계가 참 궁금하긴 하다.
2. 똑똑해짐
요즘 기계들은 내부적으로 갈수록 더 똑똑해지고 에너지 효율이 올라가고 있다. 전자 공학 기술의 발달 덕분에 전혀 안 그럴 것 같은 단순한 물건에도 반도체 소자와 컴퓨터가 내장돼 들어간다. 내부 구조가 '전자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얘들은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성능을 발휘하더라도 3, 40년 전의 물건보다 전기나 기름을 덜 소모하는 편이다. 특히 에너지를 아낀답시고 껐다 켜기를 반복할 필요가 없으며, 적절한 세기로 그냥 켜 두는 게 더 나은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오랫동안 가동하지 않았다가 처음 가동할 때야말로 예열이나 초기화 같은 이유로 인해 에너지가 더 많이 들기도 하니 말이다.
- PC: 절전 모드로 해 놓으면 전기를 거의 먹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은 컴터를 사용하지 않을 때 완전히 시스템 종료를 할 필요가 거의 없다. (운영체제 업데이트를 설치한 뒤에나 필요할 듯..)
- 보일러: 난방도 아니고 온수 정도야 여름이든 겨울이든 그냥 상시 켜 놓는 게 더 낫다. 온수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미지근한 물도 포함).
- 에어컨: 인버터 방식이 등장하면서 에어컨의 효율도 꽤 올라갔다. 하루 종일 켜 놓으면서 등온을 유지하는 건 생각만치 전기를 많이 잡아먹지 않는다.
- 전기 철도: VVVF 한 마디로 모든 게 설명된다. 전기 모터는 내연기관처럼 공기와 연료 배합을 신경 쓸 필요는 없지만 같은 전력으로 전압과 전류를 적절히 잘 제어하는 게 엔진과 변속기에 대응한다.
그리고 자동차야 더 말이 필요하지 않다.
- 공기 혼합과 연료 분사 방식이 197, 80년대의 원시적인 카뷰레터보다 훨씬 더 정교해졌다. 그래서 90년대 이후의 자동차들은 예열을 할 필요가 없으며, 엔진 브레이크가 걸릴 때 자동으로 fuel cut도 된다.
- 자동 변속기의 경우 약하게 가속 페달을 밟으면서 속도를 유지하는 게, 어설프게 뗐다가 재가속 하는 것보다 대체로 더 낫다. 요즘 에어컨이나 보일러가 등온 유지 중일 때는 에너지 소모가 적은 것하고도 일맥상통한다.
- 심지어 정지 중에 N으로 바꿀 필요도 없다. D+브레이크만으로도 엔진이 알아서 정지 상태에 맞는 연료 절약 모드로 진입하며, 요즘 차들은 심지어 그때 엔진 시동을 잠시 끄는 ISG 기능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자동차는 악셀 페달을 밟거나 변속 레버를 조작하는 것 자체가.. 밸브의 개폐 정도 같은 기계의 물리적인 상태 변경으로 직결되지 않는다. 컴퓨터의 판단을 거쳐서 간접적으로 전해질 뿐이다. 좋게 말하면 매우 똑똑해진 것이지만, 극악의 확률로 컴퓨터가 오동작할 때 급발진의 가능성이 생긴 것도 이 때문이다.
기계식 카뷰레터와 전자 제어의 효율 차이는 전등에다 비유하면 백열등과 형광등/LED등의 효율 차이에 맞먹을 것이다. 전동차에다 비유하면 구닥다리 저항 제어 vs VVVF 제어하고도 비슷하다.
게다가 내연기관 연료 분사 기술의 경우, 단순히 차 성능과 연비뿐만 아니라 환경하고도 관계가 있다. 연료가 제대로 연소하지 못하면 전부 검댕이나 질소산화물, 일산화탄소 같은 유해한 배기가스로 바뀌기 때문이다.
세탁소에는 거의 1980년대부터 "컴퓨터 세탁"이라는 수식어가 관행이 돼 있다. 이건 컴퓨터가 내장된 스마트한 세탁기를 운용한다는 뜻이다. 컴퓨터가 세탁물의 양과 상태를 판단하여 물과 세제를 더 똑똑하게 배합해 준다.
그리고 자동차 엔진의 ECU 컴퓨터는 공기와 연료 배합을 그런 식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자동차와 에어컨 얘기가 동시에 나왔으니 말인데..
더울 때 창문을 열어서 공기 저항을 증가시키는 것하고, 그냥 창문 닫고 에어컨을 켜서 엔진 부담을 증가시키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연료 소모가 클까 하는 의문이 자동차 매니아 사이에서 오랜 논쟁거리이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을 넘어가는 폭주가 아니라 경제 속도 이내라면.. 공기 저항이 그렇게 큰 부담은 아닌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그냥 창문을 여는 게 에어컨보다는 부담을 덜 준다는 것이 본인의 식견이다.
땡볕에 세워져서 내부 온도가 50~60도에 달했을 때 차 시동을 걸면.. 내부는 왕창 뜨거운데 엔진이 충분히 돌아가지 못해서 에어컨은 아직 충분한 냉기가 안 나오니 엔진과 에어컨 모두 부담이 최고로 걸려 있을 것이다. 이때는 몇 분 동안 그냥 창문 열고 주행하면서 열기를 내보내 주는 게 도움이 된다.
참고로, 요즘 똑똑한 전자레인지는 조리 완료 후에도 한동안 냉각 팬이 돌아가면서 내부를 자가냉각을 하고,
자동차는 시동 꺼진 뒤에도 한동안 송풍기가 돌아가면서 압축기 내부의 습기를 제거한다고 한다. 무슨 터보차저의 후열 처리처럼 말이다. 이런 것조차 사람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게 바뀌고 있다.
3. 나머지
(1) 형광등은 처음 켤 때 전기를 많이 먹는다는 낭설이 나돌았던 대표적인 물건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많이 소모하는 건 아니며, 더구나 요즘 형광등은 옛날 것처럼 처음 켤 때 주절주절 깜빡거리지도 않기 때문에 옛날 통념이 많이 사라졌다. 깜빡거리지 않는 형광등도 최신 전자 공학의 산물이다.
(2) 끝으로, 예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또 얘기하자면..
매년 풍년 흉년에 연연하지 않고 밥값이 별 차이 없고, 가물건 폭우가 쏟아지건 물 걱정을 옛날에 비해서는 '훨씬' 안 하고 살고.. 물과 전기가 시간제 제한 공급되는 일이 없고, 매년 수재민 돕기 성금 내기 관행이 없어진 게 본인이 보기에는 보통일이 절대 아니다. 치수 인프라가 예전보다 크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