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체에서 접하는 옛날 풍경 모습이란 게 한때는 그냥 사람이 붓에다 물감 찍어서 그린 그림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그게 흑백 사진을 거쳐서 컬러 사진으로 바뀌었는데, 이제는 애초에 흑백 사진밖에 전해지는 게 없던 장면조차 컬러로 재구성된 게 늘고 있다.
컬러이더라도 화질이 안 좋았던 것을 리마스터링까지 한다. 이런 건 소실된 색/화소 정보를 AI의 힘으로 창작해서 복원한 것이다.

AI는 완전히 생판 무에서 유를 창조할 정도로 혁명적인 일은 절대 못 한다.
뭔가 패턴이 있고 생노가다 같긴 하지만, 진짜 노가다보다는 미묘하게 복잡하고 전문성과 창의성(?)이 필요해서 자동화가 안 되고 인력 수작업이 필요했던 일들.. 그러면서 법적 책임과 부담감이 크지는 않은 일.
AI는 딱 그런 업종을 0순위로 잠식할 것으로 보인다.

(1) 음악: 없는 곡을 AI가 작곡도 하는 세상인데, 기존 악보 멜로디를 읽고서 E G Fm 등 코드를 매긴다거나 반주를 넣는 건(편곡) 당연히 자동화될 것이다. 이것도 답이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곡에 대한 해석과 창작이라는 범주에 든다!
코드를 만에 하나 좀 이상하게 넣었다고 해서 당장 인명· 재산 손실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AI화하기에 딱 좋아 보인다.

(2) 폰트: 한 폰트 패밀리로부터 다양한 굵기 내지 이탤릭 바리에이션을 자동 생성하기. 윤곽선을 단순히 기계적으로 산술적으로 부풀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로 인한 세밀한 공간 배치를 인간이 보기 좋게 알아서 하는 것 말이다. 힌팅을 더 똑똑하고 정교하게 생성하는 것도 포함이다.
그리고 한글· 한자의 경우, 샘플 몇 글자만 넣어 주면 그로부터 규칙성을 파악해서 나머지 수천 자의 글자 모양까지 알아서 유추해서 자형 생성하기.

AI는 한글· 한자에 대해서도 알파벳처럼 폰트들이 엄청 많이 넘치도록 개발되게 도와줄 것이다. 한글· 한자가 글자수가 수천 자나 된다고 해서 진짜로 문자로서 자형의 절대적인 정보량? 엔트로피가 알파벳의 수백 배 이상인 건 아니다. '가각간갇'이 무슨 알파벳의 ABCD 급으로 서로 완전히 다른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옛날엔.. 알파벳은 글자 수가 적어서 폰트도 크기가 작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반면.. 한글 한자는 너무 무겁고 뚱뚱하고 컴퓨터 자원도 많이 차지한다고.. 이러니 동양이 서양보다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고 열등하고 도태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정서가 있었다. 100여 년 전, 공 병우니 최 현배니 하던 시절엔 기계식 타자기만 갖고도 문자의 우열이 비교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그 정도로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컴퓨터 자원이야 풍부해서 넘쳐나고, AI가 사람으로 하여금 진짜로 본질적으로 창의성이 필요한 작업만 하면 되게 나머지를 보조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이 이런 AI를 만들기 위한 연구 개발은(코딩, 수학식, 논문 등)... 알파벳처럼 원초적으로 가볍고 취급하기 쉬운 tier 1급 문자로 행해졌음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3) 코드 정적분석: 재래식 알고리즘만으로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정적분석만으로 실행 결과를 100% 정확하게 예측하고 논리 결함을 찾아내는 게 불가능하다. 그 이상부터는 그냥 휴리스틱/AI의 영역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코드뿐만 아니라 주석에 적힌 자연어 문구도 의미를 파악해서 "이거는 시스템 정보나 패스워드가 하드코딩된 거 아냐?" 같은 것도 정적분석이 찾아낼 수 있다. AI는 재래식 정적분석 툴의 쓸데없는 오탐들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4) 그 밖에 이런 AI 기술로 내 생각엔 인쇄된 글자 모양을 보고 그냥 OCR을 하는 게 아니라 이게 무슨 폰트인지를 알아맞힌다거나, (산돌, 윤~~ ㅋㅋㅋ) 거대한 인파 사진을 보고 여기 사람 머리가 몇 개인지 카운트 하는 것.. 아 이건 딥러닝 AI까지는 아니라 그냥 컴퓨터 비전이려나.. 이런 기술이 개발되면 일상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다.

(5) 그리고 식당· 카페의 무인 키오스크가 아예 커맨드라인 콘솔이 도입될 게 아니라면 진짜 사람 말을 빨랑빨랑 알아들었으면 좋겠다. 지금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는 너무 느리고 답답한 반면, 단순 주문 접수는 지금 정도의 NLP로도 그렇게 어렵지 않을 테니 말이다. 확실히 AI 덕분에 단순 안내 데스크나 전화 상담 직원은 많이 없어질 것 같다.

다만, AI는 저렇게 창의성이 필요한 분야, 참고· 보조용 도구로서 강세이다. 법적 책임까지 수반되는 분야에 진입하는 건 많이 더디지 싶다. 그래서 의료 법조 쪽은 그냥 자문· 상담부터 시작할 것으로 보이며, 자동차의 완전 자율주행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 철도는 통제가 너무 잘 된 환경이니 AI 없이 재래식(?) 로직만으로 이미 무인 자동운전이 가능할 지경이다. 차량 번호판 숫자나 QR코드를 인식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정도로 잘 통제된 이미지의 인식은 AI가 아니라 그냥 통상적인 컴퓨터 비전 분야..)
그러니 자동차와 철도의 중간 난이도인 비행기나 선박의 운항에 AI 기반의 자동 운항이 먼저 파고들지 않을까 싶다. 허나, 승객 수백 명이 타는 여객기에 무인까지는 아니어도 부기장이 없어지고 1인 조종이 가능해질지는 과연..?? 저비용 항공사에서 작은 기종부터 1인 조종을 시킬 수는 있겠다.

* 미용· 이발은 굳이 AI화 자동화하자면 못 할 건 없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여겨진다. 사람이 직접 가위 들고 사람 머리 깎는 건 가까운 미래에도 변함없을 것 같다. ㄲㄲㄲㄲㄲㄲ

* 빌 게이츠는 무려 25~30년 전부터 제품에다가 자연어를 알아듣는 AI 비서? 에이전트를 넣으려고 애썼던 사람이다.
마소 Bob이라든가 Office 길잡이..;;는 좀 무리한 흑역사였긴 하지만.. 반대로 저 아저씨가 시대를 앞서간 시도를 한 거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 귀요미를 겨우 램 16MB, 150MHz짜리 펜티엄 컴터에다 집어넣으려 했으니 욕 먹었던 거지..;; 현실의 기술이 아이디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 미국 말고 의외로.. 중국이 2010년대 이후부터 머신러닝, 언어모델 쪽 연구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외국의 최신 논문을 찾아 보면 중국 사람 이름이 엄청 많이 보인다.
그런데 중국은 그런 첨단 AI 기술을 이용해서 인터넷의 불온 컨텐츠를 검열하고 인민들 행동패턴을 감시하는 데도 적극 활용한다는 게 함정....

지난 1990년대 중반까지 기계번역 프로그램이 잠깐 나오다가 유행이 식은 적이 있었다. 일한이라면 모를까 영한은 이거 뭐 도저히 실용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한영은.. 난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절대 개발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인공신경망 기반 AI로 언어 장벽이 이 정도까지 무너지고 낮아진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물론 무슨 기업간 회의나 대통령 연설, UN 컨퍼런스를 기계번역으로 때워도 되는 건 아니지만, 일상적으로 뭔 말인지 내용 파악하는 용도로는 기계번역이 정말 쓸 만해졌다.
게다가 이게 텍스트를 읽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waveform 형태의 말소리를 받아 적은 transcript를 생성하고 그걸 번역까지 하다니.. 유튜브에서 자기 동영상의 음성에서 자막을 아주 정확하게 실시간 생성해 주는 것만 해도 신기하기 그지없다.

암호 해독을 위해 언어학자가 아니라 수학자가 필요한 시대는 이미 20세기 중후반에 찾아왔다. 이제는 기계번역이나 자연어 처리 영역도 언어학자가 아니라 수학자와 데이터 과학자의 차지가 됐다.
2020년대가 되니 인간이 달이나 화성이나 해저에 기지를 만드는 건 전혀 가망이 없고, 그 대신 쌍팔년도 SF에서 거의 상상하지 못했던 스마트폰과 유튜브가 대세가 됐다. 그래서 카폰이라는 게 완전히 사라졌고, 무전기는 군· 경· 소방 같은 특수 직종에서나 쓰이는 물건이 된 거다. 뭐, 언어 자동 통번역기는.. 그 시절에도 상상은 했었고 얼추 실현돼 간다.

머신러닝에서 모델이라는 건 코드와 데이터의 성격을 모두 지니고 경계가 참 애매한 것 같다. =_=;; 물론 순수하게 데이터에 속하는 건 훈련용으로 먹이는 텍스트나 그림들이겠지만 저런 신경망 자체도 머신러닝 라이브러리 코드의 관점에서는 데이터일 것이다.
그리고 훈련시키는 건 뭔가 압축하는 것과 비슷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의 문제를 풀이하는 건(추론) 압축을 푸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런 AI는 참 엄청나고 대단하긴 하지만.. 공짜로 평범한 계산량으로 돌아가는 물건이 아니다. AI를 돌리기 위해 동원되는 컴퓨팅 자원을 보면 정말 억소리 난다.
chatGPT가 저렇게 답을 '즉시' 뱉어내기 위해서 지구 반대편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성능 슈퍼컴이 전기를 있는 대로 잡아먹고 열을 펑펑 내뿜으며 돌아가야 한다. 살인적인 분량의 신경망 연산이 행해지기 때문이다. 저기 서버가 하루 유지 비용이 원화로 몇 억? 몇십 억이니 그런다. 이때 컴퓨터 내부의 신경망 상태는 상상을 초월하게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훈련이나 추론 과정의 추적이 도저히 불가능할 지경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절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유인 달 착륙과 귀환을 몇 차례 성공하긴 했다. 그러나 그건 정말 위험하고 어렵고 힘들고 비싸게 가까스로 해낸 것이었다. 민간인의 대중적인 달 여행이라든가 달· 화성 기지로 이어지는 건 지금 관점에서도 가까운 미래엔 요원하다.

그리고 AI의 발달 추세에도 이런 우주 개발과 비슷한 면모가 있는 것 같다. 과거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자연어 처리가 가능해지기는 했지만.. 그걸 가능케 하는 컴퓨팅 환경이 저 우주 로켓 같은 물건이라는 거다. 물론 컴퓨터 업계도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만 빠는 건 아니니.. 그 연산에 특화된 CPU를 만들어 간다.

30여 년 전, 486이니 펜티엄이니 하던 시절엔 멀티미디어 지원이 컴터 업계의 최대 관심사였던 것 기억하시는가?
크게 (1) 동영상 아니면 (2) 게임용 3D 그래픽 실시간 렌더링이라는 두 분야이다.
하긴 그 시절엔 MPEG 동영상을 감상하기 위해서 전용 카드를 꽂네 마네 했던 것 같다. 요즘은 재생이 아니라 컴터 화면을 실시간으로 녹화하고 인코딩할 때에나 전용 카드가 필요한 듯하다.

나중에는 엄청난 물량을 자랑하는 멀티미디어 연산에 특화된 명령이 CPU에 추가되고, GPU라는 건 그래픽 가속기라는 이름으로 도입되곤 했었다.
그랬는데 이제는 단순 그래픽 처리를 넘어 머신러닝 신경망 연산에 특화된 CPU가 대세이다. 당연히 서버에 접속해서 API를 호출해서 구현된 거라고 생각한 통· 번역이 핸드폰에서 비행기 모드까지 켰는데도 동작한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저런 컴퓨터에 비해 인간의 두뇌는? 환경에 끼치는 부작용이 없고 당분 몇 스푼만 공급해 주면 한 나절을 거뜬히 돌아간다.
물론 두뇌와 컴퓨터가 서로 비교 가능한 존재는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는 생체라는 게 참 경이롭다. 두뇌와 컴퓨터는 다리와 바퀴가 다른 것만큼이나 다른 건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의 이스트소프트는 맨 처음 1990년대엔 21세기 워드라는 평범한(?) 업무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가 알툴즈로 명성 내지 악명을 떨쳤고.. 그러다가 게임이 더 돈 된다고 생각했던지 '카발'이라는 온라인 게임을 만들었고 지금 와서는 AI 기업을 표방하고 있다. (게임과 AI 모두 GPU가 쓰인다는 공통점이..)
각각의 제품들이 어떤 평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시류를 따라 참 다양한 분야를 개척하면서 생존하려고 애쓴다는 것 하나는 확실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24/06/22 08:35 2024/06/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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