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력 분산식과 동력 집중식

철도 차량에 대해서 공부하다 보면 동력 집중식· 동력 분산식 같은 용어에 대해서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근성 있는 철덕이라면 그게 뭘 의미하는지도 이미 다 알 것이다.
그러나 이곳 본인의 블로그는 철덕만 오는 곳도 아니고 만인을 위한 보편적인 공간인 만큼, 그게 무슨 용어인지 또 친절하게 소개하도록 하겠다.

동력차를 편성하는 방식에 대한 논쟁은 4종 교통수단 중 오로지 철도 차량에만 존재하는 개념이다. 여타 교통수단과는 달리 여러 차량을 한없이 길게 줄줄이 엮어서 다니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도 열차이다.

먼저 동력 집중식이란, 쉽게 말해서 동력을 내는 역할만 하는 한 개의 전용 동력차가 나머지 객차들을 전부 끌어 다니는 차량 편성 형태이다. 그 동력차는 흔히 기관차라고 불린다. 육중한 기관차는 당연히 괴력을 낸다. 가정으로 치면 가장 한 명이 혼자 돈 벌어서 온 가족을 먹여 살리는 형태라고나 할까?

기관차를 앞뒤로 혹은 앞-중간, 앞-앞으로 중련 편성하고 심지어 뒤에서 미는 형태로 편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동력 집중식에서 중요한 것은, 기관차는 오로지 기관차 역할만 하고 그 뒤에 객차를 끌든 화차를 끌든 뭘 엮든 상관없다는 사실이다.

최초의 철도 동력차는 증기 기관차이니 당연히 동력 집중식이었다. 증기 기관 자체가 덩치가 크고 물탱크에 석탄 화차까지 필요하다 보니, 구조적으로 동력 집중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력 분산식은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한 차량에 동력 기관과 접객 시설이 모두 있다는 것이며, 둘째는 여러 차량이 작은 힘을 동시에 낸다는 것. 동력 분산식을 설명하기 위해 동차에 대해서 먼저 소개할 필요가 있다.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동차라든가 KTX는 동력차 안에도 일부 좌석이 편성되어 있으며, 그 뒤에 이어지는 객차도 아무 차량이나 편성하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인테리어가 동일한 새마을호 객차라도 동차형 새마을호의 객차와 기관차형 새마을호의 객차는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

이들은 위의 두 조건 중 첫째만 만족하는 차량이다. 이런 차량은 동차라고 불린다. 하지만 동력차가 겨우 앞뒤로 두 군데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동력 집중식 동차라고 불린다.
요컨대 동력 분산식 차량은 반드시 동차이다. 그러나 모든 동차형 열차가 동력 분산식은 아니다.

그럼 둘째 조건에 대해 살펴보자.
미국의 길고 아름다운 화물 열차처럼 기관차를 중간중간에 여럿 편성하여 움직이는 것은 둘째 조건을 만족하지만, 이걸 동력 분산식이라고 얘기하지는 않는다.
첫째 조건과 복합하여, 동력 기관과 접객 시설이 모두 있는 차량이 여럿이서 같이 움직이려면.. 결국 동력 기관이 객실 밑바닥에 있어야 한다는 단서가 추가된다.

이런 조건을 정확하게 만족하는 철도 차량은 역시 지하철이다.
사실 지하철뿐만이 아니라 일본 신칸센도 동력 분산식 고속철이며, 동력 집중식 고속철인 KTX와는 다르다.

철도 차량은 왜 이런 식으로 구성의 차이가 발생하며, 동력 분산식과 동력 집중식의 장단점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
글을 계속 읽어내려가기 전에 여러분도 생각을 해 보기 바란다.
이런 사색을 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철도 시스템을 이해하고 철덕이 되는 법이다.

동력 분산식은 작은 엔진이 여럿 동시에 힘을 낸다는 특성상 가감속력이 뛰어나다.
밥 먹듯이 정차를 자주 하고도 표정 속도를 높게 유지하려면 빠른 가감속력이 필수이므로, 동력 분산식은 민첩해야 하는 여객 열차에 매우 유리하다. 특히 지하철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최고 속력이 그리 높지 않더라도 가감속력이 뛰어나면 지연 만회에도 유리하다.
차량으로 치면 지프 같은 사륜구동 차량이 일반 승용차보다 등판능력 같은 성능이 더 좋은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하겠다.

지하철이 보통 초당 2~3km/s 가속이 가능하며, KTX는 2km/h/s가 채 되지 않기 때문에 정지 상태에서 전속력을 내려면 거의 4분 가까이 걸린다고 한다. 시속 100km까지 10초가 안 걸리는 스포츠카와는 다르다. =_=
부산 지하철 1호선 전동차는 8량 1편성 중 앞뒤 차량을 제외한 6량이 모두 동력차...;;여서 전국의 지하철 중 가감속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기관차+객차형 차량의 경우, 객차는 별로 안 무거운 반면 열차의 머리에 해당하는 기관차만 100수십 톤에 달하며 엄청나게 무겁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과적 단속을 하는 게 다 이유가 있어서이듯, 무거운 차량은 선로에 무리를 많이 준다. 철도 교량 역시, 통과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열차의 하중을 기준으로 건설된다.

그 반면 동력 분산식 차량은 작은 동력 기관이 여럿인 형태이므로 개개의 차량이 기관차만치 많은 부담을 주지는 않는다. 여러 엔진 중 한두 개가 좀 뻗는다고 해서 열차가 바로 서 버리지도 않는다. 아직까지도 국산 고속철인 KTX 산천이 자주 뻗는 모양이던데, 산천이 동력 분산식 차량이었다면 얘기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끝으로, 이건 굳이 동력 분산식이라기보다는 동차형 차량 전체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차량은 기관차+객차형 차량과는 달리 전후 내지 좌우 대칭형으로 편성된다. 그래서 굳이 차량의 방향을 돌리지 않아도 지금 있는 상태 그대로 자연스럽게 전진이나 후진으로 나아갈 수 있다. 회차가 불편한 노선에서는 동차형 차량이 약방의 감초가 된다.

자, 지금까지는 동차형 차량의 장점 위주로 설명했다. 그러나 이것도 단점이 있으며, 기관차형 열차가 유리한 분야도 있다.
일단 동력 분산식 차량은 객실 바로 아래에 동력원이 있는 만큼,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증기 기관으로는 동차는 아예 만들 수가 없고, 기름으로 달리는 동력 분산식 열차는 소음과 진동이 가히 버스· 트럭 수준이 된다. CDC, NDC가 딱 그 예이다.
그러나 전동차의 소음은 기술의 발전 덕분에 그나마 요즘 굉장히 많이 줄어든 것이다. 누리로는 정말 조용하던데!

그리고 동력 분산식 차량은 차량 편성이 기관차형보다 경직된다.
앞뒤로 모두 동력 차량이 있고 동력차와 객차가 일심동체이다 보니, 뒤에 객차나 화차를 자유롭게 추가로 넣었다 끊었다 하기가 어렵다. 기껏해야 이미 해 놓은 편성의 배수 단위 중련 편성이나 가능하다. 이는 화물 수송에서는 꽤 불리한 점이다.

차량의 개수가 n이라 할 때 기관차형 열차의 cost는 15+n쯤 되는 반면, 동력 분산식 동차형 열차의 cost는 3n 정도 되겠다.
기관차는 초기 비용이 크다. 그러니 달랑 1량짜리 열차를 기관차+발전차까지 엮어서 끌고 다니는 건 대단한 낭비이다. 그러나 그 기관차의 출력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객차는 얼마든지 저렴하게 추가로 끌고 다닐 수 있다.

그 반면, 동차는 동력차와 객차가 일심동체이다 보니 한 차량의 비용이 일반 객차보다 비싸며, 길게 편성하면 할수록 그 비용도 커져서 결국은 기관차형 객차만 길게 편성하는 데 드는 비용을 앞지르게 된다.
또한 특별히 1량 동차로 설계된 동차가 아닌 이상, 동차는 어차피 1~2량 편성을 하지도 못한다.

이 정도면 동력 집중식과 동력 분산식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이 되었을 것이다.
글의 논조에서 느끼셨겠지만, 동력 분산식은 결국 속도가 중요한 여객에 유리하며, 동력 집중식은 편성의 유동성이 더 중요한 화물에 유리하다. 철도 선진국인 일본은 진작부터 가히 동차 천국인데, 우리나라도 이 추세를 이어받아 이제 공항 철도나 누리로처럼 동차형 열차가 대세로 각광받고 있다. 물론 옛날에 DEC, EEC 같은 동차의 추억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일본에는 아예 화물 열차도 동차형 열차가 존재하며, 이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다.
그러나 그런 일본도 아예 바닥에 누워서 편히 자야 하는 침대차는 기관차+객차형 열차로 운행한다고 함. 어차피 빨리 갈 필요도 없고 높은 가감속력이 필요하지도 않으니까.
이를 응용하자면, 시베리아 대륙 횡단 열차에 동차형 열차가 투입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비행기와 경쟁하는 시속 500km짜리 자기 부상형 고속철이 아닌 이상 말이다.

본인이 다니는 교회의 청년부에 있는 모 형제는 혼자 있을 때 Oh Glory Korail을 절로 흥얼거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섬식 승강장· 상대식 승강장의 차이에 대해 얘기하고 서울 지하철을 관할하는 회사가 둘로 나뉘어 있다고(서울 메트로 vs 도철) 얘기하더니만 주변으로부터 철덕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한다. 이게 다 내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된 것이다.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다.
여러분도 어디 가서 동력 집중식, 동력 분산식 같은 용어를 구사하고 그 차이점까지 설명할 줄 안다면 주변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1/05/15 08:32 2011/05/1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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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범준 2011/09/13 14:34 # M/D Reply Permalink

    1. 오늘도 철도에 관한 유용한 상식을 배워 갑니다.
    철덕이 되기 위한 유용한 자료에 감사드립니다.^^

    2. KTX를 차라리 동력 분산식으로 만들었으면 정말 이야기가 달라졌을 텐데...
    굳이 동력 집중식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요? ;;

    3. 전기 철도는 앞으로도 발전 잠재력이 큰 철도 분야인 것 같습니다.
    이제 기관차 안에서 화력으로 동력을 발생시키거나, 기름 같은 화석 연료로 발전(發電)시키던
    기관차/동차 시대는 조금씩 스러져 가는 것 같고, 시대도 시대인 만큼
    우리나라도 국내에서 전기 철도 관련 기술을 육성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저의 지론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1. 사무엘 2011/09/14 11:17 # M/D Permalink

      KTX 산천 이후의 국산 고속철 차량은 드디어 동력 분산식으로 만들 거라고 한다더군요. 요즘 전동차들은 바닥에 동력원을 설치해도 될 정도로 굉장히 조용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여객용 철도 차량은 누리로나 공항 철도 같은 차량으로 차츰 물갈이되어 현재의 무궁화/새마을호 객차 구도를 대체하게 될 것입니다.
      옛날 전설의 열차 EEC가 생각나네요.
      그리고 전기 철도가 늘어남과 동시에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 의존율도 더욱 높아지겠죠. (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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